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0_0166_b_01L
보운경 제3권
010_0166_b_01L寶雲經卷第三


양 삼장 만다라선 한역
최윤옥 번역
010_0166_b_02L梁扶南三藏曼陁羅仙譯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해와 같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무명의 어둠을 없애는 것, 신심을 피어나게 하는 것, 시방을 두루 따뜻하게 하는 것, 선법을 자라게 하는 것, 유루(有漏)를 없애는 것, 밝게 비추는 것, 사도(邪道)와 이견(異見)을 막고 가려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것, 높고 낮은 언덕과 구덩이를 모두 드러나게 하는 것, 선업을 모두 다 일어나게 하는 것, 지혜로운 이를 기쁘게 하고 어리석은 이를 싫어하게 하는 것이다.
010_0166_b_03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爲如日等爲十能除無明黑闇能令信心開能令十方周帀皆暖能令善法生能令有漏滅沒能作照明能使邪道異見蔽障不現能令高下丘坑悉能令善業皆悉得起能令智者喜樂愚者增惡
보살이 무명의 어둠을 없앤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해가 뜨면 온갖 어둠이 모두 없어지는 것처럼, 보살의 해가 뜨면 중생에게 있는 무명의 어둠이 없어진다. 비유하면 해가 뜨면 온갖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살의 해가 뜨면 교화를 받은 사람들 역시 모두 피어난다.
010_0166_b_10L云何名菩薩能除無明黑闇譬如日出衆闇皆息菩薩日出能除衆生無明之闇譬如日出華開敷菩薩日出應受化者亦皆開
해가 뜰 때 시방을 두루 따뜻하게 하듯이 보살의 해가 뜨면 공덕과 지혜가 시방을 따뜻하게 하고 중생을 동요시키지 않는다. 해가 뜨려 할 때 훤히 밝아오는 모습을 보고 해가 뜰 것을 아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세상의 중생을 비추어 보살의 해가 뜰 것을 알게 한다.
010_0166_b_14L如日出時周帀十方能令使暖薩日出功德智慧令十方暖不擾衆如日將出見其明相知有日出薩亦復如是以智光明照諸世閒生則知菩薩日出
해가 질 때 모든 곳이 어두워져 온갖 물체가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지혜 광명이 모든 삼매에 들어가면 번뇌의 어둠과 모든 결루(結漏)가 모두 없어져 나타나지 않는다. 해가 뜰 때 빛이 염부제를 비추어 모든 어둠을 없애는 것처럼 보살의 지혜 광명 역시 능히 두루 비춘다.
010_0166_b_18L如日入時諸方昏衆物不現菩薩以智慧光入諸三煩惱昏冥一切結漏悉滅不現日出時光照閻浮提滅一切闇菩薩智光亦能普照
010_0166_c_02L해가 뜰 때 모든 희미한 밝음과 등불은 빛을 잃고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해가 무심하게 모든 희미한 밝음을 없애는 것처럼, 법상(法相)도 스스로 그러하여 보살의 해가 뜨면 모든 이견과 온갖 삿된 외도들이 사라진다. 해가 뜰 때 염부제의 높고 낮고 좋고 나쁜 것들이 모두 다 드러나듯이, 보살의 해가 뜰 때도 정도(正道)와 사도(邪道) 역시 각각 차별된다. 사(邪)란 8사(邪)를 말하고 정(正)이란 8정(正)을 말한다.
010_0166_b_22L如日出時翳諸小明熒火之光悉不復現而日無心翳諸小明法相自爾菩薩日出則翳諸異群邪外道如日出時於閻浮提高惡悉皆顯現菩薩日出時正道邪道亦各差別邪謂八邪正謂八正
해가 뜰 때 농사짓는 농부가 온갖 일을 시작하듯이 보살의 해가 뜨면 신심 있는 중생들은 모두 다 선업을 닦는다. 해가 뜰 때 선한 사람은 기쁘게 바라보고 간사한 도적 같은 중생들은 모두 싫어하고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해가 뜨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는 기쁘게 바라보지만 많은 삿된 외도들은 모두 싫어하고 기뻐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해와 같은 보살이라 한다.
010_0166_c_06L如日出時田夫耕農諸作悉起菩薩日出信心衆生普皆修善如日出時善人樂見奸盜衆生悉惡不喜菩薩日出賢智樂見群邪外道一切不喜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如日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사자(師子)와 같다고 비유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두려울 것이 없는 것,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나아가면 끝내 되돌아오지 않는 것, 사자후를 할 수 있는 것, 변재를 충분히 갖추는 것, 즐겁게 임야에 거처하는 것, 산의 동굴에서 지내는 것, 대중을 꺾어 굴복시키는 것, 용맹한 힘을 갖추는 것, 능히 잘 수호(守護)하는 것이다.
010_0166_c_11L善男子菩薩復有十法譬如師子等爲十無所畏不畏大衆去終不還能師子吼具足辯才樂處林野在於山窟摧伏大衆具勇猛力善能守護
선남자야,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하면 마치 사자가 가고 오며 출입하는 데 꺼리고 어려워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돌아다니고 가고 오면서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없으니, 왜냐하면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010_0166_c_15L善男子云何無所畏譬如師子往還出入無所忌難何以故不見與己等菩薩摩訶薩亦復如是周旋往返無所畏難何以故不見與己等故
비유하면 사자가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대중이 와서 강론하고자 하면 두려워 피하지 않으며, 마음 역시 교만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는다. 비유하면 사자가 마음에 겁이 없어 싸움터에서 물러설 마음이 없이 곧장 앞으로만 나갈 뿐 꽁무니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다.
010_0166_c_19L如師子不畏大衆菩薩摩訶薩亦復如是諸有大衆欲來講論不生畏難心亦不高不下譬如師子心無怯弱臨陣戰鬪而心不退直進不還菩薩亦爾
010_0167_a_02L마치 사자가 부르짖으면 날짐승은 떨어지고 들짐승은 엎드려 숨으며 상어와 거북이와 자라 같은 물짐승은 물 밑으로 숨고 사람과 가축은 모두 놀라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와 같아 무아(無我)의 사자후를 하여 능히 아견(我見)에 집착한 모든 외도의 여우들을 시방으로 놀라 달아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살은 저 중생들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일으키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단지 그들의 아견심을 없애고자 할 뿐이며, 또 나머지 신심 있는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010_0166_c_24L如師子吼飛落走伏水性之屬潛隱水底畜皆驚菩薩亦爾作無我師子吼能令一切外道野干著我見者十方驚走菩薩不欲令彼生其驚怖但欲除彼我見心故亦爲化餘信心衆生
사자왕이 용맹스럽고 두려움이 없이 사방을 두루 관찰하며 마음에 겁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그 행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항상 삼매지혜(三昧智慧)를 자세히 관찰한다. 비유하면 사자가 임야(林野)에서 지내기를 즐기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항상 홀로 한적한 곳에서 지내기를 즐기고 어지럽고 시끄러운 곳을 피한다.
010_0167_a_06L如師子王勇猛無畏遍觀四方心無怯弱菩薩摩訶薩亦復如是其行純淨常諦觀察三昧智慧譬如師子樂處林野菩薩摩訶薩亦復如是常樂閑獨離於憒鬧
또 사자가 산속의 굴에서 지내기를 즐기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선정삼매(禪定三昧)의 산속 굴에서 지내기를 즐긴다. 비유하면 사자가 결박당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살 또한 그러하여 이미 번뇌의 무거운 짐을 모두 멀리 벗어던져 행하는 데 물들고 집착하는 것이 없다. 비유하면 마치 사자가 동료 없이도 모든 짐승들의 무리를 꺾을 수 있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홀로 도량에 앉아 악마의 무리를 꺾어 굴복시킨다.
010_0167_a_10L又如師子樂處山窟菩薩亦爾樂處禪定三昧山窟譬如師子無所結縛菩薩摩訶薩亦復如是已悉遠離結使重擔而行無染著譬如師子無有伴黨能摧諸軍衆菩薩摩訶薩亦復如是獨坐道場摧伏魔衆
선남자야, 마치 사자가 마을 가까이 머물면 노루나 사슴이 농작물을 해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머무는 곳마다 뭇 악마와 모든 외도가 정법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비유하면 사자와 같은 보살이라 한다.
010_0167_a_16L善男子如師子近聚落住能令獐鹿不害苗菩薩亦爾隨住方面能令衆魔切外道不壞正法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譬如師子
010_0167_b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잘 조복시킨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보리심이 견고한 것, 보리심을 닦아 다스리는 것, 모든 근(根)을 수호하는 것, 정도(正道)를 향해 나아가는 것, 무거운 짐을 잘 지는 것, 중생을 위해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 바른 생활로 스스로 살아나가는 것, 허망하고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을 모두 하지 않는 것, 마음이 항상 정직한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잘 조복시키는 것이라 한다.
010_0167_a_20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爲善調等爲十菩提心堅牢修治菩提守護諸根趣向正道善持重擔爲衆生故不辭勞苦正命自活能除諂曲虛妄之說幻惑悉除心常正直善男子此十事是名菩薩善調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잘 타고 간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선정을 행하고도 항상 공상(空相)을 닦는 것, 번뇌장(煩惱障)을 다 없애고도 항상 도를 닦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라 어김이 없는 것,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찰해 법계를 잘 아는 것, 마음을 항상 전다라처럼 스스로 낮추는 것, 나를 높이는 교만을 잘 없애는 것, 법을 보아 결코 의심과 후회가 없는 것, 모든 법을 잘 관찰해 결정된 모습을 얻는 것, 정도를 잘 알아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 보리로 잘 향하여 세상의 복전(福田)이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잘 타고 가는 것이라 한다.
010_0167_b_03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爲善乘等爲十雖行禪定恒修空相雖盡煩惱障而常修道善順佛教而無所違等觀諸法善解法界心常自卑如旃陁羅善除憍慢貢高吾我見法決定無有疑悔善察諸法得決定相善於正道不隨他教善向菩提爲世福田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善乘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연꽃과 같다고 비유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그 체(體)가 청정한 것, 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 작은 악도 물들지 않는 것, 계향(戒香)을 충분히 갖추는 것, 청정한 행을 닦는 것, 온화한 얼굴에 기뻐하는 빛이 있는 것, 부드러워 딱딱하지 않은 것, 보는 이가 다 길(吉)한 것, 생각이 성숙한 것, 자기 소유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010_0167_b_11L善男子菩薩復有十法譬如蓮華等爲十其體淸淨不著於水不染少戒香具足修淸淨行和顏悅色軟不䩕見者皆吉心意調熟生已有
어떻게 집착하지 않는가?
연꽃이 물에서 자라지만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비록 세간에서 살고 있으나 세간의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방편의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물이 연꽃을 더럽힐 수 없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작은 악도 물들지 않는다.
