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부처님께서 바닷가 마라야산(摩羅耶山)1) 위에 있는 능가성(楞伽城)에 계시었다. 그 마라야산은 여러 가지 보배로 된 것이니, 보배 사이사이로 얽혀 빛나는 광명은 백 천의 태양 빛이 금산(金山)을 비추는 듯 하며, 또 한량없는 꽃동산에 향기로운 나무가 있으니, 다 보배스럽고 향기로운 숲이다.
산들바람이 불어 가지와 잎이 흔들릴 적마다 수많은 묘한 소리가 일제히 들려오며, 선인(仙人)들이 사는 신령스러운 집과 바위 굴집들이 있는데, 수많은 보배로 되어있어 안팎이 환히 트여 일월의 광채도 빛을 잃을 지경이었다. 이곳은 옛적 여러 선인들과 현성(賢聖)들이 진실한 법을 사유하여 도(道)를 얻은 곳이었다. 큰 비구 스님과 큰 보살 대중이 온갖 다른 불국토(佛國土)에서 와서 함께 이곳에 모였다.
대혜(大慧) 보살마하살이 상수(上首)가 되니, 여러 부처님께서 손으로 그의 정수리에 물을 부어 부처의 지위[佛位]를 주셨다. 그는 자기 마음을 경계로 삼아 그 뜻을 잘 해득하였다. 여러 중생과 여러 마음의 상태[心色]로 여러 마음과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따라 한량없는 제도의 문으로 제도 될 바를 따르고, 보게 될 바를 따라서 널리 나타낸 것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멀리 마라야산의 능가성을 바라보시고, 빛나는 얼굴에 기쁨이 넘쳐 금산을 움직이는 듯한 미소를 띄우시면서 말씀하셨다. “과거의 여러 부처님ㆍ마땅히 공양을 받으실 분[應供]ㆍ바르고 두루 아시는 분[正遍知]께서 저 마라야산 정상의 능가성에서 스스로 증득한 지혜로 체득하신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는 모든 사견(邪見)의 각관(覺觀)을 떠난 것으로, 그것은 외도(外道)와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들이 수행할 경계가 아니었다. 나도 또한 저 마라야산 능가성에서 라바나(羅婆那) 야차왕(夜叉王)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하겠노라.”
그때 라바나 야차왕이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여래의 음성을 듣고, 부처님께서 바다 용왕의 궁전을 떠나 바다를 건너, 한량없는 나유타의 제석과 범천왕과 여러 용왕들에게 둘러싸여 공경 받고 계심을 알았다. 그때 여래께서는 중생의 아리야식(阿梨耶識)의 바닷물이 물결을 경계로 삼아 맹렬한 바람에 불리어 전식(轉識)인 파도가 인연을 따라 일어나게 됨을 관찰하셨다.
010_0831_c_02L그때 능가 성주(城主)인 라바나 야차왕이 여러 권속과 함께 꽃 궁전을 타고 여래의 처소에 와서는 여러 권속과 같이 궁전에서 내려 부처님을 세 번 돌면서 부처님께 여러 음악으로 기쁘게 공양하였다. 가지고 온 악기들은 모두 크고 푸른 인드라의 보배[因陀羅寶;청옥(靑玉)을 가리킴]로 만든 것이며, 큰 유리(琉璃)와 마노(瑪瑙) 등 여러 가지 보배로 사이사이를 장식하였고, 값진 색 옷감으로 둘러싼 것으로, 범성(梵聲) 등의 한량없는 소리로 여래의 모든 공덕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보는 것[能見]과 보이는 바[所見]를 모두 얻을 수 없고, 말하는 이와 말할 바가 또한 없구나.
010_0832_c_20L能見及所見, 一切不可得,
說者及所說, 如是等亦無。
불법의 진실한 체(體)는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어서, 법의 모양[法相]은 항상 이와 같으니 오직 자기의 마음으로 분별한다.
010_0832_c_21L佛法眞實體,
非有亦非無, 法相恒如是, 唯自心分別。
사물을 보고 진실한 척 하면 그 사람은 부처를 볼 수 없고, 분별하는 마음에 머물지 않아도 또한 부처를 보지 못하네.
010_0832_c_22L如見物爲實, 彼人不見佛, 不住分別心,
亦不能見佛。
모든 행이 있다고 보지 않으면 이것이야말로 부처일세. 만약 능히 이렇게 본다면 그 사람은 여래를 본 것일세.
010_0832_c_24L不見有諸行, 如是名爲佛,
若能如是見, 彼人見如來。
010_0833_a_02L 지혜 있는 사람은 이렇게
모든 경계를 관찰하니, 이 몸이 변해 묘한 몸을 얻으리니, 이것이 곧 부처의 보리(菩提)라네.
