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0486_b_01L불설법률삼매경(佛說法律三昧經)
014_0486_b_01L佛說法律三昧經


오(吳) 월지국(月支國) 지겸(支謙) 한역
김철수 번역
014_0486_b_02L 吳月支國居士支謙奉 詔譯


이와 같이 들었다.
014_0486_b_03L聞如是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는 마갈제국(磨竭提國)에서 대비구(大比丘)들과 함께 계셨는데, 더불어 많은 보살들과 네 부류의 제자들과 천상과 인간, 그리고 용과 신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014_0486_b_04L一時佛遊於摩竭提國與大比丘衆俱及諸菩薩四部弟子天人龍神一切大會
부처님께서는 이들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佛告衆會
“법률삼매(法律三昧)가 있으니, 보살로서 수학하는 이들은 마땅히 그 성정(性情)을 조화롭고 순조롭게 하여 미묘한 법문에 깊이 깨달아 들어가되 가볍게 보거나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깊이 깨달아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은 3학(學)의 공덕에 두텁고 얇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또는 방자한 마음으로 인해 그 본래의 의도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014_0486_b_06L有法律三昧菩薩學者當以和順調其情性深入微不得輕慢所以者何未深入者識三學功德厚薄或以放恣失其本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은 이 무리에게는 열두 가지의 그릇됨이 있어서 스스로 큰 죄에 떨어져도 끝내 뉘우치지 않느니라. 무엇이 그 열두 가지이겠느냐?
014_0486_b_10L當知是輩有十二事自墮大罪不可悔何謂十二
어떤 사람이 도를 배울 때 스승의 견해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 구체적으로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높이고 본래의 의취(意趣)보다는 명자(名字)만을 구하는 것이다. 또한 보살법을 비방하여 가볍게 여기고 요망스럽게도 크게 비웃으며 말하기를, ‘우리 스승은 나를 실추시켰고[墮] 또한 다른 사람들도 실추시켰다’고 하니, 이는 원숭이가 독이 든 과일과 야채로 만든 수프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다른 사람을 해치고자 하면 또한 자신을 죽이는 결과도 초래한다는 사실을 모르니, 이것이 첫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b_11L有人學道不得明見聞未廣而自貢高欲求名字菩薩法以爲不要妄造譁說言我師旣已自墮復墮他人此如獼猴毒羹之喩但欲害彼不知還自殺是一自燒
어떤 사람이 보살의 법장(法藏)을 공부할 때 경전의 내용은 깊이 들었으나 스승에게 의문나는 것을 질문하지 않아 그 의취(義趣)를 알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여 보살도를 이루는 것을 경시하니, 이것이 두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b_16L有人學菩薩法藏得聞深經曾問師不知義趣自用隨意及以輕慢成就菩薩是二自燒
어떤 사람이 이미 경전을 깊이 배웠어도 중도에 다시 성문 제자의 배움[學]으로 떨어져 대도(大道)를 훼손하고 비웃으며 멀어지니, 이것이 세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b_18L有人已學深經中道更墮弟子學者毀笑大道以爲迂遠是三自燒
어떤 사람이 공부하되 깊이 깨달아 들어가지 않은 채 단지 도를 의지하여 그 목숨을 온전하게 보전하려고만 하여 그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깊이 있는 경전 내용과 훌륭한 대법(大法)을 비방하고 비웃나니, 이것이 네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b_20L有人學不深入但欲依道全保其命不解道理專行謗訕深經大法是四自燒
014_0486_c_01L어떤 사람이 비록 공부는 하였어도 본의(本意)에 이르지 못하여 단지 얼굴과 몸을 허위로 꾸미고 스스로 적합하다고 여기며, 경전의 좋은 말을 얻어도 사람들에게 전해 주지 않아 전도된 견해를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아첨할 생각을 내게 해 비위를 맞추게 하고 또한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급히 몸을 추스려 장단점을 지어내어 비방하고 그 자신의 명예를 바라니, 이것이 다섯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b_22L有人雖學無有至意但欲容身虛飾自可得經好語與非其人令到見者諂意啤呲以爲不然聚踧僞骸造謗長短欲望其譽是爲五自燒
어떤 사람이 완고하고 어두워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고, 항상 독한 마음을 품은 채 법을 강의하는 사람을 향하며, 도덕을 생각지 않고 단지 이로움만을 구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c_04L有人頑闇嫉妒賢能懷毒心向講法者不惟道德但貪利是六自燒
