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6_0042_c_01L현양성교론 제6권
016_0042_c_01L顯揚聖教論卷第六


무착 지음
현장 한역
016_0042_c_02L無著菩薩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제2 섭정의품 ②
016_0042_c_04L攝淨義品第二之二

논하여 말하건대 이상과 같이 세속제(世俗諦)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승의제(勝義諦)는 어떠한가?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42_c_05L論曰如是廣說世俗諦已勝義諦云何?頌曰

5법(法)과 3법(法)의 진실이며
그것은 다시 네 가지임을 알아야 하네.
그리고 네 가지 심사(尋思)와
네 가지 여실지(如實智)이네.
016_0042_c_07L五三法眞實
彼復四應知
及四種尋思
四種如實智
016_0043_a_01L
논하여 말한다. ‘5법(法)’이란 첫째는 양상[相]이고, 둘째는 명칭[名]이며, 셋째는 분별이고, 넷째는 진여이며, 다섯째는 정지(正智)이다. ‘양상’이란 간략히 말하면 온갖 언설의 의지처이다. ‘명칭’이란 모든 양상에 의지하여 언설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분별’이란 삼계에 포섭되는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진여’란 법무아에서 나타난 거룩한 지혜로 행하는 바이고, 온갖 언설이 의지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정지(正智)’란 모든 성문ㆍ독각과 모든 보살이 진여를 통달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보살들은 세간지와 출세간지로써 5명처(明處)에 대해 부지런히 배울 때에, 편만진여(遍滿眞如)가 현전에 많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속히 소지장(所知障)이 청정해지는 것을 증득한다.
‘세간ㆍ출세간의 바른 지혜[正智]’란 다음과 같다. 모든 성문과 독각들이 처음에 진여를 통달하고 나서, 처음에는 한결같이 출세간의 정지의 힘과 다음에 얻어지는 세간ㆍ출세간의 정지로 인하여, 여러 안립된 진리에 대하여 삼계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과 삼계의 고요한 곳을 애착하여 맛들이는 것을 일으키게 된다. 또한 그 정지가 현전에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속히 번뇌장이 청정해짐을 얻게 된다.
016_0042_c_09L論曰五法者一相二名三分別四眞五正智相者若略說謂一切言說所依處名者謂於諸相中依增語別者謂三界所攝諸心心法眞如者謂法無我所顯聖智所行一切言說所不依處正智者略有二種一唯出世閒二世閒出世閒唯出世閒正智謂由正智聲聞獨覺諸菩薩等達眞如又諸菩薩以世出世智於五明處精勤學時由遍滿眞如智多現在前故速疾證得所知障淨世閒出世閒正智者謂諸聲聞及獨覺等通達眞如已由初一向出世閒正智後所得世閒出世閒正智故於諸安立諦中起厭怖三界心及愛味三界寂靜處又由彼正智多現在前故速疾證得煩惱障淨
‘3법(法)’이란 세 가지 자체(自體)1)를 말한다. 첫째는 변계소집자체이고, 둘째는 의타기자체이며, 셋째는 원성실자체이다. 변계소집자체2)는 명칭ㆍ언어에 의지하여 자체를 가립하는 것이니, 세간의 언설에 수순하기 위한 까닭이다. 의타기자체3)는 조건[緣]을 따라 생겨난 법의 자체를 말한다. 원성실자체4)는 다음과 같다. 모든 법의 진여는 거룩한 지혜로 행할 바이고, 거룩한 지혜의 경계이며, 거룩한 지혜로 반연할 바이니, 지극히 청정함을 증득하고자 하기 때문이고, 온갖 형상과 거칠고 무거운 두 속박[麤重二縛]으로부터의 해탈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며, 모든 공덕을 이끌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016_0043_a_04L三法者謂三自體一遍計所執自體二依他起自體三圓成實自體遍計所執自體者謂依名言假立自體欲隨順世閒言說故依他起自體者謂從緣所生法自體圓成實自體者謂諸法眞如聖智所行聖智境界智所緣爲欲證得極淸淨故爲令一切相及麤重二縛得解脫故爲欲引發諸功德故
‘그것은 다시 네 가지임을 알아야 함’이란 다음과 같다. 진실에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의 진실이고, 둘째는 도리의 진실이며, 셋째는 번뇌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고, 넷째는 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다.
016_0043_a_13L彼復四應知者彼眞實復有四種世閒眞實二道理眞實三煩惱障淨智所行眞實四所知障淨智所行眞實
016_0043_b_01L‘세간의 진실’이란 일체 세간이 모든 일에서 관습으로 얻어진 것ㆍ깨달아 들어가는 지견(智見)으로 인하여 공통적으로 세속의 성품을 시설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땅에 대해서는 땅이라고 말하고 불 등이 아니라고 함과 같다. 이와 같이 물, 불, 바람과 빛깔ㆍ형태, 소리, 냄새, 맛, 촉감과 음식, 의복, 수레, 온갖 장엄구, 온갖 집기(什器), 향, 꽃타래, 화장품, 노래, 춤, 음악, 여러 친구들, 남자, 여자, 위의(威儀), 온갖 행동, 밭, 집, 재물 그리고 괴로움과 즐거움 등에 대하여, 괴로움에 대해서는 괴로움이요 즐거움이 아니라고 말하고, 즐거움에 대해서는 즐거움이요 괴로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간략히 말하면 “이것은 이것이요, 그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그것은 그것이요, 그 밖의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일이 세간의 유정들이 결정적인 승해(勝解)로 행할 바이고, 일체 세간이 옛적부터 전해온 명칭과 말로 결정적으로 자신과 남을 분별하는 것이라면, 모두 진실이 되고 삿된 생각으로 구성됨이 아니며 관찰로 취할 바이니, 이것을 ‘세간의 진실’이라고 이름한다.
016_0043_a_17L世閒眞實者謂一切世閒於諸事中由串習所得悟入智見共施設世俗如於地謂唯是地非火等如是於水火風色聲香味觸飮食服乘諸莊嚴具及諸什物香鬘塗飾歌舞音樂衆朋男女威儀諸行田宅財物及苦樂等於苦謂苦非樂於樂謂樂非苦又若略說者謂此是此非彼如是謂彼是彼非餘若事世閒有情決定勝解所行一切世閒自昔傳來名言決定自他分別共爲眞實非邪思搆察所取是名世閒眞實
‘도리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바른 지혜가 있는 이, 도리의 의취를 지닌 총명한 이, 매우 지혜로운 이, 추구하는 이, 살펴서 관찰하는 이, 심사(尋思)의 경지에 머무는 이, 스스로 변재를 갖춘 이, 범부 중생의 지위에 있는 이, 관행(觀行)을 따르는 이들이 현량(現量)5)ㆍ비량(比量)6)ㆍ지교량(至敎量)7)에 의하여 지극히 잘 결택하는 지혜로 행하는 바와 아는 바의 사실을 가지고 증성도리(證成道理)로써 건립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도리의 진실’이라고 이름한다.
016_0043_b_06L道理眞實者謂正智者有道理義諸聰睿者諸黠慧者諸推求者諸審察者住尋思地者具自辯才者處異生位隨觀察行者依現至教三量善決擇智所行所知事以證成道理所建立故是名道理眞實
‘번뇌장이 청정해지는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란 다음과 같다. 모든 성문ㆍ독각들이 무루의 방편지혜와 무루의 바른 지혜[正智]와 다음에 얻는[後得] 무루의 세간지혜 등으로 행하는 경계이니, 이것을 ‘번뇌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을 반연함으로써 번뇌장에 대하여 지혜가 청정하게 되고, 다음에는 장애 없는 성품을 증득하여 머문다. 이런 까닭에 ‘번뇌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라고 이름한다.
【문】 이 중에서 무엇이 진실인가?
【답】 괴로움ㆍ집기(集起)ㆍ적멸ㆍ수도의 네 가지 명칭에서 현현되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이다. 이와 같은 사성제를 간택함으로 인하여 현관위(現觀位)8)에 들어가고, 현관위 중에서 진실한 지혜가 생겨난다.
016_0043_b_12L煩惱障淨智所行眞實者謂一切聲獨覺無漏方便智無漏正智無漏後所得世閒智等所行境界是名煩惱障淨智所行眞實由緣此故於煩惱障智得淸淨及後證住無障㝵性是故說爲煩惱障淨智所行眞實此中何者是眞實?答謂苦道名之所顯四種聖諦由簡擇如是四聖諦故得入現觀位於現觀位中眞實智生
016_0043_c_01L‘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란 다음과 같다. 알아야 할 바[所知]에 대해서 능히 지혜를 장애하기 때문에 소지장(所知障)이라 이름한다. 진실한 성품이라면 바로 소지장을 해탈한 지혜로 행하는 경계이니, 이것을 ‘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라 이름한다. 마땅히 알라.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모든 보살ㆍ부처님 박가범께서, 법무아(法無我)에 들어 이미 지극히 청정함에 들어간 이를 위해서 일체법의 언설을 여읜 자성에 의지하여 자성을 가립한 것이고, 분별이 없는 평등지로 행하는 경계이니, 가장 수승한 진여이고, 최상의 알아야 할 바의 궁극적인 성품이다. 이 성품은 온갖 정법을 간택하고, 능히 회전(廻轉)하지 못하며, 능히 넘어서지 못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라고 한다.
016_0043_b_22L所知障淨智所行眞實者謂於所知能㝵智故名所知障若眞實性解脫所知障智所行境界是名所知障淨智所行眞實應知此復云何?謂諸菩薩佛薄伽梵爲入法無我及已入極淸淨者依一切法離言說自性假說自性無分別平等智所行境界謂最勝眞如無上所知究竟性此性一切正法簡擇不能迴轉不能過越是名所知障淨智所行眞實
‘네 가지 찾아 생각함[尋思]’9)란 첫째는 명칭을 심사함[名尋思]이고, 둘째는 사실을 심사함[事尋思]이며, 셋째는 자체를 임시로 세워 심사함[自體假立尋思]이고, 넷째는 차별을 임시로 세워 심사함[差別假立尋思]이다.10)
‘명심사’는 보살들이 명칭11)에 있어서 오직 명칭만을 보는 것이다. ‘사심사’는 보살들이 사물12)에 있어서 오직 사물만을 보는 것이다.13) ‘자체가립심사’는 보살들이 자체를 가립(假立)한 것에 있어서 오직 자체를 가립한 것만을 보는 것이다. ‘차별가립심사’는 보살들이 오직 차별을 가립한 것만을 보는 것이니, 이것을 ‘차별을 가립한 것에 대한 심사’라고 이름한다.14) 이 보살들은 명칭ㆍ사물의 두 종류에 대하여, 혹은 형상을 떠나서 관찰하거나, 혹은 형상에 계합하여 관찰하거나, 명칭과 사물에 의지하여 합해서 관찰함으로써 ‘자체를 가립함’과 ‘차별을 가립함’에 통달하게 된다.
016_0043_c_09L四種尋思者一名尋思二事尋思自體假立尋思四差別假立尋思尋思者謂諸菩薩於名唯見名事尋思者謂諸菩薩於事唯見事自體假立尋思者謂諸菩薩於假立自體見假立自體差別假立尋思者謂諸菩薩於差別假立唯見差別假立名差別假立尋思此諸菩薩於名事二種或離相觀或合相觀依名事合觀故通達自體假立差別假立
‘네 가지 여실지(如實智)’15)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명심사(名尋思)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이고, 둘째는 사심사(事尋思)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이며, 셋째는 자체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이고, 넷째는 차별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이다.
016_0043_c_19L四種如實智者一名尋思所引如實二事尋思所引如實智三自體假立尋思所引如實智四差別假立尋思所引如實智
016_0044_a_01L‘명심사(名尋思)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란 다음과 같다. 보살들이 명칭에 대해서 오직 명칭만 있다고 심사(尋思)함으로 인하여 명칭에 대해서 여실히 분명히 안다. 말하자면 이 명칭을 이 대상[義]16)으로 삼음으로써 이 사물에 대해서 건립하여 세간으로 하여금 생각ㆍ견해ㆍ언설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만약 빛깔ㆍ형태[色] 등 표상된 사물에 대해서 빛깔ㆍ형태 등의 명칭을 건립하지 않는다면, 모든 세간에서 능히 이 사물이 빛깔ㆍ형태 등이라고 표상지음이 없을 것이며, 만약 표상지음이 없다면 증익하고 집착함을 능히 일으키는 일이 없을 것이고, 만약 집착하지 않는다면 곧 언설이 없을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여실히 분명히 안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1 명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라고 한다.
