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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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1)
016_0157_b_01L大唐三藏聖教序

태종문황제제(太宗文皇帝製)
016_0157_b_02L太宗文皇帝製



대개 내가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은 형상[像]이 있어, 만물을 덮고 실음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고, 네 계절[四時]은 형태[形]가 없어,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만물을 기르는 것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이치의 실마리를 알게 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음(陰)과 양(陽)을 명확히 꿰뚫어 보는 데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 변화의 모든 수를 다 아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음양의 이치를 쉽게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이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의 이치가 하늘과 땅에 담겨있을지라도 그 이치를 온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것은, 음양의 변화는 형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이 감춰져 그것을 엿볼 수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미혹되어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016_0157_b_03L蓋聞二儀有像顯覆載以含生四時無形潛寒暑以化物是以窺天鑑地庸愚皆識其端明陰洞陽賢哲罕窮其數然而天地包乎陰陽而易識者以其有像也陰陽處乎天地而難窮以其無形也故知像顯可徵雖愚不惑形潛莫睹在智猶迷
하물며 불도(佛道)는 형상이 없이 텅 빈 가르침을 숭상하고, 깊고 현묘한 진리에 오르고 완전한 고요 속의 깨달음을 이끌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며, 신령한 위엄을 일으키면 위로 그 한계가 없고, 그 신묘한 힘을 억누르면 아래로 그 끝이 없으며, 그 가르침을 거시의 세계로 확장하면 우주에까지 미치고 미시의 세계로 축소하면 터럭까지도 주관하니, 소멸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어서 천겁(千劫)이 흘렀어도 낡지 않고,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주관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도다.
현묘한 도는 그윽하고도 그윽하여서 그것을 아무리 좇아가더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부처님의 법이 흘러 그 적멸의 경지에 깊이 잠기니 그 법을 아무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들과 초라하며 못난 사람들이, 불법의 뜻에 자신을 던지면 이 세상의 어떤 의혹도 없앨 수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일어난 것은 서토(西土)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 당나라[漢庭]에 전해져 우리에게 희망의 환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국에 부처님의 빛을 비추어 부처님의 자비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
016_0157_b_10L況乎佛道崇虛乘幽控寂弘濟萬品典御十方擧威靈而無上抑神力而無下大之則彌於宇宙細之則攝於毫釐無滅無生歷千劫而不古若隱若顯運百福而長今妙道凝玄遵之莫知其際法流湛寂挹之莫測其源故知蠢蠢凡愚區區庸鄙投其旨趣能無疑惑者哉然則大教之興基乎西土騰漢庭而皎夢照東域而流慈
016_0157_c_01L옛날 온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르침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으나, 현 시대에는 백성이 부처님의 덕행을 우러러보고서야 따를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서서 법도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함에 이르러, 이전에는 부처님 얼굴[金容]의 찬란한 빛이 가려져서 삼천대천세계[三千]를 비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펼쳐지게 되어 단정하신 부처님의 32상[四八之相]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정미한 말씀이 널리 전해져서 중생을 삼도(三途)2)에서 구제하였고, 선각자들이 남긴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어 중생을 십지(十地)3)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받들어 따르기 어렵고 그 가르침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도 없으나, 세상에 아첨하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따르기가 쉬워서 이에 참과 거짓이 얽히고설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만물의 실체가 없다는 공론[空]과 모든 현상의 본체가 있다는 유론[有]이 더러는 옛 습속을 따라 시비(是非)를 일으킨 것이고, 대승과 소승이 때때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016_0157_b_19L昔者分形分迹之時言未馳而成化當常現常之世民仰德而知遵及乎晦影歸眞遷儀越世金容掩色不鏡三千之光麗象開圖空端四八之相於是微言廣被拯含類於三途遺訓遐宣導群生於十地然而眞教難仰莫能一其旨歸曲學易遵邪正於焉紛糾所以空有之論或習俗而是非大小之乘乍沿時而隆替
016_0158_a_01L현장(玄奘) 법사라는 분이 있는데, 법문(法門)의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는 어려서 마음이 바르고 배우는 데 민첩하여 일찍 삼공(三空)4)의 마음을 깨달았고, 커서는 그 정신과 뜻이 불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먼저 사인(四忍)5)의 수행을 감당하였다.
소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松風]과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水月]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 성품에는 견줄 수 없었으니, 신선이 먹는 이슬[仙露]과 찬란한 구슬[明珠]을 어찌 그의 환하고 넉넉한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얽매임이 없고, 그의 정신도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막힘이 없어서, 이미 육진(六塵)6)을 초월하고 멀리 벗어나니, 아득한7)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와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모든 마음을 쏟으며, 불교의 정법(正法)이 업신여겨지고 쇠퇴함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을 깊이 고찰하여 불법의 심오한 경문이 잘못 전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교 경문을 조리에 따라 이치에 맞게 분석하여 전에 들은 것들을 확장하고, 잘못된 것들은 끊어내고 참된 것들을 잇게 하여, 후학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부처님이 계신 곳[淨土]으로 향하게 되어 멀리 서역(西域)으로 떠나게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여행을 하니, 쌓인 눈이 새벽에 이리저리 날리는데 길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저녁에 갑자기 일어남에 텅 빈 밖에서 갈 방향을 잃기도 하였다.
만리(萬里)를 가며 만난 산과 강을 지날 때에도 자욱한 안개와 노을을 헤치고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용감히 나아갔고, 온갖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서리를 밟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앞으로 발을 디뎠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고는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구하여, 서역을 17년 동안 두루 다녔다. 그동안 불도가 전해진 지역을 모두 다니며, 정교(正教)을 묻고 구하였다.
그는 쌍림(雙林)을 지나고 팔수(八水)에 이르러, 부처님의 도를 맛보고 불도의 유풍[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녹야원[鹿苑]에 가고 영취봉[鷲峯]에 올라 부처님의 신비하고 기이한 유적들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그가 앞선 성인들의 지극한 가르침을 받들고 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오묘한 법문을 깊이 탐구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정밀하게 궁구하니, 일승(一乘)과 오율(五律)의 도(道)가 마음 밭에서 치달리며 뛰놀게 되었고, 팔장(八藏)과 삼협(三篋)의 문장[文]이 그의 입안에서 파도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났던 나라들로부터 삼장(三藏)의 핵심 경문을 모두 모아 가지고 왔으니, 모두 657부(部)이다. 그리고 번역된 경문은 중국에 널리 배포되어, 그의 빼어난 공덕이 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그가 서역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구름을 이끌고 와서 중국에 불법의 비를 내리게 하니, 결함이 있었던 불교가 다시 온전해지고, 죄 가운데 고통 받던 중생이 다시 복(福)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불난 집[火宅]의 활활 타는 불꽃에 물을 뿌려서 다시는 미혹된 길로 가지 않게 한 것이고, 애욕의 캄캄한 파도에 빛을 비춰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악(惡)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업(業)이 생겨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善)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극락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락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행한 것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비유컨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자라므로 구름이 내리는 깨끗한 이슬만이 그 꽃을 적실 수 있고, 연꽃은 맑은 물결 속에서 꽃을 피우므로 날리는 티끌이 그 잎을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연꽃의 본성이 본래 깨끗하거나 계수나무의 바탕이 본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이 높기 때문에 탁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요, 연꽃이 의지한 곳이 맑은 물속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풀과 나무가 지각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좋은 조건에 의지하여 선(善)을 이루는데, 하물며 사람은 지각이 있어 복된 조건을 가지고 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지금 이 경(經)이 널리 전해져서 해와 달처럼 다함없이 이어지고, 이 복(福)이 멀리 펼쳐져서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하고 광대하기를 바라노라.
016_0157_c_06L有玄奘法師者法門之領䄂也幼懷貞敏早悟三空之心長契神情先包四忍之行松風水月未足比其淸華仙露明珠詎能方其朗潤故以智通無累神測未形超六塵而迥出隻千古而無對凝心內境悲正法之陵遲拪慮玄門慨深文之訛謬思欲分條扸理廣彼前聞截僞續眞開茲後學是以翹心淨土往遊西域乘危遠邁杖策孤征積雪晨飛途閒失地驚沙夕起空外迷天萬里山川撥煙霞而進影百重寒暑躡霜露而前蹤誠重勞輕求深願達周遊西宇十有七年窮歷道邦詢求正教雙林八水味道飡風鹿苑鷲峯瞻奇仰異承至言於先聖受眞教於上賢探賾妙門精窮奧業一乘五律之道馳驟於心田八藏三篋之文波濤於口海爰自所歷之國摠將三藏要文凡六百五十七部譯布中夏宣揚勝引慈雲於西極注法雨於東垂教缺而復全蒼生罪而還福濕火宅之乾焰共拔迷途朗愛水之昏波臻彼岸是知惡因業墜善以緣昇墜之端惟人所託譬夫桂生高嶺露方得泫其花蓮出淥波飛塵不能污其葉非蓮性自潔而桂質本貞由所附者高則微物不能累所憑者則濁類不能沾夫以卉木無知資善而成善況乎人倫有識不緣慶而求慶方冀茲經流施將日月而無斯福遐敷與乾坤而永大



황태자신술성기(皇太子臣述聖記)8)
016_0158_a_14L皇太子臣治述 聖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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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전함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가르침[文]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요,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받들어 분명히 밝히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旨]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모든 불법의 궁극적 근원이요, 모든 불경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그 담긴 내용은 너무나 넓고 크며 그 오묘한 뜻은 너무나 아득하고 깊어서, 공(空)과 유(有)의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도 완전히 꿰뚫게 하고, 삶과 죽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도 체득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 도리는 너무 다양하고 넓어서, 불법을 찾는 자가 그 근원을 다 탐구하기 어렵고, 그 경문은 세상에 드러났어도 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불법을 실행하려는 자가 불법의 극의를 분명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성스런 자비가 덧입혀져야 모든 중생의 업(業)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부처님의 신묘한 교화가 펼쳐져야 모든 세상의 인연[緣]에서 악(惡)이 끊어짐을 알게 되어, 불법의 그물[法網]이 넓게 펼쳐지고 육바라밀[六度]의 올바른 가르침이 널리 베풀어져, 모든 중생이 도탄(塗炭)에서 구원받고, 삼장(三藏)의 비밀스런 빗장[秘扃]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오래도록 세상에 전해졌고, 부처님의 도(道)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게 박혔으며, 부처님의 도와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축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새벽의 종소리[鍾]와 저녁의 게송 소리[梵], 이 두 가지 소리가 영취봉[鷲峯]에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빛[慧日]과 불법의 맑은 물[法流]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 녹야원[鹿苑]에서 전해졌으니, 공중으로 치솟은 보개(寶蓋)9)는 떠도는 구름[翔雲]과 함께 나는 듯하였고, 들판의 무성한 봄 숲[春林]은 천화(天花)10)와 더불어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였다.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불교의 깊은 이치를 숭상함으로 복(福)을 받아,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꽂은 채로 있어도 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그 덕(德)이 온 백성에게 입혀져, 공손히 옷깃을 여미고만 있어도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으며, 그 은혜가 죽은 자에까지 이르러 무덤에도 불교경전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은택이 곤충에까지 미치어 금궤에도 불교의 게송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뇩달수(阿耨達水)11)가 중국의 중심12)에 흐르는 팔천(八川)13)과 통하게 되었고, 기사굴산(耆闍崛山:영취산)이 숭산과 화산[嵩華]의 푸른 봉우리와 맞닿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법의 본성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온전히 불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대지는 깊고 그윽하여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에만 감응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어찌 칠흑 같은 혼돈의 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요, 화마가 휩쓰는 아침에 내리는 불법의 은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모든 하천은 다르게 흘러도 모두 함께 바다로 모이고, 모든 만물의 이치는 나누어졌어도 결국 모두 만물의 실재를 이루니, 어찌 탕왕[湯]과 무왕[武]의 우열을 비교하며, 요임금[堯]과 순임금[舜]의 성덕을 서로 견주겠는가.
