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5_0383_a_01L
승사유범천소문경론(勝思惟梵天所問經論)1)제1권
015_0383_a_01L勝思惟梵天所問經論卷第一


천친보살(天親菩薩)2) 지음
015_0383_a_02L天親菩薩造
보리류지(菩提流支)3) 한역
김 호성 번역
015_0383_a_03L後魏北印度三藏菩提流支譯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명(歸命)합니다.
015_0383_a_04L歸命釋迦牟尼佛
네 구절4)의 뜻은 여러 경전의 첫머리에서 논술하고 해석한 것이 있으니, 그와 같이 마땅히 알라. 대중들에게 이 법문을 설하는 것은 법이 뛰어나서 대중이 설법의 주처(住處)에 거두어들여짐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니, 저 산5) 등의 뛰어난 곳을 의지해서 설법하였기 때문이다. ‘6만 4천의 비구승(比丘僧)’6)은 여래의 대중을 장엄하여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 경전의 법문은 아주 묘하고 매우 깊어서 모든 성문(聲聞)의 경계를 벗어났으니, 여래께서 뛰어난 뜻을 능히 설하실 수 있음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이다.
015_0383_a_05L四句之義於諸經首有論解釋如彼應知於大衆中說此法門者示現法勝大衆攝在說法住處依彼山等勝處說故六萬四千比丘僧者示現莊嚴如來大衆故經法門快妙甚深出過一切聲聞境示現如來能說勝義故
‘7만 2천의 여러 보살’이라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보살이 성문들보다 더 많은가? 이 경전은 여러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매우 깊은 법을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모두 다 지혜로운 사람이 알아채서 아는[識知]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거듭 말하였는가? 세간의 법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뛰어난 사람 중에서 뛰어난 사람을 말하는 것은 마치 단정한 사람 중에서 가장 단정한 사람이 장차 올 것이고, 덕이 있는 사람 중에서 뛰어난 덕이 있는 사람이 장차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저 여러 보살들이 각기 지혜를 따로 갖고 있지 공유(共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또 다른 뜻이 있다. “모두 다 지혜로운 사람이 알아채서 아는 것이다”라는 것은 지(地)에 들어간 보살이 알 바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뜻을 밝힌 것인가? 여러 보살마하살이 먼저 보살행을 행한다는 것은 저 보살을 알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모두 다 지혜로운 사람이 알아채서 아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015_0383_a_11L七萬二千諸菩薩何故菩薩多於聲聞以此經典爲諸菩薩摩訶薩說甚深法故皆是智者之所識知者何故重說世閒法故世閒說言勝中勝者如言於端正中最端正者乃可將來於有德中有勝德者乃可將來彼諸菩薩各別有智非共有故復更有義皆是智者之所識知者入地菩薩之所知此明何義以諸菩薩摩訶薩先行菩薩行者知彼菩薩故以是故言皆是智者之所識知
015_0383_b_01L여러 보살들의 지혜라는 것은 일곱 가지 덕을 아는 것인데, 모두 다 요설변재(樂說辯才)에 의지해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어떤 것들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갖가지 요설변재이고, 둘째는 막힘없는 요설변재이고, 셋째는 견고한 요설변재이며, 넷째는 분명한 요설변재이며, 다섯째는 겁내지 않는 요설변재이며, 여섯째는 상응하는 요설변재이며, 일곱째는 자유로운 요설변재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변재들은 경에서 “구족한 다라니를 얻고 더 나아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라고 한 것과 같은데, 이와 같은 일곱 구절로써 차례로 설명하였으니 마땅히 이 뜻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아는 것이 마땅한가?
015_0383_a_22L彼諸菩薩智者所有七種德皆依樂說辯才應知等爲七一者種種樂說辯才二者無滯樂說辯才三者堅固樂說辯才者了了樂說辯才五者不怯弱樂說辯才六者相應樂說辯才七者任放樂說辯才此諸辯才如經得具足陁羅尼乃至得無生法忍如是七句次第而說此義應知應云何知
‘다라니’는 많은 문혜(聞慧)로써 갖가지 온갖 법문을 기꺼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갖가지 요설변재라고 이름하였고, 신속하여 머무름이 없으므로 막힘없는 요설변재라고 이름하였고, 모든 삼매를 거두어들일 수 있고 잊거나 잃어버림이 없으므로 견고한 요설변재라고 이름하였고, 모든 보살마하살 등이 뛰어난 신통력에 의지하여 머물러서 모든 마군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분명한 요설변재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4무소외(無所畏)를 얻어서 위덕(威德)이 쾌활하고 묘해서 나와 남들 가운데서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므로 겁내지 않는 요설변재라고 이름하였고, 가명(假名)과 타력(他力)에 의지하여 3법(法)의 체상(體相)을 성취하여 전도되지 않으므로 상응하는 요설변재라고 이름하였고, 8지(地) 중에 무생법인을 얻어서 마음대로 설법하면서도 설법의 장애를 떠나므로 자유로운 요설변재라고 하였다.
015_0383_b_08L陁羅尼以多聞慧樂說種種諸法門故名種種樂說辯才速疾不住故名無滯樂說辯才以得攝受諸三昧故有忘失故名堅固樂說辯才以諸菩薩摩訶薩等依勝通力之所住持畏一切諸魔等故故名了了樂說辯菩薩攝得四無所畏威德快妙自他衆無所怖畏故名不怯弱樂說辯才依於假名他力成就三法體相而不顚倒故名相應樂說辯才得八地中無生法忍任意說法離說法障故名任放樂說辯才
성자 ‘문수사리’와 여러 보살 등은 무슨 뜻으로 ‘법왕자(法王子)’라고 이름하였는가? 초발심(初發心)으로 항상 음욕을 끊는 법이기 때문이다. 초발심이라는 것은 이미 보살의 정심(定心)ㆍ정위(正位)에 들어간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015_0383_b_20L聖者文殊師利諸菩薩等以何義故名法王子以初發心來常斷婬欲法初發心者已入菩薩定心正位如是知
015_0383_c_01L모든 보살이 모두 대현사(大賢士)인데, 무슨 까닭으로 오직 성자 발타바라(跋陀婆羅) 등7)만을 ‘대현사’라고 하는가? 심행(心行)이 뛰어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다. 저 발타바라 등의 보살은 이처럼 ‘내가 교화하는 중생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게 하리라’라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이와 같이 거듭 중생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한다. 이 때문에 자리와 이타의 행이 뛰어나서 여실히 수행하며, 스스로 보리를 구하면서도 또한 중생을 교화하여 보리를 얻게 한다. 그러므로 저 발타바라 등을 ‘대현사’라고 이름한 것이다.
015_0383_c_01L一切菩薩皆是大賢士何故唯說聖者跋陁婆羅等名爲大賢士以爲示現心行勝故彼跋陁婆羅等菩薩有如是心我所教化衆生皆悉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旣如是復化衆生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自利利他行勝如實修行自求菩亦化衆生令得菩提是故說彼跋陁婆羅等名爲大賢士
“백천만의 대중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여래의 많은 권속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모두 다 마음의 선정[心定]을 얻은 이들이니, 이는 여래께서 능히 대중을 통솔하시되 대중 속에서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백천만의 대중으로 대사(大事)를 나타내 보이셨으니 이 때문에 ‘둘렀다[圍]’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러쌌다[遶]’라고 말한 것은 대중들이 모두 여러 가지 번뇌를 잘 다스리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신 때문이다. ‘설법한다’고 말한 것은 여래께서 언제나 여러 가지 법을 말씀하시면서 여러 가지 허물을 끊어 버림을 나타내 보이신 까닭이다.
015_0383_c_10L有百千萬大衆圍遶者示現如來大眷屬故一切皆是得心定者此以如來能領大衆於大衆中最爲勝故百千萬衆示現大事是故圍也所言遶者示現大衆皆悉善伏諸煩惱故言說法者示現如來常說諸法而不斷絕離諸過故
015_0384_a_01L“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는다”는 것은 여쭙고자 하는 위의(威儀)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며, 다시 여러 대중들이 한마음인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두 무릎을 다 땅에 꿇는 것은 예배하는 모습도 아니며 묻는 모습도 아니니, 세간에서는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는 것이 공경하며 존중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삼천대천세계를 움직이게 하고’라는 것은 모든 마군들은 설법하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기 어려우므로 모든 마군들로 하여금 놀람과 두려움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법할 때에 대중이 산란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며,또한 교화될 수 있는 중생을 위해서이다.
