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0_0722_c_01L해심밀경 제3권
010_0722_c_01L解深密經卷第三


대당 현장 한역
김달진 번역
010_0722_c_02L大唐三藏法師玄奘奉詔譯


6.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
010_0722_c_03L分別瑜伽品第六

그때 자씨(慈氏)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디에 의지하고, 어디에 머물러 대승의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를 수행합니까?”
010_0722_c_04L爾時慈氏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菩薩何依何住於大乘中修奢摩他毘鉢舍那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보살은 법을 거짓으로 세움[法假安立]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원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의지를 삼고 머무름을 삼아서 대승에서 사마타와 비발사나를 닦는다.”
010_0722_c_07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當知菩薩法假安立及不捨阿耨多羅三藐三菩提願爲依爲住於大乘中修奢摩他毘鉢舍那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네 가지 소연경사(所緣境事)가 있으니, 첫째는 유분별영상소연분별경사(有分別影像所緣分別境事)요, 둘째는 무분별영상소연경사(無分別影像所緣境事)요, 셋째는 사변제소연경사(事邊際所緣境事)요, 넷째는 소작성판소연경사(所作成辦所緣境事)입니다. 이 네 가지 가운데 몇 가지가 사마타의 소연경사이며, 몇 가지가 비발사나의 소연경사이며, 몇 가지가 모두에게 소연경사입니까?”
010_0722_c_10L慈氏菩薩復白佛言如世尊說四種所緣境事有分別影像所緣境事二者無分別影像所緣境事三者事邊際所緣境事四者所作成辦所緣境事於此四中幾是奢摩他所緣境事幾是毘鉢舍那所緣境事幾是俱所緣境事
“선남자여, 한 가지가 사마타의 소연경사이니, 이른바 무분별영상(無分別影像)이다. 한 가지가 비발사나의 소연경사이니, 이른바 유분별영상(有分別影像)이다. 두 가지는 모두의 소연경사이니, 이른바 사변제(事邊際)와 소작성판(所作成辨)이다.”
010_0722_c_16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一是奢摩他所緣境事謂無分別影像一是毘鉢舍那所緣境事謂有分別影像是俱所緣境事謂事邊際所作成辦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사마타와 비발사나의 네 가지 소연경사에 의지해 어떻게 사마타를 구하며 비발사나에 능통합니까?”
010_0722_c_20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云何菩薩依是四種奢摩他毘鉢舍那所緣境能求奢摩他能善毘鉢舍那
010_0723_a_02L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내가 모든 보살들을 위해 말한 거짓으로 세운 법과 같으니, 이른바 계경(契經)ㆍ응송(應誦)ㆍ기별(記別)ㆍ풍송(諷誦)ㆍ자설(自說)ㆍ인연(因緣)ㆍ비유(譬喩)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방광(方廣)ㆍ희법(希法)ㆍ논의(論議)이다. 보살은 이것들을 잘 듣고 잘 받아 말을 잘 통하고 뜻을 잘 생각하며 소견을 잘 통달하니, 이렇게 잘 생각하는 법과 같이 홀로 비고 고요한 곳에 앉아 뜻을 지어 생각한다. 다시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에 대하여 안의 마음으로 상속하며, 뜻을 지어 생각한다. 이렇게 바른 수행에 많이 머무르기 때문에 몸의 가벼움[輕安]과 마음의 가벼움을 일으키니 이것이 ‘사마타’이다. 이러한 보살은 능히 사마타를 구한다. 그는 몸과 마음에서 얻은 가벼움으로 의지할 대상을 삼는 까닭에 곧 잘 생각하는 법과 같은 안의 삼마지(三摩地)로 행하는 영상(影像)에 대하여 관찰하고, 수승하게 깨치고, 마음의 모습[心相]을 버린다. 곧 이러한 삼마지의 영상에서 안 뜻 가운데 능히 바르게 생각하여 선택하고, 가장 극진히 생각하여 가리고, 두루 찾아 생각하고, 두루 살펴 생각하는 인(忍)이나 혹은 즐거움이나 지혜나 소견이나 관찰을 바로 ‘비발사나’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보살은 비발사나에 능통한다.”
010_0723_a_02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如我爲諸菩薩所說法假安立所謂契經應誦記別諷誦自說因緣譬喩本事本生方廣希法論議菩薩於此善聽善受言善通利意善尋思見善通達卽於如所善思惟法獨處空閑作意思惟復卽於此能思惟心內心相續作意思惟如是正行多安住故起身輕安及心輕安是名奢摩他如是菩薩能求奢摩他彼由獲得身心輕安爲所依故卽於如所善思惟法內三摩地所行影像觀察勝解捨離心相卽於如是三摩地影像所知義中能正思擇極思擇周遍尋思周遍伺察若忍若慧若見若觀是名毘鉢舍那是菩薩能善毘鉢舍那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보살이 마음을 반연하여 경계를 삼고 안으로 생각하는 마음이긴 하지만, 나아가 몸과 마음의 가벼움을 얻지 못했다면 그때의 작의(作意)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010_0723_a_18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若諸菩薩緣心爲境思惟心乃至未得身心輕安所有作當名何等
“선남자여, 사마타의 작의가 아니다. 이는 사마타에 수순하는 승해와 상응하는 작의이다.”
010_0723_a_21L佛告慈氏菩薩曰善男非奢摩他作意是隨順奢摩他勝解相應作意
010_0723_b_02L“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이 나아가 아직 몸과 마음의 가벼움을 얻지 못했고, 생각하는 바와 같이 있는 모든 법의 안의 삼마지로 소연인 영상에 대하여 뜻을 짓고 사유한다면 이런 작의는 무엇이라 합니까?”
010_0723_a_23L世尊若諸菩薩乃至未得身心輕安於如所思所有諸法內三摩地所緣影像作意思惟如是作當名何等
“선남자여, 비발사나의 작의가 아니다. 이는 비발사나에 수순하는 승해와 상응하는 작의이다.”
010_0723_b_03L善男子非毘鉢舍那作是隨順毘鉢舍那勝解相應作意
“세존이시여, 사마타의 도와 비발사나의 도는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합니까, 차이가 없다고 해야 합니까?”
010_0723_b_04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奢摩他道與毘鉢舍那道當言有異當言無異
“선남자여,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차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슨 까닭에 차이가 없는가? 비발사나의 소연경계에 마음으로써 소연을 삼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차이가 없지 않은가? 유분별영상은 소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010_0723_b_06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當言非有非無異何故非有異以毘鉢舍那所緣境心爲所緣故何故非無異分別影像非所緣故
“세존이시여, 모든 비발사나와 삼마지가 행하는 대상인 영상(影像)은 이 마음과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합니까, 차이가 없다고 해야 합니까?”
010_0723_b_10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諸毘鉢舍那三摩地所行影像彼與此心當言有異當言無異
“선남자여, 차이가 없다고 말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저 영상은 오직 식(識)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내가 말한 식의 소연은 오직 식으로부터 나타난 경계이기 때문이다.”
010_0723_b_12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當言無異何以故由彼影像唯是識故善男子我說識所緣唯識所現故
“세존이시여, 만일 그 행하는 대상인 영상이 이 마음과 차이가 없다면 어떻게 이 마음이 도리어 이 마음을 볼 수 있습니까?”
010_0723_b_15L世尊若彼所行影像卽與此心無有異者云何此心還見此心
“선남자여, 이 가운데는 조그마한 법을 볼 수 있는 조그마한 법도 없다. 이 마음이 이렇게 생길 때에 곧 이러한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선남자여, 마치 잘 닦여진 청정한 거울의 표면에 의지해 본질로써 반연을 삼고 도리어 본질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이제 영상을 보았다’고 말하며, 또는 ‘본질을 떠나서 따로 영상이 있어서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아서 마음이 생길 때에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는 삼마지의 대상인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010_0723_b_17L善男子此中無有少法能見少法然卽此心如是生時有如是影像顯現善男子如依善瑩淸淨鏡面以質爲緣還見本質而謂我今見於影像及謂離質別有所行影像顯現如是此心生時相似有異三摩地所行影像顯現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유정이 자성에 머물러 마음의 대상인 영상으로 색(色) 등을 반연한다면, 그것은 이 마음과 또한 차이가 없습니까?”
010_0723_b_23L世尊若諸有情自性而住緣色等心所行影像與此心亦無異耶
010_0723_c_02L“선남자여, 또한 차이가 없다. 그러나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잘못된 깨달음에 의지해 모든 영상이 오직 식뿐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고 잘못된 알음알이를 짓는다.”
010_0723_c_02L善男子亦無有異而諸愚夫由顚倒覺於諸影像不能如實知唯是識作顚倒解
“세존이시여, 어떤 경우에 보살이 한결같이 비발사나를 닦는다고 말씀하십니까?”
010_0723_c_04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齊何當言菩薩一向修毘鉢舍那
“선남자여, 작의를 상속하고 심상(心相)을 생각할 경우이다.”
010_0723_c_06L佛告慈氏菩薩曰善男若相續作意唯思惟心相
“세존이시여, 어떤 경우에 보살이 한결같이 사마타를 닦는다고 말씀하십니까?”
010_0723_c_07L世尊何當言菩薩一向修奢摩他
“선남자여, 작의를 상속하며 무간심(無間心)을 생각할 경우이다.”
010_0723_c_08L善男子若相續作意唯思惟無閒心
“세존이시여, 어떤 경우에 보살이 사마타와 비발사나를 합쳐 함께 굴린다고 말씀하십니까?”
010_0723_c_09L世尊何當言菩薩奢摩他毘鉢舍那和合俱轉
“선남자여, 심일경성(心一境性)을 바르게 생각할 경우이다.”
