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0539_a_01L대지도론 제5권
014_0539_a_01L大智度初品中摩訶薩埵釋論第九卷第五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0539_a_02L 龍樹菩薩造


9. 초품 중 마하살타(摩訶薩埵)를 풀이함
014_0539_a_03L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經】 마하살타(摩訶薩埵)
014_0539_a_04L 【經】
摩訶薩埵
【論】 무엇을 마하살타라 하는가?
【論】
問曰云何名摩訶薩埵
【답】 마하(摩訶)1)는 대(大)라 하며, 살타(薩埵))2)는 중생(衆生) 혹은 용심(勇心)이라 한다. 이 사람은 마음으로 능히 큰 일을 이루되 물러서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크게 용맹스러운 마음인 까닭에 마하살타라 한다.
또한 마하살타란, 많은 중생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우두머리이므로 마하살타라 한다.
014_0539_a_05L答曰摩訶者大薩埵名衆生或名勇心此人心能爲大事不退不還大勇心名爲摩訶薩埵復次摩訶薩埵者於多衆生中最爲上首故名爲摩訶薩埵
또한 많은 중생들 가운데서 대자대비를 일으켜 대승을 이룩하고 능히 대도(大道)를 행하여 가장 큰 경지[大處]를 얻는 까닭에 마하살타라 한다.
또한 위대한 사람의 모습[大人相]을 성취하는 까닭에 마하살타라 한다. 마하살타의 모습은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014_0539_a_10L復次多衆生中起大慈大悲立大乘能行大道得最大處故名摩訶薩埵復次大人相成就故名摩訶薩埵摩訶薩埵相者如「讚佛偈」中說

부처님 한 사람만이 가장 으뜸이니
삼계의 부모이자 일체지이시네.
아무도 그와 같을 이 없기에
비할 바 없는 세존께 머리 숙입니다.
014_0539_a_13L唯佛一人獨第一
三界父母一切智
於一切等無與等
稽首世尊希有比

범부는 오로지 자기의 이익 위해 행하고
갚음을 바래 재물로써 베푸나
부처님은 크게 인자하시어 그런 일 없으시니
원수나 친한 이나[怨親憎愛] 평등하게 이익 주신다.
014_0539_a_15L凡夫行惠爲己利
求報以財而給施
佛大慈仁無此事
怨親憎愛以等利

또한 반드시 법을 설해 능히 모든 중생 및 자기의 큰 사견(邪見)ㆍ큰 애착과 교만ㆍ큰 아만 등 모든 번뇌를 깨뜨리는 까닭에 마하살타라 한다.
014_0539_a_17L復次必能說法破一切衆生及己身大邪見大愛慢大我心等諸煩惱故爲摩訶薩埵
014_0539_b_01L또한 중생들은 큰 바다와 같아서 처음도 중간도 끝도 없으니, 명철한 지혜를 지닌 계산가[算師]가 한량없는 세월 동안 계산하여도 다할 수가 없다. 마치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3)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건대 시방 일체세계와 허공의 경계를 합해 하나의 물[水]로 삼고, 무량 무수의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한 올의 머리카락을 가져오게 해서 한 방울씩 묻혀 가게하며, 다시 무앙수(無央數)4)의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한 올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와서 한 방울씩을 묻혀 가게 한다고 하자. 이와 같이 해서 그 큰 물이 남김없이 모두 없어진다 해도 중생은 여전히 다하지 않는다” 하셨다.
014_0539_a_20L復次衆生如大海無初無中無後有明智算師於無量歲計不能盡竟如佛語無盡意菩薩如十方一切世界乃至虛空邊際爲一水令無數無量衆生共持一髮取一渧而去更有無央數衆生如前共持一髮取一渧而去如是令彼大水悉盡無餘衆生故不盡
그러므로 중생들이 무량하고 무변해서 셀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지만, 모두 구제하여 고뇌를 떠나 무위안온(無爲安穩)의 즐거움 가운데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큰 마음이 있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까닭에 마하살타라 하는 것이다.
014_0539_b_05L以是衆生等無邊無量不可數不可思議盡能救濟令離苦惱著於無爲安隱樂中有此大心欲度多衆生故名摩訶薩
또한 『불가사의경(不可思議經)』5)에서 구사나(漚舍那) 우바이가 수달나(須達那)6)보살에게 말하기를 “보살마하살들은 한 사람을 제도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지 않으며, 또한 둘, 셋 내지 열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며, 백ㆍ천ㆍ만 내지 십만ㆍ백만ㆍ일억ㆍ십억ㆍ백억ㆍ천억ㆍ억억의 중생들을 위해서도 아니다.
014_0539_b_09L如『不可思議經』中漚舍那優婆夷語須達那菩薩言諸菩薩摩訶薩輩不爲度一人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亦非爲二三乃至十人故非千非萬非十萬非百萬非一億十百千萬乃至億億
아유타(阿由他) 억의 중생들을 위해서 발심하지 않고, 나유타(那由他) 억의 중생들을 위해서도 아니며, 아야타(阿耶他)의 중생들을 위해서도 아니다. 빈바라(頻婆羅)7)도 아니며, 가가라(歌歌羅)8)도 아니며, 아가라(阿歌羅)도 아니며, 파바라(簸婆羅)9)도 아니며, 마바라(摩波羅)도 아니며, 바타(波陀)도 아니며, 다바(多婆)도 아니며, 비바가(鞞婆呵)도 아니며, 포마(怖摩)도 아니며, 염마(念摩)10)도 아니며, 아바가(阿婆迦)도 아니며, 마가바(摩伽婆)도 아니며, 비라가(毘羅伽)11)도 아리며, 승가마(僧伽摩)12)도 아니며, 비살라(毘薩羅)도 아니며, 위염바(謂閻婆)도 아니며, 비사가(鞞闍迦)13)도 아니며, 비로가(鞞盧呵)14)도 아니며, 비발제(鞞跋帝)15)도 아니며, 비가다(鞞伽多)16)도 아니며, 도라(兜羅)17)도 아니다.
014_0539_b_14L非爲阿由他億衆生故發心非那由他億非阿耶陁衆生故非頻婆羅非歌歌羅非阿歌非簸婆羅非摩波羅非波陁非多非鞞婆呵非怖摩非念摩非阿婆非摩伽婆非毘羅伽非僧伽摩毘薩羅非謂閻婆非鞞闍迦非鞞盧非鞞跋帝非鞞伽多非兜羅
014_0539_c_01L아바라나(阿婆羅那)도 아니며, 타바라(他婆羅)도 아니며, 비바야바(鞞婆耶婆)18)도 아니며, 먁사(藐寫)도 아니며, 둔나야사(鈍那耶寫)도 아니며, 혜바라(𨢘婆羅)도 아니며, 비바라(鞞婆羅)도 아니며, 보차다(菩遮多)19)도 아니며, 아발가타(阿跋伽陀)20)도 아니며, 비시타(鞞施他)21)도 아니며, 니바라(泥婆羅)22)도 아니다.
014_0539_b_21L非阿婆羅那非他婆羅非鞞婆耶婆非藐非鈍那耶寫非醯婆羅非鞞婆羅非菩遮多非阿跋伽陁非鞞施他泥婆羅
혜리부타(𨢘犂浮陀)23)도 아니며, 파마타야(波摩陀夜)도 아니며, 비초바(比初婆)24)도 아니며, 아리부타(阿犂浮陀)도 아니며, 아리살사(阿犂薩寫)도 아니며, 혜운가(𨢘云迦)25)도 아니며, 도간다(度于多)26)도 아니며, 가루나(呵樓那)27)도 아니며, 마루타(摩樓陀)28)도 아니며, 차야(叉夜)29)도 아니며, 오라다(烏羅多)30)도 아니며, 말수야마(末殊夜摩)도 아리며, 삼마타(三摩陀)31)도 아니며, 비마타(毘摩陀)도 아니다.
014_0539_c_02L非醯犂浮陁非波摩陁夜比初婆非阿犂浮陁非阿犂薩寫醯云迦非度干多非呵樓那非摩樓非叉夜非烏羅多非末殊夜摩三摩陁非毘摩陁
파마타(波摩陀)32)도 아니며, 아만타라(阿滿陀羅)33)도 아니며, 바만다라(婆滿多羅)34)도 아니며, 마다라(摩多羅)도 아니며, 혜도말다라(𨢘兜末多羅)도 아니며, 비마다라(鞞摩多羅)도 아니며, 파라다라(波羅多羅)도 아니며, 시바다라(尸婆多羅)35)도 아니며, 혜라(𨢘羅)36)도 아니며, 위라(爲羅)37)도 아니며, 제라(提羅)38)도 아니며, 지라(枝羅)39)도 아니며, 시라(翅羅)40)도 아니다.
014_0539_c_06L非波摩陁非阿滿陁羅非婆滿多羅非摩多羅非醯兜末多羅非鞞摩多羅非波羅多羅尸婆多羅非醯羅非爲羅非提羅枝羅非翅羅
니라(尼羅)41)도 아니며, 사라(斯羅)42)도 아니며, 파라(波羅)43)도 아니며, 미라(彌羅)44)도 아니며, 바라라(婆羅羅)도 아니며, 미루(迷樓)45)도 아니며, 기로(企盧)46)도 아니며, 마사라(摩闍羅)도 아니며, 삼모라(三牟羅)도 아니며, 아바야(阿婆夜)도 아니며, 검마라(劍摩羅)47)도 아니며, 마마라(摩摩羅)도 아니며, 아달다(阿達多)48)도 아니며, 혜루(𨢘樓)49)도 아니다.
014_0539_c_10L非尼羅非斯羅非波羅非彌羅非婆羅羅非迷樓非企盧摩屠羅非三牟羅非阿婆夜非劍摩非摩摩羅非阿達多非醯樓
비루바(鞞樓婆)50)도 아니며, 가라발(迦羅跋)도 아니며, 가바발(呵婆跋)도 아니며, 비바발(鞞婆跋)도 아니며, 바바(婆婆)51)도 아니며, 아라바(阿羅婆)도 아니며, 사라바라(娑羅婆羅)도 아니며, 미라부라(迷羅浮羅)도 아니며, 마차라(摩遮羅)도 아니며, 타마라(陀摩羅)52)도 아니며, 파마타(波摩陀)도 아니며, 니가마(尼伽摩)53)도 아니며, 아발다(阿跋多)도 아니다.
014_0539_c_13L非鞞樓婆非迦羅跋非呵婆跋非鞞婆跋非婆婆非阿羅婆非娑羅婆羅非迷羅浮羅非摩遮羅非陁摩羅非波摩非尼伽摩非阿跋多
니제사(泥提舍)54)도 아니며, 아차야(阿叉夜)55)도 아니며, 삼부타(三浮陀)56)도 아니며, 바마마(婆摩摩)도 아니며, 아바타(阿婆陀)도 아니며, 구파라(漚波羅)57)도 아니며, 파두마(波頭摩)58)도 아니며, 승거(僧佉)59)도 아니며, 가제(伽提)60)도 아니며, 구파가마(漚波伽摩)도 아니며, 아승기(阿僧祇)도 아니며, 아승기에 아승기61)도 아니며, 무량도 아니며, 무량에 무량62)도 아니다.
014_0539_c_17L非泥提舍阿叉夜非三浮陁非婆摩摩非阿婆非漚波羅非波頭摩非僧佉非伽非漚波伽摩非阿僧祇非阿僧祇阿僧祇非無量非無量無量
014_0540_a_01L무변(無邊)도 아니며, 무변에 무변63)도 아니며, 무등(無等)도 아니며, 무등에 무등64)도 아니며, 무수(無數)도 아니며, 무수에 무수65)도 아니며, 불가계(不可計)도 아니며, 불가계에 불가계66)도 아니며, 불가사의(不可思議)도 아니며, 불가사의에 불가사의67)도 아니며, 불가설(不可說)도 아니며, 불가설에 불가설인 중생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014_0539_c_21L非無邊非無邊無邊非無等非無等無等無數非無數無數非不可計非不可計不可計非不可思議非不可思議不可思議非不可說非不可說不可
한 국토의 미진수(微塵數)68)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한 것이 아니며, 둘ㆍ셋 나아가서는 십ㆍ백ㆍ천ㆍ만ㆍ억ㆍ천만억ㆍ아유타ㆍ나유타 내지 불가설에 불가설인 국토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014_0540_a_03L非爲一國土微塵等衆生故發心非爲二三至十百千萬億千萬億阿由陁那由他乃至不可說不可說國土微塵等衆生故發心
한 염부제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한 까닭도 아니며, 구타니ㆍ울다라ㆍ불바제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천세계(小千世界)69)ㆍ중천세계(中千世界)70)ㆍ대천세계(大千世界)71)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한 것도 아니며, 둘ㆍ셋 내지 십ㆍ백ㆍ천ㆍ만ㆍ억ㆍ아유타ㆍ나유타 내지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不可說不可說]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만큼의 중생을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014_0540_a_06L非爲一閻浮提微塵等衆生故發心非爲拘陁尼鬱怛羅曰弗婆提微塵等衆生故發非爲小千世界中千世界大千世界微塵等衆生故發心非爲二三至十百千萬億阿由陁那由他乃至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衆生故發心
한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시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시기 위해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국토의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시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계시는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보시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014_0540_a_13L非爲供養供給一佛故發心乃至非爲供養供給不可說不可說諸佛故發心非爲供養供給一國土微塵等諸佛故發心乃至非爲供養供給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諸佛故發心
한 불국토[佛土]를 정화하기 위해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만큼의 불국토를 정화하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부처님의 법만을 받아 지니기 위해 발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계시는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의 법을 받아 지니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014_0540_a_18L非爲淨一佛土故發心乃至非爲淨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佛土故發非爲受持一佛法故發心乃至非爲受持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佛法故發心
014_0540_b_01L한 삼천대천세계에서만 불종자(佛種子)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나 미진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에서 불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도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부처님의 서원을 분별해 알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계시는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의 서원을 분별해 알기 위해서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014_0540_a_23L非爲令一三千大千世界中佛種不斷故發心至非爲令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三千大千世界中佛種不斷故發心非爲分別知一佛願故發心乃至非爲分別知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佛願故發
한 불국토를 장엄하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만큼의 불국토를 장엄하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부처님 회상(會上)의 제자들을 분별해 알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 만큼의 부처님 회상의 제자들을 분별해 알기 위해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014_0540_b_07L非爲莊嚴一佛土故發心乃至非爲莊嚴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佛土故發心非爲分別知一佛會弟子衆故發心乃至非爲分別知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佛會弟子衆故發心
한 부처님의 법륜(法輪)을 받아 지니기 위해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만큼의 부처님의 법륜을 받아 지니기 위하여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여러 마음을 알기 위하여서도 아니며, 한 사람의 여러 감관[根]을 알기 위해서도 아니며, 한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겁이 차례로 상속됨을 알기 위해서도 아니며, 한 사람의 모든 번뇌를 분별해 끊기 위해서 발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서는 도저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수만큼의 사람들의 모든 번뇌를 분별하여 끊기 위해서 발심하는 것도 아니다.
014_0540_b_12L非爲持一佛法輪故發心乃至非爲持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佛法輪故發心非爲知一人諸心故爲知一人諸根故非爲知一三千大千世界中諸劫次第相續故非爲分別斷一人諸煩惱故發心乃至非爲分別斷不可說不可說三千大千世界微塵等人諸煩惱故發心
014_0540_c_01L이 보살마하살들은 서원하기를 “온갖 시방의 중생을 모두 교화하리라. 온갖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시리라. 온갖 시방의 모든 불국토를 정화하리라. 견고한 마음으로 온갖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법을 받아 지니리라”고 하는 것이다.
온갖 불국토를 분별해 아는 까닭에, 온갖 부처님 회상의 제자들을 분별해 아는 까닭에, 모든 중생의 온갖 마음을 분별해 아는 까닭에, 온갖 중생이 모든 번뇌를 끊음을 아는 까닭에, 모든 중생의 모든 감관을 아는 까닭에 보살들은 발심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무는 것이다.
014_0540_b_20L是諸菩薩摩訶薩願言盡教化一切十方衆盡供養供給一切十方諸佛願令一切十方諸佛土淸淨心堅受持一切十方諸佛法分別知一切諸佛土盡知一切諸佛弟子衆故分別知一切衆生諸心故知斷一切衆生諸煩惱故盡知一切衆生諸根故諸菩薩發心作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러한 열 가지 문(門)을 으뜸으로 삼으며, 나아가 백ㆍ천ㆍ만ㆍ억ㆍ아승기의 문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도법의 문으로 삼는다. 보살이 알아야 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기에 이처럼 간략히 설명했다.
보살의 실다운 도는 모든 법에 다 들어가고 다 알게 되는 것이니, 지혜로써 알기 때문이며, 모든 불국토는 보살도(菩薩道) 가운데 장엄되기 때문이다.
014_0540_c_05L是等十門爲首乃至百千萬億阿僧祇門是爲道法門菩薩應知應入說如是諸菩薩實道一切諸法皆入皆知智慧知故一切佛土菩薩道中莊嚴故
구사나(漚舍那)가 다시 말했다.
“선남자여, 나의 서원이 이러하므로 세계가 생긴 이래로 모든 중생이 다 청정하고 모든 번뇌를 모두 끊으리라.”
수달나(須達那)가 물었다.
“이는 무슨 해탈입니까?”
014_0540_c_10L漚舍那言善男子我願如是自有世界已來一切衆生盡淸淨切煩惱悉斷須達那言是何解脫
구사나가 대답했다.
“이를 ‘근심 없고 안온한 표식[幢]’이라 합니다. 나는 이 한 해탈문만 알 뿐 보살들의 큰 마음이 마치 대해의 물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능히 받아지님을 알지 못합니다. 보살들은 마음이 요동치 않아 수미산 같고, 보살들은 약왕(藥王)과 같아서 능히 온갖 번뇌를 제하고, 보살들은 해와 같아서 능히 온갖 어두움을 제거하고, 보살들은 땅과 같아서 능히 모든 중생을 감싸고, 보살들은 바람과 같아서 능히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보살들은 불과 같아서 온갖 외도 및 모든 번뇌를 태우고, 보살들은 구름과 같아서 법의 비[法雨]를 내리고, 보살들은 달과 같아서 복덕의 광명으로 능히 모든 것을 비추고, 보살들은 제석환인과 같아서 능히 모든 중생을 수호합니다. 이러한 보살의 길[道法]은 깊고 깊거늘 내가 어찌 다 알겠습니까.”
014_0540_c_12L舍那答言是名無憂安隱幢我知此一解脫門不知諸菩薩大心如大海一切諸佛法能持能受諸菩薩心不動如須彌山諸菩薩如藥王能除一切諸煩惱諸菩薩如日能照除一切諸菩薩如地能含受一切衆生菩薩如風能益一切衆生諸菩薩如能燒一切外道諸煩惱諸菩薩如能雨法水諸菩薩如月福德光明能照一切諸菩薩如釋提桓因守護一切衆生是菩薩道法甚深我云何能盡知
014_0541_a_01L그러므로 모든 보살들은 대원을 일으켜서 큰 일을 이루고자 하고 큰 곳[大處]에 이르고자 하기 때문에 마하살타라 한다.
또한 이 『반야바라밀다경』 가운데 마하살타의 모습은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이러한 모습이 바로 마하살타의 모습이다. 사리불ㆍ수보리ㆍ부루나 등 큰 제자들이 각각 그 품에서 말씀하셨기에 그 가운데에서 자세히 설명하리라.
014_0541_a_01L以是諸菩薩生大願欲得大欲至大處故摩訶薩埵復次『般若波羅蜜經』中摩訶薩埵相佛自如是如是相是摩訶薩埵相舍利須菩提富樓那等諸大弟子各各說彼品此中應廣說

