“다시 이르니,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방편선교(方便善巧)의 원만함을 얻게 되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회향을 얻는 방편선교요, 둘째는 여러 외도로 하여금 귀의하여 와서 향하게 하는 방편선교요, 셋째는 경계를 버리는 방편선교요, 넷째는 악한 지음[惡作]을 덜어 없애는 방편선교요, 다섯째는 중생을 구호하는 방편선교요, 여섯째는 중생에게 베풀어 목숨을 살리는 방편선교요, 일곱째는 받아 취함을 얻는 방편선교요, 여덟째는 그른 곳을 버리고 옳은 곳에 머무는 방편선교요, 아홉째는 보여 나타내고, 가르쳐 인도하고, 권하고 격려하여 기쁘게 하는 방편선교요, 열째는 부처님께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 방편선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회향을 얻는 방편선교인가? 말하자면 모든 보살들은 남에게 포섭되지 않고 자기의 소유인 꽃ㆍ과일로써 낮과 밤의 6시(時)에 여러 부처님과 및 여러 보살에게 바쳐서 이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보살은 남에게 포섭되지 않고 자기의 소유인 향나무 혹은 여러 가지 보배나무 혹은 겁파나무[劫波樹]로써 낮과 밤의 6시에 여러 부처님과 및 뭇 보살에게 공양하면 이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
010_0090_c_02L보살은 또한 경전 가운데 있는 광대한 큰 승사(承事)와 공양하는 데에서 듣고 나서 청정한 믿음과 즐거운 마음을 일으켜서 이것을 회향하여 온갖 부처님과 보살에게 공양하며, 또다시 보살은 능히 시방 모든 보살들의 처소와 나머지 중생이 지은 선한 업에서 보리의 자량으로 하여금 모두 원만함을 얻게 하여 깨끗한 뜻의 즐거움과 깊이 마음의 경사스러움과 기쁨을 발하게 한다. 이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보살이 혹은 향과 꽃으로써 부처님의 탑이나 부처님 형상에게 바치어 이로써 회향하여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계행을 깨뜨린 때를 여의고 부처님의 계향(戒香)을 얻게 한다.
보살은 또 늘 물 뿌려 쓸고 땅에 발라 이것을 가져 회향하여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악한 위의를 여의고 선한 법식을 닦아서 제정원만(齊整圓滿)케 한다. 또 모든 보살들은 꽃이나 일산을 바쳐드려서 이것으로써 회향하여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뜨거운 고달픔을 여의어 버리게 한다. 또 보살은 가람[僧伽藍]에 들어가면 마음을 내어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성에 들게 하여지이다’ 하고, 가람에서 나올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옥에서 벗어나게 하여지이다’ 한다. 만일 방문을 열게 되면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여러 선한 갈래를 열고 세지(世智)의 문에서 나오게 하여지이다’ 하고, 만일 방문을 닫게 되면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나쁜 갈래의 문을 닫게 하여지이다’ 한다.
보살이 앉을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묘보리수에 앉음을 얻게 하여지이다’ 한다. 오른편으로 누울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편히 머무르게 하여지이다’ 하고, 누웠다가 일어날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가 일어남을 여의게 하여지이다’ 한다. 만일 대소변을 보러 가게 되면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대각의 길[大覺路]로 향하게 하여지이다’ 하고, 바로 대소변볼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여러 독한 화살을 빼게 하여지이다’ 한다.
010_0091_a_02L만일 깨끗이 씻을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의 때와 온갖 허물과 근심을 씻게 하여지이다’ 한다. 만일 손을 씻을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더럽고 탁한 업을 여의게 하여지이다’ 하고, 만일 발을 씻을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장애되는 티끌과 때를 여의게 하여지이다’ 하고, 양치질 할 때에는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티끌과 때를 여의게 하여지이다’ 하고, 보살 자신이 지은 여러 가지 업을 가지고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에 회향하여야 하고, 보살이 여래의 탑에 예배하려거든 ‘원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여러 하늘과 세간의 예배를 늘 얻게 하여지이다’라고 하여야 하니 이것이 이름하여 보살의 회향 방편 선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여러 외도로 하여금 귀의하게 하는 방편선교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은 저들 외도 무리 가운데서 변화하여 여러 외도의 형상, 말하자면 차락가파리박라사가니건타불다라(遮洛迦波利縳羅社迦尼健陀弗多羅)를 능히 지어서, 저 법 가운데서 받아 지녀 읽고 외우니, 보살이 중생을 성숙케 하고자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내가 만일 먼저 아차리야(阿遮利耶)를 지으면, 곧 오만한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수순시켜 조복 받지 못하리라.
이로 말미암아 나는 외도의 법 가운데 가서 출가함을 보이어 제자가 되리라. 출가하고 나서는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저들을 따라 갖가지 여러 행을 닦아 익혀서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서 저 법을 탐구하여 끝내리라. 거칠고 더러운 밥을 빌되 짓는 바가 모두 저들 여러 외도의 위의행법(威儀行法)보다 이기게 하리라.’ 이로 말미암아 보살은 여러 외도의 존중한 스승이 되어서 하는 바 언설은 모조리 믿어 받아서 수순하여 조복 받게 하느니라.
