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5_0426_b_01L유교경론(遺敎經論)
015_0426_b_01L遺敎經論一卷


천친(天親) 지음
진제(眞諦) 한역
이미령 번역
015_0426_b_02L天親菩薩造
眞諦三藏譯


3세에 존귀하신 분께 엎드려 예배하옵니다.
위없는 공덕의 바다이시며
중생을 가엾이 여겨 제도하시니
그래서 제가 목숨 바쳐 귀의하옵니다.
015_0426_b_04L頂禮三世尊
無上功德海
哀愍度衆生
是故我歸命

청정하고 깊은 법의 창고이시며
수행자의 이익을 불리시니,
세간에서든 출세간에서든
저희들은 모두 귀의합니다.
015_0426_b_06L淸淨深法藏
增長修行者
世及出世閒
我等皆南無

제가 세운 논장은
부처님 경전의 뜻을 해석하여
저 모든 보살들이
방편도를 알게 하기 위함이니
015_0426_b_07L我所建立論
解釋佛經義
爲彼諸菩薩
令知方便道

그 도를 알기 때문에
부처님 법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고
범부와 성현의 허물을 없애어
자타의 이익을 성취합니다.
015_0426_b_08L以知彼道故
佛法得久住
滅除凡聖過
成就自他利

이 수다라(修多羅:경) 가운데 보살이 수행해야 하는 법을 세우니, 그것에 7분(分)이 있다.
첫째는 서분(序分)이고, 둘째는 수집세간공덕분(修集世間功德分)이고, 셋째는 성취출세간대인공덕분(成就出世間大人功德分)이고, 넷째는 현시필경심심공덕분(顯示畢竟甚深功德分)이고, 다섯째는 현시입증결정분(顯示入證決定分)이고, 여섯째는 분별미입상상증위단의분(分別未入上上證爲斷疑分)이고, 일곱째는 이종종자성청정무아분(離種種自性淸淨無我分)이다.
015_0426_b_10L此修多羅中建立菩薩所修行法七分序分修集世閒功德分成就出世閒大人功德分顯示畢竟甚深功德分顯示入證決定分分別未入上上證爲斷疑分種種自性淸淨無我分
【經】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셔서 아야교진여를 제도하시고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시어 수발다라를 제도하셨다. 제도해야 할 사람을 모두 제도하신 후에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셨다.
이때는 한밤중으로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제자들을 위하여 법의 요체를 간략히 설하셨다.
015_0426_b_16L釋迦牟尼佛初轉法輪度阿若憍陳最後說法度須跋陁羅所應度者皆已度訖於娑羅雙樹閒將入涅槃是時中夜寂然無聲爲諸弟子略說法要
015_0426_c_01L【論】 처음의 서분에서는 수다라로 이익을 나타내 보이면서 필경(畢竟:궁극)을 성취하였다. 이 중에서 필경을 성취하는 것에 여섯 종류의 공덕이 있다. 첫째는 법사(法師)가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다. 둘째는 법문을 열어서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다. 셋째는 제자가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다. 넷째는 대총상(大總相)이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다. 다섯째는 인과(因果)의 자상(自相)이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다. 여섯째는 분별총상(分別總相)이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다.
015_0426_b_21L論曰初序分修多羅顯示利益成就畢竟故是中成就畢竟有六種功德法師成就畢竟功德開法門成就畢竟功德弟子成就畢竟功德大摠相成就畢竟功德因果自相成就畢竟功德分別摠相成就畢竟功德
처음에 필경을 성취한 것에 세 가지 상(相)이 있으니, 첫째는 총상이고, 둘째는 별상이며, 셋째는 총별상이다.
총상이란 경에서 모니(牟尼)라고 한 것과 같으며, 별상이란 경에서 석가(釋迦)라고 한 것과 같고, 총별상이란 부처님이다. 여기서 석가라고 한 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교묘한 방편을 나타내 보인 것이요, 또한 집안의 성(姓)이 존귀한 것이다. 모니라고 한 것은 모든 부처님의 공덕이며, 또한 자체(自體)의 청정함을 보이는 것이다.
015_0426_c_06L初成就畢竟有三種相摠相摠別相摠相者如經牟尼相者如經釋迦摠別相者中釋迦者示現化衆生巧便故復家姓尊貴故牟尼者一切諸佛功德故復示自體淸淨故
법문을 열어서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라 하였는데, 이에는 두 가지 백정법구(白淨法句)가 있다. 첫째는 도량(道場) 백정법구이며, 둘째는 열반(涅槃) 백정법구이다. 이 두 가지 백정법의 앞뒤 두 구(句)는 전전하여 설하는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도량백정법은 경에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셔서”라고 한 것과 같고, 열반백정법구는 경에서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시어”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26_c_12L開法門成就畢竟功德者有二白淨法句道場白淨法句涅槃白淨法句此二白淨法前後二句說示轉說義應知道場白淨法者如經初轉法輪涅槃白淨法句者如經最後說法
015_0427_a_01L제자가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라고 한 것은 두 종류의 백정법문을 능히 받아 지님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자기 이익의 행을 성취한 것이며, 여래께서 명쾌하게 설하신 법문(法門)의 공덕을 드러내는 것이니, 경에서 “아야교진여를 제도하고, 수발다라를 제도하셨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두 구절의 수다라는 여덟 가지 성취를 보여준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이른바 두 종류의 받아 지님을 성취한 것, 두 종류의 백정법문을 성취한 것, 두 종류의 자기 이익의 행을 성취한 것, 두 종류의 명쾌하게 설하신 법문의 공덕을 성취한 것이다.
015_0426_c_17L弟子成就畢竟功德者示能受持二種白淨法門故成就自利益行故顯現如來快說法門功德故如經度阿若憍陳如度須跋陁羅此二句修多羅八種成就故云何爲八謂二種受持成就故二種白淨法門成就故二種自利益行成就故二種快說法門功德成就故
대총상의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라고 한 것은 위에서 말한 두 종류의 여덟 가지 성취를 총괄한 것으로서 경에서 “제도해야 할 사람을 모두 제도하신 후”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27_a_02L摠相成就畢竟功德者二八成就摠如經所應度者皆已度訖
인과의 자상(自相)이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라고 한 것에는 네 종류의 자상이 있다. 첫째는 인자상(因自相)이니, 경에서 “사라쌍수 사이”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인공과자상(因共果自相)이니, 경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셨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총자상(總自相)이니, 경에서 “이때는 한밤중으로”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과자상(果自相)이니, 경에서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 것과 같다.
이 중에서 총자상이라고 한 것은 두 극단을 멀리 떠났으며 두 종류의 중도를 성취한 것이니, 첫째는 정각(正覺)의 중도이고, 둘째는 정각을 떠난 중도이다. 이 가운데 정각을 떠난 중도는 곧 과자상이다. 이 과(果)에 두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하니, 첫째는 자성상을 설하지 않고 기억을 여읜 열반과(涅槃果)이며, 둘째는 각관(覺觀)을 멀리 여읜 열반과이다.
015_0427_a_04L因果自相成就畢竟功德者有四種自相因自相如經娑羅雙樹閒共果自相如經將入涅槃摠自如經是時中夜果自相如經寂然無聲於中摠自相者遠離二邊故成就二種中道故一者正覺中二者離正覺中道是中離正覺中道者卽果自相應知此果有二種者自性無說離念涅槃果二者遠離覺觀涅槃果故
분별총상의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란 인(人)과 법(法)의 두 가지 위(位)의 차별을 분별하는 것이다. 인위(人位)의 차별이란 우두머리와 권속의 차별이니, 경에서 “제자들을 위하여”라고 한 것과 같다. 법위(法位)의 차별이란 세간과 출세간법 등을 말하는 것이니, 경에서 “법의 중요한 부분을 간략히 설하셨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으로 서분을 모두 설하였다. 이어서 수집세간공덕분(修集世間功德分)을 설하겠는데, 이 공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집대치사업 공덕(修集對治邪業功德)이고, 둘째는 수집대치지고(修集對治止苦) 공덕이고, 셋째는 수집대치멸번뇌(修集對治滅煩惱) 공덕이다.
대치사업 공덕이란 다음과 같다.
015_0427_a_14L分別摠相成就畢竟功德者分別人法二位差別故人位差別者上首眷屬差別故如經爲諸弟子法位差別者世閒出世間法等故如經略說法要已說序分說修集世閒功德分此功德有三者修集對治邪業功德二者修集對治止苦功德三者修集對治滅煩惱功德對治邪業功德者
015_0427_b_01L【經】 너희 비구들이여, 내가 입멸한 뒤에 바라제목차를 존중하고 공경하여야 하나니, 마치 어둠이 밝음을 만나고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처럼 하여야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바로 너희의 큰 스승이니, 내가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과 이것은 다름이 없다.
015_0427_a_23L經曰汝等比丘於我滅後當尊重珍敬波羅提木叉如闇遇明貧人得寶當知此則是汝太師若我住世無異此也
【論】 이 수다라 가운데 매번 설하는 비구란 멀리 여읜 모습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또한 마하연의 방편도가 2승(乘)과 같음을 보인 것이며, 또한 사부대중이 똑같이 원리행(遠離行)을 닦았음을 보인 것이다.
“내가 멸한 뒤에”라는 이 말은 가르침을 남긴다[遺敎]는 뜻과 법이 멸진(滅盡)하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멸진하지 않는 법인 청정법신(淸淨法身)으로써 항상 세간을 궁극적으로 제도하기 때문이다.
015_0427_b_04L論曰此修多羅中每說比丘者示現遠離相故復示摩訶衍方便道與二乘共故又於四衆亦同遠離行故我滅後此言示現遺敎義故不盡滅法故以不盡法淸淨法身常爲世閒作究竟度故
경에서 “바라제목차를 존중하고 공경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목차(木叉)는 또한 비니(毘尼)이니 서로 따르는 법이다. 또한 이 모든 행을 조복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여래는 멸하지 않으면서 법신 자체로 해탈하여 바라제목차를 설하셨다. 이 법신에 의지하여 두 가지 장애를 제도할 수 있으니, 첫째는 번뇌의 어둠이 있는 장애이고, 둘째는 선근(善根)이 텅 비어 없는 장애이다. 번뇌의 어둠이라는 장애를 제도한다는 것은 마치 앞 못 보는 사람이 눈을 얻는 것에 해당하는 법이니, 마치 경에서 “어둠이 밝음을 만난다”고 한 것과 같다. 선근이 텅 비어 없는 장애를 제도한다는 것은 재보(財寶)에 만족하는 것에 해당하는 법이니, 마치 경에서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015_0427_b_10L如經當尊重珍敬波羅提木叉此木叉亦是毘尼相順法故復是諸行調伏義故如來不滅法身自體解脫說波羅提木叉依此法得度二種障故一者有煩惱暗障二者空無善根障得度煩惱暗障者如盲得眼相似法故如經如暗遇明得度空無善根障者滿足財寶相似法故如經貧人得寶
나머지는 바라제목차가 바로 수행의 큰 스승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경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바로 너희의 큰 스승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머물고 지님의 이익은 인(人)과 법(法)이 서로 같음을 나타낸 것이니, 경에서 “내가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과 이것은 다름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근본 청정계에 의지하여 모두 설하였다. 이어서 방편으로 멀리 여의는 청정계를 설한다.
015_0427_b_18L餘者示現波羅提木叉是修行大師故如經知此則是汝大師又示住持利益人法相似故如經若我住世無異此依根本淸淨戒已說次說方便遠離淸淨戒
015_0427_c_01L【經】 청정한 계를 지니는 자는 팔거나 사거나 무역을 해서는 안 되며, 밭이나 집을 모아두지 않으며, 인민(人民)이나 노비를 부리지 않고 축생을 기르지 않으며, 온갖 씨 뿌리는 일과 나아가 재보를 모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마치 불구덩이를 피하듯 해야 한다. 나무와 풀을 베거나 땅을 갈거나 파헤쳐서는 안 되며, 섞어서 탕약을 만들거나 길흉을 점치거나 별자리를 보거나 달의 차고 기우는 것을 관측하거나 운명을 점치거나 계산을 하는 등의 모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몸을 절제하고 때에 맞추어 먹으면서 청정하게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일에 관여하거나, 사신의 임무를 띠고 다니거나, 주술을 부리거나 선약(仙藥)을 짓거나, 높은 가문의 사람과 좋은 의를 맺어서 가까이하여 거만스럽게 구는 등의 모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단정히 하고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기를 구해야 한다. 결점을 감추고 기이함을 드러내서 중생을 미혹해서는 안 되며, 온갖 네 가지 공양에서 양을 알고 족함을 알며, 공양거리를 얻되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015_0427_b_23L經曰持淨戒者不得販賣貿易安置田宅畜養人民奴婢畜生一切種殖及諸財寶皆當遠離如避火坑不得斬伐草木墾土掘地合和湯藥占相吉凶仰觀星宿推步盈虛歷數算計皆所不應節身時食淸淨自活不得參豫世事通致使命呪術仙藥結好貴人親厚媟慢皆不應作當自端心正念求度不得包藏瘕疵顯異惑衆於四供養知量知足趣得供事不應稸積
【論】 이 가운데 방편을 멀리 떠난 청정함이라고 한 것은 근본정계(根本淨戒)를 지키는 것이니, 경에서 “청정한 계를 지니는 자”라고 한 것과 같다. 무엇이 근본을 지키는 것이고 무엇이 근본인가? 근본을 지키는 것에 두 종류를 설하니, 무엇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범부와 같이 허물이 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요, 둘째는 외도와 같이 지혜가 줄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015_0427_c_11L論曰此中方便遠離淨者護根本淨戒故如經持淨戒者云何護根本何者是根本護根本者今說二種等爲二一者不同凡夫增過護二者不同外道損智護
범부와 같이 허물이 늘지 않도록 지키는 것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편으로 이익을 구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팔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현전의 이익을 구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사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교역하여 이익을 구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무역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만일 세상의 가치에 의지하여 이익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매매(賣買)를 범하지 않는 것이니, 법식은 비니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015_0427_c_16L不同凡夫增過護有十一事一者方便求利增過不得販二者現前求利增過不得賣三者交易求利增過不得貿易若依世價無求利心不犯賣買法式如毘尼中廣說
015_0428_a_01L넷째는 살고 있는 처소에서 안온함을 많이 구하다가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밭이나 집을 모아두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 다섯째는 권속의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인민(人民)을 부리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바깥의 권속이 같은 뜻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어찌하여 인(人)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다시 민(民)을 말하였는가? 이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선한 법을 알지 못하여 축생의 무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015_0427_c_21L四者所居業處求多安隱增過如經不得安置田宅五者眷屬增過如經得畜養人民故此示外眷屬非同意何故不但言人而復說民者以其同在人中於善法不了畜生之屬故
여섯째는 하천하게 태어난 목숨에 대하여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어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노비를 부리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생명을 길러서 이익을 구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축생을 기르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여덟째는 많은 일을 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온갖 씨 뿌리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아홉째는 쌓고 모아서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나아가 온갖 재보를 모으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28_a_03L六者難生卑下心增過如經不得畜奴婢七者養生求利增過如經得畜生八者多事增過如經不得一切種植九者積聚增過如經諸財寶
열째는 깨닫지 못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이 모든 것을 멀리 여의어야만 하나니, 마치 불구덩이 피하듯 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열한째는 위의를 따르지 않고 나아가 중생을 다치게 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나무와 풀을 베거나 땅을 갈거나 파헤쳐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이 열한 가지의 허물이 늘어나는 일을 수행하는 보살은 빨리 여의어야 하며 가까이 해서는 안 되나니, 이것은 마치 불구덩이를 피하는 것에 해당하므로, 경에서 “이 모든 것을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마치 불구덩이를 피하듯 해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28_a_08L十者不覺增過如經皆當遠離如避火坈十一者不順威儀及損衆生增過如經不得斬伐草木墾土掘地此十一種增過事修行菩薩宜速遠離不應親近避大火聚相似法故如經皆當遠離如避火坈
외도와 같이 지혜가 줄지 않도록 지킨다는 것은 이른바 세간의 분별견(分別見)이니, 이 분별견에 다섯 구절로 설해진 열 가지 분별이 있다. 경에서 “섞어서 탕약을 만들거나 나아가 이 모든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으니, 다른 견해를 막기 위해서이다.
