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미륵보살마하살(彌勒菩薩摩訶薩)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걸쳐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서, 부처님을 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조그마한 법으로써 여래시며, 공양 받을 만한 이[應供]시며, 다 옳게 깨달은 이[正遍知]께 묻고자 하옵니다. 잘 모르겠으나 세존이시여, 허락하시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다시 미륵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마침내 여덟 가지의 법을 성취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훌륭하게 나아가는 법 중에서 물러나지도 않고 옮기지도 않으며, 보살의 행을 행할 적에 온갖 악마와 원수와 적을 항복시키며, 사실대로 온갖 법의 자체 모습을 알며, 모든 세간에서 마음이 고달프지 않으며, 마음이 고달프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빠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느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 법인가? 미륵이여, 이른바, 모든 보살마하살이 깊은 마음[深心]을 성취하고, 행의 마음[行心]을 성취하고, 버림의 마음[捨心]을 성취하고, 방편에 잘 회향할 줄 아는 마음[善知廻向方便心]을 성취하고, 크게 사랑하는 마음[大慈心]을 성취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大悲心]을 성취하고, 방편을 잘 앎[善知方便]을 성취하고,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미륵이여,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깊은 마음을 성취하느냐? 미륵이여,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을 찬탄하거나 부처님을 헐뜯는 것을 듣고서도 그 마음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법을 찬탄하거나 법을 헐뜯는 것을 듣고서도 그 마음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승가를 찬탄하고 승가를 헐뜯는 것을 듣고서도 그 마음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면, 미륵이여, 이와 같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깊은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015_0119_c_01L미륵이여,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행의 마음을 성취하느냐? 미륵이여,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산목숨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도둑질을 멀리 여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이간질을 멀리 여의고, 나쁜 말을 멀리 여의고, 꾸밈말을 멀리 여의면, 미륵이여, 이와 같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행의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미륵이여,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버리는 마음을 성취하느냐? 미륵이여,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버리는 이[捨主]이거나 베푸는 이[施主]로서 여러 사문과 바라문과 가난한 이와 거지며 하천한 사람들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와 병을 따라서 탕약이며 구하는 물건을 보시하면, 미륵이여, 이와 같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버리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미륵이여,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아는 마음을 성취하느냐? 미륵이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닦고 있는 선한 뿌리인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면, 미륵이여, 이와 같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아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미륵이여,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크게 사랑하는 마음[大慈心]을 성취하느냐? 미륵이여,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마침내 크게 인자한[大慈] 몸의 업을 성취하고, 마침내 크게 인자한 입의 업을 성취하고, 마침내 크게 인자한 뜻의 업을 성취하면, 미륵이여, 이와 같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015_0120_a_01L미륵이여,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성취하느냐? 미륵이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마침내 나무랄 수 없는 몸의 업을 성취하고, 마침내 나무랄 수 없는 입의 업을 성취하고, 마침내 나무랄 수 없는 뜻의 업을 성취하면, 미륵이여, 이와 같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미륵이여,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방편을 잘 앎을 성취하느냐? 미륵이여,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세간의 도리[俗諦]를 잘 알고 첫째가는 이치의 진리[第一義諦]를 잘 알며 두 가지 진리를 잘 알면, 미륵이여, 이와 같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방편을 잘 앎을 성취하느니라.
미륵이여,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느냐? 미륵이여,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있고, 이 법에 의하여 이 법이 생긴다’고 이렇게 깨달아 알면, 이른바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에 반연되고, 지어감은 의식[識]에 반연되고, 의식은 이름과 물질[名色]에 반연되고, 이름과 물질은 여섯 가지 감관[六入]에 반연되고,
여섯 가지 감관은 닿음[觸]에 반연되고, 닿음은 느낌[受]에 반연되고, 느낌은 욕망[愛]에 반연되고, 욕망은 잡음[取]에 반연되고, 잡음은 존재[有]에 반연되고, 존재는 낢[生]에 반연 되고, 낢은 늙음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괴로움[憂悲苦惱]에 반연되나니, 이와 같이 하여 오직 큰 고통의 무더기가 있느니라.
