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0_1367_a_01L
불설아사세왕경(佛說阿闍世王經)1) 상권
010_1367_a_01L佛說阿闍世王經卷上


후한(後漢) 월지삼장(月氏三藏) 지루가참(支婁迦讖) 한역
현성주 번역
010_1367_a_02L後漢月氏三藏支婁迦讖譯


이와 같이 들었다.
010_1367_a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1만 2천 비구와 함께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祇闍崛山)에 계셨다.
또 이 자리에 참석한 8만 4천 보살은 낱낱이 다 매우 훌륭하고 뛰어난 분으로서, 모두 온갖 총지법문(總持法門)2)을 얻어서 걸림이 없는 변재[無所罣閡欲]3)를 지녔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 無所從生法)4)도 깨달았다. 또 삼매(三昧)의 지혜를 얻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알아내고, 사람들이 원하는 경계를 따라서 설법하고 교화하여 알맞은 자리를 얻도록 하였다.
010_1367_a_04L一時佛在羅閱祇耆闍崛山萬二千比丘俱菩薩八萬四千一一尊復尊諸菩薩摩訶薩悉得諸摠持悉得無所罣閡欲悉得無所從生法而得如是三昧慧悉得知一切人心之所行如所欲以法教令各得其所
그리고 모든 사천왕(四天王)ㆍ제석천왕(帝釋天王)ㆍ제석천의 모든 천자(天子)ㆍ용ㆍ열차(閱叉:夜叉)ㆍ건타라(揵陀羅:乾闥婆)ㆍ아수륜(阿須倫:阿修羅)ㆍ가류라(迦留羅:迦樓羅)ㆍ진타라(眞陀羅:緊那羅)ㆍ마휴륵(摩休勒:摩睺羅伽) 등 사람 모양이면서 사람 아닌 무리[人非人]도 다 이 법회에 참석하였다.
010_1367_a_09L四天王及天帝釋釋天及諸天子閱叉揵陁羅阿須輪迦留羅眞陁羅摩休勒人非人悉來會
이때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은 그 산의 다른 한 쪽에서 훌륭한 스물다섯 사람들과 함께 자리하였다. 이 스물다섯 사람은 다 보살로서 각각 이름이 있었다.
야나사리(若那師利)ㆍ나라달(那羅達)ㆍ사리삼파(師利三波)ㆍ사리겁(師利劫)ㆍ파두사리겁(波頭師利劫)ㆍ사인타루(闍因陀樓)ㆍ다라니타루(陀羅尼陀樓)ㆍ라타파니(羅陀波尼)ㆍ라타모하다(羅陀牟訶多)ㆍ사하말(私訶末)ㆍ사하유가사구라(私訶惟迦闍俱羅)ㆍ가나가사(加那迦闍)ㆍ사하질두파침마차가(沙訶質兜波沈摩遮迦)ㆍ파괄진차살화파타(波栝鎭遮薩★波陀)ㆍ파지반구리(波坻盤拘利)ㆍ사갈말(沙竭末)ㆍ마하예루(摩訶麑樓)ㆍ기비타차아난타(耆非陀遮阿難陀)ㆍ비차파무(譬叉波貿)ㆍ기라야아난타(耆羅耶阿難陀)ㆍ아람유하라마저타(阿藍惟訶羅摩抵吒)ㆍ사모가저타(沙牟迦抵陀)ㆍ아유달(阿喩達)ㆍ살화알(薩和頞) 등이 훌륭한 스물 다섯 사람의 이름이다.5)
010_1367_a_12L時文殊師利在山一面異處與二十五上人俱謂二十五人者悉是菩薩各各有名名曰若那師利那羅達師利三波師劫波頭師利波頭師利劫闍因陁陁羅尼陁樓羅陁波尼羅陁牟訶私訶末師訶惟迦闍俱羅加那迦沙訶質兜波沈摩遮迦波栝鎭遮和波陁波坻盤拘利沙竭末摩訶麑樓耆非陁遮阿難陁譬叉波貿耆羅耶阿難陁陁藍惟訶羅摩抵咤沙牟迦抵陁阿喩達薩和頞悉是爲二十五上人名
010_1367_b_02L네 도술천자(兜術天子:兜率天子)가 문수사리보살의 처소로 와서 법을 듣고자 하였다. 그 천자들의 이름은 사마타구칙마라(沙摩陀鳩遫摩羅:普等華)ㆍ무구칙마(無拘遫摩:光明華)ㆍ만나라건타사하(漫那羅揵陀沙訶:天香華)ㆍ구술담유하(漚術曇惟訶:信法行得)이다. 그 외 다른 천자(天子)들도 조금씩 모여들어 문수사리의 처소에 와서 설법을 듣고자 하였다.
스물다섯 보살과 천자들은 다 함께 앉아서 각각 말하였다.
“부처님의 지혜는 너무나 훌륭하십니다. 그 끝을 알 수 없고,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셀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보통으로는 그 서원[僧那]을 따를 수도 없습니다.”
이어 모두들 말했다.
“우리들은 마땅히 어떻게 법을 닦고 방편을 알아야만 끝없는 지혜에 이를 수 있으며, 나아가 부처님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체지(一切智)6)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010_1367_b_03L四兜術天子來到文殊師利所欲聞法故其天子名沙摩陁鳩遬摩羅無拘遬摩漫那羅揵陁沙漚術曇惟訶是爲四天子復有異天子少少來到文殊師利所欲聽法上人諸天子悉坐各各說佛智慧甚尊無有極不可議不可度不可量不可以凡而應僧那皆言當何作法證方便而至無極智慧乃至佛一切智不可議
혜수(慧首)보살이 말했다.
“싫증 없이 부지런히 공덕을 쌓으면서 온갖 공덕에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b_12L慧首菩薩言於功德無有於諸功德無所悕望作是者可至無極慧
혜시(惠施)보살이 말했다.
“진실 그대로 고요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기쁘고 부드럽게 스스로 그 가르침을 따른다면, 곧바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薩芸若]의 마음을 지니게 되고 큰 서원[僧那僧涅]7)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마땅히 끝없는 지혜8)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b_14L惠施菩薩言等心如寂其心悅懌柔軟自隨其教便持薩芸若心而堅固於僧那僧涅作是者可至無極
구족평등(具足平等)보살이 말했다.
“겁수(劫數)를 세지 않고 닦아야 합니다. 미래의 겁이 한량없이 멀지라도 헤아리지 않고 닦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스스로 그 서원을 높이 떠받쳐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b_17L具足平等菩薩言不計挍劫數當來劫無央數不可以爲計是爲僧於僧那不自貢高作是者可至無極慧
구족행(具足行)보살이 말했다.
“자신의 편함만을 생각하지 않아야 끝없는 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중생을 다 편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야만 더 이상 자기의 편함을 구하지 않고 일체를 다 편안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마땅히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b_20L具足行菩薩言不自念安可至無極慧所以者何欲令一切皆安故作是念者不求復悉安一切作是者可至無極慧
연화구족(蓮華具足)보살이 말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굴복시킬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도 다스려 굴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마땅히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b_23L蓮花具足菩薩言其不自伏意者亦不能伏他人意其能自伏意者乃能伏他人意作是者可至無極慧
010_1367_c_02L연화구행겁(蓮華具行劫)보살이 말했다.
“욕망의 번뇌를 따르는 자는 욕망의 번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욕망의 번뇌를 따르지 않아야만 비로소 그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납니다. 그러한 보살은 이익을 얻거나 이익을 얻지 못하거나 그 마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또 괴롭거나 즐겁거나 비방을 당하거나 칭찬을 받거나 나쁜 일이거나 좋은 일이거나, 일체 집착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근심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c_03L蓮花具行劫菩薩言其有隨欲者不可度欲不隨欲者是乃度欲其菩薩者得利不得利其心無有異若苦若樂若謗若歎若惡若善於是無所著所以者何亦不憂亦不喜是者可至無極慧
제지제근(制持諸根)보살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공덕으로 자기의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끝없는 지혜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마땅히 자기 혼자일 뿐 벗도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일체중생을 생각하여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추지 못하는 공덕을 나는 마땅히 갖추리라는 각오로 잠시도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체중생을 교화하려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c_08L制持諸根菩薩言不念他人作功德我可得作是者不入無極慧當念獨而無有伴所以者念於一切故諸不辦者我當辦之須臾精進不以懈怠欲教一切是者可至無極慧
지행여지(持行如地)보살이 말했다.
“비유하면 땅과 같습니다. 일체 초목과 약초와 집들과 성곽 등이 땅을 의지하여 머물지 않음이 없으나, 땅은 이들을 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체가 땅을 우러러보면서 살아가지만 땅은 부담스럽거나 번거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당연히 땅처럼 기뻐하거나 성냄이 없는 마음을 지니고 일체중생에게 각각 알맞은 자리를 얻게 하면서도 되돌려 받겠다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c_13L持行如地菩薩言譬若如地一切草木藥舍宅城郭不因地而住者地亦無所置一切仰而得活亦不以爲煩荷菩薩者亦當如是持心當若地亦不喜怒持心令一切各各得其所亦不念還復作是者可至無極慧
010_1368_a_02L보원(寶願)보살이 말했다.
“마땅히 거룩한 마음을 지닐지언정 스스로 비굴하지 않아야 하며, 꿈속이라도 두 갈래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 하면 나한(羅漢)이나 벽지불(辟支佛)의 뜻을 두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보배처럼 귀중한 보살정신을 떠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깨우치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또 진귀한 보배를 탐하거나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누가 그 보배를 찾을지라도, 다 베풀어 깨우치면서 대승[摩訶衍]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무심(無心)의 경지가 이 마음과 평등하고, 무심(無心)의 지혜가 이 마음의 지혜와 평등한 사람은불어나는 일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어서 그 마음에 탐하거나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7_c_19L寶願菩薩言持心如尊不自卑於夢中亦無二心所以者何無羅漢辟支佛意其所作譬若如寶不離菩薩若不失一切人心於珍寶心無所貪惜其從索者皆開導爲摩訶衍所以者何無心與心等者無心慧與是心慧等者亦無所增無所減其心無所貪惜作是者可至無極慧
보인수(寶印手)보살이 말했다.
“다섯 세상에서 나고 죽는 사람들을 보면 바다에 빠져 괴로워하는 것으로 여기고, 이들을 가엾게 여기면서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의 손길로 건져줘야 합니다. 왜냐 하면 지식이 없는 이를 지식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탐욕이 많은 이를 아낌이 없는 자 가운데 으뜸이 되도록 하며, 계를 지키지 않는 이를 지계(持戒)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많이 성내는 이를 인욕(忍辱)의 으뜸이 되도록 하며, 게으른 이를 정진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마음이 어지러운 이를 선정[一心]의 으뜸이 되도록 하며, 지혜가 없는 이를 지혜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공덕이 없는 이를 공덕의 으뜸이 되도록 하면서, 공덕의 으뜸으로 세 가지 법보[三法寶]를 깨치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법보(法寶)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일이요, 둘째는 스스로 그 몸이 보배처럼 진귀한 공덕임을 알도록 하는 일이며, 셋째는 일체 온갖 법이 허공처럼 텅 비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보(法寶)의 으뜸으로서 이를 셋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a_04L寶印手菩薩言視五道生死人譬如墮海菩薩若心而愍念當以手授之所以者何爲無黠者作黠首其貪者爲作無所惜首其不持戒者爲作戒首其瞋怒者爲作忍辱首其懈怠者爲作精進首其亂意者爲作一心首其無慧者爲作智慧其無功德者爲作功德首以功德首印三法寶何謂三令一切具足佛智慧教化而造作自解其身珍寶功念一切諸法譬如空是故爲法寶之首是爲三其作是者可至無極慧
사자의(師子意)보살이 말했다.
“그 몸에 서원[僧那]을 세운 이는 겁내거나 두려운 일이 없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물러나지도 않고 흐트러지지도 않으므로 털이 곤두서도록 놀라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泥洹]을 닦지도 않으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에 평등하게 머물러 두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a_15L師子意菩薩言其身作是僧那者所恐懼亦不畏亦不卻亦不解衣不復起所以者何於生死無有惡故亦不作於泥洹等住於苦樂不作二作是者可至無極慧
010_1368_b_02L사자보과무구(師子步過無懼)보살이 말했다.
“그 근기가 약하고 열등한 자는 이 끝없는 지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보살은 이 끝없는 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뛰어난 보살은 온갖 악을 버리고 사특하지 않으며, 질박한 경지를 그대로 따르면서 자신을 높이 받들어 교만하지 않으니, 성내는 마음도 없고, 잘못된 법을 따라 행하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뛰어난 보살은 진실하고 바른 법을 닦아 탐욕[婬]과 질투가 없고 나쁜 마음이 없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캄캄하여뛰어난 보살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사람은 몸과 입과 뜻을 평등하게 닦아서, 말한 대로 실천하고 뜻을 잃지 않는 가운데 매우 훌륭한 경지를 성취하겠다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010_1368_a_20L師子步過無懼菩薩言其弱劣者不能逮此是者大士之所作所以者何以捨衆惡不諛諂以應質朴則不貢高無瞋恚之心所作不從非法所以者何用忠政故則無婬嫉以無惡心其愚癡若以無此者其身口意以平等所語如語不失其意甚尊所作欲成
왜냐 하면 지극히 진실한 경지를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과 함께 스스로 즐기고 법대로 행하면서, 수명(壽命)을 탐하거나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몸과 목숨을 탐하지도 않고 일체중생을 버리지도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탐내거나 아끼는 일 없이 베풀면서, 사람들에게 그 알맞은 자리를 얻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른 경지에 들어가면 잘못된 길이 없어집니다.
가난한 이에게는 진귀한 보배의 창고가 되고, 병든 이에게는 의사가 되며, 두려운 이에게는 보호자가 되고, 나약한 이에게는 도의 자리[道地]를 마련해 주며, 잘못된 길로 들어간 이에게는 바른 인도자가 되고, 지혜가 없는 이에게는 지혜의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일체가 다 순조롭게 따르리니, 그 어떤 원한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뛰어난 보살은 이러한 해탈법인(解脫法忍)에서 법을 받아 지니고, 본래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라야 비로소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b_04L所以者何用至誠故俱以法自娛樂以如法者不貪惜壽命所以者何不貪軀不捨一切故所施與無所貪惜令人得其所故所入者正則非邪道其貧者爲作珍寶藏其有病者則爲作其恐懼者則爲作護其劣者則爲作道地其入邪者則爲作政導其無智者則爲作智一切諸順何所恨起大士以度脫此中忍所受法本如作是者乃至無極慧
자마금색(紫磨金色)보살이 말했다.
“생각을 허공처럼 넓게 써야 합니다. 왜냐 하면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비[大哀]를 베풀어서 모자람 없이 덮는다면, 그 마음은 항상 즐겁고 그 얼굴은 언제나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온갖 욕망으로 즐기는 일은, 그 마음이 허망하여 그 가운데 있지 않으나, 보시[所施與]9)는 하늘이 덮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일심(一心:禪定)과 지혜(智慧)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b_14L紫磨金色菩薩言所念譬如空所以者何無所不以大哀無所不覆其心常喜面頰而悅諸所欲樂者其心不在其中施與譬如天無所不蔽其戒忍辱一心智慧亦復如是作是者可至無極慧
발의즉전법륜(發意卽轉法輪)보살이 말했다.
“새로 발심한[新發意]이가 있으면 마군(魔軍)이 그 틈을 엿볼 수 없도록 도와서, 모든 부처님과 하늘과 신들의 보호하는 뜻을 잃지 않고, 마음을 내어 머물 때마다 마땅히 법륜(法輪)을 굴려야 합니다. 왜냐 하면 훌륭한 마음을 일으키면서도, 또한 일체의 온갖 법에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b_20L發意卽轉法輪菩薩言其有新發意者不當令魔得其便不失諸佛天神意作心住者以應法輪轉以者何用發好心故所以者何一切諸法無所生其作是者可至無極慧
010_1368_c_02L제어자연보무불입(諸語自然普無不入)보살이 말했다.
“마땅히 마음을 가지고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본래 자연 그대로 다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일체 언어도 다 공하여 허공처럼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보살도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이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어야 하고, 하는 일을 말한 대로 행하면서, 그 지혜로 밝히지 못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b_24L諸語自然普無不入菩薩言當持心無所不入所以者何諸法自然其本悉空一切所語皆空譬若虛空無所不入菩薩者當復如是其心無所不有所作如語其智無所不曉其作是者可至無極慧
낙부동(樂不動)보살이 말했다.
“온갖 존재의 음성(音聲)이 존재하지 않으니, 온갖 존재의 성향(聲響)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이는 기뻐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며, 게으르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태산은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림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살의 마음은 좋은 소리나 나쁜 소리에, 기뻐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집착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착할 대상이 없으면 부처님의 말씀이나 외도의 말도 모두 공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욕망의 세계[欲有]에서 하는 일은 다 사라지는 존재로 보고 사라짐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떠받들어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 법을 닦는 이는 빠르게 성불(成佛)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c_07L樂不動菩薩言所有音無有音諸所有聲而不可得以知是者亦不以喜亦不以憂亦不懈怠所以者何譬若泰山而得風亦無所動諸好音惡音菩薩心亦不以喜亦不以憂慼所以者何無所著所著謂佛語若異道語俱空無所有視諸欲有所作者皆有盡以知盡而不貢高作是法者疾成至佛
해의(海意)보살이 말했다.
