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1404_b_01L대지도론 제90권

80. 실제품(實際品)을 풀이함
014_1404_b_01L大智度論釋實際品第八十卷九十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014_1404_b_02L聖者龍樹菩薩造
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經】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을 마침내 얻을 수 없다면 보살은 누구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지요?”
014_1404_b_04L【經】
須菩提白佛言世尊若衆生畢竟不可得菩薩爲誰故行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실제(實際)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느니라. 수보리야, 실제와 중생제(衆生際)가 다르다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을 것이니라. 수보리야, 실제와 중생제는 다르지 않나니,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실제의 법을 파괴하지 않음으로써 중생을 실제 가운데에 세우느니라.”
014_1404_b_06L告須菩提菩薩爲實際故行般若波羅蜜須菩提實際衆生際異者菩薩不行般若波羅蜜須菩提實際衆生際不異以是故菩薩摩訶薩爲利益衆生故行般若波羅蜜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不壞實際法立衆生於實際中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실제가 곧 중생제라면 보살은 곧 실제를 실제에 세운[建立] 것이 되며, 세존이시여, 만일 실제를 실제에 세운다면 곧 제 성품[自性]을 제 성품에 세우는 것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제 성품을 제 성품에 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실제에 세우는지요?”
014_1404_b_13L須菩提白佛言世尊若實際卽是衆生際薩則爲建立實際於實際世尊若建立實際於實際則爲建立自性於自世尊不得建立自性於自性世尊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建立衆生於實際
014_1404_c_01L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실제는 실제에 세울 수 없고 제 성품도 제 성품에 세울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이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실제에 세우는 것이니라. 실제는 또한 중생제와 다르지 않으니, 실제와 중생제는 둘[二]이 없고 분별[別]도 없느니라.”
014_1404_b_19L佛告須菩提實際不可建立於實際自性不可建立於自性須菩提今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方便力故建立衆生於實際實際亦不異衆生際實際衆生際無二無別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모든 보살마하살의 방편의 힘이기에 이 방편의 힘으로써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실제에 세우면서도 또한 실제의 모양을 파괴하지 않는지요?”
014_1404_c_02L須菩提白佛言世尊等是諸菩薩摩訶薩方便力用是方便力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建立衆生於實際亦不壞實際相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보시에 세운 뒤에는 보시의 전후제(前後際)의 모양을 설해 주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은 보시는 전제(前際)도 공하고 후제(後際)도 공하고 중제(中際)도 또한 공하며, 보시하는 이[施者]도 공하고 보시의 과보[施報]도 공하고 받는 이[受者]도 또한 공하다.
014_1404_c_05L告須菩提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方便力故建立衆生於布建立已說布施先後際相作是言如是布施前際空後際空中際亦空者亦空施報亦空受者亦空
선남자들이여, 이 온갖 법은 실제(實際) 가운데서 얻을 수 없나니, 그대들은 〈보시가 다르고 보시하는 이도 다르며 보시한 과보도 다르고 받는 이도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만일 그대들이 〈보시가 다르고 보시하는 이도 다르며 보시한 과보도 다르고 받는 이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때에 보시는 감로의 맛[甘露味]을 취하면서 감로 맛의 과보를 얻을 것이오.
014_1404_c_10L諸善男是一切法實際中不可得汝等莫念布施異施者異施報異受者異汝等不念布施異施者異施報異者異是時布施能取甘露味得甘露味果
그대들 선남자여, 이 보시 때문에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에도 집착하지 마시오. 왜냐 하면, 이 보시는 보시의 모양이 공하고, 보시하는 이는 보시하는 이의 모양이 공하며, 보시한 과보는 보시한 과보가 공하고, 받는 이는 받는 이의 모양이 공하기 때문이니, 공한 가운데서는 보시도 얻을 수 없고 보시하는 이도 얻을 수 없으며, 보시한 과보도 얻을 수 없고 받는 이도 또한 얻을 수 없소. 왜냐 하면, 이 모든 법은 마침내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오’라고 하느니라.
014_1404_c_15L汝善男子以是布施故莫著色莫著受何以故是布施布施相空施者施者空施報施報空受者者空空中布施不可得施者不可得報不可得受者不可得何以故是諸法畢竟自性空故
014_1405_a_01L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여 계율을 지니게 하며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그대 선남자들이여, 살생(殺生)하는 법을 버리고 없애며 나아가 삿된 견해[邪見]의 법을 버리고 없애시오. 왜냐 하면 선남자여, 마치 그대들이 분별하는 법과 같이 이 모든 법에는 그러한 성품이 없기 때문이오.
그대 선남자들이여, 자세히 생각하기를 〈어떤 것이 중생이기에 목숨을 빼앗으려 하고 어떠한 물건으로써 목숨을 빼앗는가〉라고 해야 하나니, 이에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이 해야 하는 것이오’라고 하느니라.
014_1404_c_20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方便力故教衆生持戒語衆生言汝善男子捨殺生法乃至除捨邪見何以故男子如汝所分別法是諸法無如是性汝善男子當諦思惟何等是衆生而欲奪命用何等物奪命乃至邪見亦如是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성취시키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곧 중생들을 위하여 보시와 지계(持戒)의 과보를 말하지만, 이 보시와 지계의 과보는 제 성품이 공하느니라. 보시와 지계의 과보의 제 성품이 공한 것임을 안 뒤에는 이 가운데에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지 않아서 능히 지혜를 일으키니, 이 지혜로써 온갖 결사(結使)와 번뇌를 끊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느니라.
이것은 곧 세속의 법이요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가 아니니, 왜냐 하면, 공한 가운데서는 사라지는 것도 없고 사라지게 하는 이도 없으며, 모든 법의 필경 공한 것이 곧 열반이기 때문이니라.
014_1405_a_03L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方便力成就衆生是菩薩摩訶薩卽爲衆生說布施持戒果報是布施持戒果報自性空知布施持戒果報自性空已中不著不著故心不散能生智慧是智慧斷一切結使煩惱入無餘涅是世俗法非第一實義何以故中無有滅亦無使滅者諸法畢竟空卽是涅槃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의 성내는 마음을 보면 교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느니라.
‘그대 선남자여, 어서 와서 인욕을 수행하시오. 인욕하는 사람은 마땅히 인욕하기를 좋아해야 하나니, 그대가 내고 있는 성은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오.
그대는 어서 오시오. 선남자여, 그대는 〈나는 어떤 법 가운데서 성을 내고 있는가. 그 누가 성을 내는 이며, 성을 내게 하는 이는 누구일까〉 하고 이와 같이 생각하시오. 이 법은 모두가 공이요 이것은 성품이 공한 법이어서 공하지 않는 때가 없는 것이오.
이 공은 모든 부처님께서 만든 것도 아니고 벽지불과 성문이 만든 것도 아니며, 보살마하살이 만든 것도 아니고 모든 하늘ㆍ귀신ㆍ용왕ㆍ아수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이 만든 것도 아니며, 4천왕이 만든 것도 아니며, 나아가 타화자재천이 만든 것도 아니고 범중천(梵衆天)이 만든 것도 아니며, 나아가 정거천(淨居天)이 만든 것도 아니고 무변공처 내지는 비유상비무상처의 모든 하늘들이 만든 것도 아니오.
014_1405_a_12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見衆生瞋恚惱心教言汝善男子來修行忍辱作忍辱人當樂忍辱所瞋者自性空故汝來善男子如是思惟≺我於何所法中瞋誰爲瞋者瞋者誰≻是法皆空是性空法無不空時是空非諸佛作非辟支佛聲聞作菩薩摩訶薩作非諸天鬼神龍王修羅緊那羅摩睺羅伽非四天王天乃至非他化自在天非梵衆天乃至非淨居天非無邊空處乃至非有想非無想處諸天所作
014_1405_b_01L그대들은 〈성을 내게 하는 이는 누구고 그 누가 성을 내는 이며 어떤 것이 성을 내는 일일까〉 하고 생각해야 하나니, 이 온갖 법은 성품이 공하고 성품이 공한 법 가운데는 성을 낸다는 것이 없는 것이오.’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런 인연으로써 중생을 성품이 공한 데에 세워 차례대로 점점 보여주고 가르쳐주며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나니, 이것은 세속의 법이요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가 아니니라. 왜냐 하면, 이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는 얻는 이도 없고 얻을 법도 없으며 얻을 곳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곧 실제의 성품이 공한 법이라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하여 이런 법을 행하면서도 중생을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법은 중생의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014_1405_a_23L汝當如是思惟≺所瞋誰誰是瞋者何等是瞋事≻是一切法性空性空法中無有所瞋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以是因緣建立衆生於性空次第漸漸示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世俗法非第一實義何以故是性空中無有得者無有得法無有得處須菩提是名實際性空法菩薩摩訶薩爲衆生故行是法衆生亦不可得何以故一切法離衆生相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 때문에 중생들이 게으른 것을 보면, 교화하여 몸[身]으로 정진하고 마음[心]으로 정진하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느니라.
‘선남자들이여,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한 가운데는 게으름의 법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도 없으며 게으름을 피우는 일도 없는 것이오. 이 온갖 법의 성품은 모두가 공하여서 성품이 공한 것을 넘어서는 것이 없나니, 그대들은 몸의 정진과 마음의 정진을 내어 착한 법을 낳기 위해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야 하오.
014_1405_b_10L復次須菩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便力故見衆生懈怠教令身精進精進作是言諸善男子諸法性空中無懈怠法無懈怠者無懈怠事是一切法性皆空無過性空者汝等生身精進心精進爲生善法故莫懈怠
014_1405_c_01L선남자들이여,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며 인욕을 닦고 정진을 행하며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행하며,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와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공해탈문과 무상ㆍ무작의 해탈문 내지는 18불공법을 행하는 가운데서 게으름을 피우지 마시오. 선남자들이여, 이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한 가운데서 마땅히 장애 없는 모양[無礙相]을 알아야 하나니, 장애가 없는 법 가운데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이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는 법도 없는 것이오.’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품이 공한 데에 머물러서 둘의 법[二法]에 떨어지지 않게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성품이 공한 데에서는 둘이 없고 분별도 없기 때문이니, 이 둘이 없는 법인지라 성을 낼만한 곳이 없느니라.
014_1405_b_16L男子若布施若持戒若忍辱若精進若禪定若智慧若諸禪定解脫三昧若四念處乃至八聖道分若空解脫無相無作解脫門乃至十八不共法中莫懈怠諸善男子是一切法性空當知無㝵相無㝵法中無懈怠者無懈怠法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教衆生令住性空不墮二法何以故是性空無二無別是無二法則無可瞋處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성품이 공한[性空]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교화하여 정진하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느니라.
‘선남자들이여,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와 선정ㆍ해탈ㆍ삼매와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공해탈문ㆍ무상ㆍ무작의 해탈문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에 부지런히 정진하며, 이 모든 법에 대하여 그대들은 둘이라는 모양[二相]도 생각지 말고 둘이 아니라는 모양[不二相]도 생각지 말아야 하오.