여섯 가지 감관이 스러지면 닿음이 스러지고, 닿음이 스러지면 느낌이 스러지고, 느낌이 스러지면 욕망이 스러지고 욕망이 스러지면 잡음이 스러지고, 잡음이 스러지면 존재가 스러지고, 존재가 스러지면 낢이 스러지고, 낢이 스러지면 늙어 죽음과 근심ㆍ슬픔ㆍ괴로움이 스러지나니, 이와 같이 하여 오직 큰 고통의 무더기가 스러지느니라. 미륵이여,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느니라.
015_0120_b_01L미륵이여, 이를 모든 보살마하살이 마침내 여덟 가지의 법을 성취한다고 하나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훌륭하게 나아가는 법 중에서 물러나지도 않고 옮기지도 않으며, 보살의 행을 행할 때에 온갖 악마와 원수와 적을 항복 받으며, 사실대로 온갖 법의 자체의 모습을 알며, 모든 세간에서 마음이 고달프지 않으며, 마음이 고달프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빠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미륵보살마하살과 그 밖의 여러 보살마하살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며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인 듯 아닌 듯 하는 따위의 일체 대중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믿어 받고 받들어 행하였다.
【답】버림[捨] 등의 네 구절은 보시와 계율과 수행하는 형상의 이 세 가지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이것은 보살ㆍ외도ㆍ성문ㆍ벽지불에게 공통되는 법이다. 깊은 마음 등의 네 구절, 곧 그 네 가지 법은 오직 보살만이 행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에게 공통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이 수다라를 말씀하셨다.
015_0120_c_01L외도와 범부에 있어서는 선지식을 여의고 바른 법을 듣지 않으며 잘 생각하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있음의 소견[常見] 등에 망령되이 집착하여 업인(業因)을 모으므로 모든 번뇌[結使] 따위가 서로 의지하면서 힘을 지녀 세간의 원인[因]을 더욱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견고하게 허망한 데에 집착하여 결정코 세간의 원인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진리의 소견을 여의기 때문이며, 다른 이를 이롭게 한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며, 세상의 즐거움을 탐내며 집착하기 때문이다.
또, 성문ㆍ벽지불승의 사람은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그로부터 이미 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고서 나고 죽음의 바다에 있는 사람들을 건너게 하려 하다가, 세간은 허물이며 근심이라고 말함을 듣고 다시 스스로 소견이 적어져서 세간의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의 즐거움을 즐기어 세간을 버리려고 하여 벗어나는 도[出道]를 추구하므로, 비록 보시 등의 공덕을 지니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시 보시 등의 공덕을 여의지 않으며, 번뇌를 능히 항복받고 으뜸가고 훌륭한 법을 얻는다.
처음 보리심을 내어서 그 원인[因]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깊은 마음이 성취되고, 자신의 즐거움을 버리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기 때문에 보시 등의 공덕을 수행하여 큰 보리에 회향하며, 방편의 힘에 의하여 아주 적은 보시 등의 공덕이 더욱 자라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성문과 벽지불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으며, 마침내 반야바라밀을 성취하기 때문에 보시 등의 공덕을 깨끗이 할 수 있고 보살의 도에 머무르게 된다.
【답】원인이 없음[無因]과 원인이 뒤바뀜[顚倒因]을 막고 바른 인과를 따르기 위함이다. 그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 수다라를 말씀하셨다. 이 뜻은 무엇을 말하는가?
015_0121_a_02L答曰:“爲遮無因、顚倒因,隨順正因果,是故如來說此修多羅。此義云何?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함은 깊은 마음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마하살이 법계(法界)를 볼 때에 곧 보리심의 장애인 몸에 대한 고집[身見] 등의 온갖 번뇌를 영원히 여의게 됨으로써 성문과 벽지불의 자리를 벗어나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며, 초지(初地)에서 보리심을 일으킨 그 원인[因]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깊은 마음을 증득하였나니, 그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옮기지도 않는다’ 함은 훌륭한 법을 증득했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시의 행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이는 또 무슨 뜻인가? 해침이 없는 마음을 일으키는 근본의 업으로써 맨 위의 으뜸가고 훌륭한 행을 껴잡나니, 그러므로 근본의 업을 옮기거나 여의지 않고 보시 등의 행을 수행하며 온갖 곳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이런 이치 때문에 옮기지도 않는다고 한다.
