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의 꽃에는 백만 개의 잎이 달려 있었고, 잎 위에는 모두 한 분의 달살아갈(怛薩阿竭:여래)께서 계셨으며, 모두 온갖 보배로 장식된 일산(日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일산에서는 각각 온갖 음악이 흘러나와 서로 즐거워하였다. 한 분 부처님의 앞에는 각각 한 보살이 있었는데, 모두 문수사리보살과 비등하게 일에 대해 물었다.
이때 죽림원의 국토는 모두 평등하여 마치 3미륵불(彌勒佛)의 국토와 같았다. 이 삼천대천세계의 해와 달은 모든 부처님 경계에서 광명이 모두 사라져 밝음을 나타내지 못했다.
010_1207_a_14L是時,竹園地悉平等,如三彌佛剎,是三千日月諸佛境界,光明悉蔽隱無有明。
그리고 일시에 모든 부처님 경계의 대지옥(大地獄)에서 혹독하게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은 다 고통이 멈추어져 모두 안온하게 되었고, 백 일 동안 모두 시방(十方)의 부처님만을 보게 되었다. 그때에 이르러 짐승들과 날아다니는 새들도 모두 백 일 동안 먹지 않고 오직 법미(法味)만을 들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중생들은 다시 부처님을 뵐 줄 스스로 알지 못했다.
010_1207_b_02L그때 나열국 안의 백성들도 백 일 동안 다시 다섯 가지 맛의 음식[五味]을 먹지 않고 오직 법(法)만을 맛보아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리(阿耨多羅三耶三菩提)의 마음을 발하였으며, 삼천대천(三千大千) 부처님 경계에 있는 나무들도 저절로 음악을 내어 서로 즐거워하였다.
이때 죽림원이 변하여 연못이 되었으며, 그 연못 가운데에서는 10만 종의 연꽃이 피어나니 크기가 마치 작은 산과 같았다. 한 연꽃마다 40만 개의 잎이 피었는데, 잎사귀 위에는 낱낱이 교로(交露:구슬장식)로 만들어진 사자좌(師子座)가 있었고, 그 자리마다 각각 문수사리와 비등한 한 명의 보살이 앉아 있었다.
그 각각의 자리마다 하늘이 그 앞에서 보살을 모시고 있었고, 교로로 만든 휘장 사이에는 각각 온갖 음악이 흘러나와 모두들 즐거워하고 있었다. 천 년이나 지난 마른 나무마다 모두 꽃이 피어났고, 삼천대천 부처님 세계의 모든 나무들은 가지를 구부려 사면(四面)으로 서로 마주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가르치고 인도하신 죽림원에 있던 여인들은 모두 변하여 남자가 되었고, 애욕이 없어져 누구 할 것 없이 법안(法眼)을 증득하였다.
010_1207_b_10L是時,竹園佛教導處,女人悉化爲男子,無有愛欲悉得法眼。
그때 부처님께서 넓고 크게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나타내시자, 곧 9억만의 부처님이 계신 세계[佛刹土]가 감동하였다.
010_1207_b_11L佛爾時爲廣大現寶如來三昧,卽動九億萬佛剎土。
그때 삼매는 조금도 남김없이 시방에 통했으니, 동방 무극불(無極佛)의 국토에서는 수없이 많은 보살을 보내었는데, 모두 여래와 동등하였으며, 각각 형상이 없는 꽃과 색깔이 다른 십만 가지의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와서 정각(正覺)께 예를 올리고, 그 꽃을 정각 위에 뿌리고는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범천(梵天:梵衆天)이 수없이 많은 하늘들을 거느리고 제각기 하늘의 향과 꽃을 가지고 왔으며, 범다회천(梵多會天:梵輔天)도 다시 수없이 많은 하늘들을 거느리고 제각기 천상의 온갖 꽃과 향을 가지고 왔으며, 변정천(遍淨天:3禪天의 제3천)도 세간의 꽃이 아닌 훌륭한 꽃을 가지고 오는 등 모든 높은 하늘들이 다 천상의 기악(伎樂)을 가지고 허공에서 음악을 연주하였다.
삼천대천이 다 법음(法音)으로써 밤낮 백 일 동안 이와 같이 받아서 죽림원에 이르러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애욕(愛欲) 천자(天子)도 또한 수없이 많은 천자들을 거느리고 제각기 하늘의 기악을 가지고 죽림원에 이르러 부처님께 예를 올리니, 허공에서 여러 하늘들이 즐거워하였다.
가익천(迦翼天)의 모든 하늘들도 천만 가지 온갖 향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과 여러 보살들 위에 흩뿌리고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010_1208_a_11L迦翼天上諸天,持千萬種雜香,以散佛上及諸菩薩上,爲佛作禮。
진천(盡天)의 여러 하늘들도 다 와서 죽림원에 모이니 위로 36천(天)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한 하늘도 빠짐이 없었다. 모든 천자와 여러 대용왕(大龍王)들도 제각기 다시 수없이 많은 관속들을 거느리고 세간 사람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꽃을 가지고 와서 죽림원에 비처럼 내리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때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나타내시자, 곧 9억만 부처님 국토가 진동하였다. 사리불(舍利弗)이 대지가 크게 진동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먼 곳에 있는 여러 보살들과 모든 하늘의 백성들이 다 모였는데, 위로 36천에 이르기까지 대지가 크게 진동하니, 이것은 어떤 감응이 있어서입니까?”
보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아라한이 본래 의혹이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알고자 왔군요.”
010_1208_b_09L如來謂舍利弗言:“若阿羅漢本疑大重故來解耶?”
