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1101_c_01L대지도론 제61권
014_1101_c_01L大智度論釋隨喜迴向品第三十九卷六十一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
014_1101_c_02L聖者龍樹造
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39. 수희회향품(隨喜迴向品)을 풀이함

【경】그때 미륵보살마하살이 혜명 수보리에게 말했다.
“보살마하살은 수희(隨喜)하는 복덕을 온갖 중생들과 함께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니, 얻을 것이 없기[無所得] 때문입니다. 설령 성문이나 벽지불의 복덕이나 온갖 중생의 복덕으로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며 선정으로 닦고 따라 기뻐한다[隨喜] 해도 이 보살마하살이 수희하는 복덕을 온갖 중생들과 함께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그 복덕이야말로 가장 으뜸가고 첫째가며 가장 묘하고 보다 더할 것이 없어서 견줄 데가 없습니다.
014_1101_c_04L【經】爾時彌勒菩薩摩訶薩語慧命須菩提有菩薩摩訶薩隨喜福德與一切衆生共之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以無所得故若聲聞辟支佛福德若一切衆生福德若布施若持戒若修若隨喜是菩薩摩訶薩隨喜福德與一切衆生共之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其福最上第一最妙無上與等者
왜냐하면 성문이나 벽지불 및 온갖 중생들이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며 선정을 닦고 따라 기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조복하기 위한 것이고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자기 자신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니, 이른바 4념처(念處) 내지는 8성도분(聖道分)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이거니와 보살이 수희하는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은 이 공덕을 가지고 온갖 중생을 조복하기 위해서이고 온갖 중생을 청정케 하기 위해서이며 온갖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014_1101_c_13L何以故聲聞辟支佛及一切衆生布施持戒修定隨喜爲自調爲自爲自度故所謂四念處乃至八聖道分無相無作菩薩隨喜福德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持是功德爲調一切衆生爲淨一切衆生爲度一切衆生故起
그때 혜명 수보리가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세계 가운데에서 멸도(滅度)하신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을 염(念)합니다.
014_1101_c_19L爾時慧命須菩提白彌勒菩薩言諸菩薩摩訶薩念十方無量無邊阿僧祇世界中無量無邊阿僧祇諸滅度佛
014_1102_a_01L 이 부처님은 처음 발심해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에 이르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시어 이에 법이 다하도록 그 중간에 심어 놓은 모든 선근(善根)으로서 6바라밀과 상응하는 것과 모든 성문인의 선근, 혹은 보시한 복덕과 계율을 지킨 복덕과 선정을 닦은 복덕 및 모든 유학인(有學人)의 무루선근과 무학인(無學人)의 무루선근과 모든 부처님의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과 일체지(一切智)와 대자대비(大慈大悲)와 그 밖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모든 불법 및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과 이 법 가운데에서 배워 수다원의 과위를 얻고 나아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는 것과 보살마하살의 지위에 드는 것과 그 밖의 모든 중생들이 심어 놓은 선근들이 있습니다.
014_1101_c_22L是佛從初發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乃至入無餘涅槃乃至法盡——於其中閒諸善根應六波羅蜜及諸聲聞人善根——若布施福德持戒福德修定福德及諸學人無漏善根無學人無漏善根諸佛戒衆定衆慧衆脫衆解脫知見衆一切智大慈大悲及餘無量阿僧祇諸佛法及諸佛所說法是法中學得須陁洹果乃至得阿羅漢果辟支佛道入菩薩摩訶薩及餘衆生種諸善根
이 모든 선근을 모두 한데 합쳐 수희하는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니, 이것은 가장 으뜸가고 첫째가며 가장 묘하고 보다 더할 것이 없어서 견줄 데가 없습니다. 이렇게 따라 기뻐한 뒤에는 이 따라 기뻐하는 복덕을 가져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014_1102_a_10L是諸善根切和合隨喜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者如是隨喜已持是隨喜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만일 어떤 선남자로서 보살승(菩薩乘)을 행하는 이가 생각하기를 ‘나는 이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마음을 내어 일[事]을 반연하는 것입니다. 만일 선남자가 모양을 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염한 대로 될 수 있는 것입니까?”
014_1102_a_14L若有善男子行菩薩乘者作是念我是心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生心善男子取相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所念可得不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이 선남자가 보살승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은 마음이 바로 일[事]을 반연하는 것이니, 만일 선남자가 모양을 취한다면 염한 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014_1102_a_18L彌勒菩薩語須菩提是善男子行菩薩乘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是緣事若善男子取相不得如所念
014_1102_b_01L수보리가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만일 모든 반연[緣]과 모든 일[事]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보살승을 행하는 선남자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갖가지 선근과 처음 발심해서부터 그 법이 다하기까지, 그리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모든 선근과 유학ㆍ무학의 선근을 모두 한데 합친 수희의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데서 모양을 취한다 해도 그것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 보살은 뒤바뀐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014_1102_a_21L須菩提語彌勒菩薩若諸緣諸事無所有是善男子行菩薩乘者取相於十方諸佛諸善根初發心乃至法盡及聲聞辟支佛諸善無學善根一切和合隨喜功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無相是菩薩將無顚倒
무상(無常)한 것을 항상하다[常]고 여기는 것은 생각[想]이 뒤바뀌고 마음[心]이 뒤바뀌고 소견[見]이 뒤바뀐 것입니다. 청정하지 않은[不淨] 것을 청정하다[淨]고 여기고 괴로운[苦] 것을 즐겁다[樂]고 여기며 나 없는[無我] 것을 나[我]라고 여기는 것은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뀐 것입니다.
014_1102_b_04L無常謂常想顚心顚倒見顚倒不淨謂淨苦謂樂無我謂我想顚倒心顚倒見顚倒
만일 그 연과 같고 그 일과 같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삼는 것도 그와 같을 것이고 회향하는 마음도 그와 같을 것이며, 단바라밀(檀波羅蜜)과 시라(尸羅)ㆍ찬제(羼提)ㆍ비리야(毘梨耶)ㆍ선(禪)ㆍ반야(般若) 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不共法)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어떤 것이 반연이고 어떤 것이 일[事]이며, 어떤 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고 어떤 것이 선근이며, 어떤 것이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겠습니까?”
014_1102_b_06L如緣如事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如是迴向心亦如是檀波羅蜜尸羅羼提毘梨耶般若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亦如是若爾者何等是緣等是事何等是阿耨多羅三藐三菩何等是善根何等是隨喜心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논】해석한다. 앞의 7품(品)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명하여 반야를 설하게 하셨고, 중간에 제석이 많은 질문을 했기에 공덕이 되는 많은 일을 설명하셨으며, 여기에서는 미륵이 부처님의 본의(本意)에 따라 도리어 수보리에게 따라 기뻐하는 법에 의지하게 하려고 반야바라밀을 널리 설명하셨다.
014_1102_b_13L【論】釋曰先七品中佛命須菩提令說般中閒帝釋多問多說功德事今彌勒順佛本意還欲令須菩提因隨喜法廣說般若波羅蜜
또 제석은 앞에서 반야에 공양하는 데는 꽃과 향과 음악과 번기ㆍ일산 등의 공양 거리로도 얻는 복이 매우 많다는 말을 듣고 몹시 좋아하면서 “이런 공양 거리는 우리들만이 마련할 수 있으며 출가한 사람들에게는 없다.”고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미륵은 그들이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심정을 억누르기 위하여 짐짓 수보리에게 말하기를 “보살은 다만 마음으로만 따라 기뻐해도 성문과 벽지불과 온갖 중생들의 보시 등과 모든 무루의 공덕보다도 더 뛰어나거늘 하물며 꽃과 향을 경권(經卷) 등에 공양하는 것이랴.”고 한 것이다.
014_1102_b_17L復次帝釋聞上供養般若以華香妓樂幡蓋之具福甚多深自慶幸此供養具唯我等能辦非出家人所有是故彌勒欲抑其自多之情故語須菩提菩薩但以心隨喜則勝聲聞辟支佛一切衆生布施等及諸無漏功德何況華香養經卷等
014_1102_c_01L‘보살마하살’에 대한 이치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수희하는 복덕’이라 함은,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짓지 않고 모든 공덕을 짓는 것이다. 다만 마음의 방편만으로 다른 이가 닦는 복덕을 보고 따라 기뻐하면서 “온갖 중생 가운데서 복덕을 닦고 도를 행하는 이는 가장 뛰어나다. 만일 복덕을 여의는 사람은 축생들과 같아서 세 가지 일을 행하게 된다.”고 한다. 세 가지 일이란 음욕과 먹고 마시는 일과 싸우는 것이다.
014_1102_c_01L菩薩摩訶薩義如先說喜福德者不勞身口業作諸功德以心方便見他修福隨而歡喜作是一切衆生中能修福行道者最爲殊勝若離福德人與畜生同行三事三事者婬欲飮食戰鬪
복덕을 닦고 도를 행한 사람은 온갖 중생들이 다 같이 존중하고 사랑하고 공경하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더울 때에 맑고 시원한 보름달을 우러러보기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고 또한 마치 대회(大會)에 모이라고 할 적에 음악과 좋은 음식을 고루 장만하여 먹고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함께 기꺼이 나아가지 않음이 없듯이 복을 닦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다.
014_1102_c_06L能修行福德行道之人一切衆生所共尊重愛敬譬如熱時淸涼滿月無不樂仰亦如大會告集伎樂餚饌無不畢備遠近諸人咸共欣赴修福之人亦復如是
복덕에는 두 가지 즐거운 인연이 있으니, 그것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다. 출세간이라 함은, 모든 무루의 법에는 비록 복의 과보는 없다 하더라도 능히 복덕을 내기 때문에 복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유루와 무루를 통틀어 복덕이라 한다.
014_1102_c_10L福德有二種樂因緣世閒出世閒世閒者諸無漏法雖無福報能生福故名福德是故有漏無漏通名福
또 복덕은 보살마하살의 근본이어서 소원을 만족시키는 것이므로 온갖 성인들이 찬탄한 것이나 지혜 없는 사람은 헐뜯나니, 지혜 있는 사람이 행할 것이요 지혜 없는 사람은 멀리 여의는 것이다.
014_1102_c_14L復次福德是菩薩摩訶薩根本滿所願一切聖人所讚歎無智人所毀呰智人所行處無智人所遠離
이 복덕의 인연 때문에 사람의 왕도 되고 전륜성왕ㆍ천왕ㆍ아라한ㆍ벽지불과 모든 불세존이 되는 것이니, 대자대비와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일체종지(一切種智)와 자재롭고 걸림 없는 것이 모두 복덕 가운데서 생긴다. 이와 같은 갖가지 복덕으로 바른 소견[正見]을 얻기 때문에 따라 기뻐하는 것이다.
014_1102_c_16L福德因緣故作人王轉輪聖王天王阿羅漢辟支佛諸佛世尊大慈大悲十力四無所畏一切種智自在無碍皆從福德中生如是等種種福德正見故隨而歡喜
또 보살은 “나는 온갖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중생도 자신들이 복덕을 행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또 온갖 중생들이 선행을 하면 그는 나와 비슷한 이요, 그는 나의 벗이기 때문에 따라 기뻐하게 된다.
014_1102_c_21L復次菩薩自念應與一切衆生樂而衆生能自行福是故心生歡喜復次一切衆生行與我相似是我同伴是故隨喜
014_1103_a_01L모든 보살마하살은 시방과 3세(世)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성문ㆍ벽지불 그리고 복을 짓는 중생들이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며 선정과 지혜를 닦는 이 복덕 가운데서 수희하는 복덕을 낳는 것이니, 이 때문에 따라 기뻐한다고 하였다.
이 수희하는 복덕을 가지고 온갖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다.
014_1103_a_01L菩薩摩訶薩於十方三世諸佛及菩聲聞辟支佛及一切修福衆生布持戒修定慧於此福德中生隨喜福是故名隨喜持是隨喜福德共一切衆生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온갖 중생들과 함께한다.’ 함은 이 복덕을 온갖 중생들에게 줄 수는 없지만 과보는 줄 수가 있다는 뜻이다. 보살은 이미 복덕의 과보로 의복과 음식 등 세간의 쾌락과 기구를 얻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며, 보살은 복덕이 청정한 몸과 입으로써 남들에게 신용을 받아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10선도(善道)와 4선(禪) 등을 얻게 하면서 다음 세상의 이익을 지어 준다.
014_1103_a_06L共一切衆生者是福德不可得與一切衆生而果報可與菩薩旣得福德果報——衣服飮食等世閒樂具以利益衆生菩薩以福德淸淨身口人所信爲衆生說法令得十善道四禪等與作後世利益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처님이 되어 복덕의 과보를 얻어서 몸에는 32상(相)과 80종의 수형호(隨形好)와 한량없는 광명이 생기게 되므로 보는 이들이 싫증내지 않으니, 한량없이 청정한 범음(梵音)1)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무애해탈(無礙解脫) 등의 모든 부처님 법을 세 가지 일에서 나타내 보이고 한량없는 아승기 중생들을 제도하며 열반하신 뒤에는 몸을 부순 사리(舍利)를 사람들에게 주어 공양하게 하며 오랜 뒤에는 모두 도를 얻게 한다.
014_1103_a_12L末後成佛得福德果身有三十二相八十種隨形好無量光明觀者無厭無量淸淨梵音柔和無碍解脫等諸佛法於三事示現無量阿僧祇衆生般涅槃後碎身舍與人供養久後皆令得道
이 과보를 온갖 중생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결과 가운데서 원인을 설명하기 때문에 “복덕을 중생과 함께한다.”고 한 것이다. 만일 복덕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쌓은 복덕을 모조리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러나 뒤에 다시 지은 착한 법의 바탕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없으므로 지금에는 곧장 두려움이 없고 고뇌가 없는 것으로써 중생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014_1103_a_17L是果報可與一切衆生以果中說因故德與衆生共若福德可以與人者佛從初發心所集福德盡可與人後更作善法體不可與人今直以無無惱施與衆生用
014_1103_b_01L‘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함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이것을 바로 보살마하살의 수희하는 복덕이라 한다.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과 온갖 중생들의 세 가지 복덕을 비교하는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고 맨 위이며 첫째가고 가장 미묘하며 보다 더할 것이 없어 견줄 데가 없다.’고 하는 이치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1103_a_22L無所得故如先說是名菩薩摩訶薩隨喜福德比一切聲聞辟支佛及衆生三種福德中最勝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義如先說
여기에서는 뛰어난 인연을 말하는데, 이 2승의 복덕은 모두가 자기 자신을 조복하기 위해서이고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자기 자신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계율을 지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조복하는 것이고, 선정을 닦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지혜는 바로 자기 자신을 제도하는 것이다.