015_0428_a_13L不同外道損智護者謂世閒分別見此分別見有五句十種分別如經合和湯藥乃至皆所不應遮異見
015_0428_b_01L무엇이 이 근본인가? 위의 경문에서는 근본에 두 종류가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는 행법근본(行法根本)이고, 둘째는 행처근본(行處根本)이다. 행법근본이란 바라제목차이며, 행처근본이란 몸과 입과 뜻이니, 몸과 입과 뜻의 행처에서 바라제목차를 행하는 까닭이다. 몸을 절제하고 때에 맞추어 먹는 것 등은 몸과 입과 뜻의 행처에서의 바라제목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수행보살은 3처(處)의 바라제목차를 알아야 하니, 이 밖에 다시 다른 해탈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처(身處) 바라제목차에 다섯 종류의 해탈과 세 종류의 장애를 다스리는 것과 두 종류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不應作不作]이 있다.
015_0428_a_17L何者是根本者此示根本有二種一者行法根本故二者行處根本故行法根本者波羅提木叉故行處根本者身口意故於身口意行處行波羅提木叉故節身時食等示現身口意行處波羅提木叉故修行菩薩當知三處波羅提木叉無復有餘解脫身處波羅提木叉有五種解脫種障對治二種不應作不作故
첫째는 남에게 구하면서 방일(放逸)한 장애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는 것은, 경에서 “몸을 절제하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몸을 유지하는 음식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 장애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는 것은, 경에서 “때에 맞추어 먹어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서로 추구하는 장애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는 것은, 경에서 “청정하게 스스로 살아가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자성(自性)에 번거로운 일을 그치는 것이니, 경에서 “세상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자성을 존중하여 가볍고 천한 일을 짓지 않는 것이니, 경에서 ‘사신의 임무를 띠고 다니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뒤의 두 구절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428_b_02L一者他求放逸障此障對治如經節身二者內資無厭足障此障對治如經時食三者共相追求障此障對治如經淸淨自活四者自性止多事如經不得參豫世事五者自性尊不作輕賤事如經不得通致使命後二句示現不應作不作
무엇이 다섯 가지 신(身)해탈인가? 첫째는 외연(外緣) 신해탈이고, 둘째는 내연(內緣) 신해탈이고, 셋째는 자상연(自相緣) 신해탈이고, 넷째는 중사연(衆事緣) 신해탈이고, 다섯째는 원리이방편연(遠離異方便緣) 신해탈이다. 다섯 가지 해탈 가운데 처음 구절은 총체적인 것이고 나머지 구절은 개별적인 것이다.
구처(口處) 바라제목차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두 종류의 그릇된 말[邪語]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
015_0428_b_09L云何五種身解脫一者外緣身解脫二者內緣身解脫三者自相緣身解脫四者衆事緣身解脫五者遠離異方便緣身解脫五種解脫中初句摠餘句別應知口處波羅提木叉者有二種邪語不應作不作
첫째는 그릇된 법[邪法]에 의지한 말로서 지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릇된 술수[邪術]로 중생을 어지럽히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릇된 약[邪藥]에 의지하여 세상의 말을 지어내 바르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이니, 경에서 “주술을 부리거나 선약[仙藥]을 짓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그릇된 사람[邪人]에 의지한 말로서 여기에도 지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좋은 가문의 사람들과 많이 사귀면서 하찮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가문의 사람들과 사귀면서 거만한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니, 경에서 “높은 가문의 사람과 좋은 의를 맺어서 가까이하더라도 거만하게 구는 등의 모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28_b_15L一者依邪法語有二種不應作邪術惱衆生語依邪藥作世辯不正語如經呪術仙藥二者依邪人語亦二種不應作一者與族姓同好多作鄙囈語二者親近族姓多作我慢語如經結好貴人親厚媟慢皆不應作
015_0428_c_01L의처(意處) 바라제목차에 여섯 구절이 있으니, 세 종류의 장애를 다스리는 것과 세 종류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많이 보는 장애로서 자정심(自淨心)을 범하는 것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기 위하여 경에서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단정히 하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그릇된 사유의 장애로서 능히 스스로 낮은 단계[下地]로부터 제도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기 위하여, 경에서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기를 구해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받아들인 온갖 공양거리에 대해 한없이 만족할 줄을 모르는 장애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기 위하여 다섯 번째 구절인 “네 가지 공양에서 양을 알고 족함을 알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28_b_21L意處波羅提木叉者有六句說三種障對治三種不應作不作一者多見他過障犯自淨心故此對治如經當自端心二者邪思惟障不能自度下地故此對治如經正念求度三者於受用衆具中無限無厭足障此對治第五句四供養知量知足故
이 공양(供養)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몸으로 받는 공양으로 이른바 음식이나 의복ㆍ이부자리ㆍ탕약 등의 몸에 관계된 공양이고, 둘째는 마음으로 받는 공양으로 이른바 불공심(不共心) 공양ㆍ무염족심(無厭足心) 공양ㆍ이사상위심(二事相違心) 공양ㆍ등분심(等分心) 공양이다. 이 네 종류의 심공양은 어리석고 마음이 어지러운 중생이 항상 수용하는 것이므로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한다. 만일 삼매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양을 알 것이고, 도(道)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만족할 줄을 알 것이다.
015_0428_c_05L此供養有二種一者於身分中供養謂飮食衣服臥具湯藥供養身分故二者於心分中供養謂不共心供養無厭足心供養二事相違心供養等分心供養此四種心供養癡亂衆生常受用故不知節量故若入三昧分者知量故若入道分者知足故
세 종류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란 첫째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계율을 받아 지니지 않음이다. 이는 마음에 때가 끼어 있기 때문이니, 경에서 “결점을 감추어서는 안 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연고 없이 자기의 훌륭한 점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멀리 여읨이니, 경에서 “기이함을 드러내어 중생을 미혹케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탐욕스럽고 가려진 마음으로 공양거리를 쌓고 모으는 것을 멀리 여읨이니, 경에서 “공양거리를 얻되 축적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근본계를 따르는 것을 이미 설하였다. 이어서 근본계와 종계(從戒)가 모두 해탈에 이르게 하고 능히 모든 공덕을 낳는 것을 설하겠다.
015_0428_c_12L三種不應作不作者不污淨戒不受持心垢故如經得包藏瑕疵二者遠離無緣顯己勝行令他不正解故如經顯異惑衆三者遠離貪覆心貯積衆具故趣得供事不應稸積已說從根本戒次說根本戒與從戒俱解脫生諸功德故
【經】 이것은 곧 지계(持戒)의 모양을 간략히 말한 것이다. 계는 해탈에 바르게 이르는 근본이므로 이름하여 바라제목차라고 한다. 이 계에 의지함으로써 모든 선정과 괴로움을 멸하는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
015_0428_c_19L經曰此則略說持戒之相戒是正順解脫之本故名波羅提木叉依因此得生諸禪定及滅苦智慧
015_0429_a_01L【論】 종계(從戒)는 곧 계의 모양이니 일일이 자세히 설할 수 없다. 간략하게 설하여 나타내 보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이것은 곧 지계의 모양을 간략히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계는…… 바르게 이르는’이라고 한 말은 종계의 뜻을 나타내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에 거기에서 설하는 종(從)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종근본계(從根本戒)요, 둘째는 종근본소기성취계(從根本所起成就戒)이다.
015_0428_c_22L論曰從戒是戒相故不可廣說顯示略說應知如經此則略說持戒之相戒是正順者此言示現從戒義故於此彼處說從有二種一者從根本二者從根本所起成就戒
종근본계란 근본계를 쫓아 지음이 없는 바라제목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미 설한 것과 같다. 종근본소기성취계란 후제(後際)의 해탈의 인(因)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중제(中際)에 종계(從戒)로 인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경에서 ‘해탈의 근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계는 바로 해탈의 체(體)이므로 능히 올바르게 제도하나니, 경에서 “그러므로 이름하여 바라제목차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능히 몸과 입과 뜻의 악을 제도하여 피안을 성취해서 세 가지 업이 해탈함을 나타내 말한 것이다.
능히 모든 공덕을 낳는다는 것은 유색(有色)해탈 공덕과 무색(無色)해탈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저 두 가지가 서로 순응하고 서로 어기면서 해탈하는 공덕은 모두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까닭에, 경에서 “이 계에 의지함으로써 모든 선정과 괴로움을 멸하는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어서 권수계이익(勸修戒利益)을 설하겠다.
015_0429_a_04L從根本戒者示現順根本無作波羅提木叉如向已說故從根本所起成就戒者示現後際解脫因中際從戒生故解脫之本戒是解脫體能正度如經故名波羅提木叉此言示現能度身口意惡彼岸成就三業解脫能生諸功德者示現有色解脫功無色解脫功德彼二相順相違解脫功德皆從彼生故如經依因此戒得生諸禪定及滅苦智慧故次說勸修戒利益故
【經】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청정한 계를 지닐 것이며 훼손하거나 빠뜨리지 말라. 만일 사람이 능히 청정한 계를 지닌다면 그 사람은 바로 능히 선법을 지닐 수 있다. 만일 청정한 계를 지니지 않는다면 모든 선한 공덕이 한결같이 생기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계는 제일가는 안온한 공덕의 주처가 되느니라.
015_0429_a_15L經曰是故比丘當持淨戒勿令毀缺若人能持淨戒是則能有善法若無淨戒諸善功德皆不得生是以當知戒爲第一安隱功德住處
015_0429_b_01L【論】 무엇이 권수계이익인가? 이 가운데 다섯 가지 권함이 있다. 첫째는 자체(自體)를 잃지 않기를 권하는 것이니, 경에서 “마땅히 청정한 계를 지닐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방편을 버리지 말 것을 권하는 것이니, 경에서 “훼손하거나 빠뜨리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온갖 허물을 멀리 여의고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언제나 공덕을 쌓아 모을 것을 권한 것이니, 경에서 “만일 사람이 능히 청정한 계를 지닌다면, 그 사람은 바로 능히 선법을 지닐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몸과 입과 뜻 가운데 허물이 많으면 어느 때라도 능히 공덕을 낳을 수 없음을 알도록 권한 것이니, 경에서 “만일 청정한 계를 지니지 않는다면 모든 선한 공덕이 한결같이 생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지계보살이 수행하는 세 가지 계 가운데 이와 같은 득실이 있음에 따라서 “나는 안온한 곳에 머물 것이요, 안온하지 않은 곳에는 머물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계는 제일가는 안온한 공덕의 주처가 되느니라”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권수(勸修) 이익의 훌륭한 뜻을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을 말한 것이다.
015_0429_a_19L論曰云何勸修戒利益於中有五種一者勸不失自體如經當持淨戒二者勸不捨方便如經勿令毀缺三者勸遠離諸過身口意業常集功德故如經若人能持淨戒是則能有善法四者勸知多過惡於身口意中一切時不能生功德故如經無淨戒諸善功德皆不得生五者顯示持戒菩薩於所修行三種戒中有如是得失者我當住安隱處不住不安隱處故如經是以當知戒爲第一安隱功德住處此言正示現勸修利益勝義故
이미 수행을 쌓아서 삿된 업을 대치하는 공덕을 모두 설하였으니, 이어서 수집대치지고(修集對治止苦) 공덕을 설하겠다.
이 괴로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감관[根]의 욕망이 방일한 괴로움이고, 둘째는 많이 먹는 괴로움이고, 셋째는 게으르고 잠에 빠지는 괴로움이니, 이 세 가지 괴로움은 삼매의 즐거움으로 다스림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감관의 욕망이 방일한 괴로움을 대치하는 것인가?