현장(玄奘) 법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담백하고 소박한 삶에 뜻을 두었으며, 정신은 어린 나이에도 한없이 맑았고, 신체도 세상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선방[定室]에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 바위산[幽巖]에 자취를 숨겼으며, 삼선(三禪)14)의 세계에 오르고, 십지(十地)의 수행을 차례로 수행하였으며, 육진(六塵)15)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부처님의 땅[迦維:인도)을 밟고, 일승(一乘)의 뜻[旨]을 깨달아 그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현장은 중국에는 의거할 진경[眞文]이 없어 인도의 불경을 찾아서, 멀리 항하(恒河:갠지스 강)를 건너 불경을 가져오길 늘 바랐고, 이에 여러 차례 설산[雪嶺]을 넘어가 불경을 가져왔다. 도(道)를 물으며 인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7년 세월 동안 불교 경전을 다 깨달아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었다. 때문에 정관(貞觀) 19년 2월 6일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勅]을 받들어, 성교(聖教)의 중요한 문장을 번역하니, 모두 657부(部)이다.
이는 대해(大海)의 법류(法流)를 끌어다가 세속의 노고를 씻어서 마르지 않게 한 것이요, 지혜의 등불[智燈]을 전하여 세속의 어둠을 비춰 항상 밝게 한 것이니, 스스로 오랜 동안 좋은 인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불법의 뜻을 이렇게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법상(法相)16)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해ㆍ달ㆍ별[三光]의 광명처럼 분명하고, 우리 황제폐하의 복덕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하늘ㆍ땅[二儀]의 견고함처럼 확실함을 말한 것이다.
엎드려 황제폐하께서 지으신 여러 경론의 서문을 보니, 옛일을 비추어 현재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그 이치는 금석(金石)과 같이 웅장한 소리를 담고 있고, 그 문장은 풍운(風雲)이 뿌리는 은택을 간직하고 있다. 나(治:고종의 이름)는 이에 가벼운 티끌을 거대한 산악에 덧붙이듯, 이슬을 떨어뜨려 강물에 첨가하듯 내 글을 폐하의 서문에 덧붙임으로, 간략하게 그 대강(大綱)을 들어서 이 기문을 짓는다.
016_0158_a_15L夫顯揚正教非智無以廣其文崇闡微言非賢莫能定其旨蓋眞如聖教諸法之玄宗衆經之軌躅也綜括宏遠奧旨遐深極空有之精微體生滅之機要詞茂道曠尋之者不究其文顯義幽履之者莫測其際故知聖慈所被業無善而不臻妙化所敷緣無惡而不翦開法網之綱紀弘六度之正教拯群有之塗炭啓三藏之秘扃是以名無翼而長飛道無根而永固道名流慶歷遂古而鎭常赴感身經塵劫而不朽晨鍾夕梵交二音於鷲峯慧日法流轉雙輪於鹿苑排空寶蓋接翔雲而共飛莊野春林與天花而合彩伏惟皇帝陛下上玄資福垂拱而治八荒德被黔黎斂衽而朝萬國恩加朽骨石歸貝葉之文澤及昆蟲金櫃流梵說之偈遂使阿耨達水通神甸之八川耆闍崛山接嵩華之翠嶺竊以法性凝寂靡歸心而不通智地玄奧感懇誠而遂顯豈謂重昏之夜燭慧炬之光火宅之朝降法雨之澤於是百川異流同會於海萬區分義摠成乎實豈與湯挍其優劣堯舜比其聖德者哉奘法師者夙懷聰令立志夷簡神淸齠齔之年體拔浮華之世凝情定室迹幽巖拪息三禪巡遊十地超六塵之獨步迦維會一乘之旨隨機化物以中華之無質尋印度之眞文遠涉恒河終期滿字頻登雪嶺更獲半珠問道往還十有七載備通釋典利物爲心以貞觀十九年二月六日於弘福寺翻譯聖教要文凡六百五十七部引大海之法流洗塵勞而不竭傳智燈之長焰皎幽闇而恒明自非久植勝緣何以顯揚斯旨所謂法相常住齊三光之明我皇福臻二儀之固伏見 御製衆經論序古騰今理含金石之聲文抱風雲之潤治輒以輕塵足嶽墜露添流略擧大綱以爲斯記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016_0158_c_11L大乘阿毘達磨集論卷第一


무착보살(無着菩薩) 지음
현장 법사(玄奘 法師) 한역
이한정 번역
016_0158_c_12L無著菩薩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1. 본사분(本事分)
016_0158_c_14L本事分

1) 삼법품(三法品) ①
中三法品第一

본사분(本事分)과 결택분(決擇分)에는
각각 네 가지가 있으니,
삼법품(三法品)ㆍ섭품(攝品)ㆍ상응품(相應品)ㆍ성취품(成就品)과
제품(諦品)ㆍ법품(法品)ㆍ득품(得品)ㆍ논의품(論議品)이다.
016_0158_c_15L本事與決擇
是各有四種
三法攝應成
諦法得論議

종류가 몇이고 이유가 어떻고 그 취하는 모양[相]과
건립(建立)하는 차제(次第)에 대하여
이치를 새겨 자세히 분별하여
모두 게송으로 정리해 놓았으니 이를 숙지하라.
016_0158_c_17L幾何因取相
建立與次第
義喩廣分別
集摠頌應知
016_0159_a_01L
온(蘊)ㆍ계(界)ㆍ처(處)에는 각각 몇 종류가 있습니까?
온에는 다섯 종류가 있으니,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이다. 계에는 열여덟 종류가 있으니, 안계(眼界)ㆍ색계(色界)ㆍ안식계(眼識界)ㆍ이계(耳界)ㆍ성계(聲界)ㆍ이식계(耳識界)ㆍ비계(鼻界)ㆍ향계(香界)ㆍ비식계(鼻識界)ㆍ설계(舌界)ㆍ미계(味界)ㆍ미식계(味識界)ㆍ신계(身界)ㆍ촉계(觸界)ㆍ신식계(身識界)ㆍ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이다. 처에는 열두 종류가 있으니, 안처(眼處)ㆍ색처(色處)ㆍ이처(耳處)ㆍ성처(聲處)ㆍ비처(鼻處)ㆍ향처(香處)ㆍ설처(舌處)ㆍ미처(味處)ㆍ신처(身處)ㆍ촉처(觸處)ㆍ의처(意處)ㆍ법처(法處)이다.
016_0158_c_18L蘊界處各有幾蘊有五謂色蘊受蘊想蘊行蘊識蘊界有十八謂眼界色界眼識界耳界聲界耳識界鼻界香界鼻識界舌界味界舌識界身界觸界身識界意界法界意識界處有十謂眼處色處耳處聲處鼻處香處舌處味處身處觸處意處法處
016_0159_b_01L어떤 이유에서 온에는 다섯 종류만 있습니까?
다섯 종류의 아사(我事)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신구아사(身具我事)ㆍ수용아사(受用我事)ㆍ언설아사(言說我事)ㆍ조작일체법비법아사(造作一切法非法我事)ㆍ피소의지아자체사(彼所依止我自體事)를 가리킨다.
어떤 이유에서 계에는 열여덟 종류만 있습니까?
신체가 구비된 것 등에 기인해서 과거와 현재의 6행(行)을 지키고 이를 수용하는 성품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 처(處)에는 열두 종류만 있습니까?
신체가 구비된 것 등에 기인해서 미래의 6행을 유지하고 이를 수용하는 생장문(生長門)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취온(取蘊)이라고 이름합니까?
거둬서 합치기 때문에 취온이라 이름한다.
어떠한 것을 취(取)라고 합니까?
모든 온에 있는 욕탐(欲貪)을 가리킨다.
어째서 욕탐을 해설하여 취라고 이름합니까?
미래와 현재의 모든 온을 인도해서 버리지 않는 까닭에, 미래를 유추하거나 현재에 염착하는 욕탐을 취라고 이름한다.
어째서 계와 취를 유취법(有取法)이라 이름합니까?
온에 관한 설명과 동일하다. 계와 처가 서로 취합하는 까닭에 유취법이라 이름하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
색온(色蘊)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변화를 보이는 모양이 색(色)의 모양이다. 이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가 촉대(觸對)의 변괴(變壞)이고, 두 번째가 방소(方所)의 시현(示現)이다.
