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에 존귀하신 분께 엎드려 예배하옵니다. 위없는 공덕의 바다이시며 중생을 가엾이 여겨 제도하시니 그래서 제가 목숨 바쳐 귀의하옵니다.
015_0426_b_04L頂禮三世尊, 無上功德海, 哀愍度衆生,
是故我歸命。
청정하고 깊은 법의 창고이시며 수행자의 이익을 불리시니, 세간에서든 출세간에서든 저희들은 모두 귀의합니다.
015_0426_b_06L淸淨深法藏, 增長修行者,
世及出世閒, 我等皆南無。
제가 세운 논장은 부처님 경전의 뜻을 해석하여 저 모든 보살들이 방편도를 알게 하기 위함이니
015_0426_b_07L我所建立論,
解釋佛經義, 爲彼諸菩薩, 令知方便道。
그 도를 알기 때문에 부처님 법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고 범부와 성현의 허물을 없애어 자타의 이익을 성취합니다.
015_0426_b_08L以知彼道故, 佛法得久住, 滅除凡聖過,
成就自他利。
이 수다라(修多羅:경) 가운데 보살이 수행해야 하는 법을 세우니, 그것에 7분(分)이 있다. 첫째는 서분(序分)이고, 둘째는 수집세간공덕분(修集世間功德分)이고, 셋째는 성취출세간대인공덕분(成就出世間大人功德分)이고, 넷째는 현시필경심심공덕분(顯示畢竟甚深功德分)이고, 다섯째는 현시입증결정분(顯示入證決定分)이고, 여섯째는 분별미입상상증위단의분(分別未入上上證爲斷疑分)이고, 일곱째는 이종종자성청정무아분(離種種自性淸淨無我分)이다.
【經】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셔서 아야교진여를 제도하시고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시어 수발다라를 제도하셨다. 제도해야 할 사람을 모두 제도하신 후에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셨다. 이때는 한밤중으로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제자들을 위하여 법의 요체를 간략히 설하셨다.
처음에 필경을 성취한 것에 세 가지 상(相)이 있으니, 첫째는 총상이고, 둘째는 별상이며, 셋째는 총별상이다. 총상이란 경에서 모니(牟尼)라고 한 것과 같으며, 별상이란 경에서 석가(釋迦)라고 한 것과 같고, 총별상이란 부처님이다. 여기서 석가라고 한 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교묘한 방편을 나타내 보인 것이요, 또한 집안의 성(姓)이 존귀한 것이다. 모니라고 한 것은 모든 부처님의 공덕이며, 또한 자체(自體)의 청정함을 보이는 것이다.
법문을 열어서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라 하였는데, 이에는 두 가지 백정법구(白淨法句)가 있다. 첫째는 도량(道場) 백정법구이며, 둘째는 열반(涅槃) 백정법구이다. 이 두 가지 백정법의 앞뒤 두 구(句)는 전전하여 설하는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도량백정법은 경에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셔서”라고 한 것과 같고, 열반백정법구는 경에서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시어”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27_a_01L제자가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라고 한 것은 두 종류의 백정법문을 능히 받아 지님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자기 이익의 행을 성취한 것이며, 여래께서 명쾌하게 설하신 법문(法門)의 공덕을 드러내는 것이니, 경에서 “아야교진여를 제도하고, 수발다라를 제도하셨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두 구절의 수다라는 여덟 가지 성취를 보여준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이른바 두 종류의 받아 지님을 성취한 것, 두 종류의 백정법문을 성취한 것, 두 종류의 자기 이익의 행을 성취한 것, 두 종류의 명쾌하게 설하신 법문의 공덕을 성취한 것이다.
대총상의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라고 한 것은 위에서 말한 두 종류의 여덟 가지 성취를 총괄한 것으로서 경에서 “제도해야 할 사람을 모두 제도하신 후”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27_a_02L大摠相成就畢竟功德者,二八成就摠故,如經“所應度者皆已度訖”故。
인과의 자상(自相)이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라고 한 것에는 네 종류의 자상이 있다. 첫째는 인자상(因自相)이니, 경에서 “사라쌍수 사이”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인공과자상(因共果自相)이니, 경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셨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총자상(總自相)이니, 경에서 “이때는 한밤중으로”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과자상(果自相)이니, 경에서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 것과 같다. 이 중에서 총자상이라고 한 것은 두 극단을 멀리 떠났으며 두 종류의 중도를 성취한 것이니, 첫째는 정각(正覺)의 중도이고, 둘째는 정각을 떠난 중도이다. 이 가운데 정각을 떠난 중도는 곧 과자상이다. 이 과(果)에 두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하니, 첫째는 자성상을 설하지 않고 기억을 여읜 열반과(涅槃果)이며, 둘째는 각관(覺觀)을 멀리 여읜 열반과이다.
분별총상의 필경을 성취한 공덕이란 인(人)과 법(法)의 두 가지 위(位)의 차별을 분별하는 것이다. 인위(人位)의 차별이란 우두머리와 권속의 차별이니, 경에서 “제자들을 위하여”라고 한 것과 같다. 법위(法位)의 차별이란 세간과 출세간법 등을 말하는 것이니, 경에서 “법의 중요한 부분을 간략히 설하셨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으로 서분을 모두 설하였다. 이어서 수집세간공덕분(修集世間功德分)을 설하겠는데, 이 공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집대치사업 공덕(修集對治邪業功德)이고, 둘째는 수집대치지고(修集對治止苦) 공덕이고, 셋째는 수집대치멸번뇌(修集對治滅煩惱) 공덕이다. 대치사업 공덕이란 다음과 같다.
015_0427_b_01L【經】 너희 비구들이여, 내가 입멸한 뒤에 바라제목차를 존중하고 공경하여야 하나니, 마치 어둠이 밝음을 만나고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처럼 하여야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바로 너희의 큰 스승이니, 내가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과 이것은 다름이 없다.
【論】 이 수다라 가운데 매번 설하는 비구란 멀리 여읜 모습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또한 마하연의 방편도가 2승(乘)과 같음을 보인 것이며, 또한 사부대중이 똑같이 원리행(遠離行)을 닦았음을 보인 것이다. “내가 멸한 뒤에”라는 이 말은 가르침을 남긴다[遺敎]는 뜻과 법이 멸진(滅盡)하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멸진하지 않는 법인 청정법신(淸淨法身)으로써 항상 세간을 궁극적으로 제도하기 때문이다.
경에서 “바라제목차를 존중하고 공경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목차(木叉)는 또한 비니(毘尼)이니 서로 따르는 법이다. 또한 이 모든 행을 조복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여래는 멸하지 않으면서 법신 자체로 해탈하여 바라제목차를 설하셨다. 이 법신에 의지하여 두 가지 장애를 제도할 수 있으니, 첫째는 번뇌의 어둠이 있는 장애이고, 둘째는 선근(善根)이 텅 비어 없는 장애이다. 번뇌의 어둠이라는 장애를 제도한다는 것은 마치 앞 못 보는 사람이 눈을 얻는 것에 해당하는 법이니, 마치 경에서 “어둠이 밝음을 만난다”고 한 것과 같다. 선근이 텅 비어 없는 장애를 제도한다는 것은 재보(財寶)에 만족하는 것에 해당하는 법이니, 마치 경에서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나머지는 바라제목차가 바로 수행의 큰 스승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경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바로 너희의 큰 스승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머물고 지님의 이익은 인(人)과 법(法)이 서로 같음을 나타낸 것이니, 경에서 “내가 이 세상에 머무르는 것과 이것은 다름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근본 청정계에 의지하여 모두 설하였다. 이어서 방편으로 멀리 여의는 청정계를 설한다.