10. 초품 중 보살의 공덕을 풀이함
014_0541_a_06L大智度初品中菩薩功德釋論第十

【經】 모두가 다라니(陀羅尼)72) 및 모든 삼매(三昧)73)를 얻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74)을 행하여 이미 등(等)과 인(忍)을 얻었다.
014_0541_a_07L【經】
皆得陁羅尼及諸三昧行空無相已得等忍
【論】 【문】 무슨 까닭에 이 세 가지 일로써 차례차례 보살마하살을 찬탄하는가?
014_0541_a_09L【論】
問曰何以故以此三事次第讚菩薩摩訶薩
【답】 보살들의 실다운 공덕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찬탄해야 할 일은 찬탄하고 믿어야 할 일은 믿어야 하나, 온갖 중생들이 믿기 어려운 매우 깊고 청정한 법으로써 보살을 찬탄하셨다.
014_0541_a_10L答曰欲出諸菩薩實功德故應讚則讚應信則信一切衆生所不能信甚深淸淨法讚菩薩
또한 앞에서 보살마하살의 명호를 설명했지만 아직도 보살마하살이 되는 까닭을 말하지 못했는데, 모든 다라니와 삼매 및 인(忍) 등의 모든 공덕을 얻는 까닭에 일컬어 보살마하살이라 하는 것이다.
014_0541_a_13L復次先說菩薩摩訶薩名字說所以爲菩薩摩訶薩以得諸陁羅三昧及忍等諸功德故名爲菩薩摩訶薩
【문】 그 순서는 이미 알았지만 어째서 다라니라 하는가? 무엇을 다라니라 하는가?
014_0541_a_16L問曰已知次第義何以故名羅尼云何陁羅尼
【답】 다라니는 진나라에서는 능지(能持)라 하며, 혹은 능차(能遮)라 하기도 한다. 능지라 함은 갖가지 착한 법을 모으고 능히 지니어 흩어지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니, 마치 빈틈없는[完] 그릇에 물을 담으면 새지 않는 것과 같다.
능차라 함은 착하지 못한[不善根]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싫어하고 능히 막아 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나쁜 죄를 지으려 하면 막아서[持]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다라니라고 한다.
014_0541_a_17L答曰陁羅尼秦言能持或言能遮能持者集種種善法能持令不散不失譬如完器盛水不漏散能遮者惡不善根心生能遮令不生若欲作惡罪持令不作是名陁羅尼
014_0541_b_01L이 다라니는 마음과 상응하기도 하고 마음과 상응하지 않기도 하며,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며, 무색(無色)이어서 볼 수 없으며, 대상이 없으며[無對], 한 계[持]75)이고 한 입(入)76)이고 한 음섭[一陰攝]이며, 9지지(智知)77)이며거란본 주에는 제진지(除盡智)라고 하였다., 한 의식으로 알며[一識識]거란본 주에는 일의식(一意識)이라고 하였다., 아비담법(阿毘曇法)이다.
다라니의 뜻은 이와 같다.
014_0541_a_22L是陁羅尼或心相應或心不相或有漏或無漏無色不可見無對一入一陰攝法持法入行陰九智知丹注云除盡智一識識丹注云一意識阿毘曇法陁羅尼義如
또한 다라니를 얻은 보살은 온갖 들은 법을 기억력에 의하여 잘 간직하여 잃지 않는다.
또한 이 다라니의 법은 항상 보살을 뒤쫓나니, 마치 한낮의 학질병과 같다.
이 다라니가 보살을 여의지 않음은 마치 귀신이 붙은 것 같으며, 이 다라니가 항상 보살을 따름은 마치 선(善)ㆍ불선(不善)의 율의와 같다.
014_0541_b_02L復次得陁羅尼菩薩一切所聞法以念力故能持不失復次是陁羅尼法常逐菩薩譬如閒日瘧病是陁羅尼不離菩薩譬如鬼著是陁羅尼常隨菩薩如善不善律儀
또한 이 다라니는 보살을 잘 보호하여 두 경지[地]78)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나니, 마치 인자한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자식이 구덩이에 빠지려 하거든 보호하여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또한 보살은 다라니의 힘을 얻었으므로 온갖 마왕(魔王)79)이나 마민(魔民)이나 마인(魔人)이 능히 흔들지 못하고 깨뜨리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나니, 마치 수미산을 예사 사람이 입으로 불어서는 끄덕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014_0541_b_06L復次是陁羅尼持菩薩不令墮二地坑譬如慈父愛子子欲墮坑持令不墮復次菩薩得陁羅尼力故一切魔王魔民魔人無能動無能破無能勝譬如須彌山人口吹不能令動
【문】 이 다라니에는 몇 종류가 있는가?
014_0541_b_11L問曰是陁羅尼有幾種
【답】 이 다라니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문지(聞持)다라니라 한다. 이 다라니를 얻은 이는 온갖 이야기와 모든 법을 귀에 스치기만 하면 모두 잃지 않는다. 이것이 문지다라니이다.
또한 분별지(分別知)다라니가 있으니, 이 다라니를 얻은 이는 모든 중생과 모든 법의 크고 작음과 좋고 나쁨을 분별해서 남김없이 안다.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1_b_12L答曰是陁羅尼多種一名聞持陁羅尼得是陁羅尼者一切語言諸法耳所聞者皆不忘失是名聞持陁鄰尼復有分別知陁羅尼得是陁羅尼者衆生諸法大小好醜分別悉知如偈說

모든 코끼리ㆍ말ㆍ금 따위와
나무ㆍ돌ㆍ옷가지들과
남자와 여자와 그리고 물은
갖가지로 모두가 똑같지 않다.
014_0541_b_16L諸象馬金
木石諸衣
男女及水
種種不同

모든 물건들 이름은 하나이나
귀하고 천한 이치는 다르니
이 총지를 얻는다면
모두를 분별해 알 수 있다.
014_0541_b_18L諸物名一
貴賤理殊
得此摠持
悉能分別

