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죽림원 사방의 주변 지역에서는 자연적으로 문타반꽃[文陀般華]이 피어나 있었는데 세상에서 본 적이 없는 갖가지 그 꽃들은 미묘한 색을 띠고 있었다. 그 꽃들마다 백만 개의 잎이 있었고, 꽃 위에는 각각의 부처님께서 앉아 계셨으며, 부처님 위에는 각각 교로보(交露寶)1)로 만든 일산[蓋]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각 일산 사이에서는 기악(伎樂)의 소리가 울려 나왔다. 한 분 부처님의 앞마다 각각 보살이 있었으니 모두 문수사리와 비등하였으며 앉은 채 일에 대해 물었다.
죽림원 국토는 마치 3미륵불(彌勒佛)의 국토와 같이 모두 다 평등하였으며 대천찰토(大千刹土)의 해와 달의 빛은 모두 다 가려지고 사라져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었다. 백 일 동안 다만 부처님만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을 본 모든 대지옥[大泥犁]은 모두 휴식을 얻었고, 온갖 새와 짐승들은 마시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모두 법미(法味)를 얻어 백 일 동안 편안했다. 부처님을 뵈면 환희하여 저절로 음식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고, 모든 인민(人民)들도 대부분 법미를 얻게 되어 백 일 동안 안온했으며 음식에 대한 생각이 없어졌다. 그리고 마음과 생각이 상쾌해져 더할 나위없는 마음[無上意]을 내게 되었고, 모든 나무들은 다 음성을 내었다.
010_1191_b_02L죽림원 가운데엔 변화로 연못이 생겨났는데 그 연못에서는 10만 가지의 꽃이 피어났다. 꽃마다 교로(交露:구슬장식)로 만들어진 사자좌(師子座)가 있었고, 그 자리마다 보살이 앉아 있었으며, 그 주위에는 각각 천인(天人) 등이 서 있었고, 휘장 사이에서는 온갖 종류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천 년이 지난 고목에서 모두 꽃과 잎이 피어 났고, 모든 나무들은 다 죽림원을 향해 서로 기울어져 있었다. 죽림원 주변에 있던 여인들은 부처님을 뵙고서 모두 다 남자로 변하였고 다시는 애욕이 없었으며, 모두 다 법안(法眼)을 증득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넓고 크게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지으시자 9만억 부처님 세계가 다 감동하였다. 그리고 사방과 네 간방[四隅]과 상하의 끝없이 많은 부처님 세계에서 각각 보살을 보냈는데 모두 미묘한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와서 예를 올리고 공양을 마친 뒤에 각자 물러나 앉았다.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 사왕천(四王天)과 애욕을 가진 여러 하늘들은 허공에 있던 그들 각각의 권속들과 함께 하늘의 꽃과 향, 기악(伎樂)을 가지고 와서 공양하였다. 여러 천왕(天王)과 용왕(龍王), 아수륜왕(阿須倫王), 가루라(迦樓羅), 진다라(眞陀羅), 마휴륵(摩休勒) 등은 각자 그들의 무수한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 처소로 찾아와 예를 올리고 공양을 올렸다.
사리불(舍利弗)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감응이 움직인 것은 어떤 상서로움에 대한 감응입니까?”
010_1191_b_11L舍利弗白佛言:“今所感動是何瑞應?”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감응이 없는 감응[無應之應]이 바로 그 감응이니라.”
010_1191_b_12L佛言:“無應之應是其應也。”
사리불이 말했다. “감응이 없는 감응이라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010_1191_b_13L舍利弗言:“無應之應其義云何?”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너는 보래(寶來)보살에게 가서 물어보아라. 그러면 곧 마땅히 너를 위하여 그 뜻을 연설해 줄 것이니라.”
010_1191_b_14L佛言:“汝往問於寶來菩薩,則當爲汝演說此義。”
그러자 바로 사리불이 보래보살에게 물었다. “지금 이 감응의 움직임은 어떤 상서로운 감응을 위한 것입니까?”
010_1191_b_15L卽時舍利弗問寶來曰:“今此感動爲何瑞應?”
보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아라한[羅漢]은 의혹이 깊기 때문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작법(作法)을 소진시킬 수 없게 합니다. 생각[想]이 없으면 지어짐[作]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법보(法寶)입니다.
옛날에 내가 처음 발심하여 36억 사람들과 함께 보살도(菩薩道)를 구할 때 석가문(釋迦文)부처님께서도 또한 그 가운데 계셨습니다. 모든 생각하는 것은 다 일어남[起]과 멸함[滅]이 있지만 모든 법은 본래 공하나니, 비유하면 아지랑이[野馬]와 같아서 생각도 없고 일어남도 지어짐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을 지어서 소멸하고 행하는 것을 가지고서 원상욕(願想欲)을 구해 얻어 가지고는 스스로 도를 얻었다고 말하나니, 생각을 일으킨 죄근(罪根)이 모든 지혜를 괴멸시킵니다.
010_1191_c_02L삼존(三尊)에게서 생각을 일으켜 니원(泥洹:洹槃)을 취해 의심을 없애고 멸신(滅身)하기를 구하지만 생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니원을 증득하는 것은 비유하면 잠 속에 빠진 사람과 같아서 그 몸은 침상에서 한때 휴식을 취하지만 목숨은 몸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라한이 이 선정[禪]을 얻었기 때문에 이렇게 큰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보래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물었다. “비유하면 용왕이 구름과 비를 일으키는 것과 같아서 사면이 어두워지면 구름과 비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보살이 제9지[第九地] 이하로부터 육만삼매(六萬三昧)를 다 체득했기 때문에 그 지은 바가 한계가 없거늘 어떻게 또다시 의심이 온 곳이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저는 배우긴 했지만 선지식(善知識)을 체득하지 못했으므로 의심의 뿌리를 단절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존귀한 법을 들어도 무익할 뿐입니다. 비유하면 사람이 온갖 새를 위하여 음악을 연주하여 그 음악이 비록 조화를 이루고 미묘하더라도 새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의 저도 이와 같아서 이 법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 배우는 보살대사(菩薩大士)가 모두 이 삼매에 대해 들으면 그 덕과 존귀함은 무량할 것이니, 비유하면 밤에 불빛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불이 꺼지면 어둠 때문에 다시금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저도 이와 같아서 무익할 따름입니다.
제가 8천 리에 불을 지펴서 이 몸을 그 가운데에 던져 억 겁이 지난 뒤에 비로소 나오기를 바라며, 그리고 다시 3악도(惡道)에 들어 모든 곳에서 수천억 겁 동안 감식(噉食)을 당한 뒤에 사람이 되어 나와 선지식을 구한다면 비로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얻을 수 없겠습니까?”
010_1192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질문한 것이 깊고도 오묘하니, 비로소 생사의 근본을 결연히 끊으려하고 있구나. 지금 그대를 위하여 진리를 말하리니 그것을 잘 받아 듣도록 하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증득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아홉 가지 법보(法寶)를 실천하여야 하느니라.
첫째는 모든 하늘은 처소가 없고 다만 그 이름만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요, 둘째는 세간 인민은 다만 문자만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며, 셋째는 다섯 갈래 세계[五道]에서 근심과 괴로움을 받는 것은 다만 괴로움의 습기만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며, 넷째는 땅ㆍ물ㆍ불ㆍ바람도 역시 본래 공한 것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며, 다섯째는 미래ㆍ과거ㆍ현재도 파초(芭蕉)와 같아서 아무런 생각[想]이 없다고 보는 것이니라.
여섯째는 눈앞에 나타나 있는 나고 죽음은 본제(本際)2)가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며, 일곱째는 모든 삼매는 적연(寂然)하여 가고 옴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며, 여덟째는 마땅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와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관찰하고는 그 가운데[中]에서3) 얻을 것이 없다는 이치를 깨달아 아는 삼매이며, 아홉째는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일체 중생을 보고 이들을 모두 제도해서 부처님과 동등하게 되도록 해야겠다고 하는 이것이 아홉 가지 보배이니라.