보여래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만약 항상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극진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생각이 없으면 지어짐[作]도 없으므로 보법(寶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010_1208_b_10L如來菩薩言:“舍利弗若常有想想者非盡之作無想無作。”
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발심(發心)하였을 때 36억 사람과 함께 보살도(菩薩道)를 구하였는데, 정각께서도 그때 그 가운데 계셨습니다. 일체가 다 생겨났지만 나[我]만은 조작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다 작용이 있었지만 나만은 그렇지 않고 공(空)함을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법은 다 나[我]라는 것이 없고 생사를 구함도 없으며 도(道)도 없고 단절됨도 없습니다.
허공이 주장하는 것이 없듯이 나[我]라는 것도 존재하는 현법(現法)이 아니니, 비유하면 마치 아지랑이가 아무 형상도 없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작법(作法)을 가지고 행(行) 멸하기를 구하고 바라니, 생각으로 이를 얻고자 하나 이는 생각이 중하기 때문에 죄업만 밝아지고 맙니다.
니원을 증득했다고 말하는 아라한은 비유하면 마치 목숨이 다한 사람의 그 몸이 평상에 남아 있는 것과 같아서, 한때 얻어 들음이 잠깐 휴식된 것일 뿐 목숨이 다했다 해도 오히려 몸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하니 아라한과 벽지불(辟支佛)이 스스로 선정[禪]을 증득했다고 함은, 이것은 의심을 크게 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리불이 여래께 말하였다. “이와 같이 지혜롭게 풀어 주시니 마음속에 맺혀 있던 의혹이 이제 다 파괴되어 의심의 뿌리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배우긴 했어도 본래 선지식을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我]라는 생각을 단멸하고 해탈하여 법륜을 얻지 못하였으며, 의심의 뿌리를 완전히 끊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가 존귀한 법을 들었으나 유익함이 없으니, 비유하면 마치 온갖 새가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도 마침 그 울음소리를 듣고 아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다만 이 자리에 모인 새롭게 발심한 여러 마하살과 큰 모임의 여러 하늘과 사람들로 하여금 이 존귀한 삼매를 듣게 했다고 해서 얼마나 높고 높아지겠습니까?
그렇지만 마땅히 존귀한 삼매에 친근해지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세상에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으므로 이와 같은 삼매를 보고 여래의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속에 의심하고 있던 것이 지금 흩어져 풀리기는 하였으나, 비유하면 마치 깜깜한 곳에 잠시 동안 불을 밝혔다가도 불이 꺼지면 그곳은 다시 깜깜해지는 것과 같으니 지금 제가 들은 것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사리불이 합장하고 여래께 말하였다. “지금 8천 리를 태울 만큼 큰불을 얻어 위로 36천에 이르게 하여 내 몸을 그 가운데 억만 겁 동안 놓아두고, 뒤에 나와서 다시 3악도(惡道)에 들어가 수천억 겁 동안 천하 사람들의 먹이가 되며, 뒤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종처럼 대부(大夫)를 섬기며 선지식을 구한다면, 내 마음 속에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010_1209_a_02L보여래께서 말하였다. “큰불이 치솟아 위로 36천까지 이르면 태워 없애기는 하겠지만, 본래 발심한 공덕이 미약하고 엷으며 깨달음의 근본이 두텁지 못하면, 살운야(薩云若:一切智)를 얻을 수 없고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善巧方便)도 얻을 수 없으며, 선지식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이룩하지 못합니다.”
첫째는 모든 하늘은 처소(處所)가 없고 다만 이름[名]뿐이라고 보는 것이요, 둘째 법보는 세간의 사람들이란 다만 문자[字]만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며, 셋째 법보는 다섯 가지 세계[五道]에서 괴로움을 받는 것은 다만 괴로움의 습기(習氣)만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요, 넷째 법보는 물ㆍ불ㆍ바람ㆍ땅도 다만 한낱 장난감 같은 요소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며, 다섯째는 미래ㆍ과거ㆍ현재도 파초(芭蕉)와 같아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요,
여섯째는 눈앞에 나타나 있는 나고 죽음[生死]도 본제(本際:實體)가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며, 일곱째 모든 삼매는 적연(寂然)하여 가고 옴[往來]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요, 여덟째 삼천대천세계의 일월(日月)과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관찰하여 보고는 얻을 것이 없다는 이치를 깨달아 아는 삼매이며, 아홉째는 삼천대천세계의 일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나 온갖 동물들도 다 해탈시켜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여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작용이 없는 생각[無作之想]을 증득하면 곧 시방세계의 큰 생각까지 결단할 수 있느니라.”
010_1209_a_22L佛告如來:“得是無作之想者,卽可決斷十方之大想。”
여래보살이 다시 정각께 아뢰었다. “모든 법이 생각으로써는 보아 알지 못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무엇을 지어 머물러야 머물지 않는 법[無所住法]을 증득할 수 있습니까?”
010_1209_a_24L如來復白正覺言:“諸法不以想見知之,當作何等住得無所住法?”
010_1209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머무름이 없느니라. 법이 머문다고 하면 그것은 고정된 관념[想]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생각[念]을 일으킴이 없어야 하나니,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것 또한 고정된 관념이 되며, ‘고정된 관념이 아니니, 도(道)가 아니니’ 하는 것도 또한 고정된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求)하는 작용까지도 끊어야 하는 것이니라.”
여래가 천중천(天中天)께 아뢰었다. “마땅히 어떠한 인연을 지어야 숱한 욕망에서 해탈할 수 있습니까?”
010_1209_b_05L如來白天中天言:“當作何緣度衆欲?”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여래보살의 물음이여, 그렇기 때문에 나한이나 벽지불로서는 미칠 수 없느니라. 숱한 욕망은 번뇌[垢]도 없고, 숱한 욕망은 뛰어넘어 해탈할 것도 없으며, 숱한 욕망은 주인도 없고, 숱한 욕망은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숱한 욕망은 허공과 같아서 가리거나 숨길 것도 없느니라. 그리고 니원(泥洹)과 동등하며 무명(無名)과도 같은 것이니라.”