또 ‘보살의 행을 행할 적에 온갖 악마와 원수와 적을 항복시킨다’ 함은 회향의 방편을 잘 아는 마음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간략하게 네 가지 악마[四魔]를 말함이니, 번뇌의 악마[煩惱魔]ㆍ쌓임의 악마[陰魔]ㆍ죽음의 악마[死魔]와 하늘의 악마[天魔]이다.
015_0121_b_01L그러므로 보살은 몸에 대한 고집 등의 온갖 번뇌를 끊고, 또 살지 못하리라는 두려움[不活畏] 등을 멀리 여의어 자신의 즐거움을 버리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사랑함과 가엾이 여김과 보시 등의 행인 선한 뿌리의 공덕을 닦고 모아서 모두 다 살바야지혜(薩婆若智)5)에 회향하며, 온갖 악마들의 나쁜 길을 멀리 여읜다. 그 때문에 보살의 행을 행할 적에 온갖 악마와 원수와 적을 항복시킨다고 한다.
또 ‘모든 세간에서 마음이 고달프지 않다’ 함은 크게 사랑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015_0121_b_06L又言於諸世閒心不疲惓者,以大慈大悲心成就故。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마하살은 언제나 세간의 일체 중생들이 어리석음의 화살에 맞아서 마음에 고통을 받으므로 크게 사랑하는 마음과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성취했기 때문에 중생들의 이익은 곧 자기 이익으로 보나니, 그 때문에 크게 사랑함과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생기며, 곧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세간에서 마음이 고달프지 않다고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법의 제 자체의 모습[自相]은 동일한 모습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또 무슨 뜻인가? 모든 보살마하살은 세상의 도리를 잘 알고 첫째가는 이치의 진리에 대한 방편을 잘 안다. 이 때문에 있다[有] 없다[無]는 두 가지 치우친 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015_0121_c_01L비록 항상 첫째가는 이치의 진리를 버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나 세간의 도리에 대한 일을 잘 안다. 왜 그러한가? 언제나 모든 함이 있는 행[有行爲]을 밝게 봄으로써 세간의 마음과 생각과 말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없다고 집착하는 치우친 소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 두 가지의 이치를 잘 아는 까닭에 사실대로 온갖 법의 자체의 모습을 안다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로써 함이 있는 법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이다. 이는 또 무슨 뜻인가? 보살이 모든 함이 있는 행을 자세히 살펴 사람이 없고 중생이 없고 주장이 없고 자재함이 없어서 갈마들며 다 같이 서로가 의지하여 더욱 자라면서 힘을 지녀 본래의 업에 의하여 온갖 업을 지음은, 마치 요술하는 사람이 요술로 사람을 만들어서 가고 오고 뛰고 머뭇거리며 갖가지로 재주를 부려도 고달픔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달프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마음이 고달프지 않다’ 함은 중생이라는 고집[衆生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015_0121_c_11L又心不疲惓者,以離衆生相故。此明何義?
함이 있음의 변천하는 모든 법[諸行]은 모두가 진실함이 없어서 오직 갖가지 모든 업의 부림과 행과 다른 힘만이 있어서 서로가 의지하기 때문에 함이 있음의 변천하는 모든 법을 성취한다. 그 때문에 보살은, 함이 있는 법은 진실로 신아(神我)가 없는 줄 알고서 다른 이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따라 모두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6)을 더욱 자라게 하고 이룩함으로써 빠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다.
【답】부정취(不定聚)에 의한 보살이 정정취(正定聚)를 구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행을 성취하는가? 정정취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니, 그 보살의 정정취에 들어가서 바른 인연의 행 닦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그 때문에 여래께서는 이 수다라를 말씀하셨다. 이 뜻은 어떠한 것인가?