어떤 사람이 배움에 들어 현명한 스승으로부터 결정적인 법문을 듣고서도 스승의 은덕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공력만을 내세우며 ‘내가 스스로 알았다’고 말하며,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또한 스승에게 경전의 내용을 묻거나 하는 일이 없어 그 죄가 가볍지 않나니, 이것이 일곱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c_06L有始入學從明師得決不念恩德反有人工言我自知旣不自解亦不肯復從師問經此無反復罪不輕矣是七自燒
만약 보살의 마음[意]을 낸 다음 불경(佛經)의 도를 배우려고 하나 스승을 따라 배움이 오래가지 못하고 예절이 보잘것없어 성문(聲聞)이 말하기를 ‘권방편(權方便)이 있어도 그 의취(意趣)에 도달하지 못하나니, 허망되이 꾸민 헛된 말과 법답지 못한 것으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또한 보잘것없이 미미한 생각[意]으로 스승이 행한 것을 쳐다보면서 스스로 생각한 것이 옳다고 여겨 마침내 선교방편의 지혜를 잃어버리고 악마의 그물에 들어가니, 이것이 여덟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c_09L若已發菩薩意欲學佛經道隨師不久禮節未閑聞師說有權方便未達其趣妄飾虛非法解之復以微意瞻師所行用爲是遂失權慧入魔羅網是八自燒
반기(畔棄)를 배우는 데 있어, 반기란 무엇이냐 하면 현명한 스승으로부터 선권방편의 지혜를 이해하는 것을 일컫는데, 깊이 깨달아 들어간 사람을 보고도 자주 묻지 않고 중도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다시 나쁜 마음을 품어 스승의 단점을 생각하고 비법(非法)에 떨어지고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며 도를 거스르고 지혜를 잃고서도 그것을 반기라고 말하니, 이것이 아홉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c_13L學有畔棄何謂畔棄謂從明師得解權慧見深入者不數請問中道懈怠更懷毒心念師所短已墮非法不自覺知違道失智謂之畔棄是九自燒
어떤 사람이 미묘한 선권방편의 지혜를 환히 알았으니 다시 경전을 공경하지 않고 가벼이 여기는 죄를 짓고 가지[枝]는 숨긴 채 은밀한 처소에서 몰래 말하기를, ‘스승은 아는 바가 없다. 내가 이미 학습한 것에 따르면 그 말은 다 옳지 않다’고 하며 스스로 배움을 포기하고 무지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니, 이는 그 자신이 독을 마시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독을 마시게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열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c_17L有人以曉微妙權慧而更不敬廢經輕爲枝掖說於屛處言師無所知已從學其說皆非自今不當復與從令無知者信用其言斯已自飮毒飮他人毒是十自燒
014_0487_a_01L어떤 사람이 도를 배울 때 현명한 스승으로부터 깊이 있게 경전을 배워 보살의 지극한 심행(心行)에 대해 믿더라도 그로부터 학문을 구하려고 하는 생각을 단절하여 마음을 내지 않으면 현명하다 할 수 없고 단지 성문일 뿐이어서 일찍이 제대로 경전을 보지도 못하며 믿음이나 계율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나니, 이 사람이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속어나 비유로 그것을 이해하는 수준이어서 점차적으로 속임수를 가르치게 되고 진실한 도를 엷고 묽게 만들게 되어 스스로 큰 죄를 취하게 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오도하게 되니, 이것이 열한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6_c_22L有人學道從明師得深經有信菩薩至心行者欲從求斷絕不與呼爲不賢有但聲聞未曾見經信戒未立此人索經爲反與之便以俗語比方解之轉相教誑令眞道薄淡自取大罪復誤他人是十一自燒
어떤 사람이 비록 배우더라도 믿음에 이르지 못하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모르고 죄 짓는 일에 대해서 두려워할 줄 모르며 권세 있고 강한 사람에게는 비위를 맞춰 아첨하고 도를 이해할 줄 모르며 불법을 훼손하고 비구승을 비방하면, 이 무리는 이미 스스로 여덟 가지 액난에 떨어지고 또한 다른 사람이 더 많은 죄를 짓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열두 번째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014_0487_a_05L有人雖學無有至信不識眞僞不畏于罪曲媚豪强不解道者隨毀佛法誹比丘僧此輩旣自墮八難增成人罪是十二自燒
이러한 열두 가지 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죄를 뉘우쳐 없앨 수 없으니, 3악도(惡道)로부터 벗어나기를 희망하더라도 제도하여 해탈시키기가 매우 어려우니라.”
014_0487_a_08L犯此罪者可悔除從三惡道出則有所望如是十二輩難可度脫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까닭에 이 법률삼매를 설하나니, 그대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땅히 진실을 이해시켜 그들의 의행(意行)을 보호하고 작은 복을 짓지 않게 하라. 털끝만큼이라도 범한다면 큰 죄가 수미산과 같아 영원히 삼보(三寶)를 잃고 악도로 떨어져 그 끝이 없고 다만 탐애에 잠시만 머물러 앉아도 극도의 고통에 이르니, 이는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우니라.”
