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아뇩달은 자신의 모든 대중 권속과 함께 세존께 머리 숙여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절을 올린 뒤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청하오니, 천존(天尊)께서는 신광(神光)을 두루 드리우셔서 무열(無熱)의 큰 연못 속으로 왕림해 주소서. 저희는 석 달 동안 내내 즐겁게 성존(聖尊)과 모든 신통의 과보를 이루신 보살과 뛰어난 불제자께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부디 가엾게 여기시어 이 청(請)을 받아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저희들이 지진ㆍ정각을 모시고 공양 올리는 것이 여래의(如來儀)에 응하는 것이 아님이 없으나, 바라건대 빨리 듣고 적정상화(寂靜上化)를 입는 길은 오직 이 법으로 공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이와 같이 상법(像法)을 듣고, 언제나 환희하고 기뻐하는 것을 원하여, 이에 곧 삼보를 받들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다시 두 달의 기간 동안 공양하기를 청하였으나 여래께서는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다시 한 달을 머물러 주시도록 청하였으나 세존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보름을 청하자 세존께서는 묵묵히 받아들이셨다. 이에 용왕은 자신의 모든 권속들과 함께 세존께서 청을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기쁨에 겨워하면서 마침내 선심(善心)을 발하였다. 그리고는 부처님을 에워싸고 세 번을 돌고 난 뒤에 우레와 구름을 일으켜 가는 비를 내려 두루 천하를 적시고 홀연히 궁중으로 돌아왔다.
013_0407_a_01L 그리하여 아뇩달이 정전(正殿)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나서 모든 5백 명의 장자를 순식간에 불러 모았는데, 그 이름은 선아(善牙)ㆍ선시(善施)ㆍ선의(善意)ㆍ선명(善明)ㆍ능멸(能滅)ㆍ적상(寂相)ㆍ감동(感動)ㆍ대위(大威)ㆍ감위(甘威)ㆍ감권(甘權)ㆍ감덕(甘德)ㆍ보칭(普稱)ㆍ위용(威勇)ㆍ지밀(持蜜)ㆍ인력(忍力)ㆍ행상(行祥) 등이었다.이와 같은 5백 명의 장자들은 지난 세상에 위없는 정진도(正眞道)를 심은 자들이었다.
왕이 이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장자들이여, 나는 지금 여래ㆍ무착ㆍ평등ㆍ정각과 보살대중과 여러 제자들 모두에게 보름 동안 머물러 주시기를 청하였는데, 세존 정각께서 대자비를 내리시어 널리 가련하게 여기셔서 그 청을 받아주셨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함께 그 마음을 하나로 하여 서로 격려하고 부지런히 하여서 세존ㆍ지진ㆍ여래께 경의를 더욱 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지런히 무상(無常)을 생각하고 마땅히 각각 고요함에 머물며 겸손하고 삼가며 공손하고 정숙하게 머물면서 여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 위의(威儀)는 마땅히 음심이나 탐욕의 뜻과 희롱거리 등을 버리며, 탐욕과 성냄을 버리고,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에 물드는 것을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탐욕이 없으시며 그러면서도 두루 평안하시며, 인자하고 우아하며 진리를 환히 깨치셨으며, 평안하고 고요하시며, 모든 덕을 고루 나타내시며 시종들이 에워싸고 있어 그 의용(儀容)이 한량없으시니, 이 모두가 부처님들의 참되고 바른 요계(要戒)를 이으신 까닭이다. 그대들은 보름 동안 궁 안에 들어올 수 없으며 마땅히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생각을 없애야만 한다. 또한 다시 여래께서 널리 법을 강설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곳의 신통력 있는 보살과 제석천ㆍ범(梵)ㆍ지세(持世)ㆍ숙정(宿淨) 천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그대들은 부지런히 생각하여 널리 미묘한 보배를 베풀고 빛을 내고 화려하게 장식하되 삼가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그리하여 모든 회중(會衆)들로 하여금 변화된 모습을 보고서 기쁨에 겹게 하라. 이것은 곧 진실로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되느니라.”
013_0407_b_01L이렇게 아뇩달은 모두에게 약속과 명을 내린 뒤에 순식간에 여래를 위하여 설산 아래 무열지(無熱池) 속에 세존을 위하여 티끌 없이 깨끗한 유리로 만든 자리를 만들어내 7백 유순에 이르도록 특이하고 기묘하게 두루 자리 잡도록 하였으며, 8만 4천의 온갖 보배나무를 두루 심고 뭇 진귀한 보배를 드리워 화려하게 장식하였는데, 빛나는 꽃이 우거졌으며 화려한 백 가지 색깔이 눈부시고 그 속에서는 아름다운 향이 풍겨났다.온갖 나무 사이에는 8만 4천의 7보당(寶堂)을 만들어 내었는데, 뭇 진귀한 보배에서 뿜어내는 광채는 너무나 훌륭하여 비할 데가 없었다. 10만이나 되는 교로(交露)1)의 아름다운 장막을 드리웠으며, 나아가 기이하고 미묘한 붉은 진주를 위에서 아래까지 꿰었다. 모든 집 위에는 사자좌가 있었는데, 8만 4천 개는 모두 크고 높고 넓었으며, 값을 알 수 없는 미묘하고 훌륭한 솜을 상과 자리에 깔았고, 보분(寶分)은 온갖 교로를 드리웠으며 온갖 보배로 장식하였다.
집 위에는 용의 채녀가 각각 2천 명 있었는데, 그 미모가 아름다웠고 자태가 아름답기 한량없었다. 얼굴은 아름다웠으며 입에서는 훈향(熏香)이 풍겼다. 손에는 온갖 꽃과 가루향과 바르는 향을 갖고 있었으며, 기악을 연주하면서 부처님의 덕을 노래하여 회중에게 기쁨을 주었다. 위로 허공에서 커다란 보배 덮개를 만들었는데, 천 유순을 두루 하여 모임을 덮었으며, 진기한 수술이 달린 보배 덮개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온갖 빛깔이 있었다. 고운 비단 깃발을 매달았는데 비단 깃발 사이마다 온갖 보배 구슬이 매달려서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부드러운 소리를 내었으니, 그 소리는 온갖 악기로는 미칠 수 없었다. 맛난 음식을 베푸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서 이런 신통변화를 다 끝낸 뒤에 그 권속들과 함께 공손하게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세존을 우러러 뵈면서 그 청하는 뜻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혜(慧)를 간직하시고 지(知)는 풍부하시며 변덕(辯德)을 쌓으셨으며 혜에 통달하시어 집착이 없으시며 밝게 중생을 인도하시며 혜가 널리 두루 미침에 장애가 없고 혜가 으뜸가며 가장 위력 있으시어 신광(神光)을 내리시네.
