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세존께서는 무량한 백천의 대중들이 공경하여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 대중 가운데 적조음(寂調音)이라는 한 천자가 있었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의 옷을 걷어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014_0458_b_01L 세존과 문수사리 법왕자가 설법하시는 힘 때문에 악마들이 편안함을 얻지 못하고 모든 악마의 궁전에 숨어서 나타나지 못합니다. 모든 삿된 무리와 외도들을 항복 받고, 증상만(增上慢)의 사람들은 교만한 마음을 여의며,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며, 이미 발심한 사람들에게는 불퇴전(不退轉)을 얻게 하며, 거두어 줄 수 있는 이는 곧 거두어 주고, 교화로써 섭수되지 않은 이에게는 방편으로 조복하여, 부처님의 바른 법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십니다.”
보상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이곳으로부터 서쪽으로 일만 부처님의 국토를 지나가면 한 세계가 있는데, 이름을 사바(娑婆)라고 하며, 그곳에 여래가 계시니 명호를 석가모니ㆍ응공ㆍ정변지라고 하는데 지금 현재에도 설법하고 계시며 이 일은 저 여래께서 백호상에서 놓으신 광명이니라. 이 광명이 일만 부처님의 국토를 꿰뚫고 이 세계에 와서 비추고 있는 것이니라.”
014_0458_c_01L이때에 문수사리가 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014_0458_c_01L時文殊師利白彼佛言:“唯然世尊!”
광명을 보고 난 뒤, 문수사리 법왕자가 곧 일만 명의 보살들과 함께 보상 부처님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드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마치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듯한 잠깐 동안에 일만 보살들과 함께 이 세계에서 홀연히 사라져 사바세계에 이르러 허공 중에 머물렀다.
“세존이시여, 즐거운 마음으로 문수사리와 저 보살마하살들을 뵙기를 원합니다. 세존이시여, 저 훌륭한 장부는 구해주는 이 없는 이를 구해 줍니다.”
014_0458_c_13L“世尊!願樂欲見文殊師利及彼菩薩摩訶薩衆。世尊!彼善丈夫是無救者救。”
이렇게 말하고 나니 즉시 문수사리 법왕자와 일만 보살이 공중에서 홀연히 아래로 내려 왔다.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기를 마치고 문수사리가 곧 자신의 힘으로 연화 사자좌를 만들어 그 위에 앉으니, 일만 보살들도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드리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세존 앞에서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저곳에서 설하는 법은 탐욕을 생기지 않게 하고 탐욕을 다하게 하지 않으며, 진에(瞋恚)가 생기지 않게 하고 진에가 다하게 하지 않으며, 우치(愚癡)가 생기지 않게 하고 우치가 다하게 하지 않으며, 번뇌가 생기지 않게 하고 번뇌가 다하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릇 법이란 생겨남도 없고 다함도 없기 때문이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저 국토의 중생들은 탐욕 등의 온갖 번뇌가 없는데도 생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합니까?”
014_0459_a_11L天子言:“文殊師利!彼土衆生無貪欲等諸結使生與滅耶?”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014_0459_a_12L文殊師利言:“如是。”
천자가 말씀드렸다. “만약 그렇다면 저 부처님의 설법은 무엇을 끊게 합니까?”
014_0459_a_13L天子言:“若如是者,彼佛說法爲何所斷?”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법이란 본래 생함이 없는데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무슨 까닭인가? 저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은 아는 것도 없고, 끊을 것도 없고, 닦음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느니라. 보주세계의 중생들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귀하게 여길 뿐 방편제(方便諦)를 귀하게 여기지 않느니라.”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의(義)라고 하는 것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컬을 수 있는 것이며,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니라. 처소의 모습도 없고 처소가 아닌 모습도 없으며, 일상(一相)도 아니고 무상(無相)도 아니며, 그림자나 메아리의 모습[影響相]도 아니고, 상이라 할 수도 없고 상 아니라고 할 수도 없으며, 다하는 것도 아니고 다함이 없는 것도 아니며, 타락하는 것도 아니고 타락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것을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014_0459_b_01L천자여, 의라고 하는 것은 마음도 아니고 마음이 상속하는 것도 아니며, 자취도 아니고 자취가 아닌 것도 아니며, 차안(此岸)도 아니고 피안도 아니며 중류(中流)도 아니니 이것을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명칭도 없고 문자처(文字處)도 없으니 이것을 제일의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온갖 음성이 모두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것은 마땅히 알아야 하고, 이것은 마땅히 끊어야 하고, 이것은 마땅히 닦아야 하고, 이것은 마땅히 증득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곧 상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곧 취착(取着)이고, 이것은 곧 희론이고, 이것은 곧 지음이 있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정정진이라 하지 않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어떤 평등이 깨끗함ㆍ더러움[淨垢]과 더불어 평등한 것입니까?”
