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2_0487_a_01L
제불요집경(諸佛要集經) 상권
012_0487_a_01L諸佛要集經卷上 能


서진(西晋) 축법호(竺法護) 한역
송성수 번역
012_0487_a_02L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이와 같이 들었다.
012_0487_a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갈국(摩竭國) 내총수(柰叢樹)를 유행하시며 그 지방 북쪽에 있는 인사구(因沙舊)진(晋)나라 말로 제수석실(帝樹石室)이다.라는 산에서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으니, 비구는 5천 명이고 보살은 2만 명이었다.
012_0487_a_04L一時佛遊摩竭國奈叢樹閒於其鄕土北有山名因沙舊晉言帝樹石室與大比丘衆俱比丘五千薩二萬
그들은 모두 불기법인(不起法忍:무생법인)을 얻은 불퇴전(不退轉)이었고, 몸ㆍ입ㆍ뜻이 안정되어 3세를 모두 거두어 잡으며, 홀로 삼계를 거닐면서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되, 병에 따라서 약을 주어 각기 원하는 바를 얻게 하는 자들이었으니, 문수사리와 미륵보살 등이었다. 또 여러 하늘 8만4천이 있었으니 모두 부처님 도에 뜻을 둔 자들이었다.
012_0487_a_07L皆不退轉不起法忍身口意定摠攝三世獨步三界開化衆生病與藥各令得所文殊師利彌勒菩薩等復有諸天八萬四千悉志佛道
그때 4부 제자는 각기 부처님께 나아가 경을 들으려 하긴 했으나 정신을 오로지 할 수 없었고 강론할 법을 싫어하였으며, 제각기 매우 바삐 힘써 구하는 것을 뒤쫓아 다니면서 5탁을 일삼았다.
012_0487_a_10L爾時四部各往詣佛雖欲聽經不能專精厭所講法各各悤悤多所務求追逐五濁以爲事業
부처님께서는 마음으로 생각하셨다.
‘대중들은 내가 말한 도와 교를 싫어하고 다시 찾아와 법문을 묻고 받아들이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여래를 보지도 않고 바른 법을 듣지도 않는다. 마음과 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으로 사유하지도 않으니 닦아 이룩할 수가 없다.’
012_0487_a_13L佛心念言衆人患厭所宣道教不肯復來諮受法言不見如來不聞正典不入心耳心不思惟不能修立
또 부처님은 스스로 생각하셨다.
‘나는 여상정(如像定)으로 스스로 모양을 나타내지 않고 타방의 부처님 국토에 이르러 여러 부처님과 함께 모든 부처님의 요집(要集)을 강하여 펴리라.’
012_0487_a_16L佛自念言吾欲示現如像燕處不自現形到他方佛土與諸佛俱宣講諸佛之要集
부처님께서 다시 모든 부처님들이 어디에 모여 계시는지 관하다가 곧 동방을 보니, 여기에서 8만 4천억의 여러 부처님세계를 지나 보광(普光)이라는 국토에 천왕(天王)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현재 법을 말씀하고 계시며, 모든 부처님들이 거기에 모여 계셨다.
012_0487_a_18L佛復觀之諸佛世尊會於何方輒睹東方去是八萬四千億諸佛世界國名普光佛號天王如來至眞等正覺現在說法諸佛會彼
012_0487_b_01L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인사구의 실내로 들어가 석 달간 연좌(燕坐)하리라.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륜(阿須倫:아수라)ㆍ가류라(迦留羅:가루라)ㆍ진다라(眞陀羅:긴나라)ㆍ마휴륵(摩休勒:마후라가) 등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들이 찾아오거든 그들을 잘 이해시키고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012_0487_a_22L佛告阿難如來當入因沙舊室燕坐三月諸天阿須倫迦留羅眞陁摩休勒人與非人若有來者解喩其意勿令入室
아난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큰 성인께서 높고 거룩한 은혜를 베푸소서. 여러 신묘한 하늘들은 그 위력이 끝까지 사무치고 몸은 미묘하며 마음은 보기도 어려우니, 그들이 왕래하며 돌아다니면 막을 수 없습니다.
012_0487_b_04L阿難白佛大聖垂恩有尊巍巍神妙諸天其威洞徹身形微妙心意叵見往來周旋不能將護
저는 이미 미약하고 하열하여 신족의 힘이 없으며, 큰 덕망의 갑옷도 입지 못해 신통 변화로 하는 일은 목련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여래께서는 대목련을, 신족이 제일이어서 시방을 걸림없이 날아다닌다고 칭찬하셨으니, 그분 혼자만이 후사의 보호를 맡길 수 있을 것입니다.”
012_0487_b_06L難旣弱劣無神足力離大德鎧神變所爲不及目連大目連者如來咨嗟神足第一飛到十方無所罣㝵獨可委付護於後事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 말아라. 여래(如來)ㆍ지진(至眞)은 남의 보호가 필요치 않다. 이제 부처가 천상과 세간의 여러 악마ㆍ범천ㆍ사문ㆍ범지와 여러 하늘의 인민과 아수륜을 관찰해 보면 여래ㆍ무상지진(無上至眞)이 건립한 것을 움직이고 옮길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자는 없다. 너는 잠자코 있어라. 여래는 대중에 있을 때도 스스로 돕고 보호하는 것이지 호위하는 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012_0487_b_10L佛告阿難勿有此言如來至眞不須人護今佛觀察天上世閒諸魔梵天沙門梵志諸天人民阿須倫無能作威動移如來無上至眞之所建立也汝且默然如來在衆能自將護不須衛者
또 아난아, 만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와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다라ㆍ마휴륵 등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들이 이곳에 오거든 여래ㆍ지진은 그대로 연좌할 것이니, 네가 그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도의 가르침을 설해야 한다.
012_0487_b_15L又若阿難若有毀除士毀除女薰士薰女諸天阿須倫迦留羅眞陁羅摩休勒人若非人來到爾所如來至眞如在燕汝當爲說如是道教
‘법은 만나기 어렵고 요의(了義) 또한 그러하며, 사람 몸 받기 어렵고 경의 도(道)는 희유하다.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은 오랜 겁에 가끔씩 있는 일이다. 여래가 말씀하신 경전을 믿고 출가해 도를 닦고 훌륭한 스승과 벗을 만나며, 잘 따라 깨우쳐 받아들이며 정진하고 좋아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012_0487_b_19L法難可遇義亦然人身難得經道希有如來興世劫數時出能信如來所宣經典家爲道見善師友能從啓受精進愛亦復難遭
012_0487_c_01L 만일 경전에 밝은 비구가 청정한 법을 강론하는 것을 만났다면 그것은 있기 힘든 일이며, 마음으로 보시하기를 좋아하다가 중우(衆祐:세존)를 만나 공양하고, 청정한 법을 다 받는 것도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설령 효순하고 은혜를 되갚으며 또 부지런히 배우고 경전과 계율을 따르고 지니기를 죽음에 죽음을 거듭해도 깨뜨리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012_0487_b_23L若復蒙睹明經比丘講淸淨法此不可得心好放施若遭衆祐授於供飬受能淨畢是亦難遇假使孝順反復報恩又勤學問遵持經戒死死不毀是亦難値
또 어떤 이가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더할 나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고, 발심하자마자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순하며 필경에는 보살이 된다면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012_0487_c_04L若復有人愍哀衆而發無上正眞道意適發心已尋能奉順隨佛之教究竟菩薩是最難矣
부처님께서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였다.
“여래는 연좌할 것이니 사부 대중과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륜 등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들이 너에게 와서 경법을 듣고자 하거든 그들을 위해 이와 같은 법의 가르침을 선전해야 한다.”
012_0487_c_06L佛告阿難如來燕坐四部之衆諸天阿須倫等人與非人來到爾所欲聽經法當爲宣傳如是法教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 그들을 위해 이렇게 말하라.
‘여래ㆍ지진께서는 무수한 방편으로 때를 따라 사람을 교화하여 그릇된 법과 미혹하고 삿된 소견을 버리게 하시니, 그대들은 명을 받들어 바르고 참된 가르침을 닦아라.’
012_0487_c_09L佛復語阿難汝承佛教爲宣如斯如來至眞無數方便隨時化人棄捐非法迷惑邪見汝等承命修正眞教
아난아, 그 삿된 소견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요망하고 거짓된 술수에 예배하고, 여러 하늘에 복종하며, 귀신ㆍ뼈다귀ㆍ썩은 나무ㆍ산ㆍ나무ㆍ강ㆍ하천ㆍ샘ㆍ돌 등의 신이나 천ㆍ지ㆍ일ㆍ월ㆍ동ㆍ서ㆍ남ㆍ북ㆍ북두성ㆍ사당이나 구렁이ㆍ뱀ㆍ날짐승ㆍ들짐승ㆍ고라니ㆍ사슴ㆍ교룡(蛟龍)을 받들어 섬기고, 또 여러 가지 기이한 도깨비들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이런 것을 삿된 소견이라고 말한다.
012_0487_c_12L阿難彼何謂邪見謂禮他人妖僞之術於諸天奉事鬼神枯骨朽木山樹河泉原石神天地日月東西南北北斗社君蟒蛇鳥獸麇鹿蛟龍承事若干殊異魍魎是謂邪見
또 아난아, ‘나[吾我]’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사람[人]ㆍ수명(壽命)에 집착하며, 아주 없다[斷滅]거나 영원하다[常]고 헤아리는 이런 것을 삿된 소견이라고 말한다.
012_0487_c_17L復次阿難計受吾我著人壽命斷滅計常是謂邪見
요점을 들어 다시 너에게 그 삿된 소견을 말하리라. 만일 족성자(族姓子)나 족성녀(族姓女)가 스스로 망령된 생각을 일으켜 성문승ㆍ연각승을 얻고자 하고 또 부처가 되어 멸도를 취할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모두 삿된 소견이 된다.
012_0487_c_19L擧要言之當復爲汝說微邪見若族姓子及族姓女自起妄想欲得聲聞緣覺之乘若復得佛當取滅度是悉爲邪見
또 아난아, 여래ㆍ지진은 연좌할 것이니 그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법요를 해설해야 한다.
012_0487_c_22L復次阿難如來至眞在於燕處當爲解說如斯法要
012_0488_a_01L‘그대들 배우는 사람은 항상 불법의 뜻을 사모하고 법락(法樂)을 즐겨야 하며, 법을 으뜸으로 삼고 청정을 생각하고 닦아야 하며, 돈독한 믿음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많아야 한다.
012_0487_c_23L汝等學常當慕法義樂於法樂以法爲上念修淸淨好於篤信多所歡悅
부끄러워하고 공손하며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하며, 삼계에 있지만 해탈을 의심하지 말아야 하며,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의 4등심(等心)을 행해야 한다.
012_0488_a_02L慚愧恭恪戰戰恐畏在於三界不疑解脫慈悲喜護行四等心
지나는 곳마다 항상 때맞추어 움직이고 욕됨을 참으며 온화하고 겸손하게 뜻을 낮출 것이며, 다만 이치로 돌아가고 장엄을 취하지 말며, 오직 지혜로 돌아가고 알음알이의 집착을 취하지 말며, 오직 미묘한 경으로만 돌아가고 아름다운 표현을 취하지 말며, 오직 바른 법으로 돌아가고 사람을 취하지 말며, 깊고 미묘한 법인(法忍)을 따라 닦도록 가르쳐라.
012_0488_a_04L所逕歷處常能應時忍辱和雅謙遜下意但歸於義不取嚴飾唯歸於慧不取識著唯歸妙經不取綺辭唯歸正法不取於人令遵修深妙法忍
해탈하여 제도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른바 3탈문(脫門:해탈문)이니, 부지런히 공(空)의 행을 받들어 나[吾我]를 헤아리지 말며, 무상(無相)을 닦아 희망을 버리며, 무원(無願)을 따라 행하여 서원하는 바를 없애라.’
012_0488_a_08L所言解度謂三脫勤奉空行不計吾我修於無想棄捐悕望遵行無願消除所誓
중생을 위해 12인연을 말해야 할 것이니 일체법은 인연을 좇아 일어난다. 가령 인연이 없다면 일어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니, 12인연이 일어나는 것을 자세히 살피고 관해 그 근원을 살펴 받들어 행해야 한다. 만일 12인연을 자세히 관하지 않으면 재난을 불러들일 것이다. 어떻게 관해야 하는가?