반시(般施)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늘 이 큰 모임에 모인 보살들은 보리수[佛樹]에 앉고 싶어하고,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이 없는 데[無所從生處]에 서 있고 싶어하며, 천억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고 싶어하고, 시방세계의 중생을 교수(敎授)하되 시방 모든 부처님 국토의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 오늘 죽림원에 모인 때와 같이하고 싶어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반시보살의 질문이 매우 심오하고도 심오하구나.”
010_1209_b_15L佛言:“善哉善哉!般施菩薩所問甚深甚深。”
부처님께서 다시 반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세계의 큰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보리수 아래에 앉게 하고 싶거나,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난 곳이 없는 데에 처하게 하고 싶거나, 여러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고 싶어하거나, 시방세계를 교수하여 그들이 다 여러 부처님 국토로 하여금 각각 스스로 오늘 이 죽림원에 모였을 때처럼 하고 싶어한다면, 마땅히 여덟 가지 바른 것[八直:八直行ㆍ八正道]을 수행해야 하느니라.
여덟 가지 바른 것이란, 첫째는 이름 없는 메아리[無名之響]라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둘째는 이름이 없는 소리[無名之聲]임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셋째는 시방세계 부처님 국토는 둘이 아님[十方佛剎土無有二]을 바르게 관하는 것이요, 넷째는 삼천대천세계 부처님 국토의 법은 모두 똑같이 서로 여읨이 없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010_1209_c_02L 다섯째는 시방세계 일체 중생이 부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여섯째는 법에는 본래 형상을 지음이 없어서 온갖 것은 나고 죽음이 없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며, 일곱째는 보이는 대상이 다 모든 삼매에 들어가 머무름이 없는 상보(相報)의 생각에 간직된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요, 여덟째는 시방세계 부처님은 니원이거나 니원이 아니거나 간에 그것 또한 다 평등하다고 바르게 보는 것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 바른 것이니라.
항상 정진하고 수행한다면 여러 가지 삼매를 잃지 않느니라. 선지식을 잃지 않고 세세(世世)로 잡다한 일들을 멀리해야 하며, 적연(寂然)히 머물기 위해서는 자주 모이지 말고 오로지 이 삼매에 있기만을 서원해야 하느니라. 그런 까닭에 지금 보정니원주(寶精泥洹珠)를 이 큰 모임에 비처럼 내리게 한 것일 뿐이니라.”
첫째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곧 삼매이니, 이것이 첫 번째 법보이며, 두 번째 법보란 시방의 모든 나한들에게 공양하면서 그들을 좇아 서로 따르기를 억억만(億億萬) 겁 동안 하다가 어느 때 삼매를 들으면 곧바로 알아서 친근히 하고 존중하여 이 삼매를 멀리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법보이니라.
셋째는 사리(舍利)를 공양하되 위로 36천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조금의 빈틈이나 결함이 없다 해도 그것은 법에 이익이 될 수 없으므로, 일시에 마음을 바꾸어 수행하면 지혜의 문[慧門]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법보이니라. 네 번째 법보란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감[四無所畏]을 증득하여 시방세계의 나고 죽음을 허여[與]하지 않아서 멀리 여읠 것조차 없는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법보이니라.
다섯 번째 법보란 보살이 다섯 세계[五道]의 근심과 고통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그들의 고통을 다 멈추게 하고 괴로움에서 건져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바쳐 그들을 구원해서 모진 괴로움을 받지 않게 하고 그들 모두가 부처님 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번째 법보이니라.
여섯 번째 법보란 보살이 시방 천하의 사람들을 섬기기를 마치 늘 여자 노비가 대장부[大夫]를 섬기듯 하되 괴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귀한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구하는 것이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 어떠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 이것이 여섯 번째 법보이니라.
일곱 번째 법보란 보살이 96종의 외도들을 관찰하여 그 가운데에서 깨닫고 알게 해 법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이 일곱 번째 법보이니라. 여덟 번째 법보란 6바라밀(波羅蜜)을 받들어 행하여 비구 스님을 비록 억만 겁이 지나도록 공양한다 해도 그것은 한 번 이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듣는 것만 같지 못하니, 시방세계의 어떤 사람이 마땅히 부처가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증명하겠는가?
010_1210_b_02L 바로 이 보여래삼매를 듣는 것이니, 그렇게 한 사람은 시방세계에서 부처가 되었다는 증명을 얻은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새로 발심한 보살로서 이 삼매를 향하여 기뻐하면서 이 삼매를 깨달아 아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은 곧 만만(萬萬) 가지 삼매를 알게 될 것이며 이미 여래삼매를 증득한 사람일 것이니, 이것이 여덟 번째 법보이니라.”
그곳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가면 태(胎)로 태어남도 없고, 고통으로 태어나는 일도 없으며, 은애(恩愛)로 태어나는 일도 없어서, 모두 다 백만억 가지 온갖 꽃향기 속에 태어나는데, 태어나자마자 서고 머물 수 있으며, 거기에는 온갖 음악 소리가 울려 퍼져 아침저녁으로 서로 즐기며 노니, 다만 하고자 하는 의식이 없는 법[無作法]과 적연한 법만을 가지고 음악을 부르느니라.
보여래의 국토에는 해와 달의 광명이 없으니 비록 작용이 있다 해도 나타나지 않느니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그곳에 가서 태어나게 되면, 해와 달의 광명과 별들의 광명이 곧 나타나느니라. 이 삼매와 호응하면 마땅히 그곳에 가서 태어나는데, 그렇게 되면 별들과 해와 달의 광명이 다 나타나느니라.”
시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별들과 해와 달의 광명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느니라. 나한과 벽지불의 숫자도 이와 같으나 이것은 모든 나한과 벽지불로서는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라. 그 나라에 가서 태어나는 선남자와 선여인과 보살만이 스스로 알 뿐이니라. 그런 까닭에 내가 미소를 지었던 것이니라.”
