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다음에 마음[心]과 뜻[意]과 알음[識]의 모양은 『해심밀경(解深密經)』 안에서와 같다. 광혜보살(廣慧菩薩)이 부처님에게 청하여 물었다. “세존께서는 마음4)과 뜻과 알음의 비밀에서 선교(善巧)한 보살을 말씀하셨는데, 마음과 뜻과 알음의 비밀에서 선교한 보살이란, 무엇에 알맞으면 마음과 뜻과 알음의 비밀에서 선교한 보살이라 하오며, 여래는 무엇에 알맞게 시설하여 그것을 마음과 뜻과 알음의 비밀에서 선교한 보살로 삼으시옵니까?” 이 말을 하여 마치자. 그 때에 세존은 광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광혜여, 그대는 이제 여래에게 그와 같은 깊은 이치를 청하여 묻는구나. 그대는 이제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며, 세간과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수라 등을 가엾이 여기고 좋은 이익으로 안락함을 얻게 하려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니라. 그대는 자세히 들으라. 나는 그대를 위하여 마음과 뜻과 알음의 비밀한 이치를 설명하겠느니라. 광혜여, 알아야 한다. 여섯 갈래[六趣]의 생사에서 저 여러 유정들은 저 여러 유정의 무리 안에 떨어지되 혹은 알로 나는 것[卵生]으로서 혹은 태로 나는 것[胎生]으로서 혹은 습기로 나는 것[濕生]으로서 혹은 화하여 나는 것[化生]으로서 몸(身分)이 생기느니라. 그 안에서, 맨 처음에 온갖 종자의 마음과 알음이 성숙하여 차츰차츰 화합하면서 더욱 자라고 광대하여 서는 두 가지 집수(執受)에 의지하나니, 첫째는 빛깔 있는 모든 감관(有色諸根)과 의지할 바[所依]의 집수이며, 둘째는 모양[相]과 이름[名]과 분별(分別)과 언설과 실없는 이론의 기운을 익힌 집수이니라. 유형 세계(有色界) 안에서는 두 가지 집수를 갖추거니와 무형 세계(無色界) 안에서는 두 가지를 갖추지 않느니라. 광혜여, 이 알음을 또한 아다아나식(阿陀那識)5)이라고 하나니, 무슨 까닭이냐 하면, 이 알음은 몸에 따르며 잡아 가지기(執持) 때문이니라. 또한 아아라야식(阿賴耶識)6)이라고도 하나니, 무슨 까닭이냐 하면, 이 알음은 몸에서 껴잡아 들이고 간직하여 숨기고서 편안함과 위험을 같이한다는 이치 때문이니라. 또한 마음7)이라고도 하나니, 무슨 까닭이냐 하면, 이 알음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色聲香味觸) 등이 쌓이고 모여서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이니라. 광혜여, 아다아나식을 의지(依支)로 삼고 세움(建立)으로 삼기 때문에 여섯 가지 알음의 몸(六識身)은 구르는 것이니, 안식(眼識)과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알음이니라. 이 안에는 알음이 있나니, 눈과 빛깔을 반연으로 하여 안식을 내되 안식과 함께 따라 행하면서 같은 때와 같은 경계에 분별함이 있는 의식(意識)이 구르느니라. 알음이 있나니, 귀ㆍ코ㆍ혀ㆍ몸과 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코ㆍ혀ㆍ몸이 알음과 함께 따라 행하면서 같은 때와 같은 경계에 분별함이 있는 안식이 구르느니라. 광혜여, 만약 그 때에 하나의 눈알음만이 구르면 바로 이때에는 하나의 분별하는 의식만이 있어서 안식과 행할 바를 같이하면서, 구르거니와, 만약 그 때에 둘ㆍ셋ㆍ넷ㆍ다섯의 모든 식신(識身)이 구르면 바로 이때에는 하나의 분별하는 의식이 있어서 다섯 가지 알음의 몸과 행한 바를 같이하면서 구르느니라. 광혜여, 비유하면, 크고 사나운 물의 흐름에서, 만약 한 물질의 내는 인연이 앞에 나타나게 되면 하나의 물결만이 구르거니와 만약 둘이거나 많은 물결의 내는 인연이 앞에 나타나면 많은 물결이 구르게 되지마는, 그러나 이 사나운 물 자체의 동아리는 언제나 흘러서 끊임이 없고 다함이 없는 것과 같느니라. 또 마치, 좋고 깨끗한 거울의 면에서, 만약 한 그림자의 내는 인연이 앞에 나타나게 되면 하나의 그림자만이 생기거니와 만약 많은 그림자의 내는 인연이 앞에 나타나면 많은 그림자가 생기되, 이 거울의 면은 변하여서 그림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수용하여 다 없어지게 됨도 없는 것과 같느니라. 이와 같아서, 광혜여, 사나운 물 흐름과 비슷한 아다아나식을 의지로 삼고 세움으로 삼기 때문에, 만약 그때에 한 안식의 내는 인연이 앞에 나타나면 바로 이때에는 하나의 안식이 구르는 것이며, 만약 그 때에 다섯 가지 식신의 내는 인연이 앞에 나타나면 바로 이때에는 다섯가지 알음의 몸이 구르느니라. 광혜여, 이와 같이 보살은 비록 법주지(法住智)를 의지로 삼고 세움으로 삼기 때문에 마음과 뜻과 알음의 비밀에서 교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모든 여래는 알맞게 여기에서 시설하여 그것을 마음과 뜻과 알음의 온갖 비밀에서 교묘함의 보살로 삼지 않느니라. 광혜여, 만약 모든 보살이 안에서 저마다 따로따로 사실대로 아다아나(阿陀那)를 보지 아니하고 아다아나식을 보지 아니하며, 아아라야(阿賴耶)를 보지 아니하고 아아라야식을 보지 아니하며 쌓여 모임(積集)을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보지 아나히며, 눈의 빛깔과 안식을 보지 아니하고 귀의 소리와 이식을 보지 아니하고 코의 냄새와 비식을 보지 아니하고 혀의 맛과 혀알음을 보지 아니하고 몸의 닿임과 식신을 보지 아니하고 뜻의 법과 의식을 보지 아니하면, 이것을 으뜸가는 이치(勝義)에 선교(善巧)의 보살이라 하며, 여래는 시설하여 그것을 으뜸가는 이치에 선교(善巧)의 보살로 삼느니라. 광혜여, 여기에 알맞으면 마음과 뜻과 알음의 온갖 비밀에서 선교(善巧)의 보살이라 하며, 여래는 여기에 알맞게 마음과 뜻과 알음의 온갖 비밀에서 선교(善巧)의 보살을 시설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은 거듭 이 뜻을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아다아나식은 매우 깊고 미세하며 온갖 종자는 사나운 물의 흐름과 같다. 나는 범부들에게 펴서 연설 않는 것은 그가 분별 집착하여 나라 할까 두려워서이니라
다시 다음에, 온갖 법의모양(一切法相)은 해심밀경의 안에서와 같다. 덕본(德本) 보살은 부처님에게 청하여 물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법의 모양에서 선교의 보살을 말씀하셨는데, 모든 법의 모양에서 선교의 보살이란, 무엇에 알맞으면 모든 법의 모양에서 선교의 보살이라 하오며, 여래는 무엇에 알맞게 시설하여 그것을 모든 법의 모양에서 선교의 보살로 삼으시옵니까.” 이 말을 하여 마치자 그 때에 세존은 덕본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덕본이여, 그대는 이제 여래에게 그와 같은 깊은 이치를 청하여 묻는구나. 그대는 이제 한량 없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며 세간과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수라 등을 가엾이 여기어 옳고 이익됨과 안락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니라. 그대는 자세히 들이라. 나는 그대를 위하여 모든 법의 모양을 설명하겠느니라. 모든 법의모양에는 요약하여 세 가지가 있느니라. 무엇이 세 가지냐 하면, 첫재는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遍計所執相)이요, 둘째는 서로 의지하여 나는 모양(依他起相)이요, 셋째는 두루 진실한 모양(圓成實相)이니라. (1) 무엇을 모든 법의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이라. 