014_0459_c_12L天子言:“文殊師利!何等如與垢淨等?”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과 같은 것이니라. 왜냐하면 열반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천자여, 질그릇 속의 공이나 보배 그릇 속의 공이 둘도 없고 차별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천자여, 더러운 공[垢空]이든 깨끗한 공[淨空]이든 함께 하나의 공이어서 둘도 없고 차별도 없느니라.”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만약 보살이 온갖 진리[諦]에서 정진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성문을 위하여 법을 설할 수 있겠느냐? 무슨 까닭인가 하면, 보살이 진리를 닦으면[修諦] 반드시 하는 바가 있으며, 성문이 진리를 닦으면 곧 하는 바가 없느니라. 보살이 진리를 닦으면 좋은 방편이 있고, 성문이 진리를 닦으면 좋은 방편이 없느니라.
천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큰 상인의 우두머리[大商主]을 떠나서 홀로 광야를 지나게 되면 마음에 놀라움과 두려움과 나약함을 품고 지나가게 되느니라. 천자여, 성문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사를 두려워하여 마음 속에 두려움을 품어 이 세계에서 마음을 되돌리는 경우가 없고, 또한 중생을 위하는 것도 없이 마음으로 생사의 광원(曠遠)함만을 살피고 있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법에 방편이 없고 둘이 아닌 홀로 온갖 진리를 닦기만 하느니라.
천자여, 마치 저 큰 상인이 온갖 재보를 많이 갖추고 자산을 넉넉하게 하여 광야를 건너와서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천자여, 보살들도 큰 상인과 같아서 대자대비를 갖추고 법의 이익을 성취하여 적멸을 구족하며,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자산을 조복하여 육도(六度)의 배에 싣고 사섭(四攝)의 활과 화살을 잡고, 방편을 성취하며 불법을 위하여 온갖 진리를 닦느니라.
천자여, 비유하면 개 껍질에다 수만(須漫)ㆍ첨복(瞻蔔)ㆍ파사가(婆師迦)의 향을 사용하여 그을려서 비록 변하여 향이 되게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나 하늘들이 좋아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느니라. 성문이 진리를 닦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원(願)이 만족하지 않았는데도 반열반(般涅槃)에 들며, 다문(多聞)과 정혜(定慧)와 해탈과 해탈지견의 향을 생기게 하지 못하며, 또한 번뇌가 의지하는 근원적 결박[習結]을 끊지 못하며, 사람과 천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되지 못하느니라.
014_0460_b_01L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겁토록 진리의 법[諦法]을 닦는 것으로 자신을 훈습하여 닦으므로 그 중간에 반열반에 들지 않으며, 온갖 발원이 만족하면 널리 위없는 맑은 향인 다문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의 공덕향을 생기게 하여 번뇌가 의지하는 근원적 결박을 끊고, 모든 사람과 천신과 아수라 등이 좋아하고 즐거워 바가 되느니라.”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저 성문들은 믿음이 견고하지 않지만 다른 이를 따라 믿지 않는 것이 아니고, 법이 견고하지 않지만 법계와 다르지 않으며, 팔인(八人:八忍)이 아니지만 여덟 가지 삿됨[八邪]을 제도하고, 수다원이 아니지만 온갖 나쁜 길[惡道]의 두려움을 여의며, 사다함이 아니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가고 옴을 나타내고, 아나함이 아니지만 지나간 일체법 속에 이르며, 아라한이 아니지만 삼천대천세계의 이로움과 양육을 실답게 받느니라.
