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에 바가바(婆伽婆)1)께서 허공계(虛空界)인 법계(法界)가 다양하게 머무는 곳에서 널리 엄숙하고 고결하며 맑고 깨끗하여 번뇌[垢]가 없으며, 모든 부처님 여래의 복덕과 지혜로 웅장하게 꾸며져 뜻대로 화현(化現)하며, 삼계(三界)의 유위(有爲)와 자주 행함을 초월했으며, 모든 비유를 초월하여 생각하거나 말로 할 수 없으니, 이는 모든 부처님 여래의 과보(果報)로 이루어진 것이니라. 큰 비구 스님 1,250명과 함께하셨는데 모두 아라한으로 네 가지 걸림 없음[四無礙]을 갖추었고 해탈을 두루 갖춘 이들이었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의 무리들도 저마다 맑고 깨끗하여 항상 변함이 없거나 무상한 삼매[常無常三昧]의 경계를 얻었으며, 모든 지극한 지혜[智智]로 행하는 곳을 관찰하여 중간도 없고 가장자리도 없는 법계의 피안(彼岸)에 도달했으며, 모든 보살의 서원을 두루 만족했고, 모든 보살은 마음대로 됨[自在]을 갖추어 만족했으며, 열 가지 다함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얻어 스스로 웅장하게 꾸몄고, 모든 보살의 다라니삼매(陀羅尼三昧)와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四無礙智]를 갖춘 이들이었다. 위엄과 덕망을 갖춘 하늘 사람ㆍ용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와 석제환인(釋提桓因)ㆍ범천(梵天)ㆍ사천왕(四天王) 등 그 숫자가 백천만이었고, 권속(眷屬) 역시 백천만이었다.
013_0251_c_01L이때에 바가바께서 말씀하신 경(經)은 ‘일체에 들어가 수행하는 차례의 법문’이니, 모든 현성(賢聖)이 신심을 내게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라. 믿는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欲心]을 성취한 것이니라. 좋은 법에 대한 욕심을 얻은 것은 끊어지지 않는 마음을 성취한 것이며, 끊어지지 않는 마음을 얻은 것은 옳은 마음을 성취한 것이며, 옳은 마음을 얻은 것은강력하고 열심인 마음[增上心]을 성취한 것이니라.
단바라밀(檀波羅蜜)2)을 수행하는 것은 크게 부유함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시바라밀(尸波羅蜜)3)을 수행하는 것은 인간 세상과 하늘 세상에서 과보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4)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장엄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5)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선바라밀(禪波羅蜜)을 수행하는 것은 조화롭고 유연한 마음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세간을 초월하는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방편바라밀(方便波羅蜜)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걸림이 없는 것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원바라밀(願波羅蜜)6)을 수행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모든 일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역바라밀(力波羅蜜)을 수행하는 것은 파괴할 수 없는 경지를 성취하기 때문이고, 지바라밀(智波羅蜜)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세간에서 귀의할 곳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출가하는 것은 거룩한 도[聖道]를 성취하기 때문이고, 물들인 옷을 입는 것은 모든 세간의 일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걸식하는 것은 모든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기 때문이고,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는 것은 두려움이 없는 경지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편안한 자리에 있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신통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법을 듣고 받들어 지니는 것은 네 가지 걸림이 없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013_0252_a_01L염방편(念方便)을 닦는 것은 다라니를 성취하기 때문이고, 의방편(意方便)을 닦는 것은 법을 차별하는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견고한 행[堅固行]을 닦는 것은 대중 앞에서 두려움이 없음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요설방편(樂說方便)을 닦는 것은 기설(記說:기억하거나 말하는 것)에 어긋나는 오류가 없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음방편(陰方便)을 닦는 것은 반야의 차별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계방편(界方便)을 닦는 것은 미세한 반야의 차별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입방편(入方便)을 닦는 것은 안팎으로 미혹한 마음을 멀리 여의는 것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제방편(諦方便)을 닦는 것은 모든 중생을 속이지 않는 자세를 성취하기 때문이며,염처방편(念處方便)을 닦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뜻에 따르는 마음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사마타방편(舍摩他方便)을 닦는 것은 조용하고 고요한 마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비바사나7)방편(毘婆舍那方便)을 닦는 것은 조복심(調伏心)8)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높은 체하지 않는 마음[不高心]을 닦는 것은 모든 부처님 지혜[智智]에 만족한 마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교만하지 않는 자세를 닦는 것은 공경하고 믿는 마음[信心]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모든 중생을 속이지 않는 마음을 닦는 것은 더 나아가 능히 한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며, 견고한 반야를 수행하는 것은 모든 하늘 사람의 행함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말씀과 같이 수행(修行)을 닦는 것은 만족스럽게 선지식(善知識)의 법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안으로 사유(思惟)함을 수행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깨달음[自然覺]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항복심(降伏心)을 수행하는 것은 법왕의 뜻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몸을 아끼지 않는 자세를 수행하는 것은 부처님의 몸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삼보(三寶)를 공경하면서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수행하는 것은 시처(是處:옳은 곳)와 비처(非處:그른 곳)에서 지혜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선교(善巧:좋은 재주)로 짓는 것을 수행하는 것은 업보에서 지혜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다른 지혜를 헐뜯지 않는 자세를 수행하는 것은 모든 근(根)이 이둔(利鈍:예리하고 둔함)한 데서 지혜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미세한 인연이 모인 지혜를 수행하는 것은 여러 가지 성품에서 지혜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013_0252_b_01L삼보 가운데서 중생 교화를 수행하는 것은 믿음과 묘한 욕망[欲]의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모든 장소에서 위의를 무너뜨리지 않고 모든 중생을 위하여 평등한 설법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이르는 곳마다 도지(道智)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선법(禪法) 가운데서 중생교화를 수행하는 것은 선정(禪定)ㆍ삼매(三昧)ㆍ삼마발제(三摩跋提)9)로 번뇌[垢]가 깨끗해져서 지혜를 일으키는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바른 도를 잃은 중생을 위하여 바른 도를 보여 바른 도를 수행하는 것은 하늘 눈[天眼]의 지혜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고, 모든 중생과 더불어 바른 생각[正念]을 수행하는 것은 숙명지(宿命智)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며,모든 중생과 더불어 백정법(白淨法:맑은 성질)을 수행하는 것은 누진지(漏盡智)의 힘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중생교화를 위해 다문(多聞)을 수행하는 것은 대중의 위엄과 덕망에 두려움이 없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세존께서 ‘일체에 들어가 수행하는 차례의 법문’을 말씀하셨을 때에 대중 가운데 두 보살이 있었는데, 한 보살은 무소발(無所發)보살이었고 다른 한 보살은 분신혜(奮迅慧)보살로서 모든 권속과 함께 특별한 누각의 보배로운 집에 앉아 있었다. 이 두 보살이 그곳에 앉아 있다가 다음과 같은 마음을 일으켰다. “모든 보살마하살에게 광대법집(廣大法集)이 있으니 우리들이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분신혜보살이 무소발 보살마하살에게 말했다. “선남자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탄생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 여래의 진실한 몸인 것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다른 인연을 위하기 때문에 성취하시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진실로 항상 머무르시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모든 부처님 여래의 큰 반열반(般涅槃)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모든 부처님 여래의 행(行)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비유(譬喩)가 서로 알맞은 것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몇 종류의 부처님을 안다고 말하는가?