014_0487_a_10L佛告阿難吾故說是法律三昧汝爲人說當令了諦護其意行莫作小福如毫釐者而犯大罪如須彌也失三寶卻就惡道無窮竟者但坐貪愛須臾之可而致劇痛斯難言也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이들은 다 제6 도지(道地)에 들어갔다.
014_0487_a_15L說是時莫不感愧學者悉入第六道
모인 대중들이 모두 일어나 같은 소리를 찬탄하여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저희들과 후학들을 위하여 크게 밝음을 여시어 지혜의 눈을 얻게 하셨으니, 모두 함께 앞으로 나아가 머리 숙여 원하옵건대 부처님의 말씀을 정수리로 받아 지니기를 원합니다.”
014_0487_a_17L衆會皆起同聲讚言佛爲吾等及後學者開現大明令得慧眼俱前稽願以頂受
014_0487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아주 오래고 먼 과거세에 유도지(有道志)라는 이름의 보살이 14만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위라제불(違羅提佛)로부터 보살의 마음[意]을 냈느니라. 또한 그 무리 가운데는 가장 재주 있는 현행(賢行)이라는 사람이 있어 유도지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는 여러 겁을 따라다니면서 그 마음을 잃지 않고 굳게 정진하였는데 훗날 성불하였으니 그 이름이 세두포(世頭胞)였다. 그는 유도지를 따라다니다 결정적인 법을 받았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다 퇴전하여 제자행(弟子行:성문행)에 떨어져 지금까지 5도(道)1)에 머물면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였느니라.”
014_0487_a_19L佛言且聽乃往久遠時有菩薩名有道志與十四萬人俱違羅提佛發菩薩意其輩中有一人最高才名賢行時有道志事以爲師隨累劫不失其意堅行精進後成作字世頭胞而有道志遂從受決人悉退墮弟子行于今在五道尚未得出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부처님을 뵌 이후로 다시금 심오한 경전을 얻지 못했습니까?”
014_0487_b_03L阿難問言其時輩人從見佛後頗復得深經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얻었으나 다만 힘써 학습하지 않았고 의문이 생겨도 묻지 않아 지혜를 얻지 못했으며, 또한 스승을 공경하여 계승하지 않았고 사람과 법을 경시하였느니라.”
014_0487_b_04L佛言皆得但不力學問中慧不敬承師輕人法者
아난이 다시 물었다.
“이미 큰마음을 냈는데 어떻게 퇴전(退轉)하여 떨어질 수 있습니까?”
014_0487_b_05L阿難復已發大意何以墮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佛言
“네 가지 일 때문이니, 첫째는 근본적인 것을 배우더라도 선권방편을 알지 못하고 스승과 벗을 경시하며 한 마음으로 전심하지 못하여 그 마음[意]을 자주 바꾸는 일이고, 둘째는 공부하되 정진하지 않아 도력(道力)이 없고 단지 명예만을 탐하여 다른 사람들의 공경을 기대하는 일이니라.
014_0487_b_06L用四事一者學本不知善權方便輕慢師友無有一心其意數轉二者學不精進有道力但貪名譽望人敬待
셋째는 스승을 섬기고 배우면서도 부지런히 닦을 것을 생각하지 않아 허위와 가식을 성취하게 되고 자신을 높여 지극한 마음이 없는 일이며, 넷째는 외도의 학문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릇된 견해를 익히는 사람이 오히려 신이한 잡술을 지니고서 부처님의 심오한 경전과 비교하면서 도(道)가 동등하다고 말하는 일이니라.
014_0487_b_09L三者學所事師不念勤苦當得成就虛飾貢高無有至心四者好學外道習邪見人反持異術比佛深經言道同等
그 당시에 14만 명이 다 이런 마음을 냈기 때문에 후세에 대도(大道)로부터 점차 멀리 떨어졌으나 오직 유도지(有道志)만이 뜻이 크고 마음이 강하였기에 현행(賢行)이 그를 따라 섬겼고 수기를 받아 불과(佛果)를 증득할 수 있었느니라.”
014_0487_b_12L時十四萬人皆用是意故後世轉退去大道遠獨有道志志大心强追事賢行至其得佛果從受決
이 말씀을 하실 때 천상과 인간 백십만 명이 모두 보살의 마음을 냈다.
014_0487_b_15L當說是時天人百一十萬皆發菩薩意
현자 아난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배우고 마땅히 공경해야 하는데 도리어 자기 멋대로 대도(大道)의 본원을 저버린다면 어찌 신중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스스로 지금 새로이 배워 법에 들려고 하는 사람 가운데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알고 훌륭한 스승과 벗을 잃지 않아 지극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014_0487_b_16L賢者阿難言如佛所說學當恭敬反以自恣失大道本可不愼哉自今新學欲入法者寧能別善惡不失善師友至竟者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기는 하지만 그 숫자는 극히 적다. 많은 이들이 본래 자신의 생각을 따르므로 교화되지 않을 것이니라.”
