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성(毗舍離城)의 대림정사(大林精舍)에서 큰 비구의 대중 42억 백천 명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보살마하살 80억 명도 함께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 ‘석 달 뒤에 반열반(般涅槃)에 들어가겠다’라고 스스로 생각하시고, 바로 장로(長老)인 대목건련(大目健連)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삼천대천세계의 3승(乘)을 구하는 사문들에게 알려 모두 대림정사에 모이도록 하여라.” 이에 목건련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히 받들어, 신통력으로써 1념 사이에 수미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큰 음성을 내어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다 알아듣도록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세계의 불자님은 잘 들으시오. 부처님께서 지금 법비[法雨]를 내리려 하시니 한 분도 빠짐없이 법회에 오소서.
때에 목련(目連)이 게송을 연설하고 나자마자 42억 백천의 비구들이 대림정사에 모였다. 바로 그때 장로인 사리불(舍利弗)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도 지금 신통력으로 모든 마을에 있는 사문들을 이 대림정사에 다 모이도록 하리라.’ 그리고 곧바로 신통을 나타내어 30억 백천의 사문들이 대림정사에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법왕자(文殊師利法王子)보살ㆍ이일체우(離一切憂)보살ㆍ이제경계(離諸境界)보살ㆍ봉변무진(峯辯无盡)보살ㆍ기제개(棄諸盖)보살ㆍ불공견(不空見)보살ㆍ구악취(救惡趣)보살ㆍ관자재(觀自在)보살ㆍ향상(香象)보살ㆍ자씨(慈氏)보살 등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그대들은 시방세계의 항하강 모래알처럼 수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서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ㆍ아비발치(阿鞞跋致)보살ㆍ득무생인(得無生忍)보살 등에게 자세히 알려서 대림정사에 모이도록 하여라.” 바로 그때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의 거룩하신 뜻을 받잡고 제각기 가야 할 세계에 가서 알리니, 그 모든 세계에 살고 있는 80억 백천의 일생보처보살ㆍ억 백천의 아비발치보살ㆍ30억의 무생법인(無生法忍)보살ㆍ60억의 정의해탈(淨意解脫)보살, 이러한 등의 보살마하살들이 모두 다 법회에 모였다. 그리고 다시 보살심(菩薩心)을 처음으로 일으킨 이들과 법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근기(根器)로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보살들이 모두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잡고 제각기 본토(本土)에서 허공을 타고 날아와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서 머물렀다. 그때 사리불이 모든 보살들의 종류[品類]가 다르고 세계가 다른데도 일제히 다함께 허공을 타고 날아와 모인 것을 보고 마음에 의심을 내어 생각하였다. ‘여래의 공덕과 신력(神力) 때문인가? 무슨 인연 때문에 이 법회에 왔는가? 이제 부처님께 여쭈어 이 법회의 모든 보살의 대중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의혹(疑惑)하는 마음을 다 제거하고 항하강 모래알처럼 수많고 걸림이 없는 변재를 얻고 모든 여래께 들은 법을 수지(受持)하여 의심이 없고 잊어버림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도록 하리라. 그러고 나서 보살의 네 가지 청정무진법문(淸淨無盡法門)을 속히 얻도록 하겠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이를테면 중생청정(衆生淸淨)ㆍ법문청정(法門淸淨)ㆍ변설청정(辨說淸淨)ㆍ찬불토청정(讚佛土淸淨)이다. 다시 네 가지 미묘하고 훌륭한 법을 얻게 하겠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이를테면 몸이 미묘하고 훌륭[身相妙好]하며, 입이 미묘하고 훌륭[口相妙好]하며, 마음이 미묘하고 훌륭[意上妙好]하며, 방편이 미묘하고 훌륭[方便妙好]함이다. 다시 깨달음에 들어가는 네 가지 다라니문(陁羅尼門)을 얻게 하겠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이를테면 수지무진(受持無盡)다라니문ㆍ통달심법(通達深法)다라니문ㆍ선입중생제근방편(善入衆生諸根方便)다라니문ㆍ보능분별선악업보(普能分別善惡業報)다라니문 등이다.’ 그때 사리불이 이러한 의심 때문에 생각나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무엇이 보살이 생각을 움직여 각관(覺觀)하는 것이며, 무엇이 보살이 청정한 지혜로 한량없이 결택(決擇)하는 것입니까? 오직 원하옵나니 여래께서 저를 위하여 말씀해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불아, 그대가 지금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되고 안락하도록 하고 인ㆍ천을 가엾게 여겨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려고 여래에게 이와 같은 이치를 묻는구나. 