013_0252_c_01L무엇을 보살이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말을 의지하여 설법하시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공의 뜻[空義]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공소대법(空所對法)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공을 말할 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법사(法師)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법사와 상응하는 비유를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모든 보살이 함께 머물지 않는 법[不共住法]임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모든 보살이 알맞게 변화하는 일인 것을 안다고 말하는가? 무엇을 보살이 모든 선근의 뛰어나고 묘한 과보를 안다고 말하는가?선남자여, 무엇을 보살이 모든 무루(無漏)의 선근이 뛰어나고 묘한 과보를 얻는 줄 안다고 말하는가?”
이때에 무소발 보살마하살이 분신혜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는 매우 깊은 법집(法集)을 물었구나. 선남자여, 이것은 뛰어나고 묘하며 광대한 법집의 법문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과 여래의 가피력(加被力)을 받들어 그대를 위해 말하겠다.
013_0253_a_01L어떠한 것이 광대한 법집의 법문인가?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행(法行)에 들어가면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탄생을 안다고 하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지어내는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태어나고, 모든 심의(心意)와 의식(意識)의 몸을 바꾸고 여의었기 때문에 적정을 행하며, 모든 것이 나고 죽으므로 나고 죽는 행을 나타내 보이고, 과거의 행을 의지해서 일으키기 때문에 모든 과보의 행을 실천하며, 걸림이 없는 법계(法界)를 얻어 행하고 모으기 때문에 모든 것을 모아 업을 지으며, 열 가지 큰 서원으로써 으뜸을 삼고 백천만 아승기(阿僧祇:아주 큰 수)의 서원을 만족히 하여 웅장하게 꾸몄기 때문에 장엄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의 가피(加被)를 얻었기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의 가피라 하고,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선근을 따라 짓기 때문에 모든 업을 지음이 모여 일어나며, 대자대비하기 때문에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때를 따라 중생의 선근에 주지(住持)하여 취심(吹心:마음에 불어넣음)하기 때문에 깊은 마음을 얻으며, 중생의 마음이 행함을 따라 차별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태어남을 나타낸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태어나심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여래의 진실한 몸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진실로 몸을 삼음이니 맑고 깨끗하여 때가 묻지 않기 때문이고, 법계로 몸을 삼으니 차별이 없기 때문이며, 실제로 몸을 삼으니 두루 이르기 때문이고,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으로 몸을 삼으니 진실로 적정하기 때문이며, 허깨비나 아지랑이ㆍ메아리ㆍ수중의 달ㆍ건달바성(乾闥婆城)ㆍ돌려서 이루어진 불바퀴[旋火輪:쥐불놀이할 때 생기는 불의 원(圓)]로 몸을 삼음이니 변화하는 인연으로 이런 것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 몸을 삼으니 물질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법의 자성으로 몸을 삼으니 자성이 선명하고 결백하기 때문이고, 과거는 오지 않으니 간격이 없기 때문이며, 미래는 갈 수 없으니 형체가 없기 때문이고, 현재는 머물지 않으니 과거와 미래는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진실한 몸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3_0253_b_01L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여래께서 다른 인연을 위하는 까닭으로 성취함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방일하지 않게 실천하면 씨앗이 되니 선법의 과보를 성취하고, 지혜의 방편으로써 생기니 허물이나 실수가 없으며, 시바라밀을 행하여 만족하니 선거(善去)하며, 보리심으로 생명의 뿌리를 삼으니 죽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사마타(舍摩他)10)ㆍ비바사나(毘婆舍那)로 손[手]을 삼으니 선교(善巧:아주 뛰어남)한 업을 지으며, 믿는 업과 과보로 눈을 삼기 때문에 지혜가 나타나고, 수행하여 모든 바라밀을 성취하니 위가 없는 곳에 잘 머물며, 사섭행(四攝行)을 의지하여 머무니 견고함을 실천하며, 공한 지혜를 닦는 것으로으뜸을 삼기 때문에 분별하는 것이 없고, 수행할 때에 피로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중생과 함께 지어내는 일의 업을 버리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다른 인연을 위하는 까닭으로 성취한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진실하게 항상 머무르심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성냄과 원한과 허물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나[我]와 내 것[我所]을 취하지 않으며, 항상 모든 중생을 위하여 좋은 법을 짓고 의지하니 좋은 의사와 같으며, 과거의 좋은 서원이 만족해졌으므로 얻은 것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저 중생을 의지하여 대자(大慈)를 일으키므로 모든 업을 잘 지으며, 오로지 다른 사람의 일만을 위하여 마음을 일으키니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며, 자기의 이익을 버리기 때문에 다른 이를 대신하여 괴로움을 받으며, 열반을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여의었으니 세간의 열반으로써 한 가지 맛의 모양[相]을 삼으며, 피곤해 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행하니 모든 짓는 것이 자연스럽게 성취되며, 모든 구하는 일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뼈나 살로 된 육신이 없으며, 형상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처소에서 열반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진실로 항상 머무르심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3_0253_c_01L“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대열반을 아느니라. 어찌하여 열 가지인가? 마침내 모든 번뇌장(煩惱障)과 지장(智障)을 여읜 까닭이며, 내가 공하고 법이 공하며 내가 없음을 두루 아는 까닭이며,의생신(意生身)11)을 여의고 두루 갖춘 법신을 얻는 까닭이며, 모든 중생에게 불사를 지어 쉬지 않으면 자연히 두루 갖춘 지혜를 얻는 까닭이며, 모든 부처님의 차별이 없는 법신을 얻는 까닭이며, 세간 열반과 상응심과 불상응심[二心]을 멀리 여읜 까닭이며, 일체법의 근본이 맑고 깨끗한 까닭이며, 일체법을 수행하여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지혜를 얻는 까닭이며, 진여의 법성이 실제로 평등한 지혜를 얻은 까닭이며, 일체법의 자성과 열반성이 평등한 지혜를 얻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法行)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대반열반을 안다고 말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대반열반을 얻은 것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번뇌는 구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니 구하는 것으로 인해 번뇌가 일어나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구함이 없으므로 번뇌를 여의었고, 번뇌를 여의었으므로 대열반을 얻었느니라.
