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_0426_b_01L만약 보살이 스스로 보살의 법장을 비방하거나, 다른 사람이 비방하는 것을 보고 그 말이 옳다고 하거나, 이미 스스로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조장하거나, 마음속으로는 스스로 이해하면서 혹 다른 이로부터 받으려 한다면 이것을 보살의 바라이라 하느니라.
이러한 보살의 네 가지 바라이에 보살은 그 가운데 한 가지도 범하지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모두를 범하는 것이겠는가? 범하는 이는 보살이라 하지 않으며, 현재의 몸으로 보리를 장엄하지 못하며, 또한 다시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보살은 보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살이 아니니라. 범하는 것에 연(軟)ㆍ중(中)ㆍ상(上)의 세 가지가 있느니라. 만약 연과 중의 마음으로 범한다면 잃는다고 하지 않고, 증상심(增上心)에서 범하면 이것을 잃는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상(上)인가? 만약 상품의 네 가지 바라이를 자주 범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마음속에 부끄러움도 없고 스스로 뉘우치거나 자책하지 않으면 이것을 상범(上犯)이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비록 상품의 네 가지 일을 범하였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영원히 잃게 되는 것이 아니니라. 마치 비구가 네 가지를 범하면 곧 영원히 비구의 성품[比丘性]을 잃게 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비구가 네 가지를 범하면 다시 계체(戒體)를 받을 길이 없지만 보살은 비록 범하였다 하더라도 벗어나서 다시 받을 수 있으므로 같지 않느니라.
간략히 말한다면 두 가지 일에서 보살계를 잃게 되나니, 첫째는 보리의 원을 버리는 것이오, 둘째는 나쁜 마음을 더하는 것[增上惡心]이니라. 이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이 몸을 버리더라도 계는 끝내 잃지 않게 되느니라. 이로부터 세세생생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이 계를 만날 수 있으며, 혹시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좋은 벗을 만나게 되며, 혹 다시 받게 되더라도 새롭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보살계를 마땅히 범하고 범하지 않음과 가볍고 무거움의 모습이 연ㆍ중ㆍ상에서 서로 다른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014_0426_c_01L이와 같이 보살계에 머무는 이는 날마다 모든 부처님과 불탑과 불상에 공양하고 다음에 법과 법을 실행하는 사람 및 보살장(菩薩藏)인 대승 경전에 공양하고, 대중 스님들과 시방 국토에 머물고 있는 큰 지위에 머물고 있는 모든 보살들에게 공양해야 하느니라. 밤낮으로 삼보에 공양하되 그 역량을 따라서 한 생각 동안이나, 내지 한 번의 예불이나, 하나의 사구게송을 외우고 신심으로 공양하며 그만두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공경하지 않고 게으른 마음에 떨어진 이는 무거운 죄[重垢罪]를 범하는 것이 되고, 잘못하여 잊어버린 이는 가벼운 죄[輕垢罪]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보살이 싫어하거나 만족할 줄을 모르고 이로움에 탐착하여 마음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비록 이로움을 탐하더라도 항상 마음속에 뉘우치는 마음을 내되, ‘내 마땅히 정진하여 이 탐하는 마음을 제거하리라.’하여 극진히 자신의 마음을 잘 제어하면서 탐욕이 일어나도 작은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큰 탐욕을 끊는 것을 돕는다면, 이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상좌나 존경받을 책임 있는 사람이나 연세 든 웃어른과 동사(同師) 동학(同學)을 보고 교만심과 성내는 마음을 내어 일어나서 맞이하지도 않고 예배하지 않으며, 자리를 피해버리거나 설령 말을 하더라도 듣지 않고 묻더라도 진실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만약 교만심이나 화냄이나 어리석은 마음은 없지만, 게으르고 기억력이 없고 산란한 마음에서 그렇게 하게 되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만약 보살에게 단월(檀越:施主)이 자청하여 자신의 집이나 혹은 절[僧寺] 안에 와서 필요한 것을 공양하여 나누어 주려고 하는데, 보살이 교만하여 화를 내고 가볍고 천박하게 여겨, 가서 받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고, 게을러서 가지 않는다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014_0427_a_01L 