015_0429_b_09L已說修集對治邪業功德次說對治修集止苦功德是中苦有三種一者根欲放逸苦二者多食苦三者懈怠睡眠苦是三種苦昧樂門對治應知云何根欲放逸苦對治
【經】 너희들 비구여, 이미 계에 능히 머물렀다면 마땅히 5근(根)을 제어해야 하지 방일해서 다섯 가지 욕락에 들어가면 안 된다. 비유하면 소를 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소들을 감시하면서 사람들의 논밭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만일 5근을 멋대로 내버려둔다면 다만 다섯 가지 욕락은 다함이 없어서 제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마치 거친 말과 같아서 고삐로서 다스리지 않는다면 장차 사람을 끌고 구덩이에 빠지게 할 것이다. 그러한 겁해(劫害)의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한 세상에 그치지만 5근이라는 도적의 재앙은 세세생생 누적되어 오는 것이어서 그 피해는 참으로 무거우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5근을 잘 다스려 떨어지지 않으며, 이것을 지니는 것은 마치 도적으로 하여금 제멋대로 굴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가령 이것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면 또한 오래지 않아 모두가 그 마멸을 보게 될 것이다.
015_0429_b_14L經曰汝等比丘已能住戒當制五根勿令放逸入於五欲譬如牧牛之人執杖視之不令縱逸犯人苗稼若縱五根非唯五欲將無崖畔不可制也亦如惡馬不以轡制將當牽人墜於坈陷如被劫害苦止一世五根賊禍殃及累世爲害甚重不可不愼是故智者制而不隨持之如賊不令縱逸假令縱之皆亦不久見其磨滅
015_0429_c_01L【論】 감관이 게으른 괴로움이라고 한 것은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고 괴로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계에 의지하여 깨끗한 삼매방편으로 생각을 거두어 이것을 다스려야 하나니, 경에서 “이미 계에 능히 머물렀다면 마땅히 5근을 제어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어찌하여 다만 5근이라고만 말하였는가? 색(色)과 색 아닌 것의 차별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다시 의근(意根) 중에 5근을 두 종류로 다스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동념대치(動念對治)이고, 둘째는 부동대치(不動對治)이다.
계(戒)에 머무는 것과 바르게 집중[念]하는 것으로 감관[根]을 지키는 것의 이익은 서로 비슷한 법이니, 마치 경에서 “게으르지 말 것이며 나아가 다른 사람의 논밭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몸의 계가 청정하므로 갖가지 색에 대해서 방일하지 않으니, 이것은 ‘소를 치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015_0429_b_23L論曰根放逸苦者是苦因苦果故戒淨三昧方便攝念對治故如經能住戒當制五根何故但說五根示現色非色別故復示意根中有五二種對治故云何二種一者動念對治故二者不動對治故戒念護根利益相似法故如經勿令放逸乃至犯人苗稼身戒淸淨故種種色不放逸牧牛相似法故
바른 집중을 성취하므로 마음이 갖가지로 행하지 않으니, 이것은 ‘막대기를 든다’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계와 바른 집중을 성취함으로써 삼매방편 및 정수(正受)공덕이 줄어들거나, 잃지 않으니 ‘논밭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
또한 계를 지니지 않고 바른 집중을 잃어버리는 것은 크게 마음을 해치며,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면 다스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경에서 “만일 5근을 제멋대로 내버려둔다면 다만 다섯 가지 욕락의 다함이 없어져서 제어할 수 없게 될 뿐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어서 설하길, 다스릴 수단이 없어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거친 말과 유사하므로, 경에서 “또한 거친 말을 고삐로 제어하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끌고 구덩이에 빠지게 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29_c_09L正念成就故種心不行執杖相似法故以戒念成就故三昧方便及正受功德無減無失故不犯苗稼相似法故復示無戒念失上上損心故氣分成就難對治故如經若縱五根非唯五欲將無崖畔不可制也次說無對難對治惡馬相似法故如經亦如惡馬不以轡制將當牽人墜於坈陷
또다시 허물의 크기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나타내 보이고, 또 인과의 깊음과 고(苦)가 세상에 걸쳐 한량없음을 보이면서 앞선 세상에서 신중할 것을 나타내보였으니, 경에서 그러한 “겁해의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한 세상에 그치지만 5근의 도적의 재앙은 세세생생 누적되어 오므로 그 피해는 참으로 무거우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앞에서는 계를 지니는 것과 바른 기억을 하는 것으로 감관을 지키는 것을 말하였고, 여기에서는 지혜로 보호할 것을 말하고 있다. 지혜라는 것은 삼매의 관찰이며, 그것(감관이 5욕에 빠지는 것)은 바로 삼매의 무거운 장애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잘 다스려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다. 그것을 보호하는 것을 마치 목숨을 해치고자 하는 자로부터 지키는 것과 같이 하니, 경에서 “이것을 지니는 것은 도적으로 하여금 제멋대로 굴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29_c_17L復示過重相似不相似又因果深苦無量世故現先際中愼故如經如被劫害苦止一世五根賊禍殃及累世爲害甚重不可不愼向說戒念護今說智護智者三昧觀故彼是三昧重障故如經是故智者制而不隨護彼如害命者相似法故如經持之如賊不令縱逸
015_0430_a_01L무거운 것은 이미 이와 같다. 가벼운 것은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여기에서 가벼운 것이란 이른바 세밀한 상이 훈습된 장애이니, 여기에 있을 때는 곧 유(有)이고 없을 때에는 곧 무(無)이다. 고의로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니, 경에서 “가령 이것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면”이라고 한 것과 같다. 세력이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경에서 “또한 오래지 않아 모두가”라고 말하였다. 성품은 만져질 수 없고 볼 수 없으므로, 경에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을 본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본다’고 하겠는가? 보는 때에 의지하여 설하기 때문이니 그것이 보이지 않으므로 멸(滅)을 본다고 한다.
이어서 욕방일고대치(欲放逸苦對治)를 설하고자 한다.
015_0430_a_02L重者旣如是輕者云何制是中輕者謂細相習障故於此處有時則有無時則無故不作意起故假令縱之勢無自立故如經亦不久性是無對不相見故如經見其磨滅是中云何立見示現依見時說故彼無見故滅見故次說欲放逸苦對治
【經】 이 5근은 마음이 그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즐겨 다스려야 한다.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맹수나 원수보다 더하고 큰 불을 넘어가는 것과 같지만 그래도 비유로는 충분하지 않다. 움직이고 구르며 경망스럽게 굴지만 다만 꿀을 관찰할 뿐 깊은 구덩이를 보지 못한다. 비유하면 미친 코끼리의 갈고리가 풀린 것과 같고, 원숭이가 나무 등걸을 올라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과 같아서 금하고 제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마땅히 이것을 빨리 잡아 앉히고 게으르지 않게 해야 한다. 이 마음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면 사람의 좋은 일에 궂은 일이 생기나, 이것을 한곳에 잘 제어하면 판별치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그대의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015_0430_a_09L經曰此五根者心爲其主是故汝等當好制心心之可畏甚於毒蛇惡獸怨賊大火越逸未足喩也動轉輕躁但觀於蜜不見深坑譬如狂象無鉤猿猴得樹騰躍踔躑難可禁制當急挫之無令放逸縱此心者喪人善事制之一處無事不辦是故比丘當勤精進折伏汝心
【論】 이 가운데 욕고(欲苦)라고 한 것은 심성(心性)의 차별이라서 역시 괴로움의 원인이요 괴로움의 과보이기 때문이다. 갖가지 색(色)의 괴로움은 그것에 의지하여 있다는 것을 나타내니, 경에서 “이 5근은 마음이 그 주인이 된다”고 하였으므로 마땅히 알라.
자기와 다른 것에 허물이 생기게 하며 부지런함을 막는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즐겨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무엇이 부지런함을 막는 것인가? 이 마음의 삼매를 장애하는 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무엇이 삼매의 상이고 무엇이 장애법의 상인가?
015_0430_a_17L論曰是中欲苦者心性差別故亦是苦因苦果故示現種種色苦依彼而有故如經此五根者心爲其主故應自他生過故勤遮故如經是故汝等當好制心何故勤遮示現此心三昧障法故何者是三昧相云何障法相
015_0430_b_01L삼매상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둘이 아닌 생각[念]을 닦는 삼매상이고, 둘째는 조화와 부드러움이 흔들리지 않는 삼매상이고, 셋째는 많은 공덕을 일으키는 삼매상이다. 장애법의 상에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심성이 차별되는 장애이고, 둘째는 경솔하게 움직여 조절되지 못하는 장애이고, 셋째는 모든 공덕을 잃는 장애이다.
심성의 차별의 장애란, 경에서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맹수나 원수보다 더하고, 큰 불을 넘어서지만 그래도 비유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차별이란 탐욕 등의 네 가지 차별이다. 둘이 아닌 생각을 닦는 삼매를 닦는 것은 이 차별되는 곳이 두려울 만한 것임을 아는 것이다. 네 가지 비유를 든 것은 그에 해당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한 것은 크게 무서워할 만한 것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430_b_01L三昧相者有三種一者無二念三昧相二者調柔不動三昧相三者起多功德三昧相故障法相者亦有三種一者心性差別障二者輕動不調障三者失諸功德障心性差別障如經心之可畏甚於毒蛇惡獸怨賊大火越逸未足喩也是中差別貪等四種差別故修無二念三昧於此差別處可畏應知四種譬喩相似法故復示不相似法大可畏故
경솔하게 움직여 조절되지 못하는 장애란, 경에서 ‘움직이고 구르며 경망스럽게 굴지만’ 등과 같은 것인데, 여기에서 움직이고 구른다는 것은 모든 감관 가운데 전식(轉識)이 움직이고 또한 재빠르기 때문이니 원숭이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만 꿀을 관찰한다’는 것은 눈에 티끌이 있어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깊은 구덩이’란 장애의 의미이다. 이 장애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태어나는 곳의 장애이고, 둘째는 모든 행을 닦을 때 힘들고 괴로워서 능히 이루지 못하는 장애이다. 미친 코끼리가 이에 해당된다. ‘급히 잡아 앉힌다’는 것은 억눌러서 움직이지 않게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게으르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은 거두어 들여서 조복하는 덩어리[聚]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430_b_10L輕動不調障者如經動轉輕躁如是等故於中動轉者示現諸根中轉識動故復速疾故猿猴相似法故但觀於蜜者示現有瞖不見未來故深坑障礙義故是障礙有二種一者生處障碍二者修一切行時困苦不能成就障礙象相似法故急挫者現抑入無動處故無令放逸者顯示攝入調伏聚故
모든 공덕을 잃는 장애라는 것은, 경에서 “이 마음을 제멋대로 내버려둔다면 사람의 좋은 일에 궂은 일이 생긴다”고 한 것과 같다.
둘이 아닌 생각의 삼매상이란, 경에서 “이것을 한곳에 잘 제어하면”이라고 한 것과 같다.
많은 공덕을 일으키는 삼매상이란, 경에서 “끝내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조화와 부드러움이 흔들리지 않는 삼매상이란 경에서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그대의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근욕고대치(根欲苦對治)를 이미 설하였으니, 다음에는 다식고대치(多食苦對治)를 설한다.
015_0430_b_19L失諸功德障者如經縱此心者喪人善事無二念三昧相者如經制之一處起多功德三昧相者如經無事不辦調柔不動三昧相者如經當勤精進折伏汝心已說根欲苦對治次說多食苦對治
015_0430_c_01L【經】 그대들 비구여, 여러 가지 음식을 받되 약을 먹듯이 해야 한다.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욕심내거나 물리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음식을 구하는 것은 다만 배고픔과 목마름을 없애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해야 하나니, 마치 벌이 꽃에서 꿀을 딸 때, 다만 그 맛을 취할 뿐 색과 향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처럼 비구도 그처럼 사람들의 공양을 받아 자신의 번뇌를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며, 양의 많음만을 구하여 그 착한 마음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비유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소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헤아려 분수에 넘치지 않게 함으로서 그 힘을 다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다.
015_0430_c_01L經曰汝等比丘受諸飮食當如服藥於好於惡勿生增減趣得支身以除飢渴如蜂採花但取其味不損色香比丘亦爾受人供養趣自除惱無得多求壞其善心譬如智者籌量牛力所堪多少不令過分以竭其力
【論】 많이 먹는 것은 삼매의 장애이다. 음식에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몸의 음식이요, 또 하나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의 음식이다. 단식(段食)을 많이 먹으면 지식(止息)이 어렵고 선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된다.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의 음식이란 욕계의 서로 어긋나는 법 가운데 방편으로 대치하기 때문이며, 또한 제일의(第一義)의 심삼매 가운데 다하였기 때문이며, 무식(無食) 삼매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삼매는 여섯 종류의 공덕을 성취한다. 여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015_0430_c_07L論曰多食者三昧障故食有二種等爲二一者身食二者心心數法食若多段食難止息故去禪定遠故心心數法食者欲界相違法中方便對治故復有第一義心三昧中盡故成就無食三昧故如是二種三昧有六種功德成就何等爲六
첫째는 수용대치(受用對治)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둘째는 평등하게 관하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셋째는 구경대치(究竟對治)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넷째는 평등하게 관하는 공덕에 해당하는 것을 나타내 보여서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헛되이 받아들이지 않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때를 아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공덕은 두 가지의 삼매를 성취한 것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와 다섯째와 여섯째의 공덕 성취는 소식(少食) 삼매를 나타내 보인 것이고, 나머지 세 가지 공덕 성취는 무식 삼매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430_c_14L一者受用對治功德成就二者平等觀功德成三者究竟對治功德成就四者示平等觀功德相似成就五者不虛受功德成就六者知時功德成就六種功德顯示成就二種三昧第一第五第六功德成就顯示少食三昧餘者三種功德成就顯示無食三昧故
015_0431_a_01L수용대치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모든 음식을 받되 약을 먹듯이 하여라”고 한 것과 같다.
평등하게 관하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욕심을 내거나 물리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구경대치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나아가 음식을 구하는 것은 다만 배고픔과 목마름을 없애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하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평등법신의 평등관(平等觀)을 보이는 것이니, 끝내 굶주리거나 목마름이 없는 것이다.