014_1103_b_03L是中說勝因緣是二乘福皆爲自調自淨自度持戒者是自調修禪者是自淨智慧者是自度
또 자기 자신을 조복한다는 것은 바른 말[正語]과 바른 행위[正業]와 바른 생활[正命]이고,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한다는 것은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선정[正定]이며, 자기 자신을 제도한다는 것은 바른 소견[正見]과 바른 생각[正思惟]과 바른 방편[正方便]이다.
014_1103_b_05L自調者正語正業正命自淨者正定自度者正見正思惟正方便
또 보시한 인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조복하고, 계율을 지킨 인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하며, 선정을 닦은 인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제도하는 것이다.
014_1103_b_07L復次布施因緣故自調持戒因緣故自淨修定因緣故自度
‘선정을 닦는다.’ 함은 바로 무루의 법과 가까운 인연이니, 무루라 함은 이른바 37품(品)과 3해탈문(解脫門) 등이다.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은 이것과는 관련이 멀기 때문에 해석하지 않는다.
보살의 수희하는 복덕은 비록 애쓰고 수고함은 없다 하더라도 온갖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다.
014_1103_b_09L修定者是無漏法近因緣無漏者所謂三十七品三解脫門等布施持戒遠故不解薩隨喜福德雖無勤勞爲度一切衆生故勝
【문】실제로는 온갖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면서 무엇 때문에 온갖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에 뛰어나다고 하는가?
014_1103_b_13L問曰實不度一切衆生何以度一切衆生故勝
【답】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공덕의 힘으로 온갖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니, 다만 중생과 서로 어울리는 인연만 없을 따름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큰 불은 항상 태우는 힘이 있지만 다만 섶을 가까이하지 않기 때문에 태울 수 없을 뿐이요, 가까이하면 태우는 것과 같다.
014_1103_b_14L答曰諸佛菩薩功德力#能度一切衆生但以衆生無和合因緣故譬如大火常有燒力以薪不近故不得燒近則能燒
그때 수보리는 필경공(畢竟空)의 지혜로써 미륵보살에게 묻기를 “모든 부처님을 염하고 복덕을 따라 기뻐하면서 최상의 도에 회향한다 할 때, 바로 그 염하는 것은 과거의 일인데 그 일이 염한대로 될 수 있는가”라고 한다. 미륵은 두 가지 인연으로써 “될 수 없다.”고 대답한다.
014_1103_b_17L爾時須菩提以畢竟空智慧難問彌勒菩念諸佛福德隨喜迴向無上道所念過去事是事如所念不彌勒以二因緣故答言不也
014_1103_c_01L 곧 첫째는 과거의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계셨던 모든 부처님께서는 오래전에 이미 멸도해 계시지 않으며, 보살은 숙명지(宿命智)가 없기도 하고 혹은 있더라도 미칠 수가 없으며 다만 들은 것을 기억하여 분별할 뿐이기 때문에 염한대로 되지 않는다.
014_1103_b_21L一者過去無量阿僧祇劫諸佛久已滅度無復遺餘菩薩或無宿命智或有而不能及以如所聞憶想分別故不如所念
둘째는 모든 부처님과 그 공덕은 삼계(三界)를 벗어나고 3세를 뛰어나 쓸모없는 이론이나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마치 열반의 모양과 같고 필경공이어서 청정하다. 따라 기뻐하는 이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제자들의 선근과 공덕을 분별하되 이 회향하는 마음과 위없는 도는 실체가 아니라 하기 때문에 “될 수 없다.”고 한다.
014_1103_c_01L諸佛及功德出三界出三世斷戲論語言道如涅槃相畢竟空淸淨喜者分別諸佛及諸弟子善根功德迴向心及無上道非實故言不也
수보리는 “만일 그런 일이 없는데도 이 보살이 기억하고 분별한다면 뒤바뀜에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만일 이 일이 필경공이어서 청정한 모양이라면 기억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고 모든 과거 부처님의 공덕도 역시 그와 같아서 분별도 없고 다른 것도 없거늘 어떻게 따라 기뻐할 수 있는가”라고 따졌다.
이것은 간략하게 그 뜻을 설명하는 것이요, 자세한 것은 경전의 말씀과 같으니, 이른바 수보리가 미륵에게 한 질문이다.
014_1103_c_05L菩提難言若無是事是菩薩憶念分應墮顚倒若是事畢竟空淸淨相憶念亦如是諸過去佛功德亦如是無分別無異云何得隨喜是略說義廣則如經說所謂須菩提問彌勒
“만일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과거 아승기 세계에 계셨던 멸도하신 모든 부처님을 기억한다.”라 함은, 이 보살은 수희하는 복덕을 일으키려 할 것이니, 부처님께서는 바로 복덕의 주인이기 때문에 부처님을 염하고 경전의 말씀을 들으며 과거의 부처님의 명호가 있기 때문에 이 명호로 인하여 온갖 과거의 모든 부처님을 널리 염하게 된다.
014_1103_c_10L菩薩摩訶薩憶念過去十方無量無邊阿僧祇世界中諸滅度佛是菩薩欲起隨喜福德佛是福德主是故念佛聞經書說有過去佛名故因是名廣念一切過去諸佛
‘처음 발심해서부터’라 함은, 처음 발심할 때에 원을 세우되 “나는 온갖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고 하나니, 이 마음은 세 가지 선근 즉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도 않은 선근과 상응하고 모든 착한 법과 선근에 상응하면서 일으키는 몸ㆍ마음ㆍ입의 업(業)이 이 법과 화합하는 것이므로 복덕이라고 한다.
014_1103_c_15L從初發心發心作願我當度一切衆生是心相應三善根不貪不瞋不癡善根相應諸善法及善根所起身口業和合是名爲福德
그리고 처음 발심해서부터 6바라밀을 행하고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 10지(地)를 얻으며 나아가 도량(道場)에 앉기까지 이 가운데서 보살은 자기 자신이 복덕을 닦고 화합하여 불도를 얻는 것이다. 나아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고 멸도한 뒤에 남겨진 사리와 법은 모두가 부처님 자신의 공덕과 화합하는 것이다.
014_1103_c_19L從初發心行六波羅蜜入菩薩位得十地乃至坐道場是中菩薩自修福德和合得佛道乃至入無餘涅槃滅度後舍利及遺法皆是佛自身功德和合
014_1104_a_01L모든 부처님과 대승의 사람으로 인하여 6바라밀과 상응하는 복덕을 행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응한다.” 함은 6바라밀을 제외한 그 밖의 보살이 행하게 되는 법이 모두가 6바라밀 가운데 섭입되기 때문에 6바라밀과 상응하여 화합한다고 말한다.
014_1103_c_23L因諸佛大乘人行六波羅蜜相應福德相應除六波羅蜜餘菩薩所行法皆攝入六波羅蜜中故說應六波羅蜜和合
만일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는 등의 복덕을 심는다. 이 성문이나 벽지불의 사람에게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번뇌가 다한 무학(無學)이며, 둘째는 도를 얻었으나 번뇌는 아직 다하지 못한 유학(有學)이다. 이 두 사람의 모든 복덕 가운데서는 선근(善根)이 뛰어나기 때문에 다만 선근만을 말한다.
014_1104_a_03L若求聲辟支佛人種布施持戒修定等福聲聞辟支佛人有二種一者漏盡名爲無學二者得道漏未盡名爲是二人諸福德中善根勝故但說
위에서 ‘2승을 구하는 사람’이라 함은 범부와 성인을 통틀어서 말하고, 여기에서의 유학과 무학은 순전한 성인이다.
‘상호(相好)’는 무기(無記)의 색법(色法)으로서 선의 공덕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부처님을 말할 뿐이다.
5무학중(無學衆)과 대자대비와 불법에 대한 뜻은 초품(初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1104_a_08L上言求二乘人㧾凡夫聖人無學純是聖人相好是無記色非是善功德故但說佛五無學衆大慈大悲佛法義如初品中說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과 이 법을 배워 수다원의 과위를 얻고 나아가 보살의 지위에 들어간다.’ 함은,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남기신 법 가운데서 도를 얻기 때문에 거듭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밖의 중생들이 심은 모든 선근’이라 함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남기신 법에서 하늘과 사람 내지는 축생이 심는 갖가지 복덕의 인연에 이르기까지이다.
014_1104_a_11L諸佛所說法學是法得須陁洹果乃至入菩薩位是佛滅度後遺法中得道是故重說及餘衆生種諸善根是佛在世及遺法中人乃至畜生種福德因緣
이 위의 4단(段)의 복덕은 수행하는 이가 마음에 두루 반연하고 기억하여 따라 기뻐하면서 부처님 도를 구하기 위한 회향이므로 위없는 수희(隨喜)라 하며 맨 위라서 같을 데가 없는 것이라 한다.
014_1104_a_16L是上四段福德行者心遍緣憶念隨喜求佛道故迴向名無上隨喜最上無與等
【문】부처님 도를 구하는 이가 어째서 직접 자신이 공덕을 짓지 않고 마음으로 따라 기뻐하는가?
014_1104_a_18L問曰求佛道者何以不自作功德而心行隨喜
【답】모든 보살은 방편의 힘으로써 다른 이가 부지런히 공덕을 지으면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내나니, 그 복덕은 자신이 짓는 것보다 더 뛰어나다.
014_1104_a_19L答曰諸菩薩以方便力他勤勞作功德於中起隨喜者福德勝自作者
또 이 수희하는 복덕은 곧 그것이 실제의 복덕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과거의 부처님을 염하면 바로 그것이 염불삼매(念佛三昧)이기 때문이며, 또한 이 6념(念) 가운데는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 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014_1104_a_21L復次隨喜福德卽是實福德所以者何過去佛卽是念佛三昧亦是六念中念佛念法念僧念戒念捨念天等
014_1104_b_01L깨끗한 계율을 행함으로 선정에 들어가고 필경의 지혜를 일으켜 화합하기 때문에 바른 수희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 때문에 다만 수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이 실법(實法)을 행하는 것이다.
‘이 마음으로 회향한다.’ 함은 곧 수희하는 마음이다.
014_1104_b_01L行淸淨戒入禪定起畢竟智慧和合故能起正隨喜是故不但隨喜而已亦行是實法是心迴向者卽是隨喜
‘반연[緣]’이라 함은 수희하는 마음이 반연할 대상[所緣]이니, 이른바 온갖 부처님과 온갖 중생들이 짓는 바의 공덕이다. ‘일[事]’이라는 것이 그 반연할 대상의 근본이라면 ‘복덕’은 연(緣)으로서 공덕이 머무르는 처소이니, 이른바 모든 부처님과 중생과 아울러 토지ㆍ산림ㆍ정사(精舍)ㆍ머무르는 처소 등을 모두 일이라 한다.
014_1104_b_05L緣者隨喜心所緣所謂一切諸佛及一切衆生所作功德事者若是所緣之本福德是緣功德所住處所謂諸佛及衆生幷土地山林精舍住處皆名
“염한 대로 될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미륵은 대답하기를 “될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수보리는 미륵에게 “만일 모든 일과 모든 반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뒤바뀜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014_1104_b_09L如所念可得不彌勒答言須菩提語彌勒若諸事諸緣無所有者云何不墮顚倒
뒤바뀜이란 네 가지 뒤바뀜[四顚倒]이다. 이는 세 가지로 분별되는데, 이 뒤바뀜을 비유하자면, 부처님이 없는데도 기억하며 부처님을 염하는 격이요, 마치 무상한 것인데도 항상하다고 염하는 격이요, 청정하지 않은 것인데도 청정하다고 염하는 것이다.
014_1104_b_11L顚倒者四顚倒三種分別此顚倒是譬喩無佛而憶想念佛猶如無常而念常不淨而念
【문】소견[見]은 모든 뒤바뀜의 근본이다. 처음 도를 얻은 사람이 생각[想]과 마음[心]의 뒤바뀜을 일으키면서도 소견의 뒤바뀜이 없는 것은 견제도(見諦道)에서 끊었기 때문인가?
014_1104_b_14L問曰見爲諸顚倒本如得初道人能起想心顚倒無見顚倒以見諦道斷故
【답】이 뒤바뀜은 생기는 때가 다르고 끊는 때도 다르다. 생기는 때는 생각의 전도가 먼저 있고 다음에는 마음의 전도가 있으며, 마지막에는 견해의 전도가 생긴다. 끊는 때는 먼저 견해의 전도부터 끊는 것이니, 견제도에서 끊어야 할 것[見諦所斷]이기 때문이다. 뒤바뀜의 체성은 모두 소견의 모양이므로 견제도에서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014_1104_b_16L答曰是顚倒生時異斷時異想在前次是心後是見斷時先斷見諦所斷故顚倒體皆是見相諦所斷
‘생각과 마음이 뒤바뀐다.’ 함은, 유학의 사람은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하여 기억을 잊기 때문에 청정하다는 모양[淨相]을 취해서 번뇌[結使]를 일으키고 도리어 바른 기억을 얻어도 즉시 소멸한다. 마치 경 중의 비유에서 “물방울이 몹시 달구어진 철판 위에 떨어지면 바로 그 순간에 소멸하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조그마한 착오가 있기 때문에 가정하여 뒤바뀐다고 한 것이요, 실제로 뒤바뀐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범부에는 세 가지의 뒤바뀜을 말하고 유학의 사람에는 두 가지의 뒤바뀜을 설명하는 것이다.
014_1104_b_19L心顚倒者學人未離欲念忘故取淨相起結使還得正念卽時滅如經中譬喩如渧水墮大熱鐵卽時消滅小錯故假名顚倒非實顚倒是故說凡夫人三種顚倒學人二種顚倒
014_1104_c_01L또 모든 반연과 모든 일이 실로 필경공(畢竟空)인 것처럼 염(念)도 공하고 보리도 공하며, 수희하는 마음도 공하고 단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도 또한 공한 것이다.
만일 모든 법이 한 모양[一相]이어서 이른바 모양이 없는[無相] 것이라면 이 가운데서 어떤 것이 반연이고 어떤 것이 일이며 어떤 것이 마음으로 최상의 도에 회향하는 것이겠는가.
014_1104_c_01L復次諸緣諸事如實畢竟空念亦空菩提亦空隨喜心亦空檀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亦空若諸法一相所謂無相此中何等是何等何等是心迴向無上道
【경】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오랫동안 6바라밀을 행하고 모든 부처님께 많은 공양을 하였으며, 선근을 심었고 선지식(善知識)을 따랐으며, 자상공(自相空)의 법을 잘 배웠다면, 그는 이 모든 보살의 이런 반연[緣]과 이런 일[事]과 모든 부처님의 모든 선근을 수희하는 복덕에 모양[相]을 취하지 않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게 됩니다.
