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0833_b_01L대지도론 제33권
014_0833_b_01L大智度論釋初品中到彼岸義第五十卷三十三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014_0833_b_02L 聖者龍樹造


50. 초품 중 도피안(到彼岸)의 뜻을 풀이함
014_0833_b_03L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유위(有爲)ㆍ무위(無爲)의 법의 저 언덕[彼岸]에 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33_b_04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到有無爲法彼岸者當學般若波羅蜜
【論】 저 언덕[彼岸]이라 함은 유위의 법과 무위의 법을 다하여 그 끝에 이르는 것이다. 어떻게 저 언덕을 큰 지혜로써 모두 알고 모두 다 하느냐 하면, 유위의 법에서는 전체의 모양[總相]과 각각의 모양[別相] 갖가지를 모두 이해하는 것이고, 무위의 법 안에서는 수다원(須陀洹)에서부터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유위와 무위의 법의 모습의 의미는 먼저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833_b_06L【論】
彼岸者於有爲無爲法盡到其邊云何是彼岸以大智慧悉知悉盡有爲法摠相別相種種悉解無爲法中從須陁洹至佛悉皆了知有爲無爲法相義如先說
【經】 보살마하살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의 여(如)와 모든 법의 법상(法相)과 무생제(無生際)70)를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문】 위에서 이미 여(如)를 설명했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설명하는가?
014_0833_b_11L【經】
菩薩摩訶薩欲知過去未來現在諸法如諸法法無生際者當學般若波羅蜜【論】
問曰上已說今何以更說
【답】 위에서 곧장 모든 법의 여만을 설명했고, 이제는 3세가 모두 여임을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는 간략하게 설명했고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며, 위에서는 하나[一]임을 설명했고 여기서는 셋[三]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법상은 곧 그것이 법성(法性)이며 무생제는 곧 그것이 실제(實際)이다. 과거법의 여(如)는 곧 그것이 과거의 법상(法相)이며 미래와 현재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833_b_14L答曰直言諸法如今言三世皆如上略說此廣說上說一此說三法相卽是法無生際卽是實際過去法如卽是過去法相未來現在亦如是
또 과거법의 여(如)는 곧 그것이 미래와 현재의 법의 여이며, 현재법의 여는 곧 그것이 과거와 미래의 법의 여이며, 미래법의 여는 곧 그것이 과거ㆍ현재의 법의 여다. 그것은 왜냐하면, 여의 모양은 동일한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014_0833_b_18L復次去法如卽是未來現在法如現在法卽是過去未來法如未來法如是過去現在法如所以者何如相非非異故
014_0833_c_01L또 먼저 설명했듯이 두 가지의 여가 있다. 첫째는 세간의 여[世間如]요, 둘째는 출세간의 여[出世間如]다. 이 세간의 여로써 하면 3세가 저마다 다르지만 이 출세간의 여로써 하면 3세가 동일한 것이 된다.
014_0833_b_22L復次如先說二種如一者世閒如二者出世閒如用是世閒如三世各各異用是出世閒如三世爲一
또 법상(法相)이란 모든 법의 업(業)과 모든 법이 짓는 힘[力]과 인연과 과보를 이름하니, 마치 불은 더운 모양이고 물은 축축한 모양인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모든 법안에서 인연과 과보를 분별하면 저마다 각각의 모양이 있게 된다. 마치 시처비처력(是處非處力) 중에서의 설명과 같나니, 이것을 세간의 법상이라 한다. 만일 이 모든 법상을 추구하면서 찾고 궁구한다면 생함이 없는 법[無生法] 안에 들어가게 된다. 다시는 이보다 더 지나는 것이 없나니, 이것을 무생제(無生際)라 한다.
014_0833_c_02L復次法相名諸法業諸法所作如火爲熱相水爲濕相是諸法中分別因各各別相是處非處力中說是名世閒法相若是諸法相推求尋究入無生法中更無過是者是名無生際
【문】 마치 법상에서와 같이 3세가 있다고 분별할 수 있으면 무생제는 미래의 법인데 어떻게 과거와 현재가 있겠는가? 마치 아비담(阿毘曇)의 설명과 같아서 생하는 법[生法]이면 과거와 현재이고, 이것이 생함이 없는 법이라면 미래 및 무위의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과거와 현재에 생김이 없는 것[無生]을 있게 하려 하는가?”
014_0833_c_08L問曰可分別有三世無生際是未來法云何有過去現在如阿毘曇說生法者過去現在是無生法者未來及無爲法是云何欲令過去現在有無生
【답】 마치 먼저 갖가지로 생기는 법을 설파(說破)한 것과 같다. 온갖 법이 모두가 생겨남이 없거늘 어찌 미래에만이 무생이겠는가. 마치 어느 때[一時]의 뜻 가운데서 이미 3세를 설파한 것과 같나니, 3세는 한 모양이어서 이른바 모양 없는[無相] 것이다. 이와 같다 하면 생김이 없는 모양[無生相]이다.
014_0833_c_12L答曰如先種種說破生法一切法皆無生何但未來無生一時義中破三世三世一相所謂無相如是則無生相
또 생김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 하나니, 열반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열반이라 함은 맨 뒤의 마지막[末後究竟]이어서 다시는 더 생기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온갖 법이 곧 열반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온갖 법은 모두가 무생제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33_c_16L復次無生名爲涅槃以涅槃不生不滅故涅槃者末後究竟不復更生而一切法卽是涅槃以是故一切法皆是無生際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 앞에 있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안의 권속[內眷屬]이 되고자 하거나, 큰 권속[大卷屬]을 얻고자 하거나, 보살의 권속을 얻고자 하거나, 청정한 과보를 받는 큰 보시[淨報大施]를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33_c_19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在一切聲聞辟支佛前欲給侍諸佛爲諸佛內眷屬欲得大眷屬欲得菩薩眷屬欲得淨報大施當學般若波羅蜜
【論】 【문】 만일 보살이 아직 번뇌가 다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번뇌가 다한 성인 앞에 있을 수 있겠는가?
014_0833_c_24L【論】
問曰若菩薩未得漏盡云何在漏盡聖人前
014_0834_a_01L【답】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켰을 때 벌써 온갖 중생의 앞에 있는 것인데 하물며 오랜 겁 동안 수행을 쌓은 이겠는가. 이 보살의 공덕과 지혜는 크기 때문에 세상마다 항상 크게 성문과 벽지불을 이익되게 하고, 중생들은 보살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숭앙하고 공경 존중하며 축생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존중하게 된다. 마치 보살이 옛날 사슴으로 있을 때 그 빛깔은 금과 같았고 그 뿔은 7보(寶)로 되었으며 5백의 사슴이 따르면서 존중하고 섬긴 것과 같다.
014_0834_a_01L答曰菩薩初發意時已在一切衆生前何況積劫修行菩薩功德智慧大故世世常大能利益聲聞辟支佛衆生知菩薩恩故崇敬重乃至畜生中亦爲尊重如菩薩昔作鹿其色如金其角七寶五百鹿隨逐宗事
만일 인간 가운데 있을 때 좋은 세상에는 전륜성왕이 되고 나쁜 세상에는 항상 위대한 왕이 되어서 부처님 법을 수호 유지하고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 만일 출가하여 부처님 법을 만나면 세간을 위하여 크게 제도하는 스승[大度師]이 되어서 부처님의 법을 일으켜 떨치고, 만일 부처님의 법이 없다면 외도(外道)의 큰 스승이 되어서 4무량(無量)을 행한다.
014_0834_a_07L若在人中好世作轉輪聖王惡世恒作大王護持佛法利益衆生若出家値有佛法則爲世作大度師興顯佛法若無佛法則爲外道大師行四無量
나한과 벽지불은 비록 번뇌는 없다 하더라도 이익되게 하는 일이 적음은 마치 한 되[升]의 소[酥]가 비록 정세(精細)한다 하더라도 큰 바닷물만큼의 타락[酪]보다는 못한 것과 같다. 보살은 비록 번뇌를 지닌 지혜일지라도 그 성숙되게 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한량이 없다.
014_0834_a_11L阿羅漢辟支佛雖有無利益事少譬如一升酥雖精不如大海水酪菩薩雖有漏智慧及其成利益無量
또 나한과 벽지불은 4사(事)의 공양과 도를 돕는[助道] 제구[具]를 거의 모두 보살로 말미암아 얻게 된다. 마치 『수릉엄경(首楞嚴經)』에서 “문수사리(文殊師利)는 72억 번을 벽지불이 되어서 벽지불의 사람을 교화하며 그들로 하여금 도를 이루게 하였다”고 말씀한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 앞에 있게 된다.
014_0834_a_14L復次羅漢辟支佛四事供養助道之具多由菩薩得如『首楞嚴經』說文殊師利七十二億作辟支化辟支佛人令其成道以是故聲聞辟支佛前
모든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고 섬기는 이[給侍]가 되고 싶다 함은, 마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아직 출가하지 않으셨을 때 차닉(車匿)71)이 모시고 섬겼으며, 우타야(優陀耶)가 같이 놀아 주고 구비야(瞿毘耶)ㆍ야수타(耶輸陀) 등과 모든 채녀(婇女)들이 안의 권속[內眷屬]이었다. 그리고 출가하여 6년 동안 고행을 할 때는 다섯 사람이 모시고 섬겼고 도를 얻을 때에는 미희라타(彌喜羅陀)72)ㆍ수나찰다라(須那刹多羅)ㆍ아난(阿難)ㆍ밀적역사(密跡力士) 등이 있었나니, 이들을 안의 권속이라 한다.
014_0834_a_18L欲爲諸佛給使釋迦文佛未出家時車匿給使優陁耶戲笑瞿毘耶耶輸陁等諸婇女內眷屬出家六年苦行時五人給侍得道時彌喜羅陁須那剎多羅阿難密迹力士等是名內眷屬
014_0834_b_01L큰 권속[大眷屬]이라 함은, 사리불(舍利佛)ㆍ목건련(目揵連)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수보리(須菩提)ㆍ가전연(迦栴延)ㆍ부루나(富樓那)ㆍ아니로두(阿泥盧豆) 등의 성인들과 미륵(彌勒)ㆍ문수사리(文殊師利)ㆍ발타바라(颰陀婆羅)의 모든 아비발치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 등을 바로 큰 권속이라 한다.
014_0834_a_23L大眷屬舍利弗目揵連摩訶迦葉須菩提栴延富樓那阿泥盧豆等諸聖人彌勒文殊師利颰陁婆羅諸阿毘跋致一生補處菩薩等是名大眷屬
또 부처님에게는 두 가지의 몸이 있나니, 첫째는 법성생신(法性生身)73)이고, 둘째는 세간을 따르는 몸이시다. 세간 몸에서의 권속은 먼저의 설명에서와 같다. 법성생신에게는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일생보처 보살들이 있으면서 모시고 섬겼다.