010_0833_a_02L智者如是觀,
一切諸境界, 轉身得妙身, 是卽佛菩提。
그때 라바나 십두 나찰인 능가왕은 분별하는 마음이 허물임을 보았기에 분별하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세(過去世) 선근(善根)의 힘으로 여실히 모든 이론을 깨달으며, 여실히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깨닫고, 다른 가르침에 따를 것 없이 스스로 잘 생각하여 모든 법을 알았다.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훌륭하다. 능가왕이여, 부처님의 여래법 및 비법(非法)도 그대의 보는 바와 같구나. 만약 그대가 보는 것과 다르다면, 이는 단견(斷見)이라 할 것이다. 능가왕이여, 그대는 마땅히 마음ㆍ뜻ㆍ식을 멀리 떠나 모든 법의 실상을 여실히 수행하라. 그대는 이제 마땅히 내법(內法)을 수행하고, 밖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지어다.
010_0833_b_02L능가왕이여, 그대는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외도들의 수행하는 것을 닦지 말고, 마땅히 모든 외도들의 다른 삼매(三昧)에도 머무르지 말며, 외도들의 여러 가지 희론(戱論)도 좋아하지 말고, 모든 외도들의 베다[圍陀; veda]12)의 사견에도 머무르지 말 것이며, 마땅히 왕위에서 방일함과 자재한 힘에도 집착하지 말며, 마땅히 선정(禪定)과 신통(神通)의 자재한 힘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능가왕이여, 이와 같은 일들은 모두 여실한 수행자의 행함으로, 능히 모든 외도의 삿된 논리를 항복시키고, 능히 모든 허망한 사견을 깨뜨릴[破] 것이며, 능히 일체견(一切見), 아견(我見)의 허물을 굴리고[轉], 능히 일체 미세한 식(識)과 행(行)을 떠나 대승의 행을 닦을 것이다.
능가왕이여, 그대는 마땅히 안의 몸으로 여래자리에 들어가서 여실한 행을 닦아라. 이렇게 수행하는 자는 최상의 청정한 법을 굴려 얻으리라. 능가왕이여, 그대는 네가 얻은 도를 버리지 말고, 삼매ㆍ삼마발제(三摩跋提;samāpatti)13)를 잘 닦되, 성문과 연각과 외도의 삼매 경계에 집착하여 최상의 즐거움으로 여기지 말라. 또한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들의 수행하는 것도 그대는 분별하지 말라.
능가왕이여, 외도는 나라는 견해[我見]에 집착하여 아상(我相)이 있기 때문에 허망하게 분별하며, 또한 사대(四大)의 모양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빛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色聲香味觸法]에 집착하여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성문과 연각은 무명(無明)이 행(行)으로 반연함을 보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 여실한 공[如實空]14)을 떠나서 허망하게 분별하며, 온통 유법(有法)에 집착하여 보는 것[能見]과 보이는 바[所見]의 마음에 떨어진다.
능가왕이여, 이 뛰어난 도법(道法)은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몸 속 깊이 각관(覺觀)하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뛰어난 대승법을 얻어 3유(有;欲界ㆍ色界ㆍ無色界의 三界의 중생 혹은 생존방식)의 몸을 자유롭게 받아 날 수 있게 한다. 능가왕이여, 이 대승행에 들어감이란 능히 중생의 여러 가지 눈에 낀 백태와 여러 가지 식(識)의 물결을 없애주고, 외도의 모든 견해와 행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010_0833_c_02L능가왕이여, 이는 대승행에 들어가게 함이요, 외도의 행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외도의 행이라는 것은 몸 안에 내[我]가 있다고 보는 행이다. 식(識)과 색(色)의 두 법을 보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하고 멸함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훌륭하다. 능가왕이여, 이 뜻을 생각하는구나. 그대의 사유는 바로 부처를 보는 것이니라.”
그때 라바나 능가왕이 또한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부처님께 여실한 행과 법을 물어서 모든 외도의 행을 떠나고, 마음속 깊이 수행하여 관찰하는 경계도 마땅히 부처님께서 하시는 바의 마땅한 일을 떠나리니, 그것은 더 뛰어난 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실한 수행자들이 법을 증득할 때 얻어지는 삼매의 최상의 즐거움이니, 만약 그 즐거움을 얻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수행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크게 자비로우신 여래 세존께 물어 보리라.
여래는 능히 번뇌의 섶을 태워 없애셨고, 불자들 또한 태워 없앴다. 여래는 모든 중생의 마음과 번뇌를 잘 아시고, 여래는 두루 일체지의 곳[一切智處]까지 도달하셨으며, 참으로 옳고 그른 모양을 잘 아시었다. 내가 지금 마땅히 묘한 신통력으로 여래를 뵙고, 여래를 뵙고서는 얻지 못한 것은 얻고, 이미 얻은 것은 물러남이 없으며, 분별이 없는 삼매ㆍ삼마발제(三摩跋提)를 얻고, 더욱 여래의 행하신 것[如來行處]15)을 만족하게 얻으리라.”라고 하였다.