왜냐 하면, 이 법의 성품은 모두가 공하며 이 성품이 공한 법에서는 둘이라는 모양으로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고 둘이 아니라는 모양으로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기 때문이오.’
014_1405_c_03L復次須菩菩薩摩訶薩行性空般若波羅蜜教衆生令精進作是言諸善男子勤精進若布施若持戒若忍辱若精若禪定若智慧若禪定解脫三昧若四念處乃至八聖道分若空解脫無相無作解脫門若佛十力若四無所畏若四無㝵智若十八不共法若大慈大悲是諸法汝等莫念二相莫念不二相何以故是法性皆空性空法不應用二相念不應用不二相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으로 중생들을 성취시키고 중생들을 성취시킨 뒤에는 차례로 교화하면서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의 지위를 얻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의 마음이 산란한 것을 보면 방편의 힘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주느니라.
‘선남자들이여, 마땅히 선정을 닦아야 하며, 그대들은 산란한 생각을 내지 말고 한 마음[一心]을 내어야 하오.
014_1405_c_14L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方便力故成就衆生成就衆生已次第教令得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菩薩位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見衆生亂心以方便力爲利益衆生故作是言諸善男子當修禪汝莫生亂想當生一心
014_1406_a_01L왜냐 하면, 이 법의 성품은 모두가 공하며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는 산란해지거나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어떤 법도 없기 때문이니, 그대들은 이 삼매에 머무르면서 몸과 입과 뜻의 모든 업(業)을 짓되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며, 인욕을 행하고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며,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닦으며, 4념처를 행하고 나아가 8성도분을 행하며, 모든 해탈과 차제정을 행하고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와 32상과 80수형호를 행할 것이오.
또 성문의 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의 도와 부처님의 도를 행하고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일체종지와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해 그대들은 모두 소원대로 얻어야 하나니, 성품의 공[性空]을 행하기 때문이오.’
014_1405_c_22L何以故法性皆空性空中無有法可得若亂若一心汝等住是三昧所有作業若口若意若布施若持戒若行忍若勤精進若行禪定若修智慧若行四念處乃至若行八聖道分諸解脫次第定若行佛十力四無所四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三十二相八十隨形好若聲聞道辟支佛道若菩薩道若佛道若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若一切種智若成就衆生若淨佛國土汝等皆當應隨所願得行性空故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끝내 게으름을 피우거나 그만두지 않으며, 항상 착한 법을 구하며 중생을 이롭게 하고 한 부처님의 국토에서 다른 한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며,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몸을 버리거나 몸을 받거나 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마침내 망실하지 않으면, 이 보살은 언제나 모든 다라니(陀羅尼)를 얻고, 모든 감관 즉 몸의 감관[身根]과 말의 감관[語根]과 뜻의 감관[意根]을 완전하게 갖추느니라.
014_1406_a_12L如是須菩提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方便力爲利益衆生故從初發意終不懈廢常求善法利益衆生從一佛國至一佛國供養諸佛從諸佛聞法捨身受身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忘失是菩薩常得諸陁羅尼諸根具足所謂身語根意根
014_1406_b_01L왜냐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언제나 일체종지를 닦기 때문이니, 일체종지를 닦기 때문에 성문의 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의 도와 보살의 신통의 도(道) 등 일체의 도를 닦느니라. 신통의 도를 행하면서 보살은 항상 중생을 이롭게 하고 끝내 망실하지 않나니, 이 보살은 과보로 얻은[報得] 신통에 머물러 중생을 이롭게 하되 나고 죽고 하는 5도(道)에 들어가면서도 끝내 없어지거나 줄어지지 않느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성품이 공한 데에 머물러 선정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느니라.
014_1406_a_19L何以故是菩薩摩訶薩常修一切種智修一切種智故一切諸道皆修若聲聞道若辟支佛道菩薩神通道行神通道菩薩常利益衆生終不忘失是菩薩住報得神通利益衆生入生死五道終不耗減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住性空以禪定利益衆生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성품이 공한 데에 머물러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 말하기를 ‘그대들 선남자들이여, 온갖 법은 성품이 공하다고 관찰하시오.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모든 업인 신업(身業)과 구업(口業)과 의업(意業)으로 감로의 맛을 취하고 감로의 과보를 얻어야 하오.
성품이 공한 가운데서는 물러나는 어떤 법도 없는 것이오. 왜냐 하면, 성품이 공한지라 물러나지도 않고 또한 물러나는 이도 없기 때문이니, 성품이 공하면 법도 아니고 또한 법이 아닌 것도 아니거늘, 있는 바 없는 법[無所有法] 가운데서 어떻게 물러나는 것이 있겠소’라고 하느니라.
014_1406_b_03L復次須菩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住性以方便力故利益衆生作是言等諸善男子觀一切法性空善男子汝等當作諸業若身業若口業若意取甘露味得甘露果性空中無有法退何以故性空不退亦無退者性空非法亦非非法於無所有法中云何當有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와 같이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항상 게으름을 피우거나 그만두지 않나니, 이 보살은 자기 자신이 10선(善)을 행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10선을 행하게 하며, 5계(戒)와 8계(戒)에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자기 자신의 초선(初禪)을 행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초선을 행하게 하고 제4선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며, 항상 자기 자신이 인자한 마음[慈心]을 행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인자한 마음을 행하게 하고 이에 버리는 마음[捨心]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014_1406_b_11L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如是教衆生常不懈是菩薩自行十善亦教他人行十五戒八戒亦如是自行初禪亦教他人令行初禪乃至第四禪亦如是常自行慈心亦教他人令行慈心至捨心亦如是
014_1406_c_01L자기 자신이 무변공처(無邊空處)를 행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무변공처를 행하게 하고 이에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常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며, 자기 자신이 4념처를 행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4념처를 행하게 하고 이에 8성도분과 부처님의 10력 내지는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자기 자신이 수다원의 과위에서 지혜를 내면서도 또한 그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도 교화하여 수다원의 과위를 얻게 하면서 이에 아라한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며, 자기 자신이 벽지불의 도 가운데서 지혜를 내면서도 또한 그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도 교화하여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며, 자기 자신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느니라.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 때문에 끝내 게을러지는 일이 없느니라.”
014_1406_b_17L自行無邊空處亦教他人令行無邊空處乃至非有想非無想處亦如是自行四念處亦教他人令行四念處乃至八聖道分佛十力乃至八十隨形好亦如是自於須陁洹果中生智慧亦不住是中亦教他人令得須陁洹果乃至阿羅漢果亦如自於辟支佛道中生智慧亦不住是亦教他人令得辟支佛道自生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亦教他人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方便力終不懈怠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의 성품이 항상 공하다면 항상 공한 가운데서는 중생을 얻을 수 없고 법과 법이 아닌 것도 얻을 수 없거늘,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일체종지를 구하겠는지요?”
014_1406_c_06L須菩提白佛言世尊諸法性常空常空中衆生不可得非法亦不可得菩薩摩訶薩云何求一切種智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모든 법의 성품은 모두가 공하다면 공한 가운데서는 중생도 얻을 수 없고 법과 법 아닌 것도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하지 않다면 보살마하살은 성품의 공한 데에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거나 중생들을 위하여 성품이 공한 법을 설하지 못하느니라.
014_1406_c_09L佛告須菩提如是如是如汝所言諸法性皆空空中衆生不可得非法亦不可得須菩提若一切法性不空菩薩摩訶薩不依性空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衆生說性空
수보리야, 물질의 성품이 공하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의 성품이 공하므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5음(陰)의 성품이 공한 법을 설하고 12입(入)과 18계(界)의 성품이 공한 법을 설하며,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과 4념처 내지는 8성도분의 성품이 공한 법을 설하고 3해탈문과 8배사와 9차제정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와 32상과 80수형호의 성품이 공한 법을 설하며,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일체종지를 설하여, 번뇌를 끊고 성품이 공한 법을 익히느니라.
014_1406_c_14L須菩提色性空識性空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說五陰性空法說十二入十八界性空法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四念處乃至八聖道分性空法說三解脫門背捨九次第定佛十力四無所畏無㝵智十八不共法大慈大悲三十二相八十隨形好性空法說須陁洹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支佛道一切種智斷煩惱習性空法
014_1407_a_01L수보리야, 만일 내공(內空)의 성품이 공하지 않고 외공(外空) 내지는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의 성품도 공하지 않다면 곧 공한 성품이 파괴되나니, 이 성품이 공하면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不常] 단절 되는 것도 아니니라[不斷]. 왜냐 하면, 이 성품이 공하면 머무르는 곳도 없으며 또한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이름하여 법이 머무르는 모양이라 하나니, 이 가운데에는 법이 없어서 모이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없으며,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으며,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느니라. 이것이 곧 모든 법의 모양이니라.
014_1406_c_23L須菩提若內空性不空外空乃至無法有法空性不空者則壞空性是性空不常不斷何以故是性空無住處亦無所從來亦無所從去須菩提名法住相是中無法無聚無散無增無減無生無滅無垢無淨是爲諸法
보살마하살은 이 가운데 머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되 일으키는 것이 있는 어떤 법도 보지 못하며 일으키는 것도 없고 머무르는 것도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법이 머무르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장애되는 어떤 법도 보지 않거늘 어디에서 의심을 내게 되겠느냐. 이것을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느니라.
014_1407_a_07L菩薩摩訶薩住是中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不見法有所發無發無住是名法住相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見一切法性空不轉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是菩薩不見有法能障㝵當何處生疑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성품이 공하다면 중생을 얻지 못하고 나[我]도 얻지 못하고 사람도 얻지 못하며, 수(壽)도 얻지 못하고 명(命)도 얻지 못하며 나아가 아는 이[知者]ㆍ보는 이[見者]도 얻지 못하며, 성품이 공한 가운데서는 물질도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도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80수형호도 얻을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마치 부처님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사부대중을 변화로 만들어 놓고, 항상 그 중생들을 위하여 천만억 겁 동안 끊이지 않고 법을 설하는 것과 같으니라.”
014_1407_a_13L性空不得衆生不得我不得人不得壽不得乃至不得知者見者性空中色不可得識不可得乃至八十隨形好不可得須菩提譬如佛化作四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常爲是諸衆說法千萬億劫不斷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변화로 된 대중들은 당연히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를 얻게 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授記)를 얻겠느냐?”
014_1407_a_19L佛告須菩提是諸化衆當得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不
014_1407_b_01L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이 모든 변화한 대중은 근본과 진실한 일이 없기 때문이니, 온갖 법도 성품이 공하여 역시 근본과 진실한 일이 없거늘 어떻게 이런 중생들이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를 얻겠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얻겠습니까.”
