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1_0595_a_01L요본생사경(了本生死經)


오(吳) 지겸(支謙) 한역
김성구 번역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연기(緣起)를 보면 법(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면 나를 보는 것이다.”
이때 현자(賢者) 사리불(舍利弗)이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연기를 보는 이는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면 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는 인연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만일 연기에 명(命)과 비명(非命)1)이 없음을 보면 법을 보는 것이며, 법에 명과 비명이 없음을 보면 부처님을 본다는 것이니, 마땅히 이 지혜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일이 있어서 외연기(外緣起)를 보고 두 가지 일이 있어서 내연기(內緣起)를 보니, 합하여 네 가지가 됩니다.
어떤 것이 두 가지 일로 외연기를 보는 것인가 하면, 인상박(因相縛)과 연상박(緣相縛)입니다. 인상박이란 씨에서 뿌리, 뿌리에서 잎, 잎에서 줄기, 줄기에서 마디, 마디에서 꽃, 꽃에서 열매가 생기는 따위입니다. 또 연상박이란, 지종(地種)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ㆍ공종(空種)이니, 이러한 인연을 따라 종자가 있어 저들을 냅니다. 지(地)는 지니고 있는 종[持種]이며, 수(水)는 적시는 종[潤種]이며, 화(火)는 더운 종[熱種]이며, 풍(風)은 일으키는 종[起種]이며, 공(空)은 종자로 하여금 걸림이 없게[無礙] 합니다. 이와 같이 시절을 만나 모인 것이 종자로 하여금 나게 합니다. 그 종자는 자기가 뿌리를 내는 것을 알지 못하고, 뿌리는 종자로부터 있게 된 것을 알지 못하며, 뿌리는 자기가 잎을 내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잎은 뿌리로부터 있게 된 것을 알지 못하며, 잎은 자기가 줄기를 내는 것을 알지 못하고, 줄기는 잎으로부터 있게 된 것을 알지 못하며, 마디와 꽃과 열매도 또한 서로서로 내고 서로서로 있게 된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며, 또 지(地)는 씨앗을 내는 것을 알지 못하고, 씨앗도 지(地)가 자기를 지니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종자도 수(水)가 자기를 적시는 것을 알지 못하며, 내지 화(火)ㆍ풍(風)ㆍ공(空)도 모두 서로 알지 못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와 같이 인연을 따르고 때를 만난 것이 모여서 씨앗을 나게 하지만, 스스로 짓는 것[自作]도 아니고, 남이 짓는 것[他作]도 아니며, 또한 원인이 없이 나는 것[無因生]도 아닙니다.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 외연기(外緣起)를 보니, 첫째는 비상(非常)이며, 둘째는 부단(不斷)이며, 셋째는 불보(不步)며, 넷째는 종불패망(種不敗亡)이며, 다섯째는 상상비고(象相非故)입니다. 그 씨앗이 이미 부서짐이 비상(非常)이며, 뿌리가 있어 나는 것이 부단(不斷)이며, 종자와 뿌리가 다른 것이 불저보(不躇步)이며, 적은 종자로 많은 열매를 얻는 것이 불패망(不敗亡)이며, 열매가 나면 종자와 같으나 뿌리는 종자와 같지 않은 것이 상상비고(象相非故)입니다.
이 두 가지 일 때문에 내연기(內緣起)를 보니 인상박(因相縛)과 연상박(緣相縛)입니다. 어떤 것이 인상박인가 하면, 불명(不明:無明)을 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6입(入)이 있고, 6입을 연하여 갱락(更樂:觸)이 있고, 갱락을 연하여 통(痛:受)이 있고, 통을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수(受:取)가 있고, 수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사우비고만심뇌(老死憂悲苦懣心惱)가 나는 것이니, 이렇듯 다만 크게 괴로운 성품뿐이어서 유(有)의 병을 구족하게 이룹니다.
그 불명은 자기가 행(行)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고, 행은 불명에서 생긴 것을 알지 못하며, 행은 자기가 식(識)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며, 식은 행에서 생긴 것을 알지 못하며, 식은 자기가 명색(名色)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며, 명색은 식에서 생긴 것을 알지 못하며, 6입ㆍ갱락ㆍ통ㆍ애ㆍ수ㆍ유ㆍ생 내지 노사 또한 전전(展轉)하여도 알지 못합니다.