하느냐 하면, 온갖 법의 이름에 임시로 자성(自性)과 차별(差別)을 벌여 세우며, 내지 언설을 따라 일으키는 것이니라. (2) 무엇을 모든 법의 서로의 지하여 나는 모양이라 하느냐 하면, 온갖 법의 인연으로 나는 자성품으로서, 곧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나기 때문에 저것이 나나니,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에 반연하며, 내지 순수하고 큰 괴로움의 쌓임(純大苦蘊)을 불러 모으는 것이니라. (3) 무엇을 모든 법의 두루 진실한 모양이라 하느냐 하면, 온갖 법의 평등한 진여(眞如)이니라. 이 진여에 대하여 모든 보살들은 용맹스러운 정진을 인연으로 삼기 때문에 이치대로 뜻을 지으며, 뒤바뀜이 없는 생각을 인연으로 삼기 때문에 이에 통달할 수 있으며, 이 통달에서 점차로 닦고 모아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無上正等菩提)를 바야흐로 증득함이 원만하니라. 덕본이여 마치 눈에 무엇이 끼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 속에 있는 바 낀 것의 허물처럼,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마치 눈에 무엇이 끼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눈에 무엇이 낀지라 뭇 모양이 혹은 머리카락ㆍ수레바퀴ㆍ벌ㆍ파리ㆍ거승(苣藤) 혹은 푸르고ㆍ누르고ㆍ붉고ㆍ흰 것 따위의 모양으로 서로 다르게 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서로 의지하여 나는 모양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마치 눈이 깨끗한 사람은 눈 속에 무엇이 낀 허물을 머리 여읜지라 바로 이 깨끗한 눈의 본래 성품의 소행인 어지러움이 업는 경계처럼, 두루 진실한 모양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덕본이여,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파지8)가 보석(頗胝迦寶)과 같느니라. 만약 푸르게 물이 든 빛깔과 합하여지면 아주 푸르디 푸른 마니보(末尼寶)의 형상에 비슷하여 질뿐 인데 아주 푸르디 푸르너 마니보라고 사뙤게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을 헷갈려 어지럽게 하며, 만약 붉게 물이든 빛깔과 합하여지면 호박(琥珀)의 마니보 형상에 비슷하여질 뿐인데 호박의 마니보라고 사뙤게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을 헷갈려 어지럽게 하며, 만약 녹색으로 물이든 빛깔과 합하여지면 말라갈다(末羅羯多)의 마니보 형상에 비슷하여질 분인데 말라갈다의 마니보라고 사뙤게 집착하는 까닭에 유정을 헷갈려 어지럽게 하며, 만약 누렇게 물이 든 빛깔과 합하여지면 금의 형상에 비슷하여질 뿐인데 진짜 금의 형상이라고 사뙤게 고집하는 까닭에 유정을 헷갈려 어지럽게 함과 같느니라. 이와 같나니, 덕보이여, 마치 저 맑고 깨끗한 파지가 위의 온갖 물든 빛깔이 상응한 것처럼,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 위의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언설과 습기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저 맑고 깨끗한 파지가 위의 온갖 푸르디 푸름과 호박과 말라갈다와 금 등에서의 삿된 집착처럼,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 위의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집착도 역시 그러한 주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저 맑고 깨끗한 파지가 보석처럼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저 맑고 깨끗한 파지가 위의 온갖 푸르디 푸름과 호박과 말라갈다와 진금 등의 모양이 얹나 진실이 없고 자성이 없는 성품(無自性性)인 것처럼, 곧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 위의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진실이 없고 자성이 업는 성품인 두루 진실한 모양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덕본이여, 모양과 이름이 상응함을 반연으로 하여 제 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 위의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집착을 반연으로 하여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 위의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이 집착 없음을 반연으로 하여 두루 진실한 모양을 분명히 알아야 할지니라. 덕본이여, 만약 모든 보살이 모든 법의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 위에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면 온갖 모양이 없는 법(無相法)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 수 있으며, 만약 모든 보살이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면 온갖 섞여 물든 모양의 법(雜染相法)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 수 있으며, 만약 모든 보살이 두루 진실한 모양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면 온갖 맑고 깨끗한 모양의 법(淸淨相法)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 수 있느니라. 덕본이여, 만약 모든 보살이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 위에서 모양이 없는 법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면 섞여 물든 모양의 법을 끊어 없앨 수 있으며, 만약 섞여 물든 모양의 법을 끊어 없애면 맑고 깨끗한 모양의 법을 증득할 수 있느니라. 이와 같나니, 덕본이여, 모든 보살이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과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과 두루 진실한 모양을 사실대로 분명히 아는 까닭에, 모든 모양이 업는 법과 섞여 물든 모양의 법과 맑고 깨끗한 모양의 법을 사실대로 분명히 아느니라. 모양이 업는 법을 사실대로 분명히 아는 까닭에 온갖 섞여 물든 모양의 법을 끊어 없애며, 온갖 섞여 물든 모양의 법을 끊어 없앤 까닭에 온갖 맑고 깨끗한 모양의 법을 증득하나니, 여기에 알맞으면 모든 법의 모양에서 선교의 보살이라고 하며, 여래는 여기에 알맞게 시설하여 그것을 모든 법의 모양에서 선교의 보살로 삼는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은 거듭 이 뜻을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양이 없는 법을 분명하게 모르면 섞여 물든 모양의 법을 끊을 수 없으며, 섞여 물든 모양의 법을 끊지 않은 까닭에 미묘하고 깨끗한 모양 증득하는 법을 무너뜨리느니라.
