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3_1235_a_01L이출보살본기경(異出菩薩本起經)
013_1235_a_01L異出菩薩本起經一卷
서진(西晉) 거사(居士) 섭도진(聶道眞) 한역
이상하 번역
013_1235_a_02L西晉居士聶道眞譯
석가문(釋迦文) 부처님께서 전생에 인간이 되셨을 때 부루다마국(夫婁多摩國)에 계시면서 세세생생(世世生生) 선행을 쌓으셨고, 무수한 생이 지나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셨다.
013_1235_a_03L釋迦文佛前世宿命爲人時在夫婁多摩國世世爲善無數世乃得爲佛
부처님께서 마납(摩納)이란 이름의 보살로 계실 때의 일이다.
사슴가죽 옷을 입고 산 속에 살다가 때마침 성에 들어가시니, 성의 이름은 발마하(鉢摩訶)이고 국왕의 이름은 기야(耆耶)였다. 보살은 성 안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고 길 가는 사람에게 까닭을 물었다.
“오늘 성 안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바쁩니까?”
가던 사람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오늘 오신답니다.”
013_1235_a_05L佛爲菩薩時名摩納居山中衣鹿皮時入城城名鉢摩訶王名耆耶薩見城中悤悤因問道中行者言今日城中何以悤悤行人對言佛今日當
보살은 부처님께서 이곳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내심 기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부처님께서 오시면 뵙고, 부처님께 내 마음 속의 소원을 부탁드려야겠다.”
013_1235_a_10L菩薩聞佛當來到內獨心喜口言今日見佛來者欲從佛求我心中所欲願者
잠시 후에 구이(俱夷)란 이름의 한 여인이 물병을 가지고 지나가는데, 물병에는 우발화(優鉢華)란 이름의 꽃이 일곱 송이 꽂혀 있었다.
보살이 뒤쫓아 가면서 불렀다.
“여보세요, 기다려 주십시오.”
구이가 곧 멈추어 서서 기다리니, 보살이 말했다.
“부인의 손에 있는 우발화를 저에게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구이가 말했다.
“오늘 부처님께서 오신다기에 대왕께서 욕실에서 목욕하고 계십니다. 나는 꽃을 대왕께 바쳐야 하니, 꽃을 드릴 수 없습니다.”
보살이 말했다.
“꽃을 백 전(錢)에 사겠습니다.”
구이가 말했다.
“꽃을 드릴 수 없습니다.”
보살이 말했다.
“꽃을 다시 가져올 수 있지 않습니까?”
구이가 말했다.
“다시 가져올 수 없습니다.”
보살이 다시 말했다.
“꽃을 5백전에 사겠습니다.”
이에 구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꽃은 겨우 두세 전 값어치 밖에 되지 않는데 이제 5백전으로 사겠다니……’
013_1235_a_12L須臾有一女人名曰俱夷應水甁有華七枚華名優鉢菩薩隨而呼之曰大姊且止俱夷卽止待之菩薩言請夫人手中優鉢華俱夷言今日佛當來到大王在浴室我當以華上之華不可得菩薩言雇華百錢俱夷曰華不可得菩薩曰可自更取俱夷曰不可得菩薩復言雇華五百錢俱夷心自念此華纔直兩三錢今乃雇五百錢
그녀는 곧 우발화 다섯 송이를 보살에게 주고, 자신에게 두 송이를 남겨 두었다. 보살이 품속을 뒤져 돈을 꺼내니 마침 5백전이 있기에 모두 그녀에게 주었고, 두 사람은 각기 헤어져 갈 길로 갔다.
013_1235_a_21L便以優鉢華五枚與之俱夷自留二枚菩薩探懷中齎錢適得五盡以與之各自別去
013_1235_b_01L구이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도인(道人)은 사슴가죽 옷을 입고 있는 형편에 마침 은돈 5백전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 돈을 꽃값으로 다 쓰고 말았으니, 아마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에 그녀는 곧 보살을 뒤따라가 불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보살이 즉시 멈춰 서서 기다리자, 구이가 말했다.
“당신이 꽃을 산 이유를 사실대로 나에게 말하면 내가 꽃을 당신에게 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의 꽃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보살이 말했다.
“나는 값을 백전에서 5백전까지 올려가며 꽃을 샀는데 무슨 까닭으로 내 꽃을 빼앗아 가려 합니까?”
구이가 말했다.
“이 꽃은 왕가(王家)의 꽃이니, 나는 힘과 세력으로 당신에게서 빼앗을 수 있습니다.”
013_1235_b_01L俱夷心念言此道人衣鹿皮衣耳適有五百銀錢盡用雇華疑此非恒人也卽隨而呼之曰男子男子且止菩薩卽止待之俱夷曰卿以誠告我我以華與卿我奪卿華去菩薩言我買華從百錢上至五百何故奪我華俱夷曰華王家華我力勢能奪卿
보살이 이에 사실대로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께서 오늘 이곳에 오신다기에 이 꽃을 바치고 부처님께 내 마음 속의 소원을 부탁드릴 작정이었습니다.”
구이가 말했다.
“매우 장하십니다. 내가 후생에는 당신의 부인이 되길 원하니, 당신의 후생이 좋건 나쁘건 나는 당신의 부인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반드시 나의 마음에 간직해 두어 부처님께서 아시도록 할 것입니다.”
이에 보살이 “좋습니다”라고 하자, 가지고 있던 두 송이의 꽃마저 보살에게 주어 부처님께 바치도록 하면서 구이가 말했다.
“아녀자는 앞에 나설 수 없으니, 이 꽃을 당신께 맡기고자 합니다.”
보살이 곧 꽃을 받았고, 각기 헤어져 갈 길로 갔다.
013_1235_b_08L菩薩卽以誠告之我聞佛今日當來到欲以華上之從佛求心中所欲願者俱夷曰大善願我後生爲卿作婦卿後生好惡者我當爲卿作婦必置我心令佛知之菩薩曰便以手中華二枚菩薩令上佛俱夷言婦人不能得前願以華累卿菩薩便受之各自別去
잠시 후 부처님께서 도착하시자, 국왕 이하 모든 백성들이 온갖 종류의 꽃들을 부처님의 머리 위에 뿌렸는데, 꽃들이 모두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보살이 가지고 있던 꽃 다섯 송이를 부처님의 머리 위에 뿌리자 꽃들은 모두 공증에 머문 채 꽃술이 위를 보고 나란히 줄지어 마치 뿌리가 생긴 듯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보살이 다시 구이의 꽃 두 송이를 부처님의 머리 위에 뿌리자 역시 꽃이 공중에 머문 채 꽃술이 위를 보고 나란히 줄지어 부처님의 양 어깨 부근에 떠서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013_1235_b_15L須臾佛來到國王以下至萬民皆以百種雜華散佛頭上華皆墮地菩薩持華五枚散佛頭上華皆留止上向成行如根生不墮地菩薩持俱夷華散佛頭上華復留止上向成行在兩肩不墮地佛知菩薩至心
013_1235_c_01L이에 부처님께서는 보살의 지극한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속에 있는 소원을 이루도록 해 줄 것이니, 90겁 후, 겁의 이름이 발라(拔羅)일 때 너는 석가문불(釋迦文佛)이 될 것이다.”
