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5_0001_a_01L십지경론서(十地經論序)
015_0001_a_01L十地經論序侍中崔光製



『십지경론』은 신묘한 깨달음의 그윽한 동산이요, 신령한 지혜의 미묘한 집이며 온갖 선(善)의 기초요 모든 수행의 강령이니, 이치는 뭇 장경의 비전(秘傳)을 포괄하고 뜻은 뭇 경전의 심오한 뜻 가운데 으뜸이다. 점차 심행(心行)을 쌓음에 인학(忍學)의 근원을 궁구하고 널리 주덕(住德)을 높임에 도(道)와 혜(慧)의 창고를 구극(究極)하였다. 이런 까닭에 조려(肇慮)를 두터이 모으고 원종(圓種)을 밝게 이루어 포수(怖首)1)의 생각을 여의고 빛나는 뇌성(雷聲)의 위엄을 보인다.
015_0001_a_02L『十地經』者蓋是神覺之玄苑靈慧之妙宅億善之基輿萬度之綱統理包群藏之秘義冠衆典之奧積漸心行窮忍學之源崇廣住德極道慧之府所以厚集肇慮朗成圓種離怖首念赫爲雷威
그 가르침은 미묘하고 심원하여 정조(淨照)의 종지(宗旨)를 구극하고, 녹이고 다듬어 성령(性靈)의 묘리(妙理)를 극진히 하였다. 적멸도량에 해가 솟아오르고부터 고림(固林)에 해가 질 때까지, 비록 성훈(聖訓)과 금언(金言)이 온 세상에 가득 찰 만큼 많지만 그 심오한 뜻이 이 속에 남김없이 망라되어 있다. 찬연히 진궤(眞軌)를 선양하고 혼연히 현문(玄門)을 창달하기에 이르러, 처음 인(仁)을 믿음으로부터 마침내 공적(空寂)을 민멸(泯滅)하게 되었다.
015_0001_a_08L其爲教也微密精遠究淨照之宗融冶瑩練盡性靈之妙自寂場啓旭固林輟暉雖復聖訓充感言滿世而淵猷沖賾莫不網羅於其中矣至于光宣眞軌融暢玄門始自信仁終泯空寂
인과가 이미 두루 충족함에 교화의 사업이 더욱 드러나 묵묵히 대방(大方:大地)을 비추어 영향이 8극(極:천하)에 빛나니, 어찌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만상(萬象)을 환히 비추고 큰 바다와 골짜기가 땅을 두르고 모든 시내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을 뿐이겠는가. 이미 이치가 바다와 산악같이 많아 말로는 헤아릴 수 없으니, 큰 뜻을 확연히 밝히는 것은 실로 심원한 대사(大士)에 달려 있다.
015_0001_a_13L因果旣周化業彌顯默耀大方影煥八極豈直日月麗天洞燭千象溟壑帶地混納百川而已旣理富瀛嶽局言靡測廓明洪旨寔係淵儒
북천축(北天竺)의 대사 바수반두(婆藪槃豆)는 위(魏)나라 말로는 천친(天親)이라 하는데, 상법(像法)의 말운(末運)에 탁월한 오성(悟性)을 받고 말세 시속에 영특한 자질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런 까닭에 빛나게 마명(馬嗚)의 뒤를 잇고 용수(龍樹)의 자취를 계승할 수 있었다.
015_0001_a_17L北天竺大士婆藪槃豆云天親挺高悟於像運拔英規於季故能徽蹤馬鳴繼迹龍樹
이 경이 글은 간략하나 담고 있는 뜻은 풍부한데, 말은 가깝고 뜻은 먼 것을 매양 안타깝게 여겨왔다. 이에 초연히 크게 개탄하고 막연히 멀리 생각하여 석가의 남은 규범을 흠모하고 강장(剛藏:금강장)의 끼친 궤적을 추모하였으니,
015_0001_a_19L每恨此經文約而義豐言邇而旨遠乃超然遐慨邈爾悠想慕釋迦之餘範追剛藏之遺軌
015_0001_b_01L 진실로 세월은 5백 년이나 지났고 장소는 6천(天)이 아니며, 인간과 범천(梵天)이 아득히 서로 멀고, 정법(正法)과 상법이 현저히 서로 어긋났으나, 우주 안에서 미묘하게 계합함에 정신이 여지없이 합일하고 현묘한 법을 관통함에 옛 성현에 부끄러움이 없다. 이에 대종(大宗)을 두루 상고하여 이 논을 지으니, 정미한 이치를 발함에 근본은 총명한 지혜에서 비롯하고 뜻은 깊되 말이 달라, 번역하여 널리 선양할 후세의 현인을 기다렸다. 그리하여 진실로 뜻은 중흥을 부촉하고 때는 성대(聖代)에 의지하였다.
015_0001_a_22L誠復歲踰五百處非六天人梵乖遼正像差迥而妙契寰中協靡外通法貫玄莫愧往烈遂乃准傍大宗爰製茲論發趣精微根由睿旨奧音殊宣譯俟賢固以義屬中時憑聖代
대위황제(大魏皇帝)께서 하늘같이 그윽한 뛰어난 정신과 운한(雲漢:은하수)같이 아득한 깊은 성정(性情)으로 천하 밖에 치풍(治風:治世의 기풍)을 드날리고 천 년 후에 도화(道化)를 펼치시는 한편, 매양 불경으로 마음이 노닐 터전으로 삼고 석전(釋典:佛典)으로 눈길이 깃들 동산으로 삼으셨다. 이에 은닉된 것을 뒤지고 결손된 것을 찾아서 밝게 드러내기에 힘써, 교법(敎法)이 있으면 반드시 세상에 펴서 갖추지 못한 전적(典籍)이 없었다.
015_0001_b_05L大魏皇帝儁神天凝情漢遠揚治風於宇縣之外敷道化於千載之下每以佛經爲遊心之場釋典爲拪照之囿搜隱訪缺務乎昭有教必申無籍不備
영평(永平) 원년(508)년 세차(歲次) 현효(玄枵:戊子年) 4월 상일(上日)에 위(魏)나라 말로 도희(道希)라 하는 북천축의 삼장 법사 보리류지(菩提流支)와 위나라 말로 보의(寶意)라 하는 중천축(中天竺)의 륵나마제(勒那摩提) 및 전역 사문(傳譯沙門:번역을 맡은 승려) 북천축의 복타선다(伏陀扇多)와 의학치유(義學緇儒) 10여 명에게 명하여, 태극자정(太極紫庭:궁궐)에서 이 논 10여 권을 번역해 내게 하셨다.
015_0001_b_09L以永平元年歲次玄枵四月上日命三藏法師北天竺菩提流支魏云道希中天竺勒那摩提魏云寶意及傳譯沙門北天竺伏陁扇多幷義學緇儒一十餘人在太極紫庭譯出斯論十有餘卷
이 일에 참여한 두 삼장 법사는 세속의 역량을 넘어선 분들로 도문(道門)에 높이 이르러 여러 깊은 장경들을 남김없이 연구하여 10지(地)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논(論)의 취지를 미묘하게 터득하였다. 그리하여 모두 손으로 범문(梵文)을 잡으면 입에서 저절로 해석이 흘러나와 편사척설(片辭隻說)이라도 그 뜻을 설명하여 빠뜨림이 없었다.
015_0001_b_14L二三藏竝以邁俗之量高步道門藏淵部罔不硏攬善會地情妙盡論皆手執梵文口自敷唱片辭隻說辯詣蔑遺
이에 황상(皇上)께서 친히 그윽한 문장을 구사하여 앞장서서 붓을 휘두르시니, 신하와 승려들이 아래에서 도와 영평 4년 첫 여름(음력 4월)에 번역을 모두 마쳤다. 이 논을 보면 아득히 넓고 멀어 들어가는 문을 찾을 수 없으니, 문의(文義)가 풍부하고 취지가 현묘한데 누가 이를 엿볼 수 있겠는가. 금강장의 미묘한 설법이 상세(像世)에 다시 일어나고, 천친의 현묘한 뜻이 계운(季運:말세)에 거듭 빛나게 되었다.
내가 외람되이 말석(末席)에 참여했기로 감히 삼가 서문을 쓴다.
시중(侍中) 최광(崔光) 지음
015_0001_b_18L于時皇上親紆玄藻飛翰輪首臣寮僧徒毘贊下風四年首夏飜譯周訖洋洋亹亹莫得其門義富趣玄孰云窺測剛藏妙說更興於像天親玄旨再光於季運忝廁末筵敢竊祇記


십지경론(十地經論) 제1권
015_0001_b_23L十地經論初歡喜地第一之一
015_0001_c_01L

천친(天親) 지음
후위(後魏) 보리류지(菩提流支) 등 한역
이상하 번역
015_0001_c_01L天親菩薩造
後魏北印度三藏菩提流支等譯


1. 환희지(歡喜地) ①

이 법문을 설하는 이와
설법을 권청하는 이
불법의 뜻을 분별하는 이
받아 지녀 유통시키는 이
015_0001_c_03L說此法門者
及諸勸請法
分別義藏人
受持流通等

가장 수승한 그 법문
묘한 뜻을 해설함에 정례(頂禮)하노니
불법이 오래 머물러
자리와 이타를 이룰지어다.
015_0001_c_05L法門等最勝
頂禮解妙義
欲令法久住
自利利他故

10지 법문(地法門)에 초지(初地)가 포괄하고 있는 것이 여덟 분(分)이니, 첫째 서분(序分), 둘째 삼매분(三昧分), 셋째 가분(加分), 넷째 기분(起分), 다섯째 본분(本分), 여섯째 청분(請分), 일곱째 설분(說分), 여덟째 교량승분(校量勝分)이다.
015_0001_c_06L十地法門初地所攝八分序分三昧分加分起分本分說分挍量勝分