어떠한 것을 ‘촉대의 변괴’라고 이름합니까?
손ㆍ발ㆍ흙덩이ㆍ돌ㆍ칼ㆍ창ㆍ추위ㆍ더위ㆍ배고픔ㆍ목마름ㆍ모기ㆍ파리ㆍ뱀ㆍ전갈 따위가 서로 접촉하는 것에서 즉시 변화하여 손상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을 ‘방소의 시현’이라고 이름합니까?
방향과 장소로부터 그 모양을 이루는 것을 이러이러한 색이 나툰다고 말한다. 그 이러이러한 색은 정심(定心)에 기인하기도 하고, 또는 부정지(不定地)의 심(尋)심소법이 사(思)심소법과 상응하는 것에 연유해서 갖가지 모양을 그려 내는 것이다.
수온(受蘊)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받아들이는 모양이 수온의 모양이다. 수온으로 인해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갖가지 업(業)을 받아들여 여러 과보(果報)를 이숙(異熟)시킨다고 말한다.
상온(想蘊)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인식하는 모양이 상온의 모양이다. 상온으로 인해서 온갖 제법(諸法)의 모양을 인식하는 것이니, 그 보고 듣고 지각하고 이해하는 이치에 수반해서 갖가지 언설(言說)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행온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조작하는 모양이 행온의 모양이다. 행온으로 인해서 마음을 선품(善品)ㆍ불선품(不善品)ㆍ무기품(無記品) 가운데에서 조작하여 그 마음을 부리는 것을 가리킨다.
식온(識蘊)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모양을 구별하여 아는 것[了別]이 식온의 모양이다. 식온으로 인해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의 온갖 경계[境]를 구별하여 알게 된다.
안계는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안근에 색이 직접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아울러 이러한 종자(種子)의 축적을 이숙(異熟)시키는 것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안계의 모양처럼 이계ㆍ비계ㆍ설계ㆍ신계ㆍ의계의 모양도 이와 같다.
색계는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색은 안근에 직접 나타난 것을 가리킨다. 안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되는 것이 색계의 모양이다. 색계의 모양처럼 성계ㆍ향계ㆍ미계ㆍ촉계ㆍ법계의 모양도 이와 같다.
안식계는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안근에 인연한 색과 색과 유사한 것[似色]을 구별하여 아는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종자의 축적이 이숙되는 아뢰야식을 안식계의 모양이라 한다. 안식계의 모양처럼 이식계ㆍ비식계ㆍ설식계ㆍ신식계ㆍ의식계의 모양도 이와 같다.
처는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계와 같으므로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 숙지해야 한다.
016_0159_a_02L何因蘊唯有五爲顯五種我事故身具我事受用我事言說我事造作一切法非法我事彼所依止我自體事何因界唯十八由身具等能持過現六行受用性故何因處唯十二唯由身具能與未來六行受用爲生長門故何故名取蘊以取合故名爲取蘊等爲取謂諸蘊中所有欲貪何故欲貪說名爲取謂於未來現在諸蘊能引不捨故希求未來染著現在欲貪名取何故界處名有取法應如薀說色薀何相變現相是色相此有二種一觸對變壞二方所示現云何名爲觸對變壞謂由手足塊石刀杖寒熱飢渴蚊蝱蛇蝎所觸對時卽便變壞云何名爲方所示現謂由方所可相示現如此如此色如是如是色;或由定心或由不定尋思相應種種搆畫受薀何相領納相是受相謂由受故領納種種淨不淨業諸果異熟想薀何相搆了相是想相謂由想故搆畫種種諸法像類隨所見聞覺知之義起諸言說行薀何相造作相是行相謂由行故令心造作於善不善無記品中驅役心故識薀何相了別相是識相謂由識故了別色聲香味觸法種種境界眼界何相謂眼曾現見色及此種子積集異熟阿賴耶識是眼界相如眼界相耳鼻舌身意界相亦色界何相謂色眼曾現見及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如色界相聲香味觸法界相亦爾眼識界何相謂依眼緣色似色了別及此種子積集異熟阿賴耶識是眼識界相如眼識界相耳鼻舌身意識界相亦爾處何相如界應知隨其所應
016_0159_c_01L색온은 어떻게 건립하게 됩니까?
모든 색을 가리키는 것으로 4대종(大種)이나 4대종의 소조색(所造色)이다.
4대종이란 무엇입니까?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를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지계입니까?
견고한 성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수계입니까?
유동적이면서도 축축한 성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화계입니까?
더운 성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풍계입니까?
가벼우면서도 움직이는 성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소조색입니까?
안근ㆍ이근ㆍ비근ㆍ설근ㆍ신근의 5근(根)과 색처ㆍ성처ㆍ향처ㆍ미처의 4처에 접촉 받는 일부분과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안근입니까?
4대종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안식에 의지하는 정색(淨色)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이근입니까?
4대종에서 이루어진 것[所造]으로 이식에 의지하는 정색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비근입니까?
4대종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비식에 의지하는 정색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설근입니까?
4대종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설식에 의지하는 정색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신근입니까?
4대종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신식에 의지하는 정색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색입니까?
4대종의 소조색으로 안근에 다다른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추색[麤]ㆍ세색[細]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부정(不正)ㆍ빛ㆍ그림자ㆍ구름ㆍ연기ㆍ먼지ㆍ안개ㆍ밝음ㆍ어두움ㆍ형색(色)ㆍ표색(表色)ㆍ공일현색(空一顯色)을 가리킨다. 또 세 종류가 더 있으니, 묘색(妙色)ㆍ불묘색(不妙色)ㆍ구상위색(俱相違色)이다.
어떠한 것이 소리입니까?
4대종에 소조된 이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가의성(可意聲)이거나, 불가의성(不可意聲)이거나, 구상위성(俱相違聲)이거나, 집수대종위인성(執受大種爲因聲)이거나, 불집수대종위인성(不執受大種爲因聲)이거나, 구대종인성(俱大種因聲)이거나, 세소극성성(世所極成聲)이거나, 성소인성(成所引聲)이거나, 변계소기성(遍計所起聲)이거나, 성언소섭성(聖言所攝聲)이거나, 비성언소섭성(非聖言所攝聲)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향기입니까?
4대종에 소조된 비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좋은 향기[好香]ㆍ나쁜 향기[惡香]ㆍ평등향(平等香:몸에 좋은 냄새)ㆍ구생향(俱生香)ㆍ화합향(和合香)ㆍ변이향(變異香)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맛입니까?
4대종에 소조된 설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쓴맛, 신맛, 단맛, 매운맛, 짠맛, 담백한 맛이다. 가의미(可意味)이거나, 불가의미(不可意味)이거나, 구상위미(俱相違味)이거나, 구생미(俱生味)이거나, 화합미(和合味)이거나, 변이미(變異味)를 가리킨다.
어떠한 것을 접촉 받는 일부분이라 합니까?
4대종에서 조작되는 신근에 섭취된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매끄러움ㆍ까칠까칠함ㆍ가벼움ㆍ무거움ㆍ부드러움ㆍ헐거움ㆍ뻑뻑함ㆍ추움ㆍ배고픔ㆍ목마름ㆍ배부름ㆍ기력ㆍ무기력ㆍ답답함ㆍ가려움ㆍ끈끈함ㆍ병ㆍ늙음ㆍ죽음ㆍ피곤함ㆍ편안함ㆍ활력 따위를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입니까?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다섯 종류의 색이 있으니, 극략색(極略色)ㆍ극형색(極逈色)ㆍ수소인색(受所引色)ㆍ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ㆍ정자재소생색(定自在所生色)을 가리킨다.
016_0159_b_15L云何建立色薀謂諸所有色若四大種及四大種所造云何四大種謂地水界火界風界何等地界謂堅鞕何等水界謂流濕性何等火界溫熱性何等風界謂輕等動性云何所造色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色聲香味所觸一分及法處所攝色何等眼根謂四大種所造眼識所依淸淨色何等耳根謂四大種所造耳識所依淸淨色何等鼻根謂四大種所造鼻識所依淸淨色何等舌根四大種所造舌識所依淸淨色何等身根謂四大種所造身識所依淸淨何等爲色謂四大種所造眼根所行義謂靑不正迥色表色空一顯色此復三種謂妙不妙俱相違色何等爲聲謂四大種所造耳根所取義或可意或不可意或俱相違或執受大種爲因或不執受大種爲因或俱大種爲因或世所極成或成所引或遍計所起或聖言所攝或非聖言所攝何等爲香謂四大種所造鼻根所取義謂好香惡香平等香俱生香和合香變異香何等爲味四大種所造舌根所取義謂苦或可意或不可意或俱相違或俱生或和合或變異何等所觸一謂四大種所造身根所取義謂滑澀性輕性重性軟性何等法處所攝色有五種應知謂極略色極迥色受所引色遍計所起色定自在所生色
수온을 어떻게 건립하게 됩니까?
6수신(受身)을 가리키는 것으로, 안촉(眼觸)에서 생겨나는 수이고, (耳觸)에서 생겨나는 수이고, 비촉(鼻觸)에서 생겨나는 수이고, 설촉(舌觸)에서 생겨나는 수이고, 신촉(身觸)에서 생겨나는 수이고, 의촉(意觸)에서 생겨나는 수를 가리킨다. 이러한 6수신은, 낙(樂)이기도 하고, 고(苦)이기도 하고, 불고불락(不苦不樂)이기도 하다. 또 낙의 신수(身受), 고의 신수, 불고불락의 신수, 낙의 심수(心受), 고의 심수, 불고불락의 심수가 있다. 또 낙의 유미수(有味受), 고의 유미수, 불고불락의 유미수, 낙의 무미수(無味受), 고의 무미수, 불고불락의 무미수가 있다. 또 기호(嗜好)에 따르는 낙의 수온이 있고, 기호에 따르는 고의 수온이 있고, 기호에 따르는 불고불락의 수온이 있고, 출리(出離)에 따르는 낙의 수온이 있고, 출리에 따르는 고의 수온이 있고, 출리에 따르는 불고불락의 수온이 있다.
