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일만 이천인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다 아라한으로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고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심해탈(心解脫)을 잘 얻고, 혜해탈(慧解脫)을 잘 얻었다. 마음을 잘 조복(調伏)하여 사람 가운데 큰 용이요, 마땅히 지어야 할 것을 짓고, 지을 것을 이미 갖추어 모든 무거운 짐을 여의고, 자신의 이로움을 얻어 모든 존재의 결박으로부터 벗어나 바른 지혜와 심해탈을 잘 얻었으며, 모든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제일의 피안(彼岸)에 이른 이들이었다.
보살마하살 팔만 인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서 물러나지 않았으며, 다라니(陀羅尼)와 말 잘하는 변재(辯才)를 얻어 물러나지 않는 법륜(法輪)을 굴리며, 한량없는 백천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였고, 여러 부처님 계신 곳에서 모든 선근(善根)을 심었으므로 항상 여러 부처님께서 칭찬하셨으며, 대자비(大慈悲)로써 몸과 마음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혜를 잘 이해하였으며, 큰 지혜를 통달하여 피안에 이르렀다. 그 이름이 한량 없는 세계에 널리 알려져 무수한 백천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었다.
015_0371_b_01L【釋】이 법문 중에 처음 제1품은 일곱 가지 공덕의 성취를 밝혔으니,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 서분(序分)을 성취함이요, 둘째 대중을 성취함이요, 셋째 여래께서 설법하고자 하시는 때가 이르렀음을 성취함이요, 넷째 설법하신 법에 의거하여 위의(威儀)에 따라서 머무름을 성취함이요, 다섯째 말씀하실 인연에 의지함을 성취함이요, 여섯째 대중이 현재 앞에 존재하여 법을 듣고자 함을 성취함이요, 일곱째 문수사리보살이 답함을 성취함이다.
또 서분을 성취함이라는 것은 이 법문 가운데 두 가지 뜻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이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 모든 법문 가운데 가장 뛰어난 뜻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둘째 자재한 공덕의 뜻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다. 예컨대 왕사성은 다른 모든 성보다 뛰어나고 기사굴산은 다른 모든 산보다 뛰어나므로, 경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기사굴산 중에 머무르셨다”라고 한 것이다.
대중을 성취함이라는 것에는 네 가지 뜻의 성취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수(數)를 성취함이요, 둘째 행을 성취함이요, 셋째 섭공덕을 성취함이요, 넷째 위의에 법답게 머무름을 성취함이다. 수를 성취함이라는 것은 대중이 무수한 까닭이다. 행을 성취함이라는 것은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모든 성문이 소승의 수행을 닦았음을 이름이요, 둘째 모든 보살이 대승의 수행을 닦았음을 이름이요, 셋째 모든 보살이 수시로 능히 대승을 수행함을 나타내 보임이니, 예를 들면 발타바라(颰陀婆羅) 보살 등 열여섯 사람이 보살의 불가사의한 일을 구족하고 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ㆍ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 등의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넷째 출가인의 위의(威儀)가 일정하여 보살과 같지 않음을 이른다.
015_0371_c_01L아라한(阿羅漢)의 공덕 성취에 대해서 그 16구에 세 가지 문(門)으로 뜻을 포섭하여 나타내 보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 문인가? 첫째 상상(上上)을 일으키는 문[上上起門]이요, 둘째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의 문이요, 셋째 사(事)를 섭취하는 문이다. 상상(上上)을 일으키는 문이란, 모든 번뇌가 이미 다했기 때문에 아라한이라 하고, 마음에 자재(自在)를 얻었기 때문에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였다라고 하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했기 때문에 아라한이라 하고, 마음에 번뇌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 자재를 얻었다고 하고, 심해탈을 잘 얻고 혜해탈을 잘 얻었기 때문에 마음에 자재를 얻었다고 하고, 능히 보는 자[能見]와 보이는 대상[所見]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다시는 번뇌가 없다고 하고, 이미 심해탈을 잘 얻고 혜해탈을 잘 얻었기 때문에 마음을 잘 조복(調伏)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 가운데 큰 용이란 모든 나쁜 길을 가되 평탄한 길을 거리낌 없이 가는 것처럼 행하여야 할 것은 이미 행하고, 이르러야 할 곳은 이미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어야 할 것은 이미 지었다는 것은, 사람 가운데 큰 용이 이미 다스리기를 다하여 번뇌의 원적(怨敵)을 항복받았기 때문이다. 지을 것을 이미 갖추었다는 것은 다시는 죽은 뒤에 생(生)을 받지 아니하고 상응하는 일을 이미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무거운 짐을 여의었다는 것은 응당 지어야 할 것을 짓고, 지을 것을 이미 갖추어 후생(後生)의 무거운 짐을 이미 여읜 때문이요, 자신의 이로움을 얻었다는 것은 이미 무거운 짐을 버리고 열반을 증득하였기 때문이요, 모든 존재의 결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은 자신의 이로움을 얻고 모든 번뇌의 원인을 끊었기 때문이요, 바른 지혜와 심해탈을 잘 얻었다는 것은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마음에 자재를 얻었다는 것은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의 지(智)를 잘 알기 때문이요, 제일의 피안에 이르렀다는 것은 바른 지혜와 심해탈을 잘 얻고 신통(神通)과 다툼이 없는[無諍] 삼매(三昧) 등 모든 공덕을 잘 얻었기 때문이다. ‘대아라한 등’이란 마음에 자재를 얻어 피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이 잘 아는 이들이란 모든 왕과 왕자와 대신(大臣)과 제석천왕[帝釋]과 범천왕(梵天王)들이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요, 다시 성문ㆍ보살ㆍ부처님 등은 뛰어난 지혜를 지닌 분인지라, 그 뛰어난 지혜를 지닌 자들이 모두 다 잘 알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다 잘 아는 이들이라고 한 것이다.
015_0372_a_01L총상(總相)과 별상(總相)의 문이란, ‘모두 아라한이다’라고 한 등의 16구의 첫 구절은 총상(總相)이고, 나머지 구절은 별상(總相)이다. ‘모두 아라한이다’라고 한 것에서 그 아라한이라는 이름에는 열다섯 가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음식ㆍ와구(臥具) 등의 공양과 공경을 받음에 응하기 때문이요, 둘째 대중들을 도와 모든 중생을 교화함에 응하기 때문이요, 셋째 마을과 성읍(城邑)에 들어감에 응하기 때문이요, 넷째 모든 외도들을 항복받음에 응하기 때문이요, 다섯째 지혜로써 속히 법을 관찰함에 응하기 때문이요, 여섯째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설법함에 법답게 상응하여 피로하거나 싫증 내지 않음에 응하기 때문이요, 일곱째 비고 한적한 곳에 고요히 앉아 음식ㆍ의복과 모든 생활에 필요한 것을 쌓아 두지 않고 모아 두지 않고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할 줄 앎에 응하기 때문이요, 여덟째 한결같이 선행을 행하되 모든 선정에 집착하지 않음에 응하기 때문이요, 아홉째 공(空)의 성스러운 행을 행함에 응하기 때문이요.
015_0372_b_01L사를 섭취하는 문이란 바로 15구(句)이니, 열 가지 공덕을 섭취하여 말할 수 있는 과(果)와 말할 수 없는 과(果)를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첫째 공덕을 포섭하여 거두어들임을 두 구절로 나타내 보이니, 경에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 세 구절로 모든 공덕을 거두어들였으니 1구절은 세간의 공덕을 항복 받음이니, 경에 “마음에 자재를 얻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2구절은 출세간 학인(學人)의 공덕을 항복 받음이니, 경에 “심해탈을 잘 얻고, 혜해탈을 잘 얻었다”라고 한 것이다. 셋째 어긋나지 않는 공덕을 거두어들임이니, 여래의 가르침과 행을 수순하는 까닭이다. 경에 “마음을 잘 조복(調伏)하였다”라고 하는 것 같은 것이다.
넷째 뛰어난 공덕을 거두어들임이니, 경에 “사람 가운데 큰 용이다” 하는 것이다. 다섯째 응당 지어야 할 뛰어난 공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요, 응당 지어야 할 것이란 능히 법공양에 의지하여 여래를 공경하고 존중함을 말함이니, 경에 “지어야 할 것을 지었다”라고 한 것이다. 여섯째 원만 구족한 공덕을 거두어들임이니, 배움의 단계[學地]를 원만 구족함이다. 경에 “지을 것을 이미 갖추었다”라고 한 것 같은 것이다. 일곱째 세 구절에 지나친 공덕을 거두어들임이니, 첫째 지나치게 사랑하는 까닭이요, 둘째 지나치게 생명을 구하여 공양ㆍ공경하는 까닭이요, 셋째 상계(上界)ㆍ하계(下界)를 뛰어넘어 이미 배움의 단계를 넘은 까닭이니, 경에 “모든 무거운 짐을 여의었고 자신의 이로움을 얻었으며 모든 존재의 결박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라고 하였다.
여덟째 상상(上上)의 공덕을 거두어들임이니, 경에 “바른 지혜와 심해탈을 잘 얻었다”라고 하였다. 아홉째 응당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공덕 지음을 거두어들임이니, 경에 “모든 마음에 자재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열째 최상의 으뜸 공덕을 거두어들임이니, 경에 “제일의 피안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모든 보살에 대해서는 13구(句)에 공덕을 두 가지 문으로 포섭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상지문(上支門)과 하지문(下支門)이요, 둘째 사(事)를 섭취하는 문이다.
