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5_0022_c_01L십지경론 제3권
015_0022_c_01L十地經論初歡喜地卷之三


천친 지음
후위 보리류지 한역
이 상하 번역
015_0022_c_02L天親菩薩造
後魏北印度三藏菩提流支譯


1. 환희지 ③

【論】이상에서 설분(說分)을 설하였고, 다음으로 교량승분(校量勝分)을 설하겠다. 어떤 것이 교량승분인가? 보살이 이 지(地)에 머물면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수승하기 때문이다. 교량승(挍量勝)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서원의 수승함[願勝]이며, 둘째는 수행의 수승함[修行勝]이며, 셋째는 과(果)의 이익의 수승함[果利益勝]이다. 무엇이 서원의 수승함인가? 이른바 열 가지 큰 서원[大願]이다.
015_0022_c_04L論曰已顯說分次說挍量勝分云何挍量勝菩薩住此地中勝聲聞辟支佛故挍量勝有三種願勝修行果利益勝何者願勝所謂十大願
【經】“보살이 이와 같이 보살의 환희지에 안주하여 여러 큰 서원을 발하고 이와 같은 큰 방편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큰 행(行)을 성취하나니, 이른바 ‘남김없이 일체의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므로 모든 종류를 구족하여 높고 깊은 믿음이 청정하여지이다’라고 하나니,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일체 부처님의 성도(成道) 수(數)가 다하도록 크게 공양하고 공경하여 쉼이 없느니라.”
015_0022_c_09L經曰菩薩如是安住菩薩歡喜地諸大願起如是大方便如是大行成所謂無餘一切諸佛一切供養一切恭敬故一切種具足上深信淸淨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盡一切劫數一切佛成道數大供養恭敬無有休息
【論】이 처음의 큰 서원(誓願)에 남김이 없음[無餘]이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일체 부처님이 남김이 없음이며, 둘째는 일체 공양이 남김이 없음이며, 셋째는 일체 공경이 남김이 없음이다.
015_0022_c_16L論曰是初大願無餘者有三種一者一切佛無餘二者一切供養無餘者一切恭敬無餘
일체 부처님에 세 가지 부처님이 있으니, 첫째는 응신불(應身佛)이며, 둘째는 보신불(報身佛)이며, 셋째는 법신불(法身佛)이다.
015_0022_c_19L一切佛者有三種應身佛報身佛法身佛
일체 공양에 세 가지 공양이 있으니, 첫째는 이양(利養) 공양으로 의복과 침구 등을 뜻하고, 둘째는 공경 공양으로 향과 꽃ㆍ깃발과 일산[蓋] 등을 뜻하며, 셋째는 행(行) 공양으로 수행ㆍ믿음ㆍ계행 등을 뜻한다.
015_0022_c_20L切供養者有三種供養一者利養供謂衣服臥具等二者敬供養謂香花幡蓋等三者行供養謂修行信戒行
015_0023_a_01L일체 공경에 세 가지 공경이 있으니, 첫째는 급시(給侍) 공경이며, 둘째는 영송(迎送) 공경이며, 셋째는 수행 공경이다.
015_0023_a_02L一切恭敬者有三種恭敬給侍恭迎送恭敬修行恭敬
이런 까닭에 공양하고 공경하겠다는 서원을 일으키니, 경의 ‘남김없이 일체의 부처님께 다 공양하고 다 공경한다’는 것과 같다. ‘모든 종류를 구족한다’는 것은 한량없는 갖가지 수승한 일로 공양함이 있는 것이다.
015_0023_a_03L是故作願供養恭敬如經所謂無餘一切諸佛一切供養一切恭敬一切種具足無量種種復有勝事等供養故
‘높고 깊은 믿음이 청정하다’는 것은 회향보리(廻向菩提)의 결정된 믿음을 발원하기 때문이고,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다’는 것은 일체의 모든 선근(善根) 가운데 수승하기 때문이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다’는 것은 무상(無常)한 애과(愛果)의 인(因)이 한량없기 때문이고,
015_0023_a_06L深信淸淨者增上敬重故願迴向菩提決定信故廣大如法界者一切餘善根中勝故究竟如虛空者無常愛果無量因故
‘미래가 다한다’는 것은 이 인연으로 하고 열반의 상과(常果)를 얻기 때문이고, 일체 겁수(劫數)와 일체 부처님의 성도(成道) 수(數)가 다하도록 크게 공양하고 공경하여 쉼이 없기 때문이다.
015_0023_a_10L盡未來際者此因得涅槃常果故一切劫數一切佛成道數大供養恭敬無有休息故
이 처음의 서원(誓願) 가운데 여섯 가지 큼[大]이 있으니, 이름하여 큰 서원[大願]이라 한다.
첫째는 복전이 큼[福田大]이니, 경의 ‘남김없이 일체의 부처님께 다 공양하고 다 공경한다’는 것과 같다.
둘째는 섬김이 큼[供事大]이니, 경의 ‘모두를 구족하였다’는 것과 같다.
셋째는 마음이 큼[心大]이니, 경의 ‘높고 깊은 믿음이 청정하다’는 것과 같다.
015_0023_a_12L此初願中有六種大名爲大願一者福田大所謂無餘一切諸佛一切供養一切恭敬二者供事大如經一切種具足三者心大如經上深信淸淨
넷째는 공덕을 포섭함이 큼[攝功德大]이니, 경의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다’는 것과 같다.
다섯째는 인연이 큼[因大]이니, 경의 ‘끝없기가 허공과 같다’는 것과 같다.
여섯째는 시기가 큼(時大)이니, 경의 ‘미래가 다하도록’과 같다.
015_0023_a_17L四者攝功德大如經廣大如法界五者因大如經究竟如虛空者時大如經盡未來際
015_0023_b_01L【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일체 부처님의 설하시는 법륜을 모두 남김없이 받아 지니고, 일체 부처님의 보리를 섭수(攝受)하고, 일체 부처님께서 교화하신 법을 모두 남김없이 지키겠습니다’라고 하나니,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일체 부처님의 성도(成道) 수(數)가 다하도록 정법을 보호하여 쉼이 없느니라.”
015_0023_a_19L經曰又發大願所謂一切諸佛所說法輪皆悉受持故攝受一切佛菩提一切諸佛所教化法皆悉守護故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盡一切劫數一切佛成道數攝護正法無有休息
【論】두 번째 큰 서원에 세 가지 법이 있다.
‘일체 모든 부처님의 설하시는 법륜을 모두 남김없이 받아 지닌다’는 것은 교법(敎法)과 수다라 등을 베껴 쓰고 공양하고 독송하고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명해 줌을 뜻한다.
015_0023_b_02L論曰第二大願有三種法一切諸佛所說法輪皆悉受持者謂教法修多羅等書寫供養讀誦受持爲他演說
‘일체 부처님의 보리를 섭수(攝受)한다’는 것은, 이른바 법을 증득하는 것으로 세 가지 부처님의 보리법(菩提法)을 증득하고, 이 증득한 법을 섭수하여 교화를 펴 나가는 것이다. ‘일체 부처님께서 교화하신 법을 모두 남김없이 지킨다’는 것은 법을 수행함에 있어 수행할 때의 온갖 장애에서 보호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015_0023_b_06L攝受一切佛菩提者所謂證法三種佛菩提法攝受此證法教化轉授故一切諸佛所教化法皆悉守護謂修行法於修行時有諸障難攝護救濟故
이를 다시 이름하여 세 가지 성취라 한다.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다라 등 아함(阿含)의 차례에서 법륜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성취이고, 둘째는 세 가지 정각(正覺)을 증득한 증득의 성취이고, 셋째는 수행 및 여실(如實)한 수행을 통하여 정각을 얻는 성취이다.
이를 이름하여 세 가지 성취라 한다. 세 가지 부처님의 보리란 성문과 벽지불을 또한 이름하여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이다.
015_0023_b_10L復名三種成就一者於諸佛所說修多羅等阿含次第令法輪不斷成就故二者證三種正覺得證成就故三者修行乃至如實修行正覺成就故是名三種成就三種佛菩提者聲聞辟支佛亦名爲佛故
【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일체 남김이 없이 성불한 부처님께서 일체 세계에 머무는 곳인, 도솔천으로부터 아래로 내려와 모태에 들어가고 모태에 머물고 처음 태어났을 때, 출가할 때, 불도를 이루었을 때, 법률을 굴리기를 청할 때, 대열반에 듦을 보일 때, 나는 이러한 때에 모두 가서 공양하고 법을 섭수(攝受)하여 상수(上首)가 되어 일체처(一切處)에서 한꺼번에 법을 이루고 일시에 법이 굴려지이다’라고 하나니,
015_0023_b_15L經曰又發大願所謂一切成佛無餘一切世界住處從兜率天來下入胎及在胎中初生時出家時成佛道時請轉法輪時示入大涅槃我於爾時盡往供養攝法爲首一切處一時成一時轉故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일체 부처님의 성도(成道) 수(數)가 다하도록 모두 가서 법을 섭수하여 쉼이 없느니라.”
015_0023_b_21L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盡一切劫數一切佛成道盡往攝法無有休息
015_0023_c_01L【論】세 번째 큰 서원이다.
‘일체 남김이 없이 성불한 부처님께서 일체 세계에 머무는 곳’이란 일체의 응신불(應身佛)이 가없는 일체 세계의 모든 곳에 머물고 있는 것이며, 어떠한 세계의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인가에 따라 감응하여 중생의 견해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015_0023_b_23L論曰第三大願一切成佛無餘一切世界住處者一切應佛無邊遍滿一切世界住處故隨何等世界諸佛住應感相順衆生見故
‘도솔천에서 내려와 대열반에 들 때까지 나는 이러한 때에 모두 가서 공양하고 법을 섭수하여 상수가 된다’는 것은 저 중생에 따라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편으로, 여래께서 설한 섭법(攝法:四攝法)의 방편으로써 공덕과 지혜와 보리를 돕는 법을 모으는 것이다. ‘일체처에 한꺼번에 법을 이루고 일시에 법을 굴린다’는 것은 전후(前後)가 없음을 보이는 것이다.
015_0023_c_04L從兜率天來下乃至示入大涅槃我於爾時盡往供養攝法爲首者隨彼衆生供養佛方便以如來所說攝法方便集功德智慧助菩提法故一切處一時成一時轉者示非前後故
무슨 까닭에 저곳에 머물고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있지 않는가? 이것은 어려운 대목이다. 이 세계로 오는 것은 부처님 자신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경솔한 마음을 내어 공경하지 않음을 차단해야 한다.
015_0023_c_09L何故示現彼處住不在色無色處此難處來不爲我故起於輕心不生恭敬爲遮此等故
무슨 까닭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에 머물지 않는가? 여래는 수승한 곳에 태어날 능력이 충분히 있지만 이러한 곳을 버리고 태어나지 않는 것은 중생을 생각하기 때문에 도솔천에 와서 태어난 것이니, 따라서 이와 같이 큰 공경심을 내는 것이다.
015_0023_c_11L故不住他化自在天等如來有力能勝處生捨而不生爲念衆生故來生兜率如是生大恭敬心故
무슨 까닭에 인간 세상에 있고 천상의 즐거움을 버리는가? 우리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인간세상 가운데로 와서 태어나는 것이니, 따라서 더 한층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015_0023_c_14L何故人中捨上天樂愍我等故來生人中生增上敬重心故
무슨 까닭에 모태에 있는가? 중생과 함께 태어나 힘을 증장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스스로 정각을 이루는가? 다른 부처님의 교화로 대장부의 힘을 나타낸 것이 아니고, 타인을 통해서 보리를 증득함을 성취한 것이 아님을 보이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큰 열반에 들어감을 보이는가? 나태한 중생들로 하여금 근면한 마음으로 수도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015_0023_c_16L何故處胎示現同生增長力故何故自成正覺示非餘佛教現丈夫力成就非因他得菩提故何故示入大涅槃爲令懈怠衆生勤心修道故
015_0024_a_01L【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일체 보살이 행하는 광대하고 한량없고 잡되지 않은 모든 바라밀이 섭수(攝受)하는 것이다. 모든 지(地)에서 청정하게 내는 온갖 조도법(助道法)은 전체인 모양[總相]ㆍ개체인 모양[別相]ㆍ같은 모양[同相]ㆍ다른 모양[異相]ㆍ이루는 모양[成相]ㆍ부수는 모양[壞相]으로 일체 보살이 행하는 여실한 지(地)의 도(道) 및 모든 바라밀의 방편업(方便業)을 설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받아 행하고 마음이 증장(增長)하게 하여지이다’라고 하나니,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행수(行數 : 모든 菩薩行의 수)가 다하도록 증장하여 쉼이 없느니라.”
015_0023_c_20L經曰又發大願所謂一切菩薩所行廣大無量不雜諸波羅蜜所攝諸地所淨生諸助道法摠相別相同相成相壞相說一切菩薩所行如實地道及諸波羅蜜方便業教化一切令其受行心得增長故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盡一切劫數行數增長無有休息
【論】네 번째 큰 서원이다.
‘마음이 증장한다’는 것은 어떠한 행(行)으로써 마음을 증장하게 하는가? 일체 보살이 행하는 것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받아 행하고 마음이 증장(增長)하게 하는 것이다.
015_0024_a_05L論曰第四大願心得增長者以何等行令心增長一切菩薩所行教化切令其受行心得增長故
저 보살행(菩薩行)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종종(種種)이며, 둘째는 체(體)이며, 셋째는 업(業)이며, 넷째는 방편이다. 이 네 가지를 가지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받아 행하게 하는 것이다.