“바다가 온갖 것을 받아들이듯 그 마음의 지혜가 끝이 없어야 합니다. 마치 바다가 온갖 강물을 받아들여 한 맛[一味]을 이루는 것처럼, 보살은 온갖 존재를 합하여 한 법을 이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미묘한 법의 작용으로, 12인연(因緣)의 변화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늘거나 줄지 않는 법신(法身)을 생각하는 가운데 일체중생을 위하여 공덕을 닦고, 그 닦은 공덕을 일체중생이 다 얻을 수 있도록 바란다면, 이것을 다함이 없는 공덕이라고 합니다. 이 공덕을 마땅히 보호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으면서, 의지의 능력을 다하여 몸을 다스리면, 모든 존재의 작용은 다 평등하여 차별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닦으면서 의지(意志)의 지혜를 일으켜야만, 모든 것을 충분히 갖추고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c_15L海意菩薩言其心當如海所受慧而無極如海受於衆流合爲一味菩薩以諸所有合爲一法所以者何用微妙故不與十二因緣有所變念法身亦不增亦不減爲一切作功德所作功德欲令一切皆得是爲不可盡功德護不著不斷以意力制身諸所有所作皆等無有異作是故發意慧者足可至無極慧
010_1369_a_02L대광명(大光明)보살이 말했다.
“마음에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을 갖추는 일은, 세속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보살은 광명을 닦아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법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려면, 보시(布施)의 광명을 닦아서 비추지 않은 곳이 없어야 하고, 지계(持戒)의 광명을 닦아서 비추지 않은 곳이 없어야 하며, 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일심(一心:禪定)ㆍ지혜(智慧)의 광명을 닦아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8_c_24L大光明菩薩言當持其智慧其光明如佛非俗人之所其意習光明無所不照所以者何欲令世閒知以爲法則其意習施與光明無所不照習戒光明無所不照忍辱精進一心智慧悉習其光明無所不照作是者可至無極慧
염명(焰明)보살이 말했다.
“공덕의 지혜로 마음이 밝아져서 색(色)을 본다면, 색은 청정하게 보이므로 싫어하지 않습니다.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細滑]ㆍ법(法)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또 여섯 가지 일도 청정해집니다. 여섯 가지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뜻입니다. 여섯 가지가 다 청정하니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정하므로 보는 사람마다 다 불법(佛法)으로 들어오게 하여, 그 바르지 못한 이들을 법으로 이끌어 교화합니다.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베풀어주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9_a_07L焰明菩薩言以功德慧心爲眼淸淨所視色無有惡細滑法亦復如是以淨於六事何謂六諸所可者不那中作樂用心淨故所視人欲令悉入佛法其不正者以法率化所有好物人來索之無所愛惜旣與不從後悔作是者可至無極慧
010_1369_b_02L가의왕(可意王)보살이 말했다.
“비록 어떤 사람이 헐뜯고 욕하면서 손과 발로 때리고 몽둥이로 칠지라도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단지 그 법만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할 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이 욕하는가. 무엇이 성내는가. 무엇이 치고 때리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욕설과 성냄과 때림 등은 안으로 텅 비어 얻을 대상이 없고, 밖으로도 텅 비어 의심할 대상이 없으며, 자기의 몸에서도 볼 수가 없고, 다른 사람의 몸에서도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손과 발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기쁘게 베풀어주고, 머리를 취하려고 할지라도, 더욱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주며, 비록 성(城)과 진귀한 보배를 원할지라도 그 원하는 사람에게 탐내거나 아끼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처와 자식을 원할지라도 다 베풀어주면서 다른 마음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 경전을 독송하면서 한 장구(章句)를 얻고 기뻐할지언정 금륜왕(金輪王)10)의 환락을 좋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쉬지 않고 설법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발심(發心)하여 보살이 되기를 좋아할지언정 범천(梵天)11)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부처님 뵙기를 기쁜 마음으로 원할지언정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12)의 진귀한 보배를 탐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항상 게으르지 않고 기뻐하면서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9_a_14L可意王菩薩言其有罵詈撾棰者亦不瞋但念其法以何念法何所罵者所瞋者其撾捶亦爾以內空無所得於外空無所疑身於身無所見亦不見於他人所以者何其索手腳者歡喜與之其欲取頭者其心倍悅若索城及珍寶其有索者無所貪惜其求妻子卽持施與無有異心若諷誦起是經得一章歡喜不樂爲金輪王歡爲一切人說法而不作釋願樂造一人發心爲菩薩不作梵天願樂見不貪三千大千剎土之珍寶作是者常無懈怠如是歡喜可至無極慧
소시무저(所視無底)보살이 말했다.
“일체의 온갖 존재를 볼지라도 자기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다 청정한 세계로 보면서 존재[有]하고 존재하지 않음[無]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부처님을 볼지라도 색상(色相)으로 구할 생각을 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법신(法身)을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마음만을 볼 뿐, 모든 사람의 소유를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 공덕의 눈으로 청정한 경지에 이르면 도의 눈[道眼]과 신통을 갖추고, 이어 지혜의 눈[慧眼]을 얻어서 바로 온갖 존재에 탐할 대상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깨달음의 눈[佛眼]을 얻어 열여덟 가지 법[十八法]13)을 다 갖춘 뒤에, 법의 눈을 얻고 열 가지 힘[十力]14)을 갖추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서원을 세운 이는 곧바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9_b_04L所視無底菩薩言視一切諸所有念是我所悉淸淨剎土不念有與無見諸佛不想色求所以者何用法身視一切人心不求一切人之所有所以者何其德眼逮得淸淨便有道眼神足備具以得慧眼便知所有無所可貪便得佛眼十八法悉具以得法眼者具足十種力其作如僧那僧涅者便至無極慧
작무저행(作無底行)보살이 말했다.
“짓는 일은 모두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와 다름없이 지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머무는 대상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에서, 모든 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닦는다면 모든 순경계(順境界)15)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니, 어찌 다른 곳에 떨어지겠습니까. 죄의 경계에 떨어지는 일도 없으며 마군(魔軍)의 경계에 떨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법을 버리지도 않고 비법(非法)을 범하지도 않으면서 이 경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죄업(罪業)으로 생긴 마군(魔軍)의 일을 벗어나서 이를 따른다면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9_b_13L作無底行菩薩言一切所作如薩芸若所作何以故所住故以無所住但念諸法菩薩作是者不以諸順何爲墮亦不以罪墮亦不以魔事墮所以者何不捨法故不犯非法以故致是以度罪所作魔以應是者可至無極慧
설식애의(說息愛意)보살이 말했다.
“ ‘일체의 소유(所有)는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짓는 일마다 곧바로 온갖 마군(魔軍)에 홀린 것임을 스스로 아는 사람은 소유하지도 않고, 더 이상 마에게 유혹 당할 일을 하지 않습니다. 마에 홀리는 일을 알고 더 이상 하지 않으면, 곧 다섯 쌓임[五陰]16)을 다스리게 됩니다. 다섯 쌓임을 알면 마의 일이 없습니다. 마의 경계를 벗어난 사람은 닦는 중간에 방해를 받지 않으니, 이미 해탈하여 어떤 장애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행하는 뛰어난 보살은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9_b_19L說息愛意菩薩言一切所有者亦不從人受所作便唵嗒諸魔以自知者無所有亦無所復作以知無所復作便制五以知五陰者無有魔事以度魔界者所作中道無所覆蔽已度無所覆蔽菩薩摩訶薩作是者可至無極慧
010_1369_c_02L소기즉회(所起卽悔)보살이 말했다.
“온갖 닦는 일이 잘못된 법이면, 마음으로 곧 뉘우쳐야 합니다. 닦는 일을 법대로 행하여 그 마음이 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항상 온 마음을 기울여 반드시 선행(善行)을 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몸으로 닦은 훌륭한 법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입과 뜻으로 닦은 훌륭한 법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또 만일 근심하는 이가 있다면, 관대한 법을 베풀어서 근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뛰어난 보살은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9_c_02L所起卽悔菩薩言諸所作非法意而悔之所作如法其心無異所以者何常當專心作善其身有所作不欲令人不可若口若意所作不欲令人有不可其有愁憂者以法寬大令不愁作是者是爲菩薩摩訶薩可至無極慧
득일체원(得一切願)보살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 청정한 계(戒)를 지녀서 소원을 성취하고 청정한 계를 따라 행한다면, 더 이상 세속을 범하지 않습니다. 세속을 범하지 않으면, 37품(品)17)의 근본과 호응하여 일체를 다 아는 지혜와 다르지 않으니, 이것이 청정한 계법(戒法) 그대로 37품을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뛰어난 보살의 행이라고 하며, 이 행으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010_1369_c_09L得一切願菩薩言其有如淨戒者所願必得以如淨戒者不復犯俗不犯俗者以應三十七品根林如薩芸若其以如淨戒者不犯三十七品是爲菩薩摩訶薩所作以至無極慧
보등화(普等華)천자가 말했다.
“나무에 꽃이 피면 이를 보고 좋아하는 것처럼, 일체중생은 닦은 공덕의 은혜를 입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비유하면 도리천상(忉利天上)의 구기(拘耆) 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모든 하늘이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듯이, 법으로 일체중생의 안목이 되는 보살도 꽃과 같습니다. 또 천상(天上)의 마니보(摩尼寶)에 흠집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청정한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9_c_13L普等花天子言譬若樹有華其見莫不歡喜所作功德一切莫不蒙者若忉利天上拘耆樹而有花熾盛天莫不愛樂菩薩以法爲一切作眼譬若花若天上摩尼之寶而無瑕穢菩薩淸淨其心如是其作是者可至無極慧
010_1370_a_02L광명화(光明華)천자가 말했다.
“비유하면 해가 떠올라서 어둠이 사라졌을 때 모든 색(色)이 다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은 두루 비추지 않음이 없는 지혜로, 캄캄한 어리석음을 모두 활짝 열어 깨우쳐 줍니다. 왜냐 하면 그 캄캄한 어리석음은 끝내 밝음을 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둠에서 허덕이는 사람은 밝음을 보고 곧바로 바른 길을 찾습니다. 보살은 바른 길에 머물면서바른 길을 잃고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리켜 보여줍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69_c_20L光明花天子言譬若如日出衆冥索所有諸色悉見菩薩以智慧無所不照其諸愚癡冥盡索爲開闢所以者何終不而當明故其在冥者見明便得道徑菩薩以住道徑者其忘失道徑者指示道路以如是者可至無極慧
천향화(天香華)천자가 말했다.
“비유하면 만다라(曼陀羅)의 향기가 네 방향의 높이와 너비와 위와 아래를 각각 40리까지 풍기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이 지닌 청정계(淸淨戒)의 삼매(三昧)는 지혜의 향으로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두루 풍기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향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함은, 그 청정계(淸淨戒)의 삼매(三昧)가 지혜의 향기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이 삼매(三昧)에 머문 보살은 곧바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70_a_04L天香花天子言譬如漫陁羅花其香聞縱廣上下四維各四十里薩以所聞淨戒三昧持智慧以爲香三千大千無不聞者是香愈無央數人病其以所聞淨戒三昧智慧菩薩以住是者便至無極慧
신법행득(信法行得)천자가 말했다.
“법에 머물러서 마땅히 닦아야 할 일을 보살법(菩薩法) 그대로 행하려면, 항상 또 다시 게으름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하고, 더 이상 아는 일도 없어야 하며,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아야만, 곧바로 열 가지 일을 얻게 됩니다.
열 가지 일이란, 첫째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18)을 닦는 일이요, 둘째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19)을 행하는 일이며, 셋째 다섯 가지 신통[五旬]20)을 행하는 일이고, 넷째 네 가지 일[四事]21)을 행하는 일이며, 다섯째 세 가지 해탈과 인욕의 이로움[三脫忍辱利]22)을 다 거둬들이는 일입니다.
여섯째 사람들을 발심(發心)시키는 일이고, 일곱째 교화를 행할 때 고달픈 몸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 일이며, 여덟째 교묘한 방편[漚★拘舍羅]23)을 행하는 일이고, 아홉째 일체 법의 요지를 다 지니는 일이며, 열째 믿는 법에 변함이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닦는 이는 반드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
010_1370_a_09L信法行得天子言當住法當所作者以如菩薩法者常不復懈怠無所復懈無復念便當得十事習六波羅蜜以四等心四事摠三脫忍辱利令人發意身不離以漚和拘舍羅教悉持諸法所信無有異是爲十事其作是者可至無極慧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이 뛰어난 보살들[上人]과 천자(天子)들에게 말했다.
“보살은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어야 합니다.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24)란 무엇이겠습니까.
삼계(三界)에 있을지라도 삼계의 일을 익히지 않아야 합니다. 안[內]도 익히지 않아야 하고, 밖도 구하여 익히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밖을 익힐지라도, 제자들이 닦아 익혀서는 안될 경계[聲聞地]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또 벽지불(辟支佛)의 경계에도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25)
생사(生死)를 익혀왔다고 한다면 생사에 대한 무지(無知)를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이름[名]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이름의 근거인 색(色)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인연을 따라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인연에 대한 관찰[所見]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애착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애착을 일으키는 근본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010_1370_a_16L文殊師利謂諸上人及諸天子菩薩住無所住何謂住無所於三界不以三界作習不習者是爲內亦不求習者是爲外雖外不墮弟子無所習復不墮辟支佛地習謂生死所學習謂無所知習者是爲名所學習是爲色習者是因緣所學習謂有所見習者謂愛所學習謂有所
010_1370_b_02L또 ‘나’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나가 아닌 법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탐욕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베풀고 나서 달라지지 않는 마음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계법(戒法)에 대한 범행(犯行)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계법(戒法)을 지키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성내는 행위[瞋怒]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인욕(忍辱)을 닦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정진하지 않는 일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일심(一心:禪定)의 경지에 안주(安住)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지혜를 닦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하며, 공덕이 없는 일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공덕을 쌓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010_1370_a_24L習者謂我所學習謂非我習者貪所學習所施與無有異習者謂犯戒學習謂不於戒自貢高習者謂瞋怒所學習忍辱而不貢高習者無精進所學習精進而不自貢高習者謂亂所學習爲一心而不自貢高習者謂無知所學習智慧不貢高習者謂無功德所學習謂作功德而不貢高
그리고 세속의 법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출세간의 법[道法]을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해탈이 없는 경계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해탈의 경지를 충분히 갖추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죄악을 익혀 왔다고 한다면 죄악이 없는 법을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 번뇌의 남음이 있는 경계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번뇌의 남음이 없는 법을 다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26)
이러한 모든 법을 닦을 때, 보살은 배우고 익히면서도 배우고 익히는 일이 없이 일체 법을 보호하면서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보살은 곧바로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27)
010_1370_b_08L習者謂俗法所學習謂道法不自貢習者謂無脫所學習謂得脫而具足不貢高習者謂有罪所學習無有罪亦不貢高習者謂有餘所學習無有餘盡亦不貢高菩薩習無所習切護亦不著亦不斷作是者便至無極慧
010_1370_c_02L일체의 온갖 법은 얻을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들어가는 곳도 없고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곧바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에 이릅니다. 얻을 대상이 없는 것이 일체를 다 아는 지혜이니, 일체를 다 아는 지혜를 얻은 경지는, 색(色)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수(受:痛痒)와 상(想:思想)과 행(行:生死)과 식(識)으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 법수(法數)로도 헤아릴 수 없고, 비법수(非法數)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보시[施與]로도 셀 수 없으며, 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로도 셀 수가 없습니다.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지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으니, 과거와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삼세(三世)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일체를 다 아는 지혜는 눈으로 볼 수 없으며, 귀ㆍ코ㆍ입[舌]ㆍ몸ㆍ뜻이 작용할 수도 없습니다.왜냐 하면 6근(根)의 온갖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010_1370_b_15L諸法一切無所得所以者何所入亦無所不入故是一切智便至一切智無所得者一切智得一切智不可以色計思想生死識亦爾不從法數亦不從非法數亦不一切智施與爲數所以者何施與者亦不離一切智忍辱精進一心智慧亦不爲數何以故一切智從智慧一切智者無所不入亦不過去當來亦不入現在所以者何以過三世故一切智者不以眼而視之耳鼻舌身意亦所以者何以過諸界故
만일 남자나 여인이 일체를 다 아는 지혜를 구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일체를 다 아는 지혜와 다름없이 머물러야 합니다. 어떻게 머물러야 하겠습니까. 일체의 온갖 법에 머무는 일이 없어야만, 일체를 다 아는 지혜에 머무는 것입니다. 스스로 법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닦는 것을 일체를 다 아는 지혜라고 합니다. 일체중생의 법과 깨달음의 법이 법 그대로 평등한 것을 일체를 다 아는 지혜라고 합니다.
