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최승(最勝)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보살은 등자삼매(等慈三昧)에 들어가서 삼천대천세계의 인음(人陰)ㆍ신음(神陰)과 모든 용(龍)이며 귀신의 경계의 한 몸, 두 몸과 백천 몸에 이르기까지 두루 관하나이까? 어떻게 보살은 신족의 힘으로써 한 부처님의 국토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기까지 마치 사람이 허공에 놀 듯하고 또한 걸림이 없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잘했다. 이 물음은 매우 기특하고 매우 기특하도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그 뜻을 알기 쉽게 연설하리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할지어다. 모든 법은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부터 없으며 도(道)의 온갖 지혜를 이루고서 찾아도 역시 그 자취는 없느니라. 보살이 정(定)의 정수삼매에 들어가서 삼천대천세계의 안에 있는 중생으로서 형상이 있는 무리를 두루 관찰하고, 5음으로 이루어진 몸이 생기는 것과 소멸하는 것에 대하여 어디서부터 생기고 어디서부터 소멸하는가를 관찰하며, 다시 공계(空界)의 지ㆍ수ㆍ화ㆍ풍에 들어가서 낱낱이 분별하여도 마침내 존재하는 것이 없으니, 법이 생기면 곧 생기고 법이 소멸하면 곧 소멸하느니라.
012_0431_b_01L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옛날 나는 아득히 먼 오래 전에 보살의 도를 닦으면서 선정의 한결같은 뜻으로 마음을 붙잡아 어지럽지 않고 부동(不動)삼매에 들어가 한이 없고 수량 없고 헤아릴 수 없는 허공의 중생들을 관하여 그 형류(形類)에 따라 그들을 교화하고 그 안의 중생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있거나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거나 애욕(愛欲)에 뜻이 있거나 애욕에 뜻이 없거나 성내는 마음이 있거나 성내는 마음이 없거나 보살은 권혜(權慧)로써 종류에 따라 들어가 형상을 그들과 함께하고 온갖 것을 알맞게 하여 마음이 정의(定意)에 들어 끝내 어수선하거나 뒤섞임이 없으며,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에 백천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들어가 혹은 법성혜관(法性慧觀)으로써 교화하고 혹은 공법(空法)과 고(苦)ㆍ공(空)ㆍ비상(非常)의 바른 법으로써 인도하기도 하나니, 보살이 교화한 바는 또한 끝이 없고 10선(善)의 행으로써 가르쳐 주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먼저 국토를 청정하게 하되 그 공(功)을 헤아리지 않고, 그 지혜를 알기 쉽게 연설하되 걸림이 없음을 밝게 알며, 도수(道樹) 아래 앉아 마음에 겁약(怯弱)함이 없고, 악마를 항복시키고 삿된 뜻[邪趣]을 알게 하며, 노니는 경계에서 사람을 제도함이 한량없고, 마음은 마치 지계(地界)와 같이 인욕하여 동요하지 않으며, 근문(根門)의 어렵거나 쉬운 모양을 분별하고, 순숙(純熟)한 행으로 짐작(斟酌)하지 않음이 없으며, 낱낱이 음(陰)ㆍ지(持)ㆍ입(入)을 분별하여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행하고 안의 6정(情)을 관하고 밖의 6진(塵)을 버리며 눈이 빛깔을 보아도 안식(眼識)을 일으키지 않나니, 바깥의 빛깔과 안의 식[內識]은 모두 다 허무(虛無)한 줄 분명히 알거늘 빛깔이 무엇을 위하여 안식이 있게 되겠느냐?
또 귀가 소리를 들어도 이식(耳識)을 일으키지 않나니, 바깥의 소리와 안의 식은 모두 다 허무한 줄 분명히 알거늘 소리는 무엇을 위하여 이식이 있게 되겠느냐? 또 코가 냄새를 맡아도 비식(鼻識)을 일으키지 않나니, 바깥의 냄새와 안의 식은 모두 다 허무한 줄 분명히 알거늘 냄새는 무엇을 위하여 비식이 있게 되겠느냐? 또 혀가 맛을 알아도 설식(舌識)을 일으키지 않나니, 바깥의 맛과 안의 식은 모두 다 허무한 줄 분명히 알거늘 맛은 무엇을 위하여 설식이 있게 되겠느냐? 또 몸이 닿임[細滑]을 알아도 안다는 생각[識想]을 일으키지 않나니, 바깥의 갱락(更樂)과 안의 식은 모두 다 허무한 줄 분명히 알거늘 세활은 무엇을 위하여 신식(身識)이 있게 되겠느냐?
012_0431_c_01L이때에 보살은 다시 열 가지 법(法)으로써 중생을 가르치며 교화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혜근(慧根)이 두루 갖추어지고 정의(定意)가 어지럽지 않으며, 둘째 각의(覺意)가 견고하여 지혜를 연설하되 걸림이 없으며, 셋째 도품(道品)을 널리 펴 드날리되 의취(義趣)를 완전히 갖추며, 넷째 몸매[相]가 현묘하고 고요하며 온갖 맵시[衆好]가 빠지지 않은 것을 알며, 다섯째 도(道)와 도 아닌[非道] 것을 알아서 허무한 것인 줄 분명히 알며, 여섯째 뜻에 법륜을 숭앙하고 가르치되 게으르지 않으며, 일곱째 보살도를 행하되 자기의 몸은 돌보지 않으며, 여덟째 비록 중생을 제도한다 하더라도 제도함이 있는 것을 보지 않으며, 아홉째 안팎이 공하여[內外空] 하나요 둘이 없다는 것을 알며, 열째 신체(身體)를 분별하고 교화가 있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두루 갖추어서 곧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돌아다니되 한 부처님 국토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도 역시 모든 부처님 세존을 일찍이 여읨이 없는 것이니라.
보살은 모든 총지문을 생각하고 닦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총지인가? 모든 법의 인가(印可)총지이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온갖 법에서 모든 허망한 생각을 버리느니라. 또 보광(普光)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온갖 것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뒤바뀐 생각을 품지 않느니라. 또 혜명(慧明)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청정하지 못한 국토를 청정하게 할 수 있느니라.
또 조요(照曜)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어지러운 뜻에서 다 티끌의 가림[塵翳]이 없게 되느니라. 또 의변(義辯)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온갖 행을 익혀 관하고 정(定)에 들어가 동요하지 않느니라. 또 법변(法辯)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구의(句義)를 분별하되 차례를 잃지 않느니라.
012_0432_a_01L또 향변(響辯)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음향을 관찰하며 종류에 따라 제도하느니라. 또 응변(應辯)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것에 꼭 알맞고 온갖 행을 완전히 갖추느니라. 또 의지(意止)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진로(塵勞)와 결박(結縛)이 영원히 쉬어 일어나지 않느니라.
또 의단(意斷)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을 미세하게 살피되 역시 망설임[猶豫]이 없느니라. 또 신족(神足)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세간에서 백천 겁을 지나도록 오래 사느니라. 또 근본(根本)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근문(根門)의 흥쇠(興衰)를 분별하여 변하지 않게 되느니라.
또 역세(力勢)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금강의 몸[金剛體]을 닦아서 무너뜨릴 수 있는 이가 없느니라. 또 각의(覺意)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을 알기 쉽게 연설하여 온갖 것을 깨우치느니라. 또 도품(道品)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삼세 인연 법의 근본을 관하여 환히 아느니라.
또 정의(定意)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산란한 생각[亂想]에서 도(道)를 품고 오는 까닭이니라. 또 권혜(權慧)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꼭 알맞게 하되 견줄 데 없고 역시 깨닫는 이가 없느니라. 또 보시(布施)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세 가지 일[事]이 모두 있는 바가 없는 줄 아느니라.
또 지계(持戒)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계율을 닦는 이나 깨뜨린 이를 보지 않게 되느니라. 또 인욕(忍辱)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성을 내는 것과 참는 것과 어지러운 생각을 보지 않느니라. 또 정진(精進)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정진하는 일과 게으른 것을 보지 않느니라.
012_0432_b_01L또 정수(正受)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굉장히 큰 소리로 천둥이 울려도 옷의 털조차도 곤두서지 않느니라. 또 혜공(慧空)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식이 온 지혜[萬智]를 받아들여 알고 널리 연설하되 걸림이 없느니라. 또 무애(無碍)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통혜(通慧)에서 걸림이 없느니라
또 광원(曠遠)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비록 백천의 몸이 되었다 하더라도 도로 합하여 하나로 만드느니라. 또 교수(敎授)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바른 법을 가르치되 말이 번거롭거나 겹치지 않느니라. 또 부사의(不思議)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이 미칠 바가 아니니라.
또 도수(道樹)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는 이는 세계를 장엄하되 모든 부처님을 떠나지 않느니라. 또 항마(降魔)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뜻을 지님이 견고하여 마음이 기울거나 빗나가지 않느니라. 또 용상(容相)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낱낱의 모든 상(相)에는 백천의 복이 이르느니라.