014_1407_a_22L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是諸化衆無有根本實一切諸法性空亦無根本實事等是衆生得須陁洹果乃至阿羅漢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수보리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중생들을 위하여 성품이 공한 법을 말하면서도 이 중생은 실로 얻을 수 없으니, 중생이 뒤바뀜[顚倒]에 떨어지기 때문에 중생들을 구출하여 뒤바뀌지 않는 데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뒤바뀌는 것은 곧 뒤바뀜이 없는 것이라 뒤바뀌는 것과 뒤바뀌지 않는 것이 비록 하나의 모양이라 하더라도 뒤바뀌는 것은 많고 뒤바뀌지 않는 것은 적나니, 뒤바뀌는 것이 없는 가운데에는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도 없느니라. 뒤바뀌는 것이 없는 가운데에는 또한 물질이 없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도 없으며 12입(入)도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없느니라. 이것이 곧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함이니라.
014_1407_b_03L須菩菩薩摩訶薩亦如是爲衆生說性空法是衆生實不可得以衆生墮顚倒故拔衆生令住不顚倒顚倒卽是無顚倒顚倒不顚倒雖一相而多顚少不顚倒無顚倒處中則無我衆生乃至無知者見者無顚倒處中亦無色無受無十二入乃至無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爲諸法性
보살마하살은 이 가운데에 머물러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의 모양이 뒤바뀐 가운데서 중생들을 구출하느니라. 이른바 중생이 없는데도 중생이 있는 모양 가운데서 구출하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의 모양 가운데서 구출하며, 물질이 없는데도 물질의 모양 가운데서 구출하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이 없는데도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 의 모양 가운데서 구출하나니, 12입ㆍ18계 내지는 온갖 유루(有漏)의 법에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014_1407_b_12L菩薩摩訶薩住是中行般若波羅蜜時於衆生相顚倒中拔出衆生謂無衆生有衆生相中拔出乃至知見者相中拔出於無色色相中受想行識受想行識相中拔出衆生十二入十八界乃至一切有漏法亦如是
수보리야, 모든 무루(無漏)의 법, 즉 4념처와 4정근과 4여의족과 5근과 5력과 7각분과 8성도분의 이와 같은 법들은 비록 무루라 하더라도 제일의(第一義)의 모양보다 못하느니라. 제일의의 모양이란, 짓는[作] 것도 없고 하는[爲] 것도 없으며 나는[生] 것도 없고 모양[相]도 없으며 언설[說]도 없는 것이니, 이것을 제일의라 하고, 또한 성품이 공하다[性空]고도 하며 또한 모든 부처님의 도[諸佛道]라고도 하느니라.
014_1407_b_18L須菩提亦有諸無漏法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覺分八聖道分如是等法雖無漏不如第一義相第一義相者無作無生無相無說是名第一義亦名性空亦名諸佛道
014_1407_c_01L이 가운데서는 중생을 얻지 못하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도 얻지 못하며, 물질ㆍ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도 얻지 못하고 나아가 80수형호를 얻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도법(道法)을 위하여 일부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법의 실상의 성품이 공한 것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 성품이 공한 데서는 전제(前際)도 또한 이 성품이 공하고 후제(後際)도 또한 이 성품이 공하고 중제(中際)도 또한 이 성품이 공하며, 언제나 성품이 공한 것이라 성품이 공하지 않은 때가 없느니라.
014_1407_b_23L是中不得衆生至不得知者見者不得色乃至不得八十隨形好何以故菩薩摩訶薩非爲道法故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爲諸法實相性空故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性空前際亦是性空後際亦是性空中際亦是性常性空無不性空時
보살마하살은 이 성품이 공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중생이 중생의 모양에 집착하는 것을 구출하기 위하여 도종지(道種智)를 구하며, 도종지를 구할 때에 성문의 도ㆍ벽지불의 도ㆍ보살의 도의 온갖 도를 두루 행하나니, 이 보살은 온갖 도를 완전히 갖추고 중생을 삿된 생각과 집착에서 구출하며,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한 뒤에 그의 수명에 따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느니라.
수보리야, 과거 세상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도(道)는 성품이 공하고 미래ㆍ현재의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도도 또한 성품이 공하며, 성품이 공한 것을 여의고 세간에는 도도 없고 도의 과위도 없나니, 반드시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여 이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한 법을 듣고 이 법을 행하여야 살바야(薩婆若)를 잃지 않느니라.”
014_1407_c_07L菩薩摩訶薩行是性空般若波羅蜜爲衆生著衆生相欲拔出故求道種智求道種智遍行一切道——若聲聞道若辟支佛若菩薩道是菩薩具足一切道出衆生於邪想著淨佛國土已隨其壽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過去十方諸佛道性空未來現在十方諸佛道亦性空離性空世閒無無道果要從親近諸佛聞是諸法性空行是法不失薩婆若
014_1408_a_01L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매우 희유한 일입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성품이 공한 법을 행하면서 또한 성품이 공한 모양을 파괴하지 않으니, 이른바 ‘물질은 성품이 공한 것과 다르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도 성품이 공한 것과 다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품이 공한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다만 물질이 곧 성품의 공함이요 성품의 공함이 곧 물질일 뿐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곧 성품의 공함이요 성품의 공함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일 뿐입니다.”
014_1407_c_17L須菩提白佛言世尊甚希有諸菩薩摩訶薩行是性空法亦不壞性空相所謂色與性空異識與性空異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與性空異但色卽是性空性空卽是色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阿耨多羅三藐三菩提卽是性空性空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만일 물질과 성품의 공한 것이 다르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이 성품의 공함과 다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성품의 공함과 다르다면 보살마하살은 일체종지를 얻을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이제 물질이 성품의 공함과 다르지 않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성품의 공함과 다르지 않나니,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을 알고 뜻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이니라.
014_1408_a_02L佛告須菩提如是若色與性空異若受識與性空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與性空菩薩摩訶薩不能得一切種智須菩今色不異性空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異性空以是故菩薩摩訶薩知一切法性空發意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
왜냐 하면, 이 가운데에는 진실하다거나 항상 있다거나 하는 어떤 법도 없기 때문이니라.
다만 범부는 물질ㆍ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에만 집착하며, 범부는 물질의 모양을 취하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의 모양을 취해서 나[我]라는 마음으로 안팎의 물건에 집착하기 때문에 뒤에 생겨나는 몸의 물질ㆍ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을 받나니, 이 때문에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고ㆍ근심하고ㆍ괴로워하는 데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다섯 세계[五道]를 왕래하느니라.
이런 일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성품이 공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물질 등 모든 법의 모양이 공한 것과 공하지 않은 것을 파괴하지 않느니라.
014_1408_a_09L何以故是中無有法若實若常但凡夫著色夫取色相取受識相有我心著內外物故受後身色是故不得脫生老病死愁憂苦惱往來五道以是事故菩薩摩訶薩行性空波羅不壞色等諸法相若空若不空
왜냐 하면, 이 물질의 성품이 공한 모양은 물질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른바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공이다’라고 하는 그것이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은 허공을 파괴하지 않는 것과 같나니, 안의 허공은 바깥 허공을 파괴하지 않으며 바깥 허공도 안의 허공을 파괴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물질은 물질의 공한 모양을 파괴하지 않고 물질의 공한 모양도 물질을 파괴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이 두 가지 법은 이른바 ‘이것은 공이다, 이것은 공이 아니다’라고 파괴할 수 있는 어떤 성품도 없기 때문이니,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014_1408_a_15L以故是色性空相不壞色所謂是色譬如虛空不壞虛空內虛空不壞外虛空外虛空不壞內虛空如是菩提色不壞色空相色空相不壞色何以故是二法無有性能有所壞謂是空是非空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如是
014_1408_b_01L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이 공하여 분별이 없다면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나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고 하는 서원을 내겠는지요.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에 분별이 없다면 어떻게 보살은 발심하여 ‘나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고 말하겠는지요.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을 분별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014_1408_a_22L須菩提白佛言世尊若一切法空無分別云何菩薩摩訶薩從初發意已來作是願我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世尊若一切法無分別云何菩薩發心言我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世尊若分別諸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모양을 행한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없으며, 만일 분별하면서 두 가지 갈래를 짓지 않는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없지만, 만일 둘이 아니어서 모든 법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곧 그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 보리 그것은 둘이 아닌 모양이요 파괴되지 않는 모양이니라.
수보리야, 이 보리는 물질 가운데서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 가운데서 행하지 않으며 나아가 보리도 또한 보리 가운데서 행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물질이 곧 보리요 보리가 곧 물질이어서 둘이 아니고 분별되지 않기 때문이니, 나아가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이 보리는 취하기 위하여 행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기 위하여 행하는 것도 아니니라.”
014_1408_b_05L告須菩提如是如是若菩薩摩訶薩行二相者無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分別作二分者無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不二不分別諸法則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菩提是不二相壞相須菩提是菩提不色中行不受識中行乃至菩提亦不菩提中行何以故色卽是菩提菩提卽是色不分別乃至十八不共法亦如是是菩提非取故行非捨故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리를 취하기 위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리기 위하여 행하는 것도 아니라면, 보살마하살은 보리를 어느 곳에서 행하는지요?”
014_1408_b_15L須菩提白佛言世尊若菩薩摩訶薩菩提非取故行非捨故行菩薩摩訶薩菩提何處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치 부처님이 변화로 만든 사람은 어느 곳에 있으면서 행하는 것이더냐? 취하는 가운데서 행하며, 버리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더냐?”
014_1408_b_18L佛告須菩提於汝意云何佛所化人在何處行——若取中行若捨中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취하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014_1408_b_20L須菩提言世尊非取中行非捨中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보리도 또한 이와 같아서 취하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도 아니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은 꿈속에서 보리를 어느 곳에서 행하는 것이더냐? 취하는 가운데서 행하더냐? 버리는 가운데서 행하더냐?”
014_1408_b_21L佛言菩薩摩訶薩菩提亦如是取中行非捨中行須菩提於汝意云阿羅漢夢中菩提何處行——若取中若捨中行
014_1408_c_01L“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취하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라한은 끝내 잠을 자지 않거늘, 어떻게 꿈속에서 보리를 취하는 가운데서 행하며 버리는 가운데서 행하겠는지요?”
014_1408_c_01L不也世尊非取中行捨中行世尊阿羅漢畢竟不眠云何夢中菩提若取中行若捨中行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이와 같아서 취하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도 아니니, 이른바 물질 가운데서 행하고 나아가 일체종지 가운데서 행하느니라.”
014_1408_c_03L須菩菩薩摩訶薩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如是非取中行非捨中行所謂色中行乃至一切種智中行
“세존이시여, 장차 보살마하살이 10지(地)를 행하지 않고 6바라밀도 행하지 않으며, 37조도법(助道法)도 행하지 않고 14공(空)도 행하지 않으며,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도 행하지 않고 부처님의 10력 내지는 80수형호도 행하지 않는다면, 다섯 가지 신통에 머물러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일도 없습니다.”
