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자리에 있는 백억의 중생과 크게 모여 있는 보살인 사람과 하늘의 제석(帝釋)ㆍ범천왕(梵天王)과 도솔천(兜率天)ㆍ염천(炎天)ㆍ화자재천(化自在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나아가 일구경천(一究竟天)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의심을 내었고 연설하신 지극한 도의 요의(要義)를 듣고 싶어서 “도(道)란 모양이 없어서 볼 수 없거늘 어떻게 여래는 도가 있다고 말씀을 하실까?”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최승과 보살마하살과 천ㆍ용ㆍ귀신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 등에게 말씀하셨다. “도(道)는 자취가 없고 적연하여 이름조차 없는 줄 알 것이니라. 가령 최승아, 도에 처소가 있다면 보살마하살은 평등한 법 가운데서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그 도과에는 처소가 없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등정각을 이루게 되느니라.”
012_0443_b_01L부처님께서 다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의 도의 지혜[道智]와 정의(定意)에는 열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몸의 행[身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입의 행[口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뜻의 행[意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부처님 경계에 노닐되 부처님이라는 생각[佛想]을 일으키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되 걸림없는 지혜[無碍智]를 체득하여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도(道)와 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며, 다시 중생으로 하여금 최정각을 이루게 하며, 큰 광명을 놓아 비추지 않는 바가 없고 그 낱낱의 광명에는 한량없는 변화한 부처님[化佛]이 계시고 그 한 분 한 분의 화불은 지극히 깊은 6도무극을 연설하며, 항상 법륜을 굴리되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며, 나[我]와 내가 없는[無我] 것과 또한 수명(壽命)도 없는 것인 줄 알며 몸과 마음이 자연(自然)이어야 비로소 도(道)라고 하느니라.
그 자연이란 도가 지혜가 없음을 깨닫고 또한 지혜가 있지도 않으며, 깨닫는 바가 없는 줄 깨달아 도무지 깨닫는다는 것을 보지 않으며, 우리[吾]는 이것이 도라고 말하여도 또한 우리를 보지 않고 나[我]는 이것이 도라고 말하여도 또한 나라는 것도 보지 않으며, 나ㆍ사람ㆍ수명도 역시 그와 같고 온갖 지혜도 역시 형상이 없느니라.”
그때에 최승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령 도는 형상이 없고 볼 수 없다 하오면 어찌 지금과 같이 법륜을 굴리시어 4도(道)의 과증(果證)을 연설하시며,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을 말씀하시고 벽지불과 보살과 부처님을 말씀하시옵니까? 무슨 까닭으로 5음ㆍ살운연(薩云然)ㆍ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현성도(賢聖道)를 말씀하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며, 한 부처님의 국토로부터 한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시면서 밝은 지혜와 6식(識)과 갱락(更樂)을 말씀하시옵니까? 어찌하여 다시 4등(等)과 6도와 진여법성(眞如法性)과 도(道)라는 이름을 말씀하시옵니까?”
이때에 세존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묻는 바와 같아서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지혜와 5분법신(分法身)을 완전히 알아 선권(善權)으로 동요와 이전함을 보지 않나니, 동요나 이전함을 본다면 곧 도의 뜻이 아니니라. 온갖 것에 의지하거나 머무르는 것을 멀리 여의며 그 법계를 추구하여도 역시 법계가 없나니, 그렇게 되는 까닭은 다 같이 본래부터 없기 때문에 도와 지혜에 집착하는 것이 없고 본래 그대로 청정하기 때문에 설령 법륜을 굴린다 하여도 모든 법은 집착이 없는 줄 알기 때문이니라.
012_0443_c_01L그러므로 최승아, 보살마하살은 온갖 것에 평등하여 모두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또한 생기는 것을 보지도 않고 또한 소멸하는 것을 보지도 않으며, 부처님 국토가 청정한지라 중생도 역시 청정하며, 한량없는 지혜의 광명을 널리 펴 나타내나니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총지의 행으로 불퇴전에 서서 보살의 지위에 오르느니라.
혹은 정의정수삼매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되 약간의 도(道)와 인(忍)의 한 가지 행(行)도 없기 때문에 언어와 법과 지혜가 없는데도 억지로 지혜를 시설한 것이니, 보살 대사(大士)는 마땅히 생각하고 수행하면서 아직 깨치지 못한 이를 교화하되 모두가 안다는 생각[識想]이 없어야 하느니라.
최승아, 이것이 바로 한 정의(定意)에 들어가 도지(道智)를 청정하게 하고 온갖 것에 띠끌[塵]이 없으며, 아직 조복하지 못한 이를 조복하고 고락(苦樂)은 상(常)이기도 하고 상이 아니기도 하다[非常]는 것과 또는 곱다거나 누추하다는 것을 헤아리지 않으며, 모두 다 생각이나 집착이 없고 지혜를 어지럽히는 것도 없는 것이니라. 불장(佛藏)을 구하고 찾되 10력이 완전히 갖추어지고 4무소외와 4분별혜(分別慧)와 대자대비와 진여법성은 다 아무것도 없어서 모두가 텅 비고 모두가 고요하며, 보응과 지성스런 도지도 생기는 것과 소멸하는 것이 없다고 분별하기 때문에 공(空)이요 무상(無相)이요 무원(無願)이며 또한 ‘생기는 바가 없다’고 말하느니라.
이때에 최승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쾌히 이런 법을 연설하여 주셨사옵니다.”
012_0443_c_17L是時,最勝菩薩前白佛言:“善哉善哉!快說斯法。”
그때에 모인 대중 가운데 천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 등이 마음속으로 ‘여래께서는 오늘 크게 모인 이들을 위하여 도지(道智)의 견줄 데 없는 법을 널리 펴 연설하여 중생의 원을 만족시키고 나아갈 바를 따르셨다. 이 최승보살은 언제 최정각의 위없는 도를 이루게 될까?’라고 생각하였다.
012_0444_a_01L부처님은 모든 천ㆍ용ㆍ귀신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아시고 곧 4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최승보살은 이로부터 수없는 삼백삼십 아승기겁 뒤에 부처님이 될 것이니, 명호는 명혜(明慧) 지진ㆍ여래ㆍ등정각이고 세계는 무량(無量)이며 겁의 이름은 청정(淸淨)이니라. 그 부처님 여래의 좌우에 모시고 있는 제자들은 9992억 명이요 수명은 120소겁(小劫)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대중에는 도리천제(忉利天帝:제석천)와 아수라가 싸울 때 함께 있었던 이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때는 모든 하늘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으며 어떤 때는 아수라가 이기고 모든 하늘들이 졌느니라. 저마다 함께 싸우며 그 원결(怨結)을 품었고, 저마다 모질게 성을 내어 버리거나 여의지를 못하였느니라. 가만히 생각건대 천존(天尊)은 권방편으로써 그들을 위하여 도지(道智)의 허무(虛無)한 법을 연설해 모든 천인(天人)들과 아수라들로 하여금 저마다 화합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느니라.”
012_0444_b_01L그때에 세존께서 모든 모여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도(道)는 형상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으며, 3독의 근본은 영원히 본말이 없느니라. 세간에 있으면서 도를 닦을 때는 오직 믿음[信]만이 강하게 할 뿐이요 사람이 자비를 행하면 선신(善神)이 호위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찬탄하시나니, 금세와 후세에 덕을 한량없이 쌓아라. 이 염부리(閻浮利) 안의 기고 날고 꿈틀거리는 형상 있는 무리는 모두 마땅히 멸해 다하는[滅盡] 법에 돌아가야 하나니, 목숨은 마치 번갯불과 같고 또한 아지랑이나 거울 속의 형상이나 물 위에 떠 있는 거품과 같아 합쳐 모이면 이별이 있고 나는 이는 반드시 죽느니라. 너희들은 형상을 받았으므로 이 환난(患難)을 면하지 못하리라. 비록 하늘의 수명을 받는다 하더라도 본래가 3도(塗)에 있는 것이므로 마땅히 스스로 근신(謹愼)하고 이 길을 여의기를 구해야 하나니,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서 나의 가르침과 경계를 받아라.”