보살은 이 여러 중생들이 자기에게 귀의하여 향한 줄 알고 나서, 저들에게 외도의 삿된 소견과 과실과 배우는 바 법이 바른 가르침이 아닌 것을 말하여 주되, ‘탐욕을 싫어하여 여의고 끊어 없애게 함을 능히 말하지 못하는 까닭이다’고 해야 하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외도가 보살의 교화를 받고 삿된 도를 버리고 바른 법 가운데로 들어가느니라. 보살은 또 온갖 외도의 5신통 범행을 닦아 익히는 가운데에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 5신통을 증득하고, 또다시 정려를 닦아 익혀서 성취하는데, 모든 삼마지(三摩地)와 삼마발저(三摩鉢底)가 여러 외도가 얻은 5신통보다 훌륭하며,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저들보다 뛰어나서 사범(師範)이 되어야 하느니라.
010_0091_b_02L 보살이 교화한 외도가 모두 성숙한 줄 알고 나서 저들에게 정려, 여러 가지 삼마지와 삼마발저의 갖가지 잘못이며 배운 바 법이 바른 가르침이 아님을 다시 설명하되, 저들이 ‘탐욕을 싫어하여 여의고 대제(對制)할 도를 설하지 않음을 쓴 까닭이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외도가 보살의 교화를 받아서 삿된 도를 버리고 불법 가운데 들어오게 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여러 외도로 하여금 귀의하여 향하게 하는 방편선교라고 하느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경계를 버리는 방편선교인가? 보살이 온갖 탐욕이 많은 중생을 보고서 방편으로 조복 받음을 말하는 것이니, 여인의 몸으로 변화하여, 단정하고 훌륭하고 미묘하기를 다른 여인의 몸보다 훨씬 훌륭하게 만들어, 중생이 보는 이는 마음에 염착함을 내게 하여 놓고, 보살은 그가 이와 같이 염착함을 보고서는 곧 문득 저와 같이 잠자던 곳에서 목숨을 마침을 나타내 보인다.
한 찰나ㆍ한 모호율다(牟呼栗多) 사이에 썩어 문드러지는 모양과 냄새나고 더러워서 가히 꺼릴 만함을 나타내니, 중생이 보고 나서 큰 공포심을 일으키고 고통스럽고 고달픈 마음을 내서 뜻으로 깊이 싫어하여 버리려하며, ‘누가 능히 나로 하여금 이러한 더럽고 모진 곳에서 떠나게 해주려는가’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때에 보살이 곧 저의 앞에서 근기를 따라 여러 가지 법을 연설하여 세 가지 보리에서 결정코 따라서 하나는 증득케 해야 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버리게 하는 방편선교를 얻었다 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악한 짓을 없애버리는 방편선교인가? 보살이 여러 중생이 무간죄와 온갖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업을 일으키어 실심하고 근심하며 뉘우치는 것을 보고, 보살이 저에게 가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어째서 실심하여 근심하고 뉘우치고 있는가?’ 하면, 저 중생이 말하기를 ‘보살이시여, 내가 무간죄와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업을 지어서, 긴 밤 동안 여러 가지 고통과 고달픔을 받을 것이 무서워서 이익이 없고 편안치 않은 까닭으로,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실심하여 근심하고 뉘우치나이다’ 하리라. 이때에 보살은 저 중생을 위하여 바른 법을 자세히 설하여 그로 하여금 깊이 허물을 뉘우치고 보살계를 받게 하리라.
010_0091_c_02L만일 이 중생이 능히 허물을 뉘우치지 못하면, 이때에 보살은 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믿어 항복함을 내게 하고자 위하여 신통을 나타내어, 저 사람의 생각하는 일을 자세히 설하여, 중생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보살 있는 곳에서 믿어 항복하는 마음을 내어 기뻐서 믿고 즐거워하여야 한다. 믿고 즐거움을 내고 나서 근성이 성숙하면 보살은 저를 위하여 묘한 법을 널리 설해 주어야 하니, 저 사람은 곧 능히 따라 순종하여 받아들이리라.
보살은 또다시 저 사람 앞에서 부모를 화하여 만들어 놓고 이와 같은 말을 한다. ‘너는 꼭 보아라. 나는 곧 이 너의 같은 친구 사람이다. 너는 이 지은 바 업을 뉘우치지 말라. 필경에는 지옥 가운데 떨어지지 않으리라. 또한 이익과 안락도 잃지 않으리라.’ 이와 같이 말하게 하고 나서, 곧 문득 나타낸 바 부모를 죽여 버린다. 보살이 저 중생의 앞에서 신통변화를 나타내 보이니, 저 사람은 생각하리라. ‘지혜 있는 이도 오히려 부모를 죽이고도 신통을 잃지 않거늘, 하물며 나처럼 지혜도 없이 이 업을 지었는데 지옥에 떨어져서 이락(利樂)에서 물러나랴.’