015_0383_c_17L右膝著地者示現欲問威儀相故爲示現諸大衆等一心之相故雙膝著地者不成禮拜相亦不成問相諸世閒右膝著地敬重相故動此三千大千世界者以諸魔等與說法者而作留難爲令諸魔生驚怖故又爲說法時大衆不起散亂心故又爲可化衆生
‘만약 방일하면’이란 것은 깨달아 알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법상(法相)을 염(念)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다시 다른 뜻이 있으니, 이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중생들을 움직여서 이 여러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곳을 관찰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중생을 교화하고 순숙(淳熟)시켜서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수순(隨順)하게 하여 올바른 뜻을 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015_0384_a_02L若放逸者令覺知故又爲令衆生念法相故又復有義動此三千大千世界諸衆生等令其觀察此諸大衆說法處故又爲教化淳熟衆生令得解脫故又爲令隨順問正義故
“부처님께서 망명(網明)에게 ‘그대의 물음에 의지하여 나는 마땅히 해설하여 그대의 마음을 기쁘게 하겠다’8)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래께서 질문을 들으심은 자신이 ‘내가 일체지(一切智)의 사람이다’를 나타내 보이심이며, 듣는 자로 하여금 여래의 설법을 듣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능히 불신(佛身)을 본다”는 것은 여래를 관찰함에 따르는 것이니, 어떠한 몸의 부분[身分]도 여의지 않고 다시 나머지 부분을 관찰하심은 여래의 몸이 미묘하기 때문이다. “백천만 일월(日月)의 광명을 초월한다”는 것은 뛰어난 모습과 묘한 모습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여래의 세간을 벗어난 모습을 나타내 보임은 여래의 몸에 이와 같은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015_0384_a_07L佛言恣汝所問我當解說悅可爾心如來聽問示現自身我是一切智人爲令聽者聞如來說法生尊重心故能見佛身者隨觀如來何等身分不能捨離更觀餘分以如來身相微妙超百千萬日月光明者示現勝相快妙相相應故示現如來出世閒相以如來身有如是相故
지혜로운 마음9)은 중생에게 안온함을 주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어서 정직한 마음의 상응을 나타내 보이니, 수행의 지혜와 과보가 상응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떻게 알아야 마땅히 아는 것인가? 여래는 저 색상(色相)에 의지하여 여러 가지 광명을 놓아서 중생을 위하여 두 가지 이익을 짓나니, 이른바 중생과 더불어 안온하고 즐거운 것과 지혜와 더불어 상응하여 여러 불국토를 비추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생각건대, 만약 중생이 불신과 사유를 능히 본다”는 것에서 ‘본다’는 것은 처음으로 색상을 보는 것이다. ‘사유한다’는 것은 그 뒤에 관찰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광명은 세 가지 법의 차별에 의지하는 것이니, 알아야 한다.
015_0384_a_15L智心爲與衆生安隱與衆生樂示現正直心相應修行智果相應應知應云何知知如來依彼色相放諸光明能作衆生二種利益謂與衆生安隱及樂智相應照諸佛土我自惟念若有衆生能見佛身及思惟者此中見者睹色相也言思惟者次後觀察也諸光明依三種法差別應知
015_0384_b_01L그 세 가지는 소위 원인[因]ㆍ이름[名]ㆍ이룸[成辦]을 말한다. ‘원인’이라고 말한 것은 저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안온함을 주어서지혜가 상응하는 수행이니, 마땅히 이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경전에서 적장엄(寂莊嚴)이라 이름하고 나아가 ‘일체 종류의 색을 나타내 보인다[示現一切種色]’라고 이름하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스스로 각각 지은 업의 차별에 의지하는 것이니, 이러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룸’이라는 것에서 이루어 갖추는 일은 간략히 네 가지이다. 뜻에 의지하여 간략히 설명하면 네 가지 광명이 있으니, 수용(受用)하는 것ㆍ공덕을 증장시키는 것ㆍ악을 그치게 하는 것ㆍ믿도록 하는 것이다.
015_0384_a_23L三者所謂因名成辦所言因者卽彼與樂與安隱智相應修行此義應知名者如經名寂莊嚴乃至名曰示現一切種色如是等也依自各各作業差別義應知言成辦者所成辦事略有四依彼義故略說則有四種光明謂受用增長功德止惡令信
‘수용한다’는 것은, 여러 부처님 여래께서 교화할 만한 중생과 함께 법락(法樂)을 받기 때문이다. 저 법락을 수용한다는 것은 소위 여래를 뵙고 여래께 공양하고 여래께 예배하고 여래께 여쭙는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여래를 뵙고 여래께 공양한다는 것은 첫 번째 광명에 의지하여 여래를 뵙고 여래를 사유하는 것이므로 여래를 뵙고 여래께 공양한다는 것은 첫 번째 광명의 설명이다. 여래께 예배한다는 것은 신업(身業)의 공양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여래를 뵙는다는 것은 공양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여래께 여쭙는다는 것은 두 번째 광명의 설명이니, 묻는 것 중에서 세간과 출세간의 과보는 차별과 차례가 있다. 다시 여섯 가지 광명10)이 있다.
015_0384_b_07L言受用諸佛如來可化衆生共受法樂故彼受用樂謂見如來供養如來禮拜如來問如來應知見如來供養如來依第一光明得見如來思惟如來見如來供養如來者第一光明說禮拜如來者示現身業供養見如來者非供養應知問如來者第二光明於所問中以有世閒及出世閒果報差別次第復有六種光明
015_0384_c_01L세간 과보의 뛰어난 차별은 두 가지 지(地)에 의지한다. 첫째는 비정지(非定地)이며, 둘째는 의정지(依定地)이다. 비정지 중에서는 원(願)으로써 두 가지 과보를 거두어들이게 된다. 첫째는 전륜성왕의 뛰어난 과보이고, 둘째는 천제석왕(天帝釋王)의 뛰어난 과보이다.11) 의정지라는 것은 범천왕의 뛰어난 과보인데12) 무슨 까닭에 야마천 등의 여러 가지 과보는 취하지 않는가? 세간의 여러 가지 경전에서 다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으신 것 역시 마땅히 그곳13)을 비추면서도 여러 경전 중에서 이것이 없으므로 밝히지 않는 것이다. 출세간 과보의 차별이라는 것은 이른바 3승에 의지한세 가지 차별이니, 마땅히 이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공덕을 증장한다는 것은 이른바 세 가지 공덕을 증장하는 것이다. 첫째, 악도 중생으로 하여금 그곳을 벗어나 미래세에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둘째, 괴로움을 받는 중생에게는 곧 몸을 나타내어 그에게 안락을 주며 환희를 얻게 하는 것이다. 셋째, 방일하는 중생에게는 능히 선법(善法)을 내게 하는 것이다.
015_0384_b_16L世閒果報勝妙差別依二種地非定地依定地非定地中以願攝取二種果一者轉輪聖王勝妙果報二者天帝釋王勝妙果報依定地者謂梵天王勝妙果報何故不取夜摩天等諸果報者以世閒諸經皆不說故佛放光明亦應照彼而諸經中無是故不言出世閒果報差別者謂依三乘三種差別此義應知增長功德者謂增長三種功德一者惡道衆生令出彼處於未來世生善道中二者受苦衆生卽現身中與彼安樂令得歡三者能令放逸衆生生於善法
악을 그치게 한다는 것은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갈래[諸趣]를 여의게 하는 까닭이며, 여러 지(地)를 여의게 하는 까닭이며, 여러 어려움을 여의게 하는 까닭이며, 여러 장애를 여의게 하는 까닭에 악을 그친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갈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악도(惡道)이고, 둘째는 선도(善道)이다. 악도에는 다시 세 가지가 있다.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어려움을 여의게 한다는 것은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세 가지 악도의 갖가지 고난을 여의게 함을 말한다. 중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장애를 여의게 한다는 것은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선도 중에서도 여러 가지 감각 기관이 갖추어지지 못하는 일,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등의 악업, 마음의 견해가 미혹(迷惑)하는 등 갖가지의 장애를 여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지위 중의 갖가지 장애를 여의는 것에서 여러 지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보살지(菩薩地), 둘째 성문지(聲聞地),셋째 범부지(凡夫地)이다. 보살지에서는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여섯 가지 바라밀로 대치(對治)하는 장애를 멀리 여의게 한다. 성문지에서는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세 가지 장애14)를 여의게 한다. 불공경장(不恭敬障)과 무지장(無智障)은 번뇌를 더욱 늘릴 뿐 금지하지 못한 채 번뇌를 일으키므로 장애[障]라 이름한다.
015_0384_c_06L言止惡者謂令衆生離諸趣故離諸地故離諸難故離諸障故名爲止惡諸趣二種一者惡道二者善道惡道三種令諸衆生離諸難者謂令衆生離三惡道種種苦難令諸衆生離諸障者謂令衆生離善道中諸根不具盲聾惡業心見迷惑種種諸障離諸地中種種諸障諸地有三菩薩地聲聞地凡夫地菩薩地中謂令衆生遠離六種諸波羅蜜所對治障聲聞地中謂令衆生離三種障不恭敬障及無智障增上煩惱不能禁止而起煩惱故名爲障
015_0385_a_01L또 불공경장은 불신장(不信障)을 말한다. 또 무지장이라는 것은 무다문혜장(無多聞慧障)이다. 또 번뇌를 늘릴 뿐 금지하지 못한 채 번뇌를 일으키므로 장애라 이름한다는 것은 무참괴장(無慚愧障)이다. 범부지에서는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네 가지 장애15)를 여의게 한다. 근본을 의지하여 집(集)을 닦는 것은 탐ㆍ진ㆍ치 등의 번뇌가 현행(現行)하는 장애는 이른바 사념(邪念) 등이 현행하기 때문이며, 모든 번뇌가현행하는 장애는 이른바 잡(雜)번뇌가 현행하기 때문에 이를 악을 그침이라 하는데, 스물하나의 광명16)에 차례대로 설명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015_0384_c_19L又不恭敬者不信障又無智者無多聞慧障又增上煩惱不能禁止而起煩惱故名障無慚愧障凡夫地中謂令衆生離四種障依本修集貪瞋癡等煩惱現行障謂邪念等現行故一切煩惱現行障謂雜煩惱現行故此是止惡二十一光明次第說應知
믿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여래 몸의 갖가지 광명이 미묘하고 뛰어남을 보는 것이니, 이로 인해 믿음의 희망을 내어서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갖가지 다른 색깔’이라는 것은 갖가지 색깔을 본다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보고자 희망하는 것이다. 또 ‘갖가지 다른 색깔’이라는 것은 청ㆍ황ㆍ적ㆍ백 등의 갖가지 차별이다. ‘한량없는 종류의 색깔’이라는 것은 청색 등이 각각 한량없는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백천 만 가지 색을 넘어선다’는 것은 나머지 청색 등의 색깔 중에서 뛰어난 광명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넘어선다’는 것은, 청색ㆍ황색 등 중에서 다시 한량없으며 가없다는 것이다. ‘나머지 겁이나[餘殘劫]’라는 것은 한 겁에서 한량없고 가없는 겁까지를 넘어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광명의 공덕이 한량없고 가없어서 다할 수 없다”17)는 것은 광명의 공덕이 한량없으며 가없어서 산수(算數)와 비유로써는 능히 미칠 수 없으며 나아가 무여열반계(無餘涅槃界)에 이르기까지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알아야 할 것이다.
