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대비구 무리 5백 인과 8천의 보살과 함께 계셨다.
011_0271_a_04L一時,佛住王舍城耆闍崛山,與大比丘衆五百人俱。
그들은 선지식으로서 모두 여러 다라니(陀羅尼)에 통달하여 무애변재(無礙辯才)를 얻었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다 성취하고 무소외(無所畏)를 얻었으며, 한없는 부처님의 모든 선근(善根)을 심어 대승(大乘)에 들어갔다. 그 이름은 이민타라 보살마하살(伲泯陀羅菩薩摩訶薩)ㆍ지지(持地) 보살마하살ㆍ지주(地主) 보살마하살ㆍ지중생(持衆生) 보살마하살ㆍ지입회(持入會) 보살마하살ㆍ조의(照意) 보살마하살ㆍ과의(過意) 보살마하살ㆍ증의(增意) 보살마하살ㆍ무변의(無邊意) 보살마하살ㆍ증익의(增益意) 보살마하살ㆍ애견(愛見) 보살마하살ㆍ선견(善見) 보살마하살ㆍ견저의(見這意) 보살마하살ㆍ견일체의(見一切義) 보살마하살ㆍ일체길리(一切吉利) 보살마하살과 현겁(賢劫)의 모든 보살마하살이었는데, 미륵(彌勒)이 우두머리가 되어 대중 속에 앉아 있었다.
011_0271_b_01L이때 대덕(大德) 수보리(須菩提)가 아침에 의발(衣鉢)을 가지고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젯밤 꿈에 여래께서 도량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때 즉시 세존의 발에 예배를 올렸습니다. 불세존께서는 금색의 오른손으로 저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면서 ‘수보리야, 너는 오늘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는 법을 들을 것이다. 반드시 그것을 들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는 어떠한 상서로움이 먼저 있게 되는 것입니까?”
이때 대덕(大德) 수보리는 즉시 왕사대성에 들어가 차례로 걸식하다가 이도[異]의 장자(長者) 집에 이르러 중문(中門)이 있는 곳에 가서 말없이 머물며 걸식하였다. 이때 집에 한 여인이 있다가 안에서 나왔는데, 참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용모의 미인이었다. 여러 가지 보배 구슬로 스스로를 엄숙하게 꾸몄으므로 매우 단엄하여 큰 위덕(威德)을 갖추고 있었으며, 진기한 보배들이 서로 흔들려 부딪치며 미묘한 음과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은 본래부터 걸식하려는 생각을 가졌습니까? 대덕 수보리여, 오히려 본래는 먹는다는 생각을 알지 못했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나는 먹는다는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이 육신이라는 것은 부모의 부정(不淨)한 것이 모여서 된 것이고 음식으로써 생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는 것을 떠날 수가 없어서 머물고 있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께서 행하는 무쟁(無諍)은 어긋나서 평등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쟁을 행하면 수의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무쟁은 몸과 마음에 상응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무쟁은 즐거움도 즐거움 아님도 내지 않으며, 이 무쟁은 쟁송(諍訟)도 내지 않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세존께서 당신에게 무쟁을 행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설하셨습니다. 무슨 인연 때문에 무쟁을 무쟁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무쟁이라는 것은 모든 경계(境界)가 없고, 애욕의 번뇌[塵]를 여의었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문자(文字)가 없고, 쟁송이 없고, 전도가 없는 것이 곧 사문의 법입니다. 또한 ‘이것이 법이다, 법이 아니다.’라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또한 ‘생각이다, 생각이 아니다.’라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 사문의 법이며, 일체의 집착을 여읜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경계(境界)도 아니고, 경계 아닌 것도 아닌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더러움도 아니며 속박도 아니며, 더러움과 속박 아닌 것도 아닌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무심(無心)하여 의식(意識)을 여읜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만족을 아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욕심이 적고 탐심을 끊은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모든 희망을 여의어서 움직이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으나, 움직이거나 일으키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일체의 경계를 떠나 취(取)하는 연고가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011_0272_b_01L 음마(陰魔)를 여의고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번뇌[結使魔]를 끊어 다시 생(生)의 연고가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멀리 사마(死魔)를 여의어서 모든 동요가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사유(思惟)하여 천마(天魔)에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일체의 법이 공(空)하여 오염됨이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상(想)이 없어서 일체의 생각을 여읜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원하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삼계에 다니지 않고 일체의 생각을 떠난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모든 근(根)을 수호하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멀리 제입(諸入)을 여의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스스로를 잘 조복(調伏)하고 모든 희론(戱論)을 여의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고요하고 조용하여 일어남이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애착함이 없고 또한 일으킴이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나와 나의 것이 없고, 높음도 없고 낮음도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감촉을 여의어서 물듦이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멀리 세법(世法)을 여의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음해(陰解)를 잘 알아서 법성(法性)으로 나아가 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모든 계(界)는 계가 없는 것이니, 가까이하는 바도 없고 구애되는 바도 없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유위법(有爲法)을 여의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모든 법은 허공과 같다는 것이 사문의 법입니다.”
011_0272_c_01L왜냐하면 여래의 지(知)가 여여[如]하다면 나 역시 지가 여여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여래께서 나를 교화하신 것입니다. 만약 여래의 깨달음[覺]이 여여하다면 나 역시 깨달음이 여여합니다. 이런 뜻으로 여래께서 나를 교화했습니다. 만약 여래께서 색(色)이 여여[如]하다면 나 역시 색이 여여합니다. 이런 뜻으로 여래께서 나를 교화했습니다. 만약 여래께서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여여[如]하다면 나 역시 수ㆍ상ㆍ행ㆍ식이 여여합니다. 이런 뜻으로 여래께서 나를 교화했습니다.
만약 여래가 일체 중생의 진여와 같고 만약 내가 진여라면, 이 진여는 한 가지 진여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여래께서 나를 교화했습니다. 만약 여래가 일체 법의 진여와 같고 만약 내가 진여라면 이 진여는 한 가지 진여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여래께서 나를 교화했습니다. 만약 여래의 진여가 진여 아님이 없다면 나의 진여도 진여 아님이 없으니, 이러한 진여는 상여(常如)로서 진여 아님이 없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여래께서 나를 교화했습니다.
여래의 진여가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면, 나의 진여 또한 그러하여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여래께서 나를 교화했습니다. 만약 여래의 진여이거나 혹은 여래가 교화한 진여이거나, 혹은 나의 진여이거나 혹은 일체 중생의 진여이거나 혹은 일체 법의 진여이거나 이 진여는 항상 진실하여 달라지지도 않고 변화하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으며 중간에서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진여는 이와 같이 일체 법에 머뭅니다. 이러한 뜻으로 여래가 나를 교화했습니다.”