016_0043_c_23L名尋思所引如實智者由諸菩薩名尋思唯有名已於名如實了知此名爲此義故於此事中建立爲令世閒起想見言說故若於色等所想事中不爲建立色等名者一切世閒無有能想此事是色等若無想者有能起增益執著若不執著則無言若如是如實了知是名第一名尋思所引如實智
‘사심사(事尋思)’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란 다음과 같다. 보살들이 사물에 대해서 오직 사물만 있다고 심사함으로 인하여, 빛깔ㆍ형태 등 표상된 사물의 본성은 일체의 언설을 여읜 것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임을 여실히 분명히 안다. 이것을 ’제2 사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라고 이름한다.
016_0044_a_08L事尋思所引如實智由諸菩薩於事尋思唯有事已實了知色等所想事性離一切言說不可言說是名第二事尋思所引如實智
‘자체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란 다음과 같다. 보살들이 빛깔ㆍ형태 등의 표상된 사물의 가립(假立)된 자체에 대하여 오직 가립이라고 심사함으로 인하여, 실제로 그 사물은 자체가 아니고 그 사물의 자체와 비슷하게 현현한 것임을 통달한다. 또한 능히 그 사물의 자체는 비유하면 변화ㆍ영상(影像)ㆍ메아리ㆍ빛의 그림자ㆍ물 속의 달ㆍ아지랑이ㆍ꿈ㆍ허깨비와 같아서 체성이 있음과 비슷한 것임을 능히 분명히 안다. 이것을 이름하여 ‘제3 자체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진 매우 심오한 의미에서 행해지는 경계의 여실지’라고 한다.
016_0044_a_12L自體假立尋思所引如實智者由諸菩薩於色等所想事假立自體中尋思唯假立故如實通達假立自體實彼事自體而似彼事自體顯現能了知彼事自體猶如變化影像響應光幻似有體性名第三自體假立尋思所引甚深義所行境如實智
016_0044_b_01L‘차별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란 다음과 같다. 보살들이 차별의 가립에 대해서 오직 가립된 성품이라고 심사함으로 인하여, 빛깔ㆍ형태 등의 표상된 사물의 차별가립에 대해서 불이(不二)의 의미를 잘 통달한다. 말하자면 그 모든 사물들은 있음의 성품도 아니고 없음의 성품도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자체가 성취되지 않기 때문에 있음의 성품이 아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체가 성취되기 때문에 없음의 성품도 아니다. 이와 같이 빛깔ㆍ형태가 있음이 아니니 마치 승의제(勝義諦)와 같기 때문이고, 빛깔ㆍ형태가 없음이 아니니 마치 세속제에서 빛깔ㆍ형태를 가립함과 같기 때문이다. 유성(有性)ㆍ무성(無性)ㆍ유색(有色)ㆍ무색(無色)과 같이 그처럼 유견(有見)ㆍ무견(無見) 등17)의 여러 차별가립의 법문은 그 모든 것이 이 이취(理趣)에 의거해서 모두 알아야 한다. 만약 능히 차별가립이 이와 같이 불이(不二)의 뜻임을 여실히 분명히 안다면 이것을 ‘제4 차별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진 여실지’라고 이름한다.
이상과 같이 깨달아 들어가는 바의 사실과 능히 들어가는 원인과 능히 들어감을 분명히 알았다. 또한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44_a_20L差別假立尋思所引如實智者由諸菩薩於差別假立尋思唯假立性故於色等所想事差別假立中善能通達不二之義謂彼諸事非有性非無由可言說自體不成就故非有性由不可言說自體成就故非無性是非有色猶勝義諦故非無色由世俗諦中假立色故如有性無性有色無色如是有見無見等諸差別假立法門彼一切由是理趣盡應知若能如實了知差別假立如是不二之義是名第四差別假立尋思所引如實如是顯了所入事能入因及能入復次頌曰

세 가지 자체가 성립하는
차별, 업, 은밀함,
방편, 포섭, 차이점[別異],
이것은 각각 많은 종류가 있네.
016_0044_b_11L三自體成立
差別隱密
方便別異
是各有多種

논하여 말한다. 저 세 가지 자체(自體)가 성립하는 차별, 업, 은밀, 방편, 포섭, 차이가 각각 많은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립하는 많은 종류는 장차 「성무성품(成無性品) 」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과 같다.
016_0044_b_13L論曰彼三種自體成立差別業用方便攝別異應知各有多種成立多種者如成無性品中當廣說
016_0044_c_01L‘차별’에 관한 것은 다음과 같다.
【문】 변계소집자체는 몇 가지가 있는가?
【답】 의타기자체 중에 있는 가립된 자체의 차별과 같아서 이 변계소집자체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변계소집자체도 한량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의타기자체 중에 두 가지 변계소집자체의 분별이 있나니, 수승한 깨달음을 따르는 것 및 자주 익히는 습기ㆍ수면(隨眠)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문】 의타기자체는 몇 가지가 있는가?
【답】 곧 모든 양상이 많은 종류의 차별이 있음과 같다고 알아야 하나니, 물질의 양상ㆍ심왕법의 양상ㆍ심소법의 양상ㆍ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의 양상 등 이와 같은 것들이다. 또한 간략히 말한다면 두 가지의 의타기자체가 있나니, 변계소집자체의 분별에서 일어난 것과 분별 아닌 것에서 일어난 것이다.
【문】 원성실자체는 몇 가지가 있는가?
【답】 원성실자체는 모든 곳에서 하나의 맛이기 때문에 차별을 건립할 수 없다.
016_0044_b_16L差別者遍計所執自體有幾種?答如依他起自體中所有假立自體差如是遍計所執自體是故遍計所執自體無有限量應知復次於依他起自體中有二種遍計所執自體分謂隨勝覺及隨數習習氣隨眠依他起自體有幾種?答卽如諸相種差別應知謂色相心相心法相不相應相如是等復次若略說有二種依他起自體謂遍計所執自體分別所起及非分別所起圓成實自體有幾種?答圓成實自體於一切處一味故不可建立差別
‘업’에 관한 것은 다음과 같다.
【문】 변계소집자체는 능히 몇 가지 업을 짓는가?
【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능히 의타기자체를 생겨나게 함이고, 둘째는 곧 이 중에서 모든 언설을 일으킴이며, 셋째는 능히 이 가운데서 중생집(衆生執)18)을 생겨나게 함이고, 넷째는 능히 법집(法執)19)을 생겨나게 함이며, 다섯째는 능히 두 가지 집착의 습기ㆍ추중을 섭수함이다.
【문】 의타기자체는 능히 몇 가지 업을 짓는가?
【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능히 모든 잡염의 자체[體]를 생겨나게 함이고, 둘째는 능히 변계소집자체와 원성실자체의 의지처가 됨이며, 셋째는 능히 중생집의 의지처가 됨이고, 넷째는 능히 법집의 의지처가 됨이며, 다섯째는 능히 두 가지 집착의 습기ㆍ추중의 의지처가 됨이다.
【문】 원성실자체는 능히 몇 가지 업을 짓는가?
【답】 다섯 가지가 있다. 능히 두 가지의 다섯 업(業)으로 다스림과 생기(生起)함에서 반연할 바의 성품이 되기 때문이다.
016_0044_c_06L業者遍計所執自體能作幾業?答有五種一能生依他起自體二卽於是中起諸言說三能生衆生執四能生法執五能攝受二執習氣麤重依他起自體能作幾業?答有五種能生諸雜染體二能爲遍計所執自及圓成實自體所依三能爲衆生執所依四能爲法執所依五能爲二執習氣麤重所依圓成實自體能作幾業?答有五種謂能爲二種五業對治生起所緣性故
016_0045_a_01L‘은밀(隱密)’이란 장차 세 가지 자체의 뜻을 따라서 모든 불요의경(不了義經)을 해석함을 말한다. 한량없는 경전 중에 모든 여래의 은밀한 말씀 및 모든 보살의 은밀한 말씀이 모두 세 가지 자체를 따라야만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 경전에서 말씀한 바 3해탈문(解脫門), 그것은 어떻게 건립하는가?
【답】 세 가지 자체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변계소집자체에 의거함으로써 공해탈문(空解脫門)을 세우고, 의타기자체에 의거함으로써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을 세우며, 원성실자체에 의거함으로써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을 세운다.
【문】 경전에서 말씀한 무생법인(無生法忍)20), 그것은 어떻게 건립하는가?
【답】 세 가지 자체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변계소집자체에 의거함으로써 본래무생인(本來無生忍)을 말하고, 의타기자체에 의거함으로써 자연무생인(自然無生忍)을 말하며, 원성실자체에 의거함으로써 번뇌고구무생인(煩惱苦垢無生忍)을 말하나니, 이 세 가지 무생인은 물러서지 않는 경지[不退轉地]21)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차별된 뜻에 의거함으로써 나머지 일체의 은밀한 언어도 모두 세 가지 자체를 따라서 해석됨을 알아야 한다.
016_0044_c_17L隱密者謂當隨三種自體義解釋一切不了義經由無量經中一切如來隱密語言及一切菩薩隱密語言隨三種自體方可悟入彼義故經中說三解脫門彼云何建立?答三自體故謂由遍計所執自體故立空解脫門由依他起自體故建立無願解脫門由圓成實自體故建立無相解脫門如經中說無生法忍彼云何建立?答由三自體故謂由遍計所執自體故說本來無生忍由依他起自體故說自然無生忍由圓成實自體故說煩惱苦垢無生忍此三種忍在不退轉地應知由如是等差別義故於餘一切隱密語言皆應隨三自體解釋應知
‘방편’이란 이와 같은 세 가지 자체를 분명히 알아서 능히 모든 성문ㆍ독각ㆍ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의 방편을 짓는 것을 말한다.
016_0045_a_10L方便者謂了知如是三種自體能作一切聲聞獨覺無上正等菩提方便
‘포섭’이란 세 가지 자체 및 양상ㆍ명칭ㆍ분별 등 다섯 가지 사실이 서로 포섭함을 말한다.
【문】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사실에서 처음의 자체22)는 몇 가지 사실을 포섭하는가?
【답】 없다.
【문】 두 번째 자체23)는 몇 가지 사실을 포섭하는가?
【답】 네 가지이다.
【문】 세 번째 자체24)는 몇 가지 사실을 포섭하는가?
【답】 한 가지이다.
016_0045_a_12L攝者謂三種自體及相分別等五事相攝如是五事初自體幾事攝?第二自體幾事攝?答三自體幾事攝?答一
‘차이점[別異]’이란 다음과 같다. 변계소집자체는 오직 바르게 마땅히 알아야 함이고, 의타기자체는 마땅히 알고 마땅히 끊어야 함이며, 원성실자체는 마땅히 알고 마땅히 증득해야 함이다.
이상과 같이 속제(俗諦)와 승의제(勝義諦)에 깨달아 들어가야 한다. 다시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45_a_16L別異者謂遍計所執自體唯正應知依他起自體知及應斷圓成實自體應知及應作如是悟入俗諦勝義諦已復次頌曰

12분교(分敎)를 듣고
가장 수승한 3보(寶)에 귀의하며
3학(學)과 3보리(菩提)로
유정의 청정을 위해 설하네.
016_0045_a_19L聞十二分教
三最勝歸依
三學三菩提
爲有情淨說
016_0045_b_01L
논하여 말한다. ‘십이분교25)를 듣고’란 계경(契經), 응송(應頌), 기별(記別), 풍송(諷頌), 자설(自說), 연기(緣起), 비유(譬喩), 본사(本事), 본생(本生), 방광(方廣), 미증유법(未曾有法), 논의(論議)인 성교(聖敎)를 듣는 것을 말한다.
‘계경(契經)’26)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경전에서 부처님ㆍ박가범께서 여러 시기와 장소에서 갖가지로 교화하는 유정과 조복할 행위의 차별에 의지하여, 혹은 온(薀)에 포함되는 법ㆍ계(界)에 포함되는 법ㆍ처(處)에 포함되는 법을 말씀하기도 하고, 혹은 연기(緣起)에 포함되는 법27)을 말씀하기도 하며, 혹은 음식작용물[食]에 포함되는 법과 진리[諦]에 포함되는 법28)을 말씀하기도 하고, 혹은 성문ㆍ독각ㆍ여래에 해당되는 법을 말씀하기도 하며, 혹은 4념주ㆍ4정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각지(覺支)ㆍ8성도지(聖道支)에 포함되는 법을 말씀하기도 하고, 혹은 청정하지 않음ㆍ멈춤[息]ㆍ기억함ㆍ배움ㆍ증득함ㆍ청정 등에 포함되는 법을 말씀하는 것을 말한다.