이 불명에서 행이 있고, 행에서 식이 있고, 식에서 명색이 있고, 명색에서 6입이 있고, 갱락ㆍ통ㆍ애ㆍ수ㆍ유ㆍ생ㆍ노사우비고만심뇌도 위와 같이 말하되, 이들은 다만 큰 괴로움의 성품으로서 유(有)를 성취합니다. 만일 그것이 생기지 않으면 노사우비고만심뇌도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 현자여, 인연이 일어나는 까닭에 이 생법(生法)을 연하니, 연기하지만 연생하지 않는 법[緣起不緣生法]이 있고, 연생하는 법이지만 연기하지 않는 것[緣生法不緣起]이 있고, 연기도 하고 연생도 하는 법[緣起緣生法]이 있고, 연기도 하지 않고 연생도 하지 않는 법[不緣起不緣生法]이 있습니다. 연기하지만 연생하지 않는 법이란, 불명(不明)을 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내지 노사(老死)와 큰 고뇌가 갖추어져 있으니, 이와 같이 설한 것을 연기하지만 연생하지 않는 법이라 합니다. 무엇을 연생하는 법이지만 연기하지 않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불명ㆍ행ㆍ식ㆍ명색ㆍ6입ㆍ갱락ㆍ통ㆍ애ㆍ수ㆍ유ㆍ생ㆍ노사와 같은 것이니, 이것을 연생하는 법이지만 연기하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무엇을 연기도 하고 연생도 하는 법이라 하는가? 만일 나서 머무르고 노사가 나기까지 끊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인연상근(因緣相近)과 인유상근(因有相近)과 인미상근(因微相近)과 인제상근(因諦相近)과 인여상근(因如相近)과 무이상근(無異相近)과 불광상근(不狂相近)과 연기상근(緣起相近)을 내고 머무르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법을 연하여 내는 까닭에 수ㆍ애ㆍ통ㆍ갱락ㆍ6입ㆍ명색ㆍ식ㆍ행이 있으니, 이를 연기도 하고 연생도 하는 법이라 합니다.
무엇을 연기도 하지 않고 연생도 하지 않는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도를 얻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불명(不明)이 여섯 가지 종[六種:六界]과 같다고 할 것이니, 여섯 가지 종(種)을 받은 남자나 또는 여자입니다. 무엇을 여섯이라 하는가 하면, 지종(地種)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ㆍ공종(空種)ㆍ식종(識種)이니, 그 몸이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지종이며, 지녀서 흩어지지 않게 하는 따위가 수종이며, 음식을 먹고 누웠으면 잘 소화되게 하는 것이 화종이며, 몸 안에 숨을 내고 들이는 것이 풍종이며, 4대(大)가 지닐 수 없는 것이 공종이며, 따라 움직이는 것이 한 쌍의 화살과 화살 통 같은 것이 식종입니다.
지종은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고 선비도 아니며, 몸도 아니고 몸의 것도 아니며, 어른도 아니고 소년도 아니며, 짓는 것도 짓는 자가 없는 것도 아니며, 머무는 것도 머무는 자가 없는 것도 아니며, 지혜도 지혜로운 이가 없는 것도 아니며, 중생(衆生)도 아니며 우리[吾]도 아니고 나[我]도 아니며, 그들이 없는 것[有無]도 주재가 있는 것[有主]도 아닙니다. 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의 종도 또한 그러하며, 식(識)의 종도 여자도 아니며 남자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며 선비도 아니며, 몸도 아니며 몸의 것도 아니며, 어른도 아니며 소년도 아니며, 짓는 것도 짓는 자가 없는 것도 아니며, 머무는 것도 머무는 자가 없는 것도 아니며, 지혜도 지혜로운 이가 없는 것도 아니며, 중생(衆生)도 아니며 우리[吾]도 아니며 나[我]도 아니며, 내가 없는 것도 주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듯 다만 여섯 가지 종[六種:六界]에서 하나라는 생각[一想], 합한다는 생각[合想]ㆍ여자라는 생각[女想]ㆍ남자라는 생각[男想]ㆍ망상이라는 생각[妄想]ㆍ몸이라는 생각[身想]ㆍ자재한 생각[自在想]이 드는 것이니, 억지로 자재하고자 약간의 종류를 받는 것을 불명(不明:無明)이라 합니다. 