그때 십두나찰 능가왕은 모든 궁전이 다시 본래와 같이 보이며, 하나 하나 산중에 곳곳마다 부처님ㆍ세존ㆍ마땅히 공양을 받으실 분[應供]ㆍ바르고 두루 아시는 분[正遍知]이 서른 두 가지 모양으로 묘하게 장엄하신 몸으로 산중에 계시는 것이 보이며, 스스로 자기 몸도 두루 여러 부처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010_0834_a_02L 또한 모든 불국토와 여러 국왕들이 “몸은 덧없는 것인데, 왕위와 처자, 권속, 오욕(五欲)을 탐하여 속박되었기에 해탈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여, 바로 국토와 궁전과 처첩과 코끼리와 말과 값진 보물을 버려 부처님과 스님에게 보시하여, 산중에 들어가 출가 수도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어떤 불자는 산 속에서 용맹정진 하다가 지신의 몸을 굶주린 범과 사자, 나찰에게 던져 주어 불도(佛道)를 구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어떤 불자는 나무숲에서 경전을 독송하고, 사람들에게 연설하여 불도를 구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어떤 보살은 괴로워하는 중생을 생각하여 도량에서 보리수 아래 앉아 불도를 사유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하나 하나의 부처님 앞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이 있어 몸 깊이 수행한 경계를 설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야차 권속들이 둘러 싸여 명자(名字)와 글귀를 설하는 것이 보이었다.
그때 부처님은 지혜로써 현재의 여러 대중을 관찰하시니, 그는 육안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사자와 같이 날쌔고 신속하게 본 것이었다. “하하…”하고 크게 웃으시며, 정수리의 살 상투에서 한량없는 광명을 놓으시며, 어깨와 갈비와 허리와 위장과 가슴의 만(卍)자가 있는 곳과 모든 털구멍에서도 모두 한량없는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은 공중의 무지개와 같고 천 개의 태양 빛과 같으며, 겁(劫)이 다할 때의 큰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모양과 같았다.
010_0834_b_02L제석과 범천왕과 사천왕들은 허공에서 여래를 관찰하여, 부처님이 수미산(須彌山)과 비교할 만한 능가산 정상에 앉아 “하하…” 하고 크게 웃으심을 보았다. 그때 보살 대중과 제석과 범천왕과 사천왕들은 생각하기를, ‘무슨 인연으로 여래ㆍ마땅히 공양을 받으실 분ㆍ바르고 두루 아시는 분께서는 모든 법에서 자재(自在)를 얻으셨는데, 전에 없이 이렇게 하하 하고 크게 웃으셨는가? 또한 몸으로부터 한량없는 광명을 내시고서, 묵연히 계시어 깊은 지혜의 경계만을 생각하시지만 뛰어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사자의 보는 것처럼 능가왕을 보시며 여실한 행을 생각하시는가?’라고 하였다.
그때 거룩하신 대혜 보살마하살은 이전에 능가 라바나왕의 청함을 받았으므로, 곧 능가왕을 생각하고, 여러 큰 보살 대중의 마음과 행의 법을 알며, 또한 미래의 모든 중생들은 모두 명자(名字)17)의 설법을 좋아하고, 마음이 미혹하여 의심을 내고, 말에 따라 모든 성문과 연각과 외도의 행을 취하고 집착하지만, 부처님은 모든 심식(心識)의 행을 떠나 능히 저와 같이 크게 웃으신 것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대중들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께서는 무슨 인연과 무슨 일로 ‘하하…’ 하고 크게 웃으셨나이까?”
010_0834_b_11L爲彼大衆斷於疑心。而問佛言:“如來何因何緣何事呵呵大笑?”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능히 세간의 망상으로 분별하는 마음은 삿된 견해이며 뒤바뀐 것임을 잘 관찰하였구나. 그대는 참으로 삼세(三世)의 모든 일을 잘 알고 이러한 일들을 묻는구나. 그대의 묻는 것처럼 지혜 있는 사람들도 역시 그와 같이 물으니,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위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이 능가왕도 옛적 여러 부처님께 이와 같은 두 법을 물었으며, 지금도 또한 나에게 이와 같은 두 법을 묻고자 하나니, 이 두 법은 모든 성문과 연각과 외도는 아무도 이 두 법의 모양을 알지 못하느니라. 대혜여, 이 십두 나찰이 또한 미래의 여러 부처님께 이 두 법을 물을 것이다.”
능가왕이여, 그대가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고, 모든 지위에서 대치(對治)하는 방편(方便)을 관찰하고, 여실한 지혜로 능히 몸의 여실한 모습[如實之相]의 삼매와 즐거운 행[樂行]의 삼매에 들어, 부처님이 곧 그대의 몸을 거두어 주리니,18) 사마타(奢摩他;Śamatha, 止心, 能滅)의 즐거운 경계에 잘 머물러 성문과 연각의 깨끗지 못한 삼매를 벗어나, 부동지(不動地)19)와 선혜지(善彗地)20)와 법운지(法雲地)21)의 보살의 경지에 능히 머물며, 여실한 무아(無我)의 법을 잘 알며, 큰 보배 연꽃자리 위에서 앉아 한량없는 삼매를 얻고 부처님의 직위를 받으리라.