善男子若正思惟心一境性
“세존이시여, 무엇이 심상(心相)입니까?”
010_0723_c_11L云何心相
“선남자여, 이른바 삼마지의 대상인 유분별영상(有分別影像)과 비발사나의 소연(所緣)이다.”
010_0723_c_12L善男子謂三摩地所行有分別影像毘鉢舍那所緣
“세존이시여, 무엇이 무간심(無間心)입니까?”
010_0723_c_13L世尊何無閒心
“선남자여, 이른바 저 영상을 반연하는 마음과 사마타의 소연이다.”
010_0723_c_14L善男子謂緣彼影像心摩他所緣
“세존이시여, 무엇이 심일경성(心一境性)입니까?”
世尊云何心一境性
“선남자여, 이른바 삼마지의 대상인 영상이 오직 식임을 통달하거나 혹은 이렇게 통달하고 다시 진여의 성품을 생각하는 것이다.”
010_0723_c_15L善男謂通達三摩地所行影像唯是其或通達此已復思惟如性
“세존이시여, 비발사나는 몇 가지나 있습니까?”
010_0723_c_17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毘鉢舍那凡有幾
010_0724_a_02L“선남자여,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상비발사나(有相毘鉢舍那)요, 둘째는 심구비발사나(尋求毘鉢舍那)요, 셋째는 사찰비발사나(伺察毘鉢舍那)이다. 무엇이 유상비발사나인가? 이른바 순전히 삼마지의 대상인 유분별영상만 생각하는 비발사나이다. 무엇이 심구비발사나인가? 이른바 지혜를 말미암는 까닭에 두루 여러 가지로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일체 법 가운데서 잘 알기 위해 뜻을 지어 생각하는 비발사나이다. 무엇이 심구비발사나인가? 이른바 지혜를 말미암는 까닭에 두루 여러 가지로 이미 잘 깨친 일체 법 가운데서 극진한 해탈[極解脫]을 얻기 위해 뜻을 지어 생각하는 비발사나이다.”
010_0723_c_19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略有三一者有相毘鉢舍那二者尋求毘鉢舍那三者伺察毘鉢舍那云何有相毘鉢舍那謂純思惟三摩地所行有分別影像毘鉢舍那云何尋求毘鉢舍那謂由慧故遍於彼彼未善解了一切法中爲善了故作意思惟毘鉢舍那云何伺察毘鉢舍那謂由慧遍於彼彼已善解了一切法中善證得極解脫故作意思惟毘鉢舍
“세존이시여, 사마타는 모두 몇 가지나 있습니까?”
010_0724_a_06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是奢摩他凡有幾種
“선남자여, 저 무간심(無間心)을 따르는 까닭에 마땅히 알라, 이 가운데 또한 세 가지가 있다. 또 여덟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처음의 정려(靜慮)부터 나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각각 하나의 사마타가 있는 까닭이다.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4무량(無量) 가운데 각각 하나의 사마타가 있는 까닭이다.”
010_0724_a_07L佛告慈氏菩薩曰善男卽由隨彼無閒心故當知此中亦有三種復有八種謂初靜慮乃至非想非非想處各有一種奢摩他故有四種謂慈捨四無量中各有一種奢摩他故
“세존이시여, 법에 의지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말씀하시고, 다시 법에 의지하지 않는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법에 의지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이며, 무엇이 법에 의지하지 않는 사마타ㆍ비발사나입니까?”
010_0724_a_12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如說依法奢摩他毘鉢舍那說不依法奢摩他毘鉢舍那云何名依法奢摩他毘鉢舍那云何復名不依法奢摩他毘鉢舍那
010_0724_b_02L“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이전에 배우고 생각한 법상(法相)에 따라 그 뜻에서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얻는다면, 그것을 법에 의지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라고 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배우고 생각한 법상을 기다리지 않고 그저 다른 훈계와 가르침만 믿고 그 뜻에서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얻는다면, 이른바 푸르게 굳어가는 모습[靑瘀]을 관찰하고 나아가 고름으로 문드러지는 모습[膿爛]을 관찰하며, 혹은 일체 행은 모두가 무상함과 모든 행은 괴로움과 일체 법은 아(我)가 없음과 열반은 끝끝내 고요함을 관찰한다면, 이러한 무리의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법에 의지하지 않는 사마타ㆍ비발사나라고 한다.
법에 의지하여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얻는 까닭에 나는 법을 따라 행하는 보살[隨法行菩薩]이라고 시설하니, 이들은 영리한 성품이다. 법에 의지하지 않고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얻는 까닭에 나는 믿음을 따라 수행하는 보살[隨信行菩薩]이라고 시설하니, 이들은 둔한 성품이다.”
010_0724_a_16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若諸菩薩隨先所受所思法相而於其義得奢摩他毘鉢舍名依法奢摩他毘鉢舍那若諸菩薩不待所受所思法相但依於他教誡教授而於其義得奢摩他毘鉢舍謂觀靑瘀及膿爛等或一切行皆是無常或諸行苦或一切法皆無有或復涅槃畢竟寂靜如是等類奢摩他毘鉢舍那名不依法奢摩他鉢舍那由依止法得奢摩他毘鉢舍故我施設隨法行菩薩是利根性由不依法得奢摩他毘鉢舍那故施設隨信行菩薩是鈍根性
“세존이시여, 별법(別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말씀하시고 총법(總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입니까?”
010_0724_b_06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如說緣別法奢摩他毘鉢舍那復說緣摠法奢摩他毘鉢舍那云何名爲緣別法奢摩他毘鉢舍那云何復名緣摠法奢摩他毘鉢舍那
“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들이 각각 다른 계경(契經) 따위의 법을 반연하여 받은 것과 같은 생각한 것과 같은 법에서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수행한다면 이를 별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라 한다.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일체 계경 등의 법을 반연하여 뭉뚱그려 한 덩이, 한 더미, 한 갈피, 한 무더기로 삼고, 뜻을 지어 이렇게 생각한다.
‘이 일체 법은 진여를 수순하고 진여로 향하며 진여로 들어간다. 보리를 수순하고 열반을 수순하고 전의(轉依)를 수순하며, 또한 그것들로 향하고 그것들로 들어간다. 이 일체 법은 무량ㆍ무수한 선법을 일으킨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닦는 것을 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라 한다.”
010_0724_b_11L佛告慈氏菩薩曰男子若諸菩薩緣於各別契經等法於如所受所思惟法修奢摩他毘鉢舍那是名緣別法奢摩他毘鉢舍那若諸菩薩卽緣一切契經等法集爲一團一積一分一聚作意思惟此一切隨順眞如趣向眞如臨入眞如順菩提隨順涅槃隨順轉依及趣向若臨入彼此一切法宣說無量無數善法如是思惟修奢摩他毘鉢舍是名緣摠法奢摩他毘鉢舍那
010_0724_c_02L“세존이시여, 소총법(小總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말씀하시고, 또 대총법(大總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말씀하시고, 또 무량총법(無量總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소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이며, 무엇이 대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이며, 무엇이 무량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입니까?”
010_0724_b_21L氏菩薩復白佛言世尊如說緣小摠法奢摩他毘鉢舍那復說緣大摠法奢摩他毘鉢舍那又說緣無量摠法奢摩他毘鉢舍那云何名緣小摠法奢摩他毘鉢舍那云何名緣大摠法奢摩他毘鉢舍那云何復名緣無量摠法奢摩他毘鉢舍那
“선남자여, 만일 각각 다른 계경(契經)과 나아가 논의(論議)를 반연하여 한 덩이로 삼고 뜻을 지어 생각하면, 마땅히 알라. 이는 소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이다. 만일 나아가 받고 생각한 계경 따위의 법을 반연하여 한 덩이로 삼고 뜻을 지어 생각하되 각각 다르게 반연하지 않으면, 마땅히 알라. 이는 대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라 한다. 만일 무량한 여래의 가르침과 무량한 법구(法句)의 문자와 무량한 등등의 지혜로 비추는 것을 반연하여 한 덩이로 삼고 뜻을 지어 생각하며, 나아가 받고 생각한 것을 반연하지 않으면, 마땅히 알라. 이를 무량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라 한다.”
010_0724_c_05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若緣各別契經乃至各別論義爲一團等作意思惟當知是名緣小摠法奢摩他毘鉢舍那若緣乃至所受所思契經等法爲一團等作意思惟非緣各別當知是名緣大摠法奢摩他毘鉢舍那若緣無量如來法教無量法句文字無量後後慧所照了爲一團等作意思惟非緣乃至所受所思當知是名緣無量摠法奢摩他毘鉢舍那
“세존이시여, 어떤 경우에 보살이 총법을 반연하여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얻었다고 합니까?”
010_0724_c_15L慈氏菩薩復白佛世尊菩薩齊何名得緣摠法奢摩毘鉢舍那
“선남자여, 다섯 가지 반연을 말미암을 경우에 얻었다고 한다. 첫째는 사유할 때에 찰나 찰나에 일체 추중번뇌의 의지하는 대상을 녹이는 것이요, 둘째는 갖가지 망상을 여의고 즐거운 법락을 얻는 것이요, 셋째는 시방의 차별 없는 모습과 무량한 법의 광명을 아는 것이요, 넷째는 해야 할 일을 원만히 이루어 청정한 무분별상(無分別相)이 항상 나타나는 것이요, 다섯째는 법신을 원만히 이루어 점점 더욱 훌륭하고 묘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010_0724_c_17L佛告慈氏菩薩曰善男由五緣故當知名得一者於思惟剎那剎那融銷一切麤重所依離種種想得樂法樂三者解了十方無差別相無量法光四者所作成滿相應淨分無分別相恒現在前爲令法身得成滿故攝受後後轉勝妙因
010_0725_a_02L“세존이시여, 이 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는 어디서부터를 통달이라 하오며, 어디서부터를 얻는다고 합니까?”
