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3_0406_c_01L불설홍도광현삼매경 제2권
013_0406_c_01L佛說弘道廣顯三昧經卷第二


축법호 한역
이미령 번역
013_0406_c_02L 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4. 청여래품(請如來品)
013_0406_c_03L請如來品第四

그러자 아뇩달은 자신의 모든 대중 권속과 함께 세존께 머리 숙여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절을 올린 뒤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청하오니, 천존(天尊)께서는 신광(神光)을 두루 드리우셔서 무열(無熱)의 큰 연못 속으로 왕림해 주소서. 저희는 석 달 동안 내내 즐겁게 성존(聖尊)과 모든 신통의 과보를 이루신 보살과 뛰어난 불제자께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부디 가엾게 여기시어 이 청(請)을 받아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저희들이 지진ㆍ정각을 모시고 공양 올리는 것이 여래의(如來儀)에 응하는 것이 아님이 없으나, 바라건대 빨리 듣고 적정상화(寂靜上化)를 입는 길은 오직 이 법으로 공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이와 같이 상법(像法)을 듣고, 언제나 환희하고 기뻐하는 것을 원하여, 이에 곧 삼보를 받들고자 할 뿐입니다.”
013_0406_c_04L時阿耨達自與其衆諸眷屬俱稽首世尊跪膝叉手而白佛言願請天尊迴屈神光往詣無熱之大池中盡其三月吾等志樂供養聖尊幷諸神通果辦菩薩及上弟子蒙愍納許願受其請所以然者吾等供事至眞正覺豈能應於如來儀耶冀蒙逮聞寂靜上化唯以此法應供養也思願重聞如是像法令常歡悅此乃應奉於三寶耳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다시 두 달의 기간 동안 공양하기를 청하였으나 여래께서는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다시 한 달을 머물러 주시도록 청하였으나 세존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보름을 청하자 세존께서는 묵묵히 받아들이셨다. 이에 용왕은 자신의 모든 권속들과 함께 세존께서 청을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기쁨에 겨워하면서 마침내 선심(善心)을 발하였다. 그리고는 부처님을 에워싸고 세 번을 돌고 난 뒤에 우레와 구름을 일으켜 가는 비를 내려 두루 천하를 적시고 홀연히 궁중으로 돌아왔다.
013_0406_c_14L爾時世尊不受其請重啓二月如來不然垂聽一月世尊不可願納半月世尊默然而已受之於是龍王自與其衆諸將從俱見尊受請忻喜悅懌善心遂生遶佛三帀興震雲電而降微雨普遍天下忽然之頃還昇宮中
013_0407_a_01L 그리하여 아뇩달이 정전(正殿)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나서 모든 5백 명의 장자를 순식간에 불러 모았는데, 그 이름은 선아(善牙)ㆍ선시(善施)ㆍ선의(善意)ㆍ선명(善明)ㆍ능멸(能滅)ㆍ적상(寂相)ㆍ감동(感動)ㆍ대위(大威)ㆍ감위(甘威)ㆍ감권(甘權)ㆍ감덕(甘德)ㆍ보칭(普稱)ㆍ위용(威勇)ㆍ지밀(持蜜)ㆍ인력(忍力)ㆍ행상(行祥) 등이었다.이와 같은 5백 명의 장자들은 지난 세상에 위없는 정진도(正眞道)를 심은 자들이었다.
013_0406_c_20L時阿耨達到坐正殿輒召諸五百長子其名善牙善施善意善明寂相感動大威甘威甘㩲甘德威勇持蜜忍力行祥如是比等五百長子宿樹無上正眞道已
왕이 이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장자들이여, 나는 지금 여래ㆍ무착ㆍ평등ㆍ정각과 보살대중과 여러 제자들 모두에게 보름 동안 머물러 주시기를 청하였는데, 세존 정각께서 대자비를 내리시어 널리 가련하게 여기셔서 그 청을 받아주셨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함께 그 마음을 하나로 하여 서로 격려하고 부지런히 하여서 세존ㆍ지진ㆍ여래께 경의를 더욱 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지런히 무상(無常)을 생각하고 마땅히 각각 고요함에 머물며 겸손하고 삼가며 공손하고 정숙하게 머물면서 여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 위의(威儀)는 마땅히 음심이나 탐욕의 뜻과 희롱거리 등을 버리며, 탐욕과 성냄을 버리고,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에 물드는 것을 떠나야 한다.
013_0407_a_02L王告之又諸子等吾今以請如來無著等正覺及衆菩薩諸弟子俱盡其半世尊正覺垂大慈哀興有弘愍而尋受請汝等當共同一其心廣相勉加敬世尊至眞如來勤念無常各寂靜謙恪恭肅住待如來儀應棄捐淫心欲意及龍戲樂除貪細滑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탐욕이 없으시며 그러면서도 두루 평안하시며, 인자하고 우아하며 진리를 환히 깨치셨으며, 평안하고 고요하시며, 모든 덕을 고루 나타내시며 시종들이 에워싸고 있어 그 의용(儀容)이 한량없으시니, 이 모두가 부처님들의 참되고 바른 요계(要戒)를 이으신 까닭이다. 그대들은 보름 동안 궁 안에 들어올 수 없으며 마땅히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생각을 없애야만 한다. 또한 다시 여래께서 널리 법을 강설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곳의 신통력 있는 보살과 제석천ㆍ범(梵)ㆍ지세(持世)ㆍ숙정(宿淨) 천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그대들은 부지런히 생각하여 널리 미묘한 보배를 베풀고 빛을 내고 화려하게 장식하되 삼가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그리하여 모든 회중(會衆)들로 하여금 변화된 모습을 보고서 기쁨에 겹게 하라. 이것은 곧 진실로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되느니라.”
013_0407_a_10L所以者何世尊無欲而且詳安仁雅審諦順調寂靜備諸德侍從圍衛儀容無量皆承諸佛眞正要戒以是之故汝等半月無得入宮當除婬愚癡之念又復如來宣講法故必有他方神通菩薩持世宿淨天子當普來會汝等勤念廣施姝妙光顯嚴飾愼勿中懈諸會衆觀變踊躍此乃眞應供養如
013_0407_b_01L이렇게 아뇩달은 모두에게 약속과 명을 내린 뒤에 순식간에 여래를 위하여 설산 아래 무열지(無熱池) 속에 세존을 위하여 티끌 없이 깨끗한 유리로 만든 자리를 만들어내 7백 유순에 이르도록 특이하고 기묘하게 두루 자리 잡도록 하였으며, 8만 4천의 온갖 보배나무를 두루 심고 뭇 진귀한 보배를 드리워 화려하게 장식하였는데, 빛나는 꽃이 우거졌으며 화려한 백 가지 색깔이 눈부시고 그 속에서는 아름다운 향이 풍겨났다.온갖 나무 사이에는 8만 4천의 7보당(寶堂)을 만들어 내었는데, 뭇 진귀한 보배에서 뿜어내는 광채는 너무나 훌륭하여 비할 데가 없었다. 10만이나 되는 교로(交露)1)의 아름다운 장막을 드리웠으며, 나아가 기이하고 미묘한 붉은 진주를 위에서 아래까지 꿰었다. 모든 집 위에는 사자좌가 있었는데, 8만 4천 개는 모두 크고 높고 넓었으며, 값을 알 수 없는 미묘하고 훌륭한 솜을 상과 자리에 깔았고, 보분(寶分)은 온갖 교로를 드리웠으며 온갖 보배로 장식하였다.
013_0407_a_19L時阿耨達都約勅訖輒爲如來於雪山下無熱池中爲世尊故化其無瑕淨琉璃座而使縱廣七百由旬乃殊異妙周帀列置八萬四千雜寶琦挍以衆珍諸寶鮮飾蔚有光華精耀百色中出美香諸樹閒化八萬四千七寶之堂衆珍光彩極好無雙置十萬交露綺帳乃垂異妙赤眞珠在諸堂上有師子座八萬四千皆大高廣而布無價妙好雜㲲牀座寶施諸交露挍以衆寶
집 위에는 용의 채녀가 각각 2천 명 있었는데, 그 미모가 아름다웠고 자태가 아름답기 한량없었다. 얼굴은 아름다웠으며 입에서는 훈향(熏香)이 풍겼다. 손에는 온갖 꽃과 가루향과 바르는 향을 갖고 있었으며, 기악을 연주하면서 부처님의 덕을 노래하여 회중에게 기쁨을 주었다. 위로 허공에서 커다란 보배 덮개를 만들었는데, 천 유순을 두루 하여 모임을 덮었으며, 진기한 수술이 달린 보배 덮개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온갖 빛깔이 있었다. 고운 비단 깃발을 매달았는데 비단 깃발 사이마다 온갖 보배 구슬이 매달려서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부드러운 소리를 내었으니, 그 소리는 온갖 악기로는 미칠 수 없었다.
맛난 음식을 베푸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서 이런 신통변화를 다 끝낸 뒤에 그 권속들과 함께 공손하게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세존을 우러러 뵈면서 그 청하는 뜻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013_0407_b_06L所在堂上有婇女各二千人其色姝妙姿美無顏像蔍華口出熏香擎持雜花塗香調作諸妓以詠佛德興悅衆於上虛空化大寶蓋周千由旬遍覆會上琦珍綵鏤其寶蓋中衆色無懸好繒幡於幡綵閒垂諸寶鈴風和降音踰諸樂施饌百味備辦都爲此變已與其眷屬恭撿叉手佛跪膝而遙啓尊以其請意歎詠頌曰

