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0131_b_01L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제8권
014_0131_b_01L菩薩地持經卷第八


담무참 한역
김월운 번역
014_0131_b_02L北涼中印度三藏曇無讖於姑臧譯


17) 보리품 ②
014_0131_b_03L菩薩地持菩提分品之餘
어떤 것이 보살이 불법을 파괴하는 이의 포악함을 제거하고 중간에 처한 이를 들어오게 하고 이미 들어온 이를 익어지게 하고 이미 익어진 이를 해탈케 하는 것이가? 이 보살이 이 네 가지에서 중생을 성취시키는 데는 간략히 말해 여섯 가지 교방편(巧方便)이 있음을 마땅히 알라. 첫째는 수순(隨順)이요, 둘째는 입요(立要)요, 셋째는 이상(異相)이요, 넷째는 핍박(逼迫)이요, 다섯째는 보은(報恩)이요, 여섯째는 청정(淸淨)이다.
014_0131_b_04L云何菩薩壞佛法者除其暴害處中者令入已入者令熟已熟者令解脫是菩薩於此四種成就衆生當知略說六種巧方便一者隨順二者立要三者異相四者逼迫五者報恩六者淸淨
보살의 수순하는 교방편이라 함은 이 보살이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고자 할 때에는 먼저 부드러운 몸과 입의 행으로 수순하여 베풀어서 장차 스스로 성내고 한탄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고, 그가 한탄하고 성내는 마음을 버린 뒤에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법을 듣고자 하게 된 연후에야 비로소 알맞게 설법해 준다.
들어가기 쉽고 알기 쉽게 때에 맞추어 차례차례 설하되 뒤바뀌지 않으며, 의(義)로써 이롭게 하기 위하여 법인(法忍)을 설하며, 온갖 문답으로 중생을 조복시키어 으뜸가는 이익으로 가엾이 여겨 성취시키되 신통력으로 타심통을 시현하여 설법해 주거나 다른 사람을 청하여 그로 하여금 갖가지 화신을 나타내게 하여 중생을 조복시킨다.
014_0131_b_10L菩薩隨順巧方便者是菩薩欲爲衆生說法先如是柔軟身口行施將順自捨恚恨除恚恨已彼生愛敬樂欲聞法然後乃爲如應說法入易解時說次第諦不顚倒以義饒益而爲說法忍諸問答調伏衆生一利益哀愍成就若以神力示現他心而爲說法或請餘人令種種現化調伏衆生
014_0131_c_01L만일 이치를 간략히 말하여 이익되게 할 것이 있으면 널리 분별해 주고 광대한 논설은 간략히 설해서 그에게 주어 읽고 외우게 하고, 마음대로 묻고 따지게 하며, 그가 받아 지닌 뒤엔 널리 이치를 설해 주되 모든 연(緣)과 삼매와 도문(度門)으로써 차례로 교수하고 차례로 교계(敎誡)해 주어 그 중생들을 거두어 주고는 그들로 하여금 이치를 행하게 한다.
그 모든 중생들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심심미묘한 묘공(妙空)의 법에 상응하는 경에 대하여 그 이치를 여실히 알지 못하므로 그 경에서 말씀하신 자성을 여읜 법과 또는 모든 일을 여의어 생하지도 않고 별하지도 않으며, 허공과 같고 허깨비[幻]와 같고 꿈과 같다고 한 말씀을 듣고서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가 이 말을 듣고 놀라면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며 그 깊은 경을 비방하거든 보살은 그 중생들을 위하여 수순교편으로 그 깊은 경에서 말씀하신 여래의 진리에 대하여 그 이치에 수순하여 분별해서 해설해 주고 거두어 준다.
014_0131_b_18L若有略說義饒益論廣爲分別若廣大論能爲略說授彼令誦自恣問難彼受誦已廣爲說義以一切緣三昧度門隨順教授隨順教誡攝取衆生令其行義彼諸衆生於如來說甚深微妙空相應經如其旨趣彼經中說離自性法及離諸事不起不滅如虛空如幻如夢不知義者聞則驚怖謗彼深經言非佛說菩薩爲彼衆生隨順巧便於彼深經如來旨隨順其義分別解說而攝取之
이와 같이 수순해서 그들을 위하여 말해 주되 그 경에서는 모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다만 말씀하시기를 ≺나≻의 자성이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했을 뿐이니 이를 일러 자성을 여의었다고도 하고, 언설(言說)을 여의었다 하고 일이 말[言事]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므로 자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또 제일의에는 그러한 자성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든 일을 여의었다고 말한다. 말[言說]의 자성이란 본래부터 전혀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생하고 멸하겠는가 ? 그러므로 말하기를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014_0131_c_06L是隨順爲彼說言彼經不說一切都無所有但言說我自性空無所有名離自性離言說有事依言事轉故言說有自性亦非第一義有彼自是故說言離一切事言說自性從本已來一切都無所有云何有生有滅故說言不生不滅
014_0132_a_01L비유하건대 허공에 갖가지 색(色)과 색의 업[色業]이 있어도 모두 받아들여 모두에게 의지할 곳이 되어 주나니 이른바 허공에서 다니고 멈추고 가고 오고 구부리고 펴고 우러르는 일이다.
또 그 색과 색업을 제거하면 색의 자성분(自性分)이 없다고 하나니 이를 청정한 허공이라 한다. 허공 안에서 색 등의 업이 움직이듯이 언설의 일을 여읜 자리에 갖가지로 시설한 언설과 망상이 거짓되게 움직이는 것도 이와 같다.
또 허공이 색 등의 업을 수용하듯 언설을 여읜 법에 망상을 수용하는 것도 이와 같다.
만일 보살이 지혜로써 온갖 언설에 의해 일어난 사혹(邪惑)과 망상 등 모든 헛되고 거짓된 움직임을 제거하면 이 보살은 제일성지(聖智)로써 언설의 일을 여의나니, 모든 언설의 자성은 성품이 아님이 마치 허공의 청정함과 같다. 또 전전하여 다른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허공같고 허깨비와 같다고 비유하나니, 사물과 같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 일체가 허깨비의 일처럼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014_0131_c_13L譬如虛空有種種色及諸色業悉容受彼爲作依處謂虛空行住去來屈申俯仰又如除彼色及色業已謂無色自性分名淸淨虛如虛空處色等業轉離言說事種施設言說妄想虛僞隨轉亦復如又如虛空容色等業離言說法容受妄想亦復如是若菩薩以智慧一切言說所起邪惑妄想諸虛僞轉是菩薩以第一聖智離言說事一切言說自性非性如虛空淸淨亦非彼展轉有餘自性是故一切諸法譬如虛空譬如幻不如事有亦非一切都無幻事
이와 같이 모든 법은 언설과는 같지 않거늘 어리석은 이는 있다고 계교하거니와 실체가 도무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니 제일의제는 언설 자성을 여의었다.
이와 같은 방편으로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닌 경지에 들어가나니, 그러므로 허깨비와 같은 줄 알기 때문에 허깨비 같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법계에 대하여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또 무너뜨림도 없이 여실히 알고, 그 아는 바와 같이 남을 위해 드러내어 보이나니 이를 보살의 수순교방편이라 한다.
014_0132_a_03L如是一切法不如言說愚癡計有亦非一切都無所有第一義離言說自性如是方便入非有亦非無是故知如幻故說如幻如是菩薩於一切法界不取不捨不增不減亦無所壞如實了知如其所知爲人顯示是名菩薩隨順巧方便
어떤 것이 보살의 입요교방편(立要巧方便)인가? 만일 어떤 중생이 보살에게 와서 열 가지 살림도구를 구하거든 그에게 다짐을 두기[立要]를 “네가 부모나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공양하기를 널리 말하면 위와 같이 하거나 내지는 계를 받으라. 만일 이와 같이 하면 내 그대에게 보시하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베풀지 않으리라” 한다.
또 이른바 논이나 집에 관한 일ㆍ저자거리에서의 일, 관직이나 자리를 주는 일, 국토나 재물에 관한 일, 여섯 무리의 가축에 관한 일, 여러 가지 기술이나 의료 처방술에 관한 일이거나 혹은 혼인을 맺는 일이나 먹을 것이나 먹지 않는 것이나 동사(同事)를 구하는 놀이가 있거든 그때 보살은 그에게 다짐하기를 “그대가 능히 부모에게 공양하고, 내지 계를 받으면 내가 그대에게 음식을 줄 것이며 내지 동사해 주리라” 한다.
014_0132_a_09L云何菩薩立要巧方便若有衆生來從菩薩求索十種資生衆具爲立要言汝能供養父母沙門婆羅門廣說如上乃至受若能如是我當施汝如其不能不施與所謂田宅市肆官爵國土錢財六畜工巧醫方若結婚姻若食不所作同事爾時菩薩爲立要言能供養父母乃至受戒我當施汝飮食乃至同事
014_0132_b_01L다시 또 어떤 중생이 죄를 범하거나 반역을 꾀하는 등 이익되지 못한 짓을 하여 남에게 죽게 되었거나 속박되었거나 몸을 찢기게 되었거나 매를 맞거나 욕을 먹고 질책을 당하거나 쫓겨났거나 몸으로 빚을 갚기 위해 남에게 매여 있거든 그때 보살은 그에게 다짐하기를 “그대가 능히 부모에게 공양하거나 내지 계를 받으면 내가 그대를 구제해서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리라” 한다.
014_0132_a_18L復次菩薩若有衆生罪謀逆作不饒益事爲他殺縛斷截捶打毀辱呵責驅出質債爲他所執爾時菩薩爲立要言汝能供養父母乃至受戒我當救汝令脫衆難
다시 또 어떤 중생이 왕ㆍ도적ㆍ물ㆍ불ㆍ인간ㆍ비인(非人) 등의 환난이나 살 길이 막막하거나 악명이 일어나는 등의 두려움을 당했거든 그때 보살은 그에게 다짐을 두기를 “그대가 능히 부모에게 공양하거나 내지 계를 받으면 내가 그대로 하여금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한다.
014_0132_a_22L復次若有衆生王賊水火人及非人不活惡名諸恐怖等爾時菩薩爲立要言汝能供養父母乃至受戒我當救汝令脫恐怖
만일 어떤 중생이 사랑하는 이와 만나고 싶고 미워하는 이를 멀리 여의고자 하거든 그때 보살은 그들에게 다짐을 두기를 “그대가 능히 부모에게 공양하거나 내지 계를 받으면 내가 방편을 베풀어서 그대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한다.
다시 또 어떤 중생이 질병으로 곤액(困厄)에 빠졌거든 그때 보살이 그들에게 다짐을 두기를 “그대가 능히 부모를 공양하고 내지 계를 받으면 내가 그대의 병고를 제거해주리라” 한다.
보살이 저렇게 다짐을 시킨 뒤에, 그 중생들이 빨리 선법을 닦아서 모든 악을 여의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게 하면 이를 보살의 입요교방편(立要巧方便)이라 한다.
014_0132_b_03L若有衆生欲恩愛集會遠離怨憎爾時菩薩爲立要言汝能供養父母乃至受戒我當方便從汝所復次若有衆生疾病困厄爾時菩薩爲立要言汝能供養父母乃至受我當令汝病苦得除菩薩如是立要已彼諸衆生疾修善法遠離諸惡得隨所欲是名菩薩立要巧方便
만일 보살이 중생들과 다짐을 둔 뒤에 그 중생들이 다짐한 것을 따르지 않으면 위에서 허락한 일들도 베풀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서일 뿐 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며, 모든 액난과 공포와 모든 병고와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만나고자하는 이와 사랑하지 않는 자를 여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하여도 그들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모두를 짐짓 모른 체하여, 이와 같은 결정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그 속마음에 그들을 버리려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길들여서 착하지 못한 법을 끊고 착한 법을 건립케 하기 위함이다.