014_1104_c_05L【經】彌勒菩薩語須菩提若諸菩薩摩訶薩久行六波羅蜜多供養諸佛種善與善知識相隨善學自相空法諸菩薩是緣是事諸佛諸善根隨喜福德不取相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둘이 아닌 법[不二法]으로써 하면서도 둘이 아닌 법도 아니고 모양이 아니면서도 모양이 아닌 것도 아니며, 얻을 수 있는 법이 아니면서도 얻을 수 없는 법도 아니며,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법이니,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합니다.
014_1104_c_11L以不二法非不二法非相非不非可得法非不可得法非淨非垢不生不滅法是名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만일 모든 보살로서 6바라밀을 오래도록 행하지 않았고 모든 부처님께 많이 공양하지 않았으며, 선근을 심지도 않았고 선지식을 따르지도 않았으며, 자상공의 법을 잘 배우지도 않은 이라면, 이러한 보살은 이 모든 대상과 일과 모든 부처님의 선근을 수희하는 복덕에 갖은 심상(心相)을 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게 되니, 이것을 회향이라고 부르지는 못합니다.
014_1104_c_14L若諸菩薩不久行六波羅不多供養諸佛不種善根不與善知識相隨不善學自相空法是諸菩是諸緣是諸事諸佛諸善根隨喜福德諸心取相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不名迴向
수보리여,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의 이치 내지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이치, 이른바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를 새로이 배우는 보살들에게는 설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보살은 그가 지닌 조그마한 믿음의 즐거움과 공경과 청정한 마음 등을 모두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014_1104_c_19L須菩提如是般若波羅蜜義乃至一切種智義——所謂內空乃至無法有法空不應爲新學菩薩說何以故是菩薩所有少許信樂恭敬淸淨心皆亡失
014_1105_a_01L당연히 아비발치(阿鞞跋致) 보살마하살 앞에서 설명해야 합니다. 혹은 어떤 이가 선지식의 수호를 받고 오래도록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모든 선근을 심었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의 이치 내지는 일체종지의 이치인 이른바 내공에서 무법유법공까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 법을 들어도 마음이 침몰하지 않으며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겁내지도 않습니다.
014_1104_c_23L當在阿鞞跋致菩薩摩訶薩前說若有爲善知識所護若久供養諸佛種諸善根應爲是人說如是般若波羅蜜義乃至一切種智義——所謂內空乃至無法有法空是人聞是法不沒不驚不畏不怖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수희하는 복덕을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나니, 이른바 보살은 마음으로써 수희하는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014_1105_a_05L菩提菩薩摩訶薩隨喜福德應如是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所謂菩薩用心隨喜功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마음은 다하여 없어지고 변하여 떠나며, 이 반연과 이 일과 이 모든 선근도 또한 다하여 없어지고 변하여 떠납니다. 이런 가운데서 어떤 것이 수희하는 마음이고 어떤 것이 모든 반연이며, 어떤 것이 모든 일이고 어떤 것이 모든 선근이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수희회향하겠습니까.
두 마음은 함께 하지 않으며, 이 심성도 또한 회향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니 보살은 어떤 수희심으로 아뇩다라삼먁보리에 회향하겠습니까.
014_1105_a_09L是心盡是緣是事是諸善根亦盡是中何等是隨喜心何等是諸緣何等是諸事等是諸善根隨喜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二心不俱是心性亦不可得迴向菩薩云何隨喜心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이 알면, 이 반야바라밀에는 어떠한 법도 없고 나아가 단바라밀에도 어떠한 법이 없으며, 물질[色]에도 어떠한 법이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도 어떠한 법이 없습니다.
014_1105_a_15L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如是知是般若波羅蜜無有法乃至檀波羅蜜亦無有法色無有法識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無有法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수희하는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며, 이와 같이 회향할 수 있으면 이것을 바로 수희하는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014_1105_a_19L菩薩摩訶薩應如是隨喜功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能如是迴向是名隨喜功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4_1105_b_01L【논】해석한다. 미륵은 생각하기를 ‘모든 법은 매우 깊어서 수희하는 마음도 미묘하다. 이른바 모든 법 모양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수희하는 마음으로 최상의 도에 회향하는 이런 일이야말로 매우 어렵다. 범부의 사람들은 마음이 거칠어서 이런 법을 행할 수 없다.’고 했다.
014_1105_a_22L【論】釋曰彌勒意以諸法甚深隨喜心微所謂不壞諸法相而隨喜心迴向無上道是事甚難凡夫人心剛强不能行是法
이 때문에 미륵은 말하기를 “만일 수행하는 이로서 오랜 동안 6바라밀을 닦은 이라면 모든 공덕이 깊고 두껍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다. 이른바 능히 믿고 능히 행하면서 모든 부처님을 많이 공양하고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공덕을 쌓았고 번뇌[結使]가 꺾이고 줄어들어 그 마음이 부드러우니, 이것이 바로 전생의 인연이다. 금생에는 좋은 스승과 좋은 동학(同學)을 얻고 또한 스스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공을 배우는 교묘한 방편 때문에 이런 공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
014_1105_b_03L是故彌勒答言若行者久修六波羅蜜諸功德深厚故不動所謂能信多供養諸佛種善根故集無量無邊阿僧祇功德結使折損其心柔軟此是先世因緣今世得好師好同學亦自學諸法實相空巧方便故不著是空
이와 같은 갖가지 한량없는 인연 때문에 모든 법은 비록 모양이 없다 하더라도 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최상의 도에 회향할 수 있다.
비유하면 쇠가 비록 단단하기는 하나 이글거리는 화로에 넣으면 부드러워져서 뜻대로 어떤 그릇이라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살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오래도록 6바라밀을 행하고 선지식의 수호를 받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과거 모든 부처님의 모든 반연과 모든 일과 모든 선근 가운데서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서도 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모양이 없는 것으로써 최상의 도에 회향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014_1105_b_09L如是等種種無量因緣故諸法雖無相而能起隨喜心迴向無上道如鐵雖堅䩕入鑪則柔軟隨作何器菩薩心亦如是久行六波羅蜜善知識所護故其心調柔過去諸佛諸緣諸事諸善根中不取相能起隨喜心用無相迴向無上道
‘모양이 없다.’ 함은, 둘이 아니고 둘이 아닌 것도 아니며, 나아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 등이니, 위와 어긋난다면 이것을 바로 회향할 수 없다고 한다.
014_1105_b_15L無相者能用不二非不二乃至不生不滅等與上相違者是名不能迴向
미륵은 수보리가 공에 대하여 말하기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하기를 “반야바라밀을 수희하는 이와 같은 이치는, 새로 배우는 보살 앞에서는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복덕과 선근이 조금밖에 없는 이라면 이 필경공의 법을 듣고 곧 공에 집착하면서 ‘만일 온갖 법이 필경공이어서 아무것도 없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복덕을 짓겠느냐’고 하면서, 곧 전업(前業)을 망실한다.
014_1105_b_17L彌勒知須菩提樂說空故語言如是般若波羅蜜隨喜不應新學菩薩前說何以故若有少福德善根者聞是畢竟空法卽著作是念若一切法畢竟空無所有者我何爲作福德則忘失前業
014_1105_c_01L 이 때문에 새로 발심한 보살에게는 먼저 모양을 취하면서 수희하는 일을 가르치고, 점차로 방편의 힘을 얻으면 그제야 모양이 없는 수희를 행하게 할 수 있다. 비유하건대 마치 어린 새의 날개가 아직 완전히 나지 못했으면 억지로 높이 날게 할 수는 없고 깃털이 온전히 다 난 뒤에야 멀리 날게 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014_1105_b_22L以是故新發意菩薩先敎取相隨喜漸得方便力爾乃能行無相隨喜譬如鳥子羽翼未成不可逼令高翔六翮成就則能遠飛
아비발치 보살은 법위(法位)에 들어가고 법인(法忍)을 얻어 능히 믿고 능히 행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는 설명할 수 있으며, 또 오래도록 6바라밀을 행하고 선지식을 따랐으며 안의 복덕과 바깥 인연의 힘이 서로 돕는 이면 아비발치가 아니라 하더라도 능히 믿고 능히 행하게 된다.
014_1105_c_03L阿鞞跋致菩薩入法位法忍能信能行故可爲說若有久行六波羅蜜與善知識相隨內福德因緣力助雖非阿鞞跋致能信能行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이것을 들으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기뻐져서 믿고 받아들이니,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이가 좋은 음식을 얻은 것과 같다. 또한 몹시 더울 적에 시원함을 만난 것 같고 아주 추울 때에 따뜻함을 얻는 것과 같아서 그의 마음이 좋아지고 기뻐지는 것이다.
014_1105_c_06L是二種人聞是心淸淨歡喜信受久飢渴者得好飮食如大熱得涼寒得溫其心愛樂歡喜
이 두 보살도 그와 같아서 이 모양이 없는 지혜를 얻으면 ‘나는 이 지혜로 인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거늘 하물며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있겠는가. 두려움은 바로 나의 이 마음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런 법 안에는 모든 법의 모양조차도 오히려 공하거늘 하물며 나가 있으면서 결정코 모든 법의 모양을 취하겠으며, 온갖 법이 모양 없음을 듣고서 놀라거나 두려워하겠는가.’라고 생각한다.
014_1105_c_09L是二菩薩亦如是得是無相智慧作是念我因是智慧能度無量衆生何況有驚懼恐怖從我心中出是法中諸法相尚空何況有我而決定取諸法相一切法無相則生驚懼
여기까지 수희한다는 의미 가운데 체성에 관하여 설명해 마쳤다. 뒤에는 다시 갖가지 다양한 문(門)으로 수희의 양상[事]을 해석하겠다.
014_1105_c_14L是說隨喜義體竟後當更以種種異門釋上事
또 보살은 수보리에게 말하기를 “이 마음으로 최상의 도에 회향하되 이 마음은 생각마다 다해 사라지고 변해 없어져서 머무르지 않는다. 이 모든 반연과 일, 즉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선근과 모든 부처님의 모든 반연과 일은 오래전에 이미 사라졌으며 지금에 와서는 수희하는 마음까지도 사라지니, 이미 사라진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경에서 말씀하기를 “이 마음으로 회향하되, 이 마음은 곧 다하여 없어진다.”고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세에 들어가고, 모든 법의 실상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마음과 이 반연과 이 일과 이 선근 등에 분별함이 없다. 만일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이것을 바른 회향이라 한다.
014_1105_c_15L須菩提菩薩應如是思惟用是心迴向無上道是心念念盡有住時是諸緣所謂過去諸佛及諸善根諸佛等諸緣事久已滅隨喜心今滅旣滅無異是故經中說用是心迴向是心卽盡滅如是等入過去世故入諸法實相故無有分別是心是緣是事是善根等若能如是迴向是爲正迴向
014_1106_a_01L또 일시에 두 개의 마음은 화합하지 않으므로 수희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보리의 마음이 없다. 온갖 마음의 모양은 공하므로 모양을 취하여 회향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이 공하여 일정한 법이 없는 줄 알기 때문이니, 마치 반야바라밀이 그러한 것처럼 온갖 법 내지는 최상의 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때에 법애(法愛)를 끊고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서 공에 대하여 다툼이 없나니, 이것을 보살의 바른 회향이라 한다.
014_1106_a_01L復次一時二心不和合喜心時無菩提心一切心相畢竟空不可以取相迴向何以故菩薩知般若波羅蜜空無有定法如般若波羅一切法乃至無上道亦如是是時斷法愛捨著心於空無諍是名菩薩正迴向
【경】그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새로 발심한 보살이 이런 일을 들으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수보리여, 어떻게 새로 뜻을 낸 보살은 모든 선근을 지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까? 또 어떻게 수희하는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까?”
014_1106_a_07L【經】爾時釋提桓因語須菩提新發意菩薩聞是事將無驚懼怖畏須菩提何新發意菩薩作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復云何隨喜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했다.
“만일 새로 발심한 보살이라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이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요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단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합니다.
014_1106_a_12L須菩提語釋提桓因若新發意菩薩行般若波羅蜜不受是般若波羅蜜以無所得故無相故乃至檀波羅蜜亦如是
내공을 많이 믿고 이해하며, 나아가 무법유법공도 많이 믿고 이해하며, 4념처 내지는 18불공법을 많이 믿고 이해하면서 항상 선지식을 따르며, 이 선지식은 그에게 6바라밀의 뜻을 해설하여 열어 보이고 분별하며 이와 같이 가르쳐 항상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게 할 것입니다.
014_1106_a_15L多信解內空乃至多信解無法有法多信解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常與善知識相隨是善知識爲說六波羅蜜義開示分別如是敎授令常不離般若波羅蜜
014_1106_b_01L이리하여 보살의 법위(法位)를 얻기에 이르기까지 끝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습니다. 나아가 단바라밀을 여의지 않고 4념처 내지는 18불공법을 여의지 않도록 하며 또한 악마의 일도 가르쳐 주니, 갖가지 악마의 일을 들은 뒤에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보살은 또한 항상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보살의 법위를 얻기까지 그 사이에 선근을 심으며, 이 선근 때문에 보살의 집에 태어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이 선근을 여의지 않습니다.
014_1106_a_20L乃至得入菩薩法終不離般若波羅蜜乃至不離檀波羅蜜不離四念處乃至十八不共亦敎語魔事聞種種魔事已不增不減何以故是菩薩摩訶薩不受一切法故是菩薩亦常不離諸佛乃至得菩薩位於中種善根以是善根故生菩薩家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終不離是善根
또 새로 뜻을 낸 보살마하살은 과거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세계 가운데에서 모든 부처님이 생사의 길을 끊고 모든 쓸모없는 이론의 길을 끊어서 무거운 짐을 모두 버리고 취락(聚落)의 가시나무2)를 없애 모든 유결(有結)을 끊고 바른 지혜로 해탈하였으며, 그리고 제자들이 지은 공덕으로서 그 가운데 큰 성바지인 찰리(刹利)ㆍ바라문(婆羅門)과 거사(居士)의 대가와 그리고 사천왕천 내지는 정거천(淨居天)이 심은 선근의 이 모두를 한데 합쳐 헤아려서는 가장 으뜸가고 첫째가며 가장 묘하고 보다 높은 것이 없어 견줄 데 없는 수희하는 마음으로써 수희하며, 수희하고 난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만 합니다.”