또 중호(衆好)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상호와 영락(瓔珞)이 몸을 따르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또 광요(光曜)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백천의 광명에서 변화가 한량없는 것을 보느니라. 또 도인(度人)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비록 중생을 제도한다 하더라도 역시 제도한 것이 없느니라.
또 광혜(廣慧)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뜻이 허공과 같아 치우치거나 좁은 것이 없느니라. 또 도의(道意)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열반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유(有)에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또 멸도(滅度)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소멸이나 생기는 것이 있음을 보지 않느니라.
또 청정(淸淨)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티끌[塵埃]이 청정함으로써 다함이나 다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또 무고(無苦)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괴로움과 괴로움이 없는 것을 알므로 고제(苦諦)라 하느니라. 또 생습(生習)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습(習) 본래의 뜻[本意]과 연(緣)이 다 텅 비어 없음[虛無]을 분명히 아느니라.
012_0432_c_01L또 멸진(滅盡)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습의 진로(塵勞)가 소멸하고 다시는 또한 짓지 않느니라. 또 성도(聖道)총지가 있나니, 무위(無爲)요 영원히 고요한 열반에 편히 처하느니라. 또 지관(止觀)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미묘한 법[妙法]과 흥쇠(興衰)가 향하는 바를 관하여 환히 아느니라.
또 공장(空藏)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깊은 법요에서 걸릴 것이 없느니라. 또 법관(法觀)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을 관하여 알고 모든 것이 다 주인[主]이 없음을 아느니라. 또 정성(淨聲)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입으로 하는 말이 부드러워 마치 범천(梵天)의 소리와 같으니라.
또 칭가(稱可)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사람에게 말을 하면 다 그들의 마음과 뜻에 맞느니라. 또 등의(等意)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따뜻하고 윤택하고 막힘없이 통하며 말이 걸리지 않느니라. 또 유처(遊處)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가르쳐 교계(敎誡)할 것에 손상하는 바가 없느니라.
또 위요(威曜)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대중에 있으나 역시 겁내거나 나약하지 않느니라. 또 분신(奮迅)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사자처럼 외치게[獅子吼] 되므로 날던 새도 떨어지고 달리던 짐승도 엎드리느니라. 또 계율(戒律)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온갖 깨치기 어려운 중생을 항복받느니라.
또 취도(趣道)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열반에는 일어나거나 소멸하는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아느니라. 또 법성(法性)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아첨하는 사람에게 진실한 도[眞道]를 보게 하느니라. 또 식의(息意)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교만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젠 체[自大]하지 않느니라.
012_0433_a_01L또 통달(通達)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그의 거룩한 지혜를 들으면 법의 가르침[法敎]을 잃지 않느니라. 또 흥경(興敬)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곧 뽐내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느니라. 또 공계(空界)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점차로 본래부터 청정하고 고요한 법계에 들어가느니라.
또 무애(無碍)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의궤(儀軌)를 통달함으로써 모든 법의 근본을 아느니라. 또 무량(無量)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옛날에 연설한 바가 역시 한이 없고 끝이 없느니라. 또 강기(强記)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문자를 분별하고 법의 취향(趣向)을 아느니라.
또 구경(究竟)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사람의 본성과 법계가 역시 청정하다는 것을 아느니라. 또 난멸(難滅)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중생은 청정하여 안팎이 텅 비고 고요하다는 것을 깨쳐 아느니라. 또 무제(無際)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본래부터 없고[本無] 본래부터 없다는 것도 또한 없는 것인 줄 아느니라.
또 영락(瓔珞)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연설한 바의 경법(經法)에 걸림이 없느니라. 또 묘요(妙要)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다한[盡] 데에서 다함이 없고 또한 다한 것을 보지도 않느니라. 또 분별(分別)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이승으로서는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또 여래(如來)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중생이 적막한 도[寂寞道]로 나아가는 것을 깨치느니라. 또 십지(十地)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항시 머무름이 없음[無住]을 연설하고 또한 머무르는 것을 보지도 않느니라. 또 음종(陰種)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몸의 근본[身本]을 분별하여 염착(染着)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012_0433_b_01L또 적막(寂寞)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비유하면 마치 부르는 소리[呼聲]에 또한 음향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또 식성(識性)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두 잘 사유하고 문자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또 요본(了本)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언어도 없고 설명도 없고 교계(敎戒)도 없느니라.
또 문자(文字)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스스로 전생 일[宿命]을 아나니 어디서부터 온 것임을 아느니라. 또 법륜(法輪)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뜻[意]도 없고 생각[想]도 없고 또한 신식(神識)도 없느니라. 또 감로(甘露)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강(講)하고 독송[誦]하고 설법하는 데에 역시 걸림이 없느니라.
또 심입(深入)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낱낱이 4구(句)를 분별하여 뜻[義]이 합치느니라. 또 법당(法幢)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의리(義理)를 깨달아 알고 법의 근본[法本]을 분명히 아느니라. 또 무진(無盡)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본제(本際)를 궁구하여 통달하되 권속을 여의지 않느니라.
또 등각(等覺)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언제나 한량없고 집착이 없는 정법을 항상 강론하느니라. 또 제법(諸法)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을 완미하고 익혀 차서(次緖)를 잃지 않느니라. 또 홍서(弘誓)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지혜에는 모두가 역순(逆順)이 없음을 분명히 아느니라.
또 선권(善權)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종류에 따라 알맞게 교화하되 겁약(怯弱)의 마음을 품지 않느니라. 또 도혜(道慧)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정법(頂法)을 분별하여 도무극을 닦느니라. 또 환화(幻化)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법계가 안팎의 성품[內外性]이 없음을 분별하느니라.
012_0433_c_01L또 중음(中陰)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계시는 소굴에 사느니라. 또 도량(道場)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시방 세계의 국토가 금빛처럼 환히 빛나느니라. 또 항마(降魔)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온갖 외도(外道)들이 항복하지 않는 자가 없느니라.
또 자수(自守)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몸과 입과 뜻을 수호하면서도 수호함이 있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또 설법(說法)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법의 근본[法本]을 완전히 갖추고 결루(缺漏)한 바가 없느니라. 또 자용(自用)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한량없는 중생들의 마음과 뜻을 자세히 살피느니라.
또 은근(慇懃)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방편과 연설한 바가 도검(道檢)에 들게 하느니라. 또 유화(流化)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지혜를 분별하고 옛적과 지금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또 유순(柔順)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법을 받되 싫증냄이 없고 또한 성내거나 미혹됨이 없느니라.
또 진덕(進德)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의 근본에서 모두 다 있는 바가 없느니라. 또 색상(色像)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그가 현상을 본 것이 있으면 일찍이 잊어버리는 일이 없느니라. 또 성문(聲聞)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모든 법의 한량없는 것을 견주고 헤아리되 집착이 없느니라. 또 고순(苦順)총지가 있나니, 보살로서 이 총지를 얻은 이는 법의 맛[法味]을 듣고 채취하되 평등하여 둘이 없게 되느니라.”
012_0434_a_01L이때에 세존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행하는 일은 불가사의하니 이것은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등자(等慈)삼매정의정수의 감동한 바와 위신(威神)으로 능히 그러하니라. 이 때문에 대승의 계율[大乘律]을 연설하여 바른 교화[正化]로써 인도하고 법의 옷을 입히는 것이니라.”
이때에 최승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고 훌륭하시며 쾌히 이런 말씀을 해주셨나이다. 모든 법은 본말(本末)이 없다는 것을 익히면 법성은 텅 비어 없고 고요한 줄 분명히 알며 낱낱이 분별하여도 모두가 텅 비고 모두 고요하니, 대승으로 연설한 바가 널리 온갖 것에 미치고 보살의 행을 들으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모두가 광인(曠忍)세계에 나게 되겠습니다.”
그때에 모인 대중들이 다 망설이면서 그 부처님의 국토를 보고 싶어하자 여래는 신감(神鑒)으로 곧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곧 신족으로써 정수리에서 광명을 내어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고 그 광인의 한량없는 국토까지 미치게 하셨다. 그 광인세계에 계신 부처님의 명호는 무진(無盡)이셨고, 총지를 수순하여 지니시되 오래도록 잘 기억하여 잊지 않으셨고 자못 특이한 법이 항시 앞에 있었으며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으로부터 모든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도법(道法)을 쌓고 모으셨기에 저절로 이 위없는 등정각을 얻기에 이르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10주(住)를 생각하며 수행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법계를 분별하여 허무(虛無)한 것인 줄 분명히 알고, 둘째 몸은 텅 비고 고요하여 안팎이 주인이 없는 줄 알며, 셋째 4대로 깨닫는 뜻[覺意]은 의지하거나 남음이 있지 않고, 넷째 온갖 법이 멸도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다섯째 몸ㆍ입ㆍ뜻의 행은 고요하되 머무르지 않고, 여섯째 계율[戒]을 지키되 계율도 없고 또한 계율을 깨뜨리지도 않으며, 일곱째 방일(放逸)한 행이 없고 마음을 단속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며, 여덟째 서원으로 도(道)를 이루되 본래의 뜻[本志]을 버리지 않으며, 아홉째 부사의한 법으로써 깨치기 어려운 이를 제도하며, 열째 온갖 행이 청정하여 행하는 바가 무섭지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수행할 열 가지 법의 근본이니라.