015_0122_a_01L보살로서 아직 초지의 바른 지위를 증득하지 못하면, 비록 한량없는 겁 동안 선한 뿌리를 익히고 모은다 하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位]를 얻을 수가 없고 마침내 두려움 없는 곳을 얻지 못하고 마음이 편안하거나 고요하지 못하여 항상 세간의 괴로움에 핍박을 당하고,
보리심의 근본이 되는 사랑함과 가엾이 여김의 마음의 힘을 얻지 못하고 뛰어난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세간 길의 지혜로써 열두 가지 인연을 살피고 사실대로 함이 있는 변천을 살피어 세간의 길에 의지하므로, 고요한 법계를 자세히 살피고 큰 열반을 구하면서도 방편의 지혜[方便智]가 없으므로 성문과 벽지불의 자리에 떨어진다.
이런 이치 때문에 여래께서는 경전에서 말씀하셨다. “가섭(迦葉)아, 마치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이 비록 가짜 유리의 구슬을 닦고 깎는다 하더라도 그 가짜 구슬은 끝내 진짜 유리 보배로 만들 수가 없는 것처럼, 그와 같으니라. 가섭아, 모든 성문들이 계율ㆍ선정ㆍ지혜와 두타(頭陀)7) 등의 온갖 공덕을 닦는다 하더라도 끝내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없느니라.
015_0122_b_01L이런 이치에 의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보적경(寶積經)』에서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의 그릇된 선지식이 있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 성문승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만 제도되려고 하는 이이며, 둘째 연각승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조그마한 일을 기뻐하고 즐기는 이이며, 셋째 외도의 경전인 로가야(路伽耶)9) 등을 읽는 이이며, 넷째 온갖 글과 말의 수식을 익히고 배우는 이이다. 여기에 있는 이 네 가지를 가까이 하면 세간의 이익만이 불어나고 법의 이익은 불어나지 않느니라.”
또, 어떤 경 중에서 대덕 가섭이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말하였다. “어떤 5역(逆)을 범한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모든 공덕을 닦으면 큰 보리를 증득할 수 있지만 아라한은 그러할 수 없습니다. 마치 감관이 부서진 사람은 다섯 가지 욕심의 경계에 능히 하는 것이 없고 더욱 더하게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모든 범부로서는 여래의 은혜를 갚겠지만 성문은 갚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범부인 사람은 부처님의 공덕을 듣고 3보(寶)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 수 있지만 성문승의 사람은 비록 죽을 때까지 모든 부처님 법의 열 가지 힘[十力]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畏]을 듣는다 하더라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10지 수다라 중에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이와 같은 마음을 내면 즉시 범부의 자리를 뛰어넘어 보살의 지위에 들어간다. 부처님의 집[佛家]에 태어나 있으면서 성바지가 높고 귀하며, 헐뜯고 싫어할 수 없이 온갖 세간의 길을 뛰어넘어 보살의 법 중에 잘 머무른다. 보살의 바른 처소에 잘 머물러서 3세에 평등한 진여(眞如)의 법 중에 들어가며, 여래의 종자 중에서 반드시 마지막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마치리라.”
보살로서 이러한 법에 머무르면 보살의 환희지(歡喜地)에 머무른다고 하며, 움직이지 않는 법이기 때문에 다섯 가지 두려움[五怖畏]을 뛰어넘는다. 이른바 살지 못하리라는 두려움[不活畏], 나쁜 이름의 두려움[惡名畏], 죽음의 두려움[死畏], 나쁜 길에 떨어지는 두려움[墮惡道畏], 대중의 위덕에 대한 두려움[大衆威德畏]이니, 그는 모두 멀리 여의게 된다. 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들은 나[我] 따위의 고집[相]을 떠났기 때문이다.