혜(慧)를 간직하시고 지(知)는 풍부하시며 변덕(辯德)을 쌓으셨으며
혜에 통달하시어 집착이 없으시며 밝게 중생을 인도하시며
혜가 널리 두루 미침에 장애가 없고
혜가 으뜸가며 가장 위력 있으시어 신광(神光)을 내리시네.
013_0407_b_15L慧藏知富積辯德
慧達無著明導衆
慧弘普至不有㝵
慧上最力降神光

혜해심(慧解心)으로 행하시는 유일한 대인(大仁)이시여,
마땅히 시방 중생들을 관찰하시매
가장 으뜸가는 신존(神尊)께서는 저의 청을 받아주시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때에 맞추소서.
013_0407_b_17L慧解心行唯大仁
當觀十方衆生類
最上神尊受吾請
念啓慈愍唯時屈

만족함을 알고 탐욕이 없으며 이양(易養)하시고
상서롭고 복되며 진리를 깊이 깨치신 성스러운 도사(導師)시여,
선을 행하고 믿음이 질박한 대중의 뜻을 아시어
시절이 이르렀으니 세존께서는 굽어 살펴주소서.
013_0407_b_19L知足無貪而易養
祥福審諦聖道師
善行質信知衆意
時節以至可屈尊

그 덕(德)이 두루 알려졌으며 행(行)은 왕과 동등하며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되어 두루 생각을 일으키시며
지극히 인자하고 청정하시니 허공보다 더한 분이시여,
갖추어야 할 것을 모두 끝내었으니 신존(神尊)께서는 임하여 주소서.
013_0407_b_21L其德普稱行等王
造無請友興普念
至仁淸淨踰若空
所設辦訖枉神尊
013_0407_c_01L
위력은 시방을 다스리고 용맹하게 세상을 지니시며
불사(佛事)의 열여덟 가지는 고루 갖추고 계시며
제일 우두머리가 되어 중생을 비용(悲踊)의 행으로 제도하시는 분이시여.
저 무리들과 함께 이곳으로 이르러 주소서.
013_0407_b_23L威御十方猛持世
佛事十八而等有
度衆最首悲踊行
願與其衆時蒙至

몸은 미묘하고 단정하며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고
신기하고 훌륭한 갖가지 꽃수가 놓여있으며
그 뜻은 즐겁고 기쁨에 차서 은혜롭게 법을 베푸시는
대인(大仁)이시여, 위로 이끌어 주실 때가 되었음을 살피옵소서.
013_0407_c_02L色妙端正相綵身
琦好種種花繡文
志樂歡悅惠法施
大仁上導願察時

범성(梵聲)은 청정하여 우레처럼 진동하고
난새와 봉황처럼 구슬프며 사자처럼 걸으시며
갖추신 미묘한 음성으로 모든 국토를 기쁘게 하시어
중생들의 마음이 기쁨에 넘쳐나길 바라나니 때를 돌아보소서.
013_0407_c_04L梵聲淸淨若雷震
鸞鳳哀鳴師子步
妙音具足悅諸土
衆心忻望願時顧

불국토 삼천대천세계는 견줄 것이 없으니
누가 능히 여래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오.
성존(聖尊)께서 밝게 중생의 행을 관하시어
닦는 바가 항상 응하시나니 이곳으로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013_0407_c_06L佛土三千無等倫
弗有能知如來心
聖尊明睹衆生行
所修常應時降此

때를 아시어 널리 응하시되 권화(權化)를 품으시고
중생에게 성스러운 맹세가 있음을 환히 아시며
상심(詳審)의 행목(行目)은 밝고 좋으며
위신(威神) 있고 검족(撿足)하시니, 원하옵건대 광명을 되돌리소서.
013_0407_c_08L知時普應懷㩲化
了達衆生有聖誓
詳審之行目明好
神威撿足願迴光

중생은 간절히 두루 부처님을 우러르고 있나니
10력(力)의 위세를 지니셔도 교만하지 않으시며
대인(大仁)의 덕은 높고 용맹하시니 과보가
성성(聖性)에 두루 미치어 이곳에 유행(遊行)하소서.
013_0407_c_10L衆生甚多普渴仰
十力持勢威無慢
大仁德峻勇而果
聖性爾枉昇遊此

부끄러움과 길상함과 족함을 갖추시어 덕이 가장 으뜸가시니
구제하여 길러내심이 두루 하여 지극하지 않음이 없으시며
스승과 벗은 비할 바가 없으며 대중을 끌어안으시며
용 수억 마리를 교화하여 대비를 일으키셨습니다.
013_0407_c_12L慚祥備足德最上
寧救濟育遍無極
師友無雙恊懷衆
化龍億百興有悲