그때에 4부 대중은 다 함께 기뻐하고 저마다 스스로 공경을 일으켜 여래의 도법(道法)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 싶어하였다.
012_0444_b_02L爾時,四部之衆,僉然喜慶各自興敬,欲聽如來道法之教。
그때에 세존께서 사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8해탈(解脫)의 법문을 수행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선남자ㆍ선여인은 계율을 받들어 결함없이 몸과 입과 뜻을 보호하며, 4등(等)의 마음인 자ㆍ비ㆍ희ㆍ호를 행하고 언제나 선지식을 생각하고 친근하고 따라 3보를 훨훨 타오르게 하며, 항상 위없는 부처님 도를 생각하고 뜻하여 구하되 들었던 바른 법은 사람들을 위하여 강설하고 연설하는 도의 가르침은 소승을 말하지 않으며, 중생에게 대도(大道)에 나아가 수행하기를 권하고, 간혹 보살이 대승을 강연할 때는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가르침을 받는 것을 보지 않음이 마치 허공은 모양이 없고 형상이 없는 것과 같이 하며, 부처님께서 건립한 바는 불가사의한지라 만행(萬行)을 포용하여 법마다 두루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혹은 공하여 없는 허공과 적연(寂然)한 행을 연설하기도 하고 혹은 5분법신(分法身)을 말하는 것이 마치 어떤 사람이 뜻대로 되는 마니주(摩尼珠)를 얻어서 대중 가운데서 구슬의 위덕(威德)으로 푸르고 누르고 희고 검게 하려 하고 또한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색상(色像)을 같이 하게 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과 뜻에서 생각하는 바를 따라 곧 도지(道智)의 끝없는 법을 연설하고 저마다 기뻐하고 뜻에 부처님 도를 숭앙하게 하여 남김없이 인도해 지혜의 법문을 보여주니라. 중생을 이익되게 하여 대도(大道)를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보살은 큰 서원을 세워 중생을 제도하되 역시 제도하는 것을 보지 않음은 마치 허공에 오가면서 걸림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뜻을 일으켜 사람을 제도함이 그와 같아서 또한 중생으로서 제도됨이 있는 이를 보지 않느니라.”
012_0444_c_01L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반열반하며 모든 중생들은 사리에 12중겁(中劫)이 지나도록 공양올리며 모두 다 받들어 섬기게 되리니, 인연이 없는 이는 그 때문에 인연을 짓고 구호할 이 없는 이는 그 때문에 구호를 베풀며 덮어 가려줌이 없는 이면 그 때문에 덮어 가려주게 될 것이니라.
그 때의 인민들은 모두가 꽃과 향과 음악으로써 공양올리고 머리 조아려 스스로 귀의할 것이며, 그 낱낱의 사리는 모두 광명을 놓아 신령한 덕의 변화를 보는 이면 기뻐할 것이요, 모든 큰 서원으로 말미암아 원을 세운 소치(所致)이니 마치 부처님 위신의 특수한 변화와 같아서 외외(巍巍)하고 당당(堂堂)하여 밝게 빛나지 않음이 없으며, 한량없는 지혜의 광명을 널리 펴 나타내나니 이를 반연하여 위없는 도의 뜻을 일으킬 것이니라.
그 안의 중생이 뜻을 일으키되 잘못한 이는 혹은 연각이나 성문의 법을 이루고 혹은 천상에 나거나 인간의 몸을 얻기도 하며, 사리는 팔방과 상하에 분포되나니, 천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 등과 기어다니고 숨을 헐떡거리는 형상 있는 무리들이 모두 5락(樂)으로써 공양올리고 스스로 즐길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부처가 되었을 때 땅은 황금빛이고 금ㆍ은의 진기한 보배와 자거ㆍ마노ㆍ산호ㆍ호박ㆍ수정ㆍ유리의 7보가 두루 갖추어질 것이며, 혹은 어떤 중생이 전신사리(全身舍利)를 얻어 공양하려 하면 곧 그의 원과 같이 모두 다 뜻대로 되고 수천만억의 전신사리가 세간에 유포되어 나타날 것이며, 경법(經法)은 17중겁 동안 유포될 것이니라.”
012_0445_a_01L부처님께서는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곧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만 두어라. 어진 선비야, 그런 말은 하지도 말 것이요 자기 몸의 한계나 장애가 있는 지혜로써 여래의 걸림 없는 지혜와 삼매정의를 헤아리지 말 것이니라. 광명과 사리로 제도하는 중생은 마음으로 헤아릴 바도 아니요, 뜻으로 살필 바도 아니니라. 여래의 신령한 덕과 도의 지혜는 자유자재하시며, 또 모든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바의 권현(權現)과 변이(變異)는 바로 벽지불이나 성문으로서 미칠 것이 아니니라.
보살마하살이 적정삼매(寂定三昧)를 얻으면 도무지 가깝고 먼 것과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과 정(定)의 생각도 없으며, 시방의 군국(郡國)ㆍ현읍(縣邑)과 천궁(天宮)ㆍ용궁(龍宮)과 모든 높은 귀신 궁전과 언덕과 인간 가운데와 너른 들판과 천상과 5도(道)의 나아갈 바에 두루 다니며, 각각 전신사리를 나타내 보이되 그 낱낱 사리는 광명을 놓아 6도의 견줄 데 없는 법과 공ㆍ무상ㆍ무원과 대자대비와 4은(恩)과 밝은 지혜를 해설하고 텅 비고 고요함[虛寂]을 분별하며, 정의(定意)를 거침없이 뻗치면서 사리에 공양올리되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보시하는 마음이 견고하여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적의정심(寂意定心)삼매에 들어가서 곧 안팎의 6정(情)을 분별하는 것이니라.
무엇 때문에 6정이라 이름하는가? 이른바 6정이란 눈이 빛깔을 보되 색이라는 생각[色想]을 일으키지 않으며, 색의 바깥 사물[外物]을 알고 안식(眼識)을 일으키면 곧 74가지 진로(塵勞)의 과환[患]이 일어나느니라. 무엇을 74가지라 하는가? 욕계식[欲識]의 15가지와 색계식[色識]의 15가지와 유상무상식(有想無想識)의 15가지와 생음(生陰)의 15가지와 중음(中陰)의 14가지이니라.”
012_0445_b_01L부처님께서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안식 가운데서 이런 진로를 일으키면 곧 안식이 일어나는 것이니라. 또 보살마하살아, 가령 족성자(族姓子)나 족성녀(族姓女)가 귀로 소리를 들을 때도 귀의 과환을 일으키지 않나니, 소리의 바깥 사물을 알고 이식(耳識)을 일으키면 곧 74가지 진로의 과환이 일어나느니라. 곧 욕계 이식의 15가지와 색계 이식의 10가지와 유상무상 이식의 10가지와 중음과 몸을 받는 음[受形陰]의 39가지이니라.”