상지문과 하지문이란 총상과 별상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총상이고, 나머지는 별상이다. 그 물러나지 아니함[不退轉]에 열 가지가 있음을 나타내 보이겠다. 첫째 법을 들음에 머물러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모두 다라니를 얻었다”라고 한 것이다. 둘째 요설(樂說)에서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매우 말 잘하는 변재”라고 한 것이다. 셋째 [법을] 말함에서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물러나지 않는 법륜을 굴린다”라고 한 것이다.
015_0372_c_01L넷째 선지식에 의지하여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이것은 몸과 마음의 업으로 색신(色身)의 섭취에 의지하는 까닭이다. 경에 “한량없는 백천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까닭이요, 여러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모든 선근을 심은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다섯째 모든 의심을 끊음에서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항상 여러 부처님께서 칭찬하셨다”라고 하였다. 여섯째 어떠어떠한 일을 설법하기 위하여 그들 법에 들어가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대자비로써 몸과 마음을 닦는다”라고 한 것이다.
일곱째 일체지혜의 여실한 경계에 들어가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부처님 지혜에 잘 들었다”라고 한 것이다. 여덟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에 의거하여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큰 지혜를 통달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아홉째 여실한 경계에 들어가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피안에 이르렀다”라고 한 것이다. 열째 지어야 할 것을 짓는 데에 주지(住持)하여 물러나지 아니함이니, 경에 “한량없는 백천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사(事)를 섭취하는 문이란 모든 보살이 어떤 청정한 지(地) 가운데에 머물러서 어떠한 방편을 가지며, 어떠한 경계 가운데에서 응당 지어야 할 것을 지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지(地)의 청정함이라 한 것은 8지 이상의 3지는 상 없는 행[無相行]으로서 고요하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방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묘법을 섭취하는 방편이니 묘법에 주지(住持)하여 말 잘하는 변재(辯才)의 힘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요, 둘째 선지식을 섭취하는 방편이니, 선지식에 의지하여 지어야 할 것을 짓는 것이다. 셋째 중생을 섭취하는 방편이니, 중생을 버리지 아니하는 것이요, 넷째 지혜를 섭취하는 방편이니, 중생을 교화하여 그 지혜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경계(境界)라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015_0373_a_01L다시 사(事)를 섭취하는 문이 있으니, 모든 지(地)에서 섭취하는 뛰어난 공덕이 이승(二乘)의 공덕과는 같지 아니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8지는 공용(功用)이 없는 지혜로서 8지 위나 8지 아래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지 않다는 것은 8지 아래의 공용의 행으로는 능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요, 위와 같지 않다는 것은 8지 위의 상(相) 없는 행은 능히 움직일 수 없고, 자연스럽게 행하기 때문이다. 9지 중에서 뛰어나게 정진하는 다라니문을 얻어 사무애(四無碍)ㆍ자재를 구족하기 때문이요, 10지 중에서는 물러나지 아니하는 법륜으로 부처님의 지위를 받아 전륜성왕의 태자와 같기 때문이며, 함께 공덕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공덕의 섭취를 성취한다는 것은, 어느 곳에 의하며 어떤 마음에 의하며 어떤 지혜에 의하며 어떤 경계의 행에 의하며 어떤 수행을 갖춤에 의하는가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어느 곳에 의한다는 것은 선지식에 의지하는 것이요, 어떤 마음에 의한다는 것은 내가 중생의 마음에 의지하여 교화함으로써 필경에는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요, 어떤 지혜에 의한다는 것은 세 가지 지혜에 의지함이니, 첫째 수기한 비밀 지혜요, 둘째 모든 신통의 지혜요, 셋째 진실한 지혜이다. 어떤 경계의 행에 의하며 어떤 수행을 갖춤에 의한다는 것은 곧 세 가지 지혜가 포섭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위의에 법답게 머무름을 성취한다는 것은 네 가지로 나타내 보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사부대중이 둘러앉음이요, 둘째 앞과 뒤요, 셋째 공양하고 공경함이요, 넷째 존중하고 찬탄함이니, 경에 “그때 세존께서는 둘러앉은 사부대중으로부터 공양과 공경과 존중과 찬탄을 받으시면서”라고 하였다.
여래께서 설법하시고자 하는 때가 이르렀음을 성취한다는 것은,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대승경(大乘經)을 말씀하신 까닭이다. 이 대승경에는 열일곱 가지 명칭이 있으니, 매우 깊은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첫째 무량의경(無量義經)이라 이름한 것은 글자의 뜻을 성취한 것이니, 이 법문으로써 매우 깊고 미묘한 경계의 법을 설명한 까닭이다. 그 매우 깊고 미묘한 경계란 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가장 뛰어난 경계이다. 둘째 가장 뛰어난 수다라(修多羅)라 이름한 것은 삼장(三臧) 중에서 가장 미묘하고 뛰어난 장(臧)을 성취한 까닭이다. 셋째 대방광(大方廣)이라 이름한 것은 한량없는 대승문 중에서 중생의 근기에 수순하여 머물러 유지함을 성취한 까닭이다.
015_0373_b_01L 넷째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라 이름한 것은 근기가 성숙한 보살을 교화하여 그릇에 따라 법을 성취한 까닭이다. 다섯째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시는 바라고 이름한 것은 부처님 여래에 의하여 이 법이 있는 까닭이다. 여섯째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법이라 이름한 것은 이 법이 매우 깊어 오직 여래께서만 아시는 까닭이다. 일곱째 모든 부처님의 장(臧)이라 이름한 것은 여래의 공덕과 삼매의 장이 이 경에 있는 까닭이다. 여덟째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곳이라 이름한 것은 근기가 미숙한 중생들은 법그릇이 아니므로 주지 않은 까닭이다. 아홉째 능히 모든 부처님을 낳는 경이라 이름한 것은 이 법문을 듣고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까닭이다.
열째 모든 부처님의 도량(道場)이라 이름한 것은 이 법문을 듣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는데, 나머지 경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열한째 모든 부처님께서 굴린 법륜(法輪)이라 이름한 것은 이 법문이 능히 모든 장애를 깨뜨리는 까닭이다. 열두째 모든 부처님의 견고한 사리(舍利)라 이름한 것은 여래의 진여법신(眞如法身)이 이 경에서 무너지지 않는 까닭이다.
열셋째 모든 부처님의 크고 교묘한 방편의 경이라 이름한 것은 이 법문에 의하여 큰 보리를 이루고 나서 중생을 위하여 하늘[天]ㆍ사람[人]ㆍ성문ㆍ벽지불 등의 법을 말하는 까닭이다. 열넷째 일승(一乘)을 말하는 경이라 이름한 것은 이 법문으로써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구경의 실체를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승(二乘)의 도는 구경이 아닌 까닭이다. 열다섯째 제일의(第一義)에 머무른다고 이름한 것은 이 법문이 곧 여래의 법신이 구경에 머무르는 곳인 까닭이다.
015_0373_c_01L열여섯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 이름한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 물에서 나온다[出水]는 뜻이니 소승의 탁한 진흙물에서 다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요, 다시 연꽃이 진흙물에서 나온다는 뜻이 있으니, 모든 성문이 여래가 대중 가운데 앉아 계시는 데에 들어가서 모든 보살과 같이 연꽃 위에 앉아서 위없는 지혜의 청정한 경계를 말씀하심을 듣고 여래의 비밀장을 증득함을 비유하는 까닭이다. 둘째 꽃이 핀다는 것은 중생들이 대승에 대해 그 마음이 겁이 많고 연약하여 능히 믿음을 내지 못하므로 여래의 청정 미묘한 법신을 열어 보여서 믿는 마음을 내게 하는 까닭이다.
열일곱째 (최상의) 법문이라 이름한 것은 성취를 섭취하는 까닭이다. 성취를 섭취한다는 것은 한량 없는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자신(字身)과 빈바라(頻婆羅)ㆍ아촉파(阿閦婆) 등의 게송(偈頌)을 섭취하는 까닭이다. 이 17구의 법문은 총상(總相)이고 나머지 구는 별상(別相)이니, 경에 “모든 보살을 위하여 대승경을 말씀하시니 무량의(無量義)라 이름한다”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말씀하신 바의 법에 의거하여 위의에 따라 머무름을 성취한다는 것은 어떠한 법에 의거하여 설법함을 나타내 보임이니, 세 가지 법에 의거한다. 첫 번째 삼매(三昧)의 성취에 의거함이다. 삼매의 성취를 두 가지로 나타내 보이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 자재한 힘을 성취하여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이요, 둘째 모든 장애를 여의어 자재한 힘을 따르는 것이다.
이 자재한 힘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중생을 수순하여 대치(對治)를 나타내 보이고 깨달음의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섭취함이요, 둘째 한량 없는 세상으로부터 내려오면서 굳게 집착한 번뇌를 대치하는 것이니, 경에 “이 경을 말씀하신 뒤에 결가부좌를 하시고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에 드셨다”는 등이다. 두 번째 기세간(器世間)에 의거함이다. 세 번째 중생세간(衆生世間)에 의거함이니, 세계가 진동하고 과거 무량겁의 일을 아는 것 등이다. 경에 “그때 하늘에서는 만다라꽃을 내리고, …… 환희하여 합장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을 뵈었다”라고 하였다.
