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에서 큰 비구 무리 1천 명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가 성스럽게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아라한으로 샘[漏]과 번뇌[結]가 이미 풀리고 나고 죽음이 이미 끊어졌으며, 더러움과 어두움은 이미 흩어졌고 지혜와 밝음만이 있었다. 보살 2만은 신통이 성스럽게 통달하고 삼계를 모두 거느리며 모든 법을 다 거두어 잡고 방편과 지혜가 끝이 없으며 부처님의 신령한 덕에 이르러 머무를 바 없음에 머물렀다.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에는 외도가 번성하여 어두운 밤에 횃불처럼 밝더니, 천하에 부처님이 계시자 삿된 무리는 다 없어진 것이 비유하자면 해가 뜨자 횃불이 빛을 잃은 것과 같았다. 나라 안에서 본래 외도의 삿된 견해를 가진 불란가섭(不蘭迦葉) 등 6사(師)를 섬겼지만 부처님께서는 바르고 참된 도로써 천하를 가르치셨다.
011_0399_b_02L 우리의 덕은 바람 같고 백성이 응하기는 풀과 같아서 우리의 발밑에 머리 조아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부처가 세상에 나와서 신기한 도의 변화를 나타내니, 우리들은 남들에게 버려져 신봉(信奉)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눕고 앉아도 편치 않으며 나고 들고 다니고 걸을 때에도 항상 걱정하고 심란하여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 모두 미칠 것 같다. 마땅히 어떤 계책을 써서 그를 헐뜯고 욕하여 나라 바깥으로 쫓아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해야겠다. 그러면 우리들은 공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이렇게 의논하고는 제각기 서로 말하였다. “나열(羅閱)의 큰 성 안에 세력이 강한 장자가 있다. 나라의 대신인 그의 이름은 신일(申日)인데 우리들을 신봉하되 마음가짐이 둘이 아니며 항상 불도(佛道)를 허위라고 헐뜯었다. 오직 이 사람만이 세력이 강하여 우리를 도와서 헐뜯고 욕하여 제거할 수 있다.”
6사들이 함께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 나라의 스승으로 공로와 이름이 밝게 드러나 뭇 선비들은 머리 숙이고 국왕은 공경하고 대신은 받들며, 열여섯 큰 나라에서 독보를 자부함은 장자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러나 부처가 세상에 나와서 성스럽고 지혜롭다고 자칭하고 환술과 교묘한 속임수로 바름을 뒤바꾸고 말을 뒤엎어서 우리들과 더불어 성인의 무리에 들고 지혜가 나란하고자 하며 위엄이 같고 신통이 평등하고자 하여 환술로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011_0399_c_02L 나라 사람들은 어리석고 어두워서 그의 도를 신봉하여서 천하를 의혹하고 착한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게다가 우리들을 도덕이 없다고 하여 신봉 받지 못하게 합니다. 장자께서는 세력이 강하여 임금도 공경하고 국민은 복종하고 믿으며 위엄이 사해에 떨치어 천하가 우러러 바라봅니다. 깊이 생각건대 스승과 제자는 마지막이나 처음이나 의(義)를 중히 여겨 공훈을 내세에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그를 헐뜯고 욕하고 제거해 없애서 보지 못하게 해서, 우리의 공양을 회복하면 그 아니 유쾌하겠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오셔서 말씀하신 것을 공경히 받들겠습니다. 생각건대 지난날에 저의 어리석은 형이 부처를 받들었기 때문에 여러 스승들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실로 분하고 성이 나서 매양 엿보아서 도모코자 하였으나 일할 말미가 없었는데, 이제 거룩한 가르침을 입으니 저의 본마음과 합합니다. 당연히 힘을 펴고 목숨을 바쳐 스승에게 절개를 다하겠습니다.”
여러 범지가 말하였다. “우리들은 전에 장자에게 문 가운데에는 다섯 길 여섯 자의 깊은 구덩이를 파서 숯불로 그 반을 채우고 가느다란 쇠로 서까래를 만들어 흙으로 얇게 위를 덮게 하고, 온갖 음식을 차리되 그 속에는 독을 넣게 하자고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만약 불구덩이가 태우지 못하더라도 독이 든 음식이 해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가서 부처를 청하십시오.
