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1_0137_a_01L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 상권
문수사리신통력경(文殊師利神通力經) 또는 승금색광명덕녀경(勝金色光明德女經)이라고도 한다.
011_0137_a_01L大莊嚴法門經卷上
亦名文殊師利神通力經亦名勝金色光明德女經


수(隋) 나련제야사(那連提耶舍) 한역
김달진 번역
011_0137_a_02L隋天竺三藏那連提耶舍譯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1_0137_a_03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의 무리 5백 명과 큰 보살의 무리 8천 명과 함께 계셨다.
011_0137_a_04L一時佛在王舍城耆闍崛與大比丘衆五百人大菩薩衆八千人俱
그때 왕사성에 한 음녀(婬女)가 있었는데, 그 여자의 이름은 승금색광명덕(勝金色光明德)이었다. 그 여자는 숙세(宿世) 선근(善根)의 인연으로 형모(形貌)가 단정하고 여러 가지 상(相)을 구족하였으며, 몸은 진금색(眞金色)으로서 광명이 빛나고 용모와 위풍이 아름답고 깨끗한 것이 세상에 드문 모습이었다. 정신과 지혜는 총명하고 민첩하며 변재(辯才)는 걸림이 없었으며, 음성과 말이 맑고 오묘하며 심원(深遠)하고 유연(柔軟)하였다. 말할 땐 항상 웃음을 머금고 거칠고 추악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이리 저리 살피고 나아가고 멈추는 모습이 편안하고 세심하였으며, 그녀가 있는 곳은 가건 머물건 앉건 눕건 땅이 모두 금빛으로 광명이 빛났으며, 입는 옷마다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 역시 모두 금빛으로 변했다.
011_0137_a_06L爾時王舍城中有婬女女名勝金色光明德彼女宿世善根因緣形貌端正衆相具足身眞金色光明照曜容儀媚麗世所希有神慧聰敏辯才無㝵音辭淸妙深邃柔軟言常含笑語無麤獷顧眄進止容豫安詳隨所在處或行或住或坐或臥地皆金色光明照曜所著衣服靑亦皆金色
당시 왕사성의 모든 사람들은 왕자건 대신의 아들이건 장자의 아들이건 부호의 아들이건 보는 자마다 탐욕에 물들어 마음을 두고 애착(愛着)하였으며 연모의 정을 버리는 일이 없었다. 이 금색녀가 마을에 있거나 거리에 있거나 시장에 있거나 강가 언덕에 있거나 동산과 숲의 노는 곳에 있으면 남자건 여자건 어린 사내아이건 어린 계집아이건 모두들 그녀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면서 싫증내는 법이 없었다.
011_0137_a_14L王舍城一切人衆或是王子或大臣子或長者子或豪富子見者貪染繫心愛著情無捨離是金色女或在聚落或在街巷或在市肆或在河岸或在園林所遊之處若男若女童男童女皆悉隨從觀無厭足
011_0137_b_01L 그러던 어느 날 상위덕(上威德)이라는 장자의 아들이 그녀와 즐기고 싶어서 많은 재보(財寶)를 주고는 서로 합의하고 함께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에 올랐다. 그 수레는 전체가 금ㆍ은ㆍ유리ㆍ마니(摩尼)ㆍ진주 등 매우 오묘한 온갖 보물로 엄숙하고 장엄하게 장식되었고, 보당(寶幢)과 미묘한 번개(幡蓋)를 세웠으며, 보좌(寶座)와 화만(華鬘)에 바르는 향과 가루 향과 같은 온갖 것을 배합한 뛰어난 향을 발랐다. 첨복화(瞻蔔華)로 영락(瓔珞)을 만들어 그 몸을 장식하고는 함께 보배 수레에 올랐다.
011_0137_a_19L復於異日有長者子名上威德爲欲樂故多與財寶共相要契乘駟馬車其車純以金琉璃摩尼眞珠上妙衆寶嚴飾莊校建立寶幢微妙幡蓋寶座華鬘塗香末香如是種種和合勝香以用塗薰以瞻蔔華而爲瓔珞莊嚴其身同載寶車
보배 수레 앞에서는 온갖 기녀와 악사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며, 그 수레 뒤에서는 또 온갖 맛있는 음식과 의복과 침구(寢具)를 가지고 차례대로 따르며 동산의 숲으로 나아갔다. 이때 대중들은 남자건 여자건 어린 사내아이건 어린 계집아이건 모두들 쫓아가며 좌우에서 구경하였다.
011_0137_b_04L於寶車前種種伎樂歌舞作倡於其車後復持種種甘美飮食衣服臥具次第隨從往詣園林爾時大衆若男若女童男童女皆悉隨逐左右觀看
그때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자는 선정(禪定)에서 일어나 일체 중생에게 대비심(大悲心)을 일으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떤 중생이 대승(大乘) 가운데서 교화를 감수(堪受)할 수 있을까? 어떤 중생이 마땅히 신통으로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중생이 마땅히 과거의 업연(業緣)으로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중생이 마땅히 정법(正法)을 듣고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011_0137_b_08L爾時文殊師利童子從禪定起於一切衆生起大悲心而作是念何等衆生於大乘中堪受教化何等衆生應以神通而受教化何等衆生應以過去業緣而受教化何等衆生應聞正而受教化
이런 생각을 한 다음, 금색녀와 장자의 아들이 함께 보배 수레를 타고 동산의 숲으로 가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는 곧 근성(根性)의 차별을 관(觀)하고, 차별을 관한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여자는 과거 선업(善業)의 인연으로 교화를 감수할 수 있다. 나의 법을 들으면 곧 믿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011_0137_b_14L作是念已見金色女與長者子同載寶車欲詣園林見已卽觀根性差別差別觀已作是念言女過去善業因緣堪受教化若聞我卽能信受
이때 문수사리가 신통력으로 몸에서 광명을 놓자 그 빛이 햇빛마저 가려 모두 사라지게 하였으니, 하물며 다른 빛이겠는가. 이때 문수사리는 입고 있던 옷과 얼굴에서 각각 빛을 비춰 1유순(由旬)을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그 많은 무리들이 모두 보게 하였다. 또 온갖 여러 가지 보배와 영락과 천관(天冠)과 비인(臂印)으로 그 몸을 장엄하여 보는 자들이 탐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한 뒤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길에 서 있었다.