이와 같이 작용이 없는 생각[無作之想]을 증득하면 일체의 큰 생각을 결단할 수 있느니라.”
010_1192_a_11L得是無作之想者,可得決斷一切大想。”
보래보살이 다시 아뢰었다. “모든 법이 생각이 없다면 마땅히 무엇을 지어서 머물러야 머무를 대상이 없는 법을 증득할 수 있습니까?”
010_1192_a_12L寶來又問:“諸法無想,當作何住得無所住?”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머무름이 없으니, 머무른다고 하면 그것은 고정관념[想]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생각[念]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나니, ‘고정관념이 아니니, 도(道)가 아니다’ 하는 것도 또한 고정관념일 뿐이니라. 그러므로 고정관념이 없기를 바라는 것까지 끊어버려야 머무름이 없는 데에 머물 수 있느니라.”
보래보살이 또 물었다. “마땅히 어떠한 인연을 지어야 숱한 욕망[衆欲]에서 제도될 수 있습니까?”
010_1192_a_15L寶來又問:“當作何緣度於衆欲?”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숱한 욕망은 때[垢]도 없고 해탈할 것도 없으며, 주인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느니라. 욕망은 허공을 관찰하는 것과 같고, 니원과 동등하며 무명(無名)과도 같은 것이니라.”
010_1192_a_16L佛言:“衆欲無垢無度無主無往無來,如虛空觀與泥洹等與無名等。”
보래보살이 말했다. “훌륭하고도 훌륭하십니다. 이렇게까지 깊고 오묘하다니.”
010_1192_a_18L寶來菩薩言:“善哉善哉!深妙乃爾。”
반시보살(般施菩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들은 불수(佛樹:菩提樹) 아래에 앉고 싶어하고 부처님 국토를 웅장하게 꾸미고 시방세계 중생을 인도하며 교화시키고 싶어하여, 모든 부처님 국토의 중생들로 하여금 지금의 죽림원과 같게 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나는 곳이 없다[無所從生]는 것을 두루 체득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법을 수행해야만 이것이 성취될 수 있겠습니까?”
010_1192_b_02L첫째, 바른 것은 이름이 없는 음향(音響)이라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고, 둘째, 바른 것은 이름이 없는 소리임을 바르게 아는 것이며, 셋째, 바른 것은 시방세계 부처님 국토는 둘이 아님을 바르게 보는 것이고, 넷째, 바른 것은 삼천대천세계를 살펴보면 부처님 국토의 법과 같아서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라.
다섯째, 바른 것은 시방세계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니라. 여섯째, 바른 것은 무형(無形)의 것에서 온갖 것들은 일어남과 멸함이 없다는 것을 보고 바르게 아는 것이고, 일곱째, 바른 것은 모든 삼매에 들어가 가고 오는 상보(相報)라는 생각이 없음을 보아 바르게 아는 것이여, 여덟째, 바른 것은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은 반니원(般泥洹)이거나 반니원이 아니거나 간에 그것 또한 다 평등한 것으로서 다르지 않음을 보아 바르게 아는 것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 역시 본원이 아니요, 또한 본원을 아주 여읜 것도 아니니라. 항상 정진하고 수행하면 여러 가지 삼매를 잃지 않게 되느니라. 그리고 늘 선지식을 따르고 잡다한 일들을 멀리해야 하며, 적연하게 머물기 위해서는 자주 모이지 말고 오로지 뜻을 삼매에 두어야 하느니라. 이제 그런 까닭으로 해서 큰 모임 위로 보배 구슬을 비처럼 내리게 했던 것이니라.”
보래보살이 다시 물었다. “새로 발심한 보살이 이 삼매를 실천하려면 마땅히 어떻게 해야 이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010_1192_b_16L寶來復問:“新發意菩薩欲行是三昧,當云何行而得致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여덟 가지 법보를 닦아야만 이 삼매를 얻을 수 있느니라.
佛言:“當行八法寶得是三昧。
첫째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삼매를 얻는 것이고, 둘째는 시방세계의 나한진인(羅漢眞人)에게 공양하면서 게으름 없이 억 겁 동안 보살법을 실천하다가 어느 때 이 삼매의 존귀한 법을 들으면 곧바로 말뜻을 이해하고 세존을 친근히 하여 멀리 여의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셋째는 사리(舍利)에 공양하고 불탑(佛塔)을 가득하게 일으켜 복덕을 심은 것에 아무런 결함이 없다 해도 법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한순간 마음을 돌려 실천을 지으면 곧 지혜의 문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고, 넷째는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四無所畏]을 증득하여 시방세계의 나고 죽음을 멀리 여읠 것조차도 없는 것이니라.
010_1192_c_02L다섯째는 보살이 다섯 갈래의 세계에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그들을 괴로움에서 건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구제하되 극단적이지 않게 하는 것이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안온함을 얻어 부처의 지위에 오르게 하려 하는 것이니라. 여섯째는 보살로서 사람들을 섬기기를 마치 여자 노비가 대장부[大夫]의 귀인을 섬기듯 해야 하고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그들을 제도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구하는 것이 없는[無] 것임을 알기 때문이니라. 일곱째는 보살이 아흔여섯 종류의 외도(外道)들을 몸소 관찰하고는 그 가운데에서 깨닫고 알게 해 법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덟째는 6바라밀(波羅蜜)을 받들어 실천하여 비구 스님을 비록 억만 겁 동안 공양한다 해도 그것은 한 번 이 삼매를 듣는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시방세계의 어떤 사람이 마땅히 부처가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증명하겠는가? 이 삼매를 듣는 것이니, 그렇게 한 사람은 부처가 되었다는 증명을 얻은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이 삼매를 실천하여 기뻐하고 믿고 즐거워하며 지혜에 대해 이해한다면 이 사람은 곧 이미 육만삼매(六萬三昧)를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여덟 가지 법보이니라.”
010_1192_c_11L其有發意向是三昧,歡喜信樂而解慧者,卽爲已解六萬三昧,是爲八法寶。”
“이 삼매를 실천하면 곧바로 다린니문(陀隣尼門)을 얻을 수 있습니까?”
010_1192_c_13L“行是三昧卽得陁鄰尼門。”
부처님께서 이때 흔연히 미소를 지으시자 밝은 빛이 환하게 빛나 두루 비추지 않는 곳이 없었다.
010_1192_c_14L佛於爾時欣然而笑,光耀煒曄,靡不遍照。
문수사리가 머리를 땅에 대어 공손히 절하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헛되이 미소를 짓지 않으십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뜻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010_1192_c_15L文殊師利稽首白佛:“佛不虛笑,笑將有意。”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지난번에 말한 바와 같으니라.
佛語文殊:“審如所言。
이 보래보살은 보여래[寶如來] 부처님의 세계에서 왔느니라. 여기에서 9억만 부처님 국토를 지나면 그 이름이 제법자연(諸法自然)인 부처님 세계가 있느니라. 그곳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가서 태어나면 어머니의 태를 빌리지 않고 다시는 고통이 없으며, 애욕을 생각하지 않아 모두 다 저절로 꽃향기 속에서 태어나는데, 태어나자마자 서고 머물 수 있으며 먹을 것도 먹지 않느니라. 그리고 저절로 기악(伎樂)이 연주되어 아침ㆍ저녁으로 즐기며 노닐고, 고요하고 맑고 깨끗함으로써 법승(法僧)이 되었느니라.
010_1193_a_02L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삼매를 들으면 곧바로 6만 4천만 겁의 죄업을 물리칠 수 있으며, 죄가 다하고 목숨을 마치고 나면 다시금 저 불국토에 가 나게 됨을 증득할 것이니라. 보여래의 국토에는 해와 달의 빛이 없고 비록 해와 달의 빛이 있다 해도 가려 나타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그곳에 가서 태어나게 되면 해와 달, 별이 곧바로 나타날 것이고, 그들이 해와 달, 별을 보게 되면 광명이 있게 될 것이니라. 즉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마땅히 가서 태어날 것이지만 모든 성문(聲聞)들은 이것을 알아 체득하지는 못하느니라. 오직 불세존과 신통력을 지닌 보살들만이 그것을 보고 알 수 있나니, 이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웃었던 것이니라.”