성문이 아니지만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명료하게 알고[了解], 욕망에 물드는 것을 여의지 않지만 다시 욕망의 불길에 타지 않고 취착하는 곳에서 모든 희망을 여의며, 진에(瞋恚)를 여의지 않지만 화냄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일체 중생에게 성냄을 일으키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여의지 않지만 어리석음에 가려지지 않고 일체법에 대한 모든 어둠을 여의며, 번뇌의 동요를 여의지 않지만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번뇌를 끊느니라.
결정위(決定位)에 오르지 못했으나 새로운 생을 받지 않으며, 중생을 제도하지만 ‘나’라는 상이 없으며, 받는 것이 없으나 끝내 시은(施恩)에 보답하며, 은혜도 생각도 없으나 모든 염처(念處)를 닦으며, 생함도 멸함도 없으나 온갖 정근(正勤)을 닦으며, 몸과 마음을 여의었으나 모든 신통을 일으키며, 일체 중생의 신통을 만족케 하기 위하여 온갖 신통을 닦느니라.
여러 가지 번뇌에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며, 나쁜 소문에 더렵혀지지 않으며, 온갖 곳에 유희하며 많이 듣고 마땅히 변론하며, 지견이 용맹스럽고 날카로워서 온갖 어둠을 없애며, 불같이 타오르는 지혜로 법을 설함에 걸림이 없고, 깊이 총지(總持)에 들어가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돌아보시고 생각하시느니라.
“천자여, 삼승의 성품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헤아릴 수 없는 생사 등을 섭수하여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몸을 받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014_0461_a_17L“天子!以三乘性調伏聲聞,以攝無量生死等安慰一切衆生故受身調伏菩薩。
014_0461_b_01L 공덕의 자량을 무너뜨림으로써 성문을 조복하고, 공덕 자산을 널리 쌓고 모아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지 않기를 원하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즐거이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일체 중생을 버리고 일체 불법을 성취하지 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대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생각하며 제불의 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사소한 행동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일체 세간에 두루하는 행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온갖 악마를 버리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일체 세계의 온갖 악마가 두려워하고 외도의 온갖 이론(異論)을 꺾어 절복시키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자기의 마음을 성취하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위없는 보리심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자기 자신을 밝게 비추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일체 세계의 중생의 몸과 불법을 두루 밝게 비추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차제 방편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한 찰나심(刹那心)의 방편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삼보의 종자를 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삼보의 종자를 키우고 자라게 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기와나 돌그릇을 깬 이를 다스리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금이나 은그릇을 깬 이를 다스리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부처님의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을 성취하지 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십력과 사무소외와 부처님의 십팔불공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육바라밀과 방편과 사섭(四攝)을 성취하지 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육바라밀과 방편과 사섭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느니라.
홀로 숲 속에 머물며 멀리 여의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원림(園林)과 대관(臺觀)을 좋아하고 법락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번뇌의 습기를 끊는 것으로 성문을 조복하고, 번뇌의 습기를 끊지 않는 것으로 보살을 조복하며, 유량(有量)ㆍ유사의(有思議)ㆍ유등(有等)ㆍ유수(有數)로써 성문을 조복하고, 무량ㆍ부사의ㆍ무등ㆍ무수로써 보살을 조복하나니 이것을 조복이라 하느니라.”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그대는 이러한 보살의 조복을 잘 말하였도다.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내가 이 뜻을 다시 비유로써 자세히 밝히리라.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은 몸이 마치도록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을 찬탄하고, 다시 어떤 사람은 큰 바닷물을 찬탄한다면 문수사리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한가? 이 두 가지의 물을 서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014_0462_a_01L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번뇌를 알고 번뇌를 끊는 것을 조복이라 하느니라.”
014_0462_a_01L文殊師利言:“若知煩惱斷煩惱者,謂是調伏。”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어떤 것이 번뇌를 조복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번뇌를 아는 것입니까?”