위력과 용맹으로 세상을 두루 자비롭게 구제하시니
온갖 행에 통달하여 아시어 응당 뜻과 같으시며
두루 펼치고 나타내 보이시는 유일한 천존(天尊)이시여.
신령스런 발을 가볍게 드시어 지금 이곳에 이르소서.
013_0407_c_14L於世威猛普慈救
達知衆行應如意
開布散示唯天尊
輕擧神足願時至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뇩달이 청한 시기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을 아시고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옷을 입고 발우를 들어라. 그리고 절을 지킬 사람을 선출하여라. 무열(無熱)용왕이 멀리서 꿇어 앉아 때를 알리고 있다. 응당 보름 동안 공양을 받을 것이니. 이제 그곳으로 나아가리라.”
013_0407_c_16L爾時世尊知阿耨達請時已到告諸比丘著衣持器差應留守無熱龍王遙跪啓時應受半月宜便卽就
이때 8만 4천의 보살은 모두가 큰 신통력의 덕을 고루 갖추었고 제자들 2천 명 또한 신족통의 우두머리였는데, 그들은 세존을 앞뒤로 에워싸고 지진(至眞)ㆍ여래(如來)를 인도하였다. 영취산으로부터 문득 허공을 날아올라 신통력으로 나아갔는데, 그 색상(色像)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 가지의 광명을 놓는 것처럼 삼천대천의 경계를 고루 비추어 두루 널리 빛을 발하였다.
013_0407_c_19L於時八萬四千菩薩皆大神通德具果辦弟子二千亦上神足侍遶世尊周帀而導至眞如來從鷲山頂忽昇虛空神力而進如其色像身放無數百千之光遍照三千大千境界普悉晃明
013_0408_a_01L모든 욕계와 색계의 하늘들이 모두 세존을 뵙고 무수하게 빛을 놓으며 허공으로 날아오르면서 서로 말하였다.
“신존(神尊)께서 저 무열용왕의 처소에 이르셔서 장차 법의 교화를 일으키셔서 한없이 지극하게 법을 연설하려고 하신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이셔서 보름 동안 많은 하늘의 수백천의 무리들이 세존을 뵙고 법을 들을 수 있게 하려 하신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다시 무열용왕이 마련한 곳의 장식들과 신통변화를 두루 살피고 세존께서 그곳에 이르러 머무시도록 하였다. 그러자 천자들이 각기 여래를 공양하고자 마음을 내었는데, 어떤 이는 소원하며 꽃을 흩뿌리고 어떤 이는 빼어난 향을 뿌렸으며 어떤 이는 하늘의 음악으로 부처님의 덕을 노래하였다. 또 어떤 이는 깃발과 일산과 비단 우산을 내걸고 여래를 따르고자 하였다.
013_0408_a_01L諸欲色天皆見世尊揚光無數飛過虛空自相謂言神尊致彼無熱王所將興法化演奧無極及使如來爲衆圍遶卽彼半月中多諸天數百千衆得見世尊又聞法說緣復觀睹無熱所設莊嚴感變而令世尊故遊到彼時諸天子各各發念供養如來或願散花或雨名香或施天樂以歌佛德或復懸幢幡蓋繒綵率隨如來
세존의 몸빛은 눈부시도록 찬란하게 빛났으니, 그 밝기란 해와 달이나 별 또는 정색정(淨色淨)과 모든 하늘의 빛을 뛰어넘었다. 부처님의 성스러운 위력은 한량없이 신령스럽게 빛났으며, 근정(根定)은 고요하고 행(行)은 상서롭고 편안하게 노니셨다. 제석과 범천과 사천왕(四天王)이 갖가지 변화로 감응하여 여래를 받들어 공경하며 뒤를 따르면서 모셨다.
013_0408_a_10L世尊身光炤耀煒煒明踰日月宿淨色淨及諸天光佛之聖威神耀無量根定寂靜行遊詳安四天威變種種敬追侍隨從如來
그런데 성존(聖尊)께서는 설산(雪山) 아래에 도착하시자 오른쪽에서 멈추신 뒤에 현자 대목련(大目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열용왕의 궁전에 가서 여래가 이미 도착하여 장차 들어가고자 한다고 알려라.”
013_0408_a_14L於時聖尊到雪山下住止右面便告賢者大目連言到無熱王所處宮當宣告之如來已時可應入
그러자 현자 대목건련이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홀연히 무열대지(無熱大池)로 가서 땅에서 일곱 길[丈]의 높은 허공에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그의 형상은 금시조왕(金翅鳥王)과 같았다. 그는 아뇩달 용왕의 궁전 위에 서서 왕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013_0408_a_17L於是賢者大目犍連承佛神旨忽遷無熱大池之中現於虛空去地七丈化身像者若金翅鳥王住阿耨達龍王宮上便告王言如來至也
이에 저 모든 용의 무리와 채녀들은 놀라서 아연해하며 겁에 질려 옷의 털이 곧추서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에 그들은 네 곳의 창고로 숨어들면서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연못에는 지금까지 금시조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무슨 일로 이곳에 왔을까?”
013_0408_a_21L彼諸龍衆及婇女等無不愕然驚恐怖悸衣毛爲豎四之藏竄展轉相謂此池自初無金翅鳥斯從何來
013_0408_b_01L그러자 아뇩달이 모든 궁궐의 사람과 태자와 권속들에게 위로하면서 말하였다.“너희들은 안심하라.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금시조는 현자 대목련이시다. 여래의 심부름을 받고 신통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013_0408_a_23L時阿耨達告諸宮人太子眷屬而慰之曰且各安心勿恐勿怖此爲賢者大目連耳承如來使興神足變
현자 목련은 그들에게 알리고 나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돌아갔다.
013_0408_b_03L賢者目連到彼告訖還詣世尊
그리하여 아뇩달은 곧 모든 자식들과 신하와 백성과 부인과 채녀 등, 궁궐의 모든 자들과 함께 그들에게 둘러 싸여서 각기 빼어난 꽃과 아름다운 가루향과 온갖 바르는 향과 깃발과 일산과 비단 일산을 바치고 갖가지 음악을 연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 세존을 맞이하였다.
013_0408_b_04L時阿耨達便與其衆——諸子臣民夫人婇女——擧宮大小俱而圍遶各奉名花及美末香幷衆塗香幢蓋繒幡倡伎種種調作相應進迎正覺
이때 세존께서는 모든 보살과 제자들과 하늘과 용에게 에워싸여서 모두 함께 앞으로 나아가 무열용왕이 마련해 놓은 높고 넓은 자리에 이르렀다. 여래께서 도착하신 뒤에 곧 높게 마련된 사자좌에 나아가시자 보살이 그 뒤를 이었고, 그런 연후에 제자와 모든 무리들이 다 앉았다.
013_0408_b_08L于時世尊爲諸菩薩及衆弟子天龍尊神所共圍遶俱而前至無熱所設廣博座場如來到已尋就高顯師子之座菩薩相次然後弟子諸衆坐訖
그러자 용왕은 세존과 모든 보살과 제자 대중들이 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 나서 마음에 한량없는 큰 기쁨을 일으켰다. 곧이어 그 무리들이 손으로 어림잡아 헤아리니 마련된 찬거리들은 세간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감미롭고 기름진 것이었고, 널리 하늘의 맛과 갖가지 반찬을 두루 갖춘 것이었다. 그것을 불보살과 제자와 모든 대중들에게 공양하자, 그들은 모두 만족하게 여겼다. 세존과 보살과 모든 제자들이 공양을 마치고서 각자 발우를 씻고 나자 대중들이 모두 마쳤음을 살폈다.
이때 아뇩달이 곧 여래께 설법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013_0408_b_12L爾時龍王觀視世尊及諸菩薩弟子衆會坐悉而定興心無量內懷怡悅輒與其衆手執斟酌所設饌具踰世甘肥延有天味餚膳百種以用供佛菩薩弟子幷諸衆會使皆充足世尊菩薩及諸弟子飯畢輒各洗蕩應器察衆都訖時阿耨達卽啓如來願聞法說
그러자 세존께서는 정오가 지난 뒤에 곧 선정으로부터 일어나 단정하게 앉으셔서 설법하셨다. 모든 모여든 무리들은 천 유순에 가득 찼으니, 다른 곳으로부터 지상에 이르도록 그 중간에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하늘과 응과 귀신과 인비인(人非人)들은 모두 지진ㆍ정각을 에워쌌으며, 모든 모여든 자는 각기 마음에 큰 기쁨을 품었다.
013_0408_b_19L於是世尊日昃時後便從定起端坐說法諸來會衆滿千由旬從地至上中無空缺天龍鬼神及人非人周帀衛遶至眞正覺一切會者各懷踊躍

