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1_0159_a_01L
여래장엄지혜광명입일체불경계경 하권
011_0159_a_01L如來莊嚴智慧光明入一切佛境界經卷下


원위 천축 삼장 담마류지 한역
변각성 번역
011_0159_a_02L元魏天竺三藏曇摩流支譯


“문수사리여, 여래란 법신(法身)이라 이름한다. 문수사리여, 여래란 생김도 아니고 멸함도 아니다. 문수사리여, 여래란 이름[名]도 없고 색(色)도 없으며, 언설(言說)이 없고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이 없다. 문수사리여, 여래란 분별이 없고 분별을 떠났다.
011_0159_a_03L文殊師利如來者名爲法身文殊師如來不生無生文殊師利如來無無色無言說無心意意識文殊師如來無分別離分別
문수사리여, 여래라 말함은 공(空)이 된다 하며, 다할 수 없는 모양이며, 진제(盡際)와 실제(實際)며, 공하고 평등하여 일체 법의 경계[際]가 둘이 아닌 경계이며, 항상 알 수 없는 곳이다.
011_0159_a_07L文殊師利如來者名爲空不可盡相盡際實際空平等一切法際不二際常不可知處際
문수사리여, 여래ㆍ응공ㆍ정변지는 모든 곳에 분별이 없고 다른 분별을 떠나며, 하(下)도 아니고 중(中)도 아니고 상(上)도 아니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일체 법은 분별이 없고 분별을 떠나서 하도 중도 상도 아니니, 왜냐하면 일체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011_0159_a_10L文殊師利如來正遍知一切無分別離異分別非下非中非上如是文殊師利一切法無分別離分非下非中非上何以故一切法不可得故
문수사리여, 일체 법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곧 일체 법이 평등함이요, 일체 법이 평등하다 말함은 곧 평등하게 머무름이요, 평등하게 머무른다 말함은 곧 움직이지 않음이요, 움직이지 않는다 말함은 곧 일체 법이 의지한 데가 없음이요, 일체 법이 의지한 데가 없다 말함은 저 마음이 안정되어 머무름이 없음이요, 마음이 안정되어 머무름이 없다 말함은 곧 생김이 없음이요, 생김이 없다 말함은 곧 생기지 않음이다.
011_0159_a_14L文殊師利言一切法不可得是一切法平等言一切法平等者是平等住言平等住者卽是不動不動者是一切法無依止言一切法無依止者彼無心定住言無心定住卽是無生言無生者卽是不生
011_0159_b_01L만일 이와 같이 본다면 저 마음과 심수법(心數法)이 필경 전도(顚倒)되지 않을 것이요, 만일 필경 마음이 전도되지 않으면 저 수행하는 자는 여실(如實)하게 얻을 것이요, 만일 여실하게 얻는 자면 그는 희론(戲論)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요, 만일 희론을 일으키지 않는 자면 그는 일체 법을 행하지 않을 것이요, 만일 희론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 자면 그는 나고 죽는 데에 있지 않을 것이요, 만일 나고 죽는 데에 있지 않으면 그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요, 만일 움직이지 않는 자면 그는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요, 만일 법을 어기지 않는 자면 그는 일체 법을 수순(隨順)할 것이요, 만일 일체 법을 수순하는 자면 그는 법성(法性) 중에 능히 움직이지 않을 것이요, 만일 법성 중에 움직이지 않는 자면 그는 자성(自性)법을 얻을 것이요, 만일 자성 법을 얻는 자면 그는 얻은 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연에 의하여 일체 법이 생기기 때문이다.
011_0159_a_19L如是見彼心心數法畢竟不顚倒畢竟心不顚倒者彼行者能得如實若能如實得者彼不起戲論若不起戲論者彼不行一切法若不戲不行彼不在生若不在生死者彼不能動若不能動者彼法不能相違法不能相違者彼隨順一切法彼隨順一切法者彼法性中不能動若法性中不能動者彼得自性法若得自性法者彼無所得何以故依因緣生一切法故
만일 인연에 의하여 일체 법이 생긴 자면 그는 항상 생김이 아닐 것이요, 만일 항상 생김이 아닌 자면 그는 항상 얻을 수 없을 것이요, 만일 항상 얻을 수 없는 자면 그는 실제법(實際法)을 얻을 것이요, 만일 실제 법을 얻는 자면 그는 불공(不共) 일체 법에 머무를 것이요, 만일 불공(不共) 일체법에 머무른 자면 그는 불공에 머무름이요, 만일 불공에 머무르는 자면 그는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요, 만일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자면 그는 법 가운데에 머무름을 얻을 것이요, 만일 법 가운데에 머무름을 얻는 자면 그는 바른 생각의 법[正念法] 수행함을 얻을 것이요, 만일 바른 생각의 법 수행함을 얻는 자면 그는 한 법도 불법(佛法)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 법이 공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011_0159_b_08L若依因緣生一切法者常不生若常不生者彼常不可得常不可得者彼得實際法若得實際法者彼不共一切法住若不共一切法住者彼不共住若不共住者彼非非無若非有非無者彼得法中住若得法中住者彼得修行正念法得修行正念法者彼無一法非是佛何以故以覺一切法空故
문수사리여, 일체 법이 공한 것임을 깨달은 것을 ‘보리(菩提)’라 이름하며, 보리는 ‘일체 법이 공한 것임을 깨달음’이라 이름하니, 공(空)은 곧 보리(菩提)이다. 이와 같은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과 무작(無作)과 무행(無行)과 무의(無依)와 무생(無生)과 무취(無取)와 무처(無處)니, 이와 같은 법을 깨달은 자를 ‘보리’라 이름하며, 보리는 ‘바른 생각[正念]을 수행함’이라 이름한다.
011_0159_b_16L文殊師覺一切法空者名爲菩提菩提者名覺一切法空空者卽是菩提如是無相無願無作無行無依無生無處覺如是法者名爲菩提菩提名爲修行正念
문수사리여, 바른 생각을 수행함이라 말한 것은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을 곧 바른 생각이라 이름하며, 관찰하지도 않고 달리하지도 않는 것을 행함이라 이름하며, 집착하지도 않고 속박하지도 않고 해탈하지도 않는 것을 행함이라 이름하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을 행함이라 이름한다.
011_0159_b_21L文殊師利言修行正念者不取不捨卽名正念不觀名爲行不著不縛不脫名爲行不來名爲行
011_0159_c_01L문수사리여, 바른 생각의 행함이란 그곳은 행함도 없고, 이익도 없고, 과위(果位)도 없고, 증득함도 없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마음 자성[心自性]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저 마음을 객진(客塵) 번뇌가 더럽힌다 하여도 그 자성이 청정한 마음은 물들지 않는다. 저 자성이 청정한 마음은 곧 그 자체에 더러움이 없고 더럽지 않는 것이며, 저 곳엔 대치(對治)할 법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법으로 대치하여 이 번뇌를 없애겠는가. 왜냐하면 저 청정함이란 청정함이 아니요, 곧 본래 청정함이다. 만일 본래 청정한 것이면 곧 이 생김이 아니요, 만일 생김이 아닌 것이면 곧 더러움이 아니요, 만일 더러움이 아닌 것이면 염법(染法)을 떠나지 않음이다. 만일 염법을 떠난 것이면 일체 더러움을 없앨 것이다.
011_0159_c_01L文殊師利正念行者彼處無行無利無果無證何以故殊師利心自性淸淨故彼心客塵煩惱染而自性淸淨心不染而彼自性淸淨心卽體無染不染者彼處無對治法故以何法對治能滅此煩惱以故彼淸淨非淨卽是本淨若本淨卽是不生若不生者彼卽不染不染者彼不離染法若離染法者滅一切染
어떤 법으로 일체 더러움을 없애겠는가. 생김이 아닌 것이다. 만일 생김이 아닌 것이면 곧 보리다. 보리란 평등이라 이름하고, 평등이란 진여(眞如)라 이름하며, 진여란 다르지 않음[不異]이라 이름하고, 다르지 않음이란 여실히 일체 유위법(有爲法), 무위법(無爲法)에 머무름이라 이름한다.
011_0159_c_10L以何等法滅一切染彼不若不生者是菩提菩提者名爲平平等者名爲眞如眞如者名爲不不異者名爲如實住一切有爲爲法
문수사리여, 진여라는 저 곳은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닌 둘 없는 법이니,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닌 둘 없는 법이 곧 진여이다.
011_0159_c_14L文殊師利眞如者彼處非有爲非無爲無二法若非有爲非無爲無二法者是眞如
011_0160_a_01L문수사리여, 진여라 말한 것은 실제(實際)이며, 실제라 말한 것은 다르지 않음[不異]이며, 다르지 않음이란 미래의 진여이며, 미래의 진여라 말한 것은 곧 다르지 않음이며, 다르지 않음이라 말한 것은 곧 진여이며, 진여라 말한 것은 항상함도 아니고 진여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진여도 아니라 말한 것은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라 말한 것은 생김도 아니고 멸함도 아니며, 생김도 아니고 멸함도 아니라 말한 것은 열반 평등이며, 열반 평등이라 말한 것은 세간(世間)에도 있지 않고 열반에도 있지 않으며, 세간에도 있지 않고 열반에도 있지 않은 것이라 말한 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며,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것이라 말한 것은 하(下)도 아니고 중(中)도 아니고 상(上)도 아니며, 하도 아니고 중도 아니고 상도 아닌 것이라 말한 것은 바로 여래이다.
011_0159_c_16L文殊師利言眞如者彼實際言實際者彼不異不異者未來眞如言未來眞如者卽是不異言不異者彼卽眞如言卽眞如者非常不眞如言非常不眞如者彼不不淨言不染不淨者彼不生不滅言不生不滅者彼涅槃平等言涅槃平等者彼不在世閒不在涅槃言不在世閒不在涅槃者彼非過去非未非現在言非過去非未來非現在彼非下非中非上言非下非中上者卽是如來
여래라 말한 것은 진실한 말[實語]을 이름하며, 진실한 말이라 말한 것은 진여를 이름하며, 진여라 말한 것은 여실(如實)을 이름하며, 여실이라 말한 것은 아(我)를 이름하며, 아라 말한 것은 바로 둘 아닌 것이며, 둘 아닌 의(義)란 바로 보리이며, 보리란 깨달음을 이름하며, 깨달음이란 3해탈문(解脫門) 지혜에 드는 것이며, 지혜란 3세(世)가 평등한 일체 법 지혜에 드는 것이다.
011_0160_a_04L言如來者名爲實語言實語者名爲眞如言眞如者名爲如實言如實者名爲我言我者卽是不二不二義者卽是菩提菩提者爲覺覺者入三解脫門智智者入三世平等一切法智
의(義)라 말한 것은 일체 법에 차별이 없는 이치이니, 의(義)란 이름[名]도 없고 말[言]도 없어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지혜[智]라 말한 것은 일체 법 깨달음을 지혜라 이름하며, 일체 법 아는 것을 지혜라 이름한다.
