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5_0464_a_01L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1)
015_0464_a_01L大唐三藏聖教序

어제(御製)
015_0464_a_02L御製

대개 내가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은 형상[像]이 있어, 만물을 덮고 실음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고, 네 계절[四時]은 형태[形]가 없어,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만물을 기르는 것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이치의 실마리를 알게 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음(陰)과 양(陽)을 명확히 꿰뚫어 보는 데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 변화의 모든 수를 다 아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음양의 이치를 쉽게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이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의 이치가 하늘과 땅에 담겨있을지라도 그 이치를 온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것은, 음양의 변화는 형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015_0464_a_03L蓋聞二儀有像顯覆載以含生四時無形潛寒暑以化物是以窺天鑑地庸愚皆識其端明陰洞陽賢哲罕窮其數然而天地包乎陰陽而易識者以其有像也陰陽處乎天地而難窮以其無形也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이 감춰져 그것을 엿볼 수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미혹되어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형상이 없이 텅 빈 가르침을 숭상하고, 깊고 현묘한 진리에 오르고 완전한 고요 속의 깨달음을 이끌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며, 신령한 위엄을 일으키면 위로 그 한계가 없고, 그 신묘한 힘을 억누르면 아래로 그 끝이 없으며, 그 가르침을 거시의 세계로 확장하면 우주에까지 미치고 미시의 세계로 축소하면 터럭까지도 주관하니, 소멸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어서 천겁(千劫)이 흘렀어도 낡지 않고,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주관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도다. 현묘한 도는 그윽하고도 그윽하여서 그것을 아무리 좇아가더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부처님의 법이 흘러 그 적멸의 경지에 깊이 잠기니 그 법을 아무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들과 초라하며 못난 사람들이, 불법의 뜻에 자신을 던지면 이 세상의 어떤 의혹도 없앨 수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일어난 것은 서토(西土)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 당나라[漢庭]에 전해져 우리에게 희망의 환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국에 부처님의 빛을 비추어 부처님의 자비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
015_0464_a_09L故知像顯可徵雖愚不惑形潛莫睹在智猶迷況乎佛道崇虛乘幽控寂弘濟萬品典御十方擧威靈而無上抑神力而無下大之則彌於宇宙細之則攝於毫氂無滅無生歷千劫而不古若隱若顯運百福而長今妙道凝玄遵之莫知其際法流湛寂挹之莫測其源故知蠢蠢凡愚區區庸鄙投其旨趣能無疑惑者哉然則大教之興基乎西土騰漢庭而皎夢照東域而流慈
015_0464_b_01L옛날 온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르침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으나, 현 시대에는 백성이 부처님의 덕행을 우러러보고서야 따를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서서 법도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함에 이르러, 이전에는 부처님 얼굴[金容]의 찬란한 빛이 가려져서 삼천대천세계[三千]를 비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펼쳐지게 되어 단정하신 부처님의 32상[四八之相]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정미한 말씀이 널리 전해져서 중생을 삼도(三途)2)에서 구제하였고, 선각자들이 남긴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어 중생을 십지(十地)3)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받들어 따르기 어렵고 그 가르침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도 없으나, 세상에 아첨하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따르기가 쉬워서 이에 참과 거짓이 얽히고설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만물의 실체가 없다는 공론[空]과 모든 현상의 본체가 있다는 유론[有]이 더러는 옛 습속을 따라 시비(是非)를 일으킨 것이고, 대승과 소승이 때때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015_0464_a_19L昔者分形分迹之時言未馳而成化當常現常之世民仰德而知遵及乎晦影歸眞遷儀越世金容掩色不鏡三千之光麗象開圖空端四八之相於是微言廣被拯含類於三途遺訓遐宣導群生於十地然而眞教難仰莫能一其旨歸曲學易遵邪正於焉紛糾所以空有之論或習俗而是非大小之乘乍沿時而隆替
현장(玄奘) 법사라는 분이 있는데, 법문(法門)의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는 어려서 마음이 바르고 배우는 데 민첩하여 일찍 삼공(三空)4)의 마음을 깨달았고, 커서는 그 정신과 뜻이 불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먼저 사인(四忍)5)의 수행을 감당하였다. 소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松風]과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水月]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 성품에는 견줄 수 없었으니, 신선이 먹는 이슬[仙露]과 찬란한 구슬[明珠]을 어찌 그의 환하고 넉넉한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얽매임이 없고, 그의 정신도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막힘이 없어서, 이미 육진(六塵)6)을 초월하고 멀리 벗어나니, 아득한7)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와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모든 마음을 쏟으며, 불교의 정법(正法)이 업신여겨지고 쇠퇴함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을 깊이 고찰하여 불법의 심오한 경문이 잘못 전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교 경문을 조리에 따라 이치에 맞게 분석하여 전에 들은 것들을 확장하고, 잘못된 것들은 끊어내고 참된 것들을 잇게 하여, 후학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015_0464_b_06L有玄奘法師者法門之領袖也幼懷貞敏早悟三空之心長契神情先包四忍之行松風水月未足比其淸華仙露明珠詎能方其朗潤故以智通無累神測未形超六塵而迥出隻千古而無對疑心內境悲正法之陵遲拪慮玄門慨深文之訛謬思欲分條析理廣彼前聞截僞續眞開茲後學
015_0465_a_01L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부처님이 계신 곳[淨土]으로 향하게 되어 멀리 서역(西域)으로 떠나게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여행을 하니, 쌓인 눈이 새벽에 이리저리 날리는데 길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저녁에 갑자기 일어남에 텅 빈 밖에서 갈 방향을 잃기도 하였다. 만리(萬里)를 가며 만난 산과 강을 지날 때에도 자욱한 안개와 노을을 헤치고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용감히 나아갔고, 온갖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서리를 밟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앞으로 발을 디뎠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고는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구하여, 서역을 17년 동안 두루 다녔다. 그동안 불도가 전해진 지역을 모두 다니며, 정교(正教)을 묻고 구하였다. 그는 쌍림(雙林)을 지나고 팔수(八水)에 이르러, 부처님의 도를 맛보고 불도의 유풍[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녹야원[鹿苑]에 가고 영취봉[鷲峯]에 올라 부처님의 신비하고 기이한 유적들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그가 앞선 성인들의 지극한 가르침을 받들고 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오묘한 법문을 깊이 탐구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정밀하게 궁구하니, 일승(一乘)과 오율(五律)의 도(道)가 마음 밭에서 치달리며 뛰놀게 되었고, 팔장(八藏)과 삼협(三篋)의 문장[文]이 그의 입안에서 파도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났던 나라들로부터 삼장(三藏)의 핵심 경문을 모두 모아 가지고 왔으니, 모두 657부(部)이다. 그리고 번역된 경문은 중국에 널리 배포되어, 그의 빼어난 공덕이 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015_0464_b_14L是以翹心淨土往遊西域乘危遠邁杖策孤征積雪晨飛途閒失地驚砂夕起空外迷天萬里山川撥煙霞而進影百重寒暑躡霜雨而前蹤誠重勞輕求深願達周遊西宇十有七年窮歷道邦詢求正教雙林八水味道飡風鹿苑鷲峯瞻奇仰異承至言於先聖受眞教於上賢探頤妙門精窮奧業一乘五律之道馳驟於心田八藏三篋之文波濤於口海爰自所歷之國摠將三藏要文凡六百五十七部譯布中夏宣揚勝
그가 서역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구름을 이끌고 와서 중국에 불법의 비를 내리게 하니, 결함이 있었던 불교가 다시 온전해지고, 죄 가운데 고통 받던 중생이 다시 복(福)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불난 집[火宅]의 활활 타는 불꽃에 물을 뿌려서 다시는 미혹된 길로 가지 않게 한 것이고, 애욕의 캄캄한 파도에 빛을 비춰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악(惡)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업(業)이 생겨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善)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극락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락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행한 것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015_0465_a_03L引慈雲於西極注法雨於東垂教缺而復全蒼生罪而還福濕火宅之乾焰共拔迷途朗愛水之昏波臻彼岸是知惡因業墜善以緣昇墜之端惟人所託
비유컨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자라므로 구름이 내리는 깨끗한 이슬만이 그 꽃을 적실 수 있고, 연꽃은 맑은 물결 속에서 꽃을 피우므로 날리는 티끌이 그 잎을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연꽃의 본성이 본래 깨끗하거나 계수나무의 바탕이 본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이 높기 때문에 탁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요, 연꽃이 의지한 곳이 맑은 물속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풀과 나무가 지각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좋은 조건에 의지하여 선(善)을 이루는데, 하물며 사람은 지각이 있어 복된 조건을 가지고 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지금 이 경(經)이 널리 전해져서 해와 달처럼 다함없이 이어지고, 이 복(福)이 멀리 펼쳐져서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하고 광대하기를 바라노라.
015_0465_a_07L譬夫桂生高嶺露方得泫其花蓮出淥波飛塵不能污其葉非蓮性自潔而桂質本貞由所附者高則微物不能累所憑者則濁類不能沾夫以卉木無知資善而成善況乎人倫有識不緣慶而求慶方冀茲經流施將日月而無斯福遐敷與乾坤而永大

황태자신치술성기皇太子臣治述聖記8)
015_0465_a_14L皇太子臣治述 聖記

무릇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전함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가르침[文]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요,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받들어 분명히 밝히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旨]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모든 불법의 궁극적 근원이요, 모든 불경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그 담긴 내용은 너무나 넓고 크며 그 오묘한 뜻은 너무나 아득하고 깊어서, 공(空)과 유(有)의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도 완전히 꿰뚫게 하고, 삶과 죽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도 체득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 도리는 너무 다양하고 넓어서, 불법을 찾는 자가 그 근원을 다 탐구하기 어렵고, 그 경문은 세상에 드러났어도 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불법을 실행하려는 자가 불법의 극의를 분명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015_0465_a_15L夫顯揚正教非智無以廣其文崇闡微言非賢莫能定其旨蓋眞如聖教諸法之玄宗衆經之軌躅也綜括宏遠奧旨遐深極空有之精微體生滅之機要詞茂道曠尋之者不究其文顯義幽履之者莫測其際
015_0465_b_01L 그러므로 부처님의 성스런 자비가 덧입혀져야 모든 중생의 업(業)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부처님의 신묘한 교화가 펼쳐져야 모든 세상의 인연[緣]에서 악(惡)이 끊어짐을 알게 되어, 불법의 그물[法網]이 넓게 펼쳐지고 육바라밀[六度]의 올바른 가르침이 널리 베풀어져, 모든 중생이 도탄(塗炭)에서 구원받고, 삼장(三藏)의 비밀스런 빗장[秘扃]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오래도록 세상에 전해졌고, 부처님의 도(道)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게 박혔으며, 부처님의 도와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축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015_0465_a_21L故知聖慈所被業無善而不臻妙化所敷緣無惡而不翦開法網之綱紀弘六度之正教拯群有之塗炭啓三藏之秘扃是以名無翼而長飛道無根而永固道名流慶歷遂古而鎭常赴感應身經塵劫而不朽
새벽의 종소리[鍾]와 저녁의 게송 소리[梵], 이 두 가지 소리가 영취봉[鷲峯]에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빛[慧日]과 불법의 맑은 물[法流]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 녹야원[鹿苑]에서 전해졌으니, 공중으로 치솟은 보개(寶蓋)9)는 떠도는 구름[翔雲]과 함께 나는 듯하였고, 들판의 무성한 봄 숲[春林]은 천화(天花)10)와 더불어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였다.
015_0465_b_04L晨鍾夕梵交二音於鷲峯慧日法流轉雙輪於鹿苑排空寶蓋接翔雲而共飛莊野春林與天花而合彩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불교의 깊은 이치를 숭상함으로 복(福)을 받아,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꽂은 채로 있어도 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그 덕(德)이 온 백성에게 입혀져, 공손히 옷깃을 여미고만 있어도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으며, 그 은혜가 죽은 자에까지 이르러 무덤에도 불교경전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은택이 곤충에까지 미치어 금궤에도 불교의 게송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뇩달수(阿耨達水)11)가 중국의 중심12)에 흐르는 팔천(八川)13)과 통하게 되었고, 기사굴산(耆闍崛山:영취산)이 숭산과 화산[嵩華]의 푸른 봉우리와 맞닿게 되었다.
015_0465_b_07L伏惟皇帝陛下 上玄資福垂拱而治八荒德被黔黎斂衽而朝萬國恩加朽骨石室歸貝葉之文澤及昆蟲匱流梵說之偈遂使阿耨達水通神甸之八川耆闍崛山接嵩華之翠嶺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법의 본성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온전히 불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대지는 깊고 그윽하여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에만 감응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어찌 칠흑 같은 혼돈의 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요, 화마가 휩쓰는 아침에 내리는 불법의 은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모든 하천은 다르게 흘러도 모두 함께 바다로 모이고, 모든 만물의 이치는 나누어졌어도 결국 모두 만물의 실재를 이루니, 어찌 탕왕[湯]과 무왕[武]의 우열을 비교하며, 요임금[堯]과 순임금[舜]의 성덕을 서로 견주겠는가.
015_0465_b_12L竊以法性凝寂靡歸心而不通智地玄奧感懇誠而遂顯豈謂重昏之夜燭慧炬之光火宅之朝降法雨之澤於是百川異流同會於海萬區分義摠成乎實豈與湯武挍其優劣堯舜比其聖德者哉
현장(玄奘) 법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담백하고 소박한 삶에 뜻을 두었으며, 정신은 어린 나이에도 한없이 맑았고, 신체도 세상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선방[定室]에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 바위산[幽巖]에 자취를 숨겼으며, 삼선(三禪)14)의 세계에 오르고, 십지(十地)의 수행을 차례로 수행하였으며, 육진(六塵)15)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부처님의 땅[迦維:인도)을 밟고, 일승(一乘)의 뜻[旨]을 깨달아 그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015_0465_b_18L玄奘法師者夙懷聰立志夷簡神淸齠齔之年體拔浮華之世凝情定室匿迹幽巖拪息三巡遊十地超六塵之境獨步迦維會一乘之旨隨機化物
015_0465_c_01L 현장은 중국에는 의거할 진경[眞文]이 없어 인도의 불경을 찾아서, 멀리 항하(恒河:갠지스 강)를 건너 불경을 가져오길 늘 바랐고, 이에 여러 차례 설산[雪嶺]을 넘어가 불경을 가져왔다. 도(道)를 물으며 인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7년 세월 동안 불교 경전을 다 깨달아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었다. 때문에 정관(貞觀) 19년 2월 6일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勅]을 받들어, 성교(聖教)의 중요한 문장을 번역하니, 모두 657부(部)이다. 이는 대해(大海)의 법류(法流)를 끌어다가 세속의 노고를 씻어서 마르지 않게 한 것이요, 지혜의 등불[智燈]을 전하여 세속의 어둠을 비춰 항상 밝게 한 것이니, 스스로 오랜 동안16) 좋은 인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불법의 뜻을 이렇게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17) 이것은 법상(法相)18)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해ㆍ달ㆍ별[三光]의 광명처럼 분명하고, 우리 황제폐하의 복덕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하늘ㆍ땅[二儀]의 견고함처럼 확실함을 말한 것이다.
015_0465_b_22L以中華之無尋印度之眞文遠涉恒河終期滿頻登雪嶺更獲半珠問道往還十有七載備通釋典利物爲心以貞觀十九年二月六日勅於弘福寺翻譯聖教要文凡六百五十七部引大海之法流洗塵勞而不竭傳智燈之長焰皎幽闇而恒明自非久植勝緣何以顯揚斯旨所謂法相常住齊三光之明我皇福臻同二儀之固
엎드려 황제폐하께서 지으신 여러 경론의 서문을 보니, 옛일을 비추어 현재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그 이치는 금석(金石)과 같이 웅장한 소리를 담고 있고, 그 문장은 풍운(風雲)이 뿌리는 은택을 간직하고 있다. 나(治:고종의 이름)는 이에 가벼운 티끌을 거대한 산악에 덧붙이듯, 이슬을 떨어뜨려 강물에 첨가하듯 내 글을 폐하의 서문에 덧붙임으로, 간략하게 그 대강(大綱)을 들어서 이 기문을 짓는다.
