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부처님께서 승적(勝積)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북방으로 60항하사(恒河沙) 불국토와 구지 나유타(俱胝那由他) 백천 미진(微塵)처럼 많은 세계[刹土]를 지나서 다른 한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이 환락(歡樂)이며, 그곳 부처님의 명호는 법기(法起)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등각(正等覺)이시니라. 현재에도 설법하시고 계시는데, 서신 채로 편안함을 유지하시고 널리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시느니라. 지금 대방광(大方廣)의 법을 설하고자 하시는데 이름을 사자후경(師子吼經)이라 하느니라. 이는 만나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려우니, 그대가 그곳에 가서 법요(法要)를 듣고 수지하라.”
그때 승적보살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서 곧바로 환락세계로 가서 법기부처님을 친견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양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는,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나서 물러나 한쪽에 있었다. 그때 법기부처님께서는 승적보살을 보시고 그에 대해 알고 계시면서도 일부러 이와 같이 질문하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어느 곳에서 왔는가?”
그때 승적보살이 마음에 머물러 안주하여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 그러자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 등 사람인 듯 사람 아닌 것[人非人]과 모든 큰 모임의 대중들이 전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승적보살은 삼계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 질문하시는데, 어째서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이 마음에만 머물러 안주하고 있는 것일까?’
011_0513_b_02L그때 부처님께서 크고 밝게 빛나는 청련화의 눈[靑蓮華目]으로 사자빈신(師子頻申)삼매를 닦으셔서 널리 시방에 보시고는, 대중들이 의심하는 것을 아시고 문득 미소를 지어 커다란 금빛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 사이로 한량없는 백천 가지의 온갖 다른 색들이 뒤섞이어 널리 시방의 일체 국토를 비추자, 대지가 크게 진동하였다.
바로 그때 시방의 여러 보살 대중들이 이러한 신통 변화를 보고는, 온갖 형태와 색깔의 여러 의복들을 가지고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이마를 땅에 대어 부처님 발에 예를 올리고는[頂禮佛足] 제각기 자기 복덕대로 연화장(蓮華藏)을 장엄하고 연화좌(蓮華坐)에 앉았다.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에 한량없는 신통 변화를 보아왔으나, 그 광명과 대지가 진동하는 것이 지금 본 것과 같은 적은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인연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연유로 미소를 지으셨습니까? 오직 자비와 연민을 베푸시어 여기 모인 대중들의 의심을 풀어주십시오.” 그때 전만보살이 게송으로 권청하여 말하였다.
대자대비하신 대도사(大導師)께서 미소를 지으신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이롭게 하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그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옵소서.
011_0513_b_12L大悲大導師, 微笑非無因; 願佛利衆生,
垂哀決定說。
그때 법기여래께서는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이 매우 빛나셨는데 염부단(閻浮檀) 금빛으로 환히 밝게 비추자, 무량 백천 구지 나유타의 미묘한 광명이 흩어져 퍼져나갔는데, 마치 커다란 금빛 기둥 같았다. 전만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한량없이 많은 신통 광명을 보았사온데, 오늘과 같은 것을 예전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전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이 큰 광명의 신통은 여래께서 아주 드물게 나타내시는 것이니, 큰 인연이 아니면 이러한 모양을 보이시지 않느니라. 그러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고 기억하도록 하라. 지금 그대들을 위하여 미소 지은 인연을 설명하리니, 그대들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 밖의 다른 것을 희망하지도 말며, 그대 마음을 견고히 하여 의혹을 내지 말아야 한다.
011_0513_c_02L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원력(願力)과 신통(神通)도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대는 이것을 깊이 생각하여 삼가 의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전만보살이여, 그대는 승적보살이 석가모니부처님의 심부름으로 온 것을 보았는가?”
“선남자야, 이 승적보살은 내가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물어도 마음에 머물러 침묵한 채 나에게 대답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 까닭을 알기에 미소를 지었느니라. 그런데 지금 이 모임의 대중들은 모두 ‘여래가 묻는데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의심하며 괴상하게 여기고 있느니라.
