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2_0405_b_01L최승문보살십주제구단결경 제6권
012_0405_b_01L十住斷結經卷第六


요진 축불념 한역
송성수 번역
012_0405_b_02L 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15. 쇄신품(碎身品)
012_0405_b_03L碎身品第十五

부처님께서 최승(最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쇄신정(碎身定)에 들어가나니, 보살이 이 정(定)에 들게 되면 열 가지 여여하게 머무름을 두루 갖추느니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온갖 세계에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온갖 방향에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온갖 겁수에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중생에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모든 법에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온갖 보살행에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온갖 보살의 가운데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온갖 정(定) 가운데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모든 부처님 세존에게서 여여하게 머무르며, 온갖 지계(地界)에서 여여하게 머무느니라..만일 어떤 보살이 이 쇄신정을 얻으면 곧 이 열 가지 여여하게 머무름[如如住]을 획득하느니라.
012_0405_b_04L佛告最勝菩薩摩訶薩入碎身定使菩薩入此定具足十種如住何謂爲一切世界如如住一切諸方如如一切劫數如如住一切衆生如如一切諸法如如住一切諸菩薩行如如住一切菩薩願中如如住一切衆定中如如住一切諸佛世尊如如一切地界如如住若有菩薩得此碎身定者便獲此十如如住
어떻게 보살이 중생의 쇄신정에 들어가는가? 이에 최승아, 보살마하살이 쇄신정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몸 안의 정(定)에 들어가서 몸 바깥을 좇아 일어나고 몸 바깥의 정에 들어가서 몸 안을 좇아 일어나며, 동일한 몸[一身]의 정에 들어가서 다른 몸[異身]을 좇아 일어나고 다른 몸의 정에 들어가서 동일한 몸을 좇아 일어나며, 사람 몸의 정에 들어가서 야차 몸을 좇아 일어나고 야차 몸의 정에 들어가서 용의 몸을 좇아 일어나며, 용의 몸의 정에 들어가서 아수라의 몸을 좇아 일어나고 아수라의 몸의 정에 들어가서 천의 몸[天身]을 좇아 일어나니라.
012_0405_b_13L云何菩薩入衆生碎身定於是最勝菩薩摩訶薩入碎身時先入身內定從身外入身外定從身內起入一身定從異身起入異身定從一身起入人身定從閱叉身起入閱叉身定從龍身入龍身定從阿須倫身起入阿須倫身定從天身起
012_0405_c_01L천의 몸을 좇아 정에 들어가서 범천 몸을 좇아 일어나고 범천의 몸의 정에 들어가서 욕계의 몸[欲界身]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천도의 몸[天道身]의 정에 들어가서 지옥의 몸[地獄身]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지옥의 몸의 정에 들어가서 인도의 몸[人道身]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인도의 몸의 정에 들어가서 그 밖의 도[餘道]를 좇아 일어나고 천 몸[千身]의 정에 들어가서 한 몸[一身]을 좇아 일어나며, 한 몸의 정에 들어가서 천 몸을 좇아 일어나고 억 몸의 정에 들어가서 한 몸을 좇아 일어나나니라.
012_0405_b_20L入天身定從梵天身起入梵天身定從欲界身定起天道身定從地獄身定起入地獄身定從人道身定起入人道身定從餘道起入千身定從一身起入一身定從千身起入億身定從一身起
한 몸의 정에 들어가서 억 몸을 좇아 일어나며, 염부리(閻浮里) 땅의 형상 있는[有形]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구야니(瞿耶尼)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구야니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울단왈(鬱旦曰)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울단왈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불우체(弗于逮)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동방(東方)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삼방(三方)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삼방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사방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나니라.
012_0405_c_03L入一身定從億身起入閻浮里地有形衆生定從瞿耶尼有形衆生定起入瞿耶尼有形衆生定從鬱旦曰有形衆生定起入鬱旦曰有形衆生定從弗于逮有形衆生定起入東方有形衆生定從三方有形衆生定起入三方有形衆生定從四方有形衆生定起
사방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온갖 바다의 목숨과 몸[命形]이 있는 것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모든 바다의 목숨과 몸이 있는 것의 정에 들어가서 해신의 몸[海神身]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해신의 몸 정에 들어가서 바다의 수종(水種)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바다의 수종의 정에 들어가서 바다의 지종(地種)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바다의 지종의 정으로 들어가서 바다의 화종(火種)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바다의 화종의 정에 들어가서 바다의 풍종(風種)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바다의 풍종의 정에 들어가서 4대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4대의 정에 들어가서 무유법(無有法)의 정을 좇아 일어나나니라.
012_0405_c_10L入四方有形衆生定從一切諸海有命形定起入一切諸海有命形定從海神身定起入海神身定從海水種定起入海水種定從海地種定起海地種定從海火種定起入海火種定從海風種定起入海風種定從四大定起入四大定從無有法定起
012_0406_a_01L무유법의 정에 들어가서 수미산(須彌山)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수미산의 정에 들어가서 칠보산(七寶山)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칠보산의 정에 들어가서 온갖 풀과 수목과 산천과 석벽(石壁)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온갖 풀ㆍ수목ㆍ산천ㆍ석벽의 정에 들어가서 정결한 향과 꽃과 온갖 보배 그릇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정결한 향과 꽃과 온갖 보배 그릇의 정에 들어가서 사방(四方)과 상방(上方)ㆍ하방(下方)에 있는 온갖 중생의 탈것과 의복과 음식거리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온갖 사방ㆍ상방ㆍ하방에 있는 온갖 중생의 탈 것ㆍ의복ㆍ음식 거리의 정에 들어가서 삼천세계 국토의 형상 있는 중생의 몸의 정을 좇아 일어나나니라.
012_0405_c_17L無有法定從須彌山定起入須彌山定從七寶山定起入七寶山定從百草樹木山川石壁定起入百草樹木山川石壁定從淨潔香花一切寶器定起入淨潔香花一切寶器定從一切四方上方下方一切衆生所乘服食具定起入一切四方上方下方一切衆生所乘服食具定從三千剎土有形衆生身定起
삼천세계 국토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삼천대천세계 국토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삼천대천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억백천과 삼천대천 국토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억백천 삼천대천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한없는 세계의 형상이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한없는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수없는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느니라.
012_0406_a_03L入三千剎土有形衆生定從三千大千剎土有形衆生定起入三千大千有形衆生定從億百千及三千大千剎土有形衆生定入億百千及三千大千剎土有形衆生定從無限剎土有形衆生定起入無限剎土有形衆生定從無數剎土有形衆生定起
수없는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그지없는 부처님 국토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그지없는 부처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일컬을 수 없는[無稱] 부처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일컬을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불가사의한 부처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나니라.
012_0406_a_10L入無數剎土有形衆生定從無量佛剎土有形衆生定入無量佛剎土有形衆生定從無邊佛剎土有形衆生定起入無邊佛剎土有形衆生定從無稱佛土有形衆生定起入無稱佛土有形衆生定從不思議佛土有形衆生定起
012_0406_b_01L불가사의한 부처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한없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세계의 형상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지극히 먼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지극히 먼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지극히 가까운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지극히 가까운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안입(眼入)의 정에 들어가서 안입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이입(耳入)의 정에 들어가서 이입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안입의 정에 들어가고 비입(鼻入)의 정에 들어가서 설입(舌入)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설입의 정에 들어가서 비입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신입(身入)의 정에 들어가서 의입(意入)의 정을 좇아 일어나나니라.
012_0406_a_16L入不思議佛土有形衆生定入無限無量不可思議佛土有形衆生定從無限無量不可思議佛土有形衆生定起入極遠有形衆生定從極遠衆生定入極近衆生定從極近衆生定起入眼入定從眼入定起入耳入定從耳入定起入眼入定入鼻入定從舌入定起入舌入定從鼻入定起入身入定從意入定起
자입(自入)의 정에 들어가서 자입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타입(他入)의 정에 들어가서 타입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자입의 정에 들어가고 온갖 형상 있는 중생의 정에 들어가서 아승기(阿僧祇) 세계와 다시 한없고 수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세계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아승기 세계와 다시 한없고 수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세계의 정에 들어가서 온갖 형상이 있는 중생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성문의 정에 들어가서 벽지불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벽지불의 정에 들어가서 성문의 정을 좋아 일어나나니라.
012_0406_b_02L入自入定從自入定起入他入定從他入定起入自入定入一切有形衆生定從阿僧祇剎土復及無限無量不可稱計剎土定起阿僧祇剎土復及無限無量不可稱計剎土定從一切有形衆生定起入聲聞定從辟支佛定起入辟支佛定從聲聞定起
자기 몸[自身]의 정에 들어가서 부처님 몸[佛身]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부처님 몸의 정에 들어가서 자기 몸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한 생각[一念]의 정에 들어가서 백억 겁(劫)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백억 겁의 정에 들어가서 한 생각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현재의 정에 들어가서 현재의 정을 좇아 일어나고 과거의 정에 들어가서 과거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미래의 정에 들어가서 다시 삼세의 정에 들어가나니, 이와 같이 보살은 들어가는 정(定)에 따라 좇아 일어나는 바를 따르며 허공계의 정에 들어가서 허공계로부터 일어나느니라.
012_0406_b_09L入自身定從佛身定起佛身定從自身定起入一念定從百億劫定起入百億劫定從一念定起入現在定從現在定起入過去定從過去定起入未來定復入三世定是菩薩隨所入定隨所從起入虛空界定從虛空界起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귀신에게 홀리면 그 귀신이 몸을 가지고 나아가는 바에 따르나 자신은 깨달아 알지 못하며, 그러나 그 귀신은 그 사람의 몸에 의탁했지만 스스로 형상을 나타내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뜻은 안의 정[內定]에 들어가서 바깥 정[外定]을 좇아 일어나고 바깥 정에 들어가서 안의 정을 좇아 일어나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몸이 죽어서 신식(神識)이 떠날 때에는 의지하는 바도 없고 또한 동요하지도 않으며 몸도 또한 신식이 있는 데를 알지 못하고 신식은 스스로 형(形)을 받아도 옛 몸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라.
012_0406_b_15L最勝當知猶如有人爲鬼所著隨彼鬼神持身所詣不自覺知然彼鬼神託彼人身不自現菩薩摩訶薩亦復如是意入內定從外定起入外定從內定起猶如有人身死神去無所依猗更不動搖亦不知神之所在神自受形不知故身今爲所在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처음 유의 정[有定]에 들어가서 분별하고 평등하게 관하며 다시 공정(空定)에 들어가서 영원히 존재[有]를 보지 못하나니 앞에 생겼다가 나중에 소멸하는 것을 각각 서로 알지 못하느니라.
012_0406_b_22L最勝當知菩薩摩訶薩亦復如是初入有定分別等觀復入空定永不見有前生後滅各不相知
012_0406_c_01L보살은 또 마치 마음이 자재하여 저 언덕에 이른[度無極] 사람을 관찰할 때에 하나의 몸이 능히 변화하여 여러 몸이 되고 여러 몸이 도로 합쳐 하나가 되며 식(識)은 하나의 몸을 좇지 않나니 없어져서 즉시 여러 몸을 내고 또한 다시 식은 여러 몸을 좇아 얻지 못하고 하나의 몸 가운데 없어지고 생기느니라. 하나를 좇지 않고 여러 많음에 이르며 여러 많음을 좇지 않고 하나에 이르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한 몸의 정(定)에 들어가 여러 많은 정에서 일어나고 여러 많은 정에 들어가 한 몸의 정에서 일어나느니라.
012_0406_c_01L菩薩復當觀猶如心自在度無極人一身能化作衆多身衆多身還合爲識不從一身沒卽時生衆多身復不得識從衆多身沒生一身中從一至衆多不從衆多至一菩薩摩訶薩亦如是入一身定衆多定起衆多定一身定起
비유하면 마치 땅의 경계[地界]가 윤택하게 되는 것은 물로써 근본을 삼되 생장하는 만물은 저마다 동일하지 않으며, 사람의 세계도 귀신의 세계도 모두 다 똑같이 윤택하게 하되 그 만물은 역시 스스로 ‘나는 생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물도 역시 ‘나는 적셔 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삼매를 얻고서는 하나가 수없는 것이 되고 수없는 것이 하나가 되지만 수없는 것이 하나가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고, 하나가 또한 수없는 것이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최승아, 보살마하살과 온갖 중생의 쇄신(碎身)삼매이니, 제8의 보살이 수행할 바이니라.
012_0406_c_08L譬如地界所潤以水爲本所生萬物各各不同人界鬼界悉同其潤萬物亦不自知我爲所水亦不知我爲所潤菩薩摩訶薩亦復如是得是三昧一爲無數無數爲一無數不知所以爲一一亦不知所以爲無數是謂最勝菩薩摩訶薩一切衆生碎身三昧第八菩薩之所修行
이 삼매에 머무르면 보살은 곧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를 얻고 열 가지 공덕을 더하여 칭찬을 받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여래라 하나니 여여(如如)하게 여(如)를 수행함이며, 불(佛)이라 하나니 모든 법을 다 깨달아 알고 이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에 이르게 됨이며, 최승(最勝)이라 하나니 중생들이 존경하고 귀히 여겨 공양을 올리기 때문이며, 일체지라 하나니 온갖 지혜에서 공덕이 구족하기 때문이며, 무진(無盡)이라 하나니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가려 주고 보호하기 때문이며 길잡이[導師]라 하나니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그 바른 길을 보게 하기 때문이며,
012_0406_c_16L住是三昧者菩薩便獲佛十號加十功德而見歎譽云何爲十所謂號如來如如修如號名爲佛佛者於諸法悉覺知從此岸至彼岸號名最衆生尊貴興供養故號名一切智於一切智德悉具足故號名無盡一切衆生作覆護故號名導師令衆生類示其正路故
012_0407_a_01L무등륜(無等倫)이라 하나니 온갖 중생에 대한 법계와 온갖 지혜[衆智]가 모두 구족하기 때문이며, 묘광(妙光)이라 하나니 온갖 중생들이 그 조명(照明)을 받기 때문이며, 10력(力)이라 하나니 원한 바를 이룩하고 법지(法智)를 분별하여 집착이 없어 더럽힐 수 없기 때문이며, 일체현(一切現)이라 하나니 온갖 법으로 하여금 동일하고 자재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니라.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와 열 가지 칭찬 받는 공덕을 얻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삼매의 위신력(威神力)과 은혜이니라.
012_0406_c_23L號無等倫於一切衆生法界及諸衆智皆具足故號曰妙光一切衆生被蒙照故號曰十力所願成辦分別法智無著不可污故號一切現使一切法同一自在度無極故是謂最勝菩薩摩訶薩獲佛十號及十稱歎功德皆是三昧威神力恩也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열 가지의 광명을 얻어 스스로 밝게 비추느니라. 어떤 것을 열 가지라 하는가? 모든 부처님의 광명으로 스스로를 밝게 비추며 온갖 세계를 태우거나[乘] 태우지 않음이 없는 도량 광명으로 스스로 휘감싸며, 모든 중생에게 가르쳐 경계하는[敎誡] 광명으로써 향훈(香熏)을 삼으며 4무소외의 한량없는 광명이며, 법계 처소의 법계의 광명이며, 벗어남[出要]의 광명이며, 온갖 욕심이 없고 애욕을 없애는 광명이며, 온갖 중생을 교화하고 감동시키는 광명이며, 모든 부처님의 의지함도 없고 물들거나 집착이 없는 광명이며, 선사(善思)의 광명으로 평등하고 바르게 깨닫고 저 언덕을 건너가는 광명이며, 온갖 법성이 으레 그러한 진제(眞際)의 광명이며, 연설하여 번뇌의 우환[結患]을 없애는 위없는 광명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이 열 가지의 광명을 얻어 스스로 환히 비추느니라.