온갖 세간의 길을 뛰어난 이는 나오는 것이 뛰어났나니, 세간의 길로써는 껴잡을 수 없어서 길을 나와서 사는 것과 서로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 세간을 벗어나는 길에 들어간 이는 들어가는 것이 뛰어났나니, 세간을 벗어나는 길로써 껴잡아 길에 들어가서 사는 것과 서로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
015_0123_a_01L보살의 법 중에 잘 머무른 이는 몸이 뛰어났나니, 크게 가엾이 여기는 것으로써 바탕을 삼아 남의 일을 하면서도 곧 자기의 일이라 여기어 제 몸과 서로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 보살의 바른 처소에 잘 머무른 이는 처소가 뛰어났나니, 세간의 방편을 버리지 않고 좋고 교묘한 솜씨에 물들지 않으며 바르게 살 데에 머무는 것과 서로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
3세의 평등한 진여의 법 중에 들어간 이는 업(業)이 뛰어났나니, 공(空)과 거룩한 지혜[聖智]를 따르면서 사는 것과 서로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 여래의 종자 중에 반드시 마지막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마치는 이는 마지막이 뛰어났나니, 부처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고 마지막 열반의 도가 성취하는 것과 서로 비슷한 법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범부로 태어나고 보살로 태어날 적의 태 안에 드는 것이 같지 아니함을 보였나니, 물듦이 있고 물듦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다면 차례로 집이 서로 비슷하지 않고 성바지가 서로 비슷하지 않고 나감이 서로 비슷하지 않고, 들어감이 서로 비슷하지 않고, 몸이 서로 비슷하지 않고, 처소가 서로 비슷하지 않고, 생업(生業)이 서로 비슷하지 않고, 성취(成就)가 서로 비슷하지 않다. 이와 같은 것은 존자(尊者) 바수반두[婆藪槃豆]가 ‘마지막에 성취되는 마음’이라고 말하였으며, 그 밖의 논사(論師)는 다시 법 해석이 다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그 법이야말로 참 모습이 없으며 만약 참 모습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법이 있다고 하리오.
015_0123_a_19L因緣和合生, 彼法無實體, 若無實體者,
云何名有法?
015_0123_b_01L 거룩한 이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마하살이『무진경(無盡經)』에서 말하였다. “인연을 자세히 살피는 방편지(方便智)로써 온갖 법은 인(因)에 의지하고 연(緣)에 의지하여 화합하면서 생기는 줄 알며, 만약 온갖 법이 인에 의지하고 연에 의지하여 화합하면서 생긴다면 그 법에는 나[我]와 사람과 중생과 수명에 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나가 아니고 사람과 수명이 아니라면 그 법은 과거ㆍ현재ㆍ미래라 함을 헤아릴 수 없으리라.”
참 모습이 없다 함은 허공과 같다는 것인가, 함이 있음과 같다는 것인가? 만약 허공과 같다고 하면 곧 이는 물건이 없으며, 만약 함이 있음과 같다고 하면 곧 이는 무상하리라. 나와 사람ㆍ중생ㆍ수명 등이라 함은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 갖가지 이름들이니, ‘참 나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경전에서 대해혜(大海慧)보살이 거룩한 이 대비사범(大悲思梵)을 위하여 온갖 부처님 법의 성취를 말하는 것과 같나니,「문답품(問答品)」중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123_b_14L又如經中,大海慧菩薩爲聖者大悲思梵說成就一切佛法問答品中,偈言: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기는지라 그 법은 참 모습이 없는 것이며 법이 만약 참으로 모습 없다면 그 법은 실제로 난 것이 아니리라.
015_0123_b_16L諸法因緣生, 彼法無實體, 法若實無體,
彼法實不生,
보살은 중생들이 이와 같이 실제가 없는 줄 알 것이며 그 실제의 지혜에 의지하여 모든 법의 허망함과 진실임을 알지로다.
015_0123_b_18L菩薩知衆生, 如是無實際,
依彼實際智, 知諸法虛實。
015_0123_c_01L 이런 이치 때문에, 보살은 온갖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며 중생은 그 참 모습[實體]이 없는 줄 안다. 만약 이와 같다면, 온갖 세간의 마음과 의식은 모두 허망한 분별이며, 그 보살의 마음은 온갖 법의 실제에 평등하고 걸림이 없어서 지혜와 행은 곧 처음의 마음[初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라 한다. 그 때문에 게송으로 말하겠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 마음에서 삼계가 모두 공(空)한 것으로 보고 한 법의 형상도 일으키지 않으며, 그 한 법의 형상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온갖 처소에 낢을 원하지 않으며, 사랑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다스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언제나 고요한 법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나니, 이런 이치 때문에 ‘그 보살은 범부의 자리를 뛰어넘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게송으로 말하겠다.