【經】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5_0001_c_09L經曰如是我聞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 성도(成道)한 지 오래 지 않은 두 번째 7일째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가운데 타화자재천왕궁의 마니보장전(摩尼寶藏殿)에서 대보살 대중과 함께 계셨다. 그 보살들은 모두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올라 한 생(生)만 지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이들로, 타방의 부처님세계에서 이곳으로 와 모였다.
015_0001_c_10L一時婆伽婆成道未久第二七日在他化自在天中自在天王宮摩尼寶藏殿與大菩薩衆俱一切不退轉皆一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從他方佛世界俱來集會
이 보살들은 일체 보살의 지혜 경계에 머물러 모두 자재(自在)하고 일체 여래의 지혜 경계에 모두 잘 들어가, 부지런히 수행하여 쉬지 않고 일체의 세간을 잘 교화하며 수시로 일체의 신통으로 짓는 일들을 두루 보여 찰나 사이에 모두 구족하게 처리하였다.
015_0001_c_14L此諸菩薩一切菩薩智慧境界悉得自在一切如來智慧境界悉皆得入勤行不息善能教化一切世閒隨時普示一切神通等事於剎那中皆能成辦具足
015_0002_a_01L 그리고 일체 보살이 일으키는 큰 서원(誓願)을 버리지 않아, 일체의 세상ㆍ일체의 겁(劫)ㆍ일체의 국토에서 항상 일체 보살행을 닦아 보살의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고, 한량없는 여의신족통(如意神足通)을 얻어 능히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능히 일체 보살의 지혜 방편인 피안에 도달하여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도(世間道)를 등지고 열반문(涅槃門)으로 향하게 하며, 일체의 보살행을 끊지 않고 일체 보살의 선정(禪定)ㆍ해탈ㆍ삼매ㆍ신통ㆍ명혜(明慧:三明과 三慧)에 잘 유희하여 모든 하는 일을 능히 잘 시현(示現)하였다.
015_0001_c_19L不捨一切菩薩所起大願於一切世一切劫一切國土常修一切諸菩薩行具足菩薩福德智慧如意神足而無窮盡能爲一切而作饒益到一切菩薩智慧方便彼岸能令衆生背世閒道向涅槃門不斷一切菩薩所行善遊一切菩薩禪定解脫三昧神通明慧諸所施爲善能示現
일체의 보살이 무작(無作) 자재하여 여의신족통을 모두 얻어 한 생각 사이에 능히 시방 모든 부처님의 큰 회상(會上)에 가서 설법을 권청하고, 일체 제불의 법륜(法輪)을 받아 지녀 항상 큰마음으로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항상 능히 모든 큰 보살이 행하는 사업을 닦았다. 그리하여 몸은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시현하고, 음성은 어디에서든 들리지 않는 곳이 없고, 마음은 환하게 통달하여 3세를 환하게 보며, 일체 보살이 지닌 공덕을 구족하게 닦았다.
015_0002_a_03L切菩薩無作自在如意神足皆悉已於一念頃能至十方諸佛大會發諮請受持一切諸佛法輪常以大心供養諸佛常能修習諸大菩薩所行事業其身普現無量世界其音遍聞無所不至其心通達明見三世切菩薩所有功德具足修習
이와 같은 여러 보살마하살의 공덕은 한량없고 가없어 무수한 겁 동안 말해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015_0002_a_10L如是諸菩薩摩訶薩功德無量無邊於無數劫說不可盡
그 이름은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ㆍ보장(寶藏)보살ㆍ연화장(蓮華藏)보살ㆍ승장(勝藏)보살ㆍ연화승장(蓮華勝藏)보살ㆍ일장(日藏)보살ㆍ월장(月藏)보살ㆍ정월장(淨月藏)보살ㆍ조일체세간장엄장(照一切世間莊嚴藏)보살ㆍ지혜보조명장(智慧普照明藏)보살ㆍ묘승장(妙勝藏)보살ㆍ전단승장(栴檀勝藏)보살ㆍ화승장(華勝藏)보살ㆍ구소마승장(俱素摩勝藏)보살ㆍ우발라화승장(優鉢羅華勝藏)보살ㆍ
015_0002_a_12L其名曰金剛藏菩薩藏菩薩蓮華藏菩薩勝藏菩薩蓮華勝藏菩薩日藏菩薩月藏菩薩淨月藏菩薩照一切世閒莊嚴藏菩薩智慧普照明藏菩薩妙勝藏菩薩栴檀勝藏菩薩華勝藏菩薩俱素摩勝藏菩優鉢羅華勝藏菩薩
천승장(天勝藏)보살ㆍ복덕승장(福德勝藏)보살ㆍ무애청정지장(無礙淸淨智藏)보살ㆍ공덕장(功德藏)보살ㆍ나라연덕장(那羅延德藏)보살ㆍ무구장(無垢藏)보살ㆍ이구장(離垢藏)보살ㆍ종종요설장엄장(種種樂說莊嚴藏)보살ㆍ대광명망조장(大光明網照藏)보살ㆍ
015_0002_a_18L天勝藏菩薩福德勝藏菩薩無㝵淸淨智藏菩薩功德藏菩薩那羅延德藏菩薩無垢藏菩薩離垢藏菩薩種種樂說莊嚴藏菩薩大光明網照藏菩薩
015_0002_b_01L정명승조위덕왕장(淨明勝照威德王藏)보살ㆍ대금산정광명위덕왕장(大金山淨光明威德王藏)보살ㆍ일체상장엄정승장(一切相莊嚴淨勝藏)보살ㆍ금강염승흉상장엄장(金剛焰勝胸相莊嚴藏)보살ㆍ염치장(焰熾藏)보살ㆍ숙왕광조장(宿王光照藏)보살ㆍ
015_0002_a_22L淨明勝照威德王藏菩薩大金山淨光明威德王藏菩薩一切相莊嚴淨勝藏菩金剛焰勝胸相莊嚴藏菩薩焰熾藏菩薩宿王光照藏菩薩
허공고무애지장(虛空庫無礙智藏)보살ㆍ무애묘음원장(無礙妙音遠藏)보살ㆍ다라니공덕지일체세간원장(陀羅尼功德持一切世間願藏)보살ㆍ해장엄장(海莊嚴藏)보살ㆍ수미승장(須彌勝藏)보살ㆍ정일체공덕장(淨一切功德藏)보살ㆍ여래장(如來藏)보살ㆍ불승장(佛勝藏)보살ㆍ해탈월(解脫月)보살이다.
015_0002_b_03L虛空庫無㝵智藏菩薩無㝵妙音遠藏菩薩羅尼功德持一切世閒願藏菩薩莊嚴藏菩薩須彌勝藏菩薩淨一切功德藏菩薩如來藏菩薩佛勝藏菩解脫月菩薩
이러한 보살마하살이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阿僧祇)이고, 불가사의하고 일컬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분재(分齋)가 없어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 말할 수 없는 갖가지 다른 불국토에서 와서 모였으며, 금강장보살이 그 우두머리[上首]였다.
015_0002_b_08L如是等菩薩摩訶薩無量無邊阿僧祇不可思議不可稱不可量無有分齊不可說不可說種種佛國土集金剛藏菩薩而爲上首
【論】때와 장소를 잘 헤아려 수승함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법은 수승하기 때문에, 처음 성도했을 때 수승한 장소에서 설하였다. 이곳 궁전 등이 수승한 것을 장소가 수승하다고 한다.
015_0002_b_11L論曰時處等挍量顯示勝故此法勝在於初時及勝處說此處宮殿等勝是名處勝
무슨 까닭에 색계(色界)에서 설법하지 않았는가? 이곳은 결과를 감응하기[感果]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처음 7일 동안에는 설법하지 않았는가? 인연행(因緣行)을 사유하고 행했기 때문이다. 본래 이타(利他)를 위하여 성도하였는데 무슨 까닭에 7일 동안 사유만 하고 설법하지 않았는가? 큰 법락(法樂:法悅)을 스스로 즐긴다는 것을 나타내어 보이기 위해서였다.
015_0002_b_14L何故不色界說此處感果故何故不初七日說思惟行因緣行故本爲利他成道何故七日思惟不說顯示自樂大法樂故
무슨 까닭에 자기의 법락을 나타내는가?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에 대한 애경심(愛敬心)을 증장시키기 위해서이며, 또 이러한 미묘한 법락을 버리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겨 설법하기 위해서이다. 무슨 까닭에 오직 인연행만 행하는가? 이 인연행이 불공법(不共法)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015_0002_b_17L何故顯己法樂爲令衆生於如來所增長愛敬心故復捨如是妙樂悲愍衆生爲說法故何故唯行因緣行是因緣行顯示不共法故
무슨 까닭에 보살이 이 법문을 설하는가? 여러 보살의 힘을 증장시키기 위해서이다. 무슨 까닭에 오직 금강장보살만 설하는가? 일체의 번뇌는 부수기 어려운데 이 법[金剛]만이 능히 부술 수 있고, 선근(善根)의 견실(堅實)하기가 금강(金剛)과 같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설하지 않은 것이다.
015_0002_b_21L何故菩薩說此法門令增長諸菩薩力故何故唯金剛藏一切煩惱難壞此法能破善根堅實猶如金剛故不異名說
015_0002_c_01L 무슨 까닭에 금강장(金剛藏)이라 이름하였는가? 장(藏)은 곧 견고[堅]하다는 말이니, 수장(樹藏)과 같고, 또 마치 아기를 잉태하여 뱃속에 간직해 두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견고하기가 금강과 같고 금강장과 같은 것이다. 이는 모든 선근(善根)ㆍ일체 여타의 선근 가운데 그 힘이 가장 뛰어나기가 마치 금강과 같고, 또한 능히 인천(人天)의 도행(道行)을 생성하여, 모든 여타의 선근들이 부술 수 없기 때문에 금강장이라 한다.
이상으로 서분(序分)을 설하였고, 다음은 삼매분(三昧分)을 설한다.
015_0002_b_24L何故名金剛藏藏卽名堅其猶樹藏又如懷孕在藏是故堅如金剛如金剛藏是諸善根一切餘善根中其力最上猶如金剛亦能生成人天道行諸餘善根所不能壞故名金剛藏已說序分說三昧分
【經】이때 금강장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 보살의 대승광명삼매(大乘光明三昧)에 들어갔다.
015_0002_c_06L經曰爾時金剛藏菩薩摩訶薩承佛威神入菩薩大乘光明三昧
【論】삼매에 들어간 것은 이 법이 사량의 경계가 아님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이상으로 삼매분을 설하였고, 다음은 가분(加分)을 설한다.
015_0002_c_08L論曰入三昧者顯示此法非思量境界故已說三昧分次說加分
【經】이때 금강장보살이 보살의 대승광명삼매에 들어가 즉시 시방 십억 불국토(佛國土)의 미진수(微塵數)와 같은 모든 부처님세계를 지나니, 십억 불국토의 미진수 부처님들이 모두 그 몸을 나타내었는데, 모두 이름이 금강장이었다. 이 부처님들이 이렇게 찬탄하였다.
015_0002_c_10L經曰爾時金剛藏菩薩入是菩薩大乘光明三昧卽時十方過十億佛土微塵數等諸佛世界有十億佛土微塵數諸佛皆現其身同名金剛藏諸佛如是讚言
“장하고 장하다. 금강장이 능히 이 보살의 대승광명삼매에 들었구나. 그리고 선남자야, 이와 같은 시방 십억 불국토의 미진수 부처님들이 모두 동일한 이름으로 너에게 위신력(威神力)을 가피(加被)하니, 이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의 본원력(本願力) 때문에 가피하는 것이다.”
015_0002_c_15L善哉善哉金剛藏能入是菩薩大乘光明三昧復次善男子如是十方十億佛土微塵數等諸佛皆同一號加汝威神此是盧舍那佛本願力故加
【論】무슨 까닭에 많은 부처님들이 가피하는가? 법과 법사(法師)를 나타내어 공경심을 증장시키기 위해서이다. 무슨 까닭에 이름을 동일하게 금강장이라 했는가? 본원력을 가피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여래께서 이와 같은 원을 짓는가? 많은 부처님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015_0002_c_19L論曰何故多佛加顯法及法師增長恭敬心故何故同號金剛藏加本願力故何故如來作如是願顯示多佛
015_0003_a_01L 이 삼매는 법체(法體)이다. 본행 보살(本行菩薩)로 있을 때, 모두 이름을 금강장이라 하고 동일하게 이 법을 설하였기에 이제 정각(正覺)을 이루고도 역시 이름을 금강장이라 하니, 이 때문에 다른 이름을 더하지 않았고, 또 보살이 모든 여래께서 자기와 이름이 같음을 보고 이미 한층 뛸 듯이 기뻐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한량없는 세계를 지나갔음을 말하지 않았는가? 방편으로 많은 부처님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015_0002_c_23L此三昧是法體本行菩薩時皆名金剛藏同說此法今成正覺亦名金剛藏故不異名加又是菩薩聞諸如來同己名已增踊悅故何故不言過無量世界方便顯多佛故
무슨 까닭에 십억 국토라고 한정하여 말했는가? 10지(地)를 설하기 위해서이니, 이 때문에 이 경에서 이렇게 10이란 수를 많이 말하였다. 저 부처님께서 먼저 이러한 서원을 하였고 지금 다시 가피하고 뒤의 다른 부처님도 가피하니, 이런 까닭에 ‘노사나불의 본원력 때문에 가피한다’고 말하였다. 무슨 까닭에 가피하는가? 이 법을 설하기 위해서 가피한다. 다시 이르건대, 무엇을 가피하는가?
015_0003_a_04L何故定言十億佛土爲說十地故此經如是多說十數彼佛先作是願今復自加餘佛加故言盧舍那佛本願力故加何故加爲說此法故加復云何加
【經】“또한 일체 보살에게 불가사의한 모든 불법을 밝게 설하여 지혜의 지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며, 일체의 선근(善根)을 포섭하기 때문이며, 일체의 불법을 잘 분별하여 선택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을 널리 알기 때문이며, 모든 법을 잘 결정하여 설하기 때문이며, 분별없는 지혜[無分別智]가 청정하여 혼잡이 없기 때문이며,
015_0003_a_08L經曰又一切菩薩不可思議諸佛法明說令入智慧地故攝一切善根故善分別選擇一切佛法故廣知諸法善決定說諸法故無分別智淸淨不雜故
일체의 마군[魔]의 법이 더럽힐 수 없기 때문이며, 출세간법의 선근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불가사의한 지혜의 경계를 얻기 때문이며, 나아가서 일체의 지혜를 갖춘 사람의 지혜의 경계를 얻기 때문이다. 또 보살의 10지의 시종(始終)을 얻기 때문이며, 보살 10지의 차별 방편을 여실하게 말하기 때문이며, 일체의 불법에 수순(隨順)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무루법(無漏法)을 잘 관찰하여 분별하기 때문이며,
015_0003_a_13L一切魔法不能染故出世閒法善根淸淨故得不可思議智境界乃至得一切智人智境界故又得菩薩十地始終故如實說菩薩十地差別方便故念隨順一切佛法故達分別無漏法故
큰 지혜 광명의 방편을 잘 선택하기 때문이며, 구족한 지혜의 문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며, 머무는 곳에 따라 바르게 설법하여 두려움이 없고 변재(辯才)가 밝기 때문이며, 크게 걸림 없는 지혜의 경지를 얻기 때문이며, 보리심을 생각하여 잊지 않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의 세계를 교화하여 성취시키기 때문이며, 일체처(一切處)의 법을 통달하여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015_0003_a_18L善擇大智慧光明方便故令入具足智門故隨所住處正說無畏辯才明故得大無㝵智地憶念不忘菩提心故教化成就一切衆生界故得通達分別一切處法故
015_0003_b_01L【論】이 20구(句)는 일체 보살의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 의거하여 가피하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 10구는 자리행에 의거하였고, 뒤의 10구는 이타행에 의거하였다.
015_0003_a_22L論曰此二十句依一切菩薩自利利他故加如是初十句依自利行後十句依利他行
여기서 ‘일체 보살’이란 신행지(信行地)에 머무는 이를 말하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법’이란 출세간의 도품(道品)이고, ‘밝다[明]’란 지혜를 보아 증득하는 것이며, ‘설하다[說]’란 그 중에서 분별하는 것이며, ‘들어가다[入]’란 믿고 즐겨 증득하는 것이며, ‘지혜의 지’란 10지의 지혜를 말한다.
015_0003_b_02L是中一切菩薩者謂住信行地不可思議諸佛法者是出世閒道品明者見智得證說者於中分入者信樂得證智慧地者謂十地
본분(本分) 중의 설한 것과 같이 이것은 근본입(根本入)이니, 경에서 ‘또한 일체 보살에게 불가사의한 불법을 밝게 설하여 지혜의 지에 들어가게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 수다라(修多羅) 중에는 근본입에 의거하여 아홉 종류의 입(入)을 설했다.
015_0003_b_06L如本分中說此是根本入如經一切菩薩不可思議諸佛法明說入智慧地此修多羅中說依根本入有九種入
첫째, 섭입(攝入)이니, 지혜를 듣는 가운데 일체의 선근을 포섭하는 것으로, 경의 ‘일체의 선근을 포섭한다’는 것과 같다.
둘째, 사의입(思議入)이니, 사혜(思慧)는 일체의 도품(道品)중에서 지혜의 방편이기 때문으로, 경의 ‘일체 불법을 잘 분별하여 선택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03_b_09L一者攝入聞慧中攝一切善根故如經攝一切善根二者思議入思慧於一切道品中智方便如經善分別選擇一切佛法
셋째, 법상입(法相入)이니, 각각의 뜻[義] 가운데 한량없는 갖가지를 알기 때문으로, 경의 ‘모든 법을 널리 안다’는 것과 같다.
넷째, 교화입(敎化入)이니, 뜻을 생각하는 대로 개념과 문자가 구족(具足)하여 설법을 잘하는 것으로, 경의 ‘모든 법을 잘 결정하여 설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03_b_12L者法相入彼彼義中無量種種知故如經廣知諸法四者教化入隨所思義名字具足善說法故如經善決定說諸法
다섯째, 증입(證入)이니, 일체법에 대해 평등하게 알고[智] 견도(見道) 시에 선(善)하여 청정한 것으로, 경의 ‘분별없는 지혜가 청정하여 혼잡이 없다’는 것과 같다.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곧 스스로 불법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남을 이롭게 함[利他]을 또한 이름하여 자신을 이롭게 함[自利]이라 한다.
여섯째, 불방일입(不放逸入)이니, 수도(修道) 시에 일체 번뇌의 장애를 멀리 여의는 것으로, 경의 ‘일체 마군의 법이 더럽힐 수 없게 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03_b_16L五者證入於一切法平等智見道時中善淸淨故如經無分別智淸淨不雜菩薩教化衆生卽是自成佛法是故利他亦名自利者不放逸入於修道時中遠離一切煩惱障故如經一切魔法不能染
015_0003_c_01L일곱째, 지지전입(地地轉入)이니, 출세간의 도품(道品)은 탐욕 등이 없어 선근이 청정한 것으로, 경의 ‘출세간법의 선근이 청정하다’는 것과 같으며, 또한 선근이 있어 능히 출세간의 도품의 인(因)이 된다.
여덟째, 보살진입(菩薩盡入)이니, 제10지(地) 가운데 일체 여래의 비밀지(秘密智)에 들어가는 것으로, 경의 ‘불가사의한 지혜의 경계를 얻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03_b_21L七者地地轉入出世閒道品無貪等善根淨故如經出世閒法善根淸淨復有善根能爲出世閒道品因故八者菩薩盡入於第十地中入一切如來秘密智故如經得不可思議智境界
아홉째, 불진입(佛盡入)이니, 일체의 지혜에 있어 그 지혜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경의 ‘나아가서 일체의 지혜를 갖춘 사람의 지혜의 경계를 얻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03_c_04L九者佛盡入於一切智入智如經乃至得一切智人智境界
이 여러 입(入)들은 지혜와 뜻[智義]의 차별을 비교하고 헤아려 차례로 수승해 가는 것이니, 근본입(根本入)은 아니다. 일체의 설한 열 구절 중에는 모두 여섯 종류의 차별상문(差別相門)이 있으니, 이 언설의 해석에 마땅히 사법[事, 현상계]은 제외됨을 알아야하니, 사(事)는 5온, 18계, 12입 등을 말한다. 여섯 종류의 상(相)이란 총상(總相)ㆍ별상(別相)ㆍ동상(同相)ㆍ이상(異相)ㆍ성상(成相)ㆍ괴상(壞相)을 말한다.
015_0003_c_05L是諸入爲挍量智義差別次第轉勝非根本入一切所說十句中皆有六種差別相門此言說解釋應知除事事者謂陰界入等六種相者謂摠相別相同相異相成相壞相
총상은 근본입이고, 별상은 나머지 아홉 입(入)이니, 별(別)은 근본에 의지(依止)하여 저 근본을 채우기 때문이다. 동상(同相)은 들어가기[入] 때문이고, 이상(異相)은 상(相)을 증가하기 때문이다. 성상(成相)은 대략 설하는 것이고, 괴상(壞相)은 널리 설하는 것이니, 마치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과 같다. 다른 10구(句) 전체는 뜻에 따라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015_0003_c_10L摠者是根本入別者餘九入別依止本滿彼本同相者入故異相者增相故成相略說故壞相者廣說故如世界成餘一切十句中隨義類知