012_0407_a_07L菩薩摩訶薩住是三昧者獲十光明而自照曜何謂爲十謂一切諸佛光明而自照曜一切世界乘無不乘道場光明以自纏絡一切衆生及教誡光以爲香熏四無所畏無量光法界處所法界光明出要之明一切無欲除愛之光化一切衆生感動光明諸佛無猗無染著光善思光明等正覺度無極光一切法性如爾眞際光說除結患無上之光若菩薩摩訶薩住是三昧者得此十光明而自照曜
보살은 다시 열 가지 자취가 없는 행을 잘 배워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뜻으로 생각하는 바를 몸으로 행한 자취가 없으며, 입으로 행한 자취가 없으며, 뜻으로 행한 자취가 없으며, 공(空)에 처소를 세우려고 하며, 행이 없는 데서 행을 이루려 하며 유위의 법[有爲法]을 행하지 않으며, 법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지혜 업[智業]을 헐지 않고 무생지(無生智)를 익히며, 배울 것이 없는 법[不學法]을 배워 지변지(智辯智)에 상응하며, 형상이 없는 지혜의 의미(義味)가 청정한 것이니라.
012_0407_a_18L菩薩復當善學十無迹行云何爲十意之所念身無行迹口無行迹意無行迹空欲立處所無行欲成行不爲有爲法不壞敗法不毀智業習無生智學不學法應智辯智無形之智義味淸淨
012_0407_b_01L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약간의 차별이 있어서 연(緣)의 집착을 능히 끊고 하나로부터 약간 종류의 정(定)에 들어가며, 혹은 일으키기도 하고 혹은 사유하기도 하되 등분에 등분하나 또한 등분이 되지 않으며, 작은 것을 좇아 큰 것에 이르고 큰것을 좇아 작은 것에 이르며, 좁은 것을 좇아 넓은 데에 이르고 넓은 것을 좇아 좁은 데에 이르며, 구부러진 것을 펴지게 하고 펴진 것을 구부러지게 하며, 몸이 없는 데서 몸이 있게 하고 몸이 있는 데서 몸이 없게 하며, 혹은 일어날 데서 혹은 정(定)에 들기도 하고 혹은 정에 들었다가 혹은 일어나기도 하며, 때[垢]가 있는 데서 때가 없게 하고 때가 없는 데서 때가 있게 하느니라.
012_0407_a_23L是謂菩薩摩訶薩住是三昧有若干差特能斷緣著從一入若干種定或起或思惟等分於等分亦不等分從小至大從大至小從狹至廣從廣至狹屈而使舒舒而使屈無身使有身有身使無身或起或定或定或起有垢使無垢無垢使有垢
이 삼매를 깨달으면 온갖 경계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 마치 사람이 굽지 않은 병을 파괴하듯 하며, 마치 큰 주문의 술법으로 방호하여 여러 가지의 물질[色]과 여러 가지의 소리를 징험하며, 혹은 주문으로 금하기도 하고 혹은 요술[幻]의 소리로 부리기도 하며, 주술을 하는 이는 귀신을 부리고 요술쟁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양을 부리되 요술의 물질을 보는 이는 안식(眼識)으로 섭취(攝取)하는 바요 요술의 소리를 듣는 이는 이식(耳識)으로 섭취하는 바며, 요술의 냄새를 맡은 이는 비식(鼻識)으로 섭취하는 바요 요술로 짓는 맛은 설식(舌識)으로 섭취하는 바이니라. 요술로 짓는 바의 모든 형질은 신식(身識)으로 섭취하는 바요 큰 요술을 부리면서 위의 것을 돌려 아래로 하고 아래의 것을 돌리어 위로 하며, 짓는 것을 좇아 찾는다 해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의식(意識)으로 섭취하는 바와 같나니, 이와 같아서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혹은 흩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모으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느니라.
012_0407_b_06L覺此三昧者能壞一切境界如人壞坏甁猶如大呪之術防護爲驗若干種色若干種聲或爲呪所禁或爲幻聲所使呪者使役於神幻者役於外見幻色者眼識所攝聞幻聲者耳識所攝嗅幻香者鼻識所攝幻所作味舌識所攝幻所作諸形質身識所攝有幻大幻迴上爲下迴下爲上所作追尋不可思量意識所攝如是菩薩摩訶薩住是三昧者或散或聚現若干變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제 비유를 인용하니 안목 있는 선비는 이것만으로도 통달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여러 하늘과 아수라들이 함께 싸울 적에 모든 하늘들이 이기고 아수라들은 지게 되는데 이때에 아수라는 스스로 진 것을 알고 곧 꾀를 내어 변화로 목욕하는 못을 만들고 갖가지 연꽃이 나게 하고는, 아수라의 키가 7천 유순(由旬)이지만 도리어 그의 몸을 숨기되 여러 병사들을 후퇴시키어 그 연꽃의 줄기나 마디나 실 구멍 속에 넣어 감추면 모든 하늘들이 찾아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아수라는 요술하는 법을 잘 알기 때문이니라.
012_0407_b_17L最勝當知今當引喩有目之士乃達此耳猶如諸天與阿須倫共鬪諸天得勝阿須倫不如時阿須倫自知不如便設權計化作浴池生種種蓮花阿須倫身長七千由旬還隱其形及諸兵衆卻退入蓮花莖節糸孔中藏諸天求而不見謂阿須倫善解幻法
012_0407_c_01L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온갖 지혜의 요술을 성취하여서 1지(地)로부터 1지에 이르기까지 그 지혜가 소모되거나 줄어듦이 없고 그 여러 보살은 서로서로 보살이란 이들을 불러서 이르게 하되 모두가 지혜의 요술법으로써 그들을 섭취하나니, 이와 같이 보살은 전신정(全身定)에 들어가서 산법정(散法定)을 나타내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만일 사람의 세계[人界]에 있거나 귀신의 세계[鬼界]에 있거나 간에 종자를 그 땅에 심고 때때로 물을 주어 크게 자라나게 할 때에 그 종자는 땅에 들어갔지만 그 열매는 위에서 생기게 되는데 그 앞의 종자는 나중의 종자가 아니요 나중의 종자도 앞의 종자가 아니되 앞의 종자는 나중의 종자를 여의지 않고 뒤의 종자도 앞의 종자를 여의지 않은 것처럼 보살 대사(大士)도 역시 그와 같아서 홀로 존재하는 형상을 받되 이 삼매에 머무르면 곧 능히 존재를 여의어 존재에 처하지 않느니라.
012_0407_c_01L菩薩摩訶薩亦復如是成就一切智慧之幻從一地至一地智無耗減彼彼菩薩自相招號菩薩者皆以智慧幻法而攝取如是菩薩入全身定現散法定如有人若在人界若在鬼界以種子著地隨時漑灌令得長大子入於地果生於上前子非後子後子非前子前子不離後子後子不離前子菩薩大士亦復如是獨受有形住此三昧便能離有不處於有
또한 마치 남녀가 교회(交會)하되 남자의 맑은 것과 여자의 흐린 것에 식(識)이 그 안에 처하게 되니 어머니의 태(胎) 안에서 점차로 열 달 동안을 경과하면서 전생의 행이 청정하고 복과 서원이 뒤를 따라 형체와 뼈마디가 차츰차츰 충족하여지며 6근(根)이 성취되고 종성(種性)이 고르게 바루어지되 식(識)과 6근은 그 근원이 저마다 다르니, 6근은 존재를 받는 모양으로 행(行)의 선악에 따라 와서 형상을 받느니라. 본래 나는[生] 것을 찾아보면 마치 요술과 같고 허깨비와 같은 것처럼 보살 대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뛰어나게 해탈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삼고 지혜의 식(識)으로 생(生)을 받으며, 무유정(無有定)으로 들어가서 유정(有定)을 좇아 일어나고, 혹은 유정에 들어가서 자리 없는[無地] 데에서 머무르기도 하며, 곧 구름을 타고 허공에서 천둥 번개를 치면서 때에 따라 비를 내리어 윤택하게 하는 바가 많느니라.
012_0407_c_11L亦如男女交會男淸女濁識處其中在母胎中漸經十月宿行淸淨福願追隨形體支節轉轉充足六根成就種性均正識與六根源本各異六根者受有之相行善惡而來受形尋本來生如幻如菩薩大士亦復如是以增上解脫心以爲父母智慧之識而住受生無有定從有定起或入有定從無地而住便能乘雲虛空雷電隨時降雨多所潤澤
012_0408_a_01L그러나 그 용궁(龍宮)은 허공에 있지도 않고 용이 사는 곳도 아니니라. 허공 가운데서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어 혹은 드날리기도 하고 혹은 따르기도 하면서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우러러 살펴보게 하되 집은 땅에 의지하고 비는 위에서 내리거늘 변하고 바뀌는 법이 어찌 그리도 기이하겠느냐? 보살 대사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삼매와 허깨비의 법에 머물러 모양이 없는 정[無相定]에 들어가 모양이 있는[有相] 데서 일어나고 모양이 있는 정에 들어가 모양이 없는 데서 일어나느니라.
012_0407_c_21L然彼龍宮不在虛空非龍住處於虛空中現若干變化或奣或隨使衆生類仰而觀之宮舍依地降雨於上變易之法何其奇哉菩薩大士亦復如是住此三昧及幻化之法入無相定從有相起入有相定從無相起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보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허공이 땅이 되게 하고 땅이 허공이 되게 하는 것도 또한 어려움이 없나니, 마치 천상의 수정광전(水精光殿)은 온갖 보배로 이루어졌는데 만일 그 대자재범천(大自在梵天)이 이 전각에 오를 때에 눈을 들어서 천 세계ㆍ십천 세계ㆍ백천 세계ㆍ삼천대천세계를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있는 천궁ㆍ용궁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旃陁羅]ㆍ마후라가ㆍ인비인 등과 3악취(惡趣)에 이르기까지며, 수미산ㆍ철위산(鐵圍山)ㆍ대철위산ㆍ흑산(黑山)ㆍ대흑산과 칠보산이며, 강물ㆍ하천ㆍ바다의 근원ㆍ성곽ㆍ촌락과 산천ㆍ초목ㆍ약초ㆍ꽃의 열매며, 곱고 추하고 맑고 흐린 것과 삼천대천의 있는 온갖 형질과 허공계의 미세한 형상에 이르기까지 범천은 그 궁전에서 모두 멀리 보는 것과 같으니라.
012_0408_a_04L如是最勝菩薩住此三昧使空爲地使地爲空亦無有難猶如天上水精光殿舍衆寶所成若彼大自在梵天升此殿時擧目觀見千世界千世界百千世界三千大千世界中所有天宮龍宮閱叉犍沓和阿須迦留羅旃陁羅摩休勒人及非人至三惡趣須彌山鐵圍山大鐵圍山黑山大黑山及七寶山江河海源城郭村聚山川樹木藥草花實好醜淸三千大千所有形質至虛空界微細之形梵天於彼宮殿悉遙見之
광명과 광명이 서로 비추되 또한 조그마한 가림도 없나니 마치 여기에 있는 인간의 의복과 장신구가 횃대에 걸려 있는 것과 같고 또한 마치 밝은 거울에서 그 얼굴 모습을 보는 것처럼 그 천궁에서도 역시 그와 같아서 앉고 일어나고 가고 오고 마시고 먹고 잠을 자는 것이 모두 다 눈앞에 있되 마치 손바닥의 구슬 보듯 하느니라.
012_0408_a_15L光相照亦無微翳猶如在此人閒服飾懸在架上亦如明鏡見其面像天宮者亦復如是坐起往來飮食睡悉在目前如掌觀珠
012_0408_b_01L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온갖 중생의 쇄신정(碎身定)에 머무르면 모든 삼매에서 자재함을 얻나니, 부처님의 자재한 정[自在定]과 중생을 교화하는 자재한 정과 모든 법에 노니는 자재한 정과 행을 성취하는 자재한 정과 뛰어난 해탈을 완전히 갖추는 자재한 정과 모든 정수(正受)에서의 자재한 정과 들고 나고 앉고 일어나는 자재한 정과 모든 지혜를 얻는 자재한 정과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으로 한 겁(劫)을 삼는 자재한 정을 얻게 되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평등하고 바르게 깨닫는[等正覺] 열 가지 자재한 정으로 스스로 즐기는 것이니라.
012_0408_a_19L菩薩摩訶薩亦復如是住一切衆生碎身定者諸三昧而得自在獲佛自在定化衆生自在定遊諸法自在定成就行自在定具足增上解脫自在定於諸正受自在定出入坐起自在定得諸智慧自在定彈指之頃以爲一劫自在是謂菩薩摩訶薩住此三昧者正覺十自在定而自娛樂
보살마하살에게는 위엄과 두려움이 없음을 나타내는 열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부처님의 위엄이 빛나서 허공계보다 뛰어나고 정진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모든 파괴할 법에 대하여 도무극 얻는 것을 나타내며, 보살은 행과 큰서원이 두려움이 없어 여래께서 즐거이 노니시는 입의 도무극을 나타내며, 세계가 청정하게 허망한 때[虛垢]를 밝혀 세계를 환히 빛나게 함을 나타내며, 중생에게 드러나 있는 불가사의함을 나타내며, 모든 보살들은 끊어지지 않는 경법(經法)을 나타내며,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서 공양올리고 예배하고 섬기는 것을 나타내며, 지혜의 업과 행의 근본은 불가사의한 까닭을 나타내며, 삼매를 분별하여 두려움 없음을 나타내며, 미묘한 정(定)에 들어가 나아갈 바를 알고 보살의 법도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함을 나타내며, 청정한 부처님 국토에서 보살의 서원한 법을 끊지 않고 스스로 밝게 비추고 또한 두려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012_0408_b_04L菩薩摩訶薩顯威無畏有十事云何爲十謂顯佛威曜過虛空界不壞精進於諸壞法得度無極顯菩薩行弘誓無畏遊如來戲口度無極顯世界淨顯淨塵垢照曜世界顯在衆生示不思議諸菩薩不斷經法顯至佛國供養禮顯智慧業行本不可思議故顯分別三昧而無所畏顯入微妙定知所進趣以菩薩度而度脫之顯淨佛國不斷菩薩誓願之法而自顯照亦無所畏
보살마하살은 세속에 처하여 있으면서 부처님의 형상을 나타내되 다시 두려운 바 없으며 법륜을 굴리되 교화를 받게 하는 까닭을 나타내며, 모든 여래의 선근의 근본과 불승(佛乘)에 서 있으면 모두 성취하게 됨을 나타내고 뜻의 위엄이 만족하면 도무극에 이르느니라.
또 보살마하살은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사유하되 낱낱이 수없고 한없는 억백천 겁 동안에 수행한 법을 환히 통달하여 모두 다 앞에 나타나 있게 하며, 법이 거룩하게 빛나고 활활 타듯 하는 도의 가르침[道敎]을 나타내느니라.