010_1210_c_02L수보리(須菩提)와 사리불(舍利弗), 두 제일 어진 사람[第一賢者]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와 얼굴을 땅에 대고 정각(正覺)께 예를 올리고 나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큰 은혜를 베푸시어 저희들을 크게 불쌍히 여기시고,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신통력을 저희들에게 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보여래의 국토인 제법자연국(諸法自然國)에 가서 잠깐 동안만이라도 관찰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불존자와 나한 수보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타고 잠깐 사이에 곧바로 보여래보살의 국토에 이르러서 보여래의 나라를 보니, 거기에도 나열기성과 죽림원이 있었는데 석가문(釋迦文)부처님 회상에 모인 때와 다름이 없었다. 동방에서 무앙수(無央數)의 보살을 보내온 것도 보였고, 남방의 수없이 많은 보살도 보였는데, 시방세계에서 위로 36천 회상에 이르기까지 다 이와 같았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물으셨다. “지난번에 보여래 국토를 관찰하였는데, 그 국토의 백성들은 어떤 부류들이었으며, 몇 사람이나 교수(敎授)하였느냐?”
010_1210_c_15L佛問舍利弗:“向觀寶如來國土,人民何類,教授幾人?”
수보리와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나라를 살펴보았더니 모두 오늘날 이 죽림원 가운데 모여 있는 때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010_1210_c_16L須菩提、舍利弗白佛言:“觀彼國悉如今日會竹園中時也。”
사리불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부처님의 공덕은 매우 존경스럽습니다. 지금 이 큰 모임의 여러 하늘과 그 백성들이 광명을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010_1210_c_18L舍利弗爲佛作禮。“佛功德甚尊,今大會諸天人民,得見明乃如是。”
삼미(三彌)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로 잡고 머리와 얼굴을 땅에 대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010_1210_c_20L三彌菩薩從坐起,正衣服,頭面著地,爲佛作禮:“願欲所問。”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좋다. 무엇이든 물어보아라.”
010_1210_c_21L佛言:“善哉善哉!當問。”
삼미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생겨남이 없는 법인[無生法]에 생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에는 인식작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니원(泥洹:涅槃)에 적연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니원에는 일어남이 없다고 말한다면 형태는 있습니까? 형태가 없다면 저 세간에서의 가르침은 존재하는 것이며, 생사의 입처(立處)에서는 그 누가 주인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땅이 크게 진동한 것은 비단 여기 국토만 진동한 것이 아니라 시방 모든 부처님의 국토도 다 진동하였느니라. 또한 각각 8만 6천 여러 하늘과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생겨남이 없는 법주(法住:法忍)를 증득하고 곧 허공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땅이 크게 진동하였느니라.”
셋째 법은 백천 니리(泥犁:地獄)에 있는 사람으로 장차 부처가 될 이가 있으면, 내가 가서 그들 모두에게 수기를 주되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는 못하는 것이다.
010_1211_a_19L三法者、百千泥犂中人,當得佛者,我悉往莂之,不與十方天下人共知之。
넷째 법은 시방세계의 사람들이 목숨이 끝나면 장차 태어날 곳을 내가 다 알지만,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 못하는 것이다.
010_1211_a_21L四法者、十方人絕命當所生處,我悉知之,不與十方天下人共知之。
010_1211_b_02L 다섯째 법은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목숨이 다한 것은 내가 다 알지만,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 못하는 것이며, 여섯째 법은 시방 여러 부처님께서 장차 니원에 드는 이와 니원에 들지 못하는 이를 알지만, 시방 천하의 사람들이 함께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아홉 가지 법을 행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아홉 가지 법인가? 첫째 법은 모든 법은 청정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요, 둘째 법은 하늘은 모두 깨끗하다고 보는 것이요, 셋째 법은 모든 생사(生死) 역시 깨끗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요, 넷째 법은 다섯 갈래의 세계[五道]는 다 청정하다고 보는 것이며, 다섯째 법은 탐욕을 구하지 않는 것은 다 깨끗하다고 보는 것이요,
여섯째 법은 삼계(三界)의 색(色)은 청정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일곱째 법은 모든 지옥[泥犁]은 청정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요, 여덟째 법은 니원은 청정함이 끝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아홉째 법은 시방세계는 이름을 듦[擧名]이 없다고 보는 것이니, 이것이 아홉 가지 법이니라. 이 아홉 가지 법을 행하는 사람은 빨리 이 삼매를 증득할 수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6만 삼매를 얻는다 해도 그것은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니, 그 삼매를 다했다 해도 구족할 수는 없느니라.”
010_1211_b_18L佛言:“雖得六萬三昧,但有名耳!不可極盡三昧悉具足。”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삼매는 단지 하나의 종류뿐만 아니니, 생각이 없는 삼매[無念三昧]도 있고, 욕심을 여읜 삼매[離欲三昧]도 있으며, 앉아서 시방세계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坐廳十方佛] 삼매도 있고,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꽃과 향으로 장엄하는[莊嚴諸佛國土華香] 삼매도 있으며, 설법을 하여 모든 사람들을 다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所說法一切人悉還本] 삼매도 있고,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 돌이켜 생각함이 없는[出諸欲無還想] 삼매도 있느니라.
어지러운 바람이 한 번 일어날 때 마치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시는 소리와 같은[亂風一起時如佛說經聲] 삼매도 있고, 향하는 문마다 열리지 않음이 없는[所向門莫不開] 삼매도 있으며, 처하는 곳마다 다 사자좌가 나타나는[所處悉師子座爲現] 삼매도 있고, 어느 곳이나 다 날아서 이르는[飛到十方] 삼매도 있으며, 향하는 문마다 시방세계의 보살들이 오고 감이 끊어지지 않는[所向門十方菩薩往來無極] 삼매도 있느니라.