014_0132_b_10L菩薩與衆生立要已彼諸衆生不隨要者如上所許亦不施之爲度彼故非不欲與諸難恐怖及諸病苦愛念和合不愛別離爲度彼故一切放捨示作如是決定之相非其實心有放捨念漸漸要令斷不善法建立善法
만일 어떤 중생이 구하는 것도 없고, 아무런 어려움도 없고 내지 병도 없으면서 먼저부터 보살과 가까운 사이이거든 마땅함에 따라 인도해서 착한 법을 닦게 하나니 이른바 부모에게 공양하고 내지 계를 지키게 하는 것이다.
014_0132_b_16L若復衆生無所須欲亦無衆難乃至無病而與菩薩先爲親厚隨宜勸導令修善法所謂供養父母乃至持戒
014_0132_c_01L만일 저 중생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거든 그 때 보살은 성내는 모습을 시현하나니, 그들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이며 실로 마음에 성내거나 한하는 일이 없으며, 모든 일에 어긋나고 이상한 모습을 보이나 그를 제도하기 위한 까닭이요 실로 어기는 것이 아니며, 혹은 이롭지 않은 일을 가할지라도 그를 제도하기 위할 뿐이요 그의 참마음은 아닌 것이다.
보살이 방편으로 이러한 이상한 모습을 시현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선법은 닦고 불선법은 끊게 하기 위할 뿐이니 이를 일러 보살의 이상교방편(異相巧方便)이라 한다.
014_0132_b_19L若彼衆生不隨其教爾時菩薩現瞋責相爲度彼故心無恚恨於諸所作悉現乖異爲度彼故非實違背或現加彼不饒益事欲度彼故非其實心菩薩方便現此異相欲令衆生修諸善法斷不善法是名菩薩異相巧方便
어떤 것이 보살의 현핍박교방편(現逼迫巧方便)인가? 만일 보살이 주인이 되었거나 왕이 되어 자신의 권속들에게 이르기를 “만일 나의 권속 중에 부모를 공경치 않거나 내지 계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에게 공급을 끊거나 벌을 주거나 내쫓을 것이다” 하고는 한 사람을 시켜 항상 살피게 하면 그 중생들은 두려운 까닭에 부지런히 법을 닦고 착하지 못한 법을 끊는다. 그들이 비록 강한 핍박으로 닦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를 일러 보살의 핍박교방편이라 한다.
014_0132_c_02L云何菩薩現逼迫巧方便若菩薩爲主爲王於自眷屬作如是教若我眷屬有不供養父母乃至犯戒者我當斷其供給或加謫罰或至驅擯立一士夫常令伺察彼諸衆生以恐怖故勤修善法斷不善法彼雖不樂强逼令修是名菩薩逼迫巧方便
어떤 것이 보살의 보은교방편(報恩巧方便)인가? 만일 보살이 먼저 중생들에게 베푼 은혜, 즉 재물을 보시했거나 뭇 어려움에서 건져 주었거나 두려움에서 풀어 주었거나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를 만나게 해 주었거나 그들이 생각하기 싫은 이를 여의게 했거나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어 안락함을 얻게 하였거나 한 것에 대하여 중생이 그 은혜를 알아 공덕에 보답하려 하거든 그 때 보살은 선을 닦도록 권하되 “세간의 재물로 보답할 필요는 없다. 보답 중에도 큰 것은 부모에게 공양하고 내지 계를 지키는 일이다” 하여 은혜에 보답코자 하는 이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면 이를 일러 보은교방편이라 한다.
014_0132_c_09L云何菩薩報恩巧方便若菩薩先於衆生施諸恩分若施財物若度衆難若度恐怖和其所念離所不念救療衆病令得安樂衆生知恩欲報德者爾時菩薩勸令修善不須世閒財利酬報報之大者當供養父母乃至持求報恩者令其行善是名菩薩報恩巧方便
어떤 것이 보살의 청정방편(淸淨方便)인가? 구경지(究竟地)에 머무른 보살이 보살도를 밝히고 도솔천에 태어나면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아무개 보살이 도솔천에 태어나시니 머지않아 염부제에 하강하시어 여래의 무상등각(無上等覺)을 이루시리라. 우리들은 기뻐해야 할지니 싫어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분들이 태어나신 곳에 우리들도 따라 태어날지이다’ 하여 무량한 중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원을 즐기어 닦게 한다.
014_0132_c_17L云何菩薩淸淨巧方便住究竟地菩淨菩薩道生兜率天衆生念言菩薩生兜率天不夂當下生閻浮提當成如來無上等覺令我愛樂莫令不樂彼所生處我亦隨生無量衆生樂修是願
014_0133_a_01L또 보살이 도솔천으로부터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태어나되 왕궁이나 바라문의 집에 태어나서는 으뜸가고 미묘한 쾌락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움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교만을 여의게 하고, 또 나무 밑에서 육년 동안 고행함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고행하는 이들은 그들의 좋아하는 바를 끊었음을 믿게 한다.
014_0132_c_23L又復菩薩從兜率天來生世閒若生王宮若婆羅門家捨上妙樂出家學道令諸衆生捨離憍慢於樹下苦行六年令餘衆生信苦行者斷其信樂
또 이미 무상보리를 이룬 뒤에는 다른 중생들로 하여금 믿음을 견고히 하여 함께 불도를 구하게 하고 또 성불하신 뒤에는 잠자코 청하기를 기다리니 중생들로 하여금 법을 소중히 여기게 하기 위해서인데 범천(梵天)이 청한 뒤에야 설하신다.
014_0133_a_04L又復旣成無上菩提餘衆生堅固信樂同求佛道又成佛默然待請爲令衆生敬重法故天勸請然後乃說
또 불안(佛眼)으로 세간을 관찰하시고는 중생들이 ‘다만 범천이 청한 힘 때문이요 여래 대비의 힘으로 설한 것이 아니다’라고 비방하는 것을 막고, 중생들이 삿된 소견에 걸린 것을 제거해 주기 위하여 다른 세간에서는 일찍이 굴린 적이 없는 바른 법륜을 굴리고 또 계율을 제정하신, 이것이 보살의 청정교방편이다.
014_0133_a_07L又以佛眼觀察世莫令衆生作是謗言但以梵天勸請力故非是如來大悲故說爲除衆生邪攝受故轉正法輪諸餘世閒所未曾轉及制戒律是名菩薩淸淨巧方便
이와 같은 교방편은 견줄 이도 없고 으뜸가나니 이것이 보살의 여섯 가지 교방편이다. 간략히 설하고 또 널리 설함으로써 법을 파괴하는 중생들의 포악함을 제거하고 중간에 처한 이는 불법에 들게 하고 들어온 이는 성숙케 하고 성숙한 이는 해탈케 하여 견줄 이도 없고 으뜸가나니 이를 보살의 교방편이라 한다.
014_0133_a_12L如是巧方便無餘無上是名菩薩六種巧方便略說廣說壞法衆生除其暴害處中者令入佛法入者令熟熟令解脫無餘無上是名菩薩巧方便
어떤 것이 보살의 다라니(陀羅尼)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다라니(法陀羅尼)요, 둘째는 의다라니(義陀羅尼), 셋째는 주술다라니(呪術陀羅尼)요, 넷째는 득보살다라니(得菩薩陀羅尼)이다.
014_0133_a_16L云何菩薩陁羅尼略說四種一者法陁羅尼二者義陁羅尼三者呪術陁羅尼四者得菩薩忍陁羅尼
어떤 것이 법다라니인가? 보살이 이와 같이 억념(憶念)하는 지혜의 힘을 얻고는 일찍이 들은 적이 없고 일찍이 닦아 익힌 적이 없는 명(名)ㆍ구(句)ㆍ미신(味身)으로 차례차례 장엄하고 차례차례 결집[所應]한 무량한 장구(章句)에 대하여 무량겁을 지나도록 기억해 가져서 잊지 않는 것이다.
014_0133_a_19L云何法陁羅尼菩薩得如是憶念智慧力未曾所聞未曾修習名句味身次第莊嚴次第所應無量章句經無量劫憶持不忘
014_0133_b_01L어떤 것이 의다라니(義陀羅尼)인가? 앞에서 말한 모든 법에서 이 모든 법의 무량한 의취(義趣)에 대하여 일찍이 읽고 외우지도 않았고 일찍이 닦아 익히지 않았어도 무량겁이 지나도록 기억해 지녀서 잊지 않는 것이다.
014_0133_a_23L云何義陁羅尼如前所說於此諸法無量義趣未曾讀誦未曾修習經無量劫憶持不忘
어떤 것이 주술다라니(呪術陀羅尼)인가? 보살이 이와 같은 삼매의 힘을 얻고는 주문을 외워 무리를 위해 환난을 제거해 주되 가장 신비한 영험이 있어 갖가지 재난과 환난을 모두 소멸해 주는 것이다.
014_0133_b_02L云何呪術陁羅尼菩薩得如是三昧力以呪術章句爲衆除患第一神驗種種災患悉令消滅
어떤 것이 보살의 인다라니(忍陀羅尼)인가? 보살이 부지런히 닦아 익히고는 이어 지혜를 일으켜 혼자서 고요한 곳에 앉아 말없이 침묵하고 나다니지도 않으며, 분량에 맞추어 먹고 함부로 먹지 않으며, 항상 한 자리에서만 먹고 선정을 생각하며, 잠을 적게 자고, 깨어있을 때가 많으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보살인주술(菩薩忍呪術)을 얻나니, 이른바 주술은 이렇다.
014_0133_b_05L云何得菩薩忍陁羅尼薩精勤修習因起智慧獨一靜處燕默少言亦不遊行知量而食不雜種常一坐食思惟禪定少睡眠多覺於如來所說得菩薩忍呪術所謂

이치 밀치 길지비 찬제파대 사바하
伊致 蜜致 吉胝鼻 羼提跛大 娑婆呵
014_0133_b_09L伊致 蜜致 吉胝鼻 羼提跛大㗩波呵 㗩音蘇急反

이러한 모든 주술의 장구와 이치[義]를 생각하고 관찰하나니, 이러한 주술과 장구를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하면 이러한 이치를 스스로 들을 수도 없거늘 어찌 얻을 바가 있겠는가?
만일 주술의 장구와 이치를 얻을 수 없다면 이는 이치가 없음[無義]이니, 이러한 모든 이치는 곧 무의(無義)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치도 가히 구할 수가 없다. 이런 것을 일러 주술의 장구와 이치를 잘 안다고 한다.
주술의 장구와 이치를 잘 아는 이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법의 이치도 잘 알아서 남에게 들을 필요가 없으며 또 모든 언설과 모든 법의 자성도 그 이치를 얻을 수없는 것임을 안다.
014_0133_b_11L於此諸呪術章句義思量觀察如是呪術章句如是正思惟如此義尚不自聞何有所得如呪術章句義不可是則無義如是諸義所謂無義故亦無餘義可求如是名爲善解呪術句義善解呪術句義者以如是義知一切諸法義皆悉善知不從他聞又知一切言說一切法自性義不可
014_0133_c_01L이와 같이 말없는 자성의 이치에 의하여 모든 법의 자성의 이치도 아나니 이를 일러 제일의제의 최승한 이치[最勝義]라 하여 최상의 환희를 얻는다.
이 보살이 이 다라니 주술의 경지를 얻으면 이를 보살인(善薩忍)을 얻었다 하고, 이 인(忍)을 얻은 이는 오래지 않아 정심지(淨心地)의 뛰어난[增上] 해행지인(解行地忍)을 얻나니, 이를 보살이 보살의 인다라니(忍陀羅尼)를 얻었다 한다.
저 법다라니와 의다라니의 보살이 첫 아승기겁을 지나서야 정심지(淨心地)에 들어가나니 그들이 얻은 바는 반드시 결정코 요동치 않아 가장 수승하고 묘하다. 만일 중간 지위에서 얻은 바는 혹 원력(願力)을 인하거나 혹은 선정의 힘에 의하되 안정되지도 않고 자재하지도 않으며 승묘하지도 않다.