014_0487_b_19L佛言有但少耳多隨本意不可化者
아난이 다시 물었다.
“보통 사람들은 서로들 악한 것에 대해 말하는데 어떻게 스스로의 악에 대해 알 수 있는지요?”
014_0487_b_20L阿難又問凡人相說惡寧自知惡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014_0487_b_21L佛言
“천하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단지 다른 사람의 악만 보고 자신의 악은 알지 못하며, 단지 자신의 선한 점만을 보고 다른 사람의 선한 점은 보지 못한다.
014_0487_b_22L天下愚人但見人惡不自知惡但自見善不見人善
014_0487_c_01L자신을 지혜 있는 사람이라 칭하지만 모두 다 지혜 있는 이가 아니며,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처하지만 그들은 미혹이 심하느니라.
014_0487_b_23L稱己智者皆非智也自處明者其悉甚矣
자신이 경전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미혹된 것이고, 대법(大法)을 안다고 하면서 스승을 섬기지 않으니 이 또한 믿을 수 없느니라.
014_0487_b_24L我知經以惑也知大法而不事師不可信矣
부처님의 지혜는 광대하여 헤아리기 어려운데도 견문이 보잘것없이 적은 이들이 스스로를 만족하게 여기어 높이니 어찌 지혜 있는 자라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지극한 학문에 뜻을 두고 깊이 들어간 수행자나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하는 사람만이 현명하고 지혜 있다 할 수 있느니라.
014_0487_c_01L佛智廣大不可測度見聞少少自以爲足用自貢高豈智者哉唯有至學深入之士近善師者乃爲明智
어리석은 자가 어찌 세간에 있는 현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모두 알아 현명한지 어리석은지 구별할 수 있겠는가. 무릇 어리석은 사람은 다만 다른 사람이 높다고 여기고 자신이 높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014_0487_c_04L愚者安知世有明智人乃別有賢愚耳愚癡者但見人貢高不自知貢高
스스로 허물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과는 훌륭한 일에 관하여 더불어 말할 수 있으나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과는 더불어 함께 논의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어떤 것이나 자신이 옳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014_0487_c_06L自見過者可與說善事自見善者可與語議何則皆自是故
어려운 것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과는 더불어 도를 논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단지 그 교만만을 증대시킬 뿐이다.
014_0487_c_08L能解難者與論道不者但增其憍慢
스스로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인욕(忍辱)하는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으며 이해하여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014_0487_c_09L自可者可爲說忍辱之事會不能受
도의 의미를 겸허하게 잘 이해하는 사람과는 함께 깊이 있는 경전의 요점을 강의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앎을 속박해 버린다.
014_0487_c_10L解道意謙虛者可與共講深經之要不者皆
미묘하게 깊이 깨달아 들어간 사람과는 함께 실마리가 없는 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의혹을 일으킨다. 자신이 보살법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탐착에 걸려 있는 것이며, 또한 자신이 깨끗함에 들어갔다고 말하지만 스스로 더러움에 물든 것을 알지 못한다.
014_0487_c_12L知微妙深入者可與共說無端緖不者猶疑我知菩薩法發言有貪我所入淨不自知污濁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악마의 일에 관해서 깨달았다고 말하지만 마라(魔羅)의 그물에 걸린 것을 알지 못하니, 마치 누에가 고치집을 지어 스스로를 안에 묶는 것과 같으니라.
014_0487_c_14L適始欲與便言已了能覺魔事不知皆在魔羅網中如蠶作繭還自纏裹
안과 밖이나 깊고 얕은 의미를 깨달아 분별하려고 하는 사람은 마땅히 오랫동안 배워 성취한 보살에게 물어야 한다.
014_0487_c_16L欲悉覺知分別內外深淺意者當問久學成就菩薩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악마의 일을 잘 헤아려 알 수 있느니라.”
近善師者乃可了了覺魔事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진실함을 배워야 하며 반드시 수호함을 행해야 하느니라.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비법(非法)에 떨어지면 자기 멋대로 행하게 되니, 그릇된 마음에 떨어지기 때문에 온갖 하지 말아야 할 일과 옳지 않은 일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큰 허물을 가볍게 범하고 악도에 떨어지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어서 법령(法令)을 계승하지 않고 악마에 의해 사로잡히니, 그 죄가 작지 않느니라.”