015_0024_a_08L彼菩薩行有四種一種種二體三業四方便此四種教化令其受行
그렇다면 무엇이 보살행의 종종인가? 세간행(世間行)에 세 가지가 있다. 넓은 것으로 말하면 초지(初地)로부터 6지(地)에 이르고, 큰 것으로 말하면 7지(地)이고, 한량이 없는 것으로 말하면 8지(八地)로부터 10지(地)에 이르고, 잡되지 않은 것으로 말하면 법에 나[我]라는 관념이 없이 평등하여 출세간의 지혜를 관찰하니, 경의 ‘일체 보살이 행하는 광대하고 한량없고 잡되지 않다’는 것과 같다.
015_0024_a_10L何者是菩薩種種世閒行有三種廣者從初地乃至六地大者七地無量者從八地乃至十地不雜者法無我平等觀世閒智故如經一切菩薩所行廣大無量不雜
체(體)란 경의 ‘모든 바라밀이 섭수하는 것’과 같다. 업(業)이란 경의 ‘모든 지(地)의 청정하게 내는 온갖 조도법(助道法)’과 같다.
015_0024_a_15L體者如經諸波羅蜜所
방편이란 경의 ‘전체인 모양[總相]ㆍ개체인 모양[別相]ㆍ같은 모양[同相]ㆍ다른 모양[異相]ㆍ이루는 모양[成相]ㆍ부수는 모양[壞相]’과 ‘일체 보살이 행하는 여실한 지(地)의 도(道) 및 모든 바라밀의 방편업(方便業)을 설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24_a_16L業者如經諸地所淨生諸助道方便者如經摠相別相同相成相壞相說一切菩薩所行如實地道及諸波羅蜜方便業
【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모든 일체의 중생계에서 색(色)이 있는 것, 색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없음도 아닌 것, 생각함이 아닌 것, 생각함이 아닌 것도 아닌 것, 그리고 알에서 태어난 것, 태에서 태어난 것, 습기에서 태어난 것, 화(化)하여 태어난 것 등이 3계에 얽매인 채 뒤섞여 6도(道)에 들어가 일체 태어나는 곳의 이름과 물질[名色]에 소속되는데,
015_0024_a_19L經曰又發大願所謂無餘一切衆生有色無色有想無想非無想非想非非想卵生胎生濕生化生三界所繫雜入六道一切生處名色所攝
015_0024_b_01L 이러한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고 성취시켜, 믿음을 일으켜 불법에 들어가게 하고, 일체 세간의 여러 가지 도(道)를 끊고 일체 지혜의 지처(智處)에 머물게 하여지이다’라고 하나니,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일체 중생계의 수(數)가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쉼이 없느니라.”
015_0024_a_23L教化成就一切衆生界令信入諸佛法故斷一切世閒數道故令住一切智智處故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盡一切劫數一切衆生界教化一切衆生無有休息
【論】다섯 번째 큰 서원이다.
중생을 교화시킨다는 데, 무엇이 중생이며 무슨 뜻인가? 일체 중생에 여섯 가지 차별이 있으니, 첫째는 거칠고 세밀함[麤細]의 차별이고, 둘째는 태어날 때 의지[生依止]의 차별이고, 셋째는 깨끗하지 않은 곳과 깨끗한 곳의 차별이고, 넷째는 괴로움과 즐거움의 차별이고, 다섯째는 자업(自業)의 차별이고, 여섯째는 자체(自體)의 차별이다.
015_0024_b_05L論曰第五大願教化衆生故何者是衆生爲何義故化一切衆生有六種差別麤細差別生依止差別不淨淨處差別苦樂差別自業差別自體差別
무엇이 거칠고 세밀함의 차이인가? 거칠다는 것은 ‘색(色)이 있는 것’이고, 세밀하다는 것은 ‘색이 없는 것’이다. 색 가운데 거친 것은 ‘생각이 있는 것’이고, 세밀한 것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색이 없는 것 가운데 거친 것은 ‘생각이 없음도 아닌 것’이고, 세밀한 것은 ‘생각함이 아닌 것’과 ‘생각함이 아닌 것도 아닌 것’이다.
015_0024_b_10L何者麤細差別者有色細者無色色中麤者有想者無想無色中麤者非無想細者非想非非想
이를 거칠고 세밀함의 차별이라 하니, 경의 ‘색이 있는 것, 색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없음도 아닌 것, 생각함이 아닌 것, 생각함이 아닌 것도 아닌 것’과 같다. 태어날 때 의지의 차별이란 경의 ‘알에서 태어난 것, 태에서 태어난 것, 습기에서 태어난 것, 화(化)하여 태어난 것’과 같다. 그런데 화하여 태어나는 것[化生]은 어디에 의지하는가? 업(業)에 의지하여 태어난다.
015_0024_b_13L是名麤細差別如經有色無色有想無想非無想非想非非想生依止差別者如經卵生胎生化生化生者云何依止依止業生故
깨끗하지 않은 곳과 깨끗한 곳의 차별이란 경의 ‘3계에 얽매인다’는 것과 같다.
괴로움과 즐거움의 차별이란 갖가지 몸을 지니는 것이니, 경의 ‘뒤섞여 6도(道)에 들어간다’는 것과 같다.
자업(自業)의 차별이란 경의 ‘일체 태어나는 곳’과 같다.
자체(自體)의 차별이란 경의 ‘이름과 물질[名色]에 소속된다’는 것과 같다.
015_0024_b_17L不淨淨處差別者如經三界所苦樂差別者種種身故如經入六道自業差別者如經一切生自體差別者如經名色所攝
이를 중생이라 하니, 그렇다면 무슨 뜻인가? 교화한다는 것에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믿음을 일으켜 모든 부처님께서 설한 법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니, 경의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고 성취시켜, 믿음을 일으켜 불법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24_b_20L是名衆生爲何義化者爲三義故者爲信入諸佛所說法中如經爲教化成就一切衆生界令信入諸佛法
015_0024_c_01L둘째는 이미 불법 가운데로 들어간 이들로 하여금 2승(乘)의 보리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경의 ‘일체 세간의 여러 가지 도(道)를 끊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24_c_01L二者已入佛法中令入二乘菩提經斷一切世閒數道
셋째는 이미 2승의 보리에 들어간 이들로 하여금 무상(無上)의 보리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경의 ‘일체 지혜의 지처(智處)에 머물게 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24_c_02L三者已入二乘菩提令入無上菩提故如經令住一切智智處
【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모든 일체 세계가 광대하고 한량이 없고 거칠고 세밀하고 어지럽게 있고 거꾸로 있고 바로 있는 것이 마치 제석천의 그물의 차별과 같으며,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차별 입(入)들을 모두 눈앞에 나타나듯이 환히 알아지이다’라고 하나니,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일체 세계의 수(數)가 다하도록 믿고 들어가[信人] 쉼이 없느니라.”
015_0024_c_04L經曰又發大願所謂無餘一切世界廣大無量麤細亂住倒住正住如帝網差別十方世界無量差別入皆現前知故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未來際盡一切劫數一切世界數入無有休息
【論】여섯 째 큰 서원이다.
모든 일체 세계에 세 가지 모습[相]이 있어 들어가는[入] 데에 이러한 세계의 지혜를 모두 눈앞에 나타나듯이 환히 아니, 첫째는 일체상(一切相)이고, 둘째는 진실의상(眞實義相)이고, 셋째는 무량상(無量相)이다.
015_0024_c_10L論曰第六大願無餘一切世界者有三種相隨入如是世界智皆現前知一者一切相二者眞實義相三者無量相
일체상이란 경의 ‘광대하고 한량이 없고 거칠고 세밀하고 어지러이 있고 거꾸로 있고 바로 있다’는 것과 같다. ‘광대하고 한량이 없다’는 것은 일천 세계, 이천 세계, 삼천 세계 따위를 의미한다. 세밀하다는 것은 어느 세계이든 그 세계의 의식신(意識身)을 따르는 것이고, 거칠다는 것은 어느 세계이든 그 세계의 의색신(意色身)을 따르는 것이다.
015_0024_c_14L一切相者如經廣大無量乃至正住廣大無量者一千世界二千世界三千世界故細者隨何等世界意識身故麤者隨何等世界意識色身
‘어지러이 있다’는 것은 차례대로 머물지 않는 것이고, ‘거꾸로 있다’는 것은 집을 지어 머물지 않는 것이고, ‘바로 머문다’는 것은 집을 지어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일체상이라 한다.
015_0024_c_18L亂住者非次第住故倒住者不造舍宅住故正住者造舍宅住故是名一切相
‘제석천의 그물[帝綱]의 차별과 같다’는 것은 진실의상(眞實義相)으로, 업(業)에 의해 환영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무량상이란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차별 입(入)’을 뜻한다.
진실의상은 오직 지혜로운 이만이 알 수 있고 나머지 모습[相]은 현상으로 쉽게 알 수 있다.
015_0024_c_20L如帝網差別者眞實義相故如業幻作故無量相者十方世界無量差別入故無量相故眞實義相者唯智能知餘相者可現見故
015_0025_a_01L【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일체 불국토(佛國土)가 한 불국토이고 한 불국토가 일체 불국토이며, 일체 국토가 평등하고 청정하며, 일체 불국토에 신통 장엄 광명한 모습[神通莊嚴光明相]이 구족하여 일체 번뇌를 여의고 청정한 도를 성취하며, 한량없이 지혜로운 중생들이 그 가운데 충만하며,
015_0024_c_23L經曰又發大願所謂一切佛土一佛一佛土一切佛土一切國土平等淸淨一切佛土神通莊嚴光相具足離一切煩惱成就淸淨道有無量智慧衆生悉滿其中
부처님의 수승하고 미묘하고 평등한 경계에 들어가, 중생들이 마음으로 바라는 것에 따라 모습을 나타내어지이다’라고 하나니,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불국토의 수(數)가 다하도록 일체의 국토를 청정히 하여 쉼이 없느니라.”
015_0025_a_05L入佛上妙平等境界故隨諸衆生心之所樂而爲示現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盡一切劫數佛國土數淸淨一切佛土無有休息
【論】일곱 번째 큰 서원이다.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모습[相]에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동체 청정[同體淨]이니, 경의 ‘일체 불국토가 한 불국토이고 한 불국토가 일체 불국토’라는 것과 같다.
둘째는 자재 청정[自在淨]이니, 경의 ‘일체 국토가 평등하고 청정하다’는 것과 같다.
셋째는 장엄 청정[莊嚴淨]이니, 경의 ‘일체 불국토에 신통 장엄 광명한 모습이 구족하였다’는 것과 같다. 광명 장엄은 온갖 보배들로 장엄하는 것이다.
015_0025_a_09L論曰第七大願淨佛國土相有七種一者同體淨如經一切佛土一佛土一佛土一切佛土二者自在淨一切國土平等淸淨三者莊嚴如經一切佛土神通莊嚴光相具光明莊嚴衆寶等莊嚴故
넷째는 수용 청정[受用淨]이니, 경의 ‘일체 번뇌를 여의고 청정한 도를 성취한다’는 것과 같다.
다섯째는 머무는 곳의 중생 청정[住處衆生淨]이니, 경의 ‘한량없이 지혜로운 중생들이 그 가운데 충만하다’는 것과 같다.
여섯째는 인연 청정[因淨]이니, 경의 ‘부처님의 수승하고 미묘하고 평등한 경계에 들어간다’는 것과 같다.
일곱째는 과보 청정[果淨]이니, 경의 ‘중생들이 마음으로 바라는 것에 따라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과 같다. 이는 지혜와 신통력 등을 나타내는 것이다.
015_0025_a_15L四者受用淨如經離一切煩惱成就淸淨五者住處衆生淨如經有無量智慧衆生悉滿其中六者因淨入佛上妙平等境界七者果淨如經隨諸衆生心之所樂而爲示現顯智神力等故
015_0025_b_01L【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일체 보살과 마음과 행실이 같으며, 함께 선근(善根)을 모아 원망하고 미워함이 없으며, 일체 보살과 평등하게 한 가지로 관찰하며, 항상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친근히 하여 곁을 여의지 않으며, 뜻대로 부처님의 몸을 나투며, 스스로 마음속에 모든 부처님의 신통력과 지혜의 힘을 남김없이 잘 알며, 물러나지 않고 뜻대로 할 수 있는 신통을 얻으며,
015_0025_a_21L經曰又發大願所謂一切菩薩同心同行故共集善根無怨嫉故一切菩薩平等一觀故常親近諸佛菩薩不捨離故隨意能現佛身故自於心中悉能解知諸佛神力智力故得不退隨意神通故
일체 세계를 남김없이 다닐 수 있으며, 일체 부처님 회상에 모두 몸[身相]을 나툴 수 있으며, 일체 중생이 태어나는 곳에 두루 태어나며, 불가사의한 대승(大乘)을 성취하며, 보살행을 구족하게 행하여지이다’라고 하나니,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일체 행 수(行數)가 다하도록 대승의 도에 들어가 쉼이 없느니라.”
015_0025_b_04L悉能遊行一切世界故一切佛會皆現身相故一切生處普生其中故成就不可思議大乘故足行菩薩行故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盡一切劫數一切行入大乘道無有休息
【論】여덟 번째 큰 서원으로, 다른 승(乘:敎法)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경의 ‘일체 보살과 마음과 행실이 같다’는 것과 같다.