그러나 병들었을 때, 미쳤을 때, 너무 멀거나 길이 험난할 때, 조복하여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늘어나게 하려고 할 때, 청을 받는 것을 잃어버렸을 때, 선업을 닦으려고 할 때, 들었으나 자세히 듣지 못했을 때, 청하는 사람이 서로 번거롭게 하는 것으로 알 때, 여러 사람의 뜻으로 스님들의 한도를 보호하려 할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다른 사람의 주변에서 금ㆍ은ㆍ유리 등의 온갖 보배 등의 필요한 물건과 땅 속에 있는 주인 없는 재물 등을 얻게 되면 모두 그것을 취하여서 되돌려 베풀어 줄 것을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나쁜 마음으로 화를 내어 취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만약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인연은 짓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거나, 게으른 마음으로 취하지 않게 되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마음이 미쳤거나 조복하여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늘어나게 하려고 할 때, 만약 받고 나면 반드시 애착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거나, 베풀어 주고 난 뒤 후회가 생기리라는 것을 알거나, 시주가 베풀었기 때문에 발광(發狂)하리라는 것을 알거나, 시주가 베풀고 난 뒤에 곤궁하게 될 것을 생각하거나, 시주하는 물건이 삼보의 소유인 줄을 알거나, 시주하는 물건이 도둑질해서 얻은 것인 줄을 알거나 받게 되면 차라리 고뇌를 받을 것이 더 많으리라는 것을 알거나, 이른바 왕난(王難)이나 도적의 난으로 죽거나 묶이고 갇혔다는 나쁜 소문이 유포되어 나라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외도가 법을 구하다가 도리어 비방하리라는 것을 생각하거나, 병들었거나, 미쳤거나, 조복하여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늘어나게 하려고 할 때, 앞에 있는 사람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 때, 앞에 있는 사람이 공경하지 않거나 법답게 받들지 않을 때, 앞에 있는 사람이 근기가 아둔하여 깊은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견을 낼까 두려울 때, 듣고 나서 도리어 본심을 깨뜨리거나 잃어버려 바른 법을 무너뜨리고 소멸시킬 줄을 알 때, 듣고 나서 반드시 그릇이 아닌 사람들에게 그 일을 떠벌리며 말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설하지 않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014_0427_b_01L악한 중생들이 금계를 범하여 허물어뜨리고 온갖 죄가 되는 짓을 하는 것을 보살이 보고 스스로 그들을 교화하여 착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쁜 마음과 화내는 마음으로 내버려 두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몸과 입과 마음을 맑게 계를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일으키지 않다가 나쁜 사람들이 금계를 범하고 훼손하며 온갖 죄행을 지은 것을 보고서야 극진히 자비심을 내기 때문에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미쳤거나, 조복하여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늘어나게 하려고 할 때, 여러 사람의 뜻으로 스님들의 한도를 보호하려고 할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014_0427_b_06L不犯者,若狂,若爲調伏滅惡增善,若有僧限護多人意,是名不犯。
보살이여, 부처님께서 바라제목차를 제정하시고 계율을 결정하시는 것은 믿지 않는 이를 믿게 하고, 이미 믿은 이는 더욱 늘어나게 하려고 하심이니, 이것은 성문계나 보살계가 평등하여 차이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성문들은 항상 스스로를 위하는 데에 수순하면서도 믿지 않는 이를 믿게 하고 이미 믿은 자는 늘어나게 하는데, 하물며 보살이 닦고 배우는 것은 항상 중생을 위하는 것이거늘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똑같아서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다른 이를 위하기 때문에 옷을 받을 수 있으며, 나아가 수많은 친척이 아닌 바라문이나 거사들에게도 힘을 다하여 구하게 되느니라. 옷이나 발우도 또한 그러하여서 다른 사람을 위하기 때문에 실을 빌어 베 짜는 사람에게 교사야의(憍奢耶衣)1)를 짜두게 하기도 하며, 금은 등의 백천 가지 보물을 거두어 모으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일들이 성문과는 다르느니라.