010_0167_b_16L云何不著如蓮華生水淤泥不染菩薩雖生世閒而不爲世法所著以故得方便智慧故猶如蓮華水不能染菩薩亦爾不爲少惡之所染著
010_0167_c_02L연꽃이 피어난 곳에 향기가 가득한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태어나는 곳마다 계향이 가득하다. 비유하면 연꽃은 자라는 곳마다 그 체성이 청정해 찰리건 바라문이건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계행이 청결해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阿修羅)와 야차(夜叉)와 건달바(乾闥婆)와 가루라(迦樓羅)와 긴나라(緊那羅)와 마후라가(摩睺羅伽)와 인비인(人非人) 등의 칭찬을 받고, 항상 모든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는다.
010_0167_b_19L如蓮華生處香氣滿中菩薩亦爾所生處戒香悉滿譬如蓮華隨所住處體性淸淨剎利婆羅門城邑聚落之所稱讚菩薩摩訶薩亦復如是行淸潔阿修羅夜叉乾闥婆樓羅緊那羅摩睺羅伽人非人等之所稱讚常爲諸佛之所護念
연꽃이 피면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온화한 얼굴에 기쁜 빛을 띠면 보는 사람의 모든 근(根)이 청정해진다. 비유하면 연꽃이 부드럽고 딱딱하지 않은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체성이 부드럽고 말하는 것이 난폭하지 않다.
010_0167_c_03L如蓮華開敷衆皆愛樂菩薩摩訶薩亦復如和顏悅色諸根淸淨譬如蓮華柔軟不䩕菩薩如是體性柔軟言無麤
비유하면 연꽃은 항상 길한 모습이고 꿈속에서 보아도 길하다고 풀이하니, 의미도 있고 길함도 있다.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모두 곧 길하여 마침내 반드시 일체지(一切智)를 증득하게 되니, 이러한 이치로써 모두 길하다고 한다.
010_0167_c_07L譬如蓮華常是吉相乃至夢中亦名爲吉有義有吉菩薩摩訶薩亦復如是一切是吉究竟必得證一切智以是義故名一切吉
비유하면 연꽃이 아직 피지 않았을 때는 구족하다고 하지 않고 꽃이 피고 나야 청정하게 모든 것을 구족했다고 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혜각(慧覺)이 피어야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010_0167_c_10L譬如蓮華未開敷時不名具足華旣開敷則名淸淨一切具足菩薩摩訶薩亦復如是慧覺開敷是名爲佛
연꽃이 활짝 피면 보는 눈을 쾌락하게 하고, 가득한 향기에 닿으면 몸이 부드러워지며, 마음으로 희열을 느끼면 뜻이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지혜가 성숙해 지혜의 광명이 밝게 나타나면, 중생이 그를 볼 때 그 눈이 청정해지고 들을 때 그 귀가 청정해진다. 또 계향은 멀리 퍼져 코를 청정하게 하고, 몸을 접촉해 공양하면 그 몸이 청정해지며, 공덕을 생각하면 뜻이 청정해진다.
010_0167_c_13L如蓮華開敷能令眼見快樂香氣充滿身觸柔軟心得喜悅則意受樂菩薩摩訶薩亦復如是慧成熟慧光明相能令見時眼得淸聞時耳得淸淨戒香遠聞鼻得淸觸身供養身得淸淨思惟功德意得淸淨
연꽃이 필 때 그것을 보는 사람이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하듯이 부처님과 보살과 사천왕 등도 보살이 출현하는 것을 볼 때 역시 모두 수호하며 자기 소유라는 생각을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비유하면 연꽃과 같은 보살이라 한다.
010_0167_c_19L蓮花生時生已有想佛及菩四天王等若見菩薩出時亦皆守生已有想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譬如蓮華
010_0168_a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바라밀을 만족하므로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모든 불법을 만족하므로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모든 중생을 교화하므로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010_0167_c_22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勝大心等爲十滿足諸波羅蜜故名勝大心滿足一切佛法故名勝大心化一切衆生故名勝大心
불도수(佛道樹)를 이루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므로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처음 정각을 이루고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사람이나 하늘이나 마(魔)나 범(梵) 중에서 교화할 수 없는 이들과 그 나머지 세간의 교화할 수 없는 이들에게도 나는 법륜을 굴리리라’고 하며 법륜을 굴리므로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010_0168_a_03L成佛道樹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名勝大心初成正覺轉於法輪若沙門婆羅門若人若天梵所不能轉及餘世閒亦不能轉而我當轉故名勝大心
보살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자 이 세계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고 끝없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법으로 중생을 받아들이는 까닭에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010_0168_a_07L菩薩爲欲利益衆生不但於此世界乃至無量無邊世界悉以正法攝取衆生故名勝大心
보살이 지혜의 배로 생사의 큰 바다에서 유전하는 중생을 건네주고자 하므로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중생들은 구원해 줄 사람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고 살 곳도 없고 주인도 없으니, 내가 친구가 되어 돌아갈 집을 만들어 주리라’고 생각하므로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010_0168_a_10L菩薩以智慧舩爲欲度此生死大海流轉衆生故名勝大心生無救無依無舍無主我當親友爲作歸依舍宅故名勝大心
여래의 위덕이 자재한 것을 보이고자 ‘내가 부처님의 사자후를 하리라. 내가 부처님의 신통력을 자재하게 나타내리라’ 하고, 용과 코끼리의 위의를 나타내고자 고개를 돌려 돌아보지 않고, 하늘과 사람 등 어떤 중생도 보살과 대등한 자가 없게 하려 하고, 악마와 범(梵)과 사문과 바라문과 아수라 중에도 대등한 자가 없으므로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010_0168_a_13L欲示如來威德自在我當爲作佛師子吼我當遊戲佛之神通欲現龍象威儀視不迴顧欲使天一切衆生無與等者若魔與梵沙門婆羅門及阿修羅無與等者故名勝大心
‘부처님의 대위덕으로 교화하고 제도할 사람들을 내가 제도하리라’고 하니, 이는 평범한 행이 아니고 조잡한 행도 아니며 괴롭히는 행도 아니고 천한 행도 아니므로 광대한 마음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가장 광대한 마음이라 한다.
010_0168_a_18L佛大威德所化度者我欲度之非凡小行非麤弊行非是難行非下劣行故名勝大心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最勝大心
010_0168_b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청정심(淸淨心)이라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체성(體性)이 구족한 것, 체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 체성이 질직(質直)한 것, 거짓된 모습이 없는 것, 모든 악행을 없애는 것, 성문의 마음을 내지 않는 것, 벽지불의 마음을 내지 않는 것, 자기를 위해 결(結)ㆍ사(使)ㆍ구(垢)의 장애를 받는 몸으로 공덕을 닦는 것이 아닌 것, 작은 은혜도 오히려 보답하거늘 하물며 다시 큰 은혜에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스스로 뽐내지 않는 것이다.
010_0168_a_21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淸淨心等爲十體性具足體性不動體性質無虛僞相除諸惡行不發聲聞心不發辟支佛心不自爲己結使垢障而修功德少恩尚憶況復大恩而不念報施恩於人而不自恃
말과 행동이 상응하여 끝내 어긋나지 않으며 자기의 허물을 숨기지 않고 남의 단점을 비난하지 않는다. 보살은 끝내 밖으로 부드러운 말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는 일이 없으며, 또한 별안간 찡그리거나 성낸 얼굴로 중생을 괴롭히지 않으며, 스스로 다투려는 마음이 없고 다른 사람이 다툼을 일으키게 하지도 않으며, 이간질하는 말을 해 사람들이 서로 파괴하고 싸우게 하지 않는다.
010_0168_b_04L言行相應終不謬失不隱己過不譏他短菩薩終不外現軟語而心懷恨亦不顰蹙瞋色卒暴令惱衆生自無諍心亦不令他而起於諍不作兩舌破壞鬪亂於人
몸은 항상 공손히 하고 말하는 것이 진실하다. 말과 행동이 서로 들어맞으며, 하는 일이 모두 선하며, 여래법(如來法)에 대해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
010_0168_b_09L身常恭敬所言眞實言行相稱作業皆善於如來法不說過惡
왜 허물을 말하지 않는가? 보살은 보리심을 내어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여래법 속으로 출가한 것이다. 왕을 두려워해 출가하는 것이 아니고, 왕의 신하를 두려워해 출가하는 것도 아니며, 도적질을 한 까닭에 출가하는 것이 아니고, 빚을 졌기 때문에 출가하는 것도 아니며, 두려워서 출가하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출가하는 것도 아니다. 신심이 있기 때문에 출가하는 것이다.
010_0168_b_10L云何不說過惡菩薩發菩提心剃除鬚髮被著法服如來法中而得出家不畏王故出家不畏王臣故出家不作盜賊故出家不負債故出家不怖畏故出家不爲邪命故出家信心故出家
이렇게 출가했으니 항상 선법을 구하고, 좋은 벗을 가까이해 좋은 벗을 따르며, 선지식을 찾아가 선법을 듣고, 법을 듣고 나서는 수행하며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전도되어 망령되이 법을 취하는 일이 끝내 없으니 전도됨을 없애 정도(正道)에 들어가며, 정도에 들어가고 나서는 곧 정견을 얻으니, 정견을 얻고 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멀지 않게 된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청정심이라고 한다.
010_0168_b_15L得出家已恒求善法親近善友隨順善友於善知識所聽受善法聞法修心不憍慢終不顚倒妄取於法除顚倒令入正道入正道已便得正得正見已去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遠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淸淨心
010_0168_c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깊이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여래의 몸에 비밀이 있음을 믿는 것, 여래의 입에 비밀이 있음을 믿는 것, 여래의 뜻에 비밀이 있음을 믿는 것, 모든 보살의 수행을 믿는 것, 보리법을 믿는 것, 모든 부처님이 일으킨 서원을 다 만족시킨다는 사실을 믿는 것, 모든 부처님이 한 말을 믿는 것, 모든 부처님은 일승(一乘)임을 믿는 것, 모든 부처님의 음성은 깊고 오묘함을 믿는 것, 모든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를 따라 설법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010_0168_b_22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深信不疑何等爲十信如來身密信如來口密信如來意密信諸菩薩所行信菩提信於諸佛隨所起作皆令滿足諸佛出生信諸佛一乘信諸佛深遠音聲信諸佛隨應衆生說法
여래의 몸에 비밀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래의 법신(法身)을 믿고 여래의 적멸(寂滅)을 믿고 여래의 비할 데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몸을 믿고 여래의 견고한 몸을 믿고 여래의 허물어지지 않는 몸을 믿고 여래의 금강과 같은 몸을 믿어, 진실에서 생겨난 것이어서 거짓이 아님을 믿고 알며 또 의혹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이를 여래의 몸에 비밀이 있음을 믿는 것이라 한다.
010_0168_c_05L云何信如來身密信如來法身信如來寂滅信如來無等無量身信如來堅固身信如來不壞身信如來金剛身從如實生信知不虛誑亦不生疑惑是名信如來身密
또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여래의 입에 비밀이 있어 직접 그 자리에서 수기(受記)하시고, 비밀히 수기하시고, 아직 발심(發心)하지 않은 이에게 수기하시고, 처음 발심한 이에게 수기하신다고 들었다.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이 네 가지에 의지해 설법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모든 부처님께서 하시는 것은 잘못이 없는 줄을 믿고, 모든 부처님의 입은 잘못이 없는 줄을 믿고, 모든 부처님께서 위에서 하신 말씀이 허망하지 않은 줄 믿는다.
