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3_1324_a_01L조탑공덕경서(造塔功德經序)
번경 사문(飜經沙門) 석 원측(釋圓測) 찬(撰)1)
백진순 번역


대저 탑(塔)이란 범어 명칭이니, 한역한 사람이 이를 분(墳)이라고 하였다.2) 네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니 그것을 만드는 데 여러 계통이 있고, 세련되기도 하고 질박하기도 하니 문(文)·질(質)이 다른 것이 마땅하지만, 모두가 유령(遺靈)을 모시고 법장(法藏)을 감춘 곳이다. 이는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덕을 드러내기를 바라고 티끌처럼 많은 겁의 수고에 보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단지 활과 칼과 의관으로 (꾸며서) 영원히 추모한다고 말하는 것이겠는가. 우임금의 능(禹陵)과 공자 구택의 벽[孔壁]3)처럼 감추어진 것을 환히 드러내 쓰는 것일 따름이다!
그 양이 대천세계와 같이 큰 것은 삼계를 덮어서 범천의 세간(梵世)보다 높고, 암마라 열매[菴果]와 같이 작은 것은 대추나무 잎에 짝하여 바늘 끝에 비유된다.4) 넓고 가는 것은 두 갈래지만 복이 응하는 것은 다름이 없고, 크고 작은 것은 천 가지로 헤아리지만 깨끗한 마음은 끝내 하나다. 어찌 황금(黃金)과 백옥(白玉)이 멀리 걸려서 빛을 다투고, 화제(火齊)5)와 수정(水精)이 허공에 떠서 광채를 겨루는 것에 그치리오. 저녁에는 상서로운 바람[祥颷]의 울림을 떨쳐 누탁(鏤鐸)에 들어가 맑게 흐르고, 새벽에는 신선의 이슬[仙露]의 달콤함을 내려 조반(彫盤)에 올라가 엉겨 흐른다. 나아가 지위는 삼과(三果)보다 융성하고 공훈은 사선(四禪)보다 중하여, 유정(有頂)의 궁전에 높이 올라 재앙 없는 곳에 가서 이르는 것이 이 교(敎)의 깊은 뜻이다.
이 경은 영륭(永隆) 원년(680) 겨울 11월 15일에 천축 법사 지바가라(地婆訶羅)6)【당나라 말로는 일조(日照)라고 한다.】를 청하여 서명사(西明寺) 사문 원측(圓測) 등 다섯 사람과 함께 홍복도량(弘福道場)7)에서 조칙을 받들어 한역해서 그해 12월 8일에 그것의 문의(文義)를 마쳤으니, 이 법보(法寶)가 대천세계에 두루 미쳐 저 지혜의 등을 도와 삼계를 비추어 원융하게 하길 바랄 따름이다.
013_1324_a_01L造塔功德經序
夫塔者梵之稱譯者謂之墳或方或厥製多緖乍琢乍璞文質異宜以封樹遺靈扃鈐法藏冀表河砂之庶酬塵劫之勞豈伊弓劍衣冠申永慕禹陵孔壁用顯緘藏而已哉將有量等大千覆三界而高梵世均菴果偶棗葉而譬鍼鋒洪纖兩途福應無二大小千計淨心終一何只黃金白玉架迥爭暉火齊水精浮空競彩夕振祥飆之響入鏤鐸以流淸晨霏仙露之甘上彫盤以凝泫至乃位隆三果勳重四禪高昇有頂之宮行屆無災之地斯教之弘旨也此經以永隆元年冬十一月十五日請天竺法師地婆訶羅與西明寺沙門圓測等五人於弘福道場詔宣譯至其年十二月八日終其文庶斯法寶周給大千俾彼慧燈照融三界云爾


불설조탑공덕경(佛說造塔功德經)


대당(大唐) 지바가라(地婆訶羅)당나라 말로는 일조(日照) 한역
김성구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 백옥좌(白玉座) 위에 계실 적에 큰 비구와 큰 보살들과 천주(天主)의 한량없는 무리들과 함께하셨다. 그때 대범천왕(大梵天王)ㆍ나라연천(那羅延天)ㆍ대자재천(大自在天), 그리고 다섯 건달바왕(乾闥婆王)이 각기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여래께 탑을 조성하는 법과 탑에서 생기는 공덕의 한량을 묻고자 하였다.