014_0427_c_01L 보살에게는 다섯 가지 옳지 못한 법이 있나니, 첫째는 아첨하고, 둘째는 사치하고, 셋째는 상(相)을 내고, 넷째는 이익으로써 이익을 구하고, 다섯째는 잘못된 직업[邪命]이니라. 이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절제하지도 않고, 쉬지 않는 이는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나, 옳고 옳지 못한 법을 알고 항상 그것을 제어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열반을 즐거워하고 번뇌를 두려워하는 것은 성문들에 비교하면 천만 배나 더 되어서 비유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성문들은 스스로 자신을 위한 것만 따르지만 보살은 항상 일체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보살이 비록 유루에 머물고 있지만 번뇌를 소멸하여 자재를 얻는 것이 아라한이 무루에 머무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 보살은 몸과 입의 업을 일으켜 스스로 잘 방호하며 다른 사람이 교만과 게으름의 죄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014_0428_a_01L 만약 스스로 방호하지도 못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교만과 게으름의 죄에 떨어지게 하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만약 스스로 방호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다른 이가 죄를 짓도록 방치해 둔다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외도가 출가하여 법답게 수행하다가 화를 많이 내는 악인을 만났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조복하여 나쁜 일일 없애고 좋은 일을 늘어나게 하려고 하거나, 저 외도가 옳지 못한 법을 짓거나, 저들이 싸우고 다투어 미워하는 것이 더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저 사람들이 끝내 참회를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때나, 저 사람에게 참회심을 일으키게 해도 저들이 더욱 교만심만 일으킬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다른 이와 함께 싫어하고 분노와 원한을 내어 다른 이가 법답게 참회를 구하여도 보살이 나쁜 마음으로 참회를 받지 않고 다른 이를 더욱 괴롭게 하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화내는 마음이 없으면서 다른 이의 참회를 받지 않는다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조복하여 나쁜 일을 없애고 좋은 일을 늘어나게 하려고 하거나, 나쁘고 옳지 못한 일일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대중[徒衆]을 거느리면서 단지 시중드는 일을 하고 의식(衣食)을 주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014_0428_a_21L菩薩,受畜徒衆,但爲給事及與衣食,是名犯。
014_0428_b_01L보살이 게으른 마음이 생겨, 때 아닐 적에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잠자는 것을 탐착하여 기대고 눕는 이는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병들었거나 미쳐서 다른 좋은 방편[巧便]이 없거나, 길을 걸어가고 있거나, 항상 제어하고 있을 때는 범하지 않는 것이 되느니라.
보살이 물들고 집착하는 마음으로 세속의 잡다한 일을 말하기 좋아한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잊어버리고 잘못 말하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물을 때 바른 마음으로 조금만 말하거나, 다르게 들은 것을 말하거나, 법에 관한 일을 말하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좌선하는 것만 좋아하여 다른 이에게 법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화내고 교만한 마음에서 하심하여 다른 이에게 법 받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게으른 마음에 법 받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병들었을 때나, 좋은 방편이 없거나, 저 사람이 교법을 따르지 않는 줄을 알거나, 자신에게 훌륭한 방편이 있어서 많이 듣고 그 마음을 섭수하였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욕계의 욕망을 일으켜 병에 대해 치료하고 소멸하는 법을 보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나, 항상 부지런히 욕망을 없애려고 하는 가운데 욕심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욕망과 같이 다른 나머지의 번뇌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만약 보살이 선(禪)을 탐미하고 공덕에 집착한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항상 욕망에 집착하는 것을 버리려고 하는 가운데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 같은 경우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하기를, ‘보살은 마땅히 성문의 법장을 듣고 받아 지니며 외워서는 안 된다.’고 하나니, 보살로서 이렇게 하는 것을 배우고 이렇게 말하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외도의 책에서도 오히려 배워야 하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말씀이겠는가? 성문을 조복하여 대승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의 법장은 한결같이 내버려 두고 성문의 경전을 독송하는 것을 탐내어 배우면 이는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014_0428_b_22L菩薩,法藏一向捨置,貪學讀誦聲聞經者,犯輕垢罪。
