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건대 휘장이나 깃발은 그 흔들림이 멈추기 어렵듯이 3계는 윤회로 말미암아 갈애[愛]의 물로 청정하지 못하다. 네 가지 번뇌[四惑]가 이를 바탕으로 면면히 흐르니 홀로 뽑아 없앨 수 있는 보살이거나,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갈애의 그물을 찢고 겹의 빗장을 열어 깊은 의혹을 풀어 혼미한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이구혜보살은 도가 높아 초주(初住)에 머물렀고 덕은 8항(恒)을 뛰어넘으며 시속(時俗)의 방편을 빌어 깊이 있는 인식의 마음을 낼 수 있도록 훌륭한 질문을 하였다.
013_1312_a_07L有離垢慧菩薩者,道 高初住,德跨八恒,假時俗之津途,發 深識之嘉問。
여래께서는 조건 없는[無緣] 뛰어난 변재로써 기다리는 중생들에게 달려가 깊은 애정을 베푸셔서 5취(趣)의 가림[蓋]과 얽힘을 끊게 하시고 5륜(輪)의 예념(禮念)을 바탕으로 5신통[通]과 5안(眼)을 얻게 하셨으며, 이로부터 점차 5위(位)ㆍ5생(生)을 닦아 이러한 원만함을 이어받아 맺게 하셨습니다.
중하(中夏) 1천6백 년에 시운이 기울어 법의 흔적만 있다가 근자에 들어 동양(東壤) 땅에 법소식이 들리니, 용삭(龍朔) 3년에 천축 삼장(天竺三藏) 나제(那提)가 여섯 가지 상이한 종파를 총괄하였고 또한 네 가지 위타(圍陀:베다)의 경전과 9부(部) 8장(藏)을 깊이 연구하여 양쪽 모두에 밝았으니, 그러한 것들의 십제일승(十諦一乘)의 의의를 밝혀 공색(空色)으로 귀일하게 하였다. 아울러 그 명칭과 이치를 자세하게, 때로는 간략하게 드러냈으니 그 현묘함의 경지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실라벌실제성(室羅栰悉帝城) 승덕림(勝德林) 가운데 있는 급고독원(級孤獨園)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으며, 보살들의 수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한량없는 바라문과 비사(毘舍)ㆍ수타(首陀)를 비롯한 많은 장자들이 각기 모두 대중들의 우두머리로 그들과 같은 부류와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찾아왔으며, 또한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이 대법회의 앞뒤에서 에워싸고 있었다.
그때 모인 대중 가운데 어떤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이구혜(離垢慧)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偏袒右肩]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합장한 다음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말씀하셔서 듣도록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구혜여,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그대는 많은 자비와 연민의 마음으로 모든 천상과 인간을 이롭고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로구나. 마땅히 진실로 잘 들어라. 그대를 위해 해설해 줄 것이니,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의 처소에서 예경하려 한다면 마땅히 먼저 발원하여 이와 같이 말해야 한다.
‘저는 지금 지극한 마음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를 올리고 널리 모든 뛰어난 법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저는 지금 5륜(輪)1)으로 부처님께 예를 표시하여 5도(道)2)를 끊고 5개(蓋)3)를 떠나며 모든 중생이 항상 편안하게 머물러 5통(通)4)을 무너뜨리지 않고 5안(眼)5)을 갖추기를 원합니다.
바라건대 제가 왼손을 땅에 댈 때에는 온갖 외도나 조복하기 어려운 자들을 4섭법(攝法)6)으로 섭수하여 정법(正法)에 들게 해주십시오.
013_1312_c_05L願 我左手著地之時,令諸外道難調伏 者,以四攝法而攝取之,令入正法。
바라건대 제가 머리를 땅에 댈 때에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교만심을 떠나 모두 다 무견정상(無見頂相)의 경지를 성취하게 해주십시오.’