015_0374_a_01L설법할 인(因)에 의지함을 성취한다는 것은 그 모든 대중에게 다른 모양[相]의 불가사의한 일을 나타내 보이시니 ‘여래께서 응당 나를 위해 말씀하시는구나’하고 우러러보고 (그 말씀을) 듣고자 하는 희유한 마음을 내는 것을 설법할 인이 성취되었다고 이름한다. 이 때문에 큰 광명을 놓아 모든 세계의 갖가지 일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먼저 여섯 가지로 진동하는 등의 바깥 일[外事]을 나타내 보이고, 다음에 이 법문 중에 안으로 증득한[內證] 깊고 비밀스런 법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또 갖가지 수와 갖가지 양의 기세간ㆍ중생세간, 구족한 번뇌의 차별, 구족한 청정의 차별, 부처님ㆍ법ㆍ제자의 차별에 의거하여 삼보를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다시 승(乘)의 차별이니, 부처님께서 계신 세계도 있고, 계시지 않은 세계도 있다. 중생으로 하여금 수행자는 아직 과(果)를 얻지 못했고, 해탈자는 이미 과를 얻었음을 알게 하고자 함이니, 경에 “모든 수행자와 해탈자”라고 한 것이다.
수가 갖가지라고 하는 것은 갖가지의 관(觀)을 나타내 보인 까닭이다. 대략 네 가지 관을 말하니, 첫째 식(食)이요, 둘째 법을 들음이요, 셋째 수행을 밝힘이요, 넷째 즐거워함[樂]이다. 경에 “그때 부처님께서는 미간의 백호상으로 광명을 놓아 …… 부처님의 사리로 칠보탑을 일으켰다”라고 하였다. 보살도를 행한다는 것은 중생을 교화함에 사섭법(四攝法)의 방편에 의거하여 섭취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니, 경에서 “말씀을 마땅히 미루어 취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이로부터 아래는 앞에 나타나 듣고자 하는 법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한 사람에게 질문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희유한 마음을 내어 듣고자 함이니, 이 때문에 오직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질문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세존과 제자가 법에 수순하여 서로 어긋나지 아니함을 나타내 보였다. 지금 부처님 세존께서 신비한 변화의 모양[相]을 나타낸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큰 모양의 인(因)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015_0374_b_01L큰 모양이라는 한 것은 묘법연화경을 말씀하시는 까닭이고, 큰 상서로운 모양을 나타내어 (여래께서) 깨달으신 묘법의 불가사의함 등의 문구를 말씀하시는 까닭이다.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이 때문에 문수사리에게 우러러 여쭌 것이다. 첫째 모든 법을 나타내어 보이는 것이요, 둘째 모든 인연을 여의고 자신의 마음에 그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갖가지 상서로운 모양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그 일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니, 그 일과 같이 나타나고 숨고 머무르고 없어지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수사리가 능히 그 일을 기억하기 때문에 문수사리가 소작성취(所作成就)와 인과성취(因果成就)로써 그 법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소작성취라고 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공덕을 성취함이요, 둘째 지혜를 성취함이다. (인과성취에서) 인성취(因成就)라고 하는 것은 일체지(一切智)를 성취함이요, 인연(因緣)이라고 하는 것은 상(相)이다. 과(果)라고 하는 것은 큰 법을 설하는 것이요, 갖가지의 불국토라고 하는 것은 그 국토 중의 갖가지 차별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청정하고 미묘한 국토란 번뇌가 없는 중생이 사는 곳이다. 경에 “동방으로 일만 팔천 세계를 비추고 …… 부처님 세계의 장엄을 다 볼 수 있게 한다”라고 하였다. 여래께서 상수(上首)가 되었다는 것은 모든 보살들이 여래께 의지하여 머무르는 까닭이요, 그 여래께서 그 국토의 모든 대중 가운데 자재함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경에 “또 저 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었다”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이로부터 이하는 성자(聖者)를 밝힌 것이다. 문수사리 보살이 숙명을 아는 지혜로써 과거의 인상(因相)과 과상(果相)을 나타내 보임에 열 가지 일을 성취하여 현재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났다. 이 때문에 미륵보살에게 대답할 수 있었다. 과거의 인상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문수사리) 자신이 그 모든 불국토에서 갖가지 행사(行事)를 수행하였음을 스스로 보는 것이다. 과거의 과상(果相)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문수사리가 자신이 과거세에 묘광보살(妙光菩薩)이었고, 그 부처님 처소에서 이 법문을 듣고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였음을 스스로 보았다는 것이다.
015_0374_c_01L열 가지 일[十事]을 성취함이란 어떤 것을 이르는가? 첫째 큰 뜻의 인(因)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둘째 세간의 문자와 장구(章句)가 지닌 깊은 뜻의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셋째 희유한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넷째 뛰어나고 미묘한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다섯째 수용하는 큰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여섯째 모든 부처님의 법륜을 섭취하는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일곱째 훌륭하고 견실한 여래의 법륜의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여덟째 능히 정진하여 들어가는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아홉째 항상 생각해서 잊지 않는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요, 열째 자신이 겪은 일의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임이다.
큰 뜻의 인을 성취한다는 것은 여덟 구(句)로 나타내 보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대법륜을 굴리고자 함이요, 둘째 큰 법비를 내리고자 함이요, 셋째 큰 법고를 치고자 함이요, 넷째 큰 법당(法幢)을 세우고자 함이요, 다섯째 큰 법등을 켜고자 함이요, 여섯째 큰 법소라를 불고자 함이요, 일곱째 큰 법고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고자 함이요, 여덟째 큰 법을 말씀하시고자 함이다. 이 여덟 구(句)는 여래께서 큰 법을 설하시고자 하는 것 등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 큰 뜻인가?
015_0375_a_01L말하자면 의심이 있는 자는 의심을 끊는 것이요, 이미 의심을 끊은 자는 지혜의 몸을 더욱 자라게 하고 (근기가) 성숙하게 하는 것이다. 근기가 성숙하다는 것은 두 가지 비밀 경계를 말함이니, 성문의 비밀 경계와 보살의 비밀 경계이다. 큰 법고란 두 구(句)로 먼 곳에까지 알려짐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비밀 경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정진하여 가장 훌륭한 청정의 뜻을 취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요, 가장 훌륭한 청정의 뜻을 취한다는 것은 정진하여 일체지(一切智)를 취하여 나타내 보이는 것이요, 일체지를 취하여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일체법을 위해 명자(名字)ㆍ장구(章句)의 뜻을 건립(建立)하는 것이요, 명자ㆍ장구의 뜻을 건립한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증지(證智)에 들어가 부처님의 설법을 굴리게 하는 것이다. 세간의 명자ㆍ장구의 뜻이 지닌 매우 깊은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경에 “나는 과거 여러 부처님에게서 일찍이 이러한 상서를 보았나니 …… 그러므로 이런 상서를 나타내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희유한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한량 없는 시간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다. 생각하거나 의논할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저 아승지겁을 지날지라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다시 다섯 가지 겁(劫)을 나타내 보이니, 첫째 밤이요, 둘째 낮이요, 셋째 달[月]이요, 넷째 시(時)요, 다섯째 해[年]이다. 그 한량없고 끝없는 겁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경에 “과거 한량없고 끝없는 불가사의한 아승지겁인 이때 일월등명(日月燈明)이라 부르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일체종지를 이루게 하셨다”라고 하였다.
뛰어나고 미묘한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자수용(自受用)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니, 경에 “다음에 다시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또한 일월등명이라 이름하셨다. …… 말씀하신 법문도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이 모두 좋으셨다”라고 하였다. 수용하는 큰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이때 왕자들이 뛰어나고 미묘한 즐거움을 받다가 각각 버리고 출가함이요, 또 그 대중이 그러할 때에 피곤하거나 게으른 마음이 생기지 아니한 까닭이다. 경에 “그 최후의 부처님께서 아직 출가하시기 전에 …… 부처님께서 수기를 마치시고 나서 문득 밤중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셨다”라고 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법륜을 섭취하는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법륜이 끊어지지 않은 까닭이니, 경에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묘광보살(妙光菩薩)이 또 묘법연화경을 가지고 팔십 소겁(小劫)이 다 차도록 사람들을 위하여 연설하셨다”라고 하였다. 훌륭하고 견실한 여래 법륜(法輪)의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도 한량없는 시간 동안 설법하신 까닭이니, 경에 “일월등명불의 여덟 왕자는 모두 묘광보살을 스승으로 삼았고 ……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견고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015_0375_b_01L능히 정진하여 들어가는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그 모든 왕자들이 큰 보리를 얻은 까닭이니, 경에 “이 여러 왕자들이 …… 모두 불도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항상 생각해서 잊지 않는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남을 위하여 설법하여 남을 이익 되게 하는 까닭이니, 경에 “그 최후에 성불한 이의 이름은 연등(然燈)이었나니 …… 존중하고 찬탄하였다”라고 하였다. 자신이 겪은 일의 인을 성취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자신이 뛰어나고 미묘한 즐거움을 받은 까닭이니, 경에 “미륵은 알아야 한다. ……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시는 바이다. 그대의 이름이 구명(求名)인 것은 과거의 일을 앎을 나타내 보인 것이고, 다시 그 법을 얻음이 구족되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經】그때 세존께서 매우 깊은 삼매에 드시어 바른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으시고 여실한 지혜로써 관(觀)하시고는 조용히 삼매에서 일어나셨다. 일어나셔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어 한량없으시며, 그 지혜의 문은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여래께서 증득하신 바는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 등은 능히 알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사리불아, 여래ㆍ응공ㆍ정변지(正遍知)께서는 이미 일찍부터 한량없는 백천만억 나유타(那由他)의 부처님들을 친근하고 공양하셨고, 부처님의 처소에서 모든 부처님께서 닦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다 행하셨느니라.