016_0045_a_21L論曰聞十二分教者謂聞契經應頌記別諷頌自說緣起譬喩本事本生方廣未曾有法論議聖教契經者諸經中佛薄伽梵於種種時處依種種所化有情調伏行差別或說薀所攝法界所攝法處所攝法或說緣起所攝法或說食所攝法諦所攝法說聲聞獨覺如來所攝法或說念住正斷神足覺支道支所攝法說不淨念學證淨等所攝法
여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결집(結集)29)하는 모든 이들이 기뻐하고 공경히 받아 지니며, 성교(聖敎)로 하여금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훌륭하고 미묘한 명칭ㆍ문구ㆍ글자 등으로써 그 상응하는 바와 같이 차례로 결집하고 차례로 배치하며, 능히 편찬하고, 온갖 의미와 이익을 이끌어내고, 온갖 청정행[梵行]과 갖가지 훌륭한 의미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계경’이라 이름한다.
016_0045_b_08L如來說是語已諸結集者歡喜敬受爲令聖教得久住故以諸善妙名句字身如其所應次第結集次第安置以能綴緝引諸義利引諸梵行種種善義故名契經
‘응송(應頌)’30)이란 모든 경전 에서 혹은 중간이거나 혹은 최후에 게송으로써 모든 경전의 분명하지 않은 뜻을 거듭 밝히는 것이니, 이것을 응송이라 한다.
016_0045_b_13L應頌者謂諸經中或於中閒或於最以頌重顯及諸經中不了義說爲應頌
‘기별(記別)’31)이란 모든 경전에서, 여러 제자들이 목숨을 마친 후에 태어나는 곳의 차이를 말함과 모든 경전에서 요의설(了義說)을 밝힌 것이니, 이것을 기별이라고 한다.
016_0045_b_16L記別者謂諸經中記諸弟子命終之後生處差別及諸經中顯了義說爲記別
‘풍송(諷頌)’32)이란 모든 경전에서, 산문[長行]으로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구절[句]으로써 엮은 것인데, 혹은 두 구절, 혹은 세 구절, 혹은 네 구절, 혹은 다섯 구절, 혹은 여섯 구절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풍송이라 한다.
016_0045_b_19L諷頌者謂諸經中非長行直說然以句結成或二句或三句或四句或五或六句是爲諷頌
016_0045_c_01L‘자설(自說)’33)이란 모든 경전에서 청하는 이의 이름을 열거하지 않고 정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 성교(聖敎)를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 자연히 널리 말씀하는 것이니, 이것을 자설이라 한다.
016_0045_b_22L自說者謂諸經中不列請者姓名令正法久住故及爲聖教久住故然宣說是爲自說
‘연기(緣起)’34)란 모든 경전에서 청하는 이의 이름을 열거하고서 널리 말씀한 것이니, 모든 비나야(毗奈耶)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연기가 있는 가르침과 별해탈계경(別解脫戒經) 등이니,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016_0045_c_02L緣起者謂諸經中列請者姓名已爲宣說及諸所有毘柰耶攝有緣起教別解脫戒經等是爲緣起
‘비유(譬喩)’35)란 모든 경전에서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을 말한다. 비유로 인하여 본래 뜻이 명백해지나니, 이것을 비유라고 한다.
016_0045_c_05L譬喩者謂諸經中有譬喩說由譬喩本義明白是爲譬喩
‘본사(本事)’36)란 전생에 있었던 갖가지 상응하는 일들을 말한 것이니, 이것을 본사라고 한다.
016_0045_c_07L本事者謂宣說前世諸相應事是爲本事
‘본생(本生)’37)이란 모든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과거 세상에서 갖가지 나고 죽음을 겪으면서 보살행을 행하신 것을 말함이니, 이것을 본생이라고 한다.
016_0045_c_09L本生者謂諸經中宣說如來於過去世處種種生死行菩薩行是爲本生
‘방광(方廣)’38)이란 모든 경전에서, 최상의 보리와 모든 보살도를 능히 증득하여 저들로 하여금 10력(力)과 걸림 없는 지혜 등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방광이라고 한다.
‘미증유법(未曾有法)’39)이란 모든 경전에서, 모든 부처님과 모든 제자들과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式叉摩那)ㆍ사미ㆍ사미니ㆍ오파색가(鄔波索迦)ㆍ오파사가(鄔波私迦) 등의 공통된 공덕과 공통되지 않은 공덕 및 그 외의 가장 수승하고 특별하고 놀랄만하고 매우 심오한 법을 널리 말씀한 것이니, 이것을 미증유법이라고 한다.
016_0045_c_11L方廣者謂諸經中宣說能證無上菩提諸菩薩道令彼證得十力無障智是爲方廣未曾有法者謂諸經中宣說諸佛及諸弟子比丘比丘尼叉摩那沙彌沙彌尼鄔波索迦鄔波私迦等不共功德及餘最勝殊特驚異甚深之法是爲未曾有法
‘논의(論議)’40)란 일체의 마달리가아비달마(摩怛履迦阿毗達磨)로서 모든 경전의 뜻을 연구하여 해석하는 것이니, 이것을 논의라고 한다.
016_0045_c_18L論議者謂一切摩怛履迦阿毘達磨硏究解釋諸經中義是爲論議
016_0046_a_01L이와 같은 십이분교에는 경장ㆍ율장ㆍ아비달마장(阿毗達磨藏)이 있다. 여기서 말한 계경, 응송, 기별, 풍송, 자설, 비유, 본사, 본생, 방광, 미증유법은 경장(經藏)이 된다. 여기서 말한 연기는 율장이 되고, 여기서 말한 논의는 아미달마장이 된다.
016_0045_c_20L如是十二分教中具有經阿毘達磨藏此中所說契經應頌記別諷頌自說譬喩本事本生方廣未曾有法是爲經藏此中所說緣起是爲律藏此中所說論議是爲阿毘達磨藏
(게송에서) ‘세 가지 가장 수승함에 귀의함’이란 부처님ㆍ교법ㆍ승단의 세 가지 귀의할 곳을 말한다.
‘3학(學)’이란 증상계학(增上戒學), 증상심학(增上心學), 증상혜학(增上慧學)을41) 말한다.
‘3보리(菩提)’란 성문의 보리, 독각의 보리,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말한다.
016_0046_a_02L三最勝歸依者謂佛僧三種歸趣三學者謂增上戒學增上心學增上慧學三菩提者謂聲聞菩提獨覺菩無上正等菩提
‘유정의 청정을 위해 설함’이란 유정으로 하여금 청정을 얻게 하기 위하여 차례로 이 세 가지 법을 널리 말씀한 것이니, 능히 지님ㆍ방편ㆍ증과를 말한다. ‘능히 지님’이란 듣고 귀의함을 말하고, ‘방편’이란 삼학을 말하며, ‘증과’란 삼보리를 말한다. 또한 이와 같이 들음[聞] 등에 대하여 어떻게 분별한다고 알아야 하는가?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46_a_06L爲有情淨說者爲令有情得淸淨故次第宣說是三種法謂能持方便果能持者謂聞及歸依方便者謂三學果者謂三菩提復次如是聞等云何分別應知頌曰

들음, 귀의, 배움, 보리에는
여섯, 셋, 열둘, 다섯 가지이니
그 명칭ㆍ숫자의 차례에 따라
상응하는 바대로 자세히 분별해야 하네.
016_0046_a_11L菩提
十二
隨名數次第
如應廣分別

논하여 말한다. ‘들음[聞]’에 관한 여섯 가지 분별이란 첫째는 처(處)에 의지함이고, 둘째는 포섭에 의지함이며, 셋째는 청정에 의지함이고, 넷째는 행에 의지함이며, 다섯째는 이취(理趣)에 의지함이고, 여섯째는 의미[義]에 의지함이다.
‘처(處)에 의지함’이란 5명처(明處)42)에 의지함을 말하나니, 첫째는 내명처(內明處)이고, 둘째는 인명처(因明處)이며, 셋째는 성명처(聲明處)이고, 넷째는 의방명처(醫方明處)이며, 다섯째는 공업명처(工業明處)이다.
016_0046_a_13L論曰聞六種分別者一依處二依攝三依淸淨四依行五依理趣六依義依處者謂依五明處一內明處二因明處三聲明處四醫方明處五工業明處
‘포섭에 의지함’에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성문장(聲聞藏)에 포섭됨이고, 둘째는 보살장에 포섭됨이다.
016_0046_a_18L依攝者有二種謂聲聞藏攝菩薩藏攝
016_0046_b_01L‘청정에 의지함’이란 열 가지 청정을 말한다. 말씀[說]의 청정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훌륭하게 말씀하는 분이 말씀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문자ㆍ글귀를 분명하게 말씀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아는 뜻을 총괄하여아는 뜻과 같이 말씀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쉬운 방편과 수행을 말씀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을 말씀하기 때문이다. 들음[聽]의 청정에도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허물 잡으려는 뜻으로 들음이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는 열반을 구하려는 뜻으로 듣기 때문이며, 셋째는 매우 훌륭하게 자세히 듣기 때문이고, 넷째는 명칭[名身]ㆍ문구[句身]ㆍ글자[文身]의 의미에 의지해서 매우 훌륭하게 분별하여 듣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바르게 수행하려는 뜻으로 듣기 때문이다.
016_0046_a_19L依淸淨者謂十種淸淨說淸淨有五一善說者說故二顯了文句說故盡所知義如所知義說故四易方便修行說故五能出離一切苦說故淸淨有五一不以求過意聽故二以求涅槃意聽故三極善諦聽故四依名句字身義極善分別聽故五以正修行意聽故
‘행에 의지함’이란 열 가지 법행(法行)을 말한다.
016_0046_b_04L依行者謂十種法行
‘이취(理趣)43)에 의지함’에는 여섯 가지 이취가 있나니 진의이취(眞義理趣)와 나아가서는 의요이취(意樂理趣)를 말한다. 이 중에서 앞의 세 가지 이취는 뒤의 세 가지 이취에 의거해서 해석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이이변이취(離二邊理趣)에 의거하여 따라서 진의이취를 해석하고, 부사의이취(不思議理趣)에 의거하여 따라서 증득한 이취를 해석하며, 의요이취에 의거하여 따라서 교도이취(敎導理趣)를 해석한다.
여기서 진실된 의미[眞義]는 곧 이취이기 때문에 진의이취라고 이름하고, 나아가서는 의욕[意樂]은 곧 이취이기 때문에 의요이취라고 이름한다. 이런 저런 곳에서 뒤바뀜이 없는 성품이 이취(理趣)의 뜻이다.
016_0046_b_05L依理趣者有六種理趣謂眞義理趣乃至意樂理趣此中前三理趣由後三理趣隨釋應知謂由離二邊理趣隨釋眞義理趣由不思議理趣隨釋證得理趣由意樂理趣隨釋教導理此中眞義卽是理趣故名眞義理乃至意樂卽是理趣故名意樂理於彼彼處無顚倒性是理趣義
016_0046_c_01L‘진의이취(眞義理趣)’에는 대략 여섯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간의 진실과 나아가서는 소지장이 청정해진 지혜로 행하는 진실 및 내세우는 진실[安立眞實]과 내세움이 아닌 진실[非安立眞實]을 말한다. 이 중에서 앞의 네 가지 진실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안립진실이란 사성제를 말하나니, 괴로움은 참으로 괴로움이기 때문에 고성제를 내세웠으며, 나아가 도(道)는 참으로 도이기 때문에 도성제를 내세운 것이다.
【문】 무슨 인연 때문에 내세움[安立]이라 이름하는가?
【답】 세 가지 세속에 의거해서 안립된 바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세간의 세속에 의거함이고, 둘째는 도리의 세속에 의거함이며, 셋째는 증득의 세속에 의거함이다. 세간의 세속이란 밭ㆍ집ㆍ병(甁)ㆍ동이[盆]ㆍ군인ㆍ숲ㆍ수효[數] 등을 안립하고, 자아ㆍ유정 등을 안립함을 말한다. 도리의 세속이란 오온ㆍ십팔계ㆍ십이처 등을 안립함을 말한다. 증득의 세속이란 예류과 등을 안립하고, 그들이 의지하고 머무는 법을 안립함을 말한다. 다시 네 가지 안립이 있나니, 앞의 세 가지 및 승의ㆍ세속에 의거해서 안립함을 말한다. 승의제(勝義諦)의 성품은 안립할 수 없고 내면적으로 스스로 증득한 바에 의거하기 때문에, 그 지혜를 이끌어내는 것에 수순하기 위해서 세속에 의지해서 안립한다.