013_1312_c_07L願 我首頂著地之時,令諸衆生,離憍慢 心,悉得成就無見頂相。’
이구혜여, 이것이 5륜으로 예를 표현하는 모습이다. 그 다음으로는 시방에 계신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 예를 표하면서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동방(東方)의 아촉(阿閦)여래와 널리 그 방향에 계신 한량없는 세계의 일체 여래와 모든 대법장(大法藏)과 아울러 모든 보살ㆍ성문ㆍ연각 등 일체의 현성(賢聖)께 귀의합니다[南無].
013_1313_b_01L또한 이러한 말을 해야 한다. ‘저는 지금 일심으로 머리 숙여 위에서 말한 일체의 부처님과 법과 모든 현성들께 예를 올립니다. 바라건대 마땅히 저를 증험하여 주십시오. 금일 이후로부터 보리에 이를 때까지 항상 부처님 세존ㆍ대자비를 베푸시는 이ㆍ일체지자(一切智者)ㆍ일체의 지견(知見)을 갖춘 이ㆍ모든 두려움을 떠난 이ㆍ인간 가운데의 대사자(大師子)ㆍ대용왕(大龍王)ㆍ인간 가운데 대선사(大仙士)ㆍ대장부ㆍ일체를 두루 아는 불가사의한 몸을 지닌 이ㆍ위없는 몸을 지닌 이ㆍ같음이 없는 몸을 지닌 이ㆍ2승(乘)이 함께할 수 없는 몸을 지닌 이ㆍ청정한 법신ㆍ일체의 무리 가운데 가장 존중받는 이께 귀의합니다.
또한 이러한 말을 해야 한다. ‘저는 지금 몸과 입과 마음의 세 가지 업의 선근(善根)으로 모든 중생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도량에 앉은 이ㆍ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는 이ㆍ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멸하여 파괴되지 않는 이ㆍ머묾도 없고 조건[緣]도 없어 성품이 적정(寂靜)한 이ㆍ법의 집[法舍]에 머무르며 크게 호념(護念)하고 강 가운데의 모래톱과 같은 이ㆍ귀의하여 열반을 증험할 수 있는 이ㆍ모든 법 가운데서 최상에 머무는 이께 귀의합니다.
저는 지금 지성을 다하여 은근하고 정중하게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과 정법에 귀명합니다. 또한 거듭 위에서와 같이 지성으로 종성(種性) 가운데 머물고 있는 모든 보살들, 그리고 환희지(歡喜地)로부터 나아가 법운지(法雲地)에 이르기까지 10지(地)에 머무는 모든 보살승(菩薩僧)께 귀명합니다.’
013_1313_c_01L다음으로 마땅히 참회하여 이러한 말을 해야 한다. ‘오직 원하건대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존이시여, 저의 참회를 증험하시고 기억해 주시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받아 주십시오.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이 있으니 살생과 도둑질과 음욕을 행하는 것이며,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업이 있으니 거짓말하는 것과 욕하는 것과 이간질하는 것과 꾸밈말을 하는 것이며,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업행(業行)이 있으니 이른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스스로 짓거나 다른 사람이 짓도록 시켜서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열 가지 악(惡)을 지금 모두 참회합니다.
또 거듭 생각해 보건대 무시이래로 6도(道)를 따라 윤회하면서 많은 중생들을 갖가지로 속이고 부담을 주었으니, 큰 말[斗]로 퍼서 저울에 무겁게 달아 물건을 취하여 자신의 재산 어른들과 화상(和上)과 사리(闍梨)7)와 늙으신 분들께 공경하는 마음이 없는 등 이와 같은 과거의 모든 죄를 지금 다 참회합니다.
현재의 악업을 성심을 다해 밖으로 드러내 뉘우치고 아직 짓지 않은 것들은 다시는 감히 짓지 않습니다. 지금 모든 부처님과 보살 등 가장 뛰어난 대중의 우두머리와 비할 데 없고 위없는 원만평등한 분 앞에 스스로 드러내 참회하고 감히 숨기지 않겠습니다. 한 번 참회한 이후에는 다시는 거듭 짓지 않겠으며, 이와 같이 두 번째, 세 번째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참회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마땅히 권청(勸請)하면서 이러한 말을 해야 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아직 법륜을 굴리지 않으셨거나, 열반에 들려고 하시면 저는 오직 바라건대 오래 머무르시면서 한량없는 겁 동안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큰 법의 비를 내리시고 정법(正法)의 바퀴를 굴리시되 반열반(般涅槃)에 들지 않기를 권청합니다.’