015_0427_c_01L【經】 청정한 계를 지니는 자는 팔거나 사거나 무역을 해서는 안 되며, 밭이나 집을 모아두지 않으며, 인민(人民)이나 노비를 부리지 않고 축생을 기르지 않으며, 온갖 씨 뿌리는 일과 나아가 재보를 모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마치 불구덩이를 피하듯 해야 한다. 나무와 풀을 베거나 땅을 갈거나 파헤쳐서는 안 되며, 섞어서 탕약을 만들거나 길흉을 점치거나 별자리를 보거나 달의 차고 기우는 것을 관측하거나 운명을 점치거나 계산을 하는 등의 모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몸을 절제하고 때에 맞추어 먹으면서 청정하게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일에 관여하거나, 사신의 임무를 띠고 다니거나, 주술을 부리거나 선약(仙藥)을 짓거나, 높은 가문의 사람과 좋은 의를 맺어서 가까이하여 거만스럽게 구는 등의 모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단정히 하고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기를 구해야 한다. 결점을 감추고 기이함을 드러내서 중생을 미혹해서는 안 되며, 온갖 네 가지 공양에서 양을 알고 족함을 알며, 공양거리를 얻되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論】 이 가운데 방편을 멀리 떠난 청정함이라고 한 것은 근본정계(根本淨戒)를 지키는 것이니, 경에서 “청정한 계를 지니는 자”라고 한 것과 같다. 무엇이 근본을 지키는 것이고 무엇이 근본인가? 근본을 지키는 것에 두 종류를 설하니, 무엇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범부와 같이 허물이 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요, 둘째는 외도와 같이 지혜가 줄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범부와 같이 허물이 늘지 않도록 지키는 것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방편으로 이익을 구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팔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현전의 이익을 구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사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교역하여 이익을 구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무역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만일 세상의 가치에 의지하여 이익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매매(賣買)를 범하지 않는 것이니, 법식은 비니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015_0428_a_01L넷째는 살고 있는 처소에서 안온함을 많이 구하다가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밭이나 집을 모아두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 다섯째는 권속의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인민(人民)을 부리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바깥의 권속이 같은 뜻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어찌하여 인(人)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다시 민(民)을 말하였는가? 이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선한 법을 알지 못하여 축생의 무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하천하게 태어난 목숨에 대하여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어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노비를 부리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생명을 길러서 이익을 구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축생을 기르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여덟째는 많은 일을 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온갖 씨 뿌리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아홉째는 쌓고 모아서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나아가 온갖 재보를 모으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열째는 깨닫지 못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이 모든 것을 멀리 여의어야만 하나니, 마치 불구덩이 피하듯 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열한째는 위의를 따르지 않고 나아가 중생을 다치게 하여 허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에서 “나무와 풀을 베거나 땅을 갈거나 파헤쳐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이 열한 가지의 허물이 늘어나는 일을 수행하는 보살은 빨리 여의어야 하며 가까이 해서는 안 되나니, 이것은 마치 불구덩이를 피하는 것에 해당하므로, 경에서 “이 모든 것을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마치 불구덩이를 피하듯 해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28_b_01L무엇이 이 근본인가? 위의 경문에서는 근본에 두 종류가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는 행법근본(行法根本)이고, 둘째는 행처근본(行處根本)이다. 행법근본이란 바라제목차이며, 행처근본이란 몸과 입과 뜻이니, 몸과 입과 뜻의 행처에서 바라제목차를 행하는 까닭이다. 몸을 절제하고 때에 맞추어 먹는 것 등은 몸과 입과 뜻의 행처에서의 바라제목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수행보살은 3처(處)의 바라제목차를 알아야 하니, 이 밖에 다시 다른 해탈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처(身處) 바라제목차에 다섯 종류의 해탈과 세 종류의 장애를 다스리는 것과 두 종류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不應作不作]이 있다.
첫째는 남에게 구하면서 방일(放逸)한 장애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는 것은, 경에서 “몸을 절제하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몸을 유지하는 음식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 장애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는 것은, 경에서 “때에 맞추어 먹어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서로 추구하는 장애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는 것은, 경에서 “청정하게 스스로 살아가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자성(自性)에 번거로운 일을 그치는 것이니, 경에서 “세상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자성을 존중하여 가볍고 천한 일을 짓지 않는 것이니, 경에서 ‘사신의 임무를 띠고 다니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뒤의 두 구절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 신(身)해탈인가? 첫째는 외연(外緣) 신해탈이고, 둘째는 내연(內緣) 신해탈이고, 셋째는 자상연(自相緣) 신해탈이고, 넷째는 중사연(衆事緣) 신해탈이고, 다섯째는 원리이방편연(遠離異方便緣) 신해탈이다. 다섯 가지 해탈 가운데 처음 구절은 총체적인 것이고 나머지 구절은 개별적인 것이다. 구처(口處) 바라제목차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두 종류의 그릇된 말[邪語]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첫째는 그릇된 법[邪法]에 의지한 말로서 지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릇된 술수[邪術]로 중생을 어지럽히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릇된 약[邪藥]에 의지하여 세상의 말을 지어내 바르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이니, 경에서 “주술을 부리거나 선약[仙藥]을 짓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그릇된 사람[邪人]에 의지한 말로서 여기에도 지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좋은 가문의 사람들과 많이 사귀면서 하찮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가문의 사람들과 사귀면서 거만한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니, 경에서 “높은 가문의 사람과 좋은 의를 맺어서 가까이하더라도 거만하게 구는 등의 모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28_c_01L의처(意處) 바라제목차에 여섯 구절이 있으니, 세 종류의 장애를 다스리는 것과 세 종류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많이 보는 장애로서 자정심(自淨心)을 범하는 것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기 위하여 경에서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단정히 하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그릇된 사유의 장애로서 능히 스스로 낮은 단계[下地]로부터 제도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기 위하여, 경에서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기를 구해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받아들인 온갖 공양거리에 대해 한없이 만족할 줄을 모르는 장애이니, 이런 장애를 다스리기 위하여 다섯 번째 구절인 “네 가지 공양에서 양을 알고 족함을 알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 공양(供養)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몸으로 받는 공양으로 이른바 음식이나 의복ㆍ이부자리ㆍ탕약 등의 몸에 관계된 공양이고, 둘째는 마음으로 받는 공양으로 이른바 불공심(不共心) 공양ㆍ무염족심(無厭足心) 공양ㆍ이사상위심(二事相違心) 공양ㆍ등분심(等分心) 공양이다. 이 네 종류의 심공양은 어리석고 마음이 어지러운 중생이 항상 수용하는 것이므로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한다. 만일 삼매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양을 알 것이고, 도(道)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만족할 줄을 알 것이다.
세 종류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란 첫째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계율을 받아 지니지 않음이다. 이는 마음에 때가 끼어 있기 때문이니, 경에서 “결점을 감추어서는 안 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연고 없이 자기의 훌륭한 점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멀리 여읨이니, 경에서 “기이함을 드러내어 중생을 미혹케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탐욕스럽고 가려진 마음으로 공양거리를 쌓고 모으는 것을 멀리 여읨이니, 경에서 “공양거리를 얻되 축적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근본계를 따르는 것을 이미 설하였다. 이어서 근본계와 종계(從戒)가 모두 해탈에 이르게 하고 능히 모든 공덕을 낳는 것을 설하겠다.
015_0429_a_01L【論】 종계(從戒)는 곧 계의 모양이니 일일이 자세히 설할 수 없다. 간략하게 설하여 나타내 보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이것은 곧 지계의 모양을 간략히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계는…… 바르게 이르는’이라고 한 말은 종계의 뜻을 나타내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에 거기에서 설하는 종(從)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종근본계(從根本戒)요, 둘째는 종근본소기성취계(從根本所起成就戒)이다.
종근본계란 근본계를 쫓아 지음이 없는 바라제목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미 설한 것과 같다. 종근본소기성취계란 후제(後際)의 해탈의 인(因)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중제(中際)에 종계(從戒)로 인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경에서 ‘해탈의 근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계는 바로 해탈의 체(體)이므로 능히 올바르게 제도하나니, 경에서 “그러므로 이름하여 바라제목차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능히 몸과 입과 뜻의 악을 제도하여 피안을 성취해서 세 가지 업이 해탈함을 나타내 말한 것이다. 능히 모든 공덕을 낳는다는 것은 유색(有色)해탈 공덕과 무색(無色)해탈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저 두 가지가 서로 순응하고 서로 어기면서 해탈하는 공덕은 모두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까닭에, 경에서 “이 계에 의지함으로써 모든 선정과 괴로움을 멸하는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어서 권수계이익(勸修戒利益)을 설하겠다.
【經】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청정한 계를 지닐 것이며 훼손하거나 빠뜨리지 말라. 만일 사람이 능히 청정한 계를 지닌다면 그 사람은 바로 능히 선법을 지닐 수 있다. 만일 청정한 계를 지니지 않는다면 모든 선한 공덕이 한결같이 생기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계는 제일가는 안온한 공덕의 주처가 되느니라.
015_0429_b_01L【論】 무엇이 권수계이익인가? 이 가운데 다섯 가지 권함이 있다. 첫째는 자체(自體)를 잃지 않기를 권하는 것이니, 경에서 “마땅히 청정한 계를 지닐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방편을 버리지 말 것을 권하는 것이니, 경에서 “훼손하거나 빠뜨리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온갖 허물을 멀리 여의고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언제나 공덕을 쌓아 모을 것을 권한 것이니, 경에서 “만일 사람이 능히 청정한 계를 지닌다면, 그 사람은 바로 능히 선법을 지닐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몸과 입과 뜻 가운데 허물이 많으면 어느 때라도 능히 공덕을 낳을 수 없음을 알도록 권한 것이니, 경에서 “만일 청정한 계를 지니지 않는다면 모든 선한 공덕이 한결같이 생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지계보살이 수행하는 세 가지 계 가운데 이와 같은 득실이 있음에 따라서 “나는 안온한 곳에 머물 것이요, 안온하지 않은 곳에는 머물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계는 제일가는 안온한 공덕의 주처가 되느니라”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권수(勸修) 이익의 훌륭한 뜻을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을 말한 것이다.
이미 수행을 쌓아서 삿된 업을 대치하는 공덕을 모두 설하였으니, 이어서 수집대치지고(修集對治止苦) 공덕을 설하겠다. 이 괴로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감관[根]의 욕망이 방일한 괴로움이고, 둘째는 많이 먹는 괴로움이고, 셋째는 게으르고 잠에 빠지는 괴로움이니, 이 세 가지 괴로움은 삼매의 즐거움으로 다스림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감관의 욕망이 방일한 괴로움을 대치하는 것인가?