법다라니가 그렇듯이 주술다라니도 역시 그러하며 보살이 인다라니를 얻는 것도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014_0133_b_20L以此等無言說自性義則知一切諸法自性義是名第一義最勝義最上歡喜是菩薩得此陁羅尼呪術名得菩薩忍得此忍者不久當得淨心增上解行地忍是名菩薩得菩薩忍陁羅尼彼法陁羅尼義陁羅尼菩薩是度初阿僧祇劫入淨心地所必定不動最勝最妙若中閒所得或因願力或禪定力不定不住亦不勝妙如法義陁羅尼呪術陁羅尼亦如是得菩薩忍陁羅尼如前所說
이와 같은 모든 다라니는 네 가지 공덕을 갖추어야 비로소 얻는 것이요, 구족하지 않고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첫째는 애욕을 익히지 않음이요, 둘째는 남의 수승함을 질투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구하는 모든 것을 균등히 베풀어 주고서도 후회하지 않음이요, 넷째는 법을 좋아함이니 보살장(蓄薩藏)과 마득륵가장(摩得勒伽藏)을 몹시 좋아하는 것이다.
014_0133_c_07L是一切陁羅尼具四功德者乃能得非不具足云何爲四一者不習愛二者不嫉彼勝三者一切所求等施無悔四者樂法深樂菩薩藏及摩得勒伽藏
어떤 것이 보살의 원(願)인가? 간략히 말하건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발심원(發心願)이요, 둘째는 생원(生願)이요, 셋째는 경계원(境界願)이요, 넷째는 평등원(平等願)이요, 다섯째는 대원(大願)이다.
014_0133_c_12L云何爲菩薩願略說五種一者發心二者生願三者境界願四者平等五者大願
저 보살이 처음으로 무상보리심을 일으키면 이를 발심원이라 하고, 미래세가 다하기까지 중생을 위한 까닭에 좋은 일이 있는 곳마다 태어나기를 원하면 이를 생원이라 하고, 모든 법의 무량(無量) 등 여러 선근을 바르게 관찰하고 그 경계를 생각하기를 원하면 이를 경계원이라 하고, 미래 세상에서 모든 보살의 잘 거두는 일을 잘하리라고 원하면 이를 보살의 평등원이라 하나니 대원(大願)이라 함은 평등원이다.
014_0133_c_15L彼菩薩初發無上菩提是名發心願願未來世爲衆生故隨善趣生是名生願願正觀諸法無等諸善根思惟境界是名境界願願未來世一切菩薩善攝事是名菩薩平等願大願者卽平等願
014_0134_a_01L또 열 가지 대원을 말하니, 첫째는 온갖 종류의 공양구로 무량한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원함이요, 둘째는 모든 부처님들의 바른 법을 보호해 지니기를 원함이요, 셋째는 제불의 바른 법을 통달키를 원함이요, 넷째는 도솔천에 태어나거나 내지 열반에 들기를 원함이요, 다섯째는 보살의 온갖 바른 행을 행하기를 원함이요, 여섯째는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기를 원함이요, 일곱째는 모든 세계에 나타나기를 원함이요, 여덟째는 모든 보살이 일심방편과 대승의 법으로 제도하기를 원함이요, 아홉째는 모든 바른 방편이 걸림없기를 원함이요, 열째는 무상정각을 이루기를 원함이다.
014_0133_c_20L又說十種大願一者願一切種供養無量諸二者願護持一切諸佛正法三者願通達諸佛正法四者願生兜率天乃至般涅槃五者願行菩薩一切種正行六者願成熟一切衆生七者願一切世界悉能現化八者願一切菩薩一心方便以大乘度九者願一切正方便無㝵十者願成無上正覺
어떤 것이 보살의 공삼매(空三昧)인가? 보살이 모든 언설의 자성을 여의고 무언설(無言說) 자성심을 관하고서 머무르면 이를 공삼매라 한다. 어떤 것이 무원삼매(無顯三昧)인가? 보살이 언설이 없는 자성의 일에서 사견과 망상으로 일어난 번뇌와 괴로움에 대하여 항상 허물된 것으로 보고 미래세에는 원치 않는 마음에 머무르면 이를 무원삼매라 한다.
014_0134_a_05L云何菩薩空三昧菩薩離一切言說自性觀無言說自性心住是名空三云何無願三昧菩薩於無言說自性事邪見妄想所起煩惱苦常見其於未來世不願心住是名無願三
어떤 것이 무상삼매(無相三昧)인가? 보살이 언설이 없는 자성삼매의 일에서 온갖 망상을 여의고 헛되고 거짓된 상을 멸하고는 여실하고 적정(寂靜)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면 이를 무상삼매라 한다.
014_0134_a_11L云何無相三昧菩薩於無言說自性事離一切妄想虛僞相滅觀察如實寂靜心住是名無相三昧
무슨 까닭에 세 가지 삼매만을 말하여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가? 두 가지 까닭이 있으니 유(有)와 무유(無有)이다.
유위와 무위가 있는 것을 유(有)라 하고 아(我)와 아소(我所)가 없는 것을 무유(無有)라 하나니 유위의 법에 대하여 원치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 힘이 있으므로 무원삼매를 세우고 무위와 열반에 대하여 거두어 받아들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상삼매를 세운다.
014_0134_a_13L以何等故說三三昧不增不減有二種有及無有有爲無爲名爲有無我我所名無有於有爲有不願不隨故立無願三昧於無爲涅槃願樂攝受故立無相三昧
또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원하지도 않고 원하지 않지도 않으나 유견(有見)과 불유견(不有見)에 대하여 옳음으로써 보기 때문에 공삼매를 세운다.
보살이 이 세 가지 삼매를 닦아서 이와 같이 건립하는 줄을 여실히 알면 나머지 모든 행도 모두 이 세 가지 삼매문으로 들어오나니, 나머지 행이란 이른바 성문이 배우고 행하는 것이다.
014_0134_a_18L又於此諸事非願非不願於有不有見以是見故立空三昧薩修此三三昧如是建立如實知有餘行悉入三三昧門所謂聲聞所學所行
014_0134_b_01L네 가지 우다나(憂檀那:說ㆍ印)의 법이 있으니 모든 불보살께서 중생들을 청정케하기 위한 까닭에 설하시니, 어떤 것이 넷인가? 모든 행(行)은 무상하다 함이 우다나의 법이요, 모든 행은 괴롭다 함이 우다나의 법이요, 모든 법이 무아(無我)라 함이 우다나의 법이요, 열반은 적멸하다 함이 우다나의 법이다.
제불보살이 이 법을 구족하고는 다시 이 법으로 중생에게 전해 주는 것이 우다나요, 과거의 적묵(寂墨)한 모든 모니존(牟尼尊)이 차례차례 이어 전함이 우다나요, 증상(增上:최상)한 용맹으로 벗어나거나 내지는 구족하여 제일유(第一有:금생 몸)를 벗어나면 이를 우다나라 한다.
014_0134_a_22L有四憂檀那法諸佛菩薩爲令衆生淸淨故說云何爲四一切行無常是憂檀那法一切行苦是憂檀那法切法無我是憂檀那法涅槃寂滅是憂檀那法諸佛菩薩具足此法復以此法傳授衆生是名憂檀那過去寂默諸牟尼尊展轉相傳是名憂檀那增上勇出乃至具足出第一有是名憂檀那
어떤 것이 보살이 모든 행을 무상하다고 관하는 것인가? 보살은 모든 행의 언설 ‘자성을 항상 얻을 수 없음을 관찰하나니 만일 진실로 언설이 없는 일을 알지 못하면 생도 있고 멸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언설의 자성이 없고 모든 행은 무상하다고 관하여 과거의 행은 생도 없고 멸도 없다고 관하면 그는 또 인도 없고 자성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도 없고 자성도 없는 것이다. 현재의 행은 생도 없고 멸도 없으며, 그 인은 얻을 수 없으나 과(果)는 주므로 자성은 얻을 수 있다고 관하나니, 그러므로 그 자성은 인이 없다고 관한다. 미래의 행은 생도 없고 멸도 없으며 그 인은 얻을 수 있으나 과(果)는 주지 않으므로 자성이 없다고 관하나니 그러므로 인에 자성이 없다고 관한다.
014_0134_b_08L云何菩薩觀一切行無常薩觀一切行言說自性常不可得復不知眞實無言說事故有生有滅若彼觀無言說自性一切行無常過去行無生無滅彼亦無因亦無自性可得是故亦無因亦無自性觀現在行無生無滅彼因不得而與果自性可得是故觀彼自性而無因未來行無生無滅彼因可得而不與故無自性是故觀因而無自性
이와 같이 삼세의 분단(分段)된 모든 행이 상속해서 일어나는 모습을 볼 때에 낱낱 행의 찰나마다에 세 가지 유위(有爲)가 있고 유위의 상의 마지막 찰나에 다시 네 가지 유위의 상이 있으니, 저 앞의 모든 행상(行相)의 자성이 무너지고 다음의 행상의 자성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생(生)이라 하고, 일어난 뒤에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것을 주(住)라 하고, 이미 멸한 행상의 자성을 되돌아보고 생각할 때 그와 다르게 일어나는데, 그 다른[異] 것을 노(老)라 한다. 그러므로 생(生)의 찰나 뒤에 곧 거기에서 일어난 행상의 자성이 무너지는 것을 괴(壞)라 한다.
014_0134_b_17L是見三世分段諸行相續轉時一一行剎那有三有爲有爲相於剎那後有四有爲相彼前諸行相自性壞未曾行相自性起名爲生起已未壞名爲住顧念前滅行相自性彼起異異名爲老是故生剎那後卽彼起行相自性壞名爲滅
014_0134_c_01L만일 일어나는 자성의 행상을 관하면 곧 저 자성의 생ㆍ주ㆍ노의 모습일 뿐이요 다른 자성이 없나니 그러므로 찰나 뒤의 이러한 행상의 자성이 멸한다.
이렇게 모든 생 등의 행상을 여실하게 관한다.
이 네 가지 유위의 상에는 간략히 두 가지가 있으니 유성(有性)과 무성(無性)이다. 여래께서 일어나기 때문에 첫째의 유위상을 세우셨고, 자성이기 때문에 두 번째의 유위상을 세우셨고, 모든 행이 주(住)하고 노(老)하기 때문에 세 번째의 유위상을 세우셨다.
014_0134_c_01L若觀起自性行相卽彼自性生住老相無餘自性是故剎那後如是行相自性滅如是諸生等行相如實觀此四有爲相略說二有性及無性如來以起故立一有爲相以自性故立第二有爲相諸行住老故立第三有爲相
저 보살들은 유위의 행의 분제(分齋:한계)가 생ㆍ주 노ㆍ괴도 아니므로 언제든지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관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행의 분제가 일어날 때에 다시 다른 생 다른 주ㆍ다른 노ㆍ다른 괴가 없으며, 모든 행의 분제가 주ㆍ노ㆍ괴할 때에도 역시 다른 생ㆍ다른 주ㆍ다른 노ㆍ다른 괴가 없기 때문이다[깜박 한 생각하는 사이를 한 찰나라 한다].
보살이 여실하게 관하면 별달리 생 등의 일을 얻을 수 없나니, 만일 얻을 수 있다면 색(色) 등을 여의고도 따로 생(生)이 있어야 하며, 색 등 행의 자성이 일어날 때에 저들도 일어나야 한다.
