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 유야리(維耶離)의 내씨수원(㮈氏樹園)에서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다.
012_0676_a_04L一時,佛遊於維耶離柰氏樹園,與大比丘衆俱。
1만 8천의 비구들과 8만의 보살들은 모두 훌륭한 성인들로 신통을 이미 통달하였고, 온갖 총지(總持)를 얻어서 열 가지 힘[力]의 지혜를 지녔으며, 머무를 바 없는 데[無所住]에 머무르고, 세 가지 해탈문[脫門]1)을 초월하였다. 선권방편(善權方便)으로 교화를 좇지 않음이 없었다.
3달(達)2)의 지혜로 장애되는 바가 없고, 3세(世)에 머물면서 홀로 존귀하여 이에 짝할 만한 이가 없었다. 생사(生死)의 근원과 본말(本末)에서 일어나는 바를 보았으며, 병(病)에 따라 약을 주어 저마다 소득이 있게 하였다. 법의 성[法城]을 수호하면서 중생을 구제하였다.
네 가지 등심(等心)인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를 행하였으며, 네 가지 은혜[恩]3)로 인연에 따라 다리[橋梁]을 열어 세우고,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일심(一心)ㆍ지혜(智慧)로써 열반으로 건너갔으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법을 이해하여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중생세계로 들어가 나타내면서도 도무지 일으키는 바가 없으며, 모든 퇴전(退轉)하는 이들을 가르쳐 다시 되돌아가지[廻還] 않게 하고, 여덟 가지 불가사의[不思議]로 여덟 가지 액난[難]을 구제하였다. 법신(法身)과 계합하여 보살로 나타내 보이고 혹은 여래(如來)나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이 되기도 하는 것이 마치 햇빛과 같아서 비추지 않음이 없었다.
시방(十方)을 오가되 역시 두루 돌아다님이 없었다. 온갖 법은 마치 허깨비ㆍ요술ㆍ꿈ㆍ아지랑이ㆍ그림자ㆍ메아리와 같아서 모두 아무런 실체도 없다[無所有]고 관(觀)하여, 이(利)ㆍ쇠(衰)ㆍ훼(毁)ㆍ예(譽)와 고(苦)ㆍ낙(樂)ㆍ선(善)ㆍ악(惡)이 영원히 다 없어졌으며, 모든 세간의 법을 초월하여 도량에 이르렀으면서도 평등하여 더하거나 덜함이 없었다.
012_0676_b_01L그의 이름은 보명(普明)보살ㆍ보달(普達)보살ㆍ보지(普智)보살ㆍ보혜(普慧)보살ㆍ보지(普至)보살ㆍ광명(光明)보살ㆍ광염(光焰)보살ㆍ광등(光等)보살ㆍ광영(光英)보살ㆍ광조(光造)보살ㆍ자광(慈光)보살ㆍ자시(慈施)보살ㆍ자계(慈戒)보살ㆍ자인(慈忍)보살ㆍ자진(慈進)보살ㆍ자적(慈寂)보살ㆍ자지(慈智)보살ㆍ자구(慈救)보살ㆍ자호(慈護)보살ㆍ자우(慈雨)보살ㆍ자명(慈明)보살ㆍ자보(慈普)보살이었으니, 이러한 이들이 상수(上手)였고 8만의 보살들도 덕(德)이 모두 이와 같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헤아릴 수 없는 백천(百千)의 대중과 권속들에게 에워싸여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셨으니, 대승(大乘) 업(業)인 무극(無極)의 지혜를 연설하셨다.
012_0676_b_06L爾時世尊,與無央數百千之衆眷屬圍繞,而爲說法,講大乘業無極之慧。
이 성(城) 가운데에 선실(善實)이라는 큰 장자[大長者]가 있었는데, 천(千) 명의 사람들과 함께 각각 손에 7보(寶)의 꽃을 가지고 부처님께 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는, 그 보배 꽃을 함께 부처님께 흩뿌리면서 저마다 서원(誓願)하기를, “시방의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이 부드럽기가 꽃과 같고 뜻이 깨끗하기가 허공과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여래께서는 위신력(威神力)으로 모든 보배 꽃이 허공 가운데에 머물러 있으면서 세존의 위에서 합하여 꽃 일산[華蓋]이 되고, 꽃 일산의 광명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를 널리 비추어 그곳의 보살과 모든 하늘과 백성들이 보지 않음이 없게 하시자, 모든 부처님 세계마다 있는 수없는 백천억의 보살들이 부처님께로 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한쪽에 앉았다.
이때 자보(慈普) 등 8만 보살과 백억의 제석천[天帝釋]ㆍ범왕(梵王)과 30억 범천(梵天)의 모든 신묘(神妙)한 하늘들의 10억 권속과 정거천(淨居天)의 20억의 시종(侍從)과 악마의 아들[魔子]과 도사(導師)들과 5천억의 기생들이 다함께 따라와서 부처님께로 와서 발아래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012_0676_c_01L또 아사세왕(阿闍世王)과 8만 인, 바사닉왕(波斯匿王)과 5만 인, 유야리왕(維耶離王)과 여러 높은 8만 4천 인, 울선왕(鬱蟬王)과 2만 인, 수두단왕(輸頭檀王)과 9만 인, 구이나갈왕(拘夷那竭王)과 6만 인 등, 이와 같은 모든 왕들이 저마다 데리고 온 관속(官屬)들도 헤아릴 수 없었는데, 모두가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땅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또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청신사(淸信士)ㆍ청신녀(淸信女)와 모든 하늘ㆍ용ㆍ신(神)ㆍ아수륜(阿修輪)ㆍ가류라(迦留羅)ㆍ진타라(眞陀羅)ㆍ마휴륵(摩休勒)ㆍ인(人)과 비인(非人) 등, 헤아릴 수 없는 수(數)로도 비유할 수조차 없이 많은 이들이 부처님께로 와서 땅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저마다 부(部)를 나누어서 혹은 앉기도 하고 혹은 서 있기도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대중 가운데 계셨는데, 그 위신이 특히 존귀하여 마치 해가 처음 나온 것과 같고 또한 별 가운데의 달과 같았으며, 마치 수미산(須彌山)이 큰 바다에 우뚝 솟아서 모든 곳을 두루 비추는 것 같았다. 세존께서 놓으신 몸의 광명은 밝디 밝고, 거룩한 지혜는 끝이 없어, 온갖 것을 두루 비추어 제도하지 않음이 없었고, 4품(品)이 우러러 쳐다보는 것이 마치 어둠 속에서 광명을 보듯 하였다.
이 모임 가운데에 보명(普明)이라는 보살이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가지런히 하고, 단정히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012_0676_c_13L於是會中有菩薩,名曰普明,從坐起整衣服,長跪叉手以偈讚佛:
큰 자애(慈哀)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고 5음(陰)의 덮임에 눈 먼 이들을 위하여 없는 눈을 열어 바로 보게 하시며 듣지 못한 이를 교화하여 도(道)로써 밝히십니다.
012_0676_c_15L大慈哀愍群黎, 爲陰蓋盲冥者;
開無目使視瞻, 化未聞以道明。
세간에 처하시되 마치 허공과 같고 또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으시며 마음이 청정함은 그보다 더 뛰어나시나니 위없는 성인[無上聖]께 머리 조아려 예배하나이다.
012_0676_c_17L處世閒如虛空, 若蓮花不著水;
心淸淨超於彼, 稽首禮無上聖。
모든 법은 본래 아무 것도 없어서 마치 아지랑이와 물속의 달과 같고 그림자ㆍ메아리ㆍ요술ㆍ허깨비ㆍ파초와 같다고 관하시며 삼계(三界)를 환히 아신 것도 역시 그와 같나이다.
012_0676_c_19L觀法本無所有, 如野馬水月形,
影響幻化芭蕉, 曉三界亦如是!
한량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겁(劫)으로부터 공덕을 쌓으심이 셀 수조차 없으니 자심(慈心) 등의 정(定)으로 널리 교화하시어 중생들 모두가 그 은혜를 입었나이다.
012_0676_c_21L從無量難計劫, 積功德不可數;
慈心等定廣化, 衆生類皆被荷。
012_0677_a_01L 삼계 그것은 꿈과 같아 깨고 나면 모두 소멸하여 좋고 싫음이 없으며
생사(生死)와 나[吾]의 본말(本末)도 황홀하여 아무 것도 없음을 환히 아시나이다.
012_0676_c_23L了三界其若夢, 覺悉滅無適莫,
生死吾之本末, 斯恍惚無所有。
부처님의 광명은 비추지 않음이 없고 거룩한 상호(相好)는 헤아리기 어려우며 도(道)는 높고 뛰어나서 비교할 이 없으니 그러므로 머리 조아려 시방에 예배하나이다.
012_0677_a_02L佛光明靡不炤, 威相好難計量;
道巍巍無等倫, 故稽首禮十方。
본래 시방을 위하여 내신 뜻은 액난(厄難)을 건지고 중생을 구제함이며 이미 얻으신 원(願)은 허공보다 더하므로 모든 중생 은혜 입지 않은 이 없나이다.
012_0677_a_04L本發意爲十方, 拯厄難濟群庶;
已獲願過於空, 一切人莫不蒙。
보리수에 앉아 힘으로 악마를 항복시키시고 한량없는 깨달음과 도(道) 이루셨으며 모든 법이 스스로 그러함을 아신지라 다른 재주 구한 바 없으셨나이다.
012_0677_a_06L坐佛樹力降魔, 逮無量覺道成;
解諸法本自然, 於異術無所求。
대중이 부처님께 올린 7보의 꽃은 허공에서 꽃 일산을 이루고 그 광명 시방세계에 널리 비추자 많은 중생들 모여 법의 가르침 받나이다.
012_0677_a_08L衆上佛七寶華, 在虛空成華蓋;
光普炤十方國, 群黎集受法誨。
성인의 높으신 덕 수미산보다 뛰어나고 지혜 광명은 해와 달보다 더욱 빛나며 널리 펴신 바는 비유할 수 없으니 대성웅(大聖雄)께 머리 숙여 예배하옵니다.
