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0660_a_01L대지도론 제17권
014_0660_a_01L大智度論釋初品中禪波羅蜜第二十八卷第十七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0660_a_02L龍樹菩薩造


28. 초품 중 선바라밀(禪波羅蜜)을 풀이함
014_0660_a_03L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奉 詔譯

【經】어지럽지 않고 맛들이지 않는 까닭에 선(禪)바라밀을 구족한다.
【論】【문】 보살의 법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그 본분이거늘 무슨 까닭에 숲 속에 한가히 앉았거나 산 속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자기 한 몸만을 좋게 하고 중생들을 버리는가?
014_0660_a_04L【經】
不亂不味故應具足禪波羅蜜【論】
菩薩法以度一切衆生爲事何以故閑坐林澤靜嘿山閒獨善其身棄捨衆生
【답】 보살이 몸은 비록 중생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항상 버리지 않았나니, 조용한 곳에서 선정을 구하는 진실한 지혜를 얻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비유하건대 약을 먹고 몸을 조섭하거나 잠시 집안일을 쉬었다가 기력이 회복되면 전과 같이 사업을 하는 것과 같이, 보살이 적멸에 안주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선정의 힘으로 지혜의 약을 먹고 신통의 힘을 얻어 다시 중생들 속에 들어가서 부모처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스승 어른이 되기도 하고, 혹은 하늘 인간, 나아가서는 축생이 되기까지 하면서 갖가지 말과 방편으로 그들을 깨우쳐 인도한다.
014_0660_a_08L答曰菩薩身雖遠離衆生心常不捨靜處求定得實智慧以度一切譬如服藥將身權息家務氣力平健則修業如故菩薩宴寂亦復如是禪定力故服智慧藥得神通力還在衆生或作父母妻子或作師徒宗長或人下至畜生種種語言方便開
014_0660_b_01L또한 보살이 보시ㆍ지계ㆍ인욕 등 이 세 가지를 행하면 이 세 가지를 복덕문이라 하나니, 한량없는 세상에서 천왕이나 제석천왕이나 전륜성왕이나 염부제의 왕이 되어 중생들에게 7보와 의복과 5정(情)1)의 희망을 모두 보시하고 이 세상과 내생에 모두 구족하게 한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전륜성왕이 열 가지 선법으로 백성들을 가르쳐서 모두가 하늘에 태어나게 하고 세상에서 중생을 이롭게 하여 모두가 쾌락을 얻게 하나, 그 쾌락은 무상하여서 나중에 다시 괴로움을 받는다” 했다.
보살은 이 때문에 대비심(大悲心)을 내어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한다.
이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은 진실한 지혜로부터 생기고, 진실한 지혜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선정에서 생긴다. 비유하건대 등을 켜면 등불이 능히 비추기는 하나 센 바람에서는 작용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밀실에다 두면 그 작용이 완전한 것과 같다. 흩어진 마음속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만일 선정을 위한 고요한 방이 없으면 비록 지혜가 있더라도 그 작용은 온전치 못하다.
선정을 얻어야 진실한 지혜가 생긴다. 그러므로 보살은 비록 중생을 떠나서 멀리 조용한 곳에 있더라도 선정을 얻으면 선정이 청정한 까닭에 지혜도 청정해진다.
비유하건대 기름의 심지[油炷]가 깨끗하기 때문에 그 광명도 깨끗한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청정한 지혜를 얻고자 하거든 이 선정을 행하여야 된다.
014_0660_a_15L復次菩薩行布施持戒忍辱是三事名爲福德門於無量世中作天王提桓因轉輪聖王閻浮提王常施衆生七寶衣服五情所欲今世後世皆令具足如『經中』說轉輪聖王以十善教民後世皆生天上世世利益衆生令得快樂此樂無常還復受苦菩薩因此發大悲心欲以常樂涅槃利益衆生此常樂涅槃從實智慧生實智慧從一心禪定生譬如然燈燈雖能照在大風中不能爲用若置之密宇用乃全散心中智慧亦如是若無禪定靜室雖有智慧其用不全得禪定則實智慧生以是故菩薩雖離衆生遠在靜處求得禪定以禪定淸淨故智慧亦淨譬如油炷淨故其明亦淨以是故欲得淨智慧者行此禪定
또한 세간의 가까운 일을 구하더라도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면 사명을 이루지 못하거늘 하물며 깊디깊은 불도를 구하는데 어찌 선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선정이란 모든 어지러운 마음을 쉬는 것이라 하나니, 어지러운 마음이 가벼이 나부끼기는 기러기 털보다 가볍고, 달리고 흩어짐이 멈추지 않기는 빨리 지나가는 바람과 같고, 제지하기 어렵기는 원숭이보다 더하고, 잠시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기는 번개보다 빠르다.
마음의 모습도 이와 같아서 멈추게 할 수 없나니, 그것을 제어하려거든 반드시 선정이어야만 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660_b_09L若求世閒近事不能專心則事業不成何況甚深佛道而不用禪定定名攝諸亂心亂心輕飄甚於鴻毛馳散不停駛過疾風不可制止劇於獼猴暫現轉滅甚於掣電心相如是不可禁止若欲制之非禪不定如偈說

선정은 지혜를 지키는 광[藏]이고
공덕을 지닌 복밭이며
선정은 청정한 물이어서
모든 욕망의 티끌을 씻어주네.
014_0660_b_15L禪爲守智藏
功德之福田
禪爲淸淨水
能洗諸欲塵

선정은 금강의 투구여서
번뇌의 화살을 막아주나니
무여(無餘)열반은 얻지 못해도
열반의 기분은 이미 얻는다네.
014_0660_b_17L禪爲金剛鎧
能遮煩惱箭
雖未得無餘
涅槃分已得

금강삼매2)를 얻어
번뇌의 산을 부수고
6신통의 힘 얻어
한량없는 인간무리 제도하네.
014_0660_b_18L得金剛三昧
摧碎結使山
得六神通力
能度無量人

어지러운 티끌이 태양을 가릴지라도
큰 비가 능히 씻어버리고
각관(覺觀)의 바람이 마음을 산란시키나
선정으로 능히 가라앉히네.
014_0660_b_19L囂塵蔽天日
大雨能淹之
覺觀風散心
禪定能滅之

또한 선정은 얻기 어려우니 행자가 일심으로 구하여야 얻을 수 있다. 하늘무리나 선인들도 얻기 어렵거늘 하물며 게으른 범부이겠는가.
014_0660_b_21L復次禪定難得行者一心專求不廢乃當得之諸天及神仙猶尚不能得況凡夫懈怠心者
014_0660_c_01L부처님께서 니구로(尼拘盧)3)나무 밑에 계시는데 마왕의 셋째 딸4)이 이렇게 게송으로 물었다.
014_0660_c_01L如佛在尼拘盧樹下坐禪魔王三女說偈問言

홀로 숲 속의 나무 사이에 앉아서
6근이 항상 적묵하신 듯하고
혹은 귀중한 보물을 잃고는
도움도 없이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듯하군요.
014_0660_c_02L獨坐林樹閒
六根常寂嘿
有若失重寶
無援愁苦毒

얼굴은 세상에서 견줄 이 없건만
항상 눈을 감고 앉았으니
우리들은 의심이 있습니다.
무엇을 구하려 여기에 계시나요.
014_0660_c_04L容顏世無比
而常閉目坐
我等心有疑
何求而在此

그때 세존께서 이렇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열반의 맛을 얻었으니
물들은 애욕을 좋아하지 않는다.
안팎의 도적들 이미 제하였으니
너의 아비도 멸하여 물러났도다.
014_0660_c_05L爾時世尊以偈答曰我得涅槃味
不樂處染愛
內外賊已除
汝父亦滅退

나는 감로의 맛5)을 얻어
안락하게 숲 사이에 앉아 있나니,
사랑과 애정에 매인 중생들
그들을 위하여 자애심을 일으키노라.
014_0660_c_08L我得甘露味
安樂坐林閒
恩愛之衆生
爲之起慈心

여기에서 셋째 딸은 부끄러운 생각을 내어 스스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애욕을 여의어서 움직일 수 없도다” 하고는 물러가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014_0660_c_09L是時三女心生慚愧而自說言此人離欲不可動也卽滅去不現
【문】 어떤 방편을 행하여야 선정바라밀을 얻는가?
014_0660_c_11L問曰何方便得禪波羅蜜
【답】 다섯 가지 일[事]을 물리치고, 다섯 가지 법(法)을 제하고, 다섯 가지 행을 실천해야 한다.
014_0660_c_12L答曰卻五事五塵五法五蓋行五行
014_0661_a_01L어떻게 다섯 가지 일을 물리치는가? 반드시 5욕을 꾸짖되 이렇게 생각한다.
‘가엽도다. 중생들은 항상 5욕에 시달리면서도 오히려 구하기를 마지않는구나.’
이 5욕이란 것은 얻을수록 더욱 심하니 마치 종기를 불로 뜨는 것과 같다. 5욕은 이익이 없으니 마치 개가 마른 뼈를 핥는 것 같고, 5욕은 다툼을 더하니 마치 새가 고기를 다투는 것 같고, 5욕은 사람을 태우나니 마치 맛바람에 횃불을 잡은 것 같고, 5욕은 사람을 해치나니, 마치 독사를 밟은 것 같고, 5욕은 진실이 없으니, 꿈에 얻은 바와 같고, 5욕은 오래 가지 않으니 마치 잠시 빌린 것 같거늘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고 미혹하여 5욕을 탐내되 죽음에 이르기까지 버리지 않다가 그 때문에 오는 세상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좋은 과일을 탐내어 나무에 올라가서 따먹다가 때에 맞추어 내려오지 않았는데 다른 어떤 사람이 그 나무를 베어 나무가 쓰러지자 몸과 머리가 깨어지고 아픔에 시달리다가 죽는 것과 같다.
또한 이 5욕은 얻을 때는 잠깐 즐겁다가 잃을 때는 몹시 괴롭나니, 마치 꿀을 바른 칼날을 핥으면 단맛에 빠져 혀를 상하는 줄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5욕의 법은 축생들과 똑같이 가지고 있나니 지혜로운 이는 알고서 능히 멀리 여읜다.
014_0660_c_13L云何卻五事當呵責五哀哉衆生常爲五欲所惱而猶求之不已此五欲者得之轉劇如火炙五欲無益如狗齩骨五欲增諍鳥競肉五欲燒人如逆風執炬五欲害人如踐惡蛇五欲無實如夢所得五欲不久如假借須臾世人愚惑著五欲至死不捨爲之後世受無量譬如愚人貪著好果上樹食之肯時下人伐其樹樹傾乃墮身首毀痛惱而死又此五欲得時須臾樂失時爲大苦如蜜塗刀舐者貪甜知傷舌五欲法者與畜生共有智者識之能自遠離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우바새6)가 많은 장사꾼들과 어울려서 멀리 나다니면서 생업을 삼고 있었다. 어느 때 춥고 눈 내리는 밤을 만나 동행을 잃고 어느 석굴(石窟) 속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산신이 한 여자로 변해 나타나서 다가오더니 그를 시험해보려고 이렇게 게송으로 말했다.
014_0661_a_03L如說有一優婆塞衆估客遠出治生是時寒雪夜行失在一石窟中住時山神變爲一女來欲試之說此偈言

흰 눈이 산을 뒤덮어
새와 짐승들도 모두 숨었는데
나는 홀로 의지할 곳이 없으니
바라건대 가엾이 여겨 주시기를.
014_0661_a_06L白雪覆山地
鳥獸皆隱藏
我獨無所恃
惟願見愍傷

우바새는 두 손으로 귀를 가리고 이렇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014_0661_a_08L優婆塞兩手掩耳而答偈言

부끄러움을 모르는 추악한 사람아
그런 더러운 말을 하는구나.
설령 물에 떠내려가고 불에 타더라도
네 소리를 듣고 싶지 않구나.
014_0661_a_09L無羞弊惡人
說此不淨言
水漂火燒去
不欲聞汝聲

내 아내에게도 욕심이 없거늘
하물며 삿된 음행을 저지르랴.
모든 욕심의 쾌락은 매우 얕고
커다란 고통의 환난은 매우 깊어라.
014_0661_a_11L有婦心不欲
何況造邪婬
諸欲樂甚淺
大苦患甚深

욕망은 얻어도 만족 없고
잃으면 매우 괴롭거늘
얻기 전에는 얻으려 하고
얻고 나면 괴로워하네.
014_0661_a_12L諸欲得無厭
失之爲大苦
未得願欲得
得之爲所惱

욕망의 쾌락은 매우 적고
근심과 고뇌의 해로움은 매우 많으니
그 때문에 몸과 목숨을 잃음은
나비가 등불에 뛰어드는 것 같네.
014_0661_a_13L諸欲樂甚少
憂苦毒甚多
爲之失身命
如蛾赴燈火