이때 대덕 수보리가 곧 다시 물었습니다. “누이여, 당신은 불력(佛力)으로써 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알았습니까?”
011_0272_c_16L爾時,大德須菩提,卽復問言:“姊,汝以佛力,知於我心,爲自力知?”
011_0273_a_01L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성문이나 연각, 혹은 여러 보살이나 또는 5통(通)을 한 선인(仙人)이 중생의 마음을 알거나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은 다 불력으로 남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을 행하게 되는 것은 모든 불력을 통해야만 남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덕 수보리 역시 불력으로 남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비유하면 해ㆍ달ㆍ불빛ㆍ진보(珍寶)ㆍ번개ㆍ별 등의 광명으로 인해서 사람이 눈을 통해 물질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세간도 그와 같아서 무명에 덮였으나, 남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은 모두 여래가 남의 마음을 아는 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이때 대덕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마땅히 나를 위해 말해 주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변재(辯才)를 얻었습니까?”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교화하신 당신은 누구인가?’ 하고 묻는다면 교화된 것을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대답할 바가 없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일체의 법도 역시 그러합니다. 모두가 부처님께서 교화한 모습입니다. 이렇게 알았다면 대답할 바가 없을 것입니다. 또 대덕 수보리여, 만약 당신에게 ‘당신은 범부인가, 학인(學人)인가, 아라한인가?’라고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이때 대덕 수보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 누이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즉시에 수보리는 공중에서 ‘대덕 수보리여, 너는 얻은 것과 아는 것이 있어서 깨달음에 나아갔다. 이런 까닭으로 아라한(阿羅漢)이라 일컫는다. 너는 이렇게 누이에게 대답하여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때 대덕 수보리는 공중의 소리를 듣고 나서 곧 여인에게 대답했다. “누이여, 나는 범부도 아니며 학인도 아니며 아라한도 아닙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은 나한이 아니면서 모든 번뇌를 끊은 것입니까? 여래께서는 당신이 무쟁(無諍)의 행에서 제일이니, 마땅히 공양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나는 아라한이 아니며, 모든 번뇌를 다하지도 않았으며, 무쟁의 행이 제일도 아니며, 또한 공양을 받을 만하지도 않습니다.”
011_0273_b_01L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무슨 까닭에 거짓말을 합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만약 내가 지금 아라한이고, 모든 번뇌를 다했고, 무쟁의 행이 제일이어서 마땅히 공양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곧 거짓말입니다. 나는 인정한바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지금 참다운 말도 하지 않고, 또한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당신은 무슨 연유로 이러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전도됨이 있다면 모든 번뇌[結使]가 일어나며, 성제를 보았다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전도를 본다는 것은 모든 성제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제천(諸天)이 곧 그 몸을 나타내어 대덕 수보리에게 예를 올린 뒤 이렇게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이 누이로부터 이와 같은 변재를 듣게 되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하고, 법을 듣고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이 알지 못하면 해탈할 수 없으며, 많이 알지 못하면 얽매임 속에 있을 것이니, 이를 어디에서 풀겠습니까?”
011_0273_c_01L이때 여인이 대덕 수보리에게 말했다. “대덕은 걸식하지 않으시니, 먹지 않으시려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나는 오늘 이 법을 듣고는 흡족하여 먹는 것에 욕심이 없어졌습니다. 누이여, 음식에 탐욕이 있으면 근심 걱정이 생기니 이는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익을 구하고 육신을 기르는 것을 찬탄하는 것은 곧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안락하기를 구하는 것은 곧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과 목숨을 보호하고 아끼는 것은 곧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지 착하다고 찬탄을 받는 것도 곧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어떻게 해야 선남자ㆍ선여인이 바르게 법을 구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나쁜 욕심을 받아들이면 이는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眼]에서도 구함이 없고 색(色)에서도 구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귀에서 소리를 구하지 않고, 코에서 향기를 구하지 않고, 혀에서 맛을 구하지 않고, 몸에서 감촉을 구하지 않고, 뜻에서 법을 구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만약 음(陰)도 구하지 않고, 입(入)도 구하지 않고, 계(界)도 구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욕계(欲界)도 구하지 않고, 색계(色界)도 구하지 않고, 무색계(無色界)도 구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서로가 일체의 경계를 구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대덕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당신이 허물을 뉘우치게 했으니 나는 지금 가고자 합니다.”
011_0273_c_16L爾時,大德須菩提言:“姊,汝可悔過,我今欲去。”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마치 지계(地界)가 잘못을 참회할 것이 없는 것처럼, 대덕 수보리여, 마음도 역시 그와 같이 지계와 같아서 잘못을 참회할 것이 없습니다. 마치 수계(水界)가 잘못을 참회할 것이 없는 것처럼 마음도 역시 그와 같아 잘못을 참회할 것이 없습니다. 마치 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가 잘못을 참회할 것이 없는 것처럼, 마음 역시 그와 같이 공계와 같아서 잘못을 참회할 것이 없습니다.
이때 수보리가 다시 여인에게 말했다. “누이여, 당신은 어떠한 뜻을 구하기에 이와 같이 사자후(師子吼)를 하십니까?”
011_0274_a_08L爾時,須菩提復語女言:“姊,汝何求趣,能如是吼師子吼也?”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구하는 것이 있다면 사자후를 하지 못합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구하는 것이 없다면 사자후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구하는 것이 있다면 곧 이것은 있음[有]이고, 만약 소유가 있다면 사자후는 없기 때문입니다. 유신(有身)을 보는 자는 구하는 바가 있는 것이며, 유견(有見)을 짓는 자는 사자후가 없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이 아까 ‘누이여, 당신은 어떠한 뜻을 구하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당신에게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뜻에 의하여 번뇌를 다하고 태어남이 없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다는 것입니까?”