어떠한 것이 신수(身受)입니까?
다섯 종류의 식(識)에 상응하는 수(受)를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심수(心受)입니까?
의식과 상응하는 수를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유미수(有味受)입니까?
그 자체로 애착과 상응하는 수를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무미수(無味受)입니까?
이 같은 애착에 상응하지 않는 수를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기호에 따르는 수입니까?
다섯 가지 묘한 욕락(欲樂)에 상응하는 수를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출리에 따르는 수입니까?
이 같은 애욕에 상응하지 않는 수를 가리킨다.
016_0160_a_03L云何建立受薀謂六受身眼觸所生耳觸所生受鼻觸所生受舌觸所生受身觸所生受意觸所生受如是六受身或樂或苦或不苦不樂復有樂身受苦身受不苦不樂身受樂心苦心受不苦不樂心受復有樂有味受苦有味受不苦不樂有味受無味受苦無味受不苦不樂無味受復有樂依耽嗜受苦依耽嗜受不苦不樂依耽嗜受樂依出離受苦依出離受不苦不樂依出離受何等身受謂五識相應受何等心受謂意識相應受何等有味受謂自體愛相應受何等無味受謂此愛不相應受何等依耽嗜受謂妙五欲愛相應受何等依出離受謂此愛不相應受
016_0160_b_01L어떻게 상온(想蘊)을 건립하게 됩니까?
6상신(想身)을 가리키는 것이니 안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이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비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설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신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의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다. 이 같은 상온에 연유하여 유상(有相)의 상온을 이해[了]하거나, 무상(無相)의 상온을 이해하거나, 소상(小想)을 이해하거나, 대상(大想)을 이해하거나, 무량(無量)한 상온을 이해하거나, 소유에 탐착하지 않는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상온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유상(有相)의 상온입니까?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발성을 여읜 무상(無相)의 계정(界定)과 유정정(有頂定)의 상온 및 그 밖의 나머지 상온이다.
어떠한 것이 무상(無相)의 상온입니까?
그 밖의 나머지 상온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소상(小想)입니까?
욕계의 상온을 이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대상(大想)입니까?
색계의 상온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무량한 상온입니까?
공무변처(空無邊處)와 식무변처(識無邊處)의 상온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무소유처의 소유(所有)에 탐착하지 않는 상온입니까?
무소유처의 상온을 이해하는 것이다.
016_0160_a_19L云何建立想薀謂六想身眼觸所生想耳觸所生想鼻觸所生想舌觸所生想觸所生想意觸所生想由此想故了有相或了無相或了小或了大了無量或了無少所有無所有處等有相想謂除不善言說無想界定及有頂定想所餘諸想何等無相想謂所餘想何等小想謂能了欲界想何等大想謂能了色界想何等無量謂能了空無邊處識無邊處想等無少所有無所有處想謂能了無所有處想
어떻게 행온을 건립하게 됩니까?
6사신(思身)을 말하는 것이다. 안촉에서 생겨난 사(思)심소법이고, 이촉에서 생겨난 사심소법이고, 비촉에서 생겨난 사심소법이고, 설촉에서 생겨난 사심소법이고, 신촉에서 생겨난 사심소법이고, 의촉에서 생겨난 사심소법이다. 이 같은 사심소법에 연유해서 사심소법이 갖가지 선업을 짓게 되고, 사심소법이 잡염(雜染)하게 되고, 사심소법에서 분위차별(分位差別)을 짓게 되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사심소법이 수온과 상온을 제외한, 그 밖의 다른 심소법(心所法)과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과 함께 하는 것을 총괄해서 행온이라 이름한다.
어떠한 것을 그 밖의 다른 심소법이라 합니까?
작의(作意)ㆍ촉(觸)ㆍ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삼마지(三摩地)ㆍ혜(慧)ㆍ신(信)ㆍ참(慚)ㆍ괴(愧)ㆍ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ㆍ근(勤)ㆍ안(安)ㆍ불방일(不放逸)ㆍ사(捨)ㆍ불해(不害)ㆍ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무명(無明)ㆍ의(疑)ㆍ살가야견(薩迦耶見)ㆍ변집견(邊執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사견(邪見)ㆍ분(忿)ㆍ한(恨)ㆍ부(覆)ㆍ뇌(惱)ㆍ질(嫉)ㆍ간(慳)ㆍ광(誑)ㆍ첨(諂)ㆍ교(憍)ㆍ해(害)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혼침(惛沈)ㆍ도거(掉擧)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망(忘)ㆍ염(念)ㆍ부정지(不正知)ㆍ산란(散亂)ㆍ수면(睡眠)ㆍ악작(惡作)ㆍ심(尋)ㆍ사(伺)이다.
016_0160_b_08L云何建立行薀謂六思身眼觸所生耳觸所生思鼻觸所生思舌觸所生思身觸所生思意觸所生思由此思故思作諸善思作雜染思作分位差別又卽此思除受及想與餘心所心不相應行摠名行薀何等名爲餘心所法謂作意勝解三摩無貪無瞋無癡放逸不害無明薩迦耶邊執見見取戒禁取邪見忿無慚無愧惛沈不信懈怠放逸忘念不正知散亂睡眠惡作
016_0160_c_01L어떠한 것이 사(思)심소법입니까?
마음을 조작하는 의업(意業)이 그 바탕이다. 선품ㆍ불선품ㆍ무기품 가운데에서 그 마음을 부리는 것으로 업(業)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작의(作意)심소법입니까?
마음을 발휘시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그 소연경(所緣境)에 처해서 마음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촉(觸)심소법입니까?
세 가지 화합에 의해 모든 근(根)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이 그 바탕이다. 수온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욕(欲)심소법입니까?
그러한 것들의 인발(引發)에서 지어진 희망이 그 바탕이다. 정근(正勤)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승해(勝解)심소법입니까?
일을 결정하는 때에 그 결정된 바를 변동 없이 지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전향하지 못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염(念)심소법입니까?
습관적인 일을 마음속에 분명히 기억해서 잊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산란하지 않은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삼마지(三摩地)심소법입니까?
사물을 관찰함에 있어서 마음을 하나의 경계에 전일(專一)하게 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지혜에 의지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혜(慧)심소법입니까?
사물을 관찰함에 처해서 그 택법(擇法)하는 것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의심을 끊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016_0160_b_21L何等爲思謂於心造作意業爲體善不善無記品中役心爲業何等作謂發動心爲體於所緣境持心爲何等爲觸謂依三和合諸根變異分別爲體受所依爲業何等爲欲於所樂事彼彼引發所作希望爲體正勤所依爲業何等勝解謂於決定事隨所決定印持爲體不可引轉爲何等爲念謂於串習事令心明記不忘爲體不散亂爲業何等三摩地謂於所觀事令心一境爲體智所依止爲業何等爲慧謂於所觀事擇法爲體斷疑爲業
016_0161_a_01L어떠한 것이 신(信)심소법입니까?
바탕을 갖추는 것이나 덕망을 갖추는 것이나 공능을 갖추는 것에 대한 인가(忍可)와 청정에 대한 바람이 그 바탕이다. 기꺼이 구하는 바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참(慚)심소법입니까?
모든 허물과 악행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그 바탕이다. 악행을 멈추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괴(愧)심소법입니까?
모든 허물과 악행을 남들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업은 ‘참’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어떠한 것이 무탐(無貪)심소법입니까?
제유[諸有:有有]에 모두 집착하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악행에 빠지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무진(無瞋)심소법입니까?
모든 유정의 고(苦)와 고구(苦具)에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악행에 빠지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무치(無癡)심소법입니까?
교증(敎證)의 보득(報得)에 연유해서 지혜로 결택(決擇)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악행에 빠지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근(勤)심소법입니까?
피갑(被甲)의 방편이 약해지거나 쇠퇴하거나 도중에 만족하지 않는 굳센 마음으로 그 바탕을 삼는다. 선품(善品)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으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안(安)심소법입니까?
몸과 마음의 추중(麤重)을 쉬게 해서 몸과 마음을 홀가분하게 조절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일체의 장애를 없애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불방일(不放逸)심소법입니까?
정근ㆍ무탐ㆍ무진ㆍ무치에 머물러 모든 선법을 닦되 모든 유루법(有漏法)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복을 원만히 이루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사(捨)심소법입니까?
정근ㆍ무탐ㆍ무진ㆍ무치에 의지하여 잡염에 머무는 상온을 등지는 심법의 평등성(平等性), 심법의 정직성(正直性), 심법의 무공용(無功用)에 의지하는 성품이 그 바탕이다. 잡염을 허용하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불해(不害)심소법입니까?
성내지 않는 선근(善根)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에서 자비를 베푸는 것이 그 바탕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016_0160_c_11L何等爲信謂於有體有德有能忍可淸淨希望爲體樂欲所依爲業何等爲慚謂於諸過惡自羞爲體惡行止息所依爲業何等爲愧謂於諸過惡羞他爲體業如慚說何等無貪謂於有有具無著爲體惡行不轉所依爲何等無瞋謂於諸有情苦及苦具無恚爲體惡行不轉所依爲業何等無癡謂由報教證智決擇爲體惡行不轉所依爲業何等爲勤謂心勇悍爲體或被甲或加行或無下或無退或無足差別成滿善品爲業何等爲謂止息身心麤重身心調暢爲體除遣一切障礙爲業何等不放逸依止正勤無貪無瞋無癡修諸善法於心防護諸有漏法爲體成滿一切世出世福爲業何等爲捨謂依止正勤無貪無瞋無癡與雜染住相違平等性心正直性心無功用住性爲不容雜染所依爲業何等不害無瞋善根一分心悲愍爲體不損惱爲業
016_0161_b_01L어떠한 것이 탐(貪)심소법입니까?
삼계에 대한 애착이 그 바탕이다. 중고(衆苦)가 생겨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진(瞋)심소법입니까?
유정(有情)의 고(苦) 및 고구(苦具)에 마음이 노여워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편안하지 못하게 악행에 머무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만(慢)심소법입니까?