015_0375_c_01L사리불아, 여래께서는 이미 한량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 동안 용맹 정진하여 하여야 할 것을 성취하셨고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셨느니라.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필경에 희유한 법을 성취하셨느니라. 사리불아, 이해하기 어려운 법을 여래께서는 능히 아시느니라. 사리불아,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란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마땅함을 따라 말씀하셨으므로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 모든 성문ㆍ벽지불은 알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자재하게 설법하시는 인을 성취하신 까닭이니라.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갖가지 방편과 갖가지 지견(知見)과 갖가지 염관(念觀)과 갖가지 언어[言辭]를 성취하셨느니라.
사리불아, 내가 성불한 뒤로 여러 곳에서 널리 가르침을 폈으며,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여 모든 집착하는 곳에서 해탈을 얻게 하였느니라.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지견과 방편으로 피안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지견이 넓고 크시며, 깊고 멀어서 무장(無障)ㆍ무애(無碍)ㆍ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18불공법(不共法)ㆍ5근(根)ㆍ5력(力)ㆍ보리분(菩提分)ㆍ선정ㆍ해탈삼매ㆍ삼마발제(三摩跋提)를 모두 이미 구족하셨느니라.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끝없는 (삼매에) 깊이 드시어 온갖 미증유한 법을 성취하셨느니라.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갖가지로 분별하여 모든 법을 교묘하게 말씀하시는데, 언어[言辭]가 부드러워 대중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느니라.
그만두어라. 사리불아, 다시 말할 것이 없느니라. 사리불아, (그것들은)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가장 희유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니라.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법을 설하시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그 법의 구경의 실상(實相)을 아시느니라.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모든 법을 아시느니라.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모든 법을 말씀하시느니라. (그것은) 어떤 법[何等法]이며, 무슨 법[云何法]이며, 무엇과 같은 법[何似法]이며, 어떤 모양의 법[何相法]이며, 어떤 바탕의 법[何體法]인가? 어떤[何等]ㆍ무슨[云何]ㆍ무엇과 같은[何似]ㆍ어떤 모양[何相]ㆍ어떤 바탕[何體] 등의 모든 법을 여래께서 나타내 보이시니, 나타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 없으시느니라.”
【釋】논(論)에서 ‘여기서부터’라고 한 아래는 설하신 법의 인상(因相)과 과상(果相)을 나타내 보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경에 “그때 세존께서 매우 깊은 삼매에 드시어 바른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으시고, 여실한 지혜로 관(觀)하시고는 조용히 삼매에서 일어나셨고 일어나시고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여래께서 자재한 힘을 얻으셨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여래께서 선정에 들어 능히 놀라 깨어나시는 일은 없는 까닭이다.
015_0376_a_01L무슨 까닭으로 오직 사리불에게만 말씀하고 다른 성문들에게는 말씀하지 아니하셨는가? (사리불이) 깊은 지혜를 따르는 것이 여래와 상응하는 까닭이다.무슨 까닭으로 모든 보살들에게는 말씀하지 아니하셨는가, 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모든 성문들이 한 바의 일인 까닭이요, 둘째 모든 성문들에게 큰 보리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기 위한 까닭이요, 셋째 모든 성문들을 호념하여 겁내고 연약함을 염려하는 까닭이요, 넷째 나머지 사람들로 하여금 잘 생각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요, 다섯째 모든 성문들이 해야 할 것을 이미 갖추었다[辦]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가 매우 깊어 한량이 없으시다는 것은 모든 대중들이 존중하는 마음을 내어 필경에는 여래의 설법을 듣게 하고자 하기 위해서이다. 매우 깊다는 것은 두 가지 매우 깊은 뜻을 드러내 보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 증득한 것이 매우 깊다는 것이니, 말하자면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어 한량이 없으신 까닭이요, 둘째 아함(阿含)이 매우 깊다는 것이니, 말하자면 지혜의 문인 까닭이다. 매우 깊다고 말한 것은 총상(總相)이고, 나머지는 별상(別相)이다.
증득한 것이 매우 깊다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뜻이 매우 깊은 것이니, 어떤 뜻이 매우 깊음에 의거하는 까닭이요, 둘째 실체가 매우 깊은 것이요, 셋째 안으로 증득한 것이 매우 깊은 것이요, 넷째 의지하는 것이 매우 깊은 것이요, 다섯째 위없이[無上] 매우 깊은 것이다. 매우 깊다는 것은 곧 큰 보리를 말한다. 큰 보리란 여래께서 증득하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또 매우 깊다고 하는 것은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015_0376_b_01L지혜라는 것은 말하자면 모든 종류의 모든 지혜라는 뜻이니, 경에 “여러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어 한량이 없으시며, 그 지혜의 문은 보기[見]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알기[知] 어렵고, 이해하기[解]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워서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은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지혜의 문은 설법을 말한다. 아함(阿含)의 뜻이 매우 깊다는 것은 여덟 가지로 나타내 보인다. 첫째 받아 지니어 독송함이 매우 깊은 것이니, 경에 “사리불아,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는 이미 일찍부터 한량없는 백천만억 나유타(那由他)의 부처님들을 친근하고 공양하셨다”라고 하였다. 둘째 수행함이 매우 깊은 것이니, 경에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모든 부처님께서 닦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다 수행하셨다”라고 하였다.
셋째 과행(果行)이 매우 깊은 것이니, 경에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이미 한량없는 백천억겁 동안 용맹하게 정진하여 지어야 할 바를 성취하셨다”라고 하였다. 넷째 공덕을 증장하는 마음이 매우 깊은 것이니, 경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셨다”라고 하였다. 다섯째 상쾌하고 미묘한 일이 매우 깊은 것이니, 경에 “희유한 법을 성취하셨다”라고 하였다. 여섯째 위없음이 매우 깊은 것이니, 경에 “사리불아, 이해하기 어려운 법을 여래께서는 능히 아시느니라”고 하였다.
일곱째 들어감이 매우 깊은 것이니, 들어감이 매우 깊다는 것은 명자(名字)ㆍ장구(章句)의 뜻은 터득하기 어려우나 자재하게 머물러 지니고 외도(外道)와 달리 인연법(因緣法)을 설하므로 매우 깊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경에 “사리불아, 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마땅함을 따라서 법을 말씀하셨으므로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덟째 성문ㆍ벽지불과는 공통되지 않는 소작(所作)을 머물러 가지는 것이 매우 깊은 것이니, 경에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 등은 알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묘법의 공덕을 말하고 나서 다음으로 여래께서 법사(法師) 공덕의 성취를 말씀하심을 알아야 한다. 경에 “무슨 까닭인가?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자재하게 말씀하시는 인을 성취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여래께서는 네 가지 공덕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중생을 제도하실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왕성취(往成就)1)이니, 경에 “여래께서 갖가지 방편을 성취하셨다”라고 하였다. 갖가지 방편이란, 도솔천(兜率天)에서 물러나 …… 열반에 드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둘째 교화성취(敎化成就)이니, 경에 “갖가지 지견”이라고 하였다. 갖가지 지견이란 더럽고 청정한 모든 인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376_c_01L셋째 공덕을 필경에 성취함이니, 경에 “갖가지 염관(念觀)”이라고 하였다. 갖가지 염관이란 그 법을 성취한 인연을 말함이 여법하게 상응하는 것이다. 넷째 설법성취[說成就]이니, 경에 “갖가지 언어[言辭]”라고 하였다. 갖가지 언어란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로써 어떠어떠한 명자(名字)와 장구(章句)에 의거하여 어떠어떠한 중생을 따라 능히 받아서 말하는 것이다.
다시 이러한 뜻도 있다. 갖가지 방편이란 외도(外道)의 삿된 법에 이러이러한 갖가지 잘못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고, 모든 부처님의 정법에 이러이러한 갖가지 공덕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경에 “내가 성불한 뒤로 널리 가르침을 폈으며,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여 모든 집착하는 곳에서 해탈을 얻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또 무수한 방편이란 방편으로 모든 선법(善法)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고, 또 방편이란 모든 의혹을 끊는 것이고, 또 방편이란 매우 뛰어난 지혜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또 방편이란 사섭법(四攝法)에 의거하여 중생들을 섭취하여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모든 집착이란 그 곳곳에서 집착하는 것이니, 혹은 계(界)에 집착하고, 혹은 모든 지(地)에 집착하고, 혹은 분(分)에 집착하고, 혹은 승(乘)에 집착함이다. 계에 집착한다는 것은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집착함을 말함이요, 지(地)에 집착한다는 것은 계(戒)2)에 집착하여 삼매를 얻는 것이니 초선정지(初禪定地)에서부터 비상비비상지(非想非非想地)에 이르고, 멸진정지(滅盡定地)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분(分)에 집착한다는 것은 재가(在家)와 출가(出家)의 분(分)에 집착하는 것이다. 재가(在家)의 분(分)에 집착한다는 것은 자기와 같은 부류[類]에 집착하여 갖가지 업과 삿된 견해 등을 짓는 까닭이다.