014_0428_c_01L보살이 부처님의 경장이 있는데도 부지런히 배우지 않고 이에 다시 외도ㆍ속인의 전적만을 배우는데 힘쓰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극히 근기가 날카로워 한 번 들으면 능히 다 지니며, 부처님께서 말씀한 바와 마찬가지로 취하여 사용하며 교화를 돕고 미묘한 변재로 부처님 법 밝히는 것을 도우며, 저 부처님의 법이나 불경의 뜻에 대하여 마음이 기울거나 동요되지 않으면 이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보살법장(菩薩法藏)은 깊고 깊어 비밀스러우며, 가장 참다운 의미(第一實義)의 부사의한 일은 순전히 제불보살의 경계’라는 것을 듣고, 이 의취 가운데 의심하고 비방하는 마음을 내어서 말하되, ‘이 뜻은 이익이 없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아니어서 능히 일체 중생을 돕거나 이롭게 하지 못한다.’고 이와 같이 비방한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결정적인 뜻을 사유하며 방편으로 말할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깊고 깊은 뜻을 들을 때 믿음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아첨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마음으로 믿음을 내기 위해 이와 같은 생각을 하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라. 나는 눈 먼 소경과 같아서 지혜의 눈이 없거늘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내가 어찌 비방하리오.’ 하며, 이와 같이 보살이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며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이지 내가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하면, 이와 같은 것을 올바른 행이니라. 만약 뜻으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비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음식을 위하여 화내고 나쁜 마음으로 자신을 찬탄하고 다른 이를 헐뜯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외도를 조복받기 위해서나, 교만을 조복하여 불법을 증장하게 하려 하거나, 믿지 못하는 이를 믿게 하고, 믿는 이를 더욱 증장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스스로 듣지 못했거나 또는 다른 사람이 부르는 일이 없었거나, 병들었거나, 선교한 방편이 없거나, 그가 법을 설하는 것을 들어도 뜻이나 이치를 따르지 못할 것을 알 때나, 설하는 이에게 이미 어려움이 있을 알았거나, 그가 설하는 것에 다시 달리 듣는 것이 없는 줄을 알았거나, 총지(總持)를 얻어 스스로 많이 들었거나, 부지런히 선근을 닦고 있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와서 보살에게 어떤 일의 인연이 있다고 청하게 되면 마땅히 힘써서 경영해 주어야 한다. 함께 가고 오며 경영하며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 경영하는 일이 끝나면 재물을 잘 수호하고 다툼을 화합하며, 음식을 잘 경판(經辦)하여 복이 되고 덕이 되는 업을 닦아야 한다. 만약 한두 가지의 일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게을러서 하지 않으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병들었을 때, 선교한 방편이 없을 때, 자신에게 일이 있고 저쪽에서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서로 청하지 않을 때, 서로 이익되는 것이 없는 것일 때, 조복하여 나쁜 일을 없애고 착한 일을 늘어나게 하려 할 때, 다른 이가 청하지 않을 때, 다른 이에게 보답하기 위해 부지런히 선근을 닦을 때, 자신이 어리석도 우둔하여 일의 차례를 잃을까 염려될 때, 여러 사람의 뜻으로 스님들의 한도를 보호하려고 할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병든 중생을 보고서도 나쁜 마음과 화난 마음으로 돌보아주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게을러서 보살펴주지 않는다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014_0429_a_18L若菩薩,見病衆生,以惡心瞋心不瞻養者,犯重垢罪。若懶惰不養,犯輕垢罪。
014_0429_b_01L 그러나 자신에게 병이 있거나, 좋은 방편이 없을 때, 다른 이에게 보살펴 달라고 청할 때, 저 병든 사람에게 권속이 있을 때, 병든 사람이 스스로 경영하고 공급할 수 있는 것을 알 때, 병이 오래되어 사람들이 일어나고 머무는 것을 할 수 있을 때, 증상선근(增上善根)을 부지런히 닦으려 할 때, 자신이 어리석도 우둔하여 일의 차례를 잃게 될까 염려될 때, 병을 돌보다가 병 이외의 것을 잃게 될 때, 가난하여 고뇌할 때도 이와 같나니, 이러한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중생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면 보살은 마땅히 그 시주의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나쁜 마음과 화내는 마음으로 은혜에 보답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게을러서 보답하지 않는다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자신에게 능력이 없거나 방편이 없을 때, 조복하여 나쁜 일을 없애고 착한 일을 늘어나게 하려 할 때, 은혜에 보답하려고 생각해도 시주가 받지 않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친척이나 이웃사람이 죽어서 재물을 잃게 되어 여러 가지로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살이 보고도 나쁜 마음과 화난 마음으로 가서 위로하고 깨우쳐 주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먼저 보살을 청하여 말하였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음식을 구하는데도 