015_0025_b_09L論曰第八大願不念餘乘故如經切菩薩同心同行菩薩行有十種
보살행에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함께 선근(善根)을 모아 원망하고 미워함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일체 보살과 평등하게 한 가지로 관찰하는 것이다.
셋째는 항상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친근하여 곁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뜻대로 부처님의 몸을 나투는 것이다.
다섯째는 스스로 마음속에 모든 부처님의 신통력과 지혜의 힘을 남김없이 잘 아는 것이다.
015_0025_b_11L一者共集善根無怨嫉故二者一切菩薩平等一觀故三者常親近諸佛菩薩不捨離故四者隨意能現佛身五者自於心中悉能解知諸佛神力智力故
여섯째는 물러나지 않고 뜻대로 할 수 있는 신통을 얻는 것이다.
일곱째는 일체 세계를 남김없이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여덟째는 일체 부처님 회상에 모두 몸[身相]을 나툴 수 있는 것이다.
아홉째는 일체 중생이 태어나는 곳에 두루 태어나는 것이다.
열째는 불가사의한 대승(大乘)을 성취하며, 보살행을 구족하게 행하는 것이다.
015_0025_b_16L六者得不退隨意神通故七者悉能遊行一切世界故八者一切佛會皆現身相故九者一切生處普生其中故十者成就不可思議大乘故具足行菩薩行故
여기서 첫째는 공덕행(功德行)을 나타내었고, 둘째는 적정(寂靜)의 평등한 관찰[觀]에 머무는 것이고, 셋째는 모여서 불법을 해설하고 논하는 것이고, 넷째는 마음대로 성불(成佛)을 나투는 것이고, 다섯째는 스스로 수승한 마음을 내어 여래의 법신(法身)을 생각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항상 물러나지 않는 신통을 얻는 것이다.
015_0025_b_20L於中初句顯功德行故第二住寂靜等觀故第三聚集解說論佛法故第四隨心示現成佛故第五自發勝心念如來法身第六得常不退神通故
015_0025_c_01L 그리고 나머지 네 가지는 신통의 업(業)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첫째는 여타의 다른 세계에 가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여러 가지 다른 몸을 나투는 것이고, 셋째는 중생들과 함께 태어나는 것이고, 넷째는 불가사의한 대승에 들어가는 것이다.
015_0025_c_01L餘四者以通業得名往餘世界自餘異身示現同生往故入不可思議大乘故
【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불퇴전의 법륜(法輪)을 타고 보살행을 행하며,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이 헛되지 않으며, 나를 보는 중생은 반드시 불법에 결정한 마음을 내며, 나의 음성을 들으면 즉시 진실한 지혜를 얻으며,
015_0025_c_04L經曰又發大願所謂乘不退輪行菩薩行故身口意業所作不空衆生見者卽必定佛法故聞我音聲卽得眞實智慧故
마음으로 기뻐하고 공경하여 즉시 번뇌를 끊으며, 약왕 나무[樂樹王]와 같은 몸을 얻으며, 여의주와 같은 보배 몸을 얻으며, 대보살행을 행하여지이다’라고 하나니,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일체 행 수(行數)가 다하도록 헛되지 않게 이익을 지음에 쉼이 없느니라.”
015_0025_c_08L心喜恭敬卽斷煩惱故如藥樹王身故得如如意寶身故大菩薩行故廣大如法界究竟如虛盡未來際盡一切劫數一切行數所作利益不空無有休息
【論】아홉 번째 큰 서원으로, 헛되지 않게 보살행을 행함을 나타내었다.
다시 보살행을 행하는 것은 ‘불퇴전의 법륜(法輪)을 타고 보살행을 행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015_0025_c_12L論曰第九大願顯不空行菩薩行行菩薩行顯乘不退輪行菩薩行故
여기서 ‘헛되지 않음[不空]’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짓는 업이 결정되어 헛되지 않은 것으로,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차례로 설한 세 구(句)의 뜻을 알아야 하니, ‘나를 보는 중생은 반드시 불법에 결정한 마음을 낸다’는 것은 신업(身業)이 헛되지 않음을 밝혔고, ‘나의 음성을 들으면 즉시 진실한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구업(口業)이 헛되지 않음을 밝혔으며, ‘마음으로 기뻐하고 공경하여 즉시 번뇌를 끊는다’는 것은 의업(意業)이 헛되지 않음을 밝혔다.
015_0025_c_14L於中不空有二種作業必定不空身口意業所作不空故如是次第三句說應知衆生見者卽必定佛法故明身業不空聞我音聲卽得眞實智慧者明口業不空心喜恭敬卽斷煩惱者明意業不空
둘째는 짓는 이익이 헛되지 않음을 나타내었다. 중생에게는 크게 두 가지 괴로움이 있으니, 첫째는 갖가지 온갖 괴로움이고, 둘째는 빈궁한 괴로움이다. 이를 치료하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으니, 경의 ‘약왕 나무[藥樹王]와 같은 몸을 얻으며, 여의주와 같은 보배 몸을 얻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015_0025_c_20L作利益不空一切衆生有二種苦種種諸苦貧窮苦對治是二如經得如藥樹王得如如意寶身故
015_0026_a_01L【經】“또 큰 서원을 세우니, 이른바 ‘일체 세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며, 한 범부의 도(道)도 여의지 않은 채 일체 범부의 도에서 몸이 처음으로 태어나 도량에 앉고 불도를 이루고 법륜을 굴리고 중생을 제도함을 보이고, 큰 열반에 듦을 보이고, 모든 부처님 경계의 큰 신통과 지혜의 힘을 나투고,
015_0025_c_23L經曰又發大願所謂於一切世界處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於一凡夫道不離一切凡夫道處示身初生坐道場成佛道轉法輪度衆生示大涅槃現諸佛境界大神通智力
일체 중생계의 제도해야 할 것에 따라 생각마다 불도를 얻고 중생들을 제도하고 고뇌를 없애는 것을 보이며, 하나의 3보리(菩提)로 일체법이 열반성(涅槃性)과 같음을 두루 알게 하며,
015_0026_a_05L隨一切衆生界所應度者於念念中示得佛道度諸衆生滅苦惱故以一三菩提遍知一切法如涅槃性故
한 가지 음성으로 일체 중생의 마음을 모두 환희하게 하며, 큰 열반을 보이되 보살이 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며, 큰 지혜의 지(地)가 일체법을 일으킴을 보이며, 법지통(法智通)ㆍ여의신통(如意神通)ㆍ환통(幻通)으로 일체 세계에 충만하여지이다’라고 하나니,
015_0026_a_08L以一音說令一切衆生心皆歡喜故示大涅槃而不斷菩薩所行故示大智慧地發起一切法故法智通如意神通通遍一切世界故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기가 허공과 같아, 미래가 다하고 일체 겁수(劫數)와 3보리를 이루는 수(數)가 다하도록 큰 지혜와 큰 신통 등을 구하여 쉼이 없느니라.
015_0026_a_12L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盡未來際盡一切劫數成三菩提數求大智慧大神通等無有休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와 같이 보살의 환희지(歡喜地)에 머물면서 여러 큰 서원을 세워 이와 같은 큰 방편과 이와 같은 큰 행(行)을 일으키되, 열 가지 서원의 문[願門]을 첫머리로 하여 이러한 십백천만 아승기의 큰 서원을 만족하느니라. 이 보살이 보살의 환희지에 머물러 이와 같은 서원을 일으키느니라.”
015_0026_a_15L諸佛子菩薩如是安住菩薩歡喜發諸大願起如是大方便如是大以十願門爲首生如是等滿足十百千萬阿僧祇大願是菩薩住菩薩歡喜地起如是等願
【論】열 번째 큰 서원으로, 대승행(大乘行)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엇이 큰 보리이며, 무엇이 업(業)을 짓는 것인가?
큰 보리란 경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와 같은 것이다.
015_0026_a_19L論曰第十大願起大乘行云何大菩云何作業大菩提者如經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5_0026_b_01L업을 짓는다는 것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각(正覺)을 보이는 업業)이고, 둘째는 실제(寶諦)를 설하는 업이고, 셋째는 교화를 증득하는 업이고, 넷째는 갖가지 설법의 업이고, 다섯째는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는 업이고, 여섯째는 법륜을 다시 머물게 하는 업이고, 일곱째는 자재(自在)의 업이다.
015_0026_a_22L作業者有七種示正覺業說實諦業證教化種種說法業不斷佛種業法輪復住業自在業
여기서 첫째 업은 한 범부의 도도 일체 범부의 도처(道處)를 여의지 않고 나아가 큰 열반에 듦을 보이는 것이다. 한 범부의 도란 한 염부제(閻浮提)란 뜻이다. 염부제와 범부의 도란 교화할 만한 중생이 머무는 곳이니, 이름하여 범부도(凡夫道)라 하는 것이다.
015_0026_b_02L初業者於一凡夫道不離一切凡夫道處乃至示大涅槃故一凡夫道者一閻浮提義閻浮提凡夫道者可化衆生住處名爲凡夫道
둘째 업은 모든 부처님 경계의 큰 신통과 지혜의 힘을 나투고, 일체 중생계의 제도해야 할 것에 따라 생각마다 불도를 얻고 중생들을 제도하고 고뇌를 없애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모든 세계의 일체 교화할 만한 이들에 따라 마음대로 부처님의 몸을 나투는 것이다.
015_0026_b_06L第二業者現諸佛境界大神通智力故隨一切衆生界所應度於念念中示得佛道度諸衆生滅苦惱故隨諸世界一切可化者隨心示現佛身
부처님의 몸을 나툰다는 것은 모든 고난을 제거하고 저 수승한 곳에 태어나, 고(苦)를 없애고 집(集)을 끊고 멸(滅)을 증득하고 도(道)를 닦음을 보이는 것이다.
015_0026_b_10L示現佛身者除諸難處彼彼勝處生示除苦斷集證滅修道
셋째 업은 하나의 3보리(菩提)로 법에 나[我]라는 것이 없고 일체의 법성(法性)이 청정한 열반임을 관찰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믿고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015_0026_b_11L第三業者以一三菩提觀法無我一切法性淨涅槃令衆生信解故
넷째 업은 한 가지 음성을 가지고 온갖 믿고 이해하여 교화할 만한 중생들에 따라, 일시에 이들로 하여금 모두 마음으로 환희하게 하는 것이다.
015_0026_b_13L第四業者以一音聲隨種種信解可化衆生時皆令心歡喜故
다섯째 업은 큰 열반을 보이되 보살이 해야 할 것을 끊지 않는 것이다.
015_0026_b_15L第五業者示現大涅槃而不斷菩薩所行力故
여섯째 업은 부처님 지혜의 지[佛智地]에 일체 수다라(修多羅) 등을 회복하여 설법이 법도를 잃음이 없는 것이다.
015_0026_b_16L第六業復佛智地一切修多羅等所說法軌則不失故
일곱째 업에 있어 법지통(法智通)이란 일체 법에 성상(性相)이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고, 여의신통(如意神通)이란 자신이 현생(現生)에 살고 죽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을 마음대로 자재(自在)하는 것이고, 환통(幻通)이란 자기 뜻대로 모든 세상일을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법지통은 세간에 머물지 않고 여의신통과 환통은 열반에 머물지 않는다.
015_0026_b_18L第七業法智通者觀一切法無性相故如意神通者自身現生住滅脩短隨心自在故幻通者變外事無不隨意故初法智通不住世閒故如意神通幻通不住涅槃故
015_0026_c_01L무슨 까닭에 오직 이 열 가지 큰 서원만 설하였는가?
첫째 서원은 공덕행(功德行)이 만족한 것이고, 둘째 서원은 지혜의 행(行)이 만족한 것이다. 그 다음 다섯 서원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니, 첫째로 어떠한 몸으로 교화할 것인가, 둘째로 어떠한 마음으로 교화할 것인가, 셋째로 중생이란 어떠한 존재인가, 넷째로 중생은 어떠한 곳에 머무는가, 다섯째로 자신은 어떠한 곳에 머물러 능히 중생을 교화할 것인가 등의 문제이다.
015_0026_b_22L何故唯說此十大願初願功德行滿足故第二願智慧行滿足故次五願爲教化衆生故一以何身二以何心三何者衆生四衆生住何處五自身住何處能教化衆生
뒤의 세 서원은 자기의 몸을 나투는 것이니, 첫 번째 수승한 지(地)를 얻음이며, 두 번째 보살지(菩薩地)의 모든 수승함을 얻음이며, 세 번째 일체 지(地)의 구경(究竟)을 얻음이다. 이 세 가지는 중생을 여실하게 교화함을 나타내어 보인다.
015_0026_c_04L後三願顯自身一得地挍量勝故二得菩薩地盡挍量勝故三得一切地盡究竟故此三示現如實教化衆生故
‘모든 큰 서원을 세운다’는 것은 마음에 따라 뜻을 구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큰 방편을 일으킨다’는 것은 저들이 짓는 방편의 용맹함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큰 행(行)’이란 저들이 짓는 행의 성취이다.