012_0488_a_10L當爲衆生說十二因緣一切諸法從因緣起設無因緣則無所起亦無所滅當審諦觀十二因緣起察其根源而奉行彼若不諦觀十二因緣而致此難當云何觀
아난아, 마땅히 알라. 열두 가지가 서로 얽혀 이끌지만 생기는 것이 전혀 없으니, 생기는 것 없음이 곧 불기법인(不起法忍:무생법인)이다. 만일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것이 12인연을 자세히 관하는 것이 된다.
012_0488_a_15L阿難當知十二牽連悉無所生無所生者不起法忍若不生念是爲審諦觀十二因緣
다시 성현의 바른 행을 분별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말해야 한다. 무엇이 거룩한 진리[聖諦]인가? 행하는 일이 정성되고 미더운 것을 말한다. 그 거룩한 진리란 만일 마음으로 거룩한 진리를 듣고 생각하면 진실도 없고 속임도 없으니, 진실도 없고 속임도 없기 때문에 거룩한 진리라고 한다.
012_0488_a_17L當復分別賢聖正行爲衆說法何謂聖諦所行誠其聖諦者若以心聽計於聖諦誠無欺無誠無欺者以是之故名曰聖諦
012_0488_b_01L참된 진리[眞諦]의 이치란 바로 정성되고 미더우면서 생기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 참된 진리라는 것은 실로 참되고 바른 것이어서 욕심을 여의는 진리이며, 믿고 아는 진리이며, 언사가 없는 진리이며, 행하는 것이 없는 진리이며, 괴로움을 짓지 않는 진리이며, 가짐이 없는 진리이며, 응함도 응하지 않음도 없고 칭찬도 없고 비방도 없는 진리이니, 곧 하나의 진리이며, 죄가 없는 진리이며, 멸도하지 않는 진리이니, 곧 함이 없는[無爲] 진리이다.
012_0488_a_21L眞諦之義是謂誠信而無所其眞諦者實爲眞正爲離欲諦爲信解諦無言辭諦無所行諦不造苦諦無所有諦無應不應無擧無下則爲一諦無有罪諦不滅度諦無爲諦
가령 아난아, 일체법은 일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무엇도 머무르는 것이 없고 중생과 다른 것도 없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성현의 진리[賢聖諦]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이와 같은 법을 말한다. 현명한 제자로서 무위(無爲)를 행하여 분명한 지혜를 알고자 한다면 괴로움을 일어나지 않게 하여 생기는 것이 없는 데에 이르러야 할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진리[苦諦]라고 말한다.
012_0488_b_03L假使阿難解一切法不起不悉無所住無異衆生是謂賢聖諦以故如來說如此法賢明弟子行於無欲曉了慧令苦不起至無所生是謂苦諦
만일 고민과 근심을 만나서 고통 속에 있게 되면 모든 행을 쌓지 말고 인연을 끊어라. 인연을 이미 끊었으면 이것을 쌓임의 진리[集諦]를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일체의 괴로움을 영원히 없애고 다해 오래도록 생기는 것이 없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을 사라짐의 진리[滅諦]라고 말한다.
012_0488_b_07L若遭惱患在於苦痛不習諸行斷於因緣因緣已斷是曰棄捨於習諦若能永滅盡一切苦長無所生謂盡諦
무엇을 도의 진리[道諦]라고 하는가? 도의 이치를 닦으며 두 가지 업을 짓지 말고 선법(善法)과 불선법(不善法)을 하나의 밝음[明]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길을 구하는 것이 바로 곧 3탈문이다.
012_0488_b_10L何謂道諦若修道義不爲二善不善法入一品明求如是路則名曰爲三脫門
모든 과거의 부처님과 제자들이 이 길을 따라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멸도를 취하였으니, 이것을 여덟 가지 성현의 길이라고 한다. 즉 첫째 정견(正見)이며, 둘째 정념(正念)이며, 셋째 정언(正言)이며, 넷째 정업(正業)이며, 다섯째 정활(正活)이며, 여섯째 정방편(正方便)이며, 일곱째 정의(正意)이며, 여덟째 정정(正定)이다.
012_0488_b_12L諸過去佛及與弟由此道路至無所至而取滅度爲名曰八賢聖路一曰正見二曰三曰正言四曰正業五曰正活正方便七曰正意八曰正定
이것으로 뜻을 보호하며 더불어 평등을 말할 것이니, 성품이 이미 평등해지면 곧 모든 법에 망상을 품지 않게 된다. 이것을 길로 다시 들어선 것이라 한다.
012_0488_b_16L以此護意因說平等性以平等則於諸法不懷妄想此乃名曰還入徑路
또 아난아, 이와 같이 설법하라.
‘그대들은 힘써 부지런히 4의지(意止)로 돌아가라.’
012_0488_b_18L又復阿難說法若茲汝等精勤歸四意止
또 대중과 모임을 위해 37품(品)의 도행의 법을 널리 해설하여 법의 가르침을 이룩하게 하라. 거기에서 무엇을 37품이라 하는가? 만일 수순하는 이치에 머문다면 모두 자연(自然)을 달한 것이며, 문자(文字)를 빌린 것일 뿐이다.
012_0488_b_19L爲諸衆會頒宣解說三十七品道行之法使立法教何謂於彼三十七品若住順義悉達自然假文字耳
012_0488_c_01L 그런 문자들로 여래가 모든 법을 건립하였으나 이 모든 문자 역시 자연이며, 공(空)이며, 나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다. 혹 말하는 자가 있더라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이니, 그 까닭은 문자가 37품과 같기 때문에 같다고 하는 것이다. 가령 아난아, 비구들이 문자를 평등하게 안다면 이것이 바로 도품법(道品法)이고 머물러야 할 수순하는 이치[順義]이다.
012_0488_b_22L若等文字如來以此建立諸法是諸文字亦自然空不生不壞若有說者不說亦等不增不減所以文字以等故等假使阿難比丘等知文字是道品法所住順義
또 아난아, 여래는 연좌할 것이니 만일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답화(犍沓惒:건달바) 등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들이 찾아오거든 그들을 위해 3세가 평등함을 강해야 한다. 무엇이 3세(世)인가? 과거는 이미 없어졌고 미래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현재는 머무름이 없는 것이니, 떨어져 전도되어 있어도 이것 또한 본래 깨끗한 것이다.
012_0488_c_04L又復阿難如來在燕若有鬼神犍沓和人非人來當爲講說三世平等何謂爲三過去已滅來不現現在無住墮在顚到是亦本
일체법 역시 모두 공하여 3세도 없고 머무르는 것도 없으니, 과거도 이미 공하였고 미래도 공할 것이며 현재도 공하다. 공도 공하고 공이 없는 것도 공하니 3세의 공함과 같고, 사람의 공함 역시 그와 같으니, 3세가 공한 것을 평등이라 한다. 하나의 이치[一義]로 들어가며 여러 가지란 없다. 만일 또 법을 말하게 되면 ‘삼계를 제거해야 비로소 편안하게 된다’고 하라.
012_0488_c_08L一切諸法亦復悉空無有三世無所住過去已空當來亦空現在亦亦如空空無空亦空如三世空空亦如是三世空名曰平等入於一義無有若干若爲說法能除三界爲安耳
무엇을 삼계를 제거하는 것이라 하는가? 비구가 때를 맞춰 사유하고 관찰하면 욕계ㆍ색계ㆍ무색계가 마음의 생각에서 생기는데, 그 생각이란 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다.
012_0488_c_13L何謂能除三界若有比丘時思惟而觀察之欲界色界無色界心想所生其思想者亦無所有
그 존재하는 것이 없으므로 삼계를 밝게 알면 생각이 없이 생각하여 나아감도 없고 물러남도 없고 건립할 것도 없으며, 서원도 없을 것이다. 생각하거나 기억하지 않고 마음의 생각을 모두 버리면 3탈문을 얻을 것이니, 간절히 정신을 오로지하여 밝은 깨달음을 닦고 공ㆍ무상ㆍ무원의 3탈문을 받들어야 한다.
012_0488_c_15L無所有了三界已無想而想無進無無所建立亦不誓願不思不念捨心念得三脫門慇懃專精而修明奉三脫門空無相願
무엇을 3탈문이라 하는가? 밝은 깨달음에 이르러 평등을 버리지 않고 모든 법을 통달하여 지음도 짓지 않음도 없으며 일체법이 모두 다해 없어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 선정에 들지 않아도 뜻이 타락하지 않으며 하나가 있다거나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니, 이것이 3탈문으로서 밝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012_0488_c_19L何謂三脫至明證不捨平等暢於諸法無作不知一切法皆當歸盡不入於禪意不墮落不計有一亦無若干是三脫門而得明證
012_0489_a_01L또 아난아, 그들을 위해서 법을 설해 5음(陰)을 떠나게 하라. 5음이란 색(色)ㆍ통(痛: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니, 이것이 5음이다.
012_0488_c_23L又復阿難當爲說法使去五陰何謂爲五是爲五陰
이것을 받아들이면 음이 치성하게 되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음이 없다. 만일 한가한 곳에 거처하며 수행한다면 이 관을 지어야 한다. 여래는 늘 이렇게 말하였다.
‘색은 물거품의 무더기와 같고, 통은 큰 물거품과 같으며, 상은 아지랑이와 같고, 행은 파초 같으며, 식은 허깨비와 같다. 부처의 광명은 해보다 밝고 지혜는 허공보다 큰 것이다.’
012_0489_a_02L若受此者則爲盛陰不受無陰假使修行處於閑居當作此觀如來常說色如聚沫痛痒如泡想如野馬行如芭蕉心識如幻佛光踰日慧越虛空
몸소 이런 법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설하여 이런 관을 짓게 해야 한다. 여래가 설명한 이치에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곧 이해하게 되리라. 욕계는 물거품의 무더기와 같으니 이것 또한 공할 뿐이며, 색계도 없는 것이며 무색계도 처소가 없는 것이니, 삼계에 집착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면 처소도 없다.
012_0489_a_06L親說言教告修行者當作此觀如來所講可入義者吾不解了不卽啓解欲界如聚沫是亦空耳色界亦無色無處不著三界其不猗者則無處所
물거품의 무더기에는 나[我]도 없고 사람[人]과 수명(壽命)도 없다. 그러므로 일체법에는 사람도 중생도 없어서 모두가 물거품의 무더기ㆍ큰 물거품ㆍ아지랑이ㆍ파초와 같은 것이다.
012_0489_a_10L聚沫無我無人壽命以是之一切諸法無人衆生悉如聚沫水野馬芭蕉
식도 환과 같아서 또한 공이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고 처소가 없으면 의지할 바도 없다. 그 허깨비라는 것도 나와 사람과 수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며, 그 실상을 아는 자 역시 나와 사람과 수명이라는 근본이 없는 것이다. 5음이 이와 같이 처소가 없는 것임을 관하게 되면 곧 5음은 없어진다.
012_0489_a_12L識如幻化亦空不著三若遊諸法不著三界無有處所則無所猗其幻化者不復處當我人壽其了實者亦無我人壽命之本觀五陰如是無處則無五陰
또 아난아, 다시 법을 말하고 분별하여 안팎의 6입(入)이 사라져서 없어지도록 자세히 분별해 주어야 한다. 안팎의 6입이란 무엇인가? 여래는 늘 ‘나라는 것은 공하다’고 말하였다.
012_0489_a_16L又復當復說法分別消除內外六入分別之何謂內外六入如來常說其吾我空
012_0489_b_01L 왜냐하면 모두가 본래 깨끗하기 때문이다.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뜻이 또한 공하고 본래 깨끗하며 몸이 없는 것이다. 만일 본래 깨끗하고 공하여 모든 입(入)이 없다면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6입 역시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뜻이 없으면 인연하는 의식도 없고 안팎의 6입도 없다. 왜 밖의 6입도 그런가? 일체법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전혀 없으며 버리는 것 역시 없으니, 생각으로부터 밖의 모든 6입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입을 익히지 않으면 처소도 없다.”
012_0489_a_19L所以者何悉本淨故眼耳鼻口身意亦空本淨無身假使本淨空無諸入則無色細滑法處設無無因緣識無內外六何謂外六入於一切法悉無所受亦無所捨從思想生外諸六入不習諸入則無處所
부처님께서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연좌할 것이니, 만일 어떤 이가 찾아오거든 그를 위해 이렇게 법의 이치를 해설하라. 부처가 위엄과 신통을 세워 변화를 나타낼 때에 만일 근기에 맞아 제도될 수 있는 자라면 모두 이 법을 들을 것이며,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보거나 듣지 못하며 부처가 잠자코 아무 말이 없었다고만 볼 것이다.”