014_1106_b_05L復次新發意菩薩摩訶薩於過去十方無量無邊阿僧祇世界中諸佛斷生死道斷諸戲論道盡棄重擔滅聚落刺斷諸有結正智得解脫及弟子所作功德於中若剎利大姓婆羅門大姓居士大家四天王天乃至淨居天所種善根——是一切和合稱量以隨喜心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者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그때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만일 새로 발심한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의 모든 선근을 염(念)하면서 수희하는 공덕이 가장 으뜸가고 첫째가며 가장 묘하고 보다 높은 것이 없어 견줄 데 없으며, 수희한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한다면, 어떻게 보살은 생각[想]의 뒤바뀜과 마음[心]의 뒤바뀜과 소견[見]의 뒤바뀜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014_1106_b_14L爾時彌勒菩薩語須菩提若新發意菩薩摩訶薩念諸佛及弟子諸善根隨喜功德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者隨喜已應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云何菩薩不墮想顚倒顚倒見顚倒
수보리가 말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과 승가를 염한다면 이 가운데서 부처님이라는 생각도 내지 않고 승가라는 생각도 내지 않고 선근이라는 생각도 없이 이런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이런 마음에 대해서도 또한 심상(心想)을 내지 않습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회향하면 생각이 뒤바뀌거나 마음이 뒤바뀌거나 소견이 뒤바뀌는 일이 없습니다.
014_1106_b_19L須菩提言若菩薩摩訶薩念諸佛及僧於中不生佛想不生僧想無善根想用是心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心中亦不生心想菩薩如是迴向想不顚倒心不顚倒見不顚倒
014_1106_c_01L만일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과 승가의 선근을 염하며 모양을 취하고 모양을 취한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보살의 이와 같은 것을 일컬어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014_1106_c_01L若菩薩摩訶薩念諸佛及僧善根取相取相已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菩薩如是名爲想顚倒心顚倒見顚倒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런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과 승가의 모든 선근을 염하면 이 마음은 염하는 순간 곧 다해 없어짐[盡滅]을 알게 됩니다. 만일 다해 없어지는 그런 법이라면 회향할 수도 없으니, 작용하는 회향의 마음도 또한 다해 없어지는 모양이며, 회향할 처소나 법도 또한 그러한 모양입니다. 만일 이러한 모양으로 회향한다면 이것을 바른 회향[正迴向]이라 부르니, 삿된 회향이 아닙니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합니다.
014_1106_c_04L若菩薩摩訶薩用是心念諸佛及僧諸善根是心念時知盡滅若盡滅是法不可得迴向用迴向心亦是盡滅相所迴向處法亦如是相若如是迴向是名正迴向非邪迴向菩薩摩訶薩應如是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 보살마하살이 과거 모든 부처님의 선근 및 제자들의 선근과 이 가운데에서 범부들이 법을 듣고 심은 선근, 혹은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 및 마후라가 등이 법을 듣고 심은 선근, 혹은 큰 성바지인 찰리와 바라문 그리고 거사의 큰 집안과 사천왕천 내지는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등이 법을 듣고 심은 선근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이 등 이 온갖 복덕을 한데 합쳐 헤아리건대 수희의 공덕이 가장 으뜸가고 첫째가며 가장 묘하고 보다 위가 없어 견줄 데가 없으니,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014_1106_c_10L復次若菩薩摩訶薩過去諸佛善根及弟子善根是中凡夫人聞法種善根若諸天夜叉揵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睺羅伽聞法種善根若剎利大姓婆羅門大姓居士大家四天王天乃至阿迦尼咤天聞法種善根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是一切福德和合稱量隨喜功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者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때 보살이 만일 이와 같이 이 모든 법은 다해 없어져서 회향할 처소나 법이 자성공(自性空)인 줄 알면서 이렇게 회향할 수 있다면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참된 회향이라고 합니다.
014_1106_c_19L是時菩薩若如是知是諸法盡滅所迴向處法亦自性空能如是迴向是名眞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이 하면 회향하는 어떠한 법도 없음을 알게 되나니, 왜냐하면 온갖 법은 자성(自性)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회향하면 이것을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바르게 회향한다고 합니다.
014_1106_c_22L復次若菩薩如是知無有法能迴向法何以故一切法自性空故若如是迴向是名正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4_1107_a_01L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내지는 단바라밀을 행하면 생각의 뒤바뀜과 마음의 뒤바뀜과 소견의 뒤바뀜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이 회향에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모든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는 마음의 처소조차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바로 보살마하살의 위없는 회향이라 합니다.
014_1107_a_02L如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乃至檀波羅蜜不墮想顚倒心顚倒見顚倒何以故菩薩不著是迴向亦不見以諸善根迴向菩提心處是名菩薩摩訶薩無上迴向
【논】【문】“새로 발심한 보살이 이 일을 들으면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이런 뜻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이미 묻고 대답했거늘 지금 또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가?
014_1107_a_07L【論】問曰新發意菩薩聞是事將無怖畏驚懼者耶此義先已問答今何以復問
【답】위에서 미륵이 비록 수보리에게 말했다 하더라도 새로 배우는 이에게는 설하지 말아야 하고 아비발치와 오랫동안 수행한 이에게만 말해야 된다고 했나니,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들으면 믿고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바르게 회향하는 인연을 말하면서도 오히려 공한 법을 말했으므로 제석은 의심하기를 “이 대중 안에는 새로 뜻을 낸 이들이 있거늘 어떻게 다시 말하는데 두려워하지 않게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014_1107_a_09L答曰上彌勒雖語須菩提應爲新學說可爲阿鞞跋致及久行者說是二種人聞能信行已說正迴向因緣而猶說空法是故帝釋疑是衆中有新發意者云何更說使不恐怖
수보리는 이 미륵의 설명을 완성시키고 또 새로 발심한 보살들로 하여금 바르게 회향할 수 있게 하려고 제석에게 대답하기를 “만일 새로 뜻을 낸 보살이 비록 오랫동안 6바라밀을 행하지 못했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근기가 예리하고 선지식을 만난 이라면 이 두 가지 인연으로 바르게 회향할 수 있다.”라고 한다.
014_1107_a_14L須菩提欲成彌勒所說欲令新發意者應正迴向故答帝釋若新發意菩薩雖不久行六波羅蜜不供養諸佛而以利根得善知識是二因緣故堪任正迴向
그러므로 제석에게 말하기를 “새로 뜻을 낸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이 반야를 받아들이지 않음은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요, 필경 공이기 때문이니, 반야바라밀은 얻을 수도 없고 집착할 수도 없으며, 나아가 단바라밀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한다.
014_1107_a_18L是故語帝釋新發意菩薩行般若波羅蜜不受是般若以無所得故畢竟空故般若波羅蜜亦不得亦不著乃至檀波羅蜜亦如
‘내공을 많이 믿고 이해한다.’ 함은, 항상 내공삼매(內空三昧)를 닦아 즐기고 관(觀)에 들어가기 때문에 믿고 이해하는 것이며, 나아가 18불공법을 믿고 이해하는 것도 그와 같다.
‘선지식’의 모양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1107_a_22L多信解內空常修樂入觀內空三昧故信解乃至十八不共法多信解亦如是善知識相如先說
014_1107_b_01L이 가운데서는 다만 6바라밀을 따른다는 이치를 설명했을 뿐이다. 이 이치를 들은 뒤에는 항상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고, 나아가 보살의 법위에 들게 되나니, 어떤 이는 오랫동안 수행하여 보살의 법위에 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새로 발심하면서 보살의 법위에 들기도 한다.
014_1107_b_01L此中但能隨六波羅蜜義說聞是義已不離般若波羅蜜乃至得入菩薩法位——有久行入菩薩位有新發意入菩薩位
또 이 새로 발심한 보살에게 선지식이 악마의 일을 말해 주면 악마의 일을 듣고 나서도 더하지 않고 덜하지도 않나니, 그것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잘 닦고 익히기 때문이다.
만일 악마가 파괴하려 한다면, 그것은 곧 공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이란 파괴할 것이 없는 것인데 만일 없는 것을 있다고 보탠다면[增益] 그것은 마치 허깨비나 꿈같은 일이거늘 무슨 보탤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한 것이다.
014_1107_b_05L復次是新發意菩薩善知識爲說魔事聞魔事已不增不減以善修習諸法實相故若魔欲破爲欲破空空則無破若有增益如幻如夢何所增益是故說不增不減
이런 인연 때문에 항상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언제나 보살의 집에 태어나며 세상마다 선근을 여의지 않고 최상의 도에 이르는 것이니, 새로 뜻을 낸 이런 보살은 이러한 인연을 얻게 되므로 오래전에 뜻을 낸 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014_1107_b_09L是因緣故不離諸佛常生菩薩家世世不離善根乃至無上道是新發意菩薩得如是因緣與久發意無異
또 수희하고 회향한다 함은, 이른바 새로 발심한 보살로서는 과거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 안의 모든 부처님에게서 길[道]을 끊은 이이니, 생사의 길을 끊고 무여열반에 들었고 모든 쓸모없는 이론이 끊어졌기 때문에 “모든 쓸모없는 이론을 없앴다.”고 한다. 공공(空空) 등의 삼매로써 8성도분의 길을 버렸기 때문에 “길이 다한다[道盡]”고 한다.
014_1107_b_12L復次隨喜迴所謂新發意菩薩於過去十方無量阿僧祇世界中諸佛斷道者斷生死道入無餘涅槃諸戲論斷故言滅諸戲論以空空等三昧捨八聖道分故言道盡
5중(衆)은 고뇌를 생기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무거운 짐이다. 5중에서 두 가지 버릴 것[捨]이 있으니, 첫째는 유여열반(有餘涅槃)에서 5중의 인연인 모든 번뇌를 버려야 하고, 둘째는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5중의 결과를 버려야 한다.
014_1107_b_17L五衆能生苦惱故是重擔五衆有二種捨一者有餘涅槃中五衆因緣——諸煩惱二者入無餘涅槃捨五衆果
온갖 속인의 집이 있는 곳을 취락이라 한다. 출가한 사람은 이 속인들의 집을 의지하여 살아가는데 속인의 집에는 5욕의 가시가 있다. 음식을 위하여 나쁜 가시가 있는 과일 숲에 들어와서 과일을 취하기 때문에 가시에 찔리게 되는 것이다.
014_1107_b_20L一切白衣舍名爲聚落出家人依白衣舍活而白衣舍有五欲刺爲食故來入惡刺果林以取果爲刺所刺
014_1107_c_01L마치 사람이 나막신을 신고 가시를 밟으면 그 가시들이 부러지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께서는 선정과 지혜의 신을 신고 5욕의 가시를 부러지게 하므로 5하분결[下五分結]을 없앴다 하고 유(有)의 분결이 다하면 5상분결[上分五結]을 끊었다고 한다.
014_1107_b_23L如人著木屐踐刺刺則摧折如是諸佛以禪定智慧屐摧五欲名滅斷下五分結有分結盡名斷上分五結
모든 법의 실상인 금강삼매(金剛三昧)와 상응하는 지혜로 온갖 번뇌와 습기를 끊기 때문에 “바른 지혜로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등의 모두가 과거 모든 부처님을 찬탄한 것이다.
014_1107_c_03L諸法實相金剛三昧#相應智慧斷一切煩惱及習故言正智解脫如是等皆名讚歎過去諸佛
‘제자들이 짓는 공덕’이라 함은, 부처님의 제자에는 세 가지가 있어서 보살과 벽지불과 성문이며, 찰리의 큰 성바지 내지는 정거천은 이 가운데서 선근을 심는 이들이다. 이들은 네 가지 복전(福田)이니, 이로 인하여 복덕을 심는 처소요 이 복덕을 한데 합쳐 헤아리면서 가장 으뜸가고 견줄 데 없는 수희하는 마음으로 최상의 도에 회향하는 것이다.
014_1107_c_05L弟子所作功德佛弟子有三種辟支佛聲聞剎利大姓乃至淨居是中種善根是四種福田因是種福德處是福德和合稱量隨喜心最上無與等迴向無上道
이 회향하는 마음은 바른 것이요 삿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지금 미륵이 수보리에게 묻기를 “만일 새로 뜻을 낸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염하면서 최상의 도에 회향한다면 어떻게 뒤바뀜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수보리는 대답하기를 “그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으로써 모든 부처님과 제자에 대하여 부처님이라는 생각과 제자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모든 선근 가운데서도 선근이란 생각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014_1107_c_10L是迴向心作正非邪所以者何今彌勒問須菩若新發意菩薩念諸佛等功德向無上道云何不墮顚倒須菩提答若是菩薩以般若波羅蜜方便力故於諸佛不生佛想及弟子想諸善根中不生善根想
온갖 모든 법은 화합으로부터 생기니,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법이 없는 것을 바로 부처님이라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 등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이 회향하는 마음도 또한 회향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뒤바뀜에 떨어지지 않는다. 위와 반대라면 곧 뒤바뀜에 떨어질 것이다.
014_1107_c_16L一切法從和合生無有自性故無有定法名爲佛是故不生佛等想是迴向心亦不生心想是故菩薩不墮顚倒與上相違卽墮顚倒
또 보살이 이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선근을 염하면 이 마음이 다할 때에 곧 다하는 줄을 알 것이다. 그런데 다하는 마음으로는 회향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변하고 상실하고 파괴되기 때문이다.
014_1107_c_19L復次菩薩以是心念諸佛等及諸善是心盡時卽知盡盡心不得迴向何以故變失滅壞故
014_1108_a_01L이 마음은 또한 무상(無常)한 문에 들어가 법성(法性) 가운데에 이르는데 법성 가운데서는 “이것은 마음이다. 이것은 마음이 아니다. 이것은 부처님이다. 이것은 제자이다. 이것은 선근이다. 이것은 최상의 도이다.”라고 분별함이 없나니, 회향하는 마음과 회향하는 곳이 다하는 모양도 또한 그와 같다.
014_1107_c_22L是心亦入無常到法性中法性中無有分別是心是非心是佛是弟子是善根是無上迴向心迴向處盡相亦如是
처음 마음[初心]의 이것은 과거 모든 부처님 등을 기억하면서 수희하는 공덕이요, 나중 마음[後心]의 이것은 바로 회향하는 마음이다. 만일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이것을 바른 회향이라 한다.
014_1108_a_02L初心是憶念過去諸佛等隨喜功德後心是迴向心若如是迴向是名正迴向
【문】처음 마음과 나중 마음은 바로 나고 없어지는 모양이어서 무상할 수 있거니와 회향할 처소의 법인 이 최상의 도는 미래 세상에 있거늘 어떻게 “다해 없어진다.” 하는가?