011_0274_b_01L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은 대승을 아십니까? 행과 모습을 말해 보십시오.”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만약 모든 성문이 대승을 듣지 못했다면 모든 행과 모습을 알고 말할 수 없습니다. 누이여, 나는 지금 당신에게 청하니, 대승의 행과 모습을 말해 주십시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대개 대승이라는 것은 이름이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마치 일월궁(日月宮)이 빠르게 보이나 천자(天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허공에 머물지 않고, 빠르게 가지만 막히거나 방해됨이 없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광명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011_0274_c_01L 이는 지혜가 다함도 없고 생멸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혜를 끊지 않아 부처의 종자를 끊지 않기 때문이고, 이는 지혜를 섭취하여 법의 종자를 끊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지혜를 수호하여 승(僧)의 종자를 끊지 않기 때문이고, 이는 지혜를 넓혀서 무량한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며, 이는 지혜를 잘 가져서 끊어짐이 없게 하기 때문이며, 이렇게 업을 잘 짓는 지혜는 6바라밀 때문이고, 이렇게 잘 섭취하는 지혜는 4섭법(攝法) 때문이며, 이렇게 잘 상응하는 지혜는 성도(聖道)로써 친근하기 때문이고, 이렇게 잘 조어(調御)하는 지혜는 바르게 보리심을 생각하고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평안에 잘 머무는 지혜는 대비심 때문이고, 이렇게 좋은 곳에 태어나는 지혜는 일체지(一切智) 때문이며, 이렇게 모든 공포를 여의는 지혜는 모든 마귀를 항복시켰기 때문이고, 이렇게 어둠을 여읜 지혜는 큰 지혜가 횃불이기 때문이며, 이렇게 큰 재보(財寶)의 지혜는 일체의 선근(善根)을 성취했기 때문이며, 이렇게 공경하는 지혜는 제천(諸天)과 세계가 공경하기 때문이며, 이렇게 항복함이 없는 지혜는 모든 외도(外道) 때문이고, 이렇게 난해(難解)한 지혜는 일체의 성문ㆍ연각의 사람 때문이며, 이렇게 청정한 지혜는 믿지 않는 사람 때문이고, 이렇게 사랑하여 불쌍히 여기는 지혜는 성내고 해치는 사람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시하는 지혜는 인색한 사람 때문이고, 이렇게 지계(持戒)하는 지혜는 파계하는 사람 때문이며, 이렇게 인욕(忍辱)하는 지혜는 성내는 사람 때문이고, 이렇게 정진(精進)하는 지혜는 게으른 사람 때문이며, 이러한 선정(禪定)의 지혜는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 때문이고, 이렇게 총명한 지혜는 지혜가 없는 사람 때문이며, 이렇게 대부(大富)의 지혜는 빈궁한 사람 때문이고, 이렇게 안락한 지혜는 고뇌하는 사람 때문이며, 이렇게 환희하는 지혜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사람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 때문에 일컬어 대승이라 합니다.”
이때 대덕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대승의 모든 행과 모습을 잘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1겁이나 1겁이 지나도록 대승을 찬탄하여 말한다 해도 끝[邊際]이 없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이 대승은 한량이 없기에 모든 행과 모습 역시 한량이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당신은 나에게 ‘대덕 수보리여, 무슨 까닭으로 걸식합니까?’라고 꾸짖었습니다. 누이여, 여래ㆍ법왕(法王)이 또한 걸식한다면 당신은 여래의 걸식을 꾸짖겠습니까?”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은 여래께서 어떠한 방편으로 걸식을 행하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011_0275_a_01L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부처님께서는 스무 가지 일을 성취하고 허물이 없음을 보았기 때문에 걸식을 행했습니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색신(色身)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걸식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여래의 몸에 32상(相)이 갖추어졌음을 본다면, 이 모든 중생은 이 색상(色相)을 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無上正眞道心]을 낼 것입니다. 이를 일컬어 여래가 처음에 허물없음을 성취한 것을 보고 걸식을 행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께서 촌읍(村邑)이나 취락(聚落)이나 나라의 성이나 왕궁에 들어가면 맹인이 물체를 보게 되고, 귀머거리가 소리를 듣게 되고, 어지러운 자가 바르게 생각하고, 벌거벗은 자는 옷을 얻게 되고, 굶주린 자는 먹을 것을 얻게 되고, 목마른 자는 마시게 되고, 중생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괴로워함이 없습니다. 이때 중생은 각기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이 모든 중생은 여래께서 촌읍ㆍ취락ㆍ나라의 성ㆍ왕궁에 들어오신 것을 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께서 촌읍ㆍ취락ㆍ나라의 성ㆍ왕궁에 들어오시면,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 등과 세상을 수호하는 제석(帝釋)과 범천(梵天)이 공양을 하고자 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때 모든 사람은 불력(佛力)으로 모든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와 세상을 수호하는 제석과 범천이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중생은 여래의 몸에 이러한 일이 있음을 보고는 놀라운 마음을 내고, 일찍이 없었던 일을 찬탄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011_0275_b_01L다시 대덕 수보리여, 한량없는 중생이 봉읍(封邑)ㆍ재물ㆍ국위(國位)를 제멋대로 함으로써 방일하고 교만하고 잘난 체하다가 여래께서 걸식하시는 것을 보고는 ‘전륜왕의 자리도 버리고 출가하여 성도(成道)하셨는데, 교만을 버리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으로 걸식을 행하신다. 우리들도 마땅히 교만과 잘난 체하는 마음을 조복받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냅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위덕(威德)을 위해 탁발하십니다. 위덕의 제천(諸天)이 여래의 몸을 관찰하여 보고는 ‘굶주림도 목마름도 핍박도 없으시고 또한 지치지도 않으시고 오직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므로 걸식을 행하신다. 우리들도 역시 중생을 위하여 걸식을 행해야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수보리여, 모든 중생은 게을러 부처님의 처소에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래를 보고자 하여 오른쪽으로 돌아서 예배를 하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는 촌읍ㆍ취락ㆍ나라의 성ㆍ왕궁에 들어가십니다. 중생들은 자연히 불여래(佛如來)를 뵙게 되고, 뵙고 나서는 마음에 희열을 냅니다. 이러한 중생들은 희열을 얻고 나서는 즉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만약 중생이 눈으로 부처님을 보게 되면 즉시 어리석음이 없어집니다. 나아가 한 생각이라도 여래를 생각하면 이런 모든 중생은 차례대로 점점 열반에 이르게 되며, 인연을 지음으로써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여래께서는 걸식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011_0275_c_01L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께서 촌읍ㆍ취락ㆍ나라의 성ㆍ왕궁에 들어가면 갇히고 묶였던 중생은 즉시 해탈을 얻게 됩니다. 이런 모든 중생은 즉시 ‘여래의 힘 때문에 나는 해탈을 얻었다.’라는 생각을 냅니다. 이 모든 중생은 여래가 소생시킨 은혜의 마음을 알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냅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선남자ㆍ선여인이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을 듣고는 마음에 즐거움을 내면서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부처님께 음식을 공양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냅니다. 또 집에 여인이 있거나 부모를 보호해야 하거나 혹은 형제ㆍ자매를 보호해야 하거나 혹은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나 남편을 수호하는 이들은 부처님께 음식을 받들어 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촌읍ㆍ취락ㆍ나라의 성ㆍ왕국에 들어갑니다. 여래를 보고는 이미 마음에 즐거움이 생겨 뛸 듯이 기뻐하면서 안락(安樂)을 받고는 부처님께 음식을 베푼 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세상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여래의 발우를 받들거나 여래께서 손으로 가졌을 때 만약 가난한 중생이 작은 은혜를 베풀고 여래의 발우를 보면 가득 차 있고, 봉읍(封邑)이 있는 큰 부자가 많은 은혜를 베풀고 여래의 발우를 보면 가득 차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부처님의 발우를 가득 채우고자 하여 이미 받들어 보시하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냅니다. 이런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의 발우에 담긴 음식으로 모든 승(僧)에게 베풀어도 발우의 음식은 불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습니다. 