012_0677_a_10L聖尊德喩須彌, 智慧光超日月;
所敷演不可喩, 故稽首大聖雄。
그때 보명(普明)보살은 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 뒤에 길게 무릎 꿇고 합장하고 물었다.
012_0677_a_12L爾時,普明說此偈讚佛已,長跪叉手,問曰: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모인 모든 이로서 보살의 뜻을 낸 이나 아직 내지 않는 이나, 물러섬이 없음을 얻은 이나 아직 얻지 못한 이나,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어 일생보처(一生補處)로서 도덕을 이룬 이나, 5도(道)에 있으면서 생사에 속박된 이라도 여래께서는 더욱 가엾이 여기셔서 깊이 무극의 보장[無極寶臧]을 연설하시고 나타내십니다.
아직 해달(解達)하지 못한 이로 하여금 활연히 깨달아 어리석고 어두움이 광명을 밝게 보게 하여 물러섬이 없는 지위를 얻게 하소서. 과연 보조(普照)라는 이름의 삼매가 있어 깊고 얕은 것[深淺]과 소멸하고 흩어지는[消散] 두 가지의 법으로써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에 빨리 이르게 할 수 있겠나이까?”
012_0677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초일명(超日明)이라는 삼매가 있으니, 보살이 이것을 체득하면 득입(得入) 못하는 바가 없느니라. 비유하면 햇빛이 나타나면 가려지고 장애되는 바가 없는 것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교화 받는 이에게 세 곳[三處]의 마음과 뜻[心意]이 하는 바를 밝혀 아직 뜻을 내지 못한 이로 하여금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이미 도의 마음[道心]을 낸 이면 물러서지 않게 되어서 되돌아가지 않고 일생보처에 이르게 하며, 이미 보처를 얻으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하느니라.
몸[身]을 보지 않고 사람을 헤아리지 않으며, 수명(壽)은 있지 않고 목숨[命]은 보존되지 못하며, 4대(大)는 공(空)하고, 5음(陰)은 실체가 없으며, 6쇠(衰)4)는 근원이 없고, 7식(識)은 주인이 없다.
012_0677_b_12L不見身、不計人、不有壽、不保命,四大空,五陰無根,六衰無原,七識無主;
인자한 마음[慈心]을 행하고 온갖 것을 가엾이 여기며 뜻[忘]이 화열(和悅)하고, 모든 근(根)을 보호하며 미움과 사랑[憎愛]이 없고, 많은 대상 경계를 여의며, 행(行)이 흩어지지 않고 합해짐도 없으며, 보시[施]가 없되 간탐하지 않고, 계율[戒]이 없되 범하지 않으며, 인욕[忍]이 없되 성내지 않고, 정진[進]이 없되 게으르지 않으며, 고요함[寂]이 없되 어지럽지 않고, 지혜[智]가 없되 어리석지 않다.
세속[俗]을 저버리지도 않고 도(道)만을 오로지 닦지도 않으며, 법을 강설(講說)하는데 몸[身]을 위하지 않으며, 온갖 것을 위하고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또한 끊지도[斷] 않고 또한 속박도 없으며, 푸는[解] 바도 없고 행(行)이 평등하며, 수면(睡眠)을 물리치고 모든 개(蓋)가 없으며, 입(入)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對)를 따르지 않으며, 마음이 스스로 이해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법(法)을 어기지 않고 중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012_0677_c_01L시방의 사람을 가엾이 여김이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과 같고 어머니가 어루만져 키우는 것과 같으며, 자식이 어버이에게 순종한 것과 같고, 은혜는 자기의 몸처럼 여기며, 자신의 몸[形]을 위하지도 다른 사람을 위하지도 않으며, 또한 법(法)을 위하지도 않고 보살의 도를 행하며, 청아한 뜻을 넓히고 사악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성문(聲聞)에도 생각이 없고 연각(緣覺)에도 뜻이 없으며, 바라는 생각을 구하지 않고, 피차(彼此)의 행을 버리며, 온갖 의지하려는 마음도 없고, 3세를 보지 않으며 삼계(三界)의 근본을 환히 알고, 마음과 뜻과 의식[心意識]을 쓰지 않으며, 도(道)는 허공과 같다고 알고, 과거ㆍ미래ㆍ현재를 여의며, 큰 지혜[大慧]에 깊이 들어가 일체 모든 것은 본래 없으며[本無], 큰 방편을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든 가지이니라.”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든 가지의 행(行)을 준수하여 닦으면, 곧 초일명삼매에 빨리 이르게 되느니라.
012_0677_c_05L佛語普明:“是八十行,若遵修者,則疾得至超日明三昧。
비유하면 해가 떠오르면 일시에 백 가지의 곡식과 초목을 두루 비추어 하늘을 향하고 있는 온갖 종류가 성숙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 정(定)을 체득한 이는 온갖 상ㆍ중ㆍ하의 행(行)에 평등하게 들어가서 나타내지 못할 바가 없으면서 모두 그것을 제도하나니, 마치 달이 완전히 차서 밤의 어두움을 녹이는 것과 같으니라.
큰 정[大定]의 광명으로써 나아가 3구(垢)5)를 물리쳐 생각의 가려짐이 제거됨으로써 최상의 도(道)를 보는 것이니, 마치 훌륭한 의왕[大醫王]이 온갖 약을 선택하여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함으로써 각각 낫게 하는 것처럼, 무극(無極)의 지혜로써 뭇 근본이 되는 행[本行]을 따라 법을 설하여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구하는 것을 물리치고 신통(神通)을 얻게 하느니라.
또 마치 사공이 견고한 배를 저어 사람을 오고 가게 하여 막힘이 없게 하는 것처럼, 열반을 나타내 보이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멈출 곳을 개화(開化)하고 삼계의 공(空)을 알게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하게 하여 중생을 구하고 섭수하는 것은 마치 강건한 사자가 숲에 숨어서 모든 짐승들을 포섭하여 복종시키는 것과 같다.
이 정(定)을 얻은 이는 개사(開士)로서 홀로 걷고 3세를 두루 유행(遊行)하며, 62견(見)과 96종의 외도 등 모든 삿된 곳에 떨어진 이로 하여금 모두가 항복하여 여의게 하느니라.
012_0677_c_18L獲斯定者開士獨步周旋三世,六十二見九十六徑諸墮邪者皆爲降棄。
받은 도(道)의 가르침의 3품(品:상품ㆍ중품ㆍ하품 혹은 3位)을 좇아 처소를 얻는 것은 마치 전륜왕(轉輪王)이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면 천하가 우러르는 것과 같다.
012_0677_c_20L從受道教三品得所。如轉輪王典領四域天下戴仰;
012_0678_a_01L 이 정(定)의 4등(等)은 4의행(意行)으로써 4대(大)를 분별하고 중생의 생ㆍ노ㆍ병ㆍ사와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을 제도 해탈하여 본래부터 없음을 알아 대도(大道)에 이를 수 있게 함은, 마치 큰 바다가 수많은 흐름들을 모두 다 받아들이며 모든 보배와 기묘하고 특이한 보물을 포함하는 것과 같이 온갖 법문과 총지(總持)와 변재(辯才)와 모든 정의문(定意門)이 모두 그것으로 돌아가느니라.
가령 어떤 이가 뜻을 내어 위없는 지혜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이 정의 뜻[義]을 존중하여야 바르고 참된 깨달음[正眞覺]을 빨리 얻느니라.
012_0678_a_16L假使有發意, 欲至無上慧;
當尊斯定義, 疾獲正眞覺。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定)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중생들을 가엾이 여김이 마치 자기의 골수(骨髓)와 같이 여기는 것이요, 온갖 덕[衆德]의 근본을 심으면서 그의 보(報)를 바라지 않는 것이고, 4대(大)가 공(空)하여 마치 꿈과 같은 줄 아는 것이며, 5음(陰)의 근본은 아지랑이와 같음을 헤아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의 일이니라.”
정의 뜻[定意]을 얻고자 하는 이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를 마치 자기의 골수처럼 하며, 덕(德)을 세우되 그 보답을 생각지 않느니라.
012_0678_a_21L欲獲定意者, 愍哀衆生類; 猶如己骨髓,
立德不想報。
몸의 4대(大)는 공하고 황홀하여 마치 꿈과 같다고 관하며 5음(陰)은 본래 없는 줄 헤아려야 하느니 비유하면 마치 아지랑이와 같으니라.
012_0678_a_23L觀身四大空, 恍惚其若夢;
計五陰本無, 譬若如野馬。
012_0678_b_01L 만일 지혜로운 이라면
곧 나[我]라고 헤아리지 않고 온갖 근원을 자세히 연마하여 속히 이 정(定)의 뜻을 체득하리라.
012_0678_b_01L設使解慧者,
則不計吾我; 縷練一切原, 速逮斯定意。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중생을 감싸 기르는 것이 마치 갓난아이를 다루듯 하는 것이요, 항상 큰 자비를 행하고 너와 나를 구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어리석은 이를 권하고 가르쳐서 도(道)로써 보여 밝히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정진하면서 도(道)에 뜻을 두되 구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이니라.”
중생을 가엾이 여겨 기르고 보살핌이 마치 부모가 자식 사랑하듯 하며 큰 사랑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고 평등한 마음으로 좋아함과 싫어함이 없느니라.
012_0678_b_06L養護哀衆生, 如父母愛子; 大慈不勞望,
等心無適莫。
권면과 교화로 어리석은 이를 이끌어 큰 도의 광명을 보게 하며 밤낮으로 바른 법을 구하여야 비로소 이 정을 체득할 수 있느니라.
012_0678_b_08L勸化誘愚憃, 使睹大道明;
夙夜樂正法, 乃能逮斯定。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보시하되 평등하게 하고,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니면서 온갖 것에 범함이 없으며, 인욕(忍辱)의 힘으로 대승의 갑옷[大乘鎧]을 입고,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아서 게으르거나 그만두는 일이 없이, 한마음으로 뜻을 가다듬어 여러 가지 생각이 없게 하고, 지혜가 밝고 뚜렷하여 삼계(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이니라.”