의(義)라 말한 것은 중생과 식지(識智)와 요의(了義)를 아는 것이니, 바로 법이다. 법이란 바로 의(義)이니, 의지(義智)와 식지(識智)와 요의지(了義智)와 법지(法智)와 법주지(法住智)와 법체지(法體智)인 것이다. 그것은 법의 전(轉)과 소전(所轉)에 의하여 자전(自轉)하며 평등하여 둘 아닌 이치이다.
011_0160_a_09L言義者於一切法無差別義義者無名無言不可說智者覺了一切法名爲智識知一切法名爲智言義者知衆生及識智義卽是法法者卽是義義智識智義智法智法住智法體智彼依法轉所轉義自轉平等不二義
평등하여 둘 아닌 의(義)는 곧 평등이요, 평등이란 곧 의인 것이다. 말한 의(義)와 식지(識智)가 평등함이란 곧 둘 아닌 법문[不二法門]에 드는 지혜이며, 요의(了義)라 이름하니, 불요의(不了義)가 아니다. 평등이라 말한 것은 곧 평등이며, 곧 공(空)이다. 공이라 말한 것은 곧 환(幻)인 아(我)가 평등함이며, 아(我)가 평등하다 말한 것은 곧 법이 평등함이요, 법이 평등하다 말함은 곧 떠나 평등함이요, 떠나 평등함이란 바로 깨달음이 평등함이요, 깨달음이 평등함이란 곧 보리이다.
011_0160_a_15L平等不二義卽是平等平等者卽是義所言義識智平等者卽是入不二法門智爲了義非不了義言平等者卽是平卽是空言空者卽是幻我平等我平等者卽是法平等言法平等者卽是離平等離平等者卽是覺平等覺平等者卽是菩提
011_0160_b_01L문수사리여, 색(色)에 집착함이란 곧 눈에 집착함이요, 눈에 집착함이란 곧 자성(自性)에 집착함이요, 견(見)에 집착함이란 곧 자아(自我)에 집착함이요, 자신(自身)에 집착함이란 곧 자성의 공한 지혜에 집착함이요, 바르지 않은 염관[不正念觀]에 집착함이란 곧 법 광명의 관법(灌法)에 집착함이다. 게으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견고한 정진으로 지혜를 증득하는 데에 집착함이다. 여실하게 법을 아는 것을 집착함[著]이라 이름하며, 5개(蓋)와 보리분(菩提分)에 집착하는 것도 집착함이라 이름한다. 집착이 아니고 장애가 없는 해탈의 지혜와 일체 법의 자성이 청정함은 인연으로 있는 것이다.
011_0160_a_22L文殊師利著色者卽是著眼著眼者卽是著自性見者卽是著自我著自身者卽是著自性空智著不正念觀者卽著法光觀法不著著懈怠垢者著證智固精進如實知法名爲著著五蓋菩提分名爲著不著無障解脫智一切法自性淸淨因緣而有
또 보살마하살이 더러움과 깨끗한 인연을 여실하게 알아서 더러움과 깨끗한 인연 속에서 머무르지 아니한다. 아(我)를 일으키며 소견을 일으킴을 더러운 인연[染因]이라 이름하고, 안으로 고요하고 밖으로 행하지 않음을 깨끗한 인연[淨因]이라 이름한다. 음욕과 분노와 원한과 해침과 각관(覺觀)을 더러움의 인연이라 이름하고, 부정(不淨)과 자비(慈悲)와 희사(喜捨)로 12인연의 인(忍)에 드는 것은 깨끗한 인연이라 이름한다. 4전도(顚倒)는 더러운 인연이고, 4념처(念處)는 깨끗한 인연이다.
011_0160_b_06L菩薩摩訶如實知染淨因而不住染淨因中起我起見是名染因入一切法無我是名淨因見我我所是名染因內寂靜外不行是名淨因欲瞋恨害覺觀是名染因不淨慈悲喜捨入十二因緣忍名爲淨因四顚倒是染因四念處是淨因
5개(蓋)는 더러운 인연이고, 5근(根)은 깨끗한 인연이다. 6입(入)은 더러운 인연이고, 6념(念)은 깨끗한 인연이다. 7비정법(非淨法)은 더러운 인연이고, 7각분(覺分)은 깨끗한 인연이다. 8사법(邪法)은 더러운 인연이고, 8정법(正法)은 깨끗한 인연이다. 9뇌사(惱事)는 더러운 인연이고, 9차제정(次第定)은 깨끗한 인연이다. 10불선업도(不善業道)는 더러운 인연이고, 10선업도(善業道)는 깨끗한 인연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일체 좋지 못한 생각은 더러운 인연이고, 일체 좋은 생각은 깨끗한 인연이다.
011_0160_b_13L五蓋是染因五根是淨因六入是染因六念是淨因七非淨法是染因七覺分是淨因八邪法是染因八正法是淨因九惱事是染九次第定是淨因十不善業道是染因十善業道是淨因略說一切不善念是染因一切善念是淨因
011_0160_c_01L말한 더러운 인연과 깨끗한 인연의 저 일체 법은 자성(自性)이 공하여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명(命)도 없고 수(壽)도 없으며, 내 것도 없고 시키는 것도 없어서, 마치 환(幻)과 같아 형상이 없고 안으로 고요하다. 안으로 고요함이란 곧 적멸(寂滅)이며, 적멸이란 곧 자성이 청정한 것이다. 자성이 청정함이란 곧 얻을 수 없는 것이요, 얻을 수 없는 것은 곧 처소가 없는 것이며, 처소가 없는 것이란 곧 진실[實]이며, 진실은 곧 허공이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한 법도 생기거나 멸함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011_0160_b_19L所言染因淨因彼一切法自性空無我無命無壽者無我所無使者如幻無相內寂靜內寂靜者卽是寂滅滅者卽是自性淸淨自性淸淨者卽是不可得不可得者卽是無處無處者卽是實實者卽是虛空何以故殊師利無有一法若生若滅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법이 이와 같다면 여래께서는 어떻게 보리(菩提)를 얻으셨습니까?”
011_0160_c_03L文殊師利白佛言世尊若法如是云何如來得菩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감관[根]도 없고 머무름도 없나니 여래는 이와 같이 보리를 얻었다.”
011_0160_c_05L佛告文殊師利言文殊師利無根無住如來如是得菩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감관이며, 어떤 것이 머무름입니까?”
011_0160_c_06L文殊師利言世尊何者是根何者是住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신견(身見)을 감관이라 이름하며, 실답지 못한 분별을 머무름이라 이름한다. 저 보리는 평등하나니 여래는 일체 법의 평등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여래를 감관이 없고 머무름이 없이 보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011_0160_c_07L佛告文殊師利身見名爲根不實分別爲住彼菩提平等如來知一切法平是故說如來無根無住得菩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보리를 청정하다[淨]고 이름하고, 또한 고요하다[寂靜]고 이름하나니, 어떤 것이 청정한 것이며, 어떤 것이 고요한 것입니까?”
011_0160_c_10L殊師利言菩提者名爲淨亦名寂靜何者爲淨何者寂靜
“문수사리여, 나[我]와 내 것[我所]의 눈[眼]은 공(空)하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의 나와 내 것이 공하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눈이 공함을 알아 색(色)에 집착하지 않나니, 청정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귀가 공함을 알아 소리에 집착하지 않나니 곧 고요함이며, 코가 공함을 알아 냄새에 집착하지 않나니 곧 고요함이며, 혀가 공함을 알아 맛에 집착하지 않나니 곧 고요함이며, 몸이 공함을 알아 촉감에 집착하지 않나니 곧 고요함이며, 뜻이 공함을 알아 법에 집착하지 않나니 곧 고요함이다.
011_0160_c_12L文殊師利我我所眼空何以故自性空故如是意我我所空何以故自性空故是故知眼空不著色是故說淨如是知耳空不著聲是寂靜知鼻空不著是寂靜知舌空不著味是寂靜身空不著觸是寂靜知意空不著法是寂靜
문수사리여, 보리의 자성은 청정하나니 자성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자성이 청정하다는 것은 말한 바 자성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아닌 것이 마치 허공과 같으며, 평등함이 허공과 같다. 자성이 허공과 같다. 비유하건대 허공의 본래 자성은 청정하다.
011_0160_c_19L文殊師利菩提自性淸淨自性淸淨故自性淸淨者所言自性淸淨彼不染如虛空平等如虛空性同虛空——譬如虛空本來自性淸淨
011_0161_a_01L문수사리여, 보리라 말함은 취함도 아니고 버림도 아니다. 어찌하여 취함도 아니고 어찌하여 버림도 아니냐. 취함이 아니라 함은 일체 법을 취하지 않음이니 그러므로 취함이 아니라 말한다. 버림이 아니라 함은 일체 법을 버리지 않음이니 그러므로 버림이 아니라 말한다.
011_0160_c_22L文殊師利言菩提者不取不捨云何不取云何不捨言不取者不取一切是故言不取言不捨者不捨一切是故言不捨
문수사리여, 여래는 큰 표류(漂流)를 건넜으므로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저 진여(眞如)는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보지 않나니 여래는 일체 법이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떠난 것을 알므로 여래가 말한다.
011_0161_a_03L文殊師利如來度大漂流是故不取不捨而彼眞如不見此岸如來知一切法離彼此岸言如來
문수사리여, 보리란 형상이 없고 볼 수도 없다. 무엇이 형상이 없고 볼 수 없는 것이냐. 문수사리여, 안식(眼識)으로 볼 수 없기에 형상이 없다고 이름하며 색(色)을 볼 수 없기에 볼 수 없다고 이름한다. 이식(耳識)으로 볼 수 없기에 형상이 없다고 이름하며,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볼 수 없다고 이름한다. 비식(鼻識)으로 볼 수 없기에 형상이 없다고 이름하며, 냄새를 맡을 수 없기에 볼 수도 없다고 이름한다. 설식(舌識)으로 볼 수 없기에 형상이 없다고 이름하며, 맛을 알 수 없기에 볼 수도 없다고 이름한다. 신식(身識)으로 볼 수 없기에 형상이 없다고 이름하며, 촉감을 알 수 없기에 볼 수도 없다고 이름한다. 의식(意識)으로 볼 수 없기에 형상이 없다고 이름하며, 법을 알 수 없기에 볼 수도 없다고 이름한다. 문수사리여, 이는 여러 성인(聖人)의 경계니 이른바 3계(界)의 경계이다.
011_0161_a_06L文殊師利菩提無相無觀者無相無觀文殊師利不見眼識名爲無相不見色名爲無觀不見耳識名爲無相不聞聲名爲無觀不見鼻識名爲無相不聞香名爲無觀不見舌識名爲無相不知味名爲無觀不見身識名爲無相不知觸名爲無觀不見意識名爲無相不知法名爲無觀殊師利是諸聖人境界所謂三界境
문수사리여, 보리라 말한 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어서 3세(世)가 평등하고 3세가 청정하다.
011_0161_a_15L文殊師利言菩提者非過去非未非現在三世平等三世淸淨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3세(世)의 지혜이냐. 이른바 과거법에도 마음이 행하지 않고 미래법에도 알음알이[識]가 가지 않고 현재법에도 생각이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마음과 뜻과 의식에 머무르지 않나니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분별하지 않고 분별이 없으며, 분별하지 않고 분별이 없기 때문에 미래법과 현재법을 보지도 않고 희론하지도 않는다.