010_0724_c_24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緣摠法奢摩他毘鉢舍那當知從何名爲通達從何名得
“선남자여, 처음의 극희지(極喜地)부터를 통달이라 하며, 제3 발광지(發光地)부터를 얻는다고 한다. 선남자여, 처음으로 업을 닦는 보살도 또한 이 가운데서 따라 배우고 뜻을 지으니, 비록 칭찬할 것은 못되나 응당 게을리 하여 폐하지 말라.”
010_0725_a_03L佛告慈氏菩薩善男子從初極喜地名爲通達第三發光地乃名爲得善男子初業菩薩亦於是中隨學作意雖未可歎不應懈廢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ㆍ비발사나에서 어떤 것을 유심유사삼마지(有尋有伺三摩地)라 하며, 어떤 것을 무심무사삼마지(無尋無伺三摩地)라 합니까?”
010_0725_a_07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是奢摩他毘鉢舍那云何名有尋有伺三摩地云何名無尋唯伺三摩地云何名無尋無伺三摩地
“선남자여, 취하여 찾고 살피는 법상(法相)에 대하여 만일 거칠고 드러나게 받아들이는 관찰이 있다면, 이런 모든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유심유사삼마지(有尋有伺三摩地)라고 한다. 만일 저 모습에 대하여 비록 거칠고 드러나게 받아들이는 관찰은 없을지라도 미세한 광명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관찰이 있다면, 이런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무심유사삼마지(無尋有伺三摩地)라고 한다. 만약 저러한 일체 법상에 대하여 도무지 작의(作意)와 받아들임과 관찰이 없다면, 이런 모든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무심무사삼마지(無尋無伺三摩地)라고 한다.
010_0725_a_10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於如所取尋伺法相若有麤顯領受觀察諸奢摩他毘鉢舍那是名有尋有伺三摩地若於彼雖無麤顯領受觀察而有微細彼光明念領受觀察諸奢摩他毘鉢舍是名無尋唯伺三摩地若卽於彼一切法相都無作意領受觀察諸奢摩他毘鉢舍那是名無尋無伺三摩
또 선남자여, 만일 찾고 구함이 있는 사마타ㆍ비발사나면 이를 유심유사삼마지(有尋有伺三摩地)라 하며, 만일 살핌이 있는 사마타ㆍ비발사나면 이를 무심유사삼마지(無尋有伺三摩地)라 하며, 만일 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발사나면 이를 무심무사삼마지(無尋無伺三摩地)라고 한다.”
010_0725_a_19L復次善男子若有尋求奢摩他鉢舍那是名有尋有伺三摩地若有伺察奢摩他毘鉢舍那是名無尋唯伺三摩地若緣摠法奢摩他毘鉢舍是名無尋無伺三摩地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지상(止相)이며, 무엇이 거상(擧相)이며, 무엇이 사상(捨相)입니까?”
010_0725_a_23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云何止相云何擧相云何捨相
010_0725_b_02L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음이 들뜨거나 혹은 들뜰까 두려워할 때, 모든 싫어하는 법의 작의(作意)와 무간심(無間心)의 작의를 지상(止相)이라 한다. 마음이 가라앉거나 가라앉을까 두려워할 때, 모든 즐거운 법의 작의와 그의 심상(心相)의 작의를 거상(擧相)이라 한다. 만일 한결같이 그치는 길에서나 한결같이 관찰하는 길에서나 혹은 함께 움직이는 길에서 두 가지 수번뇌(隨煩惱)에 물들었을 때, 모든 공용 없는 작의와 마음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가운데 있는 작의를 사상(捨相)이라 한다.”
010_0725_b_02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若心掉擧或恐掉擧時諸可厭法作意及彼無閒心作意是名止相若心沈沒或恐沈沒時諸可欣法作意及彼心相作意是名擧相若於一向止或於一向觀道或於雙運轉道隨煩惱所染污時諸無功用作意心任運轉中所有作意是名捨相
“세존이시여,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닦는 모든 보살은 법(法)을 알고 뜻[義]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법을 아는 것이며, 무엇이 뜻을 아는 것입니까?”
010_0725_b_09L氏菩薩復白佛言世尊修奢摩他鉢舍那諸菩薩衆知法知義云何知云何知義
“선남자여, 저 모든 보살이 다섯 가지 모습에 의지해 법을 아니, 첫째는 명(名)을 알고, 둘째는 구(句)을 알고, 셋째는 문(文)을 알고, 넷째는 별(別)을 알고, 다섯째는 총(總)을 안다. 무엇이 명(名)인가? 이른바 일체 염정법(染淨法) 가운데 세워진 자성에 대해 생각으로써 거짓 시설한 것이다. 무엇이 구(句)인가? 이른바 저 이름 따위의 모임 가운데서 능히 모든 염ㆍ정의 뜻을 말함에 따라 의지하고 건립한 것이다. 무엇이 문(文)인가? 이른바 저 두 가지가 의지하는 문자이다. 무엇이 그것에 대하여 각각 다르게 아는 것인가? 이른바 각각 다른 소연을 말미암아 뜻을 짓는 것이다. 무엇이 그것에 대해 총합하여 아는 것인가? 이른바 총합한 소연을 말미암아 뜻을 짓는 것이다. 이와 같이 총합하고 간략히 하여 하나로 하는 것을 법을 안다고 하며, 이것을 보살이 법을 아는 것이라 한다.
010_0725_b_12L佛告慈氏菩薩曰善男彼諸菩薩由五種相了知於法知名二者知句三者知文四者五者知摠云何爲名謂於一切染淨法中所立自性想假施設云何爲謂卽於彼名聚集中能隨宣說諸染淨義依持建立云何爲文謂卽彼二所依止字云何於彼各別了知由各別所緣作意云何於彼摠合了謂由摠合所緣作意如是一切摠略爲一名爲知法如是名爲菩薩知
010_0725_c_02L선남자여, 저 보살들은 열 가지 모습에 의지해 뜻[義]을 안다. 첫째는 진소유성(盡所有性)을 알고, 둘째는 여소유성(如所有性)을 알고, 셋째는 능취(能取)의 뜻을 알고, 넷째는 소취(所取)의 뜻을 알고, 다섯째는 건립(建立)의 뜻을 알고, 여섯째는 수용(受用)의 뜻을 알고, 일곱째는 전도(顚倒)의 뜻을 알고, 여덟째는 무도(無倒)의 뜻을 알고, 아홉째는 잡염(雜染)의 뜻을 알고, 열째는 청정(淸淨)의 뜻을 안다.
010_0725_b_23L善男子彼諸菩薩由十種相了知於義一者知盡所有性二者知如所有性三者知能取義四者知所取義五者知建立義六者知受用義七者知顚倒義八者知無倒義九者知雜染義十者知淸淨義
선남자여, 진소유성(盡所有性)이란 모든 잡염(雜染)과 청정한 법 가운데 있는 일체 품류의 한계[邊際]이니, 이를 이 가운데의 진소유성이라 한다. 5온(蘊)과 6내처(內處)와 6외처(外處), 이것을 일체라 한다.
010_0725_c_05L善男子盡所有性者謂諸雜染淸淨法中所有一切品別邊際是名此中盡所有性如五數薀六數內處六數外處如是一切
여소유성(如所有性)이란, 이른바 일체 염ㆍ정의 법 가운데 있는 진여이니, 이를 여소유성이라 한다. 여기에 또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전진여(流轉眞如)니 이른바 일체 행의 앞도 없고 뒤도 없는 성품이요, 둘째는 상진여(相眞如)니 이른바 일체 법의 보특가라(補特伽羅) 무아(無我)의 성품과 법무아의 성품이요, 셋째는 요별진여(了別眞如)이니 이른바 일체 행은 오직 식의 성품이요, 넷째는 안립진여(安立眞如)이니 이른바 내가 말한 모든 고성제(苦聖諦)요, 다섯째는 사행진여(邪行眞如)이니 이른바 내가 말한 모든 집성제(集聖諦)요, 여섯째는 청정진여(淸淨眞如)이니 이른바 내가 말한 모든 멸성제(滅聖諦)요, 일곱째는 정행진여(正行眞如)이니 이른바 내가 말한 모든 도성제(道聖諦)이다. 마땅히 알라. 이 가운데 유전진여와 안립진여와 사행진여를 말미암는 까닭에 일체 유정은 평등하고 평등하다. 상진여와 요별진여를 말미암는 까닭에 일체 법이 평등하고 평등하다. 청정진여를 말미암는 까닭에 일체 성문의 보리와 독각의 보리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평등하고 평등하다. 정행진여를 말미암는 까닭에 바른 법을 듣고 총합한 경계를 반연하는 훌륭한 사마타ㆍ비발사나에 포섭되는 지혜가 평등하고 평등하다.
010_0725_c_08L如所有性者謂卽一切染淨法中有眞如是名此中如所有性此復七一者流轉眞如謂一切行無先後二者相眞如謂一切法補特伽羅無我性及法無我性三者了別眞如謂一切行唯是識性四者安立眞如謂我所說諸苦聖諦五者邪行眞如謂我所說諸集聖諦六者淸淨眞如謂我所說諸滅聖諦七者正行眞如謂我所說諸道聖諦當知此中由流轉眞如安立眞如邪行眞如故一切有情平等平等由相眞如了別眞如一切諸法平等平等由淸淨眞如一切聲聞菩提獨覺菩提阿耨多羅三藐三菩提平等平等由正行眞如故聽聞正法緣摠境界勝奢摩他毘鉢舍那所攝受慧平等平等
010_0726_a_02L능취(能取)의 뜻이란, 이른바 안의 다섯 가지 색처(色處)와 혹은 심(心)ㆍ의(意)ㆍ식(識)과 그리고 모든 심법(心法)이다.