실제가 아닌 법은 지을 수 있지만 실제인 법은 지을 수 없다. 여래는 곧 실제인 법신이므로 몸이 나거나 죽지 않으니 여래께서 열반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013_0254_a_09L不實法可作、實法不可作;如來卽實法,身身卽無爲是,故如來名得涅槃。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 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대반열반하심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3_0254_a_11L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入十種法行能知諸佛如來應供、正遍知大般涅槃。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대반열반하신 것을 안다고 하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보시와 보시의 과보와 내가 없음과 내 것이 없으니, 여래께서는 보시와 보시의 과보를 잘 아시고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여의고 뒤바뀜이 없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열반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대반열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3_0254_b_21L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入十種法行能知諸佛、如來、應供、正遍知大般涅槃。
013_0254_c_01L“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행을 아느니라. 어찌하여 열 가지인가? 법으로 유지하면 유지되니 좋고 맑고 깨끗한 법이기 때문이고, 중생으로 유지하면 유지되니 자기의 서원이 만족하기 때문이며,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두 가지는 모양이 없으니 같은 일로써 행하기 때문이고, 맑고 깨끗한 마니(摩尼)가 분별이 없는 것처럼 분별하지 않으니 법계가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며, 편안하고 조용한 곳을 얻으니 모든 많은 괴로움을 없애 버렸기 때문이고, 두려움 없는 곳을 얻으니 영원히 모든 번뇌와 원한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며, 모든 마군(魔軍)과 원수와 도적에게 항복 받으니 모든 중생의 평등한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고,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 응화(應化) 등의 몸이 되니 좋고 맑고 깨끗한 신통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며, 뛰어난 솜씨로 모든 색상(色像)을 나타내 보여도 걸림이 없으니 허공과 같은 좋은 맑고 깨끗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 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행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행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여래는 ‘세간의 법은 과실(過失)이 많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은 공덕이 헤아릴 수 없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여래는 세간이나 열반에 평등한 마음이 되어 세간에도 머물지 않고 열반에도 머물지 않으니,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013_0255_a_01L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이 모든 중생이 뒤바뀐 지혜로 여러 가지 번뇌와 수번뇌(隨煩惱)로 물들었지만 내가 이와 같은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모든 여래는 과거의 서원과 실천을 의지해 모든 중생의 근기(根機)와 성품(性品)과 믿음 따위를 따라저들이 행하는 가운데서 분별함이 없이 자연히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나는 이와 같은 수다라(修多羅)ㆍ이와 같은 기야(祇夜)ㆍ이와 같은 화가라나(和伽羅那)ㆍ이와 같은 가타(伽陀)ㆍ이와 같은 우타나(優陀那)ㆍ이와 같은 니타나(尼陀那)ㆍ이와 같은 이제월다가(伊諦越多伽)ㆍ이와 같은 사타가(舍陀伽)ㆍ이와 같은 비불략(毘佛略)을 말하였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 여래는 ‘나는 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를 말했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그러나 모든 여래는 분별함이 없으니 저들 중생이 들은 법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부처님 여래는 ‘나는 걸식을 위해 아무 나라와 크고 작은 성과 마을과 취락에 들어가 이와 같은 찰리(刹利)ㆍ바라문(婆羅門)ㆍ비사(毘舍)ㆍ수타(首陀)와 국왕ㆍ왕자ㆍ대신ㆍ국민 따위의 모든 중생의 처소에 이른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모든 여래는 지혜로 으뜸을 삼아 몸ㆍ입ㆍ뜻의 업이 자연스럽게 성취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기갈(飢渴)도 없고 대소변도 없으며, 몸이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야위거나 고달프거나 병의 괴로움이 없느니라.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걸식을 나타내어 실천하느니라. 그런데 모든 중생은 ‘여래께서 먹는다’고 말하느니라. 그러나 모든 여래는 실제로 잡숫지는 않느니라. 나타내어 보이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니 모든 일에서 분별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이 모든 중생은 하(下)ㆍ중(中)ㆍ상(上)의 근기가 있다. 나는 이 하ㆍ중ㆍ상 근기의 모든 중생의 등류를 위하여 하ㆍ중ㆍ상에 따라 법을 널리 말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그러나 모든 여래는 분별하는 마음이 없이 말한 법이며 자연스럽게 성취되어 증가하지도 않고 덜어서 줄어드는 일도 없으니 그릇을 따라 받기 때문이니라.
