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가란타(迦蘭陀) 죽림(竹林)에서 대비구승(大比丘僧) 6만 4천 명,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7만 2천 명과 함께 계셨다. 모든 무리들은 지식(知識)이 있어서 다라니(陀羅尼)에 대한 걸림 없는 변재(辯才)와 모든 삼매(三昧)를 얻었고, 온갖 신통(神通)에 있어서도 걸림이 없었으며, 모든 법(法)의 참다운 성품을 잘 깨달아서 모두 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010_0425_b_02L그 이름은 문수사리법왕자(文殊師利法王子)ㆍ보수(寶手)법왕자ㆍ보적(寶積)법왕자ㆍ보인수(寶印手)법왕자ㆍ보덕(寶德)법왕자ㆍ허공장(虛空藏)법왕자ㆍ발심전법륜(發心轉法輪)법왕자ㆍ망명(網明)법왕자ㆍ장제번뇌(障諸煩惱)법왕자ㆍ능사일체(能捨一切)법왕자ㆍ덕장(德藏)법왕자ㆍ화엄(花嚴)법왕자ㆍ사자(師子)법왕자ㆍ월광(月光)법왕자˙ㆍ존의(尊意)법왕자ㆍ선장엄(善莊嚴)법왕자였으며, 발타바라(跋陀婆羅) 등 16명의 현사(賢士)는 발타바라보살ㆍ보적(寶積)보살ㆍ성덕(星德)보살ㆍ제천(帝天)보살ㆍ수천(水天)보살ㆍ선력(善力)보살ㆍ대의(大意)보살ㆍ수승의(殊勝意)보살ㆍ증의(增意)보살ㆍ선발의(善發意)보살ㆍ불허견(不虛見)보살ㆍ불휴식(不休息)보살ㆍ부소의(不少意)보살ㆍ도사(導師)보살ㆍ일장(日藏)보살ㆍ지지(持地)보살 이었으니, 이와 같은 등의 보살마하살 7만 2천 명이다.
그리고 사천왕(四天王)ㆍ석제환인(釋提桓因) 등과 도리제천(忉利諸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과 범왕(梵王) 등과 모든 범천(梵天)과 아울러 나머지 한량없는 모든 천룡(天龍)ㆍ귀신ㆍ야차(夜叉)ㆍ건달바(犍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羅伽)ㆍ인비인(人非人)들이 널리 다 와서 모였다.
이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공경을 받으시며 법을 설하고 계셨다. 이에 망명(網明)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머리 숙여 부처님의 발에 예배한 뒤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였다. 그리고는 이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를 움직여서 일체 대중을 인도하여 발심하게 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께 약간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들어주신다면 감히 묻기를 청합니다.”
부처님께서 망명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으라. 마땅히 해설하여 너의 마음을 기쁘게 하리라.”
010_0425_b_14L佛告網明:“恣汝所問,當爲解說悅可爾心。”
그러자 망명은 이미 들어주시겠다는 허락을 받았으므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즉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의 모습[身相]은 백천만 개의 해와 달의 광명을 초월하셨으니, 제가 스스로 생각하건대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몸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제가 다시 생각하건대,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몸을 볼 수 있다면, 모두 여래의 위신력(威神力) 입니다.”
010_0425_c_02L부처님께서 망명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너의 말과 같다. 만약 부처님께서 위신(威神)을 더하지 않는다면 중생은 능히 부처님의 몸을 보지 못하고, 또한 물을 수도 없다. 망명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께는 광명이 있으니, 이름하여 적장엄(寂莊嚴)이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부처님의 몸을 보아도 안근(眼根)이 무너지지 않으리라.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무외변(無畏辯)이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여래께 물어도 그 변재(辯才)가 다함이 없으리라.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집제선근(集諸善根)이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여래께서 전륜성왕(轉輪聖王) 때 행하신 업(業)의 인연을 물을 수 있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정장엄(淨莊嚴)이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여래께서 천제석(天帝釋) 때 행하신 업의 인연을 물을 수 있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득자재(得自在)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여래께서 범천왕(梵天王) 때 행하신 업의 인연을 물을 수 있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이번뇌(離煩惱)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여래께서 성문승(聲聞乘) 때 행하신 바의 도(道)를 물을 수 있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선원리(善遠離)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여래께서 벽지불(辟支佛) 때 행하신 바의 도를 물을 수 있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익일체지(益一切智)라 하는데,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여래의 대승불사(大乘佛事)를 물을 수 있다.
010_0426_a_02L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왕익(往益)이라 하니, 부처님께서 오시거나 가실 때에 발아래에서 광명이 나오는데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목숨을 마치고 하늘에 태어난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일체장엄(一切莊嚴)이라 하니, 만약 부처님께서 성(城)에 들어가셔서 이 빛을 놓으실 때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환희(歡喜)의 즐거움을 얻어 모든 장식물을 갖추어 그 성을 장엄(莊嚴)하며, 성 안에서는 보장(寶藏)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온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진동(震動)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생락(生樂)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지옥 중생의 고통과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상자(上慈)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축생(畜生)으로 하여금 서로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게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양락(凉樂)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아귀(餓鬼)의 굶주림과 목마름과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명정(明淨)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눈 먼 자를 볼 수 있게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총청(聰聽)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귀먹은 중생을 들을 수 있게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참괴(慙愧)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미친 중생으로 하여금 바른 정신을 얻게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지식(止息)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중생들에게 열 가지 불선(不善)한 길을 버리고 열 가지 선(善)한 길에 편안히 머물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이악(離惡)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삿된 견해의 중생들에게 모두 바른 견해를 얻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능사(能捨)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중생들의 인색하고 탐내는 마음을 부수어 보시를 행하게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무뇌열(無惱熱)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금계(禁戒)를 훼손하는 중생들에게 모두 지계(持戒)를 얻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안리(安利)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화를 잘 내는 중생들에게 모두 인욕(忍辱)을 행하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근수(勤修)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게으른 중생들에게 모두 정진(精進)을 행하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일심(一心)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망령된 생각을 하는 중생들에게 모두 선정(禪定)을 얻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능해(能解)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모두 지혜를 얻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청정(淸淨)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믿지 않는 중생들에게 모두 깨끗한 믿음을 얻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능지(能持)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적게 들은[少聞] 중생들에게 모두 많이 들음[多聞]을 얻도록 하신다.