014_0834_b_04L佛有二種身一者法性生身二者隨世閒身世閒身眷屬如先說法性生身者有無量無數阿僧祇一生補處菩薩侍從
그것은 왜냐하면, 마치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에서 “부처님이 태어나려 할 때에는 8만 4천의 일생보처 보살이 그 앞을 인도하고 보살은 그 뒤를 따라 출생하셨으니, 마치 검은 구름이 달을 싼 것과 같았다”고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법화경(法華經)』에서 “땅에서 솟아나온 보살들이 모두 이는 안의 권속이요 큰 권속이다”고 한 것과 같다.
014_0834_b_08L所以者何如『不可思議解脫經』說佛欲生時八萬四千一生補處菩薩在前導菩薩從後而出如陰雲籠月又如『法華經』說從地踊出菩薩等皆是內眷屬大眷屬
보살 권속(菩薩眷屬)이라 함은 어떤 부처님은 순전히 보살을 권속으로 삼고 어떤 부처님은 순전히 성문을 권속으로 삼으며 어떤 부처님은 보살과 성문들을 같이 권속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보살들만의 권속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34_b_12L菩薩眷屬有佛純以菩薩爲眷屬有佛純以聲聞爲眷屬有佛菩薩聲聞雜爲眷屬是故言但欲得菩薩爲眷屬當學般若波羅蜜
권속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상ㆍ중ㆍ하이다. 하(下)라 함은 순전히 성문들의 권속이고, 중(中)이라 함은 성문과 보살이 섞인 권속이며, 상(上)이라 함은 보살들만의 권속이다.
014_0834_b_16L眷屬有三下下者純聲聞中者雜上者但菩薩
청정한 과보를 받는 큰 보시[淨報大施]라 함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보살은 복덕을 많이 쌓았으나 미처 번뇌를 제거하지 못하면, 남의 신시(信施)를 받되 아직 청정한 과보가 될 수는 없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하여 얻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모든 번뇌[結使]이겠느냐”고 하신다. 보살은 법성(法性) 안에 들기 때문에 진제(眞際)를 증득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청정한 과보를 받는 보시의 복이다.
014_0834_b_17L淨報大施有人言菩薩多集福德未除煩惱受人信施未能淨報佛言菩薩行般若波羅蜜諸法皆空不可何況諸結使菩薩入法性中故證眞際是故能淨報施福
014_0834_c_01L또 보살은 공덕이 광대하여 발심한 이후부터 낱낱 중생을 대신하여 온갖 고통을 받으려 하고 온갖 공덕을 온갖 중생에게 주려고 하면서 그런 뒤에야 스스로 부처님의 도를 구해야 되지만, 그 일만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부처님이 되신 뒤에 온갖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014_0834_b_22L復次菩薩功德廣大從發心已來欲代一一衆生受一切苦欲以一切功德與一切衆生然後當自求佛道但是事不可得故而自成佛度一切衆生
또 보살이 뜻하는 원[志願]은 아승기(阿僧祇)에 구애받지 않고 마치 세간과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ㆍ허공(虛空) 등과 같이 오래도록 머무르고, 보살의 마음은 세간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역시 그와 같이 오래 머무르면서 한이 없나니, 이런 사람이 청정한 과보를 받는 보시의 복일 수가 없으면 그 누가 청정함을 다하겠는가.
014_0834_c_03L又菩薩志願不以阿僧祇爲拘如世閒及如法性實際虛空等久住菩薩心住世利益衆生故亦如是久住無有窮是人不能淨報施福者誰能淨畢
마치 부모가 비록 번뇌[結使]와 모든 악(惡)이 있다 하더라도 한 세대(一世) 동안은 자식들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의 공양을 받고 자식들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한다. 그러니 하물며 보살은 모든 결사가 없고 끝없는 세상 동안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데도 청정함을 다하지[淨畢] 않겠는가.
또 보살은 다만 가엾이 여기는 마음만 있고 반야(般若)가 없어도 오히려 이익되게 하는데 하물며 반야바라밀을 행함이겠는가.
014_0834_c_07L如父母雖有結使諸惡以一世利益子故受其供養令子得大福何況菩薩無諸結使而住無邊世中利益衆生而不淨畢又復菩薩但有悲心而無般若尚能利益何況行般若波羅蜜
【문】 만일 보살에게 번뇌[結使]가 없다면 어떻게 세간에 태어나게 되는가?
【답】 먼저 이미 대답했다.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법성생신(法性生身)을 얻은지라 곳곳마다 변화하면서 중생을 제도하고 세계를 장엄하나니, 이런 공덕의 인연 때문에 비록 아직 부처는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청정한 과보를 받는 보시의 복이다.
014_0834_c_12L問曰若菩薩無結使云何世閒受生答曰先已答菩薩得無生法忍得法性生身處處變化以度衆生莊嚴世是功德因緣故雖未得佛能淨報施福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간탐하는 마음[慳心]ㆍ파계(破戒)하는 마음ㆍ성내는 마음ㆍ게으른 마음ㆍ산란한 마음ㆍ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34_c_17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不起慳心破戒心瞋恚心懈怠心亂心癡心者當學般若波羅蜜
【論】 이 여섯 가지 마음은 삿되기 때문에 능히 6바라밀을 가리고 막는다. 마치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 만약 간탐하는 마음이 있으면 보시가 청정하지 않게 되나니, 이른바 좋은 물건을 보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설령 좋은 물건을 베풀어 준다 해도 많이 주지 못하고, 설령 바깥 물건을 베풀어 준다 해도 안의 물건은 주지 못하며, 설령 안의 물건을 베풀어 준다 해도 모조리 주지 못하나니, 모두가 간탐하는 마음 때문이다.
014_0834_c_19L【論】
是六種心惡故能障蔽六波羅蜜門如菩薩行布施時若有慳心起令布施不淸淨所謂不能以好物施若與好物不能多與若與外物則不能內施若能內不能盡與皆由慳心故
014_0835_a_01L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온갖 법은 나가 없고 내 것이 없고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하여 마치 꿈과도 같고 허깨비 같은 줄 알므로, 몸의 머리와 눈과 골수를 보시하는 것이 마치 풀과 나무와 같이 한다. 이 보살은 비록 아직 도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항상 이 간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014_0835_a_01L菩薩行般若波羅蜜知一切法無我無我所法皆空如夢如幻以身骨髓布如施草木是菩薩雖未得道欲常不起是慳心當學般若波羅蜜
모든 그 밖의 사람은 욕망을 여의고 도를 얻기 때문에 파계(破戒)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까닭에 파계하는 일을 보지 않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계란 온갖 모든 착한 공덕이 머무르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땅은 온갖 만물이 의지하는 곳이 되는 것과 같다.
014_0835_a_05L諸餘人離欲得道故不生破戒心菩薩行般若波羅蜜故不見破戒事所以者戒爲一切諸善功德住處譬如地爲一切萬物所依止處
파계하면 오히려 그 밖의 도(道)도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겠는가. 이 때문에 파계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다시 생각하기를 “보살의 법이란 중생을 안락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파계하면 온갖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게 된다”고 하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파계하려는 마음조차도 내지 않는데 하물며 파계하는 일이겠는가.
014_0835_a_09L破戒尚不得餘道何況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不生破戒心復作是念菩薩法安樂衆生若破戒者惱亂一切是故菩薩不生破戒心何況破戒
소승(小乘)과 모든 범부조차도 오히려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는데 하물며 보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뜻을 내는 이겠는가. 몸은 고통의 그릇[苦器]인지라 스스로 괴로움을 받는다. 비유하건대 마치 죄를 범한 사람이 스스로 형벌의 죽임을 초래함은 스스로가 지어서 스스로가 받는 것이니 남을 원망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다. 다만 자기의 마음을 수호하면서 악(惡)이 일어나지 않게 할 뿐이니, 마치 사람이 모진 바람과 비와 추위며 더위를 만난다 해도 역시 성내는 바가 없는 것과 같다.
014_0835_a_13L乘及諸凡夫尚不應生瞋恚心何況菩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意爲苦器法自受惱譬如犯罪之人致刑戮自作自受不應怨人但當自護其心不令起惡譬如人遭惡風雨寒亦無所瞋
다시 생각하기를 “보살이 부처되기를 구함은 대비(大悲)로써 근본을 삼는다. 만일 성을 품는다면 뜻하는 원을 상실하게 된다. 성을 내는 사람은 세간의 즐거움조차도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도(道)의 즐거움이겠는가. 성을 내는 사람은 스스로도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데, 어찌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랴”고 한다.
014_0835_a_19L復作是念菩薩求佛大悲爲本若懷瞋恚則喪志願瞋恚之人尚不得世閒樂何況道樂瞋恚之人自不得樂何能以樂與人
014_0835_b_01L게으른 사람은 세간의 뛰어난 일조차도 오히려 이루지 못하는데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겠는가. 비유하건대 마치 나무를 비비어 불을 일으키려 하면서 자주자주 쉬게 되면 불을 얻을 기약조차 없는 것과 같다.
014_0835_a_22L懈怠之人世閒勝事尚不能成何況阿耨多羅三藐三菩提譬如鑽火數息得火期
산란한 마음은 마치 바람 속에 켜져 있는 등불이 비록 광명은 있다 하더라도 물건을 잘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산란한 마음속에 있는 지혜도 역시 그와 같으니, 지혜는 바로 온갖 착한 법의 근본이다. 만일 이 지혜를 성취하고자 하면 먼저 마음을 다스린 다음에야 이룰 수 있다.
014_0835_b_02L散亂之心譬如風中然燈有光明不能照物亂心中智慧亦復如是智慧是一切善法根本若欲成就是智先當攝心然後可成
비유하건대 마치 몹시 취한 사람은 자기의 이익이나 다른 이의 이익이나 곱고 추한 일들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산란한 마음도 역시 이와 같나니, 세간의 좋은 일조차도 오히려 잘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출세간(出世間)의 법이겠는가.
014_0835_b_05L譬如狂醉之人自利他利好醜之事都不覺散亂之心亦如是世閒好事尚不能善知何況出世閒法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온갖 성취하고 실패하는 일에도 모두 미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미묘하고 깊은 이치이겠는가. 비유하건대 마치 눈이 없는 사람은 혹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혹은 길이 아닌 데로 들어가기도 하듯이, 지혜 없는 사람 역시 그와 같아서 지혜로운 눈이 없기 때문에 삿된 법을 받아 집착하고 바른 소견을 받지 못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세간의 비근한 일조차도 이루지 못하는데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겠는가.