012_0408_b_15L菩薩摩訶薩處在俗中現佛形像復無所畏現轉法輪爲受化故諸如來善根之本立在佛乘皆使成顯意威足致度無極復次菩薩摩訶薩思惟不起法忍一一了達無數無限億百千劫所修行法皆悉在前顯法威曜燃熾道教
012_0408_c_01L또 보살마하살은 낮과 밤ㆍ해와 달ㆍ철[時節]과 해[年歲]를 모두 다 계산하여 알면서 보살은 마음을 쓰되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에 쓴 등지(等智)로 삼세의 일을 알고 어긋남이 없음을 분명히 알면서 그 두려움 없음을 나타내느니라.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삼매에 머무르면 곧 모든 도무극을 빛내고 열 가지의 두려움 없음을 얻으며,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정정수(定正受)에 들어가 몸을 부수는 것이 마치 티끌과 같은 선권방편을 능히 나타내나니 제8의 보살이 수행할 바이니라.”
012_0408_b_21L復次菩薩摩訶薩晝夜日月時節年歲悉能筭知薩用心彈指之頃所用等智知三世事了無差違現其無畏是謂最勝薩摩訶薩住此三昧者便能顯曜諸度無極得十無畏在大衆中入定正碎身如塵善權方便第八菩薩之所修行

16. 신입품(身入品)
012_0408_c_05L身入品第十六

이때에 세존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또 보살마하살은 도리어 자기의 몸을 관하고 몸의 지[身持]와 몸의 입[身入]을 모두 다 분별하되 처소가 없는 줄 분명히 아느니라.
이때에 보살이 몸의 입ㆍ지의 법계정의(法界定意)에 들어가면 모든 정(定) 가운데서 가장 자재하게 되나니, 몸의 모든 털구멍의 낱낱 털구멍마다 법계정의삼매에 들어가서 자재함을 얻느니라.
012_0408_c_06L是時世尊告最勝曰復次菩薩摩訶還自觀身身持身入悉能分別了無處所是時菩薩入身入持法界定於諸定中最得自在身諸毛孔一毛孔入法界定意三昧而得自在
모든 법계에서 요술같은 법[幻法]을 나타내 보이고 전세(前世)와 후세(後世)가 있음을 알고 세상의 법을 분별하고 세계의 억백천의 일을 분명히 알고 수없고 한없는 아승기겁의 모든 부처님 세계의 안에 있는 좋고 나쁜 일을 모두 다 통달하여 알며 등정각의 권속이 성취함을 관하고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은 데서도 역시 모두 평등하여, 선법(善法)을 끊지 않고 대승이 손상되지 않으며 마음과 뜻이 견고하여 다시는 이동하지 않느니라.
012_0408_c_11L於諸法界示現幻法知有前世後世分別世法了知世界億百千事無數無限阿僧祇劫諸佛世界其中好惡悉能達了觀等正覺眷屬成就於淨不淨亦悉平等不斷善法大乘不損心意牢固復不移動
저 한 겁ㆍ백 겁ㆍ백천 겁ㆍ억 겁ㆍ백천억 겁의 한량없는 아승기는 헤아릴 수 없어서 산가지로써 계산할 바도 아니요 뜻으로 헤아릴 바도 아니니, 이와 같은 겁수 동안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서 정수삼매에 들어가 다시 그 안에서부터 일어나며 이 세간의 정에 들어가서 저 세간의 정을 좇아 일어나며, 그 세계에 노닐면서 곧 거기 중생의 행을 성숙시키고 법계를 잃지 않고 정법을 체달하며 삼세를 왕래하되 걸리는 바가 없느니라.
012_0408_c_17L於彼一劫百劫百千劫億劫百千億劫無限無量阿僧祇不可稱計非籌所筭非意所度如是劫數諸佛世界入正受三昧從中起入此閒定從彼閒起遊彼世便能成熟彼衆生行不失法界體之正法三世往來無所罣閡
012_0409_a_01L설법하고 교화할 때에 한계나 걸림이 있으면 혜안(慧眼)에 귀취(歸趣)하는 쇄입법(碎入法)을 알아 모든 법계에서 자재할 수 있게 하고 괴이정(壞耳定)의 도무극을 구족하여 역시 걸림이 없으며, 비입의 정의[鼻入定意]에 들어가되 선권(善權)을 손상하지 않고 설근의 정의[舌根定意]에 들어가서 맛의 집착한 바를 알며, 쇄신정(碎身定)을 성취하여 왕래하는 데에 장애가 없고, 쇄의정(碎意定)에 들어가서 지식(智識)을 수순하나니, 저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관(觀)을 짓고 이와 같이 알 것이니라.
012_0408_c_23L說法教化有限閡者令知歸趣慧眼碎入法於諸法界而得自在具足壞耳定度無極亦無罣㝵入鼻入定意不損善善入舌根定意解味所著成就碎身定往來無㝵入碎意定而順智識彼菩薩摩訶薩作如是觀作如是知
이 신입정(身入定)에 머무르면 곧 보살로서의 십천억의 총지를 획득하고 세간에서 법륜을 굴리어 세속을 따라 들어가며, 다시 십천억의 협장(篋藏)의 행(行)을 얻나니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으며, 다시 십천억의 근문(根門)을 얻나니 온갖 지혜를 초월하고, 다시 십천억의 신통을 얻나니 두루 돌아다니되 막힘이 없느니라. 다시 십천억의 정(定)을 얻나니 온갖 정(定)을 초월하고, 다시 십천억의 신족을 얻나니 끝없는 허공의 지경까지 노닐고 다니며, 다시 십천억의 힘을 얻나니 모든 여러 가지 행(行)이 점차로 더욱더 늘며, 다시 십천억의 구망(救望)을 얻나니 영원히 여러 가지 생각을 끊으며, 다시 십천억의 멈추는 곳[止處]을 얻나니 있는 바가 없음을 나타내고, 다시 십천억의 위신(威神)과 변화를 얻나니 앞에 나타나 있게 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최승아, 보살마하살은 이 십천억의 행을 얻어서 이지러지거나 손해남이 없는 것이니라.
012_0409_a_06L住此身入定者便獲菩薩十千億摠於世轉法輪隨俗而入復得十千億篋藏之行淸淨無污復得十千億根門越一切智復得十千億神通周遊無㝵復得十千億定超過衆定得十千億神足遊至虛空無邊際界復得十千億力於諸衆行漸漸增多復得十千億求望永斷衆想復得十千億止處現無所有復得十千億顯威神變而現在前是謂最勝菩薩摩訶薩獲此十千億行而不虧損
012_0409_b_01L또 보살은 십천억의 지절(支節)의 영락(瓔珞)을 생각하고 수행하되 스스로 휘감아 싸야 하며, 다시 십천억의 갖추어 중생을 제도할 것을 수행하여야 하며, 다시 십천억의 탈 것[乘]을 수행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이 탈 것을 타고 저 언덕에 이를 수 있게 해야 하며, 다시 십천억의 염정삼매(炎定三昧)를 수행하여 세계를 환히 빛내어 어두운 데가 없어야 하며, 다시 십천억의 의변(義辯)을 얻어서 응(應)하거나 응하지 않음이 없으며, 다시 십천억의 큰 서원을 얻어서 와서 보는 이가 있어도 마음이 옮아가거나 동요하지 않으며, 다시 십천억의 믿음과 원(願)을 얻어서 삿되고 뒤바뀐 소견이 없으며, 다시 십천억의 바른 길을 얻어 보살이 왕래하되 두루 돌아다닐 곳에서 그 자취를 청정하게 하며, 다시 십천억의 광명을 얻어서 입[面門]으로부터 나오며, 다시 십천억의 가르침[典訓]을 얻어서 보살의 덕을 드러내며, 다시 십천억의 청정한 근본을 얻어서 도량을 청정하게 하느니라.
012_0409_a_17L復次菩薩當念修行十千億支節瓔珞而自纏裹復當修行十千億具度衆生復當修行十千億乘使衆生類乘此乘得至彼岸復當修行十千億炎定三昧照曜世界無闇冥處復得十千億義辯無應不應復得十千億弘有來觀者心不移轉復得十千億信願無邪倒見復得十千億正路薩所可往來周遊之處而淨其迹得十千億光明從面門出復得十千億典訓顯菩薩德復得十千億淸淨之本而淨道場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공덕으로 써 스스로 휘감아 싸고 도수(道樹)를 장엄하되 본제(本際)를 잃지 않는 것이니 이 모두는 보살이 도(道)에 나아가는 도구[具]이니라. 만일 보살이 이 여러 가지 도구를 성취하면 곧 보살의 지위에 올라서 칭찬을 얻고 덕향(德香)을 풍겨서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행한 바 대중 가운데서 곧 이끗을 얻게 되고 현재 세상의 덕업(德業)이 다함이 없느니라.
012_0409_b_06L是謂最勝菩薩摩訶薩無量功德而自纏絡莊嚴道樹不失本際皆是菩薩趣道之具若菩薩成就此衆具者便上菩薩位而得稱熏以德香爲人所敬所行衆中輒得利養現世德業不可窮盡
만일 어떤 보살이 이 법계의 정의자재삼매(定意自在三昧)에 머무르면 호족(豪族)의 집에 태어나서 비천한 데에 처하지 않고 많은 보살들을 권속으로 삼으며 삼매에 머무른 뒤에는 동방으로 10억 아승기 등의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을 멀리서 뵈옵고 명호와 성씨와 국토의 크고 작음도 모두 다 분명해지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四維]과 위아래의 십억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 세계의 모든 여래께서 다 그 낱낱의 성씨와 명호를 알게 되고 보살행을 세워 도의 문[道門]을 지시하여 그 보살들로 하여금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느니라. 여래의 몸은 한량없는 광명을 놓고 여래의 눈은 불가사의함을 나타내며, 여래의 이통(耳通)도 한량없고 여래의 비통(鼻通)도 갑절 더 헤아릴 수 없으며, 여래의 설통(舌通)도 광대하여 끝이 없고 여래의 심통(心通)도 형관(形觀)이 없는 것이 아니며 여래의 신족은 위없는 법으로 제도하는 바가 한이 없느니라.
012_0409_b_11L若有菩薩住此法界定意自在三昧者生豪族家不處卑賤衆菩薩等以爲眷屬住三昧已遙見東方十億阿僧祇等如來至眞等正覺名字姓號國土大小皆悉分明南西北方四維上下億阿僧祇諸佛剎土及諸如來皆能識知一一姓號立菩薩行指示道門使彼菩薩而淨佛土放如來身無量光明現如來眼不可思議如來耳通無能限量如來鼻通倍不可計如來舌通廣無邊際如來心通非無形觀如來神足無上之法所度無限
012_0409_c_01L여래의 도(道)는 상ㆍ중ㆍ하가 없이 완전히 성취된 까닭이요, 여래의 명칭은 멀리까지 유포된 까닭이며, 여래의 법륜은 언제나 굴리거나 굴리지 않거나 간에 현재 세간에서 굴려지는 까닭이요, 여래를 공경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현재 묻고 받고 하기 때문에 여래의 정법은 한량없어서 중도에 끊어짐이 없는 까닭이며, 여래의 선근은 현재에도 찬탄하는 까닭이요, 여래의 행은 두루하여 논(論)하여도 감당해 낼 수 없는 까닭이며, 여래의 종자는 삼세에 성취하였으니 항복받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요, 여래는 온갖 법을 내셔서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널리 펴 보이시는 까닭이며, 여래는 법의 처소를 환히 나타내나니 지혜가 밝은 까닭이니라.
012_0409_b_23L如來之道無上中下具成就故如來名稱遠流布故如來法輪常轉不轉現世轉故如來翼從現諮受故如來正法無量無能中絕故如來善根現稱歎如來行普遍論無堪當故如來種成就於三世無不降伏故如來生一切諸法宣示愚人故如來法處所顯現智明故
최승아, 그러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나타내는 경계가 청정하여 처소를 세우게 되고 부처님의 여러 겹 구름으로 법의 감로를 비처럼 내리며, 온갖 부처님의 경계는 언교가 있음을 보여 모든 부처님의 법을 나타내고, 모든 법성은 요술 같은 모양이요 진실하지 않는 줄 분명히 알며, 일어나는 것이 자연(自然)이요 동요하거나 전환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법의 형상으로 이치를 분별하며 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은 완전히 갖추어져서 한도 없고 끝도 없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물러 노니는 방소마다 걸리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012_0409_c_08L如是最勝菩薩摩訶薩現界淸淨爲立處所以佛重陰雨法甘一切諸佛境界示有言教現諸佛幻形不眞了諸法性興起自然不動轉故諸法形像分別義理如來無量功德具足不可窮盡是謂菩薩摩訶薩住此三昧所遊之方無所罣㝵
또 보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음(陰)ㆍ지(持)ㆍ입(入)에 노닐되 역시 장애나 폐단이 없고 마음은 요술의 법이 되어 양도 없고 한도 없고 끝도 없는 법을 알아서 모든 보살이 편안히 처하며, 이 정의자재삼매(定意自在三昧)에 머무르면 곧 모든 부처님ㆍ여래ㆍ등정각의 명호와 성씨를 능히 알되 낱낱의 명호는 십억천 아승기 등의 모든 부처님 여래까지 이르고 그 낱낱의 명호는 백천억의 부처님 세계에 이르게 되느니라. 보살의 몸은 모두 그 안에 머물러 편안히 처하되, 한량없는 마음의 생각과 뜻의 생각과 다시 무위의 교묘한 방편으로써 처소에 서게 되느니라.
012_0409_c_14L復次菩薩住此三昧遊陰持入亦無障蔽心爲幻法知無量無限無邊之安處諸菩薩入此定意自在三昧便能知諸佛如來等正覺名號姓字一一名號至十千億阿僧祇等諸佛如來一一名號至百千億佛剎安處菩薩身皆在中住無量無限心想意復以無爲巧便爲立處所
012_0410_a_01L온갖 법은 또한 망실되지 않나니 도지견(度知見)을 얻기 때문이요, 언제나 지혜 바다[智海]를 친근하나니 현지(現智)를 바라기 때문이다. 머무를 때는 역시 처소가 있으나, 모든 법은 처소가 없음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부처님의 처소를 세우기 위하여 널리 모든 법은 앞뒤가 없음을 보이고 나타내기 때문이며, 근문(根門)은 장애가 없고 지혜의 예리한 법으로 지혜를 잘 이용하되 분별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위의를 무너뜨리지 않고 모든 경계를 세우기 위하여 오고 감이 없기 때문이요, 지혜의 처소로 청정한 무애지(無碍智)를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며, 등정각을 이룬 것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요, 법계를 빛내면서 더하거나 덜함이 없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되 곧 대승의 자취에 능히 나아가는 것이니라.