010_0726_a_02L能取義者謂內五色處若心識及諸心
소취(所取)의 뜻이란, 이른바 밖의 6처(處)이다. 또 능취의 뜻이 또한 소취의 뜻이기도 한다.
010_0726_a_04L所取義者謂外六處又能取義所取義
건립(建立)의 뜻이란, 이른바 기세계(器世界)이다. 그 안에 일체 유정세계를 건립할 수 있으니 이른바 한 마을, 혹은 백 마을, 혹은 천 마을, 혹은 백천 마을, 혹은 하나의 땅덩이의 바닷가에 이르는 것, 이것이 백, 이것이 천, 혹은 이것이 백천, 혹은 하나의 섬부주, 이것이 백, 이것이 천, 또는 이것이 백천, 혹은 하나의 4대주(大洲), 이것이 백, 이것이 천, 또는 이것이 백천, 혹은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 이것이 백, 이것이 천, 또는 이것이 백천, 혹은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것이 백, 이것이 천, 또는 이것이 백천, 혹은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이것이 백, 이것이 천, 또는 이것이 백천, 혹은 이것이 구지(拘胝), 이것이 백 구지, 이것이 천 구지, 이것이 백천 구지, 혹은 이것이 무수(無數), 이것이 백 무수, 이것이 천 무수, 이것이 백천 무수, 혹은 삼천대천세계 무수ㆍ백천ㆍ미진의 수량이 시방으로 무량ㆍ무수한 모든 기세계이다.
010_0726_a_05L建立義者謂器世界於中可得建立一切諸有情界謂一村田若百村田若千村田若百千村田或一大地至海邊際此百此千若此百千一贍部洲此百此千若此百千或一四大洲此百此千若此百千或一小千世界此百此千若此百千或一中千世界此百此千若此百千或一三千大千世界此百此千若此百千或此拘此百拘胝此千拘胝此百千拘胝或此無數此百無數此千無數此百千無數或三千大千世界無數百千微塵量等於十方面無量無數諸器世界
수용(受用)의 뜻이란, 이른바 내가 말한 모든 유정들이 수용하기 위해 재물[資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010_0726_a_18L受用義者謂我所說諸有情類爲受用故攝受資具
전도(顚倒)의 뜻이란, 이른바 그 능취 등의 뜻에 대하여 무상함을 영원한 것으로 헤아리는 생각의 전도ㆍ마음의 전도ㆍ견해의 전도와 괴로운 것을 계교하여 즐겁다 하며, 부정한 것을 계교하여 맑다 하며, 무아(無我)를 계교하여 아(我)라고 하는 생각의 전도ㆍ마음의 전도ㆍ견해의 전도이다.
010_0726_a_19L顚倒義者謂卽於彼能取等義無常計常想倒心倒見倒苦計爲樂不淨計淨無我計我想倒心倒見倒
무도(無倒)의 뜻이란 위의 것과 달라서 능히 그들을 물리치는 것이니 그 형상을 알아야 한다.
010_0726_a_22L無倒義者與上相違能對治彼應知其相
잡염(雜染)의 뜻이란, 이른바 삼계의 세 가지 잡염이니, 첫째는 번뇌잡염(煩惱雜染)이요, 둘째는 업잡염(業雜染)이요, 셋째는 생잡염(生雜染)이다.
010_0726_a_23L雜染義者謂三界中三種雜染一者煩惱雜染二者業雜染三者生雜染
010_0726_b_02L청정(淸淨)의 뜻이란, 이른바 이 같은 세 가지 잡염에 있는 얽매임을 벗어나는 보리분법(菩提分法)이다.
010_0726_b_02L淸淨義者謂卽如是三種雜染所有離繫菩提分法
선남자여, 이들 열 가지는, 마땅히 알라. 널리 일체의 뜻을 포섭한다.
010_0726_b_03L善男子如是十種當知普攝一切諸義
또 선남자여, 그 보살이 다섯 가지 뜻을 아는 까닭에 뜻을 안다고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변지의 일[遍知事]이요, 둘째는 변지의 뜻[遍知義]이요, 셋째는 변지의 원인[遍知因]이요, 넷째는 변지의 결과[遍知果]요, 다섯째는 이들에 대하여 깨달음[覺了]이다.
010_0726_b_04L復次善男子彼諸菩薩由能了知五種義故名爲知義何等五義一者知事二者遍知義三者遍知因四者遍知果五者於此覺了
선남자여, 이 변지의 일이란, 마땅히 알라. 이는 곧 일체 알아야 할 것들이다. 이른바 모든 온(蘊)과 모든 내처(內處)와 모든 외처(外處) 등 이러한 일체를 말한다.
010_0726_b_08L善男子此中遍知事者當知卽是一切所知謂或諸薀或諸內處或諸外處如是一切
변지의 뜻이란, 나아가 존재하는 품류의 차별로서 응당 알아야 할 경계이다. 이른바 세속(世俗)인 까닭이며, 혹은 승의(勝義)인 까닭이며, 혹은 공덕(功德)인 까닭이며, 혹은 과실(過失)인 까닭이며, 혹은 인연인 까닭이며, 혹은 세상인 까닭이며, 혹은 나고 혹은 머무르고 혹은 무너지는 모양인 까닭이며, 혹은 질병 따위와 같은 까닭이며, 혹은 고제(苦諦)와 집제(集諦) 따위인 까닭이며, 혹은 진여(眞如)ㆍ실제(實際)ㆍ법계(法界) 따위인 까닭이며, 혹은 넓고 간략한 까닭이며, 혹은 한결같은 기별(記別)인 까닭이며, 혹은 분별하는 기별인 까닭이며, 혹은 반문하는 기별인 까닭이며, 혹은 두는 기별인 까닭이며, 혹은 숨고 비밀한 까닭이며, 혹은 드러난 까닭이니, 이러한 따위를 마땅히 알라. 이런 일체를 변지의 뜻이라 한다.
010_0726_b_10L遍知義者乃至所有品類差別所應知境謂世俗故或勝義故或功德故或過失故緣故世故或生或住或壞相故或如病等故或苦集等故或眞實際法界等故或廣略故或一向記故或分別記故或反問記故或置記故或隱密故或顯了故如是等類當知一切名遍知義
변지의 원인[遍知因]이란, 마땅히 알라. 이는 곧 능히 앞의 두 가지를 취하는 보리분법이다. 이른바 염주(念住)와 정단(正斷) 따위이다.
010_0726_b_18L言遍知因者當知卽是能取前二菩提分法所謂念住或正斷等
변지의 결과[遍知果]를 얻는다 함은 이른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영원히 끊어진 비나야(毘奈耶)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일체가 영원히 끊긴 모든 사문(沙門)의 과보와 그리고 내가 말한 성문여래의 공(共)ㆍ불공(不共) 세간(世間)ㆍ출세간(出世間)에 있는 공덕이다. 이들에 대한 증득, 이들에 대한 깨달음이란, 이른바 이 깨달음을 짓는 법[作證法] 가운데서 모든 해탈의 지혜로써 널리 남에게 말하여 드날리고 열어 보이는 것이다.
010_0726_b_20L得遍知果者謂貪癡永斷毘奈耶及貪癡一切永斷諸沙門果及我所說聲聞如來若共不共世出世閒所有功德於彼作證於此覺了者謂卽於此作證法中諸解脫廣爲他說宣揚開示
010_0726_c_02L선남자여, 이러한 다섯 가지 뜻은, 마땅히 알라. 널리 일체의 뜻을 포섭한다.
010_0726_c_02L善男子如是五義當知普攝一切諸義
또 선남자여, 그 보살들이 네 가지 뜻을 아는 까닭에 뜻을 안다고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심집수(心執受)의 뜻이요, 둘째는 영납(領納)의 뜻이요, 셋째는 요별(了別)의 뜻이요, 넷째는 잡염청정(雜染淸淨)의 뜻이다. 선남자여, 이러한 네 가지의 뜻은 널리 일체 뜻을 포섭한다.
010_0726_c_03L復次善男彼諸菩薩由能了知四種義故爲知義何等四義一者心執受義領納義三者了別義四者雜染淸淨義善男子如是四義當知普攝一切諸義
선남자여, 저 모든 보살은 세 가지 뜻을 아는 까닭에 뜻을 안다고 말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문(文)의 뜻이요, 둘째는 의(義)의 뜻이요, 셋째는 계(界)의 뜻이다.
010_0726_c_08L復次善男子彼諸菩薩由能了知三種義故名爲知義何等三義一者文義二者義義三者界義
선남자여, 문(文)의 뜻이란 이른바 이름의 몸[名身] 따위이다.
010_0726_c_10L善男言文義者謂名身等
의(義)의 뜻이란 마땅히 알라.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실의 모습이요, 둘째는 두루 아는 모습이요, 셋째는 영원히 끊는 모습이요, 넷째는 깨달음을 짓는 모습이요, 다섯째는 닦고 익히는 모습이요, 여섯째는 저 진실의 모습 따위 품류가 차별된 모습이요, 일곱째는 의지하는 대상과 의지하는 주체가 서로에게 속하는 모습이요, 여덟째는 두루 아는 모습 따위를 장애하는 법의 모습이요, 아홉째는 그 수순하는 법의 모습이요, 열째는 두루 알지 못하는 따위와 두루 아는 따위의 허물과 공덕이 되는 모습이다.