‘비안립진실’은 일체법의 진여실성(眞如實性)을 말한다.
016_0046_b_13L眞義理趣者略有六種應知謂世閒眞實乃至所知障淨智所行眞實安立眞實非安立眞實此中前四種眞實如前分別應知安立眞實者四聖諦苦眞苦故安立爲苦乃至道眞道故安立爲道何因緣故爲安立?答由三種俗所安立故一由世閒俗二由道理俗三由證得俗閒俗者謂安立田數等及安立我有情等道理俗者謂安立處等證得俗者謂安立預流果及安立彼所依住法復有四種安謂前三種及由勝義俗安立勝義諦性不可安立由內自所證故爲欲隨順引生彼智依俗安立非安立眞實者謂一切法眞如實性
‘증득이취(證得理趣)’에는 대략 네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일체 유정의 업보의 증득이고, 둘째는 성문승의 증득이며, 셋째는 독각승의 증득이고, 넷째는 대승의 증득이다.
016_0046_c_06L證得理趣略有四種一一切有情業報證得二聲聞乘證得三獨覺乘證得四大乘證得
‘일체 유정의 업보의 증득’이란, 일체 유정이 청정함과 청정하지 못한 업을 지어서 자신의 업에 의해서 5취(趣)에 유전하는 가운데 갖가지 이숙(異熟)44)을 초감하고 갖가지 이숙을 받는 것을 말한다.
016_0046_c_09L一切有情業報證得者謂一切有情造作淨不淨業依自業故於五趣流轉中感種種異熟受種種異熟
016_0047_a_01L‘성문승의 증득’이란 다음과 같다. 처음에 삼귀의를 받고, 나아가서는 문장엄(聞莊嚴)에 의지함으로써 다섯 가지 증득을 얻나니, 첫째는 지위[地]의 증득이고, 둘째는 지혜의 증득이며, 셋째는 청정의 증득이고, 넷째는 과위의 증득이며, 다섯째는 공덕의 증득이다.
‘지위의 증득’이란 세 가지 지위를 말하나니, 첫째는 견도의 지위[見地]이고, 둘째는 수도의 지위[修地]이며, 셋째는 궁극적 지위[究竟地]45)이다.
‘지혜의 증득’이란 아홉 가지 지혜를 증득함을 말하나니, 첫째는 법지(法智)이고, 둘째는 종류지(種類智)이며, 셋째는 고지(苦智)이고, 넷째는 집지(集智)이며, 다섯째는 멸지(滅智)이고, 여섯째는 도지(道智)이며, 일곱째는 이것 다음에 얻어지는 속지(俗智)이고, 여덟째는 진지(盡智)이며, 아홉째는 무생지(無生智)이다.46)
‘청정의 증득’이란 네 가지의 청정을 증득함을 말한다.
‘과위의 증득’이란 사문의 네 가지 과위47)를 말한다.
‘공덕의 증득’이란 무량48), 해탈49), 승처(勝處), 변처(遍處), 무쟁(無諍), 원지(願智), 무애해(無㝵解), 신통 등의 공덕을 말한다.
또한 ‘성문승의 증득’ 가운데 의지(依止)의 증득이란 먼저 세간도(世間道)50)를 닦아서 욕망을 여의고, 다음에 순해탈분(順解脫分)51)의 선근을 닦으며, 다음에 순결택분(順決擇分)52)의 선근을 닦는 것을 말한다.
016_0046_c_12L聲聞乘證得者謂初受三歸乃至依聞莊嚴故得五證得一地證得智證得三淨證得四果證得五功德證得地證得者謂得三地一見地修地三究竟地智證得者謂得九智一法智二種類智三苦智四集智滅智六道智七此後所得俗智八盡九無生智淨證得者謂四證淨證得者謂四沙門果功德證得者無量解脫勝處遍處無諍願智無㝵解神通等功德復次聲聞乘證得中證得依止者謂先修世閒道離欲次修順解脫分善根後修順決擇分善根
‘독각승의 증득’은 대략 세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이전에 이미 순결택분의 선근을 얻음에 의해서이고, 둘째는 이전에 이미 무루(無漏)의 참다운 증득을 얻음에 의해서이며, 셋째는 차례로 증득함에 의해서이다. 여기서 앞의 두 가지를 증득한 이에 의거해서 홀로 수승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이름하고,53) 나중의 것을 증득한 이에 의거해서 무소뿔에 비유되는 깨달음이라고 이름한다.54)
016_0047_a_02L獨覺乘證得者略有三種一由先已得順決擇分善根故二由先已得無漏眞證故三由次第得故此中由前二證得者名非獨勝覺由後證得者名犀角喩覺
‘대승의 증득’이란 대비(大悲)의 증득, 발심의 증득, 바라밀다의 증득, 섭사(攝事)55)의 증득, 지위[地]의 증득, 다섯 가지 무량으로부터 나아가 진여의 증득, 불가사의위덕의 증득, 불공불법(不共佛法)56)의 증득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그 모든 것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016_0047_a_07L大乘證得者謂大悲證得發心證得波羅蜜多證得攝事證得地證得五無量中隨至眞如證得不思議威德證得不共佛法證得彼一切如前分別應知
‘교도이취(敎導理趣)’에는 대략 세 부문에 포함됨이 있나니, 첫째는 장(藏)에 포함되는 것이고, 둘째는 마달리가(摩怛履迦)57)에 포함되는 것이며, 셋째는 그것에 함께 포함되는 것이다. 장(藏)에 포함되는 것이란 성문승장(聲聞乘藏)58) 및 대승장(大乘藏)을 말한다. 마달리가에 포함되는 것이란 열일곱 가지 본지(本地)59) 및 네 가지60) 포섭을 말한다.61) 그것에 함께 포함되는 것에는 대략 열 가지가 있는데, 앞에서 분별한 의미 중에서 열 가지 의미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모든 장(藏)에 포함되는 것 및 마달리가에 포함되는 것을 포섭하기 때문에 총략마달리가(摠略摩怛履迦)라고 이름한다.
016_0047_a_12L教導理趣者謂略有三處所攝一藏所攝二摩怛履迦所攝三彼俱所攝藏所攝者謂聲聞乘藏及大乘藏怛履迦所攝者謂十七本地及四種彼俱所攝者謂略有十種如前分別義中十種義應知此爲攝前一切藏所攝及摩怛履迦所攝故名爲摠略摩怛履迦
016_0047_b_01L또한 열두 가지 교법이 있다. 첫째는 사물에 관한 교법[事敎]이니, 빛깔ㆍ형태 등과 눈[眼] 등의 각기 다른 일체법을 널리 말씀한 교법을 말한다.
둘째는 상차별에 관한 교법[想差別敎]이니, 5온ㆍ18계ㆍ12처ㆍ연기ㆍ시처(是處)62)ㆍ비처(非處)63)ㆍ여러 근(根)64)ㆍ여러 진리[諦]65)ㆍ4념주ㆍ유색(有色)ㆍ무색(無色)ㆍ유견(有見)ㆍ무견(無見)ㆍ유대(有對)ㆍ무대(無對) 등, 이와 같이 자세히 설해진 한량없는 부처님 박가범의 상차별(想差別)의 가르침을 말한다.
셋째는 자기 종에서 관찰하는 교법[自宗觀察敎]이니, 계경ㆍ응송ㆍ기별 등의 교법을 말하며, 의섭석(依攝釋)66) 중에서 나타나게 되는 바이다.
넷째는 다른 종에서 관찰하는 교법[他宗觀察敎]이니, 일곱 가지 인명(因明)67)에 의지해서 다른 논의를 항복시키고 자기 논의를 성립시키는 교법을 말한다. 일곱 가지 인명은 논리의 자체[論體]와 논리의 처소[論處所] 등을 말하는데, 나중에 장차 분별하겠다.
다섯째는 요의가 아닌 교법[不了義敎]68)이니, 계경ㆍ응송ㆍ기별 등에서 박가범께서 그 의미를 대략적으로 나타내고 아직 자세히 분별하지 않은 것을 말하며, 마땅히 다시 열어 보여야 할 교법이다.
016_0047_a_20L復有十二種教一事教謂宣說各別色等眼等一切法教二想差別教宣說薀緣起是處非處諸根念住有色無色有見無見有對無對等如是廣說無量佛薄伽梵想差別教三自宗觀察教謂契經應頌別等教依攝釋中之所顯示四他宗觀察教謂依七種因明摧伏他論立自論教七種因明者謂論體論處所等後當分別五不了義教謂契經應頌記別等中薄伽梵略摽其義廣分別應更開示教
여섯째는 요의인 교법[了義敎]이니, 앞의 것과 상반된다고 알아야 한다.
일곱째는 세속제인 교법[俗諦敎]이니, 온갖 언로(言路)로 나타내는 그 모든 것을 다 속제(俗諦)라고 이름한다. 또한 명칭ㆍ관념ㆍ더욱 향상된 언설에 의지해서 일으켜진 양상ㆍ명칭ㆍ분별도 역시 속제이다.
여덟째는 승의제인 교법[勝義諦敎]이니, 사성제의 교법 및 진여ㆍ실제(實際)ㆍ법성의 교법을 말한다.
아홉째는 은밀한 교법[隱密敎]69)이니, 대부분 성문장의 교법을 말한다.
열째는 현요의 교법[顯了敎]이니, 대부분 대승장의 교법을 말한다.
열한째는 기별할 수 있는 사실의 교법[可記事敎]이니, 네 가지 법의 올타남(嗢拕南)의 교법과 같은 것으로서 “일체의 행(行)은 무상하고, 나아가 열반은 고요함[寂靜]이다.”70)라고 하는 이와 같은 교법들을 말한다.
열두째는 사실을 말할 수 없는 교법[不可記事敎]이니,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세간은 항상함인가, 무상함인가?”라고 물으면, 여래께서는 그때 침묵하여 대답하지 않으시고[不記] 다만 그에게 말씀하기를 “나는 이 사실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없다[不可記別].”고 하고, 나아가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는 존재하지 않음인가, 존재하지 않음이 아닌가?”라고 물으면, 여래께서는 그때 침묵하여 말씀하지 않으시고[不記] 다만 그에게 말씀하기를 “나는 이 사실에 대해 말할 수 없다[此事不可記].”고 한다. 여기서 네 가지 인연 때문에 기별할 수 없는 사실[不可記事]을 널리 말씀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6_0047_b_09L六了義教謂翻前應知七俗諦教謂諸所有言路顯彼一切皆名俗諦又依名想言說增上所起相分別亦是俗諦八勝義諦教謂四聖諦教及眞如實際法性教九隱密教謂多分聲聞藏教顯了教謂多分大乘藏教十一可記事教如四種法嗢拕南教謂一切行無常乃至涅槃寂靜如是等教十二不可記事教謂有問言世閒爲常無常耶?如來爾時默然不記但告彼我說此事不可記別乃至問言來滅後爲非有非無耶?如來爾時然不記但告彼言我說此事不可記此中四因緣故宣說不可記事應
016_0047_c_01L첫째는 체성이 없기 때문에 기별(記別)할 수 없음이니, 마치 어떤 이가 “나는 모든 온(薀)과 더불어 다른가, 다르지 않은가? 항상함인가, 무상함인가?”라고 묻는 그와 같은 것들이다.
둘째는 능히 이익이 없음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기별할 수 없음이니, 마치 『승섭파섭경(升攝波葉經)』에서 “한량없는 법을 내가 이미 증득하고 깨달았지만 널리 말하지 않노라. 왜냐하면 그 법은 능히 이익 없는 것을 이끌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셋째는 매우 심오하기 때문에 기별할 수 없음이니,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자아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라고 물으면, 이것은 기별할 수 없나니, 왜냐하면 만일 여래께서 “자아는 있는 것이다.”라고 기별하면 그 사람은 혹은 온(薀)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거나 혹은 온을 여읜 것에 자아가 있다고 집착한다. 만일 “자아는 없는 것이다.”라고 기별하면, 그 사람은 혹은 세속의 언설로 비방하여 “자아는 역시 없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어떤 이가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는 존재함인가, 존재하지 않음인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함인가? 존재함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음도 아닌가?”라고 묻는 것 등이니, 매우 심오하기 때문에 모두 기별할 수 없다.