015_0430_c_22L受用對治功德成就者如經等比丘受諸飮食當如服藥平等觀功德成就者如經於好於惡勿生增減究竟對治功德成就者如經趣得支身以除飢渴此示平等法身攝平等觀究竟無飢渴故
평등하게 관하는 공덕에 해당하는 것을 나타내 보여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벌이 꽃에서 꿀을 딸 때 다만 그 맛을 취할 뿐 색과 향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처럼 비구도 그러하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다치지 않는다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 법을 관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헛되이 받아들이지 않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사람들의 공양을 받아 자신의 번뇌를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1_a_04L顯示平等觀功德相似成就者如經如蜂採但取其味不損色香比丘亦爾是中不損者示現非壞法觀故不虛受功德成就者如經受人供養趣自除惱
때를 아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양의 많음만을 구하여 그 착한 마음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많이 구한다는 것은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 많으면 삼매의 공덕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소의 힘을 헤아린다 등등’은 때를 아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때를 아는 것에 두 종류가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첫째는 방편으로 때를 헤아리고 측량하는 것이요, 둘째는 때에 상응함을 성취하는 것이니, 많이 먹는 것의 허물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미 다식고대치를 모두 설하였으니, 다음에는 해태수면고대치(懈怠睡眠苦對治)를 설한다.
015_0431_a_09L知時功德成就者如經無得多求壞其善心多求者示現心心數法多三昧功德不現前故籌量牛力等示知時相似法故示現知時有二種一者方便時計挍故二者成就時相應故示多食過故已說多食苦對治次說懈怠睡眠苦對治
【經】 너희 비구들이여, 낮에는 부지런히 마음으로 착한 법을 모으고 닦아서 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며 초저녁과 동틀 무렵에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밤중에는 경을 독송함으로써 스스로 소식(消息)해야지 수면의 인연을 말미암아 일생을 헛되이 보내어 얻는 바가 없게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무상(無常)의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운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스스로 제도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 잠에 빠져들지 말라. 모든 번뇌의 도적이 언제나 사람을 죽이려 엿보는 것은 원수보다도 더 심하니, 어찌 잠에 빠져들어 스스로 깨어나 있지 못하는가?
015_0431_a_15L經曰汝等比丘晝則勤心修集善法無令失時初夜後夜亦勿有廢中夜誦經以自消息無以睡眠因緣令一生空過無所得也當念無常之火燒諸世閒早求自度勿睡眠也諸煩惱賊常伺殺人甚於怨家安可睡眠不自驚悟
015_0431_b_01L번뇌의 독사는 너의 마을에 들어가 잠을 잘 것이니, 비유하면 검은 독사가 너의 방에 들어가서 잠자는 것과 같다. 마땅히 지계(持戒)의 갈고리로 서둘러 이것을 없애야 하며 잠의 독사가 이미 나왔다면 이내 편안히 잠들 수 있다. 나오지 않았는데도 잠자고 있다면 이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니, 부끄러움의 옷을 모든 장엄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부끄러움은 쇠갈고리와도 같아서 능히 사람의 법답지 않은 것을 제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구여, 언제나 부끄러워해야 하며 잠시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만일 부끄러움을 여읜다면 곧 모든 공덕을 잃고 말 것이며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착한 법을 갖는 것이다. 만일 부끄러움이 없다면 모든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015_0431_a_22L煩惱毒蛇睡在汝心譬如黑蚖在汝室睡當以持戒之鉤早摒除睡蛇旣出乃可安眠不出而睡是無慚人慚恥之服於諸莊嚴最爲第慚如鐵鉤能制人非法是故比丘常當慚恥勿得蹔替若離慚恥則失諸功德有愧之人則有善法若無愧與諸禽獸無相異也
【論】 해태수면고대치란 피로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사유하여 대치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찌하여 해태와 수면을 장애법으로 함께 말하였는가? 해태란 마음의 나태함이요, 수면이란 몸이 어지럽고 무거운 것이니, 이 두 가지 상이 함께 하나의 괴로움을 이루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다섯 가지 선정의 장애 중에서도 함께 설하기 때문이다.
015_0431_b_06L論曰懈怠睡眠苦對治者不疲惓思惟對治故是中何故懈怠睡眠共說障法示現懈怠者謂心懶墯故睡眠身悶重故此二相順共成一苦故五種定障中共說故
그 중에 수면이 일어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먹는 것을 따라서 일어남이요, 둘째는 시절을 따라서 일어남이요, 셋째는 마음을 따라서 일어남이다. 먹는 것과 시절을 따라서 일어난다는 것은 아라한의 잠으로서 마음으로부터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며 다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수면 가운데 처음의 두 가지는 정진으로 대치하니 시절이 있지 않기 때문이고 무시이래로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성도(聖道)를 얻기 어려움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경에서 “너희 비구들이여, 낮에는 부지런히 마음으로 착한 법을 모으고 닦아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며 초저녁과 동틀 무렵에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밤중에는 경을 독송함으로써 스스로 소식(消息)해야 하니, 수면의 인연을 말미암아 일생을 헛되이 보내어 얻는 바가 없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1_b_11L於中起睡眠有三種從食起從時節起從心若從食及時節起者是阿羅漢眠以彼不從心生故無所蓋故是三種睡眠中初二種以精進對治無有時節故無始來未曾斷故復示聖道難得故如經汝等比丘晝則勤心修習善法無令失時初夜後夜亦勿有廢中夜誦經以自消息無以睡眠因緣令一生空過無所得也
015_0431_c_01L나머지 수다라는 셋째인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수면을 대치함을 나타내 보인 것인데, 이 가운데 대치에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사유 관찰하여 대치하는 것이니, 온갖 나고 죽음과 5음(陰)이 무너짐을 관하는 것으로서 경에서 “마땅히 무상(無常)의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운다고 생각하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선정과 지혜를 구하여 제도할 바를 제도하는 것을 나타냈으니, 경에서 “서둘러 스스로 제도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 잠에 빠져들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1_b_20L自餘修多示現第三從心起睡眠對治故中對治有二種一者思惟觀察對治觀諸生滅壞五陰故如經當念無常之火燒諸世閒復示求禪定智慧度所度故如經早求自度勿睡眠也
또한 음(陰)과 계(界)와 입(入) 등은 언제나 해를 끼치는 것임을 관찰해서 이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바른 깨달음을 구해야 할 것이니, 마치 경에서 “모든 번뇌의 도적이 언제나 사람을 죽이려 엿보는 것은 원수보다도 더 심하다. 어찌 잠에 빠져 들어 스스로 깨어나 있지 못하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두 번째는 청정한 계로 대치하는 것이니 선정과 상응하는 마음의 계를 말하며, 여섯 가지 경계에 마음이 편안히 본래의 마음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수면이 두려워할 만한 것은 마치 뱀과 같기에 경에서 “번뇌의 독사는 너의 마음에 들어가 잠을 잘 것이니, 비유하면 검은 독사가 너의 방에 들어가서 잠자는 것과 같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1_c_03L復次觀察陰界入等常害故是中可畏求自正覺故如經諸煩惱賊常伺殺人甚於怨家安可睡眠不自驚二者淨戒對治謂禪定相應心戒故六種境界心安住自心故可畏如蛇相似法故如經煩惱毒蛇睡在汝心譬如黑蚖在汝室睡
청정한 마음의 계로 대치하기 때문에 경에서 “마땅히 지계(持戒)의 갈고리로 서둘러 이것을 없애야 하며”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멀리 여의는 것을 나타내며 안온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경에서 “잠의 독사가 이미 나왔다면 편안히 잠들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이어서 낮은 단계[下地]는 대치함이 없어도 안온히 여기는 것과 같음을 설하니, 경에서 “나오지 않았는데도 잠자고 있다면 이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법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것은 자신의 지(地)를 깨끗하게 장엄하고 또한 다른 지도 허물이 없게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니, 경에서 “부끄러움의 옷을 모든 장엄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부끄러움은 쇠갈고리와도 같아서 능히 사람의 법답지 않은 것을 제지할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으뜸가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다른 계의 장엄보다 훌륭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431_c_09L淨心戒對治故如經當以持戒之鉤早摒除復示遠離故安隱故如經睡蛇旣出乃可安眠次說下地相似安隱無對治故如經不出而眠是無慚又示治法勝能令自地淸淨莊亦令他地無過故如經慚恥之服於諸莊嚴最爲第一慚如鐵鉤能制人非法是中最爲第一者示現勝餘戒莊嚴故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등등’은 어떤 뜻을 밝힌 것인가? 훌륭한 장엄을 닦을 것과 언제나 수행할 것을 권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또한 부끄러움을 멀리하면 자신의 지(地)에 손해가 됨을 보이기 위하여 경에서 “만일 부끄러움을 떠난다면 곧 모든 공덕을 잃고 말 것이며”라고 하였으며, 또 부끄러움이 있고 없음의 득실을 나타내 보였으니, 경에서 말한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수집대치지고(修集對治止苦) 공덕을 설명하였다.
이어서 수집대치멸번뇌(修集對治滅煩惱) 공덕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세 종류의 장대치(障對治)로 진리의 뜻을 나타내 보임을 알아야 한다.
015_0431_c_18L是故比丘等爲明何義示現勸修勝莊嚴故常修故復示遠離者損自地故如經若離慚恥則失諸功德復示有無得失故如經應已說修集對治止苦功德次說修集對治滅煩惱功德於中有三種障對治示道義應知
015_0432_a_01L【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온몸의 마디마디와 사지를 잘라내어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서 화를 내거나 원망을 품지 말라. 또한 입을 보호하여 욕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성내는 마음을 제멋대로 뛰놀게 한다면, 곧 스스로 진리[道]를 방해하여 공덕과 이익을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인내하는 것을 덕으로 삼아 계를 지닌다면 고행이 능히 미치지 못할 것이니, 능히 참음을 행하는 자를 이름하여 힘이 센 대인(大人)이라고 한다. 만약 그가 기쁘게 참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추악한 욕설의 독을 감로처럼 마신다면, 진리의 길에 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015_0432_a_01L經曰汝等比丘若有人來節節肢解當自攝心不令瞋恨亦當護口勿出惡言若縱恚心則自妨道失功德利忍之爲德持戒苦行所不能及能行忍者乃可名爲有力大人若其不能歡喜忍受惡罵之毒如飮甘露者名入道智慧人也
왜냐하면 성냄의 해로움이 온갖 착한 법을 부수고 좋은 명성을 허물기 때문이며, 지금 세상이나 다음 세상의 사람들이 기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성내는 마음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잘 막고 보호하여 성냄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공덕을 빼앗는 도적으로 성냄보다 더한 것이 없다. 재가자로서 5욕을 즐기며 도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자제하는 법을 갖지 못하고 성낸다면 차라리 용서할 수 있지만, 출가하여 진리를 수행하는 탐심 없는 사람이 성냄을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유하면 밝고 차가운 구름 속에서 벼락이 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015_0432_a_08L所以者何瞋恚之破諸善法壞好名聞今世後世人不喜見當知瞋心甚於猛火常當防護無令得入劫功德賊無過瞋恚衣受欲非行道人無法自制瞋猶可出家行道無欲之人而懷瞋恚不可也譬如淸冷雲中而霹靂起火非所應也
【論】 이것은 첫 번째의 장애대치법이니, 성냄의 번뇌라는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다. 참아내는 도를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수행하는 보살이 감인지(堪忍地)에 머물러서 능히 갖가지 고뇌를 참는데, 가볍거나 무거움이 없는 대치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온몸의 마디마디와 사지를 잘라내어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서 화를 내거나 원망을 품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환화(幻化) 법신의 성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432_a_15L論曰是中初障對治者瞋恚煩惱障對治故示現堪忍道故修行菩薩住堪忍地中能忍種種諸苦惱故無輕重對治故如經汝等比丘若有人來節節肢解當自攝心無令瞋恨示幻化法身成就故
015_0432_b_01L또한 입의 행이 청정하여 언제나 부드러운 말을 하여야 하니, 경에서 “또한 입을 보호하여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그리고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이익과 도와 덕을 장애하는 법을 설하였으니, 경에서 “만일 성내는 마음을 제멋대로 뛰놀게 한다면 곧 스스로 진리[道]를 방해하여 공덕과 이익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심행(心行)이 깨끗해서 다른 권속들의 행보다 훌륭함을 헤아려 나타내 보였으니, 경에서 “그것을 인내하는 것을 덕으로 삼아 계를 지닌다면 고행이 능히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행이란 삼매공덕으로서 괴로움을 대치하는 것이며 세 가지 업이 청정한 것이다. 나아가 뛰어난 모습을 헤아려서 행(行)은 고(苦)를 편안케 하는 도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5_0432_a_21L又復口行淸淨常作軟語故如經亦當護口勿出惡復說自他利道德障法故如經若縱恚心則自妨道失功德利示功德智慧二種心行淨故挍量勝諸眷屬行故如經忍之爲德持戒苦行所不能及於中行者三昧功德苦對治故三種業淸淨及挍量勝相示行安苦道應知
이어서 진여관(眞如觀)이 청정한 것을 설하여 안락한 길과 지혜를 관하는 대인(大人)의 힘을 성취한 것을 나타내 보이니, 경에서 “능히 참음을 행하는 자를 이름하여 힘이 센 대인이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장부의 힘을 성취하는 것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지혜로 관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나타내고 있으니, 서로 상위한 것에 의해서 훌륭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즉, 경에서 “만약 그가 기쁘게 참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추악한 욕설의 독을 감로처럼 마신다면 진리의 길에 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2_b_06L次說眞如觀淸淨示安樂道故成就觀智大人力故能行忍者乃可名爲有力大人又顯示不入丈夫力成就者無智慧觀故依相違顯勝應知如經若其不能歡喜忍受乃至智慧人也
여기에서 기뻐하지 못한다는 것은 믿음으로서 관(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추악한 욕설의 독이란 것은 무생법문의 상(相) 가운데에서 여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 말이다. 감로란 것은 무생법 자체의 상에 해당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진리의 길이란 지혜 자체를 나타낸 것이다.