시방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所知十方人意] 삼매도 있으며, 모든 생각을 괴멸하는[壞滅諸想] 삼매도 있고, 모든 식을 괴멸하는[壞滅諸識] 삼매도 있으며, 시방세계의 모든 국토를 합하여 한 국토로 만드는[合十方諸刹土合爲一刹] 삼매도 있으며, 마음을 발함이 끝없는[發意不盡] 삼매도 있고, 삼계를 보되 한 사람도 있지 않다고 여기는[視三界中了有一人] 삼매도 있느니라.
앉아서 시방세계의 큰 군대ㆍ큰 불ㆍ큰 물ㆍ큰 바람을 보되 두려워하지 않고 그 가운데에 다 머물러 가르치고 인도하는[坐觀十方大兵大火大水大風於其中不恐怖悉住敎導之] 삼매도 있으며, 처해 있는 곳마다 다만 법으로써 작용하는[所在處但以法作器] 삼매도 있고,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삼매를 듣고 돌아감이 없는 생각에 머무는[善男子善女人聞是三昧卽得住無還之想] 삼매도 있느니라.
이러한 삼매는 크고도 많아 이루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 큰 모임에 머물면서 이를 설하느니라.
010_1211_c_20L是三昧大多,不可極盡,故住大會說之。
또 이름이 없는[無名] 삼매도 있고, 모든 법에 머무는[住諸法] 삼매도 있으며, 모든 지혜라고 이름하는[名諸慧] 삼매도 있고, 법을 가르치는[敎法] 삼매도 있으며, 나한과 벽지불을 멸하여 무너뜨리는[滅壞羅漢辟支佛] 삼매도 있고, 법보(法寶)삼매도 있으며, 총지무명법(總持無名法)삼매도 있고, 남의 마음을 아는[知人意] 삼매도 있으며, 모든 번뇌를 끊는[斷諸煩荷] 삼매도 있고, 제력욕각(制力欲覺)삼매도 있느니라.
010_1212_a_02L열 가지 힘[十種力]의 삼매도 있고, 지혜(智慧)삼매도 있으며, 수행하는 곳을 광명으로 비추는[光明所行處] 삼매도 있고, 헤아려 알 수 없는[不可計] 삼매도 있으며, 법을 보되 물속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이 하는[見法時如水中影] 삼매도 있느니라.
깨끗한 지혜가 다함이 없는[不可盡淨慧] 삼매도 있으며, 사람에게 뭇 악행이 공하여 원하는 생각이 있지도 없지도 않는[人空衆惡無有無願想] 삼매도 있고, 선정에 머물러 마침내 니원에 이르는[住禪乃到泥洹] 삼매도 있느니라.
010_1212_a_05L有不可盡淨慧三昧;有人空衆惡無有無願想三昧;有住禪乃到泥洹三昧;
비유하면 금강같이 견고하고 더러움이 없는[譬若金剛無穢] 삼매도 있고, 다함이 없는 밝음[無極明]의 삼매도 있으며, 모든 번뇌를 제도하여 이미 다 없애버린[度諸煩荷已盡] 삼매도 있고, 넓고 큰 수법[廣大水法] 삼매도 있으며, 큰 배를 장엄하는[莊嚴大船] 삼매도 있고, 무명에 들어가는[入無名] 삼매도 있느니라.
기쁜 마음이 다함이 없는[不可盡喜意] 삼매도 있고, 총지하여 잊지 않는[總持無忘] 삼매도 있으며, 어두운 곳에 있으면 모두 밝게 하는[在冥悉令明] 삼매도 있고, 즐거운 것을 다 즐거워하는[所樂悉樂] 삼매도 있느니라.
010_1212_a_10L有不可盡喜意三昧;有摠持無忘三昧;有在冥悉令明三昧;有所樂悉樂三昧;
자비를 행하는[慈行] 삼매도 있고, 깨끗하고 크게 불쌍히 여기는[淨大哀] 삼매도 있으며, 평등한 마음에 들어가는[入等心] 삼매도 있고, 평등한 마음에서 나오는[出等心] 삼매도 있으며, 이름에서 이미 벗어나고 아직 벗어나지 못한[名已脫未脫] 삼매도 있고, 어떤 곳으로부터 온 곳이 있는 광명[光明所從來處]의 삼매도 있으며, 밝아서 밝히지 않은 곳이 없는[曉無所不曉] 삼매도 있고, 지혜를 벗어나고 가르침을 벗어난[脫慧脫敎] 삼매도 있느니라.
금빛 연꽃이 나타나는[金色蓮華爲現] 삼매도 있고, 여읨도 없고 항상함도 없는[無離無常] 삼매도 있으며, 지혜를 존중히 여겨 태어남이 없는[尊智慧無生] 삼매도 있고, 용맹하여 항복시키지 못함이 없는[勇猛無所不伏] 삼매도 있으며, 모든 국토를 개벽하는[開闢諸刹] 삼매도 있느니라.
청정하여 형상이 없는[淸淨於無形] 삼매도 있으며, 진기한 보배라고 이름함이 없는[無名珍寶] 삼매도 있고, 바다와 같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는[如海無所不受] 삼매도 있으며, 신족이 넓고 큰[神足廣大] 삼매도 있고, 손가락 튀기듯 짧은 시간에 이르지 못할 곳이 없는[彈指頃無所不及] 삼매도 있느니라.”
담마갈(曇摩竭)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질문한 것은 지혜가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한 것 입니다. 이것은 그때 들은 것과 호응하여 들은 것이 마음과 같이 되더라도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하는 짓이 망령되지 않으며,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르친 바와 같이 행합니다.