능가왕이여, 그대는 마땅히 오래지 않아 자신도 또한 이와 같은 연꽃자리 위에 앉아 머물게 됨을 볼 것이며, 한량없는 연꽃과 한량없는 보살이 각각 모두 연꽃자리에 앉아 자기네들끼리 둘러서 서로 볼 것이다. 또한 각각 오래지 않아 모두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머물게 되리니, 이른바 한결 같은 행과 방편(方便)의 행을 일으켜 여러 지위에 머물러서 능히 헤아릴 수 없는 경계를 볼 것이며, 여래자리[如來地]의 한량없고 끝없는 여러 가지 법상(法相)을 볼 것이니, 이는 성문과 연각과 사천왕과 제석과 범천왕들이 전혀 보지도 못한 바이다.”
그때 능가왕은 부처님ㆍ세존께서 자기의 물음을 들어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곧 저 더러움이 없고 한량없이 빛나는 큰 보배연꽃과 뭇 보배로 장엄한 산 위에서 한량없는 천녀(天女)들이 저절로 주위를 둘러 호위하며, 한량없는 여러 가지 이채로운 꽃과 여러 가지 좋은 향, 뿌리는 향, 바르는 향과 보배 깃발과 덮개, 보배 관(冠)과 영락(瓔珞), 장신구 등을 나타내고,
010_0835_a_02L 또한 세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여러 가지 훌륭한 장엄구를 나타내며, 또한 한량없는 여러 가지 악기를 나타내는데, 여러 하늘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乾闥婆)와 아수라(阿修羅)와 가루라(迦樓羅)와 긴나라(緊那羅)와 마후라가(摩睺羅迦) 등의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人非人;樂神의 총칭] 그들이 갖고 있는 악기보다 좋은 것이었다.
또한 3계(界)의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있는 모든 악기를 모두 변화로 만들어 내고, 다시 시방(十方)의 불국토(佛國土)에 있는 여러 가지 뛰어나고 기묘한 악기를 변화로써 모두 다 만들어냈으며, 다시 변화로써 한량없는 큰 보배 그물을 만들어서 부처님과 보살 대중 위에 두루 덮으며, 또 한량없는 갖가지 보배 깃발을 세웠다.
라바나왕은 이와 같이 변화로 하는 일들을 다하고는 몸이 허공에 오르니, 높이가 다라수(多羅樹)22)의 일곱 배였다. 허공에 있으면서 갖가지 음악과 여러 가지 꽃과 여러 가지 향과 여러 가지 의복을 비 내리듯 하여 허공에 가득하니 마치 큰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것으로 부처님과 불자들에게 두루 공양하였다. 공양을 마치고 위로부터 내려와서, 곧 제2의 번개 광명의 큰 연꽃과 같은 보배산 위에 앉았다.
그때 부처님은 능가왕이 앉는 것을 보시고, 미소를 띄우시면서 능가왕이 두 가지 법을 묻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010_0835_a_15L爾時如來見其坐已發於微笑,聽楞伽王問二種法。
이때 능가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두 가지 법은 제가 이미 과거의 여러 부처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께 물었습니다. 그때 부처님ㆍ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명자(名字)와 글귀에만 의지하므로 또한 부처님께 묻겠사오니,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베풀어 말씀하여 주십시오.
010_0835_b_02L세존이시여, 응화(應化)ㆍ화불(化佛)의 이 두 법을 설하신 것은 본래 여래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본래 여래는 삼매(三昧) 즐거움의 경계를 닦아 얻으신 분이기 때문에 심식(心識) 밖의 모든 경계는 설하시지 아니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에 자재(自在)하시니, 원컨대 세존ㆍ응공ㆍ정변지께서는 이 두 법을 설하옵소서. 모든 불자들과 저희들도 듣기를 원하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곧 능가왕에게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그대는 이 두 법을 묻도록 하라.”
010_0835_b_03L爾時世尊知而卽告楞伽王言:“楞伽王!汝問此二法。”
그때 야차왕은 여러 가지 금관(金冠)과 영락(瓔珞)과 금으로 된 장엄구를 갖추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非法]에 있어서 말하겠는가’라고 하셨으니, 세존이시여, 어찌 두 법을 다 버리라고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무엇이 법이며, 무엇이 법 아닌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법을 버리는데 어찌 둘이 있어, 분별하는 상(相)에 떨어져서 허망하게 있다 없다하고, 법이 작다 크다고 분별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능가왕에게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그대는 병(甁)들이 무상하게 부서지는 법을 보지 못하였는가. 이는 어리석은 범부[毛道凡夫]들이 경계를 분별하는 차별의 모양이다. 능가왕이여, 무슨 까닭으로 법과 법이 아닌 것의 차별된 모양을 그와 같은 것으로 취하지 않느냐. 그는 어리석은 범부들의 분별하는 마음에 의지한 것이요, 성인의 증득한 지혜로 보는 바가 아니다.