넷째는 그 양상은 법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에 기별할 수 없음이다. 말하자면 모든 법의 진여는 그 모든 법과 더불어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를 기별할 수 없다. 그 진여의 양상은 법이 본래 그러함으로 인하여, 다른 성품이라거나 다르지 않은 성품이라고 안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016_0047_c_01L一無體性故不可記別如有問言我與諸薀爲異不異爲常無常?如是二能引無義利故不可記別如『升攝波葉經』說有無量法我已證覺不宣說何以故?彼法能引無義利故三甚深故不可記別謂有問言我爲有爲無耶?此不可記別何以故?若如來記別我有者彼人或執薀中有我或執離薀有我若記別我無者彼人或謗世俗言說我亦是無乃至有問如來滅後爲有爲無亦有亦無非有非無等由甚深故皆不記別四彼相法爾故不可記別謂諸法眞如與彼諸法若一若異不可記別由彼如相法爾不可安立若異性若不異性故
다시 네 가지 인연이 있어서 여래께서 기별할 수 없은 사실을 널리 말씀함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이런 사실은 외도가 말하는 바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이익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오직 다투어 논하는 속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인연이 있어서 이익을 이끌어내지 못함을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인과(因果)에 관한 사유를 멀리 떠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잡염ㆍ청정에 관한 사유를 멀리 떠나기 때문이다.
016_0047_c_15L復有四種因緣如來宣說不可記別事應知一由此事外道所說故二不如理故三不引義利故四唯能發起諍論纏故有二因緣不引義利應知一遠離因果思惟故二遠離雜染淸淨思惟故
016_0048_a_01L‘두 쪽을 떠나는 이취[離二邊理趣]’에는 대략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실유(實有)가 아닌 것을 증익(增益)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고, 둘째는 참다운 실유에 대해 손감(損減)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며, 셋째는 상주라고 집착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고, 넷째는 무상이라고 집착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며, 다섯째는 욕락을 수용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고, 여섯째는 스스로 괴로움을 수용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다.
016_0047_c_21L離二邊理趣者略有六種應知一遠離於不實有增益邊二遠離於眞實有損減邊三遠離執常邊四遠離執斷邊五遠離受用欲樂邊六遠離受用自苦邊
‘불가사의이취(不可思議理趣)’에는 대략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한 사실이 있다. 첫째는 자아에 대한 불가사의이고, 둘째는 유정에 대한 불가사의이며, 셋째는 세간에 대한 불가사의이고, 넷째는 일체 유정의 업보에 대한 불가사의이며, 다섯째는 정려(靜慮)를 증득한 이 및 정려의 경계에 대한 불가사의이고, 여섯째는 모든 부처님 및 모든 부처님 경계의 불가사의이다.
016_0048_a_03L不可思議理趣者略有六種不可思議事一我不可思議二有情不可思三世閒不可思議四一切有情業報不可思議五證靜慮者及靜慮境界不可思議六諸佛及諸佛境界不可思議
‘의요이취(意樂理趣)’에는 대략 열여섯 가지의 의욕[意樂]71)이 있다. 첫째는 열어 보이려는 의욕이고, 둘째는 욕망을 여의려는 의욕이며, 셋째는 권하고 인도하려는 의욕이며, 넷째는 장려하려는 의욕이고, 다섯째는 찬탄ㆍ기쁨에 대한 의욕이며, 여섯째는 들어가게 하려는 의욕이고, 일곱째는 의심을 없애려는 의욕이며, 여덟째는 성숙시키려는 의욕이고, 아홉째는 안정(安定)에 대한 의욕이며, 열째는 해탈에 대한 의욕이고, 열한째는 개별적인 뜻에 의지하려는 의욕이며, 열두째는 행을 일으키고 증득하는 이의 허물없고 환희에 대한 의욕이고, 열셋째는 듣고 행하는 이로 하여금 법을 설하는 스승에게 존경을 일으키게 하려는 의욕이며, 열넷째는 법안(法眼)을 유포하려는 의욕이고, 열다섯째는 선(善)을 증광시키려는 의욕이며, 열여섯째는 온갖 상(相)을 무너뜨리려는 의욕이다.
016_0048_a_09L意樂理趣者略有十六種意樂一開示意樂二離欲意樂三勸導意樂獎勵意樂五讚悅意樂六令入意樂七除疑意樂八成熟意樂九安定意十解脫意樂十一依別義意樂二發證行者無過歡喜意樂十三令聞行者於說法師起尊重意樂十四法眼流布意樂十五善增廣意樂六摧壞一切相意樂
‘의미에 의지함’이란 불요의(不了義)와 요의(了義)를 말한다.
016_0048_a_18L依義者謂不了義及了義
‘세 가지 분별에 귀의함’이란 첫째는 성취이고, 둘째는 건립이며, 셋째는 차별이다. ‘성취’란 오직 부처님ㆍ교법ㆍ승단이 참다운 귀의처이고 그 외의 하늘 등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니, 첫째는 능히 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현전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016_0048_a_19L歸三種分別者一成就二建立三差成就者唯佛僧是眞歸依非餘天等何以故?由二因故一無所能爲二不現見故
016_0048_b_01L‘능히 하는 바가 없음’이란 무엇인가? 모든 천신(天神)은 온갖 중생을 위해서 능히 이로운 일을 짓지 못함을 말한다. 이 모든 천신은 혹은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혹은 공경하고 섬길만한 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며, 혹은 피로와 괴로움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고, 혹은 자비가 없기 때문이며, 혹은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참다운 귀의처가 아니니, 말하자면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편당(偏黨)에 떨어지기 때문이며, 자신이 피로하고 괴로워지는 것을 피하고 자재함이 없기 때문이고, 연민이 없기 때문이며, 덕이 미약하고 하열하기 때문이다.
016_0048_a_23L云何無所能爲?謂諸天神不能爲諸衆生作利益事此諸天神或無能故或待敬事故或不忍疲苦故或無慈悲故或有障㝵故如是一切非眞歸謂無能故墮偏黨故避自疲苦無自在故無哀愍故德微劣故
‘현전에 보지 못함’이란 무엇인가? 모든 천신은 현전에 증득하여 보지 못하나니, 세간에서 현전에 보지 못한 주인이 능히 귀의처가 되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귀의하고 믿을 만하여 현실로 다른 이를 섭수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그 외에 현전에 보고 의지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문】 꿈속에서 보았기 때문에 마땅히 귀의처가 아닌가?
【답】 욕망의 생각에서 보이는 것이므로 혹은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다. 또한 다시 깨었을 때에는 어째서 현전에 보지 못하는가? 비록 꿈속에서 약간 실상을 보았더라도 이것 역시 욕망의 생각이 지은 바이다. 또한 온갖 조건[緣]이 현전하여 꿈속에 있는 이로 하여금 약간 보는 바가 있더라도 이것 역시 허망함이 많다.
또한 다섯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모든 천신 등은 귀의처가 아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모습에 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체에 의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업에 의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법이 본래 그러함에 의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원인ㆍ결과에 의하기 때문이다.
016_0048_b_06L云何不現見?謂諸天神非現證見閒未見不現見主能爲所依除可依信現攝受他餘現見依所不見故夢中見故應是歸依?答欲想所見不實又復覺時何不現見?雖於夢少見實相此亦欲想所作又衆緣現前令處夢者少有所見此亦多虛復次由五種因諸天神等非歸依處何等爲五?一由相故二由體故三由業故四由法爾故五由因果故
016_0048_c_01L‘모습에 의하기 때문’이란 모든 천신은 세상에서 현전에 보지 못하고 담론(談論)도 없기 때문이고, 얼굴 빛깔이 분노를 띠어 (사람들이) 두려워함이 있기 때문이며, 잡염되고 방일하며 탐애가 있기 때문이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함을 버려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며, 지을 것과 짓지 않을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진실한 뜻을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의할만한 곳이 아니다.
어떤 모습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귀의할만하다고 하는가? 세상에서 현전에 볼 수 있고 담론이 있기 때문이고, 얼굴 빛깔이 평화롭고 고요하여 (사람들이)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며, 방일을 멀리 여의고 탐애가 없기 때문이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함을 버리지 않고 큰 자비가 있기 때문이며, 지을 것과 짓지 않을 것을 잘 알 수 있고 진실한 뜻을 통달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섯 가지 모습으로 인하여 부처님은 귀의할만하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대보리를 증득하셨기 때문이고, 현실로 대중에 계시면서 정법의 눈을 뜨게 하시기 때문이며, 원수거나 친한 유정을 평등히 이롭게 하기 때문이고, 모든 집안에 대하여 섭수하되 탐착을 버려서 모든 감관이 고요하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의 의심의 그물을 잘 없애주기 때문이다.
016_0048_b_16L由相故者謂諸天神世不現見無談論故容色奮發有怖畏故染習放逸有貪愛故捨他利益無悲愍故不能解了作與不作不達實義故不可歸云何相故佛可歸依?謂世閒現見有談論故容色和靜無怖畏故遠離放逸無貪愛故不捨利他有大悲故善能解了作與不作通達實義故由五相佛可歸依何等爲五?爲利有證大菩提故現處大衆開正法眼怨親有情平等利益故於諸家室攝受捨離貪著諸根寂靜故善除一切衆生疑網故
‘자체에 의거하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는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음으로 인하여 스스로 이미 조복하고 또한 다른 이를 조복하기 때문에 귀의할 만 하다. 그러나 여러 천신 등은 온갖 번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도 조복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다른 이를 조복하겠는가? 그러므로 귀의할만한 곳이 아니다.
016_0048_c_06L由體故者謂由如來永斷諸漏自旣調御亦調御他故可歸依諸天神等具諸漏故尚不自調御況調御他?故非歸處
‘업에 의하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는 광대하고 때 없는[無垢] 정려(靜慮) 등에 안주하는 업이 있고, 또한 다시 능히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업이 있기 때문에 귀의할만한 곳이다. 그러나 천신 등은 욕락을 더럽고 열등하게 수용하는 것에 안주하는 업이 있고, 또한 온갖 중생을 살해하는 업이 있기 때문에 귀의할만한 것이 못된다.
016_0048_c_10L由業故者謂如來安住廣大無垢靜慮等業又復能爲利衆生業故可歸諸天神等安住穢下受用欲業有殺害諸衆生業故非歸處
016_0049_a_01L‘법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일체 세간과 출세간의 공덕과 수승한 이익은 모두 자기의 공력에 의지해서 얻은 바이며, 만일 자기의 공력을 떠나서는 비록 천신에게 깊은 공경과 믿음을 내더라도 또한 증득하지 못한다. 설령 천신에게 공경과 믿음을 내지 않더라도 다만 자신의 공력으로 반드시 능히 증득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천신은 귀의처가 아니다.
‘인과에 의하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지금 천신을 섬기는 이에게 묻노라. 천신의 체성은 하늘의 업으로 인하여 얻어진 것[感得]인가, 하늘에 공양함으로 인하여 감득(感得)된 것인가, 원인 없이 감득된 것인가? 만약 하늘의 업으로 감득된 것이라면 곧 마땅히 업에 귀의해야 하고 하늘이 아닐 것이다. 만약 원인 없이 감득된 것이라면 마땅히 원인 없는 것에 귀의해야 하고 하늘이 아닐 것이다. 만약 천신에 공양함으로 인하여 감득된 것이라면, 오직 공양함으로 인하여 천신의 자체를 감득하는 것인가, 오직 천신으로 인하여 원인을 삼는 것인가? 두 가지가 만약 오직 공양함에 의해서라면 곧 헛되이 천신을 섬기는 것이니, 어디서라도 공양만 하면 모두 마땅히 능히 하늘의 과보를 감득할 것이다. 만약 오직 천신으로 인한 것이라면 곧 헛되이 공양을 베푸는 것이니, 비록 공양하지 않더라도 다만 천신으로 인하여 마땅히 하늘의 과보를 감득할 것이다. 만약 함께 두 가지로 인한 것이라면, 다만 공양을 베풀기만 하면 천신이 섭수하여 기원하는 모든 일들이 다 마땅히 결과를 이룰 것이다.