부처는 늘 스스로 삼세를 통달한 지혜가 있고 신통이 걸림이 없으며 미래[未然]를 비추어 알고 화와 복의 근원과 길흉의 방향을 밝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자격이 없으면서 백성을 속이고 미혹할 뿐입니다. 진실로 이러한 지혜가 있다면 청을 수락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이러한 지혜가 없다면 반드시 스스로 수락할 것입니다. 이제 이런 계획으로 부처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신일이 그것을 듣고는 흐뭇하여 크게 기뻐하고 찬탄해 말하였다. “참 좋습니다. 진실로 스승[大師]께서 가르치고 분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이 계획은 깊고 치밀하며 높고 기묘하여 실로 기이합니다. 이런 계획으로 도모하면 어찌 성공하지 못할까를 근심하겠습니까. 즉시 성스러운 가르침대로 불구덩이와 독이 든 음식을 만들어 엄숙히 기다리겠습니다.”
011_0400_a_02L그때에 불란가섭의 5백 제자는 신일이 계책을 함께 하는 것을 보고는 기뻐 날뛰며 어쩔 줄 몰라 하여 함께 일어서서 같이 소리 내며 손을 들고 신일을 칭찬했다. “참 훌륭하구나. 진실로 성스러움과 지혜가 으뜸가는 제자구나.” 신일이 다시 아뢰었다. “이제 스스로 근심한 것을 반드시 스스로 엄숙하게 갖추겠으니, 내일이면 여러 스승은 볼 것입니다.” 장자가 절을 하자 모든 스승들도 각각 돌아갔다.
이에 신일은 바깥에 명령하여 엄숙히 수레를 준비하고 앞뒤로 시종들이 따르게 하였다. 곧 부처님 처소로 가서 수레에 내려 일산을 거두고 칼 풀고 신 벗고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신성하신 교화에 주리고 목말라 하옵고 맑으신 위풍을 즐겨 우러렀으나 세간 일이 복잡[多緣]하여 받들어 공경할 말미가 없었습니다. 이제 일부러 청해 뵙고 머리 숙여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극한 마음으로 여래를 대하는구나.”
신일은 속으로 기뻐하면서 마음속으로 ‘과연 계획대로 되는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러고는 절하고 물러 나와서 6사의 처소를 지나는데 그들이 맞이하여 물었다. “청을 받아들였습니까?” 신일이 말하였다. “여러 스승들의 위력으로 이미 나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과연 계획대로입니다.”
모든 스승과 5백 제자들은 모두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모든 범지들은 크게 기뻐하여 함께 말하였다. “장자는 빨리 돌아가서 불구덩이와 독이 든 음식을 만들어 놓고 엄숙히 기다리시오.” 장자는 집에 돌아와서 바깥에 비밀히 명령을 내려 중문 밖에 불구덩이를 파서 만들고 독이 든 음식을 만들어 놓고 엄숙히 기다렸다.
장자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월광(月光)이었다. 그는 나이가 열여섯 살이었는데, 타고난 자질이 남달리 빼어나고 거동과 용모는 단정하였으며 널리 온갖 서적을 통달하여 꿰뚫고 신기하게 뜻을 찾아냈고, 천문ㆍ지리에 환하였으므로 높은 이름이 세상을 흔들었고 뭇 선비는 스승으로 우러렀다. 자비로 세간의 생사의 괴로움을 가엾이 여기어서 자신의 덕을 낮추어 널리 들어가 중생을 건지고자 하였다.
011_0400_b_02L그는 아버지 신일에게 간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큰 성인이시고 삼계의 어른이며 도덕이 청정하시고 말씀과 가르침이 참되고 바르시며 삼세를 통달하신 성인으로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이 어머니보다 더하십니다. 마땅히 힘입어 제도 받아야 될 것이거늘 도리어 악을 일으키고 하늘의 복을 바라다니 어찌 미혹됨이 아니겠습니까.