010_0426_b_02L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위의(威儀)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중생들에게 모두 부끄러워함을 얻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안은(安隱)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애욕이 많은 중생들에게 음욕(婬欲)을 끊어 없애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환희(歡喜)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분노함이 많은 중생들에게 성냄을 끊어 없애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조명(照明)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어리석음이 많은 중생들에게 어리석음을 끊어 없애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변행(遍行)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등분(等分)의 중생들에게 등분을 끊어 없애도록 하신다. 또 여래의 광명을 이름하여 시일체색(示一切色)이라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 광명으로 중생들에게 모두 부처님 몸의 한량없는 갖가지 색(色)을 보도록 하신다. 망명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여래가 만약 일 겁(劫)을 가지고, 일 겁이 다하도록 이 광명을 말하고 힘써 그 명호(名號)를 사용한다 해도, 다하여 마칠 수가 없다.”
이때 망명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은 곧 한량없고 끝이 없는 광명이 감추어져 있고, 설법과 방편 또한 불가사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부터 일찍이 이러한 광명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으니,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한 것처럼 만약 어떤 보살이 이 광명의 이름을 듣고 신심(信心)이 청정해진다면 모두 이와 같은 광명의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건대 이제 보살들에게 광명을 놓으셔서 다른 곳의 보살로서 능히 어려운 것을 잘 묻는 자가 이 광명을 보고 나서 발심하여 이 사바세계에 오도록 해주십시오.”
010_0426_c_02L동쪽으로 72항하사(恒河沙)의 불토(佛土)를 지나면 청결(淸潔)이라는 이름의 나라가 있었는데, 부처님의 명호는 일월광(日月光)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였다. 지금 현재 그 불토에 보살 범천(梵天)이 있었으니, 이름이 사익(思益)이었다. 불퇴전(不退轉)에 머물러 있다가 이 광명을 보고 나서 일월광부처님이 계시는 곳에 이르러 머리 숙여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사바세계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러 받들어 뵙고 공양하며 가까이하여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그 부처님도 저희들을 보고자 하십니다.” 일월광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곧바로 가거라. 범천(梵天)이여,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 사바국토에는 천억의 모든 보살이 모여 있으니, 너는 응당 이 열 가지 법으로써 그 국토에 노닐도록 하여라. 무엇이 열 가지가 되는가? 비방에도 칭찬에도 마음에 덜거나 더함이 없으며, 선(善)을 듣거나 악(惡)을 듣거나 마음에 분별함이 없으며, 모든 어리석음과 지혜를 비심(悲心)으로 똑같이 대하며, 상ㆍ중ㆍ하의 중생들 부류를 마음에 항상 평등하게 여기며, 경솔하게 공양(供養)을 허물어뜨려도 마음에 두 가지 생각이 없어야 하며, 남의 모자람이나 실수에 대해 그 허물을 보지 말아야 하며, 여러 가지의 승(乘)을 보더라도 모두 일승(一乘)으로 여겨야 하며, 3악도(惡道)에 대해 들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보살들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부처님께서는 5탁악세(濁惡世)를 초월하셨다는 희유한 생각을 내어야 한다. 범천아, 너는 마땅히 이 열 가지 법으로써 그 세계에 노닐어야 한다.”
이때 일월광부처님의 국토에 있는 여러 보살들이 그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큰 이로움을 얻었으므로 이와 같이 악한 중생들 가운데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일월광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런 말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이 국토에서 백천억 겁 동안 깨끗하게 범행(梵行)을 닦는다 해도 저 국토에서 반나절 동안 화내고 구애받는 마음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니, 그 복이 더욱 뛰어나다.”
010_0427_a_02L이때 1만 2천 명의 보살들이 사익범천과 더불어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도 이 열 가지 법으로 저 세계에 노닐면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뵙고자 합니다.” 이에 사익범천과 1만 2천 명의 보살들이 함께 그 일월광부처님의 나라에서 홀연히 사라지니, 비유하자면 장사(壯士)가 팔을 한 번 구부렸다 펴는 사이였다. 이들은 사바세계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한쪽에 머물러 있었다.
“망명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사익범천은 바르게 질문하는 모든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며, 모든 선(善)에서 모든 법을 분별하는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며, 모든 말씀에서 경(經)의 뜻에 따르는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 모든 자비로운 마음의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며, 모든 비심(悲心)의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며, 모든 희심(喜心)의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며, 모든 사심(捨心)의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 모든 부드러운 말을 하는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며, 모든 성냄과 걸림이 없는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며, 선인(先人)의 뜻을 빨리 묻는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며, 모든 의심을 해결하는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
부처님께서는 비록 피로하거나 권태로움이 없지만 제가 청할 것이 있습니다. 세존께 허물을 참회하오니 원컨대 보리(菩提)의 도를 설해 주소서.
010_0427_c_03L佛雖無疲倦,
而我有所請, 悔過於世尊, 願說菩提道。
2. 사법품(四法品)
010_0427_c_04L四法品第二
이때 사익범천이 이 게송을 마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그 마음이 견고하여 피로하거나 권태로움이 없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말한 바를 결정하여 중간에 후회함이 없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선근(善根)을 늘어나고 자라나게 한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두려워함이 없어서 위의(威儀)가 동요하지 않는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결백하고 청정한 선한 법[白法]1)을 성취한다고 합니까? 어떤 것을 보살이 하나의 지(地)로부터 하나의 지에 이르는 것을 잘 안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중생들 가운데서 방편(方便)을 잘 안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중생들을 잘 교화한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도 보리(菩提)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잡스런 행동이 없다고 합니까? 어떤 것을 보살이 법보(法寶)를 잘 구한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금계(禁戒)를 무너뜨리는 죄에서 잘 벗어난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번뇌를 잘 막아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모든 대중들 속으로 잘 들어간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법시(法施)를 잘 베푼다고 합니까? 어떤 것을 보살이 앞선 인[先因]의 힘으로 선근(善根)을 잃지 않는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6바라밀(波羅蜜)을 행할 수 있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선정(禪定)을 버리고 욕계(欲界)에 환생(還生)한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모든 불법에 대하여 불퇴전(不退轉)을 얻는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살이 부처의 종자를 끊지 않는다고 합니까?”