사리불아, 그대가 처음 배우는 보살로 하여금 깊은 법을 깨달아 알고 빨리 한량없는 변재방편(辯才方便)을 얻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대는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내가 이제 그대를 위해서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예 알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가르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때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모든 보살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광대한 마음을 내어 염착(染著)하는 마음이 없고 취하려는 마음이 없으며 버리려는 마음이 없이 이 다라니를 수지하고 송념(誦念)해야 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다음 다라니를 연설하였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로서 만약 이 다라니를 수행하는 이라면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을 분별하지 않고 취하지 아니하며, 집착하지 않고 더하지 아니하며, 줄지 않고 만들지 아니하며, 합치지 않고 흩뜨리지 아니하며, 나게 하지 아니하고 없애지 아니하며,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모든 법을 적집(積集)하여 섭취(攝取)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단지 모든 부처님은 물질이 아니고 물질이 아닌 것도 아니며, 모양이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보살은 이승(二乘)이 부처님의 색신을 취하는 것과는 같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이 취하는 부처님의 색신은 장엄한 상호와 광명이 비추이나 부모가 낳고 기르고 음식으로 혈육과 근골을 키운 것이니, 4대의 합성이라, 무상하여 변화하고 허물어지며 고뇌하는 청정하지 못한 것으로 부처님 색신을 삼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태어남이 없는 모습[無生相]이기 때문에 널리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법에 밝게 비추지 않음으로써 지혜의 자량(資糧)을 모으고 법신(法身)이 허공의 모습이며 생겨남이 없는 모습임을 나타내나니 여래의 법신은 태어남이 없는 모습으로 색온(色蘊)을 삼으며 다시 태어남이 없는 모습의 매우 깊은 이치는 모든 법의 바탕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모든 보살들은 물질이 아닌 것[非色]으로 여래의 모습을 취하지 않느니라. 만약 물질이 아닌 것으로 여래의 모습을 취한다면 곧바로 성문들처럼 ‘부처님께서 적멸(寂滅)한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시면 색신(色身)이 단멸(斷滅)되어 다시는 태어나는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느니라. 그러나 보살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여래의 몸은 다함이 없는 모습[無盡相]이기 때문이니라. 널리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법에 밝게 비추어 색신을 드러내어 나타내지 않고 법으로써 모습을 지으며 복덕의 자량을 모으느니라. 여래의 색신은 다함이 없는 모습이기 때문에 다함이 없음으로써 색온[無盡色蘊]을 삼느니라. 이러한 연고로 모든 법도 다함이 없는 모습이니라. 만약 중생계(衆生界)에서 제도하여 해탈시키되 아직 다하지 못하면 여래는 항상 나타나나니 색신이 다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때는 불신(佛身)ㆍ보살신(菩薩身)ㆍ연각신(緣覺身)ㆍ성문신(聲聞身)ㆍ범천신(梵天身)ㆍ제석신(帝釋身)ㆍ대자재신(大自在身)ㆍ나라연신(那羅延身) 등을 나타내며, 혹은 국왕ㆍ대신(大臣)ㆍ장자(長者)ㆍ상주(商主)ㆍ양의(良醫) 등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사문ㆍ바라문ㆍ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장부(丈夫)ㆍ부녀(婦女)ㆍ동남(童男)ㆍ동녀(童女) 더 나아가 금수(禽獸) 등의 몸을 나타내나니 이 모두 다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기 위해 방편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라. 또 보살은 성문과 연각처럼 여래의 32상(相)에 집취(執取)하여 ‘부처님의 색신(色身)도 부모에게서 태어나 뼈와 살이 화합한 것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 하면 여래의 몸은 허공의 모양과 생겨남이 없는 모습이기 때문에 널리 중생을 위하되 지혜를 모으는 자량(資糧)을 분명히 비추지 않고 모든 법에서 법신을 나타내느니라. 이것이 부처님의 법신은 모습[相]에 들어가는 일이 없으며, 다함이 없는 모습으로 짐짓 서른두 가지 상호를 나타내어 보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생겨남이 없는 매우 깊은 이치는 모든 법의 바탕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보살들은 반드시 성문ㆍ연각과 같이 부처를 취하되 모습에서 취하지 않으며, ‘부처님은 적멸(寂滅)한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시면 모든 모습이 다 없어져서 다시는 태어나는 일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다함이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니라. 널리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법에서 밝게 비추어 색신을 드러내어 나타내지 않되 법으로써 모습을 짓고 복덕의 자량을 모으느니라. 그리고 여래의 색신이 다함이 없는 모습이기 때문에 32상도 다함이 없는 모습이며, 그러므로 모든 법도 다함이 없는 모습이니라. 만약 중생계를 제도하여 해탈시키되 아직 다하지 못하면 여래는 항상 모든 모양으로써 몸을 장엄하여 광명을 드러내 나타내나니, 그 모습에서 다시 기이하고 한량없는 모든 모습을 나타내느니라. 그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가? 이를테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국토이니, 그 모습 가운데 다 그림자로 나타나느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이러한 것을 보고 듣는다면 믿고 이해하여 깨달아 보리심(菩提心)을 기르나니, 이를 말미암아 보살은 반드시 모습이 아닌 것[非相]으로써 여래를 취하지 않느니라. 