보시하되 바라는 바가 없고 계를 지키는 것이 산이나 땅과 같으며 인욕으로 큰 힘을 세워서 대승의 갑옷을 입을지니라.
012_0678_b_14L布施無所望, 護戒如山地; 忍辱立大力,
則被大乘鎧。
바르게 수행하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르거나 쉬는 일이 없을 것이며 일심으로 선(禪)삼매를 닦고 지혜에는 거리낌이 없어야 하느니라.
012_0678_b_16L善修大精進, 未曾有懈休;
一心禪三昧, 智慧無罣㝵。
스스로 연(緣)의 변화를 보지 않으면 그로부터 생기고 짓고 세워지는 것들이 세 곳[三處]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없어져 일심에 머무는 바가 없게 되느니라.
012_0678_b_17L不自睹緣變,
所從興造立; 三處忽現沒, 一心無所住。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定)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열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사람에게 편안함을 베풀고, 모든 더러운 해악[穢害]을 제거하며, 진로(塵勞)를 녹여 없애고, 따로 떨어짐[別離]을 화합시키며, 예순두 가지 사견(邪見)의 의심을 풀어 다스리고, 나[我]가 없음을 환히 아는 것이다.
012_0678_c_01L
편안함을 베풀어 중생을 기쁘게 하고 모든 더럽고 해치려는 생각을 없애게 하며 진로(塵勞)를 녹여 없애고 어지럽게 흩어짐을 화합시키느니라.
012_0678_c_01L施安悅衆生, 離諸穢害想; 消化于塵勞,
和合亂別離。
예순두 가지의 소견을 다스리고 나[我]가 없는 줄 분명히 알며 언제나 열 가지 덕 좇고 숭상하며 3취를 구제하고 뽑고자 하느니라.
012_0678_c_03L釋六十二見, 曉了無吾我;
常遵崇十德, 欲濟拔三趣。
모든 재난에 허덕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를 가엾이 여김은 마치 눈 없는 소경이 스스로 함정과 어둠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012_0678_c_04L矜愍諸八難,
往來周旋者; 猶如盲無目, 不自覺沒冥。
때문에 대비(大悲)를 일으켜 많은 위액(危厄)을 구제하고 해탈시키면서 깊고 원대한 지혜[深遠慧]를 분별하면 이 정의 뜻[定意]을 빠르게 증득하느니라.
012_0678_c_05L以故興大悲, 救脫衆危厄; 分別深遠慧,
疾得斯定意。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마음을 오로지 도에 뜻을 두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법에 대하여 자유자재로 분별함이 영묘(英妙)하며, 기뻐하는 얼굴로 온갖 것을 대하면서 중생을 자세히 관찰하고, 모든 법은 본래 없다는 것을 믿고 아는 것이다.
언제나 힘써 정진하면서 도(道)를 폐하지 않고, 큰 뜻을 세우되 영원한 안온에 뜻을 두며, 법을 따르고 보호하여 큰 정[大定]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곱 가지 일이니라.”
012_0678_c_11L常力精進不廢于道,建立大意志存永安,將順護法至獲大定;是爲七事。”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佛時頌曰:
마음을 다잡아 오로지 도에 뜻을 두고 일찍이 딴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본래 공(空)함을 분별하며 온화한 얼굴로 모든 것을 대하라.
012_0678_c_13L策心專志道, 未曾興他念; 分別於本空,
和顏向一切。
세 가지 해탈문[三脫門]을 환히 알아 모든 법에는 근본이 없음을 이해하며 언제나 정진(精進)을 닦으면서 도의 가르침을 폐하지 않느니라.
012_0678_c_15L曉了三脫門, 解諸法無根;
常修於精進, 不廢於道教。
크고 넓은 뜻을 세워서 돕고 길러 영원한 안온에 이르며 구제하면서 미혹을 깨우쳐 주어야 초일명정(超日明定)을 얻게 되느니라.
012_0678_c_16L建立大弘意,
將養到永安; 救護悟迷惑, 得超日明定。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열 가지 일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아(我)가 없고, 다른 사람[人]이 없으며, 수(壽)가 없고 명 (命)이 없으며, 성문(聲聞)이 없고, 연각(緣覺)이 없으며, 두 가지의 법에 처하지 않고, 보살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부처님을 보려고 생각조차도 않고, 생사(生死)에도 있지 않으며, 열반에도 처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나[我]와 다른 사람[人]을 보지도 않고 자신의 수명[壽]과 목숨[命]도 헤아리지 않으며 성문이라는 마음도 없고 연각이란 생각도 없애네.
012_0678_c_22L不見吾我人, 不計身壽命; 無有聲聞心,
蠲除緣覺想。
012_0679_a_01L 두 가지 법에 처하지 않고 보살에 대하여도 집착하지 않으며
부처님을 뵈려고도 생각지 않고 있다 없다는 극단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012_0679_a_01L不處法有二, 無著於菩薩;
不想睹佛身, 不住有無際。
확연히 스스로 보지도 않아야 비로소 온갖 것이 공(空)임을 보며 인연(因緣)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비로소 정의 뜻[定意]을 이루게 되느니라.
012_0679_a_02L㸌然不自見,
乃睹一切空; 因緣不復起, 乃得成定意。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여덟 가지 일의 법[八事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사(邪)와 정(正)을 평등하게 보아 두 마음이 없고, 언제나 삼보를 염(念)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으며, 깊은 법의 뜻을 연설할 때에는 일찍이 담화(談話)하는 일이 없으며, 업(業)은 대승(大乘)을 닦으면서 연각과 성문[弟子]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짓는 바는 법에 수순하면서 부처님 도[佛道]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평등하게 모든 사(邪)와 정(正)을 관하여 두 가지에 다 함께 처(處)한 바가 없으면서 언제나 삼보를 염하여 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하라.
012_0679_a_10L等觀諸邪正, 二俱無所處; 常念于三寶,
令慧不斷絕。
깊은 뜻의 법요(法要)를 연설할 때는 일찍이 다른 생각을 내지 말 것이며 업(業)은 대승에 이바지함으로써 소승(小乘)을 사모하지 않게 되느니라.
012_0679_a_12L說演深義要, 未曾生他想;
業以供大乘, 不慕於小乘。
짓는 바는 언제나 법에 수순하고 부처님의 바른 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평등하게 방편을 행하고 모든 생멸[起滅]의 인연 없앨지니라.
012_0679_a_13L所造常順法,
不釋佛正道; 方便行平等, 除諸起滅緣。
뜻의 그침은 지극히 고요하면서 일찍이 산란함을 일으키지 말 것이며 한마음으로 정(定)의 뜻에 두면 시방의 부처님을 밝게 볼 것이니라.
012_0679_a_14L意止至寂寞, 未嘗興憒亂; 一心存定意,
明睹十方佛。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빛깔은 본래부터 공(空)인 줄 알고, 소리는 부르는 메아리와 같으며, 냄새는 마치 바람 등과 같고, 맛은 연(緣)이 합한 것과 같으니, 부드럽고 섬세한 것을 바라지 않고, 식(識)은 요술과 같은 줄 알며, 모든 법은 꿈과 같음을 환히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곱 가지이니라.”
빛깔이란 본래부터 공하고 귀의 소리는 마치 부르는 메아리와 같으며 코로 맡는 냄새는 바람과 같고 부드럽고 섬세한 것은 더욱 허물임을 환히 알며,
012_0679_a_20L解色之本空, 耳聲猶呼響; 鼻香風氣等,
細滑更則過。
모든 식(識)은 요술이요 허깨비이며 온갖 법은 곧 꿈인 줄 알 것이니 이와 같이 능히 분별하게 되면 초일명정(超日明定)을 얻게 되느니라.
012_0679_a_22L了諸識幻化, 一切法則夢;
能分別如是, 得超日明定。
012_0679_b_01L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얻는 다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마음이 시방의 사람이나 비인(非人)에게 평등하고, 공양에 대한 이익에 좋아함과 싫어함이 없으며, 만일 강설한 경이 있었으면 나중에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값진 재색(財色)을 탐하지 않으며, 미묘하고 비유하기조차 어려운 법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이니라.”
평등한 마음으로 시방의 사람이나 비인에게 차별 없이 대하며 만일 공양을 얻게 되더라도 그 뜻에 좋아함과 싫어함이 없어야 하느니라.
012_0679_b_05L等心於十方, 人非人無異; 若獲於供養,
其志無適莫。
가령 경의 강설을 받은 이면 죽을 때까지 다투거나 잊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재물과 이익을 바라지 않으면서 깊이 들어가야 비로소 정(定)을 체득하느니라.
012_0679_b_07L假使講經者, 沒命不訟闕;
不望他財利, 深入乃逮定。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이 정을 빠르게 증득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공(空)ㆍ무상(無相)ㆍ불원(不願)의 법을 초월하고, 3달지(達智)를 환히 알며, 변재(辯才)에 거리낌이 없고, 큰 지혜를 수행하여 무극(無極)으로 건너가며, 선권방편으로 득입(得入)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의 일이니라.”
이때 삼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하늘에서는 향기로운 꽃비가 내렸으며, 공후(箜篌) 등 악기는 연주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고, 날짐승과 들짐승 모두 모여들었다. 시방의 보살들도 각자 날아와 저마다 모든 꽃을 수미산만큼 가지고 부처님 위에 뿌렸고, 여러 가지 의복과 값진 보배로써 세존께 공양하였다.
012_0679_c_01L“큰 성인[大聖]을 만나기 어려움은 마치 우담발화와 같은데 때마침 만나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법도 매우 드물어서 만나기 어려운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크나큰 신통으로 수없는 겁으로부터 공덕을 쌓으시어 크고 넓은 자애를 품으시니,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와 선권방편 모두가 중생을 위한 것이어서 저절로 얻게 되는 그 공(功)은 헛되이 버려지지 않았나이다.
저희는 좋은 이익을 위하여 여래를 뵙게 되었고, 깊고 미묘한 법의 초일명정 (超日明定)을 듣게 되었으니, 유쾌하고 유쾌하나이다. 어찌 이보다 더한 요행이 있겠사옵니까?”