012_0489_b_02L佛語阿難如來燕坐若有人來當爲解說如此法義佛建威神顯其變化若有應器當應度者悉聞此法其餘衆人都不見聞睹佛默然口無所說
이 법을 강설하셨을 때 5천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렸으며, 4만 2천 하늘은 번뇌를 벗어나 법안이 청정해졌으며, 3백 비구가 아라한이 되고, 7천 대중이 애욕을 벗어났다.
012_0489_b_06L講是法時五千比丘漏盡意解四萬二千天子遠塵離垢得法眼淨三百比丘尼得阿羅漢千衆人得離愛欲
그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분부하신 뒤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석실로 가서 여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라. 오직 풀만 이용해야 하며, 여래가 그 위에 앉아 석 달을 연좌할 것이다.”
012_0489_b_09L爾時世尊教阿難已復告阿難汝詣石室當爲如來布其座席唯用芻草如來坐上三月燕處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평상을 펴고 곱고 부드러운 자리를 깔아야 합니까, 풀만 깔아야 합니까?”
012_0489_b_12L阿難白佛當施牀榻布令細濡用芻草爲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모든 과거의 부처님ㆍ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모두 풀로써 좌석을 만드셨고, 부드럽고 윤택하게 꾸민 겹자리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도법(道法)에 따라 닦아야 크게 편안하리라.”
012_0489_b_13L佛告阿難且止且止諸過去佛如來至眞等正覺皆用芻草以爲座席不以柔濡文飾重座爲佳快也修順道法乃爲大
아난은 분부를 받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대중을 떠나 밖으로 나와 풀을 구하였다. 그때 무수한 10만억의 하늘이 각기 부드럽고 윤기 나는 천상의 좋은 풀을 가지고 와 아난 앞에 놓았다. 아난은 곧 그것을 가지고 석실로 가서 부처님을 위해 풀 자리를 만들었다.
012_0489_b_17L阿難受教卽從坐起捨於衆會外求草應時無數百千億天各取柔濡天上好草著阿難前阿難卽取持詣石室爲佛敷設芻草之座
자리를 마련하자 때맞춰 무수한 10만억의 하늘이 각기 하늘 옷을 가지고 와서 풀 자리 위에 펼쳤다. 펴놓은 그 옷의 수가 너무도 많아 온 천하에 펼쳐 놓아도 남을 정도였지만, 부처님의 위력과 신통변화로 펼쳐진 옷은 높이가 4촌에 불과했다.
012_0489_b_20L敷這竟應時無數百千億天各取天衣敷著草上所敷衣具其數甚多設著天下不能悉受佛之威神變所敷衣四寸耳
012_0489_c_01L부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제수석실(帝樹石室)로 들어가시자 한량없는 풍악이 연주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울렸고, 하늘은 온갖 꽃을 온 대천세계에 무릎까지 쌓이도록 흩뿌렸다. 부처님께서는 연좌하여 삼매정수(三昧正受)에 들어가자마자 그 석실을 변화시켜 온통 수정처럼 만들었다.
012_0489_c_01L佛從座起入帝樹石室無量妓樂不鼓自鳴天雨衆華大千世界積至于膝佛這燕坐三昧正受化其石室皆如水精
그래서 덕의 근본이 순일하고 맑은 삼천세계의 모든 중생은 모두 여래께서 석실에 앉아계신 모습을 밝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듯 볼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오른쪽 손바닥으로 10만억의 광명을 놓으시자, 그 광명은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비쳐 해와 달의 광명을 모두 덮어버렸다.
012_0489_c_04L三千世界諸有衆生德本純淑悉見如來坐於石室猶如明鏡見其面像佛演右掌百千億光其光普照三千大千世界日月之光悉爲覆蔽
그때 일체 중생은 음욕[婬]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이 없어졌고 스스로 크고 높은 체하거나 질투를 품지 않았으며, 또한 고단함과 싸움의 재앙이 없어지고 인자한 마음으로 서로를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식이나 내 몸과 전혀 다름없이 대하였다.
012_0489_c_08L當爾之時一切衆生除淫怒癡不懷自大貢高嫉妒亦無勞倦鬪訟之患慈心相向如父如母如兄如弟如子如身等無有異
부처님께서 삼매에 드시니, 그 행은 영원히 안정되어 머무름도 없고 업(業)도 없었으며 자연 그대로이고 공과 같아서 행에 망상이 없으셨다.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012_0489_c_11L世尊三昧其行永定無住無業自然如空行無妄想三千大千世界六反震動
그때 불국토에서 부처님의 위력과 신통을 본 2만 2천의 하늘은 모두 더할 나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어 각기 하늘 꽃을 가져다 석실에 뿌리며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석실을 세 번 돌고는 갑자기 사라졌다. 하늘에서 뿌린 꽃은 온 산과 계곡을 덮어 부처님 도량을 만들었고, 그 향기가 널리 퍼져 온 삼천세계가 모두 그 향기를 맡았다.
012_0489_c_13L應時佛土見佛威神神力變化二萬二千天子皆發無上正眞道意各取天華散於石室以供飬佛繞室三帀忽然不天所散花悉覆山㵎化爲佛寺香普周三千世界莫不聞薰
부처님께서는 문득 몸을 변화해 천왕(天王) 여래ㆍ등정각께 나아가 보광세계(普光世界)에 이르렀다.
012_0489_c_18L佛便變詣於天王如來至眞等正覺所普光世界
그때 강과 하천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들 역시 능인(能仁) 여래ㆍ지진처럼 5탁 중생을 교화하기 어려워 모두 천왕불께 찾아오셨다. 그들 국토의 중생들 역시 이곳과 마찬가지로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치성하고 스스로 크고 잘난 체하며, 반역하고 불효하고 아첨하고 삿된 생각을 품으며 낮은 제도에 뜻을 두었다.
012_0489_c_20L爾時十方江河沙等剎土諸佛因五濁世衆生難化故皆現詣天王佛所亦如能仁如來至眞彼土若斯婬怒癡盛自大憍慢反逆不孝諛諂邪念志在下度
012_0490_a_01L 무엇 때문인가? 그들 국토의 중생들 역시 부처님을 찾아가 뵙지 않고, 깨우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기왕에 들었던 것도 수긍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받들어 행하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들 역시 선권방편(善權方便)으로 실내에 연좌하시고, 다시 몸을 변화해 보광세계의 천왕불께 나아가 모든 부처님의 요집을 분별하여 강설하신 것이다.
012_0490_a_01L所以者何本土衆生不往見佛不肯啓受旣有所聞不聽不入不思奉行以故詣佛善權方便而坐燕室更化變形詣普光界天王佛所講說分別諸佛要集
“모든 부처님의 요집이란 무엇인가?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는 갖추어야 할 모든 행을 이미 갖추어 해야 할 것이 없지만 다시 최후의 마지막까지 나아가니,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를 모든 부처님께서 요집하신 경전의 뜻이라 한다.
012_0490_a_05L何謂佛要集諸佛世尊所載衆行以備無所復進最後究竟愍愛衆生故名諸佛要集經典之義
여래ㆍ지진께서 멸도하신 뒤 중생을 위해 덮고 가린 것을 없애줄 것이다. 큰 성인이신 모든 부처님은 곧 법의 주인이시니, 그 덕은 수미산을 뛰어넘고, 지혜는 강과 바다를 뛰어넘으며, 도는 허공을 뛰어넘어 비유조차 할 수 없다. 이로써 게으르고 방일하며 법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던 일체 어리석은 자들도 다시 이 경전은 받아들일 것이다.
012_0490_a_08L如來至眞滅度之後當爲衆生發去覆蓋佛大聖則是法主德過須彌智超江道越虛空不可爲喩用一切愚人懈怠放逸不順法教復受經典
그들은 왜 게으르고 미혹하며 5음ㆍ5개에 얽매여 3취(趣)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모든 부처님께서 이 이치를 본 까닭에 긴요한 법들을 모은 것이다.”
012_0490_a_12L彼等何故懈廢迷荒纏緜陰蓋不免三趣諸佛世尊見此義故合要集法
그때 보광세계에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함께 그 국토에 모여 계셨다. 왜 보광이라 하는가?
012_0490_a_14L于時於彼普光世界不可計會無數諸佛悉共集會其土何故而謂普光
그 국토는 순수하고 참되어 성문ㆍ연각이라는 이름이 없고 모두 보살만 가득 갖추어 있었으며, 그 국토의 보살은 제각기 스스로 금색 광명이 있었고 상호로 장엄한 그 몸에서는 광채가 빛나고 널리 비추어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광이라 한 것이다.
012_0490_a_16L彼土純眞無有聲聞緣覺之名皆諸菩薩充滿備悉其土菩薩各各自有金色光明相好嚴身光燿普照靡不通遍故謂普光
무엇을 모든 부처님의 요집이라 하는가? 곧 진리와 같이 모든 법을 높이고 숭상하는 것이다. 무엇을 ‘모든 법’이라 하며, 무엇을 ‘숭상’이라 하며, 무엇을 ‘높임’이라 하는가?
012_0490_a_20L何謂諸佛要集則如眞諦遵崇諸法何謂諸法何謂爲崇何謂爲遵
012_0490_b_01L일체법은 모두 하나의 법이 되니, 이 모든 법이라지만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으며 또한 말할 수도 없다. 무엇 때문인가? 그 법이 없다는 것은 곧 생기는 것도 없고 일어나는 것도 없다는 것이며, 법이라고 말하지만 오래 보존할 수 없으니 언사를 빌린 것일 뿐이다.
012_0490_a_22L一切諸法悉爲一法此諸法者亦無有法亦無非法亦不可說所以者何其無法者則無所生亦無所起而爲說法不久長存以假言耳
안의 6입과 밖의 6입, 5음의 여러 종류와 모든 입, 이런 것들을 존재하는 일체(一切)라고 말하지만 언사를 빌려 장구(章句)를 분별한 것일 뿐이다.
012_0490_b_02L內有六入外亦六入五陰諸種及與諸入是謂一切所有以假言耳分別章句
일체법을 참된 진리로 관하면 곧 5음ㆍ4대와 모든 입은 없으며, 단멸도 없고 영원함도 없고 견고함도 없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모든 법은 말이 없다’고 한다.
012_0490_b_04L一切諸法如眞諦觀則無五陰四種諸入無有斷滅亦無有常無有堅固是故言曰諸法無言
일체법은 본래 깨끗하여 곧 공하고 그 이름이 없으며, 말해진 그 명(命) 역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일체의 모든 법과 명호는 모두 또한 자연 그대로이고 모두 존재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요집이다.
012_0490_b_07L一切諸法本淨則空無有其名其命所說亦無所有一切諸法及與名號皆亦自然悉無所有是諸佛要集
무엇을 ‘숭상함’이라 하는가? 담박(澹泊)하여 생기는 것이 없음을 숭상하고, 욕심 없음을 숭상하고, 참된 진리를 숭상하고, 근본 없음을 숭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계(法界)를 숭상하고 본제(本際)를 숭상하는 것이니, 모든 법은 모두 공하다는 이런 참된 진리를 숭상하는 것이다.
012_0490_b_10L何謂爲崇謂崇澹泊悉無所生崇於無欲崇於眞諦於無本而崇法界崇於本際諸法悉崇此眞諦
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머무르는 것이 없으며, 익히고 행할 것도 없으며, 행하고 행하지 않아야 할 위의와 예절도 없다. 미래를 취하지도 않고, 내 것도 없고 받아야 할 모든 업도 없으며, 따라서 군주도 없고 피복(被服)도 없다.
012_0490_b_13L一切諸法皆無所住所習行無行不行威儀禮節不取當無我所無諸所受業則無君主亦無被服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고 끝까지 다 사라졌으므로 사라지게 할 수가 없다. 임시로 문자와 언사를 빌려 사라짐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곧 생긴 적이 없는 것이며, 본래 깨끗하므로 뜻이 담박하다고 말하지만 그것 또한 생긴 적이 없는 것이니, 생기는 것이 있고 생기는 것이 없는 것을 버리고 떠난다.