011_0161_a_16L文殊師利何者是三世智所謂過去法心不行未來法識不去現在法念不住是故如來不住心意識以不住分別無分別以不分別無分別故見未來法現在法不戲論
문수사리여, 보리는 몸[身]이 없고 함[爲]이 없다. 어떤 것이 몸이 없는[無身] 것이며, 어떤 것이 함이 없는[無爲] 것이냐.
011_0161_a_21L文殊師利菩提無身無爲何者是無身何者是無爲
문수사리여, 몸이 없음이란 이른바 안식(眼識)으로 알지 못하며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으로도 알지 못한다.
011_0161_a_23L文殊師利無身者所謂非眼識非耳意識知
011_0161_b_01L문수사리여, 만일 마음과 뜻과 의식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함이 없는 것이다. 함이 없다고 말함이란 생김도 아니고 머무름도 아니고 멸함도 아니니, 그러므로 3세가 청정하고 함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함이 없음을 아는 것과 같이 함이 있음[有爲]도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말한 일체 법의 자체란 곧 체성(體性)이 없음이니 체성 없음인 그곳은 두 말이 없다.
011_0161_b_01L文殊師利非心意識知彼無爲言無爲者不住不滅是故言三世淸淨無爲如無爲知有爲亦如是何以故所言一切法體者卽是無體無體者彼處無二言
문수사리여, 보리라 말한 것은 차별이 없음[無差別]과 발자취[足迹]라 이름한다. 문수사리여, 무엇이 차별 없음이며, 무엇이 발자취이냐.
011_0161_b_06L文殊師利言菩提者名爲無差別足迹何者無差別何者足迹
문수사리여, 형상 없음[無相]을 차별 없음이라 이름하고 진여(眞如)를 발자취라 이름하며, 머무름 없음[無住]을 차별 없음이라 이름하고 법을 발자취라 이름하며, 다름 없음[無異]을 차별 없음이라 이름하고 실제(實際)를 발자취라 이름하며, 얻을 수 없음[不可得]을 차별 없음이라 이름하고 움직임 아님[不動]을 발자취라 이름하며, 공(空)을 차별 없음이라 이름하고 형상 없음[無相]을 발자취라 이름하며, 감각 없음[無覺]을 차별 없음이라 이름하고 소원 없음[無願]을 발자취라 하며, 이름 구하지 않음[不求名]을 차별 없음이라 하고 중생 없음[無衆生]을 발자취라 하며, 중생의 체[衆生體]를 차별 없음이라 하고 허공을 발자취라 하며, 보지 않음[不見]을 차별 없음이라 하고 생김 아님[不生]을 발자취라 하며, 멸함 아님[不滅]을 차별 없음이라 하고 함이 없음[無爲]을 발자취라 하며, 행이 없음[無行]을 차별 없음이라 하고 보리를 발자취라 하며, 고요함[寂靜]을 차별 없음이라 하고 열반을 발자취라 하며, 일어나지 않음[不起]을 차별 없음이라 하고 깨달음[覺]을 발자취라 한다.
011_0161_b_07L殊師利無相名無差別眞如名足迹無住名無差別法名足迹無異名無差別實際名足迹不可得名無差別不動名足迹空名無差別無相名足無覺名無差別無願名足迹不求名無差別無衆生名足迹衆生體名無差別虛空名足迹不見名無差別不生名足迹不滅名無差別無爲名足迹無行名無差別菩提名足迹靜名無差別涅槃名足迹不起名無差別覺名足迹
문수사리여, 보리란 몸으로 얻을 수 없으며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몸은 우둔하여 지각함이 없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초목과 장벽, 흙덩이ㆍ그림자[影像] 같다. 마음은 허깨비[幻]와 같아 공하여 있는 바 없고, 진실[實]도 아니고 지음[作]도 아니다.
011_0161_b_18L文殊師利菩提者可以身得不可以心得何以故文殊師利身者頑㝵無覺無心譬如草木牆壁土塊影像心者如幻空無所有不實不作
011_0161_c_01L문수사리여, 몸과 마음을 여실하게 깨닫는 것을 보리(菩提)라고 이름하나 세간(世間)의 이름[名字]에 의함이요, 제1의(第一義)가 아니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보리는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니며, 진실도 아니고 진실 아님도 아니며, 진리[諦]도 아니고 진리 아님도 아니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말하지 못한다.
011_0161_b_22L文殊師利心如實覺名爲菩提依世閒名字非第一義何以文殊師利菩提非身非心非法非不實非諦非不諦不可如是說
문수사리여, 일체 법으로 보리를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보리는 머무른 곳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허공은 머무른 곳을 말할 수 없고, 함이 없으며[無爲]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것처럼, 보리도 또한 이와 같이 머무름도 없고 함도 없으며 생김도 멸함도 말할 수 없다.
011_0161_c_02L文殊師利不可以一切法說菩提以故文殊師利菩提無住處可說殊師利譬如虛空無住處可說無爲無生無滅菩提亦如是無住無爲無滅可說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일체 세간의 법에서 만일 그 진실을 구하려 해도 말할 수 없듯이 문수사리여, 보리도 또한 이와 같이 일체 법으로써 말한다 하여도 보리를 실로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진실 법에는 명자(名字)와 글귀[章句]를 얻을 수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011_0161_c_07L文殊師利譬如一切世閒之法若求其實不可得說文殊師菩提亦如是以一切法說菩提實亦不可得何以故文殊師利實法中無名字章句可得何以故不生不滅
문수사리여, 말한 바 보리는 취할 수도 의지할 수도 없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취할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는 것이냐.
011_0161_c_12L文殊師利言菩提者名不可取可依文殊師利何者不可取何者不可依
문수사리여, 눈[眼]을 여실하게 알기에 취할 수 없고, 색(色)을 보지 않기에 의지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귀를 여실하게 알기에 취할 수 없고, 소리를 듣지 않기에 의지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코를 여실하게 알기에 취할 수 없고, 냄새를 맡지 않기에 의지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혀를 여실하게 알기에 취할 수 없고, 맛을 알지 않기에 의지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몸을 여실하게 알기에 취할 수 없고, 촉감을 느끼지 않기에 의지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뜻을 여실하게 알기에 취할 수 없고, 모든 법을 보지 않기에 의지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011_0161_c_14L文殊師利如實知眼不可取不見色名爲不可依如實知耳不可取不聞聲名爲不可依如實知鼻不可不聞香名爲不可依如實知舌不可取不知味名爲不可依如實知身不可取不覺觸名爲不可依如實知意不可取不見諸法名爲不可依
011_0162_a_01L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여래는 취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기에 보리를 증득하였다고 이름한다. 이와 같이 보리를 증득하여 눈을 취하지도 않고 색깔을 보지도 않나니 그러므로 안식(眼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귀를 취하지도 않고 소리를 듣지도 않나니 그러므로 이식(耳識)에 머무르지 않는다. 코를 취하지도 않고 냄새를 맡지도 않나니 그러므로 비식(鼻識)에 머무르지 않는다. 혀를 취하지도 않고 맛을 알지도 않나니 그러므로 설식(舌識)에 머무르지 않는다. 몸을 취하지도 않고 촉감을 느끼지도 않나니 그러므로 신식(身識)에 머무르지 않는다. 의식을 취하지도 않고 법을 알지도 않나니 그러므로 의식(意識)에 머무르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마음과 뜻과 의식에 머무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여래를 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라 이름한다.
011_0161_c_20L殊師利如是如來不取不依名證菩如是證菩提不取眼不見色是故不住眼識不取耳不聞聲是故不住耳識不取鼻不聞香是故不住鼻識不取舌不知味是故不住舌識不取不覺觸是故不住身識不取意知法是故不住意識文殊師利如來不住心意識是故得名如來遍知
문수사리여, 중생에게는 네 가지의 마음이 머무르는 법이 있어 저 네 가지의 마음이 머무르는 법에 의지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중생이 색(色)에 의하여 마음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수(受)ㆍ상(想)ㆍ행(行) 등이니, 중생이 이 네 가지에 의하여 마음이 머무른다.
문수사리여, 이 네 가지의 마음이 머무르는 법을 여래는 여실하게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아나니, 그러므로 부처[佛]라 이름한다.
011_0162_a_06L文殊師利衆生有四種心住法依彼四種心住法何等爲四所謂衆生依色心住如是行等是爲衆生依四種心住文殊師利此四種心住法如來如實知不生不滅是故名爲佛
문수사리여, 보리라 말한 것은 공(空)을 이름한 것이다. 문수사리여, 저 일체 법의 공함이 보리의 공함과 다르지 않아 보리의 공(空)이 곧 일체 법의 공이니, 저 일체 법의 공을 여래는 여실하게 알았기에 깨달은 자[覺者]라 이름한다.
011_0162_a_11L文殊師利言菩提者名爲空殊師利如彼一切法空不異菩提空菩提空卽一切法空如彼一切法空如來如實知名爲覺者
문수사리여, 공(空)이 아닌 공(空)임을 알지니, 문수사리여, 공이란 곧 보리요, 보리란 곧 공이다. 문수사리여, 공 속에는 공(空)이 없고 또 보리도 없고 또 둘이 없다. 어떤 법을 공이라 하며, 어떤 법을 보리라 하여 두 이름을 말하랴.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일체 모두가 둘이 없고 형상이 없고 차별이 없고 이름이 없고 생각이 없고, 마음과 뜻과 의식을 떠나서 생김도 아니고 멸함도 아니며, 행(行)도 아니고 행도 없으며, 모음[集]도 아니요, 이름도 없고 소리도 없다.
011_0162_a_14L文殊師利空空知文殊師利空者卽菩提菩提卽是空文殊師利空中無空亦無菩亦無二以何等法爲空何等法爲菩提而說二名何以故文殊師利切無二無相無差別無名無相離心意識不生不滅不行無行不集無聲