012_0679_c_05L吾爲善利,得見如來,聞深妙法超日明定。快哉快哉!何乃僥倖至如斯乎?”
부처님께서는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말한 바와 같아서 하나도 다름이 없느니라. 깊은 법을 믿고 능히 좇아 닦는 이는 당연히 초일명정의 열 가지 지혜의 덕을 체득할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4등(等)을 완전히 갖추고, 4은(恩)에 물림[厭]이 없으며, 큰 지혜를 좇아 숭상하고, 큰 정[大定]을 널리 펴며, 신통이 곧 통달한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수없는 보살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다.
012_0679_c_13L說是語時,無數菩薩得不起法忍,不可計人發無上正眞道意。
그때 이구목(離垢目)이라는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의 배움이라 하고, 무엇을 성문의 배움이라 하며, 무엇을 연각의 배움이라 하나이까?”
012_0679_c_15L爾時有菩薩,名離垢目,白佛言:“何謂菩薩學?何謂聲聞學?何謂緣覺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끝이 없고[無限] 걸림이 없으면서[無礙] 그 마음이 태연한 것을 보살의 배움이라 하는 것이요, 한계가 있고 걸림이 있으면서 그 마음에 치우침이 있는 것을 바로 성문의 배움이라 하며, 대승(大乘)을 바라고 사모하면서도 나아가고 물러감에 지혜가 없어 마음이 중간에 머뭇거리는 것[中跱]을 바로 연각의 배움이라 하느니라.”
012_0680_a_01L 다만 모든 중생을 위할 뿐 자기 몸은 생각지 않으며, 4등(等)의 마음인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를 따르고, 또한 4은과 지혜로써 어짊과 사랑을 베풀며 사람을 이롭게 하되, 온갖 것에 평등하고 이롭게 하면서 위액(危厄)과 궁핍을 구제하며, 그들을 교화하여 도(道)를 닦게 하고 지혜를 닦게 하면서 보살도를 배우게 하는 것이니라.
스스로 제 몸의 허물을 반성하면서 다른 이의 결점은 살피지 않고 공경하는 것을 마치 부모와 같이 하고 자식과 같이 하고 제 몸과 같이 하면서 평등하여 다름이 없게 하며, 몸소 공경하는 덕으로써 온갖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온갖 사람들을 가엾이 여긴다.
원수나 친한 벗에 따라 특별히 다른 마음이 없고, 몸이 공(空)하여 중생의 어느 곳에나 처하며, 나 자신도 그러할 뿐[自然]이요, 모든 법 또한 자연 그대로이며 도의 법[道法]도 자연 그대로요, 부처님 법도 자연 그대로이며, 온갖 것은 본래부터 없어서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는 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끝이 없는 것이니라.
생사의 근원에서 열반을 구하여 찾되 열반을 보지 않고, 열반의 근원에서 생사를 구하여 찾되 역시 생사를 보지 않고, 생사를 미워하지도 않고 열반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머무를 바 없는[無所住] 데에 머무르는 것이 마치 햇빛이 두루 비추면 모든 것에 빠짐없이 이르되 역시 가고 오는 것이 없고 광명도 생각이 없는 것과 같다.
012_0680_b_01L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생사의 3독(毒) 가운데 있다 하여도 더러워지는 바도 없고, 가령 열반의 청정한 곳에 있다 하여도 역시 청정해시는 바가 없나니, 다 같이 중생을 제도하면서 구제하지 않는 바가 없느니라. 비록 들어감이 있다 하더라도 역시 나고 들고 오고 가고 돌아다님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걸림이 없다[無礙]고 하느니라.
도의 마음[道心]은 한계가 없어서 일정한 곳에 있지 않고 사람도 없고 마음도 없으며 또한 중생을 제도한다는 마음도 없어, 마음은 일체법과 같아서 그 나아가는[趣] 데와 같은 것이니, 이렇게 되면 곧 평등한 데로 나아가고, 그 평등한 데로 나아가면 곧 바르고 평등하게 깨달아 삼계도 없느니라.
제도하되 제도하는 바가 없고, 생(生)하되 생하는 바가 없으며, 도적(道跡)도 본래 없고 왕래(往來)도 본래 없으며, 돌아오지 않음(不還)도 본래 없고 집착하지 않음(無著)도 본래 없으며, 연각도 본래 없고 삼계도 본래 없으며, 중생도 본래 없고 불도(佛道)도 본래 없으며, 이 본래 없다는 것도 없어야 비로소 진실로 본래 없는 것이요 좋아하거나 싫어할 바도 없나니, 이것을 바로 그 마음이 태연하다고 하느니라.”
이구목이 또 물었다. “무엇을 한계[限]가 있다고 하고 무엇을 걸림[礙]이라 하며, 무엇을 그 마음에 치우침이 있다 하나이까?”
012_0680_b_14L離垢目又問:“何謂爲限?何謂爲㝵?何謂其心偏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고 죽는 삼계의 우환을 두려워하고 미워하여 열반이 제일이라고 말하며, 그대로인 법과 몸을 싫어하는 괴로움을 분명히 모르고 수없는 겁 동안 진로(塵勞)에 돌아다니는 것을 꺼리며, 보시ㆍ지계ㆍ인욕ㆍ일심ㆍ정진과 지혜를 배우면서 게으르지 않고 머리ㆍ눈ㆍ귀ㆍ코ㆍ골수ㆍ뇌ㆍ살과 팔다리 등 있는 바를 베풀어 주는 것이 한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이런 마음을 미리 품고서, 곧 물러나 보살의 법을 배우지 않고 몸을 없애려고 하는 이것을 바로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012_0680_c_01L이미 아라한이 되어서 제도할 삼매(三昧)와 선식(禪息)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보게 되는데, 온갖 근본을 미리 볼 수가 없고 병에 따라 약을 주지도 못하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어도 더러운 것이 흐르는 이 깨끗하지 못한 몸을 관찰하고는 즐거운 것이라고 보지 못하는 것이, 마치 원수나 도적과 같고 살무사와 같고 독과 같다고 하면서 일찍 열반을 증(證)하려고 하나니, 이것을 바로 걸림[礙]이라 하느니라.
열반에 머무르면서도 광명을 좋아하고 어둠을 싫어하며, 모든 법에는 도무지 근본이 없음을 알지 못하여 입장을 밝혀서 공의 지혜[空慧]를 모르니, 이것을 바로 그 마음에 치우침이 있다 하느니라.“
012_0680_c_03L住于泥洹好明惡冥,不了諸法都無根本,而求處所不知空慧,是謂其心偏局。”
이구목이 또 부처님께 물었다. “무엇을 중간에 머뭇거리는 것[中跱]이라 하나이까?”
012_0680_c_05L離垢目又問佛言:“何謂中跱?”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뜻을 냈으면서도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가 모두 허망한 생각하며, 세존의 32상과 80종호를 얻고자 하면서도 위신과 거룩한 덕은 중생과 매우 다르다고 여기며, 본래부터 여래의 교화가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모르면서 몸과 목숨을 나타내 보이며 도리어 여래의 교화를 구하고 있다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이 나를 제도하려 하면서도 본래 공함을 알지 못하면서 4등심을 행하고 4은에 집착하는 것이요, 공(空)에 이르러서도 소견[見]이 없고, 인(因)을 위하여 그침이 없으며, 진퇴(進退)를 알지 못하고 공의 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이며,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도 선권방편과 법신의 밝음이 없으면서 제도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연각의 배움이라 하느니라.”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에 수없는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향해 발심하였다.
012_0680_c_15L說是語時,無數天人皆發無上正眞道意。
이때에 장자의 아들 정교(淨敎)가 5천 무리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가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모든 무리들은 부처님 법을 좋아하여 모두 도(道)에 뜻을 두고 있나이다. 어떠한 행(行)을 쌓아야 도의 지혜[道慧]에 이르게 되며, 어떠한 법을 시행하여야 부처님 국토[佛土]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언제나 기쁘게 하는 뜻[喜意]을 받들어 화창하고 기쁜 얼굴빛으로 중생들을 대하면서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요, 언제나 보호하는 마음을 행하여 중생에게 권하고 가르쳐서 도의 뜻을 내게 하고, 이미 도의 뜻을 일으켰으면 불퇴전에 이르게 하며, 이미 불퇴전하였으면 도량에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이니라.”
언제나 4등심(等心)을 준수하여 얼굴을 화창하게 하고 뜻을 기쁘게 하며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고 불쌍히 여기어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느니라.
012_0681_a_19L常遵四等心, 和顏意志悅; 愍哀衆生類,
矜傷爲雨淚。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은 평등하여 미워함과 사랑함이 없으며 도의 법[道法]으로써 구호하여야 비로소 보살행에 상응하느니라.
012_0681_a_21L心欲度衆生, 等心無憎愛;
救護以道法, 乃應菩薩行。
012_0681_b_01L “또 보살행에는 다섯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금계(禁戒)를 받들면서 범한 바가 없고, 정의(定意)로 뜻을 가다듬어 마음을 담박(淡泊)하게 하며, 지혜로써 공(空)을 알아 일으키는 바가 없고, 5음을 벗어나서 처소가 없게 하며, 삼계를 나타내 보이되 아무 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이니라.”
계율을 지니면서 범하는 바가 없고 삼매로 뜻이 어지럽지 않으며 지혜로써 공(空)임을 분별하고 5음의 무더기를 제도ㆍ해탈하느니라.
012_0681_b_04L持戒無所犯, 三昧意不亂; 智慧分別空,
濟脫五陰聚。
3세(世)의 재액(災厄)을 보면서 그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이며 인연을 따르면서 깨우치고 교화하여 저마다 그 알맞은 바를 얻게 하느니라.
012_0681_b_06L睹見三世厄, 示現在其中;
隨時而開化, 各令得其所。
“또 보살행에는 여섯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가 공(空)이고, 귀로 듣는 것도 소리가 없으며, 코로 맡은 것은 냄새가 없고, 입으로 말한 것은 말이 없으며, 몸에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이 없고, 마음에는 생각[思想]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이니라.”
