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세존[婆伽婆]께서 가야성(伽耶城)의 가야산 꼭대기에서 처음으로 보리(菩提)를 얻고, 족히 천여 명이 되는 큰 비구 대중들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과거에 모두 나계 선인(螺髻仙人)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이미 했고, 하는 일을 이미 끝내어 무거운 짐을 버리고서 자기의 이익을 얻어 모든 번뇌를 다했으며, 바른 지혜의 마음으로 해탈을 얻어 일체 마음이 자재로워서 이미 피안(彼岸)에 도달했으며, 모두 아라한(阿羅漢)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ㆍ관세음(觀世音)보살ㆍ득대세(得大勢)보살ㆍ향상(香象)보살ㆍ용시(勇施)보살ㆍ용수행지(勇修行智)보살 등이 우두머리였다. 이러한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그 수가 한량이 없는 데다가 아울러 모든 하늘ㆍ용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와 인비인(人非人) 등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홀로 고요히 사람이 없는 곳에서 모든 부처님들의 깊고 깊은 삼매[諸佛甚深三昧]에 드시어 법계를 관찰하고 이렇게 생각하셨다.
011_0423_a_18L爾時、世尊獨靜無人,入於諸佛甚深三昧,觀察法界而作是念:
011_0423_b_02L‘내가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얻고 일체 지혜를 얻어서 할 일을 이미 끝냈으며, 모든 무거운 짐을 벗고 모든 험한 길을 건넜으며, 무명을 없애고서 참된 밝음을 얻었으며, 모든 화살을 뽑아 갈애를 끊었으며, 법의 배[船]를 이룩하고 법의 북[鼓]를 두드리고 법의 소라를 불고 법의 당기를 세워서 생사의 씨앗을 돌려 열반(涅槃)의 성품을 보이며, 삿된 길을 막아 바른 길을 열고, 모든 죄의 밭[罪田]을 여의어 복 밭[福田]을 보이리라.
만약에 몸으로써 몸을 얻는다면 몸은 곧 앎[知]이 없고 깨달음이 없어서 풀과 같기도 하고, 나무와 같기도 하고, 흙덩이와 같기도 하고, 그림자와 같기도 하여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고, 사대(四大)로 만들어졌고, 부모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그 성질이 무상(無常)한 것이니, 설령 의복ㆍ음식ㆍ와구(臥具)ㆍ목욕[藻浴]으로써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법은 언젠가는 반드시 허물어지고 사라지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마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면 마음은 곧 환(幻)과 같이 뭇 인연을 따라 나는 것이어서 처소도 없고 형상도 없고 물체도 없어 아무것도 없기 마련이다. 보리란 다만 명자(名字)가 있어서 세속 때문에 말하는 것일 뿐 소리도 없고 빛깔도 없고 이루어짐도 없고 지어감도 없고 들어감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어서 오고가는 길이 끊기며, 모든 언설(言說)을 뛰어넘고 삼계(三界)에 벗어나서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깨닫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고 관(觀)하는 것도 없으며, 희론(戱論)을 여의어 다투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음향(音響)이 없고 문자(文字)가 없어서 언어의 길을 여의었나니, 이와 같이 보리를 증득해야 하거늘 무슨 지혜로써 보리를 증득하고 보리의 법을 증득하는 것이겠는가.
011_0423_c_02L 이러한 모든 법은 다만 명자(名字)가 있을 뿐이어서 단지 거짓 이름으로 말하고 화합된 이름으로 말하고 세속의 이름에 의지해 말할 뿐, 분별하거나 분별하여 말할 것이 없으며, 거짓으로 이루어졌기에 이루어짐이 없고, 물체가 없기에 물체를 여의고, 취할 것[取]이 없기에 말할 수 없고, 저 곳에 집착함이 없기에 증득할 사람도 없고, 무엇으로써 증득할 수도 없고 증득할 만한 법도 없는지라. 이와 같이 통달한다면 이는 곧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증득함이라 하리니, 다름이 없고 다름을 여의니만큼 보리의 상(相)이 없는 것이로다.’
문수사리여, 보리심을 냄이란 내어서 머무는 물체가 없나니 이것이 보리심을 내어 머묾이며, 문수사리여, 보리심을 냄이란 장애가 없는 머묾이니 이것이 보리심을 내어 머묾이며, 문수사리여, 보리심을 냄이란 법의 성품[法性] 그대로 머무는 것이니 이것이 보리심을 내어 머묾이니라.