만일 일체를 다 아는 지혜를 구하여 얻으려고 한다면, 4대(大)에서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몸을 몸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인연을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공덕법(功德法)이 있다고 할지라도 공덕법이 없으며, 그 소유를 나의 것으로 여길지라도 다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란 생기는 대상이 없고, 생기는 대상이 없으면 헤아릴 수 없으니, 그 헤아림도 생기지 않는 법이라고 합니다. 비록 보이거나 볼지라도 다 생겨남이 없는 법이니, 생기지도 않고 생기는 대상도 없음을 아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행하는 경지를 일체를 다 아는 지혜라고 합니다.
010_1370_c_03L若男子女人欲求一切智者當如一切智住云何住於諸法一切無所住是爲一切智住不自念法是我所作是者爲一切智一切人法佛法等如是無有是爲一切智其求欲得一切智者會從四大得所以者何爲身不作身所以者何不以作因緣故其有功德法無有功德法其所有是爲我所者皆非我所我者無所生無所生者無有計其計者是爲不生其示若見者是皆無有生以知無生無所生慧作是等者是爲薩芸若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이 이 법사(法事)를 설했을 때, 이천 천자(天子)는 다 무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으며, 만 2천 사람이 모두 더없이 높고 평등한 어도[無上平等道]의 마음을 일으켰다.
010_1370_c_15L文殊師利說是事時二千天子悉得無所從生法萬二千人悉發無上平等道意
010_1371_a_02L낙부동(樂不動)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했다.
“다 함께 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보살은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를 물어 보도록 합시다.”
그러자 문수사리보살은 즉시 신통으로 여래를 변화시켜 법회 대중 가운데 앉게 하였다. 그 입은 옷과 형상은 석가모니부처님과 다르지 않았다.
문수사리보살이 파지반구리(波坁槃拘利:樂不動)보살에게 말했다.
“여쭈어 보십시오. 마침 부처님께서 여기에 계시니, 보살은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해 여쭈어 볼 수 있습니다.”
낙부동(樂不動)보살은 화신부처님인줄 모르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길게 끓어 앉아서 여쭈었다.
“부처님[怛薩阿竭]28)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화신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행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렇게 머물러야 하느니라.”낙부동(樂不動)보살이 또 여쭈었다.
“어떻게 해야 부처님처럼 행할 수 있겠습니까?
010_1370_c_17L不動菩薩謂文殊師利共到佛所問菩薩當云何住應時文殊師利化作如來在衆會中而坐其形狀被服如釋迦文佛文殊師利謂波坻槃拘利菩薩言屬之所問今佛在是可問菩薩住波坻槃拘利菩薩不知是爲化前長跪問怛薩阿竭菩薩當云何有所住化佛言如我所作菩薩當如是住復問云何如佛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를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하고, 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一心]ㆍ지혜(智慧)를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하며, 또 욕망[欲]을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하고, 색(色)을 따라 행하지 않아야 하며, 무색(無色)을 따라 행하지도 않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몸을 따라 행하지도 않아야 하고, 입을 따라 행하지도 않아야 하며, 뜻을 따라 행하지도 않아야 한다. 온갖 행하는 대상은 집착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 부처님께서 낙부동보살에게 물으셨다.
“환영(幻影)의 변화에 행의 근거가 있겠느냐?”
낙부동보살이 말했다.
“행의 근거가 없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환영의 변화에 행의 근거가 없는 것처럼, 보살도 마땅히 이렇게 행해야 하느니라.”
010_1371_a_03L其佛言亦不從施與亦不從戒忍辱精進一心智慧亦不從欲亦不從色亦不從無色不從身行亦不從口行亦不從意行諸所行無所著故其佛問波坻槃拘化者而有所從行不則答言無所從行其佛言如化無所從行菩薩當作是行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이 부처님은 변화한 부처님이 아닙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당신은 스스로 모든 법이 환영과 같다는 것을 아십니까?”
낙부동보살이 답했다.
“모든 법은 실로 환영과 같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모든 법이 환영인 줄 알면서 어째서 또 변화한 여래가 아니냐고 물어 보십니까?”
문수보살이 이어 말했다.
“그대여, 모든 부처님도 다 변화한다고 합니다.”
낙부동보살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근거로 변화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하는 행이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낙부동보살이 말했다.
“그 청정한 행을 근거로 변화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이어 말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우리도 없고 나도 없으며, 다른 사람도 없고 수명의 길고 짧음도 없으며, 목숨 자체도 없습니다. 또 부처님을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고, 보통 사람을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습니다.”
010_1371_a_10L波坻槃拘利菩薩復問文殊師利是佛當無化佛乎文殊師利答若自知諸法如化不則答言諸法實如化文殊師利言以知諸法化爲復問如來化文殊師利言仁者謂以諸佛悉化則復問文殊師利言者從何所化文殊師利言所作本淸何以故而有化文殊師利言故佛無有吾無有我無有人無有壽無有命亦不依佛住亦不依凡人住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화신부처님께 여쭈었다.
“본래 무엇을 배워야만 스스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010_1371_a_19L波坻盤拘利菩薩復問化佛本何所學自致得佛
010_1371_b_02L그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배울 대상이 없는 것이 보살의 배움이니라. 왜냐 하면 스스로 ‘나 자신이 이것을 구하고 싶다거나, 이것을 구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니라. 또 근심하지도 않아야 하고 기뻐하지도 않아야 하며, 인연하지도 않아야 하고, 따라 변하지도 않아야 하며, 보는 일도 없어야 하고 처소도 없어야 하느니라. 또 생각도 없어야 하고, 이름[字]도 없어야 하며, 색(色)도 없어야 한다. 일체에 대가를 바라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배움이니라.이렇게 배우는 것을 평등한 배움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배우는 이는 집착하지도 않고 묶이지도 않느니라. 이렇게 배우는 이는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느니라. 이렇게 배우는 이는 사랑할 일도 없고 미워할 일도 없느니라. 이렇게 배우는 이는 스스로 ‘나는 이렇게 배운다거나, 이것을 배우기 위해 이렇게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배우는 이는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010_1371_a_21L其佛言無所學是菩薩學何以亦不自念我欲求是亦不求是不憂亦不喜亦不緣亦不所化亦無所見亦無處所亦無有想亦無有字亦無有色一切無所希望是菩薩學作是學者以爲等學作是學者無所無所縛作是學者無有欲無有怒無有癡作是學者無所愛無所憎學是者不自念我作是學是爲學作是學作是學者不墮惡道
그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만일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내어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마땅히 내가 배워 온 것처럼 배워야 하리라.”
낙부동보살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배움입니까?”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죄를 짓지도 않고 죄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줄 것도 없고 가질 것도 없으며, 가지지 않을 것도 없느니라. 계를 지키지 않을지라도 계를 지킬 일이 없고, 인욕하지 않을지라도 마음에 거슬리는 일[惡意]이 없으며, 정진하지 않을지라도 게으르지 않고, 선정에 들지 않을지라도 어지러운 뜻이 없으며, 지혜를 닦지 않을지라도 알아야 할 일이 없고, 배우지 않을지라도 배워야 할 일이 없으며, 성취하지 않을지라도 성취해야 할 일이 없느니라. 또 보살도 아니고 불법(佛法)도 아니니, 자신의 몸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몸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그 보는 일에도 생각이 없으니 법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010_1371_b_07L其佛言有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欲成至佛者當作如我學復問何所是佛其佛言亦不作罪亦不墮罪亦不所與亦無所持亦無所不持亦不持戒亦無有戒亦不忍辱亦不惡意不精進亦無懈怠亦不禪亦不亂意亦不智慧亦無所知亦無所學亦不有所學亦不所成亦無有所成亦不菩薩亦不佛法亦不自念有身亦不念他人有身其所見者無有想亦不法想亦不無法想不想無想
010_1371_c_02L그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이것을 환하게 아는 보살은 반드시 이렇게 배우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의 온갖 법은 환영(幻影)과 같기 때문이니라. 환영[是]으로 모양이 이뤄졌으니, 일체의 온갖 법은 다 합하여 이뤄진 것이니라. 왜냐 하면 비록 헤아릴 수 없는 현상[事]일지라도 이를 사유해[念] 보면 다 공(空)하여 존재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합하여 이뤄진 모양은 텅 빈 것이니라.
모든 법은 볼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법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모든 법은 말이 없는 경지이니라. 왜냐 하면 말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처소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법이 생겨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렇게 믿는 이는 행할 대상을 생각하지 않고,해탈을 생각하지도 않으며, 보살의 경지를 높여 교만하지도 않느니라.”
010_1371_b_18L其佛言曉了是者菩薩當作是學所以者何諸法一切如幻是爲相諸法一切皆所以者何雖無央數事念之皆空無所有合則爲空諸法不可見所以者何諸法等而無差特諸法悉嘿以者何不語不言是故無有處所以故諸法無所生其信是者亦不念所亦不念得脫亦不菩薩自貢高
그 부처님께서 또 이어 말씀하셨다.
“이를 듣고 배우는 이는 놀라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비유하면 허공이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비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구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레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바로 공(空)한 법이기 때문이니라. 보살이란 마땅히 이와 같이 겁내거나 두려운 대상이 없어야 하느니라. 보살이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야만, 결국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켜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며, 일체중생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니라.”
그 화신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고 나서 곧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010_1371_c_03L佛言若聞是學者不恐不怖不畏故名爲菩薩譬若空不畏火不畏風不畏雨不畏煙不畏雲亦不畏雷亦不畏電所以者何是空法故菩薩者當如是一切無所畏懼菩薩心以如空者乃伏衆魔便能爲佛能爲一切作護其化佛說是語竟便不復現
파지반구리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지금 여래[怛薩阿竭]께서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오신 곳이 가신 곳이며, 가신 곳이 오신 곳입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했다.
“환화(幻化)란 본래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는데, 어째서 어디에서 온다고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비유하면 환화(幻化)가 오는 길도 없고 가는 길도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마찬가지로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습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법의 처소는 어디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자연 그대로 진실하게 머무는 곳이 바로 그 처소입니다.”
010_1371_c_10L坻槃拘利菩薩問文殊師利今怛薩阿竭所湊則答言所從來處而所湊所湊處從是來波坻槃拘利謂文殊師利其化者無所從來無所從去謂從來文殊師利答言譬若如化無道徑去無道徑諸法亦爾無所從無所從去波坻槃拘利復問何所是諸法之處則答言自然住是之處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어느 곳이 일체중생의 처소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작용하는 바로 그 곳입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모든 법은 작용할 대상도 없고 죄도 없지 않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법은 작용할 대상도 없고 죄도 없으니, 그 법은 작용하지도 않고 죄도 짓지 않습니다. 온갖 존재는 다 법신(法身)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작용하지도 않고 죄도 없다면, 어째서 사람은 그 곳을 따라 작용한다고 말하십니까?”
010_1371_c_18L復問一切何所處是其處如所作是其處復問諸法無所作無有罪文殊師利言如是者諸法無所作無有罪其法去亦無有作者無有作罪者所有悉入法身則復問文殊師利有作無有罪何以言人隨其所作
010_1372_a_02L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참으로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람 또한 작용할 대상도 없고죄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 사람들의 법이 법신(法身)이므로, 작용도 없고 죄도 없는 가운데, 작용하는 대로 얻으니, 이 셋29)은 평등합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이 세 일은 평등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진리 그대로 옴[如來]이 평등하기 때문에 이 세 일도 평등한 것입니다.”
파지반구리보살이 또 물었다.
“진리 그대로 옴은 작용도 없고 죄도 없고 얻음도 없는데, 이 세 일을 무엇 때문에 평등하다는 것입니까?”
문수보살이 말했다.
“진리 그대로 옴은 작용도 없고 죄도 없고 얻음도 없으니, 그 작용과 죄와 얻음은 그 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평등합니다. 그 죄는 벗어나고 나면 보이지 않습니다. 죄를 이미 벗어났다면, 미래에도 진리 그대로 옴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010_1371_c_24L殊師利言審如所問人亦無所作亦無有罪所以者何是人之法法身亦無有作亦無有罪如所作如所是三者等波坻槃拘利菩薩復問是三事等乎文殊師利言怛薩阿竭故三事適等復問怛薩阿竭者無罪無得是三事何緣與等文殊師利言怛薩阿竭無作無罪無得其罪其得如所爲以故等其罪以過了不見罪已過當來亦不離怛薩阿竭故說
이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처소에서는, 사리불(舍利弗) 존자와 아난(阿難) 존자와 그 외 훌륭한 비구들은 모두 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문수사리보살의 설법을 듣고 있었다.
사리불이 말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저 뛰어난 보살은 하는 일이 법신(法身)을 떠나지 않았으니, 법으로 감동시키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지혜 있는 이라면 그 누구도 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저 보살이 말한 바와 같이 보살의 배움에는 배울 대상이 없어야만, 말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심은 대로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이 저 보살은 지혜를 배워 지혜를 얻어서 이렇게 지혜대로 설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만일 이렇게 배운다면 스스로 이 지혜에 이르리라.”
010_1372_a_12L是時如在釋迦文佛所者舍利弗阿難及諸尊比丘悉承佛威神皆聞文殊師利所說舍利弗言善哉善哉上人之所作以法無所不感動不離法身其有智者聞是莫不發意佛言審如所語菩薩者學無所所語平等無有異如所種得其實其菩薩者所學者慧如是所說如慧佛語舍利弗汝若所學自致是慧
정중광명(頂中光明)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성문(聲聞)의 배움은 무엇이며, 보살의 배움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정된 견해에 집착한 배움을 성문의 배움[弟子學]이라고 하며, 한계도 없고 걸림도 없는 배움을 보살의 배움이라고 한다. 따라서 성문은 배움이 작고 약하니 그 지혜도 작고 약하지만, 보살은 배움이 크고 넓으니 그 아는 바도 끝이 없고 말도 걸림이 없는 것이니라.”
010_1372_a_20L中光明菩薩白佛何所聲聞所學所菩薩所學佛言有限有著故爲弟子學無有限無有㝵是爲菩薩學聲聞者其學小其智少菩薩者學廣其所知無有極所說無所罣㝵
010_1372_b_02L광지(光智)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감응(感應)을 내리시어 문수사리보살을 이 법회에 오도록 하옵소서. 그 이유는 이 법회의 대중들이 문수사리보살로부터 잃지 않고 간직할 법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 하면 문수사리보살의 설법은 매우 깊고 미묘하므로,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원을 따라 각각 알맞은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감응(感應)을 내리시니, 문수사리보살은 즉시 훌륭한 스물다섯 보살과 천자(天子)들과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머물렀다.
010_1372_b_02L智菩薩白佛唯怛薩阿竭作感應文殊師利衆會悉來到是所以者何其在是會皆令得無所亡失所以者文殊師利所說甚深微妙其欲聞隨其所欲各令得所佛卽感動殊師利應時與二十五上人及諸天子俱到佛所前作禮而住
광지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보살은 어째서 다른 곳에서 법을 설하였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이곳에 오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시니, 혹시라도 저의 설법이 여래의 뜻에 알맞을지 알맞지 않을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한쪽에 있었던 것입니다.”
광지보살이 또 물었다.
“어떤 법을 설해야 여래의 뜻에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부처님께서는 아시고 계십니다.”
광지보살이 또 말했다.
“비록 그럴지라도 보살은 여래의 뜻에 알맞은 법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10_1372_b_09L光智菩薩問文殊師利佛在是閒而若何緣得在異處而說法文殊師利言所以不在是閒者佛甚尊不可當或所語可怛薩阿竭意或不可意故在一面菩薩復問說何所法而可怛薩阿竭文殊師利答言佛自知之復言爾會說其意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제가 아는 대로 말하라고 한다면 조금은 할 수 있습니다.”
광지보살이 또 말했다.
“조금이라도 그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설할 바를 그대로 달라짐이 없이 설법해야만, 여래와 같고 불가사의한 본 바탕과 같게 됩니다. 그러니 법대로 머물러서 법대로 설해야만, 여래의 뜻에 알맞게 됩니다.
또 중지하는 일도 없어야 하고 단절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인연하지도 않아야 하고 인연의 대상도 없어야 하며, 불어나는 일도 없어야 하고 줄어드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설해야만 여래의 뜻을 잃지 않습니다.
또 자신도 잃은 일이 없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잃지 않게 해야 하며, 법도 잃지 않아야 하고 생사(生死)도 잃지 않아야 하며, 열반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설해야만 여래의 뜻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010_1372_b_16L文殊師利則言如我所知少當說則言何言是文殊師利言如所說所說法而不異如怛薩阿竭如本際而不可說如法住如法說怛薩阿竭意無所止無所斷亦不緣亦無所緣亦無所增亦無所減作是說而不失怛薩阿竭意亦於身無所亦不令他人有所失亦不亡法不亡生死亦不亡泥洹作是說者亦不失怛薩阿竭意
010_1372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잘했다.문수사리가 말한 그대로 해야만, 여래의 뜻에 알맞게 되리라. 왜냐 하면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니, 알맞게 중도(中道)에 있으면서 달리 생각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문수사리가 삼매를 떠나지 않고 법사(法事:바른 법에 관한 일)를 설했으나, 예전대로 모든 법이 불어난다거나 줄어든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수사리가 설한 그대로 하면, 여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설했을 때, 8백 천자(天子)가 다 무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다.