015_0377_a_01L출가의 분(分)에 집착한다는 것은 명예를 구하고 이익을 구하여 갖가지 모든 깨달음과 번뇌 등에 집착하는 것이다. 승(乘)에 집착한다는 것은 성문승ㆍ보살승에 집착하는 것이니, 성문승에 집착한다는 것은 즐거이 소승계(小乘戒)를 지녀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 등을 구하는 것이요, 대승에 집착한다는 것은 이익을 구하여 공양ㆍ공경 등에 집착하고, 분별하여 갖가지 법상(法相)을 관찰하여 불지(佛地)에 도달함에 집착하는 것이다.
또 갖가지 지견이란 자신이 불가사의한 경계를 성취하여 성문ㆍ보살과 함께 하는 까닭이니, 경에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지견과 방편으로 피안에 이르시느니라”고 하였다. 피안에 이른다는 것은 다른 모든 보살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또 갖가지 염관(念觀)이란 경에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지견이 넓고 크시며, 깊고 멀어서 무장(無障)ㆍ무애(無碍)ㆍ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18불공법(不共法)ㆍ5근(根)ㆍ5력(力)ㆍ보리분(菩提分)ㆍ선정ㆍ해탈삼매ㆍ삼마발제를 모두 이미 구족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또 첫째 성취는 교화할 만한 중생이 선지식에 의지하여 성취하는 것이요, 둘째 성취는 근기가 성숙한 중생이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요, 셋째 성취는 힘을 가진 이[力家]가 자재하고 청정하게 항복하는 것이요, 넷째 성취를 말하는 데에는 다시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 종종성취(種種成就)이니, 경에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끝없는 삼매에 깊이 드시어 온갖 미증유한 법을 성취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둘째 언어성취[言成就]니, 다섯 가지 미묘한 음성을 얻어 설법하는 것이다. 경에 “여래께서는 갖가지로 분별하시어 공교로이 모든 법을 말씀하시는데 언어가 부드러워 여러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신다”라고 하였다.
015_0377_b_01L셋째 상성취(相成就)이니, 경에 “그만두어라. 사리불아, 다시 말할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불법을 담을 만한 그릇이 있는 중생들의 마음은 이미 만족한 까닭이다. 넷째 감성취(堪成就)이니, 모든 교화할 만한 중생들은 여래께서는 제일의 희유한 공덕을 성취하여 설법할 수 있음을 아시는 것이다. 경에 “사리불아,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것은 가장 희유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다”라고 하였다. 다섯째 무량종성취(無量種成就)이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것이다. 경에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법을 설하시고 모든 부처님들만이 그 법의 구경의 실상을 아시느니라”고 하였다. 실상(實相)이란 여래장(如來臧) 법신(法身)의 체는 불변함을 말한다. 여섯째 각체성취(覺體成就)니,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법은 오직 부처님 여래께서만 스스로 증득하신 것이다. 경에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모든 법을 아시느니라”고 하였다.
일곱째 중생의 뜻을 수순하여 수행하는 법을 말씀하심을 성취함이니, 그 법이 어떠하며 이와 같다는 등이다. 경에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능히 모든 법을 말씀하시느니라”고 하였다. 첫째는 갖가지 법문으로 중생을 섭취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산란하지 않음에 머물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셋째는 취(取)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넷째는 해탈을 얻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그 수행을 성취하여 대치하는 법을 얻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여섯째는 그 수행이 진취하여 성취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일곱째는 수행을 얻어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 일곱 가지 법은 모든 중생을 위하여 자신이 지을 바를 성취한 것이다.
또 교화성취라는 것은 증득한 법에 의거하는 것이요, 설법성취[說成就]라는 것은 설법에 의거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법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이 두 가지 법에 의거하여 어떠한 차례가 있어서 수행을 얻는다 하는 것은, 곧 앞의 문구(文句)에서 거듭 설명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015_0377_c_01L또 증득한 법에 의거한다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어떤 법[何等法]이요, 둘째 무슨 법[云何法]이요, 셋째 무엇과 같은 법[何似法]이요, 넷째 어떤 모양의 법[何相法]이요, 다섯째 어떤 바탕의 법[何體法]이다. 어떤 법이란 성문법, 벽지불법, 불법을 말함이요, 무슨 법이란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일으킴을 말함이요, 무엇과 같은 법이란 세 가지 문에 의거하여 청정을 얻는 까닭이요, 어떤 모양의 법이란 세 가지 뜻이 한 모양의 법인 까닭이요, 어떤 바탕의 법이란 두 가지 체가 없는 까닭이니, 두 가지 체가 없다고 하는 것은 한량없는 승(乘)이 오직 일불승(一佛乘)뿐이요, 이승(二乘)이 없는 까닭이다.
다시 또 뜻이 있으니, 어떤 법이란 유위법(有爲法)ㆍ무위법(無爲法)이요, 무슨 법이란 인연법과 인연법이 아닌 법 등이요, 무엇과 같은 법이란 상법(常法)과 무상법(無常法) 이와 같은 것들이요, 어떤 모양의 법이란 생(生) 등의 세 가지 모양의 법과 불생(不生) 등의 세 가지 모양의 법이요, 어떤 바탕의 법이란 오음(五陰)의 체(體)와 오음이 아닌 체이다. 또 무엇과 같은 법이란 무상법(無常法)ㆍ유위법(有爲法)ㆍ인연법(因緣法)이다. 또 어떤 모양의 법이란 볼 수 있는 상(相) 등의 법이다. 또 어떤 바탕의 법이란 오음의 능히 취할 수 있는 것과 취할 만한 것이니, 오음은 바로 고(苦)와 집(集)의 체(體)인 까닭이요, 또 오음이란 곧 도제(道諦)의 체인 까닭이다.
설법에 의거하여 말하면 다시 다른 뜻도 있다. 어떤 법이란 곧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자신(字身) 등이요, 무슨 법이란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에 의거함을 이름이요, 무엇과 같은 법이란 교화할 만한 중생을 능히 교화함을 이름이요, 어떤 모양의 법이란 음성에 의거하여 취하는 것이니, 음성에 의거하여 그 법을 취하는 까닭이다. 어떤 바탕의 법이란 가명(假名)의 체요, 법상(法相)의 뜻이다.
이 이하부터는 세 가지 뜻에 의거하여 나타내 보이겠다. (세 가지 뜻은) 첫째 결정(決定)의 뜻이요, 둘째 의심하는 뜻이요, 셋째 어떤 일에 의하여 의심하는 뜻이다. 결정(決定)의 뜻이란 어떤 성문이 방편으로 깊은 법을 증득하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어 성문의 도(道) 가운데에 방편으로 열반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의 증득한 법을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나타내 보이니, 경에 “그때 대중 가운데 여러 성문과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있었다. …… 또한 이 법을 얻어 열반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015_0378_a_01L의심하는 뜻이란, 성문이나 벽지불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니, 경에 “그런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알 수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어떤 일에 의하여 의심하는 뜻이란, 여래께서 성문의 해탈과 나의 해탈을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의심을 내는 것이다. 의심을 낸다고 하는 것은 인(因) 가운데 의심을 내는 것이다. 이 일은 어떠하며 이 일은 어떠하다고 여래께서는 자주자주 매우 깊은 경계를 말씀하셨는데, 앞에서 말씀하신 매우 깊은 경계와 뒤에서 말씀하신 매우 깊은 경계가 같지 않기 때문에 성문들은 이와 같은 의심을 내는 것이다. 경에 “그때 사리불이 사부대중의 마음속의 의심을 알고 …… 게송으로 말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이하부터는 네 가지 일에 의거하여 설명하겠다. 첫째 결정심(決定心)이요, 둘째 인수기(因受記)요, 셋째 수기를 취함[取受記]이요, 넷째 수기를 줌[與受記]이니, 잘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결정심(決定心)인가? 이미 놀라고 두려움을 내는 자로 하여금 놀라고 두려워함을 끊게 하여 두 종류의 사람을 이익하게 하므로, 여래께는 결정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 놀라고 두려워함에는 다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있는 것을 없다고 부인하여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성문의 중생들은 말씀을 들은 그대로 취하여 진실이라 여기고 대승은 없다고 비방하며,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여래께서는 아라한과가 구경의 열반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나는 필경 이 같은 열반을 취할 것이다’라고 한다. 이 때문에 아라한은 열반에 들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일이 많다고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대승의 중생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낳아 ‘나는 한량없고 끝없는 겁(劫) 동안 보살행을 행해야 할 것이다’라며 놀라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낳고 다른 승[異乘]을 취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셋째 전도(顚倒)되어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마음으로 아(我)와 아소(我所)와 신견(身見) 등의 불선법(不善法)을 분별하는 것이다. 넷째 마음으로 뉘우치는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대덕 사리불 등이 ‘나는 응당 이와 같은 소승의 법을 닦아 증득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스스로 그만두고서는 곧 이 뉘우치는 마음을 이름하여 놀라고 두려워함이라 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속인다고 여기는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증상만의 성문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우리들을 속이시는가’라고 한다.