012_0409_c_22L一切諸法亦不忘失得度知見故常親近智海希現智故住亦有處示現諸法無處所故爲立佛處示現廣普諸法無前後故示現根門無閡智慧利法善用智分別故不毀威儀爲立諸界無往還爲示現慧處所淨無㝵智故示現成等正覺故顯曜法界無增減故謂菩薩摩訶薩住此三昧中便能發趣於大乘迹
보살마하살은 다시 열 가지 나아가는 바다의 문[海門]을 닦아 익히되 만족해 함이 없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부처님의 바다[佛海]는 만족해 함이 없음을 나타내며 사람의 바다[人海]는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교화할 적에 만족해 함이 없으며, 법의 바다[法海]는 더욱더 늘리되 만족해 함이 없으며, 착한 밭의 바다[善田海]는 만족함이 없음을 내되 없는 법에 머무르며, 또한 관행(觀行)과 신족도 없는 공덕의 바다[功德海]에 머물러서 1지(地)로부터 1지에 이르기까지 지혜에 착란이 없기 때문에 마음과 뜻의 바다[心意海]에 머물러서 모두 다 온갖 수행의 여러 가지 마음과 여러 가지 뜻을 깨달아 알고 한량없는 마음은 더함도 있고 덜함도 있음을 알며, 수행하는 바다[修行海]에 머물러서 온갖 서원[衆願]을 완전히 갖추기 때문이며, 큰 서원의 바다[弘誓海]에 머물러서 반드시 마지막의 청정한 벗어남[出要]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곧 이 열 가지 나아가는 바다의 문을 얻으나 만족해 함이 없는 것이니 보살 대사(大士)로서 수행할 바이니라.
012_0410_a_08L菩薩摩訶薩復當修習十趣海門而無厭足云何爲十所謂佛海現無厭足人海動轉不動轉化無厭足法海增益智無厭足善田海生無厭足住無有法亦無觀行神足功德海無處所亦無厭足顯智明海執慧無分散故住根門海從一地至一地慧無亂錯故住心意海盡能覺知一切衆生若干種心若干種意無量心有增有減住修行海具足衆願故住弘誓海要成就究竟淸淨出要故是謂菩薩摩訶薩住此三昧便能獲此十趣海門而無厭足菩薩大士之所修行
012_0410_b_01L보살마하살은 다시 열 가지 제일가는 남이 없음[無生]을 사유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중생의 무리를 관찰하는 제일로서 첫 번째 남이 없는 것이요, 하늘의 뛰어난 존귀함[天豪尊]을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두 번째 남이 없는 것이며, 맨 위의 범천(梵天)을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세 번째 남이 없는 것이요, 세계를 지키는 마음[世護心]은 파괴되지 않는다고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네 번째 남이 없는 것이며, 중생에 있으면서 남이 따를 수 없이 뛰어나 짝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다섯 번째 남이 없는 것이요,
012_0410_a_21L菩薩摩訶薩復當思惟十第一無生云何爲十所謂觀衆生類第一一無生觀天豪尊第一二無觀最上梵天第一三無生觀世護心不壞第一四無生觀在衆生獨步無侶第一五無生
악마들을 항복받아 마음이 안정되고 어지럽지 않다고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여섯 번째 남이 없는 것이며, 5취(趣)는 형상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일곱 번째 남이 없는 것이요, 모든 중생들은 역시 더러움에 물듦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여덟 번째 남이 없는 것이며, 높고 귀한 모든 부처님 법을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아홉 번째 남이 없는 것이요, 자재롭게 벗어나서 밝게 빛난다고 관찰하는 것이 제일로서 열 번째 남이 없는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사유해야 할 열 가지 제일가는 남이 없음이니라.
012_0410_b_03L觀降魔衆心定不亂第一六無生觀五趣無形第一無生觀諸衆生亦無染污第一八無觀尊貴諸佛法第一九無生觀自在出要顯曜第一十無生是謂菩薩摩訶薩當念思惟此十第一無生
보살은 다시 사유해야 하느니라. 중생계(衆生界)가 나아가 태어나는 바에는 열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출가(出家)가 견고하여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며, 불퇴전에 서서 정진하는 힘을 행하며, 청정하고 집착이 없는 힘으로 더러움에 물듦이 없으며, 온갖 법이 공(空)하기 때문이며, 휴식하는 힘을 성취하여 모든 법이 자재하기 때문이며, 마음으로 굴리거나 굴리지 않는 힘을 성취하여 분별하고 의논하기 때문이며, 저절로 법의 힘을 두루 갖추어서 큰 지혜를 이루기 때문이며, 걸림이 없는 힘[無碍力]을 이루어 마치고 설법하기 때문이며, 두려움이 없는 힘[無畏力]이 성취되면 법을 위하여 처소를 세우기 때문이며, 의단의 힘[意斷力]으로 미지(未知)와 이지(已知)를 성취하며, 지혜가 성취되어도 두 가지의 힘이 없고 생멸이 없기 때문이니 최승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의 힘을 사유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012_0410_b_08L薩復當思惟衆生界所趣生有十事云何爲十所謂出家堅固化諸衆生立不退轉行精進力淸淨無著力無染污一切法空故休息力成就諸法自在故成就心心轉不轉力分別議具足自然法力成大智慧故成辦無㝵力以說法故無畏力成就爲法立處故成就意斷力未知已知智成就無二力無生滅故是謂最勝菩薩摩訶薩思惟此十力
가장 큰 힘과 견줄 데 없는 힘과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힘과 한량없는 힘과 기르고 부양하는 힘과 동요하지 않는 힘과 착한 길[善趣]에 나는 힘과 성내지 않는 힘과 지혜가 치성한 힘과 힘쓰고 애쓰면서 행을 쌓는 힘으로 이것이 바로 열 가지 힘이니 마땅히 생각하면서 수행해야 하느니라.
012_0410_b_18L最大力無比力不上不下力無量力育養力不動力善趣生力不怒力智熾盛力勤苦積行力是謂十力當念修行
012_0410_c_01L또 보살은 마땅히 열 가지 힘을 잘 사유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공(空)에 잘 들어가는 힘과 잘 청정하게 하는 힘과 잘 미묘하게 하는 힘과 선한 법신[善法身]의 힘과 선한 세간법의 힘과 잘 활활 타는 법의 힘과 선근이 고요하게 되는 힘과 일찍이 없었던 힘과 잘 깨치는 힘과 잘 초월하여 건너는 힘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힘에 머무르면 곧 정의(定意)를 섭지(攝持)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2_0410_b_21L復次菩薩當善思惟十力云何爲十所謂善入空力善淸淨力善微妙力善法身力善世法力善燃法力善根寂力善未曾有力善覺寤力善超度力是謂菩薩摩訶薩住此十力便能攝持定意
보살마하살은 다시 20가지의 힘을 사유하여 정문(定門)에 이르게 되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20가지인가? 이른바 대인(大人)의 힘과 선지식을 친근하는 힘과 평등하고 바르게 깨닫는 마지막의 힘과 본래부터 선근을 닦아 친근(親近)을 얻는 힘과 한량없는 선근으로 향을 쪼이는 힘과 여래의 제도하고 제도하지 않을 수 있는 힘과 마음의 더러운 때[穢垢]를 항복받아 생멸이 없는 힘과 보살의 생각을 더욱더 늘리면서 끊지 않는 힘과 보살을 장엄하여 기쁨을 얻는 힘과 보살의 선(善)을 도와 법을 끊지 않는 힘과 보살의 마음을 제외하고는 연의 집착이 없는 힘[無緣着力]과 보살의 서원이 충만하여 구하는 바가 없는 힘과 보살의 뜻을 이루어 정을 사유하는 힘과 보살의 근성을 얻어 착란이 없는 힘과 법왕(法王)을 세우는 힘과 집착이 없고 한량없는 몸의 힘과 선권방편을 얻은 지혜의 힘과 온갖 법에 대하여 두려움이나 어려움이 없는 힘과 중생의 근본에 서서 새어 없어지지 않는 힘과 모든 중생에서 홀로 걸으며 그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 힘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定)에 머무는 것이며, 비로소 있는 바가 없는 힘[無所有力]과 상응하나니 모든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위에 초월하여 이에 보살의 정의 힘[定力]에 들 수 있느니라.”
012_0410_c_03L菩薩摩訶薩復當思惟二十力得至定門云何爲二十所謂大人之力近善知識力等正覺究竟力本修善根得親近力無量善根被熏香力如來度不度力降心穢垢無生滅力增益菩薩念不斷力莊嚴菩薩得歡喜力助菩薩善不斷法力除菩薩心無緣著力充菩薩願無所求力成菩薩意思惟定力獲菩薩根無錯亂力立法王力無著無量身力得善權方便智慧之力於一切法無畏難力衆生本不漏失力於諸衆生獨步不嬈彼力是謂菩薩摩訶薩住此定者乃應無所有力過諸羅漢辟支佛上乃能入於菩薩定力

17. 변재품(辯才品)
012_0410_c_18L辯才品第十七

그때에 최승보살이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보살은 온갖 덕을 두루 갖추어 중생을 끊겠다는 희망과 모든 것을 배부르게 하고 혐오나 원한이 없게 하나이까?”
012_0410_c_19L爾時最勝菩薩前白佛言云何菩薩具足衆德斷衆生望充飽一切令無嫌恨
012_0411_a_01L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여라. 이제 너에게 이것을 분별하여 주리라. 보살이 처음 발심(發心)해서부터 부처가 되기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청정한 도량을 장엄하여 큰 광명을 놓아 그의 경계에 비추면 어두운 곳에서도 그의 광명을 받으며, 그 광명을 본 이면 마음에 두려움을 품지 않고 어려운 바가 없으며, 마음이 드디어 왕성하여 갑절이나 더 기쁘게 하고 공덕을 더욱 늘려 청정한 행을 여의지 않고 스스로 그의 행을 청정하게 하고 위없는 도를 닦으며, 공덕의 업(業)으로 하여금 다할 수 없고 지혜가 끝이 없게 하여야 하느니라.
012_0410_c_22L佛告最勝諦聽諦聽善思念之今當與汝善分別之菩薩從初發心以來至于成佛要當莊嚴淸淨道場放大光明照彼境界幽冥之處皆蒙其光其見光者心不懷懼無所畏難心遂熾盛倍加歡喜增益功德不離淨行自淨其行修無上道使功德業不可窮盡智無邊崖
보살행의 법은 역시 끝이 없는 행이요, 보살승(菩薩乘)도 역시 밑[底]이 없으며, 보살의 경계는 불가사의하여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며, 보살이 제도할 바는 다시 가장자리나 폭이 없고 온갖 덕을 성취하여 다시는 낭떠러지가 없으며, 보살이 청정하게 할 바 큰 서원을 버리지 않고 보살의 출요(出要)는 도의 문[道門]을 가리켜 보이느니라. 보살의 모든 법은 단서를 논하고자 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 보살마하살은 수없는 겁으로부터 바야흐로 보살을 얻었으니 그런 뒤에야 보살의 도를 이루느니라.
012_0411_a_06L菩薩行法亦無有邊行菩薩乘亦無有底菩薩境界不可思議非是羅漢辟支佛所能籌菩薩所度復無邊幅成就衆德復無崖畔菩薩所淨不捨弘誓菩薩出要指示道門欲論菩薩諸法端緖而不可得菩薩摩訶薩從無數劫方得爲菩薩然後乃成菩薩之道
어떤 이가 와서 친근하고 보살을 받들되 더욱더 권하고 일으키어 보살의 덕을 이루어 명칭이 멀리까지 들리게 하고 그 이름을 들은 이가 모두 와서 받들어 섬기고 묵으면서 호위하고 공양올려 후세에서 어질게 돕는 복전이 되게 하느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보살을 보면 곧 그를 위하여 위없는 지혜를 설법하고 전에 법을 들은 이면 만족해 함이 없게 하며 널리 지혜의 광명을 펴고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나니, 그렇게 하는 까닭은 법을 들은 중생이 바른 가르침을 받들고 받아 지혜의 업을 갑절 더하고 바른 교훈을 널리 펴서 모두 없어짐이 없게 하기 때문이니라.
012_0411_a_13L有來親近奉菩薩者增益勸發成菩薩德名稱遠聞其聞名者皆來承事宿衛供欲爲後世良祐福田若有衆生見菩薩者輒爲說法無上之智前聞法者而無厭足廣布慧明不毀法性以然者聞法衆生承受正教倍增智頒宣正訓無有耗盡
012_0411_b_01L보살마하살이 이 삼매 가운데에 머무르면 곧 모든 선한 공덕을 널리 펼 수 있으며 보살은 한량 없고 수없고 헤아릴 수 없이 넓고 큰 뜻과 낱낱이 베푸는 뜻은 그 앞의 인연에 따르고 삼매의 정(定)에 들어가 다시 그 정을 좇아 일어나며, 스스로 법성의 관(觀)을 살피되 이 삼매로 인하여 삼매의 경계를 알고, 수없는 삼매인 정의관(定意觀)삼매ㆍ광보관(廣普觀)삼매ㆍ무욕관(無欲觀)삼매ㆍ상관(相觀)삼매ㆍ소현관(所現觀)삼매ㆍ위의관(威儀觀)삼매ㆍ의관(猗觀)삼매ㆍ염관(念觀)삼매ㆍ대관(待觀)삼매ㆍ희관(喜觀)삼매ㆍ안은관(安隱觀)삼매ㆍ호관(護觀)삼매ㆍ출요관(出要觀)삼매를 분별하나니, 이미 생긴 것은 버리고 아직 생기지 않은 것도 모두 버리되 선열(禪悅)의 정의(定意)에 상응하나니 비록 선정에서 노닌다 하더라도 역시 선정에 물들지 않느니라.
012_0411_a_20L菩薩摩訶薩住此三昧中便能廣布諸善功德薩以無限無量不可稱計曠大之意一一施意隨其前緣入三昧定復從定起自省法性之觀因此三昧而知三昧境界分別無數三昧定意觀三廣普觀三昧無欲觀三昧相觀三所現觀三昧威儀觀三昧猗觀三念觀三昧待觀三昧喜觀三昧隱觀三昧護觀三昧出要觀三昧捨已生未生皆捨應禪悅定意雖遊於定亦不染定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아뇩달대용왕(阿耨達大龍王)의 궁전 모두가 7보(寶)로 이루어지고 아뇩달샘[阿耨達泉]에서는 4개의 큰 강물이 나오는데 그 물이 4문(門)에서 흘러 넘치는데도 생 모종[生苗]을 상하지 않는 맑은 샘물은 사무쳐서 마치 허공 빛깔과 같으며, 이때에 4개의 강물은 4개의 문으로부터 나와 사방으로 나아가 모두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라.
012_0411_b_08L最勝當知猶如阿耨達大龍王宮殿皆七寶成阿耨達泉出四大河四門流盈不傷生苗泉水淸徹亦如虛空之色是時四河從四門出而趣四方皆歸于海
그 4개의 강물이란 첫째의 이름은 항가(恒伽)이니 코끼리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둘째의 이름은 사두(私頭)이니 사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며, 셋째의 이름은 사타(私陀)이니 소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넷째의 이름은 바차(婆叉)이니 말의 입으로부터 나오느니라. 이 4개의 큰 강물은 4개의 입으로부터 나와서 사방으로 나아가 4개의 바다로 돌아가느니라.
항가의 큰 강물은 자거(車璖)의 진짜 보배로 코끼리의 몸이 되어서 그 물을 흘러 나오게 하고, 사두의 큰 강물은 진짜 금강(金剛)의 보배로써 사자의 몸이 되어 그 물을 흘러 나오게 하며, 사타의 큰 강물은 마노(馬瑙) 보배로써 소의 몸이 되어 그 물을 흘러 나오게 하고, 바차의 큰 강물은 푸른 유리(琉璃) 보배로써 말의 몸이 되어 그 물을 흘러 나오게 하나니, 이 네 가지 보배는 모두가 천상의 보배요 인간의 보배는 아니니라.
