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0_0515_a_01L
지인보살경(持人菩薩經) 제1권
010_0515_a_01L持人菩薩經卷第一


서진(西晉) 축법호(竺法護) 한역
김진철 번역
010_0515_a_02L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1. 사사품(四事品)
010_0515_a_03L持人菩薩經四事品第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0_0515_a_04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가린(加隣) 대나무 숲 속[竹園]에서 큰 비구 대중 1,250인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들과 함께 계셨다. 일체의 큰 성인[大聖]들은 신통을 이미 통달하였고 변재(辯才)는 막힘이 없었으며, 그 지혜는 측량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모든 근(根)은 적정(寂定)하여 일체의 근본을 보았고, 병에 맞게 약을 주면 병이 낫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법의 다리[法橋梁]가 되어 3계를 건너게 하였다.
010_0515_a_05L一時佛遊王舍城加鄰竹園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菩薩不可計一切大聖神通以達辯才無㝵慧不可量諸根寂定見一切本應病與藥靡不蒙濟爲法橋梁度脫三界也
그때에 세존께서 셀 수 없이 많은[無央數] 백천 대중의 권속에게 둘러싸여 경을 설하셨다. 이때 지인(持人)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르게 여미고 무릎을 꿇고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은 무엇 때문에 서원(誓願)을 세워 한없는 공훈(功勳)으로 모든 법을 밝게 깨달아 알고, 일체의 도무극(度無極:바라밀)을 분별하며, 한량없는 방편선권(方便善權:선교방편)을 깨달아 널리 중생들에게 지혜가 미치게 하려 함이 비유할 수 없게 되었습니까? 계(戒)와 덕(德)의 큰 갑옷으로 도의(道義)를 참되고 바르게 하여 중생을 위해 원하되 큰 은혜로 인자함이 허공을 덮을 듯하여 측량할 수 없게 됩니까?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덕행으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一心]ㆍ지혜의 도무극을 구족하여 만약 어떤 중생이 이 업의 특별한 근원[原]과 위없는 대도(大道)를 봉행하려고 한다면 지금 이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등등의 것을 여래께 여쭙고자 합니다.
010_0515_a_09L爾時世尊與無央數百千之衆眷屬圍遶而爲說經持人菩薩卽從坐正服長跪前問佛言菩薩何行建立誓願無限功勳曉了諸法分別一切諸度無極識解無量方便善權弘要被不可喩戒德大鎧眞正道義爲衆生願弘恩仁慈覆如虛空不可測度其心淸淨德行具足布施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普度無極若有衆生欲奉斯業殊特之原無上大道今故爲斯如此等類啓問如來
010_0515_b_02L보살대사(大士)는 여래께서 가르침을 주시는 곳에서 여쭈겠습니다. 3계를 두루 돌아 행할 바를 다 갖추고 금지된 계율[禁戒]을 부지런히 닦아서 잊지 않고 연설하며 청정한 수행으로 받들되 다닐 때나 머물 때나 갖추어 이루어서 무극(無極)의 지혜를 좇으며 한량없는 방편으로 때에 따라 깨우쳐 교화하는 것이 이 중생을 위한 것이지만 마음이 있고 법이 있으나 스스로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께 여쭈겠습니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법을 깨달아 능히 때에 따라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선설한다고 하며 그 마음이 굳세고 강하여 힘써 기억하여 잊지 않고, 미묘한 지혜를 이루어 일체 법의 장구(章句)와 그 뜻의 이치[誼理]를 알며,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숙명을 알되 중간에 소홀하여 잊지 않으며,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 최정각(最正覺)이 된다고 합니까?”
010_0515_a_20L菩薩大士諮問如來言教處所周遊三界所行備勤修禁戒無所忘講奉淸淨行遊居成辦遵無極慧無量方便隨時開化爲此衆生有心存法不能自達故問如來何謂菩薩曉了諸法能以隨時爲人班宣其心堅强力念不忘致微妙慧解一切法章句誼理所生之處常識宿命不中忽忘至成無上正眞之道爲最正覺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지인보살이여, 불쌍히 생각하는 것이 많고 편안하게 하려는 것도 많아 모든 하늘[諸天]과 시방의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이에 일체를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이 중요한 뜻을 물으니 공덕이 다함이 없다. 일체 의심으로 머뭇거리는 그물을 풀어 크고 넓은 자비로 중생에게 주어서 큰 지혜[明]를 나타내 보여라. 현재와 장래의 모든 보살이 다함없는 애민함[哀]을 베풀어 행하되 중생을 위한 까닭에 널리 대도(大道)를 나타내어라. 큰 서원을 일으켜서 장차 일체를 보호하고 온갖 액에서 교화하고 제도하여 개발(開發)하게 해서 스스로에게 귀의하게 하며, 나와 남을 제도하고 중생을 건져 내어 3악도의 괴로운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라. 이에 그들에게 권하여 대도의 위없이 바르고 참된 곳에 서게 하고 중생을 생ㆍ노ㆍ병ㆍ사의 울부짖는 번뇌와 근심과 곤고함에서 벗어나 길이 안온하게 하며, 장차 다가오는 최후 말세에 정법(正法)을 유포하여 큰 공포를 녹여 두려움이 없게 하여라.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그것을 잘 사념(思念)하라.”
010_0515_b_08L佛言善哉善哉人菩薩多所哀念多所安隱愍傷諸天及十方人乃爲一切諮問如來如斯要義功勳之德不可盡極決一切疑猶豫羅網以大弘慈加於衆生顯示大明現在將來諸菩薩施行無蓋爲衆生故普現大道興擧弘誓將護一切爲開發化濟衆厄令得自歸使度彼我拔濟衆生不墮三惡勤苦之獄乃以勸之使立大道無上正眞欲脫衆生生老病死啼哭之惱憂困之患使長安隱將來最後末世流布正法消大恐畏令無所懼諦聽諦聽善思念之
지인보살은 모든 대중들과 함께 가르침을 받고서 들었다.