014_0835_b_08L愚癡人心切成敗事皆不能及何況微妙深義譬如無目之人或墜溝坑或入非道無智之人亦復如是無智慧眼故著邪法不受正見如是之人世閒近事尚不能成何況阿耨多羅三藐三菩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힘 때문에 이 여섯 가지 폐단을 능히 막고 6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나니, 이 때문에 “만일 여섯 가지의 폐단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35_b_14L菩薩行般若波羅蜜力故能障是六蔽淨六波羅蜜以是故說若欲不起六蔽當學般若波羅蜜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布施)의 복처(福處)와 지계(持戒)의 복처와 수정(修定)의 복처와 권도(勸導)의 복처에 서게 하려 하거나 중생으로 하여금 재물의 복[財福]과 법의 복[法福]의 처소에 서게 하려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문】 어떤 것을 복처(福處)라 하는가?
014_0835_b_16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使一切衆生立於布施福處持戒福處修定福處勸導福處欲令衆生立於財福法福處當學般若波羅蜜【論】
問曰云何名爲福處
014_0835_c_01L【답】 아비담(阿毘曇)에서 말하기를 “복이라 함은 착한 유루(有漏)의 신업(身業)과 구업(口業)과 의업(意業)이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불은몰무기(不隱沒無記)가 그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착한 유루법의 인연의 과보로 이 불은몰무기의 복을 얻기 때문이다”고 한다. 이 과보를 역시 복이라 하는데, 마치 세간 사람이 큰 일을 이루고 성취하는 일이 많은 이를 바로 복덕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014_0835_b_21L答曰阿毘曇言善有漏身意業復有人言不隱沒無記所以者何善有漏業因緣果報故得是不隱沒無記福是果報亦名爲如世閒人說能成大事多所成辦是名福德人
이 복은 요약하여 세 가지로 말하나니,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수정(修定)이다. 어떤 것이 보시인가? 곧 어떤 사람이 의복ㆍ침구ㆍ음식이나 꽃ㆍ향ㆍ영락 등을 남에게 주는 것이니, 이것을 보시라 한다.
014_0835_c_03L是福略說三種布施修定何等是布施有人以衣服飮食花香瓔珞等與人是名布施
【문】 음식 등의 물건이 바로 보시인데 다시 보시라는 것이 있는가?
014_0835_c_05L問曰飮食等物便是布施爲更有布
【답】 음식 등의 물건이 곧 보시는 아니다. 그 음식 등의 물건을 남에게 줄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법을 버림[捨]이라 하는데, 인색한 마음과는 서로 반대되니, 이것을 보시 복덕이라 한다.
014_0835_c_07L答曰飮食等物非布施以飮食等物與時心中生法名捨與慳心相違是名布施福德
이것은 유루(有漏)이기도 하고 무루(無漏)이기도 하다. 항상 이것은 착한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과 마음과 상응한 수심행(隨心行)과 함께 마음이 생기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으면서 능히 반연[緣]을 짓는다. 업(業)과 상응한 수업(隨業)ㆍ행업(行業)과 함께 생기고 먼저 지은 업의 과보로 얻는 것은 아니며, 행수(行修)ㆍ혜증(慧證) · 신증(身證)이면서 범부의 사람도 얻고 또한 성인도 얻는다.
014_0835_c_09L是或有漏或無漏是善心數法心相應隨心行共心生色無形能作緣業相應隨業行業共非先業果報得修行修慧證身證凡夫人得亦聖人得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버림[捨]의 법과 상응한 사(思)를 바로 보시의 복덕이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업(業)은 과보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思)는 바로 업이다. 몸과 입은 업이라 하지 않으며, 사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고 한다.
014_0835_c_13L有人言是捨法相應思是名布施福德所以者何能生果報故思卽是業身口不名爲從思生故得名業
이 보시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청정한[淨] 것이고, 둘째는 청정하지 않은[不淨] 것이다. 청정하지 않은 것이라 함은 그냥 베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혹은 재물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에 주기도 하고, 혹은 질책을 싫어하기 때문에 주기도 하며, 혹은 쓸 데 없기 때문에 주기도 하고, 혹은 친밀히 사랑하기 때문에 주기도 하며, 혹은 보시를 함으로써 세력의 도움이 많으므로 그 세력을 구하기 위하여 주기도 한다.
014_0835_c_16L此布施有二種一者二者不淨不淨者直施而已或畏失財故與或惡訶罵故與或無用故與或親愛故與或爲求勢故與以施故多致勢援
혹은 아주 급한 일 때문에 주기도 하고, 혹은 좋은 명예를 구하기 위하여 주기도 한다. 혹은 훌륭한 이와 이름을 같이하기 위하여 주기도 하고, 혹은 질투 때문에 주기도 하며, 혹은 “소인(小人)과 비천한 이조차도 베풀거늘 나는 귀한 이요 대인(大人)이면서 어떻게 베풀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그 교만 때문에 주기도 한다.
014_0835_c_20L或死急故與或求善名譽故與或求與貴勝齊名故與妒嫉故與或憍慢故與小人愚賤尚施我爲貴重大人云何不與
014_0836_a_01L혹은 복덕을 빌기 위하여 베풀기도 하고, 혹은 길(吉)한 일을 구하면서 흉(兇)한 일을 제거하기 위하여 베풀기도 하며, 혹은 한 패거리에 들어가기 위하여 베풀기도 하고, 혹은 한결같지 않은 마음으로 공경하지 않고 받는 이를 업신여기면서 베풀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은 이 세상의 일을 위하여 보시하는 것으로 청정함과는 어긋남을 일컬어 청정하지 않다고 한다.
014_0835_c_23L或爲呪願福德故與或求吉除凶故與或求入伴儻故與或不一心不恭敬輕賤受者而與如是種種因緣爲今世事故與淨相違名爲不淨
청정한 보시[淨施]라 함은, 마치 경 가운데에서 설명하듯이 마음을 다스리는 까닭에 보시하고, 뜻을 장엄하는 까닭에 보시하며, 으뜸가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보시하고, 청정한 마음을 내고 잘 분별하면서 열반을 돕기 위하여 보시하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마치 새로 핀 꽃이 아직 시들지 않았으면 빛깔도 좋고 또한 향기로운 것처럼, 청정한 마음의 보시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836_a_04L淨施者如經中說治心故施莊嚴意故施爲得第一利故施生淸淨心能分別爲助涅槃故施譬如新花未萎色好且香心布施亦復如是
마치 설명하기를 “모든 하늘이 청정하지 않은 마음으로 보시하면 궁전의 광명이 박(薄)하고 적지만, 만일 청정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궁전의 광명이 더욱 광대하다”고 한 것과 같다. 이 보시의 업은 비록 과거 세상의 것이라 하더라도 천만의 세상까지 이르면서 상실하지 않나니, 마치 어음[券]의 언약과 같다.
014_0836_a_08L如說諸天不淨心布施者宮殿光明薄少若淨心布施宮殿光明增廣此布施業雖過去乃至千萬世中不失譬如券要
【문】 이 보시의 복은 어떻게 더욱 자라나는가?
014_0836_a_11L問曰此布施福云何增長
【답】 때맞추어 보시하기 때문에 복이 더욱 자라게 된다. 마치 경 가운데에서 설명하듯이, 굶주릴 때에 보시하면 복이 더욱더 많아지게 되며, 혹은 먼 데를 가고 올 때나 광야나 험한 길을 지나고 있을 때에 보시하거나, 혹은 항상 보시하면서 끊어지지 않거나 때로는 늘 보시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보시한다면, 그 복이 더욱더 광대하다. 6념(念) 중의 염사(念捨)에서의 설명과 같으니, 만일 크게 보시하면 그 때문에 복을 얻음이 많고, 또는 좋은 사람에게 보시하거나, 부처님께 보시하거나, 보시하는 이[施者]나 받는 이[受者]가 청정하기 때문에 결정된 마음으로 보시하거나, 또는 자기의 힘으로 재산을 모아서 보시하거나, 가지고 있는 많고 적음에 따라 모조리 보시하거나, 또는 번갈아 물건을 보시하거나, 동산과 밭과 심부름꾼 등으로 보시한다.
014_0836_a_12L答曰應時施故得福增長如經說飢餓時施得福增或遠行來時若曠路險道中施常施不斷或時常念施故施福增廣如六念中念捨若大施故得福多若施好人若施佛若施者受者淸淨若決定心施若自以力致財施若隨所有多少能盡施若交以物施若以園田使人等施
이와 같은 보시는 오직 보살만이 깊은 마음으로 행할 수 있다. 마치 위라마(韋羅摩)74)보살이 12년 동안 보시하고 나자 장엄하게 꾸민 젖소와 7보로 된 발우와 채녀(婇女)가 각각 8만 4천이나 있게 되었고 모든 그 밖의 물건과 음식 등속은 이루 다 헤아릴 수조차 없었던 것과 같다.
014_0836_a_20L如是布施唯有菩薩能以深心行之如韋羅摩菩薩十二年布施已莊飾乳牛七寶鉢及婇女各有八萬四千及諸餘物飮食之屬不可勝數
014_0836_b_01L또 수제예나(須帝隸拏)75)보살은 좋고 훌륭한 흰 코끼리를 원수에게 보시하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 있으면서 사랑하던 두 아들을 12명의 추한 바라문에게 보시했으며, 다시 아내와 눈을 변화한 바라문에게 보시하자, 그때 땅은 크게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요란하였으며 공중에서 꽃비가 내려왔다.
014_0836_b_01L又如須帝隸拏菩薩下善勝白象施與怨家入在深山以所愛二子施十二醜婆羅門復以妻及眼施化婆羅門爾時地爲大動天爲雷空中雨花
또 살바달다왕(薩婆達多王)은 스스로 그의 몸을 묶어서 바라문에게 보시하고, 시비왕(尸毘王)은 한 마리의 비둘기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비둘기 고기에 대신한 것과 같으며, 또한 보살은 일찍이 토끼의 몸이었을 때 자신의 살을 구어서 선인(仙人)에게 보시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것들은 『보살본생경(菩薩本生經)』 가운데에서 설해지는 바이다.
014_0836_b_05L又如薩婆達多王自縛其施婆羅門如尸毘王爲一鴿故持其身以代鴿肉又如菩薩曾爲兔自炙其肉施與仙人如是等『菩薩本生經』中所說
또한 성문(聲聞)의 사람의 보시도 있다. 수미타(須彌陀) 비구니 같은 이는 두 동학(同學)과 함께 가나가모니부처님[迦那伽牟尼佛]을 위하여 정사(精舍)를 지어 드려 수없는 천만의 세상 동안 전륜성왕과 천왕(天王)의 복을 누렸다. 시(施) 바라문 같은 이는 한 병의 타락[酪]을 가져다가 스님들에게 보시하고는 세상마다 즐거움을 받았고, 지금은 아라한이 되어서 모든 즐거움을 누리는 이 가운데서는 가장 으뜸이다.