010_1372_c_02L佛言善哉善哉文殊師利所說以可怛薩阿竭意以者何亦不過亦不減適在中無所所以者何文殊師利俗三昧說事如故不見諸法有所增者有所減者如文殊師利所說不失怛薩阿竭意說是語時八百天子皆得無所從生法忍
이때 이 법회에 2백 천자가 있었다. 이들은 이전에 보살심(菩薩心)을 일으켰으나, 그 뜻이 견고하지 못하여 타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은 각각 생각하였다.
‘불법(佛法)은 끝이 없으니, 성불(成佛)하기란 너무 어렵다. 우리들은 보살의 배움을 그만두고, 차라리 나한(羅漢)이나 벽지불(辟支佛)의 법을 취하여 열반에 드는 것만 못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이들에게 보살도(菩薩道)를 성취할 능력이 있음을 아시고 계셨다. 부처님께서 이들이 타락하기 전에 그 마음을 되돌리시기 위하여 한 거사[迦羅越]30)를 변화시켰다. 그 거사는 온갖 맛난 음식으로 가득 찬 발우를 가지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를 올렸다. 그리고 부처님께 발우를 올리면서 말했다.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곧 발우를 받으셨다.
010_1372_c_09L爾時衆會中復有二百天子前以發菩薩意而未堅固皆欲墮落各各有念佛法無有極難得至佛等不在菩薩學中不如取羅漢辟支佛而般泥洹佛悉知是人可成爲菩薩而中欲意轉佛便化作一迦羅越持百味飯滿鉢齎到佛所前而作禮以鉢上佛惟加哀受之佛卽受鉢
문수사리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처님께 두 손 모아 아뢰었다.
“공양을 받으셨으니 옛 은혜를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리불(舍利弗)이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지난 세상에 문수보살에게 어떤 은혜를 입었기에 ≺옛 은혜를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사리불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문수사리보살은 과거에 부처님께 어떤 공덕을 베풀었습니까?”
010_1372_c_16L殊師利便從坐起叉手白佛雖食念故恩舍利弗心念佛本從何等文殊師利言當念故恩乎則問佛殊師利本有何功德而置怛薩阿竭
010_1373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이제 너의 의심을 풀어주리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발우를 땅에 내려 놓으셨다. 그 발우는 곧 아래로 빠져 온갖 부처님의 세계로 내려가더니, 바로 아래쪽에 있는 72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갔다. 이렇게 내려간 발우는 한 세계에 이르렀다. 그 세계의 이름은 명개벽(明開闢:漚呵沙)이며, 그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의 이름은 광명왕(光明王:茶毘耶羅)으로서, 현재 설법하고 계셨다.그 발우는 붙들지 않아도 그 부처님 세계의 허공 가운데 떠 있었다. 발우가 지나온 모든 세계의 부처님의 시자(侍者)들은 허공에 떠 있는 발우를 보면서 그들의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발우는 어디서 왔습니까?”
모든 부처님께서는 말씀해 주셨다.
“위쪽에 인(忍:沙呵)31)이라고 이름하는 세계에 석가모니[釋迦文]라는 부처님이 계신다. 이 발우는 바로 그 부처님이 보내셨느니라. 왜냐 하면 타락한 보살들의 마음을 깨우치시기 위해, 신통변화로 감동시키려고 하셨기 때문이니라.”
010_1372_c_20L佛言且忍今爲汝決狐疑卽以鉢捨其鉢便下沒過諸佛剎直下過七十二恒邊沙等剎土剎土名曰漚呵 漚呵沙者天竺語漢言名曰明開其佛號茶毘羅耶 漢曰光明王現在其鉢在彼佛剎住止空中亦無持者鉢所過諸佛剎其佛侍者皆問佛是鉢從何所來諸佛言上方有剎名曰沙呵佛號字釋迦文鉢從彼來以者何救護墮落菩薩意故以變化感動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사리불은 곧 자기 지혜의 힘에 부처님께서 내리신 위신력(威神力)을 받들고 1만 삼매에 들어가서 1만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끝까지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사리불은 삼매로부터 깨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부처님께서 또 대목건련(大目揵連)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대목건련도 자신의 신통력[神足力]에 부처님께서 내리신 위신력을 받들고 8천 삼매에 들어가서, 8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끝까지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올 수가 없었다. 대목건련은 삼매로부터 깨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수보리는 곧 1만 2천 삼매에 들어가서 1만 2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끝까지 찾아보았으나, 역시 보이지 않으니 가져올 수가 없었다. 곧 삼매로부터 깨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5백 비구가 차례로 각각 신통을 일으켜 발우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다.
010_1373_a_08L佛語舍利弗行求鉢來舍利弗卽承佛威神自以慧力入萬三昧萬佛剎亦不見亦不得從三昧還白求之不見不得佛言且捨佛復謂大目揵連行求索鉢則承佛威神蒙神足力入八千三昧過八千佛剎無所見無所得則從三昧還白佛之不見不能得佛語須菩提行求鉢則入萬二千三昧過萬二千佛剎亦不見亦不得卽從三昧還白佛之不見不能得則五百尊比丘各各以神足行求索鉢亦不能見亦不能
010_1373_b_02L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륵(彌勒)보살에게 아뢰었다.
“당신은 훌륭한 능력을 지닌 일생보처(一生補處)32)로서, 분명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우리들은 발우를 찾아보았으나, 찾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오니 부디 가서 찾아 주십시오.”
미륵보살이 말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일생보처는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문수사리보살이 닦은 삼매를 따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삼매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성불(成佛)했을 때도 저 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중생들은 다 문수사리보살이 교화할 대상입니다.또 나로서는 그 분의 발을 올리고 내리는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그 분을 따를 수 없으니, 문수사리에게 부탁하여 찾아오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수보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발 문수사리보살을 보내어 찾아오도록 하옵소서.”
010_1373_a_20L須菩提從座起白彌勒菩薩仁者高才一生補處現當來佛吾等行求鉢不能得惟行求之彌勒則答言若所說實一生補處今者不及文殊師利所作三昧及其名字聽我所言我作佛時如恒邊沙等悉爲文殊師復不能知我行步擧足下足之事如今者實不逮及不如報文殊師利而行求之則須菩提白佛唯怛薩阿當令文殊師利而行求鉢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문수사리보살은 조용한 소리로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고 혼자 생각하였다.
‘부처님과 법회대중을 벗어나지도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이 자리에 발우를 가져오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삼매에 드니 두루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바로 법회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손으로 땅을 가리키니, 그 손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 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지날 때, 만나는 부처님마다 발에 대어 예를 올리면서 석가모니불의 문안인사를 전하였다. 아래쪽 세계에서는 문안인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010_1373_b_06L佛卽謂文殊師利行求鉢來文殊師利卽嘿以受教卽自思念而不起坐不離不捨衆會於是便能致鉢卽時三昧爲無所不遍入卽於衆會以手指其手而下行所過佛剎悉爲諸佛接其足下方莫不聞其聲道釋迦文佛致問
010_1373_c_02L그리고 그 팔뚝의 낱낱 털에서 백억 천 광명을 놓으니, 낱낱 광명에서는 억백천의 연화가 솟아났고, 낱낱 연화 위마다 보살들이 있었으며, 그 보살들은 각각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찬탄하였다. 그 손이 지나간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을 반복하였고, 그들 세계에는 매우 장엄한 온갖 당기(幢旗)와 번기(幡旗)가 세워졌다.
또 손이 이미 거쳐간 세계에서는 모두들 ‘문수사리의 오른손이 만나는 부처님마다 낱낱이 발에 대어 예를 올림과 동시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문안인사를 전하면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 명개벽(明開闢:漚呵沙) 세계에 도달하는 것’을 보았다.
문수의 오른손은 마침내 광명왕(光明王:多毘羅耶)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예를 올리고 석가모니불의 문안인사를 전하였다. 그러자 그 팔뚝의 낱낱 털에서 억백천의 광명을 놓으니, 억백천의 연화가 솟아났다. 또 낱낱 연화마다 앉아 있는 보살들은 모두 석가모니불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그 보살들의 광명과 저 부처님의 광명은 서로 섞이지 않으니 각각 서로 볼 수 있었다.광명왕(光明王)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는 시자(侍者) 광존(光尊)은 뛰어난 보살이었다.
광존보살이 광명왕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누구의 손이기에 그 털에서 이토록 훌륭한 광명을 놓아 연화를 내며, 그 연화의 보살들은 노래로 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입니까?”
010_1373_b_13L其臂者一一毛放億百千光一一明者有億百千蓮花一一蓮花上者皆有菩薩其菩薩者皆各各歎釋迦文佛是所過剎土皆爲六反震動其剎土皆嚴莊幢幡而起所過處悉皆見文殊師利以右手悉接諸佛足皆言釋迦文佛之所致問過七十二恒邊沙等剎到明開闢剎土至茶毘羅耶佛所前作禮爲釋迦文佛致問其臂上毛一一毛有億百千光明億百千蓮花一一蓮花上各有坐菩薩悉歎釋迦文佛功德其菩薩光明彼佛光明如不相錯各各自見光明王佛邊有侍者而尊菩薩名曰光自問其佛是誰手臂姝好乃爾毛光明蓮花菩薩之所歌歎彼佛功
광명왕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위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면, 인(忍)이라고 이름하는 세상에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이 지금 현재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바로 그 법회에 문수사리라는 보살이 있는데 본래 불가사의한 서원을 세웠으므로, 그 지혜는 해탈하지 못한 경계가 없느니라. 지금 계속 저 부처님 앞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앉은 자리에서 저 발우를 가져가기 위해 일부러 손을 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니라.”
010_1373_c_06L其佛言上方過七十二恒邊沙等剎土名曰沙呵其佛號字釋迦文佛今現在前有菩薩名文殊師利不可思議僧涅其智無所不度以續在彼佛前坐用鉢故而投手乃到是閒
이 말씀을 들은 그 보살들은 생각하였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몹시 저 분들이 보고 싶구나.’
모두 광명왕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석가모니불과 문수사리와 그 세계를 보고자 하오니 보여주옵소서.”
그러자 광명왕부처님께서 두 눈썹 사이의 백호상[兩眉間中央相]에서 광명을 놓으시니,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사무쳐 비추고, 인(忍)세상에 이르니, 인(忍)세상은 다 환하게 활짝 열렸다. 그 광명을 본 사람들은 다들 전륜성왕(轉輪聖王)처럼 그 몸이 안온해졌고, 보통 비구들은 수다원(須陀洹)33)을 얻었으며, 3도(道)34)를 벗어난 이들은 다 8해탈[惟務禪]35)에 들어 즉시 나한(羅漢)을 얻었다.
010_1373_c_10L菩薩悉作是念皆白其佛譬如渴人欲得飮願欲得見釋迦文佛文殊師利及其剎土其佛卽以兩眉中央相而放光明徹照過七十二恒邊沙剎乃至沙呵剎悉爲開闢其有人見其光明者皆得安隱其身譬如遮迦越其有凡比丘者得須陁洹其過三道上者皆有八惟務禪應時得羅漢
또 그 보살로서 몸에 이 광명을 받은 이들은 다 일명삼매(日明三昧)를 얻었다.
그 광명왕불(光明王佛)세계의 보살들은 그 자리에서 인(忍)세계와 그 곳의 성문(聲聞)들과 보살들을 보았다. 그 보살들은 인(忍)세상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청정한 유리와 마니(摩尼)보배가 진흙 속에 떨어진 것처럼,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왜냐 하면 인(忍)세상의 보살들은 가엾게도 저런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010_1373_c_18L其菩薩身得是光明者皆逮得日明三昧茶毘羅耶佛剎諸菩薩從彼閒悉見是閒及諸聲聞諸菩薩以見是閒剎土則而淚出便言若琉璃淸淨及其摩尼墮其污泥誠可惜之所以者何沙呵剎土諸菩薩誠可惜之生彼閒
010_1374_a_02L광명왕부처님께서 파기두(波羇頭)보살에게 말씀하셨다.“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이 세상에서 천겁 동안이나 닦아야 할 선정(禪定)의 공덕으로, 저 부처님 세계의 새벽으로부터 식사 때까지 행하는 자비의 공덕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 보살들은 비록 과거의 업[宿命]이 있을지라도, 법을 행하여 손가락 튀기는 사이에 그 죄업을 다 없애느니라.”
010_1374_a_02L茶毘羅耶佛謂波羈頭菩薩汝不曉是勿得說之所以者何我剎土千劫行禪不如彼佛剎人行慈從日出至食其所功德過倍是閒彼之菩薩雖有宿命行法如彈指頃者其罪盡索
이 인(忍)세상의 보살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광명은 어디에서 왔기에 이렇게 몸을 조용하고 평온케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래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면, 명개벽(明開闢)이라고 이름하는 세계가 있는데, 그 곳의 광명왕부처님께서 두 눈썹 사이의 중앙상(中央相)으로부터 광명을 놓은 것이니라.”
이 말씀을 들은 보살들은 다 부처님께 아뢰었다.
“명개벽(明開闢)세계와 광명왕(光明王)부처님을 보고자 하오니 보여주옵소서.”
010_1374_a_07L是閒菩薩悉問佛是光明從何所來今身皆安隱佛則言下方過七十二恒邊沙等佛剎土名漚呵沙佛者號字茶毘羅耶放兩眉中央相光明菩薩悉白佛願聞欲見漚訶沙剎土及怛薩阿竭茶毘羅耶
그러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즉시 발바닥으로 광명을 놓으셨다. 그 광명은 아래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명개벽(明開闢)세계와 광명왕(光明王)여래를 비추니, 그 세계는 다 환하게 활짝 열렸다. 저 세계의 보살들은 그 광명이 비춰 몸에 드는 것을 보고, 다 원만하게 수미광명(須彌光明:摩仳低)삼매를 얻었다. 이 곳의 보살들은 저 광명왕부처님과 그 세계를 보았는데, 마치 땅에 멈춰 있으면서 해와 달과 별들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며, 아래쪽에서 이 곳을 보는 것도 역시 이 곳에서 아래쪽의 광명왕 여래와 명개벽의 세계를 보는 것과 같았다.
010_1374_a_12L應時釋迦文放足下光明照下方過七十二恒邊沙等剎漚呵沙剎土及茶毘羅耶佛盡爲開闢彼剎菩薩見其光明入其身悉得摩仳低三昧具足 三昧者天竺語漢解之名須彌光明 是閒菩薩盡見彼佛及剎譬如在地住者不見日月星宿下方見是閒亦如是閒見下方茶毘羅耶漚呵沙剎土
010_1374_b_02L문수사리보살의 오른손은 헤아릴 수 없는 백천 보살들에게 호위(護衛)되어 그 발우를 가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동안 지나온 모든 세계를 밝게 비췄던 털의 낱낱 광명과 연꽃들은 차츰차츰 사라져 갔다.
발우를 잡은 손이 이곳 영취산(靈鷲山)에 이르자, 문수사리보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그 발우를 부처님께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발우를 받으셨다.문수사리의 손을 따라 아래에서 올라온 보살들은 다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각각 자신들이 모시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석가모니부처님께 안부인사를 전했다. 부처님께서 각기 자리에 앉도록 분부하시니, 그들은 모두 분부를 받들어 자리로 가서 앉았다.
010_1374_a_20L文殊師利以右手取其鉢與無央數拘利那術百千菩薩俱而來上所過諸剎其蓮花一一毛光明稍稍而盡鉢便在手中是閒文殊師利則從座爲佛作禮以鉢授佛佛則受之菩薩從下上者悉作禮各各自以佛名謝釋迦文佛怛薩阿竭卽時各令就坐悉皆受教各各而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좀 전에 문수사리에 대하여 물었기 때문에 이제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아득히 멀고 먼 옛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阿僧祗劫)의 일이다. 이때 무상(無常)이란 세상에 용막능승(勇莫能勝)이란 부처님께서 그 회상(會上)의 8만 4천의 성문들과 만 2천의 보살들을 거느리고 계셨는데, 그 부처님께서는 3승의 성자들[三道家]36)을 위하여 설법하셨느니라.”
010_1374_b_05L佛謂舍利向之所問用文殊師利所問故爲汝說之已過去無央數不可計阿僧祇劫爾時有佛號字勇莫能勝剎名無常爾時諸聲聞八萬四千人菩薩萬二千人俱悉會其佛爲三道家如說法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본래 용막능승여래께서 성불(成佛)하셨을 때는 5탁악세(濁惡世)37)였느니라. 이때 경법(經法)에 밝은 혜왕(慧王)이란 비구가 있었다. 이 비구는 발우를 가지고 유치국(惟致國)에 들어가서 걸식[分衛]하여 온갖 맛있는 음식을 얻었다.