현자(賢者) 수보리(須菩提)와 사리불이 함께 앞에서 머리 숙여 예를 올리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큰 은혜를 베푸시고 저희들에게 위신력을 더하여 제법자연국(諸法自然國)이라는 저 국토에 가게 해 주십시오. 거기에서 잠깐 동안[須臾]4)만이라도 예를 올리고 공양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질문하였다. “달살아갈(怛薩阿竭)5)께서도 우리들을 따라서 오셨습니까?”
010_1193_a_13L舍利弗問須菩提:“怛薩阿竭隨我來乎?”
수보리와 사리불은 예 올리기를 다 마친 뒤에 그 온 곳을 따라 돌아왔는데, 가서 보니 많은 모임들이 그대로 연속된 것 같았다.
010_1193_a_14L須菩提、舍利弗,禮事畢訖,從彼來還,至睹衆會,續自如故。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물으셨다. “그 나라로 가서 다들 어떠한 것들을 보았느냐?”
010_1193_a_16L佛問舍利弗:“向至彼國,皆何等見?”
대답하였다. “저희들이 그 나라를 살펴보았더니 모두 이 세계와 같았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공덕은 매우 존귀하고도 존귀하신데, 매우 다행스럽게도 모임에 모인 사람들은 이것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010_1193_a_17L對曰:“我見彼國悉如此閒。諸佛之功德甚尊甚尊,僥哉!會者得遇見此也。”
삼미(三彌)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로잡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서 바라던 바를 아뢰었다. “생겨남이 없는 법인[無生忍]에 생각[想]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에는 인식작용[識]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니원(泥洹)에는 적연(寂然)함이 있습니까? 정(定)이 있습니까? 열반에는 일어남이 없다고 말한다면 형태[形]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령 형태가 없다고 한다면 저 세간에서의 가르침은 존재하는 것이며 그리고 다섯 갈래 세계의 생사에 있어 어느 누가 바로 주인이 됩니까?”
010_1193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가 무(無)이며 일체가 맑고 깨끗한 것인데, 인연이 생겨나고 멸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니라. 공(空)을 가지고 공을 만들고 본래가 모인 것, 이것이 바로 주인이 되느니라.”
010_1193_a_24L佛言:“諸法本無一切淸淨,因緣起滅故生諸法,以空造空本無是主。”
삼미보살은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 여러 하늘과 사람들 8만 6천 명이 다 어디부터든 생겨남이 없는 법인을 얻었으며, 거리가 땅에서부터 160길[丈]쯤 떨어진 허공에 올라가 머물렀다. 그리고는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와서 부처님의 발아래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땅이 크게 진동하자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조금 전에 땅이 진동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상서로움에 대한 감응이 있어서 그랬습니까?”
010_1193_b_06L是時,三千大千剎土地大震動,彌勒菩薩白佛言:“向者地動是何瑞應?”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땅이 진동한 것은 비단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니니라. 시방 모든 부처님의 국토도 마찬가지로 다 진동하였느니라. 또한 모든 세계에는 각각 8만 6천의 여러 하늘과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디부터든 생겨남이 없는 법인을 증득하여 허공에 머무름이 모두 다 이와 같으니라.”
첫째는 모든 법이 맑고 깨끗한 것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하늘은 또한 맑고 깨끗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생사는 맑고 깨끗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고, 넷째는 다섯 갈래의 세계는 맑고 깨끗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다섯째는 욕망을 구하지 않음이 맑고 깨끗하다고 보는 것이고, 여섯째는 삼계(三界)의 색(色)은 맑고 깨끗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일곱째는 니원이 맑고 깨끗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고, 여덟째는 니리(泥犁:지옥)가 맑고 깨끗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아홉째는 시방세계는 거명(擧名)함이 없다고 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육만삼매를 증득한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니, 삼매를 끝까지 다했다 해도 다 구족했다고 할 수는 없느니라. 또한 삼매는 단지 한 종류[品]만 있는 것이 아니니라.
010_1193_c_15L佛言:“雖得六萬三昧但有名耳,不可極盡三昧悉具足;又三昧者非但一品。
생각이 없는[無念] 삼매가 있고, 욕심을 여읜[離欲] 삼매가 있으며, 앉아서 시방세계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坐聽十方佛] 삼매도 있고,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꽃과 향으로 웅장하게 꾸미는[莊嚴諸佛國土華香自然來] 삼매가 있으며, 설법을 하여 모든 사람들을 다 근본에 이르게 하는[所說法一切人悉逮本] 삼매가 있고, 모든 법에서 벗어나 돌이켜 생각함이 없는[出諸法無還想] 삼매가 있느니라.
010_1194_a_02L경(經)을 말할 때에 변화하여 백 가지 음성이 되게 하는[說經時化爲百種音聲] 삼매가 있고, 설법을 할 때 억천만 부처님 국토에서 꽃과 향이 저절로 오는[說法億千萬佛國華香自然] 삼매가 있으며, 모든 군생들을 항복받는[伏諸群生] 삼매가 있고, 사자의를 내어 홀로 실천하고 홀로 걷는[發師子意獨行獨步] 삼매도 있으며, 보는 처소마다 아뇩다라삼야삼보리를 내지 않음이 없는[所見處莫不發阿耨多羅三耶三菩提] 삼매가 있고, 처해 있는 곳에서 공양을 하지 않음이 없는[所在處莫不供養] 삼매가 있느니라.
거센 바람이 한 번 일어날 때 마치 부처님께서 경을 말씀하시는 소리와 같은[亂風一起時如佛說經聲] 삼매도 있고, 향해 가는 문마다 열리지 않음이 없는[所向門莫不開] 삼매가 있으며, 처해 있는 곳마다 다 사자좌가 나타나는[所在處師子爲現] 삼매가 있고, 시방세계 어느 곳이나 다 날아서 이르는[飛到十方] 삼매도 있으며, 문을 향해 가면 열리지 아니함이 없어서 시방세계의 보살이 오고 감이 끊어지지 않는[向門莫不開十方菩薩往來無極] 삼매가 있고, 앉아서도 시방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坐知十方人意] 삼매도 있느니라.
모든 생각을 괴멸하는[壞滅諸想] 삼매가 있고, 모든 식을 괴멸하는[壞滅諸識] 삼매도 있으며, 시방세계의 모든 국토를 합하여 한 국토로 만드는[合十方諸刹土合爲一刹] 삼매도 있고, 마음을 발함이 다함이 없는[發意不盡] 삼매도 있으며, 삼계를 보아도 한 사람도 없다고 여기는[視三界了無一人] 삼매도 있고, 한 부처님 국토에 머무르면서도 한 부처님 국토에 이르는[住一佛國到一佛國] 삼매도 있느니라.
처해 있는 곳이 법으로 하여금 단절되지 않게 하는[所在處令法不斷絶] 삼매도 있고, 처해 있는 곳마다 항상 부처님을 서로 만나는[所在常與佛相遇] 삼매가 있으며, 앉아서 시방세계의 큰 군대ㆍ큰 불ㆍ큰 물ㆍ큰 바람을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가운데에 다 머물러 가르치고 인도하는[坐觀十方大兵大火大水大風於其中不恐怖悉往敎導之] 삼매가 있고, 처해 있는 곳마다 다만 법으로써 그릇을 만드는[所在處但以法作器] 삼매가 있으며,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삼매를 듣고 돌아감이 없는 생각에 왕래하는[善男子善女人聞是三昧卽得往來無還之想] 삼매가 있느니라.
이러한 삼매는 이루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모임 가운데에서 그것을 대강 말했을 뿐이니라.