011_0137_b_18L爾時文殊師利以神通身放光明映蔽日光悉不復現況餘光文殊師利所著衣服面各光照滿一由旬令彼多衆皆悉睹見復以種種衆寶瓔珞天冠臂印莊嚴其身欲令見者心生貪樂作是事已往詣女所當路而住
011_0137_c_01L 빛으로 여자의 몸과 장자의 아들을 비추자 말과 보배 수레에 있던 광명은 모조리 어둠속에 묻혀버렸으니, 마치 먹 덩어리가 진금(眞金)과 나란히 있는 것처럼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 금색녀는 문수사리가 온갖 보배로 장엄하고 옷이 청결하며 광명이 멀리까지 비치는 것을 보고는, 저 사람은 하늘의 동자라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몸과 장자의 아들에 대해 비루하고 추악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다시는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011_0137_c_01L光照女身及長者子駟馬寶車所有光明皆悉闇蔽猶如聚墨比於眞金無有光明彼金色女見文殊師利衆寶莊嚴衣服淨光明遠照謂是天童自於己身及長者子而生鄙惡不復愛樂
그리고는 문수의 몸과 옷에 대해 탐착하는 마음을 일으켜 남모르게 혼자서 생각하였다.
‘나는 저 사람에게 가서 함께 즐겁게 놀며 마음 내키는 대로 욕망을 따라주고 그의 옷을 얻으리라.’
011_0137_c_06L於文殊身及以衣服起貪著心默自念言當就彼共爲嬉戲從心欲樂求索彼
이런 생각을 했을 때, 문수사리의 위신력으로 비사문왕(毘沙門王)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여자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저분에게 탐욕의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분은 청정하여 탐욕이 없기 때문이다.”
011_0137_c_09L作是念時文殊師利威神力故沙門王化爲人像從空而下立於女而語之言汝今不應於彼人所貪欲心何以故彼人淸淨無貪欲故
금색녀가 말하였다.
“이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비사문(毘沙門)이 말하였다.
“이분은 바로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자보살이시다.”
011_0137_c_12L金色女言此是何人毘沙門言此是文殊師利童子菩薩
금색녀가 말하였다.
“무엇을 보살이라 합니까? 잘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늘을 말합니까, 그것은 야차(夜叉)입니까, 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입니까, 그것은 제석(帝釋)입니까, 그것은 범천(梵天)입니까, 그것은 사천왕천(四天王天)입니까?”
011_0137_c_14L金色女言云何名菩薩願善說之爲是天耶爲是夜爲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爲是帝釋爲是梵天爲是四天王天耶
비사문이 말하였다.
“하늘이 아니며, 야차가 아니며, 건달바가 아니며, 아수라가 아니며, 가루라가 아니며, 긴나라가 아니며, 마후라가가 아니며, 제석도 아니며, 범천도 아니며, 사천왕천도 아니다. 그와 같은 무리는 모두 보살이 아니다. 보살이란 일체의 중생이 바라고 구하는 대로 그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아까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런 이를 보살이라 한다.”
011_0137_c_18L毘沙門言非天非夜叉非乾闥婆非阿修羅非迦樓羅非緊那羅非摩睺羅伽亦非帝釋亦非梵亦非四天王天如是等輩悉非菩言菩薩者一切衆生隨所願求能滿足不生慳悋是名菩薩
011_0138_a_01L이때 승금색녀(勝金色女)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말한 것과 같다면 내가 지금 옷을 구하면 반드시 얻겠구나.’
011_0137_c_23L勝金色女卽作是念如所說者我今乞衣必定應得
곧 수레에서 내려 문수사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 이르러서는 말하였다.
“문수사리님, 입고 계신 옷을 저에게 베풀어 주시길 원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누이여, 그대가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대에게 옷을 주겠습니다.”
011_0138_a_02L卽便下車向文殊師利所到已白言文殊師利願能施我所著衣裳文殊師利言妹汝若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當與汝衣
여인이 말하였다.
“문수사리님, 무엇을 보리심(菩提心)이라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대의 몸이 곧 보리(菩提)입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왜 제 몸이 곧 보리입니까? 제가 이해하도록 거듭 자세히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011_0138_a_05L文殊師利何者名爲菩提心耶殊師利言汝身卽是菩提女言云何我身卽是菩提願重廣說令我得解
이에 여인이 게송을 설하여 옷을 구하였다.
011_0138_a_08L於是女人說偈乞衣

문수께선 보리의 원 일으키신 지 오래 되셨으니
몸에 입으신 옷을 지금 저에게 주실 수 있으리다.
만약 베풀지 못한다면 보살이 아니니
말라버린 강(江)에 물이 없음과 같으리라.
011_0138_a_09L文殊久發菩提願
今可施我身上衣
若不能施非菩薩
猶如枯河而無水

이때 문수사리가 게송으로 답하였다.
011_0138_a_11L爾時文殊師利說偈答言

그대가 만약 보리심을 낼 수 있다면
내 마땅히 소원에 따라 그대에게 옷을 주리다.
만약 보리가 견고한 사람이 있다면
일체 천인(天人)이 모두 공양하리라.
011_0138_a_12L汝若能發菩提心
我當隨願施汝衣
若有堅固菩提者
一切天人皆供養

이때 승금색녀(勝金色女)가 다시 게송으로 물었다.
011_0138_a_14L爾時勝金色女復以偈問

보리에는 어떤 뜻이 있고
보리는 누구에게서 얻으며
보리는 누가 줄 수 있으며
보리는 어떤 행(行)으로 이룹니까?
011_0138_a_15L菩提有何義
菩提從誰得
菩提誰能與
菩提何行成

이때 문수사리가 금색녀에게 말하였다.
“지금 현재 부처님께서 계시니 그 명호는 석가모니 다타아가도(多他阿伽度:如來)ㆍ아라하(阿羅訶:應供)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正等覺)이십니다. 그 부처님께서 설하시기를 몸과 보리(菩提)는 모두 평등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대 몸에 5음(陰)과 12입(入)과 18계(界)가 있습니까?”