5. 무욕행품(無欲行品)
013_0408_b_23L無欲行品第五
013_0408_c_01L
이때 용왕이 기쁜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거듭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오직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곳에 모인 무리들을 위하여 응당 법을 설해주소서. 그리하여 저 모든 이들로 하여금 나고 죽는 것을 벗어나고 여의게 하시며, 영원히 5음(陰)의 모든 괴로움과 더러움과 티끌과 어둠과 세속의 일에 시달리는 행을 없애게 하시며, 영원히 3독(毒)과 의결(意結)의 어둠을 없애게 하시며, 나아가 용의 무리들이 삿된 어둠을 버리고 그 마음과 뜻을 다스려 제어할 수 있게 되어 널리 지극한 선을 이루고 기쁨에 넘치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깊이 보살을 행한 후에 여래와 같이 현재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언제나 저희들로 하여금 머물고 있는 나라나 고을에서 바른 법을 수호하여 지니게 하소서.”
013_0408_c_01L爾時龍王悅顏進前跪重白佛唯願世尊爲斯衆會如應說法令諸一切免離生死精除相著五陰諸苦穢垢昧昧勞塵之行使其永無三毒意結及龍衆得棄邪冥伏其心意弘致至善使有悅豫深行菩薩後若如來現有存亡當使吾等所在國邑護持正
그러자 세존께서 용왕을 찬탄하셨다.
“참으로 장하구나. 아뇩달왕이여, 그 뜻을 잘 듣고 부지런히 생각하며 널리 퍼뜨려라. 나는 마땅히 널리 설하여 이 모인 대중으로 하여금 죄의 통근(痛根)을 멀리 벗어나게 하고, 잡상(雜想)의 의식과 뜻의 의심을 뽑아내게 하여 보지(普智)를 깨달아 삼계(三界)를 벗어나 노닐게 하리라.”
013_0408_c_09L於是世尊讚龍王曰善哉善哉耨達王諦聽其義勤思念之以宣布吾當廣說令此會衆多免罪痛根拔雜想意識志疑使解普智昇遊三
이때 용왕이 말하였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널리 설하시는 것을 즐겨 듣고서 마땅히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013_0408_c_13L時龍王言善哉世尊願樂廣說頂受行
그러자 성존(聖尊)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하나의 법으로써 보살을 응당 행하는 자는 하늘과 세상의 사람들에게 깊은 공경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하나인가? 뜻을 두어 깊은 법을 수행함으로써 무욕(無欲)을 행하는 것이다. 무엇이 깊은 법을 행하되 무욕을 행한다고 하는 것인가? 용왕이여, 이와 같이 보살이 인연의 없음[無]에 의지하면 따라서 두 가지 견해의 경계를 떠난다. 있고 없음을 아는 자는 바로 모든 법을 본다. 인연에 집착함으로써 연생(緣生)에 말미암지 않는 법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인연에 의지한다. 이것은 연에 의지하지 않는다. 저것은 마(魔)에 의지하지 않는다.’
013_0408_c_14L是時聖尊告龍王曰有一法行菩薩應者爲天世人甚所敬重何謂爲一志修深法以行無欲何曰深法法行無欲乎如是龍王菩薩依順因緣之離二見際知有無者斯見諸法著因緣不見有法不由緣生彼作此其依因緣斯無依緣彼不依魔
013_0409_a_01L그 연에 의지한다면 그것을 나[吾]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아(我)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그 연에 의지하는 중에는 나와 나의 것이 없나니, 연에 의지하면 주재(主宰)함도 없고 또한 집착하여 지키는 것도 없다. 그 연(緣)에 의지하여 기생(起生)을 요해(了解)하여 재빨리 네 가지 의지하는 생각을 쉽게 이룰 수 있게 된다.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지극한 뜻[至義]에 의지하며 문장의 수식에 의지하지 않고, 혜행(慧行)에 의지하며 식념(識念)에 의지하지 않으며, 의경(義經)에 의지하고 반연(攀緣)에 의지하지 않으며, 법을 생각함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013_0408_c_21L依緣者彼不言吾亦不言我又其依緣中無我我依緣無主亦無執守依順緣了解起生速易得致四依之何謂爲四依於至義而不文飾於慧行不爲識念依順義經不依攀依念於法而不爲人
무엇을 일러 뜻[義]이라 하고 혜(慧)라 하는가? 어떤 것이 순의(順義)이며 어떤 것이 법을 생각하는 것인가? 뜻이란, 공의 뜻(空義)은 허망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무상(無相)의 뜻은 염식(念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무원(無願)의 뜻은 삼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무수(無數)의 뜻은 수(數)에 집작하지 않는 것이다.
또다시 뜻이란, 법(法)과 비법(非法)에 있어서 둘이 없는 것이다. 음성은 얻을 수 없고, 염상(念想)에는 기억이 없으며, 법처(法處)는 머묾이 없다. 인(人)이 없기 때문에 명(命)과 수(壽)와 말과 소리가 거짓이며 있지 않다.
또다시 뜻이란, 그 법의 뜻은 무욕(無欲)의 뜻이다.
013_0409_a_04L彼何謂義等爲慧云何順義何謂念法義謂空不受妄見無相之義不著念識無願之義不著三界無數之義不著於又復義者於法非法而無其二聲無得念想無念法處無住用無人命壽言聲僞無所有又復爲義法義者爲無欲義
무엇을 일러서 보살의 법의 뜻이라고 하는가? 눈과 색이 없고,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마음과 법의 뜻이 없는 것이다. 색의 뜻이 생하지 않고 색의 뜻이 멸하지 않으며, 수ㆍ상ㆍ행ㆍ식의 뜻이 없고, 또한 식행(識行)의 뜻이 생멸(生滅)하지 않고, 또한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뜻이 아니며, 또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뜻이 생멸하지 않고, 또한 아(我)의 뜻이 없고, 또한 아견에 집착하여 들어가는 뜻이 없고, 인(人)의 뜻이 없으며, 또한 인견(人見)에 집착하여 들어간다는 뜻이 없고, 또한 유불신(有佛身)에 집착하여 들어가는 뜻이 없고, 또한 법과 문자에 집착하여 들어간다는 뜻이 없고, 수(數)와 계회(計會)에 집착하여 들어간다는 뜻이 없고, 또다시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에 집착한다는 뜻이 없으며, 일체 모든 법의 뜻에 깨달아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것을 보살이 법의 뜻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이 뜻에 따른다면 물러남이 없으며, 이것을 뜻이라고 하는 것이다.
013_0409_a_11L何謂菩薩爲法義其無眼色耳聲鼻香舌味身更心法之義不生色義不滅色義不爲痛識之義亦不生滅識行之義亦不無色之義亦不生滅欲無色義亦不我義亦無我見著人之義不有人義亦不著人見入之義亦不著入有佛身義亦不法字著入之義不數計會有著入義亦復不有施智著義曉入一切諸法之義是謂菩薩爲法義也其從是義而不有退是謂爲義
013_0409_b_01L무엇을 지혜[慧]라고 이름하는가? 이른바 고(苦)가 발생하지 않는 지혜, 무념(無念)을 배우는 지혜, 진력하여 모두 다하는 지혜, 도(道)에 뜻이 없는 지혜, 음(陰)과 환법(幻法)의 모든 성품 속에서 법성이 훼손되지 않는 지혜,모든 유정[情]에 대하여 공한 지혜, 모든 법을 깨달아 들어가며 중생의 근기에 밝아서 두루 만족시키는 지혜이니, 뜻을 두어도 망령됨이 없고 여러 정의(正意)와 불의(不意)에 대해 생각이 없으며, 모든 단(斷)에 있어서는 마음[意]이 선(善)이나 불선(不善)에서 동등하며, 그 신족(神足)이 몸과 마음에 있어서 지혜를 세운다. 또한 모든 근(根)에 있어서 가벼움과 무거움을 아는 지혜, 모든 각의(覺意)에 대해서 모든 법을 깨닫는 지혜, 그리고 모든 역(力)에 있어서 이미 항조(降調)하는 지혜, 도(道)가 무수히 적멸하는 지혜, 법을 관별(觀別)하는 지혜, 비롯하지만 생하지 않는 지혜, 오지만 이르지 않는 지혜, 중간에 머물지 않는 지혜, 몸에 있어서 상(像)인 지혜, 메아리로써 말하는 지혜, 심법(心法)이 환(幻)인 지혜이니, 이것을 보살의 지혜를 밝혀 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013_0409_a_22L彼何謂慧苦無生慧習無念慧都盡慧道無志慧於陰幻法諸性法性而無毀慧在於諸情空取爲慧入諸法明了衆生根滿具慧志念無於諸止意不意無念於諸斷意等善不善於其神足身心建慧又於諸根了輕重慧於諸覺意覺諸法慧於諸力已降調慧道爲無數於滅寂觀別法慧始不生慧來不至慧無住慧於身像慧言以響慧心法幻是謂菩薩明達智慧
또한 무엇을 순도의경(順導義經)이라고 하는가? 이러한 인연에 따라서 일어나면 그런 것은 어리석음을 멸하고, 늙음과 죽음과 무아를 멸하여, 아(我)와 인(人)과 명(命)과 수(壽)가 없는 속에서 모든 중생을 깊이 깨달으니, 만일 여래아(如來我)가 모두 참다운 법이 아니면 3해탈문(解脫門)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3세(世)에서 3무착(無著)을 구하니, 이른바 모든 법에서 전혀 생함이 없다는 것을 보고 나서, 이미 아는 자는 마찬가지로 세속의 정태(情態)를 멸하고 벗어남을 얻는다. 보살은 지혜도무극(智慧度無極)에 이르러서 모든 의념(意念)에 의혹이 없어지며 응당 이러한 행에 들어가니, 이것을 순의(順義)라고 한다. 또한 가고 이르는 바가 없으며 또한 따라서 옴이 없고 열반무위(涅槃無爲)는 가서 이름이 없으니, 이것을 순의(順義)라고 한다.
013_0409_b_10L又何謂爲順導義經從是因緣而起然者滅於愚滅於老死無我而然於無我人及與命壽深解諸物若如來我皆非眞法而然於三脫之門也等於三世求三無著所謂諸法見都無生視了知者而得等滅離俗情態菩薩來智慧度無極於諸意念而無疑惑應入是行斯謂順義無所去至亦無從來泥洹無爲不有去至是謂順義
013_0409_c_01L무엇을 여법(如法)이라고 하는가? 만일 모든 여래께서는 세상에 나거나 나지 않거나 법신(法身)은 항상 머무니, 이것을 여래라고 한다. 여여(如如)하여 본래 없어 불어나거나 줄어듦이 없으며, 둘이 아니고 둘이 없어서 진제법성(眞際法性)이니, 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또한 행보(行報)를 훼손하지 않고 보법(報法)을 행하지 않으니, 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대승은 6도무극(度無極)에서 연유한 것이다. 연각승[緣一覺乘]은 인연에 따라서 벗어나며, 성문승은 음성(音聲)에 의하여 벗어나니,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보시는 큰 복을 이루고, 지계는 생천(生天)을 얻으며, 널리 들은 것과 크게 지혜로움과 정념(定念)은 해탈을 이루니, 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행을 따라서 닦지 않는 자는 나고 죽음을 일으키며, 행이 순수함에 도달하여 무위(無爲)를 세우면 여법이라고 한다. 어리석음은 욕력(欲力) 때문이며 지(智)는 혜력(慧力)이니, 이것을 여법이라고 한다.