013_0255_b_01L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만약 모든 중생이나에게 공양을 주지 않고 나를 공경하지 않고 나를 헐뜯고 꾸짖는다면 나는 이와 같은 중생은 교화시키지 못한다. 또 어떤 중생은 공양ㆍ공경ㆍ존경ㆍ찬탄하며 나에게 공양을 주고 시중들면 나는 이와 같은 중생은 알맞게 교화시킨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모든 여래는 적정삼매(寂靜三昧)와 자비로 널리 저 중생을 덮어 주어 자연스럽게 평등한 법에 머물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높다는 마음이 없고 낮다는 마음이 없으며, 교만한 마음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도 없으며, 탐하는 마음이 없고 성내는 마음이 없고 탐함을 따르는 마음도 없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걸리는 마음이 없고 막히는 마음이 없으며, 잡된 마음이 없고 번뇌의 마음이 없고 번뇌를 따르는 마음이 없으며, 성내는 마음이 없고 어리석은 마음이 없고 성냄을 따르는 마음이 없으며 어리석음을 따르는 마음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여래는 자연스럽게 고요하고 고요한 경계에서 고요한 경계를 찬탄하며 머물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모든 중생이 수행해서 성취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이 수행하지 않는 것을 보아도 근심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모든 여래는 수행하는 중생에게 걸림이 없는 큰 사랑[大慈]으로 언제나 앞에 나타나 계시며, 그릇되게 행하는 중생에게도 걸림이 없는 큰 슬픔[大悲]으로 언제나 앞에 나타나 계시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행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3_0255_b_20L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入十種法行能知如來、應供、正遍知行。
013_0255_c_01L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의 비유가 서로 알맞은 것을 알게 되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해가 위ㆍ중간ㆍ아래에 솟을 때 모든 중생들이 믿거나 믿지 않거나 공경하거나 공경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평등하게 떠올라 평등하게 비추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여래ㆍ응공ㆍ정변지도 이와 같아서 상ㆍ중ㆍ하의 모든 중생이 믿거나 믿지 않거나 공경하거나 공경하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출현하여 평등한 지혜 광명으로 널리 비추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허공은 모든 중생에게 막히고 걸림이 없으나 저 허공은 연기ㆍ구름ㆍ티끌ㆍ안개들의 사물로 막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막히고 걸림이 없지만 연기ㆍ구름ㆍ티끌ㆍ안개처럼 아견(我見)과 번뇌객진(煩惱客塵)에 막혀 여래를 보지 못하고 여래의 공덕과 이익을 받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나무에게 비록 불의 성질이 있지만 인연이 없으면 그 쓰임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아서 비록 헤아릴 수 없는 신기한 힘과 자재한 힘이 있지만 모든 중생이 정진과 믿음 따위의 인연을 멀리 여의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부처님의 일을 하지도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 물들일 물감을 한 그릇 안에 넣고 여러 가지 옷을 물들임에 다시 많은 물감을 섞어 한 그릇 안에 넣고 물들인 옷은 그 닿은 것을 따라 물들여진 색깔이 같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나 저 모든 물감은 분별하고 차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아서 여러 가지 선근 공덕으로 장엄하였으나 모든 중생의 믿음 따위의 훈습이 다름에 따라서 부처님 여래를 뵙고 받아들이는 공덕은 차별되고 같지 않느니라. 그러나 부처님 여래는 분별을 하거나 차별이 있다는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013_0256_a_01L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모든 물은 가득하게 차면 넘친다.만약 사람이 모두 아래로 흐르는 것을 헐뜯고 거슬러 흐르는 것을 찬탄한다면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 여래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사람들이 모두 찬탄하거나 헐뜯어도 항상 지혜를 따라서 실천하니, 만약 교만을 따른다면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감자(甘蔗)를 만약 사람이 자르거나 자르지 않아도 저 감자의 단맛은 잃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사람들이 친근하고 가까이하며 공양 올리고 공경하거나 친하고 가까이하며 공양 올리거나 공경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끝까지 해탈의 단맛을 버리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대지(大地)는 그 성질이 편안하고 견고하여 모든 중생에게 분별함이 없느니라. 어떤 사람이 땅에서 과실을 구하려고 만약 씨앗을 심고 때맞게 김매고 거름을 주어 가꾸면 저 사람은 때가 되면 과실을 거두니라. 만약 씨앗도 뿌리지 않고 김을 매지도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끝끝내 과실을 얻지 못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아서 저 대지는 고요히 항상 머물지만 저 중생에게 분별하는 것이 없느니라. 만약 중생이 부처님께 공덕을 구하려고 하여 믿는 마음과 공양 올리는 마음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면 저 사람은 공덕의 과실을 얻을 수 있느니라. 만약 믿는 마음과 공양 올리는 마음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공덕의 과실을 얻을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성내고 비방하고 헐뜯고 꾸짖은 뒤에 전단향(栴檀香)이나 용뇌향(龍腦香) 따위를 몸에 발라도 이 전단향이나 용뇌향의 향기가 몸에서 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아서 만약 사람이 화를 내며 비방하고 헐뜯고 꾸짖다가 친근하게 나오고 가까이하며 공양 올리고 공경하며 말씀하신 대로 수행하여도 모든 여래는 항상 중생과 함께 공덕을 두루 갖추느니라.
013_0256_b_01L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다리[橋梁]나 평탄한왕의 길은 모든 중생의 상ㆍ중ㆍ하의 품성으로서 가고 오는 이가 평등하게 머묾에 있어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아서 상ㆍ중ㆍ하의 품성인 모든 중생으로서 수행하는 이는 평등하게 머물러 높거나 낮음이 없이 막히거나 걸림이 없이 수행하는 즐거움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비유를 들자면 설산(雪山)에 선견(善見)이라 부르는 약이 되는 나무 왕[藥樹王]이 있는데, 저 약이 되는 나무 왕을 보는 이가 있으면 곧 모든 병의 괴로움을 멀리 여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아서 중생이 여래를 뵙기만 하면 모든 번뇌의 병이나 괴로움에서 멀리 벗어나느니라.