015_0026_c_07L發諸大願者隨心求義故起如是大方便者成彼所作方便勇猛故如是大行者彼所作行成就故
보살이 이 지에 머물러 점차 오래도록 훈습하여 이 세 가지 행을 일으키는데 이는 일시(一時)에 있는 일이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열 가지 큰 서원은 하나하나의 서원 가운데 백천만 아승기 수의 큰 서원을 권속으로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니,
015_0026_c_10L菩薩住此地漸次久習起此三行非一時故何以故此十大一一願中有百千萬阿僧祇大願以爲眷屬故
경의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와 같이 보살의 환희지(歡喜地)에 머물면서 여러 큰 서원을 세워 이와 같은 큰 방편과 이와 같은 큰 행을 일으키되, 열 가지 서원의 문[願門]을 첫머리로 하여 이러한 십백천만 아승기의 큰 서원을 만족하느니라.
015_0026_c_13L如經諸佛子菩薩如是安住菩薩歡喜地發諸大願起如是大方便如是大行以十願門爲首如是等滿足十百千萬阿僧祇大願
이 보살이 보살의 환희지에 머물러 이와 같은 서원을 일으키느니라’라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에 큰 서원이라 이름하는가? 광명의 선근이 수승한 증광(增廣)으로 구르기 때문이다.
015_0026_c_16L是菩薩住菩薩歡喜地起如是等願何故名大願光明善根轉勝增廣
이 보살의 서원이 수승함에 두 가지가 있어 성문과 벽지불보다 수승하니, 첫째는 한량없는 행을 항상 부지런히 닦음이며, 둘째는 일체 중생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중생과 함께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10진구(盡句)로 나타내어 보이겠다.
015_0026_c_19L此挍量菩薩願勝有二種勝聲聞辟支佛常勤修習無量行故一切衆生同行故同行者十盡句示現
015_0027_a_01L【經】“10진구로 모든 큰 서원을 이루나니, 무엇이 10인가? 이른바 첫째, 중생계가 다하는 것[衆生界盡], 둘째, 세계가 다하는 것[世界盡], 셋째, 허공계가 다하는 것[虛空界盡], 넷째, 법계가 다하는 것[法界盡], 다섯째, 열반계가 다하는 것[涅槃界盡], 여섯째,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는 세계가 다하는 것[佛出世界盡], 일곱째, 여래의 지혜의 세계가 다하는 것[如來智界盡], 여덟째, 마음이 반연하는 세계가 다하는 것[心所緣界盡], 아홉째, 부처님 경계의 지혜가 들어가는 세계가 다하는 것[佛境界智入界盡], 열째, 세간의 전변ㆍ법의 전변[轉:끊임없이 변하여 간다는 뜻임]ㆍ지혜의 전변하는 세계가 다하는 것이다.
015_0026_c_21L經曰以十盡句成諸大願何等爲十所謂一衆生界盡世界盡虛空界盡法界盡涅槃界盡
중생계가 다한다면 나의 서원도 다하며, 세계가 다하고, 허공계가 다하고, 법계가 다하고, 열반계가 다하고, 부처님께서 출현하는 세계가 다하고, 부처님 지혜의 세계가 다하고, 마음이 반연하는 세계가 다하고, 부처님 경계의 지혜가 들어가는 세계가 다하고, 세간의 전변ㆍ법의 전변ㆍ지혜의 전변하는 세계가 다한다.
015_0027_a_01L佛出世界盡如來智界盡心所緣界佛境界智入界盡世閒轉法轉智轉界盡
만약 저러한 세계[界]가 다하면 나의 서원도 끝나려니와 이와 같이 중생계가 다하지 않으므로 나의 이 선근(善根)도 다할 수 없고, 세계가 다하지 않고, 허공계가 다하지 않고, 법계가 다하지 않고, 열반계가 다하지 않고,
015_0027_a_04L如衆生界盡我願乃盡如世界盡如虛空界盡如法界盡涅槃界盡如佛出世界盡如佛智界如心所緣界盡如佛境界智入界如世閒轉法轉智轉界盡
부처님이 출현하는 세계가 다하지 않고, 여래의 지혜의 세계가 다하지 않고, 마음이 반연하는 세계가 다하지 않고, 부처님 경계의 지혜가 들어가는 세계가 다하지 않고, 세간의 전변ㆍ법의 전변ㆍ지혜의 전변하는 세계가 다하지 않으므로, 나의 모든 서원의 선근 또한 다할 수 없다.”
015_0027_a_08L若彼界我願乃盡如是衆生界盡不盡此善根亦不可盡世界盡不盡虛空界盡不盡法界盡不盡涅槃界盡不
【論】여기서 중생계가 다한다는 것이 총상(總相)이고, 세계가 다한다는 것에서부터 지혜의 전변하는 세계가 다한다는 것까지는 별상(別相)이다.
015_0027_a_12L佛出世界盡不盡如來智界盡不心所緣界盡不盡佛境界智入界盡不盡世閒轉法轉智轉界盡不盡我此諸願善根亦不可盡
무엇이 중생계인가? ‘중생계가 다한다’고 하였다. 어느 곳에 머무는가? ‘세계가 다한다’고 하였다. 모든 허공계에 대해서는 ‘허공계가 다한다’고 하였다. 무슨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가? ‘법계가 다한다’고 하였다. 교화하는 중생들을 어느 곳에 두는가? ‘열반계가 다한다’와 ‘부처님께서 출현하는 세계가 다한다’고 하였다.
015_0027_a_15L論曰於中衆生界盡是摠世界盡乃至智轉界盡是別
어떠한 방편을 쓰는가? ‘여래의 지혜의 세계가 다한다’고 하였다. 어떠한 반연(攀緣)에 따르는가? ‘마음이 반연하는 세계가 다한다’고 하였다. 또 어떠한 세계를 따르는가? ‘부처님 경계의 지혜가 들어가는 세계가 다한다’고 하였다.
이상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 설하였다.
015_0027_a_17L何等是衆生界生界盡故何處住世界盡故所有虛空界虛空界盡故說何法教化法界盡故隨化衆生置何處涅槃界盡故佛出世界盡故
015_0027_b_01L‘다한다[盡]’는 것은 다하지 않음[不盡]을 나타내 보이니, 생각마다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홉 가지 다함은 세 가지를 대략 설하였다.
세간의 전변[轉]ㆍ법의 전변ㆍ지혜의 전변, 이 세 전변은 이 10진구(盡句)의 수승한 힘을 나타낸다. 부처님께서는 이 힘으로 항상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 이상으로 서원의 수승함을 설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행(行)의 수승함인가?
015_0027_a_21L以何方便善巧如來智界盡故復隨所緣心緣界盡故隨以何界佛境界智入界盡故此事已說盡者
【經】“불자들이여, 보살이 반드시 이러한 큰 서원을 내고는 순응하는 마음과유연한 마음을 얻게 된다. 이렇게 하여 믿음을 성취한 이는 모든 부처님 여래 본래의 행입(行入)과 모든 바라밀을 모아 증장시킴과,
015_0027_b_01L示現不斷盡非念念盡故此九種盡略說三種三轉示現此十盡句增上力故諸佛以此力常爲衆生作利益故如是已說願挍量勝何行挍量勝
모든 지(地)를 잘 성취하여 두려움 없는 힘과 부처만이 가지는 다른 이들과 다른 공덕[不共法]과 무너지지 않음[不壞]을 구족함과, 불가사의한 불법과 중간도 없고 변제(邊際)도 없는 여래의 경계의 일어남과 한량없는 행문(行門)인 여래의 경계에 들어감과 과보[果]를 성취함을 믿는다.
015_0027_b_05L經曰諸佛子菩薩決定發如是諸大願已則得調順心柔軟心如是則成信者信諸佛如來本所行入集諸波羅蜜而得增長
요점을 들어서 말한다면 일체 보살의 행(行) 및 여래 지혜의 지(地)의 설가(說加:말하는 힘)를 믿는 것이다.”
015_0027_b_09L善成就諸地具足無不共佛法不壞故不可思議佛無中無邊如來境界起無量行門諸如來境界入信成就果
【論】‘이러한 큰 서원을 내고는 순응하는 마음을 얻게 된다’는 것은 저 모든 선근(善根) 가운데 자재(自在)한 수승함을 얻는 것이다. ‘유연한 마음’이란 수승한 즐거운 행[樂行]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믿음을 성취한 이’와 이 가운데 ‘본래의 행입(行入)’1)이란 보살행으로부터 보리의 깨달음을 성취하기에 이른 것이다.
015_0027_b_12L擧要言之信一切菩薩行乃至得如來智地說加故
이 가운데 보살행에 소속된 본래의 행입에 두 가지 모습[相]이 있다. 첫째는 무엇이 보살행인가 하는 문제이고, 둘째는 무엇이 차례로 성취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니, 경의 ‘모든 바라밀을 모아 증장시키며, 모든 지(地)를 잘 성취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27_b_14L論曰發如是諸大願已則得調順心彼諸善根中得自在勝故柔軟心得勝樂行故如是則成信者於中本行入者從菩薩行入乃至成菩提覺故
015_0027_c_01L여기서 보리의 성취에 소속된 본래의 행입에 여섯 가지 수승함이 있으니, 이런 까닭에 믿음이 수승하다.
첫째는 외도(外道)와 마(魔)의 원망과 성문ㆍ연각 등을 대치(對治)하는 수승함이니, 경의 ‘두려움 없는 힘과 부처만이 가지는 다른 이들과 다른 공덕[不共法]과 무너지지 않음[不壞]을 구족함’과 같다.
둘째는 불가사의한 신통력의 수승함이니, 경의 ‘불가사의한 불법’과 같다.
셋째는 잡된 오염이 없는 수승함이니, 경의 ‘중간도 없고 변제(邊際)도 없는 여래의 경계가 일어남’이란 것과 같다.
015_0027_b_19L於中信菩薩行所攝本行入二種相云何菩薩行云何次第如經集諸波羅蜜而得增長成就諸地故
넷째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수승함이니, 경의 ‘한량없는 행문(行門)인 여래의 경계에 들어감’과 같다.
다섯째는 여읨[離]의 수승함이니, 일체 번뇌의 습기를 항상 멀리 떠나는 것으로, 경의 ‘과보[果]를 성취함을 믿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27_b_22L此菩提所攝本行入有六種勝是故信勝一者外道魔怨聞緣覺對治等勝如經具足無畏不共佛法不壞二者不思議神通力上勝如經不可思議佛法三者不雜染勝如經無中無邊如來境界
다시 대략 저 보살의 본래의 행입이 시현(示現)함을 말해 본다면, 경의 ‘요점을 들어서 말한다면 일체 보살의 행(行) 및 여래의 지혜의 지(地)의 설가(說加:말하는 힘)를 믿는다’는 것과 같다. ‘설’이란 설하는 것이고, ‘가’란 증득하는 것이다.
015_0027_c_05L四者一切種智勝如經無量行門諸如來境界入五者離勝切煩惱習常遠離故如經信成就果
이 보살은 세 가지로 모든 중생들을 관찰하여 큰 자비를 일으키니, 첫째는 최상승 제일의의 즐거움[最上乘第一義樂]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괴로움을 구족하는 것이고, 셋째는 저 두 가지에 전도(顚倒)되는 것이다.
무엇이 최상승 제일의의 즐거움을 여의는 것인가?
015_0027_c_08L復略說彼菩薩本行入示現如經擧要言之信一切菩薩行乃至得如來智地說加說者所說加者得證故
【經】“불자들이여, 저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이와 같이 매우 깊고, 이와 같이 적정(寂靜)하고, 이와 같이 적멸하고, 이와 같이 공(空)하고, 이와 같이 모습이 없고, 이와 같이 서원이 없고, 이와 같이 오염이 없고,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이와 같이 수승하니, 이 모든 불법이 이와 같이 얻기 어렵다.’
015_0027_c_10L此菩薩三種觀於諸衆生起大慈悲遠離最上第一義樂具足諸苦於彼二顚倒云何遠離最上第一義樂
【論】‘모든 부처님의 정법이 이와 같이 매우 깊다’는 것에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적정이 매우 깊음이고, 둘째는 적멸이 매우 깊음이고, 셋째는 공이 매우 깊음이고, 넷째는 모습 없음[無相]이 매우 깊음이고, 다섯째는 서원 없음이 매우 깊음이고, 여섯째는 오염 없음이 매우 깊음이고, 일곱째는 한량없음이 매우 깊음이고, 여덟째는 수승함이 매우 깊음이고, 아홉째는 얻기 어려움이 매우 깊음이다.
015_0027_c_14L經曰諸佛子彼菩薩作是念諸佛正法如是甚深如是寂靜如是寂滅是空如是無相如是無願如是無染如是無量如是上此諸佛法如是難得
015_0028_a_01L‘적정’이란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망령되이 생각함을 여의고 사물을 취한다고 망령되이 생각함을 여의는 것이다. ‘적멸(寂滅)’이란 법의 뜻이 고요히 안정된 것이다. ‘공하고 모습이 없고 서원이 없다’는 것은 세 가지 장애를 대치(對治)하는 해탈 법문의 관찰[觀]이다.
015_0027_c_19L論曰諸佛正法如是甚深者有九種寂靜甚深寂滅甚深空甚深無相甚深無願甚深無染甚無量甚深上甚深難得甚
무엇이 세 가지 장애인가? 첫째는 분별이고, 둘째는 모습[相]이고, 셋째는 취함[取]이다.
‘서원이 없다’는 것은 서원을 버린 것이다. ‘물듦이 없다’는 것은 잡된 오염을 여읜 법의 관찰[法觀]이다. ‘한량이 없다’는 것은 숫자로도, 생각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선근을 일으키는 관찰[生善根觀]이다.