010_0515_b_21L持人菩薩與諸大衆受教而聽
010_0515_c_02L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 네 가지 일의 뜻이 있으니, 그 가르침[言敎]을 관찰하여 모든 법을 밝게 깨달아 능히 때에 따라 사람에게 펼쳐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심념(心念)으로 정진(正眞:부처님)에 이름을 성취하는 것이며, 뜻에 도법(道法)을 가지고 소홀하여 잊지 않는 것이며, 성품과 행실이 유화(柔和)하고 위의[庠序]가 인자한 것이며, 그 마음을 일으켜도 중생과는 특별히 다른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5_b_22L佛語持人菩薩有四事義觀其言教曉了諸法能以隨時爲人頒宣何謂爲四心念成就逮致正眞志存道法未曾忽忘性行柔和庠序仁慈其心所興與衆殊異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도의 뜻[道義]을 분별하여 여러 종성(種姓)을 판단하는 것이고, 의리(義理)가 나아갈 바 온갖 행을 밝게 아는 것이며, 모든 법의 지극히 중요한 점을 선포하는 것이며, 모든 법의 근본을 통달하여 따라 열어서 제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무앙수의 행할 바 모든 법을 아는 것이며, 행(行)을 초월하여 한량없는 법을 펴는 것이며,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을 마땅하게 판단하여 행하는 것이며, 끝없는 공훈(功勳)으로 모든 법을 식별하고 이로 인하여 모든 습기[習]를 끊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5_c_03L復有四何謂爲四分別道義決諸種姓了衆行義理所趣宣布一切諸法至達諸法本隨而開度是爲四復有四事何謂爲四解無央數所行諸法以行超越暢無量法所當應宜剖判所行無底功勳識別諸法因斷諸習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그 바른 행으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에 이르는 것이며, 빠르게 도를 수행하는[滅道行] 법의 37도품[品]을 구족하는 것이며, 모든 법을 통달하여 자연의 지혜로 우러러 의지하는 바가 없는 것이며, 임시방편[權方便]을 알아서 일체를 불쌍히 여김[愍]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마음이 더러운 때를 여의어 간탐과 질투를 품지 않고, 은혜와 어짊으로 중생의 부류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그 계행이 청정하여 행하는 바가 선명하고, 항상 정진을 받들어 일찍이 게으르거나 그만두지 않는 것이며, 부지런히 청정함을 닦아 일으켜 성취하는 것이며, 수순하는 수행[順行]을 깨달아 오로지 도업(道業)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5_c_10L復有四事何謂爲四因其正行逮無上正眞之道疾具足滅道行之法三十七品通達諸法自然之智無所依仰解權方便成一切愍是爲復有四事何謂爲四心離穢垢不懷慳嫉以是恩仁攝衆生類其戒淸淨所行解明常奉精進未曾懈廢修淸淨建立成就曉了順行專思道業是爲四
다시 네 가지 업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뜻과 성품이 청정하여 원하는 바가 선명하고, 행하는 바의 공훈으로 덕이 청정함에 이르는 것이며, 인욕과 인화(仁和)로 묘법(妙法)을 세우는 것이며, 밝음을 드러내는 곳에 이르러서는 비추지 못하는 곳이 없으며, 경의 뜻을 분별하고 펼쳐서 도(道)의 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업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닦아 일체지(一切智)를 구하되 뜻은 일심의 정의정수(定意正受)에 두며, 해탈문을 깨달아 크게 불쌍히 여김[大哀]을 받들어 행하고 끝없는 자(慈)ㆍ희(喜)ㆍ호(護)로 재앙에서 건져 주는 것이며, 깊은 지혜를 이루어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이며, 정의(正義)를 창달(暢達)하여 도의 행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5_c_18L復有四業何謂爲四志性淸淨所願解明所行功勳至德淸淨忍辱仁和建立妙法以逮顯明無所不照分別經義暢入道門是爲四復有四何謂爲四夙夜勤修求一切智存一心定意正受曉了脫門奉于大無極之慈喜護濟厄逮致深慧修淸淨行暢達正義解了道行是爲四
010_0516_a_02L 다시 네 가지 업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지혜를 좇아 받들어 행하는 바를 구족하는 것이며, 성스러운 덕[聖明]1)이 청정하고 뜻과 서원이 넓고 커서 지극한 덕을 사랑하고 좋아하며 지혜가 걸림이 없는 것이며, 마음을 널리 구하는 데 두어 일찍이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말을 살피고 뜻을 관하여 마음과 서원이 견고함에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그 뜻이 굳고 강하여 구하는 바를 구족하는 것이며, 성품의 행이 고요[安詳]하여 생각하는 바를 다 갖추는 것이 며, 그 행이 끝까지 도의 생각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며, 네 가지 의지[四意止:四念處]를 닦아 바른 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a_02L復有四業何謂爲四遵承智慧所行具足聖明淸淨志願弘大愛樂至德無罣㝵慧心存普救未曾捨行是爲四有四事察言觀義心誓堅固何謂爲其意堅强所求具足性行安詳所思備悉其行究竟不斷道念修四意止成就雅德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말을 살피고 의미를 관하여 뜻이 견고함에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뜻을 세우고 마음으로 부처님의 업(業)인 37도품의 법을 생각하는 것이며, 뜻[意根]이 날카로워 지난 세상 무앙수 겁에 태어난 곳을 밝게 아는 것이며, 뜻이 평등하고 바르며[平正] 성스러운 지혜여서 청정하여 훼손되거나 단절되지 않고 속히 불도를 이루는 것이며, 지극히 진실한 부처님의 일체지를 섭취(攝取)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 일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이 넷인가? 방편을 잘 알아 지혜의 뜻을 사모하여 갖추는 것이며, 부지런히 닦고 깨달아 참된 진리[眞諦]의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며, 친근함을 인연하여 불도에 이르는 것이며, 행하는 바 정진을 소홀하여 잊은 적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a_09L復有四事察言觀義志存堅固何謂爲四意以得立心念佛業道品之法三十有七意根通利曉了往宿無央數劫所生之處意以平正聖慧淸淨無能毀斷疾成佛道攝取至眞佛一切智是爲四事復有四事何謂爲四察識方便慕具慧義曉了勤修顯眞諦慧緣是親近得至佛道所行精進未嘗忽忘是爲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뜻과 성품이 견고한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항상 정진(精進)을 받들어 불도를 멀리하지 않고 뜻과 성품이 편안하고 평화로워 능히 그 뜻을 억제하며, 널리 모든 법을 알아 방일하지 않는 것이며, 온갖 도[衆道]를 알고 펼치고 모든 근(根)이 고요하며, 항상 경의 뜻에 맞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뜻과 성품이 견고한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청정한 계(戒)를 세우고 행하는 바가 더럽지 않은 것이며, 5음(陰)의 덮개를 제거하여 가려지지 않는 것이며, 마음에 집착함이 없어 잠시도 게으르거나 그만두지 않는 것이며, 온갖 죄를 없애고 번뇌[塵勞]를 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a_18L復有四事志性堅固何謂爲四奉精進不遠佛道志性安和能制其普解諸法未曾放逸解暢衆道諸根寂定常應經義不違佛教是爲四有四事志性堅固何謂爲四立淸淨戒所行無穢去五陰蓋不爲所蔽無所著未曾懈廢蠲除衆罪所滅塵是爲四
010_0516_b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뜻과 성품이 견고한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마음이 무너져 산란하지 않고 바르고 참된 법을 구하는 것이며, 방편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일체 법에 수순하는 것이며, 때를 따르는 것을 밝게 알아 법의 절차[儀節]를 잃지 않는 것이며, 태어난 곳의 가업(家業)을 탐내지 않고 뜻을 사문에 두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뜻과 성품이 견고한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항상 착한 벗[善友]을 친근히 하고 나쁜 벗[惡知識]을 멀리하며, 뜻은 깊은 법을 사모하여 방일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께 귀명하고 모든 보살과 함께하며, 금한 계율을 여쭈어 모든 관(觀)을 밝게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b_02L復有四事志性堅固何謂爲四心不憒亂求正眞法方便安心順一切法曉了隨時不失儀節所生之處不貪家業志存沙門是爲四有四事志性堅固何謂爲四常親善友遠惡知識志慕深法未曾放逸命諸佛諸菩薩俱諮問禁戒曉了諸是爲四
다시 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뜻을 관하고 말을 살펴서 널리 법의 구절을 이해하는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온갖 방편을 세워 모든 도업(道業)을 알고, 모든 법문의 인연과 보응(報應)을 알며, 최상의 지혜의 이치에 뜻하여 불도를 분별하며, 모든 법의 장구(章句)가 취향하는 바를 이해해서 펼치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보살이여,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뜻을 관하고 말을 살펴서 모든 법의 장구를 밝게 알아 분별함에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진실한 말씀의 가르치심을 알고 선포하여 펴는 것이며, 모든 법을 부연하여 통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며, 모든 법을 판단하여 방편을 구족하는 것이며, 모든 뜻이 본래 좇아온 바의 습성을 밝게 아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b_09L復有四事觀義察言普解法句何謂爲四建衆方便了諸道業解諸法門因緣報應志上慧義分別佛道解暢諸法章句所趣是爲四薩復有四事觀義察言曉了分別諸法章句何謂爲四解暢宣布眞實言敷演諸法無所不達剖判諸法方便具足明知諸義本所從習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뜻을 관하고 말을 살핌에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성스러운 지혜를 받들고 행하여 도업을 분별하며, 세력을 얻음에 이르러 모든 법을 선포하며, 속히 불도의 청정한 지혜를 이루며, 도무극(度無極)을 밝혀 널리 갖추고 만족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어서 모든 법을 분별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익힐 바를 밝게 알아 정진 수행하는 것이며, 인연을 소멸함을 모르는 것이 없으며, 응진(應眞)의 힘으로 때를 따라 부지런히 닦고 바른 경전을 받들어 받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b_16L復有四事觀義察言何謂爲四奉行聖慧分別道業逮得勢力宣布諸法速成佛道淸淨之慧明度無極普以備足是爲四復有四事分別諸法謂爲四曉了所習精進修行消滅因緣靡所不了因其逮得應眞之力隨時勤修奉受正典是爲四
