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는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말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근기의 중생들이 마땅히 들어 받겠습니다.”
010_0617_a_18L須菩提言:“文殊師利!唯願演說,諸器衆生自當聽受。”
문수사리는 동자에게 말하였다. “대덕 수보리여, 지금 그대는 부처의 법기와 부처의 법기가 아닌 것을 알겠습니까?”
010_0617_a_19L文殊師利童子報言:“大德須菩提!汝今能知是佛法器及非器耶?”
010_0617_b_02L수보리는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저희들 성문은 남의 소리만을 듣고서 아니, 어찌 부처의 법기와 부처의 법기가 아닌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문수사리시여, 저는 당신께서 이 부처의 법기와 부처의 법기가 아닌 것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또한 대덕 수보리여, 만일 법을 배움이 무학(無學)의 자리에 이르러 법계에 얽매여 버린 이가 일체 중생을 버리고 얽매인 데도 초조하여 게으른 마음이 생기고 삼계를 무서워하며, 나아가 잠깐 동안이라도 얽매인 데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런 무리는 부처의 법기(法器)가 아니라 합니다.
대덕 수보리여, 만일 능히 미래제(未來際)의 겁이 다하도록 훌륭한 장엄을 일으켜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삼계를 헤매되, 3독[三垢]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생사 가운데서도 마치 원림(園林)과 같다는 생각을 내어서 모든 유(有)를 좋아하되 또한 유에 얽매이지도 않는다면 그런 무리는 부처의 법기라 합니다.
또한 대덕 수보리여, 만일 탐욕이 없되 탐욕을 나타내 보이고, 성냄이 없되 성냄을 나타내 보이고, 어리석음이 없되 어리석음을 나타내어 번뇌를 끊어버리고, 현재 삼계에 머물러 중생을 인도하되 스스로 높은 체함이 없으며, 능히 일체 중생의 무거운 짐을 짊어져서 더할 나위 없는 삼보의 종성(種性)을 끊이지 않게 하고 삼매문에 머물게 한다면, 그런 무리는 부처의 법기라 합니다.”
대덕 수보리는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법성(法性)이 바로 하나인 진여이며 하나인 실제(實際)인데 어찌 ‘법기다, 법기가 아니다’라고 분별하여 말씀하십니까?”
010_0617_b_21L大德須菩提語文殊師利:“法性是一如一實際,云何分別說器非器?”
010_0617_c_02L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수보리여, 비유컨대 질그릇 굽는 이가 한 가지 진흙으로 갖가지 그릇을 만들고, 또한 똑같은 불로 갖가지 그릇을 굽는데, 혹은 기름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소(蘇) 담는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꿀물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부정(不淨)한 것을 담는 그릇을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진흙의 성질은 차별이 없습니다.
불 또한 아무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덕 수보리여, 하나의 법성에 하나인 진여와 하나인 실제인데도 다만 그 업행을 따라 근기의 차별이 있습니다. 즉 소(蘇)나 기름 담는 그릇은 성문이나 연각에 비유하였고, 꿀물 담는 그릇은 모든 보살에 비유하였고, 부정한 것을 담는 그릇은 조그마한 범부에 비유한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담은 것 없음이 즉 담은 것입니다. 만일 담은 것이 새지[漏] 않는다면 바로 완전한 그릇이며, 그 담은 것이 샌다면 바로 깨뜨려진 그릇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마치 허공과 같아 모든 약초ㆍ나무나 덤불ㆍ숲 등의 기체(器體)도 이 그릇이 아닌 것입니다.
