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보살과 비구 스님 무량 백천억 나유타(那由他) 대중들과 함께 계셨다.
011_0389_a_04L一時,佛住王舍城耆闍崛山,與大菩薩及比丘僧無量百千億那由他衆俱。
그 여러 큰 보살들은 모두 다 큰 지혜의 훌륭한 방편[大智善權]을 증득(證得)하였고, 모두 무자법장(無字法藏)을 잘 통달하였으며, 즐겁게 설법하는 말솜씨를 갖추었는데,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에 어긋남이 없었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여 영원히 번뇌를 여의었으며, 모든 감각기관[根]을 조복(調伏)하여 집착하는 것이 없었다.
중생을 불쌍히 여기기를 외아들 보듯 하니 애정이 두텁고, 실다운 지혜는 큰 보주(寶洲)와 같았다. 참괴(慚愧)를 몸통으로 삼고 정(定)과 혜(慧)를 머리로 삼으며, 큰 자비로써 체성(體性)을 삼았다. 선(善)하고 선하지 않은 법과 실답고 실답지 않은 법을 알아, 아(我)와 법(法), 이 두 가지가 다 공(空)한 것임을 비추어 알아서 수승하고 미묘한 경지에 머물렀다.
또한 큰 명칭[大名稱]을 얻어 길이 편안하게 잠들어, 반드시 최상의 법을 수행하여 영원토록 태(胎) 안의 하열(下劣)한 몸은 벗어났으나, 몸 받음을 시현하여 국토를 수호하였다. 여러 가지 보시 받은 것을 널리 현자와 선인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고, 삼계(三界)를 벗어나서 능히 삼계를 구원하니, 그 행이 청정하여 훌륭하게 나와 남[自他]에 대하여 잘 통달하여 이와 같은 공덕을 다 구족(具足)하였다.
011_0389_b_02L그 이름은 승사유(勝思惟)보살ㆍ승취행(勝趣行)보살ㆍ묘음(妙音)보살ㆍ미음(美音)보살ㆍ변구(辯具)보살ㆍ변취(辯聚)보살ㆍ주계(珠髻)보살ㆍ천폭(千輻)보살ㆍ법망(法輞)보살ㆍ법향(法響)보살ㆍ연화면(蓮花面)보살ㆍ연화안(蓮華眼)보살ㆍ지지(持地)보살ㆍ지세(持世)보살ㆍ성변대지(聲遍大地)보살 등이었으니,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들은 모두 다 동자(童子)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 대중들 속에서 상수(上首) 보살이 되어 각기 자기 권속들과 더불어 함께하고 있었다.
허공장(虛空藏)보살은 한량없이 많은 사천왕(四天王) 무리들에게 둘러싸였으며, 중소지식(衆所知識)보살은 한량없이 많은 채녀(婇女)들에게 둘러싸였고, 보현(普賢)보살과 이의(離疑)보살ㆍ불공견(不空見)보살ㆍ지제개(止諸蓋)보살과 한량없이 많은 훌륭한 방편을 지닌 약왕(藥王)보살과 약상(藥上)보살 등이 각기 한량없이 많은 보살 대중들에게 둘러싸였다.
장로 사리불(舍利弗)과 마하목건련(摩訶目乾連), 마하가섭(摩訶迦葉) 등이 각기 모든 대아라한들에게 둘러싸였고, 나아가 시방세계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일체 세계에 있는 해와 달의 모든 천자들이 각기 위엄 있는 광명을 띠고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하지만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인해 저마다의 위엄 있는 광명이 밝게 비추지 못하니, 마치 검은 먹 덩어리를 염부금(閻浮金)에 비교하는 것과 같았다.
또 한량없이 많은 나라연천(那羅延天)1)과 수천덕차가(水天德叉迦)용왕과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용왕 등도 그 권속들에게 둘러싸였고, 미음(美音)건달바왕 또한 한량없이 많은 건달바들에게 둘러싸였으며, 무탁(無濁)가루라왕은 7억 가루라왕 권속들에게 둘러싸였고, 나아가 시방의 항하(恒河)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의 일체 보살들이 제각기 자기 부처님께 간청하며 권속들과 함께 와 있었다.
그때 승사유 보살마하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오른쪽 어깨로 메고 나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서 부처님을 향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사부대중을 위하여 ‘여래(如來)’라는 두 글자의 뜻을 여쭈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저를 위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들로 하여금 모두 이익을 얻게 해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승사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여래께서 어찌 한 중생만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시겠느냐? 그것은 곧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시느니라. 선남자야, 그대가 지금 능히 사부대중을 위한 까닭에 ‘여래’라는 두 글자의 뜻에 대해 물었으니, 그대가 질문한 것을 따라 지금 그대를 위해 설명하리라.”