014_0487_c_18L佛言學不可不諦行不可不護忘其本意墮非法者皆坐自用隨邪心故諸不可行不當行輕犯大過墮惡道皆以專愚不承法令爲魔所中致罪不細
014_0488_a_01L이때 현자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새로이 마음을 낸 사람[新發意者]은 진실로 마땅히 자신을 잘 수호해야 합니다. 자그마한 생각에 안주하는 사람은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 과거세에 저도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큰 것을 잃고 작은 것을 얻었습니다. 후회해 보아도 다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014_0487_c_23L於是賢者舍利弗白佛言新發意實宜自護坐小可意而失大者不少矣昔我前世有是意故失大得雖欲悔之無復及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면 모두가 다 이러하느니라.”
014_0488_a_03L佛言本心不皆有是耳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사람의 근본입니까? 5음(陰)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6입(入)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12연기(緣起)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96가지 도(道)의 근본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4제(諦)의 근본과 제자(즉 성문)의 근본과 스스로 불법(佛法)을 배우는 이(즉 벽지불)의 근본과 여래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일찍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으나 그 근본을 이해하지 못하여 소승의 도에 떨어졌습니다. 원하옵건대 새로 배우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것을 분별해 주십시오.”
014_0488_a_04L舍利弗問佛何謂人本五陰本六入本十二緣起本及九十六種道本所入何謂四諦本弟子本各佛本如來本知之云何曾聞佛言解本無故墮小道願爲新學分別說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묻는 바가 아주 시원스럽고 많은 것을 환기시켜 주는구나. 듣고자 하는 이들은 듣도록 하라.”
014_0488_a_08L佛言善哉所問甚快多所開發欲聞者聽
이때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뢰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於時會中皆曰受教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佛言
“사람의 근본은 어디로부터 나온 바도 없고 받을 바도 없으며 지은 자도 없고 주인도 없으며 색(色)도 없고 식(識)도 없으며 생겨남도 없고 멸함도 없느니라. 이와 같아야 근본을 아는 것이니 이를 잃어버리면 근본을 떠나는 것이다.
014_0488_a_10L人本無從出無所受無作者無有主無識不生不滅如是知本失是離
5음의 근본이란 머무는 처소가 없는 것이니, 집착하는 바를 따르면 음(陰)이니라. 성취와 성취하지 못함이 허깨비와 같아 모든 것은 강건한 것이 따로 없으니, 이와 같이 아는 사람은 음을 헤아려 집착하지 않는다.
014_0488_a_13L五陰本者無有住處隨所著卽爲陰成敗如幻一切無强知如是者計無有陰
6입의 근본이란 마치 빈 들판과 같으니라. 더욱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일컬어 입(入)이라 한다. 허공에는 쌓이는 것이 없으니,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입에 대해서 헛되이 헤아리지 않느니라.
014_0488_a_15L六入本者猶如空野以所更樂謂之爲入其入虛空無積聚處知本淨者計無所入
12연기의 근본이란 본래 실마리가 없어 어디로부터 오는 바도 없고 어느 곳으로 가는 바도 없으며 어디에 이르는 바도 없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반연[緣]하는 바가 끝이 없어 늙어 죽을 때까지 이르러서도 꿈과 같아 진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법이 일어나는 바가 없다는 법인(法忍)을 아는 것이 그 근본을 아는 것이다.
014_0488_a_17L十二緣起本端緖來無所從去無所至癡不可見所緣無際至於老如夢非眞如不起法忍是知本也
96가지 도(道)의 근본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탐욕으로부터 비롯되는 62가지 견해를 안과 밖으로 취하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안과 밖으로 취하는 것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몸이 갖가지로 변하고 온갖 것이 헛되어 진실하지 않은데도 온갖 것을 탐하고 버리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지키려 하지만 무너져 생사가 끊임이 없는 것이다.
014_0488_a_20L九十六種道本入皆從貪欲六十二見捨內取外謂捨內取外身爲化種虛而非眞有萬端貪不能捨欲保安存久而要生死不絕
014_0488_b_01L 4제의 근본 또한 뿌리나 줄기가 없다.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 모두가 관찰과 이해로부터 비롯된다. 공하여 청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4제의 근본을 안다고 볼 수 있느니라.
014_0488_b_01L四諦本者亦無根莖道皆由觀解見空淨者爲知諦
성문 제자의 근본이란 처음에는 세간의 존재를 관찰하되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 못하지만, 생사의 괴로움을 싫어하여 마음을 거두어 법을 관조하고 5음을 끊어버리며 공(空)을 수호하고 청정함을 행하여 생각[想]이 멸하고 번뇌가 다하면 해탈을 얻게 되니, 이것이 아라한의 근본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014_0488_b_03L弟子本者初觀世有不解本無生死苦攝意觀法斷卻五陰守空想滅漏盡便得解脫是爲羅漢本
스스로 불법을 배우는 이의 근본이란 수학하여 공덕을 짓되 여실히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했고, 또한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존귀한 호칭을 얻고 싶어하나 대비(大悲)의 마음이 없고 선권방편을 잘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몸이 부처님으로 불리워지고 그렇게 보여지는 것을 바라며, 또한 깨끗함을 좋아하고 도를 수호하지만 훌륭한 도반[善友]을 친근하지 않다.