013_0409_b_19L何謂如法若諸如來興與不興法身常住是謂如來如如本無而無增減不二無二眞際法性謂之如法不毀行報無行報法斯謂如法大乘者由六度無極緣一覺乘從因緣脫聲聞之乘依音聲脫是謂如法施致大福戒得生天博聞多智定念致脫斯謂如法從行不修興有生死行之純至而立無爲如法之謂愚以欲力智則慧力斯謂如法
저 일체법은 모두가 법성에 의지하니, 용왕이여, 이와 같이 인연에 의하여 일어나는 자는 곧 응당 네 가지 의지하는 생각을 얻을 것이다. 인연에 의지하면 그는 곧 모든 것을 끊어 유무(有無)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을 가리켜서 인연을 보고 일으키는 자는 바로 모든 법을 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을 보는 자는 바로 여래를 본다. 그 까닭은 무슨 인연인가? 용왕이여, 일어남[起]과 일어나지 않음[無起]에 대해 동등하면, 법과 비법(非法)에 있어서 동등하여 집착하지 않는다. 또 여래는 또한 인연의 일어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요, 또한 일으킴의 법이 있지 않아서 가히 얻을 수 없으니, 그 법을 깨닫는 자는 바로 여래이다. 인연의 일으킴을 혜안(慧眼)으로써 보니, 혜안으로 보는 것은 곧 모든 법이요, 모든 법을 보는 자는 바로 여래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인연의 일으킴을 보는 자는 곧 법을 보는 것이요, 그 법을 보는 자는 바로 여래를 본다’고 한다.
013_0409_c_06L其一切法悉依法性如此龍王其依因緣而起生者斯則應得四依之念其依因緣彼則不依斷著有無是謂其見因緣起者斯見諸法其見法者斯見如來所以者何因緣乎等起無起法於非法等而無著如來者亦爲無著因緣之起亦無有法不可得覺其法者斯則如來因緣起慧眼見之慧眼見者斯則諸見諸法者斯則如來是謂其見因緣起者斯則見法其見法者斯見如
또한 여래는 법으로써 법을 본다. 이와 같이 용왕이여, 만일 이 법행(法行)으로써 해탈에 상응한다면 이것을 보살이 무욕(無欲)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013_0409_c_17L又如來者以法見法如是龍王以此法行應脫者斯謂菩薩而無欲
또한 용왕이여, 무욕보살은 욕습(欲習)을 짓지 않는다. 현성(賢聖)을 기뻐하고 즐기며 현성이 아닌 것은 버린다. 현성의 종자를 부지런히 사모하고 일으키며 보호하니, 모든 혜를 널리 모아서 법을 보호하며 널리 들음을 닦고 뜻을 심어서 잊지 않는다. 계(戒)의 몸을 버리지 않고 지(智)의 몸을 치우치지 않으며 정(定)의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그 혜(慧)의 몸에 있어서 능히 견고하게 머물게 되며 혜견(慧見)을 벗어나는 몸은 굳고 견고하며 굴리기 어렵나니, 혜견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013_0409_c_19L又呼龍王無欲菩薩不作欲習樂賢聖捨非賢聖勤慕興護於賢聖廣合諸慧爲法作護修於博聞志樹無忘不捨戒身智身無傾定身不於其慧身得善堅住脫慧見身强固難轉脫慧見故
013_0410_a_01L또한 다시 용왕이여,무욕보살은 무수한 부처님의 정법도의(正法度義)를 얻고 또한 무수한 모든 부처님의 요혜(要慧)를 갖추고 또한 과보로서 다함없는 모든 부처님의 말솜씨를 이루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신족통을 얻고, 셀 수 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의 권해(權解)를 이룸으로써 널리 무량한 중생의 행에 들어가며, 무수한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벗어나고 노닐며, 백천 여래를 봄으로써 무수한 모든 법을 들을 수 있게 되며, 무수한 의(義)를 얻고 무수한 지혜를 얻으며 무수한 행을 밝히며, 무수한 중생을 제도한다.
013_0410_a_01L又復龍王無欲菩薩得無數佛正法度義亦具無數諸佛要慧又果無盡諸佛之辯得通無量諸佛神足因致無數諸佛㩲解入無量衆生之行遊過無數諸佛國因見無數百千如來緣得聽聞無數諸法得無數義達無數慧曉無數行度無數衆
이와 같이 용왕이여, 무욕보살은 언제나 청정에 상응하여 온갖 더러움을 털어 없애며, 덕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삼계에 자유로우며 집착하는 바가 없다. 왜냐하면 무욕은 저절로 마음으로부터 생기며 세 가지 일은 마음으로부터 출생하기 때문이다.
013_0410_a_08L若是龍王無欲菩薩常應淸淨消盡衆穢德不可量三界自由不有所著何則然者以其無欲自從心生有三事從心出生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탐욕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고, 또한 갈애[愛]로부터 생기는 것이고, 또한 일으킴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또다시 세 가지 발생이 있으니, 기생(起生)을 관하며, 또 행하는 바를 관하며, 마음에 처함이 없음[無處]을 관하는 것이다.
013_0410_a_12L何謂爲三從其欲生從愛生亦由起生復有三生觀於起又觀起生又觀所行觀心無處
또한 다시 세 가지 발생이 있다. 적멸하여 오로지하며, 관(觀)을 밝게 깨달으며, 여법하게 행을 따르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발생이 있다. 덕을 갖추고 인자하게 다스림으로써 고요함을 이루어 부지런히 행함으로부터 생하는 것이다. 또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행을 따라서 곧고 아첨하지 않으며, 어질고 자애로우며, 조인(調忍)하는 것이다.
013_0410_a_14L復三生滅寂專一曉解於觀如法隨又復三生得備仁調以爲寂靜從行勤生又復三事從於行直而無有諂慈調忍
또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침체되거나 신음하거나 의심이 없고, 선함을 따르기에 거칠지 않으며 뜻이 충분하여 공양한다. 또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그 공(空)을 따라서 생하며, 또한 무상(無想)을 따라서 생하며, 또 무원(無願)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또다시 세 가지 일이 있으니, 마음으로 생하는 모든 법은 무상하니 마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모든 법의 괴로움은 또한 마음으로부터 생하며, 모든 법이 무아인 것 역시 마음으로부터 생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일이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생하니, 모든 법이 무상한 것과 일체 법이 무아인 것과 멸진무위(滅盡無爲)는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하는 것이다.
013_0410_a_18L復有三事無沈吟疑順善不志足易養又復三事從其空生復無想亦由無願又復三事心之所生諸法無常從其心生諸法皆苦亦由心生諸法無我亦從心生復有三事而從心生諸法無常諸法無我滅盡無爲皆從心生
013_0410_b_01L이와 같이 용왕이여,보살의 등멸(等滅) 또한 마음으로부터 발생한다. 그것은 보지심(普智心)을 버리지 않고서 행으로써 일체를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니, 이는 대비(大悲) 때문이다.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은 대자심(大悲心) 때문이며, 나고 죽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대희(大喜) 때문이다. 평등하게 기쁨과 분노를 여의는 것은 대호(大護) 때문이며, 가진 지혜를 베푸는 것은 과보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며, 온갖 계학(戒學)을 행하는 것은 덕의 뜻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안으로 자신의 허물을 벗고 다른 이의 단점을 논하지 않는다. 능히 중생의 모든 불선행(不善行)을 견디며, 그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굳게 금강과 같아지기를 바라고, 온갖 선과 덕의 근본을 모아서 몸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일체에 이를 수 있게 되고, 모든 선정을 마음으로 닦되 피로함을 내지 않고 선정으로써 닦아도 생하는 바가 있지 않다.
효지(曉智)는 권도방편으로써 중생에게 수순하며, 그 제혜(諦慧)로써 모든 해탈을 바라는 자를 제도한다.
013_0410_b_01L如其龍王菩薩等滅亦由心生其不捨普智心行等一以大慈故不捨衆生大悲心故厭生死用大喜故等離喜怒以大護所有慧施不望報故衆戒學行德義備故內免己過不論彼短能忍衆生諸不善行欲令彼人心固金剛集衆善諸德之本身命無惜得致一諸定正受心無勞惓不以正受而有所生曉智以㩲順隨衆生以其諦慧度諸志脫
성문과 연각승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자는 불법을 염하여 모든 부처의 법을 구하는 것을 나타낸다. 마음으로 능히 괴로움을 참고 널리 법을 펼치는 까닭이다. 온갖 이익과 공경과 공양을 가볍게 여기고 이것을 버리며, 모든 상과 덕행을 갖추고자 하며 싫증을 내지 않고 지혜가 충만하고 많이 듣는 것에 부지런하다. 착한 벗을 가까이하고 선지식을 만나나니 겸손하고 공경하기 때문이다. 겸행(謙行)에 응하는 것을 얻는 것은 자신의 교만을 항복시켰기 때문이다. 자신의 교만을 항복받음으로써 지행(志行)을 갖추기 때문이다. 의행(意行)을 두루 만족하는 것은 아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첨을 떠나는 것은 말과 행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 거짓됨이 없음은 성실한 믿음을 닦기 때문이다. 신의(信義) 있는 말에 머무는 것은 온갖 거짓을 떠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멸하고 없애는 것은 성실한 믿음을 낳기 때문이다. 믿음에서 마음을 항복시키니, 이와 같이 용왕이여, 이것을 보살이 그 마음을 생한다고 한다. 이것을 무욕(無欲)이라고 한다.