014_0134_c_07L彼菩薩觀有爲行分齊非生非住非老非壞非一切時別有事起何以故諸行分齊起時更無別生別住別老別壞諸行分齊住老壞時亦無別生別住別老別壞一念頃名爲一剎那菩薩如實觀者不別有生等事可得若可得者離色等諸行應別有如色等行自性起彼亦應起
만일 그렇다면 마땅히 두 가지 생(生)이 있어야 하나니 행생(行生)과 생생(生生)이다. 만일 행생과 생생이 있다면 이 둘은 같은가, 다른가? 만일 같은데 따로 생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공무(空無)한 이치요 만일 그래도 따로이 생이 있다고 하면 이 일은 옳지 않다.
만일 다르다고 한다면 그 행생은 상으로 생하는 것이 아닐 것이요, 그래도 행생이행으로 생기는 것이라 한다면 이 일은 옳지 못하다. 생(生)이 그렇듯이 주ㆍ노ㆍ사도 역시 그러하다.
014_0134_c_14L若然應有二生行生及生生若有行生及生生者或一或異若一而謂別有生者彼空無義若別有生者此事不若異者彼行生非相生所爲行生相生所爲者此事不然如生住老亦如是
만일 법의 자정이 멸함이 있다면 그는 마땅히 생멸할 것이로되 만일 생이 무너질 때엔 모든 행이 곧 멸하나니, 마치 멸진정수(減盡正受)에 든 이가 적은 방편으로 심심수법(心心數法)을 멸하는 것과 같으리라.
만일 무너져 멸할 때엔 저 모든 행이 다시 생하리니, 무너져서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거늘 만일 무너짐에도 생멸이 있다고 한다면 이 일은 옳지 못하다.
014_0134_c_20L若壞有法自性者彼應生滅壞生時一切行應卽滅如入滅盡正以少方便心心數法滅若壞滅時彼一切行應生以壞無有故言壞有生滅者此事不然
014_0135_a_01L저 선남자 선여인이 언제나 항상 자성을 가지고 있음을 싫어하면서 욕심을 여읜 해탈을 구해서는 안 되나니, 외도라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 이런 까닭에 보살은 모든 행이 무상하다는 도리를 여실히 안다.
014_0135_a_01L彼善男子善女人一切時常有自性者不應有厭離欲解脫異者應爾以此事故菩薩於一切諸行無常如實知
다시 또 보살은 모든 행이 무상하게 상속하면서 일어날 때에 세 가지 괴로움의 상을 관하나니 행고(行苦)ㆍ변역고(變易苦)ㆍ고고(苦苦)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행의 고를 여실히 안다.
014_0135_a_04L復次菩薩於一切諸行無常相續轉觀三苦相行苦變易苦苦苦如是菩薩於一切行苦如實知
다시 또 보살은 모든 법의 유위와 무위나 무아(無我)와 무아소(無我所)에 대하여 여실히 아나니, 중생의 무아와 법무아(法無我)이다. 그 중생의 무아라 함은 법이 있다하여도 중생이 아니요 법을 여의었다 하여도 역시 중생이 아니라, 법무아라 함은 모든 언설의 일에 언설의 자성인 법이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법무아에 대하여 여실히 안다.
014_0135_a_07L復次菩薩於一切法有爲無爲無我我所如實知衆生無我及法無我衆生無我者有法非衆生離有法亦非衆生法無我者一切言說事亦無言說自性法如是菩薩於一切法無我如實知
다시 또 모든 행을 일으키는 인이 끊어져서 남음이 없으면 나머지 모두가 끝까지 멸하게 되는데 이를 반열반(般涅槃)이라 하나니 번뇌가 적멸하고 뭇 고통이 영원히 쉰 경지이다.
정심지(淨心地)에 들지 못한 보살이나 진리[諦]를 보지 못한 성문은 열반에 대하여 뜻으로 이해하려는 생각을 내어 적멸열반(寂滅涅槃)이라 하나니 마땅히 알라. 이들은 진실한 열반의 지견을 얻지 못하고 오직 바르게 사유할 뿐이다.
014_0135_a_13L復次一切行起因斷無餘諸餘畢竟滅名般涅槃煩惱寂滅衆苦永息入淨心地菩薩未見諦聲聞於涅槃作意解想說言寂滅涅槃當知是等不得眞實涅槃知見唯有正思惟
014_0135_b_01L비유하건대 재산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왕이나 장자가 여러 아들들을 위해 장난감으로 사슴이 끄는 수레ㆍ소가 끄는 수레ㆍ말이 끄는 수레ㆍ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만들어 준다. 그러면 아들들은 진짜 수레나 말이나 코끼리가 끄는 수레라는 생각을 하며 기뻐하고 좋아한다. 그 아버지는 아들들이 조금 장대해진 것을 보고 진짜 소가 끄는 수레ㆍ사슴이 끄는 수레ㆍ코끼리가 끄는 수레라 하니 아들들은 ‘아버지가 우리들의 수레를 칭찬해 주신다’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나중에 그 아들들이 더욱 장대해진 것을 보고는 집 밖으로 데리고 가서 진짜 코끼리와 말을 보여 주니, 그들은 진짜를 보고서야 비로소 진짜를 알고는 ‘아버지가 항상 찬탄하시던 것은 우리들이 전부터 좋아하던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전에 좋아하던 것은 진짜 코끼리나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
014_0135_a_18L如國王長者巨富無量爲諸子故造作戲具鹿車牛車馬車象車彼諸子等歡喜愛樂作眞鹿馬象車等想父知子漸已長大爲說眞實牛鹿象諸子謂父歎已象馬父於後時知子轉大將出宅外示眞象馬彼見實已乃知其眞定知其父常所歎說非是我等先所翫好先所翫好非眞象
이와 같이 모든 행을 집으로 삼아 정심지에 머무르지 않은 보살이나 진리를 보지 못한 성문들은 저 동자들과 같다. 부처님들과 대지(大地)에 들어간 보살은 열반을 분명히 보고서 저 보살과 성문들에게 열반을 찬탄해 주시면 그들이 듣고는 제멋대로 이해하고 말한다. 만일 그들이 차츰 배워서 도품(道品)이 구족해져서 정심지에 들거나 진리를 본 성문이 되면 그들은 열반에 대하여 똑바로 알고 보았다는 생각을 낸다.
그리고는 ‘제불보살께서 찬탄해 말씀하신 것은 우리들의 어리석은 지혜의 생각으로 알 바가 아니요 우리들이 상상했던 것은 비슷한 것이요 진실이 아니다’ 하고 지난날 알았던 것에 대하여는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마지막 지견(知見)에 의존한다.
014_0135_b_04L如是諸行以爲屋宅未住淨心地菩薩未見諦聲聞如彼童子諸佛如來及入大地菩薩明見涅槃爲彼菩薩及諸聲聞歎說涅槃彼旣聞已隨說意解若彼漸學道品具足入淨心地及見諦聲聞彼於涅槃生現知見如是諸佛菩薩所歎說者非如我等愚癡智慧意想所解我等所想相似非實於彼所解生慚愧心依後知見
비유컨대 병든 사람이 훌륭한 의사를 만났을 때 의사는 병을 고쳐 주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말해 준다. 그러면 그 모든 병자들은 이 약을 항상 익히어 문득 믿음과 이해를 내어 이 약을 즐기어 썼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병이 낫게 되었다.
그 후에 다시 다른 병이 났을 때엔 마땅히 다른 약을 먹어야 하기에 양의는 그로 하여금 앞의 약을 버리고 다시 다른 약을 먹게 한다. 하지만 그 병자들은 앞의 약을 믿는 까닭에 앞의 약을 버리려 하지 않으니 양의가 방편으로 나중의 약을 먹게 한다.
014_0135_b_12L譬如病人遇得良醫爲治病故說隨病藥彼諸病者常習此藥便作信解樂著此藥緣是病差更起餘病應服餘藥良醫教彼棄捨前藥更服餘藥彼諸病者信前藥故不肯棄捨良醫方便令服後藥
014_0135_c_01L이와 같이 정심지에 머무른 보살이나 진리를 본 성문이 모든 번뇌의 병이 들었거든 부처님들과 대지에 머무른 보살이 그를 위해 설법하되 상법(上法)과 상상법(上上法),심법(深法)과 상심법(上深法)과 상상심법(上上深法), 승법(勝法)과 상승법(上勝法)과 상상승법(上上勝法)으로 교수하고 교계(敎誡)하거든 정심지에 든 보살이나 진리를 본 성문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믿고 받아들여 의심치 않으며 여래께서 말씀하신 구족한 법수례[法乘]를 타고 잘 굴려서 나아가 평등의 길을 건너 빨리빨리 무여열반으로 곧바로 향한다.
014_0135_b_18L如是菩薩住淨心地見諦聲聞諸煩惱病諸佛如來住大地菩薩爲彼說法上法上上法深法上深法上上深法勝法上勝法上上勝法教授教誡入淨心地菩薩見諦聲聞聞佛所說信受不疑乘如來所說具足法乘善能調御遊平等道疾正向無餘涅槃

18) 보살공덕품(菩薩功德品)
014_0135_c_02L菩薩地持方便處菩薩功德品第十八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배우면 다섯 가지 기특하고 미증유한 법이 있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중생에게 인연이 없더라도 애정[愛念]을 일으키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중생을 위하여 무량한 고통을 받는 것이요, 셋째는 번뇌가 치성하여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방편으로 조복시키는 것이요, 넷째는 제일가며 알기 어렵고 진실한 이치에 들어감이요, 다섯째는 불가사의한 신통의 힘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와 같이 기특하고 미증유한 법은 모든 중생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014_0135_c_03L菩薩學阿耨多羅三藐三菩提有五奇特未曾有法云何爲五一者於諸衆生無有因緣而起愛念二者爲諸衆生受無量苦三者煩惱熾盛難化衆生方便調伏四者入第一難解眞實之義五者入不可思議神通之力如是奇特未曾有法不與一切諸衆生共
보살에게 다섯 가지 일이 있어, 기특하지 않은 것을 기특하고 미증유한 법이 되게 하나니, 첫째는 중생을 편안케 하기 위하여 고인(苦因:苦行)을 받아들이고 고인을 받아들인 까닭에 안락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생사의 허물과 열반의 공덕을 알면서도 어떤 깨끗한 중생이 즐거이 받아들이지 않거든 그 깨끗한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모든 생사를 몸소 받는 것이다.
셋째는 고요한 침묵의 즐거움을 닦으면서도 어떤 깨끗한 중생이 즐거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깨끗한 중생을 위하여 정법을 연설하는 것이요, 넷째는 육바라밀의 선근을 닦으면서도 어떤 깨끗한 중생이 즐거이 받아들이지 않거든 그 깨끗한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고 또 과보도 버리지 않는 것이요, 다섯째는 남의 일이건 자기의 일이건 이렇듯 모든 것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014_0135_c_11L菩薩有五事非奇特能成奇特未曾有法一者爲安衆生故受於苦因苦因故得受安樂二者知生死過惡涅槃功德有淨衆生念不自受樂淨衆生故受諸生死三者修靜默樂有淨衆生念不自受樂爲淨衆生故演說正法四者修六波羅蜜善根淨衆生念不自受樂爲淨衆生故不捨一切衆生亦不捨果報五者他事己事如是一切利益衆生
014_0136_a_01L보살에게 다섯 가지 일이 있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평등하게 한다. 첫째는 초발심(初發心)이니 모든 중생을 위하여 그 마음이 평등해지기를 원하는 것이요, 둘째는 대비심을 닦아 익히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평등한 마음과 함께하는 것이요, 셋째는 모든 중생에게 외아들이라는 생각을 내어 사랑하는 마음과 평등한 마음이 함께하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중생의 온갖 행의 연기(緣起)를 관하되 한 중생의 법이 곧 모든 중생의 법임을 알고는 모든 중생을 수순하되 그 마음이 평등한 것이요, 다섯째는 한 중생을 위하여 행하듯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익되게 하려는 마음과 함께 그 마음이 평등한 것이다.