013_0407_b_15L慧藏知富積辯德, 慧達無著明導衆;
慧弘普至不有㝵, 慧上最力降神光。
혜해심(慧解心)으로 행하시는 유일한 대인(大仁)이시여, 마땅히 시방 중생들을 관찰하시매 가장 으뜸가는 신존(神尊)께서는 저의 청을 받아주시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때에 맞추소서.
013_0407_b_17L慧解心行唯大仁! 當觀十方衆生類;
最上神尊受吾請, 念啓慈愍唯時屈。
만족함을 알고 탐욕이 없으며 이양(易養)하시고 상서롭고 복되며 진리를 깊이 깨치신 성스러운 도사(導師)시여, 선을 행하고 믿음이 질박한 대중의 뜻을 아시어 시절이 이르렀으니 세존께서는 굽어 살펴주소서.
013_0407_b_19L知足無貪而易養, 祥福審諦聖道師;
善行質信知衆意, 時節以至可屈尊。
그 덕(德)이 두루 알려졌으며 행(行)은 왕과 동등하며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되어 두루 생각을 일으키시며 지극히 인자하고 청정하시니 허공보다 더한 분이시여, 갖추어야 할 것을 모두 끝내었으니 신존(神尊)께서는 임하여 주소서.
013_0407_b_21L其德普稱行等王, 造無請友興普念;
至仁淸淨踰若空, 所設辦訖枉神尊!
013_0407_c_01L 위력은 시방을 다스리고 용맹하게 세상을 지니시며 불사(佛事)의 열여덟 가지는 고루 갖추고 계시며
제일 우두머리가 되어 중생을 비용(悲踊)의 행으로 제도하시는 분이시여. 저 무리들과 함께 이곳으로 이르러 주소서.
013_0407_b_23L威御十方猛持世, 佛事十八而等有;
度衆最首悲踊行, 願與其衆時蒙至。
몸은 미묘하고 단정하며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고 신기하고 훌륭한 갖가지 꽃수가 놓여있으며 그 뜻은 즐겁고 기쁨에 차서 은혜롭게 법을 베푸시는 대인(大仁)이시여, 위로 이끌어 주실 때가 되었음을 살피옵소서.
013_0407_c_02L色妙端正相綵身, 琦好種種花繡文;
志樂歡悅惠法施, 大仁上導願察時。
범성(梵聲)은 청정하여 우레처럼 진동하고 난새와 봉황처럼 구슬프며 사자처럼 걸으시며 갖추신 미묘한 음성으로 모든 국토를 기쁘게 하시어 중생들의 마음이 기쁨에 넘쳐나길 바라나니 때를 돌아보소서.
013_0407_c_04L梵聲淸淨若雷震, 鸞鳳哀鳴師子步;
妙音具足悅諸土, 衆心忻望願時顧。
불국토 삼천대천세계는 견줄 것이 없으니 누가 능히 여래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오. 성존(聖尊)께서 밝게 중생의 행을 관하시어 닦는 바가 항상 응하시나니 이곳으로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013_0407_c_06L佛土三千無等倫, 弗有能知如來心;
聖尊明睹衆生行, 所修常應時降此。
때를 아시어 널리 응하시되 권화(權化)를 품으시고 중생에게 성스러운 맹세가 있음을 환히 아시며 상심(詳審)의 행목(行目)은 밝고 좋으며 위신(威神) 있고 검족(撿足)하시니, 원하옵건대 광명을 되돌리소서.
013_0407_c_08L知時普應懷㩲化, 了達衆生有聖誓;
詳審之行目明好, 神威撿足願迴光。
중생은 간절히 두루 부처님을 우러르고 있나니 10력(力)의 위세를 지니셔도 교만하지 않으시며 대인(大仁)의 덕은 높고 용맹하시니 과보가 성성(聖性)에 두루 미치어 이곳에 유행(遊行)하소서.
013_0407_c_10L衆生甚多普渴仰, 十力持勢威無慢;
大仁德峻勇而果, 聖性爾枉昇遊此。
부끄러움과 길상함과 족함을 갖추시어 덕이 가장 으뜸가시니 구제하여 길러내심이 두루 하여 지극하지 않음이 없으시며 스승과 벗은 비할 바가 없으며 대중을 끌어안으시며 용 수억 마리를 교화하여 대비를 일으키셨습니다.
013_0407_c_12L慚祥備足德最上, 寧救濟育遍無極;
師友無雙恊懷衆, 化龍億百興有悲。
위력과 용맹으로 세상을 두루 자비롭게 구제하시니 온갖 행에 통달하여 아시어 응당 뜻과 같으시며 두루 펼치고 나타내 보이시는 유일한 천존(天尊)이시여. 신령스런 발을 가볍게 드시어 지금 이곳에 이르소서.
013_0407_c_14L於世威猛普慈救, 達知衆行應如意,
開布散示唯天尊! 輕擧神足願時至。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뇩달이 청한 시기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을 아시고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옷을 입고 발우를 들어라. 그리고 절을 지킬 사람을 선출하여라. 무열(無熱)용왕이 멀리서 꿇어 앉아 때를 알리고 있다. 응당 보름 동안 공양을 받을 것이니. 이제 그곳으로 나아가리라.”
이때 8만 4천의 보살은 모두가 큰 신통력의 덕을 고루 갖추었고 제자들 2천 명 또한 신족통의 우두머리였는데, 그들은 세존을 앞뒤로 에워싸고 지진(至眞)ㆍ여래(如來)를 인도하였다. 영취산으로부터 문득 허공을 날아올라 신통력으로 나아갔는데, 그 색상(色像)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 가지의 광명을 놓는 것처럼 삼천대천의 경계를 고루 비추어 두루 널리 빛을 발하였다.
013_0408_a_01L모든 욕계와 색계의 하늘들이 모두 세존을 뵙고 무수하게 빛을 놓으며 허공으로 날아오르면서 서로 말하였다. “신존(神尊)께서 저 무열용왕의 처소에 이르셔서 장차 법의 교화를 일으키셔서 한없이 지극하게 법을 연설하려고 하신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이셔서 보름 동안 많은 하늘의 수백천의 무리들이 세존을 뵙고 법을 들을 수 있게 하려 하신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다시 무열용왕이 마련한 곳의 장식들과 신통변화를 두루 살피고 세존께서 그곳에 이르러 머무시도록 하였다. 그러자 천자들이 각기 여래를 공양하고자 마음을 내었는데, 어떤 이는 소원하며 꽃을 흩뿌리고 어떤 이는 빼어난 향을 뿌렸으며 어떤 이는 하늘의 음악으로 부처님의 덕을 노래하였다. 또 어떤 이는 깃발과 일산과 비단 우산을 내걸고 여래를 따르고자 하였다.
