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목건련(目犍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가비라성(迦毘羅城)에 가서 나의 아버지 정반왕(淨飯王)과 이모 파사파제(波闍波提) 부인과 그리고 곡반왕(斛飯王) 등 세 분의 숙부에게 문안하고 또 라후라(羅睺羅)의 어머니 야수다라(耶輸陀羅)를 위로하고 깨우쳐서 은혜와 애정을 끊고 라후라를 출가케 하여, 사미(沙彌)가 되어 성도(聖道)를 배우도록 하여라.
왜냐하면 모자(母子)의 사랑은 즐겁기가 잠깐인데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면 어미와 자식은 서로 알지도 못하고 아득하고 캄캄한 채 영원히 이별하여 만 가지의 고통을 받으리니, 그때 후회한들 무엇 하겠느냐. 라후라가 도를 얻으면 반드시 어머니를 제도하여 영원히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의 근본을 끊고 열반에 이르게 할 것이니, 마치 오늘의 나와 같을 것이니라.”
목건련은 분부를 받들고 곧 선정(禪定)에 들어갔는데, 마치 역사(力士)가 팔 하나를 굽혔다 펴는 듯한 짧은 순간에 가비라성 정반왕에게 이르러 여쭈었다. “세존께서 간절히 물으셨나이다. 기거하심이 경쾌하시며 기력이 평안하시옵니까? 그리고 대부인 파사파제 부인과 세 분의 숙부, 곡반왕들에게도 역시 문안을 여쭈시라 하셨습니다.”
012_0467_b_01L야수다라는 이 소식을 듣고 곧 라후라를 데리고 높은 다락에 올라가서 감관(監官)에게 명령하여 모든 문들을 걸어 닫고 견고하게 숨게 하였다.
012_0467_a_22L耶輸陁羅聞是消息,將羅睺羅登上高樓,約勅監官,關閉門閤,悉令堅牢。
그때 목건련이 태자궁 문 앞에 이르렀지만 들어갈 수도 없고 또 소식을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곧 신통력으로써 높은 다락까지 날아올라 야수다라가 앉은 자리 앞에 우뚝 섰다. 야수다라는 목건련이 온 것을 보고 기쁨과 근심이 엇갈리어 어찌할 줄 모르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절하며 문안드렸다. “먼 길을 지나오시니 얼마나 수고로우셨습니까?”
목건련이 여쭈었다. “태자 라후라께서 나이 이미 아홉 살이니, 응당 출가하여 성도(聖道)를 배우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자(母子)의 사랑이 잠시 동안은 좋은 듯하지만 하루아침에 목숨이 다하여 3악도(惡道)에 떨어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캄캄하고 아득한 가운데 어머니는 아들을 모르고 아들은 어머니를 모르게 되옵니다. 라후라가 도를 얻으면 반드시 어머니를 제도하여 영원히 생ㆍ노ㆍ병ㆍ사를 떠나 열반에 이르게 할 것이니. 지금의 부처님과 같게 되실 것이옵니다.”
야수다라가 목건련에게 대답하였다. “석가여래께서 태자로 계실 때에 나를 맞아 아내로 삼으시어, 태자를 받들어 섬기기 천신(天神)을 모시듯 하여 한 번의 실수도 없었거늘 부부가 된 지 3년도 못 되어 다섯 가지 욕망을 버리시고 궁성의 담을 날아 넘어 왕전(王田)으로 달아나 버리셨습니다.
012_0467_c_01L 부왕께서는 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랐지만 어기고 좇지 않았으며, 차닉(車匿)과 백마(白馬)만을 보내시고 자신은 도를 이루어야 돌아오리라 서원하셨습니다. 사슴의 가죽을 입으시니 마치 미친 사람과 같았고, 산택(山澤)에 숨어서 6년 동안 고행을 쌓아 부처를 이루시고 돌아오셔서는 도무지 가까이하지 않으시니, 옛날의 은혜와 애정을 잊은 것이 길가는 사람보다 더하였습니다. 부모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기거하시니 우리들 모자는 외로움과 궁색만을 지킬 뿐 삶의 보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죽고 싶기만 하였지만 사람의 목숨이 소중한 것이어서 마침내 스스로가 끊지 못하고 독기와 원한을 품은 채 억지로 생명을 유지하니 비록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었어도 축생(畜生)만도 못하였습니다. 이런 재앙에 다시 재앙이 덮치니, 어찌 이러할 수 있으리까.
이제 다시 사자를 보내시어 나의 아들을 데려다가 그의 권속을 삼겠다고 하시니 어쩌면 이다지 가혹하십니까. 태자께서는 도를 이루시고 스스로 자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자비라면 응당 중생을 안락하게 해야 할 것이거늘 이제 도리어 사람의 모자를 헤어지도록 하시는군요. 괴로움 가운데 더욱 심한 것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만 한 것이 없는데, 이번 일로 미루어 보건대 무슨 자비가 있다 하겠습니까. 목건련이여, 돌아가시거든 세존께 나의 말을 여쭈어 주십시오.”
왕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우리의 아들 실달다(悉達多)가 목건련을 보내어 라후라를 데려다가 도를 들어 성스러운 법을 배우게 하려 하는데, 야수다라는 여자인지라 어리석어서 법요(法要)를 알지 못하고, 마음과 뜻이 굳은 까닭에 사랑에 얽매어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그대는 그에게 가서 거듭 타일러 그의 마음이 열리도록 하시오.”
012_0468_a_01L“제가 집에 있을 때에 여덟 나라의 왕들이 다투어서 저를 맞아가려 했건만 부모님께서 모두 허락하시지 않은 것은 석가 태자의 재주가 여러 사람보다 뛰어났던 까닭이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저의 배필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태자가 그때부터 세상에 있지 않고 출가하여 수도할 것을 생각하셨다면 무슨 까닭에 간절히 저를 구했습니까? 대체로 사람들이 부인을 맞는 것은 바로 사랑과 영화를 위한 것이옵니다. 모여서 즐거워하고 만세에 대를 이어가면서 자손이 끊이지 않게 하여 종실(宗室)의 혈통을 잇는 것은 세상의 바른 예절입니다. 태자는 이미 갔거니와 다시 라후라까지 출가시켜 도를 배우게 하여 영원히 나라의 후사(後嗣)를 끊으면 무슨 이로운 것이 있겠나이까.” 황후는 그때 이 말을 듣고, 잠잠히 앉아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세존께서 변화한 사람을 보내시어 공중에서 말하게 하셨다. “야수다라여, 그대는 지난 세상에 맹세한 일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석가여래는 그때 보살도(菩薩道)를 위하여 은전 5백 냥으로써 그대에게 다섯 송이의 연꽃을 사서 정광불(定光佛)에게 바쳤더니, 그때 그대는 나에게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함께 부부가 되기를 간절히 구하였소.