이때에 보살은 저 중생을 위하여 묘한 법을 설하여 그 악한 업으로 하여금 점점 가볍고 적어지게 하기를 마치 모기날개와 같게 하여야 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악한 짓을 없애주는 방편선교라 하느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중생을 구호하는 방편선교인가? 말하자면 이는 보살이 중생의 근기가 성숙한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데, 저 중생들이 온갖 매우 좋지 않은 업을 지었으므로 보살은 저 사람들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조복 받으려고 여러 가지 중생의 무리를 변화하여 만든다.
010_0092_a_02L대왕의 몸[大王身]으로써 조복을 얻으려는 이에게는 곧 대왕의 몸을 나타내어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해 주고, 적은 소왕의 몸[小王身]으로써 조복을 얻으려는 이에게는 곧 소왕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해 주고, 바라문과 찰제리의 몸으로써 조복을 얻으려는 이에게는 곧 바라문과 찰제리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해 준다. 하늘의 몸으로써 조복을 얻으려는 이에게는 곧 하늘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해 주고, 금강을 가진 몸[執金剛]으로써 조복을 얻으려는 이에게는 곧 금강을 가진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해 준다.
두려움으로써 조복을 얻으려는 이에게는 곧 두려움을 나타내어 법을 설해 주며, 묶이거나 살해되거나 때림으로써 조복을 얻으려는 이에게는 이와 같은 일들을 나타내어 보여서 법을 설하여 주며, 사랑스러운 말로써 조복을 얻으려는 이에게는 곧 사랑스러운 말을 하여 법을 설하여 주느니라. 만일 중생의 무리가 저 무간죄를 짓고자 할 때에 보살의 몸에 해할 뜻을 내면, 그 신통을 얻은 보살은 곧 갖가지 방편을 나타내 보인다. 혹 어떤 때는 막으며, 혹 다시금 제지하며, 혹은 다른 방향으로 옮기게 한다.
저 사람 앞에서 또다시 자기가 지은 것과 같은 무간의 업사(業事)를 나타내 보이되, 혹은 다시 지옥에 떨어지는 모양을 나타내 보이어 자기가 지은 무간죄업을 제지하여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하느니라. 그 신통력을 얻지 못한 보살은 저 여러 중생의 목숨의 길고 짧음을 잘 관찰하여 저 중생이 짓고자 하는 무간을 보아서 생각하여야 하고, 이 여러 중생이 장차 무거운 죄를 일으키거든 대비심을 일으켜 마음에 근심과 고뇌를 내어야 하느니라.
010_0092_b_02L 보살은 저를 손바닥 가운데 둔 암마라(菴摩羅) 과실과 같이 보아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여야 하나니라. ‘나는 한 중생이라도 이익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능히 아비지옥에서 큰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러한 중생과 나아가 아직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머물지 못한 중생을 항상 능히 이와 같이 차별 없는 방편으로 막아야 한다. 이 여러 중생들이 악업을 짓고 나서 장차 저 지옥 가운데 떨어지게 되더라도 내가 신통자재를 얻지 못하고 방편이 없고 저 믿음이 없게 되어 빨리 수명이 짧아지고 여러 악한 중생들이 다른 방방에 있게 되어 저 중생들이 좋지 못한 업으로 말미암아 아비지옥에 날까 두려워한다.’
보살은 이로써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발하여 중생들은 각기 자기의 업을 따르므로 다른 방편으로는 능히 구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비스러운 마음을 일으키어 평등하게 가르치고 경계함으로 그들을 위하여 과벌(科罰)을 보이니, 이것이 이름이 보살이 중생을 구호하는 방편선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중생에게 베풀어 목숨을 살리는 방편선교인가?
말하자면 여러 보살들이 중생들이 법을 받는 것을 감당할 수 없고, 다만 입고 먹는 것만 구하여 스스로 족한 줄 알고, 능히 성현의 법을 알아 조복하지 못함을 보아서, 보살이 이 여러 중생들에게 산수ㆍ기술ㆍ문자ㆍ주기(注記), 이와 같은 것을 가르쳐 보여 착함을 이루고 악한 법은 이루지 못하게 하니, 이것이 이름이 보살이 중생에게 베풀어 목숨을 살게 하는 방편선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받아 취함을 얻는 방편선교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진귀한 보배덩어리를 수미산과 같이 많이 얻더라도 받아 취하지 않고, 만일 능히 하열한 생활에 필요한 잡물이라면 곧 받는다. 왜냐하면, 말하자면 이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여러 중생이 탐내 아끼고 질투 시기하여 탐하고 애착함에 가린 바 되어 자기나 남의 물건을 아껴서 자기나 남으로 하여금 얻어 수용하지 못하게 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나고 죽는 바다에 처하여 늘 떴다 잠겼다 하느니라.’