014_0836_b_09L復有聲聞人布施須彌陁比丘尼與二同學爲迦那伽牟尼佛作精舍於無數千萬世受轉輪聖王及天王福如施婆羅門持一甁酪施僧世世受樂今得阿羅漢受樂中受樂第一
또 말리부인(末利夫人)은 수보리에게 공양한 까닭에 금생에 과보를 얻어 파사니왕(波斯尼王)의 왕후가 되었으며, 시바(尸婆) 같은 이는 가전연(迦栴延)에게 공양한 까닭에 금생에 과보를 얻어 전타바주타왕(栴陀波周陀王)의 왕후가 되었었다.
014_0836_b_14L如末利夫人供養須菩提故得今世果報爲波斯尼示王后如尸婆供養迦栴延故得今世果爲栴陁波周陁王后
또 울가타(鬱伽陀) 거사(居士)는 사리불 등의 5백 아라한에게 공양한 까닭에 바로 그날 과보를 얻었다. 즉 5백의 장사꾼들이 그 남은 밥을 얻어먹고 저마다 구슬과 영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갑자기 큰 부자가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졸가타(卒伽陀)라고 불리게 되었다.
014_0836_b_17L如鬱伽陁居供養舍利弗等五百阿羅漢故日得果報五百賈客得其餘食人人以珠瓔珞與之卒得大富遂號卒伽陁
이와 같은 것들은 베풀어서 금생에 과보를 얻은 예이다. 그러므로 보시를 논의하자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줄 알아야 하리라.
지계(持戒)의 복처(福處)라 함은 부처님께서 5계(戒)를 말씀한 바로 그것이다.
014_0836_b_20L如是等布施得今世果報當知布施論說不可盡持戒福處佛說五戒福者是
【문】 어떤 것이 살생죄[殺罪]의 모양인가?
問曰云何殺罪相
014_0836_c_01L【답】 그가 중생인 줄 알면서 고의로 목숨을 빼앗으면 살생의 죄가 된다. 살생을 하고도 고의가 아닌 것도 아니면서 안온하고 유쾌한 마음이 되면 살생의 죄가 되며, 산란하거나 미친 마음이 아니면서 목숨을 빼앗으면 살생의 죄가 되고, 상처를 낸 것은 아니나 죽게 되면 살생의 죄가 된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아닌 신업(身業)은 바로 살생의 죄이고, 입으로 지시하고 몸으로 지은 것이 아니어도 그것은 살생의 죄이다.
014_0836_b_23L答曰知是衆生故奪命得殺罪非不故安隱快心得殺罪非散亂狂心奪命得殺罪非作瘡死已得殺罪非未死身業是殺罪非口殺身作是殺罪
비단 마음으로 내는 것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죄를 그치고 짓지 않는 것이 바로 첫 번째의 계선(戒善)의 모양이다. 혹은 어떤 사람은 이것을 불은몰무기[不隱沒無記]라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욕계에 매이기도[欲界繁] 하고 매이지 않기도 하며, 이것은 마음도 아니고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도 아니며, 마음과 상응한 것도 아니고 마음을 따라 행해지는 것도 아니며, 혹은 마음과 함께 생기기도 하고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기도 한다.
014_0836_c_04L非但心生如是等罪止不作是初戒善相或有人言謂是不隱沒無記或欲界繫不繫是非心非心數法非心相應隨心行或共心生或不共心生
업(業)과 상응한 것도 아니며, 업행을 따라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혹은 업과 함께 생기기도 하고 혹은 업과 함께 생기지 않기도 한다. 먼저 지은 업의 과보도 아니고 득수(得修)ㆍ행수(行修)ㆍ신증(身證)ㆍ혜증(慧證)이며, 혹 사유(思惟)에서 끊어지기도 하고 혹은 끊어지지 않기도 하며, 욕계의 욕망을 여읠 때에 끊어지게 되고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음을 아나니, 이것을 불살생(不殺生)의 계상(戒相)이라고 한다.
그 밖의 계율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치를 따라 모든 계율을 분별하고 찬탄하며 논의하니, 마치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가운데서의 설명과 같다.
014_0836_c_08L非業相應非隨業行或共業生或不共業非先業果報得修行修身證慧證或思惟斷或不斷離欲界欲時得斷凡夫聖人共有是名說不殺生戒餘戒亦如是隨義分別諸戒讚歎論議尸羅波羅蜜中說
수정(修定)의 복처(福處)라 함은, 비록 경전 가운데서는 “인자함[慈]을 닦는 것이 바로 수정의 복이다”고 하였지만 또한 “유루의 선정[有漏禪定]은 능히 과보를 낸다”고 설명한 것도 통틀어 수정의 복이라 부른다. 욕계에는 성을 냄도 많고 산란한 일도 많기 때문에 먼저 인자한 마음[慈心]을 말하면서 수정의 복을 얻는다고 한다.
014_0836_c_14L修定福處雖經中說修慈是修定福亦說有漏禪定能生果報者摠名修定福欲界多瞋多亂故先說慈心爲修定
인자한 방편은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기를 원하고 나중에는 실로 즐거움을 받는 것을 보나니, 이 마음과 상응하는 법을 일컬어 인자한 법[慈法]이라 한다. 이 법은 혹 색계(色界)에 매이기도 하고 혹은 매이지 않기도 하나니, 이것이 진실한 자(慈)이다.
014_0836_c_18L得慈方便願與衆生樂後實見受是心相應法名爲慈法是法或色界繫或不繫是爲眞慈
014_0837_a_01L이 방편의 자는 욕계에 매인 것이며, 항상 마음의 행을 따르고 마음을 따라 생기며, 형상도 없고 대(對)할 수는 없다. 능연(能緣)의 법이면서 업(業)은 아니되 업과 상응하면서 업행을 따르며, 업과 함께 생겨난다. 먼저 지은 업의 과보도 아니고, 득수(得修)ㆍ행수(行修)ㆍ신증(身證)ㆍ혜증(慧證)이며, 혹은 사유(思惟)에서 끊어지기도 하고 혹은 끊어지지 않기도 하며 색계(色界)의 욕망을 여읠 때에 끊어지게 된다. 유각유관(有覺有觀)과 또한 무각유관(無覺有觀)과 또한 무각무관(無覺無觀)임을 알 수 있다.
014_0836_c_20L是方便慈界繫常隨心行隨心生無形無對緣法非業業相應而隨業行共業生非先業果報得修行修身證慧證思惟斷或不斷離色界欲時得斷知有覺有觀亦無覺有觀亦無覺無觀
혹은 기쁨[喜]이 있기도 하고 기쁨이 없기도 하며, 혹은 숨[息]이 있기도 하고 숨이 없기도 하다. 또한 범부와 성인의 즐거운 느낌[樂受]과 상응하기도 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과 상응하기도 하며, 먼저 득해(得解)의 모양을 반연하고 뒤에는 실의(實義)를 반연한다. 근본사선(根本四禪) 중에서 역시 4선을 초과하고 4선에 의지하여 얻게 되는 이는 견고하면서 힘이 있다.
014_0837_a_02L或有喜或無喜或有息或無息亦凡夫亦聖人或樂受相應或不苦不樂受相應先緣得解相後緣實義根本四禪中亦過四禪依止四禪得者固有力
자(慈)는 마땅히 친밀한 사랑[親愛]이라고 말해야 하리니, 원한도 없고 다툼도 없기 때문에 친밀한 사랑이라 한다. 한량없는 중생을 반연하기 때문에 한량없다[無量]고 하고, 중생을 이익되게 하면서 욕망을 여의기 때문에 범행(梵行)이라 한다. 자심(慈心)에 관한 그 밖의 논의는 4무량(無量) 중에서의 설명과 같다.
014_0837_a_07L慈應言親愛無怨無諍故親愛能緣無量衆生故名爲無量能利益衆生能離欲故名爲梵行心餘論議四無量中說
【문】 수정의 복 가운데서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자의 마음만을 말씀하시고 그 밖의 것은 말씀하지 않는가?
014_0837_a_10L問曰修定福中佛何以但說慈心不說餘
【답】 4무량 중에서 자의 마음은 능히 큰 복덕을 내거니와, 비(悲)의 마음은 근심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복덕을 버리며, 희(喜)의 마음은 스스로 공덕을 생각하기 때문에 복덕이 깊지 않으며, 사(捨)의 마음은 놓아 버리기 때문에 복덕이 역시 적다.
014_0837_a_11L答曰四無量中慈心能生大福德悲心憂愁故捨福德喜心自念功德故福德不深捨心放捨故福亦少
또 부처님께서는 자(慈)의 마음에 다섯 가지의 이익이 있음을 말씀하셨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이익인가? 곧 첫째는 칼이 상하지 못하게 하고, 둘째는 독이 해치지 못하며, 셋째는 불이 태우지 못하고, 넷째는 물이 빠뜨리지 못하며, 다섯째는 온갖 성을 내고 악하고 해치는 중생들도 보면 모두가 환희한다. 비(悲)의 마음 등 세 가지 일은 그렇지가 못하니, 이 때문에 수정의 복은 자(慈)라고 말씀한 것이고, 그 밖의 나머지는 그것에 붙따르며 모든 과보를 내는 유루의 선정[有漏定]이다.
014_0837_a_14L復次佛說慈心有五利不說餘何等五一者不傷二者毒不害三者火不燒四者水不沒五者於一切瞋怒惡害衆生見皆歡喜悲心等三事不爾以是故修定福爲慈餘者隨從及諸能生果報有漏定
권도(勸導)의 복처(福處)라 함은 만일 어떤 비구가 좌선(坐禪)도 하지 못하고 경전도 독송하지 못하면, 교화하고 권하여 이끌어 복덕을 닦고 세우게 한다. 혹 어떤 비구는 좌선도 하고 경전을 독송할 수 있으나, 비구들의 옷과 음식이 모자라는 것을 보고는 힘껏 끌어 들이는 등 역시 권도를 행한다.
014_0837_a_20L勸導福處若比丘不能坐禪不能誦經教化勸導修立福或有比丘能坐禪誦經見諸比丘衣食乏少力能引致亦行勸導
014_0837_b_01L나아가 모든 보살은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복덕의 인연으로 그들을 권화하며, 또한 출가한 사람이 만일 재물을 구하게 되면 계율을 잃게 되므로 이 때문에 권하고 이끌어 인연을 짓게 한다.
재복(財福)이라 함은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ㆍ금ㆍ은ㆍ수레ㆍ말ㆍ밭 및 집 등이다.