010_0168_c_10L又復思惟聞如來口密—現前受記密受記未發心受記初發心受記—信諸佛常以四依說法信諸佛知無失信諸佛口無失信諸佛如上所說言不虛妄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미 모든 잘못을 다 없애셨기 때문이고, 모든 허물을 다 떠나셨기 때문이다. 모든 티끌을 없애 어떤 뜨거운 번뇌도 없고, 모든 결업(結業)을 다 없애 자재하여 장애가 없으며, 마음이 항상 적멸해 탁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어 맑고 깨끗하며 청정하시다. 만약 여래의 몸과 입에 허물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옳은 말이 아니니, 여실하여 허황되지 않고 거짓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분명히 이 문제에 대해 의혹을 내지 않는다. 이를 여래의 입에 비밀이 있음을 믿는 것이라 한다.
010_0168_c_14L何以故諸佛已盡一切過故離一切垢故除一切塵一切熱盡諸結業自在無㝵心常寂不濁不穢澄潔淸淨若使如來有口過則無是處如實不虛不妄了此處不生疑惑是名信如來口密
010_0169_a_02L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한다.
‘여래의 뜻에 비밀이 있다고 들었다. 마음의 작용이 모두 지혜에서 나오는 것으로 오직 여래가 알게 하려는 이를 제외하고는 성문이나 연각이나 어떤 보살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여래의 지혜 바다는 매우 깊고 건너기 어려워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며, 모든 마음과 뜻이 나타낼 수 있는 것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어 허공계와 같고, 모든 외도와 점상(占相)과 복서(卜筮)와 주술(呪術)로 아는 것보다 뛰어나며, 마음이 항상 여실하여 허망함이 없다.’
010_0168_c_19L菩薩又作是念聞如來意密心有所作皆隨智慧聲聞緣覺一切菩薩則不能了唯除如來欲使知者何以故如來智海甚深難度不思議故超過一切心意表故無量無邊與虛空界出過一切外道占相卜筮呪術所心常如實無有虛妄
또 ‘보살은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하는 일에 피곤해 하거나 싫증을 내지 않고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의지의 힘을 튼튼히 해 무거운 짐을 지고 능히 대욕(大欲)을 일으켜 모든 바라밀을 충족한다. 그리하여 모든 불법을 점차 만족해 마음에 걸림이 없어지고 그와 대등한 사람이 없게 된다. 보살은 견고하게 정진하고 견고하게 장엄하며, 견고한 지혜로 견고한 서원과 흔들리지 않는 서원과 견줄 데 없는 서원을 낸다. 왜냐하면 보리의 모습에 걸맞기 때문이다. 이렇게 점차 늘리고 넓히고 나아가 만족시키며, 여실히 알아 허망함이 없고 마음에 의혹이 없게 된다.
010_0169_a_03L復聞菩薩爲衆生故所作事業不生疲厭不生驚志力堅實荷負重檐能生大欲滿足諸波羅蜜一切佛法以漸而滿心無㝵無與等者堅固精進堅固莊堅固智慧堅固誓願不動誓願等誓願何以故稱菩提相故以漸增廣乃至滿足如實知之無有虛妄心無疑惑
믿음을 닦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한다.
‘처음 발심해서 내지 도량에 앉아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게 되었고, 모든 법을 두루 알고 가리는 것이 없이 밝게 깨달아 천안통(天眼通)ㆍ천이통(天耳通)ㆍ타심통(他心通)ㆍ숙명통(宿命通)과 뜻대로 충족되는 지혜[如意足智]와 번뇌가 다한 지혜[漏盡智]를 얻어 한 찰나에 3세(世)를 모두 안다.’
010_0169_a_11L云何能修信不疑作是念從初發心乃至坐於道場得無障無㝵知一切法明了無翳得天眼天耳宿命如意足智漏盡智於一剎那頃悉知三世
그리하여 이와 같은 지혜로 중생계를 관찰하고는 몸으로 짓는 업이 선하지 못하고, 입으로 짓는 업이 선하지 못하고, 뜻으로 짓는 없이 선하지 못하며, 현성(賢聖)을 비방하고, 크게 삿된 견해를 일으키는 중생을 보고, 또 사견(邪見)을 낸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끊어진 후에 대지옥에 떨어지는 줄을 안다. 또 이와 같은 중생이 몸으로 짓는 업을 선하게 닦고, 입으로 짓는 업을 선하게 닦고, 뜻으로 짓는 업을 선하게 닦으며, 현성을 비방하지 않고, 정견(正見)을 성취하면 이러한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끊어진 후에 천상에 태어단다는 것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의 선악 차별을 관찰한다.
010_0169_a_15L以如是智觀衆生界衆生身業不善口業不善意業不善誹謗賢聖起大邪見亦知作邪見因緣身壞命終墮大地獄觀如是衆生身業修善口業修善意業修善不謗賢聖正見成就以是因緣身壞命終生於天上如是觀諸衆生善惡差別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예전에 보살도를 닦을 때 커다란 서원을 일으키기를, ≺내가 만약 스스로 보리를 이루게 된다면 다른 사람도 역시 성취하게 하리라≻고 하였다. 나의 서원이 만족하였으니, 말과 행동이 진실해 허망함이 없다.’
이렇게 여기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는다.
010_0169_a_21L而作是念我本修菩薩道時發大誓若我自成菩提亦使他成我誓願滿足言行眞實無有虛妄而於此處亦無疑惑
010_0169_b_02L또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듣기로 여래에겐 오직 1승(乘)만이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그건 진실이고 잘못된 것이 아니니 허망함이 없다. 왜냐하면 마치 염부제에 많은 작은 섬이 있는데 이 모든 작은 섬이 다 염부제를 의지하고 있으므로 역시 모두 염부제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여래의 1승 또한 그러하여 일체의 모든 수레가 다 대승(大乘)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1승을 여래의 대승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역시 이 가운데에서도 의심하지 않고 여실하게 안다. 그러므로 보살은 여래승(如來乘)을 믿는다.
010_0169_b_02L我聞如來唯有一乘此事眞實而不顚倒無有虛妄何以故如閻浮提多諸小渚是諸小渚皆依閻浮提住亦同名閻浮提如來一乘亦復如是一切諸乘皆出大乘是故一乘名如來大乘亦於此中不生疑如實而知是以菩薩信如來乘
또 이렇게 생각한다.
‘일찍이 여래의 온갖 설법을 들으니 가지가지 수다라(修多羅)는 진실 아닌 것이 없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교화시킬 중생을 따라 어떤 법을 묻는가에 따라 그에 맞추어 대답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능히 사실대로 알아 믿고 받아들여 의심하지 않는다.
010_0169_b_08L曾聞如來種種說法種種修多羅不眞實何以故如來隨所化衆生問何法稱彼而答然於此處如實能信受不疑
또 이렇게 생각한다.
‘일찍이 모든 부처님의 음성은 깊고 오묘하다고 들었는데, 이건 진실이어서 마음에 의심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하늘은 보잘것없는 복을 닦고도 깊고 묘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의 공덕을 갖춘 여래이겠는가.’
이렇게 여기에 대해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이를 보살이 여래의 깊고 오묘한 음성을 믿는 것이라 한다.
010_0169_b_12L曾聞諸佛深遠妙聲事眞實心無所惑何以故諸天以少修福尚得深妙柔軟之聲況復如來具足無量百千萬億功德深信此處不生疑惑是名菩薩信於如來深遠之聲
또 여래께서 능히 한 소리로 모든 법을 연설하시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모든 의혹을 다 없애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보살은 ‘모든 중생이 모두 세존께서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나, 이것은 부처님께서 한 소리로 모든 법을 연설하시는 것을 중생이 부류에 따라 역시 각각 믿고 이해하는 것이다. 여래에겐 한다는 생각도 없고 또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고 여실하게 알고 허망함이 없으며 여기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깊이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010_0169_b_17L信如來能以一音演說諸法隨其類根悉除疑惑而諸衆生皆謂世尊獨爲己說佛以一音演說諸法衆生隨類亦各信解非作想亦非不作想如實而知無有虛妄能於此處不生疑惑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深信不疑
010_0169_c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큰 바다와 같다고 비유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커다란 보배 창고인 것, 깊고 넓어 건너기 어려운 것,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은 것, 점점 차례로 깊어지는 것, 번뇌와 한 곳에서 지낼 수 없는 것, 적멸해 하나의 모습인 것, 많은 물줄기가 모여들어도 모두 다 받아들이는 것, 밀려들되 때를 놓치지 않는 것, 능히 다른 사람을 위해 귀의처가 되어 주는 것, 다함이 없는 것이다.
010_0169_b_23L善男子菩薩復有十法譬如大海等爲十是大寶藏深遠難度廣大無次第漸深不與煩惱同處而宿滅一相衆流競注皆悉容受潮不失能爲他人作歸依處而無竭盡
보살이 커다란 보배 창고와 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큰 바다는 온갖 여러 보배들이 모두 그 가운데에서 나오고 염부제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다투어 가져가도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다. 보살 역시 그러하여 보배 창고와 같으니, 끝없이 많은 중생들이 모두 신심으로 보살행(菩薩行)을 닦아도 그 공덕의 보배 창고는 역시 줄어들지 않는다. 이를 보살이 큰 보배 창고와 같은 것이라 한다.
010_0169_c_05L何菩薩是大寶藏亦如大海一切衆寶皆出其中閻浮提人悉來競取不能令減菩薩亦爾猶如寶藏無邊衆生悉以信心修菩薩行功德寶藏亦復不減是名菩薩如大寶藏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가 깊고 넓어 건너기 어려운 것처럼, 보살 또한 그러하여 그 지혜의 법해(法海)를 어떤 악마와 외도도 건널 수 없다. 이를 보살이 깊고 넓어 건너기 어려운 것이라 한다.
010_0169_c_10L譬如大深廣難度菩薩亦復如是智慧法海一切衆魔及諸外道無能度者名菩薩深廣難度
비유하면 큰 바다가 광대해 끝이 없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공덕과 지혜가 광대해 끝이 없다. 이를 보살이 바다처럼 깊고 넓어 끝이 없는 것이라 한다.
010_0169_c_13L譬如大海廣大無菩薩亦爾功德智慧廣大無邊名菩薩猶如大海深廣無邊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가 점점 차례로 깊어지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은 일체지를 이루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이를 보살이 큰 바다처럼 점점 깊어지는 것이라 한다.