부처님께서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이식 가운데서 이런 진로를 일으키면 곧 이식이 일어나는 것이니라. 또 보살마하살아, 코로 냄새를 맡을 때도 비식(鼻識)을 일으키지 않나니, 코의 바깥 사물을 알고 비식을 일으키면 곧 74가지 진로의 과환이 일어나느니라. 욕계 비식의 15가지와 색계의 15가지와 유상무상과 4공정(空定)의 44가지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족성자나 족성녀가 설식(舌識)으로 맛을 알면 혀의 과환이 일어나나니, 그 가운데서 분별하고 다 주인[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 욕심 안[欲中]의 식(識) 가운데서는 곧 74가지 진로의 과환이 일어나느니라. 무엇을 74가지라 하는가? 욕계의 15가지와 색계의 15가지와 유상무상과 중음에 이르기까지의 44가지니라.
보살마하살아, 다시 생기거나 소멸하는 법과 밖의 갱[外更]과 안의 낙[內樂]으로 거칠거나 미세한 진로를 사유하여 낱낱이 있는 바가 없는 줄 분별하나니, 곧 갱락(更樂)이 신식(身識)을 일으키면 이에 74가지 진로의 과환이 일어나느니라. 무엇을 74가지라 하는가? 이른바 74가지란 욕계의 15가지와 색계의 15가지와 유상무상과 중음에 이르기까지의 44가지이니라.
보살마하살아, 다시 뜻과 법[意法]의 행으로써 법이 생기면 생기고 법이 소멸하면 소멸한다는 것을 사유하되 또한 생기는 것도 보지 않고 또한 소멸하는 것도 보지 않나니, 어리석고 미혹된 사람이 안에서 의식(意識)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곧 74가지 진로의 과환이 일어나느니라. 어떤 것이 74가지 진로의 과환인가? 욕계의 15가지와 색계의 15가지와 유상무상과 중음까지의 44가지이니라.”
012_0445_c_01L부처님께서 다시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도지(道智)인가? 욕계에서 도지는 15가지이니, 이른바 무엇이 15가지인가? 세간을 관찰할 적에 일곱 가지가 있느니라.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 도를 비방하고, 둘째 말을 믿으며, 셋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넷째 진리[諦]에 있거나 혹은 곧 물러나며, 다섯째 보(報)를 얻고서 망설이고, 여섯째 뜻은 나아가는데도 몸이 장애하며, 일곱째 눈으로 보고도 얻지 못하는 것이니라.
부처님의 깊은 법장(法藏)에 의지하여 여덟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 부처님 법은 형상이 없으나 소굴을 시설하고, 둘째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는데도 항상 존재한다고 헤아리며, 셋째 과거는 영원히 소멸하여 맹세코 보지 못한다고 말하고, 넷째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아 생기거나 소멸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며, 다섯째 고(苦)를 반연하여 과환이 이르면 스스로 연대(緣對)를 부르고, 여섯째 아직 다하지 못한 것을 다하였다 말하고 방편으로 행을 익히며, 일곱째 도(道)를 보고 도를 버리면서 하나로부터 나아가기 시작하고, 여덟째 부처님 법은 둘이 없는데도 뜻은 들쑥날쑥한 데에 있는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욕계 도지(道智)로서 15가지 진로의 행이니라.
어떤 것이 색계의 15가지 진로의 행인가? 이른바 15가지란 첫째 은혜와 윤택함을 위하고, 둘째 마음이 옮아가지 않으며, 셋째 하늘의 쾌락에 집착하고, 넷째 죄와 복을 잊어버리며, 다섯째 영원히 오래 있으리라고 여기고, 여섯째 아프고 가렵다는 느낌[痛痒]이 없으며, 일곱째 바른 자리[正地]에 있고, 여덟째 평등하고 고르게 행하며, 아홉째 인(忍)이 일어나지 않고, 열째 도(道)가 변함이 없으며, 열한째 생각이 갖추어지고, 열두째 빛깔에 집착하며, 열셋째 자유자재하고, 열넷째 멀리까지 비추며, 열다섯째 갈마(羯磨)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색계천[色天]에 나아가서 마땅히 생각하여야 할 15가지 진로의 행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라.
012_0446_a_01L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유상무상과 중음까지의 44가지 진로의 행을 멀리 여의는 것인가? 이에 보살은 신통한 정의무형삼매에 들어가 그 사이에 가서 44가지의 식(識)이 집착하는 행을 말하느니라. 어떤 것이 44가지인가? 이에 보살은 식(識)과 더불어 행(行)을 말하는 것이니 첫째 식의 아[識我]는 근본이 없고, 둘째 빛깔[色]을 버리면서 형상이 없으며, 셋째 통(痛)이 있으면 과보를 받고, 넷째 생각[想]이 견고하지 않으며, 다섯째 행(行)은 근본과 지말이 끊어지고, 여섯째 공하여 없는 지혜[空無慧]에 의지하며, 일곱째 고요하여 숨[息]이 안정되고, 여덟째 생각 없는[無想] 것이 마치 소멸하듯 하며, 아홉째 식(識)에 있으나 어지럽지 않고, 열째 뜻[意]과 뜻이 아닌 것을 잊어버리느니라.
스물한째 변천하여 중음(中陰)을 나타내고, 스물두째 중음에서 형상을 받는 것을 보며, 스물셋째 중음과 함께 오가고, 스물넷째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알며, 스물다섯째 그 중음의 중생이 왕래하는 것을 보고, 스물여섯째 중음의 형상이 생기는 것과 소멸하는 것을 보며, 스물일곱째 스스로 형상을 받아 지옥의 중음[地獄陰]을 받는 것을 보고, 스물여덟째 죄(罪)를 받는 형상과 죄를 받지 않는 형상이 있으며, 스물아홉째 하늘의 중음[天陰]을 받아 복을 받고 복을 받지 않는 이가 있음을 보며, 서른째 사람의 중음[人陰]을 받아 복을 받는 이와 복을 받지 않는 이가 있는 것을 보느니라.
서른한째 아귀의 중음[餓鬼中陰]을 받아 높은 자가 있고 낮은 자가 있는 것을 보고, 서른두째 축생의 중음[畜生陰]을 받아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있음을 보며, 서른셋째 혹은 하늘의 중음으로부터 도로 하늘의 중음으로 들어가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죽는 때에는 식(識)이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요, 서른넷째 혹은 하늘의 중음으로부터 사람의 중음으로 나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본래의 식이 비록 사납다 하더라도 지혜가 없으며, 서른다섯째 혹은 하늘의 중음으로부터 축생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식이 천박하여 뜻에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니라.
012_0446_b_01L서른여섯째 혹은 하늘의 몸[天身]으로부터 아귀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죽는 때에 뜻이 탐하여 싫증냄이 없으며, 서른일곱째 혹은 하늘의 몸으로부터 지옥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신식(神識)이 맹세코 현성을 비방하며, 서른여덟째 혹은 사람의 중음으로부터 다시 하늘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금계의 법[禁戒法]이 청정하고, 서른아홉째 혹은 사람의 몸으로부터 축생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행의 근본에 뜻이 전일(專一)하지 못하며, 마흔째 혹은 사람의 중음으로부터 아귀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혼자만이 그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널리 퍼뜨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마흔한째 혹은 사람의 중음으로부터 지옥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먼저 그 복을 받고는 나중에 그 화(禍)를 받으며, 마흔두째 혹은 축생의 중음으로부터 하늘이나 사람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지은 복을 미치고는 짐짓 새로이 짓지 않고, 마흔셋째 혹은 축생의 중음으로부터 아귀나 지옥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8무한죄(無閑罪)를 구할 수 없으며, 마흔넷째는 중음과 중음을 받는 형상이 있으나 신식이 그릇되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유상무상(有想無想)과 중음의 형상으로 44가지 진로(塵勞)의 과환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다시 허공의 신식과 중음을 사유해야 하나니 혹은 공식(空識)으로부터 식의 중음[識陰]으로 나기도 하고, 혹은 식의 중음으로부터 불용처의 중음[不用處陰]을 받기도 하며, 혹은 불용처의 중음으로부터 무색천의 중음[無色天陰]을 받기도 하고 무색천의 중음으로부터 육천의 중음[六天陰]을 받기도 하며 나아가 일구경천(一究竟天)에 이르기도 하나니, 일구경천으로부터 색천(色天)ㆍ무색천(無色天)의 중음을 받기도 하느니라.