014_0837_a_23L及諸菩薩憐愍衆生故以福德因緣勸化之又出家人若自求財於戒有失故勸導以爲因緣財福衣服飮食臥具醫藥金銀車馬田宅等
【문】 위에서는 보시의 복처라고 말하고 여기서는 재복이라 말하는데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014_0837_b_04L問曰布施福處此言財福有何等異
【답】 보시라 함은 온갖 보시, 곧 재물의 보시[財施]와 법의 보시[法施]와 세속의 보시[俗施]와 도의 보시[道施]를 통틀어 포섭한다. 여기에서는 법의 보시와 재물의 보시를 분별해 보겠다.
014_0837_b_05L布施者摠攝一切施財施法施道施今欲分別法施財施
법의 보시라 함은, 마치 부처님께서 큰 자비로 최초로 법륜(法輪)을 굴리어 한량없는 중생이 도를 얻게 된 것과 같다. 뒤에는 사리불이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렸으며, 그 밖의 모든 성인들은 비록 법륜을 굴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역시 중생을 위해 설법으로 도를 얻게 했으니 역시 법의 보시라 한다.
014_0837_b_07L法施者如佛以大慈故初轉法輪無量衆生得道後舍利弗逐佛轉法輪餘諸聖人雖非轉法輪亦爲衆生說法得道亦名法施
또 변길(遍吉)보살과 관세음(觀世音)ㆍ득대세(得大勢)ㆍ문수사리(文殊師利)ㆍ미륵(彌勒) 보살 등이 있는데, 두 가지의 신통력인 과보(果報)의 신통과 수득(修得)의 신통 안에 머물러서, 복덕과 방편의 힘과 광명과 신족(神足) 등의 갖가지 인연으로 중생을 개화하고 제도함도 역시 법의 보시라 한다.
014_0837_b_11L復有遍吉菩薩觀世音大勢文殊師利彌勒菩薩等以二種神通力果報神通修得神通住是中以福德方便力光明神足等種種因緣開度衆生亦名法施
모든 벽지불이 허공을 날아오르면서 하나의 게송을 설해 중생을 인도하며 선근을 심게 함도 역시 법의 보시라 하며, 또 부처님의 제자로서 아직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한 이가 좌선을 하고 경전을 독송하면서 모든 법의 모양을 무너뜨리지 않고 제자를 교화하는 것도 모두 법의 보시라 한다.
014_0837_b_15L諸辟支佛飛騰虛空而說一偈引導衆生令殖善亦名法施又佛弟子未得聖道者坐禪誦經不壞諸法相教化弟子名法施
이와 같은 갖가지를 법보시의 모양이라 하나니, 이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중생을 여섯 가지 보시의 복처에 세우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014_0837_b_19L如是等種種名爲法施相是故說菩薩欲立衆生於六種施福當學般若波羅蜜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다섯 가지 눈[五眼]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37_b_21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得五眼當學般若波羅蜜
014_0837_c_01L【論】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의 눈인가? 곧 육안(肉眼)과 천안(天眼)과 혜안(慧眼)과 법안(法眼)과 불안(佛眼)이다.
육안은 가까운 데는 보지만 먼 데는 보지 못하고, 앞은 보지만 뒤는 보지 못하며, 바깥은 보지만 안은 보지 못하며 낮은 보지만 밤은 보지 못하며, 위는 보지만 아래는 보지 못하나니, 이러한 장애 때문에 천안(天眼)을 구하게 된다.
014_0837_b_23L【論】
何等五肉眼慧眼法眼佛眼肉眼見近不見遠前不見後見外不見內見晝不見夜見上不見下以此㝵故求天眼
이 천안을 얻게 되면 멀거나 가까운 데를 모두 보며 앞뒤와 안팎과 밤낮과 위아래가 모두 장애가 없다. 이 천안은 화합하여 인연으로 생겨난 임시로 일컬어지는[假名] 물건들은 보지만, 이른바 공하고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남이 없고 멸함이 없는 실상(實相)은 보지 못한다. 앞에서와 같이 중간과 뒤도 역시 그러하니, 이 실상을 보기 위해 혜안(慧眼)을 구하는 것이다.
014_0837_c_03L得是天眼遠近皆見前後內外晝夜上下悉皆無㝵是天眼見和合因緣生假名之物不見實相所謂空無相無作無生無滅如前後亦爾爲實相故求慧眼
혜안을 얻으면 중생을 보지 않고, 동일하거나 다르다는 특징이 모두 소멸된다. 모든 집착을 버리고 여의어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지혜 스스로가 안에서 소멸하나니, 이것을 혜안이라 한다. 다만 혜안은 중생을 제도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분별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법안이 생긴다.
014_0837_c_08L得慧眼不見衆生盡滅一異捨離諸著不受一切法智慧自內是名慧眼但慧眼不能度衆生以者何無所分別故以是故生法眼
법안(法眼)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법을 행해 이러한 도(道)를 얻게 하겠노라며 온갖 중생의 저마다의 방편문을 알아서 도의 증과(證果)를 얻게 한다. 법안은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의 도를 두루 알지는 못하나니, 이 때문에 불안(佛眼)을 구하는 것이다.
014_0837_c_11L法眼令是人行是法得是道知一切衆生各各方便門令得道證法眼不能遍知度衆生方便道以是故求佛眼
불안은 일마다 알지 못함이 없고, 덮어 가려서 비록 은밀하다 하더라도 보아 알지 못함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극히 멀지만 부처님에게는 지극히 가깝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둡지만 부처님에게는 환히 밝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의심이 되지만 부처님에게는 결정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미세하지만 부처님에게는 굵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심히 깊지만 부처님에게는 아주 얕다.
014_0837_c_14L佛眼無事不知覆障雖密無不見知於餘人極遠於佛至近於餘幽闇佛顯明於餘爲疑於佛決定於餘微於佛爲麤於餘甚深於佛甚淺
이 불안은 일마다 듣지 못함이 없고 일마다 보지 못함이 없다. 일마다 알지 못함이 없고, 일마다 어렵다고 여김이 없으며, 생각할 바도 없지만 온갖 법 안에서 불안은 항상 비춘다. 후품(後品)의 오안(五眼)의 이치 가운데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014_0837_c_18L佛眼無事不聞無事不見無事不知無事爲難無所思惟一切法中佛眼常照後品五眼義中當廣說
【經】 보살마하살이 천안(天眼)으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의 모든 부처님을 뵙고자 하거나, 천이(天耳)로써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듣고자 하거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37_c_21L【經】
菩薩摩訶薩欲以天眼見十方如恒河沙等世界中諸佛欲以天耳聞十方諸佛所說法欲知諸佛心當學般若波羅
014_0838_a_01L【論】 천안의 법으로 보는 바는 삼천대천세계를 초월하지 못한다. 이제는 반야바라밀의 힘 때문에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나라 안에 모든 부처님을 뵙는 것이니, 그것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안에는 가까운 데도 없고 먼 데도 없으며 거리끼는 데가 없기 때문이다.
014_0838_a_02L【論】
天眼法所見不過三千大千世界今以般若波羅蜜力故見十方恒河沙等國中諸佛所以者何般若波羅蜜中無近無遠無所罣㝵故
【문】 마치 『반주경(般舟經)』76)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반주삼매(般舟三昧)의 힘 때문에 비록 천안은 아직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시방에 현재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뵐 수 있다” 했는데, 여기에서 이 보살이 천안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는다는 것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014_0838_a_05L問曰如『般舟經』說以般舟三昧力故雖未得天眼而能見十方現在諸佛此菩薩以天眼故見十方諸佛有何等異
【답】 이 천안은 불은몰무기(不隱沒無記)이다. 반주삼매는 욕망을 여읜 사람이나 욕망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거나 간에 다 같이 얻지만, 천안은 다만 욕망을 여읜 사람만이 얻는다. 반주삼매는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항상 닦고 항상 익히기 때문에 보지만, 천안은 신통을 닦아서 얻는 것으로 형상 있는 경계의 4대(大)로 만들어진 물질의 눈이 4변에 두루 밝은 모양을 얻는다. 이것이 다르다. 천안의 공력이 쉬운 것은 마치 해가 나오면 물질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과 같으며, 삼매의 공력이 어려운 것은 마치 밤에 등불을 켰을 때 물질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것과 같다. 천이(天耳)도 역시 그와 같다.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014_0838_a_08L答曰此天眼不隱沒無記般舟三昧離欲未離欲人俱得天眼但是離欲人般舟三昧憶想分別常修常習故天眼修神通得色界四大造色眼四邊得遍明相是爲差別天眼功易譬如日出見色不難三昧功難如夜然燈見色不易天耳亦如是知諸佛
【문】 마치 상지[上地]의 둔한 근기로는 하지(下地)의 영리한 근기를 지닌 이의 마음을 알지 못하듯이 보살은 당연히 한 부처님의 마음조차도 알지 못해야 하거늘 하물며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겠는가?
014_0838_a_16L問曰如上地鈍根不能知下地利根心菩薩一佛心尚不應知何況恒河沙等十方諸佛心
【답】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보살로 하여금 알게 하는 것이다. 마치 경의 말씀과 같이 “온갖 중생으로서 부처님의 마음을 아는 이는 없지만 만일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알게 하면 심지어 곤충까지도 역시 잘 알게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신력으로써 보살로 하여금 부처님의 마음을 알게 한다.
014_0838_a_18L答曰以佛神力故令菩薩知如經說一切衆生無知佛心者若佛以神力令知乃至蜫虫亦能知以是故佛以神力故令菩薩知佛心
014_0838_b_01L또 반야바라밀은 장애가 없는 모양이어서 굵거나 미세하거나 깊거나 얕거나 어리석은 이거나 성인이거나 간에 전혀 차별이 없다. 모든 부처님의 마음의 여(如)와 보살의 마음의 여는 동일한 여이어서 다름이 없나니, 보살은 이 여를 따르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또 있기 드물고 어려운 일이어서 알지 못해야 하는데도 아나니, 이 때문에 “이것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38_a_22L復次般若波羅蜜無㝵相麤細深淺愚聖都無差別諸佛心如菩薩心如一如無異菩薩隨是如故能知諸佛心復次希有難事不應知而知以是故言欲得是者當學般若波羅蜜
【經】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말씀하신 법을 듣고 들은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잊지 않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문】 한 분의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도 오히려 지니기 어려운데 하물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잊지 않으려 하는가?
014_0838_b_04L【經】
欲聞十方諸佛所說法聞已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忘者當學般若波羅蜜【論】
問曰一佛所說猶尚難持況無量諸佛所說欲憶而不忘
【답】 보살은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77)의 힘 때문에 받아 견고하게 기억할 수 있고, 이 다라니의 힘 때문에 잊지 않는다.
또 여기서는 반야바라밀의 힘으로 필경 청정하여 집착함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큰 바다가 뭇 흐름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과 같으니, 보살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에게서 듣게 된 법에 대해 반야바라밀의 그릇이 큰 까닭에 그 한량없는 법을 받아들여 지니면서 잊지 않게 된다.