011_0424_a_02L 문수사리여, 보리심을 냄이란 옮기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나니, 이것이 보리심을 내어 머묾이며, 문수사리여, 보리심을 냄이란 거울 속의 형상과 같고 더울 때의 아지랑이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허공과 같고 물속의 달과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리심을 내어 머무를 것이니라.”
다시 천자여, 처음으로 발심함이란 마치 수레를 만드는 장인[車匠]이 재목을 모으는 지혜와 같고, 둘째 행하는 발심이란 재목을 잘 다듬는 깨끗한 지혜와 같고, 셋째 물러나지 않는 발심이란 재목을 제자리에 안배하는 지혜와 같고, 넷째 일생보처의 발심이란 수레를 완성하여 운전하는 지혜와 같은 것입니다.
다시 천자여, 처음으로 발심함이란 능히 성문(聲聞)의 지위를 뛰어넘음이고, 둘째 행하는 발심이란 능히 벽지불(辟支佛)의 지위를 뛰어넘음이고, 셋째 물러나지 않는 발심이란 능히 안정되지 않은 지위를 뛰어넘음이고, 넷째 일생보처의 발심이란 이미 안정된 지위에 편히 머무는 것입니다.
011_0425_b_02L다시 천자여, 처음으로 발심함이란 법왕의 집에 태어나는 것이고, 둘째 행하는 발심이란 법왕의 법을 배우는 것이고, 셋째 물러나지 않는 발심이란 법왕의 법을 배워 구족하는 것이고, 넷째 일생보처의 발심이란 법왕의 법을 배워 자재로움을 얻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방편의 도이고, 둘째는 지혜의 도이니, 방편이란 선한 법을 포섭할 줄 아는 것이고, 지혜란 모든 법을 여실하게 하는 지혜이며, 또 방편이란 모든 중생을 관찰하는 것이고, 지혜란 모든 법을 여의는 지혜이며, 또 방편이란 모든 법의 서로 응함을 아는 것이고, 지혜란 모든 법의 서로 응하지 않음을 아는 지혜이며, 또 방편이란 인(因)의 도를 관찰하는 것이고, 지혜란 인의 도를 없애는 지혜이다.
또 방편이란 모든 법의 차별을 아는 것이고, 지혜란 모든 법의 차별 없음을 아는 지혜이며, 또 방편이란 불토를 장엄하는 것이고, 지혜란 불토를 장엄하되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지혜이며, 또 방편이란 중생들의 근성에 들어가 행하는 것이고, 지혜란 중생들을 보지 않는 지혜이며, 또 방편이란 도량에 이르는 것이고, 지혜란 일체 부처님 보리의 법을 증득하는 지혜가 그것입니다.
011_0425_c_02L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 요약된 도가 있으니,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도로써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돕는 도이고, 둘째는 끊는 도이니, 돕는 도란 5바라밀이요, 끊는 도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다.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을 이치라 하고, 서로 응하는 것을 지혜라 합니다.”
011_0425_c_20L文殊師利答言:“善男子!義名不相應,智名相應。”
용수행지보살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어째서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을 이치라 하고, 어째서 서로 응하는 것을 지혜라 합니까?”
011_0425_c_21L勇修行智菩薩言:“文殊師利,何謂義名不相應?何謂智名相應?”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文殊師利言:
011_0426_a_02L“선남자여, 이치란 이른바 함이 없는 것이라 저 이치가 한 가지 법도 서로 응하는 것이 없는가 하면, 한 가지 법도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이 없나니, 왜냐하면 변함이 없고 상(相)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이치가 한 가지 법도 서로 응하는 것이 없고 한 가지 법도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이 없는가 하면, 본래 이치를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한 가지 법도 서로 응하는 것이 없고 한 가지 법도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이치란 옮기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나니, 한 가지 법도 서로 응하는 것이 없고, 한 가지 법도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가 있으니, 열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인(因)의 지혜요, 둘째는 과(果)의 지혜요, 셋째는 이치의 지혜요, 넷째는 방편의 지혜요, 다섯째는 슬기로운 지혜요, 여섯째는 포섭하는 지혜요, 일곱째는 바라밀의 지혜요, 여덟째는 대비의 지혜요, 아홉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요, 열째는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이니, 선남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라 합니다.