사람이 하늘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한 길[仞] 반(半)만큼이며 이내 가면서 중도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이 사람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3주(肘)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레를 지나지 않고 혹은 엿새ㆍ닷새ㆍ나흘ㆍ사흘ㆍ이틀ㆍ하루를 지나게 되며, 사람이 축생의 중음을 받으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사흘 반이 걸리나니 혹은 이틀ㆍ하루 반을 지나느니라.
012_0446_c_01L사람이 아귀의 중음을 받으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반 식경(半食頃)이 걸리나니 혹은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을 지나며, 사람이 지옥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이 세 길 반쯤 되고 혹은 특출한 자라면 열흘을 지나지 못하고 죽어 곧장 그 곳에 이르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모두 사람을 뒤쫓아가며 교화하고 그를 위하여 미묘한 도를 연설하며, 마음이 속히 깨친 이면 여러 가지 형상을 받지도 않고 중간에 도(道)를 얻게 되느니라.
축생이 사람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두 주(肘)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나흘을 살고 사흘ㆍ이틀ㆍ하루가 지나며, 축생이 하늘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세 길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하루 반을 지나고, 혹은 하루 반 날 또는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 지나며, 축생이 아귀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이 일곱 길쯤 되고 혹은 특출한 자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닷새를 살고 혹은 나흘ㆍ사흘ㆍ이틀ㆍ하루를 지나며, 축생이 지옥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한 길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반 식경이나 혹은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이니라.
아귀가 하늘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반 길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하루를 살며 혹은 반 날이거나 한 식경[食時]이나 혹은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동안 살며, 아귀가 사람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두 주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나흘 반 날이요, 혹은 사흘ㆍ이틀ㆍ하루를 살며 아귀가 축생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네 길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십오 일이요, 십사ㆍ십삼ㆍ십이ㆍ십일ㆍ십 일이며 아흐레ㆍ여드레ㆍ이레ㆍ엿새ㆍ닷새ㆍ나흘ㆍ사흘ㆍ이틀ㆍ하루 날이니라. 아귀가 지옥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이 다섯 길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구십 일이요, 특출한 자라면 여드레ㆍ이레ㆍ엿새ㆍ닷새ㆍ나흘ㆍ사흘ㆍ이틀ㆍ하루를 사는 것이 역시 그와 같으니라.
012_0447_a_01L또 보살마하살은 다시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지옥의 중생이 저 하늘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네 길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다섯 달이요, 네 달ㆍ세 달ㆍ두 달ㆍ한 달이니라. 만일 지옥의 중음이 인간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은 두 주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석 달을 지나거나 두 달ㆍ한 달이니라. 지옥이 축생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이 팔 주 반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석 달 반을 살거나 두 달ㆍ한 달을 사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며, 지옥이 아귀의 중음을 받으면 형상이 아홉 길쯤 되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사흘이니라.
혹은 때로 하늘의 중음이 마땅히 사람의 중음을 받아야 하나 아직 이르기도 전인 중간에 도로 하늘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들은 영리한 근성[利根]이라 괴로움을 겪지 않게 되며, 혹 때로는 하늘의 중음이 마땅히 사람의 중음을 받아야 하는데도 홀연히 곧 축생의 중음에 나 있기도 하나니 이런 무리들은 복이 다하고 행(行)이 이른 것이며, 혹 때로는 하늘의 중음이 마땅히 축생의 중음을 받아야 하는데도 홀연히 곧 사람의 중음에 나 있기도 하나니 이런 등의 무리는 계도(戒度)를 깨뜨리지 않은 것이며, 혹은 때로는 하늘의 중음이 마땅히 아귀의 중음을 받아야 하는데도 홀연히 곧 축생의 중음에 나 있기도 하나니 이들의 무리는 정인(頂忍)을 받들어 닦은 것이며, 혹 때로는 하늘의 중음이 마땅히 지옥의 중음을 받아야 하는데도 홀연히 아귀의 중음 안에 있기도 하나니 이런 무리들은 과보가 성숙함으로써 인도(人道) 안에 나게 되는 것이니라.
혹은 어떤 사람의 중음이 아귀의 중음을 받았던 중생인데 홀연히 하늘의 중음에 있기도 하나니 이들의 무리는 정의(定意)가 산란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혹 어떤 자는 3악도의 중음을 받아야 하는데도 홀연히 사람이나 하늘의 중음을 받기도 하나니 이들의 무리는 지혜와 통혜(通慧)가 있어 뜻이 넓디넓기 때문이며, 혹 어떤 자는 마땅히 일구경(一究竟)의 중음을 받아야 하는데도 홀연히 광음(光音)의 중음에 있기도 하나니 이들의 무리는 오로지 마음을 한 곳으로 쓰기 때문이며, 혹 어떤 자는 마땅히 변정(遍淨)의 중음을 받아야 하는데도 홀연히 유상무상(有想無想)의 중음에 있기도 하나니 이들의 무리는 지혜는 있되 뜻이 통달하지 못한 까닭이니라.”
012_0447_b_01L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도수(道樹) 아래 앉아서 일체지의 걸림없는 등지[無碍等智]와 현묘한 신통을 지닌 지혜와 변재의 슬기로운 지혜와 음향을 환히 아는 지혜와 물러남이 없는 지혜로써 두루 삼천대천세계에서 ‘그 누가 형상을 받은 자이고 형상을 받지 않은 자인가? 그 누가 중음을 받았고 중음을 받지 않았는가? 얼마의 중생이 인도(人道)에 있고 얼마의 중생이 사람의 중음에 있는가?’라고 관찰하며, 보살은 다시 사람의 중음 중생과 네 가지 중음을 받은 형상도 관찰하여 모두 그 많고 적음을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천도(天道)의 중생이 하늘의 중음에 있는 것을 관찰하고 다시 천도의 중생이 네 가지 도(道)로 나아가는 것을 관찰하여 모두 그 많고 적음을 알며, 혹 때로 보살마하살은 여섯 가지의 신통과 불퇴전의 지혜로써 축생의 몸을 받을 중생 가운데 얼마 만큼의 중생이 축생의 중음을 받았다가 차츰 네 가지 도의 중음을 받는가를 관찰하여 모두 그 많고 적음을 알기도 하며, 보살은 다시 아귀를 받을 중생 가운데 얼마 만큼의 중생이 아귀의 중음에 있다가 마땅히 네 가지 도를 받아야 하는가를 관찰하여 모두 그 많고 적음을 알기도 하며, 혹 때로 보살마하살은 지옥을 받을 중생 가운데 얼마 만큼의 중생이 지옥의 중음을 받았다가 네 가지 도로 나아가는가를 관찰하여 모두 그 많고 적음을 알기도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물러남이 없는 지혜로써 두루 5도(道)의 중음으로서 형상을 받고 형상을 받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을 관찰하며, 혹 어떤 자는 사람의 중음에 처하여 있을 적에 홀연히 하늘의 중음의 형상에 있게 되다가 늘 중음의 형상에서 곧 멸도를 취하여 끝내 하늘의 몸이나 사람의 몸을 받지 않기도 하며, 혹 어떤 자는 하늘의 중음에 처해 있을 적에 홀연히 사람의 중음의 형상에 있게 되다가 곧 멸도를 취하여 하늘의 몸이나 사람의 몸을 받지 않기도 하느니라.