011_0162_b_01L문수사리여, 공이라 말한 것은 실없는 말[戲論]을 취하여 이름한 것이다. 문수사리여, 제일법에는 공이라 이름할 수 있는 법이 없나니, 문수사리여, 마치 허공을 허공이라고 말하나, 허공이라 이름할 것이 없건만 허공이라 이름함과 같다. 문수사리여, 공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공을 공이라 말하나 공이라 이름할 법이 없다. 이와 같이 일체 법에 들어감을 일체 법문에 들어감이라 이름한다.
011_0162_a_21L文殊師利言空者名取戲論文殊師利而第一法中無法可得爲空文殊師利如說虛空虛空而無虛空可名名爲虛空文殊師利空亦如說名空空而無法可說名之爲空如是入一切法是名入一切法門
문수사리여, 일체 법은 이름이 없으나 이름에 의하여 말함이다. 문수사리여, 이름은 이곳도 아니고 이곳을 떠남도 아니기에 이와 같이 이름에 의하여 어떤 법을 말하나니 그 법은 이곳도 아니고 이곳 떠남도 아니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여래는 여실하게 일체 법이 본래 생김이 아니고 일어남이 아니며 멸함이 아니어서 형상이 없고 마음과 뜻과 의식을 떠나고 이름도 없고 소리도 없는 것임을 안다.
011_0162_b_03L文殊師利一切法無名而依名說殊師利如名非此處不離此處如是依名說何等法彼法非此處不離此如是文殊師利如來如實知一切法本來不生不起不滅無相離心意識無字無聲
문수사리여, 보리라 말한 것은 마치 허공과 같이 평등하나니, 허공은 평탄하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듯이 보리도 또한 평탄하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법이 실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법이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 평등하다,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다고 말하겠는가.
011_0162_b_09L文殊師利言菩提者如虛空平等虛空非平非下非高提亦非平非下非高何以故文殊師法無實有文殊師利若法無實有云何說平等非下非高
문수사리여, 여래는 이와 같이 일체 법이 평등하여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깨닫고 나서 조그마한 어느 법도 평등하지 않거나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것이 없다. 저 법대로 머물러 이처럼 여여(如如)한 진실 지혜로 안다.
011_0162_b_13L文殊師利來如是覺一切法平等非高非下是覺已無有少法不平等不高不下如彼法住如是如如實智知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여실(如實)한 지혜이냐. 문수사리여, 일체 법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니, 일체 법은 없는 것이어서 본래부터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법이 본래 생기지 않으며 생겼다가 도로 없어진다. 저 모든 법은 짓는 것도 없고 취하는 것도 없이 생기고, 짓는 것도 없고 취하는 것도 없이 멸한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인연에 의하여 생기고 인연이 없어지면 멸하여 진실한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여래는 도 끊는 자를 위하여 설법한다.
011_0162_b_16L文殊師何者是如實智文殊師利如實知一切法者一切法無本來不生不滅法本不生生已還滅彼諸法無作者無取者而生無作者無取者而滅殊師利諸法依因緣生無因緣滅實道者是故如來爲斷道者說法
011_0162_c_01L문수사리여, 보리라 말함은 여실한 발자취[如實足迹]를 이름한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여실한 발자취이냐. 문수사리여, 여실한 발자취라 말함은 곧 보리이니, 보리와 같아서 색(色)도 또한 이와 같이 진여(眞如)를 떠나지 않았고,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이와 같이 진여를 떠나지 않았다. 보리와 같아서 지계(地界)도 진여를 떠나지 않았고, 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도 또한 진여를 떠나지 않았다. 보리와 같아서 안계(眼界)와 색계(色界)와 안식계(眼識界)도 진여를 떠나지 않았다.
011_0162_b_22L殊師利言菩提者名爲如實足迹殊師利何者是如實足迹文殊師利言如實足迹者卽是菩提如菩提亦如是不離如如是不離如受如菩提地界如不離如風亦不離如如菩提如是眼界色界眼識界不離如
문수사리여, 보리와 같아서 이계(耳界)와 성계(聲界)와 이식계(耳識界)도 진여를 떠나지 않았고 문수사리여, 비계(鼻界)와 향계(香界)와 비식계(鼻識界)도 진여를 떠나지 않았으며, 설계(舌界)와 미계(味界)와 설식계(舌識界)도 진여를 떠나지 않았고, 신계(身界)와 촉계(觸界)와 신식계(身識界)도 진여를 떠나지 않았으며, 의계(意界)와 법계(法界)와 의식계(意識界)도 진여를 떠나지 않았다.
011_0162_c_06L文殊師利如菩提耳界耳識界不離如文殊師利鼻界鼻識界不離如舌界味界舌識界不離如身界觸界身識界不離如法界意識界不離如
문수사리여, 일체 법은 거짓 이름인 법이니, 5음(陰)ㆍ12입(入)ㆍ18계(界)를 이른다. 여래는 저 법을 여실하게 깨닫고 뒤바뀌지[顚倒] 않게 깨달아서 저 법같이 과거[本際]ㆍ현재[中際]ㆍ미래[後際]에 머무른다. 여래는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여실하게 아나니, 저 법같이 과거에도 생기지 않고 미래에도 가지 않으며 현재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저 법같이 발자취를 여실하게 알아서 한 법과 같이 일체 법에도 또한 그러하며, 일체 법과 같이 한 법에도 또한 그러하다.
011_0162_c_10L文殊師利切法假名法者謂五陰十二入十八彼法如來如實覺非顚倒覺如彼法住本際中際後際如來如實知本中際後際如彼法本際不生未來際不去現在際不住如實知如彼法足迹如一法一切法亦如是如一切法一法亦如是
문수사리여, 하나와 많은 것을 얻을 수 없다.
011_0162_c_17L文殊師利而一多不可
011_0163_a_01L문수사리여, 일체 법 아(阿)의 문과 아(阿)가 없는 문(門)에 들어간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아(阿)의 문이며, 어떤 것이 아가 없는 문이냐.
문수사리여, 아(阿)라 말함은 일체 선근법(善根法)을 처음 발함이요, 아가 없음이란 일체 법도 보지 않음이다. 또 아(阿)라 말함은 마음이 머무르게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음이요, 아가 없음이란 무상삼매 해탈문(無相三昧解脫門)이다. 아라 말함은 모든 법상(法相)을 헤아리고 관찰함이요, 아가 없음이란 한계에 벗어남을 이름한다. 어떤 것이 한계에 벗어남이냐.
식(識)과 업(業)이 없는 것이다. 아(阿)라 말함은 유위법(有爲法)을 관찰함이요, 아가 없음이란 무위법(無爲法)을 관찰함이다.
011_0162_c_18L文殊師利入一切法阿門無阿門文殊師利何者阿門何者無阿門殊師利言阿者初發一切善根法阿者不見一切法言阿者心不住能令住言無阿者無相三昧解脫門阿者稱數觀諸法相言無阿者名爲過量何者是過量謂無識業言阿者觀有爲法言無阿者觀無爲法
문수사리여, 보리라 말함은 번뇌[漏]가 없고 취(取)함이 없는 법이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번뇌가 없고 취함이 없는 것이냐.
011_0163_a_02L文殊師利言菩提者是無漏無取法文殊師利何者是無漏是無取
문수사리여, 번뇌가 없다 말함은 네 가지 번뇌[漏]를 떠난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욕심의 번뇌[欲漏]ㆍ유의 번뇌[有漏]ㆍ무명의 번뇌[無明漏]ㆍ소견의 번뇌[見漏]이니, 저 네 가지 번뇌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멀리 떠났다고 말한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취함이 없는 것이냐. 네 가지 취함을 떠난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욕심의 집착[欲取]ㆍ소견의 집착[見取]ㆍ나라는 집착[我取]ㆍ계의 집착[戒取]이니, 이 모든 번뇌로 중생이 무명의 어둠에 빠지고 애욕의 물에 젖게 되어 번갈아 서로 인연하여 허망하게 집착을 낸다.
011_0163_a_04L文殊師利言無漏者謂離四漏何者爲四有漏無明漏見漏以不取彼四種漏故是故名爲遠離諸漏文殊師何者無取謂離四取何等爲四欲取見取我取戒取以此諸漏衆生爲無明所闇愛水所潤迭共相因妄取著
문수사리여, 여래는 아(我)의 근본을 여실하게 알아 아(我)의 청정함으로써 일체 중생의 청정함도 여실하게 아나니, 말한 바 아의 청정함과 일체 중생의 청정함 이 둘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는 이치[義]로서 곧 생김도 멸함도 없는 것이다.
011_0163_a_11L文殊師利如來如實知我根以我淸淨如實知一切衆生淸淨所言我淸淨一切衆生淸淨此二無無差別義卽是無生無滅
문수사리여, 생김도 멸함도 없는 것은 어떤 자리이냐. 마음과 뜻과 의식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어떠한 법도 마음과 뜻과 의식이 없다. 그 법에는 분별이 없거늘 어떤 법이라고 분별하여 바르지 못한 생각을 내겠는가. 그러므로 보살은 바른 생각을 낸다.
011_0163_a_14L文殊師無生無滅何等法處心意意識所不能知文殊師利何等法上無心意識彼法中無分別分別何等法而生不正念是故菩薩生於正念
011_0163_b_01L바른 생각을 냄이란 무명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무명을 일으키지 않음은 12유지(有支)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12유지를 일으키지 않음은 곧 생김이 아니요, 생김이 아님은 곧 자리[位]요, 자리는 곧 요의(了義)요, 요의는 곧 제1의(第一義)요, 제1의는 곧 무아(無我)의 이치[義]요, 무아의 이치는 곧 말할 수 없는 이치요, 말할 수 없는 이치는 곧 인연의 이치요, 인연의 이치는 곧 법의 이치요, 법의 이치는 곧 진여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인연을 보았다고 말함은 곧 법을 본 것이요, 법을 본 것은 곧 여래를 본 것이니, 보았다는 말한 것은 모든 법을 보나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다.
011_0163_a_18L生正念者不起無明不起無明者不起十二有支不起十二有支者彼是不生不生者卽是位位者卽是了義了義者卽是第一義第一義者卽是無我無我義者卽是不可說義不可說義者卽是因緣義因緣義者卽是法義法義者卽是如義是故言見因緣者卽是見法見法者卽是見如來言見者雖見諸法而無所見