015_0028_a_01L寂靜者離妄計實有故妄計正取寂滅者法義定故空無相無願者三障對治解脫門觀故
‘수승하다’는 것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수승한 지혜의 관찰[智觀]이다. ‘얻기 어렵다’는 것은 3아승기겁(阿僧祇劫) 동안 증득한 지혜로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모든 괴로움을 구족하는 것인가?
015_0028_a_03L何者三障分別二相三取捨願故無染者離雜染法觀故無量者不可算數不可思量生善根觀故
【經】‘그러나 모든 범부들은 마음이 사견(邪見)에 떨어져 무명(無明)의 어리석음이 그 의식(意識)을 가린 탓에, 항상 교만을 앞세우고 욕념과 애욕[渴愛]의 그물 속에 떨어지며, 아첨의 숲 속을 다니고 항상 질투를 품어 후생(後生)에 태어날 몸의 인연을 지으며,
015_0028_a_06L上者依自利利他增上智觀故難得者三阿僧祇劫證智觀云何具足諸苦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많이 모으고 모든 업행(業行)을 일으켜 혐오와 원망의 맹렬한 바람이 죄로 인한 마음의 불을 불어 불길이 항상 거세게 타오르도록 하여, 모든 지은 업은 항상 전도되고 욕심의 번뇌[欲漏]와 세간사(世間事)에 대한 번뇌[有漏]와 무명의 번뇌[無明漏]에 따라 계속해서 심의식(心意識)의 종자를 일으킨다.’
015_0028_a_08L經曰而諸凡夫心墮邪見爲無明癡闇蔽其意識常立憍慢幢墮在念欲渴愛網中隨順諂曲林常懷嫉妒而作後身生處因緣
【論】‘그러나 모든 범부들은 마음이 사견(邪見)에 떨어진다’는 것에 있어, 사견에 아홉 종류가 있다.
첫째는 뜻을 가리는 사견이니, 경의 ‘무명(無明)의 어리석음이 그 의식(意識)을 가린다’는 것과 같다.
둘째는 교만의 사견이니, 경의 ‘항상 교만을 앞세운다’는 것과 같다.
셋째는 애념(愛念)의 사견이니, 경의 ‘욕념과 애욕의 그물 속에 떨어진다’는 것과 같다.
015_0028_a_12L多集貪欲諸業行嫌恨猛風吹罪心火常令熾有所作業皆與顚倒相應隨順欲有漏無明漏相續起心意識種子
넷째는 아첨의 사견이니, 경의 ‘아첨의 숲 속을 다닌다’는 것과 같다.
다섯째는 질투행(嫉妬行)의 사견이니, 경의 ‘항상 질투를 품어 후생(後生)에 태어날 몸의 인연을 짓는다’는 것과 같다.
여섯째는 업을 모으는 사견이니, 경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많이 모으고 모든 업행(業行)을 일으킨다’는 것과 같다.
015_0028_a_15L論曰而諸凡夫心墮邪見者邪見有九種一者蔽意邪見如經爲無明癡闇蔽其意識二者憍慢邪見如經常立憍慢幢三者愛念邪見如經墮在念欲渴愛網中
015_0028_b_01L일곱째는 마음의 불길을 불어 일으키는 사견이니, 경의 ‘혐오와 원망의 맹렬한 바람이 죄로 인한 마음의 불을 불어 불길이 항상 거세게 타오르도록 한다’는 것과 같다.
여덟째는 업을 일으키는 사견이니, 경의 ‘모든 지은 업은 항상 전도된다’는 것과 같다.
015_0028_a_20L四者諂曲心邪見如經隨順諂曲林五者嫉妒行邪見如經常懷嫉妒而作後身生處因緣六者集業邪見如經多集貪欲瞋癡起諸業行
아홉째는 심의식(心意識)의 종자의 사견이니, 경의 ‘욕심의 번뇌[欲漏]와 세간사(世間事)에 대한 번뇌[有漏]와 무명의 번뇌[無明漏]에 따라 계속해서 심의식(心意識)의 종자를 일으킨다’는 것과 같다.
여기서 뜻을 가리는 사견ㆍ교만의 사견ㆍ애념(愛念)의 사견, 이 세 사견은 법의 뜻[法義]에 의지하여 망령된 생각을 이와 같이 차례대로 일으키는 것이다.
015_0028_b_01L七者吹心熾燃邪見如經嫌恨猛風吹罪心火常令熾燃八者起業邪見如經有所作業皆與顚倒相應
아첨의 사견과 질투행(嫉妬行)의 사견, 이 두 사견은 목적을 추구(追求)할 때 마음이 짓는 허물이다. ‘질(嫉)’이란 몸에 삿된 행(行)을 일으키는 것이고, ‘투(妬)’란 재물 따위에 삿된 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세세생생(世世生生) 태어나는 곳마다 비천한 데에 떨어져 모습이 비루하고 생계가 늘 궁핍하다.
015_0028_b_04L九者心意識種子邪見如經隨順欲漏有漏無明漏相續起心意識種子是中蔽意邪見憍慢邪見愛念邪見此三邪見依法義妄計如是次第諂曲心邪見嫉妒行邪見此二邪見於追求時心行過故嫉者於身起邪行故妒者於資財等是故生生之處墮卑賤中貌鄙陋資生不足故
여섯째 업을 모으는 사견은 모든 감관이 작용할 때 저 두 가지 전도된 경계에 대해 애증(愛憎)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곱째 마음의 불길을 불어 일으키는 사견은 원한이 일어날 때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상대방의 악업(惡業)에 보복하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015_0028_b_12L第六集業邪見受諸受時憎愛彼二顚倒境界故七吹心熾燃邪見於怨恨時互相追念欲起報惡業故
여덟째 업을 일으키는 사견은 악업을 지을 때 자기도 상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다.
아홉째 심의식(心意識)의 종자의 사견은 선업(善業)을 지을 때에도 모든 보시ㆍ지계(持戒)ㆍ수행 선근(善根)의 업이 모두 유루(有漏)인 것이다.
015_0028_b_15L第八起業邪見作惡時迭相加害故第九心意識種子邪見於作善業時所有布施持戒修行善根等業皆是有漏故
【經】‘3계지(界地)에서 다시 싹을 틔우나니, 이른바 이름과 물질[名色]이 함께 생겨나는 것으로 이를 여의지 않는다. 이름과 물질을 증장(增長)하여 이미 6입(入)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6입이 이루어지고서 안과 밖이 상대하여 접촉[觸]이 생기고,
015_0028_b_18L經曰於三界地復有芽生所謂名色共生不離此名色增長已成六入聚成六入已內外相對生觸
접촉의 인연(因緣)으로 감각[受]이 생기고, 감각을 깊이 좋아하는 까닭에 애욕이 생기고, 애욕이 증장하는 까닭에 취함[取]이 생기고, 취함이 증장하는 까닭에 다시 후유(後有:후생의 과보인 몸과 마음)를 일으키고, 유(有:몸과 마음)의 인연으로 태어나고, 늙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고뇌함이 있게 된다.
015_0028_b_21L觸因緣故生受深樂受故生渴愛渴愛增長故生取取增長故復起後有有因緣故有生老死憂悲苦惱
015_0028_c_01L 이와 같이 중생은 고통 속에서 생장하나, 실은 이러한 중생의 세계가 모두 공(空)하여 나[我]와 내 것[我所]이란 관념을 여의어, 초목이나 석벽(石壁)처럼 아무런 지각(知覺)이 없고 또한 마치 메아리와 같건만 중생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고뇌를 받는다.’”
015_0028_c_01L如是衆生生長苦聚是中皆空離我我所無知無覺如草木石壁又亦如響然諸衆生不知不覺而受苦惱
【論】여기서 인연에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상(自相)이니, ‘다시 싹을 틔운다’부터 ‘유(有)’까지이다.
둘째는 동상(同相)이니,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허물을 말한다.
셋째는 전도상(顚倒相)이니, ‘나와 내 것이란 관념을 여읜다’는 것이다.
015_0028_c_04L論曰是中因緣有三種自相從復有芽生乃至於有同相謂生老病死等過顚倒相離我我所等
자상에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보상(報相)이니, 이름과 물질[名色]이 아리야식(阿梨耶識)과 함께 생겨나는 것으로, 경의 ‘3계란 땅에 다시 싹을 틔우나니, 이른바 이름과 물질[名色]이 함께 생겨난다’는 것과 같다. 이름과 물질이 함께 생긴다는 것은 이름과 물질이 저[彼]와 함께 생기는 것이다.
015_0028_c_07L自相者有三種一者報相名色共阿黎耶識生如經於三界地復有芽生所謂名色共生名色共生者名色共彼生故
둘째는 피인상(彼因相)이니, 이는 이름과 물질이 저를 여의지 않고 저에 의지하여 함께 생겨나는 것으로, 경의 ‘여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28_c_11L二者彼因相是名色不離彼彼共生故如經不離
셋째는 피과차제상(彼果次第相)이니, ‘6입(入)으로부터 ‘유(有)’에 이르기까지로, 경의 ‘이름과 물질을 증장(增長)하여 이미 6입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6입이 이루어지고서 안과 밖이 상대하여 접촉[觸]이 생기고, 접촉의 인연(因緣)으로 감각[受]이 생기고, 감각을 깊이 좋아하는 까닭에 애욕이 생기고, 애욕이 증장하는 까닭에 취함[取]이 생기고, 취함이 증장하는 까닭에 다시 후유(後有:후생의 과보인 몸과 마음)를 일으키고, 유(有:몸과 마음)의 인연으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고뇌함이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중생은 고통 속에서 생장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28_c_12L三者彼果次第相從六入乃至於有如經此名色增長已成六入聚成六入已內外相對生觸觸因緣故生受深樂受故生渴愛渴愛增長故生取取增長故復起後有有因緣故有生老死憂悲苦如是衆生生長苦聚
여기서 ‘나[我]와 내 것[我所]이란 관념을 여의었다’는 것은 이 두 가지의 공(空)을 나타내고, ‘아무런 지각(知覺)이 없다’는 것은 자체(自體)가 무아(無我)이기 때문이다. 저 아무런 지각이 없다는 것은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비중생수(非衆生數)의 일을 보이는 것으로, 경의 ‘마치 초목이나 석벽(石壁)과 같고 또한 마치 메아리와 같다’는 것과 같으니, 서로 유사한 법을 인연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저 가운데 두 가지 전도(顚倒)인가? 경의 ‘중생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고뇌를 받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28_c_18L是中離我我所者此二示現空無知無覺者體無我故彼無知無覺示非衆生數動不動事如經如草木石壁又亦如因緣相似相類法故云何於彼二顚倒如經然諸衆生不知不覺而受苦惱
015_0029_a_01L【經】“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들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곧 큰 자비와 지혜를 내어 ‘이 중생들을 내가 마땅히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경열반의 즐거움에 머물게 하리라’고 한다. 이리하여 큰 자비와 지혜를 내는 것이다.”
015_0029_a_01L經曰菩薩如是見諸衆生不離苦聚是故卽生大悲智慧是諸衆生我應教化令住涅槃畢竟之樂是故卽生大慈智慧
【論】보살이 어떻게 하여 온갖 고통을 받고 어떻게 해서 최상 제일의의 즐거움을 멀리 여의는가? 이에 관해서는 이미 설했으니, 큰 자비 등을 시현(示現)하기 때문이다.
015_0029_a_05L論曰云何具諸苦聚云何遠離最上第一義樂此先已說示現大悲慈等故
【經】“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큰 자비법(慈悲法)을 따라 초지(初地)에 머물면서 깊고 미묘한 마음으로 일체의 물건에 대해 아낌이 없이, 지혜로 부처님의 크고 미묘한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크게 희사(喜捨)하는 행(行)을 닦는다.
015_0029_a_07L經曰諸佛子菩薩摩訶薩隨順如是大慈悲法住在初地以深妙心於一切物無所悋惜以智求佛大妙智故修行大捨
그리하여 즉시 가지고 있던 시주할 만한 모든 물건을 남김없이 희사하나니, 이른바 재물과 곡식 창고 등을 희사하며, 혹은 금ㆍ은ㆍ마니(摩尼)ㆍ진주ㆍ유리ㆍ보석ㆍ보패(寶貝)ㆍ자거(車渠:바다 속에 있는 큰 조개)ㆍ마노ㆍ생금(生金) 등을 희사하며, 혹은 영락 등의 보배 장신구를 희사하며, 혹은 코끼리와 말이 끄는 수레와 가마 등을 희사하며,
015_0029_a_11L卽時所有可施之物皆悉能捨所謂一切財穀庫藏等捨或以金銀摩尼眞珠琉璃珂貝車璖馬瑙生金等捨或以寶莊嚴具瓔珞等捨或以象馬車乘輦輿等捨
혹은 사원ㆍ원림(園林)ㆍ누관(樓觀)ㆍ냇물ㆍ욕지(浴池) 등을 희사하며, 혹은 노비ㆍ하인 등을 희사하며, 혹은 국토ㆍ취락ㆍ성읍(城邑)ㆍ도성(都城) 등을 희사하며, 혹은 처자(妻子)ㆍ남녀 등을 희사하며, 혹은 자기가 아끼는 모든 사물을 남김없이 희사하며,
015_0029_a_15L或以寺舍園林樓觀流泉浴池等捨或以奴婢僮僕等捨或以國土聚落城邑王都等捨或以妻子男女等捨或以一切所愛之事皆悉能捨
혹은 머리ㆍ눈ㆍ귀ㆍ사지(四肢)ㆍ손ㆍ발 등 일체 신체의 부위들을 희사하여, 이러한 일체 희사할 만한 물건들을 탐내거나 아끼지 않고 오직 무상(無上)의 부처님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큰 희사를 행한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초지에 머물러 능히 큰 희사를 성취하는 것이다.”