010_1212_b_02L 지혜를 익혀 마음 씀에 받아들이는 바가 없기 때문에 예절을 잃지 않고, 법(法)을 행함도 허망하거나 혼란하지 않습니다. 뜻이 귀중한 보배와 같아서 모든 늙고 병듦을 제거하고 뜻으로써 법기(法器)를 삼는데, 이것이 인욕(忍辱)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생각함에 있어 단지 진리만을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다만 법에 대한 지혜의 생각이며, 넉넉하지 못할 때에도 베풀어주는 것에 아낌이 없고, 도와주는 것에 있어서도 적당하지 않으면 안 되며, 들은 진리를 마음으로 관찰하고, 얻을 것이 없음을 기뻐하면, 그 마음이 이미 기쁘고 신체는 모두 가벼워집니다.
뜻과 같이 하여 다른 생각이 없기에 마음속으로 선교방편을 받고 싶어하고, 어디로부터 나는 곳이 없는 법[無所從生法]을 듣고 싶어하며, 탐내지 않고 관(觀)하고 다만 자비한 마음으로 제도하고 싶어하고, 덧없는 소리[無常聲]를 알고 싶어하며, 적연한 뜻을 알고 싶어하고, 공(空) 또한 공한 것이라는 이치를 알고 싶어하며, 생사와 보시에 대한 생각함조차 없는 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보배라 하느냐 하면, 첫째는 비유하면 물속의 그림자와 같이 그림자는 물속에 있는 것이 아니요, 또한 물 밖에 있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보살은 이 세간에 앉아 있으면서 그 몸은 시방세계 어느 곳에나 다 있으나, 또한 그 몸은 시방세계 어느 곳에도 있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보살이 이 세간에 앉아 있으면서 몸을 나누어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 앞에 다 나타나 앉아 있으나, 그 몸은 또한 시방세계의 부처님 앞에 앉아 있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010_1212_b_21L二者、菩薩於是閒坐,分身悉現十方佛前坐,其身亦不在十方佛前坐。
010_1212_c_02L 셋째는 비유하면 마치 산속에서 소리를 외치면 그 음성의 메아리가 다시 돌아와서 그 메아리는 산속에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밖에 있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보살이 여기에 앉아 있기는 해도 그는 멀리서도 시방세계 모든 보살의 일들을 다 설하니, 시방세계 모든 보살들도 또한 보살이 있는 곳에 도달함이 없고, 보살도 또한 나아감이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담마갈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아수륜(阿須倫)이 군대를 일으키려고 할 때에 손가락을 튀기듯 짧은 시간에 28천(天) 군사들이 문득 이르는데, 그 중간에 한 곳도 비어 있는 곳이 없음을 보았을 것이니라. 보살이 제9지(地) 보살로부터 그 아래에 이르기까지 법을 설할 때에도 이와 같으니라.”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청정한 사람은 탐욕을 잘 다스려 소멸시키니 그 마음에 탐욕이 없는 것이 다함이 없으며, 저 모든 악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악한 마음을 항복시키지 못해서 다시 그 마음이 혼란하게 되면 악한 마음을 보호하나니, 이런 까닭에 다함이 없습니다.
그 마음에 진에(瞋恚)가 있고 그 몸을 뽐내어 자만하려는 자가 모든 곳에서 이런 마음 일으키려는 자를 찾을 수 없게 하면, 보살은 항상 이런 뜻이 있는 이를 보호하되 보이지 않는 모든 번뇌[垢]를 다 버리지 않았음을 아나니, 마땅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보호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 마음이 게을러지지 않게 하니, 그러므로 마땅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광란(狂亂)한 사람이 있을 경우 그 마음을 바꾸어 법으로 보호하니 마땅히 이렇게 하려는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보호해 주려고 하니, 이런 마음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010_1213_a_02L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 마음속에 다라니[陀隣尼] 행을 닦음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둘째 다라니를 행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넷째 학문을 싫어하지 않으므로 다라니를 행함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여래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했다. “다시 다함이 없는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상탈(上脫)과 중탈(中脫)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사마(四馬)의 길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뜻의 왕[意之王]이 될 만한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넷째는 12인연에 주체가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다함이 없는 네 가지입니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또 다함이 없는 여덟 가지 법이 있습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나[我]가 없다는 말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적막한 니원이라는 말이 다함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보살이 제도하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큰 바다로 물이 흘러들 듯이 게으르거나 권태로워하지 않음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뭇 악한 번뇌[垢]가 없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는 고통의 소리가 다함이 없는 것이며, 여덟째는 과거와 미래의 생각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덟 가지 법이며, 제도할 대상에 주체가 없는 것도 다함이 없습니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또 다함이 없는 아홉 가지 법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부처님 국토가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보살이 어느 곳으로부터 온 곳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10_1213_b_02L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서른두 가지 보배가 있습니다. 무엇을 서른두 가지 보배라고 하느냐 하면, 첫 번째는 그 마음이 애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인욕(忍辱)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두 번째는 이것은 ‘나[我]다’, ‘내가 아니다[非我]’ 하는 것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짓는 바가 없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세 번째는 일체의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네 번째는 일체에 대하여 마음과 뜻이 항상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다섯 번째는 모든 사람을 대함에 성내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010_1213_c_02L 열세 번째는 모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손가락을 튀기듯 짧은 시간이라도 보살에 대하여 생각함이 없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열네 번째는 공덕으로 장엄한 몸의 모습[身相]을 보호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아홉 번째는 다른 사람을 헤아려 보아 악한 일이 있으면 ‘나도 또한 악한 일이 있는가?’ 