010_1194_a_17L如是三昧不可極盡,今爲會中粗說之耳。
또 이름이 없는[無名] 삼매도 있고, 모든 법에 머무는[住諸法] 삼매가 있으며, 모든 지혜라고 이름하는[名諸慧] 삼매가 있고, 법을 가르치는[敎法] 삼매도 있으며, 아라한과 벽지불을 멸하여 무너뜨리는[滅壞羅漢辟支佛] 삼매가 있고, 법보(法寶] 삼매도 있으며, 총지무명법(總持無名法) 삼매도 있고, 남의 마음을 아는[知人意] 삼매가 있으며, 모든 번뇌를 끊는[斷諸煩荷] 삼매도 있고, 제력욕각(制力欲覺) 삼매도 있느니라.
010_1194_b_02L시방세계 번뇌 종자의 힘을 멸하는[滅十方種力] 삼매가 있고, 수행하는 처소를 지혜의 광명으로 비추어 주는[智慧光明所處] 삼매도 있으며, 헤아릴 수 없는[不可計] 삼매가 있고, 법을 보아도 물속의 그림자를 보는 것같이 하는[見法時如水影] 삼매도 있으며, 깨끗한 지혜가 다함이 없는[不可盡淨慧] 삼매가 있고, 모든 악행이 공하여 사라지는[空諸惡] 삼매가 있으며, 원하는 생각이 없는[無願想] 삼매가 있고, 선정에 머물러 마침내 니원에 이르는[住禪乃到泥洹] 삼매도 있느니라.
비유하면 금강같이 견고하고 더러움이 없는[譬若金剛無穢] 삼매가 있고, 광명이 지극한[極明] 삼매가 있으며, 모든 번뇌를 벗어나 이미 다 없애버린[過諸煩已盡] 삼매가 있고, 넓고 큰 수법[廣大水法] 삼매가 있으며, 큰 배를 장엄하는[莊嚴大船] 삼매가 있고, 무명에 들어가는[入無名] 삼매가 있으며, 기쁜 마음이 다함이 없는[不盡喜意] 삼매가 있고, 총지를 잊지 않는[總持無所忘] 삼매가 있으며, 어두운 곳에 있으면 모두 밝게 하는[在冥悉令明] 삼매가 있고, 즐거운 것을 다 즐거워하는[所樂悉樂] 삼매가 있느니라.
자비를 실천하는[慈行] 삼매가 있고, 깨끗하고 크게 불쌍히 여기는[淨大哀] 삼매가 있으며, 평등한 마음에 들어가는[入等心] 삼매가 있고, 평등한 마음에서 나오는[出等心] 삼매가 있으며, 이름에서 이미 벗어나고 아직 벗어나지 못한[名已脫未脫] 삼매가 있고, 어떤 곳으로부터 온 곳이 있는 광명이 있는[光明所從來處] 삼매가 있으며, 밝아서 더 이상 밝은 곳이 없는[曉無所曉] 삼매가 있고, 지혜를 벗어나고 가르침을 벗어난[脫慧脫敎] 삼매가 있느니라.
연꽃이 나타나는[蓮華爲現] 삼매가 있고, 무상함도 여의는[離無常] 삼매가 있으며, 지혜를 존중히 여겨 주장하는 바가 없는[尊智慧無主] 삼매가 있고, 용맹하여 항복 받지 못함이 없는[勇猛無所不伏] 삼매가 있으며, 모든 국토를 개벽하는[開闢諸刹] 삼매가 있고, 맑고 깨끗하여 형상이 없는[淸淨無形] 삼매가 있으며, 귀중한 보배라 이름함이 없는[無名寶] 삼매가 있고, 바다와 같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는[如海無所不受] 삼매가 있으며, 신족이 넓고 큰[神足廣大] 삼매도 있고, 손가락 튀기는 것 같은 짧은 시간에 이르지 못할 곳이 없는[如彈指無所不及] 삼매가 있느니라.”
담마(曇摩)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질문한 것은 지혜가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때 들은 것과 호응하여 들은 것이 마음과 같이 되어도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하는 것이 망령되지 않으며,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르친 바와 같이 실천하며 지혜를 익혀 마음 씀에 받아들이는 바가 없기 때문에 예절을 잃지 않고 지은 바 법을 실천하는 것도 허망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뜻이 귀중한 보배와 같아서 모든 늙고 병듦을 제거하고 뜻으로써 법기(法器)를 삼는데, 이것이 곧 인욕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010_1194_c_02L생각함에 있어 단지 진리의 말만을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다만 법에 대한 생각으로서의 지혜이며, 그리고 사용할 것이 넉넉하지 못할 때에도 베풀어 주는 것에 있어 아낌이 없어야 하고, 도와주는 것에 있어서도 적절하지 않으면 안 되며, 들은[聞]6) 진리를 마음으로 관찰하고, 얻을 것이 없음을 기뻐하면 그 마음이 이미 기쁘고 신체는 모두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마음이 외도에 있지 않고 다만 법미(法味)와 비라경(比羅經)7)만을 듣고 싶어하고, 다만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만을 듣고 싶어하며, 다만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만을 듣고 싶어하고, 더 이상 밑이 없는 법[無底法]을 듣고 싶어합니다.
뜻과 같이 하여 다른 생각이 없기에 마음속으로 구화구사라를 받고 싶어하고, 어디부터든 생겨나는 바가 없는 법을 듣고 싶어하며, 탐내지 않고 관하고 다만 자비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들을 제도하고 싶어하고, 덧없는 소리[無常聲]를 알고 싶어하며, 적연한 뜻을 알고 싶어하고, 공(空) 이것 또한 공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싶어하며, 생사와 보시에 대한 생각함조차 없는 것을 알고 싶어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듣고 싶어하지 않지만 다만 음악만을 듣고 싶어하며, 시방세계의 충성과 믿음으로써 작용하는 것을 따라 즐거워하고 모든 탐욕의 근본을 항복받습니다.”
둘째는 보살이 이 세간에 앉아 있기는 해도 몸을 나누어[分身]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 앞에 다 나타나 앉아 있으며, 그 몸은 또한 시방세계의 부처님 앞에 가 앉아 있지 않기도 합니다.
010_1194_c_17L二者菩薩於是閒坐,分身悉現十方佛前坐,其身亦不在十方佛前坐。
셋째는 비유하자면 산 속에서 소리를 외치면 그 음성의 메아리가 다시 돌아오는 것과 같아서, 그 메아리는 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보살이 이 세간에 앉아 있기는 해도 그는 멀리서도 시방세계 부처님과 모든 보살들의 일을 다 말하며, 시방세계의 모든 보살들도 또한 그곳에서 와 이르른 사람이 없습니다. 그 또한 감[往]이 없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010_1195_a_02L부처님께서 담마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다린니문(陀隣尼門)을 증득한 것은 비유하면 활[弓弩]을 당겨 화살을 쏠 때 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르지 못할 곳이 없는 것과 같아서, 보살이 하나의 지혜만 가지면 만 억 가지 지혜에 들어가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담마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수륜(阿須倫)이 군대를 일으키려고 할 때 손가락을 튀기듯 짧은 시간에 군사들이 여섯 하늘[六天]에 이르는데, 그 중간에 한 곳도 비어 있지 않음을 보았을 것이니라. 보살이 이미 제9지(地) 보살로부터 그 아래에 이르기까지 법을 말하려 할 때에도 이와 같으니라.”
보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맑고 깨끗한 사람은 탐욕을 항복받아 소멸시키니 그 마음에 탐욕이 없음이 다함이 없으며[不可盡], 저 모든 악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그 악한 마음을 항복받을 수 없어서 다시 그 마음이 혼란하면 악한 마음을 보호하나니, 그런 까닭에 다함이 없습니다.
그 마음에 성냄이 있고 그 몸을 뽐내어 자만하려는 자가 모든 곳에서 이런 마음을 일으키려는 자를 찾아볼 수 없게 하면, 보살은 항상 이러한 뜻이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데 모든 때[垢:번뇌]를 다 버리지 않았음을 아나니 마땅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보호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 마음이 게을러지지 않게 하나니, 마땅히 이렇게 하려는 마음이 다함이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광란(狂亂)한 사람이 있을 경우 그 마음을 바꾸어서 법으로써 보호하나니, 마땅히 이렇게 하려는 마음이 다함이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없는 이에 대하여 보호하려고 하나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법을 베풀어 법으로써 해탈하게 하나니, 이렇게 하려는 마음이 다함이 없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공덕이 되게 하나니, 마땅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보래(寶來)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속에 다린니행(陀隣尼行)을 닦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다린니에 들어가 실천하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다린니로써 일체를 가르치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박학(博學)하게 묻는 까닭에 다린니를 실천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입니다.