010_0516_c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어서 모든 법을 분별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만물은 일체가 무상(無常)한 것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며, 만물의 본인(本因)은 습기 때문임을 분별하는 것이며, 모든 물질은 정일하게 연단하면 다 멸진(滅盡)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무상함을 깨달아 알아서 문득 도업(道業)인 8정진원(正眞元)을 닦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어 모든 법을 분별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온갖 행(行)은 모든 습기[習]가 모여 합한 것임을 깨달으며 일체를 분별하면 모든 습기가 다 멸하며 인연을 얻는 데 이르면 무극(無極) 대력(大力)이며, 방편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행을 끊어 버린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b_23L復有四分別諸法何謂爲四曉了萬物一切無常分別萬物本因所習精練諸物皆歸滅盡解知無常便修道業八正眞元是爲四復有四事分別諸法何謂爲四曉了衆行合會諸習分別一切滅盡諸習逮得因緣無極大力方便斷別合散之行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어 모든 법을 분별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뜻은 언사(言辭)로 취향해 가는 것임을 잘 이해하여 온갖 뜻을 밝게 깨달아서 다른 것을 받아들여 따르지 않는 것이며, 모든 법의 온갖 모습[相]과 변하지 않는 지혜[慧印:여래의 지혜]의 근원을 부연하며, 일체 법으로 하여금 모양이 없는 지혜[無相慧]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태어난 곳에서 항상 숙명(宿命)을 알아 마음으로 기억하여 잊지 않고 위없이 바르고 참된 뜻을 이루는 데 이르는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근(根)이 밝고 날카로워 선악의 법을 나타내는 것이며, 남의 뜻이 옳고 그릇됨을 알아서 일체의 음(陰)의 덮개를 다 휴식하게 하며, 태어난 곳을 항상 생각하여 잊지 않고, 뜻을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두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c_07L復有四分別諸法何謂爲四解暢諸義言辭所趣曉了衆義不從他受敷演諸法一切衆相慧印之源令一切法立無相慧是爲四復有四事所生之處常識宿命心念不忘至成無上正眞之意何謂爲四諸根明利暢善惡法以了他人意念是非一切陰蓋咸得休息所生之處常念不忘志在無上正眞之道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마음으로 생각하며 잊지 않고 정각(正覺)을 이루는 데 이르는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항상 선정의 뜻을 행하여 밝게 방편을 익히며, 지혜로 명혜(明慧: 3明과 3慧)를 통달하여 드러내는 것으로 으뜸을 삼으며, 행하고 관하는 것이 명확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도혜(道慧)를 분별하여 광명이 멀리까지 비친다. 이것이 넷이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마음으로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최정각(最正覺)에 이르리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총지(摠持)를 얻으니 생겨날 지혜[慧]가 없으며, 초월함을 얻어서 영원히 성스러운 지혜를 다하며, 지혜를 소멸함으로써 3계(界)를 관찰하며, 끝없는 지혜로 3세(世)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c_16L復有四事心念不忘至成正覺何謂爲四常行定志曉習方便智慧通暢明慧爲首明所行觀無所不睹分別道慧光明遠照爲四復有四事心念不忘至最正覺何謂爲四逮得摠持無所生慧以得超越永盡聖慧以消滅慧觀于三界以無底慧睹見三世是爲四
010_0517_a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태어나는 곳에서 항상 숙명을 알고 능히 산란함이 없이 정각을 이룸에 이른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번뇌와 집착을 끊어 산란하지 않는 것이며, 입으로 말한 것에 빈틈이 없으며, 일체 모든 존재[諸有]의 업환(業患)은 모두 무위(無爲:작용함이 없는 것)임을 통달하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행하신 무극 대도(無極大道)를 따라 얻는 것이다. 이것이 넷이다.”
010_0516_c_23L復有四所生之處常識宿命無能亂者至成正覺何謂爲四以斷結著莫能亂口之所言未曾闕漏皆達一切諸有業患悉是無爲逮得佛行無極大是爲四
부처님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佛於是頌曰

그 마음[心念]으로 이루면
뜻과 성품은 항상 밝아
홀연히 법을 잊지 않고
이로 말미암아 정각을 이루리.
010_0517_a_05L其心念成就
志性常明了
未曾忽忘法
由是致正覺

일체 법 깨달으면
부드럽고 온화하여 인자함을 행하고
모든 법이 본래 없음을 통달하면
한량없는 행을 알리라.
010_0517_a_07L 曉了一切法
柔和行仁慈
以達諸法無
解無央數行

참된 지혜 높이 받들어
성스러움 통달하여 구족하며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여
질투와 시기의 마음을 품지 않으리.
010_0517_a_08L 遵承眞智慧
聖達以具足
去心之穢垢
未曾懷嫉妒

때맞추어 방편 쓰며
위없는 지혜 분별하고
뜻과 서원이 넓고 커
최정각에 이르네.
010_0517_a_09L方便以隨時
分別無上慧
志願甚弘大
乃至最正覺

그 뜻이 자재함을 얻으니
37도품(道品)이며
마음의 근원[心根]을 통달하여
숙세의 무수한 겁을 알도다.
010_0517_a_11L 其意得自在
道品三十七
心根以通達
識宿無數劫

고통 생기는 연유를 알고자 한다면
습기가 원인이며 본래 근본이 없음이라.
일체 있는 것은 다하니
모두 본래 없는 것임을 알라.
010_0517_a_12L知苦所由生
習因本根無
一切所有盡
解之悉本無

보살이 정법으로
3계의 재앙에서 열어 교화하여
무명(無明)에 덮인 모든 이로 하여금
모두 무상도(無上道)를 통달하게 하도다.
010_0517_a_13L以菩薩正法
開化三界厄
使諸無明者
皆通無上道

부처님께서 지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청정함을 행한 힘으로 이런 덕의 글[德句]에 이른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어질고 평화로운 성품 본래 깨끗한 지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이 청정하며, 성스럽고 밝은[聖明:聖德] 지혜의 힘으로 덕이 본래 청정하며 도력이 한량없고 서원하는 것이 청정하면 곧 이 지혜의 힘으로 죄업을 쉬게 하니 지혜의 힘이 청정함이다.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청정한 지혜의 힘에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그 힘으로 위의와 예절을 펴며, 이 생각을 성취함을 청정한 지혜의 힘으로 하며, 훌륭한 방편[善權方便]으로 번뇌 없는 힘을 깨달으며, 중생을 위하여 성스러운 힘[聖力]으로 해명하며, 통달한 힘으로써 부지런히 닦으면 상서로움이 응한다.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010_0517_a_15L佛告持人菩薩有五事行淸淨力逮斯德句何謂爲五以仁和性本淨慧所願淸淨聖明慧力德本淸淨道力無量所誓淸淨則是慧力休息罪業慧力淸淨是爲五淸淨慧力復有五事何謂爲五其力以暢威儀禮節斯念成就淸淨慧力善權方便曉無穢力爲衆生故聖力解明以通達力勤修瑞應是爲五
010_0517_b_02L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청정한 지혜의 힘으로 이 일체 공훈(功勳)의 업에 이른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보시가 청정하면 곧 지혜의 힘[慧力]이라고 말하고, 중생을 구제하여 거두어들이면 곧 청정한 힘이며, 대자(大慈)를 건립하면 곧 청정한 지혜의 힘이며, 마음에 크게 불쌍히 여김[大哀]을 품는 것은 청정한 지혜의 힘이며, 무극(無極)의 희(喜)ㆍ호(護)가 청정한 지혜의 힘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 청정한 힘을 위하여 이 공훈에 이른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그 계(戒)가 청정하면 방편이 없는 지혜[無權慧]를 이루며, 지계의 금한 행으로써 지혜의 행을 구제하며, 인욕이 청정하므로 한을 품음이 없고, 청정한 지혜의 힘으로 세력이 없음을 구제하며, 널리 들리는 청정한 힘은 통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010_0517_a_24L復有五事淸淨慧力逮是一切功勳之業何謂爲五施淸淨則謂慧力救攝衆生則淸淨建立大慈則淨慧力心懷大哀則淨慧力以無極喜護淨慧力是爲五復有五事爲淸淨力逮是功勳何謂爲五其戒淸淨成無權慧以戒禁行救濟慧行忍淸淨莫能懷恨以淨慧力救濟無勢博聞淸淨力靡不通爲五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모든 공훈을 갖추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정진을 행함으로써 생겨난 뜻과 성품의 혜력(慧力)이며, 능히 부지런히 닦음으로써 청정한 지혜가 응하는 것이며, 일심의 지혜의 힘으로 속히 정의(定意)를 얻는 것이며, 선정의 지혜를 깨달아 아는 것이며, 고요하고 청정함으로써 3계가 공함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이 공훈에 이르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지혜가 청정하여 널리 들어도 싫증내지 않고, 세상을 보는 힘으로 세상을 제도할 힘을 얻으며, 강하고 세력이 있어 용렬하고 연약한 이를 구원하여 벗어나게 하며, 성스럽고 밝은 힘으로 청정함을 깨달으며, 청정한 지혜의 힘으로 있고 없음과 나고 죽음이 무위(無爲)임을 통달하여 펴 나가니,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010_0517_b_10L復有五事具諸功勳何謂爲五以精進行志性慧力#以能勤修應淸淨慧一心慧力疾得定意了禪定慧以寂然淨察三界空是爲五復有五逮是功勳何謂爲五智慧淸淨博聞無厭以見世力得度世力强而有勢救脫劣弱以聖明力曉了淸淨淨慧力暢達有無生死無爲是爲五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성스럽고 밝은 힘을 이루어 이 공훈에 이르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지혜의 힘을 계승하여 모든 관(觀)을 판단[剖判]하는 것이며, 밝게 깨달은 힘으로 구경에는 본래 청정하게 되며, 지혜를 밝게 해탈하여 성스러운 힘[聖力]을 이루며, 무생(無生)의 지혜를 다하여 도력(道力)을 이루며, 한 가지 모습[一相]으로써 자연히 청정하며, 지혜의 힘을 사용하여 있는 바가 본래 청정함을 관찰한다.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010_0517_b_17L有五事成聖明力逮是功勳何謂爲以承智力剖判諸觀以曉了力究竟本淨慧明解脫以成聖力盡無生慧致于道力以一相自然淨用智力察所有本淨是爲五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대사는 항상 마땅히 이와 같이 모습에 견준[比像] 청정한 법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
010_0517_b_22L佛告持人菩薩大士常當奉行如是比像淸淨之法
부처님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517_b_23L佛於是頌曰
010_0517_c_02L
5력(力)을 당할 수 없어
이에 청정한 지혜 이루며
5음(陰)의 덮개 녹여 없애면
신통은 자연히 이루어지리.