산신은 이 게송을 듣자 곧 그 사람을 들어 올려 동행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014_0661_a_15L山神聞此偈已卽擎此人送至伴中
이것은 욕망을 허락하지 않도록 지혜로운 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얘기이다.
5욕이라 함은 묘한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이니, 선정을 구하려는 이는 응당 모두 버려야 한다.
014_0661_a_16L是爲智者呵欲不可著五欲者名爲妙欲求禪定皆應棄之
어떻게 색을 버리는가?
014_0661_a_18L何棄色
곧 색의 근심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색에 집착되면 모든 번뇌결사의 불길이 불붙어서 사람의 몸을 태워 버리니, 마치 불이 금이나 은을 태우는 것과 같다. 달구어져 끓는 꿀은 비록 모양과 맛은 있으나 몸을 태우고 입을 데이나니, 급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묘한 색과 아름다운 맛에 집착되는 것도 이와 같다.
014_0661_a_19L觀色之患若人著色諸結使火盡皆熾然燒害人身如火燒金銀煮沸熱蜜雖有色味燒身爛口急應捨之若人染著妙色美味亦復如是
014_0661_b_01L좋고 나쁨은 사람에게 있고 색은 일정함이 없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예컨대 멀리서 사랑스런 사람을 보면 곧 기쁘고 애착하는 마음을 내고, 멀리서 미워하는 사람을 보면 곧 성내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내며, 그 중간 정도의 사람을 보면 성을 내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는다.
만일 이러한 기쁨과 성냄을 여의고자 하면 삿된 생각과 색욕을 제거해 둘을 동시에 버려야 한다.
비유하건대 금을 녹인 물에 몸을 데인 것과 같으니, 뜨거움을 제하려는데 불만을 제하고 금은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곧 금과 불을 모두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빈비사라(頻婆娑羅)7)왕은 색욕 때문에 자신이 적국에 들어가서 홀로 아범바라(阿梵婆羅)8) 음녀의 방에 있었고, 우진왕(憂塡王)9)은 색욕 때문에 5백 선인의 손과 발을 잘랐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을 일컬어 색을 꾸짖는다 하는 것이다.
014_0661_a_22L復次好惡在人色無定也何以知之如遙見所愛之人卽生喜愛心若遙見怨家惡人卽生怒害心若見中人則無怒無喜若欲棄此喜怒當除邪念及色一時俱捨譬如洋金燒身欲除之不得但欲棄火而留金要當火俱棄如頻婆娑羅王以色故身入敵國獨在婬女阿梵婆羅房中塡王以色染故截五百仙人手足是等種種因緣是名呵色欲
어떻게 소리를 꾸짖는가? 소리의 모습은 머물지 않아서 잠깐 들렸다가는 곧 사라지거늘 어리석은 사람들은 소리의 모습이 무상하게 변하여 없어지는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음성에 대하여 망념되이 ‘좋다,’ ‘즐겁다’라는 생각을 내고, 이미 지나간 소리를 생각하며 집착을 낸다.
014_0661_b_09L云何呵聲相不停暫聞卽滅愚癡之人解聲相無常變失故於音聲中妄生好樂於已過之聲念而生著
예컨대 5백 사람의 선인들이 산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견다라(甄陀羅)10) 아가씨가 설산 기슭의 못에서 목욕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자 곧 선정을 잃고 마음이 취하여 미친 듯이 헤매며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한 일이 있다.
비유하건대 큰 바람이 불어 숲 속의 나무들을 요동치게 한 것과 같으니, 견타라 아가씨가 부르는 묘하고 부드럽고 맑은 노래 소리를 듣고는 삿된 생각을 내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미쳐 있는 것을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들은 금생에서는 모든 공덕을 잃어버리고 내생에는 악도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소리가 생각마다 생멸하여 앞과 뒤의 것이 함께하지 못하며 서로 미치지도 못하는 것임을 관찰하나니, 이렇게 알면 더러운 집착을 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여러 하늘들의 음악도 그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거늘 하물며 인간의 소리이겠는가.
014_0661_b_12L如五百仙人在山中住甄陁羅女於雪山池中浴聞其歌聲卽失禪定心醉狂逸不能自持譬如大風吹諸林樹聞此細妙歌聲柔濡淸淨生邪念想是故不覺心狂今世失諸功德後世當墮惡道有智之人觀聲念念生滅前後不無相及者作如是知則不生染著斯人者諸天音樂尚不能亂何況人
이러한 갖가지 인연을 일컬어 소리의 욕망을 꾸짖는다 한다.
如是等種種因緣是名呵聲欲
어떻게 냄새를 꾸짖는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냄새에 집착되는 것은 죄가 없다’ 하고는 냄새에 물들고 애착되어 번뇌의 문을 여나니, 비록 백 년 동안 계행을 지니다가도 일시에 몽땅 무너뜨린다.
014_0661_b_21L何呵香人謂著香少罪染愛於香結使門雖復百歲持戒能一時壞之
014_0661_c_01L예컨대 어떤 아라한이 항상 용궁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돌아와서 사미(沙彌)11)에게 발우를 주어 씻으라 했다.
발우에는 남은 밥풀 몇 알이 있었는데, 사미가 냄새를 맡아 보니 몹시 향기로웠고 먹어보니 매우 맛이 좋았다.
그는 곧 꾀를 써서 스승의 승상(繩床)12)밑으로 들어가서 두 손으로 침대 다리를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승이 갈 때가 되자 침대에 붙어 함께 용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용이 말하기를 “이 아이는 아직 도를 얻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데리고 왔습니까?” 하니, 스승이 대답하길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결국 사미는 밥을 얻어먹게 되었다. 또한 매우 예쁘고 견줄 이 없는 향취를 내는 용녀를 보고는 크게 마음이 애착된 나머지 맹세하기를 “내가 복을 지어서 이 용의 궁전을 빼앗아 살리라” 했다. 그때 용이 말했다.
“다시는 이 아이를 데리고 오지 마시오.”
사미는 돌아오자 일심으로 보시와 지계에 힘쓰면서 소원하는 일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애써 구하여 빨리 용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때 사미가 절을 도는데 자기의 발바닥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자 틀림없이 용이 될 것을 확신했다. 그러자 곧장 자신의 스승이 전부터 용궁으로 들어가던 큰 못가로 가서 가사자락으로 머리를 덮고는 물로 뛰어들었다.
그 복덕의 힘이 컸기에 그는 죽어서 곧 죽어서 용이 되었는데, 여기에서 본래의 용을 죽이니 온 못이 피로 붉게 변했다.
이렇게 되기 전부터 여러 스승들과 대중이 사미에게 꾸짖었지만 사미는 말했다.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고, 이제 그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때 스승은 여러 승려들을 데리고 못으로 가서 그 모양을 보았다.
이러한 인연은 냄새에 집착되었기 때문이다.
014_0661_b_23L如一阿羅漢常入龍宮食已以鉢授與沙彌令洗鉢中有殘飯數粒沙彌嗅之大香食之甚美便作方便入師繩牀下兩手捉繩牀腳其師至時與繩牀俱入龍宮龍言此未得道何以將師言不覺沙彌得飯食之又見龍女身體端正香妙無比心大染著卽作要願我當作福奪此龍處居其宮殿龍言後莫將此沙彌來沙彌還已心布施持戒專求所願願早作龍時遶寺足下水出自知必得作龍至師本入處大池邊以袈裟覆頭而卽死變爲大龍福德大故卽殺彼擧池盡赤未爾之前諸師及僧呵沙彌言我心已定心相已出師將諸衆僧就池觀之如是因緣由著香故
014_0662_a_01L또한 어떤 비구가 숲 속 연못가를 거닐다가 연꽃 향기를 맡았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지나쳐 애착심을 일으키게 되였다. 이때 못의 신[池神]이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저 숲 속에 조용히 앉아 참선하던 자리를 버리고 와서 나의 향기를 훔치느냐.”
왜냐하면 향기에 집착하는 까닭에 모든 결사가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 다시 다른 사람이 와서 못에 들어가 그 꽃을 많이 꺾고 그 뿌리를 캐어 아주 어지럽게 해놓고는 가버렸다. 그런데 지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비구가 말했다.
“저 사람은 그대의 못을 파괴하고 그대의 꽃을 꺾어가도 그대는 아무런 말도 없으면서 어찌하여 나는 못 가에서 걷기만 하였는데도 ‘나의 향기를 훔치느냐’며 꾸짖는가?”
지신이 대답했다.
“세상의 악인들은 항상 죄악의 분뇨 속에 빠져 더러움이 머리까지 묻었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는 선정을 닦는 훌륭한 사람인데 이 냄새에 집착해 그대의 좋은 일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대를 꾸짖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희고 고운 비단에 더러운 것이 한 점만 묻어도 여러 사람이 다 보거니와 저 악인은 마치 검정 옷에 먹을 떨어뜨린 것과 같아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누가 묻겠는가.”13)
014_0661_c_16L復次有一比丘在林中蓮華池邊經聞蓮華香其心悅樂過而心愛池神語之言汝何以故捨彼林下禪淨坐處而偸我香以著香故諸結使臥者皆起更有一人來入池中多取其花挽根莖狼籍而去池神嘿無所言丘言此人破汝池取汝花汝都無言我但池岸邊行便見呵罵言偸我香池神言世閒惡人常在罪垢糞中淨沒頭我不共語也汝是禪行好人而著此香破汝好事是故呵汝譬如白疊鮮淨而有黑物點污衆人皆見彼惡人者譬如黑衣點墨人所不見誰問之者
이러한 갖가지 인연을 일컬어 ‘냄새의 욕심을 꾸짖는다’ 하는 것이다.
014_0662_a_07L如是等種種因緣是名呵香欲
어떻게 맛을 꾸짖는가? 마땅히 스스로 이렇게 각오해야 한다.
“나는 맛난 맛을 탐내고 집착하기 때문에 뭇 괴로움을 받으며, 구리 녹인 물을 마시거나 뜨겁게 달군 무쇠알을 먹게 되리라. 만일 바르게 먹는 법을 관찰하지 않고 즐기는 마음만으로 굳게 집착되면 구더기[不淨虫]로 태어나게 되리라.”
014_0662_a_08L云何呵味當自覺悟我但以貪著美味故當受衆苦洋銅灌口噉燒鐵丸若不觀食法嗜心堅著墮不淨虫中
예컨대 어떤 사미가 항상 타락[酪]을 좋아하였는데 시주들이 스님들께 타락 공양을 올릴 때면 사미는 의례 남은 찌꺼기를 얻어 몹시 좋아하여 그 곁을 떠나지 못하더니, 목숨이 다하여 그 타락 찌꺼기가 있는 병 속에 태어났다.
나중에 사미의 스승이 아라한의 도를 얻었는데 대중이 타락을 나눌 때엔 말했다.
“조심조심해서 이 타락을 즐기는 사미를 다치지 않게 하라.”
사람들이 물었다.
“이것은 벌레인데 어찌하여 타락을 즐기는 사미라 하십니까?”
이에 스승이 대답했다.
“이 벌레는 본래 나의 사미였는데 타락 찌꺼기를 탐내고 애착했기 때문에 이 병 안에 태어난 것이다.”
스승이 자기 몫의 타락을 얻으면 벌레가 병 안에 있다가 나타나는데, 스승은 “타락에 애착하던 사람아, 무엇하러 왔느냐”라고 말하며 타락을 주는 것이었다.
014_0662_a_11L如一沙彌心常愛酪諸檀越餉僧酪時沙彌每得殘分心中愛著喜不離命終之後生此殘酪甁中彌師得阿羅漢道僧分酪時語言莫傷此愛酪沙彌諸人言此是虫以言愛酪沙彌答言此虫本是我沙彌但坐貪愛殘酪故生此甁中師得酪分虫在中來師言愛酪人汝何以來以酪與之
014_0662_b_01L또한 월불(月分)14)이라는 국왕에게 태자가 있었다. 그는 향기로운 맛을 몹시 좋아하니, 왕의 정원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 날마다 좋은 과일을 따서 보내 주었다.
그 과수원 안에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위에 새가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어미 새는 항상 향산(香山)으로 날아가서 좋고 향기로운 과일을 물어다가 새끼를 먹였다.
어느 때 새끼들이 다투다가 과일 하나를 땅에 떨어뜨리니, 정원지기는 이른 아침에 나왔다가 그것을 보고 매우 신기하게 여겨 곧 왕에게로 보냈다.
왕은 이 과일의 빛과 냄새가 매우 이상한 것을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 태자가 보자마자 달라고 했다.
왕은 자식을 사랑하는 까닭에 주었더니, 태자는 그 과일을 먹자 맛에 반해 물들은 마음으로 깊이 집착되어 날마다 달라고 했다.
왕은 정원지기를 불러 그 과일의 출처를 물으니, 정원지기가 대답했다.
“이 과일은 종자가 없습니다. 그저 땅에서 얻었을 뿐 온 곳은 모릅니다.”
태자는 더욱 울면서 음식을 먹지도 않으니, 왕은 정원지기에게 재촉했다.
“그대가 그것을 구해다오.”
과수원지기가 본래 과일 얻은 자리에 가서 살펴보다가 새둥지가 있는 것을 보고는 새가 물고 온 것임을 알았다. 그는 곧 몸을 숨기고 나무로 올라가서 몰래 빼앗으려고 기다렸다.
그리고는 어미 새가 돌아오자마자 즉시 그 과일을 빼앗아 왕에게 보냈다.
날마다 이렇게 하니, 화가 난 어미 새는 향산으로 가서 독기 있는 과일을 가져왔는데, 향기와 맛과 빛깔이 앞의 것과 완전히 같았다.
정원지기는 그것을 빼앗아 왕에게 보냈고, 왕은 태자에게 주었다. 태자가 그것을 먹자 오래지 않아 몸이 붓고 뭉그러지더니 죽어버렸다.
맛에 집착되면 이렇게 몸을 잃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014_0662_a_19L復次如一國王名月分有太子愛著美味王守園者日送好園中有一大樹樹上有鳥養子飛至香山中取好香果以養其子子爭之一果墮地守園人晨朝見之奇其非常卽送與王王珍此果香色殊異太子見之便索王愛其子卽以與之太子食果得其氣味染心深著日日欲得王卽召園人問其所由園人言此果無種從地得之不知所由來也太子啼哭不食王催責園人仰汝得之園人至得果處見有鳥巢知鳥銜來翳身樹上伺欲取之鳥母來時卽奪得果送日日如是鳥母怒於香山中取毒果其香色全似前者園人奪得輸王王與太子食之未久身肉爛壞而死著味如是有失身之苦
이러한 갖가지 인연을 일컬어 ‘맛의 욕심에 집착함을 꾸짖는다’ 하는 것이다.
014_0662_b_13L如是等種種因緣是名呵著味欲
어떻게 닿임을 꾸짖는가?
云何呵觸
이 닿임은 모든 허물을 내는 원인이며, 마음을 속박하는 근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나머지 네 감정은 제각기 자기의 몫이 있지만 이 닿임은 온몸에 두루하여 생기는 곳이 넓기 때문에 물들은 집착을 많이 내기 때문이다. 이 집착은 여의기 어렵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예컨대 어떤 사람이 몸의 부정한 36종의 관법을 닦아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면서도 닿임에 의해 집착하는 마음을 내었다. 비록 그것이 부정함을 알면서도 그 보드랍고 연함을 탐내므로 아무리 부정함을 관찰하여도 이익이 없었다. 그러므로 여의기 어렵다.
014_0662_b_14L此觸是生諸結使之火因繫縛心之根本何以故餘四情則各當其分此則遍滿身識生處廣多生染著此著難離何以知之人著色觀身不淨三十六種則生厭若於觸中生著雖知不淨貪其細濡觀不淨無所益是故難離
또한 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항상 무거운 죄를 짓다가 지옥에 떨어진다.
지옥에는 두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한빙(寒氷)이요, 또한 하나는 염화(焰火)이다. 이 두 큰 지옥에는 모두가 몸의 닿임 때문에 죄를 받아 고통이 만 갈래나 되나니, 이 닿임은 매우 어두운 곳이라 하며 위험하고 험난한 곳이라 한다.
014_0662_b_20L以其難捨故爲之常作重罪若墮地獄地獄有二部一名寒冰二名焰此二獄中皆以身觸受罪苦毒萬此觸名爲大黑闇處危難之險道
014_0662_c_01L또한 『라후라모본생경(羅睺羅母本生經)』15)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석가모니보살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구비야(劬毘耶)16)요, 또한 한 사람은 야수다라(耶輸陀羅)17)였다. 야수다라는 라후라의 어머니이다. 구비야 부인은 보녀[寶女]이었기에 아이를 배지 못했다.
야수다라 부인은 보살이 출가하시는 날 저녁에 태기를 느꼈다. 보살이 출가해서 6년 동안 고행하였는데 야수다라 또한 6년 동안 임신한 채 몸을 풀지 않았다.
이에 석가족 사람들[釋氏]이 따져 물었다.
“보살은 출가하셨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있는가?”
“나는 죄가 없습니다. 내가 가진 아기는 분명히 태자의 아기입니다.”
“어째서 오래도록 아기를 낳지 않았는가?”
“나도 모를 일입니다.”
이에 석가족 사람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왕에게 알리고 법답게 다스릴 것을 건의했다.
이때 구비야 부인이 왕에게 사뢰었다.
“관대히 용서하시옵소서. 제가 항상 야수다라와 거처했으니 저는 그녀의 죄 없음을 증명합니다. 아기를 낳은 뒤 아비를 닮았는지의 여부를 살피신 뒤에 다스려도 늦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자 왕도 관대히 미루어 두었다.
014_0662_c_01L復次如『羅睺羅母本生經』中說迦文菩薩有二夫人一名劬毘耶名耶輸陁羅耶輸陁羅羅睺羅母也劬毘耶是寶女故不孕子耶輸陁羅以菩薩出家夜自覺妊身菩薩出家六年苦行耶輸陁羅亦六年懷妊不諸釋詰之菩薩出家何由有此輸陁羅言我無他罪我所懷子實是太子體胤諸釋言何以久而不產非我所知諸釋集議聞王欲如法治罪劬毘耶白王願寬恕之我常與耶輸陁羅共住我爲其證知其無罪待其子生知似父不治之無晩王卽寬置
014_0663_a_01L부처님께서 6년간의 고행을 마치시고 성불하시던 날 저녁에 라후라도 탄생했다. 왕은 그 아기가 아비를 닮은 것을 보자 사랑스럽게 여겨 모든 근심을 잊고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 아들은 떠났지만 이제 그의 자식을 얻으니, 아들이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야수다라 부인은 비록 벌은 면했으나 나쁜 소문이 온 나라에 퍼져 있었으므로 야수다라는 그 나쁜 소문을 불식시키고 싶었다.
부처님께서 도를 얻으신 뒤 가비라바18)에 돌아와 석가족 사람들을 제도하셨는데, 이때 정반왕과 야수다라 부인은 매일 부처님을 궁안으로 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이때 야수다라 부인은 발우에다 아주 맛난 환희환(歡喜丸)19)을 담아 라후라에게 주면서 부처님께 갖다 드리라 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5백 아라한들의 모습을 모두 부처님과 똑같아 차이가 없게 하셨다.
라후라는 이때 일곱 살이었지만, 환희환을 들고 곧장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더니 바쳤다.
이때 부처님께서 신통력을 거두시어 비구들은 제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시니, 모두가 빈 발우로 앉았는데 부처님의 발우에만 환희환이 가득했다.
야수다라는 왕에게 말했다.
“이것을 보건대 저의 무죄가 증명되옵니다.”
이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무슨 인연으로 6년 동안이나 애기를 배고 있었는지요?”
014_0662_c_14L佛六年苦行旣滿初成佛時夜生羅睺羅王見其似父愛樂忘憂語群臣言我兒雖去今得其子與兒在無異耶輸陁羅雖免罪黜惡聲滿耶輸陁羅欲除惡名佛成道已迦毘羅婆度諸釋子淨飯王及耶輸陁羅常請佛入宮食是時耶輸陁持一鉢百味歡喜丸與羅睺羅令持上佛是時佛以神力變五百阿羅漢皆如佛身無有別異羅睺羅以七歲持歡喜丸徑至佛前奉進世尊時佛攝神力諸比丘身復如故皆空鉢而坐唯佛鉢中盛滿歡喜丸耶輸陁羅卽白王言以此證驗我無罪也耶輸陁羅卽問佛言我有何因緣妊六年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대의 아들, 라후라는 아주 오랜 옛날에 국왕이었는데 5신통을 얻은 어떤 선인이 그 왕국에 들어와서는 ‘왕법은 도적을 벌주시니, 부디 저의 죄를 다스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느니라.
이에 왕이 물었느니라.
‘그대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저는 왕의 나라에 들어와서 주지 않는 것을 가졌습니다. 왕의 물을 마셨고 왕의 양지(楊枝)로 이를 닦았습니다.’
‘내가 준 것이거늘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내가 왕위에 오를 때에 물과 양지 모두를 여러 사람에게 쓰도록 허락했노라.’
‘왕께서 비록 주신 것이지만, 제가 마음속에 품은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저를 벌주시어 다음에 다시 죄가 생기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에 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꼭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잠시 안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라’ 하고는 궁으로 들어가서 6일 동안이나 나오지 않았으니, 선인은 왕의 뜰에서 6일 동안을 아무것도 마시거나 먹지 못했느니라. 이에 선인은 ‘이 왕께서 바로 이것으로 나의 죄를 다스리시는구나’라고 생각했느니라. 그런데 왕은 6일이 지나서야 나오더니 선인에게 ‘내가 깜박 잊었을 뿐이니 탓하지 마시오’라며 사과했느니라.
이런 인연으로 5백 생 동안 3악도의 죄를 받았고, 5백 생 동안 항상 어머니의 뱃속에 6년간을 있었으니, 이런 증거에 의하여 야수다라에게 죄가 없음이 입증됐느니라.”
014_0663_a_06L佛言汝子羅睺羅過去久遠世時曾作國王時有一五通仙人來入王國語王言王法治賊請治我罪王言汝有何罪答言我入王國犯不與取輒飮王水用王楊枝王言我以相與何罪之有我初登王位皆以水及楊枝施於一切仙人言王雖已施我心疑悔罪不除也願今見治無令後罪王言若必欲爾小停待我入還王入宮中六日不出此仙人在王園六日飢渴仙人思惟此王正以此治我王過六日而出辭謝仙人我便相忘莫見咎也以是因緣故受五百世三惡道罪五百世常六年在母胎以是證故耶輸陁羅無有罪也
014_0663_b_01L이때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고 자리를 떠서 나가시니, 야수다라는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으신 분은 세상에서도 만나기 어려운데 내 이제 만났다가 다시 영원히 잃는구나.”
세존께서 앉으셨을 때엔 똑바로 쳐다보아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나간 뒤에는 그 뒤를 좇아 지켜보다가 멀리 사라진 뒤에야 멈추고서는 크게 한탄했다. 서운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땅에 쓰러져 기절하니, 곁의 사람들이 물을 부어 주어야 다시 깨어났다.
항상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기를 ‘천하에서 누가 나를 위해 주술(呪術)을 잘 부려서 그 마음을 돌려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오게 해서 전과 같이 즐겁게 만들어 주겠는가’ 하고는 7보의 값진 구술을 풀어 황금소반 위에 놓고 그것으로 사람을 모집했다.
이때 어떤 범지가 나서서 말했다.
“제가 능히 주술을 써서 그의 마음을 돌리겠습니다. 백 가지 맛을 내는 환희환을 지어서 약초에다 섞고 주문을 외우면 그 마음이 곧 돌아서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야수다라는 그의 말대로 해 놓고, 사람을 부처님께 보내어 여러 성인들과 함께 왕림해 주시기를 청했다.
부처님께서 왕궁에 드시자 야수다라는 곧 백 가지 맛을 내는 환희환을 내어 부처님의 발우에 넣어드렸다.
야수다라는 부처님께서 잡수신 뒤 소원이 이루어져서 처음과 같이 되기를 바랐으나 부처님은 잡수신 뒤에도 아무런 이상도 없이 마음과 눈이 맑고 고요하기만 했다. 야수다라는 생각했다.
‘아직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은 아직 약효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약효가 발동하면 반드시 내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부처님께서 공양 드시기를 마치시고 축원을 해주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버리시니, 야수다라는 생각했다.
‘약의 힘이 저녁때가 되어 해가 지면 나타나서 반드시 궁으로 돌아오시리라.’
하지만 부처님은 공양하신 뒤 여전히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이튿날 비구들은 밥을 먹을 시간이 되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성으로 들어가서 걸식을 하다가 이 사실을 자세히 듣고는 더욱 공경하여 말했다.
“부처님의 힘은 한량이 없으시고 신통한 마음씨는 헤아릴 수도 없으니, 말이나 생각으로 따질 수 없다. 야수다라의 약인 환희환은 그 힘이 매우 크건만 세존께서는 잡수시고도 몸과 마음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시다.”
비구들은 밥을 받아 가지고 성에서 나와 이 일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야수다라는 지금만 환희환으로 나를 흘리는 것이 아니다. 지난 세상에도 환희환으로 나를 홀린 적이 있느니라.”
014_0663_a_20L世尊食已出去耶輸陁羅心生悔如此好人世所希有我得遭遇今永失世尊坐時諦視不眴世尊出尋後觀之遠沒乃止心大懊恨一思至躄地氣絕傍人以水灑之得蘇息常獨思惟天下誰能善爲呪能轉其心令復本意歡樂如初以七寶名珠著金槃上以持募人一梵志應之我能呪之令其意轉當作百味歡喜丸以藥草和之以呪語禁之其心便轉必來無疑耶輸陁羅受其教法遣人請佛願與聖衆屈威神佛入王宮耶輸陁羅卽遣百味歡喜丸著佛鉢中佛旣食之耶輸陁羅冀想如願歡娛如初佛食無異心目澄靜耶輸陁羅言今不動者力未行故耳藥勢發時必如我願飯食訖而呪願已從座起去耶輸陁羅冀藥力晡時日入當發必還宮中佛食如常身心無異諸比丘明日食著衣持鉢入城乞食具聞此事益恭敬佛力無量神心難測不可思耶輸陁羅藥歡喜丸其力甚大世尊食之身心無異諸比丘食已出以是事具白世尊佛告諸比丘耶輸陁羅非但今世以歡喜丸惑我乃往過去世時亦以歡喜丸惑我
014_0663_c_01L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다시 지난 생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들려 주셨다.20)
014_0663_c_01L世尊爲諸比丘說本生因緣
아주 오랜 옛날에 바라내국(姿羅捺國)21)의 어느 산중에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봄날22) 목욕탕에서 사슴들이 모여 어울리는 것을 보자 음심이 발동한 나머지 목욕대야에 정액을 흘리고 말았다. 암사슴이 그 정액을 핥아먹고 곧 태기가 있더니 달이 차서 새끼를 낳았는데, 형상은 사람 같으나 머리에 뿔 하나가 있고 발은 사슴을 닮았다.
어미사슴은 분만할 때, 선인의 암자 근처에 가서 몸을 풀고는 새끼가 사람을 닮았다 하여 선인에게 주고는 가버렸다.
선인이 나왔다가 이 사슴새끼를 보자 자기의 지난 일을 기억해 보더니, 자신의 자식임을 알고는 데리고 가서 길렀다.
차츰 자라남에 따라 부지런히 학문을 가르쳐 18종의 경서23)에 통달했다. 또한 선정을 배우고 4무량심을 행하니, 곧 5신통을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산에 올라갔다가 큰 비를 만났다. 미끄러운 진흙땅에 발이 불편해서 쓰러지면서 물병을 깨뜨리는 바람에 발을 크게 다쳤다.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물병에다 물을 담아놓고는 주술로 축원하여 비가 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 선인의 공덕으로 귀신들이 모두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니, 오곡과 오과가 익지 못하고 백성들은 가난에 시달려 살 길이 막막해졌다.
014_0663_c_02L過去久遠世時婆羅柰國山中有仙人仲春之月於澡槃中小便見鹿麚麀合會婬心卽動精流槃中麀鹿飮之卽時有娠滿月生子形類如人唯頭有一角其足似鹿鹿當產時至仙人菴邊而產見子是人以付仙人而去仙人出時見此鹿子自念本緣知是己兒取已養育及其年大懃教學問通十八種大經又學坐禪行四無量卽得五神通一時上山値大雨泥滑其足不便躄地破其鍕持又傷其足便大瞋恚以鍕持盛水呪令不雨人福德諸龍鬼神皆爲不雨不雨故五穀五果盡皆不生人民窮乏無復生路
바라내국의 왕은 근심에 젖어 모든 대신들을 모아 비 내리는 일을 의논하게 했는데, 밝은 이가 있어 말했다.
“제가 일찍이 듣건대, 선인들이 사는 산중에 뿔 하나를 가진 선인24)이 있다고 합니다. 불편한 다리로 산을 오르다가 그만 미끄러져 발을 다치고는 화가 나서 비가 오지 못하도록 주문으로 축원을 했는데, 12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왕은 생각했다.
‘12년이나 비가 오지 않는다면, 내 나라는 끝장이다. 백성들은 없어지리라.’
왕은 공고를 내렸다.
“누구든지 그 선인으로 하여금 신통을 잃고 내게 돌아오게 한다면 내 나라의 반을 나누어 주리라.”
014_0663_c_17L婆羅柰國王憂愁懊惱命諸大官集議雨事明者議言我曾傳聞仙人山有一角仙人以足不便故上山躄地傷足瞋呪此雨令十二年不墮王思惟言若十二年不雨我國了矣無復人民王卽開募其有能令仙人失五屬我爲民者當與分國半治
014_0664_a_01L이때 바라내국에 선타(扇陀)25)라는 창녀[淫女]가 있었는데 단정하기 짝이 없었다. 왕의 모집에 응해 온 그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아닙니까?”
“선인이 낳은 사람입니다.”
“만일 사람이라면 내가 능히 무너뜨려 주겠소.”
그리고는 금쟁반에다 훌륭한 보물을 담아 가지고 와서 국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 선인의 목에 무등을 타고 오겠습니다.”
음녀는 곧 5백 대의 수레를 구하여 5백 명의 미녀를 태우고, 5백 대의 사슴수레에는 갖가지 환희환을 실었다. 환희환에는 갖가지 약초를 섞어 조합하고 다양한 과일 모양을 내도록 채색했으며, 갖가지 큰 위력을 지닌 맛난 술을 색깔과 맛이 마치 물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나무껍질로 된 옷과 풀로 엮은 옷을 입고 숲 사이를 거닐면서 선인의 행색으로 선인의 암자 근처에다 초암26)을 짓고 살았다.
014_0663_c_23L是婆羅柰國有婬女名曰扇陁端正無雙來應王募問諸人言此是人非人人言是人耳仙人所生婬女言若是人者我能壞之作是語已取金槃盛好寶物語國王言我當騎此仙人項來婬女卽時求五百乘車載五百美女百鹿車載種種歡喜丸皆以衆藥和以衆彩畫之令似雜果及持種種大力美酒色味如水服樹皮衣草衣行林樹閒以像仙人於仙人菴邊作草菴而住
014_0664_b_01L어느 날 외뿔선인이 밖을 거닐다가 이것을 발견하자, 여자들이 모두 나와서 맞이하며 아름다운 꽃과 좋은 향으로 선인에게 공양했다. 선인이 매우 기뻐하니, 여자들은 모두 예쁜 말씨로 공경히 문안을 드렸다.
선인이 방으로 들어오자 훌륭한 평상에 앉게 하고는 맛난 술을 주니 맑은 물이라 여기고, 환희환을 주니 좋은 과일로 여겼다.
그는 배불리 먹고 나서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뒤 처음으로 이렇게 좋은 과일과 좋은 물을 먹어 봤소.”
여자들이 말했다.
“우리들이 일심으로 착한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하늘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어 이 좋은 과일과 좋은 물을 주신 것입니다.”
선인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피부가 그렇게도 풍만한가?”
여자들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이 좋은 과일을 먹고 좋은 물을 마신 까닭에 이처럼 풍만해졌습니다.”
여자들이 다시 선인에게 물었다.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이곳에서 살지 않습니까?”
이에 선인은 대답했다.
“왜 살지 못하겠느냐.”
이말에 여자들이 “함께 목욕이라도 합시다”라고 권하니 그는 곧 허락을 했다.
여자들의 보드라운 손길이 연하게 건드리자 마음이 흔들리더니, 다시 여러 미녀들이 번갈아 문지르고 씻어주니 음심이 더욱 발동하여 급기야는 음행을 범하고 말았다.
그는 곧 신통을 잃었으며, 하늘은 마침내 비를 내렸다.
선인과 여인들은 7일 7야에 걸쳐 함께 즐기며 먹고 마셨다.
7일 뒤 술과 과일이 다하였기에 산의 물과 나무의 과일로 대신하니, 그 맛이 전과 같지 못했다. 전과 같은 것을 찾으니, 여자는 대답하기를 “다 떨어졌습니다. 지금 함께 가시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얻으실 수는 있습니다”하니, 선인은 “좋도록 하라”하고는 곧 따라 나섰다.
여자는 성이 이제 멀지 않음을 알자 문득 길바닥에 누우면서 말했다.
“나는 힘이 다해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선인이 말했다.
“그대가 더 이상 갈 수 없다면 내 목을 타거라. 내가 그대를 목에 태우고 가리라.”
014_0664_a_11L一角仙人遊行見之諸女皆出迎逆好華好香供養仙人仙人大諸女皆以美言敬辭問訊仙人入房中坐好牀蓐與好淨酒以爲淨與歡喜丸以爲果蓏食飮飽已諸女言我從生已來初未得如此好果好水諸女言我以一心行善天與我願得此好果好水仙人問諸女汝何以故膚色肥盛答言曹食此好果飮此美水故肥盛如此女白仙人言汝何以不在此閒住亦可住耳女言可共澡洗卽亦可女手柔軟觸之心動便復與諸美女更互相洗欲心轉生遂成婬事失神通天爲大雨七日七夜令得歡喜飮食七日已後酒果皆盡繼以山水木果其味不美更索前者答言今當共行去此不遠有可得處人言隨意卽便共出媱女知去城不遠女便在道中臥我極不能復仙人言汝不能行者騎我項上項汝去
음녀는 미리 전언을 왕에게 보내어 “왕께서는 나의 지략을 구경해 보십시오”라며 말해 둔 터였다.
왕이 행차를 갖추고 나와 보고는 물었다.
“어떻게 이리 되었느냐?”
음녀가 말했다.
“저의 방편의 힘으로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바가 없습니다. 성안에 머물게 하면서 잘 공양하고 공경하며, 다섯 가지 욕망을 충족시켜 주십시오.”
왕은 그를 대신으로 명했는데, 성에 머무른 지 며칠 안 되어 몸이 더욱 여위고 수척해지면서 선정을 생각하면 즐겁고 이 세상의 욕망을 싫어했다.
왕이 선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즐거워하지 않고 몸만 점점 수척해지는가?”
선인이 대답했다.
“제가 비록 5욕락을 얻었으나 숲속의 고요한 곳을 항상 생각하여 선인들의 수행하는 곳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왕은 생각했다.
‘내가 만일 강제로 그의 뜻을 어긴다면 뜻을 어겼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로움이 극에 달하면 죽을 것이다. 내 본래의 뜻은 가뭄을 제하려는 것이었는데 이제 이미 이루었거늘 다시 무슨 이유로 그의 뜻을 억지로 빼앗으랴.’
그리고는 곧 그를 놓아 주니, 그는 산으로 돌아와 다시 정진하여 오래지 않아 다시 5신통을 얻었다.
014_0664_b_08L女先遣信白王王可觀我智王勅嚴駕出而觀之問言何由得女白王言我以方便力故今已如無所復能令住城中好供養恭敬足五所欲拜爲大臣住城少日轉羸瘦念禪定心樂厭此世欲王問仙人汝何不樂身轉羸瘦仙人答王我雖得五欲常自憶念林閒閑靜仙遊處不能去心王自思惟若我强違其志違志爲苦苦極則死本以求除旱患今已得之當復何緣强奪其卽發遣之旣還山中精進不久得五通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외뿔선인은 바로 나의 전생이요, 음녀는 야수다라이니라. 그때에도 환희환으로 나를 홀렸는데, 내가 미혹을 끊지 못했었기에 홀림을 당했다. 지금 또한 환희환으로 홀리려 하나 안 될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곱고 부드러운 촉감은 능히 선인들의 마음까지도 요동시키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범부이겠는가.
014_0664_b_20L佛告諸比丘一角仙人我身是也婬女者耶輸陁羅是爾時以歡喜丸惑我我未斷結爲之所惑今復欲以藥歡喜丸惑我不可得也以是事故知細軟觸法能動仙人何況愚
이러한 갖가지 인연을 일컬어 ‘보드라운 촉감의 욕망을 꾸짖는다’ 한다.
如是種種因緣是名呵細滑欲
014_0664_c_01L이와 같이 5욕을 꾸짖는 것은 5개(蓋)를 제거하는 것이다.
014_0664_c_01L是呵五欲除五蓋者
또한 탐욕에 끌리는 사람은 도에서 매우 멀어지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탐욕은 갖가지 형태로서 살고 있는 자리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탐욕에 집착되면 도에 가까워질 수가 없다.
탐욕의 가리움을 제하는 게송으로 이런 것이 있다.
014_0664_c_02L復次貪欲之人去道甚遠所以者何欲爲種種惱亂住處若心著貪欲無由近道如除欲蓋偈所說