하고 스스로 헤아려 봄으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무 번째는 생각하는 바에 삿됨이 없이 곧 깨달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스물한 번째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뜻을 화합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두 번째는 악한 사람을 보호하여 그로 하여금 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세 번째는 여러 하늘 세계에 태어나서 여러 하늘을 가르치고 인도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네 번째는 천상이나 세간에 태어나서 두 갈래 세계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다시는 3악도(惡道:지옥ㆍ축생ㆍ아귀)의 악한 세계에 나지 않게 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스물다섯 번째는 여러 가지 좋은 상호(相好)를 갖추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010_1214_a_02L 스물여덟 번째는 모든 물질[色]과 명예[名]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스물아홉 번째는 지은 공덕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다만 뭇 법(法)을 일으키려고 할 뿐이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서른 번째는 여러 외도를 항복시키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서른한 번째는 이미 온갖 질병에서 벗어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서른두 번째는 모든 불법(佛法)을 구족하여 불법을 훼상되지 않게 하므로 인욕함이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에게 서른두 가지 일이 있는데, 들어갈 만한 보배가 됩니다. 무엇이 그 서른두 가지 일인가 하면, 첫 번째는 음향(音響)에 들어가고 관하는 데 들어가되 관하는 것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두 번째는 마음과 마음을 여읜 데에 들어가되 마음에는 주장하는 바가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세 번째는 몸에 들어가서 해탈을 구하지만 본래 해탈할 것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네 번째는 12인연에 들어가되 머무르지 않고자 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보배가 되며, 다섯 번째는 단절됨[斷]에 들어가서 단절됨이 없음을 여의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세 번째는 공(空)에 들어가되 공 가운데서도 공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네 번째는 무상(無想)에 들어가되 무상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열다섯 번째는 원(願)에 들어가되 원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010_1214_b_02L열여섯 번째는 공(空)에 들어가되 공하다는 생각을 여의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열일곱 번째는 삼매에 들어가되 부합함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어떤 법도 두 가지 법이 없기 때문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열여덟 번째는 삼매로써 태어날 곳을 소원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한 번째는 생겨남이 없는 처소[無生處]에 들어가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두 번째는 동요하지 않는 처소에 들어가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물세 번째는 일체가 무아(無我)라는 데에 들어가되 무아를 여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스물여섯 번째는 모습에 들어가되 처음부터 서로 아는 것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2) 이것이 보배가 되고, 스물일곱 번째는 싫어하려 하고 생각하려고 하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스물여덟 번째는 불념(不念)에 들어가되 생각함이 없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스물아홉 번째는 여러 다라니문에 들어가되 총지(總持)로 여기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됩니다.
서른 번째는 여러 가지 악을 짓는 곳에 들어가되 악을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고, 서른한 번째는 선교방편에 들어가서 뜻으로써 법기(法器)를 만들고자 함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며, 서른두 번째는 온갖 일과 서로 호응하여 서로 멀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성안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들어갈 문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이, 인연을 알고자 하면 다투는 것이 없어야 하고, 다툼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잘 지키는 것만 못하며, 말하고 싶어하지 않음을 알려고 하는 것은 그 가운데 있지 않는 것만 못하고, 동요하지 않는 데에 머물려면 탐욕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희망함이 없고자 하면 생각하는 바가 없어야 하니, 이런 까닭에 평등하다고 하느니라.
010_1214_c_02L위태롭지 않으려는 이는 마땅히 위치를 바르게 하여 지극함을 말해야 하고, 달라짐[異]이 없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스스로 그 가문을 지켜야 하며, 능히 가문을 스스로 지키려는 이는 칭찬하여 말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낮추지 않는 그러한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모든 것에 미치려[咸] 하지 않는 이와 꾸짖음을 받지 않는 이와 부릴 바가 있기를 바라는 이는 짓는 일에 잃는 바가 없어야 하니 도를 증득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어리석음이 없어야만 하느니라. 어리석음이 없는 이는 근본부터 본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하니 본래부터 공한 것이어서 존재함이 없다는 이치를 아는 이는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3세는 평등하여 다름이 없으니 3세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음을 아는 이는 색(色)에 머물지 않으며, 이미 색에 머물지 않으면 뭇 법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눈이 색을 보는 것은 다만 그것은 눈일 뿐이니, 눈의 정기가 이 색에 머물기 때문이다. 귀로 소리를 듣지만 소리와 인식작용은 머무는 곳이 없고, 코가 냄새를 맡지만 냄새와 인식작용은 머무는 곳이 없으며, 입이 맛을 보아 알지만 맛도 또한 머무는 곳이 없고, 몸이 접촉하여 감촉[細滑]을 느끼지만 인식작용은 머무는 곳이 없으며, 뜻이 인식작용을 알지 못하고 인식작용도 뜻을 알지 못하며 모두 머무는 곳이 없으니, 본행(本行)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지혜로 진리를 수행해야 하니 진리는 나와 같은 것이어서 여기에는 나[我]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我所]이라는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을 보되 다만 나라는 것이 없으며 나라는 이름이 없음을 보아야 하느니라. 지혜도 모든 소유(所有)를 알지 못하고 모든 소유도 또한 지혜를 알지 못하며, 탐욕은 습관을 알지 못하고 습관은 지혜를 알지 못하며, 지혜는 몸을 알지 못하고 몸은 지혜를 알지 못하나니, 보살의 마음은 그 마음의 옳고 그름을 여의지 않느니라.”
담마갈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도(道)가 생각과 합하지 않는다면 합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까?”
010_1214_c_18L曇摩竭菩薩白佛言:“天中天!道不與想合,爲有合者無?”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무엇으로도 증명할 수 없으며 다만 음향(音響)으로써 법을 삼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긴 피리를 불 적에 그 소리가 구슬프거나 후련하여 노래와 함께 서로 맞아 떨어지면, 노래의 기운과 피리의 기운이 고르게 합쳐져서 동일한 음성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의 모든 삼매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법은 생겨나는 것도 없고 무너지는 것도 없으며, 또한 생겨나거나 무너짐을 여읨도 없느니라.