제20구에서 이른바 ‘보살의 10지(地)의 시종(始終)을 얻는다’는 것은 근본의 시종이니, 이 가운데 시(始)는 신심(信心)을 일으켜 친근하고자 하는 것 따위이고, 종(終)은 여러 지위를 생각하여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다. 또 아함(阿含)과 증(證)2)이 있어, 이처럼 차례로 초상(初相)에 의거하니, 근본의 시종에 의지하여 열 종류의 시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015_0003_c_14L第二十所謂得菩薩十地始終故此根本始終是中始者信欲親近等終者持諸地復有阿含及證如是次第依初相應知依根本始終有十種始終
첫째, 섭시종(攝始終)이니, 사유의 지혜[思慧智]로 뜻을 들음에 따라 설법을 받아 지니는 것으로, 경의 ‘보살 10지의 차별 방편을 여실하게 말한다’는 것과 같다.
둘째, 욕시종(欲始終)이니, 일체의 불법을 증득하게 하는 것으로, 경의 ‘일체의 불법에 수순(隨順)할 것을 생각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03_c_18L一者攝始終思慧智隨所聞義受持說故如經如實說菩薩十地差別方便二者欲始終令證一切佛法故如經念隨順一切佛法
셋째, 행시종(行始終)이니, 관분(觀分:법을 관찰하는 것)할 때 무루(無漏)의 도품(道品)을 분별하여 수상(修相:법을 분별하여 불도를 증진하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경의 ‘무루법(無漏法)을 잘 관찰하여 분별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03_c_22L三者行始觀分時中無漏道品分別修相覺如經觀達分別無漏法
015_0004_a_01L넷째, 증시종(證始終)이니, 견도(見道)일 때 법무아지(法無我智)의 방편을 얻는 것으로, 경의 ‘큰 지혜 광명의 방편을 잘 선택한다’는 것과 같다. 여기서 ‘잘 선택한다’는 것은 그 중 가장 수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니, 가장 수승한 것은 법무아지이기 때문이다. ‘큰 지혜’란 소승(小乘)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광명’이란 무명에 대치되기 때문이며, 이 일[事]과 저 때[時]에 잘 알기 때문이다.
015_0004_a_01L四者證始終見道時中法無我智方便故善擇大智慧光明方便是中善擇者擇中最勝最勝者法無我智故大智慧者過小乘故光明者對治無明故此事中彼時中皆善知故
다섯째, 수도시종(修道始終)이니, 출세간의 지혜의 힘으로 법과 뜻[義]에 들어가는 것으로, 경의 ‘구족한 지혜의 문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과 같다. 여기서 보살은 보리에 다음의 다섯 가지 장애가 있다.
015_0004_a_06L五者修道始終出世閒智智力得入法義如經令入具足智門此處菩薩於菩提有五種障
첫째는 여러 삿된 논의를 타파하지 못하는 장애이니, 이미 바른 뜻을 말하였으나 다른 사람의 말이 이를 무너뜨릴 수 있고 게다가 권속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둘째는 대답을 못하는 장애이니,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해 아득히 알지 못하여 대답할 수 없고, 설령 말할지라도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015_0004_a_09L一者不能破諸邪論障已說正義他言能壞復眷屬離二者不能答難障於他問中茫然無對設有言說人不信受
셋째는 소승에 애착을 두는 장애이니, 스스로 큰 보리를 얻을 수 없고 또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넷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일에 게으른 장애이니, 그 중에서 이타행을 버려 남의 선(善)을 돕지도 않고 자신의 선근(善根)도 증장시키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는 방편의 지혜가 없는 장애이니, 중생을 잘 교화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보리행(菩提行)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015_0004_a_12L三者樂著小乘障自不能得大菩提復捨利益衆生四者化衆生懈怠障於中捨利他行不助他善復自善根不增長故五者無方便智障不能善化衆生自菩提行不滿足故
이러한 장애를 대치(對治)하는 데 다섯 가지 시종(始終)이 있다.
첫째로 삿된 논의의 장애를 타파하는 시종이니, 상대방의 집착에 따라 나의 바른 뜻을 드러내어 삿된 집착을 치료하고 두려움이 없는 변재로 성품이 어둡지 않은 것으로, 경의 ‘머무는 곳에 따라 바로 설법하여 두려움이 없고 변재(辯才)가 밝다’는 것과 같다.
015_0004_a_17L對治是障有五始終一者能破邪論障始終隨彼所著顯己正義對治邪執無畏辯才性不闇故如經隨所住處正說無畏辯才明
둘째로 어려운 질문에 능히 대답하는 시종이니, 큰 걸림 없는 지혜의 경지[無礙智地]를 얻는 것으로, 경의 ‘크게 걸림 없는 지혜의 경지를 얻었다’는 것과 같다.
015_0004_a_21L二者能善答難始終證大無礙智地故如經得大無㝵智地
015_0004_b_01L셋째로 소승에 애착을 두는 것을 치료하는 시종이니, 큰 보리에 대한 서원과 큰 보리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는 것으로, 경의 ‘보리심을 생각하여 잊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04_a_22L者樂著小乘對治始終大菩提願大菩提念不忘失故如經憶念不忘菩提心
넷째로 중생을 교화하는 일에 게으른 장애를 치료하는 시종이니,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에 게으름이 없는 것으로, 경의 ‘일체 중생의 세계를 교화하여 성취시킨다’는 것과 같다.
015_0004_b_02L四者化衆生懈怠對治始終利益衆生無疲倦故如經教化成就一切衆生界
다섯째로 방편의 지혜가 없는 장애를 치료하는 시종이니, 5명처(明處)3)에 통달하여 분별하는 것으로, 경의 ‘일체처(一切處)의 법을 통달하여 분별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015_0004_b_04L五者無方便智對治始終於五明處通達分別故如經達分別一切處法
무슨 까닭에 가피하는지 설하였다. 다시 가피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입[ㅁ]과 뜻[意]과 몸[身]의 가피이다. 입의 가피란 무엇인가?
015_0004_b_06L已說何故加云何加謂口身加云何口加
【經】“또 선남자야, 그대가 마땅히 이 여러 법문의 차별과 방편의 법을 변설해야 하기 때문이며, 여러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고 여래의 지혜로 밝은 가피를 받기 때문이며, 자신의 선근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법계가 깨끗하기 때문이며, 중생의 세계를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며,
015_0004_b_07L經曰復次善男子汝當辯說此諸法門差別方便法故承諸佛神力如來智明加故自善根淸淨故法界淨故饒益衆生界故
법의 몸[法身]과 지혜의 몸 때문이며, 일체 부처님의 지위를 바로 받기 때문이며, 일체 세간에서 가장 높고 큰 몸을 얻기 때문이며, 일체 세간의 도를 뛰어넘기 때문이며, 출세간법의 도가 청정하기 때문이며, 일체 지혜로운 이의 지혜가 충족함을 얻기 때문이다.”
015_0004_b_11L法身智身故正受一切佛位故得一切世閒最高大身故過一切世閒道故出世閒法道淸淨得一切智人智滿足故
【論】이 10구 중에 ‘변재(辯才)’란 얻은 법과 뜻[義]에 따라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여 설법을 잊지 않는 것이다. ‘여러 법문’이란 10지(地)의 법을 말한다. ‘차별’이란 갖가지 이름과 모습[名相]이 있는 것이다. 이 법은 훌륭하고 교묘한 방법[善巧]을 통하여 이루니, 이런 까닭에 방편이라 한다.
015_0004_b_14L論曰此十句中辯才者隨所得法義憶持不忘說故諸法門者謂十地法差別者種種名相故此法善巧成故名方便
근본 변재에 의지하여 두 종류의 변재가 있으니, 첫째는 타력(他力) 변재이고, 둘째는 자력(自力) 변재이다.
타력 변재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는 것이니, 어째서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는가? 여래의 지혜의 힘은 어둡게 가피하지 않기 때문이니, 경에 ‘여러 부처님의 위신력과 여래의 지혜로 밝은 가피를 받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04_b_18L依根本辯才有二種辯才一者他力辯才二者自力辯才他力辯才者承佛神力故云何承佛神力如來智力不闇加故如經承諸佛神力如來智明加
015_0004_c_01L 자력 변재에는 다음 네 종류가 있다.
첫째로 작위가 있는 선법의 청정한[有作善法淨] 변재이니, 경의 ‘자신의 선근이 청정하다’는 것과 같다.
둘째로 작위가 없는 법의 청정한[無作法淨]변재이니, 경의 ‘법계가 깨끗하다’는 것과 같다.
015_0004_b_22L自力辯才者有四一者有作善法淨辯才如經自善根淸淨二者無作法淨辯才如經法界淨
셋째로 중생을 교화하는 청정한[化衆生淨] 변재이니, 경의 ‘중생의 세계를 이익되게 한다’는 것과 같다.
넷째로 몸이 청정한[身淨] 변재이니, 이 몸이 청정한 가운데 다음의 세 가지 극진(極盡:究竟과 같은 뜻임)을 나타낸다. 첫 번째는 보살의 극진함으로 두 가지 이익이 있고, 두 번째는 성문과 벽지불과 같지 않은 극진함이며, 세 번째는 부처님의 극진함이다.
015_0004_c_02L三者化衆生淨辯才如經饒益衆生界四者身淨辯才是身淨中顯三種盡一者菩薩盡有二種利益二者聲聞辟支佛不同盡三者佛盡
보살의 극진함이란 법신(法身)이 심(心)ㆍ의(意)ㆍ식(識)을 떠나 오로지 지혜에 의지하는 것이니, 경의 ‘법의 몸[法身]과 지혜의 몸’과 같다. 두 가지 이익이란, 현세에 받는 이익은 부처님의 지위를 받는 것이며, 내세의 이익은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에 태어나는 것이니, 경의 ‘일체 부처님의 지위를 바로 받는다’는 것과 ‘일체 세간에서 가장 높고 큰 몸을 얻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04_c_06L菩薩盡者法身離心意識唯智依止如經法身智身二種利益者現報利益受佛位故後報利益摩醯首羅智處生故如經正受一切佛位得一切世閒最高大身
2승(乘)과 같지 않은 극진함이란 5도(道: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를 제도하여 청정한 열반의 도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경의 ‘일체 세간의 도를 뛰어 넘는다’는 것과 같고 ‘출세간 법의 도가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004_c_10L二乘不同盡者度五道復涅槃道淨故如經過一切世閒道出世閒法道淸淨
부처님의 극진함이란 일체 지혜의 지혜[一切智智]에 들어가 만족하는 것이니, 경의 ‘일체 지혜로운 이의 지혜가 충족함을 얻는다’는 것과 같다.
이상과 같이 자력 변재와 교량(挍量)이 차례로 점차 수승해져 간다.
이상으로 입 가피[口加:口辯으로 하는 가피]를 말했으니, 어떠한 것이 뜻 가피[意加:생각으로 하는 가피]인가?
015_0004_c_13L佛盡者入一切智智滿足故如經得一切智人智滿足自力辯才挍量轉勝上上已說口加云何意加
【經】이때 모든 부처님께서 금강장보살에게 진실하여 두려움 없는 몸을 주고, 아무런 장애 없이 즐거이 연설하는 변재를 주고, 청정한 지혜를 잘 분별할 수 있는 입(入)을 주고 잘 기억하여 잊지 않는 가피를 주고, 잘 결정하는 생각의 방편을 주고,
015_0004_c_15L經曰爾時諸佛與金剛藏菩薩眞實無畏身與無障㝵樂說辯才與善淨智差別入與善憶念不忘加與善決定意方便
일체를 두루 아는 지처(智處)를 주고, 모든 부처님의 무너뜨릴 수 없는 힘을 주고, 두려움과 겁이 없는 여래의 담력을 주고, 일체 지혜로운 이의 걸림 없이 법을 분별하는 지혜의 바른 견해를 주고, 일체 여래께서 몸과 입과 마음에서 장엄이 일어나는 것을 잘 분별하는 능력을 주셨다.
015_0004_c_19L與遍至一切智處與諸佛不壞力與如來無所畏不怯弱與一切智人智無㝵分別法正見與一切如來善分別身口意莊嚴起故
015_0005_a_01L【論】이 10구는 뜻 가피[意加]이다.
두려움 없는 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위없는 수승한 위덕(威德)을 갖춘 몸을 주는 것이니, 왕이 뭇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 두려움 없이 자재하는 것과 같다.
둘째, 두려움 없는 변재의 몸을 주는 것이니, 앞의 경우는 육체[色身]가 수승한 것이며, 뒤의 경우는 정신[名身]이 수승한 것이다.
015_0004_c_22L論曰此十句意加無畏身者有二種一者與無上勝威德身如王處衆自在無畏二者與辯才無畏身前色身後名身勝
정신에 아홉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연설에 고착됨이 없는 변재이니, 설법이 끊이지 않아 막히거나 걸림이 없는 것으로, 경의 ‘아무런 장애 없이 즐거이 연설하는 변재를 준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a_03L是名身有九種一者不著辯才說法不斷無滯㝵故如經無障㝵樂說辯才
둘째는 연설을 감당해 내는 변재이다. 연설을 감당해 내는 청정한 지혜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로 연(緣)이고 둘째로 법(法)이며, 셋째로 작(作)이고 넷째로 성(成)이다. 이러한 뜻이 성립되는지 성립되지 않는지를 잘 아는 것이니, 경의 ‘청정한 지혜를 잘 분별할 수 있는 입을 준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a_05L二者堪辯才淨堪智有四種一者緣二者法三者四者成善知此義成不成相故與善淨智差別入
셋째는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변재로, 연설할 때 굳이 차례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언사(言辭)가 끊이지 않아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마음대로 되어 명의(名義)를 잊지 않는 것이니, 경의 ‘잘 기억하여 잊지 않는 가피를 준다’는 것과 같다. 이 잊지 않는 가피는 의력(意力)의 가피이다.
015_0005_a_08L三者任放辯說不待次言辭不斷處處隨意忘名義故如經與善憶念不忘加是不忘加意力加
넷째는 언설을 잘하는 변재이니, 경우에 따라 잘 대응하여 갖가지 비유로 능히 의심을 끊는 것으로, 경의 ‘잘 결정하는 생각의 방편을 준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a_11L四者能說辯才隨所應度種種譬喩能斷疑故如經與善決定意方便
다섯째는 혼잡하지 않은 변재이니, 세 가지 같은 모습[同相]4)을 아는 지혜가 항상 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경의 ‘일체를 두루 아는 지처(智處)를 준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a_13L五者不雜辯才三種同相智常現前故如經與遍至一切智處
여섯째는 고해(苦海)를 벗어나게 하는 변재이니, 부처님의 열 가지 힘[十力]을 얻어 제도할 사람에게 무너지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번뇌를 끊게 하는 것으로, 경의 ‘모든 부처님의 무너뜨릴 수 없는 힘을 준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a_15L六者教出辯才得佛十不壞於可度者令斷煩惱故如經與諸佛不壞力
일곱째는 두려움 없는 변재이니, 반드시 두려움이 없는 부처님의 담력을 얻어 다른 사람의 말에 겁내지 않는 것이니, 경의 ‘두려움과 겁이 없는 여래의 담력을 준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a_17L七者不畏辯才佛決定無畏於他言說不怯弱故與如來無所畏不怯弱
여덟째는 한량없는 변재이니, 일체의 지혜로 중생의 근기에 따라 수다라(修多羅) 등의 법을 연설하는 여섯 가지 바른 견해5)로, 경의 ‘일체 지혜로운 이의 걸림 없이 법을 분별하는 지혜의 바른 견해를 준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a_19L八者無量辯才於一切智隨順宣說修多羅等法六種正見故如經與一切智人智無㝵分別法正見
015_0005_b_01L아홉째는 동화(同化)하는 변재이니, 일체 부처님의 두려움 없는 몸 등 세 가지 교화를 받아 구제하는 것에 따라 수승한 신ㆍ구ㆍ의 3업의 신통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경의 ‘일체 여래의 몸과 입과 마음의 장엄이 일어나는 것을 잘 분별하는 능력을 주었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a_22L九者同化辯得一切佛無畏身等三種教化所度者顯示殊勝三業神化故如經與一切如來善分別身口意莊嚴起
그런데 모든 부처님께서는 힘이 있고 자비가 있는데, 무슨 까닭에 열 가지 두려움 없는 몸을 오직 금강장보살에게만 주고 다른 이들에게는 주지 않았는가?
015_0005_b_03L又諸佛有力有慈悲何故以十種無畏身唯加金剛藏而不加餘者
【經】왜냐하면 보살의 대승광명 삼매법을 얻기 때문이며, 또한 이 보살의 본원(本願)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깊은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원만한 지혜가 청정하기 때문이며, 도를 돕는 법[助道法]을 잘 모으기 때문이며,
015_0005_b_04L經曰何以故以得菩薩大乘光明三昧法故亦是菩薩本願起故善淨深心故善淨智圓滿故善集助道法故
본업(本業)을 잘 닦기 때문이며, 한량없는 법을 생각하여 마음에 간직하기 때문이며, 청정하고 광명한 법을 믿고 이해하기 때문이며, 무너지지 않는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잘 얻기 때문이며, 법계의 지혜의 인장[印]으로 잘 인가(印可)하기 때문이다.
015_0005_b_07L善修本業故念持無量法故信解淸淨光明法故善得陁羅尼門不壞故法界智印善印故
【論】이 보살만이 대승광명 삼매법을 얻고 다른 이들은 얻지 못하는 연유이다. 삼매법을 얻는 데 두 종류가 있다.
첫째, 본원의 성취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니, 경의 ‘또한 이 보살의 본원(本願)을 일으킨다’는 것과 같다.
둘째, 삼매의 몸이 공덕을 포섭하는 것이니, 이 삼매의 몸이 공덕을 포섭하는데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 의거하여 여덟 종류가 있다.
015_0005_b_10L論曰以是菩薩得大乘光明三昧法餘者不得故得三昧法有二種一者本願成就現前故如經亦是菩薩本願起二者三昧身攝功德故此三昧身攝功德有八種依自利利他故
첫째는 인정(因淨)이니, 깊은 마음으로 보살 지위의 극진한 곳에 나아가 청정한 것으로, 경의 ‘깊은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과 같다. 깊은 마음이란 믿고 기뻐하는 것 따위로 또한 일체 선법(善法)의 근본이다.
둘째는 지정(智淨)이니, 보살 지위의 극진한 곳에 나아가 수도(修道)의 진여(眞如)를 관하는 지혜로, 경의 ‘원만한 지혜가 청정하다’는 것과 같다. 이 진여관 내의 지혜가 원만하여 법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마치 해가 온 누리에 두루 빛을 비추는 것과 같다.
015_0005_b_15L一者因淨深心趣菩薩地盡淸淨故如經善淨深心深心者信樂等是一切善法根本故二者智淨趣菩薩地盡修道眞如觀智故如經善淨智圓滿此眞如觀內智圓滿普照法界猶如日輪光遍世界故
셋째는 신전정(身轉淨)이니, 생(生)을 거듭할수록 더욱 수승하여 선행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으로, 경의 ‘도를 돕는 법[助道法]을 잘 모은다’는 것과 같다.
넷째는 심조복정(心調伏淨)이니, 번뇌의 습기(習氣)를 잘 끊는 것으로, 경의 ‘본업(本業)을 잘 닦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b_21L三者身轉淨生生轉勝善行成滿故如經集助道法四者心調伏淨善斷煩惱習故如經善修本業
015_0005_c_01L다섯째는 문섭정(聞攝淨)이니, 일체 여래께서 설한 비밀법(秘密法)을 능히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으로, 경의 ‘한량없는 법을 생각하여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과 같다.