【經】 너희들 비구여, 이미 계에 능히 머물렀다면 마땅히 5근(根)을 제어해야 하지 방일해서 다섯 가지 욕락에 들어가면 안 된다. 비유하면 소를 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소들을 감시하면서 사람들의 논밭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만일 5근을 멋대로 내버려둔다면 다만 다섯 가지 욕락은 다함이 없어서 제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마치 거친 말과 같아서 고삐로서 다스리지 않는다면 장차 사람을 끌고 구덩이에 빠지게 할 것이다. 그러한 겁해(劫害)의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한 세상에 그치지만 5근이라는 도적의 재앙은 세세생생 누적되어 오는 것이어서 그 피해는 참으로 무거우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5근을 잘 다스려 떨어지지 않으며, 이것을 지니는 것은 마치 도적으로 하여금 제멋대로 굴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가령 이것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면 또한 오래지 않아 모두가 그 마멸을 보게 될 것이다.
015_0429_c_01L【論】 감관이 게으른 괴로움이라고 한 것은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고 괴로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계에 의지하여 깨끗한 삼매방편으로 생각을 거두어 이것을 다스려야 하나니, 경에서 “이미 계에 능히 머물렀다면 마땅히 5근을 제어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어찌하여 다만 5근이라고만 말하였는가? 색(色)과 색 아닌 것의 차별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다시 의근(意根) 중에 5근을 두 종류로 다스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동념대치(動念對治)이고, 둘째는 부동대치(不動對治)이다. 계(戒)에 머무는 것과 바르게 집중[念]하는 것으로 감관[根]을 지키는 것의 이익은 서로 비슷한 법이니, 마치 경에서 “게으르지 말 것이며 나아가 다른 사람의 논밭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몸의 계가 청정하므로 갖가지 색에 대해서 방일하지 않으니, 이것은 ‘소를 치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바른 집중을 성취하므로 마음이 갖가지로 행하지 않으니, 이것은 ‘막대기를 든다’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계와 바른 집중을 성취함으로써 삼매방편 및 정수(正受)공덕이 줄어들거나, 잃지 않으니 ‘논밭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 또한 계를 지니지 않고 바른 집중을 잃어버리는 것은 크게 마음을 해치며,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면 다스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경에서 “만일 5근을 제멋대로 내버려둔다면 다만 다섯 가지 욕락의 다함이 없어져서 제어할 수 없게 될 뿐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어서 설하길, 다스릴 수단이 없어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거친 말과 유사하므로, 경에서 “또한 거친 말을 고삐로 제어하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끌고 구덩이에 빠지게 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다시 허물의 크기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나타내 보이고, 또 인과의 깊음과 고(苦)가 세상에 걸쳐 한량없음을 보이면서 앞선 세상에서 신중할 것을 나타내보였으니, 경에서 그러한 “겁해의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한 세상에 그치지만 5근의 도적의 재앙은 세세생생 누적되어 오므로 그 피해는 참으로 무거우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앞에서는 계를 지니는 것과 바른 기억을 하는 것으로 감관을 지키는 것을 말하였고, 여기에서는 지혜로 보호할 것을 말하고 있다. 지혜라는 것은 삼매의 관찰이며, 그것(감관이 5욕에 빠지는 것)은 바로 삼매의 무거운 장애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잘 다스려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다. 그것을 보호하는 것을 마치 목숨을 해치고자 하는 자로부터 지키는 것과 같이 하니, 경에서 “이것을 지니는 것은 도적으로 하여금 제멋대로 굴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0_a_01L무거운 것은 이미 이와 같다. 가벼운 것은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여기에서 가벼운 것이란 이른바 세밀한 상이 훈습된 장애이니, 여기에 있을 때는 곧 유(有)이고 없을 때에는 곧 무(無)이다. 고의로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니, 경에서 “가령 이것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면”이라고 한 것과 같다. 세력이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경에서 “또한 오래지 않아 모두가”라고 말하였다. 성품은 만져질 수 없고 볼 수 없으므로, 경에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을 본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본다’고 하겠는가? 보는 때에 의지하여 설하기 때문이니 그것이 보이지 않으므로 멸(滅)을 본다고 한다. 이어서 욕방일고대치(欲放逸苦對治)를 설하고자 한다.
【經】 이 5근은 마음이 그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즐겨 다스려야 한다.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맹수나 원수보다 더하고 큰 불을 넘어가는 것과 같지만 그래도 비유로는 충분하지 않다. 움직이고 구르며 경망스럽게 굴지만 다만 꿀을 관찰할 뿐 깊은 구덩이를 보지 못한다. 비유하면 미친 코끼리의 갈고리가 풀린 것과 같고, 원숭이가 나무 등걸을 올라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과 같아서 금하고 제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마땅히 이것을 빨리 잡아 앉히고 게으르지 않게 해야 한다. 이 마음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면 사람의 좋은 일에 궂은 일이 생기나, 이것을 한곳에 잘 제어하면 판별치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그대의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論】 이 가운데 욕고(欲苦)라고 한 것은 심성(心性)의 차별이라서 역시 괴로움의 원인이요 괴로움의 과보이기 때문이다. 갖가지 색(色)의 괴로움은 그것에 의지하여 있다는 것을 나타내니, 경에서 “이 5근은 마음이 그 주인이 된다”고 하였으므로 마땅히 알라. 자기와 다른 것에 허물이 생기게 하며 부지런함을 막는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즐겨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무엇이 부지런함을 막는 것인가? 이 마음의 삼매를 장애하는 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무엇이 삼매의 상이고 무엇이 장애법의 상인가?
015_0430_b_01L삼매상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둘이 아닌 생각[念]을 닦는 삼매상이고, 둘째는 조화와 부드러움이 흔들리지 않는 삼매상이고, 셋째는 많은 공덕을 일으키는 삼매상이다. 장애법의 상에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심성이 차별되는 장애이고, 둘째는 경솔하게 움직여 조절되지 못하는 장애이고, 셋째는 모든 공덕을 잃는 장애이다. 심성의 차별의 장애란, 경에서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맹수나 원수보다 더하고, 큰 불을 넘어서지만 그래도 비유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차별이란 탐욕 등의 네 가지 차별이다. 둘이 아닌 생각을 닦는 삼매를 닦는 것은 이 차별되는 곳이 두려울 만한 것임을 아는 것이다. 네 가지 비유를 든 것은 그에 해당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한 것은 크게 무서워할 만한 것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경솔하게 움직여 조절되지 못하는 장애란, 경에서 ‘움직이고 구르며 경망스럽게 굴지만’ 등과 같은 것인데, 여기에서 움직이고 구른다는 것은 모든 감관 가운데 전식(轉識)이 움직이고 또한 재빠르기 때문이니 원숭이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만 꿀을 관찰한다’는 것은 눈에 티끌이 있어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깊은 구덩이’란 장애의 의미이다. 이 장애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태어나는 곳의 장애이고, 둘째는 모든 행을 닦을 때 힘들고 괴로워서 능히 이루지 못하는 장애이다. 미친 코끼리가 이에 해당된다. ‘급히 잡아 앉힌다’는 것은 억눌러서 움직이지 않게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게으르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은 거두어 들여서 조복하는 덩어리[聚]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모든 공덕을 잃는 장애라는 것은, 경에서 “이 마음을 제멋대로 내버려둔다면 사람의 좋은 일에 궂은 일이 생긴다”고 한 것과 같다. 둘이 아닌 생각의 삼매상이란, 경에서 “이것을 한곳에 잘 제어하면”이라고 한 것과 같다. 많은 공덕을 일으키는 삼매상이란, 경에서 “끝내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조화와 부드러움이 흔들리지 않는 삼매상이란 경에서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그대의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근욕고대치(根欲苦對治)를 이미 설하였으니, 다음에는 다식고대치(多食苦對治)를 설한다.
015_0430_c_01L【經】 그대들 비구여, 여러 가지 음식을 받되 약을 먹듯이 해야 한다.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욕심내거나 물리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음식을 구하는 것은 다만 배고픔과 목마름을 없애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해야 하나니, 마치 벌이 꽃에서 꿀을 딸 때, 다만 그 맛을 취할 뿐 색과 향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처럼 비구도 그처럼 사람들의 공양을 받아 자신의 번뇌를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며, 양의 많음만을 구하여 그 착한 마음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비유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소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헤아려 분수에 넘치지 않게 함으로서 그 힘을 다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다.
【論】 많이 먹는 것은 삼매의 장애이다. 음식에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몸의 음식이요, 또 하나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의 음식이다. 단식(段食)을 많이 먹으면 지식(止息)이 어렵고 선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된다.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의 음식이란 욕계의 서로 어긋나는 법 가운데 방편으로 대치하기 때문이며, 또한 제일의(第一義)의 심삼매 가운데 다하였기 때문이며, 무식(無食) 삼매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삼매는 여섯 종류의 공덕을 성취한다. 여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수용대치(受用對治)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둘째는 평등하게 관하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셋째는 구경대치(究竟對治)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넷째는 평등하게 관하는 공덕에 해당하는 것을 나타내 보여서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헛되이 받아들이지 않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때를 아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공덕은 두 가지의 삼매를 성취한 것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와 다섯째와 여섯째의 공덕 성취는 소식(少食) 삼매를 나타내 보인 것이고, 나머지 세 가지 공덕 성취는 무식 삼매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431_a_01L수용대치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모든 음식을 받되 약을 먹듯이 하여라”고 한 것과 같다. 평등하게 관하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욕심을 내거나 물리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구경대치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나아가 음식을 구하는 것은 다만 배고픔과 목마름을 없애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하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평등법신의 평등관(平等觀)을 보이는 것이니, 끝내 굶주리거나 목마름이 없는 것이다.