보살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였고, 곧 머리카락을 땅에 펴서 부처님께서 밟고 지나가시게 했다. 그런 뒤 부처님 앞에 서서 기쁨에 겨워 발을 구르며 뛰자,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그를 맞아 땅에서 네 길 아홉 자를 들어 올려 아무도 붙잡고 흔들어주지 않는데도 위 아래로 오르내리게 하셨다.
013_1235_b_21L佛言令汝得心中所欲願者卻後九十劫劫名拔羅汝當爲釋迦文佛菩薩聞佛語心中大歡喜卽布髮令佛足蹈之立於佛前踊躍佛以神接之卽去地四丈九尺無所播持從上來下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후세에 도를 얻어 세상을 건져, 역시 나처럼 부처가 되게 하리라.”
013_1235_c_03L佛復言令汝後世得道度世亦當如我作佛
이때의 부처님은 과거 세상의 부처님으로 명호는 제화갈라불(題和竭羅佛:燃燈佛)이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보살은 다시 산으로 돌아와 수명을 마쳤다. 그런 다음 곧 하늘로 올라가 제2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니, 천신(天神)들이 모두 보살펴 주었으며, 천상에서의 수명이 다하자 다시 세상에 내려와 구이나갈국(鳩夷那竭國)에 태어나, 비행황제(飛行皇帝)가 되어 온 천하를 다스렸다. 그리고 또 수명이 다하니 다시 하늘로 올라가, 제2 도리천에 태어나 제석천(帝釋天)이 되었다. 이렇게 수명을 마치고 다시 태어나고 하는 동안 무릇 서른여섯 번이나 제석천이 되었고, 8만 4천 생에 걸쳐 비행황제가 되었다.
013_1235_c_04L是時佛者先世佛號曰題和竭羅佛佛般泥洹去菩薩還入山中壽終以卽上生第二忉利天上諸天皆共護視天上壽盡卽復來下生鳩夷那竭國爲飛行皇帝主四天下壽終卽復上生第二忉利天上作帝釋如是終而復始凡三十六爲天帝釋八萬四千世爲飛行皇帝
이렇게 마친 뒤 제4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났다가 다시 세상에 내려와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에 태어났다. 가유라위국은 천지의 중앙에 위치하니, 부처님께서는 땅이 기울고 치우친 변방에 있는 여타의 나라에 태어나시지 않기 때문이다.
013_1235_c_12L如是壽終以後卽上生第四兜率天上卽復下生迦維羅衛國迦維羅衛國者天地之中央也佛生者不可邊土餘國地爲之傾側
가유라위국의 왕은 사람됨이 어질었기에 보살은 세상에 내려와 곧 왕비의 뱃속에 들어갔으나, 다만 뱃속은 정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몸에 가까이 닿도록 하지는 않았다.
013_1235_c_16L迦維羅衛國王爲人仁賢卽下入王夫人腹中但有不淨故無所附
좌우의 신하들과 가유라위국에 부속되기를 바라는 이웃나라 사람들이 왕비가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찾아와 대왕께 축하하고 부인에게 예배하였다. 태자(보살)가 뱃속에서 바깥의 사람을 보니, 마치 얇은 망사를 가리고 바깥의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바깥의 사람들이 예배하자 태자는 뱃속에서 손으로 물리쳤으니, 이렇게 물리친 이유는 찬하의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013_1235_c_18L左右群臣及鄰國請可屬迦維羅衛國者聞王夫人有娠皆來賀大王前爲夫人作禮太子從腹中見外人如蒙羅縠中視見外人外人作禮子於腹中以手攘之所以攘之者何不欲煩擾天下人也
013_1236_a_01L부인이 태자를 잉태하고 있을 때 천상의 신들은 날마다 천상의 음식을 가지고 와서 부인 앞에 놓아두었다. 부인은 이 음식들이 어디서 온 줄 몰랐으나, 왕가(王家)의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 다시는 먹을 수 없었으니, 왕가의 음식은 쓰고 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013_1235_c_23L夫人懷抱太子天上諸神日持天上飯食來置夫人前夫人不知飯食所從來不能復食王家飯食王家飯食苦且辛
태자는 4월 8일 한밤중에 태어났는데, 어머니의 오른 쪽 옆구리에서 태어나 땅에 내려서서 일곱 걸음을 걷고는, 발로 땅을 밟지 않고 공중에 네 치[四寸] 가량 뜬 상태에서 다시 오른 손을 들고 말하였다.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나보다 존귀한 이는 없다.”
013_1236_a_03L太子以四月八日夜半時生從母右脅生墮地行七步之中擧足高四寸足不蹈地卽復擧右手言天上天下尊無過我者
그러자 사천왕(四天王)이 즉시 하늘에서 내려와 예배한 다음 태자를 안아 황금으로 된 탁상 위에 모셔 놓고 더운 물로 목욕시키니, 왕과 부인 및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013_1236_a_07L四天王卽來下作禮抱持太置黃金机上和湯浴形王與夫人左右皆驚
태자가 태어날 때 위로 삼십삼천(三十三天)과 아래로 16지옥(地獄)과 옆으로 8극(極)1)의 만 2천 천지(天地)가 모두 환하게 밝아졌으며, 하늘과 땅이 진동하였다.
이윽고 태자가 막 아기로 태어나자 유모가 좋은 모포로 된 침낭을 어머니에게 주었고, 또 스스로 젖을 먹여 키웠다. 태자의 이름은 실달(悉達)이라 했는데, 실달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32상(相)이 갖추어져 있었다.