능가왕이여, 병 등의 여러 가지 모양은 어리석은 범부의 마음으로 있다고 하는 것이요, 성인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능가왕이여, 비유컨대 하나의 불이 궁전과 동산 숲과 풀과 나무를 불태우는데, 여러 가지 불빛과 불꽃이 각각 차별이 있음은 여러 가지 풀과 나무의 길고 짧음에 의하여 분별하여 보는 것인데, 이 가운데 어찌하여 이와 같이 법과 법이 아닌 차별의 모양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가?
010_0835_c_02L능가왕이여, 불꽃뿐만 아니라, 한결같이 상속(相續)되는 몸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모양의 차별이 있음을 보게 된다. 능가왕이여, 하나의 종자도 한결같이 상속하여 움이 트고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와 나무숲의 갖가지 다른 모양이 생기는 것처럼, 그와 같이 안팎으로 모든 법이 생한다. 무명(無明)과 행(行)과 5음(陰;蘊)과 18계(界)와 6입(入) 등의 모든 법과 3계(界)에서 태어나는 것도 모두 차별이 있다. 또한 즐거운 형상(形相)을 드러냄과 언어와 가고 옴과 훌륭한 지혜도 모양이 다르다. 한 모양[一相]의 경계인데도 여러 모양을 취하므로 하ㆍ중ㆍ상의 차별인 수승(殊勝)한 모양과 더럽고, 깨끗하고, 좋고, 좋지 않는 모양을 보게 된다.
능가왕이여, 여러 가지 법 가운데 차별상을 볼뿐만 아니라, 진실한 도를 깨닫는 이의 안으로 증득하는 행(行)에도 또한 여러 가지의 다른 모양을 볼 수 있으니, 어찌 하물며 법과 법이 아닌 것에 여러 가지 차별상을 분별함이 없겠는가. 능가왕이여, 법과 법 아닌 여러 가지 차별상이 있다.
능가왕이여, 무엇을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일체 외도(外道)와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어리석은 범부들이 분별하는 견해에서 원인인 실물(實物)로부터 근본이 되어 여러 가지 법이 생하는 것이니, 이러한 법들을 마땅히 버리고 여의며, 모양을 취하여 분별을 내거나 자심법(自心法)을 보고 진실로 여기지 말라.
능가왕이여, 병(甁)이란 진실한 법이 없는 것이지만, 어리석은 범부들은 허망하게 분별한다. 법은 본래 모양이 없는 것[無相]임을 참으로 알고 관찰한다면, 모든 법을 버린 것이라 말할 것이다.
010_0835_c_17L楞伽王!無甁實法而毛道凡夫虛妄分別,法本無相,如實知觀名捨諸法。
능가왕이여, 무엇을 법이 아닌 것[非法]이라 하는가? 이른바 몸은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니니, 오직 자심(自心)으로 망상분별을 없애야 한다. 모든 범부는 진실한 법[實法]과 진실하지 않은 법[非實法]을 보지만, 보살은 이를 참답게 보아서 이와 같이 법이 아닌 것을 버린다.
010_0836_a_02L능가왕이여, 또한 무엇이 법 아닌 것인가. 이른바 토끼, 말, 나귀, 낙타의 뿔과 돌계집의 아이는 몸도 없고 모양도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어리석은 범부는 그를 취하여 없다고 하고, 세간의 의리(義理)로 삼아서 이름을 말하니, 그의 모양은 취할 수 없는 것이 저 병 등의 법과 같아서 가히 버려야 한다. 지혜 있는 자는 토끼 뿔 등의 이름을 이와 같이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을 취하지 않으니, 그것 또한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과 법이 아닌 것을 다 버려야 한다.
능가왕이여, 그대가 지금 나에게 법과 법이 아닌 것을 어찌 버려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나는 이미 모두 말하였다. 능가왕이여, 그대가 말하기를, ‘제가 과거의 응공ㆍ정변지께 이미 이 법을 물었더니, 저 부처님께서는 이미 저를 위하여 말씀하셨다’라고 하니, 능가왕이여, 그대가 말한 과거는 곧 분별하는 모양[相]이며, 미래와 현재도 역시 분별인 것이다.
능가왕이여, 내가 말한 진여(眞如)의 법체(法體)가 여실(如實)하다고 하는 것도 또한 분별인 것이다. 색(色)을 분별하여 실제(實際;眞如)로 삼는 것은 진실한 지혜를 증득하고 모양이 없는 지혜[無相智慧]를 좋아하여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지혜의 몸[智身]이고 지혜의 체[智體]라고 분별하지 말라. 마음으로도 분별하지 말 것이요, 뜻으로도 나[我]와 남[人]과 수명[命] 등을 취하지 말 것이다. 어찌하여 분별하지 말라고 하는가? 의식(意識)으로 여러 가지 경계를 취함은 색(色)의 형상과 같으니, 이와 같은 것은 취할 수도 없으며 분별할 수 없는 까닭이다.