014_0838_b_08L答曰菩薩以聞持陁羅尼力故能受堅憶念陁羅尼力故不忘復次此中說般若波羅蜜力畢竟淸淨無所著如大海含受衆流菩薩從十方諸佛所聞法以般若波羅蜜器大故能受無量法持而不忘
또 이 반야바라밀은 비유할 수 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나니, 겁(劫)이 불에 타 다하고 나면 큰 비로 가득 차는데, 이 비는 허공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없듯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설법의 비는 부처님의 입에서 나오는데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있는 이가 없다. 이 때문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38_b_14L復次是般若波羅不可譬喩如虛空如劫燒盡已雨彌滿是雨除虛空更無處能受方諸佛說法雨從佛口出除行般若波羅蜜菩薩更無能受者以是故言聞十方諸佛說法當學般若波羅蜜

51. 초품 중 모든 부처님 세계를 보다[見一切佛世界]의 뜻을 풀이함 ①
014_0838_b_19L大智度論釋初品中見一切佛世界義第五十一之一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보고, 나아가 현재 시방의 부처님의 세계를 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문】 만일 시방의 부처님을 뵈었다면 벌써 세계는 본 것인데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세계를 보고자한다”고 말씀하는가?
014_0838_b_20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見過去未來諸佛世界及見現在十方諸佛世界當學般若波羅蜜【論】
問曰若見十方佛則已見世界今何以復說欲見世界
014_0838_c_01L【답】 보살은 아직 깊은 선정에 들어가지 못한지라 만일 시방세계의 산과 강물과 초목을 보면 마음이 곧 산란해진다. 때문에 다만 모든 부처님만을 관찰하는 것이니, 마치 염불(念佛)의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수행하는 이는 다만, 모든 부처님만을 관찰하고 토지와 산하 초목은 관찰하지 않지만 선정의 힘을 얻고 나면 뜻대로 널리 관찰한다.
014_0838_c_02L答曰菩薩未深入禪定若見十方世界山河草木心則散亂故但觀諸佛念佛義中說行者但觀諸佛不觀土地山河樹木得禪定力已意廣觀
또 모든 청정한 부처님 나라는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보고자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또 한 부처님께는 한량없는 백천 가지의 세계가 있음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장엄 청정한 데도 있고 장엄 청정하지 않는 데도 있으며 같이 뒤섞인 데도 있다. 필경 청정한 세계도 있지만,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의 힘으로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마치 천자(天子)가 정사를 듣는 정전(正殿)은 바깥 사람이 볼 수 있지만, 내전(內殿)의 깊은 궁전은 볼 수 있는 이가 없는 것과 같다.
014_0838_c_06L復次諸淸淨佛國難見故言見諸佛國當學般若波羅蜜又一佛有無量百千種世界如先說有嚴淨有不嚴淨有雜有畢竟淸淨世界難見故以般若波羅蜜力乃能得見如天子聽正殿則外人可見內殿深無能見者
【문】 시방의 현재 세계는 볼 수 있겠지만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어떻게 볼 수 있다는 것인가?
014_0838_c_12L問曰十方現在世界可過去未來諸佛世界云何得見
【답】 보살에게는 과거와 미래를 보는 삼매(三昧)가 있다. 이 삼매에 들어가면 과거와 미래의 일을 보되, 마치 꿈속에서 보는 듯하다.
또 보살에게는 불멸제삼매(不滅際三昧)78)가 있나니, 이 삼매에 들어가면 모든 부처님으로서 멸도(滅度)한 이가 있음을 보지 못한다.
014_0838_c_13L菩薩有見過去未來三昧入是三昧已見過去未來事如夢中所見菩薩有不滅際三昧入是三昧已不見諸佛有滅者
【문】 이 두 가지의 법은 눈이 아닌데 어떻게 볼 수 있는가?
014_0838_c_17L問曰此二法非眼云何能見
【답】 이것은 바로 지혜이며 임시로 이름을 붙여서 눈이라 한다. 마치 전법륜(轉法輪) 중의 4제(諦)에서 안지명각(眼智明覺)을 얻는 것과 같다.?
014_0838_c_18L答曰此是智慧假名爲眼如轉法輪中於四諦中得眼
또 보살은 시방의 현재 있는 부처님 세계를 보고서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도 역시 그러한 줄 틀림없이 안다. 그것은 왜냐하면, 온갖 부처님들의 공덕은 같기 때문이다. 이 일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또 이 반야바라밀 안에서는 마치 현재와 같이 과거와 미래도 평등하여 다름이 없으니, 하나의 여(如)요 하나의 법성(法性)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힐난하지 말아야 한다.
014_0838_c_19L菩薩見十方現在佛世界定知過未來諸佛世界亦爾所以者何切諸佛功德同故是事如先說復次是般若波羅蜜中如現在過去未來等無異一如一法性故以是故不應難
014_0839_a_01L【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12부경(部經)인 수다라(修多羅)ㆍ기야(祇夜)ㆍ수기경(受記經)ㆍ가타(伽陀)ㆍ우타나(優陀那)ㆍ인연경(因緣經)ㆍ아파타나(阿波陀那)ㆍ여시어경(如是語經)ㆍ본생경(本生經)ㆍ광경(廣經)ㆍ미증유경(未曾有經)ㆍ논의경(論議經)을 듣고, 또한 모든 성문들이 들었거나 듣지 않은 것을 모두 다 외우고 받아 지니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39_a_01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聞十方諸佛所說十二部經修多羅祇夜記經伽陁優陁那因緣經阿波陁那如是語經本生經廣經未曾有經議經諸聲聞等聞與不聞盡欲誦受持當學般若波羅蜜
【論】 먼저 “모두 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듣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말씀하신 법이라 함은 곧 이 12부경이다.
014_0839_a_07L【論】
先說盡欲聞十方諸佛所說法者當學般若波羅蜜所說法者卽此十二部經
모든 경 가운데서 직설(直說)된 것을 수다라(修多羅)라 하는데, 이른바 4아함(阿含)과 모든 마하연경(摩訶衍經)과 그리고 이백오십계경(二百五十戒經)이다. 3장(藏)에서 나오는 그 외에도 역시 경들이 있나니, 모두를 수다라라 한다.
014_0839_a_09L諸經中直說者修多羅所謂四阿含諸摩訶衍經及二百五十戒經出三藏外亦有諸經皆名修多羅
모든 경전 안에서의 게송[偈]을 기야(祇夜)라 한다.
중생은 아홉 갈래[九道] 안에서 기별(記別)을 받나니, 이른바 3승(乘)의 도와 6도[六趣道]이다. “이 사람은 그만큼의 아승기겁을 지나면 부처님이 되리라”고 하거나 또는 “그만큼의 세월을 지나면 부처님이 되리라”고 기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문의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나 뒷세상에 도를 얻는다고 수기하고 벽지불에게는 다만 뒷세상에 도를 얻을 것이라고 수기하며, 그 밖의 6도(道)에 대해서도 역시 모두 뒷세상에 과보를 받는다고 수기하신다.
014_0839_a_12L諸經中偈衆生九道中受記所謂三乘道趣道此人經爾所阿僧祇劫當作佛若記爾所歲當作佛記聲聞人今世後世得道記辟支佛但後世得道餘六道亦皆後世受報
모든 부처님 법에서 중생에게 수기를 하려 하시면, 먼저 모두 빙그레 미소 지으시면서[微笑] 한량없는 광명을 네 개의 어금니[牙]에서 내시나니, 이른바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옥색[縹色] 및 자색(紫色) 등이다.
014_0839_a_17L諸佛法欲與衆生受記先皆微笑無量種光從四牙中出所謂靑紫等
위의 두 어금니에서 내시는 광명은 3악도(惡道)를 비추며, 그 광명에서 한량없는 법을 펴면서 온갖 지어진 법의 무상함과 온갖 법에 나 없음과 안온한 열반을 설한다. 중생으로서 이 광명을 만나고 설법을 듣는 이면 몸과 마음이 안락해지고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며, 이 인연을 따라 모두가 고통을 마치게 된다.
014_0839_a_19L從上二牙出者光炤三惡道從其光明演無量法說一切作法無常一切法無安隱涅槃衆生得遇斯光聞說法身心安樂得生人中天上從是因緣皆得畢苦
014_0839_b_01L아래의 두 어금니에서 내시는 광명은 위로는 인간ㆍ천상과 유정선(有頂禪)79)까지 비추고, 귀머거리와 벙어리와 미치광이의 병을 모두 낫게 한다. 6욕천(欲天)과 사람과 아수라로서 5욕락(欲樂)을 받는 이들은 부처님의 광명을 만나고, 설법하는 음성을 들으면 모두가 욕락에 싫증을 내면서 몸과 마음이 안온하게 된다. 그리고 색계(色界)의 모든 하늘은 선정의 즐거움을 받을 때에 이 부처님의 광명을 만나고 설법하는 음성을 들으면 역시 싫증을 내면서 부처님께로 오게 된다.
014_0839_b_01L從下二牙出者上炤人乃至有頂禪若聾盲瘖瘂狂病得除愈六欲天人及阿修羅受五欲遇佛光明聞說法聲皆厭患欲樂身心安隱色界諸天受禪定樂時佛光明聞說法聲亦生厭患來詣佛
이 모든 광명은 다시 시방에 이르러 6도(道)를 두루 비추면서 불사(佛事)를 지은 뒤에는 도로 돌아와서 부처님 몸을 일곱 바퀴 돈다. 만일 지옥에 수기하게 되면 그 광명이 발바닥으로 들어가고, 만일 축생에 수기하게 되면 그 광명은 발뒤꿈치로 들어가며, 만일 아귀에 수기하게 되면 그 광명은 넓적다리로 들어간다.
014_0839_b_07L此諸光明復至十方遍照六道佛事已還繞身七帀若記地獄光從足下入若記畜生光從腨入若記餓光從䏶入
만일 인도(人道)에 수기하게 되면 그 광명은 배꼽으로 들어가고, 만일 천도(天道)에 수기하게 되면 그 광명은 가슴으로 들어가며, 만일 성문에게 수기하게 되면 그 광명은 입으로 들어가고, 만일 벽지불에게 수기하게 되면 그 광명은 눈썹 사이로 들어가며, 만일 부처님이 될 것을 수기하게 되면 그 광명은 정수리로 들어간다. 만일 수기하려 하면 먼저 이런 특징을 나타내고 그런 뒤에야 아난(阿難) 등의 모든 제자들이 질문을 하게 된다.
014_0839_b_10L若記人道光從齊入記天道光從胸入若記聲聞光從口若記辟支佛光從眉間相入若記得佛光從頂入若欲受記先現此相然後阿難等諸弟子發問
온갖 게송을 기야(祇夜)라 한다. 여섯 글귀ㆍ세 글귀ㆍ다섯 글귀 등 그 글귀의 많고 적음은 정해 있지 않는데도 역시 기야라 하며 또한 가타(伽陀)라고도 한다.