평등하게 관하는 공덕에 해당하는 것을 나타내 보여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벌이 꽃에서 꿀을 딸 때 다만 그 맛을 취할 뿐 색과 향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처럼 비구도 그러하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다치지 않는다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 법을 관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헛되이 받아들이지 않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사람들의 공양을 받아 자신의 번뇌를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때를 아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란 경에서 “양의 많음만을 구하여 그 착한 마음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많이 구한다는 것은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 많으면 삼매의 공덕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소의 힘을 헤아린다 등등’은 때를 아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때를 아는 것에 두 종류가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첫째는 방편으로 때를 헤아리고 측량하는 것이요, 둘째는 때에 상응함을 성취하는 것이니, 많이 먹는 것의 허물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미 다식고대치를 모두 설하였으니, 다음에는 해태수면고대치(懈怠睡眠苦對治)를 설한다.
【經】 너희 비구들이여, 낮에는 부지런히 마음으로 착한 법을 모으고 닦아서 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며 초저녁과 동틀 무렵에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밤중에는 경을 독송함으로써 스스로 소식(消息)해야지 수면의 인연을 말미암아 일생을 헛되이 보내어 얻는 바가 없게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무상(無常)의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운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스스로 제도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 잠에 빠져들지 말라. 모든 번뇌의 도적이 언제나 사람을 죽이려 엿보는 것은 원수보다도 더 심하니, 어찌 잠에 빠져들어 스스로 깨어나 있지 못하는가?
015_0431_b_01L번뇌의 독사는 너의 마을에 들어가 잠을 잘 것이니, 비유하면 검은 독사가 너의 방에 들어가서 잠자는 것과 같다. 마땅히 지계(持戒)의 갈고리로 서둘러 이것을 없애야 하며 잠의 독사가 이미 나왔다면 이내 편안히 잠들 수 있다. 나오지 않았는데도 잠자고 있다면 이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니, 부끄러움의 옷을 모든 장엄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부끄러움은 쇠갈고리와도 같아서 능히 사람의 법답지 않은 것을 제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구여, 언제나 부끄러워해야 하며 잠시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만일 부끄러움을 여읜다면 곧 모든 공덕을 잃고 말 것이며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착한 법을 갖는 것이다. 만일 부끄러움이 없다면 모든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論】 해태수면고대치란 피로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사유하여 대치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찌하여 해태와 수면을 장애법으로 함께 말하였는가? 해태란 마음의 나태함이요, 수면이란 몸이 어지럽고 무거운 것이니, 이 두 가지 상이 함께 하나의 괴로움을 이루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다섯 가지 선정의 장애 중에서도 함께 설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수면이 일어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먹는 것을 따라서 일어남이요, 둘째는 시절을 따라서 일어남이요, 셋째는 마음을 따라서 일어남이다. 먹는 것과 시절을 따라서 일어난다는 것은 아라한의 잠으로서 마음으로부터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며 다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수면 가운데 처음의 두 가지는 정진으로 대치하니 시절이 있지 않기 때문이고 무시이래로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성도(聖道)를 얻기 어려움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경에서 “너희 비구들이여, 낮에는 부지런히 마음으로 착한 법을 모으고 닦아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며 초저녁과 동틀 무렵에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밤중에는 경을 독송함으로써 스스로 소식(消息)해야 하니, 수면의 인연을 말미암아 일생을 헛되이 보내어 얻는 바가 없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1_c_01L나머지 수다라는 셋째인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수면을 대치함을 나타내 보인 것인데, 이 가운데 대치에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사유 관찰하여 대치하는 것이니, 온갖 나고 죽음과 5음(陰)이 무너짐을 관하는 것으로서 경에서 “마땅히 무상(無常)의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운다고 생각하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선정과 지혜를 구하여 제도할 바를 제도하는 것을 나타냈으니, 경에서 “서둘러 스스로 제도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 잠에 빠져들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음(陰)과 계(界)와 입(入) 등은 언제나 해를 끼치는 것임을 관찰해서 이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바른 깨달음을 구해야 할 것이니, 마치 경에서 “모든 번뇌의 도적이 언제나 사람을 죽이려 엿보는 것은 원수보다도 더 심하다. 어찌 잠에 빠져 들어 스스로 깨어나 있지 못하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두 번째는 청정한 계로 대치하는 것이니 선정과 상응하는 마음의 계를 말하며, 여섯 가지 경계에 마음이 편안히 본래의 마음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수면이 두려워할 만한 것은 마치 뱀과 같기에 경에서 “번뇌의 독사는 너의 마음에 들어가 잠을 잘 것이니, 비유하면 검은 독사가 너의 방에 들어가서 잠자는 것과 같다”라고 한 것과 같다.
청정한 마음의 계로 대치하기 때문에 경에서 “마땅히 지계(持戒)의 갈고리로 서둘러 이것을 없애야 하며”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멀리 여의는 것을 나타내며 안온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경에서 “잠의 독사가 이미 나왔다면 편안히 잠들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이어서 낮은 단계[下地]는 대치함이 없어도 안온히 여기는 것과 같음을 설하니, 경에서 “나오지 않았는데도 잠자고 있다면 이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법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것은 자신의 지(地)를 깨끗하게 장엄하고 또한 다른 지도 허물이 없게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니, 경에서 “부끄러움의 옷을 모든 장엄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부끄러움은 쇠갈고리와도 같아서 능히 사람의 법답지 않은 것을 제지할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으뜸가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다른 계의 장엄보다 훌륭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등등’은 어떤 뜻을 밝힌 것인가? 훌륭한 장엄을 닦을 것과 언제나 수행할 것을 권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또한 부끄러움을 멀리하면 자신의 지(地)에 손해가 됨을 보이기 위하여 경에서 “만일 부끄러움을 떠난다면 곧 모든 공덕을 잃고 말 것이며”라고 하였으며, 또 부끄러움이 있고 없음의 득실을 나타내 보였으니, 경에서 말한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수집대치지고(修集對治止苦) 공덕을 설명하였다. 이어서 수집대치멸번뇌(修集對治滅煩惱) 공덕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세 종류의 장대치(障對治)로 진리의 뜻을 나타내 보임을 알아야 한다.
015_0432_a_01L【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온몸의 마디마디와 사지를 잘라내어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서 화를 내거나 원망을 품지 말라. 또한 입을 보호하여 욕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성내는 마음을 제멋대로 뛰놀게 한다면, 곧 스스로 진리[道]를 방해하여 공덕과 이익을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인내하는 것을 덕으로 삼아 계를 지닌다면 고행이 능히 미치지 못할 것이니, 능히 참음을 행하는 자를 이름하여 힘이 센 대인(大人)이라고 한다. 만약 그가 기쁘게 참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추악한 욕설의 독을 감로처럼 마신다면, 진리의 길에 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냄의 해로움이 온갖 착한 법을 부수고 좋은 명성을 허물기 때문이며, 지금 세상이나 다음 세상의 사람들이 기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성내는 마음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잘 막고 보호하여 성냄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공덕을 빼앗는 도적으로 성냄보다 더한 것이 없다. 재가자로서 5욕을 즐기며 도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자제하는 법을 갖지 못하고 성낸다면 차라리 용서할 수 있지만, 출가하여 진리를 수행하는 탐심 없는 사람이 성냄을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유하면 밝고 차가운 구름 속에서 벼락이 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論】 이것은 첫 번째의 장애대치법이니, 성냄의 번뇌라는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다. 참아내는 도를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수행하는 보살이 감인지(堪忍地)에 머물러서 능히 갖가지 고뇌를 참는데, 가볍거나 무거움이 없는 대치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온몸의 마디마디와 사지를 잘라내어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서 화를 내거나 원망을 품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환화(幻化) 법신의 성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015_0432_b_01L또한 입의 행이 청정하여 언제나 부드러운 말을 하여야 하니, 경에서 “또한 입을 보호하여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그리고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이익과 도와 덕을 장애하는 법을 설하였으니, 경에서 “만일 성내는 마음을 제멋대로 뛰놀게 한다면 곧 스스로 진리[道]를 방해하여 공덕과 이익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심행(心行)이 깨끗해서 다른 권속들의 행보다 훌륭함을 헤아려 나타내 보였으니, 경에서 “그것을 인내하는 것을 덕으로 삼아 계를 지닌다면 고행이 능히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행이란 삼매공덕으로서 괴로움을 대치하는 것이며 세 가지 업이 청정한 것이다. 나아가 뛰어난 모습을 헤아려서 행(行)은 고(苦)를 편안케 하는 도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어서 진여관(眞如觀)이 청정한 것을 설하여 안락한 길과 지혜를 관하는 대인(大人)의 힘을 성취한 것을 나타내 보이니, 경에서 “능히 참음을 행하는 자를 이름하여 힘이 센 대인이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장부의 힘을 성취하는 것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지혜로 관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나타내고 있으니, 서로 상위한 것에 의해서 훌륭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즉, 경에서 “만약 그가 기쁘게 참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추악한 욕설의 독을 감로처럼 마신다면 진리의 길에 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기뻐하지 못한다는 것은 믿음으로서 관(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추악한 욕설의 독이란 것은 무생법문의 상(相) 가운데에서 여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 말이다. 감로란 것은 무생법 자체의 상에 해당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진리의 길이란 지혜 자체를 나타낸 것이다. 또한 허물과 우환의 일을 항상 보호해야 함을 설하니, 경에서 ‘왜냐하면……’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온갖 착한 법’이란 자기를 이롭게 하는 지혜의 상이다. ‘좋은 명성’이란 것은 타인을 이롭게 하는 착한 법의 명칭의 공덕이다.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세계[自他世]에 즐길 만한 과보가 없다는 것이다.