015_0465_c_09L伏見御製衆經論序照古騰今理含金石之聲文抱風雲之潤治輒以輕塵嶽墜露添流略擧大綱以爲斯記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미륵보살(彌勒菩薩) 지음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한역
강명희 번역


1. 본지분(本地分)

1) 오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

무엇을1) 유가사지(瑜伽師地)2)라고 하는가?
17지(地)를 말한다.
무엇 등을 17이라고 하는가?
올타남(嗢拕南)3)에서 이르길

오식상응(五識相應)4)과 의(意)와
유심유사(有尋有伺) 등의 세 가지5)
삼마지(三摩地)6)와 함께 함[俱]7)과 그렇지 않음[非]8)
유심지(有心地)와 무심지(無心地)이며
五識相應意  有尋伺等三
三摩地俱非  有心無心地

문(聞)과 사(思)와 수(修)로 세워진 것9)
이와 같이 삼승(三乘)10)
유여의지(有餘依地)와 무여의지(無餘依地)를 갖춘 것이니
이것을 17지(地)라고 하네.
聞思修所立  如是具三乘
有依及無依  是名十七地

첫째는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 둘째는 의지(意地), 셋째는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넷째는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다섯째는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여섯째는 삼마희다지(三摩呬多地), 일곱째는 비삼마히다지(非三摩呬多地), 여덟째는 유심지(有心地), 아홉째는 무심지(無心地), 열째는 문소성지(聞所成地), 열 한째는 사소성지(思所成地), 열 둘째는 수소성지(修所成地), 열 셋째는 성문지(聲聞地), 열 넷째는 독각지(獨覺地), 열 다섯째는 보살지(菩薩地), 열 여섯째는 유여의지(有餘依地), 열 일곱째는 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이와 같이 열 일곱 가지를 간략히 설하여 유가사지(瑜伽師地)라고 한다.
무엇을11)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라고 하는가?
5식신(識身)의 자성(自性)ㆍ그것12)의 소의(所依)ㆍ그것의 소연(所緣)ㆍ그것의 조반(助伴)13)ㆍ그것의 작업(作業)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총괄하여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라고 한다.
무엇14) 등을 5식신(識身)이라고 하는가?
소위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이다.
무엇을15) 안식(眼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안[眼 : 眼根]을 의지하여 색(色)을 요별(了別)16)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17)의 소의(所依)란 구유의(俱有依)18)는 안근[眼 : 眼根]을 말하고, 등무간의(等無間依)19)는 의근[意 : 意根]을 말하고, 종자의(種子依)20)는 이것21)의 일체종자(一切種子)를 집수(執受)하는 소의(所依)로서 이숙(異熟)에 포함되는[所攝]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간략히 두 가지 소의(所依)로 설명하면 색(色)22)과 비색(非色)23)이다. 안근[眼;眼根]은 색(色)이며 나머지24)는 비색(非色)이다. 안[眼 : 眼根]은 4대종(大種)25)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안식이 의지하게 되는[眼識所依] 정색(淨色)26)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27)이다. 의근[意;意根]는 안식(眼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無間]28)의 과거식(過去識)을 말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은 무시시래(無始時來)로 희론(戲論)29)을 즐겨 집착하여[樂著] 훈습(薰習)한 것이 원인[因]이 되어서 생기는 것[所生]으로서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식(異熟識)을 말한다.
그것30)의 소연(所緣)이란 색(色)으로서 유견유대(有見有對)31)를 말한다. 여기32)에 다시 여러 가지를 간략히 설명하면 현색(顯色)과 형색(形色)과 표색(表色)의 세 가지가 있다. 현색(顯色)이란 푸르고[靑]ㆍ누렇고[黃]ㆍ붉고[赤]ㆍ희고[白]ㆍ빛[光]ㆍ그림자[影]ㆍ밝음[明]ㆍ어두움[闇]ㆍ구름[雲]ㆍ연기[煙]ㆍ티끌[塵]ㆍ안개[霧]ㆍ공일현색(空一顯色)33)을 말한다. 형색이란 길고[長]ㆍ짧고[短]ㆍ모나고[方]ㆍ둥글고[圓]ㆍ굵고[麤]ㆍ가늘고[細]ㆍ곧고[正]ㆍ곧지 않고[不正]ㆍ높고[高]ㆍ낮은[下] 색(色)을 말한다. 표색(表色)이란 취하고[取]ㆍ버리고[捨]ㆍ굽히고[屈]ㆍ펴고[伸]ㆍ가고[行]ㆍ머무르고[住]ㆍ앉고[坐]ㆍ눕는[臥] 이와 같은 등의 색(色)을 말한다.
또한 현색이란 색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에[顯了], 안식의 소행(所行)34)을 말한다. 형색이란 색이 모아졌을 때에[積集], 길고 짧은 것 등으로 갈라지는[分別] 상(相)을 말한다. 표색이란 이 모아진[積集] 색이 생멸상속(生滅相續)하고, 달라진[變異] 인(因)에 의하여 먼저 생긴 곳[先生處]에서 거듭 생기지 않고, 다른 곳[異處]에 전전하며 생기는 것인데, 무간(無間)35) 혹은 유간(有間)36) 혹은 가깝게 또는 멀게 차별이 생기는 것이며, 혹은 이 곳37)에서 달라져서[變異]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를 표색이라고 한다.
또한 현색(顯色)이란 빛과 밝음 등의 차별(差別)을 말하고, 형색(形色)이란 길고 짧은 것 등으로 모아지는 것[積集]의 차별을 말하고, 표색(表色)이란 업의 작용[業用]38)을 의지로 하여 구르고 움직이는 것[轉動]의 차별을 말한다.
이와 같은 모든 현색ㆍ형색ㆍ표색은 바로 안근[眼 : 眼根]의 소행이며 안근의 경계이며, 안식(眼識)의 소행(所行)이며 안식의 경계(境界)이며 안식의 소연(所緣)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고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이를 차별이라고 한다.
또한 이 색에는 다시 호현색(好顯色)39)과 악현색(惡顯色)40)과 구리현색(俱異顯色)41)의 세 가지가 있다. 색과 흡사하게 현현(顯現)42)한다.
그것[眼識]의 조반(助伴)이란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의 심소유법(心所有法)43), 즉 작의(作意)44)ㆍ촉(觸)45)ㆍ수(受)46)ㆍ상(想)47)ㆍ사(思)48)와 그 밖에 안식과 함께 있으면서[具有] 상응하는 여러 가지 심소유법들[心所有法]을 말한다. 또한 이 제 법(法)은 동일한 소연(所緣)이지만 동일한 행상(行相)이 아니며, 함께 있고[俱有] 상응하면서도 하나 하나49) 전전하며, 또한 그 일체는 각각 자기[自]의 종자(種子)로부터 생겨난다.
그것[眼識]의 작업(作業)이란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오직 자신의 경계[自境]의 소연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오직 자상(自相)만을 요별하고50), 오직 현재만을 요별하며51), 오직 한 찰나만을 요별한다52). 또 두 가지 업이 있다. 의식을 따라 구르며, 선(善)ㆍ염(染)53)에 따라 구르며, 일으킨 업[發業]에 따라 구른다54). 또한 능히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취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작업[業 : 作業]이다.
무엇을55) 이식(耳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이근[耳 : 耳根]에 의지하여 성(聲)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耳識]의 소의는 구유의(俱有依)는 이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이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이식이 의지하게 되는[耳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그것[耳識]의 소연(所緣)은 성(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56)를 말한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소라고둥 소리ㆍ크고 작은 북 소리ㆍ춤 소리ㆍ노랫소리ㆍ여러 가지 음악 소리ㆍ울부짖는 소리[俳戲叫聲]ㆍ여자 소리ㆍ남자 소리ㆍ바람이 스치는 숲의 소리ㆍ명료한 소리ㆍ명료하지 않은 소리ㆍ뜻이 있는 소리ㆍ뜻이 없는 소리ㆍ상중하(上中下)의 소리ㆍ강하(江河) 등의 소리ㆍ투쟁하면서 떠드는 소리ㆍ수지(受持)하여 연설하는 소리ㆍ논의결택(論議決擇)하는 소리 등 이와 같은 종류의 많은 소리가 있다. 이를57) 세 가지로 간략히 하면, 즉 집수대종(執受大種)에 의한 소리58)ㆍ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59)ㆍ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60)이다. 처음 것61)은 오직 안[內]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다음 것62)은 밖[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마지막 것63)은 안팎[內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다.
여기에도 가의(可意)의 소리ㆍ불가의(不可意)의 소리ㆍ구상위(俱相違)의 소리64)의 세 가지가 있다. 또한 소리[聲]에는 즉, 울음ㆍ소리ㆍ말ㆍ울부짖음ㆍ드러내는 말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는 이근의 소행(所行)이며 이근의 경계이며, 이식(耳識)의 소연(所緣)이며 이식의 경계이며 이식의 소연이며, 의식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조반(助伴) 및 업은 안식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65) 비식(鼻識)의 자성이라 하는가?
비근[鼻 : 鼻根]에 의지하여 향(香)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鼻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비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을 말한다. 비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 진 것[四大種所造]이며, 비식이 의지하게 되는[鼻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그것[鼻識]의 소연이란 향(香)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66)를 말한다. 여기에도 즉 호향(好香)ㆍ악향(惡香)ㆍ평등향(平等香)67)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냄새맡아서 알게 되는 뿌리ㆍ줄기ㆍ꽃ㆍ잎사귀ㆍ과실의 향, 이런 등등의 많은 종류의 여러 가지 향(香)이 있다.
또한 냄새[香]란 이른바 코로 맡는 것[鼻所聞]과 코로 취하는 것[鼻所取]과 코로 냄새맡는 것[鼻所嗅]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것은 비근의 소행이며 비근의 경계이며, 비식(鼻識)의 소행이며 비식의 경계이며 비식의 소연이며, 의식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조반(助伴) 및 업(業)은 앞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68) 설식(舌識)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설근[舌 : 舌根]에 의지하여 미(味)를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舌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설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설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설식이 의지하게 되는[舌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그것[舌識]의 소연(所緣)은 미(味)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69)를 말한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쓰고[苦]ㆍ시고[酢]ㆍ맵고[辛]ㆍ달고[甘]ㆍ짜고[鹹]ㆍ싱거운 것[淡]이 있고, 가의(可意), 불가의(不可意), 혹은 사(捨)70)의 처소(處所)가 있으며, 설근이 맛보는 대상[所嘗]이 있다.
또한 미(味)란 이른바 맛보겠다, 삼키겠다, 씹겠다, 마시겠다, 핥겠다, 빨겠다, 수용하겠다는 등의 위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것은 설근의 소행이며 설근의 경계이며, 설식(舌識)의 소행이고 설식의 경계이고 설식의 소연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며 의식의 소연이다.
조반(助伴) 및 업(業)은 앞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71) 신식(身識)의 자성(自性)이라 하는가?
신근[身 : 身根]에 의지하여 촉(觸)을 요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身識]의 소의(所依)는 구유의(俱有依)는 신근이며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며 종자의(種子依)는 일체종자의 아뢰야식이다. 신근은 4대종으로 만들어진 것[四大種所造]이며, 신식이 의지하게 되는[身識所依] 정색(淨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이다. 의(意) 및 종자(種子)는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그것[身識]의 소연이란 촉(觸)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72)를 말한다. 여기에도 즉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과 가벼운 성질[輕性]ㆍ무거운 성질[重性]ㆍ미끄러운 성질[滑性]ㆍ껄그러운 성질[澁性]ㆍ차가움[冷]ㆍ배고픔[飢]ㆍ목마름[渴]ㆍ배부름[飽]ㆍ힘 있음[力]ㆍ힘 없음[劣]ㆍ느슨함[緩]ㆍ급함[急]ㆍ병듦[病]ㆍ늙음[老]ㆍ죽음[死]ㆍ간지러움[蛘]ㆍ답답함[悶]ㆍ끈끈함[粘]ㆍ고달픔[疲]ㆍ쉼[息]ㆍ연약[軟怯]ㆍ기운[勇]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위와 같은 종류의 여러 가지 촉(觸)이 있다.
여기에도 즉 호촉(好觸)ㆍ악촉(惡觸)ㆍ사(捨)의 처소의 촉[處所觸]73)의 세 가지가 있으며, 신근[身]이 감촉하는 대상[所觸]이 있다.
또한 촉(觸)이란 즉 어루만지고 부딪치고 혹은 단단하고 부드럽고 혹은 움직이고 따뜻한 등의 이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이는 신근[身 : 身根]의 소행(所行)이며 신근의 경계이며, 신식(身識)의 소행이며 신식의 경계이며 신식의 소연이며, 의식(意識)의 소행이며 의식의 경계이고 의식의 소연이다.
조반(助伴) 및 업(業)은 앞의 경우와 동일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음에74) 안근[眼 : 眼根]이 무너지지 않고75), 색(色)이 앞에 나타나고[現在前]76), 능생(能生) 작의(作意)77)가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78) 소생(所生) 안식(眼識)79)은 결코 생겨날 수 없다.
반드시 안근이 무너지지 않고 색(色)이 앞에 나타나며[現在前] 능생(能生) 작의(作意)가 곧바로 다시 일어날[現起] 때에 소생[所生]의 안식(眼識)도 비로소 생겨날 수 있다. 안식(眼識)이 생기는 것과 같이, 그 밖의 식신(識身)도 위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80) 안식(眼識)의 생겨나기 때문에 세 가지 심(心)을 가히 얻을 수 있으니, 그 차례대로 말하면 솔이심(率爾心)81)과 심구심(尋求心)82)과 결정심(決定心)83)이다. 처음 것84)은 안식(眼識)이며, 두 번째 것85)은 의식(意識)에 존재하며, 결정심(決定心)86) 뒤에 마침내 염(染)ㆍ정(淨)87)이 있고88) 이 이후에야 등류(等流)의 안식(眼識)89)이 있어서90) 선(善)과 불선(不善)이 구르게 된다.
그래서 저것[眼識]이 자기의 분별력에 의지하지 않고 내지 이 의식[意 : 意識]도 나머지 경(境)에 나아가지 않는 이와 같은 때에 이르러야 안식[眼 : 眼識]과 의식의 두 식(識)은 선(善) 혹은 염(染)에 상속하여 구르는 것[轉]이다. 안식(眼識)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신식(身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91) 5식(識)의 소의(所依)는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의 탈것과 같으며, 소연(所緣)은 하는 일과 같으며, 조반(助伴)은 동반자[同侶]와 같으며, 작업(作業)은 스스로의 공능(功能)과 같음을 관(觀)해야만 한다. 또한 5식(識)의 소의(所依)는 집에 머무는 자의 집과 같고, 소연(所緣)은 수용하는 대상과 같고, 조반(助伴)은 심부름꾼과 같고, 작업(作業)은 작용(作用)과 같은 차별이 있음을 관찰[觀]해야만 한다.

2) 의지(意地)92)

이미 오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를 설명하였다.
무엇을93) 의지(意地)라고 하는가?
여기에서도 5상(相)이 있음을 알아야만 하니, 즉 자성(自性)때문이요, 그것94)의 소의(所依)때문이요, 그것의 소연(所緣), 그것의 조반(助伴), 그리고 그것의 작업(作業)때문이다.