때로는 말하기를, ‘성품이 어리석거나 맑거나 항상하다는 생각[常想]ㆍ즐겁다는 생각[樂想]ㆍ몸이라는 생각[身想]이 드니, 의심하고 혐오하는 것은 허망한 것이어서 위되는 요점[上要]이 아니다’라고 하니,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말씀하여 불명이라 하셨습니다. 또는 물질에 물들어 지혜가 나지 못하고 허망한 까닭에 불명이라 합니다. 허망한 까닭에 행이 되고, 물질을 아는 까닭에 식이라 하고, 다섯 가지 성품인 까닭에 명색이라 하고, 명색의 근(根)에 의지하는 까닭에 6입이라 하고, 세 가지가 화합[合]하는 까닭에 갱락이라 하고, 갱락이 시행되는 까닭에 통이라 하고, 통이 즐거운 까닭에 애라 하고, 애가 더욱 넓어지는 까닭에 수라 하고, 수는 다시 행을 갖게 되는 까닭에 유라 하고, 다섯 가지 성품이 구족하게 이루어진 까닭에 생(生)이라 하고, 모든 종(種)이 익어진 까닭에 노(老)라 하고, 명근(命根)이 닫힌 까닭에 사(死)라 하고, 속으로 번열이 나는 것이 우(憂)라 하고, 미친 듯이 지껄이는 것을 비(悲)라 하고, 다섯 가지 식신(識身)에 임하여 합하는 것이 다섯 가지 괴로움이라 하고, 마음과 식과 몸이 합하는 것이 만(滿)이라 하고, 심념(心念)이 피로한 것이 뇌(惱)라 하고, 유(有) 때문에 유(有)를 내니, 이렇듯 보는 것 아는 것의 장애를 드러내면, 이 말은 큰 괴로운 성품을 구비하고 만족하게 갖추었다 할 것이며, 이로부터 흉하고 쇠퇴하여져서 옛 것에 집착하여 다시 생기니, 그 시초는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며,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또 어두운 것이 불명의 뜻이며, 짓고 이루는 것이 행의 뜻이며, 아는 것이 식의 뜻이며, 연하여 머물되 끼리끼리 서로 의지하는 것이 명색의 뜻이며, 주재[主]하나 마음대로[專] 하지 못하는 것이 6입의 뜻이며, 다시 합하고 모이는 것이 갱락의 뜻이며, 아는 것을 따름이 통의 뜻이며, 목마른 듯이 물건을 얻고자 하며 불같이 싫어하지 않는 것이 애의 뜻이며, 취하는 것이 수의 뜻이며, 마땅히 다시 있게 된 것이 유의 뜻이며, 다섯 가지 성품을 우러르면 생의 뜻이며, 익는 것이 노의 뜻이며, 행이 이지러짐이 사의 뜻이니, 이렇듯이 뜻으로 말하여도 또한 12연기의 모습이 됩니다.
또 불명을 좇아 복덕에 가까운 행을 짓거나 죄적(罪賊)에 가까운 행을 지으니, 이것이 불명을 연하여 행이 있는 것이며, 모든 행이 있는 까닭에 복과 복 아닌 것을 가까이하여 식(識)이 있게 되니, 이것이 행을 연하여 식이 있는 것이며, 식에 의하여 성품의 행을 짓고 명색이 구족하게 이루어지니, 이것이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는 것이며, 이렇게 연생(緣生)하여 짓고, 지으면 곧 받으니, 이것이 명색을 연하여 6입(入)이 있는 것이며, 안식(眼識)이 모이는 것이 갱락(更樂:觸)이니, 이것이 6입을 연하여 갱락이 있는 것이며, 갱락과 같아서 통(痛:受)의 알음알이도 그러하니, 이것이 갱락을 연하여 통사(痛死)가 있는 것이며, 통을 알지 못하는 것을 행이 달라진 것이라 하는 까닭에 사랑하는 모양을 좇아 문득 취하니, 이것이 통을 연하여 애(愛)가 있는 것이며, 사랑하는 모양에서 다시 삼키는 것이니, 이것이 애를 연하여 수(受:取)가 있는 것이며, 수는 몸과 입과 뜻의 셋으로 행하니, 이것이 수를 연하여 유(有)가 있는 것이며, 유의 운행이 피로하여 마땅히 다시 유가 구족하게 이루어져서 생겨야 함이니, 이것이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는 것이며, 다섯 가지 성품이 이미 이루어진 까닭에 노사(老死)가 있으니, 이것이 12연기가 돌고 돌면서 전업(田業)을 조작하고, 식은 종자의 행을 지으며, 불명은 행을 대하는 일을 짓는다 합니다.