015_0432_c_01L여기에서 막고 보호하는 데에 두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자기의 착한 법을 보호하는 것이니, 불을 막는 것에 해당한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보호하는 것이니, 도둑을 막고 보호하는 것에 해당한다. 또한 세간 공덕과 어긋나거나 어긋나지 않는 법 가운데 수용함이 있되 끝내 서로 어긋나지는 않음을 나타내 보였으니, 즉 경에서 “재가자로서 5욕을 즐기며 도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자제하는 법을 갖지 못하여 성낸다면 차라리 용서할 수 있지만”이라고 한 것과 같다. 이 가운데 ‘법을 갖지 못하여’란 것은 백정법(白淨法)의 대치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출세간도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세간에서 수용하는 두 가지 법 가운데 서로 어긋남이 있는 까닭이니, 경에서 “출가하여 진리를 수행하는 탐심 없는 사람이 성냄을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나머지는 도분(道分) 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나타내 보인 것에 해당하는 것이니, 경에서 “비유하면 밝고 차가운 구름 속에서 벼락이 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다음에는 두 번째 번뇌장대치도(煩惱障對治道)를 설한다.
【經】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스스로 머리를 깎고, 사치스럽고 좋은 옷을 버리고, 괴색(壞色)의 옷을 입을 것이며, 응량기(應量器)를 지녀야 한다. 걸식으로 스스로 살아가고 스스로 그렇게 보아야 한다. 만일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면 재빨리 이것을 없애야 하나니, 교만이 늘어나는 것은 세속의 재가자들에게도 마땅한 일이 아니거늘 어찌 하물며 출가하여 진리의 길에 들어간 사람으로서 해탈을 구하는 자이겠는가? 스스로 그 몸을 구부리고 걸식을 하며 다녀야 한다.
【論】 두 번째 번뇌장대치도는 스스로 존귀하고 뛰어나다는 마음이 없음을 성취한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몸과 마음을 낮추는 행으로서 자신을 높이는 번뇌를 멀리 여의어야 한다. 이 가운데 일곱 구절의 원리행(遠離行)이 있다. 첫째는 가장 높고 귀한 곳에서부터 가장 먼저 복종하여 언제나 스스로 알아야 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스스로 머리를 깎고”라고 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몸의 다른 부분에 장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니, 경에서 “사치스러운 것을 버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옷에 대한 대치로서 바람직한 것이니, 경에서 “괴색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자신의 수용구(受用具)는 언제나 스스로 지녀야 하는 것이니, 경에서 “응량기를 지녀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3_a_01L다섯째는 안팎의 수용할 일을 위하여 다른 일을 하여 허물이 생기는 일이 없게 하는 방편과 나아가 스스로 조복하기 위한 것이니, 경에서 “걸식으로 스스로 살아가라”고 한 것과 같다. 여섯째는 지혜를 성취하여 언제나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니, 경에서 “이와 같이 스스로 보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대치(對治)를 성취하여 미미한 일어남도 멀리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면 재빨리 이것을 없애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나머지는 어떤 뜻을 밝히고자 함인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을 밝히고자 함이다. 스스로 항복받는다는 것은 교만심을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장애가 먼저 있고 공덕은 나중에 있기 때문에 경에서 “교만이 불어나는 것은 세속의 재가자들에게도 마땅한 일이 아니거늘……”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다음은 세 번째의 장대치(障對治)를 설명한다.
【經】 너희들 비구여, 아첨하거나 왜곡된 마음은 진리와 서로 어긋나니, 그 마음을 질박하고 곧게 해야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첨하거나 왜곡된 것이란 다만 기만하고 속이기 위함일 뿐이니, 진리에 들어선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당연히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질박하고 곧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論】 세 번째 장대치는 근본 되는 곧은 마음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아첨이나 왜곡의 번뇌의 장애를 멀리 여의기 위함이며, 입과 뜻에서 자신과 남이 서로 어긋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아첨하거나 왜곡된 마음은 진리와 서로 어긋나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진리와 어긋나는 장애를 대치함을 보여주니, 경에서 “그 마음을 질박하고 곧게 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서로 어긋나는 법은 도분(道分)의 때에는 마땅히 있지 않으니, 경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첨하거나 왜곡된 것이란 다만 기만하고 속이기 위함일 뿐이니 진리에 들어선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3_b_01L여기에서 기만하고 속인다는 것은 마음과 입이 동시에 진정한 쓰임을 갖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는 곧은 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것이 도심(道心)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즉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당연히 마음을 단정히 하고 질박하고 곧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미 수집세간공덕분을 모두 설명하여 마쳤으니, 다음에는 수집출세간대인공덕분(修集出世間大人功德分)을 설명한다. 대인공덕분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모든 대인이 언제나 이것을 사용하여 스스로 깨닫고 관찰하며, 방편을 기르고 지극함을 성취한다.
【經】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괴로움과 번뇌 역시 많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는 마음도 없고, 욕심도 없기 때문에 곧 이런 우환이 없다. 바로 그러한 욕심의 적음을 닦아야 한다. 욕심이 적음이 어떻게 많은 공덕을 낳는가? 욕심이 적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고자 아첨하거나 왜곡함이 없고, 또한 모든 감각기관의 이끌림을 받지 않는다. 소욕(少欲)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은 곧 평탄하여 근심이나 두려움이 없고, 대하는 일마다 여유가 있으며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 소욕을 지닌 자는 곧 열반을 지닌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욕심이 적음이라고 한다.
【論】 이것은 첫 번째, 대인(大人)이 성취한 구함이 없는 공덕이 욕심이 많은 것의 허물을 깨달았기 때문이니, 여기에서 설하는 깨달아야 할 것에는 다섯 가지 상(相)이 있다. 첫째는 장애를 깨닫는 상이니, 이른바 번뇌와 업과 괴로움의 세 가지 장애로서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괴로움과 번뇌 역시 많다”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돌며 구르는 것이 쉬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둘째는 대치를 깨닫는 상으로 세 가지 망상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마치 경에서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는 마음도 없고 욕심도 없기 때문에 곧 이런 우환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3_c_01L셋째는 인과가 쌓이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는 상이니, 한량없는 행을 성취하는 것이다. 마치 경에서 “바로 그러한 욕심의 적음을 닦아야 한다. 욕심이 적음이 어떻게 많은 공덕을 낳겠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모든 장애가 다하여 없음을 깨닫고 세 가지 장애가 끝나는 것이니, 경에서 “욕심이 적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고자 아첨하거나 왜곡함이 없다. 또한 모든 감각기관의 이끌림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과보를 성취하는 것을 깨닫는 상이니, 반야 등의 세 가지 공덕의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다. 마치 경에서 “소욕(少欲)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은 곧 평탄하여 근심이나 두려움이 없고 대하는 일마다 여유가 있으며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 소욕을 지닌 자는 곧 열반을 지닌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욕심이 적음이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다시 이어서 두 번째로 대인의 깨달음의 공덕을 설명한다.
【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거든 족함을 아는 것을 관해야 한다. 족함을 아는 법이란 바로 부와 안락함과 안온한 자리이다. 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천당에 있을지라도 마음에 맞지 않고, 족함을 아는 사람은 비록 땅 위에 누워있을지라도 안락하다. 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부유하여도 가난하고, 족함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여도 부유하다. 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 욕망에 이끌리는데, 족함을 아는 사람은 그런 이들을 가엾이 여긴다. 이것을 이름하여 족함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論】 두 번째, 대인의 깨달음의 공덕으로 족함을 아는 행을 성취해서 괴로움의 인과를 대치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거든 족함을 아는 것을 관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고뇌란 것은 번뇌의 허물이 괴로움으로부터 생겨난 것을 나타내 보인다. 또한 깨끗한 인과를 설명하고 있으니, 대치법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경에서 “족함을 아는 법이란 바로 부와 안락함과 안온한 자리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4_a_01L만일 이와 같다면 두 가지 깨달음 사이에 어떤 차별이 있는가? 여기에서 첫 번째 대인의 깨달음은 다른 경계의 일을 멀리 여의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고, 족함을 아는 것이란 자신의 일에서 멀리 여의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또한 다시 세 가지 차별이 있어서 족함을 아는 것과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는 어떠한 곳에서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차별이고, 둘째는 어떠한 일을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차별이고, 셋째는 어떠한 법에 자신의 이익이 없고 자신과 남의 이익이 있는가에 대한 차별이다. 마치 경에서 “족함을 아는 사람은 비록 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라고 한 것과 같으니, 경에서와 같이 알아야 한다. 이어서 세 번째, 대인의 멀리 여읨의 공덕을 설명한다.
【經】 너희들 비구여, 적정과 무위와 안락함을 구하려거든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떠나서 홀로 조용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 고요한 곳에 머무는 사람은 제석천과 모든 하늘이 함께 공경하고 존중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무리들과 다른 무리들을 버린 채 텅 비고 한적한 곳에 홀로 머물면서 괴로움의 근본을 사유하여 멸하여야 한다. 만일 무리 속에 있는 것을 즐긴다면 곧 무리의 어지러움을 받게 될 것이니, 비유하면 큰 나무에 온갖 새들이 모여 살게 되면 결국 말라 꺾이고 마는 우환을 겪는 것과 같다. 세간에 속박당하고 집착하면 못 괴로움 속에 빠지게 되나니, 마치 늙은 코끼리가 수렁에 빠진 뒤에는 혼자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멀리 여읨이다.