모인 가운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는 한 보살이 있었는데, 그들의 뜻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하늘 무리와 건달바들이 일부러 여기에 와서 여래께 탑을 조성하는 법과 탑에서 생기는 공덕의 한량을 묻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세존이시여, 그들을 위하여 말씀하셔서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관세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현재의 이 하늘 무리거나 오는 세상의 일체 중생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 탑이 없어서 능히 그 가운데 세우려는 이는 그 형상이 높고 묘하여 삼계(三界)를 지나게 하거나 내지 지극히 작게는 암라과(菴羅果)와 같게 할 것이며, 표찰(表刹)은 위로 범천에까지 이르게 하거나, 내지 작게는 바늘 따위와 같게 할 것이며, 윤개(輪蓋)는 대천세계를 덮게 하거나 내지 지극히 작게는 대추나무 잎과 같게 할 것이며, 그 탑 안에는 여래의 사리(舍利)나 머리털이나 치아나 수염이나 손톱이나 발톱을 간직할 것이며, 최하로는 한 부분이라도 갈무리할 것이며, 혹은 여래의 법장(法藏)인 12부경(部經)을 두되, 최하로 하나의 4구게(句偈)만을 두더라도 그 사람의 공덕은 저들 범천과 같아서 목숨을 마친 후에 범세(梵世)에 태어나고, 거기에서 수명이 다하면 5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서 저 모든 하늘과 더불어 평등하기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선남자여, 내가 말한 이러한 일은 탑의 분량과 공덕 되는 인연이니, 너희들 모든 하늘은 마땅히 닦고 배워야 한다.”
그때 관세음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앞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리와 법장(法藏)을 안치하는 것은 제가 이미 받들어 지녔거니와, 4구게란 뜻을 알지 못하겠으니, 바라건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고 연설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나는 것이며
내가 이 인연을 설하느니라.
인연이 다한 까닭에 없어지나니
여래는 이렇게 설하노라.

“선남자야, 이 게송의 뜻은 부처님의 법신(法身)이라 이르니, 너는 반드시 그 탑 안에 두어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인연과 생기는 법의 성품이 공적(空寂)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법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러한 인연의 뜻을 깨달으면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
그때 관세음보살과 저 모든 하늘의 일체 대중과 건달바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환희하여 믿고 받들어 향하였다.
013_1324_a_21L佛說造塔功德經
大唐中天竺三藏法師地婆訶羅唐言日照譯
如是我聞一時佛在忉利天宮白玉座上與大比丘大菩薩等及彼天主無量衆俱大梵天王那羅延天大自在天及五乾闥婆王等各與眷屬俱來至佛所欲問如來造塔之法塔所生功德之量會中有菩薩名觀世音知其意卽從座起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向佛而作是言世尊此諸天乾闥婆等故來至此欲請如來造塔之法及塔所生功德之量願世尊爲彼解說利益一切無量衆生爾時世尊告觀世音菩薩言善男子若此現在諸天衆等及未來世一切衆生隨所在方未有塔處能於其中建立之者其狀高妙出過三界乃至至小如菴羅果所有表剎上至梵天乃至至小猶如鍼等所有輪蓋覆彼大千乃至至小猶如棗葉於彼塔內藏掩如來所有舍利髮牙髭爪下至一分或置如來所有法藏十二部經下至於一四句偈其人功德如彼梵命終之後生於梵世於彼壽盡生五淨居與彼諸天等無有異善男子如我所說如是之事是彼塔量功德因緣汝諸天等應當修學爾時觀世音菩薩復白佛言世尊如向所說安置舍利及以法藏我已受不審如來四句之義唯願爲我分別演說爾時世尊說是偈言諸法因緣生 我說是因緣 因緣盡故滅我作如是說善男子如是偈義名佛法身汝當書寫置彼塔內何以故一切因緣及所生法性空寂故是故我說名爲法身若有衆生解了如是因緣之義當知是人卽爲見佛爾時觀世音菩薩及彼諸天一切大乾闥婆等聞佛所說皆大歡喜受奉行佛說造塔功德經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한국불교전서(H12, p.1a)를 따라 찬자를 명기하였다.