011_0138_a_17L爾時文殊師利語金色女言於今現在有佛號釋迦牟尼多他阿伽度羅訶三藐三佛陁彼佛所說身及菩皆悉平等於意云何汝身有五陰十二入十八界不
이 여인은 과거의 선근인연(善根因緣)으로 이 말을 듣고는 곧 법의 광명[法光]을 얻었다. 법의 광명을 얻은 다음 문수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저의 이 몸에는 5음과 12입과 18계가 있습니다.”
011_0138_a_22L是女過去善根因緣聞此語已卽得法光得法光已文殊言如是如是我今此身有五陰十二入十八界
011_0138_b_01L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대의 뜻에는 어떻습니까? 색이 깨달을 수 있고 알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깨달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리 또한 그와 같아서 깨달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색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 또한 평등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말한 것입니다.”
011_0138_b_02L文殊師利言於汝意云何色可覺可知不女言不也不可不可知文殊師利言菩提亦如是不可覺不可知如是色平等故菩提亦平等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대의 뜻에는 어떻습니까?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깨달을 수 있고 알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깨달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리도 또한 그와 같아 깨닫거나 알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 또한 평등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말한 것입니다.”
011_0138_b_06L文殊師利言於汝意云何可覺可知不女言不也不可覺不可文殊師利言菩提亦如是不可覺如是受平等故菩提亦平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의 뜻에는 어떻습니까? 이 색을 두고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안에 있다, 밖에 있다, 중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파리(頗梨)ㆍ잡색(雜色)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리도 역시 그와 같아 단정적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색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 또한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말한 것입니다.”
011_0138_b_11L文殊師利言於汝意云何此色可說在此在在內在外在中閒不可說靑頗梨雜色不女言不也文殊師利菩提亦如是不可得說如是色平等故菩提亦平等是故我說汝身是菩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수ㆍ상ㆍ행ㆍ식을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안에 있다, 밖에 있다, 중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청ㆍ황ㆍ적ㆍ백ㆍ파리ㆍ잡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색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수ㆍ상ㆍ행ㆍ식 또한 말할 수 없습니다.”
011_0138_b_17L文殊師利言識可說在此在在內在外在中閒不可說靑頗梨雜色不女言不也如色不可乃至受亦不可說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리도 또한 그와 같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말한 것입니다.
011_0138_b_21L文殊師利言菩提亦如是不可說如是受平等故菩提平等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011_0138_c_01L또 5음(陰)은 허깨비[幻]처럼 체성(體性)이 실답지 않으니, 전도(顚倒)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보리도 역시 허깨비와 같아서 체성이 실답지 않으며, 전도된 까닭으로 세속에서 생을 설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허깨비가 평등한 까닭에 5음이 평등하고, 허깨비가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38_c_01L復次五陰如幻體性不實顚倒故生菩提亦如幻體性不實以顚倒故俗說生如是幻平等故五陰平等平等故菩提平等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또 5음은 꿈과 같아 체성이 불생(不生)입니다. 보리 역시 그와 같아 체성이 불생입니다. 이와 같이 꿈이 평등한 까닭에 5음도 평등하며 꿈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38_c_06L復次五陰如夢體性不生菩提亦如體性不生如是夢平等故五陰平夢平等故菩提平等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또 5음은 아지랑이와 같아 업연(業緣)으로 인해 생기는 것입니다. 보리 역시 아지랑이와 같아 업(業)도 없고 과보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아지랑이가 평등한 까닭에 5음이 평등하며, 아지랑이가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38_c_10L復次五陰如陽炎以業緣故生菩提亦如陽炎無業無報如是陽炎平等五陰平等陽炎平等故菩提平等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또 5음은 거울 속 형상과 같아 체성이 공(空)하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습니다. 보리 역시 이와 같아 가는 일이 없고 오는 일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거울 속 형상이 평등한 까닭에 5음이 평등하며, 거울 속 형상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38_c_14L復次五陰如鏡中像體性空無不去不來菩提亦如是無去無來如是鏡像平等故五陰平等鏡像平等故提平等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또 5음은 다만 거짓 이름일 뿐이며, 보리 역시 이와 같아 다만 거짓 이름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5음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38_c_18L復次五陰但是假名菩提亦如是但是假名如是五陰平等故菩提平等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011_0139_a_01L또 5음은 짓는 사람이 없으니, 짓는 사람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체성(體性)이 없으니, 체성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불생(不生)이니, 생(生)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무상(無常)하니, 상(常)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즐거움이 없으니, 즐거움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011_0138_c_21L復次五陰無有作者離作者義是菩五陰無體性離體性義是菩提陰不生離生義是菩提五陰無常離常義是菩提五陰無樂離樂義是菩
5음은 청정하지 않으니, 청정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취(取)함이 없으니, 취함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집이 없으니, 집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가고 오는 일이 없으니, 가고 오는 일이 없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011_0139_a_03L五陰無淸淨離淸淨義是菩提陰無我離我義是菩提五陰不淸淨離淸淨義是菩提五陰無取離取義是菩提五陰無家離家義是菩提陰無去來無去來義是菩提
5음은 성인(聖人)의 법론(法論)이고, 보리 역시 성인의 법론입니다. 이와 같이 논(論)과 비론(非論)의 법과 5음의 체성을 여래께서 일체를 다 깨달으셨기에 이를 보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5음의 체성(體性)이 곧 보리의 체성이고, 보리(菩提)의 체성은 곧 일체 모든 부처님의 체성입니다. 그대 몸속 5음의 체성이 곧 일체 모든 부처님의 체성인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체성이 곧 일체 중생 5음의 체성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설한 것입니다.
011_0139_a_07L五陰聖人法論菩提亦聖人法論如是論非論法五陰體性如來一切覺故是名菩提如是五陰體性卽是菩提體性菩提體性卽是一切諸佛體性如汝身中五陰體性卽是一切諸佛體性諸佛體性卽是一切衆生五陰體性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또 5음을 깨닫는 것을 보리를 깨닫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5음을 떠나 부처님이 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고, 보리를 떠나 부처님이 5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방편의 지혜이니, 일체 중생은 모두 보리와 같고 보리도 또한 일체 중생과 같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설한 것입니다.