또한 입음성(入音聲)다라니가 있으니, 이 다라니를 얻으면 온갖 소리를 들어도 좋아하거나 성내지 않는다. 만약에 모든 중생들이 항하의 모래수 만큼 오랜 겁 동안 욕을 하고 매도한다고 해도 마음으로 증오하거나 원한을 품는 일이 없는 것이다.
014_0541_b_19L復有入音聲陁羅尼菩薩得此陁羅尼者聞一切語言音不喜不瞋一切衆生如恒河沙等劫惡言罵詈心不憎恨
【문】 보살은 모든 누(漏)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항하의 모래수 만큼 많은 겁 동안에 이러한 거친 일[惡]을 참는가?
014_0541_b_23L問曰菩薩諸漏未盡云何能如恒河沙等劫忍此諸惡
014_0541_c_01L【답】 내가 먼저 말하기를 “이 다라니의 힘을 얻는 까닭에 능히 그렇게 된다” 하지 않았던가?
또한 이 보살은 비록 모든 누가 다하지는 못했으나 큰 지혜와 예리한 감관으로 능히 사유해, 성내는 마음을 제해 버리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에 귀[耳根]가 소리 곁으로 가지 않거늘 욕하는 소리가 어디에 붙으랴. 또한 매도하는 소리를 들어도 못들은 채 곧장 지나가나니, 만약에 분별치 않는다면 누가 성을 낼 것인가.”
범부들의 마음은 나[吾我]에 집착되어서 시비를 분별하고는 성내고 억울해 한다.
014_0541_c_01L答曰我先言得此陁羅尼力故能爾復次是菩薩雖未盡漏大智利根能思惟除遣瞋作是念若耳根不到聲邊惡聲著又如罵聲聞便直過若不分別當瞋者凡人心著吾我分別是非而生恚恨
또한 만일 어떤 사람이 말이란 좇아 일어나고 좇아 사라져서 앞과 뒤가 함께하지 않는 줄 알면 곧 성낼 일이 없어진다.
또한 모든 법이 안으로 주체가 없음을 안다면 누가 꾸짖고 누가 성을 내겠는가. 가령 어떤 사람이 다른 지방말[異語]을 들었을 때에 자기네 말은 좋게 여기고 다른 말은 나쁘게 여기거나 좋고 나쁨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비록 꾸짖는다 해도 성내지 않게 된다.
014_0541_c_07L復次若人能知諸言隨生隨前後不俱則無瞋恚亦知諸法內無有主誰罵誰瞋若有人聞殊方異此言爲好彼以爲惡好惡無定罵不瞋
또한 어떤 사람이 말이나 소리에 정해진 것이 없는 줄 알면 성내거나 기뻐할 일이 없게 된다. 마치 친하고 사랑하는 이가 꾸짖으면 비록 꾸짖어도 원통하지 않지만, 친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이가 꾸짖으면 듣자마자 성을 내지 않는 것과 같다.
비바람을 만나면 집으로 들어가거나 우산을 들고, 땅에 가시가 있으면 가죽신을 신고, 날씨가 크게 추우면 불을 피우고, 더울 때에는 물을 구하나니, 이러한 모든 환란에 다만 막는 법만을 구할지언정 성내지 않는다.
꾸짖거나 욕하는 이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해야 하니, 오직 자비로써 모든 악(惡)을 그치게 할지언정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014_0541_c_11L若有人知語聲無定則無瞋如親愛罵之雖罵不恨非親惡言聞則生恚如遭風雨則入舍持蓋地有刺則著靴鞋大寒燃火熱時求如是諸患但求遮法而不瞋之詈諸惡亦復如是但以慈悲息此諸不生瞋心
또한 보살은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 그 성품이 모두 공한 줄 안다. 가령 어떤 이가 성내고 꾸짖거나 혹은 때리거나 혹은 해치려 하더라도 꿈같고 환[化]같이 여기나니, 성내는 이가 누구이며, 꾸짖는 이가 누구이겠는가.
또한 어떤 사람을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 중생들이 찬탄하고, 의복ㆍ음식ㆍ와구ㆍ의약과 영락 등으로 공양하더라도, 법인을 얻은 보살80)이라면 그 마음이 흔들리거나 기뻐하거나 집착되지 않는다.
014_0541_c_17L復次菩薩知諸法不生不其性皆空若人瞋恚罵詈若打若如夢如化誰瞋誰罵復次若有人如恒河沙等劫衆生讚歎供養衣食臥具醫藥華香瓔珞得忍菩薩其心不動不喜不著
【문】 이미 보살이 성내지 않는 갖가지 인연은 알았다. 그렇다면 진실로 공덕을 찬탄함을 알지 못한 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014_0541_c_22L問曰已知菩薩種種不瞋因緣未知實讚功德而亦不喜
014_0542_a_01L【답】 갖가지 공양과 공경이 모두가 무상한 줄 아는 것이다. 지금은 까닭이 있어서 와서 찬탄하고 공양하지만 나중에 다른 인연이 있으면 다시 성내거나 때리거나 혹은 해하려 할 것이기에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014_0541_c_23L答曰知種種供養恭敬是皆無常有因緣故來讚歎供養後更有異因緣則瞋恚若打若殺是故不喜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에게 공덕과 지혜가 있는 까닭에 찾아 와서 찬탄하고 공양하는 것이다. 이는 공덕을 찬탄하기 위함이지 나를 찬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하겠는가.’
또한 이 사람이 스스로의 과보를 구하는 까닭에 내가 만든 인연에 대해서 공양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곡식을 심고 물을 대고 다듬는다고 해서 땅이 기뻐하지 않는 것과 같다.
014_0542_a_03L復次菩薩作是念以我有功德智慧故讚歎供養是爲讚歎功德非讚我也我何以喜復次是人自求果報故我所作因緣供養我作功德譬如人種穀漑灌修理地亦不喜
또한 어떤 사람이 나에게 공양할 때, 내가 기꺼이 받는다면 나의 복덕은 엷어지고 다른 이의 복덕 역시 적어진다. 그러므로 기뻐하지 않는다.
또한 보살은 온갖 법이 꿈같고 메아리 같은 줄로 관찰한다. 그러니 찬탄하는 이가 누구이며, 기뻐하는 이가 누구이겠는가. 나는 삼계 안에서 해탈을 얻지 못했고, 모든 누가 다하지 못했고, 불도도 얻지 못했거늘 어떻게 찬탄을 얻었다 해서 기뻐하겠는가. 만일 기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오직 부처님 한 사람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일체의 공덕이 이미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014_0542_a_08L復次若人供養我我若喜受者福德則薄他人得福亦少以是故不復次菩薩觀一切法如夢如響讚誰喜我於三界中未得脫諸漏未未得佛道云何得讚而喜若應喜唯佛一人何以故一切功德都已滿故
그러므로 보살은 갖가지로 찬탄 받고 공양 받는다 해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러한 모습을 입음성(入音聲)다라니라 한다.
014_0542_a_15L是故菩薩得種種讚歎供養心不生喜如是等相名爲入音聲陁羅尼
또한 적멸(寂滅)다라니ㆍ무변선(無邊旋)다라니ㆍ수지관(隨地觀)다라니ㆍ위덕(威德)다라니ㆍ화엄(華嚴)다라니ㆍ음정(音淨)다라니ㆍ허공장(虛空藏)다라니ㆍ해장(海藏)다라니ㆍ분별제법지(分別諸法地)다라니ㆍ명제법의(明諸法義)다라니가 있다. 이러한 다라니문이 간략히 말해서 5백 개가 있으며,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량이 없다. 그러므로 보살들은 모두 다라니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014_0542_a_17L復有名寂滅陁羅尼無邊旋陁羅尼隨地觀陁羅尼威德陁羅尼華嚴陁羅尼音淨陁羅尼虛空藏陁羅尼海藏陁羅尼分別諸法地陁羅明諸法義陁羅尼如是等略說五百陁羅尼門若廣說則無量以是故言諸菩薩皆得陁羅尼
014_0542_b_01L모든 삼매라 함은 세 가지 삼매이니, 공(空)ㆍ무작(無作)ㆍ무상(無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5음(陰)81)이 나 없고 내 것 없음을 관찰하면 이를 공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공삼매(空三昧)82)에 머물러서 뒷세상을 위하여 3독(毒)83)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를 무작이라 일컬으며, 열 가지 모습의 법인 5진(塵)과 남ㆍ녀ㆍ생ㆍ주ㆍ멸을 여읨에 연하는 까닭에 무상이라 일컫는다.”
014_0542_a_23L諸三昧三昧無作無相有人言觀五陰無無我所是名爲空住是空三昧爲後世故起三毒是名無作緣離十相故五塵滅故是名無相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삼매 가운데 머물러서 모든 법의 실상(實相), 즉 필경공(畢竟空)을 아나니, 이를 공삼매라 한다. 이러한 공을 알고 나면 곧 무작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무작이겠는가? 모든 법이 공하거나 혹은 불공이거나 혹은 있거나 혹은 없음 등을 보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구(法句)에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2_b_03L有人言住是三昧中知一切諸法實所謂畢竟空是名空三昧知是空已無作云何無作不觀諸法若空若不空若有若無等如佛說法句中偈

있음[有]을 보면 곧 두려워하고
없음[無]을 보아도 두려워하니
그러므로 유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무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014_0542_b_07L見有則恐怖
見無亦恐怖
是故不著有
亦復不著無

이것이 무작삼매이다.
어떤 것이 무상삼매(無相三昧)84)인가? 온갖 법은 형상이 없으니,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이를 무상삼매라 한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014_0542_b_09L是名無作三昧云何無相三昧一切法無有相一切法不受不著是名無相三昧如偈說

언어의 길이 이미 끊겼고
심행(心行)도 사라졌도다.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그대로가 열반의 모습이다.
014_0542_b_12L言語已息
心行亦滅
不生不滅
如涅槃相

또한 18공(空)을 공삼매85)라 하고, 갖가지단주(丹注)에는 5도(道)에서의 생유(生有)ㆍ사유(死有)ㆍ중유(中有)의 업이라 하였다. 유(有)에서 구하는 마음 없는 것을 무작삼매라 하고, 온갖 형상이 파괴되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무상삼매라 한다.
014_0542_b_14L復次十八空是名空三昧種種丹注云五道生有本有中有有中心不求是名無作三昧一切諸相破壞不憶念是名無相三昧
【문】 갖가지 선정(禪定)의 법이 있거늘 어찌하여 이 세 가지 삼매만을 일컫는가?
014_0542_b_17L問曰種種禪定法何以故獨稱此三三昧
【답】 이 세 가지 삼매 가운데 행하는 사유는 열반에 가깝기 때문이니, 사람의 마음을 들뜨거나 위축시키지도 않으며 평등하게 해주어 요동치 않게 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삼매만을 일컫는다.
014_0542_b_18L是三三昧中思惟近涅槃故令人心不高不下平等不動餘處不爾是故獨稱是三三昧
014_0542_c_01L다른 선정에서는 애착[愛]이 많아지기거나 혹은 교만이 많아지거나 혹은 사견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이 세 가지 삼매의 으뜸가는 진실한 뜻은 실로 예리해서 능히 열반의 문을 얻게 한다.
그러므로 여러 선정법 가운데서 이 세 가지 선정법을 해탈문으로 삼으며, 또한 3삼매(三昧)86)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삼매가 진실한 삼매인 까닭에 다른 선정 역시 선정[定]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014_0542_b_21L餘定中或愛多或慢多或見多是三三昧中第一實義實利能得涅槃門以是故諸禪定法中以是三空法爲三解脫門亦名爲三三昧是三三昧實三昧故餘定亦得名定
또한 네 가지 근본선(根本禪)87)을 제외한 미도지(未到地)88)에서 유정지(有頂地)89)에 이르기까지를 정(定)이라 하고, 또한 삼매라고도 한다. 비선(非禪)의 네 선정[四禪]90)도 정(定)이라고도 하고 선(禪)이라고도 하고 삼매(三昧)라고도 한다. 그 밖의 다른 선정들도 정이라 하고 삼매라 하니, 이른바 4무량(無量)ㆍ4변(辯)ㆍ6통(通)91)ㆍ8배사(背捨)92)ㆍ8승처(勝處)93)ㆍ9차제정(次第定)94)ㆍ10일체처(一切處)95) 등의 선정법들이 그것이다.
014_0542_c_03L復次除四根本禪從未到地乃至有頂地名爲定亦名三昧非禪禪亦名定亦名禪亦名三昧諸餘定亦名定亦名三昧如四無量四空定四辯六通八背捨八勝處九次第定十一切處等諸定法
또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삼매의 법에는 23종이 있다”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65종이 있다”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5백 종이 있다” 한다.
014_0542_c_08L復有人言一切三昧法有二十三種有言六十五種有言百種
하지만 마하연은 가장 위대한 까닭에 한량없는 삼매가 있다. 이른바 두루 법성을 장엄하는 삼매[遍法性莊嚴三昧]와 능히 일체삼세법을 비추는 삼매[能照一切三世法三昧]와 법성의 끝[底]을 분별치 않고 관찰하는 삼매[不分別知觀法性底三昧]와 끝없는 불법에 드는 삼매[入無底佛法三昧]와 허공과 같이 끝없고 가없이 비추는 삼매[如虛空無底無邊照三昧]와 여래의 힘으로 관찰을 행하는 삼매[如來力行觀三昧]와 부처님의 무외장엄으로 빙그레 웃는 삼매[佛無畏莊嚴力嚬呻三昧]와 법성의 문이 선장(旋藏)하는 삼매[法性門旋藏三昧]와 일체세계가 장애 없이 장엄되어 달에까지 두루 차는 삼매[一切世界無礙莊嚴遍月三昧]와 법의 운광(雲光)을 두루 장엄하는 삼매[遍莊嚴法雲光三昧]이니, 보살은 이처럼 한량없는 삼매들을 얻는다.
014_0542_c_10L摩訶衍最大故無量三昧所謂遍法性莊嚴三昧能照一切三世法三昧不分別知觀法性底三昧入無底佛法三昧如虛空無底無邊照三如來力行觀三昧佛無畏莊嚴力嚬呻三昧法性門旋藏三昧一切世界無㝵莊嚴遍月三昧遍莊嚴法雲光三昧菩薩得如是等無量諸三昧
또한 『반야바라밀경』의 「마하연의품(摩訶衍義品)」에서는 약설하여 108 가지 삼매를 말하는데, 처음 수릉엄삼매로부터 허공과 같이 집착하지 않고 물들지 않는 삼매[虛空不著不染三昧]에 이르기까지이다. 자세히 말하면 무량 삼매가 있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보살들은 모든 삼매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014_0542_c_17L復次『般若波羅蜜ㆍ摩訶衍義品』中略說則有一百八三昧初名首楞嚴三昧至虛空不著不染三昧廣說則無量三昧以是故說諸菩薩得諸三昧
【論】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삼매를 행한다.
014_0542_c_21L無相無作
【문】 전에는 말하기를 “보살들이 모든 삼매를 얻었다” 하더니, 어찌하여 다시 말하기를 “공ㆍ무상ㆍ무작삼매를 행한다” 하는가?
014_0542_c_22L問曰前言菩薩得諸三昧何以故復言行空無相無作
014_0543_a_01L【답】 전에는 삼매의 이름만을 말했을 뿐 그 모습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 모습을 말하기 위하여 공ㆍ무상ㆍ무작의 삼매를 행한다 했다. 어떤 사람이 공ㆍ무상ㆍ무작의 삼매를 행하면 이는 실상(實相)삼매를 얻은 사람이라 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2_c_23L前說三昧名未說相今欲說相故言行空無作無相若有人行空無作是名得實相三昧如偈說