【論】 세 번째, 대인의 멀리 여읨의 공덕이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 문으로 모든 뜻을 거두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자성원리문(自性遠離門)이니 본체의 벗어남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수습원리문(修習遠離門)이니 방편으로 벗어남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수용제견문(受用諸見門)이니 항상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성원리문은 네 가지 대치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첫째는 ‘나’라는 상(相)에 집착하는 장애로서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적정과 무위와 안락함을 구하려거든”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적정이란 법무아공(法無我空)을 나타낸 것이다. 무위란 무상공(無相空)이며, 안락이란 무취사원공(無取捨願空)이다.
015_0434_b_01L둘째는 ‘나의 것’이라는 상에 집착하는 장애로서 다섯 가지 무리가 어지럽게 일어나 차례가 없기 때문이며,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으로 경에서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떠나서”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그 두 가지가 없다는 상에 집착하는 장애이니,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으로 경에서 “홀로 조용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무위(無爲)를 으뜸의 공덕으로 여기는 장애이니, 그것은 천(天)들이 중히 여길 만한 법이기 때문이다. 이 장애를 대치하는 것으로서 경에서 “고요한 곳에 머무는 사람은 제석천과 모든 하늘이 함께 공경하고 존중한다”고 한 것과 같다. 수습원리문은 나와 나의 것이라는 상을 멀리 떠나서 두 번 다시 모이고 생겨나지 않는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자기의 무리들과 다른 무리들을 버리고”라고 한 것과 같다.
방편의 지혜를 성취하여 법대로 여여하게 머무는 것이니, 경에서 “텅 비고 한적한 곳에 홀로 머물면서”라고 한 것과 같다. 잘 생각하는 지혜를 성취하여 장애가 일어나는 원인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괴로움의 근본을 사유하여 멸하여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수용제견문은 나와 나의 것이 모이는 것을 즐거워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마음의 경계를 일으켜 서로 어지럽히는 것이니, 경에서 “만일 무리 속에 있는 것을 즐긴다면 곧 무리의 어지러움을 받게 될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온갖 견해가 모여서 생기고 생긴 뒤에는 스스로 해로움을 입게 되는 것은 커다란 나무에 해당하는 것이니, 경에서 “비유하면 큰 나무에 온갖 새들이 모여 살게 되면 결국 말라 꺾이고 마는 우환을 겪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벗어나지 못하는 상(相)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번뇌와 업에 물드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늙은 코끼리가 진흙에 빠지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즉, 경에서 “세간에 속박당하고 집착하면 뭇 괴로움 속에 빠지게 되나니, 마치 늙은 코끼리가 수렁에 빠진 뒤에는 혼자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멀리 여읨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어서 네 번째, 대인의 지치거나 피로하지 않은 공덕을 설명한다.
【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일에 어려움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지런히 정진해야만 한다. 비유하자면 작은 물도 끊임없이 흐른다면 이내 돌을 뚫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만일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자주 게을러진다면, 마치 부싯돌을 부칠 때 미처 열이 나기도 전에 멈추는 것과 같으니, 그리하면 불을 얻고 싶어도 불 얻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정진이라고 한다.
015_0434_c_01L【論】 여기서 지치거나 피로하지 않은 것이란 외도의 정진과 같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모든 법이나 행에 있어서 잘 나아가고 불퇴전을 성취하는 것이니, 마치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일에 어려움이 없으리니”라고 한 것과 같다. 능히 불퇴전을 성취하기 위해서 반드시 닦고 익히며 길러야 하니,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지런히 정진해야만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비유로써 쉬지 않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으니 정진한다면 힘을 성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에서 “비유하자면 작은 물도 끊임없이 흐른다면 이내 돌을 뚫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다음은 게으름의 허물을 설명한 것이다. 언제나 정진하지 않으면 염처(念處)에서 물러나 잃게 되며 마음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니, 비유에 의하여 나타내 보인 것을 알아야 한다. 경에서 “만일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자주 게을러진다면……”이라고 한 것과 같다. 다음은 다섯 번째, 대인의 생각[念]을 잊지 않는 공덕을 설명한다.
【經】 너희들 비구여, 선지식을 구하고 훌륭한 보호와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을 잊지 않음[不忘念]만 한 것이 없다. 만일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모든 번뇌의 도적이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생각을 거두어 마음속에 두도록 하여라. 만일 생각을 잊는다면 이내 모든 공덕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힘이 견고하고 강하다면 비록 다섯 가지 욕망의 도적 속에 들어가 있어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니, 비유하면 갑옷을 입고 진영에 들어가면 두려울 바가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생각을 잊지 않음이라고 한다.
【論】 다섯 번째, 대인의 생각을 잊지 않는 공덕이다. 이것은 모든 행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며 무시이래의 무거운 원한을 쳐부술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행이란 간략히 말하면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법을 듣기를 구하는 행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선지식을 구하고”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안으로 잘 사유하는 행이니, 경에서 “훌륭한 보호와”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여법하게 수행하기를 구함이니, 경에서 “훌륭한 도움을 구하고”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이러한 행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고 가장 뛰어난 것이 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생각을 잊지 않음[不忘念]만한 것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5_a_01L무시이래의 무거운 원한을 막아내고 세 가지 선근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경에서 “만일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모든 번뇌의 도적이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번뇌란 심상(心相)이 미혹되고 어지러운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고, 도적이란 밖에서 모여와 생겨난 허물이다. 또한 처음과 나중의 생각을 성취하도록 권하여 닦게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시작과 끝이 없는 마음을 막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생각을 거두어 마음속에 두도록 하라”고 한 것과 같다.
시작과 끝이 없어서 생각을 잃고 많은 허물이 생겨나는 것은, 경에서 “만일 생각을 잊는다면 이내 모든 공덕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많은 공덕을 성취하면 세간문을 따라 여러 가치 행을 일으킬 수 있으니,경에서 “만일 생각의 힘이 견고하고 강하다면 비록 다섯 가지 욕망의 도적 속에 들어가 있어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생각의 힘이 강한 것은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진영에 들어가는 것에 해당하니, 경에서 “비유하면 갑옷을 입고 진영에 들어가면 두려울 바가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생각을 잊지 않음이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어서 여섯 번째, 대인의 선정의 공덕을 설명한다.
【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마음을 거둔다면 마음은 곧 정(定)에 있을 것이다. 마음이 정에 있으면 능히 세간의 생멸하는 법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부지런히 정근하여 모든 정을 닦아 일으켜야 한다. 만일 정을 얻는다면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니, 비유하면 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집이 제방을 잘 다스리는 것처럼 수행자는 지혜의 물을 위하여 선정을 잘 닦아서 새거나 잃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정이라고 한다.
015_0435_b_01L【論】 대인의 선정의 공덕으로서 여덟 가지 선정 등은 생각을 잘 거둠을 인연하여 생겨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마음을 거둔다면 마음은 곧 정(定)에 있을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어떻게 마음을 거두면 선정을 생겨나게 하는가? 시현섭변소행처(示現攝遍所行處)에서 심행(心行)으로 연(緣)을 대치하기 때문이요, 그 다음은 중(中)ㆍ연(軟:下)의 일을 취하는 심행으로 연을 대치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연처(緣處)에서 대치가 이루어졌을 때, 곧 선정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선정을 성취하면 방편과용(方便果用)이 있게 되는데, 경에서 “마음이 정에 있으면 능히 세간의 생멸하는 법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게을러서 닦고 일으키지 않으면 방편의 장애가 생기므로 경에서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부지런히 정근하여 모든 정을 닦아 일으켜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게으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안온하지 못한 게으름이고, 둘째는 무미(無味)한 게으름이며, 셋째는 공포를 알지 못하는 게으름이다. 어떻게 닦고 일으켜서 하나하나에 대치하는가?정진하여 적절한 양을 먹고 누우며 나아가 아나파나(호흡)를 조절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정(定)을 깨달아 알고 신통과 지혜의 공덕이 있으며 나아가 괴로움의 근원을 모두 다하는 것이니, 이는 참으로 드문 일이다. 정진하여 닦고 일으켜 생ㆍ노ㆍ병ㆍ사의 괴로움과 네 가지 악취의 괴로움을 관찰하고, 내가 아직 떠나지 못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그 장애를 대치하는 것들이다.