또 보살은 성문이나 연각처럼 여래의 80종호(種好)를 집착하고 집취하지 않아야 하며, 더 나아가 없어지는 모습[滅相]에 대해서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해야 하느니라. 만약 중생의 세계를 제도하여 해탈시키되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면 여래는 항상 80종호로써 몸을 장엄하고 광명으로 비추어 밝히되 그 종호에서 다시 기이하고 다함이 없는 모습을 나타내느니라. 그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가? 이를테면 내가 처음 발심했을 때의 몸은 국왕이었는데 광명(光明)이라고 이름하였고, 연등(燃燈)여래를 만나서 수기(授記)를 받은 일과, 더 나아가 차례대로 3아승기겁에 이를 때까지 그 동안에 있었던 온갖 고행을 하나하나 모두 80종호 가운데에 나타내느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이러한 것을 보고 듣는다면 믿고 이해하여 깨달아 보리심을 기르나니 보살은 이를 말미암아 반드시 80종호의 없어지는 모습에 집착하여 취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리고 가족ㆍ권속ㆍ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과 가지 않을 곳, 도달할 곳, 얻을 바가 없는 것, 더럽지 않은 것과 깨끗하지 않은 것과 지혜롭지 않은 것, 어리석지 않은 것, 법을 말할 것이 없는 것, 나의 깨끗하지 않은 것, 중생의 깨끗하지 않은 것,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것, 남에게 이롭지 않은 것, 생겨나지 않은 법, 없어지지 않는 법과 청정하지 않은 신(身)ㆍ어(語)ㆍ의(意) 3업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아닌 것, 자기를 위함이 아닌 것, 남을 위함이 아닌 것 등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이렇게 보살이 처음부터 여래의 색신(色身)ㆍ온(蘊)ㆍ계(界)ㆍ처(處)를 관찰하여 이와 같이 성취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억념(憶念)하는 대상이 되어 이 법문에 들어가느니라. 그리고 그때 보살이 이 법문의 청정한 보리성(菩提性)이 능히 여래의 무상진정보리법신(無上眞淨菩提法身)이요, 모든 여래법신(如來法身)의 바탕이며,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이 행할 경계가 아니고, 이승(二乘)과 초학보살(初學菩薩)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아느니라. 왜냐하면 이러한 대중들은 색신의 모양ㆍ온ㆍ처ㆍ계, 더 나아가 32상과 80종호를 좋아하고 집착하며 수행하기 때문이니라. 반드시 알아라. 과거 처음 배우는 보살도 이 법문의 청정한 보리성(菩提性)으로 모두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으로 색신ㆍ온ㆍ계 등의 입장에서 닦아 익혔느니라. 그러므로 보리는 이와 같은 법문으로 성립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색신으로써 세간법을 수순하며, 중생도 이 색신을 통해서 3보(寶)에 공양 올리고 보살의 6바라밀행과 4섭법(攝法)을 닦아 익히며, 보살도 이 법문으로 세간 안팎의 모든 법을 두루 일으키나니, 혹 온ㆍ처ㆍ계를 일으키고, 혹 32상과 80종호, 더 나아가 혹 부모와 권속이 되기도 하고, 계ㆍ정ㆍ혜를 닦고, 해탈ㆍ해탈지견을 닦으며, 모든 약초ㆍ꽃ㆍ열매ㆍ감로(甘露)ㆍ백곡(百穀)ㆍ어린 묘목으로써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방편을 늘어놓느니라. 만약 보살이 첫 구절에서 보리청정법신을 깨달아 알고, 다시 뒷 구절에서 색신을 안립하면 곧 모든 지혜로운 분들로부터 인가(印可)됨을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어리석은 중생들은 세간업에 얽매여서 내 것을 탐내어 집착하여 진제(眞諦)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일체지심(一切智心)이라고 일컫지 않느니라. 이승(二乘)이 비록 승의제(勝義諦)의 지혜가 있다고 하나 생사(生死)를 없애는 방법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일체지심이라고 일컫지 않느니라. 그러나 모든 부처님 여래는 승의(勝義)ㆍ세속(世俗)의 2제(諦)를 구족히 아시고 지혜가 다함이 없고 행원(行願)이 만족하고 큰 보리를 얻고 다시 모든 선근삼매(善根三昧)에 들어갔기 때문에 일체지심이라고 일컫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어리석은 중생과 성문ㆍ연각과 모든 보살들이 얻은 수승한 복덕도 다 모든 부처님의 공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여래가 성취한 등정각(等正覺)도 모두 출생무변문다라니(出生無邊門陁羅尼)의 위력(威力)으로 성취하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 경은 모든 선근(善根)이 나오는 근본이며, 모든 법문(法門)을 쌓아 모으는 창고이며, 종성(種性)이 청정하여 마군(魔軍)을 뛰어 넘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리불아, 만약 모든 보살들이 이 『출생무변문다라니경』을 듣는다면 위없는 보리에서 모두 물러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경은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를 갖추어 나타내고 그 공덕을 찬탄하였으니 모든 중생들의 나고 죽는 업행(業行)을 파괴하여 번뇌에 물들지 않게 하는 법식(法式)이기 때문이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그대들이여, 5욕락에 집착하지 말라. 모든 법은 텅 비었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보리(菩提)에도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보리와 열반에도 마음에 의혹을 내지 말라. 만약 이렇게 수행하면 속히 다라니를 얻느니라.