도에 들어와 부끄러움 아는 이
발우 들고 중생을 복되게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욕망의 티끌에 끌려서
다섯 가지 감정에 빠져드는가.
014_0664_c_05L入道慚愧人
持鉢福衆生
云何縱塵欲
沈沒於五情

투구 쓰고 무기를 들고서도
적을 보고 도망해 가면
이런 겁쟁이는
세상 사람들이 비웃으리.
014_0664_c_07L著鎧持刀杖
見敵而退走
如是怯弱人
擧世所輕笑

비구로서 걸사(乞士)가 되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도
다섯 감정에 끌리는 이
비웃음 받는 것도 이와 같네.
014_0664_c_08L比丘爲乞士
除髮著袈裟
五情馬所制
取笑亦如是

호귀한 사람이
좋은 옷 입고
몸단장하고 걸식 다니어
사람들 비웃음 받음도 이와 같아라.
014_0664_c_09L又如豪貴人
盛服以嚴身
而行乞衣食
取笑於衆人

비구가 좋은 장식 버리고
겉모양 헐어서 마음 거두되
도리어 욕망ㆍ쾌락 구해 찾다가
비웃음 사는 것도 이와 같아라.
014_0664_c_11L比丘除飾好
毀形以攝心
而更求欲樂
取笑亦如是

이미 5욕을 버리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아야 하거늘
어찌하여 도리여 얻으려 하는가
바보가 토하고는 다시 먹는 것 같네.
014_0664_c_12L已捨五欲樂
棄之而不顧
如何還欲得
如愚自食吐

이렇게 탐욕에 빠진 사람은
본래의 서원을 관할 줄 모르고
좋고 나쁨도 알지 못하여
목마른 애욕에 미치듯 취하여
014_0664_c_13L如是貪欲人
不知觀本願
亦不識好醜
狂醉於渴愛

부끄러움 알아야 할 존귀한 모든 법
마치 헌신짝같이 버리어
어질고 지혜로운 이 멀리 여의고
어리석고 둔한 무리 애착해 따르네.
014_0664_c_15L慚愧尊重法
一切皆已棄
賢智所不親
愚騃所愛近

모든 욕망이란 구할 때 괴롭고
얻은 뒤엔 두려움이 많으며
잃을 때엔 뜨거운 번뇌를 품으니
언제나 즐거울 날이 없네.
014_0664_c_16L諸欲求時苦
得之多怖畏
失時懷熱惱
一切無樂時

모든 욕망의 걱정이 이러하니
어찌하여야 버릴 수 있으랴.
선정의 즐거움을 얻어야
속임을 당하지 않으리.
014_0664_c_17L諸欲患如是
以何當捨之
得諸禪定樂
則不爲所欺

욕망은 집착되기 끝이 없나니
어찌하여야 제해 없애리오.
만일 부정관(不淨觀)을 얻으면
그 마음 저절로 없어지리라.
014_0664_c_19L欲樂著無厭
以何能滅除
若得不淨觀
此心自然無

욕망에 집착되고서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그 마음을 깨달으리오.
늙음과 앓음과 죽음을 관하여야
네 가지 깊은 못을 벗어나리라.
014_0664_c_20L著欲不自覺
以何悟其心
當觀老病死
爾乃出四淵

모든 욕망 버리기 어렵나니
어찌하여야 멀리 여의랴.
만일에 착한 법을 좋아한다면
그 욕망 저절로 쉬어지리라.
014_0664_c_21L諸欲難放捨
何以能遠之
若能樂善法
此欲自然息

모든 욕망 벗어나기 어렵나니
어찌하여야 풀려나리오.
몸의 진실한 모습을 관찰하면
그들에게 속박되지 않나니
014_0664_c_23L諸欲難可解
何以能釋之
觀身得實相
則不爲所縛
014_0665_a_01L
이러한 모든 관법(觀法)은
모든 욕망의 불길을 끈다.
비유컨대 큰 비가 쏟아질 때에
들불이 남아나지 않는 것 같네.
014_0665_a_01L如是諸觀法
能滅諸欲火
譬如大澍雨
野火無在者

이러한 갖가지 인연은 욕망의 가리움을 없앤다.
014_0665_a_02L如是等種種因緣滅除欲蓋
성냄의 가리움은 모든 착한 법을 잃는 근본이고 악도에 떨어지는 원인이다. 모든 즐거움의 원수이고, 착한 마음의 큰 도적이며, 모든 나쁜 소리가 모이는 곳이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의 성냄을 경책하신 게송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014_0665_a_03L瞋恚蓋失諸善法之本墮諸惡道之因樂之怨家善心之大賊種種惡口之府藏如佛教瞋弟子偈言

그대여, 생각해 보라.
몸을 받을 때나 태에 있을 때
더럽고 나쁜 고통에 갇혔고
태어난 뒤에도 어려움은 많네.
014_0665_a_06L汝當知思惟
受身及處胎
穢惡之幽苦
旣生之艱難