014_1408_c_06L世尊無菩薩摩訶薩不行十地不行六波羅蜜不行三十七助道法不行十四空不行諸禪定解脫三昧不行佛十力乃至八十隨形好住五神通淨佛國成就衆生得阿耨多羅三藐三菩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네가 말한 것과 같아서 지금 보살은 비록 보리가 처소와 행(行)이 없다고 하더라도, 만일 10지와 6바라밀과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과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공ㆍ무상ㆍ무작의 해탈문과 부처님의 10력 내지는 80수형호를 두루 갖추지 못하며, 항상 버리는 법[常捨法]과 착오하지 않는 법[不錯謬法]의 이러한 모든 법을 두루 갖추지 못한다면, 끝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물질의 모양 가운데에 머무르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의 모양 가운데에 머무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모양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10지를 두루 갖추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얻나니, 이 모양은 항상 고요히 사라져서[寂滅] 능히 늘어나거나 덜하거나 나거나 없어지거나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도를 얻거나 과위를 얻거나 하는 어떠한 법도 없느니라.
014_1408_c_12L佛告須菩提如是如是如汝所言今菩薩雖菩提無處行若不具足十六波羅蜜四禪四無量心四無色四念處乃至八聖道分無相作解脫佛十力乃至八十隨形好常捨不錯謬法——不具足是諸法終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菩薩摩訶薩住色相中住受識相中乃至住阿耨多羅三藐三菩提相中能具足十地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相常寂滅無有法能增能減能生能滅能垢能淨能得道能得果
014_1409_a_01L세속 이치[世諦]의 법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지,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實義]에 의한 것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는 이도 없기 때문이니, 이 온갖 법은 모두다 세속의 이치 때문이요 으뜸가는 이치에 의한 것이 아니니라.
014_1408_c_23L世諦法故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非第一實義何以故第一實義無有色乃至無有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無行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一切法皆以世諦故說非第一義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할 적에 보리도 또한 늘어나지 않고 중생도 또한 줄어들지 않으며, 보살도 또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사람이 처음에 도를 얻을 때에 무간삼매(無間三昧)에 머물러서 무루근(無漏根)을 얻어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를 성취하면, 너는 그때에 꿈이나 마음이나 도나 도의 과위에 대하여 얻을 것이 있겠느냐?”
014_1409_a_05L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已來行阿耨多羅三藐三菩提菩提亦不衆生亦不減菩薩亦無增減須菩於意云何若人初得道時住無閒三昧得無漏根若成就須陁洹果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汝爾時有所得若夢若心若道若道果不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얻을 것이 없습니다.”
014_1409_a_12L菩提言世尊不得也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아라한의 도를 얻은 이인 줄 알 수 있더냐?”
014_1409_a_13L佛告須菩提何當知得阿羅漢道者
“세존이시여, 세속 이치의 법 때문에 분별하여 아라한의 도라 하는 것입니다.”
014_1409_a_14L世尊世諦法故分別名阿羅漢道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세속의 이치 때문에 보살이라 이름하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 내지는 일체종지라고 이름 하느니라. 이 보리 가운데에는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어떤 법도 없나니, 모든 법은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한 것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초지(初地)의 마음 내지는 10지의 마음과 6바라밀과 37조도법과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 내지는 온갖 부처님의 법이겠느냐. 얻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느니라.”
014_1409_a_15L佛語須菩提世諦故說名菩薩說名色乃至一切種智是菩提中無法可得若增若減以諸法性空故諸法性空尚不可得何況得初地心乃至十地六波羅蜜三十七助道法空三昧無相無作三昧乃至一切佛法當有所得無有是處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行阿耨多羅三藐三菩提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利益衆生
014_1409_b_01L【論】해석한다. 앞의 품(品) 가운데서 수보리는 갖가지 인연으로 따지면서 “만일 모든 법이 공하다면 어떻게 다섯 세계[道]에서 나고 죽는 것과 착하거나 착하지 못한 법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고, 여기에서는 중생에 대하여 따지면서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을 끝내 얻을 수 없다면 보살은 누구를 위하여 반야를 행하겠습니까”라고 하였으니, 앞에서는 법에 대하여 따져서 중생을 위하고 여기에선 중생에 대하여 따져서 법을 위하였기 때문이다.
014_1409_a_24L【論】
釋曰上品中須菩提種種因緣難諸法空云何有五道生死善不善法今難衆生作是言世尊若衆生畢竟不可得菩薩爲誰故行般若先難法爲衆生今難衆生爲法故
부처님은 이에 대해 대답하시길 “실제(實際)를 위하여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고 하셨으니, 수보리의 생각은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여기는 것이요, 부처님의 생각은 ‘중생은 임시로 붙인 이름이라 거짓이므로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보살은 온갖 진실한 법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 진실한 법[實法]이 곧 실제(實際)이다’라고 여기신 것이다.
014_1409_b_05L佛答爲實際故菩薩行般若波羅蜜須菩提意菩薩爲度衆生故行般若波羅蜜佛意衆生假名虛誑畢竟不可得薩爲一切實法故行般若波羅蜜法卽是實際
【문】온갖 보살은 중생들의 괴로워함을 보고 그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大悲心]을 내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실제를 위해서이다’라고 하시는가?
014_1409_b_10L問曰一切菩薩見衆生苦惱爲度衆生故發大悲心今何以言爲實際
【답】처음 뜻을 낸 보살은 다만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 주기 위하여 대비(大悲)의 마음을 일으킬 뿐이다. 괴로움이라 함은 이른바 늙고ㆍ병들고ㆍ죽는 것 등과 몸과 마음의 쇠퇴와 번뇌를 말한다. 어떻게 이런 괴로움을 없애느냐 하면, 괴로움의 인연(因緣)을 찾아보면 그것은 태어남[生]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마치 부처님께서 12인연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인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느냐 하면, 그것은 태어남이 있기 때문이다”고 하신 것과 같다.
014_1409_b_12L答曰初發意菩薩但爲滅衆生苦故發大悲心苦者所謂老死等及身心衰惱云何滅是苦尋苦因緣由生故如佛十二因緣中說因緣故有老以有生故
【문】온갖 중생들도 모두 태어남의 인연이 곧 괴로운 것인 줄 알고 있거늘, 보살로 인하여 어떤 특별한 일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014_1409_b_16L問曰一切衆生皆知生因緣是苦菩薩有何奇
【답】중생들은 이 태어남 때문에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가령 괴로운 일을 만난다 해도 그때에는 다른 사람만을 원망할 뿐 자신에게서 찾지를 못하나니, 애초부터 태어남에 대해서는 원망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결사(結使)가 더욱 자라고 거듭거듭 태어나는 법만 늘릴 뿐 진실한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를 맞는다거나 전쟁[刀兵] 등의 모든 근심이나 고통은 없으면서도 죽음의 고통만은 있는 것이니, 이런 죽음이 어디서 온 것이냐 하면 바로 태어남에서부터 있게 되는 것이다.
014_1409_b_18L答曰衆生不知由生有苦若遭苦但怨恨人自不將適初不怨生是故增長結使重增生法不知眞實苦因有人無鞭杖刀兵諸愁惱苦有死苦此死從何所來從生而有
014_1409_c_01L또 매를 맞는다거나 전쟁 등의 근심과 고뇌는 모두가 태어남 때문에 있게 되지만, 그 밖에 다른 법은 혹 괴로움이 있기도 하고 혹은 괴로움이 없기도 한다. 그러나 이 태어남의 법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있다.
가령 큰 지혜를 지닌 이나 모든 하늘들이라 해도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있다. 이 때문에 태어남은 반드시 괴로움의 근본임을 알 수 있다. 마치 풀과 나무는 생겨났기 때문에 반드시 불을 만나 타게 되지만, 만일 생겨나지 않았다면 비록 사나운 불이나 큰 바람이 있다 하더라도 불에 타서 해를 입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014_1409_b_22L復次鞭杖刀兵愁惱皆由生故有餘法或有或無苦是生法必定有苦正使大智及諸天有生必有死有死必有苦是故生定是苦本如草木有生故必可焚燒若當不生雖有猛火大風無所燒害
보살은 괴로움의 인연을 이미 얻고 있었기에 그 태어남의 인연을 다시 추구(推求)하는 것이다. 태어남의 인연[生因緣]은 존재[有]이다. 이 존재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욕유(欲有)와 색유(色有)와 무색유(無色有)이다. 이 세 가지의 존재에 집착하여 착하거나 나쁜 업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이 곧 태어남의 인연이다.
존재의 인[有因]은 네 가지 취함[四種取]이다. 취함의 인연[取因緣]은 갈애[愛] 등의 모든 번뇌이다. 작은 것 이어서 아직 업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갈애라 하며, 더욱 자라서 업을 일으키면 그 때문에 취함[取]이라 하나니, 욕취(欲取)와 견취(見取)1)와 계견(戒見)2)와 아어취(我語取)의 이 네 가지 일을 취하고 집착[取著]하기 때문에 갖가지 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014_1409_c_05L菩薩旣得苦因緣復推生因緣生因緣者有三種欲有色有色有著是三有起善惡業是生因因者四種取取因緣者愛等諸煩惱者未能起業故名爲愛增長能起業名爲取欲取見取戒取我語取取著是四事故能起種種業
갈애의 인연[愛因緣]은 세 가지의 느낌[受]이요, 느낌의 인연은 안(眼) 등 여섯 가지의 접촉[觸]이다. 접촉[觸]은 느낌[受] 등의 모든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을 일컬으니, 정(情)ㆍ진(塵)ㆍ식(識)의 세 가지 일이 화합하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느낌 등 마음에 속한 법을 낸다. 근본은 비록 세 가지 일의 화합 때문에 접촉을 생겨나게 한다 하더라도 6정(情)이 의지하고 머무르는 곳이므로 다만 6입(入)이라고 말할 뿐이다.
014_1409_c_11L愛因緣三種受受因緣者眼等六種觸觸名受等諸心數法識三事和合故心中生受等心數法根本雖三事和合故生爲六情依止住處故但說六入
6입의 인연은 이름[名]과 물질[色]이다. 6입은 비록 그것이 이름과 물질의 영역[分]이라 하더라도 다 이루어졌으면 6입이라 하고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으면 그것을 이름과 물질이라 한다. 물질이 다 이루어지면 다섯 개의 입[五入]이라 하고 이름이 다 이루어지면 한 개의 입[一入]이라 한다. 이것은 태(胎) 속에 있을 때의 인연의 차례이다.
이름과 물질의 인연은 바로 의식[識]이다. 만일 의식이 태에 들지 않으면 그 태는 처음부터 문드러져 있을 것이다. 의식을 중음(中陰)이라 하며, 그 가운데에 5중(衆)이 있는데, 이 5중은 아주 미세하기 때문에 다만 의식이라고 할 뿐이다. 만일 의식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태가 성립되어 있다면, 온갖 화합이 있을 때에도 태는 모두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014_1409_c_15L入因緣名色六入雖卽是名色分就名六入未成就名名色色成就名五入名成就名一入是胎中時因緣次第名色因緣是識若識不入胎胎初則爛壞識名中陰中五衆五衆細故但名爲識若識不入而胎成者如一切和合時皆應成胎
【문】의식은 어떤 인연 때문에 태(胎) 속으로 들어가는가?