010_0169_c_15L譬如大次第漸深菩薩摩訶薩成一切智以漸轉深是名菩薩猶如大海以漸轉深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가 바다의 법이 원래 그러하기 때문에 죽은 시체를 묵히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법해 역시 모든 결루(結漏)와 번뇌의 시체 및 악지식을 머물러 두지 않으니, 왜냐하면 보살법이 원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010_0169_c_18L譬如大海不宿死尸何以故法爾故菩薩法海一切結漏煩惱死尸及惡知識亦不同宿何以故菩薩法爾故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에 여러 물이 흘러 들어와 모두 같이 한 맛이 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희고 깨끗한 선업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든 공덕이 종지(種智)의 바다에 들어오면 역시 같이 한맛이 되니, 평등해 차별이 없다.
010_0169_c_21L譬如大海衆流注中皆同一菩薩摩訶薩亦復如是白淨善業無量一切功德到種智海亦同一味等無差別
010_0170_a_02L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가 백천 갈래의 많은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그 큰 바다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모든 불법을 듣고 받아들이며 또 중생을 위해 분별하여 해설하지만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이를 보살이 마치 큰 바다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한다.
010_0169_c_24L譬如大海能容百千衆流然其大海不增不減菩薩亦爾聽受一切佛法亦爲衆生分別解說而無增減是名菩薩猶如大海不增不減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의 조류가 한계를 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 또한 그러하여 마땅히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 역시 때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010_0170_a_04L云何譬如大海潮不過限菩薩亦復如是於所應成熟衆生亦不過限
마치 큰 바다가 큰 몸을 가진 여러 중생들의 의지처인 것처럼, 보살마하살 역시 그러하여 큰마음을 가진 모든 중생을 위해 의지할 굴(窟)이나 집이 되어 준다. 이를 보살이 마치 큰 바다처럼 의지할 굴이나 집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한다.
010_0170_a_06L猶如大海一切大身衆生依止窟宅菩薩摩訶薩亦復如是爲一切大心衆生作依止窟宅是名菩薩猶如大海依止窟宅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가 다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하여 모든 중생을 위해 응해서 설법하여도 없어져 다함이 없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큰 바다에 비유되는 보살이라 한다.
010_0170_a_10L譬如大海無有窮盡薩摩訶薩亦復如是爲一切衆生如應說法亦無窮盡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譬如大海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미세(微細)한 지혜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생사 벗어나기를 구할 줄 잘 아는 것, 생사 벗어나는 법을 잘 아는 것, 모든 법이 평등해 같은 하나의 모습인 줄을 잘 아는 것, 모든 법이 허깨비 같은 모습인 줄을 잘 아는 것, 모든 법상을 잘 아는 것, 매우 깊은 12인연을 잘 아는 것, 모든 업이 불가사의한 줄을 잘 아는 것, 모든 법의 뜻을 잘 아는 것, 여실한 뜻을 잘 아는 것, 여실한 지혜를 잘 아는 것이다.
010_0170_a_13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微細智等爲十善知出要善知出要法善知一切法等同一相善知一切法如幻善知一切法相善知甚深十二因善知諸業不可思議善知一切法善知如實義善知如實智
선남자야, 보살이 생사를 벗어나는 법을 잘 아는 것이란 무엇인가?
보살은 지혜로써 모든 중생의 탐욕과 성냄이 맹렬하고 어리석음으로 캄캄한 것을 관찰하고는 ‘이와 같은 중생이 어떻게 생사를 벗어나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동등하게 한 모습인 것으로 관찰해 모든 법이 허깨비와 같은 줄을 알고 나서 모든 법을 여실하게 알아 매우 깊은 인연을 건너고, 업이 불가사의한 줄을 안다.
010_0170_a_19L善男子云何名菩薩善知出要法菩薩能以智慧觀察一切衆生貪瞋熾然愚癡闇冥思惟如是衆生云何出要觀察等同一相知一切法如幻相如實知一切能度甚深因緣能知業不可思議
010_0170_b_02L 그리하여 일체 모든 법이 상이 없는 줄도 알고 갖가지 모든 업도 알아, 능히 연기(緣起)와 모든 업상(業相)을 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세한 지혜로 인해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에 대해서 그 뜻을 확실히 알고, 그 뜻을 이해함으로써 소견(所見)이 진실해지고, 소견이 진실한 까닭에 곧 능히 중생을 생사에서 벗어나게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미세한 법이라고 한다.
010_0170_a_24L知一切諸法無相而知種種諸業知緣起及諸業相以如是微細智故於諸佛所說法悉了其義以解義故所見眞實以見眞實故便能度脫衆生生死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微細智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따라 응하는 언변[隨應辯]을 얻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부처님은 이렇게 말한다.
‘일체 모든 법에는 내가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짓는 이도 없고, 아는 이도 없고, 보는 이도 없다. 또 일체 모든 법이 모두 다음과 같은 모습이니, 모든 법은 공(空)이고, 모든 법은 허망하게 속이는 것으로 주인이 없고, 모든 법은 망상이어서 실제가 없이 모두 인연을 따라 일어난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따라 응하는 언변을 얻은 것이라 한다.
010_0170_b_07L善男子菩薩復有十法得隨應辯等爲十佛如是說一切諸法無我衆生無壽命無人無作者無知者見者一切諸法悉如是相一切法空一切法虛妄欺誑無主一切法妄想無實皆從因緣起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隨應辯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사변(辭辯)이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논의하는 데 막힘이 없는 것, 말이 다함이 없는 것, 말씨가 부드럽고 매끄러운 것, 열택(悅澤)이 무궁한 것,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말이 천하지 않은 것, 말하는 데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것이 없는 것, 말이 비할 데 없는 것, 말이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지 않는 것, 비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을 하지만 네 가지의 의지하는 뜻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사변이라 한다.
010_0170_b_14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爲辭辯等爲十言論無滯語無竭盡言辭柔悅澤無窮不懼大衆辭不卑小無畏忌辭無與等者言不爲他所惡言雖無量而不離四依義善男子此十事是名菩薩辭辯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정변(淨辯)이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말을 더듬지 않는 것, 말을 할 때 두려움이 없는 것, 말이 비열하지 않는 것, 말이 거칠거나 높은 체하지 않는 것, 뜻이 작거나 낮지 않은 것, 말이 빠지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 그 소리가 맑고 투명한 것, 소리가 빠지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 때에 응해 말을 하되 빠뜨리지 않는 것, 말을 잘해 거칠거나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다.
010_0170_b_20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爲淨辯等爲十辭無謇吃辭無恐畏辭不卑辭不麤高義不卑小辭無闕短聲淸徹聲無闕短言則應時無有漏辯不麤獷
010_0170_c_02L보살이 말을 더듬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할 때 대중의 위덕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말을 더듬지 않는다.
보살이 두려움 없이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체성이 정직한 까닭에 꺼리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010_0170_c_02L云何名菩薩得不謇吃以無大衆威德畏故言不蹇吃何名菩薩得不恐怖辯以體性正直無所忌
보살이 말할 때 비열하거나 열악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슨 까닭인가 하면 보살은 대중 속에 있을 때 마치 사자와 같아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보살은 말이 거칠거나 높은 체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슨 까닭인가 하면 번뇌를 없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번뇌가 있으면 말이 반드시 거칠고 높은 체하게 된다.
010_0170_c_05L云何名菩薩得不卑劣辯以何因故菩薩處於大衆猶如師子無所忌難云何名菩薩辭不麤高何因故除結使故善男子有煩惱故辭必麤高
보살은 뜻이 작거나 낮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슨 까닭인가 하면 법을 잘 얻었기 때문이다. 이미 깊이 법을 이해하였으므로 그 뜻이 명료한 것이다.
보살은 말이 빠지거나 모자람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경론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해하는 경론이 적으면 말을 할 때 빠뜨리는 것이 생긴다.
010_0170_c_09L云何名菩薩義不卑小何因故善得法故已深解法其義明云何名菩薩辭無闕短以何因故善解諸論故若解論鮮少則言辯有
보살은 음성이 빠지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냐하면 보살은 일체 모든 음성을 다 알기 때문이다.
보살이 때를 알아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앞의 말에 응할 때는 뒤의 말을 집착하지 않고, 뒤의 말에 응할 때도 역시 앞의 말에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때를 잘 알기 때문이다.
010_0170_c_13L云何名菩薩聲無闕短何以故薩悉解一切諸音聲故云何名菩薩知時而語若應前語不著於後若應後語亦不著前何以故菩薩善知時
보살은 말을 잘해 거칠거나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뻐할 말이 아니면 그를 위해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입의 허물은 온갖 번뇌가 맺힌 데에서 생기기 때문이니, 악을 끊은 까닭에 하는 말이 부드럽다. 보살마하살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보살의 모든 근(根)이 이미 모두 날카롭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모든 근이 무딘 까닭에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니, 날카로우면 그렇지 않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정변이라고 한다.
010_0170_c_17L云何名菩薩辯不麤獷非所喜者則不爲說何以故一切口過由諸結以斷惡故所言柔軟菩薩摩訶薩無不了辯何以故菩薩諸根已悉利善男子諸根闇鈍故有不了辯則不爾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淨辯
010_0171_a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요설변(樂說辯)이라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듣기 좋게 하는 말, 찡그리지 않고 하는 말, 이치에 맞는 말, 법에 맞는 말, 평등한 말,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말, 남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말, 물들지 않은 말, 괴롭히지 않는 말, 가지가지의 언변이다.
010_0170_c_23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樂說辯等爲十愛語不顰蹙語義語法語不自高語不輕他語不染語不惱觸語種種言辯
선남자야, 보살의 듣기 좋게 하는 말이란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에 기쁨을 내게 하는 것이다. 찡그리지 않고 하는 말이란 부드러운 얼굴과 기쁜 기색으로 중생을 모두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것이다. 보살의 이치에 맞는 말이란 아름다운 말로 중생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보살의 법에 맞는 말이란 중생을 가르쳐 이익을 주는 것이다. 보살의 평등한 말이란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위해 설법하여 능히 모든 중생을 다 기쁘게 하는 것이다. 보살의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설법이란 모든 교만을 없앤 이런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고, 보살은 동사섭(同事攝)으로 설법해 중생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010_0171_a_04L善男子菩薩愛語能令衆生心生喜樂和顏悅色咸使安菩薩義辯能以美語令衆悅樂薩法辯教授利益菩薩等辯常以等心爲衆生說法能令一切悉皆喜悅菩薩不自高說法除諸憍慢自是心菩薩同事說法悅衆生故
보살의 남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설법이란 마음이 항상 전일(專一)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물들지 않는 말이란 청정한 계율을 굳게 지켜 중생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괴롭히지 않는 말이란 참는 힘으로써 중생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가지가지 언변이란 항상 즐겁게 하는 말로써 중생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요설변이라 한다.
010_0171_a_10L菩薩不輕他說法心能專一故菩薩不染語堅持淨戒悅衆生故菩薩不惱觸語以忍辱力悅衆生故菩薩種種言辯能以樂說悅衆生故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樂說之辯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설법을 잘해 중생으로 하여금 믿고 받아들이게 한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법기(法器)가 될 만한 사람을 위해서 설법하는 것, 그 근성(根性)에 맞추어 설법하는 것, 비난하는 사람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 외도나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 교만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 신심이 없는 사람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 아첨하고 속이는 사람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 먹고 살기를 구하는 사람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 이익을 구해 인색하고 탐욕스러우며 질투하는 사람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 미치거나 어리석거나 귀먹거나 말 못하는 사람에게 설법하지 않는 것이다.