015_0385_a_03L言令信者見如來身種種光明微妙殊勝是故生信希望欲見故種種異色者見種種色也見者希望欲見也又種種異色者靑黃赤白等各各差別也無量種色者靑等各各有無量種也過百千萬色者餘靑等色中過勝光明也過者謂靑黃等中復過無量無邊也若餘殘劫者過於一劫乃至無量無邊劫說也光明功德無量無邊不可窮盡者光明功德無量無算數譬喩所不能及乃至無餘涅槃界不盡應知
일체의 광명 더 나아가 아승기아승기(阿僧祇阿僧祇)의 광명까지도 수용 등 네 가지 광명18)의 상응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처럼 “여래는 한량없고 가없는 신광(身光)의 장엄이 불가사의하며 방편선교(方便善巧)에 상응하는 설법을 나타내 보인다”19)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하여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말씀한 바가 교화될 중생으로 하여금 존중심을 내게 하는 까닭이며, 희유함을 나타내 보여서 뛰어난 인(因)이 되는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게 하는 까닭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직 이러한 여러 가지 광명의 이름을 듣지 못했습니다”20)라는 것은 여래의 한량없고 가없는 광명의 공덕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찬탄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이란 이제 무슨 까닭으로 위없는 공덕의 원인을 말씀하여 나타내 보이시는가를 뜻하니, 이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015_0385_a_15L一切光明乃至阿僧祇阿僧祇光不出受用等四種光明相應如是知如來示現無量無邊身光莊嚴不可思議方便善巧相應說法者示現說者所說令可化衆生生尊重心故示現希有令生勝因敬重心故世尊我未聞此諸光明名者現如來無量無邊光明功德所不說不讚歎者也若如是者今何故說現無上功德因故是以次言
015_0385_b_01L“세존이시여,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의 뜻[法義]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중생이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광명의 이름을 들을 수 있어서 능히 깨끗한 믿음과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자라면, 저 중생들은 마침내 여래의 이와 같은 광명의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21)
먼저 광명을 놓자 망명보살은 이미 모든 여래께서 지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업을 알아서 갖가지 법락(法樂)을 받았으며, 아울러 한량없는 여러 보살도 함께 법락을 받고자 함을 알았기 때문에 여래께 광명을 놓으시도록 한 것이다. 마치 경에서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건대 오늘 보살의 광명을 놓아 주셔서 여러 보살들을 깨닫게 하소서”22)라고 청하기 때문이다.
015_0385_b_01L世尊我解佛所說法義世尊若有衆生得聞如此諸光明名能生淨信恭敬心彼諸衆生畢竟定得如來如是光明之身先放光明網明菩薩已知一切如來所作利益衆生業受種種法樂欲共無量餘諸菩薩同受法樂故請如來令放光明如經世尊唯願今日放請菩薩光覺諸菩薩
이 광명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중에서 법락의 빛을 수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세계의 보살들도 깨달아 알게 한다는 것은 이 빛이 앞에서 말한 광명을 분산(分散)하는데 들어가기도 하고 또한 공덕의 광명을 증장하는데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어떠한 광명이 한량없으며 가없는 세계를 비추는가? 이 중에 나타내 보인 것은 가히 헤아릴 수 있음을 지나는 것이므로 ‘한량없다’라고 이름한다. 타방(他方)에 이르는 것이 마치 허공처럼 가없으므로 ‘가없다[無邊]’고 이름한다.
015_0385_b_09L此光不出前四種中受法樂光令餘世界菩薩覺知者此光入前分散光明亦入增長功德光明應如是知以何等光明照於無量無邊世界此中示現過於可數故名無量去到他方猶如虛空邊不可得故名無邊
015_0385_c_01L‘현재에 머무른다[現住]’는 것은 다시 다른 세계가 있지만 그곳에 가지 않으므로 ‘현재에 머무른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열반에 들지 않으므로 ‘현재에 산다[現命]’고 이름하며, 여러 가지 병이 없으므로 ‘현재에 있다(現在)’라고 이름한다. 다시 모든 법이 청정하여 상응한다고 설명하므로 무병(無病)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라. ‘저 부처님을 받들어 뵙는다’는 것은 현재 석가모니부처님을 뵙기 때문이다. ‘저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것은 일체의 마땅히 공양해야 할 도구[資具]를 모두 다 드리기 때문이다. ‘저 부처님께 여쭙는다’는 것은 법답게 여쭙기 때문이다. ‘저 부처님께 답한다’는 것은 법답게 대답하기 때문이다. ‘깊고 자세하게 여쭙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심을 끊기 때문이다. 또 다시 빠른 뜻이 있으니, 현재 상호[面]를 뵙기 때문이며, 부처님께 공양하기 때문이며, 본행(本行)의 위의(威儀)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듣고 여쭙지 아니하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차례로 법에 의지하고 뜻에 의지하여 법을 여쭙고 뜻을 여쭙기 때문이다.
015_0385_b_15L言現住者餘世界彼處不去故名現住不入涅槃故名現命以無諸病故名現在說諸法淸淨相應是故名爲無病應奉見彼佛者以現見釋迦牟尼佛供養彼佛者一切所應供養之具盡以給施故問彼佛者如法諮請故答彼佛者如法對故深細意問者諸疑網故又復有義現見面故供養佛故依本行威儀故聽問以不故是次第依法依義問法問義故
그 아래23)는 문답의 뜻에 의지하는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열 가지 청정하고도 견고한 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간략히 두 가지 마음에 의지하여 설명하는데, 첫째는 불염심(不染心)에 의지하여 설명하는 것이며, 둘째는 공경심(恭敬心)에 의지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불염심에 의지한다는 것은 더러움과 청정함이 있는 세계의 일곱 가지 차별24)에 의지하여 염법을 떠나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일곱 가지란 첫째 법차별(法差別)은 청정한 법과 청정하지 않은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 수(受)차별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업(業)차별은 하ㆍ중ㆍ상 성씨의 가문에 다르게 태어난 까닭으로 악행ㆍ선행ㆍ잡행(雜行)이 다르기 때문이다.25) 넷째 심(心)차별은 여러 중생이 불법 중에서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015_0385_c_02L自此以下依問答義應如是知十種淸淨堅固心略依二種心說依不染心依恭敬心說依不染心者依染淨世界七種差別染離染法應知種差別者所謂法差別以淨法不淨法差別故受差別以受苦樂差別故業差別以下中上姓家生差別故惡行善行雜行差別故心差別以諸衆生於佛法中信法不信法差別故
다섯째 행(行)차별은 올바른 행과 삿된 행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섯째 심수행(心修行)차별은 3승(乘)의 원(願)과 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곱째 도(道)차별은 선도와 악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심 등의 염오(染汚)는 여기서 무염상(無染相)과 대치하기 때문에 여덟 가지 청정하고도 견고한 마음26)을 설명하는 것이니, 마땅히 이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015_0385_c_11L行差別以正行邪行差別故心修行差別以三乘願行差別故道差別以善道惡道差別故如是等惡心等此對治無染相故說八種淸淨堅固心此義應知
어떻게 아는 것이 마땅한가? 법차별염(法差別染)이란 여기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뜻에 의지하면 말을 잘 하는 것과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니,27) 이와 같이 분별하여 말한다. 둘째, 법에 의지하면 선을 듣는 것과 불선을 듣는 것이니,28) 이와 같이 분별하여 말한다. 법차별염의 대치(對治)라는 것에서 첫 번째 구29)는 화를 내지 않는 마음으로써 화내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니, 좋은 말에서나 좋지 않은 말에서나 마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쁜 말[惡語]에 대해서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나는 능히 참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러한 뜻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015_0385_c_16L應云何知法差別染此有二種一者依義謂善說相不善說相如是分別二者依法謂聞善相聞不善相如是分別對治者初句以不瞋恨心對治瞋恨心謂於善語於不善語不起心故於惡語中不生心念言我能忍此義應知
015_0386_a_01L두 번째 구30)에서 ‘똑같이 자심(慈心)이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은 여러 문자의 성품이 이와 같기 때문이며, 뒤바뀌지 않은 법을 말하여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안온한 곳에 머물도록 하기 때문이다.수차별염의 대치라는 것은 모든 감수[受]가 다 괴로움이라서 이와 같은 일체의 일[事] 중에서 평등하게 비심(悲心)을 일으켜 중생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업차별염의 대치라는 것은 이른바 올바른 수행이니, 이와 같은 일체처(一切處)에서 마음이 다 평등하여 즐거움을 주고 지혜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심차별염의 대치라는 것은 공양의 경솔한 헐뜯음에 대해 높이고 낮추는 마음을 여의기 때문이다.