014_1409_c_22L問曰識何因緣故入胎
014_1410_a_01L【답】행(行)의 인연 때문이다. 행은 곧 그것이 과거 세상의 세 가지의 업이니, 업이 의식을 가지고 태 안으로 들어간다. 마치 바람이 불어 아지랑이를 날리면 공중으로 가서 아지랑이는 바람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 전생에 사람 몸이었을 적에 그러한 6식(識)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마칠 때 업이 의식을 가지고 태(胎)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014_1409_c_23L答曰行因緣行卽是過去三種業業將識入胎如風吹絕焰空中而去焰則依止於風先世作人身時然六識故命終時業將識入胎
【문】앞에서는 업을 무엇 때문에 존재[有]라 하고, 여기서는 업을 무엇 때문에 행이라 하는가?
014_1410_a_04L問曰上業何以名有今業何以名行
【답】위의 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의 업이다. 미래 세상에서 있게[有] 되기 때문에 존재라 했고, 지금의 업은 과거 세상이 이미 사라져 다하고 이름만이 있을 뿐이므로 행이라 한다.[천축(天竺)의 말로는 산가라(刪迦羅)3)라 하고, 진나라에서는 행(行)이라 한다.]
이 행의 인연은 무명(無明)이라 한다. 온갖 번뇌는 비록 그것이 과거의 업의 인연이라 하더라도 무명이 근본이 되기 때문에 다만 무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세상에서는 갈애[愛]와 취함[取]에 대한 집착이 많기 때문에 갈애와 취함이라는 이름을 받지만, 과거 세상에서는 그것은 의심[疑]과 삿된 소견[邪見]이 있었던 곳이므로 무명이라고만 이름한다. 지금 온갖 번뇌의 근본이 되는 것은 바로 무명이다.
014_1410_a_05L答曰上是今世業爲未來有名爲有業過去世已滅盡但有名爲行天竺語刪迦羅秦言是行因緣名無明一切煩惱雖是過去業因無明是根本故但名無明今世現在著愛取多故取愛名過去世中是疑邪見處故但名無明今得一切苦惱根本是無明
【문】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나고 죽고 하면서 그런 일은 아주 많이 있었거늘, 무엇 때문에 무명이라고만 한정시키는가?
014_1410_a_12L問曰無始生死展轉甚多何以止齊無明
【답】이런 일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대답했었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고통에서부터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괴로움의 인연을 구할 적에, 중생이 겪는 과거와 현재의 늙어 죽는 등의 괴로움을 제거시킬 수 없지만, 미래 세상에 있어 늙어 죽는 등의 괴로움을 제거시키기 위하여 그 상속(相續)을 끊어서 다시는 더 나지 않게 한다.
마치 용한 의사가 과거의 병은 치료할 수 없고 현재의 병도 낫게 할 수 없을 때는 약을 먹이고 다만 앞으로 생겨날 병만을 치료하면서 그 냉(冷)과 열(熱)을 파괴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또 잘못하여 불이 나서 집이 탈적에 이미 과거의 불이기 때문에 끄려고 힘쓰지 않고 또한 현재 불이 타고 있는 것도 끄려고 하지 않되, 다만 아직 불이 붙지 않은 것만은 더 타지 않도록 힘써 끄는 것과 같다.
014_1410_a_13L答曰是事先已答菩薩思惟爲人從苦得脫故求苦因緣衆生過去現在老死等苦不可得除爲除未來世老死苦斷相不令復生如良醫過去病不可治現在病亦不可治服藥但能治應起破其冷熱不復令起又如失火燒不爲己過去火故勤滅亦不爲現在火故勤滅但爲未來火不令更燒故勤滅
014_1410_b_01L이 용한 의사와 불 끄는 사람이 힘써 행하는 방편은 역시 헛된 것이 아니듯이 보살이 중생의 고뇌를 없애려는 것도 이와 같다. 과거의 괴로움은 이미 사라졌으므로 다시 작용할 바가 없고, 현재의 괴로움은 전생의 인연으로 성취한지라 물리칠 수 없다. 다만 미래 세상에 늙어 죽는 등의 괴로움의 인연만을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니, 이런 태어남의 법과 늙어 죽는 등 괴로움을 파괴하고 나면 저절로 영원히 소멸하게 된다.
014_1410_a_22L良醫滅火人勤方便亦不虛薩滅衆生苦惱亦如是過去苦已滅無所復能現在苦惱先世因緣成就故不可卻但破未來世老死等苦因緣故破是生法老死等苦自然永滅
그러므로 보살은 미래 세상에 있을 늙어 죽는 등의 괴로움의 인연이 생기는 것을 소멸시키려고 현재에 존재[有] 등의 여덟 가지 인연을 얻는 것이다.
첫째는 유루의 업[有漏業]이라 하고, 둘째는 현재 세상의 모든 번뇌[現在世諸煩惱]이니 이른바 4취(取)와 1애(愛)라 한다. 이 두 가지 번뇌는 두 개의 마음에 속한 법으로부터 생기나니, 이른바 느낌[受]과 접촉[觸]이다.
접촉은 온갖 마음에 속한 법을 내는데 느낌 이전에 생기는 것이므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다. 접촉은 바로 느낌의 인연이다. 느낌은 비록 3독(毒)을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중생들은 이 옛 번뇌를 애착한다.
014_1410_b_03L是故菩薩欲滅未來世老死等苦因緣生得現在等八因緣一名有漏二名現在世諸煩惱所謂四取是二種煩惱從二心數法生所謂受及觸觸能生一切心數法受前生得名觸是受因緣受雖能生三毒一切衆生愛是舊煩惱
접촉의 인연은 바로 안[內]의 6입(入)이니,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비록 바깥[外]의 6입이 있다 하더라도 안의 6입은 없기 때문에 접촉 등의 마음에 속한 법은 생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안의 6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이름과 물질[名色]은 바로 6입의 인연이다. 이 가운데서의 설명과 같아서 처음에 태(胎) 속으로 들어가는 의식은 바로 이름과 물질의 인연이다.
014_1410_b_10L觸因緣是內六入如先說雖有外六入內六入無故觸等心數法不生是故內六入得名色是六入因緣如此中說初入胎識是名色因緣
의식과 그리고 이름과 물질은 태에 있을 적에 이 안에서도 비록 6입은 있다 하더라도 아직 성취하지 못하고 아직 작용할 수도 없으므로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다.
이미 태어난 젖먹이는 아직 어떤 동작을 할 수도 없고 다만 6입만 있을 뿐이며, 점차로 커가면서 여섯 가지 접촉[六燭]이 있게 된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불을 밟고 얼음을 밟는다 해도 다만 그 접촉만이 있을 뿐, 아직 고통과 쾌락을 잘 모르지만 점차로 커가면서 고통과 쾌락을 느끼되 아직은 깊이 애착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마치 어린 아이는 비록 성을 낸다 하더라도 아직 살생(殺生) 등의 나쁜 업은 일으킬 수 없으며, 비록 기뻐한다 하더라도 아직 보시 등의 착한 업은 일으킬 수 없지만, 나이가 들고 성인(成人)이 된 뒤에 괴로움을 만나면 성을 내고 즐거움을 얻으면 사랑을 내는 것과 같다.
쾌락거리를 구하는 까닭에 욕취(欲取) 등의 4취를 취하며, 취하는 때에 선악의 업을 일으키게 된다.
014_1410_b_14L名色在胎中中雖有六入未成就未可用故未得名字旣生嬰孩未能有所作但有六轉大有六觸如小兒蹈火履冰有觸未知苦樂轉大受苦樂未深愛如小兒雖瞋未能起殺等惡業未能起施等善業年及成人得苦生恚得樂生愛求樂具故取欲等四取時能起善惡業
014_1410_c_01L만일 전생의 한 세상 동안의 무명에 대한 업의 인연을 알게 된다면 억만 세상 동안의 일도 알 수 있을 것이니, 비유하건대 마치 현재의 불이 뜨거운 것처럼 과거와 미래의 불도 또한 그러한 것과 같다.
만일 무명의 인연의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끝이 없는 것이므로 곧 치우친 견해[邊見]에 떨어지고 열반의 도를 잃게 되나니, 이 때문에 구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다시 구한다 하면 곧 희론에 떨어질 것이요 그것은 부처님의 법이 아니다.
014_1410_b_22L若知先一世無業因緣則億萬世可知譬如現在火過去未來火亦如是若無明因緣更求其本則無窮卽墮邊見失涅槃道是故不應求若更求則墮戲論非是佛法
보살은 그 무명을 끊게 하려고 무명의 체상(體相)을 구하는데, 구하는 때에는 곧 필경 공한 데에 들어간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명의 모양은 안의 법으로도 알지 못하고 바깥 법으로도 알지 못하며 안팎의 법으로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보살이 내공(內空)으로써 안의 법을 관찰하면 안의 법은 곧 공하고 외공(外空)으로써 바깥 법을 관찰하면 바깥 법도 곧 공하며, 내외공(內外空)으로써 안팎의 법을 관찰하면 안팎의 법도 곧 공하다. 이와 같은 온갖 것은 바로 무명의 모양이니, 마치 앞에 품(品)의 『덕녀경(德女經)』 가운데서 무명을 파괴하는 데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같다.
014_1410_c_04L菩薩欲斷無明故求無明體相求時卽入畢竟空何以故佛經無明相內法不知外法不知內外法不知菩薩以內空觀內法內法卽以外空觀外法外法卽空以內外空觀內外法內外法卽空如是等一切是無明相如先品『德女經』中破無廣說
또 보살이 무명의 체성을 구하면 즉시 그것은 명(明)이 된다. 이른바 모든 법의 실상을 실제(實際)라 하니, 모든 법을 관찰하면 마치 환과 같고 변화한 것과 같은 것인데도 중생들의 뒤바뀐 인연 때문에 모든 번뇌를 일으켜 나쁜 죄업을 짓고 다섯 세계[道]를 바퀴 돌 듯 돌아다니면서 나고 죽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내어 제 몸을 둘러싸 감은 뒤에 끊는 물속에 들어가 삶아지는 것과 같다. 범부의 중생도 이와 같아서 처음에 태어날 때는 아직 모든 번뇌가 있지 않다가 뒤에 스스로가 탐욕과 성냄 등의 모든 번뇌를 내는 것이니, 이런 번뇌의 인연 때문에 진실한 지혜를 가리게 되며 몸을 바꾸면서 지옥의 불에 타고 끊는 물에서 삶아지게 된다.