010_0171_a_15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善說法能令衆生信受何等爲十堪任法器者而爲說法其根性而爲說法不爲譏呵者說法不爲外道異見者說法不爲憍慢無誠心者說法不爲無信心者說法爲諂誑僞者說法不爲求活命者說不爲求利養慳貪嫉妒者說法爲顚狂愚癡聾啞者說法
010_0171_b_02L선남자야, 보살은 무엇 때문에 법에 인색하지 않고, 자기가 얻은 법을 모두 중생에게 주어 그들로 하여금 믿고 이해하게 해야 하며, 스승이 되어 몰래 감춰 두고는 말해 주지 않는 짓을 하지 않는가? 보살은 끝내 중생에게 자비스럽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또 중생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법기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만은 평등한 마음[捨心]으로 들어간다.”
010_0171_a_23L善男子薩以何因故不作法慳己所得法悉與衆生令他信解不爲師匠秘而不菩薩終不於衆生起不慈愍心不外於衆生但不任法器者則入捨
제개장보살(除蓋障菩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그런 중생들에게 설법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 설법해야 합니까?”
010_0171_b_05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而此衆生若不爲說者當爲誰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신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해 설법하고, 선근이 성숙해 법기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해 설법하라. 과거 부처님 앞에서 여러 선근을 심어 아첨하고 속이는 마음이 없는 사람, 또 환술로 현혹시키거나 거짓으로 위의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 명예를 구하거나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사람, 항상 선지식의 수호를 받는 사람, 지혜로운 이에게서 듣고 능히 따라 믿고 이해하는 사람, 모든 근이 날카로운 사람, 법을 듣고 열심히 정진할 수 있는 사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는 사람, 이런 선남자 등이 있으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그들을 위해 설법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설법을 잘해 중생이 믿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 한다.
010_0171_b_06L佛言有信心者我當爲說善根成熟堪任法器當爲說之於過去佛種諸善根不諂曲無虛僞者亦非幻惑詐現威儀者不求名聞爲利養者常爲善知識之所守護者有智聞之能隨信解諸根利者聞法能行勤精進者隨順佛教者若有如是善男子等菩薩而爲說法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善能說法令衆生信受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법을 설하는 법사(法師)라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불법을 닦아 모아 설법하면서도 법을 보지 않고 닦아 모으면서도 역시 법을 보지 않는 것, 번뇌를 끊어 설법하면서도 끊어야 할 번뇌를 보지 않고 또한 법도 보지 않는 것, 세간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적멸에 들어 이와 같은 설법을 하면서도 세간을 싫어하는 모습을 얻지 않고 욕심을 벗어난 모습도 얻지 않고 또 적멸의 모습도 얻지 않는 것이다.
010_0171_b_15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爲說法法何等爲十修集佛法而能說法不見法而能修集亦不見法能斷結使而爲說法亦不見所斷結使亦不見法厭惡離欲寂滅作如是說法亦不得厭惡亦不得離欲亦不得寂滅
010_0171_c_02L 수다원과를 얻어 설법하면서도 수다원의 모습이 있는 것을 보지 않는 것, 사다함과를 얻어 설법하면서도 사다함의 모습이 있는 것을 보지 않는 것, 아나함과를 얻어 설법하면서도 아나함의 모습이 있는 것을 보지 않는 것, 아라한과를 얻어 설법하면서도 아라한의 모습이 있는 것을 보지 않는 것, 벽지불과를 얻어 설법하면서도 벽지불의 모습이 있는 것을 보지 않는 것, 아견에 대한 집착을 끊어 없애고 설법하면서도 나[我]도 보지 않고 집착도 보지 않는 것, 업의 과보를 알고 설법하면서도 업의 과보의 모습을 보지 않는 것이다.
010_0171_b_22L得須陁洹果說法不見有須陁洹得斯陁含果說法不見有斯陁含得阿那含果說法不見有阿那含得阿羅漢果說法不見有阿羅漢得辟支佛果說法不見有辟支佛斷除著我說法亦不見我不見著見業果報說法亦不見業果報相
왜냐하면 보살은 다음과 같이 관찰하기 때문이다.
‘모든 가명(假名)은 법에 의지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니, 이름에는 법이 없고 법 속에서도 이름이 없다. 단지 세속에서 거짓으로 이름을 만들어 세간에 유포시킨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세제에서는 거짓으로 지은 이름이 있으나 제일의제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어 모두가 곧 허망하고 범부를 속이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갖추면 그 보살을 법을 설하는 법사라고 한다.
010_0171_c_05L以故菩薩觀諸假名不必依法名中無法法中無名但以世俗假設名字流布世閒世諦故而有假名於第一義諦觀之則無悉是虛妄誑惑凡夫善男子具此十事名菩薩說法法師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견고한 법이라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보살마하살이 비록 색의 진실을 관찰하지만 색의 모습을 허물지 않는 것, 수ㆍ상ㆍ행ㆍ식의 진실을 관찰하지만 수의 모습ㆍ상의 모습ㆍ행의 모습ㆍ식의 모습을 허물지 않는 것, 보살이 비록 욕계(欲界)의 진실을 관찰하지만 욕계의 모습을 허물지 않는 것, 비록 색계(色界)의 진실을 관찰하지만 색계의 모습을 허물지 않는 것, 비록 무색계(無色界)의 진실을 관찰하지만 무색계의 모습을 허물지 않는 것이다.
010_0171_c_10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爲堅法等爲十菩薩摩訶薩雖觀色眞實而不壞色相觀受想行識眞實亦不壞受想行識相菩薩雖觀欲界眞實而不壞欲界相雖觀色界眞實而不壞色界相雖觀無色界眞實而不壞無色界相
비록 모든 법의 진실을 관찰하지만 모든 법의 모습을 허물지 않는 것, 비록 모든 법의 진실을 관찰하지만 가명인 중생을 허물지 않는 것, 비록 법이 텅 비어 없는 줄을 관찰하지만 끝내 단견(斷見)에 떨어지지 않는 것, 비록 모든 법의 진실을 관찰하지만 정도(正道)를 허물지 않는 것이다. 보살은 묘한 방편의 지혜로 있고 없는 것을 잘 알아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견고한 법이라 한다.
010_0171_c_17L雖觀諸法眞實而不壞諸法雖觀諸法眞實而不壞於假名衆雖觀法虛寂而不畢竟墮於斷見雖觀諸法眞實而不壞於正道菩薩以巧方便智善知有無而不取相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堅法
010_0172_a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법계를 잘 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지혜가 있는 것, 선지식에게 의지하는 것, 열심히 정진하는 것,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 청정한 것, 공경하는 것, 공관을 많이 익히는 것, 모든 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 도를 향해 나아가는 것, 소견이 진실한 것이다.
010_0171_c_22L善男子菩薩復有十法善知法界等爲十有慧依善知識能勤精進離陰蓋淸淨恭敬多習空觀除著諸趣向於道所見眞寶
선남자야, 보살은 지혜가 있으므로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선지식을 보고는 존경하고 기뻐한다. 그러므로 선지식에 대해 세존이라는 생각을 하고, 선지식에게 의지해 머문다. 그리하여, 선지식으로 인해 열심히 정진하게 되고 선지식으로 인해 능히 모든 악법을 없앤다. 비록 모든 선법을 만족하였더라도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정진해 장애를 없앤다. 이미 장애를 없앤 까닭에 열심히 도를 닦으면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청정하게 되어 모든 습악(習惡)을 없앤다. 청정하게 되므로 능히 공경하고 공양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므로 공관(空觀)을 얻는다. 공관을 닦으므로 모든 가명(假名)을 없애고, 모든 가명을 없애므로 능히 정도(正道)로 향하며, 정도로 향하므로 능히 진실(眞實)을 본다.”
010_0172_a_04L善男子菩薩有慧習近善知識見善知識愛敬喜於善知識生世尊想依善知識住因善知識故得勤精進因善知識故能除一切惡法雖滿足一切善法而勤精進不惓除滅陰蓋已無蓋障故而勤修道得身意業淸淨除諸習得淸淨故能恭敬供養得恭敬供養故而得空觀修空觀故除諸假除諸假名故能向正道向正道故能見眞實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진실을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곧 대답하셨다.
“소견이 헛되지 않은 것을 진실이라고 한다.”
010_0172_a_14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云何名爲見眞實佛卽答言所見不名爲眞實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진실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다시 대답하셨다.
“허망하지 않은 법을 진실이라고 한다.”
010_0172_a_16L除蓋障菩薩白佛言云何名眞實佛復答言不虛妄法名爲眞實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허망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곧 대답하셨다.
“진실과 같은 것이어서 진실과 다르지 않은 것을 허망하지 않다고 한다.”
010_0172_a_18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云何名爲不虛妄佛卽答言如實不如實名不虛妄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진실과 같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곧 대답하셨다.
“이 법은 오직 마음으로만 알 수 있지 입으로는 말하기 어렵다. 이는 문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010_0172_a_20L除蓋障菩薩白佛世尊云何名爲如實佛卽答言法惟可心知難以口說非是文字所能宣釋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법상(法相)이 문자를 떠났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010_0172_a_23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何法相離於文字
010_0172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법상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며, 모든 심소(心所)의 행처를 초월하며, 모든 희론(戱論)을 떠나며, 조작이 없고 또 피차도 없으며, 헤아리고 계교하여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고 또 상모(相貌)가 아니며, 모든 어리석은 범부의 소견을 초월하며, 악마의 세계를 초월하며, 모든 번뇌의 처소를 초월하며, 모든 마음과 의식이 나타내는 것을 초월하며, 적멸한 현성의 처소에 머물지 않되 모든 현성이 증득해 아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구경에 여실한 것이라 한다. 이것이 일체지(一切智)이니, 이른바 생각할 수 없는 경계이며 둘이 아닌 경계이다.”
010_0172_a_24L言語道斷出過一切心所行處離諸戲論無造無作無彼此非籌量計挍之所能及亦非相貌過於一切凡愚所見出過魔界出過一切結使處所出過一切心意識不住寂滅賢聖處所而諸賢聖之所證知善男子具此十事是則名爲究竟如實是一切智所說不思議境界二境界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여실상(如實相)은 어떻게 깨달으며, 어떻게 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출세간지(出世間智)로써 마침내 증득하고 보아 스스로 이 법을 얻는다.”
010_0172_b_08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如實相云何證云何見佛告善男子出世閒智乃能證見自得此法
제개장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의 체성은 구경에 청청하고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법입니다. 이는 맑고 고요한 법이고, 미묘하고 가장 훌륭한 법이며, 항상 머물러 움직이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법이어서, 부처님께서 계시거나 안 계시거나 법성(法性)이 항상 그러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을 열심히 수행하며 백천만억의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을 닦는 것은 이 법을 얻어 중생을 안립(安立)시키기 위해서입니다.”