세존의 몸빛은 눈부시도록 찬란하게 빛났으니, 그 밝기란 해와 달이나 별 또는 정색정(淨色淨)과 모든 하늘의 빛을 뛰어넘었다. 부처님의 성스러운 위력은 한량없이 신령스럽게 빛났으며, 근정(根定)은 고요하고 행(行)은 상서롭고 편안하게 노니셨다. 제석과 범천과 사천왕(四天王)이 갖가지 변화로 감응하여 여래를 받들어 공경하며 뒤를 따르면서 모셨다.
그러자 용왕은 세존과 모든 보살과 제자 대중들이 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 나서 마음에 한량없는 큰 기쁨을 일으켰다. 곧이어 그 무리들이 손으로 어림잡아 헤아리니 마련된 찬거리들은 세간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감미롭고 기름진 것이었고, 널리 하늘의 맛과 갖가지 반찬을 두루 갖춘 것이었다. 그것을 불보살과 제자와 모든 대중들에게 공양하자, 그들은 모두 만족하게 여겼다. 세존과 보살과 모든 제자들이 공양을 마치고서 각자 발우를 씻고 나자 대중들이 모두 마쳤음을 살폈다. 이때 아뇩달이 곧 여래께 설법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정오가 지난 뒤에 곧 선정으로부터 일어나 단정하게 앉으셔서 설법하셨다. 모든 모여든 무리들은 천 유순에 가득 찼으니, 다른 곳으로부터 지상에 이르도록 그 중간에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하늘과 응과 귀신과 인비인(人非人)들은 모두 지진ㆍ정각을 에워쌌으며, 모든 모여든 자는 각기 마음에 큰 기쁨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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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용왕이 기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거듭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오직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곳에 모인 무리들을 위하여 응당 법을 설해주소서. 그리하여 저 모든 이들로 하여금 나고 죽는 것을 벗어나고 여의게 하시며, 영원히 5음(陰)의 모든 괴로움과 더러움과 티끌과 어둠과 세속의 일에 시달리는 행을 없애게 하시며, 영원히 3독(毒)과 의결(意結)의 어둠을 없애게 하시며, 나아가 용의 무리들이 삿된 어둠을 버리고 그 마음과 뜻을 다스려 제어할 수 있게 되어 널리 지극한 선을 이루고 기쁨에 넘치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깊이 보살을 행한 후에 여래와 같이 현재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언제나 저희들로 하여금 머물고 있는 나라나 고을에서 바른 법을 수호하여 지니게 하소서.”
그러자 세존께서 용왕을 찬탄하셨다. “참으로 장하구나. 아뇩달왕이여, 그 뜻을 잘 듣고 부지런히 생각하며 널리 퍼뜨려라. 나는 마땅히 널리 설하여 이 모인 대중으로 하여금 죄의 통근(痛根)을 멀리 벗어나게 하고, 잡상(雜想)의 의식과 뜻의 의심을 뽑아내게 하여 보지(普智)를 깨달아 삼계(三界)를 벗어나 노닐게 하리라.”
이때 용왕이 말하였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널리 설하시는 것을 즐겨 듣고서 마땅히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013_0408_c_13L時龍王言:“善哉世尊!願樂廣說,當頂受行。”
그러자 성존(聖尊)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하나의 법으로써 보살을 응당 행하는 자는 하늘과 세상의 사람들에게 깊은 공경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하나인가? 뜻을 두어 깊은 법을 수행함으로써 무욕(無欲)을 행하는 것이다. 무엇이 깊은 법을 행하되 무욕을 행한다고 하는 것인가? 용왕이여, 이와 같이 보살이 인연의 없음[無]에 의지하면 따라서 두 가지 견해의 경계를 떠난다. 있고 없음을 아는 자는 바로 모든 법을 본다. 인연에 집착함으로써 연생(緣生)에 말미암지 않는 법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인연에 의지한다. 이것은 연에 의지하지 않는다. 저것은 마(魔)에 의지하지 않는다.’
013_0409_a_01L그 연에 의지한다면 그것을 나[吾]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아(我)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그 연에 의지하는 중에는 나와 나의 것이 없나니, 연에 의지하면 주재(主宰)함도 없고 또한 집착하여 지키는 것도 없다. 그 연(緣)에 의지하여 기생(起生)을 요해(了解)하여 재빨리 네 가지 의지하는 생각을 쉽게 이룰 수 있게 된다.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지극한 뜻[至義]에 의지하며 문장의 수식에 의지하지 않고, 혜행(慧行)에 의지하며 식념(識念)에 의지하지 않으며, 의경(義經)에 의지하고 반연(攀緣)에 의지하지 않으며, 법을 생각함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뜻[義]이라 하고 혜(慧)라 하는가? 어떤 것이 순의(順義)이며 어떤 것이 법을 생각하는 것인가? 뜻이란, 공의 뜻(空義)은 허망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무상(無相)의 뜻은 염식(念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무원(無願)의 뜻은 삼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무수(無數)의 뜻은 수(數)에 집작하지 않는 것이다. 또다시 뜻이란, 법(法)과 비법(非法)에 있어서 둘이 없는 것이다. 음성은 얻을 수 없고, 염상(念想)에는 기억이 없으며, 법처(法處)는 머묾이 없다. 인(人)이 없기 때문에 명(命)과 수(壽)와 말과 소리가 거짓이며 있지 않다. 또다시 뜻이란, 그 법의 뜻은 무욕(無欲)의 뜻이다.
무엇을 일러서 보살의 법의 뜻이라고 하는가? 눈과 색이 없고,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마음과 법의 뜻이 없는 것이다. 색의 뜻이 생하지 않고 색의 뜻이 멸하지 않으며, 수ㆍ상ㆍ행ㆍ식의 뜻이 없고, 또한 식행(識行)의 뜻이 생멸(生滅)하지 않고, 또한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뜻이 아니며, 또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뜻이 생멸하지 않고, 또한 아(我)의 뜻이 없고, 또한 아견에 집착하여 들어가는 뜻이 없고, 인(人)의 뜻이 없으며, 또한 인견(人見)에 집착하여 들어간다는 뜻이 없고, 또한 유불신(有佛身)에 집착하여 들어가는 뜻이 없고, 또한 법과 문자에 집착하여 들어간다는 뜻이 없고, 수(數)와 계회(計會)에 집착하여 들어간다는 뜻이 없고, 또다시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에 집착한다는 뜻이 없으며, 일체 모든 법의 뜻에 깨달아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것을 보살이 법의 뜻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이 뜻에 따른다면 물러남이 없으며, 이것을 뜻이라고 하는 것이다.