‘공을 곧 보리라고 한다’ 함은 사실대로 중생이 허공인 것인 줄 깨달아 앎을 보리라고 하나니, 그 때문에 거룩한 분 무진의보살은 4념처(念處)에서 말하였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법을 닦고 살필 때에, 만약 온갖 법이 공, 형상 없음[無相], 소원 없음[無願], 행이 없음[無行], 남이 없음[無生], 일어남이 없음[無起]을 여의고 12인연을 여의었다고 보면 사실대로의 깨달음이라 말하지 못한다.
015_0124_a_01L 만약 적은 법이라도 공, 형상 없음, 소원 없음, 행이 없음, 남이 없음, 일어남이 없음을 여의고 12인연을 여의었다고 보지 않으면, 보살로서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은 그 참 모습이 없는 것으로 깨달아 안 것이다. 이를 사실대로의 깨달음이라 한다.”
그러므로 게송으로 말하기를 ‘곧 공(空)을 보리(菩提)라고 한다’고 하였다. 만약 초지 보살로서 일체 중생들이 공한 것인 줄 깨달아 알고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버리고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취득한다면, 이것은 곧 초지 보살로서 다스려야 할 번뇌라고 하리라. 그 때문에 게송으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번뇌의 병으로써 벽지불의 자리에 떨어지고 성문의 지위를 취득한다 하셨다’고 하였다. 또 다시 게송으로 말하겠다.
공을 알고 두 가지 치우침[二邊]을 여의면 두 가지 물듦의 열반이 없으리니 열반의 물듦이 없음으로써 부처님께서는 보살의 자리라고 하셨다.
015_0124_a_09L知空離二邊, 無二染涅槃, 以無涅槃染,
佛說菩薩位。
‘공을 알고 두 가지 치우침을 여읜다’ 함의 이 뜻은 무엇인가? 여래께서 『법인경(法印經)』에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차별이 없는 법이라 함은 곧 공임을 이르느니라.’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공이라 함은, 이는 무엇을 말씀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말하고 있는 공이라 하는 것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만약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면 그는 표시할 수가 없는 것이며, 만약 표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는 세간이 아니고 세간을 벗어난 것도 아니다. 세간이 아니고 세간을 벗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공이라 말하느니라.’”
015_0124_b_01L함이 없음[無爲]의 열반을 취득하기 때문이며, 또 부처님의 보리를 방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시 다른 뜻도 있다. 번뇌의 병이 없다 함은 번뇌의 병을 떠났기 때문이니, 그가 2승(乘)의 열반을 취득하지 않고 본래 서원한 힘에 의지하여 중생들 이롭게 함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와 같다면 2승의 병이 없고 번뇌의 병도 없으므로 사실대로 온갖 법의 공(空)을 닦고 행하리니, 이를 모든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한다.
온갖 번뇌를 멀리 여의고 온갖 다스릴 법[對治法]을 멀리 여읠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보살은 두 가지 행이 없고 본래 서원한 힘에 의지하여 중생들 이롭게 함을 버리지 않으며, 그 때문에 성문과 벽지불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고 세간의 번뇌에 물듦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 등의 가장 어려운 훌륭한 일이다.
비록 일체 중생들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생을 위하여 모든 행을 닦고 행하므로, 이와 같은 일은 생각할 수도 없고 말로 할 수도 없으며 온갖 세간에서는 깨달아 알 수도 없고 제일의 있기 드문 일로서 온갖 성문과 벽지불 등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치 때문에, 용수보살마하살의『집보리공덕론(集菩提功德論)』에서 게송으로 말씀하였다.
015_0124_c_01L 첫째 공(空)을 믿고 알 수 있으며 또한 인과도 믿음이며, 둘째 온갖 법에는 나[我]가 없음을 알고서 중생들에게 사랑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킴이며, 셋째 깊이 열반을 즐기면서 나고 죽음에 노닒이며, 넷째 짓는 것과 하는 일이 모두 중생을 위한 것이지만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니라.” 만약 이와 같은 이면, 곧 부처님 집에 태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게송으로 말하겠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번뇌를 여읨으로써 곧 보살의 지위를 증득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의 집에 태어난다.