무엇을 의(意)의 자성(自性)이라고 하는가?
심(心)ㆍ의(意)ㆍ식(識)을 말한다.
심(心)이란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소수의지성(所隨依止性)95)이며 소수의부의지성(所隨依附依止性)96)으로서 본체[體]는 능히 집수(執受)하는 이숙에 포함되는[異熟所攝]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의(意)란 항행의지성(恒行依止性)의 의(意)97)와 그리고 6식신(六識身)의 무간멸(無間滅)의 의(意)를 말한다.
식(識)이란 현전(現前)에서 소연(所緣)의 경계(境界)를 요별(了別)하는 것이다.
그것98)의 소의(所依)로는 등무간의(等無間依)는 의근[意 : 意根]이고 종자의(種子依)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그것의 소연(所緣)이란 그 상응하는 것[所應]에 따른 일체법(一切法)이다. 불공인 경우[不共者]99)의 소연(所緣)은 즉 수(受)ㆍ상(想)ㆍ행온(行蘊)100)과 무위(無爲)와 무견무대색(無見無對色)101)과 6내처(六內處)102)와 그리고 일체종자(一切種子)이다.
그것의 조반(助伴)이란 작의(作意)ㆍ촉(觸)ㆍ수(受)ㆍ상(想)ㆍ사(思)103)와 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삼마지(三摩地)ㆍ혜(慧)104)와 신(信)ㆍ참(慚)ㆍ괴(愧)ㆍ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ㆍ정진(精進)ㆍ경안(輕安)ㆍ불방일(不放逸)ㆍ사(捨)ㆍ불해(不害)105)와 탐(貪)ㆍ에(恚)ㆍ무명(無明)ㆍ만(慢)ㆍ견(見)ㆍ의(疑)106)와 분(忿)ㆍ한(恨)ㆍ복(覆)ㆍ뇌(惱)ㆍ질(嫉)ㆍ간(慳)ㆍ광(誑)ㆍ첨(諂)ㆍ교(憍)ㆍ해(害)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혼침(惛沈)ㆍ도거(掉擧)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사욕(邪欲)ㆍ사승해(邪勝解)ㆍ망념(忘念)ㆍ산란(散亂)ㆍ부정지(不正知)107)와 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108)를 말한다. 이러한 등의 것들은 함께 있으면서[俱有] 상응(相應)하는109) 심소유법(心所有法)이며, 이를 조반(助伴)이라고 이름한다.
동일(同一)한 소연(所緣)이면서도 동일한 행상(行相)은 아니라서, 일시(一時)에 함께 있으면서도[俱有] 하나 하나 구른다110). 각자의 종자로부터 생겨나면서도 서로 상호 상응하여 (능연[能緣]의) 행상(行相)이 있고 소연(所緣)이 있으며 소의(所依)가 있다.
그것111)의 작업(作業)112)이란 즉 능히 자기의 경계[自境]의 소연(所緣)을 요별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을 첫 번째 업[初業]이라고 한다. 다시 능히 자상(自相)ㆍ공상(共相)113)을 요별하고,114) 능히 과거[去]ㆍ미래[來]ㆍ현재세[現世]를 요별하고,115) 다시 찰나에 요별하고 혹은 상속하여 요별한다.116) 다시 구르고[轉] 따라서 구르면서[隨轉] 청정하고[淨]과 청정하지 않는[不淨] 일체법(一切法)의 업(業)을 일으킨다117). 다시 능히 탐애[愛]와 비탐애[非愛]의 과보[果]를 취하고,118) 다시 능히 다른 식신(識身)119)을 이끌며 또한 능히 인(因)이 되어 등류(等流)의 식신(識身)120)을 일으킨다.
또한 제 의식(意識)121)은 다른 식신(識身)에 비해서 뛰어난 작업(作業)이 있다. 즉 소연(所緣)을 분별하고, 소연(所緣)을 심려(審慮)하며, 취(醉)하거나, 미치거나[狂], 꿈꾸거나[夢], 깨어나거나[覺], 기절하거나[悶], 성성하거나[醒], 혹은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을 능히 일으키거나, 능히 이욕(離欲)하거나, 이욕(離欲)에서 물러나거나, 선근(善根)을 끊거나, 선근(善根)을 잇거나, 죽거나[死] 태어나는[生] 등을 말한다.
무엇을 소연을 분별하는 것이라 하는가?
일곱 가지의 분별 즉 유상분별(有相分別)ㆍ무상분별(無相分別)ㆍ임운분별(任運分別)ㆍ심구분별(尋求分別)ㆍ사찰분별(伺察分別)ㆍ염오분별(染汚分別)ㆍ불염오분별(不染汚分別)에 의한다.
유상분별(有相分別)이란 먼저 받아들인 대상[先所受義]122)에 대하여 제 근(根)을 성취하고123) 명언(名言)을 잘 아는 자(者)가 일으키는 분별을 말한다.
무상분별(無相分別)이란 먼저 끌어당긴 것[先所引]124)에 따르는 것이며, 명언(名言)을 잘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등이 지니고 있는 분별을 말한다.
임운분별(任運分別)이란 현전(現前)의 경계에 대하여 경계의 세력에 따라서 자연스럽게[任運] 구르는 모든 분별을 말한다.
심구분별(尋求分別)이란 제 법을 관찰(觀察)ㆍ심구(尋求)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사찰분별(伺察分別)이란 이미 심구(尋求)하고 이미 관찰(觀察)한 것을 사찰(伺察)하고 안립(安立)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염오분별(染汚分別)이란 과거를 되돌아보고 연연해하는 것과 함께 작용하고[俱行] 미래를 즐기는 것과 함께 작용하며 현재를 집착하는 것과 함께 작용하는 모든 분별과, 욕분별(欲分別)이나 에분별(恚分別) 혹은 해분별(害分別)의 하나 하나의 번뇌나 수번뇌(隨煩惱)에 따라 상응해서 일어나게 되는 분별을 말한다.
불염오분별(不染汚分別)이란 선(善)과 무기(無記)이며, 출리분별(出離分別)ㆍ무에분별(無恚分別)ㆍ불해분별(不害分別)의 하나 하나의 신(信) 등의 선법(善法)과 상응하거나 혹은 위의로(威儀路)125)ㆍ공교처(工巧處)126) 및 모든 변화(變化)127)가 소유하고 있는 분별을 말한다.
위와 같은 종류를 소연(所緣)을 분별(分別)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소연(所緣)을 심려(心慮)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여리(如理)의 소인(所引)ㆍ비여리(非如理)의 소인(所引)ㆍ비여리비불여리(非如理非不如理)의 소인(所引)을 말한다.
여리(如理)의 소인(所引)이란 진실(眞實)이 아닌 유(有)를 증익(增益)하는 4가지의 전도(顚倒), 즉 무상(無常)을 항상함[常]이라고 전도하고, 괴로움[苦]을 즐거움[樂]이라고 전도하며, 깨끗하지 않은 것[不淨]을 깨끗함[淨]이라고 전도하고, 무아(無我)를 아(我)라고 전도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견(邪見) 즉 ‘베풀 필요 없다[無施與]’ 등의 모든 사견(邪見)의 행(行)과 같이 여러 진실유(眞實有)를 손감(損減)하지 않는 것이다. 법주지(法住智)128)가 여실(如實)하게 제 소지사(所知事)129)를 요지(了知)한다거나 매우 청정한[善淸淨] 출세간의 지혜[出世間智]가 여실하게 소지(所知)130)의 제 법(法)을 깨달는[覺知] 이와 같은 것들을 여리(如理)의 소인(所引)이라고 한다.
위와 서로 다른 것을 비여리(非如理)의 소인(所引)인줄 알아야 한다.
비여리비불여리(非如理非不如理)의 소인(所引)이란 무기(無記)의 지혜[慧]를 의지하여 제 법(法)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것[審察]을 말한다.
위와 같은 것을 소연(所緣)을 심려(審慮)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취함[醉]이라고 하는가?
의지(依止) 성품[性]이 약[羸劣]하기 때문에, 혹은 익숙하지 않은데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혹은 너무 자주 마셨기 때문에, 혹은 지나친 양을 마셨기 때문에, 곧 취해서 어지러운 것[醉亂]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미침[狂]이라고 하는가?
먼저 지었던 업[先業]에 이끌렸기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계[諸界]의 착란(錯亂) 때문에, 혹은 놀라고 두려워서 의지[志]를 잃었기 때문에, 혹은 말마(末摩)131)를 맞았기 때문에, 혹은 귀신과 도깨비[鬼魅]에 홀려서 전광(癲狂)132)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꿈을 꾸는 것[夢]이라고 하는가?
의지(依止)의 성품[性]이 약[羸劣]하기 때문에, 혹은 피로[疲倦]나 과실(過失) 때문에, 혹은 지나치게 먹는 것에 빠졌기[沈重] 때문에, 혹은 암상(闇相)133)을 작의(作意)하고 사유하였기 때문에, 혹은 일체의 사업(事業)을 휴식(休息)하였기 때문에, 혹은 수면(睡眠)을 자주 익혔기[串習]134) 때문에, 부채질[搖扇]이나 명주(明呪)나 약이나 신통과 같은 다른 것135)에 이끌렸기 때문에, 혼몽(惛夢)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깨어남[覺]이라고 하는가?
잠을 푹 잔 사람[睡增者]이 피극(疲極)136)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137), 할 일이 있는 사람[所作者]이 미리 잠 잘 시간을 잡았기 때문에, 혹은 다른 것138)에 이끌려서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기절[悶]이라고 하는가?
바람과 열로 어지럽기 때문에, 혹은 매를 맞았기 때문에, 너무 지나치게 설사[痢]를 계속하거나 출혈(出血)과 같이 쏟았기 때문에, 혹은 극히 과로했기 때문에, 기절[悶絶]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성성[醒]이라고 하는가?
기절하였다가 다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신업(身業)ㆍ어업(語業)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는가?
즉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을 일으키는 지(智)139)가 먼저 작용[前行]하기 때문에, 다음으로 욕(欲)이 생기기 때문에, 다음으로 공용(功用)이 일어나기 때문에, 다음으로 공용에 수순(隨順)함을 우선으로 하여 신(身)과 어(語)의 업풍(業風)이 구르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신업(身業)ㆍ어업(語業)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엇을 이욕(離欲)이라고 하는가?
즉 이욕(離欲)에 수순하는 감각기관[根]을 성취하기 때문에140),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르침[敎誨]을 받아서 따르기[隨順] 때문에, 그것141)의 장애를 원리(遠離)하기 때문에, 방편(方便)을 바르게 닦아서[正修]142) 전도 없이[無顚] 사유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욕(離欲)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이욕(離欲)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즉 연근기[軟根]143)의 성품[性]이기 때문에, 새로 선품(善品)을 닦은 사람이 그것144)의 형상상(形狀相)145)을 사유하기 때문에, 순퇴법(順退法)을 받아 행하기[受行] 때문에, 번뇌에 장애 받기 때문에, 나쁜 벗[惡友]에 포섭되기 때문에, 이욕(離欲)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이다.
무엇을 선근(善根)을 끊는 것[斷]이라고 하는가?
즉 이근자(利根者)가 상품(上品)의 여러 악한 의요[諸惡意樂]들이 현행하는 법을 성취하기 때문에, 그 나쁜 벗[惡友]을 수순하게 되기 때문에146), 그 사견(邪見)의 전(纏)147)이 극히 매우 원만하게 되어 구경(究竟)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일체의 악(惡)이 현행하는 가운데에 무외(無畏)를 얻기 때문에148), 애민(哀愍)이 없기 때문에, 능히 선근(善根)을 끊는 것이다.
이 가운데 종자도 선근(善根)이라고 하고 무탐(無貪)ㆍ무진(無瞋) 등도 또한 선근(善根)이라고 하지만, 상속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相違] 때문에, 단지 현행(現行)의 선근(善根)149)만을 안립(安立)하여 선근을 끊는다[斷]고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영원히 그150) 종자를 뽑아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근(善根)을 잇는 것[續]이라고 하는가?
즉 이근(利根)의 성품[性]이기 때문에, 친한 벗[親朋友]151)을 보고서 복업(福業)을 닦기 때문에, 착한 장부(丈夫)152)에 나아가 정법(正法)을 듣기 때문에, 유예(猶豫)153)가 생겨도 증(證)154)을 결정하기 때문에, 도로 선근(善根)을 잇는 것[續]이다.
무엇을155)(一) 내분유정(內分有情)의 생사를 밝힌다.
1. 사(死)를 밝힌다.
(1) 여섯 가지 사(死)를 드러내어 해석한다.
(2) 여덟 가지 문(門)으로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설한다.
2. 생(生)을 열 네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
(1) 중유(中有)를 스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2) 생유(生有)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3) 본유(本有)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3. 공관루진(空觀漏盡)을 스물 세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
(二) 외분세계(外分世界)의 성괴(成壞)를 스물 네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
죽는다[死]고 하는가?
수명[壽量]이 다했기 때문에 곧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하니,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목숨이 다하고[壽盡], 복이 다하고[福盡], 불평등(不平等)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156) 이것은 선심(善心)ㆍ불선심(不善心)ㆍ무기심(無記心)의 시사(時死)157)와 비시사(非時死)158)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목숨이 다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감(感)159)에 따라서 수명이 완전히 다하여 죽는 것과 같으니, 이를 시사(時死)라고 한다.
무엇을 복이 다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자구(資具)160)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죽는 것과 같다.
무엇을 불평등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하는가?
세존께서 “아홉 가지 인(因)과 아홉 가지 연(緣) 때문에, 수명이 다하지 않아도 죽는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떤 것들을 아홉 가지라고 하는가?
즉 양(量)에 맞지 않게 먹고, 마땅하지 않는 것을 먹고, 소화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먹고, 살아있는데도 뱉지 않고, 익혀서 이를 지니고161), 의약(醫藥)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자기에게 손해 되고 이익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때에 맞지 않고[非時] 양에 맞지 않는[非量] 범행이 아닌 것을 행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을 비시사(非時死)라고 한다.
무엇을 선심(善心)의 죽음이라고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 스스로 이전에 닦았던 선법(善法)을 기억하거나 혹은 다시 다른 사람이 그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이때 신(信) 등의 선법(善法)이 마음[心]에 현행하는 것과 같으며, 내지 추상(麤想)162)이 현행하는 것과 같다. 만약 세상(細想)163)이 현행할 때는 선심(善心)이 곧 평등[捨]하여 오직 무기심(無記心)에만 머물게 된다. 왜냐 하면 그는 이때에 일찍이 익혔던 선(善)에 대해서도 기억할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또한 그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불선심(不善心)의 죽음이라고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 스스로 이전에 익혔던 악법(惡法)을 기억하거나 혹은 다시 다른 사람이 그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는 이때 탐(貪)ㆍ진(瞋) 등과 함께하는 모든 불선법이 마음에 현행하는 것과 같다. 내지 추(麤)ㆍ세(細) 등의 상(想)이 현행하는 것은 앞에서 잘 설한 것과 같다.
또한 선심(善心)을 갖고 죽을 때[死時]는 안락하게 죽는 것이라서,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몸을 핍박(逼迫)하는 극히 괴로운 느낌[極苦受]이 없다. 악심(惡心)을 갖고 죽을 때는 괴로워하면서 죽는 것이라서,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몸을 핍박(逼迫)하는 매우 심한 괴로운 느낌[極重苦受]이 있다. 또한 선심을 갖고 죽는 자는 어지럽지 않은 색상(色相)을 보고 불선심을 갖고 죽는 자는 어지러운 색상(色相)을 본다.
무엇을 무기심(無記心)의 죽음이라고 하는가?