010_0726_c_11L義義當知復有十種一者眞實相二者遍知相永斷相四者作證相五者修習相六者卽彼眞實相等品差別相七者所依能依相屬相八者卽遍知等障㝵法相九者卽彼隨順法相十者遍知等及遍知等過患功德相
계(界)의 뜻이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기세계(器世界)요, 둘째는 유정의 세계요, 셋째는 법계요, 넷째는 조복의 세계요, 다섯째는 조복하는 방편의 세계이다.
010_0726_c_17L言界義者謂五種界一者器世界二者情界三者法界四者所調伏界五者調伏方便界
선남자여, 이 다섯 가지 뜻은, 마땅히 알라. 일체 뜻을 두루 포섭한다.”
010_0726_c_20L善男子如是五義當知普攝一切諸義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들어서 이루는 지혜[聞所成慧]로 그 뜻을 깨달으며, 생각하여 이루는 지혜[思所成慧]로 그 뜻을 깨달으며,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닦아서 이루는 지혜[修所成慧]로 그 뜻을 깨닫는다 하시니, 이는 어떻게 다릅니까?”
010_0726_c_21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若聞所成慧了知其義若思所成慧了知其義若奢摩他毘鉢舍那修所成慧了知其義此何差別
010_0727_a_02L“선남자여, 들어서 이루는 지혜는 문자에 의지해 다만 그 말대로만 할 뿐이지, 아직 그 의취(意趣)를 능통하지는 못하며, 아직 현전하지는 못하며, 해탈에 수순하나 아직 해탈을 이루는 뜻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생각하여 이루는 지혜 역시 문자에 의지하나 꼭 말대로만 하지는 않고 그 의취를 능통한다. 그러나 아직 현전하지는 못하며, 해탈에 수순하나 아직 해탈을 이루는 뜻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모든 보살의 닦아서 이룬 지혜는 문자에 의지하기도 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않기도 하며, 말씀대로 하기도 하고 말씀대로 하지 않기도 하며, 의취(意趣)에 능통하고, 알아야 할 일의 동분(同分) 삼마지 의 대상인 영상이 현전하며, 해탈에 아주 잘 수순하며, 이미 해탈을 성취하는 뜻을 받아들이게 된다. 선남자여, 이것을 세 가지 뜻을 아는 차별이라 한다.”
010_0727_a_02L佛告慈氏菩薩曰男子聞所成慧依止於文但如其說未善意趣未現在前隨順解脫未能領受成解脫義思所成慧亦依於文不唯如說能善意趣未現在前轉順解脫未能領受成解脫義若諸菩薩修所成慧亦依於文亦不依文亦如其說亦不如說能善意趣所知事同分三摩地所行影像現前極順解脫已能領受成解脫義善男子是名三種知義差別
“세존이시여,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닦는 모든 보살이 법을 알고 뜻을 알되 무엇이 지혜[智]이며, 무엇이 소견[見]입니까?”
010_0727_a_12L慈氏菩薩復白佛言修奢摩他毘鉢舍那諸菩薩衆法知義云何爲智云何爲見
“선남자여, 내가 무량한 문으로 지혜와 소견 두 가지 차별을 말하였으니, 이제 그대에게 간략히 그 모습을 말하리라. 총법(總法)을 반연하여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닦아서 얻는 묘한 지혜는 지혜라 하고, 별법(別法)을 반연하여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닦아서 생긴 지혜는 소견이라 한다.”
010_0727_a_14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我無量門宣說智見二種差別今當爲汝略說其相緣摠法修奢摩他毘鉢舍那所有妙是名爲智若緣別法修奢摩他鉢舍那所有妙慧是名爲見
“세존이시여, 사마타ㆍ비발사나를 닦는 모든 보살은 어떤 작의(作意)에 의지해 어떻게 모든 모습을 제거합니까?”
010_0727_a_19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修奢摩他毘鉢舍那諸菩薩衆由何作意何等云何除遣諸相
010_0727_b_02L“선남자여, 진여의 작의에 의지해 모든 법의 모습과 뜻의 모습을 제거한다. 그 이름[名]과 이름의 자상(自相)에 대하여 얻은 바가 없을 때에는 또한 그것이 의지하는 모습도 관찰하지 않으니 이렇게 제거한다. 이름에서와 같이 구절[句]에서도 문자[文]에서도 일체 뜻[義]에서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나아가 계(界)와 계의 자성에서도 얻은 모습을 관찰하지 않으니, 이렇게 제거한다.”
010_0727_a_22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眞如作意除遣法相及與義相若於其名及名自性無所得時亦不觀彼所依之相如是除遣如於其名於句於文於一切義當知亦爾乃至於界及界自性無所得時亦不觀彼所依之相如是除遣
“세존이시여, 깨달아야 할 모든 진여의 뜻과 모습에서 이 진여의 모습도 버릴 수 있습니까?”
010_0727_b_05L世尊諸所了知眞如義相此眞如相亦可遣不
“선남자여, 깨달아야 할 진여의 뜻 가운데는 도무지 모습이 없으며 또한 얻을 것도 없거늘, 무엇을 버리겠느냐. 선남자여, 진여의 뜻을 깨달을 때 일체 법과 뜻의 모습을 항복받는다고 나는 말한다. 이 깨달음은 다른 이가 항복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010_0727_b_06L善男子所了知眞如義中都無有相亦無所當何所遣善男子我說了知眞如義時能伏一切法義之相非此了達餘所能伏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흐린 물그릇의 비유와 맑지 못한 거울의 비유와 못 물을 휘젓는 비유에서 그런 것에는 자기의 얼굴 그림자를 비추어 관찰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관찰할 수 있다면 그건 앞과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마음을 잘 닦지 못하면 존재하는 진여를 여실하게 관찰할 수 없으며, 마음을 잘 닦으면 관찰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관찰하는 어떤 마음을 말씀하신 것이며, 어떤 진여에 의지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010_0727_b_10L世尊如世尊說濁水器喩不淨鏡喩撓泉池喩不任觀察自面影相若堪任者與上相違如是若有不善修心則不堪任如實觀察所有眞如若善修心堪任觀察此說何等能觀察心依何眞如而作是說
“선남자여, 이는 세 가지의 능히 관찰하는 마음을 말하니, 이른바 듣고서 이루는 관찰하는 마음과 생각하여 이루는 관찰하는 마음과 닦아서 이루는 관찰하는 마음이다. 또 알아내는 진여에 의지해 그렇게 말한 것이다.”
010_0727_b_15L善男此說三種能觀察心謂聞所成能觀察心若思所成能觀察心若修所成能觀察心依了別眞如作如是說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법과 뜻을 아는 보살은 모든 모습[相]을 버리기 위해 부지런히 가행(加行)을 닦습니다. 몇 가지 모습이 버리기 어려우며, 누가 이것을 버릴 수 있습니까?”
010_0727_b_18L世尊如是了知法義菩薩爲遣諸相勤修加行有幾種相難可除遣誰能除遣
010_0727_c_02L“선남자여, 열 가지 모습이 있으며, 공(空)으로써 능히 제거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법과 뜻을 깨치는 까닭에 갖가지 문자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일체 법공(法空)을 말미암아 능히 제거한다. 둘째는 안립진여(安立眞如)를 깨닫는 까닭에 나고 멸하고 머무르고 달라지는 성품이 상속하여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있으니, 이는 모습의 공과 앞뒤 없는 공을 말미암아 능히 제거한다. 셋째는 능취(能取)의 뜻을 깨닫는 까닭에 몸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모습과 아만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안의 공과 얻은 바 없는 공을 말미암아 능히 제거한다. 넷째는 소취(所取)의 뜻을 아는 까닭에 재물을 돌아보고 아끼는 모습이 있으니 이는 외공(外空)을 말미암아 능히 제거한다. 다섯째는 수용(受用)의 뜻인 남녀의 받들어 섬김과 필요한 도구[資具]가 상응함을 깨닫는 까닭에 안으로 안락한 모습과 밖으로 밝고 묘한 모습이 있으니, 이는 안과 밖의 공과 본성의 공을 말미암아 제거한다. 여섯째는 건립(建立)의 뜻을 아는 까닭에 무량한 모습이 있으니, 이는 큰 공을 말미암아 능히 제거한다. 일곱째는 무색(無色)을 아는 까닭에 안으로 고요한 해탈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함이 있는 공을 말미암아 능히 제거한다. 여덟째는 상진여(相眞如)의 뜻을 아는 까닭에 보특가라 무아의 모습과 법무아(法無我)의 모습과 혹은 유식의 모습과 승의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필경의 공과 성품 없는 공과 성품 없는 자성의 공과 승의의 공을 말미암아 능히 바르게 제거한다. 아홉째는 청정진여(淸淨眞如)의 뜻을 아는 까닭에 함이 없는 모습과 변함없는 모습이 있으니, 이는 함이 없는 공과 변역(變易) 없는 공을 말미암아 능히 바르게 제거한다. 열째는 그 모습을 다스리는 공의 성품에 대하여 뜻을 짓고 생각하는 까닭에 공의 성품과 모습이 있으니, 이는 공한 공을 말미암아 능히 제거한다.”