계를 지니어 청정하다면
이를 진실한 비구라 부르고
능히 공을 잘 관찰한다면
이를 삼매를 얻었다 한다.
014_0543_a_03L若持戒淸淨
是名實比丘
若有能觀空
是名得三昧

부지런히 정진을 쌓으면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 부르고
만약에 열반을 얻었으면
이를 진실한 즐거움이라 한다.
014_0543_a_05L若有能精進
是名行道人
若有得涅槃
是名爲實樂

【論】 이미 등(等)과 인(忍)을 얻었다.
014_0543_a_06L已得等忍
【문】 무엇을 등이라 하며, 무엇을 인이라 하는가?
問曰云何云何
【답】 두 가지 등(等)이 있으니, 중생등(衆生等)과 법등(法等)이다. 인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이다.
무엇을 중생등이라 하는가? 곧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ㆍ평등한 생각ㆍ평등한 사랑ㆍ평등한 이익을 주는 것을 중생등이라 한다.
014_0543_a_07L有二種等衆生等法等忍亦二種衆生忍法忍云何衆生等一切衆生等心等念等愛等利是名衆生等
【문】 자비의 힘 때문에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생각할지언정 평등하게 관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보살은 진실한 도를 행하여 뒤바뀌지 않고 법의 모습 그대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 대인과 소인, 축생을 동일하게 보는가?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진실로 착하지 못한 모습이 있고 착한 사람에게는 진실로 착한 모습이 있으며, 대인과 소인, 그리고 축생도 그러할 것이다.
014_0543_a_10L問曰慈悲力故於一切衆生中應等不應等觀何以故菩薩行實道顚倒如法相云何於善人不善人大人小人人及畜生一等觀不善人中實有不善相善人中實有善相大人小人及畜生亦爾
마치 소의 모습은 소에게 있고, 말의 모습은 말에게 있어서 소의 모습이 말 가운데 있지 않고 말의 모습이 소 가운데 있지 않는 것과 같으니, 말이 소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생들도 각기 제 모습을 지녔거늘 어찌 동일하게 평등이 관찰하고도 전도(顚倒)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014_0543_a_16L如牛相牛中住馬相馬中住牛相非馬中馬相非牛中馬不作牛故衆生各各相云何一等觀而不墮顚倒
【답】 만일 착한 모습과 착하지 않은 모습이 진실이라면 보살은 응당 전도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모습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진실로 착한 모습도 아니요 진실로 착하지 않은 모습도 아니며, 많은 모습도 아니요 적은 모습도 아니며, 인간도 아니요 축생도 아니며, 같음[一]도 아니요 다름[異]도 아니니, 그러므로 그대의 비난은 옳지 못하다.
모든 법의 모습을 말씀한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014_0543_a_19L答曰若善相不善相是實菩薩應墮顚倒何以故破諸法相故諸法非實善相非實不善相非多相非少相非人非畜生非一非異以是汝難非也如說諸法相偈
014_0543_b_01L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단절도 아니요 영원함도 아니며
같음도 아니요 다름도 아니며
감[去]도 아니요 옴[來]도 아니다.
014_0543_a_23L不生不滅
不斷不常
不一不異
不去不來

인연으로 생긴 법은
모든 희론을 멸하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나 이제 마땅히 말해야 하리.
014_0543_b_02L因緣生法
滅諸戲論
佛能說是
我今當禮

또한 온갖 중생 가운데 갖가지 모습에 집착하지 않아 중생의 모습[衆生相]이나 비어 있는 모습[空相]이 동등한 것으로 다르지 않다고 이처럼 관찰함을 일컬어 중생등이라 한다.
014_0543_b_03L復次一切衆生中不著種種相衆生空相一等無異如是觀是名衆生
만일 어떤 사람이 여기에 대하여 마음이 평등해져서 걸림이 없다면 그는 곧장 물러서지 않는 경지[不退]에 들게 된다. 이것을 등과 인을 얻었다 하는데, 등과 인을 얻은 보살은 온갖 중생에게 성내지 않으며 그들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함과 같으니, 게송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014_0543_b_06L若人是中心等無㝵直入不退名得等忍得等忍菩薩於一切衆生不瞋不惱如慈母愛子如偈說

말소리는 메아리 같고
몸의 행위는 거울의 모습 같다 보니
이렇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인들 참지 못하랴.
014_0543_b_08L觀聲如呼響
身行如鏡像
如此得觀人
云何而不忍

이것을 중생의 등인이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법의 등과 인이라 하는가? 곧 착한 법과 착하지 못한 법, 유루의 법과 무루의 법, 유위의 법과 무위의 법 등 이와 같은 모든 법에 대해서 불이(不二)의 법문에 들고, 실다운 법상(法相)의 문에 든다. 이와 같이 든 뒤에 여기에서 모든 법의 실상에 깊이 들 때에 마음으로 확인[忍]하여 무쟁(無諍)ㆍ무애(無礙)에 든다면 이를 법의 등인이라 한다.
이러한 게송이 있다.
014_0543_b_10L是名衆生等忍云何名法等忍善法不善法有漏無漏有爲無爲等法是諸法入不二入法門入實法相門如是入竟是中深入諸法實相時忍直入無諍無㝵是名法等忍如偈說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생멸하지도 않으면서 생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생멸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생멸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
014_0543_b_15L諸法不生不滅
非不生非不滅
亦不生滅非不生滅
亦非不生滅
非非不生滅

이미 해탈을 얻어단주(丹註)에 말하기를 ‘삿된 소견을 여의게 되는 까닭에 해탈이라 한다’ 하였다. 공(空)과 비공(非空)단주에 말하기를 ‘공에도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비(非)라 한다’ 하였다.이라는 이러한 모든 희론을 버리고 없애어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불법에 깊이 들어가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흔들리거나 물러남이 없는 것을 무생인(無生忍)이라 한다. 이는 불도를 돕는 첫 문인 까닭에 ‘이미 등과 인을 얻었다’ 하는 것이다.
014_0543_b_18L已得解脫丹注云於邪見得離故言解脫也空丹注云於空不取故言非也是等悉捨滅諸戲論言語道斷深入佛法心通無㝵不動不退名無生忍是助佛道初門以是故說已得等忍
【經】 걸림 없는 다라니를 얻었다.
【經】
得無㝵陁羅尼
【論】 【문】 앞에서 이미 보살이 다라니를 얻었다 하였는데 이제 어찌하여 다시 걸림 없는 다라니를 얻었다 하는가.
014_0543_b_23L【論】
問曰前已說諸菩薩得陁羅尼何以復說得無㝵陁羅尼
014_0543_c_01L【답】 걸림 없는 다라니가 가장 크기 때문이니, 마치 모든 삼매 가운데서 삼매의 왕이 가장 크고, 모든 인간 가운데서 왕이 가장 크고, 모든 해탈 가운데서 걸림 없는 해탈이 가장 큰 것과 같다.단주에 말하기를 ‘부처를 이루고 도를 얻을 때에 얻어지는 것이다’ 했다. 이와 같이 모든 다라니 가운데 걸림 없는 다라니가 가장 크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는 것이다.
014_0543_c_01L答曰無㝵陁羅尼最大故如一切三昧中三昧王三昧最大如人中之王如諸解脫中無㝵解脫大丹注云得佛得道時所得也如是一切諸陁羅尼無㝵陁羅尼大以是故重說
또한 먼저는 보살들이 다라니를 얻었다고는 하였으나 이것이 어떤 다라니인지는 모른다. 작은 다라니가 있으니, 전륜성왕이나 선인 등이 얻는 문지다라니ㆍ분별중생다라니ㆍ귀명구호불사다라니(歸命救護不捨陀羅尼)가 그것이다. 이러한 작은 다라니는 다른 사람들도 얻지만 이 걸림 없는 다라니만은 외도ㆍ성문ㆍ벽지불ㆍ새로 배움에 든[新學] 보살들은 아무도 얻지 못하고, 오직 한량없는 복덕과 지혜를 갖춘 대력(大力) 보살들만이 이 다라니를 얻는다.
그러므로 달리 말하는 것이다.
014_0543_c_05L復次說諸菩薩得陁羅尼不知是何等陁羅尼有小陁羅尼如轉輪聖王仙人等所得聞持陁羅尼分別衆生陁羅歸命救護不捨陁羅尼如是等小陁羅尼餘人亦有是無㝵陁羅尼聲聞辟支佛新學菩薩皆悉不得唯無量福德智慧大力諸菩薩獨有是陁羅尼以是故別說
또한 이 보살들은 스스로를 이롭게 함은 이미 갖추어졌으므로 단지 남에게 이득을 주고자 해서 끝없이 법을 설하고 교화하며 걸림 없는 다라니로써 근본을 삼는다. 그러므로 보살들은 항상 걸림 없는 다라니를 행한다.
014_0543_c_13L復次是菩薩輩自利已具足但欲益彼說法教化無盡以無㝵陁羅尼爲根本以是故諸菩薩常行無㝵陁羅尼
【經】 모두가 5통(通)을 얻었다.
【經】
悉是五通
【論】 여의(如意)ㆍ천안(天眼)ㆍ천이(天耳)ㆍ타심지(他心智)ㆍ자식숙명(自識宿命)을 말한다.
무엇을 여의(如意)라고 하는가? 여의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능도(能到))와 전변(轉變)과 성여의(聖如意)이다.
014_0543_c_16L【論】
如意天眼天耳他心智自識宿命云何如意如意有三種能到轉變如意
능도에 네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몸이 능히 날아다니되 새와 같아서 걸림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먼 곳을 가깝게 만들어 가지 않고도 도달하는 것이요, 셋째는 여기에서 숨어서는 저기에서 나오는 것이요, 넷째는 깜빡할 사이에 능히 이르는 것이다.
014_0543_c_19L能到有四種一者身能飛行鳥無㝵二者移遠令近不往而到此沒彼出四者一念能至
014_0544_a_01L전변이라 함은 큰 것을 작게 만들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들며, 하나를 많게 만들고 많은 것을 하나로 만드는 등 갖가지 물건을 능히 바꾸어 놓는 것이다. 외도의 전변은 멀어도 7일을 지나지 못하는데 부처님이나 제자들의 전변은 자재로워서 멀고 가까움이 없다.
014_0543_c_21L轉變者大能作小小能作大一能作多多能作一種種諸物皆能轉變外道輩轉極久不過七日諸佛及弟子轉變自在無有久近
성여의라 함은 밖의 6진(塵)96)에 대해 사랑스럽지 못하고 부정한 물건을 관하여 정화시키고, 사랑스럽고 깨끗한 물건을 관하여 부정하게 만드니, 이 성여의는 부처님만이 가지신다.
이러한 여의통은 4여의족(如意足)을 닦음으로부터 생기며, 이 여의족통 등은 색의 반연인 까닭에 차례차례 생길지언정 일시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014_0544_a_02L聖如意者外六塵中不可愛不淨物能觀令淨可愛淨物能觀令不淨是聖如意法唯佛獨有是如意通從修四如意足生是如意足通等色緣故次第生不可一時得
천안통이라 함은 눈에 있어서 색계의 4대로 지어진 청정한 색(色)을 얻는 것이니, 이를 천안이라 한다.
천안으로 보이는 곳은 스스로의 경지[地] 및 아래 경지에 있는 6도(道) 중생들로서, 모든 사물의 멀고 가까움, 거칠고 미세함 등 모든 모양[色]을 비추어 보지 못함이 없다.
014_0544_a_06L眼通者於眼得色界四大造淸淨色是名天眼天眼所見自地及下地六道中衆生諸物若近若遠若覆若細諸色無不能照
천안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과보에 따라 얻는 것이요, 둘째는 수행에 따라 얻는 것이다.
이 5신통 가운데 천안은 수행으로 얻을 뿐 과보로 얻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 갖가지 광명을 억념해서 얻기 때문이다.
014_0544_a_10L見天眼有二種一者從報得二者從修得是五通中天眼從修得非報得何以故常憶念種種光明得故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보살들은 무생법인의 힘을 얻는 까닭에 6도(道)에 속하지 않지만 다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에 법신으로써 시방에 현현한다. 삼계 가운데에서 아직 법신을 얻지 못한 보살은 혹은 닦아서 얻기도 하고 혹은 과보로 얻기도 한다.”
014_0544_a_13L復次有人言是諸菩薩輩得無生法忍力故六道中不攝但爲教化衆生故以法身現於十方三界中得法身菩薩或修得或報得
【문】 이 보살들의 공덕이 아라한이나 벽지불보다 수승하거늘 어찌하여 범부들과 함께하는 작은 공덕인 천안만을 찬탄하시고, 보살들의 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은 찬탄하시지 않는가?
014_0544_a_16L問曰諸菩薩功德勝阿羅漢辟支佛何以故讚凡夫所共小功德天眼不讚諸菩薩慧眼法眼佛眼
【답】 하늘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거짓 이름의 하늘[假號天]이요, 둘째는 태어나는 하늘[生天]이요, 셋째는 청정한 하늘[淸淨天]이다. 전륜성왕과 그 밖의 대왕들은 거짓 하늘이라 하고, 사천왕(四天王)97)으로부터 유정천(有頂天)이 태어나는 곳을 태어나는 하늘이라 하고, 부처님ㆍ법신 보살ㆍ벽지불ㆍ아라한들을 청정한 하늘이라 한다.
014_0544_a_19L答曰有三種天假號天生天淸淨天轉輪聖諸餘大王等是名假號天從四天王天乃至有頂生處是名生天諸佛法身菩薩辟支佛阿羅漢是名淸淨
014_0544_b_01L이러한 청정한 하늘에서 닦아 얻는 하늘의 눈을 천안통이라 하다. 부처님의 법신과 보살의 청정한 하늘 눈은 일체의 욕망을 여읜 것으로, 5신통을 얻은 온갖 범부들은 얻지 못하는 바이며, 성문이나 벽지불들도 얻지 못하는 바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작은 아라한이 작게 부리는 마음은 일천세계를 보고 크게 부리는 마음은 이천세계를 보며, 큰 아라한이 작게 부리는 마음은 이천세계를 보고 크게 부리는 마음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보기 때문이다. 벽지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천안통이라 한다.
014_0544_b_01L是淸淨天修得天眼是謂天眼通法身菩薩淸淨天眼一切離欲五通凡夫所不能得聲聞辟支佛亦所不得所以者何小阿羅漢小用心一千世界大用心見二千世界大阿羅漢小用心見二千世界大用心三千大千世界辟支佛亦爾
무엇을 천이통이라 하는가? 곧 귀에 있어서 색계의 4대로 지어진 청정한 색을 얻어 능히 일체의 소리, 즉 하늘의 소리, 인간의 소리, 3악도(惡道)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어떻게 천이통을 얻는가? 수행하여 얻는다. 항상 갖가지 소리를 억념해 내니, 이것을 천이통이라 한다.
014_0544_b_07L是名天眼通云何名天耳通於耳得色界四大造淸淨色能聞一切聲天聲人聲三惡道聲云何得天耳通修得常憶念種種聲是名天耳通
무엇을 숙명을 아는 신통[識宿命通]이라 하는가? 곧 전생일[本事]을 항상 억념하여 날ㆍ달ㆍ해로부터 태속의 일, 나아가 과거세 가운데 1세(世)ㆍ십 세ㆍ백 세, 천ㆍ만ㆍ억 세의 일을 아는 것이다.
큰 아라한이나 벽지불에 이르러서는 8만 대겁(大劫)의 일을 알고, 보살과 부처님들은 한량없는 겁의 일을 안다. 이를 숙명을 아는 신통이라 한다.
014_0544_b_11L云何識宿命本事常憶念日月年歲至胎中至過去世中一世十世百世千萬億乃至大阿羅漢辟支佛知八萬大諸大菩薩及佛知無量劫是名識宿命通
무엇을 타심을 아는 신통[知他心通]이라 하는가? 곧 다른 이의 마음에 때[垢]가 있는 것과 때가 없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나고 머무르고 멸할 때 항상 억념하는 까닭에 얻는다.
014_0544_b_16L云何名知他心通知他心若有垢若無垢自觀心生滅時常憶念故得
또한 다른 이의 기뻐하는 모습ㆍ성내는 모습ㆍ두려운 모습을 관찰하고는 그 마음을 아나니, 이를 타심지의 첫 문호라 한다.
5신통을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014_0544_b_18L復次觀他人喜相瞋相怖相畏相見此相已然後知心是爲他心智初門是五通略說竟
【經】 말을 하면 반드시 믿어 지녔다.
【經】
言必信受
【論】 하늘ㆍ인간ㆍ용ㆍ아수라 등과 모든 큰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을 믿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꾸밈말을 하지 않은 과보이기 때문이니, 꾸밈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진실한 말을 하여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014_0544_b_20L【論】
阿修羅等及一切大人皆信受其語是不綺語報故諸綺語報者有實語一切人皆不信受如偈說
014_0544_c_01L
아귀의 길에 빠지면
불꽃이 입으로부터 솟아서
사방을 향해 큰 소리를 외치니
이는 입으로 지은 허물의 과보라.
014_0544_b_23L有墮餓鬼中
火炎從口出
四向發大聲
是爲口過報