010_0428_a_02L부처님께서 사익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그 마음이 견고하여 피로하거나 권태로움이 없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키는 것이며, 둘째는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생사(生死)란 꿈과 같다는 것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며, 넷째는 올바르게 부처님의 지혜를 사유하고 헤아리는 것이니, 보살에게는 이 네 가지 법이 있어서 그 마음이 견고하여 피로하거나 권태로움이 없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말한 바를 결정하여 중간에 후회함이 없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모든 법에는 ‘나’가 없다[諸法無我]는 말을 결정하는 것이며, 둘째는 태어나는 모든 곳에는 즐거움이 없다는 말을 결정하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대승(大乘)을 찬미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며, 넷째는 죄와 복의 업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결정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결백하고 청정한 선한 법을 성취한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남을 가르쳐서 죄와 복을 믿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보시를 행하되 과보(果報)를 바라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정법(正法)을 수호하는 것이며, 넷째는 지혜로 모든 보살들을 가르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하나의 지(地)로부터 하나의 지에 이르는 것을 잘 안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오랫동안 선근을 심는 것이며, 둘째는 모든 잘못과 허물에서 떠나는 것이며, 셋째는 방편으로 회향(廻向)함을 잘 아는 것이며, 넷째는 부지런히 정진(精進)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방편을 잘 안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중생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며, 둘째는 남의 공덕에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셋째는 잘못을 뉘우쳐 죄를 없애는 것이며, 넷째는 모든 부처님께 설법해 주시기를 권청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010_0428_b_02L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중생들을 잘 교화한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항상 중생들을 이롭고 편안하게 하기를 구하는 것이며, 둘째는 스스로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이 온화하고 인욕(忍辱)하는 것이며, 넷째는 교만한 마음을 제거하여 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도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항상 염불(念佛)하는 것이며, 둘째는 공덕을 지어서 항상 보리(菩提)가 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는 것이며, 넷째는 대승을 칭송하여 드날리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능히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잡스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성문(聲聞)의 마음을 떠나는 것이며,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의 마음을 여의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구하여 싫증내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들은 법을 널리 남을 위해 말해주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법보(法寶)를 잘 구한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법 안에서 보배로운 생각을 내는 것이니,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는 법 안에서 약(藥)이 되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 중생의 병을 치료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법 안에서 재물과 이익되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법 안에서 일체의 고뇌를 소멸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 열반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금계를 훼손하는 죄에서 잘 벗어난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니, 제법(諸法)은 옴[來]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소멸함이 없는 법인(法忍)을 얻는 것이니, 제법은 감[去]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연인(因緣忍)을 얻는 것이니, 제법은 인연으로 생기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넷째는 무주인(無住忍)을 얻는 것이니, 다른 마음이 서로 이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번뇌를 잘 막아낸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올바르게 생각하여 잊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근(根)을 막는 것이며, 셋째는 훌륭한 법의 힘을 얻는 것이고, 넷째는 혼자 있으면서 멀리하고 떠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010_0428_c_02L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모든 대중들 속으로 잘 들어간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법을 구하되 빼어난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공경심을 가지고 교만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오직 법의 이로움만을 구하지 스스로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남에게 선법(善法)을 가르치되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법시(法施)를 잘 연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법을 수호하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지혜를 더하고 또한 남에게도 더해주는 것이며, 셋째는 착한 사람의 법을 행하는 것이고, 넷째는 남에게 더럽고 깨끗함을 보이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앞선 인[先因]의 힘을 얻어 선근을 잃지 않는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남의 모자람을 보고 허물로 여기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성내고 분노하는 사람에 대하여 항상 자비심을 닦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제법(諸法)의 인연을 말해 주는 것이고, 넷째는 항상 보리를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6바라밀을 행할 수 있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보시로써 남을 인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이 금계(禁戒)를 훼손한 죄를 말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거두는 법[攝法]을 잘 알아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고, 넷째는 깊은 법을 이해하여 통달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선정(禪定)을 버리고 욕계(欲界)에 환생할 수 있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그 마음이 유연(柔軟)한 것이고, 둘째는 모든 근(根)의 힘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일체의 중생들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지혜와 방편의 힘을 잘 닦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모든 불법에 대하여 물러나지 않음[不退轉]을 얻는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한량없는 생사를 받는 것이고, 둘째는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며, 셋째는 한량없는 자심(慈心)을 수행하는 것이고, 넷째는 한량없는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이해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010_0429_a_02L범천이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의 종자를 끊지 않는다.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는 본원(本願)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말한 것은 반드시 시행(施行)하는 것이며, 셋째는 크게 정진하고자 하는 것이고, 넷째는 깊은 마음으로 불도(佛道)를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에게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의 종자를 끊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네 가지 법을 말씀하실 때 2만 2천의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켰고, 5천 명의 사람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시방에서 온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하늘 꽃을 뿌렸는데 삼천대천세계를 두루하여 무릎까지 쌓였다.
또 망명이여, 태어남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하고, 소멸함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하며, 머무름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합니다. 만약 태어남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거나, 소멸함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거나, 머무름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바르게 묻는 것이라 합니다.
010_0429_b_02L또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더러움을 위함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하고, 깨끗하기 위함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하며, 생사(生死)를 위함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하고, 생사를 벗어나기 위함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하고, 열반(涅槃)을 위함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합니다. 만약 더러움과 깨끗함을 위함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거나, 생사나 생사를 벗어나기 위함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거나, 열반을 위함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바르게 묻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위(法位)에는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열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보기 위함 때문에 묻거나, 끊기 위함 때문에 묻거나, 증득(證得)하기 위함 때문에 묻거나, 닦기 위함 때문에 묻거나, 얻기 위함 때문에 묻거나, 과보[果]를 위함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 합니다. 만약 보는 것도 없고, 끊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고, 닦음도 없고, 얻음도 없고, 과보도 없기 때문에 묻는다면 이것을 바르게 묻는 것이라 합니다.