살가야견(薩迦耶見)에 의지해서 마음을 거만하게 가지는 것이 그 바탕이다. 불경스럽기에 괴로운 삶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무명(無明)심소법입니까?
삼계의 무지(無知)가 그 바탕이다. 제법(諸法) 가운데 삿된 결정을 내리거나 어지럽게 의심을 내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의(疑)심소법입니까?
진제(眞諦)를 미심쩍어 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선품(善品)이 생기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살가야견입니까?
5취온(取蘊) 따위를 관찰하여 아(我)와 아소(我所)라고 집착하는, 모든 인(忍)ㆍ욕(欲)ㆍ각(覺)ㆍ관(觀)ㆍ견(見)이 그 바탕이다. 모든 견취(見取)에 의지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변집견(邊執見)심소법입니까?
오취온 등을 관찰하고서 이를 가장 뛰어나다거나 최상이라거나 묘하다고 집착하는, 모든 인ㆍ욕ㆍ각ㆍ관ㆍ견이 그 바탕이다. 처중행(處中行)의 출리(出離)를 장애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견취견(見取見)심소법입니까?
갖가지 삿된 소견이나 삿된 소견에 의지하는 오취온 따위를 관찰하고서 이를 가장 뛰어나다거나 최상이라거나 묘하다고 집착하는, 모든 인ㆍ욕ㆍ각ㆍ관ㆍ견이 그 바탕이다. 바르지 못한 견해에 집착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계금취견(戒禁取見)심소법입니까?
갖가지 계율의 금지나 그 계율의 금지에 의지하는 5취온 등을 관찰하고서 이를 청정하다거나 해탈이라거나 출리라고 집착하는, 모든 인ㆍ욕ㆍ각ㆍ관ㆍ견이 그 바탕이다. 노력해도 과보가 없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사견(邪見)심소법입니까?
인을 비방하거나 과보를 비방하거나 그 작용을 비방하거나 그 실다운 일을 비방하거나 삿된 분별을 내는, 모든 인ㆍ욕ㆍ각ㆍ관ㆍ견이 그 바탕이다. 선근을 끊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기도 하고 불선이 생겨나는 것에서 업을 이루기도 하고 선업이 생겨나지 않는 것에서 업을 이루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사견에 있어서 증익견(增益見)은 몇 가지이고 손감견(損減見)은 몇 가지입니까?
네 종류가 증익견에 해당하는 것이니, 소지경(所知境)에 처해서 그 자체적인 성품이 차별되게 늘어난다고 여기는 까닭이고, 여러 가지 사견을 으뜸삼아 청정하게 늘어난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일체의 대부분이 손감견에 해당한다.
전제와 후제가 존재한다고 헤아리는 모든 견해에는 이 같은 다섯 가지 견해 중에서 어디에 귀속됩니까?
두 종류이거나 전부라고도 말한다.
분석할 수 없는 일[不可記事]에 해당하는 모든 견해는 이 같은 다섯 가지 소견 가운데에서 어디에 귀속됩니까?
두 가지 또는 전부에 귀속된다고도 말한다.
박가범(薄伽梵)께서는 어떠한 허물을 관찰하셨습니까?
온ㆍ계ㆍ처에서 그 훼손되지 않는 것을 ‘나’라고 집착하는 다섯 가지 모양이다. 그들이 살가야견에 빠지게 되는 것을 관찰해 보면 다섯 가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니, 바로 이상과실(異相過失)이고, 무상과실(無常過失)이고, 부자재과실(不自在過失)이고, 무신과실(無身過失)이고, 불유공용해탈과실(不由功用解脫過失)이다. 5취온에서도 스무 가지의 살가야견이 생겨나는 것이니, 자아는 색에 의해 존재한다고 하거나, 색이 자아의 속성이라고 하거나, 또는 자아는 색 가운데 존재한다고 한다. 또 이처럼 수온ㆍ상온ㆍ행온ㆍ식온을 자아라고 헤아리거나, 자아는 식온에 의하여 존재한다고 하거나, 식온이 자아의 속성이라고 하거나, 식온 가운데 자아가 존재한다고도 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견해 가운데에서 몇 가지가 아견(我見)이고 몇 가지가 아소견(我所見)입니까?
이 가운데에서 다섯 가지만이 아견이고 나머지 열다섯 가지는 아소견이다. 색을 ‘자아’라고 헤아리는 것과 수ㆍ상ㆍ행ㆍ식을 자아라고 헤아리는 다섯 가지가 ‘아견’이다. 나머지 열다섯 가지는 ‘아소견’이다.
무슨 이유로 그 열다섯 가지가 아소견에 해당됩니까?
아소에 상응하기 때문이고, 아소에 수반되기 때문이고, 아소를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살가야견에 따른 해설도 사물에 대해 확실히 요지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 같은 사물에 대한 해설은 확실히 요지하는 것이 없으니, 마치 동아줄을 잘못 보고 뱀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016_0161_a_10L何等爲貪謂三界愛爲體生衆苦爲何等爲瞋謂於有情苦及苦具心恚爲體不安隱住惡行所依爲業等爲慢謂依止薩迦耶見心高擧爲不敬苦生所依爲業何等無明三界無知爲體於諸法中邪決定疑雜生起所依爲業何等爲疑謂於諦猶豫爲體善品不生所依爲業等薩迦耶見謂於五取蘊等隨觀執我及我所諸忍欲覺觀見爲體一切見趣所依爲業何等邊執見謂於五取薀等隨觀執或斷或常諸忍欲覺觀見爲體障處中行出離爲業何等見取謂於諸見及見所依五取薀等隨觀執爲最爲勝爲上爲妙諸忍欲覺觀見爲體執不正見所依爲業等戒禁取謂於諸戒禁及戒禁所依五取薀等隨觀執爲淸淨爲解脫爲出離諸忍欲覺觀見爲體勞而無果所依爲業何等邪見謂謗因謗果謗作用或壞實事或邪分別諸忍欲覺觀見爲體斷善根爲業及不善根堅固所依爲業不善生起爲業善不生起爲業如是五見幾增益見幾損減見四是增益見謂於所知境增益自性及差別故於諸見中增益第一及淸淨故一多分是損減見計前後際所有諸見彼於此五幾見所攝或二或一切於不可記事所有諸見彼於此五幾見所攝謂或二或一切薄伽梵觀何過失故於薀界處以五種相非毀執我由觀彼攝受薩迦耶見者有五種過失故謂異相過失常過失不自在過失無身過失不由功用解脫過失於五取薀有二十句薩迦耶見謂計色是我我有諸色屬於我我在色中如是計受想行識是我我有識等識等屬我我在識等於此諸見幾是我見幾是我所見謂五是我見十五是我所見何因十五是我所見由相應我所故隨轉我所故不離我所故薩迦耶見當言於事了不了耶當言於事不得決了於繩上妄起蛇解
016_0162_a_01L어떠한 것이 분(忿)심소법입니까?
면전에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지 못하는 모양이니, 진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노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지팡이를 쥐고 분풀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한(恨)심소법입니까?
이 같은 일이 지나간 다음에도 진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 속에 간직해서 원망을 그치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참지 못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부(覆)심소법입니까?
죄를 짓고도 다른 이가 이를 바르게 거론하는 때에, 치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허물을 감추려는 것이 그 바탕이다. 마음 속으로 뉘우치면서 편안하지 못하게 머무르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뇌(惱)심소법입니까?
앞에서 설명한 분심소법ㆍ한심소법ㆍ부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에 머물러서 눈물 흘리는 것이 그 바탕이다. 날뛰면서 악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고, 복이 아닌 것을 짓는 것에서 업을 이루고, 편안하지 못하게 머무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질(嫉)심소법입니까?
이익에 집착해서 다른 사람의 호강을 견디지 못하는 진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질투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마음이 근심스러워 편안하지 못하게 머무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간(慳)심소법입니까?
생활 필수품과 같은 이익에 집착하는 것을 가리킨다. 탐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몹시 인색하게 구는 것이 그 바탕이다. 버리지 못하고 그것에 의지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광(誑)심소법입니까?
이익에 집착하는 탐심과 치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진실되지 않은 공덕을 거짓으로 현전(現前)시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사명(邪命)에 의지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첨(諂)심소법입니까?
이익에 집착하는 치심소법과 탐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그릇된 방편을 꾸며 진실을 감추고 악을 행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다른 이의 교수(敎授)를 방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교(憍)심소법입니까?
나이가 젊거나 병이 없거나 장수하는 모습, 또는 하나의 유루법인 명예나 이익 같은 일에 의지하는 탐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들떠서 거리낌 없는 것이 그 바탕이다. 모든 번뇌와 수번뇌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해(害)심소법입니까?
진심소법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애처롭게 여기거나 불쌍하게 여기거나 가련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유정을 괴롭히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무참(無慚)심소법입니까?
탐ㆍ진ㆍ치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고도 자신에게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모든 번뇌와 수번뇌를 보조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무괴(無愧)심소법입니까?
탐ㆍ진ㆍ치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고도 남에게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모든 번뇌와 수번뇌를 조반(助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혼침(惛沈)심소법입니까?
우치심소법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마음이 참고 견디지 못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비발사나(毘鉢舍那)를 방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도거(掉擧)심소법입니까?
탐심소법과 욕심소법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청정한 모양을 염두에 두기에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사마타(奢摩他)를 방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불신심소법입니까?
우치(愚癡)심소법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여러 선법을 마음으로 견뎌내지 못하거나 마음속으로 이를 청정하게 여기지 않거나 마음속으로 바라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게으름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해태(懈怠)심소법입니까?
우치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잠에 취하여 늘 누워 있는 것을 즐기고 마음을 노력하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선품의 방편을 닦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방일(放逸)심소법입니까?
해태심소법과 탐ㆍ진ㆍ치에 의지해서 선법을 닦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유루법에 처해 있음에도 마음을 지키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미워하고 싫어하여 손상시키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망념(妄念)심소법입니까?
여러 가지 번뇌가 그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어지러운 것에 의지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부정지(不正知)심소법입니까?