보살은 저 중생들도 하여금 긴 밤중에 구족한 이익과 편안함을 얻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문득 받는 것이다. 비록 저 물건을 받되 탐애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만 여러 불ㆍ법ㆍ승에 공양하여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한 가지로 훌륭한 이익을 얻게 하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함이니, 시주는 이로 말미암아 매우 기쁘니라.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받아 취함을 얻는 방편선교이니라.
010_0092_c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그른 곳을 버리고 옳은 곳에 머무는 방편선교인가? 말하자면 여러 보살들이 중생이 능히 법을 받기 감당할 만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등각을 나타낼 것을 보았는데, 그러나 저 중생이 성문과 벽지불의 승(乘)을 얻기 위하여 방편을 일으키어 늘 부지런히 닦아 익히면, 보살은 법문을 설하여 저 중생들로 하여금 2승(乘)을 버리고 대승법 가운데로 인도하여 회향케 해야 하고, 옳은 곳에 머무는 방편을 설하여 저 중생으로 하여금 2승을 버리고 대승법 가운데로 인도하여 회향케 하여야 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그른 곳을 버리고 옳은 곳에 머무는 방편선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보여 나타내고, 가르쳐 인도하고, 찬탄하고 격려하여 기쁘게 하는 방편선교인가? 말하자면 여러 보살들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발하지 못한 이에게는 보리심을 발하게 하고, 벌써 보리심을 발한 이에게는 비록 다시 계행을 갖되 마음에 쉽게 족한 줄 알게 한다. 만일 정진함이 적고 게으름이 많으면 보살이 그들로 하여금 늘 닦아 정진하게 한다.
만일 여러 중생들이 비록 조금 계를 가지되 훼범하는 일이 많으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청정치 못하고 항상 기쁨과 즐거움이 없어서 파계한 때에 마음이 덮어 머물게 된다. 보살들은 저 중생들을 위하여 갖가지로 묘한 법문을 설하여 저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에 깨끗한 신심을 내어 환희하고 기쁘게 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보여 나타나고, 가르쳐 인도하고, 찬탄하고 격려하여 기쁘게 하는 방편선교이니라.
010_0093_a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받들어 섬기며 공양함을 얻는 방편선교인가? 말하자면 여러 보살이 이미 출가하여 여러 가지 이익에서 양을 알고 족한줄 알아서 받는바 이익에서 비법(非法)이 없어야 한다. 또한 보살이 한가하고 고요한데 홀로 정(定)에 들어 머물러, 여러 부처님과 보살의 행에 수순하며 생각하기를 ‘나는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고자 한다’고 하느니라. 이 보살이 수순하여 생각하고 나서 갖가지로 온갖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함을 지어서 여섯 가지 훌륭한 바라밀다의 수행원만을 얻느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여섯 가지 바라밀다의 모든 행의 원만을 닦는 것인가? 말하자면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가운데 자구(資具)를 엄정하게 만드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보시바라밀다요,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가운데 마음을 발하여 온갖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것이 보살의 지계바라밀다요,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등 가운데서 마음이 능히 환희하고 즐거운데 편안히 머묾이 보살의 인욕바라밀다요,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가운데서 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살의 정려바라밀다요,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등 가운데서 마음으로 능히 갖가지 차별을 관찰하는 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다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의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방편선교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야 방편선교 원만을 얻느니라. 다시 이르니,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는 까닭에 원(願)의 원만함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하열함이 없는 원이요, 둘째는 겁내고 약함이 없는 원이요, 셋째는 온갖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수행하는 원이요, 넷째는 여러 부처님 여래를 찬탄하기 위하여 발하는 원함이요, 다섯째는 온갖 마군을 잘 항복받는 원이요, 여섯째는 남을 말미암지 아니하고 성취하는 원이요, 일곱째는 가없음을 얻는 원이요, 여덟째는 놀라고 무서워하지 않는 원이요, 아홉째는 피곤하거나 싫지 않는 원이요, 열째는 원만함을 얻는 원이니라.
010_0093_b_02L어떻게 하는 것이 하열함이 없는 원(願)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모든 것 전부[諸有]를 즐겨하지 않고 발하는 원이니, 이 이름이 보살이 하열함이 없는 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겁내고 약함이 없는 원인가? 말하자면 보살이 삼계(三界)를 싫어하지 않고 탐욕 여의기를 구하여 적멸에 머물고자 발하는 원이니, 이 이름이 보살이 겁내고 약함이 없는 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온갖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수행하는 원인가? 말하자면 보살이 이 원을 발하기를 ‘여러 중생계가 모두 무여 열반을 증득하게 한 다음에 나는 바야흐로 그 뒤에 큰 원적을 증득하리라’ 함이니, 이 이름이 보살이 온갖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수행하는 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여러 부처님 여래를 찬탄하기 위하여 발하는 원인가? 말하자면 이는 보살이 이 원을 발하기를, 여러 중생계와 나아가 보리를 발하지 못한 이를 모두 발심하기를 원하고, 발심하기를 원한 다음 차례로 보리분의 행을 닦아 행하게 하고, 차례로 닦아 행하게 하여 보리수에 앉게 한다. 저들 가운데 이미 도량에 앉음을 얻은 이에게는, 나는 마땅히 섬기고 공경하고 공양하여 청하여 법바퀴를 굴리게 한다.