013_1236_a_09L太子生時上至三十三天下至十六泥犂傍行八極萬二千天皆爲大明天地爲之振動乃下爲其乳母以㲲布囊授其母卽亦自乳養名爲悉達悉達生身有三十二
다음날 왕이 부인과 의논하길, “우리 아들이 태어날 때 보통 사람과 달랐지 않소. 나라 안에 이름이 아이(阿夷)라고 하는 백 살이 넘은 대도인(大道人)이 있어 사람의 관상을 잘 본다니, 우리 함께 찾아가서 태자의 관상을 보는 것이 좋겠소”라 하니, 부인이 “매우 좋으신 생각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과 부인이 함께 도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왕이 황금 한 주머니와 백은(白銀) 한 주머니를 도인에게 바쳤다. 그러나 도인은 금과 은은 받지 않고 곧 모포를 열어젖히고 태자를 보았다. 태자가 32상을 갖추고 신광(神光)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도인은 곧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013_1236_a_14L明日王與夫人議吾子生不與人國中有大道人年百餘歲大工相人字爲阿夷寧可俱行相太子夫人曰大善王與夫人共行到道人所王以黃金一囊白銀一囊以上道人道人不受金銀卽開㲲布而視之太子有三十二相神光表現道人卽垂泣而
013_1236_b_01L왕과 부인이 물었다.
“도인이시여, 우리 아들에게 장차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기는지요? 왕이 오늘 일부러 태자의 관상을 보이는 것은 장래의 좋고 나쁨을 알고자 해서인데, 무슨 까닭에 슬피 우십니까?”
도인이 말했다.
“어제 천지가 진동하더니 바로 태자가 태어날 징조였군요. 나는 슬프게도 이미 늙었습니다. 이제 곧 세상을 떠나야 할 처지라 한스럽게도 이 분이 부처님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한스럽게도 이 분의 경전과 계율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슬피 우는 것입니다.”
013_1236_a_21L王夫人問道人吾子將有何不善王今日故相太子欲知善惡何以故悲泣道人曰昨日天地振動正爲太子我傷年老今我當去世恨不待此人恨不聞是人經戒以故悲泣
왕은 도인의 말을 듣고 곧 태자를 위하여 나라 안의 이름난 기생 4천 명을 뽑아, 천 명씩 한 조가 되어 노래와 음악을 밤낮으로 그치지 않게 하였고, 또 밤에도 태자를 모시고 지키게 했다. 왕은 도인이 관상을 잘 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 태자를 위하여 다시 궁궐과 문과 담을 짓되 모두 아주 견고하게 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열고자 하여 문을 잡아당기면 그 소리가 40리(里)까지 들리도록 하였다.
013_1236_b_02L聞道人所言卽爲太子選擇國中名倡妓得四千人令千人一番歌樂夜不休息又欲宿衛太子王深知道人工相人王卽爲太子更治宮室門戶垣牆皆令完堅若欲開之持門戶其聲當聞四十里中
태자가 태어날 때 궁전에 하인 한 사람이 태어났고 흰 말 한 마리가 태어났는데, 하인의 이름은 차익(車匿)이었고, 말은 건덕(鞬德)이라 했다. 왕은 하인 차익에게 태자가 탈 수 있도록 태자의 말을 잘 보살피고 기르도록 했다.
태자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가 죽고 말았다.
013_1236_b_08L太子生時殿中有倉頭亦生有一白馬亦生倉頭名車匿馬名曰鞬德王令倉頭侍太子馬爲太子養護當乘騎之太子生七日其母終矣
태자는 나이 열 살이 되자 대왕께 아뢰었다.
“태자가 되고 한 번도 성 밖으로 나간 적이 없습니다.”
이에 왕이 “매우 좋다”하고, 좌우의 백관(百官)들을 시켜 태자를 수행하여 성 밖으로 나가 노닐게 했다.
태자가 수레를 타고 동쪽 성문 밖으로 나가자 제2 도리천의 제석천왕이 곧 병자(病者)로 변하여 태자의 앞에 나타났다. 병자는 배가 부르고 몸에는 종기가 나고 피부와 살은 모두 여위어 버린 채 벽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013_1236_b_12L太子年十歲前白大爲王太子未曾出遊王曰大善令左右百官隨太子行遊太子乘車出東城門第二忉利天王釋卽化作病疾人在前腹大身腫肌肉盡索壁而息
태자가 마부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마부가 대답하였다.
“병이 든 사람입니다.”
태자가 물었다.
“어째서 병든 사람이 되었느냐?”
마부가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전생에 악한 짓을 한 탓에 금생에 사람이 되긴 했으나 음식이 고르지 않고 기거(起居)가 일정하지 않아 몸에 병이 들고 만 것입니다.”
태자가 말했다.
“나는 국왕의 아들이긴 하나 음식이 고르지 않고 기거가 일정하지 않으면 마땅히 이러한 병에 걸리겠구나.”
마부가 말했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되고 맙니다.”
013_1236_b_17L太子問其馭者是何等人者對曰是病疾人太子曰何如爲病疾人馭者對曰是人宿命爲惡今生爲人食飮不節臥起無常中得爲病太子曰吾國王之子飮食不節臥起無常當復得是病馭者曰人皆當得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돌아와서는 근심에 잠겨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병에 걸리게 마련이니 이제 나도 병에 걸리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013_1236_b_23L太子卽迴車而還愁憂不樂下人悉當病今我當復病不復飮食
013_1236_c_01L대왕은 태자를 나가 놀도록 한 것을 후회하여, 궁궐문을 닫고 다시는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기생들을 동원하여 태자를 즐겁게 하려 했으나 태자의 근심은 더욱 심하여 음식을 먹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 뒤로 조금씩 나아져 갔다.
013_1236_c_01L大王悔令太子出遊復閉宮門不復使出還作倡妓樂之太子甫愁憂益不能飮食至後稍稍差
그러고 몇 년이 지나자 태자가 다시 대왕께 아뢰었다.
“이제 궁중에 갇혀 지낸 날도 오래 되었기에, 다시 한번 나가서 즐겁게 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대왕은 차마 태자의 뜻을 꺾을 수 없어서 다시 허락하고는, 미리 나라 안에 단단히 명령하였다.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갈 터이니 병자나 일체 정결치 못한 사람은 길가에 있지 못하도록 하라.”
그러나 태자가 다시 수레를 타고 남쪽 성문 밖으로 나가자 제석천왕이 이번에는 열병에 걸린 사람으로 변하여,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 채 대소변을 흘려 놓고 자신이 그 위에 누워 겨우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013_1236_c_04L復數年所太子復報大王今在宮中閉日久樂復一出遊大王不忍逆太子意可之豫令國中太子當出勿令病人諸不淨潔在道傍皆勅令太子復乘車出南城門天王釋復化作熱病人頭面不理屎尿相塗還自臥其上在呼吸
태자가 마부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마부가 대답했다.
“이 사람은 전생에 악한 짓을 하고 자신을 억제하려 하지 않았던 탓에 음식이 고르지 않고 기거가 일정하지 않아 몸에 이러한 병에 걸렸으니,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나 역시 음식이 고르지 않고 기거가 일정하지 않으면 이러한 병에 걸리겠구나.”