즉 선(善)과 불선(不善)을 행한 사람과 혹은 행하지 않은 사람이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 스스로 기억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도 기억하도록 할 수 없어서, 이때에 선심도 아니고 불선심도 아니면서 죽으니, 이미 안락하게 죽는 것도 아니고 괴로워하면서 죽는 것도 아닌 것이다.
또한164) 선과 불선을 행한 보특가라(補特伽羅)165)는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 혹은 자연스럽게 앞서 익혔던 선과 불선을 기억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기억하도록 한다. 그는 이때에 과거에 많이 익혔던 가장 강한 힘에 그 마음이 치우쳐서 기억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다 잃어버리게 된다. 만약 평등을 갖추어서 자주 거듭 익혔던 사람일 경우는 그는 이때에 처음 것을 따라서 스스로 기억하거나 다른 사람이 기억하도록 하는데, 다른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이것166)만을 버리지 않는다.
그는167) 이때 두 가지 인(因)의 증상력(增上力), 즉 희론(戲論)에 즐겨 집착하는[樂著]하는 인(因)의 증상력(增上力)168)과 청정함[淨]ㆍ청정하지 않음[不淨]의 업인(業因)의 증상력(增上力)169)때문에 곧 목숨이 끊어지게 된다.
이전의170) 업이 끌어당긴 과(果)를 다 받고 나서 불선업(不善業)을 행한 사람은 마치 꿈속에서 무량한 종류의 괴이한[變怪] 색상(色相)을 보듯이, 바로 이때171) 이전에 지었던 모든 불선업(不善業) 소득(所得)의 불애과(不愛果)의 전상(前相)을 받는다. 이런 상(相)172)에 의지하기 때문에 박가범(薄伽梵)께서 “이전에 악(惡)ㆍ불선업(不善業)을 짓거나 증장(增長)시킨 적이 있는 이는 이 때173) 마치 저무는 해가 산과 산봉우리에 걸려서 가려지고 거의 가려지기도 하고 아주 가려지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보특가라(補特伽羅)는 밝음[明]에서 어두움[闇]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전에 불선업(不善業)의 과(果)를 다 받고 나서 선(善)을 닦은 이는 위와 서로 다르다. 이와 같은 보특가라는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에 차별174)은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 마치 꿈속에서 무량한 종류의 괴이하지[變怪] 않은 색(色)을 보고 가의상(可意相)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만약 상품(上品)의 불선업(不善業)을 지은 사람은 이러한 괴이한 상[變怪相]을 보기 때문에, 땀이 흐르고 털이 곤두서며 손발이 떨리며[紛亂] 마침내 똥을 싸면서 허공을 더듬고 눈동자가 뒤집히면서 거품을 내뿜는다. 그는 이때에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의 괴이한 모습[變怪相]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약 중품(中品)의 불선업(不善業)을 지은 사람은 이때175) 괴이한 모습[變怪相]이 있기도 하고 혹은 없기도 하며, 만약 있더라도 전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176)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부터 아직 혼미한 상이 나타나지 않을 단계[位]에 이르기까지의 중생들은 오랫동안 익혔던 아애(我愛)177)가 현행한다. 이 힘178)때문에 ‘나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곧 자신을 사랑[愛]하니, 이179) 때문에 중유(中有)의 생보(生報)180)를 건립하는 것이다.
예류과(預流果) 및 일래과(一來果)의 경우에도 이때 아애(我愛)가 또 다시 현행한다. 그러나 이 예류(預流) 및 일래과(一來果)는 이 아애(我愛)에 대하여 지혜력(智慧力)으로써 자주 추구하여 제지[制]하고 집착하지 않으니, 마치 씩씩한 장부가 힘 없는 약한 이와 씨름하여 그를 제압하는 것과 같다. 이 가운데 도리(道理)도 또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불환과(不還果)의 경우는 이 때 아애(我愛)가 다시 현행하지 않는다.
또한181) 지절(肢節)182)이 풀리는 것은 천(天)과 나락가(那落迦)를 제외한 그 밖의 생을 받는 곳[生處]에는 모두 다 있다. 여기에도 첫째 무거움[重]과 둘째 가벼움[輕]의 두 가지가 있다. 무거움이란 악업(惡業)을 지은 것을 말하고 가벼움이란 선업(善業)을 지은 것을 말하는데, 북구로주(北拘盧洲)에서는 모두가 다 가벼움이다.
또한183) 색계(色界)에서 죽을 때는 모두 감각기관[根]을 갖추지만 욕계(欲界)에서 죽을 때는 대상에 따라서 감각기관이 있되, 갖추기도 하고 갖추지 않기도 한다.
또한184) 청정해탈(淸淨解脫)185)하여 죽는 이는 선에 어울리는 죽음[調善死]이라고 하며, 불청정불해탈(不淸淨不解脫)하여 죽는 이는 선에 어울리지 않은 죽음[不調善死]이라고 한다.
또한186)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악업(惡業)을 지은 사람은 식(識)이 소의(所依)187)의 위쪽부터 버리게 된다. 즉 위쪽부터 식기 시작하여[冷觸] 이렇게 점차 버려서 심처(心處)188)에 이르게 된다.
선업을 지은 사람은 식(識)이 소의(所依)의 아래쪽부터 버리게 된다. 즉 아래쪽부터 식기 시작하여 이렇게 점차로 버려서 마침내 심처에 이르게 된다. 다음에 식(識)이 심처를 버려야만 여기189)부터 식기 시작하여 두루 소의(所依)로 번져나감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을190) 태어남[生]이라고 하는가?
아애(我愛)가191) 곧바로[無間] 이미 생겼기 때문에, 무시이래[無始]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한[樂著] 인(因)192)을 이미 훈습(薰習)하였기 때문에, 청정함[淨]ㆍ청정하지 않음[不淨]의 업인(業因)을 훈습하였기 때문에, 그 소의(所依)의 체(體)193)는 두 가지 인(因)194)의 증상력(增上力)에 의하기 때문에 자기의 종자[自種子]195)로부터 즉 이곳 중유(中有)에 이숙(異熟)196)이 곧바로[無間]197)태어나게 된다. 저울의198) 양쪽 끝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시(時)와 같이 (생유[生有]는) 사유(死有)와 동시(同時)이다. 그래서199) 이 중유(中有)는 반드시 감각기관들[諸根]을 갖춘다.
악업(惡業)을200) 지은 사람이 얻는 중유(中有)는 검은 양[黑羺]의 빛깔과 같거나 혹은 캄캄한 밤과 같으며, 선업(善業)을 지은 사람이 얻는 중유(中有)는 흰옷의 빛깔과 같거나 혹은 청명한 밤과 같다.
또한201) 이 중유는 매우 청정한 천안(天眼)이 작용하게 된다[所行]. 그는202) 이때 이전의 아애(我愛)와 같은 종류[類]로는 다시 현행하지 않는다. 식(識)이203) 이미 머무르기 때문에204) 그래서 경계에 대해서 희론(戲論)의 애(愛)를 일으키며 태어날 곳에 따라서 곧 그 형류(形類)의 중유가 생긴다.
또한205) 중유의 눈[眼]은 마치 천안(天眼)과 같이 장애가 없어서 오직 태어날 곳[生處]에만 이른다. 마치206) 신통(神通)을 얻은 것과 같아서 나아가는 곳에 장애는 없지만, 역시 오직 태어날 곳[生處]에만 이른다.
또한207) 이 눈에 의해서 자기와 같은 종류의 중유(中有)의 유정(有情)을 보고 그리고 자신이 태어날 곳을 본다.
또한208) 악업을 지은 사람은 눈으로 아래를 청정하다고 보고 얼굴을 숙이고 가며, 천취(天趣)로 가는 이는 (머리를) 위로 하며, 인취(人趣)로 가는 이는 (머리를) 옆으로 한다.
또한209) 이 중유가 만약 아직 태어날 연[生緣]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꽉 찬 7일 동안 머무르지만 태어날 연[生緣]을 만났을 경우에는 결정할 수 없다.210) 만약 7일이 되어도 아직 태어날 연[生緣]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 7일 동안 머물게 되고, 이와 같이 계속하여, 아직 태어날 연[生緣]을 만나지 못했을 경우에는 49일 동안 머물게 된다. 이 이후부터는 결정적으로 태어날 연[生緣]을 만난다.
또한211) 7일에 죽어 버린 이 중유는 혹은 곧 이것의 종류212)로 태어나고, 혹은 나머지 업이 전전하기 때문에 중유(中有)의 종자(種子)가 계속할 경우213)에는 곧 다른 종류로 태어난다.
또한214) 이 중유는 여러 명칭이 있다. 어떤 경우는 죽음[死]과 태어남[生]의 두 가지 종류[類]의 중간에 있으면서 태어나기 때문에 중유(中有)라고 하고, 냄새를 찾아가고 냄새를 먹이로 삼기 때문에 건달박(健達縛)이라고 이름한다. 의(意)를 의지로 삼아서 태어날 곳[生處]에 가기 때문에 의행(意行)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몸이 가는 것을 설하는 것이며, 심연(心緣)으로 가는 것을 (설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생유(生有)를 일으키기 때문에 취생(趣生)이라고 이름한다. 중유는215) 무색계(無色界)를 제외한 모든 태어나는 곳[生處]에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216) ‘악업(惡業)을 지었다’란 양ㆍ닭ㆍ돼지 등을 잡는 것을 말한다. 그 한 가지에 따라도 불율의(不律儀)217)의 중동분(衆同分)에 머무르기 때문에 나락가(那落迦)를 부르는 악(惡)ㆍ불선업(不善業)을 짓고 증장하게 된다. 그는 이때 마치 꿈속과 같이 스스로 그 업을 받게 되는 태어날 곳[生處]에서 도리어 이와 같은 종류의 유정(有情)과 양 등을 잡는 일을 보게 되는데, 전에 익혔던 것이기 때문에 기뻐서 내달린다. (이때) 바로 태어날 곳[生處]의 경계[境]의 물질[色]에 의하여 장애를 받아 중유(中有)는 사라지고 생유(生有)가 이어서 일어난다. 그것218)이 없어지려고 할 때는 앞서 사유(死有)와 같이 어지러운[紛亂] 색(色)219)을 본다.
이와 같이 나머지 생겨나고[生]ㆍ사라지는[滅] 도리는 앞과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220) 그것221)이 생겨날 때, 오직 화생(化生)이며 6처(處)를 구족(具足)한다.
다시222) ‘나[我]는 그와 재미있게 즐기며 즐거움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기예(伎藝)를 익히리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면서도 여기223)로 나아간다. 그는 이때 전도(顚倒)되어 여러 가지 사업(事業)을 짓고 냉(冷)ㆍ열(熱)을 느낀다. 망견(妄見)을 여의면 이와 같은 상모(相貌)에도 오히려 취욕(趣欲)224)이 없었을 텐데 하물며 그곳225)으로 가겠는가. 만약 거기로 가지 않으면 마땅히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락가(那落迦)처럼 다른 나락가(那落迦)와 흡사한 아귀[鬼]의 취(趣) 가운데 태어나는 것도 이 영귀(癭鬼)와 같다고 알아야만 한다. 또한 나머지 아귀[鬼]ㆍ방생(傍生)ㆍ인(人) 등 및 욕(欲)ㆍ색계천(色界天)의 중동분(衆同分)에서 생(生)을 받으려고 할 때 태어나야 할 곳[當生處]에서 자기와 동류(同類)의 가의(可意)의 유정(有情)을 본다. 이 때문에 그는 기쁨[欣樂]이 일어나서 태어날 곳[生處]에 가서 곧바로 걸리게 된다.
죽고 태어나는[死生] 도리(道理) 또한 앞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226) 세 가지[三處]가 현행하기 때문에 모태(母胎)에 들어갈 수 있다. 즉 첫째는 그 어미[母]가 조적(調適)하면서도 때를 만나야 하고, 둘째는 부모가 화합하여 함께 애염(愛染)을 일으켜야 하고, 셋째는 건달박(健達縛)이 바로 현재전(現在前)해야 한다.
다시227) 세 가지 장애, 즉 산처(産處)의 과환(過患)의 소작(所作)ㆍ종자(種子)의 과환(過患)의 소작(所作)ㆍ숙업(宿業)의 과환(過患)의 소작(所作)이 없어야 한다.
무엇을 산처(産處)의 과환(過患)이라 하는가?
아이 낳는 곳[産處]이 풍병(風病)과 열병(熱病)으로 핍박(逼迫)받거나, 혹은 그 안228)에 마맥과(麻麥果)229)가 있거나, 혹은 그 문(門)230)이 마치 차라(車螺)와 같은 형상231)이거나 굽은 형상이거나 더럽거나 탁한 경우이다. 이와 같은 종류가 산처(産處)의 과환(過患)인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종자(種子)의 과환(過患)이라고 하는가?
아비[父]는 부정(不淨)을 내고 어미[母]는 그렇지 않거나, 혹은 어미[母]는 내고 아비[父]는 내지 않거나, 혹은 둘 다 내지 않거나, 혹은 아비[父]의 정(精)이 썩었거나, 혹은 어미[母]의 정(精)이 썩었거나, 혹은 둘 다 썩었거나 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종류가 종자(種子)의 과환(過患)인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숙업(宿業)의 과환(過患)이라 하는가?
아비[父] 또는 어미[母]가 자식을 얻을[感] 업(業)을 짓지 않고 증장(增長)하지 않았거나, 혹은 둘 다 짓지 않았거나, 혹은 그232) 유정(有情)이 부모를 얻을 업을 짓지 않고 증장(增長)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233)의 부모가 다른 자식을 얻을 업을 짓고 증장(增長)하였거나, 혹은 그 유정이 다른 부모를 얻을 업을 짓고 증장하였거나, 혹은 대종엽(大宗葉)234)을 얻을 업, 또는 비대종엽(非大宗葉)을 얻을 업을 말하니, 이와 같은 종류가 숙업(宿業)의 과환(過患)임을 알아야만 한다.
만약 이와 같은 세 가지의 과환(過患)235)이 없고 세 가지[三處]236)가 현전(現前)하면, 모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곧 중유의 처소에서 자기와 같은 종류[同類]인 유정(有情)이 기뻐하는 것[喜戲] 등을 보고 태어날 곳[所生處]에 나아가려는 욕구를 일으킨다.
그는237) 이때 그 부모가 함께 사행(邪行)하여 나오는 정혈(精血)을 보고 전도(顚倒)를 일으킨다. 전도(顚倒)를 일으킨다는 것은 부모가 삿된 행[邪行]을 행하는 것을 볼 때, 부모가 삿된 행[邪行]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착각[倒覺]을 일으켜서 자기가 스스로 행하는 것이라고 보고, 자기가 스스로 행한 것을 보고 나서 곧바로 탐애(貪愛)를 일으키는 것이다.
만약 지금 여자가 되고자 하면 그는 곧 아비[父]에게 회탐(會貪)238)을 일으키며, 지금 남자가 되고자 하면 그는 곧 어미[母]에게 탐애[貪]를 일으키는 것도 그러하다. 곧 가까이 가서는 여자일 경우에는 어미[母]에게서 그가 멀어지려고 하고, 남자일 경우에 있어서 아비[父]에 대한 마음도 또한 이와 같다.
이러한 욕구를 일으키고[生] 나서는 혹은 남자만을 보고 혹은 여자만을 보면서 점점 그 처소239)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부모의 다른 부분을 보지 못하고 오직 남녀의 근문(根門)만을 보아서 곧 이 곳240)에 걸리게 된다.
죽고 태어나는[死生] 도리(道理)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박복자(薄福者)일241) 경우는 하천한 집에 태어나려고 하면서, 그는 죽을 때[死時]와 태 안에 들어갈 때[入胎時] 곧 여러 가지 어지러운[紛亂] 소리를 듣고도 헛되이 스스로 숲ㆍ대나무ㆍ갈대 등의 속으로 들어간다고 본다.