만일 열반에 들려고 하면 나는 권청하여 오래도록 세간에 머물게 함이니,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 이름이 보살이 여러 부처님 여래를 찬탄하기 위하여 발하는 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온갖 마군을 잘 항복받는 원인가? 말하자면 이는 보살이 아래와 같은 원을 발하는 것이니라. ‘만일 내가 장래에 등각을 나타낼 때에는 불국토 가운데 모든 천마(天魔)의 무리가 영영 없어지고, 또한 모든 마군의 이름까지도 듣지 않게 하소서.’ 이 이름이 보살이 온갖 마군을 잘 항복받는 원이니라.
010_0093_c_02L“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말미암지 아니하고 성취하는 원인가? 말하자면 이는 보살이 남을 말미암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바야흐로 원을 발함이다. 그러나 반야로써 중생계의 고뇌 받음을 보느니라. 이미 보면 중생을 구호코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니, 이 이름이 보살이 남을 말미암지 아니하고 성취하는 원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가없는 원을 얻는 것인가? 말하자면 이는 보살이 보리의 적은 분량의 자량을 위하여 원을 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보살이 큰 원을 발하기 위하여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깨끗한 믿음의 마음을 발하여 시방세계의 현재 계신 여러 부처님과 온갖 보살을 보느니라. 보살은 혹 어떤 보살은 고행에 머물러 있으며, 혹은 도량에 앉았으며, 혹은 여러 부처님께서 등각을 나타내어 법바퀴를 굴리는 것을 본다.
보살은 저들을 보고 나서 깨끗한 뜻의 기쁨을 발하여 저 시방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이 혹은 고행에 머물거나 혹은 등각을 나타내거나 법바퀴를 굴리는 데에서 그 낱낱을 보고 알아서 깊은 마음으로 경사스럽게 여기고 기뻐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가없는 원을 얻은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놀라고 무서워하지 않는 원인가? 말하자면 모든 보살들은 새로이 마음을 발하여 매우 깊은 법문을 듣거나, 여러 부처님의 넓고 큰 위덕을 듣거나, 여러 보살들이 신통에서 유희함을 듣거나, 매우 깊은 방편선교를 듣는다.
보살이 이를 듣고 나서 놀라지 않으며 무서워하지 않고 생각하기를 ‘여러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보리의 머문 경계와 성숙한 중생이 모두 끝없고 한량이 없어서, 저 법 가운데서 나는 능히 알지 못하지만 여러 부처님은 환히 앎을 나는 응당 안다’고 함이니, 이것의 이름이 놀라고 무서워하지 않는 원을 얻는 것이니라.
010_0094_a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피곤하거나 싫지 않는 원인가? 말하자면 모든 보살들이 비록 중생의 뜻과 성품이 완고하고 미련함을 보면 또한 조복 받기 어렵지만, 이 중생들을 끝내 피곤하거나 싫어하지 않느니라. 혹 어떤 보살은 여러 중생의 뜻과 성품이 완고하고 미련하여 조복 받기 어려운 이를 보고는 피곤하거나 싫음을 내니, 피곤하고 싫어함으로 말미암아 중생을 버려 던지고 원을 발하기를, ‘나는 청정한 세계에 태어나서, 마침내 이와 같은 여러 악한 중생들의 이름은 듣지 않겠다’고 하면, 비록 다시 청정한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지만 끝내 태어나지 못하리니, 중생을 버려 던져 성숙케 하지 못하게 한 까닭이니라.
이런 뜻 가운데서, 또 총명하고 지혜 있는 보살은 마음을 발하기를 ‘여러 세계 여러 중생 가운데 정진이 낮고 못나서 게으른 이와 완고하고 귀먹고 눈멀고 벙어리가 되는 등의 중생으로서 온갖 부처님과 모든 보살들에게 관찰되어 간택되었거나, 중생계 가운데 두루하여 열반에 들지 못한 이들로 아울러 모두 버림받으면, 나는 이제 이런 중생으로 하여금 모조리 반드시 나의 부처님세계 가운데에 모이게 하고자 하며, 또 나는 이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이 이런 마음을 내서 생각할 때에 생각 가운데 여러 마군의 궁전이 모조리 진동하고 또 온갖 여러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가 되니, 이와 같은 보살은 반드시 결정코 청정한 불국토에 태어남을 얻고, 또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빨리 등각을 나타내게 되니, 이 이름이 보살이 피곤하거나 싫지 않은 원을 얻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원만한 원을 얻는 것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도량에 앉고 나서 마군을 꺾어 깨뜨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에서 등각을 나타내서 원이 벌써 원만하여 다시는 발할 것이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해 말하자면 소유(蘇油)가 그 그릇 가운데에서 평평하게 차서 다시는 극히 적은 량의 한 방울의 소유도 용납하여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까닭에 말하여 원만한 원을 얻었다고 이름하느니라.