012_0681_c_01L 보시의 도무극과 계와 인과 정진과 선(禪)과 지혜로 자연(自然)히 통달하며
도의 밝음[道明]이 가장 높으니라.
012_0681_b_23L布施度無極, 戒忍精進禪; 智慧自然達,
道明爲最尊。
“또 보살행에는 아홉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아홉 가지인가? 5음을 없애고, 6쇠(衰)를 버리며, 3구(垢)를 소멸하고, 8난(難)을 제거하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3세를 사모하지 않으며, 아라한의 마음을 여의고, 연각의 뜻을 멀리하며, 언제나 대도(大道)에 뜻을 두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아홉 가지이니라.”
5음과 6쇠를 제거하고 3구와 8난이 없으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고 3세에 처(處)하는 바 없느니라.
012_0681_c_06L除五陰六衰, 無三垢八難; 不著於三界,
三世無所處。
아라한의 마음을 여의고 연각의 생각이 없으며 언제나 큰 도를 사모하고 구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행이니라.
012_0681_c_08L以離羅漢心, 無緣覺之念;
常慕求大道, 斯謂菩薩行。
“또 보살행에는 열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법보삼매(法寶三昧)ㆍ선주(善住)삼매ㆍ무동(無動)삼매ㆍ도무전(度無轉)삼매ㆍ보적화(寶積華)삼매ㆍ일광요(日光耀)삼매ㆍ제리의(諸利義)삼매ㆍ현재(現在)삼매ㆍ혜광요(慧光耀)삼매와 용맹복(勇猛伏)삼매로서, 이로써 초일명(超日明)삼매를 얻으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또 이구목아, 보살의 보시는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간탐(慳貪)하는 이를 개화하여 인색한 마음을 없게 하고, 보살이 준수하는 계율은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방자(放恣)한 이를 교화하여 재앙과 허물이 없게 하며, 보살의 인욕은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화내고 성내는 이를 교화하여 조금도 마음에 걸림이 없게 한다.
012_0682_a_01L 보살의 정진은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게으르거나 그만둔 이를 교화하여 부지런히 힘쓰게 하며, 보살의 일심(一心)은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익히리니 마음이 산란한 이를 교화하여 뜻이 안정되고 고요하게 하며, 보살의 지혜는 하늘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리니 가리고 거리낀 이를 교화하여 거룩한 법을 통달하게 하느니라.
보살은 방편을 행하여 모든 중생을 섭수하고 그들을 선(善)이 되게 교화하여 평등한 깨달음을 이루게 하나니, 모두 다 그 나라에 나게 되며, 보살은 37품(品)을 행하여 중생을 섭수하고 의지(意止)ㆍ의단(意斷)ㆍ근(根)ㆍ역(力)ㆍ각(覺)ㆍ도(道)로 중생을 통섭하여 적연(寂然)하게 하나니, 만일 성불(成佛)한 때에는 모두 다 그 나라에 나게 되느니라.
보살은 큰 모임[大會]에 있으면서 깊고 미묘한 법을 강설하여 꿈틀거리는 미물(微物)까지 모조리 다 초월하고 제도하려 하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 다 그 나라에 태어나며, 보살은 열 가지의 덕을 행하여 그로써 중생을 섭수하고 그들을 모두 교화하여 몸과 입과 뜻을 수호하게 한다.
보살은 경(經)을 설하여 여덟 가지의 재난을 제거함으로써 중생을 섭수하여 8정도(正道)를 행하게 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가 다 그 나라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012_0682_a_18L菩薩說經蠲除八難,以攝衆生行八正道,若成佛時皆生彼國;
보살은 자기 자신을 반성하면서 다른 이의 허물을 구하지 않으며, 중생을 섭수하여 모든 사견(邪見)과 예순두 가지의 의망(疑網)을 여의게 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 그 나라에 태어난다.
012_0682_a_20L菩薩自省不求彼闕,以攝衆生離諸邪見六十二網,若成佛時皆生彼國;
보살은 법을 연설하여 중생을 섭수함으로써 여덟 가지의 속박을 벗어나게 하고 여덟 가지의 해탈을 얻게 하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 그 나라에 태어나느니라.
012_0682_a_22L菩薩說法以攝衆生,脫於八縛得至八解,若成佛時皆生彼國;
012_0682_b_01L보살은 법을 연설하여 여덟 가지 사의(思議)를 없애고 불가사의한 법문의 바다에 이르게 하나니, 만일 성불할 때에는 모두 그 나라에 태어나며, 보살이 법을 연설하여 가령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체득하게 되면 불사(佛事)를 이루어 열반을 나타내 보이며 한량없는 사람들을 제도하여 모두 도(道)를 얻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이구목과 장자의 아들과 5천 권속들은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면서 바로 그때에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체득하였다.
012_0682_b_05L佛說是時,離垢目長者子、五千營從,皆發無上正眞道意,尋時逮得不起法忍。
이때에 견정(見正)이라는 거사(居士)가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언제나 부처님의 소문을 듣고 한번 받들어 뵙고자 생각하였사오나, 죄가 이를 가렸기 때문에 스스로 이를 수 없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그 뜻을 이루게 되어, 뛸 듯이 기쁜 마음 한량없나이다. 세존을 친견함에 싫어함이 없고 법을 들음에 게으르지 않사오니, 오직 크신 은혜만을 더하시어 저로 하여금 세세생생 천존(天尊)을 뵈옵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이를 행하면 언제나 부처님을 여의지 않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언제나 여래의 서 있는 부처님의 형상을 염(念)하고, 경의 깊은 뜻을 듣고는 곧 믿고 받들어 행하며, 비록 부처님을 뵙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래부터 없음을 분명히 알고, 시방의 부처님은 곧 하나의 법신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 일이어서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느니라.
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이로 인해 비록 바로 앞에서 부처님을 뵙는다 하더라도 뵙지 못한 것이니라. 여래가 현재 계시는데도 가서 경을 듣지 않고, 그의 뜻을 탐구하지 않으며, 받들어 행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비록 바로 앞에서 부처님을 뵈었다 하더라도 곧 뵙지 못한 네 가지이니라.
또 부처님을 뵌 어떤 이가 스스로 나[我]를 헤아리고 무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을 알지 못하여 네 가지 뒤바뀜[顚倒]에 떨어지며, 경(經)을 듣고 음성에 집착하여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인 줄 분별하지 못하면, 그런 사람에 있어서의 몸은 곧 없어질 대상이니라.
그러나 부처님께서 멸도하시어 세간에 출현하지 않는다 하여도, 그 사람이 경을 듣고 흔연(欣然)히 마음이 열리는 것이 마치 어둠에서 광명을 본 것과 같아, 여래께서 세속을 따라 변화를 나타내었다는 것을 깨달아 안다.
012_0682_b_21L佛以滅度不現世閒,其人聞經欣然心開,如冥睹明,曉知如來隨俗現化。
012_0682_c_01L 도(道)의 가르침8)을 받들어 행하고 경전을 어기지 않으며, 외도의 사법(邪法)인 예순두 가지 소견을 여의고 네 가지 평등심을 행하되 미워함도 없고 사랑함도 없으면, 부처님께서 비록 멸도하였다 하더라도 뜻의 통달[志達]이 이와 같다면 언제나 서로 뵙고 있는 것이니라.”
다시 물었다. “무엇을 부처님을 뵈었다 하고 무엇을 법을 들었다 하며, 무엇으로 인하여 공양(供養)하였다 하나이까?”
012_0682_c_02L復問曰:“何謂見佛?何謂聞法?何因供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의 몸을 보면서 어떠한 행으로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을까? ‘본래 여섯 가지의 도무극(度無極)으로 온갖 것을 불쌍히 여김이 마치 부모님과 같았으며 아들과 같고 자기 몸과 같이 하면서 4대를 탐하지 않으셨다’고 관하여 알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을 뵙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악마에는 네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악마[身魔]이니, 몸으로 온갖 악[衆惡]과 5음(陰)과 6쇠(衰)를 범하면서 부처님 법에 따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욕진의 악마[欲塵魔]이니, 애욕의 정태(情態)가 잠시도 쉬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양쪽의 나무를 서로 비비면 저절로 불이 일어나 도리어 그 나무를 태우지만 그 불은 물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바람에서도 나오지 않았으며, 땅에서도 나오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네 가지의 악마라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가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요, 밖으로부터 오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이가 형상을 그려 만들 적에 손에 따라서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하거니와, 비록 조건들이 갖추어져 물감이 있고 그림을 그릴 판자가 있고 붓이 있다 하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이가 그리지 않으면 형상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네 가지 악마도 그와 같아서 마음이 이미 견고하여 곧 일으키는 바가 없으면 곧 네 가지 악마도 없느니라.
012_0683_a_01L 왜냐하면 5음은 처소가 없고 4대도 본래부터 없으며 12인연은 단서(端緖)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분명히 깨달아 알면 악마의 일은 없거니와 아(我)ㆍ인(人)ㆍ수(壽)ㆍ명(命)이 있다고 헤아리면, 악마의 견박(見縛:見惑)에 떨어지는 것이니, 몸은 없다[無身]고 분별하여야 비로소 악마를 항복시킬 수 있다.”
012_0683_b_01L또 열 가지의 일을 행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신근(信根)이 첫째이고, 정근(定根)을 근본으로 삼으며, 대자(大慈)를 으뜸으로 삼고, 대애(大哀)를 높이 여기며, 뜻하는 성품[志性]이 부드럽고 모든 신통과 지혜가 바르며, 중생을 건립하고 4은이 우두머리가 되며, 도품(道品)이 으뜸이요, 불법을 수호하는 데에 뜻을 두어 그것의 하인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또 열 가지의 행을 범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열 가지라 하는가? 몸으로는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음행(婬行)을 하지 않고, 입으로는 망언(妄言)ㆍ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기어(綺語)를 하지 않으며, 뜻으로는 에질(恚嫉)ㆍ호의(狐疑)ㆍ사견(邪見)을 갖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땅이 좋은 것ㆍ나쁜 것ㆍ맛있는 것ㆍ쓴 것ㆍ냄새 나는 것ㆍ향기로운 것과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모조리 다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온갖 것을 받아들여 스스로 닦고 세우되,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가 편편한 것이 마치 손바닥과 같다.