010_0172_b_10L除蓋障菩薩復白佛言世尊此法體性究竟淸淨非染污法是澄靜法微妙最勝法常住不動非敗壞法有佛無佛性常爾菩薩摩訶薩精勤修行難行苦百千萬億難行苦行爲得此法安立衆生
제개장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것을 들어서 얻은 지혜[聞慧]로 듣고, 생각해서 얻은 지혜[思慧]로 생각해 몸으로 깨달은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혜로써 여실한 법을 관찰하여야 몸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010_0172_b_16L除蓋障菩薩復白佛言世尊如是名以聞慧聞以思慧思身得證佛言善男子不爾何以故以智慧觀如實法而身得證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들어서 얻은 지혜로 듣고, 생각해서 얻은 지혜로 생각하는 것으로는 몸이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까?”
010_0172_b_19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不從聞慧聞思慧思身得證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없다. 듣거나 생각해서 얻은 지혜로 몸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내가 비유로 말하리라.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늦봄 날씨가 뜨거울 때 드넓은 광야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동쪽에서 와 서쪽으로 향해 가고, 어떤 사람은 서쪽에서 와 동쪽으로 가다가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010_0172_b_21L佛言善男子不也不以聞思慧故身能得證善男子汝今諦聽我當說善男子譬如春末盛熱大曠野中有人從東來欲向西有人從西來欲東過
010_0172_c_02L서쪽에서 온 사람이 더위 때문에 괴로워서 그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더워서 괴롭고 매우 갈증이 나니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오. 어느 곳에 갈증을 식힐 만한 시원한 못이나 샘이 있습니까?’
010_0172_c_02L從西來者爲熱所逼語彼人言我今爲熱所逼極甚渴乏示我道路處當有淸涼池泉可止渴乏
동쪽에서 온 사람은 지름길을 잘 알고 길의 사정을 잘 알기에 곧 그에게 대답하였다.
‘오던 길에 시원하고 맛좋은 물이 있었는데 짜거나 쓴 맛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목욕하고 배불리 마시고 이곳으로 오는 길입니다.
010_0172_c_04L東方來人善知塗徑善知道相卽答彼云中有好淸冷美水無諸鹹苦我以於彼洗浴飮飽得來至此
선남자여, 당신이 가려는 그곳까지엔 여러 갈래 길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얼마 가지 않으면 곧 두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왼쪽으로 난 길이고 또 하나는 오른쪽으로 난 길입니다. 당신은 왼쪽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로 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오래가지 않아 울창하고 시원한 덤불숲이 보일 겁니다. 그 덤불숲에 묘한 못과 샘이 많이 있습니다. 물이 많고 맛도 좋아 목욕도 할 수 있고 마실 수도 있어 갈증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010_0172_c_07L善男子汝欲趣彼其路衆多去此不遠便有二道一者是左道二者是右道汝今當從右道而往棄其左道去此不久當見叢林鬱茂淸涼此叢林中多妙池泉流美味可以洗浴飮除渴乏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 목마른 사람이 물이 있는 곳을 듣고 생각하고 나면 갈증이 멈추어지느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록 시원하다고 들었더라도 몸은 아직 깨달아 알지 못합니다.”
010_0172_c_12L佛言男子彼渴乏者聞水思惟時得已止渴不除蓋障菩薩白佛言不也世尊雖聞淸涼而身未證知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것도 역시 그러하여 들어 얻는 지혜와 생각해 얻는 지혜 등으로는 곧 실상(實相)의 법을 깨달아 알 수 없다. 드넓은 광야는 비유하면 생사와 같고, 목마른 사람은 곧 얽매인 범부이니, 번뇌의 열이 핍박하면 곧 애착의 갈증이 일어난다. 길을 잘 아는 사람이란 비유하면 모든 지혜의 길을 잘 아는 보살과 같고, 물을 마신다는 것은 비유하면 법의 맛을 잘 얻는 것과 같다. 시원하게 목욕한다는 것은 비유하면 몸으로 증득한다는 것과 같고, 맑고 깨끗하며 짜고 쓴 맛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비유하면 여실한 법과 같다.
010_0172_c_15L佛言善男子此亦如是不以聞思慧等便能證知實相之法大曠野者譬如生死渴乏之人是具縛凡夫煩惱熱逼便生愛善知道者譬如菩薩善知一切智能飮水者譬如善得法味洗浴淸譬如身證澄淸淨潔無諸鹹苦如實法
010_0173_a_02L선남자야, 너는 지금 잘 들어라. 내가 다시 비유하여 말하겠다. 가령 여래가 염부제에 있으면서 1겁의 수명이 다하도록 감로의 맛을 ‘향기가 매우 묘하고 달고 맛있고 청정해 먹으면 즐거움을 느낀다’고 설명하고, 모두들 그 맛이 비할 데가 없다고 찬탄한다고 하여도, 어떤 사람이 비록 그 빛깔은 보았으나 아직 먹지 않았다면 그 맛을 알겠느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10_0172_c_22L善男子汝今善聽我更說喩假使如來住閻浮提若壽一劫說須陁味香氣勝妙甘美淸淨食時受樂悉皆讚歎其味無比若使有人雖見其色而未食者已得味不除蓋障菩薩白佛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지금 너를 위해 다시 비유로 설명하겠다. 어떤 사람이 맛있는 과일을 먹고 나서는 아직 먹지 못한 사람 앞에서 그 과일이 색과 향기와 맛을 갖추었다고 찬탄하였다고 하자. 그 사람이 과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스스로 저 과일의 색과 향기와 맛을 알 수 있겠느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10_0173_a_04L佛言善男子今爲汝復更說喩譬如有人曾食美於未得者前讚歎此果色味具彼人聞說是果時已知彼果色除蓋障菩薩白佛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 역시 이와 같다. 듣거나 생각해 얻은 지혜라고 해도 곧 진실한 법의 모습을 깨달아 아는 것은 아니니라.”
010_0173_a_08L善男子凡夫愚人亦復如是不以思中慧便能證知眞實法相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를 위해 쾌히 이런 비유들을 말씀하시니, 듣는 이가 있다면 머지않아 그들도 반드시 법의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법을 들으면 반드시 아비발치(阿厦跋致)를 깨달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010_0173_a_10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今爲我故快說此喩若得聞者不久亦當獲得法利何以故若聞此法必證阿鞞跋致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곧 대답하셨다.
“네가 말한 것처럼 이 법을 듣는 사람은 반드시 아비발치를 깨달아 분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법계(法界)를 잘 아는 것이라 한다.
010_0173_a_14L佛卽答言如汝所說聞此法者必證阿鞞跋致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善知法界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공처(空處)에 잘 머문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역공(力空)을 잘 아는 것, 무외공(無畏空)을 잘 아는 것, 불공법공(不共法空)을 잘 아는 것, 계취공(戒聚空)을 잘 아는 것, 정취공(定聚空)을 잘 아는 것, 혜취공(慧聚空)을 잘 아는 것, 해탈취공(解脫聚空)을 잘 아는 것, 해탈지견취공(解脫知見聚空)을 잘 아는 것, 공공(空空)을 잘 아는 것, 실제공(實諦空)을 잘 아는 것이다. 비록 공을 알지만 공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공이라는 견해를 내지 않으며, 공을 의지하지 않고, 이 공의 인연과 모습으로 인해 단견에 떨어지지 않는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공처에 잘 머무는 것이라 한다.
010_0173_a_17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善住空處等爲十善知力空善知無畏空善知不共法空善知戒聚空善知定聚空善知慧聚空善知解脫聚空善知解脫知見聚空善知空空善知實諦空雖知於空而不取空相不作空見依止空不以此空因緣相貌墮於斷見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善住空處
010_0173_b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무상(無相)에 머문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외상(外相)을 없애는 것, 내상(內相)을 없애는 것, 희론의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경계의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거동하는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처소를 향해 가는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조작하는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식의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식이 인식하는 대상의 모습을 없애는 것이다.”
010_0173_b_02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住無相等爲十除外相除內相除戲論相除一切計有相除一切境界相除一切擧動相除一切趣向處所相除一切造作相除一切識相除一切識所緣相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무상에 머문다면, 부처님께서 무상에 머무신다는 것은 또 어떤 것입니까?”
010_0173_b_08L蓋障菩薩白佛言世尊若諸菩薩已能如是住於無相者佛住無相當復云何
부처님께서 곧 대답하셨다.
“여래의 경계는 불가사의하다. 왜냐하면 지혜로써 생각하고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각하려고 하면 마음이 미쳐 날뛰듯 어지러워질 것이다. 모든 중생이 다 함께 헤아려 생각한다 해도 여래의 이 언덕 저 언덕의 일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여래의 경계는 깊고 넓고 불가사의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수량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보려고 집착하기만 하면 마음이 항상 전도되고 마니, 숫자로 헤아려 생각하고 헤아릴 것이 아니다.”
010_0173_b_11L佛卽答言如來境界不可思議何以故非智思量故若欲思者心則狂亂一切衆生盡共度量不能知於如來此彼岸事何以故如來境界深遠不可思議猶如虛空出過一切諸數量表取著見者心常顚倒故非算數之所思計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의문이 있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물으려고 하는 것에 따라 내가 지금 분별해서 해설하겠으니,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모두 허락하셨다.”
010_0173_b_17L除蓋障菩薩白佛言欲有疑問唯願聽許善男子隨汝意問吾今當爲分別解說一切諸佛亦悉聽許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소(我所)에 집착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법이 아니라면, 세존께서는 곧 대법주(大法主)이신데 어떻게 자신을 칭찬하고 기리실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너를 위해 말해 주겠다.”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세존이시여.”
010_0173_b_20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若著我所非智人法世尊是大法主云何當得而自稱譽佛言善哉善哉善男子諦聽諦聽當爲說之除蓋障菩薩白佛言唯然世尊
010_0173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여래가 교만해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구하지 않고 명예를 구하지도 않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도 않으며, 허망하게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아첨하거나 속이지도 않는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단지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안락하게 수행하는 법을 얻게 하려고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또 무엇 때문인가?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처소에서 깊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마음으로 깊이 환희하는 법기를 감당할 만한 이들은 오랫동안 안온하게 좋은 이익을 획득하고 항상 즐거움을 누리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010_0173_b_24L諸佛如來不以憍慢而自稱譽不爲利養不爲名不爲使他知不虛妄自稱不諂曲欺僞何以故但爲利益一切衆生得安樂修行法故何以故欲令衆生於如來所深生信敬心甚歡喜堪爲法器者使長夜安隱獲得善利常受快樂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곧 하늘 가운데 존귀한 분이며, 자재한 법왕이신 것을 중생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010_0173_c_08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衆生豈不知如來是天中尊自在法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모른다. 왜냐하면 하열한 중생들은 업행(業行)이 비루하고 지혜가 적고 믿음이 적어 항상 선하지 않은 짓을 하고 온갖 악을 품으므로 여래에게 큰 위덕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여래가 스스로 진실한 덕을 칭찬하고 찬탄해 저 중생들로 하여금 믿고 받아들여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010_0173_c_10L佛言男子不知何以故下劣衆生業行卑少智少信常爲不善諸惡所持知如來有大威德爲如此等是以如來自稱實德令彼衆生信受修行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치료법을 잘 아는 의사와 같다. 그 의사가 있는 곳에 온갖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고, 이 의사 외에는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는데, 모든들 이 의사에게 큰 위덕이 있는 줄을 모른다고 하자. 이때 훌륭한 의사는 모든 병자가 처방할 약을 알지 못하고 또한 먹지 말아야 할 음식도 모르는 것을 보고는 ‘내가 치료해 그 병의 고통을 없애 주겠다’며 대자비를 일으킨다.