또한 허물과 우환의 일을 항상 보호해야 함을 설하니, 경에서 ‘왜냐하면……’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온갖 착한 법’이란 자기를 이롭게 하는 지혜의 상이다. ‘좋은 명성’이란 것은 타인을 이롭게 하는 착한 법의 명칭의 공덕이다.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세계[自他世]에 즐길 만한 과보가 없다는 것이다.
015_0432_b_11L是中不歡喜者無信入觀故惡罵之毒者示無生法門相中不如法受故甘露示無生法自體相相似法故於中道者示智慧自體故復說過患事常護故如經所以者何如是等故於中諸善法者自利智慧相故好名聞者利他善法名稱功德故人不喜見者自他世無可樂果報故
015_0432_c_01L여기에서 막고 보호하는 데에 두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자기의 착한 법을 보호하는 것이니, 불을 막는 것에 해당한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보호하는 것이니, 도둑을 막고 보호하는 것에 해당한다.
또한 세간 공덕과 어긋나거나 어긋나지 않는 법 가운데 수용함이 있되 끝내 서로 어긋나지는 않음을 나타내 보였으니, 즉 경에서 “재가자로서 5욕을 즐기며 도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자제하는 법을 갖지 못하여 성낸다면 차라리 용서할 수 있지만”이라고 한 것과 같다. 이 가운데 ‘법을 갖지 못하여’란 것은 백정법(白淨法)의 대치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015_0432_b_19L於中防護有二種何等爲二一者護自善法如防相似法故二者護利他功德防護相似法故復示世閒功德違順法中有受用故未畢竟相違故如經衣受欲非行道人無法自制瞋猶可於中無法者無白淨法對治故
다음으로 출세간도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세간에서 수용하는 두 가지 법 가운데 서로 어긋남이 있는 까닭이니, 경에서 “출가하여 진리를 수행하는 탐심 없는 사람이 성냄을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나머지는 도분(道分) 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나타내 보인 것에 해당하는 것이니, 경에서 “비유하면 밝고 차가운 구름 속에서 벼락이 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다음에는 두 번째 번뇌장대치도(煩惱障對治道)를 설한다.
015_0432_c_02L次示出世閒道於世閒受用二法中一向相違故如經出家行道無欲之人而懷瞋恚甚不可也餘者顯示道分中不應有相似法故如經譬如淸冷雲中霹靂起火非所應也說第二煩惱障對治道
【經】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스스로 머리를 깎고, 사치스럽고 좋은 옷을 버리고, 괴색(壞色)의 옷을 입을 것이며, 응량기(應量器)를 지녀야 한다. 걸식으로 스스로 살아가고 스스로 그렇게 보아야 한다. 만일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면 재빨리 이것을 없애야 하나니, 교만이 늘어나는 것은 세속의 재가자들에게도 마땅한 일이 아니거늘 어찌 하물며 출가하여 진리의 길에 들어간 사람으로서 해탈을 구하는 자이겠는가? 스스로 그 몸을 구부리고 걸식을 하며 다녀야 한다.
015_0432_c_08L經曰汝等比丘當自摩頭已捨飾好著壞色衣執持應器以乞自活自見如是若起憍慢當疾滅之增長憍慢尚非世俗白衣所宜何況出家入道之人爲解脫故自降其身而行乞也
【論】 두 번째 번뇌장대치도는 스스로 존귀하고 뛰어나다는 마음이 없음을 성취한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몸과 마음을 낮추는 행으로서 자신을 높이는 번뇌를 멀리 여의어야 한다. 이 가운데 일곱 구절의 원리행(遠離行)이 있다.
첫째는 가장 높고 귀한 곳에서부터 가장 먼저 복종하여 언제나 스스로 알아야 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스스로 머리를 깎고”라고 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몸의 다른 부분에 장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니, 경에서 “사치스러운 것을 버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옷에 대한 대치로서 바람직한 것이니, 경에서 “괴색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자신의 수용구(受用具)는 언제나 스스로 지녀야 하는 것이니, 경에서 “응량기를 지녀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2_c_13L論曰第二煩惱障對治道者示現自無尊勝心成就輕賤身心行故遠離貢高煩惱故於中有七句行遠離者於上上尊勝處最先折伏故常應自知故如經汝等比丘當自摩頭二者於餘處莊嚴不受用故如經捨飾好三者於衣服處對治爲好如經著壞色衣四者自己受用具常自持故如經執持應器
015_0433_a_01L다섯째는 안팎의 수용할 일을 위하여 다른 일을 하여 허물이 생기는 일이 없게 하는 방편과 나아가 스스로 조복하기 위한 것이니, 경에서 “걸식으로 스스로 살아가라”고 한 것과 같다. 여섯째는 지혜를 성취하여 언제나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니, 경에서 “이와 같이 스스로 보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대치(對治)를 성취하여 미미한 일어남도 멀리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면 재빨리 이것을 없애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나머지는 어떤 뜻을 밝히고자 함인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을 밝히고자 함이다. 스스로 항복받는다는 것은 교만심을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장애가 먼저 있고 공덕은 나중에 있기 때문에 경에서 “교만이 불어나는 것은 세속의 재가자들에게도 마땅한 일이 아니거늘……”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다음은 세 번째의 장대치(障對治)를 설명한다.
015_0432_c_22L五者於內外受用事不作餘生過方便故及自調伏故如經以乞自活六者智慧成就常自觀察故如經自見如七者對治成就遠離微起故若起憍慢當疾滅之餘者明何義故示現挍量自降伏者不應起憍慢故障碍先後際功德故如經增長憍慢尚非世俗如是等故次說第三障對治
【經】 너희들 비구여, 아첨하거나 왜곡된 마음은 진리와 서로 어긋나니, 그 마음을 질박하고 곧게 해야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첨하거나 왜곡된 것이란 다만 기만하고 속이기 위함일 뿐이니, 진리에 들어선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당연히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질박하고 곧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015_0433_a_08L經曰汝等比丘諂曲之心與道相違是故宜應質直其心當知諂曲但爲欺誑入道之人則無是處是故汝等宜當端心以質直爲本
【論】 세 번째 장대치는 근본 되는 곧은 마음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아첨이나 왜곡의 번뇌의 장애를 멀리 여의기 위함이며, 입과 뜻에서 자신과 남이 서로 어긋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아첨하거나 왜곡된 마음은 진리와 서로 어긋나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진리와 어긋나는 장애를 대치함을 보여주니, 경에서 “그 마음을 질박하고 곧게 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서로 어긋나는 법은 도분(道分)의 때에는 마땅히 있지 않으니, 경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첨하거나 왜곡된 것이란 다만 기만하고 속이기 위함일 뿐이니 진리에 들어선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3_a_12L論曰第三障對治者示現根本直心遠離諂曲煩惱障故於口意中自違違彼故如經汝等比丘諂曲之心與道相違復示違道障對治故如經故宜應質直其心又復相違法分時中不應有故如經當知諂曲但爲欺誑入道之人則無是處
015_0433_b_01L여기에서 기만하고 속인다는 것은 마음과 입이 동시에 진정한 쓰임을 갖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는 곧은 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것이 도심(道心)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즉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당연히 마음을 단정히 하고 질박하고 곧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미 수집세간공덕분을 모두 설명하여 마쳤으니, 다음에는 수집출세간대인공덕분(修集出世間大人功德分)을 설명한다.
대인공덕분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모든 대인이 언제나 이것을 사용하여 스스로 깨닫고 관찰하며, 방편을 기르고 지극함을 성취한다.
015_0433_a_19L是中欺誑者心口俱時不實用故餘者示現直心是道心本故如經是故汝等宜當端心以質直爲本已說修集世閒功德分次說修集出世閒大人功德分大人功德分有八種一切大人常用此以自覺察故長養成就方便畢竟故
【經】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괴로움과 번뇌 역시 많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는 마음도 없고, 욕심도 없기 때문에 곧 이런 우환이 없다. 바로 그러한 욕심의 적음을 닦아야 한다. 욕심이 적음이 어떻게 많은 공덕을 낳는가? 욕심이 적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고자 아첨하거나 왜곡함이 없고, 또한 모든 감각기관의 이끌림을 받지 않는다. 소욕(少欲)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은 곧 평탄하여 근심이나 두려움이 없고, 대하는 일마다 여유가 있으며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 소욕을 지닌 자는 곧 열반을 지닌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욕심이 적음이라고 한다.
015_0433_b_03L經曰汝等比丘當知多欲之人多求利故苦惱亦多少欲之人無求無欲則無此患直爾少欲尚應修集何況少欲能生諸功德少欲之人則無諂曲以求人意亦復不爲諸根所牽少欲者心則坦然無所憂畏觸事有餘常無不足有少欲者則有涅槃名少欲
【論】 이것은 첫 번째, 대인(大人)이 성취한 구함이 없는 공덕이 욕심이 많은 것의 허물을 깨달았기 때문이니, 여기에서 설하는 깨달아야 할 것에는 다섯 가지 상(相)이 있다.
첫째는 장애를 깨닫는 상이니, 이른바 번뇌와 업과 괴로움의 세 가지 장애로서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괴로움과 번뇌 역시 많다”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돌며 구르는 것이 쉬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둘째는 대치를 깨닫는 상으로 세 가지 망상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마치 경에서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는 마음도 없고 욕심도 없기 때문에 곧 이런 우환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3_b_11L論曰是中第一大人成就無求功德知覺多欲過故於中說所知覺有五種相一者知覺障相謂煩惱業苦三種障故如經汝等比丘當知多欲之人多求利故苦惱亦多此示迴轉不息故二者知覺治相成就遠離三種妄想故如經少欲之人無求無欲則無此患
015_0433_c_01L셋째는 인과가 쌓이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는 상이니, 한량없는 행을 성취하는 것이다. 마치 경에서 “바로 그러한 욕심의 적음을 닦아야 한다. 욕심이 적음이 어떻게 많은 공덕을 낳겠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모든 장애가 다하여 없음을 깨닫고 세 가지 장애가 끝나는 것이니, 경에서 “욕심이 적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고자 아첨하거나 왜곡함이 없다. 또한 모든 감각기관의 이끌림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과보를 성취하는 것을 깨닫는 상이니, 반야 등의 세 가지 공덕의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다. 마치 경에서 “소욕(少欲)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은 곧 평탄하여 근심이나 두려움이 없고 대하는 일마다 여유가 있으며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 소욕을 지닌 자는 곧 열반을 지닌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욕심이 적음이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다시 이어서 두 번째로 대인의 깨달음의 공덕을 설명한다.
015_0433_b_19L三者知覺因果集起相成就無量行故如經直爾少欲尚應修集何況少欲能生諸功德四者知覺無諸障畢竟相三障畢竟故少欲之人則無諂曲以求人意復不爲諸根所牽五者知覺果成就相般若等三種功德果成就故行少欲者心則坦然無所憂畏事有餘常無不足有少欲者則有涅是名少欲復次說第二大人知覺功德
【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거든 족함을 아는 것을 관해야 한다. 족함을 아는 법이란 바로 부와 안락함과 안온한 자리이다. 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천당에 있을지라도 마음에 맞지 않고, 족함을 아는 사람은 비록 땅 위에 누워있을지라도 안락하다. 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부유하여도 가난하고, 족함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여도 부유하다. 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 욕망에 이끌리는데, 족함을 아는 사람은 그런 이들을 가엾이 여긴다. 이것을 이름하여 족함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015_0433_c_06L經曰汝等比丘若欲脫諸苦惱當觀知足知足之法卽是富樂安隱之處知足之人雖臥地上猶爲安樂不知足者雖處天堂亦不稱意不知足者雖富而貧知足之人雖貧而富不知足者常爲五欲所牽爲知足者之所憐愍是名知足
【論】 두 번째, 대인의 깨달음의 공덕으로 족함을 아는 행을 성취해서 괴로움의 인과를 대치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거든 족함을 아는 것을 관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고뇌란 것은 번뇌의 허물이 괴로움으로부터 생겨난 것을 나타내 보인다.
또한 깨끗한 인과를 설명하고 있으니, 대치법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경에서 “족함을 아는 법이란 바로 부와 안락함과 안온한 자리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3_c_13L論曰第二大人知覺功德者成就知足行故對治苦因果故如經汝等比若欲脫諸苦惱當觀知足是中惱者示現煩惱過從苦生故復說淸淨因果成就治法故如經知足之法卽是富樂安隱之處
015_0434_a_01L만일 이와 같다면 두 가지 깨달음 사이에 어떤 차별이 있는가? 여기에서 첫 번째 대인의 깨달음은 다른 경계의 일을 멀리 여의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고, 족함을 아는 것이란 자신의 일에서 멀리 여의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또한 다시 세 가지 차별이 있어서 족함을 아는 것과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는 어떠한 곳에서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차별이고, 둘째는 어떠한 일을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차별이고, 셋째는 어떠한 법에 자신의 이익이 없고 자신과 남의 이익이 있는가에 대한 차별이다. 마치 경에서 “족함을 아는 사람은 비록 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라고 한 것과 같으니, 경에서와 같이 알아야 한다.
이어서 세 번째, 대인의 멀리 여읨의 공덕을 설명한다.
015_0433_c_19L若如是者二種知覺云何差別此中示現初知覺者遠離他境界事故知足者於自事中遠離故復次有三種差別示現知足不知足故一者於何等何等處受用差別故二者於何等何等事受用差別故三者於何等何等法中無自利有自他利差別故如經知足之人臥地上如是等如經應知次說第三大人遠離功德
【經】 너희들 비구여, 적정과 무위와 안락함을 구하려거든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떠나서 홀로 조용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 고요한 곳에 머무는 사람은 제석천과 모든 하늘이 함께 공경하고 존중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무리들과 다른 무리들을 버린 채 텅 비고 한적한 곳에 홀로 머물면서 괴로움의 근본을 사유하여 멸하여야 한다. 만일 무리 속에 있는 것을 즐긴다면 곧 무리의 어지러움을 받게 될 것이니, 비유하면 큰 나무에 온갖 새들이 모여 살게 되면 결국 말라 꺾이고 마는 우환을 겪는 것과 같다. 세간에 속박당하고 집착하면 못 괴로움 속에 빠지게 되나니, 마치 늙은 코끼리가 수렁에 빠진 뒤에는 혼자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멀리 여읨이다.