012_0411_b_12L其四河者一名恒伽從象口出二名私頭從師子口出三名私陁從牛口出四名婆從馬口出此四大河從四口出於四方歸于四海恒伽大河者車璖眞寶以爲象身流出其水私頭大河眞金剛寶以爲師子身流出其水私陁大河者以馬瑙寶以爲牛身流出其水婆叉大河者靑琉璃寶以爲馬身流出其水此四寶者皆天上寶非人閒寶
012_0411_c_01L이 4개의 큰 강물은 처음 흘러 나오는 곳은 각각 너비가 1유순(由旬)이요 흐를 때에는 차례로 고요하여 소리나 메아리가 없으며, 낱낱의 큰 강물은 저마다 오른편으로 신령한 샘[神泉]을 일곱 바퀴를 돌고 모두 바다로 들어가는데 일곱 바퀴를 도는 그 중간은 서로 한 유순씩 떨어졌고 그 사이에는 여러 가지 연꽃이 나 있나니 우발연꽃[優鉢蓮花]과 발두모꽃[鉢頭牟花]과 수건제꽃[須犍提花]과 만원건제꽃[滿願犍提花]이며, 여러 가지가 섞인 보배가 모두 그 안에 나 있느니라.
012_0411_b_22L此四大河當初出處各各廣一由旬流時庠序寂無聲響一一大河各各右繞神泉七帀皆投于海七帀中閒相去一由旬閒生若干雜種蓮花優鉢蓮花鉢頭牟花須犍提滿願犍提花衆寶雜珍皆生其中
다시 갖가지 미묘한 향기가 풍기나니 그 빛깔은 향기롭고 아름다우며, 여러 가지 보배는 서로서로 광명을 비추며, 그것을 보는 이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구경하나니 기이한 보배들은 겉도 보이고 속도 보이되 1유순 안을 보배끼리 서로 비추니 마치 마니주(摩尼珠)가 빛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고 그 일곱 겹으로 된 안에는 기이한 새들이 지저귀고 화답하며 울면서 서로 함께 즐기고 있느니라.
012_0411_c_04L復有種種微妙熏香其色香美若干種寶自相照明其有睹者觀無厭足珍奇異寶視表見裏一由旬內寶寶相照如摩尼珠靡所不曜其七重內異類衆鳥悲哀和鳴共相娛樂
다시 백 가지 신령한 나무와 약초들이 나 있고 향기로운 바람이 멀리 퍼지나니 그것에 사무치되 사문(沙門)의 경계를 따르며, 그 아뇩달 용궁(龍宮)의 전각들은 동ㆍ서ㆍ남ㆍ북이 각각 50유순씩이요 순전히 7보로써 장식하였으며, 다시 여러 가지 기이한 빛의 마니보가 사이사이 섞였고, 다시 마니보주가 허공에 걸려 있으며, 해ㆍ달과 별이 허공에 줄 지어 늘어서 있고, 우두전단(牛頭栴檀)을 땔감으로 사용하여 공양을 지으며, 궁전 안에는 하루 동안 세 때[三時]에 여러 가지 향기로운 꽃인 우발연꽃과 구모두꽃[拘牟頭花]과 분타리꽃과 수건제꽃과 만원건제꽃이 비처럼 내리며 여러 가지 보배로 궁전이 이루어졌고 광명과 광명이 서로 비추면서 밝음이 서로 이어지느니라.
012_0411_c_09L復有百種神樹藥草香風遠布徹彼隨沙門境界然彼阿耨達龍宮殿舍東西南北各五十由旬純以七寶以爲挍復以若干種異色摩尼寶雜廁其復以摩尼寶珠懸在虛空以爲日月星辰羅列虛空牛頭栴檀薪以用供廚於宮殿中一日三時雨衆香花優鉢蓮花拘牟頭花分陁利花須犍提花滿願犍提花若干種以成宮殿光光相照明明相續
012_0412_a_01L마치 아뇩달의 샘물이 4개의 큰 강물을 나오게 하고 4개의 입으로부터 흘러 나와 네 바다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변재의 걸림이 없는 강물을 얻어 네 가지 도(道)를 분별하여 지혜 바다[智海]로 돌아가느니라.
마치 저 항가의 강물이 자거의 진보(眞寶)로 이루어져서 코끼리의 입으로부터 나와 바다에 흘러드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청백한 법의 입을 좇아 한량없는 뜻을 나오게 하되 모두가 이것은 여래께서 비밀히 간직한 상자[篋]로 깊은 이치를 풀어 드날리며 모두가 모든 법으로 하여금 저마다 이름을 듣고 법의 맛[法味]을 펴 나타나게 하며 지혜의 광명을 훨훨 태워 모두 끝없는 지혜 바다에 몸이 들게 하느니라.
012_0411_c_19L如彼阿耨達泉出四大河從四口流趣于四海薩摩訶薩亦復如是得四辯才無滯之河分別四道歸於智海如彼恒伽河者車璖眞寶所成從象口出水流至於海菩薩摩訶薩亦復如是從靑白法口出無量義盡是如來秘藏之篋解暢深義皆令諸法各得名字現法味燃智光明皆使投于無邊智
비유하면 마치 저 사두의 큰 강물이 진짜 금강의 보배로써 그 바탕을 이루고 사자의 입으로부터 바다에 흘러드는 것처럼 보살 대사(大士)도 역시 그와 같아서 법변(法辯)을 연출하여 부처님의 금강(金剛)을 부리되 모든 중생들을 보호하고 비추어 밝음을 얻게 하며, 지혜의 금강을 가지고 걸림없는 바다[無碍海]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마치 저 사타의 큰 강물이 마노의 보배로써 이루어지고 소의 입으로부터 나와 바다로 흘러드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상응한 변재를 연출하여 의심이나 막힘이 있는 이에게 영원히 망설임이 없게 하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다툼이 없고 근기와 보응에 따라 이치를 분별하게 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순수하게 그 행이 성숙하여 모두 연의 집착이 없는 바다[無緣着海]에 돌아가게 하느니라.
012_0412_a_05L譬猶如彼私頭大河眞金剛寶以成其體從師子口流至於海菩薩大士亦復如是演出法辯御佛金剛諸生類使得照明執智金剛投無㝵如彼私陁大河馬瑙寶所成從牛口出流至于海菩薩摩訶薩亦復如演出應辯有疑滯者永無猶豫使衆生無諍訟者隨機報應分別義使衆生類純熟其行皆令歸趣無緣著海
마치 바차의 큰 강물이 푸른 유리로 이루어지고 말의 입으로부터 나와 다 바다에 드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다함 없는 변재[無盡辯]를 얻어 모든 법을 사유하고 억백천 겁 동안 그 가운데 나타내 보이되 다함이 없으며, 선한 법[善法]으로 경영하고 보호하여 선도(善道)에 이르고 모든 금계를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 부처님 바다로 돌아가서 동일한 맛이 되게 하느니라.
마치 저 4개의 큰 강물이 오른편으로 아뇩달샘을 일곱 바퀴 돌고 사방으로 나아가 네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살 대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몸의 행[身行]이 성취되면 또한 왼편에 있지 않고 입의 행[口行]이 성취되면 또한 왼편에 있지 않으며 뜻의 행[意行]이 성취되어도 왼편에 있지 않나니, 뜻으로 닦는 바 지혜로 우두머리를 삼느니라.
012_0412_a_14L猶如婆搓大河靑琉璃所成從馬口出悉投於海菩薩摩訶薩亦復如是得無盡辯思惟諸法億百千劫於中示現而無窮盡善法營護將至善道令諸守禁之人悉歸佛海而同一味如彼四大江河右繞阿耨達泉七帀趣於四方而歸四海菩薩大士亦復如是身行成就亦不有左行成就亦不有左意行成就亦不有意志所修智慧爲首
012_0412_b_01L마치 저 4개의 강물이 사방으로 나아가서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살 대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네 지혜의 변재를 타고 사방으로 나아가나니, 이에 보살은 모든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소를 관하여 받들어 섬기고 예경하며 위의를 잃지 않아야 하느니라. 또 모든 부처님 법의 광명이 빛남을 나타내되 총지의 법을 지니고 망실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또 모든 지도(智度)를 나타내며, 보살의 온갖 행의 근본을 두루 갖추며 또 대자비를 나타내어 중생에 처해 있으면서 실제로 법륜을 굴리느니라.
012_0412_a_23L如彼四河趣於四方而歸于海菩薩大士亦復如乘四智慧之辯趣于四方於是薩當觀一切諸佛所住之方承事禮敬不失威儀復次當現一切諸佛之法光曜執摠持法使不忘失復次現諸智度具足菩薩衆行之本復次現大慈悲處在衆生現轉法輪
마치 저 4개의 강물이 아뇩달을 일곱 바퀴 돌 적에 그 중간에는 여러 가지의 우발연꽃과 구모두꽃과 분타리꽃과 수건제꽃과 만원건제꽃이 피어 있고 그 향기로운 꽃에서는 향기가 사방에 자욱한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부처님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아직 가르침을 받지 못한 중생들을 교화하고 인도하며 나아가도록 설법하고 권하여 불퇴전에 이르게 하고 그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되 억백천 겁으로부터 또한 고달파하지 않았으며, 한 사람이라도 제도되지 않았으면 끝내 버리지 않았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되 머물러 있는 땅을 장엄하게 다스리며 사자보정의(師子步定意)삼매에 들어가서 도수(道樹)을 향하여 나아가고 뜻이 금강과 같으니 특별한 어려움이 없느니라.
012_0412_b_07L如彼四河繞阿耨達七帀於其中閒有諸雜優鉢蓮花拘牟頭花分陁利花犍提花滿願犍提花及諸香花香熏四方菩薩摩訶薩亦復如是從初發意至成作佛於其中閒化導未被訓衆生勸進說法至不退轉爲演正受從億百千劫亦無疲極一人不度終不捨之淨佛國土嚴治住地入師子步定意三昧進向道樹意如金剛而無異難
012_0412_c_01L마치 저 아뇩달샘의 일곱 겹 안에 7보로 된 나무가 나서 스스로 장식하였고 온갖 열매와 향기로운 꽃이 한량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 세계의 청정한 국토를 장엄하고 서른일곱 도수(道樹)의 꽃이 피며 각관(覺觀)과 도의 마음[道心]으로 정법(正法)을 사유하느니라.
마치 저 아뇩달 궁전이 세로와 너비가 50유순이나 청정하여 하자가 없으며, 또한 비바람에 날리는 티끌이나 일어나는 먼지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다시 그와 같아서 도의 마음이 청정하여 하자가 없고 안으로는 갖가지 선의 근본 공덕을 품으며 한량없는 정의 법문(定意法門)을 완전히 갖추느니라.
012_0412_b_17L如彼阿耨達泉七重之內生七寶樹以自莊飾衆果香花不可稱菩薩摩訶薩亦復如是莊嚴佛土淸淨之國生三十七道樹之花覺觀道心思惟正法如彼阿耨達宮殿縱廣五十由旬淸淨無瑕穢亦無風塵坌垢菩薩摩訶薩亦復如是道心淸淨而無瑕穢內懷種種善本功德足無量定意法門
마치 아뇩달의 샘이 우두전단과 여러 가지 보배로 담이 둘린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도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와 십억백천의 지혜와 소견으로 에워싸고 서원한 바가 이지러지지 않고 본래 심통(心通)이 없으며 심통을 이룬 행으로 지혜의 업이 성취되었으니 온갖 선의 근본이 모두 청정하느니라.
012_0412_c_02L猶如阿耨達泉牛頭栴檀及衆雜寶以爲垣牆菩薩摩訶薩亦復如是道心所念十億百千智所見圍繞不缺所誓本無心通成心通行智業成就衆善根本悉爲淸淨
마치 아뇩달 궁전 안은 순수하게 진주(眞珠)와 호박(琥珀)으로써 그 땅에 섞었으므로 여러 가지 광명이 나와 빛나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지극히 미묘한 지혜에 들어가서 뜻으로 규도(規度)한 바가 불가사의하고 중생을 돕고 보호하되 근심이 없는 못을 내어 여러 가지 값진 보물과 영락(瓔珞)으로써 스스로 장엄하고 또한 법계의 체성(體性)을 파괴하지 않으며, 모든 여래의 무위(無爲)의 방에 머무르되 뜻이 나아가는 바가 끝내 퇴전(退轉)하지 않느니라.
012_0412_c_07L猶如阿耨達宮內純以眞珠虎珀以廁其地出若干種光靡不照曜菩薩摩訶薩亦復如是入極微智意所規度不可思議將護衆生出無憂以若干種珍寶瓔珞而自莊嚴不毀壞法界體性住諸如來無爲之意之所趣終不退轉
마치 저 아뇩달용왕이 여러 작은 용[小龍]들과 함께하되 덮어 보호하여 주나니 두려움이 있는 이면 두려운 바가 없게 하느니라. 좌우에 있는 신령한 용은 모두가 위덕이 있어 바다 안의 작은 용왕들이 모두 와서 뵙고 하례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온갖 형상 있는 중생으로서 두려움을 품고 있는 이면 덮고 보호하여 주고 때에 따라 돕고 기르면서 원한이 없게 하며, 지경 안이나 지경 밖이거나 간에 마음이 평등하기 허공과 같으며, 비록 세간에 처한다 하더라도 지혜의 광명을 펴 백성들을 돕고 수호하는 것이 마치 자기 몸과 같이하되 다름이 없느니라
012_0412_c_13L如彼阿耨達龍王與諸小龍而作覆護有恐懼者使無所畏左右神龍皆有威德及海中諸小龍王皆來朝賀菩薩摩訶薩亦復如是爲一切有形衆生懷恐怖者而作覆護隨時將育令無怨恨內越界心等如空雖處於世布慧光將護萌類如身無異
012_0413_a_01L마치 아뇩달샘에서 4개의 강물이 나와 염부지(閻浮地)에 두루하고 굽이쳐 돌아 흘러 바다로 돌아가며, 지나는 처소마다 윤택한 바가 많은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4지(智)의 바다를 타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악마며 또는 마천(魔天)ㆍ제석ㆍ범왕의 모든 천인(天人)들과 사람[人]과 사람 아닌[非人] 따위를 싣고는 모두 큰 지혜의 바다에 나아가게 하되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일으키고 10력과 두려움 없음과 18불공(不共)의 일이 있게 하며 도수 아래에 이르러서 끝내 퇴전하지 않느니라.
012_0412_c_20L如彼阿耨達泉出四江河遍閻浮地詰屈周障而歸于海所經過處多所潤澤菩薩摩訶薩亦復如是乘四智之海載諸天及人魔若魔天釋梵諸天人及非人皆使趣於大智之海發於無上正眞之道十力無畏十八事不共至道樹下終不退轉
이른바 4지의 강물이란 첫째 원지(願智)의 강물이니 항상 서원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요, 또한 안 몸[內身]을 의지하지 않고 집착한 바도 없느니라. 둘째 지도(智度)를 두루 갖춘 끝없는 강물이니 청정한 보살도로 온갖 세계를 섭수하여 오가고 돌아다니되 역시 집착하는 바가 없고 듣는 바가 그지없되 역시 다함이 있지 않으며 삼세의 지혜를 내고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의 뜻을 연출하느니라. 셋째 보살 정의(定意)의 지혜 바다이니 헤아릴 수 없는 정(定)으로써 스스로 장엄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가 노닐되 모든 부처님 세존께 예배하고 섬기고 공양올리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 없는[無源] 바다를 연출하느니라. 넷째 대자비의 강물이니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자비에 편안히 있으면서 불퇴전에 서게 하고 온갖 고통을 뽑아 주어 뜨거운 고뇌가 없게 하며 다시 수없는 선권방편으로써 그들을 인도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되 돌아보며 그리는 바가 없게 하고 10력(力)으로 많이 쌓은 진기한 보배로써 반연이나 집착이 있는 이에게 돌아갈 바를 알게 하느니라.