015_0378_b_01L인수기(因授記)라고 하는 것은, 경에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사리불아, 다시 말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이 일을 말한다면, 모든 세상의 하늘이나 인간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리라”고 하셨다. 여기 인수기(因授記)에서 놀라고 두려워한다고 하는 것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그 모든 대중들로 하여금 매우 깊고 깊은 경계를 추구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둘째 그 모든 대중들로 하여금 존중하는 마음을 내어 필경에는 (여래의 설법을) 듣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셋째 증상만의 성문들로 하여금 법좌를 떠나가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두 번 청한 것은 과거의 한량없는 부처님들께서 중생을 교화하셨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경에 “여기에 모인 무수한 ……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 능히 공경하고 믿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세 번째 청한 것은 현재의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교화함을 나타내 보임이니, 경에 “지금 여기 모임 가운데 저희들 무리 같은 …… 긴 밤에 편안하여 많은 이익이 있으리이다”라고 하였다.
수기를 취한다는 것은 사리불 등이 수기를 얻고자 함이니, 경에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미 세 번이나 청하였으니, 어찌 말하지 아니하랴!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고 하셨다”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수기를 준다고 하는 것에는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함이요, 둘째 말씀하심이요, 셋째 어떠한 뜻에 의거함이요, 넷째 머물게 함이요, 다섯째 법에 의거함이요, 여섯째 막음[遮]이다. (첫째)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이런 미묘한 법은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때가 되어야 말씀하시는 것이니, 마치 우담바라꽃과 같으니라”고 한 것이다.
(둘째) 말씀하신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내가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와 언어로 여러 법을 연설하였느니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갖가지 인연이란 이른바 삼승(三乘)을 말한다. 저 삼승이란 다만 명자(名字)와 장구(章句)의 언설(言說)만이 있을 뿐이요, 실다운 뜻이 없으니, 저 실다운 뜻은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015_0378_c_01L(셋째) 어떠한 뜻에 의거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 세존들께서는 다만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일대사라고 하는 것은 네 가지 뜻에 의거하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위없는 뜻이니, (여래의) 일체지(一切智)를 제하고는 다시는 다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경에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지견이란 여래께서는 능히 증득하셔서 저 뜻을 여실히 아신다는 것이다.
둘째 같다는 뜻이니, 성문ㆍ벽지불ㆍ부처님의 법신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경에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보이려는 까닭으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법신이 평등하다는 것은 부처님의 성품[佛性]과 법의 몸[法身]에는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셋째 알지 못한다는 뜻이니, 모든 성문ㆍ벽지불은 그 진실처(眞實處)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실처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구경에는 오직 일불승(一佛乘)뿐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경에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 하려는 까닭으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넷째, 물러나지 아니하는 지위[不退轉地]를 증득하게 함이니, 한량없는 지혜의 업(業)을 주고자 함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경에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에 들게 하려는 까닭으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또 보인다[示]고 하는 것은 여러 보살들에서 의심하는 마음이 있는 자를 위하여 여실히 수행하여 알게 하고자 함이요, 또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아직 보리심을 내지 아니한 자로 하여금 발심하게 하고, 이미 발심한 자로 하여금 법에 들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또다시 깨닫게 한다는 것은 외도 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내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015_0379_a_01L다시 또 들게 한다는 것은 성문과(聲聞果)를 얻은 자로 하여금 대보리에 들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넷째) 머물게 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다만 일불승 때문에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다섯째) 법에 의거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량없고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비유와 인연과 염관(念觀)의 방편으로 법을 연설하셨으니, 이 법이 모두 일불승을 위한 것이니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다. 비유라 말하는 것은 소[牛]에 의거하면 우유와 낙(酪)과 생소(生酥)와 숙소(熟酥) 및 제호(醍醐)가 있는 것과 같다. 제호가 제일인데 소승은 우유와 같고, 대승은 제호와 같다.
이 비유는 다만 대승의 위없음과 모든 성문도 역시 대승의 위없는 뜻과 같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성문도 같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 여래의 법신의 성품이 모든 범부나 성문, 벽지불 등과 같다는 것으로 법신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이 비유는 인연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염관(念觀)이라 말하는 것은 소승의 진리 가운데에서는 인무아(人無我) 등을, 대승의 진리 가운데에서는 진여(眞如)ㆍ법계(法界)ㆍ실제(實際)ㆍ인무아(人無我)ㆍ법무아(法無我) 등의 관(觀)을 이른다. 방편이라 말하는 것은 소승 가운데에서는 음(陰 : 五蘊)ㆍ계(界 : 十八界)ㆍ입(入 : 十二入)을 관하여 괴로움을 싫어하여 고통을 버리고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요, 대승 가운데에서는 모든 바라밀과 사섭법(四攝法)을 닦아 자기와 남을 섭취하여 이익 되게 하는 대치법이다.
(여섯째) 막는다[遮]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시방 세계에는 오히려 이승도 없거늘 하물며 삼승이 있겠느냐”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이승이 없다는 것은 이승의 열반은 없다는 것으로 오직 부처님 여래께서 증득하신 대보리(大菩提)ㆍ구경(究竟)ㆍ만족(滿足)ㆍ모든 지혜를 이름하여 대열반이라 한다. 모든 성문ㆍ벽지불 등이 가진 열반법이 아니라 오직 일불승(一佛乘)뿐인 까닭이다. 일불승이란 네 가지 뜻에 의거하여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015_0379_b_01L여래께서는 이 여섯 가지 수기(授記)에 의거한다. 이 때문에 앞에서 말한 어떤 법ㆍ무슨 법ㆍ무엇과 같은 법ㆍ어떤 모양의 법ㆍ어떤 바탕의 법으로 나타내 보인다. 어떤 법이란 일찍이 듣지 못한 법을 말함이요, 무슨 법이란 갖가지 언어와 비유로 말함이요, 무엇과 같은 법이란 이른바 오직 일대사(一大事) 때문이라고 함이요, 어떤 모양의 법이란 중생의 근기를 따라 부처님의 법을 말함이요, 어떤 바탕의 법이란 오직 일승의 바탕[體]뿐인 까닭이다. 일승의 바탕이란 이른바 모든 부처님 여래는 평등한 법신으로서 성문ㆍ벽지불승은 그 평등한 법신의 체가 아니니, 인과의 행(行)과 관(觀)이 같지 아니한 까닭이다.
이 이하의 설법은 네 가지 의심을 끊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어느 때 말씀하시는가이고, 둘째는 어떻게 증상만인(增上慢人)인지 아는가이고, 셋째는 어떻게 설법을 감내할 것인가이고, 넷째는 어떻게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어느 때 말씀하시는가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어떤 때에 갖가지 방편을 일으켜 설법하시어 그 의심을 끊으시는가 함이니, 경에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섯 가지 흐린 세상에 나셨으니 이른바 겁탁(劫濁)이니라” 등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증상만인지 아는가라는 것은 ‘여래께서는 증상만인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는데 어떻게 그가 증상만임을 아는가’라고 하는 그 의심을 끊기 위해서이다. 경에 “만일 어떤 비구가 진실로 아라한을 얻었다면 이 법을 믿지 않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어떻게 설법을 감당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는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키는데 어찌하여 설법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시는가’ 하는 이런 의심을 끊기 위함이니, 경에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부처님께서 안 계실 때는 제외한다”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015_0379_c_01L어떻게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가라고 하는 것은 여래께서 앞에서 말씀하신 법이 다르고 현재 말씀하시는 법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여래께서는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가’라고 하는 이런 의심을 끊기 위함이니, 경에 “사리불아, 너희들은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이해하여 받아 지녀라.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하시는 말씀은 허망함이 없나니, 다른 승(乘)은 없고 오직 일불승만 있느니라. …… 어린애들이 장난으로 모래를 쌓아 탑을 세운 이러한 사람들도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루었다”라고 한 것은,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행을 행함을 이른 것으로서 지은 선근이 능히 보리를 증득함을 말한다. 모든 범부와 결정 성문과 아직 보리심을 발하지 아니한 이가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와 같이 내지는 “혹은 머리 한 번 숙여도[小低頭]”라고 한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금색 몸에 삼십이상(三十二相) 십력(十力)과 여러 해탈 그 모두 한 가지 법 이런 일을 얻지 못하였네.
015_0379_c_03L金色三十二, 十力諸解脫, 同共一法中,
而不得此事。
여든 가지 미묘한 상호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이와 같은 공덕들을 나는 모두 잃었구나.
015_0379_c_05L八十種妙好, 十八不共法,
如是等功德, 而我皆已失。
【釋】이 게송은 어떤 뜻을 나타내 보이는가? 사리불이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는 말이다. “나는 여러 부처님을 뵙지도 못하고, 부처님 처소에 가서 설법을 듣지도 못하고,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지 않았으며, 중생의 일을 이익 되게 한 것도 없으며, 아직 법을 얻지 못하고 물러났다”라고 사리불이 자신을 책망하였다. (부처님을) 뵙지 못하였다는 것은 여러 부처님 여래 대인(大人)의 상(相)을 보지 못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못한 것이요, (부처님 처소에) 간다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금색 광명을 낸다는 것은 부처님 자신의 기이한 몸을 보여 한량없는 공덕을 획득한 것이다. (설법을) 듣는다는 것은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할 수 있는 것이요, 힘[力]이란 중생들에게 의심이 있으면 열 가지 힘[十力]에 의거하여 의심을 끊어주는 것이요, 공양한다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요, 18불공법(不共法)이란 모든 장애를 멀리 여의는 것이요, 공경한다는 것은 한량없는 복덕을 내는 여래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해탈을 얻는 것이다. 실체로서의 아(我)는 존재하지 않고[人無我] 법도 실다운 체성(體性)이 없으며[法無我] 모든 법은 다 평등하다. 이 때문에 사리불은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여 말하기를, “나는 아직 이와 같은 법을 얻지 못하였고, 아직 얻지 못한 가운데 물러났다”라고 하였다.