010_0517_b_24L五力無能當
乃致淸淨慧
五陰蓋消除
神通自然成

보시ㆍ지계ㆍ인욕
정진ㆍ일심(一心)ㆍ지혜
6바라밀은 본래 모양이 없으나
수행자가 이름을 붙인 것이다.
010_0517_c_03L布施持戒忍
精進一心慧
六度本無形
行者因有名

도를 행함은 일체를 위한 것이나
중생[諸有]은 깨달아 알지 못하네.
3계가 환(幻)과 같음을 알면
태어남이 없는 데 이르리라.
010_0517_c_04L道行爲一切
諸有不達經
解三界猶幻
乃致無從生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대사에게는 세 가지 행할 법이 있으니, 비록 아름다운 모습[盛色]이 있으나 법의 청정한 힘으로 항상 부지런히 지혜를 닦아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도의 법을 좋아하고 정진하되 게으르지 않고 수행하되 방일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셋이다.
010_0517_c_05L佛告持人菩薩大士有三事法雖在盛色以法淨力常勤修慧何謂爲三好樂道法精進不惓行無放逸是爲
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색법(色法)에 있으면서 지혜의 힘이 청정하며, 속히 불도를 이루어 일체지(一切智)에 이른다. 무슨 까닭인가? 부지런히 정진하는 자는 방일함이 없음이 근본이다. 모든 법을 성취하고 이 청정함으로써 도력을 이룸에 이르며, 속히 정진을 이루어 일체의 애민하는 지혜[愍慧]를 행하되 되돌아감[廻轉]이 없으며, 되돌아가지 않음으로써 도법을 궁구하여 펴서 공덕을 성취하고 나서는 공훈(功勳)을 이루고 속히 모든 법에 이르러 지혜의 힘을 통달한다. 이에 이르는 자는 곧 세상의 중우(衆祐:세존)로서 문득 걸림 없는 덕을 다 드러내기를 마치고 나서 이에 여래법을 수행하여 성스러운 지혜를 얻음에 이르면 여래를 관하니 오래지 않아 여래의 도혜(道慧)를 증명하리라.”
010_0517_c_09L復有三事在於色法慧力淸淨成佛道至一切智所以者何勤精進者無放逸本成就諸法以是淸淨逮致道力速成精進一切愍慧行不迴以不迴轉究暢道法成就功德成功勳疾逮諸法通達慧力以逮是者則世衆祐便致暢畢無㝵之德乃行如來逮得聖慧觀如來不久證明如來道慧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지난 세상에 보살의 업을 행함이 무앙수 겁이다. 등광불(燈光佛)에게 수기를 받았는데, ‘최후의 구경(究竟)에는 이와 같은 모습의 청정한 지혜의 힘으로써 도무극(度無極:바라밀)을 얻게 되리라’고 하셨다. 만약 보살이 이 지혜에 이르는 자는 곧 법륜을 굴리며, 나 또한 지금 같이 법륜을 굴리며 사자후를 펴는 것 또한 이와 같으리라. 이 지혜를 이루면 곧 모든 법에서 자재를 얻으며 이미 자재를 얻으면 곧 대도를 이루리라. 만약 이 무극의 도혜(道慧)에 이르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법을 배울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역시 오래지 않아 속히 부처님의 무극 정각(無極正覺)을 얻을 것이다.”
010_0517_c_17L佛告持人佛往宿世行菩薩業無央數劫爲燈光佛所見授決最後究竟逮如是像淸淨慧力所度無極若有菩薩致是慧者便轉法輪我亦如今所轉法輪暢師子吼亦復若斯以致斯慧便於諸法而得自在已得自在便成大道若欲逮是無極道慧當學是法亦復不久當疾得佛無極正覺
010_0518_a_02L
2. 묘혜초왕불품(妙慧超王佛品)
010_0518_a_02L持人菩薩經妙慧超王佛品第二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과거 오래고 먼 세상에, 셀 수도 없는 무앙수 겁을 넘어선 그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명호는 묘혜초왕(妙慧超王)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明行成)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셨다. 그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모든 성문 대중은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며 모든 보살도 무앙수(無央數)로 모였으니, 이것은 모두 그 부처님께서 본래 도를 배울 때의 지극한 서원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불국토는 청정하고 공훈(功勳)이 높고 높아 그 불국토에는 3악취(惡趣)와 8난(難)이 없었으며, 중생은 안온하고 복되어 함께 쾌락하며, 모두 탐욕을 여의고 5개(蓋)를 제거하였다. 이와 같은 모습을 갖추어 세속의 뜻은 없고, 오직 도품(道品)으로써 서로 오락을 하고, 4선정(禪定)으로써 정수(正受)를 행하였다.”
010_0518_a_03L佛告持人乃往過去久遠世時無央數劫不可稱限越是無量爾時有佛號妙慧超王如來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人師爲佛世尊其佛世時諸聲聞衆不可計數其諸菩薩無央數會皆是其佛本學道時至願所致佛國淸淨功勳巍巍其佛國土無三惡趣八難之處衆生安隱福同快樂皆離貪欲除去五蓋如是比像無世俗義唯以道品而相娛樂以四禪定而行正受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인이여, 그 묘혜초왕여래는 수명이 80억해(億姟) 백천 겁이었고, 그 국토 사람의 수명은 30억해였다. 그때 세상에는 국왕이나 만민을 다스리는 법[典制]이 없고, 오직 묘혜초왕 여래ㆍ지진(至眞)이 법왕이 되어 다 같이 무상도왕(無上道王)이라고 불렀다. 그 묘혜초왕 여래ㆍ지진은 모든 보살 대중과 일체 중생을 위하여 널리 의심의 그물을 끊어주시니 한없이 기뻐하며, 보살의 무극 법장(無極法藏)을 폈다.