모든 행의 뭇 허물을 살피지 않은 지라 방일하는 허물은 중생을 해치며, 게으름의 머무름의 법(住法)과 움직임의 법(動法)안에서 무너뜨림이 없으니 불쌍하니라.
다시 다음에, 모든 법의 자성이 없는 모양(無自性相)은 해심밀경의 안에서와 같다. 승의생(勝義生)보살은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일찍이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마음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였나이다. 세존은 한량 없는 문으로서 일찍이 모든 쌓임(蘊의 온갖 제 모양(自相)과 나는 모양(生相)과 없어짐의 모양(滅相)과 영원히 끊임(永斷)과 두루 앎(遍知)을 말씀하셨다. 모든 쌓임을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든 처(處)와 연기(緣起)와 모든 음식(食)도 그러하다. 한량 없는 문으로써 일찍이 모든 진리(諦)의 온갖 제 모양과 두루 앎과 영원히 끊음과 증득함과 닦고 익힘을 말씀하셨으며, 한량없는 문으로써 일찍이 모든 계(界)의 온갖 제 모양과 갖가지 계의 성품(種種界性)과 하나만이 아닌 계의 성품(非一界性)과 영원히 끊임과 두루 앎을 말씀하셨으며, 한량 없는 문으로써 일찍이 염주(念住)의 온갖 제 모양과 능히 다스림(能治)과 다스릴 바(所治) 및 닦아 익힘의 것으로써 아직 나지 않았으면 나게 하고 난 뒤에는 굳게 머물러서 잊지 않게 하면서 갑절 더 닦아 더욱더 광대하게 할 것을 말씀하셨다. 염주를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정단(正斷)과 신족(神足)과 근(根)과 역(力)과 각지(覺支)도 역시 그와 같다. 한량 없는 문으로써 일찍이 여덟 가지 갈래의 거룩한 도(八支聖道)의 온갖 제 모양과 능히 다스림과 다스릴 바 및 닦아 익힘의 것으로써 아직 나지 않았으면 나게 하고 난 뒤에는 굳게 머물러서 잊지 않게 하면서 갑절 더 닦아 더욱더 광대하게 할 것을 말씀하셨다. 세존은 도 온갖 모든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임을 말씀하셨다고 하였나이다. 모르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비밀의 뜻(密意)에 의하여 이와 같이 ‘온갖 모든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씀하셨나이까. 저는 이제 여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오니, 원컨대 여래는 가엾이 여기셔서 ‘온갖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씀하신 모든 비밀의 뜻을 해석하시옵소서.” 이 말을 하여 마치자, 그 때에 세존은 승의생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승의생이여, 그대가 생각한 바는 매우 이치대로이구나.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여래에게 이러한 깊은 이치를 청하여 묻는구나 그대는 이제 한량 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요, 세간 및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수라 등을 가엾이 여기어 옳고 이익되며 안락함을 얻게 하기 이하여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니라. 그대는 자세히 들으라. 나는 그대를 위하여 말한 바의 ‘온갖 모든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으면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함의, 모든 비밀의 뜻을 해석하겠느니라. 승의생이여, 그러므로 알아라. 나는 세 가지의 자성이 없는 성품(無自性性)에 의하여 비밀의 뜻으로 ‘온갖 모든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다’고 말하였나니, 모양(相)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요, 남(生)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요, 으뜸가는 이치(勝義)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니라. 선남자여, (1) 무엇을 모든 법의 모양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라 하느냐 하면, 이른바 모든 법의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遍計所執相)이니라. 왜 그러냐 하면, 이것은 가정의 이름(假名)으로 말미암아 벌여 세워서 모양으로 삼은 것이요, 제 모양으로 말미암아 벌여 세워서 모양으로 삼은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양이 자성이 업는 성품이라고 말하느니라. (2) 무엇을 모든 법의 남의 자성이 없는 서품이라 하느냐 하면, 이른바 모든 법의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依他起相)이니라. 왜 그러냐 하면, 이것은 다른 인연의 힘에 의지한 까닭에 존재한 것이요 저절로 존재한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남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라고 말하느니라. (3) 무엇을 모든 법의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업는 성품이라 하느냐 하면, 이른바 모든 법의 남의 자성이 없는 성품으로 말미암아서 자성이 업는 성품이라고 하며, 곧 인연으로 내는 법을 또한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모든 법안에서 만약 이것이 깨끗한 반연할 바 경계(淸淨所緣境界)면, 나는 그것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으로 삼는 것이요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은 바로 깨끗한 반연할 바 경계가 아니니, 그러므로 역시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또, 모든 법의 두루 진실한 모양(圓成實相)이 있나니, 역시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온갖 모든 법의 법의 나없는 성품(法無我性)을 으뜸가는 이치라고 하며 자성이 없는 성품이라고도 하나니, 이것은 모든 법의 으뜸가는 진리이기 때문이고 자성이 없는 성품을 나타내는 바이기 때문이니라.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하면,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모양의 자성이 없는 성품 또한 그러한 줄 알 것이며, 마치 요술의 형상과 같아서 남의 자성이 업는 서품 또한 그러한 줄 알뿐더러 일부의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 또한 그러한 줄 알 것이며, 마치 허공을[위에] 이는 뭇 빛깔의 성품 없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온갖 곳에 두루하는 것과 같아서 일부의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 또한 그러한 줄 알 것이니, 법의 나 없는 성품을 나타내는 바 때문이요 온갖 것에 두루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나는 이와 같은 세 가지의 자성이 업는 성품에 의하여 비밀한 뜻으로 ‘온갖 모든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승의생이여, 그러므로 알아라. 