012_0434_b_01L또 보살은 다음에 열 가지 법의 이름[號]을 익혀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계율이 갖추어지고 청정하여 방일한 행이 없고, 둘째 듣고 은혜를 베풂으로써 법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며, 셋째 음(陰)ㆍ입(入)을 분별하여 텅 비고 고요한 것인 줄 분명히 알고, 넷째 네 가지 비상(非常)은 모두 다 닳아 없어지는 데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며, 다섯째 18난(難)으로 음(陰)ㆍ지(持)ㆍ입(入)의 병(病)을 알고, 여섯째 서원을 두루 갖추고, 일곱째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을 더하시며, 일곱째 아직 근(根)을 세우지 못한 중생에게 무위(無爲)에 편안히 있게 하고, 여덟째 보살이 선정에 들어가면 어지럽게 할 수 있는 이가 없으며, 아홉째 안팎의 모든 행을 두루 관하고, 열째 몸은 본래부터 스스로 나고 없어지는[生滅] 모양이라고 관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생각하고 수행하여 곧 스스로 최정각(最正覺)을 이루기에 이르는 것이니라.
또 보살은 다시 정(定)의 정수삼매를 익혀야 하느니라. 이른바 삼매라 함은 등관(等觀)삼매이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혜관(慧觀)을 건립하여 방일하지 않게 되느니라. 또 섭의(攝意)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번뇌[結]를 능히 다잡아 속박되거나 집착하지 않게 하느니라. 또 호계(護戒)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몸ㆍ입ㆍ뜻을 수호하여 진로(塵勞)가 생기지 않느니라.
또 평등(平等)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뜻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두 생각[二想]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또 대보(大寶)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7각의(覺意)의 다함 없는 보배를 연설하느니라. 또 도수(道樹)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도(道)의 꽃이 활짝 피어 보는 이마다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012_0434_c_01L또 해량(海量)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이승으로서는 어림쳐서 헤아릴 것이 아니니라. 또 입실(入室)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깊고 고요한 법장(法藏)을 짐작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또 월광(月光)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널리 모든 부처님께로 오가면서 돌아다니고 노니느니라.
또 월명(月明)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두루 온갖 것에 비추어 광명을 받지 않음이 없게 하느니라. 또 현감(玄鑒)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삼세를 분명히 알아 일어나거나 소멸하는 법이 없느니라. 또 무증애(無憎愛)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원수를 평등하게 보는 것이 마치 갓난아이같이 보느니라.
또 대애(大哀)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모든 중생들 보기를 마치 아버지와 같고 어머니와 같이 보느니라. 또 비자(悲慈)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모든 중생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이 비오듯 하느니라. 또 민애(愍哀)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또한 나[吾我]와 사람[人]과 수명(壽命)이 없느니라.
또 무상(無想)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곧 위없는 법륜을 능히 굴리느니라. 또 행고(行苦)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아승기겁(阿僧祇劫) 동안에 쌓은 그 공이 헛되지 않느니라. 또 건력혜계(建力慧戒)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나의 청정한 행을 보지 않느니라. 또 이신(離身)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계박(繫縛)을 여의고 버리되 또한 계율을 깨뜨리지도 않느니라.
012_0435_a_01L또 오아(吾我)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저 언덕[彼岸]에 대하여 또한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느니라. 또 현통(玄通)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법을 말하고 인욕하되 고요하거나 고요하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또 청백(淸白)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맑고 깨끗한 행을 사유하고 분별하느니라. 또 상응(相應)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상응한 법을 함께하나 일어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정수삼매이니라.
다른 지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가 노닐고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올리되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고 어려워하는 바도 없느니라. 설령 몸이 무너져 그 가운데서 목숨을 마치며 마디마다 갈갈이 찢어진다 하여도 스스로가 그의 몸은 풀이나 나무나 담이나 벽과 같은 것이라고 관하여 물들거나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인욕을 행하며, 나쁜 말을 들어도 근심하지 않고, 비록 즐거움을 만난다 하더라도 역시 기뻐하지 않으며, 그 언교를 찾아보아도 또한 처소가 없고, 말한 바도 역시 본말이 없는 것이라고 깨달아 알며, 본래 없다[本無]는 그 마음조차도 다 진실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정의[淸淨定意]이니라.
그는 비록 어지러운 마음이나 마음에 맺힌 바가 없다 하더라도 또한 이것에도 있지 않고 또 저것에도 있지 않으며, 안팎의 법에서 모두 다 청정하나니 이 같은 관(觀)으로써 인욕을 삼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며 혜인(慧忍)을 건립하는 것이니라.
다시 사유하고 관찰하되 세간의 법에 의지하면 모든 법은 성취하는 것이 있고 성취하지 못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바른 진리와 뒤바뀐 것도 보지 않고 따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또한 거취(去就)도 없나니, 이것이 바로 모든 보살마하살의 값진 보배가 쌓인 다함 없는 창고[藏]여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이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보지 않으며, 와도 또한 처소가 없고 가도 또한 자취가 없느니라.
012_0435_b_01L현성의 8도(道)는 모든 법의 으뜸[首]이며 낱낱이 현성의 4제를 분별하여 뒤바뀌고 허망한 생각의 행을 버리고 여의며,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되 막히는 바가 없고, 중생은 공허하여 진실이 없는 줄 분명히 알며, 모든 법을 미루어 찾아도 역시 얻을 수 없느니라. 그렇게 된 까닭은 법과 법이 서로 생기고 법과 법이 서로 소멸하기 때문이니라. 사람은 법을 여의지 못하고 법도 사람을 여의지 못하며, 사람은 스스로 공허하여 고요하고 법도 역시 공허하여 고요하며, 마치 사람이 자연(自然)인 것처럼 법도 역시 자연이며 자연인 줄 알아야 비로소 위없는 바르고 참된 행[無上正眞行]과 상응하여 곧 부처님 법의 다함 없는 행을 체득하느니라.
그 어떤 이가 법을 구할 적에 만일 구한 것으로써 바야흐로 구하게 된다면 삼세에 집착도 없고 더러움에 물드는 일도 없으며, 그로써 구하는 것이요 이것을 구하고 나면 역시 얻는 바도 없고 또한 잃는 바도 없나니 이것이 바로 최승아, 보살마하살이 미묘한 지혜로 정진하는 행을 건립하는 것이니라.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다시 선정(禪定)의 행으로 정수삼매를 사유해야 하나니, 법은 계를 깨뜨리지 않고 또한 둘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또한 성취하지도 않고 성취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선정에 대하여 정수(正受)로써 모든 정(定)에서 어지러운 생각[亂想]을 일으키지 않으며 모든 법에서 생각하는 것도 없고 또한 놓아 버리는 것도 없으며 안팎은 모두 다 주인[主]이 없다고 환히 아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한 뜻의 정수[一意正受]이며 선정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시 합하여 모인 것도 보지 않고 모든 경계를 버리되 버리거나 여읜 것도 없으며 행하되 선정에 집착하는 것도 없고 뜻은 어려움이 없는 데로 나아가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법을 세우지도 않고 법을 여의지도 않으며 언제나 하나의 뜻으로써 모든 법이 자연(自然)인 것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법을 환히 알아 나고 없어진다는 생각[生滅想]이 없으며, 몸도 아니요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바도 아니며, 정의(定意)를 사유하되 평등하여 둘이 없고 뜻하는 성품[志性]이 향하는 바에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는 것도 없고 또한 상응한 것도 보지 않는 것이니라.
012_0435_c_01L12인연의 근본을 분별하되 행(行)이 연(緣)이 되어 치(癡)가 있고, 치가 연이 되어 식(識)이 있으며, 식이 연이 되어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이 연이 되어 6입(入)이 있으며, 6입이 연이 되어 갱락(更樂)이 있고, 갱락이 연이 되어 유(有)가 있으며, 유가 연이 되어 애(愛)가 있고, 애가 연이 되어 수(受)가 있으며, 수가 연이 되어 생(生)이 있고, 생이 연이 되어 사(死)와 수우고뇌(愁憂苦惱)가 있어 헤아릴 수 없나니, 요점을 들어 말하면 다섯 가지 성음의 몸[五盛陰身]은 위태하고 무른 형상이라 오래도록 보존할 수 없느니라.
보살은 이때에 평등하고 본래부터 없음[本無]을 행하며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분별하되 모두 다 텅 비고 고요한 것인 줄 분명히 알며, 다시 정수(正受)로써 본래 청정한 법에 대하여 역시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고, 또한 색(色)과 색을 알고 색이 없다는 것도 보지 않고 온갖 뒤바뀐 행을 제도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선정일의(禪定一意)로 이것은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는 미칠 바가 아니니라.