010_0727_b_21L善男子有十種相空能除遣等爲十一者了知法義故有種種文字相此由一切法空能正除遣二者了知安立眞如義故有生異性相續隨轉相此由相空及無先後空能正除遣三者了知能取義故有顧戀身相及我慢相此由內空及無所得空能正除遣四者了知所取義故有顧戀財相此由外空能正除遣了知受用義男女承事資具相應有內安樂相外淨妙相此由內外空及本性空能正除遣六者了知建立義故有無量相此由大空能正除七者了知無色故有內寂靜解脫此由有爲空能正除遣八者了知相眞如義故有補特伽羅無我相無我相若唯識相及勝義相此由畢竟空無性空無性自性空及勝義空能正除遣九者由了知淸淨眞如義有無爲相無變異相此由無爲空無變異空能正除遣十者卽於彼相對治空性作意思惟故有空性相由空空能正除遣
“세존이시여, 이러한 열 가지 모습을 제거할 때 어떤 것을 버리며, 어떤 모습에서 해탈을 얻습니까?”
010_0727_c_20L世尊除遣如是十種相時除遣何等從何等相而得解
010_0728_a_02L“선남자여, 삼마지의 대상인 영상의 모습을 제거해 버리고, 잡되고 물든 속박의 모습으로부터 해탈을 얻고는 그것 또한 버린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수승함에 나아가서 이러한 공으로 이러한 모습을 다스림을 말하였지만 그 하나하나가 일체 모습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비유컨대 무명(無明)이 나아가 노(老)ㆍ사(死) 따위의 모든 잡염법(雜染法)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승함에 나아가서 행(行)을 낸다고만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모든 행이 가장 가까운 연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의 도리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010_0727_c_22L善男子除遣三摩地所行影像相從雜染縛相而得解脫彼亦除遣男子當知就勝說如是空治如是相非不一一治一切相譬如無明非不能生乃至老死諸雜染法就勝但說能生於行由是諸行親近緣故此中道當知亦爾
“세존이시여, 이 가운데 어떤 공이 총공(總空)의 성품과 모습입니까? 모든 보살이 이것을 알면 잃어버림이 없이 공의 성품과 모습에서 증상만(增上慢)을 벗어날 것입니다.”
010_0728_a_05L爾時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此中何等空是摠空性相若諸菩薩了知是已無有失壞於空性相離增上慢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여래에게 이와 같이 깊은 뜻을 물어서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공의 성품과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공의 성품과 모습을 잃어버린다면 이는 곧 일체 대승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그대에게 총공(總空)의 성품과 모습을 말하리라. 선남자여, 의타기상(依他起相)과 원성실상(圓成實相) 가운데서는 일체 품류의 잡염과 청정,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이 필경에 그 성품을 멀리 벗어난다. 또 그 가운데서는 도무지 얻을 것이 없다. 이것을 대승 총공(總空)의 성품과 모습이라 한다.”
010_0728_a_08L爾時世尊歎慈氏菩薩曰善哉善哉善男子汝今乃能請問如來如是深令諸菩薩於空性相無有失壞以故善男子若諸菩薩於空性相有失壞者便爲失壞一切大乘是故汝應諦聽諦聽當爲汝說摠空性相男子若於依他起相及圓成實相中一切品類雜染淸淨遍計所執相竟遠離性及於此中都無所得如是名爲於大乘中摠空性相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ㆍ비발사나는 몇 가지 수승한 삼마지를 포섭할 수 있습니까?”
010_0728_a_18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此奢摩他毘鉢舍那能攝幾種勝三摩地
“선남자여, 내가 말한 바와 같이 무량한 성문과 보살과 여래에게 무량한 종류의 훌륭한 삼마지가 있으니, 마땅히 알라. 일체가 모두 이에 포섭되는 것이다.”
010_0728_a_20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如我所說無量聲聞菩薩如來有無量種勝三摩地當知一切皆此所攝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ㆍ비발사나는 무엇으로 인(因)을 삼습니까?”
010_0728_a_23L世尊此奢摩他毘鉢舍那以何爲因
“선남자여, 청정한 시라(尸羅)와 청정하게 듣고 생각하여 이룩한 바른 소견으로써 그 인을 삼는다.”
010_0728_a_24L善男子淸淨尸淸淨聞思所成正見以爲其因
010_0728_b_02L“세존이시여, 이 사마타ㆍ비발사나는 무엇으로 과(果)를 삼습니까?”
010_0728_b_02L此奢摩他毘鉢舍那以何爲果
“선남자여, 훌륭한 청정계(淸淨戒)와 훌륭한 청정심(淸淨心)과 훌륭한 청정혜(淸淨慧)로써 과를 삼는다. 또 선남자여, 일체 성문과 여래가 가진 세간ㆍ출세간의 일체 선법은, 마땅히 알라. 모두가 사마타ㆍ비발사나로 얻은 과이다.”
010_0728_b_03L男子善淸淨戒淸淨心善淸淨慧以爲其果復次善男子一切聲聞及如來等所有世閒及出世閒一切善法當知皆是此奢摩他毘鉢舍那所得之果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ㆍ비발사나는 어떤 업을 짓습니까?”
010_0728_b_07L此奢摩他毘鉢舍那能作何業
“선남자여, 두 가지 속박에서 해탈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니, 이른바 상박(相縛)과 추중박(麤重縛)이다.”
010_0728_b_08L男子此能解脫二縛爲業所謂相縛及麤重縛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얽매임[繫] 가운데 몇 가지가 사마타의 장애이고, 몇 가지가 비발사나의 장애이며, 몇 가지가 모두의 장애입니까?”
010_0728_b_10L世尊如佛所說五種繫中幾是奢摩他障幾是毘鉢舍那障是俱障
“선남자여, 몸과 재물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것은 사마타의 장애요, 모든 성스러운 가르침을 뜻대로 얻지 못하는 것은 비발사나의 장애이다. 모습을 좋아하는 것, 뒤섞여 지내는 것, 적은 것을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은, 마땅히 알라. 모두의 장애이다. 첫 번째 때문에 닦아 나아가지 못하며, 두 번째 때문에 닦은 가행이 구경에 이르지 못한다.”
010_0728_b_12L善男子顧戀身財是奢摩他於諸聖教不得隨欲是毘鉢舍那樂相雜住於少喜足當知俱障第一故不能造修由第二故所修加行不到究竟
“세존이시여, 5개(蓋) 가운데 몇 가지가 사마타의 장애이며, 몇 가지가 비발사나의 장애이며, 몇 가지가 모두의 장애입니까?”
010_0728_b_16L世尊於五蓋中幾是奢摩他障幾是毘鉢舍那障幾是俱障
“선남자여, 도거(掉擧)와 악작(惡行)은 사마타의 장애요, 혼침(惛沈)과 수면(睡眠)과 의(疑)는 비발사나의 장애요, 탐욕[瞋]과 성냄[恚]은 모두의 장애이다.”
010_0728_b_17L善男子掉擧惡作是奢摩他障惛沈睡眠是毘鉢舍那障貪欲瞋恚知俱障
“세존이시여, 어떤 경우에 사마타도(奢摩他道)의 원만함과 청정함을 얻었다고 합니까?”
010_0728_b_20L世尊齊何名得奢摩他道圓滿淸淨
“선남자여, 나아가 가지고 있던 혼침과 수면을 바르게 잘 제거하면 이럴 경우 사마타도의 원만함과 청정함을 얻었다고 한다.”
010_0728_b_21L善男子乃至所有惛沈睡眠正善除遣齊是名得奢摩他道圓滿淸淨
“세존이시여, 어떤 경우에 비발사나도(毘鉢舍那道)의 원만함과 청정함을 얻었다고 합니까?”
010_0728_b_23L世尊齊何名得毘鉢舍那道圓滿淸淨
010_0728_c_02L“선남자여, 나아가 가지고 있던 도거와 악작을 바르게 잘 제거하면 이럴 경우 비발사나도의 원만함과 청정함을 얻었다고 한다.”
010_0728_b_24L善男子乃至所有掉擧惡作正善除遣齊是名得毘鉢舍那道圓滿淸淨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은 사마타ㆍ비발사나가 나타났을 때 몇 가지 마음이 산동업(散動業)이라고 알아야 합니까?”
010_0728_c_03L世尊若諸菩薩於奢摩他鉢舍那現在前時應知幾種心散動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작의의 흔들림[作意散動]이요, 둘째는 바깥 마음의 흔들림[外心散動]이요, 셋째는 안 마음의 흔들림[內心散動]이요, 넷째는 모습의 흔들림[相散動]이요, 다섯째는 거칠고 무거운 흔들림[麤重散動]이다. 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대승에 상응하는 작의을 버리고 성문ㆍ독각과 상응하는 모든 작의 가운데 떨어져 있으면, 마땅히 알라. 이는 작의의 흔들림이다. 만일 바깥의 다섯 가지 묘한 욕심의 모든 잡되고 어지러운 모습과 그에 따른 찾고 생각하는 수번뇌 가운데서, 또는 바깥으로 소연 경계 가운데서, 마음이 풀려 산만해진다면, 마땅히 알라. 이는 바깥 마음의 흔들림이다. 만일 혼침(惛沈)이나 수면(睡眠) 때문에, 혹은 가라앉음[沈沒] 때문에, 혹은 사마발지에 애착하기 때문에, 혹은 어느 하나의 삼마발지에서 모든 수번뇌로 더럽혀진 까닭에, 마땅히 알라. 이는 안 마음의 흔들림이다. 만일 바깥의 모습에 의지해 안의 등지(等持)가 행하는 대상인 모든 모습에 대하여 뜻을 지어 생각하는 것을 모습의 흔들림이라 한다. 만일 안의 작의를 반연하여 일어나게 되는 모든 수(受)가 거칠고 무거운 몸[麤重身]을 말미암아 아(我)를 계교하고 거만을 일으키면, 마땅히 알라. 이는 거칠고 무거운 흔들림이다.”