옛적 세존께서 도를 구하시던 날에 도량의 원길수(元吉樹) 나무 아래 앉으셨는데, 여섯째 하늘 악마가 부처님께서 도덕이 고원하시고 3독이 이미 멸하였으며 더러움과 어둠은 이미 흩어져 지혜의 밝음만이 남았으며 신성하기가 더없어 모든 하늘이 받들고 상제가 친히 내려오고 1만 신이 모시어 호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속에 질투가 생기어 마음이 번거롭고 괴로워 ‘부처가 도를 이루면 반드시 나를 이기리라.’고 생각하여 음식이 달지 않았으며 음악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마왕은 벌컥 성을 내어 천지를 뒤흔들었으며 모든 귀신 군사를 불러 군사들을 일으키고 갑옷을 입히니, 억만 깃발은 햇빛을 가리고 하늘을 덮었습니다. 무리들에 명을 내리어 다 변화하게 하니 갖가지 이상한 모양들이 수백천 종류였습니다. 벌레 머리에 사람의 몸뚱이인 도깨비는 무시무시하였고 산을 메고 돌을 걸머졌으며 입과 눈으로 불을 토하면서 보살을 싸고 일제히 소리 지르며 땅을 밟고 소 울음으로 부르짖자, 팔방이 진동하여 산은 무너지고 땅은 갈라졌고 나무는 꺾였으며 바닷물은 질펀하여 6원(源)에 넘치고 넘친 물은 출렁이며 하늘에 닿았습니다.
011_0400_c_02L 부처님께서는 곧 자비로운 마음으로 손을 들어 그들을 가리키셨습니다. 많은 악한 귀신 군사들은 일시에 항복해 부서졌으며 그들은 마음을 가다듬어 합장하고 머리와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고 돌아왔습니다.
011_0400_b_24L佛直以放慈心之力,擧手指之,群惡鬼兵一時伏擗,齊心叉手頭面自歸。
그 당시 여래께서는 하늘에 가득한 악함도 곧 항복시켜 제자로 만드셨으며 승리를 얻으셨지만 기쁜 생각이 없으셨는데, 불구덩이와 독이 든 음식 같은 이러한 방법은 어찌 말이나 되겠습니까. 수미산만한 독과 대천세계만한 불과 칼이나 창으로도 부처님의 털 하나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지금 불구덩이와 독이 든 음식으로 부처님을 해치고자 한다니, 비유하자면 모기와 등에의 힘으로 태산을 넘어뜨리고자 하고 파리와 하루살이의 날개로 해와 달을 덮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공연히 자신만 지치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일찍 허물을 자백하여 죄를 면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늘ㆍ용ㆍ귀신ㆍ세간 사람ㆍ범천ㆍ제석천 마왕들이 다 이마 숙여 부처님의 교화를 받습니다.
여래의 몸은 금강의 덕체(德體)이고, 온갖 악이 모두 멸하고 온갖 착함이 쌓여서 드러나며, 상호와 광명과 신성한 기관이 비할 데 없고, 다섯 갈래의 큰 어둠을 영원히 없앴으며, 위없는 바르고 참됨의 홀로 밝음을 얻었고, 뭇 성인의 위에 처하시기를 마치 별 가운데 달 같으시며 해가 돋아 산의 동쪽을 비추는 것 같습니다. 널리 도의 교화를 베풀어 세간의 어리석음을 이끌어 주시고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품어서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풀어 괴로움을 건지시되 마음이 어머니보다 인자하십니다. 부처님의 도덕과 신성하신 교화가 이와 같으니 아버지는 회개하여 삼존께 귀명하소서.”
그때 장자 신일은 죄의 덮개에 가려 마음이 열리지 못하였으므로 아들 월광에게 말하였다. “만약 여래의 덕이 네가 찬탄한 것과 같다면 부처님은 신통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비추어 보아서 내가 불구덩이와 독이 든 음식을 만들 줄 미리 아셔야만 하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나의 청함을 받으셨느냐?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앞을 헤아리는 능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011_0401_a_02L신일은 마음이 미혹되어 어리석음을 고집하고 버리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사람을 보내 부처님을 청했다. 심부름꾼은 명을 받고 세존께 가서 길게 꿇고 아뢰었다. “장자 신일 아룁니다. 때가 되어 음식을 갖추었으니, 대중들과 누추하지만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때 세존께서 큰 광명을 놓으시니 위로 삼십삼천을 비추고 아래로 십팔지옥에 이르렀으며 부처님 경계가 다하도록 큰 광명ㆍ신통이었다. 보살ㆍ아라한ㆍ연각ㆍ범천왕ㆍ제석천왕ㆍ바다의 영(靈)ㆍ땅 귀신 및 모든 귀신 군사들이 신일을 제도하신다는 말을 듣고 각기 헤아릴 수 없는 억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모두 부처님께 이르러 머리대어 절하고 좌우로 늘어섰다.