010_1195_b_02L다시 다함이 없는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상탈(上脫)과 중탈(中脫)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사마(四馬)8)의 길[路]이 다함[極]9)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뜻의 왕[意之王]이 될 만한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열두 가지 인연에 주체[主]가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인 것입니다.
다시 또 다함이 없는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나[我]’가 없다는 말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하고자 하는 의식이 없는 생각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적막한 니원이라는 말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보살이 제도하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큰 바다로 물이 흘러들 듯이 게으르거나 권태로워하지 않음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모든 악한 때[垢]가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는 고통의 소리가 다함이 없는 것이며, 여덟째는 과거와 미래의 생각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아홉째는 제도할 대상에 주체가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홉 가지 법입니다.
다시 또 다함이 없는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모든 부처님 국토가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보살들이 어느 곳으로부터 온 곳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아라한ㆍ벽지불을 원하고 집착하는 것을 버린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시방세계 보살이 한 부처님의 국토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국토에 날아 이르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6바라밀(波羅蜜)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는 3삼매(三昧)가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덟째는 니원에 들어감을 또한 변화로 여기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아홉째는 삼매가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홉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마음이 애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곧 인욕(忍辱)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나[我]다’, ‘내가 아니다[非我]’ 하는 것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짓는 바가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일체의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일체에 대하여 마음으로 한(恨)을 품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10_1195_c_02L다섯째는 모든 사람을 대함에 성내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다른 사람의 악한 짓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는 또한 망요(妄嬈)한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니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덟째는 큰 모임에 있으면서 그 자리에 있는 대중을 희롱하여 놀리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자신의 몸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의 몸도 보호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열째는 가난한 사람에게 물건을 주어 그들을 보호했을지라도 뒷날에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며, 열한째는 스스로 제어하여 악지식(惡知識)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열두째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나 다른 이의 몸에 대해서 애욕의 생각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열셋째는 모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손가락을 튀길 만큼 짧은 시간이라도 선악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열넷째는 공덕으로 장엄한 몸의 모습을 보호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며, 열다섯째는 믿음으로 선한 업을 짓고 삼매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열여섯째는 항상 입을 보호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열일곱째는 마음과 생각이 맑고 깨끗한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열여덟째는 선지식에 견고하게 머물러서 태어나는 세상마다 서로 따르는데 다른 곳에서라도 그의 잘못과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며, 열아홉째는 다른 사람을 헤아려 보아 ‘나도 또한 악한 일이 있었던가’ 하고 스스로 헤아려 보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스무째는 생각하는 바에 삿됨이 없고 삿됨을 곧 깨닫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10_1196_a_02L스물한째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뜻을 화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스물두째는 악한 사람을 보호하여 그로 하여금 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며, 스물셋째는 하늘 세계에 태어나서 여러 하늘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스물넷째는 천상이나 세간에 태어나서 두 갈래 세계의 중생들을 가르쳐 다시는 3도(三道:지옥ㆍ축생ㆍ아귀)에 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스물다섯째는 여러 가지 좋은 상호(相好)를 갖추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스물여섯째는 소리를 얻음이 마치 범천(梵天)의 소리와 같으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며, 스물일곱째는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스물여덟째는 모든 물질과 명예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스물아홉째는 지은 공덕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다만 뭇 법(法)을 일으키려 할 뿐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서른째는 여러 외도들을 항복받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며, 서른한째는 이미 온갖 질병에서 벗어난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고, 서른두째는 모든 불법을 두루 갖추어서 그 불법을 훼상(毁傷)하거나 잘못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다함이 없는 보배의 서른두 가지 일이 됩니다.”
첫째는 소리[響]에 들어가고 관하는 데 들어가지만 관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둘째는 마음과 마음을 여읜 데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셋째는 마음에 주장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넷째는 몸에 들어가서 해탈을 구하지만 본래부터 해탈할 것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다섯째는 12인연(因緣)에 들어가되 머무름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여섯째는 끊어짐이 없는[不斷] 데에 들어가는데 단절됨 없음도 여의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일곱째는 덧없는 데에 들어가서 형체가 없는 것임을 보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여덟째는 이름이나 주장[主]이 없는 데에 들어가는데 이름이 없는 것을 여의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010_1196_b_02L아홉째는 적멸에 들어갔지만 일어나는 것을 여의려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째는 삼계에 들어가는데 삼계를 여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열한째는 받아들이더라도 받는[受]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두째는 현재ㆍ과거ㆍ미래에 들어가는데 또한 현재ㆍ과거ㆍ미래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열셋째는 공덕에 들어가는데 본래부터 주체[主]가 없음을 관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넷째는 공(空)에 들어가되 공 가운데에서도 공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열다섯째는 무상(無相)에 들어가는데 무상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열여섯째는 원(願)하는 것에 들어가는데 원을 여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일곱째는 공에 들어가는데 공하다는 생각을 여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열여덟째는 삼매에 들어가는데 부합함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아홉째는 삼매로써 태어날 곳을 소원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무째는 삼매로 온갖 일체의 법을 증득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스물한째는 태어남이 없는 도[無生之道]에 들어가는데 제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두째는 생겨남이 없는 처소[無生處]에 들어가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물셋째는 동요하지 않는 처소에 들어가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넷째는 일체가 무아(無我)라는 데 들어가는데 무아를 여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다섯째는 생사와 더불어 처음부터 서로 앎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여섯째는 삼매와 더불어 처음부터 서로 아는 것이 없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물일곱째는 모습에 들어가는데 애초부터 서로 아는 것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여덟째는 들어가고자 하고 능하고자 하고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010_1196_c_02L스물아홉째는 불념(不念)에 들어가는데 생각함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서른째는 다린니문에 들어가는데 총지(摠持)로 여기지 않는 바가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서른한째는 악을 짓는 곳에 들어가는데 악을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서른두째는 구화구사라에 들어가 뜻으로써 법기(法器)를 만들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서른셋째는 온갖 일과 서로 호응하여 서로 멀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서른세 가지 일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성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마땅히 그 문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아서 인연을 알고자 하면 다툼이 없어야 하고, 다툼을 알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잘 지키는 것만 못하며,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그 가운데 있는 것만 못하고, 움직이지 않으려면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희망함이 없고자 하면 마땅히 생각함이 없어야 하느니라. 위태롭지 않으려는10) 사람은 마땅히 바르게 머물러야 하고, 달라짐이 없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고요함을 스스로 지켜야 하며, 고요함을 스스로 지키려 하는 사람은 칭설(稱說)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교만하지도 않고 스스로를 낮추려고도 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3세(世)는 평등하여 두려움이 없으니 3세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색(色)에 머물지 않으며, 이미 색에 머물지 않으면 숱한 법[衆法]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010_1196_c_16L三世等無有異,三世無增減者不住色,已不住色爲不住衆法也。
눈이 색을 보는 것은 다만 이 눈의 정기(精氣)가 이 색이 아닌 것에 머무는 것뿐이다. 귀로 소리를 듣지만 소리는 머무는 곳이 없고, 코가 냄새를 맡지만 냄새는 머무는 곳이 없으며, 입이 맛을 알지만 맛도 또한 머무는 곳이 없고, 뜻이 또한 인식작용을 알지 못하고 인식작용도 또한 뜻을 알지 못하며, 뜻은 머무는 곳이 없나니 본행(本行)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지혜로 진리를 수행해야 하나니 진리에는 ‘나[我]’라는 것이 없고 ‘내 것[我所]’이라는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을 보는데 다만 ‘나’라는 것이 없는 것을 보아야 하느니라. 지혜도 모든 소유(所有)를 알지 못하고, 소유도 또한 지혜를 알지 못하며, 지혜는 습관을 알지 못하고, 습관도 또한 지혜를 알지 못하나니 보살의 마음은 이러한 마음을 여의지 않느니라.”