외도가 다섯 가지 신통으로 비록 한량없이 산다 하더라도 신족을 잃음을 말미암아 구경(究竟)에는 이르지 못하거니와 선정을 닦는 사람의 정수삼매는 한 겁 동안 살고 다시 한 겁을 더 사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선정을 얻음으로써 지혜 위에 뛰어나서 진로(塵勞)를 버리고 허망한 소견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도에 뜻을 두고 원하는 것이며 중생을 깨우치고 교화하되 형상을 따라 알맞게 하고 병을 따라 약을 주는 것이니라.
다시 공한 성품의 혜관(慧觀)으로써 등자삼매에 들어가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관하여 차츰차츰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 제도해야 할 중생을 모두 다 해탈하게 하나니, 이것은 곧 여래의 선정 정수이며 모든 사람들까지 멸도에 이르게 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등자정의(等慈定意)를 세우는 것으로 제도하는 바가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느니라. 최승아, 이것이 여래의 신덕(神德)은 아스라하게 높음이 이와 같다고 하는 것이니라.
012_0436_a_01L법을 관찰하려 하면 마땅히 혜안(慧眼)으로써 해야 하나니, 또한 육안(肉眼)도 아니고 또한 천안(天眼)도 아니며 또한 아라한이나 벽지불이 볼 바도 아니니라. 모든 법을 관함으로써 모든 법이 고요한 줄 알고 모든 법이 청정한 줄 알며 모든 법이 텅 빈 것인 줄 알고 모든 법이 안정한 줄 아니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한이 없고 수량 없는 큰 서원의 마음이며 행도 없고 처소도 없고 또한 들어가는 바도 없는 모든 법의 적연(寂然)한 것이고 정(定)에 든 이만이 익힐 바요 산란한 이로서 행할 바가 아니니라.
모든 법을 널리 관하되 모두 다 그와 같이 하나니,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이 바로 법관(法觀)이니라. 법관의 보살은 모든 법의 귀착하는 바를 보지 않고 그는 법을 관함이 있으나 도량을 궐(闕)하여 구경에 이르지 못하고 정법으로써는 정의(定意)를 이루지 못한다는 이러한 종류는 분별하지 않느니라.
보살은 마땅히 허망한 소견을 제거하여 구하는 것도 없고 취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멋대로 바꾸어 중대한 복[重福]을 받기를 바라지도 않아야 하며, 안팎의 법은 모두 다 텅 비고 고요한 것인 줄 아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등자삼매에 들어가서 모든 법이 다 있는 바가 없다고 관하여 아는 것이니, 그로써 있는 바가 없어야 법을 본다[見法]고 이름하느니라.
법을 본다고 함은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수명(壽命)도 없는 것으로 이 모두는 임시로 붙인 이름이요 진실한 법이 아니며, 유위(有爲)의 법이요 무위(無爲)의 경계가 아니니, 무위의 경계는 유위의 법이 아니니라. 보살은 유위ㆍ무위와 유루ㆍ무루와 상(常)ㆍ비상(非常)과 아ㆍ인ㆍ수명이 모두 다 있는 바가 없는 줄 이해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정의(定意)란 생멸이 없는 법[無生滅法]임을 분별하는 것이니라.
가령 보살이 모든 법의 모양을 관하되 온갖 모양은 텅 비고 고요하여 둘이 없는 줄 알고 또한 둘을 보지도 않으며 둘과 둘이 없는 것을 알아야 곧 정의(定意)에 상응하나니, 뒤바뀐 법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바른 것이 있어서 도(道)에 향한다고도 보지 않고 삿된 것이 있어서 모든 소견을 향하게 된다고도 보지 않으며, 대개 중생의 한량없는 지혜에서 모두가 대애(大哀)를 일으켜 부처님의 경계를 청정하게 하고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한 부처님 국토로부터 한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올리느니라.
012_0436_b_01L또 신통과 밝은 지혜의 관(觀)으로써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살피되 어떤 중생이 모든 근(根)이 순수하게 성숙하였으나 성현을 만나지 못하여 3도(途)에 떨어져 있으면 이때에 보살은 반드시 머물러 구제하여 조락(彫落)하지 않게 하느니라. 혹은 또 이때에 보살 달사(達士)는 중생을 제도하고 겸하여 다시 인연을 짓되 두루 돌아다니고 오가며 그 공(功)이 헛되지 않게 하기도 하며, 손가락을 튀기는 동안에 백천의 정수정의(正受定意)에 노닐면서 혜관(慧觀)을 세워 모든 공덕을 닦느니라.
만일 보시를 행할 때면 하늘과 사람의 근본을 헤아리되 또한 보시한 것도 없고 세 가지 일[事]이 모두 다 있는 바가 없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보살이 보시에 상응한다고 하느니라. 만일 또 보살이 계율[律]로써 가르치고 타이르되 계를 범하고 율을 금한다는 것도 있는 바가 없는 줄 알고 계와 계가 아닌 것도 없어야 비로소 계에 상응하느니라. 혹은 또 보살이 항시 인욕을 행하되 인욕을 행한 이를 보면 그를 대신하여 기뻐하고, 설령 성을 낸 이를 만난다 하여도 근심 걱정을 품지 않으며, 성냄이나 인욕이 다 있는 바가 없어서 또한 하나, 둘이거나 백천에 이르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 인욕과 인욕이 없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인욕에 상응하느니라.
또 보살은 언제나 정진을 행하되 기뻐하고, 설령 게으른 이를 만난다 하여도 원망하지 않으며, 게으름과 정진은 하나요 둘이 아니고 또한 둘이 있지도 않으며, 또한 정진이 있지도 않고 또한 게으름이 있지도 않는 줄 아나니 정진과 게으름은 텅 비고 고요한 줄 알아야 비로소 정진에 상응하느니라.
또 보살은 다니거나 앉거나 간에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정수(禪定正受)에 일찍이 이지러지는 일이 없으며, 하늘에서 천둥을 치고 땅이 진동하여 온갖 음향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하여도 마음을 오로지 한곳으로만 쓰는지라 보살의 마음을 바꾸거나 동요시킬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안정과 산란은 다 있는 바가 없다고 아나니, 정(定)과 정이 없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정의(定意)에 상응하느니라.
012_0436_c_01L또 보살은 지혜가 윤택함으로써 바로 많은 사람에 미치게 하고 온갖 기틀[萬機]을 거두어들여 알맞게 함이 방소가 없으며, 거침없이 통달하여 연설하되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방하지 않고, 평등한 혜관(慧觀)으로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를 보지 않으며, 지혜가 있고 지혜가 없는 것과 어리석고 미혹된 것은 모두 있는 바가 없는 줄 알며, 또한 있는 것도 보지 않고 없는 것도 보지 않으며, 있고 없는 것이 다 텅 비어 공하고 고요하여 둘이 없다고 아나니, 이것을 바로 보살이 지혜에 상응한다 하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은 청정하여 또한 모양을 보지도 않고 모양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며, 모양이나 모양이 없는 줄 알아야 비로소 상호를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여 무위의 언덕[無爲岸]에 이르느니라.
또 보살은 무원(無願)을 행하되 삼계(三界)에서 유(有)를 받는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사람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상호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안팎의 5음의 성패(成敗)로서의 색ㆍ통ㆍ상ㆍ행ㆍ식과 외진(外塵)ㆍ내입(內入)을 분별하되 낱낱이 텅 비어서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분별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보살 대사는 큰 서원을 일으켜 중생들을 제도하되 제도함이 있는 것을 보지 않나니, 오히려 중생조차도 없거든 하물며 제도하는 이가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등자정의(等慈定意)를 건립하여 널리 중생으로 하여금 혜근(慧根)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니라.”
012_0437_a_01L 그때에 세존께서 혀[舌相]의 광명을 놓아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셨고 다시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의 네 간방과 위아래를 비추었으므로 광명을 받지 않음이 없었으며, 다시 동방(東方)으로 84억의 강물의 모래 수만큼 많은 적막세계를 비추었는데 모든 부처님께서 널리 모이셨고 이승이 없었으며, 항상 보살들의 특수한 행을 강설하시면서 세계를 분별하실 적에 각각 차례가 있었으며 ‘나도 거기서부터 이 인계(忍界)로 왔었다’고 하였으니, 그렇게 된 까닭은 원(願)을 세워 산가지[籌]를 뽑되 착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처님께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스스로 기억하건대 거기에 계신 부처님 대중 1억의 모든 부처님께서 동시에 산가지를 뽑았는데 내가 맨 첫번째로 이 세계에 결정되었으며, 자씨(慈氏)ㆍ원길(元吉)ㆍ사자(師子)ㆍ용혜(勇慧)ㆍ덕보(德普)ㆍ광문(廣聞)ㆍ금안(金顔)ㆍ현적(玄寂)ㆍ보웅(寶雄)ㆍ상비(常悲)ㆍ선결(鮮潔)ㆍ홍서(弘誓) 등 이와 같은 부처님 1억 여래가 동시에 산가지를 뽑았는데 이 인계(忍界)로 결정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최승과 그 모임에 모여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세계는 불가사의하여 형상을 바꾸어 변화시키고 권현(權現)도 방소가 없느니라. 너희들이 어찌 자씨(慈氏)보살이 보살행을 백방으로 익혔던 것을 알겠느냐? 그런 관(觀)을 짓지 말라. 그렇게 된 까닭은 자씨는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 동안 행을 쌓았었고 먼저 서원을 세움으로써 등정각을 이루도록 되어 있었느니라. 나도 바야흐로 행을 익혔으나 그의 뒤에 있으면서 혹은 고행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빛나는 상호[光相]를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보살로, 어린아이나 제자로 나타나며 그 사람의 본래 행을 따라 그를 위하여 설법하였느니라.”