012_0447_c_01L혹 어떤 자는 축생의 중음에 처해 있을 적에 축생의 중음 중에서 홀연히 사람의 중음에 있게 되다가 사람의 중음에서 곧 멸도를 취하여 축생이나 사람의 형상을 받지 않기도 하며, 혹 어떤 자는 축생의 중음에 처해 있을 적에 그 축생의 중음에서 홀연히 하늘의 중음에 있게 되다가 그 하늘의 중음에서 곧 멸도를 취하여 축생이나 하늘의 몸을 받지 않기도 하며, 혹 어떤 자는 아귀의 중음에 처해 있을 적에 그 아귀의 중음에서 홀연히 사람의 중음에 있게 되다가 그 인도(人道)의 중음 가운데서 곧 멸도를 취하여 아귀의 몸이나 사람의 몸을 받지 않기도 하며, 혹 어떤 자는 아귀의 중음에 처해 있을 적에 그 아귀의 중음에서 홀연히 하늘의 중음에 있게 되다가 그 하늘의 중음에서 곧 멸도를 취하여 아귀나 하늘의 몸을 받지 않기도 하느니라.
혹 어떤 자는 지옥의 중음에 처해 있을 적에 그 지옥의 중음에서 홀연히 사람의 중음에 있게 되다가 사람의 중음에서 곧 멸도를 취하여 지옥이나 사람 형상을 받지 않기도 하며, 혹은 어떤 자는 지옥의 중음에 처해 있을 적에 홀연히 하늘의 중음에 있게 되다가 그 하늘의 중음에서 곧 멸도를 취하여 지옥이나 하늘의 형상을 받지 않기도 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지혜로써 삼천대천세계의 형상을 받는 자와 형상을 받지 않는 자와 죄가 있고 복이 있는 것을 두루 관찰하여 모두 다 아는 것이니라.”
그때에 최승보살과 1만 8천의 사람과 10만의 천인(天人)과 천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꿇어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는데 다른 울림이나 같은 소리로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훌륭하시고 훌륭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중음의 형상이 없는 법을 통쾌하게 말씀하여 주셨사오니 한이 없고 수량 없고 불가사의하오며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는 헤아릴 바가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중음의 형질을 보고 싶사오니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하열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고 마음의 때[心垢]를 깨끗이 씻어 없애어 영원히 버리게 하옵소서.”
012_0448_a_01L그때에 세존께서 곧 무형관(無形觀)삼매에 들어가셔서 5도(道)의 중음 중생으로서 형상을 받은 자와 형상을 받지 않은 자와 죄가 있거나 복이 있는 것을 널리 보시고 다 아셨다. 그때에 자리에 있던 중생들도 역시 또 그 5도 중음의 형질을 보았고 또 여래께서 그들을 위하여 말씀하는 도의 가르침을 듣고 곧 그 형질에서 모든 티끌과 때[塵垢]가 다하고 법안(法眼)이 청정하게 되었으며, 혹 대승의 마음을 일으킨 자도 있고 혹 어떤 자에게는 뜻의 비밀[志密]한 행을 연설하여 그 종류에 따라 교화되어 염착한 바가 없기도 하였다.
또한 다시 그 중음의 형질이 1주지(住地)로부터 10주지에 이르는 것도 보았고 거기에는 일생보처(一生補處)가 되고서 수왕(樹王) 아래 앉아서 수없는 억백천의 악마를 항복받고 몸은 황금빛으로 온갖 모습[衆相]이 완전히 갖추어진 것도 보았으며, 또한 모든 하늘 제석(帝釋)과 범왕(梵王)ㆍ사왕(四王)이 와서 보살에게 법향(法響)을 연설하도록 청하였으므로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들리기도 하였다.
다시 다른 지방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변화로 된 보살을 보내어 명호와 나라 경계의 멀고 가까운 것과 청정한 행을 청하여 연설하게 하는 것도 보았고, 혹 그 자리에서 여래 10호의 법을 찬탄하기도 하고, 혹 가르침을 일으켜 공양올리는 이가 이르게 되는 것을 보기도 하였으며, 혹 여러 게송[偈]으로써 여래의 공덕을 찬탄할 적에 이 나라의 중생들이 거기의 중음에 있으되 갖가지로 신족 변화와 불가사의한 것을 보기도 하였다.
다시 여래께서 혀[舌相]의 광명을 놓으셨고 그 낱낱의 광명에는 모두 화불이 계셨으며 8부 대중에게 앞뒤로 에워싸여 있고 두려움이 없는 법[無畏法]을 연설하여 지혜가 물러나지 않으며 모든 법의 깊은 창고[藏]가 다 완전히 갖추어졌고 혹은 제자에게 연각(緣覺)의 기별(記莂)과 ‘장차 오는 세상에 너는 부처님이 될 것이요 명호는 이러하다’고 수기하는 것도 보았다. 그때에 1만 8천 인(人)과 백천의 천자(天子)들은 곧 그 자리에서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다.
012_0448_b_01L그때에 세존께서는 도로 신족을 버리시고 다시 본래대로 앉으셔서 4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거룩한 덕은 다할 수가 없으며 또 네 가지 법의 불가사의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여래의 뜻의 비밀[志密]이 불가사의하고, 둘째 중생의 근본이 불가사의하며, 셋째 여래의 도혜(道慧)가 불가사의하고, 넷째 여래의 음향이 불가사의하느니라.
다시 네 가지 일의 불가사의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도수(道樹) 아래 있되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이 불가사의하며, 또한 옳은[是] 것도 보지 않고 그른[非] 것도 보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하며, 작은 것을 큰 것으로 하고 큰 것을 작은 것으로 하는 것이 불가사의하며, 말에는 반드시 구제함[濟]이 있되 역시 구제함을 보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하느니라.
다시 네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행해야 할 바 법에 물들거나 집착할 수 없으며, 말[言]에는 나[吾我]가 있으나 역시 생기는 것도 보지 않고 다시 소멸하는 것도 있지 않으며, 짓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으나 또한 집착하거나 끊는[着斷] 것도 없으며, 온갖 중생은 근본이 청정한 것이니라.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 법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는 것이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최승아, 세존에게는 가장자리가 있느냐?”
세존께서 최승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모든 정법은 법계로부터 생기고 본래부터 가장자리가 없는데 있는 것이 있게 되어서 생긴 것이냐? 없는 것이 없게 되어서 없는 것이냐?” 최승보살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있는 것으로부터 있지도 않고 없는 것으로부터 없지도 않나이다.”
012_0448_c_01L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도수(道樹) 아래 앉아 끝이 없는 법으로써 일어나거나 소멸하는 가르침이 없는지라 모두가 텅 비고 모두가 고요하며 저절로 지혜도 없고 또한 지혜가 있지도 않나니 지혜가 없거늘 그 누가 아는 것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최승아, 나의 법은 권도로 속인 것[權詐]이어서 진실하지 않으며, 또한 도(道)를 보지도 않고 도가 도를 보지도 않으며,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지혜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법계를 아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일어나거나 소멸하는 것 때문에 소굴을 짓는 것도 보지 않으며, 가르침을 받는 이가 있되 또한 문자나 장구(章句)도 보지 않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최승아, 모든 법은 허공이어서 형상이 없는 줄 안다면 가령 어리석은 범부나 지혜 없는 선비[士]라도 허공에 안전하게 머무는 자가 있겠느냐?”
012_0448_c_07L如是最勝!解知諸法虛空無形,設有愚夫無智之士安處虛空者不乎?”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012_0448_c_09L對曰:“非也。世尊!”