014_0135_c_21L菩薩有五於一切衆生其心平等一者初發心願爲一切衆生其心平等二者修習大悲心與哀愍俱其心平等三者於一切衆生作一子想與愛念俱其心平等四者觀一切衆生諸行緣起一衆生法卽是一切諸衆生法隨順一切衆生其心平等五者如爲一衆生行如是一切衆生利益心俱其心平等
보살에게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면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나니, 첫째는 바른 생활[正命]을 일러주는 이익[饒益]이요, 둘째는 수순치 않는 이에게는 수순하는 법을 설해주는 이익이요, 셋째는 고독하고 괴롭고 빈궁하여 의지할 데 없는 이에게 믿고 의지할 데가 되어주는 이익이요, 넷째는 선한 길을 함께하는 이에게 도법을 설해주는 이익이요, 다섯째는 삼승의 무리에게 삼승의 법을 설해주는 이익이다.
014_0136_a_07L菩薩有五事饒益一切衆生者說正命饒益二者不隨順者說隨順法饒益三者孤獨辛苦貧乞無依者爲作依怙饒益四者向善趣者說道饒益五者爲三乘人說三乘饒益
보살에게 다섯 가지 일이 있어, 중생의 은혜에 보답하나니 첫째는 스스로가 공덕을 이루는 것이요, 둘째는 남에게 전하여 이루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고독하고 괴롭고 빈궁하여 의지할 데 없는 이에게 믿고 의지할 데가 되어주는 것이요, 넷째는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읽고 외우고 쓰고 지니고 공양하는 것이다.
014_0136_a_11L菩薩有五事報衆生恩一者自成功二者勸他令成三者孤獨辛苦貧乞無依爲作依怙四者供養如來者佛所說法若讀誦若書持若供養
보살이 보리도를 행할 때엔 항상 다섯 가지 일을 구하나니, 첫째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기를 항상 원함이요, 둘째는 모든 부처님에게 육바라밀과 보살장(菩薩藏)을 듣고자 함이요, 셋째는 모든 종류로 중생을 성숙시킬 수 있고, 넷째는 위없는 법으로 중생을 성숙시킬 수 있고, 다섯째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아유삼보리(阿惟三菩提)와 성문보리(聲聞菩提)를 얻은 뒤에 성문 제자들이 화합함이다.
014_0136_a_15L菩薩行菩提道常求五事一者常願諸佛出興於世二者於諸佛所聽六波羅蜜及菩薩藏三者堪能一切種成熟衆生四者堪能無上成熟衆生五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阿惟三菩提聲聞菩提和合聲聞
014_0136_b_01L보살이 다섯 가지 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진실한 방편이 있나니, 이 보살이 먼저 중생들을 안락케 하고자 하고, 그들의 안락함에 대하여 여실하게 알아 뒤바뀌지 않게 깨닫는 것이니 앞의 공양습근무량품에서 설한 것과 같다.
보살이 다섯 가지 방편이 있어 모든 바른 방편을 거두어 지니나니, 첫째는 수호방편(隨護方便)이요, 둘째는 무죄방편(無罪方便)이요, 셋째는 사유력방편(思惟力方便)이요, 넷째는 정심방편(淨心方便)이요, 다섯째는 결정방편(決定方便)이다.
014_0136_a_21L菩薩有五事利益衆生眞實方便菩薩先欲安樂衆生於彼安樂如實知不顚倒覺如前供養習近無量品說菩薩有五種方便攝一切正方便者隨護方便二者無罪方便三者思惟力方便四者淨心方便五者決定方便
수호방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힐호(詰護)니, 구생지(俱生智)를 얻어 빨리 법을 받아들임이요, 둘째는 염호(念護)니, 법을 지니기를 생각함이요, 셋째는 지호(智護)니, 견고한 지혜를 얻어 법과 이치를 관찰하되 힐호와 염호와 지호로 퇴분(退分)을 여의고는 승진분(勝進分)을 닦는 것이요, 넷째는 자심호(自心護)니, 감각기관을 수호함이요, 다섯째는 타심호(他心護)니, 다른 이의 마음에 수순함이다.
014_0136_b_05L隨護方便有五種一者黠護俱生智能疾受法二者念護念持於三者智護得堅固智觀察法義黠念智護離於退分修勝進分四者自心護守護根門五者他心護隨順他心
무죄방편이라 함은 모든 선법에 대하여 뒤바뀌지 않고 치연한 무량으로 항상 닦아서 보리에 회향함이요, 사유력방편이라 함은 해행지(解行地)요, 정심방편이라 함은 정심지(淨心地)와 구족행지(具足行地)요, 결정방편이라 함은 결정지(決定池)이며 결정행지(決定行地)이며 구경지(究竟地)이니 이를 일러 다섯 가지 방편으로 모든 바른 방편을 거두어 지닌다 한다.
014_0136_b_10L無罪方便者於諸善法不顚倒熾然無量常修迴向菩提思惟力方便者是解行地淨心方便者是淨心地具足行地決定方便者是決定地決定行地究竟地是名五種方便攝一切正方便
보살의 퇴분(退分)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과 설법자를 공경치 않음이요, 둘째는 방일하고 게으름이요, 셋째는 뭇 번뇌와 모든 악행을 익힘이요, 넷째는 자기와 같은 또래나 다른 보살들에 대하여 증상만(增上慢)을 일으킴이요, 다섯째는 법에 대하여 뒤바뀌어 증상만을 일으킴이다.
014_0136_b_15L菩薩退分有五事一者不恭敬法及說法者二者放逸懈怠三者習衆煩惱及諸惡行四者稱量同己及餘菩薩起增上慢五者於法顚倒起增上慢
보살의 승분(勝分)에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위의 퇴분의 다섯 가지 일과 차례대로 반대되면 이를 승분이라 한다.
014_0136_b_19L菩薩勝分有五事與上退分五事次第相違者是名勝分
014_0136_c_01L보살에게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면 보살의 비슷한 공덕의 허물[似功德過]이 되나니, 첫째는 모든 흉악한 자나 포악한 자에게 자비로 이롭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아첨하고 굽은 위의를 나타내는 것이요, 셋째는 세속이나 모든 외도의 경론을 읽어도 지혜가 생긴다고 여기어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죄가 되는 보시 등 선근을 행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비슷한 공덕법을 연설해서 건립시키는 것이다.
014_0136_b_21L菩薩有五事菩薩似功德過一者於諸凶惡及犯戒者作非慈饒益二者現諂曲威儀三者說世俗語外道經得生智慧能自思惟四者行於有罪施等善根五者演說建立似功德法
보살이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며 진실한 공덕이 되나니, 첫째는 모든 흉악한 이와 계를 범한 이에게 수승한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이요, 둘째는 진실한 위의를 구족하여 성취하는 것이요, 셋째는 여래의 말씀에 의하여 지혜를 내고는 능히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무죄시(無罪施) 등 선근을 행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바른 교법을 연설하여 비슷한 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014_0136_c_03L菩薩有五事菩薩眞實功德一者於諸凶惡及犯戒者起勝悲心二者具足成就眞實威儀三者於如來說得生智慧能自思惟四者行於無罪施等善根五者演說正教毀相似法
보살이 중생을 조복하는데 열 가지가 있으면 결정코 조복했다 하나니 어떤 것이 열인가? 모든 번뇌를 여의고 번뇌의 부분과 나쁜 계 등을 여의는 것이다.
014_0136_c_08L薩調伏衆生有十種名正調伏云何爲十離諸纏離煩惱分惡戒
보살이 여섯 가지 일이 있으면 여래께서 무상보리의 수기를 주시나니, 첫째는 종성(種性)이 있을 뿐 아직 발심치 않은 것이요, 둘째는 이미 발심한 것이요, 셋째는 지위가 앞에 나타나는 것이요, 넷째는 지위가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요, 다섯째는 때가 한량이 있고 때가 정해져서 무상보리를 얻는 것이요, 여섯째는 때도 한량없고 때도 정해지지 않고서 수기를 받는 것이다.
014_0136_c_10L菩薩有六事爲如來授無上菩提記一者種性未發心二者已發心三者現前四者不現前五者時量時定得無上菩提六者時無量時不定受記
보살에게 세 가지 결정됨이 있나니, 첫째는 종성을 결정됨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능히 반연을 삼으면 장애가 있는 이도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때문이요, 둘째는 결정코 무상보리의 마음을 내면 설사 능하지 못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으며 마침내는 무상보리를 얻기 때문이요, 셋째는 힘을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되 원하는 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만족하여 헛되지 않나니 그 최후가 결정됨이기 때문에 여래께서 결정코 수기를 주신다.
014_0136_c_14L菩薩有三種決定一者種性名爲決何以故堪能爲緣有障決定阿耨多羅三藐三菩提二者決定發無上菩提心不能乃至不退乃至無上菩三者得力利益衆生如所欲如所如是不虛彼最後決定故如來受決定記
014_0137_a_01L보살이 다섯 가지 힘을 쓰지 않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나니, 첫째는 초발심이요, 둘째는 중생을 가엾이 여김이요, 셋째는 치연(熾然)이요, 넷째는 정진이요, 다섯째는 배워야 할 모든 곳[明處]에 대하여 방편을 싫어하지 않음이다.
014_0136_c_21L菩薩不作五種力故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一者初發心二者哀愍衆生三者熾然四者精進五者於一切明處方便不厭
보살이 다섯 가지 일이 있어 항상 닦아 모으나니 첫째는 항상 방일치 않음이요, 둘째는 고독하고 괴롭고 빈궁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이에게 의지가 되어 주는 것이요, 셋째는 여래에게 공양함이요, 넷째는 계를 지키되 범한 것이 있으면 곧 깨달음이요, 다섯째는 할 수 있고 행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무상보리에 회향함이다.
014_0137_a_02L菩薩有五事常所修集一者常不放二者孤獨辛苦貧乞無依爲作依三者供養如來四者持戒有犯卽五者所作所行所可憶念一切迴向無上菩提
보살에게 열 가지 법이 있어 보살 등의 법이 제일 뛰어나게 하나니, 첫째는 보살의 종성이 다른 종성보다 뛰어남이요, 둘째는 초발심이 모든 바른 원보다 뛰어남이요, 셋째는 정진과 지혜가 다른 바라밀보다 뛰어남이요, 넷째는 부드러운 말씨가 다른 일로거두는 것보다 뛰어남이요, 다섯째는 여래가 다른 중생보다 뛰어남이요, 여섯째는 대비가 다른 무량(無量)보다 뛰어남이요, 일곱째는 제4선(禪)이 다른 선(禪) 보다 뛰어남이요, 여덟째는 공삼매가 다른 삼매보다 뛰어남이요, 아홉째는 멸진정이 다른 선정보다 뛰어남이요, 열째는 청정한 교방편이 다른 교방편보다 뛰어남이다.
014_0137_a_07L菩薩有十法菩薩等法第一最勝者菩薩種性勝餘種性二者初發心勝一切正願三者精進智慧勝餘波羅蜜四者軟語勝餘攝事五者如來勝餘衆生六者大悲勝餘無量七者第四禪勝於餘禪八者空三昧勝餘三昧九者滅盡正受勝餘正受十者淸淨巧方便勝餘巧方便
보살에게 네 가지 바른 시설이 있나니, 이러한 바른 시설은 오직 여래만이 설하실 바이고, 나머지 인간ㆍ하늘 사문ㆍ바라문은 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들을 뿐이니, 첫째는 법시설(法施設)이요, 둘째는 제시설(諦施設)이요, 셋째는 방편시설(方便施說)이요, 넷째는 승시설(乘施設)이다.
014_0137_a_15L菩薩有四種正施設如是正施設是如來說非餘若天若人沙門婆羅門如是聞一者法施設二者諦施設者方便施設四者乘施設
법시설이라 함은 십이부경의 수다라 등을 차례로 연설하시고 차례로 건립함이다.