마부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병에 걸리게 마련입니다.”
013_1236_c_11L太子問馭者是何等人馭者對曰是人宿命爲惡不肯自剋飮食不節臥起無常中得是病命在須臾太子曰吾亦飮食不節臥起無常得此病馭者曰人皆當病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성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근심에 잠겨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왕이 좌우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그러므로 미리 나라 안에 포고하여 병자 및 일체의 정결하지 못한 사람은 태자와 마주치지 못하게 했는데, 어떻게 했기에 병자를 태자가 보도록 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013_1236_c_15L太子卽復迴車而還太子復愁憂不肯飮食王曰傍臣左右故先勅令國中勿令病人諸不淨潔者當太子何故令病人見太子
뒤에 기생들을 시켜 태자를 즐겁게 하도록 하였으나 태자는 근심을 풀지 않았고,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았으나, 그 뒤로는 조금씩 나아져 갔다. 조금씩 나아진 뒤에 다시 몇 년이 지나 태자가 또 대왕에게 아뢰었다.
“궁중에 갇혀 지내니 즐겁지 않습니다. 다시 나가 놀고 싶습니다.”
왕이 말했다.
“네가 한 번 성 밖에 나갔다 오면 늘 근심에 젖어 즐거운 기색이 없고 음식조차 먹으려 하지 않으면서 무엇 하러 다시 나가 놀려 하느냐?”
태자가 말했다.
“제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013_1236_c_19L後爲作倡伎樂太子太子愁不解不以樂爲樂後稍差稍差後復數年所太子復報大王閉其宮中不樂復欲出遊王曰汝一出來還常愁憂不樂不欲復飮食何爲復出遊太子曰我不復爾
013_1237_a_01L이에 왕이 다시 나라 안에 명령을 내렸다.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 놀려 하니, 병자 및 일체 정결하지 못한 사람은 길에 나타나지 말라.”
013_1237_a_01L王復令國中子欲出遊勿令病人諸不淨潔當道太子乘車出西城門
태자가 수레를 타고 서쪽 성문을 나서자 제석천왕이 이번에는 한 늙은이로 변하여, 파리하고 수척한데다가 등이 굽은 채 지팡이를 짚고 걸어갔다.
태자가 마부에게 물었다.
“ 이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마부가 대답했다.
“늙은 사람입니다.”
태자가 물었다.
“늙은 사람이란 어떤 것이냐?”
마부가 대답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나이가 점차 많아져서 마침내 수명이 다하려 하여 기력이 쇠약해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늙은 사람이라 합니다.”
태자가 말했다.
“나도 늙겠구나.”
마부가 말했다.
“사람은 태어나면 모두 늙게 마련입니다.”
013_1237_a_03L天王釋復化作一老人羸瘦背傴拄杖而行太子問馭者是何等人馭者曰是老人子曰何如爲老人馭者曰人生地上從年一至竟壽命欲盡氣力衰微食不能故曰老人太子曰吾亦當復老耶馭者曰人生皆當老
태자가 말했다.
“수레를 돌려 돌아가자. 나도 세상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니, 매우 근심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늙고 쇠약해져 음식을 차츰 먹지 못하게 되고 마침내 사라지고 만다. 내가 어찌 세상에 오래 있을 수 있겠는가?”
013_1237_a_09L太子曰車而還吾亦不久居世閒便復大憂人皆當復老衰微飮食消盡當終亡我何爲久於世閒
태자가 다시 음식을 먹으려 하지도 않고 근심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있자, 대왕이 다시 달래고 타이르며 말했다.
“나에게 아들이라곤 너 하나 밖에 없으니 이 나라를 너에게 맡겨야만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번 성 밖으로 나갔다 오면 번번이 근심에 젖어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느냐?”
013_1237_a_12L不肯復飮食愁憂低頭大王復誘恤諫曉我獨有汝一子耳當持國付汝奈何一出還輒愁不肯飮食
그리고는 크게 음악을 연주하여 태자를 즐겁게 하니, 그 후로 차츰차츰 근심이 풀리게 되었다. 이렇게 지낸지 아주 오래되어 태자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성 밖에 나가 놀고 싶습니다.”
왕이 대답했다.
“너는 한 번 성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번번이 근심에 잠겨 즐거운 기색이 없고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아 수척해진 나머지 죽을 뻔하다 살아나곤 했다. 그런데 무엇 하러 다시 나가려 하느냐?”
태자가 말했다.
“저는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으니, 이제 그때와는 다릅니다.”
013_1237_a_15L王大爲作樂樂之後復稍稍解如是久久後復報王我欲出王答言汝一出來還輒愁憂不樂不肯飮食發痟瘦從死還何爲復欲出遊太子曰我年長大當老
이에 왕이 다시 북쪽 성문으로 나가게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선천왕이 만장[幡]을 들고 곡을 하는 남녀로 변하여 상여의 뒤를 따라 전송하고 있었다. 태자가 마부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떠한 사람들의 소리이냐?”
마부가 대답했다.
“이것은 우는 소리입니다.”
태자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우는 것이냐?”
마부가 대답했다.
“죽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013_1237_a_19L王復遣出北城門天王釋復化作喪車中外男持幡啼哭隨車而送之太子問其馭者是何等人聲馭者曰是哭聲子曰何如爲哭聲馭者曰有人死者
013_1237_b_01L태자가 물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이냐?”
마부가 대답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어, 수명에 길고 짧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수명이 다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니, 죽은 사람은 다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신체는 모두 차츰 소멸하다가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고 맙니다. 이런 까닭에 집안사람들이 애통해 하며 뒤따라 전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013_1237_a_23L太子曰何如爲死馭者曰人生地上懸命在天壽有長短故曰死死者無所復知身體皆消盡終無有期家室哀痛隨而送之
태자가 물었다.
“나도 죽게 되느냐?”
마부가 대답했다.
“사람들은 모두 결국은 죽게 마련입니다.”
태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오래 살아 있을 수 없으니, 나도 이렇게 죽고 말 것이다.”
013_1237_b_04L太子曰吾亦當死耶馭者曰人皆當歸死太子曰吾不能久居天地之閒吾當復是死
마침내 수레를 돌려 성으로 돌아오니, 왕이 마부에게 물었다.
“태자가 어찌하여 이렇게 빨리 돌아오게 되었느냐?”
좌우의 신하들이 아뢰었다.
“태자께서 성문 밖으로 나가셨다가, 길에서 상여를 보시고는 마음이 즐겁지 않아 빨리 돌아오신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내가 이제는 태자를 성 밖으로 나가 놀게 하지 않겠다.”