이때 존자의 아들 이구왕(離垢王)이란 동자가 유모(乳母)의 품에 안긴 채 성문 밖에 있었다. 그 동자는 멀리서 경에 밝은 비구를 보자, 유모의 품으로부터 빠져나와 비구에게 그 음식을 달라고 했다. 비구는 곧 꿀떡을 주었다. 그 동자는 먹어보더니 단 맛을 알고 비구를 따라갔다. 유모는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따라가서 용막능승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비구와 함께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010_1374_b_11L佛言時怛薩阿竭勇莫能於五惡世而作佛有比丘名慧王明於經法持鉢入惟致國中而行分衛得百味飯若干種食爾時有尊者子名離垢王爲乳母所抱持城門外而住其兒遙見明經比丘從抱下得下便取之求其食比丘卽以蜜餠授與之其兒則食之知味甘隨比丘而行不顧念乳母便隨至勇莫能勝佛所則爲佛作禮而坐一
010_1374_c_02L혜왕[若那羅耶]비구는 음식이 담긴 발우를 동자에게 주면서 ‘이 발우의 음식을 부처님께 올려라’고 하자, 동자는 받아서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발우의 음식을 받아 충분히 드셨으나,그 동자의 발우 음식은 부처님이 드시기 전과 다름없이 남아 있었다. 또 8만 4천 비구와 1만 2천 보살에게도 이 음식으로 각각 배가 부를 만큼 충분히 공양 올렸으나, 그 동자가 가진 발우의 음식은 역시 전과 같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때 동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신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자기 본래의 공덕이 일치한 상태에서 그 믿음을 다한 것이니라.
동자는 앞으로 나아가 서서 그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010_1374_b_21L若那羅耶比丘以所持鉢得食而與是兒令上其佛兒則受之以上怛薩阿竭其佛受食鉢則爲滿其兒所持鉢食續如故復以是食遍八萬四千比丘及菩薩萬二千人各各悉飽滿其兒所持食續復如故佛以威神令兒歡喜幷蒙本之功德卽爲盡信便前而住卽歎其佛
공양발우 받아들어 부처님께 올렸더니 여래께서 만족하게 발우 음식 드셨으니 발우 속에 들어 있는 온갖 진미 음식들은 공양 전과 다름없이 줄어들지 않는구나. 8만 4천 비구들과 1만 2천 보살들도 그 발우의 그 음식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차례대로 고루 나눠 넉넉하게 공양해도 본래대로 변함없이 줄어들지 않는구나. 줄어들지 아니하고 불어나지 아니함은 부처님의 공덕임을 지금에야 알게 되어 부처님을 받들어서 진심으로 섬겼으니 청정공덕 바른 법이 어김없이 불어나리.”
010_1374_c_05L所持鉢食而奉以應時滿其所持者亦不缺減比丘及諸菩薩其食續在乃知佛尊亦不盡索而復增益其供養佛者德可重而增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동자는 이렇게 한 발우의 음식으로 7일 동안 충분하게 공양을 베풀었으나, 그 음식은 줄어들지 않고 이전대로 남아 있었느니라.
그 용막능승[阿波羅耆陀他]부처님께서는 그 동자를 가르치고 인도하여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케 하셨으며, 5계(戒)를 주시어 잘못을 뉘우치게 하시고 공덕을 닦도록 도와주시니, 동자는 결국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의 마음을 일으켰느니라.
그 부모가 동자를 찾아 여러 곳을 헤매다가 마침내 그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 앞에 예를 올리고 머물렀다. 그 동자는 부모를 보자, 앞에 나아가 예를 드리고 부처님을 기리면서 말했다.
‘저는 이제 보살법(菩薩法)에 들어가서 중생들을 건지려는 서원을 세우고 발심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010_1374_c_09L佛語舍利弗是兒以一鉢食乃至七日其食不減滿則如故其佛阿波羅耆陁陁教導其兒自歸佛及法比丘僧授與五戒教令悔過勸助功德乃發阿耨多羅三耶三菩其兒父母求索子無所不遍乃至怛薩阿竭所前爲佛作禮而住其子見父母前爲作禮而譽言我今入菩薩法用一切故願復發意所以者何難値佛故
그 동자는 이어 부모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32상(相)38)과 80종호(種好)39)를 보옵소서. 그 지혜는 고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시고 그 도는 모든 경계를 해탈하셨으니, 저는 이제 사문(沙門)40)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 하면 여래(如來)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너의 원을 따라서 네가 구하는 일을 즐겁게 구하리라. 또 우리들은 다 너의 소원대로 발심하여 마땅히 너를 따라 불법(佛法)을 위해 살아가리라. 그리고 이제 집으로 가서 모든 것을 정리하여 버리고 너를 본받아 사문(沙門)이 되리라.’ ”
010_1374_c_18L語其父母視佛相及其種其慧無所不遍其道以度願欲我身令得作沙門所以者何難與怛薩阿竭會故父母卽言善哉善哉隨子之所欲歡樂子之所求悉如子之願吾等亦復發心當從汝爲法則今悉放其舍宅亦復效汝而爲沙門
010_1375_a_02L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동자의 말대로 그 부모와 5백 사람은모두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을 내어, 용막능승(勇莫能勝)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다 사문이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의심을 풀어주리라. 그 때의 혜왕(慧王:若那羅耶) 비구가 바로 지금의 문수사리이고, 존자의 아들 이구왕(離垢王:惟摩羅和耶) 동자가 바로 나의 몸이니라. 문수사리는 음식을 나에게 주고 공덕을 짓게 하여 발심하게 하였다. 그러니 이 비구는 지난 겁[本]에 나를 처음으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도록 은혜를 베풀어준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또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부처의 열 가지 힘[十種力]41)과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법[四無所畏]42)과 그 불가사의한 지혜43)를 얻은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다 문수사리가 발심시켜 준 일이 그 근거이니라. 왜냐 하면 마음이 바로 근본이기 때문이니라.”
010_1374_c_24L佛語舍利弗是兒之所言父母及五百人悉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悉於阿波羅耆陁陁佛所皆作沙門佛語舍利弗汝之所疑者卽若那羅耶比丘者文殊師利是其時兒尊者子惟摩羅和耶者則是我身文殊師利以食與我作其功德而令發心是則本之初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恩師佛語舍利弗汝欲知其今佛十種力四事無所畏其智慧不可議悉文殊師利之所發動所以者何心則是根本
부처님께서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몸과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의 모든 부처님들도 다 문수보살에 의해 발심하여 석가모니불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들 부처님 외에도, 제식비불(提式沸佛), 식불(式佛), 제화갈불(提和竭佛), 유위불(惟衛佛) 등 한없이 많은 부처님들이 계시느니라.”
010_1375_a_12L復語舍利弗如我身等不可數阿僧祇剎土諸佛悉爲文殊師利之所發號悉字釋迦文佛如是佛數復有號爲提式沸佛復有號式佛復有號提和竭佛復有號惟衛佛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부처님의 이름들을 다 말하려면, 이 겁에서 저 겁까지 설한다 해도 끝이 없으리라. 이 셀 수 없는 부처님들도 다 문수사리가 발심시켰느니라. 이 밖에도 지금 현재 법륜을 굴리는 이, 열반에 드는 이, 보살도를 행하는 이, 도솔천상에 있는 이,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 있는 이, 태어나는 이, 집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구하는 이, 보리수[佛樹] 아래에 앉아 있는 이, 성불(成佛)하는 이 등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010_1375_a_17L佛語舍利悉說是諸佛字從劫至劫未有竟皆悉文殊師利之所發動今現在悉轉法輪中有般泥洹者中有行菩薩道者中有在兜術天上者中有在母腹者中有生者中有捨家求佛者有坐佛樹下者中有成佛者猶不可
010_1375_b_02L부처님께서 또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니 문수사리는 보살의 부모이자, 선지식(善知識:迦羅密)44)이니라.너는 아까 이 여래가 어떤 은혜를 입었느냐고 물었느니라. 내가 성취한 일은 다 문수사리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니라.”
이 말씀을 듣고 있던 2백 천자는 스스로 생각했다.
“모든 법은 무엇을 배울지라도 반드시 성취할 수 있으니, 우리들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의 석가모니부처님도 문수사리보살에 의해 발심하고 성불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게으름에 빠진다는 말인가.”
2백 천자는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 그 마음이 견고해져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완벽하게 믿었다.
010_1375_a_24L佛謂舍利弗文殊師利者是菩薩之父母是則爲迦羅蜜屬所問者緣而置怛薩阿竭而我之所得悉蒙文殊師利恩以爲是恩故其二百天子卽時自念諸法學者乃可有所成吾等尚可所以者何今是釋迦文佛爲文殊師利所發意自致成佛我等何爲懈怠用是念故其心則堅悉得盡信阿耨多羅三耶三菩心
문수사리보살은 손의 신통변화로 발우를 찾아와서, 감동(感動)시키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를 본래의 학습(學習)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아래쪽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거쳐왔는데, 모두가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
지금 시방에서 현재 설법하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보배 꽃 일산으로 법공양(法供養)을 베푸셨다. 그 일산은 삼천대천세계를 덮었고, 또 그 꽃 일산에서는 저절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석가모니불의 말씀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이 또한 문수사리보살이 감동(感動)시킨 일이다.
010_1375_b_09L文殊師利以手變化而得鉢無所不感動謂本之學習從是剎土乃到下方不可數人皆悉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十方今現在諸佛皆以珍寶花蓋用供養法故悉覆三千大千之剎從其花蓋盡聞其音如釋迦文佛之所言皆文殊師利之所感動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남자나 여인이 빨리 열반에 들고자 한다면, 반드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은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겨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게 되자, 성문(聲聞)에 머물러 아라한(阿羅漢)이 되어 빨리 열반에 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를 보아왔다. 그러나 또 어떤 보살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미 성불(成佛)한 경우도 보았다.
010_1375_b_16L佛語舍利弗若男子女人欲疾般泥洹者當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以者何有人畏生死而不能發心爲阿耨多羅三耶三菩心欲求聲聞作阿羅漢早取般泥洹其作是言者續見在於生死中有菩薩而精進者已成至佛
010_1375_c_02L그 이유를 말하리라.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아득히 먼 겁의 일이다. 이때 일체도(一切度)라고 이름하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수명은 1만 세였으며, 백억 제자를 거느렸느니라.이 가운데 막능승(莫能勝)이란 비구는 뛰어난 제자로서 그 지혜가 대단히 훌륭하였으며, 또 그 다음 득대원(得大願)이란 비구도 역시 뛰어난 제자로서, 그 신통(神通)이 매우 훌륭하였다.
이때 일체도(一切度)여래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법복(法服)과 발우를 바르게 갖추고 상명문(常名聞)이란 나라에 들어가서 걸식(乞食:分衛)을 행하셨다. 그 지혜를 원만하게 갖춘 비구는 부처님의 오른쪽을 모셨고, 그 신통을 원만하게 갖춘 비구는 부처님의 왼쪽을 모셨으며, 훌륭한 비구 회지(悔智)는 부처님을 모시고 뒤를 따랐으며, 8천 보살은 앞장서 인도하였다. 또 이 가운데는 제석(帝釋)과 같은 이, 천자처럼 옷을 입은 이, 하늘과 같은 이, 사천왕과 같은 이들이 여래께서 불편하지 않게 행하실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길을 청소하고 비켜서게 하였느니라.”
010_1375_b_23L所以者何以過去無央數不可計阿僧祇劫爾時有佛號字一切度壽一萬歲有百億弟子有尊比丘名莫能勝其智慧甚巍巍後有尊比丘名得大願其神足甚亦巍巍時怛薩阿竭整衣服持鉢與比丘俱入常名聞國分衛其尊比丘智慧備足者在佛之右其神足比丘在佛之有尊比丘名悔智隨佛後而侍之八千菩薩而在前導中有如釋者有如天子被服者中有如天者中有如四天王者皆悉令人治道用怛薩阿竭故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일체도(一切度)부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가시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市]을 지나가시다가, 세 귀한 집[尊者]의 아이들을 보셨다. 그들은 아직 어렸으나 매우 장엄한 복장을 차려 입고 함께 앉아서 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동자가 먼저 저 멀리 부처님께서 비구ㆍ보살들과 함께 드높은 광명을 찬란하게 비추시면서 오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 동자는 두 동자에게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 보아라. 부처님께서 오시는 모습이다. 찬란한 부처님의 광명을 따라 오시는 저 분들의 모습은 이보다 더 멋지고 훌륭할 수 없다.’
두 동자는 말했다.
‘그래. 보이는구나.’
010_1375_c_12L佛語舍利弗時佛以入彼城道徑而過於市有三尊者子各各尚莊嚴被服甚姝好而共坐戲是一兒遙見佛且來及諸比丘菩薩光明甚巍巍其小兒謂二兒以手遙指示乃見怛薩阿竭來光明與相隨者不甚好乃爾其二兒則言以見之
010_1376_a_02L그 동자는 이어 말했다.
‘이 분이야말로 일체 가운데 가장 훌륭하셔서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분이시니, 우리들은 마땅히 공양해야 한다. 왜냐 하면 공양한 복이 한량없기 때문이다.’
그 두 번째 동자가 응답하였다.
‘꽃도 향도 없는데 무엇으로 공양한다는 말인가?’
그 동자가 몸에 걸고 있던 하얀 구슬을 풀어 손에 쥐고, 두 동자에게 말했다.
‘이것이면 부처님께 공양할 만하다. 부처님을 뵈었으면 욕심을 버려야지.’
그러자 두 동자도 그 동자를 본받아 머리에 걸린 하얀 구슬을 풀어 손에 쥐고, 각기 찬탄하면서 말했다.‘가자,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부처님께 가면 마치 험난한 강을 건넌 것처럼 아늑하고 편하리라. 왜냐 하면 그 마음이 청정하여 평등하게 머물기 때문이지.’
010_1375_c_18L一兒便言此者一切之中極尊而無與等者吾等當供養所以者何其福無量其二兒則答言亦無花香當何以供之其一兒則脫著身白珠著手便報謂二兒是猶可以供佛智者見怛薩阿竭不當作貪則其二兒效解取著頭上白珠著其手中卽各歎行至佛所譬若度水所以者何其心淨而等住故
한 동자가 두 동자에게 물었다.
‘이 공덕으로 무엇을 구하려는가?’
한 동자가 말했다.
‘부처님 오른쪽의 비구처럼 지혜가 뛰어나기를 바라노라.’
또 한 동자가 말했다.
‘부처님 왼쪽의 비구처럼 신통[神足]이 뛰어나기를 원하노라.’
이 두 동자는 각각 이렇게 원하면서 한 동자에게 물었다.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그 동자는 곧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처럼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광명을 지니고, 사자처럼 홀로 걷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동자가 이렇게 말하자, 허공에서 8천 천자가 다 함께 말했다.
‘훌륭하고 장하구나. 그대가 말한 대로 행한다면 하늘과 인간은 다 그대의 은혜를 입게 되리라.’
010_1376_a_04L是一兒復問二兒持是功德以何求索其一兒言願如佛右面尊比丘其一兒言願如左面神足比丘是二兒各各有是願已共問一兒若願何等卽報言我欲如其光明無輩如師子獨步常有衆而隨我是兒作是說時虛空中八千天子皆言善哉善哉如若之所言上天下一切蒙若恩
이 세 동자는 하얀 구슬을 가지고 부처님의 계신 곳으로 향하였다.
그 일체도(一切度)여래께서는 시자(侍者) 사갈(沙竭)을 부르셨다.
‘너는 이제 하얀 구슬을 가지고 오는 세 동자를 보느냐? 그 중앙에서 오는 동자는 지난 겁에 기쁜 마음으로 정진해 왔으므로, 그 발을 한 번 들 고 내릴 때마다 각각 백 겁(劫)의 죄를 물리치리라. 또 뒤에 하는 일마다 백 차례에 걸쳐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백 차례에 걸쳐 제석(帝釋)에 오름도 이와 같으며, 백 차례에 걸쳐 범천(梵天)에 오름도 이와 같다. 뿐만 아니라 그 한 번 발을 드는 가운데, 부처님을 백 번 만날 수 있는 공덕이 들었느니라.’
010_1376_a_12L是三兒相將來至佛前其怛薩阿竭呼侍者沙竭乃見是三兒而持白珠來者不其中央行小兒悅心精進來行擧其一足卻其罪百劫如下一足後事事當更百遮迦越羅如是數當復更釋亦如是其梵天亦等如是其一擧足之功德中百見佛
010_1376_b_02L마침 일체도(一切度)여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이 세 동자는 바로 도착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각각 가지고 온 하얀 구슬을 부처님의 머리 위에 뿌렸다. 성문(聲聞)의 뜻을 일으킨 두 동자의 구슬은, 부처님의 어깨에 멈춰 있었으나,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 한 동자의 하얀 구슬은, 부처님의 머리 위에 멈춰 있다가 허공에서 구슬 꽃 교로장(交露帳)45)으로 변하였다. 그 교로장은 사방이 바르고 평등하였다. 여래께서는 교로장의 중앙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계셨다.이때 그 여래께서 웃으셨느니라.
010_1376_a_19L語適竟是三兒已到前爲怛薩阿竭作禮各各以其白珠散佛上其二兒發聲聞意者所散珠各在佛上肩昇其一兒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者而散白珠在佛頭上而在虛空化爲珠花交露之帳正等而四方中有牀怛薩阿竭而坐之佛則時笑
그러자 시자(侍者) 사갈(沙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의 웃음에는 반드시 뜻이 있으시니, 그 뜻을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聲聞)의 뜻을 일으킨 두 동자를 보느냐? 왜냐 하면 두 동자는 다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했느니라. 그 이유는 빨리 열반에 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시자가 여쭈었다.