나는 듣지 않고 그대에게 말하기를 ‘나는 보살이 되어 여러 겁 동안 원력을 수행하고, 일체를 보시하여 남의 뜻에 어긋나지 않았노라. 그대의 소원이 그러할진댄 나의 아내로 맞겠노라’ 하였더니, 그대는 선 채로 서원을 말하기를 ‘세세생생 나는 곳마다 나라와 성과 처자와 나의 몸까지 그대가 마음대로 보시하더라도 맹세코 뉘우치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제 무슨 까닭으로 라후라를 아껴 집을 떠나 도를 배우게 하지 않으려 하는가?”
012_0468_b_01L그때 정반왕이 야수다라를 위로하고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곧 나라 안의 호화로운 족성(族姓)을 소집하고 말하였다. “금륜 왕자(金輪王子)는 지금 떠나 사위국으로 가서 부처님에게 도를 배우려 하오. 경들도 모두 아들 하나씩을 보내서 나의 손자를 따르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시켜 라후라와 그들 50명의 머리를 깎으니 모든 공자(公子)ㆍ왕자(王子)들이 사문[出家人]이 되었다. 사리불에게 명령하여 화상(和尙)을 삼고 대목건련으로 아사리(阿闍梨)1)를 삼아 10계를 주어 사미(沙彌)가 되게 하였다. 라후라는 어린 까닭에 게으름을 좋아하고 장난에 팔려서 법문 듣기를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여러 번 타이르셨지만 그래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사위국의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가 출가하여 사미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대신(大臣)ㆍ부인ㆍ태자ㆍ후궁ㆍ채녀(婇女)ㆍ바라문(婆羅門)ㆍ거사 등에게 공경스럽게 둘러싸여 이른 아침에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절하고 문안을 드린 다음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 사미를 찾아보고 각각 한 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니, 왕과 여러 신하들은 자유롭게 살면서 안락을 익힌 까닭에 앉아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다가 먼저 인사를 드리고 물러가리라 생각하였다.
012_0468_b_16L佛爲說法,王及群臣憍傲習樂,不堪苦坐聽佛說法,辭退欲還。
그때 부처님께서는 왕이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도 신근(信根)이 아직 세워지지 못한 것을 아시고 왕과 여러 신하를 깨우쳐 이익이 되게 하리라 생각하시어, 곧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라후라 사미와 그 권속들을 불러 모두 모아 여래의 설법을 듣게 하여라.” 아난이 가서 부르니, 잠시 동안에 모두 모여 왔다.
012_0468_c_01L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생에 복을 심어서 이제 임금이 되어 항상 높은 궁전에 살면서 다섯 가지 욕심[五欲]을 마음대로 하며, 출입할 때에는 앞뒤로 그대를 모셔서 발이 땅에 닿지 않게 하거늘 어찌 괴롭다고 하겠습니까. 삼계(三界)의 괴로움에는 지옥ㆍ축생ㆍ아귀의 괴로움만 한 것이 없으니, 이러한 괴로움들은 앞서 이미 말하였습니다.”
라후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불법은 정묘한데 저의 뜻은 거칠기만 하니 어떻게 세존의 법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에도 자주 들었지만 이미 잊어버렸으니, 정신만 피로하게 할 뿐 하나도 얻는 것이 없는가 하옵니다. 지금 나이가 어릴 때만이라도 마음대로 하게 하여 주시면, 나이가 많아진 뒤에는 저절로 나아져서 부처님의 법을 잘 들을 수 있을까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법문을 듣는 공덕이 비록 금생(今生)에 도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다섯 갈래[五道]에 몸을 받을 때는 많은 이익이 있나니 내가 전에 말한 것과 같으니라. 반야(般若) 지혜는 감로(甘露)라 이름하고 양약(良藥)이라 부르며, 다리[橋梁]라 말하며, 큰 배[船]라 일컫나니, 너는 이미 듣지 않았느냐?” 라후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듣고자 하는 이는 마음을 붙이고 자세히 들으시오. 내가 지금부터 말하겠소. 생각하건대 과거 무수겁에 비마대국(毘摩大國)의 사타산(徒陀山)에 여우[野干]가 한 마리 살고 있었소. 사자가 뒤를 따라 잡아먹으려 하니, 여우는 겁이 나서 달아나다가 어떤 우물 안에 떨어졌는데, 나오지 못한 채 사흘이 지났소. 죽게 되었음을 마음속으로 깨닫고 게송으로 노래하였소.”
다시 생각하였소. ‘형벌을 받고 남은 이 몸, 본래부터 사랑스러운 곳이 없거늘 경사스럽다고 칭찬하며 또 크게 즐거워하니 모두 교화[通化]하는 때문이리라. 이 어리석은 하늘들은 모두가 제석(帝釋)이 먼저부터 가지고 있는 반야(般若)의 조그마한 공덕을 힘입어 함께 와서 법을 듣고자 하여 기이하다고 찬탄하니, 어쩌면 이렇게도 다행스러울까. 이제 교화하여 나의 공덕을 이루리라.’
012_0469_c_01L다시 생각하였소. ‘오늘의 은혜는 모두가 나의 선사(先師) 화상(和尙)께서 자비심으로 가르쳐 주신 지혜와 방편의 공덕에 의한 것이다. 나무(南無) 반야시여, 나무 반야시여, 비록 올바른 실천을 잃고 나쁜 갈래에 태어났지만 지난 세상[宿命]을 알고, 그 업의 인연[業緣]을 아는 반야의 힘은 능히 모든 하늘이 내려오셔서 건져 주고 공양하게 하였으며, 또다시 교화하여 저의 작은 마음을 펴게 하였나이다.’
그때 제석이 모든 하늘에게 말하였소. ‘스승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반드시 설법을 하실 터이니, 우리들이 이제 와서 너무나 큰 이익을 얻게 되었다. 이제 모두가 머리를 땅에 대고 정성을 기울여 설법을 청하여라.’ 모두가 기뻐하며 각각 공경을 다하여 오른 어깨를 벗고 여우를 돌며, 다시 꿇어앉아서 합장하고 이구동성(異口同聲) 게송으로 노래하였소.”