014_0462_a_02L天子言:“文殊師利!云何調伏煩惱?云何知煩惱?”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014_0462_a_03L文殊師利言:
“망상(妄想)과 분별과 기억한 생각[憶想]으로 순리에 맞지 않게 저 아(我)가 당연히 있다고 사유하고 , 행(行)과 견(見)을 함께 끊고, 전도(顚倒)와 무명(無明) 등에 얽히면 이와 같은 것을 번뇌에 얽히고 집착된 것이라 한다. 만약 망상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고 기억한 생각에 의지하지 않고 순리에 맞게 피아를 헤아려 행과 견이 함께 무명 등에 전도되어 얽히는 것을 끊는 것을 멸번뇌(滅煩惱)라 하며, 억상과 구경조복(究竟調伏)이 없는 것을 천자여, 이것을 구경조복이라 하느니라.
만약 보살이 지혜로써 이와 같이 알면 번뇌가 아주 작아서, 거짓되고 헛된 것에 끌리지 않고, 공하여 주체가 없으며 나가 없고 예속되는 바가 없고, 좇아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없으며, 이르는 곳도 없고 방처(方處)도 없느니라.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양쪽의 중간도 아니며, 쌓고 모으는 물건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형태도 아니며, 형상도 아니고 얼굴도 아니며, 처소도 아니니, 이와 같이 번뇌를 근본적으로 멸하게 되느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어떤 것이 번뇌의 종류이며 성질이며 생겨나는 바입니까?”
014_0462_a_16L天子言:“文殊師利!云何爲煩惱種性所生?”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망상으로부터 번뇌가 생기느니라. 만약 망상이 없으면 번뇌도 없느니라. 번뇌가 없기 때문에 곧 선굴(禪窟)이 없으며, 선굴이 없으므로 곧 머무는 바가 없으며, 머무는 바가 없으므로 뇌해(惱害)가 없으며, 뇌해가 없으므로 곧 구경조복이니라.”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시여, 번뇌가 있기 때문에 조복하는 것입니까, 번뇌가 없기 때문에 조복하는 것입니까?”
014_0462_a_21L天子言:“文殊師利!爲有煩惱故調伏?爲無煩惱故調伏?”
014_0462_b_01L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천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꿈 속에서 독사에게 물려서 고통스러워하다가 곧 해독시키는 약을 먹었는데, 약을 먹었기 때문에 독기가 없어졌다고 하자. 천자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한가? 이 사람이 실제로 뱀에게 물린 것인가?”
천자가 말씀드렸다. “문수사리여, 실제로 뱀에게 물린 것이 아니므로 독을 제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014_0462_b_05L天子言:“文殊師利!如實不被螫,除亦如是。”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014_0462_b_06L文殊師利言:
“천자여, 일체 현성이 조복하시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천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번뇌가 있기 때문에 조복하는 것입니까, 없기 때문에 조복하는 것입니까?’고 하였거니와, 천자여, ‘아(我)’와 ‘무아’와 같이 번뇌가 있음이나 번뇌가 없음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아’와 ‘무아’도 역시 없는 것처럼 번뇌가 있음이나 없음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아’이면서 곧 ‘무아’이기 때문에 번뇌가 있는 것이나 번뇌가 없는 것이, 이곳이나 다른 곳에 번뇌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복할 수 있느니라.
왜 그런가? 온갖 법이 고요하고 고요한 것[寂靜]은 애착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적정(寂靜)한 것은 취할 게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구경(究竟)에 적정한 것은 생겨나는 것[生]이 아니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다함없는 것은 생겨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생겨남이 없는 것은 성취가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성취가 없는 것은 행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을 행하는 이가 없는 것은 무아이기 때문이니라.
온갖 법이 무아인 것은 무주(無主)이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무주인 것은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옴이 없는 것은 의지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감이 없는 것은 선굴(禪窟)이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머물지 않는 것은 안립(安立)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온갖 법에 안립하지 않는 것은 생하는 것이 곧 멸이기 때문이며, 온갖 법이 무위(無爲)인 것은 무루(無漏)이기 때문이며, 온갖 법을 받는 경우가 없는 것은 구경 조복이기 때문이니라.”
014_0462_c_01L적조음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드렸다.