문수사리여, 보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은 마음을 보며 관(觀)함을 본 것이다. 그러나 여래는 마음을 보지 않나니, 마음을 보지도 않고 관함을 보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진실을 보는 것이다.
011_0163_b_04L文殊師言有所見者謂見心見觀如來不見心若不見心不見觀彼是見實
문수사리여, 저 모든 법은 이와 같이 평등하나니 여래는 저 법의 평등한 대로 안다.
011_0163_b_06L殊師利彼諸法如是平等如來如彼法平等而知
문수사리여, 보리라 말함은 깨끗함이며, 더러움[垢] 없고 티[點] 없는 것이다.
011_0163_b_08L文殊師利言菩提者爲淨無垢無點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깨끗함이며, 어떤 것이 더러움 없음이며, 어떤 것이 티 없음이냐. 문수사리여, 공(空)을 깨끗함[淨]이라 이름하고, 무상(無相)을 더러움 없음[無垢]이라 이름하며, 무원(無願)을 티 없음[無點]이라 이름한다. 문수사리여, 생김이 없음[無生]을 깨끗함이라 이름하고, 행이 없음[無行]을 더러움 없음이라 이름하며, 일어남이 없음[無起]을 티 없음이라 이름한다.
011_0163_b_09L文殊師利何者爲淨何者無垢何者無點文殊師利空名爲淨無相名無垢無願名無點文殊師利無生名爲淨無行名無垢無起名無點
문수사리여, 자성(自性)을 깨끗함이라 이름하고, 선근(善根)이 깨끗함을 더러움 없음이라 이름하며, 광명이 원만함을 티 없음이라 이름한다. 실없는 말 없음[無戲論]을 깨끗함이라 이름하고, 실없는 말 떠남을 더러움 없음이라 이름하며, 일체 실없는 말이 고요하고 없어짐을 티 없음이라 이름한다. 진여(眞如)를 깨끗함이라 이름하고, 법계(法界)를 더러움 없음이라 이름하며, 실제(實際)를 티 없음이라 이름한다. 허공을 깨끗함이라 이름하고, 걸림 없음을 더러움 없음이라 이름하며, 보지 않음을 티 없음이라 이름한다. 속이 청정함을 깨끗함이라 이름하고, 밖으로 행하지 않음을 더러움 없음이라 이름하며, 안팎으로 보지 않음을 티 없음이라 이름한다. 5음(陰)이 모인 것을 깨끗함이라 이름하고, 법계 자체를 더러움 없음이라 이름하며, 12입(入)에 들어가지 않음을 티 없음이라 이름한다. 과거의 다한 지혜를 깨끗함이라 이름하고, 미래의 생김 없는 지혜를 더러움 없음이라 이름하며, 현재의 법계(法界)에 머무르는 지혜를 티 없음이라 이름한다.
011_0163_b_13L文殊師利自性名爲淨善根淨名無垢光明圓滿名無點無戲論名爲淨離戲論名無垢寂滅一切戲論名無點如名爲淨法界名無垢際名無點虛空名爲淨無㝵名無垢不見名無點內淸淨名爲淨外不行名無垢外不見名無點陰聚名爲法界自體名無垢十二入無去名無點過去盡智名爲淨未來無生智名無垢現在住法界智名無點
011_0163_c_01L문수사리여, 깨끗함과 더러움 없음과 티 없음을 대략 말했거니와 한 평등한 법의 발자취 속에 들어가나니, 이른바 고요한 발자취[寂靜足迹]이다. 고요한 발자취는 곧 적멸(寂滅)이요, 적멸은 곧 깨끗함[淨]이요, 깨끗함은 곧 성스러움[聖]이다.
011_0163_b_22L文殊師利略言淨無垢無點入一平等法足迹中所謂寂靜足迹言寂靜足迹者卽是寂滅寂滅者卽曰淨淨者卽是聖
문수사리여, 허공과 같아서 보리도 또한 이와 같고, 보리와 같아서 법도 또한 이와 같으며, 법과 같아서 법체(法體)도 이와 같고, 법체와 같아서 중생도 이와 같으며, 중생과 같아서 국토도 이와 같고, 국토와 같아서 열반도 또한 이와 같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일체 법이 평등하여 열반과 같다’고 말하나니 필경 구경(究竟)이요, 소치법(所治法)이 없고 모든 소치법을 떠나고, 본래 청정하며 본래 더러움 없고 본래 티 없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이와 같이 일체 법을 여실하게 깨달아서 일체 중생의 본성이 곧 청정하고 더러움 없고 티 없음을 관찰하고 대자비심(大慈悲心)을 크게 편다.
011_0163_c_03L文殊師利如虛空菩提亦如是如菩提法亦如是如法法體亦如是如法體衆生亦如是如衆生國土亦如是如國土涅槃亦如是文殊師利如來說一切法平等如涅槃以畢竟究竟無所治法離諸所治法以本來淸本來無垢本來無點文殊師利來如是如實覺一切法觀察一切衆生性卽生淸淨無垢無點奮迅大慈悲心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보살이 보살행을 행함이냐. 문수사리여, 만일 보살이 마음을 내지 않으면 모든 법에 다함이 되지 않고, 모든 법에 생김이 되지 않고 모든 법에 생기지 않음도 되지 않으며, 모든 법이 본래 다함을 보거나 모든 법이 다하지 않음을 보더라도 교만한 마음을 내어 ‘내가 이와 같이 알았노라’ 말하지 않고, 모든 법이 본래 나지 않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보살행을 행한다.
011_0163_c_12L文殊師利云何菩薩行菩薩文殊師利若菩薩不生心不爲諸法盡不爲諸法生非不爲諸法不生見諸法本來盡見諸法不盡而不生慢心我如是知而不壞諸法本來不生文殊師利菩薩如是行菩薩行
또한 문수사리여, 보살은 과거 마음이 다했다고 보지 않고 보살행을 행하며, 미래의 마음이 이르지 않는다고 보지 않고 보살행을 행하며, 현재의 마음이 있다 보지 않고 보살행을 행한다.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이와 같이 보살행을 행한다.
011_0163_c_17L復次文殊師利菩薩不見過去心盡行菩薩行不見未來心未到行菩薩不見現在心有行菩薩行而不著過去未來現在心中如是行菩薩行
011_0164_a_01L문수사리여, 보시(布施)에 보살과 여래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보살행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지계(持戒)에 보살과 여래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보살행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인욕(忍辱)에 보살과 여래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보살행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정진(精進)에 보살과 여래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보살행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선정(禪定)에 보살과 여래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보살행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반야(般若)에 보살과 여래가 둘이 없고 차별이 없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보살행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011_0163_c_21L文殊師利布施菩薩如來無二無差如是行名行菩薩行持戒菩薩無二無差別如是行名爲行菩薩忍辱菩薩如來無二無差別如是行名行菩薩行精進菩薩如來無二無差別如是行名行菩薩行禪定菩如來無二無差別如是行名行菩薩行般若菩薩如來無二無差別是行名行菩薩行
문수사리여, 보살은 색(色)이 공함을 보지 않고 색이 공하지 않음을 보지 않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보살행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왜냐하면 색과 공이 색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011_0164_a_07L文殊師利菩薩不見色空不見色不空如是行名行菩薩行何以故色空色性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보살은 이와 같이 행(行)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행하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나니,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보살행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왜냐하면 마음ㆍ뜻ㆍ의식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어느 한 법도 알거나 떠나거나 닦거나 증득함이 있지 않다.
011_0164_a_09L如是文殊師菩薩如是不行受不離受如是行名爲行菩薩行何以以不見心文殊師利無有一若知若離若修若證
문수사리여, 다함[盡]이라 말한 것은 저 법이 항상 다함이요, 다함 아님[不盡]과 본래 다함이 아니다. 만일 법이 본래 다함이라면 저 법은 다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함이라 말하나니, 왜냐하면 여실하게 다함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실하게 다함이라면 저 법은 어느 한 법도 다함이 아니다. 만일 한 법도 다함이 아니라면 저 법은 무위(無爲)이다. 만일 법이 무위이면 그것은 무위법(無爲法)이니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이를 여래(如來)라 이름한다.
011_0164_a_13L文殊師利盡者彼法常盡非不盡本來盡若法本盡彼法不可盡以不可盡是故說何以故以如實盡故若如實盡法不盡一法若不盡一法彼法無爲若法無爲彼無爲法不生不滅是名如來
만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더라도 법성(法性)ㆍ법체(法體)의 법은 법의 제자리[法位]에 머무르니 법계(法界)가 진실 그대로이다. 법계가 진실 그대로 법의 지혜[法智]에 머물러서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나니 저 지혜에 의하여 무위법을 안다. 문수사리여, 만일 이와 같이 모든 법의 제자리에 들어간다면 모든 번뇌법[漏法]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알 것이다.
011_0164_a_19L若如來出世及不出世法性法住法位法界如實法界如實住法智不生不滅依彼智故知無爲法文殊師利若入如是等諸法位者諸漏法不生不滅
011_0164_b_01L문수사리여, 모든 번뇌가 다하였다고 말한 것은 세간의 명자(名字)와 빌린 말[假言]에 의하여 말한 것이요, 저 진여 법신(眞如法身)은 법의 생김도 없고 또한 법의 멸함도 없다.”
011_0164_a_23L文殊師利言諸漏盡者此依世閒名字假言而說而彼眞如法身無有法生亦無法滅
그때에 문수사리법왕자(文殊師利法王子) 보살마하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며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미묘한 게송으로 여래를 찬탄하였다.
011_0164_b_02L爾時文殊師利法王子菩薩摩訶薩卽從坐起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向佛卽以妙偈讚歎如來而說頌曰