013_0409_b_01L무엇을 지혜[慧]라고 이름하는가? 이른바 고(苦)가 발생하지 않는 지혜, 무념(無念)을 배우는 지혜, 진력하여 모두 다하는 지혜, 도(道)에 뜻이 없는 지혜, 음(陰)과 환법(幻法)의 모든 성품 속에서 법성이 훼손되지 않는 지혜,모든 유정[情]에 대하여 공한 지혜, 모든 법을 깨달아 들어가며 중생의 근기에 밝아서 두루 만족시키는 지혜이니, 뜻을 두어도 망령됨이 없고 여러 정의(正意)와 불의(不意)에 대해 생각이 없으며, 모든 단(斷)에 있어서는 마음[意]이 선(善)이나 불선(不善)에서 동등하며, 그 신족(神足)이 몸과 마음에 있어서 지혜를 세운다. 또한 모든 근(根)에 있어서 가벼움과 무거움을 아는 지혜, 모든 각의(覺意)에 대해서 모든 법을 깨닫는 지혜, 그리고 모든 역(力)에 있어서 이미 항조(降調)하는 지혜, 도(道)가 무수히 적멸하는 지혜, 법을 관별(觀別)하는 지혜, 비롯하지만 생하지 않는 지혜, 오지만 이르지 않는 지혜, 중간에 머물지 않는 지혜, 몸에 있어서 상(像)인 지혜, 메아리로써 말하는 지혜, 심법(心法)이 환(幻)인 지혜이니, 이것을 보살의 지혜를 밝혀 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무엇을 순도의경(順導義經)이라고 하는가? 이러한 인연에 따라서 일어나면 그런 것은 어리석음을 멸하고, 늙음과 죽음과 무아를 멸하여, 아(我)와 인(人)과 명(命)과 수(壽)가 없는 속에서 모든 중생을 깊이 깨달으니, 만일 여래아(如來我)가 모두 참다운 법이 아니면 3해탈문(解脫門)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3세(世)에서 3무착(無著)을 구하니, 이른바 모든 법에서 전혀 생함이 없다는 것을 보고 나서, 이미 아는 자는 마찬가지로 세속의 정태(情態)를 멸하고 벗어남을 얻는다. 보살은 지혜도무극(智慧度無極)에 이르러서 모든 의념(意念)에 의혹이 없어지며 응당 이러한 행에 들어가니, 이것을 순의(順義)라고 한다. 또한 가고 이르는 바가 없으며 또한 따라서 옴이 없고 열반무위(涅槃無爲)는 가서 이름이 없으니, 이것을 순의(順義)라고 한다.
013_0409_c_01L무엇을 여법(如法)이라고 하는가? 만일 모든 여래께서는 세상에 나거나 나지 않거나 법신(法身)은 항상 머무니, 이것을 여래라고 한다. 여여(如如)하여 본래 없어 불어나거나 줄어듦이 없으며, 둘이 아니고 둘이 없어서 진제법성(眞際法性)이니, 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또한 행보(行報)를 훼손하지 않고 보법(報法)을 행하지 않으니, 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대승은 6도무극(度無極)에서 연유한 것이다. 연각승[緣一覺乘]은 인연에 따라서 벗어나며, 성문승은 음성(音聲)에 의하여 벗어나니,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보시는 큰 복을 이루고, 지계는 생천(生天)을 얻으며, 널리 들은 것과 크게 지혜로움과 정념(定念)은 해탈을 이루니, 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행을 따라서 닦지 않는 자는 나고 죽음을 일으키며, 행이 순수함에 도달하여 무위(無爲)를 세우면 여법이라고 한다. 어리석음은 욕력(欲力) 때문이며 지(智)는 혜력(慧力)이니, 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저 일체법은 모두가 법성에 의지하니, 용왕이여, 이와 같이 인연에 의하여 일어나는 자는 곧 응당 네 가지 의지하는 생각을 얻을 것이다. 인연에 의지하면 그는 곧 모든 것을 끊어 유무(有無)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을 가리켜서 인연을 보고 일으키는 자는 바로 모든 법을 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을 보는 자는 바로 여래를 본다. 그 까닭은 무슨 인연인가? 용왕이여, 일어남[起]과 일어나지 않음[無起]에 대해 동등하면, 법과 비법(非法)에 있어서 동등하여 집착하지 않는다. 또 여래는 또한 인연의 일어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요, 또한 일으킴의 법이 있지 않아서 가히 얻을 수 없으니, 그 법을 깨닫는 자는 바로 여래이다. 인연의 일으킴을 혜안(慧眼)으로써 보니, 혜안으로 보는 것은 곧 모든 법이요, 모든 법을 보는 자는 바로 여래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인연의 일으킴을 보는 자는 곧 법을 보는 것이요, 그 법을 보는 자는 바로 여래를 본다’고 한다.
또한 여래는 법으로써 법을 본다. 이와 같이 용왕이여, 만일 이 법행(法行)으로써 해탈에 상응한다면 이것을 보살이 무욕(無欲)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013_0409_c_17L又如來者以法見法。如是,龍王,若以此法行應脫者,斯謂菩薩而無欲行。
또한 용왕이여, 무욕보살은 욕습(欲習)을 짓지 않는다. 현성(賢聖)을 기뻐하고 즐기며 현성이 아닌 것은 버린다. 현성의 종자를 부지런히 사모하고 일으키며 보호하니, 모든 혜를 널리 모아서 법을 보호하며 널리 들음을 닦고 뜻을 심어서 잊지 않는다. 계(戒)의 몸을 버리지 않고 지(智)의 몸을 치우치지 않으며 정(定)의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그 혜(慧)의 몸에 있어서 능히 견고하게 머물게 되며 혜견(慧見)을 벗어나는 몸은 굳고 견고하며 굴리기 어렵나니, 혜견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013_0410_a_01L또한 다시 용왕이여,무욕보살은 무수한 부처님의 정법도의(正法度義)를 얻고 또한 무수한 모든 부처님의 요혜(要慧)를 갖추고 또한 과보로서 다함없는 모든 부처님의 말솜씨를 이루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신족통을 얻고, 셀 수 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의 권해(權解)를 이룸으로써 널리 무량한 중생의 행에 들어가며, 무수한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벗어나고 노닐며, 백천 여래를 봄으로써 무수한 모든 법을 들을 수 있게 되며, 무수한 의(義)를 얻고 무수한 지혜를 얻으며 무수한 행을 밝히며, 무수한 중생을 제도한다.
또한 다시 세 가지 발생이 있다. 적멸하여 오로지하며, 관(觀)을 밝게 깨달으며, 여법하게 행을 따르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발생이 있다. 덕을 갖추고 인자하게 다스림으로써 고요함을 이루어 부지런히 행함으로부터 생하는 것이다. 또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행을 따라서 곧고 아첨하지 않으며, 어질고 자애로우며, 조인(調忍)하는 것이다.
또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침체되거나 신음하거나 의심이 없고, 선함을 따르기에 거칠지 않으며 뜻이 충분하여 공양한다. 또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그 공(空)을 따라서 생하며, 또한 무상(無想)을 따라서 생하며, 또 무원(無願)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또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마음으로 생하는 모든 법은 무상하니 마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모든 법의 괴로움은 또한 마음으로부터 생하며, 모든 법이 무아인 것 역시 마음으로부터 생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일이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생하니, 모든 법이 무상한 것과 일체 법이 무아인 것과 멸진무위(滅盡無爲)는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하는 것이다.