015_0029_a_19L或以頭目耳鼻支節手足一切身分等捨如是一切可捨之物而不貪惜唯求無上佛智慧故而行大捨如是菩薩摩訶薩住於初地能成大捨
015_0029_b_01L【論】‘즉시 가지고 있던 시주할 만한 모든 물건을 남김없이 희사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무상의 크고 미묘한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일체의 물건’이란 대략 두 가지로 나뉘니, 첫째는 밖[外]이고, 둘째는 안[內]이다.
015_0029_a_23L論曰卽時所有可施之物皆悉能捨求佛無上大妙智故是中一切物略有二種一外二內
밖에 있는 것에 다시 두 종류가 있으니, 첫 번째로 소용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비축해 둔 것이니, 경의 ‘이른바 재물과 곡식 창고 등’과 같다. 이렇게 차례로 그 가운데 널리 보면 여덟 종류가 있으니, ‘금ㆍ은’ 등으로부터 ‘자기가 아끼는 모든 사물’에 이르기까지이다.
015_0029_b_03L外者復有二所用貯積如經所謂一切財穀庫藏等如是次第於中廣有八種從金銀等乃至一切所愛之事
안에 있는 것은 자신에 속한 것이다.
이 밖의 일의 희사 가운데 처음의 희사(喜捨)는 총상이고, 나머지 아홉 가지는 별상이다.
이는 두 가지의 기쁨에 의지하니, 첫째는 장섭희(藏攝喜)이고 둘째는 이익희(利益喜)이다. 장섭희는 금ㆍ은 등을 말한다.
015_0029_b_06L內者自身所攝是外事捨中初捨是摠九捨是別依二種喜藏攝喜益喜藏攝喜者謂金銀等
이익희에는 다시 여덟 종류가 있다.
첫째로 엄식(嚴飾:몸을 꾸미는 것) 이익희이니, 보배 장신구 등을 말한다.
둘째로 대보(代步:타고 다니는 것) 이익희이니, 코끼리나 말 따위를 말한다.
셋째로 희락(戲樂:즐기며 노는 것) 원림(園林)과 누관(樓觀) 등을 말한다.
넷째로 대고(代苦:일을 대신해 주는 것) 이익희이니, 노비나 하인 등을 말한다.
015_0029_b_09L利益喜者復有八種一者嚴飾利益喜謂寶莊嚴等二者代步利益喜謂象馬等者戲樂利益喜謂園林樓觀等四者代苦利益喜謂奴婢等
다섯째로 자재(自在) 이익희이니, 국토나 취락 등을 말한다.
여섯째로 권속(眷屬) 이익희이니, 아내와 자식 등을 말한다.
일곱째로 견착(堅著:매우 애착하는 것) 이익희이니, 일체 아끼는 것들을 말한다.
여덟째로 칭의(稱意:자기 뜻대로 되는 것) 이익희이니, 머리ㆍ눈ㆍ귀ㆍ코 등을 말한다.
015_0029_b_13L五者自在利益喜謂國土聚落等六者眷屬利益謂妻子等七者堅著利益喜謂一切所愛等八者稱意利益喜謂頭目耳鼻等
【經】“보살이 이와 같이 크게 보시하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점점 세간과 출세간의 이익되는 수승한 일을 구하는데, 그가 이익되는 수승한 일을 구할 때 지치거나 게으른 마음이 없나니, 이런 까닭에 보살이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는 마음을 성취한다고 한다. 이렇게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는 마음을 성취하면 일체 경론에 대해 마음에 겁내거나 나약한 마음이 없나니, 이를 일체 경론의 지혜를 성취한다고 한다.
015_0029_b_17L經曰菩薩如是以大施心救一切衆生故轉轉推求世閒出世閒利益勝彼推求利益勝事時心不疲惓故菩薩成不疲惓心成不疲惓已一切經論心無怯弱是名成一切經論智
015_0029_c_01L 이렇게 일체 경론의 지혜를 성취하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헤아려, 상ㆍ중ㆍ하 세 부류의 중생에 있어 마땅함[宜]에 따라, 마땅히 행할 것에 따라[宜而行], 힘에 따라, 감응하는 것에 따라 교화하나니, 이런 까닭에 보살이 세상의 지혜를 성취한다.
015_0029_b_23L如是成一切經論智已善能籌量應作不應作於上中下衆生隨宜隨宜而行隨力隨感是故菩薩成就世智
세상의 지혜를 성취하면 시기를 알고 역량을 알아 부끄러움의 장엄[慚愧莊嚴]으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도를 닦아 익히나니, 이런 까닭에 보살이 부끄러움의 장엄을 성취한다.
015_0029_c_03L成世智已知時知量慚愧莊嚴修習自利利他之道是故菩薩成慚愧莊嚴
이와 같이 행(行)하는 가운데 부지런히 정진하고 수행하여 불퇴전의 힘을 성취하나니, 이와 같이 보살이 견고한 힘을 얻으며, 견고한 힘을 얻고는 부지런히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설법을 들은 대로 수행한다.
015_0029_c_05L如是行中精勤修行得不退不轉力如是菩薩成堅固力得堅固力已勤行供養諸佛隨所聞法如說修行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이러한 청정한 여러 지(地)의 법을 일으킴을 모두 아나니, 이른바 믿음ㆍ불쌍히 여김ㆍ인자함ㆍ희사함ㆍ지치거나 게으르지 않음ㆍ모든 경론(經論)을 아는 것ㆍ세상 법을 잘 이해하는 것ㆍ부끄러워함ㆍ견고한 힘ㆍ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인데, 설법대로 수행하느니라.”
015_0029_c_08L諸佛子是菩薩悉知生起如是淸淨諸地法所謂信悲慈捨不疲惓知諸經論善解世法慚愧堅固力養諸佛如說修行
【論】여기서 ‘이 세상 지혜에 의지하여 마땅함에 따라, 마땅히 행할 것에 따라’라고 함은 논에서 말한 ‘자기의 힘에 따라, 상대가 능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따라’와 같다. ‘부끄러워함[慚愧]에 의하여 시기를 알고 역량을 안다’는 것은 세 가지의 시기를 보인다. 첫째는 생각할 때이고, 둘째는 밤과 낮이고, 셋째는 하는 일을 반드시 이루어 끊임이 없을 때이다. 견고한 힘에 의하여 이와 같이 저 행(行) 가운데’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믿음 등과 같다.
015_0029_c_11L論曰是中依此世智隨宜隨宜而行如論中說隨自己力隨彼能受故依慚愧知時知量者示三種時一者念時二者日夜時三者所作必得不斷時依堅固力如是彼行中者如上所說信等故
‘부지런히 정진하고 수행한다’는 것은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물러나지 않는 힘과 그만두지 않는 행이고, 둘째는 돌아서지 않는 힘으로 정진하여 쉬지 않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설법을 들은 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이양공양(利養供養)이며, 둘째는 수행공양(修行供養)이다.
015_0029_c_17L精勤修行者有二種不退力不捨行故不轉力精進不息故供養諸佛如說修行者有二種利養供養修行供養
이 열 가지 행은 두 가지 수승한 성취를 나타낸다.
첫째는 깊은 마음의 성취이니, 믿음ㆍ불쌍히 여기는 마음ㆍ인자한 마음 등이다.
둘째는 수행의 성취이니, 희사함ㆍ지치거나 게으르지 않음ㆍ모든 경론을 아는 것ㆍ세상 법을 잘 이해하는 것ㆍ부끄러워함ㆍ견고한 힘ㆍ모든 부처님께 공양함ㆍ설법대로 수행함 등이다.
015_0029_c_20L此十種行顯二種勝成就深心成就謂信悲慈等修行成就謂捨不疲惓知諸經論善解世法慚愧堅固力供養諸佛如說修行等
015_0030_a_01L이 가운데 자리행(自利行)에 의지하는 것을 믿음[信]이라 하니, 보살행 및 모든 불법을 능히 믿어 구하면 반드시 얻는 것이다. 이타행(利他行)에 의지하는 것은, 이른바 자비를 베풀면 마음이 편안하고 안락해진다는 것이다.
015_0030_a_01L於中依自利行謂信能信菩薩行及諸佛法求必能得故依利他行所謂悲慈能安隱與樂心
‘희사한다’는 것은 재물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행[攝他行]이고,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다’는 것은 자신의 방일(放逸)을 막는 행[自攝法行]이다.
‘모든 경론을 알고 세상 법을 잘 이해한다’는 것은 법으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015_0030_a_04L捨者以財攝他行故不疲惓者攝法行故知諸經論善解世法者法攝他行故
나머지 세 가지 행은 믿음 등을 호섭(護攝)한다.
첫째는 드러내지 않는 행[不著行]이니, 부끄러워함으로써 장애를 대치(對治)하여 믿음 등의 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동요하지 않는 행[不動行]이니, 견고한 힘이 있어 믿음 등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수행(修行)이니, 저 보살이 번뇌의 때가 제거되어 청정해지면 이에 의지하여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여 믿음 등의 선근을 호섭하는 것이다.
015_0030_a_06L餘有三行攝護信等者不著行以慚愧對治障信等不著行故二者不動行有堅固力信等不可動故三者修行彼垢淸淨依止行供養諸佛攝信等善根故
여기서는 두 종류의 공양에 의하여 두 종류의 몸을 얻는다.
첫째는 수승하고 미묘한 몸[上妙身]이니, 보는 이는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생겨 이익이 있고 헛되지 않는다.
둘째는 조화롭고 유연한 마음[調柔心]이니, 자성(自性)의 선근(善根)이 즐거운 행법[樂行法]을 성취하는 것이다.
015_0030_a_10L是中依二種供養故得二種身一者上妙身可見者心生敬重利益不空故二者調柔心自性善根成就樂行法故
앞의 경문(經文)에서 설한 30구(句), ‘믿음이 증장한다’로부터 ‘항상 상상(上上)의 수승한 도를 구한다’까지는 청정한 지(地)의 법이고, 지금의 이 10구, ‘믿음’ 등으로부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다’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지에 대한 장애를 제거하는 법[障地淨法]이니, 이를 수행의 수승함이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果)의 이익의 수승함인가?
015_0030_a_13L所說三十句從信增上等乃至常求上上勝道是淸淨地法今此十句從信等乃至供養諸佛盡是障地淨法是名修行挍量勝云何果利益挍量勝
【經】“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보살의 환희지에 머물면 큰 신통의 힘과 큰 서원(誓願)의 힘으로 부처님들을 많이 보게 되나니, 수 백 부처님, 수 천 부처님, 수 백천 부처님, 수 백천 나유타 부처님, 수 억 부처님, 수 백억 부처님, 수 천억 부처님, 수 백천억 부처님, 수 백천억 나유타 부처님을 큰 신통의 힘과 큰 서원의 힘으로 보게 된다.
015_0030_a_18L經曰諸佛子是菩薩住此菩薩歡喜地已多見諸佛以大神通力大願力見多百佛多千佛多百千佛多百千那由他佛多億佛多百億佛多千億佛多百千億佛多百千億那由他以大神通力大願力故
015_0030_b_01L이 보살은 부처님들을 볼 때 높은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의복ㆍ음식ㆍ침구ㆍ약품 등 모든 것을 갖추어 보시하며, 모든 보살의 수승하고 미묘한 약으로 대중 스님들에게 공양하고는 이러한 선근(善根)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기를 발원한다. 이 보살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인연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유익하게 하는 법을 성취한다.
015_0030_b_01L是菩薩見諸佛時以上心深心供養恭敬尊重讚歎衣服飮食臥具湯藥一切供具悉以奉施以諸菩薩上妙樂具供養衆僧以此善根皆願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菩薩因供養諸佛故成教化利益衆生法
이 보살은 많은 2섭(攝)2)으로 중생들을 섭취(攝取:거두어 보호하는 것)하니, 이른바 보시와 애어(愛語:좋은 말을 하는 것)이며, 뒤의 2섭법(攝法)은 단지 믿고 아는 힘으로 행하지만 잘 통달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바라밀 가운데 단(檀:보시)바라밀이 수승한 것이니, 다른 바라밀을 닦고 모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과 분수에 따를 뿐이다.
015_0030_b_07L是菩薩多以二攝攝取衆生所謂布施愛語後二攝法但以信解力行求善通達是菩薩十波羅蜜中檀波羅蜜增上餘波羅蜜非不修集隨力隨分
이 보살은 가는 곳마다 부처님을 공양하고 중생들을 교화하여 청정한 지의 법을 수행하고 이러이러한 모든 선근들을 살바야(薩婆若)에 회향하여, 점점 더 맑고 깨끗하고 조화롭고 유연하여 마음대로 소용(所用)함을 성취한다.
015_0030_b_11L是菩薩隨所供養諸佛教化衆生皆能受行淸淨地法如是如是彼諸善根皆願迴向薩婆若轉復明淨調柔成就隨意所
불자들이여, 비유하자면 금을 잘 단련하는 연금술사[金師]가 금을 단련할 적에 자주자주 금을 불에 넣으면 이렇게 할수록 점점 더 금이 맑고 깨끗하고 조화롭고 유연하여 마음대로 소용함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015_0030_b_15L諸佛子譬如金師善巧鍊金數數入火如是如是轉復明淨調柔成就隨意所用
불자들이여, 보살 역시 이와 같아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중생을 공양하며, 모두 능히 청정한 지의 법을 수행하고, 바르게 수행한 후에 이러이러한 선근들을 모두 살바야에 회향할수록 점점 더 맑고 깨끗하고 조화롭고 유연하여, 마음대로 소용함을 성취하게 된다.”