자씨보살이 그 자리에 있자 부처님께서 미륵(彌勒)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빛나는 상호와 좌우에 거느린 모든 이들을 나타내 보아라.” 그때에 미륵은 보살의 몸을 숨기고 다시 부처님의 형상과 세계와 제자 보살을 나타내었으니 불가사의하였다. 모여 있는 대중들은 그것을 보고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였으니, 형상이 없는 것도 자연(自然)이요 색상(色相)도 자연이며 모든 법도 자연이요 모든 부처님도 역시 자연이었다.
012_0437_b_01L때에 그 대중들은 다시 동방의 84억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수의 적막세계를 보았는데,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보살이 지닌 특수한 행의 1천8백 가지 미묘한 법문을 논강하고 계셨다. “어떤 것을 1천8백 가지 미묘한 법문이라 하는가? 보살이 본정 법문(本淨法門)을 익혀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본제(本際)에서 그 증득[證]을 받지 않느니라. 또 무언설(無言說)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허공계에 놀고 있을 때도 깨닫거나 알 수가 없느니라. 또 무소득(無所得)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비록 중생을 제도한다 하더라도 또한 제도하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또 무소지(無所持)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본래부터 청정하여 안이나 바깥이나 주인이 없다는 것을 아느니라. 또 명호(名號)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모든 법은 텅 비어서 진실이 없느니라. 또 성취(成就)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비록 유위(有爲)에 처한다 하더라도 유라는 생각[有想]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또 화식(化識)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형상 없는 세계[無形界]에 들어가서 형상이 없이 교화하느니라. 또 현형(現形)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형상을 수없이 나타내어 그들을 교화하느니라. 또 인연(因緣)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그 중생들을 위하여 인연을 짓느니라.
또 법성(法聲)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다만 음성만을 들을 뿐이요 그 형상은 보지 않느니라. 또 이유(離有)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나고 없어지고 집착하고 끊는[生滅着斷] 법을 보지 않느니라. 또 해탈(解脫)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열반[泥洹]으로 멸도에 나아감이 있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012_0437_c_01L또 심오(深奧)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래의 비밀하고 요긴한[秘要] 법전(法典)을 분별하느니라. 또 무색상(無色像)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무색정(無色定)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화하느니라. 또 무관행(無觀行)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부처님 법에는 가르침[敎]도 없고 또한 가르칠 처소도 없느니라. 또 수식(數息)법문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모든 법을 헤아릴 수도 없고 숨(息)이나 숨이 없는 것을 아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등의 1천8백의 미묘한 법문을 획득하게 되느니라.”
012_0437_c_04L如是,最勝!菩薩摩訶薩獲如此等千八百微妙法門。”
때에 모여 있던 모든 대중들은 저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런 미묘한 법문을 듣고 모두 그 자리에서 믿음이 극진한 법인(法忍)을 얻었으며, 소승(小乘)을 향하였던 수없는 중생들은 모두 위없는 평등한 도의 뜻을 내었다. 그때에 세존과 미륵은 도로 광명을 입으로부터 거두어들이셨으며, 여래는 크게 가엾이 여김이 뛰어나 이와 같이 하셔서 중생을 깨우치고 교화하심이 헤아릴 수조차 없으며, 저마다 나아갈 데에 이르러 견고함에 자리잡게 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곧 모인 대중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아시고, 곧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너는 일찍이 여래가 너에게 성문의 행[聲聞行]을 설하면서 ‘이것은 유위의 법이요 이것은 무위의 법이며, 이것은 유루의 법이요 이것은 무루의 법이며, 이것은 진실한 법이요 이것은 진실한 법이 아니며, 이것은 나타나는 법[現法]이요 이것은 나타나는 법이 아니며, 이것은 진로의 법[塵勞法]이요 이것은 진로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셀 수 있는 법[有數法]이요 이것은 셀 수 없는 법[無數法]이며, 이것은 집착이 있는 법[有着法]이요 이것은 집착이 없는 법[無着法]이며, 이것은 익힘이 있는 법[有習法]이요 이것은 익힘이 없는 법[無習法]이며, 이것은 성내고 원망하는 법[瞋恨法]이요 이것은 성내고 원망하는 법이 아니며,
012_0438_a_01L이것은 버려야 하는 법[可捨法]이요 이것은 버려야 하는 법이 아니며, 이것은 범부의 법[凡夫法]이요 이것은 범부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현성의 법[賢聖法]이요 이것은 현성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의지(意止)와 신족의 법[神足法]이요 이것은 의지와 신족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근(根)ㆍ역(力)ㆍ각(覺)ㆍ도(道)의 법이요 이것은 근ㆍ역ㆍ각ㆍ도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배울 것이 있는 이의 법[學法]이요 이것은 배울 것이 있는 이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성문의 법[聲聞法]이요 이것은 성문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연각의 법[緣覺法]이요 이것은 연각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보살의 법[菩薩法]이요 이것은 보살의 법이 아니며, 이것은 부처님의 법[佛法]이요 이것은 부처님의 법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들었느냐? 사리불아, 너는 일찍이 여래가 말한 이런 언교를 들은 일이 있느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오히려 성문 대중에 있으면서도 번뇌[漏]를 끊고 연(緣)과 집착하는 생각[着想]이 있다는 것조차도 말하지 않거든, 하물며 교(敎)를 연설하고 소굴이 있다 하겠느냐? 이런 일은 옳지 못하느니라. 법륜을 말하고 강(講)하는 것도 다 처소가 없으며, 언어도 없고 가르침도 없고 또한 법이라는 생각[法想]도 없으며 법은 음향의 응대[響應]를 뛰어난 것이거늘 어찌 법이 있겠느냐?
사리불아, 지금 비유를 인용하여 말하리라. 지혜로운 이는 비유로써 스스로 이해하게 되느니라. 마치 사부(士夫)로서 용맹한 사람이 허공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형상이 없는 줄 분명히 아느니라. 그러나 그 사람은 뜻으로 성곽(城郭)을 그리려고 여러 가지 색체로써 허공에 그리되 혹은 천인의 형상[天像]을 그리고 혹은 사람의 형상[人像]을 그리고 혹은 용과 귀신과 긴나라의 형상을 그리며, 혹은 기고 날고 꿈틀거리는 짐승의 형상을 그리는 것과 같으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그 사람이 시행하려는 뜻은 과연 이룰 수 있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사오며 일찍이 그런 일은 없사옵니다.”
012_0438_a_18L舍利弗對曰:“非也。世尊!甚難甚難至未曾有。”
012_0438_b_01L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권화(權化)는 불가사의하여 시설하는 언교는 그보다 더 매우 어려운 것이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온갖 행은 유위의 법과 무위의 법과 유루의 법과 무루의 법과 도법(道法)과 세속의 법[俗法]과 12인연과 6식신(識身)과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직행(直行)과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은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어서 볼 수 없으며, 또한 버리거나 취하는 것도 없고 또한 모이거나 흩어진 것도 없으며, 들거나 가질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기 때문이니, 허공의 경계도 텅 비고 고요하여 둘이 없느니라.
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권방편으로써 중생에게 알맞게 하되 그의 근본을 따르는 것은 매우 어렵느니라. 가령 어떤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이와 같이 텅 비어 없고 고요한 법을 돈독히 믿고 온갖 행을 두루 갖추면 곧 여래의 상호를 능히 성취하고, 한 부처님 국토로부터 한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올리며, 다시 모든 부처님에게서 오래도록 잘 기억하는 총지를 얻었고 또한 다시 이 깊고 묘한 이치를 받고는 점차로 다시 연설하고 유포하여 모두 다 함께 듣고 알게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일곱 가지의 집착이 없는 법[無着法]을 생각하여 두루 갖추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모든 유(有)는 다 있는 바가 없는 줄 알고 유에 물들지도 않고 또한 유를 보지도 않으며 그 형상이 나타나도 역시 색상(色像)이 없고 오히려 부처조차도 없거든 하물며 색상이겠는가? 온갖 세계도 또한 단서(端緖)가 없거든 하물며 근본이 있어서 추구할 수 있겠느냐? 중생의 근본은 끝도 없고 밑도 없거늘 그 누가 뜻을 일으켜 그 행을 요량하겠느냐? 법은 저절로[自然] 생기고 법은 저절로 소멸하며 또한 다시 생김이 있고 소멸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며, 모든 법은 요술과 같고 모든 법은 허깨비와 같되 또한 다시 요술ㆍ허깨비ㆍ아지랑이를 보지도 못하며, 모든 법은 자연이요 모든 법은 생김이 없으며 또한 다시 생기고 소멸하고 집착하고 끊는 것도 보지 않느니라.