나는 모양의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하여 비밀한 뜻으로 ‘온갖 모든 법은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만약 법의 제 모양이 도무지 아무 것도 없다면 남(生)이 없을 것이며 만약 남이 없다면 없어짐이 없을 것이며, 만약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면 본래가 고요할 것이며, 만약 본래가 고요하면 바로 자성이 열반이리니, 그 안에서는 도무지 조금의 것으로도 다시는 그로 하여금 열반하게 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모양의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하여 비밀한 뜻으로 ‘온갖 모든 법은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또한 법의 나없는 성품을 나타내는 바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하여 비밀한 뜻으로 ‘온갖 모든 법은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하느니라. 왜그러냐 하면, 법의 나없는 성품으로 나타내는 바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은 언제나 모든 법의 법성품이 편안히 머물러서 함이 없으며, 온갖 섞여 물듦(雜染)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모든 법의 법성품이 편안히 머물러서 함이 없나니, 함이 없기 때문에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온갖 섞여 물듦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법의 나없는 성품을 나타내는 바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하여 비밀한 뜻으로 ‘온갖 모든 법은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고 말하느니라. 승의생이여, 유정 세계 안의 모든 유정의 무리는 따로 따로 제 나름으로 분별하는 자성을 자세히 살피어 자성으로 삼음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그들은 따로따로 서로 의지하여 난 자성과 두루 진실한 자성을 자세히 살피어 자성으로 삼음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세 가지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세우느니라. 그러나 유정들은 서로 의지하여 난 자성과 두루 진실한 자성의 위에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자성을 더욱 더 하기 때문에 나는 세 가지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세우느니라.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자성의 모양으로 말미암아서 저 모든 유정들은 서로 의지하여 난 자성과 두루 진실한 자성 안에서 언설을 따라 일으키며, 여여(如如)하게 언설을 따라 일으킴이 그와 같고 그와 같은지라 언설의 쪼여 익힌(熏習) 마음으로 말미암아서 혹은 언설의 따라 깨달음(隨覺)으로 말미암아서 혹은 언설의 수면(隨眠)으로 말미암아서 서로 의지하여 난 자성과 두루 진실한 자성안에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자성의 모양에 집착하며, 여여하게 집착함이 그와 같고 그와 같은지라 서로 의지하여 난 자성과 두루 진실한 자성 위에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자성에 집착하느니라.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장차 오는 세상의 서로 의지하여 난 자성을 내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혹은 번뇌의 섞여 물듦(煩惱雜染) 때문에 물이 들기도 하고, 혹은 업의 섞여 물듦(業雜染) 때문에 물이 들기도 하고, 혹은 나기의 섞여 물듦(生雜染) 때문에 물이 들기도 하여 생사하는 안에서 오랜 세월동안 내닫고 오랜 세월에 헤매면서 휴식함이 없나니, 혹은 나라카(那落迦)에 있으면서 혹은 축생에 있으면서 혹은 아귀에 있으면서 혹은 천상에 있으면서 혹은 아수라에 있으면서 혹은 인간안에 있으면서 모든 괴로움을 받는 것이니라. 승의생이여, 만약 모든 유정으로서 본래부터 아직 착한 뿌리를 심지 못하고 아직 장애를 깨끗이 하지 못하고 아직 상속(相續)을 성숙시키지 못하고 아직 훌륭한 알음(勝解)을 많이 닦지 못하고 아직 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양식을 쌓지 못했다면, 나는 그들을 위하여 남의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하여 모든 법을 펴 말하느니라. 그들이 이것을 들은 뒤에는, 온갖 인연으로 난 행 안에서 분함에 따라 ‘덧없고 항상함이 없으며, 이것이야말로 안온하지 않으면서 변하고 무너지는 법이라’함을 깨달아 알고 나면, 온갖 행에 있어서 마음에 두려움을 내고 같이 싫증을 내느니라. 마음에서 두려워하고 같이 싫증을 낸 뒤에는 모든 악행을 막아 그치고 모든 나쁜 법을 짓지 아니하면서 모든 착한 법을 부지런히 닦아 익히느니라. 착한 인연을 익히기 때문에, 아직 착한 뿌리를 심지 못한 이는 착한 뿌리를 심고 아직 장애를 깨끗이 하지 못한 이는 깨끗하게 하며 아직 상속을 성숙시키지 못한 이는 성숙되게 하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훌륭한 알음을 많이 닦을뿐더러 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양식도 많이 쌓고 모으느니라. 그들이 비록 이와 같은 모든 착한 뿌리를 심고, 내지 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양식을 쌓아 모았다 하더라도, 남의 자성이 없는 성품 안에서 모양의 자성이 업는 성품과 두 가지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아직 사실대로 분명하게 모르면, 온갖 행에서 아직은 바르게 싫어하지 못하고 아직은 바르게 욕심을 여의지 못하고 아직은 바르게 해탈하지 못하며, 아직은 두루 번뇌의 섞여 물듦을 해탈하지 못하고 아직은 두루 모든 업의 섞여 물듦을 해탈하지 못하며 아직은 두루 모든 나기의 섞여 물듦을 해탈하지 못하느니라. 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다시 법요(法要)를 말씀하시나니, 모양의 자성이 없는 성품과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이니라. 그들로 하여금 온갖 행에서 바르게 싫어할 수 있게 하고 바르게 욕심을 여의게 하고 바르게 해탈하게 하고 온갖 번뇌의 섞여 물듦을 뛰어나게 하고 온갖 업의 섞여 물듦을 뛰어나게 하고 온갖 나기의 섞여 물듦을 뛰어나게 하려 함에서이니라. 