하늘 사람은 어두워서 다섯 가지 욕심에 얽매이고 항상 복이 다할까 두려워하며 무상(無常)에 쫓기옵니다.
012_0469_c_13L天人幽冥, 五欲所纏,
恒恐福盡, 無常所遷。
죽어서 나쁜 길에 떨어지면 건져 줄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니 영원한 겁으로부터 수만억 년 동안이었습니다.
012_0469_c_14L死墮惡道,
求拔良難, 從久遠來, 數萬憶年。
이제 한 번 만났사오니 참으로 도움이 되는 복밭[福田]이시여 자비심을 드리우시어 법언(法言)을 말씀하소서.
012_0469_c_15L今始一遇, 良祐福田, 唯垂慈哀,
宣示法言,
하늘 사람이 복을 얻고 중생도 그러하리니 원컨대 화상님에게로 영원히 따르오리다.
012_0469_c_17L天人得福, 衆生亦然,
願與和上, 永劫相連,
불도(佛道)를 이룰 때까지 항상 인연이 되옵소서. 밝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 서원(誓願)을 세우나이다.
012_0469_c_18L至成佛道,
常作因緣。 明人難値, 故立誓言。
012_0470_a_01L “그때 여우가 모든 하늘 사람이 간절히 부탁하면서 법문을 듣고자 하는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하며 천제에게 말하였소. ‘내가 지난날의 일을 생각하니 그때 세상 사람들은 법을 듣고자 하면 먼저 높은 자리를 펴 엄숙하게 꾸미고 맑고 깨끗하게 한 뒤에 바야흐로 법사(法師)를 모셔서 자리에 올라 설법케 하였으니, 무슨 까닭인가. 불경과 불법은 소중하여 공경하면 복을 얻기 때문이니라. 가벼이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의 복을 줄게 하는 것은 옳지 않느니라.’
천제와 하늘 사람들이 듣고 모두 옳다 하여 하늘의 보배 옷을 벗어서 높은 자리를 쌓아 올리니 잠깐 동안에 장엄하게 꾸며서 맑고 깨끗한 것이 제일이었소. 여우가 자리에 올라 천제에게 말하였소. ‘내가 지금 설법을 하는 것은 바로 두 가지 큰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설법이니 하늘 사람을 깨우쳐 주는 것이 복이 한량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먹을 것을 보시한 은혜를 보답하려 함이니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소.’
천제가 여쭈었소. ‘우물의 액난을 면하시어 몸과 목숨을 보전하신 공덕이 마땅히 크겠거늘 존자(尊者)께서는 어찌하여 설법으로 은혜를 갚는다 하시면서 이것은 언급치 않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일체 천하의 것이 살기를 좋아하고 편안함을 구하면서 죽고자 하는 것이 없으니 이 까닭에 생명을 보전한 공덕이 어찌 크지 않겠나이까.’
여우는 대답하였소. ‘죽고 사는 데 마땅함은 사람마다 다르니 어떤 사람은 살기를 탐내고, 어떤 사람은 죽기를 즐기느니라. 어떤 사람이 살기를 탐내는가. 그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어리석고 어두워서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모르고 부처를 어기거나 법을 멀리하며,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살생ㆍ도둑질[偸盜]ㆍ음행ㆍ거짓말[妄語]로 악한 짓만 좇으니 이러한 사람은 살기를 탐내고 죽기를 두려워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착한 사람이 죽으면 복은 마땅히 하늘에 태어나서 5욕락(欲樂)을 받을 것이고, 악한 사람이 죽으면 마땅히 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이니라. 착한 사람이 죽는 것은 죄수가 감옥을 벗어나는 것과 같고 악한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죄수가 감옥에 드는 것과 같으니라.’
여우가 대답하였소. ‘음식을 보시하면 하루의 목숨을 건지고, 진기한 보물을 보시하면 한 평생의 복을 건지거니와, 나고 죽는 것이 커지고 늘어나는 것은 인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니라. 설법하고 교화하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니, 능히 중생들을 세간의 길[世間道]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출세간의 길[出世間道]은 무릇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아라한이요,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이며, 셋째는 불법(佛法)이니라. 이 3승(乘)의 사람은 모두 법을 듣고 말씀과 같이 수행한 데서 나왔느니라. 어떤 중생이 세 가지 나쁜 길[三惡道]을 면하거나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는 것은 모두 법을 들은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으로써 보시한 공덕이 한량이 없다 하시느니라.’
천제가 여쭈었소. ‘스승의 지금 몸은 업보[報]의 몸입니까? 아니면 응화(應化)3)의 몸입니까?’ 여우가 대답하였소. ‘이는 죄업으로 받은 몸이지 응화한 몸이 아니니라.’ 하늘 사람들이 듣고 깜짝 놀라 슬퍼하고 애달피 여겨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일어나 다시 절하고 여우에게 여쭈었소. ‘저희들 뜻에는 보살께서 응화로 나타나시어 중생을 제도하신다고 믿었는데, 이제 죄 받는 몸이라 하시니 그 까닭을 모르겠나이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그 까닭을 일러 주옵소서.’
여우가 대답하였소. ‘듣고자 하니 훌륭하구나. 내가 이제 말하리라. 생각하건대 지난 세상에 바라나국(波羅捺國)의 바두마성(波頭摩城)에 태어났을 때 나는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아일다(阿逸多)요 찰제리(刹帝利)의 성받이[種姓]로서 어릴 때에는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였다.