015_0385_c_22L第二句言等以慈心者以諸文字性如是故說非顚倒法令諸衆生住安隱處故受差別染對治者所有諸受皆悉是如是一切事中等生悲心憐愍衆生故業差別染對治者謂正修行是一切處心皆平等與樂修行智故心差別染對治者於供養輕毀離高下心故
행차별염의 대치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여러 가지 허물을 보지 않기 때문이며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심수행차별염의 대치라는 것은 평등하게 일미(一味)이기 때문이며, 3승(乘)이 서로 시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차별염의 대치라는 것은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으며 스스로의 업에 수순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법체(法體)를 관찰하기 때문에 이를 여덟 가지 청정하고 견고한 마음31)이라 이름하면서 일곱 가지 불염심에 의지해 설명하는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015_0386_a_07L行差別染對治者不見諸過不生利益心故心修行差別染對治者等一味故以彼此三乘不相是非故道差別染對治者不生驚怖隨順自業如是善知以觀察法體故名八種淸淨堅固心依於七種不染心說應如是知
공경심에 의지한다는 것은 곧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보살은 세존의 상념[世尊想]을 내기 때문이니, 이는 무슨 뜻을 밝히는 것인가? 이 세계에서는 5탁(濁) 가운데 태어나지만 모든 보살은 여래의 상념을 낳는 바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국토에서는 모든 보살이 고행을 행하며 대보리(大菩提)를 구하면서도 피곤해 하거나 싫어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끝까지 여실히 수행함을 보나니, 그래서 보살은 여래의 상념을 내고 이 때문에 세존의 상념을 낸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나니, 이러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아는 것이 마땅한가?
015_0386_a_13L依恭敬心者此有二種一者於一切菩薩生世尊想故此明何義謂於此界生五濁中諸菩薩所生如來想故如是佛國土中見諸菩薩行於苦行求大菩提不生疲倦畢竟如實修行於是菩薩生如來想以是故言生世尊想復生希有想此義應知應云何
015_0386_b_01L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는 것이 어려워서 매우 희유한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보리심을 내는 것을 버리거나 여의지 않는 것도 희유라고 이름하나니, 이 때문에 그에게서 세존의 상념이 나온 것이다. 둘째는 부처님께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기 때문이니, 이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오염이 없는 세계에서는 그 중생의 한량없는 백천만 겁의 수명을 낳으므로 여러 부처님 여래께서 언제나 한량없는 중생의 이익을 짓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번뇌가 있는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적은 시간 안에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므로 이 중에 부처님을 뵙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낼 수 있으니, 이러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청정하고 견고한 마음이 능히 증장시키며 성취시킬 수 있는 것이니, 이러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015_0386_a_21L如佛出世難甚爲希有菩薩摩訶薩亦復如是以不捨離發菩提心亦名希有是故於彼生世尊想二者於佛生希有想故此有何義如無染世界生彼衆生無量百千萬劫壽命佛如來常作無量衆生利益如是多煩惱過世界中生於少時閒能作無量衆生利益此中見佛生希有想義應知淸淨堅固心能增長成就義應知
적정한 행에 들고자 하면 청정하고 견고한 마음에 의지하여 보살과 함께 보살의 받아들임[受]을 염(念)해야 하나니, 그 세계에서 백천만겁토록 정념(正念)을 여의지 않고 언제나 범행을 닦음을 취해도 사바세계에서 아침부터 낮까지 금계(禁戒)를 굳건히 지니고 불염심으로 행하는 것이 더욱 훌륭함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32)
015_0386_b_07L入寂靜行依淸淨堅固心與菩薩念菩薩受取於彼世界百千萬劫不離正念常修梵行娑婆世界從旦至中堅持禁戒不染心行示現勝故
이는 어떤 뜻을 밝히는 것인가? 그것은 마치 중병을 치료할 때 속히 쾌차토록 하기 위해 묘약을 복용시켜 즉시 낫게 하는 것과 같으니, 중생의 많은 번뇌의 허물을 속히 소멸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법을 얻게 하여 대치하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쁜 나라에서 태어난 중생은 고통이 많고 번뇌가 많아서 세계를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보살들로 하여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을 뵙고 예배하고 공양하게’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여래께 묻고 답하기 때문에 성자 승사유범천으로 상수(上首)를 삼아서 묻는 것이니, 묻고 답함은 승사유범천에 의지하여 대중에게 공경심을 내도록 하기 때문에 승사유범천은 필경에 어떤 요설변재를 얻으며 어떤 요설변재의 과보를 얻는지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015_0386_b_11L此明何義如治重病爲令速差但與妙藥令服則愈如是衆生多煩惱過爲速滅故令得勝法對治則滅此義應知示現生在惡國衆生多有諸苦多有煩惱污染世界故爲令諸餘菩薩見世尊釋迦牟尼佛禮拜供養問答如來故聖者勝思惟梵天以爲上首爲問答依勝思惟梵天生於大衆恭敬心故示現勝思惟梵天畢竟得何等樂說辯才得何等樂說辯才果
015_0386_c_01L이러한 두 가지 설에 의지하는 것이 올바른 질문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니, 이러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 어떠한 요설변재를 얻게 될 것인지를 설한다.33) 이것은 일체처에서 여쭙는 것과 상응하기 때문이며, 묘한 방편으로 중생이 이해하도록 하기 때문이며,언어가 가장 뛰어나고 언어를 존중하기 때문이며, 올바른 인[正因]을 설명하고 실의(實義)에 의지해서 설명하고 안온하게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아름답고 묘함이라고 이름을 지음으로써 인정이 있기 때문이며, 큰 천인(天人) 주변에서 청정심의 공양을 얻기 때문이며, 모든 마(魔)ㆍ원적(怨敵)들이 항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며, 깊고 신비한 의의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덟 가지 구절34)로써 승사유범천의 미묘한 언어의 요설변재를 설명하는 것이니, 이러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5_0386_b_21L此二種說正問中爲最第一此義應初說得何等樂說辯才以一切處問訊相應故以巧能令衆生解故言語最勝故以尊重言語故以說正因故以依實義說故以依安隱說故是名美妙以有人情故以於大天人邊得淸淨心供養故以一切諸魔怨敵不能降伏故以說深密意義故此八句說勝思惟梵天美妙言語樂說辯才此義應知
어떻게 아는 것이 마땅한가? 첫째는 상응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해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존중하는 것이며, 넷째는 안온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인정(人情)이요, 여섯째는 크게 청정하여 이르게 되는 것이며, 일곱째는 항복시키지 못하는 것, 여덟째는 매우 깊은 것이다.35)
015_0386_c_08L應云何知所謂一者相應二者令解三者尊重四者安五者人情六者大淸淨至到七者不可降伏八者甚深
그 다음은 요설변재의 원인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많은 종류의 공덕의 언어로 법을 설함을 나타내 보일 때 설사 중생들이 여실하게 정행(正行)을 닦지 않는 자가 있다 해도 저 중생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뛰어난 즐거움을 주어서 훌륭히 상응하기 때문이며, 중생들이 여러 가지 고통을 여의고 뛰어난 즐거움을 얻도록 구하기 때문이며, 즐거움을 비롯한 뛰어난 공덕을 줄 때 그를 기뻐하고 경하하기 때문이며, 오염되지 않는 것 등을 구함으로써 뛰어난 즐거움과 안온한 마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섯 구절36)로써 승사유범천의 미묘한 언어와 요설변재의 원인을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아는 것이 마땅한가? 세 가지 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인데, 첫째 버리지 않는 마음, 둘째 즐거움을 주는 마음, 셋째 안온하게 하는 마음이다. 이와 같이 하여 한 구절, 세 구절, 한 구절을 차례로 설명하는 것37)이니, 알아야 할 것이다.
015_0386_c_11L次說樂說辯才因示現如是多種功德言語說法時若諸衆生有不如實修正行者而不捨彼諸衆生故以與勝樂善相應故以求衆生離於諸苦得勝樂故以與樂等勝功德時歡喜慶彼故以求不染等與勝樂安隱心以此五句說勝思惟梵天彼美妙言語樂說辯才因此義應知應云何示現三種心一者不捨心二者與樂心三者安隱心如是一三一次第說應知
그 다음은 어떠한 요설변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니, 저 일체 중생을 위해서 일체의 뜻 가운데서 능히 의혹을 끊는다는 것이다.
015_0386_c_22L次說得何等樂說辯才果所謂爲彼一切衆生於一切義中能斷疑故
015_0387_a_01L게송의 뜻은 경과 같다.