010_0728_c_05L善男子應知五種一者作意散動二者外心散動三者內心散動四者相散動五者麤重散動善男子若諸菩薩捨於大乘相應作意墮在聲聞獨覺相應諸作意中當知是名作意散動若於其外五種妙欲諸雜亂相所有尋思隨煩惱中及於其外所緣境中縱心流散當知是名外心散動若由惛沈及以睡眠或由沈沒或由愛味三摩鉢底或由隨一三摩鉢底諸隨煩惱之所染污當知是名內心散動若依外相於內等持所行諸相作意思惟名相散動若內作意爲緣生起所有諸受由麤重身計我起慢當知是名麤重散動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ㆍ비발사나는 처음의 보살 지위로부터 여래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장애를 물리칩니까?”
010_0728_c_19L世尊此奢摩他毘鉢舍那從初菩薩地乃至如來地能對治何障
010_0729_a_02L“선남자여, 이 사마타ㆍ비발사나는 초지(初地)에서 나쁜 세계의 번뇌잡염(煩惱雜染)ㆍ업잡염(業雜染)ㆍ생잡염(生雜染)의 장애를 물리치고, 제2지에서는 미세한 잘못이 현행하는 장애를 물리치고, 제3지에서는 욕심과 탐심의 장애를 물리치고, 제4지에서는 선정에 대한 애착[定愛]과 법에 대한 애착[法愛]의 장애를 물리치고, 제5지에서는 생사와 열반을 한결같이 등지는 장애를 물리치고, 제6지에서는 모습이 많이 현행하는 장애를 물리치고, 제7지에서는 미세한 모습이 현행하는 장애를 물리치고, 제8지에서는 모습이 없는 공용(無相)과 모습이 있어 자재(自在)를 얻지 못하는 장애를 물리치고, 제9지에서는 일체 종류의 공교한 말에 자재를 얻지 못하는 장애를 물리치고, 제10지에서는 원만한 법신을 증득하지 못하는 장애를 물리친다.
선남자여, 이 사마타ㆍ비발사나는 여래의 지위에서 극히 미세하고 가장 미세한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물리친다. 능히 이러한 장애를 영원히 없애기 때문에 마침내 집착 없고 장애 없는 일체 지견(智見)을 증득하고, 해야 할 바를 원만히 이루는 소연에 의지해 가장 청정한 법신을 건립한다.”
010_0728_c_21L善男子此奢摩他毘鉢舍那於初地中對治惡趣煩惱業生雜染障第二地中對治微細誤犯現行障第三地中對治欲貪障第四地對治定愛及法愛障第五地中治生死涅槃一向背趣障第六地中對治相多現行障第七地中對治細相現行障第八地中對治於無相作功用及於有相不得自在障第九地對治於一切種善巧言辭不得自在障第十地中對治不得圓滿法身證得障善男子此奢摩他毘鉢舍那於如來地對治極微細最極微細煩惱障及所知障由能永害如是障故究竟證得無著無㝵一切智見依於所作成滿所緣建立最極淸淨法身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사마타ㆍ비발사나에 의지해 부지런히 수행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합니까?”
010_0729_a_13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云何菩薩依奢摩他毘鉢舍那勤修行故證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0_0729_b_02L“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얻고, 일곱 가지 진여에 의지해 듣고 생각한 법 가운데서 훌륭한 선정의 마음[定心]을 말미암아 잘 살펴 결정하고 잘 생각하고 잘 세우며, 진여의 성품 안에서 안으로 빠르게 생각한다면, 그는 진여에 대해 빠르게 생각함으로써 마음이 일체 미세한 현행들도 버릴 수 있는데 하물며 거친 모습이리오. 선남자여, 미세한 모습이란, 이른바 마음이 집착하여 받는 모습[心執受相]과 받아들이는 모습[領納相]과 알아내는 모습[了別相]과 물들거나 청정한 모습[雜染淸淨相]이다. 혹은 안의 모습[內相]과 밖의 모습[外相]과 안팎의 모습[內外相]이다. 혹은 ‘나는 수행을 해 일체 유정을 이롭게 하리라’고 하는 모습과 바른 지혜의 모습[正智相]과 진여의 모습[眞如相]과 고ㆍ집ㆍ멸ㆍ도의 모습[苦集滅道相]과 유위의 모습[有爲相]과 무위의 모습[無爲相]과 영원한 모습[有常相]과 무상한 모습[無常相]과 괴로움에 변하고 달라지는 성품이 있는 모습[苦有變異性相]과 괴로움에 변하고 달라지는 성품이 없는 모습[苦無變異性相]과 유위의 이상의 모습[有爲異相相]과 유위의 동상의 모습[有爲同相相]과 일체를 일체라고 알아 일체가 있게 되는 모습[知一切是一切已有一切相]과 보특가라 무아의 모습[補特伽羅無我相]과 혹은 법무아의 모습[法無我相]이다. 그것들이 나타나도 마음이 능히 버린다.
010_0729_a_16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若諸菩薩已得奢摩他毘鉢舍那依七眞如於如所聞所思法中由勝定心於善審定於善思量於善安立眞如性中內正思惟彼於眞如正思惟故心於一切細相現行尚能棄捨何況麤相善男子言細相者謂心所執受相或領納相或了別相或雜染淸淨相或內相外相或內外相或謂我當修行一切利有情相或正智相或眞如相或苦集滅道相或有爲相或無爲相或有常相或無常相或苦有變異性相苦無變異性相或有爲異相相或有爲同相相或知一切是一切已有一切或補特伽羅無我相或法無我相於彼現行心能棄捨
010_0729_c_02L그들은 이미 많이 이러한 수행에 머문 까닭에 때때로 일체 얽매임과 덮임과 산란과 요동에서 마음을 잘 닦는다.
이로부터는 일곱 진여에서 일곱 가지로 각각 차별되는, 스스로 안으로 증득하는 통달의 지혜[通達智]가 생기게 되니 이를 견도(見道)라 한다. 이를 얻는 까닭에 보살의 바른 성품에 들어가 중생을 벗어나고 여래의 집에 태어나 초지(初地)를 증득하며, 또 이 지위의 훌륭한 덕을 수용한다. 그는 이미 지난 세상에서 사마타ㆍ비발사나를 얻은 까닭에 이미 두 가지 소연(所緣)을 얻으니, 이른바 유분별영상소연(有分別影像所緣)과 무분별영상소연(無分別影像所緣)이다. 그는 이제 견도를 얻은 까닭에 다시 사변제소연(事邊際所緣)을 증득하고 다시 다음의 일체 지위에서 수도(修道)로 닦아 나아간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소연에서 뜻을 짓고 사유하니,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그의 작은 말뚝으로 큰 말뚝을 뽑는 것과 같다. 이와 같아서 보살은 이 말뚝으로 말뚝을 뽑는 방편에 의지해 안의 모습[內相]을 버리는 까닭에 일체 잡되고 물든 부분에 수순하는 모습을 모두 버린다. 모습을 버리는 까닭에 추중(麤重) 또한 버린다. 일체 모습과 추중을 영원히 버렸으므로 점차 그 다음 다음의 지위에서도 금을 연마하는 기술과 같이 그 마음을 단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며, 또 해야 할 바를 원만히 이루는 소연을 얻는다.
010_0729_b_09L彼旣多住如是行故於時時閒從其一切繫蓋散動善修治心從是已後於七眞如有七各別自內所證通達智生名爲見道由得此故名入菩薩正性離生生如來家證得初地又能受用此地勝德彼於先時由得奢摩他毘鉢舍那故已得二種所緣謂有分別影像所緣及無分別影像所緣彼於今時得見道故更證得事邊際所緣復於後後一切地中進修修道卽於如是三種所緣作意思惟譬如有人以其細楔出於麤楔如是菩薩依此以楔出楔方便遣內相故一切隨順雜染分相皆悉除遣相除遣故麤重亦遣永害一切相麤重故漸次於彼後後地中如煉金法陶煉其心乃至證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又得所作成滿所
선남자여, 이와 같이 보살이 안의 지관(止觀)을 바르게 수행하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다.”
010_0729_c_04L善男子如是菩薩於內止觀正修行故證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선남자여, 보살이 만일 6처(處)를 안다면 곧 보살의 광대한 위덕을 이끌어 낼 것이니, 마음의 생김을 잘 알고, 둘째 마음의 머무름을 잘 알고, 셋째 마음의 벗어남을 잘 알고, 넷째는 마음의 늘어남을 잘 알고, 다섯째는 마음의 줄어듦을 잘 알고, 여섯째는 방편을 잘 알 것이다.
010_0729_c_05L氏菩薩復白佛言世尊云何修行引發菩薩廣大威德善男子若諸菩薩善知六處便能引發菩薩所有廣大威德一者善知心生二者善知心住三者善知心出四者善知心增五者善知心減六者善知方便
010_0730_a_02L마음의 생김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16행의 마음이 일어나는 차별을 여실히 알면 이를 마음의 생김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 16행의 마음이 일어나는 차별이란, 첫째 지각할 수 없고 굳게 머무는 그릇과 같은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아타나식(阿陀那識)이다. 둘째는 갖가지 행상을 소연으로 한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단번에 일체 색 따위의 경계를 취하는 분별의식(分別意識), 단번에 안과 밖으로 경계를 취하는 각수(覺受), 단번에 한 생각 순식간 잠깐 사이에 현전의 많은 선정에 들어 많은 불토를 보고 많은 여래를 뵙는 분별의식이다. 셋째는 작은 모습을 소연으로 한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욕계의 식이다. 넷째는 큰 모습을 소연으로 한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색계의 식이다. 다섯째는 무량한 모습을 소연으로 한 식이 생기는, 공(空)ㆍ식(識)ㆍ무변처(無邊處)의 식이다. 여섯째는 미세한 모습을 소연으로 한 식이 생기는, 이른바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식이다. 일곱째는 변제(邊際)의 모습을 소연으로 한 식이 생기는, 이른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식이다. 여덟째는 모습 없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세상을 벗어나는 식과 적멸을 반연하는 식이다. 아홉째는 괴로움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지옥의 식이다. 열째는 잡수(雜受)와 함께 행하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욕계에 행하는 식이다. 열한째는 기쁨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초정려(初靜慮)와 제2 정려(靜慮)의 식이다. 열두째는 즐거움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제3 정려의 식이다. 열셋째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제4의 정려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식이다. 열넷째는 더러움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모든 번뇌와 수번뇌에 상응하는 식이다. 열다섯째는 착함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믿음 따위와 상응하는 식이다. 열여섯째는 무기(無記)와 함께 행하는 식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저들과 함께 상응하지 않는 식이다.