010_0094_b_02L보살도 저 소유를 담는 그릇과 같아서 능히 보리에서 등각을 나타내고 나서는 원이 벌써 만족함을 얻어서 다시는 온갖 묘한 원을 발함이 없으니, 이 이름이 보살이 원만한 원을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큰 원의 원만함을 얻는 것이니라. 다시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힘의 원만함을 닦게 되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선남자야,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이 가리지 못하는 힘의 원만함을 닦는 것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에게는 온갖 외도와 모든 이론자(異論者)가 능히 비추어 가리지 못하니, 이 이름이 남이 가리지 못하는 힘의 원만을 닦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신력을 꺾이지 않는 원만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은 여러 중생 가운데서 보살의 힘을 능히 꺾임이 없으니, 이 이름이 신력을 꺾이지 않는 원만이니라.
010_0094_c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반야의 힘에서 닦아 행하는 원만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 법 가운데서, 바른 지혜로써 관하여 봄을 말함이니, 오직 부처님의 온갖 지혜를 제외하고는 이미 증득하지 않음이 없으며, 알지 못함이 없느니라.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반야의 힘에서 닦아 행하는 원만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권속의 힘에서 원만함을 같이 얻음인가? 말하자면 이 보살이 소유한 권속이 계(戒)와 견(見)과 위의(威儀)와 정명(淨命)이 모조리 원만하여 소유한 온갖 권속이 모두 보살과 같이 행함을 말함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권속의 힘에서 같이 원만함을 얻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신통의 힘에서 닦아 원만함을 얻는 것인가? 이는 보살의 신통의 훌륭한 힘은 여러 세간과 저 2승(乘)의 신통경계 보다 뛰어남을 말함이니, 보살이 한 터럭 끝에 남섬부주와 나아가 4주(洲)와 1천 세계, 2천, 3천 대천세계를 두기를 즐겨하며, 또다시 보살이 한 적은 티끌의 양 가운데 한량없는 항하 모래 수효의 세계를 안치하기를 즐겨한다.
이와 같은 세계, 혹 둘, 혹 셋, 혹 넷, 혹 다섯, 혹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내지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항하의 모래수의 세계를 한 극히 적은 티끌 가운데 안치해 두되 그 적은 티끌의 양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아서, 저 여러 세계가 한 적은 티끌 가운데서 각각 편안히 처해 있으나 서로 장애되지 않고 그 속의 중생들도 또한 요란하고 핍박되는 모양이 없느니라.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신통의 힘에서 닦아 원만함을 얻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자재의 힘에서 닦아 원만함을 얻는 것인가? 이 보살이 뜻에 7보(寶)로써 대천세계에 채워서 중생을 요익하기를 즐겨하며, 나아가 갖가지 여러 보배로써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에 가득 채움을 즐겨함을 말함이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자재의 힘에서 원만함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라.
010_0095_a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총지의 힘에서 원만함을 얻는 것인가? 이는 보살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수의 여러 부처님 국토 가운데의 모든 여래께서 연설하신 바른 법문 가운데 뜻과 글귀가 다르고 이름과 이치가 같지 않음을 들을지라도 보살은 능히 한 찰라 가운데 혹은 한 납박(臘縛), 한 모호율다(牟呼栗多)에서 뜻ㆍ글귀ㆍ이름ㆍ이치를 받아 알고 아울러 능히 닦아 익힘을 말함이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총지의 힘에서 원만함을 얻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능히 신변위력을 고쳐 바꿈이 없는 원만인가? 이는 보살이 가진 신통변화는 오직 여래ㆍ응ㆍ정등각을 제외하고는 온갖 중생은 끝내 능히 보살을 고쳐 바꿈이 없으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신변위력을 고쳐 바꿈이 없는 원만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어겨 넘지 못하는 가르침의 힘의 원만을 얻음인가?
이는 보살이 가진 바 교칙은 말에 둘이 없어 중생이 믿고 순종하여 어겨 넘는 이가 없고 오직 선교방편의 이락(利樂)을 제외함을 말함이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어기어 넘지 못하는 가르침의 힘의 원만을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힘의 원만함을 닦는 것이니라. 다시 이르니,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지혜의 원만을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느냐?