015_0380_a_01L이 이하부터는 일곱 가지 번뇌의 성품을 구족한 중생을 위하여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어 일곱 가지 증상만을 대치(對治)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세 가지의 물듦[染]이니, 번뇌가 없는 사람은 삼매ㆍ해탈ㆍ견(見) 등의 만(慢)에 물드는데 이들을 대치하기 위하여 세 가지 평등을 말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들이 일곱 가지 번뇌의 성품을 구족한 중생인가? 첫째 세력을 구하는 사람이요, 둘째 성문의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요, 셋째 대승(大乘)을 구하는 사람이요, 넷째 선정을 지닌[有定] 사람이요, 다섯째 선정이 없는[無定] 사람이요, 여섯째 공덕을 모으는 사람이요, 일곱째 공덕을 모으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일곱 가지 증상만이란, (첫째) 전도된 생각으로 공덕을 구하는 증상만이니, 세간의 모든 번뇌에 물들어 맹렬히 불타오르며 하늘 사람의 뛰어나고 묘한 경계의 과보를 구함이다. 이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화택(火宅)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성문의 사람은 한결같이 증상만이니, “나의 승(乘)은 여래의 승과 차별이 없다”와 같이 전도된 생각을 가진다. 이를 대치하기 위하여 궁자(窮子)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대승의 사람은 한결같이 증상만이니, 성문ㆍ벽지불승과 다를 것이 없다는 전도된 생각을 가진다. 이를 대치하기 위하여 구름과 비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넷째) 실제로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증상만의 사람이니, 세간의 삼매ㆍ삼마발제가 있는 것을 가지고 실제로 열반은 없다고 하는 열반에 대한 생각을 낳는다. 이를 대치하기 위하여 화성(化城)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산란한 마음으로 실제로 선정이 없고 과거에 비록 대승의 선근이 있었다 할지라도 깨달아 알지 못하고 대승을 구하지 않는다. 좁고 용렬한 마음 가운데에 허망한 알음알이를 내어 제일승이라고 한다. 이를 대치하기 위하여 계보주(繫寶珠)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여섯째) 공덕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니, 대승법을 말하여도 대승이 아닌 것을 취한다. 이를 대치하기 위하여 전륜성왕이 상투를 풀어서 밝은 구슬을 주는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일곱째) 공덕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니, 제일승에 대해 모든 선근을 모으지 않고 제일승을 말씀하셔도 제일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대치하기 위하여 의사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015_0380_b_01L첫 번째 사람은 세간 가운데의 갖가지 선근과 삼매 공덕의 방편으로 기쁘게 한 뒤에 열반에 들게 한다. 두 번째 사람은 삼승(三乘)을 일승(一乘)으로 여기게 하여 대승에 들게 한다. 세 번째 사람은 갖가지 승(乘)과 여러 부처님 여래의 평등한 설법을 알게 하여 중생 선근의 갖가지 종자에 따라서 싹이 돋아나게 한다. 네 번째 사람은 방편으로 열반의 성(城)에 들어가게 함이니, 열반의 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모든 선나(禪那)와 삼매(三昧)의 성(城)으로서 그 성을 지난 뒤에 대열반의 성에 들어가게 한다. 다섯 번째 사람은 과거에 지닌 선근을 보여서 생각하여 잊지 않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한다.
여섯 번째 사람에게는 대승법을 말하니, 이 법문이 십지(十地)의 행(行)을 갖추어 여러 부처님 여래께서 비밀히 수기를 주시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사람에게는 아직 근기가 익지 아니한 사람으로 하여금 익게 한다. 이와 같이 열반량(涅槃量)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 뜻을 위하여 여래께서는 이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어떤 이들이 세 가지 번뇌 없는 사람으로서 만(慢)에 물들었는가? 전도된 믿음을 내는 이들이다. (전도된 믿음이란) 첫째 갖가지 승이 다르다는 믿음이요, 둘째 세간과 열반이 다르다는 믿음이요, 셋째 그와 나[彼此]의 몸이 다르다는 믿음이다. 이 세 가지 물듦에 대치하기 위하여 세 가지 평등을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승(乘)의 평등이다. 성문에게 수기를 주는 것이니, 오직 대승이 있을 뿐이요, 이승(二乘)은 없는 까닭이다. 둘째 세간과 열반의 평등이다. 다보여래(多寶如來)께서 열반에 드신 것은 세간과 열반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셋째 몸의 평등이다. 다보여래께서 이미 열반에 드셨으나 다시 몸을 나타내 보이신 것은 몸이 자기 몸이나 남의 몸이나 법신(法)으로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번뇌 없는 사람이 만(慢)에 물들었다는 것은 자기 몸과 남의 몸이 지은 차별을 보는 것이니, 피차의 불성과 법신이 평등함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즉 그 사람은 “나는 이 법을 증득하였다”라고 하고, 저 사람은 “나는 이 대치(對治)를 얻지 못하였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성문에게 수기를 주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015_0380_c_01L그 성문들은 실지로 성불하기 때문에 수기를 주는 것인가, 성불하지 못하여도 수기를 주는 것인가? 만약 (성문이) 실지로 성불한다면, 보살은 무엇 때문에 한량없는 겁 동안 한량없는 공덕 닦기를 고집하였으며, 만약 성불하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그에게 허망한 수기를 주는가? 그 성문들에게 수기를 주는 것은 결정심(決定心)을 얻었기 때문이지 법성(法性)을 성취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여래께서 그 세 가지 평등에 의거하여 일승법을 말씀하시고, 여래의 법신과 성문의 법신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기 때문에 수기를 주는 것이지, 즉시 수행의 공덕을 구족하였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공덕을 구족하였고, 성문인(聲聞人)은 공덕을 아직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수기라고 말하는 것은 여섯 곳에 나타내 보였는데, 다섯 곳은 여래의 수기요, 한 곳은 보살의 수기이다. 여래의 수기는 사리불ㆍ마하가섭 등 여러 사람이 잘 아는 큰 아라한들은 명호(名號)가 같지 않기 때문에 별도로 수기를 주신 것이요, 부루나(富樓那) 등 오백인과 천이백인 등은 동일한 명호이기 때문에 동시에 수기를 주신 것이다. 아직 배우는 이와 다 배운 이 등은 모두 동일한 명호이며, 여러 사람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시(一時)에 수기를 주신 것이다.
(여래께서) 제바달다(提婆達多)에게 수기를 주신 것은 여래께서는 원망함이 없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요, 비구니와 모든 천녀(天女)들에게 수기를 주신 것은 여인이 재가(在家)이거나 출가이거나 간에 보살행을 닦은 이들은 모두 불과(佛果)를 증득하기 때문임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보살의 수기는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서 (상불경보살이) 예배하고 찬탄하며 “나는 그대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마땅히 성불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015_0381_a_01L성문의 수기라고 말하는 성문에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 결정(決定) 성문이요, 둘째 증상만(增上慢) 성문이요, 셋째 보리심에서 물러난[退菩提心] 성문이요, 넷째 응화(應化) 성문이다. 두 종류의 성문은 여래께서 수기하시니, 응화 성문과 물러났다가 다시 보리심을 낸 성문이다. 결정 성문과 증상만 성문 두 종류의 성문은 근기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래께서 수기를 주지 않고 보살이 수기를 준다. 보살이 수기를 주는 것은 방편으로 보리심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어떤 뜻에 의거하여 여래께서는 삼승을 말씀하시고 이름하여 일승이라 하시는가? 뜻이 같음에 의거하는 까닭에 모든 성문들에게 대보리의 수기를 주시는 것이다. 뜻이 같다고 하는 것은 여래의 법신과 성문의 법신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모든 성문ㆍ벽지불 등이 승(乘)이 같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있으니, 그들은 대승이 아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나의 몸을 여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위없는[無上]고 하는 뜻이다. 모든 성문ㆍ벽지불 등의 법 중에서는 이 뜻을 말씀하시지 않았으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들이 보살행을 행함이 허망하지 않은 것이다.
위없다고 하는 뜻[無上義]은 다른 경문에서 위없다는 뜻을 밝혔으니, 위없다는 뜻에는 열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종자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비[雨]의 비유로 설명하셨다. “너희들이 행한 보살도는 말하자면 보리심을 내고 나서 물러났다가 다시 낸 것이니, 전에 닦은 선근이 멸하지 아니하여 뒤에 얻은 과(果)와 같다.” 둘째 행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대통지승여래(大洞智勝如來)의 본사(本事) 등을 말씀하셨다. 셋째 증장하는 힘[增長力]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대상(隊商)의 우두머리 비유로 말씀하셨다.
넷째 이해시킴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보배 구슬을 달아주는 것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다섯째 청정 국토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다보여래탑(多寶如來塔)으로 나타내 보이셨다. 여섯째 설법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상투 속의 밝은 구슬 비유로 말씀하셨다. 일곱째 중생 교화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땅 속에서 한량없는 보살마하살 등이 솟아나옴이다. 여덟째 큰 보리를 이룸이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세 가지 부처의 보리(菩提)를 나타내 보인다.