능가왕이여, 비유컨대 벽 위에 그려진 여러 가지 그림과 같아서 일체 중생도 또한 그와 같다. 능가왕이여, 일체 중생이 풀과 나무와 같아서 업(業)도 없으며 행(行)도 없다. 능가왕이여, 모든 법과 법이 아닌 것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 능가왕이여, 일체 세간의 법은 모두 환상[幻]과 같지만 모든 외도와 범부는 이를 알지 못함이다.
010_0836_b_02L능가왕이여, 비유컨대 거울 속에 모양이 스스로 제 모양을 보는 것 같으며, 또한 물 속에 그림자가 스스로 제 그림자를 보는 것 같고, 달빛과 등불 빛이 방안에 있으면서 그 그림자가 스스로 제 그림자를 보는 것 같으며, 허공에 메아리 소리가 스스로 소리를 내고 그를 제 소리인 것처럼 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이와 같이 법과 법이 아닌 것을 취한다면, 이는 모두 허망한 망상 분별이다. 그러므로 법과 법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하고, 허망함만을 더욱 더하여 적멸(寂滅)을 얻지 못한다. 적멸은 일심(一心)인 것이요, 일심은 곧 여래장(如來藏)이니, 이는 자기 몸 안으로 지혜의 경계에 드는 것이며, 무생법인(無生法忍) 삼매를 얻는 것이다.”
생긴다는 견해[生見], 생기지 않는다는 견해[不生見], 항상 한다는 견해[常見], 항상하지 않는다는 견해[無常見], 모양이 있는 견해[相見], 모양이 없는 견해[無相見], 머물고 변해 간다는 견해[住異見], 머물고 변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非住異見], 찰나라는 견해[刹那見], 찰나가 아니라는 견해[非刹那見], 자성을 떠난 견해[離自性見], 자성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견해[非離自性見], 공이라는 견해[空見], 공이 아니라는 견해[非空見], 단멸의 견해[斷滅見], 단멸이 아니라는 견해[非斷滅見],
마음의 견해[心見], 마음이 아니라는 견해[非心見], 치우친 견해[邊見], 치우침이 아니라는 견해[非邊見], 중도의 견해[中見], 중도가 아니라는 견해[非中見], 변한다는 견해[變見],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非變見], 반연의 견해[緣見], 반연이 아니라는 견해[非緣見], 원인의 견해[因見], 원인이 아니라는 견해[非因見], 번뇌의 견해[煩惱見], 번뇌가 아니라는 견해[非煩惱見], 애착의 견해[愛見], 애착이 아니라는 견해[非愛見], 방편의 견해[方便見], 방편이 아니라는 견해[非方便見], 교묘한 견해[巧見], 교묘한 것이 아닌 견해[非巧見], 깨끗한 견해[淨見], 깨끗함이 아니라는 견해[非淨見],
서로 합하는 견해[相應見], 서로 합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非相應見], 비유의 견해[譬喩見], 비유가 아니라는 견해[非譬喩見], 제자의 견해[弟子見], 제자가 아니라는 견해[非弟子見], 스승의 견해[師見], 스승 이 아닌 견해[非師見], 성품인 견해[性見], 성품이 아닌 견해[非性見], 법의 견해[棄見], 법이 아닌 견해[非棄見], 적정의 견해[寂靜見], 적정이 아닌 견해[非寂靜見], 원함의 견해[願見], 원 함이 아닌 견해[非願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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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838_c_02L 작은 티끌의 견해[微塵見], 작은 티끌이 아닌 견해[非微塵見], 물의 견해[水見], 물이 아닌 견해[非水見], 활의 견해[弓見], 활이 아닌 견해[非弓見], 사대의 견해[四大見], 사대가 아닌 견해[非四大見], 수의 견해[數見], 수가 아닌 견해[非數見], 신통의 견해[通見], 신통이 아닌 견해[非通見], 허망의 견해[虛妄見], 허망이 아닌 견해[非虛妄見], 구름인 견해[雲見], 구름이 아닌 견해[非雲見], 공교라는 견해[工巧見], 공교가 아닌 견해[非工巧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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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839_a_02L 보호함의 견해[護見], 보호하는 것이 아닌 견해[非護見], 종족의 견해[族姓見], 종족이 아닌 견해[非族姓見], 신선의 견해[仙人見], 신선이 아닌 견해[非仙人見], 왕의 견해[王見], 왕이 아닌 견해[非王見], 잡아먹는 견해[捕取見], 잡아먹는 것이 아닌 견해[非捕取見], 진실하다는 견해[實見], 진실이 아니라는 견해[非實見], 기억하는 견해[記見], 기억이 아닌 견해[非記見], 일천제의 견해[一闡提見], 일천제가 아닌 견해[非一闡提見], 남녀인 견해[男女見], 남녀가 아닌 견해[非男女見],
맛의 견해[味見], 맛이 아닌 견해[非味見], 짓는 것인 견해[作見], 짓는 것이 아닌 견해[非作見], 몸이라는 견해[身見], 몸이라는 것이 아닌 견해[非身見], 지각의 견해[覺見], 지각이 아닌 견해[非覺見], 움직임의 견해[動見], 움직임이 아닌 견해[非動見], 몸 부분의 견해[根見], 몸 부분이 아닌 견해[非根見], 유위의 견해[有爲見], 유위가 아닌 견해[非有爲見], 인과의 견해[因果見], 인과가 아닌 견해[非因果見], 색구경의 견해[色究竟見], 색구경이 아닌 견해[非色究竟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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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명 Malaya, 혹은 마라야(魔羅耶), 마라연(摩羅延), 마리산(摩梨山)이라고도 한다. 남천축의 마리가라야국(摩利伽羅耶國)의 남방에 위치하고, 그 산에 백전단목(白旃檀木)이 있어 전단향(旃檀香)이 나온다고 한다.