015_0435_c_01L【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지혜가 있으면 곧 탐착이 없을 것이니, 언제나 스스로 잘 살펴서 잃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설한 법 중에서 능히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진리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아니다. 또 재가자도 아니라서 칭할 것이 없다. 참다운 지혜란 곧 늙고 병들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배이고, 또한 무명의 어두움을 크게 밝히는 등불이며, 모든 병든 이들의 좋은 약이며 번뇌의 나무를 베는 예리한 도끼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듣고 생각하고 닦아서 지혜를 얻어 자신의 이익을 불려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로 밝게 비추는 일이 있다면, 비록 이것이 육안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밝게 보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論】 여기서 지혜공덕이란 진실의처(眞實義處)의 장애와 세간사처(世間事處)의 장애를 멀리 잘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지혜가 있으면 곧 탐착이 없을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어느 때라도 항상 마음의 지혜를 닦아야 하나니, 이것은 얻기 어렵기 때문에 경에서 “언제나 스스로 잘 살펴서 잃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제일의처의 멀리 여읨을 얻는 일이 어려움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이것이 바로 내가 설한 법 중에서 능히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자성혜(自性慧)가 없으면 출세간과 세간에 들어갈 수 없으며 시설하지 않으니, 경에서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진리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아니다. 또 재가자도 아니라서 칭할 바가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또 네 가지 비유로써 네 가지 공덕, 즉 듣고 사유하고 수행하고 증득함을 나타내 보였으니, 경에서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참다운 지혜라고 말한 것은 진실로 능히 대치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네 가지 공덕 가운데 네 번째 공덕은 자신의 이익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다. 또한 네 가지 수학(修學)의 공덕은 내처(內處)의 각 부분에서 깨달아 비춤이 있으니, 마치 경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로 밝게 비추는 일이 있다면 비록 이것이 육안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밝게 보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방편을 기르는 공덕을 모두 설명하였다. 이어서 대인이 성취한 필경 공덕을 설명한다.
【經】 너희들 비구여, 만일 갖가지로 희론(戲論)한다면 그 마음은 이내 어지러워질 것이고, 또한 비록 출가하여도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여, 산란한 마음과 희론을 서둘러 버리고 여의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오직 희론의 우환을 빨리 멸해야만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희론하지 않는다고 한다.
015_0436_a_01L【論】 대인이 성취한 필경 공덕이란 자성이 멀리 여의어서 대치법이 아님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네 가지 차별지가 법의 분별과 가능한 분별을 장애하기 때문에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만일 갖가지로 희론한다면 그 마음은 이내 어지러워질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수도지(修道智)는 자성이 아니기 때문에 경에서 “또한 비록 출가하여도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나머지 두 구절은 부지런한 닦음으로 멀리 여의어서 희론 없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첫째는 유대상(有對相)의 멀리 여읨으로서 이러저러한 공덕이 있다고 하는 상(相)을 여읨이니, 경에서 “그러므로 비구여, 산란한 마음과 희론을 서둘러 버리고 여의어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무대상(無對相)의 멀리 여읨으로서 이러저러한 공덕이 없다고 하는 상을 떠남이니, 경에서 “만일 그대가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오직 희론의 우환을 빨리 멸해야만 하나니”라고 한 것과 같다. 행을 성취하여 체성의 다름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경에서 “이것을 이름하여 희론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성취출세간대인공덕분(成就出世間大人功德分)을 모두 설명하였다. 다음은 현시필경심심공덕분(現示畢竟甚深功德分)을 설명한다.
【經】 너희들 비구여, 모든 공덕에서 언제나 한마음으로 모든 게으름을 버리기를 마치 원수의 도적을 여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대비하신 세존께서 이롭게 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구경(究竟)이니, 너희들은 다만 부지런히 이를 행해야 할 것이다. 만일 산 속에 있거나 탁 트인 물가에 있거나 나무 아래 있거나 한적한 곳이나 선정의 방에 있더라도 받아들이는 법을 생각해서 망실(忘失)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제나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것을 닦아야 하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헛되이 죽은 뒤에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명의로서 병을 잘 알아 약을 주지만 약을 먹고 안 먹고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또한 좋은 길을 안내하는 사람과도 같으니, 사람들에게 좋은 길을 안내하더라도 그것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길을 안내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
015_0436_b_01L【論】 현시필경심심공덕에는 두 종류의 필경 현시(顯示)가 있고 두 종류의 깊고 깊은 공덕이 있다. 첫째는 여래가 분별하여 설법함을 다하여 마치는 공덕이니, 즉 분별하지 않는 설법으로 깊고 깊은 공덕을 항상 설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둘째는 수행보살이 세간의 공덕을 닦는 것을 다하여 마침이니, 그런 후 깊고 깊은 공덕을 항상 닦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수행공덕은 위와 같으니 하나하나에 각각 두 종류의 공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항상 공덕을 닦는다는 것은 제일의심(第一義心)으로 닦는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여, 모든 공덕에서 언제나 한마음으로”라고 한 것과 같다.
한마음을 멀리 여의는 것은 마치 원수처럼 서로 어긋나는 행을 하는 것과 같으니, 경에서 “모든 게으름을 버리기를 마치 원수의 도적을 떠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한없는 대비로서 언제나 이롭게 하는 것은 한계를 다하여 마친 것이니, 경에서 “대비하신 세존께서 이익케 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구경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음으로는 언제나 닦는 공덕에 대해 자세히 설한 것이니, 일곱 종류의 닦는 모습이 있다. 첫째는 ‘어떻게 닦는가?’로서 언제나 부지런히 행하는 것을 나타내 보임이니, 경에서 “너희들은 다만 부지런히 이를 행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어떤 곳에서 닦는가?’이니, 일이 없는 곳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경에서 “만일 산 속에 있거나 탁 트인 물가에 있거나 나무 아래 있거나 한적한 곳이나 선정의 방에 있더라도”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무엇을 닦을 것인가?’로서 진실하여 둘이 없는 염법(念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받아들이는 법을 생각하되”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무슨 까닭으로 닦는가?’이니 현전하도록 닦아야 한다. 즉 경에서 “잃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어떤 방편으로 닦을 것인가’이니, 경에서 “언제나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것을 닦아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015_0436_c_01L여섯째는 ‘비슷한 법에 처하여 소식(蘇息:소생)함으로서 상상심(上上心)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헛되이 죽은 뒤에는”이라고 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늦은 뒤에 스스로 후회스러움이 있음을 알지만 일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경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음에는 여래가 분별하여 설법하는 공덕을 다하여 마치는 것을 자세히 설하였다. 두 종류의 다하여 마치는 모습을 나타내 보였으니, 첫째는 설법하고 교화함을 다하여 마치는 모습이 남김이 없는 것이니, 경에서 “나는 명의로서 병을 잘 알아 약을 주지만 약을 먹고 안 먹고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염(念)과 함께 함을 다해 마쳐서 제도하는 법에 상응하여 남김이 없는 것이니, 경에서 “또한 좋은 길은 안내하는 사람과도 같으니 사람들에게 좋은 길을 안내하더라도 그것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길을 안내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약을 먹거나 안 먹거나 등등은 여래께서 두 종류의 다하여 마침[畢竟] 속에 허물이나 과실이 없기 때문에 중생의 세간법을 짊어지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현시입증결정분(現示立證決定分)을 설명한다.
【經】 “너희들은 만일 고성제 등의 4성제에서 의심되는 바가 있으면 서둘러 이것을 질문하여야 한다. 의심을 품고서도 해결을 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때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세 번 소리 내어 말씀하셨지만 질문하는 자가 없었다. 왜냐하면 대중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아누루타가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서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달을 뜨겁게 덥힐 수도 있고, 해를 차갑게 식힐 수도 있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4성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성제는 진실로 괴로움이므로 즐거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집성제는 참다운 인(因)이므로 다시 다른 인은 없습니다. 괴로움이 멸하면 이것이 바로 인의 멸이며, 인이 멸하면 과(果)도 멸합니다. 괴로움을 멸하는 길은 바로 참다운 길이므로 다시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비구들은 4성제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 의심이 없습니다.
015_0437_a_01L【論】 입증결정이란 증득해야 할 법을 모두 성취하여 분명하게 알고 있어서 의심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 문으로 뜻을 거두어서 결정코 의심이 없음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는 방편현발문(方便顯發門)이고, 둘째는 만족성취문(滿足成就門)이고, 셋째는 분별설문(分別說門)이다.
방편현발문이란 모든 참다운 법처(法處)를 드러냄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수행하는 자는 그 법을 관찰해야 하며 나아가 그에 의지하여 행을 일으켜야한다.
마치 경에서 “너희들은 만일 고성제 등의 4성제에서”라고 한 것과 같다. 4성제에서 유작무작법(有作無作法)은 의심이 있거나 의심이 없는 분제(分齋)를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의심되는 바가 있으면 서둘러 이것을 질문하여야 한다. 의심을 품고서도 해결을 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한 것과 같다. 서둘러 질문한다는 것은 두 종류의 장차 다하여 마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앞에서 이미 설명한 두 종류의 다하여 마침과 같다.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4성제를 봄에는 의심이 없되 4성제의 수행에 의심이 있다면 그 둘은 서로 어긋나므로 모두 의심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만족성취문에는 세 종류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첫째는 법륜(法輪) 만족성취를 나타내 보인 것으로서 참다운 법을 세 번 굴린 것이니, 경에서 “이때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세 번 소리 내어 말씀하셨지만”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둘째는 증법(證法) 만족성취를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질문하는 자가 없었다”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단공덕(斷功德) 만족성취이니, 경에서 “왜냐하면 대중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분별설문이란 저 대중의 우두머리가 대중의 심행(心行)이 성취한 결정(決定)을 알고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또한 증득한 참다운 뜻을 환히 깨닫고 있으므로 각각의 일에 대하여 분별하여 설해서 여래께 답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이때 아누루타가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서……”라고 한 것과 같다. 해와 달의 차고 기움이란 4성제에 어긋나게 관(觀)하고 행(行)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015_0437_b_01L“진실로 괴로움이므로 즐거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므로 괴로움과 즐거움은 각각 참다워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다른 인은 없습니다”라는 것은 괴로움의 멸에는 각각 스스로의 인이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또한 멸도(滅道)도 마찬가지로서 이것은 자성으로 관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분명하게 안다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의 인과를 분명하게 알아서 들어가 행함이다.