보살은 이런 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공한데도 다만 중생들이 뒤바뀌고 착각한 까닭에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됨을 안다. 보살은 이런 중생들에 대하여 대비의 마음을 내어 이런 뒤바뀜을 깨뜨려 주려고 짐짓 진실한 법을 구하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실제(實際)를 통달하고 갖가지의 인연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실제에 머무르게 되나니, 이 때문에 머무른다 해도 허물할 것은 없다.
014_1410_c_11L復次菩薩求無明體卽時是所謂諸法實相名爲實際觀諸法如幻如化衆生顚倒因緣故起諸煩作惡罪業輪轉五道受生死苦如蠶出糸自裹縛入沸湯火炙凡夫衆生亦如是初生時未有諸煩惱自生貪欲瞋恚等諸煩惱是煩惱因緣故覆眞智慧轉身受地獄火燒湯煮菩薩知是法本末皆空但衆生顚倒錯故受如是苦菩薩於此衆生起大悲心欲破是顚倒故求於實法行般若波羅蜜通達實際種種因緣教化衆生令住實際是故住實際無咎
014_1411_a_01L또 경에서 말하기를 “만일 중생과 실제가 다르다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수 없어야 한다”고 했는데, ‘다르다’고 함은 실제는 바로 필경 공한 것이고 중생제(衆生際)는 결정코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모든 법의 실상이 공하다면 보살이 어떻게 중생들을 위하여 이 실제를 닦겠는가. 만일 중생이 필경 공하고 실제가 반드시 있다면 중생은 없으므로 이롭게 할 것도 없거늘 누구를 위하여 실제를 행하겠는가’라고 따져야 할 것이다.
014_1410_c_23L經中說若衆生與實際異菩薩不應行般若波羅蜜異者實際是畢竟衆生際是決定有若爾者應難諸法實際相空菩薩云何爲衆生故修是實際若衆生畢竟空實際定有衆生則無所利益爲誰故行實際
그러나 여기서 중생제는 실로 실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사리분별 못하고 뒤바뀐 범부를 깨우쳐 주려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실제 가운데에 머무르게 하면서도 실제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에 수보리는 또 묻기를 “만일 중생제와 실제가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 실제로써 실제에 집착하겠습니까”라고 하였으니, 제 성품은 제 성품 가운데에 머무르지 못해야 함은 마치 손가락 끝은 제 손가락 끝을 만질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014_1411_a_06L衆生際實不異實際故行般若波羅蜜欲覺悟狂惑顚倒凡夫故行般若波羅令衆生住實際中而不壞實際是時須菩提更問若衆生際實際不異何以實際著實際自性不應自性中如指端不能自觸指端
부처님은 그의 뜻을 인가하시면서 “보살은 방편으로써 중생을 실제에 세우면서도 중생과 실제가 동일하다거나 다르다는 것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하셨다. 만일 동일하다고 한다면 곧 실제의 모양을 파괴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동일한 성품이 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 두 가지의 법이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또한 하나가 아닌 것도 아니요, 둘이 아닌 것도 아니며, 마침내 고요히 사라진[寂滅] 것이어서 희론의 모양도 없는 것임을 안다. 그리하여 보살은 대비의 마음을 내어 다만 중생들을 구출하면서 뒤바뀐 데서부터 여의게 하려는 까닭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다.
014_1411_a_12L佛可其意菩薩以方便故建立衆生於實際衆生實際不異一亦不可得若是一則壞實際相所以者何得是一性故菩薩知是二法不一不二亦不不一亦不不二畢竟寂滅無戲論相菩薩生大悲心但欲拔出衆生離於顚倒教化衆生
014_1411_b_01L또 묻기를 “어떠한 것을 방편이라 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단(檀) 가운데에 세우고 이 단을 설하면서 ‘선제(先際)와 후제(後際)도 공하며 중제(中際)도 이와 같다’고 하느니라”고 하셨으니, 경 가운데서 자세히 말씀한 것과 같다.
보살은 이 실제를 알기 때문에 중생의 곁에 이르게 되니, 앞의 「단품(檀品)」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중생은 이런 말씀을 들은 뒤에 발심하여 번뇌를 꺾으면서도 깊이 보시에 집착하고,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겨 “나는 간탐 가운데에서 그를 구출했다”고 하면서 이제는 다시 보시에 집착하게 된다. 중생이 만일 보시를 받았어도 복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을 받게 되고 또 복덕과 부귀의 인연을 받으면서 큰 죄를 짓게 되면 지옥에 떨어지게 되나니라.
014_1411_a_19L又問云何名方便佛言菩薩行般若波羅蜜時以方便力故立衆生於檀中說是檀先際後際空際亦爾如經中廣說菩薩知實際者到衆生邊如先「檀品」中說衆生聞已發折薄煩惱深著布施菩薩憐愍衆我從慳中拔出今復著布施衆生若受布施福盡受諸苦惱又受富貴因緣得作大罪則墮地獄
이 때문에 이 중생은 잠시 동안만 즐거움을 얻을 뿐이요 괴로움은 오랜 세월동안 받게 됨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그들을 위하여 보시의 실상(實相) 즉 필경 공을 설해 주면서 말하기를 “이 보시가 지나가고 나면 이미 소멸하는 것이므로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으며 수용할 수도 없고 다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어서 마치 꿈에서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미래는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있지 않아서 필경 공하다. 이 보시는 선제와 후제도 없기 때문에 중제도 또한 없다”고 한다.
6진(塵)을 파괴한 곳과 색법(色法)을 타파한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아서, 현재의 보시가 비록 눈으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갈래갈래 부수고 쪼개어 작은 먼지에 이르면 얻을 수가 없으며, 보시는 3세(世) 동안 다 공하나니,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와 과보도 또한 이와 같다.
014_1411_b_04L是故愍此衆生得少許時樂而受苦長久是故菩薩爲說布施實相所謂畢竟空是言是布施過去已滅不可見不可不可用但可憶念如夢所見無異未來未生故亦無所有畢竟空是布施先後際無故中際亦無如破六塵中破色法中說現在布施雖眼見分破析乃至微塵不可得布施三世施者受者果報亦如是
보살은 보시하는 이에게 말하기를 “보시 등의 법은 바로 맨 처음 부처님의 법에 들어가는 문이다. 실제(實際) 가운데에는 실제의 모양조차 없거늘 하물며 보시이겠는가. 그대는 보시 등의 법을 생각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말라. 만일 생각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다면 보시의 체상(體相)과 같아진다. 이와 같은 보시는 감로의 맛[甘露味]과 감로의 열매를 얻는다”라고 하는데, 감로의 맛이란 곧 8성도분이며, 감로의 열매란 곧 열반이다.
보살은 비록 실제 가운데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방편의 힘인 보시의 문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나니, 그 밖의 다른 바라밀에서도 또한 이와 같다. 경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014_1411_b_13L菩薩語施者言布施等法是初入佛法門實際實際相亦無何況布施汝莫念著布施等法若不念不著如布施體如是布施者則得甘露味甘露果甘露味者是八聖道分甘露果者涅槃菩薩雖住實際中以方便力施門度衆生餘波羅蜜亦如是如經中廣說
014_1411_c_01L수보리는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하다면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는 법과 법이 아닌 것도 없고 또한 중생도 없거늘 보살은 어떻게 이 공한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일체종지를 구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 편안히 머무르기 때문에 이 보시 등의 모든 법을 행하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014_1411_b_21L須菩提白佛言世尊若一切法性空性空中無法及非法亦無衆菩薩云何住是空中求一切種智佛答菩薩安立性空中故能行是布施等諸法
또 묻기를 “성품이 공하면 온갖 법을 파괴하여 모두 다하고 남는 것이 없겠거늘 어떻게 보살은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보시 등의 모든 착한 법을 행하겠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수보리의 뜻을 인가하면서 그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을 알므로 이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 모든 법의 실상은 곧 그것이 성품의 공[性空]이니, 만일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하지 않다면 보살은 이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하지 않으니라. 이미 중생들을 위하여 성품이 공한 법, 즉 ‘물질의 성품이 공하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의 성품도 공하다’는 것을 설명했고, 나아가 중생들을 위하여 일체종지로 번뇌의 습기를 끊는 것도 성품이 공한 법임을 설명했다”라고 하셨다.
014_1411_c_02L又問性空破一切法悉盡無云何菩薩住性空中能行布施等諸善法佛可須菩提意而說因緣薩知諸法實相住是中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諸法實相者卽是性若一切法性不空菩薩不應住是諸法性空中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衆生說性空法所謂色性空識性空乃至爲衆生說一切種斷煩惱習性空法
또한 말씀하시기를 “수보리야, 18공(空)이 만일 성품이 공하지 않다면 이것은 공의 체성을 파괴한 것이 된다. 왜냐 하면 18공은 온갖 법을 공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스스로 공하지 않다면 거짓이 되며, 또 만일 공하지 않다면 항상 있다 하는 소견[常邊]으로 집착하는 곳에 떨어지면서 번뇌를 낸다.
성품이 공하면 실로 머무르는 곳도 없고 어디서부터 온데도 없으며, 가도 어디에 이르는 데가 없나니, 이것을 바로 항상 머무르는 법 모양[常住法相]이라 한다. 항상 머무르는 법 모양은 성품이 공한 것[性空]의 다른 이름[異名]이며, 또한 모든 법의 실상[諸法實相]이라고도 한다.
이 모양 가운데에는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014_1411_c_11L復次須菩提八空若性不空是爲壞空體何以故十八空能令一切法空若自不空爲虛誑又若不空者則墮常邊著處能生煩惱性空無實住處無所從來去無所至是名常住法相常住法相是性空之異名亦名諸法實相是相中無生無滅無增無減無垢無淨
보살은 이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을 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후회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장애가 되는 어떤 모든 법도 보지 않으며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방편의 힘’이란 필경에는 법도 없고 또한 중생이 없는데도 중생을 제도하는 그것이다.
014_1411_c_18L薩住是中見一切法性空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退不疑不悔何以故不見諸法能障㝵者以方便力故度衆生方便力者畢竟無法亦無衆生而度衆生
【문】만일 중생과 법이 본래부터 무위(無爲)라 하면, 그 누가 방편을 짓고 그 누구를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는가?
014_1411_c_23L問曰若衆生及法從本已來無爲誰作方便爲度脫誰
014_1412_a_01L【답】성품이 공한 것을 공한 성품이라 하고 또한 없다고 하거늘,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 공한 성품의 모양을 취하면서 따지는가? 만일 성품에 공한 모양이 있다 한다면 따져야 될 것이다.
014_1412_a_01L答曰空名空性亦無汝何以取是空性相作難若有性空相應當作難
또 모든 법의 실상을 얻은 이는 바로 성품이 공한 줄을 알며, 이런 사람은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하여 법도 없고 중생도 없는 줄 알겠지만, 범부는 아직 실상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갖가지로 기억하고 생각하며 분별한다. 마치 미친 사람이 망령되이 보이는 것이 있으면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이에 범부와 미친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미친 법 가운데는 이런 모든 법의 분별이 있지만 진실한 법 가운데는 이런 일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보살은 본원을 만족시키려 하고 또한 성품이 공한 데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중생을 제도함이 있는 것이니, 이런 일에 대해서는 따지지 말아야 한다.