014_1108_a_04L問曰初心後心是生滅相可無常迴向處法是無上道在未來世中何言盡滅
【답】그대는 내가 먼저 대답한 것을 듣지 못했구나. 무상한 문에 들어가 법성 안에 이르면 이 가운데서는 “다하여 이것은 무상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다만 “모든 법의 실상이 다한다.”고 말할 뿐이다.
먼저도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3세를 벗어나고 삼계를 뛰어나서 받아들이는 모양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회향할 수 있으면 이것을 바르게 회향한다고 한다.
014_1108_a_07L答曰汝不聞我先答入無常門到法性中此中不說盡是無常但說諸法實相是盡先亦說阿耨多羅三藐三菩提出三世過三界無受能如是迴向者是爲正迴向
또 바른 회향도 아니고 삿된 회향도 아니다. 이른바 보살은 과거 모든 부처님의 선근 등에서 보다 위가 없어 견줄 데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를 최상의 도에 회향한다 함이니, 만일 보살이 이 일은 모두 다해 없어짐을 안다면 회향하는 처소의 법도 자성이 공한 줄을 아나니, 없어짐을 알고 공을 아는 것이 바로 참된 회향이다.
014_1108_a_11L復次非正非邪迴向所謂菩薩於過去諸佛善根等乃至無上無與等迴向無上道若菩薩知是事皆盡滅知迴向處法亦自性空能知滅知空眞迴
만일 과거의 법이 무상하면 무상하기 때문에 자성이 공한 법 중에 회향할 수도 없고, 만일 과거의 법이 공하면 공하기 때문에 자성이 공한 법 중에 회향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은 지혜로써 회향하면 이것을 곧 바르게 회향한다고 한다.
014_1108_a_16L若過去法無常無常故不可迴向自性空法中若過去法空空故不可迴向自性空法中用如是智慧迴向是名正迴向
또 만일 보살이 “온갖 법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므로 자력으로 상주(常住)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법상(法相)이 동요하지 않거늘 하물며 짓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짓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온갖 법 가운데는 회향할 수 있는 어떤 법도 없다.”고 알면 이것을 곧 바르게 회향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비록 반야바라밀 등 모든 착한 법을 행한다 하더라도 역시 뒤바뀜에 떨어지지 않나니,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014_1108_a_19L復次若菩薩知一切法因緣生故無自力常住自法相不動況能有所作無所作故一切法中無有法能迴向法是名正迴向如是菩薩雖行般若波羅蜜等諸善法亦不墮顚倒一切法不著故
014_1108_b_01L【경】또한 보살마하살이 일으킨 복덕이 5중(衆)과 12입(入)과 18계(界)를 여읜 줄을 안다면 반야바라밀도 상(相)을 여읜 것이고 나아가 단바라밀도 상을 여읜 것이며, 내공 내지는 무법유법공도 상을 여읜 것이며, 4념처 내지는 18불공법도 상을 여읜 것인 줄 아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수희하는 마음으로 일으키는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014_1108_b_01L【經】復次若菩薩摩訶薩知所起福德離五衆十二入八界亦知般若波羅蜜是離相乃至檀波羅蜜是離相內空乃至無法有法空是離相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是離相如是菩薩摩訶薩隨喜心起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한 보살마하살이 수희하는 복덕은 수희하는 복덕의 자성을 여읜 줄을 알면, 역시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부처님의 성품을 여의고 모든 선근도 선근의 성품을 여의며, 보리의 마음도 보리의 마음의 성품을 여의고 회향하는 것도 회향하는 성품을 여의며, 보살도 보살의 성품을 여의고 반야바라밀도 반야바라밀의 성품을 여의며, 선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바라밀도 단바라밀의 성품을 여의고, 나아가 18불공법은 18불공법의 성품을 여읜 줄 아는 것입니다.
014_1108_b_07L復次若菩薩摩訶薩隨喜福德隨喜福德自性離亦知諸佛離佛性諸善根亦離善根性菩提心菩提心性亦離迴向迴向性亦離菩薩菩薩性亦離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性亦離禪波羅蜜毘梨耶波羅蜜羼提波羅蜜尸羅波羅蜜檀波羅蜜檀波羅蜜性亦離乃至十八不共法十八不共法性亦離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여읜 모양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니, 이것을 바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수희하는 복덕을 낸다고 합니다.
014_1108_b_16L菩薩摩訶薩應如是行離相般若波羅蜜是名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中生隨喜福德
또 보살마하살이 과거에 멸도하신 모든 부처님의 모든 선근을 회향하려 한다면 이와 같이 회향해야 합니다. 또한 생각하기를 ‘마치 모든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모양과 같이 모든 선근의 모양도 그와 같고 멸도한 법의 모양도 그와 같으며, 내가 마음으로 회향하는 이 마음의 모양도 그와 같다.’고 해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이 회향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뀐 데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014_1108_b_18L復次菩薩摩訶薩諸過去滅度佛諸善根若欲迴向應如是迴向作是念如諸佛滅度相諸善根相亦如是滅度法相亦如是我用心迴向是心相亦如若能如是迴向當知是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墮想顚倒心顚見顚倒
014_1108_c_01L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부처님의 선근의 모양을 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면 이것은 회향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선근은 모양이 있는 인연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인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모양을 취한다면 그것은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뀐 데에 떨어집니다.
014_1108_c_02L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取諸佛善根相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不名爲迴向何以諸過去佛及善根非相緣非無相若菩薩摩訶薩作如是取相是不名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菩薩摩訶薩墮想顚倒心顚倒見顚倒
만일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선근과 모든 마음에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 이것을 일컬어 모든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뀐 데에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014_1108_c_09L若菩薩摩訶薩諸佛及諸善根及諸心不取相是名以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菩薩摩訶薩不墮想顚倒心顚倒見顚倒
그때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보살마하살이 모든 선근에 대하여 모양을 취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할 수 있습니까?”
014_1108_c_12L彌勒菩薩問須菩提云何菩薩摩訶薩於諸善根不取相能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가 말했다.
“이런 일 때문에도 보살마하살이 배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알아야 합니다.
014_1108_c_15L須菩提言以是事當知菩薩摩訶薩所學般若波羅蜜中應有般若波羅蜜方便力
만일 이 복덕이 반야바라밀을 여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는 모든 부처님도 얻을 수 없고, 모든 선근도 얻을 수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014_1108_c_17L若是福德離般若波羅蜜不得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般若波羅蜜中諸佛不可得諸善根不可得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亦不可
014_1109_a_01L이 가운데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생각하기를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의 몸은 모두가 소멸했고 모든 선근도 소멸했다. 내가 이제 모양을 취하여 모든 부처님의 모든 선근과 모든 마음을 분별하고 이 취상(取相)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 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고 해야 합니다.
014_1108_c_22L於是中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如是思惟諸過去佛及弟子身皆滅諸善根亦滅我今取相分別諸佛諸善根及諸心如是取相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諸佛所不許
왜냐하면 모양을 취하는 것은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니, 이른바 과거의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모양을 취하여 분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모든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고자 하면 얻는 것이 있지 않아야 하고 모양을 취하지 않아야 되나니, 이와 같이 해서 회향하는 것입니다.
014_1109_a_03L何以故取相有所得故所謂於過去諸佛取相分別是故菩薩摩訶薩欲以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不應有得不應取相如是迴向
만일 얻는 것이 있고 모양을 취하여 회향한다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큰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회향은 독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에 독이 섞인 것과 같으니, 비록 좋은 빛깔과 좋은 향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탐을 낸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독이 섞여 있으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기뻐하고 그 좋은 빛깔과 향기가 맛있다고 탐을 내어 먹으려고 하지만, 그 밥이 소화될 때는 죽거나 죽는 것과 다름이 없는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014_1109_a_07L有得取相迴向諸佛不說有大利益以故是迴向雜毒故譬如美食雜毒雖有好色好香爲人所貪而雜毒癡之人食之歡喜貪其好色香美可飯欲消時受若死若死等苦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자세히 살펴 받아들이지도 않고 자세히 살펴 모양을 취하지도 않으며, 자세히 살펴 외우거나 읽지도 않고 그 안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에게 가르치기를
014_1109_a_12L若善男子善女人不諦受不諦取相不諦誦讀不解中義如是敎他言
‘그대 선남자는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해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무여열반에 드시고 그 법이 다하도록 그 중간에 반야바라밀을 행하실 때에 지으신 모든 선근과 선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바라밀을 행하실 적에 지으신 모든 선근과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ㆍ4념처(念處) 내지는 8성도분을 닦고 부처님의 10력(力) 내지는 18불공법을 닦으실 때에 지으신 모든 선근과
014_1109_a_14L汝善男過去未來現在十方諸佛從初發意已來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入無餘涅槃乃至法盡於其中閒般若波羅蜜時作諸善根行禪波羅毘梨耶波羅蜜羼提波羅蜜尸羅波羅蜜檀波羅蜜時作諸善根修四四無量心四無色定四念處乃至八聖道分佛十力乃至修十八不共法時作諸善根
014_1109_b_01L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면서 지으신 모든 선근 및 모든 부처님의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과 일체종지ㆍ착오가 없는 법ㆍ항상 버리는 행[常捨行]으로 지으신 모든 선근과 모든 제자들이 이 가운데서 심어 놓은 모든 선근 및 모든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장차 벽지불이 되어 짓는 모든 선근과 이 가운데서 모든 하늘ㆍ용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이 지은 모든 선근이 있으니, 이 모든 복덕을 헤아리고 한데 합쳐 수희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십시오.’라고 가르친다면, 이런 회향은 모양을 취함으로써 법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독이 섞인 음식과 같습니다.
014_1109_a_23L淨佛世界成就衆生作諸善根及諸佛戒衆定衆慧衆解脫解脫知見衆一切種智無錯謬法常捨行及諸弟子是中所種善根諸佛所記當作辟支佛是中諸天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等所種善根——是諸福德稱量和合隨喜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迴向以取相得法故如雜毒食
법을 얻는 자에게 결코 바른 회향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을 얻는 것은 독이 섞인 것이어서 모양이 있고 움직임이 있고 쓸모없는 이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법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014_1109_b_08L得法者終無正迴向何以故是得法雜毒有相有戲論若如是迴向則爲謗佛隨佛敎不隨法說
이 선남자와 선여인은 부처님의 도를 구하면서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곧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해서부터 법이 다하기까지이고, 모든 제자들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지은 선근 내지는 일체종지를 닦기까지이니, 그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014_1109_b_11L是善男子善女人求佛道應如是學過去未來現在諸佛從初發意乃至法盡及弟子行般若波羅蜜時作善根乃至修一切種如上說
어떻게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되 바르게 회향하느냐 하면, 부처님 도를 구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으로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지 않고자 한다면 그는 모든 복덕을 다음과 같이 회향해야만 합니다. 곧 “마치 모든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지혜로 이 모든 선근의 모양과 이 모든 선근의 성품을 아는 것과 같이 나도 이와 같이 수희하겠다. 마치 모든 부처님이 아는 것과 같이 나도 그처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겠다.”라고 해야 하니, 보살의 도를 구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이렇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014_1109_b_15L云何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正迴向有求佛道善男子善女人行般若波羅蜜不欲謗諸佛者諸福德應如是迴向如諸佛所知無上智慧是諸善根相是諸善根性我亦如是隨喜如諸佛所知亦如是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求菩薩道善男子善女人應如是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4_1109_c_01L만일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곧 부처님을 비방하지 않은 것이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이며 부처님 법의 말씀 그대로이니, 이 보살마하살의 회향에는 독이 섞여 있지 않습니다.”
014_1109_b_23L若如是迴則爲不謗佛如佛所敎如佛法說是菩薩摩訶薩迴向則無雜毒
【논】해석한다. ‘일으키는 복덕이 5중(衆)을 여읜다.’ 함은 앞에서는 다만 과거의 일을 말했을 뿐이요, 여기서는 자신이 직접 수희하는 복덕을 말한 것이다. 만일 이런 복덕 가운데에 5중과 12입(入)과 18계(界)가 없는 줄 알면 비록 반야바라밀 등의 모든 법을 행한다 하더라도 또한 공하여 모양을 여읜 줄을 아는 것이니, 이런 복덕을 바르게 회향한다고 한다.
014_1109_c_02L【論】釋曰所起福德離五衆者先但說過去事今說自起隨喜福德若知是福德中無五衆十二入十八界雖行般若波羅蜜等諸法亦知空離相如是福德名正迴向
또 만일 보살이 수희하는 복덕 가운데서 수희하는 복덕의 성품이 스스로 여읜 것을 알면, 모든 부처님과 선근 및 모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는 마음과 회향하는 마음과 보살의 반야바라밀 등의 모든 행하는 법은 자성이 공한 것을 아나니, 이것을 바른 회향이라 한다.
014_1109_c_07L復次若菩薩知隨喜福德中隨喜福德性自離諸佛及善根諸起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迴向菩薩般若波羅蜜等諸行法知自性空是名正迴向
‘수희하는 복덕’이라 함은 온갖 복덕의 모양을 통틀어 말하는 것[摠說]이며, 선근을 수희하고 복덕을 일으키는 것은 각각의 모양[別相]에 대한 설명이다.
보살이 자신의 연(緣)으로 구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라 한다. 이 보살이 수희하는 마음의 공덕의 과보로 다만 최상의 도를 구할 뿐이니, 이것을 회향하는 마음이라 한다.
014_1109_c_11L隨喜福德者㧾說一切福德相善根隨喜起福德是別相說菩薩自緣所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菩薩隨喜心功德果但求無上是名迴向心
수행하는 이가 5중 가운데서 임시로 이름을 붙여 보살이라 하며, 반야바라밀 등의 모든 법은 앞에서 설명한 뜻과 같다. 앞에서도 복덕 가운데서 5중을 여읜다고 설명했고 여기서도 복덕은 복덕의 자상이 공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014_1109_c_16L行者五衆中假名字爲菩薩般若波羅蜜等諸法如先義先說福德中離五衆今說福德德自相空
또 보살은 과거 부처님의 인연으로 생긴 복덕을 염하면서 이와 같이 회향해야 한다. 마치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무여열반에 드신 것이 모양도 없고 쓸모없는 이론도 없어 그 성품이 항상 적멸인 것처럼 이 복덕과 회향하는 마음도 그와 같나니, 이와 같이 회향하는 것을 바로 바른 회향이라 하며 뒤바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 한다.