012_0438_c_01L이것이 바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이 일곱 가지 집착이 없는 법을 성취하면 곧 온갖 행을 완전히 갖추어서 점차로 보살의 지위를 이루기에 이르고 불수(佛樹) 아래 앉아 악마를 항복받으며 온갖 덕이 축적되어 빛나는 상호가 갖추어지고 제1주(第一住)로부터 나아가 10주에까지 이르게 되며 그 중간에 일찍이 물러나는 일이 없느니라. 항상 모든 부처님의 옹호(擁護)를 받게 되고 천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이 꽃과 향과 음악과 의복과 당기ㆍ번기로 공양올리게 되며, 차츰차츰 공덕을 더하고 위신력이 도와 주고 받들어 주어 스스로 위없고 지극히 참된 도에 오르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스스로 기억하건대 나는 옛날 보살도를 수행할 적에 혹은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였고 혹은 때에 출가하여 사문의 계율을 닦으며 강물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 공양올렸으며, 혹은 머리ㆍ눈ㆍ나라ㆍ재물ㆍ아내ㆍ자식과 혹은 의약 등의 네 가지 일[事]로써 공양올렸으나 다만 모든 부처님께서 논강하신 고(苦)의 뜻과 공(空)의 뜻과 비신(非身)의 뜻을 들었을 뿐이며, 혹은 6도와 공ㆍ무상ㆍ무원을 연설하기도 하였고, 혹은 금계와 도를 배우는 법을 연설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인욕과 인화(仁和)의 가르침을 연설하기도 하였고, 혹은 때로 숨어 사는 곳에서 겁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기도 하였으며, 혹은 선(禪)으로 정(定)에 들어가서 몸과 정신이 동요하지 않기도 하였나니, 모두가 안의 법[內法]이 아직 성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느니라.”
012_0439_a_01L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에 적막세계의 모든 부처님 세존으로부터 곧 이 깊고 묘한 법을 듣게 되었는데, 와 모여 있던 모든 보살 대사(大士)들은 바로 그때에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체득하였고 그때 그 자리에 모여 있던 2만 4천의 중생들이 곧바로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체득하였으며, 과거ㆍ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현재 계신 부처님이 모두 함께 깊은 법을 널리 펴고 전하셨으나 모두 처소가 없었고 또한 다시 아ㆍ인ㆍ수명도 보지 않았으며, 중생의 근본이 순숙(純淑)함을 관찰하여 중생이 생각이 있으면 생각 없는[無想] 것으로써 가르쳐 주셨고 중생에게 기억이 있으면 기억 없는[無念] 것으로써 교계(敎誡)하셨으며 중생에게 걸림이 있으면 걸림 없는[無碍] 것으로써 보였느니라.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깊고 오묘한 법을 읽고 외우고 잘 지니거나 또 다시 연설하고 유포하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설명하면 그 복과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며, 또 어떤 배우는 사람이 보살도를 닦되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로 온갖 것을 가엾이 여기며 보살의 지위를 성취하고 오르려 하면 언제나 이 깊고 오묘한 법장(法藏)을 닦고 지녀야 하느니라.
설령 선남자ㆍ선여인이 삼천세계에 두루 꽉 차서 5계(戒)를 받아 지니고 10선(善)과 4선(禪)ㆍ4등(等)ㆍ4공정(空定)을 두루 행한다 하여도 이 깊고 오묘한 법을 한 번 잠깐 듣는 것보다 못하며, 만일 많이 사유할 수 없다면 역시 7일 동안이라도 좋고, 만일 7일 동안도 할 수 없다면 6일ㆍ5일ㆍ4일ㆍ3일 나아가 하루라도 좋으며, 만일 하루 동안도 할 수 없다면 손가락을 튀기는 잠시 동안이라도 좋으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너와 같은 성문(聲聞)들의 그 수효가 시방의 세계에 가득 차서 의복ㆍ음식ㆍ평상ㆍ침구와 병을 치료하는 의약 등의 네 가지 일로써 억억(億億) 겁으로부터 다시 억억 겁을 경과하며 공양올린다 하여도 이 깊고 요긴한 법을 한 번 듣는 것보다 못하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보살의 법장(法藏)이요 값진 보배더미이기 때문이니라.
만일 다시 한 구절의 뜻과 무상ㆍ고ㆍ공ㆍ비신(非身)의 뜻과 3탈(脫)의 법문과 4명혜(明慧)와 공ㆍ무상ㆍ무원과 텅 비고 고요한 행과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멸하여 다함이 없는 행을 연설하면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이야말로 한량없는 덕행(德行)에 안온하고 복이 한이 없어서 비유할 수조차 없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정의정수(定意正受)의 한량없는 법에서 깊고 오묘한 법전을 널리 연설하고 유포하나 들어도 무위의 법과 모든 법은 텅 비고 공하여 모두 있는 바가 없어 이는 곧 그 깊은 이치에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보살로서 만일 중생의 소원을 두루 갖추려는 이거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뜻을 연설하려는 이거나 다시 여래와 보살의 비요(秘要)의 법을 널리 펴려고 하는 이거나 중생으로 하여금 4과(果)의 증득을 이루게 하려고 하는 이면 언제나 마땅히 이 깊은 법요를 생각하고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나는 배우면서 보살행을 닦을 적에 언제나 6도와 4등(等)을 익혔고 대자(大慈)로 중생들을 가피하고 감로의 법을 연설하되 혹은 언교를 연설하기도 하고, 혹은 현성으로서 잠자코 있기도 하였으며, 혹은 신족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선교방편으로써 하기도 하며, 혹은 신통으로써 5도(道)와 또는 1도(道)를 두루 돌아다니기도 하고, 혹은 벽지불로써 발우를 허공에 날리기도 하며, 혹은 성문으로 언교를 받기도 하고, 혹은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의 몸을 나타내기도 하였느니라.
사리불아,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이 교화하는 권현(權現)에는 방소가 없고 끝이나 다함이 없으며 세간의 습속(習俗)에 따르고 종류에 따라 들어가 또한 땅에도 들어가고 또한 물에도 들어가며 또한 불에도 들어가고 또한 바람에도 들어가지만 보살은 4대의 근본은 모두 주인이 없다고 분별하나니, 지계(地界)의 안팎은 텅 비고 고요하며 수계ㆍ화계ㆍ풍계도 역시 그와 같다고 분별하느니라.
012_0439_c_01L또 중생으로서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있는 이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는 이와 애욕(愛欲)의 마음이 있는 이와 애욕의 마음이 없는 이와 교만한 뜻이 있는 이와 교만한 뜻이 없는 이와 정의(定意)가 있는 이와 정의가 없는 이와 산란한 마음[亂心]이 있는 이와 산란한 마음이 없는 이를 관하되 보살은 다 분별하나니, 혹은 안반수의(安般守意)로써, 혹은 오로(惡露)의 부정관(不淨觀)으로써, 혹은 열반의 멸진(滅盡)한 법으로써, 혹은 유위와 무위의 법으로써, 혹은 유루와 무루의 법으로써, 혹은 세속의 법[俗法]으로써, 혹은 도인의 법[道法]으로써, 혹은 신통과 번뇌가 다한[漏盡] 도로써 그들을 교화하느니라.
나는 일찍이 통혜(通慧)세계에 놀 적에 한 중생을 위하여 12중겁(中劫) 동안 선정의 뜻에 들어가 몸과 정신이 동요하지 않고 수고를 사양하지 않으면서 기다리며 교화하였으니, 이 중생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그대는 알고 싶느냐? 바로 지금의 최승보살이니라.
최승보살은 통혜세계에서 호족(豪族)의 집에 태어났고 전생에 쌓은 덕으로 말미암아 가난하고 곤궁한 집에는 나지 않았으며 한 생(生), 두 생, 백천 생에 이르고 나아가 12중겁 동안 몸을 받아 언제나 호귀한 집에 났었고 비천한 집에 처하지 않았느니라. 나도 역시 정(定)에 들어 그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의 마음과 뜻을 관찰하였으나 백천 겁이 되어도 한 구(句)의 깊고 오묘한 법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스스로 깨쳐 마음이 환히 열리자 스스로 나의 몸에 귀의하여 깊고 묘한 한량없는 법전(法典)을 듣고 싶어했으므로 그를 위하여 다함이 없는 창고[藏]를 설법하였느니라.
이른바 다함이 없는 창고란 것은 음향을 분별하면 혹은 한 음성[一音]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차기도 하며, 혹은 한 구(句)로써 온갖 중생의 마음과 뜻에 알맞아 토(吐)하는 언교는 범음(梵音)보다 뛰어나느니라. 또 6통(通)의 다함이 없는 창고가 있나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나아가 여래 세존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올리되 깊고 묘하여 있기 어려운 법을 받아 모든 고행을 하는 데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一心)ㆍ지혜ㆍ선권(善權)보다 뛰어난 것이니라.