이 경을 듣고서 지혜와 공함과 형상 없음과 생겨남과 멸함이 없음을 익히면 속히 보리를 증득하리라.
보살이 이 경을 지니면 한량없는 법을 깊이 이해하고 모든 부처님의 국토마다 태어나 가장 뛰어나고 존귀한 분을 친견하리라.
다라니를 얻으면 깊은 이치를 결정하여 두려워 물러서는 마음 일지 않고 다함이 없는 법을 받아 지니느니라.
시방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의 그 설법 모두 다 듣고 그대로 받아 지니어 머리에 이고 받들어 행하느니라.
만약 이 경을 받아 지니면 문자(文字)와 명구(名句)와 말한 바 미묘한 이치에 대해서 끝내 의심하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없느니라.
마치 해와 달의 광명이 두루두루 다 비추듯이 이 법문(法門)을 요달하여 한량없는 이치를 통달하여 아느니라.
이 경을 송하여 지니기 때문에 가장 수승한 법(法)인 다라니묘문(陁羅尼妙門)을 곧바로 스스로 열어 아느니라.
설사 1겁(劫) 동안 모든 중생들이 깊은 의혹을 지녔어도 모두 죄다 이 경을 수지한 이에게 물어라.
때맞추어 경을 지닌 보살들이 다함께 연설해 주어 의혹의 그물을 다 제거해 주리니 보살의 지혜는 다함이 없느니라.
이 경을 사랑하기 때문에 속히 보리를 가까이 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참된 불자(佛子)는 비밀장(祕密藏)을 호지하느니라.
이 다라니를 지니면 중생들이 모두 다 공경히 생각하며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다함께 칭찬하사 명성이 시방세계에 드날리리라.
이 경을 수지했기에 목숨을 마치려 할 적에 80억 부처님을 친견하고 손을 펴시어 다함께 붙잡아 이끄시느니라. 다함께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그대는 나의 국토에 왕생할지니라. 이 경을 송하여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복덕을 누리느니라.
만약 백천억 겁 동안 지은 죄업 반드시 받아야 할 이는 이 다라니를 송하라. 한 달 사이에 청정하게 되리라.
보살이 억 겁 동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익혀도 한 달 동안 이 경을 송하면 그 복이 저 복보다 뛰어나느니라.
잘 생각하여 지혜롭게 정진하면 『삼매다라니경(三昧陁羅尼經)』이 항상 눈앞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여래지(如來地)에 이르느니라.
삼계(界)의 모든 중생들이 일시에 다 마군(魔軍)이 된다 해도 이 경을 송하고 지니면 조금도 장애를 받지 않으리라.
이 경 가운데 해석한 모든 법문은 일체지(一切智)라 말하나니 이를 인하여 정각(正覺)을 이루느니라. 내가 이 경을 들음으로 인하여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하셨느니라. 그대는 부처가 되어 모든 중생들을 해탈케 하리라고.
그때 모든 부처님을 뵈오니 항하강 모래알 같은 수의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 다 알 수 있었느니라.
만약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지니고자 하면 이 경을 부지런히 닦고 배우라. 그러면 속히 이러한 힘을 얻으리.
뛰어나게 장엄된 국토의 큰 법회에 모인 모든 거룩한 대중들의 빛나는 모습과 미묘한 종족 모두 이 경을 통하여 이루어지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레 동안만 이 경을 자세히 사유해도 80억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러한 법을 연설해 주시리라.
삿된 생각은 삼가하여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생각하지 말라. 지혜로 바르게 생각한다면 재빨리 이 경전을 얻으리라. 이 법문을 부지런히 닦고 보리가 멀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마치 사람이 보배섬에 이르러 마음대로 뭇 보배를 채취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이 다라니를 지녔다면 좋은 과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인⋅천의 즐거움을 완전히 갖추고 부처님의 지위에 가까이 하기 어렵지 않으리.
만약 하루 속히 부처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이 경전을 지닐지니 필경엔 결정코 위없이 큰 보리 증득하리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이 다라니를 얻어야 하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 애욕을 즐기지 않는 것이요, 둘째 질투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 모든 중생들에게 희사(喜捨)하되 성내거나 고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요, 넷째 밤낮으로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깊게 법 구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보살이 이와 같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려면 이 다라니를 얻어야 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읊으셨다.