010_0173_c_14L男子譬如醫師善知醫法醫所住處多諸病苦更無餘醫能療治者是諸人等不知此醫有大威德是時良醫觀諸病者不識方藥亦復不知所不應食爾時良醫起大慈悲我當療治除其病苦
이때 이 훌륭한 의사는 여러 사람 앞에서 스스로 자기의 덕을 칭찬하며 ‘나는 이 병을 잘 알고, 병의 원인을 알고, 병에 따라 처방하는 약을 잘 안다’고 말한다. 이때 중생들은 그 훌륭한 의사를 믿고 공경하게 되어 믿는 마음으로 인해 곧 그에게 의지한다. 이때 훌륭한 의사가 약간의 약을 처방해 주면, 모든 사람은 그 약을 먹고 병이 모두 없어져 낫게 된다.
010_0173_c_20L爾時良醫於衆人前自歎己德而作是言我善知是病及知病善知藥病隨應而授爾時衆生於良醫所心生信敬以信心故便卽依爾時良醫以若干種藥隨授而與諸人服已病悉除愈
010_0174_a_02L 선남자야, 이때 그 의사는 스스로를 칭찬한 것이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10_0173_c_25L善男子爾時彼醫是自稱譽不除蓋障菩薩白佛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여래 세존은 대의왕(大醫王)과 같아 능히 중생이 번뇌하는 병을 치료하고, 또 번뇌가 일어나는 곳을 알아 큰 법의 약을 두루 그들에게 주지만, 중생들은 어리석고 번뇌에 가려 여래가 대의왕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곳곳마다 중생 앞에서 항상 스스로를 칭찬하는 말을 하니, 이때 중생이 문득 믿음과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여래에게 귀의한다. 그러면 성주세존(聖主世尊)은 의왕처럼 대법의 약으로 중생들 번뇌의 병을 없앤다.
010_0174_a_03L佛言善男子如來世尊如大醫王能治衆生煩惱之病亦知煩惱所因起處以大法藥而普與之生愚癡爲煩惱所覆不知如來是大醫如來處處於衆生前常自歎說時衆生便生信敬歸依如來聖主世尊猶如醫王以大法藥能滅衆生煩惱之病
무엇을 대법의 약이라고 하는가?
탐욕은 부정(不淨)으로 치료하고, 성냄은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치료하고, 어리석음은 인연법(因緣法)으로 치료하니,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약으로 모든 번뇌의 병을 일일이 다스린다. 선남자야, 여래는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익이 있는 줄 아는 까닭에 스스로를 찬탄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무상(無相)에 머무는 것이라 한다.
010_0174_a_10L云何名爲是大法藥貪欲者以不淨治瞋恚者以慈心治愚癡者以因緣法治如是等無量法藥悉能對治諸煩惱病善男子如來見有如是無量利故而自讚歎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住於無相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바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비록 보시를 하지만 보시에 의지해 바라는 것이 없고, 비록 금하는 계율을 지키나 금하는 계율에 의지해 바라는 것이 없고,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 역시 그러하여 바라는 것이 없고, 비록 삼계에 의지하나 삼계의 상(相)을 바라지 않고, 비록 보리를 구하나 보리의 상을 취하지 않고, 비록 정도를 행하나 정도의 상을 취하지 않고, 비록 열반을 구하나 열반의 상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보살은 바라는 모든 상을 떠났기 때문에 비록 모든 불법을 행하나 마음에는 항상 바라는 것이 없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라 한다.
010_0174_a_15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爲無願等爲十雖行布施不依布施而有願雖持禁戒亦不依禁戒而有願求忍辱精進禪定智慧亦復如是雖依三界而不願求三界相雖求菩提而不取菩提相雖行正道而不取正道雖求涅槃而不取涅槃相何以故菩薩離一切願求相故雖行一切佛法而心常無所願求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無願
010_0174_b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자심(慈心)을 한량없이 닦는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자심, 친한 이를 따르지 않는 자심, 항상 법을 행하는 자심, 선정에 의지해 닦는 자심, 성내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닦는 것이 아닌 자심, 항상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일으키는 자심, 항상 중생을 위해 평등을 닦는 자심, 괴롭히고 해치지 않기 위해 닦는 것이 아닌 자심, 시방에 두루하여 널리 닦는 자심, 세간을 벗어나 닦는 자심이다.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자심을 한량없이 닦는 것이라 한다.
010_0174_b_02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修慈無量何等爲十不作方所慈不隨所親慈常行法慈依定修慈不爲離瞋修慈恒爲利益一切衆生而起於慈常爲衆生修等之慈不爲離惱害修慈於十方普皆修慈出世閒修慈具此十事是名菩薩修慈無量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비심(悲心)이 한량없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중생이 의지할 곳도 없고 구해 줄 사람도 없고 믿을 사람도 없이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보살이 곧 보리심을 내는 것, 법대로 수행하는 것, 법을 획득하는 것, 그로 인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 탐욕스런 중생을 가르쳐 보시하게 하는 것, 파계하는 중생을 가르쳐 지계를 닦게 하는 것, 괴롭히고 방해하는 중생을 가르쳐 인욕을 닦게 하는 것, 게으른 중생을 가르쳐 정진을 닦게 하는 것, 마음이 산란한 중생을 가르쳐 선정을 닦게 하는 것, 어리석은 중생을 가르쳐 지혜를 닦게 하는 것이다.
010_0174_b_09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悲無量等爲十見衆生無依無救無怙爲苦所惱菩薩卽發菩提心得如法修行獲得法已利益衆生於貪衆生教令布施破戒衆生教修持戒惱害衆生教修忍辱懈怠衆生教修精進亂心衆生教修禪定愚癡衆生教修智慧
억센 고집으로 온갖 악을 저지르며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중생을 보더라도 보살은 또한 마음이 물러서지 않으니, 비록 중생을 위해 오랫동안 온갖 고통을 겪더라도 반드시 저들을 구제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지치거나 싫증내지 않는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비심을 한량없이 닦는 것이라 한다.
010_0174_b_16L若見剛强諸惡衆生不受教者而菩薩心亦不退沒雖爲衆生久受諸苦志必濟彼無有疲厭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修悲無量
010_0174_c_02L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희심(喜心)이 한량없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뜨겁게 타오르는 생사 가운데에 있던 중생이 3유(有)의 거짓 주인을 떠나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내는 것, 생사에 진동하며 오가던 업을 엮는 밧줄을 끊어버리고 환희심을 내는 것, 생사의 큰 바다 속에 마갈(魔竭)과 악각수(惡覺水)와 나찰(羅刹)의 재난이 있는 것을 보고 이제 생사의 큰 바다에 있는 이러한 여러 재난을 멀리 떠나게 되어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010_0174_b_20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喜無量等爲十見諸衆生於生死熾然得離三有虛僞之主而生歡喜斷絕生死震動來往結業之索生歡喜心見生死海中魔竭惡覺水羅剎難今得遠離生死大海如是衆難生歡喜心
악마의 깃발을 쓰러뜨리고 환희심을 내는 것, 금강 같은 지혜로 번뇌의 산을 먼지가루처럼 남김없이 무너뜨리고 환희심을 내는 것, ‘내가 이제 스스로 고통을 없앴으니 다른 사람 역시 고통이 없게 하리라’고 하며 환희심을 내는 것, ‘나는 이제 생사의 오랜 잠의 경계에서 마음에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중생이 애착에 속박되고 무명으로 눈이 멀었으니, 역시 그들도 모두 깨닫게 하리라’고 하며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010_0174_c_03L倒魔幢生歡喜心以智金剛摧結使山令無塵末生歡喜心我今自得止息亦令他得止息生歡喜心我今自於生死長眠境界心得覺悟而諸衆生爲愛所縛無明所盲亦當令彼悉得覺悟生歡喜心
‘내가 이제 스스로 해탈을 얻어 모든 악취의 험난한 곳을 벗어났으니, 역시 악취의 험난한 곳으로 떨어지는 모든 이들을 제도해 해탈하게 하리라’고 하며 환희심을 내는 것, ‘생사의 광야와 6취(趣)의 험로에서 동반자 없이 홀로 가며 길을 몰라 우왕좌왕 위치를 몰랐었는데, 이제야 내가 바른 길을 알아 위치를 알게 되었다’고 하며 환희심을 내는 것, ‘나는 이제 일체지의 성에 가까이 다가와 부처님 자리에 인접하게 되었다’고 하며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희심이 한량없는 것이라 한다.
010_0174_c_09L我今自得解脫諸惡趣嶮難之處亦當度脫諸墮惡嶮難之者生歡喜心於生死曠野六趣嶮路獨行無侶周迴往返不善知道不識方所我今得知正道識於方所生歡喜心我今得近一切智城鄰於佛坐生歡喜心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喜心無量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사심(捨心)이 한량없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눈으로 좋은 모습을 보아도 마음이 물들어 집착하지 않고 평등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몸으로 부드러운 것을 접촉하거나 뜻으로 모든 법을 알아도 이러한 5진(塵)에서 그 상을 취하지 않고 또 괴로워하지도 않으며 항상 평등한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010_0174_c_16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捨無量等爲十眼見好色而無染著入於捨耳聞聲鼻嗅香舌嘗味身觸細滑意知諸法如是五塵不取其相亦不惱逼常行捨心
010_0175_a_02L 고고(苦苦)와 행고(行苦)와 괴고(壞苦)의 이 세 가지 느낌에 대해 마음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항상 평등한 마음을 행하는 것, 해야 할 일을 이미 끝내고 모든 번뇌를 다 없애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보살은 ‘나는 그들을 제도하고 난 뒤에 나 자신을 제도하리라’고 생각하며 평등한 마음을 행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의 사심(捨心)이 한량없는 것이라 한다.
010_0174_c_21L苦苦行苦壞苦於此三受心無增減而不惱逼常行捨心所作已辦盡諸有結常行捨心菩薩作是思惟我欲度之彼已自度常行捨心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捨心無量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신통이 자재하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태어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동자가 되어 갖가지로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출가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고행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보리수로 향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악마의 수고와 원망을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고요한 곳에 즐거이 머무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010_0175_a_03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遊戲神通何等爲十現捨壽現受生現爲童子種種戲笑現作出家現作苦行現向菩提樹現降魔勞怨現樂寂靜現轉法輪現入涅槃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도솔타천(兜率陀天)에서 목숨을 버리는 모습부터 열반에 이르는 모습까지를 나타내십니까?”