011_0139_a_14L復次覺五陰者名覺菩提何以故離五陰佛得菩提非離菩提佛覺五此方便知一切衆生悉同菩提提亦同一切衆生是故我說汝身是菩提
011_0139_b_01L또 소위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라는 4대(大)의 법(法)이 생기지만 그 지계(地界)는 나[我]가 아니며, 중생(衆生)이 아니며, 수명(壽命)이 아니며, 포사(哺沙:丈夫)도 아니며 부가라(富伽羅:補特伽羅)도 아닙니다. 지계(地界)의 평등함이 곧 보리니, 과거에는 취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계(水界)의 평등함이 곧 보리니, 체성이 불생(不生)이기 때문입니다. 화계(火界)의 평등함이 곧 보리니, 체성이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풍계(風界)의 평등함이 곧 보리니, 체성이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계의 체성을 여래께선 깨달으셨기 때문에 보리를 얻으신 것입니다.
011_0139_a_19L復次四大法生所謂地界水界火界風界而此地界非我非衆生非壽命非晡沙非富伽羅地界平等是菩提過去無取故水界平等是菩提體性不生故火界平等是菩提體性不可覺故風界平等是菩提體性不可見地界體性如來覺故得菩提
이와 같이 수계ㆍ화계ㆍ풍계를 여래께선 깨달으셨기 때문에 보리를 얻으신 것입니다. 지의 성품을 깨닫는 것, 이것을 곧 보리라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39_b_03L如是水界火界風界如來覺故得菩提地性者是名菩提如是能覺水是名菩提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또 지계는 물을 모르고, 수계는 불을 모르며, 화계는 바람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여러 요소들은 이름이 없고 설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39_b_06L復次地界不知水水界不知火火界不知風如是諸界無名不可說者名菩提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또 그대의 몸에서 눈이라는 법이 생겼습니까?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생겼습니까? 누이여, 이 가운데 눈은 공(空)한 것이니 눈의 공한 체성이 곧 보리입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공한 것이니, 뜻의 공한 체성이 곧 보리입니다.
011_0139_b_09L復次汝身眼法生不如是耳意生不妹此中眼空眼空體性卽是菩提如是耳意空意空體性卽是菩提
또 만약 눈의 체성이 공하다면 색은 설할 수 없으니, 색의 공한 체성이 곧 보리입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체성이 공하면 일체의 법은 설할 수 없으니, 법의 공한 체성이 곧 보리입니다.
011_0139_b_13L復次若眼體性空色不可說色空體卽是菩提如是耳意體性一切法不可說法空體性卽是菩提
011_0139_c_01L또 눈은 색을 취하지 않고 보리 역시 눈처럼 색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소리와 향과 맛과 감촉과 법을 취하지 않으며, 보리 역시 그와 같아 일체의 법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안식계(眼識界)는 색계(色界)에 머물지 않고, 안식계(眼識界)와 색계(色界)는 보리에 또한 머물지 않습니다. 이식계(耳識界)와 비식계(鼻識界)와 설식계(舌識界)와 신식계(身識界)도 마찬가지며 의식계(意識界)는 법계(法界)에 머물지 않고, 이와 같이 의식계와 법계는 보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안식계(眼識界)와 보리계(菩提界)는 둘이 없고 다름이 없으며, 나아가 의식계와 보리계도 둘이 없고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설한 것입니다.
011_0139_b_16L復次眼不取色菩提亦如眼不取色如是耳不取聲菩提亦如是不取一切法如是眼識色界中不住眼識色界菩提中不住耳識界鼻識界舌識界身識界意識界法界中不住如是意識法界菩提中不住眼識界菩提界無二無乃至意識界菩提界無二無別我說汝身卽是菩提
또 눈을 깨닫는 것, 이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깨닫는 것, 이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눈의 체성은 공하니, 이와 같이 체성(體性)이 공(空)함을 깨달을 수 있으면 곧 이것이 보리입니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체성은 공하니, 이것을 깨달을 수 있으면 이것이 곧 보리입니다.
011_0139_c_02L復次覺眼者是名菩提如是覺耳意者是名菩提眼體性空能覺如是體性空者卽是菩提意體性空能覺知者卽是菩提
또 눈의 체성은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 이것이 곧 보리입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체성은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 이것이 곧 보리입니다.
011_0139_c_06L復次眼體性不貪不瞋不癡離貪瞋癡是菩提如是耳意體性不貪不瞋不癡離貪瞋癡卽是菩提
눈에는 주인이 없고 취(取)하는 자도 없으며, 보리 또한 주인이 없고 취하는 자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역시 주인이 없고 취하는 자가 없으며, 보리도 역시 주인이 없고 취하는 자도 없습니다.
011_0139_c_09L眼無主者無取者菩提亦無主者無取者如是耳亦無主者無取者菩提亦無主者無取者
눈에는 남자라는 법과 여자라는 법이 없으며 또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보리에는 남자라는 법과 여자라는 법이 없으며 또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는 남자라는 법과 여자라는 법이 없으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또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보리에는 남자라는 법과 여자라는 법이 없으며, 보리 역시 남자가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011_0139_c_12L眼中無男法女法亦非男非女如是菩提中無男法女法亦非男非女意中無男法女法亦非男非如是菩提中無男法女法菩提亦非男非女
또 눈[眼]과 색(色)은 여여(如如)로부터 온 것이니, 이와 같음을 깨닫는 까닭에 보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뜻[意]과 법(法)은 여여(如如)로부터 온 것이고, 이와 같음을 깨닫는 까닭에 보리라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39_c_17L復次眼色如如來覺此如名爲菩提如是意法如如來覺此如故名爲菩提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011_0140_a_01L또 그대의 몸에는 나[我]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壽命)이 없고, 포사(脯沙)가 없고, 부가라(富伽羅)가 없고, 사람[人]이 없고, 마나마(摩那摩)1)가 없고, 짓는 자[作者]가 없고, 받는 자[受者]가 없고, 보는 자가 없고, 듣는 자가 없고, 냄새 맡는 자가 없고, 맛보는 자가 없고, 느끼는 자가 없고, 아는 자도 없습니다. 그 보리 역시 나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고, 포사가 없고, 부가라가 없고, 사람이 없고, 마나마가 없고, 짓는 자가 없고, 받는 자가 없고, 보는 자가 없고, 듣는 자가 없고, 냄새 맡는 자가 없고, 맛보는 자가 없고, 느끼는 자가 없고, 아는 자도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일체의 법은 알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리(菩提)라고 설한 것입니다.