이때에 많은 모든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는 여래의 발우에 이러한 신력(神力)이 있는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냅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011_0276_a_01L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의 발우에 가득 담긴 것은 곧 정식(正食)이 아닙니다. 백천 가지의 맛이 나고, 맛마다 각기 달라서 서로 동화(同和)하지 않음이 마치 별도의 다른 그릇과 같습니다. 이 하나의 발우에 가득한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이때 많은 모든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가 여래의 이와 같은 신력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냅니다. 이와 같은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의 몸은 갖가지 법이 합해져 하나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그 안은 비어[空] 있지 않고 오히려 금강(金剛)과 같습니다. 이러한 여래의 몸은 생장(生藏)과 숙장(熟藏)도 없고 대소변도 없습니다. 또한 걸식을 행하다가 그 음식을 보고 먹어도 그 음식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때 위덕(威德)과 세상을 수호하는 위덕의 제석과 범천이 여래 몸의 진실한 법성(法性)과 신통력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냅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 세존께서는 항상 삼매에 들어 일어남이 없이 또한 걸식을 행합니다. 이때 많은 위덕과 세상을 수호하는 위덕의 제석과 범천이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면서도 삼매에 들어 움직이지 않음을 보고 이들은 ‘반드시 열반에 들 것이 틀림없다.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는 것이지,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내면서, 이러한 신통력을 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냅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011_0276_b_01L다시 대덕수보리여, 여래께서 만약 걸식을 행하지 않거나, 또한 먹지 않으면 혹 부처님의 법에 출가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들도 역시 마땅히 걸식을 행하지 않고 또한 마땅히 먹지 않으리라.’ 이러한 생각을 낸다면 이들은 문득 굶주리고 목말라 파리해져서 초월한 사람의 지혜를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성인(聖人)의 종자를 잘 거두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걸식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011_0276_b_02L復次,大德須菩提,善攝聖種故,如來乞食。見是義故,如來乞食。
다시 대덕 수보리여, 내세의 모든 비구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뒤에 말세가 되면 믿고 존경하지 않는 모든 바라문 등과 모든 장자들은 마땅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존께서는 걸식을 행하지 않으셨는데 무슨 까닭에 당신들은 걸식을 행합니까?’ 만약 여래께서 걸식을 했다면 이 바라문과 모든 장자들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본래 걸식을 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당신들은 걸식을 행하지 않는가? 우리들은 반드시 베풀어야 한다. 또 모든 여래의 법은 반드시 걸식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걸식을 찬탄할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만약 장자나 장자의 자손이나 모든 대부호가 불법에 출가했으나 부끄러움이 생겨 걸식을 못하게 되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호족대가(豪族大家)인 우리들이 이미 출가하였다 해서 어찌하여 반드시 집집마다 걸식을 행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들도 위덕여래의 배움을 따라 걸식을 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뜻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대덕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일체의 세행(世行)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곳곳마다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곳곳마다 여래가 따르지만 여래는 또한 굶주림이나 목마름에 핍박받음이 없으며, 탐욕도 없고, 집착도 없고, 또한 희롱(戱弄)도 없으며, 또한 악(惡)도 없고, 모으는 것도 없습니다.
011_0276_c_01L그리고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이와 같은 방편으로 걸식을 행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대비(大悲)와 이와 같은 청정(淸淨)으로 마땅히 공양을 받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저는 힘이 없습니다. 누이여, 마치 토끼ㆍ고양이나 모든 들여우들이 능히 장엄하여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가 된다거나 사자의 걸음을 한다거나 사자의 울부짖음을 할 수 없듯이 누이여, 모든 성문ㆍ연각 역시 그와 같아서 능히 여래의 위의와 방편으로 대비를 나타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때 대덕 수보리가 다시 여인에게 말했다. “누이여, 당신의 주인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나의 주인은 한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덕 수보리여, 만약 중생이 장엄 방편을 즐거워하여 조복(調伏)한 자를 얻는 것을 기뻐한다면, 모두 나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부처님께서 ‘너희들 비구가 소유한 의발(衣鉢)이나 음식ㆍ와구와 병을 치료하는 의약을, 가까운 마을의 집이나 흑은 걸식하는 집이나 거주하는 곳이나 친한 벗이나 화상(和上)이나 아사리(阿闍梨)의 처소에 친근하게 공양하여 모든 선근(善根)을 기르고 모든 악법을 소멸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비구여, 이런 말씀을 나는 들었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011_0277_a_01L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이러한 일 때문에 여래께서 일체의 탐욕을 즐거워함을 들어준 것입니다.”
011_0277_a_01L女言:“大德須菩提,以是事故,如來聽樂於一切欲。”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얼마만큼의 중생이 이 장엄 방편을 즐거워함으로써 조복을 받았습니까?”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삼천대천세계가 소유한 색상(色相)은 헤아려 그 끝을 얻을 수 있으나, 만약 나의 장엄 방편으로 이미 조복된 중생을 헤아린다면, 그 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어떤 중생이 범세(梵世)를 향하기를 즐거워한다면 나는 이들 일체 중생과 함께 한량없는 모든 선정에 들고, 선정을 기뻐하고 즐거워한 뒤에 위없는 도심(道心)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혹 어떤 중생이 석제환인(釋提桓因)에 나아가기를 즐거워한다면, 이 중생과 더불어 제석(帝釋)을 즐거워한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호세(護世:사천왕)로 향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나는 중생과 더불어 호세를 즐거워한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의 즐거움에 향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나는 천ㆍ용의 즐거움 내지 마후라가의 즐거움이 된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만약 중생의 뜻과 의지가 전륜성왕의 나라에 향하기를 즐거워한다면, 나는 전륜성왕의 나라와 더불어 즐거워한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중생이 소국왕(小國王)을 즐거워한다면 나 역시 소국왕에게 즐거움을 베풀어준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만약 중생이 장자(長者)ㆍ찰리(刹利)ㆍ바라문ㆍ비사(毘舍)ㆍ수타(首陀)가 되기를 즐거워한다면 나는 장자ㆍ찰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와 더불어 즐거워한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011_0277_b_01L 만약 중생이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즐거움에 향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나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과 더불어 즐거워한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만약 중생이 화향(華香)ㆍ가루향[末香]ㆍ바르는 향[塗香]ㆍ당번(幢幡)ㆍ보배 덮개[寶蓋]와 모든 의복을 즐거워한다면 나는 화향ㆍ가루향ㆍ바르는 향ㆍ당번ㆍ보배 덮개와 의복과 더불어 즐거워한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만약 중생이 금(金)ㆍ은(銀)ㆍ유리(琉璃)ㆍ파리(頗梨)와 모든 진보(珍寶)를 즐거워한다면, 나는 금ㆍ은ㆍ유리ㆍ파리ㆍ진보 등과 더불어 즐거워한 뒤에 위없는 도심을 내도록 권해야 합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이 5욕(欲)이라는 것은 성도(聖道)에 장애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5욕으로 중생을 조복하겠습니까?”