비록 아는 것이 많아서
대중 앞에 법을 설하여도
성실치 못한 업 때문에
사람들 아무도 믿으려 않는다.
014_0544_c_02L雖復多聞見
在大衆說法
以不誠信業
人皆不信受

만일에 지식을 넓히고
남의 믿음을 얻으려 하면
지극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꾸밈말을 하지 말아라.
014_0544_c_03L若欲廣多聞
爲人所信受
是故當至誠
不應作綺語

【經】 다시는 게을러지는 일이 없었다.
014_0544_c_04L【經】
無復懈怠
【論】 게으름은 집에 있는 사람을 파괴하고, 재물과 복을 파괴하고, 출가인의 생천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을 부순다. 재가나 출가 모두의 명성을 무너뜨리니, 아무리 큰 실수나 큰 도적이라 해도 게으름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014_0544_c_05L【論】
懈怠法破在家人財利福利破出家人生天樂涅槃樂在家家名聲俱滅大失大賊無過懈怠偈說

게으름은 착한 마음을 죽이고
어리석음은 지혜의 빛을 깨뜨리니
묘한 서원이 모두가 소멸하고
큰 과업 또한 이미 잃게 되리라.
014_0544_c_08L懈怠沒善心
癡闇破智明
妙願皆爲滅
大業亦已失

그러므로 ‘다시는 게을러지는 일이 없었다’ 한 것이다.
014_0544_c_10L以是故無復懈怠
【經】 이미 이양(利養)과 명예[名聞]를 버렸다.
014_0544_c_11L【經】
已捨利養
【論】 이 이양이라는 것은 마치 도적과 같아서 공덕의 근본을 무너뜨린다. 마치 우박이 오곡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으니, 이양과 명문도 그와 같아서 공덕의 싹을 파괴하여 자라지 못하게 한다.
부처님께서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터럭 같은 노끈으로 사람의 팔을 묶으면 살이 패이고 뼈가 끊기듯이, 이양을 탐내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공덕의 근본을 끊어버린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014_0544_c_12L【論】
是利養法如賊壞功德本譬如天雹傷害五穀利養名聞亦復如是壞功德苗令不增長如佛說譬喩毛繩縛人斷膚截骨貪利養人斷功德本亦復如是如偈說

전단 숲에 들어갔건만
그 잎새만을 따거나
7보98)의 동산에 들어갔건만
수정(水精)만을 갖듯이
014_0544_c_16L得入栴檀林
而但取其葉
旣入七寶山
而更取水精

불법에 들어온 사람이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도리어 이양을 구한다면
이런 무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리라.
014_0544_c_18L有人入佛法
不求涅槃樂
反求利供養
是輩爲自欺

그러므로 불제자들이여,
감로의 맛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잡스런 독을 버리고
부지런히 열반의 즐거움 구하라.
014_0544_c_19L是故佛弟子
欲得甘露味
當棄捨雜毒
勤求涅槃樂

마치 거친 우박과 비가
오곡을 상처 주듯이
이양과 공양에 집착한다면
부끄러움 아는 두타를 깨뜨리네.
014_0544_c_20L譬如惡雹雨
傷害於五穀
若著利供養
破慚愧頭陁

금생에 선근을 불태우면
후세에는 지옥에 떨어지리니
마치 제바달다와 같은 이가
이양 때문에 스스로 멸망하듯이.
014_0544_c_22L今世燒善根
後世墮地獄
如提婆達多
爲利養自沒

그러기에 말하기를 “이미 이양과 명예를 버렸다” 한 것이다.
014_0544_c_23L以是故已捨利養名聞
014_0545_a_01L【經】 법을 설하되 바라는 바가 없었다.
014_0545_a_01L【經】
說法無所悕望
【論】 큰 자비와 연민으로 중생을 위해 설법할지언정 의식이나 명성이나 세력을 위해 설하지 않는 것이다. 크게 자비한 까닭이며,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무생법인을 얻은 까닭이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014_0545_a_02L【論】
大慈憐愍爲衆說不爲衣食名聲勢力故說大慈悲心淸淨故得無生法忍故如偈說

많은 지식과 능한 말투와 지혜로써
모든 법을 잘 말하여 사람의 마음 움직여도
스스로가 법답게 행하고 바르지 않으면
헛 구름 마른 천둥에 비는 오지 않는 것 같다.
014_0545_a_04L多聞辯慧巧言語
美說諸法轉人心
自不如法行不正
譬如雲雷而不雨

널리 배워 아는 것 많고 지혜 있어도
어눌한 말솜씨에 묘한 방편 없어서
가르침의 보장(寶藏)을 드러내지 못하면
우레도 없이 가랑비만 내리는 것과 같도다.
014_0545_a_06L博學多聞有智慧
訥口拙言無巧便
不能顯發法寶藏
譬如無雷而小雨

널리 배우지 못하고 지혜 없어서
설법도 못하고 좋은 행도 없으면
이 같은 낡은 법사에겐 부끄러움도 없나니
작은 구름에 우레도 비도 없는 것과 같다.
014_0545_a_08L不廣學問無智慧
不能說法無好行
是弊法師無慚愧
譬如小雲無雷雨

많은 지식과 넓은 지혜로 말이 능하며
묘하게 법을 설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고
법을 실천함에 마음은 바르고 두려움 없으면
큰 구름과 우레에 큰 비[洪雨]가 쏟아지는 것과 같다.
014_0545_a_10L多聞廣智美言語
巧說諸法轉人心
行法心正無所畏
如大雲雷澍洪雨

법의 대장이 법의 거울[法鏡] 들고서
불법의 지혜의 창고를 비추어 내고
지녀 외우고 널리 펴서 법의 방울 흔들면
바닷배가 모든 이를 건네주는 것과 같네.
014_0545_a_12L法之大將持法鏡
照明佛法智慧藏
持誦廣宣振法鈴
如海中船渡一切

꿀벌이 여러 맛을 모으듯이
부처님의 말과 뜻대로 설명하고서
부처님을 도와 법을 밝히고 중생을 제도하니
이러한 법사는 심히 만나기 어렵다.
014_0545_a_14L亦如蜂王集諸味
說如佛言隨佛意
助佛明法度衆生
如是法師甚難値