015_0387_a_01L偈義如經
“그때 세존께서 승사유범천을 칭찬하시고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범천이여’라 하시고, 또 다시 ‘착하도다. 범천이여’”라고 함은 그 물음의 의식(儀式)을 발한 것이니, 부처님께 나아가 여쭙는 이 3시(時)의 일과 상응하기 때문에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착하도다. 범천이여, 그대는 이제 지극한 마음으로 그대를 위한 말을 듣고 있다”라고 한 것은 이러한 차례38)가 전도되지 않은 마음, 정념(正念)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015_0387_a_02L爾時世尊讚勝思惟梵天言善哉善梵天復善哉梵天者以其發問儀式詣佛於此三時中事相應故應知善哉梵天汝今至心諦聽我爲汝說如是次第不顚倒心正念心故
‘그 마음이 견고하여 피로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은 마음이다. 이 중에 대보리는 신심으로 근본을 삼으니, 이러한 말은 원(願)의 모습을 짓는 것이다. 저 원에 의지하므로 곧 능히 구족해서 여래지(如來地)의 모든 공덕을 얻는 것이다. 보리심의 견고한 방편에 의지하므로 첫 번째 질문39)이 있게 되는 것이다. 대승 중에는 피곤해하거나 싫어할 일이 대략 네 가지 있다. 그 네 가지 피곤해하거나 싫어할 일을 의지하기 때문에 보살이 비록 보리의 마음을 발하고 보리의 원을 지어도 그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015_0387_a_07L其心堅固而不疲倦者是正直心中大菩提信心爲本是作願相依彼願故則能具足得如來地一切功德依菩提心堅固方便有第一問於大乘中略有四種疲倦之事依彼四種疲倦事故菩薩雖發菩提之心作菩提願而失彼心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 모든 중생이 여실히 수행하지 않는 것, 둘째 여러 가지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셋째 중행(中行)에 있을 때가 많은 것, 넷째 해탈을 기다림 중에서 마음은 언제나 빠른 해탈을 얻고자 하므로 그것을 위해 힘이 있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장애를 대치하는 방법이란 것은 이른바 중생에게 대비심을 내는 것 등이니,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을 차례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아는 것이 마땅한가? 이른바 모든 보살이 대비심에 의지하여 이렇게 저렇게 중생들이 여실히 정행을 닦지 못함을 볼 때 이렇게 저렇게 더욱더 증상(增上)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냄으로서 저 중생들에게 해탈을 얻게 하는데, 이렇게 저렇게 더욱더 증상하고 증장(增長)하여 원을 짓는다.40)
015_0387_a_14L何等爲四一者以諸衆生不如實修行故二者多作衆事三者多時在有中行故四者等解脫中心常欲得速解脫故爲彼有力此四種障對治法者謂於衆生起大悲心等如是四種法次第而說義應知應云何知謂諸菩薩依大悲如是如是見諸衆生不能如實修正行時如是如是轉轉增上生憐愍爲彼衆生令得解脫如是如是轉轉增上增長作願
015_0387_b_01L또 모든 보살이 언제나 정진을 하되피로해 하거나 싫어함이 없으니, 짓는 일들이 많아도 능히 다 지을 수 있다.41) 또 모든 보살은 무시이래의 과거세로부터 받는 온갖 괴로움이 꿈과 같다고 신해(信解)할 뿐 앞으로 미래세의 괴로움은 헤아리지 않는다.42)
또 모든 보살은 일체지(一切智)를 위해서 비록 2승(乘)과 같이 번뇌를 해탈하거나 한량없는 불공(不共)의 공덕을 얻더라도 그 스스로를 위해서 빨리 해탈하고자 하는 마음을 끊어버릴 힘을 갖고 있다. ‘견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공(不共)의 공덕이 견줌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따위[等]’라 함은 2승(乘)이 어느 정도 번뇌 따위를 끊어 버리므로 ‘따위’라고 이름하고, 이 때문에 ‘견줌 따위가 없다’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015_0387_b_01L又諸菩薩常勤精進而不疲倦所作事多而悉能作諸菩薩無始世來過去諸苦信解如不計後時未來世苦又諸菩薩爲一切智雖同二乘解脫煩惱雖取無量不共功德爲彼有力斷彼欲得速解脫心言無等者不共功德無有等所言等者二乘少分斷煩惱等故名等以是義故名無等等
이와 같이 네 가지의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마음으로 네 가지의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의 장애를 대치하기 때문에 보살은 대승 중에서 그 마음이 흔들림이 없고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마음이 흔들림이 없고 피곤해 하거나 싫어함이 없이 자신의 불법의 순숙(淳熟)함에 의지하여 여실히 수행하여 올바른 법을 설명한 뒤에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여실히 수행하고 간략히 네 가지로 설법하셨다.
015_0387_b_09L如是四種不疲倦心對治四種疲倦心障故菩薩於大乘中其心堅固而不疲如是其心堅固而不疲倦依於自身佛法淳熟如實修行正說法已依爲他如實修行略說四法
‘결정하여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이다.43)
첫째는 무(無)의 뜻이고, 둘째는 유(有)의 뜻이다. 이른바 무의 뜻은 ‘무아(無我)’이기 때문이며, 저 무아라는 것은 법을 여의기 때문이며, 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저 상(相)이 없기 때문에 이 보살은 필경에 모든 존재는 무아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이 해서 필경에 모든 존재는 모두 무아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015_0387_b_14L所言決定而不中悔者於二種義一者無義二者有義言無義者以無我故彼無我者離於法故言無法者無彼相故是菩薩畢竟說言諸法無我諸菩薩等如是畢竟說一切法悉無有我
015_0387_c_01L유의 뜻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허물이 있다는 뜻이고, 둘째 공덕의 뜻이고, 셋째 두 가지 뜻이다. 차별로 말미암아 허물이 있다는 뜻은 이른바 모든 생겨나는 곳에서 일체의 번뇌를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니, 그곳을 원하지 않으므로 즐겁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필경에 ‘모든 생겨나는 곳에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보살들이 이와 같이필경에 ‘모든 생겨나는 곳에 즐거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015_0387_b_19L有義者有三種義一有過義二功德三者二義以差別故有過義者一切生處以攝一切諸煩惱故不願彼處故不樂說是故菩薩畢竟說彼一切生處無有樂者諸菩薩等如是畢竟說諸生處無有樂者
공덕의 뜻이란 이른바 대승의 위없는 법을 찬탄하는 것이니, 모든 공덕으로써 일체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필경에 결정적으로 대승을 언제나 찬탄하는 것이며,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이 필경에는 대승을 언제나 찬탄하는 것이다. 두 가지 뜻은 저 허물과 공덕의 두 가지가 공(空)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은 필경에 저 두 가지 법이 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보살도 이와 같이 필경에 그러한 죄와 복의 두 가지가 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는 어떤 뜻을 밝히는 것인가? 비록 한량없는 때에 인연에 상응함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능히 과보를 주기 때문이다.44)
015_0387_c_02L功德義者謂讚大乘無上之法以諸功德一切相應故是故菩薩畢竟決定常讚大諸菩薩等如是畢竟常讚大乘二義者彼過功德二法不空故是故菩薩畢竟說彼二法不空諸菩薩等如是畢竟說彼罪福二法不空此明何義雖無量時得因緣相應能與果報故
이와 같이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 의지하여 여실히 수행하고 필경에 법을 말한 뒤에 다음으로 모든 선근을 증장한다는 것을 말한다.45)
세간 과보의 원인에 의지하여 선근이 증장한다는 것과 출세간 과보의 원인에 의지하여 선근이 증장한다는 말이 있다. 세간 과보의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스스로 묘신(妙身)을 성취하는 원인이고, 둘째는 자생(資生)으로 성취하는 원인이다. 스스로 묘신을 성취하는 원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정지(不定地) 중에서 스스로 묘신을 성취하는 원인으로서 계의 선근이 증장하는 것이다.46)
둘째는 정지(定地) 중에서 스스로 묘신을 성취하는 원인으로서 지혜의 선근이 증장하여 저 상지(上地)와 하지(下地)의 지혜와 공덕을 넘는 것이니, 지혜의 근본에 의지함으로써 그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여의기 때문이다.47)
015_0387_c_10L如是依自利他利如實修行畢竟說法已次說增長諸善根依世閒果報因善根增長說依出世閒果報因善根增長說世閒果報因有二種一者自妙身成就因二者資生成就因妙身成就因有二種一者不定地中自妙身成就因謂戒善根增長二者定地中自妙身成就因謂智善根增長彼上地下地智功德過以依智根本離欲得彼故
015_0388_a_01L자생하여 성취하는 원인은 모든 재물을 버리는 것이니, 이른바 보시의 원인으로 선근이 증장한다는 것이다.48) 출세간 과보의 원인이란 것은 이른바 해탈의 원인이다. 이는 출가의 모습으로 탐착을 여의는 원인이니,49) 그것을 인하기 때문에 해탈의 원인을 얻어서 모든 공덕과 선근이 증장하는 것이다. 또 ‘증장’은 이들 여러 가지 선근이 세간의 변설(辯說)에 의지하는 것이므로,다섯 가지 증상(增上)의 뜻이 있으므로 증장(增長)이라고 이름한다.