다복자(多福者)의 경우는 존귀한 집에 태어나려고 하면서, 그는 이 때242) 곧 스스로 어떤 적정(寂靜)하고 미묘하고 가의(可意)의 소리를 듣고도 헛되이 스스로 궁전 등을 오르는 가의상(可意相)이 나타남을 본다.
부모의243) 탐애(貪愛)가 모두 지극하여 결정적으로 최고일 때에, 각각 한 방울씩 짙은 정혈(精血)을 내는데, 두 방울은 화합하여 모태 안에서 마치 끓인 우유가 응결된 것처럼 한 덩어리로 합성(合成)한다. 이곳244)에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에 포함되는[異熟所攝] 집수소의(執受所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이 화합하여 의탁하게 된다.
‘화합하여 의탁한다’란 무엇인가?
여기에서245) 나온 짙은 정혈(精血)이 한 덩어리로 합쳐지면 전도(顚倒)의 연(緣)246)과 함께 중유(中有)도 같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라짐과 동시에 곧 일체종자의 식(識)의 공능력(功能力) 때문에 다른 미세한 근(根)과 대종(大宗)이 있어서 화합하여 생기며 그리고 나머지 유근(有根)의 동분(同分)은 정혈과 화합하여 뭉쳐 나오게 된다.
이 시기를 식(識)이 이미 머물러서 결생상속(結生相續)한다고 설하는 것이며, 곧 이것을 갈라람위(羯羅藍位)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 갈라람(羯羅藍)에는 제 근(根)의 대종(大種)이 있는데, 오직 신근(身根)과 신근(身根)의 소의처(所依處)인 대종(大種)이 함께 생긴 것이다. 곧 이 신근(身根)과 함께 생기는 제 근(根)의 대종력(大種力) 때문에 안(眼) 등의 제 근(根)이 차례로 생겨나게 된다. 또한 이 신근(身根)과 함께 생겨나는 제 근(根)의 소의처(所依處)인 대종력(大種力) 때문에 제 근(根)의 의지처가 차례로 생겨나게 된다. 이 제 근(根)과 소의처(所依處)가 구족(具足)하여 생기기 때문에, 득원만의지성취(得圓滿依止成就)라고 하며, 또한 이 갈라람(羯羅藍)의 색(色)은 심(心)ㆍ심소(心所)와 안위(安危)를 함께하기 때문에 의탁(依託)이라고 한다.
심(心)ㆍ심소(心所)의 의탁력(依託力) 때문에 색(色)은 없어지지 않고, 색(色)의 손해[損]와 이익[益]때문에 그것도 또한 손해하고 이익하기 때문에 그것을 안위공동(安危共同)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 갈라람(羯羅藍)은 식(識)이 최초로 의탁하는 곳이므로 육심(肉心)247)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식(識)이 이곳에 맨 처음 의탁하기 때문에 이곳을 가장 마지막에 버리는 것이다.
015_0465_c_12L瑜伽師地論卷第一彌勒菩薩說三藏法師玄奘奉 詔譯本地分中五識身相應地第一云何瑜伽師地謂十七地何等十七嗢拕南曰五識相應 有尋伺等三 三摩地俱非有心無心地修所立如是具三乘有依及無依 是名十七地一者五識身相應地二者意地三者有尋有伺地四者無尋唯伺地五者無尋無伺地六者三摩呬多地七者非三摩呬多地八者有心地九者無心地十者聞所成地十一者思所成十二者修所成地十三者聲聞地十四者獨覺地十五者菩薩地十六者有餘依地十七者無餘依地如是略說十七名爲瑜伽師地云何五識身相應地謂五識身自性彼所依彼所緣彼助伴彼作業如是摠名五識身相應地何等名爲五識身耶所謂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云何眼識自性謂依眼了別色彼所依者俱有依謂眼等無閒依謂意子依謂卽此一切種子執受所依熟所攝阿賴耶識如是略說二種所謂色非色眼是色餘非色眼謂四大種所造眼識所依淨色無見有對意謂眼識無閒過去識一切種子識謂無始時來樂著戲論熏習爲因生一切種子異熟識彼所緣者謂色有見有對此復多種略說有三謂顯形色表色顯色者謂靑霧及空一顯色形色謂長不正下色表色者謂取臥如是等色又顯色者謂若色顯了眼識所形色者謂若色積集短等分別表色者謂卽此積集色生滅相續由變異因於先生處不復重生轉於異處或無閒或有閒或近或遠差別或卽於此處變異生是名表色顯色者謂光明等差別形色者謂長短等積集差別表色者謂業用爲依轉動差別如是一切顯表色是眼所行眼境界眼識所行眼識境界識所緣意識所行意識境界意識所名之差別又卽此色復有三種若好顯色若惡顯色若俱異顯色色顯現彼助伴者謂彼俱有相應諸心所有法所謂作意及餘眼識俱有相應諸心所有法又彼諸法同一所緣非一行相俱有相應一一而轉又彼一切各各從自種子而彼作業者當知有六種謂唯了別自境所緣是名初業唯了別自相了別現在唯一剎那了別復有二業謂隨意識轉隨善染轉隨發業轉復能取愛非愛果是第六業云何耳識自性謂依耳了別聲彼所依者俱有依謂耳等無閒依謂意子依謂一切種子阿賴耶識耳謂四大種所造耳識所依淨色無見有對意及種子如前分別彼所緣者謂聲無見有對此復多種如螺貝聲大小鼓聲舞聲歌聲諸音樂聲俳戲叫聲女聲男聲風林等聲明了聲不明了有義聲無義聲下中上聲江河等鬪諍諠雜聲受持演說聲論義決擇聲如是等類有衆多聲此略三種謂因執受大種聲因不執受大種聲因執受不執受大種聲初唯內緣聲次唯外緣聲後內外緣聲此復三種謂可意聲不可意聲俱相違聲又復聲者謂鳴表彰語等差別之是耳所行耳境界耳識所行耳識境界耳識所緣意識所行意識境界意識所緣助伴及業如眼識應知云何鼻識自性謂依鼻了別香彼所依者俱有依謂鼻等無閒依謂意子依謂一切種子阿賴耶識鼻謂四大種所造鼻識所依淨色無見有對意及種子如前分別彼所緣者謂香無見有對此復多種謂好香惡香等香鼻所嗅如根果實之香如是等類有衆多香又香者謂鼻所鼻所取鼻所嗅等差別之名是鼻所行鼻境界鼻識所行鼻識境界識所緣意識所行意識境界意識所助伴及業如前應知云何舌識自性謂依舌了別味彼所依者俱有依謂舌等無閒依謂意子依謂一切種子阿賴耶識舌謂四大種所造舌識所依淨色無見有對意及種子如前分別彼所緣者謂味無見有對此復多種謂苦可意不可意若捨處所舌所嘗味者謂應嘗應吞應噉應飮應舐應受用如是等差別之名是舌所舌境界舌識所行舌識境界舌識所緣意識所行意識境界意識所緣助伴及業如前應知云何身識自性謂依身了別觸彼所依者俱有依謂身等無閒依謂意子依謂一切種子阿賴耶識身謂四大種所造身識所依淨色無見有對意及種子如前分別彼所緣者謂觸無見有對此復多種謂地重性滑性澀性如是等類有衆多觸此復三種謂好觸捨處所觸身所觸又觸者謂所摩所觸若鞕若軟若動若煖如是等差別之名是身所行身境界身識所行身識境界身識所緣意識所行意識境界意識所緣助伴及業如前應知復次雖眼不壞色現在前能生作意若不正起所生眼識必不得生要眼不壞色現在前能生作意正復現起所生眼識方乃得生如眼識生乃至身識應知亦爾復次由眼識生三心可得如其次第謂率爾心尋求心決定心初是眼識二在意識決定心後方有染淨此後乃有等流眼識善不善轉而彼不由自分別力乃至此意不趣餘境經爾所時意二識或善或染相續而轉如眼識生乃至身識應知亦爾復次應觀五識所依如往餘方者所所緣如所爲事助伴如同侶業如自功能復有差別應觀五識所依如居家者家所緣如所受用助伴如僕使等業如作用本地分中意地第二之一已說五識身相應地云何意地此亦五相應知謂自性故彼所依故彼所緣故彼助伴故彼作業故云何意自性謂心心謂一切種子所隨依止性所隨依附依止性體能執受異熟所攝阿賴耶識意謂恒行意及六識無閒滅意識謂現前了別所緣境界彼所依者等無閒依謂意子依謂如前說一切種子阿賴耶識彼所緣者謂一切法如其所應若不共者所緣卽受想行薀無爲無見無對色六內處及一切種子彼助伴者謂作意勝解三摩地無貪無瞋無癡精進輕安不放逸不害忿無慚無愧掉擧不信懈怠放逸邪欲邪勝解忘念散亂不正知惡作睡眠是等輩俱有相應心所有法是名助伴同一所緣非同一行相一時俱有一一而轉各自種子所生更互相應有行相有所緣有所依彼作業者謂能了別自境所緣是名初業復能了別自相共相復能了別去今世復剎那了或相續了別復爲轉隨轉發淨不淨一切法業復能取愛非愛果復能引餘識身又能爲因發起等流識身又諸意識望餘識身有勝作業謂分別所緣審慮所緣若醉若狂若夢若若悶若醒若能發起身業語業能離欲若離欲退若斷善根若續善若死若生等云何分別所緣由七種分別謂有相分別無相分別任運分別尋求分別伺察分別染污分別不染污分別相分別者謂於先所受義諸根成就善名言者所起分別無相分別者隨先所引及嬰兒等不善名言者有分別任運分別者謂於現前境界隨境勢力任運而轉所有分別尋求分別者謂於諸法觀察尋求所起分伺察分別者謂於已所尋求已所觀察伺察安立所起分別染污分別謂於過去顧戀俱行於未來希樂俱行於現在執著俱行所有分別欲分別若恚分別若害分別或隨與一煩惱隨煩惱相應所起分別不染污分別者若善若無記謂出離分別無恚分別無害分別或隨與一信等善法相應或威儀路工巧處及諸變所有分別如是等類名分別所緣云何審慮所緣謂如理所引不如理所引非如理非不如理所引如理所引者謂不增益非眞實有如四顚倒謂於無常常倒於苦樂倒於不淨淨於無我我倒亦不損減諸眞實有如諸邪見謂無施與等諸邪見行法住智如實了知諸所知事或善淸淨出世閒智如實覺知所知諸法是名爲如理所引與此相違當知不如理所引非如理非不如理所引者謂依無記慧審察諸法如是名爲審慮所緣云何醉謂由依止性羸劣故或不習飮故或極數飮故或過量飮便致醉亂云何狂謂由先業所引或由諸界錯亂或由驚怖失志或由打觸末摩或由鬼魅所著而發癲狂云何夢謂由依止性羸劣或由疲倦過失或由食所沈重或由於闇相意思惟或由休息一切事業或由串習睡眠或由他所引發如由搖扇或由明呪或由於藥或由威神而發惛夢云何覺謂睡增者不勝疲極故有所作者要期睡故或他所引從夢而覺云何悶謂由風熱亂故或由捶打故或由瀉故如過量轉痢及出血或由極勤勞而致悶絕云何醒謂於悶已而復出離云何發起身業語業謂由發身語業智前行故次欲生故次功用起故隨順功用爲先語業風轉故從此發起身業語業云何離欲謂隨順離欲根成就故他獲得隨順教誨故遠離彼障故便正修無倒思惟故方能離欲云何離欲退謂性軟根故新修善品數數思惟彼形狀相故受行順退法故煩惱所障故惡友所攝故從離欲退云何斷善根謂利根者成就上品諸惡意樂現行法故得隨順彼惡友故彼邪見纏極重圓滿到究竟故彼於一切惡現行中得無畏故無哀愍故能斷善根此中種子亦名善根無貪瞋等亦名善根但由安立現行善根相違相續名斷善根非由永拔彼種子故云何續善根謂由性利根故見親朋修福業故詣善丈夫聞正法故生猶豫證決定故還續善根云何死謂由壽量極故而便致死此復三種謂壽盡故福盡故不避不平等故當知亦是時非時死或由善心或不善心或無記心云何壽盡故死猶如有一隨感壽量滿盡故死此名時死云何福盡故死猶如有一資具闕故死云何不避不平等故死如世尊說九緣未盡壽量而死何等爲九食無度量食所不宜不消復食生而不吐熟而持之不近醫藥不知於己若損若益非時非量行非梵行此名非時死云何善心死猶如有一將命終時憶先時所習善法或復由他令彼憶由此因緣爾時信等善法現行於乃至麤想現行若細想行時善心卽捨唯住無記心所以者何彼於爾於曾習善亦不能憶他亦不能令彼憶念云何不善心死猶如有一命將欲終自憶先時串習惡法或復由他令彼憶念彼於爾時瞋等俱諸不善法現行於心乃至麤細等想現行如前善說又善心死時安樂而死將欲終無極苦受逼迫於身惡心死時惱而死將命終時極重苦受逼迫於又善心死者見不亂色相不善心死者見亂色相云何無記心死謂行善不善者或不行者將命終時自不能憶無他令憶爾時非善心非不善心死旣非安樂亦非苦惱死又行善不善補特伽羅將命終時自然憶先所習善及與不善或他令彼於爾時於多曾習力最强者心偏記餘悉皆忘若俱平等曾串習彼於爾時隨初自憶或他令憶此不捨不起餘心彼於爾時由二種因增上力故而便命終謂樂著戲論因增上力及淨不淨業因增上力盡先業所引果已若行不善業者於爾時受先所作諸不善業所得不愛果之前相猶如夢中見無量種變怪色相依此相故薄伽梵說若有先作惡不善業及增長已彼於爾時日後分或山山峯影等懸覆遍覆極當知如是補特伽羅從明趣闇先受盡不善業果而修善者與上相當知如是補特伽羅從闇趣明差別者將命終時猶如夢中見無量種非變怪色可意相生若作上品不善業者彼由見斯變怪相故流汗毛豎手足紛亂遂失便穢捫摸虛空翻睛咀沫彼於爾時有如是等變怪相生若造中品不善業者彼於爾時變怪之相或有或無設有不具又諸衆生將命終時乃至未到惛昧想位長時所習我愛現行由此力故謂我當無便愛自身由此建立中有生報若預流果及一來果爾時我愛亦復現行然此預流及一來果於此我愛由智慧力數數推求制而不著猶壯丈夫與羸劣者共相捔力能制伏之當知此中道理亦爾若不還果爾時我愛不復現行又解肢節除天那落所餘生處一切皆有此復二種二輕謂作惡業者謂作善業北拘盧洲一切皆輕又色界沒時皆具諸根欲界沒時隨所有根或具不具又淸淨解脫死者名調善死淸淨不解脫死者名不調善死又將終時作惡業者識於所依從上分捨卽從上分冷觸隨起如此漸捨乃至心處造善業者識於所依從下分捨卽從下分冷觸隨起如此漸捨乃至心處當知後識唯心處捨從此冷觸遍滿所依云何生由我愛無閒已生故無始樂著戲論因已熏習故淨不淨業因熏習故彼所依體由二種因增上力從自種子卽於是處中有異熟閒得生死生同時如秤兩頭低昂時而此中有必具諸根造惡業者得中有如黑羺光或陰闇夜作善業所得中有如白衣光或晴明夜此中有是極淸淨天眼所行彼於爾先我愛類不復現行識已住故於境界起戲論愛隨所當生卽彼形類中有而生又中有眼猶如天眼有障㝵唯至生處所趣無礙如得神亦唯至生處又由此眼見己同類中有有情及見自身當所生處又造惡業者眼視下淨伏面而行往天趣者往人趣者又此中有若未得生極七日住有得生緣卽不決定極七日未得生緣死而復生極七日如是展轉未得生緣乃至七七日自此已後決得生緣又此中有日死已或卽於此類生若由餘業可中有種子轉者便於餘類中生此中有有種種名或名中有在死生二有中閒生故或名健達縛尋香行故香所資故或名意行以意爲依往生處故此說身往非心緣往或名趣生對生有起故當知中有除無色界一切生處又造惡業者謂屠羊猪等隨其一類由住不律儀衆同分故感那落迦惡不善業及增長已彼於爾時猶如夢中自於彼業所得生處還見如是種類有情及屠羊等事先所習憙樂馳趣卽於生處境色所中有遂滅生有續起彼將沒時先死有見紛亂色如是乃至生滅道如前應知又彼生時唯是化生處具足復起是心而往趣之我與嬉戲受樂習諸伎藝彼於爾時倒謂造種種事業及觸冷熱若離妄如是相貌尚無趣欲何況往彼不往彼便不應生如於那落迦如是於餘似那落迦鬼趣中生當知亦爾如癭鬼等又於餘鬼傍生人等及欲色界天衆同分中將受生時於當生見己同類可意有情由此於彼其欣欲卽往生處便被拘㝵死生道如前應知又由三處現前得入母胎一其母調適而復値時二父母和合俱起愛染三健達縛正現在前復無三種障礙謂產處過患所作子過患所作宿業過患所作云何產處過患謂若產處爲風之所逼迫或於其中有麻麥果或復其門如車螺形有形有曲有穢有濁如是等類產處過患應知云何種子過患謂父出不淨非母母非父或俱不出或父精朽爛或母或俱如是等類種子過患應知云何宿業過患謂或父或母不作不增長感子之業或復俱無或彼有情不作不增長感父母業或彼父母作及增長感餘子業或彼有情作及增長感餘父母業或感大宗葉業或感非大宗葉業如是等類宿業過患應若無如是三種過患三處現前入母胎彼卽於中有處自見與己同類有情爲嬉戲等於所生處起希趣彼於爾時見其父母共行邪行出精血而起顚倒起顚倒者謂見父母爲邪行時不謂父母行此邪行起倒覺見己自行見自行已便起貪若當欲爲女彼卽於父便起會貪若當欲爲男彼卽於母起貪亦爾往逼趣若女於母欲其遠去若男於心亦復爾生此欲已或唯見男唯見女如如漸近彼之處所如是如漸漸不見父母餘分唯見男女根卽於此處便被拘㝵死生道理是應知若薄福者當生下賤家彼於死時及入胎時便聞種種紛亂之聲及自妄見入於叢林竹葦蘆荻等中若多福者當生尊貴家彼於爾時便自聞有寂靜美妙可意音聲及自妄見昇宮殿等可意相現爾時父母貪愛俱極最後決定各出一滴濃厚精二滴和合住母胎中合爲一段如熟乳凝結之時當於此處一切種子異熟所攝執受所依阿賴耶識合依託云何和合依託謂此所出濃厚精血合成一段與顚倒緣中有俱與滅同時卽由一切種子識功能力故有餘微細根及大種和合而生及餘有根同分精血和合摶生於此時中識已住結生相續卽此名爲羯羅藍位此羯羅藍中有諸根大種唯與身根及根所依處大種俱生由此身根俱生諸根大種力故眼等諸根次第當生又由此身根俱生根所依處大種力故諸根依處次第當由彼諸根及所依處具足生故得圓滿依止成就又此羯羅藍色與心心所安危共同故名依託由心心所依託力故色不爛壞色損益故亦損益是故說彼安危共同又此羯羅藍識最初託處卽名肉心如是識於此處最初託卽從此處最後捨後序 中書令臣許敬宗 