015_0434_a_05L經曰汝等比丘若求寂靜無爲安樂當離憒鬧獨處閑居靜處之人帝釋諸天所共敬重是故當捨己衆他衆空閑獨處思滅苦本若樂衆者則受衆惱譬如大樹衆鳥集之則有枯折之患世閒縛著沒於衆苦如老象溺泥不能自出是爲遠離
【論】 세 번째, 대인의 멀리 여읨의 공덕이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 문으로 모든 뜻을 거두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자성원리문(自性遠離門)이니 본체의 벗어남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수습원리문(修習遠離門)이니 방편으로 벗어남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수용제견문(受用諸見門)이니 항상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성원리문은 네 가지 대치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첫째는 ‘나’라는 상(相)에 집착하는 장애로서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적정과 무위와 안락함을 구하려거든”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적정이란 법무아공(法無我空)을 나타낸 것이다. 무위란 무상공(無相空)이며, 안락이란 무취사원공(無取捨願空)이다.
015_0434_a_12L論曰第三大人遠離功德於中三門攝義應知一者自性遠離門體出故二者修習遠離門方便出故三者受用諸見門常縛故自性遠離門者現四種對治一者我相執著障此障對治如經汝等比丘若求寂靜無爲安樂於中寂靜者示法無我空故無爲者無相空故安樂者無取捨願空故
015_0434_b_01L둘째는 ‘나의 것’이라는 상에 집착하는 장애로서 다섯 가지 무리가 어지럽게 일어나 차례가 없기 때문이며,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으로 경에서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떠나서”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그 두 가지가 없다는 상에 집착하는 장애이니,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으로 경에서 “홀로 조용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무위(無爲)를 으뜸의 공덕으로 여기는 장애이니, 그것은 천(天)들이 중히 여길 만한 법이기 때문이다.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으로서 경에서 “고요한 곳에 머무는 사람은 제석천과 모든 하늘이 함께 공경하고 존중한다”고 한 것과 같다.
수습원리문은 나와 나의 것이라는 상을 멀리 떠나서 두 번 다시 모이고 생겨나지 않는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자기의 무리들과 다른 무리들을 버리고”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4_a_21L二者我所障五衆亂起無次第此障對治如經當離憒鬧三者彼二無相障此障對治如經獨處閑四者無爲首功德障以其天可重法故此障對治如經靜處之人釋諸天所共敬重修習遠離門者遠離我我所不復集生故如經是故當捨己衆他衆
방편의 지혜를 성취하여 법대로 여여하게 머무는 것이니, 경에서 “텅 비고 한적한 곳에 홀로 머물면서”라고 한 것과 같다.
잘 생각하는 지혜를 성취하여 장애가 일어나는 원인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괴로움의 근본을 사유하여 멸하여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수용제견문은 나와 나의 것이 모이는 것을 즐거워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마음의 경계를 일으켜 서로 어지럽히는 것이니, 경에서 “만일 무리 속에 있는 것을 즐긴다면 곧 무리의 어지러움을 받게 될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온갖 견해가 모여서 생기고 생긴 뒤에는 스스로 해로움을 입게 되는 것은 커다란 나무에 해당하는 것이니, 경에서 “비유하면 큰 나무에 온갖 새들이 모여 살게 되면 결국 말라 꺾이고 마는 우환을 겪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4_b_05L方便慧成就如法如住故如經空閑獨處善擇智成遠離起因故如經思滅苦本用諸見門者樂集我我所生起自他心境相惱故如經若樂衆者則受衆諸見集生生已自害大樹相似法故如經譬如大樹衆鳥集之則有枯折之患
또한 벗어나지 못하는 상(相)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번뇌와 업에 물드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늙은 코끼리가 진흙에 빠지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즉, 경에서 “세간에 속박당하고 집착하면 뭇 괴로움 속에 빠지게 되나니, 마치 늙은 코끼리가 수렁에 빠진 뒤에는 혼자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멀리 여읨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어서 네 번째, 대인의 지치거나 피로하지 않은 공덕을 설명한다.
015_0434_b_12L復示無出離相煩惱業染生故老象溺泥相似法故如經閒縛著沒於衆苦如老象溺泥不能出是爲遠離次說第四大人不疲惓功德
【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일에 어려움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지런히 정진해야만 한다. 비유하자면 작은 물도 끊임없이 흐른다면 이내 돌을 뚫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만일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자주 게을러진다면, 마치 부싯돌을 부칠 때 미처 열이 나기도 전에 멈추는 것과 같으니, 그리하면 불을 얻고 싶어도 불 얻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정진이라고 한다.
015_0434_b_16L經曰汝等比丘若勤精進則事無難是故汝等當勤精進譬如小水常流則能穿石若行者之心數數懈廢譬如鑽火未熱而息雖欲得火火難可得是名精進
015_0434_c_01L【論】 여기서 지치거나 피로하지 않은 것이란 외도의 정진과 같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모든 법이나 행에 있어서 잘 나아가고 불퇴전을 성취하는 것이니, 마치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일에 어려움이 없으리니”라고 한 것과 같다.
능히 불퇴전을 성취하기 위해서 반드시 닦고 익히며 길러야 하니,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지런히 정진해야만 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4_b_21L論曰是中不疲惓者示現不同外道精進故於一切法一切行善趣故就不退轉故如經汝等比丘若勤精進則事無難者以能成就不退修習長養故如經是故汝等當勤精
또한 비유로써 쉬지 않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으니 정진한다면 힘을 성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에서 “비유하자면 작은 물도 끊임없이 흐른다면 이내 돌을 뚫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다음은 게으름의 허물을 설명한 것이다. 언제나 정진하지 않으면 염처(念處)에서 물러나 잃게 되며 마음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니, 비유에 의하여 나타내 보인 것을 알아야 한다. 경에서 “만일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자주 게을러진다면……”이라고 한 것과 같다.
다음은 다섯 번째, 대인의 생각[念]을 잊지 않는 공덕을 설명한다.
015_0434_c_04L復以譬喩顯示不休息精進成就有力故如經譬如小水常流則能穿石次說懈怠過不能常精進念處退失不成就心慧故依譬喩顯示應知如經若行者之心數數懈廢是等故次說第五大人不忘念功德
【經】 너희들 비구여, 선지식을 구하고 훌륭한 보호와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을 잊지 않음[不忘念]만 한 것이 없다. 만일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모든 번뇌의 도적이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생각을 거두어 마음속에 두도록 하여라. 만일 생각을 잊는다면 이내 모든 공덕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힘이 견고하고 강하다면 비록 다섯 가지 욕망의 도적 속에 들어가 있어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니, 비유하면 갑옷을 입고 진영에 들어가면 두려울 바가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생각을 잊지 않음이라고 한다.
015_0434_c_09L經曰汝等比丘求善知識求善護助無如不忘念者若有不忘念者諸煩惱賊則不能入是故汝等常當攝念在心若失念者則失諸功德若念力堅雖入五欲賊中不爲所害譬如著鎧入陣則無所畏是名不忘念
【論】 다섯 번째, 대인의 생각을 잊지 않는 공덕이다. 이것은 모든 행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며 무시이래의 무거운 원한을 쳐부술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행이란 간략히 말하면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법을 듣기를 구하는 행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선지식을 구하고”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안으로 잘 사유하는 행이니, 경에서 “훌륭한 보호와”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여법하게 수행하기를 구함이니, 경에서 “훌륭한 도움을 구하고”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이러한 행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고 가장 뛰어난 것이 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생각을 잊지 않음[不忘念]만한 것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4_c_15L論曰第五大人不忘念功德者示現是一切行上首故能破無始重怨故於中一切行者略說三種一者求聞法行如經汝等比丘求善知識者內善思惟行如經求善護三者求如法修行如經求善助復示此等行中爲首爲勝故如經無如不忘念者
015_0435_a_01L무시이래의 무거운 원한을 막아내고 세 가지 선근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경에서 “만일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모든 번뇌의 도적이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번뇌란 심상(心相)이 미혹되고 어지러운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고, 도적이란 밖에서 모여와 생겨난 허물이다.
또한 처음과 나중의 생각을 성취하도록 권하여 닦게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시작과 끝이 없는 마음을 막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생각을 거두어 마음속에 두도록 하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4_c_23L能遮無始重怨不害三種善根故如經若有不忘念者諸煩惱賊則不能入煩惱者示心相中惑亂故賊者從外集生過故復示勸修令初後念成就示現遮無始終心故如經是故汝等常當攝念在心
시작과 끝이 없어서 생각을 잃고 많은 허물이 생겨나는 것은, 경에서 “만일 생각을 잊는다면 이내 모든 공덕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많은 공덕을 성취하면 세간문을 따라 여러 가치 행을 일으킬 수 있으니,경에서 “만일 생각의 힘이 견고하고 강하다면 비록 다섯 가지 욕망의 도적 속에 들어가 있어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생각의 힘이 강한 것은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진영에 들어가는 것에 해당하니, 경에서 “비유하면 갑옷을 입고 진영에 들어가면 두려울 바가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생각을 잊지 않음이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어서 여섯 번째, 대인의 선정의 공덕을 설명한다.
015_0435_a_05L無始終失念成就多過故如經若失念者則失諸功德又成就多功德隨順世閒門集諸行故如經若念力堅强雖入五欲賊中不爲所害念力强勇健無畏入陣相似法故如經如著鎧入陣則無所畏是名不忘念次說第六大人禪定功德
【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마음을 거둔다면 마음은 곧 정(定)에 있을 것이다. 마음이 정에 있으면 능히 세간의 생멸하는 법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부지런히 정근하여 모든 정을 닦아 일으켜야 한다. 만일 정을 얻는다면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니, 비유하면 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집이 제방을 잘 다스리는 것처럼 수행자는 지혜의 물을 위하여 선정을 잘 닦아서 새거나 잃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정이라고 한다.
015_0435_a_12L經曰汝等比丘若攝心者心則在定心在定故能知世間生滅法相是故汝等常當精勤修集諸定若得定者心則不散譬如惜水之家善治堤塘行者爲智慧水故善修禪定令不漏是名爲定
015_0435_b_01L【論】 대인의 선정의 공덕으로서 여덟 가지 선정 등은 생각을 잘 거둠을 인연하여 생겨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마음을 거둔다면 마음은 곧 정(定)에 있을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어떻게 마음을 거두면 선정을 생겨나게 하는가? 시현섭변소행처(示現攝遍所行處)에서 심행(心行)으로 연(緣)을 대치하기 때문이요, 그 다음은 중(中)ㆍ연(軟:下)의 일을 취하는 심행으로 연을 대치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연처(緣處)에서 대치가 이루어졌을 때, 곧 선정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선정을 성취하면 방편과용(方便果用)이 있게 되는데, 경에서 “마음이 정에 있으면 능히 세간의 생멸하는 법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5_a_18L論曰大人禪定功德者謂八種禪定因攝念生故如經汝等比丘若攝心者心則在定云何攝心能生禪示現攝徧所行處心行對治緣故次及中軟取事心行對治緣故此三種緣處對治成時則近禪定故禪定成就有方便果用故如經心在定故能知世閒生滅法相
또한 게을러서 닦고 일으키지 않으면 방편의 장애가 생기므로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부지런히 정근하여 모든 정을 닦아 일으켜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게으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안온하지 못한 게으름이고, 둘째는 무미(無味)한 게으름이며, 셋째는 공포를 알지 못하는 게으름이다. 어떻게 닦고 일으켜서 하나하나에 대치하는가?정진하여 적절한 양을 먹고 누우며 나아가 아나파나(호흡)를 조절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정(定)을 깨달아 알고 신통과 지혜의 공덕이 있으며 나아가 괴로움의 근원을 모두 다하는 것이니, 이는 참으로 드문 일이다. 정진하여 닦고 일으켜 생ㆍ노ㆍ병ㆍ사의 괴로움과 네 가지 악취의 괴로움을 관찰하고, 내가 아직 떠나지 못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그 장애를 대치하는 것들이다.
015_0435_b_03L又懈怠無修方便障故如經是故汝等常當精勤修集諸定是中懈怠有三種者不安隱懈怠二者無味懈怠三者不知恐怖懈怠云何修集一一對治示現精進修集節量食臥及調阿那波那故精勤修集覺知諸定有通慧功德及盡苦原故大希有事故精進修集觀察生老病死苦及四惡趣苦我未能離故是三障對治故
또한 수습공덕을 성취하면 대치할 바가 없으니, 경에서 “만일 정을 얻는다면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비유로써 잘 수행하는 공덕이 계속 늘어남을 보이고 있으니, 경에서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어서 일곱 번째, 대인의 지혜공덕을 설명한다.