또 망명이여, 이것은 선(善)이며 이것은 불선(不善)이라고 하는 것을 삿된 질문이라 하며, 이것은 세간법(世間法)이며 이것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이라고 하거나, 이것은 법에 죄가 되고 이것은 법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거나, 이것은 유루법(有漏法)이며 이것은 무루법(無漏法)이라고 하거나,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며 이것은 무위법(無爲法)이라고 하는 등의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을 의지하는 바에 따라 묻는 것을 삿된 질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둘[二] 이라고 보지 않고, 둘이 아니라고도 보지 않고 묻는다면, 바르게 묻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부처님을 분별하여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고 합니다. 법을 분별하거나, 승(僧)을 분별하거나 중생을 분별하거나 부처님의 국토를 분별하거나 모든 승(乘)을 분별하여 묻는다면, 삿된 질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법에서 하나라거나 다르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묻는다면, 바르게 묻는 것이라고 합니다.
망명이 범천에게 말했다. “무엇을 일러 일체의 법은 바르기도 하고 일체의 법은 삿되기도 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010_0429_b_16L網明言:“梵天!何謂一切法正,一切法邪?”
범천이 말했다. “모든 법성(法性)은 무심한 까닭에 일체의 법은 바르다고 하는 것이니, 만약 무심한 법 가운데서 마음으로 분별하여 본다면 일체의 법은 삿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법이 상(相)을 떠난 것을 바르다고 하는 것이니, 만약 이 상을 떠난 것을 믿고 이해하여 통달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법을 분별한다면 증상만(增上慢)에 들어가 분별하는 바를 따르게 되니, 모두 삿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범천이 말했다. “모든 법은 자성(自性)을 여의고, 욕심[欲際]을 여의었으므로 이것을 바른 성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010_0429_b_23L梵天言:“諸法離自性、離欲際,是名正性。”
망명이 말했다. “이와 같은 바른 성품을 조금 알 수 있습니다.”
010_0429_b_24L網明言:“少有能解如是正性。”
010_0429_c_02L범천이 말했다. “이 바른 성품은 하나가 아니며 많지도 않습니다. 망명이여,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든 법의 바른 성품을 이와 같이 알 수 있되, 이미 알았거나, 지금 알거나, 미래에 알게 된다면, 이러한 사람은 이미 얻은 법(法)도 없고, 지금 얻을 법도 없고, 미래에 얻을 법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얻음도 없고 분별함도 없음을 이름하여 ‘지은 바의 일을 판상(辦相)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모든 법의 바른 성품에 대해 듣고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이것을 ‘말씀하신대로 수행함’이라고 하니, 하나의 지(地)로부터 하나의 지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의 지로부터 하나의 지에 이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생사가 있지 않고, 열반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생사를 얻으심이 없고 열반도 얻으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범천이 말했다. “이러한 인연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생사를 벗어나 열반에 들어가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망상으로 생사와 열반을 두 가지 상(相)으로 분별하는 이를 제도하신 것뿐이니, 이 가운데는 진실로 생사를 건너 열반에 이르게 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평등하여 오고 감이 없고, 생사를 벗어남도 없으며, 열반에 들어가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사를 얻음도 없고 열반을 얻음도 없으니, 여래가 비록 생사를 말하지만 진실로 어떤 사람도 생사를 오고 감이 없고, 비록 열반을 말하지만 진실로 어떤 사람도 멸도(滅度)를 얻은 이가 없다. 만약 이 법문에 들어오는 이가 있다면, 이런 사람은 생사의 상(相)도 없고 멸도의 상도 없다.”
010_0430_a_02L이때 모임 가운데 오백 명의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은 공연히 범행(梵行)을 닦았습니다. 지금 멸도함이 있는 분을 실제로 보고 있는데도 멸도함이 있지 않다고 말씀하시니,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도를 닦고 지혜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망명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법에 대하여 본다는 생각을 낸다면 이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반드시 열반을 본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생사를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열반은 모든 상(相)이 소멸하여 없어지고 일체의 흔들리는 생각과 희론(戱論)을 멀리 여읜 것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바른 법 안에서 출가하였으나 이제 외도(外道)의 삿된 견해에 떨어졌습니다. 열반의 결정된 상을 보는 것은 비유하자면 참깨[麻]에서 기름이 나오고, 낙(酪)에서 소(酥)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모든 법의 멸상(滅相) 가운데서 열반을 구한다면 저는 이런 무리들은 모두 증상만(增上慢)의 사람이 된다고 말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르게 도를 행하는 자는 법에 대하여 생겨남[生]도 짓지 않고 멸(滅)함도 짓지 않아서, 얻을 것도 없고 과보[果]도 없습니다.”
010_0430_b_02L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여, 가령 항하사(恒河沙)만큼 많은 겁을 지날지라도 능히 이와 같은 법문(法門)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 비유하자면 어리석은 사람이 허공을 두려워하여 허공을 버리고 달아난다 해도 이르는 곳마다 허공을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비구들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다시 멀리 간다 해도 공상(空相)을 벗어날 수 없고, 무상(無相)의 상을 벗어날 수 없고, 무작(無作)의 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허공을 찾아 동서로 달려가면서 ‘는 허공을 얻고자 한다. 나는 허공을 얻고자 한다’ 말해도 이 사람은 단지 허공의 이름만을 말하는 것이어서 허공을 얻지 못하고 허공을 가고 있어도 허공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모든 비구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열반을 구하고자 하여 열반 가운데를 가고 있으면서도 열반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열반이라는 것은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허공이란 단지 이름만 있고 얻어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이, 열반도 역시 이와 같아서 단지 이름만 있을 뿐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때 5백 명의 비구들은 이 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서 모든 법을 받지 않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며, 아라한(阿羅漢)의 도를 얻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모든 법에 대하여 끝내 멸상 가운데서 열반을 구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부처가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범부(凡夫)도 아니며, 배운 것도 아니며,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니며, 생사에 있지도 않고 열반에 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기 때문이니, 일체의 흔들리는 생각과 희론을 멀리 여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간을 5음(陰)이라 말하니 세간에서 의지하는 바를 이 5음에서 의지한다면 세간법을 벗어나지 못하네.