014_1109_c_19L復次菩薩念過去佛因緣生福德應如是迴向如過去諸佛入無餘涅槃無相無戲論性常寂滅福德及迴向心亦如是如是迴向名正迴向不墮顚倒
014_1110_a_01L또 만일 보살이 과거 모든 부처님의 공덕에 대하여 모양을 취하고 분별하면서 회향하면 이것은 회향이라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양이 있다 하면 그것은 한쪽에 치우친 것이요, 모양이 없다 해도 그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쪽을 떠나 중도를 행하는 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실상이다.
014_1109_c_23L復次若菩薩於諸過去佛功德取相分別迴向是不名迴向何以故有相是一邊無相是一邊離是二邊行中道是諸佛實相
그러므로 ‘모든 과거의 부처님께서는 모양의 범주[數] 안에 떨어지지도 않고 모양이 없는 범주 안에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일 이와 같이 모양이란 범주를 취한다 하면 이것은 회향이라 하지 못하며, 곧 뒤바뀜에 떨어지는 것이라 한다. 위와 반대이면 뒤바뀜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014_1110_a_03L是故說諸過去佛不墮相數中不墮無相數中若如是取相數是不名迴則墮顚倒與上相違是爲不墮顚
이 일은 어렵기 때문에 미륵이 거듭 물은 것이니, 이른바 “온갖 법에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서 다시 회향할 수 있는가.”라고 한 것이다.
수보리는 이에 대하여 결정적인 답을 할 수 없었으니, 그 때문에 미륵에게 말하기를 “이런 일 때문에도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울 적에 방편의 힘을 구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014_1110_a_07L是事難故彌勒重問所謂一切法不取相而復能迴向須菩提是中不得決定答處是故語彌勒以是事故菩薩學般若波羅蜜求方便力
‘이 복덕은 반야바라밀을 여의고는 회향할 수 없다.’ 함은, 온갖 법 가운데서 하나의 법만이 진실이어서 속이지 않으니,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그것이다.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따르면서 속이지 않는 도(道)를 행해야 비로소 얻을 수가 있다.
014_1110_a_10L是福德離般若波羅蜜不得迴向者一切法中一法實而不誑所謂阿耨多羅三藐三菩提隨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行不誑道爾乃可得
‘속이지 않는 도[不誑道]’라 함은 곧 그것이 반야바라밀이니, 그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여의고는 이 복덕을 회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필경공이어서 복덕을 분별함이 없기 때문이니, 반야바라밀을 여의거나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거나 간에 회향할 수는 없다.
014_1110_a_14L不誑道者卽是般若波羅蜜是故說離般若波羅蜜是福德不可得迴向何以故般若波羅蜜畢竟空無有分別福德若離般若波羅蜜若不離般若波羅不可得迴向
보살은 생각하기를 ‘모든 과거의 부처님과 제자의 몸과 모든 선근과 복덕은 모두 소멸했는데 내가 이제 모양을 취하여 분별한다면, 즉,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이다, 이것이 바로 제자이다, 이것이 바로 선근이다, 이것이 바로 수희하는 복덕이라고 하면서 모양을 취하여 회향한다면, 나는 나는 옳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실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014_1110_a_19L菩薩應作是念諸過去佛及弟子身幷諸善根福德皆滅我今取相分別所謂是諸佛是弟子是善根是隨喜福德取相迴向我爲不是何以故與諸法實相異故
014_1110_b_01L과보를 받은 뒤에는 오랫동안 다해야 하므로 신속히 부처님 도에 이르지 못하나니, 그것은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의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은 곧 큰 잘못이니, 즉 과거의 부처님께서는 공하여 없는데도 나는 생각하고 분별하기 때문이다.’라고 해야 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독이 섞인 음식과 같다. 음식은 바로 수희하는 복덕이요 독은 바로 모양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애견(愛見) 등의 모든 번뇌가 생긴다는 것이다.
014_1110_a_23L受果報已久久當盡故不疾至佛道有所得故於過去諸佛憶想分別卽是大所謂過去佛空無而我憶想分別譬如雜毒食是隨喜福德是取相故愛見等諸煩惱生
‘좋은 빛깔[好色]’이라 함은, 복덕의 인연으로 사람의 왕이나 전륜왕 또는 천왕(天王)이 되어서 복과 쾌락을 누리는 것이다.
‘좋은 향기[好香]’라 함은, 좋은 명예와 부귀와 세력을 얻는 것을 말하니, 범부와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 다 함께 탐내고 사랑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라 함은 새로 발심한 이로서 모양을 취하여 마음에 집착하고 있는 보살이다.
014_1110_b_05L好色福德因緣作人王轉輪王天王得福樂得好名譽富貴勢力凡夫無智之人所共貪愛愚癡人是新發意取相著心菩薩
‘먹으면서 기뻐한다[食之歡喜]’는 것은 부귀와 쾌락과 복덕의 인연 때문에 천상과 인간에서 이 부귀와 쾌락을 누린다는 것이다.
‘밥이 소화되려 할 때에 죽거나 죽는 것과 다름이 없는 고통을 받는다.’ 함은, 이 부귀와 쾌락은 덧없는 것과 같아서 파괴되어 떠날 때에 근심하면서 마침내는 죽는 것이요, 그리고 죽을 만큼의 모든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014_1110_b_09L食之歡喜富樂福德因緣故於天人中受此富樂飯欲消時受若死若死等苦是富樂若無常破壞離時憂愁遂死若次死受諸苦惱
또 ‘죽거나 죽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함은, 저절로 목숨을 잃게 되면 '죽는 것'이라 하고 집착하던 물건을 상실하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죽거나 죽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괴로움이 많기 때문에 지혜의 생명을 잃으므로 죽는다 하고, 착한 도를 행하는 데 방해되는 것을 죽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014_1110_b_13L復次若死若死等自失命根失所著物名死等復次若死死等苦惱多故失智慧命行善道死等
이 경에서 수보리 자신이 말하되 “이 지혜 없는 사람은 자세히 살펴 받지 않고 그 이치를 취하지도 않으면서 언어에만 집착할 뿐이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 모양을 취하지 않는다.’ 함은 법답게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자세히 살펴 읽거나 외우지 않는다.’ 함은 글귀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자신이 잘못하기도 하고 받아들이되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함은 경의 뜻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014_1110_b_16L此經中須菩提自說是無智人不審諦受不取其義但著語言不諦取相不如法分別諦讀誦忘失句逗若自失若受不具足不解義不得經意
이와 같이 지혜가 적은 스승은 제자를 교화하되 “선남자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 일으킨 마음[初發意]에서부터 이와 같은 회향으로 마친다.”고 하면, 그것은 부처님을 비방한 것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법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것과 반대되면 바른 회향이라고 한다.
014_1110_b_20L如是少智師敎化弟子汝善男子過去未來在十方諸佛從初發意乃至如是迴則爲謗佛不隨佛敎不隨法說此相違名爲正迴向
014_1110_c_01L또 바르게 회향하는 보살은 생각하되 ‘시방 3세의 모든 부처님이 아시는 것과 같이 가장 뛰어난 지혜로써 모든 선근의 상(相)을 아시므로 온갖 지혜를 지닌 사람들 가운데서 부처님이 가장 수승하며, 부처님이 아시는 모든 선근 그것은 반드시 실상이다. 마치 부처님이 아시는 것처럼 나도 이와 같은 선근의 모양으로써 회향할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땅에 활을 쏘면 땅에 맞지 않을 때가 없고 그 밖의 물건에 쏘면 혹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하는 것과 같다. 모든 부처님이 아시는 수희는 마치 활을 땅에 쏘면 맞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같고, 만일 그 밖의 도(道)로써 수희하면 마치 그 밖의 물건을 쏠 적에 혹 맞기도 하고 혹 맞지 않기도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 된다.
014_1110_c_01L復次正迴向薩應作是念如十方三世諸佛所知用無上智慧知諸善根相一切智人佛第一勝佛所知諸善根必是實如佛所知我亦用如是善根相迴譬如射地無不著時若射餘物或不著如諸佛所知隨喜如射地無不著若用餘道隨喜如射餘物或不著如是迴向是爲不謗佛
【경】또 부처님 도를 구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선근을 이와 같이 회향해야 합니다.
014_1110_c_09L【經】復次求佛道善男子善女人行般若波羅蜜時諸善根應如是迴向
마치 물질[色]이 욕계(欲界)에 매이지 않고 색계(色界)에도 매이지 않으며 무색계(無色界)에도 매이지 않는 것처럼, 매이지 않는 법이라면 과거라 하지 못하고 미래라 하지 못하며 현재라고도 하지 못합니다.
014_1110_c_11L如色不繫欲界不繫色界不繫無色界繫法者不名過去不名未來不名現
마치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이 욕계에 매이지 않고 색계에도 매이지 않으며 무색계에도 매이지 않으며, 매이지 않는 법이라면 과거ㆍ미래ㆍ현재라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12입과 18계도 그와 같습니다.
014_1110_c_14L如受識不繫欲界不繫色界不繫無色界不繫法者不名過去現在十二入十八界亦如是
마치 반야바라밀이 욕계에 매이지 않고 색계에도 매이지 않으며 무색계에도 매이지 않고, 매이지 않는 법이라면 과거나 미래나 현재라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선바라밀 내지는 단바라밀도 또한 그와 같으며, 내공 내지는 무법유법공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014_1110_c_16L如般若波羅蜜不繫欲界不繫色界不繫無色界不繫法者不名過去未來禪波羅蜜乃至檀波羅蜜亦如是內空乃至無法有法空亦如是
마치 4념처가 욕계에 매이지 않고 색계에도 매이지 않으며 무색계에도 매이지 않고, 매이지 않는 법이라면 과거나 미래나 현재라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또한 8성도분도 그와 같으며, 부처님의 10력 내지는 18불공법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014_1110_c_20L如四念處不繫欲界不繫色界不繫無色界不繫法者不名過去未來現在乃至八聖道分亦如是佛十力乃至十八不共法亦如是
014_1111_a_01L마치 여(如)ㆍ법성(法性)ㆍ법상(法相)ㆍ법주(法住)ㆍ법위(法位)ㆍ실제(實際)ㆍ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과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과 일체종지ㆍ착오가 없는 법 및 항상 버리는 행[常捨行]이 욕계에 매이지 않고 색계에도 매이지 않고 무색계에도 매이지 않으며, 매이지 않는 법이라면 과거나 미래나 현재라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회향과 회향할 처소에 대하여 행하는 이가 매이지 않는 것도 모두 그와 같습니다.
014_1111_a_01L如如法性法相法住法位實際不可思議性解脫解脫知見衆一切種智無錯謬法捨行不繫欲界不繫色界不繫無色不繫法者不名過去未來現在迴向所迴向處行者不繫皆亦如是
이 모든 부처님도 매이지 않고 모든 선근도 매이지 않으며 이 모든 성문과 벽지불의 선근도 또한 매이지 않나니, 매이지 않는 법이라면 과거나 미래나 현재라고도 하지 못합니다.
014_1111_a_06L如是諸佛亦不繫諸善根亦不繫諸聲聞辟支佛善根亦不繫不繫法不名過去未來現在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이 물질이 삼계에 매이지 않고 매이지 않는 법임을 알면 과거나 미래나 현재라고 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법이 과거나 미래나 현재라고 부르지 못한다면 모양을 취[取相]하거나 얻을 것이 있는 법[有所得法]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물질은 생김이 없기[無生] 때문입니다. 만일 법에 생김이 없으면 법은 없는 것이니, 법이 없는 가운데서는 회향할 수가 없습니다.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014_1111_a_09L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如是知色不繫三界不繫法者不名過去未來現在若法不過去未來現在者不可以取相有所得法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何以故是色無生若法無生則無無法中不可迴向識亦如
단바라밀 내지는 반야바라밀과 4념처 내지는 착오 없는 법과 항상 버리는 행도 삼계에 매이지 않습니다. 매이지 않는 법은 또한 과거나 미래나 현재가 아니요, 만일 과거나 미래나 현재가 아니라면 모양을 취하거나 얻을 것이 있는 법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생김이 없기 때문이니, 만일 법에 생김이 없으면 법이 없는 것이니 법이 없는 가운데서는 회향할 수 없습니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회향하면 독이 섞인 것이 아닙니다.
014_1111_a_16L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四念處乃至無錯謬法常捨行不繫三界不繫法者亦非過去未來現在若非過去未來現在法者不可以取相有所得法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是法無生若法無生則無法法中不可迴向菩薩摩訶薩如是迴向則無雜毒
014_1111_b_01L만일 부처님 도를 구하는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모양을 취하여 법을 얻고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이것은 바로 삿된 회향[邪迴向]이라 합니다. 만일 삿되게 회향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시지 않습니다.
014_1111_a_23L若求佛道善男子善女人以取相得法以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邪迴向若邪迴向諸佛所不稱譽
이런 삿된 회향으로는 단바라밀 내지는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없고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내공 내지는 무법유법공과 부처님의 10력 내지는 착오 없는 법과 항상 버리는 행도 두루 갖출 수 없으며,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는 것도 두루 갖출 수 없습니다.
만일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할 수도 없고 중생을 성취시킬 수도 없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회향에는 독이 섞였기 때문입니다.
014_1111_b_03L用是邪迴向能具足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不能具足四念處乃至八聖道分內空乃至無法有法空佛十力乃至無錯謬法常捨行不能具足淨佛世界就衆生若不能淨佛世界成就衆生則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故是迴向雜毒故
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생각하기를 ‘모든 부처님이 아시는 것과 같이 모든 선근을 회향하는 것이 곧 참된 회향이니, 나도 또한 이런 법의 모양으로써 회향해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을 바른 회향이라 합니다.”
014_1111_b_10L復次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作是念如諸佛所知諸善根迴向是眞迴向我亦應以是法相迴向是名正迴向
그때 부처님께서는 수보리를 칭찬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대가 한 일은 불사(佛事)를 지은 것이며, 모든 보살들에게 회향의 법을 말해 준 것이니라. 그것은 모양이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벗어나는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없고 법의 성품도 없어서 자기 모양이 공하고 항상 자기 성품이 공하여 법성(法性)이요, 여(如)요, 실제(實際)와 같기 때문이니라.
014_1111_b_13L爾時讚須菩提善哉善哉如汝所爲爲作佛事爲諸菩薩摩訶薩說所應迴向以無相無得無出無垢無淨無法自相空常性空法性實際故
수보리야, 만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 모두가 10선도(善道)와 4선(禪)과 4무량심(無量心)과 4무색정(無色定)과 5신통(神通)을 행한다면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중생들은 얻는 복이 많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014_1111_b_17L菩提若三千大千世界中衆生皆當得十善道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五神通於須菩提意云何是衆生得福多不甚多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저 모든 선근에 대하여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만은 못하나니, 그가 가장 높고 제일이며 가장 묘하고 보다 뛰어나서 비교할 이가 없느니라.