선남자야, 승적보살은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나니, 즉 ‘일체 법은 온 곳도 없고 가는 것도 없거늘 무엇 때문에 세존께서는 나에게 질문하시기를 ≺그대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하시는가?’라고 하는 것이다. 승적보살은 모든 법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 처소를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거늘, 어떻게 어디서부터 왔다고 말할 수 있었겠느냐? 선남자야, 이것은 대략 모든 법의 실상을 말한 것일 따름이니라.
선남자야, 승적보살은 일체의 법에는 문자(文字)도 없고 설법할 것도 없으며 문자의 자성까지도 다 여의었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생겨나는 일도 없고 생겨나는 자성까지도 다 여의었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나아갈 곳도 없고 바른 것에 나아감도 끊어졌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나타나는 것도 없고 의지하는 곳도 없기 때문에, 심(心)ㆍ의(意)ㆍ식(識)을 초월하여 모든 인연을 여의고, 이름도 없고 언설도 없으며 조작함도 없고 보임도 없어서 허물 있는 눈[眼] 등의 길에 쌓아 모아둘 것도 없느니라.
그리고 생겨남이 없기에 생각도 여의어서 처소마저도 없으니, 모든 처소까지도 여읜 법은 오직 한 글자뿐이니, 이른바 ‘무(無)’자이다. 본래부터 언설이 없거늘 어찌 언설로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선남자야, 마땅히 설법할 것 없는 것이 바로 참다운 설법인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정신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건대 분명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어찌해서 일체 중생들이 설법을 하는데, 오히려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하십니까?”
011_0513_c_23L淨身菩薩白佛言:“世尊!惟願顯說,云何一切衆生說法而不知法?”
011_0514_a_02L부처님께서 정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은 밝은 태양빛을 보고 있어도 그 빛을 보지 못하지만, 옆 사람이 그를 위하여 말해 주면 다른 이의 음성을 통해 태양이 있는 줄 아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법이 다 법계에 들어 있지만, 법계에는 본래 문자가 없으며 모든 문자의 자성까지도 다 여의었느니라.
따라서 모든 중생들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인연으로 인해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깊은 골짜기에 일어나는 메아리처럼 골짜기는 본래 비고 소리도 없지만, 인연으로 인해서 메아리 소리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야, 인연이 화합하여 문자와 소리가 나타나는 것이지만, 오히려 중생계(衆生界)는 텅 비어서 아무 문자도 없느니라.
선남자야,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음성과 언어는 전부 4무애지(無礙智)1)에 들어가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따라서 언설(言說)이라는 것은 법무애지(法無礙智)에 해당하며, 언설 아닌 것은 의무애지(義無礙智)에 해당하고, 언설로써 분별하고 나누는 것은 사무애지(辭無礙智)에 해당하며, 현상적인 일로 더불어 상응하여 전혀 막힘이 없게 하는 것은 선설무애지(善說無礙智)에 해당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언설은 전부 이 네 가지 법구(法句)에 포함되지만, 진실한 의구(義句)는 본래 부동(不動)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자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짐작은 하지만, 진실로 보는 것은 아닌 것과 같으니라. 이런 까닭에 선남자야, 법을 구하려는 자는 자신에게서 구해야 하고, 보리(菩提)를 구하려고 하는 자는 5온(蘊)에서 구해야 하느니라.”
이 진실한 의구(義句)를 설할 때 삼천대천세계가 널리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큰 광명이 두루 비추었다. 부처님께서 광장설(廣長舌:넓고 긴 혀)의 모습을 드러내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으시니, 그 설상(舌相:혀의 모습)으로부터 무량 구지 천만 나유타의 백천 광명이 나와 큰 지옥에서부터 위로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의 일체 세계를 광명으로 두루 비추었다. 설상을 도로 거두시고 나서 널리 큰 모임에 말씀하셨다.
그때 세존께서 두 번 세 번 모든 큰 모임을 관하여 보시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일체 세간을 가엾이 여기어 많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법의 재물로써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유익하고 안락하게 하였느니라. 그래서 지금 대사자후(大師子吼)를 설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바세계의 석가모니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현재 설법하고 계시는데, 서신 채로 편안함을 유지하시고 중생들을 안락하게 제도하시나니, 그가 바로 나법기여래이니라. 나는 저 사바세계에서 여러 가지 형상을 지어 중생들을 이롭게 하나니, 진여에 맞게 형상과 부류에 따라 제도도 하고 벗어나게도 하느니라.”