‘그 한 동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 중앙의 동자는 뒤에 스스로 성불(成佛)하게 되리라. 이 두 동자는 성문이 되어, 한 동자는 지혜가 대단히 훌륭하게 되고, 한 동자는 신통(神通)이 매우 뛰어나게 되리라.’ ”
010_1376_b_03L沙竭勃問佛怛薩阿竭所會當有意願聞其說佛言見二兒發聲聞意者不所以者何皆畏生死之懼故是以不發菩薩心所以者何欲疾般泥洹故其侍者問其一兒當云何佛復謂言是中央兒以後自致成佛是二兒乃爲作聲聞其一者智慧甚當尊一者神足亦復爾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중앙의 동자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사리불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나의 몸이니라. 오른쪽 동자는 알겠느냐?”
사리불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했다.
“그때의 오른쪽 동자가 바로 사리불이고, 그 왼쪽의 동자는 대목건련(大目揵連)이니라.”
010_1376_b_10L釋迦文佛問舍利弗汝乃知是中央兒不利弗言不及佛言則我身是乃知右面之兒不舍利弗言不及爾時之兒則舍利弗是其左面之兒則大目揵連是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겼기 때문에,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열반에 들려고 한 것이니라.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 동자를 보라. 지금의 나로서, 나 홀로 정진하여 성불하였으며, 너희들도 이렇게 나를 따라 불법(佛法)을 떠나지 않고 성문(聲聞)의 해탈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진정으로 빨리 열반에 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와 같이 성불하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좀 전에 말한 빠른 방법이란,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보다 더 나은 법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걸림이 없고, 무엇보다 훌륭하고, 다함이 없으며,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으로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이고, 특별히 뛰어난 법이며, 모든 성문과 벽지불을 뛰어넘은 경지이기 때문이니라. 그 열반을 빨리 얻으려고 한다면, 곧바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薩云若]의 뜻을 얻는 경지도 이와 같다.
010_1376_b_15L佛謂舍利弗汝等本畏生死故不發菩薩心而欲疾般泥洹觀其一兒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者今我自致成佛如汝等不離吾法而作聲聞乃得解脫佛復謂舍利弗其欲疾般泥洹者當發意求佛如我向之所說其疾者無過薩芸若所以者何所罣㝵故用持尊故用無盡故用阿耨多羅三耶三菩心故莫能有及等持有好故以過諸聲聞辟支佛故其欲作者便得薩芸若意亦復如是
010_1376_c_02L부처님께서 이렇게 대승품[摩訶衍品]46)을 설하시자, 1만 사람이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
사리불(舍利弗)ㆍ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ㆍ아난(阿難)ㆍ사비(舍比)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라월난(蠡越難)ㆍ두야화치(頭耶和致)ㆍ난리분뇩(難離分耨)ㆍ두타수보리(頭陀須菩提) 등 낱낱 뛰어난 비구들은, 머리를 부처님의 발까지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모두가 다 기려 말했다.
“만일 남자나 여자가 도를 구하려면, 마땅히 훌륭한 뜻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만일 훌륭한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면[所以者何], 비록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백천 가지로 법을 설해주신다 해도, 저희들은 보살의 마음을 일으킬 능력이 없어서, 나한(羅漢)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을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전세[本]에 5역죄(逆罪)47)를 범한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죄는 벗어나고 나면 오히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은 깨달음의 종자를 태워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보살심(菩薩心)을 감당할 그릇도 못되니, 마치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이익이 없듯이 지금 저희들의 해탈은 이익이 없습니다.
두 발 혹은 네 발 달린 천상천하(天上天下)의 중생은 다 땅을 의지하여 살아가듯, 만일 어떤 사람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모든 하늘과 사람들은 다 그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010_1376_c_02L說摩訶衍品時萬人悉發阿耨多羅三耶三菩心其一一尊比丘舍利弗摩訶目揵連阿難舍比摩訶迦葉越難頭耶和致難離分耨頭陁須菩提等悉以頭面著佛足皆譽言若男子女人欲求道者當發尊意所以者如佛百千以法爲吾等說不能復發作菩薩心皆而有悔爲羅漢故如本作五逆惡其罪猶有解脫可發心爲阿耨多羅三耶三菩心今者以無所益所以者何惟燒佛種故其器者以不堪菩薩心所以者何譬若死人無益於生者今吾等以得脫無益於天上天下有兩足若四足者皆依地而得活其有發心爲阿耨多羅三耶三菩心者諸天及人皆蒙其恩
이때 아사세왕(阿闍世王)48)이 네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여러 신하와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아사세왕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아뢰었다.
“모든 사람은 어떤 인연으로 죄를 짓습니까?”
부처님께서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와 나와 사람을 집착하기 때문에 곧 죄를 지으며, 몸을 탐하기 때문에 몸으로 죄를 행하느니라. 그러므로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니라.”
010_1376_c_18L爾時阿闍世王乘四馬車與群臣俱而到佛所前爲作禮而住白佛言一切人從何因緣而作罪佛語阿闍以住吾我人者便作罪貪身故而有身用是故不離其中
010_1377_a_02L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탐욕과 애착을 돕는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데[無黠]49)에 있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근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은 일이 생각과 다른 것이 바로 그 근원이니라.”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생각과 다르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근본과 다르게 지은 일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그 근본과 다르다는 뜻은 무엇을 말합니까?”
010_1376_c_23L阿闍世王復助貪愛者根爲在何所佛言無黠則復問誰是無黠根佛言所作與念異是故根復問何所與念異者其本異所作謂是復問本異者何謂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환영(幻影)처럼 변화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달라지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누가 변화시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드는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변화하는 것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생기는 일도 없고 존재하는 일도 없다면, 마땅히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기는 일도 없고 존재하는 일도 없으므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의심은 어떤 인연으로 일어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믿음의 근거가 없는데서 일어나기 때문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믿음의 근거가 없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말을 듣고 의심한다면, 이를 믿음의 근거가 없다고 하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도이며, 무엇이 믿음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탐욕[婬]과 성냄[怒]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남이 도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의 근원을 체득하지 못했을지라도 달라지지 않는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이를 믿음이라고 하느니라.”
010_1377_a_05L佛言如幻所化無所有是故異復問誰化者佛言無有造者是故化復問無所生無所有當云何計佛言用無有生無所有故不可計復問疑從何因緣起佛言無所據故何謂無所據佛言如所說聞之則疑是謂不據復問何所是道何所爲信佛言脫於婬怒癡是爲道何所是信佛言不得諸法根本其心不畏是故爲信
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여래의 말씀대로 한다면, 모든 사람은 무엇 때문에 믿지 못하겠습니까? 믿지 못함은 스스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나쁜 사람의 말을 믿고 신하에게 명을 내려 스스로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나라를 탐내었기 때문이고, 재물과 보배를 탐내었기 때문이며, 벼슬과 백성을 탐내었기 때문이고, 존귀한 자리를 탐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하를 시켜 아버지를 해쳤으니, 몸의 탐욕에서 생긴 무서운 의심을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마시고 먹는 연회의 즐거운 자리에서도, 나라의 일을 듣고 살피는 정전(正殿)에서도, 5욕락(欲樂)50)이 넘치는 중궁전(中宮殿)에서도, 홀로 있거나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곳에서도, 밤낮으로 그 무서운 의심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마시거나 먹어도 소화시킬 수가 없고, 잠자리에 들어도 잘 수가 없으며, 얼굴빛은 초췌하여 기쁜 빛이 없고, 때마다 두려움으로 심장은 두근거리니, 지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010_1377_a_13L阿闍世王卽言善哉善哉如怛薩阿竭所說一切人所以不信者何自作今我用惡人之言勅令臣下自殺其父用貪利國故用貪財寶故用貪利宰民故用貪利尊貴故今我使臣下而害其父貪身狐疑不能自解飮若食在戲樂若在正殿聽省國事若在中宮五樂之欲若獨與衆俱夜而不忘飮食則不能消亦無其臥顏色亦無和悅時其心常怖懅知不離於泥犂
010_1377_b_02L아사세왕은 이어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면 눈먼 사람도 눈을 뜰 수 있고, 부처님을 의지하면 물에 빠진 사람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부처님께서는 고통받는 사람을 편안케 해주시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보호해 주십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가난으로 헐벗은 이에게 보배를 베풀어주시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이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는 마음[大哀]51)을 일으키시어 괴로운 경계도 괴롭게 여기지 않으시고, 일체 흔들림이 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다 받아들이시어 두터운 덕을 베푸시며, 언제나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견디면서 모든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저의 몸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사오니, 부디 부처님께서는 보호하시어 위험에 처한 저를 편안케 해주시고, 아무도 구제해 주지 않는 이 몸을 구제해 주시고, 돌아갈 곳이 없는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몸과 목숨을 다 바쳐 향하는 정성을 받아 주옵소서.
또 저는 눈먼 사람이나 다름없사오니, 부디 볼 수 있도록 해주시고, 쓰러지려는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제발 넘어지지 않고 설 수 있도록 하옵소서. 이제 저는 마땅히 무간지옥[阿鼻地獄]52)에 이어 다른 큰 지옥[大泥犁]으로 가야 하오니, 이러한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옵소서.
원하오니 부처님이시여, 이제 마땅히 알맞은 설명으로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제 의심을 풀어주시어 죽을 때까지 남은 의심이 없게 하시고, 이 크고 무거운 죄가 작고 가벼워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010_1377_a_24L則復陳言若盲者承佛所得眼目若爲水所溺者依佛而得脫其有苦痛者佛而令得安其有恐懅者佛而爲作護其有貧窮者佛能爲作珍寶其有失道徑者能示於道路佛以加大哀不以爲勤劇等心於一切堅固而作厚常忍於苦樂不捨於一切人今我身而怖懅惟佛當加護令危者而得安身無有能救者唯願而得濟無所歸者惟願受其歸命若無眼目惟得而視瞻如人之欲躄惟令而得往今當入阿鼻乃至大泥願令得不入惟怛薩阿竭今當爲我解說吾之狐疑令心而得開至死無餘疑令重罪而得微輕
부처님께서는 아사세왕과의 대화를 생각해 보셨다.
“왕의 말은 매우 깊고 미묘하니, 나 또는 문수사리가 감응(感應)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 병을 치료할 수 없겠구나.”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들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의심을 결단하시려면, 내일 아침 음식공양을 준비하여 문수사리보살을 초청하십시오. 만일 문수보살이 그 궁전으로 가서 공양을 받는다면, 왕의 관리들은 다 마땅히 그 복을 받을 것이며, 아울러 나열국(羅閱國)53)의 백성들은 그 공덕으로 반드시 본보기를 삼을 것입니다.”
사리불의 말을 듣고 아사세왕은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부디 큰 은혜를 베푸시어 덕을 낮추시고 내일 아침 궁전으로 오셔서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공양을 받았습니다.”
010_1377_b_15L佛念阿闍世王其所說甚深而微妙是病莫能療之者獨佛文殊師利而有感應利弗承佛威神謂阿闍世欲決狐疑者明旦作食請文殊師利等令到其宮受之者其若之官屬皆當得其福幷羅閱國諸民皆因是功德可而爲阿闍世王則白文殊師利惟加大明旦屈德就宮而食則文殊師利答言以足可爲供養已
010_1377_c_02L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말했다.
“불법은 의복이나 음식으로 그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이 곧 아뢰었다.“그렇다면 마땅히 무엇을 보답으로 베풀어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왕께서는 깊이 미묘한 경지에 들어가서 그 죄[其事]를 자세히 살피고 헤아려서, 더러운 일이 없고 집착하는 일도 없고 의심하는 일도 없고 어려운 일도 없고 두려운 일도 없고 한 점의 겁낼 일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모든 법을 생각할 때,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래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마땅히 과거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미래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현재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행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은 마땅히 일체를 볼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진실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야만 대비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010_1377_b_24L文殊師利復佛法非以衣食故阿闍世卽白何以施之則答言若深入微妙其事審諦無所污亦無所著亦無所疑無所難無所畏無所一懼如是者以爲得哀文殊師利復語阿闍世念諸法亦不念有亦不念無是者以爲得哀不當念過去意亦不當念當來意不當念現在意作是者以得加哀不當念一切之所可見者亦不誠作是者以得加哀
아사세왕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보살의 말은 다 경전에 실려 있는 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디 이 몸을 위하여 마땅히 대비를 내리시고 청을 받아주십시오.”
문수사리보살이 또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 도는 이 몸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마시거나 먹을지라도, 왕은 우리와 나와 수명의 길이와 목숨과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왕의 마음에도 가지는 일이 없어야 하고, 인연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4대(大)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5음(陰)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6쇠(衰:塵)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삼계를 붙들어 지니지도 않아야 하며, 공덕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공덕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세속을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고 출세간의 도를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며, 죄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죄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남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남음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해탈의 경지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해탈의 경지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생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고 열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010_1377_c_11L阿闍世王復白文殊師利如所言悉法之所載無有異以身故當加哀受其請文殊師利復且止其道者非以是故若飮若食若王不念有吾有我壽命人以念是者以得加哀若心無所持亦無所緣亦不四大亦不五陰亦不六衰亦不持三界亦不於功德亦不念無有功亦不於俗亦不於道亦不於罪亦不於無罪亦不於餘亦不於無餘不於脫亦不於無脫亦不於生死亦不於泥洹作如是者以得加哀
010_1378_a_02L아사세왕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이 법을 들으니 더욱 기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하려는 것입니다. 제발 저를 이 법의 인연으로 안온한 경지에 들게 하소서.”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당신은 인연의 대상을 두고안온한 경지에 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연하지도 않아야 하고, 안온한 경지를 바라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법에는 인연의 대상도 없고 안온한 경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을 떠받쳐 교만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일체에 생각하는 대상이 없어야만 그대로가 인연이요, 그대로가 안온한 경지입니다.
이 가운데 나쁜 뜻이 없어야만 뒤에 다시는 재앙의 변고가 없습니다. 뒤에 재앙의 변고가 있으면 불안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어야만 비로소 편안하게 됩니다.”
010_1377_c_22L阿闍世王復白文殊師利聞如是法倍復踊以是故欲請之令我緣是而得安文殊師利答言汝希望有所緣欲得安隱是以不緣則無安隱所以者因其法無所緣無有安不念是亦不貢高一切無所念是故緣是故安於是中無惡意後復無災變者後有災變者是則不安從本至竟無有異是乃爲安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변하지 않는 법이란 무엇이기에 안온한 경지에 들 수 있다고 설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만일 공(空)하여 작용도 없고 작용시킬 수도 없으면, 모양도 없고 바라는 욕망도 없습니다. 작용도 없고 작용시킬 수 없음에도, 나에게 작용하는 일이 있다거나 작용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달라지고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하지도 않고 인연의 대상도 없는 가운데 몸과 입과 뜻이 작용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생기고 사라지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에 비록 인연의 대상이 있을지라도, 마땅히 다 인연의 대상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010_1378_a_08L阿闍世復問說何所法而無異可得安文殊師利言若空無作無有能作者無有想無有願無有亦無有作者其有念我有所作無所作是故爲異亦不求無所緣身口意是爲作所以者何無生死想是故諸法若有所緣當知悉無所緣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생기고 사라지면서도 생기고 사라짐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지금 현재도 무상(無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모든 법에 더하거나 덜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생기고 사라지면서도 생기고 사라짐이 없는 것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이는 어떻게 해야 도(道)와 합하게 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해의 밝음이 어둠과 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사세왕이 말했다.
“합하지 않습니다. 해가 떠오르면 온갖 어둠은 다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왕은 과연 그 어둠이 사라져서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아십니까?”
아사세왕이 답했다.
“그 어둠이 사라져서 어느 곳으로 갔는지 볼 수 없습니다.
010_1378_a_14L阿闍世復問何謂生死無生死則言不念過去以盡亦不念當來未至亦不念現在而無常於諸法不念有所增有所減作者是生死則無生死阿闍世復問未脫者當云何與道合文殊師利言汝知日明與冥合不阿闍世不合所以者何日出衆冥晦滅文殊師利言王寧知冥所去處乎答言見可處而在何所處
010_1378_b_02L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마치 해가 떠오르면 온갖 어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이른바 도의 지혜가 올 때에도 아직 해탈하지 못한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말했다.
“도는 해탈하지 못한 경계와 평등하고, 해탈하지 못한 경계는 도와 평등합니다. 왜냐 하면 다 함께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해탈하지 못한 경계와 도가 평등하므로 모든 법이 평등합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은 아직 해탈하지 못함을 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찾아보아도 그 자리를 알지 못함이 바로 도이며, 해탈하지 못한 자리를 찾아보아도 볼 수 없음이 바로 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어째서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도라고 하십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도라고 할지라도, 도라고 생각하지 않음을 도(道)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010_1378_a_23L文殊師利言謂道智來時譬若日出不可知衆冥所如是時亦不知未脫所在文殊師利復言道與未脫等未脫與道等以故俱空故未脫與道等故諸法平其知是者未脫則爲作道何以故求不脫不知處是故曰道其求不脫處而不可見是則道阿闍世復問云何不脫而爲道文殊師利言於不脫是爲道不作是者爲道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 도는 마땅히 어떻게 배워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모든 법을 배우는 그대로 배워야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모든 법을 배우는데 어찌 처소가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배운다고 생각하면 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렇게 배운다면 반드시 열반에 도달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법이 열반으로부터 왔다면, 나는 열반에서 왔노라고 말하겠습니까?”