010_0518_a_14L佛言持人其妙慧超王如來壽八十億姟百千劫其國土人壽三十億姟當爾世時無有國王典制萬民唯以妙慧超王如來至眞爲法王咸共稱曰無上道王其妙慧超王如來至眞諸菩薩衆能爲一切普決疑網多所歡悅頒宣菩薩無極法藏
010_0518_b_02L이때 모든 보살은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모습에 견준 청정한 법력을 설하심을 듣고는 5백 보살이 일심으로 정진하여 새벽부터 밤까지 뜻을 간절히 하여 앉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먹는 것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육신의 수명이 다하도록 옷의 모습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지진(至眞)ㆍ무극도왕(無極道王)만을 생각하였다. 이런 모습의 법을 생각하여, 법력이 청정하며 이 일심(一心)은 덕을 근본으로 하여 이루어진 바였다. 그가 수명을 마치고 동방에 태어났는데, 거리가 이 부처님 세계에서 8천억 국토였다. 마침 태어나서 오래지 않아 또한 이 법을 만나 마음으로 생각하여[識念] 잊지 않고 지난 세상[宿命]을 다 보았으며, 지혜가 밝고 총명하며 모든 근(根)이 통달하여 보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옛것을 더듬어 지금을 알았다. 또 그 부처님 국토의 부처님 명호는 무량화왕(無量華王)으로 경법을 강설함에 이 5백 명이 그 불국토에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몸의 나이가 열여섯이었는데 곧 부모에게 알려 업을 버리고 출가 사문이 되어 청정하게 범행을 닦아 그 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 정진을 받들어 행함이 60억 년이었다.”
010_0518_a_21L諸菩薩聞佛所說如是比像淸淨法力五百菩薩一心精進夙夜慇懃不想念坐不想求食盡其形壽不念服飾唯念至眞無極道王思是像法淸淨法力以是一心德本所致於彼壽終生於東方去是佛土八千億國適生未久亦逮此法識念不忘悉見宿命睿哲聰明諸根通達無所不睹探古知今又其佛土佛號無量華王講說經法是五百人生彼佛土尋時其身年如十六卽報父母出家捐業行作沙門淨修梵行在其佛所奉行精進六十億歲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세상의 5백 보살은 이와 같이 상법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20억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뵈었고, 널리 그곳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진하였다. 묘혜초왕 여래ㆍ지진께서 5백 명으로 하여금 만 겁 동안 2만 부처님을 만나 수기를 받게 하니,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도달하여 억만 겁에 2만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받들어 섬김을 마치고, 이 5백 명이 다 같이 한 겁에 차례로 성불하였다.
010_0518_b_11L佛語持人於彼世時五百菩薩如是比像値見諸佛二十億普在其所夙夜精進妙慧超王如來至眞使五百人於萬劫中値二萬佛而授其當逮無上正眞之道以億萬劫供養奉事二萬佛訖是五百人皆同一劫次第成佛
010_0518_c_02L이런 까닭으로 지인이여, 보살대사가 속히 무상정진(無上正眞)을 성취하여 최정각(最正覺)을 이루는데,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정진하여 배우되 이와 같은 모습에 견준 청정한 지혜의 힘[慧力]이 경전의 요점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닦아, 게을러 그만두거나 방일한 행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본래 배움은 다 정진으로 말미암으니, 방일함이 없는 것으로 근본 삼아 최정각을 이루어 널리 도품(道品)을 갖춘다. 부처님은 모두 마음으로 생각하여[識念] 지난 옛날 세상에 정진함이 이와 같아 12억 부처님 세존께서 태어나신 곳을 보고 마땅히 뜻의 힘을 얻어 옛것을 더듬어 오늘을 알아 통달하지 않음이 없고, 각각 마음[識]으로 모든 숙명을 알아 멀지 않고 가까운 것같이 모두 그것을 보며, 모두 정진으로 말미암아 이 법을 배우기 때문에 방일한 행이 없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부지런히 닦아 잠시도 게으르거나 그만두지 않았다.
010_0518_b_17L是故持人菩薩大士速欲逮成無上正眞爲最正覺當精進學如是比像淸淨慧力經典之要夜勤修勿得懈廢爲放逸行所以者何諸佛本學皆由精進無逸爲本致最正覺普具道品佛皆識念往昔古世精進如是見是十二億諸佛世尊所生之處當得意力探古知今無所不各各識知一切宿命如近不遠悉睹見之皆由精進學是法故無放逸行夙夜勤修未曾懈廢
세존께서는 끝없는 자비로써 대비심을 일으켜 사방을 불쌍히 보시고, 곧 그 모습의 삼매정수(三昧正受)와 같이 여러 부처님으로 화현하여 두루 삼천대천세계에 퍼져서 각각 중생을 위하여 경의 도[經道]를 펴서 모든 의심을 해결하니 듣고 각각 도리를 알아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다시 거듭 보살의 법을 연설하셨다.
세존께서 이윽고 신족(神足)을 나타내어 그 위덕을 드러내고 대숲 동산[竹園] 안에 모인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시방의 모든 여래께서 그 세계에서 경법(經法)을 펴서 연설하심을 보게 하셨다.
그때 모든 보살은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스스로 귀의하여 부처님께 예를 드리고, 각각 스스로 찬탄하여 말하였다.
‘지극함이여, 처음 있는 일입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의 위덕과 성스러운 지혜는 불가사의하고 도법은 특별히 뛰어나고 높고 높아 한량없습니다. 마치 허공과 같아 반연으로는 미칠 것이 아닙니다.’
010_0518_c_04L爾時世尊以無極慈興大悲哀觀于四方卽如其像三昧正受化現諸佛周遍三千大千世界各爲衆生頒宣經道決諸狐疑聞各開解莫不歡悅復重爲演菩薩之法爾時世尊尋現神足顯其威德使竹園中諸會菩薩見十方諸如來在其世界敷演經法時諸菩薩各從坐起叉手自歸爲佛作禮各自歎曰至未曾有諸佛世尊威德聖慧不可思議道法超殊巍巍無量猶如虛空不可攀逮
부처님께서 곧 모든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래ㆍ지진의 한계는 비유할 수 없다. 무슨 까닭인가? 족성자(族姓子)야, 모든 법계에 통달하지 못함이 없는 줄 아는 바의 법계가 여래ㆍ지진이므로 그 한 털만한 덕의 신족과 변화도 한계를 말할 수 없다. 광명을 큰 강의 모래와 같은 시방세계에 널리 비추니 그 광명 속에 각각 음성으로 경의 도를 연설하여 펴며, 그 한 털구멍이 억백천해의 신족으로 변화함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ㆍ지진의 신족의 공훈(功勳)은 한계를 헤아릴 수 없으니, 높고 높음이 이와 같다.
010_0518_c_15L佛卽告諸菩薩曰是不爲難如來至眞不可限喩所以者何族姓子解諸法界無所不達所解法界如來至眞其一毛德神足變化不可稱限光明普照江河沙等十方世界其光明中各演音聲頒宣經道其一毛孔億百千姟神足變化不足爲難所以者何如來眞神足功勳不可限量巍巍如是
010_0519_a_02L또한 족성자여, 여래ㆍ지진은 중생의 마음을 보고 설법하시니 조금이라도 이와 같은 상법(像法)을 믿고 즐겨하며,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뜻으로 기꺼워하며 사모하여 구해야 한다.
이 무량법은 또한 희유하다. 왜냐하면 여래는 지금 5탁(濁)의 세상에 있으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무엇이 5탁인가?
첫째는 사람이 폐악(弊惡)함이 많아 의리를 알지 못함이며, 둘째는 예순두 가지 의심으로 사견(邪見)이 강성하여 도의 가르침을 받지 않음이며, 셋째는 사람이 애욕이 많아 번뇌가 일어나 번성하여 거취를 알지 못함이며, 넷째는 사람의 수명이 짧아, 지난 옛날에는 8만 4천 세를 매우 짧다고 하였으나 지금의 수명은 백 세에서 혹은 조금 더 길고 혹은 짧음이며, 다섯째는 작은 겁(小劫:一增劫과 一減劫)이 바뀌어 끝날 때 3재(災)가 당연히 일어나서 피해가 없을 수 없음이다. 만약 이 5탁악세에 있으면서 능히 이와 같은 상법(像法)의 깊고 미묘한 도의 뜻을 믿고 즐거워하며, 한 사람이라도 이와 같은 부처님의 바르고 참된 지혜[正眞慧]를 능히 잘 받는 것은 매우 어렵고 처음 있는 일이니, 하물며 어찌 여래의 행하시는 바를 믿고 즐거워하며 받아 지님이겠는가?