014_0137_a_19L法施設者十二部經修多羅等次第演說次第建立
014_0137_b_01L제시설이라 함은 한 가지인 것이 있으니 여실의제(如實義諦)요, 두 가지인 것이 있으니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요, 세 가지인 것이 있으니 상제(相諦)와 설제(說諦)와 작제(作諦)요, 네 가지인 것이 있으니 고제와 집제와 멸제와 도제요, 다섯 가지인 것이 있으니 인제(因諦)와 과제(果諦)와 지제(智諦)와 지경계제(智境界諦)와 무상제(無上諦)요, 다섯 가지인 것이 있으니, 실제(實諦)와 허망제(虛妄諦)와 지제(知諦)와 단제(斷諦)와 증제(證諦)와 수제(修諦)이다.
014_0137_a_21L諦施設者有一種謂如實義諦復有二種世諦第一義諦復有三種相諦說諦作諦復有四種苦諦集諦滅諦道諦復有五種因諦果諦智諦智境界諦無上諦復有六種實諦妄諦知諦斷諦證諦修諦
다시 일곱 가지인 것이 있으니 미제(味諦)와 환제(患諦)와 이제(離諦)와 법제(法諦)와 해제(解諦)와 성제(聖諦)와 비성제(非聖論)요, 여덟 가지인 것이 있으니, 행고제(行苦諦)와 고고제(苦苦諦)와 괴고제(壞苦諦)와 생제(生諦)와 멸제(滅諦)와 예오제(穢汚諦)와 청정제(淸淨諦)와 정방편제(正方便諦)이다.
다시 아홉 가지인 것이 있으니, 무상제(無常諦)와 고제(苦諦)와 공제(空諦)와 비아제(非我諦)와 유애제(有愛諦)와 무유애제(無有愛諦)와 단방편제(斷方便諦)와 유여열반제(有餘涅槃諦)와 무여열반제(無餘涅槃諦)이다.
다시 열 가지인 것이 있으니 자작고제(自作苦諦)와 빈궁고제(貧窮苦諦)와 사대증손고제(四大增損苦諦)와 애련고제(愛戀苦諦)와 오욕고제(汚辱苦諦)와 업고제(業苦諦)와 번뇌제(煩惱諦)와 정사유제(正思惟諦)이다.
014_0137_b_03L復有七種味諦患諦離諦法諦解諦聖諦非聖復有八種行苦諦苦苦諦壞苦諦生諦滅諦穢污諦淸淨諦正方便諦復有九種無常諦苦諦空諦非我諦有愛諦無有愛諦斷方便諦有餘涅槃諦無餘涅槃諦復有十種自作苦貧窮苦諦四大增損苦諦愛戀苦污辱苦諦業苦諦煩惱諦正思惟正見諦正見果諦
네 가지 방편을 방편시설이라 하나니 앞의 역종성품(力種性品)에서 말한 것과 같다.
승시설이라 함은 성문승(聲聞乘)ㆍ연각승(緣覺乘)ㆍ대승(大乘)이니 낱낱 승마다에 일곱 가지 시설을 갖춘다.
사성제혜(四聖諦慧)의 일곱 가지라 함은 이러한 지혜ㆍ의지[依]ㆍ반연[緣]ㆍ동반[伴]ㆍ업(業)ㆍ살림[衆具] 이러한 지혜의 과(果)이니 이 일곱 가지를 성문승의 시설이라 한다.
성문승의 시설과 같이 연각승도 역시 그와 같다.
언설을 여읜 경계는 모든 법이 여여하여, 온갖 망상을 여읜 평등한 지혜이니, 이런 지혜ㆍ의지ㆍ만연ㆍ동반ㆍ업ㆍ살림, 이런 지혜의 과이니 이 일곱 가지를 대승의 시설이라 한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보살의 바른 시설은 이미 지은 것과 장차 지을 것인 모든 네 가지는 견줄 이도 없고 위도 없다.
014_0137_b_12L四種方便名方便施設如前力種性品說乘施設者聲聞乘緣覺乘大乘一一乘七種施設四聖諦慧如是慧若依若緣衆具如是慧若果此七種名聲聞乘施設如聲聞乘施設緣覺乘亦如是離言說境界一切法如離諸妄想平等慧如是慧若依若緣衆具是慧若果此七種名大乘施設過去未來現在一切菩薩正施設已作當一切四種無餘無上
014_0137_c_01L보살에게 다섯 가지 무량이 있어 모든 교편행(巧便行)을 내나니, 첫째는 중생계무량(衆生界無量)이요, 둘째는 세계무량(世界無量)이요, 셋째는 법계무량(法界無量)이요, 넷째는 조복계무량(調伏界無量)이요, 다섯째는 조복방편무량(調伏方便無量)이다.
014_0137_b_22L菩薩有五種無量生一切巧便行者衆生界無量二者世界無量三者法界無量四者調伏界無量五者調伏方便無量
중생계 무량이라 함은 육십 한 종의 중생을 중생계라 하거니와 앞의 의지신품(意地身品)에서 분별한 것과 같이 무량함이 있다.
세계무량이라 함은 시방의 무량한 세계의 무량한 이름이니 예컨대 사바세계라거나 사바세계의 주인이라 하는 경우와 같다.
법계무량이라 함은 선ㆍ불선ㆍ무기 등의 법이니 분별하건대 역시 무량함이 있다.
014_0137_c_03L六十一種衆生名衆生如意地身分別則有無量十方無量世界無量名如娑婆世界名娑婆善不善無記法分別則有無量
조복계무량에는 한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모든 중생을 조복시킴이요, 두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구박(具縛)과 불구박(不具縛)이요, 또 세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하[軟]ㆍ중(中)ㆍ상(上)근이요, 또 네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찰리(刹利)ㆍ바라문(婆羅門)ㆍ비수(毘首)ㆍ수다라(修多羅)이다.
또 다섯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우치(愚痴)ㆍ교만(憍慢)ㆍ각관(覺觀)이요, 또 여섯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재가(在家)ㆍ출가(出家)ㆍ미숙(未熟)ㆍ이숙(已熟)ㆍ미해탈(未解說)ㆍ이해탈(已解脫)이다.
014_0137_c_06L調伏有一種謂一切衆生調伏復有二具縛不具縛復有三種上根復有四種剎利婆羅門毘舍首陁有五種貪欲瞋恚愚癡憍慢覺觀有六種在家出家未熟已熟未解脫已解脫
또 일곱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악인(惡人)ㆍ증인(中人)ㆍ소지인(小智人)ㆍ대지인(大智人)ㆍ현재조복(現在調伏)ㆍ미래조복(未來調伏)ㆍ수연조복(隨緣調伏)이니 만일 이런 것들을 반연할 수 있다면 이렇게 회향할 수 있다.
또 여덟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이른바 팔중(八衆)이라, 찰제리로부터 바라문까지이다. 또 아홉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첫째는 여래조복(如來調伏)이요, 둘째는 성문연각조복(聲聞緣覺調伏)이요, 셋째는 보살조복(菩薩調伏)이요, 넷째는 난조복(難調伏)이요, 다섯째는 이조복(易調伏)이요, 여섯째는 연어조복(軟語調伏)이요, 일곱째는 가책조복(訶責調伏)이요, 여덟째는 원조복(遠調伏)이요, 아홉째는 근조복(近調伏)이다.
또 열 가지로 된 것이 있으니, 첫째는 지옥이요, 둘째는 축생이요, 셋째는 아귀요, 넷째는 욕계 인천(人天)이요, 다섯째는 중음(重陰)이요, 여섯째는 색(色)이요, 일곱째는 무색(無色)이요, 여덟째는 상(想)이요, 아홉째는 무상(無想)이요, 열째는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니, 이 오십오 종을 분별하면 무량하다.
014_0137_c_12L復有七種惡人中人小智人大智人現在調伏未來調伏隨緣調若得緣如是如是迴向復有八種謂八衆剎利乃至婆羅門復有九種一者如來調伏二者聲聞緣覺調伏三者菩薩調伏四者難調伏五者易調伏六者軟語調伏七者呵責調伏八者遠調伏九者近調伏復有十種一者地獄二者畜生三者餓鬼四者欲界人天五者中陰六者色七者無八者想九者無想十者非想非非是五十五種分別則爲無量
014_0138_a_01L중생계와 조복계에 어떤 차변이 있는가? 중생계란 모든 중생의 종성을 분별치 않는 것이요, 조복계란 그 종성에서 이와 같이 끼리끼리 조복시키는 방편이 무량한 것으로 앞의 성숙품(成熟品)에서 말한 것 같으니 거기서는 무량한 종을 분별하였다.
이와 같이 차례대로 다섯 가지 무량을 설했으니 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수행하나니 그러므로 제1의 무량을 설했고, 중생을 거기에서 만날 수 있나니 그러므로 제2의 무량을 설했고, 중생들이 그러그러한 세계에서 번뇌가 밝아지는 법을 얻을 수 있나니 그러므로 제3의 무량을 설했고, 그러그러한 중생의 능력에 따라 관찰하여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나니 그러므로 제4의 무량을 설했고, 나아가 방편으로 중생의 고통을 해탈케 하나니 그러므로 제5의 무량을 설했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무량이 보살의 온갖 교편행을 낸다.
014_0137_c_23L衆生調伏界有何差別衆生界者不分別一切衆生種性處調伏界者彼種性處如是彼彼處轉調伏方便無量如前成熟品說彼亦無量種分別是次第說五種無量何以故是菩薩爲衆生修行是故說初無量衆生彼處可得是故說第二無量衆生於彼彼世界煩惱淸淨法可得是故說第三無量觀彼彼衆生隨所堪能脫苦是故說第四無量乃至方便脫衆生是故說第五無量是故說五種無生菩薩一切巧便行
보살이 네 가지 구함이 있으면 모든 법을 여실히 아나니, 첫째는 명구(名求)요, 둘째는 사구(事求)요, 셋째는 자성시설구(自性施設求)요, 넷째는 차별시설구(差別施設求)이니 앞의 「진실품(眞實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
보살이 네 가지 일이 있어 모든 법을 여실히 아나니, 명구(名求)를 따라 여실히 알고, 사구(事求)를 따라 여실히 알고, 자성시설구(自性施設求)요, 따라 여실히 알고, 차별시설구(差別施設求)를 따라 여실히 아는 것이니 앞의 진실품에서 설한 바와 같다.
014_0138_a_12L菩薩有四求於一切法如實知一者名求二者事三者自性施設求四者差別施設如前眞實品說菩薩有四事於一切法如實知隨名求如實知隨事求如實知隨自性施設求如實知隨差別施設求如實知如前眞實品說
014_0138_b_01L제불과 제보살이 다섯 가지 일이 있어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면 큰 과의 복리(福利)를 얻게 하나니, 첫째는 중생을 위해 설법하면 티끌을 여읜 법안(法眼)이 생기고, 둘째는 중생을 위해 설법하면 모든 누(漏)가 다하고, 셋째는 중생을 위해 설법하면 무상보리심을 발하고, 넷째는 중생을 위해 설법하면 으뜸가는 보살인(菩薩忍)을 얻고, 다섯째는 중생을 위해 설법하면 들은 뒤에 받아 외우고 구족히 닦아 익혀 정법이 오래 머무르게 하니 이것이 다섯 가지 설법으로 큰 과의 복리를 얻게 하는 것이다.