014_0488_b_05L所入各佛本者學作功德不曉成時聞知有佛欲得尊號無有大悲不曉善呼身爲有持想視佛樂淨守道親善友
비록 공덕을 항하의 모래만큼이나 많이 쌓아도 아무런 이익이 없어 선권방편의 지혜에 들어가지 못하여 이로움과 상호(相好)를 닦지 못하고 절반 정도만 행하여 완전하게 갖추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인연을 깨닫게 되면 곧 성불하게 되니, 이것이 스스로 불법을 배우는 이의 근본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014_0488_b_09L雖積功德如江河沙猶無益不入權慧不修利及相好半行不以覺因緣便得成佛是爲各佛本
여래의 근본이란 마음을 낸 이래 몸이 다 공하고 모든 법이 청정하다는 것을 알아 중생의 근본이 은혜와 덕임을 여실히 깨달아 음입(陰入)의 종류에 들어가되 일체가 다 본래 없다는 생각을 지니며 모든 공덕이 이루어질 때 여래의 근본에 들 것이다. 지혜가 있다는 것은 모든 법이 생겨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 열반에 있지도 않고 본무(本無)를 떠나지도 않아 마치 허공 등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여래의 근본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014_0488_b_11L入如來本者從發意來見身皆空法淸淨曉衆生本惠德所入陰入種一切本無曉諸功德成時所入本立如有智不起不滅無往無來在泥洹不離本無如虛空等不可動是爲如來本所入
사리불이 말하였다.
014_0488_b_17L舍利弗言
“부처님의 생각[意]은 실로 오묘하여 아라한들의 경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부처님께서 아시는 것에 대해 저희 초학자들은 모두 얽매여 있고 뜻한 바가 미미하고 배움이 천박하여서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생사의 괴로움을 건너려는 마음의 근본이 이미 멸하였으니, 비록 대도(大道)를 듣더라도 다시 배우고자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014_0488_b_18L佛意實妙非衆羅漢各佛所知我輩初學皆從縛著志微學淺承佛得度心根已滅雖聞大道無復學意
014_0488_c_01L 비유하자면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이 천자(天子)의 일을 듣고서 잠시 그 귀를 기분 좋게 하지만 끝내 헤아리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오랫동안 3악도(惡道)에 처해 있었어도 이로부터 벗어나 대도를 배우면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아라한이라면 다시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만 보살인 경우에는 성실하고 흔쾌함이 한량없어 이미 큰 뜻을 발하여 깊이 들어가고 폭넓게 견문을 넓혀 가면서 마땅히 정진하여 진실로 잘 수호하며 행할 뿐입니다.”
014_0488_b_21L譬如野夫聞天子事蹔快其耳終不能效雖人久處三惡道者出學大道可成作佛如我羅漢無復心矣爲菩薩者誠快無量已發大意深入廣博但當精進諦護行耳
이때 용성(勇聲)이라는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014_0488_c_02L於是有菩薩名勇聲白佛言
“대도는 아주 오묘하여 세간의 재주 있는 이라 할지라도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며 오로지 깊이 깨달아 들어간 사람만이 그 오묘함을 통달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3학(學)과 새로이 마음을 일으킨 보살[新發意菩薩] 및 성문 제자와 스스로 불법(佛法)을 행하는 이들이 몽매하여 깨닫지 못함으로써, 깊고 얕음을 구별하지 못하여 견문이 적고 작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현명하다고 여기며 쟁론이나 송사에서 이기려고 하여 더욱 서로를 미혹하게 할까 염려됩니다.
014_0488_c_03L大道甚妙非是世間才明所知唯深入者乃達其微恐後三學—新發意菩薩及爲弟子各佛行者曚冥未寤不別深淺見聞少小自以爲明諍訟取勝更以相惑
오직 부처님께서 대비의 마음을 베푸시어 커다란 의혹을 해결해 주십니다. 배우는 자들이 모두 선(禪)을 행하는데도 도를 얻은 것이 각기 다르니, 어떻게 개별적인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성문 제자와 스스로 불법을 닦는 대승 보살 및 여러 외도, 그리고 5신통을 지닌 선인(仙人)의 선(禪)은 그 의미상 차이가 어떠합니까?”
014_0488_c_07L唯佛加哀爲決大疑其諸學者皆俱行禪得道各異何用別知弟子各佛菩薩大乘及諸外學五通仙人禪意云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佛言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보살 대사여, 모든 중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로구나.