014_1111_b_21L佛言不如是善男善女人於諸善根心不著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
014_1111_c_01L또 수보리야, 만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이 모두가 수다원 내지는 아라한과 벽지불을 얻었을 때에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수명이 다하도록 그들에게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한다면,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이 인연으로 복덕을 얻는 것이 많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014_1111_c_01L復次須菩提若三千大千世界中衆生皆當作須陁洹乃至阿羅漢辟支佛若有善男子善女人盡形壽供養恭敬尊重讚歎衣服臥具醫藥供給所須於須菩提意云何是善男子善女人是因緣故福德多不甚多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나 선여인 역시 저 모든 선근에 대하여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보다는 못하나니, 그가 가장 높고 제일이며 가장 묘하고 보다 뛰어나서 비교할 이가 없느니라.
014_1111_c_07L佛言不如是善男子善女人於諸善根心不著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最上第一無上無與等
또 수보리야, 만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을 적에 시방의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 안의 낱낱 중생이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겁 동안 그 보살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공양하며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한다면,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인연으로 복을 얻는 것이 많겠느냐?”
014_1111_c_10L復次須菩提若三千大千世界中衆生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十方如恒河沙等世界中一一衆生如恒河沙等劫恭敬讚歎供養是菩薩衣服飮食臥具醫藥供給所須於須菩提意云何善男子善女人是因緣故得福多不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라도 비유하거나 견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복덕이 형상이 있다 하면 시방의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수의 세계로도 다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014_1111_c_16L甚多世尊無量無邊阿僧祇不可以譬喩爲比世尊若是福德有形者方如恒河沙等世界所不受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대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그렇지만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 역시 저 모든 선근에 대하여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만은 못하나니, 그가 가장 높고 제일이며 가장 묘하고 보다 뛰어나서 비교할 이가 없느니라.
014_1111_c_19L佛告須菩提善哉善哉如汝所言雖爾不如善男子善女人於諸善根心不著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
014_1112_a_01L이 집착이 없는 회향의 공덕은 앞의 공덕에 비교하면 백 배, 천 배, 백천억 배 더 많으며, 나아가 산수(算數)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은 모양을 취하는 얻을 것이 있는 법으로써 10선도ㆍ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ㆍ5신통을 행하고 모양을 취하는 얻을 것이 있는 법으로써 수다원에게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의 필요한 것을 모두 공급하되 나아가 모양을 취하며 보살에게 공양하기 때문이니라.”
014_1111_c_23L是無著迴向功德比前功德百倍千倍百千億倍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何以故是善男子女人取相得法行十善道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五神通取相得法供養須陁洹恭敬尊重讚歎衣服飮食臥具醫藥供給所須乃至取相供養菩薩故
그때 사천왕천과 2만의 천자(天子)들이 함께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배한 뒤에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가장 큰 회향은 방편의 힘으로써 하기 때문이고, 얻을 것이 없고 모양이 없는 법으로써 하기 때문이며, 깨달음이 없는 법으로써 하기 때문에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회향은 두 가지 법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014_1112_a_07L爾時四天王天與二萬諸天子合掌禮佛作是言世尊菩薩摩訶薩最大迴向以方便力故以無所得故以無相法故以無覺法故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迴向不墮二法
그때 석제환인도 수없는 삼십삼천(三十三天)과 그 밖의 천자들과 함께 꽃과 영락과 도향(擣香)ㆍ택향(澤香)ㆍ하늘옷ㆍ번기ㆍ일산ㆍ북ㆍ하늘의 음악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하고는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가장 큰 회향은 방편의 힘으로써 하기 때문이요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하기 때문이며, 모양이 없는 법으로써 하기 때문이요 깨달음이 없는 법으로써 하기 때문에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회향은 두 가지 법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014_1112_a_12L爾時釋提桓因亦與無數三十三天及餘諸天子持天華瓔珞擣香澤香天衣幡蓋鼓天伎樂以供養作如是言世尊菩薩摩訶薩最大迴以方便力故以無所得故以無相法故以無覺法故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迴向不墮二
014_1112_b_01L수야마천왕(須夜摩天王)도 천 명의 천자와 함께 왔으며, 산도솔타(刪兜率陀)ㆍ화락(化樂)ㆍ타화자재(他化自在)의 모든 천왕들도 저마다 천 명의 천자들과 함께 와서 부처님께 공양한 뒤에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의 가장 큰 회향은 방편의 힘으로써 하기 때문이요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하기 때문이며, 모양이 없는 법으로써 하기 때문이요 깨달음이 없는 법으로써 하기 때문에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오니, 이와 같은 회향은 두 가지의 법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014_1112_a_19L須夜摩天王與千天子刪兜率陁化樂他化自在諸天王各與千天子供養佛已作如是言世尊菩薩摩訶薩最大迴向以方便力故以無所得以無相法故以無覺法故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迴不墮二法
그때 모든 범천왕(梵天王)이 무수한 백천억 나유타의 하늘들과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큰 소리로 말씀드렸다.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의 보호를 받고 방편의 힘으로써 하기에 앞에서 든 선남자ㆍ선여인들로서 모양을 취하고 얻을 것이 있는 그런 이들보다 더욱 뛰어납니다.”
014_1112_b_02L爾時諸梵天王與無數百千億那由他諸天俱#詣佛所頭面禮佛足發大音聲作如是言未曾有也菩薩摩訶薩爲般若波羅蜜所護以方便力故勝前善男子善女人取相有所得者
광음천(光音天) 내지는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도 무수한 백천억 나유타의 하늘들과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큰 소리로 말씀드렸다.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의 보호를 받고 방편의 힘으로써 하기에 앞에서 든 선남자ㆍ선여인들로서 모양을 취하고 얻을 것이 있는 그런 이들보다 더욱 뛰어납니다.”
014_1112_b_07L光音天乃至阿迦尼咤天與無數百千億那由他諸天俱#詣佛所頭面禮佛足發大音聲作如是言未曾有也世尊菩薩摩訶薩爲般若波羅蜜所護以方便力故勝前善男善女人取相有所得者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천왕천 내지는 아가니타의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을 적에 온갖 보살들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 및 성문과 벽지불의 모든 선근과 처음 발심해서부터 그 법이 머무르기까지 그 중간에 심어놓은 모든 선근과,
014_1112_b_12L爾時佛告四天王天乃至阿迦尼咤諸天子三千大千世界中所有衆生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是一切菩薩念過去未來現在諸佛及聲聞辟支佛諸善根從初發意乃至法住於其中閒所有善根
아울러 그 밖의 온갖 중생들의 모든 선근인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일심(一心)ㆍ지혜(智慧)와 단바라밀 내지는 반야바라밀과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 등 이와 같은 그 밖의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염하고 이 모두를 한데 합쳐 수희하고 수희한 뒤에는 모양을 취하거나 얻을 것이 있는 것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하자.
014_1112_b_18L幷餘一切衆生所有善根——所謂布施持戒忍辱精進一心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戒衆定衆慧衆解脫衆解脫知見衆——如是等諸餘無量佛法一切和合隨喜喜已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取相有所得故
014_1112_c_01L다시 다른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 및 성문ㆍ벽지불이 처음 발심해서부터 그 법이 머무르기까지 그 중간에 지은 모든 선근과,
014_1112_c_01L復有善男子善女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念過去未來現在諸佛及聲聞辟支佛從初發意乃至法住於其中閒所有善根
아울러 그 밖의 온갖 중생들의 모든 선근인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와 단바라밀 내지는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 법을 염하면서 이 모두를 한데 합쳐 헤아리되 얻을 것이 없음으로 하고 둘이 없는 법으로써 하며 모양 없는 법으로써 하고 집착하지 않는 법으로 하며 깨달음이 없는 법으로 한다면, 이것이 바로 가장 높은 수희요 첫째가고 가장 묘하고 더 이상 없어 같을 이 없는 수희이니, 수희한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의 공덕이야말로 앞의 선남자와 선여인의 공덕보다 백 배, 천 배, 백천억 배나 더 뛰어나며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014_1112_c_04L幷餘一切衆生所有善根——所謂布施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檀波羅蜜乃至無量諸佛法一切和合稱量無所得故無二法故無相法故不著法故無覺法故是最上隨喜第一無上無與等隨喜隨喜已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善男子善女人功德勝前善男子善女人功德千倍百千億倍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든 선근을 한데 합쳐 헤아려 수희하고 회향하면 가장 높고 제일가며 가장 묘하고 보다 뛰어나서 비교될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그 수희가 가장 높고 나아가 같을 이가 없다고 할 수 있는지요?”
014_1112_c_14L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尊說善男子善女人和合諸善根稱隨喜迴向最上第一最妙無上與等世尊云何名隨喜最上乃至無與等
014_1113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기억하지도 않고 기억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얻지도 않고 얻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생각하기를 ‘이 모든 법 가운데서도 또한 어떤 법도 나거나 없어지거나 더럽거나 깨끗하지 않으며, 모든 법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아서 마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의 모양이 여(如)한 모양이요 법성ㆍ법주ㆍ법위인 것처럼 나도 이와 같이 수희하리라’고 하고, 수희한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이와 같은 회향이 가장 높고 제일가며 가장 묘하고 뛰어나서 비교될 이가 없느니라.
014_1112_c_18L佛言若善男子善女人念過去未來現在諸法不取不捨不念非不不得非不得是諸法中亦無有法生者滅者若垢若淨諸法不增不減不來不去不合不散不入不出如過未來現在諸法相如如相法性法位我亦如是隨喜隨喜已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迴向第一最妙無上無與等
수보리야, 이 수희하는 법은 그 밖의 수희에 비교하면 백 배, 천 배, 백천억 배나 더 뛰어나며,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014_1113_a_03L須菩提隨喜法比餘隨喜百倍千倍百千億倍乃至筭數譬喩所不能及
또 수보리야, 부처님 도를 구하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성문이나 벽지불이 처음 발심해서부터 그 법이 머무르기까지 그 중간에 지은 모든 선근과 보시 내지는 지혜와 단바라밀 내지는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법과 그 밖의 온갖 중생들이 지은 모든 선근에 이르기까지 수희하려 한다면 마땅히 수희하면서 생각하기를,
014_1113_a_05L復次菩提求佛道善男子善女人於過去未來現在諸佛及聲聞辟支佛從初發心乃至法住於其中閒所有善根若布施乃至智慧檀波羅蜜乃至無量諸佛法及餘一切衆生所有善根若欲隨喜者應如是隨喜作是念
‘보시는 해탈과 같고[等] 계율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도 해탈과 같으며, 물질은 해탈과 같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해탈과 같으며, 내공도 해탈과 같고 나아가 무법유법공도 해탈과 같으며, 4념처도 해탈과 같고 나아가 8성도분도 해탈과 같으며, 부처님의 10력도 해탈과 같고 나아가 일체종지도 해탈과 같으며,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 등도 해탈과 같으며, 수희하는 것도 해탈과 같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도 해탈과 같으며,
014_1113_a_11L施與解脫等精進智與解脫色與解脫等識亦與解脫內空與解脫等乃至無法有法空亦與解脫等四念處與解脫等乃至八聖道分亦與解脫等佛十力與解脫等乃至一切種智亦與解脫等定衆慧衆解脫衆解脫知見衆與解脫等隨喜與解脫等過去未來現在諸法與解脫等
014_1113_b_01L 시방의 모든 부처님도 해탈과 같고 모든 부처님의 회향도 해탈과 같으며, 모든 부처님도 해탈과 같고 모든 부처님의 멸도도 해탈과 같으며, 모든 부처님의 제자인 성문과 벽지불도 해탈과 같고 모든 부처님 제자들의 멸도도 해탈과 같으며, 모든 부처님 법의 모양도 해탈과 같고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법 모양도 해탈과 같으며, 온갖 법 모양도 해탈과 같으며, 나의 이 모든 선근의 모양으로써 수희의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도 해탈과 같나니,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고 해야 하느니라.
014_1113_a_20L十方諸佛與解脫等諸佛迴向與解脫等諸佛與解脫等諸佛滅度與解脫等諸佛弟子聲聞辟支佛與解脫等諸佛弟子滅度與解脫等諸佛法相與解脫等聲聞辟支佛法相與解脫等一切諸法相亦與解脫等我以是諸善根相隨喜功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亦與解脫等不生不滅故
수보리야, 이것이 바로 모든 보살마하살이 수희하는 공덕으로서 가장 높고 제일가며 가장 묘하고 뛰어나서 비할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이처럼 수희의 공덕을 성취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신속히 얻을 것이니라.
014_1113_b_05L須菩提是名諸菩薩摩訶薩隨喜功德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須菩提菩薩成就是隨喜功德當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다시 수보리야, 시방의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부처님 도를 구하는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그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이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하고 온갖 필요한 의복ㆍ음식ㆍ의약ㆍ침구 등을 공양하면서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이 모든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도 밤낮으로 정성껏 닦으면서 꽃과 향 내지는 번기와 일산과 음악으로 공양하고 공경하고 찬탄하되 모양을 취하고 얻을 것이 있는 것으로 하며,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닦되 모양을 취하고 얻을 것이 있는 것으로써 한다고 하자.
014_1113_b_09L復次須菩提十方如恒河沙等諸佛及弟子現在若有求佛道善男子善女人盡形壽供養是諸佛及弟子一切所須供養恭敬尊重讚歎衣服飮食臥具醫藥是諸佛滅度後晝夜懃修供養恭敬尊重讚歎華香乃至幡蓋伎樂以取相有所得持戒忍辱精進禪定修智慧以取相有所得故
다시 다른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뜻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면서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행하되 모양을 취하지 않고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하고 방편의 힘으로써 하면서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고 하면, 이 복덕이야말로 가장 높고 제일가며 가장 묘하고 보다 뛰어나서 비할 바가 없나니, 앞의 복덕에 견주면 백 배, 천 배, 백천억 배나 더 뛰어나며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014_1113_b_17L復有善男子善女人發意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行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時不取相無所得法方便力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福德最第一最妙無上無與等勝前福德百倍千倍百千億倍乃至筭數譬喩所不及
014_1113_c_01L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방편의 힘으로써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되 모양을 취하지 않고 얻을 것이 없는 법으로써 해야만 하느니라.”