013_1237_b_06L遂迴車而還王問馭者太子還何以疾左右白言太子出遊道見喪車心爲不樂故還疾王曰吾亦不欲令太子出遊
태자의 나이가 스무 살이 되자 왕이 태자를 위하여 부인을 맞아주려 하였는데, 태자는 “나는 부인을 맞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태자를 위하여 온 나라를 뒤져 수십만 명의 여인을 뽑아 태자가 직접 간택하게 하였으나 끝까지 태자의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었다. 그리하여 최후로 구이(俱夷)라는 이름의 한 여인만 남게 되었다.
태자가 말했다.
“나는 이 여인을 부인으로 맞고 싶습니다.”
013_1237_b_09L太子年二十王欲爲太子娶婦太子我不娶婦王爲太子閱一國中女得數十萬女令太子目閱視之訖有可太子意者最後一女名曰俱夷太子曰吾欲娶是女
왕은 즉시 태자를 위해 그녀를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아주었으니, 이 여인은 평소에 꽃을 가지고 보살에게 팔았던 바로 그 여인으로 전생에도 이름이 구이였으며, 금생에도 계속해서 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013_1237_b_14L王卽爲太子娶爲太子娶婦是女平生可持華賣與菩薩者宿命時字俱夷今生續字俱夷
태자가 부인에게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한 침상에서 머리를 나란히 하고 누웠으니, 좋은 꽃을 구해다가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놓아두고 함께 보면 얼마나 좋겠소?”
부인이 말했다.
“꽃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 부인이 곧 꽃을 가져 와서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013_1237_b_17L太子謂婦曰我兩人同牀倂首願得好華置我兩人閒共視亦好耶其婦曰華可得卽取華置中央夫妻俠之臥
013_1237_c_01L부부가 함께 누워 있을 때 부인은 태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으나, 태자가 부인에게 완고하게 말했다.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면 이 꽃이 짓눌리고 말 것이요. 그렇게 되면 이 꽃에 있는 즙이 흘러 나와 침상을 더럽히지 않겠소?”
이 말을 듣고 부인은 곧 물러났다.
이렇게 오래 지낸 뒤 태자가 다시 부인에게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한 침상에서 머리를 나란히 하고 누웠으니 좋은 모포를 구해서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놓아두고 보면 얼마나 좋겠소?”
부인이 말했다.
“모포를 구할 수 있습니다.”
013_1237_b_20L婦人之意欲附太子太子固謂婦言若來附我必迫此華此華有流污牀席其婦卽自卻久久復謂婦言我兩人同牀倂首願欲得好㲲置我兩人中央顧視之不亦好耶婦曰㲲布可得
이렇게 말한 부인이 곧 모포를 가져와서 두 사람의 사이에 놓았다. 이번에도 부인이 마음속으로 은근히 태자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태자가 말했다.
“내게로 가까이 오면 반드시 땀이 나서 이 모포를 더럽히게 되지 않겠소?”
이 말을 듣고 부인은 곧 물러나서 감히 태자를 가까이 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태자를 의아하게 여겨 앉으나 일어서나 늘 따라 다녔다.
013_1237_c_02L卽取㲲布置中央人之意意欲身前近太子太子曰來附我必有汗垢污㲲布其婦卽卻不敢大親太子意疑太子坐起常隨太子
한밤이 되자 사천왕(四天王)이 창문으로 들어와 태자를 불렀다.
“떠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내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013_1237_c_06L夜半時四天王從天窗中來太子曰時到可去太子曰我欲去能得去
사천왕은 곧 노래하고 춤추던 기생들을 깊이 잠재워 아무것도 모르게 하였다. 부인도 침상에 누워 잠이 들자 태자는 천천히 침상에서 일어나 부인을 보았다. 부인이 잠에서 깨어 알아차릴까 조심하여 침상에서 내려온 태자는 발길을 옮겨 같은 날 태어났던 하인 차익에게로 가서 천천히 불렀다. 그리고는 뜰에 있던 흰 말 건덕에게 안장을 매게 했다.
013_1237_c_08L四天王卽令舞歌者伏鞞瞑無所復知其婦臥出太子徐據牀視其婦恐婦覺知太子遂下牀而起得去徐呼同日所生倉頭車匿令鞴白馬鞬德於中庭
차익이 말에 안장을 매자 태자는 말에 올라 떠나려 하였으나, 문을 열 때 나는 소리가 두려워 뜰 안을 배회하고만 있었다.
태자가 말을 몰면 말발굽 소리가 항상 20리 밖에까지 들리고, 성문을 열면 그 소리가 40리 밖에까지 들리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태자가 감히 문을 열지 못하고 있자, 사천왕이 곧 귀신들을 시켜 말발굽을 잡고 지붕을 뛰어넘어 성을 벗어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태자는 저절로 왕가(王家)의 밭두둑에 있는 나무 아래에 도착하였다.
013_1237_c_12L車匿卽鞴馬太子上馬欲去恐門有聲故徘徊中庭子馬行蹄聲常聞二十里是門聲聞四十里故太子不敢開門四天王使諸鬼神抱持馬足踰屋出城自到王家佃上止樹下
이튿날 왕이 태자의 행방을 알 수 없어서 궁중이 발칵 뒤집혔다.
왕이 말했다.
“내 아들은 아직 성을 나가지 않았다. 지금 농막(農幕)에 있을 것이다.”
013_1237_c_17L明日王不知太子所在宮中騷動王曰吾子未曾出遊今且在佃舍耳
왕이 몸소 농막에 당도하자 멀리 태자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햇볕이 태자를 비추려 하자 나무가 가지를 굽혀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햇볕이 태자를 비추지 못하게 하였다. 왕은 두려운 마음이 일어 말에서 내려 태자에게 예배했고, 태자도 왕에게 예배하였다.
013_1237_c_19L王卽自到佃舍遙見太子坐樹下日光欲照太子樹曲其枝葉扇之不得令日光照太子王恐心且惶下馬爲太子作禮太子亦爲王作禮
013_1238_a_01L태자가 말했다.
“저는 왕의 아들이 되어 아직까지 성을 나간 적이 없습니다. 이제 한번 나왔는데 지금 왕께서 저를 뒤따라 오셨습니다. 저의 말과 하인이 제 곁에 있으니 대왕께서는 궁궐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며칠 지나면 스스로 돌아가겠습니다.”
013_1237_c_23L太子曰我爲王作子未曾出今一出遊今王復追我我馬與奴續在一傍願大王歸宮我數日自歸
왕은 즉시 말에 올라 궁궐로 돌아가서 태자의 부인 구이에게 말했다.
“태자는 지금 농장에 있으니, 며칠 지나면 돌아올 것이다.”