010_1197_a_02L담마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도가 생각과 합하지 않는다면 합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까?”
010_1196_c_24L曇摩菩薩白佛言:“道不與想合者,爲有合者無?”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무엇으로도 생각을 증명할 수 없고 다만 음향으로써 법을 삼느니라.
010_1197_a_03L佛言:“諸法不以想爲證,但以音響爲法。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피리를 불 적에 그 소리가 구슬프거나 후련하여 노래와 함께 서로 맞아 떨어지면 음이 고르게 합쳐져서 동일하게 되는 것과 같나니, 모든 삼매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모든 변화도 이와 같고 생각[念]도 이와 같으며, 깨달음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생사는 이름이 없는 것이요, 이름이 없다는 것조차 여의었으며, 생각ㆍ변화ㆍ깨달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이름이 없느니라.
모든 이름은 처소가 없으니 나는 그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작용이 없는 생각을 여의려 하지만 여읠 것도 없으니 작용함이 없는 작용으로써 작용과 생각[作想]을 삼아야 하느니라. 생각과 행이 적연하여 전혀 존재하는 바가 없으니 모든 법에 대하여 탐욕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모든 것들이 다 이러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고 나고 또 나서 니원에 태어나나니 이것이 달살아갈(怛薩阿竭)의 뜻과 합하는 것이고, 나고 나고 또 나서 니원에 태어나는 것도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달살아갈의 뜻과 부합하는 것이며, 변화하고 변화하고 다시 변화하여 니원까지도 변화하나니 이것이 달살아갈의 뜻과 합하는 것이고, 변화하고 변화하고 다시 변화하여 니원까지도 변화하는 것도 변화가 아니니 이것은 달살아갈의 뜻과 부합하는 것이니라.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여 니원을 생각하나니 이것은 달살아갈의 뜻과 합하는 것이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여 니원을 생각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달살아갈의 뜻과 부합하는 것이며, 깨닫고 깨닫고 다시 깨달아 니원을 깨닫나니 이것은 달살아갈의 뜻과 합하는 것이고, 깨닫고 깨닫고 다시 깨달아 니원을 깨닫는 것도 깨닫는 것이 아니니 이것이 달살아갈의 뜻과 부합하는 것이니라.”
010_1197_b_02L
법마다 생겨나는 것이 없어서 합하여 하나의 정토가 되네. 나고 나지만 또한 나는 것이 아니니 니원도 다 이와 같다네.
010_1197_b_02L法法無有生, 合爲一淨耳, 生生不復生,
泥洹皆如是。
변화하는 것도 본래부터 없는 것이니 변화하고 변화해도 벗어날 것이 없어라. 변화와 니원은 동등한 것으로 고요하여 처소가 없다네.
010_1197_b_04L化者從本無, 化化無脫者,
化與泥洹等, 寂然無處所。
생각이란 것도 본래 인식작용[識]이 없고 생각을 내는 것도 원인은 공(空)할 뿐이니 니원과 생각은 동등한 것으로 진리를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다네.
010_1197_b_05L念者本無識,
發念因空耳, 泥洹與念等, 所念諦如是。
깨닫고 깨달음은 평등한 실천으로 깨달음의 처소에 이를 곳이 없다네. 깨달음의 처소란 항상 머무름이 없으니 이것이 달살아갈(怛薩阿竭)이라네.
010_1197_b_06L覺覺平等行, 所覺無所到, 所覺無常住,
是怛薩阿竭。
변화하는 처소도 본래 처소란 없는 것이고 깨달음의 처소 또한 이를 곳이 없으니 만약 변화에 처소가 없다면 모든 법도 다 이와 같다네.
010_1197_b_08L化處無有處, 所覺無所到,
若化無處所, 諸法皆如是。
생겨나는 처소가 본래 없는 것이니 생겨남 없는 것이 바로 그 처소라네. 변화하는 처소는 이름이 없는 처소이니 그러므로 일체가 다 삼매가 된다네.
010_1197_b_09L生處有本無,
無生是其處, 化處無名處, 一切爲三昧。
생각하는 처소에도 생각할 것 없나니 공(空)을 따라 이 처소에 이르렀네. 본래 진리의 처소가 없는 것이 아니니 그 지혜가 이미 이와 같다네.
010_1197_b_10L念處有念無, 從空到其處, 非本無所諦,
其慧已如是。
깨달음과 실천이 서로 관련 없으니 깨달음은 그 처소를 떠나지 않고 실천은 깨달음을 따라 진리를 보나니 깨달음을 떠나서는 해탈할 수 없다네.
010_1197_b_12L覺行不相連, 覺不離其處,
行從覺見諦, 離覺無有脫。
생겨나는 법이 끊임없으니 있는 곳마다 항상 이와 같고 삼천의 해와 달 가운데에 최상의 밝음이 따로 없다네.
010_1197_b_13L所生法不絕,
所在常如是, 三千日月中, 所明無有上。
법이란 생각할 대상이 아니고 돌이켜 실천할 수 있어야 하네. 탐욕에서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니 공한 것도 아니고 또한 생각도 아니네.
010_1197_b_14L法者非思想, 所當還行者, 於欲不起垢,
非空亦非想。
여래의 뜻은 항상 맑고 깨끗하여 또한 법이라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나니 해탈도 항상 머무는 것 아니고 일체가 다 본래의 처소와 같다네.
010_1197_b_16L如來意常淨, 亦不處法名,
所脫非常住, 一切如本處。
꽃향기 저절로 이르듯 벗어남도 처소가 없고 맑고 깨끗함도 마침내 처소 없듯이 모든 존재도 다 그렇다네.
010_1197_b_17L華香自然來,
所出無處所, 淸淨竟無處, 所有皆悉爾。
천 살[千歲] 먹은 마른 나무에 생기가 돌 듯 모두 마음 냄에 따라 일어나네. 모두가 큰 광명을 보았으니 세간에 광명으로는 가장 높아 견줄 것이 없네.
010_1197_b_18L千歲枯樹生, 皆從發意起, 皆見大光明,
世明最無有。
허공에서 음악 소리 들려오고 밤낮으로 광명이 나타나나니 이때 큰 모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보살의 마음을 내었네.
010_1197_b_20L虛空爲音樂, 晝夜光明見,
是時大會者, 悉發菩薩意。
백성들 크게 기뻐하면서 모두들 이 경을 들었는데 곧바로 삼천세계를 진동하였고 부동(不動)의 몸을 얻었다네.
010_1197_b_21L人民大歡喜,
皆得聞是經, 卽動三千剎, 得受不動身。
적연한 법이 나타나니 이것은 무명(無名)이 호응한 것인데 더구나 세간의 모든 존재가 다 이와 같겠는가?
010_1197_b_22L寂然法爲見, 無名是其應, 何況世所有,
一切皆如是。
맑고 깨끗함도 선정[定]이 되지 못하고 어리석음과 지혜가 본래 없는 것도 이러하며 맑고 깨끗함과 어리석음은 본래 합해진 것이니 지혜도 본래 해탈할 것이 없는 것이네.
010_1197_b_24L淸淨不爲定, 癡慧本無是,
淨癡合同本, 慧本無脫者。
010_1197_c_02L 삼매란 일어나는 바가 없으니
모든 것도 다 이와 같아서 보살이 머무는 도지(道地)도 마음을 따라 생겨난다네.
010_1197_c_02L三昧無所起,
一切皆如是, 菩薩住道地, 在意所從生。
다섯 가지 일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니 다섯 갈래의 길에 떨어지게 하기 때문일세. 이와 같은 실천을 멀리 여의고 부처가 되어 시방을 통달하셨네.
010_1197_c_03L五事不可親, 令墮三道中, 遠離如是行,
得佛達十方。
백 일 동안 법미(法味)를 얻어 이 삼매를 받들어 실천하였으므로 모두 여러 국토에서 찾아왔는데 날아서 부처님 처소에 와 이르렀다네.