어떻게 하는 것이 보특가라에 내가 없는 지혜의 원만인가? 말하자면 이는 보살이 모든 온(蘊)의 모양을 따라 나서 일어남을 관하여 보고, 또한 모든 온에서 멸하여 부수어짐을 관하여 봄을 말함이다. 보살이 온이 날 때에 성품이 견고하지 못하여 참됨이 없이 지은 바가 곧 이 공의 성품인 것을 바로 관하고, 그리고 온이 멸할 때에 체성(體性)이 파괴됨을 바로 관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모든 온은 필경에 ‘나’도 없고 또한 중생도 없고, 목숨도 없고 양육함도 없고 보특가라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다른 생(生)은 나[我]에 집착하여 이와 같이 생각한다. ‘온이 곧 내가 아니며 나는 곧 온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온 가운데 내가 있다고 망령되게 집착하여 진실한 법을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나고 죽는 데 옮겨 다니는 것이 마치 돌고 도는 수레바퀴와 같으니라. 보살은 참되게 여러 가지 법을 알아 깨쳤으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보특가라에 내가 없는 지혜의 원만함을 얻은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법에 내가 없는 지혜의 원만함을 얻는 것인가? 말하자면 이는 보살이 여실히 더하고 덜하는 여러 가지 법의 체성을 알아 깨치고, 보살이 또한 이와 같이 생각한다. ‘법과 더불어 이름은 서로 객이 되어 다만 허망과 분별로 말미암아 법과 명자를 세운 것이니, 자성이 함께 없고 생각의 심량(心量)에 의지하며 그리고 세속의 법과 명자를 따라 다시 서로 객이 되어 체가 없으며 작용을 씀이 아니니, 이것은 다른 연을 의지하여 법성(法性)이 있다.’ 다른 뭇 연을 기다려서 일어났으므로 보살은 여실히 온갖 것이 연을 기다려 일어나고 연이 다하면 멸하는 줄 깨쳐 아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법에서 내가 없는 지혜의 원만을 얻는 것이니라.
010_0095_c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한량이 없는 지혜의 원만을 얻음인가? 이는 보살의 한량이 없는 지혜는 첫 찰나에서 일어나고 뒤 찰나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이곳에서 일어나고 다른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걸림 없는 지혜로써 온갖 찰나, 온갖 처소에서 항상 서로 이어가고 항상 두루 일어나는 까닭이다.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한량없는 지혜에서 원만함을 얻는 것이라.
또한 이 보살들이 능히 2승에서 닦아 익힌 삼마지에 머묾과 삼마지의 행하는 경계를 알고, 또한 능히 온갖 보살이 삼마지에 머묾과 삼마지의 행하는 경계를 알고, 또한 능히 여래의 삼마지에 머묾과 삼마지의 행하는 경계를 알고, 여래의 힘으로 가지(加持)하는 보살인 까닭으로 능히 부처님의 삼마지도 깨쳐 아느니라.
보살이 만일 스스로 성취한 이숙과(異熟果)의 지혜로써는 곧 능히 부처님의 삼마지를 깨쳐 알지 못하지만, 스스로 성취한 이숙과의 지혜로써 능히 나머지 삼마지를 모조리 깨쳐 아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삼마지의 행하는 바 경계의 지혜의 원만함을 얻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신변지(神變智)를 닦는 원만함을 얻는 것인가? 이 보살이 능히 성문의 신변을 바로 알며, 능히 연각의 신변을 바로 알며, 능히 보살의 신변을 바로 알거늘, 어찌 하물며 온갖 중생의 가진 바 신변을 능히 알지 못하랴.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신변의 지혜를 닦는 원만을 얻는 것이니라.
010_0096_a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섭취하지 못하게 하는 지혜의 원만을 닦아 익히는 것인가? 이 보살이 성취한 지혜는 온갖 외도와 여러 악마, 성문과 연각이 능히 섭취하지 못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섭취하지 못하게 하는 지혜의 원만함을 닦아 익힌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중생이 행하는 바를 관하는 지혜의 원만함을 얻는 것인가?
이는 보살이 청정한 지혜로써 중생계를 관함을 말함이니, 중생 가운데서 혹 아직 보리심을 발하지 못했거나, 혹 벌써 보리의 마음을 발하였거나, 혹 보리의 마음을 얻지 못했거나 벌써 보리의 마음을 얻었거나, 혹 초지(初地)에서 나아가 10지(地)에 머물거나, 혹 벌써 등각을 나타냈거나, 혹 바로 등각을 나타내서 법바퀴를 굴릴 때이거나, 혹 교화한 온갖 것을 이미 처리하고 반열반(般涅槃)에 들거나, 혹은 어떤 성문승이 열반에 들 때나, 혹은 어떤 벽지불승이 열반에 들 때에, 혹은 좋은 갈래에 나거나, 혹은 나쁜 갈래[趣]에 나는 것을 보살은 모조리 보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중생의 행하는 바를 관하는 지혜의 원만함을 얻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공용이 없는 지혜에서 원만함을 얻는 것인가? 이 보살이 행하거나 머물거나 가거나 오거나, 혹은 움직이거나, 혹은 고요히 있거나, 자유로이 늘 공용 없는 지혜를 일으키니, 마치 사람이 잠자면서 숨을 내쉬고 숨을 들이쉼이 공용이 없는 것과 같음을 말함이다. 마땅히 알라. 보살의 공용 없는 지혜도 또한 이와 같아서 온갖 경계에서 지혜를 일으킴이 걸림이 없으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공용 없는 지혜에서 원만함을 얻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여러 법상의 지혜에서 원만함을 닦아 얻음인가? 이는 보살이 여러 법의 모양이 모두 다 같은 모양인 줄 깨쳐 안 것을 말함이니, 능히 한 모양은 모양이 없는 것이며 그리고 여러 가지 환상과 망령되게 분별하는 모양을 깨쳐 아느니라. 이것의 이름이 여러 법상의 지혜에서 원만을 얻는 것이니라.