그들은 이와 같이 말한 바의 법을 들은 뒤에는, 남의 자성이 없는 성품 안에서 모양의 자성이 업는 성품과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바르게 믿고 알아서 간택하고 생각하고 사실대로 통달하며, 서로 의지하여 난 자성 안에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자성의 모양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언설에 쪼여 익히지 않은 지혜로 말미암아서, 언설에 따라 깨닫지 않은 지혜로 말미암아서, 언설에 수면을 여읜 지혜로 말미암아서,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을 능히 없애며, 현재 법 안에서 지혜 힘의 지닌 바로 장차 오는 세상의 인연을 영원히 끊어 없애느니라.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온갖 행에서는 바르게 싫증 내며 바르게 욕심을 여의며 바르게 해탈하며 두루 번뇌와 업과 나기의 세 가지 섞여 물듦을 해탈하게 되느니라. 승의생이여, 모든 성문승(聲聞乘) 종성(種性)의 유정은 역시 이 도(道)와 이 행적(行迹)으로 말미암아서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며, 모든 독각승(獨覺乘) 종성의 유정과 모든 여래승(如來乘) 종성의 유정 역시 이 도와 이 행적으로 말미암아서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증득하느니라. 온갖 성문과 독각과 보살은 모두가 이 하나의 미묘하고 깨끗한 도를 함께하며 모두가 이 하나의 마지막 깨끗함을 같이하나니, 다시는 둘째의 것이 없느니라. 나는 이에 의한 까닭에 비밀한 뜻으로 ‘일승(一乘)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온갖 유정 세계 안에는 갖가지 유정의 종성으로서 혹은 둔한 근성(鈍根性)이거나 혹은 중간 근성(中根性)이거나 혹은 영리한 근성(利根性) 지닌 유정의 차별이 없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한결같이 고요함에 나아가는(趣寂) 성문 종성의 푸드갈라(補特伽羅)는 비록 모든 부처님께서 시설하신 갖가지 용맹스런 가행 방편(加行方便)의 교화를 입는다손 치더라도 마침내 장차 도량(道場)에 앉아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하게 할 수는 없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은 본래 하열한 종성일 뿐이기 때문이며,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하기 때문이며, 한결같이 뭇 괴로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한지라 그 때문에 한결같이 모든 중생 이롭게 하는 일을 버리고 등지며, 그들은 한결같이 뭇 괴로움을 두려워하는지라 그 때문에 한결같이 모든 행을 일으켜 해야 할 일을 버리고 등지느니라. 나는 마침내 한결같이 중생 이롭게 하는 일을 버리는 이와 한결같이 모든 행을 일으켜 해야 할 일을 버리는 이라면, 장차 도량에 앉아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할 수 있으리라 말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들을 말하여 한결같이 고요함에 나아가는 성문이라 하느니라. 만약 보리에 회향하는 성문 종성의 푸드갈라라면, 나 또한 다른 문으로 말하여 보살이라 하리라. 왜 그러냐 하면, 그가 이미 번뇌장(煩惱障)을 해탈하고 나서 만약 모든 부처님네의 깨달음을 입을 적에는 소지장(所知障)에 대한 그 마음 역시 당연히 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니, 그가 맨 처음에 자기 이익을 위하여 가행(加行)을 수행하며 번뇌장을 해탈하는지라, 그 때문에 여래는 그를 시설하여 성문의 종성으로 삼을 따름이니라. 승의생이여, 이와 같이, 나의 좋은 말씀(善說)과 잘 제정한 가르침(法)과 비나야(毘奈耶)인 가장 지극하고 깨끗한 의요(意樂)로 말한 바 착한 교법 안에서, 모든 유정의 무리들이 이해하는 갖가지 차별은 있을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다만 이와 같은 세 가지만의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하여 깊은 비밀한 뜻으로 말미암아 널리 펴 말하는 바 불요의경(不了義經)에서 은밀한 모양으로서 법요를 말씀하였나니, ‘온갖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업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함이 그것이니라. 이 경 안에서 만약 모든 유정으로서 이미 상품의 착한 뿌리를 심었고 이미 모든 장애를 깨끗이 하였고 이미 상속을 성숙시켰고 이미 훌륭한 알음을 많이 닦았고 이미 상품의 복덕과 지혜의 양식을 쌓아 모았다면, 그는 이와 같은 법을 듣자마자 나의 매우 깊은 비밀한 뜻의 언설을 사실대로 깨달아 알며, 이와 같은 이치에 대하여 뒤바뀜이 없는 지혜로써 사실대로 통달할 것이며, 이 통달에 의하여 잘 닦고 익히는 까닭에 빨리 가장 지극한 마지막을 증득하게 되고, 또한 나에게 깊이 깨끗한 믿음을 내면서 이 여래요, 공양 받을 만한이요 발고 평등하고 깨달으신 이야말로 온갖 법을 실제로 바르고 평등하게 깨달으셨다고 함을 알리라. 만약 모든 유정으로서 이미 상품의 착한 뿌리를 심었고 이미 모든 장애를 깨끗이 하였고 이미 상속을 성숙시켰고 이미 훌륭한 알음을 많이 닦아 익혔으나 아직은 상품의 복덕과 지혜의 양식을 쌓지 못했으되 그 성품이 질직(質直)하거나 이는 질직한 무리라면, 비록 생각하고 선택하여 폐하거나 세울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자기 소견의 고집(見取) 안에 편안히 머무르지는 않는지라. 그가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면 나의 심히 깊은 비밀의 언설에 사실대로 이해할 능력은 없다손 치더라도 이 법에 대하여 훌륭한 알음을 능히 내고 깨끗한 믿음을 내어서, ‘이 경전은 바로 여래의 말씀이며 이는 심히 깊고 심히 깊음을 나타냈으며 공(空)의 성품과 상응하여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우며 찾고 생각할 수도 없거니와 찾고 생각함의 행할 바 경계가 아니며 미세하고 자상하여서 총명하고 지혜로운 이만이 알 바로구나’라고 믿고서는, 이 경전에 말씀한 바 이치 안에서 스스로가 가벼이 여기며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보리(菩提)는 아주 심히 깊고 모든 법 성품 역시 아주 심히 깊어서 모든 부처님만이 환히 잘 깨달으실 바요 이 우리들로서는 깨달아 알 바가 아니다. 모든 부처님ㆍ여래는 저 갖가지의 훌륭한 알음 지닌 유정들을 위하여 바른 법의 가르침을 굴리시며 모든 부처님ㆍ여래는 그지없는 지견이 있으시거니와 우리들의 지견은 마치 소의 발자국과 같구나’라고 하면, 이 경전에 대하여 비록 공경하여 다른 이들을 위하여 널리 펴 말하고 쓰고 베끼고 보호하여 지니고 펼쳐 보고 유포하고 간절하게 공양하고 받아 외우며 익힌다 하더라도, 아직은 그 닦음의 모양으로서는 가행(加行)을 일으키지도 못하며 이 때문에 나의 심히 깊은 비밀한 뜻으로 말한 바 언사를 통달할 수는 없거니와,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저 모든 유정들은 역시 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양식을 더욱 자라게 하며, 뒤의 상속에서 아직 성숙되지 못한 이라도 역시 성숙되게 하느니라. 