나이가 열두 살이 되자 밝은 스승을 따라 깊은 산에 들어가 애써 섬기고 학문을 연마하며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스승께서도 아침저녁으로 깨우치고 가르쳐 주셔서 때를 잃지 않았다. 50년이 지나 56종의 경서(經書)와 논설(論說), 의술(醫術), 주문(呪文), 길흉(吉凶)을 점치는 법과 재앙을 물리치는 법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높은 재주와 슬기로운 덕망이 날로 멀리 떨치었다. 그때 아일다는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스승에게 여쭈었다. ≺제자가 지금 저의 몸을 팔아 스승님의 은혜를 갚고자 하나이다.≻ 스승이 대답하였다. ≺산에 있는 도사(道士)는 걸식으로 살아가니 다섯 가지 일[五事]에 부족한 것이 없는데, 너는 무엇 때문에 귀중한 몸을 훼손해 팔아 나에게 이바지하려 하느냐? 너는 지금 지혜와 말재주[辯才]를 성취하였으니, 천하의 인민을 교화하여 법의 등불을 밝혀라. 교화하는 공덕이 어찌 나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겠느냐. 부디 다른 일은 하지 않기 바라노라.≻
그때 아일다도 부름을 받고 모든 학자 5백여 명과 이레 동안 힘을 겨루고 변론을 시험하여 모두 이기니, 여러 신하가 기뻐하며 바라문을 불러 아일다를 모시고 국왕의 자리를 계승하게 하였다. 그때 아일다는 이런 일을 당하자 근심과 기쁨이 함께 일어나서 불안하였다. ≺만일 내가 왕이 되면 행여 교만과 방일한 마음이 생겨 쾌락한 뜻을 탐내어 구하다가 백성에게 근심을 끼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 괴로운 인연을 받을 것이니 두렵고, 만일 왕위에 오르지 않으면 집이 가난하고 녹(祿)이 없어서 소중한 스승의 은공을 갚을 수가 없구나.≻
012_0471_a_01L여러 번 생각을 거듭한 뒤에 왕위를 받기로 결정하였으니, 스승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곧 왕위를 받았다. 정위(正位)에 오른 뒤에 곧 충신을 보내어 장엄한 수레와 보배의 수레와 당기와 일산과 향화(香花)와 음악과 갖가지 음식으로 산에 가서 스승을 모셔 왔다. 도성에 돌아와서도 공양하기를 궁전을 지어 7보로 무늬를 아로새기고 여러 가지 비단을 뒤섞어 꾸몄으며, 평상과 좌구(坐具)와 이불과 요와 음식과 약품과 꽃과 과일과 동산과 숲과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들을 장엄케 하여 스승에게 공양하였다. 그리고 왕은 나라의 대신들과 부인과 채녀[采女]들과 함께 매일 스승에게로 가서 10선법(善法)을 배우니, 이렇게 하기를 백 번이 지났다.
그때 변경(邊境)에 두 개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 두 나라의 왕은 서로서로 미워하면서 사사로이 병마를 기르고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는 일을 여러 해 반복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이기지 못하였다. 그 중 한 나라의 왕은 안타라(安陀羅)요, 또 다른 나라의 왕은 마라바야(摩羅婆耶)였다. 안타라왕은 신하들을 모으고 상의하였다. ≺무슨 방법을 쓰면 저 나라를 이길 수 있을까?≻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아일다왕은 빈한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비록 왕위에 있지만 빈한한 뜻이 아직 남았습니다. 옛날부터 10선법을 지니어 밖의 색을 범하지 않고, 비록 궁녀들이 있지만 나이가 모두 들었습니다. 저희들의 계교로서는 나라 안을 통틀어 귀천을 가리지 않고 예쁜 계집 백 명 정도를 나이도 어리고 단정하여 마음에 들 만한 이들로 뽑아서 향기롭고 맑게 꾸미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시켜 많은 재물과 함께 채녀들을 바칩니다. 만일 받으면 은근히 그에게 강병(强兵) 백만을 청하여 함께 공격하면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012_0471_b_01L곧 그 계책을 따라 예쁜 여자와 보물을 골고루 갖추고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신하를 보내어 갖다 바치니 아일다왕은 모든 미녀와 진기한 보물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사자(使者)에게 물었다. ≺그대의 왕이 나에게 이처럼 좋은 물건을 바치는 뜻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사신은 왕에게 여쭈었다. ≺마라바야도 대왕께서 통치하시는 바이옵니다. 그 왕이 완만하고 사나워서 법도를 모르고 음란하여 도리가 없으며, 국정을 바로하지 못하니 백성은 그 폐를 입어 원수 같이 여기옵니다. 특별히 대왕에게 강병 백만을 청하여 그를 공격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받들어 올리는 정성이 바로 이것이옵니다.≻ 왕은 말하였다. ≺매우 좋은 말이다.≻
마라바야왕과 신하는 모두 형벌에 처해지고, 그의 종족 수천만 명도 모두 몰락하였다. 아일다왕은 여자들을 얻은 뒤 제대로 홀려 본래의 뜻을 잊고 음란과 오락에 빠져서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니, 관료들이 서로 작란(作亂)하여 양갓집 아들들을 강제로 종으로 삼고, 바람과 비는 때를 잃어서 굶주린 이가 길에 가득하게 되니, 이웃의 원수진 적국이 드디어 침입하여 아일다왕은 그로 인해 나라를 잃고 처형되었다. 죽은 뒤에 지옥에 들어가서 갖가지 괴로움을 받았는데, 전생의 학문과 지혜의 힘으로 전생 일[宿命]을 알아 마음으로 뉘우치고 악을 고쳐 선을 닦았으므로 잠시 지난 뒤에 지옥의 목숨을 마치고 아귀(餓鬼)의 갈래에 태어났다.
012_0471_c_01L 다시 전생 일을 알아 허물을 뉘우치고 10선(善)을 닦으니, 잠깐 사이에 아귀의 목숨이 마치고 축생으로 태어나서 여우의 몸이 되었다. 다시 전생 일을 알아 지난 것을 고치고 오는 것을 닦으며 10선을 받들어 지니고, 또 다른 중생으로 하여금 10선법을 행하도록 하던 중에 엊그제 사나운 사자를 만나 즉시 두려운 생각이 들어 우물 속에 떨어졌다. 죽기를 결심하고 천상에 태어나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으려 하였더니 그대가 나를 건져 준 까닭에 나의 소원은 어그러졌도다. 바야흐로 지내오는 괴로움을 어느 때나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구제한 것은 공덕이 없다 하노라.’
천제가 힐난하였소. ‘님이 하신 말씀과 같이 착한 사람이 죽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승께서 우물에 계실 때 만일 옷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나오시지 못했을 것이고, 만일 나오시지 못했으면 살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이제 살아나신 까닭은 스승께서 옷에 들어가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고자 아니한 것은 아니시거늘 어찌하여 살기를 탐하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여우가 대답하였소. ‘내가 옷에 들어간 것은 정히 세 가지의 큰 인연이 있는 까닭이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천제의 소원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니라. 대체로 누구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큰 괴로움을 받는 것이니 남에게 괴로움을 주면 태어나는 곳마다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향하는 곳마다 얻지 못하여 스스로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이니, 이 때문이지 삶을 위한 것은 아니니라.