010_0618_b_02L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인연이 즉 모양이니, 그 행을 따라 차별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이며, 만일 그 행이 없다면 차별이란 이름도 없는 것입니다. 범부는 행이 있으므로 차별이란 이름이 있는 것이며, 지혜로운 이는 행이 없으므로 차별이란 이름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유(有)와 무(無)의 중간을 거룩한 행이라 하나, 이 거룩한 행을 모든 범부에 대해서는 행이 아니라 합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저 물을 무더운 여름철에는 더운 물이라 하고 추운 겨울철에는 차가운 물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 물의 자성만은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바르게 생각[思惟]하지 않는 번뇌에 열(熱)을 띤다면 지혜 없다 이르고, 바른 생각을 낸다면 지혜롭다 이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어떤 사람을 지혜가 있다, 지혜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수보리는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법과 법 아닌 것을 말씀하셨으니, 이는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010_0618_c_21L須菩提言:“如佛所說一切法非法。此何謂也?”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수보리여, 부처님께서는 ‘능히 나의 법을 알고 보면, 저 떠도는 떼[筏]와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법도 오히려 버리는데, 더구나 법이 아닌 것이겠습니까? 만일 법을 버리고 보면 법이라 하지도 못하고 법이 아니라 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수보리여. 여래의 종자를 지닌 보살은 진여 가운데에 이르러서 그 진여 가운데로부터 출발하므로, 일체 법과 일체 소리와 일체 말한 것을 듣고도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대체 무서워하는 이는, 무엇 때문에 무서워하겠습니까?”
수보리는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만일 보살이 아견을 분명히 알았다면 어찌 과위를 얻지 못합니까?”
010_0619_a_18L須菩提言:“文殊師利!若其菩薩知解我見,何不得果?“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보살은 과위를 얻으려 들지 않습니다. 보살은 다만 부처님의 지혜에 나아갈 것을 관찰하여 알고 과위를 얻으려 들지 않는 것이며, 보살은 언제나 일체 중생에게 대비(大悲)를 수행하므로 아무리 아견을 알았을지라도 과위를 증득하는 것에 타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비유컨대 어떤 역사(力士)가 예리한 칼을 들고 사라수(娑羅樹)나무를 벤다고 해도, 아직 살아 있어 곧 시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일체 중생을 위하여 큰 자비와 큰 방편과 지혜를 내어서 아무리 아견을 알았을지라도 증과만을 얻으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010_0619_c_02L문수사리여, 비유컨대 큰 향나무는 뿌리의 향기와 다르고, 줄거리의 향기와 잎사귀의 향기와 꽃의 향기와 열매의 향기가 제각기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보살이 가진 지혜의 향기가 나는 몸도 그와 같아 모든 중생이 듣고 이해할 바를 따라 알맞은 법의 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대비(大悲)의 뿌리만은 이동하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제석의 목에 드리워 있는 비릉가 마니보주(毘楞伽摩尼寶珠)는 삼십삼천을 두루 비추는데, 이는 보배 구슬의 힘으로써 일체 소유를 모두 비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보배 구슬로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깨끗한 보배 구슬이란, 보살이 지성(智性)으로 온갖 일을 나타낼지라도 보살로서 일체 아무 생각도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문수사리여, 허공으로 인하여 불꽃이 치성해지고, 허공으로 인하여 비를 내릴지라도 허공에게는 아무 차거나 뜨거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방편을 가진 보살도 삼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열반을 수행하는 데도 속박되지 않고 불법 가운데 있어서도 집착하지 않아서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이익이 된다.
문수사리여, 모든 나무에는 갖가지 빛깔과 갖가지 향기와 갖가지 열매가 있으니, 이는 모두 4대(大)로 인하여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보살도 갖가지 법문으로 모든 선근(善根)을 모아 일체를 모두 보리 마음에 거둬들인 다음에 보리에 회향(廻向)하여 증장하도록 한다.
010_0620_b_02L문수사리여, 가릉빈가(迦陵頻伽)의 알[卵] 속에서 갓 깨어난 새끼는 그 입부리가 아직 야물지 못하였어도 바로 가릉빈가의 묘한 소리를 내게 된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불법의 알 안에 있는 모든 보살은 아견(我見)을 무너뜨리지 못하였고,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어도 능히 불법의 묘한 소리를 내니, 즉 공(空)과 무상(無想)과 무작행(無作行)의 소리를 말한 것이다.