2)명(名), 상(相), 분별(分別), 정지(正智), 진여(眞如)의 다섯을 칭함. 명은 현상계에서 세우는 가명(假名)을 가리키고, 상은 유위법(有爲法)으로 각각 인연으로 생하여 각종의 차별적인 모습을 가리키며, 분별은 명ㆍ상 2법으로부터 분별심을 일으켜 허망한 염(念)을 생하는 것을 가리키고, 정지는 진여와 계합(契合)하는 지혜, 진여(如如)는 바로 평등여실(平等如實)한 진리를 가리킨다. 앞의 셋은 미법(迷法)이고, 뒤의 둘은 오법(悟法)을 이룬다.
3)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를 가리키며, 또한 인공(人空)과 법공(法空),혹은 아법이공(我法二空)이라고 칭한다.
4)범어 Nayuta,혹은 나유다(那庾多), 나술(那術), 나술(那述)이라고도 하고, 억(億)을 말함. 당시 억은 십만, 백만, 천만 등의 세 가지를 의미하여 그 수가 서로 다름. 『본행경(本行經)』에서는 “나유타는 수(隋)의 말로 천만을 가리킨다[那由他, 隋言數千萬.]”라고 하고, 『현응음의(玄應音義)』에서는 “나술(那術)은 경전에서 나술(那述)이라고도 한다. …… 혹은 나유타(那由他)라고도 하지만 바르게 말한다면 나유다(那庾多)로서 중국에서는 십만을 가리킨다[那術, 經文作述,……或言那由他, 正言那庾多. 當中國十萬也.]”라고 한다.
5)범어 toṭaka, 가영(歌詠), 찬탄(贊嘆)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운율(韻律).
6)숙가(叔迦)는 앵무(鸚鵡)로 의역되고, 바라나는 야차(夜叉)의 다른 명칭.
7)7권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서는 “十首 羅婆那”로 되어 있다.
8)범어 kumbhakaraṇa, 라바나(羅婆那) 야차왕(夜叉王)의 형제.
9)7권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서는 “可愛無憂園”으로 되어 있다.
10)7권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의 이와 상응하는 구절에서는 “이곳은 깊고 깊은 관행(觀行)을 수행하여 법락(法樂)을 얻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此是修行甚深觀行現法樂者之所住處]”라고 되어 있다.
11)고려대장경본에는 “大智”로 되어 있지만, 송(宋)ㆍ원(元)ㆍ명(明)본 대장경과 7권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는 “大慧”로 되어 있음.
12)베다란 ‘지식’ 또는 ‘종교적 지식’을 의미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베다 문헌은 『리그 베다:Ṛgveda』 『사마 베다;Smaveda』 『야주르 베다; Yajurveda』 『아타르바 베다;Atharvaveda』의 4종류가 있다. 이 4종류의 구별은 고대 인도의 아리안족이 제식(祭式)을 지낼 때 제관(祭官)의 역할에 따라 구분한 데 유래한다. 『리그 베다』는 제신(諸神)을 제장(祭場)으로 불러들이는 권청(勸請), 『사마 베다』는 제장에서의 가창(歌唱), 『야주르 베다』는 제사의 진행과 관계가 있고, 『아타르바 베다』는 재앙의 제거, 조복(調伏) 등의 주술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BC 1500~BC 1000년경에 이루어졌다.
13)범어 samāpatti,음역으로 삼마발저(三摩鉢底), 삼마월(三摩越)이라고도 하고, 등지(等至), 정수(正受), 정정현전(正定現前) 등으로 의역한다. 혼침(惛沈), 도거(掉擧) 등을 멀리 떠나 신심(身心)으로 하여금 평등안락(平等安樂)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을 가리킴.