015_0435_b_12L復修習功德成就無所對治故如經若得定者心則不散又以譬喩示善修功上上增長故如經應知次說第七大人智慧功德
015_0435_c_01L【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지혜가 있으면 곧 탐착이 없을 것이니, 언제나 스스로 잘 살펴서 잃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설한 법 중에서 능히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진리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아니다. 또 재가자도 아니라서 칭할 것이 없다. 참다운 지혜란 곧 늙고 병들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배이고, 또한 무명의 어두움을 크게 밝히는 등불이며, 모든 병든 이들의 좋은 약이며 번뇌의 나무를 베는 예리한 도끼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듣고 생각하고 닦아서 지혜를 얻어 자신의 이익을 불려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로 밝게 비추는 일이 있다면, 비록 이것이 육안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밝게 보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015_0435_b_16L經曰汝等比丘若有智慧則無貪著常自省察不令有失是則於我法中能得解脫若不爾者旣非道人又非白衣無所名也實智慧者則是度老病死海堅牢舩也亦是無明黑暗大明燈也一切病者之良藥也伐煩惱樹之利斧也是故汝等當以聞思修慧而自增益若人有智慧之照雖是肉眼而是明見之人也是爲智慧
【論】 여기서 지혜공덕이란 진실의처(眞實義處)의 장애와 세간사처(世間事處)의 장애를 멀리 잘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지혜가 있으면 곧 탐착이 없을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어느 때라도 항상 마음의 지혜를 닦아야 하나니, 이것은 얻기 어렵기 때문에 경에서 “언제나 스스로 잘 살펴서 잃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제일의처의 멀리 여읨을 얻는 일이 어려움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이것이 바로 내가 설한 법 중에서 능히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5_c_02L論曰是中智慧功德者於眞實義處障及世閒事處障能遠離故如經等比丘若有智慧則無貪著於一切時常修心慧故以其難得故如經常自省察不令有失復示難得能於第一義處遠離故如經是則於我法中能得解脫
또한 자성혜(自性慧)가 없으면 출세간과 세간에 들어갈 수 없으며 시설하지 않으니, 경에서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진리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아니다. 또 재가자도 아니라서 칭할 바가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또 네 가지 비유로써 네 가지 공덕, 즉 듣고 사유하고 수행하고 증득함을 나타내 보였으니, 경에서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참다운 지혜라고 말한 것은 진실로 능히 대치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네 가지 공덕 가운데 네 번째 공덕은 자신의 이익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다. 또한 네 가지 수학(修學)의 공덕은 내처(內處)의 각 부분에서 깨달아 비춤이 있으니, 마치 경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로 밝게 비추는 일이 있다면 비록 이것이 육안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밝게 보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방편을 기르는 공덕을 모두 설명하였다. 이어서 대인이 성취한 필경 공덕을 설명한다.
015_0435_c_09L復示非自性慧不入出世及世閒中故非施設故若不爾者旣非道人又非白衣所名也又以四種譬喩顯示四種功德聞思修證故如經應知言實智慧者示實能對治故於四種功德中第四功德自利益最勝義故又四種修學功德於分內處而有覺照故若人有智慧之照雖是肉眼而是明見人也是爲智慧已說長養方便功德次說大人成就畢竟功德
【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갖가지로 희론(戲論)한다면 그 마음은 이내 어지러워질 것이고, 또한 비록 출가하여도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여, 산란한 마음과 희론을 서둘러 버리고 여의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오직 희론의 우환을 빨리 멸해야만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희론하지 않는다고 한다.
015_0435_c_19L經曰汝等比丘若種種戲論其心則雖復出家猶未得脫是故比丘急捨離亂心戲論若汝欲得寂滅樂唯當速滅戲論之患是名不戲論
015_0436_a_01L【論】 대인이 성취한 필경 공덕이란 자성이 멀리 여의어서 대치법이 아님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네 가지 차별지가 법의 분별과 가능한 분별을 장애하기 때문에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갖가지로 희론한다면 그 마음은 이내 어지러워질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수도지(修道智)는 자성이 아니기 때문에 경에서 “또한 비록 출가하여도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나머지 두 구절은 부지런한 닦음으로 멀리 여의어서 희론 없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첫째는 유대상(有對相)의 멀리 여읨으로서 이러저러한 공덕이 있다고 하는 상(相)을 여읨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비구여, 산란한 마음과 희론을 서둘러 버리고 여의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5_c_23L論曰大人成就畢竟功德者示現自性遠離非對治法故四種差別智障法分別可分別故如經汝等比丘種種戲論其心則亂修道智非自性故如經雖復出家猶未得脫者二句勤修遠離成就無戲論故者有對相遠離有彼彼功德相故是故比丘當急捨離亂心戲論
둘째는 무대상(無對相)의 멀리 여읨으로서 이러저러한 공덕이 없다고 하는 상을 떠남이니, 경에서 “만일 그대가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오직 희론의 우환을 빨리 멸해야만 하나니”라고 한 것과 같다.
행을 성취하여 체성의 다름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경에서 “이것을 이름하여 희론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성취출세간대인공덕분(成就出世間大人功德分)을 모두 설명하였다. 다음은 현시필경심심공덕분(現示畢竟甚深功德分)을 설명한다.
015_0436_a_08L二者無對相遠離無彼彼功德相故如經若汝欲得寂滅樂者唯當速滅戲論之患示現行成就體性異故如經是名不戲論已說成就出世閒大人功德分次說顯示畢竟甚深功德分
【經】 너희들 비구여, 모든 공덕에서 언제나 한마음으로 모든 게으름을 버리기를 마치 원수의 도적을 여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대비하신 세존께서 이롭게 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구경(究竟)이니, 너희들은 다만 부지런히 이를 행해야 할 것이다. 만일 산 속에 있거나 탁 트인 물가에 있거나 나무 아래 있거나 한적한 곳이나 선정의 방에 있더라도 받아들이는 법을 생각해서 망실(忘失)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제나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것을 닦아야 하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헛되이 죽은 뒤에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명의로서 병을 잘 알아 약을 주지만 약을 먹고 안 먹고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또한 좋은 길을 안내하는 사람과도 같으니, 사람들에게 좋은 길을 안내하더라도 그것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길을 안내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
015_0436_a_14L經曰汝等比丘於諸功德常當一心捨諸放逸如離怨賊大悲世尊所欲利益皆已究竟汝等但當勤而行之若於山閒若空澤中若在樹下閑處靜室念所受法勿令忘失常當自勉精進修之無爲空死後致有悔我如良醫知病說藥服與不服非醫咎也又如善導導人善道聞之不行非導過也
015_0436_b_01L【論】 현시필경심심공덕에는 두 종류의 필경 현시(顯示)가 있고 두 종류의 깊고 깊은 공덕이 있다.
첫째는 여래가 분별하여 설법함을 다하여 마치는 공덕이니, 즉 분별하지 않는 설법으로 깊고 깊은 공덕을 항상 설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둘째는 수행보살이 세간의 공덕을 닦는 것을 다하여 마침이니, 그런 후 깊고 깊은 공덕을 항상 닦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수행공덕은 위와 같으니 하나하나에 각각 두 종류의 공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항상 공덕을 닦는다는 것은 제일의심(第一義心)으로 닦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모든 공덕에서 언제나 한마음으로”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6_a_23L論曰顯示畢竟甚深功德者有二種畢竟顯示二種甚深功德故一者如來分別說法畢竟功德顯示非分別說法甚深功德常說故二者修行菩薩修世閒功德畢竟顯示餘者甚深功德常修故此二種修行功德如上一一種中各修二種功德應知是中常修功德者第一義心修故如經等比丘於諸功德常當一心
한마음을 멀리 여의는 것은 마치 원수처럼 서로 어긋나는 행을 하는 것과 같으니, 경에서 “모든 게으름을 버리기를 마치 원수의 도적을 떠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한없는 대비로서 언제나 이롭게 하는 것은 한계를 다하여 마친 것이니, 경에서 “대비하신 세존께서 이익케 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구경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음으로는 언제나 닦는 공덕에 대해 자세히 설한 것이니, 일곱 종류의 닦는 모습이 있다. 첫째는 ‘어떻게 닦는가?’로서 언제나 부지런히 행하는 것을 나타내 보임이니, 경에서 “너희들은 다만 부지런히 이를 행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6_b_09L遠離一心相似相違行如怨故如經捨諸放逸如離怨賊無限齊大悲常利益限齊畢竟故如經大悲世尊所欲利益皆已究竟次復廣說常修功有七種修相一者云何修示現常勤行故如經汝等但當勤而行之
둘째는 ‘어떤 곳에서 닦는가?’이니, 일이 없는 곳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경에서 “만일 산 속에 있거나 탁 트인 물가에 있거나 나무 아래 있거나 한적한 곳이나 선정의 방에 있더라도”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무엇을 닦을 것인가?’로서 진실하여 둘이 없는 염법(念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받아들이는 법을 생각하되”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무슨 까닭으로 닦는가?’이니 현전하도록 닦아야 한다. 즉 경에서 “잃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어떤 방편으로 닦을 것인가’이니, 경에서 “언제나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것을 닦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6_b_15L二者於何處修示無事處故如經於山閒若空澤中若在樹下閑處靜三者何所修示修眞實無二念法故如經念所受法四者何故修修令現前故如經勿令忘失五者以何方便修如經常當自勉精進修
015_0436_c_01L여섯째는 ‘비슷한 법에 처하여 소식(蘇息:소생)함으로서 상상심(上上心)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헛되이 죽은 뒤에는”이라고 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늦은 뒤에 스스로 후회스러움이 있음을 알지만 일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경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음에는 여래가 분별하여 설법하는 공덕을 다하여 마치는 것을 자세히 설하였다. 두 종류의 다하여 마치는 모습을 나타내 보였으니, 첫째는 설법하고 교화함을 다하여 마치는 모습이 남김이 없는 것이니, 경에서 “나는 명의로서 병을 잘 알아 약을 주지만 약을 먹고 안 먹고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6_b_22L六者於相似法處蘇息遠離上上心故如經無爲空死七者於晩時自知有餘悔不及事故如經後致有悔次廣說如來分別說法功德畢竟示現二種畢竟相一者說化法畢竟相應無餘故如經我如良醫知病說藥服與不服非醫咎也
둘째는 염(念)과 함께 함을 다해 마쳐서 제도하는 법에 상응하여 남김이 없는 것이니, 경에서 “또한 좋은 길은 안내하는 사람과도 같으니 사람들에게 좋은 길을 안내하더라도 그것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길을 안내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약을 먹거나 안 먹거나 등등은 여래께서 두 종류의 다하여 마침[畢竟] 속에 허물이나 과실이 없기 때문에 중생의 세간법을 짊어지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현시입증결정분(現示立證決定分)을 설명한다.
015_0436_c_05L二者與念畢竟度法相應無餘故如經如善導導人善道聞之不行非導過是中服與不服等示現如來於二種畢竟中無過失故不負衆生世閒法故次說顯示入證決定分
【經】 “너희들은 만일 고성제 등의 4성제에서 의심되는 바가 있으면 서둘러 이것을 질문하여야 한다. 의심을 품고서도 해결을 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때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세 번 소리 내어 말씀하셨지만 질문하는 자가 없었다. 왜냐하면 대중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아누루타가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서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달을 뜨겁게 덥힐 수도 있고, 해를 차갑게 식힐 수도 있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4성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성제는 진실로 괴로움이므로 즐거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집성제는 참다운 인(因)이므로 다시 다른 인은 없습니다. 괴로움이 멸하면 이것이 바로 인의 멸이며, 인이 멸하면 과(果)도 멸합니다. 괴로움을 멸하는 길은 바로 참다운 길이므로 다시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비구들은 4성제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 의심이 없습니다.
015_0436_c_10L經曰汝等若於苦等四諦有所疑者可疾問之無得懷疑不求決也爾時世尊如是三唱人無問者所以者何衆無疑故時阿㝹樓馱觀察衆心而白佛言世尊月可令熱日可令冷四諦不可令異佛說苦諦實苦不可令樂集眞是因更無異因苦若滅者卽是因滅因滅故果滅滅苦之道實是眞道更無餘道世尊是諸比丘於四諦中決定無疑
015_0437_a_01L【論】 입증결정이란 증득해야 할 법을 모두 성취하여 분명하게 알고 있어서 의심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 문으로 뜻을 거두어서 결정코 의심이 없음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는 방편현발문(方便顯發門)이고, 둘째는 만족성취문(滿足成就門)이고, 셋째는 분별설문(分別說門)이다.
방편현발문이란 모든 참다운 법처(法處)를 드러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수행하는 자는 그 법을 관찰해야 하며 나아가 그에 의지하여 행을 일으켜야한다.
015_0436_c_20L論曰入證決定者示現於所證法中成就決定無所疑故是中有三門攝示現決定無疑一者方便顯發門二者滿足成就門三者分別說門便顯發門者示現於諸實法處顯發以彼法是修行者當觀察及依之起行故如經汝等若於苦等四諦
마치 경에서 “너희들은 만일 고성제 등의 4성제에서”라고 한 것과 같다. 4성제에서 유작무작법(有作無作法)은 의심이 있거나 의심이 없는 분제(分齋)를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의심되는 바가 있으면 서둘러 이것을 질문하여야 한다. 의심을 품고서도 해결을 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서둘러 질문한다는 것은 두 종류의 장차 다하여 마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앞에서 이미 설명한 두 종류의 다하여 마침과 같다.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4성제를 봄에는 의심이 없되 4성제의 수행에 의심이 있다면 그 둘은 서로 어긋나므로 모두 의심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015_0437_a_04L於四諦中有作無作法示現有疑無疑分齊故如經有所疑者可疾問之無得懷疑不求決也疾問者示二種將畢竟故如向已說二種畢竟事無得懷疑者於見無作諦處及修行有作諦處彼二相違處皆不得疑故
만족성취문에는 세 종류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첫째는 법륜(法輪) 만족성취를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참다운 법을 세 번 굴린 것이니, 경에서 “이때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세 번 소리 내어 말씀하셨지만”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둘째는 증법(證法) 만족성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질문하는 자가 없었다”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단공덕(斷功德) 만족성취이니, 경에서 “왜냐하면 대중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7_a_11L滿足成就門者有三種示現一者示現法輪滿足成就三轉實法如經爾時世尊如是三唱二者示現證法滿足成就如經人無問者三者示現斷功德滿足成就如經所以者何衆無疑故
분별설문이란 저 대중의 우두머리가 대중의 심행(心行)이 성취한 결정(決定)을 알고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또한 증득한 참다운 뜻을 환히 깨닫고 있으므로 각각의 일에 대하여 분별하여 설해서 여래께 답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이때 아누루타가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서……”라고 한 것과 같다.