이런 도리 생각하고서도
다시 성냄을 끊지 않으면
이 사람은 분명코
마음 없는 무리이리라.
014_0665_a_08L旣思得此意
而復不滅瞋
則當知此輩
則是無心人

아무런 죄보와 결과도 없고
꾸짖거나 책망하는 이 없어도
응당 참아야 되거늘
하물며 괴로운 과보가 심한 때이랴.
014_0665_a_09L若無罪報果
亦無諸呵責
猶當應慈忍
何況苦果劇

늙음과 않음과 죽음을
아무도 면하지 못함을 관하여
자비한 마음을 일으켜야 되거늘
어찌하여 중생에게 악을 가하랴.
014_0665_a_10L當觀老病死
一切無免者
當起慈悲心
云何惡加物

중생들 서로가 원적을 맺어
베고 찌르며 고통을 받거니와
어찌하여 선을 닦는 사람이
덩달아 괴롭히는 짓을 더하랴.
014_0665_a_12L衆生相怨賊
斫刺受苦毒
云何修善人
而復加惱害

항상 자비를 행하여
안정된 마음으로 선을 닦을지니
삿된 마음 품어
누구 하나 해치지 말라.
014_0665_a_13L常當行慈悲
定心修諸善
不當懷惡意
侵害於一切

만일에 도법을 부지런히 닦으면
해치려는 마음 요동치 않나니
선과 악은 세력이 병존치 못하니
마치 물불이 서로 등지는 것 같네.
014_0665_a_14L若勤修道法
惱害則不行
善惡勢不竝
如水火相背

성냄이 마음을 덮으면
좋고 나쁨 알지 못하고
이로움과 해로움도 모르며
악도의 고통 두려워할 줄 모르네.
014_0665_a_16L瞋恚來覆心
不知別好醜
亦不識利害
不知畏惡道

남의 괴로움을 헤아리지 못하고
몸과 마음의 피로함도 느끼지 못하면
먼저 자신이 괴로움의 인을 받고
나중에 딴 사람에게도 미치네.
014_0665_a_17L不計他苦惱
不覺身心疲
先自受苦因
然後及他人

성냄을 멸하고자 하거든
인자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홀로 밝고 한가롭게 있으면
사태는 쉬어지고 인연도 멸하리.
014_0665_a_18L若欲滅瞋恚
當思惟慈心
獨處自淸閑
息事滅因緣

노ㆍ병ㆍ사를 두려워하면
아홉 가지 성냄이 제거되나니
이렇게 인자함을 생각하면
성냄의 독을 멸할 수 있으리.
014_0665_a_20L當畏老病死
九種瞋惱除
如是思惟慈
則得滅瞋毒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성냄의 가리움을 제거한다.
014_0665_a_21L如是等種種因緣除瞋恚蓋
014_0665_b_01L수면의 가리움이란 능히 금세의 세 가지 일, 즉 욕락, 이락(利樂), 복덕을 깨뜨리며, 능히 금세와 후세의 완전한 즐거움을 깨뜨려서 죽은 이와 다름이 없으되 겨우 숨만 남은 것 같다.
어떤 보살이 다음의 게송으로 잠을 즐기는 제자를 꾸짖었다.
014_0665_a_22L睡眠蓋能破今世三事欲樂利樂福德破今世後世究竟樂與死無異唯有氣息如一菩薩以偈呵眠睡弟子言

그대는 일어나라.
역겨운 몸을 안고 누워 있지 말라.
갖가지 부정하게 모인 것을
사람이라 부를 뿐이다.

마치 중법에 걸린 것 같고
화살이 몸에 박힌 것 같아서
모든 고통이 모여드는데
어찌 잠을 잘 수 있으랴.
014_0665_b_02L汝起勿抱臭身臥
種種不淨假名人
如得重病箭入體
諸苦痛集安可眠

모든 세간에는
죽음의 불길이 치솟나니
너는 벗어나기를 구할 것이어늘
어찌 잠을 잘 수 있으랴.

어떤 사람이 결박되어
죽음의 땅으로 가는 것 같아서
재앙이 곧 이르거늘
어찌 잠을 잘 수 있으랴.
014_0665_b_04L一切世閒死火燒
汝當求出安可眠
如人被縛將去殺
災害垂至安可眠

도적을 묶어 제거하지 않는 한
재앙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듯
독사들과 한 방에서
잠을 자는 듯하고,

또는 전쟁터에서
칼날을 맞대고 선 것 같거니
그런데 어찌하여
잠을 잘 수 있으랴.
014_0665_b_06L結賊不滅害未除
如共毒蛇同室宿
亦如臨陣白刃閒
爾時安可而睡眠

잠[眠]은 큰 어두움이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나니
날마다 침노하여
사람의 밝음을 빼앗는다.

잠이 마음에 덮이면
보이는 것이 없나니
이렇게 큰 허물이 있거늘
어찌 잠을 잘 수 있으랴.
014_0665_b_08L眠爲大闇無所見
日日侵誑奪人明
以眠覆心無所識
如是大失安可眠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수면의 가리움을 제한다.
014_0665_b_10L如是等種種因緣呵睡眠蓋
들뜸과 후회[掉悔]27)의 가리움에 관하여 말하자면, 들뜸[掉]이라는 것은 출가인의 마음을 깨뜨린다. 사람들은 마음을 거두어 모아도 머무르지 못하거늘 하물며 들뜨고 산란해지는 경우이겠는가.
들뜨고 산란한 사람은 마치 고삐 없는 취한 코끼리 같고, 코를 잘린 낙타와 같아서 제지할 수가 없다.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665_b_11L悔蓋掉之爲法破出家心如人攝心不能住何況掉散掉散之人如無鉤醉象決鼻駱駝不可禁制如偈說

그대 이미 머리 깎고
물들인 옷 입었으며
발우를 손에 들고
걸식을 다니거늘

어찌하여 장난삼아
들뜨는 법에 집착하는가.
법의 이익은 없어지고
세간의 즐거움 잃게 되리라.
014_0665_b_14L汝已剃頭著染衣
執持瓦鉢行乞食
云何樂著戲掉法
旣無法利失世樂

뉘우침이란 큰 죄를 범한 사람이 항상 두려워하는 생각을 품는 것 같으니, 뉘우침의 화살이 마음에 스며들면 뽑을 수 없다.
이런 게송이 있다.
014_0665_b_16L悔法者如犯大罪人常懷畏怖悔箭入心堅不可拔如偈說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뉘우침의 불길에 태워져서
후세에는 악도에 떨어지네.
014_0665_b_18L不應作而作
應作而不作
悔惱火所燒
後世墮惡道

사람이 죄를 뉘우치면
뉘우친 뒤에는 놓아버리라.
그러면 마음이 안락하리니
두고두고 생각하지 말지니라.
014_0665_b_20L若人罪能悔
已悔則放捨
如是心安樂
不應常念著

두 종류의 뉘우침이 있나니
하지 않았거나 이미 한 것이나
이런 뉘우침이 마음에 걸리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네.
014_0665_b_21L若有二種悔
不作若已作
以是悔著心
是則愚人相

마음을 뉘우치지 않음으로써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나니
모든 나쁜 일 이미 했으면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으리.
014_0665_b_22L不以心悔故
不作而能作
諸惡事已作
不能令不作
014_0665_c_01L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들뜸과 후회의 가리움을 꾸짖는다.
014_0665_c_01L如是等種種因緣呵掉悔蓋
의심의 가리움이란 의혹이 마음에 덮었기 때문에 모든 법에서 안정된 마음을 얻지 못하나니, 안정된 마음이 없으므로 불법에 대하여 아무것도 얻는 바가 없다. 마치 어떤 사람이 보물산에 들어갔으되 손이 없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의심의 뜻을 설명한 게송이 있다.
014_0665_c_02L疑蓋者以疑覆心故於諸法中不得定心定心無故於佛法中空無所得譬如人入寶山若無手者無所能取如說疑義偈言

어떤 사람이 험준한 길에서
의심하면 가지 못하듯
모든 법의 실상을 배움에도
의심하면 그 허물 이와 같도다.
014_0665_c_06L如人在歧道
疑惑無所趣
諸法實相中
疑亦復如是

의심 때문에 모든 법의 실상을
부지런히 구하지 못하나니,
이 의혹은 어리석음에서 생긴 것
죄악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다네.
014_0665_c_08L疑故不懃求
諸法之實相
是疑從癡生
惡中之弊惡

착한 법과 착하지 못한 법,
생사와 열반 사이에
반드시 진실로 참되게 있는 법,
그에 대해 의혹을 내지 말지니라.
014_0665_c_09L善不善法中
生死及涅槃
定實眞有法
於中莫生疑

그대들, 의심하는 마음을 내면
죽음의 옥졸에게 결박되리니
마치 사자가 사슴을 덮치듯
벗어나 풀려나기 어려우리라.
014_0665_c_10L汝若生疑心
死王獄吏縛
如師子搏鹿
不能得解脫

세상을 사노라면 의혹이 있겠지만
묘하고 선한 법을 따라 가거라.
마치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이가
이롭고 좋은 쪽을 따라가듯이.
014_0665_c_12L在世雖有疑
當隨妙善法
譬如觀歧道
利好者應逐

이러한 갖가지 인연 때문에 의혹의 가리움을 버려야 한다.
014_0665_c_13L如是等種種因緣故應捨疑蓋
이 5개를 버리면 마치 빚을 진 이가 빚에서 벗어나듯이, 중환자가 쾌차하듯이, 굶주리는 지역을 벗어나 풍요한 나라를 만나듯이, 옥에서 풀려나듯이, 흉한 도적들 틈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근심 없게 되듯 하리라. 수행자도 그와 같아서 5개를 제거하면 그 마음이 편안하고 청정하고 즐거우리라.
비유하건대 해와 달에 다섯 가지, 즉 햇무리ㆍ연기ㆍ구름ㆍ티끌ㆍ안개가 덮이거나 나후아수라(羅候阿修羅)28)가 손으로 막으면 밝게 비추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5개에 덮이면 자신도 이롭게 하지 못하고 남도 이롭게 하지 못한다.
014_0665_c_14L棄是五譬如負債得脫重病得差飢餓之地得至豐國如從獄得出如於惡賊中得自免濟安隱無患行者亦如是除卻五蓋其心安隱淸淨快樂譬如日月以五事覆曀羅睺阿修羅手障則不能明照人心亦如是爲五蓋所覆自不能利亦不能益人
만일 5욕(欲)을 꾸짖으면 5개를 제하고, 다섯 가지 법, 즉 의욕[欲]ㆍ정진ㆍ기억[念]ㆍ공교로운 지혜[巧慧]ㆍ한마음을 행할 수 있으리니, 이 다섯 가지 법을 행하면 5지(支)를 성취하여 초선(初禪)을 얻는다.
014_0665_c_21L若能呵五欲除五蓋行五法精進巧慧一心行此五法得五支成就初禪
의욕이라 함은 욕계에서 벗어나서 초선천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名欲於欲界中出欲得初禪
014_0666_a_01L정진이라 함은 집을 떠나 계를 지니며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전일하게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절제 있게 먹고 마음을 거두는 것이다.
014_0666_a_01L精進名離家持戒初夜後夜專精不節食攝心不令馳散
기억이라 함은 초선천의 즐거움을 기억하되 욕계는 더럽고 미친 듯 어리둥절하고 미천하며 초선천은 존중하고 귀한 줄을 아는 것이다.
014_0666_a_03L名念初禪知欲界不淨狂惑可賤初禪爲尊重可貴
공교로운 지혜라 함은 욕계의 즐거움과 초선천의 즐거움을 관찰하고 헤아려서 가볍고 무거움과 얻고 잃음을 아는 것이다.
014_0666_a_05L巧慧名觀察籌量欲界樂禪樂輕重得失
한마음이라 함은 마음을 항상 대상 가운데 매어 두어 나뉘거나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014_0666_a_06L一心名常繫心緣中不令分散
014_0666_b_01L또한 초선천을 오로지 구하여 욕락을 버려야 하나니, 비유하건대 원수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가 항상 그 생각을 없애버리고자 한다면, 곧 원수의 해를 당하지 않는 것 같다. 부처님께서 욕락에 집착된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본래 욕락을 관찰했다. 욕락은 두려움ㆍ근심ㆍ괴로움의 인연이며, 욕락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은 많다. 욕락이란 악마의 그물에 걸린 것 같아 벗어나기 어렵다.
욕락은 모든 즐거움을 태우고 말리는 것이 마치 숲의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욕락은 불구덩이에 떨어진 것 같아서 매우 두렵고, 독사에게 쫓기는 것 같고, 원수가 칼을 품은 것 같고, 나찰과 같고, 나쁜 독약이 입에 든 것 같고, 구리 녹인 물을 삼킨 것 같고, 세 갈래 개울의 미친 코끼리 같고, 크고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 같고, 사자가 앞을 막은 것 같고, 마갈어(摩竭魚)29)가 입을 연 것 같으니, 모든 욕락이 이와 같아서 매우 두렵느니라.”
집착된 욕락은 사람들을 번거롭고 괴롭게 만든다. 욕락에 집착된 사람은 마치 옥에 갇힌 죄수와도 같다. 또한 우리 안의 사슴과 같고, 그물에 걸린 새와 같고, 낚시를 삼킨 고기와 같고, 이리에게 붙잡힌 개와 같고, 새매떼 속의 참새와 같고, 들돼지를 만난 뱀과 같고, 고양이들 속에 갇힌 쥐와 같고, 벼랑 끝에 선 소경 같고, 뜨거운 기름에 빠진 파리와 같고, 싸움터에 선 병든 이와 같고, 서지 못하는 이가 불을 만난 것 같고, 끓는 소금강에 뛰어든 사람과도 같다. 또한 꿀 묻은 칼을 핥는 것 같고, 네거리에 놓인 산적 같고, 얇은 천으로 칼숲[刀林]을 가린 것 같고, 꽃으로 더러운 것을 덮은 것 같고, 풀을 독약 항아리에 바른 것 같고, 독사를 담은 광주리 같다. 또한 꿈인 듯 거짓되고 빌린 것 같아서 돌려주어야만 하는 것 같고, 허깨비가 아이들을 속이는 것 같고, 아지랑이가 실제가 없는 것 같고, 큰 물에 빠진 것 같고, 마갈어의 입으로 들어간 배와 같고, 곡식을 해치는 우박과 같고, 사람에게 다가오는 벼락과도 같다.
모든 욕락이 그와 같아서 거짓되고 실다움이 없다. 견고함도 굳음도 없으며,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이 많다.
욕락은 마구니이니, 모든 착한 공덕을 과괴하고, 항상 중생들을 포박해서 해치기 때문이다.
014_0666_a_07L復次專求初禪放捨欲樂譬如患怨常欲滅除則不爲怨之所害也如佛爲著欲婆羅門說我本觀欲爲怖畏憂苦因緣欲爲少樂其苦甚多欲爲魔網纏緜難出欲爲燒熱竭諸樂譬如樹林四邊火起欲爲如臨火坑甚可怖畏如逼毒蛇如怨賊拔刀如惡羅剎如惡毒入口如呑銷如三流狂象如臨大深坑如師子斷道如摩竭魚開口諸欲亦如是可怖畏若著諸欲令人惱苦著欲之亦如獄囚如鹿在圍如鳥入網魚呑鉤如豺搏狗如烏在鴟群如蛇値野猪如鼠在猫中如群盲人臨坑如蠅著熱油如𤻝人在陣如躄人遭如入沸醎河如舐蜜塗刀如四衢臠肉如薄覆刀林如華覆不淨如蜜塗毒甕如毒蛇篋如夢虛誑如假借當歸如幻誑小兒如焰無實如沒大如船入摩竭魚口如雹害穀如礔礰臨人諸欲亦如是虛誑無實無牢無强樂少苦多欲爲魔軍破諸善功德常爲劫害衆生故出
이러한 갖가지 비유를 들어 5욕을 꾸짖나니, 5개를 제하고, 다섯 가지 법을 행하면 초선천에 이르게 된다.
014_0666_b_06L如是等種種諸呵五欲除五蓋行五法得至初禪
【문】 8배사(背捨)30)ㆍ8승처(勝處)31)ㆍ10일체입(一切入)32)ㆍ4무량심(無量心)ㆍ선(禪)ㆍ삼매 등 이러한 갖가지 선정은 바라밀이라 하지 않거늘 어찌하여 선바라밀만을 말하는가?
014_0666_b_07L問曰八背捨八勝處十一切入四無量心諸定三昧如是等種種定不名波羅蜜何以但言禪波羅蜜
【답】 이 모든 선정은 사유로써 닦는 것[思惟修][선이란 진나라 말로는 사유수(思惟修)이다.]이다. 그러니 선바라밀이라 말하면 일체의 선이 포함되는 것이다.
014_0666_b_10L答曰諸定功德都是思惟修秦言思惟言禪波羅蜜一切皆攝
또한 선은 가장 커서 마치 왕과 같으니, 4선이라고 말하면 모든 선정이 다 포함되지만 다른 선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4선(禪)에는 지혜와 선정이 균등하고 즐겁지만, 아직 이르지 못한 지위[未到地]나 중간 지위[中間地]에는 지혜는 많되 선정이 적고, 무색계에는 선정은 많으나 지혜가 적기 때문이다. 이러한 곳은 즐겁지 못하다. 마치 수레의 한 바퀴는 강하고 한 바퀴는 약하면 안정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지혜와 선정이 균등치 못함도 그러하다.
014_0666_b_12L復次禪最大如王說禪則攝一切說餘定則不何以故是四禪中智定等而樂到地中閒地智多而定少無色界定多而智少是處非樂譬如車一輪强一輪弱則不安隱定不等亦如是
또한 이 4선(禪)에는 4등심(等心)과 5신통(神通)과 배사(背捨)와 승처(勝處)와 일체처(一切處)와 무쟁삼매(無諍三味)와 원(願)과 지(智)와 정선(頂禪)과 자재정(自在定)과 연선(練禪)과 14변화심(變化心)과 반주반(般舟般)과 보살들의 삼매인 수릉엄(首楞嚴)33) 등 대략 108종과 부처님들의 삼매인 부동(不動) 등 대략 8백 종과 부처님이 도를 얻으심과 수명을 버리심 등이 있나니, 이러한 갖가지 공덕과 묘한 정이 모두 4선에 속한다.
그러므로 선을 일컬어 바라밀이라 하고 다른 정은 바라밀이라 하지 않는 것이다.
014_0666_b_17L復次是四禪處有四等心五神通勝處一切處無諍三昧願智頂禪自在定練禪十四變化心般舟般菩薩三昧首楞嚴等略說則百二十諸佛三昧不動等略說則百八及佛得道捨壽如是等種種功德妙定在禪中以是故禪名波羅蜜餘定不名波羅蜜
014_0666_c_01L【문】 그대는 앞에서 말하기를 “5욕을 버리고, 5개를 제하고, 다섯 가지 법을 행하면 초선정을 얻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닦고 어떤 도에 의지하여야 초선정을 얻는가?
014_0666_c_02L問曰汝先言呵五欲除五行五法得初禪修何事依何道得初禪
【답】 부정관(不淨觀)과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34)등 모든 선문(禪門)에 의지하여야 된다.
014_0666_c_04L答曰依不淨觀安那般那念等諸定門
『선경(禪經)』에 이러한 선게(禪偈)가 있다.
如『禪經』禪義偈中說