보살이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자신에게 마땅한 물건이 없을 때, 부정한 물건을 구할 때, 조복하여 나쁜 일을 없애고 착한 일을 늘어나게 하려 할 때, 왕이 법으로 제정해 두었을 때, 스님의 한도를 보호하려고 할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014_0429_c_01L보살은 제자를 수시로 가르치고 일깨워야 하나니, 만약 제자가 궁핍하게 되면 신심 두터운 사람에게 권하여 공급해 주게 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나쁜 마음과 화난 마음으로 가르치지 않고 공급해 주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게을러서 가르치거나 공급해 주지 않으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조복하여 나쁜 일을 없애고 착한 일을 늘어나게 하려 할 때, 스님들의 한도[分限]를 보호하려고 할 때, 병들었을 때, 방편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라고 청하였을 때, 제자가 복덕이 있어서 능히 공양할 수 있을 때, 제자가 본래 외도여서 착한 마음을 좋아하는 것이 없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화내는 마음과 나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뜻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게으르고 방일하여 다른 이의 뜻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법답지 않은 일이거나, 병들었을 때, 여러 사람의 뜻으로 스님들의 한도를 보호하려고 할 때, 외도일 때, 조복하여 나쁜 일을 없애고 착한 일을 늘어나게 하려 할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저 사람이 찬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을 알았을 때, 병들었을 때, 방편이 없을 때, 조복하여 나쁜 일을 없애고 착한 일을 늘어나게 하려고 할 때, 스님들의 한도를 보호하려고 할 때, 칭찬하는 것을 들으면 다시 교만을 내게 될 것을 알 때, 저 사람에게 실제로 덕이 없을 때, 말로써는 착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착한 뜻이 없을 때, 외도일 때, 칭찬일 때, 다다르지 못했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은 많은 대중이 함께 하는 곳에서 권속 중에 법답지 않은 일을 하는 이를 보면 마땅히 꾸짖거나 내보내어야 하느니라. 화난 마음이나 나쁜 마음을 내버려두고 꾸짖거나 다스리지 않는 이는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며, 게으르고 방일해서 가르치거나 꾸짖지 않는 이는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그 사람이 나쁜 성질이 강하여 화를 내며 가르침이나 꾸짖음을 받지 않는 줄을 알 때, 가르치고 꾸짖을 기회를 기다릴 때, 대중의 화합을 깨뜨릴까 염려될 때, 그 사람이 마음이 질박하고 곧으며 숙세에 익힌 나쁜 습기가 적어서 범한 것을 뉘우치며 부끄러워할 줄 알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014_0430_a_01L보살이 신통 변화가 있으면 마땅히 중생을 위해 때에 따라 변화를 나타내되, 혹 방편으로 두렵게 하여 중생이 믿는 마음을 내게 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믿음 있는 보시를 두려워하여 신통변화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그러나 사람들이 깊이 나쁜 법과 사견에 집착하고 있거나, 외도이거나, 현성을 비방하고 욕하거나, 삿된 소견에 집착해 있거나, 미쳤거나, 병들었을 때는 범하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이 보살계를 수지하면 자신의 몸을 위하지 않고 오직 다른 이를 이롭게 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장엄하게 되느니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이것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성취하신 바이며, 나아가 시방의 모든 불보살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보살이 큰 자비로 육도 중생을 삼도 팔난 등 온갖 고뇌에서 건져내어 큰 은혜를 베풀되, 시방세계에서 이익을 입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014_0430_b_01L 보살 우바새가 되려고 하는 이가 오계위의(五戒威儀)에 방일하여 스승으로부터 받을 곳이 없거나 스승이 없으면 마땅히 불상(佛像)을 향하여 스스로 서원을 세워 받는다. 보살 우바새는 위의를 마땅히 이와 같이하여 예배를 드리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이와 같이 말한다.
“저 아무개는 시방의 부처님과 큰 지위에 머무시는 모든 보살들께 아뢰옵니다. 이제 모든 부처님 앞에서 일체의 계(戒)를 받아서 일체 보살계와 우바새 오계위의를 배우며, 온갖 선법을 수용하고자 합니다. 보살계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계이니, 이 계는 과거의 모든 보살들이 이미 배웠으며, 미래의 모든 보살들이 마땅히 배울 것이며, 현재의 모든 보살이 이제 배우는 것이므로 저도 또한 이와 같이 배우고자 하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도 또한 이와 같이 말하고 마친다. 그 나머지 모든 일은 앞에서 널리 말한 바와 같다.
014_0430_c_01L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에 네 명의 큰 성문과 여섯 명의 나한[應眞]에게 말씀하셨다.
014_0430_c_01L佛臨涅槃勅四大聲聞及六應眞:
“내가 멸도에 든 뒤에 이와 같은 참다운 법 가운데 만약 출가한 비구ㆍ비구니[二衆]가 금계를 깨끗이 잘 지키거나, 재가의 우바새ㆍ우바이[二衆]가 힘의 많고 적음에 따라 마음으로 점차 가깝게 하여 상계(上戒)를 지키는 이는 방사와 침상과 이불과 의복과 음식 등 온갖 도를 수순하고 돕는 기구를 만들어 사방승(四方僧)과 모든 현성들에게 베풀어 주어야 한다. 너희들은 모두 마땅히 청을 받아들일지니, 만약 받지 않는 이는 죄를 얻으리라.”