015_0387_c_20L資生成就因者捨一切物謂布施因善根增長出世閒果報因者謂解脫因是出家相離貪著因以因彼故得解脫因一切功德善根增長又增長者此諸善根依世辯說有五種增上義故名增長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항복으로 모든 선근이 증상되므로 증장이라 이름한다. 이러한 선근은 성문과 벽지불 등의 모든 선근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둘째 어긋나지 않는 증상이므로 증장이라 이름한다.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며 견고하기 때문이다. 셋째 두려워하지 않는 증상이므로 증장(增長)이라 이름한다. 이러한 선근에 의지하여 지옥 등 악도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넷째 치우치지 않는 증상이므로 증장이라 이름한다. 대치해야 할 법을 똑같이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차별이 없는 증상이므로 증장이라 이름한다. 자리ㆍ이타의 모습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50)
015_0388_a_02L何等爲五一者降伏諸善根增上故名增長此善根勝出聲聞辟支佛等諸善根二者不違增上故名增長以不退以堅固故三者不畏增上故名增以依此善根過地獄等惡道怖畏四者不偏增上故名增長以能等破所治法故五者無差別增上故名增長以作自利他利無異相故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선근을 증장하고 나면 불법을 믿지 않고 여실하게 수행하지 않는 중생에게도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독송 등의 선행분(善行分)에서도 법답게 두려움 없음을 설해서 위의(威儀)가 변전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차례로 저 법상(法相)을 설해서 소위 불법을 믿지 않고, 여실하게 수행하지 않는 중생에게도 두려움이 없어서 위의가 변전하지 않는다. 그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연(軟)ㆍ중(中)ㆍ상(上)이다. ‘연’이라는 것은 명(命)이 되는데, 언제나 자신(自身)을 두려워해서 자생(資生)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중’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언제나 비방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둘째는 언제나 악명(惡名)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즉 눈앞에서 비방하는 것과 안 보는 데서 비방하는 것이다. ‘상’이라는 것은 언제나 고뇌를 두려워하면서 몸으로 받는 것이다.51)
015_0388_a_10L如是增長諸善根已於不信佛法不如實修行衆生不生恨心於讀誦等善行分中如法而說無所恐畏威儀不轉故次第說彼法相謂於不信佛法如實修行衆生無所恐畏威儀不轉彼有三種謂軟軟者爲命常畏自身不得資生中者有二一者常畏毀辱二者常畏惡名現前說惡屛處說惡上者常畏苦惱於身中受
015_0388_b_01L이와 같이 두려운 것이 없고 위의가 변전하지 않음은 백법(白法)에 수순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다음에 설하는 모든 백법의 증장은52) 곧 네 가지 백법의 설함에 의지한다. 첫째는 욕(欲)백법, 둘째는 행(行)백법, 셋째는 만족공덕(滿足功德)백법, 넷째는 증(證)백법이다. 욕백법이란 이른바 모든 보살이 대보리로 저 욕심을 내는 중생을 교화해서 그들 중생으로 하여금 미래세의 모든 백법 중에서 자체상(自體相)의 욕(欲)을 얻게 하는 것이다.53)행백법이란 이른바 모든 보살이 생활을 돕는 보배 등의 물건을 보시로써 희사(喜捨)한 뒤에도 미래에 자기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54)
015_0388_a_19L如是無所恐畏威儀不轉隨順白法是故次說增長諸白法依四種白法一者欲白法二者行白法三者滿足功德白法四者證白法欲白法者謂諸菩薩以大菩提教化衆生生彼欲心令諸衆生於未來世諸白法中得自體相欲行白法者謂諸菩薩捨己資生珍寶等物以用布施不求未來自身果報
만족공덕백법은 이른바 모든 보살이 저 보배를 버리는 인(因)에 의지해서 좋은 묘법(妙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 마음에 탐착함이 없이 다시 백법을 수행하여 묘법을 거두어들임으로써 다문(多聞)에 상응하기 때문에 모든 백법의 훈습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공덕을 갖추는 것이다.55) 증백법이란 이른바 모든 보살마하살이 저 증지(證智)에 의지하는 것을 자신의 대보리로 삼기 때문에 지혜방편은 바로 저 백법의 증지라는 뛰어난 법을 얻음을 설한 것이다.56)
015_0388_b_04L滿足功德白法者謂諸菩薩依彼捨珍寶因得好妙法成就心不貪著而復修行白法攝取妙法以多聞相應故一切白法薰習滿足是故菩薩諸功德滿足證白法者諸菩薩摩訶薩依彼證智爲於自身大菩提故說智方便得彼白法證智勝法
이처럼 여러 백법을 증장하고 나서 훌륭한 앎을 수순하여 하나의 지(地)로부터 하나의 지에 이르니,57) 이 때문에 다음에서 말하는 저 법상이58) 이른바 네 가지 법에 의지해 설해진 것이다. 첫째 공덕을 만족시키는 것, 둘째 모든 장애를 청정히 하는 것, 셋째 마음을 성취시키는 것, 넷째 수행을 구족하는 것이다. ‘모든 선근을 모은다’는 것은 지로부터 지에 이르기까지 공덕의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모든 허물을 여읜다’는 것은 저 모든 장애를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회향의 방편’이라는 것은 자생(資生)이 있음을 여의고 아울러 소승의 속히 해탈하고자 하는 마음을 여의기 때문이니, 소유하고 있는 모든 선근을 모두 회향하여 대보리를 취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것은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하여 일체의 시(時)에서 항상 단절되지 않도록 하니, 근본에 의지하여 뛰어난 곳[勝處]을 취하기 때문이다.
015_0388_b_11L如是增長諸白法已隨順善知從一地至一地是故次下說彼法相謂依四種法說一者滿足功德二者淸淨諸障三者成就心四者具足修行諸善根者爲得從地至地功德滿足離諸過者爲淸淨彼一切諸障故迴向方便者離有資生及離小乘速解脫心故所有善根一切迴向取大菩提故勤精進者至心修行一切時中常不斷絕以依根本取勝處故
015_0388_c_01L이와 같이 방편을 말한 다음에 방편의 법상(法相)을 말한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을 잘 안다’는 것은 네 가지 설법에 의지하는 것이다. 첫째 능히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고, 둘째 한량없는 지혜공덕을 모으는 것이고,셋째 한량없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고, 넷째 방편이다. ‘능히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은 보시ㆍ애어(愛語) 등에 의지하여 모든 중생을 수순하고 모든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보살은 능히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015_0388_b_21L如是說方便已次說方便法相善知方便教化衆生者依四種法說一者能教化衆生二者集無量智功德者集無量智慧四者方便能教化衆生者謂依布施愛語等隨順諸衆生攝取諸衆生是故菩薩能教化衆生集無量智功德者雖離定不定地依布施等行於三世中一切衆生一切種功德悉皆隨喜是故菩薩得無量智功德
한량없는 지혜공덕을 모은다는 것은 비록 정지(定地)ㆍ부정지(不定地)를 여의더라도 보시 등에 의지하여 3세의 일체 중생에게 행해서 모든 종류의 공덕이 총체적으로 다 수희(隨喜)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보살은 한량없는 지혜공덕을 얻는 것이다. 한량없는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비록 대치해야 할 지장(智障)이 없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수행하여 참회를 발하여 드러내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보살은 한량없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방편’은 모든 보살의 수행과 대치에 의지해서 모든 부처님께 의지함을 권청(勸請)하여 온갖 중생을 위해 지혜의 광명을 주어 모든 지혜를 모으게 하는 것이니, 선방편(善方便)으로써 근본을 삼기 때문에 방편이라 이름한다.
015_0388_c_08L集無量智慧者雖無智障對治而常修行發露懺悔是故菩薩集無量智慧方便者依一切菩薩修行對治勸請諸佛依爲諸衆生與智慧光明集諸智慧以善方便爲根本是名方便
이와 같이 수행방편을 말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저 설법의 모습[相]을 말한다.59) ‘모든 중생에 수순한다’는 것은 법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네 가지 중생에 의거해서 말하는데, 첫째는 중간(中間) 중생에 의거하고, 둘째는 법에 들어가는 중생에 의거하고, 셋째는 법을 비방하는 중생에 의거하고, 넷째는 존중받는 중생에 의거하는 것이다. 즉 중생들의 위의와 방편에 수순한다는 것이다.