욕락과 삿된 법을 여의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생사를 여의어 기쁘고 즐거우니
이것이 초선정에 드는 것이다.
014_0666_c_05L離欲及惡法
有覺幷有觀
離生得喜樂
是人入初禪

음욕의 불길을 여읜 뒤에는
시원한 선정을 얻게 되나니
사람이 매우 뜨겁고 괴로울 때
서늘한 못에 들면 기쁜 것과 같다.
014_0666_c_07L已得離婬火
則獲淸涼定
如人大熱悶
入冷池則樂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으면
매우 기쁜 느낌이 마음을 움직여
분별하면 그것을 관이라 하니
초선정에 든 것도 그러하니라.
014_0666_c_08L如貧得寶藏
大喜覺動心
分別則爲觀
入初禪亦然

두 법이 마음을 흔드는 줄 알면
비록 착한 법이라도 여의어야 하나니
마치 바닷물이 맑고 고요하면
물결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다.
014_0666_c_09L知二法亂心
雖善而應離
如大水澄靜
波蕩亦無見

마치 어떤 이가
편안히 누어 깊이 잠들었을 때
곁에서 누군가가 크게 부르면
그 마음 대단히 어지럽듯이
014_0666_c_11L譬如人大極
安隱睡臥時
若有喚呼聲
其心大惱亂

마음 모아 선정에 들어갔을 때
각과 관이 도리어 번거롭나니
그러므로 각과 관을 제해버려야
한 의식의 경지에 들어가리라.
014_0666_c_12L攝心入禪時
以覺觀爲惱
是故除覺觀
得入一識處

속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선정이 생기어 기쁨을 얻나니
이 두 선정에 들어간 뒤엔
기쁘고 용맹하여 매우 기쁘리.
014_0666_c_13L內心淸淨故
定生得喜樂
得入此二禪
喜勇心大悅

마음 거두는 일이야말로 으뜸가는 정이니,
적연(寂然)히 아무것도 생각지 않아
근심도 기쁨도 버리려 함이
각과 관을 버리는 마음과 같네.
014_0666_c_15L攝心第一定
寂然無所念
患喜欲棄之
亦如捨覺觀

느낌 때문에 기쁨이 있고
기쁨을 잃으면 근심을 내니
기쁘고 즐거운 느낌을 여의고
생각도 방편도 모두 버리네.
014_0666_c_16L由受故有喜
失喜則生憂
離喜樂身受
捨念及方便

성인이라야 버릴 수 있고
다른 이는 버리기 어렵나니
즐거움이 근심인 줄 알 수 있으면
견해가 요동치 않아 매우 편하리.
014_0666_c_17L聖人得能捨
餘人捨爲難
若能知樂患
見不動大安

근심과 기쁨은 이미 제했고
괴로움과 즐거움도 이제 끊어서
생각을 끊은 청청한 마음은
제4선에 들어가리라.
014_0666_c_19L憂喜先已除
苦樂今亦斷
捨念淸淨心
入第四禪中

제3선 속의 즐거움은
덧없이 움직이기에 괴로우니
욕계 가운데 근심을 끊고
초선과 2선에서 기쁨을 제하네.
014_0666_c_20L第三禪中樂
無常動故苦
欲界中斷憂
初二禪除喜