010_1197_c_05L百日得法味, 奉行是三昧,
皆從諸剎來, 飛來至佛所。
여러 하늘과 국왕들이 모두 다 부처님 몸을 뵈옵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제 몸은 모두 다 가볍게 여겼네.
010_1197_c_06L諸天及國王,
悉得見佛身, 志意大歡喜, 身體爲悉輕。
마땅히 색상(色想)으로 법을 보되 삼존(三尊)이 있다고 여기지 않아야 하니 반야비라경(般若比羅經)은 삼천세계 어느 곳에도 다 없기 때문이네.
010_1197_c_07L不當以色想, 觀法有三尊, 般若比羅經,
所處無三千。
여래보살이 본래 마음을 낸 것은 시방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서였네. 언제나 큰 법의 정원[大法園]을 만들었지만 삼천세계 어느 곳에도 다 없다네.
010_1197_c_09L如來本發意, 願不離十方,
常作大法園, 所處無三千。
삼계의 사람과 그 이상의 곳에서 도리천에 이르렀으니 모두 하타나불(荷陀那佛)이며 그 명호는 천중천(天中天)이라고 한다네.
010_1197_c_10L三界之中人,
及上忉利天, 悉荷陁那佛, 其號天中天。
마음을 내어 그 나라에 이르렀다가 잠깐 사이에 다시금 되돌아왔더니 마제나(摩提那)보살은 날아서 죽림원에 돌아와 이르렀다네.
010_1197_c_11L發意到其國, 須臾復來還, 摩提那菩薩,
飛還到竹園。
사리불이 보래보살에게 여쭈었다. “어지신 분께서 오신 그곳 국토에서는 어떤 종류의 본원(本願)이 있으며, 무엇 때문에 다함이 없는 국토[無極國土]라고 말합니까?”
010_1197_c_13L舍利弗白寶來菩薩言:“仁所來處剎土何類本願,何如無極國土?”
보래가 대답하였다. “다함이 없는 국토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010_1197_c_15L寶來答曰:“無極國土爲何如耶?”
사리불이 말하였다. “다함이 없는 국토에 계신 분들은 모두 다 보살로서 아라한이나 다른 종류의 잡된 사람들이 없으며,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일곱 가지 보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010_1197_c_16L舍利弗言:“無極國中悉皆菩薩,無有羅漢異種雜人也,一切所有皆是七寶。”
보래가 말하였다. “내가 발원한 이래로 건너야 할 곳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다함이 없는 국토에 있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법이 일어난 곳이 없으니 어찌 생각[思想]인들 있겠습니까? 모든 국토에서 서원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으니 이제 또 다함이 없는 생각과 서원에 이를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어지신 분께서 오실 때에 아름다운 꽃을 싸 가지고 오셨는데, 그 진기한 보배에 대해서도 또한 귀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010_1197_c_21L舍利弗言:“仁者來時齎持妙華,貴其珍琦不亦想乎?”
대답하였다. “이 꽃은 아무런 형상도 없고 다만 이것을 주(主)로 하여 죽림원에 법기(法器)로 주었을 뿐입니다.
010_1197_c_23L答曰:“是華無形但以爲主,而於竹園以法授之耳。
010_1198_a_02L또 사리불이여, 불상(佛像)을 보고 부처님의 도에 예를 올렸는데 위엄과 신통이 어찌 그 불상 안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비록 불상 안에 있지 않다고 해도 또한 불상을 떠난 것도 아니며, 다만 고정관념이 있는 사람들이 위신력이 있다고 말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관찰해보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원이란 비유하면 도리천에 어떤 꽃이 있는데 그 꽃의 이름은 구기(拘耆)라 하며, 여러 하늘들은 누구든지 그 꽃을 사랑하여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보살은 법으로써 일체를 삼아서 안목(眼目)을 인도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도라는 것이 본래 다만 마음으로써 법의 그릇을 만들 뿐입니다.”
보래가 말하였다. “변화하는 도는 어느 곳에 있으며, 또 어느 곳에서 왔고, 가게 되면 어느 곳으로 갑니까?”
010_1198_a_11L寶來曰:“化道在何所?從何所來,去至何所?”
사리불이 말하였다. “변화엔 처소가 없습니다.”
010_1198_a_12L舍利弗言:“化無處所。”
보래가 말하였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변화한 것인지를 압니까?”
寶來言:“何知爲化?”
사리불이 말하였다. “다만 변화가 이룩되었을 때에 그 본말(本末)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010_1198_a_13L舍利弗言:“但見化成時,不見本末,故名爲化。”
보래가 말하였다. “그런 까닭에 아무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010_1198_a_14L寶來曰:“是故無所有也。”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러면 그것을 보는 것은 거꾸로[倒] 보는 것입니까? 보는 것이 없다면 어떤 것을 본다고 합니까?”
010_1198_a_15L舍利弗言:“見者爲到,見乎無所見,何等爲見?”
보래가 말하였다. “모든 생각은 변화[化]와 같나니 이것이 견(見)이 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이 변화와 같은 것이요, 미래의 법은 아무 이름도 없나니 이것을 견이라 하며, 조작함이 없는 법이요 짓지 아니한 법이니 이것을 견이라 하고 조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름이 없는 모습을 짓나니 이것이 견이 되며, 달살아갈이 조작 없는 지음을 지으므로 이것이 견이 됩니다.”
보래가 말하였다. “왕래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것이 견이 됩니다. 가령 왕래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견이 되지 못하나니 이것은 거꾸로 본 것입니다.”
010_1198_a_21L寶來言:“無往來者以故爲見,設有往來者是不爲見,是爲倒見也。”
사리불이 보래보살에게 물었다. “윤문(輪門)을 끊은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010_1198_a_23L舍利弗問寶來言:“乃有斷輪門者無?”
010_1198_b_02L보래가 말하였다. “살바야(薩婆若:一切智)가 이미 형상이 없는 문[無形之門]임을 보았다면 이것은 이미 윤문(輪門)을 끊은 것이며, 이미 공하여 없어져서 탈(脫)과 무탈(無脫)에 대하여 공을 이룩한 것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공하여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처소와 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작용이 근본에서 벗어났고 그 법륜이 구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010_1198_b_04L何以故?都無有處用。是故無所不入,用脫於本故其輪不轉。”
담마보살이 보래보살에게 말했다. “여러 새로 배우는 사람에게 제가 모두 이 법을 체득하게 하고 싶습니다.”
010_1198_b_06L曇摩菩薩語寶來言:“諸新學者我欲皆使逮得是法。”
보래가 말하였다. “공(空)의 선정[定]을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아홉 가지 법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010_1198_b_07L寶來曰:“欲得空定者,當行九法。
첫째는 마땅히 시방세계 사람들을 다 보살이 되게 해야 하고, 둘째는 모든 악한 마음을 보거든 마음으로 하여금 끝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되며, 셋째는 다섯 갈래 세계에서 수고하거나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 그들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됩니다. 넷째 어리석은 무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에서 ‘나[我]’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되고, 다섯째는 모든 어둠[不明]을 보나 모두 밝아지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의 뜻이 되며, 여섯째는 지은 바 공덕이 있으면 그 공덕을 다 잃지 않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됩니다.
일곱째는 시방세계의 사람들을 보면 다 평등하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되고, 여덟째는 현재ㆍ미래ㆍ과거의 모든 의왕(意王)이 될 만한 이를 보면 다시는 인식작용[識]에 부림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되며, 아홉째는 모든 부처님 세계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보살의(菩薩意)에 대한 뜻을 움직여 변하지[轉] 않게 해 이것을 따라서 삼매를 속히 증득하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됩니다.”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는 모임에 있는 사람 중에 어느 누가 아뇩다라삼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지 않았습니까?”