011_0139_c_20L復次汝身無我無衆生無壽命無晡無富伽羅無人無摩那摩無作者無受者無見者無聞者無嗅者無味無觸者無知者彼菩提亦無我衆生無壽命無晡沙無富伽羅無人無摩那摩無作者無受者無見者聞者無嗅者無味者無觸者無知者是故說一切法不可知卽是菩提
또 이 몸은 앎[知]이 없고, 깨달음[覺]이 없고, 지음[作]이 없는 것이 마치 풀이나 나무, 돌이나 벽과 같습니다. 안의 지계(地界)나 밖의 지계를 땅의 체성이라고 하는데, 이 지계의 성품을 여래께서는 반야지(般若智)의 힘으로 이미 깨달으셨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40_a_05L復次此身無知無覺無作猶如草木石壁若內地界若外地界名地體性此地界性如來般若智力覺已是故我說汝身卽是菩提
또 누이여, 그대는 마음ㆍ뜻과 화합하여 헤아리고 분별합니다. 그러나 이 마음과 뜻의 헤아림과 분별은 깨달음이 없고 앎도 없습니다. 피부에 있지 않고, 근육에 있지 않고, 골수(骨髓)에 있지 않고, 모발(毛髮)에 있지 않고, 손톱에 있지 않고, 안과 밖에도 있지 않고,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지 않습니다.
011_0140_a_09L復次妹如汝心意和合思量分別此心意思量分別無覺無知不在皮不在筋血不在骨髓不在髮毛在指爪不在內外不在眼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며, 확고하게 머무르지도 않고 확고하게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며, 여기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저기에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색(色)이 아니라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고, 장애하는 것도 없고, 분별도 없고, 쥘 수 없고, 화합하지 않고, 집에 머물거나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며, 청정하고 가장 청정하며, 광명이 밝게 빛납니다. 그 마음과 뜻은 헤아리고 분별하지만 번뇌와 화합하지 않고 또한 청정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체성이 깨끗한 까닭에 번뇌와 화합하지 않으며, 화합하지 않는 까닭에 청정한 광명인 것입니다.
011_0140_a_14L非住非不住不定住非不定住此住非彼住非色不可見不可捉障㝵無分別不可執不和合非家離淸淨最淸淨光明照曜彼心意思量分別不與煩惱和合亦非淸淨以故體性淨故不與煩惱和合不和合故淸淨光明
011_0140_b_01L 또 그 광명은 몸이 없습니다. 몸이 없기 때문에 번뇌와 화합하지 않으며 역시 청정한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음(陰)ㆍ계(界)ㆍ입(入)의 체성이 곧 보리이며, 보리의 체성이 곧 음ㆍ계ㆍ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 몸의 음ㆍ계ㆍ입의 성품이 곧 보리라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벗어나지 않으므로 보리라 하기 때문입니다. 음ㆍ계ㆍ입을 떠나 일 가운데서 보리는 얻을 수 없습니다. 음ㆍ계ㆍ입을 깨달으면 곧 이것이 보리입니다. 이런 까닭에 일체의 법이 평등함을 깨달으면 이를 보리라 한다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011_0140_a_20L又彼光明無身無身不與煩惱和合亦非淸淨如是陰界入體性卽是菩提菩提體性卽是陰界入是故汝身陰界入性是名菩何以故非離彼故名爲菩提離陰界入事中菩提不可得覺陰界入是菩提是故我說一切法平等覺名菩提
이때 문수사리 동자가 이 법을 설하고 나자 때마침 허공에 5백의 여러 하늘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또 승금색광명덕녀(勝金色光明德女)를 따르던 남자와 여자와 어린 사내아이 어린 계집아이 등 200여 명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며, 하늘 사람 60명이 모든 법에서 법안(法眼)2)이 청정해졌다.
011_0140_b_04L爾時文殊師利童子說此法已時虛空中五百諸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復有隨從勝金色光明德女若男若女童男童女二百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六十天人於諸法中得法眼淨
이때 승금색녀(勝金色女)는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였고, 마음이 청정해졌다. 그녀는 5체(體)를 땅에 던져 문수사리의 발에 예배하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法]에 귀의합니다. 승가(僧伽)에 귀의합니다.”
011_0140_b_10L勝金色女踊躍歡心得淸淨五體投地禮文殊師利作如是言歸依佛歸依法歸依僧
3보(寶)에 귀의한 다음 범행(梵行)인 5계(戒)를 받고, 계법(戒法)을 받은 다음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마음을 낸 다음에 문수(文殊)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제 이와 같은 가르침을 듣게 되었으니 일체 중생이 안온(安穩)함을 얻게 하기 위해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부처의 씨앗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지극한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킵니다. 문수사리께서 저를 위해 이 보리의 법을 설하심과 같이 저도 마땅히 따라 행하며 또한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해 이와 같은 법을 설하겠습니다.
011_0140_b_12L歸三寶已受梵行五戒受戒法已心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旣發心已白文殊言我今得聞如是法教爲一切衆生得安隱故起慈悲心爲不斷佛種故至心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如文殊師利爲我說此菩提之法我當順行亦當廣爲一切衆生說如是法
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불법은 적멸(寂滅)하고 대적멸(大寂滅)합니다. 저는 알지 못한 까닭에 나쁜 각관(覺觀)3)에 따라 전도(顚倒)된 마음을 일으켜 신견(身見)4)을 집착하고, 스스로 육신을 탐착하며 또 남들로 하여금 탐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지극한 마음으로 청정하게 일체의 죄업(罪業)을 참회합니다.
011_0140_b_20L文殊師利如是佛法寂滅大寂滅我不知故隨惡覺觀起顚倒執於身見自貪著身復令他貪今至心淸淨懺悔一切罪業
011_0140_c_01L문수사리의 말씀처럼 탐욕은 적멸의 법이며, 일체의 화합한 법들도 또한 이와 같이 적멸합니다. 만약 이 법을 알지 못해 탐착(貪著)을 일으키는 중생이 있다면 제가 그를 탐착에서 멀리 벗어나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편안히 머물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번뇌는 마치 죽은 사람과 같으며, 단지 전도된 망상(妄想) 때문에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도된 온갖 망상이 없다면 번뇌는 곧 사라집니다.