14)‘진여(眞如)’를 공(空)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을 말함. 여실불공(如實不空)의 반대.
15)7권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는 “여래 지혜의 경지[如來智地]”로 되어 있음.
16)범어 anutpattika-dharma-kṣānti. 무생(無生)의 법리(法理)를 인증(認證)한다는 의미로서, 일체의 제법이 불생불멸(不生不滅)임을 확신하여 부동심(不動心)에 안주(安住)함을 말함. 『대지도론(大智度論)』50권에 의하면, “생멸이 없는 제법의 실상(實相)에서 신수(信受)하고 통달하여 의심이 없어 물러나지 않음으로 무생법인이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대정장(大正藏)』, 25, 417, 下)
17)7권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는 “언어문자[語言文字]”로 되어 있음.
18)고려대장경본은 “得地對治方便觀察 如實智慧能入內身如實之相三昧樂行三昧 佛卽攝取汝身”라고 되어 있고, 7권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는 “善知諸地修習對治證眞實義入三昧樂爲諸如來攝受”로 되어 있음. 7권본 참조 번역.
19)십지(十地) 가운데 제8지. 이 지위에 오른 보살은 수행을 완성하여 흔들림이 없다. ‘부동(不動)’이란 명칭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곳의 보살은 깊이 있는 실천을 하므로 ‘심행보살(深行菩薩)’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무공용지(無功用地)’라고도 하는데, ‘무공’은 어떤 의도나 목적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지혜가 견고하여 돌아가지 않으므로 ‘부전지(不轉地)’, 큰 덕을 갖추므로 ‘멸덕지(威德地)’, 색욕(色慾)이 끊어진 상태이므로 ‘동진지(童眞地)’, 어디에나 뜻대로 태어날 수 있으므로 ‘자재지(自在地)’, 완성된 단계이므로 ‘성지(成地)’, 궁극적으로 알고 있으므로 ‘구경지(究竟地)’, 항상 큰 서원을 내므로 ‘변화지(變化地)’, 깨뜨릴 수 없으므로 ‘주지지(住持地)’, 선근을 이미 닦았으므로 ‘무공덕력지(無功德力地)’라고도 부른다.
20)십지 가운데 제9지. 이 지위에 오른 보살은 지혜가 뛰어나 어떤 곳에 있게 되더라도 상황에 맞게 설법한다. 곧 모든 중생들의 마음과 근기, 욕망 등을 잘 살피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불법을 전할 수 있다. 이 지위에 오른 보살은 법에 걸림이 없는 법무애지(法無礙智), 뜻에 걸림이 없는 의무애지(意無礙智), 말에 걸림이 없는 언무애지(言無礙智), 즐거운 설법[樂說]에 걸림이 없는 락설무애지(樂說無礙智) 등의 ‘사무애지(四無碍智)’를 갖추게 된다.
21)십지의 마지막 단계로서, 보살이 이 계위(階位)를 성취하면 완전한 불도(佛道)를 이루게 된다. 곧 부처와 같은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경지이다. ‘법운지’라는 명칭은 하늘의 구름이 단비를 뿌리듯 지혜의 구름이 단비를 내리게 하는 경지라는 뜻이다. 이 계위에 드는 보살은 십바라밀 가운데 ‘지바라밀(智波羅密)’을 원만히 수행하여 무량백천삼매(無量百千三昧)를 얻고, 욕계ㆍ색계ㆍ무색계ㆍ중생계ㆍ허공계ㆍ열반계 등을 모두 알며, ‘불가사의해탈(不可思議解脫)’, ‘무장애해탈(無障碍解脫)’, ‘여래장해탈(如來藏解脫)’, ‘법계장해탈(法界藏解脫)’, ‘통달삼세해탈(通達三世解脫)’ 등의 지혜를 모두 통달한다. 또한 넓고 깊은 바다가 지닌 10가지 덕, 즉 ‘십덕(十德)’을 갖추는데, 십덕은 ① 점점 깊어지는 덕, ② 죽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음, ③ 어떤 물도 바다에 들어오면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림, ④ 모두 한가지 맛임, ⑤ 보배가 많음, ⑥ 지극히 깊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음, ⑦ 넓고 크기가 한량없음, ⑧ 몸이 큰 중생이 많음. ⑨ 들어오고 나가는 물이 때를 어기지 않음, ⑩ 비가 아무리 내려도 넘치는 일이 없음을 말한다.
22)다라수(多羅樹):인도, 말레이시아 등의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로서 높이가 약 20여 미터가 되고, 하얀 꽃과 석류 비슷한 붉은 열매를 맺어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고 함.
23)阿闍梨:팔리어 ācārya의 음역(音譯)으로 일반적으로 스승의 의미를 갖는다. 인도불교에서는 제자의 궤범(軌範)이 되어 교수(敎授)하기 때문에 ‘궤범사(軌範師)’ 또는 ‘정행(正行)’으로 의역(意譯)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