014_1412_a_03L復次諸法實相者知是性空是人則知諸法性空——無法無衆生凡夫未得實相種種憶想分別如狂人妄有所見以爲實有爲度凡夫狂人故言爲衆生說狂法中有是諸法分別實法中則菩薩欲滿本願故又不著性空故有度衆生此中則不應難
또 이 경에서 부처님은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성품이 공한 가운데서는 중생도 얻을 수 없고 아는 이[智者]ㆍ보는 이[見者]도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도 보살은 이 법을 세워 중생들을 위하나니, 이것은 세속의 이치로 말하는 까닭이요 이것은 진실이 아니니라”고 하셨다.
014_1412_a_10L復次此經中佛自說因緣性空中衆生不可得知者見者亦不可得乃至八十隨形好亦如是而菩薩立是法爲衆生說是世諦故非是實
이 가운데서 부처님은 비유로써 말씀하시기를 “만일 부처님이 변화로 만든 사람과 또 변화로 사부대중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법을 설하면 도를 얻는 이가 있느냐”고 하시자, 수보리는 말하기를 “없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일정한 근본과 진실한 일이 없거늘 어떻게 수다원을 얻고 나아가 부처님이 되는 이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014_1412_a_14L此中佛說譬喩佛作化人又化作四部衆而爲說法可有得道者不須菩提言不也所以者何無定根本實事何有得須陁洹乃至得佛者
보살이 법을 설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중생은 정해진 진실이 없지만 다만 뒤바뀐 가운데서 중생을 구출하여 뒤바뀐 것이 없는 가운데에 놓아두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뒤바뀐 것이 없는 법은 역시 처소도 없으며 이 가운데에는 중생도 없고 나아가 아는 이ㆍ보는 이까지도 없다. 비록 공한 성품이 하나의 모양이라 하더라도 뒤바뀐 것은 많고 뒤바뀌지 않은 것은 적나니, 이 때문에 이 성품이 공한 것[性空]과 뒤바뀌지 않는 법[不顚倒法]을 귀하게 여긴다. 보살은 이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다만 중생의 허망한 생각만을 파괴할 뿐이요 중생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014_1412_a_18L菩薩說法度衆生亦如衆生無有定實但欲於顚倒中拔出衆生著無顚倒中無顚倒法亦無處所是中無衆生乃至無知者見者雖空性一相而顚倒多不顚倒少故貴是性空不顚倒法菩薩住此中但破衆生妄想不破衆生
014_1412_b_01L또 무루(無漏)의 법에서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비록 무루의 법이라 하더라도 나고 없어지고 하기 때문에 으뜸가는 이치보다는 못하다. 이 성품이 공한 것은 온갖 부처님께는 이 도(道)만이 있을 뿐이요 또 다른 도가 없어서이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은 모두가 진실한 지혜의 파괴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법을 구하기 때문이다.
비록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 등의 여러 가지 다른 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도[一道]라 하지 못하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이 모두는 바로 유위(有爲)의 법이어서 옮아가고 변하면서 무상하기 때문이다.
이 성품이 공한 가운데에는 중생도 없고 또한 물질 등의 모든 법도 없다. 보살은 보살의 도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지 않고 다만 성품의 공한 것만을 위하기 때문이다.
014_1412_b_01L又無漏法乃至八聖道分雖是無漏以生滅故不如第一義須菩提是性空一切諸佛唯有是道更無異道何以故諸佛皆求實智不壞不異法雖有十力無所畏諸異法不名爲一道所以者此皆是有爲法轉變無常故是性空無衆生亦無色等諸法菩薩不爲菩薩道故求阿耨多羅三藐三菩但爲性空故
【문】어떤 것이 성품의 공한 것[性空]이며, 어떤 것이 보살의 도[菩薩道]인가?
014_1412_b_10L問曰何等是性空等是菩薩道
【답】으뜸가는 이치 가운데는 분별이 없지만 세속의 이치 가운데는 분별이 있나니, 모든 법의 실상을 성품의 공이라 하고 그 밖의 보시 등에서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는 바로 보살의 도이다.
비록 이런 법을 행한다 하더라도 이 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품의 공을 구하기 위해서이니, 이 때문에 “보살의 도를 위해서가 아니요, 이 성품의 공을 행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 것이다.
앞에서도 또한 성품이 공하고 중간과 나중에도 또한 성품이 공하다. 본래부터 항상 공한 것이라 짓는 이가 없다. 이것은 복덕의 힘 때문에 공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지혜의 힘 때문에 공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 다만 성품이 저절로 그러할 뿐이기 때문이다.
014_1412_b_11L答曰第一義中無分別世諦中有分別諸法實相名性空布施等乃至八十隨形好是菩薩道雖行是法不爲此法爲求性空故故說不爲菩薩道故行是性空先亦性空後亦性空從本已來常空有作者非是福德力故使空亦非智慧力故使空但性自爾故
014_1412_c_01L모든 부처님과 성현은 큰 복덕과 지혜와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의 마음속의 뒤바뀜을 파괴하여 성품이 공한 것을 알게 하신다.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여 더러운 것과 어두운 것이 달라붙지 않는 것인데 간혹 바람이나 구름이 끼어 어두워지면 세상 사람들은 곧 말하기를 “허공이 깨끗하지 못하구나”라고 하고, 다시 세찬 바람이 불어서 그 어두운 구름을 걷어 없애면 곧 “허공이 깨끗해졌다”고 하지만, 허공에는 실로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설법의 맹렬한 바람으로 뒤바뀐 번뇌의 구름을 걷어 없애서 깨끗하게 하신다. 그러나 모든 법의 성품에는 항상 스스로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014_1412_b_18L諸佛賢聖以大福德智慧方便力故破衆生心中顚倒令知性空譬如虛空性常淸不著垢闇或時風雲闇翳世人便虛空不淨更有猛風吹除風雲便虛空淸淨而虛空實無垢無淨佛亦如是以說法猛風吹卻顚倒雲令得淸淨而諸法性常自無垢無
이 보살은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한 줄 알기 때문에 능히 온갖 종류의 도를 행하면서 중생을 제도하고 온갖 도를 두루 갖추며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에는 뜻대로 수명(壽命)을 누린다.
‘뜻대로 수명을 누린다’고 함은, 보살은 무생인(無生忍)의 법을 얻어 환과도 같은 보살의 도에 들어가 일시에 변화하여 천억만의 몸이 되어서 시방에 두루하여 온갖 보살의 도를 두루 갖추어 행하되, 곳곳의 그 국토마다 그 안에 사는 중생의 수명이 길고 짧음에 따라 그 형상을 받는 것이다. 마치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국토에서는 수명이 백세뿐이었으나, 장엄불국(莊嚴佛國)에서는 수명이 7백 아승기겁인 것과 같다. 이는 부처님 법의 다섯 가지 불가사의[五佛可思議] 중에서 바로 첫 번째 불가사의이다.
014_1412_c_03L是菩薩知一切法性空故能行一切種種道度衆生具足一切道淨佛國教化衆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隨意壽命隨意壽命者菩薩得無生忍法入如幻菩薩道能一時變化作千億萬身周遍十方具足行一切菩薩道處處國土中隨衆生壽命長短而受其形如釋迦牟尼佛於此國土壽命百年於莊嚴佛國壽七百阿僧祇劫佛法於五不可思議中是第一不可思議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법이다. 만일 이 법을 얻으면 곧 부처님이라 하고, 만일 이 법을 설하면 중생을 제도한다 하나니, 3세(世)의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다.
이 성품이 공한 것을 여의면 도(道)도 없고 도의 과위[道果]도 없다. 도는 8성도분이요, 과위는 일곱 가지의 과위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성품의 공을 여의어 따로 일정한 법이 있다면 곧 모양을 취하여 집착을 내게 되기 때문이니, 집착하기 때문에 또한 욕탐을 여의는 일도 없고 욕탐을 여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곧 도의 과위도 없다.
014_1412_c_13L佛告須菩提一切法性空是諸佛眞法若得是法則名爲佛若說此法名爲度衆生三世佛皆亦如是離是性空則無道無果八聖道分果者七種果所以者何若離性空別有定法則取相生著故亦無離欲無離欲故則無道果
만일 성품이 공한 것을 여의면 비록 보시와 지계를 행하고 자비 등을 행한다 하더라도 착한 법의 힘 때문에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 나기는 하지만, 그 과보가 다하면 도로 악도에 떨어져 본래대로요 다르지 않게 된다. 성품이 공한 법을 행하고 또한 성품이 공한 데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곧 열반이다. 그 밖의 다른 법을 행하면 집착하는 마음을 내고 물러남이 있지만, 만일 이 법을 행하면 물러나거나 잃는 일이 없다”고 하셨다.
014_1412_c_19L離性空雖行布施持戒行慈悲等善法力故雖不墮惡道生天果盡墮惡道如本不異行性空法亦不著性空卽是涅槃行餘法生著心退失若行此法則無退失
014_1413_a_01L수보리가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참으로 희유한 일입니다. 보살은 이 성품이 공한 법을 행하면서도 역시 성품이 공한 모양을 파괴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014_1413_a_01L須菩提歡喜白佛言甚希有菩薩行是性空法亦不壞性空相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만일 물질 등의 법이 성품의 공한 것과 다르다면 보살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공한 법이 있으면 여읠 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014_1413_a_03L佛答若色等法與性空異菩薩則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有空法則不可得離
수보리야, 지금 물질 등의 모든 법은 실로 성품이 공하니, 보살은 이 법을 알고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왜냐하면, 이 가운데에는 결코 그것은 항상 있다[常] 하는 어느 한 법도 없기 때문이니, 다만 범부가 나[我]라 하는 마음을 내는 까닭에 안팎의 법에 집착하게 되고,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는 데서 벗어나지 못할 뿐이니라.