015_0030_b_17L諸佛子菩薩亦復如是是如是供養諸佛教化衆生皆能修行淸淨地法正修行已如是如是彼諸善根皆願迴向薩婆若轉復明淨調柔成就隨意所用
【論】과(果)의 이익의 수승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조유과(調柔果:조화롭고 유연함)의 이익의 수승함이며, 둘째는 발취과(發趣果:수행을 시작함)의 이익의 수승함이며, 셋째는 섭보과(攝報果)의 이익의 수승함이며, 넷째는 원지과(願智果)의 이익의 수승함이다.
015_0030_b_21L論曰果利益挍量勝有四種調柔果利益勝發趣果利益勝攝報果利益勝願智果利益勝
015_0030_c_01L조유과의 이익의 수승함이란 금을 단련하는 법과 흡사하니, 믿음 등의 선법(善法)이 마치 진금(眞金)을 자주 불 속에 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 입(入:진리를 깨달음)이 있다.
015_0030_c_01L調柔果利益勝者金相似法信等善法猶如眞金數數入火者有三種入
첫째는 공덕입(功德入)이니,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는 것이고, 둘째는 비심입(悲心入)이니,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고, 셋째는 무상과입(無上果入)이니, 큰 보리에 회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015_0030_c_03L功德供養佛僧故悲心入教化衆生無上果入願迴向大菩提故
‘큰 신통력으로 부처님을 본다’는 것은 수승한 신통력으로 색신(色身)의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큰 원력’이란 내면의 바른 원력으로 법신(法身)의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수 백의 부처님’으로부터 ‘백천억 나유타 부처님’까지는 좋은 방편으로 많은 부처님을 시현하여, 많은 수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015_0030_c_05L大神通力見諸佛者以勝神通力見色身佛大願力者以內正願力見法身佛多百佛乃至百千億那由他佛方便善巧示現多佛顯多數故
공양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경 공양이니, 찬탄 등을 통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고, 둘째는 존중 공양이니, 예배 등을 말하고, 셋째는 보시 공양이니, 꽃향[花香]ㆍ바르는 향[塗香]ㆍ가루[末香]ㆍ깃발ㆍ일산 등을 말한다. ‘모든 보살의 수승하고 미묘한 약’이란 보살만이 가진 세간에 없는 물건이니, 이러한 것들을 갖추어 일체 대중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발취과(發趣果)의 이익의 수승함인가?
015_0030_c_09L養者有三種恭敬供養謂讚歎等顯佛功德故尊重供養謂禮拜等奉施供養謂花香塗香末香幡蓋以諸菩薩上妙樂具者是諸菩薩所有世閒不共之物具足奉施一切衆僧故云何發趣果利益勝
【經】“또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 보살의 환희지에 머물러 초지(初地) 중에서 여러 모습[相]에 과(果)를 얻고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선지식 등께 지(地)의 법을 성취함을 구하고 물어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어야 한다.
015_0030_c_15L經曰復次諸佛子菩薩摩訶薩住此菩薩歡喜地於初地中諸相得果從諸佛菩薩善知識所推求請問成地諸法無有厭足
015_0031_a_01L 이와 같이 보살이 초지 가운데 머물면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선지식 등에게 구하고 물어, 제2지(第二地) 중에서 여러 모습의 과를 얻고 지의 여러 법을 성취하여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어야 하나니, 이와 같이 제3지(第三地)ㆍ제4지 제5지ㆍ제6지ㆍ제7지ㆍ제8지ㆍ제9지ㆍ제10지 중 여러 모습[相]의 과(果)를 얻으면 마땅히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선지식께 물어서 10지의 법을 성취하여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다.
015_0030_c_19L如是菩薩住初地應從諸佛菩薩善知識所推求請問第二地中諸相得果成地諸法無有厭足如是第三第四第五第六第七第八第九第十地中諸相得果從諸佛菩薩善知識所推求請問成十地法無有厭足
이 보살은 모든 지의 장애와 그에 대한 대치법(對治法)을 잘 알며, 지의 이루어짐과 무너짐[成壞]를 잘 알며, 지의 모습을 잘 알며, 지의 수행을 잘 알며, 지의 청정함을 잘 알며, 지에서 지로 옮겨감을 잘 알며, 지와 지의 머무는 곳을 잘 알며, 지와 지의 수승한 지혜를 잘 알며, 지의 불퇴전을 잘 알며, 일체보살의 지에서 청정하게 옮겨 여래의 지혜의 지[智地]로 들어감을 잘 안다.
015_0031_a_02L是菩薩善知諸地障對治善知地成壞善知地相善知地得修善知地淸淨分善知地地轉行善知地地住處善知地地挍量勝智善知地得不退轉善知一切菩薩地淸淨轉入如來智地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와 같이 지(地)의 모습을 잘 일으켜 초지(初地)에서 출발하여 의성(意成:뜻대로 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몸이 성립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점차 10지(地)에 들어가 장애가 없으며, 10지의 지혜 광명을 얻으며, 능히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얻는다.
015_0031_a_07L諸佛子菩薩如是善起地相發於初地不住意成乃至轉入十地無障㝵故以得十地智慧光明故能得諸佛智慧光明
불자들이여, 비유하자면 훌륭한 인솔자가 사람들을 많이 거느리고 저 큰 성을 향해 떠날 때, 출발하기 전에 먼저 도중의 이익이 되는 일들에 관해 묻고, 다시 도중의 걱정거리에 관해 묻고, 다시 도중의 수승한 일에 관해 묻고, 다시 도중의 환란에 관해 물은 다음,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양식을 갖추고 마련할 것을 마련하는 문제에 관해 다른 사람에게 자문을 구한다.
015_0031_a_10L諸佛譬如善巧導師多將人衆向彼大未發之時應先問道中利益諸事復問道中退患過咎復問道處中間勝事復問道處中閒退患過咎具道資糧作所應作推求請問
이렇게 출발하기 전에 이 훌륭한 인솔자는 저 큰 성에 도달할 방도를 잘 알며, 출발하기 전에 이 훌륭한 인솔자는 능히 지혜로 생각하고 헤아려 모든 필요한 물품들을 부족하지 않게 구비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바로 인도하여 무사히 큰 성에 당도하며, 도중의 험난한 곳에서 모든 환란을 면하여 사람들은 아무런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
015_0031_a_15L未發初處是大導師乃至善知到彼大城未發初處此導師能以智慧思惟籌量諸資用令無所乏正導衆人乃至得到大城於嶮道中免諸患難身及衆人皆無憂惱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중생의 훌륭한 인솔자가 됨이 또한 이와 같으니, 초지에 머물면서 지의 장애와 그에 대한 대치법(對治法)을 잘 알고, 나아가서 일체 보살지(菩薩地)의 청정함을 잘 알아 점차의 여래 지혜의 지(地)에 들어간다.
015_0031_a_20L諸佛子菩薩摩訶薩善巧導師亦復如是住於初地善知地障對治乃至善知一切菩薩地淸淨轉入如來智地
015_0031_b_01L 이때 보살은 큰 복덕과 조도법(助道法)이란 양식과 선악을 가리는 지혜의 조도법을 갖춘 다음 일체 중생을 거느리고 살바야의 큰 성을 향해 떠나려 하면서, 아직 출발하기 전에 먼저 지(地)라는 길의 공덕을 묻고, 다시 여러 지의 걱정거리를 묻고, 다음으로 지라는 길의 수승한 일을 묻고, 다음으로 지라는 길의 걱정거리를 묻고는, 큰 공덕과 지혜라는 양식을 갖추고 마련할 것을 마련한 다음,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선지식들께 자문을 구한다.
015_0031_a_23L爾時菩薩具大福德助道資糧善擇智慧助道欲將一切衆生向薩婆若大城未發初處應先問地道功德復問諸地退患復問地道處中間勝事復問地道處中閒退具大功德智慧資糧作所應作從諸佛菩薩善知識所推求請問
이렇게 출발하기 전에 이 보살은 지(地)의 장애와 그에 대한 대치법을 잘 알고 나아가 살바야의 큰 성에 도달할 방도를 잘 안다. 아직 출발하기 전에 이 보살은 이와 같이 지혜로 분별하여 큰 공덕과 지혜라는 양식을 장만한 다음 일체 중생을 거느리고 근기에 따라 잘 교화하여 세간의 험난하고 나쁜 곳을 벗어나 살바야의 큰 성에 머물게 하며, 세간의 생사(生死)와 험난함에 물들지 않아 자신과 중생이 모두 아무런 탈이 없다.
015_0031_b_06L發初處是菩薩善知地障對治乃至善知能到薩婆若大城未發初處薩如是智慧分別具大功德智慧資將一切衆生如應教化出過世閒嶮難惡處乃至令住薩婆若大城爲世閒生死嶮過所染身及衆生無諸衰惱
불자들이여, 이런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항상 마음에 지치거나 게으른 생각을 내지 않고 모든 지(地)의 업(業)인 수승한 지혜의 본행(本行)을 부지런히 닦느니라. 불자들이여, 이를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초지인 환희지의 문(門)에 들어감을 간략히 설한다고 하며, 모두 말하자면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기의 일이 있다.”
015_0031_b_13L諸佛子是故菩薩摩訶薩常應心不疲惓勤修諸地業勝智本行諸佛子是名略說菩薩摩訶薩入初菩薩歡喜地門廣說則有無量百千萬億阿僧祇事
【論】‘여러 모습[相]’이란 여러 지(地) 가운데 있는 모든 장애와 그에 대한 대치법이다. ‘얻는다’는 것은 출세간의 지혜를 증득하는 것이다. ‘과(果)’란 증득한 지혜의 힘으로 인하여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지의 온갖 법을 성취함’이란, 이른바 믿음 등이 저 보살에 만족한 것이다.
015_0031_b_17L論曰諸相者隨諸地中所有諸障及對治相故得者證出世閒智故果者因證智力得世閒出世閒智故成地諸法者所謂信等爲滿足彼故
여기에 다섯 가지 방편이 있으니, 첫째는 관방편(觀方便), 둘째는 득방편(得方便), 셋째는 증상방편(增上方便), 넷째는 불퇴방편(不退方便), 다섯째는 진지방편(盡至方便)이다.
015_0031_b_21L有五種方便觀方便得方便增上方便不退方便盡至方便
015_0031_c_01L관방편이란 장애에 대한 대치(對治)와 이루어짐과 무너짐[成壞], 방편[善巧] 등으로, 경의 ‘이 보살은 모든 지(地)의 장애와 그에 대한 대치법(對治法)을 잘 알며, 지의 이루어짐과 무너짐[成壞]를 잘 안다’는 것과 같으니, 열 가지 지(地)의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10지라 한 것은 본분(本分) 중의 말씀과 같으니, 이와 같이 차례로 모으고[集], 이루고[成], 흩어 버리고[散], 무너뜨린다[壞].
015_0031_b_23L觀方便者障對治成壞善巧如經是菩薩善知諸地障對治故善知地成壞故十種地障對治故名爲十地如本分中說如是次第集故成散故壞
득방편이란 방편에 들어가고자 하여 방편에 이미 들어가 방편이 수승하고 뛰어난 것이니, 경의 ‘지의 모습을 잘 알며, 지의 수행을 잘 알며, 지의 청정함을 잘 안다’는 것과 같다.
015_0031_c_04L得方便者欲入方便已入方便彼勝進方便如經善知地相故善知地得修故知地淸淨分
증상방편이란 지(地)에서 지로 옮겨 가고 지와 지에 머물고 지에서 지로 갈수록 증장(增長)하는 좋은 방편이니, 경의 ‘지에서 지로 옮겨 감을 잘 알며, 지와 지의 머무는 곳을 잘 알며, 지와 지의 수승한 지혜를 잘 안다’는 것과 같다.
015_0031_c_07L增上方便者地地轉地地住處地地增長善巧如經知地地轉行故善知地地住處故知地地挍量勝智
불퇴방편이란 경의 ‘지의 불퇴전을 잘 안다’는 것과 같다.
진지방편이란 보살지가 다하여 여래지로 들어가는 좋은 방편이니, 경의 ‘일체보살의 지에서 청정하게 옮겨 여래 지혜의 지[智地]로 들어감을 잘 안다’는 것과 같다.
015_0031_c_10L不退方便者善知地得不退轉盡至方便者菩薩地盡入如來地善巧如經善知一切菩薩地淸淨轉入如來智地
‘불자들이여, 비유하자면 훌륭한 인솔자가 사람들을 많이 거느리고 저 큰 성을 향해 떠나는 것과 같다’는 것은 바른 행[正行]을 얻게 하는 것이다.
015_0031_c_13L諸佛子譬如善巧導師多將人衆向彼大城者令得正行故於中導師者
여기서 ‘인솔자’에 두 가지 방편이 있다.
첫째는 길을 헤매지 않는 방편으로, 무엇이 도중에 이익이고 무엇이 걱정이며 무엇이 도중에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쁜가를 모두 잘 아는 것이니, 경의 ‘먼저 도중의 이익이 되는 일들에 관해 묻고, 다시 도중의 걱정거리에 관해 묻고, 다시 도중의 수승한 일에 관해 묻고, 다시 도중의 환란에 관해 묻는다’는 것과 같다.