012_0413_a_04L所謂四智河者一曰願智之河恒常誓願度衆生故亦不猗內身無所著二曰具足智度無邊之淨菩薩道攝一切界來往周旋亦無所著所聞無盡亦不有盡出三世智演非常苦空非身之義三曰菩薩定意智海以無央數定而自莊嚴至十方諸佛剎土禮事供養諸佛世演出諸佛無源之海第四名曰大慈悲河使衆生類安處慈悲立不退拔一切苦使無熱惱復以無數善權方便導彼前進無所顧戀十力之海多積珍寶有緣著者知趣所歸
마치 저 아뇩달샘에서 4개의 큰 강물이 나와 모두 다 바다로 돌아가되 끝이 없고 다함이 없고 불가사의한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뛰어난 큰 서원을 얻어 원지(願智)를 성취하여 보살행을 수행하고 지혜와 관법(觀法) 또한 다할 수 없으며, 위없는 도를 이루어서 의심이나 막힘이 없고 또한 모든 부처님께서 두루 쌓으신 정의[普集定意]를 알며 부처님들이 좋아하는 바로써 즐기느니라.
012_0413_a_16L彼阿耨達泉出四大河悉歸于海盡無窮不可思議菩薩摩訶薩亦復如是得增上弘誓成就願智修菩薩行智慧觀法亦不可盡成無上道而無疑滯亦知諸佛普集定意以佛所樂而娛樂之
012_0413_b_01L마치 저 아뇩달샘에서 4개의 큰 강물이 나오되 한 개의 강물에서 5백의 지류로 나뉘어지고 그 낱낱의 5백 지류는 모두 다 바다로 돌아가되 중생을 번거롭게 하지도 않고 상해하는 바도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크게 서원한 지혜에 의지하여 뜻이 이동하지 않고 두루 구제하는 행을 닦아 자비가 온갖 것에 미치며, 모양[相]이 있는 것과 모양이 없는 것을 나타내어 온갖 법을 깨닫고 걸림이 없는 지혜[無碍智]를 행하되 법의 근본을 끊지 않으며 벗어남[出要]을 가르쳐 주어 걸림이 없는 자리[無碍地]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012_0413_a_22L如彼阿耨達泉出四大夫一河者分爲五百支一一五百悉歸于海不嬈衆生無所傷害菩薩摩訶薩亦復如是依猗弘誓之慧志不移動修普濟之行慈及一切現有相無相覺一切法行無㝵智不斷法教令出要住無㝵地
마치 아뇩달샘의 일곱 겹으로 된 그 중간에 여러 가지 진기한 보물이 나 있고 광명과 광명이 서로 비추어 햇빛과 똑같이 밝으며 비추어진 곳은 백 배(倍), 천 배로 다 그 밝음을 받는지라 눈이 있는 선비는 아뇩달 궁전의 5색(色)이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과 같으며 마치 해가 공중에 있을 적에는 빛을 힘입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각각의 형질에는 스스로 광명이 있어 모습이 쪼그라들게 하지 않고 보배와 보배를 비빌 때에는 약간의 소리가 나되 그 소리는 매우 부드러워 들어도 싫증남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법계의 자재정의(自在定意)에 머무르면서 낱낱의 털구멍에 수없고 헤아릴 수 없는 억백천의 여래와 부처님 국토의 보살 제자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을 관하면서 법의 맛을 듣고 지니어 잊지 않으며 밤낮 읊고 외우느니라.
012_0413_b_05L猶如阿耨達泉七重中閒生若干種珍奇寶物光相照與日光同明所照之處百倍千倍悉蒙其明有目之士觀阿耨達宮五色玄黃如日在空靡不蒙賴各形質自有光明不相逼迮寶寶相撐出若干聲聲甚柔軟聽無厭足薩摩訶薩亦復如是住此法界自在定意觀一一毛孔無數無量億百千如來及佛剎土菩薩弟子衆會多少聽聞法味執持不忘晝夜諷誦
마치 저 사람이 깊은 못에 빠졌을 적에 여래의 몸이 두루 모든 세계에 나타나서 구제한 것 같아서 불가사의하고 헤아릴 수 없으며, 다시 가서 모든 부처님 세계를 친근하여 예배하고 섬기고 공양올리면서 현지에서 법의 맛을 들으며 백천 겁 동안 들었던 정의(定意)에 대하여 장점을 보지도 않고 또한 단점도 보지 않으며 큰 것도 보지 않고 다시 작은 것도 보지 않느니라.
012_0413_b_15L如救彼人溺於深淵現如來身遍諸世界不可思議不可度量復往親近諸佛世界禮事供養現聞法味於百千劫所入定意亦不見長亦不見短亦不見大復不見小
012_0413_c_01L보살은 낱낱의 털구멍에서 모든 부처님 여래의 국토와 성곽과 제자들이 좌우에서 모시는 것과 중생들의 많고 적은 것과 여러 가지 형상과 언사(言辭)가 같지 않은 것과 돌아다니고 오가면서 뜻대로 짓는 바를 보되 저마다 뜻하고 원하는 바에 따라 함께 서로 재미있게 즐기며, 또한 좁은 것도 보지 않고 다시 넓은 것도 보지 않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 어떤 보살로서 법계의 정의에 들어간 이는 마음이 미세하여 보기도 어렵고 또한 형질이 없으며 그 행적은 지극히 미세하여 비유할 수조차 없고 생기는 것마다 스스로 파괴되고 또한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012_0413_b_20L菩薩觀見一一毛孔諸佛如來國土城郭弟子翼從衆生多少若干種形言辭不同周旋往來隨意所造各隨志願共相娛樂亦不見迮復不見寬所以者何其有菩薩入法界定意者心微難見亦無形質行迹極細無以爲喩生生自壞亦不自知
삼매의 경계는 불가사의한지라 선행(禪行)을 사유하면 노니는 경계도 헤아리거나 말로 할 수 없으며 모든 부처님께서 머무르는 곳도 역시 처소가 없고 드러난 부처님의 위의도 다할 수 없어서 하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려우며, 끝내 중도에 보살의 행을 버리거나 잃지도 않고 모든 악마의 경계를 초월하나니 견고하지 못한 이는 무위(無爲)에 편안히 있되 청정한 덕을 획득하고 여래의 10력(力)과 대요(大要)를 두루 갖추며 위없고 한이 없는 업(業)을 구하되 바른 법의 깊고 묘한 뜻을 수행하지만 어렵게 여기지 않느니라.
012_0413_c_04L三昧境界不可思議思惟禪行所遊境界無能思議諸佛住處亦無處所顯佛威儀不可窮極難爲難行終不中捨失菩薩行越諸魔界不牢固者安處無爲獲淸淨德具足如來十力大要欲求無上無限之業修行正法深妙之義不以爲難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그 마음과 뜻에 따라 한 생각 동안에 삼매로부터 일어나 삼세의 일을 알며 곧 선악(善惡)으로 나아간 바를 능히 분별하고 모든 법계에서 자재함을 얻으며, 또한 안[內]을 의지하지도 않고 또 바깥[外]을 의지하지 않으며 그 근본과 지말을 미루어 찾아도 실마리를 보지 못하고 도무지 처소가 없으며 또한 생각[想]을 보지도 않고 그로써 온갖 생각을 제도하며 모든 의변(義辯)을 변론하고 부처님 국토의 지경에 노닐며 예배하고 섬기고 공양올리되 역시 만족해 함이 없느니라.
012_0413_c_10L菩薩摩訶薩亦復如是隨其心意一念之頃從三昧起知三世事尋能分別善惡所於諸法界而得自在亦不猗內復不猗外推尋本末不見端緖都無處所亦不見想以度衆想辯諸義辯佛國界禮事供養亦無厭足
012_0414_a_01L모든 법계에 들어가 사유하고 분별하되 그 근원을 다하며, 무위(無爲)에 처하지도 않고 가장자리에도 떨어지지 않으며, 온갖 지혜를 닦되 지혜에 집착하지 않고 비록 왕래함이 있어도 돌아다니는 것을 보지 않으며, 지혜는 요술[幻]과 같되 실로 요술조차도 없다고 관하고 중생의 등분(等分)도 역시 그와 같아서 그 근본을 찾으면 제한이 없으며, 모든 세계를 청정하게 하되 청정함이 있음을 보지 않고 중생의 고통은 무엇 때문에 생기고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는가를 널리 보이며, 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ㆍ무아(無我)ㆍ인(人)ㆍ수(壽)는 모두 다 아무것도 없고 여러 가지 무상(無常)한 변화를 나타내되 생사에 처하지 않고 열반에 집착하지 않으며, 온갖 겁을 초월하여 모든 죽음의 자리를 건너고 모든 모습[相貌]을 관하되 뜻이 미혹되지 않느니라.
012_0413_c_16L入諸法界思惟分別盡其原本不處無爲不墮邊際修一切智不著於智雖有往來不見周旋觀智如化實無有化生等分亦復如是尋其根本無能齊淨諸世界不見有淨宣示衆生苦爲何生爲從何起苦空非身無我人壽悉無所有爲現若干無常之變處生死不著泥洹越一切劫度諸死觀諸相貌意不迷惑
그리고 그 보살은 선권방편으로써 진실로 온갖 지혜를 원만히 하고 마지막까지 청정하여 뜻이 옮아가거나 바뀌지 않으며, 모든 세계와 중생을 관찰하되 가고 돌아옴[往還]이 있는 이와 가고 돌아옴이 없는 이를 다 제도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가 줄어듦이 없게 하며, 온갖 세간과 법계와 위의와 법을 잇고 법을 얻는 데서 차례를 잃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쌓은 행을 관하되 또 만족해 함이 없고, 모든 부처님의 창고[藏]에 의지하여 큰 진보(珍寶)에 이르게 하며, 모든 삼매와 권현(權現)에서 장애가 없이 그대로 자연히 수호하며, 깊은 법의 구절이 뜻에 막힘이 없고 통한 바의 도교(道敎)는 다할 수 없으며, 변재와 큰 지혜로 자체(字體)를 분별하고 총지를 널리 펴 내어 여러 가지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창고[秘藏]를 드날리며, 이미 탐욕을 여의면서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게 하느니라.
012_0414_a_02L然彼菩薩以善權方便諦滿衆智至竟淸淨志不移易觀諸世界及諸衆生有往還者無往還者悉令度脫使諸衆生智無減少一切世閒法界威儀次法得法不失次第觀佛積行亦無厭足依諸佛藏致大珍寶於諸三昧權現無㝵如爾自然守護無滯深法句義所暢道教不可窮盡辯才大智分別字體演出摠持暢若干種諸佛秘藏已以離婬亦使衆生無婬怒癡
보살 대사는 수없는 겁 동안 권방편을 행하되 갖가지의 도(道)를 나타내었고, 무리에 따라 교화하여 해탈을 얻게 하였으며, 모든 법이 자연히 제도되고 해탈함도 자연히 보지 않고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기 위하여 큰 자비를 세웠으며,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또한 중생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고, 들숨ㆍ날숨을 세되 숨을 내쉴 때에나 들이쉴 때에 모든 세계의 성품은 본래 자연이요 법은 스스로 항상 머무른다[常住]는 것을 분명히 알며, 앞 사람이 행하는 것이나 스스로 식(識)을 일으킨 이에게 안정하지 않다[不定]고 여기지만 동요하거나 말과 법에 내닫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012_0414_a_12L菩薩大士無數劫中行權方便現顯若干種種之道隨類化之令得度脫一切諸法自然度脫不見自然度不度故立大慈悲於諸衆生亦不見有衆生之想數出入息有息出時有息入時了諸世界性本自然法自常住前人行者自起識者謂爲不定不見動轉言法流馳
012_0414_b_01L비록 중생을 교화한다 할지라도 교화함이 있다고 보지 않고 3계장(戒場)을 청정하게 하여 여래의 방에 들어가며, 모든 법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되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설법하여 청정하게 법륜을 굴리되 무너뜨릴 수 없으며, 도의 마음이 융성하여 끝내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뜻이 없나니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이 법계의 자재정의삼매(自在定意三昧)를 얻으면 큰 일[大事]이 더욱더 늘어나 보살의 지위에 오르고 마침내 헛되이 수고하지 않는 것이니라.”
012_0414_a_20L雖化衆生不見有化淨三戒場入如來室興諸法想心獲無畏說法淸淨而轉法輪不可毀壞道心隆盛終無羅漢辟支之意是謂最勝菩薩摩訶薩得此法界自在定意三昧事增益上菩薩位終不虛勞

18. 권지품(權智品)
012_0414_b_02L權智品第十八

“또 최승아, 보살마하살은 다시 제10 권지(權智)의 정혜삼매(定慧三昧)를 사유하고 수행할 것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제10 권지의 정혜 삼매를 수행해야 하는가? 이에 최승아, 보살마하살에겐 삼매가 있나니 이름은 무량정의(無量定意)이니라.
012_0414_b_03L復次最勝菩薩摩訶薩復當思惟第十權智定慧三昧當念修行云何菩薩修行第十權智定慧三昧於是菩薩摩訶薩有三昧名無量定意
보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면 한량없는 몸의 행[身行]을 관하여 알고 한량없는 입의 행[口行]을 관하여 알며, 한량없는 뜻의 행[意行]을 관하여 알고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를 관하여 알고 가서는 장엄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지혜로써 가서 항복받는 것을 관하여 알며, 한량없는 교화받을 중생의 지혜 업이 성취됨을 관하여 알며, 한량없는 큰 광명을 놓을 것을 관하여 알고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접(接)하며, 한량없는 대인(大人)의 거룩한 몸매의 광명을 놓되 비추지 않는 바가 없음을 관하여 알며, 한량없는 바른 법륜을 굴리되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과 악마며 또는 마천(魔天)ㆍ범왕ㆍ제석ㆍ사천왕으로서는 굴릴 수 없고 혼자만이 능히 굴릴 수 있음을 관하여 알며, 한량없는 보살들이 모든 부처님 세계에 노닐되 모든 중생들의 길잡이[導師]가 되어 줌을 관하여 아느니라.
012_0414_b_07L菩薩住此三昧者觀知無量身行知無量口行觀知無量意行觀知無量佛剎而往莊嚴觀知無量衆生以知往降觀知無量受化衆生智業成觀知無量放大光明接未度者知無量放大人威相之光靡所不照觀知無量轉正法輪諸天世人魔若魔天梵釋四天王所不能轉而獨能觀知無量菩薩遊諸佛剎與諸衆生而作導首
비록 부처님의 힘을 얻었으나 그 힘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몸과 뜻을 놓아버렸으나 놓아버린 바가 없는 것과 같으며, 부처님의 지혜를 획득했으나 그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부처님의 일으킴으로써 그들을 일으키며, 부처님의 신족을 지니면서 한량없는 경계를 제도하고 부처님의 청정함으로써 온갖 행을 청정하게 하며, 부처님의 행하는 바로써 그 행이 초월하고 부처님의 헤아리는 바로써 모든 헤아릴 바를 뛰어나며, 부처님의 분신의 정[奮迅定]으로써 겁약하지 않고 부처님의 청정함을 얻음으로써 불사(佛事)를 행하느니라.