010_0431_b_10L說五陰是世, 世閒所依止, 依止於五陰,
不脫世閒法。
보살은 지혜가 있으므로 세간의 참다운 모습[實相]이 이른바 5음과 같음을 알아서 세간법에 물들지 않으며
010_0431_b_12L菩薩有智慧, 知世閒實相,
所謂五陰如, 世閒法不染。
이익과 손해, 비난과 명예 칭찬과 비방, 괴로움과 즐거움 이러한 여덟 가지 법을 항상 세간에서 견제(牽制)하네.
010_0431_b_13L利衰及毀譽,
稱譏與苦樂, 如此之八法, 常牽於世閒。
큰 지혜의 보살은 세간법이 흩어져 소멸되고 세간이 파괴되고 허물어지는 상(相)을 보더라도 그곳에 처하여 동요함이 없으며
010_0431_b_14L大智慧菩薩, 散滅世閒法, 見世壞敗相,
處之而不動。
이익을 얻어도 마음이 높아지지 않고 이익을 잃어도 마음이 낮아지지 않아서 그 마음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음이 마치 수미산과 같으니
010_0431_b_16L得利心不高, 失利心不下,
其心堅不動, 譬如須彌山。
이익과 손해, 비난과 명예 칭찬과 비방, 괴로움과 즐거움 이러한 여덟 가지 법에 그 마음이 항상 평등하네.
010_0431_b_17L利衰及毀譽,
稱譏與苦樂, 於此世八法, 其心常平等。
세간은 허망하여 모두 뒤바뀜[顚倒]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안다면 이와 같은 사람들은 세간의 도를 행하지 않네.
010_0431_b_18L知世閒虛妄, 皆從顚倒起, 如是之人等,
不行世閒道。
세간에 있는 도를 보살은 모두 알고 있으니 그러므로 능히 세간에서 중생의 고뇌를 제도하네.
010_0431_b_20L世閒所有道, 菩薩皆識知,
故能於世閒, 度衆生苦惱。
비록 세간법을 행한다 해도 연꽃과 같이 물들지 않고 또한 세간을 무너뜨리지 않으니 법성(法性)을 통달했기 때문이네.
010_0431_b_21L雖行於世閒,
如蓮華不染, 亦不壞世閒, 通達法性故。
세간에서 세간법을 행해도 이 세간을 모르지만 보살이 세간법을 행하는 것은 세간상(世間相)을 밝게 깨달아서라네.
010_0431_b_22L世閒行世閒, 不知是世閒, 菩薩行世閒,
明了世閒相。
세간은 허공상(虛空相)이고 허공 또한 모양이 없으니 보살은 이와 같음을 알기에 세간에 물들지 않는다네.
010_0431_b_24L世閒虛空相, 虛空亦無相,
菩薩知如是, 不染於世閒。
010_0431_c_02L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세간에서
아는 것에 따라 연설하니 세간의 성품을 알기 때문에 또한 세간을 무너뜨리지 않네.
010_0431_c_02L如所知世閒,
隨知而演說, 知世閒性故, 亦不壞世閒。
5음은 자성(自性)이 없으며 이것이 곧 세간의 성품이니 만약 사람이 이런 이치 모른다면 항상 세간에 머무를 것이며
010_0431_c_03L五陰無自性, 是卽世閒性, 若人不知是,
常住於世閒。
만약 5음이라는 것이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음을 안다면 이런 사람은 세간에서 행하되 세간에 의지하지 않으리라.
010_0431_c_05L若見知五陰, 無生亦無滅,
是人現行世, 而不依世閒。
범부는 법을 알지 못하므로 세간에서 쟁송(諍訟)을 일으키고는 이것은 진실이며 이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하여 이 두 가지 상(相)에 머무르네.
010_0431_c_06L凡夫不知法,
於世起諍訟, 是實是不實, 住是二相中。
나는 항상 세간과 더불어 쟁송의 일을 일으키지 않으니 세간의 참다운 모습을 모두 이미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네.
010_0431_c_07L我常不與世, 起於諍訟事, 世間之實相,
悉已了知故。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에는 모두 다 쟁송할 것이 없으니 세간은 평등하기 때문에 실함도 아니며 허망함도 아님을 안다네.
010_0431_c_09L諸佛所說法, 皆悉無諍訟,
知世平等故, 非實非虛妄。
만약 불법에 반드시 실함이 있고 허망함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탐하여 집착하는 것이니 외도와 다름이 없네.
010_0431_c_10L若佛法決定,
有實有虛妄, 是卽爲貪著, 與外道無異。
그러므로 이제 실재의 뜻에는 실함도 없고 허망함도 없으며 이 때문에 나는 항상 세간을 초월한 법에는 둘이 없다고 말했으니
010_0431_c_11L而今實義中, 無實無虛妄, 是故我常說,
出世法無二。
만약 사람이 세간의 이 같은 실재의 성품을 안다면 실함이나 허망함에 대하여 이 잘못된 견해[惡見]를 취하지 않으리라.
010_0431_c_13L若人知世閒, 如是之實性,
於實於虛妄, 不取此惡見。
이와 같이 세간이 청정하여 허공과 같음을 안다면 이는 큰 명칭을 가진 사람으로 세간을 해와 같이 비출 것이며
010_0431_c_14L如是知世閒,
淸淨如虛空, 是大名稱人, 照世閒如日。
만약 사람이 세간을 보되 내가 본 것처럼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능히 시방의 부처를 볼 것이며
010_0431_c_15L若人見世閒, 如我之所見, 如斯之人等,
能見十方佛。
모든 법은 인연을 따라 생겨나서 스스로 정해진 성품이 없으니 만약 이런 인연을 안다면 곧 법의 참다운 성품을 통달하리라.