012_0490_b_16L不可睹見爲究竟盡故不可假有文辭其無盡者則無所生爲本淨謂志澹泊亦無所生捨離所生及無所生
이미 숭상한 것에는 소리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타락하는 자도 물러나는 자도 없지만 모든 권유와 도움만은 제외한다. 곧 밑도 없고 밑이 없는 것도 아니며, 일어나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는다. 평등을 강론하여도 생각이 없으며, 가까움도 없고 멂도 없으며 발자취도 없다. 그러므로 숭상한다고 말한다. 숭상하는 것이란 법의 성(城)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012_0490_b_19L已所崇者無聲無寂能墮落亦無退者除諸勸助則無有底亦不無底不起不生講宣平等亦無想念無近無遠亦無足迹故謂爲崇是所崇者謂入法城
012_0490_c_01L일체법은 거짓으로 이름만 있을 뿐이니,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고 얻지 못할 것도 없다. 장차 갈 것도 없고 도로 돌아오는 것도 없으며, 바르지도 않고 삿되지도 않으며,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앎도 없으며, 두렵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으며, 사랑도 없고 거처도 없다. 고요하고 고요하지 않은 것도 없으며, 굵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가운데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감추지도 않으며, 인연도 얻을 수 없다.
012_0490_b_23L一切諸法假有號耳無來無往無得無不得無有將往亦無還返不正不邪不聞不見念無知不恐不懼無愛無處無寂不不麤不細不長不短不中不彼來不藏不得因緣
편하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으며, 모두 깨달아 알 수도 없고 행할 것도 없다. 흥하고 망하는 것도 없고 없앨 것도 없으며, 일으키게 할 수도 없다. 기르지도 않고 잠자지도 않으며, 사유하지도 않고 상상하지도 않으며, 통달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012_0490_c_05L不安不危悉不曉了亦無所行無所興廢亦無蠲除令發起不飬不眠不思不想不達不
한계도 없고 생각하는 바가 한량없으며, 지킬 것도 없고 보호할 것도 없으며, 불러올 것도 없다.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것도 아니며,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처소가 없는 것도 아니며, 아주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영원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며, 잃음도 아니고 얻음도 아니다.
012_0490_c_08L無有限節所念無量無守無護所呼來不度彼岸不有處不無處斷滅不計常不失不得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지혜가 아닌 것도 없다. 많은 수도 아니고 적은 수도 아니며, 소리도 없고 말도 아니며, 들어갈 곳도 아니다. 두려움도 없고 글자도 없으며 또한 문자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012_0490_c_10L無去來今慧無不慧不衆不寡無音不言亦不所入無恐無字亦不入文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며,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며, 예의도 없고 예의 아닌 것도 없다. 명성을 바라지 않으며 또한 나도 없고 사람과 수명이라는 것도 없다. 계율을 지키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으며, 참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으며, 나아가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어디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없는 것도 아니며, 맑지도 않고 맑음이 없는 것도 아니며, 공도 아니고 공이 없는 것도 아니다.
012_0490_c_12L不動不搖不遠不近無禮無不禮不希名稱無吾我無人壽命不戒不犯不忍不不進不怠不可所不無所非淸非無淸非空非無空
몸도 아니고 몸 없는 것도 아니며, 이름을 강론하지 않는 것이 허공처럼 평등하다. 마침도 없고 마치지 않음도 없으며, 교화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으며 벗어나지도 않는다.
012_0490_c_16L不身不無身講名號等如空空無畢無不畢不教不願不離
짓지도 않고 짓지 않음도 없으며, 허물이 없기 때문에 죄를 없애지도 않으며, 생각도 없고 생각하지 않음도 없다. 움직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주어도 그것을 받지 않고 애초에 그것을 주지도 않았으며, 고르지도 않고 고요하지도 않다. 소멸하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않으며, 재처럼 사라지게 하지도 않으며, 티끌도 아니고 티끌을 벗어난 것도 아니다.
012_0490_c_18L不作無不作以無殃舋亦不除罪無想無不想不動不捨亦不受之初不與之不調不寂不滅不等不使灰盡不塵不離塵
빠지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물들지 않음도 없으며, 잊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또한 근심하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사유함도 없고 사유하지 않음도 없으며, 응하는 것도 없고 응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쌍도 없고 외짝도 없다.
012_0490_c_21L不墮不不染無不染不忘不念亦不愁亦不憂慼無思無不思無應無不應雙無隻
012_0491_a_01L 유행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이 언덕도 아니고 저 언덕도 아니며, 저기도 아니고 여기도 아니다. 언덕에 이른 것도 아니고 육지도 아니며, 밑도 없고 가운데도 없으며, 건너는 것도 아니고 건너는 자도 없다.
012_0491_a_01L不遊不在不此際不彼岸彼不此不臨岸不陸地無底無中住度無能度者
자취를 움직이지도 않고 원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으며, 물러나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는다. 끊어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며, 도로 합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나란한 것도 아니며, 입지도 않고 벗지도 않으며, 취하지도 않고 취하지 않음도 없으며, 허공도 아니고 허공 아님도 없다.
012_0491_a_03L不動迹不志願不退不合會不斷不壞不還合不相比不著不脫不取無不取不虛空無不
광명(光明)이 바닥이 없고 수명을 사랑하지도 않으며, 사람도 없고 가르침도 없으니, 항상 강론하고 말하여 모든 처소(處所)를 버리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법의 성에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보살이란 글자에 집착하므로 집착함이 없는 법을 설해도 머무를 곳을 보지 못한다. 이것을 일컬어 숭상함이라 하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요집이다.
012_0491_a_06L光明無底不愛壽命無人無教常當講說捨諸處所是入法城其不入者著菩薩字說無著法不見住處斯曰爲崇是佛要集
무엇을 ‘높임’이라 하는가? 모든 법은 언제나 머물러 있어서 법계에 머무니, 이와 같은 법을 받들어 행할 수 있는 자를 곧 ‘높인다’고 말한다.
012_0491_a_09L何謂爲遵諸法常住住於法界其能奉行如是法者是謂爲遵
무엇을 법이라고 하는가? 법이라고 이름 지어진 그 법을 생각하지도 않고 없애버릴 것도 없으며, 희망을 품지도 않고 희망하지 않음도 없는 것이다. 만일 바라는 것이 없다면 보답에 대한 생각 역시 없을 것이다.
012_0491_a_11L何謂爲法所名法者不念於法無所除毀不懷希望無不望設無所望亦無想報
만일 보답을 생각지 않는다면 곧 일체 망령된 생각을 제거하게 될 것이니, 많이 짓지도 않고 적게 짓지도 않으며, 일으키지도 않고 끊지도 않으며, 과거도 생각지 않고 미래도 생각지 않고 현재에도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행하는 이는 3세에 평등하여 곧 언설이 없어질 것이며, 여기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중생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것을 법이라고 한다.
012_0491_a_13L若不想報則除一切妄想不造多不爲少起不斷不念過去不想見當來不住現在如是行者等於三世則無言說不用住故而致衆生是謂爲法
그러므로 여래가 이런 말과 가르침을 연설하는 것이다. 부처가 출현하건 출현하지 않건 그 모습은 여여하게 머무르므로 법계 또한 그러하다. 법계가 머무른다는 것은 법계가 고요한 것이다. 무슨 까닭에 법이라고 한 것인가? 고요하다는 것은 순수하고 맑음을 비유한 것이니, 그 때문에 모든 법이 고요하다고 한 것이다.
012_0491_a_17L是故如來演此言教佛興不興相住如故法界亦然法界住者法界寂然以何等故名曰爲法致寂然者以純淑喩因此故曰諸法寂然
무엇을 순수함이 없는 것이라 하는가? 이것은 내 것이다 하고 스스로 몸이 있다고 하며, 소견ㆍ이름ㆍ물질ㆍ사상ㆍ처소ㆍ언사ㆍ지식ㆍ의지하는 것을 인연하는 것이다.
012_0491_a_21L何謂無純計是我所自謂有身因緣諸見名色思想處所言辭識知依猗
012_0491_b_01L 이른바 이름과 생각과 헤아림과 본말을 관찰하고 마음으로 오로지 생각하여 모든 5음ㆍ4대와 모든 입을 받아들이고는 ‘나는 삼계를 권유하여 돕고 일깨워 교화하며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없앨 것이니, 이것을 도의 가르침을 받들고 닦아 3탈문을 증득하고 도의 자취에서 왕래하며 다시 욕계에 돌아오지 않고 나한(羅漢)의 도에 이르는 것이라 한다’고 하는 것이다.
012_0491_a_23L所謂名號心思稱量觀察本末意所專惟受諸五陰四大諸入我當勸助開化三界以當棄捐婬怒癡名奉修道教證三脫門致於道迹往來不還至羅漢道
또 ‘나는 마땅히 4의지ㆍ4의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각의ㆍ8정도의 37품을 생각하고 닦아 4사(事)를 밝게 비추어 번뇌를 없애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성문이라 하고,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012_0491_b_04L吾當思念修四意止意斷神足覺意至於八道三十七品照明四事滅盡塵勞是爲聲聞名曰不純
거기에서 무엇을 고요하다고 하는가? 보살승을 행하며 큰마음을 내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012_0491_b_07L於彼何謂爲寂然者行菩薩乘發大心言
‘나는 힘써 도와 지혜를 구해 부처를 이루리라. 또 그 행하는 일에 있어서 나는 보시하여 간탐(慳貪)을 버리고 법의 재보를 보시하며, 계율을 깨끗이 하여 온갖 결점을 끊어버리고 근신하여 행을 지키며, 인욕을 세워서 성내는 것을 베어버리고 온유한 행동을 하리라.
012_0491_b_08L我當成佛務求道慧於此所行我當布施捨于慳貪施以法財淨其禁戒斷於衆缺謹愼守行建立忍辱刈其瞋恚爲柔濡行
정진을 닦아 게으름의 때를 밀어버리고 부지런히 힘쓰는 것을 받들어 닦으며, 한적한 곳에 거처하며 정수(正受)를 닦아 교화하여 스승이 되고 일심(一心)을 체득하며, 삼매에서 일어나 반야바라밀을 기억해 그 이치를 받들어 행하며, 지도무극(智度無極:반야바라밀)으로 중생을 일깨우고 교화해 부처님의 도를 구하리라.’
012_0491_b_12L當修精進推懈怠垢遵修勤力處於閑居修於正受教化爲師還得一心從三昧起念般若波羅蜜奉行其義智度無極開化衆生以求佛道
일체 모든 부처님은 반야에서 나셨으며, 다시 불도를 이루어 온갖 악마를 항복받고 곧 법륜(法論)을 굴려 인민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며 부처님의 무위로써 멸도하게 한다.
012_0491_b_16L一切諸佛由般若生還成佛道降伏衆魔則轉法輪度脫人民以佛無爲而令滅度
필경에는 부처님의 지혜로 모든 부처님 일을 배워 여래의 10력의 업과 부처님의 18법과 모든 힘의 근본인 4무소외(無所畏)를 널리 펴고, 분별하는 변재로 통달시키는 바가 많으며, 보살이 말해야 할 것을 세우고 생각에 따라 출입하고 진퇴하니, 이것을 처소(處所)라 한다.
012_0491_b_18L究竟佛慧學諸佛事宣暢如來十力之業佛十八法諸力根本四無所畏分別辯才多所暢達薩所說建立應念出入進退是爲處
일체의 바라는 생각에서 받아들인 모든 것을 감히 시행할 수 있다 해도 이런 법은 없을 것이니, 이것을 순수하고 맑으며 고요한 없음이라 한다. 그 고요함을 곧 법이라 하며, 이것을 곧 모든 부처님의 요집이라고 한다.”