이로써 살피건대 현성이 멀리 있지 아니하므로 지성에 감응하여 곧 응하느니라. 만약 공덕을 짓고자 하면 먼저 마땅히 힘을 다하여 상계(上戒)를 수지할지니라. 그런 후에 지극한 마음으로 사방승과 모든 현성을 청하여라. 만약 몸을 마칠 때까지 할 수 없으면 하루 낮 하룻밤에 이르더라도 괜찮으니라.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는 이는 공양을 베풀 때 곧 받는 것이 끝나면 곧 그칠지니라. 이 모든 현성이 모두 청을 받고 오게 되면, 범한 것이 있을 때는 곧 법답게 참회하여야 한다. 이 일체 보살이 마땅히 돌길라(突吉羅)2)의 죄를 범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대소승의 사람들을 향하여 능히 해설해 주어야 한다. 참회를 받을 수 있는 이는 법답게 참회해 주어야 한다.
만약 보살이 증상(增上)의 번뇌로 바라이법을 범하였다면 율의계(律儀戒)를 잃게 되나니, 마땅히 다시 받아야 한다. 만약 중간의 번뇌로 바라이법을 범한 이는 마땅히 세 사람이나 세 사람 이상 되는 대중을 향하여 길게 꿇어 합장하고, 참회해야 하는 돌길라의 죄를 많이 지은 이는 이와 같이 말해야 한다. ‘대덕은 기억하소서. 저 아무개는 보살의 계율을 버리고 일컫는 바와 같은 일의 돌길라 죄를 지었습니다.’ 나머지는 비구 돌길라죄의 참회법을 설한 것과 같다.
만약 하급(下級)의 번뇌로 바리이법과 그 나머지를 범한 이는 한 사람을 향하여 세 가지 예문(禮文)으로 참회하여야 한다.
014_0430_c_22L若下煩惱犯波羅夷處法及餘所犯,向一人懺,三禮文:
014_0431_a_01L“원하옵건대, 시방 법계의 세성(世性)인 육도에서 삼업으로 지은 온갖 죄장의 더러움으로 미혹된 중생들이 전도(顚倒)의 산이 무너지고 사류(四流)의 나루가 마르며, 평등의 도에 올라 무위의 나라에 들어가서, 칠처팔회(七處八會)의 노사나(盧舍那) 부처님과 시방 국토의 다함 없는 모든 묘각존(妙覺尊)들에게 귀명(歸命)하며 공경하고 절하옵니다.
원하옵건대, 시방 법계의 세성인 육도에서 작은 마음으로 집착하여 전도된 중생들에게 지혜의 빛 두루 비추어 전도된 집착을 순식간에 끊어 없애고, 바른 지혜에 머무는 생각을 깨달아 미래제가 다하도록 대승을 따르며, 칠처팔회의 보현 등의 성중들과 시방 국토의 모든 현성승(賢聖僧)들께 귀명(歸命)하며 공경하고 절하옵니다.”
넷째, 만약 제가 아란야처에 이르렀을 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거나, 혹 나쁜 귀신이나 독룡이 와서 나를 잡아먹으려 해도 저의 마음이 안온하고 또한 두렵고 무서움이 없어지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바다를 건너고자 바다 한 가운데 이르렀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고 파도가 크게 쳐서 건너려는 사람이 매우 두려워하였지만 바람이 곧 안정되어 바로 저 언덕으로 건너가서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이, 원컨대 저도 또한 그러하여 속히 무상보리의 저 언덕에 이르게 하소서.
014_0431_b_01L다섯째, 원컨대 제가 야란야처에 이르렀을 때, 만약 병이 들게 되면 모든 하늘들이 제가 있는 곳에 와서 저희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여 마음으로 후회하는 바가 없게 하소서.
014_0431_a_23L五者願我到阿蘭若處,若當病時,願得諸天來至我所,教導我等使心不悔。
저는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 이 몸 가운데 네 마리 독사가 있는데, 그 속에 함께 머물고 있으니 마치 네 마리가 한 동굴 속에 함께 살고 있는 것과 같다. 뱀이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각자 서로 말하기를 ⧼내가 먼저 나갈 테다.⧽라고 하며 굴 안에서 다투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굴 안에서 죽었다. 화를 내며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네 마리가 함께 멸망하게 된 것이다. 나도 지금 네 마리의 독사가 서로 화를 내고 다투면서 내 몸 속에 있다.’
제가 헤아릴 수 없는 겁으로부터 나고 죽음에 유전(流轉)하여 백생 천생 무량 억생(億生) 동안 육취(六趣)에 떨어져 서로 다른 과보를 받고, 혹은 아귀 축생이 되어 이와 같이 항상 괴로움을 받아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생각을 좇아 미혹하여 스스로를 얽어매고 성스러운 길을 보지 못하여서 열반의 문을 장애하고 감로의 문을 닫았으며, 온갖 착한 길을 막고 정법을 듣지 못하여 큰 바다에 침몰하였으니, 이와 같은 고통과 죄가 있나이다. 이제 모두 참회하여 오체투지하옵니다.’ 이와 같이 오체투지하기를 일곱 번을 그렇게 한다.