만약 모든 유정으로서, 내지 아직 상품의 복덕과 지혜의 양식을 쌓지 못하였고 성품됨이 절직하지 못하거나 질직한 물가 아니라면, 비록 생각하고 선택하여 소견의 고집 안에 편안히 머무르는지라. 그가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면, 나의 심히 깊고 비밀한 뜻의 언설에 사실대로 깨달아 알 능력이 없으며, 이와 같은 법에 대하여 비록 믿고 앎을 낸다 하더라도 그 이치에 대하여는 말에 따라 집착하면서 ‘온갖 법은 결정코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결정코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결정코 본래가 고요하며, 결정코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하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온갖 법에 대하여 없다(無)는 소견과 모양이 없다(無相)는 소견을 얻게되느니라. 없다는 소견과 모양이 없다는 소견을 얻기 때문에 온갖 모양은 모두가 이는 모양이 없다고 떨어버리며, 모든 법의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과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과 두루 진실한 모양을 헐뜯어 물리친다. 왜 그러냐하면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과 두루 진실한 모양으로 말미암아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을 비로소 시설할 수 있으며, 만약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과 두루 진실한 모양을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역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도 헐뜯어 부정한 것이니, 그러므로 그는 세가지 모양을 헐뜯어 물리침이라 말하느니라. 비록 나의 법에서 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더라도 이치 아닌 가운데서 이치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 나의 법에서 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이치 아닌 가운데서 이치라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법이 아닌 가운데서 이는 법이라고 지니게 되며 그릇된 이치 안에서 옳은 이치로 지니게 되느니라. 그가 비록 법에 대하여 믿고 앎을 일으키기 때문에 복덕은 더욱 자란다손 치더라도 이치 아닌 데서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지혜를 잃으며, 지혜를 잃기 때문에 광대하고 한량 없는 착한 법을 잃느니라. 다시 어떤 유정이 그로부터 ‘법을 일러서 법이라 하고 이치 아닌 것을 이치’라 함을 듣고, 만약 그의 소견을 따르면 법에 대하여 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이치 아닌 가운데서 이치라는 생각을 일으키어 법을 집착하여 법으로 삼고 이치 아닌 것을 이치로 삼으리니,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그는 똑같이 착한 법을 잃는 줄 알아야 할지니라. 만약 어떤 유정이 그의 소견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로부터 ‘온갖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다’함을 갑자기 듣고서 두려움을 내리니, 두려움을 낸 뒤에 말하기를 ‘이는 부처님 말씀이 바로 악마의 한 말이다’라고 하리라. 이렇게 이해한 뒤에는 이 경전을 헐뜯고 욕하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큰 손해를 얻고 큰 업장에 부딪치리라. 이런 인연 때문에, 나는 말하기를 ‘만약 온갖 모양에 대하여 모양이 없다는 소견을 일으키고 이치 아닌 가운데서 펴며 이치로 삼는다면, 이야말로 광대한 업장을 일으키는 방편이니라’고 하나니, 그는 한량 없는 중생을 빠뜨려서 그로 하여금 큰 업장을 얻게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모든 유정으로서 아직 착한 뿌리를 심지 못했고 아직 장애를 깨끗이 하지 못했고 아직 상속을 성숙시키지 못했고 많은 훌륭한 알음이 없고 아직 복덕과 지혜의 양식을 쌓지 못했으면서 성품됨이 질직하지 아니하거나 질직한 무리가 아니라면, 비록 생각하고 선택하여 폐하거나 세울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언제나 자기의 소견의 고집 안에 편안히 머무는지라, 그가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면, 나의 심히 깊은 비밀한 뜻의 언설을 사실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역시 이 법에서 믿고 앎을 내지 않으며, 이 법 안에서 법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옳은 이치 안에서 그릇된 이치라는 생각을 일으키어 이 법 안에서 법이 아니라고 집착하며 옳은 이치 안에서 그릇된 이치라고 집착하면서 부르짖기를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고 바로 악마의 한 말이다’라고 하리라. 이렇게 이해한 뒤에는 이 경전을 비방하고 헐뜯고 물리치고 거짓이라 하면서 한량 없는 문으로써 이러한 경전을 헐어 없애고 꺾어 조복하며 이 경전을 믿고 이해하는 이들에게 원수라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는 먼저 모든 업장 때문에 막혔는지라.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다시 이러한 업장으로 막히느니라. 이와 같은 업장은, 처음에 이루어지기는 쉬우나 백천구지(百千俱胝) 나유타(那庾他) 겁에 이르더라도 벗어날 수는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은 나의 좋은 말씀과 잘 제정한 가르침과 비나야인 가장 지극하고 깨끗한 의요로 말한 바 착한 교법 안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유정들의 이해하는 갖가지 차별이 있을 수 있느니라. 그 때, 세존은 거듭 이 뜻을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온갖 법은 모두가 성품이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어서 본래 고요하며 모든 법의 자성은 언제나 열반이니, 어느 지혜 있는 이가 비밀한 뜻 없다 하리.
모양(相)ㆍ남(生)ㆍ으뜸가는 이치(勝義)의 자성이 없음을 이렇게 나는 모두 드러내 보였나니, 부처님의 이 비밀한 뜻 모르면 바른 도를 잃어서 나아갈 수 없으리라.
깨끗한 도에 의한 깨끗한 이들은 이 하나에 의할 뿐 둘째가 없나니, 그러므로 그 안에서 일승(一乘)만을 세웠고 유정들의 성품됨은 차별 있다 하니라.
중생 세계 안의 한량 없는 중생이 한 몸만을 제도하여 적멸(寂滅)에 나아가면 대비와 용맹으로 열반을 증득하여 중생을 버리지 않음 심히 어렵느니라.
미묘하여 생각하기 어려운 무루(無漏) 경계안에서 해탈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니 온갖 이치 이루어 혹(惑)과 고(苦)를 여의면 두 가지를 달리 말해 상(常)과 낙(樂)이라 하리.