010_0175_a_08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以何因緣現兜率陁天捨壽乃至現入涅槃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도솔타천에서는 오욕에 물들고 집착하므로 항상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보살은 모든 중생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해 오욕에 물들지 않으므로, 몸이 마침내 죽음으로써 항상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중생의 병을 고친다. 그리하여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마음이 방일하지 않도록 한다. 도솔타천에서는 방일함이 많아 공경하는 마음과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애욕에 물들고 집착해 정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기쁘게 놀며 마음껏 재미있게 놀기만 한다. 그래서 보살은 그들의 방일한 마음을 없애고자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010_0175_a_10L佛答言兜率陁天染著五多生常想見菩薩於一切衆生中最上最勝不染五欲而身終沒能破衆生常想之病得無常想心不放逸兜率陁天多諸放逸不生恭敬信樂之心染著愛欲不受正法長夜喜戲自恣娛樂是以菩薩爲欲除彼放逸心故示現捨壽
이때 중생들은 보살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보고 모두 방일함을 버리고 싫어해 벗어나려는 마음을 내며, 방일함을 버린 까닭에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다.
010_0175_a_17L爾時衆生見菩薩捨皆除放逸生厭離心除放逸故便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있으면서 많은 신기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중생이 그 변화를 믿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머니의 태 속에 있으면서도 중생을 위해 설법하여 모두 아비발치를 얻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향하게 한다.
010_0175_a_19L菩薩現處母胎多有異相亦令衆生信受其雖處母胎爲衆說法皆得阿毘跋疾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0_0175_b_02L만약 보살이 어린아이일 때 모습을 보고 선근이 성숙하는 중생이라면, 보살은 이 중생의 선근을 성숙시키기 위해 어린아이 시절 모습을 나타낸다. 만약 보살이 출가하는 모습을 보고 선근이 늘어나는 중생이라면, 보살은 곧 이들을 위해 집을 버리고 출가한다. 만약 추하고 더러운 것에 뜻을 두어 집착하는 중생이라면, 보살은 고행하는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을 성숙시킨다. 고행하는 모습을 보아야 성숙할 천ㆍ용과 야차와 건달바라면 곧 그들을 위해 그런 모습을 나타내어 성숙시키고, 또 모든 외도 등을 조복시킨다.
010_0175_a_22L若有衆生見菩薩嬰孩時善根得熟菩薩爲此衆生得成熟善根故現處嬰孩若有衆生見菩薩出家善根增長薩便爲是等捨家出家若有衆生志著麤弊菩薩現作苦行而成熟之夜叉乾闥婆應見苦行成熟者爲現之而使成熟亦爲調伏諸外道
한량없는 중생들이 오래도록 발원하기를 ‘보살이 보리수에 속히 나아가면 나도 당연히 따라서 쫓아가리라’고 하면, 이때 보살은 곧 보리수 아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때 그 중생들은 아비발치를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에 이른다.
010_0175_b_07L無量衆生長夜發願菩薩疾趣菩提樹我當隨逐爾時菩薩卽便現趣菩提樹下時是衆生得阿毘跋致乃至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또 교만하고 높은 체하며 스스로 자기의 세력을 믿는 중생이 있으면, 보살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기 위해 도량에 앉아 악마의 원한을 꺾어 굴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로 하여금 믿고 복종하게 만든다.
010_0175_b_10L又爲衆生憍慢貢高自恃勢力菩薩爲欲破彼憍慢心故現坐道場摧伏魔怨令使信伏
보살은 적정을 좋아하는 중생들의 선근을 증장시키려고 도량에 앉은 모습을 나타낸다. 보살은 도량에 앉을 때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소리를 모두 다 사라지게 해 삼천대천세계를 일시에 적정하게 하여 적정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게 하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적정을 얻게 한다.
010_0175_b_13L菩薩爲樂寂靜衆生增長善根故現坐道場菩薩坐道場時使三千大千世界一切衆聲悉皆不三千大千世界卽便寂靜令樂寂靜者生希有想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能令衆生悉得寂靜
또 어떤 중생은 스스로를 대사(大師)라 일컬으며 일체지를 가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벗어나는 법을 알지 못하며, 또한 현생 이후의 과보를 알지 못한다. 이런 중생을 꺾어 굴복시키기 위하여, 또 법기를 감당할 만큼 성숙한 중생을 보면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무상삼보리도(無上三菩提道)를 이루어 바라내(波羅㮈)로 나아가 4제(諦)의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나타낸다.
010_0175_b_18L又有衆生自謂大師作一切智想不知出要道不識出世法亦不知現生後報爲欲摧伏如此衆生故見堪任法器成熟衆生爲是等故現成無上三菩提道詣波羅柰三轉四諦法輪
010_0175_c_02L 또 열반을 나타내 성숙시킬 수 있는 중생이 있으면, 그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열반에 드는 모습을 나타낸다. 보살은 이와 같은 인연과 이와 같은 뜻으로 도량에 앉는 모습에서부터 열반에 드는 모습까지를 나타낸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신통이 자재한 것이라 한다.
010_0175_b_23L又有衆生應現涅槃而成熟者爲欲成熟彼衆生故現入涅槃菩薩以如是緣如是義故現坐道場乃至現入涅槃善男具此十事是名菩薩遊戲神通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여덟 가지 재난을 여의었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선하지 않은 악업을 떠나는 것이다. 여래께서 제정하신 금계(禁戒)를 끝내 허물어 범하지 않고 탐욕과 질투를 없애며, 과거 부처님 때 심은 모든 선근으로 항상 복업을 닦아 지혜가 구족하고, 방편을 잘 알며, 발원할 것을 잘 알고, 염오심(厭惡心)이 많아 능히 열심히 정진한다.
010_0175_c_04L善男子菩薩復有十法名離八難等爲十離惡業不善如來所制禁戒終不毀犯除於貪嫉於過去佛所種諸善根恒修福業智慧具足善知方便善知發願多厭惡心能勤精進
보살은 악업을 지어 지옥에 들어가는 일이 없고 비록 지옥에 처하더라도 끝내 지옥의 괴로운 과보를 받지 않으며,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역시 괴롭힐 수도 없다. 비록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오랫동안 그곳에 있지 않고, 또한 다시 괴롭히고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010_0175_c_09L薩不造惡業而入地獄雖處地獄終不受於地獄苦報所不喜者亦不能雖墮地獄而不久處亦復不生惱害之心
보살은 뜻과 품성이 부드럽고 조화되어 항상 열 가지 선을 닦고, 이 열 가지 선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보살은 부처님의 계율을 허물어 축생 가운데 떨어지는 일이 없으며, 비록 축생으로 나타나더라도 축생의 고통을 받지 않는다. 보살은 탐욕과 질투를 일으켜 아귀 중에 떨어지는 일이 없으며, 비록 아귀로 나타나더라도 아귀의 고통을 받지 않는다.
010_0175_c_13L菩薩志性調柔恒修十善十善故不墮地獄菩薩不毀佛戒墮畜生中雖現畜生而不受於畜生之菩薩不起貪嫉墮餓鬼中雖現餓鬼而不受於餓鬼之苦
보살은 끝내 사견(邪見)을 가진 집안에 태어나지 않으며, 사견을 가진 곳에 태어나더라도 반드시 선지식을 만난다. 왜냐하면 이미 과거에 모든 선을 닦았기 때문이며, 또 과거 부처님 때 오랫동안 선근을 심었기 때문이다. 항상 정견(正見)을 가진 집안에 태어나 선한 인연을 갖추니 선한 인연을 갖춘 까닭에 공덕이 크고 넓어진다.
010_0175_c_17L菩薩終不生邪見家雖生邪見處必遇善知識以故己於過去修諸善故亦於過去佛久殖善根故常生正見家具善因具善因緣故功德增廣
보살은 끝내 어떤 근도 손상되거나 모자라지 않으니, 만약 근이 모자라면 법기를 감당할 수 없다. 보살은 오래도록 덕을 쌓으며 복을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모든 형상과 탑사와 법과 승가에 곳곳마다 복을 닦아 항상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항상 이와 같이 닦은 까닭에 모든 근이 다 갖추어져 빠지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으므로 법기를 감당한다.
010_0175_c_21L菩薩終不諸根毀缺若根減少不任法器菩薩積德久遠修福不倦於諸形像塔寺及法僧中處處修福心常不懈以常修故諸根具足無有闕少堪爲法器
010_0176_a_02L 보살은 끝내 변두리 지방의 못나고 어리석으며 귀머거리나 벙어리 같은 사람들이 사는 여러 악한 곳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흰 양처럼 어리석고 무지해 선악의 뜻도 구분할 수 없고 법기를 감당할 수 없으며, 또한 사문과 바라문도 알지 못한다.
010_0176_a_02L菩薩終不生邊地愚騃聾啞諸惡之譬如白羊愚癡無智而不能識善惡義趣不任法器亦復不識沙門婆羅門
보살은 중국에 태어나 지혜가 총명하고 근기가 날카로워 대지견(大智見)이 있고, 또 마음으로 기꺼이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해 선악을 잘 알아 분별하며 법기를 감당할 만하고, 사문과 바라문을 깊이 믿는다. 왜냐하면 보살은 본래 지혜를 닦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010_0176_a_06L菩薩生於中國聰慧利根有大智見又心信樂親近有智而於善善知分別堪爲法器深信沙門婆羅何以故菩薩本修智慧力故
보살은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나지 않는다. 장수천에 태어나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을 볼 수 없으니, 도의 과보를 멀리 떠나게 되고 중생을 성숙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보살은 욕계에 태어나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실 때에 반드시 만나 뵙고 중생을 교화하니, 무슨 인연인가? 좋은 방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010_0176_a_09L菩薩不生長壽天若生長壽天不睹佛出遠離道果不能成熟衆生是故薩生於欲界佛出世時必當遭遇能化衆生以何因緣善方便故
보살은 끝내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은 세계엔 태어나지 않고, 또 법을 들을 수 없는 곳엔 태어나지 않으며, 나아가 공양할 많은 승가가 없는 곳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보살은 태어나는 곳마다 반드시 삼보를 만나게 되니, 왜냐하면 본래의 서원력 때문이다.
010_0176_a_13L菩薩終不生於無佛世界亦不生於不聞法乃至不生無衆僧可供養處菩薩生處必遇三寶何以故本誓願力故
보살은 태어나는 곳마다 반드시 염오심을 가지고, 교만하게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 없다. 온갖 악이 있는 여덟 가지 재난에 대해 들으면, 반드시 염오심을 내고 기뻐하지 않으며, 열심히 닦고 정진해 모든 선법을 갖추고 악법을 없앤다.
선남자야, 이러한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여덟 가지 재난을 여읜 것이라 한다.”
010_0176_a_16L菩薩生處必有厭惡心不憍慢而自貢高若聞八難諸惡之處必生厭離心不喜樂勤修精進具諸善法除滅惡法善男子具此十事是名菩薩離於八難
寶雲經卷第三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