여섯째는 통정(通淨)이니, 수승한 통력(通力:지혜의 성품)이 자재함을 얻는 것으로, 경의 ‘청정하고 광명한 법을 믿고 이해한다’는 것과 같으며, 확고한 신심으로 통력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015_0005_c_01L五者聞攝堪能受持一切如來所說秘密法如經念持無量法六者通淨勝通自在故如經信解淸淨光明法以決定信力攝取通
일곱째는 변재정(辯才淨)이니, 다라니문이 서로 어긋나지 않음을 잘 아는 것으로, 경의 ‘무너지지 않는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잘 얻는다’는 것과 같다. 그 가운데 모든 처음 문장의 자모(字母)는 다라니문이니, 하나하나의 글자문[字門]이 한량없는 글귀와 자체(字體)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015_0005_c_05L七者辯才善知陁羅尼門不相違故如經得陁羅尼門不壞於中所有初章字者是陁羅尼門一一字門攝持無量名句字身故不壞者前後不相違
여덟째는 이만정(離慢淨)이니, 진실한 지혜를 가르쳐 틀림이 없는 것으로, 경의 ‘법계의 지혜의 인장[印]으로 잘 인가(印可)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05_c_10L八者離慢淨謂眞實智教授不異故如經法界智印善印
이 가운데 삼매의 몸[三昧身]이 포괄하고 있는 공덕이 네 가지가 있는데, 자리인(自利因)에 의거하니 깊은 마음이 청정한 것이며, 원만한 지혜가 청정한 것이며, 도를 돕는 법을 잘 모으는 것이며, 본업을 잘 닦는 것이다. 이 수다라 중에서 네 구를 차례로 설하니, 정진인(精進因)이며, 불망인(不忘因)이며, 세력인(勢力因)이며, 피불염인(彼不染因)이다.
015_0005_c_11L於中三昧身攝功德有四種依自利因善淨深心故善淨智圓滿故善集助道法善修本業故此修羅多中四句次第說精進因不忘因勢力因彼不染
또 이타인(利他因)에 의거하여 네 종류가 있으니, 한량없는 법을 생각하여 마음에 간직하는 것은 단의인(斷疑因:의심을 끊는 因)이며, 청정하고 광명한 법을 믿고 이해하는 것은 경중인(敬重因:공경하고 존중하는 인)이며, 신통력으로 부사의(不思議)한 현상을 나타내어 보여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반드시 믿고 들어가게 하고, 무너지지 않는 다라니문을 잘 얻는 것은 전법리인(轉法理因:법리를 굴리는 인)이며, 법이 무너지려 할 때 남은 법을 빌어서 외우고 지니며, 법계의 지혜의 인장[印]으로 잘 인가(印可)하는 것은 교수출리인(敎授出離因:법을 가르쳐서 고해를 벗어나게 하는 인)이다.
015_0005_c_16L復依利他因有四種念持無量法斷疑因信解淸淨光明法故敬重以神通力示現不思議處令諸見者決定信入故善得陁羅尼門不壞轉法理因法若壞時假餘尊法誦持故法界智印善印故教授出離因
이처럼 교화하는 이가 자리(自利)를 얻어 잊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뜻 가피[意加]를 설했으니, 어떠한 것이 몸 가피[身加]인가? 정수리를 만지자 깨어난 것이다.
015_0005_c_21L如是化者得自利不忘故已說意加云何身加摩頂覺故
015_0006_a_01L【經】이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본래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신통력으로 모두 오른손을 뻗쳐 금강장보살마하살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셨다.
015_0005_c_23L經曰爾時十方諸佛不離本處以神通力皆申右手善摩金剛藏菩薩摩訶薩頂
【論】본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 정수리를 어루만진 것은 수승한 신통력을 나타내어 보인 것이다. 만약 금강장보살이 있는 이곳으로 왔다면 기이한 일이 못 된다. 이 여의신통력[如意通力]은 여타의 다른 신통에 비할 것이 아니다.
이상으로 가분(加分)을 설하였으니, 어떠한 것이 기분(起分)인가?
015_0006_a_03L論曰不離本處而摩此者顯示殊勝神力若來此處則非奇異是如意通非餘通等已說加分云何起分
【經】모든 부처님들께서 금강장보살의 정수리를 만지고 나자, 이때 금강장보살이 즉시 삼매에서 깨어났다.
015_0006_a_06L經曰諸佛摩金剛藏菩薩頂已爾時金剛藏菩薩卽從三昧起
【論】‘즉시 삼매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삼매의 일이 끝났기 때문이며, 또한 뛰어난 힘을 얻어 설법할 때 선정에 들어 언설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기분(起分)을 설하였으니, 어떠한 것이 본분(本分)인가?
015_0006_a_08L論曰卽從三昧起者以三昧事訖故又得勝力說時復至定無言說故說起分云何本分
【經】금강장보살은 삼매에서 깨어나자,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불자(佛子)들이여, 이 보살들의 서원은 잘 결정한 것[善決定]이고 혼잡함이 없고 볼 수 없으며,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 허공과 같아,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일체 중생의 세계를 덮어서 보호합니다. 불자여, 이 보살들은 과거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자리[地]에 들어갈 수 있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으며, 현재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015_0006_a_11L經曰起三昧已告諸菩薩言諸佛子是諸菩薩願善決定無雜不可見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覆護一切衆生界佛子是諸菩薩乃能入過去諸佛智地乃能入未來諸佛智地乃能入現在諸佛智地
여러 불자여, 이 보살의 10지(地)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설했고, 지금도 설하며, 앞으로도 설할 것입니다. 나도 이 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설합니다.
015_0006_a_17L諸佛子此菩薩十地是過去未來現在諸佛已說今說當說我因是事故如是說
무엇을 10지라 합니까? 첫째는 환희지(歡喜地)이며, 둘째는 이구지(離垢地)이며. 셋째는 명지(明地)이며, 넷째는 염지(焰地)이며, 다섯째는 난승지(難勝地)이며, 여섯째는 현전지(現前地)이며, 일곱째는 원행지(遠行地)이며, 여덟째는 부동지(不動地)이며, 아홉째는 선혜지(善慧地)이며, 열째는 법운지(法雲地)입니다.
015_0006_a_19L何等爲十一名歡喜地二名離垢地三名明地四名焰地五名難勝地名現前地七名遠行地八名不動地九名善慧地十名法雲地
015_0006_b_01L불자들이여, 이 보살의 10지는 과거 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설했고, 지금도 설하며 앞으로도 설할 것이다. 불자들이여, 모든 부처님세계에 계시는 모든 여래 가운데 이 보살의 10지를 환희심으로 설하지 않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더없이 수승한 미묘법이며, 또한 보살의 광명의 법문(法門)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10지의 일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일은 불가사의하니, 이른바 보살마하살의 모든 지(地)의 지혜입니다.”
015_0006_a_23L諸佛子菩薩十地過去未來現在諸佛已說今說當說佛子我不見有諸佛世界是諸如來不歎說此菩薩十地者以故此是菩薩摩訶薩增上勝妙法亦是菩薩光明法門所謂分別十地事諸佛子是事不可思議所謂菩薩摩訶薩諸地智慧
【論】무슨 까닭에 청하지 않았는데도 설법하였는가? 만약 자진하여 설하지 않으면 대중들이 설법할 것인지 설법하지 않을 것인지 알지 못하고, 또 무슨 법을 설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015_0006_b_07L論曰何故不請而說若不自說衆則不知爲說不說又復不知欲說何法
‘서원(誓願)을 잘 결정한다’는 것은 초지(初地) 중의 ‘보리심을 낸다’는 것과 같으니, 이 본분 중에서 마땅히 알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잘 결정한 것[善決定]’이라는 것은 진실한 지혜가 포섭하기 때문이니, 잘 결정하는 것이 곧 이 선결정이다. 이는 이미 초지에 들어갔으니, 신지(信地)에 포함되지 않는다.
015_0006_b_09L願善決定者如初地中說發菩提心卽此本分中願應知善決定者眞實智攝故善決定者卽是善決定此已入初地非信地所攝
잘 결정하는 것에 여섯 종류가 있다.
첫째, 법상(法相)을 관찰하는 것을 잘 결정하는 것이니, 진여관(眞如觀)은 일미상(一味相)이기 때문으로, 경의 ‘혼잡함이 없다’는 것과 같다.
둘째, 진실대로 잘 결정하는 것이니, 일체 세간 경계가 아닌 출세간이기 때문으로, 경의 ‘볼 수 없다’는 것과 같다.
015_0006_b_13L此善決定有六種一者觀相善決定眞如觀一味相故如經無雜二者眞實善決定非一切世閒境界出世閒故如經不可見
셋째, 수승하게 잘 결정하는 것이니, 큰 법계이기 때문이며 일체 부처님의 근본이기 때문이니, 경의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다’는 것과 같다. 또한 크다, 수승하다, 높다, 넓다는 것은 본체는 하나인데 이름만 다른 법상의 뜻이기 때문이며, 일체의 법은 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015_0006_b_17L三者勝善決定大法界故一切佛根本故如經廣大如法界一體異名法相義故一切法法爾
또한 법계는 큰 진여관인데 모든 범부와 2승(乘)의 지혜들보다 수승함은 청정한 법은 법이 이러하기 때문이다. 또한 법계는 큰 방편이 모인 자리[地]인데, 대승법은 법이 이러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법계는 크고 깨끗한 법계인데, 선법(善法)은 법이 이러하기 때문이다.
015_0006_b_20L復法界大眞如觀勝諸凡夫二乘智等淨法法爾故復法界大方便集謂說大乘法法爾故復法界大白法界善法法爾故
015_0006_c_01L넷째, 원인[因]에 대해 잘 결정하는 것[因善決定]이니, 다음 두 종류가 있다.
첫째로 무상(無常)한 애욕의 결과[果]를 이루는 원인에 대해 잘 결정하는 것이니, 이는 원인이 마치 허공과 같은데 이에 의지하여 온갖 색(色)을 내어 색이 다하지 않는 것으로, 경의 ‘끝없기가 허공과 같다’는 것과 같다. 둘째로 항상한 결과의 원인에 대해 잘 결정하는 것이니, 열반도(涅槃道)를 얻는 것으로, 경의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이란 것과 같다.
015_0006_b_23L四者因善決定有二種一成無常愛果因善決定是因如虛空依是生諸色色不盡故如經究竟如虛空二常果因善決定涅槃道如經盡未來際
다섯째, 크게 잘 결정하는 것이니, 중생에 수순하여 이타행을 하는 것으로, 경의 ‘일체 중생의 세계를 덮어서 보호한다’는 것과 같다. 이상의 잘 결정하는 것들은 세간과 열반 어디건 한 곳에만 머물지 않기를 발원했기 때문이다.
015_0006_c_04L五者大善決定隨順作利益他行如經覆護一切衆生界次前善決定此願世閒涅槃中非一向住故
여섯째, 겁내지 않고 잘 결정하는 것이니, 일체 부처님의 지혜의 지위에 들어가 겁내지 않기 때문이니, 경의 ‘불자여, 이 보살들은 현재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또한 이 10지에서 부처님의 지혜를 내어 세상에 안주하여 불법을 지키기 때문이니, 경의 ‘여러 불자여, 이 보살의 10지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설했고, 지금도 설하며, 앞으로도 설할 것이다’라는 것과 같다.
015_0006_c_07L六者不怯弱善決定入一切諸佛智地不怯弱故佛子是諸菩薩乃至入現在諸佛智地復此十地生成佛智住持故如經諸佛子此菩薩十地是過去未來現在諸佛已說今說當說
여기서 잘 결정한다는 것은 총상(總相)이고 나머지는 별상(別相)이다. 동상(同相)은 잘 결정하는 것인데, 이상[異相]이 별상이기 때문이다. 성상(成相)이란 대략 설하는 것이고, 괴상(壞相)은 널리 설하는 것이니, 마치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짐[成壤]과 같다.
015_0006_c_12L於中善決定者是摠相餘者是別相同相者善決定異相者別相故成相者是略說壞相者廣說故如世界成壞
무슨 까닭에 보살 10지에 한정해서 설했는가? 열 가지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이 그 장애인가?
015_0006_c_15L故定說菩薩十地對治十種障故者一障
첫째 범부의 아상(我相)의 장애, 둘째 중생의 몸 등에 삿된 행위를 하는 장애, 셋째 듣고 생각하고 닦는 등의 여러 법에 어두워 잊어버리는 장애, 넷째 법을 이해하는 데 게으른 장애, 다섯째 몸이 청정하다는 아만(我慢)의 장애, 여섯째 미세한 번뇌 습기(習氣)의 장애, 일곱째 세상(細相)6)의 습기의 장애, 여덟째 무상(無相)에 행(行)이 있는 장애, 아홉째 중생을 잘 이익되게 하지 못하는 장애, 열째 모든 법에 자재하지 못하는 장애이다.
015_0006_c_17L一者凡夫我相障二者邪行於衆生身等障三者闇相於聞思修等諸法忘障四者解法慢障五者身淨我慢障六者微煩惱習障七者細相習障八者於無相有行障九者不能善利益衆生障十者於諸法中不得自在障
015_0007_a_01L무슨 까닭에 10지의 처음을 환희지라 이름하고, 나아가서 열 번째를 법운지라 이름했는가?
위없는 자리(自利)와 이타행(利他行)을 성취하여 처음으로 성인(聖人)의 경지를 증득함에 환희심이 많은 까닭에 환희지라 이름하였다.
그릇된 마음으로 계율을 범하는 번뇌의 때를 벗어나 청정한 계율을 구족한 까닭에 이구지라 이름하였다.
듣고 생각하고 닦음에 따라 법을 비추어 보면 법이 잘 나타나는 까닭에 명지라 이름하였다.
015_0006_c_23L何故十地初名歡喜乃至十名法雲成就無上自利利他行證聖處多生歡喜故名歡喜地離能起誤心犯戒煩惱垢等淸淨戒具足故名離垢地隨聞思修等照法顯現故名明地
잊히지 않는 번뇌의 섶을 지혜의 불이 잘 태우는 까닭에 염지라 하였다.
출세간의 훌륭한 지혜 방편을 얻어 제도하기 어려운 중생을 능히 제도하는 까닭에 난승지라 이름하였다.
반야바라밀행에 미흡함이 있으나 큰 지혜가 앞에 나타나는 까닭에 현전지라 이름하였다.
무상행(無相行)을 잘 닦아 공용(功用)이 구경에 이르러 능히 세간과 2승(乘)의 출세간도를 뛰어넘는 까닭에 원행지라 이름하였다.
015_0007_a_05L不忘煩惱薪智火能燒名焰地得出世閒智方便善巧能度難度故名難勝地般若波羅蜜行有閒大智現前故名現前地善修無相行功用究竟能過世閒二乘出世閒故名遠行地
보행(報行)이 완전히 익어 모습도 없고[無相] 간격도 없는 까닭에 부동지라 이름하였다.
걸림 없는 힘으로 설법하여 이타행을 하는 까닭에 선혜지라 이름하였다.
큰 법신을 얻어 자재한 힘을 구족한 까닭에 법운지라 이름하였다.
015_0007_a_10L報行純熟無相無閒故名不動地無㝵力說法成就利他故名善慧地得大法身具足自在故名法雲地
이와 같이 법왕(法王)의 지위를 받는 것이 마치 태자가 다른 왕자들에 있어 자재한 것과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세한 지혜의 장애가 있어 완전히 자재하지는 못하니, 이 장애를 치료하여 제거하였기 때문에 불지(佛地)라 한다. 또 아기가 잉태되어 뱃속에 있는 것처럼 보살의 10지도 역시 이와 같으니, 모든 지(地)에는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015_0007_a_13L如是受法王位猶如太子於諸王子而得自在是處有微智障故不自在對治此障故說佛地如懷孕在藏菩薩十地亦復如是以諸地有障故
마치 아기가 태어나는 것처럼 부처님이 되었을 때도 이와 같으니, 일을 완전히 성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치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신체의 기관들이 감각이 있는 것처럼 부처님도 역시 이와 같으니, 일체의 경계에 대해 지혜로 명료하게 알기 때문이다.
015_0007_a_17L如子生時佛時亦爾事究竟故又如生時諸根覺了佛亦如是於一切境界智明了故
뱃속에 있을 때에도 다음의 10시(時)가 있다.
첫째, 다라바신(陀羅婆身)으로 있을 때이다.
둘째, 패라바신(捭羅婆身)으로 있을 때이다.
셋째, 시라타신(尸羅他身)으로 있을 때이다.
넷째, 견고한 몸[堅身]으로 있을 때이다.
다섯째, 형상이 색신과 흡사한 몸[形相似色身]으로 있을 때이다.
015_0007_a_19L藏有十時者陁羅婆身時二者捭羅婆身時者尸羅他身時四者堅身時五者形相似色身時
015_0007_b_01L여섯째, 성품과 모습이 서로 흡사한 몸[性相似身]으로 있을 때이다.
일곱째, 업이 움직이는 몸[業動身]으로 있을 때이다.
여덟째, 만족한 몸[滿足身]으로 있을 때이다. 여기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신체 기관이 만족한 때[八地]와 남녀의 구별이 만족한 때[九地]와 넓고 긴 여러 모습이 만족한 때[十地]이다.
이와 같이 10시(時)는 여러 지(地)와 서로 흡사하다.
015_0007_a_22L六者性相似身時七者業動身時八者滿足身時於中有三種根滿足時男女相別滿足時長諸相滿足時如是十時諸地相似
‘불자여, 나는 모든 부처님세계에 계시는 모든 여래 가운데 이 보살의 10지를 환희심으로 설하지 않는 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이 법이 수승함을 나타내어, 당시에 모인 대중들로 하여금 더욱 법을 갈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부처님세계란 그 가운데서 성불(成佛)하는 곳이니, 비유하자면 벼를 심는 논과 같다. 가서 불사(佛事)를 짓는 것을 역시 부처님세계라고 한다.
015_0007_b_03L佛子我不見有諸佛世界是諸如來不歎說此菩薩十地者顯此勝法爲令時衆增渴仰故佛世界者於中成佛喩如稻田往作佛事者亦名佛世界
환희심으로 설하는 것은 그 가운데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아함(阿含)의 뜻을 설하는 것이고, 둘째는 증입(證入)의 뜻을 설하는 것이다.
마하살은 세 종류의 큼[大]이 있으니, 첫째, 서원이 큼[願大]이며, 둘째, 행이 큼[行大]이며, 셋째, 중생에게 주는 이익이 큼[利益衆生大]이다.
‘수승한 미묘법’이란 모든 법문 가운데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015_0007_b_07L歎說者於中有二種一者爲說阿含義二者爲證入義摩訶薩者三種大一願大二行大三利益衆生大勝妙法者諸法門中最殊勝故
‘광명’이란 이 대승의 법이 일체의 다른 법문을 환하게 비추기 때문이다.
‘법문’이란 이름을 법(法)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10지의 일을 분별한다’는 것은 세간의 지혜로 알고 있는 법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이 일은 불가사의하니, 이른바 보살마하살의 모든 지(地)의 지혜이다’라는 것은 출세간의 지혜를 나타내어 보이는 것이다. 이는 세간의 분별지(分別地)의 지혜로 보살의 청정한 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본분을 설했으니, 어떠한 것이 청분(請分)인가?
015_0007_b_10L光明此大乘法顯照一切餘法門故門者名爲法故分別十地事者顯示世閒智所知法故是事不可思議謂菩薩摩訶薩諸地智慧者顯示出世閒智故此非世閒分別地智能成菩薩淸淨道故已說本分云何請分
【經】이때 금강장보살은 보살 10지의 이름들을 말하고는 묵묵히 있을 뿐 다시 분별하지 않았다. 그때 모든 보살 대중들은 보살 10지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듣고 모두 이에 대한 해설을 듣기를 갈망하여 저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인연으로 이 금강장보살이 보살 10지의 이름들을 말하고는 묵묵히 있기만 할 뿐 다시 해석해 주지 않는 것일까?’
015_0007_b_16L經曰爾時金剛藏菩薩說諸菩薩十地名已默然而住不復分別是時一切菩薩衆聞說菩薩十地名已咸皆渴仰欲聞解說各作是念何因何緣是金剛藏菩薩說諸菩薩十地名已默然而住不更解釋
이때 큰 보살 대중 가운데 해탈월(解脫月)이란 보살이 있었는데, 그가 여러 보살들의 마음에 깊은 의심이 일어났음을 알고 즉시 게송으로 금강장보살에게 물었다.
015_0007_b_22L時大菩薩衆中有菩薩名解脫月知諸菩薩心深生疑已卽以偈頌問金剛藏菩薩曰
015_0007_c_01L
무슨 까닭으로 청정한 깨달음에
생각[念]과 지혜[智]의 공덕 갖추신 그대
매우 미묘한 10지의 이름만 말하고
힘이 있음에도 해석하지 않으십니까?
015_0007_c_01L何故淨覺人
念智功德具
說諸上妙地
有力不解釋