010_0431_c_17L諸法從緣生, 自無有定性,
若知此因緣, 則達法實相。
만약 법의 실상(實相)을 안다면 이는 곧 공상(空相)을 아는 것이니 만약 능히 공상을 안다면 곧 도사(導師)를 보게 되리라.
010_0431_c_18L若知法實相,
是則知空相, 若能知空相, 則爲見導師。
만약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세간의 모습을 들을 수 있다면 비록 세간에서 행하더라도 세간에 머물지 않으리라.
010_0431_c_19L若有人得聞, 如是世閒相, 雖行於世閒,
而不住世閒。
여러 식견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여 이런 일에 능히 미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세간에서 행하면서 세간을 의지하지 않겠는가?
010_0431_c_21L依止諸見人, 不能及此事,
云何行世閒, 而不依世閒。
만약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이 법을 좋아하는 자가 있다면 부처님은 곧 그 사람에게 항상 법신(法身)을 나타내리라.
010_0431_c_22L若佛滅度後,
有樂是法者, 佛則於其人, 常現於法身。
010_0431_c_24L 만약 사람이 이것을 이해하고 통달하여 나의 법을 수호한다면 또한 나를 공양하는 것이고
또한 세간의 도사이다.
010_0431_c_23L若人解達此, 則守護我法, 亦爲供養我,
亦是世導師。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이라도 세간의 성품이 이러함을 들었다면 이 사람에게는 끝내 악마도 어쩌지 못하리라.
010_0432_a_02L若人須臾聞, 世閒性如此,
是人終不爲, 惡魔所得便。
만약 능히 이런 뜻을 통달한다면 큰 지혜를 지녀 법의 재보[法財]를 베푸는 주인이 되고 또한 금계(禁戒)를 구족하리라.
010_0432_a_03L若能達此義,
則爲大智慧, 法財之施主, 亦是具禁戒。
만약 세간이 이와 같음을 알아서 인욕(忍辱)의 힘이 용맹하고 건강하다면 모든 선정(禪定)을 구족(具足)하여 지혜에 통달하리라.
010_0432_a_04L若知世如此, 忍辱力勇健, 具足諸禪定,
通達於智慧。
있는 곳에서 이 법을 들으면 그 쪽에 곧 부처님이 계시리니 이와 같이 모든 보살들은 오래 도량에 앉아 있지 않으리라.
010_0432_a_06L所在聞是法, 其方則有佛,
如是諸菩薩, 不久坐道場。
만약 깊이 이와 같은 세간법을 사랑하고 즐거워한다면 능히 뭇 마군을 항복시키고 속히 위없는 도를 얻으리라.
010_0432_a_07L若有深愛樂,
如是世閒法, 則能降衆魔, 疾得無上道。
4. 해제법품(解諸法品) ①[이 품의 명칭은 거란본에는 없고 아 래 24폭(幅)의 ‘이시(爾時)’ 아래부터 「탄공품(歎功品)」 제5로 되어 있음]
010_0432_a_08L解諸法品第四此品名丹本無下二十四幅爾時下方爲歎功德品第五
부처님께서 다시 사익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세간을 초월하였으나 또한 세간의 괴로움[苦]과 세간의 쌓임[集]과 세간의 소멸[滅]과 세간이 소멸하는 도[滅道]를 말하였다. 범천이여, 5음(陰)을 세간의 괴로움이라 하고, 5음을 탐하고 집착하는 것을 세간의 쌓임이라 하며, 5음이 다한 것을 세간의 소멸이라 하고, 둘이 아닌 법으로 5음을 구하는 것을 세간이 소멸하는 도라고 한다. 또한 범천이여, 말한바 5음은 단지 말일 뿐이니, 그 가운데서 상(相)을 취하고 분별하여 견해를 내므로 이를 세간의 괴로움이라 하고, 이 견해를 버리지 않으므로 세간의 쌓임이라 하며, 이 견해는 자신의 모습[自相]이므로 세간의 소멸이라 하고, 어떤 도(道)를 따르든 이 견해를 취하지 않는 것을 세간이 소멸하는 도라고 한다. 범천이여, 이러한 인연 때문에 나는 외도선인(外道仙人)을 위해 말하였으니, 선인(仙人)은 너의 몸 안에서 곧 세간의 괴로움ㆍ세간의 쌓임ㆍ세간의 소멸ㆍ세간이 소멸하는 도를 말했다.”
이때 사익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4성제(聖諦)에서 어떤 것이 진짜 성제입니까?”
010_0432_a_21L爾時思益梵天白佛言:“世尊!所說四聖諦,何等是眞聖諦?”
010_0432_b_02L“범천이여, 괴로움[苦]을 성제라고 하지 않고, 괴로움의 쌓임[苦集]을 성제라고 하지 않으며, 괴로움의 소멸[苦滅]을 성제라고 하지 않고, 괴로움이 소멸하는 도[苦滅道]를 성제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약 괴로움이 곧 성제라고 한다면 모든 소나 당나귀 같은 축생(畜生) 등도 모두 응당 고성제(苦聖諦)가 있을 것이다. 만약 쌓임이 곧 성제라고 한다면 모든 곳에서 태어나는 중생은 모두 마땅히 집성제(集聖諦)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쌓임을 연고로 해서 6취(趣)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이다. 만약 괴로움의 소멸이 곧 성제라고 한다면 소멸을 관찰하는 자나 단멸(斷滅)을 말하는 자는 모두 마땅히 멸성제(滅聖諦)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도(道)를 곧 성제라고 한다면 일체 유위(有爲)의 도를 인연하는 것들은 모두 마땅히 도성제(道聖諦)가 있어야 할 것이다. 범천이여, 이러한 인연 때문에 마땅히 성제는 괴로움도 아니고 쌓임도 아니고 소멸함도 아니고 도(道)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성제라는 것은, 괴로움이 생겨남이 없음을 아는 것을 바로 고성제라고 하며, 쌓임에 화합함이 없음을 아는 것을 바로 집성제라고 하며, 필경에는 소멸하는 법[滅法] 가운데 태어남도 없고 소멸함도 없음을 아는 것을 바로 멸성제라고 하며, 일체의 법은 평등하므로 둘이 아닌 법[不二法]으로 도를 얻는 것을 바로 도성제라고 한다.