014_0488_c_10L善哉大士欲護一切乃以此問俱行禪意趣不同
성문 제자들은 4선(禪)2)을 들을 수 있느니라. 간략히 바로 마음이 도를 얻을 수 있으나 그 밖의 심묘한 대법(大法)에는 이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생사의 몸을 싫어해 일심으로 사유하여 스스로 고해(苦海)를 건너려고 하지만 중생을 생각지 않고 멸도의 행만을 지키려고 하니, 어떻게 제대로 멸할 수 있겠는가?
014_0488_c_12L弟子學者聞有四要約直心可疾得道不及知餘深妙大法畏苦厭身一心思惟取欲自不念衆生但守行滅何如爲滅
복덕을 보시하고 계를 간직하고 정진하여 열반을 바라지만 부처님의 대자비와 열반이 들고 나는 바를 알지 못하고 ‘열반에 한 번 이르면 4선(禪)에 통하고, 3활(活)을 얻어 생사가 끊어지면 윤회의 세계를 건널 수 있다’고 말하니, 이것이 아라한이 선에 들어가는 경지이다.
014_0488_c_15L施福德持戒精進欲望泥洹不知佛大慈泥洹所出入泥洹一到通四得三活生死斷已度世是爲羅漢所入禪
스스로 불법을 배우는 이는 발심한 이래로 훌륭한 도반[善友]을 벗하지 않고 ‘세간 사람들의 행에는 항상 집착이 있다’고 말한다. 그 집착이란 무엇이냐 하면 공덕을 지어 성불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르길 ‘선도(禪道)는 그 밖의 다른 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이들도 부처님의 선(禪)의 취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014_0488_c_19L各佛學者從發意來不事善言世閒有其行常著何如爲著作功德望欲得佛言禪道如不用餘亦不知佛禪意
014_0489_a_01L여래의 선이란 마음의 의도도 없고 생각도 없고 인식함도 없고 얻는 바도 없어 일부러 짓지 않아도 그 가운데 연관되어 있는 의미를 여실히 알며, 청정함을 수호하여 인위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또한 선권방편의 지혜로 법의 의미를 여실히 깨달아 알지 않고서도 선의 경지를 얻고, 공한 인연을 잘 깨달아 도를 얻으니, 그 밝음이 아라한의 경지를 넘어선다. 이 아라한의 경지는 부처님의 열 가지 힘[力]과 네 가지의 두려움 없음[無所畏]과 열여덟 가지 이승범부(二乘凡夫)가 함께할 수 없는 법에는 미치지 못한다.
014_0488_c_22L所向如來禪者無想無見無得不熟曉了那中意守淨無爲不曉權慧法意以成得見空因緣解便得道明過羅漢而不及佛無十種力四無所畏及十八不絕法
이를 부처님이 선에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是爲各佛所入禪
보살의 선이란 발심한 이래 현명한 스승을 떠나지 않고 폭넓게 배우고 깊이 있게 알아 선의 근본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014_0489_a_04L菩薩禪者從發意來不離明師學廣智深曉了禪本
어떻게 근본을 깨달아 아느냐 하면 마음과 법은 본래 존재하지 않으며 도(道) 역시 본래 존재하지 않으니, 집착도 없고 얽매임도 없고 풀어짐도 없고 행함도 없고 나옴도 없고 들어감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취할 바도 없으며, 대지혜의 선교방편[善權]의 행을 나타내어 덕의 바탕과 대비의 마음을 끊지 않고 상호(相好)를 닦으며 불국토를 장엄하고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이승범부가 함께할 수 없는 법을 갖추어 일체를 두루 보고 일체를 다 알아 깨닫지 않은 바가 없기에 부처님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014_0489_a_06L何謂曉了本心法本無道亦無本無著無縛無解無行無出無入無捨現大智慧善權之行不斷德本及大悲意修相好嚴佛國具十力四無所畏及十八不絕法一切見一切知無所不覺故號曰佛
부처님은 세간 사람들이 탐욕이 많고 산란한 마음에 물들어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보리수 아래에서 눈을 감고 앉으신 채 선법(禪法)을 나타내 보여 이해하도록 하셨으니, 도로써 마음을 묶고 또한 따라 즐기도록 하여 각기 그 마땅한 바를 얻도록 하셨다. 이것이 여래의 근본에 들어가는 선이니라.
014_0489_a_11L佛用世閒多貪亂意故於樹下閉目而坐爲現禪法欲令解者以道縛意亦隨所樂各得其所是爲如來本所入禪
외도소학(外道小學)으로서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있는 이들의 선은 무위(無爲)를 귀중하게 여기며 배우지만 지극한 요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피해 편안함을 도모하고, 오직 하나만을 지키려는[守一]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신체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창고를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신이한 도(道)와 기(氣)를 보존하고, 성품을 길러 위로 오르는 것을 구하며, 악은 소멸시키고 복은 흥성케 하며, 생각이 다섯 가지 신통력에 이르고 수명이 장구하니, 이를 선인(仙人)이라 한다.
