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 안에서 차례로 탁발을 하시다가 유덕(有德) 바라문녀(婆羅門女)의 집에 이르셨다. 그때 유덕녀(有德女)가 멀리서 여래를 바라보았는데, 그 모습이 단엄하고 모든 신체 기관이 적정(寂靜)하였으며, 그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하여 최상으로 비할 데가 없었다. 몸가짐은 신중하고 진실해 보였으며, 바라보는 눈길 또한 편안하고 자상해 보였다.
비유하면 용왕에게 커다란 위덕(威德)이 있는 것과 같았고, 순금으로 된 기둥이 우뚝 솟아 있는 것과 같았으며, 청정한 연못이 깨끗하여 더럽거나 탁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기쁨이나 슬픔에 흔들리지 않음은 제4선(禪)과 같았고, 몸에서 나오는 빛의 광명은 안과 밖을 원융하게 관통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잘 오셨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지금 의문이 나는 것을 여쭙고자 합니다. 오직 바라건대 불쌍히 여기시고 잠시 여기에 머물러 주십시오.”
013_1307_a_17L“善來!世尊!善來!善逝!我於今者欲問所疑,唯願垂哀,暫時住此。”
그때 세존께서는 조용히 그 간청을 받아들이시고 자리에 앉으셨으며, 아일다 보살마하살 또한 부처님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013_1307_a_19L于時,世尊默然受請,敷座而坐,阿逸多菩薩摩訶薩亦隨佛坐。
013_1307_b_01L그때 유덕 바라문녀는 마음에 환희심이 나서 더욱 공경하는 마음을 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께서 바라내(波羅奈) 선인이 머무는 처소인 시록림(施鹿林)에서 오묘한 법륜(法輪)을 굴리신다고 들었습니다. 세존께서 법륜을 굴리셔서 어떤 법을 설하시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013_1307_c_01L유덕녀가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와 같다면 무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온갖 행[諸行]을 생기게 할 수 있으며, 태어나고 죽는 가운데 어찌하여 온갖 괴로움의 과보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나무에 뿌리가 없으면 가지나 잎사귀, 꽃이나 과일 등이 있을 수 없듯이 무명에 자성(自性)이 없다고 한다면 행(行) 등이 생기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유덕녀여, 모든 법은 필경 공하다. 일반적으로 어리석은 이들은 미혹되고 전도되어 공(空)의 뜻을 듣지 못하거나, 공에 대해 시설(施設)해 주어 그것을 듣더라도 지혜가 없어 여실히 잘 알지 못한다. 이로 말미암아 갖가지 업을 갖추어 짓게 되고, 많은 업이 있게 되면 온갖 존재[有]의 세계가 생기며 온갖 존재의 세계 가운데서 많은 괴로움을 받게 된다.
유덕녀여, 비유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켜 만들어 냈다고 하자. 이 변화되어 나온 사람은 다시 갖가지 많은 사물을 변화시켜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변화되어 나온 사람은 허망하게 꾸며낸 것이므로 진실한 것이 아니며, 그가 만들어 낸 사물 또한 진실한 사물이 아니다. 이것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서 지은 온갖 업은 허망하고 속이는 것으로 진실한 것이 아니니 업으로부터 생긴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013_1308_a_01L“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이해하는 대로라면 지금 여래께서는 법륜을 굴리고 계십니다. 이 법륜은 허공과 같은 법륜이고 자성이 공한 법륜이며, 세간의 고뇌를 벗어나게 하는 법륜이고 통달하게 하는 법륜이며, 불가사의한 법륜이고 굴리는 주체가 없는 법륜이며, 이와는 동등할 것이 없는 법륜이고 여실한 법륜이며, 생겨남이 없는 법륜이고 자성이 없는 법륜이며, 형상이 없는 법륜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륜을 여래께서 이미 굴리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린 다음 양손으로 전단향(栴檀香)을 한 움큼 쥐어 부처님의 발 위에 뿌리고서 말하였다.
013_1308_a_03L作是語已,卽以兩手捧栴檀香末,散佛足上,而作是言:
“세존이시여, 제가 이 선근(善根)의 힘으로 미래세(未來世)에 이와 같은 갖가지 법륜을 굴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013_1308_a_04L“世尊,願我以此善根之力,於當來世,能轉如是種種法輪。”
그때 세존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미소 지으시고 입으로부터 갖가지 광명을 내셨다. 그 광명은 밝게 비추었고 여러 가지 색을 다 갖추었으며,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이르러 낱낱의 세존이 계신 곳을 가득 채우지 않음이 없고, 다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와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다음 부처님의 정수리 속으로 들어갔다.
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열반하신 후에도 이와 같은 시간은 계속 이어져 끊임이 없을 것이다. 또한 다시 한량없는 아승기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菩提)로 회향하게 하고, 그런 다음에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광요(光曜)의 겁 동안에 성불할 것이니, 그 명호(名號)는 법광요(法光曜)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며, 그 부처님의 수명은 1겁을 가득 채워 머물면서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을 얻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