012_0491_b_22L一切望想諸所受取敢可施行有此法是謂純淑寂然之無其寂然斯謂爲法是則名曰諸佛要集
012_0491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 모든 부처님의 요집이라 말한 것은 곧 처음 보살의 마음을 내는 이의 말과 가르침을 두고 한 말이다. 처음 보살의 마음을 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언가로부터 생기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마음에 마음이 없고, 그 마음이 없으면 생기는 것이 없으며, 생기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로 인해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무생법인)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012_0491_c_01L次復所言諸佛要集則是初發菩薩心者言教之謂何謂初發菩薩心謂無從生所以者何於一切心而無有心其無心者則無所生無所生者是初發心因得還致無所從生法忍
또 처음 보살의 마음을 내는 이는 그 뜻을 견고히 해야 하니, 이 보살은 금강과 같은 그런 마음을 내야 한다. 금강과 같은 마음을 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012_0491_c_06L又若初發菩薩心者堅固其意於此菩薩當發其心猶如金剛何謂發心如金剛者
보살의 발심에 열 가지 행이 있으면 금강과 같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한량없는 생사의 어려움에서 노니는 것이며, 둘째는 가진 것 일체를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평등심을 지니고 중생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012_0491_c_09L菩薩發心有十事行爲若金剛何謂爲十一曰遊於無量生死之難二曰一切所有施無所悋三曰常有等心加於衆生
넷째는 ‘나는 일체 중생 모두를 제도하여 부처님의 멸도로써 그들도 멸도하게 하리라’고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중생을 제도했어도 한 사람도 멸도에 이르는 자는 없으니 일체법이 생기는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012_0491_c_12L四曰我皆當度一切衆生以佛滅度而滅度之五曰度衆生已亦無有人至滅度者解一切法無所生故
여섯째는 일체의 모든 법을 분별하여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며, 일곱째는 항상 정진을 더하여 남은 번뇌가 없게 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그 지혜가 널리 들어가 통달하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이며, 아홉째는 일체지(一切智)를 구족하여 하나의 문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며, 열째는 모든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늘이거나 줄이지 않고 탐하고 아끼지 않음으로써 집착하는 모든 것을 끊는 것이다.
012_0491_c_15L六曰分別曉了一切諸法七曰常加精進無所遺漏八曰其慧普入靡所不達九曰具一切智了入一門十曰諸所愛重無有增減不以貪惜斷諸所著
이것이 보살의 발심에 열 가지가 있으면 그 마음은 금강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요집이다.”
012_0491_c_19L是爲菩薩發心十事心如金剛是佛要集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보살은 다시 발심함에 있어 모두 삼계에서 여러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생각 없음도 일으키지 않는다. 또 부처님의 요집이란 6도무극(度無極)을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012_0491_c_20L佛言菩薩復有發心皆於三界不起衆想不起無想又佛要集謂當奉行六度無極
012_0492_a_01L 무엇을 여섯 가지라 하는가? 세속에 빠져 세상을 건지지 못하는 세속의 단바라밀(檀波羅蜜:보시바라밀)이 있고, 또 세속에 떨어지지 않고 세상을 건지는 단바라밀이 있다. 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一心:선정)ㆍ반야 바라밀 또한 그와 같다.
012_0491_c_23L何謂爲六有俗檀波羅蜜沒於世俗不應度世亦有度世檀波羅蜜不墮於俗持戒忍辱精進一心般若波羅蜜亦復如是
혹 세속의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세상을 건지지 못하며, 혹 세상을 건지는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세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세상을 건지지 못하는 세속의 단바라밀인가?
012_0492_a_03L或有行俗般若波羅蜜不應度世或有行度世般若波羅蜜不墮於俗何謂爲俗檀波羅蜜不應度世
보살이 보시하는 것이 많아서 사문ㆍ외도ㆍ범지ㆍ가난한 사람ㆍ거지ㆍ병자에게 공급할 적에 굶주린 이에게는 밥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는 물을 주며, 수레ㆍ코끼리ㆍ말ㆍ평상ㆍ침구ㆍ의복ㆍ금ㆍ은ㆍ보배ㆍ아내ㆍ아들ㆍ남자ㆍ여자ㆍ나라ㆍ읍ㆍ빈터ㆍ마을과 그 밖의 가진 것 모두와 여러 가지 물건들을 애석할 것 없이 모두 은혜롭게 베풀 수 있다.
012_0492_a_06L於是菩薩廣有所施供給沙門外學梵志貧窮乞丐不安己者飢者與食渴者與漿車乘象馬牀臥衣被金銀珍寶妻子男女國邑墟聚外諸所有若干種物無所愛惜悉能惠捨
그러나 이것을 보시하고는 나를 헤아리고 그 보시한 바에 의지하여 ‘지금 나는 양식을 주었고 저 사람은 그것을 받았다. 나는 시주요, 탐하고 아끼는 바가 없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단바라밀을 행하였다. 이제 보시를 받는 이는 베푼 사람의 마음에 보답하고 나아가 일체 중생들에게 미칠 것을 원해야 하며, 다시 내가 베풀도록 권유하고 도와 중생들이 영원히 안온을 얻게 해야 한다’라고 한다.
012_0492_a_11L作是施已計於吾我猗其所施今我出飬彼人受之我爲施主無所貪惜以從佛教行檀波羅蜜所施者以反施心願及一切衆生之還此勸助令我所施當使衆生永得安隱
이렇게 보시를 한 이에게는 세 가지 집착과 걸림이 있다. 세 가지 집착과 걸림이란 첫째 나를 헤아리는 것이며, 둘째 다른 이라고 헤아리는 것이며, 셋째 망상으로 헤아리며 보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세상을 건지지 못하는 세속의 단바라밀이라 한다. 왜 그런가? 세속에 얽매어 있어 초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012_0492_a_16L作是施者有三著㝵何謂爲計吾我計他人計妄想施是爲俗檀波羅蜜不應度世何者爾纏緜在俗不得度故
무엇을 세속에 떨어지지 않고 세상을 건지는 단바라밀이라 하는가? 세 가지를 깨끗이 하는 것이다. 세 가지란 첫째 보살이 보시할 때에 나라고 하지 않으며, 둘째 받는 이가 취하는 것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셋째 보시하면서 보답을 바라는 망상을 일으킨 적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세 가지라고 한다.
012_0492_a_19L何謂度世檀波羅蜜不墮於俗能淨三品何謂爲於是菩薩若布施時不得吾我不見受者而有所取有所施曾妄想而求還報也是謂爲三
012_0492_b_01L 보살의 보시는 일체 중생을 권유하고 돕는 효용이 있다. 중생에게 보시하되 받는 이가 취하는 것이 있다고 보지 않으면 곧 더할 나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권유하고 돕는 효용이 되며, 그것이 취하는 음식을 살피거나 보지 않는 법이니, 이것을 곧 세상을 건지는 단바라밀이라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세상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012_0492_a_23L有菩薩施以用勸助一切衆生若施衆生不睹受者而有所取則用勸助於無上正眞之道彼不察見所取食法是則名曰度世檀波羅蜜所以者何得度世故
세속에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왕성한 5음에 덮인 것을 말하니, 이 5음을 버리면 곧 세상을 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 나라는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의지하는 곳도 없어서 어디에도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이것을 세상을 건지는 것이라고 한다.
012_0492_b_05L何謂在俗謂五盛陰之所覆能捨此五則曰度世其無吾我無所想念亦無所猗悉無所著曰度世
만일 자신이 계율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이가 계율을 깨뜨린 것을 말한다면 법다운 행이 아니다. 또 약간의 제자를 일깨워 교화하고는 ‘나로 인해 제도되었다’라고 하고 ‘나는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구제하리라’고 하며, 스스로 몸이 있다고 헤아려 본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세상을 건지지 못하는 세속의 시바라밀(尸波羅蜜:지계바라밀)이다.
012_0492_b_08L若已受戒謂他毀禁不應法若復開化若干弟子因我得度當成佛救濟衆生自計有身不解本是俗尸波羅蜜不應度世
비록 이미 계율을 지녔더라도 나라고 헤아리지 말며, 다른 이가 법을 깨뜨리고 금계를 어지럽힘을 보지 않고 모두 평등하게 그들을 제도하며, 생사도 버리지 않고 무위도 의지하지 않으며 중생을 제도했더라도 근본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 또한 그와 같다.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세상을 건질 수 있고 집착하는 것이 있으면 세속에 떨어진다.
012_0492_b_11L雖已持戒不計吾我不見他人毀法亂禁等濟之不捨生死不猗無爲雖度衆生悉了無本忍辱精進一心智慧復如是無所著者則應度世有所著者則墮於俗
또 모든 세간의 여러 가지 서소(書䟽)ㆍ주술(呪術)ㆍ장구(章句)ㆍ산계(算計)와 5경(經)ㆍ6예(藝)와 왕자의 전적과 신선의 일 등을 배운 지혜로 바라는 것이 있으면 이것을 세속에 떨어진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012_0492_b_16L又諸世閒書疏呪術句算計五經六藝王者典籍神仙之所學智慧而有悕望是爲墮俗般若波羅蜜
세간에서 희망하는 것이 있는 것을 지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공ㆍ무상ㆍ무원의 법을 깨달아 3세에 평등하여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으며, 3도(塗)에 평등하여 법신이 하나라는 것을 알며, 생사에 있지도 않고 멸도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일체를 일깨워 교화하고 두루 머무르는 곳이 없으면, 이것이 세속을 건지는 반야바라밀이며 바로 부처님의 요집이다.”
012_0492_b_19L若於俗閒所有希望不以爲慧曉空無相無願之法平等三世無去來今等於三塗解法身一不在生死不住滅度開化一切普無所住是爲度世般若波羅蜜是佛要集
012_0492_c_01L이 말씀을 하셨을 때 천왕불의 국토 7나술(那術:나유타) 보살이 모두 무소종생법인을 얻었으며,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하늘에서는 온갖 꽃비가 내려 그 큰 광명이 널리 시방을 비추었다.
012_0492_b_23L此語時天王佛國七那術菩薩悉逮得無所從生法忍三千大千世界六反震動天雨衆華其大光明普照十
“또 부처님의 요집이란 들어갈 처소인 보살지(菩薩地)를 말한다. 무엇을 지(地)의 처소라고 하고, 들어간다고 하는가? 일체법 어디에도 들어갈 곳은 없으니, 모든 법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일체법은 또한 잃을 것도 없다. 도지(道地)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또 생각할 것도 없으며, 그 지를 닦고 다스려도 처소는 볼 수 없다.
012_0492_c_04L又佛要集者謂菩薩地所入之處何謂爲地所云入者於一切法悉無所入諸法無來亦無有去一切諸法亦無所失不念道地亦無所想修治其地不見處所
그 지를 닦아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이 닦아 배우는 제1주(第一住)에 열 가지 법이 있다. 무엇을 열 가지 법이라 하는가? 첫째 그 성품을 맑고 온화하게 하며, 둘째 모든 형상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셋째 평등심으로 중생을 제도하며, 넷째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모든 가난한 이를 구제하며, 다섯째 착한 벗을 몸소 가까이하며 미치지 못한 점들을 물어 아는 것이다.
012_0492_c_08L何謂修治其地菩薩修學第一住者有十事法何謂爲十一曰淸和其性二曰愍哀哀諸有形三曰等心欲濟衆生四曰好喜布施救諸窮乏五曰親近善友諮啓不逮
여섯째 경전을 찾아 익혀서 의혹을 교화하고 깨우치며, 일곱째 가업을 버릴 생각을 자주 하고 살림살이를 그리워하지 않으며, 여덟째 부처의 몸을 구하며 그 모양 없음을 통달하고, 아홉째 법시(法施)를 활짝 열어 미치지 못하는 자들에게 보이며, 열째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을 없애고 항상 지성과 신의로 받드는 것이다. 이것이 처음 발심한 보살이 행할 열 가지 법이다.
012_0492_c_12L六曰習求經典開化所疑七曰數念捨家不慕居業八曰志求佛身達之無形九曰開闡法施以示不及十曰蠲除自大常奉誠信是爲初發意菩薩所行十法
또 보살은 제2주를 행하며 항상 여덟 가지 법을 간절히 받들어 행해야 한다.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 계율을 받들어 청정히 하고 더러운 것에 물들지 말며, 둘째 효순함을 항상 닦으며 은덕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고, 셋째 세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욕을 근본으로 삼으며, 넷째 공손하고 삼감을 받들어 닦고 항상 기쁘고 즐거운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012_0492_c_17L又菩薩行二住常當慇懃奉行八法何謂爲八一曰奉戒淸淨而無沾污二曰常修孝順念報恩三曰得住勢力忍辱爲本四曰修恭恪常懷悅豫
다섯째 일체 중생 종류를 버리지 않고, 여섯째 끝없는 연민을 행하여 잊거나 버리지 않으며, 일곱째 스승과 어른을 받들고 공경하며 세존처럼 보며, 여덟째 모든 도무극에 힘써 나아가고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덟 가지 법이다.
012_0492_c_21L五曰不捨一切衆生之類六曰行無極哀未曾忘捨奉敬師長視如世尊八曰精進務求諸度無極是爲八
보살이 행할 제3주에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 널리 듣기를 구하며 만족하지 않고, 둘째 활짝 드러나게 널리 보시하여 의식의 법을 벗어나고, 셋째 일으킨 덕의 바탕으로 불국토에서 권유하고 도우며, 넷째 한량없는 생사의 환난을 싫어하며, 다섯째 늘 부끄러움을 가지고 항상 참괴심(慙愧心)을 품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법이다.