또한 일곱 가지 기원하는 일들에 있어서 결정코 결과를 이루지 못하며, 이런 까닭에 옳지 못하다. 첫째는 공양하는 연(緣)에서 섭수함이고, 둘째는 믿고 이해하는 연에서 섭수함이며, 셋째는 그를 믿고 이해하는 이에게는 믿음과 이해를 일으키고 가장 수승한 천신의 자체를 능히 감득하게 함이고, 넷째는 가장 수승하게 누리는 부(富)ㆍ즐거움을 능히 감득함이며, 다섯째는 아수라[阿素洛=阿修羅] 등의 원적(怨敵)을 꺽어 무너뜨리는 것이고, 여섯째는 출생에서이며, 일곱째는 죽음에 있어서이다.
016_0048_c_14L由法爾故者謂一切世閒及出世閒功德勝利皆依自己功用所得若離自己功用雖於天神起深敬信亦不能證設於天神不生敬信但自用功必能證得是故天神非歸依處由因果故者今問事天神者天神體性由天業感得?爲由供養天得?爲無因得?若天業得者卽應歸業非天若無因得者應歸無因非天若供養天神得者爲唯因供養感天神體爲唯因天神爲因二種若唯因供養者卽徒事天神隨處供養皆應能感天報唯因天神者卽徒設供養雖不供養但由天神應得天報若俱因二種者但設供養天神攝受諸所祈願悉應果遂又於七種所祈願事不定果遂是故不然一於供養緣攝受二於信解緣攝受三於信解彼者發起信解能感最勝天神自體四於能感最勝所受富樂五於摧壞阿素洛等怨敵六於出生七於終沒
‘건립’이란 다음과 같다.
【문】 몇 가지 귀의처가 있는가?
【답】 세 가지 귀의처가 있나니, 부처님ㆍ교법ㆍ승단을 말한다.
【문】 무슨 원인으로 오직 세 가지 귀의처가 있는가?
【답】 네 가지 원인 때문에 오직 여래가 귀의처가 된다. 훌륭하게 스스로 조복하기 때문이고, 온갖 종류의 조복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며, 재물로써 공양함을 마음에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고, 수행으로써 공양함을 마음에 기뻐하시기 때문이니, 이러한 덕을 갖추기 때문에 그 분께서 말씀하신 법과 제자의 무리들도 역시 귀의처가 된다.
【문】 무엇에 한하여 능히 귀의함이라고 이름하겠는가?
【답】 네 가지 원인을 갖춤으로써 능히 귀의함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첫째는 덕이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고, 둘째는 차별을 잘 알기 때문이며, 셋째는 스스로 맹세하고 받기 때문이며, 넷째는 다시는 그 외에 귀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016_0049_a_12L建立者有幾種歸趣?答三種歸趣謂佛因唯有三種歸趣?答由四因故唯有如來是可歸趣謂善自調故善解一切種調伏方便故以財供養不悅意以行供養悅可意故由具此德所說法及弟子衆亦可歸依齊何當名能歸趣耶?答具四因故名能歸一善知有德故二善知差別故自誓受故四更不餘歸趣故
016_0049_b_01L【문】 귀의하는 행은 어떠한가?
【답】 네 가지 귀의하는 바른 행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선인(善人)을 가까이 하고, 둘째는 정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이치에 맞게 작의(作意)하고, 넷째는 법을 따르는 법행[法隨法行]72)이다.
다시 네 가지 바른 행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모든 감관을 잘 거두어서 들뜨거나 동요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바른 계율[學處]을 받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연민히 여기는 것이며, 넷째는 수시로 삼보에 여법하게 공양하는 것이다.
【문】 삼보에 귀의하면 어떤 이로움이 있는가?
【답】 네 가지 이로움이 있다. 첫째는 광대한 공덕을 얻음이고, 둘째는 광대한 환희를 얻음이며, 셋째는 뛰어난 등지(等持)를 얻음이고, 넷째는 선(善)ㆍ청정을 얻음이다.
다시 네 가지 이로움이 있다. 첫째는 크게 보호하여 구족함이고, 둘째는 일체의 삿된 이해로 인한 장애가 점차 미약해지고 두루 모두 소멸해진다. 셋째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바르고 지극히 착한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른바 큰 스승[大師]과 같이 청정하게 수행 하는 대중들이다. 넷째는 성인의 가르침을 믿는 모든 천신들에게 사랑과 기뻐함을 받게 됨이니, 그 모든 천신 등이 만일 삼귀의를 받은 이를 보게 되면 크게 환희하여 전전히 서로 알려주기를 “우리들도 옛날에 모두 삼귀의를 성취함으로 인하여 그 목숨을 마친 후에 이 곳에 와서 태어났으니, 이 선남자 등도 지금 역시 이 삼귀의를 성취하고 많이 안주하여 버리지 않나니 머지 않아 미래에 우리들의 벗이 되리라”고 한다.
016_0049_a_21L歸趣行云何?答有四種歸趣正行應知親近善人二聽聞正法三如理作意四法隨法行復有四種正行應知善攝諸根令不掉動二受正學處悲愍衆生四時時如法供養三寶歸趣三寶有何利益?答有四種利益一得廣大功德二得廣大歡喜三得勝等持四得善淸淨復有四種利益一大護具足二一切邪解障㝵漸得微薄遍盡滅沒三得入聰慧正至善人衆中所謂大師同梵行衆四爲信聖教諸天之所愛樂彼諸天等若見有受三歸趣者生大歡喜展轉相告我等往昔皆由成就三歸趣故從彼命終來生此閒是善男子等今亦成此三歸趣多住不捨不久當來我等伴
016_0049_c_01L‘차별’이란 여섯 가지 원인에 의해서 삼보의 차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양상에 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업에 의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믿음ㆍ이해에 의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행(行)에 의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좇아서 기억함에 의하기 때문이고, 여섯째는 복을 일으킴에 의하기 때문이다.
‘양상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스스로 깨달음을 증득하는 양상이 불보(佛寶)이고, 깨달음을 증득한 결과의 양상이 법보이며,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라서 바르게 수행하는 양상이 승보임을 말한다.
‘업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바른 설법을 굴리는 업이 불보이고, 번뇌ㆍ괴로움이 끊어진 것을 반연할 바의 경계로 삼는 업이 법보이며, 더욱 부지런히 용맹 정진하는 업이 승보임을 말한다.
‘믿음ㆍ이해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불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가까이 하고 공경히 섬기며, 바른 법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믿고 공경하고 증득하며, 모든 승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같은 법으로 함께 머물고 공경하며 믿고 가까이 함을 말한다.
016_0049_b_15L差別者謂由六種因故三寶差別應一由相故二由業故三由信解故四由行故五由隨念故六由生福故由相故差別者自證覺相是佛寶覺果相是法寶由隨他教正修行相是僧寶由業故差別者轉正說業是佛寶煩惱苦斷所緣境業是法寶勤勇業是僧寶由信解故差別者於佛寶應親近敬事於正法寶應信敬作證於諸僧寶應同法共住敬信親近
‘행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불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맞아들이고 청하며 영접하고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행을 일으키고, 바른 법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이치에 맞는 방편으로 닦아 익히는 행을 일으키며, 모든 승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재물과 법을 서로 함께 수용하는 행을 일으킴을 말한다.
‘생각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차별됨’이란 삼보에 대하여 응하는 바에 따라 각각 별도의 행을 일으키는 것을 따라서 기억함을 말한다. 경전에서 “이 박가범ㆍ여래ㆍ응공ㆍ정등각.....(나아가 자세히 말함)”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복을 일으킴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다음과 같다. 불보에 있어서는 한 유정에 의지해서 가장 수승한 복을 일으키고, 바른 법보에 있어서는 더욱 향상된 법에 의지해서 가장 수승한 복을 일으키며, 모든 승보에 있어서는 많은 유정에 의지해서 가장 수승한 복을 일으킨다.
016_0049_c_03L由行故差別者謂於佛寶應起延請迎接承事供養行於正法寶起如理方便修習行於諸僧寶應起互共受用財法行由隨念故差別者於三寶所應各起別行隨念如經中此薄伽梵如來正等覺乃至廣由生福故差別者謂於佛寶依一有情生最勝福於正法寶依增上法生最勝福於諸僧寶依多有情生最勝福
顯揚聖教論卷第六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자체(自體)는 본체ㆍ본성ㆍ자성(自性)의 개념이다. 모든 존재의 본성이나 사물의 존재하는 상태이다. 여기서 세 가지 자체는 3자성(自性) 즉 변계소집자성ㆍ의타기자성ㆍ원성실자성을 가리킨다. 변계소집(자)성은 집착과 미망(迷妄)의 세계를, 의타기(자)성은 서로 의지하는 연기(緣起)의 세계를, 원성실(자)성은 깨달음의 세계를 가리킨다. 현상계(迷界)와 본체계(悟界)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의 양상을 설명한다. 그런데 현상계 즉 유위법(有爲法)의 실성(實性)이 본체계 즉 무위법(無爲法)이듯이, 삼법은 별개의 자체가 아니다. 삼성 중에서 변계소집성은 의타기성의 잡염분(雜染分)이고, 원성실성은 의타기성의 청정분(淸淨分)이다. 의타기성 즉 연기의 법칙에 대해 미혹하면 변계소집성의 세계가 전개되고, 연기법을 확연히 깨치면 아집ㆍ법집이 영원히 사라져 아공ㆍ법공의 2공소현(空所顯)의 원성실성이 전개된다.
  2. 2)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 parikalpita-svabhāva)은 ‘두루 계탁하여 집착된 바의 성품’ 즉 의식ㆍ말나식(能遍計)에 의해 나ㆍ나의 것으로 집착되어 가상(假想)된 존재형태(所遍計)이다. 두루 분별하여 착각하며 집착하는 것을 주체면에서 능변계(能遍計:의식ㆍ말나식), 대상면에서 소변계(所遍計:의타기성의 94法 중에서 의식ㆍ말나식 제외)로 나눈다. 의식과 말나식에 의해서 아집과 법집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의식은 5온(蘊)을 나라고 착각 집착하고,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나라고 착각 집착하는 것이다. 또한 존재의 구성요소[法]들이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연기법에 의해 존재하므로 불변ㆍ독존(獨存)의 실체성이 없는 공(空)이다. 우리는 자아나 외부대상이 실재성이 있는 줄로 착각하여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갖지만, 사실은 허망분별에 의해 가상된 변계소집성으로서 허공 꽃[空華]처럼 실재성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식에 의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개념이나 언어로써 파악 집착된다.
  3. 3)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 paratantra-svabhāva)은 ‘다른 것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 즉 연기(緣起)의 성품이다. 인연화합에 의해 생멸하는 존재들의 세계를 말한다. 유식학적으로 말하면 아뢰야식을 기반으로 하는 심법(心法:8식과 51심소)을 가리킨다. 물론 연기성이므로, 유식학의 제법분류법(諸法分類法)인 5위백법(位百法:色法 11ㆍ心王法 8ㆍ心所法 51ㆍ不相應行法 24ㆍ無爲法 6가지) 중에서 무위법을 제외한 94법이 이에 해당되지만, 만법유식(萬法唯識)의 입장에서 의타기성은 특히 8식을 중심으로 한 심법을 가리킨다.
  4. 4)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 pariniṣpanna-svabhāva)은 ‘원만히 성취되어 있는 진실한 성품[圓滿成就眞實性]’ 즉 본래부터 원만 성취되어 있는 ‘진여’를 말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 가운데 최고의 가치를 갖는 승의(勝義:勝智對境)이다. 그것은 존재면에서 진여이고, 인식적으로는 무분별지혜이다. 의타기성이 변계소집성을 멀리 여읜 것이 원성실성이다. 즉 심법(心法:의타기성)에서 아집ㆍ법집의 모든 번뇌 오염(변계소집성)이 소멸되어 항상 없는 것이 반야의 무분별지혜(원성실성)이다.
  5. 5)범어 pratyakṣa의 번역어로서, 감각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서 아는 감각지(感覺知)를 말한다. 예를 들어 안식(眼識)이 안근(眼根)을 통해 색경(色境)을 인식하는 것 등이다.
  6. 6)범어 anumāna의 번역어로서, 이미 아는 사실을 가지고 비교해서 아직 알지 못하는 사실을 추측하여 아는 형태의 추리지(推理知)이다. 예를 들면 어느 곳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미루어 그 밑에 불이 있다는 것을 안다거나, 나비와 벌이 모이는 것을 미루어서 꽃이 있음을 아는 것 등이다.