010_0518_c_23L族姓子如來至眞見衆生心以爲說少有信樂如是像法精進勤修志樂慕求是無量法亦復希有所以者如來今興在五濁世何謂五濁人多弊惡不識義理二者六十二疑邪見强盛不受道教三者人多愛欲塵勞興隆不知去就四者人壽命往古世時八萬四千歲以爲甚損今壽百歲或長或短五者小劫轉盡三災當起無不被害若有在此五濁惡世能信樂是如斯像法深妙道義有一人好能受如此佛正眞慧是爲甚難至未曾有何況信樂如來所行受持乎
족성자여, 부처님은 지난 옛날 무앙수 겁으로부터 대덕(大德)의 갑옷을 입고 무명의 긴 밤에 이와 같은 상법(像法)을 따르고 익히며 정진하고 인욕하며 인자하고 박애하였다. 만약 중생이 액난에 있음을 보면 괴로워 근심하였고 구호하는 이가 없으면 마음으로 악도에 떨어질까 두려움이 생겨 ‘그 땅(악도)에 태어나서 중생을 이익되게 인도하여 온갖 액을 구제하여 바른 도에 들어오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여래ㆍ지진의 덕은 헤아릴 수 없어 허공이 짝이 없듯이 용맹하고 굳건함이 홀로 뛰어나 시방을 제도하였다.
010_0519_a_14L族姓子佛從古無央數劫被大德鎧長夜遵習如是像法精進忍辱仁慈博愛若見衆生在於厄難勤苦之患無救護者心生恐懼墮於惡願生彼土導利衆生救濟衆厄令入正道如來至眞德不可量如空無侶勇健獨步度脫十方
010_0519_b_02L이것은 부처님의 지난 과거 옛날 세상의 본원(本願)이 청정함이다. 지금 이 한량없는 법의 깊고 미묘한 뜻을 믿고 즐거워하며 사랑하고 기뻐하여 받아 지님도 다 지난 옛날 일찍이 가르침을 입은 것을 본 까닭이다. 지금 사람이 조금이라도 믿고 즐거워함이 있으면 이에 여래가 드러내신 여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不共)의 모든 부처님의 법과 공무(空無)의 지혜는 희유하며 좋아하고 기뻐하여 이 법에 들어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에 들어오면 이것은 다 여래 위덕의 소치며, 신족 변화와 용맹의 공훈이다. 부처님은 지혜의 힘과 선권방편으로 무명의 긴 밤에 교화하여 깨우쳐 주며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으니, 다 지난 세상에 삼가고 삼가며 일심으로 이 법을 버리지 않고 항상 대자(大慈)를 행하여 끝없이 불쌍히 여김을 닦아 크게 기뻐하고 크게 보호하여 중생을 구제함이었다.
010_0519_a_20L是佛往昔過去世時本願淸淨今有信樂是無量法深妙之義愛喜受持皆往古昔曾見被訓故今信喜現人少有信樂斯如來所顯如來十力四無所畏八不共諸佛之法空無之慧希有好喜入斯法者若有入斯皆是如來威德所致神足變化勇猛功勳佛以慧力善權方便長夜開化勤修不解由往宿矜矜一心不捨此法常行大慈修無蓋哀大喜大護救濟衆生
또 족성자여, 모든 보살이 조금이라도 불쌍한 생각을 가지는 것을 배우면 5탁의 세상에 최정각(最正覺)을 이룰 것이나, 모든 중생을 위하여 5탁의 세상에 있으면서 큰 어려움을 통달하여 인도하는 것 또한 희유하니, 내가 지금 세운 교훈과 같다. 왜냐하면 지난 옛날 전생에 대정진을 통달하여 공을 쌓고 덕을 쌓았으며, 매번 태어날 때마다 스스로 능히 머리ㆍ눈ㆍ피부ㆍ살ㆍ팔다리ㆍ몸ㆍ처자ㆍ나라ㆍ고을ㆍ시종이 따르는 수레를 보시하여 아끼는 것이 없었으며, 몸과 생명을 헤아리지 않고, 탐하여 사모함이 없었다. 3계는 믿을 것이 없어 오직 도(道)만을 믿었는데 끝없는 힘으로 임시방편을 행하였으며, 중생을 열어 교화하여 능히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었다.
010_0519_b_07L族姓子諸菩薩學少有愍念於五濁世成最正覺爲諸衆生在五濁世導大難亦復希有如吾於今所立教所以者何往古宿命通大精進積功累德每生自剋布施頭目肌肉支體妻子國邑群從車乘無所愛悋計身命無所貪慕三界無怙惟道可以無極力行權方便開化衆生成無上正眞之道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하루 동안에 베푼 것만도 한량없으며, 아울러 몸과 목숨을 베풀어 아낀 바가 없었으니, 모두 중생을 불쌍히 생각하는 까닭이었다. 눈 어두운 이를 열어서 교화하여 도의 밝음[道明]을 보게 하였으며, 또한 지난 수없는 전생을 아니, 주린 자에게 음식이 없는 것을 보고 공양거리로 보시하되, 자기의 피부와 살을 베어서 삼고 구워서 그것을 가지고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픈 줄 몰랐으며, 마음에 한을 품지 않고 오직 크게 슬퍼함을 행하여 중생을 애처롭게 여기고 끝없는 자비를 받들어 행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마땅히 이런 관(觀)을 지어서 이와 같이 따르고 닦아 대정진을 통하여 중생을 열어 교화하였다. 이와 같이 정진하여 공덕을 쌓고 쌓아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룸에 이르렀다.
010_0519_b_16L佛悉憶念往宿世一日之中所施無量幷惠身命無所愛惜皆由愍念衆生之故開化盲冥令見道明亦識往宿無數世時飢饉者無有飮食供養之具可用施割己股肉煮之炙之持用授之不以作患心不懷恨惟行大哀愍傷衆生奉無極慈以是之故當作斯觀修如是通大精進開化衆生如斯精進積累功德逮致無上正眞之道
010_0519_c_02L 이런 까닭에 그대들 모든 족성자여, 이와 같은 미묘한 정진을 부지런히 배우고, 이와 같은 무극의 도법(道法)을 익히며, 또한 마땅히 내가 지난 옛날 보살의 업을 행하여 중생을 열어주고 교화한 것과 다름없이 경의 도[經道]를 펴 베풀 것이다. 또한 내가 지금 구제하여 벗어나게 한 것과 같이 할 것이다. 이는 현겁(賢劫) 중에 출현하신 천 부처님이 모두 마땅히 찬탄하였으며, 나도 본래 행한 바로 각각 마땅히 설하였으며, 능인(能仁)여래의 본래 행하신 정진이라 한량없고 비유할 수도 없다. 도의 지혜[道慧]는 높고 높아 제도할 바가 끝이 없어 5탁의 세상에서 5역(逆)의 어지러운 가운데 중생을 열어 교화함이 이와 같이 다함없고 모두 헤아릴 수도 없다.