010_0432_c_02L범천이여, 진짜 성제(聖諦)는 허망함이 없다. 허망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나[我]에 집착하고, 중생에 집착하고, 사람에 집착하고, 수명(壽命)에 집착하고, 양육(養育)에 집착하고, 유(有)에 집착하고, 무(無)에 집착하고, 생(生)에 집착하고, 멸(滅)에 집착하고, 생사(生死)에 집착하고, 열반에 집착하는 것이다. 범천이여, 만약 수행자가 말하기를 ‘나는 고(苦)를 보아 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허망함이고, ‘나는 집(集)을 끊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허망함이며, ‘나는 멸(滅)을 증득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허망함이고, ‘나는 도를 닦았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허망함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이 호념(護念)하는 바를 어기고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망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부처님이 호념하는 바인가? 말하자면 일체의 모든 법을 기억하여 마음에 담지 않는 것이니, 만약 수행자가 이러한 생각에 머문다면 곧 일체의 상(相)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만약 일체의 상에 머물지 않는다면 곧 실제(實際:眞如의 理體)에 머무는 것이며, 만약 실제에 머문다면 이를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不住心]고 한다. 만약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참다운 말[實語]만 하고 헛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범천이여,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실함도 아니고 허망함도 아니라면 이를 이름하여 성제(聖諦)라고 한다. 범천이여, 실함[實]은 끝내 실하지 않음[不實]을 짓지 않으니,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법성(法性)은 항상 머무르며, 이른바 생사의 성품[性]이나 열반의 성품은 항상 실하다. 왜냐하면 생사를 떠나지 않고 열반을 얻는 것을 성제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이 4제(諦)를 증득한다면 그를 ‘세간에서 실함을 말하는 자’라고 한다.
범천이여, 미래에 어떤 비구가 몸도 닦지 않고, 계(戒)도 닦지 않고, 마음도 닦지 않고, 지혜도 닦지 않으면서 이 사람이 말하기를 ‘생사의 모습이 바로 고제(苦諦)이고, 여러 인연이 화합한 것이 바로 집제(集諦)이며, 멸법(滅法)이 바로 멸제(滅諦)이며, 둘인 법으로 상(相)을 구하는 것이 바로 도제(道諦)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나는 ‘이 어리석은 사람은 외도의 무리로서 나는 그 사람의 스승이 아니며, 그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니, 이 사람은 삿된 도에 떨어져서 법을 부수고 잃었기 때문에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범천이여, 또 나는 도량에 앉아서 관찰할 때에 한 법도 이것은 실하고 이것은 허망하다는 것을 얻지 않았다. 만약 내가 법을 얻음이 없다면, 이 법을 어찌 대중 가운데서 말함이 있고, 논의함이 있고, 교화함이 있을 수 있겠느냐?”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만약 법이 허망하여 실하지 않다면 이 법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010_0432_c_22L“於汝意云何?若法虛妄非實,是法爲有?爲無?”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약 법이 허망하다면 이 법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010_0432_c_24L梵天言:“世尊!若法虛妄,是法不應說有、不應說無。”
010_0433_a_02L“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만약 법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면 이 법은 얻을 것이 있겠느냐?”
010_0433_a_02L“於汝意云何?若法非有、非無,是法有得者不?”
범천이 말하였다. “얻을 것이 없습니다.”
010_0433_a_03L梵天言:“無有得者。”
“범천이여, 여래가 도량에 앉아 있을 때, 오직 허망하고 전도(顚倒)되어 일어나는 번뇌는 필경에는 공한 성품임을 얻었다.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얻었고, 알 것이 없기 때문에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얻은 법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취할 수도 없고 집착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어려운 것도 아니며, 일체의 법상(法相)을 초월하므로 말[語]도 없고 설함[說]도 없고 문자(文字)도 없고 도(道)를 말함도 없기 때문이다. 범천이여, 이 법은 이와 같아서 마치 허공과 같다. 그대는 이러한 법 가운데서 이익을 얻고자 하느냐?”
010_0433_b_02L범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는 매우 희유하셔서 일찍이 없던 법[未曾有法]을 성취하시고, 깊이 대자대비에 들어가셔서 이와 같은 적멸상(寂滅相)의 법을 얻으셨기 때문에 문자와 말로써 남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적멸상을 얻게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들음이 있어서 이를 능히 믿고 안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조그마한 공덕을 따라서 오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일체 세간에서는 믿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세간에서는 실[實]에 탐착하나 이 법은 실함도 없고 허망함도 없으며, 세간에서는 법에 탐착하나 이 법은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으며, 세간에서는 열반에 탐착하나 이 법은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간에서는 선법(善法)에 탐착하나 이 법은 선도 없고 선 아님도 없으며, 세간에서는 즐거움에 탐착하나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으며, 세간에서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에 탐착하나 이 법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도 없고 또한 열반도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법을 설함이 있으나 이 법은 설할만한 상(相)이 아니며, 비록 승(僧)을 칭찬하여 설하나 승은 곧 무위(無爲)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은 일체 세간에서 믿기 어렵습니다.