둘째로 옷에 들어간 까닭은 모든 하늘 사람들의 뜻이 법을 듣고자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선전[宣通]하여 법을 아끼지 않고자 함이니라. 만일 말하지 않으면 법을 아끼는 것이니 법을 아끼는 죄는 세세생생에 귀먹고, 눈멀고, 말 더듬고, 벙어리가 되어 모든 감관이 막힐 것이니라. 변두리에 태어나서 어리석고 지혜가 없으며, 비록 좋은 곳에 태어났지만 감정이 완악하고 어두우며 둔하여 배우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배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스스로 괴로움을 부르게 되니, 이러한 까닭이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
012_0472_a_01L 비유컨대 세상 사람이 이전 세상[前世]에서 보시하고 선을 닦으며 복덕을 지은 인연으로 금생에 사람이 되어서는 소원대로 되어 재물을 풍부하게 갖거니와 가난한 이는 구걸하지만 간탐(慳貪)하는 마음으로 아끼고, 보시하기를 싫어하니 간탐한 과보로 아귀에 태어나서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고 옷이 없어 헐벗고 있느니라. 겨울에는 추위에 얼어서 몸뚱이가 터지고, 여름에는 더위에 쫓겨 의지할 그늘이 없을 것이니라.
여우가 대답하였소. ‘바른 법을 선전하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 선을 지으면 복을 얻고, 악을 저지르면 재앙을 받고, 도를 닦으면 도를 얻는 줄 알게 하니, 이러한 공덕으로 몸을 바꾸어 태어나는 곳마다 지혜가 밝고 항상 전생 일을 알게 되는 것이니라.
사람들이 높은 자리와 사랑 받는 위치에 있으면서 5욕락을 받으면 많은 마군이 와서 침노하고 사람들을 홀려 나쁜 업을 짓게 하니, 비록 이때에 행실을 잃어서 악한 보를 받을지라도 지혜의 힘으로 속히 괴로움을 면하고 천상에 태어나서 복락을 받을 것이니라. 지혜의 광명이 점점 자라서 보살행을 이루고 죽고 사는 일이 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에 이르게 되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교화하는 공덕이 한량이 없다고 하셨느니라.’
012_0472_b_01L천제가 기뻐하며 말하였소. ‘기쁜지고. 기쁜지고. 진실로 스승님의 말씀과 같이 저희들이 오늘에야 비로소 재물의 보시[財施]와 법의 보시[法施]의 공덕과 인연의 차별된 모습을 알았나이다. 재물의 보시는 비유컨대 등잔과 같아서 작은 방을 비치거니와 법의 보시는 마치 햇빛과 같아서 온 천하를 비치어 간 곳마다 어둠을 없애나이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해의 성품이 스스로 밝아서 능히 물건을 비치기 때문이옵니다. 화상께서도 그러하셔서, 본래 수행을 하신 까닭에 지혜가 밝으시고 지혜가 밝으신 까닭에 중생의 어둠을 없애시나이다.’
여우가 대답하였소. ‘좋은 말이다. 때가 왔음을 알라. 계를 받는 법은 먼저 참회하여 몸[身]ㆍ입[口]ㆍ뜻[意]의 업을 밝혀야 하는 것이니 어떤 것이 몸의 업[身業]인가. 이른바 살생과 도둑질[偸盜]과 사음(邪淫)이요. 어떤 것이 말의 업[口業]인가. 거짓말[妄語]과 두 말[兩舌]과 나쁜 말[惡口]과 그럴듯한 말[綺語]이니라. 어떤 것이 뜻의 업[意業]인가. 질투(嫉妬)와 성냄[瞋恚]과 교만하고 나쁜 소견[憍慢邪見]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 일이니 몸의 업ㆍ말의 업ㆍ뜻의 업을 금하여 여러 가지 악을 범하지 않으면 10선이요, 몸ㆍ말ㆍ뜻을 방자하게 하여 여러 가지의 악을 지으면 10악(惡)이요, 일편단심으로 10악을 뉘우치면 10악이 녹아지는 까닭에 몸ㆍ말ㆍ뜻이 맑아지고 세 가지 업[三業]이 맑은 까닭에 10선이라 하느니라.’
012_0472_c_01L만일 하늘들이 10선을 지키면 하늘의 복이 다하고, 다시 하늘에 태어나서 복된 과보가 더욱 뛰어나리니 세상 사람들의 10선 복보(福報)와 같지는 않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세상 사람들이 닦는 10선도는 마음의 세 가지 계[三戒]를 지니기 어려운 때문이니 성내지 않는 계[不瞋戒]는 먼저 방편으로 자비심을 실천한 다음에 능히 성취할 수 있느니라.
세상 사람이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오래 머물지 못하니 마치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아서 쪼개지자마자 바로 합해지니 이 계를 지니는 것도 그러하느니라. 미워하지 않는 계[不嫉妬戒]는 일어나도 때가 있으니 어떤 것이 때인가. 남이 이익을 얻는 것을 볼 때와 남의 즐거움을 볼 때와 남이 단정한 것을 볼 때와 남이 용맹한 것을 볼 때와 남이 총명한 것을 볼 때와 남이 복 짓는 것을 볼 때이니, 요약해 말하건대 일체의 뛰어난 일[勝事]이니라.
그때 그의 마음은 질투를 일으키게 되니, 그러므로 질투하는 마음은 일어나도 때가 있음을 알지니라. 교만치 않는 계[不憍慢戒]도 또한 일어나는 때가 있으니 어리석은 이를 보면 교만한 마음을 내고, 추악한 사람을 보거나 부정한 사람을 보거나 빈궁한 사람을 보거나 할 때이니 간략하게 말하면 벙어리ㆍ소경ㆍ절름발이ㆍ꼽추 등 모든 감관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과 이(夷)ㆍ만(蠻)ㆍ호(胡)ㆍ융(戎) 등 오랑캐이니라.
그러므로 세상 사람의 10선 과보는 비록 하늘 복을 받는다 해도 모든 하늘의 10선 공덕과 같지 못하며, 광명과 신력과 식록(食祿)과 상호(相好)가 드높아서 제일가는 것과 전생 일을 아는 일도 모두 그러하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하늘 사람이 10선을 수행하는 과보는 세상 사람의 것보다 뛰어나느니라.’
012_0473_a_01L여우가 대답하였소. ‘하늘 사람에게도 비록 있기는 하지만 세상 사람과 다르니, 무슨 까닭인가. 하늘 사람은 복덕을 갖추어서 괴로움이 적고 즐거움이 많기 때문에 번뇌의 마음이 가볍고, 세상 사람은 복덕이 엷어서 즐거움이 적고 괴로움이 많기 때문에 번뇌의 마음이 무거우니라.’