010_1215_a_02L모든 변화도 이와 같고 모든 생각도 이와 같으며, 모든 깨달음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모든 생겨나는 것은 이름이 없는 것이요 이름이 없다는 것조차 여의었으며, 모든 생각도 이름이 없는 것이요 이름이 없다는 것조차도 여의었으며, 깨달음도 모든 이름이 없는 것이요 이름이 없다는 것조차도 여의었느니라.
모든 이름은 처소가 없으니 나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다만 작용이 없는 생각을 여의어야 하며, 오직 작용이 없는 작용으로써 작용과 생각을 삼아야 하느니라. 생각과 행이 적연(寂然)하여 전혀 집착할 것이 없으니 모든 법에 탐욕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일체의 모든 것이 다 이러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래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에 만약 생겨나는 곳[生處]이 있다 하더라도 그곳은 없는 것이요, 만약 변화하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그곳 또한 없는 것이며, 모든 법에 대하여 만약 깨닫는 곳이 있다 해도 그 깨닫는 곳은 없는 것이요, 모든 법에 대하여 만약 생각하는 곳[念處]이 있다 하더라도 그 생각하는 곳 또한 없는 것이니라.”
천 살[千歲] 먹은 마른 나무 살아나듯이 모두 마음 냄에 따라 일어나네. 모두가 큰 광명 보았으니 세간에 가장 높아 견줄 이 없네.
010_1215_b_19L千歲枯樹生, 皆從發意起; 皆見大光明,
世閒最無有。
허공에서 음악 소리 들려오고 밤낮으로 광명 나타나나니 이때 큰 모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보살의 마음 냈다네.
010_1215_b_21L虛空爲音樂, 晝夜光明現;
是時及大會, 悉發菩薩意。
백성들 크게 기뻐하면서 모두들 이 경을 들었는데 곧바로 삼천세계 진동하였고 부동(不動)의 몸 얻었다네.
010_1215_b_22L人民大歡欣,
皆得聞是經; 卽動三千剎, 得受不動身。
적연한 법 나타나니 이것은 무명(無名)이 호응한 것이라 어찌 세간의 모든 존재가 다 이와 같지 않겠는가?
010_1215_b_23L寂然法爲現, 無名是其應; 何況世所有,
一切皆如是。
010_1215_c_02L 청정(淸淨)도 선정[定]이 되지 못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도 본래 나타남 없으며
청정과 어리석음은 본래 합해진 것이니 지혜도 본래 해탈할 것이 없는 것이네. 삼매란 조작하는 것 없으니 모든 것도 다 이와 같아서 보살이 머무는 도지(道地)도 마음을 따라 생겨난다네.
여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본원은 다함이 없으며 무극국에는 다 보살만 있고 아라한이라는 이름은 없으며 여인의 소리를 들어볼 수 없고, 궁전은 다 수정(水精)으로 되어 있고, 나무는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으며, 나뭇잎은 흰 은으로 되어 있고 나무 열매는 산호와 마노로 되어 있으며, 요요(銚銚)하고 횡횡(鐄鐄)하여 세상에 밝은 것과는 다르며, 모든 보살들도 연꽃 가운데에 살고 있습니다.”
사리불이 여래에게 말하였다. “보여래(寶如來)께서 당시에 억만 가지 꽃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 꽃은 각각 색상이 달랐으니 그것이 어찌 생각[想]이 아니겠습니까?”
010_1216_a_04L舍利弗白如來言:“寶如來時持億萬種華來,各各異色,豈非想耶?”
여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형상이 없는 꽃이었습니다. 다만 꽃으로 법기(法器)를 만들었으므로 받았을 뿐입니다. 모든 보살이 꽃을 가지고 죽림원에 온 것은 이미 다 법으로 준 것이지, 그 가운데 어떤 서원이 생겨나서가 아닙니다. 꽃을 가지고 온 것이 주(主)가 되는 것이지, 그 꽃 가운데 무엇이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비유하면 도리천(忉利天)에 구기(拘耆)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 꽃이 울창하여 여러 하늘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보살은 이미 법으로써 일체를 깨달아 의왕(意王)이 될 만한 분이므로 안목(眼目)으로 삼을 뿐입니다. 도라는 것은 다 없는 것이니 다만 마음으로 그릇을 삼을 뿐입니다.”
여래가 말하였다. “변화하는 도가 어느 곳을 거쳐서 갔습니까? 그리고 와서 도달한 곳은 어디입니까? 또한 어느 곳으로부터 왔습니까? 도에는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010_1216_a_22L如來言:“化道徑在何所去?來到何許?從何所來?有道路無?”
사리불이 말하였다. “변화를 거쳐서 온 도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舍利弗言:“化無有道徑。”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한 것인지를 압니까?”
010_1216_a_24L“何知爲化?”
010_1216_b_02L사리불이 말하였다. “다만 변화가 이룩되었을 때에 마침내 본말(本末)을 볼 수 없었으므로, 변화한 것이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여래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010_1216_b_02L舍利弗言:“但見化成時,了不見本末,故呼之爲化耳!如來化無所有。”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는 이가 본 것은 거꾸로[倒] 본 것이 아닙니까?”
舍利弗言:“見者不見到見耶!”
사리불이 여래에게 말하였다. “보는 것이 없다면 무엇을 본다고 합니까?”
010_1216_b_04L舍利弗白如來言:“無所見。何等爲見者?”
여래가 대답하였다. “모든 생각은 변화[化]와 같아 이것이 견(見)이 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이 변화와 같으니 이것이 견이 되며, 미래법(未來法)은 아직 이름이 없으니 이것이 견이 되고, 조작함이 없는 법이 바로 견이 되며, 만들지 않은 법이 곧 견이 되고, 조화(造化)가 없는 것이 곧 견이 되며, 다만 이름 없는 생각을 짓는 것이 바로 견이 되며, 다만 조작 없는 변화를 짓는 것이 바로 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