013_0410_b_11L欲達聲聞緣覺乘者念佛法求諸佛法心能忍苦廣宣法故衆利敬養蔑而棄之志具諸相德行無厭充滿智慧博勤多聞習善友故値善知識用謙敬故得應謙行降自大故以降自大志行備故具滿意行用無諂故以離諂者言行應故以其無欺修誠信故以住信言離衆欺故滅除妄語生誠信故降心於信如是龍王其有菩薩而生是心斯謂無欲
013_0410_c_01L또다시 용왕이여, 무욕보살은 마(魔)가 능히 그 한편을 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 보살은 응당 한정(限定)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유한(有限)의 법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서 유한의 법이라고 하는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모두 유한이니, 보살은 이것에 대해서집착하지 않는다. 이로써 무한(無限)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문과 연각승은 유한이니, 보살이 보지심에 머무른다면 악마가 그 한편(限便)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유념무념(有念無念)의 염상(念想)은 유한이며, 보살은 온갖 염의 상응함을 떠났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보살은 악마가 능히 그 한편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013_0410_b_20L又復龍王無欲菩薩魔不能得其限便也所以者何以彼菩薩應無限故而亦不行有限之法彼何謂爲是限法乎欲婬癡斯皆有限菩薩於是不有所著以此謂之爲無限也聲聞緣覺其乘有限菩薩住於普智心者魔終不能得其限便有念無念念想有限菩薩以離衆念之應如此菩薩魔不能得其限便也
이와 같이 용왕이여, 두 가지 악마의 일[魔事]이 있는데, 보살은 마땅히 깊이 이것을 깨달아서 또한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어떤 것이 두 가지 일인가? 스승과 벗에 대해서 공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 크게 교만을 떨며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두 가지 일이다. 또 두 가지 악마의 일이 있으니 보살이 6도무극장(度無極藏)을 버리는 것이고, 마음으로 도리어 성문과 연각의 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가까이 행하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지혜가 없으면서 권(權)을 행하고자 하는 것이고, 모든 집착과 망견(妄見)의 중생들과 서로 사귀면서 즐겨 익히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들은 것이 거의 없고 지혜가 적으면서 스스로 지혜에 도달하였다고 하며, 비록 널리 지혜가 있더라도 그 가운데 빠져 스스로를 높이 자랑하는 것이다.
013_0410_c_06L如是龍王有二魔事而是菩薩當深覺之亦當遠離何謂二事於其師友無恪敬心而自處大貢高蔑人是謂爲二又二魔事捨菩薩六度無極藏心返喜樂親行聲聞及緣覺法復有二事何等爲二無其智慧而欲行權與諸墮著望見衆生樂相狎習復有二事寡聞少智自以慧達雖有通博於中自大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덕이 참으로 적은데 망령되게 존귀함을 일으키는 것이며, 만일 덕행을 닦더라도 소승을 즐기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정법을 수호하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뜻으로는 모든 보살의 행을 익히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온갖 지혜에 통달해 있고 밝은 지혜를 갖춘 자와 함께 있어도 오로지 청정하고 고결한 보살을 비방하는 일만 하며 주로 법사(法師)를 위해서 자주자주 폐해를 일으키며, 또한 스승의 가르침을 장애하고 많은 아첨을 하는 것이다.
013_0410_c_14L又復二事於德甚少妄生尊貴若修德行而樂小乘復有二事正法不護不度衆生復有二事志不樂習於諸菩薩及衆通達明智者俱專行誹謗淸高菩薩主爲法師數興蔽㝵又障師訓而多諛諂
013_0411_a_01L또다시 두 가지 악마의 일이 있으니, 모든 덕의 근본을 버리는 것과 마음이 부덕(不德)함에 있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비록 한가롭게 있더라도 3독(毒)의 생각을 품어서 뜻이 언제나 어지러운 것이며, 만일 나라나 도읍에 노닐면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사람들을 위하여 깊은 법의 요체를 설하지 않고, 응당 설해야 하는 것을 도리어 설하지 않는 것이다.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악마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보지(普智)에서 멀리 떠나 마음이 자주 뒤바뀌고 어지러운 것이다.
013_0410_c_20L又二魔事捨諸德本心存不德復有二事雖在閑居懷想三毒志常憒鬧若遊國邑有貪利心復有二事爲非其人說深要法應當爲說而反不說復有二事不覺魔事遠離普智意數錯亂
이와 같이 용왕이여, 바로 악마의 일의 모습들이 이와 같으니, 무욕보살은 영원히 이것을 갖고 있지 않다.
또다시 용왕이여, 만일 어떤 보살이 청정행을 행하면서 응당 무욕이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살의 열여섯 가지 큰 힘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힘에서 자신의 뜻을 조복시킴으로써 중생을 교화해야 한다. 어떤 것이 보살의 열여섯 가지 힘이라고 하는가? 지력(志力)ㆍ의력(意力)ㆍ행력(行力)ㆍ참력(慚力)ㆍ강력(强力)ㆍ지력(持力)ㆍ혜력(慧力)ㆍ덕력(德力)ㆍ변력(辯力)ㆍ색력(色力)ㆍ신력(身力)ㆍ재력(財力)ㆍ심력(心力)ㆍ신력(神力)ㆍ홍법력(弘法力)ㆍ복제마력(伏諸魔力)이다. 무욕보살은 이 보살의 열여섯 가지 큰 힘을 얻는다.
013_0411_a_02L如是龍王其諸魔事色像若斯無欲菩薩而永無此又復龍王若有菩薩修於淸淨行應無欲當致菩薩十六大力以此諸力降調己志以化衆生何謂菩薩十六力耶得志力意力行力慚力强力持力慧力德力辯力色力身力財力心力神力弘法之力伏諸魔力無欲菩薩得是菩薩十六大力
어떤 것을 보살의 지력(志力)이라고 하는가? 이와 같이 용왕이여, 보살의 지력(志力)은 능히 모든 부처님을 뵙고 설하신 모든 말씀을 모두 지니니, 이것을 지력이라고 한다. 이 보살의 뜻은 모든 부처님의 행에 응하며 모든 중생에 대해서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니, 이것이 의력(意力)이다. 능히 모든 음성에 통달하여 설하신 모든 뜻을 환히 이해하니, 이것을 행력(行力)이라고 한다. 모든 죄의 행을 여의고 뭇 덕의 법을 일으키니, 이것이 곧 참력(慚力)이다. 모든 온갖 어려움에서 그릇된 행을 행하지 않으니, 이것이 강력(强力)이다. 수천억의 악마의 병사들이 능히 감당해내지 못하니, 이것이 지력(智力)이다.
013_0411_a_10L何謂菩薩爲志力耶如是龍王菩薩志力能覽諸佛一切所說摠而持之是謂志力斯菩薩意應諸佛行於諸衆生而無斷㝵是謂意力能達一切音聲所說解了諸義是謂行力離諸罪行與衆德是則慚力一切諸難不爲非行則强力億千魔兵不敢而當是則智
013_0411_b_01L법을 지니는 것에 통달하여 널리 퍼뜨리고 고루 배워서 잊어버리지 않으니, 이것이 지력(持力)이다. 집착하지 않고 잊지 않으며 백천 겁 동안에 그 설해진 바를 장애 없고 끊임이 없이 모든 법을 따라서 이해하니, 이것이 변력(辯力)이다. 만일 모든 제석이나 범(梵) 및 사천왕이 모든 보살에게 가서 침묵하고 색(色)이 없다면, 이것이 단정력(端正力)이다. 그 보배로운 머리로 염원해야 할 바가 뜻에 응하여 곧 이르면, 이것을 재력(財力)이라고 한다. 모든 외도를 뛰어넘어서 그 속에서 홀로 존귀하니, 이것이 신력(神力)이다. 중생의 마음은 능히 그 마음을 하나로 하고중생의 마음을 알아서 그에 따라서 교화의 행을 하면, 이것이 심력(心力)이다.
013_0411_a_18L通達持法宣示等學而無遺忘則持力無著不忘於百千劫其所可說無㝵不斷隨解諸法是則辯力諸釋梵及四天王往詣菩薩黯然無是端正力以其寶首所可念願應意卽至是則財力過諸外道在中獨是則身力衆生之心能一其心知衆生心順行化之是則心力
중생 가운데 응당 신족통으로 제도해야 할 자는 신변(神變)을 나타내어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니, 이것이 신족력(神足力)이다. 만일 설해진 법을 중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하는데, 중간에 끊지 않고 중생이 받아 지녀 따라서 행하여 동등하게 괴로움을 모두 다하여 없앤다면, 이것이 홍법력(弘法力)이다. 만일 그 선정과 삼매[正受] 때 부처님의 뜻과 현성의 행법을 이어받으면, 이것이 항마력(降魔力)이다.
013_0411_b_02L衆生應以神足度者爲現神變使衆睹見神足力若所說法使衆聞之而無中彼受順行等除苦盡是弘法力其禪定正受之時得承佛旨賢聖行法是降魔力
이것을 보살의 열여섯 가지 큰 힘이라고 하니, 어떤 행하는 자가 있어서 뜻으로 이 열여섯 가지 힘을 사모하여 원하며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욕을 닦아라. 비유하면 용왕이여, 모든 강물의 흐름이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도법(道法)의 모든 행과 37품(品)은 모두 무욕으로 돌아간다. 또한 용왕이여, 마치 모든 약과 풀과 나무는 대지에 의지하는 것처럼 모든 선행의 법은 모두가 무욕으로 말미암는다. 비유하면 용왕이여, 전륜성왕은 중생이 즐거워하는 것처럼 만일 이것을 무욕보살이 갖춘다면 곧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과 세간의 사람들의 사랑과 즐거움을 받게 될 것이니라.”
013_0411_b_07L斯謂菩薩十六大力其有行者志慕願此十六之力而欲得者當修無欲譬如龍王一切河流歸於大海道法諸行三十七品悉歸無欲又若龍王諸藥草木依因於地諸善行法皆由無欲譬如龍王轉輪聖王衆生所樂若此其有無欲菩薩乃爲諸天龍世閒人之所愛樂也
이때 세존께서 아뇩달과 여러 태자를 위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013_0411_b_14L爾時世尊爲阿耨達幷諸太子而說頌曰