마치 지(地)가 종자를 지니고, 수(水)는 종자를 흩어지지 않게 하고, 화(火)는 종자를 익어지게 하고, 풍(風)은 종자를 일어나게 하고, 허공은 종자를 끊임없게 함과 같이, 행이 전업을 조작하는 것도 그러하여서, 애(愛)는 행을 적시는 일을 하되, 그 행은 내가 전업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애(愛)는 자기가 행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며, 식도 자기가 종자의 행을 짓는 것을 알지 못하며, 불명은 자기가 행의 상대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니, 마치 지(地 )는 자기가 종자를 지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수ㆍ화ㆍ풍ㆍ공도 위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유(有)의 행이 피로하므로 마땅히 다시 유가 구족하게 이루어져서 생길 것이나, 이도 또한 이 세상에서부터 답보[躇步]하는 일이 없고, 다만 인연으로 서로 유지합니다. 비유컨대 거울이 맑고 환하면 안과 밖을 연하여 얼굴의 모습을 내지만, 얼굴이 여기서 죽어 그 거울 속에 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얼굴이 있는 인연이 이지러지지 않음을 좇아 이는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정이 있을 인연이 이지러지지 않음을 따라 이에서 수(受)가 있으니, 불길과 같은 수(受)는 끊임없이 나타나서 밤낮으로 타오르되 그 불꽃이 쉬지 않으니 식(識)도 그러합니다. 신상박(身相縛)으로써 다섯 갈래에 오가는 것이 아니며, 인연이 있는 까닭에 생기니 이 법은 주재가 없습니다. 비유컨대 달이 49유순 위에 둥글면 둥근 그림자는 아래의 물속에 비치되, 인연이 있으면 이지러지지 않는 것처럼, 그 달이 저곳에서 죽어서 이곳에 태어난 것 아니니, 생사를 관찰함도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상박(因相縛)입니다.
어떤 것이 연상박(緣相縛)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되, ‘눈[眼]은 색(色)을 연하여 안식(眼識)이 있되 그 눈은 자기가 의지하는 행위를 하는 줄 알지 못하며, 색(色)은 자기가 식의 상대가 된 것을 알지 못하며, 밝음은 자기가 식에게 비추어 줌을 알지 못하며, 공(空)은 자기가 식으로 하여금 걸림 없게 함을 알지 못하며, 식은 자기가 이러한 작유(作有:作爲)를 내는 줄 알지 못합니다. 눈ㆍ색ㆍ맑음ㆍ허공ㆍ생각이 안식으로 하여금 구족하게 성취하여 나게 하여, 이(耳)ㆍ비(鼻)ㆍ구(口)ㆍ신(身)ㆍ심(心)은 법(法)을 연하여 심식(心識)을 냅니다. 저 눈은 자기가 식의 의지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법은 자기가 식에게 행[行動]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며, 마음[心]은 자기가 식에게 밝음이 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며, 허공은 자기가 식으로 하여금 걸림 없게 하는 것을 알지 못하며, 식은 자기가 이러한 인연을 이루는 것을 알지 못하니, 이와 같이 아난아, 연(緣)ㆍ심법(心法)ㆍ명(明)ㆍ공(空)ㆍ염(念)이 심식으로 하여금 구족하게 성취함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짓는 것[自作]도 아니고, 남이 짓는 것[彼作]도 아니며, 둘이 지은 것도 아니고, 원인이 없이 생긴 것도 아니며, 자기 때문도 아니며, 남 때문도 아니며, 원인이 없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내연기를 봅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비상(非常)ㆍ부단(不斷)ㆍ불보(不步)ㆍ소행다보(少行多報)2)ㆍ상상비고(相象非故)이니, 그가 죽으면 몸이 이미 부서짐이 비상이며, 출생하여 신분(身分)이 있는 것이 부단이며, 혹 함께 가거나 다르게 가서 분수가 다른 까닭에 불보이며, 소행다보라는 것은 이른바 행(行)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며, 행위와 같이 과보를 내는 것이 옛집[故家]이 아닙니다.3) 만일 이 연기에 명(命)과 비명(非命)이 없음을 보면 법을 보는 것이며, 법에 명(命)과 비명(非命)이 없음을 보면, 4제(諦)인 괴로움[苦]과 원인[集]과 멸함[滅]과 길[道]을 보는 것이니, 비유컨대 밝은 사람이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면 그 그림이 좋고, 화가가 묘함을 찬탄하니, 4제를 보는 것도 그러합니다.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와 일체견(一切見)은 이로부터 기쁨을 얻어 부처를 떠나지 않으며, 법다운 무리의 지진(至眞)한 계를 얻어 기쁨을 떠나지 않습니다.