製原夫三才成位爰彰開闢之端六羽爲君猶昧尊卑之序訊餘軌於襄陸淪胥靡徵考陳迹於懷英寂寥無紀曁乎黃軒振武玄頊疏功帝道盛於唐虞王業著於殷夏葳蕤玉冊照耀金圖茂範曾芬詳諸歷選然則基神襲聖衍慶摛和軼三代而孤標掩百王而迥秀大唐皇帝無得而稱矣斷鼇初載萬有於是宅心飛龍在辰六幽於是仰德偃洪流而恢地絡練淸氣而緝天維散服韜戈扇無爲之道移澆反璞不言之化悠悠庶類叶夢於華胥蠢懷生遂性於仁壽大禮大樂包曲而掩宣榭宏謨宏典澄璧水而藻環林瑞露禎雲翊紫空而表貺祥鱗慶翼繞丹禁而呈符歲精所記之州咸爲疆場暄谷所謨之縣竝入隄封廣闢轅宮被文軌於殊俗還開姬弈均正朔於王會大業成矣大化淸矣於是遊心羽陵寓情延閣摠萬篋於天縱資一貫於生知洞照 神襟深窮性道俯同小伎則絢發三辰習微毫則妙逾八體居域中之大寶畢天下之能事雖則甲夜觀書見稱優洽華旦成曲獨擅風猷仰挍鴻徽豈可同年而語矣有玄奘法師者彰辯慧躡身子之高蹤生稟神奇摩什之芳軌爰初束髮卽事抽簪出蓋纏深悟空假硏求四諦嗟謬旨於眞宗鑽仰一乘鑑訛文於實相迺發弘誓願起大悲心思拯迷途尋正教幸屬時康道泰遠安邇肅裳裹足直趣迦維闡 皇澤於遐徵釋教於前域越蔥嶺之外猶跬步而忘遠遵竹園之左譬親受而何訪道周遊十有七載經途所亘百有餘國異方之語資一音而竝貫譯之經罄五財而畢寫若誦若閱靑蓮之受持半句半偈隨白馬而俱以貞觀十九年持如來肉舍利一百五十粒佛像七軀三藏聖教要文凡六百五十七部二月六日還至長安勅於弘福寺安置令所司供給召諸名僧二十一人學通內外者共譯持來三藏梵本至二十一年五月十五日肇譯瑜伽師地論論梵本四萬頌頌三十二字凡有五分宗明十七地三藏法師玄奘敬執梵文譯爲唐弘福寺沙門靈會靈隽智開知仁會昌寺沙門玄度瑤臺寺沙門道卓大摠持寺沙門道觀淸禪寺沙門明烝義筆受弘福寺沙門玄謨證梵大摠持寺沙門玄應正字大摠持寺沙門道洪實際寺沙門明琰寶昌寺沙門法祥羅漢寺沙門惠貴弘福寺沙門文備蒲州拪巖寺沙門神泰廓州法講寺沙門道深詳證大義地分中五識身相應地意地有尋有伺地無尋唯伺地無尋無伺地凡十七卷普光寺沙門道智受旨證文摩呬多地非三摩呬多地有心無心聞所成地思所成地修所成地十卷蒲州普救寺沙門行友受旨證聲聞地初瑜伽種姓地盡第二瑜伽處凡九卷玄法寺沙門玄賾受旨證文聲聞地第三瑜伽處盡獨覺地凡五卷汴州眞諦寺沙門玄忠受旨證文菩薩地有餘依地無餘依地十六卷簡州福衆寺沙門靖邁受旨證文攝決擇分凡三十卷大摠持寺沙門辯機受旨證文攝異門分攝釋凡四卷普光寺沙門處衡受旨證攝事分十六卷弘福寺沙門明濬受旨證文銀靑光祿大夫行太子左庶子高陽縣開國男臣許敬宗詔監閱至二十二年五月十五日絕筆摠成一百卷佛滅度後彌勒菩薩自睹史多天宮降于中印度阿瑜他國無著菩薩之所說也斯固法門極地該三藏之遺文如來後心暢五乘之奧旨玄宗微妙不可思議僧徒竝戒行圓深道業貞固欣承嘉召得奉高人各罄幽心共稟新義隨畢奏上有感宸衷爰降殊恩親裁鴻序情超繫象理絕名言 皇太子分耀黃纘基靑陸北搖傳樂仰金聲而竊東明御辯瞻玉裕而多慚九載勤漢儲斯陋一朝成賦魏兩韜英睹天文頂戴無已爰抽秘藻讚歎功德紆二聖之仙詞闡三藏之幽鍵載揚佛日式導玄津開夏景於蓮花法流逾潔泛春光於貝葉道樹增輝冀夫 聖藻長懸與天地而無極如廣被隨塵沙而不窮凡厥含靈知所歸矣瑜伽師地論卷第一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운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를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는데, 태종이 작성한 서문이 바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이다.
  2. 2)죄를 지은 결과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세 가지 길로, 곧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을 말한다.
  3. 3)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를 말한다.
  4. 4)삼해탈(三解脫), 또는 삼삼매(三三昧)라고도 한다. 아공(我空), 법공(法空), 아법구공(我法俱空)을 가리키기도 하고 삼공해탈(三空解脫), 무상해탈(無相解脫), 무원해탈(無愿解脫)을 가리키기도 한다.
  5. 5)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안인(安忍)의 뜻으로, 보살이 도리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인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멸인(無滅忍)ㆍ인연인(因緣忍)ㆍ무주인(無住忍)이 있다.
  6. 6)인간의 심성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경계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7. 7)원문에는 ‘척(隻)’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아 ‘형(夐)’으로 교정하여 번역하였다.
  8. 8)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것을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다. 황제술성기는 바로 고종이 기문을 썼다는 의미이다.
  9. 9)『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상이나 탑의 상부를 장엄하게 꾸미는 데 사용된 덮개를 말한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으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10. 10)고승이 불경을 강론할 때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11. 11)향취산(香醉山)의 남쪽, 대설산(大雪山)의 북쪽에 있다는 상상의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 연못은 둘레가 8백 리이며, 여기에 용왕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려 섬부주(贍部州)를 비옥하게 한다고 전해진다.
  12. 12)경기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기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으로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지역을 말한다. 즉 나라의 중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3. 13)중국 고대 관중지방에 흐르는 8개의 하천을 말한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이 바로 이 관중지방에 있다.
  14. 14)색계의 네 가지 단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세계로, 물질세계는 존재하나 감각의 욕망에서는 벗어난 청정(淸淨)한 세계를 말한다.
  15. 15)마음을 더럽히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16. 16)원문에는 ‘치(夂)’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구(久)’로 번역하였다.
  17. 17)원문에는 ‘양(楊)’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양(揚)’으로 번역하였다.
  18. 18)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나 상태를 말한다.
  19. 1)이하는 17지(地)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설하는 부분이다.
  20. 2)유가(瑜伽)의 원어는 산스크리트의 남성 명사로서 Yoga이며, 여성명사로 표현하면 유기(瑜祇:Yogī)라고 한다. 한역으로 상응(相應)이라고 번역한다.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에서는 “일체승(一切乘)의 경행과(境行果) 등의 일체 모든 제 온(蘊)을 모두 유가라고 이름한다. 일체가 모두 방편선교(方便善巧)와 상응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에서는 네 가지의 유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경유가(境瑜伽) - 일체의 경(境)은 무전도(無顚倒)의 성(性), 불상위(不相違)의 성(性), 능수순(能隨順)의 성(性), 구경취(究竟趣)의 성(性)으로서 올바르게 교리의 행과(行果)와 상응하기 때문에 경유가(境瑜伽)라고 한다. ②행유가(行瑜伽) - 일체의 행(行)은 서로 상응하고, 정리(正理)로 지칭되고, 정교(正敎)에 수순하고, 정과(正果)로 나아가기 때문에 행유가(行瑜伽)라고 한다. ③과유가(果瑜伽) - 일체의 과(果)는 서로 수순(隨順)하고, 정리(正理)에 화합하고, 정교(正敎)에 수순하고, 정인(正因)으로 지칭되기 때문에 과유가(果瑜伽)라고 한다. ④교유가(敎瑜伽) - 일체삼승(一切三乘)의 성교(聖敎)는 정리(正理)로 지칭되고, 정행(正行)에 수순하고, 정과(正果)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교유가(敎瑜伽)라고 한다. 사(師)란 산스크리트어 Ācārya(;阿遮羅)의 한역으로 아차리(阿闍梨)ㆍ아차리아(阿遮梨耶) 등으로 음사되며, 궤범사(軌範師)ㆍ정행(正行)ㆍ교수(敎授) 등으로 의역된다. 유가사(瑜伽師)의 명칭에 대하여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에서는 두 가지로 풀이되는데,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3승(乘)의 행자(行者)가 문(聞)ㆍ사(思) 등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유가(瑜伽)를 익히고 행하며, 분(分)에 따라서 만족하고 전전(展轉)하여 모든 유정을 조화(調化)하기 때문에 유가사(瑜伽師)라고 한다. ②모든 여래(如來)는 유가(瑜伽)를 완벽하게 증득하고,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이 유가(瑜伽)를 지니게 하며, 일체의 성제자(聖弟子) 등을 조화(調化)롭게 하여 그로 하여금 차제(次第)로 정행(正行)을 닦게 하기 때문에 유가사(瑜伽師)라고 한다. 지(地)란 산스크리트어 Bhūmi의 의역(意譯)으로서 생성(生成)하여 머무른다[住持]는 뜻이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는 처음 5식신지(識身地)부터 마지막의 무여의지(無餘依地)에 이르기까지 범(梵)과 성(聖)의 인과(因果)를 모두 갖추고, 모두 함께 능히 생성하고 머무름[住持]이 지(地)와 비슷한 종류이므로 지(地)의 명칭을 따서 붙인 것이다.
  21. 3)산스크리트어 Udāna의 한역(漢譯) 음사로서 집시(集施) 또는 자설(自說)이라고도 번역된다. 축약된 말로서 많은 법(法)의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게송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22. 4)5식(識)이란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식(身識)을 말한다. 식(識)이란 체취(體聚)의 뜻으로서 5식 각각의 자체(自體)를 의미하며, 신(身)이란 5식을 한데 묶어서 하나[一聚]로 하기 때문에 신(身)이라고 하는 것이며, 상응이란 섭속(攝屬)의 뜻으로서 5식신(識身)에 포함되는 법을 설하기 때문에 5식신상응(識身相應)이라고 하는 것이며, 지(地)란 경계(境界)의 뜻으로서 5식신은 유가관행자(瑜伽觀行者)의 소행(所行)의 경계가 되므로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라고 하는 것이다.
  23. 5)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ㆍ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ㆍ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의 세 가지 지(地)를 의미한다.
  24. 6)범어(梵語) Samādhi의 음사어[音譯]로서 보통 등지(等持)라고 의역(意譯)된다. 이는 정(定)의 다른 이름으로서, 정(定)을 닦으면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물러서 산란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하게 마음을 유지하여 경계에 나아가기 때문에 한역(漢譯)에서는 등지(等持)라고 번역한 것이다.
  25. 7)삼마희다지(三摩呬多地)를 의미한다.
  26. 8)비삼마희다지(非三摩呬多地)를 의미한다.
  27. 9)문소성지(聞所成地)ㆍ사소성지(思所成地)ㆍ수소성지(修所成地)를 의미한다.
  28. 10)성문지(聲聞地)ㆍ독각지(獨覺地)ㆍ보살지(菩薩地)를 의미한다.
  29. 11)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에 대하여 종합적 해설을 하는 부분이다.
  30. 12)5식신(識身)을 의미한다.
  31. 13)범어 Saṃyukta의 의역(意譯)으로서 도움을 주거나 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32. 14)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한다. 그 첫 번째로 안식(眼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ㆍ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조반(助伴)ㆍ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33. 15)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에 대한 별석(別釋)이다.
  34. 16)식(識)이 대상의 경계를 요지판별(了知辦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심왕(心王)의 인식작용을 의미한다.