013_1314_a_01L다음으로는 마땅히 회향(廻向)하면서 이러한 말을 해야 한다.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지으신 일[業]과 모든 보살ㆍ성문ㆍ연각 등이 행한 6도는 이미 위없는 보리[無上菩提]에 다 회향되었으니, 저도 또한 이와 같이 불도(佛道)에 회향합니다.’
다음으로는 발원해야 한다. ‘우러르건대 오직 시방 삼세의 모든 불보살께서 큰 서원을 내셔서 허공계가 다하고 법계에 두루하도록 계신 곳에 따라 모든 중생을 교화하시고, 3계를 섭수하심으로써 남김이 없게 해주십시오. 원하건대 중생들로 하여금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시고 성숙하게 하셔서 착한 율의(律儀)를 갖추고 대열반에 머물게 하시고 지금 모든 것이 현전하도록 해 주십시오. 저도 이와 같이 큰 서원으로 장엄하니, 바라건대 제가 위없는 도[無上道]를 이루어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항상 정법(正法)을 들어 부처님을 따라 수행하되 헛된 허물이 없으며, 지은 선법(善法)과 보리심을 또한 퇴전(退轉)하여 잃지 않고, 태어나는 곳마다 성중(聖衆)을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하며 위없는 도를 얻어 정법의 바퀴를 굴리고 대신통을 갖추며,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이 닦아 배워서 퇴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또 모든 중생이 일찍 온갖 괴로움을 끊고 속히 열반을 증득하여 여래의 지혜[智]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저도 이미 생사를 벗어나 일체를 깨닫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를 벗어나게 하고 번뇌로부터 해탈하게 하며 일체를 깨닫도록 해주십시오. 오직 바라건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시여, 제가 행하는 보살도를 증험해 주시고 서원의 바다[願海]를 발흥(發興)하게 해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1)밀교에서 말하는 5지륜(智倫)으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의 5대(大)를 의미한다. 5대는 갖가지 덕을 갖추고 있고 둥근 바퀴는 빙 둘러 원만하여 결점이 없으므로 5륜이라 하는 것이다.
2)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이라는 다섯 가지 윤회의 세계를 말한다.
3)개(蓋)는 덮는다는 뜻으로 심성(心性)을 덮어 선법(善法)이 생기지 못하도록 하는 다섯 가지 번뇌를 말한다. 그 다섯 가지란 탐욕ㆍ성냄[瞋恚]ㆍ혼면(惛眠)ㆍ도회(掉悔)ㆍ의(疑)이다.
4)네 가지 근본적인 정려(靜慮)를 닦아 얻을 수 있는 초자연적인 다섯 가지 능력으로 신족통(神足通)ㆍ천안통(天眼通)ㆍ천이통(天耳通)ㆍ타심통(他心通)ㆍ숙명통(宿命通)을 말한다.
5)다섯 가지 눈의 능력을 뜻한다. 즉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이 그 다섯 가지이다.
6)보살의 수행법으로서 타인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재물이나 가르침을 베푸는 보시(布施),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온화한 얼굴을 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애어(愛語), 항상 타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하는 이행(利行),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내 몸같이 생각하여 행동하는 동사(同事)를 4섭법이라 한다.
7)아사리(阿闍梨, ācārya)의 준말로서 그 뜻은 제자를 가르쳐 단정하고 합당하게 행동하도록 하고, 자신이 제자의 모범이 되는 스승을 의미한다.
8)다섯 가지 무루근(無漏根)을 말한다. 신근(信根)ㆍ진근(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 등 다섯 가지는 일체의 선법(善法)을 일으키는 근본이므로 5근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