그때 승사유보살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는 말씀을 듣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법을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멸해 없애고 또 수호해야 하며, 다시 어떤 법을 여래께서 극복해 증득하고 또 깨우쳐 알아야 합니까? 이와 같은 두 가지 의미를 오직 원하옵건대 설명해 주십시오.”
그때 부처님께서 승사유보살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대는 이미 한량없이 많은 복(福)과 지혜를 성취하였고, 다시 여래의 위엄 있는 신통력을 입어서 능히 나에게 이와 같은 뜻을 질문하는구나. 자세히 듣고 잘 들어서, 깊이 생각하고 기억하라. 내가 이제 그대를 위해 분별하여 해설해 줄 것이다.
선남자야, 위에서 설한 것과 같이 이와 같은 법은 보살마하살이라면 마땅히 멸해 없애야 하는 것이니라.
011_0390_a_23L善男子!如上所說如是等法,菩薩摩訶薩應當除滅。
011_0390_b_02L선남자야, 그대가 나에게 묻기를, ‘다시 어떤 법이 있어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수호해야 하는가’라고 했으니 이제 그대를 위해 설명하리라.
011_0390_b_02L善男子!汝問於我,復有何法,菩薩摩訶薩應守護者,今爲汝說。
선남자야, 한 가지의 법이 있으니, 보살마하살이라면 항상 꼭 수호해야 하는 법이니라. 어떤 것이 그 한 가지 법인가? 이른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 가지 법은 보살마하살이라면 언제나 꼭 수호해야 하는 법이니라. 왜냐하면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수호하게 되면, 곧 모든 불여래의 일체 계장(戒藏)을 수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모든 보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목숨을 아끼거든 마땅히 살생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 재물을 아끼거든 마땅히 도적질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 부인을 아끼거든 마땅히 다른 여자를 범하지 말아야 하며, 제 자신이 진실한 말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다른 이를 속이지 말아야 하며, 제 자신이 화합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다른 이를 이간질하지 말아야 하며,
제 자신이 정직한 것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삿되게 속이지 말아야 하며, 제 자신이 부드러움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다른 이를 모질게 꾸짖지 말아야 하며, 제 자신이 그쳐 만족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다른 것에 탐욕을 내지 말아야 하며, 제 자신이 인자하고 너그러운 것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성내지 말아야 하며, 제 자신이 바른 견해를 좋아한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삿된 소견을 내지 않도록 해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일체의 법은 본래부터 그 법이 없었다는 것을 여래께서 깨달아 증득하셨으며, 일체의 법은 본래부터 소멸됨이 있지 없다는 것을 여래께서 깨달아 증득하셨으며, 일체의 법은 그 성품이 양쪽의 치우침을 여의었다는 것을 여래께서는 깨달아 증득하셨으며, 일체의 법은 본래부터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님을 여래께서는 깨달아 증득하셨느니라.
또 선남자야, 일체의 법은 다 자기가 지은 업(業)의 인연(因緣)의 힘을 따르는 까닭에 생겨나는 것이지만, 그런데도 이 인연은 한 생각의 순간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 마치 번갯불과 같나니, 이와 같은 업의 인연을 여래께서 깨달아 증득하셨느니라. 이런 까닭에 내가 말하기를, ‘인연 때문에 모든 법이 생기고, 인연 때문에 모든 법이 소멸한다. 따라서 만일 인연을 여의게 되면 곧 업보(業報)도 없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등의 일을 여래께서는 깨달아 증득하셨느니라.
선남자야, 이와 같이 깨달아야 할 일체법의 자성을 이름하여 ‘두루 비추는 광명의 창고[遍照光明之藏]’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무슨 까닭으로 법성(法性)을 창고라는 이름을 붙였겠느냐? 모든 중생들의 세간지(世間智)와 출세간지(出世間智)가 전부 이 창고를 의지해서 생겨나기 때문이니라. 만일 실상의 지혜로써 저 법성을 관하면, 지혜란 저것[彼:遍照光明之藏]을 의지해서만 생겨나는 까닭에 창고라고 이름하느니라.