혜(慧)보살이 되고자 원하고,
불도에 뜻 있는 자는
마땅히 더러운 법을 여의어야만 하니
언제나 부지런히 무욕(無欲)을 행하여야 한다.
013_0411_b_15L欲爲慧菩薩
志願佛道者
彼當離穢法
常勤行無欲

지혜로써 인연법을 밝게 이해하며,
보이는 경계에 의지하지 말며,
인연으로써 법을 관해야 하나니,
연이 없으면 법이 없다.
013_0411_b_17L慧解因緣法
不猗於見際
睹法以因緣
無緣不有法

연생(緣生)인 그것은 무생(無生)이니
이것은 자체로 생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연(緣)에 집착하는 것, 이 또한 공하니
공을 알면 그것은 욕심이 없는 것이다.
013_0411_b_18L緣生彼無生
是不與自然
善緣斯亦空
知空彼無欲

연에 집착하더라도 무상(無相)이요,
벗어나기를 원하여 고요하고 또한 고요하다.
담박한 모습은 큰 어리석음이고,
악마는 그곳을 깨닫지 못한다.
013_0411_b_19L著緣而無相
脫願寂復寂
澹泊像大愚
其處魔不審

법을 보지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나[吾]와 아(我)가 없고,
그에게 아(我)와 인(人)이 있지 않나니
이것을 안다면 곧 욕심이 없는 것이다.
013_0411_b_21L見法無著緣
於其無吾我
彼不有我人
知是則無欲

주(主)가 없기에 지키거나 보호함도 없고
얻음도 없고 또한 버림도 없다.
본래부터 해탈이어서 취하고 버림이 없으니,
탐욕을 떠나서 언제나 법을 깨친다.
013_0411_b_22L無主不守護
不獲亦弗捨
本脫無取捨
離欲常了法
013_0411_c_01L
뜻을 보되 가식을 하지 않으며
지혜를 행하되 언제나 분별을 벗어나고
순의경(順義經)을 밝게 깨우치고
법에 의지하되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
013_0411_b_23L觀義不爲飾
慧行常脫識
曉了順義經
依法不爲人

공의 뜻은 바로 불법(佛法)이며,
그리고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을 해탈하여
견념(見念)을 의지하거나 짓지 않나니,
이 뜻이 바로 무욕이다.
013_0411_c_02L空義是佛法
及脫無相願
不猗造見念
是義其無欲

법에 있어서 두 가지가 있지 않으며,
음성은 얻을 만한 것이 없고,
법에 처하되 가히 흔들리기 어렵고
입(入:12入)의 뜻이 아닌 것이 무욕이다.
013_0411_c_03L於法不有二
音聲無可得
處法難可動
不人義無欲

법의 뜻은 욕아(欲我)가 없고,
눈과 귀는 색과 소리 없고
코와 입은 냄새와 맛을 떠났으며
몸과 마음은 촉감과 법이 없다.
013_0411_c_04L法義無欲我
眼耳不色聽
鼻口離香味
身心無更法

색은 생멸의 뜻이 아니고
또한 통상(痛想)을 떠나지 않으며,
또한 식(識)의 아(我)에 머물지 않나니
이것에 도달하면 법의(法義)에 응한다.
013_0411_c_06L不色生威儀
又不離痛想
亦無識住我
達是應法義

삼계의 뜻에 머물지 않고
또한 나[吾]와 아(我)의 뜻이 없다.
세존께는 색신이 없고,
문자로써 법을 말씀하시는 뜻이 없다.
013_0411_c_07L不住三界義
亦無吾我義
世尊無色身
無字法說義

계수(計數)는 법의 의미가 아니며,
요체에 이를 수 없으니 보시가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니
아세존(我世尊:如來我)이 없다.
013_0411_c_08L計數非法義
至要不以施
非戒忍進定
慧無我世尊

모든 법을 무(無)의 뜻으로 이해하니
이것을 법요(法要)라고 부르며,
법의 의미에는 영원히 뜻이 없으니,
무욕은 곧 불법이다.
013_0411_c_10L諸法解無義
智謂是法要
於義永非義
無欲則佛法

생함 없음을 깨닫는 것은 혜(慧)와 같고
생기하지 않는 것은 소멸함도 없다.
또한 마지막도 없으니,
이와 같이 세존의 배움에 상응한다.
013_0411_c_11L無生曉苦慧
不起無有滅
不生亦無終
如是應尊習

5음(陰)은 환(幻)과 같음을 깨닫고,
그것이 법성과 같다고 알아서
안으로는 공의 무더기와 같음을 깨달으니,
이것을 밝게 아는 것을 무욕이라고 한다.
013_0411_c_12L五音解若幻
知其如法性
曉內如空聚
了是爲無欲

법을 알고 나아가 회향하면
중생의 정(情)에 밝게 도달하니
바른 뜻으로써 생각을 끊고
무욕이면 이 혜(慧)를 얻는다.
013_0411_c_14L知法至趣向
明達衆生情
逝念以止意
無欲得是慧

의단(意斷:正斷)에 둘이 없고,
신족(神足)의 마음이 가볍게 날아오르며
힘[力]을 갖추었으나 교만함이 없고,
모든 근(根)이 절제와 만족을 알며
013_0411_c_15L意斷無有二
神足心輕騰
以力而無慢
諸根知止足

지(智)로써 각정(覺定:覺支)을 깨달으며,
여덟 가지 곧은 길[八道]을 밝게 이해하니
혜(慧)는 멸행(滅行)을 관하고,
법이 돌아갈 곳을 이해한다.
013_0411_c_16L覺定解以智
明了八直道
慧觀於滅行
解法所至歸

본래의 법은 발생이 있지 않고
미래의 법에도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현재에는 머무는 법이 없으니
탐욕이 없는 것을 이와 같이 안다.
013_0411_c_18L本法不有生
當來而未至
現在無住法
不欲知如是

신상(身像)은 견고하지 않고
말[語]은 공하니 비유하면 메아리와 같으며
마음의 환(幻)은 바람과 같으니,
탐욕이 없는 것을 이와 같이 깨닫는다.
013_0411_c_19L身像無堅固
語空譬如響
心幻若如風
無欲解如是

순의경(順義經)을 설함을 알아서
인연을 통달하여 알며,
본래의 어리석음과 나고 죽음이 소멸하니
무욕이 바로 혜의(慧義)이다.
013_0411_c_20L知說順義經
了達於因緣
本癡生死滅
無欲是慧義

아(我)와 인(人)과 명(命)과 수(壽)가 없고,
법과 비법(非法)을 밝게 이해하며
이로써 세 가지 문을 해탈하나니
공(空)이라 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013_0411_c_22L無我人命壽
解了法非法
以脫於三門
所說空無著

무생(無生)으로써 멸도(滅度)를 보고
속세의 행과 같이 혜(慧)를 익히면
마음과 뜻이 따라서 생하지 않으니
무욕으로써 행을 깨닫는다.
013_0411_c_23L無生見滅道
習慧喩俗行
不從心意生
無欲覺是行
013_0412_a_01L
법성이 언제나 머무는 것처럼,
부처님이 아시거나 멸도하여도 여여하게 머물며
각과 불각(不覺)은 둘이 없으니
무욕하면 이 법을 안다.
013_0412_a_01L法性常如住
佛興及滅度
無二覺不覺
無欲知是法

그 쌓임은 본제(本際)와 같아,
그 쌓임은 다 모든 법이니
공의 쌓임[空積]과 인제(人際)에
무욕하면 이 지(智)에 통달한다.
013_0412_a_03L其積如本際
彼積悉諸法
空積及人際
無欲達是智

법성은 항상하여
깨달음이 일어나거나 멸도하여도 항상 머무는데
그 둘을 식별하여 알지 못하나니
무욕의 법은 이와 같다.
013_0412_a_04L法性常以住
覺起而滅度
不識知其二
無欲法如是

선(善)과 불선(不善)에 재앙이 없나니
법에는 죄의 갚음이 없는 것을 안다.
불법은 다른 것을 따르지 않고
도무극(度無極)을 따라서 행한다.
013_0412_a_05L不殃善不善
知法無罪報
佛法不從他
從行度無極

인연을 여읨은 연각(緣覺)이요,
소리로써 해탈함은 성문의 행이다.
지혜로운 보시는 큰 부(富)를 이루고
지계(持戒)로써 하늘에 나는 것을 본다.
013_0412_a_07L以離因緣覺
音脫聲聞行
惠施致大富
彼見戒生天

널리 듣고 지혜를 얻으며,
뜻을 지키고 중생을 교화하니
지성(至聖)은 모두 뜻을 지킨다.
무욕의 법은 이와 같다.
013_0412_a_08L博聞得智慧
守意化衆生
至聖都守意
無欲法如是

힘은 언제나 모든 탐욕을 굴리고
지혜의 뜻은 법을 있게 하고
이 모든 법을 동등하게 생각함에
법성은 언제나 무득(無得)이다.
013_0412_a_09L力常轉諸欲
智慧志存法
等念是諸法
法性常無得

인연의 일어남을 식별하여 알아서
네 가지 덕의 행을 이루며,
의미와 법을 알고,
의미를 수순하여 무욕을 안다.
013_0412_a_11L識智因緣起
而致四德行
知義及與法
順義知無欲

연(緣)을 관하는 그는 법을 보고
법으로써 세존을 본다.
생하고 멸하는 법에 동등하며
무욕(無欲)이면 최상의 가르침[尊法]을 깨우치게 된다.
013_0412_a_13L觀緣彼見法
以法見世尊
等於起滅法
無欲了尊法