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습니다.”
010_1378_b_09L阿闍世復問其道者當云何學則答言如學諸法阿闍世復問以學諸法寧有處所不文殊師利言作是學道不可至阿闍世復問其學者當至泥洹不文殊師利言有法從泥洹來言我從泥洹來阿闍世卽言亦無往者亦無來者
문수사리보살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도를 배우면 처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라고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마땅히 어떻게 해야 도에 머문 그대로 도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것이 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렇게 도를 배운다면 청정한 계율과 삼매와 지혜에 머물렀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그 도는 계율을 인연하지도 않고, 삼매를 구하지도 않으며, 지혜에 머물렀다고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010_1378_b_15L文殊師利謂阿闍世其學道知無處所是故阿闍世復問當何所住道而學作則答言無所住是爲學道阿闍世復其學道者不作淨戒三昧智慧住卽答言其道者不緣戒不求三昧貢高於智慧住
010_1378_c_02L문수사리보살은 이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다시 말해서 가령 계율을 인연하고 삼매를 구하며 지혜를 높여 교만 한다면 머무는 곳이 있겠습니까?”
아사세왕이 말했다.
“없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그러므로 마땅히 도에는 머무는 대상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남자나 여인이 마땅히 도에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도를 배워 나아가려면, 법에 영원하다 영원하지 않다는 견해가 없어야 하고, 법에 해탈의 경지가 있다, 해탈의 경지가 없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며, 법에 편안하다든지 괴롭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고, 또 법에 나의 존재가 있다든지 모든 사람의 존재가 있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며, 또한 법에 생사가 있다거나 열반에 이른다는 견해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도를 배운다면 도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010_1378_b_21L文殊師利謂阿闍世乃可緣戒求三昧貢高於智慧作如是則有住處不阿闍世言文殊師利言故當如道無所住阿闍世復問男子女人當云何自前於道文殊師利言其欲學道者不見法有常無常不見法有脫無有脫亦不見法安若苦者亦不見法是我若一切人亦不見法在生死至泥洹者作是學道者爲以前
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문수사리보살께서 말씀해 주신 법은 틀림이 없습니다. 부디 이제는 그 청을 받아 주십시오. 왜냐 하면 의심을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모든 법에는 우리도 없고 나도 없으며, 수명의 길이도 없고 목숨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의심을 품은 것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없는 그 자체를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없는 그 자체는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날 대상도 없습니다. 가령 나에게 해탈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해탈이 없으므로, 해탈도 없고 해탈할 대상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다 그 자체가 해탈이기 때문입니다.”
010_1378_c_07L阿闍世王卽言善哉善哉文殊師利菩薩之所言惟願受其請所以者何用狐疑故熟自思念如諸法無吾無我無壽無命而我有狐疑文殊師利言如無者不可令有以無者亦不脫亦無所脫其說我者而有脫者以無有脫者亦不脫亦無所脫所以者何諸法悉脫故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아사세왕의 청을 받아들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여라.”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예. 여래의 분부를 어길 수 없으니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아사세왕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과 모든 비구와 문수사리보살에게 예를 올리고 그 곳을 나왔다.
010_1378_c_14L佛謂文殊師受阿闍世王請用無央數人故殊師利則言惟受怛薩阿竭教所以者何不違教故阿闍世則踊躍歡喜便從座起爲佛諸比丘及文殊師利作禮而去
010_1379_a_02L아사세왕은 가다가 잠시 멈춰 사리불에게 물었다.
“문수사리보살이 거느린 대중은 몇 분이나 됩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5백 사람입니다. 이들은 다 궁전의 음식을 드실 분입니다.”
아사세왕은 길을 따라 성(城)으로 돌아오자, 곧 대신들에게 모든 것을 준비하도록 명하였다. 궁전의 권속들은 온갖 맛있는 음식을 장만함과 동시에, 그 날로 궁전을 청소하고 당기(幢旗)ㆍ번기(幡旗)ㆍ휘장(揮帳)ㆍ꽃 일산 등을 설치하였으며, 온갖 꽃을 땅에 깔고 좋은 향을 뿌렸다. 또 5백 개의 의자[床]를 진열하고, 그 의자마다 온갖 빛깔의 보배구슬로 짜여진 피륙을 깔아놓았다.그러자 온 궁전은 곳곳마다 두루 꽃과 향으로 깨끗하게 장식되었다. 그리고 칙령을 내려, 성곽의 모든 거리와 시전(市廛)의 마을들을 다 깨끗하게 소제하여 꽃을 흩고 향을 뿌리게 하였으며, 길가에도 휘장(揮帳)을 치고 당기와 번기를 달게 하였고, 그 마을의 문에는 양쪽으로 꽃다발을 걸어 놓게 하였다. 또 백성들에게는 “내일 아침 모두 거리로 나와 문수사리보살을 맞이하여 공양하라”고 명하였다.
010_1378_c_19L阿闍世行且問舍利弗殊師利等輩者幾人舍利弗言五百人悉令於宮食便從道歸於城卽勅大宮令作百味之食卽日治其殿上施其幢幡帷帳花蓋以花布其地持名香而薰之設五百高牀皆布名珠琬%(王*延)其色若干合宮之內悉皆治以花香遍之勅令城郭諸街市里皆而掃除以花香從之道邊者皆施帷帳幢幡而起除之其里之門皆施雙結花令諸人民明旦皆當道迎供
그 날 초저녁[初夜]에 문수사리보살은 홀로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적은 수의 비구들만 거느리고 왕의 청에 따른다면, 저를 감동시키기 어렵다. 이제 다른 세계로 가서 여러 보살들을 청하여 그들을 왕궁의 공양법회에 참석케 하고, 그들에게 나의 설법을 들려 주리라.”
이렇게 생각한 문수사리보살은 팔을 한번 펴는 사이에, 곧 이 곳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곧장 동쪽으로 가서 8만 2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상명문(常名聞)이라는 세상에 이른 것이다. 그곳 부처님의 이름은 유정수(惟淨首)로서, 현재 많은 보살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 그 세상에는 불법(佛法)이외의 다른 도가 없었고, 언제나 물러남이 없는 법륜[阿惟越致法輪]54)이 구르고 있었다.
010_1379_a_07L文殊師利卽初夜文殊自念我與少少俱出至請亦無他感動乃可到他方剎土請諸菩薩往到彼所令就復悉聽其所說法作是念時應時如伸臂之頃便從是不現到東方過八萬二千佛剎其剎名常名聞其佛號字惟淨首今現在有衆菩薩無異其剎土常轉阿惟越致法輪
그 땅의 모든 나무는 다 온갖 보배로서, 잎사귀들과 꽃들과 열매들은 헤아릴 수 없는 빛깔로 어우러졌는데, 바람이 한번 불어와서 흔들릴 때마다 그 온갖 나무에서는 단지 부처님의 소리와 법의 소리와 물러남이 없는 승보[阿惟越致僧]55)의 소리만 들려왔다. 이렇게 항상 끊임없이 삼보(三寶)의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에 그 세상의 이름을 상명문(常名聞:沙陀惟瞿吒)이라고 하였다.
이미 그곳에 온 문수사리보살은 유정수(惟淨首)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저는 소원이 있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이 보살들을 다 인(忍:沙呵)세계로 보내시어 아사세왕의 궁전에서 공양을 받도록 하옵소서.”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고 싶은 보살은 가도록 하라.”
010_1379_a_14L其土諸樹悉皆衆寶其葉花實無央數色風一起時吹其諸樹但聞佛音但聞法音及阿惟越致僧音用是常聞三寶聲故其剎土名曰沙陁惟瞿咤殊師利已在彼所爲佛作禮白其怛薩阿竭願用我故盡令菩薩到沙呵剎土至阿闍世所而就食佛則謂之其欲行者便可往
佛說阿闍世王經卷上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본경(本經)의 이역본(異譯本)으로는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전 3권 13품)』과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전 6권)』과 『불설방발경(佛說放鉢經)』 등이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불설방발경』은 이 경의 방발설(放鉢說) 한 부분만을 번역한 것이다.
  2. 2)총지(摠持)는 다라니(陀羅尼)의 의역(意譯)으로서, 불교(佛敎)의 한량없는 법을 잘 간직하여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3. 3)본문의 무소괘애욕(無所罣閡欲)을 이 경의 이역본(異譯本)인『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과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에서는 각각 변재무애(辯才無礙)와 무애변(無礙辯)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이 무소괘애욕(無所罣閡欲)의 욕자(欲字)에 변재(辯才)란 뜻이 없으나, 이역본(異譯本)들을 참고하여 변재(辯才)로 번역하였다.
  4. 4)무생법인(無生法忍)은 생하고 멸함이 없는 법으로서, 보살의 경지이며, 3법인(法忍)의 하나이다. 본문의 무소종생법(無所從生法)은 무생법인을 달리 한역(漢譯)한 말이다.
  5. 5)한어(漢語)로 음역(音譯)된 이 스물 다섯 보살의 이름은 각 독립된 명칭을 구별하는데 난해(難解)한 부분이 있고, 본경의 의역명(意譯名) 또한 이역본(異譯本)마다 다르므로, 아래에 참고로 『문수지리보초삼매경(이하 三昧經으로 약칭함)』과 『불설미증유정법경』(이하 正法經으로 약칭함)의 의역명(意譯名)을 함께 밝혀둔다.
  6. 6)일체를 막힘 없이 다 아는 지혜로서, 살바야(薩婆若) 또는 살운야(薩云若)의 의역(意譯)이며, 일체종지(一切種智) 또는 도종지(道種智)라고도 의역한다. 이하에서는 일체지(一切智)를 ‘일체를 다 아는 지혜’로 번역한다.
  7. 7)승나승열(僧那僧涅)의 승나(僧那)는 홍서(弘誓) 또는 대서(大誓)로, 승열(僧涅)은 자서(自誓)로 각각 의역(意譯)하며, 합쳐서 말하면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뜻한다.
  8. 8)끝없는 지혜는 무극혜(無極慧)를 번역한 것으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에 거의 근접한 지혜를 뜻한다.
  9. 9)소시여(所施與)는 베푸는 일로서 보시(布施)를 뜻한다.
  10. 10)금륜(金輪), 은륜(銀輪), 동륜(銅輪), 철륜(鐵輪)을 굴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 왕 중에서 금륜(金輪)을 굴리는 전륜성왕을 금륜왕(金輪王)이라고 한다.
  11. 11)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으로서 범중천(梵衆天), 범보천(梵輔天), 대범천(大梵天)을 다 범천(梵天)이라고 한다.
  12. 12)수미산(須彌山)의 아래쪽 사방에 위치한 남섬부주(南贍部洲:舊譯은 南閻浮提)ㆍ동승신주(東勝神洲:舊譯은 東弗婆提)ㆍ서우화주(西牛貨主:舊譯은 西瞿耶尼)ㆍ북구로주(北瞿盧洲:舊譯은 北鬱單越)의 4대주(大洲)와 여기에 수미산의 중턱에서 위쪽으로 위치한 사왕천(四王天)ㆍ도리천(忉利天: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善時天 또는 時分天)ㆍ도솔천(兜率天:知足天)ㆍ화락천(化樂天:樂變化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6욕천(欲天)을 포함하여 한 세계로 하고, 이 한 세계의 천 단위를 1소천세계(小千世界), 1소천세계의 천 단위를 1중천세계(中千世界), 1중천세계의 천 단위를 1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하며, 천(千)이 세 번이므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고 한다.
  13. 13)성불(成佛)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부처님과 함께 공유(共有)할 수 없는 부처님의 18공덕법(功德法)으로서 ① 몸에 결점이 없음[身無失] ② 입에 결점이 없음[口無失] ③ 사유(思惟)에 잘못이 없음[念無失] ④ 중생을 평등하게 맞이하여 다른 생각이 없음[無異想] 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할지라도 선정(禪定)에서 벗어나지 않음[無不定心] ⑥ 일체를 다 비춰 알면서도 버리고 집착하지 않음[無不知已捨] ⑦ 중생을 제도하려는 소원이 줄어들지 않음[欲無減] ⑧ 성불(成佛)하기 전과 다름없이 정진함[精進無減] ⑨ 중생을 제도하는 사유력(思惟力)이 줄어들지 않음[念無減] 지혜의 경지가 들어들지 않음[慧無減] 해탈의 경지가 줄어들지 않음[解脫無減] 해탈지견(解脫智見)이 줄어들지 않음[解脫智見無減] 몸의 작용이 모두 지혜를 따라 행함[一切身業隨智慧行] 입의 작용이 모두 지혜를 따라 행함[一切口業隨智慧行] 뜻의 작용이 모두 지혜를 따라 행함[一切意業隨智慧行] 지난 세상을 아는 지혜가 걸림이 없음[智慧知過去世無礙] 미래의 세상을 아는 지혜가 걸림이 없음[智慧知未來世無礙] 현재의 세상을 아는 지혜가 걸림이 없음[智慧知現在世無礙]을 말한다.
  14. 14)여래(如來)의 10력(力)으로서 ① 바르고 바르지 못한 이치를 다 아는 지혜의 힘[處非處智力] ② 삼세(三世)의 업보(業報)에 대하여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여실하게 다 아는 지혜의 힘[業異熟智力] ③ 선정(禪定)의 해탈(解脫)과 삼매(三昧)에 대하여 얕고 깊음을 다 아는 지혜의 힘[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④ 중생의 근기(根機)에 대하여 높고 낮음을 다 아는 지혜의 힘[根上根下智力] ⑤ 갖가지 해탈방법을 다 아는 지혜의 힘[種種解脫智力] ⑥ 중생의 능력에 대하여 갖가지 범위를 다 아는 지혜의 힘[種種界智力] ⑦ 6취(趣)에 태어나는 중생의 인과와 행을 두루 아는 지혜의 힘[遍趣行智力] ⑧ 과거세상의 온갖 일을 기억하여 다 아는 지혜의 힘[宿住隨念智力] ⑨ 천안(天眼)으로 중생의 살고 죽는 때와 미래의 좋고 나쁜 세상을 다 아는 지혜의 힘[死生智力] 스스로 번뇌가 다 사라져서 다음에 받는 생(生)이 없음을 알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번뇌가 다 사라진 경지도 아는 지혜의 힘[漏盡智力]을 말한다.
  15. 15)안에서나 밖에서나 마음을 알맞게 맞춰 가며 나쁜 길로 유혹하는 일을 순경계(順境界)라고 한다.
  16. 16)색(色:物質)ㆍ수(受:感受)ㆍ상(想:想像)ㆍ행(行:遷流)ㆍ식(識:認識)의 5온(蘊)으로서, 물질의 구성요소[色]와 정신의 변화작용[受想行識]을 말한다.
  17. 17)37도품(道品), 37각분(覺分), 37보리분법(菩提分法), 37조도품(助道品)이라고도 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37종류(種類)의 수행법(修行法)으로서,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四正斷)ㆍ4신족(神足:四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正道)를 말한다.
  18. 18)보살이 수행하는 여섯 가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덕목으로서, 보시(布施:檀那波羅蜜)ㆍ지계(持戒:尸羅波羅蜜)ㆍ인욕(忍辱:羼提波羅蜜)ㆍ정진(精進:毘梨耶波羅蜜)ㆍ선정(禪定:禪那波羅蜜)ㆍ지혜(智慧:般若波羅蜜)를 말한다.
  19. 19)4등심(等心)은 ①사랑으로 즐거움을 베푸는 자(慈) ②상대를 가엾게 여기면서 고통을 없애주는 비(悲) ③상대의 기쁨을 따라 기뻐하는 희(喜) ④일체를 평등하게 대하는 사(捨)의 한량없는 마음으로서, 4무량심(無量心), 4범주(梵住), 4범당(梵堂)이라고도 한다. 이 가운데 범주(梵住)와 범당(梵堂)이란, 이 4등심(等心)을 행하면 대범천(大梵天)에 태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20. 20)5신통(神通)으로서 ① 6도(道)의 모든 소리를 걸림 없이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② 6도(道)의 모든 형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③ 상대의 마음을 환하게 아는 타심통(他心通) ④ 지난 세상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숙명통(宿命通) ⑤ 여러 가지 변화신(變化身)으로 걸림 없이 작용하는 신족통(神足通)이다.
  21. 21)4섭법(攝法), 4사섭법(事攝法), 4섭사(攝事), 4섭(攝)이라고도 한다. ① 온갖 것을 베풀어주면서 바른 법으로 끌어들이는 보시섭(布施攝), ② 부드러운 말로 설득하여 바른 법으로 끌어들이는 애어섭(愛語攝), ③ 이익을 베풀어주면서 바른 법으로 끌어들이는 이행섭(利行攝), ④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 살아가면서 바른 법으로 이끌어들이는 동사섭(同事攝)을 말한다.