014_0839_b_14L一切偈名祇夜六句三句五句句多少不定名祇夜亦名伽陁
우타나(優陀那)란 유법(有法)이라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말씀을 하셔야 함에도 질문하는 이가 없으면, 부처님은 대략 질문의 실마리를 열어 주신다. 마치 부처님께서 사바제(舍婆提)에 계시면서 비사가당(毘舍佉堂)80) 위의 그늘진 곳을 거니실 때 스스로 우타나를 말씀하셨나니, 이른바 “나가 없고 내 것도 없는 이 일이야말로 장하도다”고 하신 것과 같다.
014_0839_b_16L優陁那名有法佛必應說而無有問者佛略開問端如佛在舍婆提毘舍佉堂上陰地經自說優陁那所謂無我無我所事善哉
014_0839_c_01L그때 한 비구가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어떻게 나가 없고 내 것도 없는 이 일이 장하옵니까?”고 하자,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시되 “범부의 사람은 아직 무루의 도[無漏道]를 얻지 못한 채 뒤바뀌어 마음이 가려졌기 때문에 나 없고 내 것도 없는 것에 몹시 놀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만일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로서 좋은 법을 들은 이면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고 뒤바뀜이 없기 때문에 다시는 더 짓지 않느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등은 잡아함(雜阿含) 중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014_0839_b_20L爾時一比丘合掌白佛言云何無我無我所是事善哉佛告比丘凡夫人未得無漏道顚倒覆心於無我無我所心大驚怖若佛及佛弟子聞好法者歡喜奉行無顚倒不復更作如是等『雜阿含』中廣說
또 마치 반야바라밀품(般若波羅蜜品) 중에서 천자(天子)들이 수보리가 한 말을 칭찬하면서 “장하고 장하나이다.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한 것과 같나니, 이것을 우타나라고 한다.
014_0839_c_02L又如「般若波羅蜜品」中諸天子讚須菩提所說善哉善哉希有世尊難有世尊是名優陁那
또 마치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제자들이 중요한 게송을 추려 모아 모든 무상한 게송 등은 무상품(無常品)으로 하고 바라문의 게송 등은 바라문품(婆羅門品)으로 지었나니, 이것도 역시 우타나라 한다. 그리고 모아 놓은 여러 묘한 일들도 모두 우타나라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을 우타나경(優陀那經)의 모양이라 한다.
014_0839_c_05L又如佛涅槃後弟子抄集要偈諸無常偈等作無常乃至婆羅門偈等作婆羅門品名優陁那諸有集衆妙事皆名優陁如是等名優陁那經相
니타나(尼陀那)라 함은 모든 부처님 법이 본래 일어난 인연(因緣)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 때문에 이런 일을 말씀하셨다”거나, 수다라(修多羅) 중에서 “어떤 사람이 물었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이 일을 말씀하셨다”거나, 비니(毘尼) 중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범하였기 때문에 이 계를 제정하셨다”고 하는 것 등이니, 온갖 부처님의 말씀이 일어난 인연의 일을 모두 니타나라 한다.
014_0839_c_09L尼陁那說諸佛法本起因緣佛何因緣說此修多羅中有人問故爲說是事尼中有人犯是事故結是戒一切佛語緣起事皆名尼陁那
아파타나(阿波陀那)라 함은 세간의 모양과 비슷한 부드럽고 얕은 말이다. 마치 『중아함(中阿含)』 중의 장아파타나경(長阿波陀那經)과 『장아함(長阿含)』 중의 대아파타나(大阿波陀那)와 비니(毘尼) 중의 억이아파타나(億耳阿波陀那)와 이십억아파나해(二十億阿波陀那解)와 이백오십계경(二百五十戒經) 중의 욕아파타나(欲阿波陀那)의 일부와 보살아파타나(菩薩阿波陀那)의 일부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한량없는 아파타나가 있다.
014_0839_c_13L阿波陁那與世閒相似柔軟淺語如『中阿含』中『長阿波陁那經』『長阿含』中『大阿波陁那』『毘尼』中億耳阿波陁那二十億阿波陁那『解二百五十戒經』中欲阿波陁那一部菩薩阿波陁那出一部是等無量阿波陁那
여시어경(如是語經)이라 함은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끝맺는 구절[結句]로서 “내가 먼저 말하기로 한 것을 이제 다 말하여 마쳤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3장(藏)과 마하연(摩訶衍) 이외에 다시 경이 있어 일목다가(一目多迦)81)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목다가(目多迦)82)라 한다”고 한다.
014_0839_c_19L如是語經二種一者結句我先許說者今已說竟二者三藏摩訶衍外更有經名一目多迦有人言目多迦
014_0840_a_01L목다가라는 이름은 3장과 마하연에서 나온다. 이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마치 부처님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정반왕(淨飯王)이 억지로 출가시키어 부처님의 제자가 된 이들을 부처님께서는 그 중에서 도를 얻을 수 있는 5백 인을 선택하여 사바제(舍婆提)로 데리고 오셨다. 그것은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한지라 만일 고향을 가까이하면 파계(破戒)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바제로 데리고 와서는 사리불과 목건련 등으로 하여금 그들을 교화하게 했는데,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정신을 외곬으로 쓰게 하면서 잠을 재우지 않았으니, 이렇게 부지런히 닦고 정진한 까닭에 도를 얻게 되었다.
014_0839_c_22L目多迦名出三藏及摩訶衍何等是如佛說飯王强令出家作佛弟子者佛選擇五百人堪任得道者將至舍婆提以者何以其未離欲若近親里恐其破戒故將至舍婆提令舍利弗目乾連等教化之初夜後夜專精不睡勤修精進故得道
도를 얻고 나자 부처님은 도로 본국으로 데리고 오셨는데, 온갖 부처님들의 법에서는 본국으로 돌아올 때는 크게 모여든 모든 하늘들과 함께 가비라바(迦毘羅婆) 선인숲(仙人林) 가운데 머무시도록 되어 있었다. 이 숲은 가비라바성(迦毘羅婆城)에서 50리(里) 떨어진 곳이었고, 바로 모든 석씨(釋氏)들이 재미있게 노닐던 동산이었다.
014_0840_a_06L得道已佛還將至本生一切諸佛法還本國時與大會諸天衆俱住迦毘羅婆仙人林中此林去迦毘羅婆城五十里是諸釋遊戲
이 석씨 비구들은 사바제에 있을 때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정신을 외곬으로 쓰면서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밤이 몹시 긴 것으로 여겨졌고, 숲에서 와서는 성으로 들어가 걸식을 하면서 길이 멀고 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셨다. 마침 또 사자 한 마리가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한쪽에 머물렀는데, 부처님께서는 이 세 가지의 인연 때문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4_0840_a_10L此諸釋子比丘處舍婆提時初夜後夜專精不睡故以夜爲長從林中入城乞食覺道里長遠爾時佛知其心有一師子來禮佛足在一面住佛以是三因緣故說偈

잠 못 드는 사람에겐 밤은 길고
지친 나그네에겐 길이 멀듯이
어리석어 생사(生死)가 긴 것은
바른 법을 알지 못해서이다.
014_0840_a_14L不寐夜長
疲惓道長
愚生死長
莫知正法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아직 출가하기 전에는 그 마음이 방일하여 잠을 많이 잤기에 밤이 긴 것을 몰랐으나 이제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오로지 정진하면서 도를 구하느라 잠을 줄인 까닭에 밤이 몹시 긴 것을 깨달았으리라.
014_0840_a_16L佛告比丘汝未出家時其心放逸多睡眠故不覺夜長今初夜後夜專精求減省睡眠故覺夜大長
이 가비라바 숲도 너희들이 본래 수레를 타고 와서 재미있게 놀던 곳이라 먼 데인 줄 몰랐지만 지금은 가사(袈裟)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어다니므로 몹시 지친 까닭에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014_0840_a_19L此迦毘羅婆林汝本駕乘遊戲不覺爲遠今著衣持鉢步行疲極故覺道長
014_0840_b_01L그리고 이 사자는 비바시불(鞞婆尸佛) 때에는 바라문의 스승으로 있었다. 그는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로 왔었는데 그때 대중들이 법을 듣느라 함께 말해주는 이가 없자 곧 나쁜 생각을 내어 욕설을 하면서 ‘이 까까머리 무리는 짐승들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좋은 사람도 구별하지 못하고 말할 줄도 모른다’고 한 것이다.
014_0840_a_21L是師子鞞婆尸佛時作婆羅門師見佛說法來至佛所爾時大衆以聽法故無共語者卽生惡念發惡罵言此諸禿輩與畜生何不別好人不知言語
이 나쁜 구업(口業) 때문에 비바시불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91겁 동안을 항상 축생 안에 떨어져 있었다. 이 사람은 그때에 즉시 도를 얻어야 했는데도 어리석었던 까닭에 스스로 생사에 오랫동안 있었다. 이제는 부처의 처소에 와서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마땅히 해탈하게 되리라”고 하셨다.
014_0840_b_03L以是惡口業從鞞婆尸佛乃至今日九十一劫常墮畜生中此人爾時卽應得道愚癡故自作生死長久今於佛所心淸淨故當得解脫
이와 같은 경들을 일컬어 출인연(出因緣)이라 한다. 어느 곳에서 나왔느냐 하면, 3장과 마하연 중에서 나왔기 때문에 출(出)이라 한다. 무엇을 인연이라 하느냐 하면, 이 세 가지 일의 근본을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이다.
014_0840_b_07L如是等經名爲因緣於何處出於三藏摩訶衍中出故名爲云何名因緣是三事之本因緣經
본생경(本生經)이라 함은, 옛날 보살이 일찍이 사자였을 때 숲 속에 있으면서 한 마리의 원숭이와 함께 친하게 지냈다. 원숭이는 두 마리의 새끼를 그 사자에게 맡기고 있었는데 마침 독수리가 배가 고파서 먹이를 찾고 다니다가 사자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원숭이 새끼를 채어가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014_0840_b_10L本生經昔者菩薩曾爲師在林中住與一獼猴共爲親友猴以二子寄於師子時有鷲鳥飢行求値師子睡故取猴子而去住於樹
사자는 잠에서 깨어나 원숭이 새끼들을 찾았으나 없었는데, 독수리가 채어가서 나무 위에 있는 것을 보고는 독수리에게 말하기를 “나는 원숭이 새끼 두 마리를 맡고 있으면서 잘못 보호하여 네가 채어가도록 만들었다. 나는 신의를 저버리게 되었으니, 돌려주면 좋겠다. 나는 길짐승 가운데서 왕이요 너는 날짐승 안에서 임금이어서 귀함과 세력이 동등한 처지이니, 돌려주어야 한다”고 하자, 독수리는 말하기를 “너는 때를 모르는구나. 나는 지금 몹시 배가 고파 있는데 무슨 같고 다름을 논하겠느냐”고 했다. 사자는 그가 돌려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자기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신의 겨드랑이의 살을 뜯어내어서 그 원숭이의 새끼들과 바꾸었다.