014_1113_c_02L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時尸羅波羅蜜羼提波羅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時以方便力故諸善根應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不取相所得法故
【논】해석한다. 보살은 ‘물질[色]에서 항상 버리는 행[常捨行]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은 삼계(三界)에 매이지 않기 때문에 3세(世)에도 속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과 제자와 아울러 모든 공덕과 수희하는 마음과 회향하는 곳과 회향하는 법과 회향하는 이도 또한 그와 같다.’고 생각해야 하나니, 이것을 바른 회향이라 한다.
014_1113_c_07L【論】釋曰菩薩應作是念從色乃至常捨行諸法不繫三界故三世不攝諸佛及弟子幷諸功德隨喜心迴向處用迴向法迴向者亦如是是名正迴
그때 보살은 생각하기를 ‘만일 물질이 삼계에서 벗어나고 3세에 속하지 않는다면 모양을 취하거나 얻을 것이 있는 것으로써 회향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 물질이 삼계에서 벗어난다면 곧 그것은 물질의 실상(實相)이어서 처음에도 나중에도 그 나는 모양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한다. 마치 파생품(破生品)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1113_c_12L爾時菩薩作是念若色出三界世不攝不可以取相有所得迴向以故是色出三界者卽是色實相後生相不可得如「破生品」中說
만일 날 것이 없는 법이라면 그것은 있을 것도 없다. 그런데 있을 것이 없이 회향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있을 것이 없는 보리의 마음에 회향하겠는가.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에서 항상 버리는 행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다. 이것을 독이 섞이지 않은 회향이라 하니, 이른바 모양이 없고 얻는 것이 없는 회향이라 한다.
014_1113_c_15L若法無生卽是無所有無所有迴向心云何迴向無所有菩提心乃至常捨行亦如是是名無雜毒迴所謂無相無得迴向
‘독이 섞였다.’ 함은, 이른바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하지 않는 것이어서 6바라밀 등을 두루 갖출 수도 없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도 없는 것을 말한다.
014_1113_c_19L雜毒所謂諸佛不讚歎不能具足六波羅蜜等乃至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4_1114_a_01L또 보살은 생각하기를 ‘마치 시방 3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아시는 것과 같이 그와 같이 마음을 내고 그와 같이 생각을 하며, 그와 같이 관찰하고 그와 같이 회향하며, 그 공덕으로 곧장 최상의 도에 이르는 것이니, 나도 그와 같이 수희하면서 회향해야만 한다.’고 한다. 이런 보살은 반드시 진실한 수희와 회향을 얻어 헛되지 않으리니, 앞에서 설명한 인연과 같으며, 여기서는 간략하게 모든 회향품을 설명한 것이다.
014_1113_c_21L復次菩薩應作是念如十方三世諸佛所知應如是生心如是念如是觀如是迴向是功德直至無上道我亦如是隨喜迴向是菩薩必得實隨喜迴向不虛如先說因緣是略說諸迴向品
보살이 부처님께 예배하는 데는 세 가지 품이 있다. 첫째는 회과품(悔過品)이요, 둘째는 수희회향품(隨喜迴向品)이며, 셋째는 권청제불품(勸請諸佛品)이다. 더 널리 말하자면 한량없고 끝이 없다.
014_1114_a_04L菩薩禮佛有三品一者悔過品隨喜迴向品三者勸請諸佛品廣說則無量無邊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대는 불사(佛事)를 지었도다.’라고 함은 부처님께서는 처음 발심하실 적에 온갖 중생을 제도하기를 서원하셨거니와 수보리는 그가 아라한이면서도 부처님의 설법을 도와 보살의 도를 열어 주고 있으므로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신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회향할 법을 말씀하셨다.
014_1114_a_06L善哉善哉汝作佛事佛初發心誓度一切衆生須菩提雖是阿羅漢而能助佛說法開菩薩道是故讚言善哉善哉復次佛自說因爲諸菩薩說所應迴向法
‘모양이 없음[無相]으로써’라고 함은, 모양이 없는 지혜로써 한데 합쳐 회향하는 것이니, 복덕의 모양은 위와는 반대이기 때문에 모양이 없다고 한 것이다.
모양이 없다는 데의 모양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임시로 붙인 이름의 모양[假名相]과 법의 모양[法相]과 모양이 없는 모양[無相相]이다.
014_1114_a_10L用無相以無相智慧和合迴向福德相與上相違名爲無相無相有三種假名相法相無相相
임시로 붙인 이름의 모양이라 함은 ‘수레’라는 것과 같고 ‘집’이라는 것과 같으며, ‘숲’이라는 것과 같고 ‘군사’라는 것과 같으며, ‘중생’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모든 법이 화합한 가운데에 다시 이름이라는 것이 있다. 무명(無明)의 힘 때문에 임시로 붙인 이름이란 모양을 취하면서 모든 번뇌와 업을 일으킨다.
014_1114_a_13L假名相如車如屋如林如軍如衆生諸法和合中更有是名無明力故取是假名相諸煩惱
법의 모양이라 함은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 등이다. 모든 법은 육안(肉眼)으로 보기 때문에 있거니와 혜안(慧眼)으로 관찰하면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법도 또한 허망한 거짓말이므로 법의 모양을 버리고 여의어야 한다.
014_1114_a_16L法相五衆十二入十八界等諸法肉眼觀故有以慧眼觀則是故法亦虛誑妄語應捨離法相
이 두 가지 모양을 여의면 나머지는 모양이 없는 모양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이 모양이 없는 모양을 취하여 그것을 좇고 모양을 취하여 도리어 번뇌[結使]를 내고 있나니, 이 때문에 모양이 없는 모양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곧 이 세 가지 모양을 여의기 때문에 모양이 없다고 한다.
014_1114_a_18L離是二相餘但有無相相有人取是無相相隨逐取相還生結使是故亦不應取無相相離三種相故名無相
만일 모양이 없다면 이 가운데서는 얻을 것이 없고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벗어날 것이 없다. 만일 법에 얻을 것도 없고 벗어날 것도 없다면 곧 그것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으며, 만일 법에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면 이것은 법의 성품이 없는 것이다.
014_1114_a_21L若無有相是中無所得無得故無出若法無得無出卽是無垢無淨若法無垢無淨卽是無法性
014_1114_b_01L또 법에 성품이 없다면 곧 그것은 제 모양이 공하고 법의 제 모양이 공하다면 곧 그 법에는 항상 자성이 공하며, 만일 법에 항상 자성이 공하면 곧 법성(法性)과 여(如)와 실제(實際)와 같다. 이와 같은 법으로써 화합하여 수희하는 복덕으로 회향하기 때문에 찬탄하기를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신다.
014_1114_a_24L若法無性自相空若法自相空卽是法常自性空若法常自性空卽同法性用如是法和合隨喜福德迴向讚言善哉善哉
다시 “훌륭하다.”고 하는 인연이 있나니, 이른바 수희하는 복덕으로는 중생을 크게 이익되게 하고 큰 과보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큰 이익이냐 하면, 이른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 10선(善) 내지는 5통(通)을 행한다.”고 하신 것이다.
014_1114_b_04L復有善哉因緣所謂隨喜福德大利益衆生有大果報者是大利益所謂佛語須菩提若三千大千世界衆生行十善乃至五通
【문】욕계 안에서 두 곳의 하늘과 범천왕(梵天王)은 무엇 때문에 많은 하늘들과 함께 오고 그 밖에 네 곳의 하늘은 무엇 때문에 함께 오는 이들이 적은가?
014_1114_b_07L問曰欲界中二處天及梵天王何以與多天俱餘四天何以少
【답】이 두 하늘은 땅을 의지하여 있고 부처님과 가깝기 때문이요, 또 5욕도 그 위의 하늘들과는 같지 않으며, 부처님께서 태어나실 때와 고행하실 때와 악마를 항복 받으실 때와 도를 얻으실 때와 법륜을 굴리실 때에 언제나 와서 부처님께 공양했나니, 이 때문에 오는 이들이 많다.
그 밖에 네 곳의 하늘은 궁전이 허공 안에 있어서 땅에 속하지도 않고 5욕이 미묘하여 물들거나 집착함이 깊기 때문에 많이 오지 못한다.
014_1114_b_09L答曰是二天依止地近佛故又五欲不如上天佛生時苦行時降魔時得道時轉法輪時常來供養佛是故多餘四處天宮殿在虛空中不屬地五欲妙染著深故不能多來
또 도솔천은 비록 근기가 예리하고 법을 좋아하기는 하나 그 천상에서는 항상 보처보살(補處菩薩)이 있어서 법을 설하고 있으므로 오지 않는다. 그리고 범천(梵天)은 욕망을 멀리 여의었다 하더라도 법을 좋아하는 정(情)이 깊고 부처님을 법왕(法王)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많이 온 것이다.
014_1114_b_14L又兜率天雖利根而其天上常有補處菩薩說法故不來梵天雖遠離欲故樂法情深佛爲法王是故多來
또 범천왕은 색계(色界)의 주인으로서 부처님께 처음 법륜 굴리기를 청했었고 그 때문에도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함께 왔다. 그 밖에 색계의 하늘들은 모두 다 범천이라 한다.
014_1114_b_17L復次梵天王爲色界主請佛初轉法輪是故應與多衆俱來餘色界天盡名梵天
【문】앞에서 갖가지 인연으로 바른 회향[正迴向]을 설명했다. 바른 회향 그것이 바로 가장 으뜸가는 것이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또 묻는가?
014_1114_b_19L問曰種種因緣說正迴向正迴向卽是最今何以更問
014_1114_c_01L【답】위에서는 곳곳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른바 3세와 시방의 온갖 법은 결정코 마음이 이 법 가운데서 나는 것과 소멸하는 것 등이 없다는 것을 알며, 온갖 법을 얻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으며, 얻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기 때문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모든 법의 실상(實相) 가운데 들어가서 생각하기를 “마치 모든 법의 실상에서와 같이 나도 또한 그와 같이 수희하는 복덕을 회향하면 모든 법을 분별하지도 않고 법의 성품을 파괴하지도 않는다.”고 하니, 이것을 가장 으뜸가는 회향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과보가 항상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014_1114_b_21L答曰上處處廣說略說所謂三世十方一切法決定心於是法中無生者滅者等一切法不可得不可念不得不念故不取不入諸法實相中作是念如諸法實我亦如是以隨喜福德迴向不分別諸法不壞法性是名最上迴向以故果報常無盡故
【문】6바라밀 등의 모든 법은 색상(色相)이거나 무색상(無色相) 등으로 각기 모양이 다르며 해탈에도 유위(有爲)해탈과 무위(無爲)해탈 두 가지가 있거늘 어떻게 모두 “해탈과 같다.”고 말하는가?
014_1114_c_05L問曰六波羅蜜等諸法各各相若色相若無色相等解脫有二種有爲解脫無爲解脫何皆與解脫等
【답】나는 앞에서 이미 설명했다. 범부의 사람은 육안으로써 6식(識)이 뒤바뀌어 관찰하기 때문에 다르다고 보거니와 만일 혜안으로써 모든 법을 관찰하면 모두가 허망한 것이어서 오직 열반만이 진실할 뿐이다.
014_1114_c_08L答曰我先已說凡夫人以肉眼六識顚倒觀故見異若以慧眼觀諸法皆虛妄唯涅槃爲實
이 유위의 해탈은 무위에도 속하며 무위를 따르기 때문에 해탈이라 한다. 마치 실제로 도를 얻은 이만을 도인(道人)이라 하지만 지금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이도 의복과 법칙이 도를 얻은 이를 따르기 때문에 역시 도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014_1114_c_10L有爲解脫屬無爲隨無爲故名解脫如實得道者名道人今未得道者法則隨得道者故亦名道人
마치 무여열반(無餘涅槃)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항상한 것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항상 고요히 사라진[寂滅] 모양이며, 심식(心識)의 관(觀)이 소멸하고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닌 등의 모양인 것과 같다. 아무 모양도 없는 것이므로 혜안으로 온갖 법을 관찰하는 것도 역시 이 모양과 같나니, 이것을 바로 6바라밀 등은 “해탈과 같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 법 가운데서는 “해탈은 존귀한 것이요, 최고의 지혜를 지닌 이는 해탈을 귀히 여긴다.”고 한다.
014_1114_c_13L如無餘涅槃不生不滅不入不出不垢不非有非無非常非無常常寂滅相心識觀滅語言道斷非法非非法等相用無所有相故慧眼觀一切法亦如是是名六波羅蜜等與解脫等是故佛法中說解脫爲貴上智慧貴解脫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분별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6바라밀을 행하면서 얻을 것이 있는 법으로써 갖가지로 선근을 쌓고 모을 적에, 다른 어떤 사람이 얻을 것이 없는 법으로써 마음만으로 수희하고 다른 이의 공덕을 염하며 최상의 도에 회향한다 하면, 이 사람의 복에 비하면 앞 사람은 백천만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신다.
014_1114_c_19L佛是中分別說若人無量阿僧祇劫行六波羅蜜用有所得法種種修集善根一人用無所得法但以心隨喜他功德迴向無上道是人百千萬分不及其一
014_1115_a_01L왜냐하면 먼저의 복덕에는 한량이 있고 지금의 복덕에는 한량이 없으며, 먼저의 복덕에는 다함이 있고 지금의 복덕에는 다함이 없으며, 먼저의 복덕에는 독이 섞여 있고 지금의 복덕에는 독이 없으며, 먼저의 복덕은 생사를 따르고 지금의 복덕은 열반을 따르며, 먼저의 복덕은 일정하지 않아서 혹은 부처님이 되기도 하고 물러나게 되기도 하거니와 지금의 복덕은 결정코 부처님이 빨리 될 수 있으니, 이러한 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014_1115_a_01L何以故先福德有量今福德無量先福德有盡今福德無盡福德雜毒今福德無毒先福德隨生今福德隨涅槃先福德不定或作或退今福德定到必疾作佛有如是等差別
그러므로 네 가지 사람 중에서 범부는 세간의 욕락을 구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은 열반의 쾌락을 구하며, 만일 보살마하살이면 모두가 부처님에 대한 즐거움을 구하기에 이와 같이 수희하고 복덕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해야 하나니, 이 품(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1115_a_06L是故四種人若凡夫人求世閒樂若聲聞辟支佛人求涅槃樂若諸菩薩摩訶薩求佛樂應如是隨喜生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如此品中說
大智度論卷第六十一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어로는 brahma-suvarana. 고귀하고 맑은 음성을 말한다. 부처님의 음성.
  2. 2)속세에서 일으키는 5욕락을 가시에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