색(色)도 형상도 없고
감관도 머무름도 없어
생김도 멸함도 아니신
부처님께[無所觀] 경례(敬禮)합니다.
011_0164_b_05L無色無形相
無根無住處
不生不滅
敬禮無所觀

머무르지도 가지도 않으시고
취함과 버림 없으시며
6입(入)을 멀리 떠나신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07L不住亦不去
不取亦不捨
遠離六入故
敬禮無所觀

3계(界)를 뛰어넘으시고
평등한 허공 같아
모든 애욕에 물들지 않으신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08L出過於三界
等同於虛空
諸欲不染故
敬禮無所觀

가고 오며 잠들고 깨어나는
모든 위의(威儀) 가운데
항상 고요함[寂靜]에 계시는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09L於諸威儀中
去來及睡寤
常在寂靜故
敬禮無所觀

가고 옴에 모두 평등하여
평등한 데에 머무시고
평등을 무너뜨리지 않으신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11L去來悉平等
以住於平等
不壞平等故
敬禮無所觀

형상 없는 정(定)에 들어
모든 법의 고요함 보시고
항상 평등에 드시는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12L入諸無相定
見諸法寂靜
常入平等故
敬禮無所觀

모든 부처님은 허공 모양이기에
모양 없는 허공처럼
모든 인과(因果) 떠나셨나니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13L諸佛虛空相
虛空亦無相
離諸因果故
敬禮無所觀

허공은 중간과 가장자리가 없나니
모든 부처님 몸 또한 그러하며
마음도 허공과 같나니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15L虛空無中邊
諸佛身亦然
心同虛空故
敬禮無所觀

부처님께서는 항상 세간에 계시면서
세간법에 물들지 않으시고
세간을 분별하지 않으시니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16L佛常在世閒
而不染世法
不分別世閒
敬禮無所觀