  35. 17)안식(眼識)을 가리킨다.
  36. 18)소의(所依)에는 세 가지, 즉 구유의(俱有依)ㆍ등무간의(等無間依)ㆍ종자의(種子依)가 있다. 이 가운데에 구유의(俱有依)란 식(識)과 동시(同時)와 구시(俱時)에 있는 근(根)을 의미한다. 안식(眼識)이 일어나는 데에는 안근(眼根)인 생리적 기관을 소의(所依)로 하고 소의(所依)의 안근은 능의(能依)의 안식(眼識)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유의(俱有依)라고 하는 것이다.
  37. 19)첫 번째의 안식(眼識)이 현재 있을 때에는 두 번째의 안식은 현재에 생겨날 수가 없다. 현재 있는 첫 번째의 안식이 사라져야만 두 번째의 안식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첫 번째의 안식이 과거로 물러날 때 자신이 점하고 있는 현재의 위치를 두 번째의 안식에게 물려주고 이끌어 주는 작용을 등무간연(等無間緣)라고 하고, 의근(意根)이라고 이름한다. 그래서 소의(所依)의 등무간연인 첫 번째의 안식의 심ㆍ심소법(心心所法)과 두 번째의 심ㆍ심소법(心心所法)은 체(體)와 용(用)의 관계와 같아서 제 3의 심ㆍ심소(心心所)가 개입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간격이 없기 때문에 등무간(等無間)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38. 20)종자(種子)란 제8식(第八識)에 섭장(攝藏)되어 있으며, 친히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의 현행(現行)을 생기게 하는 공능차별(功能差別)을 의미한다. 안식(眼識)이 생길 때에는 안식의 종자에 의지하게 되므로 종자의(種子依)라고 하는 것이다.
  39. 21)안식(眼識)을 가리킨다.
  40. 22)변애(變礙)의 뜻으로 일반적으로 물질(物質)을 의미하나, 불전(佛典)에서는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의 5근(根)과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境) 및 무표색(無表色)을 합쳐서 색(色)이라고 통칭한다.
  41. 23)색(色)과 반대되는 것으로 변애(變礙)의 작용이 없는 심(心)ㆍ심소법(心所法)을 비색(非色)이라고 한다.
  42. 24)등무간의(等無間依)와 종자의(種子依)를 가리킨다.
  43. 25)일체의 물질(物質)을 능히 만들기 때문에 능조(能造)의 4대종(大種)이라고도 한다. 견성(堅性)을 능히 지니는 지대(地大)와 습성(濕性)을 능히 지니는 수대(水大)와 난성(煖性)을 능히 지니는 화대(火大)와 동성(動性)을 능히 장양(長養)하는 풍대(風大)를 4대(四大)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4대(大)는 물질이 생겨나는 것을 도와서 능히 만드는 인(因)이 되기 때문에 종(種)이라고 하며, 모든 물질을 두루 만들기 때문에 대(大)라고 한다.
  44. 26)정(淨)이란 정명(淨明)의 뜻이며, 안근(眼根)은 정명(淨明)과 같은 주보(珠寶)의 빛과 같다. 또한 5근(根)은 5경(境)을 비추어 주는 영묘(靈妙)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정색(淨色)이라고 하는 것이다.
  45. 27)견(見)은 나타나 보이는 시현(示現)의 뜻이며, 유견(有見)은 방소(方所)가 있어서 여기에 있다거나 저기에 있는 따위의 시현되는 대상의 법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무견(無見)은 이와 반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對)는 장애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유대(有對)란 예를 들어 손과 손이 마주치거나 물건과 물건이 마주치면 서로 장애가 되어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와 같이 장애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무대(無對)는 이와 반대되는 것이다. 『본론(本論)』에서는 안근(眼根) 등의 오근(五根)은 육안(肉眼)이 미치지 않고 방소(方所)를 시현(示現)하지 않기 때문에, 무견(無見)라고 하고, 장애를 대하기 때문에 유대(有對)라고 한다.
  46. 28)안식(眼識)과 계속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47. 29)제7식(第七識)의 유루분별심(有漏分別心)과 언어(言語)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분별심과 언어의 능훈습력(能熏習力)으로 인하여 제8식(第八識)에서 종자를 훈습(薰習)하는데, 이를 명언종자(名言種子)라고 하며, 이 종자의 잠재되어 있는 공능(功能)으로 인하여 뒤에 다시 제 온(蘊)이 생겨나올 수 있는 원인이 된다.
  48. 30)안식(眼識)을 가리킨다.
  49. 31)유견유대색(有見有對色)을 말하며, 12처(處)ㆍ18계(界)의 색처(色處)를 말한다. 이 때 유견유대(有見有對)라고 하는 것은 가히 볼 수 있는 것[可見]으로서 침입할 수 없는 성품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50. 32)유견유대(有見有對)의 색(色)을 말한다.
  51. 33)맑은 하늘이 드러날 때에 하늘의 허공에 나타나는 유리색(瑠璃色)을 의미한다.
  52. 34)안식(眼識)의 소행(所行)이란 심식(心識)이 여러 가지를 살피면서 유력(遊歷)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53. 35)무간(無間)이란 하나의 업(業)이 상속(相續)하여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54. 36)유간(有間)이란 사이에 끊어짐이 있는 것으로 곧 중도(中途)에 끊어졌다가 다음 번에는 다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55. 37)이곳이란 먼저 생긴 곳을 의미한다.
  56. 38)사업(思業)을 의미한다.
  57. 39)겉으로 보기에 좋게 드러난 색을 말한다.
  58. 40)겉으로 보기에 나쁘게 드러난 색을 말한다.
  59. 41)호현색(好顯色)도 악현색(惡顯色)도 아닌 현색(顯色)을 의미한다.
  60. 42)일체(一切)의 유위법(有爲法)은 중연소생(中椽所生)의 의타기성(依他起性)이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색(色)과 흡사하게 현현한다고 한다.
  61. 43)심(心), 즉 심왕(心王)의 부수적인 마음의 작용을 의미하며, 촉(觸)ㆍ작의(作意)ㆍ수(受)상(想)ㆍ사(思) 등은 심왕 소유의 권속(眷屬)이므로 심소유(心所有)라고 하며 간략하게 심소(心所)라고도 한다.
  62. 44)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심(心)을 경각시켜서 대경(對境)에 나아가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63. 45)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심(心)ㆍ심소(心所) 및 근(根)과 경(境)의 세 가지를 화합시켜서 적의(適意)ㆍ부적의(不適意)ㆍ적의도 부적의도 아닌 경[非適意非不適意境]을 취하는 작용을 한다.
  64. 46)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 거스르고[違], 수순하며[順], 거스르지도 않고 수순하지도 않는 중간의 경계를 영납(領納)하여 고(苦)ㆍ낙(樂)ㆍ사(捨)를 아는 작용을 한다.
  65. 47)5변행심소(五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경(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상(像)을 취하여 받아들이고 언어로 표현하여 대경(對境)을 명명(命名)하는 작용을 한다.
  66. 48)5변행심소(遍行心所) 가운데에 하나로서 신(身)ㆍ어(語)ㆍ의(意)의 3업(業)의 작용을 하며, 업의 체(體)에 해당한다. 심리학(心理學)에서 말하는 의지(意志)에 상당(相當)한다.
  67. 49)심소유법(心所有法)의 하나 하나를 말한다.
  68. 50)여섯 가지 안식(眼識)의 작업(作業) 가운데에 두 번째의 작업을 말하는 내용이다.
  69. 51)여섯 가지 안식의 작업 가운데에 세 번째의 작업을 말하는 내용이다.
  70. 52)여섯 가지 안식의 작업 가운데에 네 번째의 작업을 말하는 내용이다.
  71. 53)선(善)ㆍ악(惡)ㆍ무기(無記)의 3성(性) 가운데에 선(善)과 악(惡)을 말한다.
  72. 54)여섯 가지 안식의 작업 가운데에 다섯 번째의 작업을 말하는 내용이다.
  73. 55)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것이다. 그 두 번째로 이식(耳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ㆍ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조반(助伴)ㆍ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74. 56)무견유대성(無見有對聲)을 의미한다.
  75. 57)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소리들을 말한다.
  76. 58)집수(執受)는 신근(身根)의 각수(覺受)를 생기게 함을 의미하므로, 유정(有情)의 육체로부터 생겨나는 언어ㆍ박수 등의 소리를 집수대종(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77. 59)불집수(不執受)는 각수(覺受)가 없는 것을 의미하므로 무감각의 4대종(大種)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자연의 여러 가지 소리를 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78. 60)손으로 북을 쳐서 나는 소리와 같이 유정물(有情物)과 무정물(無情物)이 만나서 소리를 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79. 61)집수대종(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80. 62)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81. 63)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82. 64)구상위(俱相違)란 듣기 좋은 가의(可意)의 소리도 아니고, 듣기 나쁜 불가의(不可意)도 아닌 불고불락(不苦不樂)의 무기(無記)의 소리를 의미한다.
  83. 65)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가운데에, 그 세 번째로 비식(鼻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ㆍ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조반(助伴)ㆍ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84. 66)무견유대향(無見有對香)을 의미한다.
  85. 67)호향(好香)도 악향(惡香)도 아닌 향기를 말한다.
  86. 68)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가운데에, 그 네 번째로 설식(舌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ㆍ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조반(助伴)ㆍ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87. 69)무견유대미(無見有對味)를 의미한다.
  88. 70)가의(可意)도 아니고 불가의(不可意)도 아닌 맛[味]을 말한다.
  89. 71)이하는 5식신지(識身地)의 하나 하나를 나누어 해설하는 가운데에, 그 다섯 번째로 식식(身識)의 다섯 가지 상(相), 즉 자성(自性)ㆍ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조반(助伴)ㆍ작업(作業)에 대하여 설명한다.
  90. 72)무견유대촉(無見有對觸)를 의미한다.
  91. 73)호촉(好觸)은 닿아서 낙수(樂受)를 일으키는 촉(觸)이며, 악촉(惡觸)은 닿아서 고수(苦受)를 일으키는 촉(觸)이며, 사처소촉(捨處所觸)은 닿아서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을 일으키는 촉(觸)을 말한다.
  92. 74)이하는 5식(識)과 근(根)ㆍ경(境)ㆍ작의(作意)의 관계를 밝힌다.
  93. 75)안근(眼根)이 결함없이 구족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94. 76)대상의 경계(境界)가 현재 나타나야 하는 것을 말한다.
  95. 77)능생(能生)의 작의(作意)는 소생(所生)의 안식(眼識)와 능(能)ㆍ소(所)의 관계로 주관과 객관의 관계이며, 능생(能生)이란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96. 78)자동적으로 대상에 취하는 의도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97. 79)능동(能動)의 작의(作意)에 의하여 일어나게 되는 피동(被動)의 안식(眼識)을 의미한다.
  98. 80)이하는 5식(識)과 솔이심(率爾心)ㆍ심구심(尋求心)ㆍ결정심(決定心)ㆍ염정심(染淨心)ㆍ등류심(等流心)의 5심(心)과의 관계에 대하여 밝힌다.
  99. 81)솔이심(率爾心)이란 안식과 동시에 의식이 갑작스러운 대경(對境)에 맞닥뜨렸을 때의 갑작스러운 심리상태를 말한다.
  100. 82)심구심(尋求心)이란 솔이심 다음으로 의식이 대경(對境)에 대해서 무언가를 희망하고 추구하는 단계의 마음을 말한다.
  101. 83)결정심(決定心)이란 추구심 다음으로 의식이 대경(對境)에 대해서 무엇인지를 알고 인가하고 결정하는 단계의 마음을 말한다.
  102. 84)솔이심(率爾心)을 가리키며, 5심(心) 가운데에 첫 번째의 심(心)이다.
  103. 85)심구심(尋求心)을 가리키며, 5심(心) 가운데에 두 번째 심(心)이다.
  104. 86)5심(心) 가운데에 세 번째 심(心)이다.
  105. 87)염(染)ㆍ정(淨)이란 번뇌에 물들고 번뇌에 물들지 않는 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정심 다음에 의식이 대경(對境)에 대해서 악심(惡心)을 일으키거나 혹은 선심(善心)을 일으키는 단계의 마음을 의미한다.
  106. 88)5심(心) 가운데에 네 번째의 심(心)이다.
  107. 89)염정(染淨)의 의식(意識)이 끌어당긴 것에 의해서 이후에 의식 뿐만이 아니라 안식(眼識)도 또한 염정(染淨)의 선(善)ㆍ악(惡)에 대해서 상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등류(等流)의 어원적 의미는 등동(等同)ㆍ유류(流類)이며, 전념(前念)ㆍ후념(後念), 염정선악(染淨善惡), 동성동류(同性同流)의 뜻도 있다.
  108. 90)5심(心) 가운데에 다섯 번째의 심(心)이다.
  109. 91)이하는 5식(識)의 5상(相)을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
  110. 92)전절(前節)에서는 8식 가운데 전5식(前五識)을 설하였고, 지금부터는 제6, 제7, 제8의 세 가지 식(識)을 설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식은 공통적으로 의근(意根)에 포함되기 때문에 의지(意地)에서 설명한다. 이를 원래는 ‘의식신상응지(意識身相應地)’라고 해야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에 배대하여 볼 때 맞는 명칭이지만 지금은 ‘식신상응(識身相應)’의 네 글자를 축약하여 의지(意地)라고 한다.
  111. 93)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와 같이 의지(意地)의 5상(相), 즉 자성(自性)ㆍ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조반(助伴)ㆍ작업(作業)에 대하여 밝힌다.
  112. 94)의지(意地)를 가리킨다.
  113. 95)유루종자(有漏種子)는 본식(本識)에 따라서 유루무기(有漏無記)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용(用)은 체(體)에 의지한다는 뜻이다.
  114. 96)이러한 종자(種子)는 본식(本識)에 의지하더라도 선(善)ㆍ염(染)들을 일으키는 공능(功能)이 달라서 같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의부(依附)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115. 97)제7식을 의미한다.
  116. 98)의식(意識)을 가리킨다.
  117. 99)전5식(前五識)과 공통하지 않는 의식 특유의 대경(對境)을 의미한다.
  118. 100)색온(色蘊)과 수온(受蘊)과 상온(想蘊)과 행온(行蘊)을 의미하며, 식온(識蘊)을 제외한 것은 다음의 6내처(六內處) 중에 의처(意處)가 있기 때문이다.
  119. 101)무견무대색(無見無對色)은 무표색(無表色)을 의미한다.
  120. 102)6근(六根) 즉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를 6내처라고 한다.
  121. 103)작의(作意)ㆍ촉(觸)ㆍ수(受)ㆍ상(想)ㆍ사(思)는 5변행심소(遍行心所)를 나타낸다.
  122. 104)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삼마지(三摩地)ㆍ혜(慧)는 5별경심소(別境心所)를 나타낸다.
  123. 105)신(信)ㆍ참(慚)ㆍ괴(愧)ㆍ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ㆍ정진(精進)ㆍ경안(輕安)ㆍ불방일(不放逸)ㆍ사(捨)ㆍ불해(不害)는 선심소(善心所)를 나타낸다.
  124. 106)탐(貪)ㆍ에(恚)ㆍ무명(無明)ㆍ만(慢)ㆍ견(見)ㆍ의(疑)는 6대번뇌(大煩惱)를 나타낸다.
  125. 107)분(忿)ㆍ한(恨)ㆍ복(覆)ㆍ뇌(惱)ㆍ질(嫉)ㆍ간(慳)ㆍ광(誑)ㆍ첨(諂)ㆍ교(憍)ㆍ해(害)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혼침(惛沈)ㆍ도거(掉擧)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사욕(邪欲)ㆍ사승해(邪勝解)ㆍ망념(忘念)ㆍ산란(散亂)ㆍ부정지(不正知)는 22수번뇌(隨煩惱)를 나타낸다.