【經】 깊은 법인을 건넜다.
014_0545_a_16L【經】
度深法忍
【論】 무엇을 깊은 법이라 하는가? 곧 12인연(因緣)을 깊은 법이라 하나니, 부처님에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12인연의 법은 심히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하셨다.
014_0545_a_17L【論】
云何甚深法十二因緣是名甚深法如佛告阿難是十二因緣法甚深難解難知
또한 과거와 미래 세상에서 62종의 삿된 소견의 그물을 내는 일을 영원히 여의었으니, 이를 깊은 법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범부는 들은 바가 없어서 부처님을 찬탄하고자 하여도 찬탄할 바가 심히 적으니, 이른바 계행이 청정함을 찬탄하거나 혹은 모든 애욕을 여의었음을 찬탄하거나 혹은 이 심히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법을 찬탄한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있는 것이다” 하셨으니, 이에 대해서는 『범망경(梵網經)』99)에서 자세히 설해지고 있다.
014_0545_a_19L復次依過去未來世生六十二邪見網永離是名甚深如佛語比丘凡夫無聞若欲讚佛所讚甚小所謂若讚戒淸淨若讚離諸欲若能讚是甚深難解難知法爲實讚佛是中『梵網經』應廣說
014_0545_b_01L또한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을 심히 깊은 법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는 동안에 여러 하늘이 찬탄하기를 “세존이시여, 이 법은 심히 깊습니다” 하니, 부처님께서는 “심히 깊은 법이라 함은, 공(空)이 곧 그러한 뜻이고 무작(無作)ㆍ무상(無相)이 곧 그러한 뜻이니라” 하셨다.
014_0545_b_01L復次三解脫門是名甚深法如佛說『般若波羅蜜』中諸天讚言世尊是法甚深佛言甚深法者空則是義無作無相則是義
또한 모든 법의 모습은 진실하여 파괴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으니, 이것을 심히 깊은 법이란 한다.
014_0545_b_05L復次解一切諸法相實不可破不可動是名甚深法
또한 속마음[內心]으로 상상하는 지혜의 힘을 제거하고, 오직 집중된 마음[定心]으로 모든 법의 청정한 실상 가운데 머무는 것이다. 마치 눈에 열기가 충만하면 노랗지 않은 것을 노랗다고 보는 것과 같으니, 마음으로 상상하는 지혜의 힘에 의하여 모든 법을 움직여서[轉] 본다면, 이를 얕은 법이라 하는 것이다.
014_0545_b_06L復次除內心想智力但定心諸法淸淨實相中住譬如熱氣盛非黃見黃心想智力故於諸法轉觀是名淺法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의 눈이 청정하여 열기가 없으면 있는 그대로 노란 것을 노랗다고 보듯이, 이처럼 속마음으로 상상하는 지혜의 힘을 제거하고 지혜의 눈이 청정하면 모든 법의 실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014_0545_b_09L譬如人眼淸淨無熱氣如實見黃是黃如是除內心想智力慧眼淸淨見諸法實相
비유하건대 진짜 수정을 노란 물건 가운데 두면 곧 따라서 노란빛이 되고, 푸른빛ㆍ붉은빛ㆍ흰빛의 상대의 색을 좇아 변하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속마음으로 상상하는 지혜의 힘 때문에 모든 법의 차별된 모습을 보게 된다. 모든 법의 실상을 관찰하여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있음 아님도 아닌 줄로 알며, 이 법 가운데 깊이 들어가 움직이지 않고 걸림이 없다면 이를 ‘깊은 법인을 건넜다’ 한다.
‘건넜다[度]’고 함은 심히 깊은 법을 얻었음을 말한다. 또한 구족히 원만하여 걸림이 없게 되고 피안에 이르게 된 것을 일컬어 ‘건넜다’고 하는 것이다.
014_0545_b_11L如眞水精黃物著中則隨作黃色白色皆隨色變心亦如是凡夫人內心想智力故見諸法異相觀諸法實相非空非不空不有非不有是法中深入不轉無所罣㝵是名度深法忍名得甚深法具足滿無所㝵得度彼是名爲度
【經】 두려움 없는 힘을 얻었다.
【經】
得無畏力
【論】 모든 보살들은 네 가지 두려움 없는 힘을 성취한다.
014_0545_b_18L【論】
諸菩薩四無所畏力成就
【문】 보살은 아직 할 일을 끝내지 못했고, 아직 일체지를 얻지 못했거늘 어찌하여 네 가지 두려움 없는 힘을 얻었다 하는가?
014_0545_b_19L問曰如菩薩所作未未得一切智何以故說得四無所
【답】 두려움 없음[無畏]에 두 가지가 있으니, 보살의 두려움 없음과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이다. 이 보살들은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은 아직 얻지 못했으나 보살의 두려움 없음을 얻었으므로 두려움 없는 힘을 얻었다 한다.
014_0545_b_21L答曰無所畏有二種菩薩無所畏佛無所畏是諸菩薩雖未得佛無所得菩薩無所畏是故名爲得無畏
【문】 어떤 것이 보살의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인가?
問曰何等爲菩薩四無所畏
014_0545_c_01L【답】 첫째는 일체를 들으면 능히 지니는 까닭이며, 모든 다라니를 얻는 까닭이며, 항상 기억하여 잊지 않는 까닭에 대중 가운데에서 법을 설하되 두려워함이 없다.
둘째는 모든 중생의 욕망과 해탈의 인연과 감관의 예리하고 둔함을 알고서 그 마땅함에 따라 설법하기 때문에 보살은 대중 가운데서 법을 설하되 두려움이 없다.
014_0545_c_01L答曰一者一切聞能持故得諸陁羅尼故常憶念不忘故衆中說法無所畏故知一切衆生欲解脫因緣諸根利隨其所應而爲說法故菩薩在大衆中說法無所畏
셋째는 어떤 이가 동ㆍ남ㆍ서ㆍ북이나 네 간방[四維]ㆍ상하에서 찾아와 따져 물어서 나로 하여금 법답게 대답하지 못하게 하는 자를 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조금도 보지 않기 때문에 대중에서 설법하되 두려움이 없다.
넷째는 중생들의 질문을 듣고는 마땅함에 따라 법답게 대답하여 온갖 중생의 의혹을 교묘하게 끊어 주기 때문에 보살이 대중에서 설법하되 두려움이 없다.
014_0545_c_06L三者不見若東方南西北方四維上下有來難問令我不能如法答者不見如是少許相故於衆中說法無所畏四者一切衆生聽受問難隨意如法答能巧斷一切衆生疑故菩薩在大衆中說法無所
【經】 모든 마사를 초월했다.
【經】
過諸魔事
【論】 마(魔)100)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마(煩惱魔)요, 둘째는 음마(陰魔)요, 셋째는 사마(死魔)요, 넷째는 타화자재천자마(他化自在天子魔)이다. 이 보살들은 보살도를 얻는 까닭에 번뇌마를 깨뜨리고, 법신을 얻는 까닭에 음마를 깨뜨리고, 도(道)와 법성신(法性身)을 얻는 까닭에 사마를 깨뜨린다. 항상 한마음인 까닭에, 온갖 곳에 마음이 집착되지 않는 까닭에, 부동삼매에 드는 까닭에 타화자재천자마를 깨뜨린다. 그러므로 ‘모든 마사를 초월했다’고 하는 것이다.
014_0545_c_12L【論】
魔有四種一者煩惱二者陰魔三者死魔四者他化自在天子魔是諸菩薩得菩薩道故煩惱魔得法身故破陰魔得道得法性身故破死魔常一心故一切處心不著故入不動三昧故破他化自在天子魔以是故過諸魔事
또한 이 『반야바라밀경』 「각마품(覺魔品)」에서 부처님께서 스스로 마업(魔業)과 마사를 말씀하셨는데, 이 마업과 마사를 이미 다 넘었기 때문에 이것을 일컬어 ‘이미 마사를 초월했다’고 하는 것이다.
014_0545_c_18L復次『般若波羅蜜ㆍ覺魔品』中佛自說魔業魔事是魔業魔事盡已過故是名過魔事
또한 모든 법의 실상을 제외한 나머지 온갖 법을 모두 마(魔)라 한다. 곧 모든 번뇌ㆍ결사(結使)ㆍ욕(欲)ㆍ박(縛)ㆍ취(取)ㆍ전(纏)ㆍ음(陰)ㆍ계(界)ㆍ입(入)ㆍ마왕(魔王)ㆍ마민(魔民)ㆍ마인(魔人)과 같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마라고 하는 것이다.
014_0545_c_21L復次除諸法實相餘殘一切盡名爲魔如諸煩惱使魔王魔民魔人如是等盡名爲魔
014_0546_a_01L【문】 어디에서 욕ㆍ박 등의 모든 결사를 마라고 하였는가?
014_0546_a_01L問曰何處說欲縛等諸結使名爲魔
【답】 『잡법장경(雜法藏經)』101)에서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答曰『雜法藏經』中佛說偈語魔王

욕망은 그대의 첫째 군사요
근심은 그대의 둘째 군사요
기갈은 그대의 셋째 군사요
애정은 그대의 넷째 군사다.
014_0546_a_02L欲是汝初軍
憂愁軍第二
飢渴軍第三
愛軍爲第四

수면은 그대의 다섯째 군사요
두려움은 그대의 여섯째 군사요
의혹은 그대의 일곱째 군사요
독을 품은 마음102)은 그대의 여덟째 군사다.
014_0546_a_04L第五眠睡軍
怖畏軍第六
疑爲第七軍
含毒軍第八

이양과 허망한 명예에 집착함은
그대의 아홉째 군사요
스스로 교만해져 남을 업신여김은
그대의 열째 군사이다.
014_0546_a_05L第九軍利養
著虛妄名聞
第十軍自高
輕慢於他人

그대의 군사가 이러하니
세상 사람들 모두와
그리고 온갖 하늘까지도
아무도 이를 부수지 못한다.
014_0546_a_06L汝軍等如是
一切世閒人
及諸一切天
無能破之者

나는 지혜의 화살을 들고
선정과 지혜의 힘을 닦아
마치 흙병을 물에 던져버리듯
그대의 군사를 무찔러 깨뜨리리라.
014_0546_a_08L我以智慧箭
修定智慧力
摧破汝魔軍
如坏甁沒水

한마음으로 지혜를 닦아
그로써 모두를 건너게 하리.
나의 제자들 정진하여서
지혜 닦기를 항상 생각하니
014_0546_a_09L一心修智慧
以度於一切
我弟子精進
常念修智慧

법다운 행을 수순한다면
반드시 열반에 이르리니
그대는 내쫓기고 싶지 않겠지만
그대가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리.
014_0546_a_10L隨順如法行
必得至涅槃
汝雖不欲放
到汝不到處

이때 마왕은 게송을 듣자
통곡하고 근심하며 사라졌다.
이 마왕의 사악한 무리들
역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014_0546_a_12L是時魔王聞
愁憂卽滅去
是魔惡部黨
亦復沒不現

이러한 것을 결사의 마(魔)라 하는 것이다.
014_0546_a_13L是名諸結使魔
【문】 어디에서 5중(衆)ㆍ18계(界)ㆍ12입(入)이 마(魔)라고 말씀하셨는가?
014_0546_a_14L問曰五衆十八界二入何處說是魔
【답】 막구라산(莫拘羅山)에서 부처님께서 제자인 라타(羅陀)에게 말씀하시어 “색중(色衆)은 곧 마(魔)이며, 수ㆍ상ㆍ행ㆍ식 역시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셨다.
만약에 미래세에 색신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것을 동처(動處)로 삼으며, 만약 무색신을 이루고자 해도 이것을 동처로 삼는다. 유상(有想)ㆍ무상(無想)ㆍ비유상(非有想)ㆍ비무상(非無想)의 몸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것을 일체동처(一切動處)로 삼는다. 움직임은 모두 마의 속박이며, 움직이지 않으면 속박되지 않아 악(惡)에서 벗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중(衆)ㆍ계(界)ㆍ입(入)은 곧 마가 된다고 말하니, 자재천자마(自在天子魔)나 마민(魔民)ㆍ마인이 곧 마가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014_0546_a_15L答曰莫拘羅山中佛教弟子羅陁色衆是魔亦如是復次若欲作未來世色身是爲動處若欲作無色身是亦爲動若欲作有想無想非有想非無想是爲一切動處動是魔縛不動則不縛從惡得脫此中說衆是魔自在天子魔魔民魔人卽是魔不須
【문】 무엇 때문에 마라 부르는가?
問曰何以名魔
014_0546_b_01L혜명(慧命)을 빼앗고 도법과 공덕과 선의 근본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마라고 부른다. 외도의 무리들은 이를 욕주(欲主)라고 부르며, 또한 화전(華箭) 혹은 5전(箭)[단본의 주에서는 5욕의 화살이라 한다.]이라 부르기도 하니, 갖가지 착한 일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에서는 마라(魔羅)라고 부르며, 그의 업과 그의 일을 마사(魔事)라고 한다. 어떠한 마사가 있는가? 이는 「각마품(覺魔品)」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014_0546_a_23L答曰奪慧命壞道法功德善本是故名爲魔諸外道人輩言是名欲主亦名華箭亦名五箭丹本注云五欲箭也破種種善事故佛法中名爲魔羅業是事名爲魔事是何等魔事如「覺魔品」中說
또한 사람들이 세간에 떠돌면서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것은 결과 사의 인연이고 마왕의 힘의 인연이니, 이러한 마를 모든 부처님의 원수이자 모든 성인들의 도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일체의 사람의 일을 부수고 열반을 기뻐하지도 않으니, 이를 마라고 한다.
014_0546_b_05L復次人展轉世閒受苦樂使因緣亦魔王力因緣是魔名諸佛怨讎一切聖人賊破一切逆流人事不喜涅槃是名魔
이 마에 세 가지가 있다. 희롱으로 웃으면서 말하거나 노래하고 춤추거나 삿되게 바라보는 이러한 것들은 애착으로부터 생기며, 결박하고 때리고 채찍질하고 고문하고 자르고 찢는 이러한 것들은 성냄으로부터 생기며, 몸을 태우거나 스스로 얼리거나 머리칼을 뽑거나 스스로 굶주리거나 불에 들어가거나 물[淵]에 들어가거나 바위에서 뛰어 내리는 이러한 것들은 우치로부터 생겨난다.
014_0546_b_08L是魔有三事戲笑語言歌舞邪視如是等從愛生縛打鞭拷刺割斫截如是等從瞋生炙身自凍拔髮自餓入火赴淵投巖如是等從愚癡生
또한 커다란 과실과 부정함과 세간에 물드는 것은 모두 마사이고, 이로움을 증오하고 열반 및 열반의 도를 행[用]하지 않는 것 역시 마사이며, 큰 고통의 바다에 빠져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이러한 한량없는 것들이 모두 마사인데, 이러한 것들을 이미 던져 버리는 이것을 모든 마사를 초월했다 하는 것이다.
014_0546_b_12L有大過失不淨染著世皆是魔事憎惡利益不用涅槃及涅槃道亦是魔事沒大苦海不自覺如是等無量皆是魔事已棄已捨是爲過諸魔事
【經】 일체의 업장(業障)에서 남김없이 해탈했다.
【經】
一切業障悉得解脫
【論】 일체의 악업에서 벗어나는 이것을 ‘업장에서 해탈했다’ 한다.
014_0546_b_16L【論】
一切惡業得解脫是名業障得解
【문】 세 가지 장(障), 즉 번뇌장(煩惱障)ㆍ업장(業障)ㆍ보장(報障)에서 어찌하여 두 가지는 버리고 업장만을 말하는가?
014_0546_b_18L問曰若三種障煩惱障業障報障何以捨二障但說業障
014_0546_c_01L【답】 세 가지 장 가운데서 업의 힘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모든 업을 쌓아서 백ㆍ천ㆍ만 겁이 지나도록 잃거나 타거나 무너지지 않으며 과보를 받을 때에도 없어지지 않나니, 이 모든 업은 능히 오래도록 머물다가 화합해서 과보를 낸다. 마치 곡식과 풀의 종자가 땅속에 있다가 시절을 만나면 자라나서 잃거나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일체지이신 모든 부처님들께서 가장 존중하시는 이치로서, 수미산왕조차 이 모든 업을 바꾸지 못하거늘 하물며 범부들이겠는가.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6_b_19L答曰三障中業力最大故積集諸業乃至百千萬劫中不失不燒不壞與果報時不是諸業能久住和合時與果報穀草子在地中得時節而生不失不是諸佛一切智第一尊重如須彌山王尚不能轉是諸業何況凡人偈說