011_0277_b_13L須菩提言:“姊,是五欲者,障㝵聖道,云何五欲調伏衆生?”
이때 문 밖에 두 장자의 아들은 이미 이 여인이 장엄방편으로 조복하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이 두 장자의 아들은 곧 대덕 수보리에게 말했다. “대덕이시여, 당신은 지금 스스로의 지혜로는 보살의 지혜를 분별하여 선택할 수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마치 작은 등불은 한 번 불면 즉시 꺼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성문승을 배운 선남자ㆍ선여인이 작은 지혜로 비추는 것 역시 이와 같아서 한결같은 생각을 일으키려 하지만, 찾으면 곧 사라져 잃어버립니다. 대덕 수보리여, 뜻이 어떻습니까? 만약 겁소(劫燒) 때의 큰 불꽃덩이를 만약 입으로 한 번 불어서 꺼져 버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대덕 수보리여, 마치 가난한 사람이 병들면 의사가 약을 끓여 주되, 쓰고 떫고 달고 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당시 병든 사람의 몸이 괴로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떫고 달고 신 약들을 복용하는 것은, 빈궁하기 때문에 주리고 목마름을 감내함으로써 병환에서 벗어나려 하기 때문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성문승을 배운 선남자ㆍ선여인들도 역시 이와 같아서 두타(頭陀)의 공덕(功德)과 위의(威儀)를 행합니다. 정행(正行)으로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은 모든 고행(苦行) 때문이며, 한적한 곳[阿練處]에 머물기 때문이며,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음식 때문이며, 지식(知識)이 적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고뇌를 받은 뒤에 취하는 것이 없는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이와 같은 방편으로 성문승을 배워 해탈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가난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찰리(刹利)의 관정왕(灌頂王)의 병에는, 왕에게 모든 양의(良醫)가 왕이 복용할 것을 줍니다. 좋은 색과 향기와 맛의 약을 입에 넣어 복용하면 몸은 안락하게 됩니다.
또한 왕이 음식에 응하도록 묘미(妙味)를 바치고 이어 모든 화향(華香)ㆍ가루향[末香]ㆍ바르는 향[塗香]ㆍ산향(散香)을 받들고, 또 기악ㆍ가무를 올려 찬탄하여 쾌락을 받게 하는 것은 대왕에게 근심과 괴로움이 없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양의도 이와 같이 왕을 즐겁게 하며 병환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011_0278_a_01L대덕 수보리여, 역시 그와 같이 많은 보살이 장엄 방편을 즐거워함으로써 일체의 5욕락(欲樂)을 받습니다. 그런 뒤에 위없는 정도(正道)가 이루어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은 마땅히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방편으로 찰리의 관정왕의 병을 치료하듯이 보살의 지혜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5욕(欲)은 근본이 없고 또한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이 일체지(一切智) 역시 그러하여 본래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이 일체지는 스스로 무엇을 지어야 하고 짓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서, 5욕락에 즐거워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 않음도 없는 것은 홀로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체지 역시 공덕이 없는 것은 얻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忍)을 얻는다면 이 사람은 어떤 것이 도(道)이고, 어떤 것이 도가 아니며, 5욕락은 공(空)하고 일체지도 공하다는 것을 압니다. 이 인(忍)을 얻은 사람은 5욕을 편력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5욕의 허물을 보고는 그것을 꾸짖습니다.”
만약 사람이 불을 만나면 다시 불로 제거하듯이 번뇌를 태움도 역시 그러하여 도리어 번뇌로 인해 해탈하네.
011_0278_a_20L如人爲火燒, 還以火炙除, 結燒亦復爾,
還因結解脫。
나는 이미 정법(正法)을 아니 나는 음욕(婬欲)이 소용없다네. 범부는 욕망을 바라기 때문에 보리의 도를 이루려 하지 않네.
011_0278_a_22L我已知正法, 我不用婬欲,
凡夫須欲故, 不欲菩提道。
011_0278_b_01L 이때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당신은 장엄 방편을 즐거워함으로써 누구를 조복시켰습니까? 선남자입니까, 선여인입니까?”
011_0278_a_23L爾時,須菩提言:“姊,汝以樂莊嚴方便,爲調誰耶?善男子耶,善女人耶?”
여인이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이 장엄 방편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일체 중생을 교화할 수가 없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여인의 마음은 즐거움에 탐착함이 많으나 남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나는 장엄 방편을 즐거워함으로써 많은 여인을 조복시킵니다. 남자는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누이여, 당신은 여인의 몸인데 어떻게 여인을 조복시킨다고 합니까?” 이때 이 여인은 신통력으로 몸을 변화시켰는데, 마치 32상(相)을 갖춘 혈기 왕성한 남자와 같았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몸매에 깨끗하고 맑았으며 위엄과 덕은 제일이었다. 갖가지 영락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고 대덕 수보리에게 말했다. “이와 같은 색신(色身)으로 여인을 조복시킵니다.”
이때 대덕 수보리는 생각하기를, ‘깊은 지혜의 대보살이시다. 나는 마땅히 나한(羅漢)이라고 대답해야겠다.’라고 하였다. 이때 이 선남자는 대덕 수보리의 마음에 생각하는 것을 알고 대덕 수보리에게 말했다. “대덕이시여, 당신은 용맹스럽게 정진하므로 나한이라 허락하니 두려워 마시고 말하십시오.”