뭇 보배와 연꽃으로 장엄되었다고 보면서 수승하고 비유하기 어려울 총지를 이루게 되므로 곧 초월한 계도무극(戒度無極)을 이루게 되느니라.
012_0683_b_17L衆寶蓮華以爲莊嚴,逮成殊勝難喩摠持,則具超越戒度無極。
또 열 가지의 일을 행하여 여덟 가지 재난을 제거하느니라. 성문이나 연각의 승(乘)을 건너 부처님의 덕을 건립하고,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한 모든 일과 연유한 바는 모두 부처님 법을 따르고, 뜻하는 성품[志性]을 엄숙하게 3취(趣)의 액(厄)을 제도하고, 모든 소원을 원만하게 갖추며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012_0683_c_01L몸은 언제나 자비를 행하면서 절도(竊盜)하지 않고 음탕하지도 않으며, 경전을 강의하되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하게 하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다툼을 화해시키되 말이 부드러우면서 거칠지 않으며, 일찍이 교묘하게 꾸며대는 일이 없고 탐욕을 버리면서 보시를 생각하며, 사람들의 안녕과 조화를 위하고 사견(邪見)을 여의면서 바른 법을 즐긴다.
언제나 무상ㆍ고ㆍ공ㆍ비신을 관하여 세속을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법을 판단의 근거로 삼으며, 마음은 스스로 닦고 존립하면서 언제나 미치지 못함을 근심하고, 몸으로는 이로움을 찾지 않고 5음(陰)이 곧 손상시킨다고 보며, 5욕(欲)을 없애려고 하고 부처님 도를 존중하면서 회한(悔恨)을 가지지 않으며, 하늘은 무상하다고 살펴 알고 사람은 마치 꿈과 같다고 관하며 3도(塗)는 가장 괴로운 것이라 그들을 가엾이 여기고 슬퍼하느니라.
어떠한 방편으로써 스스로 생사와 5음의 재난을 구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교화시키느냐 하면, 시방의 사람들이 곧 내 것[我所]이라고 헤아리는 까닭에 그들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려 할 적에, 와서 침범한 이를 보아도 그의 악(惡)을 생각하지 않고, 만일 매우 이롭게 하는 이라도 치우치게 좋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재물은 무상하고 몸은 나의 소유가 아닌 줄 알아 재물이 있으면 능히 보시하고, 착한 벗을 구하여 가까이하고 나쁜 벗을 멀리하고, 뜻을 일으켜 부처님을 향하며, 항시 높은 경전의 뜻을 구하고 세간의 이름을 구하려 하지 않으며, 행은 언제나 공경하고 겸손하며 뜻은 믿음[信]ㆍ계율[戒]ㆍ견문[聞]ㆍ보시[施]ㆍ지혜[慧]와 도(道)에 두고, 의혹과 범금(犯禁)과 해태(懈怠)와 간탐(慳貪)과 우치(愚癡)에 의해 도의 뜻을 버리지 않느니라.
012_0684_a_01L 부모ㆍ형제ㆍ처자ㆍ노비ㆍ객사(客使)에게 나누어 주되 모두 가엾이 여겨 제도하여 3도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삼계를 초월하게 하며, 삼존인 불ㆍ법ㆍ승[聖衆]에 귀명하고 3달지(達智)와 걸림이 없는 지혜를 얻으며 3구(垢)에 더럽힘을 당하지 않는 것이니, 그가 이와 같은 것을 행한다면 그것 그대로가 선주(善住)삼매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사자나 모든 사슴 왕은 뭇 짐승들이 두려워할 만한 위력으로써 항복시키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 스스로 나타나 용맹스럽게 다섯 가지 병기를 잡고 잘 머무르는 총지(總持)를 이루기에 곧 초월하는 인도무극(忍度無極)을 이루느니라.
이에는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인욕을 근본으로 삼고, 믿음의 기쁨[信悅]을 추진력으로 삼으며, 온갖 사람에게 깊고 묘한 법인(法忍)을 가르치고, 모든 번뇌를 흩어 끊으며, 장애됨을 없애고, 몸의 근원을 연모하지 않으며, 수명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고, 모든 신통과 지혜로써 하여, 3탈문(脫文)을 초월하며, 법의 평등함을 관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몸과 입과 뜻을 계호(戒護)하면서 언제나 모든 법으로써 인연을 일으키니, 무엇을 법의 즐거움[法樂]이라 하는가? 부처님 법을 즐기면서 세속의 법을 좋아하지 않고, 즐거이 경전을 들으면서 세간의 언담(言談)을 생각하지 않으며, 대중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면서 세속의 무리에는 가담하지 않고, 다만 삼보(三寶)만을 좋아할 뿐 3구(垢)에는 뜻을 두지 않으며, 즐거이 3처(處)를 제도하면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라.
012_0684_b_01L즐거이 진로(塵勞)를 교화하여서 때가 끼거나 흐려지지 않게 하고, 불국토가 청정한 것을 좋아하여 개화(開化)를 싫어하지 않으며, 즐거이 도법(道法)을 장엄하여 그릇된 법은 장엄하지 않고, 즐거이 3탈문으로 공(空)ㆍ상(相)ㆍ원(願)을 여의며, 무위(無爲)의 법을 즐기면서 속세의 거짓을 즐기지 않고, 깊은 법에 즐거이 들어가되 절개를 잃지 않으며, 즐거이 기쁜 데에 뜻을 두어 성냄과 진실이 아닌 것을 여읜다.
즐거이 8등(等)에 머물러 8사(邪)에는 있지 않고, 예순두 가지의 지혜를 좋아하여 스스로 두 가지의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며, 위없는 법[無上法]을 좋아하여 하열한 것은 좋아하지 않고, 대승의 업[大乘業]을 좋아하여 아라한의 법은 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법의 즐거움이니라.
또 정의(定意)를 빠르게 증득하는 데에 열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인자한 마음으로 사람을 가엾이 여기면서 위해(危害)를 끼치지 않고, 언제나 열 가지의 선행을 행하며 나쁜 행을 멀리 여의고 오로지 한마음으로 도를 닦으며, 부처님 법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 마치 굶주린 이가 밥을 구하듯 목마른 이가 물을 구하듯 하며, 널리 깊은 이치를 존중하고 치우치게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며, 자비로 시방을 생각하여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자기 몸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차츰차츰 대자(大慈)를 익히면서 삼계를 제도하려 하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름이 없이 보아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언제나 법에 대한 생각만을 하기 때문이며, 법을 근본으로 삼고 세속을 죄로 삼기 때문이며, 언제나 중생을 가엾이 여겨 모두 도(道)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무동(無動)삼매이니라.”
012_0684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자연(自然)의 구쇄역사(鉤鎖力士)11)는 용맹스럽고 힘이 강하여 막히는 바가 없어서 모두 열고 물리쳐 남이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영웅으로 모든 예해(穢害)와 진로(塵勞)와 원수를 제거하는 것과 같으니,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의 사방과 네 모퉁이에 큰 바람이 불어오고 여러 가지의 꽃이 부처님 국토에 두루 함을 보고, 분별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총지를 이루므로, 곧 초월하는 진도무극(進度無極)을 이루느니라.
이에는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평등하게 근(根)에 정진하고 정진하는 힘을 근본으로 삼으며, 평등한 방편으로 의지(意止:意志)를 으뜸으로 삼고, 온갖 사람들로 하여금 몸을 탐하거나 좋아하지 않게 하며, 마음과 입으로 수순하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머무른 곳에서 돌아오지 않으면서도 처(處)하는 데가 없으며, 정진을 가장 으뜸으로 삼고 원수를 항복시키며, 부지런히 닦으면서 모든 신통과 미묘한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4대의 몸은 마치 독사와 같다고 생각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두려워하여 처음에서 끝까지 버리지 않는 등의 미혹된 일을 하지 않으며, 자ㆍ비ㆍ희ㆍ호로 기어 다니거나 헐떡거리는 사람과 만물의 무리를 마치 아버지인 듯 어머니인 듯 아들인 듯 자기 몸인 듯이 평등하게 여기면서 차별이 없게 하고, 언제나 도의 뜻을 생각하여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의 생각을 없게 하느니라.
지옥에 떨어진 이의 모진 고통의 우환(憂患)을 마치 자기 몸이 당한 듯하고, 언제나 자신의 허물을 반성하여 그들의 죄를 대신 받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으며, 아귀 세계의 배고프고 목마른 궁핍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몸을 떨고 딱하게 여기며 제도하고 구하여 저절로 안온하게 하려한다.
012_0685_a_01L 법을 밥처럼 먹으면서 5음과 6쇠의 목마름을 제거하며,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을 밥으로 삼고 경의 뜻을 분별하는 것을 음료수로 삼으며, 여섯 가지 법행(法行)을 닦음으로써 현명하고 착한 이가 되며, 드나들면서 걷는 걸음걸이와 정진은 안온하고 편안하느니라.
스스로 지난 세상에서마다 나를 헤아려 도법(道法)을 믿지 못한 죄를 분명히 모르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죄를 범한 이는 마치 깊은 못에 빠진 것과 같고 법을 받들면서 계를 믿는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고 법을 알지 못한 이가 5도에 돌아다님은 마치 수레바퀴와 같이 반복됨을 생각하느니라.
부모를 서로 근심하고 형제를 서로 염려하며 부부간에 서로 연모하면서 지니는 마음이 견고하지 못하거나, 또는 부모를 위할 것인데 도리어 자녀를 위하고 본래 자녀를 위할 것인데 도리어 부모를 위하거나, 혹은 부부간이 다시 원수가 되거나 하여 상하(上下)가 뒤바뀌고 무상(無常)과 근본(根本)이 뒤바뀐 이에게는, 이 보살의 뜻은 언제 그들을 인자하게 생각하면서 깨우치고 교화하여 부처님의 바른 도를 믿고 들게 하며, 무상ㆍ고ㆍ공ㆍ비신임을 믿어 알게 하니, 이것이 바로 도무동(度無動)삼매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도리천(忉利天)의 주도수(晝度樹)와 같이 모든 본래의 행[本行]으로써 5근(根)을 제도하고 중생을 초월하여 마음이 청정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이다.