014_0138_a_18L諸佛菩薩有五事爲衆生說法得大果福利一者爲衆生說法生離垢法二者爲衆生說法得諸漏盡三者爲衆生說法發無上菩提心四者爲衆生說法得第一菩薩忍五者爲衆生說法聞已受誦具足修習令法久是名五種說法得大果福利
어떤 것을 대승이라 하는가? 일곱 가지 큰[大] 일이 있기 때문에 대승이라 한다. 첫째는 법대(法大)이니, 십이부경의 보살방광장(菩薩方廣藏)이 가장 높고 가장 크기 때문이요, 둘째는 심대(心大)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심을 일으킴이요, 셋째는 해대(解大)이니, 보살의 방광장을 이해함이요, 넷째는 정심대(淨心大)이니, 해행지(解行地)를 지나서 정심지(淨心地)에 들어감이요, 다섯째는 중구대(衆具大)이니, 복덕중구(福德衆具)와 지혜중구(智慧衆具)로써 무상보리를 얻음이요, 여섯째는 시대(時大)이니, 세 아승기겁에 무상보리를 얻음이요, 일곱째는 득대(得大)이니 무상보리를 얻으면 그 자체에도 견줄 이가 없거늘 하물며 넘어서는 자이겠는가? 이 중 법대ㆍ심대ㆍ해대ㆍ정심대ㆍ증구대ㆍ시대 등 여섯 가지 대는 원인의 종자요, 득대(得大)는 결과의 경지이다.
014_0138_b_02L云何名大乘有七種大故名爲大乘一者法大謂十二部經菩薩方廣藏最上最大二者心大謂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三者解大謂解菩薩方廣藏四者淨心大謂過解行地入淨心地五者衆具大謂福德衆具慧衆具得無上菩提六者時大謂三阿僧祇劫得無上菩提七者得大得無上菩提身無與等者況復過上彼法大心大解大淨心大衆具大此六大謂因種得大謂果處
보살의 여덟 가지 법이 있으면 모든 마하연 보살장에서 설한 바를 모두 거두어 지니나니, 첫째는 보살장을 믿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법의 진실한 이치를 드러내어 보임이요, 셋째는 모든 불보살의 불가사의하고 으뜸가게 승묘한 신력(神力)을 드러내어 보임이요, 넷째는 문혜(聞慧)와 사혜(思慧)를 얻어 생각함이요, 다섯째는 문혜ㆍ사혜로 생각하는 방편에 의하여 정심(淨心)을 얻음이요, 여섯째는 정심의 방편을 얻고는 수혜(修慧)의 행에 들어감이요, 일곱째는 수혜의 행에 들어간 방편에 의하여 수혜의 과를 얻음이요, 여덟째는 이러한 수혜의 과를 이룸에 의하여 필경에 벗어나 여읨을 얻음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무상보리를 배워 얻는다.
014_0138_b_13L菩薩有八法攝一切摩訶衍菩薩藏所說謂信菩薩藏顯示一切法眞實義示一切諸佛菩薩不可思議第一勝妙神力得聞慧思慧思惟依聞慧思慧思惟方便得淨心得淨心方便入修慧行入修慧行方便修慧果成是修慧果成畢竟出離菩薩如是學得無上菩提
보살이 이와 같이 무상보리를 배워 얻는 데는 간략히 말하여 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종성(種性)이요, 둘째는 입(入)이요, 셋째는 미정(未淨)이요, 넷째는 정(淨)이요, 다섯째는 미숙(未熟)이요, 여섯째는 숙(熟)이요, 일곱째는 미정(未定)이요, 여덟째는 정(定)이요, 아홉째는 일생(一生)이요, 열째는 최후신(最後身)이다.
014_0138_b_21L菩薩如是學得無上菩略說十種一者種性二者入三者未淨四者淨五者未熟六者熟七者未定八者定九者一生十者最後身
014_0138_c_01L종성이라 함은 아직 정심(淨心)을 얻지 못한 이요, 발심해서 닦아 배우면 입(入)이요, 이미 들어간 이가 아직 정심지(淨心地)에 들어가지 못하면 미정(未淨)이요, 정심지에 들어가면 정(淨)이요, 정심지를 얻은 이가 아직 필경지(畢竟地)에 들어가지 못하면 미숙(未熟)이요, 필경지에 들어가면 숙(熱)이요, 익은 이가 아직 정지(定地)에 들어가지 못하면 미정(未定)이요, 이미 정지에 들어갔으면 정(定)이다.
또 숙(熟)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일생(一生)이니, 차례차례 무상보리를 얻는 것이요, 둘째는 최후신이니 이 생에서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이 종성으로부터 최후신에 이르기까지 무상보리를 얻는다.
이 열 가지는 보살이 배워야 할 배움이어서 그 위로는 더 배울 것이 없다. 보살이 배울 바에 따라 배우면 그 위에 다시 보살이 배워야 할 것이 없다.
014_0138_c_01L種性者名未得淨心發心修學名爲已入未入淨心地名爲未淨入淨心地名爲淨淨者未入畢竟地名爲未熟入畢竟地名爲熟熟者未入定地名爲未定已入定地名爲定又熟有二種一者一生次第得無上菩提二者最後身卽此生得如是從種性乃至最後身得無上菩提此十種菩薩所學而學於上更無所學菩薩如所學而學於上更無菩薩學
보살이 배워야 할 대로 배우면 온갖 공덕스러운 이름을 얻나니, 이른바 보살마하살ㆍ용맹무상(勇猛無上)ㆍ불자불지(佛子佛持)ㆍ대사(大師)ㆍ대성(大聖)ㆍ대상주(大商主)ㆍ대명칭(大名稱)ㆍ대공덕(大功德)ㆍ대자재(大自在)라 한다.
이와 같이 시방 무량세계의 무량보살의 무량인연은 모두가 스스로의 생각[想]에 맞추어 시설하나니 어떤 이가 말하기를 “나는 보살이다” 하면 그는 보살이 배워야 할 바를 잘 배우지 못한 자인 줄 알라. 또 그는 이름만 보살일 뿐 실제 보살이 아닌 줄도 알라.
만일 말하기를 “나는 보살로서 보살이 배워야 할 바를 잘 배운다” 하면 이는 진실한 보살임을 알라.
014_0138_c_11L菩薩如所學而學得一切功德名所謂菩薩摩訶薩勇猛無上佛子佛持大師大聖大商主大名稱大功德大自在如是十方無量世界無量菩薩無量因緣自想施設當知若有言我是菩薩善學菩薩所學者當知是名字菩薩非實菩薩若言我是菩薩善學菩薩所學者當知是實菩薩


2. 법방편처(法方便處)
014_0138_c_19L菩薩地持法方便處

1) 보살상품(菩薩相品)
菩薩相品第一第二段有四品
014_0139_a_01L보살이 다섯 가지 진실상을 성취하면 모든 보살의 축[數]에 드나니, 첫째는 애민(愛愍)이요, 둘째는 애어(愛語)요, 셋째는 용맹(勇猛)이요, 넷째는 혜시(惠施)요, 다섯째는 설심심법의(說甚深法義)이다. 이 다섯 가지 상(相)을 각각 다섯 가지로 분별하니, 첫째는 자성(自性)이요, 둘째는 경계(境界)요, 셋째는 과보(果報)요, 넷째는 차제(次第)요, 다섯째는 섭수(攝受)이다.
014_0138_c_20L菩薩成就五種眞實相得入諸菩薩一者哀愍二者愛語三者勇猛者惠施五者說深法義此五相各五種分別一者自性二者境界三者果四者次第五者攝受
애민의 자성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지심(至心)이요, 둘째는 구족(具足)이다. 지심이라 함은 편안한 마음과 즐기는 마음이요, 구족이라 함은 보살이 모든 중생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그의 능력과 힘에 따라 몸과 입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014_0139_a_02L哀愍自性有二種一者至心二者具至心者安心樂心具足者菩薩至心於諸衆生隨其所能隨其力身口饒益
애어의 자성이라 함은 먼저 안부를 묻고 위로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니 앞의 섭품(攝品)에서 설한 바와 같다.
014_0139_a_06L愛語自性者先語安慰如前攝品說
용맹의 자성이라 함은 모든 종성에 대하여 의지가 강하여 힘이 있는 것이요, 혜시의 자성이라 함은 뛰어나게 미묘한 보시와 무번뇌(無煩惱)의 보시요, 설심법의의 자성이라 함은 사무애지(四無礙智)로 정방편지(正方便智)를 내는 것이다.
014_0139_a_07L勇猛自性者於諸衆生志强有惠施自性者勝妙施無煩惱施深法義自性者四無㝵智出生正方便
애민의 대상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고통 받는 중생이요, 둘째는 악행을 하는 중생이요, 셋째는 방일하는 중생이요, 넷째는 삿된 길로 가는 중생이요, 다섯째는 번뇌에 끄달리는 중생이다.
지옥의 고통을 비롯하여 온갖 괴로운 느낌이 상속하는 것을 고통 받는다[受苦] 하고, 비록 고통을 받지는 않으나 신ㆍ구ㆍ의의 악행, 즉 열두 가지의 나쁜 율의(律儀)를 많이 행하는 것을 악을 행한다 하고, 비록 고통을 받거나 온갖 수행을 짓지는 않으나 오욕에 빠져서 노래나 춤이나 장난에 빠진 것을 방일이라 하고, 고통을 받거나 온갖 악행을 짓거나 오욕에 빠지지는 않았으나 삿된 소견에 의하여 괴로운 해탈을 구하면 이를 삿된 길로 나아간다[邪趣] 하고, 오욕을 버리고 법에 의해 출가하여 모든 고통을 받거나 내지 삿된 길로 가지는 않으나 번뇌를 구족히 가지고 있거나 구족히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이르기를 “바른 방편을 닦는 진실한 범부거나 모든 확인이라” 하면 이를 번뇌에 끄달렸다[煩惱所使] 한다. 보살이 이런 경계에 대하여 애민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결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
014_0139_a_10L哀愍境界有五種一者受苦衆生者惡行衆生三者放逸衆生四者邪趣衆生五者煩惱所使衆生從地獄乃至一切苦受相續是名受苦雖不受苦而多造作身口意惡行所謂十二惡律儀是名惡行雖不受苦造諸惡行而樂著五欲歌舞戲笑是名放雖不受苦造諸惡行樂著五欲依邪見求苦解脫是名邪趣捨離五欲於法出家不受諸苦乃至邪趣具煩惱或有不具謂正方便眞實凡夫及諸學人是名煩惱所使菩薩於此境界哀愍心生無餘無上
014_0139_b_01L애어의 경계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실어(正實語)요, 둘째는 정희어(正喜語)요, 셋째는 정요익어(正饒益語)요, 넷째는 정여법어(正如法語)요, 다섯째는 방편설법어(方便說法語)니, 앞의 섭품(攝品)에서 설한 바와 같다. 보살이 이 경계에 대하여 애어심(愛語心)을 내면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 용맹 경계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앞의 보리분품(菩提分品)에서 설한 바와 같다. 보살이 이 경계에 대하여 용맹한 마음을 내면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
014_0139_a_22L愛語境界有五種一者正實語二者正喜語三者正饒益語四者正如法五者方便說法語如前攝品說薩於此境界愛語心生無餘無上猛境界有五種如前菩提分品說薩於此境界勇猛心生無餘無上
혜시(惠施)의 경계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별치 않고 보시함이요, 둘째는 “환희심으로 보시함이요, 셋째는 활짝 보시함이요, 넷째는 더럽히지 않고 보시함이요 다섯째는 의지함이 없이 보시함이니, 앞의 시품(施品)에서 말한 바와 같다. 보살이 이런 경계에 혜시할 마음을 내면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
014_0139_b_05L惠施境界有五種一者不分別施者歡喜施三者頓施四者不染污施五者無依施如前施品說菩薩於此境界惠施心生無餘無上
설심법의(說深法義)의 경계라 함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여래께서 설하신 수다라의 심히 깊은 ≺공≻과 상응하는 연기법에 수순하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계율에 대하여 범함과 범하지 않음과 그리고 범(犯)에서 벗어나는 법을 잘 아는 것이요 셋째 마득륵가장(摩得勒伽藏)에 대하여 뒤바뀌지 않게 법상(法相)을 건립하는 것이요 넷째는 깊은 법과 이치에 대하여 생각을 기울여 분별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모든 법과 법의(法義)에 대하여 갖가지 말로써 경계에서 깊은 법의를 설할 마음을 내면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
014_0139_b_09L說深法義境界有五種一者於如來所說修多甚深空相應緣起隨順二者於諸戒律善知犯不犯及與出犯三者於摩德勒伽藏不顚倒建立法相四者於深法義以想分別五者於一切法法義種種言辭種種分別菩薩於此境界說深法義心生無餘無上
보살이 애민으로 모든 중생에 대해 자심(慈心)을 닦아 익혀 이익을 주고 다가가 친근해지는 방편에 싫증을 내지도 않고 죄 없는 현재법의 즐거움에 오래 머무르면서 중생을 거두어 주되, 마치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심(慈心)은 복되고 이롭나니 그 몸에 언제나 칼ㆍ곤장 등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에 대해 널리 말씀하신 것 같이 하면 이를 애민의 과보라 한다.