011_0278_c_01L수보리가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곧 나한으로서 모든 번뇌를 다했습니다.” 즉시 다시 물었다. “대덕 수보리여, 과거ㆍ미래ㆍ현재에서 무슨 번뇌를 다했다는 것입니까? 만약 과거에 다했다면 과거는 다함이 없습니다. 또한 미래는 이르지 않았으니 역시 다함이 없으며, 현재는 머묾이 없으니 또한 다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때 이 선남자는 선정에 들어 일체불찰삼매(一切佛刹三昧)를 나타내 보였다. 이때 대덕 수보리는 즉시 한량없고 끝도 없는 아승기의 불찰토(佛刹土)를 보았는데, 혹은 불토(佛土)의 해가 처음 솟아나는 때를 보았고, 혹은 불토의 해가 소식(小食) 때임을 보았으며, 혹은 불토의 해가 대식(大食) 때임을 보았고, 혹은 불토가 격건추(擊揵椎) 때임을 보았다. 혹은 승려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혹은 승려가 공양하는 것을 보았으며, 흑은 발우를 씻는 것을 보았고, 혹은 해가 중천에 있는 것을 보았고, 흑은 해질녘임을 보았고, 혹은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보았고, 혹은 해가 저버린 것을 보았고, 혹은 초야(初夜)임을 보았고, 혹은 중야(中夜)임을 보았고, 혹은 새벽임을 보았고, 혹은 해도 없고 달도 없는데. 몸의 광채가 비추고 있음을 보았다.
이때 선남자가 대덕 수보리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이를 관찰하십시오. 어느 때에 먹으려고 하십니까? 당신이 지금 그것을 보았다면 바라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나는 지금 염부제(閻浮提) 시간으로 하는 것이지, 다른 곳의 불찰(佛刹) 시간으로는 먹지 않습니다.”
011_0279_a_01L“선남자여, 당신의 명자(名字)가 무엇인지 지금 그것을 말해 보십시오.” 대답했다. “대덕 수보리여, 나에게 이름을 쓰라는 것입니까? 대덕 수보리여, 당신이 세존에게 묻는다면 마땅히 당신을 위해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일체의 이름은 이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망상(妄想)은 참다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망상은 참다운 것이 없고 이름과 모양을 빌려서 말했을 뿐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선남자여, 일체지(一切智)의 이름도 역시 망상이며 진실하지 않습니까?” 대답했다. “대덕 수보리여, 역시 그것도 망상이며 참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지의 이름은 한량없고 끝도 없으며 각각의 불찰(佛刹)에는 각기 다른 이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답했다. “대덕 수보리여, 혹은 불토(佛土)가 있는데 이름을 일체지위분별광(一切智爲分別光)이라 하고, 혹은 변조(遍照)라 하고, 혹은 다시 시일체지(示一切智)라 하고, 혹은 증용(增勇)이라 하고, 혹은 대광(大光)이라 하고, 혹은 현재(現在)라 하고, 혹은 지지(持地)라 하고, 혹은 대항복(大降伏)이라 하고, 혹은 대보(大普)라 합니다. 대덕 수보리여, 일체지의 명자(名字)가 한량없는 것과 같이 색(色)도 역시 그러하여 명자가 한량없습니다.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역시 그러하여 명자가 한량없습니다. 모든 경계(境界), 모든 입(入), 염처(念處), 올바른 판단, 신족(神足), 모든 근(根), 모든 힘, 모든 깨달음, 모든 도, 일체의 조도법(助道法)과 각각의 불토에는 명자가 한량없습니다.
대답했다. “대덕 수보리여, 만약 일체의 중생들에게 대비심이 없다면 응공이라 일컫지 않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이 응공이라는 이름은 부처님의 종자와 법의 종자와 승(僧)의 종자를 끊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응공이라야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어버리며, 이와 같은 응공이라야 지혜가 다함이 없고, 공덕이 다함이 없고, 모든 변재가 다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응공은 범부의 반려자이지 성인(聖人)의 반려가 아닙니다. 이러한 세상의 응공을 중생이 보게 된다면 법안정(法眼淨)을 얻게 됩니다.”
그때 천(天)이 있었다. 항상 대덕 수보리를 따르며 시종했으나 정정(正定)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와 같은 응공지(應供地)의 설법을 듣고는 마음에 환희를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며, 이미 발심하고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져 예배하며 대덕 수보리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잘못을 후회합니다. 다시는 대덕의 행(行)에 따르며 시종하지 않겠습니다.”
이때 선남자가 즉시 천(天)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무슨 까닭으로 대덕 수보리를 향하여 잘못을 후회하느냐?”
011_0279_b_14L爾時,善男子卽問天言:“汝今何故,向大德須菩提而悔過也?”
천녀(天女)가 대답했다. “저는 12년 동안 항상 대덕 수보리의 행을 따랐습니다만 일찍이 이러한 응공지(應供地)의 설법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응공지를 듣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뒤에 ‘만약 어느 곳이든 이런 깨끗한 응공의 법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그곳에 갈 것이며, 만약 모든 보살이 모여서 보살법을 연설하는 곳이면 나는 그곳에 가겠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011_0279_c_01L이때 대덕 수보리는 천녀가 이와 같이 발심한 것을 듣고는 즉시 권유하며 말했다. “천녀여, 너는 좋은 이익을 얻고, 부처님의 깊은 법에 위없는 도심(道心)을 내었다. 천녀여, 나는 지금 번뇌가 들끓고 있다. 일체지(一切智)의 법에 대하여 그 그릇이 아니기 때문이니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녀여, 만약 내가 모든 번뇌를 끊지 않고도 마음에 해탈을 얻는다면, 나 역시 반드시 위없는 도심을 내었을 것이다. 천녀여, 너는 항상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공경하고 찬탄하며 오른쪽으로 돌아 예배하였으며, 이와 같은 대선(大善)의 모든 장부존(丈夫尊) 역시 일찍이 듣지 못한 법을 설하였으며 이 법을 듣고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대덕 수보리가 천녀에게 말했다. “나도 지금 역시 너를 향해 잘못을 뉘우친다. 나는 본래 너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성문법(聲聞法)을 권한 것이다.”