비유하자면 물 가운데서 불이 솟아나고, 불 가운데서 물이 솟아나는 것과 같아서, 가히 믿음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번뇌 가운데 보리가 있고 보리 가운데 번뇌가 있으니, 이 역시 믿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이 허망한 번뇌의 성품을 얻으셨으나 법이 없음을 얻은 것도 아니며, 말씀하신 법 역시 형상이 없기 때문이니, 비록 아는 바가 있어도 분별함이 없으며, 비록 열반을 증득했으나 또한 멸함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능히 이와 같은 법의 뜻을 믿고 이해한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모든 견해에서 벗어났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이미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친근히 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이미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선지식이 보호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뜻과 마음이 광대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선근(善根)이 깊고 두터움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수호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잘 생각하고 헤아려서 선업(善業)을 일으킴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종성(種姓)이 존귀하여 여래의 집에 태어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크게 버림을 행하여 모든 번뇌를 버림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지계(持戒)의 힘을 얻어서 번뇌의 힘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인욕의 힘을 얻어서 화냄[瞋恚]의 힘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정진의 힘을 얻어서 피로하거나 게으름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선정(禪定)의 힘을 얻어서 모든 나쁜 마음을 소멸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지혜의 힘을 얻어서 악하고 삿된 견해를 여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일체의 악마가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일체의 원수나 적이 부수지 못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세간을 속이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010_0433_c_02L마땅히 이 사람이 바로 참됨을 말하는 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법의 모습[法相]을 잘 말하기 때문이며, 마땅히 이 사람이 바로 실함을 말하는 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제일의(第一義)를 말하기 때문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께서 잘 호념(護念)하심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부드럽고 온화하여 함께 안락함에 머무름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을 큰 부자라고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니 성스러운 재보[聖財]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항상 만족함을 아는 것은 성자가 되고자 하는 닦음[聖種]을 행하기 때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며, 이 사람이 쉽게 만족하고 공양을 달게 받는 것은 탐착을 여의었기 때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며, 이 사람이 편안[安隱]한 마음을 얻은 것은 피안에 이르렀기 때문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이 제도되지 못한 자를 제도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자를 이해시킴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아직 안락하지 못한 자를 안락하게 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아직 번뇌를 소멸하지 못한 자를 소멸하게 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정도(正道)를 보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해탈을 말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대의왕(大醫王)이 되어 모든 약을 잘 앎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좋은 약과 같아서 뭇 병을 잘 치료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땅히 이 사람은 지혜가 용맹하고 건강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큰 힘이 있어서 구경(究竟)을 향한 발원이 견고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정진력(精進力)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가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마치 사자와 같아서 공포와 두려움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코끼리왕과 같아서 그 마음을 잘 조복(調伏)하여 부드러움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늙은 코끼리와 같아서 그 마음이 잘 따름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소의 왕[牛王]과 같아서 능히 대중을 인도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크게 용맹하고 건장하여 능히 악마와 원수를 부수어 버림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대장부라서 대중들 가운데 있어도 두려움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이 어려운 것을 피하는 일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니 무외법(無畏法)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이 어려운 것을 두려워함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니 진제법(眞諦法)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깨끗하게 결백 청정한 법[白法]을 갖추어 마치 둥근 달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의 지혜의 광명이 마치 해와 달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모든 어둠을 제거한 것이 마치 횃불을 든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즐거이 마음을 버리는 일을 행하여 모든 증오와 애욕을 여의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중생들을 길러줌이 마치 땅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010_0434_a_02L마땅히 이 사람은 모든 티끌과 때를 씻어냄이 마치 물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모든 흔들리는 생각을 태워버림이 마치 불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법에 장애가 없음이 마치 바람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이 마치 수미산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그 마음이 견고하기가 마치 금강산(金剛山)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일체의 외도나 승론자(勝論者)와 겨루더라도 쓰러뜨릴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성문(聲聞)이나 벽지불(辟支佛)로서는 헤아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법보(法寶)가 많고 풍요로움이 마치 큰 바다와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번뇌가 나타나지 않음이 파다라(波陀羅)와 같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법을 구하는 데에 싫증냄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지혜로써 만족함을 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법륜(法輪)을 굴림이 마치 전륜왕(轉輪王)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의 몸의 색[身色]이 뛰어나고 묘한 것이 마치 천제석(天帝釋)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마음에 자재(自在)함을 얻음이 범왕천(梵王天)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법을 설하는 음성이 마치 우레와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감로법(甘露法)을 내리는 것이 마치 때맞춰 오는 비와 같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무루근(無漏根)의 힘으로 깨달음을 늘어나 자라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이미 생사의 진흙탕을 건넜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갔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010_0434_b_02L마땅히 이 사람은 부처님의 보리를 가까이 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학문이 뛰어나 견줄 이가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어서 이미 헤아림을 초월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의 지혜와 변재(辯才)는 막히거나 걸림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기억하고 생각함이 견고하여 다라니(陀羅尼)를 얻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모든 중생의 깊은 마음과 행하는 바를 알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지혜의 힘을 얻어 모든 법을 바르게 관찰하여 그 의취(義趣)를 이해하고 통달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 세간을 이롭고 편안하게 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세상을 초월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음이 마치 연꽃과 같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세간법[世法]에 가려지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근기가 예리한 자에게 사랑받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다문(多聞)한 자에게 존경받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지혜로운 자가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인간과 하늘이 공양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좌선하는 자의 예경[敬禮]을 받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선인(善人)이 귀하게 여김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성문과 벽지불이 사모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작은 행위[小行]를 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죄를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 공덕은 드러내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위의(威儀)를 잘 갖추고 있어서 남에게 깨끗한 마음을 내게 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신색(身色)이 단정하여 보는 자가 즐거워하고 기뻐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큰 위엄과 덕이 있어서 무리들이 우러러 받듦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32상(相)으로 그 몸을 장엄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부처님의 종자를 이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법보(法寶)를 수호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승가에 공양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께서 보고 계심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법안(法眼)을 얻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부처님의 지혜로써 수기(受記)를 받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이 사람은 세 가지 인(忍)을 구족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도량에 안주(安住)함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마군을 부수고 무너뜨림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법륜을 잘 굴림을 알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이 사람은 한량없는 불사(佛事)를 지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010_0434_c_02L만약 사람이 이와 같은 법의(法義)를 믿고 알아서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며 놀라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공덕을 얻을 것이니, 이런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매우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지만, 능히 믿고 받아서 독송(讀誦)하며, 널리 이롭게 하여 받들어 지녀서 사람들을 위해 널리 설하며 설한대로 수행하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설한대로 수행할 것을 가르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제가 1겁(劫)을 가지고 그 일 겁이 다하도록 그 공덕을 말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