모든 법은 허깨비[幻]와 같으며
허깨비는 얻을 수 없으니,
모든 환법(幻法) 떠나신
부처님께 경례합니다.
011_0164_b_17L諸法猶如幻
而幻不可得
離諸幻法故
敬禮無所觀
011_0164_c_01L
그때에 세존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문수사리여, 이 법을 시원스럽게 말하였도다. 문수사리여, 이와 같고 이와 같나니 모든 부처님 여래를 마땅히 색(色)으로 보지 못하고 법(法)으로 보지 못하며 형상[相]으로 보지 못하고 상호[好]로 보지 못하며 법성(法性)으로 보지 못한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단독으로 볼 수 없으며 대중으로 볼 수 없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보는 사람이 없고 듣는 사람이 없으며, 현재 공양 올리는 사람이 없고 미래에 공양 올리는 사람이 없다.
011_0164_b_19L爾時世尊告文殊師利言善哉善哉文殊師利快說此法文殊師利如是如是諸佛如來不應以色見不應以法見不應以相見不應以好見不應以法性見文殊師利諸佛如來非可獨見非可衆見文殊師利諸佛如來無有人見無有人聞無有人現在供無有人未來供養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법이 하나라고 말하지 않으며 법이 많다고 말하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보리를 증득하지 않았고,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한 법으로 이름을 얻지 않았으며 많은 법으로 이름을 얻지 않았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모든 법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며 모든 법을 생각하지도 않고 모든 법을 알지도 않으며 모든 법을 깨닫지도 않는다.
011_0164_c_04L文殊師利諸佛如來不說諸法一不說諸法多文殊師利諸佛如來不證菩提諸佛如來不依一法得名亦非多法得名文殊師利諸佛如來不見諸法不聞諸法不念諸法不知諸法不覺諸法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한 법을 말하지도 않고 모든 법을 보이지도 않는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현재에 모든 법을 말하지도 않고 모든 법을 보이지도 않는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마시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법을 증득함이 없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더러운 법[染法]을 끊지도 않고 깨끗한 법[淨法]을 증득하지도 않는다.
문수사리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모든 법을 보지도 않고 모든 법을 듣지도 않고 모든 법을 맡지도 않고 모든 법을 지각하지도 않나니, 왜냐하면 일체 법이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다.
011_0164_c_09L文殊師利諸佛如來不說一法不示諸法文殊師利諸佛如來現在不說諸法不示諸法文殊師利諸佛如來不飮不食文殊師利諸佛如來無有法證文殊師利諸佛如來不斷染法不證淨法文殊師利諸佛如來不見諸法不聞諸法不嗅諸法不知諸法何以以一切法本淸淨故
문수사리여,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작은 티끌 수와 같은 중생을 벽지불(辟支佛)의 지위에 있게 하더라도 이 법문에 믿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만일 다시 어느 보살이 이 법문을 믿으면 이 보살의 공덕은 오히려 전자보다 많거늘, 하물며 이 법문을 스스로 쓰거나 남에게 쓰게 함이랴. 그 복은 저보다 많아서 한량없고 끝없다.
011_0164_c_17L文殊師利有人以三千大千世界微塵數等衆生令置辟支佛地於此法門不生信若復有菩薩信此法門此菩薩功德尚多於前何況有人於此法門若自書寫令他書寫福多於彼無量無
011_0165_a_01L문수사리여, 만일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알로 생기거나[卵生] 태로 생기거나[胎生] 습기로 생기거나[濕生] 변화로 생기거나[化生], 빛깔이 있거나 빛깔이 없거나, 생각이 있거나 생각이 없거나, 발이 하나거나 발이 둘이거나 발이 셋이거나 발이 넷이거나, 발이 많거나 발이 없는 중생들을 일시에 모두 사람 몸을 얻게 하며,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여 모두 보살이 되게 하고, 그 낱낱 보살이 제각기 음식ㆍ의복ㆍ평상ㆍ침구ㆍ의약ㆍ탕약과 갖가지 생활필수품과 모든 오락 기구로 항하(恒河)의 모래 수처럼 많은 아승기(阿僧祇) 불국토(佛國土)의 작은 티끌 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 여래와 모든 보살과 모든 성문승(聲聞僧)에게 이와 같이 내지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아승기겁 동안 받들어 올리고 공양한다.
011_0164_c_23L文殊師利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若卵生若胎生若濕生若化生若有色若無色若有想若無想若一若二足若三足若四足若多足無足——彼諸衆生假使一時皆得人身發菩提心悉爲菩薩一一菩薩各以飮食衣服牀榻臥具病瘦湯藥種種資生一切樂具奉施供養恒河沙阿僧祇佛國土微塵數等諸佛如來及諸菩薩諸聲聞僧如是乃至恒河沙阿僧祇劫
저 모든 여래와 보살과 성문이 열반에 드신 후에는 높이가 1유순(由旬)인 7보탑(寶塔)을 세우되 뭇 보배로 난간을 만들어 둘러싸며 마니보(摩尼寶) 화만으로 사이사이 장식하고 보배 당기ㆍ번기ㆍ일산을 세우며 자재로운 마니보왕(摩尼寶王) 그물[羅網]로 그 위에 덮는다면, 그 얻는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011_0165_a_10L彼諸如來菩薩聲聞入涅槃後造七寶塔高一由旬衆寶欄楯周帀圍遶摩尼寶鬘以爲閒錯豎寶幡蓋自在摩尼寶王羅網彌覆其所得功德不可稱計
또 만일 어떤 보살이 아주 청정한 마음으로 이 『여래장엄지혜광명입일체불경계경(如來莊嚴智慧光明入一切佛境界經)』을 믿고 이 법문에 들어가며, 이 법문에 의혹하지 않고 이 법문에 청정한 마음을 내며 내지 남을 위하여 한 게송이라도 연설해 준다면, 이 보살의 얻는 공덕은 매우 많아서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공덕을 이 공덕에 비교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천분(歌羅千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만분의 일에도 비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수분(數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算數) 비유(譬喩)로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공덕은 부처 지혜를 성취하여 증득하기 때문이다.
011_0165_a_14L若復有菩薩以畢竟淸淨心信此如來莊嚴智慧光明入一切佛境界經信此法門此法門不疑此法門於此法門生淸淨心乃至爲他演說一偈此菩薩所得功德甚多無量阿僧祇以此功德前功德百分不及一歌羅千分不及一百千分不及一百千萬分不及百千萬億分不及一數分不及一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何以故能成就證佛智故
011_0165_b_01L문수사리여, 만일 집에 있는 보살이 음식ㆍ의복ㆍ평상ㆍ침구ㆍ의약ㆍ탕약과 갖가지 생활필수품과 일체 오락 기구를 항하 모래 수와 같은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 여래ㆍ모든 보살ㆍ모든 성문승에게 받들어 올리고 공양하기를 이와 같이 내지 항하 모래 수와 같은 아승기겁 동안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011_0165_b_01L文殊師利若有在家菩薩以飮食牀榻臥具病瘦湯藥種種資生切樂具奉施供養恒河沙等阿僧祇諸佛如來及諸菩薩諸聲聞僧如是乃至恒河沙等阿僧祇劫所得功德不可稱計
또 만일 출가한 보살이 계를 지니고 마음이 청정하며 내지 한 축생과 중생에게 한 번 먹을 음식을 베풀어 준다면 그의 얻는 공덕은 매우 많아서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니, 앞에서 말한 공덕을 이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가라소분(歌羅少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산수(算數)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011_0165_b_07L若復有出家菩薩持戒心淸淨乃至施與一畜生衆生乃至一口飮食所得功德甚多無量阿僧祇此功德比前功德百分不及一歌羅千分不及一百千萬分不及一百千萬億分不及一歌羅少分不及一至筭數譬喩所不能及
문수사리여, 설령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티끌 수와 같이 많은 출가한 보살이 계를 지니고 마음이 청정한데, 그 낱낱 보살이 제각기 음식ㆍ의복ㆍ평상ㆍ침구ㆍ의약ㆍ탕약과 갖가지 생활필수품과 일체 오락 기구를 시방세계의 항하 모래 수와 같은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 여래와 모든 보살과 모든 성문승에게 받들어 올리고 공양하되, 이와 같이 내지 항하 모래 수와 같은 아승기겁 동안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011_0165_b_13L文殊師利假使三千大千世界微塵數等出家菩薩持戒心淸淨一一菩薩各以飮食衣服牀榻臥具病瘦湯種種資生一切樂具奉施供養十方世界恒河沙等阿僧祇諸佛如來及諸菩薩諸聲聞僧如是乃至恒河沙等阿僧祇劫所得功德不可稱計
011_0165_c_01L만일 또 어떤 보살이 계를 지니고 마음이 청정하되 집에 있거나 출가하였거나 간에 이 법문 듣고서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며, 만일 자기가 스스로 쓰거나 남에게 쓰게 한다면, 얻는 공덕이 매우 많아서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앞에서 보살이 보시한 공덕을 이 공덕에 비교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수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011_0165_b_20L若復有菩薩持戒心淸淨——若在家出家——聞此法門生信不疑若自書寫教他書寫所得功德甚多無量阿僧以此功德比前菩薩檀施功德百分不及一歌羅千分不及一百千萬分不及一數分不及一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
문수사리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로 모든 부처님 여래께 받들어 올리고 공양하되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티끌 수와 같은 겁 동안 이와 같이 보시한다면,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만일 또 어떤 보살이 다른 보살을 위하여 이 법문 가운데 내지 하나의 4구게(句偈)만이라도 말해준다면, 얻는 공덕은 매우 많아서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공덕을 이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수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산수분(算數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산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011_0165_c_04L文殊師利若有菩薩摩訶薩以滿三千大千世界七寶奉施供養諸佛如如是乃至三千大千世界微塵數所得功德不可稱計若復有菩薩爲餘菩薩於此法門中乃至說一四句偈所得功德甚多無量阿僧祇此功德比前功德百分不及一歌羅千分不及一百千萬分不及一百千萬億分不及一數分不及一歌羅少分不及一筭數分不及一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
011_0166_a_01L문수사리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로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티끌 수와 같은 겁 동안 보시하여 얻는 공덕은 차치하고라도 문수사리여, 만일 또 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여러 보살들이 있는데, 그 낱낱 보살들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아승기 불국토(佛國土)에서 염부단금(閻浮檀金)으로 세계를 만들고 모든 나무를 하늘 옷으로 감싸며 일체 광명이 있는 마니(摩尼)보배 그물로 그 위에 덮고, 또 자재왕마니보(自在王摩尼寶)로 누각(樓閣)을 만들되 전광명(電光明) 마니 보배로 그 난간을 만들며, 여의보주(如意寶珠)가 그 세계에 가득하게 하고, 온갖 보배 당기[幢]와 번기[幡]와 일산[蓋]을 세우고서 날마다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아승기 부처님 여래께 받들어 올리며 공양하기를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아승기겁 동안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011_0165_c_15L文殊師利置滿三千大千世界七寶於三千大千世界微塵數劫以用布施所得功德文殊師利若復有恒河沙等諸菩薩一一菩薩恒河沙等阿僧祇佛國土閻浮檀金以爲世界切諸樹天衣纏裹集一切光明王摩尼寶羅網以覆其上自在王摩尼寶以爲樓閣電光明摩尼寶以爲欄楯如意寶珠滿彼世界豎立一切諸寶於日日中奉施供養恒河沙等阿僧祇諸佛如來如是布施乃至恒河沙等阿僧祇劫所得功德不可稱計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이 법문을 믿고 다른 보살을 위하여 이 법문 가운데 내지 하나의 4구게만이라도 말해준다면, 얻는 공덕은 매우 많아서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공덕을 이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수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승기야(僧企耶)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수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우파니사타(憂波尼沙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산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011_0166_a_05L若復有菩薩信此法門爲餘菩薩於此法門中乃至說一四句偈得功德甚多無量阿僧祇以此功德前功德百分不及一歌羅千分不及一百千萬分不及一百千萬億分不及一數分不及一歌羅少分不及一僧企耶分不及一數分不及一波尼沙陁分不及一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
문수사리여, 설령 삼계에 있는 중생 가운데 지옥(地獄)ㆍ축생(畜生)ㆍ아귀(餓鬼)에 있는 중생들을 만약 집에 있는 어떤 보살이 그 지옥ㆍ축생ㆍ아귀에 있는 중생을 모두 구출하고 제도하여 벽지불 지위에 있게 했다면, 얻는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만일 또 출가한 보살이 한 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축생에게 베풀어 주면, 얻는 공덕이 앞에서 말한 공덕보다 수승하여 한량없고 끝없는 아승기이다.
011_0166_a_13L文殊師利假使三界中所有衆生諸衆生於地獄畜生餓鬼中若有在家菩薩拔出爾許地獄畜生餓鬼衆生置辟支佛地所得功德不可稱計若復有出家菩薩乃至施與畜生一口飮食所得功德勝前功德無量無邊阿僧祇
011_0166_b_01L문수사리여, 만일 또 10천 국토에 셀 수 없는 억 나유타(那由他), 백천만억 나유타의 작은 티끌 수와 같은 출가한 보살이 있는데, 그 낱낱 보살이 시방세계의 낱낱 곳에서 10억 이루 말할 수 없는[不可說] 백천만억 나유타 작은 티끌 수와 같은 여러 부처님 여래를 뵙고 낱낱 여래와 모든 보살과 모든 성문승에게 음식ㆍ의복ㆍ침구ㆍ평상ㆍ의약ㆍ탕약과 갖가지 생활필수품과 일체 오락 기구로 보시하며, 천억 나유타, 백천만억 나유타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작은 티끌 수와 같은 세계에 가득 찬 자재왕마니주(自在王摩尼珠)로써 날마다 낱낱 여래와 모든 보살과 모든 성문승에게 보시하기를 이와 같이 천억 나유타, 백천만억 나유타의 불국토에 있는 작은 티끌 수와 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한다면, 얻는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011_0166_a_20L文殊師利若復有十千國土不可數億那由他百千萬億那由他微塵數等出家菩薩一一菩薩十方世界於一一方見十億不可說百千萬億那由他微塵數等諸佛如來一一如來及諸菩薩諸聲聞僧以飮食衣服牀榻病瘦湯藥種種資生一切樂具滿千億那由他百千萬億那由他不可說微塵世界自在王摩尼珠一一日中施一一如來幷諸菩薩及聲聞僧如是乃至千億那由他百千萬億那由他佛國土微塵數不可說劫所得功德不可稱計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이 법문을 믿고 내지 한 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한 축생인 중생에게 베풀어 준다면, 얻는 공덕은 매우 많아서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011_0166_b_10L若復有菩薩信此法門乃至施與一畜生衆生乃至一口飮食所得功德甚多無量阿僧
앞에서 말한 공덕을 이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라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승기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가라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수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법문을 믿으면 보살인(菩薩印)에서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011_0166_b_13L以此功德比前功德百分不及一歌羅千分不及一百千分不及一千萬分不及一百千萬億分不及一僧企耶分不及一歌羅少分不及一數分不及一乃至筭數譬喩所不能何以故以能信此法門不退轉菩薩印故
011_0166_c_01L문수사리여, 만일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신행(信行)에 있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의행(義行)에 있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여 한량없고 끝없을 것이다.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의행(義行)에 있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법행(法行)에 있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여 한량없고 끝없을 것이다.
011_0166_b_19L文殊師利若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置信行中若復有菩薩化一衆生置義行中所得功德勝前功德無量無邊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置義行中若復有菩薩化一衆生置法行中得功德勝前功德無量無邊
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법행에 있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팔인(八人)에 있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여 한량없는 아승기(阿僧祇)일 것이다.
011_0166_c_03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置法行中若復有餘菩薩化一衆生置八人中所得功德勝前功德無量阿僧祇
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팔인에 있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수다원(須陀洹) 과위를 얻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여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011_0166_c_07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置八人中若復有菩薩化一衆生令得須陁洹果所得功德勝前功德無量阿僧祇
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수다원 과위를 얻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사다함(斯陀含) 과위를 얻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여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011_0166_c_11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令得須陁洹果復有菩薩化一衆生令得斯陁含果所得功德勝前功德無量阿僧祇
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사다함 과위를 얻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아나함(阿那含) 과위를 얻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여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011_0166_c_15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令得斯陁含果若復有菩薩化一衆生令得阿那含果得功德勝前功德無量阿僧祇
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아나함 과위를 얻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아라한(阿羅漢) 과위를 얻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고 내지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011_0166_c_19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令得阿那含果復有菩薩化一衆生令得阿羅漢果所得功德勝前功德乃至無量阿僧
011_0167_a_01L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아라한 과위를 얻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벽지불(辟支佛) 도를 얻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고 내지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011_0167_a_01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令得阿羅漢果復有菩薩化一衆生令得辟支佛道所得功德勝前功德乃至無量阿僧祇
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벽지불 도를 얻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내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고 내지 한량없고 끝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011_0167_a_04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令得辟支佛道復有菩薩化一衆生令發菩提心得功德乃至無量無邊阿僧祇
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한 중생을 교화하여 물러서지 않는 지위[不退地]를 얻게 한다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고 내지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011_0167_a_08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令發菩提心若復有菩薩化一衆生令得不退地所得功德勝前功德乃至無量阿僧祇
문수사리여,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시방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물러서지 않는 지위를 얻게 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보살이 이 법문을 믿고 스스로 쓰거나 남에게 쓰게 하거나 남들을 위하여 널리 말해주면, 그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수승하고 내지 한량없는 아승기일 것이다.
이와 같이 내지 백천만억 나유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011_0167_a_12L文殊師利若復有菩薩教化十方一切世界所有衆生令得不退轉地復有菩薩信此法門若自書寫教他書寫廣爲人說所得功德勝前功德乃至無量阿僧祇如是乃至百千萬億那由他分不及其一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을 말씀하셨다.
爾時世尊而說偈言