015_0388_c_13L如是已說修行方便次說爲彼說法之相隨順諸衆生者爲之說法故依四種諸衆生說一者依中閒衆生二者依入法衆生三者依謗法衆生四者依所尊重衆生隨順彼衆生威儀方便故
015_0389_a_01L‘중간 중생에 의거한다는 것’은 이른바 불법을 아직 믿지 않는 중생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보살의 수행은 저 중생이 믿는 불법에 수순해서 그것을 설하여 저 중생에게 안온한 사문(事門)을 수여하고, 다만 그를 공경하고 공양해서 허망하게 속이지 말아야 하니, 보살의 수행도 이와 같은 것이다.60) ‘모든 법에 들어간 중생에 의지한다’는 것은 이른바 보살심이 중생으로 하여금 법의 뜻에 들어갈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그것을 공급해서저 중생으로 하여금 이양(利養)에 탐착하고 보살을 친근하게 하여서 법의 뜻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에서 아직 제도하지 못한 사람을 제도를 얻게 하기 때문에 먹고 입는 생활의 도구를 구하기 위해서 피곤해 하거나 자신만을 위해서 탐착하지 않는다. 보살행을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61) ‘법을 비방하는 중생에 의지한다’는 것은 보살의 자리행에 잘못이 없는 것이니, 부드러움과 인욕에 의지하여 다른 사람의 죄를 따지지 않고 가르쳐서 참회하게 하는 것이다. 보살의 수행이 바로 그와 같다.62) ‘존중받는 중생에 의지한다’는 것은 보살이 그에게 굴복하고 순종하여 말에 따르며 받아들인다는 것이니, 보살의 수행이 이와 같다.63)
015_0388_c_19L依中閒衆生者謂依未信佛法衆生菩薩修行隨彼衆生所信佛法而爲說之與彼衆生安隱事門不但與彼供養恭敬虛妄誑之菩薩行如是依入法衆生者謂菩薩心爲令衆生得入法義故供給之令彼衆生貪著利養親近菩薩得入法義如是法有未度者令得度故爲求衣食資生之具不生疲倦不爲自身貪著己樂菩薩行如是依謗法衆生者菩薩自行無諸過失依柔和忍辱不計彼罪教令懺悔菩薩行如是依所尊重衆生者菩薩於彼屈伏順從隨語而受菩薩行如是
이와 같이 중생에 수순해 여실히 수행하면서 피로해 하거나 싫어하지 말라고 말한 뒤에 그 다음으로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으니,64)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음으로써 수순하여 설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묘과(妙果)를 보는 것을 최고의 수승함[最勝]으로 삼는데, 그것은 네 가지 법에 의지해서 말한다. 첫째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지 않는 것에 의지한다. 둘째 선정의 인(因)에 의지한다. 셋째 연(緣)의 힘에 의지한다. 넷째 인의 힘에 의지한다. ‘언제나 부처님을 억념한다’는 것은 마음이 언제나 부처님의 보리심의 과보를 억념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과보를 봄으로써 한량없으며 공통되지 않는 공덕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지 않음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은 선근이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선근이 모두 보리심으로써 근본을 삼고 있다는 것이며, 보리심에 의지하는 것은 한량없는 세상 중에서 장원(長遠)의 인이 되기 때문이다.
015_0389_a_09L如是已說隨順衆生如實修行而不疲倦爲之說法次說不失菩提之心以爲不失菩提之心隨順說法故見佛妙果以爲最勝依四種法說一者依不奪他物二者依定因三者依緣力四者依因常憶念佛者心常憶念佛菩提心果故以見佛果成就無量不共功德此依不奪他物是故不失菩提之心所作善根不離菩提心者一切善根皆菩提心以爲根本依菩提心無量世中長遠因故
015_0389_b_01L저 선정의 인[定因]에 의지하므로 세간의 거듭거듭 과보를 받는 곳에서도 능히 끌리지 않을 수 있으니, 이는 선정의 인에 의지하여 피리를 불면서 떠나는 것65)이므로 보리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선지식을 친근히 한다’는 것은 올바른 수행으로써 외연(外緣)의 힘과 선지식 등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는 연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보리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대승을 찬탄한다’는 것은 모든 중생을 위해서 보리심을 내어 대승을 찬탄하고, 태어날 때마다 자신을 위해서 모든 선근의 종자와 인연을 증장하는 것을 인의 힘으로 삼는 것이다. 큰 인의 힘이 견고함이 바로 인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보리심을 잃지 않는다.
015_0389_a_20L依彼定因世閒種種受果報處所不能牽此依定因吹之而去是故不失菩提之心親近善知識者以正修行依外緣力善知識等此依緣力是故不失菩提之心讚歎大乘者爲諸衆生發菩提心讚歎大生生世世爲於自身增長一切善根種子爲因力大因力堅固此依因力是故不失菩提之心
이와 같이 보리심을 잃지 않기 때문에 필경에는 일심으로 보살행을 행하게 되니, 이 때문에 다음으로 저 법상을 말하는 것이다.66) ‘능히 그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산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네 가지 산란심의 장애를 대치하기 때문에 네 가지 산란하지 않은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산란한 마음의 장애인가? 첫째 승장(乘障)67)이다. 둘째 중생을 교화하는 장애다. 셋째 불법을 모아서 공덕을 만족시킴을 장애하는 것이다. 넷째 끝까지 모든 불법을 모으는 것을 장애하는 것이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의 산란하지 않은 마음이며, 어떻게 대치할 것인가?
015_0389_b_05L如是不失菩提心故畢竟一心行菩薩行是故次第說彼法相能一其心而不散亂者以對四種散亂心障故說四種不散亂心何等四種散亂心一者乘障二者教化衆生障三者聚集佛法滿足功德障四者畢竟聚集一切佛法障何等四種不散亂心云何對治
015_0389_c_01L첫째 ‘성문의 마음을 멀리 여읜다’는 것은 승장을 대치해서 성문의 소승심(小乘心)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보살은 대승 중에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벽지불의 마음[心念]을 버린다’는 것은 중생 교화의 장애를 대치해서 자신의 삼매의 낙행(樂行)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것이다. 셋째 ‘법을 구하되 싫어하거나 만족해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불법을 모아서 공덕을 갖추는데 있는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니, 불법을 구하되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불법을 모으기 때문이며, 갖가지 선근을 증장하기 때문이며, 불법의 모든 공덕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불법을 모아서 공덕을 원만히 갖춤에 있어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것이다. 넷째 ‘법을 들은바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널리 말한다’는 것은 필경에 모든 불법을 모으는데 있는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다.들은바 법 그대로 여실하게 정념으로 관찰하는데, 정각으로써 필경에 모든 불법을 끌어 모음을 알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보살은 필경에 모든 불법을 끌어 모으면서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다.
015_0389_b_13L一者遠離聲聞心者對治乘障不墮聲聞小乘心故是故菩薩於大乘中心不散亂二者捨辟支佛心念者對治教化衆生障不著自身三昧樂行故是故菩薩教化衆生心不散亂三者求法無有厭足者對治聚集佛法滿足功德障以求佛法無厭足故爲集一切諸佛法故增長種種諸善根故滿足佛法諸功德故故菩薩聚集佛法滿足功德心不散四者如所聞法廣爲人說者對治畢竟聚集一切佛法障如所聞法如是如是正念觀察以正覺知畢竟聚集一切佛法故是故菩薩畢竟聚集一切佛法心不散亂
이를 네 가지의 산란하지 않은 마음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네 가지의 산란한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마침내 일심을 얻고 나서 법을 잘 구하는 것이다.68) 이 때문에 다음으로 법을 잘 구하여 세간을 대함으로써 네 가지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니, 출세간의 네 가지 과보를 이룬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보살이 출세간 과보의 성취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법을 구하는데 무엇을 세간의 네 가지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015_0389_c_04L是名四種不散亂心對治四種散亂心障此義應知如是畢竟得一心已善求於法是故次說善求於法以對世閒四種果報成就相似說出世閒四種果報成就應知示現菩薩求出世閒果報成就求於法何等名爲世閒四種果報成就
첫째 아주 묘하고 단정함을 성취하는 것이다. 둘째 병 없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셋째 부귀를 성취하는 것이다. 넷째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떻게 서로 대치하는가? 마치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단정함을 이루기 위해서 희유한 원인을 지음으로써 보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상호가 빠르고 묘하게 성취되도록 선법의 인(因)에서 보배라는 상념을 내고 희유하다는 상념을 내므로 모든 법을 구하는 것이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병이 없음을 위하여 묘한 약초를 구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이 모든 번뇌의 병을 끊기 위해서 불법 중에 묘한 약이라는 상념을 내기 때문에 모든 법을 구하는 것이다.
015_0389_c_11L一者快妙端正成就二者無病成就三者富貴成就四者不畏他人成就云何相對治如世閒人以爲成就自身端正作希有因故求珍寶是菩薩爲諸相好快妙成就於善法因生於寶想生希有想故求諸法世閒人爲無病故求妙藥草菩薩如是爲斷一切諸煩惱病於佛法中生妙藥想故求諸法
015_0390_a_01L세상 사람들이 부귀하게 되고자 재물을 구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신통을 구하여 불퇴전을 성취하고, 의미를 구하여 잃지 않기 위해서 불법 중에서 재물과 이익의 상념을 내기 때문에 모든 법을 구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도적들을 여의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재보를 구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모든 장애와 번뇌를 여의기 위해 저 보살을 능히 항복시키지 못하게 하므로보살은 일체처(一切處)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살이 일체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세간의 모든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니, 일체세간을 벗어나고자 함으로써 세간의 모든 괴로움을 여의고 적정상(寂靜相)을 얻는다. 열반을 얻어서 두려움이 없음을 성취하고, 불법 중에서 괴로움이 없다는 상념을 내기 때문에 모든 법을 구하는 것이다.