생사의 윤회는 인간을 싣고
모든 번뇌와 결사는
큰 힘으로 자재하게 구르니,
누구도 멈출 수가 없다.
014_0546_c_03L生死輪載人
諸煩惱結使
大力自在轉
無人能禁止

전생의 업으로 자기가 지은 것
바뀌어 갖가지 형태를 이루나니
업의 힘 가장 커서
세상에 견줄 이 없다.
014_0546_c_05L先世業自作
轉爲種種形
業力最爲大
世間中無比

전생의 업은 자재하여서
사람들이 과보를 받게 하나니
업의 힘 때문에 바퀴 돌아서
생사의 바다에 헤매게 된다.
014_0546_c_06L先世業自在
將人受果報
業力故輪轉
生死海中迴

큰 바닷물이 다 마르고
수미산의 땅이 다하더라도
전생의 인연인 업은
타지도 않고 다하지도 않는다.
014_0546_c_07L大海水乾竭
須彌山地盡
先世因緣業
不燒亦不盡

모든 업이 오랫동안 합쳐 모이면
지은 이가 스스로 따라가나니
마치 빚을 진 사람은
빚쟁이가 쫓기기 끊임이 없듯.
014_0546_c_09L諸業久和集
造者自逐去
譬如責物主
追逐人不置

이 모든 업의 과보는
능히 바꿀 이도 없고
또한 피할 곳도 없으며
애걸하여 면할 수도 없다.
014_0546_c_10L是諸業果報
無有能轉者
亦無逃避處
非求哀可免

삼계 가운데 중생들은
이를 좇아 잠시도 여의지 못하니
마치 가리나찰(珂梨羅刹)과 같다고
그 업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014_0546_c_11L三界中衆生
追之不暫離
如珂梨羅剎
是業佛所說

바람은 채워진 곳에 들지 않고
흐르는 물은 위로 가지 않으며
허공이 해를 입는 일 없듯이
업이 없음[無業]도 이와 같도다.
014_0546_c_13L如風不入實
水流不仰行
虛空不受害
無業亦如是

업은 한량없는 힘이 있으나
짓지 않는 이는 쫓기지 않으니
과보는 시절이 도래하기까지
없어지지도 잃지도 않는 것이라.
014_0546_c_14L諸業無量力
不逐非造者
果報時節來
不亡亦不失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고
하늘에서 설산으로 들고
설산에서 바다로 들어가도
어디에서도 업은 떠나지 않는다.
014_0546_c_15L從地飛上天
從天入雪山
從雪山入海
一切處不離

항상 나를 뒤쫓아
잠시도 버리는 일 없어
곧장 도달해 망실하는 일 없으니
마치 유성이 달로 향함과 같다.
014_0546_c_17L常恒隨逐我
無一時相捨
直至無失時
如星流趣月

이런 까닭에 ‘일체의 업장에서 남김없이 해탈했다’고 한 것이다.
014_0546_c_18L以是故說一切諸業障悉得解脫
【經】 인연의 법을 교묘하게 연설했다.
014_0546_c_19L【經】
巧說因緣法
【論】 12인연생법(因緣生法)과 갖가지 법문을 능히 교묘하게 연설한 것이다. 번뇌와 업과 일[事]의 법이 차례로 전전해서 생겨나는 것을 12인연이라 한다.
이 가운데 무명(無明)ㆍ애(愛)ㆍ취(取)의 세 가지를 번뇌라 하고, 행(行)과 유(有) 두 가지를 업이라 한다. 나머지 일곱 가지는 본체의 일[體事]이 된다.
014_0546_c_20L【論】
十二因緣生法種種法門能巧說煩惱事法次第展轉相續生是名十二因緣是中無明取三名煩惱有二事名爲業餘七分爲體事
014_0547_a_01L이 12인연에서 처음의 두 가지는 과거 세상에 속하고, 뒤의 두 가지는 미래의 세상에 속하며, 중간의 여덟 가지는 현재 세상에 속한다.
이것이 간략히 번뇌ㆍ업ㆍ고의 세 가지 일을 말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일은 전전해서 서로 간에 인연이 되니, 이 번뇌는 업의 인연이요, 업은 고의 인연이 된다. 고는 고의 인연이고 번뇌의 인연이요, 번뇌는 업의 인연이요, 업은 고의 인연이요, 고는 고의 인연이 된다. 이것을 전전해서 서로 간에 인연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014_0547_a_01L是十二因緣初二過去世攝二未來世攝中八現前世攝是略說三事煩惱是三事展轉更互爲因緣是煩惱業因緣業苦因緣苦苦因緣苦煩惱因緣煩惱業因緣業苦因緣苦苦因緣是名展轉更互爲因
지난 세상의 온갖 번뇌를 무명이라 하는데, 이 무명으로부터 업이 생겨나서 능히 세계의 결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행이라 한다. 행으로부터 때 묻은 마음이 생겨나 최초의 몸의 원인이 되니, 마치 송아지가 어미를 알듯이 스스로 모양을 아는 까닭에 식(識)이라 한다.
014_0547_a_07L過去世一切煩惱是名無明從無明生業能作世界果故名爲從行生垢心初身因如犢子識母自相識名爲
이 식에서는 색이 없는 4음(陰)과 그것이 머무를 색(色)이 함께 생기나니, 이를 명색(名色)103)이라 한다. 이 명색에서 눈[眼] 등의 6정(情)이 생겨나니, 이를 6입(入)104)이라 한다. 정(情)과 진(塵)과 식(識)이 합하는 것을 촉(觸)이라 하고, 촉으로부터 수(受)105)가 생겨나고, 수에 대해 마음이 집착하는 것을 갈애라 하고, 갈애가 인연 때문에 구하는 것을 취라 한다. 취로부터 뒷세상의 인연인 업이 생기니 이를 유(有)라 하고, 유로부터 다시 뒷세상의 다섯 가지 쌓임[五衆]을 받으니 이를 생이라 한다. 생으로부터 다섯 가지 쌓임이 익어가고 무너지는 것을 노사(老死)라 한다. 노사는 근심ㆍ슬픔ㆍ통곡 등 갖가지 근심ㆍ걱정을 내어 뭇 고통이 어울려 모이게 된다.
014_0547_a_10L是識共生無色四陰及是所住色是名名色是名色中生眼等六情是名六入識合是名爲從觸生受中心著是名渴愛渴愛因緣求是名從取後世因緣業是名從有還受後世五衆是名從生五衆熟壞是名老死老死生憂種種愁惱衆苦和合集
만일 일심으로 모든 법의 실상을 보아 청정해지면 곧 무명이 다한다. 무명이 다하는 까닭에 행이 다하고 나아가서는 뭇 고통이 화합해서 집적되는 일이 모두 다하게 되는 것이다.
014_0547_a_17L若一心觀諸法實相淸淨則無明盡無明盡故行乃至衆苦和合集皆盡
이것이 바로 12인연의 모습이니, 이와 같이 해서 능히 방편을 써서 삿된 소견에 집착되지 않고 남에게 잘 연설해 주기 때문에 ‘교묘하다’고 하는 것이다.
014_0547_a_19L是十二因緣相如是能方便不著邪見爲人演是名爲
014_0547_b_01L또한 12인연을 관찰하여 법애(法愛)를 끊고 마음이 집착되지 않으며 실상을 알면 이것이 교묘함이다.
『반야바라밀경』 「불가진품(不可盡品)」에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음은 허공과 같아서 다할 수 없다. 행도 허공과 같아서 다할 수 없고, 나아가서는 못 고통의 어울림도 허공 같아서 다할 수 없나니, 보살은 마땅히 이처럼 알아야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우치의 경계를 버리고 마땅히 들어갈 만한 곳이 없게 되니, 이 12연기를 관하는 자는 곧 도량에 앉아 살바야를 얻게 되느니라.”
014_0547_a_21L復次是十二因緣觀中斷法愛心不著知實相是名爲彼『般若波羅蜜ㆍ不可盡品』中佛告須菩提癡如虛空不可盡行如虛空不可盡乃至衆苦和合集如虛空不可菩薩當作是知作是知者爲捨癡應無所入作是觀十二因緣起者則爲坐道場得薩婆若
【經】 아승기겁 이래 대서원을 일으켰다.
014_0547_b_05L【經】
從阿僧祇劫已來發大誓願
【論】 아승기란 뜻은 보살의 뜻을 풀이한 곳에서 이미 설명했거니와 겁의 뜻은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천리가 되는 돌산이 있는데, 장수천(長壽天)106)사람이 백년마다 부드러운 옷을 입고 찾아와서는 한 번씩 스쳐서 그 큰 석산이 닳아 없어진다고 해도 겁은 아직 다하지 않는다.
사천리나 되는 큰 성 가운데 겨자씨를 가득 채워두고 장수천 사람이 백년이 지나면 한번씩 찾아와 겨자씨를 하나 가지고 가서 겨자씨가 다 없어진다고 해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
014_0547_b_06L【論】
阿僧祇「菩薩義品」中已說佛譬喩說四千里石有長壽人百歲過持細軟衣一來拂拭令是大石山盡劫故未盡四千里大城滿中芥子不槪令平有長壽人百歲過一來取一芥子去芥子盡劫故不盡
보살은 이처럼 무수한 겁에 걸쳐 크고 바른 서원을 일으키어 중생을 건너게 하고 벗어나게 하니, 그러한 원을 대심요원(大心要願)이라 한다. 반드시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모든 결사를 끊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자 하니, 이것을 ‘서원[願]’이라 하는 것이다.
014_0547_b_12L菩薩如是無數劫發大正願度脫衆生名大心要誓必度一切衆生斷諸結使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爲
【經】 얼굴빛이 화열(和悅)하여 항상 먼저 인사하고 말하는 바가 거칠지 않았다.
014_0547_b_15L【經】
顏色和悅常先問所語不麤
【論】 성냄의 근본이 뽑혔기 때문이고, 질투를 제거했기 때문이며, 항상 큰 자ㆍ비ㆍ희ㆍ사를 닦기 때문이며, 네 종류의 삿된 말을 끊었기 때문에 얼굴빛이 평화롭고 즐거운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014_0547_b_16L【論】
瞋恚本拔故嫉妒除常修大慈大悲大喜故四種邪語斷故得顏色和悅如偈說

만약에 구걸하는 도인을 보거든
능히 네 가지로써 대접하고
처음 보아도 좋은 눈으로 대하며
반가이 맞아 공경하고 인사한다.
014_0547_b_18L若見乞道人
能以四種待
初見好眼視
迎逆敬問訊

평상과 자리로 공양하여
바라는 바를 가득 채워 베풀라
보시하는 마음이 이러하다면
불도는 이미 손안에 있는 것 같으리.
014_0547_b_20L牀座好供養
充滿施所欲
布施心如是
佛道如在掌

만약에 입으로 짓는 네 가지 허물인
거짓말의 독과 이간질, 욕설, 꾸밈말
이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크고 아름다운 과보 얻으리.
014_0547_b_21L若能除四種
口過妄語毒
兩舌惡綺語
得大美果報

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도를 구해 중생을 건지려 하여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업 버리니
마치 말에게 고삐가 있는 것과 같다.
014_0547_b_22L善軟人求道
欲度諸衆生
除四邪口業
譬如馬有轡
014_0547_c_01L
【經】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음[無所畏]을 얻었다.
014_0547_c_01L【經】
於大衆中得無所畏
【論】 큰 위덕을 지닌 까닭이며, 견실한 공덕ㆍ지혜인 까닭이며, 최상의 변재다라니를 얻은 까닭에 대중 가운데에서 두려움 없음을 얻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014_0547_c_02L【論】
大德故堅實功德智慧故得最上辯陁羅尼故大衆中得無所畏如偈說

안 마음에 지혜와 덕이 얇고도
밖으로 좋은 말만으로 꾸미면
마치 댓속이 비어있듯이
겉모양만 보임과 같네.
014_0547_c_04L內心智德薄
外善以美言
譬如竹無內
但示有其外

안 마음에 지혜와 덕 두텁고
밖으로 법다운 말로써 다듬으면
마치 묘한 금강과 같아서
안과 밖의 힘이 구족한 듯하네.
014_0547_c_06L內心智德厚
外善以法言
譬如妙金剛
中外力具足

또한 두려움 없는 법을 성취하였으므로 단정하고 귀족으로서 큰 힘이 있으며, 지계ㆍ선정ㆍ지혜ㆍ말재주 등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없으며, 그런 까닭에 대중 가운데서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7_c_07L復次無畏法成就故端正貴族大力,持戒禪定智慧語議等皆成就,是故無所畏以是故於大衆中無所畏偈說

덕이 적고 지혜 없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이리가 사자를 본 것같이
숨어서 감히 나오지 못하리.
014_0547_c_11L少德無智慧
不應處高座
如豺見師子
竄伏不敢出