애욕의 치성한 불길 지옥에 들어가는 길이며 마왕(魔王)이 도를 장애함이니 하루라도 빨리 멀리 떠나야 하느니라.
게으름 피우며 지은 모든 죄악업으로 지옥에 태어나 그 속에서 돌아다니며 수많은 세월 동안 쉴 날이 없네.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이익과 명성의 마음 끊어 버리며 자비스런 눈으로 가난한 이를 보살피면 이와 같은 지위를 얻으리.
모든 언쟁(言諍)과 소송(訴訟)과 탐애(貪愛)하고 인색한 마음을 모두 다 끊어 제거하면 이러한 법을 얻으리.
밤낮으로 부지런히 법을 구하여 중생들에 대해서 성내는 마음이 없고 이 경만을 즐기면 속히 경전의 뜻 얻으리.
“또 사리불아, 만약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려면 이 다라니를 얻어야 하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첫째 고요한 곳에서 아란야행(阿蘭若行)을 수행하는 것이요, 둘째 깊고 깊은 무생법인(無生法忍)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 명성과 이양(利養)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 애착하는 물건을 희사하고 더 나아가서는 목숨까지도 희사하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려면 이 다라니를 얻어야 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읊으셨다.
항상 아란야행을 닦으면 모든 부처님들께서 칭찬하시느니라. 부지런히 깊은 무생법인을 수행하되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이 하여라.
깊이 법의 뜻에 깨달아 들어가면 남의 비방을 받지 않느니라. 가족과 명성과 이양을 그리워하거나 집착하지 말아라.
모든 재보(財寶)에 탐애하는 마음 내지 말지니라. 조그마한 것을 즐겨 만족할 줄 알지니 새가 먹을 것을 쌓아두는 일이 없는 것 같이.
이미 사람의 몸을 얻었으니 항상 좋은 행을 닦을지니라. 출가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버렸고 부처님 법을 얻음이 훌륭하니라.
교만은 번뇌와 같으니 모두 청정하게 할지어다. 반드시 불(佛)ㆍ법(浩)ㆍ승(僧) 3보를 부지런히 공경하고 존중할지니라.
이양(利養)을 탐내면 지혜를 잃고 신도의 보시행도 끊어지느니라. 이와 같은 사람들은 보리에서 거리가 멀어지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명예와 이양(利養)을 버리고 청정한 계율과 바른 견해와 자비행(慈悲行)을 닦아 지녀야 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만약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려면 이 다라니를 얻어야 하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이를테면 여덟 종자의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니, 무엇이 여덟 종자인가? 첫째 바(跛 : pa)자이니 제일의제(第一義諦)의 이치이며, 모든 법에는 나라고 할 만한 것[我]이 없다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요, 둘째 라(攞 : ra)자이니 여래의 무생법신(無生法身)에 들어가 지혜를 모으는 자량(資糧)을 분명히 비추지 않고 들어가는 모양이 없고, 무생상(無生相)으로 색신을 삼고 무진상(無盡相)으로 색온을 삼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 마(麽 : ba)자이니 지혜롭고 어리석은 법이 같은 종류로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요, 넷째 가(舸 : ka)자이니 업보(業報)를 분별하여 업보가 없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며, 다섯째 자(闍 : ja)자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깨달아 불생불멸하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요, 여섯째 다(駄 : ta)자이니 다라니법의 바탕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인 줄을 깨닫고 고요하기가 열반과 같은 줄을 깨달아 그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며, 일곱째 사(賖 : śa)자이니 사마타(奢摩他)는 적정에 머무는 모습이고, 비발사나(鞞鉢舍那)는 모든 법의 모습을 바로 보는 것인데, 어찌해야 적정에 머물러 밤낮으로 끊임없이 부지런히 정근하며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그 형상을 취하지 않을 수 있는가. 반드시 비발사나를 생각하고 지혜로 바르게 보아야 하느니라. 만약 수행하는 이가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그 자리에서 진짜 부처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여 ‘현재 눈앞에 보이는 부처님의 형상은 어느 곳에서 오셨는가? 동ㆍ서ㆍ남ㆍ북ㆍ사유(四維)ㆍ상ㆍ하방에서 오셨는가?’라고 생각하느니라. 이 부처님의 형상을 사람이 만들었다면 ‘이 부처님의 형상을 진흙과 나무로 만든 것인가? 금이나 동(銅)으로 만든 것인가?’