013_0410_b_01L이와 같이 용왕이여,보살의 등멸(等滅) 또한 마음으로부터 발생한다. 그것은 보지심(普智心)을 버리지 않고서 행으로써 일체를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니, 이는 대비(大悲) 때문이다.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은 대자심(大悲心) 때문이며, 나고 죽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대희(大喜) 때문이다. 평등하게 기쁨과 분노를 여의는 것은 대호(大護) 때문이며, 가진 지혜를 베푸는 것은 과보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며, 온갖 계학(戒學)을 행하는 것은 덕의 뜻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안으로 자신의 허물을 벗고 다른 이의 단점을 논하지 않는다. 능히 중생의 모든 불선행(不善行)을 견디며, 그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굳게 금강과 같아지기를 바라고, 온갖 선과 덕의 근본을 모아서 몸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일체에 이를 수 있게 되고, 모든 선정을 마음으로 닦되 피로함을 내지 않고 선정으로써 닦아도 생하는 바가 있지 않다. 효지(曉智)는 권도방편으로써 중생에게 수순하며, 그 제혜(諦慧)로써 모든 해탈을 바라는 자를 제도한다.
성문과 연각승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자는 불법을 염하여 모든 부처의 법을 구하는 것을 나타낸다. 마음으로 능히 괴로움을 참고 널리 법을 펼치는 까닭이다. 온갖 이익과 공경과 공양을 가볍게 여기고 이것을 버리며, 모든 상과 덕행을 갖추고자 하며 싫증을 내지 않고 지혜가 충만하고 많이 듣는 것에 부지런하다. 착한 벗을 가까이하고 선지식을 만나나니 겸손하고 공경하기 때문이다. 겸행(謙行)에 응하는 것을 얻는 것은 자신의 교만을 항복시켰기 때문이다. 자신의 교만을 항복받음으로써 지행(志行)을 갖추기 때문이다. 의행(意行)을 두루 만족하는 것은 아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첨을 떠나는 것은 말과 행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 거짓됨이 없음은 성실한 믿음을 닦기 때문이다. 신의(信義) 있는 말에 머무는 것은 온갖 거짓을 떠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멸하고 없애는 것은 성실한 믿음을 낳기 때문이다. 믿음에서 마음을 항복시키니, 이와 같이 용왕이여, 이것을 보살이 그 마음을 생한다고 한다. 이것을 무욕(無欲)이라고 한다.
013_0410_c_01L또다시 용왕이여, 무욕보살은 마(魔)가 능히 그 한편을 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 보살은 응당 한정(限定)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유한(有限)의 법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서 유한의 법이라고 하는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모두 유한이니, 보살은 이것에 대해서집착하지 않는다. 이로써 무한(無限)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문과 연각승은 유한이니, 보살이 보지심에 머무른다면 악마가 그 한편(限便)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유념무념(有念無念)의 염상(念想)은 유한이며, 보살은 온갖 염의 상응함을 떠났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보살은 악마가 능히 그 한편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용왕이여, 두 가지 악마의 일[魔事]이 있는데, 보살은 마땅히 깊이 이것을 깨달아서 또한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어떤 것이 두 가지 일인가? 스승과 벗에 대해서 공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 크게 교만을 떨며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두 가지 일이다. 또 두 가지 악마의 일이 있으니 보살이 6도무극장(度無極藏)을 버리는 것이고, 마음으로 도리어 성문과 연각의 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가까이 행하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지혜가 없으면서 권(權)을 행하고자 하는 것이고, 모든 집착과 망견(妄見)의 중생들과 서로 사귀면서 즐겨 익히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들은 것이 거의 없고 지혜가 적으면서 스스로 지혜에 도달하였다고 하며, 비록 널리 지혜가 있더라도 그 가운데 빠져 스스로를 높이 자랑하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덕이 참으로 적은데 망령되게 존귀함을 일으키는 것이며, 만일 덕행을 닦더라도 소승을 즐기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정법을 수호하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뜻으로는 모든 보살의 행을 익히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온갖 지혜에 통달해 있고 밝은 지혜를 갖춘 자와 함께 있어도 오로지 청정하고 고결한 보살을 비방하는 일만 하며 주로 법사(法師)를 위해서 자주자주 폐해를 일으키며, 또한 스승의 가르침을 장애하고 많은 아첨을 하는 것이다.
013_0411_a_01L또다시 두 가지 악마의 일이 있으니, 모든 덕의 근본을 버리는 것과 마음이 부덕(不德)함에 있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비록 한가롭게 있더라도 3독(毒)의 생각을 품어서 뜻이 언제나 어지러운 것이며, 만일 나라나 도읍에 노닐면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사람들을 위하여 깊은 법의 요체를 설하지 않고, 응당 설해야 하는 것을 도리어 설하지 않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악마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보지(普智)에서 멀리 떠나 마음이 자주 뒤바뀌고 어지러운 것이다.
이와 같이 용왕이여, 바로 악마의 일의 모습들이 이와 같으니, 무욕보살은 영원히 이것을 갖고 있지 않다. 또다시 용왕이여, 만일 어떤 보살이 청정행을 행하면서 응당 무욕이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살의 열여섯 가지 큰 힘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힘에서 자신의 뜻을 조복시킴으로써 중생을 교화해야 한다. 어떤 것이 보살의 열여섯 가지 힘이라고 하는가? 지력(志力)ㆍ의력(意力)ㆍ행력(行力)ㆍ참력(慚力)ㆍ강력(强力)ㆍ지력(持力)ㆍ혜력(慧力)ㆍ덕력(德力)ㆍ변력(辯力)ㆍ색력(色力)ㆍ신력(身力)ㆍ재력(財力)ㆍ심력(心力)ㆍ신력(神力)ㆍ홍법력(弘法力)ㆍ복제마력(伏諸魔力)이다. 무욕보살은 이 보살의 열여섯 가지 큰 힘을 얻는다.
어떤 것을 보살의 지력(志力)이라고 하는가? 이와 같이 용왕이여, 보살의 지력(志力)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뵙고 설하신 모든 말씀을 모두 지니니, 이것을 지력이라고 한다. 이 보살의 뜻은 모든 부처님의 행에 응하며 모든 중생에 대해서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니, 이것이 의력(意力)이다. 능히 모든 음성에 통달하여 설하신 모든 뜻을 환히 이해하니, 이것을 행력(行力)이라고 한다. 모든 죄의 행을 여의고 뭇 덕의 법을 일으키니, 이것이 곧 참력(慚力)이다. 모든 온갖 어려움에서 그릇된 행을 행하지 않으니, 이것이 강력(强力)이다. 수천억의 악마의 병사들이 능히 감당해내지 못하니, 이것이 지력(智力)이다.