모든 대중 결정한 뜻이 있고
보살이라는 큰 명칭이 있건만
무슨 까닭에 지(地)의 이름만 말하고
그 뜻은 설명하지 않으십니까?
015_0007_c_03L決定此一切
菩薩大名稱
何故說地名
而不演其義

이 대중들 모두 듣기를 바라고
불자들의 지혜 두려움이 없으니
이러한 여러 지(地)의 뜻을
모쪼록 분별하여 설명해 주소서.
015_0007_c_04L此衆皆樂聞
佛子智無畏
如是諸地義
願爲分別說

이 대중들 모두 청정하고
게으름을 떠나 장엄하오며
견고한 수행에 편안히 머물고
공덕과 지혜가 구족하옵니다.
015_0007_c_05L此衆皆淸淨
離懈怠嚴淨
安住堅固中
功德智具足

서로서로 모두 우러러 보고
일체가 다 함께 공경하기를
꿀벌이 좋은 꿀을 바라듯이
목마른 이 감로수 생각하듯이 하옵니다.
015_0007_c_07L迭共相瞻住
一切咸恭敬
如蜂欲熟蜜
如渴思甘露

【論】무슨 까닭에 묵묵히 있기만 했는가? 대중들로 하여금 설법을 청하고 싶은 갈망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이며, 보살의 존경하는 법을 더욱 증장시키기 위해서이다.
무슨 까닭에 해탈월보살이 처음 설법을 청했는가? 저 대중들 가운데 상수(上首)이기 때문이며, 다른 이가 물으면 대중을 혼란케 하여 조복하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015_0007_c_08L論曰何故默然住欲令大衆渴仰請說故復增菩薩尊敬法故何故解脫月菩薩初請彼衆上首故餘問則亂衆調伏故
무슨 까닭에 게송으로 설법을 청했는가? 적은 글자가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며, 일반적으로 찬탄하는 이들이 게송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015_0007_c_12L何故偈頌請少字攝多義諸讚歎者多以偈頌故
이 다섯 수(首)의 게송은 어떠한 뜻을 설하였는가? 설법하는 이와 청법(聽法)하는 이가 모두 아무런 허물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니, 만약 허물이 있는 이가 있다면 설해서는 안 된다.
015_0007_c_13L此五偈說何等義顯示說者聽者無諸過故有過者則不應說
이 게송은 설법하는 이가 청정한 깨달음으로 허물이 없음을 나타내 보이고, 또 청법하는 이가 같은 법을 수행하려는 확고한 의지[決定]가 있고, 법문을 듣기 좋아함을 나타내 보이고, 또 여타의 사람들도 마음이 밝음을 나타내 보이고, 또한 이 대중들이 모두 법문을 들을 만한 자격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려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게송에서 말했듯이 대중들이 서로서로 모두 우러러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설법하는 이를 두고 찬탄하였는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7_c_15L是中顯示說者淨覺無過故復顯聽者同法決定故樂聞故復示餘者淨心故又顯此衆皆堪聞法故偈言迭共相瞻住故何歎說者偈言