011_0140_b_23L如文殊師利所說貪寂滅法一切和合法如是寂滅若有衆生不知此法起貪著者我能令彼遠離貪著安住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一切煩惱猶如死人但以顚倒妄想故生若無顚倒諸妄想者煩惱則滅
저는 이제 문수사리께서 말씀하신 법요(法要)를 듣고 일체의 번뇌가 구름이나 안개처럼 그 체성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번뇌는 번개와 같아 한 생각도 머물지 않고, 번뇌는 바람과 같아 체성이 불생(不生)입니다. 번뇌는 허공에 그린 그림과 같으니 볼 수 없기 때문이며, 번뇌는 물에 그린 그림과 같으니 그리자마자 곧 없어지기 때문이며, 번뇌는 야차귀(夜叉鬼)와 같으니 나쁜 각관(覺觀)을 낳기 때문이며, 번뇌는 열병(熱病)과 같으니 헛소리를 지껄이기 때문이며, 번뇌는 체성이 없는 것이니 나쁜 각관이 생기기 때문이며, 번뇌는 버리기 어려우니 ‘나다.’, ‘나의 것이다.’ 하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011_0140_c_06L我今得聞文殊師利所說法要知一切煩惱如雲霧體性不實煩惱如電一念不煩惱如風體性不生煩惱如空中不可見故煩惱如畫水隨畫隨滅煩惱如夜叉鬼生惡覺故煩惱如熱病狂妄語故煩惱體性無惡覺生煩惱難捨我我所執故
물(物)이 없는데 망령되게 객진(客塵)5)을 취하는 것이니, 번뇌가 망령되게 생기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생각[想]을 따라 나타나니 나쁜 각관(覺觀)으로 취하기 때문이며, 번뇌는 눈[眼]과 같으니 온갖 경계가 일어나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그 체(體)가 다함이 없으니 마음이 탁함으로 인해 생기기 때문이며, 번뇌는 체성이 없으니 화합의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이며, 번뇌는 둥근 덩어리와 같으니 음ㆍ입ㆍ계가 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알 수 없는 것이니 명색(名色)이 없기 때문이며, 번뇌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좋은 깨달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씨앗과 같으니 보리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번뇌를 원인으로 해야만 보리를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11_0140_c_13L無物妄取客塵煩惱妄生故煩惱隨想現惡覺觀取故煩惱如眼見種種境起故惱體無盡猶心濁生故煩惱體性無和合緣生故煩惱如團聚陰入界合煩惱不可識無名色故煩惱不可無善覺故煩惱如種子能生菩提何以故要因煩惱能滿菩提故
문수사리님, 보리는 금강궐(金剛橛)6)과 같으니 중생의 번뇌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보리는 금강적(金剛跡)7)과 같으니 일체의 번뇌가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법계(法界)는 방편으로 깨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011_0140_c_20L文殊師利菩提者如金剛撅衆生煩不能動故又菩提者如金剛迹切煩惱不能破故何以故法界方便不可壞故
011_0141_a_01L문수사리님, 번뇌를 보는 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경계는 보리를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보리는 머무는 곳이 없고, 일체의 번뇌도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生)은 곧 멸(滅)이기 때문입니다.
011_0141_a_01L文殊師利見煩惱者名爲菩提何以故一切境界順菩提故是菩提無有住處一切煩惱亦無住何以故生卽滅故
문수사리님. 이처럼 마음의 체성은 설명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또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설할 수도 없습니다. 탐(貪)ㆍ진(瞋)ㆍ치(癡)의 체성 또한 이와 같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번뇌를 알기 때문에 탐욕이 많은 중생과 성냄이 많은 중생과 어리석음이 많은 중생을 잘 교화하며, 그렇다고 그 중생들을 괴롭히거나 혼란스럽게 하지도 않습니다. 나아가 평등한 부류의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역시 괴롭히거나 혼란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문수사리님, 저의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처럼 일체 중생의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저의 번뇌처럼 일체 중생의 번뇌도 또 이와 같습니다.
011_0141_a_04L文殊師利如心體性不可說示亦不可說在此在彼癡體性亦復如是菩薩如是知煩惱故於多貪衆生多瞋衆生多癡衆生善能教化然不爲彼衆生惱亂乃至教化等分衆生亦不惱亂文殊師利如我貪一切衆生貪亦復如是如我煩惱當知一切衆生煩惱亦復如是
또 문수사리님, 비유컨대 사나운 불길은 어떤 풀과 나무에도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모든 번뇌에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태양이 어둠과 함께 머물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미혹(迷惑)과 함께 머물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큰 바람은 어떤 산과 나무도 막을 수 없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일체 세간의 번뇌와 경계가 막을 수 없습니다.
011_0141_a_12L復次文殊師利譬如猛火於一切草不生恐怖如是智慧行菩薩於諸煩惱不生恐怖譬如日輪不與闇住如是智慧行菩薩不與惑住譬如大諸山樹木無能障㝵如是智慧行菩薩一切世閒煩惱境界無能障㝵
011_0141_b_01L 비유컨대 허공은 겁화(劫火)8)에도 타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모든 번뇌의 불길이 또한 태우지 못합니다. 비유컨대 철애(鐵愛)9)라는 보살은 더러운 것에 머물지 않고 머무는 곳마다 일체가 청정해지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일체의 번뇌에 또한 머물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허공은 땅과 합하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번뇌의 온갖 결박과 화합하지 않습니다. 철위산(鐵圍山)은 바람이 움직일 수 없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일체의 번뇌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011_0141_a_18L譬如虛空劫火不燒如是智慧行菩諸煩惱火亦不能燒譬如有寶曰鐵愛不住不淨隨所止處一切淸如是智慧行菩薩於一切煩惱復不住譬如虛空不與地合如是智慧行菩薩不與煩惱諸結和合如鐵圍山風不能動如是智慧行菩薩切煩惱所不能動
비유컨대 물과 젖이 섞여 있어도 창곡(倉鵠)은 젖만 빨아먹고 물은 취하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일체의 번뇌와 화합할지라도 지혜만 취하고 번뇌는 취하지 않습니다. 울단월국(欝單越國:北俱盧洲)에서는 남녀가 화합할 때 모두 나무 아래로 가는데, 만약 친족(親族)이 아니면 나무 가지가 아래로 쳐져 그 몸을 가려 준다고 합니다.10) 보살도 이와 같아 근기(根機)가 미숙한 중생에게는 지혜를 드리워 교화하지 않습니다.