013_0411_b_01L법을 지니는 것에 통달하여 널리 퍼뜨리고 고루 배워서 잊어버리지 않으니, 이것이 지력(持力)이다. 집착하지 않고 잊지 않으며 백천 겁 동안에 그 설해진 바를 장애 없고 끊임이 없이 모든 법을 따라서 이해하니, 이것이 변력(辯力)이다. 만일 모든 제석이나 범(梵) 및 사천왕이 모든 보살에게 가서 침묵하고 색(色)이 없다면, 이것이 단정력(端正力)이다. 그 보배로운 머리로 염원해야 할 바가 뜻에 응하여 곧 이르면, 이것을 재력(財力)이라고 한다. 모든 외도를 뛰어넘어서 그 속에서 홀로 존귀하니, 이것이 신력(神力)이다. 중생의 마음은 능히 그 마음을 하나로 하고중생의 마음을 알아서 그에 따라서 교화의 행을 하면, 이것이 심력(心力)이다.
중생 가운데 응당 신족통으로 제도해야 할 자는 신변(神變)을 나타내어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니, 이것이 신족력(神足力)이다. 만일 설해진 법을 중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하는데, 중간에 끊지 않고 중생이 받아 지녀 따라서 행하여 동등하게 괴로움을 모두 다하여 없앤다면, 이것이 홍법력(弘法力)이다. 만일 그 선정과 삼매[正受] 때 부처님의 뜻과 현성의 행법을 이어받으면, 이것이 항마력(降魔力)이다.
이것을 보살의 열여섯 가지 큰 힘이라고 하니, 어떤 행하는 자가 있어서 뜻으로 이 열여섯 가지 힘을 사모하여 원하며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욕을 닦아라. 비유하면 용왕이여, 모든 강물의 흐름이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도법(道法)의 모든 행과 37품(品)은 모두 무욕으로 돌아간다. 또한 용왕이여, 마치 모든 약과 풀과 나무는 대지에 의지하는 것처럼 모든 선행의 법은 모두가 무욕으로 말미암는다. 비유하면 용왕이여, 전륜성왕은 중생이 즐거워하는 것처럼 만일 이것을 무욕보살이 갖춘다면 곧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과 세간의 사람들의 사랑과 즐거움을 받게 될 것이니라.”
혜(慧)보살이 되고자 원하고, 불도에 뜻 있는 자는 마땅히 더러운 법을 여의어야만 하니 언제나 부지런히 무욕(無欲)을 행하여야 한다.
013_0411_b_15L欲爲慧菩薩, 志願佛道者; 彼當離穢法,
常勤行無欲。
지혜로써 인연법을 밝게 이해하며, 보이는 경계에 의지하지 말며, 인연으로써 법을 관해야 하나니, 연이 없으면 법이 없다.
013_0411_b_17L慧解因緣法, 不猗於見際;
睹法以因緣, 無緣不有法。
연생(緣生)인 그것은 무생(無生)이니 이것은 자체로 생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연(緣)에 집착하는 것, 이 또한 공하니 공을 알면 그것은 욕심이 없는 것이다.
013_0411_b_18L緣生彼無生,
是不與自然; 善緣斯亦空, 知空彼無欲。
연에 집착하더라도 무상(無相)이요, 벗어나기를 원하여 고요하고 또한 고요하다. 담박한 모습은 큰 어리석음이고, 악마는 그곳을 깨닫지 못한다.
013_0411_b_19L著緣而無相, 脫願寂復寂; 澹泊像大愚,
其處魔不審。
법을 보지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나[吾]와 아(我)가 없고, 그에게 아(我)와 인(人)이 있지 않나니 이것을 안다면 곧 욕심이 없는 것이다.
013_0411_b_21L見法無著緣, 於其無吾我;
彼不有我人, 知是則無欲。
주(主)가 없기에 지키거나 보호함도 없고 얻음도 없고 또한 버림도 없다. 본래부터 해탈이어서 취하고 버림이 없으니, 탐욕을 떠나서 언제나 법을 깨친다.
013_0411_b_22L無主不守護,
不獲亦弗捨; 本脫無取捨, 離欲常了法。
013_0411_c_01L 뜻을 보되 가식을 하지 않으며 지혜를 행하되 언제나 분별을 벗어나고 순의경(順義經)을 밝게 깨우치고
법에 의지하되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
013_0411_b_23L觀義不爲飾, 慧行常脫識; 曉了順義經,
依法不爲人。
공의 뜻은 바로 불법(佛法)이며, 그리고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을 해탈하여 견념(見念)을 의지하거나 짓지 않나니, 이 뜻이 바로 무욕이다.
013_0411_c_02L空義是佛法, 及脫無相願;
不猗造見念, 是義其無欲。
법에 있어서 두 가지가 있지 않으며, 음성은 얻을 만한 것이 없고, 법에 처하되 가히 흔들리기 어렵고 입(入:12入)의 뜻이 아닌 것이 무욕이다.
013_0411_c_03L於法不有二,
音聲無可得; 處法難可動, 不人義無欲。
법의 뜻은 욕아(欲我)가 없고, 눈과 귀는 색과 소리 없고 코와 입은 냄새와 맛을 떠났으며 몸과 마음은 촉감과 법이 없다.
013_0411_c_04L法義無欲我, 眼耳不色聽; 鼻口離香味,
身心無更法。
색은 생멸의 뜻이 아니고 또한 통상(痛想)을 떠나지 않으며, 또한 식(識)의 아(我)에 머물지 않나니 이것에 도달하면 법의(法義)에 응한다.
013_0411_c_06L不色生威儀, 又不離痛想;
亦無識住我, 達是應法義。
삼계의 뜻에 머물지 않고 또한 나[吾]와 아(我)의 뜻이 없다. 세존께는 색신이 없고, 문자로써 법을 말씀하시는 뜻이 없다.
013_0411_c_07L不住三界義,
亦無吾我義; 世尊無色身, 無字法說義。
계수(計數)는 법의 의미가 아니며, 요체에 이를 수 없으니 보시가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니 아세존(我世尊:如來我)이 없다.
013_0411_c_08L計數非法義, 至要不以施; 非戒忍進定,
慧無我世尊。
모든 법을 무(無)의 뜻으로 이해하니 이것을 법요(法要)라고 부르며, 법의 의미에는 영원히 뜻이 없으니, 무욕은 곧 불법이다.
013_0411_c_10L諸法解無義, 智謂是法要;
於義永非義, 無欲則佛法。
생함 없음을 깨닫는 것은 혜(慧)와 같고 생기하지 않는 것은 소멸함도 없다. 또한 마지막도 없으니, 이와 같이 세존의 배움에 상응한다.