이 때문에 보살은 이 성품의 공한 것을 행하여 6바라밀에 화합하고 물질 등의 모든 법 모양을 파괴하지 않느니라. 이른바 ‘공하다, 공하지 않다, 공하기도 하고 공하지 않기도 하다, 또는 공한 것도 아니고 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이 보이지 않나니, 이것을 곧 파괴하지 않는다[不壞]고 하느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물질의 실상이 곧 성품의 공한 것이기 때문이니, 성품이 공하거늘 어떻게 스스로 성품이 공한 것을 파괴하겠느냐. 이에 보리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러하느니라”고 하셨고, 이 가운데서 부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되 ”마치 안의 허공이 바깥 허공을 파괴하지 않는 것과 같나니, 체성이 같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014_1413_a_05L菩提今色等諸法實性空菩薩知是法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所以者何此中無有一法定是常但凡夫生我心故著內外法不得脫生是故菩薩行是性空和合六波羅不壞色等諸法相——所謂若空若不若空不空若非空非不空不作如是示諸法相是名不壞所以者何實相卽是性空性空云何自壞性空至菩提亦如是此中佛說譬喩如內虛空不壞外虛空以同體故
수보리가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성품이 공하여 달라짐이 없다면 보살은 어느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그의 뜻을 인가하면서 “그러하느니라, 만일 분별하여 두 모양[二相]이 있다고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진실한 지혜[實知慧]라 이름하여 물질의 법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아니니, 이른바 집착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지혜는 물질을 취하기 위하여 행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물질 가운데서 행하지 않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014_1413_a_16L須菩提問世尊若諸法性空無別異菩薩於何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佛可其意言如是若分別有二相則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阿耨多羅三藐三菩提名實智慧於色法中不行謂不著不染所以者何是智慧不爲取色故行是故不行色中
014_1413_b_01L수보리는 또 여쭈기를 “만일 보리를 취하는 것 가운데서 행하지 않고 버리는 것 가운데서 행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취하는[取] 것을 실제의 법이라 하고 버리는[捨] 것을 공한 법이라 하며, 취하는 것을 집착하는 행이라 하고 버리는 것을 집착하지 않는 행이라 하며, 취하는 것을 둘의 행[二行]이라 하고 버리는 것을 둘이 아닌 행[不二行]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분별한 것이다.
014_1413_a_23L須菩提復問若菩提不取中行不捨中行當於何處行取名實法捨名空法取名著行捨名不著行取名二行捨名不二行如是等分別
부처님은 반문(反問)하시면서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님이 변화로 만든 사람은 어느 곳에서 행하겠느냐”고 하시자, 수보리는 말하기를 “이 변화로 된 사람은 행하는 곳이 없습니다. 변화한 사람은 마음도 없고 마음에 속한 법도 없기 때문이니, 보리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014_1413_b_04L佛反問須菩提於汝意云何佛所化人爲何處行須菩提言是化人無處行化人無心無心數法菩提亦如是
또 물으시기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은 꿈속에서 보리를 그 어느 곳에서 행하게 되더냐”고 하시자, 수보리는 말하기를 “아라한은 오히려 잠도 자지 않거늘, 하물며 꿈속에서 보리를 행하는 곳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014_1413_b_07L復問於汝意云何羅漢夢中菩提爲在何處行須菩提言阿羅漢尚不眠何況夢中菩提有行處
【문】보리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아라한의 보리와 벽지불의 보리와 부처님의 보리이다. 아라한의 보리는 유루(有漏)의 마음과 무기(無記)의 마음에서 행하지 않고 다만 무루(無漏)의 마음에서만 행할 뿐이거늘,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아라한이 꿈속에서는 보리를 어느 곳에서 행하느냐”고 물으셨는가?
014_1413_b_10L問曰菩提有三種阿羅漢菩提辟支佛菩提佛菩提阿羅漢菩提不在有漏心中無記心中行在無漏心中行佛何以故問阿羅漢夢中菩提何處行
【답】아라한은 온갖 번뇌가 다한 성인이어서 꿈이 없다. 부처님은 반드시 없는 것이므로 반드시 행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밝히시려고 물은 것이다.
014_1413_b_14L答曰阿羅漢是一切漏盡聖人則無夢佛以必無處故欲明必無行法
【문】나아가 부처님조차도 오히려 잠을 주무신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느냐 하면, 부처님은 일찍이 아난에게 명하시기를 “너는 네 번 접어서 우다라승(優多羅僧)4)을 펴라. 나는 잠시 동안 잠을 자고 싶구나. 너는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해 주어라”고 하셨다.
014_1413_b_16L問曰乃至佛猶尚有眠何以知之嘗命阿難汝四襞優多羅僧敷我欲小眠汝爲諸比丘說法
또 살차니건(薩遮尼乾)이 부처님께 여쭈기를 “부처님께서는 낮에 주무셨던 일을 기억하십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늦은 봄에서 초여름까지는 날이 더웠기 때문에 잠깐 동안 자면서 쉬었다. 식곤증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느니라”고 하셨다.
014_1413_b_19L又薩遮尼乾問佛佛自念晝日有眠不佛言春末夏初以時熱故小眠息除食患故
014_1413_c_01L살차니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다른 사람들의 말로는 ‘낮잠을 자는 것은 바로 어리석은 모양[癡相]’이라고 합니다”고 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너는 어리석은 모양도 분별하지 못하고 있구나. 모든 번뇌로 다시 몸을 받고 태어나면서 그 상속(相續)을 끊지 못하는 것을 바로 어리석은 모양이라 한다. 비록 항상 잠을 자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도 또한 어리석은 것이요, 만일 이 번뇌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다면 비록 잠을 잔다 하더라도 어리석다고 하지 않느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경의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거늘, 수보리는 무엇 때문에 “아라한은 오히려 잠을 자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014_1413_b_21L遮尼乾白佛餘人有言晝日眠是癡佛言汝置汝不別癡相諸漏能生後身相續不斷者是名癡相雖常不眠亦是癡若是諸漏永滅無餘雖眠不名癡如是等經中處處說須菩提何以言阿羅漢尚不眠
【답】잠을 자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것이요, 둘째는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지 않는 것이다. 아라한은 안온하기 위하여 쾌락에 집착하면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며, 다만 4대(大)의 몸을 받았기에 당연히 먹고 쉬고 잠자고 깨는 법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잠시 동안 쉬는 것을 잠을 잔다고 하지만 꿈을 꾸는 잠이 아니다. 따라서 수보리는 “아라한은 오히려 잠을 자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014_1413_c_04L答曰眠有二一者眠而夢二者眠而不夢阿羅漢非爲安隱著樂故眠但受四大身應有食是故少許時息名不爲夢眠故須菩提言阿羅漢尚不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욕탐을 여읜 이는 선정을 얻어 색계(色界)에 매인 4대(大)가 몸 속으로 들어오면서 몸과 마음이 기뻐지므로 잠자는 일이 없지만, 혜해탈(慧解脫)의 아라한은 색계의 4대가 몸 속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잠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수보리는 “아라한은 오히려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라한은 잠을 자기도 하고 잠을 자지 않기도 하지만 부처님은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하는 법을 받아 짐짓 잠자는 일을 보이신 것이다.
014_1413_c_09L有人言離欲者得禪定色界繫四大入身中身心歡樂則無有眠解脫阿羅漢色界四大不入身中有眠是故須菩提言阿羅漢尚不眠是故阿羅漢有眠有不眠佛以方便爲度衆生受人法故現眠
수보리는 또 여쭈기를 “만일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살은 첫 번째 지위[地]로부터 10지(地)까지 이르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라고 하였다.
014_1413_c_14L須菩提復問若不行者云何菩薩從一地至十地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4_1414_a_01L부처님은 그의 뜻을 인가하시면서 “보리는 비록 행하는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직 6바라밀의 모든 법을 두루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끝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 이 보살은 물질의 모양에 머무르고 나아가 보리의 모양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만, 물질 등의 법을 버리지도 않고 또한 보리의 모양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물질 등의 법이 곧 보리요 항상 고요히 사라져서[寂滅] 더한다거나 줄어든다거나 더럽다거나 깨끗하다거나 도를 얻는다거나 과위를 얻는다거나 하는 어떤 법도 없는 줄 알고, 다만 세속 이치 때문에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말할 뿐이요, 으뜸가는 이치 안에는 물질에서 보리에 이르기까지도 없다”고 하셨다.
014_1413_c_17L佛可其意菩提雖無處行具足六波羅蜜諸法終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菩薩住色相乃至菩提相中住得阿耨多羅三藐三菩不捨色等法亦不著菩提相知色等法卽是菩提常寂滅無法若增若垢若淨若得道若得果但世諦故說菩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第一義中無有色乃至菩提
부처님은 이어 이 일을 밝히시려고 짐짓 반문하시면서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번뇌를 끊고 도를 얻었을 때에 얻을 것이 있겠느냐”고 하셨다. 이른바 꿈과도 같은 5중(衆)이 도(道)나 도의 과위[道果]로서 결정코 어느 한 법이라도 얻겠느냐는 것이다.
014_1414_a_02L佛欲明是事故反問須菩提於汝意云何斷煩惱得道時有所得不所謂如夢等五衆若道若道果決定一法不
수보리는 말씀드리기를 “얻을 것이 없습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는 생각하기를 ‘모양 없는 문[無相門]에 머무르면서 도에 들거늘 어떻게 모양을 취하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014_1414_a_05L菩提言不得也所以者何須菩提意住無相門中入道云何取相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만일 미세한 조그마한 법까지도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너는 아라한이라고 말하겠느냐”고 하시자, 수보리는 말씀드리기를 “세속 이치의 법 때문에 아라한이라 말하는 것이니, 범부의 뒤바뀐 법 가운데에는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으며 중생도 있고 법도 있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014_1414_a_07L佛言汝若乃至不得微細少法云何說汝爲阿羅須菩提言世諦法故說言阿羅漢凡夫顚倒法中有得有失有衆生有法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보리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세속 이치의 법 때문에 보살이 있다고 말하고 물질 등에서 보리에 이르기까지가 있다고 말하지만, 보리 가운데에는 정해진 법도 없고 또한 중생도 없으며 또한 보리도 없다.
보살은 이 보리의 법을 관찰하되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보살도 또한 이 모든 법의 성품을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최초의 발심이 있겠으며, 나아가 10지(地)와 6바라밀과 37품(品) 내지는 18불공법이 있겠느냐. 얻는 바가 있어야 한다면 이는 옳지 못한 일이다.
014_1414_a_10L佛言菩提亦如是世諦法故說有菩薩說有色等乃至菩提菩提中無有定亦無衆生亦無菩提菩薩觀是菩提法無有增無有減所以者何諸法性如是菩薩亦不得是諸法性何況有初發心乃至十地及六波羅蜜十七品乃至十八不共法當有所得無有是處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은 곧 온갖 법의 근본인데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이 짓는 법이자 정해진 실체로서 있어야 할 6바라밀 등이겠느냐. 이와 같이 보살은 이 모든 법의 성품을 행하여 부처님이 될 때에 중생들을 크게 이롭게 하리라.”
014_1414_a_18L所以者何諸法性是一切法根本尚不可得何況六波羅蜜等是作法當有定實如是菩薩行是諸法性得佛時能大利益衆生
大智度論卷第九十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어로는 ḍṛṣṭi-parāmarśa. 유루법을 가장 청정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2. 2)범어로는 śilavrataparāmarśa. 계금취(戒禁取)를 말한다. 유루행을 생천의 인이 된다고 보고 계착하는 견해이다.
  3. 3)범어 saṃskara의 음역어이다.
  4. 4)범어 uttara-āsaṅga의 음역어로, 3의(衣) 가운데 하나이다. 울다라승(鬱多羅僧)이라 음역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