013_0256_c_01L선남자여, 무엇을 삼매불이라 하는가? 삼매불은 여래가 어떤 삼매에 드는가에 따라 저 삼매에 든 힘으로써 자연스럽게 다시 마음을 내지 않고백천만 부처님을 나타내는 것이며, 저 삼매를 의지해 주지(住持)하는 힘 때문에 나타내 보이니 이것을 삼매불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원불이라 하는가? 원불은 모든 보살들이 ‘어떻고 어떠한 중생을 따라서는 이러한 인연과 이러한 법으로써 여러 가지 색신(色身)을 나타내 보여 저 중생들을 제도하고, 저들 중생이 이러저러하면 이러저러한 형색과 모습과 위의를 나타내어 제도하며, 저 중생을 따라 부처의 몸으로써 제도시키기에 적합한 이는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저 중생을 교화시키겠다’는 서원을 하니, 이것을 원불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심불이라 하는가? 심불은 모든 보살이 자재할 수 있는 것을 얻는 것이니, 이 모든 보살은 마음의 자재에 의지하여 여러 가지 법에서 마음을 따라 성취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모든 중생이 당연히 부처님 몸을 뵙고 교화시킬 수 있는 이면 곧 자재한 마음으로 곧 부처님 몸을 이루니, 이것을 심불이라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다시 다른 뜻이 있으니, 모든 중생들 스스로의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을 알고, 부처님을 믿으니, 이를 심불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실불이라 하는가? 실불은 모든 번뇌에 물드는 것을 멀리 여의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때가 없이 맑고 깨끗한 여러 가지 형태와 색깔의 32상(相)과 80종호(種好)의 대장부 모습[相]을 마침내 성취한 부처님의 미묘한 색신으로 지금 나타내 보일 수 있으니, 이것을 실불이라고 하느니라.
013_0257_a_01L선남자여, 무엇을 화불이라 하는가? 화불은 모든 부처님 여래와 모든 보살이 모든 색신삼매(色身三昧)를 나타내 보여 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자재함을 성취하고대자대비를 모두 나타내 보임을 얻으며 화불의 색신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니, 이것을 화불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공양불(供養佛)이라 하는가? 공양불은 어떤 사람이 스승이나 화상(和上:和尙)을 부처님같이 보면 저 사람에게 스승과 화상은 부처님과 같을 것이니라. 마땅히 이와 같이 보고 공양하며 저 분을 의지하여 법을 받고 부처님 법에 만족하며 부처님 법을 성취하면 이것을 공양불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형상불(形像佛)이라 하는가? 형상불은 어떤 사람이 만약 다른 이를 시켜 불상을 조성하거나 스스로 불상을 조성하거나에 상관없이 모든 공양과 공경하는 일로써 공경하고 공양 올리며 존중하고 찬탄하며 가까이하고 공급하고 모시면서 이 사람이 이와 같은 저 형상불을 의지해 부처님 법에 만족하고 부처님 법을 성취하면 이것을 형상불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열 가지 부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3_0257_a_12L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入十種法行能知十種佛。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오직 말[言辭]을 의지하여 설법하는 것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음(陰)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며, 계(界)를 말함ㆍ입(入)을 말함ㆍ중생을 말함ㆍ업을 말함ㆍ태어남을 말함ㆍ늙음을 말함ㆍ죽음을 말함ㆍ죽고 나서 다시 태어남을 말하는 것도, 저러한 일을 여의게 하는 것도 말뿐인 까닭으로 열반이라 말하지만 또한 말뿐인 것이니라.
013_0257_b_01L선남자여, 제일의(第一義) 가운데 색음(色陰)은 없느니라. 만약 제일의 가운데 색음이 있다 하더라도 저 색음을 버리면 곧 끊어져 없어질 것이니 저러한 법을 버리는 것이 곧 해탈이니라. 만약 이와 같다면 제일의 가운데 색과 해탈이 가고 머무는 곳이 있어야 하나뜻은 그렇지 않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색음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저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제일의 가운데는 저 식음(識陰)도 없느니라. 만약 제일의 가운데 식음이 있다 하더라도, 저 식법을 버리면 곧 끊어져 없어질 것이니, 저 법을 버리면 곧 해탈이니라. 만약 이와 같다면 제일의 가운데 식과 해탈이 가고 머무는 곳이 있어야 하지만 뜻은 그렇지 않다. 이런 까닭으로 식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인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중생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오로지 인연에 의해 나고 죽을 뿐 중생은 없느니라. 만약 중생이 진실로 있다면 같은 음(陰)이 다 없어지는 것은 알맞지 않다. 만약 같은 음이 다 없어진다면 당연히 허공과 같으니라. 만약 그렇지 않은 것이면 당연히 5음(陰:5蘊)이 같고 이것은 나고 죽는 것이 있음과 함께하지만 뜻은 곧 그렇지 않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중생이란 말을 오직 말뿐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업(業)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가? 업을 짓는 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라. 만약 업을 짓는 것이 있다면 업을 지을 이는 없느니라. 저것을 짓는 것은 허공과 같으니라. 또 음(陰)과 같이 이것은 나고 죽으며 변화하느니라. 짓는 것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러한 뜻인 까닭에 저것을 짓는 이도 없고 또한 짓는 업도 없어서 허공과 같은데 무엇을 지음이 있게 된다고 말하는가? 이런 까닭으로 업을 짓는 이가 없는데 저 짓는 이를 여의고 어찌 업이 있다고 말하는가? 이런 까닭으로 업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 것이니라.