012_0414_b_17L雖得佛力不依於力放身意如無所放獲佛智慧亦不猗以佛興起而發起之執佛神足度無量境以佛淸淨而淸衆行以佛所行而過其行以佛之量過諸所量佛奮迅之定不懷怯弱得佛淸淨而行佛事
012_0414_c_01L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르고 나면 두루 일체지를 관하고 일체지를 관함으로써 다시 일체지의 업(業)을 관하며, 이미 지혜 업을 관하고서 곧 능히 닦아 익히고 지혜를 능히 닦음으로써 곧 지혜의 가르침을 받으며, 이미 지혜의 가르침을 받고는 미묘한 지혜[妙智]를 사유하고 이미 미묘한 지혜를 사유하고는 곧 지혜의 연(緣)을 구하며, 이미 지혜의 연을 일으키고는 곧 해탈하는 지혜를 얻고 해탈을 얻음으로써 곧 해탈을 남김 없이 얻으며, 남김 없이 얻음으로써 곧 법과 율에 상응하느니라.
012_0414_b_23L菩薩摩訶薩住此三昧已觀一切智以觀一切智復觀一切智已觀智業尋能修智以能修智便受智教已受智教思惟妙智已思妙智便求智緣已與智緣便得解脫之以得解脫便得解脫無餘以得無餘便應法律
위없는 바른 요목[正要]은 보살행을 자라게 하고 보살의 업을 이루며, 보살의 뜻에 나아가고 보살로서의 고통을 참으며 보살의 악(惡)에서 물러나고 보살의 창고[藏]에 들어가며, 보살의 광명을 붙잡고 보살의 어두움을 없애며, 보살의 지위에 머물러 보살의 몸매[相]를 나타내며, 보살의 귀머거리됨을 던져버리고 보살의 음성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니라.
012_0414_c_06L無上正要長菩薩行成菩薩業進菩薩意忍菩薩苦退菩薩惡入菩薩藏執菩薩明除菩薩冥菩薩地現菩薩相摘菩薩聾淨菩薩
보살은 이것을 듣고도 동요하지 않으며 다시 두려움을 품지도 않고 또한 물러나지도 않으며, 마음으로 싫증을 내지도 않고 이익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버리거나 여의지도 않고 또한 의심이 있지도 않으며, 또한 중간에 끊지도 않고 또한 보살의 듣고 보는[聞見] 데에도 의지하지 않느니라. 그렇게 되는 까닭은 보살마하살은 모든 중생에 있으면서 무리에 따라 들어가기 때문이니 법칙(法則)을 관찰하여 큰 서원의 마음을 이루고 그 중생들에게 모범이 되어 주며, 대승의 법에 나아가 부처님의 강해(江海)에 들어가고 곧장 나아갈 데에 이르러 흔적을 잃지 않느니라.
012_0414_c_10L菩薩聞是亦不動還復不懷懼亦不退轉心不患厭不念有益亦不捨離復不有疑亦不中斷亦不依猗菩薩聞見所以然者菩薩摩訶薩在諸衆生隨類而入觀察法則成弘誓心與彼衆生而作摸範御大乘法入佛江海直至所趣不失于徹
012_0415_a_01L보살마하살은 언제나 세 가지 크고 넓은 서원을 사유해야 하나니, 큰 서원의 마음을 지녀서 중생을 인도하고 이 언덕에서 저 언덕까지 이르게 하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의 크고 넓은 서원이라 하는가? 첫째는 증상(增上)의 큰 서원이요, 둘째는 증중(增中)의 큰 서원이며, 셋째는 증하(增下)의 큰 서원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보살에게는 다시 세 가지의 큰 서원이 있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라 하는가? 이른바 첫째는 중상(中上)이요, 둘째는 중중(中中)이며, 셋째는 중하(中下)라 이름하나니 이것이 바로 세 가지 큰 서원이니라.
또 보살에게 다시 세 가지 큰 서원이 있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라 하는가? 이른바 첫째는 하상(下上)이요, 둘째는 하중(下中)이며, 셋째는 하하(下下)라 이름하나니 이것이 바로 세 가지 큰 서원이니라.
012_0414_c_16L菩薩摩訶薩常當思惟三大弘誓執弘誓心導引衆生而從此岸將至彼岸何謂名爲三大弘誓一名增上弘誓二名增中弘誓三名增下弘誓復次菩薩復有三弘誓何謂爲三所謂一名中上二名中中三名中下是謂三弘誓次菩薩復有三弘誓何謂爲三所謂一名下上二名下中三名下下是謂三弘誓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제10 권지(權智)의 정혜삼매를 얻은 이는 이에 이 제일 증상(增上)의 크고 넓은 서원의 마음을 능히 체득하여 중생을 길러 부양하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권도[權]를 지니어 지혜를 행하고 애욕의 속박을 여의며, 잘 배워서 보살의 한 모양[一相]에 깊이 들어가고 모든 모양은 또한 모양이 없음을 이해하며, 보살의 허깨비 법을 환히 잘 알고 중생이 뜻을 세워서 견고한 데에 있게 하며 베푸는 마음[施心]을 뜻에 매어 두되 다 중생을 위하느니라.
012_0415_a_02L最勝當知菩薩摩訶薩獲此第十權智定慧三昧者乃能逮此第一增上大弘誓心育養衆生淨佛國執權行智離愛欲縛善學深入菩薩一相解知諸相亦無有相善了菩薩幻化之法立衆生意在於堅固心係意盡爲萌類
미래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는 큰 자비를 행하여 두루 온갖 것을 덮어 주시되 그 지혜가 없는 이면 그를 위하여 지혜의 광명을 나타내고 눈이 멀고 없는 이면 그를 위하여 눈이 되어 주시며 구호할 이가 없는 이면 그를 위하여 덮어 주시고 보호하시나니, 모든 부처님의 법을 충족시키면서 바라는 바가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법이라는 생각을 제거하게 하느니라.
그렇게 하는 까닭은 마치 장자(長者)가 금ㆍ은의 진기한 보배와 자거ㆍ마노ㆍ진주ㆍ호박 등 천억의 재물을 쌓아 둔 창고 안에 여의명월보주(如意明月寶珠)가 더 있게 되면 이르거나 놓아 둔 데마다 번쩍거리지 않음이 없고 색상(色像)이 제일인 것과 같나니 그 구슬의 성분 자체가 밝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012_0415_a_08L當來過去現在諸如來無所著等正覺行大慈悲普覆一切其無智者爲現慧明盲無目者爲作眼目無救護者爲作覆護充足一切諸佛之法使有悕望衆生除法之所以然者猶如長者積財千億銀珍寶車璖馬瑙眞珠虎珀庫藏之加有如意明月珠寶所至著處靡不照曜色像第一彼珠性分體自明
보살도 그와 같아서 마음의 여의주[心意珠]를 얻어서 지혜의 문을 내고 지혜의 광명으로써 두루 비추는 바 있으며, 통달하여 왕래하되 걸리는 것이 없고 이 정의(定意)에 드는 데도 역시 장애가 없느니라. 마치 저 명주(明珠)의 광명이 비추는 바는 스스로 지능(志能)과 본성(本性)을 나타냄이 스스로 그러한지라 제어하고 부리어 그렇지 않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왜냐하면 체성(體性)이 자연(自然)인지라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한 것도 또한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은 것도 또한 그렇지 않으며 중생의 그러한 것도 보지 않고 중생의 그렇지 않은 것도 보지 않느니라.
012_0415_a_17L菩薩亦復如是得心意珠出智慧以智光明普有所照通達往來無所罣㝵入此定意亦無留難如彼明珠光明所照自現志能本性自爾能制使令不爾者何以故體性自然無能使不然然亦不然不然亦不然不見衆生然不見衆生不然
012_0415_b_01L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중생은 역시 그러한 데서도 벗어나고 또한 그렇지 않은 데서도 벗어나느니라. 어떻게 중생은 또한 그러한 데서도 벗어나고 또한 그렇지 않은 데서도 벗어난다 하는가? 말한 바 중생이 그러한 데서 벗어난다고 함은 5도(道)의 과한(科限)에는 유전(流轉)이 끊이지 않아서 한 몸[一身], 백 몸 혹은 천만의 몸이 되기도 하고 한 겁(劫), 백 겁 혹은 천만 겁 동안 몸을 버리고 몸을 받되 4대를 성취하여 5음을 기르고 자라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중생은 그러한 데서 벗어난다고 하느니라.
012_0415_a_23L最勝當衆生亦出於然亦出於不然云何衆生亦出於然亦出於不然所言衆生出於然者五道科限流轉不斷身百身或千萬身一劫百劫或千萬劫捨身受身成就四大長育五陰謂衆生出於然也
어떻게 중생은 그렇지 않은 데서 벗어난다 하는가? 이에 중생의 체성은 본래부터 공(空)하나 공에는 또한 식(識)이 없고 다시 식이라는 생각[識想]도 없거니와 그때 저 사방에서 4개의 바람[風]이 일어나나니, 첫째 지기(地氣)의 바람이 불어서 공(空)에 이르게 되고, 둘째 수기(水氣)의 바람이 불어서 공에 이르게 되며, 셋째 화기(火氣)의 바람이 불어서 공에 이르게 되고, 넷째 풍기(風氣)이니 곧 공의 바람[空風]이 바로 그것이니라.
012_0415_b_06L云何衆生出於不於是衆生體性本空空亦無識復無想念時彼四方有四風起一爲地氣風吹至空二爲水氣風吹至空爲火氣風吹至空四爲風氣卽空風是也
여기에 정신[神]이 합치고 식(識)이 걸리어 홀연히 서로 만나면 다섯 가지 법이 서로 섞이고 모여 이에 형체를 이루는 것이니, 하늘을 만나면 하늘이 되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 되어 그 형체의 물든 바에 따라 그 몸을 이루게 되느니라.
가령 지기는 있어도 수ㆍ화ㆍ풍이 없으면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령 수기가 있어도 지ㆍ화ㆍ풍이 없으면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며, 가령 화기가 있어도 지ㆍ수ㆍ풍이 없으면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령 풍기가 있어도 지ㆍ수ㆍ화가 없으면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며, 가령 신식(神識)이 공(空)에 의지하여 스스로 다스림이 있어도 지ㆍ수ㆍ화ㆍ풍이 없으면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느니라.
012_0415_b_11L神交識㝵忽然相値五法交集乃成形體遇天爲天遇人爲人隨形所染卽成其身設有地氣無水火風亦不得成設有水氣無地火風亦不得成設有火氣無地水風亦不得成設有風氣無地水火亦不得成設有神識猗空自管無地水火風亦不得
012_0415_c_01L보살은 마땅히 신식은 공의 성품[空性]이로되 법계에 섭취된 줄 관해야 하느니라. 식과 4대의 다섯 가지 법이 있어 상응하면 5음의 몸을 이루지만 민첩하고 빠르게 공계(空界)에 나아가며, 식은 스스로 차고 거칠고 껄끄럽고 굳고 딱딱한 것을 깨닫는 것이므로 곧 공을 여읠 줄 알며, 뜻을 오로지하여 사유하되 마음에 공(空)하다는 생각을 기억하여 고요하고 함[爲]이 없으면 곧 스스로 허공 중에서는 이 세상에 와서 무위(無爲)에 들거나 무여열반계[無餘泥洹界]에서 멸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느니라.
만일 그 신식이 느리고 무디고 영리하지 못하여 어둡고 흐리멍텅하여 공을 여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이를테면 자기 몸은 곧 허공이라고 여기면서 그 형상으로 인하여 대상을 받아들여 생하는 문[生門]에 나아가야 하나니 선(善)을 만나면 곧 선하게 되거니와 악(惡)을 만나면 곧 악하게 되느니라.
012_0415_b_18L菩薩當觀識爲空性法界所攝識四大五法相應成五陰身健利速卽於空界識自覺冷麤澀堅䩕知離空專意思惟心念空想寂然無卽自開寤於虛空中不來此世無爲無餘泥洹界而取滅度若彼識神遲鈍不利𧄼瞢恍惚不信離空爲己身卽是虛空因形受對當趣生遇善則善遇惡則惡
선을 만난 중생은 선ㆍ악이 있음을 믿으며 금세(今世)와 후세(後世)와 존귀한 이ㆍ비천한 이ㆍ어른과 어린아이를 알고 세간의 괴로운 것을 싫어하게 되어 선을 익히며 게으르지 않고 오래오래 하면 그제야 도(道)를 얻느니라.
악을 만난 신식은 영원히 선을 여의고 악을 행하기를 마음에 달게 여기며, 생사에 유전하여 지옥의 고통을 겪고 식신은 고뇌를 받되 잠시도 멈춰 쉬는 일이 없나니, 그제야 스스로 깨닫고 본래 행한 일이 금률(禁律)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며 점차로 스스로 고치고 책망하여 악을 버리고 선으로 나아가며, 처음 발심해서부터 여러 겁수를 지나면서 공을 쌓고 덕을 포개어 온갖 행이 갖추어지면 비로소 도(道)를 이루게 되나니, 이것을 바로 중생이 역시 그렇지 않은 데서 벗어난다고 하느니라.
012_0415_c_03L遇善衆生信有善惡知今世後世尊卑長幼厭患世苦習善不惓久乃得道遇惡神識永離於善甘心行惡流轉生死涉地獄苦識神受惱暫無停息方自覺寤念本所行不應禁律漸自改責捨惡就善從初發心涉歷劫數積功累德具一切行乃得成道是謂衆生亦出於不然
보살마하살은 언제나 사유하되 한 마음으로 그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그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관찰하는가? 그러한 것은 세간의 법이요 그렇지 않은 것은 바로 도이며, 그러한 것은 바로 누(累)요 그렇지 않은 것은 집착이 없는 것이며, 그러한 것은 바로 있는[有] 것이요 그렇지 않은 것은 바로 공(空)이며, 그러한 것은 식이 있는[有識] 것이요 그렇지 않은 것은 이미 여읜 것이며, 그러한 것은 이름[名]이 있고 남[生]이 있고 늙음[老]이 있고 병듦[病]이 있고 죽음이 있는 것이요 그렇지 않은 것은 남이 없고[無生] 일어나고 소멸함이 없는 법이며, 또한 유전하여 5도에 내닫지 않는 것이니라.
012_0415_c_11L菩薩摩訶薩常當思惟一心觀察然與不然云何菩薩觀然不然然者世法不然是道然者是累不然無著然者是有不然是空然者有識不然已離然者有名有生有老有病有死不然無生無起滅法亦不流轉馳趣五道
012_0416_a_01L보살은 생각해야 하느니라. 그러한 것의 유의 법[有法]을 버리고 그렇지 않은 행을 닦으면 온갖 지혜 광명이 걸리는 바가 없으며, 멸하는 자기의 법을 버리고 저절로 일어나지 않고 또한 멸하는 것도 보지 않으며, 시방의 모든 세계를 청정하게 하되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며, 비록 친근한 이가 있다 하더라도 또한 친근한 것을 보지도 않고 사람들을 위하여 수고하면서도 괴로움이 있다고 헤아리지 아니하며,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우두머리가 되고, 법 바다[法海]로 끌어들이되 산란이 없는 정(定)을 구하며, 한량없는 값진 보배를 캐서 이르게 하고, 5분법성(分法性)과 공ㆍ무상ㆍ무원과 선정ㆍ해탈ㆍ상호ㆍ신족으로써 보배를 삼아 마음이 당황하지도 않고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느니라.