013_1238_a_02L王卽上馬而歸謂其婦俱夷太子今在佃上數日來歸
태자는 나무 아래에 있으면서 정신을 오로지 모아 지난 여러 겁의 일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위로 삼십삼천(三十三天)에서 아래로 16지옥(地獄)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이때 마침 어떤 사람이 밭을 가는데, 흙 속에서 밖으로 나온 벌레들이 더러는 쟁기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더러는 죽기도 한 것을 까마귀가 다시 날아와 그것들을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
태자가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땅 위에 태어나 살다가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고 마니, 괴롭지 아니한가. 나는 이 세상에 오래 살 수 없다.”
그리고 즉시 말에 올라 그 곳을 떠났다.
013_1238_a_04L太子在樹下專精長思惟累劫之事上至三十三天至十六泥犂無一可者見田中犂者出土中虫或有傷者或有死者烏復隨而食之太子歎曰人生地上死當入泥犂不亦苦乎吾不能久居世閒卽上馬而去
10여 리를 가다가 분식(賁識)이라고 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분식이란 귀신 중에서도 큰 귀신으로 억세고 모진 사람이 되어 왼손에는 활을 잡고 오른손에는 화살을 쥐고, 허리춤엔 예리한 칼을 차고서 길을 막고 서 있었다.
013_1238_a_10L行十數里見一男子曰賁識賁識者鬼神中大神爲人剛左手持弓右手持箭腰帶利劍道而立
분식이 서있는 곳에는 세 가지 길이 있었는데, 첫째는 하늘의 길이고, 둘째는 사람의 길이고, 셋째는 지옥 악인의 길이었다.
태자가 멀리서 분식을 보고 마음이 불쾌하여 곧바로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자, 분식은 곧 매우 놀라고 두려워 칼을 풀고 활과 화살을 가지고서 길에서 물러나 서 있었다.
013_1238_a_13L賁識所立處者有三道一者天道二者人道三者泥犂惡人之道太子遙見心爲不樂直以馬前趣之識卽惶怖戰慄解劍持弓箭卻路而
태자가 물었다.
“어느 길로 가는 게 좋겠는가?”
분식이 즉시 하늘의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013_1238_a_17L太子問曰何道可從賁識卽以天道示之此道可從
태자가 다시 수십 리를 가다가 길에서 사냥꾼을 만났다.
태자가 물었다.
“내가 그대에게 빌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사냥꾼이 말했다.
“찾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그대의 사슴 가죽을 얻고 싶습니다.”
사냥꾼이 즉시 사슴 가죽을 태자에게 주자, 태자도 진귀한 물건들을 사냥꾼에게 주었다.
013_1238_a_18L太子行數十里逢獵者太子曰我欲從卿有所債可得耶獵者言所索者可得太子曰欲得君鹿皮獵者卽以皮與太子子亦以珍物與之
013_1238_b_01L태자는 다시 수십 리를 가서 말을 멈추고 내려 차익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에서 돌아가거라.”
차익이 말했다.
“저는 태자님을 따라갈 것이니, 돌아갈 수 없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돌아가 대왕과 나의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라. 나는 산에 들어가 수도하고자 하니, 목숨이 다할 때까지 다시는 궁궐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013_1238_a_22L太子行數十里馬而下謂車匿若從是而還車匿言我隨大天不可還太子曰歸謝大王及我舍妻言我欲入山爲道終身不復
태자가 이제는 쓸모가 없게 된 머리에 쓴 보배 관과 몸에 걸친 진귀한 옷을 벗어 차익에게 주자, 차익은 슬피 울며 이를 받았다. 그러자 백마는 앞다리 꿇고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발을 핥았다. 차익이 말을 끌고 돌아가니, 차익도 울고 백마도 울었다. 뒤돌아 태자를 바라보니, 복장을 바꾸려 사슴 가죽을 입고 있었다.
013_1238_b_03L太子取頭上寶冠無利著身珍衣與車匿車匿啼哭受之其白馬前屈膝垂淚而舐太子足車匿步牽馬而車匿亦啼白馬亦啼從後望太子取麏鹿皮著之欲變其服
한편 태자의 부인은 날마다 태자가 돌아오길 바라다가 빈 말만 돌아오는 것이 보이자, 슬피 통곡하며 궁궐 아래로 몸을 던지듯이 뛰어 내려와 말의 목을 끌어안고 차익에게 태자가 있는 곳을 물었다.
차익이 말했다.
“태자께서는 대왕과 부인께 ‘나는 산에 들어가 수도하고자 하니 목숨이 다하도록 다시는 궁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리라 하셨습니다.”
013_1238_b_07L婦日望太子當歸反見空馬啼哭自投殿下抱馬頸謂車匿太子所在車匿曰子上謝大王及我舍妻言我入山爲終身不復還
구이가 말했다.
“나는 어찌 이리도 박명(薄命)하단 말인가. 내 남편을 잃은 셈이 되고 말았구나. 내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내 남편이여, 내 남편이여, 하늘에 계십니까, 지하에 계십니까, 인간 세상에 계십니까? 내가 찾아 나서리라.”
또 구이가 흰 말에게 말하기를 “태자께서 너와 함께 나가셨다가 너만 빈 몸으로 돌아왔구나”라고 하니,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그 애절한 슬픔에 감동했다.
013_1238_b_11L俱夷曰我何薄命亡我夫我當於何所求我夫我夫天上地下人閒耶我當行求之謂白馬言太子與汝俱出若反空還左右皆爲感動
왕은 태자가 떠났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구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구이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사람은 땅 위에 태어나서 살다가 결국은 모두 죽고 마는데, 내 아들은 도를 닦아 세상을 건지려 하니 또한 장하지 않느냐?”
그러나 왕 역시 태자에 대한 생각이 그치지 않았다.
013_1238_b_15L王聞太子去泣下交橫俱夷人生地上皆當歸死吾子學道度世不亦善耶欲以解俱夷意王亦念太子無已
왕은 곧 나라 안의 어질고 슬기로운 인사 수천 명을 불러 들여, 다시 이 중에서 수백 명을 뽑고, 다시 이 중에서 수십 명을 뽑고, 다시 이 중에서 다섯 명만 뽑았다.