013_0257_c_01L선남자여, 무엇을 태어남[生]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제일의에는 태어남이 없느니라. 만약 제일의에 태어남이 있다면, 태어남은 곧 항상하는 것이니라. 만약 이와 같다면 태어남은 곧 태어남이 아니며, 또다시 태어남은 태어남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니 태어나서 번뇌하는 것은결국 누가 하는 것인가? 이런 까닭으로 태어남이라 말하는 것은 말뿐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늙음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제일의에는 늙음이 없느니라. 만약 제일의 가운데 늙음이나 늙은이가 있다면 한 사람이 없어도 늙음은 있어야 할 것이니라. 또 만약 늙을 것이 있다면 곧 젊은 시절의 늙음이니 만약 젊은 시절의 늙음이라면 늙은 시절의 늙음은 아니다. 젊은이는 늙음이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젊은 시절에는 늙음이 없느니라. 만약 늙음을 여의었다면 무엇을 늙었다 하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늙음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죽음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니라. 선남자여, 제일의에는 죽음이 없느니라. 만약 제일의 가운데 죽음이 있다면 곧 죽음의 법을 얻을 수 있으니 만약 죽음의 법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오로지 한 사람만 얻으면 나머지는 당연히 죽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나 죽는 이가 있으니 이런 까닭으로 제일의에는 죽음의 법이 없느니라. 또 죽은 이는 좇아 올 곳이 없고, 가도 이를 곳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 죽음의 법은 체성(體性)이 비고 고요[空寂]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죽음이라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 것이니라.
013_0258_a_01L선남자여, 무엇을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제일의에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남이 없느니라. 만약 제일의 가운데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면 죽음이 곧 태어남이고, 태어남이 곧 죽음이니라. 만약 이와 같다면 죽음과 태어남은 곧 한 법이며, 또 당연히 두 몸이니라. 첫째는 태어남에 의탁되었고, 둘째는 이미 태어남을 받은 것이니라. 만약 태어남을 받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5음(陰)이 있어 태어남을 받는다. 무슨 까닭인가? 5음을 여의고는 저 식(識)이 생길 수 없으며, 색ㆍ수ㆍ상ㆍ행 따위의 법을 의지해야만 식심(識心)이 생기게 되니 모든 음을 의지하므로 식과 반연(攀緣)이 거기에 머무느니라. 만약 의지함을 여의면 곧 저 식심은 한 생각에도 머물지 못하느니라.저 법과 같이 머물고 이같이 태어남을 받으며 종자와 같이 싹이 나니, 이런 까닭으로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저 일을 여의면 반열반(般涅槃)한다고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제일의에는 열반이 없느니라. 열반이란 것은 세간의 적멸을 알면 열반이라고 하지만 곧 세간을 열반이라 하지 않으며 또한 세간을 여의고 열반이 있는 것도 아니니라. 세간은 꿈과 같고 환술과 같아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나 법이 있으니, 이와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와 같은 이름이 생겼고, 이와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면서 이와 같이 이름이 없어지고 모든 세간의 형상이 적멸된 것을 열반이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생각은 아지랑이나 거품과 같아서 저 아지랑이나 거품과 같이 생기고 사라지니 실체가 없느니라. 세간 열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런 까닭으로 세간에서 열반이라고 말하지만 오직 말뿐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공(空)의 뜻을 잘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내가 공하여 없음ㆍ중생이 없음ㆍ명(命)이 없음ㆍ수자(壽者)가 없음ㆍ짓는 이가 없음ㆍ태어남이 없음ㆍ없어짐이 없음ㆍ지음이 없음ㆍ가르칠 이가 없음ㆍ강성해지는 이가 없음을 말하느니라.
013_0258_b_01L선남자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내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이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공이 있다면 공은 곧 유위법이니라. 그와 같이 진실로 있다면 반드시 곧 항상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만약 공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공은 곧 공이 아니니라. 이런 까닭으로 저 공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내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중생이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중생은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니라. 만약 중생이 공하다면 생명을 죽이는 업(業)의 죄가 반드시 없어야 하느니라. 만약 중생이 공하지 않다면 반드시 항상해야 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중생은 항상하지도 않고 항상하지 아니함도 아니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유위(有爲)도 아니고 유위가 아닌 것도 아니니라. 이와 같은 것을 중생이 공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명(命)이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은 생기지도 않고 죽지도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남자여, 눈이 공하면 나와 내 것을 여의느니라. 어찌하여 눈이 공하면 나와 내 것을 여읜다고 하는가? 저 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이 공하면 나와 내 것을 여의느니라. 어찌하여 귀ㆍ코 따위가 공하면 나와 내 것을 여읜다고 하는가? 저 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것을 명이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수자(壽者)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이란 것은 수자의 수(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5음(陰)과 18계(界)와 6입(入)이 모두 공한 것이니라. 저 5음ㆍ18계ㆍ6입을 의지하여 거짓 이름만 있는 것이 수자이니라. 거짓 이름인 까닭에 모양이 있거나 모양이 없음을 말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수자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013_0258_c_01L선남자여, 무엇을 공은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한 법은 생기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공이 생기는 것이라면 이것은 공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공은 곧 공이 아니니라.본래 공이 없다면 공한 법도 없느니라. 또 공이 처음으로 생긴다면 이것은 공이 아니니라. 이와 같은 것을 공하여 생김이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공은 지을 것이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은 다른 이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또한 스스로가 만드는 것도 아니니라. 5음ㆍ18계ㆍ6입 따위도 모두 공하지만 음ㆍ계ㆍ입을 의지해야만 공한 법이 있다. 이와 같은 것을 지을 공이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공의 뜻을 잘 안다고 말하느니라.
013_0258_c_14L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入十種法行善能知空義。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공이 대처할 바의 법[空所對法]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무명법(無明法)ㆍ애법(愛法)ㆍ업법(業法)ㆍ식법(識法)ㆍ취법(取法)ㆍ견법(見法)ㆍ의법(疑法)ㆍ사취법(邪取法)ㆍ만법(慢法)ㆍ도법(掉法)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열 가지 공이 대처할 바의 법이니라.