지혜가 크고 두려움이 없거든
마땅히 사자좌에 앉으라.
마치 사자의 울음소리에
뭇 짐승이 모두 겁내는 듯하리.
014_0547_c_13L大智無所畏
應處師子座
譬如師子吼
衆獸皆怖畏

한량없고 가없는 지혜와 복덕의 힘이 모여든 까닭에 두려움이 없으니,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7_c_14L無量無邊智慧福德力集,故無所畏如偈說

어떤 사람이 모든 악을 멸하고
조그마한 죄조차 없다면
이러한 큰 덕을 지닌 사람은
소원하여 채우지 못할 것 없네.
014_0547_c_16L若人滅衆惡
乃至無小罪
如是大德人
無願而不滿

이러한 사람은 크게 지혜로워서
세계 가운데에서 괴로움이 없나니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에게
생사와 열반은 하나가 되리.
014_0547_c_18L是人大智慧
世界中無惱
是故如此人
生死涅槃一

또한 보살만이 얻는 두려움 없는 까닭이니, 『비나파나왕경(毘那婆那王經)』에서는 “보살만이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얻는다”고 한다. 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4_0547_c_19L復次獨得菩薩無所畏故,如『毘那婆那王經中』說菩薩獨得四無所畏,如先說
【經】 헤아릴 수 없는 억겁 동안 법을 설했으니 교묘히 뛰어났다.
【經】
無數億劫說法巧出
014_0548_a_01L【論】 불방일(不放逸) 등의 모든 선근을 스스로 닦기를 좋아하는 이러한 보살들은 한 세상 혹은 둘ㆍ셋ㆍ네 세상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모든 공덕과 지혜를 모았던 것이다.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7_c_22L【論】
不放逸等諸善根自身好修是諸菩薩非一四世,乃至無量阿僧祇劫集功德智慧如偈說

중생을 위하여 큰 마음을 낸 이에게
공손치 않거나 교만을 낸다면
그 죄는 매우 커서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악심을 가하는 일이랴.
014_0548_a_02L爲衆生故發大心
若有不敬生慢者
其罪甚大不可說
何況而復加惡心

또한 이 보살은 셀 수 없고 한량없는 겁 동안에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 생멸의 속박을 풀고 거슬리고 순종하는 가운데 스스로가 실상을 명료히 안다.
014_0548_a_04L復次,是菩薩無數無量劫中,修身修戒修心修慧生滅縛解逆順中,自了了知諸法實相
모든 법의 실상을 아는데 세 가지 이해가 있으니, 문해(聞解)ㆍ의해(義解)ㆍ득해(得解)이다. 갖가지로 법문을 연설하되 걸림이 없으며, 모두가 설법의 방편과 지혜바라밀을 얻으니, 이러한 보살들이 설하는 바는 성인의 말씀과 같아 모두 믿어 지녀야 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8_a_07L有三種解聞解義解得解種種說法門中無所罣㝵皆得說法方便智慧波羅蜜是諸菩薩所說如聖人說皆應信受如偈說

지혜만 있고 많이 듣지 못하면
이는 실상을 알지 못하나니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은 있으되 보지 못함과 같도다.
014_0548_a_10L有慧無多聞
是不知實相
譬如大闇中
有目無所見

들은 것 많건만 지혜 없다면
역시 실상의 이치를 알지 못하니
마치 매우 밝은 가운데
등불까지 있으되 눈이 없음과 같다.
014_0548_a_12L多聞無智慧
亦不知實義
譬如大明中
有燈而無目

들은 것 많고 지혜도 예리하다면
그의 말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들은 것 없고 지혜도 없다면
이를 사람 중의 소라 부른다.
014_0548_a_13L多聞利智慧
是所說應受
無慧亦無明
是名人身牛

【문】 “무수한 억 겁 동안 교묘히 설법했다”고 말해도 좋거늘 어째서 또한 뛰어났다[出]고 하는가?
014_0548_a_14L問曰應言無數億劫巧說法復何以
【답】 지혜 없는 사람이나 제자들에게 설법하기는 쉽거니와 지식이 많고 지혜가 날카로워 토론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설법하기는 어렵다. 지혜가 적은 법사는 이런 경우에 물러나 움츠리거니와 많이 배우고 많이들은 이는 어려운 질문에도 담대하고 흔쾌해서 일체의 대중 가운데 큰 위덕이 있다.
『천회경(天會經)』에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548_a_16L答曰於無智人中及弟子中說法易若多聞利智善論議人中說法若小智法師,是中退縮若大學多聞問難中大膽欣豫一切衆中有大威德如『天會經』中偈說

얼굴과 눈과 치아의 광명이
대회(大會)에 두루 비치어
모두 하늘 광명을 무색케 하여
하나도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
014_0548_a_20L面目齒光明
普照於大會
映奪諸天光
種種皆不現
014_0548_b_01L
그러므로 ‘헤아릴 수 없는 억겁 동안 법을 설했으니 교묘히 뛰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014_0548_a_22L以是故,名爲無數億劫巧說法中能得出
大智度論卷第五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어로는 mahā.
  2. 2)범어로는 sattva.
  3. 3)범어로는 Akṣayamatir bodhisattvaḥ. 일체법이 다함이 없음을 깨닫고 발심하여 위로는 다함 없는 부처의 공덕을 구하고, 아래로는 다함없는 중생을 구제하기로 발의한 보살.
  4. 4)범어로는 asaṃkhyeya. ‘아승지’라고도 한다.
  5. 5)범어로는 Acintyasūtra.
  6. 6)범어로는 Sudāna. 부처님이 전생에서 보시를 행할 때의 이름이다.
  7. 7)범어로는 bimbara.
  8. 8)범어로는 kankala.
  9. 9)범어로는 pravara.
  10. 10)범어로는 nema.
  11. 11)범어로는 virāga.
  12. 12)범어로는 visara.
  13. 13)범어로는 vijańga.
  14. 14)범어로는 vivāha.
  15. 15)범어로는 vibhakti.
  16. 16)범어로는 vigghanta.
  17. 17)범어로는 tula.
  18. 18)범어로는 vivana.
  19. 19)범어로는 vyatyasta.
  20. 20)범어로는 abhyudgata.
  21. 21)범어로는 vimṛṣṭa.
  22. 22)범어로는 nivala.
  23. 23)범어로는 paribheda.
  24. 24)범어로는 vikṣobha.
  25. 25)범어로는 heluka.
  26. 26)범어로는 durbuda.
  27. 27)범어로는 haruṇa.
  28. 28)범어로는 māluta.
  29. 29)범어로는 kṣaya.
  30. 30)범어로는 elata.
  31. 31)범어로는 samata.
  32. 32)범어로는 pramanta.
  33. 33)범어로는 amantra.
  34. 34)범어로는 himantra.
  35. 35)범어로는 śivamantra.
  36. 36)범어로는 ela.
  37. 37)범어로는 vela.
  38. 38)범어로는 tela.
  39. 39)범어로는 śila.
  40. 40)범어로는 śvela.
  41. 41)범어로는 nela.
  42. 42)범어로는 sela.
  43. 43)범어로는 pela.
  44. 44)범어로는 mela.
  45. 45)범어로는 meruta.
  46. 46)범어로는 khelata.
  47. 47)범어로는 kamala.
  48. 48)범어로는 atara.
  49. 49)범어로는 heluta.
  50. 50)범어로는 veluva.
  51. 51)범어로는 bimba.
  52. 52)범어로는 dhamana.
  53. 53)범어로는 vigama.
  54. 54)범어로는 nirdeśa.
  55. 55)범어로는 akṣaya.
  56. 56)범어로는 saṃbhūta.
  57. 57)범어로는 utpala.
  58. 58)범어로는 padma.
  59. 59)범어로는 saṃkhya.
  60. 60)범어로는 gati.
  61. 61)범어로는 asaṃkhheyaparivarta.
  62. 62)범어로는 aparimāṇaparvarta.
  63. 63)범어로는 aparyantaparivarta.
  64. 64)범어로는 asamantaparivarta.
  65. 65)범어로는 agaṇeyaparivarta.
  66. 66)범어로는 atulyaparivarta.
  67. 67)범어로는 acintyaparivarta.
  68. 68)물질의 특징을 지니지 않는 순간까지 물질을 세분한 것이 극미(paramāṇu)인데, 이 하나의 극미를 중심으로 상ㆍ하ㆍ사방에 극미가 모인 것을 미진(微塵)이라고 한다.
  69. 69)범어로는 sahasraś cūḍiko loka-dhātuḥ. 우리가 사는 세상인 소세계(小世界)가 천 개 모인 세계를 말한다.
  70. 70)범어로는 sāhasro madhyamo loka-dhātuḥ,
  71. 71)범어로는 sāhasra-mahāsāhasra loka-dhātuḥ.
  72. 72)범어로는 dhāraṇī. 총지(摠持)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73. 73)범어로는 samādhi. 어떤 대상에 집중된 상태를 말한다.
  74. 74)범어로는 각각 sūnyatāㆍānimittaㆍapraṇihita이다.
  75. 75)범어로는 dhātu. 사물을 지탱하는 성분이나 요소를 말한다.
  76. 76)범어로는 āyatana.
  77. 77)가운데 아홉의 지(智)로써 아는 것을 말한다.
  78. 78)곧 성문승과 벽지불승.
  79. 79)범어로는 Mararāja.
  80. 80)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을 말한다.
  81. 81)범어로는 pañca-skandhā. 이른바 유정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로, 색(rūpa)ㆍ수(vedanā)ㆍ상(sam.jñā)ㆍ행(sam.khāra)ㆍ식(vijñāna)을 말한다.
  82. 82)범어로는 śūnyatā-samādhi. 일체법이 비어 있음을 관함으로써 마음이 번뇌를 여의고 전일해진 상태를 말한다.
  83. 83)탐ㆍ진ㆍ치의 셋을 말한다.
  84. 84)범어로는 ānimitta-samādhi. 상의 차별을 여의어 얻는 삼매이다.
  85. 85)범어로는 śūnyatā-samādhi. 일체법이 비어 있음을 관함으로써 마음이 번뇌를 여의고 전일해진 상태.
  86. 86)범어로는 trayaḥ samādhayaḥ.
  87. 87)4선(禪)을 말한다. 혹은 4정려(靜慮)라고도 한다. 선정에 든 수행자의 마음이 적정해지고 깊어가는 양상, 이른바 사마타의 상태를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88. 88)범어로는 anāgamya. ‘아직 본격적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뜻으로, 이른바 초선의 경지에 들기 직전의 집중된 심리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외부대상에 시선이 이끌려 가지 않는 상태이다. 미지정(未至定)이라고도 한다.
  89. 89)범어로는 Akaniṣṭha. ‘정점에 있는 경지’라는 뜻이다. 곧 4선의 마지막에 도달하는 경지로, 색계 가운데 최고의 경지라는 뜻으로 색구경천(色究竟天)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천(天)이란 수행자가 관법 등을 통해 도달한 심리상태가 신들이 사는 세계(天)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경지를 체험한 자는 죽어서 그 경지와 동등한 세계에 태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아가니타(阿迦尼吒) 혹은 아가이타천(阿加膩吒天)이라 음역하기도 한다.
  90. 90)4무색정(無色定)을 말한다.
  91. 91)6신통(神通)을 말한다.
  92. 92)초선(初禪)ㆍ제2선ㆍ제4선ㆍ4무색정ㆍ멸진정(滅盡定)에 이르는 8단계의 선정관법을 말한다.
  93. 93)범어로는 aṭṭha abhibhāyatanāni. 8해탈(解脫)을 닦은 뒤 숙달된 관상법(觀想法)으로 자유롭게 정ㆍ부정의 경지를 관찰 하는 것을 말한다.
  94. 94)범어로는 nava-anupūrvavihāra-samāpatti. 4선ㆍ4무색정의 팔등지에 멸진정을 더한 선정으로, 이른바 아홉 단계로 상승해 가면서 머무는 선정수습법이다.
  95. 95)10변처(遍處)라고도 한다. 청ㆍ황ㆍ적ㆍ백의 색깔과 물질의 네 가지 특성인 지ㆍ수ㆍ화ㆍ풍과 허공ㆍ분별[識] 등의 열 가지 특성을 관찰하며, 그 하나하나의 상태를 모든 곳에 두루 채우는 관법이다.
  96. 96)6근의 대상인 6경, 곧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을 말한다.
  97. 97)범어로는 Catvāra-lokapālā. 수미산 중복(中腹)에 있는 사왕천(四王天)의 주인으로, 제석천을 떠받들고 불법의 수호를 염원해 불법에 귀의하는 자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사왕천이란, 동방의 지국천(持國天), 남방의 증장천(增長天), 서방의 광목천(廣目天), 북방의 다문천(多聞天)을 말한다.
  98. 98)범어로는 sapta-ratna.
  99. 99)범어로는 Brahmajālasūtra.
  100. 100)범어로는 māra.
  101. 101)범어로는 Kṣudraka.
  102. 102)독을 품은 마음이란 나머지 아홉 가지 가운데 거론되지 않은 탐ㆍ진ㆍ치의 3독심을 가리킨다.
  103. 103)범어로는 nāma-rūpa. 이름과 모양을 의미한다.
  104. 104)범어로는 saḷāyatana.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의 6근(根)을 말한다.
  105. 105)수(受, vedanā)란 외부로 부터의 인상(印象)을 받아들이는 감수작용을 말한다.
  106. 106)범어로는 dīrgha-ayuṣka devāḥ. 수명 긴 신들의 세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