013_1238_b_18L王卽請國中賢智之士得數千人王復選數千人得數百人復於數百人中得數十人復於數十人中選擇得五人
013_1238_c_01L왕은 이 다섯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들은 밤낮으로 집에서 자식과 손자를 안고 지내니 즐겁지 않겠는가? 지금 내게 아들 하나가 있는데 이제까지 성 밖을 나가본 적이 없어 세상 물정이라곤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나를 버리고 먼 곳으로 가서 이름난 산 속에 들어가 버렸으니, 깊은 숲을 헤치고 계곡을 건너고 하는 동안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린들 누가 이것을 알겠으며, 혹 범이나 이리와 같은 맹수에게 해를 당한들 누가 이것을 보겠는가? 이제 그대들 다섯 사람은 각기 한 아들씩 보내어 내 아들을 찾게 하되, 찾거든 곁에 머물면서 모시게 하라. 내 아들은 목숨이 다하도록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대들의 아들이 만약 중도에 내 아들을 버리고 떠난다면 나는 그대들의 집안을 멸족할 것이다.”
013_1238_b_21L王呼五人問言等日夜於家抱子持孫亦獨樂乎吾有一子未曾出遊不知天下白黑一旦捨吾遠處行入名山涉歷窈林趣度溪谷寒暑飢渴誰當知之或有虎狼猛獸吉凶之事誰當見者今卿等五人各遣一子追求吾子得者便隨侍之吾子終身不復還卿等五人有中道捨吾子去之吾滅卿等家族五人卽遣
다섯 사람은 즉시 다섯 아들을 보내어 태자를 찾게 하였고, 그리하여 태자를 이름난 산 속에서 찾아 곁에서 모시게 되었다. 이렇게 몇 해가 지나는 동안 태자도 이 다섯 사람이 어디서 왔는가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태자가 다니는 곳은 모두 깊은 숲 속이었으므로 다섯 사람은 걱정이 되어 서로 말하였다.
“왕태자는 도를 닦는 게 아니라 미친병에 걸렸을 뿐이다. 길을 가리지 않고 아무 곳이나 다니니 우리 다섯 사람은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돌아가면 왕이 우리 집안을 멸족할 것이니 차라리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났겠다.”
013_1238_c_07L五子追求太子得之於名隨而侍之如是數歲太子亦不問五人所從來太子所行者皆窈林之五人患而苦之自相謂言是王太不行學道病狂癡耳行不擇道五人不能隨還者王滅吾家不如於此而止
다섯 사람은 모두 좋다고 하였다. 이 다섯 사람이 머문 곳은 큰 물가였는데, 물가에는 진귀한 과일과 열매들이 열러 있어 겨울이고 여름이고 늘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굶주리지 않아도 되었다. 다섯 사람이 태자를 따라오지 않고 머무는 것에 대해, 태자도 물론 상관하지 않았다.
013_1238_c_13L五人皆言五人所止處者大水上其水上有果蓏異類之物夏常有所噉故不飢五人止留太子亦不問也
태자는 사람이 없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 아래 높이 풀을 깔고 단정히 않았다. 그리고 일심(一心)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나의 살과 뼈가 모두 마르고 썩는다 할지라도, 이 자리에서 성불(成佛)하지 못한다면 일어나지 않으리라.’
013_1238_c_16L太子遂入深山無人之處取地高草於樹下正坐一心自念言今日肌骨筋髓皆枯腐於此不得佛不起
태자는 이내 초선(初禪)의 경지를 얻고, 이어 이선(二禪), 삼선(三禪), 사선(四禪)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리하여 태자는 첫날밤에 아술사(阿術闍)의 경지에 도달하여, 숙명통(宿命通)을 얻어 자신이 지나온 헤아릴 수 없는 겁의 과거를 소상히 알게 되었다.
013_1238_c_19L太子便得一禪復得二禪復得三禪復得四禪便於一夜中得阿術自知所從何生無數世時宿命
이튿날 밤 태자는 제2 술사(術闍)의 경지에 도달해,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한량없는 우주를 환히 꿰뚫어 보고 사람이 생사에 윤회하면서 다니는 선악(善惡)의 세계[六道]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벽녘 동이 틀 무렵에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013_1238_c_21L夜時得第二術闍得天眼徹視洞見無極知人生死所行趣善惡之道明時便得佛
013_1239_a_01L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부처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불도(佛道)는 얻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리고는 곧 문린(文隣)이라고 하는 용이 사는 물가에 이르렀다. 문린이 사는 물가에는 나무가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곧바로 그 아래 단정히 앉아 이렇게 생각하셨다.
‘과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 이전에 제화갈라불(題和竭羅佛)이 ≺나는 석가문불(釋迦文佛)이 될 것이다≻고 했었는데, 내가 이제 부처가 되었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 동안 부처가 되길 구하다가 이제야 부처가 된 것이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 동안 6바라밀(波羅蜜)을 행하여 공덕을 쌓길 잊지 않았는데 이제 그 결과를 모두 얻게 되었다.’
013_1239_a_01L佛自念我以得佛矣得難知難了得佛道便到龍水所名文鄰文鄰者所止水邊有樹佛便正坐自念言昔往無數劫時有題和竭羅佛言我當爲釋迦文佛我今日已得佛矣我從無數劫以來求佛今得佛耳我從無數劫以來所施入六波羅蜜不忘我功德也今皆得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곧바로 선정(禪定)바라밀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나무 아래에 좌선하고 계시는 부처님의 빛이 물속까지 뻗쳐 용이 사는 곳을 환하게 비추었다. 용은 부처님의 빛을 보고 크게 놀라 털과 비늘이 곤두섰다.
013_1239_a_09L佛適念是便入禪波羅蜜佛在水邊樹下坐禪光景入水徹照龍所居龍見佛光大驚毛甲爲豎
용 문린은 일찍이 이미 세 분의 부처님을 뵌 적이 있으니, 한 분은 구루손불(拘婁孫佛), 한 분은 구나함모니불(俱那含牟尼佛), 한 분은 가섭불(迦葉佛)로서 모두 나무 아래 앉아 계시자 그 빛이 물속까지 뻗쳐 용이 사는 곳을 환히 비추었었다. 용은 부처님의 빛이 세상에서 다시없는, 예전에 보았던 세 부처님의 빛과 같은 것을 보고 크게 기뻐 물 밖으로 나와 좌우를 둘러보다가 나무 아래 앉아 계신 부처님을 보았는데, 32상(相)을 갖추고 금빛을 띤 부처님의 몸은 단정하기가 일월(日月)과도 같았다. 그리고 부처님의 32상은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듯이 보였다. 이에 용 문린은 곧바로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주위를 일곱 바퀴 돌았다.