  7. 7)범어 śabda의 번역어로서 성언량(聖言量)ㆍ성교량(聖敎量)ㆍ정교량(正敎量)이라고도 한다. 성자의 말씀에는 잘못이 없다고 믿어서 이것에 의해 여러 가지 사실을 미루어 아는 것이다.
  8. 8)현관(現觀, abhisamaya)은 현전(現前)에서 지혜로 직접 명료하게 관(觀)하는 것이다. 현관위는 견도(見道)를 가리킨다. 견도에 들어가 번뇌를 여읜 무루지(無漏智)로 진리를 관한다.
  9. 9)유식학에서 실천수행의 계위(階位)를 5위(位:資糧位ㆍ加行位ㆍ通達位ㆍ修習位ㆍ究竟位)로 나눈 가운데 제2의 가행위에서 닦는 유식의 관법이다. 우리들의 개념적인 인식은 명칭과 인식대상에서 성립하는데, 이 둘의 관계를 관찰하여 대상의 비존재성을 체득하는 것이다. 인식대상의 명(名:명칭)ㆍ사(事 또는 義:그 명칭에 상응하는 사물)ㆍ자성(自性:자체의 體性)ㆍ차별(差別:형상과 작용의 차별성)의 4법은 임시적인 존재[假有]이고 실무(實無)라고 심구(尋求)하여 사찰(思察)하는 관법이다. 가행위에서의 네 단계인 4선근위(善根位:난위ㆍ정위ㆍ忍位ㆍ世第一位) 중에서 난위(煖位)와 정위(頂位)에서 닦는다. 난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하품으로 관찰하고(下品의 尋思觀:明得定), 정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투철하게 상품으로 관찰한다(上品의 尋思觀:明增定).
  10. 10)명칭[명, nāma], 사물[義, artha], 명칭과 사물의 자성(svabhāva, 自體), 명칭과 사물의 차별(viśeṣa)의 네 가지는 가적(假的)인 존재로서 실재하지 않는다고 심사(尋思, paryeṣaṇā)하는 것이다.
  11. 11)명칭(名, nāma)은 어떤 의미를 갖는 최소단위의 말 내지 개념이다.
  12. 12)사물[事, vastu]은 인식대상으로서의 사물, 명칭으로 나타내는 외적인 사물을 가리킨다.
  13. 13)우리는 여러 명칭을 사용해서 갖가지 사물을 인식하며, 그들 명칭에 상응하는 사물이 실재한다고 무반성적(無反省的)으로 생각한다. 이런 무반성적인 상식을 타파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구체적인 인식내용을 명칭과 사물로 이분화하고, 각각 서로 독립시켜서 순수하게 관찰한다. 예를 들면 ‘책’이라는 명칭으로 책이라는 사물을 인식할 경우, 우선 책이라는 명칭에 의식을 집중시켜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명칭뿐이라고 관찰한다. 다음 책이라는 사물에 의식을 집중하여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물뿐이라고 관찰한다. 이런 관찰은 명칭과 사물의 비존재성을 인식하는 것이 목적이다. 책이라는 명칭은 존재하지만, 그 존재성은 임시적인 존재[假有, prañapti-sat]에 지나지 않는다. 책이라는 명칭으로 파악되어지는 책이라는 사물은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다. 책을 본 순간 그것이 책이라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책이라고 인지할 수 있다.
  14. 14)명심사와 사심사 다음에 계속해서 명칭과 사물은 오직 식(識, vijñapti)이며 가유(假有)일 뿐이라고 추구한다. 이 단계가 자체가립심사와 차별가립심사이다. 여기서 ‘자체(自體) 혹은 자성(自性)’은 명칭과 사물이 결합하여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사물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이것은 책이다.”라고 인식할 때의 책을 말한다. ‘차별’은 책을 분석해서 “물질이고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사각형이다”라고 인지할 때의 ‘물질’ ‘종이로 만들어짐’ ‘사각형’ 등의 성질을 가리킨다. 이런 자성이나 차별은 모두 가립된 것으로서 실재하지 않는다고 추구하는 것이 자체가립심사와 차별가립심사이다. 가립(假立, prajñpti)이란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언어를 부여해서 잠정적으로 그 존재를 설정함을 말한다. 책ㆍ물질ㆍ종이로 만들어짐ㆍ사각형 등은 단지 명칭일 뿐이며, 그 명칭에 대응하는 사물이나 성질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자체가립심사와 차별가립심사이다.
  15. 15)인식의 대상이 가유(假有)이고 실무(實無)라고 하는 심구사찰(尋求思察) 뒤에 다시 명확히 인가(印可) 결정하고 또 이와 같이 관(觀)하는 마음(能取心)까지도 가유이고 실무라고 인가 결정하는 관법이다. 사선근위 중에서 제3 인위(忍位)와 제4 세제일위(世第一位)에서 닦는다. 인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인가하고 인식주체도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하고(下品의 如實智觀:印順定), 세제일위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공함으로 쌍(雙)으로 인가한다(上品의 여실지관:無間定).
  16. 16)사심사(事尋思, vastu-paryeṣaṇā)를 의심사(義尋思, arthap-aryeṣaṇā)라고도 한다. vastu나 artha는 인식대상으로서의 사물, 명칭으로 나타내는 외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특히 artha는 사물ㆍ의미ㆍ대상ㆍ목적 등의 뜻으로서 흔히 의(義)로 번역된다. 곧 크게 모든 사물, 모든 사물의 의미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구체적인 인식작용에서는 분리될 수 없는 결합관계에 있다. 어떤 ‘사물’이 인식된다는 것은 그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의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것에 대응하는 사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명칭이다. 이런 명칭과 사물의 관계와 그 비존재성을 고찰하는 것이 명심사와 사심사이다.
  17. 17)물질에 있어서 유대(有對)ㆍ무대(無對)를 가리킨다. 유견유대 유견무대 무견유대 무견무대이다.
  18. 18)여기서 중생은 보특가라(補特伽羅, pudgala)의 이명(異名)이다. 이 집착은 인집(人執)ㆍ아집(我執)ㆍ생집(生執)이라고 한다. 5온(蘊)이 화합해서 성립된 몸에 상일주재(常一主宰)의 실아(實我)가 있다고 주장하는 집착을 말한다.
  19. 19)객관의 물(物)ㆍ심(心) 현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집착하는 것이다.
  20. 20)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인인(認忍)의 뜻으로서 확실히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무생의 법리(法理) 곧 불생불멸의 진여를 깨달아 알고, 거기에 안주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초지(初地)나 7지ㆍ8지ㆍ9지에서 얻는 깨달음이다.
  21. 21)아비발치(阿毘跋致, avinivartanīya:不退位)라 하여, 불도를 구하는 마음이 견고하여 다시는 퇴전하지 않으며 반드시 성불할 것이 결정되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위이다. 부파불교에는 대체로 아라한과를 향해 결정코 불퇴위에 오른 예류과(預流果)를, 대승에서는 초지(初地) 또는 8지보살을 일컫는다.
  22. 22)변계소집자체를 가리킨다.
  23. 23)의타기자체를 말한다.
  24. 24)원성실자체를 의미한다.
  25. 25)부처님의 교설을 그 경문(經文)의 성질과 형식에 따라 열두 가지로 구분한 것으로서 12부경(部經)이라고도 한다.
  26. 26)범어 sūtra의 의역(意譯)이며 수다라(修多羅)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산문체(散文體)의 경문을 말한다.
  27. 27)십이연기의 각 지분(支分)을 말한다.
  28. 28)특히 4성제(聖諦)를 말한다.
  29. 29)불전편찬회의(佛典編纂會議)를 말한다. 범어 saṁgīti의 번역으로서 합송(合誦)한다는 뜻이다. 석존의 입멸후(入滅後) 불제자들이 모여서 부처님의 유교(遺敎)의 산실(散失)을 막고 아울러 교권의 확립을 위해 불설(佛說)을 외워 내어 정리 집성함으로써 교법을 전승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일을 말한다. 제1회 결집은 석존께서 입멸한 그 해에 왕사성 근교 칠엽굴에서 가섭존자를 상수로 한 오백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행했으며, 그 뒤에 여러 이론(異論)이 생겨서 제2ㆍ제3 등의 결집이 행해졌다. 암송의 구전(口傳) 방식이었다가 제3회 결집부터 필록(筆錄)되었다.
  30. 30)범어 geya의 의역으로서 중송(重頌)이라고도 하며, 기야(祇夜)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산문체 경문 뒤에 그 내용을 운문으로써 노래한 것이다.
  31. 31)범어 vyākaraṇa의 의역으로서 수기(授記)라고도 하며, 화가라(和伽羅)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경전 중에서 말한 뜻을 문답 해석하거나, 또는 제자가 다음 세상에 어디서 어떻게 성불하는가를 예언하는 내용이다.
  32. 32)범어 gāthā의 의역으로서 고기송(孤起頌)이라고도 하며, 가타(伽陀)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4언(言)ㆍ5언ㆍ7언의 운문이다.
  33. 33)범어 udāna의 의역으로서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고도 하며, 우다나(優陀那)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다른 이가 묻지 않는데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다. 『아미타경』 등이 그 예이다.
  34. 34)범어 nidāna의 의역으로서 인연(因緣)이라고도 하며, 니다나(尼陀那) 등으로 음역한다. 경전 중에서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들은 인연 등을 말한다.
  35. 35)범어 avadāna의 의역이며 아파다나(阿波陀那) 등으로 음역한다. 경전 중에서 비유로써 말씀하신 부분이다.
  36. 36)범어 itivṛtaka의 의역이며 이제왈다가(伊帝曰多伽)로 음역하기도 한다. 불제자들의 지난 세상의 인연을 말한 것이다.
  37. 37)범어 jātaka의 의역이며 사타가(闍陀伽)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부처님 자신의 지난 세상에 행하신 보살행을 말한 경문이다.
  38. 38)범어 vaipulya의 의역으로서 방등(方等)이라고도 하며, 비불략(毘佛略)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방정(方正)ㆍ광대한 진리를 말한 경문이다.
  39. 39)범어 adbhutadharma의 의역으로서 희법(希法)이라고도 하며, 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 경문이다. 경전을 설하게 된 인연에 부사의한 일을 말씀하는 부분과 같은 것 등이다.
  40. 40)범어 upadeśa의 의역이며 우파제사(優波提舍)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교법의 의리(義理)를 논의 문답한 경문을 말한다.
  41. 41)증상(增上, aupacayika, adhipati)은 증승상진(增勝上進)ㆍ증진증가(增進增加)의 뜻으로서 힘을 더하는 작용이 조장진전(助長進展)되어서 강대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대승보살의 3학(學)을 말할 때 증상이란 표현을 덧붙인다. 증상계학은 언행을 조심하여 몸을 잘 보호하는 계율이고, 증상혜학은 번뇌 망상을 없애고 진리를 깨치려는 학문이며, 증상심학은 정학(定學)으로서 산란심을 방지하여 안정하게 하는 법이다.
  42. 42)범어 pañca-vidyā-sthāna의 번역으로서 5명(明)이라고도 한다. 다섯 가지 학예(學藝)라는 뜻으로서, 인도에서 사용한 학문과 기예(技藝)의 분류법을 말한다. 여기서 명(明)은 배운 것을 분명히 한다는 뜻이다. 이에 내오명(內五明:불교도로서의 학예)과 외오명(外五明:세속 일반의 학예)이 있다. 내오명은 ①성명(聲明:언어ㆍ문학ㆍ문법을 분명히 밝힌 학문) ②인명(因明:正邪를 연구해서 眞僞를 분명히 밝힌 인도논리학) ③내명(內明:불교의 진리 특히 自宗의 宗旨를 밝힌 학문) ④의방명(醫方明 ; 의학ㆍ藥學 등을 알게 하는 학문) ⑤공교명(工巧明:공예ㆍ기술ㆍ曆數에 관한 학문)이다. 외오명은 일반적으로 성명, 의방명, 공교명, 주술명(呪術明), 부인명(符印明)을 말한다.
  43. 43)의취(義趣)ㆍ지취(旨趣) 등과 같은 의미이다.
  44. 44)범어 vipāka의 번역으로서 과보(果報)라고도 번역한다. 과보를 이숙(異熟)이라 말함은, 선(善) 또는 악의 업인(業因)에 의해서 이것과 성질이 다른 무기(無記:非善非惡)인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45. 45)무학위(無學位)ㆍ아라한위을 가리킨다.
  46. 46)10지(智) 중에서 타심지(他心智)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가지이다.