“모든 법은 그대로의 법성이요 진제(眞際)는 본래 없어 이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지금도 도(道)에 대자대비ㆍ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현성행(賢聖行)ㆍ6증상법(增上法)ㆍ18불공법(不共法)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 법으로 말미암아 도를 이루지는 못하느니라. 도라는 것은 형상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어 형상이 없는 법으로써 비로소 도라 하며 도는 또한 오는 것도 없고 또한 가는 것도 없나니 최승아, 이것을 바로 도라고 하느니라. 만일 여래로 하여금 법계로부터 생기고 법계로부터 소멸하게 한다면 이것은 바로 생사요 더럽고 흐린 행[穢濁行]이니 생멸이 없기 때문에 도라고 하느니라.”
012_0449_a_01L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허공관(虛空觀)삼매에 들어가 모든 경계에서 물듦이 없는 선[無染禪]을 행하며, 이 선정의 법으로써 걸림없이 놀고 다니되 또한 착란이 없으며,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평등하거나 평등하지 않은 것도 없으며, 공정(空定)을 사유하되 강함이나 부드러움[剛柔]을 보지도 않으며, 뜻하는 성품은 담박하여 상응하거나 상응한 바가 없는 것도 없으며 또한 상응함도 보지 않고 상응하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느니라.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의 공정은 한이 없고 수량 없고 불가사의한 것이니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는 미칠 바가 아니니라.
최승아, 비유하면 마치 산과 들이나 우거진 숲이나 풀과 나무에 불이 타고 있을 적에 그 불은 우거진 숲이 아니요 우거진 숲이 불도 아니며 또한 이것은 불이 아니로되 또한 불을 여의지도 아니한 것처럼 보살의 결사(結使)도 역시 그러하여 결사가 도가 아니요 도가 결사가 아니로되 또한 도를 여의지 않은 공정(空定)임을 알아야 하나니 형상 없는[無形] 삼매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모든 법은 청정하고 평등하여 본래부터 없으며, 혹 정수(正受)로써 법의 끝[法際]을 관찰하여 평등한 데 이르러 물듦도 없고 더러움도 없으며, 마음[心]은 안에 있지도 않고 또한 밖에서 놀지도 않으며, 색(色)은 머무르는 바도 없고 또한 머무른 것을 보지도 않으며, 온갖 뒤바뀜[顚倒]에 있는 것을 제도하고 법을 시설하되 형상이 없나니 이것이 바로 도이니라. 혹은 5통(通)과 3달(達)의 미묘한 지혜로써 사방의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중생을 교화하려 할 적에 교화는 스스로 교화함이 있되 또한 교화하는 것을 보지도 않나니 이것을 바로 도라 하며, 외도(外道)의 5통을 여의고 혹은 성문이나 연각의 정의(定意)를 여의었으나 5통이나 정의를 보지도 않나니, 이것이 바로 도이니라.
다시 정의정수삼매로써 법의 근본인 법은 어디서부터 생기고 어디서부터 소멸하는가를 관찰하되 역시 생기는 것도 보지 않고 소멸함이 있는 것도 보지 않아야 비로소 도라고 하며, 유위(有爲)의 세속법과 무위(無爲)의 도법(道法)에서도 역시 세속을 보지도 않고 다시 도법을 보지 않아야 비로소 도라고 하느니라.
번뇌[漏] 있는 이것은 티끌[塵]이요 번뇌가 없으면 청정하되 역시 번뇌를 보지도 않고 또한 번뇌가 있지도 않으며, 10선(善)의 행의 자취와 10악(惡)의 법의 근본에서도 역시 선을 보지도 않고 다시 악이 있지도 않으며, 이(利)ㆍ쇠(衰)ㆍ훼(毁)ㆍ예(譽)와 칭(稱)ㆍ기(譏)ㆍ고(苦)ㆍ낙(樂)에서도 역시 고를 보지도 않고 다시 낙을 보지도 않으며, 도(道)를 이룬 것도 보지 않고 또한 세속에 있지도 않으며, 설법과 현성의 잠잠함[賢聖黙然]도 보지 않나니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공한 정수[空正受]에 들어가야 비로소 도라 하는 것이니라.
012_0449_b_01L또 최승아, 보살마하살은 다시 허공장(虛空藏)삼매를 사유하되 남음이 있는[有餘] 무위(無爲)로 겁(劫)을 지나도록 오래 사는 것도 보지 않고 남음이 없는[無餘] 무위로 변하거나 바뀜이 없는 것도 보지 않아야 비로소 도라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공혜(空慧)의 선권방편을 세워 한 부처님 국토로부터 한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기며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빛깔의 모양[色相]이 빛깔의 형상[像]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지도 않고 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의식도 역시 그와 같으며, 건너감이 있어서 열반[泥洹]에 이른다고 보지 않고 유전(流轉)하여 생사에 처한다고 보지 않는 것이니라.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읊고 외고 지니며 마음 속에 품고서 잊지 않으면 곧 현재 여덟 가지 공덕의 복을 얻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모든 공한 법[空法]을 관하고 믿어 망설이지 않으며, 부처님의 깊은 법장(法藏)을 얻고서 뜻에 겁내거나 나약하지 않으며, 뜻이 청정하고 때[垢]가 없어 더러움에 물든 바가 없으며, 마음은 마치 금강(金剛)과 같아서 무너뜨릴 수 없으며, 행하는 바가 참되고 올바르므로 악마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여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며, 마음이 넓고 큰 대승은 소승의 지혜[小智]를 좋아하지 않으며, 선지식을 친근하여 외도의 부류에 집착하지 않고 구하는 바가 진실한 관[眞觀]이라 나와 사람이란 생각이 없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얻게 되는 여덟 가지의 공덕이니라.
세간의 법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수명도 없는 줄 알며, 본래부터 없는[本無] 법에서 바르게 받아들여야[正受] 하고, 언제나 선정으로써 멸도에 이르며, 중생을 깨우치고 교화하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이것이 바로 법을 보는 것으로 도(道)를 닦는 데에 상응하며, 모든 법은 고요하여 형상도 없고 행(行)도 없고 처소도 없다고 보나니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공(空)에는 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공이 없는 것도 아니며 공이나 공이 아닌 것은 고요하며 이름도 없고 이름이란 것도 또한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나니, 이것을 바로 도(道)라 하느니라.
012_0449_c_01L혹 때로 보살은 모든 법관(法觀)에 노닐되 세 가지 처소[三處]에 의지하지 않고 3유(有)에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은 인간ㆍ천상의 세간에 있으면서 큰 서원의 마음을 일으켜 널리 중생들을 제도하되 중생에는 제도되는 이가 있다고 보지도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공혜(空慧)를 세워 영원히 집착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가 돌아다니며 형상 없는 정의[無形定意]에 들면 이것은 2도(道)로서는 깨달아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요 오직 부처님만이 밝게 알 뿐이며, 부처님의 지혜는 막힘도 없고 집착도 없고 물듦도 없고 결점이 없는지라 모든 경계에서 염착한 바 없으며, 설령 깊은 법을 얻는다 해도 기뻐하지 않고 세속의 8무한업(無閑業)과 4변무애(辯無碍)에 집착하지 않으며, 없어지지도 않고 불에 타지도 않되 불에 타는 것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며, 일어나지 않고 생기지도 않되 생기는 것이 있지 않는 것도 아니며, 과거는 영원히 사라진지라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는 머무르지 않는지라 또한 머무른 것이 있지도 않으며, 미래는 아직 생기지 않았는지라 생기는 것을 보지 못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집착도 없고 막힘도 없으며 세 가지의 처소에 집착하지 않고 세 가지의 유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라.”