013_1239_a_11L文鄰龍曾已更見三佛一者名拘婁孫佛者名拘那含牟尼佛三者名迦葉佛皆在樹下坐光景皆入水中徹照龍所居處龍見佛光景如前三佛光景世閒得無復有佛龍便大喜出水左右顧視見佛坐樹下身有三十二相正金色端正如日月佛三十二相見如樹有華文鄰龍便前趣佛繞佛七帀
용은 일곱 개의 머리가 있었는데, 곧바로 이것으로 부처님의 머리 위를 덮어드렸다. 용이 물속에서 나와 부처님을 모시고부터 7일 동안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7일 동안 선정(禪定)에 들어 전혀 움직이지 않으시고 숨을 쉬는 기척조차 없으셨으며, 부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무한한 법열(法悅)을 누리고 계셨다. 7일이 지나자 비바람이 곧바로 그쳤다. 부처님께서는 처음으로 도를 얻으셨기 때문에 환희에 젖어 7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 용도 부처님께서 환희에 젖어 계신 것을 보고 부처님 곁에서 역시 7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013_1239_a_20L龍有七頭便以覆佛上龍出水侍佛便風雨七日佛禪七日不動不不喘不息佛意快無極過七日後風雨便止佛用初得道故歡喜不食七日龍見佛歡喜侍佛亦不食七日
013_1239_b_01L7일이 지난 뒤 부처님께서 선정에서 깨어나시자 용은 젊은 바라문으로 변하여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춥거나 덥지는 않으셨으며, 벌레와 개미나 모기 따위가 괴롭히지는 않으셨는지요?”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경전에, 사람이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즐거움을 누린다고 했는데, 옛적에 들은 것을 지금 내가 모두 곧 알았으니 즐겁도다. 세간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니 또한 즐겁도다. 세간의 사람들과 온갖 곤충들을 괴롭히지 않아도 되니 또한 즐겁도다. 생사(生死)의 굴레를 벗어나 다시는 세간의 사람도 천상(天上)의 신도 되지 않으니 또한 즐겁도다. 성냄과 음란함과 방일함이 없으니 또한 즐겁도다. 세간에 있으면서 부처의 열반의 도를 얻었으니 또한 즐겁도다.”
013_1239_b_01L七日竟佛自覺龍便以作年少婆羅長跪叉手問佛言得無寒得無熱得無爲虫蛾蚊蝱所嬈佛報言經說人在屛處快昔者所聞今我皆以更見之是快居世閒不爲人所嬈亦不嬈世閒人及蜎飛蠕動之類亦過度不復作世閒人不復作天亦無有瞋恚婬泆亦快於世閒得佛泥洹之道亦快
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부터 저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경전에 귀의합니다.”
부처님께서 용에게 말씀하셨다.
“얼마 후엔 많은 아라한과 비구승들이 생기게 될 것이니, 너는 이들에게도 힘써 귀의하도록 해라.”
013_1239_b_10L龍白佛言從今以去我自歸佛自歸經佛語龍言比後當有衆阿羅漢比丘僧汝亦當復務自歸之
이리하여 축생 중에서는 문린이 먼저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신통에 통달하신지라, 천상의 신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한가로이 한 곳에 계시면서 천하의 많은 착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모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신 나머지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니, 누구를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인가? 우리 왕께서 다섯 사람을 보내어 나를 따르게 했는데 이 다섯 가람은 나를 따라 오지 않고 지금 물가에 있으니, 내가 먼저 이들을 가르쳐야겠다.’
013_1239_b_13L畜生中文鄰爲於前自歸佛神通洞達諸天集會皆稽首前謁閑居實處精念天下衆善悼哀萬民意欲敎之當先敎誰吾王遣五人侍五人不能及我今在水上吾當先敎之
부처님께서는 곧 예전에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셨다. 다섯 사람은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도 누구인지 몰라서 서로들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이 오거든 절대로 예를 올리지 말고, 절대로 함께 말하지 않기로 하자.”
다섯 사람은 모두 이렇게 하기로 다짐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다섯 사람이 하는 말을 모두 들으셨다.
013_1239_b_18L佛卽復故道而還五人遙見佛不知何人自相謂是人來者愼無作禮愼無與語五人皆言佛遙聞五人所道者
이렇게 다짐하였는데도 부처님께서 다가오시자 다섯 사람은 모두 황공하여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 다섯 사람은 어찌 그리도 마음이 굳지 못한가? 서로 다짐하길, 이 사람이 오거든 절대로 예를 올리지 말자고 하더니 이제 무엇 때문에 예를 올리는가?”
이에 다섯 사람은 감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013_1239_b_21L佛至五人皆惶怖前爲佛作禮佛言卿等五人何故無堅心屬自相謂是人來者愼無作禮何故作禮五人不敢復語
013_1239_c_01L부처님께서는 이 다섯 사람을 데리고 길을 떠나셨다. 길을 간 지 며칠이 되어 부처님께서 손으로 다섯 사람의 머리와 수염을 어루만지자 모두 머리칼과 수염이 없어지고 사문(沙門)이 되었다.
013_1239_c_01L佛將五人俱去行數日佛以手摩五人頭鬚爲沙門
한편 나라 안에는 저마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세 사람의 도인(道人)이 있었다. 한 도인은 5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고, 한 도인은 3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고, 한 동인은 2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고 있었으니, 이들의 제자는 모두 합해 천 명이 되는 셈이었다. 부처님께서 다섯 사문을 데리고 세 도인이 있는 곳에 당도하시자, 천 명의 제자들이 크게 기뻐하여 모두 부처님을 따라 그 곳을 떠났다.
013_1239_c_03L有三道人各敎授弟子一道人敎五百弟子一道人者敎三百弟一道人者敎二百弟子凡爲千人佛將五沙門到三道人所諸弟子大喜皆隨佛而去
부처님께서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다니셨는데, 성문에 당도하시면 종과 북이 저절로 소리를 내고 거문고와 비파가 스스로 울렸으며, 병이 든 사람은 병이 낫고, 늙은 사람은 다시 젊어지고, 눈이 먼 사람은 시력을 회복하고, 귀가 먹은 사람은 청력(聽力)을 회복하고, 곱사등이는 등이 펴지고, 절름발이는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짐승들은 서로 화답하여 노래하고, 천상의 신들은 날아와 꽃을 뿌리며 공중에서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빛은 헤아릴 수 없는 천계(天界)를 비추어 3천 개의 일월(日月)과 만 2천 개의 천지를 모두 감쌌으며, 전후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니 수천만억의 사람들이 모두 도를 얻어 세상을 제도하였다.
013_1239_c_07L佛將諸弟子行至諸國到城門鍾鼓自作聲琴瑟自鳴病者得愈老更少盲者得視聾者得傴者得伸跛者得行百獸相和悲諸天飛來散花作樂其上佛光照無數天其領三千日月萬二千天地皆屬焉前後敎授弟子敎數千萬億皆得道度世
異出菩薩本起經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8방의 끝, 아주 먼 곳. 8방이란 4방(方)과 4우(隅)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