  47. 47)성문사과(聲聞四果)인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를 말한다.
  48. 48)4무량심(無量心)을 가리킨다.
  49. 49)8해탈을 가리킨다.
  50. 50)현위(賢位)에 들어가기 전의 방편으로서 청정계(淸淨戒)에 안주하여 신기(身器)를 청정하게 하고,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의 3혜(慧)를 부지런히 닦는 기간이다.
  51. 51)범어 mokṣabhāgiya의 번역으로서 3현위(顯位)를 말한다. 해탈은 열반이고 분(分)은 인(因)이란 뜻으로서, 3승(乘)의 3현위는 열반에 순응(順應)하여 해탈하기 위한 인(因)이 된다는 뜻에서 순해탈분이라고 이름한다. 참고로 말하면 소승의 3현(賢)은 5정심위(停心位:五停心觀에 의해 貪ㆍ瞋ㆍ痴ㆍ我見ㆍ散亂心의 다섯 가지 마음을 눌러서 견제하는 位), 별상염주위(別相念住位:身ㆍ受ㆍ心ㆍ法을 개별적으로 순서있게 不淨ㆍ苦ㆍ非常ㆍ無我라는 自相을 觀하고, 또한 그 어느 것도 無常ㆍ苦ㆍ空ㆍ無我라는 共相을 觀하는 四念住를 닦는 位), 총상염주위(總相念住位:四念住 전체가 그대로 無常ㆍ苦ㆍ空ㆍ無我라는 共相을 觀하는 位)를 말한다. 여기서 5정심위는 사마타(奢摩他, 止)를 성취하고, 다음의 2위에서는 비발사나(毘鉢舍那, 觀)을 성취한다. 대승의 3현(賢)은 십지 이전의 보살 계위인 10주(住), 10행(行), 10회향(廻向)을 가리킨다.
  52. 52)4선근위(善根位)를 말한다. 즉 견도(見道)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서의 견도 직전의 경지이며, 이 지위에서 닦는 유루(有漏)의 선근은 무루의 성도(聖道) 즉 결택(決擇)의 일부분이 되고, 견도를 가지고 오는 작용이 있으므로 순결택분이라 이름한다. 4선근위는 난위(煖位), 정위(頂位), 인위(忍位), 세제일위(世第一位)를 말한다.
  53. 53)독각(獨覺)에는 부행(部行)과 인각유(麟角喩)의 두 부류가 있는데, 본문에서는 전자를 가리킨다. 본래는 성문(聲聞)이던 자가 후에 아라한을 얻을 때에 부처님 곁을 떠나서 독오(獨悟)하는 성자이다. 이들은 다른 성문승과 달리 여러 사람이 부처(部處)를 지어서 수행하기 때문에 부행독각(部行獨覺)이라 한다. 또는 4선근(善根)을 얻기까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나 그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독각(獨覺)한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성문보다 이근(利根)이므로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위차(位次)를 거치지 않고 오직 일과(一果) 뿐이다. 그 단혹(斷惑)의 순서는 유루지(有漏智)로써 욕계의 견혹(見惑)ㆍ수혹(修惑)을 단진(斷盡)하고 가행위(加行位)로부터 견도에 직입(直入)하여 16심(心)을 일으켜서 색계ㆍ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고, 다시 무간도(無間道)ㆍ해탈도에서 각각 72심을 일으켜서 색계ㆍ무색계의 수혹(修惑)을 끊어서 무학과(無學果)를 증득한다.
  54. 54)인각유독각(麟角喩獨覺)의 단혹차제(斷惑次第)를 말한다. 이 독각은 무불세(無佛世)에 오직 독생(獨生)하여 자연현상 등에서 12인연법의 도리를 관찰하여 독오(獨悟)하는 것이 마치 기린이 외뿔인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인각유(麟角喩)라고 부른다. 인유독각(麟喩獨覺)을 백육십심(百六十心:견도에서 16심, 무간도ㆍ해탈도에서 각각 72심) 일좌성각(一座成覺)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처럼 한 번 성도의 자리에 나아가면 무학과를 증득하기까지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일좌(一座)에서 정각을 성취한다는 뜻이다.
  55. 55)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 취하는 태도인 4섭사(攝事:보시ㆍ愛語ㆍ利行ㆍ同事)ㆍ4섭법(攝法)을 가리킨다.
  56. 56)공통이 아닌 공덕법이란 뜻으로서 불공법(不共法)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이나 보살에게만 갖추어져 있고 범부나 2승(乘)에게는 갖추어져 있지 않는 훌륭한 특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3념주(念住)ㆍ대비(大悲)를 합해서 18불공법(不共法)이라 한다.
  57. 57)범어 mātṛkā의 음역으로서 마달리가(摩怛理迦) 등이라고도 하며, 모(母)ㆍ본모(本母)ㆍ논모(論母)ㆍ지모(智母)ㆍ행모(行母) 등으로 의역한다. 경전이나 논서 중에서 반복 연찬(硏鑽)해서 부처님의 진정한 교의(敎義)를 해석한 것으로서 12분교(分敎) 중 우파제사(優波提舍)를, 3장(藏) 중 논장(論藏)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것을 모(母)라고 함은 지(智)와 행(行)을 낳는다는 뜻에서이다. 남전(南傳)의 논서에서는 그 처음에 혹은 1장(章) 첫머리에 있는 목차적(目次的) 표거(標擧) 즉 주석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을 가리킨다.
  58. 58)독각승을 포함한다.
  59. 59)『유가사지론』의 「본지분(本地分) 」에서 50권에 걸쳐서 3승(乘)의 근본 17지(地)의 뜻을 약(略)으로 광(廣)으로 분별하고 있는데, 이것을 17본지(本地)ㆍ17지(地)라고 이름한다. 삼승의 경(境)을 관하고, 삼승의 행을 일으키며, 삼승의 과(果)를 증득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17지의 명칭은 ①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 ② 의지(意地) ③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④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⑤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⑥ 3마희다지(摩呬多地) ⑦ 비삼마희다지(非三摩呬多地) ⑧ 유심지(有心地) ⑨ 무심지(無心地) ⑩ 문소성지(聞所成地) ⑪ 사소성지(思所成地) ⑫ 수소성지(修所成地) ⑬ 성문지(聲聞地) ⑭ 독각지(獨覺地) ⑮ 보살지(菩薩地) (16)유여의지(有餘依地) (17)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이 중에서 ①~⑨는 삼승의 경(境)이고, ⑩~⑮는 삼승의 행(行)이며, (16)(17)은 삼승의 과(果)에 해당된다.
  60. 60)『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의 지(地)의 네 가지 뜻[四義]을 가리킨다. 지(地)는 범어 bhūmi의 번역으로서 ‘생겨나게 하고 머물러 지님[生成住持]’의 뜻이다. 최승자(最勝子, Jinaputra)의 『유가론석(瑜伽論釋)』에서 지(地)의 뜻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해석한다. ①경계의 뜻[境界義]:유가사(瑜伽師)가 행하는 경계이기 때문에 지(地)라고 이름한다. 용마지(龍馬地)와 같은 경우이다. 오직 이 안에서 행하고 함부로 외부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②소의의 뜻[所依義]:유가사가 이 처소에 의지하여 청정법[白法]을 증장하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한다. 가색지(稼穡地)와 같은 경우이다. 혹은 유가사지(瑜伽師地)에 포섭되는 지혜는 이것에 의지해서 현행하고, 이것에 의지해서 증장하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한다. 진보지(珍寶地)와 같은 경우이다. ③소행의 뜻[所行義]:유가사의 행은 이 안에 있으면서 청정법을 수행(受行)하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한다. 우왕지(牛王地)의 경우와 같다. 혹은 모든 여래를 유가사라고 이름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등의 행은 일체의 희론이 없는 경계, 무주열반(無住涅槃)의 유가 중에 있기 때문이다. ④소섭의 뜻[所攝義]:그것의 포섭하는 바이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한다. 17지(地)에 모든 유가사를 포섭하기 때문이다. 국왕지(國王地)의 경우와 같다.
  61. 61)4의십칠지(義十七地)라고 하여 17지를 크게 나누어 4의(義)에 배속한다. 즉 제1 오식신상응지와 제2 의지는 경계의 뜻이고, 제3 유심유사지~제5 무심무사지는 소의(所依)의 뜻이며, 제6 삼마희다지~제12 수소성지는 소행(所行)의 뜻이고, 제13 성문지~제17 무여의지는 소섭(所攝)의 뜻이다.
  62. 62)바른 도리라는 뜻이다.
  63. 63)옳지 못한 도리라는 뜻이다.
  64. 64)근(根)은 범어 indriya의 번역으로서 힘이 있어 강한 작용을 갖는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제근(諸根)은 6근(根: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근)ㆍ5수근(受根:苦根ㆍ樂根ㆍ憂根ㆍ喜根ㆍ捨根)ㆍ5무루근(無漏根:信根ㆍ勤根ㆍ念根ㆍ定根ㆍ慧根)ㆍ3근(根:未知當知根ㆍ已知根ㆍ具知根)의 22근을 가리킨다.
  65. 65)사성제, 승의제, 세속제 등
  66. 66)6합석(合釋:범어의 合成語를 해석하는 6종 방법)의 하나로서 의주석(依主釋)ㆍ섭주석(攝主釋)이라고도 한다. 복합사(複合詞) 중의 전절(前節) 부분은 명사(名辭) 또는 명사와 같이 보아야 할 것으로서, 이것이 후절(後節) 부분에 대해서 항상 격(格)의 관계를 갖는 경우이다. 이에 협의(狹義)와 광의(廣義)가 있다. 전자는 예를 들면 산사(山寺)가 ‘산에 있는 절’이란 뜻으로서 앞의 것은 어격(於格), 뒤의 것은 소유격이다. 후자는 지업석(持業釋)과 대수석(帶數釋)을 포함하여, 모두 전절(前節)의 말에 의해서 후절(後節)의 말의 의미를 제한하는 복합사이다.
  67. 67)인명(因明)은 범어 hetu-vidyā의 번역으로서 5명(明)의 하나이다. 인(因)은 원인ㆍ이유이고, 명(明)은 학문이란 뜻으로서 이유를 밝혀서 논증(論證)을 행하는 논리학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도에서는 논리학을 니야야(nyāya, 正理)라고 하며, 불교에서는 특히 인명(因明)이라 부른다. 인명에는 고인명(古因明:陳那 이전 및 正理派)과 신인명(新因明:陳那 및 그 이후)이 있다. 고인명에 속하는 이론이 설해진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5권에 인명을 일곱 가지 항목으로 분류하는데, 이것을 7인명(因明)이라 한다. 곧 논의(論議)의 전개에 필요한 일곱 가지 요건인 ①논체성(論體性:논의의 본체적 요소인 언어) ②논처소(論處所:논의하는 데 적당한 장소) ③논소의(論所依:立論의 근거) ④논장엄(論莊嚴:論議가 整然한 것) ⑤논타부(論墮負:論議의 敗北) ⑥논출리(論出離:미리 잘 관찰해서 논의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⑦논다소작법(論多所作法:논의를 잘 하는 바탕)을 말한다.
  68. 68)불법의 도리가 현요(顯了)하게 다 서술되어 있는 교법을 요의교(了義敎)라 하고, 이렇게 설하는 경전을 요의경이라 한다. 이에 반하여 중생의 이해의 정도에 맞추기 위해 현요한 뜻을 직접 설하지 않고 점차로 진실한 교법으로 유인하는 방편의 교법을 불요의교(不了義敎)라 하고, 이것을 설하는 경전을 불요의경이라 한다.
  69. 69)부처님의 설법에는 은밀과 현요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전자는 설법하는 분의 본의(本意)는 있으나 문장 속에 은밀한 것이고, 후자는 문자의 겉면에 분명히 나타난 것이다.
  70. 70)사법인 아함경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
  71. 71)범어 āśaya의 번역어로서 휴식처ㆍ주처(住處)ㆍ사의(思意)ㆍ의향(意向) 등의 뜻이 있으며, 의요(意樂)ㆍ의욕(意欲)ㆍ지원(志願)으로 의역된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생각인데, 특히 선정 중의 작의(作意)를 가리킨다.
  72. 72)‘법과 법에 수순해서 수행하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법은 증득되는 대상[所證]인 열반을 가리키고, 수법행(隨法行)은 그 법에 수순해서 실제적으로 수행하는 능증(能證)의 팔정도 등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