011_0426_b_02L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내는[發] 것이 있으니, 열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몸으로 내는 것이니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몸의 업[身業]을 청정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입으로 내는 것이니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입의 업[口業]을 청정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뜻으로 내는 것이니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뜻의 업[意業]을 청정케 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안으로 내는 것이니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허망한 분별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바깥으로 내는 것이니 일체 중생들에게 평등한 행을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지혜로 내는 것이니 부처님의 지혜 청정함을 구족하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청정한 불토로 내는 것이니 일체 모든 부처님 국토의 공덕 장엄을 보이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중생들을 교화함으로써 내는 것이니 일체 번뇌 병에 대한 약을 알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진실로써 내는 것이니 정정취[正定聚]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열째는 함이 없는 지혜와 만족한 마음으로써 내는 것이니 일체 삼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내는 것이라 합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행이 있으니, 열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바라밀의 행이고, 둘째는 일을 포섭하는 행이고, 셋째는 슬기로운 행이고, 넷째는 방편의 행이고, 다섯째는 대비의 행이고, 여섯째는 혜(慧)를 돕는 법을 구하는 행이고, 일곱째는 지(智)를 돕는 법을 구하는 행이고, 여덟째는 마음이 청정한 행이고, 아홉째는 모든 진리를 관하는 행이고, 열째는 일체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일에 탐착하지 않는 행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행이라 합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열한 가지 다함이 없는 관(觀)이 있으니, 열한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몸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둘째는 일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셋째는 번뇌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넷째는 법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다섯째는 애욕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여섯째는 소견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일곱째는 도를 돕는 것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여덟째는 취함[取]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아홉째는 집착하지 않는 것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열째는 서로 응하는 것의 다함이 없는 관이고, 열한째는 도량의 지혜 성질의 다함이 없는 관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한 가지 다함이 없는 관이라 합니다.
011_0426_c_02L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대치(對治)하는 법이 있으니, 열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간탐하는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보시의 비를 퍼붓기 때문이며, 둘째는 파계하는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몸ㆍ입ㆍ뜻의 업의 세 가지 법을 청정케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성내는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청정한 대자대비를 수행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게으른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모든 불법을 구하되 지치거나 게으름이 없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불선한 각(覺)ㆍ관(觀)의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선정과 해탈의 빠른 자재를 얻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어리석은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결정된 지혜를 돕는 방편의 법을 내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모든 번뇌의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도를 돕는 법을 내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뒤바뀐 도를 대치하여 진실한 법을 모으고 도를 도와서 뒤바뀌지 않는 도를 내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자재롭지 않는 마음의 법을 대치하는 것이니 때와 때가 아님에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며, 열째는 아상(我相) 지님을 대치하는 것이니, 모든 법의 나 없음을 관하기 때문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대치하는 법이라 합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고요한 자리[寂靜地]가 있으니, 열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몸이 고요한 것이니 세 가지 몸의 불선한 업을 여의기 때문이며, 둘째는 입이 고요한 것이니 네 가지 입의 업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마음이 고요한 것이니 세 가지 뜻의 나쁜 행을 여의기 때문이며, 넷째는 안이 고요한 것이니 자기 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바깥 경계가 고요한 것이니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011_0427_a_02L 여섯째는 지혜 공덕이 고요한 것이니 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뛰어나게 고요한 것이니 성스러운 자리[聖地]를 여실히 관하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미래 경계가 고요한 것이니 저 언덕[彼岸]의 지혜로써 행을 돕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세간의 일을 행하는 것이 고요한 것이니 일체 중생들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며, 열째는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 것이 고요한 것이니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고요한 자리라 합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여실히 수행하여 보리를 얻으므로 여실히 수행하여 보리를 얻지 않는 것이 없나니, 선남자여, 어떤 것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선남자여, 여실히 수행함이란 말한 바 그대로를 수행하기 때문이고, 여실히 수행하지 않음이란 다만 말만 있을 뿐 여실히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지혜로써 여실히 도를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끊음으로써 여실히 도를 수행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합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자신을 조복함에 있어서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 중생들을 교화함에 있어서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합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공용(功用)의 지혜로써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용 없는 지혜로써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합니다.
011_0427_b_02L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1)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자리[地]를 분별하는 것을 잘 알아서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자리의 차별 없는 방편을 잘 알아서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합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자리의 허물을 떠나서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자리와 자리가 바뀌는 방편을 잘 알아서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합니다.
다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성문ㆍ벽지불의 자리를 능히 설하여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부처님 보리의 퇴전하지 않는 방편을 잘 알아서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선남자여,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여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합니다.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 이러한 한량없고 가없는 여실히 수행할 것이 있으니만큼,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여실히 수행할 것을 배워야 하리니,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약 이와 같이 여실히 수행한다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