여러 번뇌가 혜심소법과 상응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이 같은 혜심소법에 연유해서 부정지심소법을 일으켜 신ㆍ구ㆍ의의 행을 훼손하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산란(散亂)심소법입니까?
탐ㆍ진ㆍ치의 일부분을 가리킨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이 그 바탕이다. 이것에 다시 여섯 종류가 있으니 자성산란(自性散亂)ㆍ외산란(外散亂)ㆍ내산란(內散亂)ㆍ상산란(相散亂)ㆍ추중산란(麤重散亂)ㆍ작의산란(作意散亂)이다.
어떠한 것이 자성산란입니까?
5식신(識身)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외산란입니까?
선법을 올바로 닦는 때에 다섯 가지 묘한 욕락이 그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내산란입니까?
선법을 올바로 닦는 때에 혼침에 빠지거나 도거에 빠져서 미정(味定)에 집착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상산란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선법의 수행을 잘못 교시한 것을 그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추중산란입니까?
아와 아소의 집착에 의지하는 것 및 아만품(我慢品)의 추중(麤重)하는 세력에 기인하는 때문이니, 선법을 닦는 때에 이미 생겨난 일체의 수온에서 일어나는 아ㆍ아소 및 아만에서 간간이 잡되게 집수(執受)하여 그 모양을 취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작의산란입니까?
여승(餘乘)의 여정(餘定)에 의지하거나 들어가게 되면 모든 것이 흩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이것에 의지하거나 이 같은 정에 들어가게 되면 일체가 흩어져 이욕(離欲)을 능동적으로 방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016_0161_c_08L何等爲忿謂於現前不饒益相瞋之一分心怒爲體執杖憤發所依爲業何等爲恨謂自此已後卽瞋一分怨不捨爲體不忍所依爲業何等爲謂於所作罪他正擧時癡之一分隱藏爲體悔不安住所依爲業何等爲惱忿恨居先瞋之一分心戾爲體高暴麤言所依爲業生起非福爲業不安隱住爲業何等爲嫉謂耽著利養不耐他榮瞋之一分心妒爲體心憂慼不安隱住爲業何等爲慳耽著利養於資生具貪之一分心悋爲體不捨所依爲業何等爲誑謂耽著利養貪癡一分詐現不實功德爲邪命所依爲業何等爲諂謂耽著利養貪癡一分矯設方便隱實過惡爲體障正教授爲業何等爲憍謂或依少年無病長壽之相或得隨一有漏榮利之事貪之一分令心悅豫爲一切煩惱及隨煩惱所依爲業等爲害謂瞋之一分無哀無悲無愍爲體損惱有情爲業何等無慚謂貪瞋癡分於諸過惡不自羞爲體一切煩惱及隨煩惱助伴爲業何等無愧謂貪瞋癡分於諸過惡不羞他爲體一切煩惱及隨煩惱助伴爲業何等惛沈謂愚癡分心無堪任爲體障毘鉢舍那爲業何等掉擧謂貪欲分念淨相心不寂靜爲體障奢摩他爲何等不信謂愚癡分於諸善法心不忍可心不淸淨心不希望爲體怠所依爲業何等懈怠謂愚癡分著睡眠倚臥爲樂心不策勵爲體修方便善品爲業何等放逸謂依懈怠及貪瞋癡不修善法於有漏法心不防護爲體增惡損善所依爲業等忘念謂諸煩惱相應念爲體散亂所依爲業何等不正知謂諸煩惱相應慧爲體由此慧故起不正知身語心行毀所依爲業何等散亂謂貪瞋癡分心流散爲體此復六種謂自性散亂外散亂內散亂相散亂麤重散亂作意散亂云何自性散亂謂五識云何外散亂謂正修善時於五妙欲其心馳散云何內散亂謂正修善時沈掉味著云何相散亂謂爲他歸信矯示修善云何麤重散亂謂依我我所執及我慢品麤重力故修善法時於已生起所有諸受起我我所與我慢執受閒雜取相云何作意散謂依餘乘餘定若依若入所有流散能障離欲爲業
016_0162_c_01L어떠한 것이 수면(睡眠)심소법입니까?
수면의 인연에 의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우치(愚癡)의 일부분이 대략 그 바탕이다. 선(善)하기도 하고, 불선(不善)하기도 하고, 무기(無記)이기도 하고, 시(時)이기도 하고, 비시(非時)이기도 하고, 응이(應爾)이기도 하고, 불응이(不應爾)이기도 하기에, 실념(失念)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악작(惡作)심소법입니까?
낙작(樂作)ㆍ불락작(不樂作)ㆍ응작(應作)ㆍ불응작(不應作)을 가리킨다. 이 우치(愚癡)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곧 후회하게 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선(善)하기도 하고 불선(不善)하기도 하고 무기(無記)이기도 하고 시(時)이기도 하고, 비시(非時)이기도 하고 응이(應爾)이기도 하고 불응이(不應爾)이기도 하기에, 능히 심주(心住)를 장애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어떠한 것이 심(尋)심소법입니까?
사(思)심소법에 의지하거나 혜심소법에 의지한다고 말한다. 말과 그 이치를 헤아리는 작용이 있어 마음을 추중해서 전향시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어떠한 것이 사(伺)심소법입니까?
사(思)심소법에 의지하거나 혜(慧) 심소법에 의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말과 이치를 세밀하게 헤아리는 작용이 있어 마음을 미세하게 전향시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이 같은 두 종류의 그 머무는 것이 안정되거나 안정되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심과 사, 두 종류의 행상은 서로 상대되는 것이기에 추중과 미세로써 그 차별을 건립하게 된다. 또 모든 선한 심법에 처해서 스스로 그 소치(所治)를 끊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되고, 번뇌와 수번뇌가 스스로 능치(能治)하는 것을 장애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016_0162_b_14L何等睡眠謂依睡眠因緣是愚癡分心略爲體或善或不善或無記或時或非時或應爾或不應爾越失可作所依爲業何等惡作謂依樂作不樂應作不應作是愚癡分心追悔爲或善或不善或無記或時或非時或應爾或不應爾能障心住爲業等爲尋謂或依思或依慧尋求意言令心麤轉爲體何等爲伺謂或依思或依慧伺察意言令心細轉爲體是二種安不安住所依爲業復次諸善心所斷自所治爲業煩惱隨煩惱障自能治爲業
016_0163_a_01L어떠한 것을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이라 이름합니까?
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ㆍ무상이숙(無想異熟)ㆍ명근(命根)ㆍ중동분(衆同分)ㆍ생(生)ㆍ노(老)ㆍ주(住)ㆍ무상(無常)ㆍ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ㆍ이생성(異生性)ㆍ유전(流轉)ㆍ정이(定異)ㆍ상응(相應)ㆍ세속(勢速)ㆍ차제(次第)ㆍ시(時)ㆍ방(方)ㆍ수(數)ㆍ화합(和合) 등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득(得)입니까?
선법(善法)ㆍ불선법(不善法)ㆍ무기법(無記法)이 늘어나거나 또는 줄어든다고 임시로 세워서[假立] 그 성취를 일으키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무상정 불상응행법입니까?
변정천(遍淨天)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나 그 상계(上界)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했기에 그 출리상(出離想)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그 불항행(不恒行)의 심ㆍ심소가 소멸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무상정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멸진정 불상응행법입니까?
무소유처의 욕을 이미 여의고서 유정천을 초월하되 그 잠식상(暫息想)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모든 불항행의 심ㆍ심소와 항행(恒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멸진정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무상이숙 불상응행법입니까?
무상(無想)의 유정천(有情天)에 이미 태어난 것을 가리킨다. 불항행의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무상이숙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명근 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 있어서 예전의 업에 감득(感得)하는 것이니, 그 머무는 때의 결정을 임시로 세워서 명근이라 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중동분 불상응행법입니까?
이러이러한 모든 유정들이 종류에 따라 그 자체가 서로 비슷한 것을 임시로 세워서 중동분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생 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의 제행에는 본래 금생의 유(有)가 없으나 임시로 세워서 생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노 불상응행법이라고 합니까?
중동분에서 제행이 상속하여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늙는 것[老]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주 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 제행이 상속하여 파괴되지 않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머무는 것[住]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무상 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 제행이 상속하여 변하여 없어지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무상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명신 불상응행법입니까?
제법의 자체적인 성품에서 그 언설이 늘어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명신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구신 불상응행법입니까?
제법의 차별에서 그 언설이 늘어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구신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문신 불상응행법입니까?
두 가지에 의지하는 각종 문자를 임시로 세워서 문신이라 한다. 이 문이란 그 두 가지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 현(顯)이라고도 이름하니 능히 그 의미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또 명자(名字)라고도 하니, 그 의미가 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이 이생성 불상응행법입니까?
성법(聖法)을 얻지 못한 것을 임시로 세워서 이생의 성품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유전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유전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정이(定異)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의 갖가지 차별을 임시로 세워서 정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상응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서로 대칭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상응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세속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신속하게 유전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세속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차제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하나하나 차례대로 유전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차제라고 한다.
어떠한 것이 시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상속하여 유전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시간[時]이라고 한다.
어떠한 것이 방 불상응행법입니까?
동ㆍ서ㆍ남ㆍ북ㆍ사유(四維)ㆍ상ㆍ하의 인과가 서로 차별적인 것을 임시로 세워서 방향[方]이라 한다.
어떠한 것이 수 불상응행법입니까?
제행을 하나씩 하나씩 차별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수라고 한다.
어떠한 것이 화합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중연(衆緣)에 의해 모여지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화합이라 한다.