011_0279_c_07L大德須菩提語天女言:“我今亦復向汝悔過,我本不知汝之意故,勸聲聞法。”
천녀가 대답했다. “나는 대덕 수보리를 위해 한 중생에게 말한 것입니다. 근기[根]를 관찰하지 않고 성문승을 권하는 것에 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덕 수보리여, 보리의 도를 구하는 자는 성문승(聲聞乘)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비록 굶주리고 목마름에 핍박을 받는다 해도 끝내 잡독(雜獨)의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대덕 수보리여, 보살을 구하는 자는 성문승을 듣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011_0280_a_01L선남자가 말했다. “천녀여, 상(相)을 취함이 있다면 일체 중생에게 평등심이 없는 것이다. 만약 나의 번뇌에 속박되었다면 일체 중생을 해탈시킬 수 없다. 5음에 의지한다면 일체 중생의 짐을 지기에는 불가능하다. 만약 모든 선근을 생각함이 있다면 일체 중생을 성숙시킬 수가 없으며, 만약 아상(我相)과 타상(他相)이 있다면 중생으로 하여금 고락을 깨닫게 할 수 없다.” 이때 천녀는 교칙(敎勅)한 바를 따라 순법인(順法忍)을 얻었다.
이 여인은 즉시 집 안으로 들어가서 갖가지 맛의 음식을 가지고 와서 대덕 수보리에게 말했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이 탐욕을 여의지도 않고 탐욕을 여의지 않음도 아니며, 성냄을 여의지도 않고 성냄을 여의지 않음도 아니며, 어리석음을 여의지도 않고 어리석음을 여의지 않음도 아니며, 번뇌를 여의지도 않고 번뇌를 여의지 않음도 없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이 괴로움[苦]을 알지 못하고, 쌓임[集]을 끊지 못하고 사라짐[滅]을 증득하지 못하고, 도(道)를 닦지 못했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이 만약 4념처(念處)를 닦지 않고, 4정근(正勤)을 닦지 않고, 4여의족(如意足)을 닦지 않고, 5근(根)을 닦지 않고, 5력(力)을 닦지 않고, 7각(覺)을 닦지 않고, 8성도(聖道)를 닦지 않았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이 신견(身見)을 일으키지 않고 한결같은 도심(道心)을 얻었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011_0280_b_01L대덕 수보리여, 당신이 무명을 소멸하고, 명해탈(明解脫)을 증득하고, 제행(諸行)에 힘을 써서 무위(無爲)를 증득하고, 식(識)을 행하지 않아 다시 태어남이 없어 해탈을 얻고, 명색(名色)을 증장하지 않고, 삼계를 초월하고, 6입(入)에 들어감이 없고, 공해탈(空解脫)을 알고, 촉(觸)을 받지 않고, 무상해탈(無相解脫)을 닦고, 수(受)의 연고를 보지 않고, 무원해탈(無願解脫)을 증득하고, 애(愛)의 연고가 없고, 취(取)에 동요하지 않는 연고를 깨달아 알고, 무생(無生)을 알고, 쌓임[集]이 없음을 알고, 생(生)과 무생(無生)을 알고, 노(老)와 사(死)가 오고 감이 없음을 알고, 12인연을 알아 생(生)도 없고 탐욕도 없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 수보리여, 당신이 부처도 보지 않고, 법에도 들음이 없고, 승(僧)에도 친근하지 않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이시여, 만약 5역(逆)이 법성(法性)과 같음을 알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이시여, 이 생명은 죽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라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이시여, 만약 탐욕의 평등함이 무쟁(無諍)의 평등과 같고, 만약 성냄의 평등이 무쟁의 평등과 같고, 만약 어리석음의 평등이 무쟁의 평등과 같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이시여, 당신이 범부지(凡夫地)를 초월하지 못하고 성지(聖地)를 이루지 못했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이시여, 당신이 명(明)을 따르지 않고 명에 들어가고, 생사에 떨어지지 않고 또한 열반도 아니고, 또한 실어(實語)도 아니고 또한 망어(妄語)도 아니라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이시여, 당신이 다함이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음도 분별하지 않으며, 음계(陰界)에 들어가도 또한 동요하지 않고, 생각에 의지함이 없고 또한 쟁송(諍訟)도 없고, 모든 중생에게 장애됨이 없고, 일체의 법에 있어서 마음에 속박됨이 없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011_0280_c_01L대덕이시여, 당신이 출가하여 이런 법을 얻음이 없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이시여, 당신이 출가한 소원이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라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만약 대덕 수보리께서 다툼이 없다면, 지옥 역시 다툼이 없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응공(應供)을 취하지 않는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대덕 수보리여, 만약 사람이 당신에게 응공의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 사람은 수보리를 비방한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당신은 응공도 아니며 또한 베풂도 없고, 응공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대덕이시여, 만약 이런 법을 성취했다면,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이때 천녀가 대덕 수보리에게 물었다. “대덕 수보리여, 이 여인은 무슨 까닭에 이런 법을 말하며, 당신은 어찌하여 대답하지 않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천녀여, 너의 뜻은 어떠하냐? 환인(幻人)이 인(因)과 비인(非因)을 말할 수 있겠느냐?” 천녀가 말했다. “아닙니다, 대덕 수보리여.”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네가 말한 것처럼 모든 법은 환(幻)과 같은데, 내가 어찌 대답하겠느냐? 천녀여, 모든 중생이 허(虛)와 실(實)을 말한다면 나의 평등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말은 환과 같아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말하고 식법(食法)을 받았을 때, 백 명의 천자가 법안정(法眼淨)을 얻었다.
수보리가 말했다. “선남자여, 당신은 계(戒)에 안주(安住)하십니까?” 대답했다. “대덕 수보리여, 모든 법은 받음이 없습니다. 그 중에는 지계(持戒)도 파계(破戒)도 없습니다. 대덕 수보리여, 나는 도적질과 음욕과 거짓말과 이간질하는 말과 포악한 말과 교묘하게 꾸미는 말과 탐욕과 성냄과 삿된 견해를 없앱니다.”
대덕 수보리는 이 날 먹지 않았으며 포시(哺時)를 지나 삼매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처소로 갔다. 도착하자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먼저 들은 바의 법을 갖추어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그 보살의 이름을 아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모릅니다. 세존이시여.”
011_0281_c_01L부처님께서 말했다. “수보리야, 그 보살의 이름은 전녀신(轉女身) 보살마하살이다. 장엄방편을 즐거워함으로써 중생을 교화한 것이 마치 마가타국(摩伽陀國)에서 10거로(佉盧)를 1거리(佉利)로 삼고, 천 거리를 1거(車)로 삼는 것과 같은데, 무려 이와 같은 천 거의 개자(芥子)는 사람들이 능히 그 한계를 셀 수 있으나 이 전녀신 보살마하살이 장엄방편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사바세계에서 교화한 중생과 모든 인천(人天)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한 것은 헤아려 알 수가 없다.”