무슨 까닭으로 청정한 깨달음에
생각[念]과 지혜[智]의 공덕 갖추신 그대
매우 미묘한 10지의 이름만 말하고
힘이 있음에도 해석하지 않으십니까?
015_0007_c_19L何故淨覺人
念智功德具
說諸上妙地
有力不解釋

‘무슨 까닭으로 오직 청정한 깨달음’을 찬탄했는가? 청정한 깨달음이 설법의 인(因)이기 때문이다. 깨달음[覺]은 각관(覺觀)이라 하니, 이는 입과 말의 행(行)에 청정한 설법의 인(因)이 있는 것인데, 무슨 까닭에 설법하지 않았는가?
015_0007_c_21L何故唯歎淨覺淨覺是說因故覺名覺觀是口言行有淨說因何故不說
015_0008_a_01L청정한 깨달음을 찬탄하는 이유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대치(對治)를 포괄하는 섭대치(攝對治)이며, 둘째는 모든 허물을 여의는 이제과(離諸過)이다. 이 가운데 ‘생각과 지혜의 공덕을 갖추었다’는 것은 대치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할 대상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잡된 깨달음[雜覺]이며, 둘째는 잡된 깨달음의 인(因)인데, 기억과 상상에 따라 분별하기 때문이다.
015_0007_c_23L歎淨覺有二種一攝對治二離諸過是中念智具者攝對治故所治有二一者雜覺二者雜覺因憶想分別
생각[念]이란 4념처(念處)이니, 잡된 깨달음을 대치하기 위한 것이다. 지혜[智]란 진여 무상(眞如無相)의 지혜이니, 잡된 깨달음이 기억과 상상에 따라 분별하는 것을 대치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밖의 나머지 부분은 모든 허물을 여의었음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허물에 세 종류가 있으니, 이 세 허물이 있는 이는 설법할 수 없다. 무엇이 세 허물인가? 첫째, 인색하고 질투심이 많은 것이며, 둘째, 설법하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며, 셋째, 설법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015_0008_a_04L念者四念處對治雜覺故智者眞如無相智對治雜覺因憶想分別故餘者顯示離諸過是過有三種有三過者則不能說何者爲三一慳嫉說法懈怠三不樂說
‘인색’이란 법을 남에게 설해 주기를 아까워하는 마음이고, ‘질투’란 다른 이의 뛰어난 지혜를 시기하는 것이다. ‘공덕을 갖추었다’는 것은 성내지 않음 등의 공덕을 갖추어 첫째 허물이 없음을 보이는 것이며, ‘매우 미묘한 10지를 말했다’는 것은 둘째 허물이 없음을 보이는 것이며, ‘힘이 있다’는 것은 셋째 허물이 없음을 보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설법하는 이를 대상으로 한, 청정한 깨달음에 대한 두 종류의 찬탄을 말하였다. 다음은 청법하는 이에 대한 찬탄이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8_a_08L慳者其心悋法嫉者忌他勝智功德具者不瞋等功德具示無初過故說上地者示無第二過故有力者示無第三過故如是二種淨覺歎說者已次歎聽者偈言

모든 대중 결정한 뜻이 있고
보살이라는 큰 명칭이 있건만
무슨 까닭에 지(地)의 이름만 말하고
그 뜻은 설명하지 않으십니까?
015_0008_a_12L決定此一切
菩薩大名稱
何故說地名
而不演其義

‘결정한 뜻이 있다’는 것은 지혜가 명료(明了)하기 때문이다. 결정에는 다음의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상결정(上決定)이니 큰 보리를 발원하기 때문이며, 둘째, 명문결정(名聞決定)이니 다른 사람의 선(善)을 공경하기 때문이며, 셋째, 섭수결정(攝受決定)이니 저 설법하는 이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송에서 ‘보살’, ‘큰 명칭’, ‘지(地)의 이름만 말한다’고 하였으니, 이렇게 차례로 알아야 한다. 아무리 결정한 뜻이 있어 법을 받아들일 그릇이 된다 하더라도, 마음에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또한 설법해 주어서는 안 된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8_a_14L決定者黠慧明了故決定有三種上決定願大菩提故名聞決定善敬重故攝受決定彼說者善知偈言菩薩故大名稱故說地名故如是次第應知雖有決定堪受法器心不欲聞亦不得說偈言

이 대중들 모두 듣기를 바라고
불자들의 지혜 두려움이 없으니
이러한 여러 지(地)의 뜻을
모쪼록 분별하여 설명해 주소서.
015_0008_a_20L此衆皆樂聞
佛子智無畏
如是諸地義
願爲分別說
015_0008_b_01L
결정은 이 가운데 증득한 결정[證決定]이 아닌 아함결정(阿含決定)이 있고, 현전하는 결정(現前決定)이 없는 비현전결정(非現前決定)이 있다. 이와 같은 결정은 법의 그릇[法器]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법을 듣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대중들은 결정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법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 게송에서 ‘불자들의 지혜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015_0008_a_22L決定者是中有阿含決定非證決定有非現前決定無現前決定如是決法器不滿足故不能聽受示現此衆具足決定故能聽受偈言佛子智無畏故
지혜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법을 증득한 것[證法]이고, 둘째는 현재 섭수(攝受)하는 것[現受]이다.
이와 같이 대중의 법의 그릇이 충분함을 잘 알고 금강장보살에게 ‘이러한 여러 지(地)의 뜻을 모쪼록 분별하여 설명해 주소서’하고 청하였다.
이상으로 같은 법을 수행하는 대중이 결정이 있어 공덕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찬탄하였다. 다음은 다른 대중[異衆]에 대한 찬탄이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8_b_04L智有二種一證法故二現受如是善知法器滿足請金剛藏是諸地義願爲分別說已歎同法衆決定樂聞功德次復歎異衆偈言

이 대중들 모두 청정하고
게으름을 떠나 엄정(嚴淨)하오며
견고한 진리에 편안히 머물고
공덕과 지혜가 구족하옵니다.
015_0008_b_07L此衆皆淸淨
離懈怠嚴淨
安住堅固中
功德智具足

청정이란 혼탁하지 않은 것이다. 혼탁에 여섯 가지가 있는데, 이러한 혼탁들을 여의었기 때문에 청정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섯 가지 혼탁인가? 첫째는 불욕탁(不欲濁:설법을 바라지 않는 것), 둘째는 위의탁(威儀濁:위의가 엄숙하지 못한 것), 셋째는 개탁(蓋濁:번뇌에 덮인 것)이다. 넷째는 이상탁(異想濁)이니, 남의 장점을 질투하여 자기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부족공덕탁(不足功德濁)이니, 선근이 미약한 까닭에 다른 사람의 설법에 마음이 즐겨 머물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는 치탁(癡濁)이니, 우매함 따위를 말한다.
015_0008_b_09L淸淨者不濁故濁有六種離此諸濁故言淸淨何者爲六不欲濁儀濁蓋濁異想濁妒勝心破壞心故不足功德濁善根微少故故於彼說中心不樂住癡濁謂愚闇等故
이것을 상대하여 치료하는[對治] 방법으로 여섯 가지 불탁(不濁:혼탁하지 않음)이 있다. ‘견고한 수행에 편안히 머문다’는 것은 설법에 따라 견고하게 수행하는 것이니, 아래에 보이듯이 이와 같이 차례로 상대하여 치료해 나간다.
015_0008_b_15L此對治有六種不濁安住堅固者於所說法修行堅固如是次第相對
‘게으름을 떠났다’는 것은 불욕탁을 상대하고, ‘장엄하다’는 것은 위의탁을 상대하고, ‘깨끗하다[淨]’는 것은 개탁을 상대하고, ‘견고하다’는 것은 이상탁을 상대하고, ‘공덕이 구족하다’는 것은 부족공덕탁을 상대하고, ‘지혜가 구족하다’는 것은 치탁을 상대한다.
015_0008_b_17L離懈怠者對不欲濁嚴者威儀濁淨者對蓋濁堅固者對異想功德具者對不足功德濁智具者對癡濁
이 여섯 구를 보이는 것은 위의 두 게송이 동생(同生) 중생의 청정함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다음 한 수의 게송은 이생(異生) 중생의 청정함을 나타내고, 마지막 게송 한 수는 동생과 이생 두 대중의 청정함을 나타낸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8_b_20L此六句示現是二偈顯同生衆淨次一偈顯異生衆淨後一偈顯二衆淸淨偈言

서로서로 모두 우러러 보고
일체가 다 함께 공경하기를
꿀벌이 좋은 꿀을 바라듯이
목마른 이 감로수 생각하듯이 하옵니다.
015_0008_b_22L迭共相瞻住
一切咸恭敬
如蜂欲熟蜜
如渴思甘露
015_0008_c_01L
‘서로서로 모두 우러러 본다’는 것은 혼잡하게 오염된 마음이 없음을 보인다. ‘다 함께 공경한다’는 것은 법을 공경 존중하고 투기심이 있지 않음을 보인다. 이 게송의 하반부는 공경하는 법이 점차 깊어짐을 보인다.
015_0008_c_01L迭共相瞻者示無雜染心故咸恭敬示敬重法非妒心故下半偈喩敬法轉深
이 게송에서 ‘서로서로 모두 우러러 본다’는 것은 총상(總相)이고, ‘일체가 다 함께 공경한다’는 것은 별상(別相)이다. 이와 같이 위의 나머지 게송들도 처음 구(句)는 총상이고 나머지 구는 별상이다. 동상(同相)과 이상(異相), 성상(成相)과 괴상(壞相)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게송으로 말한다.
015_0008_c_04L此偈迭共相瞻是摠相一切咸恭敬是別相如是餘偈初句摠相餘句別相同異成壞如上所說偈曰

큰 지혜로 두려움이 없는
금강장보살은 이 말을 듣고
대중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즉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하네.
015_0008_c_06L大智無所畏
金剛藏聞已
欲令大衆悅
卽時說頌曰

제일 어렵고 희유하게 어려운
보살들이 행하고 보이는
10지의 일을 잘 분별하는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라네.
015_0008_c_08L難第一希有
菩薩所行示
地事分別上
諸佛之根本

미묘하고 보기 어렵고 생각도 여의었고
마음자리[心地] 아니라면 얻기 어렵다네.
그 경계 참으로 무루의 지혜이니
듣는 사람들 아득하여 미혹하리라.
015_0008_c_09L微難見離念
非心地難得
境界智無漏
若聞則迷悶

마음 지키기를 금강과 같이
부처님의 지혜를 깊이 믿나니
마음자리 무아(無我)의 지혜라야
미세한 그 지혜 들을 수 있으리.
015_0008_c_10L持心如金剛
深信佛智慧
心地無我智
能聞智微細

허공에 채색 그림 그리는 듯
허공에 바람이 지나가는 듯
지혜도 이와 같이 분별하나니
부처님 무루 지혜 보기 어렵네.
015_0008_c_12L如彩畫虛空
如虛空風相
智如是分別
難見佛無漏

내 생각에 부처님의 지혜는
가장 거룩하여 세간에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려운 희유한 법인지라
이런 까닭에 내가 묵묵히 있었다네.
015_0008_c_13L我念佛智慧
第一世難知
難信希有法
是故我默然

【論】위의 첫째 게송에서 ‘대중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란 말은 총정수답상(總正詶答相)이다. 수답(詶答:대답)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감수답(堪詶答:능히 대답함)이고, 둘째는 불겁약수답(不怯弱詶答:겁내지 않고 대답함)이다. 게송에 말했듯이 큰 지혜가 있고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불감답(不堪答:답하지 못함)을 여의고, 부정답(不正答:바르지 않은 대답)을 여의는 것이니, 이 두 구(句)는 자기와 남이 허물이 없음을 보인다. 무엇이 정답상(正答相:바른 대답의 모습)인가? 이 법은 설하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려운 것이다. 어찌하여 설하기 어려운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8_c_14L論曰此初偈中欲令大衆悅是摠詶荅相詶荅有二種堪詶荅怯弱詶答偈言大智故無所畏故不堪荅離不正荅此二示現自他無過故何者是正荅相此法難說復難聞故云何難說偈言

제일 어렵고 희유하게 어려운
보살들이 행하고 보이는
10지의 일을 잘 분별하는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라네.
015_0008_c_20L難第一希有
菩薩所行示
地事分別上
諸佛之根本
015_0009_a_01L
어렵다는 것은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두 가지가 있으니, 가장 어려움[最難]과 일찍이 없던 어려움[未曾有難]이다. 이는 게송에 말했듯이 제일이기 때문이며, 희유하기 때문이니, 이 두 구는 설법하기 어려움을 보인다. 무엇이 어려움인가? 게송에 ‘보살들이 행하고 보이는, 10지의 일을 분별하는 것’이라 하였으니, ‘보살이 행한다’는 것은 출세간의 지혜이고, ‘보인다’는 것은 나타내어 보이는 것이다.
015_0008_c_22L難者難得故難有二種最難曾有難偈言第一故希有故此二示現所說難何者是難偈言菩薩所行地事分別上菩薩行者是出世閒示者顯示故
‘10지의 일’이란 모든 지(地)의 보살이 행하는 일이다. ‘잘 분별한다’는 것은 설법이 수승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행인가? 게송에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부처님이란 부처님의 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015_0009_a_04L地事者謂諸地菩薩行事分別上者說勝故何者菩薩行偈言諸佛之根本佛者覺佛智
이상으로 설하기 어려움을 말하였고, 다시 어려운 까닭을 말하겠다. 무엇이 어려움인가? 저 보살이 행하는 일[行事]의 의주(義住)7)를 이와 같이 설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 그 의주인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9_a_06L說難說復說所以難何者是難彼菩薩行事義住不可如是說云何彼義偈言

미묘하고 보기 어렵고 생각도 여의었고
마음자리 아니라면 얻기 어렵다네.
그 경계 참으로 무루의 지혜이니
듣는 사람들 아득하여 미혹하리라.
015_0009_a_09L微難見離念
非心地難得
境界智無漏
若聞則迷悶