011_0141_b_03L譬如倉鵠水乳和唯啑於乳而不取水如是智慧行菩薩雖與一切煩惱和合而但取智不取煩惱如鬱單越國男女和合詣樹下若非親者樹枝垂下陰覆其菩薩如是於根未熟衆生智不垂化
또 문수사리님, 저는 지금 이 일체의 번뇌에 대해 놀람과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체 번뇌의 성품을 알기 때문이며, 보살의 두려움 없는 투구를 잘 썼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용맹한 사람이 싸움에 임하여 두려워하지 않음과 같으니, 만약 두려움을 일으킨다면 곧 용맹한 사람이 아닙니다. 보살 또한 그와 같습니다. 모든 번뇌에 대해 두려움을 일으킨다면 곧 보살이 아닙니다. 또 사람이 싸움터에 들어가 서로 싸울 때 남을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남에게 해침을 당한다면 용맹한 남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보살이 번뇌로부터 해침을 당한다면 보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011_0141_b_08L復次文殊師利我今於此一切煩惱不生驚怖何以故以知一切煩惱性善披菩薩無畏鎧故譬如健人陣不怖若生恐懼則非健人菩薩亦於諸煩惱而生恐怖則非菩薩如有人入陣相擊不能勝他反爲他不名健兒若諸菩薩而爲煩惱之所害者不名菩薩
문수사리님, 물을 맑히는 구슬을 흐린 물에 던지면 물이 곧 깨끗해지고 그것은 흐린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처럼, 보살은 비록 번뇌와 화합한다 하더라도 번뇌에 오염되지 않습니다.”
011_0141_b_16L文殊師利如淨水投之濁水水則淸淨而不爲彼濁水所污菩薩雖與煩惱和合不爲煩惱之所染污
이때 승금색녀는 이 말을 하고나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은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011_0141_b_19L爾時勝金色女說是語已問文殊師利言云何菩薩能離煩惱
011_0141_c_01L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번뇌의 생(生)을 알고, 번뇌의 멸(滅)을 안다면 그것은 번뇌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밝은 등(燈)이 온갖 어둠을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으니, 만약 어둠과 함께한다면 등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보살이 번뇌의 생을 보고 번뇌의 멸을 본다면 곧 번뇌를 벗어난 보살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011_0141_b_21L文殊答言若有菩薩知煩惱生知煩惱滅是則不名離煩惱者譬如明燈能滅諸闇若與闇俱不名爲燈如是菩薩見煩惱生見煩惱滅則不得名離煩惱菩
또 번뇌를 벗어난 보살은 번뇌를 보지 않고 청정함도 보지 않으며, 보는 것도 아니고 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심(心)ㆍ의(意)ㆍ식(識)11)을 벗어난 것을 번뇌를 벗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곳에 대해 마음으로 분별하고 나아가 열반을 염(念)한다면 그것을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心]이나 심수(心數:心所)가 생겨 죄와 복을 반연하기 때문입니다. 이 반연을 일체의 행을 지음[作行]이라 하고 행을 짓고 나면 이것을 유전(流轉)이라 하며, 만일 유전하는 법이라면 이를 실다운 유전이라고 하고 일체의 유전을 번뇌라고 합니다.
011_0141_c_03L復次離煩惱菩薩不見煩惱不見淸淨非見非不見離心識者名離煩惱於彼彼處心有分別乃至念涅槃者是名不離煩惱何以故或心或心數生攀緣罪福故此攀緣者名一切作行若作行已是爲流轉若流轉名實流轉一切流轉名爲煩惱
또 화합하는 것을 번뇌라고 합니다. 무엇이 화합하는가? 눈과 빛깔이 화합하고, 귀와 소리가 화합하며, 코와 향기가 화합하고, 혀와 맛이 화합하며, 몸과 감촉(感觸)이 화합하고, 뜻과 법(法)이 화합하며, 삼매(三昧)와 번뇌가 화합합니다. 왜냐하면 삼매에 들고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번뇌라고 합니다. 나쁜 각관을 벗어난 것을 번뇌를 벗어남이라 하며, 마음의 작용[心行]을 벗어난 것을 번뇌를 벗어남이라 하며, 공용(功用)이 없는 것을 번뇌를 벗어남이라 하며, 수량(數量)을 벗어난 것을 번뇌를 벗어남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011_0141_c_09L復次和合者名爲煩惱何者和合與色和合耳與聲和合鼻與香和合舌與味和合身與觸和合意與法和三昧與煩惱和合何以故見得三出沒相者名爲煩惱離惡覺者離煩惱離心行者名離煩惱無功用名離煩惱離數量者名離煩惱
만약 보살이 스스로 번뇌를 벗어나고 또 남도 번뇌를 벗어나게 하며, 일체 중생의 결박을 풀어주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여래(如來)께서는 이런 사람을 번뇌를 벗어나 정진하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011_0141_c_16L有菩薩自離煩惱復令他離爲解一切衆生縛故勤行精進如來說此離煩惱精進菩薩
이때 승금색녀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을 가장 뛰어나게 정진하는 보살이라고 합니까?”