015_0389_c_19L如世閒人爲富貴故求於財利菩薩如是爲求諸通成就不退爲求義相令得不失於佛法中生財利想故求諸法如世閒人爲離賊等成就不畏故求財寶菩薩如是爲離一切諸障煩惱令彼不能降伏菩薩菩薩不畏一切諸處菩薩不畏一切處者所謂世閒一切諸苦爲欲過一切世閒離諸世閒一切苦相得寂靜相爲得涅槃成就不畏佛法中生無苦想故求諸法
勝思惟梵天所問經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1)『승사유범천소문경론(K.562, T.1532)』은 『승사유범천소문경(K.144, T.587, 보리류지 한역)』을 주해한 논서이다. 『승사유범천소문경』은 이역(異譯) 경전으로 『지심범천소문경(K.142, T.585, 축법호 한역)』ㆍ『사익범천소문경(K.143, T.S86, 구마라집 한역)』이 있다. 현재 『승사유범천소문경론』은 『승사유범천소문경』의 여섯 권 중에서 두 권까지만 주석하고 있으며, 산스크리트 사본이나 티베트어 사본은 전하지 않고 오직 한문본만 있다. 총체적인 대의나 교판 등의 총론은 없으며 바로 문장을 따라 해석하고 있는 점에서 중국 찬술의 주석서들과 다르다.
  2. 2)범어로는 Vasubandhu이며 세친(世親)이라고도 번역된다. 생몰 연대는 서기 400~480년이라는 학설이 정설이다. 원래 소승을 공부하였으나, 나중에 친형 무착(Asanga)의 권유로 대승으로 전향하였다고 하며, 유식학을 정립시켰다. 『구사론』ㆍ『유식삼십송』 등 많은 저서가 있다.
  3. 3)범어로는 Bodhiruci이며 북인도 출신의 역경 삼장이다. 북위 영평 1년(508)에 중국에 와서 20여 년 동안 39부 127권을 번역하였다.
  4. 4)“여시아문~죽림(T.587.15, p.62a-b)”을 말한다. 즉, 6성취(成就) 중에서 신성취(信成就)ㆍ문(聞)성취ㆍ시(時)성취ㆍ주(主)성취ㆍ재(在)성취를 말한다.
  5. 5)왕사성의 가란타 죽림(T.587.15, p.62b)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6. 6)이하의 옮김에서는 ‘ ’의 부호는 『승사유범천소문경』의 본문의 구절을, “ ”의 부호는 문장올 가리킨다. 『승사유범천소문경론』은 『승사유범천소문경』의 주요한 구절들을 해석하는 형식을 밟고 있으므로 옮긴이도 그 점을 부호(‘ ’, “ ”)로써 구별하고자 한 것이다. 『승사유범천소문경론』의 본문에서 경이라 한 것은 모두 이 『승사유범천소문경』을 말하는 것이다. 이하 경으로부터의 인용은 페이지와 문단만을 표시하였다.
  7. 7)경에서는 발타바라와 열여섯 명의 대현사를 말하고 있다(p.62b).
  8. 8)p.626
  9. 9)여래를 가리킨다.
  10. 10)그 이름은 집일체선근(集一切善根)ㆍ정장엄(淨莊嚴)ㆍ자재(自在)ㆍ이번뇌(離煩惱)ㆍ선원리(善遠離)ㆍ익일체지지(益一切智智)이다(p.62c).
  11. 11)각기 집일체선근광명과 정장엄광명을 수용한 자가 묻게 된다.
  12. 12)자재광명을 수용한 자가 묻게 된다.
  13. 13)야마천 등이다.
  14. 14)불공경장[불신장]ㆍ무지장[무다문혜장]ㆍ무참괴장 등이다.
  15. 15)탐ㆍ진ㆍ치ㆍ등분(等分)이다(p.63a-b).
  16. 16)생락(生樂)부터 변행(遍行)까지의 광명을 가리킨다(p.63a-c).
  17. 17)p.63b.
  18. 18)수용ㆍ공덕을 증장하는 것, 악을 그치게 하는 것,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19. 19)p.63b.
  20. 20)p.63b.
  21. 21)p.63b.
  22. 22)p.63b.
  23. 23)“저 부처님 역시 나를 보고자 하여……(p.63c).”
  24. 24)정리하면 법차별ㆍ수차별ㆍ업차별ㆍ심차별ㆍ행차별ㆍ십행차별ㆍ도차별 등이다.
  25. 25)『숫타니파타』ㆍ『앗쌀라야나경』ㆍ『금강침론』 등 불교문헌에 나타난 카스트관(觀)은 숙업에 의하여 가문을 달리해서 태어나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한 계급 속에 결정적으로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진정한 바라문은 계율과 바라밀행을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 하는 점에서 판단된다면서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카스트제도를 용인하는 내용으로 알아서는 안 될 것이다.
  26. 26)“훼방이나 칭찬에 대하여…… 3악도를 듣고서도 마음에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p.63e).”를 가리킨다.
  27. 27)경의 ‘비방에 있어서나 칭찬에 있어서나[於毁於譽]’를 해석한 것이다.
  28. 28)경의 ‘선을 듣거나 악을 듣거나’를 해석한 것이다.
  29. 29)‘비방에 있어서나 칭찬에 있어서나 마음에 증감(增減)이 없으므로’라는 구절이다
  30. 30)‘선을 듣거나 악을 듣거나 똑같이 자심(慈心)이기 때문에’라는 구절이다.
  31. 31)대치해야 할 차별념은 일곱 가지이지만 대치를 행하는 청정하고 견고한 마음은 여덟 가지인데, 첫 번째 법차별념의 두 구절에서 두 가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32. 32)“만약 보살이 이 나라 중에서 백천 겁토록 청정히 범행을 닦아도 저 사바세계에서 아침부터 낮까지 화내는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그 복이 더욱 뛰어날 것이다”(p.63c.)라고 하였다.
  33. 33)이하는 요설변재의 얻음과 그 원인에 대해서 설한다.
  34. 34)옮긴이는 여덟 구절을 여덟 문장으로 옮겼다.
  35. 35)이들은 모두 위의 여덟 가지 구절의 핵심을 정리한 것이다.
  36. 36)다섯 문장으로 옮겼다.
  37. 37)다섯 가지 구절 중 첫째 구절은 버리지 않는 마음에, 그 다음 세 구절은 즐거움을 주는 마음에, 마지막 한 구절은 안온하게 하는 마음에 각기 배대하는 것이다.
  38. 38)청법하는 의식을 가리킨다.
  39. 39)“어떻게 보살은 그 마음을 굳건히 하여 피로해 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까?”(p.64c.)
  40. 40)‘첫째,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41. 41)경의 ‘둘째, 정진하여 언제나 게으르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이다.
  42. 42)경의 ‘셋째, 생사가 꿈과 같음을 신해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43. 43)이하는 두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은 결정하여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까?”란 말에 대한 대답을 해설한 것이다.
  44. 44)경에서 말하는 네 가지 중 첫째는 무의 뜻이며, 둘째ㆍ셋째ㆍ넷째의 세 가지는 유의 뜻이다.
  45. 45)이하는 세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은 모든 선근을 증장합니까?”에 대한 대답을 해설하는 것이다.
  46. 46)경에서 말하는 ‘첫째, 계를 지키기 때문에’를 해설한 것이다.
  47. 47)경에서 말하는 ‘둘째, 많이 듣기 때문에’를 해설한 것이다.
  48. 48)경에서 말하는 ‘셋째 보시하기 때문에’를 해설한 것이다. 이상 셋은 세간 과보의 원인이다.
  49. 49)경에서 말하는 ‘넷째 출가하기 때문이다’를 해설한 것이다.
  50. 50)이하는 네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은 두려워함이 없으며 위의가 흔들리지 않습니까?”에 대한 대답을 해설한다.
  51. 51)경에서는 이상의 네 가지를 대치하는 4법(法)을 말하고 있다.(p.65a.)
  52. 52)이하는 다섯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은 모든 백법을 중장하는 것입니까?”에 대한 대답을 해설하는 것이다.
  53. 53)“첫째 여러 중생을 교화하여 대보리를 수행하도록 한다”의 해설이다.
  54. 54)“둘째 보시하여 과보를 구하지 않는다”를 해설한 것이다.
  55. 55)“셋째 정법을 수호하기 때문이다”를 해설한 것이다.
  56. 56)“넷째 지혜로써 모든 보살을 교화하기 때문이다”를 해설한 것이다.
  57. 57)p.65a.
  58. 58)이하는 여섯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은 한 지위에서 한 지위로 이르는 것을 잘 아는 것입니까?”에 대한 대답을 해설한 것이다.
  59. 59)이하는 여덟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은 모든 중생에 수순하는 것입니까?”에 대한 대답을 해설한 것이다.
  60. 60)“첫째, 언제나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안온하게 하기를 구한다”를 해설한 것이다.
  61. 61)‘둘째, 자기의 즐거움을 스스로 버리기 때문에’를 해설한 것이다.
  62. 62)‘셋째, 마음이 화목하여 인욕하기 때문에’를 해설한 것이다.
  63. 63)‘넷째 교만을 제거해 내버리기 때문에’를 해설한 것이다.
  64. 64)이하는 아홉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이 보리심을 잃지 않습니까?”에 대한 대답을 해설한 것이다.
  65. 65)선정의 인에 의지하므로 얻게 되는 자유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서, 소를 되찾은 목우자(牧牛子)를 생각하면서 ‘피리를 불면서 가는 것’으로 옮겼다.
  66. 66)이하는 열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은 능히 그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산란하지 않습니까?”의 대답에 해설한 것이다.
  67. 67)소승에 떨어지는 장애이다.
  68. 68)이하는 열한 번째 질문 “어떻게 보살은 법을 잘 구하는 것입니까?”에 대한 대답을 해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