014_0840_b_14L師子覺已求猴子不得見鷲持在樹上而告鷲言我受獼猴寄託二子護之不謹令汝得去孤負言信請從汝索我爲獸中之王汝爲鳥中之主貴勢同等宜以相還鷲言汝不知時吾今飢乏何論同異師子知其叵得自以利爪攫其脅肉以貿猴子
또 과거의 세상에 백성들 거의 모두가 황백위(黃白痿)의 열병에 걸렸으므로 보살은 그때 적어(赤魚)의 몸이 되어서 스스로 그 병든 사람들에게 살을 보시하여 그 질병들을 낫게 하였다.
014_0840_b_20L又過去世時人民多病黃白痿熱菩薩爾時身爲赤魚自以其肉施諸病人救其疾
014_0840_c_01L또 옛날 보살은 한 새의 몸이 되어서 숲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한 사람이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 아니었고 그 사람은 수신(水神)의 덫에 걸려들었다. 수신의 덫에 걸려들면 꽉 달라붙어서 풀리지 않는 법이었으므로 이 새는 그 풀리는 법을 알았는지라 향산(香山) 속으로 가서 하나의 약풀을 뜯어 와서 그 덧 위에다 놓자, 그 노끈이 이내 문드러지면서 그 사람은 풀려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본생(本生)에는 구제한 일들이 많이 있나니, 이것을 본생경이라 한다.
014_0840_b_23L又昔菩薩作一鳥身在林中見有一人入於深水非人行處水神所羂水神羂法著不可解鳥知解法至香山中取一藥草著其羂上繩卽爛壞人得脫去如是等無量本多有所濟是名本生經
광경(廣經)이라 함은 마하연(摩訶衍)을 이름하나니, 이른바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과 『육바라밀경(六波羅蜜經)』과 『화수경(華手經)』과 『법화경(法華經)』과 『불본기인연경(佛本起因緣經)』과 『운경(雲經)』과 『법운경(法雲經)』과 『대운경(大雲經)』 등등 이러한 한량없는 아승기의 모든 경전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하여 말씀하신 경이다.
014_0840_c_05L廣經摩訶衍所謂『般若波羅蜜經』』六波羅蜜經』『華首經』『法華經』『佛本起因緣經』『雲經』『法雲經』『大雲經』如是等無量阿僧祇諸經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說
비불략경(毘佛略經)[진나라 말로는 미증유경(未曾有經)이다.]은 마치 부처님께서 갖가지의 신력을 나타내면 중생들이 보고 전에 없던 일[未曾有]이라고 괴상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른바 부처님께서 탄생할 때 몸으로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의 세계와 어두운 곳을 비추셨고 다시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신 것이다.
014_0840_c_10L毘佛略呂夜反秦言未曾有如佛現種種神力衆生怪未曾有謂佛生時身放大光明照三千大千世界及幽闇之處復照十方無量諸佛三千大千世界
이때 부처님의 어머님 앞에는 청정한 좋은 못이 있어서 보살을 목욕시키셨는데 범왕(梵王)은 일산을 받쳐 들고 제석(帝釋)은 몸을 씻었으며 두 마리의 용(龍)은 물을 토해냈다.
014_0840_c_14L是時於佛母前淸淨好池以浴菩薩梵王執蓋帝釋洗身二龍吐水
또 태어났을 때에는 붙드는 이도 없이 일곱 걸음을 걸어가셨고 그 발자국마다 연꽃이 솟아나 발을 바쳤으며 다음과 같이 외쳤다. “나는 바로 온갖 중생들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제도할 이다”고 하셨다.
땅은 크게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으며 나무는 음성을 내고 하늘의 음악이 울렸으니, 이러한 등등의 한량없는 희유한 일들을 말씀하신 것을 바로 미증유경이라 한다.
014_0840_c_16L又生時不須扶持而行七步足迹之處皆有蓮華而發是我是度一切衆生老病死者地大震動天雨衆花樹出音聲作天伎樂如是等無量希有事是名未曾有經
논의경(論議經)이라 함은 모든 질문한 이에게 대답하면서 그 까닭을 해석하는 것이다. 또 다시 모든 이치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니, 마치 부처님께서 4제(諦)를 말씀할 때와 같다.
“어떤 것이 4제입니까?” 하면, “이른바 4성제(聖諦)이니라”고 하며, “어떤 것이 4성제입니까?” 하면, “이른바 괴로움[苦]ㆍ쌓임[集]ㆍ사라짐[滅]ㆍ도(道)의 거룩한 진리이니라”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논의(論議)라 한다.
014_0840_c_20L論議經答諸問者釋其所以又復廣說諸義如佛說四諦何等是四謂四聖諦何等是四所謂苦聖諦是名論議
014_0841_a_01L“어떤 것이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苦聖諦]입니까” 하면 “이른바 나는 괴로움[生苦] 등의 여덟 가지 괴로움이니라”고 하며, “어떤 것이 나는 괴로움입니까” 하면 “이른바 모든 중생들이 저마다 나는 곳에서 받게 되는 괴로움이니라”고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문답에서 그 뜻을 자세히 해석하는 것을 바로 우바제사(優波提舍)라 한다.
014_0841_a_01L何等爲苦聖諦所謂生苦等八種苦何等是生苦所謂諸衆生各各生處是中受苦如是等問廣解其義是名優波提舍
마치 마하연 중에서는 부처님께서 6바라밀을 말씀하시면서 “어떤 것이 6바라밀입니까” 하면 “이른바 단(檀)바라밀에서부터 반야(般若)바라밀까지니라”고 하며, “어떤 것이 단바라밀입니까” 하면 “단바라밀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두루 갖추어진[具足] 것이요 둘째는 두루 갖추어지지 않은[不具足] 것이니라”고 하며, “어떤 것이 두루 갖추어진 것입니까” 하면 “반야바라밀과 화합하면서 나아가 10주(住)의 보살이 얻은 바를 바로 두루 갖추어졌다 하느니라. 두루 갖추어지지 않았다 함은 처음 보살의 마음을 내어서 아직 무생인(無生忍)을 얻지 못하고 갖추어지지 않았다 하나니, 또한 선(禪)바라밀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반야바라밀이 두루 갖추어진 이면 방편의 힘[方便力]이 있지만 아직 두루 갖추어지지 못한 이면 방편의 힘이 없느니라”고 한 것과 같다.
014_0841_a_04L如摩訶衍中佛說六波羅蜜何等六所謂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何等是檀波羅蜜檀波羅蜜有二種一者具足二者不具足何等是具足與般若波羅蜜和合乃至十住菩薩所得是名具足不具足者初發菩薩心未得無生忍法未與般若波羅蜜和合是名不具足乃至禪波羅蜜亦如是般若波羅蜜具足者有方便力未具足者無方便力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논의경과 마하가전연(摩訶迦栴延)이 해석한 바의 수다라(修多羅) 내지 상법(像法) 동안에 범부가 법대로 해설한 것도 역시 우바제사라 한다.
014_0841_a_14L復次佛所說論議經及摩訶迦栴延所解修多羅乃至像法凡夫人如法說者亦名優波提舍
성문이 듣지 못한 바라 함은, 부처님께서 유독 보살만을 위하여 설법하셨는지라 모든 성문으로서는 들은 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 부처님은 신통력으로써 몸을 수없이 변화하여 시방의 1승(乘) 세계에 두루 가셔서 설법하게 되시며, 또 부처님은 욕계의 하늘[欲天]과 색계의 하늘[色天]들을 위하여 설법하실 때에는 모든 제자들이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게 된다.
014_0841_a_16L聲聞所不聞者佛獨與菩薩說法無諸聲聞聽者又佛以神通力變身無數至十方一乘世界說法又復佛爲欲色天說法無諸弟子故不得聞
【문】 모든 6통(通) 아라한은 설령 부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비록 그 자리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천이(天耳)와 천안(天眼)으로써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으며 만일 숙명통(宿命通)으로써 하면 과거의 일을 아울러 알게 되는데 무엇 때문에 듣지 못한다 하는가?
014_0841_a_20L諸六通阿羅漢若佛說時雖不在坐以天耳天眼可得見聞若以宿命通幷知過去事何以不聞
014_0841_b_01L【답】 모든 성문들의 신통력으로써는 미치지 못할 바라 이 때문에 듣지 못한다.
또 부처님께서 모든 큰 보살들을 위하여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을 말씀할 때는 사리불과 목련이 부처님의 좌우에 있었으면서도 그 말씀을 들을 수 없었나니, 이들은 대승의 행법(行法)을 들을 수 있는 인연을 심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좌선(坐禪)하는 사람이 일체처정(一切處定) 안에 들어가면 온갖 것을 모두 물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모두 불이 되게 할 수 있는데도 그 밖의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치 『불가사의해탈경』 가운데서 자세히 설명된 것과 같다.
모조리 받아 지니고자[受持] 한다 함은, 듣고서 받들어 행하면 받는다[受] 하고 오래오래 상실하지 않으면 지닌다[持]고 한다.
014_0841_a_23L答曰諸聲聞神通力所不及處是故不聞復次爲諸大菩薩說『不可思議解脫經』利弗目連在佛左右而不得聞以不種是聞大乘行法因緣故譬如坐禪人入一切處定中能使一切皆水皆而餘人不見如『不可思議解脫經』中廣說盡欲受持聞而奉行爲久久不失爲
大智度論卷第三十三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70)범어로는 anutpādakoṭi. 곧 ‘태어남이 없는 경계’를 말한다.
  2. 71)범어로는 Chaṇḍaka. 원래 석가족의 노예의 자식으로, 석존께서 성도 후 최초로 고향을 방문했을 때 귀의했다.
  3. 72)범어로는 Meghiya.
  4. 73)범어로는 dharmadhātujakāya.
  5. 74)범어로는 Velāma.
  6. 75)범어로는 Sudinna.
  7. 76)『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Pratyutpanna-buddhasaṃmukhā vasthitasamādhi- sūtra)』을 말한다.
  8. 77)범어로는 śruta-dharadhāraṇī.
  9. 78)범어로는 anirodhakoṭi-samādhi.
  10. 79)유정천(有頂天)을 말한다.
  11. 80)범어로는 Viśākhāprāsāda.
  12. 81)범어 Ityuktaka의 음역어.
  13. 82)범어 Ityuktaka의 음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