012_0440_a_01L또 다함이 없는 창고가 있나니, 4의지(意止)가 있게 하느니라. 4의지란 무루법의 행이요, 법의지(法意止)란 열반의 지름길이요, 나머지는 범부가 닦을 바니라. 4의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각의ㆍ8현성도의 보응과 과증(果證)이 모두 있는 바가 없고 또한 있는 것을 보지도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다함이 없는 창고이니라.
어느 것이 다할 수 있다 하겠느냐? 평등한 빛[光曜]으로 본성을 잘 강(講)하는 이것을 다할 수 있다 하겠느냐? 법성으로 서로 닦는 것을 다할 수 있다 하겠느냐? 마음으로 사유하는 바를 다할 수 있다 하겠느냐? 5음을 사유하는 것을 다할 수 있다 하겠느냐? 12인연을 환히 아는 것을 다할 수 있다 하겠느냐? 안팎의 4대를 다할 수 있다 하겠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또 네 가지 일과 법[事法]의 다함이 없는 가르침이 있나니, 변재의 문[辯才門]이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다함이 없는 지혜[慧]를 분별하고, 둘째 다함이 없는 지혜의 광명[慧明]을 분별하며, 셋째는 오래도록 잘 기억하는 총지를 사유하고, 넷째 변재 이외의 것이 없다고 분별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리불아, 네 가지 다함이 없는 창고로 보살이 수행해야 할 바이니라.
또 네 가지 다함이 없는 창고가 있나니, 지니고 다닐 수 없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그 성품은 지니기 어려우니 방일(放逸)하고 머물지 않음이요, 둘째 도의 마음[道心]은 지니기 어렵나니 본성품이 매우 깊으며, 셋째 모든 본제(本際)에 들어가 본말을 익힘이 없고, 넷째 중생의 뜻에 들어가 법이 없음[無法]을 분명히 아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다함이 없는 창고이니라.”
012_0440_b_01L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다시 네 가지 견고하고 다함이 없는 창고가 있나니 변재 법문이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뜻하는 원[志願]이 견고하여 삿된 부류에 집착하지 않고, 둘째 본래의 행이 청정하여 진로(塵勞)를 일으키지 않으며, 셋째 옛 부처님[古佛]의 언교로 인욕을 세워 성냄이 없고, 넷째 인연 따라 행을 짓되 본래의 서원[本誓]을 잃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다함이 없는 창고의 변재 법문으로 도수(道樹) 아래 있고 악마를 항복받되 뜻에 겁내거나 나약함이 없는 것이니라.
또 네 가지 전륜(轉輪)하는 법문의 다함이 없는 창고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말한 바가 지성스러우면서 다른 사람을 헐뜯지 않고, 둘째 연기(緣起)를 궁구하여 다하여 어디서부터 생긴 것을 알며, 셋째 중생을 가르치고 타이르되 처음부터 게으르지 않고, 넷째 밝은 지혜를 분별하여 보살의 지위에 오르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법과 계율을 무너뜨리지 않고 다함이 없는 창고로써 보살마하살이 언제나 수행할 바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네 가지 다함이 없는 창고로써 법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법계를 밝게 비추고 통달하여 왕래하며, 둘째 법성을 밝게 비춰 아무것도 없음[無所有]을 알며, 셋째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을 분별하느니라. 어떤 것이 육안인가? 색상(色像)을 볼 적에 안식(眼識)이 없지 않는 눈이요, 어떤 것이 천안인가? 이른바 천안이란 하늘[天]의 색상을 보면서도 보응을 보지 않는 눈이며, 혜안은 분별하면서도 티끌과 때[塵垢]를 보지 않고, 법안은 청정하고 6도를 완전히 갖추며, 불안은 환히 밝아서 모양[相]과 모양이 없는 것을 보는 눈이니라. 넷째 보응을 밝게 비춰 삼계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다함이 없는 창고로써 법계를 성취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에게는 또 네 가지 다함이 없는 창고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정진(精進)이니 안정하지 않은 뜻[不定意]과 지혜를 구함이 있는 뜻[有求慧意]과 지혜를 구함이 없는 뜻[無求慧意]과 다함이 있는 뜻[有盡意]과 다함이 없는 뜻[無盡意]과 얻음이 있는 뜻[有得意]과 얻음이 없는 뜻[無得意]은 안팎으로 분별하여도 다 있는 바가 없나니 이 때문에 사리불아, 권도를 행하는 보살은 있는 데서마다 돌아다니며 교화하되 정진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012_0440_c_01L금계를 수행하되 부지런히 힘쓰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모든 세존으로부터 쌓은 공덕을 구하며,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밝은 지혜를 한 데 모으고 도의 가르침[道敎]을 널리 연설하되 역시 언교가 없으며, 미래ㆍ과거ㆍ현재의 모든 법을 지혜로이 관하되 견고하여야 비로소 진실한 가르침[眞敎]이 되느니라.
여래가 연설한 바는 문자로써 하지 않으며, 듣는 것이 청정하므로 설법 또한 청정하나니, 이것은 바로 지혜를 쌓은 공덕으로 인(忍)을 세운 것이 견고하여 불퇴전에 서는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사리불아, 색(色)을 탐하지도 않고 또한 색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색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요 색과 색이 없는 줄 아는 것이니 그러므로 법성이라 하느니라.
바로 삼천대천세계에서 향훈(香薰)과 세활(細滑)과 비단 번기와 일산으로 와서 공양을 올린다 하여도 진실로 기뻐하지 않고, 게으름을 멀리 여의며 겁내거나 나약하지 않으며, 탐내고 어지러운 뜻[貪亂意]을 피하고 성내는 마음을 없애며,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비요(秘要)를 연설하고 유포해야 비로소 부처님을 이루게 되느니라. 몸이 편안한 바를 버리고 큰 서원의 마음을 세워 저 중생들을 대신하여 그의 고뇌를 받고 정진하여 법을 즐기되 중생들로 하여금 법실(法室)에 진입하여 도를 닦기에 이르면 모든 하늘들이 증명하고 천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 등이 다 와서 공양올리게 되느니라.
선남자ㆍ선여인은 부축하고 돕고 권고하여 부처님을 이루도록 원을 세워 견고하게 하고 반드시 지혜를 이루는 가운데서 물러남이 없어야 하며, 모든 인연으로 3도(塗)에 떨어진 이를 제도하되 아는 것도 없고 깨닫는 것도 없으며 또한 구경(究竟)도 없나니 이것이 바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상념이 없는 법[無想念法]과 언교가 없는 법[無言敎法]을 닦아 이에 여래의 거룩한 가르침[聖敎]을 이룰 수 있느니라.”
012_0441_a_01L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들 여러 사람은 2백 무앙수(無央數) 겁 뒤에는 당연히 부처님이 되고 모두가 동일한 명호인 무구초덕(無垢超德)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이며 불세존이라 부를 것이요, 세계는 청정(淸淨)이라 하고 겁의 이름은 난도(難度)이니라.
그 부처님 세계는 순수한 일승(一乘)이요, 성문이나 벽지불의 이름도 없으며, 언제나 보살의 한량없는 덕행을 논하느니라. 토지는 편편하여 산과 하천이나 언덕, 산골물과 계곡도 없으며 여러 가지 빛깔은 마치 하늘이 완연(綩綖)한 것과 같고 햇빛이나 달빛의 비춤도 없으나 스스로 온갖 모양의 빛과 빛이 서로 비치며, 온갖 덕으로 중생들이 생각한 갖가지 생각들이 넓고 두루하나니, 그렇게 되는 까닭은 그 법계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 부처님 세계의 음식은 저절로 된 감로요, 겁파육의(劫波育衣)를 입는 것이 마치 제6천의 즐거움과 같으며, 살고 있는 토지는 풍요하여 5곡은 지천이고, 7보인 금ㆍ은 진보와 자거ㆍ마노ㆍ진주ㆍ호박이 두루 갖추었으며,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있으니 이름은 우화(雨華)라 하고 7보가 앞뒤에서 인도하고 따르느니라.
012_0441_b_01L셋째는 마보(馬寶)이니라. 이른바 마보는 몸이 감청색(紺靑色)이요, 갈기와 꼬리는 붉으며, 허공을 타고 가며 발은 땅을 밟지 않고 말이 한 번 으르릉거리면서 울면 세계가 진동하고 듣지 못한 이가 없으며, 왕의 뜻이 동ㆍ서ㆍ남ㆍ북을 가고 싶어하면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에 모두 다 돌아다니게 하느니라.
넷째는 옥녀보(玉女寶)이니라. 이른바 옥녀보는 몸에서는 우발련꽃[優鉢蓮華]의 향기를 풍기고 입에서는 우두전단(牛頭栴檀)의 향내가 나며, 순수한 살이요 뼈가 없으며 사람됨이 단정히 생겨서 살지지도 않고 파리하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아 여인의 자태로써 64가지 변화를 빠짐없이 갖추었는데, 왕의 뜻에 맞아들이고 싶어하면 곧 앞에 와 있게 되느니라.