015_0124_c_03L菩薩摩訶薩, 以離諸煩惱, 則證菩薩位,
是故生佛家。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또 ‘부처님의 집’이라 함은 어떠한 법을 행하면 여래의 집에 태어나게 되는가? 번뇌를 여의기 때문이며, 공의 행을 알기 때문이며, 스스로의 지위를 알기 때문이며, 또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을 짓기 때문이며, 행을 헷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법을 얻으면 보살마하살로서 부처님 집에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만약 그와 같다면, 보살마하살은 헐뜯거나 싫어할 수 없으며 온갖 하늘 등의 꾸짖을 수 있는 법은 모두 다 멀리 여의었으므로 부처님의 훌륭한 집에 태어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성바지가 높고 귀하여서 헐뜯거나 싫어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여래의 수다라에서 바라문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5_0125_a_01L
하늘과 사람과 건달바와 용과 야차며 날짐승들의 이와 같은 따위의 모든 업은 모두 다 이미 다하여 없어졌다.
015_0124_c_23L天人乾闥婆, 龍夜叉衆鳥, 如是等諸業,
皆悉已滅盡。
그 번뇌가 흩어지고 다하여 없음은 마치 연꽃이 물들지 않음 같나니 만약 이런 줄을 알 수 있다면 욕심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으리라.
015_0125_a_02L彼漏散滅盡, 如蓮華不染,
若能如是知, 不染著諸欲。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을 참된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며, 하늘 따위거나 외도의 제자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게송으로 말하겠다.
015_0125_a_03L如是菩薩摩訶薩是名眞佛子,非天等異子。是故偈言:
보살이 실제(實際)를 알고 그리고 바라밀(波羅蜜)을 닦으며 샘[漏]이 없는 길을 얻음으로써 그 때문에 세간을 넘어 벗어나게 된다.
015_0125_a_05L菩薩知實際, 及修波羅蜜, 以得無漏道,
故出過世閒。
‘보살이 실제를 안다’ 함은 이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온갖 법은 모두 다 고요함을 밝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여래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5_0125_a_07L菩薩知實際者,此明何義?明一切法皆悉寂靜。是故如來而說偈言:
온갖 법은 바탕이 없고 진실로 모든 일이 없음으로써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실제라고 이름할 수 있느니라.
015_0125_a_09L一切法無體, 以實無諸事, 不生不滅故,
得名爲實際。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은 온갖 법에 바탕이 없어서 참된 실제임을 아나니, 반야바라밀로써 끊는 길의 행을 알고, 다섯 가지 바라밀로써 방편과 공덕의 길을 안다.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이 공덕과 지혜로써 부처님의 보리를 이룰 수가 있고 모든 번뇌를 다할 수가 있고 중생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
또, 모든 바라밀을 닦고 그대로의 실제를 알기도 한다. 어떻게 아는가? 보시한 이와 받는 이와 재물의 세 가지 법을 보지 않기 때문에 깨끗한 모든 바라밀을 닦고 행하며, 보살이 이와 같이 실제를 닦고 행하므로 샘이 없으며, 샘이 없기 때문에 온갖 세간의 길을 뛰어넘어 벗어난다. 그러므로 게송으로 말하겠다.
분별과 세간의 행이며 번뇌의 빽빽한 숲 속에서 세간의 지위를 잡아서 냄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길에 들어감이다.
015_0125_a_20L分別世閒行, 煩惱稠林中, 取出世閒位,
是入出世道。
015_0125_b_01L ‘분별과 세간의 행’이라 함은 간락하게 두 가지 분별이 있다. 첫째는 실제대로 분별함[實分別]이니, ‘빛깔은 바로 볼 수 있는 형상이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따위이며, 둘째는 더 낫게 분별함[勝分別]이니, 곧 ‘그 빛깔 중에는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다’고 하는 따위이다.