  22. 22)3해탈(解脫)과 인욕(忍辱)의 이로운 행을 말한다. 3해탈은 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관하여 해탈하는 공해탈(空解脫) ② 온갖 상(相)에서 본래 모양이 없음을 관하여 차별(差別)을 떠난 무상해탈(無相解脫) ③ 원하여 찾는 생각을 내지 않는 무원해탈(無願解脫:無作解脫)이며, 인욕의 이로운 행은 참고 견디면서 이익을 베푸는 일이다.
  23. 23)구화구사라(漚★拘舍羅)는 한역(漢譯)의 방편선교(方便善巧) 또는 방편승지(方便勝智)로서, 중생의 마음을 잘 맞춰 교화하는 훌륭한 방법과 뛰어난 지혜를 말한다.
  24. 24)온갖 모양과 모든 법이 공(空)한 이치를 깨달아 집착하지 않고 머무는 경지로서, 문수설법(文殊說法)의 요지이다.
  25. 25)“삼계(三界)에 있을지라도 삼계의 일을 익히지 않아야 합니다”로부터 “벽지불(辟支佛)의 경계에도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까지는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에 대한 구체적 총론이다.
  26. 26)“생사(生死)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생사에 대한 무지(無知)를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하며”로부터 “번뇌의 남음이 있는 경계를 익혀 왔다고 한다면 번뇌의 남음이 없는 법을 다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배우고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까지는 문수보살이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를 밝히기 위하여, 일반 보살들이 교화할 때 설할 수 있는 내용을 실례(實例)로 들어 구체적 각론(各論)으로 제시한 것이다.
  27. 27)“이러한 모든 법을 닦을 때”로부터 “끝없는 지혜에 도달하게 됩니다”까지는 ‘머물면서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경지’에 대한 결론이다.
  28. 28)달살아갈(怛薩阿竭)은 여래(如來)의 음역(音譯)이며, 진리에서 오셨다는 뜻이다.
  29. 29)셋은 작용과 죄와 얻음을 말한다.
  30. 30)가라월(迦羅越)의 의역(意譯)은 장자(長者), 가주(家主), 재가(在家)로서, 출가하지 않고 불법을 닦는 남자를 말한다. 뒤에 중국에서 거사(居士)로 이름하면서부터 거사란 명칭이 일반화되었다.
  31. 31)인(忍)은 사하(沙呵)의 의역(意譯)이다. 사하는 사바(沙婆), 사하(沙訶), 색하(索訶), 사부(沙桴)로도 음역하고, 인(忍)외에 감인(堪忍), 능인(能忍)으로도 의역한다. 갖춘 말은 사하루타(沙訶樓陀)로서, 사바세계(沙婆世界), 인토(忍土), 인계(忍界), 감인토(堪忍土)이며, 곧 남염부제(南閻浮提:新譯, 南贍部洲)를 말한다. 석가세존(釋迦世尊)의 교화권(敎化圈)에 속한 이 남염부제(南閻浮提)의 중생은, 번뇌의 괴로움을 견디고 참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며, 수행자 또한 괴로움을 견디고 참으면서 닦아야 하므로, 이 세계를 감인(堪忍)이라고 하였다.
  32. 32)일생소계(一生所繫)라고도 하는데, 마지막으로 일생(一生)만 미혹(迷惑)의 세계에 매어 있다가 다음 생에 불과(佛果)를 이루는 자리로서, 보살의 최고 경지인 등각위(等覺位)를 말한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등에 따르면, 미륵보살(彌勒菩薩)은 현재 도솔천(兜率天)에 있으나 여기서 일생을 보내고 나면, 인간계에 태어나서 성불(成佛)하고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중생을 제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33. 33)예류과(預流果)의 음역(音譯), 성문사과(聲聞四果)의 첫 과위(果位)로서, 처음 무루도(無漏道)에 들어간 지위(地位)이다
  34. 34)중생이 미혹(迷惑)한 업력(業力)에 따라 고통받는 세 갈래 길[三道]. ① 진리를 미혹하여 번뇌하는 혹도(惑道). ②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짓는 업도(業道). ③ 미혹과 업의 힘으로 불러들인 고도(苦道)로서, 이 혹(惑)과 업(業)과 고(苦)가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길이므로 도(道)라고 한다.
  35. 35)본문에는 인유무선(人惟務禪)으로 되어 있으나, 인(人)은 팔(八)의 잘못인 듯 하다. 이 번역문에서는 인(人)을 팔(八)로 고쳐 8유무선(八惟務禪)이라고 하였다. 8유무선(八惟務禪)은 8해탈(解脫)로서 ① 모든 색상(色相)에서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마음속의 색상(色想)을 버리고 벗어나는 해탈[內有色想觀諸色解脫] ② 마음속의 색상(色想)이 없어졌더라도 이를 굳게 다지기 위해 계속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색상(色想)을 완전히 버리고 벗어나는 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 ③ 앞 ①, ② 해탈의 부정관(不淨觀)에 매인 마음을 떠나서 정색(淨色)을 닦아 벗어나고 이를 원만하게 갖춰서 정(定)에 안주(安住)하는 해탈[淨解脫身作證具足住] ④ 모든 색상(色想)을 초월하여 공무변처(空無邊處)의 마음을 갖춘 해탈[空無邊處解脫:超諸色想滅有對想不思惟種種想入無邊空空無邊處具足住解脫] ⑤ 공무변처(空無邊處)의 마음을 초월하여 식무변처(識無邊處)의 마음을 갖춘 해탈[識無邊處解脫:超一切空無邊處入無邊識識無邊處具足住解脫] ⑥ 식무변처(識無邊處)의 마음을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마음을 갖춘 해탈[無所有處解脫:超一切識無邊處入無所有無所有處具足住解脫] ⑦무소유처(無所有處)의 마음을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마음을 갖춘 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超一切無所有處入非想非非想處具足住解脫] ⑧수상(受想)을 버리고 일체의 심(心)과 심소(心所)를 멸하여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해탈[滅受想定解脫身作證具足住:超一切非想非非想處入想受滅身作證具足住解脫]이다.
  36. 36)이 3도가(道家)를 이 경의 이역본(異譯本)인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과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에서는 각각 3승교(乘敎)와 3승법(乘法)으로 한역(漢譯)하였기 때문에, 이를 참조로 3도(道)를 3승(乘)으로 보고 가(家)를 인칭(人稱)으로 보아 3승의 성자(聖者)로 번역하였다.
  37. 37)5탁(濁)은 5재(滓) 또는 5혼(渾)이라고도 하며, 다섯 가지 혼탁(混濁)으로서 ① 기근(饑饉), 질병(疾病), 전쟁(戰爭) 등 시대의 혼탁[劫濁] ② 사견(邪見), 사법(邪法) 등 부정한 사상이 넘치는 혼탁[見濁] ③ 인간의 미혹(迷惑)이 넘치는 혼탁[煩惱濁:惑濁] ④ 인간 전반에 걸쳐 도덕(道德)이 무너지고 인륜(人倫)을 저버리는 혼탁[衆生濁:有情濁] ⑤ 인간의 수명(壽命)이 점차 줄어들면서 고통을 당하는 혼탁[命濁:壽濁)을 말한다. 5탁악세(濁惡世)는 다섯 가지 혼탁이 넘치는 세상으로서, 인간의 최고 수명인 8만 4천 세에서 백 년마다 1세씩 줄어드는 감겁(減劫)이 진행되어 2만 세의 정명(定命)에 이르면, 다섯 가지 혼탁상(混濁相)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점차 강한 양상으로 이어간다고 한다.
  38. 38)부처님의 몸에 갖춘 32상(相)으로서, 32대인상(大人相), 32장부상(丈夫相)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상(相)을 갖춘 사람이 세속에 있으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부처님이 된다고 한다.
  39. 39)80수형호(隨形好)로서, 32상(相)에 딸린 섬세하고 훌륭한 모양을 말한다.
  40. 40)사문(娑門), 사문나(沙門那), 상문(桑門), 상문(喪門), 사라마나(舍囉摩拏), 실라말나(室囉末拏) 등의 음역(音譯)이 있으며, 근식(勤息), 식심(息心), 식악(息惡), 식지(息止), 구로(劬勞) 등으로 의역(意譯)한다. 인도 고대로부터 사용해 오던 출가수행자(修行者)의 일반 명칭이이나, 뒤에 불교에서도 비구(比丘) 등 수행자를 사문이라고 하였다.
  41. 41)여래의 10력(力). 주(註) 14) 참조.
  42. 42)설법할 때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지혜의 힘으로서, 부처님의 4무소외(無所畏)와 보살의 4무소외로 구분한다. 여기 이 부분은 부처님의 4무소외로서 ① 모든 법을 평등하게 깨달았다고 자신 있게 설하여 두려움이 없는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諸法現等覺無畏, 一切智無畏) ② 온갖 번뇌를 영원히 벗어났다고 자신 있게 설하여 두려움이 없는 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一切漏盡智無畏, 漏盡無所畏) ③ 바른 깨달음을 가로막는 악법(惡法)을 자신 있게 설하여 두려움이 없는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障法不虛決定, 授記無畏, 說障道無所畏) ④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요법(要法)을 자신 있게 설하여 두려움이 없는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爲證一切具足出道如性無畏, 說盡苦道無所畏)를 말한다.
  43. 43)불가사의한 지혜는 언어(言語)와 사고(思考)가 미치지 못하는 부처님의 원만하고 걸림이 없는 지혜.
  44. 44)가라밀(迦羅密)의 의역(意譯)으로서, 선우(善友), 친우(親友), 선친우(善親友), 승우(勝友), 지식(知識)이라고도 한다. 뛰어난 지혜와 훌륭한 공덕으로 바른 법을 실천하고 설하여 일체 중생을 차별하지 않고 피안(彼岸)으로 인도하는 벗.
  45. 45)보배의 장식이 이슬처럼 어우러져 아름답게 반짝이는 휘장 막(幕)을 말한다. 신라 경흥(憬興)의 『관무량수경소(觀無量壽經疏)』에는 이 교로장(交露帳)을 “보배 구슬이 서로 어우러진 휘장 막으로서, 그 모습이 이슬처럼 달려 있기 때문에 교로(交露)라 한다(以寶珠交錯造幔 其形如垂露 故稱交露)”고 해석하였다. 또 이 교로장을 『법화경(法華經)』의 서품(序品)과 보탑품(寶塔品)에서는 ‘주교로만(珠交露幔)’과 ‘보교로만(寶交露幔)’으로,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중보교로(衆寶交露)’로 달리 표현하고 있으나, 그 뜻은 같다.
  46. 46)마하연품(摩訶衍品)의 마하연(摩訶衍)은 대승(大乘)의 음역(音譯)으로서, 갖춘 말은 마하연나(摩訶衍那)이다. 대승의 승(乘)은 실어 운반한다는 뜻. 고해(苦海)에서 피안(彼岸)에 이르는 지혜를 배에 비유하여, 홀로 또는 중생을 작게 태우고 인도하는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을 소승(小乘),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동시에 행하여 많은 중생을 태우고 인도하는 보살(菩薩)을 대승(大乘)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하연품(摩訶衍品)의 품(品)은 품목(品目)으로서, 이 경이 여러 품목으로 구성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재로 이 경의 이역본(異譯本)인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은 경문 전체를 13품으로 분류하였으니 참고할 만하다.
  47. 47)다섯 가지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중죄(重罪)로서, 소승의 5역죄와 대승의 5역죄로 구분한다. 소승의 5역죄는 ① 어머니를 죽임[殺母] ② 아버지를 죽임[殺父] ③ 아라한(阿羅漢)을 해침[害阿羅漢] ④ 부처님의 몸에 피를 흘리게 함[出佛身血:惡心出佛身血] ⑤ 화합승가를 파괴하는 것[破和合僧]으로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원인이다. 대승의 5역죄는 『대살차니건자소설경(大薩遮尼乾子所說經)』제4권의 설. ① 탑사(塔寺)를 파괴하고 경상(經像)을 태우고 삼보(三寶)의 정재(淨財)를 탈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시켜 그런 일을 보면서 기뻐함(破壞塔寺 燒燬經像 奪取三寶之物 或敎唆他人行此等事 而心生歡喜) ② 성문(聲聞)ㆍ연각(緣覺)ㆍ대승법(大乘法)을 비방함 ③ 출가수행자(出家修行者)를 보면 그 수행을 방해하거나 살해함 ④ 소승의 5역죄 중에 하나를 범함 ⑤ 온갖 존재에는 업보(業報)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10악[十不善業]을 행하거나, 후세의 과보를 두렵게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10악(惡)을 행하도록 시킴.
  48. 48)중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 아사세(阿闍世)ㆍ아사세(阿闍世)ㆍ아도다설돌로(阿闍多說咄路)ㆍ아사다설돌로(阿社多設咄路) 등으로 음역(音譯)한다. 의역(意譯)은 미생원(未生怨)으로서, 전세(前世)에 이미 원한을 품고 태어났다는 뜻. 부왕(父王)은 빈바사라(頻婆沙羅)이고, 모후(母后)는 위제희(韋提希)이다. 부왕이 늙도록 아들이 없음을 근심하여 신에게 기원하고 있을 때, 한 점술사가 “비부라(毘富羅)산의 한 선인(仙人)이 죽으면 태자로 태어난다”고 말했다. 부왕은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선인을 죽였고, 모후는 곧 태자를 잉태하였다. 잉태 중에 점술가에게 물으니 “뱃속의 태자가 원한을 품었다”고 하였다. 그 뒤 모후는 높은 다락에서 태자를 낳아 떨어뜨렸다. 그러나 태자는 손가락 하나만 잘렸을 뿐 다치지 않았으므로 무지(無指) 또는 절지(折指)라고 이름하였다. 태자는 자라서 제바달다(提婆達多)의 유혹으로 부왕을 죽이고 모후를 가두는 등 반역죄를 저질렀다. 왕위에 오르고 나서 주위의 작은 나라들을 합병하고 인도의 통일기반을 다져놓았다. 그 뒤 온몸에 종창이 번지자, 부처님께 지난 반역죄를 참회하여 병을 고치면서부터 부처님께 귀의하고 교단을 보호하였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첫 번째 경전의 결집사업을 크게 도왔다. 불멸 후 24년에 죽음.
  49. 49)무힐(無黠)은 본경(本經)의 이역본(異譯本)인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經)』과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에서는 각각 무혜(無慧)와 무명(無明)으로 한역하였으나, 여기서는 힐(黠)을 지(知)로 보아 진리를 알지 못함이라고 번역하였다. 근본경전(根本經典)에서는 이 힐(黠)을 대부분 지(知) 또는 혜(慧)로 한역하고 있다.
  50. 50)이 5욕락(欲樂)에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境)을 애착하는 정욕(情欲)과 재(財)ㆍ색(色)ㆍ식(食)ㆍ명(名)ㆍ수(睡)의 다섯 가지를 집착하는 욕심(慾心)의 두 종류가 있다.
  51. 51)대애(大哀)는 대비(大悲)와 같다. 근본경전에서는 이 대비(大悲)의 비(悲)를 대부분 애(哀)로 쓰고 있다.
  52. 52)5역죄(逆罪)를 범한 중생이 떨어지는 8열지옥(熱地獄)의 제8 아비지옥(阿鼻地獄)이며, 남섬부주(南贍部洲)의 지하(地下)에서 2만 유순(由旬)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무간(無間)의 뜻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① 죽음과 동시에 중음신(中陰身:中有)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떨어지는 취과무간(趣果無間) ② 이 지옥을 벗어날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수고무간(受苦無間) ③ 시간이 1겁(劫) 동안 빈틈없이 계속 이어지는 시무간(時無間) ④ 지옥수명이 1겁 동안 쉴 틈 없이 계속 이어지는 명무간(命無間) ⑤ 몸의 형상이 지옥의 높이와 너비 8만 4천 유순만큼 빈틈이 없는 신형무간(身形無間)으로서, 그 과보(果報:趣果)와 수고(受苦)와 기간(期間:時)과 지옥수명(地獄壽命:命)과 몸의 형체[身形]가 빈틈도 없고 쉴 틈도 없다는 뜻이다. 아비지옥을 포함한 8열지옥에는 각 지옥마다 16소지옥(小地獄) 혹은 18소지옥(小地獄)이 있으므로, 이들 소지옥과 비교하여 8열지옥을 각각 대지옥(大地獄:大泥犁)라고 한다.
  53. 53)나열국(羅閱國)의 나열(羅閱)은 나열기(羅閱祇)ㆍ나열게리혜(羅閱揭梨醯)ㆍ나열기가라(羅閱祇伽羅) 등과 함께 왕사성(王舍城)의 음역(音譯)으로서, 인도의 고대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수도(首都)이다. 나열국은 곧 마갈타국을 말한다.
  54. 54)아유월치는 아비발치(阿毘跋致)와 함께 불퇴전(不退轉)의 음역(音譯)으로서, 불퇴(不退) 또는 불퇴위(不退位)로 의역(意譯)하기도 한다. 아유월치법륜은 미혹의 경계로 다시 물러나거나 빠지지 않고 진여(眞如)의 경지에서 끊임없이 굴리는 법륜을 말한다.
  55. 55)아유월치승(阿惟越致僧)의 승(僧)은 다시 미혹(迷惑)의 경계로 물러나거나 빠지지 않고 진여(眞如)의 경지에서 성불(成佛)이 기약된 보살승(菩薩僧)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