의심이 없다는 것은 다른 것이 없고 나머지 뜻이 없음이다. 이미 현시입증결정분을 모두 설하였다. 이어서 분별미입상상증위단의분(分別末入上上證爲斷疑分)을 설명한다.
【經】 이 무리 가운데에서 해야 할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한 이들은 부처님의 멸도를 보고 슬픔에 잠길 것입니다. 만일 처음으로 법에 들어간 자라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이내 제도될 수 있으리니, 비유하면 밤에 번갯불을 보고 이내 길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이미 괴로움의 바다를 건넌 이라면 다만 ‘세존의 멸도는 어찌 이리 빠르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論】 분별미입상상증이란 세 가지 분별로 아직 상상법(上上法)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는 진리를 알기 위하여 수행 단계 속에 있는 자로서 아직 상상법에 들어가지 못함이니, 경에서 “이 무리 가운데에서 해야 할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한 이들은 부처님의 멸도를 보고 슬픔에 잠길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진리를 알아 견도(見道) 중에 있는 자로서 곧 분명하게 아는 것이니, 동일하지 않은 수행 단계의 법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에 상상법에는 더욱 먼 자이다. 경에서 “만일 처음으로 법에 들어간 자라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이내 제도될 수 있으리니”라고 한 것과 같다.
또다시 비유로써 견도에서 재빨리 분명하게 아는 것을 나타내 보였으니 그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치 경에서 “비유하면 밤에 번갯불을 보고 이내 길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저 두 가지와는 달리 공용(功用)이 없는 무학도(無學道)에 있는 자로서 상상법의 경계에 미세한 의심이 있는 것이고, 또한 다른 뜻이 있으니 자신의 경지[地]에서 부처님께서 빨리 멸도에 드시는 것을 보는 것이니, 경에서 “만약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이미 괴로움의 바다를 건넌 이라면 다만 ‘세존의 멸도는 어찌 이리 빠르단 말인가?’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다음에는 각각의 의심을 끊는 것을 설명한다.
015_0437_c_01L【經】 아누루타가 비록 대중들이 4성제의 의미를 모두 환히 알고 있다고 말하였지만, 세존께서는 이 대중들이 모두 견고한 지혜를 얻게 하시고자 대비심으로 다시 대중에게 설하셨다. “너희들 비구는 슬퍼하거나 번뇌하지 말라. 가령 내가 1겁을 세상에 머문다고 하여도 모인 것은 마땅히 멸하고야 마니, 모였다가 헤어지지 않는 것은 끝내 얻을 수 없다. 자신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법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만일 내가 오래도록 머문다고 하여도 이익될 것이 없다. 제도되어야 할 자는 천상과 인간 모두 다 제도되었고, 아직 제도되지 못한 자들도 모두가 이미 제도될 인연을 만들었다. 지금 이후부터 나의 제자들은 더욱 이것을 행하여야 한다. 그러면 이것이 바로 여래의 법신이 항상 머무는 것이며 멸하지 않는 것이다.
【論】 여기에서 의심을 끊는 것은 저들의 승분의(勝分疑)를 끊는 것이니, 자신의 경지에서 먼저 성취된 바이기 때문이다. 경에서 “아누루타가 비록 대중들이 4성제의 의미를 모두 환히 알고 있다고 말하였지만”이라고 한 것과 같다. 다시 상상(上上)으로 성취하게 하여 저 얻은 곳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게 하고자 하시니, 이는 여래의 비심(悲心)이 지극히 순박하기 때문이고 상상법(上上法)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경에서 “세존께서는 이 대중들이 모두 견고한 지혜를 얻게 하시고자 대비심으로 다시 대중에게 설하셨다”고 한 것과 같다.
무엇을 설하셨는가? 유위공덕을 설하셨으니, 자타가 함께 멸하기 때문이다. 자타란 설하는 자와 듣는 자의 차별이니,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슬퍼하거나 번뇌하지 말라. 만일 내가 1겁을 세상에 머문다고 하여도 모인 것은 마땅히 멸하고야 만다. 모였다가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끝내 얻을 수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법문은 항상 머물러 멸하지 않음을 설하였으니, 경에서 “자신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법은 모두 갖추어졌으니”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8_a_01L또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을 다해 마쳐서 다시 지어야 할 것이 없음을 설하니, 경에서 “만일 내가 오래도록 머문다고 하여도 이익 될 것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저 무리 중에서 자신에게 이롭게 하는 일을 다해 마쳐서 다시 지을 것이 없음을 설하니, 경에서 “제도되어야 할 자는 천상과 인간 모두 다 제도되었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아직 닦아서 일으키지 못한 자는 멸하지 않는 법문에 의하여 능히 제도될 인연을 지었음을 설하였으니, 경에서 “아직 제도되지 못한 자들도 모두가 이미 제도될 인연을 만들었다”고 한 것과 같다. 다시 다른 뜻이 있으니 상상법에서 아직 제도되지 못한 자는 항상 머무는 법문에 의지하여 제도된다는 것이다.
또 주지(住持)하여 무너지지 않는 공덕에 두 종류가 있음을 설하였다. 첫째는 인분(因分) 가운데 주지하는 것으로 무너지지 않고 항상 수행해서 수행을 끊지 않으니, 경에서 “지금 이후부터 나의 제자들은 더욱 이것을 행하여야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과분(果分) 가운데 주지하는 것으로 무너지지 않고 항상 드러나는 것이니, 경에서 “이것이 바로 여래의 법신이 항상 머무는 것이며 멸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두 종류의 주지하여 무너지지 않는 공덕은 상상법이 능히 의심을 끊을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그렇게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거듭 유위공덕의 덧없는 모습을 설한 것이다.
【經】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세상은 모두가 덧없다. 모인 것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으니 슬픔을 품지 말고, 세상의 모습은 이와 같으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서둘러 해탈을 구하여야 한다. 지혜의 밝음으로 모든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앨지니, 세상은 참으로 위험하고 연약해서 견고하거나 강한 것이 없다. 내가 지금 멸도하는 것은 마치 무서운 병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바로 마땅히 버려야 할 죄악의 물건이니, 거짓으로 이름하여 몸이라고 하는데, 늙고 병들고 태어나고 죽는 거대한 바다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이것을 없애는 것이 마치 원수를 죽이는 것과 같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015_0438_b_01L【論】 여기에서는 어찌하여 유위공덕의 무상한 모습을 거듭 설하는가? 이것은 세간에서의 태어남을 싫어하여 멀리 여의는 행을 나타내는 것이니, 유위상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함이다. 즉, 경에서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세상은 모두가 덧없다. 모인 것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으니 슬픔을 품지 말라. 세상의 모습은 이와 같으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서둘러 해탈을 구하여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참다운 나가 없음을 여실하게 관하는 것을 성취하여 나와 나의 것이라는 견해의 근본을 멸함을 나타내 보이고 있으니, 경에서 “지혜의 밝음으로 모든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애라”고 한 것과 같다. 음(陰) 등의 모든 법은 참으로 실재하지 않으니, 경에서 “세상은 참으로 위험하고 연약해서 견고하거나 강한 것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여래는 바로 세상을 제도하는 큰 스승이시어서 우환이 될 만한 것을 이루어 내시니, 경에서 “내가 지금 멸도하는 것은 마치 무서운 병을 없애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또 차이를 설해서 싫어할 만한 우환의 상은 오직 지혜로만 능히 멸할 수 있기 때문에 지혜를 닦아서 상대(相對)를 멸하도록 권해서 상대가 없는 법이 현전하게 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이것은 바로 죄악의 물건을……”이라고 한 것과 같다. 다음으로는 갖가지 자성을 여의어서 청정한 무아(無我)의 부분을 설한다.
【經】 너희들 비구는 언제나 일심으로 벗어나는 길을 부지런히 구해야 한다. 세상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든 법은 모두가 부서지고 무너지며 안정되지 못한 상이다. 너희들은 이제 그치고 다시 말하지 말라. 때가 이르렀다. 나는 멸도에 들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論】 여기에서 갖가지 자성이란 5음법 중에서 갖가지 견해의 우환을 짓는 것이며, 망상은 자성의 장애로서 이 장애를 대치하고자 경에서 “너희들 비구는 언제나 일심으로”라고 하였다. 다시 일심으로써는 여실한 지혜를 얻기 어려우니, 경에서 “벗어나는 길을 부지런히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여실한 지혜를 제외하고는 모든 상대법은 모두가 덧없음을 나타내며 명상(名相) 등의 법을 나타내 보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세상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든 법은 모두가 부서지고 무너지며 안정되지 못한 상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438_c_01L여기에서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음이란 이른바 삼계의 모습이 고요하거나 어지러운 차별이다. 청정한 무아란 깊고 깊은 적멸법 중에서 적멸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경에서 “너희들은 이제 그치고……”라고 한 것과 같다. “이제 그치고 다시 말하지 말라”는 것은 세 가지 업의 흔들림이 없는 것을 권하여 나타낸 것이니, 이 적멸의 무아에 상응하는 기(器)이다. “마지막 가르침”이란 것은 유교(遺敎)라는 의미를 바로 드러낸 것이다. 이 유교의 뜻이 주지법(住持法) 중에서 뛰어나니 마지막으로 남기신 가르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