그러므로 불세존께서도
제4선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먼저는 근심과 기쁨을 끊고
지금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제한다네.
014_0666_c_21L是故佛世尊
第四禪中說
先已斷憂喜
今則除苦樂
014_0667_a_01L
또한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면서 외딴 곳에 혼자 한가히 살며, 모든 감관을 거두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부지런히 사유하여 밖의 즐거움을 버리고 선(禪)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며, 모든 욕망과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가라앉고 집중된 마음[未到地]35)에 의지하여 초선정을 얻는다.
014_0666_c_23L復次持戒淸淨閑居獨處守攝諸根初夜後夜專精思惟棄捨外樂以禪自娛離諸欲不善法依未到地得初
초선은 아비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초선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맛[味]이 상응함이요, 둘째는 정(淨)이요, 셋째는 무루(無漏)요, 넷째는 초선에 속하는 과보로서 얻어지는 5중(衆)이다.”
여기에서 수행자는 맑은 무루[淨無漏]에 들어간다.
014_0667_a_04L初禪如『阿毘曇』說禪有四種相應無漏初禪所攝報得五衆是中行者入淨無漏
2선ㆍ3선ㆍ4선 역시 그와 같다.
014_0667_a_06L二禪三禪四禪亦如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비구가 모든 욕망과 악과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면, 각(覺)과 관(觀)이 있으며 생을 여의어 기쁘고 즐거운 경지인 초선에 들어간다” 하셨다.
모든 욕망이라 함은 애착하는 대상인 색 등 5욕이니, 생각하고 분별해서 욕망을 꾸짖는 법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이라 함은 탐욕 등 5개(蓋)이다.
이러한 안팎의 두 가지를 여의기 때문에 초선을 얻게 되는데, 초선의 모습은 각과 관이 있고[有覺有觀]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집중된 마음[一心]이다.
각과 관이 있다고 함은 초선 가운데서 이전에는 얻지 못했던 착한 법의 공덕을 얻는 까닭에 마음이 크게 놀라 깨닫는 것을 말한다. 마음은 항상 욕망의 불길에 태워지다가 초선을 얻을 때는 마치 서늘한 못에 들어간 것 같고, 또한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보배광을 얻은 것과도 같다.
곧 수행자는 욕계의 허물과 죄를 사유하고 분별한 뒤에 초선의 이익과 공덕이 매우 많은 줄을 알고는 마음이 크게 기뻐하나니, 이것을 일컬어 ‘각과 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014_0667_a_07L如佛所說若有比丘離諸欲及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入初禪諸欲所愛著色等五欲思惟分別呵欲如先說惡不善法貪欲等五蓋離此內外二事故得初初禪相有覺有觀一心有覺有觀得初禪中未曾所得善法功德故心大驚悟常爲欲火所燒得初禪時如入淸涼池又如貧人卒得寶行者思惟分別欲界過罪知初禪利益功德甚多心大歡喜是名有觀
【문】 각과 관은 한 법인가? 두 법인가?
014_0667_a_18L問曰有覺有觀爲一法二法耶
【답】 두 법이다. 거친 마음으로 처음 생각하는 것을 각이라 하고, 세밀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것을 관이라 한다. 비유하건대 종을 쳤을 때 처음의 소리가 큰 것은 각이요, 나중에 소리가 가늘어지는 것은 관이라 할 수 있다.
014_0667_a_19L答曰二法麤心初念是名爲細心分別是名爲觀譬如撞鍾聲大時名爲覺後聲微細名爲觀
【문】 아비담에서는 말하기를 “욕계로부터 초선에 이르기까지 한마음에 각과 관이 있어 상응한다” 하였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말하기를 “거친 마음으로 처음 생각하는 것은 각이요, 세밀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것은 관이다” 하는가?
014_0667_a_21L如『阿毘曇』說欲界乃至初禪一心中覺觀相應今云何言麤心初念名爲覺細心分別名爲觀
014_0667_b_01L【답】 두 법이 한마음에 있기는 하지만 두 모습이 함께하지는 않는다. 각이 있을 때는 관이 분명치 않고, 관이 있을 때는 각이 분명치 않다. 마치 해가 떴을 때 뭇별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일체의 심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때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게 되는 것도 그러하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만일 한 법을 끓는다면, 나는 그대가 아나함(阿那含)36)을 얻게 됨을 보증하노라” 하셨다. 한 법이라 함은 곧 간탐(慳貪)이거니와 실제에는 5하분결(下分結)을 다 끊어야 아나함을 얻는다 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하여 “한 법만 끊으면 된다”고 말씀하셨겠는가? 곧 이 사람은 간탐에 치우침이 많아서 다른 번뇌가 모두 따라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탐이 끊어지면 다른 번뇌도 끊어진다 하신 것이다.
각과 관이때에 따라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이와 같다.
014_0667_b_01L答曰二法雖在一心二相不俱覺時觀不明了覺不明了譬如日出衆星不現切心心數法隨時受名亦復如是佛說若斷一法我證汝得阿那含法者所謂慳貪實應說五下分結盡得阿那含云何言但斷一法以是人慳貪偏多諸餘結使皆從而生是故慳盡餘結亦斷觀隨時受名亦復如是
수행자는 이 각과 관이 비록 좋은 법인 줄은 아나, 집중된 마음[定心]을 어지럽히기에 마음에서 그것을 여의기를 원한다. 때문에 이 각과 관을 꾸짖어 생각하기를 ‘각과 관이 선심(禪心)을 요동시킨다’ 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맑은 물에 파도가 치면 비치지 못하는 것 같으며, 또한 몹시 피로한 사람이 쉴 틈을 얻어 자려 하는데 곁의 사람이 부르면 갖가지로 어지러워지는 것 같으니, 마음을 거두어 속으로 안정시키는데 각과 관이 흔들어 어지럽히는 것도 이와 같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각과 관을 꾸짖어 각과 관이 멸하면 내적으로 청정해지고 마음을 한 곳에 매어두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집중[定]에서 생겨나는 기쁨이 있는 경지인 제2선에 들어간다. 2선을 얻은 뒤엔 2선에서 일찍이 얻어보지 못했던 비할 바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각과 관이 멸한다고 함은 각과 관의 허물을 아는 까닭에 멸한다는 것이다.
내적으로 청정해진다고 했는데, 곧 깊은 선정에 들어가서 초선의 각과 관을 버림으로써 얻는 이익이 매우 중하며, 잃는 바가 매우 적고 얻는 바가 많고 큼을 믿어서 마음을 한 대상에 매어 두기 때문에 안으로 청정해지는 것이다.
014_0667_b_10L行者知是覺觀雖是善法而嬈亂定心心欲離故呵是覺觀作是念覺觀嬈動禪心譬如淸水波盪則無所見又如疲極之人得息欲睡傍人喚呼種種惱亂攝心內定覺觀嬈動亦復如是如是等種種因緣呵覺觀覺觀滅內淸淨繫心一處無覺無觀定生喜樂入二禪旣得二禪得二禪中未曾所得無比喜樂覺觀滅覺觀過罪故滅內淸淨入深禪定信捨初禪覺觀所得利重所失甚少所獲大多繫心一緣故名內淸淨
014_0667_c_01L수행자가 기쁨의 허물을 관찰함도 각과 관의 경우와 같다. 기쁨이 있는 곳을 따라 기쁨도 많고 근심도 많다. 왜냐하면 마치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어 기쁨이 한량이 없다가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면 그 근심 또한 깊은 것 같으니, 기쁨은 곧 근심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기쁨을 버려야 하니, 따라서 ‘생각을 버리는 지혜[捨念智]’를 행하여 이번에는 몸의 즐거움[身樂]을 받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성인만이 얻을 수 있고 버릴 수도 있나니, 전일한 마음을 즐거운 곳에 두어 제3선에 들어간다.
버린다 함은 기뻐하는 마음을 버리고는 다시 후회하지 않는 것이요, 지혜라 함은 이미 3선의 즐거움을 얻고는 그 즐거움에 대하여 근심을 내지 않는 것이요, 몸의 즐거움을 받는다 함은 이 3선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모두 받는 것이요, 성인이라야 능히 얻고 능히 버린다 함은 이 즐거움이 세간에서 으뜸가는 것이어서 능히 집착하는 마음을 내게 하므로 범부로서는 버리는 이가 적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자비를 행하는 과보는 변정지(遍淨地) 가운데 제일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014_0667_b_21L者觀喜之過亦如覺觀隨所喜處喜多憂所以者何如貧人得寶歡喜無量一旦失之其憂亦深喜卽轉而成憂是故當捨離此喜故行捨受身樂是樂聖人能得能捨一心在入第三禪者捨喜心不復悔旣得三禪中樂不令於樂生患受身樂是三禪樂遍身皆受聖人能得能捨此樂世閒第一能生心凡夫少能捨者以是故佛說行慈果報遍淨地中第一
수행자는 즐거움의 허물을 관찰하기를 기쁨의 허물을 관찰하듯이 한다. 마음이 요동치 않는 곳이 제일인 줄 아나니, 만일 움직이는 곳이 있다면 이는 괴로움이 있는 것이다.
수행자는 제3선천의 즐거움이 요동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곳을 구한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끊고 먼저 근심과 기쁨을 멸하니, 때문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생각을 버리고 청정한 경지인 제4선에 들어간다.
이 4선에는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으며, 오직 요동치 않는 지혜만이 있다. 이런 까닭에 제4선을 ‘생각을 버린 청정한 경지’(捨念淸淨)라고 하는 것이다.
제3선의 즐거움은 움직이기 때문에 괴롭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제4선은 괴로움도 즐거움도 끊어진 곳이라 한다.
014_0667_c_09L行者觀樂之失亦如觀喜知心不動處最爲第一有動處是則有苦行者以第三禪樂動故求不動處以斷苦樂先滅憂喜不苦不樂捨念淸淨入第四禪四禪中無苦無樂但有不動智慧是故說第四禪捨念淸淨第三禪樂動故說苦是故第四禪中說斷苦樂
014_0668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색상을 초월하여 다른 상을 생각하지 않고 대할 수 있는 상[有對相]을 멸해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37)에 들어간다” 하셨다.
이때 수행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색이 없다면 주림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의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 몸의 색은 거칠고, 무겁고, 가리어지고, 악하고, 거짓되고, 속이고, 진실 되지 않다. 전생부터의 인연이 화합해서 과보로 이 몸을 받았으나 갖가지 괴로움이 머무는 곳이다. 어찌하여야 이 몸의 근심을 면할 수 있을까. 이 몸에 대해 허공을 관해야 하리라.’
항상 몸은 공적하여 대바구니[籠] 같고, 시루[甑] 같다고 관하며, 항상 생각하기를 ‘버리지 않으면 색계를 건너서 다시는 몸을 보지 않게 된다’ 한다.
몸 안이 공하듯이 밖의 색도 그러하나니, 이때에 능히 한량없고 가없는 허공을 관하게 되는 것이다.
이 관(觀)을 얻으면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어서 그 마음이 더욱 늘어나나니, 마치 새가 병 속에 갇혔다가 병이 깨지면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
이것을 공처정(空處定)이라 한다.
014_0667_c_16L如佛說過一切色相不念別相滅有對相得入無邊虛空處行者作是念若無色則無飢熱之苦是身色麤重弊惡虛誑非實先世因緣和合報得此身種種苦惱之所住處云何當得免此身患當觀此身中虛空常觀身空如籠如甑常念不捨則得度色不復見身如內身空外色亦爾時能觀無量無邊空得此觀已無苦無樂其心轉增如鳥閉著甁中甁破得出是名空處定
이 공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식(識)을 그 대상으로 삼나니, 대상이 많으면 곧 흩어져서 선정을 깨고 만다.
수행자는 허공의 반연[虛空緣]인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을 병 같고, 종기 같고, 상처 같고, 가시 같아서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가 없고, 속이는 것이어서 화합하면 있을지언정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나서는 허공의 대상을 버리고 다만 식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반연하는가? 곧 현전의 식을 반연하고, 과거ㆍ미래의 한량없고 끝없는 식을 반연하나니, 이 식은 한량없고 끝이 없다. 마치 허공이 한량없고 끝없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일컬어 식처정(識處定)38)이라 한다.
014_0668_a_04L是空無量無邊識緣之緣多則散能破於定行者觀虛空緣受如病如癰如瘡無常無我欺誑和合則有是實也如是念已捨虛空緣但緣識云何而緣現前識緣過去未來無量無邊識是識無量無邊如虛空無量無邊是名識處定
이 식은 한없고 끝이 없어 식으로써 반연하나니, 식이 많으면 흩어져서 선정이 깨어진다. 수행자는 이 식의 대상인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병 같고, 종기 같고, 상처 같고, 가시 같아서 무상하고, 괴롭고, 나 없고, 속이는 것이어서 화합하면 있을지언정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식의 모습을 깨뜨리나니, 이는 식처를 질책하고 무소유처(無所有處)39)를 찬탄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모든 식의 모습을 깨뜨리고 무소유에 마음을 매어 두니, 이것을 무소유처정이라 한다.
014_0668_a_11L是識無量無邊識緣之識多則散能破於定行者觀是緣識受如病如癰如瘡無常無我欺誑和合而有實有也如是觀已則破識相是呵識讚無所有處破諸識相繫心在無所有中是名無所有處定
무소유처의 대상인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병ㆍ종기ㆍ상처ㆍ가시 같아서 괴롭고, 공하고, 나 없고 속이는 것이어서 화합하면 있을지언정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님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사유해 보건대, 생각 없는 곳은 종기 같고, 생각 있는 곳도 병ㆍ종기ㆍ상처ㆍ가시와 같으니, 제일 묘한 곳은 바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40)가 된다.
014_0668_a_17L無所有處緣如病如癰如瘡如刺無常無我欺誑和合而有非實有也如是思惟無想處如癰有想處如病如癰如瘡如刺第一妙處是非有想非無想處
【문】 비유상비무상처에도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있거늘 어찌하여 비유상비무상이라 하는가?
014_0668_a_22L問曰非有想非無想處有受云何言非有想非無想
014_0668_b_01L【답】 여기에는 생각은 있으나 미세하여 느끼기 어려운 까닭에 비유상(非有想)이라 하고, 생각이 있는 까닭에 비무상(非無想)이라 한다.
범부들의 마음에는 모든 법의 실상을 얻었노라 하고, 이것을 열반으로 삼는다. 불법 가운데에서는 비록 생각 있는 경계인 줄은 알지만 그 본래의 이름에 의거해 비유상비무상처라 한다.
014_0668_a_23L答曰是中有想微細難覺故謂爲非有想有想故非無想凡夫心謂得諸法實是爲涅槃佛法中雖知有想因其本名名爲非有想非無想處
【문】 어떤 것이 무상(無想)인가?
014_0668_b_04L問曰何是無想
【답】 무상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무상정(無想定)이요, 둘째는 멸수정(滅受定)이요, 셋째는 무상천(無想天)이다.
범부는 마음을 멸하고자 무상정에 들고, 불제자는 마음을 멸하고자 멸수정에 든다.
014_0668_b_05L答曰無想有三種無想滅受定無想天凡夫人欲滅入無想定佛弟子欲滅心入滅受
이들 선정에는 두 종류가 있나니,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이다.
유루는 범부들의 행이니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무루는 16성자의 행이다.
유루의 도에서는 위의 지위에 의해서 아래 지위의 욕망을 여의고, 무루의 도에서는 자기 지위의 욕망과 윗 지위의 욕망을 여읜다. 이런 까닭에 범부는 유정처(有頂處)41)에서는 욕망을 여의지 못하나니, 더 높은 지위가 없기 때문이다.
014_0668_b_08L是諸禪定有二種若有漏若無漏有漏卽是凡夫所行如上說無漏十六聖行若有漏道依上地邊離下地欲若無漏道離自地欲及上地是故凡夫於有頂處不得離欲更無上地邊故
불제자가 욕계의 욕망과 욕계의 번뇌를 여의고자 한다면, 아홉 가지를 상ㆍ중ㆍ하로 끊는 것을 사유한다. 곧 상상ㆍ상중ㆍ상하ㆍ중상ㆍ중중ㆍ중하ㆍ하상ㆍ하중ㆍ하하이다.
014_0668_b_13L若佛弟子欲離欲界欲界煩惱思惟斷九種下上上上下中上中中中下下上下中
이 아홉 가지를 끊는 까닭에 불제자가 유루의 도에 의지하여 초선(初禪)을 얻고자 하면, 이때 미도지(未到地)42)인 9무애도(無礙道)43)와 8해탈도(解脫道)[매 지위마다에서 수행이 끝나는 과정]44)에서는 현재에는 유루의 도를 닦고, 미래에는 유루의 도와 무루의 도를 닦으며, 제9의 해탈도에서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에서 현재에는 유루의 도를 닦고, 미래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의 유루ㆍ무루의 도와 초선의 경지의 유루를 닦는다.
무루의 도에 의하여 초선을 얻고자 할 때도 이와 같다.
014_0668_b_16L斷此九種故佛弟子若依有漏道欲得初禪是時於未到地九無㝵道八解脫道中現在修有漏道未來修有漏無漏道第九解脫道中於未到地現在修有漏道未來修未到地有無漏道及初禪邊地有漏若無漏道欲得初禪亦如是
014_0668_c_01L만일 무루의 도에 의하여 초선의 욕망을 여의고자 한다면 제2선의 경지에 속하는 9무애도와 8해탈도에서 현재에는 2선의 경지에 속하는 유루를 닦고, 미래에는 2선의 경지에 속하는 유루의 도를 닦는다. 또한 무루의 초선 및 그 권속(眷屬)을 닦으며, 제9해탈도에서는 제2선의 경지에서 현재에는 2선에 속하는 유루의 도를 닦고, 미래에는 2선의 경지에 속하는 초선의 무루 및 그 권속과 2선의 깨끗한 무루를 닦는다.
014_0668_b_22L若依有漏道離初禪於第二禪邊地九無㝵道八解脫道現在修二禪邊地有漏未來修二禪邊地有漏道亦修無漏初禪及眷屬九解脫道中於第二禪邊地現在修二禪邊地有漏道未來修二禪邊地初禪無漏及眷屬二禪淨無漏
만일 무루의 도에 의하여 초선의 욕망을 여의고자 하면 9무애도와 8해탈도에서 현재에는 자기 경지의 무루의 도를 닦고, 미래에는 초선 및 그 권속인 유루ㆍ무루의 도를 닦으며, 제9해탈도에서는 현재에는 자기 경지의 무루의 도를 닦고, 미래에는 초선 및 그 권속인 유루ㆍ무루의 도와 2선의 깨끗한 무루를 닦는다.
014_0668_c_05L若無漏道離初禪欲九無㝵道八解脫道中現在修自地無漏道未來修初禪及眷屬有漏無漏道第九解脫道中現在修自地無漏道未來修初禪及眷屬有漏無漏及修二禪淨無漏
나아가 무소유처에 이르기까지 욕망을 여의려면 이와 같이 한다.
014_0668_c_10L乃至無所有處離欲時亦如是
비유상비무상처에서 욕망을 여의고자 하면 9무애도와 8해탈도에서는 다만 일체의 무루의 도만을 닦고, 제9해탈도에서는 삼계의 선근과 무루의 도를 닦되 무심정(無心定)45)만은 제외한다.
014_0668_c_11L非有想非無想處離欲時九無㝵道八解脫道中但修一切無漏道第九解脫道中修三界善根及無漏道除無心定
닦음[修]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득수(得修)요, 둘은 행수(行修)이다.
득수라 함은 본래 얻지 못했던 것을 지금에야 얻고, 오는 세상에 스스로의 일을 닦거나 다른 일도 닦는 것이다.
행수라 함은 이미 얻은 것을 현재에 닦으며, 오는 세상에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은 닦지 않는 것이다.
014_0668_c_14L修有二種得修行修得修名本所不得而今得來世修自事亦修餘事行修名曾得於現前修未來亦爾不修餘
이렇듯 갖가지 선정에 대해 닦아야 한다.
014_0668_c_17L如是等種種諸禪定中修
또한 선정의 모습을 간략히 말하건대 23종이 있으니, 8미(味)와 8정(淨)과 7무루(無漏)이다.
014_0668_c_18L復次禪定相略說有二十三種八味八淨七無漏
여섯 가지 인(因)46)이 있으니, 상응인(相應因)47)과 공인(共因)48)과 상사인(相似因)49)과 변인(遍因)과 보인(報因)50)과 명인(名因)이다.
낱낱 무루가 7무루의 원인이 되는 것이 상사인이요, 자기 위에서 늘어나는 것이 상응인이다.
공유인(共有因)이란 초미정(初味定)이 초미정의 원인이 되고, 후미정(後味定)이 후미정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014_0668_c_19L復有六因相應因共因相似因遍因報因名因一一無漏七無漏因是相似因自地中增相應因共有因初味定初味定因乃至後味定後味定因
청정함[淨] 역시 이와 같다.
014_0668_c_23L淨亦如
네 가지 연(緣)51)이 있으니, 인연(因緣)52)ㆍ차제연(次第緣)53)ㆍ연연(緣緣)54)ㆍ증상연(增上緣)55)이다.
四緣因緣次第緣緣緣增上緣
014_0669_a_01L인연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4_0669_a_01L緣者如上說
초선의 무루정(無漏定)이 차례로 여섯 가지 정(定)을 내나니, 첫째는 초선의 깨끗함이요, 둘째는 무루이다. 2선과 3선 역시 그와 같다.
014_0669_a_02L初禪無漏定次第生六種定初禪淨無漏二禪三禪亦如是
2선의 무루정이 차례로 여덟 가지 정(定)을 내나니, 자기 지위의 깨끗함과 무루 그리고 초선의 깨끗함과 무루이다. 3선과 4선 역시 그와 같다.
014_0669_a_04L二禪無漏定次第生八種定地淨無漏初禪淨無漏三禪四禪亦如是
3선의 무루정이 차례로 열 가지를 내나니, 자기 지위가 둘이요, 아래 지위가 넷이요, 위의 지위가 넷이다.
014_0669_a_06L三禪無漏定次第生十種自地下地四上地四
제4선과 공처(空處) 역시 그와 같다.
014_0669_a_07L第四禪空處亦如
식처(識處)의 무루정이 차례로 아홉 가지를 내나니, 자기 지위가 둘이요, 아래 지위가 넷이요, 위의 지위가 셋이다.
014_0669_a_08L識處無漏定次第生九種自地二下地四上地三
무소유처의 무루정이 차례로 일곱 가지를 내나니, 자기 지위가 둘이요, 아래 지위가 넷이요, 위의 지위가 하나이다.
014_0669_a_09L無所有處無漏定第生七種自地二下地四上地一
비유상비무상처의 청정[淨]이 차례로 여섯 가지 마음을 내나니, 자기 지위가 둘이요, 아래 지위가 넷이다. 다른 모든 청정한 지위[淨地] 역시 이와 같다.
또한 모두가 자기 지위의 맛[自地味]과 초선의 맛[初禪味]을 더하게 하나니, 차례대로 두 가지 맛은 깨끗하며, 비상비비상처의 맛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다.
014_0669_a_10L有想非無想處淨次第生六心自地二下地四諸淨地亦如是又皆益自地味初禪味次第二種乃至非想非非想處味亦如是
깨끗한 무루의 선은 일체처에서 반연하고, 미선(味禪)은 자기 지위의 맛을 반연하며, 또한 깨끗함[淨]도 반연한다.
사랑함[愛]은 무루의 반연이 없으므로 무루를 반연하지 않는다.
014_0669_a_14L無漏禪一切處味禪緣自地中味亦緣淨愛無無漏緣故不緣無漏
깨끗함은 무루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무색정(無色定)은 아래 지위의 유루를 만연하지 않는다.
014_0669_a_16L無漏根本無色定不緣下地有漏
명인(名因)과 증상연(增上緣)은 일체에 통한다.
014_0669_a_17L名因增上緣通一切
4무량심ㆍ3배사(背捨)ㆍ8승처(勝處)ㆍ8일체처(一切處)는 모두 욕계(欲界)를 반연한다.
014_0669_a_18L四無量心三背捨八勝處八一切處皆緣欲界
5신통(神通)은 욕계와 색계를 반연하고, 나머지는 제각기 대상으로 삼을 바를 반연하며, 멸수상정(滅受想定)은 반연하는 곳이 없다.
014_0669_a_19L五神通緣欲色界餘各隨所緣滅受想定無所
일체의 4선에는 연선(練法)이 있나니, 무루로써 유루를 연마하기 때문이다.