라고 생각하느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여 마치고 보이는 바 부처님이 다만 나를 말미암은 줄 알고 정사(精舍) 가운데서 부처님의 형상을 관찰하며, 밤낮으로 억념(憶念)하니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의 형상이 눈앞에 나타나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항상 모든 법을 보고 듣고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다 자신의 억념에서 일어나는 줄 아나니, 곧 보살의 첫 번째 익숙히 닦아 익히되 머물지 않는 정(定)이니라. 만약 보살이 초분(初分)에 짓는 마음을 관찰하여 미세하게 밝히고 생각을 거두어 가행(加行)을 일으키며, 더 나아가 일체 세간에 있는 모든 법이 자신의 마음을 떠나지 않고 일어나는 줄을 알면, 이것이 보살의 두 번째 덕상(德相)에 머물지 않는 정(定)이니라. 보살은 다시 지금 생각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를 관찰하여 반드시 의타기심(依他起心)2)ㆍ변계소집(遍計所執)3)이 의지하여 허무는 것인 줄 알며, 그리고 이 마음은 터럭 끝만큼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인 줄을 아나니, 이것이 보살의 세 번째 참는 데 머물지 않는 정(定)이니라. 여기에서 다시 곧 자재정(自在定)을 일으키나니 곧 보살의 네 번째 세제(世諦)와 무상법(無上法)에 머물지 않는 정(定)이니라. 세제법(世諦法) 가운데 보리의 마음이 가장 뛰어나나니 이것은 곧 의타기성(依他起性)의 마음이 원성실성(圖成實性)4)에 두루 들어간 것이며, 이 원성실성은 그 성(性)이 청정한 진여(眞如)이며, 이 진여는 의제(義諦)의 마음이니라. 왜냐하면 승의제(勝義諦)에 두 가지 모양[相]이 있기 때문이니라. 무엇이 두 가지 모양인가? 태어남이 없는 모습이기 때문에 여래의 법신(法身)이 청정하게 상속하는 바탕이 되며, 또 다함이 없는 모양이기 때문에 여래의 색신상호(色身相好)를 나타내 보이고 상속하는 바탕이 되느니라. 이 보살이 여래법신의 청정한 바탕을 밝히고, 다시 색신상호를 밝히되 바탕을 드러내어 나타냄이며, 보살이 곧바로 법계해탈법문(法界解脫法門)을 앎으로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기뻐함을 내었으니 이것은 보살이 얻은 첫째 환희지(歡喜地)의 자리이니라. 어찌하여 진여가 승의제이며 원성실성은 통의제(通義諦)인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승의제 중에서는 본래 공적(空寂)하여 끊어 제거할 것이 없으며, 청정한 법신이 승의제 중에서는 본래 항상하여 더 보탤 것이 없으니 바른 견해와 얻을 바가 없는 마음과 지혜를 모으는 자량으로 모든 악법을 없애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색신이 드러나 나타나며, 바른 견해로 모든 선법(善法)을 짓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색신이 드러나 나타나느니라. 어찌하여 의타기성이 승의제인가? 성(性)은 스스로 인습(因習)을 통하여 일어나는 성이 없기 때문에 유(有)에 집착함을 떠났고, 자연히 사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無)에 집착함을 떠났느니라. 또 어찌하여 변계소집인 자성(自性)ㆍ온ㆍ처ㆍ계가 승의제의 부문에 머무는가? 보이는 바의 5온 등의 종류는 다만 어리석은 숙습(宿習)의 인연일 뿐이고 억념(憶念)의 반연(攀緣)일 뿐이지 실제로는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때문에 보살은 온ㆍ계ㆍ처를 알고, 모든 법 가운데 법신을 나타내며, 보살이 이미 온ㆍ계ㆍ처는 다만 어리석은 자신의 마음으로 보는 것인 줄을 알지만 이것으로 모든 중생들을 거두고 보살행을 닦나니 이러한 까닭으로 보살이 5온ㆍ18계ㆍ12처의 모든 체상(體相)과 자량을 보고 색신상호를 나타내느니라. 어떻게 부처님의 형상을 관찰하여야 승의제 부문에 머무는가? 반드시 ‘내가 지금 보는 부처님의 형상은 부처님께서 가지고 계신 종류의 모습이 아니고 이것은 다만 내가 현재 형상을 관찰하는 인연 때문에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정(定)에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여라. 유례(類例)하여 모든 법을 아는 것도 다시 이와 같으니라. 이러한 이치 때문에 부처님의 형상을 보되 전혀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느니라. 사(賖)자는 모든 법과 더불어 차별이 없으며, 모두 똑같은 법문의 이치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덟째 차(叉 : kṣa)자이니 모든 법은 텅 비어 불생불멸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이 본래 텅 비어 고요한 자성인줄을 깨달아 알면 열반의 이치에 들어가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이 여덟 종자의 이치를 이와 같이 수지해야 하느니라. 어떤 곳이든 이 경권(經卷)을 지닌 이가 있으면 반드시 존중하고 공경하여 공양올리고 반 달씩 독송하고 연설하여라. 만약 이 경전을 송하여 익히는 이를 보면 칭찬하여 드날리고 권장하여 정진하도록 하여라. 사리불아, 만약 보살이 이 네 가지 법을 닦아 성취하려는 이가 있다면 이 다라니를 얻어야 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다음의 게송을 읊으셨다.