010_0096_b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출세간의 지혜를 닦아 익히는 원만인가?
이 보살이 샘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온갖 세간의 여러 지혜를 뛰어넘음이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출세간의 지혜를 닦아 익히는 원만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의 법을 성취하면 지혜의 원만을 얻느니라. 다시 이르니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큰 땅과 같음을 얻으리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넓고 커서 한량이 없고, 둘째는 온갖 중생에게 수용하는 바가 되고, 셋째는 은혜와 원수를 여의어 버림이요, 넷째는 큰 법의 구름과 비를 널리 능히 받음이요, 다섯째는 여러 중생의 의지하는 곳이 됨이요, 여섯째는 여러 선의 종자의 의지할 곳이 됨이요, 일곱째는 큰 보배의 그릇과 같음이요, 여덟째는 큰 약그릇과 같음이요, 아홉째는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음을 얻음이요, 열째는 놀라거나 무섭지 않음을 얻음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온갖 중생의 수용하는 바가 되는 것인가? 마치 대지가 갖가지 쓰는 물건을 온갖 중생이 받아쓰게 만듦과 같이, 보살은 이와 같이 저들의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 등의 갖가지 자량을 거두어들여 여러 중생들의 받아쓰는 바로 만드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온갖 중생의 수용하는 바를 만드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은혜와 원수를 여의어 버리는 것인가? 선남자야, 마치 대지는 평등하게 실어서 기르는 데 은혜도 없고 원수도 없고 성냄도 없고 기쁨 등 갖가지의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보살도 이와 같이 중생 가운데 은혜와 원수가 없고 화와 기쁨을 내지 않으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은혜와 원수를 여의어 버리는 것이니라.
010_0096_c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큰 법의 구름과 비를 널리 능히 받는 것인가? 마치 대지가 널리 능히 넓고 큰 구름과 비를 받아서 모조리 거두어 용납하듯이 보살도 이와 같이 여래께서 일으키신 넓고 큰 좋은 법의 구름과 비를 받들어 받아서 능히 견디며 유지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큰 법의 구름과 비를 널리 능히 받들어 받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여러 중생의 의지하는 바가 되는 것인가? 선남자여, 마치 대지가 여러 중생들의 오고가고 의지하는 바가 되듯이, 보살도 이와 같이 평등하여 널리 온갖 중생의 착한 갈래에 가고 열반으로 향하는 데 의지하는 바가 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여러 중생의 의지하는 바가 되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여러 선의 종자의 의지할 곳이 되는 것인가?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마치 대지가 능히 온갖 씨앗의 의지할 곳이 되는 것과 같이, 보살도 이와 같이 능히 온갖 중생의 온갖 착한 법의 씨앗의 의지할 곳이 되니, 이 이름이 보살이 여러 선한 씨앗의 의지할 곳이 되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큰 보배의 그릇과 같은 것인가?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대지가 여러 보배 그릇으로서 능히 갖가지 여러 훌륭한 보배를 나타내는 것이 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갖가지 여러 공덕의 보배를 나타내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큰 보배의 그릇과 같은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큰 약그릇과 같은 것인가?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대지에서 온갖 여러 약들이 의지하여 나타나서 세간의 온갖 여러 가지 병을 능히 없애주는 것과 같이, 보살도 이와 같이 여러 큰 법의 약들이 의지하여 나타나서 이 법의 약들이 세간의 번뇌의 여러 가지 병을 멸해 없애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큰 약 그릇과 같은 것이니라.
010_0097_a_02L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음을 얻는 것인가? 선남자야, 비유하면 대지가 모기나 초파리 등의 힘에 이지러지거나 손해되지 않고, 세간의 여러 가지 바람이 능히 흔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온갖 중생의 안팎의 고뇌에 기울거나 움직이는 바가 되지 않으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음을 얻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놀라거나 무섭지 않음을 얻는 것인가?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대지가 혹은 여러 용이나 및 여러 짐승의 왕이 포효하는 소리가 있더라도 무서움과 두려움을 내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저 여러 악마와 온갖 외도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더라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움을 내지 않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음을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 대지와 같음을 얻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