문수사리여, 거센 회오리바람[旋嵐風]은 염부제(閻浮提) 안에 있는 나무와 모든 산이 능히 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보살도 이루 사의(思議)하지 못할 불법을 연설할 때에 유학[學]ㆍ무학(無學)과 성문ㆍ연각 등 부처님께서 호지(護持)하시는 이를 제외하고는 능히 믿고 알지 못하니, 만일 믿고 아는 이라면 이 부처님께서 호지하신 것이다.
그때 대덕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보살이 소유한 한량없고 그지없는 온갖 법다운 공덕과 진실한 공덕을 연설하다니 말입니다. 세존이시여, 또한 배나 더 희한합니다. 보살이 이 진실한 공덕과, 기꺼워함도 없고 잘난 체함도 없는 것을 듣다니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나[我]라고 함을 없앤 것이 근기가 청정한 것이며, 중생이라 함을 없앤 것이 근기가 청정한 것이며, 수명(壽命)이라 함을 없앤 것이 근기가 청정한 것이며, 장부(丈夫)라 함을 없앤 것이 근기가 청정한 것이며, 남[人]이라 함을 없앤 것이 근기가 청정한 것이며, 신견(身見)을 없앤 것이 근기가 청정한 것이며, 무명과 유애(有愛)를 없앤 것이 근기가 청정한 것이며, 아집(我執)과 아소(我所)를 없앤 것이 근기가 청정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속박함도 없고 해탈함도 없는 것을 바로 청정이라 하며, 남도 없고 멸함도 없고 감도 없고 옴도 없는 것을 청정이라 하며, 망상도 없고 분별도 없고 높음도 없고 낮음도 없고 조작함도 없고 조작하지 않음도 없고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괴롭지 않음도 없고 얽매인 것도 없고 풀린 것도 없고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는 것을 바로 청정이라고 한다.”
수보리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다면 어찌 청정이라고 합니까?”
010_0621_b_18L須菩提言:“世尊!若無生死、無涅槃者,云何名淨?”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그 청정이란 생각과 생사와 열반도 없고 또한 집착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야, 모두들 말하기를, ‘저 허공은 무척 청정하다’고 하지만, 사실 허공이란 그 무엇으로도 씻어서 청정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말한바 청정이란 실제로 아무 법조차도 없는 것을 청정이라 이름하며, 이런 말을 듣고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는 것을 청정이라 한다. 그럼 수보리야, 너는 지금 청정하냐?”
수보리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법계를 여의고 다른 법이 있을지라도 법계를 알겠고, 그 법계가 없을지라도 능히 법계를 알겠습니다.”
010_0621_c_05L須菩提言:“世尊!若離法界有餘法者可知法界,無有法界能知法界。”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한 가지 법도 없이 법계를 여읜다면 누가 법계를 알겠느냐?” 이에 수보리는 잠자코 말이 없었다.
010_0621_c_07L佛語須菩提:“無有一法離於法界,誰知法界?”時須菩提默然不答。
그때 문수사리는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그대는 지금 무엇 때문에 여래께 대답하지 못하였습니까?”
010_0621_c_09L爾時文殊師利語須菩提:“大德!汝今何故不答如來?”
수보리는 말하였다. “제가 본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저는 본래 끝없고 걸림 없는 변재를 익히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끝없고 걸림 없는 변재는 바로 보살이 소유한 것이며, 걸림 있고 끝 있는 변재는 이 성문이 소유한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수보리여, 그대는 법계를 알아서 변재를 얻을 때에 그 경계가 걸림이 있는 상(相)인 줄로 알고 있습니까?”
010_0622_a_16L文殊師利言:“大德須菩提!汝知法界、得證辯時,是知境界有㝵相耶?”
수보리는 말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여. 이 지혜의 경계는 걸림이 없는 상이지, 바로 걸림이 있는 상이 아닌 줄로 압니다.”