여덟 종자를 늘 생각하고 이 경전을 베껴써서 지녀라. 반 달 동안 씩 연설하여 부지런히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여라.
이를 말미암아 부처님의 지위에 가까워지고 지혜가 더욱 더 넓어지며 시방세계의 국토에서 모든 여래를 직접 뵙느니라.
모든 부처의 처소에서 부처가 행한 법을 배워라. 견고하게 보호하고 가르침을 유지하면 모든 악(惡)이 다 제거되느니라.
“또 사리불아,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다라니를 닦아 배우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네 가지 선근법(善根法)의 이익을 얻어야 하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 사람을 거두어 옹호해 주심이요, 둘째 구경에 성취할 때까지 모든 마군(魔軍)들의 방해하는 일이 없음이며, 셋째 모든 악업(惡業)의 장애가 속히 청정해짐이요, 넷째 속히 미묘하고 끊어짐이 없는 변재를 얻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수지하는 이가 있으면 법의 이익을 얻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읊으셨다.
이 경전을 수지하는 까닭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호념하시나니 모든 마군들이 방해하여 뇌란케 할 수 없느니라.
무겁고 괴로운 업장이 속히 다 없어지네. 이 다라니는 속히 깨달음을 열어 주느니라.
이 경(經)를 듣고 찬탄하고 수지하거나 독송하거나 베껴 쓰거나 말씀하신대로 수행하면 속히 보리과(菩提果)를 증득한다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옛적 셀 수 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 이전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그 명호는 보승위숙겁왕(寶勝威宿劫王)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으로 세간에 출현하셨느니라. 사리불아, 보승위숙겁왕여래께서 열반에 들어가실 때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있었으니 이름을 성지(星持)라고 하였으며, 7보를 갖추고 사천하(四天下)를 다스리는 왕이었느니라. 그 왕에게 왕자(王子)가 있었으니 이름을 부사의공덕최승(不思議功德最勝)이라고 하였느니라. 그 당시 이 왕자의 나이는 열여섯 살이었는데 보승겁왕(寶勝劫王)부처님의 처소에서 최초로 이 다라니를 듣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닦아 익혔느니라. 그리고 그 이후로 7만 년 동안 몸과 목숨과 재물과 왕위(王位)까지도 희사(喜捨)하였으며, 다시 7만 년 동안 홀로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서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옆구리를 땅바닥에 붙이지 않았느니라. 그리고 99억 백천 나유타의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이 경의 설법을 듣고 모두 다 받아 지녔느니라. 바로 그때 왕자가 출가하여 9천 년 동안 이 무변문다라니(無邊門陁羅尼)로 널리 중생을 위하여 그 이치를 연설하였고, 그래서 왕자비구는 다음 생에 80억 나유타 백천의 중생들을 교화하여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에 안주(安住)하게 하거나 혹 불퇴전지(不退轉地)를 증득하게 하였느니라. 그때 그 대중 가운데에 장자(長者)가 있었는데 이름을 월당(月幢)이라고 하였으며, 이 무변문다라니를 듣고 따라서 기뻐한 선근공덕 때문에 9억의 모든 불세존을 만나 공경하고 공양 올려서 이 최상의 다라니법을 얻었으니 모든 언론(言論)에서 가장 뛰어났느니라. 그리고 제일가는 끊임이 없는 변재를 얻고, 3겁 동안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올리고 3겁이 지나서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성취하여 명호를 연등여래(燃燈如來)라고 하였느니라. 사리불아, 그때의 부사의공덕최승왕자비구가 지금의 무량수불(无量壽佛)이니라. 사리불아, 내가 현겁(賢劫) 때의 모든 보살들과 함께 보살도를 수행할 적에 다 이 다라니를 듣고 마음속 깊이 따라 기뻐하였는데 따라 기뻐했던 선근(善根)의 인연 때문에 세간에서 40백천 겁 동안의 생사유전(生死流轉)을 뛰어넘었느니라. 그리고 9억의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공양 올리며 공경했고, 그러한 연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였느니라. 사리불아, 하루 속히 대보리(大菩提)를 증득하고자 하는 이라면 반드시 이 다라니를 수지해야 하느니라. 만약 수지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만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을 낼지니라. 왜냐하면 이 선근(善根) 때문에 결정코 불퇴전지(不退轉地)를 얻고 더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거늘 어찌 하물며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베껴 쓰고 널리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분별하고 연설함이겠는가. 그 얻는바 복덕은 생각이나 말로 할 수 없고 숫자로 헤아릴 수 없으며, 모든 중생들로서는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읊으셨다.