011_0595_a_01L了本生死經吳月氏優婆塞支謙譯佛說是若比丘見緣起爲見法已見爲見我於是賢者舍利弗謂諸比丘言諸賢者佛說若諸比丘見緣起爲見法已見法爲見我此謂何義說有緣若見緣起無命非命爲見法見法無命非命爲見佛當隨是慧有二事見外緣起有二事見內緣起合爲四何謂二事見外緣起爲因相緣相縛因相縛爲何等從種根根葉從葉莖從莖節從節懷華從華是爲因相縛何謂緣相縛爲地種水種火種風種空種從是因緣有種生彼地爲持種水爲潤種火爲熱種風爲起種空爲令種無㝵如是得時會令種生彼種不知我生根根不知從種有根不知我生葉葉不知從根有葉不知我生莖莖不知從葉有節懷華實亦不自知轉相生有又地不知我生種種亦不知地持我水亦不知我潤種種亦不知水潤我至火風空皆不相知是諸賢者從因緣有得時會令種生爲非自作非彼作非無因生當以五事見外緣起何謂一非常二不斷三不步四種不敗五相象非故彼種已壞爲非常根出爲不斷種根分異爲不躇步種多生實爲不敗亡實生如種根種爲相象非故當知是二事見內緣因相縛緣相縛何謂因相縛緣不明行緣行識緣識名色緣名色六入六入更樂緣更樂痛緣痛愛緣受緣受有緣有生緣生老死憂悲苦懣心惱如是是但大苦性具成有病彼不明不知我作行行不知從不明行不知我作識識不知從行有不知我作名色名色不知從識有更樂至于老死亦轉不知是從不明有行從行有識從識有名色從名色有六入更樂老死憂悲苦懣心惱如上說但大苦性具成有彼若無生則無老死憂悲苦懣心惱是諸賢者因緣起緣是生法有緣起不緣生法有緣生法不緣起有緣起緣生法有不緣不緣生法何謂緣起不緣生法緣不明行緣行識緣識名色至于老大苦惱具成有如上說是謂緣起非緣生法何謂緣生法非緣起爲如不明名色六入更樂老死是謂緣生法非緣起也何謂緣起緣生法若出生住不斷老死之是出生住因緣相近因有相近微相近因諦相近因如相近無異相不狂相近緣起相近以緣生如是有受更樂六入名色行是謂緣起緣生法何謂不緣起不緣生謂得道者彼何謂不明爲如六種六種受若女若男何謂六爲地種火種風種空種識種彼身得住爲地種如持不散是爲水種飮食嘗臥得善消是爲火種身中出息入是爲風種四大所不能持是爲空隨轉如雙箭笮是爲識種如彼地非女非男非人非士非身非身所非人生非少年非作無作者非住無住者非智無智者非衆生非吾非我非彼有無有主空種亦如是識種非女非男非人非士非身非身非人生非少年非作無作者非住無住者非智無智者非衆生非吾非非我有無有主如是但從六種一想爲合想爲女想爲男想爲妄想爲身想爲自在想爲强自在受若干種故爲不明時說曰性癡淨常想想#身想疑嫌妄非上要佛說是不明亦爲染於物無慧生妄故爲不明故爲行知物故爲識五性故爲名色猗名色根故爲六入三合故爲更樂更樂行故爲痛痛而樂故爲愛愛彌廣故爲受受當復有行故爲有五性具成故爲生諸種熟故爲老命根噤閉故爲死熱中爲憂誑語爲悲臨五識身合爲五苦心識身合爲懣心念勞爲惱有故生有如是見知障顯說具滿大苦性足從是受凶衰著故復生其始不可見知不可度量又冥爲不明義作成爲行義知爲識義住彼彼相倚爲名色義主亦不專六入義更亦合會爲更樂義從知痛渴欲得物如火無厭爲愛義取爲受義當復有爲有義五性仰爲生義熟爲老義行虧爲死義如是義說爲十二緣起相又從不明近福德行作近罪賊行作是謂緣不明行有諸行故近福不福而有識是謂緣行識由識作性行名色具成生是謂緣識名色是緣生作作輒受是謂緣名色六入眼識會更樂是謂緣六入更樂如更樂痛知亦爾是謂緣更樂痛死不知痛者爲行別故從愛象輒取謂緣痛愛從愛象更吞是謂緣愛受受爲三行身口意是謂緣受有行勞當復有具成生是謂緣有生性已成故有老死是爲十二緣起轉宛轉造作田業識造種行不明造對行如地持種水令種不散火令種風令種起空令種無㝵行造田業亦如是愛造潤行彼行不知我造田愛不知我爲潤行識不知我爲種不明不知我爲對行如地不知我持種空如上說從有行勞復有具成生此亦無有從是世躇步但因緣相持譬如鏡淨明朗緣內生面象面亦不死此生彼鏡中從有面因緣不虧是不死此而生彼