그러자 당시 큰 모임의 대중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모두 기특한 생각을 내어, 기뻐 펄쩍펄쩍 뛰며 일찍이 없었던 것을 얻었다고 한 목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거룩하시고 거룩하셔라. 세존께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사자후(師子吼)를 외치게 하시고자, 큰 모임에서 몸소 사자후의 진실한 법을 설법하셨다.
그러니 만일 이 말을 듣는 자가 있다면 이 사람의 선근(善根)이 적지 않음을 마땅히 알 것이다. 하물며 다시금 받아 지녀 독송하고 널리 펴서 유포하며 갖가지 화만(花鬘)과 갖가지 옷과 깃발ㆍ휘장ㆍ사르는 향ㆍ바르는 향ㆍ가루향 등으로 공경히 공양하는 것이겠는가? 이 사람은 곧 일체 제불(諸佛)의 권속이 되어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011_0514_c_02L그때 부처님께서 여러 보살들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좋은 말이다.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이 말한 것과 같이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의 공덕은 적지 않느니라. 만일 이 부처님의 진실하신 사자후의 법을 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한 번만이라도 훌륭하다고 칭탄하는 자는 내가 다 지켜 보호할 것이며, 또한 미륵불(彌勒佛)의 돌봄과 부름을 입을 것이니라. 이 사람의 두 어깨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짊어지어 저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라도 이 경을 믿어 받아 지닐 것이니, 태어날 때마다 내가 마땅히 성숙케 할 것이고, 또한 미륵불의 수호하심을 입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10아승기 삼천대천세계의 미진(微塵)과 같은 겁 동안 모든 악기(樂器)로써 모든 여래께 공양하고 공급한다 해도, 만일 이 경의 진실한 신통에 대해 듣고는 의심을 품고 믿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곧 부처님께 허물이 있는 것이므로, 모든 부처님에 대한 진실한 공양이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그런데 만일 어떤 선남자가 설법하는 것을 듣고 여래의 이 진실한 덕을 의심 없이 믿어 칭송하고 찬탄한다면, 앞의 공덕에 비해 백천 배나 나을 것이니, 이 사람은 곧 진실로 공양하는 것이리라. 선남자야, 너희들이 만일 나에 대해 마음을 다해 청정하게 믿는다면, 마땅히 즐겨 이 경전을 베껴 쓰고 받아 지녀야 할 것이니라.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모든 부처님께서 노닐며 머무실 것이니라.”
011_0515_a_02L그때 승적(勝積)보살ㆍ전만(電鬘)보살ㆍ상광(常光)보살ㆍ정안(淨眼)보살ㆍ미륵(彌勒)보살ㆍ작무외(作無畏)보살ㆍ관자재(觀自在)보살ㆍ대세지(大勢至)보살ㆍ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ㆍ변적(辯積)보살ㆍ변용(辯勇)보살ㆍ제일체장(除一切障)보살ㆍ작광(作光)보살ㆍ보현(普賢)보살 등 이와 같은 상수(上首) 보살과 84구지 나유타 백천 보살마하살이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후 말법시대에 장차 널리 이와 같은 경전을 유포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아 대열반에 들도록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오랫동안 선근을 심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경전은 그런 사람의 귀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오니, 만일 어떤 이가 이 경전을 받아 지녀 널리 유포한다면 그 공덕을 백천구지 나유타겁 동안 칭찬한다 해도 가히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1)4무애변(無礙辯), 4무애해(無礙解)라고도 한다. 마음의 방면으로는 지(智) 또는 해(解)라 하고, 입의 방면으로는 변(辯)이라 한다. ①법무애(法無礙)는 온갖 교법에 통달한 것. ②의무애(義無礙)는 온갖 교법의 요의(要義)를 아는 것. ③사무애(辭無礙)는 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치 못함이 없는 것. ④요설무애(樂說無礙)는 온갖 교법을 알아 기류(機類)가 듣기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데 자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