014_0431_c_01L마땅히 오체투지할 때 이와 같이 말하여야 한다. “원컨대 내 몸의 헤아릴 수 없는 독을 제거하고, 헤아릴 수 없는 삿되고 어리석은 온갖 독을 뽑아내어 버리고, 무량하며 삿되고 어리석은 미혹의 티끌을 뽑아내어 버리고, 마음과 뜻이 청정하여 육념(六念)을 성취하며, 제가 아란야처에 이르러 마음에 무섭고 두려움이 없어서 속히 보리에 도달하게 하소서. 열반의 문을 열고 감로의 문을 나타내어 지옥의 문을 막고 삼악도를 닫으며, 삼독의 뿌리를 뽑아내고 삼계의 그물을 빠져나오며, 삼락(三樂)을 얻고 삼과(三果)를 증득하여 곧바로 생사의 위험을 뛰어넘고 마땅히 지혜를 얻어 최후신(最後身)을 여의어 속히 보리에 이르게 하소서.”
부처님 앞에서 스승을 청할 때는 이와 같이 아뢰어야 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가섭이시여, 친히 부처님 앞에서 아란야법을 받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증명하는 스승이 되어 주시고 증지(證知)하여 주소서. 제가 사십오일 동안 고행을 행함에 뜻이 물러서지 않게 하소서. 만약 물러서게 되면 저는 곧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고, 모든 하늘들을 속이는 것이 되어 피안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됩니다. 대덕은 마땅히 증명하소서.”
청을 받은 스승은 다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장로께서는 일심으로 생각하여 주소서. 이제 부처님 전에서 이러한 서원을 세우니, 청하옵건대 대덕께서 증명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느니라. 그대가 만약 물러서게 되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되어 스스로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면할 수 없게 되리라. 그대가 진실로 아란야행을 이루고 아란야지(阿蘭若智)를 얻기 위해 이와 같이 받아 지니겠느냐?” 대답해 말하기를,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세 번 말한다.
대덕 앞에 길게 꿇어 앉아 이와 같이 세 번 아뢴다. “대덕은 일심으로 생각하소서. 이제 대덕을 스승으로 청합니다.” 이와 같이 세 번 여쭙는다.
014_0431_c_21L長跪大德前,如是三白:“大德一心念!今請大德師。”如是三白。
014_0432_a_01L대덕은 이와 같이 말한다. “장로는 일심으로 생각하십시오. 그대는 이제 위없는 마음을 내었으니 법답게 받아 지니고 사용하여야 합니다. 부정한 손으로 만지거나 가지고 승방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마땅히 신발을 벗는 곳에 모아두어야 하고, 맨 땅에 가깝게 하면 안 됩니다. 만약 재가인[白衣]의 집에 들어갈 때는 뒤쪽에나 중간 앞에 두고 나아가야 합니다. 혹 공양을 받을 때나 여러 가지 인연이 있어 재가인의 집에 갈 때는 마땅히 세 번 흔들어야 합니다. 세 번 흔들어도 나오지 않으면 다섯 번까지 흔들고, 다섯 번 흔들어도 나오지 않으면 일곱 번까지 흔들고, 일곱 번 흔들어도 나오지 않으면 다시 다른 집에 가야 합니다. 나아가 일곱 집에 이르러도 얻지 못하면 이 가운데 두 번째, 세 번째도 또한 이와 같이 말하여야 합니다.”
“장로는 일심으로 생각하십시오. 비구 아무개가 우바새(優婆塞) 오계(五戒)의 위의(威儀)를 갖춘 사람이 되어 어떠한 인연으로 살면 날이 다 찬 뒤에도 죽지 않고 지옥에도 떨어지지 않게 됩니까? 시방의 부처님과 대가섭께 아뢰오니, 아무개의 수표(竪標)를 잘 들어 주소서.” 이와 같이 세 번 아뢰어 마치면 표를 잡고 표를 세우는 것이 끝난다.
다시 이와 같이 말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사방의 맑은 행을 하시는 대덕(大德)께서는 모두 증지(證知)하소서. 아무개가 모든 하늘들을 속이지 않았지만 저 언덕에 도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법다운 자리와 법다운 석장이 모두 구족하였기에 자리를 결정하였으며, 온갖 아란야의 비구들이 하는 것처럼 또한 결좌(結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세 번 아뢰고 여섯 번 절을 한다.