부처님께서 문에 나오시자 고공무길상(告空無吉祥)보살 등 60만이 앞에서 인도하기도 하고 허공을 날아가기도 하며 땅에서 나타나기도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가운데 계셨고 그 나머지 한없는 무리들은 다 부처님 뒤에 따랐다. 광명은 빛나서 해와 달을 막고 일체를 환히 비추었고, 하늘은 보배 일산을 펴서 꽃을 눈처럼 뿌렸다. 하늘의 용과 새는 감히 위를 지나가지 못하여 삼계의 중생은 정수리를 본 이가 없었다. 하늘 음악은 동시에 울렸고 독충은 엎드려 숨었으며 길한 새는 날아 지저귀었다.
011_0401_b_02L부처님께서 땅을 밟지도 않으셨는데 바퀴모양의 인이 찍혀졌고 광명은 환하게 빛나 이레 동안 치성하였다. 보배로운 나무ㆍ약나무와 온갖 과일 나무들은 흘겨보고 구부리고 낮았다 높았다 하는 것이 마치 사람이 무릎 꿇고 절하는 것과 같았고, 야차ㆍ가루라ㆍ염귀(厭鬼)ㆍ매귀(魅鬼) 등은 각기 부하를 거느리고 부분을 장엄하였으며 천백이 무리가 되어 손에 기악을 잡히었고, 혹은 향ㆍ꽃ㆍ칠보ㆍ영락ㆍ천증번(天繒幡)ㆍ일산[蓋]들을 가지고 시방에서 모여왔고, 하늘사람이 또한 내려와 악기를 연주하였다.
소경이 보고 귀머리가 들으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절름발이가 걸었다. 원망하는 이들은 화해하고 미워하는 이들은 사랑하였으며 미혹된 이들은 깨치고 취한 이들은 깨어났다. 부녀들은 비녀를 두드리며 노래하였고 새와 짐승은 다 사람의 모양이 되었다. 백년 묵은 마른 나무에 저절로 꽃이 피었고 아귀는 배불리고 지옥은 편안하였다. 비파와 쟁과 저와 북은 어지럽게 울었다.
못 둘레에 늘어선 실 대나무[絲竹]는 나무에 옷을 입힌 듯하였고 나무 사이마다 깁과 붉은 비단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산호ㆍ수정ㆍ유리ㆍ황금ㆍ은으로 가지와 잎사귀를 하였다. 자마ㆍ황금의 노끈이 이어져서 나무 사이에 얽히었고 하늘에 늘어뜨린 영락과 서로 연결되었다. 바람일어 불면 서로 부딪쳐 묘한 소리가 백 가지로 절로 나왔다. 부처님의 신비한 덕이 일찍이 없었던 것임을 찬탄하였으니, 무상ㆍ괴로움ㆍ공ㆍ몸이 아님을 말하는 소리이며 슬픈 자는 기쁘게 기쁜 자는 다시 슬프게 하였다.
011_0401_c_02L그 칠보수(七寶樹) 위에는 공작ㆍ앵무ㆍ금시조왕ㆍ부리 붉은 신조[赤觜神鳥]ㆍ봉황ㆍ구기나라(拘耆那羅) 등 온갖 새가 있었는데, 종류가 백천 종이었다. 빛나는 색깔을 반짝이며 떼 지어 숲속을 날고 애처롭게 갖가지로 울자 사람들은 감동하여 모여들었고 짐승들은 먹기를 쉬었으며 새들은 멈추고 들었다. 형체는 다르지만 마음은 한 가지로 부처님께 귀명하였다.
이에 신일은 아들 월광ㆍ부인ㆍ채녀ㆍ권속과 남녀 외도들과 함께 나와서 부처님을 맞이하는데 세존을 바라보니 큰 빛이 눈부시어 빛나기가 마치 보석 산과 같았고 높으신 맵시는 자줏빛 금이요, 크신 모양은 한 길 여섯 자였으며 얼굴은 조용하시고 모든 감관은 고요하셨으며 32상이요 80십종호였으며, 하늘 중의 하늘이요 도덕이 당당하셨으며 열 가지 힘을 갖추신 세존이요 하늘과 사람 중의 왕이셨다.