010_0729_c_11L云何善知心生謂如實知十六行心生起差別是名善知心生十六行心生起差別一者不可覺知堅住器識生謂阿陁那識二者種種行相所緣識生頓取一切色等境界分別意識及頓取內外境界覺受或頓於一念瞬息須臾現入多定見多佛土見多如來分別意識三者小相所緣識生謂欲界繫識四者大相所緣識生謂色界繫識五者無量相所緣識生謂空無邊處繫識六者微細相所緣識生謂無所有處繫識七者邊際相所緣識生謂非想非非想處繫識八者相識生謂出世識及緣滅識九者俱行識生謂地獄識十者雜受俱行識生謂欲行識十一喜俱行識生初二靜慮識十二樂俱行識生謂第三靜慮識十三不苦不樂俱行識生謂從第四靜慮乃至非想非非想處十四染污俱行識生謂諸煩惱及隨煩惱相應識十五善俱行識生信等相應識十六無記俱行識生彼俱不相應識
마음의 머무름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요별진여(了別眞如)를 여실하게 아는 것이다.
010_0730_a_11L云何善知心住謂如實知了別眞如
마음의 벗어남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상박(相搏)과 추중박(麤重縛) 이 두 가지 결박에서 벗어났음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다. 이것은 그 마음을 이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010_0730_a_12L云何善知心出謂如實知出二種縛所謂相縛及麤重縛此能善知應令其心從如是出
마음의 늘어남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박과 추중박을 다스리는 마음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다. 그것이 자라나고 그것이 쌓일 때에 또한 자랄 수 있고 또한 쌓일 수 있으니, 이것을 늘어남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
010_0730_a_14L云何善知心增謂如實知能治相縛麤重縛心彼增長時彼積集時亦得增長亦得積集名善知增
마음의 줄어짐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다스릴 대상인 모습과 추중에 물든 마음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니, 그것이 쇠퇴할 때와 그것이 물러날 때에 이것도 또한 쇠퇴하고 이것도 또한 줄어드는 것을 아는 것이다.
010_0730_a_17L云何善知心減謂如實知彼所對治相及麤重所雜染心彼衰退時彼損減時此亦衰退此亦損減名善知減
방편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해탈(解脫)ㆍ승처(勝處)ㆍ변처(遍處)의 닦고 버림을 여실하게 잘 아는 것이다.
010_0730_a_20L云何善知方便謂如實知解脫勝處及與遍處或修或遣
선남자여,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보살의 광대한 위덕을 이미 이끌어냈거나 미래에 이끌어낼 것이며 현재에 이끌어낸다.”
010_0730_a_22L善男子如是菩薩於諸菩薩廣大威德或已引發或當引發或現引發
010_0730_b_02L“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무여열반(無餘涅槃)에서는 일체 수(受)가 남김없이 영원히 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수들이 여기에서 영원히 없어집니까?”
010_0730_a_23L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如世尊說於無餘依涅槃界中一切諸受無餘永滅何等諸受於此永滅
“선남자여, 대략 말하건대 두 가지 수(受)가 남김없이 멸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무언가에 의지한 추중수(麤重受)요, 둘째는 그 결과인 경계수(境界受)이다. 무언가에 의지한 추중수에는, 마땅히 알라.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색(有色)에 의지한 수요, 둘째는 무색(無色)에 의지한 수요, 셋째는 결과가 이미 원만히 이루어졌다고 하는 추중수요, 넷째는 결과가 아직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추중수이다. 결과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하는 추중수란 이른바 현재의 수요, 결과가 아직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수란 이른바 미래의 원인인 수이다. 그 결과인 경계수에도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의지하여 지니는 수요, 둘째는 살림살이[資具]의 수요, 셋째는 수용의 수요, 넷째는 아끼는 수이다.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에서는 결과가 아직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수는 모두 이미 없어지고, 그를 다스리는 명촉(明觸)에서 생긴 수를 받아들여 함께하거나 또는 그 결과가 이미 원만히 이루어졌다는 수가 있게 된다. 또 두 가지 수가 이미 없어지고 오직 현전에 명촉에서 생긴 수만 받아들이기도 한다.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의 세계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 때는 그것 또한 영원히 없어진다. 그러므로 무여열반의 세계에서는 일체 수가 남김없이 멸한다고 말한 것이다.”
010_0730_b_03L善男子要言之有二種受無餘永滅何等爲一者所依麤重受二者彼果境界所依麤重受當知有四種一者色所依受二者無色所依受三者已成滿麤重受四者果未成滿麤重果已成滿受者謂現在受果未成滿受者謂未來因受彼果境界受有四種一者依持受二者資具受受用受四者顧戀受於有餘依涅槃界中果未成滿受一切已滅領彼對治明觸生受領受共有或復彼果已成滿受又二種受一切已滅唯現領受明觸生受於無餘依涅槃界中般涅槃時此亦永滅是故說言於無餘依涅槃界中一切諸受無餘永滅
010_0730_c_02L그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그대가 이제 원만하고 가장 청정하고 미묘한 유가도(瑜伽道)에 의지해 여래에게 묻는구나. 그대는 이미 유가에서 확실히 가장 좋은 방편을 얻었도다. 나는 이미 그대를 위해 원만하고 가장 청정하고 미묘한 유가도를 말하였다. 일체 과거와 미래의 정등각(正等覺)께서 이미 말씀하시고 앞으로 하실 말씀 역시 모두 이와 같으니라. 모든 선남자 혹은 선여인들도 모두 이에 의지해 용맹정진하며 바르게 닦고 배워야 할 것이다.”
010_0730_b_18L爾時世尊說是語已復告慈氏菩薩善哉善哉善男子汝今善能依止圓滿最極淸淨妙瑜伽道請問如來汝於瑜伽已得決定最極善巧吾已爲汝宣說圓滿最極淸淨妙瑜伽道所有一切過去未來正等覺者已說當說皆亦如是諸善男子若善女人皆應依此勇猛精進當正修學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730_c_03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頌曰

법을 거짓으로 세운 유가 가운데
방일한다면 큰 뜻을 잃으리라.
이 법과 그리고 유가에 의지해
바르게 수행하면 대각을 얻으리라.
010_0730_c_04L於法假立瑜伽中
若行放逸失大義
依止此法及瑜伽
若正修行得大覺

얻을 것 있다 하고 벗어나길 구하며
이런 소견을 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면
자씨여, 그 사람은 유가와는 거리가 머니
비유컨대 땅덩이와 허공 같으니라.
010_0730_c_06L見有所得求免離
若謂此見爲得法
慈氏彼去瑜伽遠
譬如大地與虛空

중생에게 이익 주되 견고하면서도 하는 바 없으니
깨달은 뒤에도 부지런히 닦아 유정들에게 이익 주네.
지혜로운 자 겁의 한량 다하도록 이렇게 하니
곧 번뇌를 벗어난 가장 높은 즐거움 얻으리라.
010_0730_c_08L利生堅固而不作
悟已勤修利有情
智者作此窮劫量
便得最上離染喜

어떤 사람 욕심으로 법을 설하면
그 사람은 욕심을 버렸다지만 도리어 취하는 것
어리석은 사람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법의 보배 얻고도
도리어 떠다니며 거지 노릇 하는구나.
010_0730_c_10L若人爲欲而說法
彼名捨欲還取欲
愚癡得法無價寶
反更遊行而乞丐

다투고 떠드는 잡된 희론의 집착
마땅히 버리고 높은 정진 일으켜라.
모든 하늘 그리고 세간을 건지려면
이러한 유가를 그대여 배우라.
010_0730_c_12L於諍諠雜戲論著
應捨發起上精進
爲度諸天及世閒
於此瑜伽汝當學

그때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解深密) 법문에서 이 가르침을 무엇이라 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010_0730_c_14L爾時慈氏菩薩復白佛言世尊於是解深密法門中當何名此教我當云何奉持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것을 유가요의(瑜伽了義) 교법이라 하니, 그대는 마땅히 이렇게 받들어 지녀라.”
010_0730_c_17L佛告慈氏菩薩曰善男子名瑜伽了義之教於此瑜伽了義之教汝當奉持
이 유가의 교법을 말씀하셨을 때 그 큰 모임에 있던 60만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30만 성문이 티끌을 멀리 벗어나 모든 법에 법안이 맑아졌으며, 15만 성문이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해 심해탈(心解脫)을 얻었으며, 7만 5천 보살이 광대한 유가의 작의(作意)를 얻었다.
010_0730_c_19L說此瑜伽了義教時大會中有六百千衆生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三百千聲聞遠塵離於諸法中得法眼淨一百五十千聲聞諸漏永盡心得解脫七十五千菩薩獲得廣大瑜伽作意
解深密經卷第三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