016_0162_c_04L何等名爲心不相應行謂得無想定滅盡定無想異熟命根衆同分無常名身句身文身異生性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和合等何等爲得謂於善不善無記法若增若減假立獲得成就何等無想定已離遍淨欲未離上欲出離想作意爲先故於不恒行心心所滅假立無想定何等滅盡定謂已離無所有處超過有頂蹔息想作意爲先故不恒行諸心心所及恒行一分心心所滅假立滅盡定何等無想異熟已生無想有情天中於不恒行心心所滅假立無想異熟何等命根謂於衆同分先業所引住時決定假立命何等衆同分謂如是如是有情種種類自體相似假立衆同分何等爲生謂於衆同分諸行本無今有立爲生何等爲老謂於衆同分諸行相續變異假立爲老何等爲住謂於衆同分諸行相續不變壞假立爲住何等無常謂於衆同分諸行相續變假立無常何等名身謂於諸法自性增言假立名身何等句身謂於諸法差別增言假立句身何等文身於彼二所依諸字假立文身此言文能彰彼二故此又名顯能顯彼義此復名字無異轉故何等異生性謂於聖法不得假立異生性何等流謂於因果相續不斷假立流轉等定異謂於因果種種差別假立定何等相應謂於因果相稱假立相何等勢速謂於因果迅疾流轉立勢速何等次第謂於因果一一流假立次第何等爲時謂於因果相續流轉假立爲時何等爲方謂於東西南北四維上下因果差別假立爲何等爲數謂於諸行一一差別立爲數何等和合謂於因果衆緣集假立和合
016_0163_b_01L어떻게 식온(識蘊)을 건립한다고 말합니까?
심(心)ㆍ의(意)ㆍ식(識)의 차별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을 심(心)이라 합니까?
온ㆍ계ㆍ처의 습기(習氣)에서 일체종자(一切種子)를 훈습(薰習)하는 아뢰야식을 가리킨다. 또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이름하고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도 이름하는 것은 모든 습기를 축적시키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을 의(意)라고 합니까?
일체 시(時)에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연하여 사량(思量)하고 헤아리는 것으로 그 성품을 이루는 것이다. 네 가지 번뇌와 항상 상응하니 아견(我見)ㆍ아애(我愛)ㆍ아만(我慢)ㆍ무명(無明)을 가리켜 이 의(意)가 변행(遍行)한다고 한다. 일체의 선ㆍ불선ㆍ무기의 자리[位]에서 오직 성도(聖道)가 현전하는 것이 제외된, 멸진정(滅盡定)이나 무학지(無學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또 6식(識)은 그 식의 소멸이 간단없기에 의(意)라고 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식입니까?
6식신, 즉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안식입니까?
안근이 색을 연하는 것에 의지하여 구별하여 아는 것이 그 성품이다.
어떠한 것이 이식입니까?
비근이 소리를 연하는 것에 의지하여 구별하여 아는 것이 그 성품이다.
어떠한 것이 비식입니까?
비근이 향기를 연하는 것에 의지하여 구별하여 아는 것이 그 성품이다.
어떠한 것이 설식입니까?
설근이 맛을 연하는 것에 의지하여 구별하여 아는 것이 그 성품이다.
어떠한 것이 신식입니까?
신근이 감촉을 연하는 것에 의지하여 구별하여 아는 것이 그 성품이다.
어떠한 것이 의식입니까?
의근에 의지해서 그 법을 연하여 구별하여 아는 것이 그 성품이다.
어떻게 계를 건립하게 됩니까?
색온이 곧 식계이니 안ㆍ이ㆍ비ㆍ설ㆍ신의 5근의 계와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의 5경계 및 법계의 일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수온ㆍ상온ㆍ행온은 바로 법계의 일부분에해당하는것이고,식온에는 7식계가 있으니 안식계ㆍ이식계ㆍ비식계ㆍ설식계ㆍ신식계ㆍ의식계의 6식계 및 의계(意界)이다.
016_0163_a_21L云何建立識薀謂心識差別何等爲心謂薀界處習氣所熏一切種子阿賴耶識亦名異熟識亦名阿陁那以能積集諸習氣故何等爲意一切時緣阿賴耶識思度爲性與四煩惱恒相應謂我見我愛我慢無明此意遍行一切善不善無記位唯除聖道現前若處滅盡定及在無學地又六識以無閒滅識爲意何等爲識謂六識身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何等眼識謂依眼緣色了別爲何等耳識謂依耳緣聲了別爲性何等鼻識謂依鼻緣香了別爲性等舌識謂依舌緣味了別爲性何等身識謂依身緣觸了別爲性何等意謂依意緣法了別爲性云何建立界謂色薀卽十界眼界色耳界聲界鼻界香界舌界味界界觸界及意界一分受薀想薀行薀卽法界一分識薀卽七識界謂眼等六識界及意界
016_0163_c_01L어떻게 계법(界法)은 온에 소속되지 않습니까?
법계 내의 모든 것이 무위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무위법에는 다시 여덟 종류가 있으니, 선법진여(善法眞如)ㆍ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ㆍ무기법진여(無記法眞如)ㆍ허공(虛空)ㆍ비택멸(非擇滅)ㆍ택멸(擇滅)ㆍ부동멸(不動滅)ㆍ상수멸(想受滅)을 가리킨다.
선법진여란 어떠한 것입니까?
무아(無我)의성품이니,공성(空性)ㆍ무상(無常)ㆍ실제(實際)ㆍ승의(勝義)ㆍ법계(法界)라고도 이름한다.
어째서 진여를 진여라고 이름합니까?
그 자성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진여를 무아상(無我相)이라 이름합니까?
두 종류의 자아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진여를 공성이라 이름합니까?
일체의 잡염에 천류(遷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서 다시 무상이라 이름합니까?
일체의 모양이 모두 적멸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다시 실제라고 이름합니까?
전도됨이 없이 소연하는 성품을 가리킨다.
어째서 다시 승의라고 이름합니까?
가장 수승한 성지(聖智)가 행해지는 처소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다시 법계라 이름합니까?
모든 성문과 독각 및 모든 부처님께서 그 묘법을 소의(所依)하시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선법진여와 마찬가지로 불선법진여와 무기법진여도 이러함을 숙지해야 한다.
어떠한 것이 허공입니까?
색이 없는 성품을 가리킨다. 일체의 조작된 업을 수용하는 때문이다.
어떠한 것이 비택멸입니까?
이것이 소멸해도 이계(離繫)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택멸입니까?
이것이 소멸하게 되면 바로 이계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부동입니까?
변정천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나, 미처 상계(上界)의 욕을 여의지 못하고 단지 괴로움과 즐거움의 소멸이 유추되는 것을 말한다.
어떠한 것이 상수멸입니까?
무소유처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되 잠식상(暫息想)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에, 모든 불항행(不恒行)의 심ㆍ심소와 항행(恒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심ㆍ심법이 소멸한 무위법이다. 또 5종색이나 수온ㆍ상온ㆍ행온ㆍ식온 및 여기서 해설한 여덟 가지 무위법을 총괄적으로 법계라고 이름한다.
016_0163_b_19L何等界法薀不攝耶謂法界中諸無爲法此無爲法復有八種謂善法眞不善法眞如無記法眞如虛空擇滅擇滅不動及想受滅何等善法眞如謂無我性亦名空性無相實際勝義法界何故眞如說名眞如謂彼自性無變異故何故眞如名無我性離二我故何故眞如名爲空性一切雜染所不行故何故眞如名爲無相以一切相皆寂靜故何故眞如名爲實際以無顚倒所緣性故何故眞如名爲勝義最勝聖智所行處故何故眞如名爲法界一切聲聞獨覺諸佛妙法所依相故如善法眞如當知不善法眞如無記法眞如亦爾何等虛謂無色性容受一切所作業故等非擇滅謂是滅非離繫何等擇滅謂是滅是離繫何等不動謂已離遍淨欲未離上欲苦樂滅何等想受滅謂已離無所有處欲超過有頂暫息想作意爲先故諸不恒行心心所滅及恒行一分心心所滅又若五種色若受想行薀及此所說八無爲法是十六摠名法界
어떻게 처를 건립한다고 합니까?
10색계가 바로 10색처(色處)이고, 7식계가 바로 7식처이고 법계가 바로 법처이다.
016_0163_c_20L云何建立處謂十色界卽十色處識界卽意處法界卽法處
016_0164_a_01L 이 같은 도리에 연유해서 모든 온ㆍ계ㆍ처가 3법에 소속되는 것으로, 바로 색온ㆍ법계ㆍ의처를 가리킨다.
안근과 안계에 대해 설명한 것처럼, 만약 안근이 있으면 안계도 있어야 합니까? 안계가 있게 되면 안근도 있게 됩니까?
혹 안근만이 있고 안계가 없는 것을 ‘아라한 최후의 안근’이라고 말한다. 혹 안계는 있으나 안근이 없다는 것은, 난각(卵殼)의 갈라람(羯邏藍)1)에 처한 때나 알부담(頞部曇)2)에 처한 때나 폐시(閉尸)3)에 처한 때처럼 모태 속에 있어서 미처 안근을 얻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가령 있었다가 잃게 되거나, 혹은 무색계의 이생(異生)이 안근의 인(因)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안계가 있어서 안근도 있다는 것은 그 밖의 지위라고 말한다. 또 안근도 없고 안계가 없다는 것은,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의 계에 이미 들어간 것과 여러 성자(聖者)가 무색계에 태어난 것을 가리킨다. 안근이 안계와 함께 하는 경우처럼, 이근ㆍ비근ㆍ설근도 이계ㆍ비계ㆍ설계를 동반하면서 그 처소에 따라 소멸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의근과 의계에 대해 설명하는 것처럼, 만약 의근이 있으면 의계도 있어야 합니까? 의계가 있게 되면 의근도 있어야 합니까?
혹 의근만이 있고 의계가 없는 것을 아라한 최후의 의근이라고 말한다. 혹 의계는 있으나 의근이 없다는 것은 멸진정에 처한 사람이 의근의 인을 지닌 것을 가리킨다. 혹 의근도 있고 의계도 있다는 것은 여타의 지위를 가리킨다. 또 의근도 없고 의계도 없다는 것이란, 무여의열반의 계에 이미 들어간 것을 가리킨다.
만약 어떤 지위(地位)에서 태어나서 자라나는 경우, 즉시 그 같은 지위에 해당하는 안근으로 그 같은 지위에 있는 색을 볼 수 있습니까?