014_0489_a_14L外諸小學五通禪者學貴無爲不解至要避世安已持想守一瞑目縱體內觀歷藏存神道氣養性求昇惡消福盛思致五通壽命久長名曰仙人
이를 지극하게 행하여도 열반을 알지 못하고 이후에 복이 다하면 생사의 흐름이 끊이지 않으니, 이를 외도 5신통의 선정이라 한다.”
014_0489_a_18L行極於此不知泥洹其後福盡生死不絕是爲外道五通禪定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014_0489_a_20L佛言
“예컨대 성문 제자나 스스로 홀로 불법을 닦는 이들은 비록 열반을 얻더라도 그 근본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근본을 배운다고 하는 것은 세속의 일만 존재하고 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5음을 무너뜨리고 멸도(滅度)를 취한다.
014_0489_a_21L如弟子各佛雖得泥洹爲不知所以者何其學本謂世有道無故壞五陰而取滅度
014_0489_b_01L오직 여래만이 열반의 근본을 아느니라. 왜냐하면 세속과 도(道)를 잘 알고 모든 법이 본래 공하여 머무는 바도 없고 생겨남도 멸함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니, 이것이 열반이니라. 부처님의 마음[意]이 이와 같기 때문에 여래라고 한다. 이에 대해 성문 제자나 스스로 불법을 수학하는 이들은 멸진(滅盡)이라 한다.
014_0489_a_23L唯如來爲知泥洹本以者何知俗與道諸法本空如本無住不起不滅是爲泥洹佛意如是故曰如弟子各佛名爲滅盡
보살은 마땅히 심묘한 대법(大法)을 잘 이해하고 현명하게 진실로 받아들여서 비록 현명한 스승을 떠나더라도 마음이 마땅히 청정하여 방일(放逸)하지 않는다.”
014_0489_b_03L菩薩當解深妙大法明諦受學雖離明師心當淸不可放逸
이때 용성(勇聲)이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을 만나 뵙기는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대성(大聖)의 대자대비가 끝없이 이르니, 지금 부처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마땅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니, 현명하지 못한 행을 하여 악마가 그 편의를 도모하도록 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 끝내 다름[異]이 없으면 천마(天魔)나 그 권속이 청정한 행을 하는 사람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014_0489_b_05L於是勇聲叉手白佛言値佛者爲難有也大聖大慈所度無今蒙佛恩無所復疑其欲學者受佛教莫爲不賢之行使魔得其便如佛所言終無有異天魔官屬莫能壞是淸淨行者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앞으로 나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숙였다.
014_0489_b_10L言已卽前稽首佛
이때 천상과 인간 210만 명이 모두 어디로부터 생겨남이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즐거이 세우기를 원하였다.
014_0489_b_11L是時諸天及人有二百一十萬皆願樂立於無所從生法忍
현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법률’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014_0489_b_12L賢者阿難白佛言此法律爲何等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도의 의미를 분석해 그 근본적인 지혜와 덕을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며 깨달아 들어가도록 분별해 준다.
성문 제자와 스스로 불법을 닦는 이와 보살이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그 대요(大要)를 밝힌 것을 일컬어 ‘법률삼매’라 하느니라.”
014_0489_b_13L佛言是爲剖決道意釋人根本慧德所入分別弟各佛菩薩學意所行知諦知不諦大要名曰法律三昧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경법을 신해(信解)하는 사람은 모두 시방의 부처님 처소에서 선교방편을 들은 이들이다.”
014_0489_b_16L佛言阿難其有信解是經法者皆於十方佛所聞善權已
부처님께서 경을 설해 마치시자, 모여 들었던 이들이 모두 기뻐하며 각기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돌아갔다.
014_0489_b_18L佛說經訖諸來會者皆歡喜前爲佛作禮而去
佛說法律三昧經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5취(趣)라고도 하며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세계를 말한다.
  2. 2)초선(初禪)의 상태에서는 모든 욕구를 벗어나고, 모든 불선(不善)의 법을 벗어나면 심(尋:거시적 관찰)이 가능하고 사(伺:미시적 관찰)가 가능하며 이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구족되어 안주한다. 제2선의 상태에서는 심과 사가 정지하고 마음이 청정해져 마음이 통일되면 심도 없고 사도 없다. 다만 정(定)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을 구족하여 안주한다. 제3선의 상태에서는 기쁨을 떠나 사(捨:평등심)에 안주하고 일심으로 바른 지혜가 있으며 몸의 즐거움을 받아 사(평등심)와 염(통일)과 즐거움이 있는 상태를 구족하여 안주한다. 제4선의 상태에서는 즐거움과 고통을 끊어 이미 기쁨과 근심을 멸하였으므로 괴로움이나 즐거움이 없는 평등한 마음에 의해 생각이 청정해져 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