선남자여, 무명에는 두 가지 능(能)과 네 가지 인(因)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 능(能)인가? 하나는 번뇌장(煩惱障)이고, 둘은 지장(智障)이니라. 무엇이 네 가지 인(因)인가? 욕계를 탐하는 인과 색계를 탐하는 인, 무색계를 탐하는 인, 있음이 없음을 탐하는 인이니라.
013_0259_a_01L선남자여, 애(愛)에 두 가지 인과 네 가지 구함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 인인가? 하나는 가지[支]와 근본이고, 둘은 자생근본(資生根本)이니라.무엇이 네 가지 구함인가? 하나는 욕애(欲愛)고, 둘은 색애(色愛)며, 셋은 색애가 없는 것이고, 넷은 애(愛)가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업(業)에는 업을 일으키는 한 가지 인과 세 가지 모습[相]과 세 가지 과보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업을 일으키는 한 가지 인인가? 마음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세 가지 모습인가?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세 가지 과보인가? 흑(黑:흑업의 준말.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나쁜 행위)은 흑의 과보, 백(白:백업의 준말.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은 백의 과보, 흑백은 흑백의 과보를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식(識)인가? 여섯 가지인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따위의 식을 말하느니라. 이것을 여섯 가지 식이라고 말하느니라. 이 식에는 다시 세 가지가 있느니라.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뒤바뀐 마음이며, 둘은 뒤바뀌지 않은 마음이며, 셋은 생각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뒤바뀐 생각인가? 욕계를 생각하고, 색계를 생각하며, 무색계를 생각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뒤바뀌지 아니한 생각인가? 소승의 열반을 생각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생각이 없는 것인가? 저 두 가지 생각을 여의는 것을 말하여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저 두 가지 생각을 여의었다고 하는가? 위가 없는 모든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취인(取因)에 네 가지가 있느니라. 욕취(欲取)와 견취(見取), 계취(戒取), 아취(我取)를 말하느니라.
013_0259_a_15L善男子!取因有四種:所謂欲取、見取、戒取、我取。
선남자여, 무엇이 견취(見取)인가? 견취에는 두 가지가 있느니라. 사지(邪智)와 견지(見智)가 그것이니라. 사지란 그릇된 견해의 지혜를 말하며, 견지란 아라한이 열반을 잘못 보고 열반을 잘못 구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을 견지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견지는 부처님께서도 꾸짖으셨다.
013_0259_b_01L선남자여, 무엇이 의심[疑]인가? 의심에는 두 가지가 있느니라. 하나는 대승을 가로막는 것이고, 둘은 바른 지위를 가로막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대승을 가로막는 의심인가? 성문들의 마음은 좁고 열등하므로 두려워하여 빨리 소승보리를 증득하기를 구하느니라. 왜냐하면 저들은‘부처의 길은 장구하고 헤아릴 수 없으니 모든 행은 얻거나 성취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성문승(聲聞乘)을 구하여 속히 모든 괴로움을 여의리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생각으로 대승에서 물러나니, 이것을 대승을 가로막는 의심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정위(正位)를 가로막는 의심인가? 저러한 의심 때문에 정당한 위치를 증명해 얻지 못하고 보살의 대승지혜 지위를 얻지 못하느니라. 이것을 정위를 가로막는 의심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그릇되게 취함인가? 그릇되게 취함이란 보시 따위의 모든 행에 과보가 있기를 구하여 ‘나는 이와 같이 보시ㆍ지계 따위의 실천을 닦아 저 하늘 사람의 뛰어난 과보를 취하리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모든 그릇된 것을 구하는 것을 그릇되게 취함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도거[掉]인가? 도거에는 두 가지가 있느니라. 하나는 번뇌를 생기게 하는 것이고, 둘은 동란(動亂)으로 번뇌가 생기는 것이니라. 망상 분별로 색을 보면 맑고 깨끗하니라. 이런 인연으로 몸ㆍ입ㆍ뜻의 업이 모두 뒤바뀌기 때문에 모든 성인께서 꾸짖은 것이니라. 어찌하여 동란인가? 동란은 저 출세간의 도(道) 가운데서도 마음을 머물게 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도거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며, 공소대법을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013_0259_b_18L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入十種法行能知空所對法。
013_0259_c_01L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공을 설할 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파괴되지 않는 것이고, 요동하지 않는 것이며, 탐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는 것이고, 수행하지 않는 것이며 수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송사하지 않고 다투지 않는 것이며,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것이며, 모든 생멸함이 있는 모든 실천은 자성이 적멸하다는 말을 듣고인욕하는 것이며, 모든 범부는 한 법도 내지 못하지만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한 법도 소멸하지 않음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세간성과 열반성 이 둘이 평등하다는 말을 듣고 의심을 내지 않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미묘한 몸이 다함없는 법신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믿고 바로 들어가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파괴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이 세간의 법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이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이익과 쇠망하는 따위의 일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근심과 기쁨과 칭찬과 나무람의 말을 하지 않으며, 기쁨과 슬픔과 헐뜯음과 기림이 없는 두 법이니라. 마음으로 높낮이를 두지 않으면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에 탐닉하거나 싫어하지 않게 되니, 이와 같이 세간법으로는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파괴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파괴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요동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능히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법을 버리지도 않느니라. 어떤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면 곧 법이 공함을 알고 법이 공함을 보는 것이니라. 만약 이와 같이 취하지 않고 버리지 않아 마음이 요동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탐착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능히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탐하는 법도 없고 싫어하는 법도 없느니라. 어떤 법도 탐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면 곧 법이 공함을 알고 곧 법이 공함을 보는 것이니라. 