012_0493_a_01L菩薩行三住有五法何謂爲五一曰求於博聞而不厭足二曰開闡顯施離衣食法三曰所興德本勸助佛土四曰患厭無量生死之難五曰住於羞恥常懷慚愧是爲五
012_0493_a_01L보살이 행할 제4주에는 다시 열 가지 법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 법인가? 첫째 한가한 곳에 살기를 익혀 뜻이 항상 고요하며, 둘째 그 한계와 절도를 알아 마음으로 만족하며, 셋째 희롱ㆍ조소ㆍ잠꼬대를 버리며, 넷째 항상 삼가며 계율을 지켜 깨뜨리거나 범하지 않으며, 다섯째 5욕을 싫어하여 조화로운 땅에 처하는 것이다.
012_0493_a_06L菩薩行四住復有十法何謂爲十習在閑居志常寂靜二曰知其限節心在止足三曰棄捐調戲嘲囈四曰常愼禁戒未曾毀犯五曰厭五所欲處調和地
여섯째 그 마음을 내어 영원히 성취하는 데까지 이르며, 일곱째 가진 것 일체를 모두 다 보시하며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고, 여덟째 그 마음이 언제나 용감하여 겁내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며, 아홉째 가진 것 일체를 애석히 여기지 않으며, 열째 모은 덕의 바탕을 중생들에게 베푸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다.
012_0493_a_11L六曰而發其心永至成就七曰一切所有皆能惠施心無所著八曰其心常勇不懷怯弱九曰一切所有無所愛惜十曰所集德本以施衆生是爲十
보살이 배울 제5주에는 다시 열 가지 법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 집안일을 버리며, 둘째 비구니를 멀리하며, 셋째 종족과 간탐과 질투의 생각을 버리며, 넷째 많은 무리들이 모여 심란하고 시끄러운 곳을 떠나며, 다섯째 성내며 다투는 근본을 푸는 것이다.
012_0493_a_15L菩薩學五住復有十法何謂爲十一曰捨於家業二曰遠比丘尼三曰棄捐種姓慳嫉之念四曰離於憒鬧衆會之黨五曰而釋瞋恚鬪訟之本
여섯째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고 다른 이를 헐뜯지도 않으며, 일곱째 10악과 뽐내는 마음을 없애며, 여덟째 4도(倒)의 불순한 가르침을 베어 버리고, 아홉째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잘라 버리며, 열째 장애가 되는 망령된 생각의 집착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다.
012_0493_a_19L六曰不自歎身不毀他人七曰除於十惡憍慢之意八曰常刈四倒不順之教九曰翦於貪婬瞋恚愚癡十曰去於罣㝵妄想之著是爲十
012_0493_b_01L보살이 배울 제6주에서는 6도무극을 갖추고 여섯 가지 일은 익히지 말아야 한다. 익히지 말아야 할 여섯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 그 마음을 고요히 가지고 성문을 구하지 말며, 둘째 그 마음을 밝고 환하게 가져 연각을 그리워하지 말며, 셋째 그 마음에 일체 중생을 버리지 말라.
012_0493_a_23L菩薩學六住者當具六法諸度無極不習六事何謂爲六一曰其心靜然不求聲聞二曰其心明了不慕緣覺三曰其心不捨一切衆生
넷째 구걸하는 자를 보고 겁내지 말며, 다섯째 근심스럽고 걱정되는 법은 애초에 수행하지 말며, 여섯째 높은 자리와 비단으로 꾸민 자리를 그리워하지 말라. 이것이 익히지 말아야 할 여섯 가지 일이다.
012_0493_b_04L四曰見乞求者不懷怯弱五曰未曾修行愁慼之法六曰不慕高處綺飾之座是爲
보살이 배울 제7주에서는 스무 가지 일을 버려야 한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첫째 몸이라고 헤아리지 않으며, 둘째 사람이라고 헤아리지 않으며, 셋째 오래 산다고 헤아리지 않으며, 넷째 목숨이라고 헤아리지 않으며, 다섯째 아주 없어진다고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012_0493_b_07L菩薩學七住捨二十事何謂二十不計身不計人不計壽計命不計斷
여섯째 영원하다고 헤아리지 않으며, 일곱째 바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여덟째 응보(應報)의 소견을 헤아리지 않으며, 아홉째 이름과 물질을 보지 않으며, 열째 5음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012_0493_b_09L不計常不望想不計報應見不見名與色猗於五陰
열한째 4대를 탐하지 않으며, 열두째 6입에 의지하지 않으며, 열셋째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열넷째 악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열다섯째 집착하는 것 없음에서 길이 편안한 것이다.
012_0493_b_11L十一不貪於四大十二依於衰入十三不著於三界十四惡不親近十五永安無所著
열여섯째 없는 경계에 대해 짓는 것이 없으며, 열일곱째 항상 부처와 내지 구경에 집착하지 않으며, 열여덟째 일찍이 62소견에 순종한 적이 없으며, 열아홉째 모든 법을 죄다 알고 공을 비방하지 않으며, 스물째 근본이 없음을 죄다 알아서 도를 희망하지 않는 것이다. 이 법을 행함으로써 스무 가지 일을 갖추게 된다.
012_0493_b_13L十六無界無所作十七尚不著佛乃至究十八未曾順從六十二見十九解諸法不誹謗空二十悉知無本不悕望道以行此法具二十事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공(空)의 행을 분명히 깨달으며, 무상(無相)에 밝고, 무원(無願)을 분별하며, 3장(場)을 깨끗이 닦으며, 항상 가엾은 생각을 품고, 중생을 사랑하며, 중생이라고 헤아리지 않으며,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하고, 지문(止門)과 무종생법인(無從生法忍:무생법인)과 일어남이 없는 거룩한 지혜를 분명히 이해하며, 1품의(品義)를 펴고, 여러 가지 생각을 없애며, 모든 망상을 버리며, 모든 삿된 소견을 버리며,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며, 고요히 지(地)를 관하며, 그 마음이 조화로워지며, 해칠 생각을 품지 않게 되며, 결박과 집착에 물들지 않게 된다. 이것이 스무 가지이다.
012_0493_b_17L何謂二十曉了空行明於無想分別無願修三場常懷愍哀慈於衆生不計衆等觀諸法明解止門無從生法忍無起聖慧宣一品義蠲除衆念去諸妄想捨諸邪見滅塵勞穢寂然觀地其心調和志不懷害不染結著是爲二十
012_0493_c_01L제8주 보살은 네 가지 법을 행해야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 마음으로 중생에게 들어가 신통과 지혜로써 그들을 일깨워 교화하며, 둘째 불국토의 공함을 보고 본 것을 구경까지 미치게 하며, 셋째 부처님 몸에 머리 조아리며 미치지 못한 것을 묻고 받아들이며, 넷째 이미 부처님 몸을 보았으면 관하여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 법이다.
012_0493_c_01L第八菩薩當行四法何謂爲四心入衆生以神通慧而開化之見佛土空所觀睹者令逮究竟稽首佛身咨受不及旣見佛身觀而審諦爲四
또 네 가지 법이 있다. 첫째 중생의 근본을 모두 환히 알아서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보이며, 둘째 불국토를 깨끗이 장엄하고 은근히 여환삼매(如幻三昧)를 힘써 배우며, 셋째 중생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을 따라 해탈시키고 제도하며, 넷째 중생이 태어나는 5취를 살펴서 쫓아가 그들을 풀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 법이다.
012_0493_c_06L復有四法具足曉了衆生根隨其所好而爲示之嚴淨佛土慇懃精學如幻三昧從其衆生好喜應脫而濟度之察於衆生所生五趣逐而解之是爲四
제9주 보살은 좋은 원의 근본을 분별하고 배워 그 서원한 바에 따라 빨리 성취해야 하며,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답화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타라ㆍ마휴륵 등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들이 말하는 언사를 식별하여 곧 변재로써 그 음향을 따라 그들을 위해 설법해야 한다.
012_0493_c_10L第九菩薩當分別學善願之本從其所誓輒得成就識別諸天鬼神沓和阿須倫迦留羅眞陁羅摩休勒人與非人所說言辭則以辯才隨其音響而爲說法
태 안에 있을 때부터 모두 깨달아 분명히 알며, 나아가 태어나 땅에 떨어져서는 종족과 권속이며 집에서 지내다가 출가하고 불수(佛樹:보리수)아래 앉아 도량을 장엄하는 일체의 공훈을 구족하고, 불법을 빠짐없이 두루 갖춘다.
012_0493_c_15L從在胎中悉曉了及生墮地種姓眷屬在家出家佛樹下莊嚴道場一切功勳具足佛靡不周悉
제10주 보살은 곧 여래ㆍ지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니, 만일 이 주처(住處)에 들어가면 그 지(地)를 곧 모든 부처님의 도지(道地)라 한다. 이를 부처님의 요집이라 한다.
012_0493_c_18L第十菩薩則當名之如來至眞若入此住處其地者乃謂諸佛之道地也號佛要集
또 부처님의 요집은 문자로 설해진 것과 평등하고, 또 문자로 설해진 공문(空門)에 평등하게 들어간다. 무엇이 문자로 설해진 공문인가? 일체법은 모두 공이다. 왜 공문이라 하는가? 미래의 법을 생겨날 것이 없게 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의 탐욕의 문에서 그 집착을 없앴기 때문이다.
012_0493_c_20L又佛要集於文字所說亦等入於文字所說空何謂文字所說空門一切諸法悉爲空門以何謂空令當來法無所生諸法欲門除所著故
012_0494_a_01L그 도문(度門)이란 모든 법의 구경과 본말을 널리 드러내는 것이며, 그 행문(行門)이란 일체 모든 법은 놓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어 빠지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 것이며, 그 명문(名門)이란 일체법이 이미 이름과 글자를 벗어나 있고 그 이름은 본래 깨끗하여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것이다.
012_0494_a_01L其度門者宣暢諸法究竟本末其行門者一切諸法無放無捨不沒不生其名門者一切諸法已離號字其名本淨無逮無失
그 경문(輕門)이란 모든 법의 업신여기는 미혹과 은애(恩愛)의 근본과 인과응보와 인연으로 생기는 것들을 모두 건너는 것이며, 그 순문(順門)이란 모든 법을 널리 펴서 조절하고 안정시켜 항복받는 것이며, 그 박문(縛門)이란 일체법을 풀어 고요함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012_0494_a_04L其輕門者悉度諸法輕慢之惑及恩愛根報應因緣之所由生其順門者宣暢諸法調定降伏其縛門者解一切法令興寂寞
그 분문(焚門)이란 모든 법을 태워 없애 매우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그 염문(焱門)이란 일체법에 거리낌도 없고 집착도 없고 해탈도 없는 것이며, 그 취문(趣門)이란 모든 법의 귀의처인 음향을 끊어 없애고 근원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012_0494_a_08L其焚門者燒除諸法令甚淸淨其焱門者於一切法無有罣㝵無著無脫其趣門者斷除諸法所歸音響不捨元本
그 여문(如門)이란 근원을 환히 깨달아 나아가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며, 그 수문(隨門)이란 일체법을 받들어 그것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 처문(處門)이란 일체법에 또한 처하는 곳이 없어 근심과 걱정을 무너뜨리지도 않는 것이며, 그 작문(作門)이란 모든 법으로 만들어진 종성을 보지 않는 것이다.
012_0494_a_11L其如門者曉了元本不進不動其隨門者從一切法而發起之其處門者於一切法亦無所處不懷憂慼其作門者不見諸法所造種姓
그 등문(等門)이란 일체법에서 평등을 받들어 닦아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 구문(垢門)이란 모든 법을 헤아려 더러운 것을 벗어남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흠이 없는 것이며, 그 수문(受門)이란 모든 법을 거두어 취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깊고 묘한 것에 뜻을 두어 6입과 일체법에서 마음이 영원히 고요해지는 것이다.
012_0494_a_15L其等門者於一切法奉修平等而不退轉其垢門者計於諸法以離垢穢本末無疵其受門者攝取諸法而不可得志於深妙於六事入及一切法意得永寂
그 안문(岸門)이란 일체법을 저 언덕으로 건너게 하여 저것과 이것이며 건너고 건너지 못함을 보지 않는 것이며, 그 생문(生門)이란 모든 법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을 얻을 수 없는 것이며, 그 사문(思門)이란 일체법이 모두 고요해져 생각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음도 않는 것이다.