이때 이 여인은 5백의 여인이 둘러싸고 시종하는 가운데 왕사성을 나와 기사굴산(耆闍崛山)의 부처님의 처소로 향했다. 이때 세존께서는 멀리서 이 여인을 보고 대덕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너는 지금 5백의 여인이 오는 것을 보고 있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이미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때 이 여인은 5백의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시종을 받으며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으며, 5백의 여인들도 역시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를 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이때 대덕 수보리가 여인이 머문 곳으로 가서 합장하여 공경하였다.
대덕 사리불이 대덕 수보리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성법(聖法)이 아닌 것을 얻었습니까? 당신은 지금 성계(聖戒)가 아닌 것에 머물고 있습니까? 여인에게 공경했습니다.” 이때 여인이 대덕 사리불에게 말했다. “대덕이시여, 당신은 지금 세상의 성(聖)과 성 아님을 알고 있습니까? 만약 말할 수 없다면 잠자코 계십시오.”
011_0282_a_01L여인이 말했다. “대덕이시여, 만약 성(聖)의 종자를 끊지 않으면 이를 일컬어 성(聖)이라 하고, 만약 부처의 종자와 법의 종자와 승의 종자를 끊지 않으면 이를 성이라 하며, 만약 자비한 마음으로 일체의 성(聖) 아닌 것을 해탈시키고자 하면 이를 일러 성이라 합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차라리 여인이 되어 갖가지 영락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게 꾸미고, 첨복화(瞻蔔花)를 붙여 머리를 꾸며 5욕락을 받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여의지 않고 성(聖)을 증장하는 것이, 아라한이 8해탈을 닦아 모든 번뇌를 고요히 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대덕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비유로 말하겠습니다. 유리그릇에 수정(水精) 구슬이 가득 담긴 것과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無價寶]가 더러운 똥 속에 있다면 사리불이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덕 사리불이 말했다. “누이여, 당신은 대승을 향하십니까?” 여인이 말했다. “이 대승의 체(體)는 향하는 것도 없고 돌아오는 것도 없습니다.”
011_0282_a_14L大德舍利弗言:“姊,汝向大乘耶?”女言:“是大乘體,無向無還。”
사리불이 말했다. “누이여, 만약 이 대승이 향하는 곳도 없고 돌아오는 곳도 없다면, 대승을 지향하는 자는 어디로 나아가야 합니까?”
011_0282_a_16L舍利弗言:“姊,若是大乘無向無還,向大乘者,爲何所趣?”
여인이 말했다. “대덕 사리불이여, 대승을 향하는 것은 곧 무명이 다함이 없는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고, 나아가 늙음과 죽음까지도 다함이 없는 데로 향하여 이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덕 사리불이여, 무명은 다할 수가 없고, 나아가 늙음과 죽음까지도 역시 다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함이 없다는 것은 곧 법성(法性)은 생겨남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생겨난다면 곧 다하게 되는 것이니, 생겨남도 없고 다함도 없는 것입니다. 대덕 수보리여, 인연이 합하여 법이 생기며 이 법은 다툼이 없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사리불이여, 보살은 여덟 가지의 영락으로 장엄합니다. 장엄을 마치면, 보살의 걸림 없는 변재를 얻게 됩니다.
011_0282_b_04L女言:“大德舍利弗,菩薩莊嚴八種瓔珞,若莊嚴已,得於菩薩無㝵之辯。
무엇을 여덟 가지라고 하는가 하면,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 영락장엄이며, 구경(究竟)의 대비심에 머무는 영락장엄이며, 일체 중생에게 걸림 없는 마음의 영락장엄이며, 나아가 다문(多聞)을 구하되 만족함이 없는 영락장엄이며, 잘 관찰하여 설법을 들은 것과 같이 하는 영락장엄이며, 모든 중생을 교화하되 또한 일체의 법을 보지 않는 영락장엄이며, 방편 분별로 깊고 묘한 인연의 화합으로 법이 생기는 것을 알고 일체 중생의 모든 근(根)을 잘 아는 영락장엄이며, 제불(諸佛)이 받아 가지는 좋은 방편을 아는 영락장엄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누이여, 이 여인은 화현했습니다. 화(化)에는 생사가 없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여래의 바른 깨달음과 일체의 법은 다 화상(化相)과 같습니다. 만약 일체의 법이 화상과 같다는 것을 안다면 생사가 없습니다.”
이때 전녀신보살은 색신(色身)으로서 오체를 땅에 대어 예배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저에게 위없는 도기(道記)를 주시어 여인의 몸을 바꾸어 남자의 몸을 이루도록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지금 부처님의 발 앞에서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5백의 여인 또한 오체를 땅에 대어 예배하며 이러한 원을 세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부처님의 발 앞에서 모두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땅히 저에게 위없는 도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때 세존께서는 문득 미소를 지으셨다. 불ㆍ세존의 법에, 만약 미소를 지을 때는 여래의 입에서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자(紫)ㆍ파리(頗梨)의 한량없는 갖가지 묘한 색의 광명이 나온다. 나와서는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추게 되는데, 위로는 범세계(梵世界)에 이르러 해와 달을 어둡게 가리고, 되돌아와서는 부처님을 세 번 에워싸고는 여래의 정수리로 들어간다.
011_0283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전녀신 보살마하살은 수없는 겁을 지나면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를 이룰 것이므로 공덕광왕여래(功德光王如來)라 불리며, 이 세상에 출현해서는 불도(佛道)를 얻게 될 것이다. 이 5백의 여인도 보살의 무리가 되어 다라니(陀羅尼)를 얻고 무애변재를 얻을 것이며, 또한 이 전녀신보살이 말한 여덟 가지의 영락장엄을 얻을 것이다. 이때 공덕광왕불은 5백의 보살을 위하여 위없는 도를 기억하여 설법할 것이다.
이때 전녀신보살과 5백의 여인은 부처님께서 수기(授記)를 설함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하여 쾌락을 받아 가졌으며, 위로 허공의 높이 7다라수(多羅樹)나 솟아올라 즉시 남자가 되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16동자(童子)와 같았으며 허공에서 내려 와서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우러러 보았다. 이때 세존께서 금색의 오른팔을 들어 그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자, 곧 삼매를 얻고는 이름을 변조(遍照)라 하였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대덕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이 경을 받아 지녀서 독송하며 자재롭게 남을 위하여 널리 설법하여라.”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경을 받아 지니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으로 하여 그것을 받아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경의 이름은 『요영락장엄방편품(樂瓔珞莊嚴方便品)』이라 하고, 너는 그것을 받아 지녀라. 또한 이름을 『전녀신보살문답(轉女身菩薩問答)』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