부처님께서 신비한 덕으로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을 비추셨다. 신일은 뜻이 풀리어 마치 미혹된 이가 바르게 되어 미친병이 나은 것 같았으며, 5정(情) 안에서 일어나 슬픔과 기쁨이 엇갈려 몰려왔다. 곧 앞에 나가 죄를 자백하고 오체를 땅에 던져 머리 조아려 절하였다. “아, 세존이시여.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바르고 참됨을 알지 못하고 나쁜 말을 믿었던 까닭에 해칠 뜻을 일으켜 천존을 위태롭게 하고자 했습니다. 요행히 자비하신 교화를 입어 죄를 비오니, 가엾게 여기시어 건져 주시고 큰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원컨대 앞에 나아가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011_0402_a_02L그때 여래께서는 정전에 오르시자 무리들도 자리를 정하였다. 신일은 부끄럽고 두려워서 마음이 편치 못하여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리석은 잘못으로 요사한 말을 믿어 진리로 여겼으니, 마치 미친 데 약을 먹어서 병을 점점 더한 것과 같습니다. 이제야 부처님을 뵙고 삿된 병이 없어졌습니다. 무도한 까닭에 음식에 전부 독을 넣어 공양하여 크신 성인을 모실 수 없습니다. 조금 기다리시면 다시 엄숙히 음식을 차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곧 음식을 가져오라. 다시 차릴 필요가 없다. 탐욕ㆍ음란ㆍ성냄ㆍ어리석음ㆍ삿된 견해는 세간의 중한 독이지만 나에겐 이런 독이 없다. 독이 이미 다 없어졌으니 독이 나를 해치지 못한다.” 신일은 음식과 향을 내왔고 여덟 가지 어려움을 거두었다. 아귀는 편안함을 얻었으며, 먹고는 이미 물[水]로 갔고 모인 무리는 잠잠하였다.
신일은 물러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었다. “아, 세존이시여. 제가 미혹하여서 감히 역악(逆惡)을 도모하여 여래에게 대항하였음을 용서하소서. 스스로 헤아려보면 죄가 무거워서 마땅히 지옥에 들어가 끓는 물ㆍ불의 고통으로 오랜 기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니,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은 큰 자비로 삼계를 구원하시며 중생을 가엾이 여겨 도탄에서 건지시는데, 어제 저를 가르치지 않아 제가 죄를 짓게 하십니까. 세존께서는 미리 알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신일에게 말씀하셨다. “옛적에 정광(定光)세존께서 나에게 수기하셨다. ‘너는 수 없는 아승기겁 뒤에 5탁악세에서 부처가 되어 널리 중생을 제도함이 나의 오늘과 같을 것이다. 그때 신일이라는 어떤 장자가 불구덩이와 독이 든 음식으로 너를 해치려고 계획할 것이다.’ 나는 바로 그때 혜명삼매(明慧三昧)를 얻었으므로 이미 너의 성명을 알았는데, 하물며 어제 몰랐겠느냐.”
011_0402_b_02L부처님께서는 본래 어리석고 미혹한 이를 버리지 않겠다고 서원하셨으므로 신일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장자여. 스스로 깨달아서 뉘우치면 무거운 죄를 반드시 없앨 수 있다. 내 너를 위하여 도의 뜻을 연설하여 너로 하여금 알게 하리라.” 대답하여 아뢰었다. “예,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합니다. 죽을 때까지 착한 도를 마음을 다하여 잊지 않겠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큰 기침을 하시더니 여덟 가지 소리를 내시어 만억의 음(音)으로 한량없는 법의 말씀인 8해탈ㆍ4제법ㆍ3해탈문ㆍ6바라밀과 깊은 도의 법요와 미묘한 행을 널리 설명하셨고, 삼계가 공함과 모든 법의 인연이 죄와 복을 만듦을 해설하시니, 병을 보고 약을 고르고 응함에 따라 법을 말씀하셨다.
신일은 뜻이 깨치어 환하고 마음이 열리어 의심이 풀리고 번뇌[結]가 없어졌다. 어느새 생각이 없어지고 고요히 정에 들었다가 이내 그 자리에서 불퇴전(不退轉)에 이르렀으며, 매우 기뻐 허공에 뛰어올랐는데 땅으로부터 140길[丈]이었다. 허공에서 내려와서 땅에 머리 조아리고 부처님 발을 어루만지고 탄식하면서 스스로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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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이 불법을 찬탄할 때에 거기 큰 모임에 온 무리가 모두 법 말씀을 즐거워하여 복을 얻어 제도된 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천지가 진동하고 풍악 소리가 나더니 제7 범왕(梵王)이 법 말씀을 들었으며 비파ㆍ경쇠ㆍ북등 온갖 기악이 저절로 울렸고, 도리천제(忉利天帝)는 꽃을 부처님 위에 흩으면서 부처님의 거룩한 덕이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이때 모두들 기뻐하면서 절하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