015_0031_c_15L有二種方便一者不迷道方便於道路中是利是退患於道路處是勝是過咎皆善巧知如經先問道中利益諸事故復問道中退患過咎故復問道處中閒勝事故復問道處中閒退患過咎
둘째는 필요한 물품을 장만하는 이익의 방편이니, 경의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양식을 갖추고 마련할 것을 마련한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섭보과(攝報果)의 이익의 수승함인가?
015_0031_c_21L二者資具利益方便如經具道資糧作所應作云何攝報果利益勝
015_0032_a_01L【經】“보살마하살이 이 초지(初地)에 머물 적에는 흔히 염부제(閻浮提)의 왕이 되어 호화와 부귀를 마음대로 누리며 항상 정법(正法)을 수호하고, 능히 크게 보시하여 중생들을 거두어 보살펴서, 중생들의 인색과 탐욕ㆍ질투 따위의 허물을 잘 제거하며, 항상 크게 희사(喜捨)하기를 끝없이 하여, 선업(善業)을 짓고 보시하고 좋은 말을 하고 이익을 주고 중생과 동사섭(同事攝)한다.
015_0031_c_23L經曰菩薩摩訶薩住此初地多作閻浮提王豪貴自在常護正法能以大施攝取衆生善除衆生慳貪嫉妒之常行大捨而無窮盡所作善業布施愛語利益同事
이러한 온갖 복덕(福德)들이 모두 부처님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법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승가를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보살들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보살행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바라밀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10지(地)를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힘[不壞力]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두려움 없음[無畏]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부처님의 불공법(不共法)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고, 나아가서 일체종(一切種)을 구족한 일체지의 지혜[一切智智]를 생각함을 여의지 않는다.
015_0032_a_05L是諸福德皆不離念不離念法不離念僧不離念諸菩不離念菩薩行不離念諸波羅蜜不離念十地不離念不壞力不離念無畏不離念佛不共法乃至不離念具足一切種一切智智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 가운데 머리가 되고, 으뜸이 되고, 큼이 되고, 묘함이 되고, 미묘함이 되고, 위가 되고, 위없음[無上]이 되고, 길잡이가 되고, 통솔자가 되고, 스승이 되고, 존자가 되고, 나아가서 일체지의 지혜가 의지하는 곳이 되리라’고 한다.
015_0032_a_10L常生是心當於一切衆生中爲首爲勝爲大爲妙爲微妙爲上爲無上爲導爲將師爲尊乃至爲一切智智依止者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집을 버리고 떠나 부지런히 수행하고 정진하고자 한다면 불법 중에서 곧 능히 집과 처자와 5욕(欲)을 버리고 출가하여 부지런히 수행하고 정진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한 생각 사이에 백(百) 삼매를 얻고, 백 부처님을 보고, 백 부처님의 신통력을 알고,
015_0032_a_13L佛子是菩薩摩訶薩若欲捨家勤行精進於佛法中便能捨家妻子五欲得出家已勤行精進於一念閒得百三昧得見百佛知百佛神力
능히 백 부처님세계를 진동하고, 능히 백 부처님세계로 들어가고, 능히 백 부처님세계를 비추고, 능히 백 부처님세계의 중생을 교화하고, 능히 백 겁이나 오래 살고, 능히 과거와 미래 세상의 각각 백 겁의 일을 알고, 능히 백 법문에 잘 들어가고, 능히 변신하여 백 개의 몸을 나투고, 하나하나의 몸마다 능히 백 보살을 나투어 권속으로 삼는다.”
015_0032_a_17L能動百佛世界能入百佛世界能照百佛世能教化百佛世界衆生能住壽百能知過去未來世各百劫事能善入百法門能變身爲百於一一身能示百菩薩以爲眷屬
【論】섭보과(攝報果)의 이익의 수승함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재가(在家)의 과(果)이며 둘째는 출가의 과이다.
015_0032_a_22L論曰攝報果利益勝者有二種家果出家果
015_0032_b_01L재가의 과에 다시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매우 수승한 육신이니, 염부제의 왕이 되는 것 등으로, 경의 ‘보살마하살이 이 초지(初地)에 머물 적에는 흔히 염부제(閻浮提)의 왕이 되어 호화와 부귀를 마음대로 누리며 항상 정법(正法)을 수호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32_b_01L在家果復有二種者上勝身閻浮提王等如經菩薩摩訶薩住此初地多作閻浮提王豪貴自在常護正法
둘째는 매우 수승한 과보[果]이니, 좋은 방편을 가지고 인색과 탐욕ㆍ질투 등을 조복받는 것으로, 경의 ‘능히 크게 보시하여 중생들을 거두어 보살펴서, 중생들의 인색과 탐욕ㆍ질투 따위의 허물을 잘 제거한다’는 것과 같다.
015_0032_b_04L二者上勝果善巧調伏慳貪嫉妒等如經能以大施攝取衆生善除衆生慳貪嫉妒垢
‘능히 크게 보시하여 중생들을 거두어 보살핀다’는 것은 스스로 보시를 행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를 권하여 중생들을 잘 거두어 보살펴, 중생들의 인색과 질투 등의 허물을 잘 고쳐 주는 것이니, 좋은 방편을 가지고 4섭법(攝法)으로 중생을 거두어 보살피는 것이다.
015_0032_b_06L能以大施攝取衆生者自行布施善勸他攝取衆生善轉衆生慳嫉之垢便善巧以四攝法攝取衆生故
‘부처님을 생각함을 여의지 않는다’는 것 등은 자신에게 이익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여의지 않음을 보였다. 일을 하는 가운데 이러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함으로써 큰 공경을 이루어 모든 망상을 제거한다.
015_0032_b_09L不離念佛等者示現不離念自利益事如是諸念於事中行已成大恭敬除諸妄想
이러한 생각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승함에 대한 생각[上念]이니, 3보(寶)를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법이 같음에 대한 생각[同法念]이니, 모든 보살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는 공덕에 대한 생각[功德念]이니, 자신과 타인의 보살행 자체가 점점 수승해짐을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는 뜻을 구하려는 생각이니, 부처님의 모든 힘 등이 진실되고 구경임을 생각하는 것이다.
015_0032_b_11L此念略有四種一者上念念三寶故二者同法念念諸菩薩故三者功德念自身他身菩薩行自體轉勝故四者求義念念諸力等此是眞實究竟故
무엇이 ‘수승함에 대한 생각’인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 베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재물과 보리(菩提)에 대해 분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일체의 지은 업(業)에 있어 지은 사람에 집착하지 않고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지은 일에 집착하지 않고 과보에 집착하지 않고서, 이 일체의 행(行)을 모두 큰 보리로 회향한다.
015_0032_b_16L何者是上念念佛等念佛法等於施者受者財物及菩提不生分別不取著故如是一切所作業中者不著境界不著作事不著果報不以此一切諸行皆願迴向大菩提
‘머리[首]’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수승한 머리이니, 광명의 공덕이며, 둘째는 큰 머리이니, 독보적이어서 둘도 없는 것이다. ‘으뜸[勝]’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묘한 지혜이니, 자재(自在)의 으뜸이며, 둘째는 미묘함이니, 일체 번뇌를 여읜 자재의 으뜸이다.
015_0032_b_21L爲首者有二種一者勝首光明功德故二者大首獨無二故勝者有二一者妙智自在勝故二者微妙一切煩惱自在勝故
015_0032_c_01L‘큼[大]’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위[上]이니, 더불어 비교할 대상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위없음[無上]이니, 그 무엇도 이보다 뛰어난 것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체(自體)의 공덕을 나타내어 보였다.
015_0032_c_01L大者有二種者上無與等故二者無上無能過故如是顯示自體功德故
‘길잡이[導]’란 아함(阿含) 중에서 법의 뜻을 분별하여 바르게 설하는 것이며, ‘통솔자[將]’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증득하여 번뇌를 소멸하게 하는 것이며, ‘스승’이란 법을 가르쳐 주어 정도(正道)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일체지의 지혜가 의지하는 곳이 되리라’라는 것은 큰 보리의 도로 교화하는 것이다.
이를 이름하여 재가 보살의 섭보과(攝報果)의 이익의 수승함이라 한다.
015_0032_c_03L導者於阿含中分別法義正說故將者令他證得義滅諸煩惱故師者教授令入正道乃至一切智智依止者以大菩提道教化故是名在家菩薩攝報果利益勝
또 출가 보살의 선정(禪定)의 수승한 업에 관해 말하겠다. 수승한 업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삼매의 수승함이니, 이른바 ‘한 생각 사이에 백(百) 삼매를 얻는다’는 것으로, 삼매의 자재한 힘을 얻는 것이다.
둘째는 삼매가 하는 일의 수승함이니, 이른바 ‘백 부처님을 본다’는 것 등으로, 이러한 삼매의 힘을 얻음으로 해서 시방 보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처소에서 모든 보살이 닦고 익히는 지혜를 가피하는 것이다.
015_0032_c_08L復次出家菩薩禪定勝業勝業有二種一者三昧勝所謂於一念閒得百三昧得三昧自在力故二者三昧所作勝謂見百佛等以得是三昧力於十方諸佛及佛所加諸菩薩所修習智慧故
‘능히 백 부처님세계를 진동한다’는 것은 교화할 만한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능히 백 부처님세계로 들어가고 능히 백 부처님세계를 비추고 능히 백 부처님세계의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은 부처님세계로 가서 정도를 보이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능히 백 겁이나 오래 산다’는 것은 수승한 생(生)을 섭취(攝取)하는 것이다.
015_0032_c_13L能動百佛世界者令可化衆生生正信故能入百佛世界照百佛世界能教化百佛世界衆生往至及見正化衆生故能住壽百劫者攝取勝生故
‘능히 과거와 미래 세상의 각각 백 겁의 일을 안다’는 것은 중생들을 교화하여 악(惡)을 떠난 수승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을 지어 태어나는 세계에 대해 설하는 것이다. ‘능히 백 법문에 잘 들어간다’는 것은 자기의 지혜와 사유와 갖가지 법문의 뜻을 증장하기 위한 것이다. ‘능히 변신하여 백 개의 몸을 나투고 하나하나의 몸마다 능히 백 보살을 나투어 권속으로 삼는다’는 것은 신속하게 많은 이익을 짓기 위한 행(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지과(願智果)의 이익의 수승함인가?
015_0032_c_17L能知過去未來世各百劫事者化諸衆生作離惡上首說善惡業道故能善入百法門者增長自智慧思惟種種法門義故變身爲百於一一身能示百菩薩以爲眷屬者作多利益速疾行故云何願智果利益勝
015_0033_a_01L【經】“만약 원력의 자재하고 수승함으로 말한다면 보살의 원력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시현하고 갖가지 신통을 보여, 혹은 몸, 혹은 광명, 혹은 신통, 혹은 눈, 혹은 경계, 혹은 음성, 혹은 행, 혹은 장엄, 혹은 가피, 혹은 믿음, 혹은 업(業) 등 이러한 온갖 신통들을 백천만억 나유타 겁 동안 헤아려도 알 수 없을 것이다.”
015_0032_c_23L經曰若以願力自在勝上菩薩願力示現過於此數示種種神通或身光明或神通或眼或境界或音聲或莊嚴或加或信或業是諸神通乃至無量百千萬億那由他劫不可數知
【論】이 가운데 ‘몸’이란 일체 보살행의 근본이 의지하는 곳이다. 저 몸에 의지하여 광명과 신통이 있고, 광명에 의지해서 천안(天眼)이 있고, 천안이 있음으로 해서 앞의 경계를 볼 수 있다. 일체의 ‘눈[眼]’에 다섯 종류가 있으니 알아두어야 한다.
015_0033_a_06L論曰於中身者是一切菩薩行根本所依故依彼身故有光明及神通光明有天眼以有天眼見前境界切眼有五種應知
신통에 의지하여 음성 및 행ㆍ장엄ㆍ가피 등이 있다. ‘음성’이란 상대의 언설(言說)에 응하는 것이고, ‘행’이란 시방세계에 두루 이르는 것이며, ‘장엄’이란 갖가지를 응현(應現)하는 것이고, ‘가피’란 신통력을 상대에게 가하는 것이다.
015_0033_a_10L依神通有音聲及行莊嚴加等音聲者應彼言說故遍至十方故莊嚴者作種種應現加者神力加彼故
‘믿음’이란 삼매문(三昧門)에 의지하여 신통력을 나투고 중생의 믿음에 따라 이익을 주고 성취시키는 것이다. ‘업’이란 혜안(慧眼)이 포괄하는 다라니문(陀羅尼門)에 의지하여 설법을 나투는 것이다.
이상으로 대략 일체 모든 지(地)에 각기 인체(因體)와 과상(果相)이 있음을 설했으니, 알아 두어야 한다.
015_0033_a_13L信者依三昧門現神通力隨衆生信利益成就故依慧眼所攝陁羅尼門現說法故略說一切諸地各有因體果相應知
十地經論初歡喜地卷之三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이법(理法)에 의거하여 행을 일으키고 행에 의지하여 다시 이법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2. 2)자섭(自攝)과 타섭(他攝)이다. 자섭은 자력(自力)으로 스스로 섭취(攝取)하는 것이고, 타섭은 타력(他力)으로 다른 사람에 의해 섭취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