만약 모든 법에 탐하고 싫어함이 생긴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공을 안다고 하지 못하며 공을 본다고 하지 못하느니라. 만약 마음으로 법을 탐하고 싫어하지 않아 탐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013_0260_a_01L선남자여,무엇을 수행하지도 않고 수행하지 아니함도 아니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설할 수 있는 이는 법을 수행하지도 않고 법을 수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라.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어떤 법을 수행하지도 않고 수행하지 아니함도 아니면 곧 이 법이 공함을 아는 것이고, 곧 이 법이 공함을 보는 것이니라. 수행하지 아니함도 없이 보리도(菩提道)를 돕느니라. 이와 같이 공함을 알고 공함을 보면, 이것을 보살이 수행하지도 않고 수행하지 아니함도 아니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송사[諍]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설하는 이가 만약 중생과 더불어 송사하거나 다툰다면 곧 공함도 모르고 공함을 보지도 못하느니라. 이로써 보살이 다투는 이에게 공함을 보게 하고 알게 하기 때문에 다투는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이 송사하거나 다투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증가하지 않고 감소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한 법도 증가함을 모르고 한 법도 감소함을 모르며, 한 법도 증가함을 보지 못하고 한 법도 감소함을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모든 법이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을 보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곧 공을 모르고 공을 보지도 못하느니라. 만약 공한 줄 알고 공한 줄로 보면 곧 모든 법이 증가하고 감소함을 보지 못하니, 이것을 증가하지 않고 감소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모든 생멸함이 있는 모든 행은 자성이 적멸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안하게 인욕하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한 법도 생겨남을 보지 못하고 한 법도 사라짐을 보지 못하니, 이것을 모든 유위의 모든 실천은 자성이 적멸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안하게 인욕하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013_0260_b_01L선남자여, 무엇을 모든 범부(凡夫)는 한 법도 내지 못하지만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한 법도 소멸하지 않음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공을 능히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이 이는 범부고 이분은 부처님이시다’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부처님 여래와 모든 범부의 모양은 평등하느니라. 만약 범부의 법은 못나고 부처님의 법은 뛰어나다고 본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공을 볼 수 없느니라. 만약 범부는 ‘한 법도 내지 못한다’고 들으면 곧 이것은 범부의 공이며, 만약 ‘모든 부처님은 한 법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들으면 곧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공이니라. 이와 같이 범부는 한 법도 내지 못하지만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한 법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함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것을 한 법도 내지 않는 것과 한 법도 소멸되지 않음을 보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세간의 성품과 열반의 성품, 이 두 가지가 평등하다 함을 듣고 의심을 내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만약 세간의 성품을 여의고 열반의 성품이 있다고 본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공을 볼 수 없느니라. 세간의 진여 성품과 열반의 진여 성품, 이 두 가지 법성은 오직 한 모양뿐이니,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말하는 것이니라. 만약 세간의 진여 성품과 열반의 진여 성품은 그 모양이 평등하여 높거나 낮음이 없음을 보고 의심이 생기지 않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것을 세간의 성품과 열반의 성품, 이 두 법이 평등하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013_0260_c_01L선남자여, 무엇을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항상하고 즐거우며 미묘한 몸이 다함이 없는 법신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믿으며 바로 들어가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만약 ‘모든 부처님 여래는 모두 없어지는 몸이다’는 마음을 내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공을 볼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여래의 몸은 진여의 공한 몸이며, 객진번뇌(客塵煩惱)나 수번뇌(隨煩惱)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항상하고 즐거우며 미묘한 몸이 다함이 없는 법신이라는 말을 들으면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미묘한 몸이 다함이 없는 법신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믿으며 바로 들어가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1)제불통호(諸佛通號)의 하나이다. 박가범(薄伽梵)이라고도 쓰며, 세존(世尊)ㆍ중우(衆祐)ㆍ파정지(破淨地)라 번역한다. 『대지도론』 제3권에는 네 가지 뜻을 들어 설명하였다.
2)6바라밀의 하나. 단(檀)은 단나(檀那)의 준말로 보시(布施)라 번역하며, 남에게 물건을 베푸는 일이다. 바라밀은 도(度)ㆍ도피안(到彼岸)이라 번역. 생사의 바다를 건너서 열반 언덕에 이르는 행법(行法)을 말하며, 보시는 열반에 가는 행법의 하나이기 때문에 단바라밀이라 한다.
3)6바라밀의 하나.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계율을 지키는 것을 완전히 이룬 것, 즉 계의 완성을 말한다.
4)6바라밀의 하나. 인욕(忍辱)을 행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바다를 건너 열반(涅槃)의 언덕에 이르는 방법이기 때문에 바라밀이라 하며, 인내의 완성을 가리킨다.
5)6바라밀의 하나. 비리야(毘離耶)ㆍ미리야(尾唎也)라고도 쓰며, 정진(精進)ㆍ근(勤)이라 번역한다. 마음이 용맹하여 쉬지 않음. 곧 힘써서 게으르지 않은 것을 말한다.
6)10바라밀(波羅蜜)의 하나. 피안인 이상경에 도달하려는 보살 수행의 총칭. 지금은 이러한 수행을 완성하려고 원하는 희망을 말한다.
7)비발사나(毘鉢舍那). 능견(能見)ㆍ정견(政見)ㆍ관찰(觀察)ㆍ관(觀)이라 번역. 자세히 관찰하여 잘못됨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8)조복(調伏)은 몸ㆍ입ㆍ뜻의 3업을 조화(調和)하여 모든 악행을 굴복하는 것이고 원수나 악마 등을 항복시키는 것이다.
9)등지(等至)라 번역. 정(定)을 등지라 하는 것은 등(等)은 정력(定力)에 의하여 혼침(惛沈)ㆍ도거(掉擧)하는 번뇌를 여의고, 마음이 평등 평정(平靜)한 것을 말한다. 정력이 이런 상태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지(至)라 한다.
10)지(止)ㆍ지식(止息)ㆍ적정(寂靜)ㆍ능멸(能滅)이라 번역.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망념(妄念)을 쉬고, 마음을 한 곳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11)마노말야(摩奴末耶)의 번역. 신역에서는 의성신(意成身)이라 한다. 부모가 낳은 육신이 아니고, 생각하는 대로 생기는 몸. 곧 화생신(化生身). 변화신(變化身)ㆍ겁초(劫初)의 인신(人身)ㆍ색계신ㆍ무색계신ㆍ중유신(中有身)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