010_0622_a_18L“不也,文殊師利!是智境界是無㝵相,非是㝵相。”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만일 경계가 걸림이 없는 상인 줄을 안다면, 어찌 그대는 말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습니까?”
010_0622_a_20L文殊師利言:“若智境界無有㝵相,汝何不說而默然乎?”
이때 수보리는 대덕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그대를 으뜸가는 지혜라고 칭찬하셨다 하니, 지금 그대가 문수사리에게 묻는다면 틀림없이 그대에게 대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010_0622_a_21L是時須菩提語大德舍利弗:“佛常稱爲智慧第一。汝今可問,彼當答汝。”
사리불은 말하였다. “그대가 그냥 말하여 주십시오. 나는 그대와 문수사리로부터 법을 듣고 싶습니다.”
010_0622_a_23L舍利弗言:“汝今可說。我欲從汝及文殊師利聽聞於法。”
010_0622_b_02L수보리는 말하였다. “나는 지금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나는 일찍이 문수사리가 모든 불국토를 유행하면서 백천만억의 부처님 앞에서 법문을 말할 때에 모든 성문으로 하여금 죄다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감히 문수사리가 있는 앞에서 말을 하겠습니까?
어느 때 그 여래께서 선정에 드셨는데, 그 지등 대성문이 바로 범천(梵天) 세계에 올라서 큰 소리로 법문을 말하자, 그 소리가 삼천대천세계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 나는 문수사리를 따라 그 세계에 이르렀고, 또한 한량없는 보살과 백천의 천자들도 문수사리를 모시고 따라서 법문을 들으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광상부처님께 이르러 발아래 예배하고 세 번 돈 다음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그와 같은 두려운 음성을 내셨습니까? 저는 그 소리를 듣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위로부터 굴러 떨어지기를 마치 회오리바람이 조그마한 새[鳥]를 덮치는 듯하였습니다.’
이에 그 부처님께서는 지등 비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이른 보살로서 이름은 문수사리인데, 큰 신통을 나타내고 이 국토에 이르러 나를 본 다음 공경히 공양하고 존중히 찬탄하기 위하여 우선 광음천에 머물러 큰 음성을 내므로, 그 소리가 삼천대천 부처님세계에 울려 퍼지고, 일체 마군의 집이 죄다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문수사리는 말하였습니다. ‘대덕 지등이여, 만일 법이 청정한 것을 보았다면, 이를 부처님이 청정한 것을 보았다고 이릅니다. 몸과 마음은 오르내리지[低仰] 않을 것입니다. 만일 오르내리지 않고 바르게 멈춰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적정하고 그 행이 적정해지니, 대덕 지등이여, 이를 부처님께 예배한다고 이릅니다.
만일 자신도 보지 않고 또한 남도 보지 않고, 부처님도 보지 않고 법도 보지 않고 승가도 보지 않고, 어려움도 보지 않고 쉬움도 보지 않고, 조작함도 보지 않고 조작하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면 한낱 몸뚱이와 일체 불신(佛身)이 법신(法身)에 똑같이 들어가고 자신도 똑같이 법성에 들어감을 볼 것이나 보아도 보지 않음과 같아서 가까워짐도 없고 멀어짐도 없으니, 대덕 지등이여, 이를 부처님께 친근히 한다고 이릅니다.