이 게송에서 ‘얻기 어렵다’는 것은 총상이고, 나머지는 별상이다. 얻기 어려운 것은 증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얻기 어려움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미묘하여 얻기 어려움이며, 둘째는 보기 어려워 얻기 어려움이고, 셋째는 생각을 여의어 얻기 어려움이고, 넷째는 마음자리가 아니라면 얻기 어려움이다.
015_0009_a_11L此偈中難得者是摠餘者是別難得難證故是難得有四種微難得難見難得離念難得非心地難得
‘미묘하여 얻기 어렵다’는 것은 듣고 아는 지혜[聞慧]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친 일[麤事]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보기 어려워 얻기 어렵다’는 것은 생각하여 아는 지혜[思慧]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을 여의어 얻기 어렵다’는 것은 세간의 닦아서 아는 지혜[修慧]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 3계(界)의 심(心)ㆍ심수법(心數法)의 분별과 세간의 수도의 지(智)의 경계가 아님을 보인다.
015_0009_a_15L微難得者非聞慧境界故麤事不須思惟難見難得者非思慧境界離念難得者非世閒修慧境界故示現三界心心數法分別世閒修道智非境界故
‘마음자리[心地]가 아니라면 얻기 어렵다’는 것은 보생(報生)을 잘 얻는 수도의 지혜의 경계가 아님을 나타내어 보인다. 여기서 마음의 경계가 마음자리임을 보였으니, 그렇다면 어떠한 경계인가? 게송에서 지혜의 경계라 하였으니, 어떠한 것이 지혜의 경계인가? 진실된 뜻[實義]을 아는 것이다.
015_0009_a_19L非心地難得者示現報生善得修道智非境界故此示現心境界者是心地此誰境界偈言智境何者是智見實義故
015_0009_b_01L 무슨 까닭에 여타의 다른 경계가 아닌가? 무루(無漏)이기 때문이다. 무루란 출세간의 뜻이니, 이 뜻은 세간의 지혜 경계가 아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뜻은 이와 같이 이해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와 같이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015_0009_a_22L何故非餘境無漏故無漏者出世閒義是義非世閒智境界如是甚深義如是可解如是不可說
‘듣는 사람 아득하여 미혹한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미혹하게 되는가? 들음에 따라 집착하기 때문이다. ‘듣는다’는 것은 곧 듣는 것이지 듣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상으로 설하기 어려움을 설명하였고, 다시 듣기 어려움을 밝히겠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9_b_02L若聞則迷悶者云何迷隨聞取著故聞者卽聞非是不聞已辯難說復顯難聞偈言

마음 지키기를 금강과 같이
부처님의 지혜를 깊이 믿나니
마음자리 무아(無我)의 지혜라야
미세한 그 지혜 들을 수 있으리.
015_0009_b_04L持心如金剛
深信佛智慧
心地無我智
能聞智微細

‘금강과 같다’는 것은 견고하기가 금강과 같은 것이다. 견고함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결정한 믿음의 견고함[決定信堅]이며, 둘째는 증득의 견고함[證得堅]이다. 첫째 구에서 견고함을 나타내어 보인 것은 총상이고 나머지는 별상이다.
015_0009_b_06L如金剛者堅如金剛堅有二種定信堅證得堅此三句示現堅者是摠餘者是別
어찌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깊이 믿는가? 오직 부처님만이 알 뿐 나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 부처님의 보리는 가없어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할 때 설하는 갖가지 법문을 믿는 것이다.
015_0009_b_09L云何深信佛智慧佛所知非我境界佛菩提無邊佛化衆生所說法門種種信故
이 마음자리[心地]란 무엇이며, 어찌하여 무아의 지혜인가? 마음자리란 마음이 받는 것에 따른 3계 중의 과보[報]이며, 또한 마음이 행하는 것에 따른 일체 경계를 마음자리라 한다. 무아의 지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니, 여실히 알기 때문이다.
015_0009_b_11L何者是心云何無我智心地者隨心所受三界中報又隨心所行一切境界亦名心地無我智者有二種我空法空實智故
‘미세한 그 지혜 들을 수 있으리’란 것은 알기 어려움을 뜻하니, 이러한 미세한 지혜는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다시 비유로 미세한 지혜에 대해 설명하겠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9_b_15L能聞智微細者難知如是微如前所說復以譬喩顯微細義偈言

허공에 채색 그림 그리는 듯
허공에 바람이 지나가는 듯
지혜도 이와 같이 분별하나니
부처님 무루 지혜 보기 어렵네.
015_0009_b_17L如彩畫虛空
如虛空風相
智如是分別
難見佛無漏

이 게송은 마치 벽에 그림을 그리듯 허공에 채색 그림을 그리면 그 가운데 머물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고, 마치 나뭇잎에 바람이 불듯 허공에 바람이 불면 그 가운데 머물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고 바람이 부는 이러한 두 가지 동작들이 허공중에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니, 이와 같은 허공중의 일은 말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이렇게 그림과 바람의 비유를 들어 말한 것이다.
015_0009_b_19L此偈示現如空中畫色如壁是中不住故不可見如空中風如樹葉是中不住故不可見此動作者非不空中有是二事如是虛空處事不可說處是畫風如說
015_0009_c_01L자성(自性)이 아닌 까닭에 볼 수 없으니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나그네[客:자성의 地를 주인이라 하면 언설이 客이 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 수 없을 뿐이지 이 가운데 설명할 수 있는 언설(言說)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비유와 같이 부처님의 지혜는 언설로 여러 지(地)를 밝히고 비교 분별하는 방법을 통하여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015_0009_c_01L以非自性不可得見不住故以其客故非不於中有此言如是佛智言說顯示地挍量勝分別難見
여기서 그림은 자구(字句)에 비유하고 바람은 음성에 비유하였으니, 왜냐하면 자구와 음성이 서로 의지하여야 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하는 이는 그림과 바람 이 두 가지 일을 설하고, 듣는 이 역시 이 두 가지 일을 들으니, 만약 이처럼 설할 수 있고 이처럼 들을 수 있고 이처럼 보기 어렵다면, 무슨 까닭에 설하지 않는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09_c_04L畫者喩名字句身何以故相說故風者以喩音聲說者以此二事說聽者以此二事聞若如是可說如是可聞如是難見何故不說

내 생각에 부처님의 지혜는
가장 거룩하여 세간에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려운 희유한 법인지라
이런 까닭에 내가 묵묵히 있었다네.
015_0009_c_07L我念佛智慧
第一世難知
難信希有法
是故我默然

‘알기 어렵다’는 것은 증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믿기 어렵다’는 것은 결정심(決定心)을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게송은 증득할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설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세간 사람들은 증득하고 믿기 어렵기 때문에 내가 설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다.
015_0009_c_09L難知者難證故難信者難生決定心此偈示現有證有信可說可聞閒難得證信故我不說
【經】이때 해탈월보살이 이 말을 듣고 금강장보살에게 청하였다.
“불자시여, 지금 청정한 큰 보살 대중이 모였는데, 깊은 마음이 청정하고, 모든 생각이 청정하며, 모든 행(行)을 잘 모으고, 모든 부처님을 친근히 하며, 도를 돕는 법[助道法]을 잘 모읍니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고, 어리석음과 의혹과 뉘우침을 여의어 번뇌에 물듦이 없고, 깊은 마음에 잘 머물러 불법을 믿고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습니다. 장하신 불자시여, 이 뜻을 설명하여 주소서. 이 보살들은 이 깊은 법을 모두 증득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015_0009_c_12L經曰爾時解脫月菩薩聞說此已金剛藏菩薩言佛子是大菩薩善淨衆集善淸淨深心善淸淨諸念善集諸行多親近諸佛善集助道法具足無量功德離癡疑悔無有染污善住深心信於佛法中不隨他教善哉佛敷演此義是諸菩薩於是深法皆能證知
【論】성자(聖者)인 해탈월보살이 무슨 까닭에 다시 이 대중을 찬탄하였는가? 위의 게송에서 금강장보살이 ‘세간에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렵다’고 했기에, 이곳에 모인 대중들은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음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깊은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은 총상이다. 깊은 마음이 청정한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아함정(阿含淨)이고 둘째는 증정(證淨)이다.
015_0009_c_20L論曰聖者解脫月何故復歎此衆言世閒證信者難得示現此衆有堪能故善淨深心者是摠此善淨深心有二種阿含淨證淨
015_0010_a_01L아함정에 다음의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로 욕정(欲淨)은 아함을 생각함에 따라 방편8)인 염각(念覺)9)이 청정함을 얻는 것이니, 경의 ‘모든 생각이 청정하다’는 것과 같다.
둘째로 구정(求淨)은 부처님을 따르는 몸과 입의 공경한 행(行)을 얻는 것이니, 경의 ‘모든 행(行)을 잘 모은다’는 것과 같다.
셋째로 수지정(受持淨)은 한량없는 세상에서 불법을 많이 듣고 기억하여 착오가 없는 것이니, 경의 ‘모든 부처님을 친근히 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10_a_01L是阿含淨有五種一者欲淨隨所念阿含得方便念覺淨如經善淸淨諸念二者求淨得隨順身口敬行如經善集諸三者受持淨於無量世多聞憶持不謬故如經多親近諸佛
넷째로 생득정(生得淨)은 점차 생보(生報)10)가 수승하도록 수승한 생보를 생각하는 지혜를 얻는 것이니, 경의 ‘도를 돕는 법[助道法]을 잘 모은다’는 것과 같다.
다섯째로 행정(行淨)은 법을 잘 증득하기를 구하고 욕심을 없애는 두타행 등을 익혀 많은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니, 경의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10_a_06L四者生得淨願得上上生勝念勝如經集助道法五者行淨求善證法習少欲頭陁等成就多功德如經具足無量功德
증정(證淨)에 다음 네 종류가 있다.
첫째로 득정(得淨)은 현전하는 지혜[現智:법이 마음에 나타남을 말함]로 잘 결정하는 것이니, 경의 ‘어리석음과 의혹과 뉘우침을 여읜다’는 것과 같다.
둘째로 불행정(不行淨)은 수도하는 중에 일체의 번뇌가 행해지지 않는 것이니, 경의 ‘번뇌에 물듦이 없다’는 것과 같다.
015_0010_a_10L證淨者有四種一者得現智善決定故如經離癡疑悔二者不行淨修道中一切煩惱不行如經無有染污
셋째로 무염족정(無厭足淨)은 소승을 좋아하지 않고 수승한 대승을 얻기를 희망하는 마음이니, 경의 ‘깊은 마음에 잘 머물러 불법을 믿는다’는 것과 같다. 깊은 마음이란 희구하는 것이고, 믿음이란 마음을 결정하는 것이며, 저 수승한 공덕을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로 불수타교정(不隨他敎淨)은 도(道)의 구경에 이르러 스스로 정행(正行)을 닦는 것이니, 경의 ‘불법을 믿고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10_a_13L三者無厭足淨不樂小乘得上勝悕望心如經善住深心信深心者悕欲故信者決定復念持彼功德故四者不隨他教趣盡道中自正行故如經於佛法中不隨他教
【經】이때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비록 이 보살 대중은 깊은 마음이 청정하고, 모든 생각이 청정하고, 모든 행(行)을 잘 모으고, 모든 부처님을 친근히 하고, 도를 돕는 법[助道法]을 잘 모으고,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고, 어리석음과 의혹과 뉘우침을 여의어 번뇌에 물듦이 없고,
015_0010_a_18L經曰爾時金剛藏菩薩言佛子雖此菩薩衆善淸淨深心善淸淨諸念集諸行多親近諸佛善集助道法足無量功德離癡疑悔無有染污
015_0010_b_01L 깊은 마음에 잘 머물러 불법을 믿고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밖의 여타 소승법을 좋아하는 이가 매우 깊어 불가사의한 이 법을 들으면 의심[疑]과 미혹[惑]을 많이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무명(無明)의 긴긴 어둠 속에서 온갖 무익한 고뇌를 겪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묵묵히 있었습니다.”
015_0010_a_22L住深心信於佛法中不隨他教其餘樂小法者聞是甚深難思議事多生疑惑是人長夜受諸無利衰惱我愍此等是故默然
【論】이 성자이신 금강장보살은 저 해탈월보살이 찬탄한 대중의 청정한 공덕을 알았으나, 설할 법에 맞는 법의 그릇[法器]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법의 그릇이 못 되는 이들이 이 법을 들으면 의심과 미혹만 증폭하게 될까 염려되어 설법하지 않은 것이다.
015_0010_b_03L論曰是聖者金剛藏領彼解脫月菩薩所歎衆淸淨功德已於所說法中不見法器聞增疑惑是故不說
한 법[一法] 가운데 두 가지 허물이 있으니, 의심이란 정행(正行)과 서로 어긋나 머뭇거린다는 뜻이고, 미혹이란 마음이 혼미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은 능히 선법(善法)을 파괴하고 선법을 멀리 떠나게 할 수 있다.
가르침을 받아 실행하지 않게 되는 원인[不受行因]과 가르침을 행하는 일에서 물러나게 되는 원인[受行退因]을 이와 같이 나타내어 보였다.
015_0010_b_06L於一法中有二種過疑者正行相違猶豫義故惑者心迷義故能壞善法遠離善法故如是顯示不受行因受行退因
【經】이때 해탈월보살이 금강장보살에게 청하였다.
“장하신 불자여, 거듭 바라건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 이 불가사의한 법을 잘 분별하소서. 이 법은 부처님께서 호념하시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쉽게 믿고 이해할 것입니다.
015_0010_b_10L經曰爾時解脫月菩薩請金剛藏菩薩言善哉佛子重請此事願承佛神善分別此不可思議法佛所護念令人易信解
왜냐하면 10지(地)를 잘 말하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법으로 마땅히 호념하고 일체 보살이 이 지혜의 지를 보호하여 부지런히 방편을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는 보살이 최초로 행하는, 일체의 불법을 성취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15_0010_b_14L所以者何善說十地十方諸佛法應護念一切菩薩護是智地勤行方便何以故此是菩薩最初所行成就一切諸佛法故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일체의 서(書)ㆍ자(字)ㆍ수(數)ㆍ설(說)이 모두 자모(字母:初章)에 포괄되며, 자모가 근본이 되어 자모에 들어가지 않는 서(書)ㆍ자(字)ㆍ수(數)ㆍ설(說)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자여, 10지는 일체 불법의 근본으로, 보살이 이 10지를 구족하게 행하면 능히 일체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015_0010_b_17L佛子譬如一切書字數說皆初章所攝章爲本無有書字數說不入初章者如是佛子十地者是一切佛法之根菩薩具足行是十地能得一切智
그러므로 불자시여, 원컨대 이 뜻을 설하소서.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고 신력(神力)으로 가피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받아들이고 파괴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015_0010_b_22L是故佛子願說此義諸佛護念加以神力令人信受不可破壞
015_0010_c_01L【論】성자인 해탈월보살이 무슨 까닭에 다시 거듭 설법을 청했는가? 저들이 의혹한다고 하여 회피해서는 안 되니, 만약 설법하지 않는다면 허물이 많아 일체의 불법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뜻 때문에 거듭 금강장보살에게 청한 것이다.
015_0010_b_23L論曰聖者解脫月何故復重請示彼疑惑此不可避若不說者有多過咎得成就一切佛法故以是義故重請金剛藏菩薩
만약 모든 부처님께서 신력이 있어 저들로 하여금 믿음을 내게 할 수 있다면 무슨 까닭에 중생들이 저 법에 대해 오히려 비방할 생각을 일으키는가? 두 가지 정(定)이 있으니, 첫째는 감보정(感報定)이고, 둘째는 작업정(作業定)으로, 이 두 가지 정이란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도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015_0010_c_04L若諸佛有力能令生信何故衆生於彼法中猶起謗意有二種定感報定作業定此二種定諸佛威力所不能轉
최초로 수행할 때에는 아함에 따라 수행하는 까닭에 일체의 불법을 성취한 것을 증지(證智)라 한다.
서(書)란 글자의 형상이니, 이를테면 ‘사(嘶, sa)’라든지 ‘사(師, ṣa)’라든지 하는 따위 글자의 형상이다. 자(字)란 ‘악(噁, aḥ)’이나 ‘아(阿, a)’ 등의 소리이다. 수(數)란 단어[名]와 구(句)이니, 이 두 가지가 수의 뜻이다. 설(說)이란 말이다. 일체의 서ㆍ자ㆍ수ㆍ설은 모두 자모가 근본이다.
015_0010_c_07L最初所行者阿含行故成就一切佛法者謂是證書者是字相如嘶字師子形相等字者噁阿等音數者名句此二是數說者是語一切書說等皆初章爲本
【經】이때 모든 보살 대중이 일시에 같은 소리로 게송을 읊어 금강장보살에게 청하였다.
015_0010_c_12L經曰爾時諸菩薩衆一時同聲以偈頌請金剛藏菩薩言