010_0519_c_02L諸仁諸族姓子勤學如是微妙精以習如是無極道法亦當如我往昔所行菩薩之業開化衆生如是無異頒宣經道亦如我今有所救脫賢劫中所興千佛皆當咨嗟吾本所各當說言能仁如來本行精進可限量不可班喩道慧巍巍所度無於五濁世五逆亂中開化衆生是無窮不可計盡
이런 까닭으로 족성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모습에 견준[比像] 정진을 받들어 행하여 부지런히 닦는 것을 사랑하여 즐기며 방일함이 없으면 속히 정각을 이룬다. 또 나는 이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러 최정각을 이루고 멸도할 때에 임해서는 제도한 것이 한량없었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은 정진을 따르면 마땅히 지극한 가르침과 같아서 게으르거나 그만두지 않으며, 겨자 같은 부처님의 사리를 취하여 탑이나 절을 세우면 모두 마땅히 부처님 멸도의 업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이 불쌍한 마음을 일으켜 장래의 많은 보살을 위하여 보시함이며, 본래 보살이 되어 불도를 행할 때에 일찍이 가르친 것이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대도를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010_0519_c_11L是故族姓子假使有人如是比像奉精進行愛樂勤修而無放逸疾成正覺又吾於是逮無上正眞道爲最正覺臨滅度時所度無量若有能遵如是精進應如至教而不懈廢取如芥子佛之舍利建立塔寺皆當得佛滅度之業所以者何佛興愍哀爲諸將來衆菩薩施本爲菩薩行佛道時曾所訓誨由是緣故顯示大道
010_0520_a_02L또 자비로 8난(難)에 떨어진 이를 불쌍하게 여겨서 일부러 큰 슬픔을 일으켜 널리 사리를 베풀되 만약 사리의 크기가 겨자만한 것이라도 그것을 가지고 탑과 절을 세운다. 눈앞에서 여래를 뵙고 손으로 직접 공양 올리며, 멸도하신 후에 스스로 그 사리를 보고 마음에 기쁨을 품고 세울 땅을 찾아 이 땅을 사리에 보시하여 탑과 절을 세운다. 마음에 원하는 것을 따라 큰 슬픔을 일으킴은 본래 숙세에 보살법을 행하며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서원을 세운 소치이다. 사리를 널리 유통하여 부처님 처소에 공을 쌓고 덕을 쌓았으니, 빛나고 빛남이 한량이 없으며 높고 높음이 이와 같다. 중생을 불쌍히 생각하며 큰 슬픔을 일으킴은 최후 말세에 끝없는 자비심을 세워서 일체에 더하여 주고, 보살이 이 상법(像法)을 받아 좋아하고 기뻐하며 사모하여 즐거워하며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여 방일하지 않는다. 지극한 서원을 발하는 까닭에 최후 말세에 이와 같은 모습의 넓고 바른 경전을 받아 능히 지니고 외우되 남을 위하여 설하며, 널리 유포하여 보살을 건립한다. 만약 지니고 외워서 남을 위하여 설하여 이 상전(像典)으로 모든 보살에게 권장하여 배워서 큰 소리로 읽어 점점 펴 나가게 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이와 같이 사모하고 본받아 오래 세상에 머물게 하면, 곧 부처님의 바른 도가 길이길이 나타날 것이며, 여래께서 항상 계심을 이로써 볼 것이다.
010_0519_c_20L又復慈愍墮八難者故興大哀普布舍利若取舍利大如芥子建立塔寺面見如來手自供養滅度自後睹其舍利心懷悅豫所立地處以是地施於舍利而興塔寺隨心所願興于大哀本宿命時行菩薩法心衆生誓願所致舍利遍流佛所積功累德光光不可限量巍巍如是念衆生興于大哀最後末世立無極慈加於一切若有菩薩受是像法喜慕樂勤修精進而不放逸用至願故最後末世受如是像弘雅經典能持講誦爲他人說令普流布建立菩若有持誦爲他人說以是像典勸諸菩薩令學諷誦轉復宣布所以者若是景摸久在天下則佛正道永長現矣如來常存以是觀之
족성자여, 부처님은 본래 지난 세상에 이와 같은 방편으로 중생을 거두어 보호하여 이 경전을 세우고 이로써 미래의 속세를 양육하여 5탁의 세상에 계시면서 이 경전을 선포하실 것이다.
만일 족성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고을[郡]과 나라(國)ㆍ현(縣)과 읍(邑)ㆍ주성(州城)과 큰 나라에서 이와 같은 상전(像典)을 유포하여 나타내어 받아 지니고 소리 내어 읽어서 널리 남을 위하여 설하면, 이와 같은 학사(學士)와 족성자 등은 부처님께서 현재 멸도할 때에 임하여 여래가 그곳에 노니심을 볼 것이며, 부처님은 곧 현재에 계셔서 멸도하지 않으신다.
010_0520_a_13L族姓子佛本往世如是方便攝護衆生建是經典以用將養未來俗世在五濁世宣布斯典若族姓子所在郡國縣邑州域大邦如是像典所流布現受持諷誦廣爲人說如是學士族姓子等見佛現在臨滅度時如來遊彼佛則現在而不滅度
010_0520_b_02L무슨 까닭인가? 족성자여, 부처님은 일찍이 ‘부처란 법신(法身)이라 만약 법을 보는 자는 곧 여래를 본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색신(色身:육신)으로 여래를 본다고 하지 말라. 만약 바른 법을 믿어서 듣고 보고 받아 지니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 법을 들으면 받들어 행하고, 여법(如法)한 가르침에 머물면 곧 부처를 보았다고 말할 것이며, 바른 법을 듣고 펴며 법에 순종하여 도에 들어오면 곧 부처를 보았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일찍이 법으로써 법을 낳는다고 하지 않았으니, 능히 법을 향하고 바른 법을 펴 나가면 망상을 품지 않고, 모든 법을 의지하여 구하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모든 법은 그 집착할 것이 없으니, 그것을 곧 여래를 본다고 이름한다.
010_0520_a_20L所以者何族姓子不曾說乎佛者法身若見法者則睹如來莫以色身觀於如來若信正典聞見受持則睹如來聞法奉行住如法教乃曰見佛聞宣正典順法入道乃曰見佛佛以未曾以法生法以能行法敷演正典不懷妄想猗求諸法則睹如來一切諸法悉無所著爾乃名曰睹如來耳
만약 족성자여, 모든 법을 보지 않으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ㆍ지진은 법이 있다거나 법이 아니라는 말을 두지 않았으니, 마땅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일찍이 비유로 이끌어서 설법하셨으니, 마치 뗏목을 잡아매어 두듯이 마땅히 법마저 버릴 것인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겠느냐? 이 법과 법 아닌 행을 버림으로써 여래를 본다. 왜냐하면 여래ㆍ지진은 모든 법을 다 버리고 모든 법을 펴지 않는 그곳에 계신다. 일으킨 것도 없고 또한 이름도 없는데 하물며 다시 여러 곳에서 강설하겠는가? 왜냐하면 모든 법을 다 제거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능히 이에 순종하여 여래를 보는 자는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
부처님은 본래 모든 법을 끊어버린 까닭으로 정각을 본다. 그러한 까닭은 모든 법은 다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으니 일체 법은 본래 없고 본래 청정하다고 보면 참된 진리[眞諦]를 보는 자이니 이에 여래를 볼 것이다.
010_0520_b_05L若族姓子不見諸法則睹如來所以者何如來至眞不存有法非法之辭不當觀見如來所以者如來曾說假引譬喩猶如縛栰當除法況非法乎以除是法非法之行乃見如來所以者何如來至眞皆除諸法不宣諸法而有處所也無所興起亦無名號況復講說諸處所乎所以者何皆除一切諸法若能順斯如來觀者則見如來也佛本以斷一切諸法乃睹正覺所以然者一切諸法皆虛不眞睹一切法本無本淨眞諦者乃見如來
또 족성자여, 모든 법을 얻지 못하면 곧 모든 법이 없으니, 방일함이 없음을 말한다. 그 법이 있는 것도 없고 또한 법 아님도 없으며 법이 없음으로써 또한 법 아닌 것도 없으며, 곧 이 뜻을 앎으로써 이 뜻을 알며, 이에 본래 청정함을 본다.
평등하게 관찰함으로써 이에 여래를 보니, 법을 보는 것이 이와 같으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 여래를 관찰함이 그러하면 평등각(平等覺)을 보는 것이다. 만약 다르게 관찰하여 여래ㆍ지진을 볼 수 있다면 곧 삿된 관찰이 되는 것이다. 이미 삿되게 관찰함이 있는 이는 곧 허망한 관찰로 참된 진리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010_0520_b_17L族姓子不得諸法則無諸法謂無放逸彼無有法亦無非法以無有法亦無非法乃以了斯義以了斯義乃見本淨以平等觀乃見如來見法如是則見如來觀如來然見平等覺若有異觀如來至眞則爲邪觀已邪觀者則爲虛觀不眞諦觀也
010_0520_c_02L또 족성자여, 그 참된 진리란 일체의 음성과 말을 없애면 진실하지도 않고 허망하지도 않으며, 또한 진실하고 허망함도 없으며, 모든 있는 바의 업을 없애 버리고 다시 일체 받을 것이 없으면 이에 여래를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ㆍ지진은 모든 법을 보지 않으니, 생기는 것이 있어 만약 생긴 것으로 하여금 일체 보는 바 모든 법을 없애 버리면 곧 자연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앎으로써 이와 같이 부처님을 관찰하면 곧 우리들은 부처님을 이와 같이 본다고 말하며, 이와 같이 보는 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010_0520_b_24L族姓子其眞諦者消除一切音聲言辭不眞不虛亦無眞虛去一切諸所有業悉不復得一切所受乃見如來所以者何如來至眞不睹諸法有所生者若令生者以除一切所見諸法乃曰自然以解自然是觀佛乃謂吾等觀佛如是所見若佛之所說也
이와 같이 부처님을 관찰하면 모든 법이 본래 없는 데 들어가며, 이미 일체 모든 법이 본래 없는 것을 알면 문득 모든 법인 일체가 본래 일으키고 드러낼 도법(道法)이 없으며, 모든 행과 일체가 본래 청정함을 분별하며, 모든 법이 본래 없는 데 돌아가며, 일체 모든 법이 다 여래의 법임을 알 것이다.