011_0391_a_02L또 선남자야, 또 한 가지 법이 있으니, 여래께서는 그 법을 깨달아 증득하셨느니라. 어떤 것이 그 한 가지 법인가? 이른바 모든 법은 생기지도 않는 것이요, 멸하지도 않는 것이며,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인(因)도 아니요 연(緣)도 아니니, 이와 같은 법을 여래께서는 깨달아 증득하셨느니라.
또 어떤 한량없이 많은 미진수의 중생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내었으며, 또 어떤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중생들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으며, 또 어떤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중생들은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의 갖가지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어 인간이나 하늘 가운데 태어나 수승하고 묘한 즐거움을 받았다. 이 모임에 참여했던 일체 대중들은 모두 부질없이 버려지지 아니하여서, 한 사람도 헛되게 지나친 자가 없었다.
그때 부처님께서 라후라(羅睺羅)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의 이 법요(法要)를 너는 꼭 받아 지니도록 하여라.”
011_0391_a_18L爾時,佛告羅睺羅言:“善男子!我此法要,汝當受持。”
당시 그 모임 가운데 90억 보살마하살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맹세코 저 사바세계의 후시(後時) 후분(後分)에 능히 법기(法器)가 될 만한 자를 보게 되면, 저희들은 마땅히 그를 위해 이 경전을 펴서 설하겠습니다. 그러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옵소서.”
011_0391_b_02L그때 사천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미래 세상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있어서 능히 이 경전을 받아 지니는 자가 있으면, 제가 꼭 옹호(擁護)할 것이며, 그가 원하고 구하려는 모든 것이 있으면 다 만족하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은 능히 이 경전을 받아 지닐 법기이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야, 저 미래세의 모든 중생들이 만일 이 희유(希有)한 법문을 얻어 듣는다면, 마땅히 그 사람은 오래지 않아 한량없이 많은 복과 지혜를 성취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곧 나를 받들어 섬겨서 공양할 것이며, 이 사람은 곧 부처님의 큰 보리(菩提)를 짊어질 것이며, 이 사람은 반드시 훌륭한 말솜씨를 성취할 것이며,
이 사람은 반드시 불국토를 청정히 할 것이며, 이 사람이 수명을 마칠 때에는 반드시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보살 대중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볼 것이며, 이 사람은 항상 나의 몸이 영취산(靈鷲山)에 있는 것을 볼 것이며, 이들 여러 보살 대중들을 볼 것이니라. 이 사람은 곧 이미 끝없는 법장(法藏)을 증득한 사람이며, 이 사람은 숙명지(宿命智)를 얻게 되고,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011_0391_c_02L또 선남자야, 지금 내가 설한 법은 일찍이 설한 적이 없었던 법이니라. 만약 미래 세상에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설사 이미 5역죄(逆罪)2)를 지었더라도, 이 법문을 듣고 만약 잘 쓰고 지니거나 독송하고 해설하거나 하며, 혹 다른 이에게 권하여 쓰고 지니게 하거나 독송하게 하며 해설하게 한다면, 내가 보건대 이 사람은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번뇌장(煩惱障)ㆍ업장(業障)ㆍ보장(報障)이 전부 청정하게 될 것이니라.
그 사람은 다음 세상에 5안(眼)3)을 얻어 구족(具足)할 것이며, 곧 모든 부처님께 관정(灌頂)을 받게 될 것이며, 곧 모든 불세존(佛世尊)과 여러 보살들의 호념(護念)의 대상이 될 것이고, 다음 세상에 나는 곳마다 모든 감각기관[根]을 완전하게 갖추어 결함이 없을 것이니라.”
1)범어 Na-ra-yana의 음역(音譯). 천상의 역사(力士)로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
2)다섯 가지 악행. 소승 불교에서는 아버지를 죽이는 일[殺父], 어머니를 죽이는 일[殺母], 아라한을 죽이거나 해하는 일[殺阿羅漢],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일[破和合僧], 부처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일[出佛身血] 따위의 무간지옥에 떨어질 행위를 이르고, 대승 불교에서는 절이나 탑을 파괴하여 불경과 불상을 불태우고 삼보(三寶)를 빼앗거나 그런 짓을 시키는 일, 성문(聲聞) 따위의 법을 비방하는 일, 출가자를 죽이거나 수행을 방해하는 일, 소승 불교의 5역(逆) 가운데 하나를 범하는 일, 모든 업보는 없다고 생각하여 10악(惡)을 행하고 다른 이에게 가르치는 일을 말한다.
3)모든 법의 사(事)ㆍ이(理)를 관조하는 5종의 눈. 곧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