010_0623_a_02L여래께서 행하시는바 수행을 질문한다면 수행 아님이 없는 것이므로, 그 법을 보지 않아서 수행에 들지 않는 이도 있고, 또는 자신과 법을 보아서 수행에 드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데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안정하여서 문안하는 이와 문안 받는 이와 문안하는 법이 모두 얻을 수도 없고 탐착한 바가 없어서 3세 가운데서 구하나 얻지 못하니, 이와 같은 것이 삼계[三場]의 청정한 물음이니, 대덕 지등이여, 이를 부처님께 질문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고받는 문답에서 잘못을 찾아낼 수 없다면, 여래께서는 묻는 대로 따라서 인가하여 주시고 대중도 기뻐하여 그 물음을 질투하지 않으며, 묻고 난 다음에는 이에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장엄한 도를 일으키고, 나아가 도량(道場)에 이르게 하니, 대덕 지등이여, 이를 부처님께 듣는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무엇을 거룩한 진리라 합니까?’ 지등은 대답하였다. ‘혼자 수행하여서 반려(伴侶)가 없는 것이 거룩한 진리입니다.’ 다시 물었다. ‘만일 독립적으로 수행하여서 반려가 없는 것을 거룩한 진리라 한다면, 어떻게 평등한 마음을 보고 거룩한 해탈을 얻겠습니까?’
또 물었다. ‘문수사리시여, 무서워하지도 않고 언짢게 여기지도 않음이 이 해탈을 얻는 것이라 하시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010_0623_b_13L問言:‘文殊!不畏不厭言得解脫,此義云何?’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보살은 백천만억의 모든 마군을 무서워하지 않고, 보살은 일체 나고 죽는 중생 위하는 것을 언짢게 여기지 않으며, 보살은 모든 선근(善根)을 모으는 것을 겁내지 않으며, 보살은 지혜의 장엄을 모으는 것을 언짢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서워하지 않고 언짢게 여기지 않아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때 모임 가운데 모든 천자는 갖가지 꽃을 가져 문수사리 동자에게 흩어 뿌리며 공양하고 찬탄하였다. ‘만일 머무는 곳에서 문수사리를 보는 이라면 곧 부처님을 뵌 것처럼 여겨서 마땅히 그 설법하신 곳에 탑을 세울 마음을 일으킬 것이며, 또는 중생으로서 이 법문을 들은 이라면 마땅히 모든 공덕을 포섭한 사람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010_0623_c_02L그때 문수사리는 지등 비구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대는 으뜸가는 지혜를 가졌다고 말씀하셨으니, 그 지혜란 유위(有爲)입니까, 무위(無爲)입니까? 만일 유위라면 이 생멸하는 세 모양[三相]이 있는 것이며, 만일 무위라면 이 생멸하는 세 모양이 없는 것입니다.’ 지등은 대답하였다. ‘함이 없음을 수행한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성(聖)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대덕 지등이여, 이 무위란 이루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여.’ 문수사리는 또 말하였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대는 무위를 수행하는 것을 성(聖)이라 한다고 말합니까?’ 이때 지등 대성문은 듣고 곧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때 광상여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법문을 말하여 이 모든 대중으로 하여금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서 물러가지 않게 하라.’ 문수사리는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일체 모든 법도 이 적정(寂靜)한 문(門)이며, 일체 말씀[言說]도 이 적정한 문이므로 이 적정한 것을 나타내 보일까 합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 탐ㆍ진ㆍ치는 어느 곳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망상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그 망상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뒤바뀐 데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그 뒤바뀜은 다시 어디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바르지 못한 생각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그 바르지 못한 생각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아(我)와 아소(我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010_0624_a_02L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그 아견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그 아견이란 머무를 데가 없으니, 머무를 데가 없는 것이 곧 아견의 처소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 아견이란 시방을 둘 러 탐구하여 보아도 이루 다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무슨 처소가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선남자여, 그 적정함에도 이에 문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그것 또한 문이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러기 때문에 내가 모든 법도 적정한 문이요, 일체 말씀도 적정한 문이므로 그 적정함을 나타내 보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010_0624_b_02L 그들로 하여금 모두 악업을 그치고 환한 지혜와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이루게 하며, 아울러 ‘나는 마땅히 위없는 바른 도를 이루고 중생의 탐ㆍ진ㆍ치를 없애기 위하여 법문을 연설하여 자삼매(慈三昧)를 얻도록 하겠다’고 하는 말도 들었으니, 이를 보살의 깨달은 지혜의 사랑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