“모든 법은 무엇을 으뜸으로 삼습니까?”
014_0462_b_23L寂調音天子復謂文殊師利法王子言:“諸法以何爲最?”
문수사리가 말씀하셨다.
文殊師利言:
“생사를 익히는 데[生死所習] 있어서는 잘 수순[善順]하지 않음이 으뜸이고, 열반의 경계에 나아가는 것은 잘 수순함이 으뜸이다. 장애 가운데는 정진하지 않음이 으뜸이고, 정각(正覺) 중에는 정진이 으뜸이 된다. 온갖 번뇌[蓋]가운데는 의심의 그물[疑網]이 으뜸이고, 여러 가지 상(相) 가운데는 해탈관(解脫觀)이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번뇌 가운데는 망상이 으뜸이고, 번뇌 없는 것 가운데는 망상이 없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깨달음 가운데는 일 많음[多事]이 으뜸이고, 멸심(滅心) 가운데는 선정(禪定)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견해[見] 가운데는 증상만(增上慢)이 으뜸이고, 공법(空法) 가운데는 증상만이 없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착하지 못한 법 가운데는 악지식(惡知識)이 으뜸이고, 온갖 착한 법 가운데는 선지식(善知識)이 으뜸이 되느니라.
자심(慈心) 가운데는 걸림 없음[無礙]이 으뜸이고, 비심(悲心) 가운데는 전념하여 속이지 않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희심(喜心) 가운데는 법락을 즐기는 것이 으뜸이 되고, 사심(捨心) 가운데는 애증(愛憎)을 여의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염처(念處) 가운데는 숙세의 선근을 잊지 않는 것이 으뜸이 되고, 정근(正勤) 가운데는 올바른 방편이 으뜸이 되느니라.
014_0463_a_01L 여의족(如意足) 가운데는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 으뜸이 되고, 온갖 근(根) 가운데는 믿음을 머리로 하는 것이 으뜸이고, 온갖 힘[力] 가운데 번뇌를 꺾어 항복받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온갖 각지(覺支) 가운데 평등을 깨닫는 것이 으뜸이 되고,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八聖道] 가운데 온갖 삿된 길을 건너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일체 중생의 심행의 상속[心行相續]을 알아서 피안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으뜸이 되고, 육바라밀 가운데는 대승이 으뜸이 되느니라. 공(空)을 구하는 것 가운데는 혜명(慧明)이 으뜸이 되고, 법인(法忍)에서 출리(出離)하는 데는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는 것이 으뜸이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번뇌를 두려워하지만, 성문ㆍ벽지불지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하느니라. 또 천자여, 내 이제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는 그대의 뜻에 따라 대답할지니라.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즐거운 곳에 태어나려는 사람이 어느 것을 두려워하겠느냐? 머리가 베이는 것을 두려워하겠느냐, 몸의 마디[支節]가 베이는 것을 두려워하겠느냐?”
014_0465_a_01L천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고용되어 일하는 것으로 스스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여러 권속을 도와서 쾌락을 얻게 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다시 다른 사람이겠는가?
014_0465_a_01L天子!喩如有人庸作自活,其人尚自不能資衆眷屬令得快樂,況復餘人。
이와 같이 천자여, 성문이 정진하는 것은 자신의 결박은 끊을 수 있으나 이 정진으로 능히 염부제 사람들이 안락을 얻게 할 수도 없거늘, 하물며 나머지 일체이겠느냐? 천자여, 마치 큰 상인들의 우두머리가 재보가 많고 넉넉하여 항상 베풀어 주어도 정진을 쉬지 않고 곧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땅히 그대를 위해 비유로 말하여 이 뜻을 분명히 하리라. 가섭이여, 비유컨대 사방의 큰 바다[四大海]에 생우유[生酥]가 가득 차 있는데, 어떤 사람이 털 한 개를 백으로 나누어서 그 한 조각의 털로 한 방울의 생우유를 찍어낸다면, 가섭이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한 가닥의 털로 찍어낸 것이라 하여 사해(四海)에 가득찬 생우유를 가벼이 할 수 있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가을에 곡식이 성숙되었을 때는 무량한 중생이 제각기 얻어서 수용하더라도 이쪽이 더 많고 수승합니다.”