자연히 도에 들어가면 일체 모든 법은 모두 널리 여래의 경계 안에 들어가며, 모든 법의 경계가 불가사의하여 최정각(最正覺)을 이룰 것이다.
010_0520_c_08L如是觀佛皆入一切諸法本無已了一切諸法本無便了諸一切本無興顯道法分別諸行一切本淨一切諸法歸于本無一切諸法皆如來法也自然入道一切諸法皆以普入如來境界一切諸法界不可議成最正覺
그러므로 족성자여, 부처님께서 모든 법은 여래의 경계라고 설하셨으나 경계가 없는 것이 여래의 경계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이 소유한 경계로 그 모든 법을 헤아림에 경계가 없으니, 곧 여래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법으로써 경계를 삼으나 이 모든 경계가 없으므로 이에 경계가 있다고 말한다. 경계가 있다고 하는 것은 또한 여래의 경계이니, 일체 중생이 경계가 없음을 행하나 참된 진리[眞諦]의 청정한 경계를 다 밝게 안다.
비록 이 법을 알아도 영원히 통달하여 알지 못하니, 여래ㆍ지진은 이와 같이 알고 통달하여 통달하지 못할 것이 없다. 이러한 까닭으로 경계가 없다고 이름한다.
010_0520_c_14L故族姓子佛說言切諸法皆如來界無有境界爲如來所以者何一切諸法所有境界彼諸法無有境界則如來界也一切諸法以爲境界無斯諸界乃曰有界所有界者亦如來界一切衆生行無境界而悉曉了眞諦淨界雖知是法永不解達如來至眞解達如是無所不通是故名曰無有境界也
010_0521_a_02L여래의 경계는 있는 바가 없는 경계가 곧 여래의 경계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경계인 참된 진리의 근본과 지말[本末]은 모든 경계가 없음이 곧 여래의 경계이며, 일체 경계가 여래의 경계이다. 경계와 경계 아님이 없어야 분별하여 훤히 알며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다. 이것을 경계가 없는 것이 곧 여래의 경계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한다.
010_0520_c_22L如來界無所有界則如來界也所以者何說諸界眞諦本末無有諸界乃如來一切諸界如來界也無界非界分別曉了靡所不達是謂證明無所有界則如來界也
그렇다. 족성자여, 일체 법에서 이 경계가 없는 것을 알면 곧 여래의 경계이다. 도의 뜻에 들어가 이와 같이 법이 그러함을 관찰해야 곧 여래의 경계에 이르는 것이다. 즐거우나 즐거워할 것이 없으면 이것이 여래의 경계이니, 집착할 것도 없고 또 미워하거나 사랑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경계가 없는 것을 알면 이에 부처님의 경계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계가 없는 것을 곧 여래의 경계라 말한다.
일체 법으로써도 얻지 못하는 까닭에 있는 곳이 없다. 모든 법에 집착하는 것이 없는 까닭에 이것을 곧 여래의 경계라 이름하고, 지혜에 들어가 노닐되 일체 모든 법은 다 들어갈 곳이 없다. 그러므로 6문(門)도 없고 또 들어갈 곳도 없다.
010_0521_a_04L唯族姓子解一切法是無境界則如來界也乃入道義如是法爾乃逮致如來境界樂無所樂是如來界而無所著亦無憎愛以者何以知無界乃曰佛界故言無有界則如來界用一切法不可得故無有處所於一切法無所著故是則名曰如來境界遊居入慧一切諸法悉無所入故無六門亦無所入
왜냐하면 족성자여, 모두 문이 없고 또한 들어갈 곳이 없으면 곧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ㆍ지진은 모든 법을 얻지 않았으되 들어갈 곳이 있으며, 볼 것이 있으며, 말한 것이 있으며, 또한 선악(善惡)과 거친 번뇌와 세밀한 번뇌와 미묘한 말의 근본과 지말이 없으니, 이것을 곧 일체 법에 들어감이라고 이름한다. 모양이 없는 데 들어가면 일체 모든 법에 상응함도 상응하지 않음도 없으며, 정진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니, 이것을 곧 일체 법의 문이라고 이름한다. 곧 이름이 없는 문ㆍ말이 없는 문ㆍ들어갈 곳이 없는 문ㆍ집착할 곳이 없는 문ㆍ가르침이 없는 문ㆍ생겨남이 없는 문ㆍ영원히 고요한 문이라 하니, 이 문을 가지고 법을 알 수는 없다.
010_0521_a_12L所以者何族姓子皆無有門亦無所入則無有見所以者何如來至眞不得諸法有所入處也而有所見也有所說者也亦無善惡麤細微妙言辭本末是則名曰入一切法入無有相無應不應一切諸法不精進不懈怠無合不散是乃名曰一切法門曰無名門無言辭門無所入門無所著門無訓誨門無生門永寂然門不以是門可用知法
010_0521_b_02L그러니 만약 법을 보려는 자라면 이 법의 문으로써 하지 않아야 한다. 영원히 고요한 문이 있지만 이 문을 사용하여 법을 알지 못하니, 만약 법을 보려는 자는 이 법의 문으로써 능히 모든 법을 증득하려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출입(出入)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일체의 모든 법은 다 문이 없고 문을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이니, 일체 모든 법은 허위(虛僞)의 문이며, 일체 모든 법은 다 본래 청정하며, 일체 모든 법의 문을 헤아릴 수도 없고, 일체 모든 법은 끊음도 끊지 않음도 없으며, 끝[邊際]이 없다. 그러므로 족성자여, 일체 모든 법은 다 얻을 수 없고 모두 허망하여 진실됨이 없으며, 일체 모든 법의 문은 헤아릴 수 없고 한계를 찾을 수 없으며, 그 본제(本際:진여)의 문은 다하지 못하고 능히 끊거나 허물 수 없다.
본제를 얻은 자가 만약 본제를 허문다면 진실한 뜻이다.
만약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 법문에 이르면 다 알고 통달하며, 인하여 널리 일체 법문에 들어가서 능히 중생의 마음에 펼칠 것이다.”
010_0521_a_22L若見法者不以法門永寂然不以是門可用知法若見法者以法門能證諸法亦無所出入所以者何一切諸法皆無有門門不可得一切諸法爲虛僞門一切諸法悉本淸淨一切諸法門不可量一切諸法無斷不斷無有邊際故曰族姓子切諸法悉不可得皆虛無實一切諸法門不可量不可得限其本際門不可盡極無能斷壞得本際者若壞本眞實之義也若族姓子及族姓女至斯法門悉解達了因得普入一切法門皆能頒宣衆生心
이때 부처님께서 다시 지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대사(大士)가 방편으로써 일체 법을 알고자 하면 모든 법의 뜻이 나아갈 곳을 분별하여야 할 것이며, 뜻의 힘을 얻어 구족하게 성취하고자 하면 때에 맞게 모든 법에 들어가 태어나는 곳에서 마음이 단절함이 없을 것이다.2) 만약 고요한 선정의 마음과 생각으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려면 뜻을 익혀 이 비상(比像)의 법문에 들어가야 할 것이며, 만약 능히 이 법문에 이르고자 하면 부지런히 이 법을 배워 속히 귀의[歸附]하여야 한다.
010_0521_b_11L時佛復告持人菩薩若有菩薩大士欲以方便解一切法分別諸法義之所趣欲得意力具足成就隨時之宜入於諸法生之處心斷絕若以寂定心念成無上正眞之道志習入斯比像法門能逮得是法門光勤學斯法速疾歸附
持人菩薩經卷第一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범상하지 않은 것을 성(聖)이라 하고, 지혜와 덕을 명(明)이라 한다.
  2. 2)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심단절(心斷絶)’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심무단절(心無斷絶)’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