有苦情因緣不虧從是有受如火以不斷現晝夜然其炎不步識亦如不身相縛往來五道有緣故生法無主譬如月圓四十九由延而圓形現於下水有緣不虧非月死彼而於此生觀生死當如是是爲因相縛何謂緣相縛如佛告阿難眼緣色生眼識彼眼不知我作猗行色不知我爲識對明不知我爲識照空不知我令識無㝵識不知我生此作有令眼識具成生緣法生心識彼眼不知我爲識作猗不知我爲識作行心不知我爲識作明空不知我令識無㝵識不知我成此因緣是阿難緣心法明空念心識具成生而此非自作非彼作兩作非無因生非我故非彼故非無因有當以五事見內緣起何謂五不斷不步少行多報相象非故如死際身已壞爲非常出生有身爲不斷或同去或異去分異故爲不少行多報謂行不敗亡如行報生非故家也若見此緣起無命非命見法見法無命非命爲見四諦苦習盡道譬如明人見師成畫歎其畫好師妙見四諦者亦如是佛一切知一切從是得喜不離佛得法衆至眞戒喜不離了本生死經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이 『요본생사경』의 이역본이라 할 수 있는 『대승사려사담마경(大乘舍黎娑擔摩經)』ㆍ『불설도간경(佛說稻竿經)』ㆍ『자씨보살소설대승연생도간유경(慈氏菩薩所說大乘緣生稻簳喩經)』 등에는 “……연기에 명(命)과 비명(非命)이 없음을……”이라고 하는 부분이 없다. 또한 이 경은 전반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다른 세 가지에 비해서 명쾌하지 못하다. 참고로 명과 비명은 인도 자이나교에서 쓰던 용어로서, 명(命, jīva)은 정신을 말하고, 비명(非命, ajīva)은 명에 반대 되는 개념으로 다음의 넷으로 나뉜다. ① 법(法, dharma:운동의 조건), ②비법(非法, adharma:정지의 조건), ③공간(空間, ākāśa:장소), ④물질(物質, pudgala).
  2. 2)소행다보가 앞의 외연기에서는 종불패망(種不敗亡)으로 되어 있다. 씨가 많은 열매를 얻음으로써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행위도 없어지지 않고 행위의 대상에 따라서 많은 과보를 얻는 것을 말한다.
  3. 3)내연기의 다섯 가지 가운데 마지막인 ‘상상비고(象相非故)’의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행위와 같이 과보를 내는 것이 옛집[故家]이 아닙니다(如行報生非故家也)” 부분에서 원문에 누락된 것이 있는 것 같다. 다른 경전(『大乘舍黎娑擔摩經』)을 참고해 보면, 상상비고의 원래의 뜻은 “서로 비슷함”, 혹은 “서로 비슷한 것이 상속함”인데, 이는 지은 업과 전혀 다른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원문의 “여행보생비고연야(如行報生非故家也)”에서 “비고(非故)” 앞에 “상상(象相)”이 들어가야 하고, “가야(家也)”는 잘못 들어가거나, 그 앞에 다른 설명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들어갈 문장을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다. “행위와 같이 과보를 내는 것이 상상비고(象相非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