그 때에 승의생 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비밀한 뜻의 말씀은 심히 기이하고 희유하오며, 내지 미묘하고 가장 미묘하며 매우 깊고 가장 매우 깊으며 통달하기 어렵고 가장 통달하기 어렵나이다. 이렇게 저는 이제 ‘세존께서 말씀한 바 뜻으로는, 만약 분별의 소행인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의지할 바 행상(所依行相) 안에서, 가정의 이름으로 벌여 세워서는 빛깔 쌓임(色蘊)의 자성의 모양이거나 혹은 차별의 모양을 삼기도 하며, 가정의 이름으로 벌여 세워서는 빛깔 쌓임의 남을 삼고 없어짐을 삼으며, 그리고 빛깔 쌓임의 영원히 끊음 및 두루 앎의 자성의 모양이거나 혹은 차별의 모양으로 삼기도 하나니, 이것을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이라 한다. 세존은 이것에 의지하여 모든 법의 모양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시설하셨구나, 만약 분별의 소행인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의지할 바 행상이면, 이것을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이라 한다. 세존은 이것에 의지하여 모든 법의 남의 자성이 없는 성품과 일부의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시설하셨구나’라고, 이해가 가옵니다. 이렇게 저는 이제, ‘세존께서 말씀한 바 뜻으로는, 만약 이 분별의 소행인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의지할 바 행상 안에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은 진실함이 아니기 때문에 이 자성의 자성이 없는 성품과 법의 나 없는 진여의 깨끗한 반연할 바인 이것을 두루 진실한 모양이라 한다. 세존은 이것에 의하여 일부의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시설하셨구나’라고 이해가 가옵니다. (빛깔 쌓임에서 그러한 것처럼, 그와 다른 쌓임에 대해서도 모두를 자세히 설명하여야 하며, 모든 쌓임에서 그러한 것처럼 12처(處)의 낱낱 처에 대해서도 모두를 자세히 설명하여야 하며, 12유지(有支)의 낱낱 갈래에 대해서도 모두를 자세히 설명하여야 하며 네 가지 밥(食)의 낱낱 밥에 대해서도 모두를 자세히 설명하여야 하며, 六계9)(界)와 十八계(界)의 낱낱 계에 대해서도 모두를 자세히 설명하여야 한다.) 이렇게 저는 이제, ‘세존께서 말씀한 바 뜻으로는, 분별의 소행인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의지할 바 행상 안에서, 가정의 이름으로 벌여 세워서는 바른 선정(正定)을 삼고 바른 선정의 능히 다스림과 다스릴 바(能治所治)를 삼아서, 만약 바른 선정의 수행이 아직 나지 않았으면 나게 하고 난 뒤에는 굳게 머물러서 잊지 않고 갑절 더 수행하여 더욱더 광대하게 하는 자성의 모양이거나 혹은 차별의 모양이니, 이것을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이라 한다. 세존은 이것에 의지하여 모든 법의 모양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시설하셨구나, 만약 분별의 소행인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의지할 바 행상이면, 이것을 서로 의지하여 난 모양이라 한다. 세존은 이것에 의지하여 모든 법의 남의 자성이 없는 성품과 일부의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시설하셨구나’라고, 이해가 가옵니다. 이렇게 저는 이제 ‘세존께서 말씀한 바 뜻으로는, 만약 이 분별의 소행인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의 의지할 바 행상 안에서, 제나름으로 분별하는 모양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이 자성의 자성이 없는 성품과 법의 나없는 진여의 깨끗한 반연할 바이면, 이것을 두루 진실한 모양이라 한다. 세존은 이것에 의하여 모든 법의 일부의 으뜸가는 이치의 자성이 없는 성품을 시설하셨구나’라고, 이해가 가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비스박약10)(毘濕縛藥)을 온갖 산약(散藥)과 선약(仙藥)의 처방 안에 모두 넣어야 하는 것처럼, 그와 같아서 세존의 이 모든 법의 모두가 자성이 업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 하는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한 요의(了義)의 가르침을 두루 온갖 요의가 아닌 경에 모두 넣어야 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채색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곳의 온갖 채색으로 된 그림의 것들은 두루 모두가 동일한 맛이어서 푸르거나 누루거나 붉거나 희거나 간에 채색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일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와 같아서 세존의 이 모든 법의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내지 자성이 열반이라 하는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한 요의의 가르침은 두루 온갖 요의가 아닌 경에서 모두가 동일한 맛이어서 그 모든 경 안의 요의가 아닌 바를 드러내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썩 좋고 잘 차린 음식인 모든 떡과 과일 안에 익은 소(熟酥)를 넣으면 보다 훌륭한 맛을 내는 것처럼, 그와 같아서 세존의 이 모든 법의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널리 설하면 내지 자성이 열반이라 하는 것과 자성이 없는 성품에 대한 요의의 가르침은 온갖 요의가 아닌 경에에서 보다 뛰어난 기쁨을 내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허공은 온갖 곳에 두루하여 모두가 동일한 맛이어서 온갖 하는 일을 장애하지 않은 것처럼 그와 같아서 세존의 이 모든 법의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내지 자성이 열반이라 하는 자성이 업는 성품에 의한 요의의 가르침은 온갖 요의가 아닌 경에서 두루 동일한 맛이어서 온갖 성문과 독각 및 대승의 닦는바 일들을 장애하지 않나이다.” 이 말을 하여 마치자, 그 때 세존은 승의생 보살을 칭찬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여래가 말씀한 바 매우 깊은 비밀한 뜻의 말의 이치를 잘 이해하였도다. 또 이 이치에 대하여 비유를 잘 들었나니, 이른바 세간의 비스박약과 여러 채색으로 그린 그림과 익은 소와 허공이니라. 승의생이여, 그와 같고 그와 같아서 다시는 다름이 없으며, 그와 가고 그와 같나니, 그대는 받아 지녀야 할 지니라.” 