사실대로 온갖 법을 알되 실제로 더 낫게 쌓임으로 하나다 둘이다 라고 알며 중생들의 일을 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중생들을 교화할까 한다.
015_0125_b_07L如實知諸法, 實勝陰一二, 不見衆生事,
云何化衆生?
보살마하살은 샘이 없는 지혜[無漏智]를 닦고 행하며 그리고 공덕의 행으로써 세간을 벗어나는 길에 나아간다.
015_0125_b_09L菩薩摩訶薩, 修行無漏智,
及以功德行, 趣於出世道。
그 때문에 보살은 세간을 벗어나는 길에 들게 된다. 【문】어떻게 보살의 법 중에 잘 머무르는가? 【답】게송으로 말하겠다.
015_0125_b_10L是故菩薩入出世閒道。”問曰:”云何善住菩薩法中?”答曰:“偈言:
보살의 모든 자리에 들어가 이미 그 법 중에 편안히 머물러 신통과 자재함에 의지하여서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느니라.
015_0125_b_12L入菩薩諸地, 安住己法中, 依通及自在,
化一切衆生。
‘보살의 모든 자리에 들어간다’ 함은 아래 경전에서의 말씀과 같이, 지(地)에서 지로 옮기어 가는 것을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을 교화한다’ 함은 아래 경전에서의 말씀과 같이, 백 가지 삼매[三昧]를 얻고 한량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에 이르기까지 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재함을 얻는다’ 함은 말대로의 갖가지 공덕을 어떠한 때에 어떠한 법으로 어떠한 자재함을 어떻게 성취하며 어떠한 행에 종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자재함을 얻으면 온갖 부처님 법의 종자와 이치에 물러나지 않으며, 온갖 부처님 법을 성취하기 때문에 보살의 법 중에 잘 머무른다고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법을 닦고 행하면 이를 보살의 바른 처소 중에서 편안히 머무른다고 한다.
015_0125_c_02L菩薩摩訶薩, 修行如是法,
是名爲安住, 菩薩正處中。
그 때문에 경전에서 ‘보살의 바른 처소에 잘 머무른다’고 하셨다. 【문】어떻게 3세의 평등한 진여의 법 중에 들어가는가?
015_0125_c_03L是故,經言善住菩薩正處。”問曰:“云何入三世平等眞如法中?”
【답】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알고 부처님과 보살의 행을 알며 부처님과 3세가 공(空)한 줄 알면 이것을 뜻으로 잘 들었다[入] 하리라.
015_0125_c_05L答曰:“偈言:
知諸佛菩提, 及佛菩薩行, 知佛三世空,
是名善意入。
이 뜻은 무엇인가? 일체 3세 부처님들의 법신(法身)이 평등함을 안다는 것이다. 또 다시, 모든 부처님들은 육신[色身]에 의지하여 알 수 있기 때문에 온갖 부처님과 보살의 행을 닦고 행하며, 온갖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은 다 인연으로부터 화합하여 생기고 그 참 모습이 없다 함을 아는 것이다.
‘보살이 번뇌를 깨끗이 한다’ 함의 이 뜻은 무엇인가? 초지에서 다스려야 할 몸에 대한 소견 등의 번뇌는 견도(見道)할 때에 그 안에서 모두 다 멀리 여의기 때문에 그 견도하는 가운데서 번뇌를 멀리 여읜다. 이 앞에서 말한 온갖 법이 3세에 평등함과 여실(如實)을 말하는 데서 말한 것과 같다.
015_0126_a_01L교화하는 힘에 의하여 모든 번뇌를 깨끗이 하기 때문이며 얻기 때문이니, 아래의 경전에서 말씀하되 “그러므로 나는 먼저 선법에 머물러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법에 머무르게 하여야겠다”고 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사람이 스스로가 선함을 행하지 않고 선한 행을 갖추지 않으면서 다른 이를 위하여 법을 말하며 선법에 머무르게 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치가 없기 때문이다.
크게 사랑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위의 경전에서 말씀하되 ‘이 마음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것으로써 우두머리를 삼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보살은 스스로가 번뇌를 깨끗이 하고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 하며 큰 자비를 갖추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며 반드시 큰 보리에 나아가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