013_0411_c_11L無生曉苦慧,
不起無有滅; 不生亦無終, 如是應尊習。
5음(陰)은 환(幻)과 같음을 깨닫고, 그것이 법성과 같다고 알아서 안으로는 공의 무더기와 같음을 깨달으니, 이것을 밝게 아는 것을 무욕이라고 한다.
013_0411_c_12L五音解若幻, 知其如法性; 曉內如空聚,
了是爲無欲。
법을 알고 나아가 회향하면 중생의 정(情)에 밝게 도달하니 바른 뜻으로써 생각을 끊고 무욕이면 이 혜(慧)를 얻는다.
013_0411_c_14L知法至趣向, 明達衆生情;
逝念以止意, 無欲得是慧。
의단(意斷:正斷)에 둘이 없고, 신족(神足)의 마음이 가볍게 날아오르며 힘[力]을 갖추었으나 교만함이 없고, 모든 근(根)이 절제와 만족을 알며
013_0411_c_15L意斷無有二,
神足心輕騰; 以力而無慢, 諸根知止足。
지(智)로써 각정(覺定:覺支)을 깨달으며, 여덟 가지 곧은 길[八道]을 밝게 이해하니 혜(慧)는 멸행(滅行)을 관하고, 법이 돌아갈 곳을 이해한다.
013_0411_c_16L覺定解以智, 明了八直道; 慧觀於滅行,
解法所至歸。
본래의 법은 발생이 있지 않고 미래의 법에도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현재에는 머무는 법이 없으니 탐욕이 없는 것을 이와 같이 안다.
013_0411_c_18L本法不有生, 當來而未至;
現在無住法, 不欲知如是!
신상(身像)은 견고하지 않고 말[語]은 공하니 비유하면 메아리와 같으며 마음의 환(幻)은 바람과 같으니, 탐욕이 없는 것을 이와 같이 깨닫는다.
013_0411_c_19L身像無堅固,
語空譬如響; 心幻若如風, 無欲解如是!
순의경(順義經)을 설함을 알아서 인연을 통달하여 알며, 본래의 어리석음과 나고 죽음이 소멸하니 무욕이 바로 혜의(慧義)이다.
013_0411_c_20L知說順義經, 了達於因緣; 本癡生死滅,
無欲是慧義。
아(我)와 인(人)과 명(命)과 수(壽)가 없고, 법과 비법(非法)을 밝게 이해하며 이로써 세 가지 문을 해탈하나니 공(空)이라 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013_0411_c_22L無我人命壽, 解了法非法;
以脫於三門, 所說空無著。
무생(無生)으로써 멸도(滅度)를 보고 속세의 행과 같이 혜(慧)를 익히면 마음과 뜻이 따라서 생하지 않으니 무욕으로써 행을 깨닫는다.
013_0411_c_23L無生見滅道,
習慧喩俗行; 不從心意生, 無欲覺是行。
013_0412_a_01L
법성이 언제나 머무는 것처럼, 부처님이 아시거나 멸도하여도 여여하게 머물며 각과 불각(不覺)은 둘이 없으니 무욕하면 이 법을 안다.
013_0412_a_01L法性常如住, 佛興及滅度; 無二覺不覺,
無欲知是法。
그 쌓임은 본제(本際)와 같아, 그 쌓임은 다 모든 법이니 공의 쌓임[空積]과 인제(人際)에 무욕하면 이 지(智)에 통달한다.
013_0412_a_03L其積如本際, 彼積悉諸法;
空積及人際, 無欲達是智。
법성은 항상하여 깨달음이 일어나거나 멸도하여도 항상 머무는데 그 둘을 식별하여 알지 못하나니 무욕의 법은 이와 같다.
013_0412_a_04L法性常以住,
覺起而滅度; 不識知其二, 無欲法如是!
선(善)과 불선(不善)에 재앙이 없나니 법에는 죄의 갚음이 없는 것을 안다. 불법은 다른 것을 따르지 않고 도무극(度無極)을 따라서 행한다.
013_0412_a_05L不殃善不善, 知法無罪報; 佛法不從他,
從行度無極。
인연을 여읨은 연각(緣覺)이요, 소리로써 해탈함은 성문의 행이다. 지혜로운 보시는 큰 부(富)를 이루고 지계(持戒)로써 하늘에 나는 것을 본다.
013_0412_a_07L以離因緣覺, 音脫聲聞行;
惠施致大富, 彼見戒生天。
널리 듣고 지혜를 얻으며, 뜻을 지키고 중생을 교화하니 지성(至聖)은 모두 뜻을 지킨다. 무욕의 법은 이와 같다.
013_0412_a_08L博聞得智慧,
守意化衆生; 至聖都守意, 無欲法如是!
힘은 언제나 모든 탐욕을 굴리고 지혜의 뜻은 법을 있게 하고 이 모든 법을 동등하게 생각함에 법성은 언제나 무득(無得)이다.
013_0412_a_09L力常轉諸欲, 智慧志存法; 等念是諸法,
法性常無得。
인연의 일어남을 식별하여 알아서 네 가지 덕의 행을 이루며, 의미와 법을 알고, 의미를 수순하여 무욕을 안다.
013_0412_a_11L識智因緣起, 而致四德行; 知義及與法,
順義知無欲。
연(緣)을 관하는 그는 법을 보고 법으로써 세존을 본다. 생하고 멸하는 법에 동등하며 무욕(無欲)이면 최상의 가르침[尊法]을 깨우치게 된다.
013_0412_a_13L觀緣彼見法, 以法見世尊,
等於起滅法, 無欲了尊法。
인연의 자취는 얻을 수 없으며 음성의 법은 문자가 아나니 이와 같이 법의 본래 없음을 얻으면 이 성스러움을 일컬어 여래라고 한다.
013_0412_a_14L因緣迹無得,
音聲法無字; 斯法得本無, 是聖謂如來!
혜(慧)로써 인연을 보니 견(見)과 불견(不見)의 법이 없다. 밝은 혜[明慧]는 인연을 환히 아니 이것을 세존을 본다고 한다.
013_0412_a_15L以慧見因緣, 無見不見法; 明慧了因緣,
是謂見世尊!
그가 무욕행을 구하며 열성(悅性)의 모든 현성(賢聖)은 법성(法性)이 무너져도 버리지 않으며 현성의 종자를 보호한다.
013_0412_a_17L彼求無欲行, 悅性諸賢聖;
法性毀不捨, 而護聖賢種。
언제나 부처님의 바른 법을 보호하고 탐욕이 없으며 법을 듣고도 잊지 않는다. 계의 근(根)을 버리고 떠나지 않으며 정(定)에 도달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013_0412_a_18L常護佛正法,
無欲聞不忘; 戒根不捨離, 於定達難動。
신혜(身慧)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알아서, 언제나 해탈신[脫身]과 해탈혜[脫慧]에 머무니, 보는 것에 욕심 없으면 언제나 편안히 머문다.