여우가 대답하였소. ‘일찍이 부처님께 들으니, 사람이 10선을 실천하다가 혹 어겨 잃었거든 나쁜 업을 지은 사람이 현명하고 복덕을 갖춘 사람에게 나아가서 어긴 일을 발로참회(發露懺悔)하고 다시 받을지니, 이렇게 하는 사람은 계를 잃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10선계는 마치 곡식의 포기와 같고 번뇌는 잡초와 같으니 잡초와 곡식은 서로 방해만 하느니라. 곡식을 기르고자 하는 까닭에 잡초를 제거하면 곡식의 포기가 깨끗하여 수확이 많고, 수확이 많으므로 마침내 주리지 않는 것과 같다 하였느니라.’
그때 천제와 모든 하늘이 이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다시는 복이 다하면 무상하게 나쁜 갈래의 과보를 받을 것을 근심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였소. ‘선을 실천한 공덕은 비록 괴로운 과보는 없겠지만 나고 죽는 일이 있으니 어찌 무상(無常)이야 면하겠는가. 더구나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은 사람들이 복을 짓는 것을 보면 질투하는 마음을 품고 방해하여 착한 길을 잃고 나쁜 업을 짓게 하니 그 나쁜 업의 인연으로 응당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리라.’
여우에게 여쭈었소. ‘어떠한 공덕을 닦아야 항상 죽지 않으며 마왕에게 홀리어 어지럽혀지지 않겠나이까?’
012_0473_a_19L白野干曰:‘修何功德常得不死,不令魔王所惑亂也?’
012_0473_b_01L여우가 대답하였소. ‘일찍이 스승에게 들으니 보리심을 내어 보살의 업을 지으면 마왕(魔王) 파순(波旬)도 망가뜨리거나 막지 못한다 하시더라. 마음이 미혹하지 않는 까닭에 태어나는 곳마다 지혜가 밝고, 지혜가 밝은 까닭에 항상 전생 일을 알며, 전생 일을 아는 까닭에 나쁜 업을 짓지 않고, 마음이 맑고 깨끗한 까닭에 죽고 사는 일이 없는 법의 지혜를 얻으며, 죽고 사는 일이 없는 법의 지혜를 얻은 까닭에 도에서 물러나지 않고, 남[生]ㆍ죽음[死]ㆍ근심[憂]ㆍ번뇌ㆍ괴로움[苦]ㆍ환난[患]을 여의느니라.’
천제가 여쭈었소. ‘보살의 도를 닦으려면 어떠한 법을 닦아야 합니까?’ 여우가 대답하였소. ‘일찍이 스승에게 들으니 도를 구하는 사람은 근본에서부터 일어나서 모든 법의 인연을 먼저 널리 배울 것이니, 인연을 아는 까닭에 믿는 마음이 견고하고, 신심의 힘으로 능히 정진을 일으키며, 정진의 힘으로 온갖 나쁜 업의 인연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순일하게 착한 마음은 방종하지 않는 까닭에 지혜를 성취하고, 지혜의 힘으로 전부 37품(品)의 보리도(菩提道)를 총섭(總攝:모두 포섭함)하느니라.’
천제가 여쭈었소. ‘존자의 말씀 같아서는 37품은 뜻이 깊고 넓어서 저희들의 거친 마음으로는 끝내 알 수 없겠사옵니다. 어떻게 해야 보살도행(菩薩道行)에 들어가겠나이까?’ 여우가 대답하였소. ‘일찍이 스승에게 들으니 보살도를 닦으려 하는 사람은 먼저 방편으로써 모든 감관[根]을 다스려 복종시켜야[調伏]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이 방편인가 하면, 이른바 6바라밀과 무량심(無量心)이니, 이것이 방편으로 모든 감관을 조복한다고 하느니라.’
천제가 여쭈었소. ‘6바라밀은 그 뜻이 어떤 것입니까? 바라옵건대 말씀하여 주옵소서.’ 여우가 대답하였소. ‘첫 번째는 보시(布施)니, 아끼고 탐내는 마음을 깨뜨려 아까움이 없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선(守善)이니, 나쁜 짓을 아니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감인(堪忍)이니, 악한 일을 만나도 능히 견디고 마음속으로 보복하려 하지 않는 것이고, 네 번째는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精進修行]이니, 도업(道業)을 게을리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수섭(收攝)이니, 사악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지혜를 닦는 것이니, 번뇌와 무명의 어둠을 비추어 없애는 것이니라.
012_0473_c_01L 이것이 6바라밀이니, 6바라밀과 방편의 힘으로 모든 감관을 조복하는 것이니라.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어서 모든 감관을 조복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사랑하는 마음[悲心]이고, 둘째는 슬퍼하는 마음[悲心]이며, 셋째는 기뻐하는 마음[喜心]이고, 넷째는 버리는 마음[捨心]이니, 이것을 4무량심(無量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옵니까?’ ‘모든 중생이 무명(無明)과 사랑[愛] 때문에 나고 죽는 업을 지으면서 다섯 갈래에서 괴로움을 받되 능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거든 내가 이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지혜를 닦아 속히 불도를 이루리라. 불도를 얻고는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의 무명과 어둠을 비추어 제거해 주고 그로 하여금 크게 밝음을 보아 여러 가지의 괴로운 속박을 면하게 하리라. 비록 부처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모든 행동으로 지은 착한 업[善業]을 중생에게 돌려주어서 안락을 얻게 하리라. 중생이 죄가 있으면 내가 대신 받으리라 하니 이것이 곧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니라.’
‘어떤 것이 기뻐하는 마음이옵니까?’ ‘만일 세상 사람이 착한 업을 수행하여 3승(乘)의 과위(果位)를 구하거든 권하고 도우면서 따라 좋아하고, 즐거움을 받는 이를 보면 따라 좋아하며, 단정한 사람을 보거나 용맹한 사람을 보거나 부귀한 사람을 보거나 지혜로운 사람을 보거나 자비로운 사람을 보거나 효성스러운 사람을 보거나, 즉 요약해서 말하자면 온갖 착한 사람을 보면 모두 권고하고 도와주면서 따라 좋아할지니 이것이 기뻐하는 마음이니라.’