015_0381_b_01L첫 번째 응화불(應化佛)의 보리이니, 응하여 보는 바를 따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경에서 모두 “여래는 석씨 왕성을 나와 가야성(伽耶城) 가까운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보불(報佛)의 보리를 나타내 보임이니, 십지(十地)의 행을 구족하여 항상한 열반을 증득함이다. 경에 “선남자들아, 내가 성불한 지 실로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이 지났다”라고 하였다.
세 번째 법불(法佛)의 보리를 나타내 보임이니, 말하자면 여래장(如來藏)의 성품은 청정하고 열반도 항상 청량(淸凉)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에 “여래께서는 삼계의 모습을 참답게 아시고 보시어 …… 삼계를 삼계 같지 않게 본다”라고 하였다. 삼계의 모습이란 말하자면 중생계가 곧 열반계이니, 중생계를 여의지 않고 여래장이 있는 것이다. 나고 죽음에 물러나거나 나옴이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항상 청량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세상에 있거나 혹은 멸도함도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여래장(如來藏) 진여(眞如)의 체(體)는 중생계와 즉(卽)하지도 않고 중생계를 여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진실도 아니고 허망함도 아니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말하자면 네 가지 모습을 여읜 것이다. 네 가지 모습이 있다는 것은 바로 무상(無常)하다는 뜻이다. 삼계를 삼계 같지 않게 본다는 것은 여래께서는 진여의 법신을 능히 보시고 능히 증득하시지만 범부는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경에 “여래께서는 밝게 보아 그릇됨이 없으시니라”고 하였다.
015_0381_c_01L나는 본래 보살도를 행하였으나 지금까지도 오히려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은 본원(本願) 때문이니, 중생계가 아직 다하지 아니하여 서원이 구경(究竟)이 아닌 까닭이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보리가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이룬 수명이 다시 위에서 말한 수의 배가 된다고 하는 것은, 여래의 수명은 항상 하지만 방편으로 많은 수를 드러내는 까닭이니, 가장 많은 수보다 더욱 많아 헤아려 알 수 없다. 나의 정토는 헐리지 않으나 중생은 불에 타서 없어짐을 본다는 것은, 보불여래(報佛如來)의 진실한 정토는 제일의제(第一義諦)에 포섭되는 까닭이다. 아홉째 열반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의사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열째 뛰어나고 미묘한 힘의 위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나머지 경[修多羅]에서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다보여래탑이 일체 불토(佛土)의 청정을 드러내 보인다고 한 것은 모든 부처님의 실상 경계 가운데 갖가지 (모든 보배를) 사이사이에 장엄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탑이란 여래의 사리가 머물러 있음을 나타내 보임이다. 양(量)이란 방편으로 일체불국토의 청정하고 장엄함을 나타냄이니, 이것은 출세간(出世間)의 청정이며 번뇌가 없는[無漏] 선근(善根)에서 생긴 것이지 이 세간의 유루(有漏) 선근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 간략함[略]이란 다보여래(多寶如來)의 몸 일체에 모든 부처님의 법신을 섭취함을 나타내 보임이다.
머물러 가짐[住持]이란 모든 부처님 여래 법신의 자재한 몸의 힘을 나타내 보임이다. 한량없는 부처님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피차의 지은 업에는 차별이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다. 더럽고 깨끗하지 못함을 멀리 여읜다는 것은 모든 불국토가 평등하고 청정함을 나타내 보임이다. 다보(多寶)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불국토가 같은 보배 성품임을 나타내 보임이다. 동일한 탑에 앉는다는 것은 변화한 부처님[化佛], 변화하지 아니한 부처님[非化佛], 법신불[法佛], 보신불[報佛] 등이 모두 큰일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나타내 보임이다.
이 이하부터는 법력(法力)과 지니는 힘[持力]과 수행력(修行力)을 나타내 보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법력(法力)이란 다섯 가지 문으로 나타내 보이니, 첫째 증득이요, 둘째 믿음이요, 셋째 공양이요, 넷째 설법을 들음이요, 다섯째 읽고 외워 수지하고 설법함이다. 네 가지 문은 「미륵보살품(彌勒菩薩品)」 가운데 나타내 보이고, 한 가지 법문(法門)은 「상정진보살품(常精進菩薩品)」 가운데 나타내 보인다.
015_0382_a_01L「미륵보살품」 가운데의 네 가지 문이란, 첫째 증득이니, 경에 “내가 여래의 수명이 이와 같이 장원하다고 말할 때에, 육백팔십만억 나유타 항하 모래 같은 중생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무생법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초지(初地)에서 증득하는 지혜임을 알아야 한다. 팔생(八生) 내지 일생(一生)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것은 초지에서의 보리를 증득하였음을 이른다. 팔생 내지 일생이란, 모든 범부가 결정코 능히 초지를 증득할 수 있으니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라서 팔생 내지 일생 만에 초지를 증득하는 까닭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삼계 속에서 분단생사(分段生死)를 여의고 분수를 따라 능히 진여의 불성을 보는 것을 보리를 얻었다고 이름하는 것이요, 구경의 만족한 여래의 방편 열반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란 경에 “또한 팔세계(八世界)의 티끌 수 같은 중생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느니라”고 하였다. 공양(供養)이란 경에 “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큰 법의 이익을 얻었을 때에, 허공에서 만다라꽃비가 내림이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설법을 듣는다는 것은 「수희품(隨喜品)」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한 가지 법문은 「상정진보살품」 가운데 나타내 보였다는 것은, 말하자면 읽고 외우거나 해설하고 옮겨 쓰면 육근(六根)의 청정을 얻는다는 것이니, 경에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법화경』을 받아 지녀 때론 읽고 때론 외우고 때론 해설하고 때론 옮겨 쓰면, 이런 사람은 반드시 팔백의 눈 공덕을 얻을 것이며 …… 일천이백의 뜻의 공덕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육근 청정을 얻었다는 것은, 말하자면 범부가 경(經)의 힘 때문에 뛰어난 근(根)의 작용을 얻음을 말하는 것으로 아직 초지 보살의 단계[位]에는 들지 못하였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경에 “부모 소생의 청정한 육안을 가지고 삼천대천세계를 본다”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015_0382_b_01L또 육근이 청정하다는 것은 하나하나의 근(根) 가운데 색을 보고[見色] 소리를 듣고[聞聲] 향기[香]ㆍ맛[味]ㆍ촉감[觸]ㆍ법(法)을 아는 등의 작용[用]을 모두 다 구족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을 향기를 맡고도 능히 아는 것이므로, 경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훌륭한 궁전에서 오욕(五欲)의 오락(娛樂)을 즐기고 …… 설법함이다”라고 하였다. 향기를 맡고 안다는 것은 이는 바로 지혜의 경계이니, 비근(鼻根)을 가지고 아는 것이다.
지니는 힘[持力]이란 세 가지 법문(法門)으로 나타내 보이니, 예를 들면 「법사품(法師品)」ㆍ「안락행품(安樂行品)」ㆍ「권지품(勸持品)」 등에서 널리 법력을 말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마음이 결정되면 물이 반드시 가까운 줄 안다는 것은 이 경을 받아 지니면 불성의 물[佛性水]을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까닭이다. 수행의 힘[修行力]이란 다섯 가지 문(門)으로 나타내 보이니, 첫째 설법의 힘이요, 둘째 고행을 행하는 힘이요, 셋째 중생의 모든 어려움을 보호해 주는 힘이요, 넷째 공덕의 뛰어난 힘이요, 다섯째 법을 수호하는 힘이다.
설법의 힘에는 세 가지 법문(法門)이 있으니, 「신력품(神力品)」에 나타난다. 첫째 넓고 긴 혀를 내셨다는 것은 생각하여 잊지 않게 하는 까닭이요, 둘째 큰 기침 소리를 내셨다는 것은 게송을 말씀하시어 듣게 하는 것이니, 소리를 듣게 하여 여실하게 수행하고 방일하지 않게 하는 까닭이다. 셋째 손가락을 튕겨서[彈指] 깨닫게 한다는 것은, 수행자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고행을 행하는 힘이란 「약왕보살품(藥王菩薩品)」에 중생을 교화함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또 고행을 행한다는 것은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에서도 중생을 교화함을 나타내 보인다. 중생의 어려움을 보호한다는 것은 「관세음보살품」ㆍ「다라니품」에 나타내 보인다. 공덕의 뛰어난 힘이란 「묘장엄왕품」에 나타내 보이니, 과거세의 공덕을 의지하여 저 동자가 이와 같은 힘을 지니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015_0382_c_01L법을 수호하는 힘이란 「보현품」과 그 다음 품에 나타내 보인다. 또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받아 지니는 것과 육십이억 항하의 모래 같은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는 것이 그 복덕은 평등하다고 말한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믿음의 힘이요, 둘째 필경에 아는 까닭이다. 믿음의 힘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나의 몸을 구하는 것이 관세음보살과 같음을 필경 믿는 까닭이요, 둘째 공경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그[관세음보살]의 공덕과 같아 나도 역시 필경에는 얻게 될 것인 까닭이다. 필경에 안다는 것은 결정코 법계를 아는 까닭이다.
법계란 법성을 이름하니, 그 법성에 들어간다는 것은 초지의 보살이 모든 불보살의 평등한 몸[平等身]을 증득하여 들어감이다. 평등한 몸이란 말하자면 진여 법신이니, 이 때문에 육십이억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는 것과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받아 지니는 것이 그 공덕에 차별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