011_0141_c_19L勝金色女問文殊師利言何者名爲最勝精進菩薩
011_0142_a_01L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만약 보살이 공법(空法)을 증득하지 않아 신견(身見)을 가진 중생에게 비심(悲心)을 버리지 않으며, 무상(無相)을 증득하지 않아 악견(惡見)을 가진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무원(無願)을 증득하지 않아 소원하는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무작(無作)을 증득하지 않아 지음이 있는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무생법(無生法)을 증득하지 않아 태어나 늙고 죽는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무출법(無出法)을 증득하지 않아 생멸하는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의 과(果)를 증득하지 않고 보살의 지위에 머물면서 일체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을 가장 뛰어나게 정진하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011_0141_c_20L文殊師利言若有菩薩不證空法身見衆生悲心不捨不證無相於惡見衆生悲心不捨不證無願於願行衆生悲心不捨不證無作法於作行衆生悲心不捨不證無生法於生老死衆生悲心不捨不證無出法於生滅衆生悲心不捨不證聲聞辟支佛住菩薩位於一切衆生悲心不捨是名最勝精進菩薩
비유컨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우니, 왜냐하면 좋은 방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문과 연각(緣覺)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법에 들어가면 방편이 없는 까닭에 스스로 나오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가장 뛰어나게 정진하는 보살은 방편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도 있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싸움터에 뛰어들어 전투를 벌인다면 몸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에 들어도 방편이 있는 까닭에 곧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곧 보살의 방편이라 합니다.”
011_0142_a_06L譬如大海易入難出何以故無善方便故如是聲聞緣覺入空無相無作法中無方便故不能自出最勝精進菩薩有方便故能入能出譬如有人入陣鬪戰身無傷損而能免出是最爲難如是菩薩入空無相無願三解脫門有方便故則能免出是則名爲菩薩方便
승금색녀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의 방편이란 무엇입니까?”
011_0142_a_13L勝金色女問文殊師利言云何名爲菩薩方便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방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사(生死)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둘은 열반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공문(空門)이며 둘은 악견문(惡見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상문(無相門)이며 둘은 상(相)을 각관(覺觀)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원문(無願門)이며 둘은 원생문(願生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작문(無作門)이며 둘은 선근(善根)의 행을 심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생문(無生門)이며 둘은 시생문(示生門)입니다.
011_0142_a_15L文殊師利言方便有二種一者不捨生死二者不住涅槃復有二種一者空門二者惡見門復有二一者無相門二者相覺觀門復有二種一者無願門二者願生門復有二種一者無作門二者種善根行門復有二種一者無生門二者示生門
011_0142_b_01L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출문(無出門)이며 둘은 음입계문(陰入界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적멸문(寂滅門)이며 둘은 출생문(出生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문(定門)이며 둘은 교화문(敎化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법계문(法界門)이며 둘은 정법(正法)을 수호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문(聲聞門)이며 둘은 깊은 마음으로 보리를 행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벽지불문(辟支佛門)이며 둘은 4무애문(無礙門)입니다.
011_0142_a_21L復有二種一者無出門二者陰入界復有二種一者寂滅門二者出生復有二種一者定門二者教化門復有二種一者法界門二者護正法復有二種一者聲聞門二者深心菩提行門復有二種一者辟支佛門二者四無㝵門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은 두 가지 법문(法門)에서 남들을 위해 시현(示現)하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며, 일체의 법문에서도 또한 그와 같이 한다면 이를 방편이라 합니다.
011_0142_b_05L若有菩薩於如是等二種法門爲他示現無所執著於一切法門亦復如是是名方便
또 두 가지 문이 있으니, 하나는 탐욕의 문이며 둘은 탐욕을 벗어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냄의 문이며 둘은 성냄을 벗어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 문이 있으니, 하나는 어리석음의 문이며 둘은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 문이 있으니, 하나는 번뇌의 문이며 둘은 번뇌를 벗어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일체가 생하는 문이며 둘은 생을 벗어나는 문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방편문(方便門)이라고 합니다.
011_0142_b_07L復有二種門一者貪門二者離貪門復有二一者瞋門二者離瞋門復有二門一者癡門二者離癡門復有二門者煩惱門二者離煩惱門復有二種一者一切生門二者離生門此名菩薩方便門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일체 범부(凡夫)가 행하는 문이며 둘은 일체의 학(學)12)과 무학(無學)13)과 성문과 벽지불과 부처와 보살과 여래(如來)의 문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문을 알 수 있다면 이를 보살의 가장 뛰어난 방편이라고 합니다.
011_0142_b_13L復有二種一者一切凡夫行門二者一切學無學聲聞辟支佛菩薩如來門若能知此二種門者名菩薩最勝方便
大莊嚴法門經卷上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mānava의 음역으로 마나바(摩那婆)라고도 하며, 유동(儒童)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아(我)의 일종이다.
  2. 2)교법(敎法)을 듣고 진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법안으로 소승은 초과에서 4성제(聖諦)의 진리를, 대승은 초지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3. 3)각(覺)은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것, 관(觀)은 세밀하게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심사(尋伺)라고도 한다.
  4. 4)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임시로 화합한 것인 신체에 실존하는 아(我)가 있다고 집착하고, 또 가변적 요소들을 영원한 속성을 가진 아(我)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를 말한다.
  5. 5)번뇌를 가리키는 말이다. 번뇌는 모든 법의 체성(體性)에 대하여 본래의 존재가 아니므로 객(客)이라 하고, 또 그 번뇌는 더러운 것이므로 진(塵)이라 한다.
  6. 6)수법(修法)을 할 때 단(壇) 위 네 귀퉁이에 세우는 기둥이다.
  7. 7)금강저(金剛杵)라고도 한다. 승려들이 수법(修法)할 때 쓰는 도구의 하나이다. 금강(金剛)은 단단해 깨트리기 어렵다는 뜻이고, 저(杵)는 본래 무기의 일종으로 번뇌의 적을 쳐부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8. 8)세계가 파멸할 때 일어난다는 큰 불이다.
  9. 9)ayaskānta. 자석(磁石)을 말한다.
  10. 10)북구로주(北俱盧洲)에서는 얼굴 모양이 동일하여 서로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결혼할 수 있는 사이를 가리기 위해 나무 아래로 가는데, 친족이 아닐 경우 나무 가지가 밑으로 쳐져 가려 준다고 한다.
  11. 11)심(心)은 범어 Citta의 번역으로 집기(集起)의 뜻, 의(意)는 범어 Manas의 번역으로 사량(思量)의 뜻, 식(識)은 범어 Vijñāna의 번역으로 요별(了別)의 뜻이다.
  12. 12)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해 배우고 수행하는 과정에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13. 13)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 더 이상 배우고 닦을 것이 없는 아라한(阿羅漢)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