012_0494_a_19L其岸門者一切諸法令度彼岸不見彼此度與未度其生門者不得諸法生老病死其思門者一切諸法悉爲寂靜不念不捨無著不著
012_0494_b_01L 그 법문(法門)이란 법계가 항상 존재하며 곧 이로써 수시로 모든 경전을 일으키고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그 적문(寂門)이란 일체법이 담박하고 적막한 땅에 있어 환난이 없는 것이며, 그 허문(虛門)이란 일체법이 모두 허공과 같아 처음과 끝이 없고 머무름도 없는 것이다.
012_0494_a_23L其法門者法界常住則以隨時興顯諸經其寂門者一切諸法皆在澹泊靜寞之地而無患難其虛門者切諸法皆如虛空無本末無住
그 진문(盡門)이란 모든 법이 죄다 다하여 물러나지도 않으며 모두 또한 영원히 소멸한 것이며, 그 주문(住門)이란 모든 법이 움직이는 것도 없고 흔드는 자도 없는 것이며, 그 혜문(慧門)이란 그 지혜를 따라 익히고 행하는 것도 없으며 어떤 아는 자도 없고 또 모르는 자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소견도 없는 것이다.
012_0494_b_03L其盡門者諸法悉盡而不退轉悉亦永滅其住門者諸法無動無能搖者其慧門者因從其慧無所習行悉無能知亦無不知無思無見
그 사문(斯門)이란 일체의 모든 법은 응하거나 응하지 않는 것도 없고 합하거나 흩어짐도 없으며 그 언사는 빈 것이며, 그 천문(闡門)이란 비록 모든 법에 노닐기는 하지만 모든 문을 제거하는 것이며, 그 개문(蓋門)이란 일체법에서 가리고 덮은 모든 것을 제거해 공하여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 6사를 버리게 하는 것이다.
012_0494_b_07L其斯門者一切諸法無應不應亦無合散曠其言辭其闡門者雖遊諸法蠲除諸戶其蓋門者於一切法去諸覆蓋使知空無棄捐六事
그 염문(念門)이란 모든 법에 있어 변화로 생긴 것을 소멸해 기억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 것이며, 그 이문(已門)이란 모든 법이 다 공을 말미암은 것인데도 두려움을 일으키고 인연하여 온갖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 거문(去門)이란 일체법에서 단멸한다거나 영원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012_0494_b_11L其念門者而於諸法消化所生不念不忘其已門者諸法皆由因空而生恐懼緣生衆苦其去門者於一切法捨離斷滅有常之計
그 수문(數門)이란 모든 법에서 생기는 것을 실로 거론할 수 없으므로 모든 수는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것이다. 그 입문(立門)이란 일체법의 머무름은 머무른다지만 머무는 것이 없어 모든 처하는 곳을 버리는 것이며, 그 무문(無門)이란 비록 모든 법이 있지만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서지도 않고 앉지도 않으며 노닐지도 않고 잠자지도 않으며 응하거나 응하지 않는 것도 없는 것이다.
012_0494_b_14L其數門者悉於諸法不擧所生諸所有數無高無下其立門者一切法住住無所住除諸所處其無門者雖在諸法無來無去不立不坐不遊不寐無應不應
그 구문(具門)이란 모든 법을 구족하게 보존하였으되 여섯도 없고 도(度:바라밀)도 도가 아님도 없어 마치 허공처럼 두루 어디에도 처소가 없는 것이며, 그 음문(陰門)이란 모든 법이 다 5음이고 일어나도 일어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며, 그 향문(響門)이란 일체법은 음성이 없어 이른바 메아리도 없고 길이 문자와 언사가 벗어났음을 아는 것이다.
012_0494_b_19L其具門者存於諸法具足無六無度不度無所周遍猶如虛空其陰門者皆於諸法解知五陰起無所起其響門者解一切法無有音聲所謂無響永離文辭
012_0494_c_01L 그 차문(差門)이란 모든 법을 분명히 알아서 비록 방일에 처하더라도 빨리 내달림이 없는 것이며, 그 고문(固門)이란 모든 법을 분명히 알아 굳고 억센 것을 흩어 길이 멸도하게 하는 것이며, 그 소문(消門)이란 온갖 법을 죄다 통달하고 그 끝까지 환히 알아 처소가 없고 끝과 처음이 없고 또한 나는 것도 없는 것이 마치 세존과 같은 것이다.
012_0494_b_23L其差門者了於諸法雖處放逸而無馳騁其固門者明知諸法解散堅强永令滅度其消門者悉達諸法了其邊際而無處所無有終始亦無有生猶如世尊
문자로 헤아려도 감당할 수 없으며, 언사를 갑절이나 늘여도 또한 있는 것이 없으며, 다시 이름과 문자도 없고 말도 없고 담화도 없으며, 향하는 곳을 잡을 수 없고 글도 없고 읽을 것도 없다. 왜냐하면 비어서 속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이와 같아서 이것을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 이것이 총지(總持)에 들어가는 것이다. 없다는 것을 헤아려서 널리 펴고 자라게 하여 공에 드는 것이니, 여기에 들 수 있으면 보살의 행에 가까우리라.
012_0494_c_04L計於文字無能堪任倍加言辭亦無所有亦復無名文字無言亦不談語不執所向無書無讀所以然者虛無實故諸法如是由此而有是入摠持計於無者宣暢入空其能入此近菩薩行
모든 문자에 병이 없는 것을 알아 문자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말고, 모든 법의 말미암은 차제를 분별하고 거룩한 지혜가 음성을 말미암은 것임을 체득하라. 가령 보살이 문자의 공인문(空印門)의 자취에 들어가 듣거나 받아들이거나 기억을 유지하거나 마음에 품거나 남에게 설명한다면 마음이 타락하지 않을 것이며, 곧 스무 가지의 여러 결박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012_0494_c_09L於諸文字解無瘡病不爲文字之所繫著分別諸法所由次第逮得聖慧音聲所由假使菩薩入此文字空印門迹若聞若受執念懷抱爲他人說心不墮落則能蠲除二十衆結
첫째 그 뜻이 강하여 겁을 내지 않으며, 둘째 뜻과 생각을 항상 보존하여 헷갈리지 않으며, 셋째 홀로 거닐어도 꺼리거나 어려워 할 것이 없으며, 넷째 그 마음이 굳고 강해 약한 생각을 가지지 않으며, 다섯째 부끄러워하는 뜻이 있어서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012_0494_c_14L其志强而不怯弱意念常存不爲恍惚能獨步無所忌難其心堅强不懷羸劣志在羞恥慚愧不逮
여섯째 마음으로 깨닫고 환히 알아서 모두 통달하며, 일곱째 지혜가 높고 뛰어나 그 빛을 받지 않는 자가 없으며, 여덟째 재주 있는 말솜씨로 어디 하나에도 걸림이 없으며, 아홉째 총지를 이루어 들은 것을 모두 기억해 잊어버리지 않으며, 열째 의심의 그물을 없애 망설임이 없는 것이다.
012_0494_c_17L意能覺了靡不通達智慧巍巍莫不蒙辯才之辭無一滯㝵致摠持所聞悉持未曾忘失除疑網無有猶豫
열한째 통달하여 음침한 생각을 품지 않으며, 열두째 거처에 있건 여러 사람 속에 있건 좋고 나쁘다는 생각이 없으며, 열셋째 말씨가 부드럽고 온화하여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자가 없으며, 열넷째 비록 추한 말을 듣더라도 그것으로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으며, 열다섯째 성품이 사납지 않아 항상 편안하고 자상한 것이다.
012_0494_c_21L十一通達不懷沈吟十二所在遊居在於衆人不懷增減十三言辭柔和無不稽顙十四若聞麤言不以憂十五性不卒暴而常安詳
012_0495_a_01L 열여섯째 머무르는 곳이 환하여 음향을 분멸하며, 열일곱째 5음ㆍ4대ㆍ모든 입ㆍ인과응보와 인연을 환히 알며, 열여덟째 모든 법을 분석해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어 모든 법을 환히 깨닫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 그를 위해 법을 설하며, 열아홉째 옳은 도리와 그릇된 도리며 한계와 한계 없는 것을 알며 지혜를 밝게 깨달고 좋은 방편을 분명하게 알아 수시로 일깨워 교화하는 것이다.
012_0495_a_01L十六住明了分別音響十七了五陰品四大諸入報應因緣十八剖判諸法靡不通達曉了諸法知人心念而爲說十九知處非處限與無限曉了智慧明解善權隨時開化
스물째 진퇴ㆍ출입의 일과 위의ㆍ예절을 식별하고 부끄러움을 알며 굳은 칼을 쥐고 노닐며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일으키는 것이다.
012_0495_a_06L二十識別進退出入之事威儀禮節解了羞恥執堅牢劍所可遊入興發無上正眞之道
이 문자의 공인문(空印文)을 말하였으니, 만일 듣거나 받아들이거나 받들어 지니거나 외우거나 한다면 그렇게 듣자마자 열 가지 공훈을 이루리라. 첫째 태어나는 세상마다 여자 몸을 받지 않으며, 둘째 여러 환난과 여덟 가지 불한처(不閑處)를 버리게 되며, 셋째 머무는 거처가 항상 한가하여 서두르는 생각이 나지 않으며, 넷째 언제나 부처님 계신 세상을 만나 세존을 뵙고 곧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리라.
012_0495_a_09L說此文字空印之門若聞若受奉持諷誦這得聞之致十功勳世世所生不受女身棄捐衆難八不閑所在遊居常得閑暇不懷悤悤常値佛世這見世尊便生悅豫
다섯째 그 마음이 넓어 큰 성인을 공양하며, 여섯째 여래께서 그 마음을 보고 그를 위해 경전을 설하며, 일곱째 그 말씀을 듣고 곧 받들어 행하게 되며, 여덟째 곧 확고부동함을 얻어 물러나지 않게 되며, 아홉째 공의 지혜를 환히 깨달아 무소종생법인을 얻으며, 열째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빨리 이루게 될 것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요집이다.
012_0495_a_13L其心亘然供飬大聖如來見心爲說經典聞其所說輒則奉行便逮得立不退轉曉了空慧逮無從生疾成無上正眞之道是佛要集
또 널리 펴야 할 부처님의 요집이란, 3세에 평등하고 3장(場)을 깨끗이 장엄하며 생기는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 참된 진리의 법을 환히 아는 것이다. 삼계를 분명히 알고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통달하면 자연히 즐거움도 없으며, 단멸도 없고 영원함도 없고 처소도 없고 머무름도 없다.
012_0495_a_17L所可宣佛要集者等於三世嚴淨三場逮無所生了眞諦法解了三界暢婬怒癡自然無樂無斷無常無處無住
그 3승이 1문(門)으로 돌아가 모든 법을 통달하여 다툴 것도 없으며, 같은 부류가 없는 데에 들어가 갈 것도 없고 걸을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고 견줄 것도 없다.
012_0495_a_21L其三乘者歸于一門通達諸法而無所諍入無等倫無行無步無想無比
012_0495_b_01L또 부처를 헤아려 보아도 일찍이 깨달아 최정각에 이른 일이 없으며, 모든 법을 결단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한다. 부처는 지혜에 미치지 못하였고 지혜가 없는 것도 아니며, 번뇌에 합하지도 않고 성냄과 원한도 없고 증득을 취하지도 않으며, 얻지도 않고 걸리지도 않고 또 행할 것도 없으며, 평등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012_0495_a_23L又計佛者未曾覺成逮最正覺不決諸法不知不得佛不逮慧亦不無慧不合塵勞亦無瞋恨亦不取證不得不㝵亦無所行不住平等
부처는 도를 얻지 않았고 잃은 것도 없으며 법도 없고 대중도 없다. 부처는 부처를 얻지 않고 보살도 생각지 않으며 풀지도 않고 묶지도 않으니, 일체 중생은 본래 매우 청정하다. 부처는 법을 보지 않고 듣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으며 또한 가르치는 것도 없다. 부처는 말한 것도 없고 언사도 없다.
012_0495_b_03L佛不得道亦無所失無法無衆佛不得佛不想菩薩不解不縛一切衆生本甚淸淨佛不見法不聞不念亦無所教尊無所說亦無言辭
모든 부처님을 아는 자는 이에 말도 없고 애초에 소리를 연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며, 장차 오는 세상에도 또한 펴는 것이 없어서 사람에게 말하여 가르치지 않으며 지혜도 지혜 아님도 없다는 것을 안다.