  126. 108)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는 4부정심소(不定心所)를 나타낸다.
  127. 109)심왕(心王)과 구유(具有)하고 상응(相應)한다는 뜻이다.
  128. 110)모든 심소유법(心所有法)은 심왕(心王)에 따라 다니는 것이지만 그 하나 하나의 행상(行相)은 동일하지 않고 그 나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129. 111)의식(意識)을 가리킨다.
  130. 112)이하는 의식(意識)의 작업(作業)을 밝히는 것으로 여기에는 2문(門)이 있다. 2문(門) 가운데의 그 첫 번째는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작업(作業)을 밝히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의식이 전5식(前五識)과 함께하지 않는 불공업(不共業)에 대하여 밝히는 것이다. 다음의 일단(一段)은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작업(作業)을 밝히는 부분이다.
  131. 113)자상(自相)이란 사법(事法)의 자체 특유의 상(相)이다. 즉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 등의 각자 특유의 상(相)으로서 다른 것과 공통하지 않는 대경(對境)을 의미한다. 공상(共相)이란 제 법(法)과 공통하는 것으로서 즉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 등과 같은 상(相)이며 이는 일체 유위법(有爲法)에 공통된 상, 즉 공상(共相)이다.
  132. 114)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두 번째 작업(作業)이다.
  133. 115)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세 번째 작업(作業)이다.
  134. 116)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네 번째 작업(作業)이다.
  135. 117)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다섯 번째 작업(作業)이다.
  136. 118)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에 대한 여섯 번째 작업(作業)이다.
  137. 119)5식신(識身)을 말한다.
  138. 120)5식신(識身)을 말한다.
  139. 121)이하는 의식의 작업(作業) 가운데의 그 두 번째로 의식(意識)이 전5식(前五識)과 함께하지 않는 불공업(不共業)에 대하여 밝힌다. 여기에서는 소연분별(所緣分別)ㆍ소연심려(所緣審慮)ㆍ취(醉)ㆍ광(狂)ㆍ몽(夢)ㆍ각(覺)ㆍ민(悶)ㆍ성(醒)ㆍ신업(身業)과 어업(語業)ㆍ이욕(離欲)ㆍ이욕퇴(離欲退)ㆍ단선근(斷善根)ㆍ속선근(續善根)ㆍ생사(生死)의 열 네 가지 문(門)으로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140. 122)대상[義]이란 범어 Artha의 의역(意譯)으로서 경계라는 뜻이다.
  141. 123)신체가 완벽하게 결함없이 성장하여 구족한 것을 의미한다.
  142. 124)과거의 소연경(所緣境)에 생각없이 끌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143. 125)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의 4위의를 일으키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144. 126)예술ㆍ가곡 등을 일으키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145. 127)선정(禪定)ㆍ신통력(神通力)으로서 하나의 경계를 변화하는 마음을 뜻한다.
  146. 128)교법(敎法)에 의하여 생기에 되는 지혜를 의미한다.
  147. 129)알아야 할 대상의 현상들을 의미한다.
  148. 130)알아야 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149. 131)사혈(死穴) 또는 사절(死節)이라고 번역한다. 우리 몸 안에 사혈은 64곳 혹은 120곳이 있는데, 이 곳을 정통으로 맞게 되면 죽게 된다.
  150. 132)미치거나 지랄병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151. 133)눈을 감고 흑암(黑暗)의 색상을 관하거나, 어두움에 대하여 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152. 134)습관이 될 정도로 자주 익히는 것을 의미한다.
  153. 135)자신의 내부적인 것이 아닌 외부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154. 136)피로가 다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155. 137)잠을 너무 자서 더 이상 잠을 취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156. 138)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나 다른 사람이 깨우는 등의 일을 말한다.
  157. 139)이때의 지(智)는 지혜(智慧)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을 하는 지(智)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58. 140)6근(根)이 다 구족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159. 141)다른 이로부터 가르침[敎誨]을 받고 수순하는 것을 의미한다.
  160. 142)바른 실천을 의미한다.
  161. 143)하열(下劣)한 근기를 의미한다.
  162. 144)선품(善品)을 가리킨다.
  163. 145)그것의 형상상(形狀相)이란 새로 닦은 선품(善品)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의 형상(形狀)의 상(相)을 억념(憶念)ㆍ사유(思惟)하는 것을 의미한다.
  164. 146)여러 악의 의요[諸惡意樂]들이 현행하는 법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165. 147)상상품(上上品)의 사견(邪見)이 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전(纏)은 전박(纏縛)의 의미로서 번뇌를 일컫는다.
  166. 148)여러 악의 의요들[諸惡意樂]이 현행하는 법에 대하여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167. 149)선근(善根)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종자이고 둘째는 현행이다. 종자의 세력을 끊어서 현행하지 않게끔 하는 것을 끊는다[斷]고 한다.
  168. 150)선근(善根)을 가리킨다.
  169. 151)여러 선의 의요[諸善意樂]들이 현행하는 법을 의미한다.
  170. 152)정법(正法)을 가르치는 스승을 의미한다.
  171. 153)이럴까 저럴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의미한다.
  172. 154)깨달음의 진리를 확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173. 155)『본론(本論)』에서 생사(生死)를 밝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설명된다.
  174. 156)이하 사(死)를 밝히는 두 가지 가운데에, 그 첫 번째로 여섯 가지의 사(死)를 드러내어 해석한다.
  175. 157)때에 맞는 죽음을 의미한다.
  176. 158)때에 맞지 않는 죽음을 의미한다.
  177. 159)과보(果報)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178. 160)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말한다.
  179. 161)발효된 음식, 즉 예를 들어 젓갈 같은 것을 말한다.
  180. 162)추상(麤想)이란 사유(死有)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선(善)과 불선(不善)의 명료한 생각을 의미한다.
  181. 163)세상(細想)이란 정사(正死)의 전찰나의 마음으로서 선(善)ㆍ악(惡)의 법을 기억하지 못하는 무기심(無記心)을 의미한다.
  182. 164)사(死)를 밝히는 두 가지 가운데, 이하는 그 두 번 째로 여덟 가지 문(門)으로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한다. 지금 이 대목은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하는 것 가운데, 첫 번째로 죽을 때 3성(性) 가운데에 어떤 것을 먼저 일으키는가를 분별한다.
  183. 165)보특가라(補特伽羅)는 범어 Pudgala의 음사어[音譯]로서 삭취취(數取趣)라고 의역(意譯)된다. 자주 윤회하면서 6취(趣)의 생을 취한다는 뜻이다. 이는 보통 유정(有情)의 이명(異名)으로 쓰이는 것이다.
  184. 166)자주 익혔던 사(捨)의 평등심(平等心)을 말한다.
  185. 167)이하는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하는 것 가운데, 두 번째로 사인(死因)을 밝힌다.
  186. 168)명언종자(名言種子)의 세력을 의미한다.
  187. 169)업종자(業種子)의 세력을 의미한다.
  188. 170)이하는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하는 것 가운데, 세 번째로 선(善)ㆍ악(惡)의 상(相)을 밝힌다.
  189. 171)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를 가리킨다.
  190. 172)이전에 지었던 모든 불선업소득(不善業所得)의 불애과(不愛果)의 전상(前相)을 가리킨다.
  191. 173)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를 가리킨다.
  192. 174)이전에 불선업(不善業)의 과(果)를 다 받고 나서 불선(不善)을 닦은 보특가라(補特伽羅)와 선(善)을 닦은 보특가라(補特伽羅)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193. 175)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를 가리킨다.
  194. 176)이하는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하는 것 가운데, 네 번째로 윤생(潤生)의 상(相)을 밝힌다.
  195. 177)자신의 몸과 마음을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196. 178)아애(我愛)의 힘을 말한다.
  197. 179)아애(我愛)를가리킨다.
  198. 180)중유(中有)의 생보(生報)는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첫째는 중유(中有)는 즉(卽) 생보(生報)라고 해석하는 지업석(持業釋)이며, 둘째는 중유(中有)와 생보(生報)를 다르게 보는 상위석(相違釋)이다.
  199. 181)이하는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하는 것 가운데, 다섯 번째로 지절(肢節)이 풀리는 것을 밝힌다.
  200. 182)5체4지(五體四支)의 뼈 마디마디를 의미한다.
  201. 183)이하는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하는 것 가운데, 여섯 번째로 근(根)이 사라지는 점(漸)ㆍ돈(頓)의 시(時)를 밝힌다.
  202. 184)이하는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하는 것 가운데, 일곱 번째로 사(死)의 명칭의 차별을 밝힌다.
  203. 185)청정해탈(淸淨解脫)이란 이미 번뇌를 해탈하여 청정해진 것을 의미한다.
  204. 186)이하는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해석하는 것 가운데, 여덟 번째로 죽을 때 몸을 버리는 차별의 상(相)을 밝힌다.
  205. 187)신체(身體)를 말한다.
  206. 188)심장을 의미한다.
  207. 189)심처(心處)를 가리킨다.
  208. 190)이하는 생(生)을 중유(中有)ㆍ생유(生有)ㆍ본유(本有)의 세 가지로 밝히는 가운데에, 그 첫 번째로 중유(中有)에 대하여 스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209. 191)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첫 번째로 중유(中有)의 인연(因緣)을 밝힌다.
  210. 192)희론(戱論)의 언어에 의해서 훈습되어진 종자, 즉 명언종자(名言種子)를 의미한다. 이는 제 법(法)의 자과(自果)를 생기게 하는 친인연(親因緣)이며, 여기서의 인(因)은 종자를 의미한다.
  211. 193)중유(中有)의 색심오온(色心五蘊)의 소의(所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체(體)를 의미한다.
  212. 194)무시이래[無始]로 희론(戱論)을 낙착(樂著)한 인(因)과 정(淨)ㆍ부정(不淨)의 업인(業因)을 말한다.
  213. 195)명언종자(名言種子)를 말한다.
  214. 196)선업(善業)으로 부르게 되는[所感] 가애(可愛)의 과보(果報), 또는 악업(惡業)으로 부르게 되는[所感] 불가애(不可愛)의 과보를 의미한다.
  215. 197)사유(死有) 다음 찰나에 간격없이 곧바로 중유(中有)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216. 198)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두 번째로 생사(生死)의 동시(同時)를 밝힌다.
  217. 199)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세 번째로 중유(中有)가 제 근(根)을 갖추는 것을 밝힌다.
  218. 200)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네 번째로 중유(中有)의 상상(相狀)을 밝힌다.
  219. 201)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다섯 번째로 중유(中有)는 매우 깨끗한 천안(天眼)으로 경(境)을 대함을 밝힌다.
  220. 202)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여섯 번째로 죽을 때 아애(我愛)가 현행(現行)하는 것과는 다름을 밝힌다.
  221. 203)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일곱 번째로 중유(中有)의 당생(當生)의 형(形)을 밝힌다.
  222. 204)식(識)이 이미 중유의 몸을 받아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상속하여 머무르기 때문에 자아(自我)의 단멸(斷滅)을 두려워하여 자체(自體)의 아애(我愛)를 집착하지 않지만 경계에 대한 애(愛)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223. 205)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여덟 번째로 중유(中有)의 안(眼)을 밝힌다.
  224. 206)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아홉 번째로 중유신(中有身)이 가는 곳을 밝힌다.
  225. 207)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번째로 중유(中有)는 이취(異趣)를 보지 않음을 밝힌다.
  226. 208)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한 번째로 중유(中有)는 선업(先業)의 선(善)과 악(惡)에 따라서 눈으로 정(淨)과 예(穢)를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227. 209)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두번째로 중유(中有)의 수명(壽命)을 밝힌다.
  228. 210)중유(中有)가 생연(生緣)을 받는 날짜가 결정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229. 211)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세 번째로 중유종자(中有種子)가 전전하는 것을 밝힌다.
  230. 212)인취(人趣) 등을 말한다.
  231. 213)계속 중유(中有)로 전전하는 중유(中有)를 말한다.
  232. 214)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네 번째로 중유(中有)의 이명(異名)을 해석한다.
  233. 215)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다섯 번째로 중유(中有)의 3계(界) 존재여부(存在與否)를 밝힌다.
  234. 216)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여섯 번째로 중유(中有)의 취향(趣向)의 상(相)을 밝힌다.
  235. 217)계율(戒律)에 반하는 행위(行爲)에서 생기게 되는 악(惡)의 무표색(無表色)을 말한다.
  236. 218)중유(中有)를 가리킨다.
  237. 219)앞에서 밝힌 변괴상(變怪相)을 말한다.
  238. 220)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일곱 번째로 중유(中有)는 오직 화생(化生)임을 밝힌다.
  239. 221)중유(中有)를 가리킨다.
  240. 222)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여덟 번째로 중유(中有)의 취향심(趣向心)을 밝힌다.
  241. 223)나락가취(那落迦趣)를 가리킨다.
  242. 224)6취(趣)로 나아가려는 욕구를 말한다.
  243. 225)나락가취(那落迦趣)를 가리킨다.
  244. 226)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열 아홉 번째로 3처(處)의 현전(現前)에 의하여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을 밝힌다.
  245. 227)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스무 번째로 세 가지 장애가 없을 때, 중유(中有)가 모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밝힌다.
  246. 228)산처(産處)를 가리킨다.
  247. 229)태아가 자라는 것을 장애하는 보리씨와 같은 일종의 혹을 말한다.
  248. 230)산문(産門)을 말한다.
  249. 231)산문(産門)이 넓은 것을 말한다.
  250. 232)중유(中有)를 가리킨다.
  251. 233)중유(中有)를 가리킨다.
  252. 234)불공역(不空譯)의 『왕법정론경(王法政論經)』에서는 종족(種族)으로 번역한다. 본가(本家)와 분가(分家)가 왕성한 일족(一族)을 대종엽가(大宗葉家)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자신과 부모(父母)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
  253. 235)위에서 밝힌 산처과환(産處過患)의 소작(所作)ㆍ종자과환(種子過患)의 소작(所作)ㆍ 숙업과환(宿業過患)의 소작(所作)을 말한다.
  254. 236)위에서 밝힌 중유(中有)의 모(母)가 조적(調適)하면서도 때를 만나야 하는 것과 중유(中有)의 부모(父母)가 화합(和合)하여 함께 애염(愛染)을 일으켜야 하는 것과 건달박(健達縛)이 바로 현재전(現在前)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255. 237)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스물 한 번째로 중유(中有)가 부모(父母)에게 전도(顚倒)를 일으키는 것을 밝힌다.
  256. 238)아비가 어미에게 탐애(貪愛)를 일으키는 것과 똑같은 탐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회탐(會貪)이라고 한다.
  257. 239)태(胎)를 말한다.
  258. 240)태(胎)를 가리킨다.
  259. 241)중유(中有)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마지막으로 박복(薄福)ㆍ다복(多福)의 중유(中有)에 대하여 밝힌다.
  260. 242)사시(死時)와 입태시(入胎時)를 가리킨다.
  261. 243)이하는 생유(生有)를 두 가지로 밝힌다. 첫째는 식지(識支)의 맨 처음에 의탁(依託)하는 것을 밝히고, 둘째는 종자(種子)의 구(具)ㆍ불구(不具)를 밝힌다.
  262. 244)모태(母胎)를 말한다.
  263. 245)모태(母胎)를 가리킨다.
  264. 246)중유(中有)의 맨 마지막 마음에 애에(愛恚)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전도(顚倒)라 하고 중유의 마지막 신(身)을 전도(顚倒)의 연(緣)이라고 한다.
  265. 247)심장(心臟)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