014_0465_b_05L迦葉白佛言:“世尊!秋月熟時無量衆生各得受用,此爲多勝。”
“이와 같이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개미가 취한 한 알의 곡식처럼 성문의 해탈과(解脫果)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마치 가을에 일체 대지의 온갖 씨앗이 성숙하는 것처럼, 보살이 육바라밀을 갖추고 사섭법(四攝法)의 선근이 성숙되면 무량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가섭이여, 비유하건대 백천 개의 수정을 그릇에 담아 싣고 성 안에 들어오는 것과, 다시 한 개의 값을 헤아릴 수 없는[無價] 유리 보주를 큰 바다에서 배에 싣고 편안히 염부제의 세계에 도착하고 나서 곧 능히 사람들의 가난을 없애려고 할 때, 가섭이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모든 수정 그릇으로 이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유리보배를 가벼이 할 수 있겠느냐?”
“가섭이여, 마땅히 알라. 수정을 싣고 성읍에 들어오는 것처럼, 성문의 무위(無爲)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값을 헤아릴 수 없는 큰 보배 유리처럼 마땅히 알라. 보살이 삼보의 종성을 이어서 단절되지 않게 하고 일체지의 보배로운 마음이 나게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014_0465_c_01L그때 보상여래의 국토에서 온 모든 보살들이 이 법문을 듣고 모두 희유한 생각을 가져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014_0465_c_01L爾時寶相如來剎土諸來菩薩,聞說此法已咸懷希有,白佛言:
“세존이시여, 이 모든 말씀하신 바는 모두 희론입니다. 갖가지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고, 온갖 이설(異說)이 일어납니다. 저 보상여래의 국토에서는 오직 보살의 불퇴전법만 말씀하시며, 번뇌에 얽히거나 희유하여 미치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석가ㆍ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는 능히 이와 같은 번뇌를 잘 참고 견디시어 분별이 없는 한 맛의 법 가운데서 상ㆍ중ㆍ하를 말씀하시고 삼승(三乘)의 차별과 다름을 나타내십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온갖 국토[刹土]는 평등하며, 불법과 중생도 평등하느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마땅히 나아가고자 하는 곳도 이곳이니라.”
014_0465_c_12L文殊師利言:“善男子!剎土平等、佛法及衆生平等處,我欲樂是當趣是處。”
모든 보살이 말했다. “문수사리여, 어떠한 방편으로 그렇게 됩니까?”
014_0465_c_14L諸菩薩曰:“文殊師利!以何方便?”
문수사리가 말했다. “일체 찰토가 평등하여 다함이 없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등정각도 불가사의 하느니라. 일체법이 공하고 중생의 자성도 무아(無我)이니라. 모든 선남자들이여, 나는 이와 같은 평등성을 관하므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니라. 일체 찰토는 평등하며 일체 불법과 중생도 평등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니라.”
바로 그때 문수사리가 곧 삼매에 들어가니 이 세계가 보주세계처럼 변하였다. 일체 대중이 모두 함께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는 것을 보았으며, 또한 석가모니ㆍ세존의 색상과 모습과 형체가 보상여래와 같았고, 모든 성문들이 모두 저곳 보살의 색상과 모습과 형체가 같음을 보았다.
014_0466_b_01L 내가 나누는 것이 약간 천 가지 색으로 화성(化成)하되,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ㆍ천(天)의 색(色)과 성문ㆍ벽지불ㆍ보살ㆍ불(佛)의 색(色)을 받게 되나니, 이러한 모든 차별된 색을 비록 모두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색이 평등하여 색과 공이 평등하고 하나이어서 차별이나 다름이 없느니라. 선남자들이여, 이와 같은 뜻이므로 마땅히 이와 같이 알지니라.”
그때 세존께서 존자[慧命]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아난타여, 이 뛰어난 경전을 그대는 마땅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널리 이롭게 할지니라. 왜냐하면 이 경전을 널리 사람들을 위해 말하거나, 짐짓 듣고 받아들이는 이는 곧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의 무더기를 얻게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