014_0432_b_01L만약 승상을 잡으려고 할 때는 마땅히 네 가지 생각을 하여야 한다. 첫째는 내 몸 속의 것은 모두 무상하여 마땅히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괴로움의 몸[苦身]을 잘 수행하고 익히면 공지(空智)가 스스로 이르게 되므로 마땅히 그것을 닦아야 한다. 셋째는 마땅히 인욕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넷째는 환희심을 내어야 한다. 환희심을 내면 속히 보리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면, 저쪽을 향해 소나 호랑이나 이리가 크고 작은 소리를 지르거나 음욕의 소리나 자아 끄는 소리를 내더라도 모두 다 멀리 여의게 된다. 이러한 온갖 소리를 여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고 생각이 단정해지나니, 온갖 티끌을 제거하고자 할 때는 두 가지의 생각을 지어야 한다. 첫째는 ‘내 몸 속에 안온(安隱)한 선정을 얻어 피로함이 생기지 않고 속히 보리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하는 것이고, 둘째는 ‘마땅히 한가하고 고요함을 얻어 마음이 여러 생각으로 혼란됨이 없으며, 육식(六識)이 안온하여 멸진정(滅盡定)을 얻게 하소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난 뒤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경을 드리되 열 번까지 한다.
다시 서서 합장하고 곧 세 가지 생각을 지어야 한다. 첫째는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계를 생각하는 것이고, 셋째는 선정을 생각하는 것이다.
014_0432_b_08L立住合掌便作三念:一者念佛、二者念戒、三者念禪定。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승상을 향하여 조용히 앉아 다시 여섯 가지를 생각한다.
014_0432_b_10L作此念已,便向繩牀安詳而坐。復作六念:
첫째는 제불이 호념하시므로 나의 염(念)이 성취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014_0432_b_11L一者念諸佛護念我念成就。
둘째는 나의 계신(戒身)이 청정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계라는 것은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이고, 염이라는 것은 범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계서(戒序)에서부터 게송까지 이르고, 네 가지 일[四事:四波羅夷]을 생각하여 열세 가지 승잔(僧殘)까지 이른다. 이 열세 가지 승잔을 생각하고 나면 두 부정[二不定]과 서른 가지 니살기바일제와 아흔네 가지 바라제사니(波羅提舍尼)와 중다학법(衆多學法)과 일곱 가지 다툼 없애는 법[滅諍法]을 성취하게 된다.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두 실답게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는 오욕은 모두 무상한 것이며, 큰 우환의 근본이며, 혼침하게 하는 우두머리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014_0432_b_17L四者念五欲皆是無常,大患之根本,昏網之元首。
다섯째는 지옥의 고뇌를 생각하여 항상 선업을 부지런히 닦아 이러한 고통을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나는 이미 출가하였으므로 마땅히 삼가고 신중히 하여 나쁜 일을 버리고 좋은 일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014_0432_b_19L五者念地獄之苦惱,當勤修善遠離此苦。我已出家,宜應謹愼棄惡修善。
여섯째는 지혜를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내게 지혜가 있으면 곧 마땅히 잘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 지혜를 갖추어 일 없고 분별할 것도 없는 이는 위없는 도를 얻게 된다. 이러한 여섯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마음을 편안히 하며 앉아서 선법(禪法)에 의지하여 관찰할 수가 있다.
014_0432_c_01L 만약 우바새가 자리를 옮기려고 할 때는 마땅히 세 가지를 생각하여야 한다. 첫째는 내가 걸어갈 때 땅 위에 꿈틀거리는 벌레나 개미들이 많이 있다가 만약 잘못하여 밟혀 죽게 되면 어떤 죄가 있게 될까? 잘못 밟혀 죽게 되는 것은 모두 하늘에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마땅히 법답게 걸어가고 법답게 손을 받혀 석장을 잡고, 위의를 가지런히 하고 조용히 하면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는 걸어갈 때 뒤돌아보거나 머리를 흔들거나 손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세 가지의 염성취(念成就)라고 한다.
첫째는 ‘내 몸 속에 팔만의 벌레가 있으니, 벌레들이 이것을 먹고 모두 안온을 얻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얻은 음식을 마땅히 조금만 먹으리라. 적게 먹는 것은 내 몸을 가볍게 하고, 몸이 가벼우면 온갖 욕망도 또한 적어지리라. 욕심이 적어지면 속히 보리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는 ‘나는 아름답게 꾸미려고 하지 않으리라. 다만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하게 되면 모든 선이 성취될 것이며, 만약 선이 성취되면 위없는 지혜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는 내가 음식을 먹을 때 시방에 배고픈 이가 모두 배불러지기를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