4선을 얻어 마음이 자재한 이는 능히 무루의 제4선으로 유루의 제4선을 연마한다. 그런 뒤에 제3, 제2, 제1 선에서도 모두 자기 지위의 무루로 자기 지위의 유루를 연마한다.
014_0669_a_21L一切四禪中有練法以無漏練有漏故得四禪心自在能以無漏第四禪練有漏第四禪然後第三第一禪皆以自地無漏練自地有
【문】 어찌하여 연선(練禪)이라 하는가?
問曰何以名練禪
014_0669_b_01L【답】 모든 성인들은 무루의 선정을 좋아하고 유루는 좋아하지 않는다. 욕망을 여윌 때에는 유루가 청정해지나니, 좋아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진다. 이제 그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한 까닭에 무루로써 연마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금을 연마하여 그 찌꺼기를 버리는 것같이, 무루로써 유루를 연마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무루선으로부터 일어나서 깨끗한 선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자주자주 거듭하는 것을 연선이라 한다.
014_0669_b_01L答曰諸聖人樂無漏定不樂有漏離欲時淨有漏不樂而自得今欲除其滓穢故以無漏練之譬如煉金去其穢無漏練有漏亦復如是從無漏禪起入淨禪是數數是名爲
또한 모든 선 가운데는 정선(頂禪)이 있다. 왜냐하면 정선[頂]에는 두 종류의 아라한이 있기 때문이다. 곧 괴법(壞法)과 불괴법(不壞法)이다.56) 불괴법의 아라한은 일체의 깊은 선정에서 자재를 얻어서 능히 정선을 일으키나니, 이 정선을 얻으면 능히 수(壽)를 부(富)로 바꾸고, 부를 수로 바꾼다.
014_0669_b_06L復次諸禪中有頂何以故名有二種阿羅漢壞法不壞法不壞法阿羅漢於一切深禪定得自在能起頂禪得是頂禪能轉壽爲富轉富爲壽
또한 원지(願智), 4변(辯), 무쟁삼매(無諍三味)가 있다.
원지라 함은 3세의 일을 알기를 원하고, 그 원하는 바에 따라 아는 것이다.
이 원지는 두 곳에 속하나니, 욕계와 제4선이다.
4변이라 했는데, 법변(法辯)과 사변(辭辯)은 두 곳에 속하니 욕계와 초선이요, 나머지 두 변은 9지(地)에 속하니 욕계 4선과 4무색정이다.
무쟁삼매라 함은 다른 이의 마음에 다툼이 일지 않게 하는 것으로서 다섯 곳에 속하니, 욕계와 4선이다.
014_0669_b_10L復有願智四辯諍三昧願智者願欲知三世事隨所願則知此願智二處攝欲界第四禪四辯者法辯辭辯二處攝欲界初禪餘二辯九地攝欲界四禪四無色定無諍三昧者令他心不起諍五處攝欲界及四禪
【문】 모든 선정을 얻고서도 다시 다른 법이 있는가?
014_0669_b_16L問曰得諸禪更有餘法
【답】 미정(味定)이 생길 때에도 얻고, 물러날 때에도 얻는다. 청정한 선정이 생길 때에 얻고, 욕망을 여읠 때에 얻으며, 무루(無漏)로 욕망을 여읠 때에 얻고, 물러날 때에 얻는다.
014_0669_b_17L答曰味定生亦得退亦得淨禪生時得離欲時得無漏離欲時得退時
아홉 경지의 무루정과 4선과 3무색정(無色定)에서 아직 초지에 이르지 못한 선의 중간에서도 능히 번뇌[結使]를 끊는다.
014_0669_b_19L九地無漏定四禪三無色定未到禪中閒能斷結使
아직 이르지 못한 선의 중간에서 감관과 서로 응하는 경계를 버린다.
014_0669_b_20L未到地禪中閒捨根相應
만일 어떤 사람이 선을 성취하면 아래 지위의 변화심(變化心)도 성취된다.
014_0669_b_21L若人成就禪下地變化心亦成就
이는 초선의 경우와 같다.
성취하는 데는 두 가지 변화심이 있다. 첫째는 초선이요, 둘째는 욕계ㆍ2선의 세 종류ㆍ3선의 네 종류ㆍ4선의 다섯 종류이다.
014_0669_b_22L如初禪成就有二種變化心一者初禪二者欲界二禪三種三禪四種四禪五種
2선과 3선과 4선에서 듣고 보고 감촉하고자 할 때는 모두 범세의 의식[梵世識]을 사용하나니, 의식이 멸할 때엔 그친다.
014_0669_b_24L若二禪三禪四禪中欲聞觸時皆用梵世識識滅時則
014_0669_c_01L4무량의(無量意)ㆍ5신통ㆍ8배사ㆍ8승처ㆍ10일체입ㆍ9차제정(次第定)ㆍ9상(相)ㆍ10상(相)ㆍ3삼매(三味)ㆍ3해탈문(解脫門)ㆍ3무루근(無漏根)ㆍ37품(品) 등 이 같은 공덕들은 모두가 선바라밀에서 생기나니, 여기에서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014_0669_c_02L四無量意五神通八背捨八勝處十一切入九次第定九相十想三三三解脫門三無漏根三十七品是等諸功德皆禪波羅蜜中生是中應廣說
【문】 선바라밀이라 말해야 하거늘 어찌하여 선이라고만 하는가?
014_0669_c_06L問曰應說禪波羅蜜何以但說禪
【답】 선은 바라밀의 근본이니, 이 선을 얻은 뒤에 관찰하기를 “중생들은 내적으로 마음속에는 갖가지 선정의 묘한 즐거움이 있건만 구할 줄 모르고, 도리어 바깥 법의 부정하고 괴로운 가운데에서 쾌락을 찾는다” 하며 연민한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드넓은 서원을 세우되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가 선정의 내적인 즐거움을 얻고, 부정한 쾌락을 여의게 하리라” 한다. 이 선정의 즐거움에 의지해서 이어서 불도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 이때의 선정이 선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014_0669_c_07L答曰禪是波羅蜜之本得是禪憐愍衆生內心中有種種禪定妙樂而不知求乃在外法不淨苦中求如是觀已生大悲心立弘誓願當令衆生皆得禪定內樂離不淨樂依此禪樂已次令得佛道樂是時禪定得名波羅蜜
또한 이 선정에서는 맛을 받아들이지 않고 갚음을 구하지 않으며, 과보를 따라 태어나지도 않고 오직 마음을 길들이기 위한 까닭에 선에 들어가서 지혜의 방편으로 다시 욕계에 태어나 모든 중생을 제도하나니, 이때의 선을 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014_0669_c_13L復次於此禪中不受味不求報不隨報生爲調心故入禪智慧方便還生欲界度脫一切衆生時禪名爲波羅蜜
또한 보살이 깊은 선정에 들면 모든 하늘이나 인간이 그의 마음이 의지하고 반연하는 대상을 알 수가 없으니, 보고 듣고 지각하는 법 가운데에서 마음이 요동치 않는다.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에서 사리불에게 연차(宴坐)하는 법을 설명하면서 “몸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에 의지하지 않으며, 삼계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삼계 안에서 신심(身心)을 얻지 않으니, 이것이 연좌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014_0669_c_16L復次菩薩入深禪定一切天人不能知其心所依所緣知法中心不動如『毘摩羅鞊經』爲舍利弗說宴坐法不依身不依不依三界於三界中不得身爲宴坐
014_0670_a_01L또한 어떤 사람이 선정의 쾌락이 인천(人天)의 쾌락보다 수승하다는 말을 듣고는 곧 욕망의 쾌락을 버리고 선정을 구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쾌락과 이익을 구하는 것이니 기특한 것이 못 된다.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다만 중생을 위하여 자비심으로 저들을 정화시키고자 하니,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의 선이다. 선정 가운데에서는 모두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선에는 지극히 묘한 내적인 즐거움이 있건만 중생들은 이것을 버리고서 밖의 쾌락을 구한다.
비유하건대 큰 부자인 소경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건만 알지도 보지도 못한 채 구걸을 다니는 것과도 같다. 지혜로운 이는 그가 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도 보지도 못하여 구걸을 다니는 것을 가엾이 여긴다.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마음속에 원래부터 갖가지 선정의 쾌락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도리어 밖의 쾌락을 구한다.
014_0669_c_21L復次若人聞禪定樂勝於人天樂便捨欲樂求禪定是爲自求樂不足奇也菩薩則不然但爲衆生欲令慈悲心淨不捨衆生菩薩禪中皆發大悲心禪有極妙內樂而衆生捨之而求外樂譬如大富盲人有伏藏不知不見而行乞求智者愍其自有妙物不能知見而從他乞衆生亦如是心中自有種種禪定樂而不知發反求外樂
또한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기 때문에 선정에 들면 마음이 안온해져서 맛에 집착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도들은 비록 선정에 들더라도 마음이 편안치 않나니, 모든 법의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의 맛[禪味]에 집착하는 것이다.
014_0670_a_07L復次菩薩知諸法實相故入禪中心安隱不著味餘外道雖入禪定心不安隱不知諸法實故著禪味
【문】 아라한과 벽지불도 모두 맛에 집착되지 않거늘 어찌하여 선바라밀을 얻지 못하는가?
014_0670_a_10L問曰阿羅漢辟支佛俱不著味何以不得禪波羅蜜
【답】 아라한과 벽지불은 맛에 집착되지는 않으나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으므로 선바라밀이라 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모든 선을 다 행하지 못하지만 보살은 모든 선을 다 행한다. 거칠음과 미세함, 큼과 작음, 깊음과 얕음, 안의 대상과 밖의 대상 등 모두를 다 행하나니, 이런 까닭에 보살의 마음[心中]은 선바라밀이라 하거니와 다른 사람의 것은 선이라고만 한다.
014_0670_a_11L答曰阿羅漢辟支佛雖不著味無大悲心不名禪波羅蜜又復不能盡行諸菩薩盡行諸禪麤細大小深淺外緣一切盡行以是故菩薩心中名禪波羅蜜餘人但名禪
014_0670_b_01L또한 외도나 성문이나 보살이 모두 선정을 얻는다. 하지만 외도의 선에는 세 가지 우환[患]이 있으니, 맛에 집착되거나 삿된 소견에 빠지거나 교만해지는 것이다.
성문의 선은 자비심이 얇아서 모든 법에 대해 날카로운 지혜로 모든 법의 실상을 꿰뚫어 통달치 못하고, 홀로 자기 몸만을 좋게 하여 불종자를 끊는다.
하지만 보살의 선에는 이러한 일이 없으니, 일체의 부처님들의 법을 모으려는 까닭에 모든 선 가운데에서 중생을 잊지 않고, 나아가서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항상 자애로운 마음으로 대한다.
예컨대 석가모니불은 본래 나계선인(螺髻仙人)이었는데, 이름이 상사리(尙闍利)였다. 항상 제4선을 행해 들고나는 호흡을 끊고, 한 나무 밑에 앉아서 우뚝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새들이 이와 같은 일을 보고는 나무로 여겨 곧 상투 속에 알을 낳았다.
이 보살은 선정에서 깨어나자 머리에 새알이 있음을 알고는 생각했다.
‘내가 만일 일어나서 움직이면 반드시 어미 새가 오지 않을 것이요, 어미 새가 오지 않으면 새알은 죽고 말 것이다.’
그리고는 곧 다시 선에 들어갔으니, 그로부터 알이 부화하고 자라나 날아가게 되자 선에서 일어났다.
014_0670_a_16L復次外道聲聞菩薩皆得禪定而外道禪中有三種患或味著或邪見或憍慢聲聞禪中慈悲薄於諸法中不以利智貫達諸法實相獨善其身斷諸佛種薩禪中無此事欲集一切諸佛法故於諸禪中不忘衆生乃至昆虫常加慈念如釋迦文尼佛本爲螺髻仙人名尚闍利常行第四禪出入息斷一樹下坐兀然不動鳥見如此謂之爲木卽於髻中生卵是菩薩從禪覺知頭上有鳥卵卽自思惟若我起動鳥母必不復來鳥母不來鳥卵必壞卽還入禪至鳥子飛去爾乃起
또한 보살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욕계의 마음에서 차례차례 설정에 들지 못하거니와 보살은 선바라밀을 행하여 욕계의 마음에서 차례차례 선정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보살은 세세에 모든 공덕을 닦아 결사의 마음이 얇아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014_0670_b_06L復次除菩薩餘人欲界心不得次第入禪菩薩行禪波羅蜜於欲界心次第入何以故菩薩世世修諸功德結使心薄心柔軟故
또한 다른 사람은 무상관(無常觀)ㆍ고관(苦觀)ㆍ부정관(不淨觀)과 같은 총상(摠相)의 지혜를 얻어서 능히 욕망을 여의지만, 보살은 모든 법 가운데에서 능히 별상(別相)을 분별하여 욕망을 여읜다.
014_0670_b_10L復次餘人得摠相智慧能離欲如無常觀苦觀不淨觀薩於一切法中能別相分別離欲
예컨대 5백 명의 선인들은 날아가다가 견타라(甄陀羅) 아가씨57)의 노랫소리를 듣자 마음이 집착되고 도취되어 모두가 신통을 잃고 일시에 땅에 떨어졌다.
014_0670_b_12L五百仙人飛行時聞甄陁羅女歌聲心著狂醉皆失神足一時墮地
014_0670_c_01L성문들은 긴나라왕인 돈륜마(屯崙摩)58)가 거문고를 키고 노래를 부르며 모든 법의 실상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함을 들었다. 이때 수미산과 나무들이 모두 진동하였고, 대가섭 등의 대제자들은 모두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지 못했다.
여기에서 천수보살(天須菩薩)이 대가섭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이도 가장 많고, 두타행도 으뜸인데 어찌하여 스스로 마음을 조절해 편히 있지 못하는가?”
대가섭이 대답했다.
“나는 인간이나 하늘의 모든 욕망에는 마음이 끌리지 않으나, 이는 보살의 한량없는 공덕으로 나타나는 소리이며 또한 지혜에서 변화되어 나온 소리인 까닭에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여덟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수미산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겁(却)이 다할 때 비람풍(毘藍風)59)이 불어오면 수미산은 마치 썩은 풀같이 흔들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알 수 있으니, 보살은 일체법 가운데 별상으로 관찰하여 모든 욕망을 여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단지 선이란 이름만 얻었을 뿐 바라밀은 얻지 못하는 것이다.
014_0670_b_14L如聲聞聞緊陁羅王屯崙摩彈琴歌聲諸法實相讚佛是時須彌山及諸樹木皆動大迦葉等諸大弟子皆於座上不能自安天須菩薩問大迦葉最耆年行頭陁第一今何故不能制心自安大迦葉答曰我於人天諸欲心不傾動是菩薩無量功德報聲復以智慧變化作聲所不能忍若八方風起不能令須彌山動劫盡時毘藍風至吹須彌山令如腐草以是故知菩薩於一切法中別相觀得離諸諸餘人等但得禪之名字不得波羅蜜
또한 다른 사람은 보살이 들고 나는 선의 마음은 알지만, 선에 머무르는 마음이 반연하는 바와 이르는 곳을 알거나 모든 법의 깊고 얕음을 알 수는 없다. 아라한이나 벽지불도 알기 어렵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비유하건대 코끼리가 물을 건너면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발자취는 볼 수 있지만 물 가운데 있을 때의 것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가령 누군가 초선(初禪)을 얻었을 때 동일한 초선을 얻은 사람은 능히 알 수 있지만, 보살이 초선에 든 경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2선을 얻었다면 초선의 마음을 관찰하여 분명하게 알 수는 있지만, 보살이 초선에 든 마음은 알지 못한다. 비유상비무상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다.
014_0670_c_04L復次餘人知菩薩入出禪心能知住禪心所緣所到知諸法深淺阿羅漢辟支佛尚不能知何況餘人譬如象王渡水入時出時足迹可見在水中時不可得知若得初禪同得初禪人能知而不能知菩薩入初禪有人得二禪觀知得初禪心了了知不能知菩薩入初禪心乃至非有想非無想處亦如是
또한 삼매를 뛰어넘을 때 초선에서 일어나서 제3선에 들어가고, 제3선에서 일어나서 허공처에 들어가고, 허공처에서 일어나서 무소유처에 들어간다.
2승60)은 오직 하나만을 뛰어넘을 뿐 둘은 뛰어넘지 못한다. 하지만 보살은 자유롭게 뛰어넘어서 초선에서 일어나 3선에 들기를 예사롭게 한다. 혹은 제4선에 들기도 하고, 공처ㆍ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에 들기도 하며, 혹은 멸수상정에 들기도 하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서 무소유처ㆍ식처ㆍ공처ㆍ4선에 들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초선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하나를 뛰어넘고, 혹은 둘이나 셋, 나아가서는 아홉을 뛰어넘는다.
성문은 두 지위를 뛰어넘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혜ㆍ공덕ㆍ선정의 힘이 얇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두 종류의 사자와 같다. 곧 백사자와 황사자가 있으니, 황사자도 잘 뛰어넘지만 백사자에 미치지는 못한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해 선바라밀을 분별한다.
014_0670_c_12L復次超越三昧中從初禪起入第三禪第三禪中起入虛空處虛空處起入無所有處二乘唯能超一不能超二菩薩自在超從初禪起或入三禪如常法或時入第四禪入空處識處無所有處或非有想非無想處或入滅受想定滅受想定起或入無所有處或識處空處四禪乃至初禪或時超一或時超二乃至超九聲聞不能超二何以故智慧功德禪定力薄故譬如二種師子黃師子白髮師子黃師子雖亦能超不如白髮師子王如是等種種因緣分別禪波羅蜜
014_0671_a_01L이때 보살은 항상 선정에 들어가서 마음을 거두어 요동치 않으며, 각과 관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시방의 모든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한량없는 음성으로 설법해 주어 그들을 제도하나니, 이것을 선바라밀이라 한다.
014_0671_a_02L復次爾時菩薩常入禪定心不動不生覺觀亦能爲十方一切衆生以無量音聲說法而度脫之名禪波羅蜜
【문】 경에 말씀하시기를 “먼저 각관(覺觀)의 사유가 있은 뒤에야 능히 설법을 한다” 했다. 선정에 들어가 언어의 생각[覺觀]이 없다면 설법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어찌하여 말하기를 “항상 선정 가운데에서 각관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한다” 하는가?
014_0671_a_05L問曰如『經』中說先有覺觀思惟然後能說法入禪定中無語不應得說法汝今云何言常在禪定中不生覺觀而爲衆生說法
【답】 생사하는 사람의 법이란 선정에 들어가 먼저 말로써 언어의 각관을 일으키게 한 뒤에 설법을 한다.
014_0671_a_08L答曰生死人法入禪定先以語覺觀然後說法
그러나 법신 보살(法身菩薩)은 생사의 몸을 여의고, 일체법을 알아 항상 머무르기를 선정의 모습같이 머물며, 어지러움이 없음을 본다.
법신 보살은 한량없는 몸으로 변화해 나타나서 중생들에게 설법하지만 보살의 마음에는 분별이 없다.
예컨대 마치 아수라의 거문고와도 같으니, 항상 저절로 소리가 나서 마음을 좇아 울릴 뿐, 아무도 거문고를 켜는 이는 없다. 이것은 또한 마음을 흩어뜨림도 없고, 마음을 거둠도 없다. 오직 복덕의 댓가로 생겨난 까닭에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소리를 낼 뿐이다.
법신 보살도 그와 같아서 분별이 없고, 마음을 흩어뜨림도 없고, 법을 설한다는 모습도 없다. 이는 한량없는 복덕과 선정ㆍ지혜의 인연 때문이다.
이 법신 보살은 갖가지 법음(法音)을 그 응함을 좇아 알맞게 표현해 낸다.
014_0671_a_10L法身菩薩離生死身知一切諸法常住如禪定相不見有亂法身菩薩變化無量身爲衆生說法而菩薩心無所分別如阿修羅琴常自出聲隨意而作無人彈者此亦無散心無攝心是福德報生故隨人意出聲法身菩薩亦如是無所分別亦無散亦無說法相是無量福德禪定慧因緣故是法身菩薩種種法音隨應而出
인색하고 탐욕스런 자는 주로 보시의 소리를 듣고, 계를 파한 자ㆍ성내는 자ㆍ게으른 자ㆍ어지러운 자ㆍ어리석은 자는 제각기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의 말씀으로 듣는다.
이런 법음을 듣고는 제각기 사유해, 차츰 3승으로써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014_0671_a_19L慳貪心多聞說布施之聲瞋恚懈怠亂心愚癡之人各各聞說持戒忍辱禪定智慧之聲聞是法各各思惟漸以三乘而得度脫
014_0671_b_01L또한 보살은 일체법의 어지러움과 안정된 모습이 모두가 둘 아닌 모습[不二相]으로 관찰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지러움을 제하고서 안정을 구하려 한다. 왜냐하면 어지러운 법에 대하여는 성냄의 생각을 일으키고, 안정된 법에 대하여는 애착하는 생각을 내기 때문이다.
014_0671_a_22L菩薩觀一切法若亂若定皆是不二相餘人除亂求定何以故以亂法中起瞋想於定法中生著想
예컨대 울타라가(鬱陀羅伽)61) 선인은 5신통을 얻고서 날마다 왕궁으로 날아가서 음식을 먹었다.
이때 왕의 대부인(大夫人)이 그 나라의 국법에 따라 선인의 발을 잡고 절을 하였는데 부인의 손이 닿자마자 신통을 잃었다.
왕에게 말과 수레를 달라고 하여 거마를 타고 나와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와서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5신통을 구하는데 일심으로 전일하게 애를 썼다.
곧 신통이 얻어지려는 무렵에 새가 나무 위에서 급하게 울어 그의 생각을 어지럽히니, 그는 나무를 버리고 다시 물가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물고기들이 싸워 물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선정을 구해도 얻을 수 없게 되자 성을 내었다.
“새와 물고기를 모두 죽여 버릴 테다.”
그 사람은 얼마 뒤에 사유해서 정(定)을 얻으니, 비유상비무상처에 태어났는데, 거기에서 수명이 다한 뒤 아래 세상에 태어나자 날아다니는 삵이 되어 물고기와 새를 다 죽여 한량없는 죄를 짓고는 3악도에 떨어졌다.
이것이 선정에 집착의 마음을 일으킨 인연이다.
014_0671_b_02L如鬱陁羅伽仙人得五通日日飛到國王宮中食王大夫人如其國法捉足而禮夫人手觸卽失神通從王求車乘駕而出還其本處入林樹閒更求五通一心專至垂當得時有鳥在樹上急以亂其意捨樹至水邊求定復聞魚鬪動水之聲此人求禪不得卽生瞋恚我當盡殺魚此人久後思惟得定生非有想非無想處於彼壽盡下生作飛狸殺諸魚作無量罪三惡道是爲禪定中著心因緣
014_0671_c_01L이는 외도의 경우이고, 불제자의 예도 있다.
예컨대 어떤 비구가 4선을 얻었을 때 증상만(增上慢)을 내어 네 가지 도[四道]를 얻었다고 여겼다. 곧 초선정을 얻고는 수다원(須陀洹)62)을 얻었다 하고, 제2선을 얻고는 사다함(斯陀含)63)을 얻었다 하고, 제3선을 얻고는 아나함(河那含)64)을 얻었다 하고, 제4선을 얻고는 아라한(阿蘿漢)65)을 얻었다 하였는데, 이를 믿고 멈추어 더 정진하지 않았다.
목숨이 다하려 할 때 4선 세계의 중음상(中陰相)66)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자, 문득 ‘열반이란 없는 것인데 부처님은 나를 속였다’라며 삿된 소견을 일으켰다.
이렇게 삿된 생각을 일으킨 까닭에 4선의 중음상마저 사라지고 다시 아비지옥67)의 중음상이 나타나더니 숨이 끊어져 아비지옥에 태어났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무개 비구는 아련야(阿練若)에서 죽었는데 어디에 가서 태어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아비지옥에 태어났느니라.”
비구들이 깜짝 놀라 다시 여쭈었다.
“그 사람은 좌선하고 계행을 지키고 했는데도 그러한지요?”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은 증상만 때문에 4선을 얻자 4도를 얻었다 여겼느니라. 때문에 목숨이 마치려 할 때 4선천의 중음상을 보고는 문득 삿된 소견을 내어 생각하기를 ‘열반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아라한인데도 이제 다시 태어나야 되다니, 부처님은 거짓말쟁이다’ 하였느니라. 이때 곧 아비지옥의 중음상이 보이더니, 목숨을 마치자 곧 아비지옥에 태어났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해 주셨다.
014_0671_b_13L外道如此佛弟子中亦有一比丘得四禪生增上慢謂得四道得初禪時謂是須陁洹第二禪時謂是斯陁含第三禪時謂是阿那含第四禪時謂得阿羅漢恃是而止不復求進命欲盡時見有四禪中陰相來便生邪見涅槃佛爲欺我惡邪生故失四禪中便見阿鼻泥犂中陰相命終卽生阿鼻地獄諸比丘問佛某甲比丘阿蘭若命終生何處佛言是人生阿鼻泥犂中諸比丘皆大驚怪此人坐禪持戒所由爾耶佛言此人增上慢四禪時謂得四道故臨命終時見四禪中陰相便生邪見謂無涅槃我是阿羅漢今還復生佛爲虛誑是時卽見阿鼻泥犂中陰相命終卽生阿鼻地獄中是時佛說偈言