최상의 미묘하여 때[垢] 없는 지혜
한량없는 뜻 설명하는 변재
이름답고 미묘한 말로 연설하여
진실한 뜻에 상응하소서.
015_0010_c_14L上妙無垢智
堪無量義辯
演說美妙言
眞實義相應

생각하여 지니는 청정한 지혜로
열 가지 힘 청정한 마음 얻도록
걸림 없이 뜻을 분별하여
이 10지법을 설하여 주소서.
015_0010_c_16L念堅淸淨慧
爲十力淨心
無㝵分別義
說此十地法

계율과 선정의 깊고 바른 뜻[意]이
아만과 망령된 소견 여의었나니
이 대중들 의혹의 마음 없어
좋은 설법 듣기만 오직 바라네.
015_0010_c_17L定戒深正意
離我慢妄見
此衆無疑心
唯願聞善說

목마른 이 시원한 물 생각하듯
굶주린 이 맛난 음식 생각하듯
병든 이 좋은 약을 생각하듯
뭇 벌들 단 꿀에 의지하듯
우리들도 역시 이와 같이
감로법을 듣기를 원하옵니다.
015_0010_c_18L如渴思冷水
如飢思美食
如病思良藥
如衆蜂依蜜
我等亦如是
願聞甘露法

장하십니다. 청정한 지혜로
때 없는 그 수승한 자리 설하여
걸림 없는 열 가지 힘 갖추게 하고
선서(善逝)의 길[道] 남김없이 말씀하소서.
015_0010_c_20L善哉淸淨智
說勝地無垢
具十力無㝵
盡說善逝道
015_0011_a_01L
【論】첫째 게송은 증력(證力:증득한 지혜의 힘)의 변재를 성취한 것을 찬탄하였고, 둘째 게송의 위의 구는 아함력(阿含力)의 변재를 성취한 것을 찬탄하였다. 증력과 아함력 덕분에 설법할 수 있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찬탄하였다.
015_0010_c_22L論曰初偈歎證力辯才成就第二偈上句歎阿含力辯才成就以證力阿含力故能有所說是故讚歎
‘최상’이란 총상이며, 또한 ‘최상’이란 증력의 변재가 수승함을 나타낸다.
변재를 찬탄함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진실지(眞實地)이고, 둘째는 체성(體性)이고, 셋째는 과(果)이다.
진실지란 무루(無漏)의 지혜로, 성문과 연각의 지혜보다 수승하니, 게송에 ‘미묘하여 때 없는 지혜’라 하였다.
015_0011_a_02L上者是又復上者顯證力辯才勝故歎辯才有三種眞實智體性三者果眞實智者是無漏智勝聲聞緣覺智偈言妙無垢智
체성이란 한량없는 뜻을 설명할 변재를 성취하는 것이니, 게송에 ‘한량없는 뜻을 설명하는 변재’라 하였다.
과(果)란 글자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매끄럽고 훌륭한 글자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니, 게송에 ‘아름답고 미묘한 말로 연설하여 진실한 뜻에 상응한다’고 하였다.
둘째 게송의 위의 구는 아함력을 찬탄하였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11_a_06L體性者成就無量義辯才偈言堪無量義辯果者字義成就復是滑利勝上字義成就偈言演說美妙言眞實義相應二偈上句歎阿含力偈言

생각하여 지니는 청정한 지혜로
열 가지 힘 청정한 마음 얻도록
걸림 없이 뜻을 분별하여
이 10지법을 설하여 주소서.
015_0011_a_10L念堅淸淨慧
爲十力淨心
無㝵分別義
說此十地法

‘생각하여 지닌다[念堅]’는 것은 부처님의 설법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해 주는 것이니, 이는 보살이 아함에 있어 밝은 지혜로 의혹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증력과 아함력을 찬탄하였다.
015_0011_a_12L念堅者受持顯說故是菩薩於阿含中淨慧無疑故如是歎證力阿含力
다음으로 설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증(證)과 아함에 들어가게 한다. 이런 까닭에 설법을 청한 것이다.
무엇이 증에 들어가는 것인가? 이미 지(地)에 들어간 이는 부처님의 힘을 얻게 하고, 아직 지에 들어가지 못한 이는 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게송에 ‘열 가지 힘 청정한 마음을 얻도록’이라 하였다.
무엇이 아함에 들어가는 것인가? 걸림 없이 뜻을 분별하여 10지의 법을 받아 지니게 하는 것이다.
015_0011_a_15L次令聽者入證入阿含是故請說云何入證已入地者令得佛力故入地者令得入地故偈言爲十力爲淨心云何爲入阿含無礙分別令受持十地法故
이와 같이 설법하는 이가 증력과 아함력을 성취했음을 찬탄하였다. 다음은 설법을 듣는 대중이 아함력과 증력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찬탄하였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11_a_19L如是歎說者成就證力阿含力已次復歎聽衆堪受阿含及證力故偈言

계율과 선정의 깊고 바른 뜻
아만과 망령된 소견 여의었나니
이 대중들 의혹의 마음 없어
좋은 설법 듣기만 오직 바라네.
015_0011_a_21L定戒深正意
離我慢妄見
是衆無疑心
唯願聞善說
015_0011_b_01L
이 게송에서 ‘오직 바란다’는 것이 총상이다. ‘오직 바란다’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아함을 구하는 것이며, 둘째는 ‘정증(正證:바른 證得)을 구하는 것이다.
아함을 들을 수 없게 하는 두 가지 망상(妄想)이 있으니, 첫째는 아(我:나)이고, 둘째는 만(慢:오만)이다. 이 아만(我慢) 때문에 법과 법사(法師)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015_0011_a_23L此偈中唯願者是摠唯願有二種求阿含求正證有二種妄想不堪聞阿含以我慢故於法法師不生恭敬
또 증(證)을 얻을 수 없게 하는 두 가지 망상이 있으니, 첫째는 견(見:所見)이고, 둘째는 의(疑:의심)이다. 견이란 전도된 견해이고, 의란 생각으로 알 수 없는 곳에 대해 믿음이 생하지 않는 것이다.
망(妄)이란 망상의 견해 속에 휩쓸리는 것이다.
015_0011_b_04L復有二種妄想不堪得見者顚倒見故疑者於不思議處不生信故妄者謂妄想見中同使故
아함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대치법(對治法)이 있으니, 첫째는 정(定:선정)이고, 둘째는 계(戒:계율)이다. 정이란 마음을 조복 받는 것이고, 계란 위의(威儀)에 잘 머무는 것이다.
015_0011_b_07L有二種對治堪聞阿含定者心調伏故戒者善住威儀故
다음으로 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대치법이 있으니, 첫째는 정견(正見:바른 견해)이고, 둘째는 정의(正意:바른 생각)이다. 정견이란 뜻을 잘 생각하는 것이고, 정의란 환희를 얻는 것이다.
‘깊다’는 것은 미세한 의식으로 잘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대중들의 법을 구하는 마음이 점점 깊어 감을 나타내어 보였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11_b_09L次有二種對治堪能得證正意正見者善思義故正意者得歡喜故深者細意善思惟故復以諸喩顯示大衆求法轉深偈言

목마른 이 시원한 물 생각하듯
굶주린 이 맛난 음식 생각하듯
병든 이 좋은 약을 생각하듯
뭇 벌들 단 꿀에 모여들 듯이
우리들도 역시 이와 같이
감로법 듣기를 원하옵니다.
015_0011_b_12L如渴思冷水
如飢思美食
如病思良藥
如衆蜂依蜜
我等亦如是
願聞甘露法

이 네 가지 비유는 네 가지 의문(義門:각 종의 義理)에 비유하여, 상대방의 설법을 바로 받아들일 것임을 나타내 보였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수지(受持)이고, 둘째는 조력(助力)이고, 셋째는 원리(遠離)이고, 넷째는 안락행(安樂行)이다.
015_0011_b_14L此四喩者喩四種義門示現正受彼所說義何等爲四受持助力遠離安樂行
그렇다면 이 뜻이 어떠한가?
마치 물은 씹지 않고 얻는 대로 마시는 것처럼, 이와 같이 지혜를 들을 때에도 처음 듣고는 즉시 받아들이고 듣는 대로 받아 지니는 것이다. 마치 음식을 씹어 먹으면 신체의 힘이 조성(助成)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지혜를 생각할 때에도 들은 법을 씹어 지력(智力)을 조성한다.
015_0011_b_17L此義云何如水不嚼隨得而飮如是聞慧初聞卽受隨聞受持如食咀嚼身力助成如是思慧嚼所聞法智力助成
마치 좋은 약을 복용하면 약 기운이 병을 제거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듣고 생각하여 아는 지혜[聞思慧]로 바른 뜻에 따라 법답게 수행하여 일체 번뇌의 묵은 병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015_0011_b_20L如服良藥藥行除病如是具聞思慧隨順正義如法修行遠離一切煩惱習患
015_0011_c_01L 마치 뭇 벌들이 꿀에 의지하여 즐거이 노니는 것처럼, 이와 같이 성인(聖人)은 듣고 생각하고 닦아서 아는 지혜의 과(果)에 의지하여 현법(現法:진리가 마음에 나타난 것)의 맛을 즐기고 안락행을 수용(受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설법하는 이와 듣는 이를 찬탄하여 설법을 청하였다. 다음은 설할 법의 이익을 찬탄하여 다 함께 청하였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011_b_22L如蜜衆蜂所依樂行住處如是聞思修慧果聖所依處現法愛味受樂行故如是讚歎說者聽者請說已次歎所說法利益咸皆共請偈言

장하십니다. 청정한 지혜로
때 없는 그 수승한 자리 설하여
걸림 없는 열 가지 힘 갖추게 하고
선서(善逝)의 길[道] 남김없이 말씀하소서.
015_0011_c_03L善哉淸淨智
說勝地無垢
具十力無㝵
盡說善逝道

‘장하십니다’라는 것은 설할 법 가운데 잘 구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하다’는 것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소의(所依)이고, 둘째는 체성(體性)이고, 셋째는 과(果)이다.
015_0011_c_05L善哉者所說法中善具足故善哉有三所依體性
소의란 청정한 지혜를 뜻한다. 체성이란 설하는 여러 지(地)로 일찍이 설한 적이 없는 법이다. ‘수승한 자리’란 지를 견주어 봄에 수승한 것이며, ‘때 없다[無垢]’는 것은 설법이 뜻에 어긋나지 않은 것이다. 뜻에 어긋난 설법에 세 종류의 때[垢]가 있으니, 첫째는 전도된 설법[倒說]이고, 둘째는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고, 셋째는 잘못 듣는 것[誑聞]이다.
015_0011_c_07L所依者謂淨體性者謂說諸地未曾說法勝地者地挍量勝無垢者說不違義違義說者有三種垢一者倒說二謗如來三誑聞者
과(果)란 장애가 없는 열 가지 힘[力]을 갖춘 부처님의 보리를 말한다.
이와 같이 설법을 청하였는데도 짐짓 설법하지 않으니, 무슨 까닭에 설법하지 않는가? 설법을 청함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015_0011_c_11L果者謂具十力無障㝵佛菩提故如是請已猶故不說何故不請不滿故
十地經論初歡喜地卷第一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연야달다(演若達多)라는 광인(狂人)이 홀연히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고 거울 속의 머리에 눈썹과 눈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다가 다시 정작 거울을 보고 있는 자기의 머리를 돌아보니 눈썹과 눈이 보이지 않자, 도깨비라고 여겨 미친 듯이 달아났다고 한다. 거울 속의 머리는 망상(妄想)에, 자신의 본래 머리는 진성(眞性)에 비유하였다. 『능엄경』에 보인다.
  2. 2)『십지의기(十地義記)』에 ‘처음과 끝[始終]의 법체(法體)이니, 아함은 처음[始]이고 증은 끝[終]이며, 또 아함은 정교(淨敎)를, 증은 앎[知得]을 뜻한다’고 하였다.
  3. 3)도를 배우는 이가 반드시 학습해야 할 다섯 가지로, 언어와 문자를 밝히는 성명(聲明)과 모든 공예ㆍ기술ㆍ산수 따위를 밝히는 공교명(工巧明)과 의술을 밝히는 의방명(醫方明)과 정사(正邪)를 고증하여 진위(眞僞)를 잘 따져서 밝히는, 일종의 논리학 격인 인명(因明)과 자가(自家)의 종지(宗旨)를 밝히는 내명(內明)을 말한다.
  4. 4)이에 대한 해석이 일정하지 않다. 『금강선론(金剛仙論)』에 의하면 일체의 법이 모두 무상(無常)이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임을 아는 것이라 하였고, 『별번론(別飜論)』에 의하면 일체법이 자상(自相)이고 동상(同相)이고 불이상(不二相)임을 아는 것이니, 자상은 세제(世諦)이고 동상은 진제(眞諦)이고 불이상(不二相)은 일실제(一實諦)로 일체의 법에는 동일하게 이 세 가지가 있기 때문에 세 가지 같은 모습[三同相]이라 한다고 하였다.
  5. 5)『금강선론』에 의하면 이법(理法)을 능히 아는 진실의정견(眞實義正見), 행법(行法)을 능히 아는 행정견(行正見), 교법(敎法)을 능히 아는 교정견(敎正見), 이법의 실정[情取]이 같지 않음을 능히 아는 이이변정견(離二邊正見), 행법이 덕을 성취시키고 정(情)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을 아는 부사의정견(不思議正見), 교법이 중생들의 마음에 따라 설법한다는 것을 아는 근욕성정견(根欲性正見)으로 설명한다.
  6. 6)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 허공과 땅ㆍ물ㆍ불ㆍ바람의 미세한 다섯 가지 요소(要素)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7. 7)『십지의기』에 ‘행하는 일을 이치[理]에 나아가 명명(命名)하면 의주가 되니, 이치의 차원이기 때문에 설할 수 없다’ 하였다.
  8. 8)염각(念覺)이 법을 듣는 연유가 되기 때문에 방편이라 하였다.
  9. 9)법을 듣기를 바라는 마음인 염욕(念欲)과 법에 대해 생각하는 사각(思覺)을 말한다.
  10. 10)선악의 업에 따라 내생에 받는 과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