다섯째는 주보(珠寶)이니라. 이른바 주보는 사방이 세 길[仞]이요, 높이는 일곱 길인데 왕이 뜻에 그 주보를 시험해 보려고 밤에 사람이 없을 적에 곧 군사와 말들을 부르고 네 종류의 병사를 모아 놓고는 주보를 내어 만 장(萬丈)이 되는 대(臺) 끝에 두면 널리 세계를 비추되 광명을 받지 않는 이가 없고 주보는 스스로 왔다갔다하여 왕의 생각대로 따르느니라.
여섯째는 전장보(典藏寶)이니라. 이른바 전장보는 때에 전륜성왕이 여러 지방을 다니려는 생각으로 큰 바다의 밑이 없는 근원을 경유할 적에 왕의 뜻에 전장보를 시험하여 증험하려고 곧 시종들에게 ‘잠깐 이 바다에 멈추어라. 나는 머무르며 쉬고 싶구나’라고 명령하고, 곧 전장보에 ‘나는 이제 금ㆍ은의 진보와 자거ㆍ마노ㆍ산호ㆍ호박ㆍ수정ㆍ유리를 구하고 싶은데 그대는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명령하니 전장보가 곧 물속에 꿇어앉아 그릇으로 물을 퍼올리는데 그릇마다 뜻으로 생각하는 대로 7보가 저절로 나오느니라.
012_0441_c_01L일곱째는 전병보(典兵寶)이니라. 이른바 전병보는 왕의 뜻이 네 종류의 병사들을 모으려고 곧 전병보에게 ‘나는 네 종류의 병사들을 검열하고 싶다. 사용할 때에 이동하지 않아도 그리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면 그 전병보는 다시 왕에게 ‘자세히 알지 못하여 그러합니다. 성왕(聖王)께서는 얼마만큼의 병사가 필요하십니까?’라고 아뢰고, 왕은 그에게 ‘나는 앞뒤 좌우로 각각 만상(萬葙)씩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 때에 그 전병보는 왕의 교령(敎令)에 따라 곧 말한 그대로 네 종류의 병사들이 모이게 하느니라. 이른바 네 종류의 병사는 상병(象兵)ㆍ마병(馬兵)ㆍ거병(車兵)ㆍ보병(步兵)이니, 그 낱낱의 병사에게는 장종(將從) 열이 있고 네 종류의 병사도 각각 역시 그러하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최승과 모여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에 전륜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렇게 보지 말라. 그렇게 한 까닭은 바로 지금의 최승보살이 그 사람이기 때문이니라. 있는 데서마다 변화하고 언성은 부드러우며 인민의 무리는 모두가 법음(法音)을 받들어 적연(寂然)하여 염박(恬泊)하고 도무극과 4은(恩)과 4등(等)과 6중(重)의 법을 강설하며, 선권방편으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고 욕심을 여의면서 때[垢]가 없으며, 공ㆍ무상ㆍ무원과 무위의 법으로 생멸의 법이 없고 단서(端緖)의 법이 없으며, 그 백성들인 모든 하늘이나 세간 사람들이 그의 경계에 있는 거룩한 지혜와 무루의 도근(道根)을 분별하며, 혹은 음향을 보이고 밝은 법[明法]을 가리켜 주기도 하며 아주 간절한 가르침으로써 법과 율에 끌어들이며, 혹은 신족의 변화와 광명으로써 가르쳐 주어 그 중생들로 하여금 점차로 구경(究竟)에 들게 하려 하느니라.”
또 다시 사리불아, 12인연과 5음과 6쇠는 도무지 형상이 없는 것이며, 여래의 여덟 가지 음성은 남자의 음성[男音]도 아니고 여인의 음성[女音]도 아니며 강한 음성[强音]도 아니고 부드러운 음성[軟音]도 아니며 맑은 음성[淸音]도 아니고 탁한 음성[濁音]도 아니며 큰 음성[雄音]도 아니고 작은 음성[雌音]도 아니니, 이로 말미암아 단도(檀度)는 진실한 과증(果證)을 받아들이고 청정한 줄 알고 법계를 비추며, 혹은 한 음성[一音]으로써 삼천의 시방 세계에 두루 채우느니라.
012_0442_a_01L나는 일찍이 아지랑이 같은 세계에 노닐고 있었느니라. 여기서 72억 강물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국토를 지나간 거기에 있을 적에 돌아다니며 큰 음성을 내어 그 부처님 세계를 두루 채웠으며, 그 음성을 들은 백억의 중생들은 불퇴전에 서서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느니라.
때에 나의 제자로서 신족제일의 목련(目連)은 하나의 수미산을 올라가고 다시 하나의 수미산을 올라가기를 이와 같이 하여 겁(劫)을 지났으며 겁을 지나도록 발이 땅을 밟지 않았느니라. 때에 목건련은 아지랑이 같은 세계에 있으면서 큰 음성을 놓아 삼천의 시방 세계에 두루 채웠고 그 음성에서는 이런 가르침을 연설하였느니라. ‘여래의 설법은 일찍이 행(行)이 있는 일이 없고 또한 행을 보지 않는 곳도 아니며 행과 행이 없는 줄 알기 때문에 청정하다 합니다. 모든 법은 형상도 없고 또한 음향도 없습니다. 다시 말씀하는 4제는 그대로의 법성이며 고(苦)와 고가 없는 줄 알고 고에 머무르지 않으며, 이와 같은 지혜에 들기 때문에 고지(苦智)라고 합니다. 습(習)으로 인하여 근본을 통달하고 습과 습이 없는 줄 알며 습이 있음을 보지 않기 때문에 습지(習智)라고 합니다. 진(盡)의 처소를 알고 진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진으로 말미암아 소멸하되 또한 진을 보지도 않는 것이 바로 진지(盡智)라 합니다. 무위(無爲)의 도(道)는 소굴을 보지도 않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신 바이며 지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역시 도가 없고 과거ㆍ미래에 말씀하신 바도 역시 그와 같나니, 도는 형상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도와 도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지(道智)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도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니라.
012_0442_b_01L때에 그 여래는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 곧 목련에게 ‘너의 신족을 버리고 이 대중에게 그 형상을 나타내어라’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목련은 곧 그 형상 그대로 홀연히 이르러서 대중 가운데에 있었느니라. 거기의 보살들의 키는 8만 4천 유순(由旬)이요, 부처님의 신장은 16만 8천 유순이었으며, 모여 있는 대중들은 목련의 형체를 보매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진 형상이 마치 사문과 같았으므로 모두 깜짝 놀라 ‘전에 없던 일이라, 이것은 바로 어떤 형상일까? 이것은 축생인가, 사람인가?’라고 생각하였느니라.
이때에 그 부처님은 모인 대중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그런 마음을 내지 말라. 그 까닭은 여기서 72억 강물의 모래 수만큼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지나면 부처님의 세계가 있나니, 그 이름은 인토(忍土)이니라. 거기에 부처님이 계신데 명호는 석가문(釋迦文)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 10호(號)를 완전히 갖추셨고 5탁의 나쁜 세상인 세간에 출현하여 항상 문자로써 중생을 가르쳐 주며, 사람 수명은 백 세인데 그보다 더 산 이는 얼마 없으며 4제의 지극한 진리로써 이치를 분별하고 그 연설하는 지혜는 처소도 없고 집착도 없느니라. 이 목련 비구는 바로 거기의 신족제일의 제자이니라.’
그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신족을 나타내어라. 여기에 모인 대중들이 헛된 생각으로 보고 싶어하는구나.’
012_0442_b_14L彼佛卽告目連曰:‘現汝神足,此會大衆虛想欲見。’
때에 목건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홀연히 몸이 없어지는 무애삼매정의(無碍三昧定意)에 들어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를 다 접수하여 오른 손바닥에 놓아 두고 왼손으로는 그 부처님 국토를 허공에다 달아 두었으므로 저마다 다 같이 목련의 신족을 보고 그의 형체를 보고 싶어하였으나 볼 수 없었느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세계의 중생들은 사납고 억세어서 교화하기 어려우며 서로서로 시비(是非)하고 저마다 자신이 높다고 여기나니, 이 때문에 여래는 간절한 가르침으로써 인도하고 도검(道檢)에 들게 하느니라. 마치 용과 코끼리나 모든 나쁜 짐승이 사나워 길들이지 못했으므로 회초리나 몽둥이로 때려 고통을 알게 하고 그런 뒤에야 잘 길들여져서 왕이 마음대로 타게 되는 것처럼 그 국토의 중생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여러 가지 언교로써 그들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되 혹은 괴로운 음성[苦音]으로써 고(苦)의 음향을 말하는 것이니, 습(習)ㆍ진(盡)ㆍ도(道)의 음향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때에 그 보살들은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부처님 여래는 수고롭게 힘쓰는 행을 지녔나니 매우 있기 어려운 일이오며, 다섯 솥의 물이 끓고 있는 세간[五鼎沸世]에서 중생을 교화하며, 큰 도[大道]를 연설하고 유포하시다가 적연(寂然)히 멸도하시고 무위(無爲)로 돌아가시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