  2. 2)탑塔(S. stūpa, P. thūpa)은 원래 부처님의 사리 등을 안치하기 위해 벽돌 등으로 조성한 건축물을 가리켰다. 그러나 후세가 되면서 지제支提(S. caitya)와 혼동되면서 부처님이 태어난 곳, 성도한 곳, 법륜을 굴린 곳, 열반에 든 곳, 과거불의 경행처 등에 공양하고 예배하기 위해 흙, 돌, 벽돌, 나무 등으로 만들어 놓은 구조물을 두루 가리키게 되었다. 음역어로는 솔도파(窣睹婆) 등이 있고, 의역어로는 고현처(高顯處)·공덕취(功德聚)·방분(方墳)·원(圓)·대(大) 등이 있다. 탑의 종류는 매우 많다. 먼저 양식으로 구분하면, 부발식탑(覆鉢式塔)·감탑(龕塔)·주탑(柱塔)·방탑(方塔)·원탑(圓塔) 등이 있다. 소장된 사물에 의거해서 구분하면, 사리탑(舍利塔)·발탑(髮塔)·조탑(爪塔)·아탑(牙塔)·의탑(衣塔)·발탑(鉢塔) 등이 있다. 건축 재료에 의거해서 구분하면, 전탑(磚塔)·목탑(木塔)·석탑(石塔)·옥탑(玉塔)·사탑(沙塔) 등이 있다. 성격에 의거해서 구분하면, 기복탑(祈福塔)·보은탑(報恩塔)·법신탑(法身塔)·수탑(壽塔) 등이 있다. 탑을 배열하는 위치의 양태에 의거해서 구분하면, 고립식탑(孤立式塔)·대립식탑(對立式塔)·배립식탑(排立式塔) 등이 있다.
  3. 3)한(漢) 경제(景帝) 때 노 공왕(魯恭王)이 집을 확장하는 공사를 하는 중에 공자의 구택(舊宅)을 허물자 벽 속에서 『상서』와 『논어』와 『효경』 등이 나왔다고 한다.
  4. 4)이 구절은 『조탑공덕경』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에 근거한다. “선남자여, 만일 현재의 이 하늘 무리거나 오는 세상의 일체 중생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 탑이 없어서 능히 그 가운데 세우려는 이는 그 형상이 높고 묘하여 삼계(三界)를 지나게 하거나 내지 지극히 작게는 암라과(菴羅果)와 같게 할 것이며, 표찰(表刹)은 위로 범천에까지 이르게 하거나, 내지 작게는 바늘 따위와 같게 할 것이며, 윤개(輪蓋)는 대천세계를 덮게 하거나 내지 지극히 작게는 대추나무 잎과 같게 할 것이다.”
  5. 5)화제(火齊)는 화제주(火齊珠)를 가리킨다. 『남사(南史)』 권78, 「중천축국전(中天竺國傳)」에 “화제(火齊)는 모양이 운모(雲母)와 같고, 빛깔이 자금(紫金)과 같은데, 빛이 난다. 그것을 쪼개면 매미날개처럼 얇고, 포개어 놓으면 사곡(絲穀)을 포개놓은 것처럼 보인다.(火齊狀如雲母, 色如紫金, 有光曜, 別之則薄如蟬翼, 積之則如紗縠之重沓也.)”라고 하였다.
  6. 6) 지바가라(地婆訶羅, S. Divākara) : 613~687. 일조(日照)라고 한다. 중인도 사람으로 삼장에 두루 통하고 오명에 밝았다. 당 고종(高宗) 의봉(儀鳳, 676~678) 초년에 당에 들어와 인도 중관학파의 새로운 학설을 소개하였다. 이를 구마라집 이래의 삼론(三論)에 대비하여 ‘신삼론(新三論)’이라고 한다. 측천무후의 수공(垂拱) 연간(685-688)에 『화엄경』 「입법계품」, 『불정최승다라니경(佛頂最勝陀羅尼經)』, 『대승현식경(大乘顯識經)』 등의 18부, 34권을 공역(共譯)하였다. 수공 3년(687) 12월 동태원사(東太原寺)에서 75세로 입적하였다.
  7. 7)홍복사(弘福寺)를 말한다. 홍복사는 섬서성(陝西省) 장안현(長安縣) 남쪽에 위치한 절이다. 당 태종(太宗) 정관(貞觀) 8년(634) 태목황후(太穆皇后)를 추천(追薦)하기 위해 우령군 대장군 팽국공(右領軍大將軍彭國公) 왕군(王君)의 고택에 절을 지었다. 정관 19년(645) 현장이 서역에서 돌아와 갖고 온 불사리·불상·대소승경론 520협(夾) 657부를 이 절에 모셨다. 같은 해 3월에 역장(譯場)을 개설하여 먼저 『보살장경(菩薩藏經)』·『불지경(佛地經)』 등을 번역하였다. 정관 22년(648) 대자은사(大慈恩寺)가 지어지자 역경원을 이곳으로 옮겼다. 중종(中宗) 신룡(神龍) 원년(705) ‘흥복사(興福寺)’로 이름을 고쳤고, 후에 다시 ‘홍복사(洪福寺)’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