012_0415_c_17L菩薩當念捨然有法修無然行衆知光明無所罣㝵捨滅己法自然不起亦不見滅淨於十方一切世界未度者度雖有親近亦不見近爲人執勞不計有苦荷負重擔常爲元首引入法海求無亂定採致無限無量珍寶五分法性空無想願禪定解脫相好神足以此爲寶心不懷懼亦不恐怖
다시 삼매가 있나니 이름은 무위정(無爲定)이니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삼매에 머무는 이는 환히 빛나는 정수(正受)로써 중생의 자취를 청정하게 하고 싫증을 내지 않으면서 모든 중생들에게 법성의 공(空)을 연설하며 공을 아는 중생이라야 때에 깨칠수 있나니 마음을 돌리어 도(道)에 나아가되 마침내 물러나지 않느니라.”
012_0416_a_02L復有三昧名無爲定菩薩摩訶薩住此三昧者以顯曜正受淨衆生迹不以爲厭於諸衆生演法性解空衆生乃得時寤迴心就道終不退還
그때에 세존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이 법계의 자재정의(自在定意)에 머물러 천안(天眼)으로써 위의 허공 끝의 그렇지 않은 중생들이 처한 세계를 관찰하니,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에 억백천의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이 처음 막 형상을 받아 생하는 문[生門]으로 나아가려 하느니라.
그때에 시방의 수없는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세존은 모두 화신(化身)으로서 허공계에 머물러 그들을 위하여 4기(氣)와 신식(神識)에 관한 허무(虛無)한 법을 연설하시되 공(空)에 나아가면서 다시 공을 여의고 여읨을 짓는 식(識) 또한 그러하나니 아공(我空)에서 아유(我有)를 헤아리되 영원히 그로써 공을 여의게 하느니라.
012_0416_a_06L爾時世尊告最勝曰如我今日住此法界自在定意以天眼觀上虛空際不然衆生所處之界彈指之億百千衆生不可稱計始欲受形來趣生門爾時十方無數恒沙諸佛世尊皆以化身住虛空界與彼四氣神識說虛無之法適空復離空造離識亦然我空計我有永以離空矣
만일 그들이 공에 의지하여 식의 형상을 받고 공관(空觀)을 사유한다면 곧 공계(空界)에서 식의 형질을 버리고 남음이 없는[無餘] 경계에 들어 멸도를 취하는 것이므로 이 세간으로 와서 5음의 형상을 받거나 하여 모든 고뇌를 겪지 않느니라.
여래는 권지(權智)로 형상 없는 식(識)을 제도하시며, 허공계에 덕화(德化)를 나타내시되 혹은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국토를 나타내시기도 하고, 혹은 때로는 서 계시면서 현성의 잠잠함[賢聖黙然]을 나타내시기도 하며, 혹은 때로는 거닐며 다니고 읊고 외고 함에 게으르지 않나니, 식이 비록 보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다만 모든 부처님 세존은 위의와 예절은 처음부터 그만두시지 않느니라.
012_0416_a_13L彼猗空受識之形思惟空觀者卽於空界捨識形質入無餘境而取滅度不來此世受五陰形涉諸苦惱如來權智無形度識入虛空界現其奇特神變德化或現諸佛淸淨國土或時住立賢聖默然或時經行諷誦不惓識雖不睹但諸佛世尊威儀禮節初不有廢
012_0416_b_01L보살은 마땅히 허공이 덮은 그지없는 세계를 관하되 허공은 ‘나는 지금 저 많은 세계 국토를 덮어 주고 있다’라는 생각도 없고 허공은 역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극히 공로가 있다’라고도 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허공이 덮는 본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법은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저절로 언제나 머물러 있고, 법은 움직이거나 옮아가지 않고 또 약간의 것도 있지 않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다시는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나니, 그렇게 되는 까닭은 허공의 법계는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012_0416_a_21L菩薩當觀虛空所覆無邊剎虛空亦無是念我今乃覆爾許剎空亦不自念極有功勞何以故之所覆本性自爾法不變易自然常法不動轉亦不若干不生不滅復不變異所以然者虛空法界性自然
보살은 다시 허공의 신식[虛空神識]을 사유해야 하나니 그 식에는 세 가지 모양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 나아가는[趣] 것이요, 둘째 뉘우치는[悔] 것이며, 셋째는 또한 나아가지도 않고 또한 뉘우치지도 않는[亦不趣亦不悔] 것이니라.
012_0416_b_04L菩薩復當思惟虛空神識識有三云何爲三一趣二悔三亦不趣亦不悔
어떤 것이 허공의 신식의 첫째의 나아가는 것인가? 이른바 첫째의 나아가는 것이라 함은 생하는 문[生門]을 향해 나아가 음(陰)의 종자를 길러 자라게 하여 종류에 따라 신식에 물들어 곧 그 형상을 받는 것이니 보살은 알아야 한다. 허공의 신식은 또한 그 중간에 머무름[中止]이 없어서 신식이 4기(氣)와 합쳐서 와서는 그 중간에 머무르고 중간에 머물러서 형상을 받되 혹은 반 달[半月]을 경과하기도 하고 혹은 한 달을 다 채우기도 하며 혹은 삼ㆍ사ㆍ오ㆍ육ㆍ칠ㆍ팔ㆍ구ㆍ십ㆍ십일ㆍ십이 월(月)을 경과하되 곧 허공에서 중간에 머물러 있다가 5도(道)로 나아가기도 하느니라.
012_0416_b_06L云何虛空神識一趣所謂一趣趣向生門長育陰種隨類染神便受其形菩薩當知虛空神識亦有中識合四氣來趣中止中止受形經半月或經滿月或經三四五六七八九十十一十二月便從虛空中止來趣五道
5도 중에 머물러 있을 때는 곧 앞에 나타나 있게 되고 5도 중에 들어가서 머무른 뒤에는 혹은 일ㆍ이ㆍ삼ㆍ사 월에서부터 십이월까지 이르게 되며, 하늘의 변화[天化]로 중간에 머물러 있을 때는 또한 일(日)ㆍ월(月)ㆍ연세(年歲)의 기한은 없고 지옥ㆍ아귀ㆍ축생도 역시 중간에 머물러 있되 저마다 동일하지 않아서 허공의 식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도 담연(澹然)하여 형상도 없고 볼 수도 없나니, 아유안(阿維顔)에 이른 이나 모든 부처님 세존만이 볼 수 있을 뿐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허공 중에 머물러 있다가 생하는 문으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니라.
012_0416_b_12L五道中止便現在前入五道中止已或經一二三四至十二月天化中止亦無日月年歲之期地獄餓鬼畜生亦有中止各各不同空識中止澹然無形而不可見至阿維顏諸佛世尊乃能見耳是謂菩薩摩訶薩虛空中止趣向生門
어떤 것을 허공의 신식의 식에는 둘째의 뉘우침이 있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둘째의 뉘우친다 함은 4기(氣)와 합침으로써 식이 그 가운데 처할 때에 그 형상 받은 것을 뉘우치고 마음으로 공(空)하다는 생각을 하며, 박연(泊然)히 하는 일 없이 생각이나 집착을 헤아리지 않느니라.
또 모든 부처님 세존은 화불(化佛)의 성품으로써 가르침에 머무르면 즉시 깨치게 되며, 무여열반계에서 반열반하느니라.
012_0416_b_18L云何虛空神識識有二悔所謂二悔者四氣以合識處其中悔受其形心念空想泊然無爲不計想著又諸佛世尊以化佛性住教尋時得寤於無餘泥洹界而般泥洹
012_0416_c_01L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모든 부처님 세존은 삼세 가운데서 중생을 가르치시고 경계하여 저 무위의 언덕에 이를 수 있게 하시는 것이 헤아릴 수 없고 한 중생을 위하여도 세상마다 돌아다니시되 애쓰고 고생하며 수없는 방편으로 교화하시어 제도될 수 있게 하나니, 비록 고뇌에 처하게 된다 하더라도 수고롭게 여기지 않고 또한 다시 고달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느니라.
012_0416_b_23L最勝當知諸佛世尊於三世中教誡衆生令得至彼無爲岸者不可稱數爲一衆生周旋三世執勞勤無數方便化令得度雖處苦惱不以爲勞亦復無有疲厭之心
여래가 세간에 출현할 때는 모든 부처님의 몸으로 변화하느니라. 허공계의 신식(神識) 가운데 머물러 지극히 미묘하고 위없는 도의 가르침을 연설하기 위하여 그 가운데 부모에 머물러 신식이 깨치며, 교화하는 법언(法言)을 받으면 곧 그 곳에서 무여열반계에 들어가 반열반하는 것도 헤아릴 수 없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제도할 중생보다 더 많아서 비유할 수조차도 없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계의 정의자재삼매에 머무른 이가 곧 방편을 가지고 지혜를 행하되 한량없는 법을 수행하여 보살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니라.
012_0416_c_04L如來出世化諸佛身在虛空界神識中止說極微無上道教中止父母神識覺受化法言卽於彼處入無餘泥洹界而般泥洹不可稱計多於十方諸佛世尊所度衆生無以爲喩是謂菩薩摩訶薩住此法界定意自在三昧便能執權行智修無量法乃上菩薩位
어떤 것이 셋째의 허공의 신식이 또한 나아가는 데도 있지 않고 또한 뉘우침도 있지 않은 것인가? 이른바 또한 나아가는 데도 있지 않고 또한 뉘우침도 있지 않다고 함은 허공계의 법성에 식(識)이 그 가운데에 처하고 그 가운데에 머물러 있는 형질은 마치 그림자와 같고 빛과도 같으며, 지극히 작고 지극히 가늘어서 공한 의식[空意識]이라 생각되나 무위의 경계에도 이르지 못하고 물러나 인간의 존재[有]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또한 나아가는 데도 있지 않고 또한 뉘우침도 있지 않다고 하느니라.”
012_0416_c_12L云何第三虛空神識亦不有趣亦不有悔所謂亦不有趣亦不有悔空界法性識處其中中止形質如影如光極微極細念空意識不逮無爲之境退不及人閒之有是謂菩薩摩訶薩亦不有趣亦不有悔
012_0417_a_01L그때에 최승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사옵니다. 세존께서 말씀한 바는 허공의 신식이 허공 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 형질이 빛이나 그림자와 같은데 그것은 아유안(阿維顔) 보살이나 모든 부처님 세존만이 볼 수 있을 뿐이라 하셨나이다.
만일 4기(氣)와 신식이 공 가운데 머물러 오고 감이 있게 한다면 그 열반계와 제일의(第一義)는 역시 신식도 있어야 하고 또한 그 가운데 머물러 있겠습니다. 가령 신식도 있고 그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도 있다면 그 열반계와 허공의 신식과 공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나이까? 가령 차별이 없다면 열반도 없고 열반이 없다면 곧 도과와 삼승의 법도 없으리니, 생사의 법계와 열반계는 곧 차이가 없으므로 열반이 바로 이것은 생사요 생사가 바로 열반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허공의 신식과 허공 가운데 머물러 있다고 하신 데는 갑절 의혹이 더합니다.”
012_0416_c_17L爾時勝菩薩前白佛言世尊如是世尊所虛空神識虛空中止形如光影維顏菩薩諸佛世尊乃得見耳若使四氣神識及空中止有往來者彼泥洹界及第一義亦當有神識亦當有中止設有識有中止者彼泥洹界與虛空識及空中止有何差別設無差別則無泥洹以無泥洹則無道果及三乘法生死法界及泥洹界則無有泥洹則是生死生死則是泥洹如我從佛所聞虛空神識及空虛中止倍增疑惑
그때에 세존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열반의 경계와 첫째가는 이치에는 역시 신식도 있고 또한 그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 있느니라. 열반과 신식과 그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은 허공의 신식과 그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과는 법의 성품이 저마다 다르나니, 열반의 신식은 박연(泊然)히 움직이지 않고 또한 옮아가거나 바뀌지도 않으며 또한 생하는 문[生門]도 없고 향하여 나아간 데서도 다시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거나 근심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없으며, 식(識)이 영원히 소멸한다고 말하여도 또한 영원히 소멸하지도 않고 식이 다시 생긴다고 말하여도 역시 다시는 생기지 않거니와 그 가운데 머물러 있다[中止]는 것에서는 영원히 고요한 것을 그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으로 삼느니라.”
012_0417_a_06L爾時世尊告最勝曰彼泥洹界及第一義亦有神識亦有中止泥洹神識及彼中止與空神識中止法性各別泥洹神識泊然不動亦不移易亦無生門當所趣向亦復無有生老病死愁憂苦惱言識永滅亦不永滅言識更生亦復不生彼中止者以永寂爲中止
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세간에 출현하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모든 여래ㆍ등정각께서는 열반을 취하지도 않고 또한 영원히 멸하지도 않나니, 만일 부처님 세존이 열반에 드신다 한다면 곧 바르게 깨달으신 이도 아니요 큰 서원을 갖춘 이도 아니니라.”
012_0417_a_13L佛告最勝如來出現於世過去當來現在恒沙諸如來等正覺不取泥洹亦不永滅若佛世尊入泥洹者則非正覺非具弘誓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 세존은 명호가 있게 된 이후로부터 나는 아직도 열반에 드신 이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아무리 장차 오는 세상에 모든 부처님이 법계에 출현하신다 해도 돌아다니며 머물러 있으면서 남음이 있게 열반하겠거니와 남음이 없는[無餘] 열반의 경계에는 들지 않을 것이니라.
012_0417_a_16L佛告最勝三世諸佛世尊有名號以吾未見有入泥洹者正使將來諸佛出現法界周旋止住有餘泥洹入無餘泥洹之境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의 신식(神識)과 열반의 신식은 곧 차이가 없으나 다만 열반의 신식만은 형상이 없고 그림자도 없고 또한 광명의 모양도 없으며 움직이지 않아 옮아갈 수도 없느니라. 그러나 여래의 신식은 움직이는 것도 있고 옮아가는 것도 있나니 그 신식과 이 신식은 하나이되 다르지 않고 오직 움직임이 있는 것과 움직임이 없는 것에서만이 차이가 있을 뿐이니라.
012_0417_a_20L最勝當知如來神識泥洹神識則無有異但爲泥洹神識無形無影亦無光相不動而不可如來識者有動有移彼識此識一而不異唯有動不動而有異耳
012_0417_b_01L보살은 마땅히 공(空)을 관하면 공에는 식(識)도 있고 머무르는[止] 것도 있으며 유(有)에도 식이 있고 머무르는 것이 있다고 해야 하느니라. 만일 다시 유의 법[有法]이 열반 밖에 있다 한다면 식도 있고 머무르는 것도 있나니 최승아, 이것이 바로 허공의 신식이요 허공 가운데 머무른 것이라 하겠거니와 열반의 신식과 열반 가운데 머무른 것은 바로 이것을 각각 차별이 있다고 하느니라.”
012_0417_b_01L菩薩當觀空空有識有止有有識有止復有法在泥洹外者有識有止是謂最勝虛空神識虛空中止泥洹神識泥洹中止是謂各各差別
十住斷結經卷第六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