그때에 자리 위에 있던 9만의 중생과 11나술(那術)의 천인(天人)들과 모든 천ㆍ용ㆍ귀신들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드러내고 무릎 꿇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비루하고 천박하며 더럽고 깨끗한 법[厠淨法]을 얻었사온데 이에 형상이 없는 법과 표치(幖幟)가 없는 법을 널리 연설하여 주셨사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장차 오는 세상의 사람이나 하늘에 날 중음(中陰)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세계, 곧 그곳에서 무위의 깨달음[證]을 받되 같은 날 같은 때에 하나의 국토에서 함께하게 하소서.”
012_0450_a_01L그때에 세존께서 빙그레 웃으시자 입에서 5색(色)의 광명이 나와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비추고는 몸을 세 바퀴 돌고 도로 입으로 들어갔다. 아난(阿難)이 무릎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을 모신 지 30여 년이 되었사온데 일찍이 이보다 더 뛰어남이 있는 광명은 보지 못하였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장차 와서 모일 자들을 위하여 널리 펴셔서 영원히 티끌의 가림[塵翳]이 없게 하여 주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9만의 중생과 11나술의 천인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면 모두가 미진공(微塵空)세계의 중음으로 가 나게 될 것이다. 이미 중음으로 난 뒤에는 저마다 차례로 부처님이 될 것이며, 모두가 동일한 명호로서 무색(無色)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세존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순전한 보살들이 좌우에서 모실 것이다. 그 중음에서 한 겁(劫) 동안 수명을 누리다가 반열반한 뒤에 남긴 교법[遺法]은 한 겁 동안 있을 것이며, 차례대로 성불하여 중간에 끊어지지 않을 것이니라.”
세존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그때에 변정(遍淨)보살과 수없는 중생들이 사람의 형상과 저 하늘 몸[天身]을 받은 것을 뉘우치면서 그 자리에서 소리 높여 울며 스스로 자제하지 못했다.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도 물으셨다. “선남자들이여, 무엇 때문에 슬피 우는 것이냐? 아직 일찍이 보지 못했던 일이로다.” 변정보살이 아뢰었다. “저희들도 또한 그 국토에 나고 싶사오나 참예할 만한 형편이 못 되옵기에 슬피 울 뿐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변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만 그치고 그런 말은 하지 말라. 너는 옛날에 원을 세워서 큰 서원의 마음이 특이하거늘 무엇 때문에 중음이 되어 다른 국토에 나겠느냐? 현겁(賢劫)의 명호가 없어지면 너는 그 다음을 이으면서 명호가 변정(遍淨)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될 것이며 10호를 완전히 갖출 것이니라.”
그때에 최승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은 다 요술[幻]이요 허깨비[化]와 같거늘 어떻게 요술이나 허깨비의 법 가운데서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옵니까? 어떻게 하면 세 가지 생각[想]인 나(我)ㆍ남[人]ㆍ수명(壽命)을 깨끗이 없애게 되나이까? 어떻게 하면 한 부처님의 국토로부터 한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기며 공양올리겠나이까?”
012_0450_b_01L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너는 여래 앞에서 사자후를 하는구나.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생각하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그 뜻을 알기 쉽게 연설하겠다.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언제나 몸[身]ㆍ입[口]ㆍ뜻[意]의 행법(行法)을 수행하되 모든 법은 요술과 같고 허깨비와 같다고 관하여 분명히 알고 과거ㆍ미래ㆍ현재에 모두 기대거나 집착함이 없느니라.”
무염환(無厭患)보살이 아뢰었다.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 동안을 하루로 치고 그 15일을 반 달[半月]로 치며 그 30일을 한 달로 치고 그 열두 달을 일 년으로 쳐서 그 가운데서 억백천 겁만에 한 부처님[一佛]께서 출현하셔서 세간을 밝게 비추신다 할 적에 다시 방편을 써서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여래께 공양올리고 범행(梵行)을 청정하게 닦고는 그 뒤에야 수결(受決)을 받아 보살도를 수행하되 일찍이 나고 죽는 고통을 싫어하지 않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주수(住壽)보살이 아뢰었다. “항상 신족으로써 62견(見)을 지닌 이들을 교화하고 그 62견에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012_0451_b_10L住壽菩薩曰:“恒以神足化六十二見,於六十二見淨身口意,是謂菩薩慧。”
진의(盡意)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법의 근본은 아무것도 없다고 관하며 생기는 것은 저절로 생기고 소멸하는 것도 저절로 소멸하며 법과 법끼리 서로 생기고 법과 법끼리 서로 소멸하며 생기되 생기는 것을 알지 못하고 소멸하되 소멸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심광(心廣)보살이 아뢰었다. “마음으로 생각[思念]하는 바의 내쉬는 숨[出息]과 들이쉬는 숨[入息]을 낱낱이 분별하며 그 차례를 잃지 않으며 또한 내쉬는 것도 보지 않고 또한 들이쉬는 것도 보지 않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지금(持禁)보살이 이뢰었다. “계(戒)를 지니는 것과 계를 깨뜨리는 것을 보지도 않고 계를 깨뜨려도 당연히 지옥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보지 않으며 계율을 지니면 천상의 복의 과보를 받는다고도 보지 않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무량비(無量悲)보살이 아뢰었다. “어떤 이가 발심(發心)하여 온갖 중생을 자비롭게 여기고 다른 지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를 노닐고 다니되 반드시 중생을 제도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하며 또한 제도한 것을 보지도 않고 또한 제도하지 않은 것도 보지 않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보시(寶施)보살이 아뢰었다. “4은(恩)을 융성하게 일으키고 3보를 친근하며 혜시(惠施)와 인애(仁愛)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이롭게 하면서 받을 보답과 4은의 덕을 보지도 않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훼근(毁根)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중생을 마치 갓난아이[赤子]처럼 보고 자기 자신도 수호하며 다른 사람도 수호하되 중생을 안온하게 하여 무위의 언덕[無爲岸]에 이르러 멸도로 저 언덕[彼岸]에 이르는 이를 보지도 않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호신(護身)보살이 아뢰었다. “그 불도를 이루어 몸은 상호를 얻으셨고 열반하신 뒤에는 사리를 분포하여 네 간방[四維]과 팔방과 위아래에 가득 차게 하며, 천ㆍ용ㆍ귀신이 높이고 받들지 않음이 없으며, 또한 사리로 교화함이 있는 것도 보지 않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012_0452_a_01L향수(香首)보살이 아뢰었다. “그 낱낱의 털구멍에서 한량없는 향기가 풍기고 그 낱낱의 향기는 한량없는 가르침을 연출하여 중생을 제도하되 다하거나 끝이 없으며, 신족과 위신력이 높고 뛰어나서 한량없고 모두가 중생으로 하여금 한량없는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며, 그 가운데서 착오로 중생이 바르고 참된 도[正眞道]에 상응하지 못한 이거나 혹 연각이나 성문의 도를 이루거나 혹 천상에 났었다가 도로 사람 몸이 되거나 했을 적에도 마음으로 큰 도[大道]는 귀중할 수 있되 또한 소승(小乘)에서 제도된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도 않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무상(無上)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면 도(道)를 이루거나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고 법이 없어야 비로소 도를 이루고 깨닫게 되며, 또한 이루는 것도 보지 못하고 또한 이루지 않는 것도 보지 못하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봉덕(奉德)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중생들은 스스로 이름을 붙여 이것은 남자요 이것은 여인이고 나[我]요 사람[人]이며 수명(壽命)이라 하거니와 본성품[本性]에는 모두 남자나 여인이 없는 줄 알고 또한 다시 그것으로부터 이것이 생기고 이것으로부터 그것이 생긴다는 것도 보지 않으며, 권도로 속인 것[權詐]이며 수를 합친[合數] 법으로 진실도 아니요 실제도 아닌 줄 알아야 하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목견(目見)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색의 형상[色像]은 색의 형상이 없고 그 색의 아(我)와 식(識)의 안팎의 것도 형상이 없는 줄 알며 색의 성품[色性]은 공하여 다 생기거나 소멸함이 없는 줄 아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묘금(妙錦)보살이 아뢰었다. “나[吾我]와 수명은 본래부터 스스로 주인[主]이 없는 것은 마치 사람이 바깥의 소리를 귀로 알고 귀로 들어서 소리라는 것을 헤아리지만 본래부터 형질이 없는 것과 같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012_0452_b_01L현통(玄通)보살이 아뢰었다. “고요하거나[寂] 고요하지 않거나 간에 때[垢]가 되고, 계율[戒]이나 계율이 아니거나 간에 때가 되며, 인욕하거나 인욕하지 않거나 간에 때가 되며 또한 인욕을 보지도 않고 또한 인욕하지 않은 것도 보지 않으며, 인욕에는 고요하거나 고요하지 않은 것도 없는 줄 아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그때에 최승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꿇고 합장하고 앞에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시고 훌륭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또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보살의 지혜를 말씀드리고 싶나이다. 온갖 것이 널리 나타나되 과거ㆍ미래ㆍ현재는 없고 여여한 그대로 청정하여 머무르되 머무르는 바가 없으며 모든 법은 요술이나 허깨비여서 붙잡을 수 없는 것이 마치 햇빛이나 달이 물 속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 세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나시거나 멸하시는 것도 없고 열반을 취하지도 않으시나니, 그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그때에 최승보살은 유수동진(濡首童眞)에게 물었다. “머무른다[住] 함은 어떻게 머무르는 것입니까?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함은 어떻게 머무름이 없는 것입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이른바 머무른다고 함은 여여하게 머무르는 바라 머무르되 머무르는 바가 없습니다.” 또 말하였다. “4범당(梵堂)을 알아 머무르되 머무르는 바가 없는 까닭에 머무른다고 하고 머무르되 머무른 바가 없습니다.”