만약 이 경을 듣고 베껴 쓰고 따라 기뻐하고 독송하고 수지하여 널리 다른 이에게 연설하면 그 얻는 바 공덕을 중생은 헤아릴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누리는 복덕이 무궁무진하리라.
보살이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 뵙고 생각할 수 없는 믿음을 얻어 깊은 경전의 뜻을 잘 아느니라.
경전에 대해서 의심이나 막힘이 있어도 곧 스스로 깨달을 수 있나니 이것을 따르면 위없는 보리과(菩提果)를 빨리 성취하느니라.
총지(摠持)ㆍ신통(神通)ㆍ정(定), 이러한 것들이 다 무궁무진하니 깊은 법인(法印)을 통달하여 언제나 모든 여래를 친근하느니라.
내가 과거세를 생각하니 이와 같은 경전 설법함을 들어 항하강 모래같은 수없는 부처님 받들어 친견하고 위없는 도(道)를 성취하였느니라.
저 월당(月幢)장자는 부처가 되어 연등(燃燈)이라 이름하였고 공덕승(功德勝)비구는 무량수(无量壽)부처님 되셨느니라. 내가 현겁(賢劫) 동안 한량없는 보살들과 함께 이 경을 빠짐없이 듣고 마음속 깊이 따라 기뻐했느니라.
따라서 기뻐한 공덕 때문에 모든 번뇌를 녹여 없애고 죄업장을 모두 없애어 속히 위없는 깨달음 성취하였느니라..
만약 보리를 가까이 하고 마군을 항복시키고 상호 장엄 좋아하며 이 다라니를 부지런히 닦으면 하고자 하는 것을 얻기가 쉽느니라.
만약 항하강 모래처럼 수 없는 국토 그 안에 가득한 보배를 보시하여도 보살이 이 경전을 수지하면 그 복이 저 복덕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다라니를 염송(念誦)하면 여덟 야차가 항상 옹호해 주느니라. 여덟 야차의 이름은 무엇인가? 첫째 수려(戍▼(口+(黍-禾+䄪)))요, 둘째 질다(姪茶)이며, 첫째 발부저(鉢部羝)요, 넷째 나라연발(那羅延跋)이며, 다섯째 차리달(遮唎怛)이요, 여섯째 돌달산(突達産)이며, 일곱째 구말(俱末)이요, 여덟째는 소바호(蘇愽呼)이니라. 이 여덟 야차는 설산(雪山)에 거주하면서 이러한 사람을 호념(護念)하고 도업(道業)을 도와 쇠약함을 제거하고 정기(精氣)를 북돋아 주느니라. 이 경을 지니는 이는 반드시 목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경행(經行)하면서 이 다라니를 송하여 익히며,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그 마음을 평등하게 하고 경의 이치를 관찰하고 여법하게 공양 올려야 하느니라. 또 여덟 보살이 욕계천(欲界天)에서 이 경을 지니는 이를 항상 옹호해 주느니라. 여덟 보살의 이름은 무엇인가? 첫째 노차(嚕遮)요, 둘째 비로전(鞞嘮戰)이며, 셋째 반냥발비(般孃鉢鞞)요, 넷째 솔야게비(窣耶揭鞞)며, 다섯째 사디(薩低)며, 여섯째 아비발야발본(阿鞞跋耶鉢本)이며, 일곱째 낙차달라사(諾叉怛囉闍)요, 여덟째 차리달마(遮唎怛磨)이니라. 이 여덟 보살도 호위하고 도업(叢業)을 도와 이 법(法)을 얻게 하느니라. 이 다라니를 지니는 이는 존중하고 믿어 가지고 받들어 행하되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 그 허물을 없애주고, 비록 받은 은혜가 작더라도 마음에 항상 보답할 것을 생각하며, 깊은 법에 대해서 오로지 깨달음을 구하고, 좋은 방편으로 항상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며, 구걸하는 이에게 은혜를 베풀되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느니라.” 여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적에 스스로 항하의 모래알처럼 수없는 보살들이 이 다라니를 얻었고 무상보리(無上菩提)에서 모두 물러나지 않았다. 다시 60빈발라(頻拔囉:十兆)의 보살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다시 3만2천의 천ㆍ인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다. 그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 형태로 진동하고 모든 하늘에서는 꽃비를 내리고 백천의 악기는 연주하지 않아도 스스로 소리를 내었다. 그때 장로인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출생무변문다라니(出生无邊門陁羅尼)』라고 하며, 『능달보리다라니(能達菩提陁羅尼)』라고 하며, 『득일체지항복중마다라니(得一切智降伏衆魔陁羅尼)』라고 하나니, 이와 같이 수지(受持)하여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자 장로인 사리불과 그 밖의 국토에서 온 모든 보살들과 천ㆍ용 등 8부와 인비인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