많이 듣고 계 지니고 선정 닦아도
무루의 법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그런 공덕이 있어도
이 일은 믿을 것 되지 못하네.
014_0671_c_07L多聞持戒禪
未得無漏法
雖有此功德
此事不可信

이 비구는 이러한 악도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
014_0671_c_09L是比丘受是惡道苦
그러므로 어지러운 모습을 취하면 성냄 등의 번뇌를 일으키게 되고, 선정의 모습을 취하면 역시 집착을 내게 된다.
그러므로 보살은 어지러운 모습도 탐내지 말고, 선정의 모습도 탐내지 말아야 하나니, 어지러움과 선정은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선바라밀이라 한다.
초선의 모습이란 욕망을 여의고 가리움을 제하며,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다. 이 보살은 날카로운 감관과 지혜로 관찰하기 때문에 5개에 대해 버릴 바도 없고, 선정의 모습에 취할 바도 없나니, 곧 모든 법의 모습이 공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5개에 대해 버릴 바가 없는가?
014_0671_c_10L是故知取亂相能生瞋等煩惱取定相能生著菩薩不取亂相亦不取禪定相定相一是名禪波羅蜜如初禪相離欲除攝心一處是菩薩利根智慧觀故於五蓋無所捨於禪定相無所取法相空故云何於五蓋無所捨
곧 탐욕의 가리움이란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안에 법이 있는 것이라면 밖의 것을 기다려서 생긴 것이 아니요, 밖에 법이 있는 것이라면 나에게 아무런 근심이 되지 않을 것이요, 두 중간에 있는 것이라면 둘 사이는 일정한 장소[處]가 없기 때문이다.
014_0671_c_16L貪欲蓋非內非外亦不兩中閒何以故若內法有不應待外生若外法有於我亦無患若兩中閒有兩閒則無處
014_0672_a_01L또한 전생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린아이에게는 욕심이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전생부터 있는 것이라면 어리다 해도 욕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생으로부터 전해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뒷세상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모여온 것도 아니며, 항상 저절로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의 한 부분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온몸에 두루해 있는 것도 아니며, 5진(塵)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5정(情)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 생긴 근원이 없고 사라져 가는 곳이 없다.
014_0671_c_19L亦不從先世來何以故一切法無來故童子無有欲若先世有者小亦應有以是故知先世不來亦不至後世從諸方來亦不常自有不一分中遍身中亦不從五塵來亦不從五情無所從生無所從滅
또한 이 탐욕은 먼저 생겼다거나 나중에 생겼다거나 동시에 생겼다고 한다면 옳지 못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먼저 생겼다가 나중에야 탐욕이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여기에는 탐욕이 생하지 않아야 하나니, 아직 탐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나중에 생이 있고 먼저부터 탐욕이 있다고 한다면, 곧 생이 일어난 곳은 없게 된다. 만일 동시에 생기는 것이라면, 생긴 것과 생기는 곳이 모두 없으리니, 생긴 것과 생기는 곳은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014_0672_a_02L是貪欲若先若後生若一時生是事不然何以若先有生後有貪欲是中不應貪欲生未有貪欲故若後有生先有貪則生無所生若一時生則無生者無生處生者生處無分別故
또한 이 탐욕과 탐내는 이는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왜냐하면 탐욕을 떠나서는 탐내는 이를 얻을 수 없고, 탐내는 이를 떠나서는 탐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만 화합된 인연에 따라 생겼나니, 화합된 인연으로 생긴 법은 곧 자성(自性)이 공한 법이다. 이리하여 탐욕과 탐내는 이는 다르다 할 수 없다.
만일 같다고 한다면 탐욕과 탐내는 이는 곧 분별이 없어야 한다.
014_0672_a_07L復次貪欲貪欲者不一不異何以故離貪貪欲者不可得離貪欲者貪欲不可得是但從和合因緣生和合因緣生法卽是自性空如是貪欲貪欲者異不可得若一貪欲貪欲者則無分
이러한 갖가지 연연에 의하여 탐욕은 생길 수 없다.
만일 생기지 않는 법이라면 그 법은 멸함도 없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까닭에 선정도 어지러움도 없다.
014_0672_a_13L如是等種種因緣貪欲生不可得若法無生是法亦無滅不生不滅故則無定無亂
이와 같이 탐욕의 가리움을 관찰하면 선(禪)과 하나가 되리니, 나머지 가리움도 그와 같다.
014_0672_a_15L如是觀貪欲蓋則與禪爲一餘蓋亦如是
만일 모든 법의 실상을 얻어 5개를 관찰하면 있는 바가 없게 되리니, 이럴 때에 5개의 실상이 곧 선의 실상이요, 선의 실상이 곧 5개임을 알게 된다.
보살은 이처럼 5욕과 5개, 선정과 나머지 바라밀[支]이 한 모습임을 알아, 기대는 바 없이 선정에 들어가니, 이것이 선바라밀이다.
014_0672_a_16L若得諸法實相五蓋則無所有是時便知五蓋實相卽是禪實相禪實相卽是五蓋菩薩如是能知五欲及五蓋禪定及支一相所依入禪定是爲禪波羅蜜
또한 보살이 선바라밀을 행할 때는 나머지 다섯 바라밀이 화합해서 도와주나니, 이것을 선바라밀이라 한다.
014_0672_a_20L復次菩薩行禪波羅蜜時五波羅蜜和合助成是名禪波羅蜜
또한 보살은 선정의 힘으로 신통을 얻으며, 선정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도 잠깐 사이에 능히 시방의 여러 부처님께 꽃ㆍ향ㆍ값진 보배 등 갖가지 공양구로 공양한다.
014_0672_a_22L復次菩薩以禪波羅蜜力得神通一念之頃不起於能供養十方諸佛華香珍寶種種供養
014_0672_b_01L또한 보살은 선바라밀의 힘으로 무수하게 몸을 변화해 나투어 5도(道)에 두루 들어가서 3승의 법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014_0672_b_02L復次菩薩以禪波羅蜜力變身無數遍入五道以三乘法教化衆生
또한 보살은 선바라밀에 들어가서 온갖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제하나니, 초선 내지 비유상비무상정에 들어가고, 그 마음이 부드럽게 길들어서 낱낱의 선에서 대자대비를 행하며, 자비의 인연으로써 한량없는 겁의 죄를 멸하여 모든 법의 실상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시방의 부처님들과 큰 보살들의 아껴주심을 받는다.
014_0672_b_03L復次菩薩入禪波羅蜜中除諸惡不善法入初禪乃至非有想非無想定其心調柔一一禪中行大慈大悲以慈悲因緣拔無量劫中罪得諸法實相智爲十方諸佛及大菩薩所念
또한 보살은 선바라밀 가운데 들어가서 천안으로써 시방의 5도에 있는 중생들을 관찰하건대, 색계에 태어난 이는 선정의 즐거운 맛을 받아 오히려 금수(禽獸) 가운데 떨어져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을 본다. 또한 욕계의 여러 하늘들은 7보의 연못에서 꽃향취에 홀려 즐기다가 나중에 짜고 끓는 똥물지옥[鹹沸屎地獄]에 빠지는 것을 보며, 인간에 태어난 이들은 들은 것이 너무 많고 세속적 지혜에 지나치게 총명하여 바른 도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돼지ㆍ양 등 축생 가운데 떨어져서 아무 분별도 없는 것을 본다.
이렇게 갖가지로 큰 즐거움을 잃고 큰 괴로움을 얻으며, 큰 이익을 잃고 큰 쇠운을 만나며, 존귀함을 잃고 비천함을 얻음을 아나니, 이런 중생에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차츰차츰 늘어나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이루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중생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해서 불도를 구한다.
014_0672_b_08L復次菩薩入禪波羅蜜中以天眼觀十方五道中衆生見生色界中者受禪定樂味還墮禽獸中受種種苦復見欲界諸天七寶池中華香自娛後墮醎沸屎地獄中見人中多聞世智辯聰不得道故還墮猪羊畜獸中無所別如是等種種失大樂得大苦失大得大衰失尊貴得卑賤於此衆生生悲心漸漸增廣得成大悲不惜身爲衆生故懃行精進以求佛道
또한 어지럽지 않고 맛들이지 않으므로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 선바라밀을 구족하나니, 어지럽지 않고 맛들이지 않는 까닭이니라.”
014_0672_b_18L不亂不味故名禪波羅蜜佛告舍利弗菩薩般若波羅蜜中住具足禪波羅蜜不亂不味故
【문】 무엇을 어지럽다 하는가?
014_0672_b_21L問曰何名亂
014_0672_c_01L【답】 어지러움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미세한 것이요, 둘째는 거친 것이다. 다시 미세한 것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애욕이 많음이요, 둘째는 교만이 많음이요, 셋째는 소견이 많음이다.
무엇을 애욕이 많다 하는가? 곧 선정의 즐거움을 얻고는 그 마음이 즐기는 데 집착되어 맛에 애착하는 것이다.
무엇을 교만이 많다 하는가? 곧 신정을 얻을 때에 생각하기를 ‘어려운 일을 이미 얻었다’ 하고는 스스로가 높은 체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소견이 많다 하는가? 곧 나라는 소견 등으로 선정에 들어가서 분별하여 모습을 취하고는 ‘이것만이 진실이요 나머지는 거짓되다’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미세한 어지러움이라 한다. 이 인연에 의해 선정에서 물러나 삼독의 마음을 일으키니, 이를 거친 어지러움이라 한다.
맛들인다 함은 처음으로 선정을 얻고는 일심으로 애착하니, 이것이 맛들임이다.
014_0672_b_22L亂有二種一者二者微者有三種愛多慢多見多云何愛多得禪定樂其心樂著愛味云何慢多得禪定時自謂難事已得而以自云何見多以我見等入禪定分別取相是實餘妄語是三名爲微細亂從是因緣於禪定退起三毒是爲麤味者初得禪定一心愛著是爲味
【문】 일체의 번뇌가 모두 능히 물들이고 집착하게 하거늘 어찌하여 애욕만을 맛들인다 하는가?
014_0672_c_06L問曰一切煩惱皆能染著何以故但名愛爲味
【답】 애욕과 선정은 비슷하다. 왜냐하면 선은 마음을 거두어 굳게 머무는 것인데, 애욕 또한 오로지 집착하여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으로 선정을 구할 때는 마음이 오로지 얻기만을 원하고, 그에 애착함을 본성으로 삼으며 욕락하여 오로지 구하니, 애욕과 선정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이미 선정을 얻었더라도 깊이 집착하여 버리지 않으면 선정을 무너뜨린다. 비유하건대 남에게 물건을 보시하고 반드시 그 보답을 바란다면 복덕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선에 있어서도 맛에 애착하고, 선 그 자체에 애착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그러므로 애욕만을 맛들인다 하고, 다른 번뇌[結]는 맛들인다 하지 않는다.
014_0672_c_08L答曰愛與禪相似何以故則攝心堅住愛亦專著難捨又初求禪時心專欲得愛之爲性欲樂專求欲與禪定不相違故旣得禪定深著不捨則壞禪定譬如施人物必望現則無福德於禪受味愛著於禪復如是是故但以愛名味不以餘結爲味
大智度論卷第十七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5근에서 일어나는 욕망을 말한다.
  2. 2)범어로는 Vajropamasamādhi.
  3. 3)범어로는 Nyagrodha.
  4. 4)곧 갈애(渴愛,Tṛṣṇā)라는 이름을 가진 딸을 가리킨다.
  5. 5)범어로는 amṛta-rasa.
  6. 6)범어로는 upāsaka.
  7. 7)범어로는 Bimbisāra.
  8. 8)범어로는 Āmrapālī. 이 암라빨리에 얽힌 이야기는 『장아함경』 「유행경(遊行經)」과 율장 『사분율』, 『근본설일체유부율』 등에 전해진다.
  9. 9)범어로는 Udayana.
  10. 10)범어로는 kiṃnara.
  11. 11)범어로는 śrāmaṇera.
  12. 12)팔리어로는 mañca. ‘줄을 쳐서 만든 침대’ 혹은 ‘보잘것없는 의자’를 말한다.
  13. 13)이상 『좌선비구도향화(坐禪比丘盜香話)』, 좌선비구가 향을 훔친 이야기이다. (Sṃyuttanikāya, I, p.204:『잡아함경』 제50권, 『신수대장경』 제2권, 369a-b에 해당한다.)
  14. 14)범어로는 Candrabhāga.
  15. 15)범어로는 Rāhulamātṛjātaka.
  16. 16)범어로는 Gopiyā.
  17. 17)범어로는 Yaśodharā.
  18. 18)범어로는 Kapilavastu.
  19. 19)범어로는 modaka. 사탕과자(sweetmeat)의 일종이다.
  20. 20)이하는 Isisiñga Jātaka No.526. Skt.문헌으로는 Mahāvastu Ⅲ, pp.143-152, Buddhacarita, Ⅳ, v.19, Avadānakalpalatā, no.65. 「외뿔선인 인연이야기」 Ekaśṛñgāvadāna.
  21. 21)범어로는 Vārāṇasī.
  22. 22)중춘(仲春)은 음력2월을 가리킨다.
  23. 23)열여덟 가지 바라문 성전(śāstra)을 말한다. 18명처(明處)라고도 한다. 인도정통종교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서를 열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Ŗg- veda(讚頌)ㆍYajur-veda(歌頌)ㆍSāma-veda(祭祀)ㆍAtharva-veda(攘災)의 4베다와 Śīkṣā(음운론)ㆍVyākaraṇa(어법)ㆍKalpa(제식)ㆍJyotiṣa(천문)ㆍChandas(詩)ㆍNirukta(語源)의 6론, Mimāṁsā(철학)ㆍNyāya(논리)ㆍItihāsaka(古事)ㆍSāṁkhya(數論)ㆍYoga(수습)ㆍDhanur-veda(弓杖)ㆍGandharva(음악)ㆍArtha-śāstra(의약)의 8론을 말한다.
  24. 24)범어로는 Ŗṣyaikaśṛñga.
  25. 25)범어로는 Śāntā.
  26. 26)범어로는 paraṇaśālā.
  27. 27)흔들리고 후회한다는 의미이다.
  28. 28)범어로는 Rāhu-asūra.
  29. 29)범어로는 makara. 기대한 물고기로서, 일종의 공상 속의 물고기이다.
  30. 30)초선(初禪)ㆍ제2선ㆍ제4선ㆍ4무색정ㆍ멸진정(滅盡定)에 이르는 8단계의 선정관법을 말한다.
  31. 31)범어로는 aṭṭha abhibhāyatanāni. 8해탈(解脫)을 닦은 뒤 숙달된 관상법(觀想法)으로 자유롭게 정ㆍ부정의 경지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32. 32)10변처(遍處)라고도 한다. 청ㆍ황ㆍ적ㆍ백의 색깔과 물질의 네 가지 특성인 지ㆍ수ㆍ화ㆍ풍과 허공ㆍ분별[識] 등의 열 가지 특성을 관찰하며, 그 하나하나의 상태를 모든 곳에 두루 채우는 관법이다.
  33. 33)범어로는 śūrañgama. 부처가 얻는 삼매의 이름. 건상(健相)ㆍ건행(建行)ㆍ일체사경(一切事竟)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34. 34)범어로는 āna-apāna. 출입식을 헤아리는 수식관(數息觀)을 말한다.
  35. 35)범어로는 anāgamya. 초선의 경지에 들기 직전의 집중된 심리상태를 말한다.
  36. 36)범어로는 anāgāmin. 불환과(不還果)라고도 한다. 두 번 다시 욕계에 태어나지 않는 경지이다.
  37. 37)범어로는 ākāṡānantyāyatana-samapatti)를 가리킨다. 공무변처(空無邊處)라고도 한다.
  38. 38)범어로는 vijñānantyāyatana.
  39. 39)범어로는 ākiñcanyāyatanaṃ.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관찰해 얻는 경지’를 말한다.
  40. 40)범어로는 naivasaṃjñānâsaṃjñāyatanaṃ. 무색정의 마지막 경지이다.
  41. 41)색구경천(色究竟天, Akaniṣṭha)을 가리킨다.
  42. 42)anāgamya. ‘아직 본격적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뜻으로, 이른바 초선의 경지에 들기 직전의 집중된 심리상태를 말한다. 미지정(未至定)이라고도 한다.
  43. 43)무간도(無間道)와 같은 말. 위의 아홉 지위마다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과정을 말한다.
  44. 44)범어로는 aṣṭa-vimokṣa. 삼계의 번뇌의 결박을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을 가리킨다. 곧 초선ㆍ제2선ㆍ제4선ㆍ공무변처ㆍ식무변처ㆍ무소유처ㆍ비상비비상처ㆍ멸진정의 여덟 종류의 선정수습에 의해 탐착을 여의고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이다.
  45. 45)범어로는 samāpattī-acitte. 마음과 마음작용이 완전히 그친 상태를 말한다.
  46. 46)범어로는 ṣaḍ-hetu.
  47. 47)범어로는 saṃprayuktaka-hetuḥ. 서로간에 원인과 결과가 되어주는 관계를 말한다.
  48. 48)범어로는 saupādāna. 원인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한다.
  49. 49)서로 유사한 원인결과의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한다.
  50. 50)어떤 원인이 다른 결과의 과보를 낳는 것을 말한다.
  51. 51)범어로는 catvāraḥ. pratyayaḥ. 모든 종류의 원인을 네 종류로 분류한 것.
  52. 52)범어로는 hetu-pratyaya.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적 원인을 말한다.
  53. 53)범어로는 samanantarana-pratyaya. 등무간연(等無間緣)이라고도 한다. 앞의 찰라심이 뒤의 찰라심의 원인이 된다고 간주되는 연을 말한다.
  54. 54)범어로는 ālambana-pratyaya. 가깝거나 먼 대상이 연이 되는 것을 말한다.
  55. 55)범어로는 adhipati-pratyaya. 일체의 간접인을 증상연으로 삼는다. 일체의 간접적인 연을 말한다.
  56. 56)괴법(壞法)이란 ‘백골을 태워 없애는 것’을 말하며, 불괴법(不壞法)이란 ‘백골을 태워 없앨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한다. 부정관을 성취한 수행자는 그 근기에 따라 두 종류가 있다. 곧 근기가 약한 자는 백골관을 성취해 아라한이 됐어도 다시 백골(白骨)에 집착할까 두려워하여 백골인(白骨人)을 태우는 관상법을 일으키는데, 이를 괴법아라한 이라 한다. 한편, 근기가 수승한 이는 백골인을 태워 부수지 않고 자신의 미간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관상하는데, 이를 불괴법아라한이라 한다.
  57. 57)범어로는 Kiṃnarā. 곧 Kiṃnara의 여성형이다.
  58. 58)범어로는 Druma.
  59. 59)범어로는 vairambhaka. 겁말ㆍ겁초에 부는 빠른 바람으로,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한다.
  60. 60)아라한과 벽지불승을 말한다.
  61. 61)범어로는 Udraka-Rāmaputra
  62. 62)범어로는 srota āpatti.
  63. 63)범어로는 sakṛd-āgāmin.
  64. 64)범어로는 anāgāmin.
  65. 65)범어로는 arhat.
  66. 66)범어로는 antarabhava. 유정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중간적 존재를 말한다.
  67. 67)범어로는 avici-mahānaraka. 무간지옥(無間地獄) 혹은 무택대지옥(無擇大地獄)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