그 같은 지위에 해당하는 안근을 써서 다시 그 같은 지위에 있는 색이나 또는 그 밖의 지위의 색을 보게 된다는 것은, 만약 욕계에서 태어나서 자라나는 경우, 욕계에 미치는 안근으로 욕계(欲界)의 색을 보거나 색계에 미치는 안근으로 색계(色界)의 색을 보거나 상지(上地)에 해당하는 안근을 써서 하지(下地)의 색을 보는 것을 가리킨다.
안근으로 색을 상대하는 것처럼 이근으로 소리를 상대하는 것도 욕계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경우와 같고 색계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경우와 같다. 만약 욕계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경우 즉시 욕계에 미치는 비근ㆍ설근ㆍ신근으로 다시 욕계에 미치는 향기ㆍ미각ㆍ감촉을, 냄새 맡고 맛보고 지각하게 된다. 만약 색계에서 태어나 자라난 경우에는 즉시 색계에 미치는 신근으로 자신이 태어난 지위의 감촉을 지각하게 되는 것이니, 이는 그 세계 자체가 정(定)으로 이루어져 향기와 미각이 없고 단식(段食)에 대한 탐욕도 여읜 때문이다. 이 같은 도리에 연유해서 색계에는 비식과 설식이 없다.
만약 욕계에 태어나 자라나는 경우 즉시 욕계에 미치는 의근으로 삼계의 법과 무루법을 요지하게 된다. 욕계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것처럼 색계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경우도 이와 같다. 만약 무색계에 태어나 자라나는 경우 무색계에 미치는 의근으로 무색계에 미치는 자신이 태어난 지위에 존재하는 법과 무루법을 알게 된다.
만약 무루의 의근으로 삼계의 법과 무루법을 안다면, 어째서 모든 온에 이와 같은 차제가 있어야 합니까?
식에 연유하여 머물기 때문에 네 종류의 식주처(識住處)와 그 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 전자는 후자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그 색의 상으로 접수하기 때문이고, 그 접수 받는 대로 깨달아 알기 때문이고, 그 요지하는 대로 사(思)를 이루기 때문이고, 사를 이루는 대로 각각의 처소에 따라 구별하여 알기 때문이다. 또 그 염오(染汚)와 청정한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같은 처소에서 염정(染淨)을 일으키거나 그 접수받는 것에 연유해서 모양을 취하고 조작하기 때문에 염오이거나 청정하게 된다. 소염오(所染汚)이거나 소청정(所淸淨)이거나 모두 이 같은 이치에 연유해서 온의 차제를 해설하는 것이다.
016_0163_c_22L由此道理諸薀界處三法所攝謂色法界意處如說眼及眼界若有眼亦眼界耶設有眼界亦眼耶或有眼非眼界謂阿羅漢最後眼或有眼界非眼謂處卵殼羯邏藍時頞部曇時閉尸時在母腹中若不得眼設得已失;若生無色異生所有眼因或有眼亦眼界謂所餘位或有無眼無眼界謂已入無餘依涅槃界及諸聖者生無色界如眼與眼界如是耳鼻舌身與耳等界隨其所應盡當知若有意亦意界耶設有意界亦意耶或有意非意界謂阿羅漢最後意或有意界非意謂處滅定者所有意因或有意亦意界謂所餘位或有無意無意界謂已入無餘依涅槃界若生長彼地卽用彼地眼還見彼地色耶或有卽用彼地眼還見彼地色或復餘地生長欲界用色廛眼見欲廛色;或用色廛上地眼見下地色如以眼對色如是以耳對聲如生長欲界如是生長色界若生長欲界卽以欲廛鼻舌還嗅嘗覺欲廛香味觸若生長色卽以色廛身還覺自地觸彼界自性定無香味離段食貪故由此道理亦無鼻舌兩識若生長欲界卽以欲廛意知三界法及無漏法如生長欲如是生長色界若生長無色界無色廛意知無色廛自地法及無漏若以無漏意知三界法及無漏法何故諸薀如是次第由識住故謂四識住及識又前爲後依故如其色相而領受故如所領受而了知故如所了知而思作故如所思作隨彼彼處而了別故又由染污淸淨故謂若於是處而起染淨若由領受取相造作故染污淸淨若所染污及所淸淨由此理故說薀次第
016_0164_c_01L어째서 여러 계에 이와 같은 차제가 있는 것입니까?
세간사(世間事)의 차별에 따라 유전되기 때문이다. 세간사의 차별에 따라 유전된다는 것은 모든 세간에서의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서로 만나고 나면 다시 서로 간에 인사를 하게 되고 인사를 하고 나서야 목욕을 하고 향을 바르고 화관을 쓰게 된다. 그 다음에 갖가지 좋은 음식을 대접받게 되고 그 다음에 갖가지 이부자리와 시녀를 대접받게 되는 것처럼, 이 같은 연후에야 의계가 여러 처로 분별되는 것이니 내계(內界)에도 차제가 있는 까닭에 외계를 건립하게 되고, 또 이 같은 차제에 따라서 10계를 건립하게 되는 것이다. 계(界)의 차제가 이러한 것처럼 처(處)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온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모든 소유색(所有色)을 말하는 것이니, 과거이거나 현재이거나 미래이거나 내적이거나 외적이거나 추색이거나 세색이거나 열악하거나 수승하거나 멀거나 가까운 것에 해당한다. 이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총괄해서 1색온(色蘊)이라 해설하는 것은 ‘축적된다는 이치’ 때문이니, 마치 재화가 쌓인 것과도 같다. 이같이 해서 식온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 고통스러운 모양이 광대한 까닭에 온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마치 커다란 재목이 쌓여 있는 것[蘊]과도 같으니, 계경(契經)의 말씀대로 순대고온(純大苦蘊)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또 잡염(雜染)이라는 무거운 짐을 메게 되는 까닭에 온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마치 어깨에 짐을 메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016_0164_b_14L何故諸界如是次第由隨世事差別轉故云何世事差別而轉謂諸世閒最初相見旣相見已更相問訊旣問訊已卽受沐浴塗香花鬘次受種種上妙飮食次受種種臥具侍女然後意界處處分別以內界次第故建立外界隨此次第建立識界如界次第處亦如是薀義云何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若劣若勝若遠若近彼一切略說一色薀積聚義故如財貨薀如是乃至識薀又苦相廣大故名爲薀如大材薀如契經言如是純大苦薀集故又荷雜染擔故名爲薀如肩荷擔
계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일체법의 종자가 된다는 이치이니, 아뢰야식 내에 있는 제법의 종자를 계라는 이름으로 해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계는 바로 인(因)의 이치이다. 또 능동적으로 지속시키는[能持] 자체적인 모양의 이치가 계의 이치이기도 하고, 또 인과를 능동적으로 지속시키는 성품의 이치가 계의 이치이기도 하다.
처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식(識)이 자라나고 태어나는 문(門)의 이치가 바로 처의 이치이니, 그 종자의 이치를 숙지해야만 한다.
016_0164_c_05L界義云何一切法種子義;又能持自相義;又能持因果性義;又攝持一切法差別義處義云何識生長門義是處義
마치 부처님 말씀처럼 색(色)은 물을 끓일 때 거품이 일어 모이는 것과 같고, 수(受)는 물거품이 떠 있는 것과 같고, 상(想)은 아지랑이 같고, 행(行)은 파초와 같고, 식(識)은 환상과도 같은 것이다.
어떠한 이치에서 색온은 물을 끓일 때 거품이 일어 모이는 것과 같다고 하며, 수온은 물거품이 떠 있는 것과 같다고 하며, 상온은 아지랑이와 같다고 하며, 행온은 파초와 같다고 하며, 식온은 환상과도 같다고 합니까?
무아(無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청정함을 여읜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그 미경(味境)의 세력이 감소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견고하거나 실답지 않은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016_0164_c_09L如佛所說色如聚沫受如浮泡想如陽焰行如芭蕉識如幻化以何義故色如聚沫乃至識如幻化以無我故離淨故少味故不堅故不實故
大乘阿毘達磨集論卷第一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운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를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는데, 태종이 작성한 서문이 바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이다.
  2. 2)죄를 지은 결과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세 가지 길로, 곧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을 말한다.
  3. 3)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를 말한다.
  4. 4)삼해탈(三解脫), 또는 삼삼매(三三昧)라고도 한다. 아공(我空), 법공(法空), 아법구공(我法俱空)을 가리키기도 하고 삼공해탈(三空解脫), 무상해탈(無相解脫), 무원해탈(無愿解脫)을 가리키기도 한다.
  5. 5)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안인(安忍)의 뜻으로, 보살이 도리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인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멸인(無滅忍)ㆍ인연인(因緣忍)ㆍ무주인(無住忍)이 있다.
  6. 6)인간의 심성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경계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7. 7)원문에는 ‘척(隻)’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아 ‘형(夐)’으로 교정하여 번역하였다.
  8. 8)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것을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다. 황제술성기는 바로 고종이 기문을 썼다는 의미이다.
  9. 9)『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상이나 탑의 상부를 장엄하게 꾸미는 데 사용된 덮개를 말한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으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10. 10)고승이 불경을 강론할 때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11. 11)향취산(香醉山)의 남쪽, 대설산(大雪山)의 북쪽에 있다는 상상의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 연못은 둘레가 8백 리이며, 여기에 용왕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려 섬부주(贍部州)를 비옥하게 한다고 전해진다.
  12. 12)경기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기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으로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지역을 말한다. 즉 나라의 중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3. 13)중국 고대 관중지방에 흐르는 8개의 하천을 말한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이 바로 이 관중지방에 있다.
  14. 14)색계의 네 가지 단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세계로, 물질세계는 존재하나 감각의 욕망에서는 벗어난 청정(淸淨)한 세계를 말한다.
  15. 15)마음을 더럽히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16. 16)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나 상태를 말한다.
  17. 1)태내(胎內) 5위(位)의 하나로서 태 안에서 생긴 지 이레까지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갈랄람(羯剌藍)이라고도 한다.
  18. 2)태내 5위의 하나로서 태 안에서 생긴 지 두 번째 7일간.
  19. 3)태내 5위의 하나로서 태 안에서 생긴 지 세 번째 7일간.