최승보살이 물었다. “제가 묻는 바의 머무름은 4범당도 아니요 또한 하나의 종류도 아닙니다. 혹 한적한 데에 있기도 하고 혹 촌락에 있기도 하고 혹 무덤 사이에 있기도 하고 혹 나무 아래 있기도 하니 과연 이것이 머무르는 것입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제가 말씀드린 4범당에 머무른다는 것은 마음에서 바르게 머무른다[正止]는 것이며, 악을 금제[撿惡]하여 일으키지 않게 하기 때문에 머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최승보살이 물었다. “어떻게 마음이 바르게 머무르는 것입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지혜의 뜻[慧義]으로 근본을 삼기 때문에 바르게 머무른다 합니다.”
012_0452_c_15L最勝問曰:“云何心爲止止?”濡首答曰:“慧義爲本故曰止止。”
최승보살이 다시 물었다. “지혜란 근본도 없고 또한 구경(究竟)도 없습니다. 알고 보는[知見] 것으로부터 바르게 머무름이 성립될 수 있습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말한 바와 같아서 먼저 스스로 나를 관하고 그러한 뒤에 지혜를 청정하게 합니다.”
최승보살이 다시 물었다. “유수여, 어찌하여 먼저 스스로 나를 관합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모든 내가 없는 법[無我法]은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여여하며 나에는 스스로 나도 없고 일어나는 것도 없으며 일어나지 않은 것도 없나니, 이것이 바로 나 스스로 나를 관하는 것입니다.”
012_0453_a_01L최승보살이 다시 물었다. “바로 유수로 하여금 뜻[義]으로부터 얻게 하는 것입니까? 뜻으로부터 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스스로 나를 관한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형상[佛像]을 관하게 되므로 만일 내가 있다면 곧 부처님이 있게 하는 것입니까? 나에는 스스로 내가 없거늘 어떻게 하여 부처님이 있습니까? 말로도 보지 못하고 말에도 또한 내가 없거늘 어떻게 부처님의 형상을 관하는 것입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모든 나를 관한다[觀我]는 말은 나에게는 곧 내가 없으므로 이것이 바로 나를 관한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무릇 나를 관한다는 것은 곧 모든 법을 관한다는 것이요 모든 법을 관한다면 곧 부처님을 관하기 때문이니 부처님은 형상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어떤 것을 견(見)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혜안(慧眼)으로써 모든 법을 보지도 않고 혜안으로써 모든 법을 보지 않는 것도 아니며, 유위(有爲)로써 보지도 않고 무위(無爲)로써 모든 법을 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혜안이란 역시 유위의 경계도 보고 또한 무위의 경계도 보기 때문이거니와 유위의 눈으로는 유위의 경계와 무위의 경계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어떻습니까? 유수여, 어떤 방편이 있어서 그 평등한 견해[等見]로부터 비구가 과증(果證)을 이루는 것입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역시 평등한 견해로부터 그 과증을 이루지도 않고 또한 평등한 견해를 여의어 그 과증을 이루지도 않습니다. 최승이여, 아셔야 합니다. 모두가 희망(希望)으로 말미암아 다섯 가지 번뇌[垢]가 이루어지는 바라 이런 뜻을 아는 이라야만 비로소 과증을 이루게 됩니다.”
012_0453_b_01L최승보살이 또 물었다. “도는 형상도 없고 볼 수도 없거늘 어떻게 과증을 이룹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제가 증득한 도는 그 과증을 말미암아서 과증을 이룬 것이니 곧 도가 아니겠습니까? 범부요 어리석은 사람이 과증을 도라고 여기겠습니까?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도는 과증이 아니요 과증은 도가 아니며 또한 도를 여의지도 않고 또한 과증을 여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유수여,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끝이 있는[有際] 것으로부터 끝이 없는[無際] 데에 이르게 됩니까?” 유수가 대답하였다.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으며 또한 생긴 것을 보지 못하고 생기는 것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요 생기되 또한 생기는 것이 없으며 또한 이미 생긴 것을 보지도 않고 이미 생긴 것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무릇 이미 생겼다 하면 역시 이미 생긴 것도 없고 모든 법은 장차 생기는 것도 없으며 장차 생기는 것이 있지 않는 것도 아니며 장차 생기는 것도 모두 있는 바가 없는 줄 알면 이것이 바로 끝이 있는 것으로부터 끝이 없는 데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형상이 없는 법[無形法]을 말씀하실 때에 온갖 중생들은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였고, 9천의 비구는 유루(有漏)의 마음에서 해탈하였으며 2만 7천의 천자들은 모든 티끌과 때[塵垢]가 다하여 법안(法眼)이 청정하게 되었고 다시 1,200의 하늘과 세간 사람들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고 5천의 보살은 곧 그 자리에서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그때에 자리에 있던 무외마왕(無畏魔王)이 자기의 대중들을 거느리고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어리석고 미혹되어서 영원히 어두운 소경으로 있었사온데 오늘에야 비로소 형상이 없는 교법(敎法)을 들었습니다.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경전을 지니고 읊고 외우면 언제나 옹호하여 부처님을 이루는 마지막까지 장애가 없게 하겠나이다.”
그때에 범왕(梵王)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곧 자기의 대중들을 거느리고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는 마땅히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이 경전을 지니어 읊고 외우는 이들을 옹호하겠사오며, 백 유순[由延]이나 천 유순 안에서는 외도와 사도[外邪]로 하여금 이 선남자ㆍ선여인에게서 틈을 얻지 못하게 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