014_0139_b_16L菩薩哀愍於諸衆生修習慈心利益親厚方便不厭多住無罪現法樂攝取衆生如世尊說慈心福利身常不被刀杖等害此中應廣說是名哀愍
보살이 애어로 현재의 법에서 입의 네 가지 허물, 즉 이간질하는 말 욕설 ㆍ거짓 말ㆍ꾸밈 말 등을 여의고 이 애어로써 스스로도 거두고 남도 거두어 미래에는 정어(正語)를 성취하여 말만하면 곧 믿게 되니 이를 애어의 과보라 한다.
014_0139_b_21L菩薩愛語於現法中離口四過惡口妄言綺語以此愛語自攝攝於未來世成就正語言輒信用名愛語果
014_0139_c_01L보살이 용맹으로 현재 법에서 모든 게으름을 여의어 마음이 항상 기쁘고 보살의 율의계(律儀戒)를 받아 지니되 훼손치도 않고 범하지도 않으며, 이렇게 견디어내는 마음으로 나와 남을 거두면 미래에는 보살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닦아 배우게 되고 배운 뒤에는 견고해지나니, 이를 용맹의 과보라 한다.
014_0139_c_01L菩薩勇猛於現法中離諸懈怠心常歡喜受持菩薩律儀戒不毀不犯以堪忍心攝受自他於未來世菩薩所作悉能修學學已堅固名勇猛果
보살의 혜시와 설심법의의 과보는 앞의 역품(力品)에서 단바라밀과 반야바라밀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이를 혜시와 설심법의의 과보라 한다.
014_0139_c_05L菩薩惠施及說深法義果如前力品檀波羅蜜般若波羅蜜說是名惠施說深法義果
차제라 함은 보살이 먼저 애민을 닦아 중생을 거두어 주고, 중생들로 하여금 불선한 법에서 벗어나 선법에 안주케 하고 구족히 설하기 위하여 교수하여 거두어 주례한다. 그러므로 다음에 애어를 설한다.
중생이 악을 지어 갖가지 번뇌를 쉬지 않고 능히 견디어 내나니 그러므로 다음에 용맹을 설하고 혹 어떤 중생은 재물로 거두어야 하고 어떤 중생은 법으로 거두어야 하고 또 어떤 중생은 두 가지 모두로써 거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음에 혜시와 설심법의를 설한다.
014_0139_c_08L次第者菩薩先修哀愍攝取衆生爲令衆生出不善法安立善法爲具足說教授攝受是故次說愛語衆生造惡種種煩惱堪能不息是故次說勇猛或有衆生以財攝受或有衆生以法攝受或俱攝受是故次說惠施說深法義
보살이 다섯 가지 상(相)으로 육바라밀을 거두니 이 육바라밀이 어느 상에 속하는가? 애민상은 선바라밀을 거두고, 애어상은 시라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거두고, 용맹상은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거두고. 혜시상은 단바라밀을 거두고, 설심법의상은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거두나니 이를 보살의 다섯 가지 상을 다섯 가지로 분별했다 한다.
014_0139_c_14L菩薩有五種相攝六波羅蜜此六波羅蜜何相所攝哀愍相攝禪波羅蜜語相攝尸波羅蜜般若波羅蜜勇猛相攝羼提波羅蜜毘離耶波羅蜜若波羅蜜惠施相攝檀波羅蜜說深法義相攝禪波羅蜜般若波羅蜜名菩薩五種相五種分別

2) 익품(翼品)
014_0139_c_21L菩薩地持次法方便處翼品第二
014_0140_a_01L재가와 출가보살의 익(翼:도움)에 네 가지 법이 있어 보살이 닦아 배우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첫째는 선수업(善修業)이요, 둘째는 교편(巧便)이요, 셋째는 섭취중생(攝取衆生)이요, 넷째는 회향(廻向)이다.
014_0139_c_22L在家出家菩薩翼有四法菩薩修學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一者善修業二者巧便三者攝取衆生四者迴向
어떤 것이 선수업인가? 보살이 육바라밀에 대하여 결정수(決定修)ㆍ전심수(專心修)ㆍ상수(常修)ㆍ무죄수(無罪修)로 닦는 것이다.
014_0140_a_03L云何善修業菩薩於六波羅蜜決定修專心修常修無罪修
어떤 것이 단바라밀을 결정수로 닦는 것인가? 이 보살이 구하러 온 이에게 이익되건 이익되지 않건, 덕이 있건 허물이 있건 무조건 베풀어 주되 모든 은혜로운 보시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 인비인(人非人)ㆍ사문ㆍ바라문이나 세간의 같은 법을 닦는 이 등 그 누구도 그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014_0140_a_04L云何決定修檀波羅蜜是菩薩於來求者益不饒益有德有過要當施與於諸惠施心不傾動若人非人沙門婆羅世閒同法所不能壞
어떤 것이 전심수로 닦는 것인가? 이 보살이 구하러 온 이에게 안팎의 물건을 모두 베풀어 주되 조금도 아까워함이 없는 것이다.
014_0140_a_08L云何專心修是菩薩於來求者捨內外物一切施無有悋惜
어떤 것이 상수로 닦는 것인가? 이 보살이 보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언제나 평등한 마음으로써 얻는 대로 보시하는 것이다.
014_0140_a_10L云何常修是菩薩施無厭惓一切時平等隨得隨施
어떤 것이 무죄수로 닦는 것인가? 마치 시품(施品)에서 설한 이번뇌시(離煩惱施)와 같다. 이것이 보살의 선수업으로 단바라밀을 닦는 것이다. 보시가 그렇듯이 계율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바라밀도 그와 같으니 그에 상응함을 알라.
014_0140_a_11L云何無罪修如施品說離煩惱施是名菩薩善修檀波羅蜜如施如是戒精進禪定智慧亦如是隨其所應當知
어떤 것이 교편(巧便)인가? 간략히 말하면 열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법을 파괴하는 중생에게는 뇌해(惱害)를 제거해 주는 방편교편(方便巧便)이요. 둘째는 중간에 머무른 자는 들게 함이요, 셋째는 이미 들어온 이는 익어지게 함이요. 넷째는 이미 익어진 이는 해탈케 하는 방편교편이요. 다섯째는 세론(世論)에 대한 교편이요, 여섯째는 보살의 계율을 지니는가 범하는가를 관찰하는 교편이요, 일곱째는 바른 원을 세우는 교편이요, 여덟째는 성문승에 대한 교편이요, 아홉째는 연각승에 대한 교편이요, 열째는 대승에 대한 교편이니, 이와 같은 모든 교편을 그들 보살의 경지에 따라 분별된다는 것을 알라.
014_0140_a_14L何巧便略說有十種壞法衆生爲除惱害方便巧便中住者令入已入者令熟已熟者令解脫方便巧便世論巧便菩薩戒律若持若毀觀察巧便正願巧便聲聞乘巧便緣覺乘巧便大乘巧便如是一切巧便隨所應彼彼菩薩地分別當知
014_0140_b_01L이 열 가지 교편을 다섯 가지 일로 묶나니 처음 네 가지 교편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요, 세론교편은 외도의 주장을 조복시키기 위함이요, 보살의 계율을 지니는지 범하는지를 잘 관찰하는 교편은 계를 범할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범한 이는 법답게 참회하여 청정한 율의를 받아 지니게 하기 위함이요, 바른 원의 교편은 보살이 미래 세상에 모든 원하는 일을 모두 얻기 위함이요, 삼승의 교편은 보살이 종성의 근기 이해에 따라 비유로써 수순하여 설법하고 구족하게 설법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열 가지 교편을 다섯 가지로 묶나니, 이 다섯 가지 일은 해야 할 모든 일을 빠짐없이 구축하여 현세와 후세에 이익을 얻는 방편이다.
014_0140_a_21L此十巧便爲五種事初四巧便爲利衆生世論巧便爲伏異論菩薩戒律若持若毀觀察巧便爲不起犯戒已犯者令如法悔受持淸淨律儀正願巧便菩薩於未來世一切所欲悉皆得之三乘巧便菩薩隨種性根解譬喩隨順說法具足說法如是十種巧便爲五種事五種事一切所作皆悉具足現法後世利益方便
어떤 것이 보살이 섭취중생(攝取衆生)인가? 이 보살이 사섭법(四攝法), 즉 보시ㆍ애어ㆍ이익ㆍ동사에 의하여 어떤 중생에게는 편안함으로써 이익되게 하고, 어떤 중생에게는 즐거움으로써 이익되게 하고, 어떤 중생에게는 편안함과 즐거움으로써 이익되게 하는 것이니, 자세한 것은 앞의 자리품(自利品)에서 설한 바와 같다.
014_0140_b_07L云何菩薩攝取衆生菩薩依四攝法布施愛語利益同事或有衆生以安饒益以樂饒益以安樂饒益廣說如前自他利品
어떤 것이 보살의 회향(廻向)인가? 보살이 세 문의 선근, 즉 선수업(善修業)과 교편(巧便)과 섭취중생(攝取衆生)을 닦아 익히고는 그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순정심(淳淨心)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할지언정 이런 선근으로 다른 과위(果位)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014_0140_b_10L云何菩薩迴向菩薩三門修習善根謂善修業巧便攝取衆生彼一切過去未來現在淳淨心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以善根求餘果報
세존께서 말씀하신 재가 출가보살의 배울 법은 모두가 선수업과 교편과 섭취와 회향 등 네 법에 속하니 보살이 선수업과 교편과 섭취를 쌓아 모아 회향하면 그는 보리의 자리에 가까워지는 자인 줄 알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보살이 재가이건 출가이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배울지니 이미 배웠고 장차 배우고 현재 배우는데 이러한 네 가지 법은 견줄 이도 없고 높을 이도 없다.
014_0140_b_14L若世尊說在家出家菩薩所學法知一切皆是善修業巧便攝取迴向四法所攝菩薩善修業巧便攝取集聚迴向當知近菩提座過去未來現一切菩薩在家出家學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學當學今學如是四法無餘無上
014_0140_c_01L이들 네 가지 법은 재가 출가보살을 모두 성취시키나 출가자는 재가자보다 크게 차별이 있나니 출가보살은 부모ㆍ처자ㆍ권속 등을 거두는 허물에서 해탈했고 농사짓고 살림하고 부역하는 등을 받아들이는 고통에서 해탈했고, 범행과 모든 보리분법(菩提分法)을 구족히 닦으면 속히 신통을 얻고 선법을 닦으면 속히 구경을 얻고 무릇 설법을 하면 사람들이 믿어 받드나니 이것이 재가와 출가의 큰 차별이다.
014_0140_b_21L如是四法在家出家菩薩成就然彼出家於在家者大有差別出家菩薩解脫攝受父母妻子眷屬等過出家菩薩解脫攝受田種治生王家等苦出家菩薩具修梵行一切菩提分法疾得神通若修善法疾得究竟出家菩薩凡所說法人所信受是名在家出家之大差別
菩薩地持經卷第八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