인연의 자취는 얻을 수 없으며
음성의 법은 문자가 아나니
이와 같이 법의 본래 없음을 얻으면
이 성스러움을 일컬어 여래라고 한다.
013_0412_a_14L因緣迹無得
音聲法無字
斯法得本無
是聖謂如來

혜(慧)로써 인연을 보니
견(見)과 불견(不見)의 법이 없다.
밝은 혜[明慧]는 인연을 환히 아니
이것을 세존을 본다고 한다.
013_0412_a_15L以慧見因緣
無見不見法
明慧了因緣
是謂見世尊

그가 무욕행을 구하며
열성(悅性)의 모든 현성(賢聖)은
법성(法性)이 무너져도 버리지 않으며
현성의 종자를 보호한다.
013_0412_a_17L彼求無欲行
悅性諸賢聖
法性毀不捨
而護聖賢種

언제나 부처님의 바른 법을 보호하고
탐욕이 없으며 법을 듣고도 잊지 않는다.
계의 근(根)을 버리고 떠나지 않으며
정(定)에 도달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013_0412_a_18L常護佛正法
無欲聞不忘
戒根不捨離
於定達難動

신혜(身慧)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알아서,
언제나 해탈신[脫身]과 해탈혜[脫慧]에 머무니,
보는 것에 욕심 없으면
언제나 편안히 머문다.
013_0412_a_19L知身慧不動
常住於脫身
及脫慧所見
無欲常安住

모든 부처님의 법과
무량한 뭇 성도(聖道)를 깨우쳐 들어가면
부처님의 신족통을 갖추게 되고
일체 행에 환히 통달하게 된다.
013_0412_a_21L解人諸佛法
無量衆聖道
得佛神足具
辯達一切行

중생들의 마음이 행하는 것을 알아서
홀연히 모든 국토에서 노닐며
모든 여래를 뵙고
그분들의 설법을 듣게 되며
013_0412_a_22L知衆情意行
忽然遊諸土
得見諸如來
受彼所說法
013_0412_b_01L
듣고 지키며 뜻을 이해하고 통달하며
무량한 사람들에게 널리 베푼다.
그는 수억(數億)의 행을 알며,
뜻하여 무수하게 향함을 얻고
013_0412_a_23L聞守解達義
宣示無量人
知彼億數行
志得向無數

무욕은 응당 자재하니
마음을 항복시켜 공덕에 들어가며
뜻을 항복시켜 탐욕을 없애면
끝내 이 세상에서 옮겨가지 않는다.
013_0412_b_02L無數當自在
降心入功德
伏意使無欲
終不遷是世

모든 음(陰)과 마음은 이미 해탈하며,
일어나고 멸하는 곳을 환히 알아서
멸함에 있는 바가 없음을 관하면
익히는 바는 이로써 멸하게 된다.
013_0412_b_03L諸陰心以脫
了知起滅處
觀滅無所有
所習以而無

음성은 본래 마음이 행하는 바라
아첨함이 없고 언제나 단정하고 진실하며
간사하지 않고 어질고 선하니
무욕의 덕은 이와 같다.
013_0412_b_04L聲性心所行
不諂常端直
無佞調仁善
無欲德如斯

공(空)과 무상(無想)과 무원(無願)의 해탈로써
괴로움을 알고, 나고 죽음을 알면
무아(無我)의 법은 항상 고요하니
무욕은 마음을 따라서 행한다.
013_0412_b_06L以脫空想願
解苦知生死
無我法常寂
無欲從心行

보지심(普知心)은 동등하게 자애롭고
비(悲)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기뻐하여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고
행으로써 지키기에 치우침이 있지 않으며,
013_0412_b_07L普知心等慈
以悲濟衆生
喜不厭生死
行護無有邊

보시한 것에 과보를 바라지 않고
자기를 살펴서 모든 행을 세우며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것을 참고 견디며
저 중생을 해탈케 하고자 생각한다.
013_0412_b_08L所施無望報
省己立諸行
忍耐善不善
念脫彼衆生

부지런히 정진하고 굳세게 덕을 닦으며
몸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차례로 모든 선정을 알지만
또한 선정에 떨어지지 않으며
013_0412_b_10L勤精强修德
不計有身命
以次知諸定
亦不隨於定

지혜와 선정에 크게 정진하고
수(數)에 있되 수에 떨어지지 않으며
진리로써 성문을 교화하고
지(智)로써 멸도를 바라지 않는다.
013_0412_b_11L慧定大精進
於數不墮數
以諦化聲聞
智不志滅度

무욕하면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며
거기에 이 모든 법을 갖고 있지만
악마는 그 행을 알지 못하니
법에 안주하여 그것을 안다.
013_0412_b_12L無欲値佛世
彼有此諸法
魔不知其行
安住法了是

무욕은 한(限)이 없으니
이러한 탐구한(貪垢限)2)을 깨우쳐야 하니
탐욕을 여의어서 무상(無想)이면
악마도 그곳을 알지 못한다.
013_0412_b_14L無欲不有限
曉是貪茹根
離欲彼無想
魔不知其處

그 상(想)이 나[吾]와 아(我)에 응하면
거기서 스스로 악마의 일이 일어나나
이렇게 모든 행(行)을 제도(濟度)하면
뭇 악마도 당해내지 못한다.
013_0412_b_15L其想吾我應
彼自起魔事
是悉度諸行
衆魔而不審

무욕을 향하되 이를 잊지 않으면
행하는 바는 언제나 청정해지니
무욕은 참행(慚行)을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훼손하지 않는다.
013_0412_b_16L無欲志不忘
所行常淸淨
無欲不意志
慚行而不毀

무욕을 들어서
지혜를 기뻐하고 여래를 공경하여
그 머묾은 법주(法住)와 같으니
그는 응당 세존과 같다.
013_0412_b_18L以聞無欲者
悅慧敬如來
其住如法住
彼應如世尊

모든 부처님의 10력(力)을
보살이 받들고 모시고자 한다면
이러한 무주행을 듣고
부지런히 뜻을 내고 받아 지녀야 한다.
013_0412_b_19L諸佛十力者
菩薩欲奉事
聞斯無欲行
勤意當受持

이러한 무욕을 들은 자는
기뻐하고 믿으며 널리 받들어 행해야 하니
그는 언제나 무욕을 이루어
오래지 않아 부처를 이루리라.
013_0412_b_20L其聞此無欲
悅信廣奉行
彼常致無欲
得佛是不久

무욕은 성현이 말미암는 바이며
이로써 가장 청정하게 되니
무욕하면 부처를 이루게 되어
이로써 치우침 없이 교화하게 된다.
013_0412_b_22L無欲聖所由
而致最淸淨
無欲得成佛
以化無有邊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이
모든 상호를 얻은 것은
모두가 이러한 무욕을 따라
이 법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013_0412_b_23L去來現在佛
諸得衆相好
悉從斯無欲
及行是法故
013_0412_c_01L
이때에 세존께서 이러한 무욕법품을 설하셨을 때, 모여 있던 모든 대중 4만 2천의 하늘과 용과 귀신과 인비인(人非人)이 모두 위없는 정진도(正眞道)의 뜻을 일으켰다. 1만 2천 명은 불기인(不起忍)을 얻었으며, 또 8천 명은 유순인(柔順忍)을 빨리 얻었고, 3만 2천의 천자와 신과 용은 번뇌를 여의어 모두 법안(法眼)을 얻었다. 또 8천 명은 탐욕의 행을 여의었고, 8천비구들은 번뇌가 모두 다하여 남음이 없었다.
013_0412_c_01L爾時世尊說是無欲法品之時諸在 會者四萬二千天鬼神人與非人皆發無上正眞道意萬二千人得不起忍又八千人逮柔順忍三萬二千天子得離塵垢悉生法眼又八千人而離欲行八千比丘漏盡無餘
그때에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번 진동하였으며 시방에 두루 밝은 빛이 눈부시게 빛났고, 설산 아래 무열지 속에는 주위를 에워싼,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광채가 나타났다. 미묘한 꽃이 모두 무릎에 이르도록 연못의 물속에서 널리 피어났으며, 곧 각기 선명한 연꽃은 그 크기가 수레바퀴와도 같았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향을 풍겼으며 꽃의 색은 무수 백천 온갖 종류로서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그 법에 공양을 하였으니, 무열용왕의 뜻이 흡족하였기 때문이다.
013_0412_c_07L當爾之時三千大千世界六反震動普遍十方熀然大明於雪山下無熱池中周帀現有所未見聞光耀妙花皆至于膝其池水中普生乃異鮮飾蓮花大如車輪中出美香花色無數百千諸種皆是佛之威神所致亦爲是法興其供養以悅無熱龍王意故
佛說弘道廣顯三昧經卷第二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구슬을 서로 엇갈리게 하여 만든 장막으로 그 모양이 이슬이 드리워진 것처럼 된 것을 말한다.
  2. 2)고려대장경에는 ‘탐여근(貪茹根)’으로 되어 있으나, 다른 본에는 모두 ‘탐구한(貪垢限)’으로 되어 있고, 후자가 의미상 본의에 가까워 이를 따라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