해와 달의 차고 기움이란 4성제에 어긋나게 관(觀)하고 행(行)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015_0437_a_16L分別說門者現彼衆上首知大衆心行成就決定復了知所證實義故分別說彼彼事答如來故如經時阿㝹樓馱觀察衆如是等故日月冷熱者示於四諦中違順觀行不可異故
015_0437_b_01L“진실로 괴로움이므로 즐거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므로 괴로움과 즐거움은 각각 참다워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다른 인은 없습니다”라는 것은 괴로움의 멸에는 각각 스스로의 인이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또한 멸도(滅道)도 마찬가지로서 이것은 자성으로 관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분명하게 안다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의 인과를 분명하게 알아서 들어가 행함이다.
의심이 없다는 것은 다른 것이 없고 나머지 뜻이 없음이다.
이미 현시입증결정분을 모두 설하였다. 이어서 분별미입상상증위단의분(分別末入上上證爲斷疑分)을 설명한다.
015_0437_a_21L實苦不可令樂者以佛說故苦樂各實不變異故更無異因者示苦滅各自因故復示滅道同是自性觀故決定者苦樂因果入行決定故無疑者無異無餘義已說顯示入證決定分次說分別未入上上證爲斷疑分
【經】 이 무리 가운데에서 해야 할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한 이들은 부처님의 멸도를 보고 슬픔에 잠길 것입니다. 만일 처음으로 법에 들어간 자라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이내 제도될 수 있으리니, 비유하면 밤에 번갯불을 보고 이내 길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이미 괴로움의 바다를 건넌 이라면 다만 ‘세존의 멸도는 어찌 이리 빠르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015_0437_b_04L經曰於此衆中所作未辦者見佛滅度當有悲感若有初入法者聞佛所說卽皆得度譬如夜見電光卽得見若所作已辦已度苦海者但作是世尊滅度一何疾哉
【論】 분별미입상상증이란 세 가지 분별로 아직 상상법(上上法)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는 진리를 알기 위하여 수행 단계 속에 있는 자로서 아직 상상법에 들어가지 못함이니, 경에서 “이 무리 가운데에서 해야 할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한 이들은 부처님의 멸도를 보고 슬픔에 잠길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진리를 알아 견도(見道) 중에 있는 자로서 곧 분명하게 아는 것이니, 동일하지 않은 수행 단계의 법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에 상상법에는 더욱 먼 자이다. 경에서 “만일 처음으로 법에 들어간 자라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이내 제도될 수 있으리니”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7_b_09L論曰分別未入上上證者有三種分顯示未入上上法故一者於有作諦修分時中未入上上法故如經此衆中所作未辦者見佛滅度當有悲感二者於無作諦見道時中速決定故示現不同修分法故去上上法轉遠故如經若有初入法者聞佛所說卽皆得度
또다시 비유로써 견도에서 재빨리 분명하게 아는 것을 나타내 보였으니 그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치 경에서 “비유하면 밤에 번갯불을 보고 이내 길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저 두 가지와는 달리 공용(功用)이 없는 무학도(無學道)에 있는 자로서 상상법의 경계에 미세한 의심이 있는 것이고, 또한 다른 뜻이 있으니 자신의 경지[地]에서 부처님께서 빨리 멸도에 드시는 것을 보는 것이니, 경에서 “만약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이미 괴로움의 바다를 건넌 이라면 다만 ‘세존의 멸도는 어찌 이리 빠르단 말인가?’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다음에는 각각의 의심을 끊는 것을 설명한다.
015_0437_b_17L復以譬喩示現見道速決定義應知如經譬如夜見電光卽得見道三者於彼二相違無功用無學道中於上上法界有微細疑故復有異義於自地中見佛速滅如經若所作已辦已度苦海者作是念世尊滅度一何疾哉次說爲斷彼彼疑故
015_0437_c_01L【經】 아누루타가 비록 대중들이 4성제의 의미를 모두 환히 알고 있다고 말하였지만, 세존께서는 이 대중들이 모두 견고한 지혜를 얻게 하시고자 대비심으로 다시 대중에게 설하셨다.
“너희들 비구는 슬퍼하거나 번뇌하지 말라. 가령 내가 1겁을 세상에 머문다고 하여도 모인 것은 마땅히 멸하고야 마니, 모였다가 헤어지지 않는 것은 끝내 얻을 수 없다. 자신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법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만일 내가 오래도록 머문다고 하여도 이익될 것이 없다. 제도되어야 할 자는 천상과 인간 모두 다 제도되었고, 아직 제도되지 못한 자들도 모두가 이미 제도될 인연을 만들었다. 지금 이후부터 나의 제자들은 더욱 이것을 행하여야 한다. 그러면 이것이 바로 여래의 법신이 항상 머무는 것이며 멸하지 않는 것이다.
015_0437_c_01L經曰阿㝹樓馱雖說衆中皆悉了達四聖諦義世尊欲令此諸大衆皆得堅以大悲心復爲衆說汝等比丘勿懷悲惱若我住世一劫會亦當滅會而不離終不可得自利利人法皆具足若我久住更無所益應可度者若天上人閒皆悉已度其未度者亦已作得度因緣自今已後我諸弟子展轉行之則是如來法身常在而不滅也
【論】 여기에서 의심을 끊는 것은 저들의 승분의(勝分疑)를 끊는 것이니, 자신의 경지에서 먼저 성취된 바이기 때문이다. 경에서 “아누루타가 비록 대중들이 4성제의 의미를 모두 환히 알고 있다고 말하였지만”이라고 한 것과 같다.
다시 상상(上上)으로 성취하게 하여 저 얻은 곳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게 하고자 하시니, 이는 여래의 비심(悲心)이 지극히 순박하기 때문이고 상상법(上上法)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경에서 “세존께서는 이 대중들이 모두 견고한 지혜를 얻게 하시고자 대비심으로 다시 대중에게 설하셨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7_c_11L論曰是中斷疑者斷彼勝分疑故自地中先所成就故如經阿㝹樓馱雖說衆中皆悉了達四聖諦義令上上成就於彼所得究竟不退故是如來悲心淳至故不護上上法故如經世尊欲令此諸大衆皆得堅固以大悲心復爲衆說
무엇을 설하셨는가? 유위공덕을 설하셨으니, 자타가 함께 멸하기 때문이다. 자타란 설하는 자와 듣는 자의 차별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슬퍼하거나 번뇌하지 말라. 만일 내가 1겁을 세상에 머문다고 하여도 모인 것은 마땅히 멸하고야 만다. 모였다가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끝내 얻을 수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법문은 항상 머물러 멸하지 않음을 설하였으니, 경에서 “자신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법은 모두 갖추어졌으니”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7_c_18L云何說說有爲功德自他俱滅故自他者說聽差別故如經汝等比丘勿懷悲惱若我住世一劫會亦當滅會而不離終不可得復說法門常住不滅故如經自利利人法皆具足
015_0438_a_01L또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을 다해 마쳐서 다시 지어야 할 것이 없음을 설하니, 경에서 “만일 내가 오래도록 머문다고 하여도 이익 될 것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저 무리 중에서 자신에게 이롭게 하는 일을 다해 마쳐서 다시 지을 것이 없음을 설하니, 경에서 “제도되어야 할 자는 천상과 인간 모두 다 제도되었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아직 닦아서 일으키지 못한 자는 멸하지 않는 법문에 의하여 능히 제도될 인연을 지었음을 설하였으니, 경에서 “아직 제도되지 못한 자들도 모두가 이미 제도될 인연을 만들었다”고 한 것과 같다. 다시 다른 뜻이 있으니 상상법에서 아직 제도되지 못한 자는 항상 머무는 법문에 의지하여 제도된다는 것이다.
015_0437_c_23L又說他利事畢竟無復所作故如經若我久住更無所益又說於彼彼衆中自利事畢竟無復所作故如經應可度者天上人閒皆悉已度又說未修集依不滅法門能作得度因緣故其未度者皆亦已作得度因緣復有異義於上上法中未得度者常住法門度故
또 주지(住持)하여 무너지지 않는 공덕에 두 종류가 있음을 설하였다. 첫째는 인분(因分) 가운데 주지하는 것으로 무너지지 않고 항상 수행해서 수행을 끊지 않으니, 경에서 “지금 이후부터 나의 제자들은 더욱 이것을 행하여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과분(果分) 가운데 주지하는 것으로 무너지지 않고 항상 드러나는 것이니, 경에서 “이것이 바로 여래의 법신이 항상 머무는 것이며 멸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두 종류의 주지하여 무너지지 않는 공덕은 상상법이 능히 의심을 끊을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그렇게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거듭 유위공덕의 덧없는 모습을 설한 것이다.
015_0438_a_08L又說住持不壞功德於中有二一者於因分中住持不壞常修故不斷修故如經自今已後我諸弟子展轉行之二者於果分中住持不壞常顯故如經則是如來法身常在而不滅也此二種住持不壞功德示現上上法能斷疑應知重說有爲功德無常相故
【經】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세상은 모두가 덧없다. 모인 것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으니 슬픔을 품지 말고, 세상의 모습은 이와 같으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서둘러 해탈을 구하여야 한다. 지혜의 밝음으로 모든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앨지니, 세상은 참으로 위험하고 연약해서 견고하거나 강한 것이 없다. 내가 지금 멸도하는 것은 마치 무서운 병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바로 마땅히 버려야 할 죄악의 물건이니, 거짓으로 이름하여 몸이라고 하는데, 늙고 병들고 태어나고 죽는 거대한 바다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이것을 없애는 것이 마치 원수를 죽이는 것과 같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015_0438_a_15L經曰是故當知世皆無常會必有離勿懷憂也世相如是當勤精進早求解脫以智慧明滅諸癡暗世實危脆無牢强者我今得滅如除惡病此是應捨罪惡之物假名爲身沒在老病生死大海何有智者得除滅之如殺怨賊而不歡喜
015_0438_b_01L【論】 여기에서는 어찌하여 유위공덕의 무상한 모습을 거듭 설하는가? 이것은 세간에서의 태어남을 싫어하여 멀리 여의는 행을 나타내는 것이니, 유위상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함이다. 즉, 경에서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세상은 모두가 덧없다. 모인 것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으니 슬픔을 품지 말라. 세상의 모습은 이와 같으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서둘러 해탈을 구하여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참다운 나가 없음을 여실하게 관하는 것을 성취하여 나와 나의 것이라는 견해의 근본을 멸함을 나타내 보이고 있으니, 경에서 “지혜의 밝음으로 모든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애라”고 한 것과 같다.
음(陰) 등의 모든 법은 참으로 실재하지 않으니, 경에서 “세상은 참으로 위험하고 연약해서 견고하거나 강한 것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8_a_22L論曰是中何故重說有爲功德無常相者示現於此處勸修世閒生厭離行故於有爲相中得脫故如經是故當知世皆無常乃至早求解脫示無我如實觀成就能滅我我所見根本故如經以智慧明滅諸癡暗陰等諸法實不實故如經世實危脆無牢强者
또한 여래는 바로 세상을 제도하는 큰 스승이시어서 우환이 될 만한 것을 이루어 내시니, 경에서 “내가 지금 멸도하는 것은 마치 무서운 병을 없애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또 차이를 설해서 싫어할 만한 우환의 상은 오직 지혜로만 능히 멸할 수 있기 때문에 지혜를 닦아서 상대(相對)를 멸하도록 권해서 상대가 없는 법이 현전하게 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이것은 바로 죄악의 물건을……”이라고 한 것과 같다.
다음으로는 갖가지 자성을 여의어서 청정한 무아(無我)의 부분을 설한다.
015_0438_b_07L又示如來是度世大師爲成可患故如經我今得滅如除惡又說異可厭患相唯智能滅故示現勸修智滅對故得無對法現前如經此是罪惡之物如是等故說離種種自性淸淨無我分
【經】 너희들 비구는 언제나 일심으로 벗어나는 길을 부지런히 구해야 한다. 세상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든 법은 모두가 부서지고 무너지며 안정되지 못한 상이다. 너희들은 이제 그치고 다시 말하지 말라. 때가 이르렀다. 나는 멸도에 들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015_0438_b_12L經曰汝等比丘常當一心勤求出道一切世閒動不動法皆是敗壞不安之相汝等且止勿得復語時將欲過我欲滅度是我最後之所敎誨
【論】 여기에서 갖가지 자성이란 5음법 중에서 갖가지 견해의 우환을 짓는 것이며, 망상은 자성의 장애로서 이 장애를 대치하고자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언제나 일심으로”라고 하였다.
다시 일심으로써는 여실한 지혜를 얻기 어려우니, 경에서 “벗어나는 길을 부지런히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여실한 지혜를 제외하고는 모든 상대법은 모두가 덧없음을 나타내며 명상(名相) 등의 법을 나타내 보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세상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든 법은 모두가 부서지고 무너지며 안정되지 못한 상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8_b_16L論曰是中種種自性者於五陰法中作種種見患故妄想自性障故此障對治如經汝等比丘常當一心以一心如實慧難可得故如經勤求出道又示除如實慧所有相對法悉無常故示現名相等法應知如經一切世閒動不動法皆是敗壞不安之相
015_0438_c_01L여기에서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음이란 이른바 삼계의 모습이 고요하거나 어지러운 차별이다. 청정한 무아란 깊고 깊은 적멸법 중에서 적멸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은 이제 그치고……”라고 한 것과 같다.
“이제 그치고 다시 말하지 말라”는 것은 세 가지 업의 흔들림이 없는 것을 권하여 나타낸 것이니, 이 적멸의 무아에 상응하는 기(器)이다.
“마지막 가르침”이란 것은 유교(遺敎)라는 의미를 바로 드러낸 것이다. 이 유교의 뜻이 주지법(住持法) 중에서 뛰어나니 마지막으로 남기신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015_0438_c_01L於中動不動者謂三界相亂差別故淸淨無我者示現於甚深寂滅法中寂滅故如經汝等且止是等故且止勿語者勸示三業無動是寂滅無我相應器故最後敎誨正顯遺敎義故是遺敎義於住持法中勝以其遺敎故
遺敎經論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