012_0495_b_07L解諸佛者乃知無言初不演音於當來世亦無所宣不教人說無慧不慧
부처는 중우(衆祐)가 아니며 또한 중우의 덕을 깨끗이 마친 이도 아니다. 부처는 마시거나 먹지 않으며 남에게 음식을 보시하지도 않는다. 부처는 몸도 없고 형체도 없다. 여래에게 색신이 있다고 관하지 말라. 상호도 없으며 경전과 법계도 없다. 부처는 출현하지도 않고 항상 있는 것도 아니며, 일찍이 멸도한 적도 없었고 멸도할 것도 없으니,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이 영원히 멸도하였기 때문이다.
012_0495_b_09L佛非衆祐亦非淨畢衆祐之德佛不飮食不施人食佛無有身亦無形體莫觀如來有色身也無相無好無有經典及與法界佛不出現亦不常存未曾滅度亦無所滅所以者何一切諸法永滅度故
부처는 혼자 있지도 않고 대중에 거처하지도 않으며, 부처를 볼 수 있는 자는 없고 들을 자도 없으며 공양할 수도 없다. 모든 불법을 헤아려 보아도 여러 가지도 없고 하나도 아니다. 부처는 도를 얻지 않았고 처소도 구하지 않았으며, 법륜을 굴리지도 않았고 또한 물러나지도 않았다.
012_0495_b_14L佛不獨立不處大衆無能見佛亦無聞者無有供飬計諸佛法無有若干亦復非一佛不得道不求處所不轉法輪亦不退還
부처는 거짓 이름이고 부처와 마찬가지로 음성 또한 그러하며, 과거와 미래의 음향도 전혀 다르지 않고 가건 오건 평등하다. 그는 평등하니 곧 한쪽으로 쏠림이 없으며, 그 한쪽으로 쏠림이 없으므로 그는 한량없는 것도 없으며, 그 한량없는 것도 없으므로 그는 죽는 것도 없으며, 그 죽는 것이 없었으므로 의약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님의 요집이다.
012_0495_b_18L佛如假號計如佛者音聲亦如過去當來音響無異去來平等其平等者則無偏黨其無偏黨彼無無量其無無量彼無終亡其無終亡不行醫藥是佛要集
부처가 강설한 바를 선전하는 까닭은 중생을 불쌍히 여겨 제도하고자 함 때문이니, 부처에겐 요집이 없고 분별하지도 않으며 또한 요집의 이치도 강론하지 않는다.”
012_0495_b_22L所以宣傳佛所講者欲以愍傷度衆生故佛無要集亦不分別亦不講論要集之義
012_0495_c_01L천왕여래께서 부처님의 모든 요집인 이 경전의 이치를 강설하셨을 때, 보광세계의 1만 2천 보살들이 모두 다 무소종생법인을 얻었다.
012_0495_c_01L天王如來講說於此佛諸要集經典義時普光世界萬二千菩薩皆悉逮得無所從生法忍
이때 모든 보살들은 수억의 부처님들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오직 천왕여래 한 부처님만 보았다.
012_0495_c_04L時諸菩薩都不自見若干億佛但睹一佛天王如來
그때 문수사리는 인세계(忍世界:사바세계)에 머물면서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012_0495_c_05L是文殊師利住忍世界心自念言
‘오늘 시방 곳곳의 항하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 모두 동방의 불국토인 천왕불의 처소로 찾아와 모여서 함께 부처님의 요집의 법을 널리 펴서 말씀하신다. 나는 차라리 그 세계로 나아가 모든 부처님을 뵙고 경전을 묻고 받으리라.
012_0495_c_06L日十方各恒沙等諸佛世尊悉來集會東方佛土天王佛所普共頒宣佛要集法吾寧可往詣彼世界奉見諸佛咨受經典
나는 항상 두루 다니면서 시방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설법을 들어왔다. 지금 모두들 하나의 불국토에 모이셨으니 이런 때는 만나기도 어렵고 전에 없던 드문 일이다. 위없는 성인들께서 이처럼 나란히 세상에 출현하시는 기회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며 보고 듣기도 어려울 것이다.’
012_0495_c_10L吾常周行至於十方首諸佛聽所說法於今悉集會一佛是時難値希未曾有如是比像無上聖土顯出於世不可再遇難可見
문수사리는 미륵에게 말하였다.
“함께 천왕불이 계신 보광국토로 갑시다. 무수히 많은 부처님들이 10억 년 만에 모두 그곳에 모여 함께 부처님의 요집의 법을 널리 펴서 말씀하시니, 함께 듣고 받으며 아울러 모든 부처님을 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하고 높은 분들께서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만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012_0495_c_14L文殊師利報彌勒曰可共俱往詣天王佛普光剎土無央數佛百千億載悉會乎彼俱同頒宣佛要集法共聽受幷見諸佛所以者何諸大聖尊皆會一處難可値遇
미륵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대답하였다.
“그대는 가고 싶으면 곧 가십시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모이셨다면 그 도덕이 비유할 수 없을 만큼 높고 뛰어나 몸을 볼 수 없고 형상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문수사리여, 형상과 빛으로 여래를 보지 마십시오. 부처님은 곧 법신이니, 법신은 보기도 어렵고 들을 것도 없으며 공양할 것도 없습니다.”
012_0495_c_18L彌勒菩薩答文殊師利曰仁者欲往便可進路不行也所以者何諸佛會者道德巍不可攀喩身不能見亦不堪任睹形聞音文殊師利莫以像色觀諸如來佛者法身法身叵見無聞無飬
문수가 물었다.
“그대는 여래께 공양하지 않습니까?”
012_0495_c_23L文殊問曰卿不供飬於如來乎
012_0496_a_01L미륵은 대답하였다.
“저는 공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ㆍ지진은 공양할 수 없으며 본래 여래도 없고 곧 둘이 없기 때문입니다.”
012_0496_a_01L彌勒答曰吾不供飬所以者何如來至眞不可供飬本無如來則無二故
“둘이 없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012_0496_a_03L文殊又謂所言無二爲何謂乎
“둘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소착(無所著)을 말하며, 헤아릴 수도 없고 약간도 없습니다. 둘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 업(業)을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012_0496_a_04L彌勒答曰其無二者謂無所著不可稱載無有若干所言無二不造二業
무엇이 두 가지 업인가? 이 번뇌를 말하는 것이 바로 성내고 원한을 품는 것이니, 이와 같은 무리들의 생멸의 소견을 일으켜 ‘이것은 계율을 받는 것이고, 이것은 금계를 깨뜨리는 것이다’라고 하며 이것이니 저것이니 망상으로 헤아리는 것이니, 이것을 두 가지라고 합니다.
012_0496_a_06L何謂二業言此塵勞是懷瞋恨興如是輩生滅之見此爲奉戒是爲毀禁妄想彼此斯謂爲二
‘이것은 성문이고, 이것은 연각이며, 이것은 평등각(平等覺)이다’라고 하며 이렇게 망상으로 헤아리는 것이 곧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입니다.
012_0496_a_09L此爲聲聞是爲緣覺斯平等覺妄想如是則爲造二
‘이것은 성문이며, 이것은 연각이며, 이것은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이런 생각을 품는 것이 곧 두 가지 업입니다. ‘이 법을 없애고 그 법을 받들어 행하며 그 법을 증명해야 한다’고 하면 이것이 두 가지 업입니다.
012_0496_a_10L斯爲聲聞爲緣覺爲佛懷如此想則曰爲二除此法奉行其法證明其法此爲二
그 지혜롭고 지혜롭지 못한 것을 분별하고서, 가령 문수께서 이런 두 가지 지혜를 기억하고서 뜻을 나아가고 물러나는 데에 두어 위로 부처님을 헤아린다면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입니다.
012_0496_a_12L分別其慧其不解慧假使文殊念持二慧志在進退上至計佛則造二業
제가 1겁이나 그 이상 동안 모든 두 가지를 강설하더라도 연설하는 변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인가? 모든 두 가지를 헤아리지만 둘이 없는 것이며, 구태여 널리 펴서 하나의 이치[一義]에 들게 하지만 일체법에는 여러 가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012_0496_a_14L我於一劫若復過劫講說諸二所演辯才而無窮極所以者何計諸二者而無有二敢可頒宣皆入一義一切諸法皆無若干
문수가 대답하였다.
“그대의 몸은 지금 큰 전도(顚倒)에 떨어졌습니다. 일체법은 모두 생기는 것이 없는데 억지로 분별하고는 ‘나는 1겁 또는 그 이상 동안 말해도 변재가 끝이 없다’며 갖가지 표현으로 도리어 자신을 찬탄하는군요.”
012_0496_a_18L文殊答曰卿身今者墮大顚倒一切諸法悉無所生强爲分別若干種辭反咨嗟身我於一劫若復過劫辯無窮盡
미륵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문자로 인해 집착해서 하는 말입니다. 일체법을 살펴보면 실로 생기는 것이 없으며, 형상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012_0496_a_22L彌勒答曰因其文字言有所著察一切法實無所生相不可動
012_0496_b_01L이때 문수사리는 다른 보살과 여러 족성자들에게 함께 천왕불께 나아가 모든 여래를 뵙고 말씀을 듣자고 말하였다.
012_0496_a_23L殊師利謂餘菩薩諸族姓子俱共往至天王佛所見諸如來聽受所說
변적(辯積)보살이 문수에게 말하였다.
“여래ㆍ지진은 뵐 수가 없는데 무슨 일로 그대는 그런 가르침으로 함께 여래를 뵈러 가자고 하십니까? 여래께서 어디에 계시기에 뵙고자 하는 것입니까? 일찍이 부처님 말씀을 듣건대 여래ㆍ지진은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012_0496_b_02L積菩薩報文殊曰如來至眞不可得何因仁者而發此教當共往見如來乎如來何在而欲見耶曾聞佛說如來至眞無去無來
지금 3세의 법을 헤아려도 모두 공하고 없는 까닭에 볼 수가 없습니다. 조금 전 문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를 찾아뵙자고 하니, 어떤 눈으로써 여래를 보시렵니까?
012_0496_b_06L今計三世法皆悉空無故不可見向者文殊有此教往見如來以何等眼觀如來乎
육안으로 보시렵니까, 천안으로 보시렵니까? 만일 육안으로 보신다면 육안은 보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안은 공한 까닭에 공은 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천안으로 보신다면, 천안이란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없고서 여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012_0496_b_08L眼見耶爲用天眼若以肉眼肉眼無所以者何肉眼空故空無所見以天眼計於天眼無有想念不以想念可見如來
문수는 말하였다.
“족성자께서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여래는 없고 경전도 없으며, 볼 수도 없고 공양할 수도 없습니다. 변적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어찌 분별한 언사를 칭찬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부처님ㆍ여래께 중생이 오가면서 공양하고 받들어 섬긴다는 것은 모두 문자를 빌린 것이니, 문자는 자연 그대로 공(空)입니다. 그러므로 평등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012_0496_b_12L文殊告曰如族姓子今者所念無有如來亦無經典無見無如辯積意所趣云言寧可稱說分別言辭諸佛如來衆生往來供飬奉悉假文字字自然空以故平等此之謂也
여래께서는 말도 없고 근본도 없고 굴리는 것도 없어서 모두 자연 그대로 공이니, 말하자면 이 두 가지 일은 모두 평등할 뿐입니다. 여래께서는 말도 없고 근본도 없고 굴리는 것도 없으십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분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고, 마땅치 않은 분은 그만두십시오. 저 혼자 가겠습니다.”
012_0496_b_17L如來無言無本無轉悉自然空謂此二事悉平等矣如來無言無本無轉其堪任者可共俱進不肯者已吾當獨往

형상이 없으시되 형상을 나타내며
또한 색에도 머무르지 않으시네.
중생을 일깨워서 교화하려고
몸을 나타내 가르치시네.
012_0496_b_20L無形而現形
亦不住於色
欲以開化衆
現身而有教

부처님에겐 색의 모임이 없고
또한 유위에도 집착하지 않으시나
일체 중생 모두를 제도하기 위해
도사(導師)께선 일부러 몸을 나타내시네.
012_0496_b_22L佛者無色會
亦不著有爲
皆度一切數
導師故現身
諸佛要集經卷上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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