승의생 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맨 처음 바아라나시이(婆羅☆斯) 선인11)이 떨어진 곳(仙人墮處)인 시록림(施鹿林) 안에 계실 적에 성문승에 나아갈 이들만을 위하여 네 가지 진리(四諦)의 모양으로써 바른 법 바퀴를 굴리셨사온데, 비록 이는 매우 기이하고 심히 희유하여 온갖 세간과 모든 천인들이 일찍이 법답게 굴린 이가 없었다손 치더라도 그 때에 굴리신 바의 법 바퀴는 위(上)가 있고 받아 들임(容)이 있고 이는 요의가 못된지라 바로 여러 쟁론(諍論)의 여지가 있었사옵니다. 세존은 옛날 둘째 번의 시기에는 대승에 나아가 닦는 이만을 위하여, 온갖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으 남도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 함에 의하여 은밀한 모양으로써 바른 법을 굴리셨사온데, 비록 다시 매우 기이하고 심히 희유하다손 치더라도 그 때에 굴리셨던 법 바퀴 역시 이는 위가 있고 받아 들일 바가 잇고 아직도 요의가 못된지라, 바로 여러 쟁론의 여지가 있었사옵니다. 세존은, 이제 셋째 번의 시기에는 널리 온갖 승(乘)에 나아가는 이를 위하여, 온갖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가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 하는 자성이 없는 성품에 의하여 환히 나타난 모양으로써 바른 법 바퀴를 굴리셨사온데, 첫째가고 매우 기이하고 가장 희유하셨나이다, 지금 세존의 굴리신 바 법 바퀴야말로 위가 없고 받아 들임이 없고 이는 참된 요의인지라, 여러 쟁론의 여지가 있지 아니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거나 선녀인으로서이 여래의 온갖 법은 모두가 자성이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본래 고요하여서 자성이 열반이라 함에 의하여 말씀한 바 매우 깊은 요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는 믿고 이해하며 쓰고 베끼며 보호하여 지니며 고양하고 유포하며 받아 외우고 익히면서 이치대로 생각하며 그의 수행의 모양으로써 가행(加行)을 일으키면 얼마의 복이 생기옵니까.” 이말을 하여 마치자, 그 때 세존은 승의생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승의생이여, 이 선남자거나 선녀인에게 그 생기는 바 복이야말로 한량 없고 수가 없어서 비유로 알기조차 어렵느니라. 내가 이제 그대를 위하여 간략하게 조금만을 말하리라. 마치 손톱 위의 흙을 대지의 흙에 비하면, 그 백분의 1도 못되고 천분의 1도 못되고 백천분의 1도 못되고 수(數)분ㆍ산(算)분ㆍ계(計)분ㆍ유(喩)분ㆍ우파니사드12)(鄔波尼殺曇)분의 1도 못되는 것처럼, 혹은 마치 소 발자국 안의 물을 사대해(四大海)의 물에 비하면 백분의 1도 못되고, 내지 우파니사드분의 1도 못되는 것처럼, 그와 같아서 모든 요의가 아닌 경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며, 내지 그의 수행 모양으로써 가행을 일으키어 얻게 되는 공덕을 여기서 말한 바 요의의 가르침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여 쌓는 바 공덕과, 내지 그 수행의 모양으로써 가행을 일으키어 샇는 k 공덕에 비하면 백분의 1도 못되고, 내지 우파니사드분의 1도 못되느니라.” 이 말씀을 하여 마치자, 승의생 보살은 다시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 법문 안의 이 교(敎) 이름은 무엇이라 해야하며, 저는 어떻게 받아 지녀야 하오리까.” 부처님은 승의생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는 승의요의교(勝義了義敎)라 하며, 이 승의요의교를 그대는 받아 지녀야 할지니라.” 이 승의요의교를 말씀하실 때에, 큰 모임 안의 六백천의 중생이 아눗다라 삼먁삼 보리의 마음을 일으켰고, 三백의 천의 성문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 안에서 법안(法眼)의 깨끗함을 얻었으며, 十五만의 성문은 모든 샘(漏)을 영원히 다하여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며, 七만 五천의 보살은 생멸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를 얻었다.
4)마음[心]과 뜻[意]과 알음[識]:마음은 범어 질다(質多)의 번역이고, 집기(集起)의 뜻이며, 뜻은 범어 말나(末那)의 번역이고 사량(思量)의 뜻이며, 알음은 범어 비야남(毘若南)의 번역이고 요별(了別)의 뜻이다. 안식(眼識) 등의 여덟 가지 알음을 저마다 모두 마음이요 뜻이요 알음이라 하지마는, 따로따로 말한다면 마음이란 제八 아아라야식(阿賴耶識)이니 모든 법의 종자를 집합하여 이끌기 때문이다. 뜻이란 제七 마나스식(末那識)이니 언제나 자세히 헤아리고 생각하여 실아(實我)와 실법(實法)을 집착하기 때문이다. 식이란 안식으로부터 의식(意識)까지의 전육식(前六識)이니 머트러운 대경을 요별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여덟 가지 알음을 나누어서 마음과 뜻과 알음이라 한다.
5)아다아나식(阿陀那識):제八식의 별명인데, 번역하여 집지식(執持識)이라 한다. 이 식(識)은 (一) 다섯 가지 감관과 (二) 모든 법의 종자를 붙잡아 가져서 잃지 아니하며, (三) 제 몸으로 하여금 결생(結生)이 상속하게 하여 기세간(器世界)을 붙잡아 가져서 천지를 운행하게 하기 때문에 집지식이라 한다.
6)아아라야식(阿賴耶識):제八식의 일명인데, 장(藏)이라 번역한다. 이 장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능장(能藏)이니, 만유를 내는 친인(親因)인 종자를 간직하여 두기 때문이다. 둘째는 소장(所藏)이니, 팔식(八識) 중 다른 일곱 가지 알음에 의하여 염법(染法)의 종자를 훈습하여 간직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집장(執藏)이니, 제八식은 오랜적부터 없어지지 않고 상주하므로 자아(自我)인 듯이 제七식에게 집착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뜻으로 말미암아 장식이라고 한다.
7)마음이라고도 한다:제八식의 일명이니, 범어로 질다(質多)라고 하며 번역하여 마음이라 한다. 집기(集起)의 뜻이니, 아아라야식 안에서는 모든 법의 종자를 모아 인기(引起)하기 때문이다.
8)파지가 보석(頗胝迦寶):수정(水晶)과 같은 백주(白珠)인데, 일정한 빛깔이 없고 다른 빛깔과 합하면 그 빛깔과 비슷하게 나타난다.
9)六계(界):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ㆍ식(識)의 六계이니, 이 여섯 가지는 각각 분제(分齊)가 있으므로 계(界)라 한다.
10)비스박약(毘濕縛藥):이 약은 아주 공능(功能)이 많은 약으로서, 모든 약에 합하여 쓰면 신묘한 효험이 나타난다고 한다.
11)선인이 떨어진 곳(仙人墮處)인 시록림(施鹿林):녹야원(鹿野苑)을 말한다. 옛날 五백의 나는 신선들이 있었는데, 자주 국왕이 연희를 할 적에 거기에 있던 나체(裸體)의처녀들을 보다가 갑자기 신통을 잃고서 마침내 이곳에 떨어졌기 때문에, 선인이 떨어진 곳이라 한다. 또 옛날에 국왕이 있었는데, 사슴왕의 인자함에 감동되어 이 숲 있는 땅을 여러 사슴들에게 주고서 살생을 못하게 하는 지역으로 삼았기 때문에, 다시 시록림이라고 하였다.
12)우파니사드(鄔波尼殺曇):극히 작은 수량의 이름인데, 근소(近少) 또는 미세(微細)라고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