010_1198_b_17L彌勒菩薩白佛言:“今在會者,誰不發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
010_1198_c_02L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겁 전 누타(樓陀)부처님 시절에 나는 처음 마음을 내었는데 번뇌에 덮여 큰 지혜를 증득하지 못하였고 다만 마음을 낸 보살이라는 말만 들었느니라. 그리고 다만 공한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선지식[善師]을 얻지 못했고 구화구사라도 얻지 못했느니라. 선지식을 멀리 여의고 욕왕(欲王)에게 속임을 당하여 마음의 집착을 끊지 못하고 바라밀을 잃어버렸느니라. 그랬더니 62겁이 지난 뒤에 자연히 부처님 회상에서 법을 깨닫게 되어 내가 인정하던 모든 의심을 끊고 문득 근본이 무(無)라는 것을 체득할 수 있어서 곧 공 가운데 있으면서 모든 근(根)을 곧바로 단절할 수 있었느니라.
그리고 지혜의 문을 보아 문득 움직임이 없는 형상을 얻었고 이로부터 점점 수행하여 법륜을 끊었으며, 다시금 정각(正覺)으로부터 이 삼매를 받았는데, 비록 62겁 동안 마음을 내었지만 법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었으며, 뒤에야 자연히 부처님 회상에서 법을 깨닫게 되어 문득 대수(大樹)를 얻고 비로소 처음 마음 냈던 것을 고쳤느니라. 내가 마음을 낼 때 90억 명의 사람도 모두 함께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아뇩다라삼야삼보리를 구하게 되었느니라.”
첫째는 대중의 모임을 멀리 여의고 항상 뜻이 적정(寂靜)한 것이고, 둘째는 선지식을 얻어 법을 받아 따르는데 잃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악지식(惡知識)을 멀리하여 섬기거나 따르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다섯 가지 일을 항상 멀리 여의는 것이니, 그 첫째는 악한 사문(沙門)이고, 둘째는 악한 바라문(婆羅門)이며, 셋째는 악한 황문(黃門)이고, 넷째는 사나운 소ㆍ사나운 말이며, 다섯째는 모진 독사와 많은 독을 가진 벌레이니, 이 다섯 가지를 마땅히 따르거나 섬기지 말아야 하느니라. 도를 증득하지 못한 사람들을 니리(泥犁)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다섯째는 처음 마음을 내어 나한과 벽지불의 마음을 구하는 사람을 마땅히 멀리하는 것이니, 마땅히 숱한 마군의 일을 깨닫고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오로지 꿈속에서도 부처님께서 심오한 법 말씀하심을 보는 것이며, 일곱째는 다만 법을 위하여 마음을 내고 음식에 뜻을 두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마땅히 사람들이 자주 모이기를 희망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마땅히 시방세계에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고 마땅히 삼매에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서 부처님의 자리에 앉고자 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아홉 가지 법이 되는 것이니라.”
010_1199_a_02L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모든 천자가 이 법을 듣고서 증득하여 스스로 공덕을 지니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지니게 되었습니까?”
010_1199_a_02L彌勒菩薩白佛言:“是諸天子得聞是法,自持功德?持佛威神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모든 천자가 지금 이 법을 들은 것은 과거세에 이미 2만 부처님을 섬겼기 때문이다. 사리(舍利)에 공양함이 수미산과 같다 해도 비록 이것의 복덕은 있을지언정 니원에 이르는 것에는 아무런 유익함이 없느니라. 그러나 이제 이 삼매를 들으면 앞에서 쌓았던 공덕은 소멸되어 무너질 것이니라. 왜냐하면 지난 세상에서 심었던 복은 모두가 나고 멸함이 있기 때문이며, 지금 이 삼매는 공으로써 존재[有]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니라.”
삼매는 청정(淸淨)하며, 여기에서 저기에 이르지도 않고 저기에서 여기에 이르지도 않느니라. 상비상처(想非想處)를 소원하지도 않고, 조작함도 없으며, 변화하여 형상이 없는 처소이고, 나고 죽음도 단절되어 없고, 끊어 없어지는 처소도 아니며,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니라. 삼매엔 다만 메아리[響]만 있을 뿐이고, 다만 지혜를 여는 처소만 있고, 지혜는 도달하는 처소가 없느니라. 삼매엔 그릇을 만드는 처소도 없나니 그런 까닭에 무너질 수 없고 멸할 수 없느니라. 삼매엔 색처(色處)도 없고, 애욕에 대해 인식작용[識]을 짓는 처소도 없으며, 실천을 일으키는 처소도 없고, 갖가지 맛을 받아들이는 것도 없으며, 형상도 없고, 나감도 없고 들어감도 없느니라. 생겨나는 처소도 없고, 호응[應]하는 처소도 없으며, 고요하여 움직임도 없고, 변폭도 없나니, 그러므로 삼매는 무너지지 않느니라. 만약 무너짐이 있다면 이것은 곧 크게 어리석은 근생(根生)의 문일 것이니라.
또 사리불아, 다섯 가지 정직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정직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종사하지 않아야 한다.
010_1199_a_20L又舍利弗!有五不直,不當與從事。
첫째는 마땅히 두 가지 법에 머물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마땅히 법에 대하여 일으키는 바가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이며, 셋째는 마땅히 모든 법에 대해 옳다 그르다, 없다 있다는 상[名]을 나타내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넷째는 마땅히 현재ㆍ미래ㆍ과거에 대해 보는 바가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법을 끊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가 되느니라.
1)보배 옥(玉)으로 만든 휘장. 이 경의 이역(異譯)본인 『보여래삼매경(寶如來三昧經)』에는 교락(交絡)으로 되어 있고, 송(宋)ㆍ원(元)ㆍ명(明) 본과 궁(宮)본에는 교락(交珞)으로 되어 있는데, 문장의 의미상 교로(交露)가 더 적합할 듯하여 이를 따랐다.
2)근본 구경(究竟)의 맨 끝. 진여나 열반의 다른 이름이다.
3)고려대장경에는 이 글자가 요(了)자로 되어 있으나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명(明)본에는 중(中)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고, 문맥상으로 볼 때에도 중(中)자가 보다 적절한 것 같기에 역자도 이것을 따라 번역하였다.
4)매우 빠른 시간을 의미하며 인도에서는 주야(晝夜)의 30분의 1에 해당한다. 범어 모호율다(牟呼栗多)의 한역어이다.
5)달살아로(達薩阿勞) 또는 달살태로(達薩太勞), 답살아로(蹋薩阿勞)ㆍ탑살아갈(塌薩阿竭)이라고도 한다. ‘달살’은 태쇄(太殺), ‘너무’ 또는 ‘매우’의 뜻. ‘아’는 어조사. 중국의 속어로 ‘너무 애쓴다, 매우 수고한다’는 뜻. 혹 범어의 다타아가도(多陀阿迦度, Tathagata)가 와전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6)같은 이역본인 『보여래삼매경』에는 문(聞)자가 문(問)자로 되어 있다.
7)비라경(比羅經)이 『보여래삼매경』에는 비라경(毘羅經)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경 이름을 음차한 것에서 기인한 듯하다.
8)네 마리의 말로써 네 등급의 비구를 비유한 것. 세상에는 네 종류의 말[四種良馬]이 있는데, 첫째는 채찍의 그림자를 보고 마부의 뜻을 알아 빠르고 느림을 스스로 조절하는 말이요, 둘째는 채찍으로 그 털이나 꼬리를 건드리면 마부의 뜻을 살펴서 그 뜻에 따르는 말이요, 셋째는 채찍이 몸에 닿으면 마부의 뜻을 따르는 말이요, 넷째는 쇠사슬로 만든 채찍으로 몸을 맞고 뼈가 상한 뒤에야 마부의 뜻을 따르는 말이다(『잡아함경(雜阿含經)』 제33권 참조). 비구니에도 이와 같이 네 등급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9)원본(元本)에는 극(極)자가 진(盡)자로 되어 있는데 본문에도 이 두 자가 서로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내용상으로는 많은 차이가 없기에 글자는 비록 극(極)자이나 다함[盡]으로 번역하였다.
10)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불욕색자(不欲色者)’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의미가 서로 통하지 않고 또한 이 경의 이역본인 『보여래삼매경』에는 ‘불욕위자(不欲爲者)’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역자는 이 뜻이 문맥상 더 적절한 것으로 보여 이역본의 뜻을 따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