‘어떤 것이 주는 마음이옵니까?’ ‘무릇 동작으로 지은 온갖 공덕을 남에게 베풀되 이승 갚음[現報]을 바라지 말며, 저승 갚음[生報]을 바라지 말며, 후승 갚음[後報]을 바라지 말지니, 이것이 주는 마음이니라. 이 네 가지를 성취하면 4무량심이라 하느니라. 중생이 무량하므로 사랑하는 마음도 무량하고, 중생이 무량하므로 기뻐하는 마음도 무량하며, 중생이 무량하므로 주는 마음도 무량하니라. 이를 4무량심이라 하니, 앞의 6바라밀과 합쳐서 10바라밀이라 하느니라. 10바라밀이 모두 온갖 보살도행(菩薩道行)을 총섭하느니라.’
012_0474_a_01L그때 천제가 여우에게 10선행법의 공덕과 인연을 듣고 다시 보살행과 보리도(菩提道)의 인연과 의취(義趣)를 들으니 얽혔던 의심의 매듭이 풀리어 즐거움이 온몸으로 넘쳤소. 곧 8만의 시종(侍從)인 모든 하늘이 다시 일어나 공경을 다하고 합장하여 여쭈었소. ‘오늘 이 제자와 8만 하늘 사람이 한마음으로 동시에 보리심을 내었나이다. 화상께서 말씀하신 보살도행을 반드시 원만하게 갖추어 받들어 실천하겠사오니 바라옵건대 화상께서는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때에 천제가 여우에게 여쭈었소. ‘화상께서 잡수시는 음식은 어떻게 장만하옵니까? 바라옵건대 일러주소서. 저희들이 공양을 차리겠나이다.’ 여우가 대답하였소. ‘나의 음식은 남에게 말할 것이 못 되느니라. 왜냐하면 죄업의 인연으로 먹는 것이 너무나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형상은 축생과 같아서 아귀와 다르지 않으니,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를 바라노라.’
천제가 여쭈었소. ‘화상의 음식이 좋아도 보여 주시고, 나빠도 말씀하여 주소서. 제자들이 편의를 따라 공양을 차리겠나이다.’ 여우가 대답하였소. ‘항상 사자와 범과 이리의 똥ㆍ오줌을 먹거나, 무덤 사이에서 죽은 사람의 해골과 떨어진 옷과 가죽을 주워 먹는데, 이러한 음식을 얻을 수 없으면 굶주림에 이기지 못해 진흙을 먹기도 하느니라. 죄업의 과보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비록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지만 한 번도 배가 부르지는 못했느니라.’
그때 천제와 모든 하늘이 여우의 말하는 음식의 종류를 듣고, 슬픔이 복받쳐 눈물ㆍ콧물을 흘리며 여우에게 여쭈었소. ‘제자들이 현전에 공양을 시설하고자 했지만 스승님의 말씀 같아서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겠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제 천궁으로 돌아가서 어떠한 방편을 쓰면 스승님의 소중한 은혜를 갚겠습니까?’
012_0474_b_01L여우가 대답하였소. ‘너희들이 지금 나에게 법을 듣고 천상에 돌아가서 차례차례 교화하여 모든 하늘을 깨우쳐 주는데 남녀를 가리지 말고 한 사람이라도 믿고 수행케 하면 그것은 다만 나에게 보답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일체 부처님의 은혜까지도 보답하는 것이 되느니라. 교화하기만 하여도 모든 하늘의 복덕이 늘어날 것인데, 하물며 교화하여 여러 사람을 깨우치는 데는 공덕이 더욱 한량없을 것이니라.’
모든 하늘이 일어나서 여우에게 여쭈었소. ‘저희들은 지금 돌아가겠사오니 화상께서는 언제나 이 몸을 버리시고 천상에 태어나시어 저희들이 뵈옵게 되겠나이까?’ 여우가 말하였소. ‘이레를 지나서 이 죄스러운 몸을 버리고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리니, 너희들도 그곳에 태어나기를 발원할지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도솔천에는 많은 보살이 설법하고 교화하시니 모든 하늘 사람들에게 불도를 구하게 하려는 까닭이니라.’
이렇게 말하고 하늘의 꽃과 향을 여우의 머리 위에 뿌리고 물러갔소. 모든 하늘이 물러간 뒤에 여우는 본래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한마음으로 10선행법을 생각하여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이레 만에 목숨이 마쳐 도솔천에 태어나 천왕(天王)의 아들이 되고, 다시 전생의 일을 알아 또 10선법으로 모든 하늘을 교화하였소.”
012_0474_c_01L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생각하건대 지난번에 처음 말씀하실 때로부터 보리의 행을 닦아 무생(無生)을 얻을 때까지 그 중간에 항상 미륵과 사리불과 함께 법을 구하려 부지런히 정진하고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었소. 밝은 스승을 따라서 가까이하고 모시어 학문을 연마하고 지혜를 성취하였었소. 지혜의 힘으로 다섯 갈래에서 태어나는 곳마다 무량한 중생을 교화하고 성취하여 괴로움을 면하게 하다가 지금에 부처를 이루었소. 그는 모두 반야 지혜의 방편으로 일체 번뇌[結]와 습기의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으며, 또 지혜로써 사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여 3유(有)의 고통을 건져주었소. 그러므로 나는 반야 지혜에 네 가지의 명의(名義)가 있다고 한 것이오.”
그때 바사닉왕과 그의 권속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과 뜻이 열리어 다시 일어나서 절하고 기뻐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번에 와서 부처님을 뵈옵고 시원하게 좋은 이익을 얻었사오니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때 피로한 줄도 몰랐나이다. 왜 그런가 하면 세존이시여, 진작부터 4진제(眞諦)의 법과 12인연, 출세간의 도를 말씀하실 때에는 생각과 근기가 둔한 까닭에 번거로워 알 수 없었고, 알지 못하는 까닭에 몸이 피로하더니, 이제 부처님께서 보살행법을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비록 전부는 모르겠사오나 마음이 매우 즐거워 목마른 듯이 듣고자 하며, 뜻에 싫은 줄도 모르겠나이다. 제자가 지금부터 보리심을 일으켜 위없는 도를 구하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고 허락하여 주셔서 보살행의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반드시 말씀대로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012_0475_a_01L왕이 여쭈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10선도법에서 마음의 세 갈래를 보호하기가 어렵다 하시니 어떻게 받아 지녀야 잃지 않겠나이까?”