012_0685_a_14L佛言:“譬如忉利天上晝度樹,以諸本行度於五根,超越衆生心淨如空。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서 뭇 음성과 기악(伎樂)이며 여러 가지가 섞인 영락(瓔珞)으로 그의 몸을 장식하고 사이화(思夷華)로써 그의 몸을 빛나게 하면서 해탈화(解脫華)와 푸른 연꽃이 비 내리듯 하여 그 위에 모시고 있는 것을 보아서, 모든 덕(德)을 총지하여 곧 받아들이게 되므로 선도무극(禪度無極)과 상응하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감관을 조복하여 덕의 근본으로 삼으며, 한마음으로 힘을 삼고 평등으로 방편을 삼으며, 정의(定意)로 산란하지 않고 금계(禁戒)로 근원을 삼으며, 해탈문으로 으뜸을 삼고 정요(定要)에 나아가면서도 있는 바가 없으며, 진로(塵勞)를 녹여 없애고 모든 정(定)을 이루어 사유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또 다섯 가지 일의 행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다섯 가지 계율의 청정함이 마치 밝은 거울과 같이 더러울 바가 없고, 열 가지의 선을 침범되지 않아 두루 갖추게 되며, 도의 뜻을 잃지 않고, 삿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몸을 탐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이니라.
또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성내는 빛을 없애고, 겁약(怯弱)한 마음이 없으며, 간탐(慳貪)하는 뜻을 버리고, 아첨하려는 뜻을 없애며, 분별하여 공(空)을 아는 것이니라.
012_0685_b_14L復有五:除瞋恚色,無怯弱心,棄慳貪意蠲諛諂志;分別解空。
비단 입으로만 언제나 한마음을 닦는다고 할 뿐만이 아니라 행도 어지럽지 않으며, 호귀(豪貴)와 권세(權勢)와 부락(富樂)은 마치 허깨비와 같은 줄 알며, 색(色)은 마치 큰 물거품과 같고 통양(痛痒)은 마치 작은 물거품과 같으며 상(想)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고 생사(生死)는 마치 그림자와 같으며 식(識)은 마치 허깨비와 같다고 관하느니라.
몸은 덕행(德行)을 닦으면서 그릇된 법을 행하지 않으며, 깨우쳐 교화하면서 설법하고, 안온한 바가 많게 하며, 많은 악한 일과 해로운 일을 하지 않고, 도(道)로써 업을 삼아 법을 익히는 것으로써 밥을 삼고, 뜻[義]을 이해함을 음료로 삼으며, 호귀(豪貴)를 그리워하지 않고 법으로써 호(豪)를 삼고 공(空)을 환히 앎으로써 귀(貴)를 삼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적화(寶積華)삼매이니라.”
여기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지혜를 근원으로 삼고, 지(智)의 힘을 최상으로 삼으며, 바른 소견을 으뜸으로 삼고, 평등한 뜻[等意]을 수승한 것으로 삼으며, 몸의 모든 덕을 닦고, 모든 부류에 들어가 거룩한 진리[聖諦]의 상(相)을 갖추며, 평등한 상(相)을 이루고, 지혜로워 음개(陰蓋)가 없으며, 모든 지나간 소견을 제거하고, 불기법인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일이니라.
6정(情)을 관(觀)하되 본래 처소가 없어서 어디서 온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으며, 본래 자연 그대로요 공(空)한 것인데 연(緣)을 만나 일어나는 것일 뿐이니, 비유하면 하늘에서 비가 오되 용(龍)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물로부터 나오지도 않으며 땅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용의 마음으로부터 나오지도 않아서, 모두 인과 연이 합하고 만나야 비로소 이 비를 내리게 하는 것처럼, 6정의 모든 입(入)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오히려 인과 연으로 성립되는 것이요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생사도 그와 같으니, 비유하면 그림 그리는 이가 그림의 대상인 사람ㆍ방ㆍ집ㆍ코끼리ㆍ말ㆍ탈것 등을 그릴 때,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그 대상의 형태나 솜씨가 나타나지 않다가 벽판(壁板)과 소필(素筆)과 채색(彩色)의 기구 등 온갖 연(緣)이 두루 합하고 만나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 몸에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부처님 몸을 떠나지도 않고, 마음과 뜻에 생각이 없어 자연 그대로 허공과 같으며, 차츰차츰 대자(大慈)에 들어가고 또 대비(大悲)와 희호(喜護) 등의 행을 닦되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고 언제나 온갖 중생을 위하면서 또한 구함도 있지 않으며, 몸의 행을 삼가하고 말을 조심하며 겸손하면서 순하며, 마음속의 생각은 부드럽고 아첨이 없고 질박(質朴)하면서 삿됨이 없느니라.
또 여섯 가지의 일이 있어서 빠르게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를 얻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언제나 부처님께 의지하여 머무르고 바르고 참된 도(道)에 들어 마음이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며, 속뜻의 행[內意行]에 대하여 스스로 환히 깨달아 알고, 착한 벗을 만나서 그에게 일을 맡기며, 뜻하는 원[志願]이 너그러우면서 만족하지 않고, 마음이 화합하지 않음이 없고, 지혜가 결핍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이니라.
보살이 도를 수행하되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기대지 않고 안과 밖에도 기대지 않으며, 근본이 되는 법의 가르침에 따르면서 보살의 깊고 묘한 행을 어기지 않고, 대자(大慈)를 멈추지 않으면서 대비(大悲)도 잃지 않으며, 세간의 결핍한 바에 따라 그들을 구제한다.
도를 닦아 바르게 교화하면서 삿되게 가르치지 않으며, 한마음으로 지혜를 향하여 어리석음에 가려지지 않고, 6쇠(衰)는 마치 허깨비ㆍ요술ㆍ그림자ㆍ메아리ㆍ아지랑이와 물속의 달과 같고, 꿈속에서 본 것은 홀연히 그 처소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줄을 밝게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광요(日光耀)삼매이며 감동한 바가 많은 유순법인(柔順法忍)이니라.”
012_0686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의 온갖 보배로 된 목욕하는 못에 그 좌우를 자세히 살피며, 지옥의 고액(苦厄)을 제도하여 넓은 들판에서 노닐게 하며, 기특한 취락(聚落)의 총지에 이르므로 곧 초월한 권도무극(權度無極)을 이룬다고 하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뜻하는 행에 들어가고 중생을 건립(建立)하며, 끝없는 대자비와 두루 한 연민을 근본으로 삼고 심성(心性)이 부드러우면서 싫증을 내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제자(弟子)와 연각(緣覺)의 승(乘)을 버리고, 관(觀)하는 바가 자세하고 참되며, 도의 마음을 인도하면서 다스리고 모든 신통과 지혜로써 불퇴전을 세우고, 넓은 지혜를 깨달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일이니라.
언제나 바른 지혜로써 삿된 견해를 멀리 여의고, 자연히 도를 닦으면서 세속에 미혹되지 않으며, 미묘하고 끝없는 법에 깊이 들어가면서 널리 세속에 들어가며, 세속에 대하여도 속되지 않고 도에 대하여도 의지함이 없으며, 생각이 성스러운 가르침에 이르러 중생을 개화하고, 노(老)ㆍ병(病)ㆍ사(死)로 언제나 신변을 수호하며, 6정을 물리치고 6쇠에 떨어지지 않으며, 7사(邪)를 좇지 않고 언제나 7각(覺)을 섭수하느니라.
소승(小乘)의 참괴재(慚愧財)에 떨어지지 않고 삼계에서 아직 제도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재물을 부끄럽게 여기고 지혜가 넓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재문(財聞)을 널리 들어 짝할 이가 없고 지극히 깊고 먼 지혜로 재시(財施)를 보시하며, 대도(大道)의 지혜재(智慧財)로써 지혜에 들어가 널리 온갖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열 가지의 일이 있어서 불퇴전에 이르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도무극이 있음을 듣고는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법(法)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성중(聖衆)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도(道)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는다.
012_0686_c_01L 보살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법신(法身)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세속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사람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목숨이 있고 없는 것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거나 하지 않으며, 수명이 있고 없는 것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혹은 아귀(餓鬼)에 들어가서 굶주림의 독을 위로하면서 배를 채워 주고, 세속 인연을 따라 가르치고 교화하면서 저마다 그 처소를 얻게 하며, 세속의 법에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기가 마치 햇빛과 같고 밝기는 마치 둥근 달과 같으며, 보살은 불퇴전을 얻어서 많은 변화를 능히 행하고 깨우쳐 제도할 바 있는 데서는 문득 많이 보전하여 제도하며, 모든 고뇌가 있는 이에게는 모두 큰 안락을 얻게 하고, 모든 지혜 없는 이에게는 모조리 다 지모(智謀)를 넓히게 하니, 이것을 바로 제리의(諸利義)삼매를 이룬다고 하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한마음의 정의(定意)로 삼매에 들어, 상념(想念)이 없으며, 오로지 한 뜻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끊으며, 모든 것을 구하지 않고, 법이 모두 공(空)한 줄 알며, 삼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위(無爲)를 좋아하지 않으며, 유위(有爲)를 헤아리지 않아서, 법신을 이해하여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012_0687_a_01L그 향한 방소(方所)에 현재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들으면 언제나 그 방소를 생각하면서 부처님 곁에 모인 사부대중과 그들을 위하여 경법을 설하시는 것을 관하며, 4대(大)는 공하여 땅은 마치 거품 더미와 같고, 물은 마치 아침이슬과 같으며, 불은 마치 번갯불과 같고, 바람은 마치 부치는 부채와 같다고 관찰하며, 4대는 인(因)과 연(緣)이 합하여 이루어졌을 뿐, 본래 아무 것도 없다고 분별하느니라.