013_0412_a_19L知身慧不動, 常住於脫身; 及脫慧所見,
無欲常安住。
모든 부처님의 법과 무량한 뭇 성도(聖道)를 깨우쳐 들어가면 부처님의 신족통을 갖추게 되고 일체 행에 환히 통달하게 된다.
013_0412_a_21L解人諸佛法, 無量衆聖道;
得佛神足具, 辯達一切行。
중생들의 마음이 행하는 것을 알아서 홀연히 모든 국토에서 노닐며 모든 여래를 뵙고 그분들의 설법을 듣게 되며
013_0412_a_22L知衆情意行,
忽然遊諸土; 得見諸如來, 受彼所說法。
013_0412_b_01L 듣고 지키며 뜻을 이해하고 통달하며 무량한 사람들에게 널리 베푼다. 그는 수억(數億)의 행을 알며,
뜻하여 무수하게 향함을 얻고
013_0412_a_23L聞守解達義, 宣示無量人; 知彼億數行,
志得向無數。
무욕은 응당 자재하니 마음을 항복시켜 공덕에 들어가며 뜻을 항복시켜 탐욕을 없애면 끝내 이 세상에서 옮겨가지 않는다.
013_0412_b_02L無數當自在, 降心入功德;
伏意使無欲, 終不遷是世。
모든 음(陰)과 마음은 이미 해탈하며, 일어나고 멸하는 곳을 환히 알아서 멸함에 있는 바가 없음을 관하면 익히는 바는 이로써 멸하게 된다.
013_0412_b_03L諸陰心以脫,
了知起滅處; 觀滅無所有, 所習以而無。
음성은 본래 마음이 행하는 바라 아첨함이 없고 언제나 단정하고 진실하며 간사하지 않고 어질고 선하니 무욕의 덕은 이와 같다.
013_0412_b_04L聲性心所行, 不諂常端直; 無佞調仁善,
無欲德如斯!
공(空)과 무상(無想)과 무원(無願)의 해탈로써 괴로움을 알고, 나고 죽음을 알면 무아(無我)의 법은 항상 고요하니 무욕은 마음을 따라서 행한다.
013_0412_b_06L以脫空想願, 解苦知生死;
無我法常寂, 無欲從心行。
보지심(普知心)은 동등하게 자애롭고 비(悲)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기뻐하여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고 행으로써 지키기에 치우침이 있지 않으며,
013_0412_b_07L普知心等慈,
以悲濟衆生; 喜不厭生死, 行護無有邊。
보시한 것에 과보를 바라지 않고 자기를 살펴서 모든 행을 세우며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것을 참고 견디며 저 중생을 해탈케 하고자 생각한다.
013_0412_b_08L所施無望報, 省己立諸行; 忍耐善不善,
念脫彼衆生。
부지런히 정진하고 굳세게 덕을 닦으며 몸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차례로 모든 선정을 알지만 또한 선정에 떨어지지 않으며
013_0412_b_10L勤精强修德, 不計有身命;
以次知諸定, 亦不隨於定。
지혜와 선정에 크게 정진하고 수(數)에 있되 수에 떨어지지 않으며 진리로써 성문을 교화하고 지(智)로써 멸도를 바라지 않는다.
013_0412_b_11L慧定大精進,
於數不墮數; 以諦化聲聞, 智不志滅度。
무욕하면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며 거기에 이 모든 법을 갖고 있지만 악마는 그 행을 알지 못하니 법에 안주하여 그것을 안다.
013_0412_b_12L無欲値佛世, 彼有此諸法; 魔不知其行,
安住法了是。
무욕은 한(限)이 없으니 이러한 탐구한(貪垢限)2)을 깨우쳐야 하니 탐욕을 여의어서 무상(無想)이면 악마도 그곳을 알지 못한다.
013_0412_b_14L無欲不有限, 曉是貪茹根;
離欲彼無想, 魔不知其處。
그 상(想)이 나[吾]와 아(我)에 응하면 거기서 스스로 악마의 일이 일어나나 이렇게 모든 행(行)을 제도(濟度)하면 뭇 악마도 당해내지 못한다.
013_0412_b_15L其想吾我應,
彼自起魔事; 是悉度諸行, 衆魔而不審。
무욕을 향하되 이를 잊지 않으면 행하는 바는 언제나 청정해지니 무욕은 참행(慚行)을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훼손하지 않는다.
013_0412_b_16L無欲志不忘, 所行常淸淨; 無欲不意志,
慚行而不毀。
무욕을 들어서 지혜를 기뻐하고 여래를 공경하여 그 머묾은 법주(法住)와 같으니 그는 응당 세존과 같다.
013_0412_b_18L以聞無欲者, 悅慧敬如來!
其住如法住, 彼應如世尊!
모든 부처님의 10력(力)을 보살이 받들고 모시고자 한다면 이러한 무주행을 듣고 부지런히 뜻을 내고 받아 지녀야 한다.
013_0412_b_19L諸佛十力者,
菩薩欲奉事; 聞斯無欲行, 勤意當受持。
이러한 무욕을 들은 자는 기뻐하고 믿으며 널리 받들어 행해야 하니 그는 언제나 무욕을 이루어 오래지 않아 부처를 이루리라.
013_0412_b_20L其聞此無欲, 悅信廣奉行; 彼常致無欲,
得佛是不久。
무욕은 성현이 말미암는 바이며 이로써 가장 청정하게 되니 무욕하면 부처를 이루게 되어 이로써 치우침 없이 교화하게 된다.
013_0412_b_22L無欲聖所由, 而致最淸淨;
無欲得成佛, 以化無有邊。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이 모든 상호를 얻은 것은 모두가 이러한 무욕을 따라 이 법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013_0412_b_23L去來現在佛,
諸得衆相好; 悉從斯無欲, 及行是法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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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세존께서 이러한 무욕법품을 설하셨을 때, 모여 있던 모든 대중 4만 2천의 하늘과 용과 귀신과 인비인(人非人)이 모두 위없는 정진도(正眞道)의 뜻을 일으켰다. 1만 2천 명은 불기인(不起忍)을 얻었으며, 또 8천 명은 유순인(柔順忍)을 빨리 얻었고, 3만 2천의 천자와 신과 용은 번뇌를 여의어 모두 법안(法眼)을 얻었다. 또 8천 명은 탐욕의 행을 여의었고, 8천비구들은 번뇌가 모두 다하여 남음이 없었다.
그때에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번 진동하였으며 시방에 두루 밝은 빛이 눈부시게 빛났고, 설산 아래 무열지 속에는 주위를 에워싼,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광채가 나타났다. 미묘한 꽃이 모두 무릎에 이르도록 연못의 물속에서 널리 피어났으며, 곧 각기 선명한 연꽃은 그 크기가 수레바퀴와도 같았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향을 풍겼으며 꽃의 색은 무수 백천 온갖 종류로서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그 법에 공양을 하였으니, 무열용왕의 뜻이 흡족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