보살이 10억 부처님의
미묘한 법 지닌다 하여도
어떤 사람이 이 경 들으면
이 공덕 그보다 뛰어나리라.
011_0167_a_19L菩薩能住持
十億佛妙法
若人聞此經
功德勝於彼

부처님 발에 예배하며
신통으로 시방에 노닐고
꽃과 향과 바르는 향[塗香]으로
10억 부처님께 공양한다 하여도
011_0167_a_21L爲禮諸佛足
神通遊十方
以華香塗香
供養十億佛

어떤 사람이 이 경 듣고서
남을 위해 잠깐 말해주면
이 공덕 그보다 뛰어나고
한량없이 많으리라.
011_0167_a_22L若有聞此經
爲人須臾說
功德勝於彼
其數無有量
011_0167_b_01L
부처님 법신(法身) 듣고서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면
둔한 그도 날카로운 지혜 생겨
위없는 도를 빨리 증득하리라.
011_0167_a_23L若聞佛法身
爲第二人說
鈍聞生利智
速證無上道

부처님 위해 천상 인간에다
미묘한 탑 많이 세우되
한량없는 억의 수효로서
위로는 유정천(有頂天)천까지 이르고
011_0167_b_02L爲佛天人中
造立諸妙塔
滿足無量億
上至於有頂

시방세계에 두루하며
탑에 당기[幢]와 번기[幡] 달고
금방울과 7보 일산으로
부처님께 이처럼 공양한다 하여도
011_0167_b_03L周帀遍十方
塔中豎幢幡
金鈴七寶蓋
如是供養佛

보살이 이 경 듣고서
능히 스스로 쓰거나
남에게도 쓰게 한다면
이 복은 그보다 뛰어나리라.
011_0167_b_04L菩薩聞是經
若能自書寫
若教他書寫
其福勝於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지니면
간탐과 질투 벗어나리니
그 공덕 한량없어서
큰 보리 빨리 성취하리라.
011_0167_b_06L若人持此經
遠離於慳妒
彼功德無量
速成大菩提

이 경은 법신 밝힌 것으로서
허공에 모든 형상 나타남 같아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의 말씀이니
그러므로 잘 지니어야 하네.
011_0167_b_07L此經顯法身
如空現衆像
無量諸佛說
是故應護持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문수사리법왕자와 한량없는 아승기의 이루 말할 수 없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여러 보살마하살과 여러 성문 대중과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011_0167_b_08L佛說此經已文殊師利法王子及無量阿僧祇不可說不可說諸菩薩摩訶薩及諸聲聞衆一切世閒天修羅等聞佛所說歡喜奉行
如來莊嚴智慧光明入一切佛境界經卷下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