스스로 몸의 모습을 관하면서 온갖 감관은 본래부터 실체가 없다고 자세히 살피고, 스스로 통양(痛痒)을 관찰하면서 본래부터 통양은 없는 줄 알며, 스스로 사상(思想)을 관하되 온갖 사상을 자세히 살피면서 본래부터 사상은 없는 줄 알고 스스로 그의 뜻을 관하면서 본래부터 뜻이 없는 줄 아느니라.
이미 공(空)하다고 관한지라 온갖 것은 없다고 보며, 여덟 가지 재난을 가엾이 여기고 세간의 여덟 가지의 일인 흥성[盛]ㆍ쇠망[衰]ㆍ훼방[毁]ㆍ칭찬[譽]과 이름이 있고[有名] 이름이 없는[無名] 것과 근고(勤苦)와 안락(安樂)에서 벗어나며, 여덟 가지 삿됨을 버리고 여덟 가지 바름[正]에도 머물지 않으며, 평등하게 있고 없음[有無]에 처하면서 역시 머물지 않으며, 4등심(等心)인 자ㆍ비ㆍ희ㆍ호를 행하고, 4은으로 중생을 제도하며 인애(仁愛)를 은혜로이 베풀고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하느니라.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모든 다른 상념(想念)이 없으면, 5음이 곧 끊어지고 6쇠는 처소가 없으면서 마음이 곧 안정을 얻으며, 4대를 보지 않고 사람도 보지 않으며, 천(天)ㆍ지(地)ㆍ인(人)ㆍ물(物)도 보지 않아 영원히 보는바가 없을 것이니, 이렇게 오래오래 하여야 비로소 시방의 부처님을 뵙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물이 흐리면 그 밑이 보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멈추어 움직이지 않고 고용해지면 맑아져서 훤히 보이듯이, 보살도 그와 같이 정(定)에 들어 상념이 없고, 관하되 보는 바가 없으면, 5음과 6쇠가 환해진 것이 마치 구름이 걷히면 해나 달빛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뵙게 되느니라.
다시 그것을 관하면서 ‘내가 부처님께로 간 것인가? 부처님께서 나를 위해 오신 것인가?’라고 하면, 이는 마음이 곧 스스로 생각한 것이니, 본래 부처님도 또한 오시지 않았고 나도 또한 가지 않은 것이니라. 비유하면 밝은 거울이나 맑은 물이나 깨끗한 기름에서 형상이 보이고 그림자도 보이되 그 영상(影像)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은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뵙되 역시 가고 옴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꿈속에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부모ㆍ형제ㆍ처자를 보았으나 깨고 나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뵈었으나 삼매에서 깨고 나면 도무지 본 바가 없는 것이니라. 그 까닭은 32상과 80종호는 본래 없으며 다만 화현(化現)이기 때문이니라. 형상이 없고 처소가 없는 것은 마치 허공과 같이 따로 알 수 없는 것이니, 어느 것이 허공이겠느냐?
그지없는 총지문(總持門)을 행하여 60만해(萬姟)의 모든 총지의 지혜를 이루므로 곧 초월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명월신주(明月神珠)가 모든 궁하고 모자란 것을 가득 채우고 넉넉하게 하는 것과 같이 완전히 갖춘 모든 법으로 중생에게 가르쳐 주되 온갖 사람을 따르면서 그에 상응하게 무진덕장(無盡德藏)을 베풀어 주느니라.
선권(善權)으로써 때를 따라 대승(大乘)으로 교화하고, 대도(大道)를 천명하여 넓히며, 8난에서 노닐며 8사행(邪行)을 해탈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것에 편파(偏頗)된 행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012_0687_b_15L善權隨時化以大乘闡弘大道,遊于八難脫八邪行,等心一切無偏頗行;是爲十。
여덟 가지 불가사의에 머무르면서 보살을 버리지 않고 삼계는 마치 허깨비와 같아 진실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스스로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헤아려도 오고 간 곳을 보지 않아서 가고 머무름에 따라 저마다 스스로 이루어지게 하느니라. 삼계는 마치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니, 여름에 사람이 없는 넓은 들판을 갈 때 멀리서 보면 큰 강에 물이 흐르고 그 곁에는 나무가 자라 여러 가지의 열매가 아주 무성해 보인다.
012_0687_c_01L 그 사람은 배고프고 목마르고 더운 데다 피로하여 다시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인데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여 몇 리를 달려가 가까이 다가가지만 도무지 물은 보이지 않고, 아지랑이가 걷히게 되자 물이 없는 것과 같으니, 달인(達人)은 자주 보았는지라 물이 없음을 알므로 달려가서 구하지 않느니라.
마치 어미가 제비 여러 새끼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와 같이 일체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되 역시 내버려두는 바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012_0687_c_07L猶如燕母養活諸子,菩薩如是,開化一切亦無所置。
비유하면 마치 길잡이가 장사꾼들을 많이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적에 흉악한 도적을 만나지 않고 편안하게 집에 도착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혜광요삼매의 정(定)으로써 일체 중생을 도와 음(婬)ㆍ노(怒)ㆍ치(癡) 3독(毒)의 어둠을 버리게 하고 3승(乘)을 열어 보이되 대승을 근본으로 삼아 저마다 처소를 얻게 하느니라.
012_0688_a_01L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의 여래의 형용은 황금빛 얼굴이요, 그 광명은 모지고 둥근데 셀 수조차 없는 범덕(梵德) 억백 나술(那術)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위하여 경을 설하신 것을 보면서, 한량없는 총지문을 행하여 항하 모래만큼 많은 백천해(百千姟)의 총지를 이루었기에 곧 초월한 성지(聖智)를 성취한 바가 많으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일체지(一切智)에 뜻을 두면서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없고, 유위에 머무르지 않고 무위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널리 인자한 마음으로 행하여 중생들을 위해 평등하게 베풀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평등하게 행함이 마치 허공과 같으며, 제자라는 생각이 없으면서 보살이라는 생각도 없다.
또한 세속에 대한 마음도 없고 도(道)에 대한 뜻도 없으며, 언제나 큰 지혜로써 중생을 수순하여 교화하고, 온갖 내는 데에 들어가되 또한 내는 바가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나타나되 법신을 버리지 않고, 마음이 나[我]와 열반에 평등한 것이니, 이것을 바로 열 가지 일이라 하느니라.
몸과 입으로써 말하거나 행한 바가 있지 않고, 마음은 언제나 안정하여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욕계(欲界)에 나타내어 모든 욕진(欲塵)을 제도하고, 욕심의 자연(自然)에 대해서도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온갖 것에서 구하지 않음은 마치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다.
012_0688_b_01L 마치 용맹하고 씩씩한 군대의 장군이 악한 역적을 토벌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큰 자비로 중생을 교화하여, 모든 생사를 윤회하는 이[周旋者]와 이에 어두운[闇昧] 사람과 예순두 가지 소견의 모든 사악한 의심의 그물[羅網]에 떨어진 이와 그리고 예순두 가지의 모든 바르지 않은 법을 지닌 모두에게 뜻을 일으켜서, 각자 6도(度)와 대자대비와 뭇 행의 요긴한 것을 좇아 대승에 이르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술사가 대중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몸을 죽게도 하고 불에 타게도 하며 짐승에 먹히는 일을 나타내면, 대중들은 모두가 두려워하여 저마다 안타까워하면서 크게 물건을 내주며 그의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그 마술사는 얻은 보물이 많은 것을 보고 즉시 땅에서 일어나 본래대로 회복되어, 본래 죽은 것도 아니고 다시 살아난 것도 아닌 것과 같다.
1)보살마하살이 처음 발심함에 따라 일제지(一切智)의 모든 행이 본에 이른다는 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無相)해탈문ㆍ무원(無願)해탈문을 말한다.
2)아라한에게 있는 것을 3명(明), 부처님에게 있는 것을 3달(達)이라 한다. 즉 천안(天眼)ㆍ숙명(宿命)ㆍ누진(漏盡)을 말한다.
3)부모ㆍ국왕 중생 삼보의 은혜, 혹은 부모ㆍ사장(師長)ㆍ국왕ㆍ시주(施主)의 은혜를 말한다.
4)색(色) 등 6진(塵)이 능히 사람의 진성(眞性)을 쇠퇴시키기 때문에 6쇠(衰) 혹은 6적(賊)이라 한다.
5)구(垢)는 때라는 말이니, 진여의 본성을 가리고 더럽게 하여 미혹하게 만드는 번뇌로 탐(貪)ㆍ진(瞋)ㆍ치(痴)를 말한다.
6)자무량심(慈無量心)ㆍ비무량심(悲無量心)ㆍ희무량심(喜無量心)ㆍ사무량심(捨無量心).
7)사람의 성질을 셋으로 나눈 것으로, 정정취(正定聚:항상 진정하여 반드시 성불할 수 있는 분류)ㆍ사정취(邪定聚:성불할 만한 소질이 없어 더욱 타락하여 가는 부류)ㆍ부정취(不定聚:緣이 있으면 성불할 수 있고 緣이 없으면 미혹하여, 향상과 타락에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부류)를 말한다.
8)원문에는 ‘도금(道禁)’으로 되어 있으나, 다른 본에는 ‘도교(道敎)’로 되어 있어, 다른 본을 따라 번역한다.
9)7성재(聖財)라 하며 견도(見道) 이후의 성자를 일곱 가지로 나눈 것으로 신(信)ㆍ계(戒)ㆍ문(聞) 참(慙)ㆍ괴(愧)ㆍ사(捨)ㆍ혜(慧) 혹은 신(信)ㆍ정진(精進)ㆍ참계(慚戒)ㆍ귀(愧)ㆍ문사(聞捨)ㆍ인욕(忍辱)ㆍ정혜(定慧).
10)이 여섯 가지 염을 닦으면 선정을 얻어 열반에 이른다고 한다.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시(念施)ㆍ염천(念天)을 말한다.
11)나라연(那羅延)이라고 한다. 천상의 역사(力士)로서 불법을 지키는 신. 입을 다문 모습을 하고 절 문의 오른쪽에 있으며,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