012_0474_c_23L王曰:“如世尊說,十善行法,心道三法難得護持。當云何受,令不漏失?”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世人]의 마음은 거칠어서 마치 원숭이와 같이 번뇌의 바람에 흔들리오. 그러므로 10선도법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머뭇거리지 말아야 됩니다. 10선을 실천하고자 하면 마땅히 3시(時)를 기한할지니 어떤 것이 3시인가 하면, 새벽으로부터 밥 때까지가 상시(上時)고, 한 식경(食頃)을 지나는 것이 중시(中時)며, 백 걸음을 걸어갈 동안이 하시(下時)입니다. 10선법을 닦는 사람은 자기가 견딜 수 있는 힘에 따라 어느 한 시간[時]에라도 그 마음을 보호하여 세 가지 계를 굳게 지키고 잃어버리지 않게 할지니, 이것이 10선을 수행하는 것이지오.”
왕이 여쭈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3시를 한정하고 10선을 지니면 그 공덕이 대체로 미세한데 어떻게 복을 내겠나이까?”
012_0475_a_09L王曰:“如世尊說,限三時持十善行者,其功蓋微,云何生福?”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10선을 닦으면 시간은 비록 짧아도 공덕은 더욱 넓어집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마음의 세 가지 계가 지키기 어려운 까닭에 비록 적은 시간 동안 거닐었다고 해도 과보는 한량없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백 년 동안 섶과 풀을 모아 쌓고 불을 지르면 잠깐 사이에 다 타버리니, 그러므로 마땅히 아십시오. 적은 시간에 선을 닦을지라도 능히 한량없는 죄를 소멸하는 것이오.
또 불을 비벼 켤 때에는 부지런히 힘을 들였다가 잠깐 사이에 불을 얻으면 불의 공덕으로 능히 천하의 초목과 수풀을 태우는데 다 탄 다음에야 그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땅히 아십시오. 사람이 10선을 닦는 것도 이와 같아서 잠깐 사이의 공덕으로 능히 한량없는 나쁜 업의 무거운 죄를 없어지게 하고 능히 실천한 사람으로 하여금 보리의 싹이 트게 하는 것입니다. 싹이 트면 점점 자라서 부처님의 지위[佛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012_0475_b_01L왕이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일어나서 예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미증유(未曾有)를 얻고 세존께 여쭈었다. “제자가 오늘 큰 이익을 얻었사옵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10선도를 닦는 공덕의 인연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의 싹을 트게 한다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제자가 지금 보리를 즐거워하여 반드시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음이 물러나지 않게 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바사닉왕의 국대부인(國大夫人)께서 출입할 때마다 항상 네 사람을 부렸는데, 이름이 선제라(扇提羅)선제라는 석녀(石女)라 번역하니 석녀란 남녀의 근(根)이 없는 사람였다. 가장 힘이 셌기 때문에 이 네 사람으로 하여금 황후의 남여[輿]를 메게 하였다. 황후가 타고 온 칠보의 연(輦)을 기원정사(祇洹精舍) 밖에 두어 내시들에게 잘 지키라고 명령하자 내시들이 다시 네 사람의 선제라에게 명령하여 부인의 남여를 지키게 하고 자신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법문을 들었다. 선제라들은 제각기 남여 곁에서 잠이 들어 아무 것도 모르게 되었다. 그때 악한 사람[兇人]이 와서 부인의 보배 남여에서 마니 구슬[摩尼珠] 한 개를 훔쳤다.
그때 내시가 잠시 나와서 남여를 둘러보다가 보배구슬[寶珠]이 보이지 않기에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꼈으니, 부인의 책망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석녀(石女)에게 물었다. “너희들에게 남여를 지키게 하였더니 무슨 까닭에 보배구슬을 훔쳤더란 말이냐?” 그들이 각각 대답하였다. “맹세컨대 저희들은 훔치지 않았나이다.”
012_0475_c_01L내시가 크게 노하여 석녀를 마구 때리니 고통이 뼈에 사무쳤다. 그때 한 석녀가 생각하였다. ‘훔치지도 않았는데 까닭 없이 고통을 당하는구나.’ 급히 정사(精舍) 안으로 들어가 하소연하고 떠드니, 대중은 아무도 까닭을 몰랐으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아가서 내시에게 허물없는 사람을 때리지 못하게 하여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네 사람의 석녀들은 황후의 전생 스승으로서 아무런 죄도 없는데, ‘무슨 까닭에 매를 쳐서 후세의 나쁜 업의 인연만을 짓는가?’라고 하여라.”
이때 황후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곧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이 네 사람의 남여꾼 석녀가 저 황후의 전생 스승이라 하시거늘 어리석은 뜻으로 잘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바라옵건대 그 인연을 말씀하여 주시어 회중의 대중으로 하여금 모두 듣게 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황후에게 말씀하시기를, 석녀들을 불러다 부처님 앞에서 그 허실(虛實)을 징험하리라 하시었다. 황후는 분부를 받들고 곧 내시를 보내 데려오게 하니, 그때 네 석녀가 부처님을 뵈옵고 머리를 조아려 슬피 울며 끓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맹세컨대 보배구슬을 훔치지 않았거늘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죄를 입어 쓰리고 아픈 매를 맞아 몸뚱이가 깨어지고 터지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죄업의 인연은 자기가 지은 것이다. 부모가 한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니라. 사람들이 선과 악을 행하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는데,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는 것과 같으니라. 현전의 이익을 탐내어 마음으로 사악하고 아첨한 짓을 하면서 후세 여러 겁 동안 재앙을 받는 줄 모르는구나. 대체로 악이란 자기 마음에서 생겨 도리어 자신을 해치니 마치 무쇠에 녹이 나서 그 모양을 소멸케 하는 것과 같으니라.”
1)아기리(阿祇利). 아차리야(阿遮利夜ㆍ阿遮梨耶)라고도 쓰며, 교수(敎授)ㆍ궤범(軌範)ㆍ정행(正行)이라 번역한다. 제자의 행위를 교정하며 그의 사범이 되어 지도하는 큰스님을 말한다. 아사리의 호는 『오분율(五分律)』 16에, 출가(出家) 아사리ㆍ갈마 아사리ㆍ교수 아사리ㆍ수경 아사리ㆍ의지 아사리 등의 5종을 말하였다.
2)나를 믿으며 스스로 높은 체하는 교만을 말한다.
3)또는 응현(應現). 불보살(佛菩薩)이 여러 가지 근성(根性)에 대하여, 각기 상응한 몸을 나타내어 이해할 수 있는 교법을 말하여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